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주기 수사’ 사실로… 위기의 경찰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과 관련해 홍영기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가 줄줄이 사표를 제출한데 이어 경찰청이 검찰 수사를 의뢰하면서 경찰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이 사건 여파로 임기가 9개월 남은 이택순 경찰청장의 거취에까지 영향을 미칠지 여부도 주목되고 있다. 검찰은 경찰청 감찰조사에서 빠진 이 청장과 고교 동창인 한화증권 A고문에 대한 전화통화 내역도 조사할 계획이다.
●“사건 잘 처리해달라” 수차례 전화
경찰청장 출신인 최기문 한화그룹 고문이 수사지휘 선상에 있던 경찰 고위 간부들에게 잇따라 청탁성 전화를 했고, 이로 인해 수사가 지체됐던 것으로 경찰청 감찰조사에서 확인됐다.
감찰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 고문은 지난 3월12일 장희곤 남대문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내사 여부를 물었다. 당초부터 장 서장은 “최 전 청장이 사건 발생 2∼3일 뒤 한화그룹 폭행 건이 있느냐고 전화를 해와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최 고문은 3월15일에서 28일 사이 2회에 걸쳐 서울청 한기민 형사과장에게 두 차례 전화를 걸어 ‘사건이 접수되면 잘 처리해 달라.’고 청탁했다. 한 과장은 이에 대해 “이 사건은 내 권한 밖이다. 서울청 수사부장이나 서울청장님께 전화해라. 폭력사건은 피해자와 빨리 합의하는 것이 우선이며, 남대문서와 빨리 협조해 처리하라.”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최 고문은 김승연 회장의 출석요구서 발부 관련 언론보도를 접한 뒤 서울청 김학배 수사부장에게 두 차례 전화를 걸어 이를 확인했다.
최 고문은 3월12일과 13일 홍영기 서울청장에게 전화 및 문자전송을 통해 3월15일 서울 강남의 일식집에서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경찰청은 이들이 만난 자리는 서울의 한 경찰서 이전 문제로 마련됐으며, 서울 모 구청장이 함께 자리했다고 밝혔다.
경찰청 남형수 감사관은 “최 고문이 경찰 고위 간부들에게 전화통화 및 문자메시지 등으로 ‘사건이 접수되면 잘 처리해 달라.’는 취지의 청탁으로 외압을 넣은 사실이 통화 내역과 진술확인 결과 밝혀졌다.”고 말했다.
●청탁성 전화로 수사 지체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3월9일 새벽 112신고 현장조치가 미흡했으며, 서울청에서 정당한 사유없이 남대문서로 첩보를 하달한 후 초동수사가 소홀·미진했다고 밝혔다.
3월9일 0시12분쯤 남대문서 태평로지구대 상황근무자들이 112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당시 “S클럽에서 한화 둘째아들로부터 쇠파이프 등으로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았지만 25분 뒤 ‘사소한 시비, 계도’라는 보고를 상황실에 올린 뒤 철수했다. 경찰청은 현장조치 소홀에 대한 책임을 물어 태평로지구대장을 직위해제 및 중징계하고, 현장조치를 소홀히 한 경찰관 6명을 징계조치하기로 했다.
첩보 입수 경위도 명확히 드러났다. 사건 직후인 3월9일 남대문서에 오래 근무해 이 지역 사정을 잘아는 서울청 광역수사대 오영승 경위가 북창동 지인으로부터 첩보를 입수해 탐문 수사를 벌였다. 이어 3월13∼14일 남승기 광역수사대장에게 보고했고, 남 대장은 한 과장으로부터 이 사건 내사 여부를 확인하는 전화를 받고 3월13∼15일 한 과장과 김 부장에게 구두 보고했다. 이어 3월16일 김 부장은 남 대장에게 내사진행 사항을 묻는 전화를 한 데 이어 같은 달 17,18일쯤 한 과장에게 “김 회장 사건을 남대문서로 하달해서 수사했으면 하는데 광역수사대를 잘 설득해 달라.”고 지시했다.3월22일에는 광역수사대 직원들이 반발이 심하다는 한 과장의 말을 듣고도 남대문서로 하달하도록 추가 지시했다. 한 과장은 3월26일 자신의 전결로 이 사건을 남대문서에 하달했다. 이어 홍영기 청장에게 “한화 회장이 룸살롱에서 종업원들을 폭행했다는 첩보가 있어 관할 남대문서로 하달했다.”고 구두 보고했다.
●경찰 고위간부, 검찰 줄소환 예고
경찰청 감사관실은 수사부장과 형사과장을 직위해제 및 중징계하고, 외압·금품수수 여부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검찰은 “경찰청으로부터 수사의뢰서가 접수되면 내용을 확인하고 절차에 따라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경찰 간부들의 검찰 줄소환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에서 외압 및 금품 수수 여부가 드러날 경우 경찰 내부에 ‘메가톤급’ 후폭풍이 몰아칠 전망이다.
남형수 감사관은 이택순 경찰청장과 고교 동창인 한화증권 A고문 등의 통화 내역이 감찰 조사에서 빠진 것과 관련해 “강제 조사권한이 없어 조사를 못했다. 검찰에서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청장에게 물어본 결과 A고문과 이 청장은 통상적인 일로 1년에 3∼4차례 통화한다. 이번 사건 이후에는 통화가 없었다고 한다.”고 밝혔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