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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정 서비스를 한곳에서” 지방합동청사 신설 가속

    “행정 서비스를 한곳에서” 지방합동청사 신설 가속

    ‘정부3.0’ 기조에 따라 공공기관 간 협업을 통한 종합행정 서비스가 강조되는 가운데 행정기관들을 한 곳에 모아 놓은 정부합동청사가 경기 고양시에 새로 문을 열었다. 안전행정부는 17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에서 정부고양지방합동청사 개청식을 열었다고 밝혔다. 개청식에는 지역 주민과 박찬우 안행부 제1차관, 최성 고양시장과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고양지방합동청사는 2012년 3월 첫 삽을 뜬 뒤 지난해 11월까지 총사업비 251억원이 투입돼 지어졌다. 합동청사에는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고양지청, 경인지방통계청 고양사무소, 양주출입국관리사무소 고양출장소,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고양센터 등 기관 4곳과 직원 140여명이 다음 달까지 입주할 예정이다. 민병대 정부청사관리소 기획과장은 “고양지방합동청사는 임금, 노동시간, 산재예방 등 사업장 근로조건과 외국인 귀화, 국적회복 및 체류를 비롯한 외국인 출입국·정책 업무, 그리고 민간인과 공무원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양성평등 교육과 관련한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지방합동청사는 중앙 행정업무를 관장하는 국가의 지방행정기관(특별지방행정기관) 중 같은 지역에 속한 여러 기관을 통합해 만든 정부청사의 한 형태로 현재 고양시 외에도 제주, 광주, 대구, 경남, 강원 춘천시에 들어서 있다. 민 과장은 “외국인을 비롯해 고양시 주민들이 기관별로 흩어져 있는 행정서비스를 한 번에 이용할 수 있다”면서 “고양시 합동청사에 편입되는 국가기관 모두 민간이 소유한 건물에 임차료를 내고 있었기 때문에 향후 국가 예산을 절감하고 기관별 청사 신축계획을 따로 수립할 이유가 없어지면서 추가 건립에 따른 예산 낭비 우려를 불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행부 관계자는 “고양 외에도 올해부터 인천에 정부지방합동청사를 짓기로 했다”면서 “향후 부산과 충남 홍성군, 경북 안동시에도 합동청사가 추가로 개청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데스크 시각] 귀화인 빅토르 안의 잔상/김경운 정책뉴스 부장

    [데스크 시각] 귀화인 빅토르 안의 잔상/김경운 정책뉴스 부장

    2011년 러시아로 귀화한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의 화려한 부활과 한국 쇼트트랙의 비참한 몰락을 두고 말들이 많다. 네티즌들은 안 선수의 귀화 배경에 한국 빙상계의 추잡한 작태가 관련된 것으로 보고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고 있다. 안 선수 스스로는 귀화 이유에 대해 “좋아하는 쇼트트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에둘러 말한다. 그러나 조국을 등지고 낯선 국기를 가슴에 단 채 모국 선수들과 겨뤄야 하는 귀화를 선택했을 때에는 그의 등을 떠다 민 사연이 분명히 따로 있다. 빅토르 안은 조선시대 김충선(1571~1642) 장군을 떠오르게 한다. 장군의 본명은 사야가(沙也加).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일본군 선봉장 가토 기요마사 휘하의 장수로 참전했으나, 부산에 상륙하자마자 조선으로 귀화한 일본인이다. 그는 조총 제조법을 적국이었던 조선에 전하고 화포에 화약 섞는 법을 이순신 장군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빅토르 안이 러시아 쇼트트랙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과 비슷하다. 선조가 “바다 건너온 모래(沙)를 걸러 금(金)을 얻었다”며 기뻐했던 것처럼 안 선수의 귀화를 무심사 통과시키도록 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사야가가 밝힌 귀화의 이유는 “학문과 도덕을 숭상하는 군자의 나라를 짓밟을 수 없어서…” 등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을 것이다. 사야가는 일본 전국시대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처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반대 진영에서 싸우다가 굴복하고 몸을 낮춰 지내야 하는 처지였다. 애써 전공을 세워봐야 소용없고, 싸우다가 하릴없이 죽어야 하는 운명이었다. 안 선수도 결코 러시아가 운동하기 좋은 나라여서 선택한 게 아니라 한국에는 피하고 싶은 고질적인 이유가 존재했기 때문이리라. ‘한국 빙상계의 부조리’는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나면 낱낱이 파헤쳐져야 한다. 네티즌들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안 선수의 귀화를 더 이상 아쉬워하지 말며, 특히 색안경을 끼고 그에게 뭐라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빅토르 안이 러시아에 잘 정착해서 그 나라 빙상계의 우뚝한 발자취를 남기도록 기원하는 게 바람직하다. 마찬가지로 이를 계기로 다문화가족이 빠르게 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귀화 문제도 함께 되돌아보는 성숙함이 요구된다. 국내에 들어와 사는 결혼이민자와 혼인 귀화자는 26만여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결혼 이주여성이 절반 이상인 52.6%나 된다. 한국인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한국인 자식도 낳았는데, 그 나라 국적도 없이 산다는 게 어찌 힘든 일이 아니겠는가. 한국인으로 귀화하려면 3000만원의 재정증명이나 번듯한 직장의 재직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런 조건을 구비해도 국적 취득에 1~2년이 걸리고, 자식이 없으면 이마저도 장담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다만 서류를 심사하는 지역 출입국관리사무소장을 잘 만나면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기도 한다니 이것도 한심스러운 일이다. 어렵사리 국적을 취득해도 안전행정부의 ‘지방자치단체 외국인 주민 현황’에서는 여전히 귀화 한국인을 ‘국내에 90일 이상 거주하는 등록외국인’과 똑같은 신분으로 취급한다. 빅토르 안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우리 주변을 되돌아보자. kkwoon@seoul.co.kr
  • [사설] 서울시 간첩사건 檢 ‘가짜증거’ 진상 밝혀라

    이른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재판에서 검찰이 제출한 증거 자료들이 잇따라 가짜로 드러나고 있다. 주한 중국대사관은 검찰이 전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항소심의 증거라며 제시한 출입국 관련 문서들이 위조된 것이라고 확인했다. 검찰이 제출한 서류는 지난해 10월 국가정보원이 선양 주재 한국 영사관의 협조로 허룽시 공안국으로부터 입수했다는 유씨의 출입국기록 등 3건이었다. 1심 재판에서도 검찰은 북한에서 촬영된 것이라며 증거 사진들을 제출했지만 중국 옌지에서 찍은 것으로 밝혀졌다. 유씨가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나자 항소한 검찰이 추가 증거로 제시한 것이 이번에 위조로 판명된 문서들이라고 한다. 믿고 싶지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사건에는 우리나라의 중추 수사 기관인 검찰과 국정원이 모두 개입되어 있다. 검찰은 중국 영사관이 보낸 회신에 문서가 위조됐다고 판단한 근거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없다는 이유로 아직은 위조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피해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서가 위조됐다는 사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입수당사자인 국정원에 책임을 떠넘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정원이 가짜 문서를 검찰에 넘기는 것은 정상적인 국가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가짜 문서를 재판부에 제출한 검찰의 잘못 또한 그보다 크면 컸지 결코 작지 않다. 더구나 검찰이 조작 문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이번 사건을 밝혀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무고·날조죄를 적용해야 할 국기문란이다. 최근 권위주의시대에 자행된 부실한 수사와 사법 판단이 바로잡히는 판결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검찰과 국정원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이, 새로운 피해자를 만들어 내고 있다면 예사로 봐 넘길 일이 아니다. 공안관련 수사가 믿음을 주지 못하면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같은 수사도 불신을 초래할 수밖에 없음을 검찰은 알아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은 중국과의 외교분쟁으로까지 번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검찰은 하루빨리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바로잡을 것이 있으면 바로잡아야 한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몸소 실천하기 바란다.
  • 이집트서 폭탄테러… 한국인 최소 3명 사망

    이집트서 폭탄테러… 한국인 최소 3명 사망

    이집트 시나이반도의 이스라엘 진입 타바 국경에서 16일 차량 폭탄테러가 발생해 현지 여행 중이던 한국인 3명이 숨졌다. 부상자 중에는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AFP 등에 따르면 이집트 현지 보안당국은 이날 이집트 시나이반도 이스라엘 국경 인근에서 버스를 겨냥한 차량 폭탄테러가 발생해 한국인 3명을 비롯해 이집트 버스기사 1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들 부상자는 인근 샤름 엘 셰이크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정부는 “현재까지 한국인 3명이 사망하고 21명이 부상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해 사상자 규모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한편 아직까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힌 단체가 나타나지 않아 한국인을 겨냥한 테러인지는 분명치 않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이날 버스에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는 이집트의 시나이산 등 성지순례에 나선 충북 진천의 중앙교회 김동환 목사 등 31명을 포함해 최소 34명이 탑승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 목사 등은 지난 10일 교회 창립 60주년을 기념해 터키, 이집트, 이스라엘 3개국으로 성지순례를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성지순례는 10박 11일로 오는 20일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폭탄은 이들이 이집트 국경에서 출입국 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차량 앞쪽에서 터졌다. 폭탄테러를 당한 이광표 장로는 서울신문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경에서 버스가 선 상태에서 폭탄이 터지는 사고를 당했고 너무 경황이 없어 이집트 어딘지조차 모르는 상황”이라면서 “현재 통역이 안 돼 곤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집트의 한 여행사 관계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현지 이집트 여행사가 시나이반도 관광을 주선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번 폭탄테러가 발생한 지역은 시나이반도 동북부의 관광지인 타바 인근으로 이스라엘 국경에서 가까운 곳이다. 현지 보안 관계자들은 무장 세력이 버스를 겨냥해 폭탄 공격을 가했거나 도로에 폭탄을 매설해 터뜨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사고 버스 내부에 폭탄이 설치돼 있었으며 이스라엘 관광객도 탑승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 정부는 이날 사고 직후 ‘한국인 사망 이집트 폭탄테러’ 대책반을 구성하고 긴급히 움직이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현지 대사관을 통해 이집트 당국과 함께 테러 상황을 파악 중이며 한국인 사망자들이 다수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현지 영사와 본부직원 등 3명을 테러 현장인 국경지대의 타바시에 급파했다. 정부 관계자는 “성지순례에 나선 우리 국민들이 탄 버스가 피해를 입었다”면서도 이번 테러가 한국인을 겨냥했을 가능성에 대해 “현재는 예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염전노예’ 20명 추가 확인… 10년간 임금 한푼 못 받아

