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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휘자 임원식(이세기의 인물탐구:93)

    ◎26세에 지휘봉 잡은 “한국의 토스카니니”/46년 고려교향악단 창설… 4대교향곡 국내초연/서울 온 오사카필 등 단골 지휘… 일 TV서도 소개/서울예고·예원학교 설립… 7순넘긴 나이에도 “꼿꼿한 현역” 미국의 NBC교향악단이 세기적 거장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를 가지고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음악의 자존심」 임원식이 있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그는 음악을 위한 수많은 업적을 남겼고 그의 이름은 음악사의 중앙을 가로질러 우뚝한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평생을 통해 그처럼 존경과 사랑과 선망을 한몸에 받은 인물도 드물 것이다.그리고 음악의 발전·보급과 그 질을 높이는데 지금도 식을줄 모르는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첫째,그는 우리나라 교향악운동에 초석을 놓은 독보적 존재다.아직 새파랗게 젊은 나이인 26세에 하얼빈교향악단 지휘로 음악계에 데뷔,국내 최초의 고려교향악단을 창설하여 46년 서울 부민관무대에서 첫지휘봉을 잡았을 때 『혜성같이 나타난 젊고 아름다운 예술가에 대한 청중의 열광은 참으로 대단했다』『연주 때마다 객석은입추의 여지가 없었고 그날 입장하지 못한 관객들은 극장의 창문을 깨뜨릴 정도였다』고 그의 오랜 동료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전봉초씨가 이를 증명한다.그로부터 10년후인 56년,KBS교향악단창단과 함께 그는 지금까지 「현역의 단정함」을 꼿꼿이 지키고 있다. 지난 94년 음악생활 50년을 기념하는 음악회에서 그는 베토벤 교향곡 1번·5번을 필두로 다섯차례나 암보지휘를 하여 노익장을 과시했다. 전에는 비교적 섬세한 해석이 눈에 띄었으나 해를 거듭할수록 큰 흐름을 붙들면서 「음률의 마디마디에서 거인의 숨결이 느껴지고 인간정신의 승리가 구가되는 한층 심화된 경지」를 펼쳐보였다.『그가 지휘봉을 드는 순간이 바로 음악을 이루는 순간』이라는 박용구씨의 평은 결코 과장일수가 없다. ○연주때마다 관객 만원 둘째,음악교육에서도 그는 미래를 지향하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이를 몸소 실천해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서울예고와 예원학교를 만든 일이다.미 줄리어드 음악학교 유학시절 청소년예능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그는 이화재단 신봉조이사장과 의논하여 예술고교를 설립하는 한편 해외에 나가있는 재능있는 젊은이가 눈에 띄면 어떤 방해도 뿌리치고 국내무대에 진출할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음악계 일선에서 쟁쟁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서울시향의 상임지휘자 원경수를 비롯,이남수 박은성,피아니스트 백낙호 정진우 신수정 이경숙 백건우등등 연주자 성악인의 대부분은 그의 도움을 받아 발돋움한 이들이다. 우리나라에 클래식이 보급되는 역사와 더불어 그는 주옥 같은 명편을 직접 들려준 첫지휘자이기도 하다.이른바 4대교향곡으로 일컬어지는 차이코프스키의「비창」,드보르자크의「신세계」,베토벤의「운명」과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초연은 물론 음악애호가들이 탐닉해마지않는 모차르트에서 프로코피예프에 이르기까지 「특유의 이모셔널한 시심과 티없이 순수한 천상의 음악」으로 그때마다 지식층의 청중들을 일시에 혼도시키고야 말았다. 그는 지방교향악단의 위상과 연주확대의 차원에서도 남이 넘볼수 없는 커다란 획을 긋고 있다.83년 인천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부임했을 때 동호인 그룹에 불과하던 이 악단을 3관편성의 풀오케스트라로 전열을 가다듬었고 지방시향으로선 엄두도 못낼 동남아및 미국순연으로 활기와 용기를 불어 넣었다.이런 면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세계적 교향악단으로 성장시킨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처럼 굵직한 공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에 대한 행사는 떠들썩하게 소문내는 법이 없다.62년 이래 오사카필을 비롯,일본 NHK심포니·도쿄필하모닉의 단골지휘자였으며 지난 71년에는 서울에 온 오사카필을 지휘,내한공연을 갖는 외국교향악단을 최초로 지휘한 기록을 세웠고 77년 일본 도쿄와 삿포로에서 열렸던 아시케나지와의 협연역시 「아시케나지 특유의 탁월한 기교와 시적감성 표출을 절묘한 조화로 이끌어냈다」는 일본신문들의 특필이 있었으나 이를 과시하지 않고 평상적으로 지나갔다. ○유학도 국내진출 뒷받침 91년에는 레닌그라드필,다음은 러시아국립교향악단 객원지휘로 차이코프스키를 연주,「음 하나하나를 갈고 닦은 다이내믹한 쾌감과 가슴을 파고들게한 더없이 아름다운 거장의 선율」로 호평되었고 지난해엔 일본 마이니치 TV가 제작한 세계 최원로지휘자인 아사히나 다가시(조비나 융)다큐멘터리에 참가,이 프로그램은 다가시와 다가시의 후계자였던 그의 하얼빈교향악단 지휘 50년을 기념하는 동양음악사에 남을만한 내용이었다. 그의 성품이 바로 그렇다.폭이 넓고 대범하면서도 절도와 예의범절을 중시하여 어떤 경우에도 남에게 폐해를 끼치지 않는다.단지 싫고 좋은 것을 선명하게 가리는 까다로움 때문에 「카리스마적」이라든가 또는 「독선적」으로 몰아붙이는 예가 없지 않으나 이는 임원식 카테고리에 들지 못한 사람들의 질투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 간단해진다. 오히려 불의에 굽히지 않는 강건한 의협심은 작곡가 윤이상씨가 국가보안법에 관련되어 주변 사람들이 만나기를 꺼려할 때도 점심을 싸들고 구치소에 드나들며 「거대한 예술가」의 고뇌와 슬픔을 달래주고 예술혼을 격려한 것으로 유명하다.그래서 윤이상씨는 『임원식은 나의 유일한 은인』임을 자랑삼았고 바로 이런 정의감과 의리가 그의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을 모으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의 끈끈한 친화력은 다양한 층과 교분을 트고있는 사교맨이기도 하다.정·재계는 물론 체육계와도 깊이 관련되어 70년대엔 남자대학농구협회부회장을 지내는가 하면 바로 「농구의 노래」를 지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농구와의 인연은 그가 누구도 「못말릴 농구광」이기 때문이다.그가 얼마나 열렬한 농구광인가는 그가 있는 곳엔 반드시 어린이농구든 어머니농구든 농구경기가 열리고 있다고 짐작하면 정확하다. 그는 평북 의주의 독실한 개신교집안에서 태어났다.집안이 만주로 이사하는 바람에 봉천서 유년기를 보내고 하얼빈에 있는 제일음악학원에서 피아노와 이론을 사사,교회찬양대를 반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음악과 접할수 있었다.편곡과 작곡에도 능하여 도쿄음악학교시절에 작곡한 파인 김동환의 「아무도 모르라고」는 지금도 폭넓게 애창되는 가곡의 하나다.가족은 플루티스트인 고순자씨와의 사이에 2녀1남,연극연출가 임영웅씨가 그의 조카다. ○각계각층 인사와 교분 토스카니니가은퇴해야 할 69세부터 87세까지 거장다운 황금시대를 누렸고 스토코프스키가 95세까지 7천회의 지휘로 금자탑을 쌓았다면 그는 지금 욕구와 절제,감성과 이성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음악의 정수를 순수한 형태로 구현하려는 의지가 결집된 시기다.그의 열렬한 지지자의 한사람인 원경수는 「영원히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전진한다」는 점에서 『그는 파우스트적』이라고 말한다.그리고 날이 갈수록 『그의 피아니시모는 예리하고 그의 포르티시모는 누구보다 웅장하며 긴장되고 팽팽한 현의 울림,꽉차오르는 관의 장중한 볼륨은 거센 폭풍우를 분출시키면서 청중의 가슴속에 날카롭게 꽂힌다』고 경탄해 마지않는다. 올해는 그가 하얼빈서 돌아와 첫지휘봉을 잡은지 만50주년이 되는해,상대방의 내부에 음악의 혼을 심어준 「위대한 음악의 은인」에게 우리 모두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심의 기립박수를 보낼 때이다. □연보 ▲1919년 평북 의주출생 ▲1942년 일본 동경고등음악학교 졸업 제정삼낭사사 ▲1945년 중국하얼빈심포니 지휘데뷔 ▲1946년 고려교향악단창단,초대상임지휘자 ▲1948년 줄리어드음악학교 수학 ▲1949년 탱글우드음악제서 러시아출신의 쿠세비츠키에게 지휘법사사 ▲1953년 서울예고 창립 ▲1954년 대한민국 예술원회원 ▲1956∼71년 KBS교향악단 창단,상임지휘자 ▲1961∼75년 서울예고교장 ▲1962년이래 일본 오사카·도쿄필,NHK교향악단 등 50여회 객원지휘 ▲1966년 한국음악협회이사장 ▲1971년 내한 오사카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서울시민회관) ▲1973∼86년 국제청소년 음악연맹 한국지부 회장 ▲1976년부터 서울예고 명예교장 ▲1978년 경희대 음대학장 ▲1981∼84년 예총부회장 ▲1984∼95년 인천시향상임지휘자 ▲1985년부터 추계예대교수 ▲1987년 인천시향 동남아순회연주 및 미국 샌프란시스코 등 3개도시 연주 ▲1991년 싱가포르 교향악단 및 레닌그라드필 지휘 ▲1994년 음악데뷔 50년 기념음악회 서울시향 「베토벤 교향곡전곡」지휘,러시아국립교향악단 지휘 ▲1995년 국제청소년음악연맹 한국지부회장 예술원회원,인천시향 및 서울아카데미심포니 명예지휘자 서울시문화상·방송문화상·오월문예상·대한민국예술원상·서독문화훈장·은관문화훈장·음악동아대상
  • 법원장 등 14명 인사

