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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매일 입수 정무직 인사현황/ (상)진념장관 8회역임 역대최다

    지역 편중 인사문제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차관급 이상정무직 인사의 지역 편중 여부다.그럼에도 지금까지 정부인사의 전체적인 실상을 나타내는 객관적인 통계자료조차존재하지 않았다.중앙인사위원회가 최근 분석한 정부 수립이후 2000년 12월31일까지 ‘역대 정부의 정무직 인사현황’ 보고서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다.대한매일은 이 자료의 주요 부분을 발췌,3회에 걸쳐 분석·연재한다. 중앙인사위원회가 조사한 자료는 재직 기관,재직자,재임횟수,재임기간,출생연도,출생지 등 6가지 항목으로 분류했고 그 분석은 다시 5가지 유형에 의해 실시했다. 그 첫째가 대통령과 총리(1공화국 시절 부통령 포함) ▲각 부처의 장관과 차관(역대 정부의 무임소장관과 정무장관 포함) ▲중앙행정기관인 청과 처의 장 ▲일반국민들이장·차관에 준하는 정무직으로 인식하는 장관급 기관장(감사원장 국정원장 대통령비서실장 경호실장 국무조정실장등) ▲중앙행정기관으로서의 성격을 갖는 위원회의 장(공정거래위원장 비상기획위원장 등)이며 이밖에 전매청과같이 폐지된 기관과 기능이 개편된 기관도 망라됐다. 이를 통틀어 지금까지 정무직을 가장 많이 역임한 사람은진념 현 재정경제부 장관이다.진 장관은 차관 이상의 직위를 무려 8번이나 역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가 역임한 정무직은 해운항만청장,재무부 차관,경제기획원 차관,동력자원부 장관,노동부 장관,기획예산위원장,재경부 장관이다. 그 다음으로 6회를 역임한 박충훈·김현철 전 총리와 임창열 현 경기지사로 밝혀졌다.임 지사는 조달청장,과학기술처 차관,해양수산부 차관,재정경제원 차관,통상산업부장관,재정경제부 장관 등을 역임해 관운이 억세게 좋았음을 엿볼 수 있다. 5회 이상을 역임한 인원은 총 22명으로 이름 있는 인사로는 강봉균 현 KDI원장을 비롯해 김윤환 민국당 대표,나웅배 전 경제부총리,신현확·황인성 전 총리 등이다.여기에는 대통령만 5번 역임(5∼9대)한 박정희 전 대통령도 포함된다. 4회를 역임한 인사는 41명이다.이종남 현 감사원장을 비롯,고건 서울시장,강현욱 의원 등이 이들 군에 속한다. 최규하 전 대통령이나 이종찬 전 국정원장,유창순 전 총리등도 4회를 역임한 케이스다. 역대 정부에서 가장 많은 정무직을 배출한 시기는 유신이있기 전 박정희 대통령 시절(61.5.16∼72.10.17)이다.이기간 동안 349명이 탄생했다. 그 다음이 전두환 대통령 시절로 332명,이승만 대통령때는281명이 거쳐가 3위를 차지했다. 임기가 같은 5년인 노태우·김영삼 대통령 시절을 비교해보면 김영삼 정부가 294명으로 노태우 정부의 253명보다 41명이 많았다. 김대중 정부는 지난해 말까지 165명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홍성추기자 sch8@
  • 日 출생률 4년만에 증가

    일본의 출생률이 4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새 천년이시작된 지난해 아기(밀레니엄 베이비)를 낳겠다는 붐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1일 일본 후생성의 인구동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119만 560명으로 전년보다 1만2,891명 늘었다. 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는 평균 아기 수를 나타내는 출생률은 1.35명으로 96년 이후 4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일본의 출생률은 2명 이하로 주저앉았던 75년 이후 계속 감소,96년에는 사상 최저인 1.34명을 기록했다. 산모의 연령은 20대가 전년보다 1만55명 줄어든 반면 30대의 출산은 2만237명 늘었다. 지난해 결혼한 커플은 79만8,140쌍으로 78년 이후 최다를기록했다.그러나 이혼은 26만4,255쌍으로 전년에 비해 1만3,726쌍이 증가했으며 이 가운데 결혼 기간이 35년 이상인‘황혼 이혼’이 11.3%를 차지했다.결혼 5년 미만의 이혼은전체의 36.4%였다.자살자는 3만226명으로 3년 연속 3만명을넘어섰다. 황성기기자 marry01@
  • [굿모닝 워싱턴] 해답 못찾은 ‘맥베이 사형’ 논란

    오클라호마 연방건물 폭파범 티모시 맥베이가 마침내 11일전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가운데 숨져갔다. 33살의 나이에 그는 사형집행 직전,“떨어진 지푸라기 같은 이승에서 나는 움츠러들거나 소리내 울지 않았다.곤봉아래에서 내 머리는 피투성였지만 고개는 숙이지 않았다”는19세기 영국의 저항시인 윌리엄 헨리의 시 ‘인빅터스(Invictus·정복되지 않은 자)’를 읊으며 이승을 마감했다. 그의 이러한 태도가 테러범을 미화시킬 수도 있다는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미국언론은 이 싯귀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맥베이는 168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엄청난 사건을저지렀지만 자신을 그렇게 만든 것은 미 연방정부라는 확신에 변함이 없다는 속내를 싯귀로 읊은 것이다. 연방정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 맥베이의 확신이다.뉴욕주 버펄로의 조용한 마을 출생,착실하고 얌전했던 청년,걸프전 참전 등으로 알았던 많은 사람들은 그가 왜 그 짧은 기간동안 괴물로변했나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이유를 사회속에서 찾고자하는 움직임이 거품이 일 듯 일어났고 이 문제를 둘러싼 숱한 논쟁이 일어났다. 뉴욕타임스는 맥베이 자신이 앗아간 생명의 가치를 알지못했지만 사회 역시 그것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못했다면서맥베이 사건과 같은 비극적인 일의 재발을 방지하고 위해서는 생명존중 사상 고양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숙제를 안게됐다고 지적했다.사회가 왜 그의 위험한 생각을 막지 못했는가고 신문은 한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사설에서 사형제도가 인간의 편견과 실수,아집등에 의해 잘못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사형제도의폐지를 주장했다.신문은 인종적 민족적 차별에 의해 사형이선고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이런 불합리한 현실을 수용해서는 안된다면서 맥베이도 교도소에서 여생을 보내도록 했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수정헌법 2조가 보장한 총기소유 허용의 폐해,연방체제에대한 지역민들의 불신,거기에 인간이 인간의 목숨을 좌우하는 사형제도 찬반론쟁,철저한 증거주의에서 오는 재판의 비효율성 등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점이 사형전 거론됐다. 아무도 확실한 해답을 주지 못하는 여러 논쟁들은 이슈는 그가 숨진 뒤에도 좀처럼 해답이 제시되지 않는다.그의 사형은 오히려 이런 논란만 증폭시킨 채 막을 내렸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 北선물 풍산개 새끼 5마리 낳아

