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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대문학가6인 삶과 글 다시보기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과 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현기영)는 20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홀에서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를 연다. 주인공은 김동환 박영희 박종화 심훈 이상화 최서해 등 6인. ‘근대문학,갈림길에 선 작가들’이란 주제가 말해주듯 이들 6인의 작가는 한국 근대문학 형성기의 중심에 있다.신경향파문학이라는 ‘공통 못자리’에서 출발,시대 상황과 개인적 세계관에 따라 다른 길을 걸었던 이들의 작업을 조명하는 것은 우리 근대문학 초기 모습과 만나는 자리다. 기념문학제 주요 행사는 심포지엄.총론 각론으로 나눠 이틀 동안 진행된다.첫날엔 김윤식 서울대명예교수가 ‘근대문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정과리 연세대교수가 ‘인공 선택과 장기 생성으로서의 근대문학’을 주제로 발제한다.이어최동호 고려대교수(국문학)가 시인 김동환 이상화,‘신경향파 문학’으로 박사 논문을 낸 박상준씨가 소설가 박종화 심훈 최서해의 작품세계를 각각 집중 조명한다. 둘째날에는 임규찬 성공회대 교수가 ‘평론가 박영희와 이상화’를,김재용 원광대교수와 황종연 동국대교수가 ‘근대문학의 갈림길’을 주제로 발제를 맡았다. 두번째 행사는 서지집 발간이다.사실 이 분야는 빛도 안나서 국문학계에서도 소외받아왔다.소설가 한설야의 출생년도만 해도 1900년과 1901으로 오락가락하고 있는 사실이 단적인 예다.이런 현실을 감안하여 대산문화재단과 작가회의는 6인의 작가에 대한 서지집과 주제논문집을 만들어 일반에 배포할 예정이다.(02)721-3202 313-1486이종수기자 vielee@
  • 팔순 노인 안중근 기금 1억 기탁

    83세의 노인이 안중근(安重根) 의사의 나라사랑 정신을 청소년들에게 알리는데 써달라며 1억원의 장학기금을 내놓았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안승우(安承祐)옹은 13일 “안중근 의사와 같은 순흥 안씨라는 점을 평생 자랑스럽게 여기고 살아왔다”면서 “안 의사의 정신을 후세에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동안 모은 재산의 일부를 장학기금으로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1918년 황해도 연백에서 출생한 안 옹은 연안농고를 졸업한뒤 영등포구 농정계장으로 근무했으며 강원도 안악,경기 용인·평택 농장 등에서 농장장으로 일해왔다. 장학금은 14일 오전 10시 서울 남산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탁된다. 노주석기자 joo@
  • MBC ‘그 여자네 집’ 준희役 이서진

    “준희와 영채도 결혼하면 태주와 영욱이처럼 서로 티격태격대며 같이 살기 힘들 것 같아요.” 시청률이 나날이 상승중인 MBC 주말연속극 ‘그 여자네 집’에서 준희역을 맡고있는 탤런트 이서진(29)은 요즘 눈물을 쥐어짜느라 죽을(?) 지경이다.드라마에서 열렬한 사랑을 나누고 있는 영채(김현주)와 헤어진 데다 고아인줄 알았는데갑자기 재벌인 조부가 나타나는 바람에 격한 눈물을 흘려야만 한다. “상면이 형은 자연스럽게 잘 우는데 전 아직 눈물을 쥐어짜는 수준이죠.” 드라마에서 가족이 반대하는 결혼을 이루기위해 눈물을 뿌린 삼촌역의 박상면은 그에게 “고생할 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조언했다.이서진은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를떠올리려 애를 쓰지만 이제 3편째 드라마에 출연 중인 그에게 아직은 눈물연기가 만만치 않다. MBC 드라마 ‘왕초’에서 김두한의 참모 역,영화 ‘공포택시’‘아이러브유’에서 주연을 맡았지만 한창 나이가 아래인 허영란을 비롯해 ‘그여자네 집’ 출연진 모두가 그의 연기 선생님이다. 뉴욕대 다니던 시절,전공인 경영학보다는 영화보기를 더 즐겨했던 마니아 기질로 연기를 시작하게 됐다.요즘 촬영때문에 영화를 제대로 못 봐 안달이다. 고아와 대학생이라는 신분 차이를 뛰어넘어 애틋한 사랑을나누고 있는 김현주와는 어색하고 서먹서먹해서 처음 한달동안은 제대로 말도 나누지 않았다고 한다.하지만 지금은 서로 친해져서 김현주도 이서진의 연기 선생님으로 한몫 거든다. 드라마에서는 여자친구를 위해 밤늦게 전화로 노래를 불러주는 자상한 남자로 나오지만 “실제 여자친구한테 노래를했다간 도망가 버릴 것”이라며 특유의 보조개를 만든다.준희가 영채에게 휘파람을 불러주는 장면을 위해 열심히 연습했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의 휘파람 소리가 덧씌워졌다며웃었다. 결혼하면 연애할 때와는 달리 태주(차인표)처럼 꼭 아침 밥을 먹겠다며 일하는 아내를 괴롭히는 남편이 될 것이냐는 질문에 “태주는 거의 밥에 미쳤죠”라고 웃어 넘긴다.준희처럼 실제로 재벌 할아버지가 나타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묻자 “어휴∼좋죠”라고 선뜻 대답한다. 태주처럼 지금껏 길러준 어머니가 생모가 아니라는 출생의비밀이 갑자기 밝혀진다 해도 “상관없다”고 역시 거침없이 답한다.고아인 드라마 주인공이 알고 보니 재벌집 자손임이 밝혀지는 드라마 설정이 자칫 진부해 보일수도 있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드라마에 극적인 요소를 삽입한 것으로,신데렐라는 아니다”고 강조한다. 헬스,암벽등반 등 격한 운동을 한 뒤 맛보는 상쾌한 기분을 즐긴다는 이서진은 거친 남자역할을 꼭 해보고 싶다고 한다. 윤창수기자 geo@
  • ‘9월 독립운동가’ 심훈 선생

    9월 독립운동가로 ‘상록수’의 작가 심훈(沈熏·본명 大燮) 선생이 선정됐다고 국가보훈처가 밝혔다. 1901년 서울 노량진에서 출생한 선생은 3·1운동에 가담했다가 8개월간의 옥고를 치른 뒤 중국으로 망명,베이징에서이회영(李會榮) 선생을 만나 신학문을 수학했다.24년 순종황제가 승하하자 돈화문 앞에서 ‘통곡 속에서’라는 시를 ‘시대일보’에 발표했다. 31년 충남 당진으로 낙향한 선생은 33년 신문에 ‘영원의미소’,‘직녀성’을 집필하고,농촌 계몽운동을 위한 장편소설 ‘상록수’를 통해 민족항일운동을 일깨웠다.36년 장티푸스로 36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정부는 지난해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 삼양제넥스 사장 김일웅씨

    삼양그룹 계열사인 삼양제넥스(주)는 29일 정기 주주총회 및 이사회를 열어 신임 대표이사에 김일웅(58) 삼양사 전무를 선임했다. 김 신임사장은 경기도 파주 출생으로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와 삼양사 대구사무소장, 삼양제넥스 판매총괄 이사 등을 지냈다.
