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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계전 탄생 600주년 세미나

    한중철학회(회장 김필수)와 목은연구회(회장 이정복)는 조선 초의 대표적 학자이자 정치개혁가인 존양재(存養齋) 이계전(李季甸)의 탄생 60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 세미나를 5일 오후 4시 서울 대우재단빌딩 8층 세미나실에서 갖는다.세미나에 이어 조선조 청백리인 이병태(李秉泰)의 문집 ‘동산선생주의(東山先生奏議)’ 출판기념회도 연다.
  • [3·1절 기획] 리인섭은 누구

    ‘리인섭’은 러시아 지역 한인 독립운동사 연구자에게는 잘 알려져 있다.러시아에서 출간한 최초의 한국인 사회주의자 알렉산드라 김의 전기 등을 썼다.이 책은 1990년대 초반 국내에 소개됐다. 그러나 리인섭 자신이 누구인지는 자세히 밝혀져 있지 않다.1990년 역사비평사에서 출판한 재러 한인 마트베이 김의 ‘일제하 극동 시베리아의 한인 사회주의자들’에 실린 2장 분량의 약전이 유일하다. 책에 따르면 리인섭은 1888년 11월 평양에서 태어나 1907년부터 국내와 만주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하다 1917년 시베리아의 옴스크로 가 이듬해 최초의 한국인 사회주의 단체인 한인사회당 결성에 참여했던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다.러시아 내전기에는 시베리아에서 적군(赤軍)과 함께 일본 및 백군에 맞서 싸웠다. 그도 30년대 후반 스탈린이 독립운동가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킬 때 큰 고난을 겪었다.1956년 흐루시초프가 스탈린 격하운동을 통해 30년대 ‘대숙청’된 사람들을 복권시키자,이 때부터 중앙아시아에 흩어진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1910∼20년대의 자료와 증언을 모아 러시아 한인 독립운동사를 복원했다.이번에 발굴된 노트는 당시 노력의 결실물 중 하나로 보인다. 이세영기자˝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7)조선족의 뿌리를 찾아서(상)

    지금 중국은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 안으로 편입시켜 그들의 역사화를 시도하고 있다.한국의 시민단체들은 중국의 이런 태도를 비난하며 반발하고 있다. 그 고구려 영토였던 만주에는 조선족이라 불리는 200여만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그들의 생김새,언어,전통,음식은 한국인들과 닮은 데가 많다.한글과 한문을 함께 사용하는 문자생활,조상 제사하는 방법과 장례 풍속 등의 문화생활도 유사한 데가 있다. 그들의 국적은 중국이며 자식들은 중국인과 똑같은 교육을 받는 사람이 많다.특히 동북 3성이라 일컫는 헤이룽장성,지린성,랴오닝성의 조선족들은 한글과 한국 역사를 함께 가르치는 조선족 특유의 교육제도를 병행하고 있기도 하다.그들은 가난 때문에 한국에 와서 일한다.돈을 벌기 위해서다.그런데 참 서럽다.한국인의 지독한 차별대우 때문이다. 고구려 역사문제로 중국에 대해 분노하는 한국인의 태도와 고구려 땅에서 어렵사리 살아가고 있는 조선족들을 차별대우하는 한국인의 태도 사이에는 이중성이 존재한다. ●조선족은 한국 슬픔의 한 원류 중국의 고구려 역사에 대한 태도와 조선족에 대한 한국의 태도는 중국과 한국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을 것이며 조선족은 분명 한국 슬픔의 한 원류다.동북 3성이 아닌 중국의 다른 곳으로 옮겨 사는 조선족들도 많은데 이들은 조선족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런 이들은 한족(漢族)·몽골족·만주족 등으로 귀화했는데,이들 사는 곳을 두고 조선족들은 관내(官內)로 들어간 사람들이라고 한다. 나는 교포들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 1992년부터 꽤나 긴 시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만주와 북만주,일본의 총련과 민단사회를 두루 방문 여행했다. 특히 동북 3성인 헤이룽장성,지린성,랴오닝성의 여행은 러시아와 일본에서 살고 있는 카레이츠와 한인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깨달음을 갖게 했다.당시 나는 조선족의 기구한 역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중국 조선족 역사학회’ 이사 서명훈(徐明勳) 선생을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그의 아파트로 방문했다. 1992년 여름에서 1998년까지 사이에 있었던 20여 차례의 여행기록을 토대로 하여 그 이후의 변화된 사정들을 전화 취재와 자료로 보완하면서 한국 슬픔의 뿌리를 들추어 본다. 문:중국 조선족의 역사를 정확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는 분을 찾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徐:글쎄요.조선족 역사라는 것이 독자적으로 성립된 적이 없어놔서….시작은 조선에서였지만,과정은 후금(後金),청(淸)나라,중국을 거쳐왔기 때문에 각 나라와 시대의 한 부분 또는 토막에 묻혀 있어서…. 문:언제부터 조선인들이 중국으로 오게 되었다고 보시는지요. 徐:중국에서 출판된 어떤 조선인 이민사에 관한 기록에 보면 19세기 중엽 또는 19세기 말엽부터였다고 하더군요.하지만 그렇게 보는 것은 조선족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중국과 조선 역사 기록을 잘 살펴보면 일찍이 17세기부터 조선인들이 만주로 이민을 왔음이 확인됩니다. 문:중국과 조선의 역사 기록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예로 들 수 있을는지요. 徐:청대통사(淸代通史),헤이룽장이민개요(黑龍江移民槪要),성정회람(省政回覽),한국이민사연구(韓國移民史硏究),동삼성정략(東三省政略),태조고황제실록(太祖高皇帝實錄),청사고(淸史稿),청조사료총간(淸朝史料叢刊),인조대왕실록(仁祖大王實錄),청태조무황제실록(淸太祖武皇帝實錄),명청사료(明淸史料),만문노로(滿文老櫓),심관록(沈館錄),조선통사(朝鮮通史),선양일기(沈陽日記),랴오둥문헌미략(遼東文獻微略),중국동북농업사,팔기통지(八旗通志),지린통지(吉林通志),헤이룽장조선민족 등이 대표적인 문헌입니다. 그런데 이 자료들 중에는 겨우 몇 마디,몇 글자로밖에 쓰여 있지 않은 것도 있는데,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뭐랄까요,중국역사에서 조선족이 차지하는 비중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문제는 바로 그 점입니다.한 두 글자로라도 적혀 있다는 것 말입니다.소위 조선인의 중국 이민을 연구한다는 이들이 소홀하게 여기는 대목이기도 합니다.역사란 많고 풍부한 자료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淸에 잡힌 조선포로 1만3000명 귀환 기록 없어 문:17세기부터 중국으로 이민이 시작되었다면 구체적인 시기나 원인을 알 수 있습니까. 徐:17세기 초 조선과 청국 사이에는 수차에 걸친 전쟁이 있었지 않습니까.1627년 1월13일 후금(後金)의 황제 황태극이 3만 대군으로 조선을 공격한 일이 있었지요.한국에서는 정묘호란이라 부르지요. 그 후 1636년 3월 후금은 국호를 청(淸)으로 바꾸고 그해 12월9일 만주군,몽골군,한군을 합한 12만 대군으로 재차 조선을 공격했는데 병자호란이 그것입니다.패한 조선에서는 수천명의 포로가 청나라로 끌려왔습니다. 정묘호란 때의 포로가 4986명이었고,병자호란 때는 3000명의 포로가 청나라로 끌려왔습니다. 또 1618년 후금이 명나라를 공격할 때 명나라의 요구에 의해 명나라를 지원하려고 파견되었던 조선군 1만 3000명 중에서 5000명이 후금에 투항하여 포로가 된 일도 있었지요. 이렇게 보면 이미 1618년에서 1636년에 이르는 18년 동안에 무려 1만 3000여명이라는 많은 조선 군인들이 청나라로 끌려갔는데,이들이 조선으로 돌아갔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그들은 결국 청나라에서 살 수밖에 없었겠지요. 문:전쟁 포로를 이민으로 볼 수도 있을까요. 徐:그 점이 조선족 역사의 특성입니다.여러 가지 이유로 중국에서 살게 된 조선인을 조선족이라고 하는데,중국에서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전쟁 포로로 끌려온 경우지요.앞에서 살핀 대로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중국으로 끌려와서 주로 노예신분이 되어 살았습니다. 둘째는 납치된 사람들입니다.즉 후금은 만주 땅에다 나라를 세운 뒤 그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정책적으로 명나라와 조선에서 사람을 납치해 와서 노비로 삼았지요.현재 랴오닝성의 흥경노성(興京老成) 밖에 있는 고려촌이 그 증거입니다. 셋째는 중국으로 피신해온 사람들이지요.정치범이나 일반 형사범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대표적인 경우로 1625년 인조반정 때 이괄(李适)과 함께 처형당한 한명렴(韓明廉)의 아들 한윤(韓潤)과 조카 한의(韓義)가 후금으로 피신하여 후금의 군인 간부가 된 일이 있지요.한윤,한의는 뒷날 정묘호란 때 후금의 길 안내를 맡기도 했지요. 그 외에도 정여립 모반사건 때 화를 피해서 온 정(鄭)가 성씨를 쓰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굶주림 피해 국경넘어 中동북3성 정착 넷째는 유민(流民)들입니다.조선의 평안도와 함경도 사람들은 자주 압록강,두만강을 건너 중국 동북지방에 와서 정착했습니다.17세기 조선 인민들은 경제적으로 봉건통치 계급의 참혹한 착취를 피하거나 천재지변으로 굶주림을 피해서 국경을 넘는 일이 빈번했지요. 토지가 넓고,인구는 매우 적으며,압제와 수탈과 부역이 적은 중국 쪽으로 피해서 살고 싶은 욕망이 크게 작용했던 시기였습니다. 조선족 중에서 가장 많은 숫자가 이들 유민이었습니다.살아남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국경 탈출을 한 이들이 본격적인 중국이민자들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이들에 관한 일은 1628년,1631년,1635년,1639년,1686년의 여러 기록에 등장하는데,중국의 책임자가 조선의 왕에게 국경을 봉쇄하여 조선인들이 중국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단속해 달라는 강력한 항의가 주를 이루고 있지요. 다섯째는 혼인정책에 의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조선의 공주가 청나라 왕실과 결혼하거나 조선 대신들의 딸,손녀가 청나라 왕실 귀족들과 혼인한 일이 많았습니다.조선의 공주나 대신들의 딸들이 청나라로 시집을 오게 되면 이들을 따라서 오는 조선인이 많았지요.이들은 친인척들끼리 마을을 이루게 되었고,비교적 높은 벼슬을 유지하면서 중국화되었지요. 그 외에 청나라 때에는 조선에서 여자들을 데려와 혼인하는 일이 빈번했는데 조선에서는 벼슬아치들의 첩실 몸에서 난 어린 딸들을 주로 보내주었지요.이들도 뒷날 중국화했습니다. 문:그러면 포로 등 다섯 부류로 나눠진 조선인들이 중국에 와서 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았을까요. 徐:그들의 직업은 크게 나누어 가장 많은 숫자가 농사짓는 노예였고,더러는 귀족 가문에 소속된 노예도 있었고,팔기군(八旗軍)의 병사도 있었으며,매우 적은 숫자이긴 하지만 사회 상층부 인물도 있었습니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7)조선족의 뿌리를 찾아서(상)

