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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꽂이]

    [책꽂이]

    살인자에게(김선미 지음, 연담L 펴냄) ‘부모의 자녀 살해 후 자살’을 동정해야 할 비극이 아니라 경계해야 할 범죄로 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뿌리를 둔 소설. 생활고 때문에 가족을 죽인 뒤 자살하려다 실패해 아내만 죽이고 감옥에 간 아버지와 또 다른 살인 누명을 쓰고 떠났던 형이 집으로 돌아온 날 마을에서 또다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제3회 추미스(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356쪽. 1만 4000원.대한민국철학사(유대칠 지음, 이상북스 펴냄) 고려, 조선의 양반 철학이 아니라 우리말, 우리글로 사유한 민중이 주체가 되는 철학을 ‘한국철학’이라 정의한 저작. 성리학 이후 사민평등 사상을 가진 양명학부터 한국철학의 등장 배경을 살핀다. 저자는 동학을 만든 수운 최제우의 한글 사상서 ‘용담유사’가 한국철학의 출산을 알렸다고 말한다. 600쪽. 3만 2000원.시베리아를 건너는 밤(송종찬 지음, 삼인 펴냄) 시인의 눈으로 본 광대한 러시아의 속살. 세 권의 시집을 낸 중견 시인은 2011년 재직 중이던 회사가 추진한 천연자원 개발 프로젝트에 뛰어들며 4년간 러시아에 체류했다. 직접 목도한 러시아인들의 삶과 문화를 산문집으로 엮어 냈다. 308쪽. 1만 7000원.진리의 발견(마리아 포포바 지음, 지여울 옮김, 다른 펴냄) 여성이며 성소수자였던 사상가들의 삶을 엮은 전기. 행성 운동 법칙을 발견한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여성 과학자의 길을 연 천문학자 마리아 미첼, ‘뉴욕타임스’ 최초의 여성 편집자인 마거릿 풀러, 환경운동을 촉발한 해양생물학자이자 작가인 레이철 카슨에서 끝을 맺는다. 840쪽. 4만 4000원.대지의 슬픔(에리크 뷔야르 지음, 이재룡 옮김, 열린책들 펴냄)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 수상 작가 에리크 뷔야르가 쓴 서부 개척 시대 잔혹사. 1890년대 미국을 무대로 유명한 총잡이이자 쇼맨이었던 버펄로 빌이 만든 공연 ‘와일드 웨스트 쇼’를 통해 인디언들의 수난사와 초창기 쇼 비즈니스의 단면을 짚어 냈다. 176쪽. 1만 2800원.소양강의 봄(최기종 지음, 백산출판사 펴냄) 춘천시 명예홍보대사인 저자가 1년간 춘천시를 오가며 쓴 시집. 인내, 희망, 태양, 결실 등 네 가지 주제로 시 101편을 수록했다. 누구나 고난과 역경을 견디고 인내하면 반드시 희망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184쪽. 1만원.
  • 이투스교육 생명과학 백호 강사, 2021 수능 대비 멘델의 법칙과 연관 학습 가이드 제시

    이투스교육 생명과학 백호 강사, 2021 수능 대비 멘델의 법칙과 연관 학습 가이드 제시

    이투스교육 과학탐구 영역 생명과학 백호 강사가 2021 수능 멘델의 법칙과 연관 학습 가이드를 제시했다. 올해부터 생명과학Ⅰ의 경우 생물의 구성체제와 연관 개념이 제외되면서 작년 대비 체감상 10~20% 정도 학습이 축소되고 연관의 경우 개정 전 수능에서 최소 3문제 정도 타 단원과 연계되어 출제되었던 개념으로 개정 후 어떻게 출제될 지에 대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에 백호 강사와 백브라더스 연구실에서는 8종 출판사 교과서와 2021 EBS 수능특강 사용 설명서 교재를 직접 연구하여 앞으로의 학습 가이드를 제시했다. 8종 출판사의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일부 교과서에서 ‘멘델의 법칙’ 또는 ‘연관’ 관련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EBS 수능특강 사용 설명서 1차 분석 결과로는 연관 확정한 상태에서 주어진 자료를 해석하는 문제들이 일부 수록되어 있었다. 또한 독립과 연관을 구분해야 하는 문제, 연관 상태의 유전자 구성을 찾아야 하는 문제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이에 대한 공부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단, 자손의 종류와 확률을 통해 독립과 상인연관, 상반연관 등을 구분하는 고난도 문제는 수록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2021 수능 생명과학은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백호 강사는 6월과 9월 평가원 모의고사를 통해 출제 범위를 확인 해야겠지만, 그 전에 1월 시점에서 교과서와 EBS 수능특강을 고려했을 때 위와 같이 학습하기를 권장했다. 한편, 백호 강사의 2021 수능 멘델의 법칙과 연관 학습 가이드에 대한 더욱 자세한 내용은 이투스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투스 교육에서는 2021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을 위한 다양한 정보와 강좌를 제공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화마당] ‘22년 하락 후 반등’ 日출판계의 시사점/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문화마당] ‘22년 하락 후 반등’ 日출판계의 시사점/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최근 일본 출판계에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해마다 일본 출판 관련 통계를 조사해 발표하는 출판과학연구소에 따르면 2019년 일본 출판산업 매출액이 전자책과 종이책을 합쳐서 1조 5432억엔(추정)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0.2% 증가한 것이다. 숫자만 보면 제자리걸음을 한 듯하지만, 지금 일본 출판계는 “바닥을 찍었다”면서 흥분에 싸여 있다. 일본 출판은 1996년 2조 6564억엔을 기록해 매출 정점에 이른 이래 2018년 1조 5400억엔에 이르기까지 무려 22년 동안 연속해서 후퇴와 축소를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세부를 살펴보면, 종이책 및 잡지의 매출은 여전히 줄어들었다. 전년 대비 종이책 매출은 4.3% 감소한 6723억엔, 잡지 매출도 4.9% 감소한 5637억엔이다. 독자들의 호응을 얻은 것은 디지털 쪽이다. 디지털 출판 매출은 3072억엔으로 전년 대비 23.9% 증가했다. 전자만화가 2593억엔으로 29.5%, 전자책이 349억엔으로 8.7% 늘었다. 다만 전자잡지 쪽은 130억엔으로 16.7% 감소했다. 만화 및 라이트노블을 중심으로 디지털 출판이 궤도에 오르면서 관련 사이트 및 앱을 통한 광고 수익도 증가했다. 문예춘추 등에서 직접 운영하는 시사, 경제, 문화 등 뉴스 사이트 광고 매출도 커졌다. 무엇보다 주목할 지점은 캐릭터에 바탕을 둔 굿즈 및 저작권 판매 등 지식재산권(IP) 비즈니스 쪽 성장세다. 일본 내외에서 이 부문 사업에 주력한 고단샤, 쇼가쿠칸, 슈에이샤 등 일본의 대형 출판사 매출은 모두 10년 전 수준을 회복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별다른 전략 없이 ‘일보전진 이보후퇴’를 반복 중인 한국출판은 이 사실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읽는다는 것’의 우점종은 더이상 ‘종이 읽기’가 아니다.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화면 읽기’가 ‘종이 읽기’를 압도한다. 이러한 미디어 환경에서 출판이 종이책에만 목을 매는 것은 스스로 목을 조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종이책 판매를 위한 마케팅 콘텐츠 개발이 아니라 독자의 지갑을 직접 노리는 디지털 콘텐츠 개발에 과감하고 지속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다. 더이상 종이책 진흥이 출판 진흥과 동의어가 아닌 시대가 확실해지고 있다. 잡지 하나를 구매해 그 안의 콘텐츠를 모두 읽기보다 필요할 때마다 관심 있는 조각글을 읽는 모바일 콘텐츠 소비 습관이 일반화하면서 기존 잡지의 몰락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큰 호응을 얻은 SF잡지 ‘오늘의 SF’나 인문잡지 ‘한편’처럼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매력적 콘텐츠를 집약하는 시도가 기존 출판계에서 일어선 것은 이런 점에서 주목받아야 마땅하다. 청년들을 위한 뉴스 서비스인 ‘뉴닉’ 같은 디지털 콘텐츠 구독 서비스도 출판사 콘텐츠 특성에 바탕을 두고 시도해 봄 직하다. ‘아기상어’ 돌풍에서 보듯 매력적인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2차적 저작물 개발은 출판 비즈니스의 좋은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자금 지원 등을 통해 기존 출판사의 캐릭터 개발을 활성화하고, 이것이 애니메이션·게임·공연·굿즈 등으로 확장해 가면서 글로벌 시장을 노릴 수 있도록 돕는 출판 내부 전략이 정부나 출판단체 차원에서 마련되면 좋겠다. 아울러 종이책의 독특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끝없이 묻고 답하면서 그 가치를 보존하고 극대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북 디자인을 통한 아름다운 물성의 실현은 최근 한국출판이 가장 비약적 성숙을 이룩한 지점이다. 하지만 출판은 물건이 아니라 읽기를 판매하는 사업이다. ‘긴 호흡의 서사’, ‘밀도 높은 추상적 사유’ 등 종이책 특유의 콘텐츠 형태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 대한 편집자들의 깊은 탐구 없이는 갈수록 독자들 눈길을 사로잡기 어려울 것이다.
  • 사료 속 우산도 오류 이해해야 독도가 보인다

