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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주군 「나무총무」 남궁 원씨의 “나무사랑”

    ◎하늘로 치속은 “친자식” 30만 그루/“피땀 15년”… 경제목 30만평 조성/임도개설등 과학육림… 표고버섯 길러 고소득/선대 남궁 억선생뜻이어 무궁화보급 앞장도 빽빽이 들어찬 잣나무,하늘을 찌를 듯이 쭉쭉 뻗은 낙엽송.울창한 나무 사이로 훤히 뚫려있는 임도를 따라 걸어 들어가면 가슴이 탁 트이고 생기가 솟는다. 경기도 양주군 은현면 용암리 도락산 자락 1백㏊의 산에는 10∼20년생 잣나무와 낙엽송 30여만그루가 우람한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다. 이곳이 바로 독림가 남궁 원씨(55·서울 도봉구 창1동 743의23)가 종중산에 만15년동안 나무를 심어 친자식처럼 가꿔온 조림지이다. 『나무는 심는 것보다 어떻게 잘 가꾸느냐가 더 중요합니다.자식들을 낳아만 놓고 돌보지 않으면 불량청소년이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가 꿋꿋한 나무의 기상에 반해 나무심기에 정열을 쏟기 시작한 것은 지난 78년이었다. 고향인 경기도 이천에서 출생,대학을 졸업한 후 화학·유통업체 등에서 일하면서 한때 전문경영인을 꿈꾸며 경영대학원까지 마치기도 한그는 자신의 인생에 가장 뜻깊은 일을 하고자 골몰하던중 산림경영에 뜻을 두기로 결심했다. 그가 이러한 결심을 하기까지에는 일제때 민족말살정책에 맞서 나라꽃 무궁화보급에 앞장서 온 구한말 황성신문 사장이었던 남궁억선생의 후손이라는 것도 크게 작용했다. 남궁씨는 직장에 다니며 나무를 심어오다가 지난 87년에 회사를 그만 두고 본격적인 독림가로 변신했다.그는 이곳 용암리에서 2년여동안 간이숙소에 기거하며 인근 용암리 주민 50여명과 밤낮없이 나무심기에 전념했다.가족들의 반대도 심했다.당장 수입이 없는 나무를,그것도 직장까지 그만두고 심어서 무엇을 하느냐는 것이 반대의 이유였다.그러나 그는 3개월동안이나 가족들을 설득했다. 나라꽃인 무궁화 보급에 앞장서온 선대의 뜻을 계승하기 위해 두아들의 이름을 억(28)과 근(20)으로 지은 내력까지 들추어가면서 끝내 가족들의 찬성을 얻어냈다. 남궁씨의 육림방법은 체계적이다.잡목제거작업과 가지치기·비료주기·어린나무가꾸기등의 기본적인 육림작업외에 2㎞에 달하는 임도개설과 산림속에서 표고버섯을 재배,임산물소득을 올리는 등 산림의 자원화에 힘썼다. 그는 산불예방방법도 남다르다.자신의 산에만 불이 나는 것을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 산에 대한 산불예방에 더 힘쓴다.동네 사람들은 그를 「나무총무」라고 부른다.그의 이같은 노력은 산림청에 알려져 지난 90년에는 모범독림가로 선정돼 농림수산부장관의 표창까지 받았다. 남궁씨의 남다른 식수방법은 이제 다른 독림가들이 와서 배우고 있다.그는 나무를 심되 경제림을 심고 숲을 조성하되 임도를 개설하며 휴게소등 자연휴양시설을 설치하는 등 과학적이고 생산적인 산림경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산림경영에 드는 비용을 얻기 위해 재배하는 표고버섯에서 연간 1천여만원의 수익을 얻고 있으나 이를 다시 나무심기 사업에 재투자하고 있다. 『산은 주인이 따로 없습니다.나무가 주인이고 사람은 나그네지요.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산수가 맑아지면 우리 사회도 정화됩니다』 그의 나무사랑이야기는 계속된다. 『올해는 두가지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그 하나는 국토곳곳에 심어져 있는 꽃술없는 국적불명의 무궁화를 모두 뽑아내고 민족혼이 살아 숨쉬는 순수 무궁화를 보급시키는 일입니다.또 하나는 대중가요등 노래를 통해 나무사랑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입니다』 그는 하늘높이 치솟은 나무들을 자랑스러운 듯 바라보면서 이 두가지를 꼭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
  • 가족법개정의 필요성/김은호 변호사·전변협회장(굄돌)

    개정된 친족상속편을 보면 한 마디로 상전이 벽해된 것 같고 가족제도의 일대혁명이요 전통 가족제도의 파괴라 해도 지나침이 없으리라. 우리는 고래로 같은 조상에서 갈려나온 피붙이 촌수가 가까운 겨레붙이를 혈족이다 친족이다 해서 같은 수로왕자손이다,같은 박혁거세자손이다 같은 알지자손이다 해서 수천년내 일가 또는 주친관계로 연면히 이어오고 있다.어느 나라의 어느 민족이 이와같은 세계를 가지고 있단 말인가.6천만동포니 7천만동포니하면서 겨레의 피붙이끼리 가까이지내는 것이 뭐가 나쁘단 말인가.모든 동물이 생식과 종족의 번식이 본능이다.문자를 알고 인륜을 아는 인간도 다를 바 없다.사람의 생활을 경제생활과 보주생활 즉 재화의 생활을 위한 활동과 생식보육을 위한 활동이라 할 때 친족과 상속관계는 보주생활인 것이다.경제는 타산적이지만 보주관계는 초 타산적이다.경제는 경쟁과 대립이있으나 보주에는 융화와 협동이 있을 뿐이다. 개정민법은 남녀평등이란 이름으로 출생자와 동일한 관계로 한 계모자 관계를 폐지해서 친족이 아닌것으로 했다.우리는 옛말에 생아자도 부모요,활아자도 부모라 했다.계모는 아버지의 후처,아버지의 배우자가 아닌가.아버지의 배우자는 어머니다.모자관계를 단절한 계모를 앞으로는 유모라 불러야 하나,식모로 불러야 하나.제안자인 국회의원들은 앞으로 계모를 뭐라 부를 것인가.또 상속법을 본다.우리의 가족제도는 일가를 통제하는 가족의 가장이 호주다.부자나 부부는 이인이나 일체이다.형제자매는 여러 남녀이나 대립관계가 아니고 형제일신이다.여기 무슨 민주주의가 있고 남녀평등이 있단 말인가.호주는 보주관계에 있어서 일가의 책임자요 가장이요 가의 왕이다. 재산상속은 가산의 공유사상과 사후 부양사상에 근거하여 단일상속이요 독점상속이 원칙이며 장자상속주의에 따라 호주상속인 경우는 호주권의 승계와 동시에 재산권도 상속되는 것이다.공산주의 사회의 구소련에서도 피상속인에 의하여 부양되고 노동력과 무자력한 자만이 상속이 된다고 했다. 상속재산은 한 집안의 재산이요 보족생활의 범위내에서 사용처분돼야 하고 개정법과 같이 상속인이 분배하여 개인재산으로 할 수 없는 것이다.상속재산을 장자이외의 자녀에게 분재하는것은 부양의 사상에서 유래한다.딸을 출가외인이란 것은 김씨 집안의 딸이 이씨 집안으로 출가하면 이씨 집안의 가속이 되어 이씨 집안의 부양을 받기 때문이다.여기에 무슨 남녀차별이 있고 불평등이 있다는 것인가.나라에도 재산이 있듯이 집안에도 가산이 있는 것이고 이 가산은 제사상속과 자자손손 전승되어야 한다.만약 자녀에게 분배해서 개인소유화 한다면 가산은 파탄이 되었는데 조상의 제사와 분묘는 어느 자손이 봉사·보존하며 망자의 배우자인 생존한 부나 모는 어느 자식이 부양해야 하는가.
  • 탤런트 이순재 당선자/서울 중랑 갑구

