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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장개방 무한경쟁시대 돌입/마라케시 각료회의 결산(WTO체제)

    ◎가트 막내려… 적자생존 새질서 시동/새 다자협상 선진국주도로 가시화 【마라케시=권혁찬특파원】 마라케시 UR각료회의는 15일 「UR종결」을 선고하고,「WTO의 출생」을 공식 선언했다. 협상참가국 모두가 UR종결을 선언하는 최종 의정서에 서명함으로써 2차대전 이후 세계교역을 규율해 온 GATT는 「발전적 해체」의 길로 들어섰다.GATT를 대신해 세계 교역을 다스릴 국제무역기구(WTO)의 출범을 위한 각국의 비준절차만 남아 있다. 각국의 비준추이를 봐야 겠지만 현 분위기로 보아 WTO는 내년 1월1일부터 출범할 공산이 크다.미국과 EU(유럽연합),일본 등 주요국들이 1월을 목표로 비준을 서두르기 때문이다.당초 협상국들이 구체적인 발효시기를 연내 각료회의를 다시 열어 결정키로 했지만 이번 마라케시 회의를 통해 내년 1월 발효를 낙관하게 했다. 따라서 협상참여국들은 빠르면 내년 초부터 WTO 협정에 약속한 대로 관세인하나 농산물 수입 등 개방약속을 지켜야 한다.시장개방도 상품 뿐 아니라 서비스,지적재산권까지 확대됨으로써 세계는 보다 진전된 교역자유화 시대에 접어들게 됐다. 마라케시 회의는 7년 반을 끌어온 UR의 확실한 이행을 담보한 회의였다.그러나 한편으론 환경·노동 등 새로운 다자과제를 이슈화함으로써 하나의 시발점이 됐다. 환경문제를 다룰 그린 라운드는 마라케시 회의에서 WTO산하 「무역환경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다자테이블에 올려질 채비를 마쳤다.노동·경쟁정책과 같은 다른 이슈들도 기조연설과 대표회담 등을 통해 활발히 개진됐다.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WTO 준비위원회가 아동노동·죄수노동 등 노동문제를 추가 검토과제로 삼기로 함으로써 향후 다자논의가 GR(그린 라운드)­BR(블루 라운드·노동)로 가닥을 잡았음을 시사하고 있다. 인도 말레이시아·싱가포르·중국 등 중진국과 개도국들이 환경과 노동문제의 다자화에 강력 반발하고 있지만 UR협상이 개도국 생각과 달리 미국과 EU 등 선진국 주도로 전개됐던 점을 생각하면 뉴 라운드 역시 UR의 전철을 따를 것이 분명하다.그러나 뉴 라운드가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UR협상은 전체적으로 볼 때 「이익만큼 손해가 있는」 제로섬이 아닌,「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플러스 섬」이다.GATT 추정을 보면 UR타결은 10년 뒤 약 2천3백억달러의 소득증대와 7천4백50억달러의 교역증대를 협상참가국에 가져다 준다.우리나라의 경우 WTO협정 발효로 연 4억∼15억달러 가량 무역수지가 개선된다는 분석(한국개발연구원,대외경제정책연구원,산업연구원 등)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UR는 시장개방을 통한 무한경쟁 시대를 예고한다.기업을 지원해 온 정책보조 등 정부지원책은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렵고,기업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지 않고는 살아남기 힘들게 됐다. 마라케시 회의로 WTO의 돛은 올려졌다.우리 앞에 「교역증대」와 「지구촌의 낙오자」라는 두가지 선택이 놓인 셈이다. ◎마라케시 선언 요지 ◇세계무역기구(WTO)의 창설이 보다 공정하고 개방된 다자간 무역체제가 가동되기를 바라는 전세계적인 열망을 반영,새로운 경제협력의 시대를 열것임을 선언한다. ◇무역자율화와 UR협상을 통해 마련된 규정들이 국제무역환경을 점진적으로 개방해나갈 것이라고 믿으며 어떠한 보호주의 압력에도 강력히 맞설 결의가 돼 있음을 밝혀둔다. ◇WTO 가입이 효력을 발생할때까지 UR협상결과를 훼손하거나 역효과를 발생할수 있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무역·금융·재정 분야의 각국 정책이 보다 긴밀해지도록 WTO,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간의 협력을 확대하는등 노력한다. ◇협상과정에서 많은 개도국들이 주요한 경제개혁및 자율적인 무역자유화 조치를 취한데 주목한다. ◇협상을 통해 개발도상국들에 보다 유리한 대우를 부여하는 규정들이 구체화됐으며 저개발국가들을 위한 이같은 규정의 실행이 매우 중요하다고 인정하면서 이들 국가의 무역,투자기회 확대지원을 계속한다. ◇각국이 우위에 있는 부문의 기술원조를 확대하기위해 관세무역 일반협정(가트)과 WTO의 권한능력을 강화해야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UR 최종의정서 서명과 각료회담의 부속 결정사항의 채택으로 가트 체제가 WTO체제로 전환되기 시작했음을 선포한다. ◇특히 WTO협정의 효력발생을 위한 준비위원회를구성하고 WTO협정이 비준을 거쳐 95년 1월1일 또는 그 시점이 지난후 가능한 이른 시일내에 효력을 발생할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완료하기로 다짐한다. ◇최종의정서가 채택,서명되고 WTO 협정절차가 시작됨에 따라 무역협상위원회의 임무가 끝나고 UR도 공식적으로 종결됐음을 선언한다. ◎각료회의 이모저모/모로코 반대로 최종의정서·협정문 분리 서명/브리튼,EU­APEC간 대화채널 구축 희망 ◎…서덜랜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사무총장은 당초 UR협상의 종결을 선언하는 최종 의정서와 WTO(세계무역기구) 협정문을 하나로 묶어 마라케시 회의에서 서명토록 할 계획이었으나 모로코 정부가 『협상결과를 담은 협정문까지 서명할 경우 참석국가가 적어진다』며 이의를 제기하는 바람에 두가지로 나누어 서명키로 했다는 후문. 서덜랜드 안을 따를 경우 각국 대표들이 서명시 느끼게 될 부담을 덜어주고,UR협상 종결과 이의 이행을 촉구하는 선언적 성격의 최종 의정서에 모두 서명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 인도는 WTO가 UR협상 결과의이행에 전념해야 함에도 WTO의 권능을 넘어서는 새로운 문제를 도입하는데 우려를 표명.말레이시아도 『노동문제는 국제노동기구에서 처리하는 게 바람직하며,환경보호를 이유로 한 일방적 무역제한 조치는 억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중국도 『환경과 사회문제를 무역과 연계하려는 시도를 우려한다』며 『UR협상에 개도국의 이해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만큼 앞으로 개도국에 대한 특별 우대조치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 ◎…레온 브리턴 EU(유럽연합) 집행위원은 김철수 상공자원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자동차 시장 등 통상현안 외에 『EU가 아·태경제협력체(APEC)과 대화채널을 구축하고 싶다』며 한국의 지지를 요청.브리턴 위원은 WTO협정의 비준과 관련,『EU의회의 승인과 각 회원국의 비준절차가 남았으나 지난 해 11월 EU 이사회에서 통과돼 95년 1월까지 비준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며 우리의 비준전망을 묻기도.이에 김장관은 『WTO협정이 계획된 시기에 발효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변. ◎…마라케시 회의에 참석 중인 선준영 외무부 제2차관보는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정부의 협상력이 약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에 대해 『미국이나 EU(유럽연합)에 비해 약했을 지 모르나 각 부처가 우수한 전문가를 총 동원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결과였다』고 평가.그는 『마라케시 회의에서 환경과 노동문제 등 새로운 이슈들이 많이 제기됐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선진국은 앞으로 인권문제와 인구조절까지 무역과 연계시킬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WTO체제 향후 스케줄 □1994년=▲국내 비준절차 완료 ▲국내 관련법령 개정 ▲무역및 산업관련제도의 개편,보완 ▲UR협정문 발효 위한 각료회의 개최 □1995년=▲UR협정 정식 발효▲세계무역기구(WTO)출범 ▲각국 관세화(시장개방)개시 ▲각국 관세율 인하개시 ▲1단계 다자간섬유협정(MFA)의 WTO복귀:섬유쿼터 철폐율 12% ▲쌀 최소시장접근허용 1%(물량 5만1307t) ▲보리·옥수수·고구마·감자·콩 관세화 ▲고추·마늘·참깨·양파 수입자유화 ▲쇠고기 수입쿼터 확대(43.6% 관세적용) □1996년=▲선진국,지적재산권규정에 따른 제도보완 시행 ▲선진국,무역관련투자제한 폐지완료 ▲블루프린트(2단계)에 따른 추가금융 자율화의 시장개방 □1997년=▲선진국,금지보조금·협정위반보조금 축소완료 ▲42개 중앙행정기관의 물품구매·서비스및 시도의 서비스·건설시장개방 ▲돼지고기·닭고기·감귤·오렌지주스 전면개방 □1998년=▲개도국,지적재산권 규정일치 완료 ▲2단계 MFA의 WTO복귀:철폐율 17% ▲통일 원산지규칙 시행 □1998년=▲개도국,투자관련제한조치 폐지완료 ▲기존 세이프가드및 회색지대(수출자율규제·시장질서 유지협정)철폐완료 ▲선진국,관세양허 추진완료(무세화·관세조화 포함) □2000년=▲쌀 최소시장접근비율 2%로 상승(물량 10만2614t) ▲개도국,수출보조금 축소 또는 완료 ▲3단계 MFA의 WTO복귀:쿼터철폐율 18% ▲개도국,관세양허 추진완료 □2001년=▲쇠고기 전면개방 □2004년=▲쌀 최소시장비율 4%(물량 20만5228t),쌀 관세화에 대한 재협상 ▲개도국,농산물 보조금 13.3%감축 완료 □2005년=▲MFA의 WTO완전 복귀
  • 백제의 신화/무왕때부터 “왕은 용의 아들”(백제를 다시본다:11)