    대법원은 8일 광주지방법원장에 김종배 전주지방법원장을,전주지방법원장에 강철구 서울지법 남부지원장을 임명하는 등 지방법원장 2명,고등법원 부장판사 3명,지방법원 부장판사 9명에 대한 승진 및 전보 인사를 11일자로 단행했다. □얼굴 ◎김종배 광주지법원장/합리적 선품… 대인관계 원만 시원한 용모에 6척장신의 신사다.합리적인 성품으로 대인관계의 폭이 넓다.재판당사자에게 자기주장을 펼 충분한 기회를 줄만큼 너그럽다.법조인으로서는 드물게 제주대 법대를 졸업했다.장남 도영씨는 지난해부터 서울지법 판사로 재직중.김기춘 전 법무부장관과 사돈이다.취미는 테니스와 등산.명지대교수를 지낸 윤인진씨(54)와의 사이에 1남2녀. ▲제주출생·60세 ▲제주농고·제주대 법대 졸 ▲고시 14회 합격 ▲대구지법 경주지원장 ▲부산 고법·서울고법부장판사 ▲제주지법원장 ◎강철구 전주지법원장/꼼꼼한 일처리… “선비형 법관” 온화한 성품이면서도 꼼꼼한 일처리로 유명한 선비형 법관이다.유신헌법의 시행과 함께 73년3월 단행된 법관재임명에서 탈락하는 불이익을 당했으나 2년만에 복귀했다. 사법대학원 2기를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장인이 이영섭 전 대법원장이다.취미는 고서화 감상.이기정씨(51)와의 사이에 2남1녀. ▲경북 봉화 출생·54세 ▲경기고·서울법대 졸업 ▲사시 2회 합격 ▲서울민사지법·형사지법 판사 ▲대전·광주지법·서울고법 부장판사
  • 서재필 박사 동상 약력 “엉터리”/역사연구가 시정요구

    ◎독립협회 창설시기 등 틀리게/서울시 유족과 협의 수정키로 서울시 서대문구 현저동 독립공원에 있는 송재 서재필 박사의 동상에 새겨진 박사의 약력이 엉터리다. 역사연구가 김보영씨(68·서울 중랑구 중화2동 321)는 29일 신문협회에 이같은 잘못을 지적,정정을 요구했다. 서박사의 동상은 지난 90년 4월7일 언론사에 남긴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신문협회,편집인협회,기자협회 등 언론단체들이 성금을 모아 독립공원에 세웠고 개막식과 함께 서울시에 기부 채납했다.3.25m의 입상으로 조각가 김경승씨의 작품이다. 개화기의 독립운동가이며 독립신문의 발행인인 서박사는 1864년 1월 전남 보성에서 출생했다.그러나 동상에는 충남 논산군 구자곡면 출생으로 써있다.김씨는 박사가 독립협회를 창설한 뒤 독립문을 만든 시기가 1898년 11월임에도 동상에는 1897년으로 잘못돼 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독립문은 그 전부터 있던 영은문을 개축한 것으로,그때 착공식을 갖고 이듬해 준공했으나 별도의 준공식도 없었기 때문에 이때를 건립시기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박사가 51년 1월5일 미국에서 별세했음에도,동상에는 51년 11월로 돼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공원녹지관리사업소는 신문협회가 수정을 요구하면 유족회와 협의해 바르게 고치겠다고 밝혔다.
  • 공군 참모총장에 이광학 중장 내정

    정부는 27일 오는 3월 8일로 임기가 끝나는 김홍래 공군참모총장 후임에 이광학 공군사관학교장(57·중장·공사11기)을 내정 했다.신임 이총장은 전투비행단장,공군본부 인사·작전참모부장 및 공군작전사령관을 거쳐 공사교장으로 재직해왔다.이총장의 취임식은 3월8일 열린다. ◎얼굴/이광학 공군참모총장 내정자/기획력 탁월한 전형적 야전통 치밀한 성격으로 업무처리에 빈틈이 없는 야전통으로 기획능력이 돋보인다는 평.공사 11기 가운데 줄곧 선두를 지켜왔고 풍부한 야전 경력으로 김홍래 총장(공사10기)의 후임으로 벌써부터 지목돼 왔다. 김영삼 대통령과 사돈지간인 롯데월드 김웅세사장의 아들을 사위로 삼고 있어 김대통령과는 한다리 건너 사돈인 셈.부인 조영자씨(55)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다.취미는 테니스.▲대구 출생·57세 ▲경북고,공사11기 ▲공군본부 인사참모부장 ▲공군작전사령관 ▲공사교장
  • 김기춘씨 거제 출정식(정가초점)

    지난 92년 대선때 「부산 초원복국집 사건」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이 26일 금배지를 향한 공식 출정식을 가졌다. 이날 거제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신한국당 거제지구당개편대회에서 지구당위원장으로 선출된 김씨는 특히 김영삼 대통령의 출생지인 이 곳에서 김대통령의 두터온 신임을 받아온 김봉조 의원을 제치고 공천을 따낸 점을 의식한 몹시 조심스런 태도를 취했다. 김봉조의원은 공천탈락 직후 『백의종군의 자세로 김대통령과 김전장관의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선언,공천후유증 조짐이 있는 당내 다른 지구당과는 달리 「신선한 충격」을 던져줬었다. 김전장관은 검찰총장이나 법무부장관 시절 원칙주의자로 후배검사들의 존경을 받아 왔다.아무리 늦게 귀가해도 반드시 서재에서 책을 보고 잠자리에 들어 수면시간이 5시간을 넘지 않는 습관을 유지한다고 한다. 장관퇴임 후에도 꼭같은 습관을 유지해온 그에게 「권력지향적」이라는 비판이 없지도 않았으나 꼼꼼함과 성실성,책임감 등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는 것 같다.그는 당선 후 안기부장으로 발탁될 것이라는 항간의 소문에 대해 『전혀 근거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4년여의 공백 끝에 관심지역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그의 향후 역할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성한 추측들이 나돈다.
  • 「과음하면 간암 등 유발…」 술에도 경고문/새달말부터

    『지나친 음주는 간경화나 간암을 일으키며 운전이나 작업중 사고발생률을 높입니다』 다음달말부터 이런 경고문이 모든 술병에 부착된다.술의 해로움을 일깨워 주는 이 글귀를 읽고 술을 마시는 애주가들의 술맛도 조금은 떨어질 것 같다. 국내 3대 주류업체인 OB·진로·조선맥주는 최근 보건복지부가 국민건강증진법 규정에 따라 의무적으로 술병에 써 넣도록 제시한 경고문안 3개 가운데 이 문안을 최종 채택,맥주·양주·소주 등 모든 술의 상표 아래쪽에 인쇄해 넣기로 했다. 복지부가 내놓았던 나머지 두 문안은 『지나친 음주는 간경화나 간암을 일으키며 특히 청소년의 몸과 마음을 해칩니다』와 『지나친 음주는 간경화나 간암을 일으키며 특히 임신중의 음주는 기형아 출생률을 높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술이 해롭다는 점을 강조한 나머지 「섬뜩한」 느낌마저 줘 제외했다』고 말했다.
  • 동양화가 성재휴(이세기의 인물탐구:92)