    지금 중국은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 안으로 편입시켜 그들의 역사화를 시도하고 있다.한국의 시민단체들은 중국의 이런 태도를 비난하며 반발하고 있다. 그 고구려 영토였던 만주에는 조선족이라 불리는 200여만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그들의 생김새,언어,전통,음식은 한국인들과 닮은 데가 많다.한글과 한문을 함께 사용하는 문자생활,조상 제사하는 방법과 장례 풍속 등의 문화생활도 유사한 데가 있다. 그들의 국적은 중국이며 자식들은 중국인과 똑같은 교육을 받는 사람이 많다.특히 동북 3성이라 일컫는 헤이룽장성,지린성,랴오닝성의 조선족들은 한글과 한국 역사를 함께 가르치는 조선족 특유의 교육제도를 병행하고 있기도 하다.그들은 가난 때문에 한국에 와서 일한다.돈을 벌기 위해서다.그런데 참 서럽다.한국인의 지독한 차별대우 때문이다. 고구려 역사문제로 중국에 대해 분노하는 한국인의 태도와 고구려 땅에서 어렵사리 살아가고 있는 조선족들을 차별대우하는 한국인의 태도 사이에는 이중성이 존재한다. ●조선족은 한국 슬픔의 한 원류 중국의 고구려 역사에 대한 태도와 조선족에 대한 한국의 태도는 중국과 한국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을 것이며 조선족은 분명 한국 슬픔의 한 원류다.동북 3성이 아닌 중국의 다른 곳으로 옮겨 사는 조선족들도 많은데 이들은 조선족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런 이들은 한족(漢族)·몽골족·만주족 등으로 귀화했는데,이들 사는 곳을 두고 조선족들은 관내(官內)로 들어간 사람들이라고 한다. 나는 교포들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 1992년부터 꽤나 긴 시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만주와 북만주,일본의 총련과 민단사회를 두루 방문 여행했다. 특히 동북 3성인 헤이룽장성,지린성,랴오닝성의 여행은 러시아와 일본에서 살고 있는 카레이츠와 한인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깨달음을 갖게 했다.당시 나는 조선족의 기구한 역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중국 조선족 역사학회’ 이사 서명훈(徐明勳) 선생을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그의 아파트로 방문했다. 1992년 여름에서 1998년까지 사이에 있었던 20여 차례의 여행기록을 토대로 하여 그 이후의 변화된 사정들을 전화 취재와 자료로 보완하면서 한국 슬픔의 뿌리를 들추어 본다. 문:중국 조선족의 역사를 정확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는 분을 찾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徐:글쎄요.조선족 역사라는 것이 독자적으로 성립된 적이 없어놔서….시작은 조선에서였지만,과정은 후금(後金),청(淸)나라,중국을 거쳐왔기 때문에 각 나라와 시대의 한 부분 또는 토막에 묻혀 있어서…. 문:언제부터 조선인들이 중국으로 오게 되었다고 보시는지요. 徐:중국에서 출판된 어떤 조선인 이민사에 관한 기록에 보면 19세기 중엽 또는 19세기 말엽부터였다고 하더군요.하지만 그렇게 보는 것은 조선족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중국과 조선 역사 기록을 잘 살펴보면 일찍이 17세기부터 조선인들이 만주로 이민을 왔음이 확인됩니다. 문:중국과 조선의 역사 기록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예로 들 수 있을는지요. 徐:청대통사(淸代通史),헤이룽장이민개요(黑龍江移民槪要),성정회람(省政回覽),한국이민사연구(韓國移民史硏究),동삼성정략(東三省政略),태조고황제실록(太祖高皇帝實錄),청사고(淸史稿),청조사료총간(淸朝史料叢刊),인조대왕실록(仁祖大王實錄),청태조무황제실록(淸太祖武皇帝實錄),명청사료(明淸史料),만문노로(滿文老櫓),심관록(沈館錄),조선통사(朝鮮通史),선양일기(沈陽日記),랴오둥문헌미략(遼東文獻微略),중국동북농업사,팔기통지(八旗通志),지린통지(吉林通志),헤이룽장조선민족 등이 대표적인 문헌입니다. 그런데 이 자료들 중에는 겨우 몇 마디,몇 글자로밖에 쓰여 있지 않은 것도 있는데,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뭐랄까요,중국역사에서 조선족이 차지하는 비중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문제는 바로 그 점입니다.한 두 글자로라도 적혀 있다는 것 말입니다.소위 조선인의 중국 이민을 연구한다는 이들이 소홀하게 여기는 대목이기도 합니다.역사란 많고 풍부한 자료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淸에 잡힌 조선포로 1만3000명 귀환 기록 없어 문:17세기부터 중국으로 이민이 시작되었다면 구체적인 시기나 원인을 알 수 있습니까. 徐:17세기 초 조선과 청국 사이에는 수차에 걸친 전쟁이 있었지 않습니까.1627년 1월13일 후금(後金)의 황제 황태극이 3만 대군으로 조선을 공격한 일이 있었지요.한국에서는 정묘호란이라 부르지요. 그 후 1636년 3월 후금은 국호를 청(淸)으로 바꾸고 그해 12월9일 만주군,몽골군,한군을 합한 12만 대군으로 재차 조선을 공격했는데 병자호란이 그것입니다.패한 조선에서는 수천명의 포로가 청나라로 끌려왔습니다. 정묘호란 때의 포로가 4986명이었고,병자호란 때는 3000명의 포로가 청나라로 끌려왔습니다. 또 1618년 후금이 명나라를 공격할 때 명나라의 요구에 의해 명나라를 지원하려고 파견되었던 조선군 1만 3000명 중에서 5000명이 후금에 투항하여 포로가 된 일도 있었지요. 이렇게 보면 이미 1618년에서 1636년에 이르는 18년 동안에 무려 1만 3000여명이라는 많은 조선 군인들이 청나라로 끌려갔는데,이들이 조선으로 돌아갔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그들은 결국 청나라에서 살 수밖에 없었겠지요. 문:전쟁 포로를 이민으로 볼 수도 있을까요. 徐:그 점이 조선족 역사의 특성입니다.여러 가지 이유로 중국에서 살게 된 조선인을 조선족이라고 하는데,중국에서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전쟁 포로로 끌려온 경우지요.앞에서 살핀 대로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중국으로 끌려와서 주로 노예신분이 되어 살았습니다. 둘째는 납치된 사람들입니다.즉 후금은 만주 땅에다 나라를 세운 뒤 그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정책적으로 명나라와 조선에서 사람을 납치해 와서 노비로 삼았지요.현재 랴오닝성의 흥경노성(興京老成) 밖에 있는 고려촌이 그 증거입니다. 셋째는 중국으로 피신해온 사람들이지요.정치범이나 일반 형사범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대표적인 경우로 1625년 인조반정 때 이괄(李适)과 함께 처형당한 한명렴(韓明廉)의 아들 한윤(韓潤)과 조카 한의(韓義)가 후금으로 피신하여 후금의 군인 간부가 된 일이 있지요.한윤,한의는 뒷날 정묘호란 때 후금의 길 안내를 맡기도 했지요. 그 외에도 정여립 모반사건 때 화를 피해서 온 정(鄭)가 성씨를 쓰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굶주림 피해 국경넘어 中동북3성 정착 넷째는 유민(流民)들입니다.조선의 평안도와 함경도 사람들은 자주 압록강,두만강을 건너 중국 동북지방에 와서 정착했습니다.17세기 조선 인민들은 경제적으로 봉건통치 계급의 참혹한 착취를 피하거나 천재지변으로 굶주림을 피해서 국경을 넘는 일이 빈번했지요. 토지가 넓고,인구는 매우 적으며,압제와 수탈과 부역이 적은 중국 쪽으로 피해서 살고 싶은 욕망이 크게 작용했던 시기였습니다. 조선족 중에서 가장 많은 숫자가 이들 유민이었습니다.살아남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국경 탈출을 한 이들이 본격적인 중국이민자들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이들에 관한 일은 1628년,1631년,1635년,1639년,1686년의 여러 기록에 등장하는데,중국의 책임자가 조선의 왕에게 국경을 봉쇄하여 조선인들이 중국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단속해 달라는 강력한 항의가 주를 이루고 있지요. 다섯째는 혼인정책에 의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조선의 공주가 청나라 왕실과 결혼하거나 조선 대신들의 딸,손녀가 청나라 왕실 귀족들과 혼인한 일이 많았습니다.조선의 공주나 대신들의 딸들이 청나라로 시집을 오게 되면 이들을 따라서 오는 조선인이 많았지요.이들은 친인척들끼리 마을을 이루게 되었고,비교적 높은 벼슬을 유지하면서 중국화되었지요. 그 외에 청나라 때에는 조선에서 여자들을 데려와 혼인하는 일이 빈번했는데 조선에서는 벼슬아치들의 첩실 몸에서 난 어린 딸들을 주로 보내주었지요.이들도 뒷날 중국화했습니다. 문:그러면 포로 등 다섯 부류로 나눠진 조선인들이 중국에 와서 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았을까요. 徐:그들의 직업은 크게 나누어 가장 많은 숫자가 농사짓는 노예였고,더러는 귀족 가문에 소속된 노예도 있었고,팔기군(八旗軍)의 병사도 있었으며,매우 적은 숫자이긴 하지만 사회 상층부 인물도 있었습니다.˝
  • 벽화여,고구려를 말하라/전호태 지음