  •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秘史] (6)모윤숙의 사랑과 우정

    최정희를 둘러싸고 노천명,모윤숙(毛允淑·1909∼1990) 세여인 사이를 오간 편지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인물은 이선희(李善熙)이다.함흥 출신인 그녀는 원산 루시여고를 나온(1928) 뒤 서울 이화여대에서 수학,여러 잡지사를 전전했는데,유부남인 연극인 박영호(朴英鎬)와 결혼,그리 순조롭지 못한 가정생활 때문에 이들 모임에 끼어들곤 했었다. 8.15후 월북,작품활동을 재개했으나 괴혈병으로 이내 타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세 여인의 서신 내용으로 미뤄보면필시 이선희의 편지도 있을 법한데 빠져 있다. 같은 함경도 출생인 모윤숙에게 이선희는 애물단지 후배였던 셈이다.최정희의 회고록에는 자신에게 편지를 가장 많이 보내기로는 노천명이라 했지만 정작 더 많은 건 모윤숙이었다.그녀의 편지는 거의 ‘렌의 애가’처럼 춘원 이광수를 향한연모의 사무침이 가져다 준 외로움의 하소연으로 차 있다. 한 여인의 사랑에 대한 집착이 이다지도 강렬하고 끈질기며 삶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일까 경이스럽기 조차 하다. “이 마음이 혹시 흩어져 제 슬픔을 흘리며 미쳐 방황할것만 같아서 나는 내 마음에 독약을 뿌려가며 눈을 감고앉았소.…언제나 당신은 이 아픔을 알아주는 따뜻한 벗이오.내가 이 아픔을 사랑하듯이 당신도 이 아픔으로 사랑해주는 이라고 믿소. 내 연령이 쇠해져서 이 아픔조차 나를떠나간다면 나는 공허해서 어떻게 살겠소.그래서 나는 이아픔 속에 숨긴 행복을 남 몰래 남 몰래 가슴에 파묻고 혼자 즐기고 혼자 눈물 지오.…오관에 감각이 모두 제 맥을잃도록 나는 슬픈 내 행복에 사로잡혀 있소.내가 생각하는고운 제단엔 언제나 아름다운 불꽃이 피고 있다오. 이게무언지도 모르오.나는 그 파란 불꽃에 타면서 타면서 한없는 쾌감을 느끼오.나의 베아트리체는 어느 빌딩에 있는 것이 아니오.내 가슴 한복판에서 제 고집대로 나를 좌우하고살아 간다오.정희! 지난 밤엔 또 못잤지.그렇게 못자는 밤이면 유난히 나는 초점 없는 상념서 벽을 쳐다보다가 유리창을 쳐다보다가 그만 날을 새고 만다오.…나는 얼마나 아름다운 장미를 피게 하려던 것이 황량한 낙엽을 안고 운다는 사실-이것이 내 성격이 만들어놓은 재앙인가 하오.불행도 행복도 다-제게 달린 게 아니오.나는 불행한 감정을 사랑하는 여성이라 그대로 나는 불행에 싸여 걸어가나 보오. 영원히 안 보(이)는 앞을! 잔인한 행복이오. 그러나 나는이 무서운 잔인을 찬미하지 않으면 안될 사람이 되었다오.” 이 글은 아마 우리 근대 문학사에서 공개된 것 중에서는메달권 안에 들만한 연애편지일 것이다.춘원에 대한 사랑의 간접 고해성사의 대행자이자,그녀의 메신저 역할도 담당했던 최정희에게 모윤숙은 속을 탁 터놓고 이루지 못한사랑을 하소연했는데,이들의 미묘한 시샘은 재밌는 일화도많이 남긴다. “모윤숙을 '다알리아'라고 하고,이선희를 '백일홍'이라고 하고,노천명을 '들국화'라고 하고,나(최정희)를 '채송화'라고 했다”(최정희 ‘조광·삼천리 시절’)는 이 네 여인 중 남자문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로는단연 모윤숙이다.1909년 원산에서 태어나 함흥에서 소녀기를 보내곤 개성 호수돈여고를 나와(1928) 이화여대를 졸업한 모윤숙은 간도 명신여학교(1932),배화여고(1933) 교사,연극과 문단활동중 춘원을 사랑하게 되어 일생동안 그의사상적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처지에서 기이하게도 모윤숙은 춘원의 중매로 독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안호상(安浩相)과 결혼,딸(일선)까지 얻었으나 사랑의 우상에 대한 열정은 도리어 더욱 뜨거워만 갔다.무작정 경원선 열차에 몸을 싣고친정으로 내려간 모윤숙의 속내는 최정희의 회고록에서 익살스럽게 까발려진다.“함흥 친정에 내려간 모윤숙”을 만나러 그곳엘 찾아간 최정희에게 모의 어머님이 어느 날 “너네들은 밤낮으로 니광신이 니광신이하구 지껄이니,도대체 니광신이가 뭐가?”하고 물었는데,바로 이광수의 함경도식 와전 발음이었다.어머니 앞에서도 친구와 애인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야만 했던 그녀인지라 편지엔들 ‘니광신'이가 빠질 수 없다.“이선생” 어쩌구 하는 건 바로 그였는데,이 무렵 춘원은 개인적으로 깊은 은혜를 입은 김성수의 ‘동아일보’를 떠나 ‘조선일보’ 부사장으로 자리를옮겼으나(1933) 여의치 못해 이듬해에 사직,아들까지 잃은허전함을 달래느라 여행, 홍제동 소림사에 칩거 등으로 들락날락할 때였다. 