    ◎“파필과 파묵” 한국화 의 새경지 개척/스승의 필법을 거부… 한때 화단의 반란자로 낙인/해회서 먼저 진가 인정… 60년대 미 화랑서 작품거래/골동서화점서 일하다 소질발견,본격 그림 수업 아침햇살을 받고 먼 항해를 떠나는 풍곡의 「출범」은 언제봐도 찬란하고 의기양양하고 힘차다.청옥타래를 장식한듯 크고 작은 도서를 거느린 그의 돛단배들은 어느 때는 탁하고 어느 때는 눈시린 하늘을 배경한채 이상향을 향한 도도한 항진을 멈추지 않는다.유장하게 흐르는 끝없는 항로는 전에는 그의 미래였으며 이제는 그가 지나쳐온 먼먼 뒤안길이다. 평론가 이구열씨는 『풍곡의 독특한 준법은 웅장하면서도 교만함이 없고 아름답고 부드러우면서도 간사함이 없고 잔재주를 부리지 않아 천박하지 않으며 힘이 넘치는 붓질과 시원스럽게 펼쳐진 화면구성이 특징』이라고 말한다.먹붓을 매끄럽게 다듬기보다 갈라지고 뭉친대로 파필과 파묵을 구사하여 강인하게 풍상을 견딘 천봉만학과 비바람에 마르고 닳은 산간석경을 「붓이 가는대로」 창출해 낸다.여기에 전통적인 원근법을 무시하고 평면성을 강조한 점과 적·황·남청색을 대비시킨 색채의 변환은 소낙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듯한 방타,먹물이 뚝뚝 떨어지는 선획과 더불어 진취적이고 야인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겨나게 한다. ○야인적 분위기 물씬 이런 풍곡의 세계를 향해 원로 이경성씨는 『전에 듣지 못하고 후에도 본적이 없는 전인미답의 경지』임을 전제,『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작가의 방일은 자신만의 용필과 묵법을 일시에 실현시키고 있다』고 평한다.따라서 『그는 동양화로 불렸던 전통적인 화법을 깨고 그만의 화풍을 이룩하면서 「자연그대로」를 화면에 전개시키는가하면 어느 작품은 거의 추상에 가깝고 어느 작품은 서양화를 방불케 하여 기술적 정신적 측면에서 한국화를 개척하는데 앞장선 동양화 대가』임을 확인시키고 있다. 이른바 『잔잔한 기교에 연연하기보다 한국미의 본질인 대범한 문기에서 우러나온 예리한 필단(붓끝)으로 시기속취를 없앤 묵색의 창윤과 구도의 웅대함을 이룩하고 있다』는 것이다. 풍곡이라고 하면 그를 아는 사람들은그의 활달한 화폭을 곧잘 그의 특기인 남도창에 비유하곤 한다.한량없는 주흥에 겨워 도끼로 찍어내듯 터져나오는 그의 창처럼 중중몰이 휘몰이로 이어지는 그의 화필은 남성적 스케일과 템포와 스피드와 박력을 드넓은 화면에 유창탁발하게 발휘해 낸다.예의「부드러운 우미의 서정성을 배격한 패기와 생명감에 넘친 장미의 의지적 공간」이 그것이다. 그의 술친구이자 한학자인 조규철씨의 「풍곡화실기」에 보면 「한창 술에 취해 노래와 웃음이 집을 흔들흔들하게 하고 방약무인한채 호기가 진탕하여 스스로 제지할줄 모르는 경지에 도달하면 그는 미친듯이 그림에 몰두하여 그 정사와 세심이 삼매지경에 든다」고 쓰고 있다.실제로 그와 허물없이 대화를 나눠본 사람이라면 그의 소탈하고 강렬한 인간적 체취와 즉흥적으로 발설하는 예술의 핵심적 본질론이 그의 작품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뉴욕초대전 호평 받아 풍곡은 경남 창녕에서 십리 못미처 위치한 창락면 어섬(어도)에서 태어났다.글방과 보통학교에 다니다가 창녕읍 골동서화점에서 일한 것이 자신의 그림 소질을 발견한 계기가 되었고 18세 되던 해 대구의 서화가인 석재 서병오에게 사군자와 묵화를 사사,1년도 못되어 스승이 타계하자 이번엔 화법교본인 「개자원화보」로 독학하다가 다음해 호남의 산수화 대가인 의재 허백련문하에서 정통 남종화법과 고전적인 그림 지식을 섭렵해 나갔다. 그러나 그림 수업을 받는 과정에서 그의 고집스럽고 타협을 모르는 외곬의 성격은 지나치게 화보식인 법규를 초탈하여 자신만의 기질적인 필정과 묵취와 생명감으로 독자적 세계를 개척하기에 이른다.사풍의 고법형식을 좇지 않고 스승의 노여움을 받아가면서까지 그만의 화풍을 갖는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반란으로 결국 이 일이 화근이 되어 그는 오랫동안 국내화단에 외면당하는 서러움을 겪기도 했다. 하는 수 없이 홀로 진주에 머물러 현대적인 방법을 모색한 일련의 작품으로 55년 서울에서 첫 전시,동아일보는 『전통을 고수하는듯 하면서도 새로운 선을 느끼게 하는 건실한 선,푸근한 묵운,탈속한 설채』란 호평을 실었으나 국내 화단은 끝내 냉담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57년 뉴욕의 저명한 화랑주인 부세티여사가 한국에 왔다가 때마침 서울 동화백화점에서 열린 그의 두번째 개인전을 보고 뉴욕 월드화랑이 주최한 「한국 현대작가전」에 초대,「형식적 유형에서 이탈된 분방한 먹붓그림」이 서양인들에게 크게 어필하면서 60년대 미국 화단에서 그림이 거래되는 유일한 동양화가로 올라서게 되었다.이렇게 풍곡의 경우는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아 국내에 알려진 케이스로 우리 화단은 그의 예술의 진가를 알아보기에 인색했거나 알아보지 못한 결과를 빚은 셈이다. 정치적인 사교나 계산있는 대인관계에 어두운 그로서는 그후에도 해외 활동 20년만인 78년 중앙미술대전에 초대되었고 평생 처음 사회적 영예인 중앙문화대상을 수상,국내화단은 비로소 노익장의 예경에 대한 경의를 아끼지 않았다. 80년대의 「돛단배」시리즈가 풍부하고 화려한 화면속에서 역동적 낭만성을 드러내고 있다면 90년대의 현실적인 산수풍경이나 호랑이나 새나 물고기를 의인화한 해학적 표현과 묵법 담채의 담대한 표현성으로화면의 신선감과 묘체를 성취,국내화단은 「전통화단의 거인 예술가」로 풍곡을 내세우면서 「지금까지 그의 화풍을 모방하거나 그런 류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전무하다」고 찬사해 마지않았다. ○외부인 접촉 일체 삼가 그의 일상생활은 지극히 서민적이고 물욕이 없는 야인이다. 그리고 아무리 정성을 담았다해도 마음에 들지않는 그림은 미련없이 찢어버리는 단호한 제작정신을 지키고 있다.전에는 친구들을 만나 말술에 바둑을 두거나 등산을 즐기기도 했으나 3년전부터 거동이 불편하여 말술도 친구도 끊고 요즘은 연희동 자택에 칩거한채 소품에나 손대고 있다.가족은 부인 강신애씨(71)와의 사이에 3남2녀,차남인 종학씨가 동양화가로 활약하고 있다. 『선도 악도 불자체는 아니며 그리로 이르는 과정(불가선불가악)』일뿐 이라는 그의 소신대로 그는 언젠가 『나는 오늘도 그림을 그린다마는 하도 어려워서 붓가는대로 이리저리 칠할따름』이라고 겸허한 자세를 고백한 바 있다.자신의 노추를 남에게 보이지 않고자 사진은 물론 사람 만나기를 일체 꺼리고가족이든 누구든 그의 그림에는 일체 손을 못대게 하는 등 한번 안되는 것은 끝까지 「안된다」「안한다」는 고집은 여전하다. 이제 장렬한 석양 앞에 선 그의 귀범은 모든 구차한 격식을 떨쳐버린채 투묘를 서두로는 시기다.그러나 그의 정박은 잠시의 휴식일뿐 그는 또한번 먼 항해에 앞선 모든 준비를 끝내고 내일 힘차게 닻을 올리게 될 것이다. □연보 ▲1915년 경남 창녕출생 ▲1934년 의재 허백련문하에서 수업 19 38년 이충무공영정제작(충무 착량묘에 봉안),진주에서 작품생활 ▲1950년 대한미술협회회원 ▲1955년 첫개인전(서울 동방살롱)19 57년부터 백양회회원, 개인전(서울 동화백화점),뉴욕 월드화랑주최 「한국현대작가전」초대 ▲1958년 샌프란시스코박물관주최 「아시아미술전」 한국대표 초대 ▲1959년 개인전(서울중앙공보관) ▲1960년 중국 대북·향항미술관초대 「특별전」,뉴욕빌리지미술관 공모전 김상수상, 뉴욕시립도서관초대 개인전 ▲1962년 워싱턴 웨스트엔드화랑초대 개인전 ▲1965년 개인전(서울중앙공보관) ▲1968∼74년 수도여사대교수 ▲1969년 개인전(서울 신문회관) ▲1976년 국립현대미술관주관 「동양화대전」초대, 한국미술대상전 심사위원,백양회이사, 개인전(서울미술회관) ▲1978년 제1회 중앙미술대전초대,개인전(동산방화랑),동아미술제 심사 ▲1982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장 ▲1983년 국립현대미술관주최 「현대미술초대전」 ▲1984년 현대화랑초대 개인전 ▲1987년 서울시주최 「서울미술대전」초대,현대백화점개관기념 초대전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준공 개관기념전초대,「서울미술대전」초대 ▲1987년 「풍곡성재휴 회고전」(호암갤러리) ▲ 중앙문화대상 예술상(78년)
  • 「5세 취학」대상 7천명/서울시/21∼28일 사이 신청받아