    6·15 남북정상회담의 상징인 풍산개가 서울로 온 이후 처음으로 새끼를 낳는 경사를 안겼다. 지난해 6월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북한을 방문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두 마리의 풍산개중 ‘두리’가 지난 10일 밤 10시20분쯤 수컷 5마리를 출산했다. 출생 당시 새끼들은 몸길이 23㎝,가슴둘레 21㎝,몸무게 500g으로 정상이었으며 현재 양호한 건강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에서 와 5개월 정도 청와대에서 머물렀던 ‘두리’는‘우리’와 함께 일반인 관람을 위해 지난해 11월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졌다. 풍산개의 임신기간은 60일로 태어난 지 10일이 지나면 눈을 뜨고 50일이면 젖을 떼게 되는데 관람객에게는 23일쯤 공개할 예정이다. 최용규기자 ykchoi@
  • “두 국가 떠도는 영원한 이방인”생후 6개월때 獨입양 애니 크루쉐씨

    독일인 애니 크루쉐(Anya Krusche·29·컴퓨터컨설팅)씨는 ‘김양심’ (가명)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지고 있다.생후6개월 나이에 애니는 독일로 입양됐다.애니는 출생 직후 서울 청량리 근처에서 발견됐고,73년 4월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대한매일뉴스넷(www.kdaily.com)은 애니로부터 지난 가을첫 이메일을 받았다.그녀는 한국의 생모를 찾아 달라고 호소했지만,안타깝게도 기억해내는 것은 거의 없었다.너무 어린 나이에 입양됐기 때문이다. 그 애니가 올해 초 인제대학교의 입양인 프로그램에 참석차 한국땅을 밟았다.한국을 떠난지 꼭 29년만의 일이다.최근 어렵사리 서울에서 그녀를 만났다.그녀는 자신은 ‘독일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인도 아니다’고 운을 떼면서,독일 생활을 회상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한국은 너무 멀게만 느껴졌어요. 주변에서 동양인은 저 혼자였습니다. 저는 일부러 동양사람과도접촉을 피했지요”라고 말했다. 한국에 와서 한국문화를 경험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하는 그녀가 요즘 가장 고민하는 문제는 자신의 정체성.“저는 한국사람도 그렇다고 독일사람도 아닙니다.이 고민은 아마 모든 해외 입양아들이 평생토록 풀지 못할 숙제가 아닌가 합니다” 지금 그녀는 생모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입양자료를 토대로 거꾸로 시간을 뒤집어 보기도 하고, 방송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저는 생모를 영원히 못 찾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노력하지 않는다면 저는 영원히저의 정체성을 찾지 못할 겁니다” 그렇다고 그녀는 생모를 원망하지는 않는다.“독일로 건너가 그곳에서 어엿한 사회인이 됐습니다.제 생모는 저에게이런 기회를 준거죠” 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영원한 이방인이 바로 해외입양아”라는 애니는 반드시한국을 다시 방문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녀에게는 아직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풀어야할 많은 숙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허원 kdaily.com기자
  • 기네스북 세계 최고령 115세 佛할머니 사망

    [파리 연합] 세계 최고령자로 기네스북에 오른 프랑스 할머니 마리 브르몽이 프랑스 중부 캉데의 한 양로원에서 숨졌다. 1886년 프랑스 중부 멘-에-루아르주(州)에서 출생한 브르몽 할머니는 5일 밤 잠을 자던 중 사망했다고 양로원측이 6일밝혔다. 지난 4월 할머니의 115번째 생일에 간병인들은 “할머니의시력이 약화됐으나 정신은 똑바르다”고 말했다. 브르몽 할머니는 철도 노동자와 결혼,20세기 초를 파리에서 지냈다.이어 대서양 연안 지역에서 살았고 두번째 남편은택시 운전사였다.슬하에 자녀는 없다. 그녀는 지난해 11월 영국의 에바 모리스 할머니가 사망하자세계 최고령자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 북한 풍향계

    ●북한은 학생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임무는 공부를 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노동당기관지 노동신문은 6일 ‘조선소년단’ 창립절 기념사설을 통해 “학생 소년들에게 있어서 첫째도,둘째도,셋째도 중요한 것은 공부를 잘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고 조선중앙방송이 전했다. 조선소년단은 ‘붉은색 머플러’로 상징되는 북한 어린이 단체로 46년 6월6일 발족됐다.인민(초등)학교 2학년이면자동 가입되며 고등중학교 4학년이 되면 자동적으로 출단돼 청년동맹에 가입된다. ●오는 7월8일 김일성(金日成) 주석 사망 7주기를 앞두고해외 추모행사를 추진할 ‘김일성 동지 회고 전국위원회’가 지난 2일 민주콩고 킨샤사에서 결성됐다고 조선중앙방송이 5일 보도했다.이를 시작으로 해외 각지에서 김 주석의 7주기와 관련한 추모·회고 위원회가 속속 결성될 것으로 보인다.지난해에는 5월 중순 가이아나를 시작으로 독일,몰타,캄보디아,나이지리아,스웨덴,오스트리아,이탈리아 등 30여개 국가에서 회고·추모위원회가 결성돼 연구토론회,회고모임,강연회,사진전람회,영화감상회 등이 열렸다. ●북한은 올들어 애국열사릉에 묻힌 사람들의 묘에 세상을떠난 아내를 합장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조선중앙방송은 최근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의 지시에 따라 5월말 현재까지 애국열사릉에 있는 열사들의 묘에 그들의 아내 10명을 합장했다”고 밝혔다. ●조선중앙방송은 같이 먹으면 해로운 상극(相剋)음식을 소개했다.송이버섯과 조개,일반버섯과 꿩고기,미꾸라지와 호박,뱀장어와 살구·은행,게와 감·사탕·꿀·얼음,감과 기름·낙지,대추와 새우,수박과 튀김,회충약과 고구마,숙지황과 무우,메밀과 우렁이 등이 함께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이다. ●북한의 관광업 종사자들이 지난해 중국에서 여관 운영 등에 관한 연수에 참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한 북한 소식통은 “북한 혜산시 등 양강도내 5개 시·군의 여관 지배인·요리사·안내인 등 16명이 지난해 10월 한달동안 중국 지린성 옌지시내 동북아호텔에서 손님맞이 예절 등에 관해 연수를 받았다”고 전했다.북한의 ‘관광업 연수’는 최근 대외관계의 확대 움직임과 맞물려 관광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정책적 조치로 여겨진다. ●지난 2월 창간된 북한의 경제전문 계간지 ‘경제연구’제1호는 자본주의국가의 출생률 저하 현상과 관련,“개인주의에 기초한 인생관,극단적인 향락주의를 고취하는 부르주아적 생활양식 때문”이라고 꼬집었다.잡지는 “인구의 건전한 발전은 인민이 주인인 우리나라(북한) 사회에서만 가능하다”면서 “더 많은 후대를 낳아 훌륭하게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각급 학교들도 정보화시대에 발맞춰 컴퓨터 인재를 양성하는데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개성의 고려성균관은 학과별 특성에 맞게 컴퓨터 프로그램 작성법과활용법을 교육하고 있으며,우수 학생을 중심으로 ‘컴퓨터소조’를 조직,운영하고 있다.양강도 혜산농민대학은 정보공학강좌를 개설,학생들이 자체 프로그램을 작성해 기계설비를 제작하고 설계하는 능력을 갖추도록 했다.
  • ‘6월의 독립운동가’ 나창헌 선생