    두 무리의 군사가 마주친다.장수 두 사람이 벌판 가운데에서 일합을 겨룬다.전마(戰馬) 두 마리가 부딪칠 듯 달려들자 창날이 번득인다.…승자는 패자에게 말한다.“목을 내 놓으시오.” 패자가 말한다.“원통하다.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내 목을 베시오.” 전호태 울산대 교수는 ‘벽화여,고구려를 말하라’(사계절출판사 펴냄)에서 통구 12호분에 그려져 있는 ‘적장 참수’ 장면을 이런 스토리로 재구성한다.통구 12호분은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에 있는 중기 고구려 벽화고분의 하나이다. 벽화는 투구를 쓰고 비늘 갑옷을 입은 무사가 비슷한 복장을 한 다른 무사의 목을 베는 순간을 묘사했다.패자는 무릎을 꿇은 채 목을 늘어뜨렸다.승자는 왼손으로 패자의 투구 끝을 잡고,오른손에 쥔 환두대도(環頭大刀)를 치켜들었다.승자의 오른발 못신은 패자가 놓친 긴창을 밟고 있다.신라나 백제의 무덤에서도 나오는 못신이 실제 전투에서도 쓰여졌음을 보여준다. 이 벽화와 같은 고분에 있는 기마 질주 장면은 역시 지안에 있는 삼실총 공성도(攻城圖)와 함께 삼국시대의 전투 상황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몇 안되는 그림자료들이다. 고분벽화 연구로는 국내에서 거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전 교수는 고구려가 누구의 역사인지를 논하기 전에 고구려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어떻게 살았는지를 먼저 알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문헌자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그것을 정확히 말해주는 것이 바로 고분벽화라는 것이다. 전 교수는 ‘벽화여,‘에서 고구려인의 삶이 오늘날 우리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쉬운 문체로 설명하고 있다.한국인들에게 의미있게 받아들여지는 고구려인의 모습이 중국인들에게는 크게 의미가 없다면 그 역사는 누구의 역사인가.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1만 4800원. 서동철기자 dcsuh@˝
  • [인사]

    ■ 코엑스 △총괄임원(상무이사)朴鐘千△서비스지원본부장(이사)金九燮 ■ 애드라인 ◇전무△총괄본부장 이병호◇이사△기획·매체본부장 노재득△제작〃 조규영◇부국장△기획수석팀장 천연재 ■ 한국바스프 ◇사장△폴리우레탄 사업부문 안청신△관리부문 안드레아스 비어만 ■ 문예진흥원 △기획조정실장 韓基天△정책〃 직무대리 梁孝錫△지원협력실장 吳洋烈△예술극장장 鄭承太△마로니에미술관장 朴明鶴△예술정보〃 柳在奉△문화예술연수원장 李誠謙△경영기획팀장 楊慶學△경영지원〃 李溶鎭△기금개발〃 직무대리 黃勤夏△지원컨설팅팀장 宋時慶△국제교류〃 張正進△출판·미디어사업〃 高俊煥△검사역 閔峻泓△정책위원 朴斗鉉△문학전문위원 李彰胤△미술〃 金瓚東△음악〃 金昌郁△연극〃 李鍾遠△무용〃 金英中△문화중심도시조성추진기획단 파견 朴相彦△예술극장무대기술총감독 崔亨吾
  • [인사]