    오는 3월 서울의 초등학교에 취학할 수 있는 만 5세 어린이는 모두 7천32명이다. 20일 서울시 교육청에 따르면 지난 8일 만 6살인 올 신학기의 정상적인 취학 어린이들을 예비소집해 학급을 편성한 결과 전체 5백19개교 중 3백49개교의 학급당 총원이 40명이 안돼 7천32명의 5세 어린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만 5세 취학대상은 90년 3월1일∼4월30일에 출생한 어린이로,이들의 조기취학을 원하는 학부모는 21∼28일 거주지 초등학교에 취학대상 아동의 주민등록 등본과 취학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학교장은 생년월일이 빠른 순으로 취학대상 어린이를 결정,29일 명단을 발표한다.
  • 김원웅의원 입건/선거구민에 유인물 우송 혐의

    【대전=이천렬기자】 충남지방경찰청은 15일 민주당 김원웅의원(52·대전 대덕)과 보좌관 진혁씨(34)를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혐의로 입건,조사중이다. 김의원 등은 지난 해 11월 4일 모 중앙일간지에 보도된 「각 정당국회의원의 상임위별 의정활동 성적표」라는 제하의 기사를 복사한 유인물과 명함형유인물,「김원웅의 출생·성장,그리고 정치를 보는 눈」이라는 유인물 등 2천여장을 선거구민들에게 우송한 혐의다.
  • 중국 총인구 12억7백만명/작년 10월 인구센서스

    ◎연 1.2% 증가… 여자가 2,400만 더 적어/농촌에 71% 거주… 12%가 문맹 “발전 장애” 중국은 남자가 여자보다 2천4백80여만명이 더 많은 남초국가로 나타났다. 또 중국 총인구는 지난해 10월말 기준 12억7백78만명으로 90년 이후 연평균 1.21%씩 증가,5년3개월동안 6.54% 총 7천4백만명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은 결과는 중국국가통계국이 지난해 10월말까지 전체인구의 1%에 대한 표본조사결과를 지난 90년7월 조사 결과와 비교해 얻어낸 것이다. 이 조사결과 전체인구중 남자는 6억1천6백29만명으로 여성인구 5억9천1백49만명보다 2천4백80만명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나 「중국은 여자가 모자란다」는 통설이 사실임을 입증했다.인구비율로는 남자가 51.03%,여자 48,97%로 남성이 2.06%나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의 수명이 더 길고 출생시 자연사망률이 낮은데도 남자가 많은 것은 농촌지역의 뿌리깊은 남아선호및 선별적 인공낙태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조사결과 한족은 10억9천9백32만명으로 전체인구 가운데 91.02%를 차지했고소수민족은 1억8백46만명으로 나타났다. 거주지역별 조사에선 전체인구의 71.1%에 해당하는 8억5천7백52만명이 농촌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이 조사결과 전체인구의 5%에 해당하는 6천3백89만명이 호적지에서 이탈,주거부정인 상태로 생활하고 있어 경제성장에 따른 유동인구 문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확인됐다. 또 전체인구의 12%에 해당하는 1억4천4백93만명이 문맹 또는 문맹수준으로 국가발전의 장애요인으로 분석됐다. 한편 전체가구수는 3억2천2백11만가구이며 가구당 평균가족수는 3.7명으로 90년에 비해 가구당 0.3명이 줄어 주택문제 등의 원인으로 핵가족화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통계국은 이번 조사결과 86∼90년의 기간에 비해 지난 5년동안 인구성장률은 연평균 0.34%가 둔화됐다고 밝혔다.이 발표에 따르면 지난 한햇동안 인구증가는 1천2백71만명이며 지난 5년간 하루평균 3만8천여명이 태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 평양의 「망명총성」­「김정일 체제」 이상있나

    ◎김정일 「권력누수」의 신호탄/군부세력 등 권력기반 동요/평양식감시체제 이완 반증 최근 김정일체제의 이상기류를 알리는 특이 동향이 꼬리를 물고 있다. 잠비아주재 북한외교관 현성일씨등의 남한 귀순에 이은 김정일의 전동거녀 성혜림씨 망명움직임은 예사롭지 않은 조짐이다.북한의 한 군인이 평양 중심부의 러시아무역대표부를 무대로 망명극을 벌이다 사살된 사건도 마찬가지다. 특히 최우선요시찰대상인 성씨일행의 잠적은 북한의 극단적인 감시통제체제가 현저히 이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분석된다.우리측의 첩보에 따르면 이들이 모스크바에서 성일기·이한영씨등 서울의 피붙이와 은밀한 접촉을 가진 뒤 탈출할 때까지 현지에 파견된 국가안전보위부원등 다수의 감시원이 거의 손을 놓고 있었다는 소식이다. 김정일 생일을 이틀 앞둔 14일 그의 출생지로 조작,선전되고 있는 「백두산밀영」에서 북한의 육해공군 장령·군관들이 충성을 다짐하는 「결의모임」을 가졌다.그러나 같은 날 북한체제에서 선택받은 계층에 있는 군인이 망명을 위해 총격전을 벌였다. 북한전문가들은 김일성 생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이 때문에 김정일이 과연 북한체제를 제대로 장악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제기된다. 김학준단국대이사장은 이와 관련,『당장 북한 국가체제의 붕괴가 시작된 것으로 해석하기는 어렵지만 김정일체제의 몰락조짐으로는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민족통일연구원의 김성철책임연구원은 사회주의국가의 생성·소멸과정을 체제의 상승·발전·변화·위기·붕괴 5단계로 나누고 『현재 북한의 상황은 변화에서 위기로 넘어가는 단계』라고 진단했다. 요컨대 다수 전문가는 북한체제가 하루아침에 가라앉지는 않겠지만 김정일의 권력기반이 뿌리부터 서서히 흔들리고 있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사실 김정일은 김일성 사후 1년7개월이 되도록 당총비서·국가주석등 공식 1인자 자리를 꿰어차지 못할 정도로 원초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그의 전도를 어둡게 하는 최대약점은 김일성만한 카리스마도,추종세력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아버지세대인 「혁명1세대」와 20년간의 후계자수업때 심어둔 측근세력의 도움을 받고 있긴 하다.하지만 이들은 특혜를 나눠갖는 데는 익숙해져 있을지 모르나 김일성의 빨치산동료와 같은 「혈맹」관계는 아니다. 따라서 이들은 세불리할 때 언제든지 등을 돌릴 위험이 크다.최근 김정일과 직간접 관련을 맺고 있는 연이은 특이동향이 이미 그 단초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김정일이 군부쿠데타나 인민봉기 등으로 인해 당장 제거되리라고 보는 것은 성급한 추측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해석이다.무엇보다 김일성부자가 지속적 숙청작업으로 대안을 철저히 제거해놓은 상황인 탓이다. 그러나 과거 동구권의 몰락도 체제수호역을 맡은 집권층 내부의 반란이 결정적 기폭제가 됐다.때문에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김정일체제의 누수가 북한체제의 폭발적 변화를 몰고올 가능성은 누구도 부인키 어렵다. 다만 김정일 이후의 북한이 어떤 궤적을 그려나갈지에 대해선 전문가나 정부당국자마다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보다 합리적인 정권이 들어서 남북관계가 호전될 것이라는 전망에서부터 한반도의 위기국면이 조성될 것이라는 견해에 이르기까지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 신한국당 전후세대 독자세력화 깃발(정가초점)

    신한국당내 전후세대들이 독자세력화(?)할 움직임을 보여 시선을 모으고 있다. 이성헌(38·서울 서대문갑) 김영춘(34·광진갑) 이신범(46·강서을) 박홍석(45·관악을) 이원복(39·인천 남동을) 심재철위원장(38·안양 동안갑)등 6·25이후 출생한 정치신예 20여명이 주축이 되고 있다. 이들은 오는 15일쯤 기자회견을 통해 「깨끗한 정치,새로운 정치의 실천」을 내세우며 「전후세대 모임」의 창립을 선언할 계획이다. 이들은 새로운 정치의 실천방안으로 ▲지역할거 타파 ▲보스중심정치 타파 ▲통일시대 대비등을 내걸고 있다. 총학생회장 또는 재야운동 시절 가졌던 민주·자주·통일을 제도정치권에서 점진적 개혁을 통해 실현하겠다는 공통점을 지닌 이들의 결사 움직임을 「지명도를 높이기 위한 공동의 득표전술」로 바라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모임 연락책을 맡고 있는 이성헌서대문갑 위원장은 『수도권 지역에서 신한국당으로 출마하는 젊은 신인들이 정치권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선언으로 봐달라』면서 『추후 뜻을 같이 하는 여야 정치인들의 신풍운동으로 확대시켜가고 싶다』고 말했다.
  • 민속연구가 심우성(이세기의 인물탐구:91)

