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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토] 前 주한 미 대사 도널드 그레그 출판기념 간담회

    [포토] 前 주한 미 대사 도널드 그레그 출판기념 간담회

    19일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열린 전 주한 미 대사 도널드 그레그의 회고록 역사의 파편들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도널드 전 대사가 발언을 하고 있다. 2015.5.19 박지환 popocar@seoul.co.kr
  • “정치인은 절대 거짓말하면 안 돼”… JP의 쓴소리

    “정치인은 절대 거짓말하면 안 돼”… JP의 쓴소리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14일 “정치하는 사람이 때로는 편의상 말을 바꿀 수는 있지만 절대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는 이날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JP 화보집 출판기념회’를 마친 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이날 검찰 조사를 받는 데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정직하고 반듯하게 살아 나가길 희구한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연루된 이 전 총리가 ‘말 바꾸기’ 논란 등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는 점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김 전 총리는 “한 나라가 걸어가는 데 늘 평탄하고 행복한 걸음이 계속될 순 없다”며 “이런저런 일이 교집되는 속에 우리 국민들이 사기를 잃지 않고 힘차게 전진해 나가는 게 대한민국이고 우리 조국”이라고 말했다. 화보집에 나온 사진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묻자 “어려울 때에도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이 제일 예쁘다”고 답했다. 김 전 총리는 행사 답사에서 “저의 정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정치는 허업(虛業)이라는 생각을 다시 떠올린다”며 “정치의 열매를 국민에게 충분하게 돌려 드리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고 말했다. 이어 “인생은 공수래공수거라고 한다. 이 세상에 나올 때 아무것도 없다. 일생을 다 살고 죽을 때에도 공수로 죽는다”고 운을 뗀 김 전 총리는 “그런데 여러분들이 열정 어린 평생 느끼지 못했던 선물을 제가 혼자 안고 가기 벅찰 정도로 주고 있다”면서 “공수래공수거를 조금 고쳐서 공수래만(滿)수거”라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수한 전 국회의장, 이한동 전 국무총리, 최경환 경제부총리, 영화배우 이영애씨, 가수 하춘화씨 등 400여명의 인사가 자리를 채웠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김종필 전 총리, 이완구 전 총리 등 후배 정치인들에게 “절대 거짓말하면 안 된다”

    김종필 전 총리, 이완구 전 총리 등 후배 정치인들에게 “절대 거짓말하면 안 된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14일 “지금 비록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별로 없지만, 역사 앞에 떳떳하다고 자부한다”고 밝혔다. 이날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운정 김종필-한국 현대사의 증인 JP 화보집’ 출판기념회에 참석, 답사를 통해서다. 김 전 총리는 ”여러 국면을 지나면서 발전된 조국을 보며 그래도 역사는 우리 편이란 생각을 해본다. 역사는 어긋나고 비틀거리더라도 결국은 정의를 향해 나간다는 사실을 경험했다”고도 말했다. 김 전 총리는 이어 본인의 좌우명으로 ‘사무사(思無邪·생각에 사특함이 없이 진실함)’를 꼽으며 “사(邪)를 버리고 정(正)을 취할 때 역사는 우리 편이라고 저는 생각한다”고 했다. 김 전 총리는 행사 뒤 기자들과 만나 현 정치 상황에 대한 질문에 “한 나라를 걸어가는 데 늘 평탄하고, 행복한 걸음이 계속될 수 없다”면서 ”국민들이 사기를 잃지 않고 힘차게 전진해나가는 게 대한민국”이라고 답했다. 김 전 총리는 검찰 소환 조사를 받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 등 정치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묻는 질문에는 “정직하고 반듯하게 살아가길 희구(希求)한다”면서 “정치하는 사람이 때로는 편의상 말도 바꿀 수 있지만, 절대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 젊은 사람들이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아빠·엄마 자서전 쓰다 훌쩍 큰 아이들

    아빠·엄마 자서전 쓰다 훌쩍 큰 아이들

    “엄마는 꿈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엄마도 꿈 많은 소녀였던 때가, 아리따운 때가 있었더라고요. 그 모든 걸 다 버리고 엄마로 살고 계시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어요.” 김주희(17·가평 조종고 2학년)양의 엄마 박순덕(48)씨의 초등학교 시절 별명은 ‘하마’였다. 보온 도시락을 잃어버린 뒤 입을 쩍 벌리고 울던 모습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스물한 살 때 여섯 살 연상의 굴착기 기사와 선을 봤다. 만난 지 몇 시간 만에 그 남자는 “나랑 결혼해 달라”며 쫓아다녔다. 박씨가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급기야 “너 죽고 나 죽자”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 기사가 김양의 아빠 김성민(54)씨다. 김양은 박씨의 자서전인 ‘엄마로 살아가는 엄마’를 쓰면서 엄마의 별명이 하마인 것도, 꿈 많은 소녀였던 엄마가 가족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다는 사실도, 장난기 많은 아빠가 엄마한테는 ‘상남자’였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다. 고등학생들이 자기 어머니·아버지와 할아버지·할머니를 인터뷰해 그들의 소중한 인생을 글로 풀어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 7일 출간된 ‘아침마루의 그날들’이다. 자서전 집필자들은 경기 가평에 있는 조종고 학생 12명이다. 학생들은 지난해 10~12월 자서전 전문 대필작가에게 글쓰기를 배웠다. 겨울방학 동안 부모·조부모의 인터뷰를 진행하며 어떤 내용을 담을지 취재했다. 투박하고 서툴기 그지없지만, 책 속에 담긴 울림은 자못 컸다. 이지수(18)양은 어렸을 적 소아마비를 앓은 탓에 목발을 짚고 다니는 아버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담담히 풀어냈다. “장애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가죽 공예를 하시는 아버지가 너무 멋져요.” 부모가 받았던 상처와 아픔도 고스란히 담겼다. 안주희(18)양은 사업을 하던 할아버지가 가족 몰래 사채를 쓰다가 납치를 당해 세상을 뜨게 된, 감추고 싶던 가족사를 소개했다. 가족들이 이후 사채업자에게 시달리고 간호사가 되려던 엄마는 빚 때문에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안양은 붉어진 눈시울을 한 채 글을 썼다. 김정민(18)군의 글에는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당시 실직한 아버지에 대한 걱정, 버스 운전사 등을 하며 오뚜기처럼 재기한 데 대한 존경이 묻어났다. 가족과 행복하게 살려던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고, 아내와 아들까지 책임져야 했던 아버지를 뒤늦게 이해한 김군은 눈물을 쏟았다. 박석균(52) 지도교사는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가족의 소중함을 느낀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시간”이라고 했다. 학교 측은 오는 13일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열고 학생들의 글을 부모에게 헌정하는 행사를 열 예정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88세 딴따라, 팔팔한 세상만사

    88세 딴따라, 팔팔한 세상만사

    “제 고향 황해도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외친다면 소원이 없겠네요.” 실향민 출신으로 30년간 KBS 1TV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해 온 국내 최고령 MC인 송해(88)가 자신의 최종 목표를 이렇게 밝혔다. 30일 오후 서울 강남 리베라호텔에서 생애 첫 평전 ‘나는 딴따라다’(스튜디오 본프리 펴냄)의 출판기념회를 연 그는 “2003년 북한 모란봉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했는데, 당시 통제도 심하고 북쪽 관계자들이 평양 출연자들과 대화를 못 하게 해서 마음껏 진행하지 못했다. 죽기 전에 소원이 있다면 내 고향 황해도 재령에 무대를 만들어 공연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만 88세 미수(米壽) 생일을 맞아 펴낸 평전은 오민석 단국대 영문학과 교수가 지난 1년간 송해를 밀착 취재한 끝에 완성했다. 그동안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송해의 인생 드라마를 한국 근대사와 대중연예사를 통해 그려 냈다. 일제강점기부터 2015년의 현재에 이르기까지 악극단 시절부터 한류 열풍에 이르는 파란만장한 한국 대중문화의 발전사도 담았다. 그는 평전 제목에 대해 “‘딴따라’가 마치 이름 같았던 세월이 길었고 한이 서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딴따라’라고 불렀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후배들도 가끔 경시하거나 무시하는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꼭 이겨 내라는 의미에서 책 이름을 이렇게 고집했다”고 말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꿈 같은 장면도 많은데 이런 부분을 기록으로 남기게 됐어요. 책이 장면별로 구성돼 있어서 영화를 만들어도 될 정도입니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김수현이 내 젊은 시절을 연기해 주면 좋겠네요. 여자 주인공은 전지현이었으면 좋겠구요(웃음).” 고령임에도 전국노래자랑의 녹화장에 운집하는 관객을 보면 힘든 줄을 모르겠다는 그는 “지난 토요일 해남에 갔는데 비가 많이 와서 옷을 두 벌 정도 갈아입으면서 녹화를 했다. 객석에서 우비를 입고 춤추고 좋아하는 관객 앞에서 내가 못한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점찍어 둔 전국노래자랑의 후임 MC는 누굴까. “얼마 전 후배들과 모인 자리에서 서로 의논해 한 사람 선정해 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가장 선임인 이상벽이 예의를 깍듯하게 갖추면서 아우들이 자신을 선택했다고 하더군요. 언제 물려줄 거냐고 묻길래 50년 후라고 말했어요(웃음).”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新 평판 사회] 구태 벗기 나선 정치인들

