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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독서대전 강릉에서 9일부터 열려

    국내 최대 책과 독서문화 축제인 ‘2016 대한민국 독서대전’이 9일부터 11일까지 강원 강릉시 대도호부 관아와 명주·남문거리, 경포호 일대에서 펼쳐진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강릉시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이번 독서대전은 비수도권에서는 처음으로 강릉에서 열린다. 강릉시는 8일 성공 행사를 위해 주행사장인 강릉대도호부 관아와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문화공간을 대폭 정비하고, 걸어서 10분 이내에 조성된 도서관과 책 읽는 북카페 등 기반시설을 활용해 행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전시, 공연, 체험, 학술 등 모두 135개의 다양한 독서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행사에 참가하는 단체는 출판사 66개, 독서단체 31개, 독서동아리 24개 등 모두 156개 단체가 참여하고, 202개의 부스를 설치해 전시, 공연, 체험, 학술 등 135개의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이번 독서대전은 문학, 인문, 자연과학, 아동 등 다양한 장르의 출판사들이 참여해 출판인들의 소통과 화합의 장이 될 전망이다. 또 전국 독서동아리회원 300여명, 독서콘퍼런스 참가자 150여명 등 국내 독서 리더들이 대거 강릉에 모이고 강원지역 청소년 250여명이 독서런닝맨 대회를 여는 등 세대가 골고루 참여하는 행사로 진행된다. 작은 공연장 ‘단’에서는 신달자 시인을 비롯해 출판인 이기웅, 달팽이 박사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한비야 여행작가, 강릉 출신으로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한 이순원, 김별아씨 등이 참여하는 ‘인문학의 향연’이 열린다. 강릉 출신의 대표적인 원로작가인 윤후명, 서영은과 소설가 최성각, 시인 박기동 강원대 교수, 시인 박세현 등 많은 문인들이 책과 문학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북 콘서트’ 등을 통해 독자와 만난다. 전시 분야에서는 ‘어린이책 희귀본 특별전’이 큰 관심을 모으며, ‘독서광 율곡 이이와 교산 허균 특별전’, ‘세계 미니북 전’, ‘옛 사전 및 교과서 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전’ 등 다채로운 전시들이 펼쳐진다. 강릉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열린책들’ 에코 등 대표작가 12인 작품집 출간

    ‘열린책들’ 에코 등 대표작가 12인 작품집 출간

    창립 30주년을 맞은 출판사 열린책들이 자사 대표 작가 12인의 한정판 기념집을 출간했다. 열린책들은 7일 “지난 30년간 ‘원전 완역’과 ‘전작 출간’ 원칙을 고수해 왔으며, 초심을 상기시키는 의미에서 ‘이미 고전이 된 작품’ 6권과 ‘현대의 고전 작품’ 6권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미 고전이 된 작품’으로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가 선정됐다. ‘현대의 고전 작품’으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 조르주 심농의 ‘갈레씨, 홀로 죽다’ 등이 포함됐다. 이번 기념집은 1만 세트 한정으로 발행한다. 낱권으로는 팔지 않고 세트로만 묶어 12만원에 판매한다. 책의 뒤표지에는 스페인 일러스트레이터인 페르난도 비센테가 그린 작가 12인의 초상화가 실렸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고향 가는 길, 과학책 어때요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고향 가는 길, 과학책 어때요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입추’도 벌써 한 달이 지났고 선선한 가을이 시작된다는 ‘처서’도 열흘이나 지났습니다. 여전히 한낮에는 덥지만, 세상이 한증막인가 싶었던 지난 8월 무더위를 생각하면 ‘그래도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가을 하면 뭘 떠올리시나요. ‘독서의 계절’도 여러 심상 중 하나일 것입니다. 가을보다는 여름이나 겨울에 책이 더 많이 팔린다는 통계도 있지만, ‘가을=독서’라는 공식 덕에 평소 책을 멀리하던 사람들도 한번쯤 서점으로 발길을 옮기는 것이 사실입니다.●영화·알파고 등 관련 뉴스 쏟아져 최근 서점에 들러본 분들이라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겁니다. 예전과는 달리 신간 코너 전면에 과학책들이 많이 배치되고 있는 것입니다. 2010년대 초반에는 자기개발서나 힐링 관련 책, 2~3년 전부터는 인문학 관련 책들이 베스트셀러와 신간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시작해 과학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과학책에 대한 출판계와 대중의 관심은 2014년부터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 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비롯한 현대 우주론을 바탕으로 한 영화 ‘인터스텔라’가 개봉했습니다. SF영화로는 드물게 국내에서 ‘1000만 관객’을 달성했죠. 지난해에는 화성 탐사와 관련한 영화 ‘마션’이 개봉하고,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민간우주업체 스페이스X에서는 2018년 화성 탐사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올 초에는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수수께끼로 알려진 중력파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지난 3월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국까지, 과학기술 관련 굵직한 뉴스들이 쏟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과학에 대한 관심이 이어졌습니다. ●불합리한 사건 늘자 과학에 관심 또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인 사건들이 자주 일어나다 보니 이성과 합리성, 논리적 구조를 대표하는 과학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과학 서적 규모는 지난해에 비해 20~30% 이상 성장했다고 합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한 인터넷 서점 월간 베스트셀러 20위권 내에는 과학책이 한 권도 없습니다. 과학 분야 월간 베스트셀러 1·2위는 몇 년째 1980년에 출간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1976년에 나온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차지합니다. 그동안 과학책 출판 환경이 척박하다 보니 나온 책도 적을 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대학과 기관들의 ‘과학도서’ 추천목록도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 시작은 친절한 교양서 추천 과학 전문출판사인 동아시아 한성봉 사장은 ‘과학 서적 열풍’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서양은 물론 일본과 중국에서도 지식 담론의 중심에 과학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최근 이런 추세가 반영되면서 과학책 출간이 늘고 있다. 인문·사회 분야보다는 과학 쪽에서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많이 나오다 보니 모든 출판사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과학책은 교양 수준에서 잘 설명한 것, 한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룬 것, 다른 학문을 융합해 접근한 것까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과학책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과학을 친절하게 설명한 교양서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들 합니다. 수학, 물리, 화학, 천문학,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미있는 책이 쏟아져 나오는 이때, 더군다나 추석 연휴도 다가오는데 고향 가는 길에 과학책 한 권 들고 길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edmondy@seoul.co.kr
  • 조희연 출판기념회 논란…트위터·문자 돌려 ‘부적절’ 지적

    조희연 출판기념회 논란…트위터·문자 돌려 ‘부적절’ 지적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2일 출판기념회를 개최한 것을 두고 3일 논란이 일고 있다. 조 교육감이 트위터로 출판기념회를 알리고, 학교 교장 등에게 사전에 안내 문자 메시지를 돌린 것을 두고 ‘인사권자로서 현장에 부담을 준 부적절한 행동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조 교육감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부침 과정을 조명한 사회학 서적 등 5권의 저서를 한꺼번에 출간하고 지난 2일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는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상대책위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 이정구 성공회대 총장 등 정관계, 교육계 인사 700여명이 참석했다. 출간된 책은 조 교육감이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 탈고한 원고를 묶은 ‘투 트랙 민주주의: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병행접근’(서강대 출판부)과 ‘일본시민사회운동 탐방’(아시아문화커뮤니티), 교육감으로 활동하며 느낀 소회를 적은 ‘교육감의 페이스북: 특별하지 않은 꽃은 없다’(한울) 등 총 5권이다. 출판기념회는 1부에서 조 교육감의 저서 ‘투트랙 민주주의’를 놓고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후마니타스 박상훈 대표 등이 토론한 학술대회, 2부에서 한국 교육 전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됐다. 일각에서 논란이 일자 조 교육감측은 “출판사 측에서 제 지인들의 연락처를 참조해 안내 문자를 보낸 것일 뿐, 학교 현장에 일괄적으로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없다. 어느 출판기념회 건 저자의 지인들에게 안내 메세지를 보내는 것은 일반적”이라고 해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장강명 댓글부대 ‘오늘의 작가상’

    장강명 댓글부대 ‘오늘의 작가상’