모윤숙의 애타는 심경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일화는 역시최정희가 전해 준다.남의 연애편지를 대신 전해 주는 게유행이었던 때라 모윤숙은 춘원에게 줄 서찰을 최정희에게 의뢰하고 초조하게 그 회신을 기다렸으나 종무 소식.저간의 상황을 최정희는 이렇게 묘사한다.모윤숙의 편지를 가지고 가던 날 밤은 산장에 달이 유난히 컸다.저녁 여덟시면 히틀러가 연설을 하니 듣고 가라면서 ‘니광신'씨는 나를 막 잡았다.기다리고 있을 모윤숙의 일이 딱했으나 한편으로는 골탕을 먹여주자는 짓궂은 마음도 있어서 나는 ‘니광신'씨의 말에 좇았다.이튿날 아침 열한 시가 넘어서 출근을 한 내게 먼저 출근해서 기다리고 있던 모윤숙은 참으로 깊은 시선을 내게 던지고 있다가 “왜 그렇게 됐수?”하고 말을 건네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까 니광신씨가 저녁을 먹고 가라는 거아냐,히틀러가 연설을 한다나,그걸 듣고 가라는 거야.”“아니 그이하구 점심을 먹구 저녁을 먹었단 말이지?”“그럼.”“밥이 넘어가?” “활갤 치구 넘어가던걸.”“어쩜!”하고 모윤숙은 말을 다시 못하고 나를 보고만 있었다.모윤숙은 ‘니광신'씨하고 밥을 마주앉아 먹은 내가 부러운 얼굴이었다.또 얄밉기도 한 모양이었다.(최정희 ‘조광·삼천리 시절’)이 대목에서 모윤숙의 애절한 사랑 말고 이광수의 뇌리에아련히 묻혀있는 파시즘에 대한 환상을 읽을 수 있다. 이룰 수 없는 애정의 정열을 잠재우기 위한 도피처로서의 함흥이나 원산 일대는 센티멘탈한 여성시인의 감각만으로는접근할 수 없는 역사가 고동치고 있었다.“여보! 함흥은난(亂)이 난다고 인심이 대단 불안하오.밤마다 암흑 천지요.여기가 매우 안심되지 않소이다”란 서두의 편지는 일제의 식민 철권 통치가 1930년대 중엽에 저 북녘 땅에서는강력한 도전을 받았던 것을 반증해 준다. 국내 항일운동의근간이었던 적색 농민. 노동조합의 파급과 보천보전투(1937.6)를 상기하면 함경도 지역이 지녔던 풍문만이 아닌 실체로서의 위기감을 감지할 수 있을 터이다.더욱이 중일전쟁 발발(1937) 이후 정세는 사뭇 험악했다. 그러나 불륜의 사랑에 빠진시인에게 민족의 당면 과제나역사는 먼 전설이어서 더 이상 관심도 없었을 터이다. 편지는 곧장 “아침 시가에 나가 '사슴군' 계신가고 학교로전화를 걸었으나 벌써 1주일 전에 상경하셨다니 우리가 셋이서 싸다닐 때 그는 어느 구석에서 망원경으로 다-살피지않았으리오”라는 대목을 읽게된다. 여기서 '사슴'이란 1936년 1월 20일에 100부 한정판으로 ‘사슴’이란 시집을낸 정주 출신의 백석(白石)이다.오산학교를 나와 조선일보장학생으로 일본 청산(靑山)학원에서 영문학을 수학, 조선일보 출판국의 ‘여성’지에 최정희와 함께 근무하다가 나중엔 종합월간지 ‘조광’에서 일하던 그는 함흥 영생고보교사(1936-1938)로 있었다. 그의 해맑은 모습은 당대 여성들에게 제법 인기를 끌었는데,낙향한 모윤숙을 찾았던 최정희와 셋이서 한 판 어울렸음을 이 대목은 증명해 준다.이때 모윤숙이 애독했던 책이‘차탈레이 부인의 사랑’이었던 것도 흥미거리다.거듭 이소설을 들먹이며 예찬한 것으로 미뤄 볼 때, 정열적인 이시인이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육욕에 대한 향수 때문에 매우 감동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편지를 면밀히 뜯어보면 “상경한 사슴 군을 죽기 전 상봉하여 원하던 이야기를 해 보시오”란 대목에 뭔가 냄새가 풍긴다.백석을 가운데 둔 삼각관계였을까? “사슴군이나 어서 왔으면 하오”란 구절도 나온다. 여담이지만 백석은 최정희에게 장문의 연애편지를 겸한사랑의 철학론을 보냈다.도저히 보통관계로는 볼 수 없는내용이다.사랑은 우정도 선후배도 의심하게 만든다.임옥인(林玉仁)을 만난 대목에서는 “그저 자기는 벌써부터 그이(이광수)를 존경할 수 없이 되었다고”하는데,역시 뭔가수상쩍다. 춘원을 둘러싼 이 여성들의 베일은 여전히 두껍기만 하다. 대체로 파인은 여성작가들을 집단으로 만나길 즐겼으나,춘원은 개별적으로 만나길 선호했다는 속설이 여러 정황에서사실로 굳어진다. 함흥에서 “사하라 사막의 떡장수 여편네 모양”처럼 변해간다고 투정부리던 모윤숙은 이내 상경,경성방송국에 다니며 이광수와 사상적인 보조를 맞춰 친일에 나섰다. 임헌영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 [이사람] 세중옛돌박물관 설립자 천신일씨