    국가보훈처는 31일 조선민족대동단과 한국노병회를 조직, 일본 총영사관 폭탄의거 등 의열투쟁을 전개한 나창헌(羅昌 憲) 선생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선생은 1896년 평북 희천에서 출생해 경성의학전문학교 2 학년 재학중 3·1운동추진계획에 학생대표로 참가하면서 독 립운동에 뛰어들었다.3·1운동의 절정기인 5월초 서울에서 결성된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입,특파원자격으로 상해임 시정부에 파견돼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했다. 국내로 잠입,고종황제의 아들 이강(李堈)공의 탈출을 꾀했 으나,일경에 발각돼 실현하지 못했다.1922년 김구,여운형선 생 등과 함께 1만명 이상의 의병을 양성하고 100만원이상의 전비를 마련,독립전쟁을 전개할 목적으로 한국노병회를 조 직,이사로 활동했다. 일제를 피해 중국 스촨(四川)성 만(萬)현으로 가 의원을 운 영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36년 6월26일 위암으로 순국했 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을 추서했다. 노주석기자 joo@
  • ‘에이즈 고아들의 희망’ 남아共 존스 12년삶 마감

    전세계 에이즈 고아들의 ‘희망’남아공의 에이즈 소년 은코시 존슨이 31일 새벽 5시(현지시간)숨졌다. 지난 89년 어머니(97년 에이즈로 사망)뱃속에서부터 에이즈에 감염된 은코시는 출생 직후 9개월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들의 진단에도 불구,지난 2월 12번째 생일을 맞았다.뇌 종양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며 가녀린 목숨을 이어온 은코시의 하루 하루 생명연장이 아프리카 에이즈 고아들에겐 희망이나 진배없었다. 양부모의 보호로 살아가던 은코시는 여덟살때 에이즈 보균자라는 이유로 초등학교 입학을 거부당하자 직접 넬슨 만델라 당시 남아공 대통령을 만나 에이즈 고아들의 동등한 교육권 등을 요구했다. 여론의 전폭적인 지지끝에 남아공 의회는 ‘차별 금지법안’을 통과시키기에 이르렀다.특히 지난해 초 남아공 더번에서 열린 국제에이즈총회에 참석,에이즈 고아 실상을 호소하면서 국제적 인물로 부상했다.서방언론들은 그에게 ‘남아공의 에이즈 우상’이란 별칭까지붙여줬다. FXB등 인권단체들의 후원으로 미국 디즈니 랜드와 뉴욕의초등학교를 방문,가는 곳마다 순진한 희생자 ‘에이즈 고아’실태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잦은 병치레 등으로키가 1m 정도에 불과,연약하기 이를데 없지만 건강한 웃음과 영민함으로 희망을 안겨준 은코시는 지난해 말 뇌경색으로 자리에 누운뒤 7개월간을 혼수상태로 있다 양 어머니 게일 존슨의 품에 안겨 세상을 떠났다. 김수정기자 crystal@
  • ‘6월의 호국인물’ 장세풍 중령

    전쟁기념관은 6·25전쟁 당시 경기도 의정부지구 전투에서105㎜ 야포로 적 전차를 격파하고 장렬하게 전사한 장세풍(蔣世豊) 육군중령을 ‘6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 1921년 10월 황해도 송화에서 출생한 장 중령은 40년 평양숭인상업학교를 졸업하고 43년 일본 교토 도시샤(同志社)대학에서 수학했다. 46년 월남,2년뒤 육군사관학교 제5기생으로 임관했다. 포병학교 제2포대장으로 의정부전선에 투입된 당시 장 대위는 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T-34전차를 앞세워 돌진해오자 근거리 직접 조준사격으로 적 선두전차를 격파했다.이어두번째 전차를 향해 포를 발사하려는 순간 적의 포탄이 폭발해 장렬하게 전사했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실행할 수 없는 105㎜ 야포의 직접 조준사격으로 적의 진격을 저지시킨 그의 불굴의 투혼은군 포병의 귀감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정부는 2계급 특진과함께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1일 호국추모실에서 유족인 여동생 장순덕(75)·순복씨(65) 등이 참석한가운데 고인의 공적을 추모하는 현양행사를 갖는다.노주석기자 joo@
  • ‘김정일 종합연구서’ 나왔다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종합연구서’가 젊은 연구자에 의해 출간됐다.원고지 9,000여매에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김정일’(백산서당 펴냄)을 펴낸주인공은 이찬행 민족통일연구소 연구위원.지난 94년 ‘인간 김정일,수령 김정일’을 내놓은 그는 최근 자료를 덧붙여 새 책으로 펴냈다. 책 첫머리에서는 김정일의 성장부터 현재까지를 사진 100여매로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연대기적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궤적을 따라잡은 이 책은 종래의 김정일 연구서가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접근한 것과는 달리 순수 이론적 차원에서 연구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저자가 탐구한 주안점은 김정일이 어떤 교육과정을 거쳤고,또 어떤 과정을 거쳐 김일성의 권력을 승계하였으며,이후어떤 정치를 폈는가 하는 대목이다.그는 몇몇 기존 학설을비판한다.대표적으로 김정일의 ‘백두산 출생설’에 대한이견인 ‘소련출생설’을 주장하는 국내외 학계와 일부언론의 보도를 비판적으로 고찰했다.저자는 김정일이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실력자가아니라 60년대 이후 줄기차게 후계자수업을 받아온 ‘준비된 지도자’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김정일이 1964년 대학졸업과 동시에 당중앙위원회에서 당사업을 시작한 이래 ‘수령제체’확립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이어 김정일이 유일후계자로 결정된 과정과 관련,“1982년 ‘주체사상에 대하여’를 발표하면서 사상에서 ‘수령’이 영도권을 계승했다”고 밝히고,“이후 90년대들어 최고사령관과 국방위원장이 되면서 군·정(政)의 영도권을,그리고 총비서로 추대되면서 당의 영도권을 계승했다”고 주장했다. ‘김정일시대’를 맞아 북한이 “자본주의로의 개방,개혁은아니지만 주체식 사회주의 입장에서 다소 더디고 느리더라도 의미있는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분석한 저자는 90년대중반 이후 ‘선군(先軍)정치’로 지칭되는 김정일의 통치스타일에 대해 군사국가화, 군사정치 경향화 등으로 보는 일부 연구자들과는 달리 ‘수령체제의 확대·강화’로 해석하였다. 서문을 쓴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자료의 섭렵,글의 구성에서 최상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60년대 이후의 북한현대사로서 손색이 없다”고 평가했다.10만원. 정운현기자 jwh59@
  • ‘명문대생 동거사이트’ 등장