    ◎건국신화 없어 고구려·신라에 열등감/권위회복·단결위해 「용 설화」 만들어/능산리 금동용봉향로의 태자상 장식이 그 증거 우리나라 상고사중 한민족 중심인 단군조선,부여와 고구려에는 각기 고유하면서도 서로 맥이 통하는 신화가 있다.일정한 구조를 가진 꾸며낸 이야기인 설화에는 신화,전설과 민담이 포함된다.어떤 학자는 신화를 건국,씨족,마을과 무속의 네가지로 분류하기도 한다.한국의 신화에서는 신격을 타고난 인물이 범상을 벗어나 과업을 성취하거나 주인공의 원향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출생­성장­혼인­즉위­죽음의 통과의례에 대한 과정을 다룬 건국신화나 시조신화를 으뜸으로 쳐왔다.왕권을 신성화하고 있는 한국의 건국신화는 신화에서 벗어나 역사화된 것으로,그리고 전설이 역사적 믿음을 이념으로 삼은 신화와 전설의 복합체이다.신화는 민족적인 범위에서 전승된다고 한다.국가창건신화의 경우 국가가 바로 증거물에 해당하며,만일 신화에서 이와같은 증거물이 없다면 전승은 중지되거나 민담으로 전환된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기록 「삼국유사」권제1기이 제2에 의하면,왕검조선은 상제인 환인의 서자인 환웅이 지상(신단수아래 신시)에 내려와 3.7일을 굴에서 지낸후 여자가 된 웅녀와 결혼해서 난 단군왕검이 아사달에서 나라를 엶으로써 생겨난다.그 해가 요제 즉위후 50년 경인년(실제는 정사)으로 기원전 2333년(동국통감에 의해 당고 무진년)에 해당한다.그는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이라 일컫고 이어서 백악산 아사달로 옮겨 1천5백년을 다스리다가,주 무왕(호왕) 기묘년(기원전 1122년)에 기자조선이 들어서매 장당경으로 옮기고 후일 아사달에 숨어 산신이 되었다.그의 나이는 1천9백8세였다 한다.최근 그의 무덤(소위 단군릉)이 평양근교 강동군 대박산기슭에서 발굴되었다고 북한의 고고학자들은 주장하고 있으나 무덤의 위치,연대,묘의 구조와 출토 유물 등에서 여러가지 모순점을 보인다. 북부여의 경우 해모수가 하늘에서 다섯마리의 용을 타고 내려옴으로써 나라가 이루어진다.그 해가 전한 선제 신작 3년으로 기원전 59년에 해당한다.그의 가계는 해부부(가엽원으로 도읍을 옮겨 동부여라함)­김왜(하늘이 점지한 개구리같은 어린이로,해부루의 수양아들이며 태자임)­대소에게로 세습된다.삼국유사 권1 동부여조에 의하면 이 나라는 왕망 15년,기원후 22년(고구려 3대 대무신왕5년)에 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그러나 부여는 346년 연왕 모용황에게 망하고,실제 고구려에 투항하는 494년까지 지속되고 있었다. 고구려의 건국자인 동명왕(주몽,성은 고)의 개국설화에는 대개 세가지가 전한다.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그는 북부여의 건국자인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와 용왕의 딸인 하백녀(유화)사이에 알로서 태어났는데(난생),그 해가 한 신작4년,기원전 58년이다.그리고 그는 해모수의 아들인 해부루와는 이모형제가 된다.그가 금와의 태자인 대소와 사이가 좋지 않아 졸본주(졸본부여,홀본 골성)로 가 나라를 세운다는 것이다. 이규보의 「동국리상국집」동명왕편에 의하면,그 해가 한 원제 12년으로,기원전 37년(최근 북한 학자들은 고구려의 건국연대를 기원전 277년으로 잡고 있으며 그 이전단계를 「구려」로 보고 있다)이며 그의 나이 21세 때이다.그리고 기원전 19년에는 그가 부여에 있을때 예씨부인으로부터 얻은 아들로서,자기집 일곱모의 소나무 기둥 아래(칠령칠곡의 소나무위에 선 기둥)에서 부러진 칼을 찾아 온 유이(기원전 19∼기원후 18년)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백제의 건국자는 주몽의 셋째 아들인 온조(기원전 18∼기원후 28년)이다.그는 아버지인 주몽을 찾아 부여에서 내려온 유리왕자(고구려의 제2대왕)존재에 신분의 위협을 느껴 한 성제 홍가 3년(기원전 18년) 형인 비류와 함께 남하하여 하북위례성(현 중랑천근처이며 온조왕 14년,기원전 5년에 옮긴 하남위례성은 강동구에 위치한 몽촌토성으로 추정됨)에 도읍을 정하고,형인 비류는 미추홀(인천)에 근거를 삼는다.이들 형제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고구려의 건국자인 주몽의 아들로 되어 있으나,삼국사기 백제본기 별전(권23)에는 북부여의 둘째왕인 해부루의 서자인 우대의 아들로 나와 있다.이는 그의 어머니인 서소노가 처음 우태의 부인이었다가 나중 주몽에게 개가하기 때문이다. 이들 신화에서는조지훈과 이동환을 비롯한 이 관계 여러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국조탄생설화,이주개국형,난생설화,개탁국가,중서자립국과 이모형제들이 공통된다.다시 말하여 단군조선­부여­고구려­백제는 같은 맥이나 한핏줄을 이루어 형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최근 북한에서 이러한 맥을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정치적 정통성을 확립하고 정당화시키는데 이용하고 있다.그러나 백제의 건국자인 온조는 천손인 해모수,용왕의 딸인 하백녀(유화)의 신화적인 요소와,알에서 태어난 주몽의 탄생과 같은 난생설화가 없이 처음부터 주몽­서소노­우태라는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인물들 사이에서 태어난다.그래서 백제에는 부여나 고구려다운 건국신화나 시조신화가 없다.이것이 백제가 어버이 나라인 고구려에 항상 열등의식을 지녀온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이점은 온조왕 원년에 동명왕묘를 세운 것이나,백제 13대 근초고왕(346∼375년)이 371년 평양으로 쳐들어가 고구려 16대 고국원왕(331∼371년)을 사살하지만 평양을 백제의 영토로 편입시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한성으로 되돌아 오는 점 등에서 이해된다. ○왕권 신성화 애써 그래서 백제의 왕실은 고구려왕실에 대한 열등감의 극복과 아울러 왕실의 정통성을 부여하려고 애를 써왔다.그것이 전설적인 신화보다는 용이 왕을 상징하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왕권의 탄생설화가 만들어지게 된 이유인 것 같다. 중국과 한국에서 용은 물(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농경사회를 상징하는 왕이다.최근 부여 능산리에서 발견된 김동용봉봉래산향로의 뚜껑과 몸체에 표현된 도교와 불교적 문양과 용봉(또는 주작과 현무),연화문 가운데의 태자상의 장식등이 그러한 증거로 보여진다.이것은 후일 신화가 없어도 될 것 같은 고려나 조선도 「제왕운기」나 「용비어천가」를 만들어 건국의 정신적,이념적 틀을 꾸준히 보완해 나가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다. ◎농경사회의 수신… 왕권 상징/부여 절터에서 용무늬 벽돌 출토/용의 의미 백제는 신화나 설화의 자료가 사실상 희박하다.특히 건국신화는 없다.우리 신화의 원전격이라 할 수 있는 「삼국유사」의 경우 고구려,신라,가락의 건국신화만을 다루었다.그러면서 신라 중심의 호국,인문신화에 치중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건국신화 말고는 무왕(?∼641년)과 관련한 기록이 「삼국유사」에 나온다.용이 등장하는 설화다.그 어머니가 서울 남쪽 못가에다 집을 짓고 살았는데,못 속의 용과 관계한 이후에 낳은 아들이 무왕이라는 것이다.용을 모티브로 한 숱한 「삼국유사」기록 가운데 하나인 이 무왕과 용에 대한 대목은 시사하는 바 크다. 용은 대체로 호교의 상징 내지는 호국의 상징으로 나타난다.이러한 사실을 상기하면 무왕은 호교와 호국 두 요소에 바로 연결된다.전북 익산 금마에 미륵사를 창건했고 부소산성과 마주하는 백마강 건너 울성산성 근처에 호국사찰 왕흥사를 완공시켰다.그는 금강 언덕의 바위에서 예불한 다음 배를 타고 건너가 법회에 친히 참석했다고 한다. 그는 추풍령을 넘어 낙동강 유역까지 진출,신라를 위협했다.사비성으로 천도한 이후 가장 막강한 군주로 문화를 꽃피우는 가운데 영토를 관리하는데도 주력했다.이렇게 보면위대하고 훌륭한 존재와 비교되는 용은 왕권이나 왕위를 상징할 수도 있다.그래서 「삼국유사」에 나오는 용과 무왕의 연관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지난해 연말 사비시대 백제의 고토인 부여 능산리 출토품 김동용봉봉래산향로의 용은 왕권을 상징한 것으로 풀이된다. 더구나 뚜렷한 신화가 없는 백제가 사비시대에 창조한 신화적 요소가 용이라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그렇다면 용에는 백제인들의 융합을 위한 신성성이 내포된다.이는 역사와 관련을 가지면서 민족의 단합을 꾀하는 신화구성 원칙에 부합되는 것이기도 하다.
  • 충남지사 적임자 못찾아 고민/내무부에 충남출신 1급 1명도 없어