    염전 근로자 상당수가 업주에게 폭행과 감금을 당하는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전남지방경찰청은 16일 근로자를 감금하고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은 염전 업자 H(46)씨를 감금 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H씨는 경찰, 고용노동지청, 신안군의 합동실태조사가 이뤄진 지난 13일 이를 미리 알고 신안군 신의도 자신의 염전에서 일하고 있던 30~50대 염부 3명을 옆집에 4일 동안 감금했다가 적발됐다. H씨는 6개월~1년 전 이들을 고용해 지금까지 임금을 한푼도 주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H씨에 대해 감금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목포경찰서는 이와 별도로 이날부터 노동청 등과 합동으로 그동안 심층 면담한 170여명을 500여명으로 확대해 불법 감금과 임금 착취 등에 대한 추가 조사에 나섰다. 경찰은 염전이 집중된 신의도, 증도, 비금도 등지보다는 인적과 왕래가 덜한 소규모 섬의 염전에서 이 같은 불법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조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은 이달 말까지 해당 염전과 염부 등을 상대로 ▲근로자들이 염전에 오게 된 과정과 무허가 직업소개소의 역할 ▲가출, 실종신고인 소재 여부 ▲임금 체불과 고용주의 폭행 감금 등 학대 여부 ▲장애인 근로자에 대한 정부보조금 착복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살피기로 했다. 합동점검반이 최근 일주일간 신의도, 증도, 비금도 등지의 염전 근로자 170여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임금 체불을 겪은 근로자는 모두 20명으로 이 중 3명은 장애인이고 1명은 10년간 임금을 받지 못한 것을 확인됐다. 목포고용노동청은 이 가운데 2003년부터 신의도의 한 염전에서 일하면서 월급을 받지 못한 하모(54)씨에게 법으로 규정된 3년간 급여 3600여만원을 지급하도록 업주 장모(57)씨에게 명령했다. 장애인에게 월급을 주지 않고 일을 시킨 염전 업주 진모(59)씨는 준사기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진씨는 2012년 10월부터 최근까지 장애인 이모(62·정신지체 3급)씨를 고용해 염전 일을 시키며 외출할 때 용돈만 지급하고 1500만원 상당의 월급을 주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중국 조선족인 불법 체류자 1명을 적발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넘겼고 장애인 등이 포함된 가출인 3명을 찾아 가족에게 인계했으며 벌금 미납 등으로 수배된 18명을 적발했다. 목포경찰서 이민홍 강력계장은 “대부분의 염전 근로자들이 직업소개소나 지인 등을 통해 염전에 취업하고 있으나 이 가운데 판단력이 부족한 정신지체자, 수배자 등 업주와 ‘갑을 관계’에 있는 일부가 업주의 횡포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며 “상시적 폭행과 감금, 임금 착취 등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민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기록 위조 드러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34)씨의 항소심 재판과정에서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 자료가 위조된 것이라는 조회 결과가 나왔다. 14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 따르면 검찰이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유씨의 북한 ‘출입경기록 조회결과’는 위조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서울고법 형사7부는 지난해 12월 23일 민변의 요청을 받아들여 중국 영사관에 검찰이 제출한 출입경기록의 진위를 확인해 달라는 사실조회를 보냈다. 중국 영사관은 13일 사실조회요청에 대해 “검사 측에서 제출한 화룡시 공안국의 출입경기록 조회결과는 모두 위조된 것”이라고 회신했다. 중국 영사관은 검찰이 출입경 기록을 정상적인 루트로 발급받았다며 제출한 확인서도 위조됐다고 확인했다. 또 “한국 검찰 측이 제출한 위조 공문은 중국 기관의 공문과 도장을 위조한 형사범죄에 해당한다”며 “중국은 이에 대해 법에 따라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영사관은 이어 “범죄 피의자에 대한 형사책임을 규명할 것”이라며 “위조 문서의 상세한 출처를 제공해 달라”고 협조 요청을 했다. 중국영사관은 반면 변호인단이 제출한 유씨의 출입경 기록은 합법적으로 발급된 서류라고 확인했다. 검찰이 유씨가 간첩 행위를 했다는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제출한 핵심 증거들이 모두 위조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향후 공소 유지에 비상이 걸렸다. 법원은 이와 관련해 “영사관에서 보낸 팩스가 법원에 도착한 것은 맞지만 아직 정식으로 증거조사 절차가 이뤄지지 않아 내용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해 항소심 재판 도중 유씨가 북한에 드나들었다는 증거로 중국 화룡시 공안국이 발급한 출입국기록을 제출했다. 검찰이 제출한 기록에는 유씨가 2006년 5월 27일 오전 11시 16분 쯤 북한으로 들어갔고 그해 6월 10일 중국으로 나온 것으로 돼 있다. 이는 어머니 장례를 치르려고 북한에 간 적은 있지만 2006년 5월27일 이후 다시 북한에 간 적이 없다는 유씨 주장은 물론 변호인단이 제출한 출입경 기록과도 배치됐다. 검찰이 출입경 기록의 위조 사실을 알고도 이를 재판부에 증거로 냈을 경우 당사자에 대한 처벌 가능성도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외국의 공문서는 공문서 위조죄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사문서 위조에는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특히 민변은 이번 사안이 국가보안법 사건이어서 검찰이 위조된 사실을 알고도 증거로 냈다면 국가보안법위반상 무고·날조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국가보안법 12조 1항은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 처벌을 받게 할 목적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죄에 대해 무고 또는 위증을 하거나 증거를 날조·인멸·은닉한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변은 지난달 7일 검찰이 조작된 증거를 제출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해당 혐의로 ‘성명불상자’를 경찰청에 고소한 바 있다. 민변은 “검찰이 제출한 서류는 화룡시 공안국에서 발급한 것으로 돼 있지만 이곳은 출입경 기록을 발급할 권한이 없는 곳”이라며 “검찰이 위조된 공문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민변은 특히 “1심 때부터 유씨의 출입경 기록을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계속 거부하다가 무죄 선고가 나자 곧바로 기록을 제출했다”며 “검찰이 기소 당시 해당 기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유리한 증거만 선별적으로 제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서울중앙지검 측은 “현재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씨는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간첩 활동을 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간첩 혐의는 무죄,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법과 여권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판단 받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유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확히 어떻게 된 것인지 진실이 규명됐으면 좋겠고 이렇게 조작된 간첩 사건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주민번호 대체할 모든 수단 연구”

    정부가 주민등록번호 유출로 인한 피해 방지를 위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13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카드사 개인정보 대량유출 관련 국정조사에 참석한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은 “오는 8월부터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법적 근거 없이 주민번호를 수집 및 활용하는 것이 금지된다”며 “온라인에서 1400만명 이상 발급받은 아이핀을 오프라인에서도 사용 가능하도록 하는 것을 포함해 주민증 발급 번호, 휴대전화 인증, 공인인증서 등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행 주민등록법에 따르면 정보 유출에 따른 피해를 막으려고 주민번호를 바꿀 수는 없다.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개인정보 유출 등이 생기면 주민번호를 변경할 수 있고, 생년월일·성별·출생지 등 고유한 개인정보가 아니라 난수표와 같은 임의적인 숫자로 번호를 부여하는 주민등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임의 숫자로 주민번호를 바꾸는 대상은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 신생아부터 시작해 점진적으로 늘려 행정 비용 및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 개정안의 목표다. 지난 10년간 24만명이 생년월일이 바뀌었거나 행정착오로 번호에 오류가 있는 경우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했다. 정부는 주민등록번호의 전면적인 개편에 대해서는 “주민등록번호는 국가 발전의 정보 인프라로 전 국민의 주민번호를 모두 바꾸는 것을 배제하진 않지만, 경제·사회적 비용과 국민의 불편을 고려해 중·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항”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민번호를 임의적인 숫자로 바꾸면 생년월일, 성별과 같은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는 장점이 있다”며 “현재 정부가 금융실명제를 이유로 금융기관의 개인정보 수집을 용인하고 있는데, 주민번호 이외의 방법으로 개인을 식별하면 된다”고 말했다. 임의 숫자로 된 주민번호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란 주장도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임의 번호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각 기관의 데이터베이스(DB)가 그 임의번호를 공유한다면 주민번호와 다를 게 없다. 공공기관별로 업무에 따라 출입국 관리에는 여권번호, 교통관리 업무는 운전면허번호를 사용하는 식으로 돼야지 주민번호처럼 일률적인 개인식별 번호가 사용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신훈민 변호사는 “전 세계로 유출돼 양쯔강에 사는 노인들도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현행 주민등록번호를 기반으로 국가 행정을 운영하는 것이 주민번호 도입 목적인 국가 안보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정부는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에 따라 18개 중앙행정기관과 6개 시·도에서 6000여명이 사용하는 공무원증의 현금카드와 전자화폐 기능을 삭제하기로 했다. 또 안행부와 각 시·군·구에서 관리하고 있는 전 국민의 주민등록번호 DB도 올해 안에 암호화할 예정이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개성공단 RFID시스템으로 출입심사