    ■ 코엑스 △총괄임원(상무이사)朴鐘千△서비스지원본부장(이사)金九燮 ■ 애드라인 ◇전무△총괄본부장 이병호◇이사△기획·매체본부장 노재득△제작〃 조규영◇부국장△기획수석팀장 천연재 ■ 한국바스프 ◇사장△폴리우레탄 사업부문 안청신△관리부문 안드레아스 비어만 ■ 문예진흥원 △기획조정실장 韓基天△정책〃 직무대리 梁孝錫△지원협력실장 吳洋烈△예술극장장 鄭承太△마로니에미술관장 朴明鶴△예술정보〃 柳在奉△문화예술연수원장 李誠謙△경영기획팀장 楊慶學△경영지원〃 李溶鎭△기금개발〃 직무대리 黃勤夏△지원컨설팅팀장 宋時慶△국제교류〃 張正進△출판·미디어사업〃 高俊煥△검사역 閔峻泓△정책위원 朴斗鉉△문학전문위원 李彰胤△미술〃 金瓚東△음악〃 金昌郁△연극〃 李鍾遠△무용〃 金英中△문화중심도시조성추진기획단 파견 朴相彦△예술극장무대기술총감독 崔亨吾
  • [인사]

    ■ 교육인적자원부 ◇서기관 전보 △충남대 羅相輝△부경대 河宗沃△부산대 金聖壽△충북대 權明重△국가균형발전위원회 파견 辛文圭 ■ 세계일보 △주필 유재철△논설위원 황종택 조민호 김선교(편집국)△취재담당 부국장 임국현△정치부장 김기홍△경제〃 이익수△산업〃 김병수△사회〃 백영철△국제〃 안경업△전국〃 이돈성△통일〃 전천실△여론독자〃 정승욱△특별기획취재팀장 채희창△편집지원〃 여운상(기획실)△기획실장 차준영△기획팀장 한용걸△홍보〃 이범석△비서〃 김희준(총무국)△총무국장 홍대기△총무팀장 차태규△경영지원〃 송수선△재무관리〃 임석열(광고국)△부국장 변영택(조사국)△조사국장 박범철△조사1부장 정영찬 ■ 호남대 △입학관리본부장 최병현△기획처장 김한배△교무처장 겸 출판부장 김철호△보건과학대학장 한상언△공과대학장 나현식△정보산업대학원장 류희중△행정·경영대학원장 이원장△정보기술원장 차준섭△정보통신원장 신영석 ■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광주보훈병원장 金葉△대전보훈병원 관리부장 徐載弼△교육파견 丁奎植 池秉喆 ■ 한국식품개발연구원 △특화연구본부 인삼연구단장 金成洙 ■ 하나은행 ◇부행장보 △호남지역본부 金鳳用◇본부장△충청사업본부 金煥甲 朴倧德△북부지역본부 李正卿△서북지역본부△李康福△중기업금융 1본부 李長奎 ■ ㈜하쿠호도제일 △전무 孫春燮
  • [인사]

    ■ 교육인적자원부 ◇서기관 전보 △충남대 羅相輝△부경대 河宗沃△부산대 金聖壽△충북대 權明重△국가균형발전위원회 파견 辛文圭 ■ 세계일보 △주필 유재철△논설위원 황종택 조민호 김선교(편집국)△취재담당 부국장 임국현△정치부장 김기홍△경제〃 이익수△산업〃 김병수△사회〃 백영철△국제〃 안경업△전국〃 이돈성△통일〃 전천실△여론독자〃 정승욱△특별기획취재팀장 채희창△편집지원〃 여운상(기획실)△기획실장 차준영△기획팀장 한용걸△홍보〃 이범석△비서〃 김희준(총무국)△총무국장 홍대기△총무팀장 차태규△경영지원〃 송수선△재무관리〃 임석열(광고국)△부국장 변영택(조사국)△조사국장 박범철△조사1부장 정영찬 ■ 호남대 △입학관리본부장 최병현△기획처장 김한배△교무처장 겸 출판부장 김철호△보건과학대학장 한상언△공과대학장 나현식△정보산업대학원장 류희중△행정·경영대학원장 이원장△정보기술원장 차준섭△정보통신원장 신영석 ■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광주보훈병원장 金葉△대전보훈병원 관리부장 徐載弼△교육파견 丁奎植 池秉喆 ■ 한국식품개발연구원 △특화연구본부 인삼연구단장 金成洙 ■ 하나은행 ◇부행장보 △호남지역본부 金鳳用◇본부장△충청사업본부 金煥甲 朴倧德△북부지역본부 李正卿△서북지역본부△李康福△중기업금융 1본부 李長奎 ■ ㈜하쿠호도제일 △전무 孫春燮
  • 사회복지 실무지침서 발간

    서찬교 서울 성북구청장이 40여년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사회복지분야의 실무지침서를 펴냈다. 1962년 건설부 총무과 재경서기로 공직을 시작한 서 구청장은 오랜 공무원 생활과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강의한 경험을 살려 ‘사회복지시설 운영론’이라는 이론서를 발간했다.오는 27일 오후 5시 고려대 교우회관에서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 이문구 ‘필화일기’ 발견

    25일 타계 1주기를 맞는 소설가 이문구씨의 미완성 장편소설 ‘오자룡(吳子龍)’은 개인 사정이 아니라 중앙정보부의 취조 때문에 끝까지 집필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필화일기’가 발견됐다. 랜덤하우스 중앙이 1주기를 맞아 발간한 ‘이문구 전집’(전30권 예정)의 1차분 제3권 ‘오자룡’은 1975년 1∼12월 ‘월간 중앙’에 연재했던 장편소설.200자 원고지 1100여장으로 단행본 1권 분량인데도 생전에 출간되지 못했다. 저자는 1999년 나남출판사에서 낸 ‘관촌수필-이문구 선집’ 말미의 작가연보에 “불필요한 집필 끝에 미완성으로 중단”이라고 ‘오자룡’에 대해 밝혔다.그러나 랜덤하우스 중앙이 이씨 사후 찾아낸 1975년 12월22일부터 24일까지 일기에 따르면 필화로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당시 2박3일간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취조를 받았으며,이후 이 사건의 전말에 대해 입밖에 낸 적이 없었다. 이종수기자 vielee@˝
  • [부고]