    ◎현재론 이기태 서울경찰청장 “1순위” 충남지사 인선이 꽤나 어려운 모양이다.박태권전지사가 사전선거운동 시비에 휘말려 사표를 낸 것이 지난 5일.시간이 제법 흘렀다. 인선이 늦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민주계의 충남출신 가운데 마땅한 인물이 없다는 것.내무부에도 도백으로 나갈 수 있는 충남출신 1급이 한 명도 없다.이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부산쪽에서 사람을 「빌려」오려 했으나 민주계 충남출신들의 우두머리격인 황명수의원(온양)이 거세게 반발,없었던 일로 돌아갔다는 후문이다. 지금까지 가장 유력시되는 인사는 이기태 서울지방경찰청장이다.이청장 주변에서는 최근 청와대로부터 거의 낙점을 받은 상태라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이미 내정됐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청장은 서산출신으로 「6공사람」은 되도록 쓰지 않는다는 새정부의 인사원칙으로도 결격사유가 거의 없다.이청장이 충남지사로 발탁된다면 경찰청장(치안본부장 포함)을 거친 다음 도백으로 나가던 관례에 비춰 매우 파격적이다.하지만 인물난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이 정도의 파격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청장과 경합하고 있는 인사로는 이영래내무부민방위본부장과 송태호청와대교육비서관이 있다. 이본부장은 고향이 강릉으로 충남출신은 아니다.하지만 내무부에서 강력하게 밀고 있어 지사후보순위 상위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또 서천이 고향으로 언론계(경향신문)출신인 송비서관도 몇 안되는 충남출신 1급이라는 점에서 지사후보로 거론되고 있다.송비서관은 그러나 일선행정경험이 없는데다 출생지가 서천일 뿐 실제로는 전북에서 성장해 충남에 별로 연고가 없다는 점에서 핸디캡을 안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 「6공」때 대전시장을 거쳐 충남지사를 잠깐 역임했던 김주봉씨(예산)도 단지 지사로 내보낼 사람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한때 하마평에 올랐었다.내무부 관료 가운데 충남출신으로는 가장 상위직 공무원인 박중배지방행정국장(2급)을 1급으로 승진시켜 지사에 임명하는 방안도 검토됐던 것으로 전해졌다.박국장은 서산출신으로 91년 충남부지사로 재직한 적이 있다. 청와대는내년 6월27일 지방자치단체장선거에 공천할 인물을 미리 충남지사로 내려보내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단체장후보로 내세울 사람을 임명했다가 박전지사처럼 흠을 잡히는 것을 경계해 아예 민선지사 출마와는 무관한 인물 가운데서 지사후보를 찾고 있다는 상반된 이야기도 들린다.그러나 지금까지 거명된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볼 때 전자보다는 후자쪽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 양기탁선생/대한매일신보 창간… 항일의식 고취(이달의 독립운동가)

    ◎신민회 결성… 만주서 독립군 양성 주도/의용군 국내에 파견,일제기관 등 습격 양기탁선생은 국운이 꺼져가던 대한제국말기에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항일의식과 애국계몽의식을 고취한 언론인이자 신민회등 비밀결사를 통해 무장항일운동을 벌인 독립운동가이다. 1871년 4월2일 출생한 선생은 1938년 4월19일에 운명,이달로서 서거 56주기와 탄신 123주년을 맞게 됐다. 평양 출신인 선생은 소년 시절 영어를 배워 1895년 미국인 게일박사의 한영자전 편찬작업에 참여했다.사전인쇄를 하러 일본으로 건너간 길에 근대화된 일본을 보고 감명받은 선생은 귀국후 개화파들이 모인 독립협회에 가입했다. 1898년 독립협회가 친러 수구파에 의해 해산되는 과정에서 체포돼 조사를 받고 나온 선생은 게일박사의 도움으로 도미,3년뒤인 1901년 귀국했다. 노일전쟁이 일어난 1904년에는 대한제국 황실 외교담당부서인 궁내부 예식원 직원으로 임명돼 영어통역 일을 했다. 선생은 노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가 조선의 황무지개척권을 요구하는 등 침략을 본격화하자 이를 막기 위해서는 신문운영이 필요하다고 판단,고종으로부터 황실판공비인 내탕금을 지원받아 신문사 시설을 마련했다. 대한매일신보는 일본헌병대의 출판물 검열을 피하기 위해 당시 영국 데일리 뉴스 임시특파원이던 영국인 배설(Earnest Bethell·1872∼1909)을 사장으로 1904년 창간됐다. 이 신문에는 박은식선생을 비롯,신채호·최익·장도빈등이 제작진으로 참여했다.외국인 명의로 발행돼던 이 신문은 일제 통감부의 검열을 피하면서 「일인입불가」를 출입문에 써붙였을 정도로 강한 반일감정을 나타냈다. 국한문혼용인 국내용 신문과 별도로 영문판을 발행한 이 신문은 통감부의 신문지법에 다른 신문들이 얽매여 의병활동을 폭도라고 표현할 당시 의병활동을 높이 평가하는 등 국권회복운동의 대변지역할을 수행,1만3천여부의 부수를 자랑했다. 일제는 눈엣가시 같은 이 신문을 폐간하기 위해 우선 사장인 배설을 영국영사재판소에 치안방해죄로 고소,중국 상해로 추방했다.배설은 형을 마친뒤 서울로 돌아와 옥고 후유증으로 숨졌다. 선생은 이런 가운데 안창호선생을 비롯한 이동휘·이동령·노백린·이시영·김구선생등과 함께 신민회를 창립,해외독립기지 건설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신민회본부는 대한매일신문안에 두었으며 지방지국은 연락망으로 활용됐다. 전국 8백여명의 애국세력이 집결한 신민회는 1909년 독립군 창건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선생의 집에서 전국대회를 열었다. 이날 대회는 해외에 독립군기지를 세우고 무관학교를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하는 한편 국내진입작전을 펼쳐 독립을 쟁취한다는 「독립전쟁 전략」을 채택했다. 선생은 이 계획에 따라 군관학교를 세울 적당한 장소물색을 위해 만주를 답사했으며 1910년 이동령등이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다. 이처럼 신민회의 활동이 뚜렷해지자 일제는 1911년 양기탁보안법위반사건을 꾸며 신민회 중앙간부 16명을 모두 체포,투옥시켰다. 이어 일제총독 암살사건(일명 105인 사건)을 날조해 신민회원 8백명을 전원 체포,선생은 징역 10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4년만에 석방된 선생은 평남 강남군 쌍용면 신경리에 유배됐다. 선생은 다음해인 1906년 유배지를 탈출해 만주신흥무관학교와 광복회에서 활동중 다시 일제에 체포,국내로 압송돼 전남 거금도에서 2년동안 유배생활을 했다.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유배에서 풀려난 선생은 동양을 순방중인 미국의원단이 서울역에 도착하자 독립만세운동을 펼쳐 또 투옥됐다. 모친 사망으로 일시 방면된 틈을 타 만주로 도피한 선생은 무장항일단체인 의성단을 결성,봉천의 만철병원 습격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1924년에는 이청천·김동삼등과 함께 대한군정서·통의부등 만주내 무장항일단체를 통합,정의부를 결성하고 의용군을 국내에 파견해 일제기관을 공격하게 했다. 선생은 또 중국내 한국독립운동단체들의 통합도 추진,김규식선생등과 함께 1932년 한국대일전선 통일동맹을 구성했다. 1934년 임시정부 의정원 회의에서 국무위원으로 선임된 선생은 국무회의가 자신을 국무령으로 추대하자 이를 수락한뒤 한국독립당·대한독립단·의열단·조선혁명당·신한독립당등 여럿으로 갈라진 독립세력을 규합해 민족혁명당을 결성하는등 독립세력의 분열을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선생은 1937년 중일전쟁이 벌어지자 미국과 중국내 독립세력의 재규합을 추진,남경에서 한국광복전선을 결성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선생은 이 과정에서 과로로 병을 얻어 1938년 68세를 일기로 숨졌다. 정부는 선생에게 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30대그룹 「표준형 임원」 서울출생·50세/증권거래소 분석