    ◎“당선보다 페어플레이가 더 소중”/13대 이은 두번째 대결서 깨끗한 승리/“떨어진 이상수의원 몫까지 해내겠다”/5∼6월쯤 연기 중단… 정치공부 전념/“「사랑이 뭐길래」 보탬된듯… 「대발이 아버지」 호칭은 사양” 대발이 아버지가 국회의원이 됐다』­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본인은 이제 더이상 「대발이 아버지」로 불리기를 사양할 생각이다. MBC­TV의 인기주말연속극 「사랑이 뭐길래」에서 주인공 대발이의 아버지역을 맡아 개성있는 연기로 시청자들의 인기를 한몸에 모아온 독특한 연기자 이순재씨(57). 그는 서울 중랑갑구에서 여당인 민자당의 후보로 출마,제1야당의 대변인을 역임할 정도로 쟁쟁한 현역 이상수의원(45·민주)을 꺾고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선거결과 부녀자와 중·장년층의 투표율이 높았던 것으로 보아 이 드라마의 인기가 득표에 꽤 보탬이 됐던 것으로 여겨진다』고 솔직히 시인했다. 『인기를 모은 「대발이 아버지」역은 전근대적인 가장으로서 비난도 받지만 검소하고 경우가 밝은 가장이기 때문에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것같다』고 자평한 뒤 『이 드라마가 막을 내리는 오는 5∼6월쯤엔 모든 연기활동을 중단하고 정치공부에만 전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이씨의 당선이 확정되자 같은 개표장에서 개표과정을 초조히 지켜보며 뜨거운 싸움을 벌였던 이의원이 다가와 악수로 당선축하인사를 나누어 보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정겨운 장면을 연출했다. 실제에 있어 이씨와 이의원은 이번이 처음 대결이 아니었다. 지난 13대총선 때도 역시 여·야 후보로 맞붙었던,어찌 보면 맞수와도 같은 사이. 그때는 이씨가 7백59표의 근소한 차로 이의원에게 의사당 진출기회를 양보해야 했었다. 이 때문에 이씨는 이번 선거에서도 이의원이 큰 부담으로 느껴졌고 중랑구청 대회의실에서 개표상황을 지켜보는 동안 시종 상기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이씨는 24일 저녁8시10분부터 시작된 개표 벽두만해도 부재자투표에서 1백94표차,면목5동에서 1백21표차로 살얼음판같은 우세를 보이는데 그쳤다. 그러나 이의원의 우세지역으로 여겨졌던 면목4동에서 이의원보다 5백90표나 더 나오자 당선가능성을 직감하게 됐다고 했다. 최종개표결과 이씨는 4만6천1백95표를 얻어 이의원을 3천7백67표나 따돌리고 영광의 금배지를 달게 됐다. 『지난 13대에 이어 이번 총선에서도 한치의 양보도 없었으나 끝까지 선의의 경쟁을 벌여온 이의원이 소선거구제도 때문에 함께 국회에 진출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고 이의원의 낙선을 위로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그동안 이의원이 지역을 대표해서 활발히 펴온 의정활동에 누가 되지 않도록 두사람 몫을 해내겠다』고 말했다. 그는 당초 주민들에게 약속한 이 지역의 심각한 교통난해소와 주거환경의 개선,용마산터널공사의 연내착공 등을 반드시 실천하는 한편 연기자등 예술인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일에 중점을 두고 의정활동을 펴 나가겠다고 했다. 『그동안 연예인출신 정치인에 대해서는 일부 우려도 있었던 만큼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함경북도 회령출생으로 서울고를 거쳐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팔순 노모를 모시고 부인 최희정씨(52)와 미국에 유학중인 아들 종혁군(22)과 딸 정은양(20)을 두고 있다.
  • 서울에 온 세계적화가 장 크리스토(인터뷰)

    ◎“대지예술은 자유를 표현”/베를린 의사당건물 천으로 덮을 계획 세계미술사에 대지예술(LANDART)이란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 불가리아출생의 세계적인 화가 장 크리스토씨(56)가 19일 내한,서울·경주등지를 돌아보고 24일 출국했다. 한국에서의 첫 작품전(갤러리현대,갤러리서미,21일∼4월4일)개최를 계기로 부인·아들과 함께 내한한 그는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분단국가 한국에 그의 대지예술을 펼치겠다는 「적극적인 구상」을 안고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플로리다주 비스케인만의 11개섬을 6백50만평방피트(5만8천5백㎡)의 분홍색 폴리프로필렌천으로 둘러싸거나(83년),파리의 퐁뇌프다리를 44만평방피트의 천과 4만2천9백피트의 밧줄로 감싼 거대한 포장작업(85년)을 해 세계를 놀라게 한 그는 『그것이 곧 아무도 소유할 수 없는 위대한 자유를 뜻하는 작업들』이라고 얘기했다. 『나의 예술은 다른 미술작품들과 달리 길어야 2∼3주 정도밖에 존속될 수 없다.예술은 소유할 수 있으며 영원히 존재한다는 고정관념을 허물어뜨리는데 내 작업의목적이 있다』면서 『어느 특정장소에서 얻는 영감에서 출발되는 나의 설치작업들은 주변여건이나 장소의 특성 때문에 쉽사리 작업허가가 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수년을 기다려가며,경우에 따라선 수십년을 두고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이 작업들은 결코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 한순간의 작업이므로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곧 나만의 예술이란 긍지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크리스토씨는 작업에 드는 비용은 작업전에 그가 기초로 만드는 드로잉과 콜라주(2만∼40만달러)등의 판매대금으로 충당한다고 밝혔다. 그 유명한 비스케인만 작업에는 3백50만달러,퐁뇌프다리에는 4백만달러가 들었고 지난해 일본과 미국에 자그만치 1천3백40개의 푸른 대형 우산을 계곡을 따라 설치한 작업에는 2천6백만달러가 소요됐다고. 크리스토씨는 현재 베를린 의사당을 천으로 씌우는 작업과 뉴욕 센트럴파크 산책로를 따라 노란 천을 단 1만개가 넘는 철제문을 세우는 작업을 구상중이며 이번 서울전에서 그 드로잉과 과거 대표작들의 드로잉,사진을 발표하고 있다.
  • 정기검진은 태아때부터/박인숙 서울중앙병원 소아과(건강한 삶)

    올바른 건강관리란 사실상 일평생 연속되는 과제이나 그중 아이가 생기게 되는 순간부터 시작되어 발육이 계속되는 소아기에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이러한 사실은 대부분 인식하면서도 그 실행에 몇가지 문제점들이 있는 것 같다. 첫째 산모의 산전관리 중요성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실행 시기에 문제점이 있다.즉 대부분의 산모들이 임신한 사실을 확인한 후부터 여러면에서 주의와 조심을 하는 것이 관습이나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시기는 아이로니컬하게도 본인이 임신하였는지도 모를 시기인 아주 초기의 태아발생 시기이다.왜냐하면 태아의 중요 장기들이 임신하고 2∼3개월이면 대부분 그 형성이 끝나기 때문이다. 두번째 문제점으로 첫번째 아이가 선천성 기형 등 문제가 있을 경우 다음 아이에 대하여 충분한 상담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며 이는 부모나 의사 양쪽 전부의 책임이라 할 수 있다.첫째 아이가 선천성 기형,염색체 이상,그밖의 원인 불명의 이상이 있을 경우 다음 임신을 부모 임의로 무조건 기피하거나 아니면 아무런 대책이나 상담이 없는 상태에서 두번째 아이를 갖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이러한 경우 사전에 전문의와 상의하여 태아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시행,병을 사전에 방지하거나 또는 이것이 불가능할 경우 출생전에 대책을 세우도록 해야 한다. 최근 의료장비 및 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과거 태아에서 발견이 불가능하였던 질병들의 진단이 가능한 경우가 많게 되었다. 세번째 문제점은 선진 외국에서와 같이 아기가 출생하기전 임신도중에 적어도 한번,그리고 출생 직후 산부인과 병원에서 아기를 집으로 데려 가기전에 다시한번 부모가 소아과의사와 상담을 해야하나 거의 실행되지 않고있다.이런 상담시간을 가짐으로써 간염·결핵등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있는 질병의 예방뿐 아니라 신생아 1백명중 약 4∼5명에서 발견되는 각종 선천성 기형을 조기발견,이에대한 조치를 취할 수 있으며 예방의학적인 면에서 중요한 여러사항들 즉 예방 접종,모유의 중요성,사고예방,정규검진의 중요성,가족들의 생활습관,특히 흡연·술·약물복용등 그밖의 여러 사항에 관한 계몽및 상담을 해야 한다. 태아및 신생아·영유아에서의 건강관리가 위의 모든 스케줄대로 제대로 시행되었을때 비로소 한 국가의 국민보건행정의 척도가되는 신생아 사망률을 낮출 수 있으며 또한 여러 질병으로부터 아기를 보호하고 더 나아가서는 모든 어린이들의 건강상태를 최대한 증진시킬 수 있다고 할 것이다.
  • 영아유기·노인자살사건 급증(북녘 사회상)

    ○혼전출생·식량난 원인 ○…북한사회에서 최근들어 갓난 어린아이를 버리는 사건이 자주 발생,또 하나의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와함께 노인들의 자살사건도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갓난 어린아이를 버리는 유아유기(유예유기)사건은 가정불화 또는 혼전(혼전)출생 등으로 이전에도 가끔 발생됐던 것이기는 하지만 80년대 후반이후에는 그같은 이유보다는 먹을것이 없어 갓난 아이를 버리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또 사건발생 빈도수도 크게 늘어 일반주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활여건이 나은 당·정간부나 돈많은 재일 북송자의 집앞에는 종종 버려진 어린아이를 볼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노인들의 자살사건 역시 거의가 식량부족으로 인한 가족간의 불화 등에 기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비료난 극심… 「열두바닥파기 운동」/평양 통일거리 입체교차로 건설 ○농촌협동농장서 추진 ○…북한에서는 최근 「열두바닥 파기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운동은 부족한 화학비료를 유기질비료(퇴비)로 충당할 목적으로 농촌경리위원회에서 「협동농장에서 사용하는 비료는 자체해결하라」고 지시한데 따라 특히 농촌지역에서 강화되고 있다. 「열두바닥」이란 ▲구들바닥 ▲연통 밑바닥 ▲부엌바닥 ▲개울바닥 ▲시궁창바닥 ▲논두렁바닥 ▲낙엽쌓인 산바닥 ▲퇴비장 바닥 ▲화장실 바닥 ▲돼지우리 바닥 등을 일컫고 있다. 북한의 각지 협동농장에서는 이렇게 바닥에서 파낸 흙(부식토)을 매년 봄과 가을 두차례 비료를 대신해서 사용하고 있다. 평양 선전자료에 따르면 이 운동은 「농민은 어디서 무엇을 하러가든지 빈손으로 걸어 다니면 안된다」는 것으로 역시 70년대 등장한 대표적인 노역선동 캠페인의 하나이다. ○주석생일전 완공목표 ○…북한은 최근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조성중인 평양 통일거리(구낙랑거리)에 현대적인 입체교차로를 건설하고 있는 것으로 북한방송이 17일 보도했다. 「충성의 입체다리」란 이름의 이 입체교차로는 남북으로 뻗은 통일거리 간선도로와 동서를 가로지르는 강안도로가 만나는 교차점에 건설되는데 총길이1천6백m로서 기본다리와 함께 외곽으로 통하는 4개의 지선다리와 4개의 곡선다리로 이루어져 있다. 북한은 이 입체교차로를 한달 앞으로 다가온 김일성의 80회 생일전에 완공한다는 목표아래 건설자들의 노역배가를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북한방송은 전했다.
  • “김일성 「조섬해방설」 날조된것”/일 문예춘추