    최근 명문대 남학생에게만 계약동거 자격을 부여해 회원을공개적으로 모집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등장,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의 영문 머리 글자를 딴 ‘스카이(SKY)계약동거커플모임’이라는 이름의 이 사이트는 회원 자격을 3개 대학 남학생으로 제한,미리 학생증이나 재학증명서를제시하는 확인 절차를 거치도록 했다.여학생은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서울대생들이 공동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사이트는 17일 개설돼 지금까지 647명의 회원이 가입한 것으로 되어 있다.이름,출생 연도,성별,지역,소속 학교 등을 기재한 회원명부를 공개해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동거 의사를 타진할 수 있도록 했다.남녀 회원 소개게시판,미팅후기,자유게시판,우리카페,데이트장소,대화방 등으로 구성된 이 사이트에는 단체로 회원 가입 의사를 밝힌 남학생들과 서울대 학생증을 스캐닝해 이메일로 보내달라거나 자신의 동거 조건을 자세히밝힌 여학생들의 글도 올라 있다. 서울대 공대 재학생이라고 밝힌 한 가입자는 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현재 24쌍의 동거 커플이 탄생했다”고 주장했다.최근에는 이에 대한 안티 사이트도 등장해 네티즌 사이에 치열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은 서울대 등 3개 대학 기숙사 게시판에 안내문을 붙여 공개적으로 회원을 모집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 공대 재학생인 정모씨(25)는 이에 대해 “계약 동거는 서로 구속받지 않고 합의에 따라 이루어지는 만큼 이성교제의 새로운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연세대 대학원생 신모씨(27)는 “명문대 간판을 대단한 자격증으로 착각하는 일부 학생들의 그릇된 귀족의식과우월감이 도를 넘어선 것 같다”고 꼬집었다. 안동환기자 sunstory@
  • ‘황진이’ ‘이순신’ 재단장 무대

    폐쇄적인 봉건주의 유교사회에서 남성보다 더 자유로운 삶을불꽃처럼 살다간 예기(藝妓) 황진이. 임진왜란 당시 뛰어난전술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용맹으로 조국을 구한 성웅충무공 이순신(1545-98). 황진이의 출생·사망년도는 알 수없지만 화담 서경덕(1489-1546)을 유혹했다 하니 이순신보다는 30∼40세 정도 위인 셈이다. 한 세대의 시차를 두고 큰 족적을 남긴 두 인물의 삶을 그린창작오페라 ‘황진이’와 ‘이순신’이 나란히 국내 무대에오른다.두 작품 모두 해외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서양의 음악적 논리와 건축미 속에 동양의 색깔을앉혀 한국 전통음악을 세계 음악언어로 격상시킨 한국오페라단의 작품.지난 99년 초연 이후 지난해 한·중 수교 8주년기념 베이징 공연과 지난달 2002 월드컵 공동개최 기념 일본공연에서 열광적인 찬사를 받았다. 이 오페라는 총4막으로 구성됐다.중종 때 개성 황진사의 서녀(庶女)로 태어난 황진이는 시재(詩才)에 뛰어났고 용모도출중했으나 가문과 출신을 중시하는 관습의 벽을 뛰어넘을수없었다. 15세 때 이웃집 총각이 그녀를 짝사랑하다 상사병으로 죽은것을 계기로 운명을 예감하고 자유롭게 살겠다며 기적에 이름을 올린다. 명월이가 돼 수령 벽계수, 대승 지족선사,학자서화담, 명창 이사종 등 당대 명인들과 교류하고 사랑하면서불후의 작품들을 남긴다. 황진이의 시조를 서양 오페라의 아리아 대신 사용했고,바라춤 학춤 기생무 북춤 등 한국 고전무를 대거 삽입해 총체적인 한국 미의 극치를 보여준다.6월 13∼16일 오후7시30분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02)587-1950.구상 원작,영화감독이장호 연출,이영조 작곡.황진이 역에 김유섭 신지화 더블캐스팅. 충무공이 조정의 모함을 받고 갈등하는 대목에서장렬한 최후를 맞기까지를 총4막에 담은 성곡오페라단의 이탈리아어 작품. 지난 98년 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기념해 충남 아산 현충사등에서 초연된 뒤 지난해 이탈리아의 로마 오페라극장에 진출,갈채를 받았다.당초 이탈리아의 니콜로 이유콜라노가 5음계 중심으로 작곡했으나 절정에 도달하는 과정이 소멸되는현상이 나타나 지난해 주세페 마주카와 니콜라 사말레가 7음계 중심으로 개작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이순신을 흠모한 나머지 일본 장수 고니시의 사랑을 뿌리쳐 그의 칼에 숨진 기생 초월의 아리아가 추가됐고 음정 등을 일부 수정,한국 정서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극적 전환 효과도 살릴 수 있도록 보완했다.강강수월래 승전무 화관무 등에는 한국의 전통리듬이 사용된다. 6월 8∼10일 오후7시30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연출 장수동,이순신 역에 박치원 강신모. 김주혁기자 jhkm@
  •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 금속활자장 오국진씨