    출판사 민음사가 주관하는 ‘2016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에 장강명(41)의 장편소설 ‘댓글부대’가 선정됐다. 민음사는 1일 수상작을 발표하며 “속도감 있는 서사, 뛰어난 가독성, 사회의 문제적 징후를 포착하고 거침 없이 이야기로 풀어내는 에너지에 심사위원들이 박수를 보냈다”고 밝혔다.
  • [문화마당] 사람들은 왜 열차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을까/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문화마당] 사람들은 왜 열차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을까/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언젠가 트위터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꽤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흐릿하지만 대충 옮겨 보면 지하철에 탔는데 요즘 어린 친구들은 스마트폰에만 코를 박고 있으니 그렇잖아도 삭막한 세상이 더욱 삭막하게 느껴지더라는 내용이었다.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이 광범위하게 보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나도 책 판매가 부진한 데 대한 피해 의식을 막연하게 느끼던 터라 해당 글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한데 그에 대한 누군가의 답글이 걸작이었다. “그럼 댁은 예전에 지하철 타면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 막 인사하고 모르는 사람들이랑 사이좋게 수다도 떨면서 가셨나 봐요?” 맞네, 원래 지하철에서는 다들 데면데면하게 가지 않았던가. 그게 어찌 ‘스마트폰에만 코를 박고 있는 어린 친구들’ 때문이란 말인지. 보기 좋게 한 방 먹었다. 19세기 열차 속 풍경을 소개한 ‘철도 여행의 역사’를 보면 이와 관련한 내용이 나온다. 마차에서 열차로 이동 수단이 바뀌자 사람들은 무척 당황했다고 한다. 슬슬 움직이던 마차에 앉아 풍광을 감상했던 것과 달리 열차에서는 풍광을 살피기는커녕 창밖으로 지나치는 무언가를 인식하기조차 어려웠기 때문이다. “총알 같은 속도의 빠르기에서는 그 곁을 지나가는 동안에도 길에 서 있는 사람들을 알아보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내용이 당시 여러 문헌을 통해 발견된 걸로 보아 오늘날로 치면 밖을 쳐다봐야 어둠뿐인 터널 속 지하철 승객과 대동소이한 느낌을 받았던 게 아닌가 싶다. 이들에게는 둘러봐야 뭐가 뭔지 모르겠는 풍경을 대신할 수 있는 어떤 것이 필요했다. 저자인 볼프강 시벨부슈는 덕분에 “독서는 열차 안에서 일반적으로 몰두할 수 있는 일거리가 돼 버렸다”고 적었다. 실제로 열차는 독서 문화 창달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1840년대 말의 영국에서는 열차를 탈 때 책을 빌렸다가 내릴 때 반납하는 특이한 형태의 도서 대여 조직이 생겨났고 뒤마나 호돈처럼 유명한 작가들의 소설로 구성된 ‘철도총서’가 발간되기도 했다. 이러한 영국의 움직임은 1852년 무렵 프랑스로 전해져 출판사 아셰트 리브르는 철도회사와 함께 최초의 역 서점을 만들고 2년여에 걸쳐 60개 지점으로 늘려 나갔다. 이로 인해 도서와 신문의 판매 수익이 급증했음은 말할 나위 없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열차에 탄 사람들이 독서에 몰두하게 된 보다 근본적인 이유로 ‘승객들의 관계’를 들고 있다. 마차를 타고 오랜 기간 함께 여행하는 것과 달리 열차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수시로 탔다가 수시로 내린다. 그리하여 어떤 결과가 초래됐느냐. “자주 특정한 여행자의 무관심과 부딪히게 됐다. 열차가 사람들의 예절과 습관을 완전히 변화시킨 것이다. 여행을 함께 시작했던 여행자는 벌써 다음 역에서 내리고 그 자리를 다른 사람이 대신하는 상황에서 독서는 하나의 필요가 됐다.” 즉 사람들은 객실에서 침묵한 채 서로 멀뚱멀뚱 마주 보고 있어야 하는 불편하고도 고통스러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 당시로서는 가장 휴대하기 편한 기기였던 책과 신문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사정을 알고 나니 그동안 무턱대고 ‘출판의 적’으로 치부했던 스마트폰에게 다소 미안한 기분도 든다. 다들 뻘쭘하니까 뭐든 들여다봤던 거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들여다보기 편한 것을 들여다본 것뿐인데 공연히 스마트폰만 원망하고 말았다. 그건 그렇고 이런 추세라면 곧 지하철에서 VR 기기 같은 것들을 얼굴에 쓰고 나란히 앉아 있는 SF적 풍경을 볼 날도 멀지 않았겠다.
  • 박완서의 딸로 산다는 건… 그리움

    박완서의 딸로 산다는 건… 그리움

    ‘문학의 문밖에서 마냥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고 박완서(오른쪽) 작가의 맏딸 호원숙(왼쪽·62)에게 문학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쓰지도 않은 소설의 제목을 떠올려 보고, 내지도 않은 시집의 서문을 상상해 보는 게 일이었다. 한국 문학의 거목인 박완서를 어머니로 둔 것이 그를 문학 곁에 붙들어 둔 숙명이었을 것이다. 작가의 육필원고를 출판사에 들고 나르던 것도 그였고,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어 가는 것도, 작가의 집인 구리 아치울 노란집을 보살피는 것도 그이기 때문이다. 그가 문학적 대지인 어머니와 문학을 향한 그리움을 동력 삼아 밟은 여정을 책으로 펴냈다. 2004년 박완서 작가와 떠난 네팔을 시작으로 고인을 잃고 다녀온 이베리아, 발트해 등 지난 10여년의 여행기를 묶은 산문집 ‘그리운 곳이 생겼다’(마음산책)이다. 그의 여정은 곧고 단정했던 대작가의 자취를 따라가 보는 길이기도 하다. 네팔의 한 재래식 화장실에 카메라를 빠뜨리고 징징거리는 중년의 딸에 어머니는 지긋이 말한다. “응석 부리지 마라. 더 좋은 걸로 사면 되지.” 딸은 아들과 남편을 연거푸 잃은 고통에도 대범했던 어머니의 생을 굽어보고 고개를 숙인다. 공항에서 현기증으로 기력을 잃은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면서는 이런 생각에 잠긴다. ‘어머니는 그동안 참 많은 글을 쓰셨다. 그러나 모든 것을 쓰지는 않았다. 우리 가족의 사랑, 기쁨, 아픔, 자랑스러움, 그런 것들은 아껴서 다 쓰지 않으셨다.’(57쪽) 생전에 박완서 작가는 “가슴에 그리움이 샘물처럼 고인다. 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라고 했다. 이국의 땅에 발을 디딘 중년의 딸은 이제서야 그리워할 곳이 있다는 것이 축복임을 깨닫는다. 저자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도 그 축복을 나눠 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인생의 여정을 마친 엄마를 뜻도 없이 불러본다. 어머니는 이제 천상의 평화를 맛보고 계시겠지만 그래도 슬픔과 애절함이 느껴진다. 시간이 치유한다지만 울컥울컥 견디기 힘들었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도 좀더 견디고 사시지. 남들은 펄펄히 잘도 사는데…반복되는 넋두리가 또 나온다.’(317쪽)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올해 최고의 문학적 발견” 한강 ‘채식주의자’ 獨 강타

    “올해 최고의 문학적 발견” 한강 ‘채식주의자’ 獨 강타

    소설가 한강(왼쪽)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작 ‘채식주의자’가 독일에서 출간되자마자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국문학번역원이 24일 전했다. 독일 베를린의 아우프바우 출판사는 이달 중순 독일어 전문 번역가 이기향씨 번역으로 ‘채식주의자’(오른쪽)를 출간했다. 아우프바우는 1945년 설립 이래 브레히트, 카프카, 릴케 등 독일 대표 작가뿐 아니라 도스토옙스키 등 세계 문학 거장들의 작품을 펴낸 저명 출판사다. 출판사는 현재 홈페이지 메인 화면 윗부분에 ‘채식주의자’ 표지를 띄워 놓았다. 출판 이전부터 온라인 독서클럽 등 여러 사이트에 작품 발췌본도 제공해 독자들의 관심을 유도했다. 독일 대표 주간지 슈피겔을 비롯해 주요 일간지들과 라디오, 텔레비전 등 방송 매체들은 앞다퉈 ‘채식주의자’를 비중 있게 다뤘다. 슈피겔은 지난 15일 “이 짧은 책은 카프카의 ‘변신’을 생각나게 한다. 독자는 ‘채식주의자’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 것”이라고 평했다. 일간지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은 지난 17일 “올해 최고의 문학적 발견”이라고 상찬했고, 라디오 북독일방송은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집요하게 마음을 파헤치는 소설”이라고 소개했다. 독일 공영방송 체데에프는 26일 방영될 문학 토론 프로그램에서 한강의 작품을 다룰 예정이다. 이 문학 토론 프로그램은 작품이 소개되는 즉시 베스트셀러에 오를 만큼 현지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채식주의자’는 지난 5월 영국의 최고 권위 문학상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며 영미권과 유럽에서 주목받았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문화마당] 공부합시다!/김민정 시인