    30대 그룹 계열사의 새 임원의 표준형은 서울에서 출생한 50세 인사로 서울 상대를 나온 사람이다. 증권거래소가 9일 30대 그룹 상장법인의 신임 임원 4백81명의 이력을 분석한 결과 평균 연령은 50세였다.50대가 절반이 넘는 2백43명으로 가장 많고 40대 2백19명,60대 11명 등이다.30대 임원도 쌍용그룹의 남광토건 허철령이사(37)등 7명이나 된다. 최고령자는 럭키금성의 박진규감사(71),최연소자는 제일제당 이재현상무(34)이다.출신지는 서울이 1백62명으로 1위이고 다음이 경남(73명),경북(53명) 등이다.광주와 대전은 각각 1명 뿐이다. 출신학교는 서울대(1백36명),고려대(65명),연세대(53명)의 순이다.지방대 출신은 56명이며 외국대학 출신도 18명이다.전공은 상대와 공대가 각각 1백92명,1백61명으로 가장 많았고 법대 42명,인문대가 32명. 직위는 이사가 2백95명(평균 49세)으로 가장 많고 상무 64명(50세),감사 43명(53세),전무 41명(52세),부사장 13명(53세),사장 18명(55세),부회장 2명(58세),회장 5명(56세)이다. 사장 이상 25명의 임원 중 럭키개발의 구자성사장을 빼고는 모두 전문경영인이다.
  • 기독교방송 사목실장 한상용씨(훈훈한 우리가정:11)

    ◎온가족이 클래식음악광… “음악처럼 살지요”/함께 본 음악·연극표 추억담아 수십년 간직/세딸 출생 기념해 담근 포도주가 이젠 가보 정원에 심어진 풀꽃 한송이,작은 돌하나에도 가정의 역사가 담겨 있고 클래식 음악 연주회에 갈 가족 적금을 붓는 집.서울 강서구 화곡동 한상용씨(56·기독교방송 사목실장) 가정의 모습이다. 『세월과 함께 커가는 아이들의 모습,또 성숙해가는 가족간의 사랑이 집안 구석구석에 모두 남아있지요』이 집의 가훈 「작은 것을 사랑하자」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손이 귀한집 맏며느리로 들어와 딸만 셋을 낳았다는「구 시대성」자책감을 극복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해 키워온 안주인 정명자씨(52).『사랑과 정성만큼 버릴 것이 없었다』고 말한다.첫딸 수아(27·회사원)가 태어난 68년을 기념,담근 포도주가 고급 와인이 돼 집안의 가보로 자리잡았고 수진(25·대학생)지혜(23·〃)의 탄생 기념주를 비롯,매년 여름 담근 포도주 향기가 집안 지하실에 가득하다. 「딸하나,공주 하나,여식하나」세딸이 각각 자라온 모습을담은 앨범도 각각 5권씩이나 된다.첫회 예방접종용지,유치원 등록증,편지등이 모두 아름다운 사연이 돼 함께 꽂혀있다.집에 카메라가 없었던 68년엔 첫딸 수아의 첫 울음소리를 녹음테이프에 담았을 정도다. 『국민학교때 고아원에서 다니던 학급친구를 위해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두개씩 싸들고 등교하면서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어요.하지만 지금은 「나도 엄마·아빠처럼 살아야 할텐데」라고 생각해요』수아씨의 말이다. 지난 83년 지휘자 카라얀(당시 75세)이 그 다음해 한국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해 난방비와 맞먹는 가족들의 입장권을 사기 위해 적금을 부었던 음악광 가족.당시 멋모르고 따라 다녔던 두딸 역시 열렬한 클래식 음악팬이 돼 1년치 공연 계획표를 찾아 함께 관람한다.요즘 집안에 흐르는 음악도 오는 19일 정명훈의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단 공연을 미리 공부하기 위해 틀어놓는 레퍼토리. 33년전 정씨의 서울대 간호학과 재학시절부터 모은 음악 미술 연극 관람표와 프로그램에서부터 온가족이 관람한 연극표등을 하나도 버리지 않은 것은물론이다. 학교와 직장에서 바로 저녁 음악회로 향하는 식구들을 위해 김밥을 핸드백에 담아오고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홍보위원으로,또 이웃과 함께 분리수거운동및 생필품 공동구매운동등 안팎으로 쉴틈 없이 살고 있는 아내를 향해 한상용씨는『달빛 햇빛냄새가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럼없이 밝힌다. 이들 부부는 「삶의 가치관인 종교(기독교)가 같고 클래식음악을 즐길 수있는 사람」을 세 딸의 남편감으로 꼽는다.사위들은 베이스를 맡아 가족중창단을 만들었으면 한다. 이집 마당엔 부인 정씨의 친정 외할머니로부터 2대에 걸쳐 전해져온 옥잠화가 곱게 자라고 있다. 한상용씨 부부는 나이가 들면서 아이들의 성장앨범과 바로 이 옥잠화를「챙겨 들고」68년 70년 72년에 담근 포도주를 함께 마시면서 노래를 부를 세사람의 기사가 누굴까가 자꾸만 궁금해진단다.
  • 남 67.7세/여 75.7세/30년새 평균수명 19년 늘었다

    ◎「보건·의료수준 변화」를 보면/통계청 발표/1천명단 사망률 12명서 5.3명으로/국교6년생 키18㎝·몸무게10㎏ 늘어/60세이상 노령인구 90년 3백32만명 지난 30년은 경제개발을 위해 온 국민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온 시기였다.나라 살림의 규모도 불어났고 국제 사회에서 어엿하게 자리도 잡았다.이에 발맞춰 우리 국민들의 건강 수준도 향상돼 건강 지표들이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졌다. 7일 세계 보건의 날을 맞아 통계청이 발표한 「30년간 보건·의료수준 변화」는 건강 수준의 괄목할만한 변화상을 담고 있다. 평균 수명이 크게 늘어난 점이 눈에 띈다.60년대 초까지는 52.4세였다.환갑을 맞는 사람들이 드문 편이었다.66년에 평균 61.9세를 기록했고 87년에 70세를 넘어서 91년에는 71.6세로 늘어났다.30년 전 사람들보다 요즈음은 평균 19년을 더 사는 셈이다. 평균 수명의 남녀별 격차도 커졌다.30년 전에는 남자 51.1세,여자 53.7세로 2.6년 차이였다.91년에는 남자 67.7세,여자 75.7세로 8년 차이가 됐다.평균 수명이 가장 높은 나라는 일본으로남자 76.1세,여자 82.1세이다. 인구 1천명 당 사망률도 92년에 5.3명으로 30년 전의 12.1명보다 절반 이상이 떨어졌다.일본 6.8명(91년),미국 8.7명(89년),프랑스 9.3명(90년),영국 11.5명(89년)보다 낮다.결핵 등 후진성 질환에 의한 사망은 81년에 10만명 당 21.4명에서 92년 10.4명으로 줄었다.반면 당뇨는 5.7명에서 13.5명으로,교통사고는 20.5명에서 34.5명으로 크게 늘었다.특히 교통사고와 간암(23.7명)에 의한 사망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영아 사망률도 62년 69명(출생 1천명 당)에서 90년 12.8명으로 크게 줄어 선진국 수준(10명)에 근접했다. 평균 수명의 연장과 사망률 감소에 따라 60세 이상의 노령 인구도 90년 3백32만명으로 30년 만에 두배가 됐다.지역 별로는 경북이 12.1명으로 가장 높고 서울이 5.4명으로 가장 낮다. 체위도 월등히 좋아졌다.11살짜리 국민학교 6학년생을 기준으로 할 때 지금의 아이들은 30년 전의 아이들보다 키는 연필 한자루만큼인 15∼18㎝가 커졌다.몸무게도 10∼11㎏이나 불어났다. 의료시설과 의료인력도 크게 개선됐다.각급 의료기관은 92년 1만2천9백65개로 61년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특히 종합병원은 27개에서 2백36개로 10배 가까이 증가했다.의사 한명 당 인구는 61년 3천66명에서 93년 7백46명으로 낮아졌다.간호원 1명 당 인구도 61년 4천51명에서 93년 1백63명으로 크게 줄었다. 그러나 이런 의료시설과 인력의 61%가 인구 비중으로 절반이 안 되는 서울 등 6대 도시에 집중돼 있다.지역별 불균형이 심한 셈이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건강관리를 하는 사람도 89년 29.7%에서 92년에는 44.2%로 껑충 뛰었다.주로 운동(9.1%)과 식사조절(7) 방법을 사용한다. 흡연인구는 92년 38.5%로 2년전보다 조금 줄었지만 하루 1갑 반 이상의 골초는 14.8%로 오히려 늘었다.여성 흡연자도 89년 7.6%에서 92년 6.1%로 감소했지만 1갑 반 이상은 3.8%에서 4.8%로 증가했다.
  • 총무원장 8년… 「종단의 얼굴」/서의현원장의 면모와 행적