    국내 유일의 금속활자장으로 중요무형문화재 101호인 오국진(吳國鎭·57·충북 청주시)씨는 요즘들어 전에 없는 혼신을 다하고 있다. 청주시가 96년 고인쇄전수관으로 지정,자신에게 관리를 맡긴 옛 수동 동사무소를 작업장으로 삼아 직지심체요절(직지) 상권을 목판본으로 복원하고 이를 금속활자본으로 재현하는 작업에 몰두중인 것. 여주 취암사본인 목판본 직지 상권의 복원을 위해 가로 20㎝,세로 40㎝크기의 판본 43매를 제작중이다.이와함께 금속활자본으로 전해져 오는 직지 하권을 토대로 직지 상권도금속활자본으로 복원하기 위해 7,000여자(字)를 밀랍주조방식으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연말까지 평생의 역작을 마쳐야 하는 다급한 상황에서 뜻하지 않게 뇌경색이 찾아왔다. 2달전 갑자기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절망적이었으나 양·한방 치료를 받은뒤 다행히 거동은 할 수 있는 상태다. 44년 청원군 현도면 한학자의 집에서 출생한 그는 ‘금석문을 연구하는 것이 서예’라는 자신의 말처럼 일찍부터 서각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 72년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도서전시회에서 나온 청주에서 인쇄된 직지가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라는 보고내용은 그에게 충격이고 동시에 운명이었다.그는 특히 당시서방 학계에서 직지의 금속활자본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대두되자 금속활자본 복원을 자신의 평생의 업으로 택했다. 86년 오씨가 밀랍주조법으로 직지 하권의 첫장을 완벽하게복원해내자 직지 금속활자에 대한 진위논쟁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96년 직지 하권 전체를 완전복원한 그는 같은해 금속활자장으로 인간문화재에 지정됐다. 현재 이곳 고인쇄전수관에서는 40대 초반의 맹찬균(40) 임인호(40)씨와 오씨 아들 춘영(30)씨 등 대여섯명이 금속활자 인쇄술을 배우고 있다.오씨는 “이 조그만 청주에서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 인쇄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랑스럽고 흥분된다”며 “그러나 할일은 많은데 몸이 말을 안들어큰일”이라고 걱정했다.연락처 (043)223-0548. 청주 김동진기자 kdj@
  • 올 심산상 장회익 서울대교수 선정

    심산(心山)사상연구회(회장 김시업)는 25일 제14회 심산상수상자로 ‘삶과 온생명’ ‘과학과 메타과학’ 등을 저술한장회익(張會翼)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를 선정했다. 장 교수는 서울대 교수협의회장·민주화교수협의회 회장·한국과학철학회장·계간 ‘열린지성’ 편집인·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과학기술분과위원장 등을 맡아 폭넓은 사회활동을해 왔다.1938년 경북 예천 출생인 장교수는 지난 80년 ‘민주화를 위한 133인 성명’에 참여하는 등 민주화 운동에도적극적으로 참여했다.시상식은 28일 오후 4시 서울 성균관대6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다. 정운현기자 jwh59@
  • MBC 새 미니시리즈 ‘네자매 이야기’

    “박경리씨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처럼 네 자매의 인생역정을 담은 가족드라마입니다.” ‘호텔리어’의 뒤를 이어 6월13일 첫 방송될 MBC 새 미니시리즈 ‘네 자매 이야기’의 연출을 맡은 이진석 PD는 그동안 만들어 온 ‘사랑을 그대 품안에’‘이브의 모든 것’등의 트렌디 드라마와는 달리 서사구조가 강한 드라마라고 새작품의 성격을 규정했다. ‘네 자매 이야기’는 각각 희생,이성,허영,순수를 상징하는 네 자매 혜정(황수정),유진(채림),유미(안연홍),유선(박예진)의 1년 동안의 사랑과 좌절 등을 그려간다. 희생을 상징하는 큰딸 혜정역을 맡은 황수정은 “‘엄마야누나야’의 여경과 비슷한 인물로 말을 할 수 있다는 점만다르다”고 말했다.사랑하는 남자 영훈(한재석)을 동생인 채림에게 양보하는 간호사 역할이다. 채림은 “‘사랑해 당신을’등 그동안 출연한 드라마 절반가까이를 같이 해온 이진석 PD의 작품에 참여하기 위해 5개월을 기다렸다”고 말했다.모 스포츠신문에 실린 재벌2세와의 결별설에 대해서는 “연예인이 되어 사귄 친구이며여전히 좋은 친구 사이”라고 밝혔다.최근 필리핀의 한 리조트로 가족과 휴가를 다녀 왔다며 까맣게 탄 피부에 검정 원피스를 입은 채림은 “요즘 하도 소설같은 구설수에 많이 올라집에서는 눈치보며 조용히 지낸다”고 덧붙였다.드라마에서아버지의 뒤를 이어 외과의사가 되는 레지던트 1년차 유진역을 맡았다. ‘가을동화’의 오수연 작가가 극본을 맡은 ‘네 자매 이야기’는 총20부작으로 의사 집안의 네 딸들이 출생의 비밀과아버지의 과거의 실수,한재석·김찬우 두 남자를 사이에 둔갈등 등을 엮어간다. 청소년영화 ‘체인지’를 만들었던 이진석 PD는 “앞으로영화도 계속 만들 계획이며 현재 ‘장미와 콩나물’을 쓴 정성주 작가가 시나리오 작업 중”이라고 밝혔다.또한 “‘별은 내 가슴에’와 같은 트렌디 드라마는 이젠 지겹고 또 만들면 반복이라는 얘기 밖에 더 듣겠느냐”면서 트렌디 드라마는 젊은 PD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네 자매 역을 맡은 쟁쟁한 여성 탤런트들은 서로 처음 드라마에서 만나 아직은 서먹한 사이.앞으로 치열한 연기 경쟁이기대된다.막내 유선역을 맡은 ‘여고괴담2’의 박예진은 드라마 연기가 처음이라 “박철씨 등 선배연기자로부터 많이배운다“고 말했다.연기자 캐스팅 과정에서 큰딸 역에는 김지수가 물망에 올랐으나 황수정으로 교체됐다.이PD는 초기에 신인들을 많이 기용했다가 불안해서 기성연기자로 바꿨다고 말했다. 윤창수기자 geo@
  • 대한매일 제정 제9회 공초문학상 수상 시인 정진규