    [문화마당] 공부합시다!/김민정 시인

    한동안 제목에 ‘공부’가 들어가는 책이 유행이었다. ‘공부’가 얼마나 어마무시한 단어냐면 어떤 제목에 끼워 넣든 보는 즉시 자세부터 고쳐 먹게 만드는 뉘앙스를 가졌다는 걸 그때 톡톡히 알았던 듯싶다. 예컨대 편집자인 내가 만든 책을 재미삼아 예로 들어 살짝 변주해 봐도 이런 쓰임이 나온다. 공부가 선생이다, 오늘 공부가 좋아서, 공부하기 좋은 책, 공부의 정거장, 나의 사적인 공부, 엄마의 공부, 생각하는 공부…. 왠지 책 몇 권은 너끈히 기획할 수 있겠다 싶은 자신감을 자만처럼 거만하게 갖게 하는 데는 아마도 ‘공부’라는 단어의 그 끝 간 데 없는 깊이와 넓이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온몸으로 알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공부, 학문이나 기술을 배운다는 말이 그 공부라 할라치면 우리는 그 누구도 평생 공부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우리는 평생 공부로부터 모자란 사람이고 그렇듯 모자란 채이니 평생 실수를 반복하며 살다갈 수밖에 없음이 당연하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실수하는 사람의 모든 실수를 그때마다 이해하고 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소한 제 밥벌이를 걸었을 때의 실수는 확실히 지적하고 단호하게 책임을 물어야 함이 옳다. ‘나’를 넘어서서 ‘우리 모두’에게 폐해를 끼칠 수 있다면 그 관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수백 권의 책을 만들면서 십수 년을 출판사에서 일해 왔지만 여전히 나는 편집일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조판을 마친 작가들의 원고가 백지에 얹어져 내 책상 위에 올려져 있을 때의 설렘도 잠시, 연필을 쥔 채 교정과 교열을 해 나가면서 내가 놓친 단어와 문장이 없나 자꾸만 되짚다 보면 잦은 한숨이 절로 새어나오며 앞서 이 일을 장인처럼 해내던 선배들의 굽은 등이 태산처럼 점점 부풀려져 보인 적 많았었다. 그 긴장감을 평생 등뼈처럼 곧추세워야 한다는 일침인지 책이 나온 뒤에 눈 밝은 독자들의 전화를 종종 받게 된다. 작가와 몇몇의 편집자가 뜯어먹을 지경으로 달라붙어 훑은 원고인데도 여지없이 오타가 나오고 비문이 나오고 미처 잡지 못한 오류가 발견되니 흔히 책은 끝나도 영영 끝나는 게 아니라는 말도 상투적으로 통용된다지만 그때마다 독자 게시판에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잡음을 안내하면서 일견 고마운 마음에 안도하게 되는 것도 솔직한 속내다. 내 사소한 실수를 사실로 받아들여 평생을 잘못된 정보 속에 살아갈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내가 끼친 악행은 얼마나 큰 것이런가. 지난 광복절에 대통령이 경축사를 읽으며 큰 실수를 했다. 하얼빈 감옥과 뤼순 감옥을 어떻게 헷갈릴 수 있었는지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지만 뭐 인간은 타고나기를 실수할 수밖에 없다고 줄곧 얘기해 왔으니 나름의 이해라는 걸 해보려 하는데 이제 남은 건 아무래도 사과이며 바로잡음의 자세가 아닐까 한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일로 밥벌이를 삼은 이들도 물론이거니와 그들이 준비해 온 바를 아무런 의심 없이 낭독하기에 바빴던 대통령 스스로 자신의 모자람에 잘못했습니다, 머리 숙임과 동시에 모두 앞에 그 실수를 인정함으로써 이참에 다같이 역사 공부 한번 제대로 해보자 하는 건강하고 열린 결말을 이끌어 내야 할 것이다. 각설하고, 최소한 지금 우리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저마다 공부란 걸 하고 있는지 제 밥벌이를 걸고 스스로를 한번 들춰 볼 필요는 있겠다. 1983년에 발표된 윤시내의 노래 ‘공부합시다’가 그 시절엔 히트곡으로, 이 시절에는 명곡으로 왜 회자되는지 그 안팎의 의미는 다들 한번씩 새겨 볼 필요는 있겠다.
  • 무섭게 팔리는 ‘해리포터’… “셰익스피어보다 유명해”

    무섭게 팔리는 ‘해리포터’… “셰익스피어보다 유명해”

    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극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와, 역시 영국 출신의 유명 작가이자 전 세계에서 흥행한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의 원작자인 J.K. 롤링 중 누가 더 유명하다고 할 수 있을까? 최근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는 11일자 보도에서, 롤링과 셰익스피어의 역대 기록을 분석한 끝에, 롤링이 세계적인 대문호인 셰익스피어의 왕좌에 가깝게 다가섰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31일 출간돼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8번째 책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Harry Potter and the Cursed Child)는 출간된 지 고작 7일 만에 876만 파운드(약 125억원)의 수익을 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첫 주 동안 팔려나간 책은 무려 84만 7886부에 달한다. 반면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영국 유명 출판사 펭귄북스에서 1998년 출간된 이후 현재까지 12만 7726부가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롤링은 셰익스피어를 누르고 영국에서 단기간 내 가장 많은 책을 판매한 작가가 됐는데, 그녀가 세운 기록은 이 뿐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판매된 해리포터 시리즈 중 가장 많이 팔린 것은 2007년 7월에 출간된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로 총 184만부가 팔렸다. 2003년 6월에 출간된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2005년 7월에 출간된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은 각각 147만 부와 86만 7000부가 팔렸다. 즉 이번에 출간된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는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의 10년 기록을 일주일 만에 달성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해리포터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희귀 초판본은 오는 11월 런던에서 열리는 경매에 나오는데, 전문가들은 이 책 한권의 경매 낙찰가가 최소 2만 파운드, 약 2900만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 내에서는 롤링이 셰익스피어보다 더욱 유명한 작가가 됐다는 평가가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포브스는 롤링이 2015년 6월부터 2016년 6월까지 1년간 벌어들인 세전 수입은 1900만 달러(약 210억원)로, 전 세계 작가 중 3위를 차지했다고 전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신동엽문학상에 시인 안희연·소설가 금희

    신동엽문학상에 시인 안희연·소설가 금희

    출판사 창비는 제34회 신동엽문학상에 안희연(30)의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와 금희(37)의 소설집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을 선정했다고 8일 밝혔다. 심사위원회는 “절실한 자기 성찰의 시선으로 세계와 자신을 들여다보는 안희연의 시집과 경계인의 자리에서 소설의 고전적 미학을 펼쳐 보이는 금희의 소설집을 수상작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안희연 시인은 2012년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하며 데뷔해 첫 시집으로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를 냈다. 중국 지린(吉林) 성의 조선족 마을에서 태어난 소설가 금희는 연길사범학교를 졸업하고 2007년 ‘연변문학’에서 주관하는 윤동주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소설집으로 ‘슈뢰딩거의 상자’,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을 냈다. 창비와 신동엽 시인 유족이 공동 제정한 신동엽문학상은 등단 10년 이하인 작가의 최근 3년간 문학 활동을 보고 수상자를 선정한다. 상금은 각 1000만원이며 오는 11월 말 시상한다. 제16회 창비신인시인상에는 한연희(37)의 ‘수박이 아닌 것들에게’ 외 4편이, 제19회 창비신인소설상에는 이주혜(45)의 ‘오늘의 할 일’이 당선됐다. 상금은 시 500만원, 소설 700만원이며 당선작은 계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실린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읽을수록 아프다… 위안부 할머니 단 한 명만 남는다면

    읽을수록 아프다… 위안부 할머니 단 한 명만 남는다면

    어떤 기억은 끝까지 붙잡아두어야 한다. 왜곡되지도, 잊혀지지도 않도록 단단히 그러매어야 한다. 소설가 김숨(42)의 ‘한 명’(현대문학)이 쓰인 이유도 그래서다. ‘단 한 명의 위안부 할머니만 남게 된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생존해 있는 단 한 명의 위안부 할머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이는 그녀뿐이다. 그녀는 나이 열셋에 고향 강가에서 다슬기를 잡다가 낯선 남자들에게 끌려갔다. 도착한 곳은 ‘목을 매달아 죽고 싶어도, 목을 매달 나무 한 그루 없는 지옥’ 만주 위안소. 일본군의 진악한 고문과 성적 학대를 견디다 못한 소녀들은 자기 피와 아편을 먹고 죽어간다. 살아남은 이들도 있지만 몸과 마음에 새겨진 참혹한 내상은 그대로다. 산 자이지만 이미 죽은 자이기도 한 것이다. ‘한 명’을 읽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성실한 쓰기로 이름난 작가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실제 증언 300여개을 하나의 조각보로 촘촘하게 이었다. 단 한 명이 된 ‘그녀’가 ‘또 다른 그녀’들을 기억 속에서 호출해 내면서 이 증언들은 구체적인 ‘개인’으로 살아난다. 그리고 ‘역사’를 이룬다. 폭력과 훼손, 고통으로 뭉친 사실에 빚졌기 때문에 그녀들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일은 내내 마음에 면도날이 지나가는 것처럼 아프다. 하지만 스스로를 세상에서 은폐했던 ‘그녀’가 마침내 제 이름을 찾게 됐을 때 자연스레 ‘존엄’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한 분, 또 한 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작가가 냈을 조바심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피해자 중 한 분인 훈 할머니 말씀처럼 ‘개나 고양이만도 못한’ 시절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서 기품과 위엄, 용기를 잃지 않은 피해자들을 볼 때마다 나는 감탄하고는 한다. 내 할머니이기도 한 피해자들이 행복하시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부족한 소설을 세상에 내보낸다.”(작가의 말에서) 책의 저자 인세와 출판사 수익금의 일부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나비기금’으로 기부된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뉴스 뜯어보기] 軍에서는 절대 읽어서는 안되는 책 5종, 이유가