    사료 속 우산도 오류 이해해야 독도가 보인다

    뉴라이트 “우리 땅 아냐” 공격 빌미 돼 저자 “안용복·정상기가 오류 바로잡아”우리나라 고지도 속 ‘독도’는 ‘우산도’로 표기됐다. 그래서 우리 모두 ‘독도=우산도’로 알고 있다. 그러나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고지도에는 우산도가 울릉도 서쪽에 있거나 울릉도 동쪽 가까이에 실제보다 크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을 비롯한 한국의 ‘뉴라이트’는 이를 빌미로 우산도는 독도가 아니라고 역공한다. 지난해 출간돼 사회적 논란을 부른 ‘반일종족주의´(미래사)도 “어떤 지도에서는 독도가 울릉도의 서쪽으로 나오고 어떤 지도에서는 북동쪽으로 나온다”며 독도는 우리 영토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신간 ‘우산도는 왜 독도인가’(소수출판사)는 고지도를 포함한 우산도 관련 문헌을 체계적으로 정리·분석해 우산도가 왜 독도인지 조목조목 밝힌다. 측량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의 지도 제작 방법, 하나의 섬이 어떻게 국가의 공식 인정을 받고 국가 표준지리지에 수록되는지도 살핀다. 예컨대 1463년 정척과 양성지가 제작한 ‘동국지도’에는 우산도가 울릉도 서쪽에 울릉도와 비슷한 크기로 그려졌다. 저자는 이와 관련, “동국지도는 당시 정설인 ‘신찬팔도지리지´를 따랐는데, 독도인 ‘우산(도)´, 울릉도인 ‘무릉(도)´ 순으로 기재해 우산도가 울릉도 서쪽에 위치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근대 이전에는 대개 현장을 직접 살피지 않고 기존 지리지나 지도 정보에 기초해 지도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종종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제대로 잡힌 것은 1693년 안용복과 박어둔이 울릉도에 갔다가 일본에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다. 일본은 그들이 ‘죽도’라고 부른 울릉도에서 조선 어민이 어로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조선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통해 울릉도가 조선 땅임을 분명히 밝혔다. 안용복은 3년 뒤 일본에 직접 찾아가 이 문제를 따지는데, 조선은 이 과정에서 울릉도 동쪽에 ‘자산도’(子山島)가 있음을 새로이 알게 된다. 저자는 ‘자산도’의 ‘자’(子)는 ‘우산도’(于山島)의 ‘우’(于)의 오기라고 설명했다. 이후 실학자 정상기가 이익의 ‘성호사설’에서 이를 인지하고 1740년대 ‘동국대지도’를 제작하며 울릉도 서쪽에 그려졌던 우산도를 동쪽으로 바로잡은 것을 근거로 댔다.저자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우리 연구자 일부가 당시 고지도 제작 과정을 모른 채 일부 사료만 인용하며 ‘독도=우산도’를 너무 쉽게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이는 오히려 일본에 빌미를 주는 꼴”이라고 밝혔다. 그는 “책을 통해 쉬운 설명의 오류를 경계하고, ‘독도=우산도’라는 사실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법원, 노무현 전 대통령 ‘합성 사진’ 교학사-노건호씨에 화해 권고

    법원, 노무현 전 대통령 ‘합성 사진’ 교학사-노건호씨에 화해 권고

    아들 노건호씨, 10억원 청구…형사사건은 불기소법원 “희망처에 기부…일간지에 사과문” 화해 권고양측 14일 이내 이의서 제출 안 하면 화해 성사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합성 사진을 역사 교재 자료 이미지로 사용해 정신적 고통을 당했다며 노 전 대통령 아들 건호씨가 출판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이 양측에 화해를 권고했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민사15부(부장 김국현)는 원고가 희망하는 기부처에 피고 교학사가 일정 금액을 기부하라는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법원은 또 출판사가 일간지에 사과문을 게재하도록 했다. 다만 사과문 게재를 원치 않으면 그 비용만큼 기부금을 추가로 내도록 했다. 구체적인 기부처와 기부 액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법원은 기부금 총액으로 1억원이 넘지 않는 금액을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건호씨가 소송을 제기하면서 교학사에 청구한 금액은 10억원이다. 노건호씨와 교학사 양측이 모두 법원의 화해 권고를 받아들이면 이대로 소송이 종료된다. 화해 권고 결정은 재판상 화해와 효력이 같아 항소·상고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쪽이라도 이의서를 제출하면 변론이 재개돼 소송이 계속된다. 노무현재단은 “법원의 권고안을 받아들일지 검토 중이다”라고 밝혔다. 이의서는 결정문이 송달된 지 14일이 되는 24일까지 제출해야 한다. 교학사는 KBS 2TV 드라마 ‘추노’에 노비로 분한 출연자의 얼굴에 비하할 목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최신기본서’에 실었다.사진이 게재된 사실이 지난해 3월에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었다. 이 사진은 당초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 베스트 저장소’에서 노 전 대통령을 조롱할 목적으로 만들어 유포한 사진으로 알려졌다. 이에 노건호 씨는 작년 남부지법에 민사소송을 제기하면서 교학사 관계자들을 명예훼손과 모욕 혐의 등으로 처벌해달라고 서울서부지검에 고소장도 제출했다. 검찰은 고소 사건을 경찰에 맡겼고, 경찰은 수사를 거쳐 ‘구체적인 허위사실 적시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불기소(혐의없음) 의견으로 송치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이 사건을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번역과 오역 사이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번역과 오역 사이

    “번역은 반역이다”(traduttore traditore)라는 말은 흔히 번역의 자율을 옹호하는 뜻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번역자는 반역자(traitor)” 즉 “역자는 다 나쁜 놈”이라는 뜻에 더 가깝다. 어느 이탈리아인이 ‘실락원’(밀턴)의 불어 번역을 읽은 뒤 번역이 작품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모두 훼손했다며 역자를 비난한 것이다. 지난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최종후보작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을 번역할 때였다. 작가 아흐메드 사다위가 이라크 출신이고 원작이 아랍어인 터라 나로서는 영어 번역을 중역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영어번역자에게 “당신 번역을 참조하겠다”는 양해 이메일을 보냈더니 “Thanks but you’ve probably noticed that the English version is slightly abridged. That was the work of the editor”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시 말해 영어 번역이 반드시 원작과 일치하지는 않으며 편집자 재량에 따라 어느 정도 생략과 수정이 있었다는 얘기다. 데버러 스미스가 2016년 맨부커상 수상작 ‘채식주의자’를 번역하기 시작했을 때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불과 3년째였다. 사실 그 짧은 시기에 외국인이 우리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문학자 김욱동 교수는 ‘채식주의자’ 번역에 오역이 너무 많다며 재번역이 절실하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작가 한강은 “…(번역의 오류가) 이 소설을 전달하는 데 결정적 장애물이 되거나 근본적으로 다른 별개의 책으로 만들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며 번역자를 옹호하고 나섰다. 고려대 조재룡 교수는 한 발 더 나간다. “데버러의 번역은 뛰어난 번역”이며 “오역에 대한 논의보다 더 중요한 문제들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미국이든 영국이든 번역서가 원서를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느냐의 여부는 그다지 중요한 것 같지 않다. 맨부커상 역시 번역서 자체를 독립된 텍스트로 놓고 그 품질을 평가한다. 그런 점에서 데버러 스미스가 2년 후 다시 한강의 작품 ‘흰’으로 같은 상 최종 후보에 오른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가 우리말을 잘 모르거나 오역 논쟁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와 정반대다. 우리말을 얼마나 아름답게 다루었는지보다 원작을 얼마나 성실하게 옮겼는지에 더 관심이 크다. 그래서 원작과 다른 의미가 한두 개 드러나면 번역가는 능력을 의심받고 무차별 공격의 중심에 서게 된다. ‘어벤저스’와 ‘겨울왕국2’의 논란이 그렇다. 위트 있는 재해석과 아름다운 어휘 선택은 애초에 관심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영화 ‘기생충’의 번역자는 ‘서울대’를 ‘옥스퍼드대’로 번역해 호평을 받았다. 이와 관련해 번역가이자 출판사 대표인 H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영한 번역에서 ‘옥스퍼드대’를 ‘서울대’로 번역했다면 한국 관객들이 쉽게 용납하지 못했을 거다.…그건 우리가 옥스퍼드를 잘 모른다 해도 마찬가지”라며 씁쓸한 댓글을 남겼다. 데버러 스미스가 큰 상을 수상한 이유는 물론 “번역을 잘했기 때문”이다.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심사위원장 보이드 톤킨은 “데버러 스미스의 영어 번역이, 독특하면서도 화려한 작품에 적절한 목소리를 부여했다”고 평했다. 원서 중심의 우리 풍토였다면 모르긴 몰라도 수상은커녕 번역가로서 자질부터 의심받았을 것이다. 오역을 옹호하거나 정당화할 생각은 없다. 오역이 나올 수밖에 없는 번역계 전반의 여건에 대해 말을 보태고 싶지도 않다. 다만 우리가 번역이라 일컫는 작업은 단순히 “의미 전달”을 넘어 매우 복합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모든 번역서는 작가가 아니라 번역가의 목소리를 담는다”는 말은 그래서 가능하다. 현실이 어떻든, 번역가들은 최선을 다해 번역하건만 독자들은 번역은 외면하고 ‘오역’만 보려 한다. 번역이 아니라 오역만 보는 한, 번역자는 영원히 반역자(traditore)로 남을 수밖에 없다.
  • [문현웅의 공정사회] 35년 만의 독후감