    ●鄭在德(경원대 겸임교수·신세계 고문)씨 별세 昇鎭(인스실업 이사)多美(명지대 교수)恩美(명지전문대 교수)씨 부친상 在恩(신세계 회장)씨 형님상 金民寧(한국외대 교수)씨 빙부상 21일 오후 9시36분 삼성서울병원,발인 24일 오전 8시30분 (02)3410-6915 ●金東燮(중앙일보 시민언론부 차장)씨 부친상 趙剛祿(위아 직원)씨 빙부상 22일 0시5분 경남 창원시 파티마병원,발인 24일 오전 8시30분 (055)270-1945 ●金箕洙(캐나다 거주)銅洙(한국고시회 대표)씨 모친상 21일 오후 3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3일 오전 8시 (02)392-1099 ●尹赫(MBC 시사교양국 위원)成均(자영업)씨 부친상 安昌奎(기술신용보증기금 직원)洪昇杓(티엠에듀컨설팅 수석컨설턴트)李白賢(㈜세종파마텍 이사)씨 빙부상 21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3일 오전 8시 (02)392-3499 ●吳仁成(전 연세대 관재차장)根成(자영업)志成(대아건설 소장)씨 모친상 林鎭平(자영업)씨 빙모상 21일 오전 7시10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3일 오전 10시 (02)392-0699 ●李燦爀(전 양평경찰서 청문감사관)씨 별세 許燕子(양평경찰서 근무)씨 상부 宇耿(성남시 한국학원 교사)씨 부친상 燦豪(양평경찰서 근무)씨 형님상 21일 오전 3시44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3일 오전 7시 (02)3010-2266 ●宋東熹(중앙기계섬유 고문)哲煥(한국수력원자력 부장)東燮(현대건설 차장)淸子(서울대현초등학교장)씨 모친상 崔榮羽(국립평창수련원장)씨 빙모상 21일 0시7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3일 오전 8시 (02)3010-2293 ●李庸赫(서울신문 독자서비스국 발송부장)씨 형님상 22일 오전 3시 경기 김포시 장기동 고려병원,발인 24일 오전 9시 (031)998-1982 ●金泰源(한국투자증권 이사)劉寬相(서울방원중 교사)金完洙(유원건축사무소 이사)씨 빙모상 21일 오후 3시47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4일 오전 7시 (02)3010-2254 ●金潤(서강민주동문회 고문·전 전국여성농민위원회 준비위원장)씨 별세 21일 오전 9시30분 전북 전주시 금성장례식장,발인 23일 오전 9시 (063)276-4443 ●鄭炳涉(한국방송광고공사 출판사업부장)씨 모친상 盧哲鎭(서울 강남치과 원장)씨 빙모상 21일 오전 2시 서울 강남성모병원,발인 23일 오전 8시 (02)590-2557 ●尹在文(전 충남지방경찰청 차장)在明(전 대한항공훈련원장)씨 모친상 池長植(자영업)鄭保泳(성호교역 대표)씨 빙모상 20일 오후 3시30분 서울 상계백병원,발인 23일 오전 7시 (02)951-1499 ●李誠植(하이닉스반도체 과장)씨 부친상 李鍾浩(미국 거주)尹智元(Combynets㈜ 대표)씨 빙부상 21일 0시15분 경기 성남시 분당제생병원,발인 23일 오전 6시 (031)701-2641 ●閔炳友(국가유공자)炳敦(중소기업진흥공단 실장)씨 모친상 沈英禮(부천시 동곡초등학교 교사)씨 시모상 誠基(㈜유성 직원)永準(자영업)必準(경희산업 직원)씨 조모상 22일 오전 3시5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24일 오전 9시30분 (02)3410-6914 ●林淳洪(전 서울신탁은행 감사)씨 별세 益成(남서울대 교수)良禧(서울 이화내과 원장)씨 부친상 宋侖燮(순천향대 의대 교수)姜熙哲(변호사)씨 빙부상 21일 오후 6시 삼성서울병원,발인 23일 오전 9시 (02)3410-6910 ●崔鍾圭(세진금속 대표)泳圭(신선양행 대표)玄圭(부산대원어묵 경기총판 소장)씨 부친상 金龍柱(송파구 직원)成年杓(자영업)씨 빙부상 22일 오전 5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4일 오전 6시 (02)3010-2294 ●金晶洙(MBC 라디오본부 위원)씨 빙부상 22일 오전 9시 서울 한양대병원,발인 24일 오전 6시 (02)2290-9460 ●宋榮德(경남농협지역본부 신용부본부장)榮福(현대미포조선 차장)씨 모친상 20일 오후 10시 경남 창원시 파티마병원,발인 25일 오전 9시 (055)270-1940 ●朴光洙(진미갑 대표)明洙(제일엔지니어링 대표)鎭洙(현대석유화학 공동대표)唱洙(더컨텐츠컴퍼니 부장)씨 모친상 21일 오후 6시50분 인천 인하대병원,발인 23일 오전 9시30분 (032)890-3199 ●徐弘源(대우기계 대표)平源(보광산업 대표)点源(자영업)成源(삼성테크원 과장)씨 모친상 22일 낮 12시3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4일 오전 8시 (02)3010-2235 ●김현태(전 단국대 불문과 교수)씨 별세 22일 오전 8시50분 서울 강남성모병원,발인 24일 오전 8시 (02)590-2538˝
  • 미술평론가에서 ‘목수’ 변신 김진송 씨

    김진송(45).이름있는 미술평론가이자 전시기획자에서 스테디셀러 ‘현대성의 형성-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의 저자로,그리고 홀연히 시골로 가 나무를 깎아 물건을 만드는 ‘목수’로 변신한 그는 놀라운 변신만큼이나 눈에 띄는 성과들을 선보여 왔다. 최근까지만 해도 나무의 결과 형상을 살려 독특한 가구를 만들었던 그가 이번에 들고 나온 것은 장남감처럼 앙증맞은 목물(木物)들이다. ‘하늘에 갇힌 새’ ‘붙잡힌 외계인’ ‘펀치 드렁커’ ‘십이지 동물농장’ ‘사이보그를 꿈꾸는 아이’ ‘비루먹은 용’….고향인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으로 내려가 목수일을 시작한지 5년,그동안 생계를 위해 가구들을 주로 만들어 왔다는 그가 지난 1년 동안 아이디어를 짜내 세상에 내놓은 주인공들이다. ●어른들을 위한 ‘물건’ “어린이들을 위한 장난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이들보다 어른들을 위해 만든 것입니다.정작 상상력이 필요한 쪽은 어른들이니까요. 어른들이 상상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현실과 밀착돼 있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의 상투성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도망자처럼 쫓기듯 살아가는 숨막히는 일상,그 속도에 치여 살다 보면 어느새 지난날의 꿈은 사라지고,심지어 남의 꿈에 대해서도 허황하다며 냉소를 던지는 게 우리의 솔직한 자화상이다. 그가 이처럼 목물 작업에 매달리는 것도 이런 메마른 정신에 상상의 비를 내려주기 위함이다. 김씨는 작가로 불리기를 한사코 거부한다.자신이 만드는 것은 ‘작품’이 아니라 단순한 ‘물건’이라고 믿기 때문이다.“나는 작가가 아닙니다.더도 덜도 아닌 그저 직업 목수일 뿐이지요.직업에 귀천이 있다면 목수보다 더 천박한 게 예술가라고 생각합니다. 이데올로기에 갇힌 예술,독야청청의 외피를 두른 예술을 경멸합니다.” 일상과 유리된 ‘고급’ 예술보다 차라리 끌과 망치가 만들어낸 목물들이 정직한 노동의 산물로 더 순정하다는 것이다.하기야 예술이란 누군가 말했듯이 불확실한 선택과 도전,사기가 아닌가. ●목수보다 천박한 게 예술가 김씨가 목물 작업에 사용한 나무는 무척 다양하다.쪽동백나무,단풍나무,물푸레나무,흑단,느릅나무,엄나무 등 온갖 나무가 쓰였다. 삽이며 자귀,니퍼,볼트,너트,포클레인 발톱,자동차 라이닝 등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물건들도 ‘상상을 초월하는’ 유쾌한 방식으로 거듭났다. 그것들은 우리 눈을 즐겁게 해줄 만큼 충분히 새롭다.그러나 김씨의 물건이 특별히 주목받는 것은 그 안에 새겨진 이야기가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절간에 잉어 모양의 목어(木魚)가 매달리게 된 사연,외계인이 지구에 착륙하지 못하는 이유,피라미드의 비밀 등 기발한 목물들은 생각하는 힘을 키워준다.스스로도 얘기하듯 그는 ‘이야기를 깎는’ 목수다. 김씨의 ‘물건’과 그에 관한 이야기는 최근 펴낸 ‘나무로 깎은 책벌레 이야기’(도서출판 현문서가)란 책에 그대로 담겨 있다. “처음부터 이야기를 머리에 완벽하게 그리고 나무를 깎는 경우는 없습니다.그렇다고 해서 이야기 없이 작업하는 것은 아니지요.나는 물건과 관련해 교훈적이고 계몽적인 내용을 늘어놓고 싶지 않습니다.그것은 현실과 비현실의 진부한 벽을 넘어 상상의 날개를 펼치는 데 족쇄가 될 수 있으니까요.” 김씨는 경기도 마석 축령산 자락에 작업실을 짓고 1년 동안 꼬박 목물을 만들었다. 인형,외계인,짐승 등 낯선 물건들의 탄생을 지켜보며 그는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특별한 즐거움을 맛봤다.“상투적인 세계의 지겨움에 대한 보상심리,물신에 휘둘리는 인간세계의 질서를 조롱하는 전복적인 재미라고나 할까요.나 혹은 우리만을 주체로 여기는 이성적이고 이기적인 질서에서 벗어나 타인의 관점에서 다른 세계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자세를 가졌으면 합니다.” 김씨는 자신의 새로운 목물들을 통해 우리의 닫힌 의식,세상의 먹물들을 조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새달 1일까지 ‘나무로 깎은‘ 展 하지만 물건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로선 그 모양이 어떤지,무슨 사연이 담겨 있는지 궁금증만 더할 뿐이다. 그런 이들에게 서울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나무로 깎은 책벌레 이야기’전(3월1일까지)은 해답을 줄 만한 자리다.김씨는 이미 지난 98년부터 네 차례의 ‘목수 김씨전’을 통해 ‘소목장(小木匠) 김진송’을 알린 바 있다.이번 전시엔 200여점의 물건들이 나와 있다. 김종면기자 jmkim@˝
  • ‘EBS수능’ 스타강사 총집합?