    개성공단 RFID시스템으로 출입심사

    개성공단 전자출입체계(RFID) 시스템이 28일 본격적인 시범 가동에 들어간 가운데 북측 출입국사무소(CIQ)에서 북측 관계자(왼쪽)가 전자출입 시스템을 이용해 출입심사를 하고 있다. 개성 사진공동취재단
  • 서강대, 외국인 유학생 유치관리역량 인증대학 계속 선정

    서강대, 외국인 유학생 유치관리역량 인증대학 계속 선정

    서강대학교가 외국인 유학생 유치관리역량 인증대학에 선정되어 정부의 외국인유학생 관련 정책에서 행·재정적 혜택을 받게 된다. 이를 통해 서강대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다양한 외국인 유학생 유치 관리 제도들은 해외 학생들을 통해 공개된다. 교육부 및 한국연구재단은 지난 연말 2013년 외국인 유학생 유치관리역량 인증대학을 발표했다. 외국인 유학생 유치관리역량 인증대학으로 신규 선정된 대학은 2014년 3월부터 2017년 2월까지 총 3년에 걸쳐 인증결과를 공개해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 유학을 결정하는 데 공신력 있는 자료로 사용된다. 서강대학교의 경우, 2012년 인증시범대학 선정에 이어 2013년부터 인증대학으로 선정되었으며, 2014년에도 인증대학 심사 요건을 충족하여 향후 추가로 2년 동안 인증대학으로서의 위상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를 통해 서강대학교는 여타 국내 대학과는 차별화된 서강대학교만의 국제화 추진을 목표로 확고한 국제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외국인 유치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추진할 수 있는 기본 바탕에 대한 인증을 인정받았다는 데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서강대학교는 외국인 입학생의 입학성적 및 기타 제출 서류들을 기초로 우수 학생을 선발해 최대 등록금 전액과 월 생활보조금의 혜택을 받아볼 수 있는 우수인재 장학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또한 2012년 국내 대학 중에서는 최초로 국제한국학과를 설립해 한국 학생들의 세계진출과 외국학생 유치를 함께 도모하는 적극적인 국제화 전략을 추진해 왔다. 외국인 유학생만을 위한 체계적인 학사관리 시스템을 운영하여 글쓰기 센터 튜터링, 글로벌 튜터링, 진로지도교수 배정 등 제도를 통한 매칭 시스템으로 효율적인 학업진행을 돕도록 한 점은 서강대학교만의 특별한 외국인 유학생 유치전략으로 손꼽힌다. 더불어 상담센터에 전담부서인 국제팀 국제지원파트를 마련해 외국학생의 출입국 관리와 생활, 학사까지 지원하고 있으며, 문화 체험과 인턴쉽 및 취업정보 제공을 통해 현지 적응을 다양한 방면에서 돕고 있다. 서강대학교는 다른 어떤 대학보다 외국인 유학생들의 졸업 이후의 진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외국인 유학생에게 개별 메일 발송을 통해 맞춤형 채용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외국인 학생 대상 기업체 채용설명회 및 면담유치 등의 활동을 통해 원활한 사회진출을 돕고 있다. 서강대학교 측은 “기존의 미국과 유럽 학생 유치라는 틀을 벗어나 동아시아권 우수한 인재들까지 유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선발 방식과 어학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며 “한국어교육원 어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명회 및 상담 등을 실시해 우수한 외국인 인재들을 조기 확보하는 것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외국인 유학생 유치관리역량 인증제’는 전국 대학의 유학생 유치와 관리능력 및 역량을 평가하고, 해당 지표를 충족하는 대학을 인증하는 제도이다. 외국인 유학생의 성공적인 유학생활을 돕고 유학생 관리의 모범적 기준을 제시한다는 뜻에서 2012년 마련된 이 제도는 다양한 혜택 또한 지원하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 유치관리역량 인증 대학으로 선정된 대학교의 외국인 유학생은 입국 시 출입국심사 완화, GKS 사업 대상자 선정 시 가점우대 등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서강대학교 홈페이지(www.sogang.ac.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일반인 출신 행정사 시험 합격자 2人이 말하는 공부 비결

    일반인 출신 행정사 시험 합격자 2人이 말하는 공부 비결

    ‘행정사’란 다른 사람으로부터 위임을 받아 행정기관에 제출하는 서류를 작성·번역하거나 행정기관에 인·허가 및 면허 등을 대신 청구하는 사람을 말한다. 행정사 자격시험은 그동안 공무원 경력이 있는 사람들만 볼 수 있었지만 지난해부터는 일반인들도 응시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시험을 통해 총 296명(일반 행정사 269명, 외국 행정사 24명, 기술 행정사 3명)이 새로 행정사로 뽑혔다. 이 중 남성 합격자 수는 237명으로 전체의 80.1%를 차지했다. 반면 여성 합격자는 59명(19.9%)에 그쳤다. 합격자 연령대를 살펴보면 40대가 117명(39.5%)으로 가장 많았다. 20대 합격자 수는 27명(9.1%)으로 60대(1명·0.3%) 다음으로 최저였다. 이처럼 수치상으로만 보면 여성 합격자와 20대 합격자의 비중은 작다. 하지만 일반 행정사 분야에서 최고 점수를 받은 주인공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또 행정사 시험은 노후 대비용 시험으로 인식돼 40대 이상 중·장년층 응시자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 청년층이 합격자 명단에 발자취를 남겼다. 숫자만 적을 뿐 뚜렷한 존재감을 보인 두 그룹인 ‘여성’과 ‘20대’를 대표하는 새내기 행정사들을 만나봤다. “지난해 2월 중순쯤 인터넷을 하다가 행정사법이 개정돼 행정사 자격 취득 기회가 일반인들에게도 주어졌다는 글을 우연히 봤어요. 비록 직장을 다니고 있었지만, 첫 시험이기도 하고 국가공인 자격을 받아놓으면 퇴직 후에도 일을 할 수 있어서 남편과 상의한 끝에 시험에 도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일반 행정사 분야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한 이명지(44·여)씨는 시험 응시 여부를 놓고 고민한 끝에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행정 업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자연스럽게 행정사의 역할도 중요해질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행정기관에 대한 인·허가 대리 업무 외에도 행정심판 청구, 외국인 근로자 및 다문화 가정 증가에 따른 출입국 관리 업무, 국가유공자 등록 등 여러 분야에서 자신만의 특화된 업무 영역을 수행할 수 있는 직업이 행정사”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공인중개사 시험 과목이자 행정사 제1차 시험 과목이기도 한 ‘민법’ 학습은 어느 정도 이뤄진 상태였다. ‘행정법’ 과목도 대학 시절 행정법을 공부했던 경험이 있어 낯설지 않았다. 문제는 ‘행정학개론’ 과목이었다. 행정학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막막했던 이씨는 그동안 공무원 시험 행정학 과목에서 출제된 문제를 하나씩 풀면서 난관을 극복했다. 행정학은 5·7급 행정직 공무원 일부 직렬 대상 시험 과목으로 포함돼 있다. 9급 공무원 시험에서는 행정학개론 과목이 일부 직렬의 선택 과목으로 들어 있다. 물론 민법, 행정법도 소홀히 다룰 수는 없었다. 행정사 1차 시험은 지난해 6월에 시행됐다. 짧은 시간 동안 효율적인 학습이 필요했다. 이씨는 “민법과 행정법도 마찬가지로 기출문제 중심으로 정리했다”면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문제는 기본서를 발췌독하면서 보완해 나갔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특히 행정법을 공부할 때에는 제2차 시험 과목인 ‘행정절차론’(행정절차법 포함)과 ‘행정사실무법’(행정심판사례, 비송사건절차법)에서 다루는 내용까지 염두에 뒀다”면서 “1차 시험 준비 단계부터 행정법 판례와 관련 학설을 미리 챙겼던 것이 나중에 2차 시험을 볼 때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배지은(28·여)씨는 학창 시절 법학을 공부한 적이 없었다. 때문에 1차 시험 준비 과정은 그야말로 반복 학습의 연속이었다. 민법은 먼저 기초를 다지기 위해 민법책을 구입해 독학했다. 그런데 민법책 정독이 이론 공부에는 도움이 됐지만 정작 문제를 푸는 데에는 효과적이지 못했다. 문제 풀이 시간을 단축하는 일이 필요했다. 1차 시험은 1시간 안에 세 과목에 걸쳐 출제된 60문항(각 과목당 20문항)을 모두 풀어야 한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이에 배씨는 “최근 주택관리사 자격시험에서 등장한 민법 기출문제를 통해 문제 풀이 연습을 반복했다”면서 “민법 핵심 내용을 요약·정리하고 이를 문제를 풀 때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설명해주는 동영상 강의를 활용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행정법도 7·9급 공무원 시험 기출문제를 바탕으로 감을 익혔다. 배씨는 “특히 행정법은 전략 과목인 만큼 회사 출퇴근 시간, 학원 이동 시간을 틈틈이 이용해 동영상 강의를 노래처럼 들으면서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행정학개론 역시 9급 공무원 시험 기출문제가 유용한 학습자료였다. 그런데 행정사의 행정학개론은 공무원 시험의 그것과 출제 경향이 달랐다. 배씨는 “공무원 시험 행정학이 일반적인 이론 중심이라면 행정사 시험 행정학은 지방자치 행정과 정부 조직 등과 관련한 내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배씨는 원래 승무원이 꿈이었다. 하지만 최종 면접에서 고배를 마시는 일이 많았다. 거듭된 노력에도 불구하고 승무원이 되지 못하자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는 결과를 얻고 싶다’는 생각에 직장에 들어간 뒤에도 자격증을 취득하기로 결심했다. 여러 자격시험을 검색한 끝에 행정사를 최종 선택했다. 그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픈 마음이 가장 컸다”면서 “사람들이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는 법률 전문가로서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일이 눈길을 끌었다”고 말했다. 이씨와 마찬가지로 배씨 역시 행정사 시장이 개척할 수 있는 분야가 많은 점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배씨는 “공법(公法) 분야 범위가 점점 넓어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행정사를 하면서 새로운 업무를 앞으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앞으로 저와 같은 청년층이 행정사 시장에 많이 진출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레즈비언 난민, 공개구혼에 추방 위기