    ◎5공때부터 최고위급 인사와 교분/상무대 비리·사생활 관련 구설수도 5일 조계종 원로회 회의에서 전격 불신임된 서의현총무원장(58)은 한국불교 최대종단인 조계종의 종권을 9년동안 굳건히 지켜온 불교계 최대의 실력자다. 86년 8월 제25대 총무원장에 선출된 뒤 역대 총무원장 가운데 최초로 임기 4년을 다 채운데 이어 90년에는 재임에도 성공,종단 제1인자의 아성을 지켜왔다. 그러나 독선적이며 친정부적인 종단운영으로 개혁파들로부터 계속 도전을 받아왔으며 사생활과 관련된 구설수와 함께 최근에는 상무대 비리에까지 연루돼 3선연임을 목전에 두고 사면초가의 곤경에 빠진 상태였다. 게다가 자신의 3선연임을 결정할 중앙종회를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터진 조계사 폭력사태를 배후 조정한 의혹까지 받게되면서 그의 거취가 관심의 초점이 돼왔다. 그는 36년 대구에서 출생했으며 52년 해인사에서 김상월화상을 은사로 득도한 뒤 같은해에 사미계(사미계),55년 비구계(비구계)를 수계했고 62년 해인사 대교과를 거쳐 67년 대승사 주지를 시작으로은해사와 동화사 주지를 역임했다 또 66년 2대 종회부터 현재의 10대 종회까지 중앙종회의원직에 오르는등 최다선의원으로 화려한 이력을 더해 왔다. 그는 종단내에서의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정계를 비롯,각계 최고위급 인사들과도 폭넓은 친분을 유지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정치로비자금을 동원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5공말기인 86년 행정수반격인 총무원장에 처음 선출된 당시 집권층의 다수를 이루던 소위 TK세력과의 친분등으로 인해 친정부적인 성향을 띠면서 실세였던 전경환씨와 가깝게 지냈으며 이때부터 호국불교를 외치며 정부를 위한 조찬기도법회를 여러차례 주선했다. 전두환전대통령이 퇴임후 백담사에 은둔중일 때는 일주일에 한두번씩 방문,전씨에 대한 「의리」를 은연중 과시하기도 했다. 또 91년 5월에는 서울롯데호텔에서 노태우전대통령 내외와 불교신자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원법회」를 갖고 법어를 통해 노대통령의 북방정책을 찬양하는 발언을 해 교계 일각에서빈축을 샀다. 91년 9월 종정추대를 둘러싸고 종권다툼이 벌어져 총무원이 강남과 강북으로 양분되는등 분종의 위기까지 치달으면서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으나 양측간의 극적인 화해로 위기를 넘기는 등 남다른 생명력과 위기관리 능력을 보였다. 하지만 거의 선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권력지향적인 그의 성향은 92년 3월 당시 김영삼민자당대표최고위원을 지지하는 발언으로 또다시 내부 반발에 직면했으며 퇴진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결국 상무대 비리와 관련,공사대금 80억원을 대선자금으로 유용했다는 의혹까지 받기에 이르면서 조계사 폭력사태로 이어지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 “「몽유도원도」 안견의 대표작 아니다”

    ◎재야 회화연구가 이양재씨,안휘준교수 논문에 반론/산수화뿐아니라 초상·풍속화도 능통/기존 학설 전면 부정… 학계 논란일듯 「몽유도원도」가 안견의 화풍을 대표하는 기준작이며 그가 남긴 유일한 진작이라는 국내 미술사학계의 통설은 크게 잘못됐다는 주장이 처음으로 제기됐다. 재야 회화사연구가 이양재씨(40)가 미술세계 4월호에 기고한 「안휘준교수의 안견론에 대한 비판」이 그것으로 조선초기 대표적 화가인 안견에 대한 지금까지의 학설을 전면부정하고 있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안휘준교수(54·고고미술사학)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우리 미술사학계의 안견론은 안견이 중국 북송시대 산수화의 대가 곽희의 화풍을 따른 산수화가이며 「몽유도원도」는 이 화풍을 그대로 띠고 있는 유일한 작품으로 못박고 있다. 그러나 안견은 곽희뿐만 아니라 이필·유융·마원등 중국대가들의 산수화법과 함께 초상화·풍속화·금수등 다양한 분야에 능통해 「몽유도원도」는 그의 화풍을 평가할 수 있는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이씨의 주장이다. 이씨는 김안로(1481∼1537)의 「용천담적기」중 안견에 관한 기록인 「고화를 많이 보고… 곽희식으로 그리면 곽희가 되고 이필식으로 그리면 이필이 되었으며 유융이나 마원도 마찬가지였다.…」 부분을 인용하면서 지금까지의 안견화풍론이 「몽유도원도」에 나타난 곽희화풍의 영향만을 지나치게 강조해 협소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성현(1439∼1504)이 「용재총화」에서 「…「청산백운도」를 보았는데 참으로 더할 수 없는 보물이다.견(안견)이 늘 말하길 평생의 정력이 여기에 있다고 하였다 한다.경도 만년에 산수와 고목을 그렸는데 견에게는 마땅히 양보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기록한 점은 당시 궁중에 내장돼 있던 「청산백운도」가 바로 안견의 화풍을 파악할 수 있는 기준도임을 밝혀주는 것이라는 것. 이씨는 이와 함께 「적벽도」가 안견의 진작임에도 불구하고 안휘준교수가 『인물의 묘사가 산수의 표현보다 훨씬 우수하여 이 작품은 산수화보다 인물화에 뛰어난 화가에 의해 그려진 것이 확실시된다』고 부인한 것은 바로 「몽유도원도」=안견화풍의 척도라는 선입관을 그대로 노출하는 단견이라고 꼬집었다. 신숙주(1417∼1475)의 「보한재집」권14의 「화기」에도 안견과 관련해 「고화를 많이 보고 여러 대가들의 좋은 점을 모아 종합하고 절충해 못그리는 것이 없었으나…」등으로 기록돼 있고 안견이 14 42년에 안평대군,2년후엔 광평대군의 초상화를 그렸음이 사료를 통해 증명되고 있는 게 그 좋은 예라는 것이다. 한편 이씨는 안교수가 16 91년 서산사람 한여현이 쓴 「호산록」을 인용해 안견의 출생지를 지곡으로 판단한 점과 안견이 15세기 전반 일본 수묵화단의 주류이던 주문파의 산수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 점도 큰 오류라는 설명이다. 즉 안견은 낙관을 통해 본관이 지곡임을 밝히고 있는데 안교수가 충분한 검토없이 「호산록」의 「지곡인」이란 부분만을 인용해 출생지를 충남 서산 지곡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은 큰 잘못일뿐만 아니라 안견 낙관인 지곡은 출생지가 아닌 본관으로 보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안교수는 안견이 1423∼4년경 일본사신과 함께 방한한 일본인 주문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으나 일본학계에서는 일본에 귀화한 이수문이 주문의 회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여기고 있고 특히 1385년경에 태어나 1440년대 중반에 사망한 주문의 연령으로 볼 때 당시 안견의 생년을 아무리 높여잡아도 주문이 안견의 영향을 받기란 불가능하다며 안견론의 대폭적인 수정이 불가피하가고 주장했다.
  • 1백년 시간속의 동학여행/이봉환지음(화제의 책)