    오는 4월1일부터 실시되는 교육방송(EBS)의 수능시험 강의에서 이른바 ‘스타강사’들이 강의를 맡는다.교육방송은 현재 10여명의 유명 강사로부터 이력서를 받고 인터뷰를 하는 등 인선 작업을 진행중이며,일부는 수락했다고 밝혔다. 교육방송 관계자는 22일 “4명 정도가 인선 마무리 단계에 있지만,이 가운데 1명은 아직까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EBS가 초빙할 강사진은 강남 대성학원 박승동(42·수리영역)씨,강남 최강학원 원장 최강(40·사회탐구)씨,온라인 입시업체 메가스터디 출신 이범(34·과학탐구)씨,전 서울 화곡고 교사 이석록(46·언어영역)씨 등이다. ‘족집게 교사’로 이름을 날리다 최근 사설 입시학원으로 옮겨 화제가 됐던 이석록씨는 “더 많은 일반 학생들이 무상으로 교육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그는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내신 평가 기준이 없는데 내신반영 비율을 높이는 것은 모순”이라며 교육부의 내신비중 강화 대책을 비판했다. 지난 90년부터 6년 남짓 교육방송에서 강의한 경력이 있는 박씨는 “아무리 스타강사가 방송과 인터넷에 출연해도 학생들의 열의나 태도에 성패가 달렸다.”면서 “스타강사는 돈을 많이 버는 강사가 아니라 강의력을 학생들에게 인정받는 ‘강사력 스타’를 말한다.”고 주장했다. 강남 압구정동과 대치동에 사회탐구 전문학원을 운영중인 최씨는 “수강생들을 상대로 자체 조사한 결과 학원강의가 무료로 전국에 배포된다면 학원에 계속 다니겠다는 학생이 10% 미만이었다.”고 소개하고 “강의를 맡게 되면 더 많은 학생에게 최고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7년 남짓 이름을 날리던 학원가를 지난해 10월 초 떠난 뒤 출판사를 설립,공익 목적의 무료강의를 구상해 왔다는 이범씨는 “교육방송의 제안으로 생각보다 일찍 무료강의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그는 “지역별·학교별로 학력수준의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내신비중을 강화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수능 시험은 등급별 판정에 따른 자격기준으로만 활용하고 논술과 심층면접을 강화하면 공교육 정상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채수범기자 lokavid@˝
  • [부고]

    ●鄭在德(경원대 겸임교수·신세계 고문)씨 별세 昇鎭(인스실업 이사)多美(명지대 교수)恩美(명지전문대 교수)씨 부친상 在恩(신세계 회장)씨 형님상 金民寧(한국외대 교수)씨 빙부상 21일 오후 9시36분 삼성서울병원,발인 24일 오전 8시30분 (02)3410-6915 ●金東燮(중앙일보 시민언론부 차장)씨 부친상 趙剛祿(위아 직원)씨 빙부상 22일 0시5분 경남 창원시 파티마병원,발인 24일 오전 8시30분 (055)270-1945 ●金箕洙(캐나다 거주)銅洙(한국고시회 대표)씨 모친상 21일 오후 3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3일 오전 8시 (02)392-1099 ●尹赫(MBC 시사교양국 위원)成均(자영업)씨 부친상 安昌奎(기술신용보증기금 직원)洪昇杓(티엠에듀컨설팅 수석컨설턴트)李白賢(㈜세종파마텍 이사)씨 빙부상 21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3일 오전 8시 (02)392-3499 ●吳仁成(전 연세대 관재차장)根成(자영업)志成(대아건설 소장)씨 모친상 林鎭平(자영업)씨 빙모상 21일 오전 7시10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3일 오전 10시 (02)392-0699 ●李燦爀(전 양평경찰서 청문감사관)씨 별세 許燕子(양평경찰서 근무)씨 상부 宇耿(성남시 한국학원 교사)씨 부친상 燦豪(양평경찰서 근무)씨 형님상 21일 오전 3시44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3일 오전 7시 (02)3010-2266 ●宋東熹(중앙기계섬유 고문)哲煥(한국수력원자력 부장)東燮(현대건설 차장)淸子(서울대현초등학교장)씨 모친상 崔榮羽(국립평창수련원장)씨 빙모상 21일 0시7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3일 오전 8시 (02)3010-2293 ●李庸赫(서울신문 독자서비스국 발송부장)씨 형님상 22일 오전 3시 경기 김포시 장기동 고려병원,발인 24일 오전 9시 (031)998-1982 ●金泰源(한국투자증권 이사)劉寬相(서울방원중 교사)金完洙(유원건축사무소 이사)씨 빙모상 21일 오후 3시47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4일 오전 7시 (02)3010-2254 ●金潤(서강민주동문회 고문·전 전국여성농민위원회 준비위원장)씨 별세 21일 오전 9시30분 전북 전주시 금성장례식장,발인 23일 오전 9시 (063)276-4443 ●鄭炳涉(한국방송광고공사 출판사업부장)씨 모친상 盧哲鎭(서울 강남치과 원장)씨 빙모상 21일 오전 2시 서울 강남성모병원,발인 23일 오전 8시 (02)590-2557 ●尹在文(전 충남지방경찰청 차장)在明(전 대한항공훈련원장)씨 모친상 池長植(자영업)鄭保泳(성호교역 대표)씨 빙모상 20일 오후 3시30분 서울 상계백병원,발인 23일 오전 7시 (02)951-1499 ●李誠植(하이닉스반도체 과장)씨 부친상 李鍾浩(미국 거주)尹智元(Combynets㈜ 대표)씨 빙부상 21일 0시15분 경기 성남시 분당제생병원,발인 23일 오전 6시 (031)701-2641 ●閔炳友(국가유공자)炳敦(중소기업진흥공단 실장)씨 모친상 沈英禮(부천시 동곡초등학교 교사)씨 시모상 誠基(㈜유성 직원)永準(자영업)必準(경희산업 직원)씨 조모상 22일 오전 3시5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24일 오전 9시30분 (02)3410-6914 ●林淳洪(전 서울신탁은행 감사)씨 별세 益成(남서울대 교수)良禧(서울 이화내과 원장)씨 부친상 宋侖燮(순천향대 의대 교수)姜熙哲(변호사)씨 빙부상 21일 오후 6시 삼성서울병원,발인 23일 오전 9시 (02)3410-6910 ●崔鍾圭(세진금속 대표)泳圭(신선양행 대표)玄圭(부산대원어묵 경기총판 소장)씨 부친상 金龍柱(송파구 직원)成年杓(자영업)씨 빙부상 22일 오전 5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4일 오전 6시 (02)3010-2294 ●金晶洙(MBC 라디오본부 위원)씨 빙부상 22일 오전 9시 서울 한양대병원,발인 24일 오전 6시 (02)2290-9460 ●宋榮德(경남농협지역본부 신용부본부장)榮福(현대미포조선 차장)씨 모친상 20일 오후 10시 경남 창원시 파티마병원,발인 25일 오전 9시 (055)270-1940 ●朴光洙(진미갑 대표)明洙(제일엔지니어링 대표)鎭洙(현대석유화학 공동대표)唱洙(더컨텐츠컴퍼니 부장)씨 모친상 21일 오후 6시50분 인천 인하대병원,발인 23일 오전 9시30분 (032)890-3199 ●徐弘源(대우기계 대표)平源(보광산업 대표)点源(자영업)成源(삼성테크원 과장)씨 모친상 22일 낮 12시3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4일 오전 8시 (02)3010-2235 ●김현태(전 단국대 불문과 교수)씨 별세 22일 오전 8시50분 서울 강남성모병원,발인 24일 오전 8시 (02)590-2538
  • [책꽂이]