    ◎45년8월 당시 일개대위로 구소련서 복무/김정일은 백두산아닌 하바로프스크출생 일본의 월간 「문예춘추」(4월호)와 「주간문춘」(3월26일자)은 북한 김일성의 과거 경력의 허구성을 집중적으로 다룬 장문의 특집기사를 실었다. 문예춘추사는 19일 이같은 김일성의 과거 정체를 파헤치는 특집기사를 다루게 된 것은 『김일성의 거짓된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생존자들이 사망하기 전에 그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올바른 기록을 남겨두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 공산당 기관지 「적기」의 마지막 평양주재 특파원이었으며 현재 워싱턴에서 활동하고 있는 언론인 하기하라씨(추원료)는 「주간문춘」에 게재한 「20세기 최대의 수수께끼 김일성의 정체」라는 기사에서 자신은 김일성의 항일투쟁이 날조된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워싱턴·모스크바·타슈켄트·북경 등을 오가며 입체적인 취재를 했다고 밝혔다. 하기하라씨는 취재 결과 현 김일성은 진짜 김일성이 아닌 「김성주」라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고 밝히고 『북한의 각종 역사서는 ▲김일성이 13세 때부터 항일투쟁에 참가,조선인민혁명군을 지휘했으며▲김일성이 45년 8월 조선인민혁명군에 총 공격 명령을 내려 조국을 해방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김일성은 북한에 있지도 않았다』고 반박했다. 하기하라씨는 『당시 ▲중국 공산당의 지도하에 만주에서 항일 게릴라 활동을 하고 있던 한국인과 중국인은 일본군에 밀려 소련으로 후퇴를 하게 됐으며 ▲소련이 이들을 규합,조직한 것이 소련 극동방면군 보병 88여단이었고,김일성은 이 부대의 대위로 제1대대장을 맡았을 뿐이다 ▲88여단은 정규 부대라기보다 첩보부대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일에 대해서도 『김일성은 항일 투쟁중 비밀기지인 백두산에서 김정일을 낳았다고 말하고 있으나 42년 4월 구소련 하바로프스크에서 출생했다』는 사실을 어릴적 사진과 함께 공개했다.
  • “미래 투자” 청소년문화시설 훌륭(문화로 본 일본 일본인:3)

    ◎동경 「아이들의 성」/후생성서 332억엔 들여 지은 17층건물/음악·체육등 프로그램 마련,전국 보급 필자가 문화정책관계로 연관을 맺고 있는 총합연구개발기구(NIRA)는 1977년에 「일본사회에 있어서의 문화적 상황의 21세기에의 전망」이라는 위탁연구를 실시한 바 있다.요약하면 일본의 현재적 문화상황을 개별적인 문화적 제현상에 관한 데이터에 기초한 현상적 객관성에 의해 수량적으로 파악하고 그 성질을 분명히 밝히는 동시에 거기에서 볼 수 있는 전후 30년의 추세와 이후에 예상되는 사회정세의 변화를 근거로 하여 21세기 초두의 일본의 문화상황을 예측하는 한편,국제적인 안목에서 그 위치를 부여함으로써 일본의 국제문화전략의 기본적 방향을 시사하자는 것이 그 근본취지였다. 문화현상에 관한 사회적인 통계수량을 모으는 것으로부터 시작한 이 연구의 전부를 여기에서 설명할 겨를도,필요도 없다.다만 일본문화의 사회생태학적 파악이라는 이 연구에서 「국사(국사)가 된 문화」라는 표현이 활용되고 있는 것이 흥미롭게 여겨져 이를 잠깐 소개하고 싶은 생각이 든 것뿐이다.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현상으로서의 문화를 문제로 삼는 한,과거에는 문화란 사적인 것,또는 부분사회의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한편으로는 지방적 성격을 이탈하지 않는 토착적인 문화가 있고,다른 한편으로는 제한된 개인에게 떠맡겨지고 제한된 계층의 내부에서 소비되는 「고급문화」가 있었다. 이 문화는 국민의 압도적 다수를 점하는 대중의 생활을 끌어넣고 그 동향을 좌우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따라서 한 나라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이 대중문화를 무시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따라서 문화를 국가사회의 동향에 직접 관계되지 않는 사사로운 일로 보는 것은 이미 불가능해졌고 말하자면 「국사」로서 한 나라의 스케일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렇게 본다면 문화는 일류예술가의 예술활동과 그 작품에서 표징되는 것 같은 특정한 질을 지정할 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그리고 좋은 의미의 사회문제를 근저에서 결정짓는 이른바 「삶의 질」을 뜻할 수밖에 없다.그렇다고 한다면 문화정책은 결코 정부의 한 부처가 독점하여 다른 부처는 나몰라라 할 수 있는 것이 못된다.그런 의미에서 동경 시부야에 있는 「아이들의 성」(고도모노시로)이 필자에게는 관심거리가 된다. 이는 후생성이 1979년 세계청소년의 해를 기념하여 계획,건축한 것인데 4년에 걸쳐 3백32억엔의 국비가 투여되었다.지상 13층,지하4층의 이 시설은 희생성의 위탁을 받아 재단법인 일본아동수당협회가 그 운영을 맡고 있다. 신생아로부터 고교생까지의 모든 아동을 대상으로 하여 폭넓은 복지와 문화활동을 행하는 동시에 당연히 장애를 가진 아동도 함께 활동하는 이 시설은 부모를 비롯하여 아동의 복지·문화 관계자,연구자,교육자 등을 위해 개방되어 있다. 다음 세대를 짊어질 아이들을 심신이 함께 건강하게 육성하고 그 자질향상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선구적으로 실험적인 프로그램을 기획·실천하고 전국에 보급하는 것,국제적 시야에 입각하여 세계각국의 아이들과 복지·문화활동을 통한 교류를 시도하는 것을 운영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는 이 기관이 문부성이나 문화청이 아니라 후생성에 의해 발상되고 추진·후원되고 있음이 주목되었으면 한다. 출생률의 저하경향에 의한 인구구조의 급속한 노령화,청소년의 비행문제,체위에 따르지 못하는 아이들의 체력,그 마음을 좀먹는 요인의 증가 등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이 활력있는 미래사회를 기대할 때 우려할 만한 현황이라는 것은 비단 일본 뿐이 아닐 것이다.그렇다면 굳이 영역을 핑계대지 않고 가능하면 국가를 비롯하여 모든 지방자치단체나 또는 사회단체들이 「삶의 질」의 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함직하다.이 「아이들의 성」의 활동을 모두 소개할 수는 없으되 극장을 빼놓고도 음악·조형·체육·놀이 및 시청각 사업들과 자원봉사자들을 비롯한 관계인사들의 연수교양·보조연구개발 그리고 국제교류활동들이 일반내관자,그룹 그리고 강좌·클럽의 세유형의 대상을 위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극장에서 정기적인 공연이외에 연 25회정도 양호시설 모자보호시설 지체부자유아시설 등에 수용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자선공연도 빼놓을수 없는 주요사업의 하나다.
  • 열전표밭 이곳에서는…:2