    돌은 말은 없으나 철학자에겐 철학으로 음악가에겐 음악으로 예술가에겐 예술로 종교가에겐 종교로 시인에겐 시로 삶,그 존재의 진리로 있나니 아,그렇게 돌은 천년,만년,억년,수억년 세월없이,놓여있는 그 자리에서 침묵으로,깊은 침묵으로 삶,그 존재의 말로 있나니 조병화의 시 ‘돌’의 전문이다.그의 시처럼 깊은 침묵으로 삶의 다양한 모습과 표정을 보여주는 돌 작품들을 모아높은 박물관이 있다.경기도 용인에 있는 세중옛돌박물관. 조병화의 시도 이 박물관에 시비로 세워져 있다.박물관 설립자는 천신일 (주)세중 회장(58).그는 석조물들을 문화재로 보존하고 해외유출을 막기 위해 이들을 수집하고 박물관을 만들었다. 옛돌박물관에 들어서면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온것같다.조상들의 삶의 흔적이 돌 작품의 질박한 예술성에그대로 담겨 있다.문인석(文人石)·무인석(武人石)·동자석(童子石)·석수(石獸)·석탑등 다양한 돌 작품들은 세월의 무게를 견뎌내며 묵묵히 서있고 연자방아·디딜방아·절구·맷돌등 생활기구들에서는 조상들의 삶의 향기나 나는 듯하다. 이름없는 석공의 정끝에서 만들어진 석조물들은 투박하고수수해서 더욱 정겹다. 질박한 석조물들은 그리스나 로마의 유명한 조각예술품보다 오히려 친근하고 인간의 따뜻한체온을 느끼게 한다. 산업화의 빠른 속도에 휩쓸려 바쁘게살다가 잃어버린 우리의 옛모습이 그 속에 있다.천신일 회장은 현대문명의 화려함 속에 잊혀졌던 우리의 순박한 옛모습을 다시 친근한 이웃으로 부활시켰다. 천 회장이 옛돌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1979년부터.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석조물 수집은 ‘작은 애국심’으로부터 시작됐다.1979년 어느날 서울 인사동에 있는 골동품상이 옛돌을 일본인에게 팔려고 흥정하는 것을 보고 번뜩 뇌리를 쓰치는 것이 작은 애국심이었다.“우리의 문화유산인석조물이 일본으로 유출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인이 가게를 떠난후 골동품상과 협상을 했죠.일본인에게 팔기로 한 값에 27점을 모두 샀습니다.그때부터 옛돌을모으기 시작했죠.” 그는 이조백자나 고미술품 등에 관심이 있어 인사동엘 다니곤 했었다. 그는지금도 가끔 인사동엘 간다.인사동 뿐만이 아니라석조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간다.전국을 돌아다니고일본과 미국등 외국에도 여러번 다녀왔다.그는 허가받은골동품상이나 신원이 확실한 사람에게만 석조물을 구입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도굴품 예방을 위해서다. 그러나 주의를 해도 도굴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레슬링협회장으로 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 참석하고 있을 때 집으로부터 급한 전화가 왔었습니다.도굴품이 많다는 제보에 따라 문화재청 단속반과 서울지검이압수수색을 한다는 내용이었어요.아시안게임에서 돌아와참고인 조사를 받았습니다.석등 2점이 도굴품이었어요.석등을 판 골동품상을 설득하여 자수시키고 석등을 원주인에게 돌려줬죠.” 석조물을 수집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무엇보다 많은돈이 필요하다. “중소기업 경영인이기 때문에 투자에 한계가 있습니다.많은 석조물을 구입하려고 노력합니다만 어려움이 많아요”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좋은 석조물이있다는 말을 들으면 지금도 달려가는 것을 보면 석조물 수집은 그에게 삶의 즐거움이자 보람인 듯하다. 그는 20년 이상 모은 석조물로 마침내 지난해 7월 대망의박물관을 개관했다. 개인이 박물관을 설립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예술성을 찾는 일반적인 수집가들과는달리 그는 민초들의 혼과 정성이 깃든 석조물에 관심을 가져왔다. 다양한 일을 하며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털털한 서민적 인품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그의 삶의 모습과 일맥 상통한다고나 할까. 그는 지난 6월 또 하나의 보람있는 일을 해냈다.일본으로건너갔던 문인석·무인석·동자석등 70점의 석조물을 환수해온 것이다.“200여점의 한국 석조물을 갖고 있는 일본인구사카 마모루씨를 설득하기 위해 많은 애를 썼습니다. 부부를 초청하여 일류호텔 스위트룸에 묵게하며 풍을 앓았던구사카씨에게 한약을 지어주기도 했습니다.김치도 직접 담가주기도 했죠. 