    ●탐험의 역사(루이스 그래식 기번 등 지음,김훈 옮김,가람기획 펴냄) 세계 역사는 탐험가들의 도전의 역사이기도 하다.그들의 무모할 정도의 용기와 도전정신,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이 지상을 한 뼘씩 넓혀왔다.포도주가 넘쳐나는 전설의 빈란드를 찾아 최초로 북아메리카를 탐험한 레이브 에릭손에서,프람호를 타고 미지의 북극 일대를 떠돌았던 프리초프 난센까지 역사를 바꾼 탐험가 9명의 이야기를 소개한다.1만 8000원. ●페미니즘 정치사상사(캐럴 페이트만 등 엮음,이남석 등 옮김,이후 펴냄) 플라톤에서 하버마스까지 14명 철학자들의 정치사상을 여성의 눈으로 재해석.당대의 약자(노예나 여성)를 무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플라톤은 남녀의 차이란 생식 기능상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봤던 혁명적 페미니스트로,계약론적 가부장주의자로만 알려진 로크는 맹아적인 형태의 ‘평등권’ 페미니스트로,성평등을 반대한 것으로 돼 있는 루소는 민주주의적 페미니스트로 간주한다.1만 9000원. ●아담과 이브 그후(맬컴 포츠 등 지음,최윤재 옮김,들녘 펴냄) 섹슈얼리티는 프로이트가 ‘세 편의 성욕론’에서 처음 쓴 말로,미셸 푸코가 ‘성의 역사’에서 사용함으로써 친숙해진 개념이다.섹슈얼리티의 역사는 깊다.교회에서 부르는 찬송가는 그 이름을 고대 결혼식에서 불렸던 노래에서 따왔다.찬송가(hymn)와 처녀막(hymen)은 어원이 같다는 사실은 퍽 시사적이다.우리는 전혀 뜻밖의 영역에서도 성을 연상시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고대로마의 법정에선 선서를 할 때 자신의 손을 고환 위에 얹고 했다.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휴먼 섹슈얼리티다.2만 7000원. ●한권으로 읽는 드러커 100년의 철학(피터 드러커 지음,남상진 옮김,청림출판 펴냄) 잭 웰치가 제너럴일렉트릭(GE)의 회장이 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피터 드러커에게 달려가 공룡조직 GE를 살릴 수 있는 묘책을 물은 것이라는 일화가 있다.이 책에는 ‘현대경영의 발명자’ ‘매니지먼트의 아버지’로 불리는 드러커 사상의 진수가 담겼다.1만 5000원. ●탈춤의 민족미학(김지하 지음,실천문학사 펴냄) 탈굿 또는 마당굿과 관련된 민족미학의 기본원리를 살폈다.저자가 말하는 민족미학의 핵심은 탈춤의 생성원리인 ‘환(環)’의 사상에 닿아 있다.‘순환하면서 확대되는 고리’로서 ‘환’의 사상이 민족미학의 원형인 탈춤에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1만 5000원. ●뇌를 단련하다(다치바나 다카시 지음,이규원 옮김,청어람미디어 펴냄) 일본의 대표적인 논객인 저자가 밝히는 교양교육론.‘지(知)의 전체상’을 보라고 말하는 저자는 균형잡힌 입력을 통해 스스로 균형잡힌 뇌로 키워나가는 ‘브레인 빌더(brain builder)’로서의 역할을 강조.“스무살은 자신의 뇌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라는 주장도 눈길을 끈다.1만 3000원.˝
  • 구상시집 ‘모과‘ 영역본 출간

    여의도 성모병원 중환자실에서 투병중인 구상(85) 시인의 시집 ‘모과 옹두리에도 사연이’가 ‘Even the Knots on Quince Trees’제목의 영문판으로 번역 출간됐다.시집의 번역자는 한국으로 귀화한 영국인 수사 안토니(한국명 안선재) 서강대 영문과교수.답게출판사의 ‘한국문학 영역총서’의 여덟번째 시리즈인 이 시집은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표기하고 미국 코넬 대학에서 한국학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시집에 실린 100편의 연작시는 시인이 1984년부터 발표한 것으로 자전적 이야기와 우리 근대사에 대한 증언을 담고 있다.
  • 에도의 여행자들/다카하시 치하야 지음