    ◎남사당패 쫓아 풍물 놀고 탈 만들고…/현장 찾아 자료 채집·기록… “발로공부” 평가 받아/1인극 「쌍두아」는 인형에 혼을 담은 산무대로/「꼭두각시 놀음」·「발탈」 무형문화재 지정에 큰몫 심우성(민속연구가) 「나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삼단같은 머리를 땋아내린 사나이/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날라리를 부는 저녁이면/다홍치마를 두루고 나는 향단이가 된다./……산넘어 지나온 저 동리엔/은반지를 사주고 싶은/고운 처녀도 있었건만/다음 날이면 떠남을 짓는/처녀야!/나는 집씨의 피였다./내일은 또 어느 동리로 들어간다냐/ 시인 노천명은 옛유랑 예인집단의 기약없는 인생과 서글픈 족적을 이렇게 노래부르고 있다.몇년전 타계한 예용해씨는 「일수가 좋으면 공청에나 또는 주막집 기역자 판을 끼고 잘때도 있지만 인심이 사나운 마을에서는 처마끝에서 비를 피해야 할 때도 있다」고 남사당패의 일상을 그의 저서에 쓰고 있다. 그러나 누더기에 걸식행각으로 밥을 빌어먹을 망정(걸양) 그들은 「꼭두각시놀음(우희)으로 관중을 웃기고 울리는 소박한 신명에 겨워 살다가」 「어느 낯선 고장에서 길섶 아침이슬처럼」 사라져버린다고 했다. 판소리나 춤이나 연극을 하는 예인들의 대부분은 설날 명절 때 동네에 찾아든 유랑극단이나 광대패의 공연을 구경하다가 그들의 연희에 반해 길을 따라나서거나 부모의 대를 이어받는 수가 흔하다.인형극연희자인 심우성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그러나 그의 예능 기질은 누가 시킨 것도 권한 것도 아니며 집안의 내력을 이어받은 것은 더욱 아니다.단지 그의 마음속에서 끝없이 일고 있던 불가사의한 「끼」에 의해 뒤늦게 연희자로 돌아선 케이스다. ○머슴살던 노인에 영향 그는 언제부턴가 남사당패의 삶을 쫓아 풍물을 놀고 탈과 인형을 만들고 「취발이」나 「미얄할미」나 허세부리는 샌님,미소를 머금은 백정의 탈을 쓴 온갖 인형을 조종하면서 때론 분노로 때론 질타로 어느 때는 주책없고 어느 때는 넉넉하게 인간사의 천태만상을 손끝에서 펼치더니 어느 날 스스로 연희자가 되어 직접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민속연희중에서도 유독 인형극인 꼭두각시 놀음에 심취하게 된 것은 무대장치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무대밖의 공간이 연결되는 극적 공간의 자유로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그의 무대는 혼자서 극중인물이면서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해설자에다 산받이까지 도맡아 양반들의 어처구니 없는 횡포나 위선위귀를 징치하기도 하고 재난을 물리치는 홍동지의 기개를 앞세우는 등 지배층에 대한 세찬 비판을 표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른바 「광대」란 역사속에 놓여진 동시대인들의 희로애락을 세상으로 되돌리는 영혼의 울림대이기를 자처한 사람이며 그는 자신의 역할에 완전히 만족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충남 공주의 만석지기 외아들로 태어나 서울에서 휘문중에 다니다가 6·25를 만나 고향인 공주군 의당면에 머물면서 김재철의 「조선연극사」를 읽은 것과 집안의 나이든 머슴인 정광진노인으로부터 남사당패들의 내력을 들은 것이 연희자가된 동기다. 한때는 소설가 신문기자가 될뻔도 했고 서울 중앙방송국 아나운서로 활약하기도 했으나 아나운서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걸핏하면지방 방송국에 출장간다는 핑계로 옛 남사당패를 찾아 나섰고 거의 전국을 떠도는 뜬 광대노릇으로 서서히 잊혀져 가던 풍물놀이(농악)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음) 덜미(인형극 꼭두각시놀음)등 남사당놀이 여섯가지를 재현해 내는데 수많은 돈과 시간과 정열을 들여왔다.가족들에겐 의논도 없이 3년만에 방송국을 집어치우고 나서도 「어디어디 답사,무슨무슨 녹음 촬영」등으로 새벽부터 집을 뒤쳐나가는가 하면 여행과 술에 지쳐 며칠씩이나 대낮에도 이불을 펴고 눕는 것이 다반사였다.오죽하면 그의 부인(권숙현여사)이 「올해도 당신 작년처럼 그렇게 지낼거예요」했다는 말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방송국 아나운서 출신 그는 가뜩이나 쪼들리는 살림에서 부친이 마련한 집을 팔기도 하고 동해안 서해안으로 다니다가 간첩혐의를 받기도 하고 녹음기와 카메라와 어렵사리 찍은 필름을 빼앗기기도 했다.5·16직후에는 종로 YMCA강당서 남사당창단 기념으로 남사당놀이중 「덧뵈기」를 공연하려 했을 때 「남사당」이 정당이름인줄 잘못알고 종로경찰서에 연행되는 웃지못할 에피소드를 빚기도 했다.59년 8월,전국에 흩어져있는 남사당패를 모아 지금의 남산도서관 자리인 빈터에서 요즘의 약장사처럼 「꼭두각시 놀음」을 공연한 것이 본격적인 해설가의 출발이 되었고 그후 전국각지 순회공연으로 「꼭두각시 놀음」과 「발탈」을 공연한 것이 후에 이 놀이들이 중요무형문화재(3호 7호)로 지정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그가 「책이 아닌 발로 공부한 사람」이란 평을 듣는 것은 자료수집에 혈안이 되어 현지에서 이를 확인보충하고 채집·기록한 공적과 실제로 수백여회에 이르는 연희를 주관하고 실연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심우성.민속예술에서 괴팍한 개성을 보이지 않는 사람은 드믈다.틀이 번듯하고 아나운서 출신답게 우아한 말씨를 쓰지만 그도 어쩔 수 없이 광대기질을 타고난 사람에 틀림없다.이제 그 시절의 남사당패는 사라지고 없으나 유일하게 그 흔적과 체취를 물씬 풍기는 무대가 있다면 심우성의 1인무언극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뒤늦게 나마 재혼하는 과부의 설렘으로 무대에 서렵니다』 비장한 인사말과 함께 그가 지난 80년 공간사랑 소극장무대에서 선보인 첫번째 1인극 「쌍두아」는 글자그대로 머리가 둘,손은 넷에다 발이 둘인 전남 구례지방 풍장굿의 비비새놀이에 나오는 접광대를 본뜬 것으로 음악과 인형과 자신의 몸짓만으로 두동강난 조국의 분단된 역사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뒤에서 인형을 조종하던 그가 이렇게 무대에 나서게 된 것은 「속되고 다난한 편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정리하는 전기가 되고 그리고 인형속에 혼을 불어넣는 산무대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며 이는 「연희자가 무대에 나와 인형과 함께 춤춘 최초의 시도」로서 평론가 양혜숙은 「가면극이 인형극으로 거듭나면서 우리 예술사의 흐름을 크게 바꿔놓은 계기다 되었다」고 평하고 있다.지난 88년 초연이래 최근까지 공연되고 있는 「남도 들노래」도 「민족적 아픔과 통일에의 염원」을 담아 분단을 넘어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희생된 한 젊은이의 장례식을 치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민속박물관 5월 개관 「민속이란 고전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원형그대로 보존하라」는 강한 비판도 있었으나 그는 「민중의 습속이 시대따라 변하듯이 우리가 추구하는 민속극도 그 모습이 달라질 수 있고 옛 것을 재현하는 연극이 아니라 옛 것을 바탕으로 오늘의 것을 한다」는 의지다. 그는 지난해 고향인 공주에다 오랜 숙원이던 민속박물관 건립을 시작,각종 탈전시에서 모든 농기구에 이르기까지 민속과 관련된 자료전시관및 야외공연장을 오는 5월쯤 개관할 예정이다.가족은 노부모와 부부와 아들 하용씨(27·미캘리포니아대 경제학과 졸업)가 그를 돕고 있다. 호라티우스는 일찍이 「인간은 타인의 끄나풀에 조종당하는 인형 같이 움직인다」고 했지만 그의 인형은 「하나의 굳어버린 표정속에서 눈물을 흘릴 때 웃고 있고 웃어야 할 때 울고 있는」 아이러니와 시니시즘의 묘미를 그 때마다 능란하게 연출해낸다.오늘 그의 소원은 「타고난 광대의 운명」속에서 「피가 흐르고 살아숨쉬는 진짜 인형」이 되어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관중을 웃기고 울리는 소박한 신명으로 핍진하게 이룩하려는 것이다. □연보 ▲1934년 충남 공주출생 ▲53년 서울휘문고졸업 ▲53∼56년 서울중앙방송국 아나운서 ▲58년 홍익대 신문학과졸업 ▲59년 남사당놀이패공연(남산) ▲60년 남사당놀이중 「덧뵈기(탈놀음)」공연(종로 YMCA강당) ▲64년 민속극회 남사당결성 ▲66년 한국민속극연구소 창설 ▲79년부터 극단 서낭당창단,전통인형극 「꼭두각시놀음」「발탈」「만석중놀이」,창작인형극 「홍동지의 나들이」「신경림의 농무」「청개구리는 왜 날이 궂으면 우는가」「우리산 우리강」외 김명수춤판,강만홍 인도무용,이동안 전통무용,이매방 민속무용,김숙자 무속무용,우옥주 만구대탁굿등 공연 ▲80년 1인극 「쌍두아」로 무대데뷔(공간사랑소극장) ▲83년 우리문화연구소장,인형극 「만석중놀이」(문예회관소극장) ▲85년 「문」(산울림소극장) ▲86년 서강대·한양대강사 ▲90년 인도 국제인형극제에서 1인극 「남도 들노래」 참가 ▲91년 프랑스·말레이시아·일본민속극제 참가 ▲93년 「판문점 별신굿」 공연 ▲94년 제주 4·3항쟁추념 「남도 들노래」및 동학농민혁명 1백주년기념 「새야새야」(문예회관대극장)등 3백여회 공연 현재=우리문화연구소장,민학회회장 「남사당패연구」(74년)이후 「한국의 민속극」「한국의 민속놀이」「전통무용용어의 연구」「마당굿 연희본 1·2」,평론집 「민족문화와 민중의식」「꼭둑각시놀음」등 20여권 서울시문화상(인문사회과학부문·79년)
  • 「5세취학」 출생순 선발/서울시/1학급 39명이하 학교대상