이런 개인적인 노력과 이건 한일친선협회중앙회 부회장등 주위사람들의 많은 도움으로 구사카씨를설득하는데 성공했습니다.16점은 1,600만엔(약1억7천만원)에 사고 54점은 기증받는형식으로 70점을 환수했습니다. 외국으로 흘러갔던 우리의 문화유산을 환수하여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미국으로 유출된 석조물도 환수하기 위해 재미교포와 협상을 하고 있다.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재미교포가 수십점을갖고 있다고 한다. 문인석은 미국의 록펠러 3세 저택에도20여점이 있고 파리에 있는 기메박물관 정문에도 한쌍이있다고 한다. 유엔본부 광장에도 문인석 등 한국의 석조물이 세워질 예정이다.“유엔본부의 리드 차장이 석조물을기증이나 장기임대 형식으로 유엔본부광장에 세우는 것이어떠냐고 제의해,지금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리드 차장은석조물은 세계 최고의 예술품이라고 극찬하고 있죠.” 그는 또 하나의 옛돌박물관을 만들고 있다.부지는 서울성북동 독일대사관저 옆에 있는 6,000여평의 임야.그의 개인 땅이다.서울시와 지금 협의중이다.석조물 연구를 하는사람을 지원하는 학문적 지원사업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천 회장의 삶은 석조물 수집에만 머물지 않는다.그는 다양한 기업의 경영인이다.국내 대표적인 여행사인 (주)세중,세성항운,세중엔지니어링,세중정보기술,샤론 에이전시 등5개 기업의 회장이다. 그는 고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한때 정치에 뜻을 두었다. 윤천주 국회의원 비서를 5년간하기도 했다.그러나 정치의 꿈은 오래전에 접었다.비전을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74년 주식회사 제철화학을 설립했다.그이후 여러가지 기업을 일구었다.제철·화학·여행·조경·벤처산업…. 여러가지 업체를 창업한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에그는 이렇게 대답했다.“많은 사람들이 사업 아이디어를갖고 찾아옵니다.그중에서 일부를 선택하여 창업하다보니여러가지 기업을 경영하게 됐어요.”기업은 대부분 성공적이었다.그러나 한차례 실패도 있었다.조경사업을 하는 동해조경은 성공하지 못했다.그러나 사업은 실패했지만 뜻있는 일을 했기 때문에 절반의 실패로 생각한다.그는 조경사업을 하던 부지를 포항공대에 기증했다.포항공대는 그가기증한 땅에 세워졌다. 천 회장은 그동안 바쁘게 살아왔다.조금은 여유를 갖고박물관에 좀더 많은 신경을 쓰고 싶다고 한다.그는 매주토요일박물관으로 가 하루를 묵고 일요일에 서울로 온다. 그는 돌들의 다양한 모습중에서도 비온 후의 모습을 가장좋아한다고 한다.명암이 뚜렷하고 돌꽃과 돌이끼가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기 때문이다.그의 서울 집에도 많은 석조물들이 있다.그는 깊은 침묵의 돌들과 말없는 대화를 나누며 살아간다. ▲천신일 회장의 삶. ▲1943년 부산 출생▲1965년 고대 정치외교학과 졸업▲1968년∼73년 윤천주 의원 비서관▲1974년∼77년 제철화학 설립,사장. ▲1976년∼96년 태화유운 설립,사장. ▲1977년∼82년 동해산업 설립,사장. ▲1982년 세중 설립▲1986년 세성항운 설립▲1987년 세중엔지니어링 설립▲1993년 세중정보기술 설립▲1996년∼2000년 대한레슬링협회 회장▲2000년 세중옛돌박물관 설립용인 이창순편집위원 cslee@. ■세중옛돌박물관, 2만여점 전시…가족 나들이 적당. 세중옛돌박물관은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양지리 산속에있다.지난해 7월1일에 개관했다.5,500평 부지에 86종류 2만여점의 석조물들이 전시돼 있다.13개 야외전시관과 1개실내 전시관등 14개 전시관으로 구성돼 있다.처음에는 13개 전시관으로 문을 열었으나 지난 7월1일 일본에서 환수해온 석조물로 또 하나의 전시관을 만들었다. 문인석·무인석·동자석 등이 주류를 이루며 불교유물인불상·석탑·광배 등도 있고 생활유물관에는 연자방아·디딜방아·절구·화로·맷돌·다듬이돌 등이 전시돼 있다.벅수·남근석·고인돌 등도 있다.양지리 계곡에 전시돼 있는 석조물들은 소나무·단풍나무 및 주위 산과 멋진 조화를이루고 있다. △가는길:영동고속도로 양지 나들목을 나와 우회전한 후 500m 떨어진 양지사거리에서 다시 우회전하여 1.7km 가면박물관이 나온다. △입장료:어른 5,000원,청소년 3,000원,어린이 2,000원.단체(30명 이상)는 어른 3,000원,청소년 2,000원,어린이 1,000원. △개관시간:오전 9시∼오후 6시(겨울은 오후 5시).연중 무휴. 전화:031-321-7001.