    [문현웅의 공정사회] 35년 만의 독후감

    35년 전 그해 겨울방학이 시작될 무렵 선생님께서 저에게 A 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를 선물해 주셨지요. 누군가로부터 책 선물을 받는다는 것이 그때까지의 제 삶에서는 거의 전무한 사건이었고 평소 제가 좋아하는 음악 선생님의 선물이어서 무진장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책 내용은 매우 흥미진진했으나 그 당시 제 나이로는 다소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장을 닫으면서 ‘소유냐 존재냐’ 그러니까 인생에 있어 무엇이 되는 것이 중요하냐 아니면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하냐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고민했었지요. 그런 추억을 안고 바오로딸 출판사의 다시 읽고 싶은 명작 시리즈의 첫 번째인 ‘천국의 열쇠’를 최근에 다시 만났습니다. 주인공인 치점 신부는 갖은 고생 끝에 가톨릭 사제가 되고 중국에 선교사로 파견돼 30년 넘게 그 소임을 다한 후 늙어서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끊이지 않는 불행 속에서 인간적 한계에 번민하며 오로지 예수의 가르침인 사랑을 충실히 실천하려 악전고투하는 모습이 매우 감동적으로 그려지지요. 반면에 치점 신부의 어릴 적부터의 친구인 밀리 신부는 어린 시절과 신학생 시절을 거쳐 사제가 돼서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엘리트 성직자의 코스를 밟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업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고위 성직자인 주교에 올라 교회뿐 아니라 세상에까지 명성을 떨치며 자신의 영향력을 한껏 과시합니다. 이렇게 대비되는 두 인물의 인생이 퍽 인상적으로 다가와 그 당시 시골 성당 중등부 회장이었던 제가 ‘소유냐 존재냐’를 어설프게나마 고민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3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천국의 열쇠’를 다시 만나서는 밀리 신부가 중국에서 선교사로 고군분투하는 치점 신부를 방문하는 장면이 특히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밀리 신부의 방문을 지켜본 베로니카 수녀의 고백 장면 말입니다. 첫 만남부터 기대가 너무나 어긋나 치점 신부를 혐오하며 냉랭하게 대했던 귀족 출신의 베로니카 수녀는 창궐하는 페스트의 광풍 속에서 보여 준 치점 신부의 헌신적 사랑의 실천에 감동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이렇게 고백하지요. “요즘 더욱 괴로웠습니다. 신부님 구두끈도 풀 자격이 없는 천하고 속된 인간에게서 신부님이 받은 경멸과 굴욕감은 저 자신도 참기 어려웠어요. 제 자신이 미워질 뿐이에요. 용서하세요.” 베로니카 수녀가 말하는 천하고 속된 인간은 다름 아닌 밀리 신부와 저를 지칭하는 것 같았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돈, 명예, 권력이 달콤한 유혹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니 단순한 유혹을 넘어서 그러한 세속적 가치가 제 인생에서 신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돈, 명예, 권력을 숭배한 끝이 매우 허망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죠. 돈, 명예, 권력은 누구나 좋아하고 평생에 걸쳐 소유하려 좇는 가치입니다. 그런데 그런 세속적 가치만을 좇는 인생이 누군가에게 작은 감동으로라도 다가왔다는 말은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그런 인간 군상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요. 그렇게 감동 없는 인생을 살며 그냥 그런 인간 군상 가운데 하나로 나이를 먹어가다 35년 만에 ‘천국의 열쇠’를 다시 만나 저에게 또다시 묻습니다. ‘소유냐 존재냐’, ‘무엇이 되는 것이 중요하냐 아니면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하냐’. 돌이켜 보면 35년 전 고민인 이 질문을 마냥 잊고 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타오르는 욕망의 바다에 영혼과 육신을 모두 던진 채 살면서도 유혹의 순간마다 이 질문이 떠올라 조금은 괴로워하는 척을 하기는 하였으니까요. 그런데 인생 후반에 다시 이 질문에 맞닥뜨리니 스스로 던졌던 질문의 결이 십대와 오십대의 간극 차이만큼이나 확연히 달라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 이렇게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소유냐 존재냐, 무엇이 될 것이냐 아니면 어떻게 살 것이냐 선택해야 하는 순간마다 열에 한 번쯤은 존재에 손을 들어 주는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라고요.
  • 재개봉 열풍·촬영지 순례…대한민국은 ‘기생충 앓이’

    재개봉 열풍·촬영지 순례…대한민국은 ‘기생충 앓이’

    영화 속 슈퍼·피자집, 인증샷 명소로 관련서적 판매량 100배↑‘ 품절사태’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각본·국제극영화상을 석권한 뒤 국내 서점과 극장가에 광풍이 불고 있다. 관련 서적 판매량은 100배 치솟고, 전국 영화관에 영화가 다시 내걸렸다.인터넷 교보문고에 따르면 시상식 이후 하루가 채 되지 않은 11일 오전 10시까지 봉 감독의 ‘기생충 각본집&스토리보드북’(플레인)이 1000여권 팔렸다. 봉 감독이 직접 쓰고 그린 각본과 스토리보드를 2권으로 묶은 것으로, 영화에서 편집하면서 삭제한 미공개 신도 들어 있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하루 10권정도 팔렸는데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서점 내 재고가 모두 소진돼 현재 일시 품절 상태”라고 설명했다. 인터넷서점 예스24와 알라딘에서도 각각 10일 하루 1110권, 이날 오후 기준 1300부가 팔렸다. 출판사 관계자는 “어제 하루 동안 출판사 보유 재고 1200권까지 모두 소진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출간한 이 책은 지난달까지 판매량이 8000권 정도였는데, 절반에 육박하는 물량이 하루 만에 팔린 셈이다. 책은 오는 5월 미국에서도 판매를 시작한다. CJ ENM이 지난해 12월 미국 그랜드센트럴퍼블리싱에 해외 판권을 팔았다. CGV를 비롯해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복합영화관은 기생충을 긴급 편성했다. 지난해 5월 30일 개봉한 ‘기생충’은 1008만 관객을 동원한 뒤 8월 22일 상영이 종료됐다. 미국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등 각종 영화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자 1월 19일 전국 47개 관까지 상영관이 늘었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받은 10일 전국 개봉관은 73개로 확대됐다. ‘기생충’은 신작들과 경쟁하며 이날 박스오피스 9위를 찍기도 했다. CJ ENM은 이달 말 ‘기생충 흑백판’으로 인기를 이어갈 예정이다. 영화 속 촬영지도 화젯거리로 다시 떠올랐다. 주인공 기우(최우식 분)가 친구에게 고액 과외 아르바이트를 제안받은 ‘우리슈퍼’는 서울 마포구의 돼지쌀슈퍼다. 기정과 친구가 술을 마시던 파라솔은 없지만 가게 전경은 영화와 똑같아 팬들의 인증샷 장소로 활용된다. 폭우 속에서 기택(송강호 분)네 가족이 달리던 서울 자하문터널 계단, 기택네 가족이 피자 박스 접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피자집도 유명하다. ‘기생충’ 성공 이후 외국인들도 많이 찾던 이곳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지만, 아카데미 시상식 결과에 힘입어 다시 관광객들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영화 재개봉하고 관련서적 판매량 100배로...전국 ‘기생충’ 앓이

    영화 재개봉하고 관련서적 판매량 100배로...전국 ‘기생충’ 앓이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이 10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까지 4관왕을 석권하면서 서점가와 극장가가 ‘기생충’ 특수를 맞았다. 관련 서적 판매량이 하루만에 100배까지 치솟고, 전국 영화관에 영화가 다시 내걸리면서 박스오피스도 역주행하고 있다. 영화 속 촬영지에도 사람들 발길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등 그야말로 전국이 ‘기생충 앓이’ 중이다. 인터넷교보문고 측은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부터 11일 오전 10시까지 책이 1000여권 팔렸다고 밝혔다. 봉 감독이 직접 쓰고 그린 각본과 스토리보드를 2권의 책으로 묶은 것으로, 봉 감독이 영화 ‘기생충’을 어떻게 영화로 구현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영화에서 편집하면서 삭제한 미공개 씬도 들어 있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하루 10권씩 팔리던 책이었는데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서점 내 재고가 모두 소진돼 현재 일시품절 상태”라고 설명했다. 인터넷서점 예스24도 10일 하루동안 1100여권이 나갔다. 책은 11일 종합 베스트셀러 10위에 진입하기도 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도 11일 오후 기준 1300부가 팔렸다. 출판사 관계자는 “어제 하루 동안 출판사 보유 재고 1200권까지 모두 나갔다. 새로 책을 찍어야 할 판”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9월 출간한 이 책은 연말까지 모두 8000권 정도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달까지 5개월 동안 판매량 절반이 넘는 물량이 하루 만에 나간 셈이다. 관련 서적은 오는 5월쯤 미국에서도 판매를 시작한다. CJ ENM이 지난해 12월 미국 그랜드센트럴퍼블리싱에 해외 출판권을 팔았다.서점들은 ‘봉준호 기획전’을 내걸면서 판매를 이어갈 예정이다. 인터넷교보문고는 봉 감독의 2009년 영화 ‘마더’의 스토리보드와 시나리오 원본을 수록한 ‘마더 이야기’와 10주년 기념 사진집 ‘메모리즈 오브 마더‘를 함께 홍보 중이다. 책은 홍경표 촬영 감독과 서지형 사진 작가가 찍은 현장 사진과 비하인드 스토리, 작가 인터뷰와 감독의 말 등을 담았다. 예스24는 ‘기생충’ VOD 다운로드 인기에 힘입어 봉 감독의 ‘설국열차’(2013), ‘살인의 추억’(2003) 등을 비롯해 기생충 출연 배우들 영화 19편을 30% 할인 판매한다. 알라딘도 도서·DVD 기획전을 열고 일정 금액 이상 구매자에게 상품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시작했다. 극장가에는 ‘기생충’이 다시 등판했다. 투자·배급사인 CJ ENM 계열 복합영화상영관인 CGV를 비롯해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이 수상 소식에 맞춰 기생충을 긴급 편성했다. 앞서 ‘기생충’은 지난해 5월 30일 전국 개봉한 뒤 7월 20일 1000만 고지를 넘었다. 이어 8월 22일에는 사실상 상영을 종료했다. 그러나 각종 영화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자 재개봉을 이어가며 1월 19일에는 전국 47개관까지 상영관을 늘렸다. 그러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받은 10일에는 전국 개봉관이 무려 73개까지 늘었다. ‘기생충’은 신작들과 경쟁하며 11일 박스오피스 9위를 찍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CGV는 이번달 25일까지 전국 주요 영화관에서 이 기세를 이어간다. 서울 13곳, 경기 5곳, 인천 2곳, 강원 1곳, 대전·충청 2곳, 대구 2곳, 부한·울산 5곳, 광주·전남북·제주 2곳의 모두 32개관으로 개봉을 확대한다. CJ ENM은 이달 말에는 ‘기생충 흑백판’을 개봉하며 인기를 이어갈 예정이다.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을 휩쓸면서 영화 속 촬영지도 화젯거리로 다시 떠올랐다. 영화 속 촬영지는 ‘기생충’ 성공으로 외국인들이 많이 찾았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그동안 발길이 뚝 끊겼다. 그러나 아카데미 수상과 함께 시작한 ‘기생충 앓이’에 힘입어 다시 관광객들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 기정이 친구에게 고액 과외 아르바이트를 제안 받은 ‘우리슈퍼’는 서울 마포구의 돼지쌀슈퍼다. 기정과 친구가 술을 마시던 파라솔은 없지만 가게 전경은 영화와 똑같아 팬들의 인증샷 장소로 활용된다. 이밖에 거센 비로 캠핑을 취소하고 돌아오는 박 사장 가족을 피해 기택네 가족이 도망치던 서울 종로구 자하문 터널 계단, 기택네 가족이 피자 박스 접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서울 동작구 스카이피자 등도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는 촬영 당시 사용한 피자 종이 박스도 가게에 그대로 진열 중이다. 봉 감독 사진과 싸인도 함께 배치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김금숙의 만화경] 사인, 작가의 책에 받아야