    [뉴스 뜯어보기] 軍에서는 절대 읽어서는 안되는 책 5종, 이유가

    「일단 돈을 갖다 안기면 그 다음은 어떤 계약 위반도 잔소리 한 마디 하는 법 없이 군인들이 다 알아서 처리하는 데다 하자가 발생해도 군이란 워낙 상명하복의 조직이라 그냥 덮어버리곤 했다.」(김진명, ‘글자전쟁’ p31~32) 소설 ‘글자전쟁’의 한 대목입니다. 이 소설은 지난해 8월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군대에서는 판매금지입니다. 읽어서도 안 됩니다. 군을 왜곡하거나 군의 사기를 저해하는 내용이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납득이 가시나요? 국방부는 지난 5월 육군과 공군 마트(옛 PX)에서 판매하던 책 5종을 판매 금지시켰습니다. 국군복지단은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고야마 카리코), ▲‘글자전쟁’(김진명), ▲‘칼날 위의 역사’(이덕일), ▲‘숨어 있는 한국 현대사 1’(임기상),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최용범) 등 5종에 대한 퇴출 사유와 해당 내용을 밝혔지만, 원론적인 해명에 그쳐 해당 책을 출간한 출판사 등 출판계의 반발은 여전합니다. ■군이 신간도서 5권을 판매 금지시켰다 국방부는 지난해 정책 검토를 거쳐 올해 1월부터 복지단이 운영하는 군 마트에 신간 서적 200권씩을 비치했습니다. 그동안 군내 진중문고의 책들이 너무 오래된 베스트셀러들 뿐이라 신간 서적을 읽고 싶어하는 젊은 장병들의 수요를 감안한 조치였습니다. 그런데 올해 초 전방 부대를 시찰하던 군 관계자가 마트에 비치된 서적들이 보안성 검토를 거치지 않았다는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국방부 교육정책관실의 문제 제기에 따라 복지단은 군 마트에 보급된 책 200종에 대한 심의에 들어갔습니다. 국방부 관계자는 “200권의 책을 복지단 심의 담당자들이 서로 겹쳐 읽는 방식으로 일일이 보안성 검토를 한 결과”라고 설명했지만 퇴출 사유와 해당 내용을 확인해도 의문은 더해갔습니다. <군 마트 판매가 금지된 책 5종의 퇴출 사유와 해당 내용>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고야마 카리코)“피케티는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의 아시아 각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한 이유는 외국으로부터 거액의 투자 혜택을 받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p.32)→군의 정훈교육 방향과 배치되는 내용을 포함한 자료 ●‘글자전쟁’(김진명)“일단 돈을 갖다 안기면 그 다음은 어떤 계약 위반도 잔소리 한 마디 하는 법 없이 군인들이 다 알아서 처리하는 데다 하자가 발생해도 군이란 워낙 상명하복의 조직이라 그냥 덮어버리곤 했다.’(p.31~32)“높은 놈이고 낮은 놈이고 좌우간 군바리들은 멕여야해!”(p.32)→군을 왜곡하거나 군의 사기를 저해하는 자료 ●‘칼날 위의 역사’(이덕일)“오늘날 미국과의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재연기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 조선의 임금 선조가 생각난다. (중략) 전작권 반환을 사실상 무기 연기했으니 사생관이 뚜렷해야 할 군인정신이 있기나 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p.249)→국가의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정부정책 및 국방정책을 비난하는 자료 ●‘숨어 있는 한국 현대사 1’(임기상)“중공군이라는 새로운 적이 한반도에 등장하고, 미 지상군이 연전연패를 당하자 지체 없이 북한 민간인 주거 지역을 향한 ‘초토화 작전’ 개시를 명했다. 맥아더는 미국의 이해가 훼손되고 전쟁 영웅인 자신이 전쟁 패배의 책임자로 몰리자 망설임 없이 ‘한국 민간인’들을 희생양으로 위기를 돌파하고자 한 것이다.’(p.280)→군의 정훈교육 방향과 배치되는 내용을 포함한 자료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최용범)“미군정은 민중의 통일 의지를 짓밟고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p.401)→군의 정훈교육 방향과 배치되는 내용을 포함한 자료 ■국방부는 정훈 훈령에 따른 결과라 했지만 출판계는 반발했다 국방부는 ‘정훈·문화활동 훈령’에 기초한 심의 결과라고 밝혔지만, 오히려 출판계에서는 맥락을 무시한 채 부분적 묘사만을 문제삼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결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정훈은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양, 이념 교육 및 군사 선전, 대외 보도 등을 군대 내에서 이르는 말입니다.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의 기초가 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이 보수진영의 공격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글자전쟁’은 내용 가운데 ‘방산비리’ 등 군이 민감해하는 내용이 들어갔기 때문에 판매가 금지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사실상 군내 ‘불온서적’ 취급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뿐만 아니라 향후 개별 부대에서 같은 기준이 적용될 경우 사실상 군내 ‘불온서적’처럼 취급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에겐 생소할 수도 있는 ‘불온서적’은 ‘불온한 사상을 담은 책’이라는 뜻입니다. 과거 반공주의가 지배하던 시절에는 이러한 서적의 출판, 열독, 반입 등을 금지한 적도 있었습니다. 금지서적(금서)이라고도 불렸는데 불온서적은 금서 중에서도 사상적 이유로 금지된 서적을 가리킵니다. 영화 ‘변호인’(2013)에서는 배우 임시완이 연기한 주인공이 불온서적을 읽은 혐의로 처벌을 받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국방부 관계자는 “복지단이 올해 1월 1일 군 마트에 신간 서적을 비치하기 전까지 신간 서적의 군내 유입 적정성 검토를 위한 심의위원회가 한번도 열리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미리 거쳐야 할 절차를 뒤늦게 밟게 되면서 5종의 책이 군 마트에서 퇴출되는 해프닝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정훈·문화활동 훈령’에 따른 군내 유입 서적 심의기준>1. 북한체제를 찬양·미화 하거나 이적단체를 옹호하는 자료2. 국가의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정부정책 및 국방정책을 비난하는 자료3.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부정하거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자료4. 국제평화 및 국제질서를 해할 우려가 있는 자료5. 장병의 국가관, 안보관, 군인정신에 위배되는 자료6. 군을 왜곡하거나 군의 사기를 저해하는 자료7. 음란한 내용으로 사회윤리나 공중도덕을 해치는 자료8. 반인륜적, 반사회적 행위를 묘사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자료9. 정부, 학계에서 검증되지 않아 논란의 소지가 있는 자료10. 그 밖에 군의 정훈교육 방향과 배치되는 내용을 포함한 자료 그러나 과거 군내 ‘불온서적’에 대한 불편한 기억을 갖고있는 이들은 이러한 심의규정조차 모호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군이 아직도 구시대의 이데올로기적 사고관에 갇혀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표합니다. ■‘군 내 불온서적’ 저자 중에는 전직 대통령도 있다 우리나라는 군내 ‘불온서적’의 저자가 두 명이나 대통령을 지낸 나라입니다. 1992년 4월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가 그해 3월에 치러진 제14대 총선에 군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입증 자료라면서 ‘건강한 부대관리’라는 제목의 선거 지침 문서를 공개했습니다. 당시 동아일보 등이 보도한 그 문서에는 ‘불온간행물 도서’ 574종의 목록이 첨부돼 있었습니다. 그 목록에 있던 책 ‘나와 조국의 진실’의 저자 김영삼은 그해 12월 치러진 선거에서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같은 목록에 있던 ‘조국과 함께 민족과 함께’의 저자 김대중은 1998년 제15대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2008년에는 국방부가 23권의 책을 군내 ‘불온서적’으로 지정해 그 차단대책을 지시하면서 논란이 됐습니다. 당시 목록에는 MBC 예능프로그램 ‘느낌표’에서 권장도서에 뽑혔던 ‘지상에 숟가락 하나’(현기영), 이미 시중에서 10만부 이상 팔리고 있던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비롯해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 연재한 글을 모은 ‘대한민국사’(한홍구) 등 기준을 명확히 알 수 없는 책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습니다. 해당 서적들은 군내 불온서적으로 선정된 이후 오히려 판매량이 크게 늘기도 했습니다. ■2008년 군 법무관이 문제 제기를 했지만… 급기야 당시 육군과 공군 법무관 5명은 이러한 지시가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고 헌법상 포괄위임금지 및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재판을 청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010년 10월 28일, ‘불온도서’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해하거나,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할 내용으로, 군인의 정신 전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도서’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할 것이라며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시 헌법소원을 청구했던 다섯 명의 군 법무관들은 군의 위신을 실추하고 복종 의무를 위반해 품위를 손상했다는 이유로 징계와 파면을 당했습니다. 파면됐던 두 법무관들은 징계 처분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군에 복귀했으나 한달쯤 지난 뒤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았고 이를 근거로 국방부는 이들에게 전역 처분을 내렸습니다. 2011년에는 공군 소속 한 전투비행단장 명의로 발송한 공문에 ‘장병 정신전력 강화에 부적합한 서적반입 차단대책’이라는 제목과 함께 총 42권의 책 리스트가 딸려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2008년 당시 군내 ‘불온서적’으로 분류된 23권에 새로 19권이 추가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방부 관계자는 “군 내에 이제 불온서적 리스트라는 형태로 관리되는 서적은 없다”며 “이번에 퇴출된 5종의 책이 전부”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군의 ‘불온서적’에 대한 논란은 모두 끝난 것일까? 국방부는 무슨 책이든지 읽도록 한다면 북한의 주체사상이 담긴 책을 대한민국 군인들이 병영 내에서 읽어도 되냐는 반박을 합니다. 그러나 국방부가 적용하는 심의기준에는 적을 이롭게 하는 이적표현물만 포함된 것이 아닙니다. 자칫 정부 정책을 비판하거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반박한다는 이유만으로 군 마트에서 퇴출될 수 있습니다. 정부나 학계에서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별다른 문제없이 자유롭게 읽던 교양 인문 베스트셀러나 권장 도서, 대학 교재들조차 군에서는 퇴출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군의 정훈교육 방향과 배치되는 내용을 포함한 자료’라는 기준은 이를 심사하는 정훈장교들에게조차 모호한 기준입니다. 그래서 이번 복지단의 심의 결과는 향후 개별부대에서 보안장교들이 행하는 군내 반입 물품에 대한 보안성 심사의 한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상 5종의 책들이 군 내에서 소지하거나 읽는 것이 금지되는 군내 ‘불온서적’처럼 다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참 안타까운 일인데 아직도 국가가 우리 군인들에 대한 어떤 사상을 가지고 과도하게 규제하려는 것을 보면 이게 국민의 군대가 아닌 이데올로기의 군대라는 생각이 든다”며 “그런 점에서 군대의 호감도를 오히려 떨어뜨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의원은 “오히려 이 소식이 알려지면 그 책들은 더 잘 팔릴 것”이라며 “서점마다 ‘입대 전에 읽어보자 불온도서’라는 코너가 생기면 날개 돋친듯이 팔릴 거 같다”고 꼬집어 비판했습니다. 군 마트에서 판매 금지된 이 책들이 되레 일반 서점에서 잘 팔리는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가 잊고 있던 군내 ‘불온서적’에 대한 불편한 기억을 다시 떠올려야 될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일에 지친 중년 해리 포터, 올가을 한국 온다