    ◎김 후보,재개발공적 앞세워 “야바람 차단”/노원을/와신상담 민 후보,보선패배 설욕별러/진천·음성/DJ강풍 주춤… 여,거물급에 승산기대/진안 무주 장수 ▷서울 노원을◁ 홍성우전의원이 국민당후보로 출마,혼전양상이 빚어지는듯 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민자당 김용채후보의 우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이 지역에서 10대부터 3선을 했던 홍후보가 지난해말 정치재개를 선언했을 때만해도 상당한 돌풍을 몰고 오리란 예상이 있었다.하지만 실제 선거전이 시작되면서 홍후보의 여러 약점들이 부각됨으로써 민자당 김후보를 꺾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홍후보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는 것은 12대말 정계은퇴를 선언케했던 스캔들 시비다.4년이 지났음에도 주민들사이에 여러 풍문이 계속되고 있을 만큼 최대의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정치공백기간동안 지역구 관리를 소홀히 해왔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되고 있다. 홍후보는 이같은 약점을 커버키위해 「기성정치 청산」을 외치며 맨투맨방식으로 유권자들에게 접근하고 있으나 3공·5공을 거치면서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이 「새정치」를 주창하고 나선 것은 앞뒤가 맞지않는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또 「재벌당」간판으로 나서 상당수 유권자들의 거부감을 받고 있다는 것. 홍후보는 하루 수백명씩 유권자들과 직접 만나 지지를 호소하고 있지만 득표기반이 확대되는 징후가 별로 없어 고심하고 있다.게다가 민자당측으로부터 『열세상황을 금품공세로 만회하려 한다』는 공격을 받고 있어 곤욕을 치르고 있다. 반면 민자당 김후보는 공명선거실현으로 유권자들의 냉정한 한표를 기대한다는 방침아래 선거전에 임하고 있다. 여권의 중진답게 수도권순환고속도로 완공,종합운동장 설치,열병합발전소및 농수산물도매시장 유치등 굵직한 공약을 내세우며 지지를 호소중이다. 김후보측은 달동네로 유명하던 이 지역에서 재개발사업을 적극 추진해 온 것을 강점으로 꼽는다. 특히 13대때 거의 없던 아파트거주 인구가 지금은 67%를 차지함으로써 그만큼 중산층이 두터워진 것도 국민당 홍후보에게는 불리한 여건이라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민자당 김후보측은국민당측의 막판 금품살포만 막으면 낙승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지난 선거때 차점 낙선한 임채정후보가 민주당공천을 받아 재출진,전체 유권자의 30%를 차지하는 호남출신들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전북 출신의 전대렬후보(신정당)가 「김대중비판론」을 펴면서 호남표를 잠식하고 있어 민주당 임후보가 13대때 득표수준을 유지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민중당을 탈당,「민중회의」모임을 결성한 오세철 연대교수가 청년층을 집중 공략,표를 분산시키고 있는 것도 야권 후보들에게 불리한 요인이다. ▷진천·음성◁ 국민당등 총선을 앞두고 급조된 신당후보들이 난립하고 있지만 이 지역 유권자의 주된 관심은 민자당 민태구후보와 민주당 허탁의원간의 지난 4·3보선에 이은 두번째 대결에 쏠리고 있다. 지난 보선에서 뜻밖의 고배를 들었던 민후보측은 주된 패인을 오랜 공직생활에 따라 몸에 밴 관료체질을 벗지 못한 탓으로 자가진단,지난 2년간 「낮은 자세」로 농민층과 밑바닥 서민층을 누비며 와신상담,설욕을 장담하고 있다. 민후보진영은 특히 3당 통합이후 갑작스러운 출마에 따른 조직분규도 보선 패인의 하나로 보고 이를 극복하는데 주력,자연부락 단위로 1∼2차에 걸쳐 조직정비를 완료하는등 출진 채비를 이미 마무리했다. 이 지역은 복합선거구로 과거 역대선거에서처럼 음성(민태구·허탁)대 진천(정우택·이인수)의 군대항전 성격을 띨 조짐도 있으나 음성에서 초·중·고를 나온 두터운 지역연고와 충북지사 시절 확실한 지역구 사업실적을 갖고 있는 민후보측이 일단 유리한 고지를 확보했다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 반면 허의원측은 통합야당의 「바람」을 기대하며 농민표 공략에 주력하고 있으나 충북지역의 뿌리깊은 보수성향과 반DJ(김대중 민주당대표)기류를 감안할 경우 야권통합이 오히려 감표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 실정. 특히 이지역 농민회 조직이 전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탄탄하다는 점에 착안한 허의원 진영은 일찍부터 농민회측의 지지를 업기 위해 부심해 왔으나 별다른 농촌관련 의정활동 실적을 남기지 못해 젊은층으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분석이다.지난 보선에서는 수차례의 낙선에 따른 동정표의 힘을 빌릴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같은 프리미엄이 없어진 것도 허후보측으로서는 마이너스 요인이라고. 재벌 신당인 국민당측은 진천출신의 정운갑 구신민당총재권한대행의 4남 정우택씨를 내세워 정대행의 「후광」을 기대하고 있지만 정대행이 과거 유신 말기 김영삼 신민당총재 제명파동때 석연찮은 태도를 취해 구설수에 올랐다는 점에서 젊은층으로부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는 관측. 정후보측은 현대계열인 한라중공업을 통해 장학금을 희사하는등 물량공세와 함께 그동안 음성에서 주로 국회의원을 배출한 점을 노려,「이번에는 진천출신」이라며 작은 지역감정에 호소하고 있으나 부친은 진천이 고향이지만 정후보는 타지출생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신정당의 이인수후보는 깨끗한 정치풍토에 앞장서겠다는 구호를 앞세우며 역시 진천지역을 중심으로 표밭갈이를 하고 있으나 큰 변수가 되지 않을 듯. 민후보측은 이번 선거가 군대항전이 되지 않도록 진천∼청주간 국도4차선확장·포장 조기완공등 균형있는 지역개발을 주요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진안·무주·장수◁ 이번 총선에서는 「DJ바람」이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게 전북의 분위기다. 이가운데 특히 진안·무주·장수의 경우 교통·농수산부장관과 재선의원의 화려한 경력을 지닌 민자당의 황인성후보가 지명도가 워낙 뚜렷해 여권의 호남무석 치욕을 만회할 수 있는 최대의 진원지로 꼽히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후보등록 며칠전에 공천자를 교체하는등 전력에 차질을 빚어 전전긍긍하는 상태이다. 민주당의 당초 공천에서는 안 탁씨가 확정됐으나 안씨는 며칠간의 지역구점검 결과 민자당 황후보의 위세가 워낙 드세 가망이 없다고 판단,결국 공천을 반납하는 바람에 오상현씨가 뒤늦게 민주당후보로 선거전에 뛰어들게 된것. 또 민주당공천에서 비리와 연루된 의원으로 분류돼 탈락한 이상옥의원은 공천탈락에 반발해 단식농성까지 벌이다 뚜렷한 명분도 없이 국민당으로 옮겨버려 지역주민들도 이의원의 변절에 어이없어 하는 반응이다. 이지역 출마자는 황인성(66·민자)오상현(52·민주)이상옥씨(42·국민)등 3명으로 모두 전현직의원.이들은 11대총선에서도 맞붙어 황후보가 56.6%,오후보가 22.4%를 득표해 동반당선됐고 이후보는 낙선했었다. 이중 국민당의 이상옥후보는 13대총선때 「황색바람」을 타고 평민당의원으로 당선됐으나 90년 국유지와 사유지의 교환청탁과 관련해 2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1심에서 징역5년과 추징금 2천만원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보석으로 석방된 전력때문에 민주당의 공천에서 탈락됐던 것. 교통·농수산부장관및 11·12대의원,전북지사·국무총리비서실장·조선전업사장·국제관광공사 사장 등 관계와 전문경영인으로서도 탁월한 경력을 가진 민자당의 황후보는 「농촌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캐치프레이즈아래 자신의 경륜을 바탕으로 지역과 호남발전에 헌신하겠다며 유권자층을 파고들고 있다. 특히 5년간의 전북지사시절 전주∼군산간고속도로·군산외항확대·임해공단의 착공 또는 완공의 업적과 이리역 폭발사고 당시의 신속한 피해복구 등의 행정력이 주민들의 기대를모으고 있다는 여론. 황후보는 진안군의 최대쟁점인 용담댐수몰지역 4개면의 보상문제도 행정경륜을 바탕으로 주민권익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민주당의 오상현후보는 뒤늦게 공천장을 받아쥔 핸디캡과 지난 11대선거시 황후보에 비해 절반도 못미친 득표력을 극복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으나 3개군의 넓은 선거구에서 단시일에 바람을 일으키기에는 힘들 것이라는게 지역의 분위기.그러나 오후보는 20일쯤 김대중대표의 지역유세에 기대를 걸고 있으나 김대표의 전북에 대한 영향력도 예전같지 않다는게 최근의 여론. 국민당의 이후보는 자신이 추천했던 이 지역 광역의원 몇사람의 도움과 과거 조직원들을 동원,득표전에 뛰어들었으나 13대의원시절 뇌물수수사건과 지역에 대한 기여도가 별로 없었다는 점 등을 유권자들이 지적하고 있으며 특히 재벌당으로 불리는 국민당간판에 지역주민들이 거부감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서울노원을 ▲김 용 채 59 자 현의원 ▲임 채 정 50 주 위원장 ▲홍 성 우 51 국 전의원 ▲전 대 열 51 신 정치연구소장 ▲오 세 철 49 무 연세대교수 ▲장 성 욱 43 무 연구소운영 ◇유권자수 17만6천5백35명 ◇전통적 서민거주지역과 신흥아파트 혼재지역. ○진천·음성 ▲민 태 구 58 자 지구당위원장 ▲허 탁 56 주 현의원 ▲정 우 택 40 국 전공무원 ▲이 인 수 57 신 정당인 ▲이 원 배 51 무 농업 ▲이 규 필 43 무 회사대표 ▲김 대 부 30 무 무역업 ◇유권자수 9만1천명(진천 3만8천,음성 5만3천명) ◇농민회 조직이 강세이고 군대항성격을 띠고 있는 복합선거구. ○진안·무주·장수 ▲황 인 성 66 자 전·교통농수산장관 ▲오 상 현 52 주 전의원 ▲이 상 옥 42 국 현의원 ◇유권자수 8만10명(진안 3만2천,무주 2만3천,장수 2만3천) ◇전북에서 제일 면적이 넓은 3개군 지역구이며 전통적인 농촌지역.11대총선에 이은 재격돌.
  • 과학문명시대의 지방색/정용승 교원대교수(해시계)