    [新 평판 사회] 구태 벗기 나선 정치인들

    “국회에서 일하다 보니 일손이 많이 부족하더라고요. 일정이 빡빡하지 않으면 제가 운전하고 직원들은 다른 일을 하도록 하는거죠” ‘의원님’이라고 하면 보통 검은색 중형 승용차 뒤에 앉아 운전 비서에게 갈 곳을 지시하는 모습을 떠올리지만 서용교(왼쪽) 새누리당 의원은 직접 운전대를 잡는다. 비서가 운전할 시간에 차라리 정책 질의 준비나 상임위 활동 등을 맡도록 하는 게 더 생산적인 의정 활동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가 타는 제네시스도 국회에 들어오기 전인 2010년부터 타던 차량이다. 주변의 평판을 의식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평생 국회의원을 할 것도 아니고 언젠가는 국민의 일원으로 돌아가지 않겠나. 운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부겸 전 의원이 초선 시절 직접 차를 운전하는 등 과거에도 운전비서를 두지 않는 정치인이 있었지만 요즘은 이 같은 사례가 더 자주 눈에 띈다. 배재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서울에서 따로 수행비서를 두지 않고 직접 운전한다. 비례대표인 그는 지역구 준비 차원에서 부산에 내려갈 때는 수행 비서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웬만해서는 자신이 직접 차를 운전한다. 배 의원은 “출퇴근은 기본적으로 제가 운전하고 간혹 회의에 참석해서 주차가 힘들 때는 비서관이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직접 차를 모는 게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자칫 운전 비서가 필요 없는 것처럼 비치는 것부터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수행비서의 역할이 있는데 직접 운전을 하는 것이 자칫 이들의 일자리 문제와 연관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노타이’ 차림을 선호하는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도 서울에서는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 대표적인 국회의원이다. 이상민(오른쪽)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의정 생활 10여년 동안 출판기념회를 한 번도 열지 않았다. 대부분 정치인이 출마를 앞두고 의례적으로 ‘얼굴 알리기용’ 책을 내지만 그는 3선이 되기까지 한 번도 책을 낸 적이 없다. “책을 쓸 만한 필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지만 출판기념회가 정치자금 모금용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출판기념회가 음성적 정치자금 모금 창구가 되고 있다며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 그와 함께 사법고시를 준비했던 한 법조계 관계자는 “남들을 의식하거나 불필요한 격식을 차리지 않는 이 위원장의 성격 때문이기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실 보좌진의 평균 연령은 34세다. 보좌진이라고 하면 오랫동안 국회에 몸담으며 지역구 관리와 민원을 담당하는 노련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박 의원은 젊고 자유분방한 방 분위기가 의정활동을 더 생산적으로 만든다고 믿는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국민 MC 송해, 왜 스스로 ‘딴따라’라고 하나 들어보니…

    국민 MC 송해, 왜 스스로 ‘딴따라’라고 하나 들어보니…

    왕성하게 활동 중인 현역 최고령 MC이자 방송인 송해의 생애 첫 평전 ‘나는 딴따라다’(저자 오민석·출판 스튜디오 본프리)가 오는 27일 정식 출간된다. 송해는 1927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6·25 전쟁 발발 뒤 1·4후퇴 때 남한으로 내려온 실향민이다. 전쟁 중 통신병으로 군복무했고 3번의 월남 위문공연을 진행한 뒤 악극단을 따라 전국을 떠돌며 청춘을 유랑에 바쳤다. 송해는 이후 라디오와 TV 방송의 시대가 열리며 본격적인 연예인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28년간 ‘전국노래자랑’을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는 서민들의 축제로 만들며 국민MC의 반열에 올랐다. 송해는 단지 최고령 연예인을 넘어서 대한민국 근현대사와 연예사를 거쳐온 유일한 인물이다. 이제 90수를 맞이하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산증인 송해의 인생 여정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평전은 개인의 일생에 대하여 필자의 논평을 겸한 전기를 말한다. 송해의 첫 평전이 될 ‘나는 딴따라다’는 단국대 영문학과 교수로 시인, 문학평론가를 겸하고 있는 저자 오민석이 송해 곁에서 1년간의 밀착 취재를 통해 완성했다. 저자는 ”2015년 현재 그를 재조명하려는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시점에서 송해 평전 ‘나는 딴따라다’는 그의 유랑 인생 90년을 반추하는 동시에 광복 70년을 맞이하며 대한민국 근현대를 살아온 부모 세대를 기리는 뜻 깊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해 평전의 출판을 맡은 스튜디오 본프리 관계자는 “실향민이라는 아픔과 대한민국 대표 연예인이라는 영광으로 점철된 송해의 생애는 이 시대를 살아온 우리 부모님의 삶과 맞닿아 있다”면서 “이에 그가 걸어온 한국 근현대 대중문화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는 동시에, 눈물과 애환이 서린 그의 인생을 소장가치 있는 한 편의 이야기로 재구성하여 대중에게 소개하고자 한다”고 출간 의도를 밝혔다. 한편 송해는 자신의 최초 평전 출간과 더불어 30일 출판기념회 및 기자회견을 갖고 직접 책을 내게 된 소회와 ‘딴따라’로서의 지난 70여년의 긴 여정을 회고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성완종 이완구 1년간 217차례 전화…노회찬 “부부관계 수준, 정치인들 전화 잘 안 해”

    성완종 이완구 1년간 217차례 전화…노회찬 “부부관계 수준, 정치인들 전화 잘 안 해” 노회찬, 성완종 국세청, 성완종 리스트, 노회찬 이완구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이 이완구 국무총리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전화 횟수와 관련해 비판을 쏟아냈다. 이완구 총리는 그동안 성완종 전 회장과 아는 사이지만 친분이 없고 특별한 관계는 아니라고 부인해왔다. 그러나 19일 검찰이 이 총리와 성 전 회장이 지난 1년 동안 217차례 전화를 주고받은 내용을 확인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거짓 해명 논란이 나오고 있다. 노 전 의원은 20일 YTN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이 총리와 성 전 회장의 전화 횟수를 언급하며 “거의 뭐 부부관계라고 봐야하는 그 정도로 밀접한 관계라고 본다”고 말했다. 친한 정치인과 얼마나 통화를 하냐는 질문에 그는 “친한 정치인이라도 뭐 출판기념회 하는데 꼭 와달라거나 이런 큰 행사가 있을 때 초청할 때나 보통 전화가 오지 솔직히 1년에 한두 번 전화하는 거다”라고 설명했다. 노 전 의원은 이어 “이제까지 이 총리가 이 사태에 대해 반응한 것만 가지고도 너무 거짓말들이 많았다고 많은 분들이 보고 있고 이제까지 한 거짓말만 가지고도 정상적인 총리로서의 직무수행이 불가능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조선일보는 ‘성완종 리스트’를 수사 중인 검찰이 성 전 회장이 국세청과 금융위, 금감원의 전·현직 고위 간부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정치권을 넘어 금융권으로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있어 정관계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성완종 이완구, 1년간 217차례 전화 노회찬 “부부관계 수준”…성완종 국세청도 로비 정황

    성완종 이완구, 1년간 217차례 전화 노회찬 “부부관계 수준”…성완종 국세청도 로비 정황

    성완종 이완구, 1년간 217차례 전화 노회찬 “부부관계 수준”…성완종 국세청도 로비 정황 노회찬, 성완종 국세청, 성완종 리스트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이 이완구 국무총리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전화 횟수와 관련해 비판을 쏟아냈다. 이완구 총리는 그동안 성완종 전 회장과 아는 사이지만 친분이 없고 특별한 관계는 아니라고 부인해왔다. 그러나 19일 검찰이 이 총리와 성 전 회장이 지난 1년 동안 217차례 전화를 주고받은 내용을 확인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거짓 해명 논란이 나오고 있다. 노 전 의원은 20일 YTN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이 총리와 성 전 회장의 전화 횟수를 언급하며 “거의 뭐 부부관계라고 봐야하는 그 정도로 밀접한 관계라고 본다”고 말했다. 친한 정치인과 얼마나 통화를 하냐는 질문에 그는 “친한 정치인이라도 뭐 출판기념회 하는데 꼭 와달라거나 이런 큰 행사가 있을 때 초청할 때나 보통 전화가 오지 솔직히 1년에 한두 번 전화하는 거다”라고 설명했다. 노 전 의원은 이어 “이제까지 이 총리가 이 사태에 대해 반응한 것만 가지고도 너무 거짓말들이 많았다고 많은 분들이 보고 있고 이제까지 한 거짓말만 가지고도 정상적인 총리로서의 직무수행이 불가능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조선일보는 ‘성완종 리스트’를 수사 중인 검찰이 성 전 회장이 국세청과 금융위, 금감원의 전·현직 고위 간부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정치권을 넘어 금융권으로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있어 정관계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성완종 리스트 파문] 이완구 지지모임 ‘완사모’ 핵심인사 구속