    ‘크로노폴리스 도쿄(Chronopolis Tokyo) 24시’ 올해 마이니치신문의 한 신년 특집기사엔 이런 제목이 붙었다.크로노폴리스는 초시계란 뜻의 크로노그래프와 도시국가를 일컫는 폴리스의 합성어.2003년 ‘에도(江戶) 400년’을 맞아 그들은 에도 곧 오늘날의 도쿄가 시공을 초월한 역동적인 도시임을 강조하기 위해 크로노폴리스(시간도시)란 말을 만들어냈다.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도쿄엔 최근 한국 젊은이들의 발걸음도 부쩍 늘었다.이른바 ‘밤도깨비 투어’로 주말의 하네다 공항은 야심한 시간에도 발디딜 틈이 없다.우리는 얼마나 에도,나아가 오늘의 도쿄를 알고 있을까. ●다양한 인물군상의 흥미로운 여행담 일본의 역사평론가 다카하시 치하야(61)가 쓴 ‘에도의 여행자들’(김순희 옮김,효형출판 펴냄)은 ‘여행’이란 키워드로 살펴본 에도시대(1603∼1867)의 생활사 혹은 풍속사다.전란의 시대를 거쳐 세워진 에도 바쿠후는 270여년에 걸쳐 평화를 누렸다.‘도쿠카와 평화’라 불리는 이 시기를 거치며 에도는 오늘날의 세계도시 도쿄의 기틀을 갖춰갔다. 에도는 18세기 초에 이미 인구 100만이 넘는 대도시였다.저자는 당시 에도를 비롯해 일본 각지를 돌아다녔던 학자,문인,승려,공직자,외국인 등 다양한 인물군상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한다. 에도시대 이전까지의 여행은 대부분 업무를 위한 것이었다.그러나 에도시대에 접어들어 도카이도(東海道,도쿄에서 교토에 이르는 국도) 등 다섯 개의 가도가 정비되고 숙박시설이 갖춰지면서 사원참배나 성지순례를 명목으로 한 유람여행이 등장했다.서민들도 비로소 오락으로서의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이와 같은 서민들의 여행은 에도시대 중기부터 성행했다.그것은 ‘고(講)’의 발달과 무관치 않다.고란 사원에 참배하거나 영산을 찾아가기 위해 조직한 단체를 가리키는 말.가장 인기를 누린 것은 이세신궁 참배를 위한 이세고와 후지산 순례를 위한 후지고였다. 에도시대의 진정한 여행가로 하이쿠 시인을 빼놓을 수 없다.대표적인 인물이 ‘하이쿠의 아버지’ 마쓰오 바쇼다.바쇼의 인생은 방랑 그 자체였다.“도카이도의 어느 한 곳도 모르는 사람은 하이카이를 잘 할 수 없다.”고 갈파한 바쇼는 하루에 30∼40㎞를 아무렇지도 않게 걸었다.“방랑에 병들어 꿈은 마른 들판을 헤매며 다닌다.” 바쇼는 이 유명한 하이쿠를 마지막으로 50세에 여행지 오사카에서 죽었다. ●신혼여행 1호 주인공은 사카모토 료마 메이지시대 개막을 앞둔 에도시대 말기엔 신혼여행도 생겨났다.일본엔 원래 신혼여행이란 관습이 없었다.누구나 신혼여행을 가게 된 것은 2차세계대전 이후부터다.에도 바쿠후 말기의 개명파 지사 사카모토 료마는 1866년 신부 오료와 함께 규슈의 가고시마 온천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이것이 일본의 신혼여행 1호다.에도시대 말기엔 ‘효도여행’까지 나타났다. 저자는 에도시대 여인들의 여행이 얼마나 어려웠는가를 선구적인 여성시인 이노우에 쑤조의 ‘동해일기’를 예로 들며 설명한다.여자들의 여행을 그토록 어렵게 만든 것은 검문소와 통행증이다.여자들의 통행은 까다로워 ‘온나 데가타(女手形)’란 엄격한 규정의 여자 통행증이 따로 있었다.특히 에도를 떠나는 여자들에 대한 감시는 더욱 심했다. ‘아라테메바(改め婆)’라 불린 히토미온나(人見女)의 존재가 그런 사정을 잘 말해준다.여자 여행객들의 몸수색을 담당한 히토미온나는 때론 속옷까지 벗게 해 성별을 확인하는 등 모욕을 주기도 했다.이런 일은 웬만큼 지위가 높은 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저자에 의하면 이는 봉록이 1만석 이상인 다이묘(大名)의 처자식들이 에도에서 인질로 살아야 하는 통제정책 때문이었다. ●조선통신사들의 선린 외교여행도 다뤄 책은 에도시대 조선통신사의 선린 외교여행도 다뤄 눈길을 끈다.일본이 에도시대의 쇄국체제 아래서 유일하게 국교를 연 나라가 조선이다.나가사키의 데지마에 네덜란드 상관이 있어 네덜란드와 교역을 하고 있었지만 국교를 맺었던 것은 아니다.청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메이지시대 이후 조선을 얕보고 지배하려는 정책 때문에 에도시대 통신사의 역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지적한다.한반도는 군사력에선 일본에 뒤지기도 했지만,문예나 학술 면에선 고대부터 늘 앞섰던 문화선진국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이 책에선 1719년 통신사로 에도에 갔던 제술관 신유한이 남긴 기행문 ‘해유록(海遊綠)’을 토대로 조선통신사의 일본 여행을 살펴본다. ‘에도시대의 에도’와 ‘21세기의 에도’.수백년전 에도여행과 오늘의 도쿄여행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크다.그 사이에 놓인 간극의 의미를 곱씹어 보는 것은 역사적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결코 부질없는 일이 아니다.1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책꽂이]

    ●임화 문학의 재인식(문학과사상연구회 지음,소명출판사 펴냄) “그를 넘지 않고는 자생적 근대문학이 불가능하다.”는 평을 듣는 시인이자 계급문학이론가 임화에 대한 총체적 연구서.임화의 신문학사 연구·이식문학론·시론·시 등의 주제를 집대성.1만7000원. ●뷰티풀 라이프(기타가와 에리코 지음,김난주 옮김,해냄 펴냄) 소설·드라마·작사 등 다방면의 글쓰기를 자랑하는 작가의 대표작.2000년 일본 최고의 러브스토리라 불린 작품으로,장애우 교코와 슈지의 아름답고 애틋한 사랑을 그렸다.8500원.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성민엽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 중진평론가가 15년만에 낸 비평집.1부 민족문학·포스트모더니즘 담론·21세기 작가론 등의 이론비평에 이어 2부에서는 이청준·오정희·배수아 등 24편의 작가·작품론 소개.1만6000원. ●정지용 시 126편 다시 읽기(권영민 엮음,민음사 펴냄) 주옥같은 언어의 조탁으로 민족 정서를 그린 시인의 작품을 새롭게 분석한 해설서.시집의 원문,잡지 게재 때의 원문을 대조하면서 시어의 의미와 용법을 현대 표기법에 따라 정리했다.2만8000원. ●만취당기(晩翠堂記)(김문수 지음,돋을새김 펴냄) 61년 등단 뒤 활발한 작품활동을 한 작가의 중단편집.유머와 위트로 사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평을 듣는 작가가 20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표제작을 비롯해 손수 고른 작품 12편을 수록.9000원. ●길(조창인 지음,밝은세상 펴냄) ‘가시고기’의 작가가 2년만에 내놓은 장편.병에 걸린 여동생의 소원을 들어주려 집나간 엄마를 찾아 나선 열세살 소년의 여행기.여정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사회의 양지와 음지를 그린다.8500원. ●접골사의 딸(에이미 탄 지음,안정희 옮김,신영미디어 펴냄)‘조이럭 클럽’의 작가가 오랜만에 낸 장편.한번도 자기 이야기를 써본 적이 없는 대필 작가인 주인공이 어머니의 일기장을 읽고 가족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는 줄거리.그 속에서 첫사랑·이별 등 어머니의 애환에 공감하는 모습을 통해 모녀간의 사랑이 중요함을 들려준다.9000원˝
  • 첫 PSAT 수험생 분위기

    외무고시 1차 시험일이 불과 1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수험생들과 학원들은 우왕좌왕하는 분위기다.학원들은 교재와 정보가 거의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 상위권 수험생들은 PSAT가 수학능력 시험 정도의 수준이라고 보고 2차 시험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중위권 수험생들은 처음 대하는 PSAT 대비에 분주한 분위기다. 학원가에서는 제대로 된 PSAT 문제집 하나 찾아보기 힘들고 행정자치부 홈페이지(mogaha.go.kr)에 모의고사 문제를 참고하는 정도다.이런 탓에 학원들도 제대로 된 대책을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A학원 관계자는 “모의고사가 몇 번 치러졌지만 아무래도 ‘실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올해 외시 1차 시험이 치러져봐야 대비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B학원 강사는 “출제 추이를 지켜보느라 출판사 등에서 교재 출판을 지금은 미루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마땅한 대응방법이 없어 통계자료가 비교적 풍부한 경제 관련 잡지를 교재로 쓰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학원 등에서 몇 차례 모의시험을 치러봤다는 외시 수험생 조모(24·여)씨는 “언어논리 영역의 경우 문제출제 의도마저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있었고 자료해석 영역은 문제를 풀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고 말했다. 몇 년 동안 외시를 준비해온 박모(30)씨는 “PSAT는 어차피 평소 실력으로 치를 수밖에 없어 특별히 따로 공부하지 않는다.”면서 “남는 시간에는 2차과목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상위권에 해당되는 주변의 수험생들도 비슷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내년부터 PSAT가 행정고시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행시 준비생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행시 준비생인 김모(25·K대 3학년)씨는 “PSAT 시험을 둘러싼 말들은 많은데 학교나 학원 모두에 아직 별다른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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