    나는 호적에 서울 금호정 출생으로 기록돼 있다.금호동의 무시막이라는 산기슭의 한 절간에서 태어났다 한다.아버지의 고향은 개성,할아버지는 청주태생으로 일제시대 도피생활 때문이라 한다.그러므로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서양식으로 서울이요,우리식으로는 개성 아니면 청주』라 한다.『본이 어디냐』 물으면 광주라고 하면서 『아마 경기도가 아닌 전남 광산군인 것 같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가끔 뿌리찾기가 화제에 오른다.북경에 있을 때 『우리집에는 약1000∼2000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족보가 있으며 나는 21대』라고 하면 놀라고 의아해 한다. 최근까지 족보에 관심이 없었으나 며칠 전 우연히 꺼내 보았다. 조상은 1750년경 청주의 북쪽 15㎞지점에 있는 토성 부근에서 서당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1600년초,즉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7)때는 청주 어느 향골에 정착해 글방을 하면서 한 1백50여년 시골 생활에 묻혀 대를 이어갔다.다시 거슬러 고려말인 1370년에는 개성에도 살았으나 1380년대에는 경기도 양주군인 의정부와 동두천은 물론 포천과 강원도 춘천에도 근거를 두었던 것으로 기록되었다. 제1대는 1300년초 전라도 광주에 근거를 두었다.그 이전 40여대는 경주로 연결된다.조상들은 신라·백제·고구려·고려로 이어지며 선조는 신라 건국공신이라 적혀 있다. 조상은 부계가 개성의 수전노,서울 깍쟁이,경기도 얌체,감자바위,멍청도,전라도,그리고 문뎅이로 구성되어 있음을 미처 몰랐다.모계는 더욱 오색찬란하다.나의 조상은 좁은 반도에서 수백년 또는 2000∼3000년간 각종 성씨와 얽히고 설켰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렇게 총체적으로 피가 섞인 나와 네가 서로 흉을 보자면 어쩌자는 것이냐.내가 전라도를 깔보고,문뎅이와 TK를 왈가왈부하는 것은 누워 침뱉기이다. 50년후에는 지방색이 완전히 사라진다.남한 인구의 3분의1이 수도권으로 이전해 얽혀 살고 있다.교육과 기술 및 직업등 현대과학문명의 결과이다.앞으로 10∼20년이 지나면 3분의2는 더욱 융합된다.더구나 50년이 지나면 민족의 99%가 더욱 잘 혼합될 것이다.이때까지 우리의 지방색은 저절로 사라지며 단합된 한민족으로 될것이 분명 예견된다.
  • 로트레크 사거 100년 파리 회고전 인기

    ◎포스터·판화등 2백여점… 예술세계 재평가 키1백52㎝의 난장이였던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18 64∼ 19 01)은 날이 가면 갈수록 천재성이 재발견되는 거인으로 추앙되고 있다.그의 사후 1백년을 넘기면서 「로트레크 회고전」이 영국 런던에서 열린데 이어 지난 22일 파리 그랑팔래 국립미술관에서 개막되었다.세계 곳곳에 흩어진 그의 작품 2백여점이 한지붕 아래 모인 이 회고전은 6월1일까지 계속된다. 전시되는 작품 가운데는 회화 70점 외에 그가 독특한 경지를 개척한 포스터와 판화 부문의 작품 그리고 소묘가 포함돼 있다.프랑스 내의 알비 미술관(알비는 그의 출생지임)과 오르새 국립미술관,국외의 런던 시카고 상파울루 런던 모스크바 등지 미술관및 미술품수집가들에게서 빌어온 것들이다. 오늘날 로트레크 작품의 인기는 대단하여 값이 매우 비싸다.그의 생시에 20프랑 하던 판화 1장이 19 91년 12월 런던 소더비 경매장에서 2백31만 프랑(1프랑은 1백40원)에 팔렸다.로트레크 작품 가격의 최고 기록은 19 89년 파리 드뤼오 경매장에서 3천35만5천3백96프랑에 팔린 「바티뇰에서」라는 그림(92×65㎝)이 지니고 있다. 파리의 신문들은 여러 차례 로트레크 회고전을 크게 다루었으며 전시장 입장권이 개막 보름전에 이미 4만7천5백장이 팔리는 기세로 보아 예매하지 않고는 이 전시회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지난 17일에는 일반공개에 앞서 미테랑 대통령이 자크 랑 문화장관과 함께 관람했다. 로트레크는 알비라는 곳에서 백작의 아들로 태어났다.그의 가문은 프랑스의 가장 오래된 귀족가문의 하나로서 조상들은 대대로 툴루즈 백작이라는 칭호로 불렸다. 스무살 나던 해인 18 84년 파리의 몽마르트르 지역 투르라크 거리 7번지에 정착한 로트레크는 이듬해 근처의 무도장 물랭 루주(빨간 풍차)가 문을 열자 여기 드나들면서 이 업소 선전 포스터를 그리는 한편 이곳의 무희와 가수들을 즐겨 화폭에 담았다.그래서 로트레크 하면 몽마르트르와 물랭 루주를 연상하게 된다. 난장이라는 신체적 결함을 멍에처럼 이고 살아야 했던 그는 술과 불우한 밤의 여인들에게서 위안을 받았다.알코올과 화류병으로 그는 33세때 이미 폐인처럼 되었으며 결국 37세로 죽었다.그가 살았던 때는 이름난 화가와 문인들이 예술의 꽃을 피우던 「좋은 시절」로 일컬어지던 시기였다.동시대인으로는 반 고흐가 로트레크의 재능을 남달리 인정한 사람이었다. 로트레크의 작품은 그가 죽은 뒤에도 수십년 동안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환락가의 탕아라는 평판 때문이었다.그의 사망 직후 옛 백작부인인 어머니가 파리시와 뤽상부르 미술관에 작품들을 기증하겠다고 했으나 거부당했다.19 20년에 이르러서야 출생지인 알비의 미술관에 그의 작품이 받아들여졌다.
  • 신임 노동당당수 라빈/총리지내다 불명예 사임… 15년만에 재기

    ◎“평화위한 점령지 반환”주장하는 온건파 군출신으로 강경이미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평화를 위한 점령지양보를 주장하는 외강내유형 지도자.독수리의 깃털을 가진 비둘기에 비유되곤 한다. 74년6월부터 이스라엘 최초의 본토출신(1922년 예루살렘 출생)총리를 지내다 부인의 불법해외은행구좌 보유사실이 밝혀지면서 77년초 총리겸 노동당 당수직을 사임한 이래 15년만에 재기했다. 고교재학중이던 40년 독립투쟁게릴라활동을 시작한 이래 27년여동안 군에 몸담으면서 67년 중동의 6일전쟁 당시 군참모총장으로 승리를 이끌어내 대아랍권 컴플렉스를 말끔히 씻어냈다.84년부터 90년까지 국방장관을 지내면서 레바논 침공군을 철수시킨 반면 팔레스타인인들의 무력봉기를 강경진압하는 등 양면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해서는 강경수단을 불사하더라도 평화협상에서는 유연한 태도를 취하기를 바라는 이스라엘인들에게 라빈이 호소력을 지닐 것으로 보인다.
  • 너도 나도 “신생아혈액검사”/박인숙 서울중앙병원소아과(건강한 삶)

    최근 모 일간신문에 큰 활자로 난 한 의학기사로 인해 많은 부모들이 오해를 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많은 의사들,특히 소아과 전문의들이 때아닌 「곤욕」을 치르고 있다. 「신생아 혈액검사로 정신박약아를 예방할 수 있다」는 제목의 이 기사는 대중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큰 오해를 초래할 수 있다.즉 신생아때 몇가지 선천성 대사질환에 관한 피검사를 하여 정상이면 앞으로 정신박약아가 절대로 되지않는다는 보장이라도 받게되는 것처럼 잘못 생각하게 된다.또한 이 검사중에 포함되는 한두가지 선천성 대사질환만이 정신박약 원인의 전부인 것으로 잘못 결론을 내리게 되며 이 때문에 소아과병원에 부모들이 찾아오고 「정신박약아 검사」를 요구하는 사례가 종종 일어나고 있다. 정신박약의 원인은 그 종류가 매우 많으며 몇가지를 보면 출생전후의 뇌손상,염색체이상,신경과 질환,감염,기형을 일으킬 수 있는 산모의 약물 복용,선천성 뇌및 신경계의 기형,심한 영양실조,뇌의 외상,심한 조산아,호흡장애,뇌출혈,태반의 이상 등을 들수 있으나 많은 경우에서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한다.이중 선천성대사질환은 정신박약의 극히 일부의 원인이며 또한 그 종류도 매우 많고 현재 시행되고 있는 혈액검사는 그중에서도 극히 일부인 한 두가지 병만을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다. 또한 그 발생빈도도 매우 낮아 가장 대표적인 대사성질환인 페닐케톤뇨증의 경우 일본통계로는 약 7만명에 한명,중국에서는 2만∼3만명에 한명꼴로 발견되며 우리나라의 통계는 없는 상태이다.우리나라에서 일년에 출생하는 약70만명의 신생아중에서 약10∼20명 정도에서 발생할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므로 이렇게 희귀한 병의 환자 몇명을 찾기 위해 모든 신생아를 대상으로 많은 경제적 부담을 들여 대사성 질환에 대한 혈액검사를 해야할지에 관해서는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있다.선천성 대사질환중 비교적 덜 희귀한 질환으로 선청성갑상선기능 저하가 있는데 이는 약 5천명에 한명꼴로 발생하며 조기발견이 치료에 가장 중요하므로 이의 검사는 필요하다고 하겠다. 요약하면,정신박약을 예방하기 위해 모든 신생아에게 선천성 대사질환의 혈액검사를 받게할 필요는 없으며 이는 효과적인 방법도 아니며 더구나 이 검사가 정상이라고해서 안심하는 것은 절대로 잘못된 생각이며 검사를 하더라도 어떤 병에 대한 진담검사인지 부모님들이 확실히 알고 해야할 것이다.그리고 저능아의 발생·발견·진단은 출생직후에 한번만 하고 끝내는것이 결코 아니며 계속되는 혈육과 성장 과정에서 언제든지 일어날수 있고 발견되기도 하는 것이므로 신상아때에 한번 검사를 받았다고 앞으로도 계속 정상일 것이라고 믿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며 반드시 시정되어야겠다.
  • 소설 「뿌리」 흑인수난사 조명/10일 사망한 알렉스 헤일리의 문학