    여성 동성애자(레즈비언)라는 이유로 국내에서 처음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우간다 여성이 항소심에서 지는 바람에 출국당할 위기에 놓였다. 서울고법 행정4부(부장 성기문)는 우간다 여성 A(28)씨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난민 불인정 처분 취소소송의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고 20일 밝혔다. A씨는 2011년 2월 한국에 입국해 그해 4월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난민 신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냈다. A씨는 자신이 동성애자이고 우간다 정부가 법률로 동성애자를 탄압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자신 때문에 화재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1심은 “A씨의 공포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며 A씨를 난민으로 인정했다. 이는 레즈비언이라는 성 정체성을 사유로 난민 인정을 받은 첫 사례였다. 하지만 항소심에서는 A씨에게 불리한 증거가 나왔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측은 A씨가 과거 독신자 간의 만남을 주선하는 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공개 구혼했고, 실제 여러 남성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은 기록을 증거로 제출했다. A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이성애자 행세를 했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A씨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 A씨가 우간다에 돌아갈 경우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박해를 받을 것이라는 점도 충분히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인사]

    ■법무부 ◇서기관 승진△출입국기획과 박상욱△외국인정책과 천승우△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장 강성환△제주도청 파견 최고◇서기관 전보△출입국기획과장 김종민△체류관리과장 김영근△외국인정책과장 이규홍△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 지원국장 김원숙△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 심사국장 장영채△서울남부출입국관리사무소장 장지표△김해출입국관리사무소장 김진영△제주출입국관리사무소장(주LA총영사관 주재관 부임일 전까지) 김현채△제주출입국관리사무소장(주재관 귀임일부터) 배상업 ■안전행정부 △소청심사위원회 상임위원 감종훈 ■농림축산식품부 ◇고위공무원 신규채용△감사관 마광열◇국장급 승진△농림축산검역본부 식물검역부장 노수현 ■해양수산부 ◇국립해양조사원△수로측량과장 최신호△해도수로과장 진준호△남해해양조사사무소장 신명식◇인천지방해양항만청△항만물류과장 이수원 ■국회사무처 ◇차관보급 <수석전문위원>△운영위원회 구기성△정무위원회 진정구△국방위원회 성석호 ■법제처 △자치법제지원과장 박영욱◇과장급 승진△법령입안지원과장 방미경 ■국세청 ◇고위공무원 승진△개인납세국장 신수원△서울지방국세청 징세법무국장 김용준△중부지방국세청 조사1국장 김현준△부산지방국세청 조사1국장 강민수△국세청 이은항(국방대) 최정욱(중앙공무원교육원)◇과장급 전보△운영지원과장 안홍기 ■근로복지공단 ◇신규 임용△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위원회 상임위원 윤창섭 ■동덕여대 △대학원장(특수대학원장 겸임) 장도석△교양교직학부장 여영서△인문과학연구소장 김명숙 ■산업은행 ◇본부장△IT 양우정△프로젝트금융 김영식◇지역본부장△강남 권영민△부산경남 박형규△충청 이명재△호남 지광남◇부서장△기업금융1부 배영섭△기업금융2부 백운기△기업금융3부 홍태주△기업금융4부 이영제△기업금융5부 김홍태△개인금융부 안종호△KDB다이렉트부 이은우△발행시장부 양기호△인수합병부 김석균△벤처금융부 조승현△기업구조조정부 정용석△국제금융부 이재호△자금거래부 천호영△트레이딩부 윤재근△심사1부 김병호△심사2부 한장수△여신감리부 강태구△법무실 박상진△금융전산실 황수범△e-뱅킹전산실 채낙균△프로젝트금융1부 전태홍△프로젝트금융2부 강지호△지역개발부 박근진△사모펀드1부 김승기△비서실 김건열△종합기획부 전영삼△인사부 임맹호△업무지원부 송흠래△홍보실 성주영△여수신기획부 이정은△검사부 최종복◇지점장△강남 유병철△대치 박금영△도곡 한관희△서초 장병돈△노원 이상철△서소문 김재곤△신문로 김정우△영업부 박석△종로 강한호△중계 안영룡△충정로 이창호△김포 김형년△부천 정성익△부평 김규수△일산 이규식△분당 정경훈△수원 이기노△용인 최돈협△원주 이필중△판교 김동현△평택 윤도△화성 권학주△김해 박정열△부산 김부신△해운대 권정학△경산 박종범△구미 정헌철△대구 김성수△성서 김희국△청주 성낙범△군산 이용호△목포 유병록△여수 선동철△런던 김창균△싱가포르 김종선△선양 서문달△모스크바 김정민△아일랜드 김민병 ■한국신용평가 ◇이사 승진△기업·그룹평가본부장 문창호 ■한국기업평가 ◇승진 <본부장>△BD 최경식△기업 마재열<실장>△평가1 배영찬△평가3 김광수△FI2 박광식△SF1 김종각◇전보 <전무>△신용평가 총괄 최강수<실장>△평가기준 정원현△신사업 조형곤△경영기획 임형섭<전문위원>△평가기준실 송태준 양승용
  • 다카르랠리 바이크선수, 여권 분실로 중도하차

    다카르랠리 바이크선수, 여권 분실로 중도하차

    죽음의 레이스로 불리는 다카르랠리에 참가한 선수가 어이없는 신분증 분실사고 때문에 결국 탈락했다. 바이크 부문에 출전한 콜롬비아의 선수 알레한드로 오요스가 서류를 분실하는 바람에 대회를 중도에 포기했다고 현지 언론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4500km에 달하는 아르헨티나 6개 구간을 성공적으로 달린 오요스는 이날 국경을 넘다가 대회에서 중도 하차했다.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볼리비아로 넘어가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국경 출입국관리소에서 발목이 잡혔다. 아르헨티나 출입국관리소가 여권을 요구했지만 아무리 찾아도 여권이 보이지 않았던 것. 뒤늦게 여권을 분실을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선처(?)를 호소했지만 여권이 없으면 국경을 넘을 수 없다는 출입국관리소 측의 입장은 완강했다. 볼리비아 측도 “여권 없으면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오요스의 입국을 거부했다. 오요수는 눈물을 머금고 경기에서 중도 하차했다. 올해 다카르랠리에 처음 출전한 그는 난코스에 적응하면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던 참이었다. 그는 6코스를 종합순위 76위로 마치면서 바이크부문 다크호스로 부상했었다. 오요스는 로사리오에서 출발하기 전 “(첫 출전이라 순위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반드시 완주하겠다.”고 각오을 다졌었다. 사진=인포바에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유승준 심경, 김희철 한마디에 장문의 글 ‘무슨 말 했길래..’

    유승준 심경, 김희철 한마디에 장문의 글 ‘무슨 말 했길래..’

    유승준 심경이 전해졌다. 가수 겸 배우 유승준이 김희철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로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유승준은 11일 자신의 웨이보에 “희철아. 그날 기억나는구나. 그날 너희들이 형한테 인사하겠다고 멤버들까지 모두 형 대기실에 찾아와서 너하고 동이하고 형 노래하고 안무하고 그랬잖아. 그래서 형이 그랬지. 선배 잘 챙겨줘서 너무 고맙다고. 진심이었단다”라는 글을 썼다. 이어 유승준은 “그리고 언젠가 꼭 돌아가겠다고. 그날 비도 만났지. 열심히 하고 있어서 너무 좋다고. 너는 형의 꿈을 살고 있다고. 모두 진심이었어. 대견하고 또 너무 뿌듯했단다”라고 밝혔다. 앞서 김희철은 9일 방송된 JTBC ‘썰전’에서 “슈퍼주니어가 해외에서 활동할 때 유승준 씨를 만난 적이 있었다. 대선배를 만난 반가운 마음에 유승준 씨 ‘가위춤’도 추며 즐겁게 놀았다. 유승준 씨가 갑자기 ‘한국 가고 싶다’고 눈물을 흘리더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유승준은 “형은 한국을 생각하면 맘이 그냥 그렇게 뜨거워진단다. 너희들을 봐도 그렇고~ 그래서 눈시울이 젖었을 거야. 형이 눈물이 많거든. 하지만 형은 한 번도 그 누구에게 또 누구 앞에서 한국 가고 싶다고 울어본 적 없구나”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유승준은 “한국을 그리워하고 사랑한다는 감정이 한국 가고 싶어서 우는 것처럼 비췄나 보구나. 너도 그런 의도로 말하지 않았겠지. 형이 한국 컴백이니 활동 계획이니 아무것도 모르는데 자꾸 그런 기사들이 나오는 것처럼”이라며 김희철을 두둔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형은 한국 컴백 미련 없단다. 계획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다만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 땅을 밟지 못한다는 현실이 가장 가슴 아프단다. 누가 뭐래도 형은 계속 한국을 사랑하고 그리워할 거란다. 그 마음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거야”라는 심경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한편 유승준은 2002년 병역기피 후 출입국관리법 11조 3항에 의거 입국금지당한 상태다. 사진 = 방송 캡처 (유승준 심경)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유승준 “한국 컴백 미련 없다”…슈주 김희철에게 편지