    [김금숙의 만화경] 사인, 작가의 책에 받아야

    프랑스에는 크고 작은 만화페스티벌이 꽤 있다. 만화전문 책방도 파리뿐만 아니라 지방의 각 도시에 있다. 작가는 사인회에 초대받으면 정성을 다해 그림으로 사인을 해 준다. 독자의 태도도 볼만하다. 어린이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한 시간, 때로는 오후 내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책을 이미 구입해 품안에 꼭 안고 있는 사람도 있고 그 자리에서 구입해서 사인을 받는 독자도 있다. 기다리는 동안 누구 한 명 불평을 하거나 새치기를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본인이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려고, 사인을 받으려고 오랜 시간을 기다린 만큼 본인의 차례가 됐을 때, 그의 얼굴에는 행복함이 가득하다. 작가는 설령 피곤하고 힘들어도 그런 독자의 마음과 태도에 보람을 느끼며 사인을 계속한다. 물론 모든 작가의 사인회가 비슷하지는 않다. 옆에 앉은 만화가는 줄이 빽빽한데 내 줄엔 한두 사람만 있을 때도 있고 아예 없기도 했다. 그럴 때엔 연습장에 그림을 그리며 독자를 기다린다. 마음은 초조하지만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는다. 때로 드물게 만화사인만 받으려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나도 몇 번 그런 경험이 있었는데 그들은 사인북을 가지고 다니며 작가에게 그림을 부탁한다. 거절하지 못하는 마음 약한 만화가는 멋지게 그림을 그려 준다. 이름만 쓴 사인이 아니라 그림이기에 그 자체는 훌륭한 작품이며 사인북은 작품집이 된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어떤 사람이 이탈리아의 어느 유명 작가가 그려 준 사인을 다음날 한 인터넷 사이트에 경매를 올렸다. 이탈리아 작가는 그에 대해 소셜미디어에서 분노와 실망을 표현했다. “몰상식하다”, “책이 아닌 다른 종이에 사인을 해서는 안 된다”, “고소해야 된다”, “우리는 작가를 지지한다”, “사인회를 주최한 페스티벌 측과 출판사는 이제 더이상 작가들을 사인회에 무료로 불러서는 안 된다” 등등 사람들은 댓글과 공유로 격렬하게 분노했다. 재판까지 갈 뻔했던 이 사건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경매광고를 내림으로써 끝을 맺었다. 작가가 책을 들고 오지 않은 독자에게 책 이외의 종이에 그림을 그려 준 성의를 완전히 배반한 경우였다. 수년 전 귀국한 후 나는 처음으로 국내 어느 만화 행사 사인회에 초대됐다. 사인회를 기획한 곳에서 당연히 책을 준비했으리라 생각했다. 도착해서 보니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 다른 만화가들의 책상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 이름이 적힌 테이블 앞에 앉았다. 책이 없으니 사인을 해 줄 수도 없고 난감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만화가들은 줄 선 사람들의 캐리커처를 그려 주고 있었다. 너무나 당연한 듯 보였다. 나는 무얼 해야 할지 몰라 잠시 어정쩡하니 앉아 있다가 내 앞에 선 초등학생에게 “꼬깽이” 캐릭터를 그려 주었다. “우리 아들하고 제 캐리커처 함께 그려 주세요.” 옆에 섰던 아이의 엄마가 내가 그려 준 그림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아, 저는 캐리커처를 그리지 않는데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다른 만화가의 줄로 달려갔다. 나는 캐리커처를 그리려고 그곳에 간 게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캐리커처를 그리며 사인회를 마감했다. 사람들은 다른 재밋거리를 찾아 흩어졌다.이후로도 나는 비슷한 경험을 여러 번 했다. “캐리커처 한 장 그려 주세요.” 마치 물 한 모금 달라는 듯이 사람들은 요구했다. 지금의 그림을 그리기까지 작가들은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의 공을 들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책이 아닌 아무 종이나 내밀며 캐리커처를 그려 달라고 한다. 이런 ‘문화’는 어디서 와서 어떻게 정착하게 된 걸까. 최근 대한민국에는 동네책방이 엄청 늘었다. 반가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가는 신작을 내면 사인회할 기회가 거의 없다. 책을 내도 낸 것 같지가 않다. 책이 출간된 순간만 잠시 반짝하다가 다른 신간에 묻힌다. 북토크나 사인회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또한 이 기회는 홀로 작업하는 작가들이 유일하게 자신의 작업실에서 나와 독자와 소통하는 시간이다. 강의에 나가지 않고 작업에만 집중하는 작가는 더 그러하다. 책방에서는 책에 사인을 한다. 하지만 행사를 할 때 아직도 구겨진 종이를 내미는 사람이 있다. 쉽게 얻은 그림은 휴지조각처럼 버려질 게 뻔하다.
  • “실리콘 가면쓰고 변장하면 불과 13%만 단번에 알아본다” (연구)

    “실리콘 가면쓰고 변장하면 불과 13%만 단번에 알아본다” (연구)

    할리우드 영화에서처럼 어떤 범죄자가 누군가의 얼굴을 모방해 정교하게 만든 실리콘 가면을 쓰고 있을 때 이를 찾아내는 것은 쉬울까.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 있다. 영국 요크대 연구진이 런던과학박물관에서 일반인 참가자 54명을 대상으로 자신들이 출입국관리소 직원이라는 가정 아래에서 여행자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실험을 시행했다. 이때 여행자 역할을 맡은 배우 중에는 실리콘 가면을 쓴 이들이 섞여 있었고 참가자들은 이 사실을 통보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모든 참가자에게는 불과 2m 앞에 있는 여행자가 가면을 쓰고 있던 것을 알아차렸는지를 평가하기 위해 등급별 질문이 잇따랐다. 그 결과, 모든 참가자 가운데 단 13%만이 실리콘 가면을 쓴 여행자를 곧바로 감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참가자 중에서 11%는 연구진이 몇 가지 질문을 하자 가까스로 가면을 쓴 사람을 감지했다. 질문 중 하나는 여행자가 변장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냐는 것이었다.실험 끝 무렵에는 참가자들에게 실리콘 가면을 쓰고 신분을 속이는 범죄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여행자가 그런 가면을 쓰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가면을 쓴 사람이 있다고 암시했음에도 모든 참가자 중 10%는 여전히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이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에 대해 연구를 이끈 롭 젠킨스 박사는 “가면을 쓴 사람을 찾는 확률이 이처럼 낮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심지어 명시적으로 질문해도 가면을 쓴 사람은 감지한 참가자들조차도 그 이유가 미묘했다”면서 “갑자기 ‘아 그래 저 사람은 분명히 가면을 쓰고 있어!’라고 깨닫기보다는 ‘헤어라인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표정이 어색해’ 같은 말로 보고했다”고 말했다.이 연구는 연구진이 기존 연구에 기초해 진행한 것이다. 지난해 연구진은 참가자 총 120명을 대상으로, 일면식이 없는 다른 사람의 실제 얼굴과 실리콘 가면 얼굴 사진 두 장을 함께 보여주고 어느 쪽이 진짜인지를 맞추게 했다. 결과는 참가자 5명 중 1명 즉 20%가 가면을 쓴 쪽을 진짜로 잘못 추측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연구에도 참여한 젠킨스 박사는 참가자들이 의식적으로 가면을 쓴 사람을 찾지 않는 환경에서 오답률이 훨씬 더 높으리라 생각해 이번 연구를 기획했다. 이들 연구자가 이런 연구를 수행한 이유는 최근 몇 년 동안 실리콘 가면을 범죄에 악용하는 사례가 늘었기 때문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현재 과제는 누군가가 가면을 쓰고 있을 때 이를 감지하는 속도를 높이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가면과 실제 얼굴을 구별하는 데 있어서 다른 이들보다 훨씬 뛰어났다면서 이는 출입국 관리소의 선발 기준을 높이거나 직원들을 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영국 세이지(SAGE)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국제 학술지 ‘지각’(Perception) 최신호(2월3일자)에 실렸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44년 만에 첫 수상 발표 취소… 상처만 남긴 이상문학상