    ◎9년간 혈통추적… 77년 퓰리처상/「말콤엑스」등 히트시킨 대중작가 10일 미국 시애틀의 한병원에서 사망한 소설 「뿌리」와 「말콤 엑스」의 저자 알렉스 헤일리(70세)는 문명의 격류속에서 잊혀지기 쉬운 혈통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불멸의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헤일리는 지난 76년 선조들의 족적을 좇아 아프리카 서부 감비아의 한 마을에 대한 끈질긴 사실추적과 잘 다듬어진 픽션으로 「뿌리」를 완성,77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당시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된 12시간 짜리 미니시리즈 「뿌리」는 미국 텔레비전 방송사상 최대 기록인 1백30만명의 심금을 울린 역작이었다. 헤일리는 흑인노예들의 생활에 관한 주변 가족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장장 9년여동안 6대에 걸친 모계측 내력을 세밀히 추적,심혈을 기울여 「뿌리」를 캐냈다. 그는 1921년 뉴욕 이타카에서 출생,30년대말 노스 캐롤라이나 소재 엘리자베스 시립사범대학을 중퇴하고 해안경비대에 입대,20년동안 군인생활을 했다. 37세의 나이로 군복무를 마친뒤 「다이제스트」,「플레이보이」잡지 등의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기도 했던 헤일리는 「뿌리」의 인기가 절정에 달할 무렵,작품표절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으며 일부에서는 흑인의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판까지 받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뿌리」외에도 「말콤 엑스」가 7백여만부나 팔리는 등 인기작가로서의 자리를 확고하게 굳혔다.
  • 「뿌리」 작가 헤일리

    【시애틀 AP 연합】 소설 「뿌리」와 「말콤 엑스(X)」의 저자 알렉스 헤일리씨가 10일 급환으로 미국 시애틀의 한 병원에 입원한 뒤 사망했다고 병원측이 이날 발표했다.향년 70세. 1921년 8월11일 미 뉴욕주 이타카에서 출생한 헤일리씨는 지난 77년 한 미국 흑인 일가 조상들의 내력을 추적한 소설 「뿌리」로 퓰리처상을 수상했었다.
  • 합섬생산 세계4위… 시멘트·철강은 7위/통계로 본 한국경제의 위상