    유승준 “한국 컴백 미련 없다”…슈주 김희철에게 편지

    최근 한국 복귀설이 나돌았던 가수 유승준(38)이 “컴백에 대한 미련이 없다”고 밝혔다. 유승준은 지난 11일 자신의 웨이보를 통해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김희철에게 메시지를 남기면서 한국 복귀 계획 등에 대해 털어놨다. 이틀 전 김희철이 JTBC ‘썰전’에서 “유승준이 한국에 가고 싶다며 울더라”라고 말한 것에 대한 답변이었다. 유승준은 편지 형식의 메시지에 “희철아. 그날 기억나는구나. 그날 너희들이 형한테 인사하겠다고 멤버들까지 모두 형 대기실에 찾아와서 너하고 동이하고 형 노래하고 안무하고 그랬잖아. 그래서 형이 그랬지. 선배 잘 챙겨줘서 너무 고맙다고. 진심이었단다”라고 적었다. 이어 “그리고 언젠가 꼭 돌아가겠다고. 그날 비도 만났지. 열심히 하고 있어서 너무 좋다고. 너는 형의 꿈을 살고 있다고. 모두 진심이었어. 대견하고 또 너무 뿌듯했단다”고 밝혔다. 유승준은 “형은 한국을 생각하면 맘이 그렇게 뜨거워진단다. 너희들을 봐도 그렇고. 그래서 눈시울이 젖었을 거야. 형이 눈물이 많거든. 하지만 형은 한번도 그 누구에게 또 누구 앞에서 한국 가고 싶다고 울어본 적이 없구나. 한국을 그리워하고 사랑한다는 감정이 한국가고 싶어서 우는 것처럼 비춰졌나보구나. 너도 그런 의도로 말하지 않았겠지. 형이 한국 컴백이니 활동 계획이니 아무것도 모르는데 자꾸 그런 기사들이 나오는 것처럼. 저번에 모 프로에서 찬반 투표 결과로 형을 입국 시키겠다라는 기사도, 새해 아침부터 형도 기획사도 모르는 컴백기사가 난것도”라고 설명했다. 유승준은 “아무튼 형은 한국 컴백 미련 없단다”라고 강조한 뒤 “계획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거야. 다만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땅을 밟지도 못한다는 현실이 가장 가슴 아프단다”라고 털어놓았다. 이어 “희철아 누가 뭐래도 형은 한국을 사랑하고 그리워할 거란다. 그 마음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거야”라고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특히 “가슴 아픈 일을 모든 멤버들이 함께 이겨나가는 모습 너무 보기 좋았단다. 특이 위해서 형이 기도하고 있단다. 아무튼 잘지내고 한국에서 얼굴 볼 수 있기를. 승준형이”라고 글을 마무리 지으며 슈퍼주니어를 응원하기도 했다. 김희철은 지난 9일 ‘썰전’에서 슈퍼주니어가 ‘쏘리쏘리’로 해외에서 활동할 당시 성룡과 유승준을 만난 적이 있다”면서 “유승준이 갑자기 ‘한국에 가고 싶다’고 눈물을 흘렸다”라고 설명해 화제가 됐었다. 그 보다 앞서 올해 유승준이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병무청은 “국내에 입국해 연예 활동시 군 장병 사기 저하, 신성한 병역의무에 대한 경시 풍조 등이 우려되어 출입국관리법 제11조에 의거 입국을 금지시켰다. 따라서 병역을 기피한 유승준의 입국금지 해제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병무청, “유승준은 입국금지 된 외국인 신분” 컴백설 진실은..

    병무청, “유승준은 입국금지 된 외국인 신분” 컴백설 진실은..

    병무청이 유승준의 ‘입국 금지 조치 해제설’에 대해 강력 부인했다. 병무청 관계자는 1일 “유승준은 병역을 기피할 목적으로 외국의 시민권을 취득한 사람”이라며 “병역법 위반자로, 입국금지 해제를 논의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출입국관리법 11조에 따라 법률에 따라 입국이 금지된 외국인”이라며 “병역 의무가 해제되는 만 41세가 넘는다 하더라도 법무부 장관이 허가를 해야만 들어올 수 있는 외국인 신분”이라고 덧붙였다. 또 “입국심사 논의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할 계획이 없다”고 다시 덧붙이며 강력히 ‘입국금지 해제 불가’ 입장을 전했다. 앞서 유승준은 줄곧 “병역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지난 2002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는 방법으로 병역 의무를 회피해 입국금지 처분이 내려진 바 있다. 한편 이날 한 매체는 유승준이 국내 연예계 복귀를 타진 중이라 보도해 논란을 샀다. 사진 = 서울신문DB (병무청 유승준) 온라인뉴스팀 chkim@seoul.co.kr
  • 유승준 입국금지해제, 영구 입국 금지 풀렸나 ‘국내 복귀는?’

    유승준 입국금지해제, 영구 입국 금지 풀렸나 ‘국내 복귀는?’

    유승준 입국금지해제 소식이 전해졌다. 가수 유승준(38·스티브 유)의 한국 입국 금지 조치가 2014년 1월 풀릴 전망이다. 1일 한 매체는 “유승준이 12년 만에 입국금지 조치가 해제된다”고 보도했다. 유승준은 현제 중화권 스타 성룡이 대표로 있는 JC그룹 인터내셔널 소속배우로 활동 중이다. 이 소속사의 도움을 받아 올해 상반기 한국 복귀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 특히 유승준의 입국금지 해제 건에 대해 병무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병역의무 부과 가능 나이인 35세를 넘었기 때문에 병무청에서 제재를 가할 수 없다”고 전해 유승준의 국내 복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유승준은 2001년 허리디스크 수술을 하고 4급 판정을 받은 뒤에도 입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하지만 다음해 입대를 3개월 앞두고 돌연 미국으로 떠나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면서 거센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는 병역기피 목적에 의한 국적포기로 판단하고 출입국 관리법 11조에 의해 유승준을 영구 입국 금지 대상자로 지정했다. 유승준 입국금지해제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유승준 입국금지해제..반가운 소식”, “유승준 입국금지 조치 해제..벌써?”, “유승준 입국금지해제..논란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유승준 입국금지해제..좀 빠른 듯”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사진 = 서울신문DB (유승준 입국금지해제) 연예팀 chkim@seoul.co.kr
  • 유승준 측근 “당장은 한국 복귀 계획 없어”

    유승준 측근 “당장은 한국 복귀 계획 없어”

    배우 겸 가수 유승준(37)의 입국 금지 해제 소식이 전해지며 국내 복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유승준측은 아직 조심스러운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1일 한 매체는 유승준 측근의 말을 빌려 “유승준이 당장 한국에 올 계획이 없다. 상황이 조심스럽다”면서 “한국 복귀가 이르다는 판단 아래 현재 고심 중이다”고 전했다. 앞서 또 다른 매체는 유승준 측근의 말을 빌려 “유승준의 입국 금지 조치가 이달 해제된다. 현 소속사이자 중화권 스타 성룡이 대표로 있는 JC그룹 인터내셔널의 도움을 받아 올해 상반기 한국 복귀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병무청 관계자의 반응도 함께 인용했지만 병무청은 “사실무근”이라고 즉각 반박했다. 병무청 관계자는 “병무청에서 (입국금지 조치 해제에 대해) 언론에 공식 입장을 전달해준 적이 없다”면서 “병역법 위반 재검토 대상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린다”고 거듭 해명했다. 유승준은 1997년 데뷔해 ‘가위’ ‘나나나’ 등을 히트시키며 톱스타로 떠올랐다. 유승준은 2000년대 초반까지 “군입대를 원하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2001년 허리디스크 수술 후 4급 판정을 받은 뒤에도 그는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겠다”는 입장을 고수, 하지만 이듬해 입대를 3개월 앞두고 미국으로 떠나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 정부도 이를 병역기피 목적에 의한 국적 포기로 판단, 출입국관리법 11조에 의해 유승준을 영구 입국 금지 대상자 명단에 올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014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길을 잃다/이태영