    이완구 총리의 정치적 지지세력인 ‘완사모’(이완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핵심 인사인 운수회사 대표가 횡령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면서 이 돈의 사용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전지검 천안지청은 17일 ‘완사모’ 자문임원단 회장인 이모(61)씨를 업무상 횡령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2008년부터 최근까지 차명계좌 등을 이용해 회사 자금 34억원을 빼돌리는 등 60여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충남 아산시내버스 운수업체인 온양교통운수 대표로 지역에서 이 총리의 ‘오른팔’로 불린다. 이씨가 이 총리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6년 이 총리가 충남지사에 출마했을 때다. 이씨는 그해 5월 지사에 출마한 이 총리에게 300만원의 후원금을 냈다. 2009년 1월 ‘완사모’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고 이씨는 완사모 자문임원단 회장을 맡았다. 완사모는 충남과 충남 출신이 많은 인천이 중심이고, 현재 회원 수는 1만 6700여명이다. 회원들은 완사모 카페에서 소통하면서 지부별로 산악회 등을 만들어 만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자문임원단은 전·현직 충남 도의원 및 시·군의원 등 30여명으로 짜여 있다. 완사모 회원 박모씨는 “카페는 산악회 등 모임이 있을 때 이 총리를 초청했다”면서 “이 총리와 매우 밀착해 있던 것은 정치적 야욕이 많은 자문임원단 멤버들”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씨는 2009년 말 이 총리가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해 충남지사에서 물러날 때 ‘세종시 원안 관철 및 이 지사 사퇴 반대 비상대책위’ 공동 의장으로 활동했다. 또 이 총리가 참석한 2013년 12월 온양관광호텔(경남기업 계열사) 등 매년 개최한 완사모 충청본부 송년의 밤 행사도 주관했다. 완사모 회원들은 이 총리가 지사직을 사퇴하고 2012년 1월 홍성에서 연 출판기념회 때도 대거 참석해 이 총리를 적극 지지했고 이 자리에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씨의 횡령자금 사용처를 추적하고 있다. 이 총리에게 3000만원을 건넸다는 ‘성완종 리스트’를 조사하는 특별수사팀장이 문무일 대전지검장이라 이씨의 횡령자금이 이 총리 정치자금으로 흘러들어 갔는지에도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천안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고려대, 김상협 前총리 20주기 추도식

    고려대(총장 염재호)는 오는 20일 오후 6시 서울 성북구 안암캠퍼스 인촌기념관에서 고려대 총장과 국무총리,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지낸 남재 김상협 선생의 20주기를 맞아 추도 행사를 연다고 16일 밝혔다. 염 총장이 추모사를 한 후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과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가 남재 선생에 관한 특강을 한다. 이어 남재 선생의 일대기를 담은 저서 ‘큰 스승 김상협-남재 김상협 선생의 순결한 생애’의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 “중국 급부상해도 미국 뛰어넘을 수는 없어 한국은 미·중 택일 말고 외교 입지 넓혀야”

    “중국 급부상해도 미국 뛰어넘을 수는 없어 한국은 미·중 택일 말고 외교 입지 넓혀야”

    “중국이 부상해도 미국을 넘지 못합니다.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고민하는 외교를 넘어 입지를 넓혀야 합니다.” 군사력 등 ‘하드 파워’에 반대되는 ‘소프트 파워’ 개념을 처음 주창한 세계적 석학 조지프 나이(78)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 교수는 2일(현지시간) 초대강국 미국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다며 이렇게 밝혔다. 워싱턴DC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초청으로 열린 신간 ‘미국의 세기는 끝났나?’(Is the American Century Over?) 출판기념회에서 나이 교수는 “한 세기 이상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였지만 이제 일부 분석가들은 중국이 미국의 자리를 곧 차지할 것이라고 관측한다”며 “그렇다면 우리는 ‘포스트-아메리카’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인지, 중국의 가파른 부상이 미·중 간 새로운 냉전에 불을 붙일 것인지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이 교수는 “그러나 미국의 세기는 종말과는 거리가 멀다”며 “미국의 초강대국 위치가 국내 문제와 중국의 경제 호황으로 줄어들었을 수 있지만 군사력과 경제력, 소프트 파워 능력에서 중국은 미국을 넘어설 수 없다. 미국은 앞으로 수십년간 중국 등 가장 가까운 라이벌 국가들의 영향력을 계속 뛰어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도 소프트 파워를 키우려고 노력하지만 정부 주도에다가 민족주의가 강하게 작용해 미국의 소프트 파워에 대적하지 못한다”며 “이 때문에 전체적인 영향력에 있어 미국을 제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이 교수는 행사 직후 서울신문과 만나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대해 “미 정부가 AIIB에 대해 우려하면서 우방국의 참여를 막은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정책을 잘못 썼다”고 비판한 뒤 “우방들이 참여해 글로벌한 수준으로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중국을 적으로 둘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이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드’ 등 문제로 미·중 사이에 껴 있다는 지적에 대해 “한국은 미국과 중국, 일본 등 강대국들 사이에 껴서 택일할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등 외교적 입지를 넓혀야 한다”며 “중국과도 좋은 사이를 만들면서 한·미 동맹의 근간을 잘 유지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글 사진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김기종, 흉기 휘둘러 잡힌 뒤 “아파! 아파!” 日대사 공격 北도 두둔