  • ‘즈믄둥이’붐…출산율 8년만에 증가

    새 천년이 시작되면서 ‘즈믄둥이’의 출산이 크게 늘어 지난해 출산율이 8년만에 증가했다. 출생자와 사망자의 차이인 자연증가인구는 38만9,000명으로 0.8%의 자연증가율을 나타냈다. 통계청은 23일 이같은 내용의 ‘2000년 출생·사망 통계결과’를 발표했다. [출산율 8년만에 증가] 지난해 태어난 출생아는 63만7,000명으로 99년보다 2만1,000명이 늘었다.조출생률(인구 1,000명당 출생아수)은 13.4명으로 0.2명이 증가했다.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임신할 수 있는 기간에 낳는 평균 출생아수)은 1.47명으로 99년 1.42명보다 약간 높아졌다. 조출생률과 합계출산율은 지난 92년 매년 감소세를 보이다8년만에 다시 증가했다.새 천년을 맞아 둘째아를 낳으려고출산시기를 조절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사망률,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중 남자 6위,여자 12위] 사망자는 24만7,000명으로 하루 평균 678명이 숨졌다.조사망률(인구 1,000명당 사망자수)은 5.2명으로 전년과 같았다. 김성수기자 sskim@
  • ‘관람불가’ 미성년 연령 논란

    청소년의 성인 공연물 관람금지 연령을 올리는 문제를 둘러싸고 정부내 논란이 일고 있다. 규제개혁위원회는 23일 문화관광부가 제출한 공연법 개정안을 심의,성인공연물 관람금지 연령을 현행 18세 미만에서 청소년보호법상의 연(年) 나이 기준 19세 미만으로 일치하도록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규제개혁위는 “그동안 청소년 연령이 개별법마다 달라 법적용시 혼란이 야기됐다”면서 “앞으로 청소년 연령을 ‘연 나이 19세 미만’으로 통일시켜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규제위는 청소년보호법,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식품위생법,공중위생법 등 7개 법령의 청소년 나이를 연나이 19세 미만으로 정리한 바 있다. 그러나 문화관광부는 “청소년의 나이를 상향 조정할 경우관람객 감소로 문화 예술공연 산업의 위축이 우려된다”며반대하고 있다.더구나 청소년 나이를 올리는 것은 청소년들의 정신연령이 높아진 것을 감안하지 않는 시대착오적 생각이라는 설명이다. 문화관광부는 그동안 관련단체의 ‘수입감소’에 따른 대책 등에 대한 압력을받아왔다. 하지만 논란은 앞으로 국회에서도 계속될 전망이다.이를 다룰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도 대부분 문화관광부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규제개혁위의 안이 원안대로 통과될지 여부가 관심사다. [연나이] 생일로부터 다음해 1월1일을 지난 횟수만큼을 나이로 세는 방법으로 현재 연도에서 출생연도를 뺀 나이다. 최광숙기자 bori@
  • 소청심사위원 권오룡씨·충남 행정부지사 이명수씨

    정부는 22일 1급 상당 소청심사위원회 위원에 권오룡(權五龍·49·행정고시 16회) 충남도 행정부지사를 임명했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출생한 권 위원은 서울 동성고,고려대법학과를 졸업하고 총무처 인사과장, 행자부 복무감사관,행정관리국장 등을 역임했다. 충남도 행정부지사에는 이명수(李明洙·이사관) 국무조정실 안전관리개선기획단 부단장이 임명됐다.
  • 중견탤런트 안병경씨 무속인 내림굿 받기로

    배우 겸 탤런트 안병경(安炳京·53)씨가 22일 무속인으로변신한다.안씨는 이날 낮12시 경기도 성남 남한산성의 ‘고골굿당’에서 무속인 최기의씨로부터 전통 내림굿을 받는다.안씨는 20일 “최근 ‘달마’ 그림에 심취하다 보니 우리나라 전통무속의 실체를 몸소 체험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일어 무속세계에 직접 몸을 던져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충남 논산출생으로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그는 67년 TBC TV 공채 5기로 연기생활을 시작해 TV드라마 ‘삼포가는 길’‘초원의 빛’‘용의 눈물’,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서편제’‘창’등에 출연한 중견연기자이다. 윤창수기자 geo@
  • 충남의대병원장 이준규 교수

    교육인적자원부는 20일 신임 충남대 병원장에 이준규(李俊揆·53) 충남대 의대 교수를 임명했다.이 원장은 대전 출생으로 74년 충남대 의대를 졸업,충남대 병원 정형외과 과장,진료처장 등을 지냈다.임기는 2004년 8월까지.
  • [사설] 출산율 저하 막으려면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어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1999년 현재 우리 나라의 여성 1명당 가임기간(45세까지)의 평균출생아 수는 1.42명으로 세계 평균 1.53명보다 낮다.이대로가면 2015년부터 인구감소가 시작된다.출산율 하락은 평균수명 연장과 더불어 인구 노령화를 재촉한다.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은 1995년 전체인구 5.9%에서 꾸준히 상승해 2050년이면 24.7%에 이를 것이라는 예고다.따라서 노인 1명에 대한 노동 인구도 1995년 12.6명에서 2050년이면 2.4명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출산율 하락은 노동인구 대비 부양인구 증가로 인해 연금기금운용에 심각한 차질을 빚는다.정년 연장으로 노동인구의 부양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이는 기술집약형으로 바뀌는 고실업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이다.더 중요한 것은 출산율 하락이 20∼30년 후 노동인구의 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곧 생산력 저하로 연결된다는 점이다.기술집약형 노동 시대에는 노동의 질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인구의 감소는 노동력의 양과 질 모두의 감소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국력의감소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따라서 정부가 이제서야 출산율 하락을 막기 위한 정책 마련에 나선 것은 늦은 감이 있다.