    [2014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길을 잃다/이태영

    소니가 앞뒤로 몸을 흔든다. 몸을 숙일 때마다 등의‘보호외국인’이란 흰 글자가 형광등 불빛에 번쩍거렸다. 흔들림은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하필 근무 첫날부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여자 보호실에는 그녀와 나 단 둘뿐이었다. 입술이 바싹 타들어 갔다. 위급한 일이 생기면 당직실로 연락하라고 이 반장은 말했었다. 소니가 요란하게 몸을 떨더니 구역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나는 당직실 내선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은 갔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이 반장은 밤새 직원이 당직실에서 대기하고 있을 거라 했었는데,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망연히 소니만 바라봤다. 소니는 비린내를 맡은 임산부처럼 헛구역질을 해댔다. 붉게 충혈된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소니가 말했다. “언니, 제발, 소니 물 줘.” 소니의 일그러진 입가에서 침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눌한 소니의 말투는 어딘가 모르게 우스꽝스러웠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던 소니도 영문을 모른 채 나를 따라 웃었다. 보호소를 안내해주던 이 반장은 말했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소니한테 물어보라고. 저래 보여도 사무소에서만큼은 나보다 선임이니깐.” 이 반장은 소니를 가리키면서도 내 쪽을 흘끔거렸다. 철장 안의 소니보다 나를 더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살아오며 항상 마주쳐야 했던 눈빛이었기에 새삼스럽진 않았지만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라면 많은 혼혈을 봤을 텐데. 마치 외국인을 처음 본 사람처럼 계속해서 곁눈으로 슬그머니 흘겨봤다. 아마도 같이 일하는 사람 중 혼혈은 처음인 것 같았다. 나는 이 반장이 가리키고 있는 소니를 쳐다봤다. 내 옅은 커피색 피부보다 소니의 피부는 희었다. 소니의 피부는 한국인들이 살색이라 부르는 옅은 귤색에 가까웠다. 나는 종이컵에 물을 따르려 했다. 그 모습을 본 소니가 언니, 하며 나를 불렀다. 그녀는 한 아름 크기의 원을 손으로 그렸다. 나는 그녀의 뜻을 이해했지만 왜 그렇게 많은 물이 필요한지 이해되지 않았다. 소니가 다시 헛구역질하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화장실로 가 빨간 고무 대야에 물을 받아왔다. 대야 한가득 담긴 물을 본 소니는 구역질을 멈췄다. 소니는 대야를 바닥에 내려놓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수면 위를 내려다봤다.‘후훕 후훕’소니의 날숨과 들숨소리가 보호실에 울려 퍼졌다. 한참을 내려다보던 소니가 천천히 자신의 얼굴을 대야에 담갔다. 넘쳐난 물이 바닥을 적셨다. 정수리까지 잠기자 찰랑대며 흘러넘쳤던 물결이 잠잠해졌다. 소니의 숨소리가 사라지자 보호소는 파도가 멈춘 바닷가처럼 고요해졌다. 오직 들리는 소리라고는 얕은 내 숨소리뿐이었다. 소니의 앞머리가 흘러내렸다. 수면 위로 소금쟁이 발자국 같은 작은 물결이 일렁였다. 얼마나 지난 걸까.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가라앉은 지 오래였고 숨 쉬는 것도 잊은 듯 소니는 미동조차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마음이 초조해졌다. 철창을 열려는데 소니가 대야에서 고개를 들었다. 물방울들이 그녀의 얼굴에서 뚝뚝 떨어졌다. 소니가 소매로 얼굴을 훔치며 말했다. “소니 땅 멀미했다. 이젠 괜찮다.” 땅 멀미? 배를 오래 탄 선원들이 뭍에 올라오면 멀미를 한다고 하던데, 그걸 말하는 건가. 소니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같은 모국어를 쓰는 사람들끼리도 온전히 자기 뜻을 전달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소니는 지금 외국어를 구사하고 있지 않은가. 쇠창살에 기대앉은 소니가 말했다. “소니는 바다에 살았다. 발, 땅에 안 디뎠다.” 물방울이 소니의 이마에서 볼을 타고 턱까지 흘러내렸다. 채 마르지 않은 물방울의 궤적을 따라 형광등 불빛이 반사됐다. 소니가 손바닥으로 얼굴의 물기를 훔치며 말했다. “소니 여러 여름 전, 바다 떠났다.” 그녀는 땅 위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올라선 땅은 흔들렸다. 바다에서는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울렁거림을 겪어야 했다. 바다를 떠나야 했던 이유를 그녀가 설명했지만 어눌한 발음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흔들리지 않는 땅을 찾아 헤맸다. 그렇게 한국까지 흘러들어왔다. 하지만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공장에서도, 쪽방에서도, 화장실에서도 매 순간 속은 메슥거렸다. 나는 며칠 전 봤었던 한 다큐멘터리를 떠올렸다. 바다에서 생활하는 소수종족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바다 집시라 불리는 그들은 육지에 올라오면 오히려 멀미를 느낀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온난화와 주변 국가의 압력 때문에 땅에 정착해야만 했다. 그들은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물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요?”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엄마가 동생을 낳다 죽었다고 했다. 나는 엄마의 얼굴도, 목소리도 심지어 그녀의 국적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저 내 피부색을 보며 다큐멘터리에 나온 저들처럼 바다와 강렬한 해가 있는 지역 출신이 아닐까 추측해볼 뿐이다. 그러고 보니 소니의 피부색은 그들이나 나보다 옅었다. 지하층 계단에는 해가 들지 않았다. 등이 나간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집주인은 갈아주지 않고 있었다. 흐릿한 빛에 의지해 현관문을 열었다. 안은 말라버린 우물 속처럼 컴컴했다. 벽을 더듬자 콘크리트의 냉기가 손끝에 스며들었다. 스위치를 찾지 못한 나는 어둠 속에서 신발을 벗어야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채 몇 걸음 떼지도 못한 채 균형을 잃고 넘어져 버렸다. 무릎과 정강이로 둔탁한 통증이 밀려왔다. 찔끔 오줌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퀴퀴한 지린내가 밀려왔다. 나는 팬티를 갈아입을 생각도 않은 채 그대로 침대까지 기어가 누웠다. 첫 밤샘근무였고 한밤중에 소동까지, 피로에 찌든 몸은 솜사탕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떴다. 얼마나 잔 걸까? 알 수 없었다. 방은 여전히 어두웠다. 나는 습관적으로 손을 들어 눈가를 만졌다. 다행히 손끝에 느껴지는 물기는 없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채 마르지 않은 눈물 자국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눈에 무슨 이상이 생긴 줄 알았다. 그러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꿈을 꾸며 눈물을 흘린다는 걸. 무슨 꿈인지는 알지 못했다. 마치 교통사고 후의 기억상실증처럼 꿈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대신 깨어날 때마다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허기가 엄습해왔다. 더듬거리며 일어나 방에 불을 켰다. 시계를 보니 벌써 한밤중이었다. 통증처럼 허기가 밀려왔다. 라면 두 개를 끓였다. 밥까지 말아 먹고 나자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다 먹고 난 냄비를 싱크대에 놓았다. 수도꼭지를 틀자 빈 냄비 속으로 물이 쏟아졌다. 냄비 속 옅어진 갈색 국물이 거품을 내며 소용돌이쳤다. 밥풀 하나가 위태롭게 흔들리다 넘쳐나는 물을 따라 개수대로 흘러갔다. 땅멀미를 한다는 소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갑자기 몸이 붕 떠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멀미할 때처럼 속이 울렁였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동생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나는 메시지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다.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울렁임은 더욱 심해졌다. 배를 채우면 이 메스꺼움이 좀 가라앉지 않을까. 찬장에서 감자칩을 꺼내 한 움큼 입에 털어 넣었다.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키듯이 넘겼지만 메스꺼움은 쉬이 달래지지 않았다. 보호실 철문이 열리고 이 반장과 함께 한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이런 곳이 처음인지 창살 안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어린이 팔뚝만 한 쇠봉이 한 뼘 간격으로 세워진 창살 안에는 다양한 피부색의 여자 외국인들이 수감되어 있었다. 그녀들은 마루 형식으로 된 바닥에 국적별로 삼삼오오 앉아 있었다. 소니만이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은 채 구석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사무소 직원이 아닌 듯 남자는 관복을 입지 않고 있었다. 검은색 쟈켓에 베이지색 면바지, 그리고 특징 없는 인상은 길에서 흔히 마주치는 사십대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이 반장이 소니를 조사실로 호출했다. 남자는 조사실로 들어갔다. 둘은 삼십 분 정도 조사실에 있었다. 가끔 소니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와는 다른 웃음이었다. 끈적끈적하니 교태가 묻어있는 웃음이었다. 조사실에서 나온 남자는 한쪽 입꼬리를 어그러뜨렸다. 황당하다는 웃음 같기도, 싱겁다는 표정 같기도 했다. 남자와는 다르게 뒤따라 나오는 소니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남자는 이 반장에게 짧게 말을 전한 후 돌아갔다. 나는 이 반장에게 다가갔다. 저분은 누구예요, 라는 내 물음에 이 반장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비밀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로 순순히 돌아갔다. 내 태도에 이 반장은 당황한 듯싶었다. 쩝쩝 소리를 내며 입맛을 다시더니 슬며시 다가와 물었다. “소니가 진짜 이름일까?” 나는 그제야 이 반장이 비밀에 대해 말하고 싶어 했다는 걸 눈치챘다. 나는 궁금하다는 표정을 최대한 지어보려 노력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잘 직시하지 못했다. 나의 피부색을 처음 본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표정이 굳는다. 그리고는 바로 꼬인 가방끈을 고쳐 매듯 낯을 바꾼다. 마치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이. 어떤 반감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냥 본능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그 표정을 본 나로서는 더는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이 반장은 혀를 내밀어 입술에 침을 묻히고는 말했다. “당연히 진짜 이름 아니지. 소니 들어봤잖아. 워크맨 만드는 전자회사” 작년 겨울, 한 베트남인이 여고생을 성추행하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이 사건은 십분 정도 모 포털 사이트 검색어 톱을 차지했다. 첫눈이 오기 전날 대대적인 불법 체류 외국인 단속이 벌어졌다. 그날 밤 노래방을 덮친 경찰은 손님의 노래에 맞춰 탬버린을 치고 있는 소니를 붙잡았다.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보낸 그녀는 첫눈을 맞으며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넘겨졌다. 그녀의 지문과 일치하는 한국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출입국 관리 사무소로 넘겨진 불법 체류 외국인들은 사무소 내에 있는 보호실에 임시로 수감된다. 제일 먼저 그들의 국적을 확인하는데 가끔 추방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국적을 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소니는 아예 한국어를 모르는 척했다. 여러 언어의 통역사들이 말을 걸어봤지만, 그녀는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모르는 척 연기를 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협조하지 않는 한 그녀의 모국어가 무엇인지 알 방법은 없었다.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직원들은 굉장히 난감해했다. 직원들은 소니의 소지품을 확인했다. 수거된 소지품에서 신원의 단서를 찾아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품에 지니고 다닌다. 신분증부터 휴대폰, 수첩, 메모 등. 그러나 그녀의 소지품이라고는‘SQNY’라고 로고가 박힌 짝퉁 휴대용 라디오뿐이었다. 나중에 그녀가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은 발각되었지만, 그녀의 국적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녀는 절대 신원의 실마리가 될 이야기나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해 겨울 마지막 눈이 녹았지만, 여전히 아무도 그녀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심문에 잘 대답하다가도 신분이 노출될 만한 질문이 들어오면 입을 다물거나 딴소리를 해댔다. 그 엉뚱한 말들 때문이었을까, 심문했던 직원들 중 몇은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녀는 정신병원에 보내져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각국 대사관에 그녀의 사진이 포함된 협조문도 보내졌다. 미친 것은 아니라는 의사의 소견과 자기네 국민이 아니라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몇몇 국가는 아예 회신조차 하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출입국 관리 사무소의 보호실은 외국인 보호소로 이송되기 전, 하루나 이틀 정도 임시 수용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골치 아플 것을 눈치챈 외국인 보호소는 신원이 확인될 때까지 절대 받을 수 없다고 못을 박아 버렸다. 이름이 없으니 불편함을 느낀 직원 하나가 그녀를 소니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도 그 이름이 맘에 들었는지 자신을 소니라 소개했다. 이야기를 듣던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근무 첫날 그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이 반장에게 했다. 소니가 바다에서 왔다는 내 말에 이 반장은 껄껄대며 웃었다. “소니는 신입이 오면 꼭 한 번씩 골탕을 먹이더라고. 내가 말해 줬어야 했는데 미안해. 그냥 맘 편하게 신고식이었다고 생각하도록 해.” 이 반장은 은근히 흐뭇해하는 눈치였다. 어리둥절해하는 나에게 이 반장은 말했다. “나도 올 초 여기 사무소로 발령받아 왔을 때 감쪽같이 속았다고. 소니가 자기는 동생한테 이름을 빼앗겼다는 거야.” 소니는 자신이 일 가구 일 자녀 정책을 펴는 중국에서 태어났다고, 이 반장에게 말했었다. 소니의 아버지는 아들을 원했다. 첫아이가 소니이자 벌금을 낼 형편이 못 됐던 그녀의 아버지는 앞으로 태어날 남동생을 위해 그녀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그녀에겐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대신 미리 지어 놨던 남자 이름, 남동생에게 주어질 이름으로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그마저도 곧 태어난 남동생이 가져가 버렸다. 그녀는 이름도 없고 서류상으로도 태어나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소니의 비밀을 알게 된 이 반장은 그녀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그런데 다 거짓말이었어. 중국대사관에 동생 이름을 문의해 봤더니 그런 자는 없다는 거야.” 소니의 말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이상하게도 먹먹해진 내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내 안의 무언가가 건드려진 것 같았다. 나는 만난 적 없는 엄마와 기억나지 않는 꿈을 떠올렸다. “아마도 소니는 여기서 두 번째 겨울은 나지 못할 것 같아.” 이 반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모르게 눈이 커졌나 보다. 내 반응에 이 반장은 신이 났는지 다시 목소리가 커졌다. 아직 결론이 난 건 아니지만, 윗분들이 그녀를 풀어주려 한다고 했다. 어차피 더는 그녀의 신원을 알아낼 방법도 없고 그렇다고 언제까지 가둬 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자 ‘혹시 간첩이 아닐까 ’누군가 농담처럼 했던 말이 새롭게 부각되었다. 방금 전 소니를 조사했던 남자는 이를 규명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남자가 지었던 표정으로 봐서 그녀는 간첩이 아닌 게 분명했다. 창살 사이로 소니를 바라봤다. 분명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그녀는 시치미를 뚝 떼고 티브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두터운 쌍꺼풀에 불거진 광대뼈, 두꺼운 입술 위로 큼지막하게 자리한 뭉툭한 코. 아무리 뜯어 봐도 어디 사람인지 헤아리기 어려웠다. 속으로 삼키듯 소니를 발음해 봤다.‘SONY’라는 글자를 전 세계 사람 모두 소니라고 발음한다는 기사를 어딘가에서 읽은 기억이 났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별똥별 같은 느낌을 주는 소니라는 어감은 소비자들의 거부감을 최소화한다고 했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그녀와 잘 어울리는 이름 같았다. 비록 ‘SQNY’라 적힌 그녀의 라디오는 짝퉁이지만. 핸드폰 벨소리에 눈을 떴다. 팔을 뻗어 보려 했지만,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야간근무를 시작한 후부터 낮에는 앓는 사람처럼 곯아떨어져 버렸다. 벨소리는 곧 끊어졌다. 다시 잠을 청하려 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동생에게서 부재중 전화와 함께 문자가 와 있었다. ‘어머니 제사 때는 집에 올 거지?’ 동생의 문자를 다 읽은 나는 그대로 이불 위로 쓰러졌다. 가만히 천장을 응시하며 꿈을 기억해 내려 노력했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어머니의 추억처럼 꿈은 기억나지 않았다.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냉장고 문을 열자 어제 먹다 남긴 치킨이 보였다. 차가운 치킨을 데우지도 않고 먹기 시작했다. 살코기는 푸석댔고 닭 껍질은 질겼다. 