    김기종, 흉기 휘둘러 잡힌 뒤 “아파! 아파!” 日대사 공격 北도 두둔

    김기종 검거, 김기종 호송 김기종, 흉기 휘둘러 잡힌 뒤 “아파! 아파!” 日대사 공격 北도 두둔 미국 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55)씨가 5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를 받던 김기종씨는 제압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며 병원 치료를 먼저 받겠다고 요구해 이날 오전 11시 11분쯤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 종로경찰서에서 나와 응급차량으로 옮겨지는 와중에 “전쟁훈련 반대한다”, “이산가족이 못만나는 이유가 전쟁훈련 때문이라 그랬다”, “전쟁훈련 중단하자, 키 리졸브…”라고 외치다 “아~ 아파! 아파!”라고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김씨는 검거 직후 종로경찰서로 이송돼 조사를 받았지만 진술을 거부했으며, “경호요원에게 밟혀서 발목 등을 다쳤으니 치료를 받고 변호사가 오면 그때 진술을 하겠다”고 말했다. 병원에 이송된 김씨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로 구급차에서 나와 응급실 안으로 실려 들어갔다. 김기종 대표는 과거 일본 대사에게도 시멘트 덩어리를 던져 처벌을 받았다. 김 대표는 2010년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특별강연회 도중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일본 대사에게 지름 약 10㎝와 7㎝인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진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이후 김 대표는 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시게이에 전 일본 대사를 공격했던 일을 엮은 책인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테러를 미화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일본 대사를 공격했을 때 그를 두둔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중앙방송은 김 씨의 일본 대사 공격 직후인 2010년 7월13일 “일본 대사가 남조선과 일본 사이의 새로운 시대니, 공동번영이니 뭐니 하고 망발하는 데 격분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은 그에게 콘크리트 덩어리를 던졌다”고 보도했다. 김씨는 같은 해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주한 일본 대사 초청 강연회에서 시게이에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 2개를 투척했다. 중앙방송은 남한 네티즌들이 김 씨의 행동을 지지하는 글을 올렸다며 “김기종의 항의 행동은 일본에 대한 분노를 던진 것이라고 하면서 찬양을 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고 강조했다. 대외용 라디오 방송인 평양방송도 2010년 8월 1일 이 사건이 “역사왜곡과 독도강탈 책동을 끈질기게 벌이고 있는 일본 반동들이 당한 너무도 응당한 봉변”이라고 주장했다. 평양방송은 남한 시민단체와 언론이 김씨의 행동을 “윤봉길 열사의 폭탄투척 사건”에 비유하며 “속이 후련해 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김씨가 이 사건으로 기소돼 법정에서 징역 4년을 구형받은 직후인 2010년 8월 24일에는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정부가 그에게 ‘부당한 탄압’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민족끼리는 “(정부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김기종을 구속하고 탄압을 가해오던 끝에 폭거를 감행했다”고 비난했다. 이 매체는 “일본 대사란 자에게 날아든 투석 세례는 민족적 분노의 분출로서 거기에 문제시될 것이란 하나도 없다”고 옹호했다. 김씨는 이외에도 간담회 등 행사에서 소동을 벌여 폭행과 상해 등의 혐의로 여러차례 처벌을 받았다. 김씨는 지난해 2월 13일 오후 서대문구 창천교회에서 열린 신촌 번영회 정기총회 박원순 서울시장 강연회가 끝날 무렵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변모(55)씨의 왼쪽 뺨을 때려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상해 혐의로 기소된 김 대표에 대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김씨는 같은 해 5월에는 일본대사관에 일본 정부의 집단자위권 규탄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다 제지당하자 경찰에게 신발과 계란을 투척해 입건되기도 했다. 2007년 6월에는 명동성당에서 열린 ‘6월항쟁을 기록하다’ 출판기념회에서 “6월 항쟁 기념사업이 분파적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고발한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나눠주려 하다가 제지당하기도 했다.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조각을 던지기 전인 2010년 2월 김씨는 외교기관 인근에서 옥회집회나 시위를 금지한 ‘집시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당시 김씨는 주한 일본대사관 한국어 홈페이지의 ‘일한관계’에서 ‘다케시마 문제’에 대한 삭제요구를 하기 위해 대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려고 했지만 집시법 규정 때문에 집회를 하지 못했다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같은 해 11월 헌재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2006년에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자 김 대표는 동료 6명과 함께 본적을 경북 울릉군 독도리 38번지로 옮긴 바 있다. 김씨는 2000년대 중반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김씨는 2006년 11월부터 2007년 4월까지 정부 승인을 받아 모두 8차례 방북했다. 공안당국은 반일활동에 주력했던 김 대표가 수차례 방북한 이후 반미활동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고 그의 반미활동 내용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새누리당 권은희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김 대표는 헌재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한다는 등의 이유로 해산 결정을 받은 통합진보당이 속해 있던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의 일원”이라면서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연방통추) 등도 국민행동에 포함돼 있다”며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을 지적했다. 권 대변인은 이어 “가장 우려스런 점은 김 대표가 교수라는 직함을 가지고 청년들을 가르쳤다는 사실”이라면서 “김 대표는 1997∼2007년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로 재직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교수 재직과 관련해 성공회대 측은 “김 대표는 ‘전통 예술의 이해’라는 수업 하나만 맡았지만 그만둔 지가 오래돼 정확한 수업 내용은 파악이 어렵다”면서 “외래교수라는 말은 시간강사를 예우하는 차원의 명칭일 뿐 교수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서울 도심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데 관여하기도 했다. 그는 2011년 12월 26일 ‘국가보안법피해자모임’ 회원들이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김 위원장 분향소 설치를 하려다 보수단체 회원들과 충돌·대치하는 과정에서 보수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10여명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 2007년에는 1988년 발생한 ‘우리마당 습격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중 분신을 시도,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기도 했다. 우리마당 사건은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었던 ‘우리마당’ 사무실을 괴한 4명이 습격해 안에 있던 여성을 성폭행하고 달아난 사건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평민당은 이 사건이 군 정보사령부에 의해 저질러진 정치테러라고 폭로했지만 현재까지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 김씨는 2001년부터 3년간, 2005년부터 2년간 두 차례에 걸쳐 민주평통 자문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기종, 흉기 휘둘러 잡힌 뒤 “아파! 아파!” 고통 호소

    김기종, 흉기 휘둘러 잡힌 뒤 “아파! 아파!” 고통 호소

    김기종 검거, 김기종 호송 김기종, 흉기 휘둘러 잡힌 뒤 “아파! 아파!” 고통 호소 미국 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55)씨가 5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를 받던 김기종씨는 제압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며 병원 치료를 먼저 받겠다고 요구해 이날 오전 11시 11분쯤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 종로경찰서에서 나와 응급차량으로 옮겨지는 와중에 “전쟁훈련 반대한다”, “이산가족이 못만나는 이유가 전쟁훈련 때문이라 그랬다”, “전쟁훈련 중단하자, 키 리졸브…”라고 외치다 “아~ 아파! 아파!”라고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김씨는 검거 직후 종로경찰서로 이송돼 조사를 받았지만 진술을 거부했으며, “경호요원에게 밟혀서 발목 등을 다쳤으니 치료를 받고 변호사가 오면 그때 진술을 하겠다”고 말했다. 병원에 이송된 김씨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로 구급차에서 나와 응급실 안으로 실려 들어갔다. 김기종 대표는 과거 일본 대사에게도 시멘트 덩어리를 던져 처벌을 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 2010년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특별강연회 도중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일본 대사에게 지름 약 10㎝와 7㎝인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진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이후 김 대표는 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시게이에 전 일본 대사를 공격했던 일을 엮은 책인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테러를 미화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는 이외에도 간담회 등 행사에서 소동을 벌여 폭행과 상해 등의 혐의로 여러차례 처벌을 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2월 13일 오후 서대문구 창천교회에서 열린 신촌 번영회 정기총회 박원순 서울시장 강연회가 끝날 무렵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변모(55)씨의 왼쪽 뺨을 때려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상해 혐의로 기소된 김 대표에 대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김 대표는 같은 해 5월에는 일본대사관에 일본 정부의 집단자위권 규탄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다 제지당하자 경찰에게 신발과 계란을 투척해 입건되기도 했다. 2007년 6월에는 명동성당에서 열린 ‘6월항쟁을 기록하다’ 출판기념회에서 “6월 항쟁 기념사업이 분파적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고발한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나눠주려 하다가 제지당하기도 했다.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조각을 던지기 전인 2010년 2월 김 대표는 외교기관 인근에서 옥회집회나 시위를 금지한 ‘집시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당시 김 대표는 주한 일본대사관 한국어 홈페이지의 ‘일한관계’에서 ‘다케시마 문제’에 대한 삭제요구를 하기 위해 대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려고 했지만 집시법 규정 때문에 집회를 하지 못했다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같은 해 11월 헌재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2006년에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자 김 대표는 동료 6명과 함께 본적을 경북 울릉군 독도리 38번지로 옮긴 바 있다. 김씨는 2000년대 중반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김 대표는 지난 2006년 11월부터 2007년 4월까지 정부 승인을 받아 모두 8차례 방북했다. 공안당국은 반일활동에 주력했던 김 대표가 수차례 방북한 이후 반미활동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고 그의 반미활동 내용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새누리당 권은희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김 대표는 헌재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한다는 등의 이유로 해산 결정을 받은 통합진보당이 속해 있던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의 일원”이라면서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연방통추) 등도 국민행동에 포함돼 있다”며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을 지적했다. 권 대변인은 이어 “가장 우려스런 점은 김 대표가 교수라는 직함을 가지고 청년들을 가르쳤다는 사실”이라면서 “김 대표는 지난 1997∼2007년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로 재직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교수 재직과 관련해 성공회대 측은 “김 대표는 ‘전통 예술의 이해’라는 수업 하나만 맡았지만 그만둔 지가 오래돼 정확한 수업 내용은 파악이 어렵다”면서 “외래교수라는 말은 시간강사를 예우하는 차원의 명칭일 뿐 교수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서울 도심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데 관여하기도 했다. 그는 2011년 12월 26일 ‘국가보안법피해자모임’ 회원들이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김 위원장 분향소 설치를 하려다 보수단체 회원들과 충돌·대치하는 과정에서 보수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10여명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 2007년에는 지난 1988년 발생한 ‘우리마당 습격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중 분신을 시도,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기도 했다. 우리마당 사건은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었던 ‘우리마당’ 사무실을 괴한 4명이 습격해 안에 있던 여성을 성폭행하고 달아난 사건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평민당은 이 사건이 군 정보사령부에 의해 저질러진 정치테러라고 폭로했지만 현재까지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지난 2001년부터 3년간, 2005년부터 2년간 두 차례에 걸쳐 민주평통 자문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기종 “제압과정에 부상당했다. 아파!” 그는 누구인가