인구정책은 20∼30년 후에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위험신호를 보고 대안을 마련하는 것은 이미 때를 놓친 셈이다. 출산율을 높이려면 출산 및 보육수당,직장 보육시설 등 여성 복지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여성이 아이를 낳아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마련되지 않는 상태에서 출산 장려란 실효성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여성의 자율적 선택권을 막는 억압 구조가 되기 쉽다. 출산율이 생산력,그리고 국력과 직결되는 것이 사실이라면모성보호를 위한 비용이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데 이론을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따라서 논란이 일고있는 월 10만원의 육아휴직수당 문제도 그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秘史] (4)식민지 저항적 지식인

    근대 여성작가 중 가장 치마폭이 넓었던 최정희는 유파와연령을 초월하여 문우들과 교유했는데 그 중 소중한 것으로는 국제 입찰에 부칠만한 중량급 서간문도 포함되어 있다. 바로 김사량(金史良,본명 時昌,1914∼1950)의 편지이다.일본에서 더 유명한 김사량은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이 어떻게 살아야 했던가를 일깨워 준 근대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한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다.평양에서 1914년에 태어난 그는 평양고보 재학 중 배속장교와 일본인 교사 및 그들에 동조하는 조선인 교사 배척을 위한 동맹휴학을 주도해 퇴학처분을 받고는 형 시명(時明,교토제대 법학부 졸업 후 사법·행정 양과 합격,홍천·평창 군수,조선인 최초의 전매국장,8·15 후에는 중앙산림조합연합회 이사장 등을 지냄)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밀항했다.학창시절에는 연극에 관심이 많아 신협(新協)극단과 연계,장혁주(張赫宙)가 각색한 ‘춘향전’의모국 순회공연에도 참여하는 등 많은 활동을 펼치다 여러이유로 경찰에 자주 구금 당했다. 결혼 직후 하이네에 관한 논문으로 도쿄제대 독문학과를졸업(1939)한 그는 잠시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로 근무하면서 서울의 하숙집에서 출세작 ‘빛 속에서’를 썼다.이 무렵에 아마 서울의 잡지사와 문인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을것인데,최정희와의 인연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도쿄제대 대학원 입학허가를 받은 그는 6월 아내와 도일,일본과 한국 문단을 잇는 가교 역할을 맡게 된다.편지에서 김사량은 매우 조심스럽게 최정희의 ‘지맥’을 추천했으면 싶었으나,이미 일본의 다른 출판사(赤塚書房)가 추진하고 있던조선문학 선집에 관여하는 장혁주가 손을 댔기에 ‘흉가’로 하는 게 어떠냐고 묻는다.몇 차례 오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편지는 최정희가 자신의 소설을 일본에 소개되기를 희망한데 대한 답신 내용이 대부분이다. 장혁주는 누구였던가.김사량보다 먼저 등단한 그는 잡지사,문인 등을 후배에게 소개시켜 주는 역할을 했던 재일조선인 문단의 대선배였다.1905년 대구에서 출생한 그의 본명은 은중(恩重),창씨개명은 노구치 가쿠주(野口赫宙,첫 창씨명은 野口이었음)로,불륜사건에 연루되어 도일,본처와 이혼,일본여자와 재혼,8·15후 아예 일본으로 귀화해 버린 인물이다. 그는 초기의 민족적인 성향과는 달리 친일화 정도가아니라 아예 혈통까지도 일본인화 해야된다는 각오로 일본여자와 결혼을 감행한 친일문학인 가운데서도 발군의 활약을 보여주었다.1952년 10월,6·25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변장한 채 일본 ‘부인구락부’ 특파원 신분으로 입국하여 취재활동을 한 뒤 일본으로 돌아가 한국을 힐난하는 글을 써서 당시 문학단체가 법석을 떨게 했던 장본인이다.그는 아예 일본문학보국회에 가입하여 활동에 열을 올렸던 인물로한국을 영원히 등진 조국상실자가 되었다. 최정희의 ‘지맥’은 평론가 한식(韓植)이 번역을 맡은 것으로 드러나며,편지에 직접 쓰지는 않았지만 김사량은 ‘모던 일본’에다 이광수의 ‘무정’을 번역했는데,아마 이 사실은 고의로 언급하지 않은 것 같다.김사량은 ‘조광’에장편 ‘낙조’(1940.2∼1941.1)를 연재하면서 모국어 문제에 대하여 매우 겸허하게 최정희의 조언을 구하고 있지만사실 그는 ‘양국어 작가’로 손색이 없었다.그가 ‘삼천리’에 발표한 글로는 잡문 ‘조선문학과 언어문제’(1941.1)와 소설 ‘지기미’(1941.4)인데,이 두 사실을 편지에 대입해 읽으면 그와 최정희의 교유가 대략 1939∼1941년임을 알 수 있다.중요한 사실 한가지를 짚고 넘어가자.‘문예춘추’는 1935년 일본최고의 아쿠다가와 (芥川)문학상을 제정했는데,조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김사량이 이 상의 후보작으로 뽑혀 일약 일본문단의 유망주가 되었다(1940.2).1941년12월 9일 새벽 진주만 기습에 따른 사상범예방구금법으로감금당했고,유명세만큼 그에게 부하되는 역사적인 책무도커서 친일을 강요받았으나 거절했다. 일본 문학인들의 구명운동으로 이듬해 1월29일 석방된 그는 이내 귀향,조용히 지내려 했지만 강제동원을 피할 수 없었다.이효석(1942년 작고)이 있었던 평양 대동공업전문학교 교사가 된 건 1944년 4월.강제 친일에 동원되면서도 일본문인들과의 술자리에서 격렬하게 식민통치를 비판하던 이투사는 1945년 2월 조선출신학도병 위문단으로 중국에 파견,일정을 마친 뒤 탈출,화북조선독립동맹에 참여하여 떳떳하게 해방을 맞았다.이때의 탈출 투쟁기는 ‘노마만리(駑馬萬里)’란 제목으로 남아있다. 1945년 11월 서울에서 그의 희곡 ‘호접’이 단성사에서 공연되는 등 광복 후 한국 좌익문단의 정화에 일조했던 그는이듬해 평양으로 돌아가 6·25때 종군작가로 참가,후퇴 도중 원주 부근에서 지병인 심장병으로 낙오된 채 행방불명된 게 그의 최후다(안우식 지음,심원섭 옮김 ‘김사량 평전’ 참고).