    일에 지친 중년 해리 포터, 올가을 한국 온다

    희곡으로 10~12월 국내 출간 ‘해리 포터’ 시리즈의 8번째 책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영미권에서 출간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선 오는 10~12월 사이 출간될 것으로 보인다. ‘해리 포터’의 국내 판권을 가진 출판사 문학수첩은 지난 3일 블로그에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는 올가을 출간될 예정”이라고 공지했다. 문학수첩 측은 “현재 번역 작업 중이며 독자들이 더 빨리 만나 볼 수 있도록 출간을 준비 중이지만 이번 책은 기존 소설과 다른 희곡 형식이어서 번역과 교정, 편집 등 작업에 시간이 더 걸린다”고 설명했다. 작가가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라고 밝힌 이 책은 전편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속 시점으로부터 19년 뒤 이야기를 다룬다. 해리 포터가 37세의 중년이 돼 마법부에서 공직 생활을 하며 격무에 시달리는 모습과 그가 지니 위즐리와 결혼해 낳은 세 아이 중 막내아들 알버스 세베루스가 부모의 유명세에 눌려 호그와트 마법학교에서 반항하는 이야기 등이 펼쳐진다. 연극을 위한 희곡 형식으로 조앤 K 롤링이 극작가 잭 손, 연출자 존 티파니와 함께 책을 썼다. 이 대본으로 만든 연극은 지난달 30일 밤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됐다. 1997년 처음 출간된 해리 포터 소설 시리즈는 세계 약 60개국에서 4억 5000만권 이상 팔렸으며, 영화 시리즈도 70억 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렸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軍마트 책5종 퇴출 이유는 “사기 저하·정훈교육 배치”

    軍마트 책5종 퇴출 이유는 “사기 저하·정훈교육 배치”

    국방부가 4일 육군과 공군 마트(옛 PX)에서 지난 5월 판매 금지한 책 5종의 퇴출 사유를 밝혔지만, ‘정훈교육 방향과 배치’, ‘국가 정체성 부정’, ‘군을 왜곡하거나 사기 저하’ 등의 원론적인 해명뿐이어서 해당 책을 출간한 출판사 등 출판계의 반발이 여전하다. 국군복지단은 이날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고야마 가리코), ‘글자전쟁’(김진명), ‘칼날 위의 역사’(이덕일), ‘숨어 있는 한국 현대사 1’(임기상),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최용범) 등 5종에 대한 군 마트 판매 금지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복지단은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의 경우 ‘피케티는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의 아시아 각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한 이유는 외국으로부터 거액의 투자 혜택을 받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p 32)는 내용이 군의 정훈교육 방향과 배치된다고 설명했다. ‘글자전쟁’에서는 ‘일단 돈을 갖다 안기면 그 다음은 어떤 계약 위반도 잔소리 한 마디 하는 법 없이 군인들이 다 알아서 처리하는 데다 하자가 발생해도 군이란 워낙 상명하복의 조직이라 그냥 덮어버리곤 했다’(p 31~32), ‘높은 놈이고 낮은 놈이고 좌우간 군바리들은 멕여야 해!’(p 32) 부분이 군을 왜곡하거나 군의 사기를 저해하는 자료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출판계에서는 맥락을 무시한 채 부분적 묘사만을 문제 삼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장병 스스로 읽을 책을 판단할 수 있는데도 군이 이를 결정해 주겠다는 식의 이데올로기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단독] ‘만화로 읽는 피케티’ 군대에서 왜 판매금지됐나?

    [단독] ‘만화로 읽는 피케티’ 군대에서 왜 판매금지됐나?

    국방부가 4일 육군과 공군 마트(옛 PX)에서 지난 5월 판매 금지한 책 5종의 퇴출사유를 밝혔지만, ‘정훈교육 방향과 배치’ ‘국가 정체성 부정’ ‘군을 왜곡하거나 사기 저하’ 등의 원론적인 해명 뿐이어서 해당 책을 출간한 출판사 등 출판계의 반발이 여전하다. 복지단은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의 경우 ‘피케티는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의 아시아 각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한 이유는 외국으로부터 거액의 투자 혜택을 받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p.32)’는 내용이 군의 정훈교육 방향과 배치된다고 설명했다. ‘글자전쟁’에서는 ‘일단 돈을 갖다 안기면 그 다음은 어떤 계약 위반도 잔소리 한 마디 하는 법 없이 군인들이 다 알아서 처리하는 데다 하자가 발생해도 군이란 워낙 상명하복의 조직이라 그냥 덮어버리곤 했다.(p.31~32)’, ‘높은 놈이고 낮은 놈이고 좌우간 군바리들은 멕여야해!(p.32)’ 부분이 군을 왜곡하거나 군의 사기를 저해하는 자료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복지단은 이날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고야마 카리코), ‘글자전쟁’(김진명), ‘칼날 위의 역사’(이덕일), ‘숨어 있는 한국 현대사 1’(임기상),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최용범) 등 5종에 대한 군 마트 판매 금지 사유를 이같이 밝혔다. 하지만 ‘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의 기초가 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이 보수진영의 공격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글자전쟁’은 내용 가운데 ‘방산비리’ 등의 내용이 들어갔기 때문에 판매가 금지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특히 조선시대를 다룬 ‘칼날 위의 역사’는 ‘조선 국왕에게 사생활이 없었듯이 21세기 대통령에게도 근무 시간에는 사생활이 없어야 한다…세월호 사태로 온 나라가 충격에 빠져 있던 때, 그 시각 대통령의 행적을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 조선 같으면 이런 논란 자체가 벌어지지 않았다’라는 대목이 문제가 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출판계에서는 맥락을 무시한 채 부분적 묘사만을 문제삼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장병 스스로 읽을 책을 판단할 수 있는데도 군이 이를 결정해주겠다는 식의 이데올로기적 발상”이라며 “오히려 그 책들은 ‘입대 전에 읽어보자 불온도서’라고 해서 날개 돋친 듯이 잘 팔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소설가 조정래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소설가 조정래