    44년 만에 첫 수상 발표 취소… 상처만 남긴 이상문학상

    저작권 양도·표제작 수록 규정 등 수정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작은 안 내기로 “경영 악화로 직원들 퇴직… 수습 늦어져 수상집 기다린 작가들과 독자들께 사과”출판사 보이콧으로 번졌던 ‘이상문학상 사태’와 관련해 문학사상사가 한 달여 만에 공식 입장을 내놨다. 문제가 된 저작권 조항을 전면 시정하며, 올해 수상자는 발표하지 않겠다는 것이 골자다. 문학사상사는 4일 오후 발표한 임지현 대표 명의의 입장문에서 “제44회 이상문학상 진행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와 그간 모든 일련의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깊은 책임을 느낀다”고 문인들과 독자들에게 거듭 사과했다. 문학사상사는 “문제가 된 이상문학상 수상자와의 계약 합의 사항에 대해 전면 시정할 것”이라고 했다. 대상 수상작의 경우 ‘저작권 3년 양도’를 ‘출판권 1년 설정’으로 정정하고 개인 작품집에 표제작으로 수록하는 것에 관한 규제를 수상 1년 후부터 해제한다고 밝혔다. 불만이 촉발된 계약 사항인 우수상 수상작에 부여된 ‘저작권 양도 3년, 개인 작품집 표제작 금지’ 조항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발표 내용에 없었다. 이에 대해 문학사상사 측은 “우수상 수상 조건은 원래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오전 문학사상사는 페이스북에 입장문을 냈다가 “초고가 실수로 올라간 것”이라며 이를 지우고 다시 올렸다. 오전에 올린 입장문에 있던 “우수상 수상 조건을 모두 삭제한다”는 내용은 사라졌다. 임 대표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해당 조항은 작년과 올해 실수로 기재된 것이지 원래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삭제한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며 우수상 관련 내용을 덧붙이지 않은 이유를 부연했다. 또한 “오랜 고민 끝에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작은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며 “2019년 한 해 동안 좋은 작품을 선보이신 작가분들과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손꼽아 기다리셨을 독자 여러분께 매우 죄송하다”는 뜻을 전했다.문학사상사가 사과와 함께 ‘전면 시정’을 약속했음에도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전년도 대상 수상자로 문학사상사의 사과를 요구하며 절필을 선언했던 윤이형 작가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우수상 조건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빠진 것을 지적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최초로 문제 제기를 했던 김금희 작가도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오전 입장에 비해 구체성이 떨어지는 오후 입장문은 사과와 개선 의지의 진정성을 더 의심하게 한다”며 “수상자, 수상 후보, 심사 대상 어디에도 제 이름이 거론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고 적었다.‘이상문학상 사태’는 지난달 6일 올해 우수상 수상 예정자였던 김금희·최은영·이기호 작가가 저작권 양도에 문제 제기를 하며 수상을 거부해 불거졌다. 이후 윤 작가의 절필 소식이 알려졌고, 이어 작가·시인들이 SNS상에서 ‘#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운동을 벌이며 사태가 커졌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문학사상 “올해 이상문학상 발표 않는다… 저작권 조항 전면 시정”

    문학사상 “올해 이상문학상 발표 않는다… 저작권 조항 전면 시정”

    출판사 보이콧으로 번졌던 ‘이상문학상 사태’에 문학사상사가 한 달여 만에 공식 입장을 내놨다. 문제가 된 저작권 조항을 전면 시정하며, 올해 수상자는 발표하지 않겠다는 것이 골자다. 문학사상사는 4일 오후 발표한 임지현 대표 명의의 입장문에서 “제44회 이상문학상 진행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와 그간 모든 일련의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깊은 책임을 느낀다”며 문인들과 독자들에게 거듭 사과했다. 문학사상사는 “문제가 된 이상문학상 수상자와의 계약 합의 사항에 대해 전면 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상 수상작의 경우 ‘저작권 3년 양도’를 ‘출판권 1년 설정’으로 정정하고 개인 작품집에 표제작으로 수록하는 것에 관한 규제를 수상 1년 후부터 해제한다고 밝혔다. 불만이 촉발된 계약 사항인 우수상 수상작에 부여된 ‘저작권 양도 3년, 개인 작품집 표제작 금지’ 조항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발표 내용에 없었다. 이에 대해 문학사상사 측은 “우수상 수상 조건은 원래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오전 문학사상사는 페이스북에 입장문을 올렸다가 “초고가 실수로 올라간 것”이라며 이를 지우고 다시 올렸다. 오전에 올렸던 입장문에 있던 “우수상 수상 조건을 모두 삭제한다”는 내용은 사라졌다. 임 대표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해당 조항은 작년과 올해 실수로 기재된 것이지 원래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삭제한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면서 우수상 관련 내용을 덧붙이지 않은 이유를 부연했다. 또한 “오랜 고민 끝에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작은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며 “2019년 한 해 동안 좋은 작품을 선보이신 작가 분들과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손꼽아 기다리셨을 독자 여러분들께 매우 죄송하다”는 뜻을 전했다. 입장을 밝히기까지 시간이 지연된 것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최근 경영 악화로 본사 편집부 직원들이 대거 퇴직하며 일련의 상황에 대한 수습이 원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직원 실수’라는 표현으로 비판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깊은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해당 사태는 본사의 폐습과 운영진의 미흡함으로 인해 발생했음을 분명히 한다”고 말했다. ‘이상문학상 사태’는 지난달 6일 올해 우수상 수상 예정자였던 김금희·최은영·이기호 작가가 저작권 양도에 문제제기를 하며 수상을 거부해 불거졌다. 이후 전년도 대상 수상자인 윤이형 작가가 문학사상사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며 절필을 선언했고, 이어 작가·시인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서 ‘#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운동을 벌이며 사태가 커졌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Focus人] “야한 거 싫어하는 사람 있나요?” 남성잡지 맥심 첫 여성편집장 이영비