차가울 뿐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그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기계적으로 씹을 뿐이었다. 접시 위의 치킨은 모두 없어졌지만, 허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온전한 것을 찾아 수북이 쌓인 닭 뼈 사이를 뒤적였다. 손에 닭 목이 걸려 올라왔다. 튀김가루가 다 떨어져 앙상해진 닭 목을 통째로 씹었다. ‘빠드득’ 입안에서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손가락을 입속에 집어넣었다. 어금니가 심하게 흔들렸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입 밖으로 삐죽거리며 새어 나왔다. 엄마의 제사는 연극 같았다. 나는 엄마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에게서 도망친 엄마는 불법 체류 외국인이 되어 아직도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 엄마를 만나고 싶었다. 만나 물어보고 싶었다. ‘왜 나를 낳았는지, 왜 고향으로 가지 않고 이곳에 남았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하지만 나는 엄마를 찾지 않았다. 대신 단속에 걸린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보호실로 들어올 때마다, 엄마 또래의 외국인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얼굴을 모른다. 마치 쏘기 직전의 활처럼 소니와 나이지리아 여자는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어제 들어온 금발의 우즈베키스탄 아가씨는 커다란 눈망울로 둘의 눈치만 살폈다. 나는 슬며시 수화기를 들어 이 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이지리아 여자는 들어온 지 일주일이 넘었다. 벌써 외국인 보호소로 넘어갔어야 했는데 난민신청 문제로 이송이 지연되고 있었다. 소니는 그동안 보호실의 터줏대감처럼 행동했었다. 워낙 오래 있었고 기가 셌기 때문에 처음 들어온 외국인들은 그녀에게 한 수 접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 여자는 자신의 덩치를 믿고 그녀를 무시했다. 아슬아슬했던 둘 사이가 결국 터지려 하고 있었다. 나이지리아 여자가 소니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다. 금이 그어져 있는 건 아니었지만, 소니의 영역은 티브이 맞은편 창가 아래였다. 사람들은 아무리 보호실이 붐벼도 그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고 직원들도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었다.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다른 수감자들과는 달리 소니는 너무나 편안한 얼굴로 그곳에서 티브이를 보거나 낮잠을 청했다. 소니가 나이지리아 여자에게 먼저 주먹을 날렸다. 소니의 주먹이 정확히 나이지리아 여자의 얼굴을 때렸지만, 나이지리아 여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나이지리아 여자가 성큼 달려들어 소니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검은 표범을 연상시키는 그녀는 보통의 남자보다 몸무게도 더 나갔으며 몸도 더 우람했다. 작은 키에 마른 편인 소니는 금방이라도 찢길 듯 위태로워 보였다. 나이지리아 여자는 소니의 머리를 흔들어 대며 괴성을 질러댔다. 그 기세에 우즈베키스탄 아가씨는 구석으로 도망쳤고 철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나도 멈칫했다. 아직 이 반장은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잠깐 망설였지만 뭉치로 뽑혀 휘날리는 소니의 머리카락을 보자, 큰일 나겠다 싶었다. 무작정 안으로 뛰어들어 나이지리아 여자의 팔을 잡고 늘어졌다. 나이지리아 여자가 파리를 쫓듯 팔을 휘젓자 나는 그대로 날아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틈에 소니는 나이지리아 여자의 팔을 깨물었다. 나이지리아 여자가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며 소니의 머리카락을 잡아끌었다. 얼마나 세게 당기는지 소니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고 눈초리는 찢어질 듯 하늘을 향해 치켜 올라갔다. 하지만 소니는 나이지리아 여자의 팔을 두 손으로 꽉 쥐고는 놓아주지 않는다. 흰자위로 금이 가듯 붉은 실핏줄이 섬뜩하게 번져 갔다. 이 반장이 도착했을 때 나이지리아 여자는 제발 놓아 달라며 울고 있었다. 나와 이 반장, 우즈베키스탄 아가씨가 달려들어 겨우 소니를 떼어 놓을 수 있었다. 소니의 입은 거품과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나이지리아 여자의 팔뚝은 처참하게 살점이 뜯겨 있었다. 소니는 분이 안 풀리는지 몇 번이고 이를 드러내며 나이지리아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보고를 받은 김 실장이 달려왔다. 나이지리아 여자는 병원으로 이송됐고 김 실장은 입을 굳게 다물고 소니를 한참 동안 노려봤다. 다음 날 아침, 퇴근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 반장이 들어왔다. “같이 병원 좀 가줘야겠는데.” 이 반장은 소니와 나를 차에 태우고 인근 정신병원으로 향했다. 어제 싸움을 보고 김 실장이 특별 지시를 내린 모양이었다. 여자 수감자가 외출할 때는 반드시 여직원이 동행해야 했다. 소니는 차창 밖으로 거리의 사람들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오랜만의 외출이어선지 살짝 들뜬 것처럼 보였다. 이른 아침인데도 병원 대기실에는 사람이 많았다. 여러 번 왔었는지 이 반장은 간호사와 아는 척을 했다. 대기 순번을 보니 좀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접수를 마친 이 반장은 의자에 앉아 신문을 펴들었다. 느긋한 그의 모습을 보니 짜증이 밀려왔다. 지금쯤이면 거의 집에 도착했을 시간인데. 당장 쓰러질 것같이 피곤했다. 핸드폰 벨소리가 고요한 대기실에 울렸다. 이 반장이 황급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며 밖으로 나갔다. 간호사들만 이리저리 바삐 움직일 뿐 대기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멍하니 티브이만 들여다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밖으로 나간 이 반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들어올 때만 해도 어스레했었는데 어느새 대기실은 햇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슬슬 데워지기 시작한 볕은 커피 잔의 온기처럼 따스했다. 머리가 무거워지며 눈꺼풀이 스르륵 감겨 왔다. 고개를 흔들어 봤지만 집요하게 따라 붙는 졸음을 물리치기엔 역부족이었다. 슬쩍 소니를 쳐다봤다. 소니도 대기실의 다른 이들처럼 아침드라마에 넋을 놓고 있었다. 열중했는지 흘러내리는 머리카락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주먹 쥔 손이 스르륵 풀리며 잠에 빠져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사막에 있었다. 작은 모래 구릉들이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었다. 나 이외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제일 높아 보이는 모래 구릉으로 올라갔다. 주변을 살펴봤지만, 예상대로 모래벌판 외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소리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질척이는 모래 속에서 한참을 달렸지만, 소리의 주인은 찾을 수 없었다. 기진맥진해진 나는 멈춰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남자의 목소리, 여자의 목소리, 격양된 노인의 언성과 가는 아이의 음성, 사투리도 들려왔고 처음 들어보는 외국어도 있었다.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무력감에 빠져 주저앉는데 저 멀리 누군가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히잡 같은 스카프를 머리에 둘렀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녀를 쫓았지만, 그녀와의 거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그녀에게서 멀어져 갔다. 나는 두려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여보세요!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나요?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제발 알려주세요.’ 그녀가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녀가 바로 엄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눈을 떠 보니 간호사가 보였다. “괜찮으세요?” 손을 들어 눈가로 가져갔다. 축축한 물기가 만져졌다. 나는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 냈다. 간호사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그런데 환자분 어디 가셨어요? 진료실로 들어오시라는데.” 옆을 보니 소니가 앉아 있어야 할 의자가 비어 있었다. 뒤통수가 서늘해지며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대기했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뒷줄에 새로 온 이들이 보였다. 화장실로 달려가 봤지만, 소니는 없었다. 사람들에게 소니를 봤는지 물어봤지만 모두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목이 탁 막혀 왔다. 그때 문이 열리며 이 반장이 들어왔다. 나는 울상을 지으며 소니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자초지종이라고 할 것도 없는 내 이야기를 들은 이 반장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도 이 반장을 쫓아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 반장의 모습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소니는 어디로 간 걸까. 소니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그녀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뿐, 어디로 갔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마치 고장 난 라디오처럼 수많은 목소리와 거리의 소음들이 한꺼번에 귀로 파고들었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귀를 틀어막았다. 그런 내 모습이 이상했던지 지나가던 사람들은 흘끔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문득 스쳐 가는 한 여자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의 옆모습은 소니와 닮아 보였다. 황급히 그녀의 어깨를 잡아챘다. 안경을 쓴 여자가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돌아봤다. 소니는 안경을 쓰지 않았다. 여자에게 사과한 후 무턱대고 앞으로 걸어갔다. 정류장이 보였다. 버스가 멈춰 서자 소니와 닮은 여자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나는 누구를 쫓아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가방을 멘 여자를 따라갔다. 한참을 쫓는데 여자가 핸드폰을 꺼냈다. 이번에도 소니가 아니었다. 여자의 한국말은 너무나도 유창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반장에게 전화를 해봤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출입국 관리 사무소로 돌아갈까. 그러고 보니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택시를 잡기 위해 팔을 들어 올리는데 옅은 커피색 피부의 손등이 보였다. 보호소 철장 안에 이런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은 많았다.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도망쳐 나온 게 내가 아닐까.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거리를 가득 메운 간판들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일그러진 간판의 글자들은 처음 보는 외국어처럼 낯설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증명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여기 이곳의 내가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빈 석상처럼 그대로 서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던 걸까, 핸드폰이 울렸다. 이 반장에게 온 전화였다. 그는 소니를 찾았으니 집으로 퇴근하라 했다. 소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새침한 표정으로 자신의 영역에 앉아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는 내 기분은 가을비처럼 오락가락했다. 도망친 것에 대해 화가 나기도 했고 돌아와 준 것에 대해 고맙기도 했다. 소니는 도망친 지 네 시간여 만에 자기 발로 사무실에 돌아왔다. 직원들은 그녀가 어디를 갔다 온 건지 몸이 달 정도로 궁금해했다. 하지만 소니는 일언반구 말하지 않았다. 며칠 후 이 반장이 비디오테이프를 가져왔다. 병원 근처 지하철역의 개찰구와 그 앞 대합실을 찍은 CCTV 영상이었다. 하단의 숫자는 소니가 도망친 날의 아침을 가리키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 반장이 ‘저기다. 저기’라고 말하며 손가락으로 한 사람을 가리켰다. 화면 끝에서 소니가 걸어오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아홉 시 삼십 분이었다. 병원에서 역까지는 걸어서 십분 정도 거리였다. 내가 졸자마자 도망친 게 분명했다. 그녀는 대합실에 설치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멍하니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하단의 숫자가 열두 시를 넘었지만, 여전히 그녀는 일어서지 않았다. 아무도 그녀에게 다가가지도 눈길을 보내지도 않았다. 이 반장이 비아냥거렸다. “돈이 없으니 아무 데도 못 가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내가 아는 소니는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사람을 속여서라도 갈 사람이었다. 이 반장은 의심스러운 장면이 있는지 확인해 보라며 한 번 더 비디오를 틀었다. 사람들은 빠르게 화면을 스쳐 지나갔고 의자에 앉은 소니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 반장과 나는 어떤 징계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소니의 도주 사실이 외부로 새어 나갈까 봐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그 사건 이후에도 소니는 예전과 다름없이 행동했다. 새로 들어온 외국인들에게 텃세를 부렸고 자신의 영역에 누워 드라마를 봤다. 그렇게 소니가 또다시 겨울을 보호소에서 날 줄 알았다. 하지만 첫눈 예보가 있던 날 소니의 석방이 통보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소니는 거품을 물고 뒤로 나자빠졌다. 그래도 통하지 않자 자신의 몸에 자해를 했다. 결국, 소니는 병원으로 실려 갔다. 하지만 윗사람들은 단호했다. 그런 소동을 부렸음에도 다음 날로 석방이 미뤄졌을 뿐이었다. 새로 온 소장은 골치 아픈 문제를 빨리 치우고 싶어 했다. 이 반장은 병원에서 돌아온 소니를 잘 감시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첫날처럼 보호실에는 나와 소니 둘만이 남았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다른 수감자들은 일찌감치 외국인 보호소로 보내 버렸다. 취침시간이 지났는데도 소니는 자리에 눕지 않았다. 불을 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답을 바라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알 수 없는 톤으로 소니가 말했다. “소니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지하철역을 말하는 건가,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소니가 말했다. “사람들은 걸을 때 참 무서운 얼굴을 한다. 그런 얼굴로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소니는 고개를 돌려 나의 눈을 바라봤다. 소니의 눈동자는 마치 갓난아기의 눈처럼 샛말갰다. 사람들의 머리와 어깨 위로 흰 얼룩 같은 눈송이가 쌓이고 있었다. 어제 내릴 거라던 첫눈은 오늘 아침에야 내리기 시작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인파 속에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소니는 예정대로 오늘 아침 석방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이송되어 왔기 때문에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소니가 더는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소니는 어디로 간 걸까. 마치 이 세상에 나 홀로 남겨진 것만 같았다. 거리에는 눈이 쌓여 가고 있었다. 나는 소니의 발자국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벌써 거리는 출근하는 사람들에 의해 어지럽혀 있었다. 무작정 소니의 흔적이라 짐작되는 발자국을 따라갔다. 눈바람이 날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발자국들은 뭉개졌다. 나는 발자국을 놓쳤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역 앞이었다. 나는 역으로 들어갔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역은 붐볐다. 부딪히지 않게 나는 어깨를 움츠려야 했다. 그때, 왠지 낯이 익은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도망친 소니가 앉았던 지하철역의 의자였다. 나는 그 의자로 가 앉았다. 소니의 말대로 사람들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빠르게 내 앞을 지나쳐 갔다. ‘어디로 가야 하나요?’ 나는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지우개로 지워지듯 오고 가는 사람들은 점점 옅어져 갔다. 결국, 신기루처럼 모두 사라져 버렸고 역에는 나 홀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소리들은 그대로였다. 사람들의 말소리와 주변 소음은 오히려 증폭되어 귓전을 때렸다. 전차가 진입하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전차는 A시 공단역으로 갈 것이다. 엄마는 A시 공단역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아버지에게서 온 전화였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소니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끝>
  • ‘병역기피’ 유승준 복귀 임박?…과연 가능할까?