    “아유, 덥지? 자자, 이리 와. 빨리 웃옷 벗고 여그 에어컨 바람 좀 쒸여. 어서 어서.” 지난달 20일 오후 경기도 분당 집에서 만난 조정래(73)는 편안해 보였다. 신작 장편 ‘풀꽃도 꽃이다’ 집필 때문에 9개월 동안 이어졌던 ‘글감옥’에서 출소한 지 얼마 안 돼서였을까. “그란디, 뭐 인터뷰허고 자시고 헐 거시 뭐 있겄어? 태백산맥도 글코, 아리랑도 글코, 내 얘기야 많이들 알려진 것인디. 커피 한 잔씩 허면서 그냥 편하게 놀다들 가면 되제.” 서재에서 이어진 대화는 유쾌했다. 그리고 그의 이번 휴식이 길지는 않을 것임을 알게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래야, 이제 그만 부처님 앞으로 가야겠다.” 고3 때인 1961년 9월 어느 날, 아버지는 나를 앉혀놓고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라고 하셨다. 아버지 손에는 ‘조계사 승적 168호’라고 일련번호가 매겨진 승적(僧籍)이 들려 있었다. 속명 ‘조정래’, 법명 ‘인천’(?天)이 눈에 확 들어왔다. 나는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우리 가족이 전쟁의 난리 속에서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했던 것은 다 부처님의 가호 덕분이다. 형은 장남이어서 좀 그렇고, 차남인 네가 부처님 앞에 일생을 바치는 게 좋겠다.” 배신감이란 이런 것일까. 며칠 전 “남자가 장성하면 무릇 호(號)를 가져야 하는 법”이라며 갑자기 ‘하늘을 벗한다’는 뜻의 ‘인천’이란 이름을 주신 게 결국 아들을 중으로 만들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던 건가. “아, 아버지. 저, 저는 문학을 할 겁니다.” 하지만 그 정도 응수쯤은 이미 아버지의 계산 속에 들어 있던 듯했다. “그건 출가해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니냐. 만해(한용운) 선생을 봐라. 종교도 문학도 다 이루시지 않았느냐.” 아아, 나는 과연 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을까. “아유, 만해 선생은 100년에 한번 날까 말까 하는 엄청난 분이시잖아요. 어떻게 제가 감히….” 그 말에 아버지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나셨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남자로 태어나 연애 한번 못해 보고 중이 되는 위기를 간신히 모면할 수 있었다. -아버지 조종현(1906~1989)은 시조시인이자 승려였다. 예전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의상대 해돋이’가 아버지의 작품이다. 열여섯에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출가한 아버지는 불법 공부의 높은 경지에 다다라 스물넷에 그 어렵다는 법사 시험을 통과했다. 설법을 전문으로 하는 일종의 교수가 됐는데, 승려들의 비밀결사 ‘만당’(卍黨)에 참여해 만해 스님과 항일운동도 함께 했다. 아버지는 선암사에서 결혼을 한 최초의 승려가 됐다. 당시 일제 총독부가 불교를 장악하기 위해 젊은 승려들을 결혼시켜 일본식 대처승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1943년 선암사에서 4남 4녀의 네째이자 둘째 아들로 태어난 것은 일제 황국화 정책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해방 후 좌익, 우익 투쟁의 소용돌이에서 빨갱이로 몰려 절을 떠나야 했는데, 이후 갖은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부처님을 등지고 사는 것을 늘 안타까워하셨다. 나를 승려로 만들려고 하셨던 것도 그런 죄의식의 소산이었던 것 같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0월 아버지가 벌교상고 교사로 가면서 나는 벌교 북국민학교 3학년으로 전학을 했는데, 그때부터 최고의 낙은 형이 부잣집 친구에게서 빌려다 주던 학생잡지 ‘학원’을 받아보는 일이었다. 내 관심은 잡지 속의 중고생 문예투고였다. 그걸 보면서 동시를 짓고 동요를 지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면 이 잡지에 실린 나의 글을 볼 수 있겠지.’ -“이게 다 네가 지은 것들이냐?” 국민학교 4학년 어느 날,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가 내가 쓴 작문을 들고 계셨다. 밥 먹을 때 쩝쩝 소리도 못 내게 했던, 늘 엄했던 아버지. 도둑질이라도 하다 들킨 양 어쩔 줄 몰라 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낱장에 쓰면 되겠느냐”며 학교에서 버려진 시험 답안지를 수십장 묶어 이면지 공책을 만들어 주셨다. “여기에 적어야 글들이 안 없어지지.” 아버지는 잘 썼다, 못 썼다 단 한마디도 안 했지만, 조용히 공책을 만들어주는 모습을 보며 ‘칭찬을 저렇게 표현하나 보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당시는 종이가 거칠고 잘 찢어져 사람들이 그걸 ‘똥지’라고 불렀는데, 나는 그 종이 묶음을 ‘똥지 문집’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즈음부터 학교에서 글짓기를 했다 하면 나는 수필이건 동요건 동시건 전교 1등을 했다. -1959년 서울 보성고에 입학하면서 방대한 양의 책읽기가 시작됐다. 학교 도서관에서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같은 명작들을 타는 목에 냉수를 들이켜듯이 독파했다. 하지만 남들이 느끼는 만큼의 감동은 내게 오지 않았다. ‘좋은 작품이긴 하지만 가슴이 떨리지가 않아.’ 그럴수록 마음 한편에서는 ‘나도 좀더 나이 먹으면 이 정도는 쓸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차올랐다. 고1 나이에 꽤나 기가 승하고 방자했던 셈인데, 그런 내가 은근히 좋기도 했다. -미치도록 글을 쓰고 싶었지만 학교 문예반에는 갈 수가 없었다. 당시 우리 보성고 문예반은 보성중 문예반과 통합으로 운영됐는데, 지도교사가 하필 보성중에 교편을 잡고 있던 아버지였다. 한 교실에 앉아 아버지 지도를 받는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민망했다. 그래서 운동을 했다. 태권도부, 역도부, 등산반을 두루 섭렵했는데 그 덕에 요즘 말로 ‘몸짱’이 됐다. 가슴둘레가 1m가 넘고 턱걸이는 60개를 넘게 했다. -“너도 아버지처럼 굶어가며 살려고 그러니. 제발 상과대학을 가라.” 내가 국문과에 가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기함을 하셨다. 당시는 국문과가 ‘굶을과’로 통하던 때였다. 그러나 나는 “굶지 않고 작가의 길을 걷겠다”고 몇 번을 어머니에게 다짐을 한 끝에 1962년 결국 동국대 ‘굶을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정말로 결심했다. 아버지처럼 처자식 배를 곯리지 않을 것이다, 교사라는 직업을 가질 것이다, 아이를 여덟이나 낳은 부모님과 달리 하나만 낳을 것이다(아들이 태어나고 15년 후에 태백산맥이 그렇게도 잘 팔릴 줄 알았더라면 셋쯤은 낳았어도 됐는데, 내 인생에 가장 실패한 계획이 가족계획이다). -대학에 들어갈 때 내 꿈은 다른 대부분 동기들과 마찬가지로 소설가도 아니고 수필가도 아닌 시인이었다. 정말 열심히 시를 썼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고민이 깊어 갔다. 남들은 일주일에 한 편 쓰기도 벅차다는데 나는 서너 편이 그냥 써졌다. 가장 큰 문제는 시가 자꾸 길어지고 늘어지는 데 있었다. 내 시의 함축과 절제는 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교내 ‘문학의 밤’ 행사에서 1학년 동기 중 유일하게 시 낭독자로 뽑히기도 했지만, 뜻대로 시가 안 되는 데서 오는 우울감은 도통 가시지 않았다. “나는 시는 안 된다. 소설로 바꾸자.” 답답한 마음에 떠난 겨울방학 무전여행.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사흘간 어지러이 내리는 눈발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나의 시에 사형선고를 내렸다. -소설로의 전향은 꽤 괜찮은 성취로 이어졌다. 2학년 때 교내 문학상에서 단편 ‘비탈진 음지’로 장원을 했다. 그때 상금 탄 걸로 같은 과 친구들한테 술 한번 사고, 당시 뭇 남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입학 동기 김초혜(시인)에게 손지갑을 사줬다. 그녀와는 군 복무 중이던 1967년 평생의 언약을 맺었고 1970년 동구여상에 함께 교사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우리를 ‘잉꼬부부’라고 불렀다. -문단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안 돼 나는 금세 공처가로 소문이 났다. 사람들에게 나는 한술 더 떠 “조정래는 공처가가 아니라 놀랄 경(驚)자를 쓰는 경처가다. 마누라만 보면 무서워서 깜짝깜짝 놀란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문학을 시작하기 이전부터 작가입네 예술가입네 하면서 방탕하게 살고 바람 피우는 것 같은 이상한 짓들을 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문학은 형식적인 몸짓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충실한 내용으로 해야 한다고 스스로 경고했고, 주색잡기 같은 걸로 아내의 속을 썩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내가 눈부시지 않고 미우면 하루인들 어찌 살겠는가. 사람들에게 말한다. 내 왼팔은 50년 동안 아내가 잡고 다녀 망가졌고, 오른팔은 글을 쓰느라 망가졌다고. -1972년 동구여상을 떠나 중경고로 옮기고 얼마 안 돼 10월 유신이 선포됐다. 예비역 장성 출신인 교장은 “역사적 영단을 적극 지지해야 한다”며 흥분을 했는데, 나에게는 참기 힘든 압박의 시작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미국을 비판한 ‘누명’, 연좌제를 비판한 ‘어떤 전설’, 월남전을 비판한 ‘청산댁’ 같은 작품으로 교장에게 미운털이 박혀 있던 터였다. 시시콜콜 트집을 잡는 바람에 위경련이 생겼고, 결국 죽지 않으려고 사표를 던졌다. 이후에는 출판사를 경영하기도 하고 차리기도 하며 경제적 여력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였는데, 어느 정도 굶지는 않겠다는 믿음이 선 뒤 나는 글쓰기로 다시 돌아와 방대한 양의 소설을 써내기 시작했다. -1983년 9월부터 1989년 10월까지 6년여에 걸쳐 월간 ‘현대문학’에 ‘태백산맥’을 연재했다. 위로 쌓아 내 키만큼 되는 200자 원고지 1만 6500매 분량이 쓰였다. 한국의 작가들, 특히 전쟁을 겪은 우리 세대에 있어 분단은 문학의 원류 내지 본류라고 할 수 있다. 분단이야말로 우리 삶을 옥죄는 고통의 핵심이다. 소년 시절에 겪은 상처와 고통, 같은 민족끼리 싸운 아픔, 여전히 분단돼 있는 상황은 내가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제공한다. 태백산맥 이전에도 내 작품의 70%가 분단을 소재로 했던 이유다. 단편이 호미로 골짜기 하나를 파는 정도라면 중편은 골짜기 2개, 장편은 골짜기 3개를 파는 데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단편이나 중편, 장편으로는 태백산맥에 있던 그들이 왜 짐승이 아닌 사람인지, 왜 그들이 그래야만 했는지를 도무지 담아낼 수가 없었다. 1986년에 ‘태백산맥’이 단행본으로 발간되고 나서 한 달 정도가 지나자 미처 인지를 찍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책이 팔려나갔다. 태백산맥을 쓰면서, 또 영화화되면서 겪은 우익단체 등의 협박과 훼방 같은 것들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1994년 4월 우익단체에서 고발당한 사건의 경우, 2005년 5월에 무혐의 처분을 받기까지 무려 11년 동안이나 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아야 했다. -후배들이 나에게 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지 않느냐고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난 “나는 소설로 참여한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가투(가두투쟁)를 안 했으니 가투를 해 본 너희들이 그 소재로 소설을 써보라”고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체험은 있지만 치열성이 없었고, 그래서 고민과 사명감과 역사의식을 작품에 담아내질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려면 하루 8시간 노동하는 보통 사람들의 두 배, 하루 16시간의 노동을 바쳐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다. 그래서 수십년 동안 글감옥에 갇혀 먹고 자고 쓰는 것이 연속되는 생활에서 16시간 노동을 다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나는 나와의 약속을 지켜 나 자신을 이기고 싶었다. 그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소설가 조정래 치열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시대와 사회의 아픔을 문학에 녹여낸 우리 시대의 대표 작가다. 탄탄한 구성과 깊은 통찰력, 실증적인 취재에 기반한 왕성한 활동은 작품의 수에서도 유례가 없다는 평을 받는다. 20세기 한국사 3부작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은 1500만부 돌파라는 출판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1943년 전남 승주군(현 순천시) 출생 ▲순천 남국민학교, 벌교 북국민학교, 광주서중, 서울 보성고, 동국대 국문학과 ▲197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단편집 ‘어떤 전설’,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황토’, ‘한(恨), 그 그늘의 자리’ ▲중편집 ‘유형의 땅’ ▲장편소설 ‘대장경’, ‘불놀이’, ‘비탈진 음지’, ‘황토’, ‘인간연습’, ‘사람의 탈’, ‘허수아비춤’, ‘정글만리’, ‘풀꽃도 꽃이다’ ▲산문집 ‘누구나 홀로 선 나무’, ‘황홀한 글감옥’, ‘조정래의 시선’, ‘조정래 사진여행: 길’(사진앨범) ▲청소년을 위한 위인전 ‘신채호’, ‘안중근’, ‘한용운’, ‘김구’, ‘박태준’, ‘세종대왕’, ‘이순신’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단재문학상, 노신문학상, 광주문화예술상, 만해대상, 현대불교문학상 등 수상
  • 미스터리·SF·판타지 등 장르문학 덕후들 모여라