    김기종 “제압과정에 부상당했다. 아파!” 그는 누구인가

    김기종 김기종 “제압과정에 부상당했다. 아파!” 그는 누구인가 미국 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55)씨가 5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를 받던 김기종씨는 제압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며 병원 치료를 먼저 받겠다고 요구해 이날 오전 11시 11분쯤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실려가는 과정에 “아파, 아파”라고 외치기도 했다. 김씨는 검거 직후 종로경찰서로 이송돼 조사를 받았지만 진술을 거부했으며, “경호요원에게 밟혀서 발목 등을 다쳤으니 치료를 받고 변호사가 오면 그때 진술을 하겠다”고 말했다. 병원에 이송된 김씨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로 구급차에서 나와 응급실 안으로 실려 들어갔다. 김기종 대표는 과거 일본 대사에게도 시멘트 덩어리를 던져 처벌을 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 2010년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특별강연회 도중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일본 대사에게 지름 약 10㎝와 7㎝인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진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이후 김 대표는 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시게이에 전 일본 대사를 공격했던 일을 엮은 책인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테러를 미화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는 이외에도 간담회 등 행사에서 소동을 벌여 폭행과 상해 등의 혐의로 여러차례 처벌을 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2월 13일 오후 서대문구 창천교회에서 열린 신촌 번영회 정기총회 박원순 서울시장 강연회가 끝날 무렵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변모(55)씨의 왼쪽 뺨을 때려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상해 혐의로 기소된 김 대표에 대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김 대표는 같은 해 5월에는 일본대사관에 일본 정부의 집단자위권 규탄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다 제지당하자 경찰에게 신발과 계란을 투척해 입건되기도 했다. 2007년 6월에는 명동성당에서 열린 ‘6월항쟁을 기록하다’ 출판기념회에서 “6월 항쟁 기념사업이 분파적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고발한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나눠주려 하다가 제지당하기도 했다.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조각을 던지기 전인 2010년 2월 김 대표는 외교기관 인근에서 옥회집회나 시위를 금지한 ‘집시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당시 김 대표는 주한 일본대사관 한국어 홈페이지의 ‘일한관계’에서 ‘다케시마 문제’에 대한 삭제요구를 하기 위해 대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려고 했지만 집시법 규정 때문에 집회를 하지 못했다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같은 해 11월 헌재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2006년에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자 김 대표는 동료 6명과 함께 본적을 경북 울릉군 독도리 38번지로 옮긴 바 있다. 김씨는 2000년대 중반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김 대표는 지난 2006년 11월부터 2007년 4월까지 정부 승인을 받아 모두 8차례 방북했다. 공안당국은 반일활동에 주력했던 김 대표가 수차례 방북한 이후 반미활동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고 그의 반미활동 내용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새누리당 권은희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김 대표는 헌재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한다는 등의 이유로 해산 결정을 받은 통합진보당이 속해 있던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의 일원”이라면서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연방통추) 등도 국민행동에 포함돼 있다”며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을 지적했다. 권 대변인은 이어 “가장 우려스런 점은 김 대표가 교수라는 직함을 가지고 청년들을 가르쳤다는 사실”이라면서 “김 대표는 지난 1997∼2007년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로 재직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교수 재직과 관련해 성공회대 측은 “김 대표는 ‘전통 예술의 이해’라는 수업 하나만 맡았지만 그만둔 지가 오래돼 정확한 수업 내용은 파악이 어렵다”면서 “외래교수라는 말은 시간강사를 예우하는 차원의 명칭일 뿐 교수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서울 도심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데 관여하기도 했다. 그는 2011년 12월 26일 ‘국가보안법피해자모임’ 회원들이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김 위원장 분향소 설치를 하려다 보수단체 회원들과 충돌·대치하는 과정에서 보수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10여명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 2007년에는 지난 1988년 발생한 ‘우리마당 습격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중 분신을 시도,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기도 했다. 우리마당 사건은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었던 ‘우리마당’ 사무실을 괴한 4명이 습격해 안에 있던 여성을 성폭행하고 달아난 사건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평민당은 이 사건이 군 정보사령부에 의해 저질러진 정치테러라고 폭로했지만 현재까지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지난 2001년부터 3년간, 2005년부터 2년간 두 차례에 걸쳐 민주평통 자문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우리마당 김기종, 후송되면서 “아파! 아파!” 장윤석 국회의원 제압

    우리마당 김기종, 후송되면서 “아파! 아파!” 장윤석 국회의원 제압

    우리먀당 김기종, 우리마당 김기종 대표, 장윤석 국회의원 우리마당 김기종, 후송되면서 “아파! 아파!” 장윤석 국회의원 제압 미국 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55)씨가 5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김기종씨는 이날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 행사장에서 리퍼트 대사가 앉은 중앙 헤드테이블의 오른쪽 뒤쪽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오전 7시 35분쯤 리퍼트 대사가 도착하고 5분여 뒤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조찬이 시작되자 김씨는 갑자기 일어나서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참석자 옆에 A4 용지 크기의 유인물 10장을 내려놓고는 “받으라”고 말했다. 그 후 김 대표가 헤드테이블 쪽으로 이동해 리퍼트 대사를 밀쳐 눕히고 흉기를 수차례 휘두르기까지는 불과 1∼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한 참석자는 “다들 여유롭게 식사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리퍼트 대사가 아침으로 나온 죽 첫술을 뜨자마자 갑자기 공격당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테러범이 옆으로 다가오자 리퍼트 대사가 자신에게 인사하려는 줄 알았는지 악수를 청하려는 자세로 일어났는데 그러고 나서 바로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고 전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참석자들과 김씨를 제지하려는 관계자들, 당시 현장에 있던 취재진이 뒤섞이면서 현장은 이내 아수라장이 됐다. 그 사이 김씨는 뒤쪽 테이블에 있던 미 대사관 경호팀과 민화협 관계자들,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 등 참석자들에 의해 제압당해 바닥에 엎드려 있다가 출동한 경찰에 인계됐다. 당시 김씨는 “유인물을 나눠주십시오. 지난 3월 2일에 훈련 반대하면서 만든 유인물입니다. 한일관계 다리가 날아갔어. 왜 전쟁훈련합니까. 전쟁훈련하면 우리나라 통일 영원히 안 됩니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고 목격자들은 말했다. 김씨는 행사장 밖으로 끌려나간 뒤에도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린 채 한동안 저항했다. 경찰 조사를 받던 김씨는 제압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며 병원 치료를 먼저 받겠다고 요구해 이날 오전 11시 11분쯤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 종로경찰서에서 나와 응급차량으로 옮겨지는 와중에 “전쟁훈련 반대한다”, “이산가족이 못만나는 이유가 전쟁훈련 때문이라 그랬다”, “전쟁훈련 중단하자, 키 리졸브…”라고 외치다 “아~ 아파! 아파!”라고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김씨는 검거 직후 종로경찰서로 이송돼 조사를 받았지만 진술을 거부했으며, “경호요원에게 밟혀서 발목 등을 다쳤으니 치료를 받고 변호사가 오면 그때 진술을 하겠다”고 말했다. 병원에 이송된 김씨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로 구급차에서 나와 응급실 안으로 실려 들어갔다. 김기종 대표는 과거 일본 대사에게도 시멘트 덩어리를 던져 처벌을 받았다. 김 대표는 2010년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특별강연회 도중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일본 대사에게 지름 약 10㎝와 7㎝인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진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이후 김 대표는 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시게이에 전 일본 대사를 공격했던 일을 엮은 책인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테러를 미화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일본 대사를 공격했을 때 그를 두둔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중앙방송은 김 씨의 일본 대사 공격 직후인 2010년 7월13일 “일본 대사가 남조선과 일본 사이의 새로운 시대니, 공동번영이니 뭐니 하고 망발하는 데 격분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은 그에게 콘크리트 덩어리를 던졌다”고 보도했다. 김씨는 같은 해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주한 일본 대사 초청 강연회에서 시게이에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 2개를 투척했다. 중앙방송은 남한 네티즌들이 김 씨의 행동을 지지하는 글을 올렸다며 “김기종의 항의 행동은 일본에 대한 분노를 던진 것이라고 하면서 찬양을 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고 강조했다. 대외용 라디오 방송인 평양방송도 2010년 8월 1일 이 사건이 “역사왜곡과 독도강탈 책동을 끈질기게 벌이고 있는 일본 반동들이 당한 너무도 응당한 봉변”이라고 주장했다. 평양방송은 남한 시민단체와 언론이 김씨의 행동을 “윤봉길 열사의 폭탄투척 사건”에 비유하며 “속이 후련해 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김씨가 이 사건으로 기소돼 법정에서 징역 4년을 구형받은 직후인 2010년 8월 24일에는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정부가 그에게 ‘부당한 탄압’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민족끼리는 “(정부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김기종을 구속하고 탄압을 가해오던 끝에 폭거를 감행했다”고 비난했다. 이 매체는 “일본 대사란 자에게 날아든 투석 세례는 민족적 분노의 분출로서 거기에 문제시될 것이란 하나도 없다”고 옹호했다. 김씨는 이외에도 간담회 등 행사에서 소동을 벌여 폭행과 상해 등의 혐의로 여러차례 처벌을 받았다. 김씨는 지난해 2월 13일 오후 서대문구 창천교회에서 열린 신촌 번영회 정기총회 박원순 서울시장 강연회가 끝날 무렵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변모(55)씨의 왼쪽 뺨을 때려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상해 혐의로 기소된 김 대표에 대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김씨는 같은 해 5월에는 일본대사관에 일본 정부의 집단자위권 규탄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다 제지당하자 경찰에게 신발과 계란을 투척해 입건되기도 했다. 2007년 6월에는 명동성당에서 열린 ‘6월항쟁을 기록하다’ 출판기념회에서 “6월 항쟁 기념사업이 분파적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고발한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나눠주려 하다가 제지당하기도 했다.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조각을 던지기 전인 2010년 2월 김씨는 외교기관 인근에서 옥회집회나 시위를 금지한 ‘집시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당시 김씨는 주한 일본대사관 한국어 홈페이지의 ‘일한관계’에서 ‘다케시마 문제’에 대한 삭제요구를 하기 위해 대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려고 했지만 집시법 규정 때문에 집회를 하지 못했다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같은 해 11월 헌재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2006년에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자 김 대표는 동료 6명과 함께 본적을 경북 울릉군 독도리 38번지로 옮긴 바 있다. 김씨는 2000년대 중반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김씨는 2006년 11월부터 2007년 4월까지 정부 승인을 받아 모두 8차례 방북했다. 공안당국은 반일활동에 주력했던 김 대표가 수차례 방북한 이후 반미활동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고 그의 반미활동 내용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새누리당 권은희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김 대표는 헌재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한다는 등의 이유로 해산 결정을 받은 통합진보당이 속해 있던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의 일원”이라면서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연방통추) 등도 국민행동에 포함돼 있다”며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을 지적했다. 권 대변인은 이어 “가장 우려스런 점은 김 대표가 교수라는 직함을 가지고 청년들을 가르쳤다는 사실”이라면서 “김 대표는 1997∼2007년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로 재직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교수 재직과 관련해 성공회대 측은 “김 대표는 ‘전통 예술의 이해’라는 수업 하나만 맡았지만 그만둔 지가 오래돼 정확한 수업 내용은 파악이 어렵다”면서 “외래교수라는 말은 시간강사를 예우하는 차원의 명칭일 뿐 교수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서울 도심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데 관여하기도 했다. 그는 2011년 12월 26일 ‘국가보안법피해자모임’ 회원들이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김 위원장 분향소 설치를 하려다 보수단체 회원들과 충돌·대치하는 과정에서 보수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10여명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 2007년에는 1988년 발생한 ‘우리마당 습격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중 분신을 시도,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기도 했다. 우리마당 사건은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었던 ‘우리마당’ 사무실을 괴한 4명이 습격해 안에 있던 여성을 성폭행하고 달아난 사건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평민당은 이 사건이 군 정보사령부에 의해 저질러진 정치테러라고 폭로했지만 현재까지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 김씨는 2001년부터 3년간, 2005년부터 2년간 두 차례에 걸쳐 민주평통 자문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우리마당 김기종, 후송 도중 “아파! 아파!” 장윤석 국회의원 제압