    서울시 교육청은 7일 이번 신학기부터 시행되는 만 5세 조기입학 대상자를 90년 3월1일∼4월30일 사이 출생한 아동으로 정하고 별도의 시험이나 검사 없이 부모의 희망에 따라 생년월일 순으로 조기입학을 허용하기로 했다. 조기취학 아동은 학급당 학생수가 39명 이하인 학교에서,학급당 인원의 10% 이내에서만 수용하도록 했다.2부제 수업을 하는 학교나 학급당 인원이 40명을 넘는 학교는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교육청이 이 날 확정한 「만 5세 아동 취학시행계획」에 따르면 오는 10일까지 각 학교의 교육여건 등을 감안,취학허용 인원을 결정한 뒤 학교별로 오는 21∼28일 주민등록등본과 취학신청서를 받아 29일 입학허용 대상자를 선정,발표하도록 했다. 학교장은 조기 입학 대상자의 학교생활 적응 정도를 한 달간 지켜본 뒤 최종 취학여부를 오는 3월30일까지 결정,해당 동사무소에 통보해야 한다.
  • 뇌청소하는 「마토세포」발견/일·영·핀란드 3개국 공동연구팀 개가

    인간 뇌혈관의 바깥벽에 달라붙어서 지방 또는 단백질등 뇌에 필요 없는 「쓰레기」를 먹어치워 뇌를 보호하는 특수한 세포의 역할이 일본 지지의대 마토 가타오(간등방웅)명예교수 등 일본·영국·핀란드 공동연구팀에 의해 발견됐다고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28일 보도했다.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이같은 연구결과는 동맥경화·치매등 뇌의 질환 치료법개발에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마토세포」로 불리는 이 세포는 몸에 침입한 세균과 죽은 세포등 「쓰레기」를 먹어치우는 매크로파지(대식세포)의 일종으로 인간의 출생직후부터 뇌 모세혈관의 외벽에 붙어서 활동을 시작,뇌혈관과 세포를 지켜준다. 뇌는 에너지원인 포도당등 극히 한정된 물질 이외에 노출되면 악영향을 받는데 이 세포는 일정기간 보호작용을 하다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쓰레기를 다 처리하지 못하게 돼 세포속에 지방이 축적되며 부풀어오르면서 혈관을 압박,혈류를 방해하고 치매·동맥경화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 HIV 감염 출생아 9명 에이즈 스스로 극복

    ◎유럽 의사들,219명 조사 결과/어떤 치료약도 사용한 적 없어/원인 규명땐 백신 개발 가능성 【런던 로이터 연합】 에이즈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인 HIV에 감염된 채 출생한 어린이 9명이 추후 자기 몸에서 에이즈바이러스를 스스로 제거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유럽의사들이 26일 보고했다. 의사들은 과학자들이 백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규명하는 데 연구를 더 해야 한다고 말했다.유럽 5개 도시에서 활동하는 연구원들은 현재 9세짜리가 여러명 포함돼 있는 이 9명은 현재 모두 건강하고 면역체계도 정상이라고 밝혔다. 이탈리아의 제노바대학과 파두아대학,런던의 아동보건연구소,브뤼셀의 성피에르병원,스톡홀름의 후딩게병원의 전문의인 이들 연구원은 의학지 랜싯 최신호에서 HIV에 감염된 채 태어난 어린이 2백19명을 조사한 결과 그같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태어날 때 HIV에 감염돼 있었으나 추후 이를 어쨌든 극복한 어린이에 관한 보고가 근년에 발표된 일이 몇차례 있었다. 이 보고서는 『HIV에 양성반응을 나타내는 어린이가 어떻게 에이즈에 걸리지 않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면 이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작용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이 작용이 백신을 개발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원들은 에이즈치료에 사용되는 약제가 어느 경우에도 사용되지 않았다면서 『이 어린이들은 HIV와 관계가 있는 구체적인 징후가 없었고 항레트로바이러스치료나 또는 다른 HIV관련 치료를 받은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 무용가 이정희씨(이세기의 인물탐구:90)