    ◎어획량 7위에 수산물 소비 3위/인구 23위… 교통사고사망률 1위/의사 1인당 1천7명 담당… 선진국의 두배 세계속에서 한국의 위치는 어느 정도일까.90년 현재 우리나라의 인구는 세계23위,인구밀도로는 방글라데시 대만에 이어 세계3위이다.쌀생산은 세계10위,어획량과 시멘트·철강생산이 각각 세계7위이며 자동차생산은 세계10위에 올라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러나 의료수준을 나타내는 의사1인당 인구수는 선진국의 절반수준에 불과하고 간암·위암·만성간질환·결핵으로 인한 사망률이 세계에서 1∼2위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통계청이 6일 UN과 IMF(국제통화기금)등에서 발간하는 국제통계를 토대로 비교분석한 세계속의 한국위치는 다음과 같다. ▷인구◁ 우리나라의 인구는 90년 현재 4천2백86만9천명(추계치)으로 세계23위이며 전세계 52억 인구의 0.8%를 차지하고 있다.국토면적은 9만9천㎦로 전세계의 0.07%를 차지하고 있으며 인구밀도로는 일부 도시국가와 섬국가를 제외하면 방글라데시(㎦당 8백3명)와 대만(〃5백53명)에 이어 세계3위로 ㎦당 4백32명이 살고 있다. ○인구밀도는 3위에 연평균 인구증가율(85∼90)은 1.0%로 일본(0.4%)프랑스(0.4%)영국(0.2%)등 선진국에 비해 높은 편이나 아시아에서는 일본다음으로 낮은 수준이다. 또 2천20년에는 인구가 5천57만8천명에 이를 것으로 추계돼 전세계인구 0.6%수준으로 낮아지게 되고 65세이상 인구가 90년 현재 4.7%에서 13.1%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90년기준 출생률은 인구 천명당 15.6명으로 미국의 88년 수준(15.9명)과 비슷하나 일본(10.1명,89년),영국(13.6명,89년),프랑스(13.8명,88년)등 선진국에 비해서는 높은 편이다. ▷산업◁ 쌀생산량은 90년 현재 7백78만6천t으로 미국(7백2만7천t 세계12위) 보다 앞선 세계 10위이며 경작면적당 생산량은 1㏊당 6천2백59㎏으로 세계7위 어획량은 2백72만7천t(88년기준)으로 일본 소련 중국 미국등에 이어 세계7위이며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은 86∼88년 평균 연간 49.6㎏으로 일본(71.2㎏) 홍콩(50.9㎏)에 이어 세계3위였다. ○쌀·자동차 10위 기록 합섬섬유생산량이 89년기준으로 세계생산량의 8.1%를 차지,미국 대만 일본에 이어 세계4위 수준이며 시멘트 생산량은 89년 3천47만t으로 중국 소련 일본 미국 등에 이어 7위에 올라섰다. 철강생산량은 2천3백12만t(90년현재)으로 전세계 생산량의 3.0%를 점유하면서 세계7위이며 1인당 철강소비량도 89년기준 4백33㎏으로 세계13위로 나타났다.전자공업생산량은 90년 2백41억달러로 세계6위이며 자동차 생산량은 1백32만1천대로 세계10위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전자공업생산의 연평균 증가율이 85∼90년 30%를 기록,일본(16.1%)싱가포르(24.3%)등을 제치고 세계1위를 기록했다. ○교사당 학생 34명꼴 ▷교육·보건◁ 91년 현재 교사 1인당 학생수는 34.5명으로 인도(60.3명)파키스탄(40.9명)등보다 적으나 일본(22.2명) 영국(20.3명)등 선진국에 비해서는 매우 많은 편이다. 90년 현재 의사1인당 인구수는 1천7명으로 일본(6백9명 88년),미국(4백73명 84년),프랑스(3백20명 86년)등에 비해 매우 많은 편이고 병상당 인구수도 4백29명으로 88년 일본(76명),82년의 미국(1백71명)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또 36개국을 대상으로 한 사망통계조사결과 89년 현재 우리나라의 간암사망률이 인구 10만명당 23.8명으로 1위를 기록했으며 결핵과 교통사고 사망률도 각각 12.6명,31.8명으로 세계1위였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편강열의사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의성단 조직,만주벌 항일무장투쟁/장춘 일 영사관 습격,7명이 일경 60명 사살/하얼빈역 광장서 포위된채 치열한 총격전/중과부적으로 피체… 옥중고문 후유증으로 37세에 순국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길이 본받기 위해 서울신문사가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애사 편강열의사가 선정됐다.황해도 연백에서 출생,2일로 탄신 1백주년을 맞은 편강열열사는 만주에서 항일무장독립운동단체 의성단을 조직,장춘의 일본 영사관을 습격하는등 항일투쟁을 벌이다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다 일제의 고문으로 얻은 척수염으로 29년 37세의 나이로 순국했다.편의사의 생애와 사상·업적을 되새겨 본다. 일제하인 1924년8월 만주 하얼빈역 광장에서 완전무장한 일본경찰들이 무장항일독립운동가 편강렬의사를 체포하기 위해 겹겹이 포위하고 있었다. 만주일대에서 3백여명의 조선청년들을 이끌고 독립운동을 하던 편의사는 군자금과 무기를 조달한뒤 길림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하얼빈역으로 왔다가 밀정 김성곤의 밀고로 일본경찰의 포위망에 들게 되었다. 편의사는 길가 상점에 뛰어들어 장시간 총격전을 벌이다가 중과부적으로 왜경에 체포됐다. ○만철병원도 습격 편의사는 1924년 대원 5명을 데리고 봉천의 만철병원을 습격한뒤 같은해 대원 6명과 함께 장춘의 일본영사관을 습격,7시간에 걸친 격전끝에 적 60여명을 사살해 일본경찰의 추적을 받아왔다. 일경에 체포된 편의사는 25년 평양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신의주 감옥에서 복역중 고문으로 인해 생긴 지병으로 29년1월16일 안동현 적십자병원에서 37세의 나이로 숨졌다. 편의사는 병상에서 『내가 죽거든 유골을 내가 활동하던 만주땅에 묻고 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고국으로 이장하지 말라』는 비장한 유언을 남겼다. 편의사는 1892년 2월2일 황해도 연백군 봉서면 현죽리 목동에서 편상훈씨의 4남중 3남으로 태어났다. 편의사는 어려서부터 애국심과 충의심이 깊어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14세의 어린 나이에도 의분에 떨어 1주일간 항의 금식했다. 1907년 전국 각지에서 일본에 복수를 주장하며 의병이 봉기하자 경상·충청일대에서 활약하던 의병대장 이강년대장을 방문,이대장 휘하에 들어가 소집장 및 선봉장으로 활동했다. 이듬해 의병을 인솔하고 경기도 양주에서 3일간 격전을 벌이다 부상을 입은 편의사는 1909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편의사는 평양의 숭실학교에 입학,항일운동에 정진하다 1911년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사내정의)암살미수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5년 선고를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한뒤에는 의병동지들과 무장결사대 광복회를 조직,친일파·민족반역자·일본경찰을 처단하는 격렬한 투쟁을 전개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황해도일대의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고 동생 덕렬씨를 상해임시정부에 파견,국내조직과 긴밀한 연락망을 구축했다. 그해 임시정부에서 파견한 최명식이 군자금을 모집하고 무기를 조달한뒤 항일무장투쟁을 할 거점을 마련키위해 군사준비단을 조직하자 편의사는 황해도 대표로 활동했다. ○밀고자 즉결처분 1919년 9월 다시 일본경찰에 체포된 편의사는 징역1년을 선고받고 21년에 출옥했다. 23년1월 편의사는 동지 김경배·김태규·조종호등과 함께 중국의 독립운동상황을 살피기위해 북경으로 가 상해·만주등지를 전전했다. 무장투쟁으로 일관한 편의사의 눈에는 창조파와 개조파로 나뉘어 논쟁만 일삼던 임시정부의 무력함이 도저히 성에 차지 않았다. 23년 10월 만주로 돌아와 강진지·양기탁·남정동지들과 무장항일투쟁비밀결사인 의성단을 조직,단장에 피선됐다. 의성단의 활동무대는 길림성과 장춘일대의 넓은 평야지역이었다. 편의사는 이 지역에 이주한 동포들에게 『조선인단체를 조직해 이민족에게 억압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독립의식을 고취시키며 민족적 공감대를 넓혀갔다. 재만동포들의 물적 인적지원을 받은 편의사는 2백50명의 의성단원을 무장시켜 장춘·봉천일대의 일본인 병원·영사관·우체국·경찰서·철도·군수기지를 습격,혁혁한 공을 세웠다. 일본은 경찰력과 헌병·밀정등을 총동원해 편의사를 체포하려고 했으나 신출귀몰하는 그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편의사는 의성단활동을 하는 한편 만주지방의 각 독립운동단체들을 통합하기 위해 전만통일의회를 조직했다. 편의사는 만주지역의 비밀항일무장단체들을 통합해서 강력한 군사조직으로 만드는 공작을 하던중 24년8월 하얼빈역에서 밀정 김성곤의 밀고로 일본경찰에 포위됐다. 당시 이범석장군은 비분함을 참을 수 없어 밀고자 김을 즉결처분했다. 편의사가 체포되자 의성단활동은 위축되고 2∼3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단원들도 뿔뿔이 헤어져 소멸됐다. 옥고를 치르는동안 편의사는 일제의 악랄한 고문으로 척수염을 얻어 불구의 몸이 됐다. ○왜놈치료는 싫다 혼자 일어설 수도,앉을 수도 없는 지경이된 편의사는 병보석을 얻어 28년 선천의 미동병원에 입원했으나 별효과가 없었다. 친지와 가족들이 의료시설이 구비된 일본인 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고했으나 『죽어도 왜놈에게는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완강히 거절했다. 28년9월 동생이 있는 만주의 안동으로 옮겼으나 4개월만인 1929년1월16일 순국했다. 편의사의 묘소는 중국 요령성 단동시 원보구 인충가 진강산 장군봉 뒤편에 있었으나매장후 61년이 지나는 동안 이 지역이 시가지로 개발되어 비석은 커녕 묘소의 흔적조차 남지않게 됐다. 지난해 가을 국가보훈처와 편강렬의사 탄신1백주년 기념사업회가 「편의사유해봉환반」을 구성,현지답사한 결과 밝혀진 사실이다. 편의사는 후사가 없어 동생 덕렬씨의 2남인 충무씨를 양자로 입양했으나 충무씨도 지난 80년대초 미국으로 이주했다. 정부에서는 62년 편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역사적 평가/“마지막 의병장” 불굴의 절개 빛나/17세때 13도창의군의 서울탈환대작전 참가 편강렬의사에게는 지난 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수여됐다. 그러나 편의사의 이름을 아는 이가 드물고 역사적 평가도 높지 못한 실정이다. 구한말의 의병전쟁에서 20연대 중반의 독립운동에 이르기까지 큰 운동에 참가해 청춘을 불살라버린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책에서는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가 없다.이때문에 편의사는 이름없는 독립운동가로 오늘에 이르고 있고 무덤마저 정확한 자리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편의사는 중국단동 공동묘지 어디인가에서 압록강과 강건너 신의주를 바라보며 조국통일을 애타게 염원하고 있을 것이다. 편의사가 13도 창의군의 서울대탈환 작전에 참가한 것은 17세때이다.여기서 그는 부상을 입었으니 이 사실만으로도 독립운동가로 치부될 수 있다.그러나 이 부상은 37세로 순국할때까지 20여년간의 항일투쟁의 시작일 뿐이었다.1910년 압록강철교 준공식에 참석하던 사내총독암살음모사건으로 연루되어 최초의 옥고를 치르게 된 것은 나머지 그의 투쟁사와 기묘한 일치를 보여준다. 「양양한 압록강물은 흘러서 어드메로 가는가」라는 그의 옥중시에서 보듯 편의사의 일생은 압록강과 숙명의 관계를 맺고있다. 3·1운동후 두번째 옥고를 치르고 압록강을 건넜을 뿐아니라 세번째 마지막 옥고를 치를때도 압록강을 건느며 망국의 한을 달랬다. 한국인의 성품 가운데 끈기를 제일로 드는 이가 많다. 편의사야말로 독립운동 하나를 위해 일생을 바친 끈기의 대명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를 위대한 독립운동가로 평가하는 것은 불요불굴의 절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마지막 재판정에서 7년 징역형이 내려졌을때 파안대소했는데 이는 그가 의병정신을 잃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의병정신이란 나라와 겨레를 위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하고야 마는 정신이다. 이런 의미에서 편의사는 한국의 마지막 의병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편의사의 탄신 1백주년이기도한 2월을 맞아 새삼 조국통일로서 망국한을 달래드려야 되겠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 음악평론가 박용구의 풍기(명사의 고향:23)