    ◎삼남지방 동학전쟁 흔적 추적 1백년전 일어난 동학농민전쟁의 발자취를 따라 전라·충청·경상도등 삼남지방을 돌며 그때의 흔적을 더듬은 역사기행산문집. 이제는 그 지역 사람들에게 조차 잊혀진 유적을 물어물어가며 찾아가는 나그네의 발길이 한번쯤 뒤쫓고 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 전봉준·김개남·손화중등 농민군지도자의 출생지와 동학군의 전투지,동학교도의 포교활동 지역등이 소개되면서 당시의 상황도 함께 들려준다. 동학군의 봉기부터 최후까지를 사건의 흐름에 따른 순서대로 구성했다. 지은이는 지난 88년 등단해「내 안에 쓰러진 억새꽃 하나」등의 시집을 낸 젊은 시인이다. 은율 6천원.
  • 대구·경북 남아선호 “으뜸”

    ◎92년 신생아성비 124.6·123.2/전국평균 114… 인천·전북이 “최저” 우리나라 사람들의 남아선호 사상은 유별나다.신생아 성비(여아 1백명당 남아 수)의 세계 평균치가 1백4.6(90년 기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80년대 초 1백10선을 훌쩍 넘어섰으며 해마다 이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90년의 경우 우리나라가 1백16.9인 반면 북미 1백4.8,유럽 1백5.3,일본 1백5.4,중국 1백6.6 등으로 차이가 뚜렷하다. 22일 통계청에 따르면 92년 출생한 신생아 중 남아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대구이다.3만5천8백43명의 신생아 가운데 남아가 1만9천8백84명,여아는 1만5천9백59명으로 성비가 1백24.6이었다.전국의 평균 성비 1백14보다 월등히 높다. 다음이 경북 1백23.2,경남 1백20.6,부산 1백17.3 순으로 영남,특히 대구·경북지방의 성비가 가장 높았다.인천과 전북은 1백7.9로 가장 낮았다. 91년에도 마찬가지였다.평균 성비가 1백12.7인 반면,대구 1백25.5,경북 1백23.3으로 두드러지게 높았다.세계 평균을 감안하면 이 지방의 남아 선호사상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 지방에서 신생아 성비가 껑충 뛴 시점은 85년.그 전까지는 전국 평균치 1백7∼1백8을 다소 웃도는 수준이었으나 85년부터 급격히 증가하며 지금은 평균보다 10정도 높아졌다. 통계청의 관계자는 『의학기술이 발달하는 가운데 대구와 경북지방의 보수적인 유교문화 전통이 뿌리 깊은 탓』이라고 설명했다.
  • 수도권인구 2천만명 돌파

    ◎작년말 현재 2천8만명/전인구의 44.6% 차지/서울은 1천92만… 1년새 4만 감소 서울의 93년 12월31일 현재 주민등록상 인구(외국인 포함)는 1천92만5천4백64명으로 집계됐다고 17일 서울시가 공식 발표했다.이는 92년의 1천96만9천8백62명 보다 4만4천3백98명이 감소한 것으로 서울인구가 줄어든 것은 지난 56년 이후 36년만에 처음이다. 인구 증감내역을 보면 자연증가율이 0.95%로 10만4천2백14명이 새로 출생한 반면 사회증가율은 마이너스 1.35%(14만8천6백12명)로 나타나 분당·일산·평촌등 신도시로의 이주가 감소현상의 주원인으로 분석됐다. 가구수는 핵가족화 추세로 92년보다 1·4%(4만7천3백59가구)가 늘어난 3백38만3천1백69가구로 집계됐다.성별인구는 남자가 전년도 대비 2만2천1백56명이 줄어든 5백47만7천8백45명,여자가 2만3천5백75명이 감소한 5백41만1천6백54명으로 각각 나타났다. 한편 서울·인천·경기등 수도권 인구수는 2천8만5천4백68명으로 92년말의 1천9백66만1백7명보다 42만5천3백61명이 증가했다.이같은 수도권인구는 전국 총인구4천5백7만7천4백87명의 절반에 가까운 44.6%나 되는 것이다.
  • 독 판화거장 에른스트전/새달 19일까지 국립미술관

    ◎초현실주의 2백점 선보여 콜라주와 프로타주등의 미술기법들을 창안해낸 독일의 대표적 초현실주의 작가 막스 에른스트(Max Ernest) 판화및 도서전시회가 오는 4월19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원형전시실에서 열리고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주한독일문화원 공동주최로 마련되는 이번 행사는 독일 국영항공사 루프트한자 문화재단이 소장한 막스 에른스트의 유작중 1919년부터 74년 사이 제작된 판화 2백점과 그의 삽화가 삽입된 도서와 화보 30여점이 선을 보인다. 1891년 독일 브륄지방에서 출생한 막스 에른스트는 독일 프랑스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1976년 사망때까지 전통적인 판화기법에 변화를 시도한 작업으로 일관,현대 판화기법의 대부분이 그의 손에 의해 창안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미 1920년대에 사진기법에 의한 판화를 발명했고 다다와 초현실주의를 잇는 콜라주작업과 프로타주기법을 시작한데 이어 포토그래픽 개념을 도입하기도 했다. 그의 실험성 짙은 예술인생은 영화화되기도 했는데 「나의 방랑벽」「나의 불안」등이 그의생전 모습과 작품세계를 담은 대표적 영화로 「봄의 교향곡」의 독일감독 페터 샤모니는 이 영화들로 인해 지난 92년 독일 바이에른 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되는 유작들은 1920년대 제작된 다양한 기법의 판화나 1930년대의 콜라주소설들,프로타주기법을 망라해 그의 예술활동 전반을 보여주는 자료들로 초현실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과감한 인식전환과 함께 노력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편 전시기간 동안 전시장내에서 「나의 방랑벽」「나의 불안」비디오 상영도 곁들이고 있다.
  • 통일시대의 YS와 IS/최평길 연세대교수·행정학(시론)