    [Focus人] “야한 거 싫어하는 사람 있나요?” 남성잡지 맥심 첫 여성편집장 이영비

    “엉덩이가 크고 예쁜 여자가 수영복을 입든 청바지를 입든 본인이 입고 싶어서 나온 건데, 일부 사람들은 이런 걸 애들이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왜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어떤 포즈는 되고 어떤 건 안 되고, 그 기준들이 법적으로 정해진 것도 아닌 모호하거든요. 맥심은 법이 규제하는 테두리 안에서 그 모호한 영역의 가장 밖에 있는 매체인 거 같아요.” 한 때 ‘털 난 중년 아저씨’로 오해까지 받으며 수많은 악플과 비난 속에서도 묵묵히 11년째 맥심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맥심 코리아 이영비(38) 편집장. 그녀는 맥심 최초의 여성 편집장이자 최연소 편집장이기도 하다. 그녀 이후 2016년 미국 맥심도 엘르 출신 여성 편집장을 데려오기도 했다. 누구나 그렇듯이 자신도 야한 거를 좋아한다는 그녀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극적이고 섹시한 것에 끌리게 돼 있어요. 일을 하면서 표현 수위에 있어 법이 제한하는 테두리 안에서 최대치로 밀고 가고 싶었죠”라며 “독자들에게 내가 발견한 재밌는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고 에디터들과 같이 작업하면서 사람들의 취향을 공유해 나가는 과정이 즐거웠기 때문에 오랫동안 이 일을 해 올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1995년 영국에서 창간됐고 1997년 미국판 창간을 시작으로 2002년 한국판을 창간한 가장 핫한 남성잡지 중 하나인 맥심. 독자들이 원하는 바로 그 ‘핫’함을 찾고 달구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그녀는 “다른 잡지들은 인생을 좋게 만드는 건강한 이야기들이 많은데 맥심은 불량식품 같지만 인생에서 빠지면 뭔가 아쉬운 양념 같은 존재다”라며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를 비유적으로 설명했다. 지난 22일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맥심코리아 사무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다음은 그녀와의 일문일답.(Q) 맥심에 어떻게 들어오게 됐나2003년에 교환학생으로 미국에서 1년간 공부했다. 하루는 친구가 파티한다고 집에 초대했는데 그 집 화장실에 미국 맥심이 꽂혀 있었다. 애들 집 어딜 가도 맥심은 항상 있었다. 보자마자 맘에 들었다. 고상한 척 안 하고 가식 없이 기발하게 웃겼다. ‘잘린 손가락 붙이는 법’ 같은 유용한 팁도 있고 우리나라의 패션 잡지와는 발상부터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책이라는 고상한 물체에 이런 장난스런 이야기들을 가득히 찍어내도 되나?’ 하는 문화 충격을 받았지만 맥심의 애독자가 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한국에 와서 전공인 신문방송을 살려 왠지 우아(?)하게 살 수 있을 거 같은 KBS 라디오PD에 지원했지만 최종면접에서 떨어지고 ‘너랑 딱 맞을 거 같다’던 친구의 말처럼 운 좋게 같은 해 맥심에 지원해 들어오게 됐다. (Q) 여성 편집장으로 발탁된 사연2010년 편집장 됐다. 당시 회사 소유 문제로 조직이 거의 와해됐었다. 편집장은 공석이었고 연차 높은 선배들은 떠나고 후배들만 남았던, 곧 없어질 것 같던 회사의 편집장 자리를 맡게 된 거다. 운 좋게 다시 판매율이 올라가 기사회생했는데 그게 지금까지 오게 될 줄 몰랐다. 맥심은 여자에게 매력적인 남자를 만드는 가이드북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여자 시각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이후로 다른 나라 맥심에도 여자 편집장이 부임하는 경우가 꽤 많이 생겼다.(Q) 편집장이 여자라는 사실에 대한 놀람과 우려에 대해네이버에 맥심 이영비 편집장 관련 악플들을 보면 욕이 엄청나게 많다. ‘털 난 중년 아저씨일 줄 알았는데 20대 파릇파릇한 여자라서 감정이 오묘하다’라는 댓글도 있다. 물론 털 난 중년 아저씨는 아니지만 성별을 떠나 젊은 세대들이 공유하고 있는 재밌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은 아는 사람이 맥심 편집장이 되는 게 가장 맞지 않나 생각한다. (Q) ‘전체관람가’ 잡지란 말에 놀라는 분들도 많은데‘전체관람가’로 출간되는 게 사실이다. 비유를 해보자면, 주부지의 타깃은 결혼한 기혼 여성들이다. 즉, 성인이다. 주부지에 섹스, 부부생활 이야기도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주부지를 ‘전체관람불가 성인지’ 분류에 넣지 않는다. 맥심도 마찬가지다. 타깃은 남자며 실제 주요 독자층도 20~30대 남성이다. 그 나잇대 남자들이 좋아하는 것을 다룬다고 해서, 성에 관한 담론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10대에게 유해하다고 간주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맥심은 남성 잡지다. 남성들이 보기에 남성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을 다룬다. 표지가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인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Q)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다는 비판에 대해맥심 화보를 찍을 때마다 여성 전체를 가치를 떨어뜨렸다는 일부 페미니즘 진영의 공격을 받곤 한다. 하지만 내가 봐온 여자들은 성적 매력을 당당하게 어필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일종의 철학을 하나같이 갖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맥심을 성적 대상화의 사회악으로 보는 일부 남성혐오집단의 공격이나 악플 등에 개의치 않는 태도를 보이는 걸 많이 봐왔다. 대형 일부 서점에서 진열된 책을 보고 어머니들이 뭐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여러 가지 취향에 대해서 본인이 보고 싶지 않다고 그걸 못하게 하고 비난하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Q) 맥심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나 비난에 대해서대중이란 표현을 써서 모호하지만 대중은 그들이 원하는 바를 충족하지 못했을 때 거센 비난을 한다. 그건 어느 매체건 마찬가지다. 이념적으로 혹은 법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했다기보다는 그 당시의 상황이 맥심에게 불운하게 돌아갔다고 생각하고 있다. 많이 반성하고 조심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케이스들이 쌓이다 보면 아무래도 사람이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그게 조금 안타깝다. 아이템을 선정하고 진행함에 있어 속된 말로 ‘쫄게’된다. 사람들이 쏟아내는 비난도 어쨌거나 저희 매체의 역사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Q) UFC 마니아로 알려져 있는데사람들은 원초적으로 누가 더 센지를 궁금해한다. 호랑이와 사자, 지네와 전갈 등을 싸움 붙이는 이유다. UFC는 제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지만 폭력적이란 시각이 아닌 원초적으로 누가 더 센지에 대해 끌리는 측면이 있다. 센 남자들을 보면 약간 매혹되는 게 있다. 하지만 여자가 유혈 낭자한 UFC를 즐겨본다고 하면 특이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아직도 많기에 소위 ‘남성적인’ 취향의 여자들이 그걸 잘 드러내지 못하기도 한다. 실제로 정기구독자의 5~10%는 여성이고 매달 한두 개는 여성독자의 상담이 들어온다. 남녀의 취향 경계는 이미 흐려지고 있다. 편견을 걷고 들여다보면 남자에게 재밌는 건 상당수의 여자에게도 재밌다. (Q) 섹시함의 기준이 남성과 다를 수 있다. 여성 입장에서의 섹시함이란기본적으로 맥심 모델 콘테스트에 나온 분들은 본인의 얼굴과 몸매에 자신감을 갖고 있고 그것이 어느 정도 대중에게 어필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많은 카메라와 사람들 앞에서도 자연스럽고 자신 있는 포즈와 표정을 취한다. 소속사에서 키우는 연예인들, 속칭 “너 뜨려면 맥심 나와야 돼”라고 말하면서 인형처럼 똑같은 얼굴 표정으로 카메라 앵글을 바라보는 사람들과는 많이 다르다. 뭔가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것이 명확한 친구들이 맥심에게 잘 맞는 거 같다. 그런 것들이 또한 맥심이 생각하는 섹시함의 기본인 거 같다.(Q) ‘44 사이즈 모델은 쓰지 않겠다’라고 한 적 있는데“맥심은 육덕진 여자를 좋아하시죠?”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육덕진 이미지를 갖고 있는 여성 모델들이 나왔을 때 실제로 잡지 판매율이 높은 편이다. 그 의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여성을 예쁘고 섹시하다고 느끼는 거라고 생각한다. 모델 본인 스스로도 ‘넌 살을 빼야 돼’, ‘아이돌처럼 새다리가 돼야 돼’라는 외부적인 기준에 맞추지 않고 자신의 상태가 만족스럽고 맘에 들어서 나올 때 바로 그 모습이 진정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섹시하고 예쁜 여자를 다루는 매체로서 이런 외부의 기준들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인드가 맥심의 방향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Q) 역대 최고령 모델인 송해씨를 표지로 선정한 이유역대 맥심에 나오신 분들 중 최고령이다. 아마 그 기록은 당분간 깨지지 않을 거 같다. 남자 아이콘이란 인터뷰 코너가 있는데 여자 표지모델을 선정하듯이 남성들의 롤 모델을 선정하고 섭외해서 백커버로 들어간다. 송해 선생님은 방송의 살아있는 역사이시다. 그 지나온 시간만으로도 너무 멋있는 거 같다. 표지모델 섭외에 너무 흔쾌히 응해주셨다. 영화 대부 콘셉트였는데 눈물도 흘리시고 연기도 너무 잘해 주셨다.(Q) 국내외 연예인 중, 기억에 남는 표지모델과 그 이유는최근에 작업했던 200 특집호가 제일 재밌었던 거 같다. 저희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미스 맥심 모델 엄상미, 김소희를 비롯해서 한지나, 예린, 꾸뿌 등이 나온 표지였다. 빨간색, 하얀색 비키니를 입고 같이 파티하고 놀고 싶은 예쁜 여자 친구들이 폭죽을 터뜨리고 환화게 웃는 모습을 연출했다. 모델들이 저희가 원하는 콘셉트를 가장 심플하고 정확하게 표현한 거 같았다. 제작진들도 상당히 즐거웠다. (Q) 소녀 이미지가 강한 연예인의 화보 촬영 시 마찰은 없는지원치 않으면 벗기지 않는다. 본인이 미니스커트까지만 입겠다고 하면 그 이상 권하지 않는다. 물론 아이돌 소속사들도 그들이 원하는 이미지가 있다. 당연한 거다 하지만 맥심도 맥심이 원하는 이미지가 있다. 그 사이에서 어떤 접점을 찾아보지만 아예 접점이 없으면 저희들도 하지 않는다. 일단 맥심에 나오기로 결정한 사람들은 기본적인 마인드 자체가 자신의 가장 섹시한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친구들이다. 실제로 그런 친구들이 섭외된다.(Q) 세월호 참사로 예정보다 늦게 배포했는데당시 윤태진 아나운서 표지였는데 너무 귀엽고 발랄하게 잘 나왔다. 맥심은 재밌는 것들을 소개하고 고민 없이 보고 웃을 수 있는 그런 매체다. 여러 국가적인 국난이 있어도 발행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너무나 안타깝고 비극적인 참사라 그땐 기분이 좀 그랬다. ‘장례식장에서 북치고 노래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학생이 구조됐다라는 오보가 당일에 뒤집혀져 이런 분위기에서 우리만 웃자고 잡지를 내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좀 늦추게 됐다. 판매가 잘 됐어도 마음이 편치 않았을 거 같다. (Q) 표지모델과의 마찰로 에디터 중 한 분이 표지 모델로 나왔는데두 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촬영 다 끝낸 표지모델이 나오지 않겠다고 했다. 당시 미국 출장 중이었는데 전화받고 바로 귀국했다. 이미 계약서에 사인도 다 했고 출판해도 문제 될 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란 생각이 들었다. 이틀 후면 인쇄기가 돌아갈 급박한 상황 속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이걸 그냥 콘셉트로 가는 건 어떨까하고. 독자들에게 무슨 변명 따위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우리 해프닝 자체를 맥심의 커버로 남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란 위험한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론 그 에디터분이 굉장히 연기를 잘해줬다. 조명 쓰러져 있고 쓰레기 굴러다니고 망한 촬영장 콘셉트였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덕분에 맥심이란 매체가 그 일을 계기로 전화위복 됐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그 모델 분께 감사한 마음이다. 비록 모델료는 돈가스 사주는 걸로 대신했지만. (Q) 만드는 사람이 재밌어야 보는 사람도 재밌다. 직원 간 소통은 어떻게아무래도 만드는 콘텐츠가 자유롭다 보니깐 직원들끼리 주고받는 대화의 범위나 양 그리고 자유도 자체가 높다. 그렇다고 위아래가 없는 건 아니다. 휴가 신청 올라오면 다 오케이다. ‘놀고 싶으면 노세요’라는 의미다. 평소 업무 강도가 높다보니깐 자유도 자체를 높여 놓는 편이다. 옆돌기를 하든 불쇼를 하든 남한테 피해만 안 주면 상관하지 않는다. (Q) 함께 작업해 보고 싶은 연예인요즘은 사람들이 정말 뭘 좋아하고 뭘 보고 싶어 하는지를 많이 생각하고 있다. 유튜버 개인 팬덤이 두터운 친구들과 같이 작업을 하는 게 장사하는 입장에서도 물론 좋지만 연예인들보다 더 흥미로울 때가 더 많다. 외모를 떠나서 그렇게 자신의 콘텐츠가 풍부한 친구들과 작업하는 게 재밌고 즐겁다. 연예인 중에선 개인적으로 배우 김혜수씨가 맥심에 나오면 참 멋있겠다란 생각을 하고 있지만 아마 안 하실 거 같다. (Q) 가장 의미 있었던 작업은 2017년 10월호 광마 마광수 추모 특집호다. 그가 사망한 달 모든 기획을 정리하고 표지부터 후반부 기사들을 특집으로 꾸미고 추모 특집을 준비했다. 상큼하고 섹시한 맥심 여자 표지 모델이 아닌 마광수 얼굴이 표지로 나가면 판매가 저조할 것도 예상했다. <즐거운 사라>가 당대에 판금되고 저자와 출판사 사장이 구속까지 될 정도의 텍스트인가, 우리 사회는 이 텍스트를 감옥에 가두고 숨겨야 하는 것인가, 지금의 한국에서도 그 기준은 여전히 유효한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맥심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던지고 싶었다. 맥심뿐 아니라 세상의 많은 콘텐츠 제작자들은, 그의 문학과 사고에 대한 호불호와 상관없이 마광수라는 인물의 불행한 개인사에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Q) 앞으로의 계획과 소망일을 하면서 우리 사회에 경직된 ‘벽’이 얼마나 많은지 절감했다. 얼마 전 유튜브로 90년대 뉴스를 봤다. 당시 사회 문제시되던 오렌지족의 행태란 게 수입차 타고 락카페 가는 정도였다. 지금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 것들이다. 결국 세상은 나아간다. 맥심과 함께 하는 동안에도 세상은 변했다. 티팬티를 입거나 왁싱을 하면 무슨 외국 포르노 배우 보듯 하던 시선도 많이 사라졌다. 논란의 대상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이게 왜 나빠?”라고 생각해보는 게 맥심 편집장 이영비의 목표라면 목표다. 또한 내외부적인 어려움 없이 매달 마감을 쉬지 않고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맥심이라는 편견도 많고, 미움도 많이 받고 사랑도 많이 받으면서 10년 넘게 만들어 오고 있다. 독자들이 내가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최근 200호 특집을 했는데 300호 갈 때까지, 제가 죽어 없더라도 맥심 많이 봐주셨으면 한다.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sungho@seoul.co.kr
  • [특파원 칼럼] 혐한 서적 대놓고 밀어주는 아베 정권/김태균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혐한 서적 대놓고 밀어주는 아베 정권/김태균 도쿄 특파원