    ◎영적 표현이 자연스런 「거리의 춤꾼」/긴 연습·강훈련으로 무대마다 진한 메시지/「또 하나의 나」로 데뷔… “현대무용 불모지” 한때 좌절/“4월엔 한라·지리산 거슬러 오며 「거리의 춤」 출 것” 이사도라 던칸은 샌프란시스코 바닷가에서 태어났다.그리고 춤에 대한 그의 최초의 관념은 「파도와 리듬」이다.던칸은 언제나 주변풍경과의 하모니를 생각하며 춤추어 왔다.대상과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낱 거짓 움직임에 불과할 것이다. 이 시대의 춤꾼 이정희는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하늘을 배경으로 맨발로 춤춘다.도심을 흐르는 강물,머리위로 부는 바람,별이 빛나는 하늘아래서 그곳에 모인 군중의 숨결과 나뭇가지의 흔들림,바람과의 조화를 꾀하며 호핑(도약)과 스키핑(가볍게 점프),이단 도약 삼단도약을 활기차게 구사한다.그 때마다 그의 춤은 움직여서 넘치지 아니하며 멈추어서 모자라지 않는다.음악의 광선과 진동이 육체의 회로를 가로질러 샘물처럼 흘러넘치듯 가장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영적 표현을 창출해낸다.이 때의 역동적인 동작선은 사방으로 확산되지만 결코 안으로 소멸되지 않는다.한을 품어도 흥을 버리지않고 흥겨운 가운데 칙칙한 한이 스며있는 것이 인상적이다.이를 가리켜 박용구씨는 「시간과 공간속에서 그의 육체의 언어는 끊임없이 살을 풀어나간다」고 말한다.「살을 푼다는 것은 액땜이지만 그의 춤은 액을 풀어헤쳐 탈이 난 것을 물리친다는 뜻」이 내장되어 있다.땅위에 엎드린채 온몸을 뒤집고 뒹굴고 요동치면서 「대지와의 교감」속에서 「한단계 고양된 삶」을 성취해내려는 것이다. ○흥겨움속 한 스며있어 그중에서도 그의 「살풀이」시리즈는 인간의 탄생을 원천적으로 파헤치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비극성과 모순성」 일상적인 고뇌와 권태감의 실상을 반영한 사회적인 춤이라고 할수 있다. 일그러진 현대인의 얼굴,오늘의 기계화되고 산업화된 인간의 삶의 풍경을 「극무용적」으로 연출하여 「달리고 뛰쳐오르고 가볍게 뛰는」 모든 동작은 「무용」이며 모든 움직임이 「언어」임을 일깨운다.그리고 「누구든지 어디서나 춤출 수 있다」는 신념으로 변화 가운데 질서를 유지하고 질서 가운데 변화를 유지한다.그러나 그는 하나의 주제에 천착하거나 무대라는 일정한 공간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이른바 뉴욕의 현대무용가인 루신다 차일즈의 거리춤,데보라 헤이의 도시의 춤에서 연유한 그의 거리의 춤 「봄날 문밖에서」는 운동복과 운동화 트레이닝을 입고 한강변이나 바닷가나 산자락을 배경으로 힘차게 도약한다. 그는 언제 만나도 조용하고 차분하다.아무리 큰 사건도 나직한 목소리로 핵심만을 말한다.마치 2차대전시절의 샹송가수처럼 전쟁의 참상과 부조리,뼈저린 슬픔을 참고 견디는 감연한 의지와 인간을 감싸안는 부드러운 자세로 노래부른다.그래서 그의 육체의 언어(가사)는 그냥 춤추는 것이 아니라 춤을 「의식」하고 「자유롭기 위해」「대지를 느끼기 위해」 춤출 뿐 아니라 「왜 춤추는가」 무엇을 어떻게 출 것인가」를 확고히 정하고 춤을 실천시킨다. 그의 방배동 연습실에 가보면 평소의 온화한 이정희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이마에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밴디드댄서가 되어 그는 단원들에게 「척추의 마디마디가 수직상태가 되도록 몸을 길게 늘리고 신선한 산소로 육체를 일으켜 세우라」고 열정적으로 채찍을 가한다.그래선지 강훈련과 긴연습끝에 올려진 그의 무대는 그 때마다 진한 메시지와 함께 관객으로 하여금 심오한 사색에 잠기게 한다.「짙은 먹구름짱에서 벗어나 화사한 마음의 의상을 입고 그는 원과 원을 돌면서 원이 좁으면 원밖에서도 음악과 주변과의 관계를 조화시켜 절묘한 작품을 보여준다」는 김영태의 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언제 만나도 차분한 사람 미국유학시절 광주민주항쟁에서 죽은 한 젊은이의 사진을 보고 구상했다는 「살풀이­80」은 「사람이 다른 상대방을 학살하고 사형한다는 것은 참으로 있을 수 없는 비극」이며 「다시는 이땅에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말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원」을 담아 젊은 넋을 위로하고 고통을 뿌리치는 제의식을 섬뜩하게 이어나간다. 귀국직전인 80년 뉴욕 소호의 포퍼밍 개리지에서 이 춤을 선보였을 때 그해 댄스 매거진(10월호)은 「삶과 죽음,빛과 어둠이 윤회하는 경이적 율동」으로 호평했고 지난 10년동안 한해도 거르지 않고 줄기차게 춤추더니 3년전 아홉개의 시리즈로 이를 완결했다. 그는 편안한 가정의 1녀2남중 장녀로 태어났다.「가랑잎만 굴러가도」 잘웃고 잘우는 서정적인 성격에다 숭의여중에 다닐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발레를 추었다.고교 2학년이 되던해 마침 한국에 왔던 호세 리몬의 공연을 보고 그는 「미진했던 발레에 대한 감정」을 미련없이 버렸다.그 때까지는 튀튀와 토슈즈를 신고 필루트(회전)와 아라베스크를 취하는 것만이 춤인줄 알았으나 고도의 테크닉을 요구하는 인공적인 훈련과는 달리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난 현대무용이야말로 정신의 비전을 반영할 수 있는 창조의 원심력임을 깨달았다. 대학 졸업작품인 「또하나의 나」로 무용계에 데뷔, 「별빛 같은 6인의 신인 무용가」로 선정되기도 했으나 현대무용이 정착된지 10년도 못되는 한국적 현실에서 그가 뛰어넘기엔 너무나 「벅찬 벽」과 「험산」을 느끼자 71년 도일,의상디자이너나 되자고 마음먹었으나 춤의 혼령이 끈질기게따라붙어 그를 끊임없이 부추겼고 길거리에 나붙은 춤공연 포스터만봐도 전율 같은 율동이 전신을 관통하는 아픔을 느꼈다. 「춤이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내가 춤을 버린 것」을 자각하고 1년만에 다시 귀국,친구의 무용발표회에 가서 불꺼진 객석에 앉아 「솟구치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채 하염없이 흐느껴 울면서」그는 꺼져가던 춤의 불씨를 서서히 되살렸다. ○광주항쟁 사진 보고 구상 30세 되던해 미국에 유학,뉴욕에서의 3년간은 그곳의 살아있는 춤의 열기로 인해 무용의 신은 당연히 그를 향해 미소지었고 언제부턴가 그는 「춤추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춤추지 않았던 시절은 사라져버리라」고 외칠 수 있게 되었다.비디오 아티스트인 이동현씨(44)와 84년 뒤늦게 결혼,「춤과 비디오의 만남」의 작업을 함께 하면서 나이 40살에 첫딸 루다(9),5년후 둘째딸을 낳았다. 지난해엔 북경·말레이시아를 돌며 공연,오는 4월에는 멀리 한라산 끝자락에서 지리산·설악산을 거쳐 북으로 거슬러 올라오면서 거리의 춤「봄날 문밖에서」를 춤출예정이다. 「댄서는 모름지기 자연과의 하모니속에서 공기나 빛이나 음악처럼 춤춘다」는 던칸의 말대로 그는 모든 자연속에 새처럼 자유롭게 춤추어왔고 이제부터는 「인생을 위해」 그리고 자연의 일부가 되어 그의 「숨을 춤추게」하면서 춤추고 난 자리에 불꽃의 항적(항적운)을 남기고 싶은 것이다. ▷연보◁ ▲1947년 서울 출생 ▲1970년 이대 무용과 졸업,송범 육완순사사,한국컨템포러리 무용단 멤버 ▲1975년 이대 대학원졸업,창작무 「꼭두인간」 발표 ▲1977년 「누군가 내 영혼을 부르면」안무 출연,중앙대·연대 출강,도미,마사그레이엄·머스커닝햄무용학교 및 호세리몬 엘빈에일리테크닉사사 ▲1980년 뉴욕데뷔고야연 「살풀이­80」(퍼포먼스 개리지),귀국공연 「살풀이­하나」,중앙대교수,대한민국무용제 참가이후 매회 참가 ▲1982∼92년 「살풀이­셋」부터 「살풀이­9」 발표,현대무용제참가 ▲1984년부터 거리의 춤 「봄날 문밖에서」(서울 삼호아파트단지,덕수궁,마로니에공원,여의도광장,국립극장분수대 등),제1회청소년예술제참가▲1986년부터 부군 이동현과 「춤과 영상과의 만남」(6차례 공연) ▲1987년 한국현대춤작가 12인전 「낙원추방」 발표이후 해마다 참가,거리의 춤 미국공연(뉴욕센트럴파크,그랜드캐니온 하와이와이키키해변 등) ▲1988년부터 솔로 「검은 영혼의 노래」연작발표 시작 ▲1989년 비엔나 국제안무 경연대회베스트9 참가(비엔나 오데온극장),이정희·남정호 포스트모던댄스 공연 ▲1990년 「현대춤과 현대미술의 만남」(국립현대미술관) ▲1993년 지방순회공연(광주·대전·부산 및 서울 예술의 전당),JADE(재팬 아시아댄스 이벤트)93 독무 「미사키절벽」 발표(도쿄 아키다) ▲1994년 중국 북경무용원 초청 및 말레이시아공연.「우리시대의 춤꾼 이정희」(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현재…중앙대교수,한국현대춤연구회회장 ▲수상…대한민국무용제안무상 및 개인상(80·81년)비엔나국제안무경연대회 안무상(89)년 올해최고예술가상)92년
  • 출생률 늘어 1천명당 16.5명/통계로 본 95년 한국의 사회상