    45년 해방 이후 70년대까지 북한은 공산주의 이념과 강력한 노동당조직 확립,군사력 증가,그리고 한국이 가지지 못한 50만t의 철강생산력을 필두로 우수한 국력을 과시하고 있었다.그래서 한번에 남한을 빨갱이로 만들려는 호전적이면서도 공격성향의 정책기조를 가지고 있었다.하지만 이러한 70년대가 지나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수차례에 걸친 남한의 경제개발계획 성과와 국가경쟁력 향상으로 북한은 「우리는 우리 식대로 살겠으니 너무 간섭말라」는 자기방어로 수세 자세에 서게 된다. 결국 북한과 남한의 국력게임은 끝장났다고 할 수 있다.뿐만 아니라 김영삼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치경쟁력 부분에서도 협공을 받자 노쇠한 김일성은 자포자기 상태로 「너 죽구 나 죽자」는 동반자살용의 조잡한 실험용 원자탄 하나를 만들어 이를 은근히 협박용 핵카드로 남한과 국제사회에 내놓고 있는 현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김일성(IS)주석과 김영삼(YS)대통령의 성장배경과 특성을 비교해 봄으로써 앞으로 있을 남북정상회담과 남북관계진전에 있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해낼 수 있을 것이다. 김일성주석은 3남1녀의 장남으로 1912년 4월에 출생했으며,평양에서 태어나 만주육문중학 3년때 중퇴한 학력만을 가지고 있다.그의 부모는 오산중학을 졸업한 한의사 경력의 김형직옹과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집사였던 강만석 여사이다.그는 10대였던 1920년대부터 중국공산당의 빨치산으로 활동하면서 1945년 해방과 더불어 33세로 북한 정권의 수령이 되었으며 현재까지 50여년간 현대판 왕으로 군림해 오고 있다. 김일성은 전쟁기간과 60∼70년대에 소련에서 온 한인 공산당인 소련파와 모택동과 관련된 조선인 연안파를 부추겨 남한 출신 박헌영파를 거세하였다.그 이후 연안파를 이용해 소련파를 제거하였으며,살아남은 소련파 역시 자파인 빨치산파를 통해 완전히 거세해버렸다.뿐만아니라 자파내의 위험인물 역시 모조리 없애는 일명 「허허실실」의 용병술에 능하다고 할수 있다.그러나 김일성주석은 집권 50여년동안 중국및 소련과의 등거리외교,아홉차례의 경제계획을 입안하는등 행정부 경험에 능하다는 것에 주목할만하다. 한편,김영삼대통령은 3남5녀의 장남으로 1928년 음력 12월4일에 출생했으며 통영중학,경남중고교,서울대를 졸업하였다.그의 아버지인 김홍조 장로는 거제도 멸치어장의 갑부이기도 하다.김일성이 6·25를 일으켰을 때는 YS는 대학생으로,김일성이 북한 수상으로 국내정적 숙정과 경제계획에 전념하던 50년대말에 YS는 20대의 국회의원이었다.그이후 YS는 70년대의 대권도전,80년대에 재도전,90년대에 대권 3수생의 고통끝에 오늘의 문민정부 대통령으로 화끈한 개혁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YS와 IS에게는 공통점이 있다.우선 그들은 절실한 기독교 가정 출신이며,스포츠맨으로 모두 축구에는 일가견을 가지고 있다.아울러 대단한 보스기질이 있어 배반하지 않는 부하는 끝까지 수하에 거두고 있는 반면 정적거세에 역시 철저하다.YS와 IS모두는 뛰어난 정치감각을 가진 생존의 도사들인 것이다. 그렇지만 몇가지 면에서는 차이점도 발견할 수 있다.YS는 부유한 가정에서 정규교육을 받았고,문민정부의 대통령이 되기까지 대권을 향한 도전자의 입장에서정면돌파형의 공격형이다.그의 정적거세는 공개정치무대에서 투표를 통해 결판낼뿐 아니라 한번 결심하면 황야의 들소같이 일직선으로 달려가는 유형이다.그러나 IS는 어려서부터 험난한 빨치산에 가입한 불우한 가정의 중졸 출신이다.그는 중국과 소련군의 힘으로 북한정권을 장악한 정치군인 출신이며 그의 정적거세는 상호이간질,상호자아비판을 통해 처형하거나 길거리로 내쫓는 등의 물리적 위해와 테러를 주축으로 한 우회돌파형의 지도자이다.그는 33세에 수상이 되어 82세인 오늘날까지 줄기차게 정상을 지켜온 방어형의 지도자이다. 이제 YS와 IS가 지니고 있는 강·약점을 정리해 보면,김일성은 집권 50년의 노하우와 강대국들을 요리하는 노련미가 있는 반면,오랜 독재로 인한 아집과 객관적 정보파악이 결여된 폐쇄지도자로서 국제감각이 뒤떨어져 있다.무엇보다도 그의 80세라는 고령의 나이가 매우 커다란 약점이다.반면,YS는 열려진 사회에서 정규교육과 온화한 가정 출신으로 균형된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개방정치시장에서 대도무문의 룰오프게임(ruleofgame)을 존중하면서 도전자로 커 왔다.그렇지만 야당의 대권주자로 오랜 의정생활에서 정치감각은 뛰어날지 모르나 집권정부의 수장으로 훈련받을 수 있는 기회가 극히 적었기 때문에 정책기획능력이 아쉽기만 하다. 이제 21세기의 여명을 제치는 통일한국을 건설할 확실한 시대가 도래하였다.60대의 YS는 북한과 비교되지 않는 월등한 한국의 권력과 자유정치시장에서 익혀온 특유의 정면돌파력을 갖고 젊은 형으로서의 아량을 베풀며,80살 고령의 IS를 늙은 동생으로 포용하는 유연한 통일시대의 정치력을 발휘할 시기가 바로 오늘이 아닌가 한다.
  • 공사에 외국인 생도/태국유학생 첫 입교(조약돌)

    ○…2일 충북 청원 공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제46기 입교식에서 태국인 나타차이 생도(22·항공공학전공)가 한국 생도들과 나란히 입교했는데 외국인생도의 입교는 공군사관학교 창설이래 처음 있는 일. 나타차이군은 방콕근교인 카차나부리 출생으로 태국 공군사관학교가 선발한 14명의 해외유학생 가운데 한사람으로 공사의 개방화정책에 따라 입교가 허락된것. 지난해 3월 한국에 와 서울대 어학연구소에서 1년간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지난 1월27일 공사에 가입교해 5주간의 기본 군사훈련을 받은 나타차이군은 『한국공사에서 마음껏 기량을 배워 태국 최고의 보라매가 되어 조국 공군을 위해 몸바치겠다』며 강한 결의를 다졌다.
  • 사산태아까지 의약품 원료로(오늘의 북한)

    ◎치료약 부족… 궁여지책으로 민간요법 대거 보급/살모사 독·곰 쓸개즙도 주사약으로 개발/「마늘 뜸」·「티눈 제거법」등 언론서 자주소개 최근 북한이 태아와 살모사독을 약재로 이용하는 등 갖가지 생약과 민간요법을 개발 보급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있다. 북한당국은 그동안 이른바 「주체의학」이라는 구호아래 고려의학(한의학)과 민속의학등을 중시해와 양의학이 질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의학만큼은 상당한 인정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요사이 성행하는 북한의 민간요법은 기본적인 치료약의 부족으로 인한 궁여지책의 성격을 띠고 있다.즉 북한당국이 자랑하는 무상치료제도의 허점과 당면한 경제적 어려움을 반영하고 있는 측면이 많다. 내외통신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 해산후 나온 태반이나 사산한 태아까지 의약품의 원료로 사용하는 등 비윤리적인 의료행위까지 자행하고 있다고 한다. 태아나 태반을 이용해 만든 대표적 의약품으로는 「생물원 자극소」란 이름의 주사약.이 약은 위궤양 환자나 눈이 잘보이지 않는 영양실조 환자에게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북한 주민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있으나 공급물량이 부족해 병원에서 치료약으로만 투약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당국은 태아 및 태반을 보다 많이 확보하기 위해 가능한한 병원에서 출산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산골 오지의 경우 자가에서 출산한 산모가 태반을 가지고 오지 않으면 식량배급과 직결되는 출생증명서를 발급해 주지않고 있다고 한다. 당기관지 노동신문의 최근호 보도에 의하면 북한은 살모사의 독을 이용,신경통·관절염의 치료에 효능이 높은 주사약을 개발 사용하고 있다.자강도 중강군 소재 「영예군인 제약공장」에서 생산되는 살모사독 주사약은 주사기준으로 연간 70만대분으로 알려지고 있다.이 공장에서는 살모사독이외에도 살아있는 곰에서 쓸개즙을 채취,주사약을 만들고 있는데 지난 10년동안 매년 6∼7㎏의 곰쓸개즙을 뽑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전반적인 영양결핍으로 청소년층의 발육상태가 좋지않은 대외 사정을 감안한 듯 북한당국은 개성의 「판문제약공장」에서 송화가루를 주원료로 하는 「어린이 영양고」를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이 약은 어린이 발육촉진과 세포기능 증진은 물론 피로회복에도 효과가 있다고 북한 선전매체들이 전하고 있다. 북한의 보통 주민들중에는 발가락 사이에 생기는 굳은 살인 티눈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이는 과도한 노역과 불결한 위생 상태에 기인하는 것으로 요즈음 평양의 각종 매체들은 각종 「티눈 제거법」을 자주 소개하고 있다. 특별한 의약품이 필요없는 대표적 민간요법으로 권장되고 있는 것이 마늘뜸 치료법이다.이 방법에 따르면 마늘쪽을 3∼4㎜ 정도 얇게 쪼개 티눈위에 놓고 쑥뜸을 뜨는 것을 한번에 20회씩 1주일 계속하면 티눈이 완전 제거된다는 것.이외에도 바셀린 마사지법과 명태뼈를 이용한 티눈 제거법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밖에 음식물을 먹고 체했을 경우에도 먹는 음식물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민간요법이 보급되고 있다.예컨대 식사대용인 고구마를 먹고 체했을 경우 된장 반숟가락을 한사발의 물에 풀어서 한꺼번에 먹는 방법이 이용된다.또 술을 먹고 체했을 경우 오이덩굴 즙이나 은행나무 가지 삶은 물등이,「단고기」로 불리는 개고기를 먹고 체했을 때는 달걀 두세개에 식초를 한숟가락 타서 마시는 방법이 권장되고 있다.
  • 신무용개척자 배구자 새롭게 조명/미래춤학회「우리춤 선구자」학술회의