    ◎죽령 넘어서면 눈아래 확투인 들판/할아버지대에 십자거리에 터잡아/희방사 스님졸라 훈민정음 탁본도/구한말 이강년·신돌석등 의병의 본거지… 척박했던 땅이 이젠 인삼·능금의 명산지로 나의 고향 풍기를 가려면 죽령고개를 넘어야 한다. 하기야 남으로 봉현고개,동으로 단산고개,북으로 잠뱅이고개를 넘어갈 수도 있지만 서울과 직통하는 국도나 중앙선이 모두 죽령고개를 넘게 마련이다. 해발 1천3백14m의 도솔봉과 희방사를 품에 안은 비로봉,그리고 풍기군수시절의 이퇴계가 나라일을 근심해서 축지법(축지법)으로 한달음에 올랐었다는 1천4백21m의 거봉­그래서 이름이 국망봉인 웅장한 소백산줄기 중에서 그나마 서산에 지는 해를 안고 넘을 수 있는 길이 죽령고개다. 옛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이어서 고구려의 『평강공주와 바보온달의 설화로 유명한 온달장군은 한강이남의 고구려땅을 수복하겠다고 죽령을 묵표로 진격하다가 아단성에서 전사했다고 삼국사기 온달조에 있다. 죽령고개를 38선으로 고구려와 신라가 대치해서 밀고 당기던 국경마을,그 시절에는 기목진으로 불리던 풍기만이 고구려에 저항해서 신라의 국경을 지켰다고 전한다. 동국여지승람은 풍기사람들을 평해서 이 고장은 기질이 강하고 사납다고 기록했다. 어쩌면 풍기사람의 억센 기질은 삼국시대부터 비롯된 저항정신의 전통일는지 모른다. 무엇이고 해내는 억센 기질,청량리의 왕초도 풍기사람이라지 않는가. ○억센 저항의 고장 이왕조의 실정으로 나라가 기울고 군대마저 침략국의 강요로 해산 당하자 전국에서 의병들의 무장투쟁이 전개 되었을 때 소백산의 깊은 골짜기들을 근거지로 삼아 풍기 사람의 저항정신에는 또다시 불이 붙는다. 영주 순흥 봉화 등 인근 고을과 힘을 모아 게릴라전을 군대해산에서 망국까지 3년동안이나 전개했던 것이다. 일본제국의 조선군 사령부가 1913년 3월에 발행한 비밀문서 「조선폭도토벌지」에는 1907년 8월부터 1910년 12월까지의 전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지도를 곁들여 기록하고 있다(우리 의병을 폭도로 지칭한 것으로 보면 된다). 「토벌지」는 1907년 8월27일 약3백명의 우리게릴라부대가 경찰지서를 습격,일경 1명을 참살하고 29일에는 순흥,31일에는 봉화의 경찰지서를 습격,불태워 승리의 개가를 올리는데서 시작한다. 그 게릴라부대의 리더­즉,의병장은 이강년,신돌석. 그러나 그 세력은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들지만 그들의 무장봉기는 소백산을 근거지로 3년을 견디어 매국노들이 나라를 팔아먹고 일본의 학정이 시작된 1910년 일인이 임명한 조선인 군수들의 행위로 종말을 맞는다. 「토벌지」에 기록된 게릴라대장의 이름을 「열사」로 모시기 위해 기록해보면 최성천 한명만 김상태 정경태 윤국범 문성조 김성운 유시영.그 중에서 조선인 군수들의 밀고로 4월에는 최성천 한명만이 체포,처형되고 12월에는 윤국범 문성조가 역시 잡혀서 처형당했다. 다행히 이 무렵까지 저항운동을 계속한 이강년 신돌석의 체포기록은 없다.아마 그뒤 만주로 건너가서 독립운동의 선봉장이 되지 않았을는지. 「조선 폭도 토벌지」는 경상북도의 부장봉기에 대해서(비밀문서인 탓일까)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다. 『안동에는 약 50명의 진위대가있었으나 군기가 해이하여 거의 토벌의 임무를 못했음』 ○국립천문대 위치 서울에서 경기·강원·충청의 3도를 지나 죽령재마루에 오르면 질펀한 들판이 확 트여 경상도의 첫 고을은 우선 시원스럽다. 그러나 여기서 곧바로 산을 내려가기에는 그 경관이 너무 아깝다. 오른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국립천문대가 있고,왼편으로는 희방사와 희방폭포가 있기 때문이다. 이 고장이 낳은 인물로 세종때의 김담은 일영대라는 그당시 천문대의 대장을 지낸바 있으니 천문학과는 일찍부터 인연이 깊다 하겠고 주위의 아늑함이 속세를 잠시 잊게 하는 희방폭포와 희방사는 1568년에 개판된 훈민정음과 월인석보의 판본 2백개가 있던 곳이어서 더구나 잊을 길없는 곳이다. 일본이 패망하던해 7월,나는 병요양을 위해 이 절에 머물면서 사고에 판목을 발견하고 주지를 설득해서 「훈민정음」과 「월인천강지곡」만의 탁본을 했었는데 6·25가 터진 이듬해 1월13일,유엔군이 작전상의 이유로 휘발유를 뿌려 이 절을 불태워 버리는 바람에 귀중한 문화재는 재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가곡 「성불사의 밤」의 노래말처럼 노승은 어디로 갔더란 말인고! 글깨나 하는 늙은이라면 예언서로 믿었던 「정감록」에는 삼재­즉,흉년 악질 병화가 없는 십승지지의 첫째로 「풍기」를 꼽았건만,동족끼리 살륙전을 벌인 6·25는 깊은 산속의 문화재마저 불태웠으니 그 황당무계를 알만하다. ○6·25 동란중 소실 그러나 죽령재에서 구곡량장의 고갯길을 내려오면 밋밋한 언덕에는 능금밭,그 자락에는 인삼밭들이 타관사람의 눈을 끌게 마련이다. 뚜렷한 4계절과 낮과 밤의 기온격차,그리고 적당한 습도를 유지하는 토질탓으로 예부터 풍기인삼은 개성인삼과 쌍벽을 이루었다. 38선으로 「개성인삼」을 맛볼수 없게된 오늘,「풍기인삼」은 6연근의 홍삼재배구역으로 지정되고 해마다 9월에 5년근을 채취하는 유일한 명산지가 된 셈이다. 아마도 6·25의 실향 월남민으로 개발이 시작된 능금재배는 66년의 7만그루가 76년에는 1백75만그루를 기록했으니 「풍기능금」의 시장점유율을 짐작할만하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풍다 석다 황다의 「삼다」로 황폐했던 풍기가 지금엔 산나물 인삼 능금의 「삼다」로 넉넉하고 윤기가 흐르는 고을이 되었으니 그 까닭은 어디서 찾을수 있을까. 그 황폐했던 「삼다」로부터 풍기를 탈바꿈시킨 힘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황당한 「정감록」에 있었다. 나라가 망하고 세상이 뒤숭숭할 무렵,『풍기읍내 십자거리에 5분만 서있으면 조선팔도의 사투리를 들을수 있다』는 속담이 유행했다. 「십자거리 박약국」으로 알려졌던 우리집도 사실은 월남민이요,나는 3세인 셈이다.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는 억센 저항기질과 월남민들의 실향의식이 오늘의 풍기를 있게한 것이 아닐까. 죽령을 요람으로 자란 내게 반골정신같은 것이 바닥에 있다면 아마도 「자랑스러운 풍기사람의 기질」탓이리라. ▷약력◁ ▲1914년7월2일 경북풍기출생 ▲1946년 중앙방송국 음악계장 ▲1950년 동경소목발레단 문예부장 ▲1966∼70년 예그린 악단장 ▲1981년 예술평론가 협의회장 ▲1986년 88올림픽개폐회식 기획단장 ▲1989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 외언내언

    세계 제일의 인구대국은 역시 중국이다.『2000년에 13억,2020년엔 17억,그리고 반세기 후엔 20억이 될 것이다.이 인구폭탄의 뇌관을 제거 못하면 개혁도 소용없고 중국은 폭발하고 말 것이다』 중국과학원 「생존과 발전」보고서의 경고다.중공당 창건 70주년인 작년 7월1일 북경거리엔 인구시계가 등장하고 1인이상 자녀의 부모는 엄벌하는 인구 비상사태가 선포되기도.◆중국인구는 53년조사시 6억1천9백38만에서 64년 7억2천3백7만,82년에 10억3천1백80만,그리고 작년 7월1일 현재 11억5천2백87만3천8백76명.하루 5만여명 출생에 1만4천여명 사망으로 1.44%인 현재의 자연증가율을 1.25%로 끌어 내리는것이 당면의 최대 목적.◆그래서 나온것이 한가정 한자녀 정책.권장의 운동이 아니라 엄격한 법의 제재다.한자녀 부부의 부인이 새로 임신하면 「사회 양육비」를 매달 공탁해야 하고 개인경영자는 영업허가증을 당국에 맡겨야 한다.중절을 하면 반환되나 낳으면 몰수.사회 양육비는 2자가 5천∼5만원,3자이상은 2만∼10만원.중국가정한달 평균수입이 2백∼3백원인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벌금이다.◆공무원들은 출산비·탁아비·의료비전액 본인부담에 승진·표창의 기회도 박탈된다.농민의 경우는 자영지의 확대나 주택건축의 허가도 못받고.그런데도 2자녀 이상의 모험은 줄지 않는다는것.고래의 남예선호습관때문.8천원의 벌금을 내고 낳은 두번째 아이가 여예인것을 비관,자살하는 경우까지 있었다.◆고액의 가짜 피임수술증명서가 난무하고 고향을 떠나는 주거부정의 「게릴라부부」도 늘어나는 새로운 부작용이 골칫거리.그러나 보다 심각한것은 남녀균형의 파괴.초음파 검사로 여예를 유산시키는 경우가 많아 현재도 남자가 2000만이나 많은데 2000년엔 5000만이 장가를 못가게 된다는 것.우리네 인구형편은 어떤지 신경쓰는 사람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 일제만행에 치떨며 살아온 70년

    ◎형 죽음 확인 못하고 “분노의 삶” 마감/상경시위중 사망한 주기성옹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반일시위를 벌이다 넘어져 숨진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목포지부회원 주기성씨(70·전남 목포시 산정동 1745)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의지하던 형을 태평양전쟁터에 빼앗긴 뒤로 기구한 삶을 살아왔다. 전남 영광군 군남면 설매리에서 농사를 짓는 집안의 2남1녀중 막내,그것도 유복자로 태어난 주씨는 출생직후 어머니마저 여의면서 4살위인 형 석채,2살위인 누나와 가난했지만 단란한 생활을 꾸려왔었다. 그러나 형 석채씨가 42년에 강제징용을 당해 필리핀 남양군도로 끌려가면서 고아나 다름없는 이들 남매의 삶은 회한의 나날이었다. 그는 해방후 징용에서 돌아온 같은 마을 서모씨(70)로부터 『형이 남양군도에서 44년도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매년 형이 끌려간 9월9일을 기일로 삼아 제사를 지내면서도 형의 생사를 직접 확인하고자 애써왔다. 주씨는 60년대말 목포로 이사해 목포시 미화원으로 일하다 68년 퇴직한 뒤로는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순례씨(60)와 네 아들을 두고 있으며 그중 맏아들 주규현경장(35)은 현재 제주경찰청 901전경대소속 연암함정 소주정장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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