    “공초 오상순은 호에서 알 수 있듯이 공(空)마저도 초월한,불교사상의 궁극에까지 나아간 시인입니다.시인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사상가라고 할 수 있지요.불교적인 영원성의 세계를 시로 구체화하고 또 생활로 실천한 분이 바로 공초입니다.” 올해 제9회 공초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정진규 시인(62)은 “아무리 리얼리즘을 중시하는 문학이라도 그 바탕에는모름지기 모종의 초월적 정신성이 깃들여 있어야 한다”는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정씨는 지난 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나팔 서정’이 입선돼 문단에 나왔으니 벌써 시력(詩歷) 42년의 ‘원로’다.기나긴 세월,그의 시에 기복이 없을 수 없다. “兵舍의 새벽이 아니더라도/당신은,/우리네 가슴 속에 한번쯤 울렸어야 할/쟁쟁한 새벽의 음성…” 등단작 ‘나팔 서정’은이처럼 ‘우렁찬’ 시다.그러나 그의 시는 이내 내면의 천착과 언어의 연금술에 매달리게 된다.‘자의식적인 세공품’에 가까운 그의 초기시는 다소 모호하고 관념적인 편향을 보인다.그러나 구체적인 일상의 사물과 생체험을 화두로 삼은 뒤로는 몰라보게 생채(生彩)를 띠기 시작한다.이른바 ‘몸시’와 ‘알시’가 그 증거다. “관념일변도에서는 벗어나야지요.정신과 육체가 하나가 돼야 비로소 사물의 근원을 만날 수 있습니다.” “몸의 어원이 ‘모으다’에서 나왔듯이 몸이란 원래 육체만이 아니라정신까지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말하는 정씨는 이제 ‘몸의 말’을 들을 수 있다.그런 몸과 마음이 완벽하게 하나를 이룬 순수생명의 실체,그것이 ‘알’이다. ‘몸시’와 ‘알시’를 통해 생명의 원형상을 보여준 정씨는 최근 시집 ‘도둑이 다녀가셨다’(세계사)를 통해 다시한번 치열한 시적 사유를 드러낸다.모호성의 자취는 더이상찾아보기 힘들다.둥글둥글하게 읽힌다.그의 말처럼 알과 같고 몸과 같다.올해 공초문학상 수상작 ‘純金’(순금)은 시집 ‘도둑이 다녀가셨다’를 대표하는 작품이자 시인의 일관된 초월 정신을 압축해 보여주는 명편이다. “옛날 여속(女俗)에 따르면 도둑이 들었을 때 우리 조상들은 ‘손님이 다녀가셨다’고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다시는도둑이 들지말라는 ‘이방’의 뜻이 담긴 지혜의 말이죠.‘도둑이 다녀가셨다’는 시 ‘純金’에서 암시를 얻은 일종의 옥시모론(모순어법)입니다.” 그는 “잃어버린 금붙이는 아깝지만 도둑이 ‘정신의 순금’을 내게 줬다”고 말했다. 시인 정진규를 이야기하면서 산문시를 빼놓을 수 없다.그는 산문시에서 독자적인 세계를 일궈냈다.1977년 시집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교학사)를 내면서부터 시에 산문형태를도입하기 시작했다.개인과 집단의 문제,다시 말해 시성(詩性)과 산문성(散文性)의 통합을 시도한 것이다. “산문시는 형식으로부터 자유롭지만 나름의 리듬을 갖고 있지요.나는 그것을 ‘호흡률’ 혹은 ‘생명률’이라고 부릅니다.산문시는무엇보다 이미지의 자장을 넓게 펼칠 수 있어 좋습니다.어떠한 환상의 파도도 서정의 어조로 풀어낼 수 있으니까요.” ‘純金’은 이러한 산문시의 독특한 작법을 보여준다.어떤대목에서는 네 줄 가까이 장광설을 늘어놓는가하면 어떤 부분에서는 단 넉 자로 끊어 호흡을 급박하게 몰아간다.시적인 긴장과 이완이 자유자재다. 정씨에게는 시작활동에 못지않게 공을 들이는 게 하나 있다.시전문지 월간 ‘현대시학’을 꾸려가는 일이다.지난 88년전봉건 시인이 작고하면서 ‘현대시학’을 물려 받은 이래지금까지 무려 14년동안 주간을 맡고 있다.“고료도 받지 않고 기꺼이 글을 써주는 문우들에게 감사할 뿐”이라는 그는“공초문학상 상금을 매달 300만원 이상 적자가 나는 ‘현대시학’을 위해 쓸 작정”이라며 행복해했다.현재 한양여대문예창작과 교수로 있는 그는 학교에서 받는 월급도 고스란히 시잡지에 쏟아 붓고 있다. 정씨는 시인 김구용이 지어준 호를 갖고 있다.경산(絅山,홑옷산).비단옷을 입고 홑 덧옷을 걸친 형국,곧 안을 아름답게 꾸미되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깊은 뜻이 담겼다.그야말로 깨어있는 견자(見者)의 자세요 참시인이 지향해야할 마음의 자리가 아닌가. ◆純 金. 우리집에 도둑이 들었다 손님께서 다녀가셨다고 아내는 말했다 나의 금거북이와 금열쇠를 가져가느라고 온통 온 집안을들쑤셔놓은 채로 돌아갔다 아내는 손님이라고 했고 다녀가셨다고 말했다놀라운 秘方이다 나도 얼른 다른 생각이 끼여들지 못하게 잘하셨다고 말했다 조금 아까웠지만 이 손재수가더는 나를 흔들지는 못했다 이를테면 순금으로 순도 백 프로로 나의 행운을 열 수 있는 열쇠의 힘을 내가 잃었다거나,순금으로 순도 백 프로로 내가 거북이처럼 장생할 수 있는시간의 행운들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손님께서도 그가 훔친 건 나의 행운이 아니었다고 강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큰 죄가 되기 때문이다 언제나 상징의 무게가 늘함께 있다 몸이 깊다 나는 그걸 이 세상에서도 더 잘 믿게되었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상징은 언제나 우리를머뭇거리게 한다 금방 우리를 등돌리지 못하게 어깨를 잡는손, 손의 무게를 나는 안다 지는 동백꽃잎에도 이 손의 무게가 있다 머뭇거린다 이윽고 져내릴 때는 슬픔의 무게를 제몸에 더욱 가득 채운다 슬픔이 몸이다 그때 가라, 누가 그에게 허락하신다 어머니도 그렇게 가셨다 내게 손님이 다녀가셨다 순금으로 다녀가셨다. ◆심사평. 공초문학상은 운영세칙상 20년 이상의 시단경력과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1년간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수상작을 뽑게 되어 있다.이것은 중진 이상의 시인을 대상으로 하되 반드시 작품에 주어지는 문학상임을 못박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나라 시문학상 가운데 가장 품위 있는 상으로 자리매김해오고 있다. 우리 심사위원들은 이러한 상의 비중에 걸맞는 시인들의 대상작품을 엄정하게 가려 뽑고 다시토의를 거듭한 끝에 정진규의 시 ‘純金’을 올해의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시 ‘純金’은 정진규가 오늘의 시단에 줄기차게 내놓고 있는 산문시의 한 전범이다.짜임새가 빈틈이 없을 뿐 아니라‘純金’으로 표상되는 물질적 가치관과 집에 도둑이 들어잃게 되는 상실감 사이의 시대적 ‘상징의 무게’가 밀도있게 실려 있다.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 화자의 체험이 도저한 시적 사유와만나고 다시 사물과 사건 속에서 작은 우주를 형성해나가는문채(文彩)는 생각의 틀을 한 차원 고양시켜준다.‘純金’의 값이 이처럼 시로 매겨지는 일도 바로 저 공초(空超)시의무소유의 세계와 맞닿고 있음이 아닌지? 이 작품으로 상의중량감이 더해질 것이다. 심사위원장 이근배(재능대 교수·공초숭모회장). ◆시인 정진규. ▲1939년 경기 안성 출생▲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나팔抒情’으로 등단▲1963년 시인 전봉건의 권유로 동인 ‘현대시’에 참가▲1965년 김광림 시인의 주선으로 처녀시집 ‘마른 수수깡의 平和’ (모음사)출간▲1977년 제3시집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교학사) 출간. 시에 산 문형대 도입▲1980년 제4시집 ‘매달려 있음의 세상’(문학예술사)으로제12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1981년 평전 ‘마돈나 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문학세계사) 간행▲1985년 제6시집 ‘연필로 쓰기’ (영언문화사)로 월탄문학상 수상▲1987년 제7시집 ‘뼈에 대하여’ (정음사)로 현대시학작품상 수상▲1994년 제9시집 ‘몸詩’(세계 사)출간▲1997년 제10시집 ‘알詩’(세 계사) 출간▲1998∼2000년 한국시인협회장▲2000년 제11시집 ‘도둑이 다 녀가셨다’(세계사)출간▲현재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현대시학’ 주간김종면기자 jmkim@
  • 78년 이후 출생자 부모 양계혈통 적용