    ◎본격활동 최승희보다 2년 빨라/“한국 근대무용의 효시로 봐야” 월북무용가 최승희와 함께 근대무용의 개척자 정도로만 알려진 무용가 배구자에 대한 본격적인 조명이 처음 이루어진다. 한국미래춤학회는 26일 하오2시 문예진흥원강당에서 「우리춤의 선구자를 말한다」주제의 학술모임을 갖고 배구자의 역할과 의의에 대한 발표와 토론을 갖는데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우리 근대춤의 효시가 과연 누구인가를 놓고 열띤 논쟁을 벌일 예정이다. 이날 발제자로 나서는 단국대 유민영교수는 미리 발표된 「신무용 개척자 배구자 누구인가」에서 배구자는 1905년 출생,11세에 일본의 대표적 곡예단인 덴가츠예술단과 함께 도일해 이 곡예단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배구자는 곡예단에 회의를 느껴 탈출했으며 미국유학차 1928년 4월 장곡천정공회당에서 고별음악무도회를 가졌고 이무대에서 한국전통무용을 현대적으로 개량한 「아리랑」과 함께 안나 파블로바작 「빈사의 백조」「집시댄스」등을 선보였다는것. 배구자는 이후 결혼으로 미국행을포기,1929년 배구자무용연구소를 세워 30대 후반까지 국내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고 말했다. 유민영교수는 최승희가 창작무용연구소를 개설한 것은 배구자보다 2년뒤인 1930년이었고 발표회등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도 배구자보다 2년쯤 뒤졌음에도 불구하고 배구자가 신무용의 선구대열에서 제외됨은 무용만을 고집하지 않은채 활동무대가 넓었고 활동도 지속적이지 못했던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무용평론가 박용구씨는 배씨의 1928년 고별공연은 한국무용무대에선 처음으로 서양무용을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민족무용을 소재로한 창작무용을 선보여 한국근대무용의 효시로 봐야한다』고 밝혔다. 박씨는 이와함께 『최승희가 무용의 예술적 순수성에 치중했다면 배구자는 대중속에 파고드는 직업성을 중시했다』면서 배구자의 업적과 예술관이 새롭게 조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탁명환씨 피습 사망/종교연구가/어젯밤 집앞서

    ◎20대 남자 2명에 목찔려/사이비종교단체 광신도소행 추정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 탁명환씨(57)가 18일 하오 10시5분쯤 서울 노원구 월계3동 삼호아파트 31동 자신의 집앞에서 20대 남자 2명이 휘두른 흉기에 오른쪽 목을 찔려 중상을 입고 상계백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날 자정쯤 숨졌다. 탁씨는 이날 하오 아들과 함께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던중 집앞에서 갑자기 뛰쳐나온 범인 2명에게 피습당했다는 것이다.이어 범인은 탁씨를 찌른뒤 그대로 달아났다. 경찰은 탁씨가 최근 영생교 등 사이비 종교문제와 관련,비판발언을 한데 대해 앙심을 품은 광신도의 짓으로 보고 수사를 펴고 있다. 탁씨는 지난 92년 10월에도 「10·28휴거」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한뒤 자신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30대 남자 2명으로부터 피습을 당했었다. ▷탁명환씨◁ 18일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 탁명환씨는 「이단 감별사」로 통한다.사이비종교와 기독교 이단을 가려내는데 30년 가까이 외길로 살아왔기에 붙여진 별명이다. 탁씨는 지난 37년 전북부안에서 출생,전북대 철학과를 졸업한뒤 예장계통 신학교인 영남신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에서 수학했으며 75년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을 마쳤다. 지난 80년초까지는 주로 한신대·목원대·서울신대등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등 교수로 더 많이 불렸으나 79년 국제종교문제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이단감별사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탁씨는 그동안 이같은 활동을 하다 이단에 속한 신자들에 의해 70여차례나 테러를 당하는 등 고통을 겪었다. 지난 85년 5월에는 집앞에 세워둔 자동차에 폭탄장치를 해놓고 살해를 하려고 한 사건이 발생,가슴등에 부상을 입고 한달동안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단교도들로부터 위협을 받으면서도 탁씨가 펴낸 신흥종교책자는 모두 30여권이며 전국 3천여교회를 순회하며 이단에 대한 강의를 해왔다.
  • 9급 공무원 시험(알아둡시다)

    ◎총무처서 뽑는 행정·교정직 등 응시연령 제한/5∼7과목 시험… 자격증 소지자 가산점제 확대 9급 국가공무원의 총무처장관이나 다른 부처장관이 시험을 실시한다.올해의 경우 총무처장관이 공개채용시험을 실시하는 분야는 행정직·세무직·교정직·보도직·보호관찰직·검찰사무직·기계직·전기직·농업직·임업직·토목직·건축직·전산직등이며 이 가운데 행정직은 농림수산부소속 농수산통계사무소 근무예정자와 우체국 근무 예정자,철도청 근무 예정자를 구분해 뽑는다.여기서 열거한 분야가 아닌 기타 분야의 국가직 시험은 통상 공개채용이 아닌 특별채용시험으로서 다른 부처장관이 직접 시행하므로 관심있는 분야의 소관부처 총무과에 문의해 보는 것이 좋다. 9급 지방공무원 공개채용시험은 서울시·직할시·도별로 시행하며 교육청에 근무할 직원은 각 시·도교육청별로 시행하므로 궁금한 사항은 시·도 총무과 고시계,시·도 교육청 총무과로 문의해야 한다.법원에서도 9급공무원(법원서기보)을 다수 채용하고 있다.법원행정처 인사과로 문의하면된다. 전과자로서 일정기간이 지나지 않은 사람등 결격사유이외에는 응시연령제한만 있다.94년도 총무처시행 공개채용시험의 경우 행정·세무·검찰사무직은 65년7월16일∼76년7월15일,교정·보도·보호관찰직은 65년7월16일∼74년7월15일,기계·전기·농업·임업·토목·건축·전산직은 65년11월9일∼76년11월8일사이 출생자만 응시가 가능하다.다만 전산직 응시자는 원서접수시 전산분야 기사2급이상 또는 기능사 1급이상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어야 응시가 가능하다. 행정·세무·교정·보도·보호관찰·전산직등은 국어·영어·국사·국민윤리과목을 공통시험과목으로 하고 분야별로 1∼3과목의 전공과목을 합쳐 5∼7과목을 응시하게 된다.기계·전기직등 기술직은 국어·국사·국민윤리를 공통으로 하고 여기에 분야별 전공과목 4개를 합쳐 7개과목을 응시하게 된다. 자격증을 소지한 우수인력채용을 위해 합격에 많은 영향을 주는 가산제도를 확대·강화했다.주산·타자자격증 가산제가 폐지되는 대신 워드프로세서자격증 소지자에게 0.5∼1.5%,전산분야 자격증소지자에게 2∼3%의 가산점을 준다.기술직응시자가 당해분야 자격증을 갖고 있을땐 3∼5%의 가산점을 주며 종전에 가산혜텍이 없던 임업·통신직등의 응시자에게도 가산점을 준다.취업보호대상자에게 10%,제대군인에게 3∼5%의 가산점을 주는 것은 종전과 같다.
  • 노화방지 의학의 발달(미리 가보는 21세기:15)

    ◎2010년 출생아 평균 150살까지 산다/유전자 조작통해 세포노화 최대한 억제/유해산소 제거 효소 주입… 뇌졸중도 예방 21세기에는 노화에대한 비밀이 의학적으로 규명되어 인간의 생명이 1백50세에서 2백세까지 늘어나게될지도 모른다.과학기술과 의학의 발달은 마침내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킨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또한 단순이 생명을 연장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몸의 활기와 정력을 넘치게해서 생활의 질을 높이게된다는 학설이다. 미국의 국립노화연구소는 인간의 생명은 미리 운명지어진 것이 안이라 의학의 힘과 생활 풍습등을 통해 연장할 수있다며 2010년에 태어나는 아이들의 평균수명은 1백50세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있다. 미국립노화연구소 마이클 로즈박사는 초파리의 생명을 2배연장시키는데 성공했다.그는 생식 발달이 늦은 초파리만을 따로모아 이를 교배하고 열,건조함,굶주림등의 극한 상황을 이겨낼수 있는 개량 초파리를 탄생시켰다. 같은 연구소의 탐 존슨박사는 노화를 결정하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회충의 수명을 70%연장시키는데성공했다. 이들은 노화결정 유전자의 활동을 억제함으로써 인간의 노화도 막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노화의 주범인 유해산소의 발생원인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고있다. 미국의 오클라호마대학의 독극물학자 로버트 플로이드박사팀은 노화의 주범인 유해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제 PBN을 개발,노화속도를 늦추고 건망증과 뇌졸중등을 예방하는 효과를 거두고있다고 발표했다. 유해산소란 세포내 공장에 해당하는 미토콘드리아로부터 발생한 에너지를 이용,우리몸이 필요로하는 3만여종의 단백질을 합성해내는 과정에서 하루에도 수십억개씩 배출해내는 유독성부산물이다.우리몸에는 자연 방어기능이 있어 이를 부지런히 없애주나 40세가 지나면서부터 기능이 떨어져 세포전체를 산화시켜 노화현상이 일어난다. 20세기에는 젊어보이기위해 성형수술을 했다면 의학과 과학의 발달로 앞으로 20년 뒤면 50년이상 일정한 동안 건강과 젊음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생명공학이 출연하게된다. 미국의 일부 유전학자들은 21세기초에는 수명 4백년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믿고있다.실제로 구약성서속의 므두셀라는 6백69세까지 장수했다.현대의 과학기술은 21세기의 므두셀라를 탄생시킬 꿈에 부풀어있다.〈김원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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