    미스터리·SF·판타지 등 장르문학 덕후들 모여라

    미스터리, SF, 판타지 등 ‘장르문학 덕후’라면 안 가고는 못 배길 판이 벌어진다. 오는 14일 저녁 9시부터 15일 오전 10시까지 경기 파주 교하도서관에서 열리는 ‘제3회 장르문학 부흥회’다. 장르문학 출판사인 북스피어와 피니스아프리카에, 파주 교하도서관이 함께 여는 이번 행사는 ‘마니아들끼리 모여 밤새워 수다를 떨어보자’는 ‘작심’으로 마련됐다. 행사를 이끈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는 “장르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과 이런 장르의 책을 만드는 출판사 관계자, 작가, 평론가들이 한데 어울려 덥고 긴 여름밤을 시원하고 재미나게 보내자는 의미로 기획했다”며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이런 행사가 많이 열려 독자들이 추억도 만들고 책이 있는 곳을 더 많이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강연도 마련됐다. 박상준 서울 SF아카이브 대표가 ‘SF로 보는 인공지능(AI)시대 생생가이드’를,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가 ‘김전일에서 교고쿠도까지 더해서 도시괴담’을 들려준다. 모집 대상은 장르문학을 좋아하는 독자 50명이다. 참가 신청은 5일부터 북스피어 블로그(www.booksfear.com)와 교하도서관에서 받는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에베레스트 하산 중 왼손 손가락 모두 잃은 곽정혜의 체험 책으로