    법무부는 98년 6월부터 시행된 국적법 부칙 가운데 부모양계 혈통주의 적용을 법 시행전 10년까지로 한정한 조항을 20년까지로 바꾸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국적법 개정안을 21일 입법예고했다. 이는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가 모계 특례 국적취득 대상자의 범위를 법 시행일(98년 6월14일) 이전 10년 동안 출생한 사람으로 제한한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78년 6월14일 이후 출생한 사람은 출생 당시부모 가운데 한쪽이 한국인이었다면 대한민국 국적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장택동기자 taecks@
  • [이사람] 英초빙교수된 전태일 여동생 전순옥 박사

    암울한 고통의 세월을 견뎌내고 노동학 박사가 되어 돌아온 전순옥씨(47).억압받던 가난한 여성 노동자가 영국에서11년간 공부하여 박사가 됐다.그의 인간승리는 오빠 전태일열사가 31년전 밝힌 희망의 횃불을 찬란하게 빛냈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은 시대적 모순 속에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노동자들에게 인간다운 삶의 길을 열어주려는 희망의 횃불이었다.그러나 그 횃불은 구조적 억압과 사회의 불합리한현실 속에 가물거렸다.전순옥씨와 어머니 등 가족은 전태일열사의 뒤를 이어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가물거리는 횃불에꺼지지 않는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전순옥씨는 밖으로도 눈을 돌려 89년 11월 35세라는 늦은 나이로 유학을 떠났다.노동운동 등을 공부하고 지난 3월 영국 중부지방에 있는 워릭대학에서 마침내 박사학위를 받았다.노동현장의 밑바닥 인생과 학문의 길을 모두 경험하며 굴곡의 모진 세월을 살아온 그의 얼굴에는 고단한 삶의 흔적이 배어있다.그러나 그의 눈빛은 맑고 찬란했다.그 눈빛 속에는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오빠의 마지막절규가 살아 있는 듯했다. ■ 전태일 열사는 전 박사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오빠는 저의 가족 마음 속에 늘 살아 있습니다. 저희들의버팀목이죠.힘들고 고달플 때는 늘 오빠를 생각했어요.오빠는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공부를 하기 위해 애썼습니다.67년 2월에는 150원을 주고 ‘연합 중고등 통신 강의록 중학1’ 과정을 샀어요.입고 있던 바지와 사용하던 곤로를 380원에 판 돈으로 샀다고 해요.오빠에 비하면 저는 선택받았죠. 오빠를 생각하며 정말 열심히 공부하려고 노력했어요.그것도 오빠의 유업을 계승하는 길이라 생각했죠.‘전태일 평전’등 오빠에 관한 책 등을 영어로 번역하여 널리 알리는 작업도 할 예정입니다. ■유학의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다국적기업들이 싼 임금을 찾아 공장을 다른 나라로 옮기며 실업자가 발생하는 현실을 보고 세계의 노동자들이 어떻게 연대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됐어요.우리도 누군가 외국으로 나가 밖의 세상과 세계의 노동운동을 봐야한다고 생각했죠.처음엔 제가 가야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어요. ■왜 영국으로 갔습니까. 영국은 산업이 발달하고 노조활동이 활발한 나라로 알고있었습니다.노동당도 있고요.그래서 영국을 택했죠. ■영국생활은 어떠했습니까. 기숙사에 머물며 학교에 다녔습니다. 평일엔 학교에 가고일요일엔 교회에 가고….보통의 유학생들과 비슷한 생활이었죠.한국노동운동에 대한 강연회를 다닌 것이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겠네요.등록금과 생활비는 독일의 미재리오 재단,한국의 두레장학재단,영국 외무부,워릭대학 등으로부터받은 장학금으로 주로 충당했습니다.그밖에 여러사람들의도움도 있었어요.저에게 도움을 준 모든 사람들에게 늘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어느 분야의 공부를 했습니까. 처음 6개월간은 영어 공부에 전념했습니다.그 이후는 노동운동,경영,노사관계 등을 공부했죠.처음에는 언어(영어)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어요.1년6개월쯤 지나니까 언어 문제가어느정도 해결됐습니다.그러나 워릭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고민에 빠졌어요.노동현장으로 돌아갈 것인가 박사과정을 공부할 것인가….학자가 되려고 영국에 온것도 아닌데 계속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죠.그러나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교수 등 주위의 권유로 박사과정을 공부하기로 결심했지요. ■학위 논문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석사학위 논문 제목은 ‘한국경제성장의 값은 누가 치루었나’이고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70년대 한국여성노동자와그들의 민주노동조합운동을 위한 투쟁’입니다. 박사논문에는 ‘그들은 기계가 아니다’라는 부제를 달았죠.오빠가 죽으며 절규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말을 인용했습니다.논문에 오빠의 열정과 혼을 담으려고 노력했어요.논문준비를 위해 7개월간 한국에 머물며 7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하던 많은 노조지도자들,일반 노동자들,기업주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났죠.김영삼 전대통령도 만났어요.박사논문은 기업주의 착취와 구조적 억압의 틀에 갇혀 있던 70년대 여성노동자들의 투쟁과정을 담고 있습니다.70년대 초한국 노조운동은 여성 중심이었어요. 섬유·의류·신발·가발 공장등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이 민주노조운동한가운데 있었습니다.그들의 투쟁은 박정희 대통령의 18년 군부독재를 무너뜨리고 오늘의 민주주의를 이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박사논문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하는데요. 박사논문은 통상적인 형식의 틀을 깼어요.많은 노동자들과의 집중적인 면접을 통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분석했습니다.