    ‘제2의 히틀러 문재인’, ‘문재인은 탈북자 학살범’, ‘문재인은 시진핑의 충견’, ‘가랑이 찢어지는 문재인’. 인용을 위해 글자를 옮기는 것 자체가 민망한 수준의 이 말들은 언뜻 인터넷 기사에 달린 악성 댓글 같아 보이지만, 나름 활자와 제본의 형태를 갖추고 세상에 나오는 한 일본 월간지의 올 1월호, 2월호 표지 제목들이다. 하나다 가즈요시(78)라는 극우 인사가 편집장을 맡고 있는 ‘월간 Hanada(하나다)’라는 잡지다. 아무리 ‘혐한’이 일본 출판계의 효자상품이 돼 너도나도 벌거벗고 달려든다 해도 최소한의 품격조차 상실한 조잡한 단어들의 조합은 일본에서 많이 쓰이는 ‘선(一線)을 넘어섰다’라는 말 자체를 무색하게 만든다. 하지만 단체 작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절륜의 다작(多作) 기술을 과시하는 닳고 닳은 극우 논객들의 ‘막말 대잔치’는 수위가 아무리 높아진다 해도 그 자체로서 크게 새로울 것은 없다. 그보다 더 놀랍고 무서운 것은 따로 있다. 골방에서 만들어진 혐오와 날조의 문언에 자신들의 이름값을 더함으로써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일본 정치권력 핵심 인사들의 행태다. 2016년 창간돼 4년이 채 되지 않은 월간 하나다는 다른 어떤 동종 잡지들보다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한다. 당장 2월호 톱기사의 주인공이 아베 신조 총리다. 그는 ‘아베, 시진핑과 문재인에게는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는다’는 제목의 인터뷰를 통해 이 잡지에 힘을 불어넣어 줬다. 일간지를 비롯한 주요 매체들의 인터뷰 요청에 거의 응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추종한다는 이유로 여기에는 모습을 비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이 잡지에 등장한 것은 이게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8월에는 지나친 언행으로 일본 내 일부 우익 인사들로부터도 비판받는 극우 논객 사쿠라이 요시코와 대담을 하며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과 야당을 비난했다. 총리가 이럴진대 다른 인사들은 불문가지. 정부 2인자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지난해 8월 야당에 일본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한 데 이어 12월호에서 역시 사쿠라이와 대담했다. 정권의 지원을 등에 업고 월간 하나다는 매월 신문에 전면광고를 내는 등 비슷한 성향의 극우·혐한 잡지 중 가장 왕성한 선전활동을 하고 있다. 이 잡지가 나오는 곳은 ‘한국의 2가지 거짓말-징용공과 위안부’, ‘붕한론’(崩韓論), ‘왜 일본인은 한국에 혐오감을 느끼는가’, ‘한민족이야말로 역사의 가해자다’ 등 숱한 혐한 서적을 펴낸 아스카신사라는 출판사다. 두 차례에 걸쳐 8년 넘게 집권하며 일본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운 아베 총리는 잘잘못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그가 나오는 것만으로 많은 일본 국민들은 해당 매체에 높은 신뢰도를 보낼 수밖에 없다. 사쿠라이 같은 선동가들에 회의적인 사람이라도 당장 현실 정치권력의 정점에 있는 아베 총리나 스가 장관 같은 사람이 그녀와 대담을 하는 것을 보면 생각이 달라지기 쉽다. 이 잡지를 살지 말지 망설이던 사람은 구매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매월 한 권씩 사보던 사람은 연간구독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될 수 있다. 혐한을 전도하려 애쓰는 사람에게는 권력의 1인자와 2인자가 등장하는 이 잡지야말로 극우와 혐한의 전도에 더할 나위 없는 수단이 된다. 월간 하나다 2월호를 우리나라 버전으로 바꿔 보면 ‘아베는 트럼프의 충견이다’, ‘가랑이 찢어지는 아베’라는 글들이 실린 월간지에 문재인 대통령 인터뷰가 톱기사로 실리는 꼴이 된다. 이런 수준으로까지 바닥에 떨어지지 않은 우리나라가 다행스러운 것과는 별개로 이런 상황이 앞으로 일본에서 더욱 공공연하고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인식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windsea@seoul.co.kr
  • #절필 #권리찾기 #원고청탁거부

    #절필 #권리찾기 #원고청탁거부

    문단 “불합리한 관행 깨야” 성토… 자음과모음 소설 공모에도 영향올 초 불거진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 사태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6일 김금희·최은영·이기호 작가가 ‘단편 저작권을 출판사 측에 3년간 양도하고 작가 개인 단편집에 실을 때도 표제작으로 내세울 수 없다’는 계약서 조항에 반발해 우수상 수상을 거부하면서 촉발됐다. 이어 31일에는 전년도 대상 수상자 윤이형 작가가 절필을 선언했고, 동료 작가들이 이에 연대해 이상문학상 주최사인 문학사상사 업무 거부에 나섰다. 이 사태는 여타 문학상에 대한 문제제기, 부당한 원고 청탁에 대한 거부 등 문단 전체에 대한 성토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제대로 사과하라”… 문학계 지지 여론 확산 작가들은 문학사상사의 제대로 된 사과와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문학사상사는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문제가 된 조항이 직원 실수로 우수상 수상작에도 포함됐다는 언론 보도가 전해지며 작가들의 공분을 샀다. 급기야 윤이형 작가가 트위터에 “제가 받은 이상문학상을 돌려드리고 싶다. 부당함과 불공정함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며 절필을 알려 문학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윤 작가는 전날 서울신문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제 작품이 누군가를 착취하고 이득을 얻는 것 같아 수치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며 절필 이유를 밝혔다. 그는 문학사상사 대표를 향해 공식 입장 표명과 사과, 운영 개선 등을 요구했다.전년도 우수상을 받은 최은영 작가도 같은 날 트위터에 “분별없이 수상에 동의하고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기에 올해 수상 작가들에게까지 피해가 갔으리란 생각에 죄책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어 “모든 책임을 직원 개인의 ‘실수’로 몰아가며 자신들의 부당한 행동을 반성하지 않는 문학사상사에 사과를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작가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는 문학사상사 보이콧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동료 작가들은 ‘#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해시태그로 의지를 드러내고, 구병모·황정은·조해진·권여선·장류진·정세랑·함정임 소설가, 오은·권창섭 시인 등이 이에 연대했다. 독자들도 ‘#문학사상사_소비_거부’, ‘#문학사상사_독자_보이콧’ 등으로 동참하고, 동네서점 몇 곳은 문학사상사 책을 입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문학사상사 측은 묵묵부답이다. 서울신문은 문학사상사 측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매년 이상문학상 대상 작가의 커버스토리를 담았던 ‘문학사상’ 2월호는 이번 호를 ‘시 공동 창작’ 특집으로 꾸렸다. 수년간 이상문학상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권영민 미국 UC버클리대 연구 교수는 2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상의 운용에는 관여하지 않아 얘기할 입장이 아니다”라면서도 “작가들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상금=선인세’ NO… 다른 문학상도 내용 정정 문학사상사 보이콧 사태는 다른 문학상 관행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출판사 자음과모음은 중·단편소설을 대상으로 한 신인문학상 공모 내용을 정정했다. 상금 500만원을 두고 ‘인세가 상금을 상회할 경우 초과분에 대해 인세로 지급한다’고 공지했다가 삭제했다. 상금을 선인세로 공제하고, 출간을 전제로 한 장편소설 공모가 아닌데도 단행본 계약을 강제한다는 데 이의 제기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부당한 원고 청탁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움직임도 나온다. ‘소정의 고료’로만 통용된 출판계 관행에 대한 반기다. 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인 이원석씨는 “올초 고료를 미리 밝히지 않은 원고 청탁을 거절했다”며 “함께 등단한 신인 작가들과 연대해 목소리를 내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를 문학 출판 제도의 현대화가 이뤄지는 과정이라고 본다. 양경언 문학평론가는 “예술을 노동과 멀리 떨어뜨린 예술관에 대한 이의 제기가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과거에 비해 문예지가 중심이 된 출판사의 권위 약화, 저작권 개념에 대한 문제 의식 강화로 일어나는 일”이라며 “궁극적으로 해외 사례처럼 저작권을 관리하는 에이전트 시스템을 널리 확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이상문학상 사태’ 일파만파… #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이상문학상 사태’ 일파만파… #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올 초 불거진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 사태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6일 김금희·최은영·이기호 작가가 ‘단편 저작권을 출판사 측에 3년간 양도하고 작가 개인 단편집에 실을 때도 표제작으로 내세울 수 없다’는 계약서 조항에 반발해 우수상 수상을 거부하면서 촉발됐다. 이어 31일에는 전년도 대상 수상자 윤이형 작가가 절필을 선언했고, 동료 작가들이 이에 연대해 이상문학상 주최사인 문학사상사 업무 거부에 나섰다. 이 사태는 여타 문학상에 대한 문제제기, 부당한 원고 청탁에 대한 거부 등 문단 전체에 대한 성토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문학사상사, 제대로 된 사과하라”…#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작가들은 문학사상사의 제대로 된 사과와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문학사상사는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문제가 된 조항이 직원 실수로 우수상 수상작에도 포함됐다는 언론 보도가 전해지며 작가들의 공분을 샀다. 급기야 윤이형 작가가 트위터에 “제가 받은 이상문학상을 돌려드리고 싶다. 부당함과 불공정함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며 절필을 알려 문학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윤 작가는 전날 서울신문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제 작품이 누군가를 착취하고 이득을 얻는 것 같아 수치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며 절필 이유를 밝혔다. 그는 문학사상사 대표를 향해 공식 입장 표명과 사과, 운영 개선 등을 요구했다.전년도 우수상을 받은 최은영 작가도 같은 날 트위터에 “분별없이 수상에 동의하고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기에 올해 수상 작가들에게까지 피해가 갔으리란 생각에 죄책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어 “모든 책임을 직원 개인의 ‘실수’로 몰아가며 자신들의 부당한 행동을 반성하지 않는 문학사상사에 사과를 요구한다”고 덧붙였다.작가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는 문학사상사 보이콧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동료 작가들은 ‘#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해시태그로 의지를 드러내고, 구병모·황정은·조해진·권여선·장류진·정세랑·함정임 소설가, 오은·권창섭 시인 등이 이에 연대했다. 독자들도 ‘#문학사상사_소비_거부’, ‘#문학사상사_독자_보이콧’ 등으로 동참하고, 동네서점 몇 곳은 문학사상사 책을 입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문학사상사 측은 묵묵부답이다. 서울신문은 문학사상사 측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매년 이상문학상 대상 작가의 커버스토리를 담았던 ‘문학사상’ 2월호는 이번 호를 ‘시 공동 창작’ 특집으로 꾸렸다. 수년간 이상문학상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권영민 미국 UC버클리대 연구 교수는 2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상의 운용에는 관여하지 않아 얘기할 입장이 아니다”라면서도 “작가들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금=선인세’ NO… 신진 작가들, 권리 찾기로 확산 문학사상사 보이콧 사태는 다른 문학상 관행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출판사 자음과모음은 중·단편소설을 대상으로 한 신인문학상 공모 내용을 정정했다. 상금 500만원을 두고 ‘인세가 상금을 상회할 경우 초과분에 대해 인세로 지급한다’고 공지했다가 삭제했다. 상금을 선인세로 공제하고, 출간을 전제로 한 장편소설 공모가 아닌데도 단행본 계약을 강제한다는 데 이의 제기가 이어졌기 때문이다.신진 작가들을 중심으로 부당한 원고 청탁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자인 성다영 시인을 필두로 올해 신춘문예 당선자, 신인문학상 수상자인 이원석·차도하·조용우씨는 문학세계사가 내는 ‘신춘문예 당선 시집’에 시를 싣는 것을 거부했다. 문학세계사가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와 관련된 출판사라는 이유에서다. 뿐만 아니라 고료를 미리 밝히지 않은 청탁을 거부하겠다는 목소리도 적극적으로 내고 있다. 출판계에서 ‘소정의 고료’로만 통용돼왔던 관행에 반기를 든 것이다. 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인 이원석씨는 “올초 고료를 미리 밝히지 않은 원고 청탁을 거절했다”며 “함께 등단한 신인 작가들과 연대해 목소리를 내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를 문학 출판 제도의 현대화가 이뤄지는 과정이라고 본다. 양경언 문학평론가는 “예술을 노동과 멀리 떨어뜨린 예술관에 대한 이의 제기가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과거에 비해 문예지가 중심이 된 출판사의 권위 약화, 저작권 개념에 대한 문제 의식 강화로 일어나는 일”이라며 “궁극적으로 해외 사례처럼 저작권을 관리하는 에이전트 시스템을 널리 확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강남인강, 년 5만원에 중·고 교육 과정 900여 강의 수강