    ‘병역기피’ 유승준 복귀 임박?…과연 가능할까?

    ‘병역기피 논란’으로 공분을 사며 한국을 떠났던 가수 유승준(38·미국명 스티브 유)의 국내 복귀가 언급돼 눈길을 끌고 있다. 1일 일간스포츠에 따르면 유승준은 현재 국내 연예계 복귀를 타진중이다. 국내를 떠난지 12년만에 입국금지 조치가 해제된다는 말이 나오면서 국내 복귀가 가시화되는게 아니냐는 말이 흘러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매체는 유승준의 최측근의 말을 인용해 “유승준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가 이달 해제된다. 현 소속사이자 세계적인 스타 청룽(成龍)이 대표로 있는 JC그룹 인터내셔널의 도움을 받아 올해 상반기 한국 복귀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서 “유승준은 지금도 한국 팬들과 무대를 많이 그리워한다. 다시 한국에서 활동하길 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승준은 1997년 데뷔해 ‘가위’, ‘나나나’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큰 인기를 모았다. 특히 건강하고 바른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유승준은 군 복무와 관련해 입대를 3개월 앞두고 돌연 미국으로 떠나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고 한국 정부도 이를 병역기피 목적에 의한 국적포기로 판단하고 출입국 관리법 11조에 의해 유승준을 영구 입국 금지 대상자 명단에 올렸다. 앞서 유승준은 지난 3월 자신의 웨이보에 “우리 웨스트사이드(유승준 팬클럽) 완전 짱! 언제나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한국에 꼭 돌아갈테니 기다리세요”라며 복귀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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