    우리마당 김기종, 후송 도중 “아파! 아파!” 장윤석 국회의원 제압

    우리먀당 김기종, 우리마당 김기종 대표, 장윤석 국회의원 우리마당 김기종, 후송 도중 “아파! 아파!” 장윤석 국회의원 제압 미국 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55)씨가 5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김기종씨는 이날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 행사장에서 리퍼트 대사가 앉은 중앙 헤드테이블의 오른쪽 뒤쪽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오전 7시 35분쯤 리퍼트 대사가 도착하고 5분여 뒤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조찬이 시작되자 김씨는 갑자기 일어나서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참석자 옆에 A4 용지 크기의 유인물 10장을 내려놓고는 “받으라”고 말했다. 그 후 김 대표가 헤드테이블 쪽으로 이동해 리퍼트 대사를 밀쳐 눕히고 흉기를 수차례 휘두르기까지는 불과 1∼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한 참석자는 “다들 여유롭게 식사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리퍼트 대사가 아침으로 나온 죽 첫술을 뜨자마자 갑자기 공격당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테러범이 옆으로 다가오자 리퍼트 대사가 자신에게 인사하려는 줄 알았는지 악수를 청하려는 자세로 일어났는데 그러고 나서 바로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고 전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참석자들과 김씨를 제지하려는 관계자들, 당시 현장에 있던 취재진이 뒤섞이면서 현장은 이내 아수라장이 됐다. 그 사이 김씨는 뒤쪽 테이블에 있던 미 대사관 경호팀과 민화협 관계자들,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 등 참석자들에 의해 제압당해 바닥에 엎드려 있다가 출동한 경찰에 인계됐다. 장윤석 의원은 2013년 제 21대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 회장으로 활동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당시 김씨는 “유인물을 나눠주십시오. 지난 3월 2일에 훈련 반대하면서 만든 유인물입니다. 한일관계 다리가 날아갔어. 왜 전쟁훈련합니까. 전쟁훈련하면 우리나라 통일 영원히 안 됩니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고 목격자들은 말했다. 김씨는 행사장 밖으로 끌려나간 뒤에도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린 채 한동안 저항했다. 경찰 조사를 받던 김씨는 제압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며 병원 치료를 먼저 받겠다고 요구해 이날 오전 11시 11분쯤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 종로경찰서에서 나와 응급차량으로 옮겨지는 와중에 “전쟁훈련 반대한다”, “이산가족이 못만나는 이유가 전쟁훈련 때문이라 그랬다”, “전쟁훈련 중단하자, 키 리졸브…”라고 외치다 “아~ 아파! 아파!”라고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김씨는 검거 직후 종로경찰서로 이송돼 조사를 받았지만 진술을 거부했으며, “경호요원에게 밟혀서 발목 등을 다쳤으니 치료를 받고 변호사가 오면 그때 진술을 하겠다”고 말했다. 병원에 이송된 김씨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로 구급차에서 나와 응급실 안으로 실려 들어갔다. 김기종 대표는 과거 일본 대사에게도 시멘트 덩어리를 던져 처벌을 받았다. 김 대표는 2010년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특별강연회 도중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일본 대사에게 지름 약 10㎝와 7㎝인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진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이후 김 대표는 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시게이에 전 일본 대사를 공격했던 일을 엮은 책인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테러를 미화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일본 대사를 공격했을 때 그를 두둔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중앙방송은 김 씨의 일본 대사 공격 직후인 2010년 7월13일 “일본 대사가 남조선과 일본 사이의 새로운 시대니, 공동번영이니 뭐니 하고 망발하는 데 격분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은 그에게 콘크리트 덩어리를 던졌다”고 보도했다. 김씨는 같은 해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주한 일본 대사 초청 강연회에서 시게이에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 2개를 투척했다. 중앙방송은 남한 네티즌들이 김 씨의 행동을 지지하는 글을 올렸다며 “김기종의 항의 행동은 일본에 대한 분노를 던진 것이라고 하면서 찬양을 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고 강조했다. 대외용 라디오 방송인 평양방송도 2010년 8월 1일 이 사건이 “역사왜곡과 독도강탈 책동을 끈질기게 벌이고 있는 일본 반동들이 당한 너무도 응당한 봉변”이라고 주장했다. 평양방송은 남한 시민단체와 언론이 김씨의 행동을 “윤봉길 열사의 폭탄투척 사건”에 비유하며 “속이 후련해 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김씨가 이 사건으로 기소돼 법정에서 징역 4년을 구형받은 직후인 2010년 8월 24일에는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정부가 그에게 ‘부당한 탄압’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민족끼리는 “(정부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김기종을 구속하고 탄압을 가해오던 끝에 폭거를 감행했다”고 비난했다. 이 매체는 “일본 대사란 자에게 날아든 투석 세례는 민족적 분노의 분출로서 거기에 문제시될 것이란 하나도 없다”고 옹호했다. 김씨는 이외에도 간담회 등 행사에서 소동을 벌여 폭행과 상해 등의 혐의로 여러차례 처벌을 받았다. 김씨는 지난해 2월 13일 오후 서대문구 창천교회에서 열린 신촌 번영회 정기총회 박원순 서울시장 강연회가 끝날 무렵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변모(55)씨의 왼쪽 뺨을 때려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상해 혐의로 기소된 김 대표에 대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김씨는 같은 해 5월에는 일본대사관에 일본 정부의 집단자위권 규탄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다 제지당하자 경찰에게 신발과 계란을 투척해 입건되기도 했다. 2007년 6월에는 명동성당에서 열린 ‘6월항쟁을 기록하다’ 출판기념회에서 “6월 항쟁 기념사업이 분파적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고발한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나눠주려 하다가 제지당하기도 했다.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조각을 던지기 전인 2010년 2월 김씨는 외교기관 인근에서 옥회집회나 시위를 금지한 ‘집시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당시 김씨는 주한 일본대사관 한국어 홈페이지의 ‘일한관계’에서 ‘다케시마 문제’에 대한 삭제요구를 하기 위해 대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려고 했지만 집시법 규정 때문에 집회를 하지 못했다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같은 해 11월 헌재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2006년에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자 김 대표는 동료 6명과 함께 본적을 경북 울릉군 독도리 38번지로 옮긴 바 있다. 김씨는 2000년대 중반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김씨는 2006년 11월부터 2007년 4월까지 정부 승인을 받아 모두 8차례 방북했다. 공안당국은 반일활동에 주력했던 김 대표가 수차례 방북한 이후 반미활동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고 그의 반미활동 내용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새누리당 권은희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김 대표는 헌재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한다는 등의 이유로 해산 결정을 받은 통합진보당이 속해 있던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의 일원”이라면서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연방통추) 등도 국민행동에 포함돼 있다”며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을 지적했다. 권 대변인은 이어 “가장 우려스런 점은 김 대표가 교수라는 직함을 가지고 청년들을 가르쳤다는 사실”이라면서 “김 대표는 1997∼2007년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로 재직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교수 재직과 관련해 성공회대 측은 “김 대표는 ‘전통 예술의 이해’라는 수업 하나만 맡았지만 그만둔 지가 오래돼 정확한 수업 내용은 파악이 어렵다”면서 “외래교수라는 말은 시간강사를 예우하는 차원의 명칭일 뿐 교수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서울 도심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데 관여하기도 했다. 그는 2011년 12월 26일 ‘국가보안법피해자모임’ 회원들이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김 위원장 분향소 설치를 하려다 보수단체 회원들과 충돌·대치하는 과정에서 보수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10여명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 2007년에는 1988년 발생한 ‘우리마당 습격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중 분신을 시도,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기도 했다. 우리마당 사건은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었던 ‘우리마당’ 사무실을 괴한 4명이 습격해 안에 있던 여성을 성폭행하고 달아난 사건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평민당은 이 사건이 군 정보사령부에 의해 저질러진 정치테러라고 폭로했지만 현재까지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 김씨는 2001년부터 3년간, 2005년부터 2년간 두 차례에 걸쳐 민주평통 자문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아파! 아파!” 고통…제압 장윤석 국회의원 누구?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아파! 아파!” 고통…제압 장윤석 국회의원 누구?