    ◎국교교사 1인당 학생수 28.3명/실업률 줄고 주근로시간 47시간/범죄 건수는 증가… 흉악범은 감소 통계청이 24일 발표한 95년도 한국의 사회지표는 우리 사회가 고령·여성화되고 있고 도농간·소득계층간 분배구조가 개선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그러나 사회보장및 환경부문에 대한 정부의 투자확충이 절실함을 일깨워준다.9개부문별 주요내용을 살펴본다. ▷인구◁ 95년 7월1일 현재 총인구는 4천4백85만1천명으로 전년대비 0.9% 늘었다.전국민 평균연령은 31.2세다.80년대까지 감소추세를 보였던 출생률은 90년대 들어 남아선호에 따른 셋째아이의 출산 등으로 인해 다소 증가세를 보여 94년 1천명당 16.5명이다.14세이하 유년인구 비중은 80년대의 출산력 감소로 80년 34%에서 95년 23.2%로 크게 감소한 반면 65세이상 노령인구 비중은 80년 3.8%에서 95년 5.7%로 다소 늘어 15∼64세의 생산연령인구가 부양할 경제적 부담을 나타내는 총부양비는 80년 60.7%에서 95년 40.6%로 크게 줄었다.내국인 출국자수가 94년 3백77만8천명으로 외국인 입국자수 3백37만4천명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소득·소비◁ 1인당 GNP는 93년 7천5백13달러에서 94년 8천4백83달러로,국민소득중 피고용자에게 지불되는 피용자 보수비율은 80년 52.1%에서 94년 60.4%로,조세부담률은 80년 17.8%에서 94년 19.6%로 각각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93년 시지역 가구당 연간소득 1천8백82만원에 비해 군지역의 소득 비중이 81.4%로 88년 79.1%에 비해 크게 늘어 도농간 소득격차가 감소됐다.임금근로자 가구소득을 1백으로 할 때 고용주 가구소득의 비중이 88년 2백24.2에서 93년 1백71.6으로 줄어 취업형태별 소득격차도 감소추세다.소득계층간 소득점유율 비중은 최상위 10%와 최하위 10%만이 88년 각각 27.62%와 2.81%에서 93년 24.25%와 2.75%로 줄어든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소득계층의 비중이 높아져 소득분배구조가 개선됐다. ▷고용·노사◁ 실업률은 80년 5.2%에서 94년 2.4%로,주당 평균근로시간은 80년 51.6시간에서 94년 47.4시간으로 일제히 감소추세다.그러나 근로시간은 일본(37.7시간)등 선진국 뿐 아니라 멕시코(45시간)등에비해서도 아직 많다.80년과 94년을 비교할 때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42.8%에서 47.9%로,피고용률은 39.2%에서 58.7%로,장기근속 여성비율은 6.5%에서 23.5%로 각각 늘어 여성들의 왕성한 사회참여 추세를 나타냈다.여성 실업률은 1.9%로 전체평균보다 낮지만 대졸이상 여성 실업률은 4.2%로 평균보다 높다.55세이상 고령취업비율은 80년 10.8%에서 94년 14.9%로 늘어 노동력의 고령화 추세도 나타났다.고졸대비 대졸이상 임금은 80년 2.28배에서 94년 1.55배로 낮아졌고 남성대비 여성임금은 80년 42.9%에서 94년 56.8%로 높아져 학력별·성별 임금격차가 해소추세다.노동조합 조직률은 90년 21.5%로 정점에 달한 뒤 줄어들어 94년 16.3%를 기록했다. ▷교육◁ 교사 1인당과 학급당 학생수는 80년 각각 47.5명과 51.5명에서 95년 28.3명과 36.4명으로 크게 감소했으나 선진국에 비해서는 아직 미흡하고,여교사 비율과 유치원 취원율은 36.8%와 4.1%에서 55.6%와 40.1%로 각각 늘어났다.졸업생의 진학률 및 취업률도 증가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특히 고등학생의 전문대이상 대학진학률이 95년 51.4%를 기록,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대졸자 취업률이 59.3%로 고졸자 69.1%·전문대졸자 66.7%에 비해 낮다.중앙정부예산중 교육예산비율과 GNP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80년 18.9%와 0.77%에서 95년 22.8%와 2.33%로 늘었으나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미흡하다. ▷보건◁ 평균수명 증가추세속에 국민 식생활수준의 향상으로 1인당 1일 쇠고기 소비량은 80년 7.1g에서 94년 16.7g으로,13세 남녀의 신장은 1백59.1㎝,1백55.9㎝로 15년 사이에 8.7㎝와 5.2㎝ 늘었고 같은 기간에 체중은 9.2㎏과 6㎏이 늘어난 49.2㎏과 48.7㎏을 기록했다.의사1인당 인구수도 80년 1천6백90명에서 94년 8백17명으로 반감됐다. ▷사회◁ 중앙정부의 사회보장 및 복지부문 세출 규모는 80년 4천3백70억원에서 94년 5조9천3백10억원으로 늘고 GNP 대비도 1·2%에서 2.0%로 늘었으나 미국(6.7%) 영국(12.9%)등 선진국에 비하면 대폭적인 투자확충이 요구된다. ▷주택·환경◁ 도시주택 매매가격지수는 91년 1백3.3으로 최고에 달한 뒤 감소세로 돌아서 94년 91.7을 기록했으나 전세가격지수는 93년 1백12.1에 이어 94년에는 1백13.4로 늘었다.인구 1천명당 이동전화 및 무선호출 가입자수는 21.6명과 1백43.1명으로 0.1명과 0.5명에 그쳤던 85년 이후 매년 2배이상 늘고 있다.PC통신 가입자수도 87년 2백26명에서 94년 57만8천명으로 늘었다.수질오염도를 나타내는 생화학적 산소요구량(BOD)은 영산강 상류와 낙동강 하류가 90년 각각 1.2,3.1에서 94년 2.0,5.7로 높아져 특히 나빠졌다. ▷문화·여가◁ 도서발행 부수는 94년 1억5천2백32만부로 급증,93년대비 9.4% 증가한 가운데 아동도서(50%) 기술과학도서(36.5%) 어학분야(31.8%)등이 급증세를 보였다.1인당 도시공원 면적은 94년 19㎡로 85년 21.4㎡에 비해 10% 줄었다. ▷공안◁ 10만명당 범죄총건수는 80년 1천5백61건에 비해 94년 3천90건으로 늘었다.절·강도 폭행 살인 등 형법범은 80년 8백건에 비해 94년 7백32건으로 다소 감소한 반면 사회현상의 복잡다원화로 특별법범은 7백61건에서 2천3백58건으로 늘었다.전체범죄자중 여성범죄자 비율은 80년 10.8%에서 94년13.5%로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자동차 사고 발생건수는 94년 26만6천1백7건으로 80년 대비 3.2배 증가했고,인구10만명당 자동차사고로 인한 72시간내 사망자수는 22.7명으로 같은 기간 1.5배 증가,경찰청이 파악한 22개국중 포르투갈(24.9명)에 이어 2위에 올랐다.세계보건기구가 파악한 인구 10만명당 자동차사고(시간 무관)사망자수는 35.9명으로 1위다.
  • ’94 서울의 하루/4백90명 태어나고 1백10명 숨져

    ◎양곡 4만2천여가마·소 1천1백마리분 소비/1천3백여명 운전면허 발급… 한남대교 가장 붐벼 94년 한해동안 서울에서는 하루 평균 4백90명이 출생하고 1백10명이 사망했으며 2백26쌍이 결혼하는 반면 43쌍은 이혼한 것으로 조사됐다. 22일 서울시가 밝힌 94서울통계연보에 따르면 하루 8천3백58명이 이사를 했으며 범죄와 화재는 하루 9백56건과 17건이 발생했다. 하루 양곡소비량은 4만2천89가마로 90년 4만4천1백10가마보다 4.6% 감소한 반면,쇠고기 소비량은 8백56마리에서 1천1백33마리로 32.4%,돼지고기 소비량은 6천8백79마리에서 7천7백46마리로 12.6% 증가했다. 차량은 하루에 4백97대가 증가했으나 교통사고로 숨진 사람은 90년 3.4명에서 2.2명으로 감소됐다. 교통법규 위반자는 하루에 6천1백57명으로 집계돼,85년 2천16명보다 3배이상 늘었다. 운전면허증도 하루에 1천3백96명이 발급받아 85년(6백22명)보다 2배이상 증가됐다. 하루 급수량은 한사람당 4백76ℓ이며 쓰레기 수거량은 1만5천3백97t으로 나타났다. 취득세·주민세·종합토지세등 지방세는 하루에 1백5억원이 징수돼 10년전인 85년 18억보다 무려 5배이상 많은 부담을 진 것으로 조사됐다. 주요주거형태는 전체 주택 1백84만7천8백24채 가운데 단독주택이 44.3%(81만9천4백9채)로 제일 많았으며 아파트 38.2%(70만5천9백72채),연립주택·다세대주택 17.4%(32만2천4백43채)순이었다. 교량 지점별 교통량은 한남대교가 지난 94년 한해에 18만1천6백25대가 이용,통행량이 가장 많았으며 이어 성산대교(17만2천5백99대),영동대교(16만8천42대),양화대교(15만4천5백48대),잠실대교(13만7천1백34대)순이었다. 차량 통행량이 제일 적은 교량은 원효대교로 5만93대의 차량이 지나,한남대교의 25%수준이었다. 유흥주점의 경우,93년에 2천7백92곳에서 94년에 1천4백70곳으로 대폭 축소됐다.구별로는 강남이 2백개로 가장 많고 이어 중구(1백63곳),영등포(1백40곳),서초(1백19곳),종로(1백9곳)순이었다. 반면 94년부터 통계치를 계산한 단란주점은 강남구가 6백76곳으로 제일 많았으며 서초(2백91곳),송파(2백86곳),도봉(2백70곳),영등포(2백46곳),성동(2백27곳)순이었다.
  • 서울시 인구 2년째 줄었다/94년 12만 감소… 총 1천79만명

    ◎출생 줄고 신도시 이주 영향 서울시 인구가 지난 93년에 이어 94년에도 줄어든 것으로 조사돼 「탈 서울붐」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가 서울의 경제·사회·문화·교육등 모든 분야의 변천과 발전양상을 94년말을 기준해 작성한 서울통계연보에 따르면 94년 서울시 인구는 1천79만8천7백명으로 93년 1천92만5천4백64명보다 12만6천7백64명(1.16%)이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서울시 인구는 지난 93년에도,전년 대비 4만4천3백98명이 줄어들었다. 이처럼 서울 인구가 다시 줄어든 이유는 출생률 감소등 자연감소요인에다 분당·일산·평촌·중동 등 신도시로의 이주등 사회증가요인이 겹쳤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94년 서울시로 전입한 인구는 57만3천9백80명인데 비해 시외로 전출한 인구는 81만4백77명으로 23만6천4백97명이 서울을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서울의 가구수는 3백45만5천6백65가구로 10년전인 84년의 2백24만5천5백98가구에 비해 53.8%가 늘어났으나 이에 따른 가구당 인구수는 84년 4.2명에서 1명이 줄어든 3.1명으로조사돼 핵가족화가 계속 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시 인구는 6·25 전쟁등 외부적인 요인들로 인해 지난 1918년∼1955년까지 모두 10차례 감소했다가 본격적인 경제개발과 함께 그간 전국인구 증가율을 상회하는 증가추세를 보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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