    에베레스트 하산 중 왼손 손가락 모두 잃은 곽정혜의 체험 책으로

    ‘도대체 그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책이나 영화로 아무리 간접 경험을 하거나 엿보더라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기와 같다. 바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해발 고도 8848m)의 베이스캠프(해발 고도 5300m) 위의 그 공간, 3500m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베이스캠프까지가 웬만큼 산행 경험이 있는 체력 좋은 이들에게 허락된 등고선이라면, 베이스캠프부터 정상에 이르는 과정은 그야말로 전문 산악인에게만 허락된 시공간이기 때문이다. 여성 산악인 곽정혜(35)가 책을 냈다. 제목은 ‘선택 스물여섯 청춘의 에베레스트’(종이와 붓). 그는 2006년 5월 18일 낮 12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저자는 캠프4가 있는 사우스콜로 되돌아가던 중 추락해 조난을 당한다. 극심한 추위와 체력 저하로 인해 죽음 직전까지 갔지만, 마침 정상을 향하던 서울 중동고 원정대원들의 눈에 띄어 극적으로 구조된다. 그들의 극진한 간호로 의식을 되찾아 베이스캠프로 내려올 수 있었지만, 심한 동상을 입은 왼손 손가락 모두와 오른손 새끼손가락, 오른발 엄지발가락을 잃는다. 지난 1월부터 두달 동안 ‘다음(Daum) 스토리펀딩’에 연재돼 큰 반향을 일으켰던 내용을 묶어 책으로 냈다. 어차피 남성이 많을 수밖에 없는 등반대 속성 때문에 가슴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던 여자로서의 외로움, 베이스캠프 전체를 충격에 빠뜨린 사고 당사자로 느꼈던 처참함, 동상 치료로 2년을 넘게 보내며 깨닫는 생의 의미, 고산 등반 도중 유명을 달리한 동료 산악인들을 보며 느낀 비애 등을 여성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그려냈다. 다음은 출판사가 고른 책의 문장 중 일부. 어슴푸레 밝아 오는 여명 속에서 눈을 떴다. 작은 물방울들이 맺혀 있는 텐트 천장이 시야에 들어왔고, 산소마스크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신선했다. 가만히 누워 있으니 콩닥콩닥 뛰는 심장이 등에서 느껴졌다. 2006년 5월 19일 아침, 나는 그렇게 다시 살아났다. --- p.31 라마제를 지낸 다음 날부터 본격적인 고소적응 훈련이 시작되어 우리는 드디어 아이스폴로 올라갔다. 하늘에 별이 총총 떠 있는 새벽 시간, 이른 아침을 먹고 제단 앞을 한 바퀴 돌며 마음속으로 무사산행을 기원한 뒤 아이스폴의 입구로 다가갔다. 베이스캠프에서 보던 것과 달리, 아이스폴 안은 복잡하고 출구가 없는 거대한 미로 같았다. 아래에서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워 보이던 눈덩이들은 온데간데없고, 투명하다 못해 푸르스름한 기운까지 감도는 빙탑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삐죽삐죽 솟아있었다. --- p.85 어느 순간 의식이 돌아와 눈을 뜨니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얼굴들이 보였다. 추위 속에 몸만 굳은 게 아니라 뇌까지 굳어버렸는지, 그들이 중동고 팀의 대원임을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들이 나 때문에 정상으로 향하지 못했음을 깨닫는 순간, 차라리 그대로 죽어버리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움보다 미안한 마음이 앞서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그들이 따뜻한 물을 먹여주었지만, 목구멍에 무언가 뜨거운 덩어리가 걸린 듯 삼키기 어려웠다. 또 한편으로는 기필코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기서 죽는다면 이들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것 또한 그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이 될 것이다.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될 것이며,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무섭기만 했다. --- p.114 그 때, 나는 그들이 나를 살리기 위해 무엇을 포기했는지 알지 못했다. 당시 박재우 대원은 에베레스트 등반을 위해 직장까지 그만둔 상태였고, 최인수 대원은 부인에게 유급휴가라고 거짓말을 한 채 무급으로 원정을 떠나온 것이었다. 나로 인해 그들이 포기한 건 에베레스트 정상이 아니라, 두 번 다시는 오지 않을 그들의 젊음과 꿈이었다. 훗날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그들의 기록을 꼭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내가 그 산에서 내려와 더 높은 세상의 산에서 살아 남겨야 할 기록은, 죽음의 지대에서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꿈을 포기하고 자기를 희생했던 ‘사람들’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 p.119 몸을 쓰지 않으니 밀어내려고 해도 온갖 생각들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라 괴로웠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왜 순간순간에 좀 더 신중하지 못했는지…. 갖은 이유들을 끌어다가 탓해 보았지만, 그러기엔 나의 실수가 너무나 컸다. 그렇다고 그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리기엔 왠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냥 모든 게 꿈이었으면 싶었다. 이미 일어난 일들보다 앞으로 마주쳐야 할 현실들이 더 겁났다. 3캠프에서 꾸었던 꿈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친구들이 진짜 날 데리러 온 거였다면, 이제라도 그 손을 잡고 그들을 따라 가고 싶었다. ---p.130 시간이 지날수록 손발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다. 까맣게 괴사되는 부분이 점점 손가락 안쪽으로 파고들었고, 처음엔 저릿저릿한 정도였던 통증은 팔이 잘려져 나가는 듯 심해져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 되었다. 나중엔 약물 진통제가 듣지 않아 말기 암환자들에게 처방되는 패치를 붙이고 있어야 했다. 드레싱을 하기 위해 붕대를 풀었을 때 환부에서 풍기는 악취도 점점 심해져갔다. 의사들의 표정이 어두워질수록 나와 어머니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져갔다. 어머니가 병간호로 인한 고단함을 이기지 못하고 침대에 쓰러져 잠깐 눈을 붙일 때면, 나는 홀로 휠체어를 타고 나와 비상계단에 숨어 앉아 우는 시간이 많아졌다. ---p.146 쓸 수 있는 손가락은 다섯 개밖에 남지 않았지만, 나 자신은 치료의 결과에 대해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그에 비해 세상 사람들 앞에서까지 의연하지는 못했다. 산 선배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는 늘 죄 지은 사람처럼 주눅이 들었고, 사람들 앞에서 ‘에베레스트 등정자’ ‘여성산악인’이라고 소개될 때는 괜히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랐다. 다른 사람들이 볼까봐 왼손은 늘 주머니에 넣거나 가방으로 가렸고, 그럴 수 없을 땐 오른손으로 가려서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고도 계속 불안했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 불편해 의수를 맞추려고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녔다. ---p.157 ‘선택’이라는 제목처럼, 책은 독자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만약 당신이라면 똑같은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이 책에는 저자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다양한 선택들이 공존하고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답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다. 경남 밀양 출신인 저자는 2000년 대학 산악부에 친구를 따라 가입해 2004년 12월 네팔 히말라야 아마다블람을 오르며 고산 등반을 시작해 2005년 메라피크 등반까지 해발 6000m급 봉우리를 두 개 오른 뒤, 2006년 국내 여성으로는 다섯 번째로 에베레스트를 발 아래 뒀다. 조난 중 입은 동상으로 2년 가까이 투병했고 2007년부터 오지 전문 여행사에서 일한 뒤 2009년 산악 전문지 ‘월간 마운틴’으로 옮겨 지난해까지 근무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문학의 또 다른 진화, 문예지 ‘색다른 초대’

    문학의 또 다른 진화, 문예지 ‘색다른 초대’

    민음사 새 문예지 ‘릿터’ 공개 아이돌·드라마 등 장르 다양화창비 새 잡지·문지 혁신호 출간 “스타 작가 의존성 여전” 지적도 문예지가 ‘변혁의 시대’를 맞았다. 지난해 민음사의 ‘세계의 문학’ 종간은 문예지의 쇠락을 단적으로 상징하는 ‘사건’으로 여겨졌다. 정부의 문예지 지원 삭감으로 ‘폐·휴간’ 사태도 잇따랐다. 하지만 최근 문예지들은 스스로 ‘변신’을 꾀하며 외면하던 독자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민음사는 2일 “‘세계의 문학’의 전통을 이으면서 혁신을 가한다”는 기치를 내세운 새 문학잡지 ‘릿터’(Littor)를 공개했다. 영어로 문학(Literature)과 ‘~하는 사람’(tor)이란 뜻의 접미사를 합쳐 ‘문학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담은 ‘릿터’는 소설가, 시인, 평론가들이 편집위원단을 구성해 이끌어 가던 기존 문예지와 달리 편집자들이 직접 기획하고 만든다. 기존의 문학 콘텐츠뿐 아니라 아이돌 그룹 샤이니 멤버 종현의 인터뷰부터 영화, 드라마, 만화, 미술 등 다양한 장르를 품고 있다. 책임편집을 맡은 서효인 민음사 국내문학팀장은 “문학을 평소에 많이 찾아보는 독자뿐 아니라 다른 장르의 팬들도 문학의 독자로 들어왔으면 했다. 그래서 그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부분을 초대장처럼 넣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신경숙 표절 사건으로 촉발된 문학권력 논란에 휩싸였던 주요 문학 출판사들도 하반기 새로 창간하거나 기존의 것을 재정비한 문예지를 잇따라 내놓을 예정이다. 창비는 30~40대 시인, 소설가, 평론가들이 편집위원을 맡아 이끄는 젊은 감각의 문예지를 이르면 오는 10월 선보인다. 강영규 창비 문학출판부 부장은 “기존 문예지나 문단 질서에 편중된 작가군에서 벗어나 지역, 세대 구분 없이 주목받지 못하던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장르·르포 문학 등도 아울러 문학의 외연을 확장할 것”이라며 “종이잡지뿐 아니라 온라인도 연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계간 ‘문학과 사회’(문학과지성사)도 이달 말 출간될 가을호부터 ‘혁신호’로 꾸민다. 이근혜 문학과지성사 문학 담당 편집장은 “‘문학과사회’ 본권에 별권을 더해 2권으로 펴낼 예정이며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해외 논문 등을 적극 소개하는 등 그간 ‘문사’가 견지해 온 인문사회학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이를 심층적으로 파고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최근 나란히 창간 1주년호를 낸 ‘악스트’(은행나무)와 ‘미스테리아’(문학동네)는 ‘문예지도 독자들을 불러 모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줬다. 소설가들이 꾸려 가는 ‘악스트’는 매호마다 1만부가 소진되고 1, 4, 5호는 품절돼 “중쇄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올 만큼 호응이 높다. 추리소설 마니아층을 겨냥한 ‘미스테리아’도 창간호 5000부에 이어 매호 4000여부씩 판매될 정도로 인기가 꾸준하다. 전통적인 문예지의 형태에서 벗어나 젊은 세대들의 구미에 맞는 감각적인 디자인·편집에, 내용 면에서도 ‘선택과 집중’을 꾀하면서 차별화를 이뤄냈다는 평을 받는다. 새로운 형태의 문예지들이 잇따라 생겨나는 현상에 대해 이경재 문학평론가는 “침체를 벗어나려는 고육책이기도 하지만 창작집단과 독자들의 다양성, 일반인들의 높아진 인문학적 소양 등이 함께 작용한 결과”라며 “이에 따라 평론가 등 전문가들이 생산한 문학 담론이 중심인 전통적인 문예지에서 벗어나 출판사 편집자가 기획하고 등단, 비등단 작가를 가리지 않는 ‘경계 해체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우리 문학의 또 다른 진화”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형식의 변화가 내용의 변화를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이광호 문학평론가는 “새로 선보이는 문예지들이 출판 자본으로부터의 자율성, 스타 작가에 대한 의존성 등 기존 문예지가 갖고 있는 문제들을 극복했다고 보기는 여전히 어렵다”며 “디자인의 혁신, 판매 부수의 증가도 긍정적이고 중요한 현상이지만 얼마나 새로운 글쓰기와 담론, 글쟁이들을 배출하느냐가 진정한 혁신일 것”이라고 짚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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