    우리먀당 김기종, 우리마당 김기종 대표, 장윤석 국회의원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 “아파! 아파!” 고통…제압 장윤석 국회의원 누구? 미국 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55)씨가 5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김기종씨는 이날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 행사장에서 리퍼트 대사가 앉은 중앙 헤드테이블의 오른쪽 뒤쪽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오전 7시 35분쯤 리퍼트 대사가 도착하고 5분여 뒤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조찬이 시작되자 김씨는 갑자기 일어나서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참석자 옆에 A4 용지 크기의 유인물 10장을 내려놓고는 “받으라”고 말했다. 그 후 김 대표가 헤드테이블 쪽으로 이동해 리퍼트 대사를 밀쳐 눕히고 흉기를 수차례 휘두르기까지는 불과 1∼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한 참석자는 “다들 여유롭게 식사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리퍼트 대사가 아침으로 나온 죽 첫술을 뜨자마자 갑자기 공격당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테러범이 옆으로 다가오자 리퍼트 대사가 자신에게 인사하려는 줄 알았는지 악수를 청하려는 자세로 일어났는데 그러고 나서 바로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고 전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참석자들과 김씨를 제지하려는 관계자들, 당시 현장에 있던 취재진이 뒤섞이면서 현장은 이내 아수라장이 됐다. 그 사이 김씨는 뒤쪽 테이블에 있던 미 대사관 경호팀과 민화협 관계자들,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 등 참석자들에 의해 제압당해 바닥에 엎드려 있다가 출동한 경찰에 인계됐다. 장윤석 의원은 2013년 제 21대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 회장으로 활동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당시 김씨는 “유인물을 나눠주십시오. 지난 3월 2일에 훈련 반대하면서 만든 유인물입니다. 한일관계 다리가 날아갔어. 왜 전쟁훈련합니까. 전쟁훈련하면 우리나라 통일 영원히 안 됩니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고 목격자들은 말했다. 김씨는 행사장 밖으로 끌려나간 뒤에도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린 채 한동안 저항했다. 경찰 조사를 받던 김씨는 제압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며 병원 치료를 먼저 받겠다고 요구해 이날 오전 11시 11분쯤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 종로경찰서에서 나와 응급차량으로 옮겨지는 와중에 “전쟁훈련 반대한다”, “이산가족이 못만나는 이유가 전쟁훈련 때문이라 그랬다”, “전쟁훈련 중단하자, 키 리졸브…”라고 외치다 “아~ 아파! 아파!”라고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김씨는 검거 직후 종로경찰서로 이송돼 조사를 받았지만 진술을 거부했으며, “경호요원에게 밟혀서 발목 등을 다쳤으니 치료를 받고 변호사가 오면 그때 진술을 하겠다”고 말했다. 병원에 이송된 김씨는 간이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로 구급차에서 나와 응급실 안으로 실려 들어갔다. 김기종 대표는 과거 일본 대사에게도 시멘트 덩어리를 던져 처벌을 받았다. 김 대표는 2010년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특별강연회 도중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일본 대사에게 지름 약 10㎝와 7㎝인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진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이후 김 대표는 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시게이에 전 일본 대사를 공격했던 일을 엮은 책인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테러를 미화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일본 대사를 공격했을 때 그를 두둔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중앙방송은 김 씨의 일본 대사 공격 직후인 2010년 7월13일 “일본 대사가 남조선과 일본 사이의 새로운 시대니, 공동번영이니 뭐니 하고 망발하는 데 격분한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은 그에게 콘크리트 덩어리를 던졌다”고 보도했다. 김씨는 같은 해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주한 일본 대사 초청 강연회에서 시게이에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 2개를 투척했다. 중앙방송은 남한 네티즌들이 김 씨의 행동을 지지하는 글을 올렸다며 “김기종의 항의 행동은 일본에 대한 분노를 던진 것이라고 하면서 찬양을 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고 강조했다. 대외용 라디오 방송인 평양방송도 2010년 8월 1일 이 사건이 “역사왜곡과 독도강탈 책동을 끈질기게 벌이고 있는 일본 반동들이 당한 너무도 응당한 봉변”이라고 주장했다. 평양방송은 남한 시민단체와 언론이 김씨의 행동을 “윤봉길 열사의 폭탄투척 사건”에 비유하며 “속이 후련해 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김씨가 이 사건으로 기소돼 법정에서 징역 4년을 구형받은 직후인 2010년 8월 24일에는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정부가 그에게 ‘부당한 탄압’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민족끼리는 “(정부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김기종을 구속하고 탄압을 가해오던 끝에 폭거를 감행했다”고 비난했다. 이 매체는 “일본 대사란 자에게 날아든 투석 세례는 민족적 분노의 분출로서 거기에 문제시될 것이란 하나도 없다”고 옹호했다. 김씨는 이외에도 간담회 등 행사에서 소동을 벌여 폭행과 상해 등의 혐의로 여러차례 처벌을 받았다. 김씨는 지난해 2월 13일 오후 서대문구 창천교회에서 열린 신촌 번영회 정기총회 박원순 서울시장 강연회가 끝날 무렵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변모(55)씨의 왼쪽 뺨을 때려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상해 혐의로 기소된 김 대표에 대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김씨는 같은 해 5월에는 일본대사관에 일본 정부의 집단자위권 규탄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다 제지당하자 경찰에게 신발과 계란을 투척해 입건되기도 했다. 2007년 6월에는 명동성당에서 열린 ‘6월항쟁을 기록하다’ 출판기념회에서 “6월 항쟁 기념사업이 분파적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고발한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나눠주려 하다가 제지당하기도 했다.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조각을 던지기 전인 2010년 2월 김씨는 외교기관 인근에서 옥회집회나 시위를 금지한 ‘집시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당시 김씨는 주한 일본대사관 한국어 홈페이지의 ‘일한관계’에서 ‘다케시마 문제’에 대한 삭제요구를 하기 위해 대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려고 했지만 집시법 규정 때문에 집회를 하지 못했다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같은 해 11월 헌재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2006년에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자 김 대표는 동료 6명과 함께 본적을 경북 울릉군 독도리 38번지로 옮긴 바 있다. 김씨는 2000년대 중반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김씨는 2006년 11월부터 2007년 4월까지 정부 승인을 받아 모두 8차례 방북했다. 공안당국은 반일활동에 주력했던 김 대표가 수차례 방북한 이후 반미활동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고 그의 반미활동 내용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새누리당 권은희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김 대표는 헌재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한다는 등의 이유로 해산 결정을 받은 통합진보당이 속해 있던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의 일원”이라면서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연방통추) 등도 국민행동에 포함돼 있다”며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을 지적했다. 권 대변인은 이어 “가장 우려스런 점은 김 대표가 교수라는 직함을 가지고 청년들을 가르쳤다는 사실”이라면서 “김 대표는 1997∼2007년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로 재직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교수 재직과 관련해 성공회대 측은 “김 대표는 ‘전통 예술의 이해’라는 수업 하나만 맡았지만 그만둔 지가 오래돼 정확한 수업 내용은 파악이 어렵다”면서 “외래교수라는 말은 시간강사를 예우하는 차원의 명칭일 뿐 교수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서울 도심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데 관여하기도 했다. 그는 2011년 12월 26일 ‘국가보안법피해자모임’ 회원들이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김 위원장 분향소 설치를 하려다 보수단체 회원들과 충돌·대치하는 과정에서 보수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10여명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 2007년에는 1988년 발생한 ‘우리마당 습격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중 분신을 시도,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기도 했다. 우리마당 사건은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었던 ‘우리마당’ 사무실을 괴한 4명이 습격해 안에 있던 여성을 성폭행하고 달아난 사건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평민당은 이 사건이 군 정보사령부에 의해 저질러진 정치테러라고 폭로했지만 현재까지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 김씨는 2001년부터 3년간, 2005년부터 2년간 두 차례에 걸쳐 민주평통 자문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지난해 국회의원 후원금 1인당 평균 1억 6860만원