노동자들의 현실과 통계가 많이 달라 기존의 통계를 사용할 수 없었죠.노동시간의 예를 들면 공식통계에는 한국 노동자의 70년도 근로시간이 1주일에 56.4시간으로 돼 있지만1주일에 90시간 이상씩 일하는 영세업체 노동자들도 많았어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분석하는데도 기존의 이론으로는한계가 있음을 알았어요.어떤 이론도 적용할 수 없었죠. 그래서 탈이론적인 방법론으로 접근했습니다.그러한 방법론과공식통계에 의존하지 않고 노동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그대로 반영한 분석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 같았습니다.창조적인 논문이라는 평가를 받았죠.박사논문은 수정없이 통과되어 워릭대학의 이번 학기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됐습니다. 심사위원들로부터 꽃다발까지 받았어요.논문은 영국·호주·미국 등 영어권과 한국·일본 등 아시아에서도 출판될 예정입니다. ■영국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대사관의 끊임없는 감시였어요.요주의 인물이 되어 늘 감시를 받았습니다.감시를 받게된 결정적인 일은 90년 7월에있었던 일 때문이었습니다.남아일랜드 노총의 초청으로 강연을 하게됐는데 그 때 당시 강영훈 총리가 남아일랜드 새한비디오 공장을 방문했어요.그런데 남아일랜드의 대표적신문인 ‘아일리시 타임즈’가 저의 강연내용은 대문짝만하게 싣고 강영훈 총리의 방문은 그 기사 한구석에 조그맣게보도했어요.한국대사관이 발칵 뒤집혔죠.그 보도이후 제가가는 곳이면 어디에나 대사관 직원이 미행했어요.대사관의끈질긴 감시는 96년까지 계속됐죠. ■한국 노동운동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지금의 상황을 정확히 몰라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그러나 원론적으로 말하면 노사가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공존의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사측은솔직하고 투명하게 실상을 공개하고 노조도 포용력 있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노동자였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노동관에 어떤 변화가있습니까. 노동자 시절에는 노사분쟁이 있을 때 기업가가 노동자들의요구를 당연히 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노동조건이 열악했었죠.지금은 열악한 작업환경의 영세 기업주들에게도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알아보고 그들의 문제를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일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그러나 약한 위치의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주는 큰 문제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앞으로 5년간의 프로젝트로 영세사업체의 노동조건을 연구할 예정입니다.30년전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비교하여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분석하려 합니다.아직도 많은 영세업체들의 노동조건이 열악한 것 같아요.왜 그들의 노동여건이 여전히 나쁜지를 추적하고 개선 방안을 찾고 싶습니다. 그런 연구를 통해 경제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면서도지금까지 국가의 공식통계에서 소외된 열악한 환경의 노동자들에 관한 다양한 통계자료를 만들어그들을 역사의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고 싶습니다.영국 학자들과 함께 한국·중국·영국 등 7개국의 노동현장을 비교하는 프로젝트에도 참여 할 예정입니다.영국의 카디프 대학 사회과학부 초빙 교수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할 생각입니다. ◆ 전순옥 박사의 삶. ■1954년 부산 출생■1970년 전태일 열사 분신자살.오빠 분신후 가족들 노동운동 참여.전씨는 당시 야간중학생인 여공이었다. ■1973년 양복제조업체 동광산업 입사■1974년 가죽제품업체 남양물산 입사■1977년 어머니(이소선 여사) 구속후 노조에 전력투구■1982년 한국성서신학대학 입학■1983년 장로회신학교 입학■1985년 비영리 탁아소 설립■1986년 10대 여성노동자를 위한 공동체 구성■1988년 미혼모를 위한 사람사는 정을 심는 모임 만듦■1989년 영국 유학■1990년 6개월간 영어 연수후 사우스 뱅크 대학 2년코스야간과정 입학■1993년 옥스포드 라스킨 대학 입학■1995년 워릭대학 석사 과정■1997년 워릭대학 박사과정■2001년 박사학위 받음. 4월24일 귀국.1954년 부산 출생■1970년 전태일 열사 분신자살.오빠 분신후 가족들 노동운동 참여.전씨는 당시 야간중학생인 여공이었다. ■1973년 양복제조업체 동광산업 입사■1974년 가죽제품업체 남양물산 입사■1977년 어머니(이소선 여사) 구속후 노조에 전력투구■1982년 한국성서신학대학 입학■1983년 장로회신학교 입학■1985년 비영리 탁아소 설립■1986년 10대 여성노동자를 위한 공동체 구성■1988년 미혼모를 위한 사람사는 정을 심는 모임 만듦■1989년 영국 유학■1990년 6개월간 영어 연수후 사우스 뱅크 대학 2년코스야간과정 입학■1993년 옥스포드 라스킨 대학 입학■1995년 워릭대학 석사 과정■1997년 워릭대학 박사과정■2001년 박사학위 받음. 4월24일 귀국. 이창순편집위원 cslee@
  • 학술원 회원 구영록씨 별세

    학술원 회원인 구영록(具永祿)서울대 명예교수가 18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67세.경남 함안출생인 고인은 경남고 졸업후 미국으로유학,미시간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68년부터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로 근무했으며 지난 99년 정년퇴임했다.한국국제정치학회장,통일원 정책평가위원을 역임했으며,95년부터 학술원 회원으로 활동해 왔다.유족은 부인 정영자(鄭玲子)씨와 아들 지용(智勇·㈜코리아 비즈니스그룹 대표),딸 지애(智愛)씨.빈소는 서울대병원,장지는 천안공원묘지.발인은 21일 오전 7시.(02)76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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