    서울 강남구가 운영 중인 ‘강남 인터넷수능방송’(강남인강) 강좌가 대폭 확충됐다. 강남구는 15개 출판사와 협약을 맺고 강남인강을 통해 중·고등학교 6년 전 교육 과정 강좌 900여개를 제공한다고 31일 밝혔다. 진학사(블랙라벨)·천재(체크체크)·신사고(베이직 쎈)·쎄듀(천일문)·동아(하이탑)·수경(자이스토리) 등 출판사 베스트셀러와 강남인강 강사가 직접 만든 자료를 활용한 강의로, 연 5만원에 무제한 수강할 수 있다. 강남인강은 중·고등학생 대상 온라인 교육 사이트로, 2004년 개국했다. 지방자치단체 유일한 교육 사이트로, 중학교 내신부터 수능 기출까지 6년 과정 강의를 제공한다. 현재 전국에서 8만여명이 수강하고 있다. 올해도 입시제도와 학습전략 설명회를 20회 이상 개최하고, 성적우수자에겐 장학금을 지급한다. 지난해엔 69명에게 총 170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이미화 교육지원과장은 “강남인강을 꾸준히 업그레이드해 교육 소외 지역 학생들에게도 최고 수준의 강의로 균등한 학습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안녕? 자연] 호주 돌고래서 ‘금지된 살충제 성분’ 다량 검출

    [안녕? 자연] 호주 돌고래서 ‘금지된 살충제 성분’ 다량 검출

    호주에 서식하는 여러 종의 돌고래에게서 사용이 금지된 화학물질이 다량 검출됐다. 영국 가디언 등 해외 언론의 29일 보도에 따르면 호주 플린더스대학과 서던크로스대학 공동 연구진이 2010~2015년 퀸즐랜드 일대에 서식하는 스넙핀돌고래와 혹등돌고래 등에게서 조직 샘플을 채취한 뒤 이를 분석했다. 그 결과 채취한 샘플의 68%에서 돌고래의 건강에 위협될 만큼 높은 수준의 화학물질이 발견됐다. 여기에는 폴리염화바이페닐(PBCs), 디클로로디페닐트라클로로에탄(DDT), 헥사클로로벤젠(HCB) 등 살충제 성분이 포함돼 있었다. 폴리염화바이페닐은 어류와 무척추동물에 특히 유독하며, 이에 노출될 경우 사람은 간 기능장애나 피부염, 기형아 출산 등을 유발할 수 있어 1970년대부터 생산과 이용이 금지된 물질이다. DDT로 불리는 디클로로디페닐트라클로로에탄 역시 사용이 금지된 농업용 살충제로, 2017년 당시 국내 농가의 닭과 달걀에서 DDT가 검출돼 ‘살충제 달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연구진은 “이미 대다수 국가에서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이러한 화학성분이 해양 동물의 대량 멸종을 유발할 수 있다”면서 “이 화학물질들은 특히 돌고래의 면역시스템에 영향을 미쳐 다른 질병에도 더욱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러 나라에서 해당 물질들의 사용을 중단했지만, 독성이 강한 화학성분인 만큼 분해되거나 사라지지 않고 (바다 등 자연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해안 도시들의 항구 개발 및 잦은 홍수가 유독 화학물질의 농도를 높이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상황은 이미 개체 수가 빠르게 줄고 있는 일부 돌고래 종에게는 더욱 치명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호주에서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스넙핀돌고래 등 일부 종은 지속적인 화학물질에 노출될 경우 멸종 위협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연구진은 “퀸즐랜드에 서식하는 돌고래 전체의 생존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면서 “화학물질과 관련한 위협은 기후변화와 서식지 파괴, 수중 소음 등 돌고래가 직면한 기존의 문제에 추가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세한 연구결과는 세계적인 학술전문 출판사인 엘제비어가 출간하는 생태학 관련 학술지 ‘에콜로지컬 인디케이터스’(Ecological Indicators) 최신호에 실렸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장동석 평론가의 뉴스 품은 책] 욕망·탐욕이라는 바이러스…우린 이미 지독히 감염됐다

    [장동석 평론가의 뉴스 품은 책] 욕망·탐욕이라는 바이러스…우린 이미 지독히 감염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발생지인 중국 우한은 이미 도시 시스템이 마비됐다. 유럽과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확진자가 나온다. 국내에서도 네 번째 확진자가 나오면서 정부는 대응 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 조정했다. 홍콩의 한 매체는 4월 말이나 5월 초 바이러스가 대규모로 창궐해 수십만명이 감염될 수도 있다는 전염병 전문가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전 세계인의 공포심은 더 커진다. 199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조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도시 전체에 ‘실명’이 전염되며 벌어지는 인간성 몰락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다 실명한 남자, 그를 진찰하다 더불어 눈이 멀어 버린 안과 의사 등 실명은 빠르게 전염되고, 급기야 정부 당국은 과거 정신병원으로 쓰던 건물에 눈먼 사람들을 강제 수용한다. 수용소는 곧바로 아비규환이 된다. 모두가 눈이 멀었지만 그곳에서도 권력은 작동하고 한사코 나쁜 방향으로만 치닫는다. 처음에는 먹을 것을 독차지하더니 곧이어 폭력과 강간 등 수위가 높아진다. 도시 모든 사람이 실명했지만 오직 한 사람, 안과 의사의 부인만은 멀쩡했다. 남편이 첫 실명 환자를 진료하고 눈이 먼 뒤 여자는 수용소로 가야 하는 남편을 지키기 위해 눈이 먼 듯 사람들을 속였다. 여자는 그곳에서 인간의 온갖 추잡함을 목도하고, 아주 가끔 서로 돕고 지켜 주려 하는 온정적인 사람들에 안도한다. 급기야 수용소에 큰불이 나고, 여자는 온정적인 사람들과 함께 탈출을 감행한다. 그러나 도시는 지옥으로 변한 지 오래다. 매캐한 연기 속에서 각종 오물이 밟히고, 곳곳에 썩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 굶주린 개들은 썩은 시체 사이를 오가며 배를 채운다. 눈이 먼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그 참상을 오로지 여자만 본다. 온전히 자신만 의지하는 사람들을 차마 버릴 수 없어 그들을 인도해 탈출하지만 여자는 실명하지 못하는 자신을 저주하기에 이른다. 소설은 인간성을 상실한 비정한 현대인들의 모습, 아울러 제어할 수 없는 욕망에 빠진 인간의 적나라한 자화상을 여지없이 보여 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도 어쩌면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의 탐욕이 만든 결과물일지 모른다. 중국인의 탐욕스러운 식욕 때문이라고만 욕할 수도 없다. 몸에 좋다면 무엇이든 잡아먹는 우리의 적나라한 모습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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