    지난해 국회의원 후원금 1인당 평균 1억 6860만원

    국회의원들이 지난해 거둬들인 후원금은 1인당 평균 1억 6860만원으로 나타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3일 공개한 ‘2014년도 국회의원 후원금 모금액’ 자료에 따르면 후원회를 두지 않은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299명의 후원금 모금 총액은 504억 1173만원이다. ●출판기념회 철퇴·檢 수사로 모금 줄어 총액은 2013년의 381억 9200만에 비해 32%(122억 1973만원) 증가한 것이다. 전국 단위 지방선거가 있었던 지난해에는 후원금 모금 한도가 평년의 2배인 3억원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후원금 모금 규모는 커졌지만, 실제 모금액은 한도의 3분의2에도 훨씬 못 미쳤다. 지난해 모금액 한도를 채운 의원도 18명에 불과해 2013년의 87명에 비해 5분의1 수준으로 줄었다. 정당별로는 새누리당 11명, 새정치연합 6명, 정의당 1명이다. 이는 지난해 후원금 모집의 편법 창구인 의원들의 출판기념회가 논란이 된 데다, ‘쪼개기 후원금’과 맞물린 입법 로비 의혹에 대해 검찰 수사가 이뤄진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모금액 1위는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를 거쳐 최근 청와대 정무특보에 임명된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으로, 3억 1066만원이었다. 가장 적은 후원금을 거둔 새정치연합 권은희 의원(1705만원)에 비해 18.2배 많은 액수다. 새누리당 김무성,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각각 2억 9900만원(10위)과 2억 7100만원(48위)의 후원금을 거둬 상위권에 올랐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2억 8600만원(37위),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1억 7500만원(127위)이다. 야권 대선후보 중 한 명인 새정치연합 안철수 의원은 평균 수준인 1억 7400만원(133위)의 후원금을 받았다. ●지방선거 전 지역구 지방의원 줄 후원 특히 의원이 해당 지역구에 속한 지방의원 등으로부터 고액 후원금을 받는 사례도 빈번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부분의 후원금이 지방선거가 치러진 지난해 6월 이전에 집중돼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역구 의원에게 고액 후원 형식을 빌려 정치자금을 우회 지원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 의원은 자신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윤장현 광주시장으로부터 500만원을 받았다. 새누리당 이병석·이장우·김을동·심학봉·박성호 의원도 각각 해당 지역구 지방의원으로부터 300만원 이상 고액 후원금을 받았다. 새누리당 윤상현·김태원 의원, 새정치연합 한명숙·이목희·안규백·임내현 의원은 정당인 혹은 정치인으로 직업이 표시된 인사들로부터 50만~500만원의 후원금을 받았다. 지방의원 중 일부는 자영업자로 포장하거나 익명으로 후원하는 경우도 있어 유사 사례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새누리당 강석호 의원은 같은 친이(친이명박)계 출신인 나경원·김영우 의원에게 각각 500만원을, 김무성 대표도 자신의 옛 지역구(부산 남을)를 물려받은 서용교 의원에게 500만원을 기부했다. 새정치연합 한명숙 의원은 문재인 대표에게 500만원을 기부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국회의원 후원금 1위 김재원…비례 하위 박윤옥·이자스민 순

    국회의원 후원금 1위 김재원…비례 하위 박윤옥·이자스민 순

    국회의원 후원금, 이자스민 국회의원 후원금 1위 김재원…비례 하위 박윤옥·이자스민 순 제19대 국회의원들이 지난해 후원회를 통해 모금한 후원금의 합계가 504억 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3일 정치자금법에 따라 공개한 ‘2014년도 국회의원 후원회 후원금 모금액’ 자료에 따르면, 국회의원 299명의 후원금 모금 총액은 504억 1173만원, 1인당 평균 모금액은 1억 6860만원으로 집계됐다. 국회의원 총원 300명 중 후원회를 두지 않은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비례대표) 의원은 모금액 산정 명단에서 제외됐다. 작년 후원금 총액은 재작년인 2013년의 381억 9200만원보다는 122억 1973만원 증가했다. 그러나 지난해가 지역구 국회의원 후원금 모금 한도(평년 1억 5000만원)를 2배인 3억 원으로 늘려주는 3대 선거(대선·총선·지방선거)가 있는 해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증가 폭은 매우 작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1인당 평균 모금액을 보면 선거가 있는 해의 지역구 의원 모금액 한도 3억원의 절반 수준밖에 채우지 못했다. 이는 지난해 각종 이익단체의 후원금 입법 로비 의혹 속에 관련자들과 정치인들이 구속 수사를 받는 등 파문이 불거지면서 정치인들을 자발적으로 후원하려는 심리가 위축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출판기념회 폐지 논란과 정치에 대한 무관심 풍조의 확산도 후원금 모금이 저조했던 데 대한 일부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 모금액 한도를 정확히 채우거나 초과한 의원도 새누리당 11명, 새정치민주연합 6명, 정의당 1명 등 18명에 불과했다. 이 중 지역구는 11명, 비례대표(한도 1억 5000만원)는 7명이었다. 작년엔 모금액 한도를 정량 또는 초과 달성한 의원이 87명에 달한 만큼 올해는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한도를 초과한 지역구 의원 가운데 새누리당 나경원(서울 동작을)·새정치연합 이개호(담양·함평·영광·장성) 의원은 7·30 재·보선 당선자여서 모금액 한도가 1억 5000만 원으로 제한됐다. 한도를 넘게 후원금을 모금한 경우 선관위가 ‘고의성’ 여부를 심사해 의도적이라고 판단하면 고발을 비롯한 법적 제재를 한다. 다만 올해도 초과 모금 대부분이 연말에 후원금이 몰리는 바람에 한도를 넘어선 사례로 나타나 상한선을 넘은 금액만큼만 다음 연도로 이월하면 문제가 없다. 정당별 총액은 새누리당이 약 277억 525만원, 새정치연합이 211억 9782만 원, 옛 통합진보당이 6억 1150만 원, 정의당이 7억 7815만 원, 무소속이 1억 1900만 원을 각각 거둬들였다. 정당별 1인당 평균 모금액은 여당인 새누리당이 1억 7535만 원으로 가장 많았고, 새정치연합 1억 6432만 원, 정의당 1억 5563만 원, 옛 통합진보당 1억 2230만 원, 무소속 5950만 원 순으로 집계됐다. 전체적인 여야 모금액 평균을 보면 비슷한 수준이어서 이른바 ‘여당 쏠림’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모금액 1위에는 3억 1066만 원을 모은 새누리당 김재원(경북 군위·의성·청송) 의원이 올랐고, 꼴찌는 1705만 원을 모금하는 데 그친 새정치연합 권은희(광주 광산을)이었다. 친박(친박근혜) 주류 핵심인 김 의원은 지난해 요직인 원내 수석부대표를 맡아 활약하면서 인지도를 높인 바 있다. 반면 지난해 7·30 재·보선을 통해 원내에 입성한 권 의원은 모금 기간이 짧았던 데다 공천 파동으로 여론이 좋지 못했던 게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새누리당 현역 의원인 이완구 국무총리(충남 부여·청양)는 지난해 한도에서 4000만원가량 못 미치는 2억 6012만원을 모금했다. 새누리당 김무성(부산 영도) 대표는 사실상 한도를 채운 2억 9999만원을 모아 당내 모금액 순위 8위를 차지했고,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부산 사상)는 2억 7198만원을 모금했다. 반면 비례대표 중에서는 박윤옥 새누리당 의원이 3875만원으로 가장 적었고, 다음이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으로 4044만원이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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