김사량은 자신의 친일행각이 강제에 의한 것임을 문학인들에게 공공연하게 실토했던 점과 모험을 무릅쓴 극적인 탈출로 민족해방투쟁에 나섰던 문학인이었다는 점에서식민지시대 저항적 지식인의 전형으로 세계 저항문학사에손색이 없는 작가이다. 극적인 생애는 한설야(韓雪野)도 마찬가지다.기생 이름 같은 낭만적인 필명과는 달리 1900년 함주(함흥)에서 태어난그는 1976년 북한에서 사망할 때까지 영욕을 두루 겪은 비극적인 문학인의 한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인물인데,유명한 한의학자 이제마(李濟馬)의 제자로,홍범도(洪範圖)등의 의병활동을 무마시키라는 일제의 강요를 거절코 고향을 떠나 피신했다.한설야는 경성제일고보에다니다가 서모(庶母)와 불화로 귀향,함흥고보로 전학,3·1운동에 관련되어 구금 체험을 한다.중국,일본 등지를 떠돌거나 유학 한 뒤 ‘조선문단’으로 등단한 그는 서울에 머물렀다가(1925∼1926),아버지가 많은 빚을 남기고 죽자 중국 동북지방으로 이주했다가 이듬해(1927) 귀국하여 카프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문학과 사상 연구회,‘한설야 문학의 재인식’).한설야가 조선일보에 입사한 것은 1932년경인데 함남지역에 특파됐다가 본사에 왔을 때는 경영권 문제로 매우 복잡 미묘할 때였다.창간 초기부터 경영진의 시국 순응 성향과 편집진의 민족의식 지향이 갈등관계를 유지했던조선일보는 계속 사주가 바뀌면서도 반일논조 때문에 정간과 필화가 잇따랐다.신간회(新幹會)운동으로 안재홍(安在鴻)사장이 구속되는 등 혼란을 틈타 고리대금업을 하던 채권자 임경래(林景來)가 조선일보 경영권을 주장하여 조병옥(趙炳玉)·주요한(朱耀翰)의 정통 편집팀과 대결,두 개의 조선일보 발행이라는 희극이 연출되다가 방응모(方應謨)가 참여,부사장을 거쳐 발행인이 된 것이 1933년 7월(사장은 조만식).이 혼란 속에서 한설야는 학예부에 근무하며 노동 현장소설의 신기원이란 평가를 받은 이북명(李北鳴)을 발굴하여 ‘질소비료공장’을 연재 중단 당하는 등 카프노선에 충실한 언론인으로 활동한 것 같다. 당시 정황을 한설야는 단편 ‘세로(世路)’에서 너무나 자세히 언급하여 한국언론사의 충실한 증인 역할을 해주고 있다.소설은 자신이 회사로부터 해직 통고서를 받는 장면부터 시작하여 왜 그렇게 됐는가에 대한 자초지종을 회상하고있다.등장인물은 모두 실명이지만 사정상 이니셜을 썼는데,쉽게 알만한 인물들이 그대로 나온다.새 경영진은 기구와인사 개편을 통하여 그때까지 신문사의 주류였던 M일파(투옥 경력자 등으로 묘사)를 약화 시키는데,이 과정에서 인간적인 배신감과 사회적인 공분이 폭발한 한설야는 술자리에서 변절한 동료의 뺨을 후려친 게 화근이 되어 권고 사직을 당했다. 조선일보 사사(社史)에 의하면,1934년 1월 1일자로 대폭적인 인사이동이 있었는데,특히 이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가된 M(문석준)의 좌천도 바로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미뤄 볼 때 한설야의 퇴직도 이 무렵일 것이다.이 문석준은 1943년 함흥에서 한설야와 함께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한설야는 1944년 5월 석방) 당하는 주인공이다.1934년은 그에게 매우 불행한 한 해였다.해직 후 8월 그는 카프 2차사건으로 구속됐기 때문이다.달필인 한설야의 편지는 함흥에서보낸 것인데,아마 1941∼2년초 경 ‘삼천리’가 ‘대동아’로 개제하기 직전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최정희가 한설야에게 잡지에 재수록할만한 짧은 작품을 추천해 달라는 청탁에 대한 회답 형식인 이 편지에서 그는 ‘강아지’와 ‘능금’을 천거했다.앞의 작품은 ‘한설야 단편집’에 실려 있는데,그게 1941년 7월에 나왔으며,뒤의 것은 1940년 간행 단편집 ‘귀향’에 게재된 것으로 볼 때,그리고 ‘대동아’개제가 1942년 3월부터였음을 감안하면 이 편지가 씌어졌던 시기는 밝혀질 것이다.이 무렵 그는 함흥에서 서점·극장·인쇄소 등에 손을 대는 등 생업과 창작에 전념하면서 해방의 날을 준비하고 지냈다.여담이지만 한설야는 광복 후북한에서 ‘김일성장군 전기’를 비롯한 여러 작품을 쓴 한편 소련(1947),평화옹호 세계대회 참석차 프랑스(1949) 등지를 방문하는 등 중추적인 역할을 하다가 1962년 비판당한 후 불행한 최후를 마치고 작품도 판금,아직도 전면적인 해금이 안된 상태에 있다. 임헌영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 출산억제 정책 장려로 바뀌나

    여성부는 오는 24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출산율 1.42 긴급 토론회’를 열어 출산율 저하 대책에 대한각계 의견수렴에 나선다. 이번 토론회는 정부가 그동안의‘출산억제’정책 기조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의미에서 주목된다. 이와관련, 정부는 출산율 하락을 막기 위해 출산 및 보육수당 지급, 보육시설 이용 쿠폰지급 제도 도입 방안 등을검토하고 있다. 토론회 주제발표가 예정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승권 인구가족팀장은 “출산율 하락은 장기적으로 노동력 부족은물론 노인층 증가에 따른 연금기금 고갈 등 갖가지 문제를초래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1.42명인 출산율을 적어도 1.60명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하고있다. 지난 99년 우리 나라의 출산율(여성 1명당 가임기간 중평균 출생아 수)은 전세계 평균치(1.53명)를 밑도는 1.42명으로 90년 1.59명을 기록한 이래 꾸준히 감소 추세를 보여 왔다. 여성부 김애령 과장은 “출산율 하락을 막기 위해 출산및 보육수당을 지급하는 방안과 기업이 회사에 보육시설을만드는 대신 민간 보육시설을 이용하도록 쿠폰을 지급하는유럽식 ‘바우처’(voucher) 제도의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있다”고 밝혔다. 최여경기자 kid@
  • 위안부 生母 찾으러온 조선족

    50여년만에 모국을 찾은 중국 조선족 동포가 일본군 위안부 출신 생모(生母)를 애타게 찾고 있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에 사는 조선족 동포 윤영식씨(57)는 젖을 떼기도전에 헤어진 생모를 찾아 지난 달 4일 한국에 왔다. 윤씨의 출생은 비극적이다.어머니는 일본군 위안부였고 아버지는 일본군 장교였다.어머니는 윤씨를 1944년 12월 헤이룽장성 일본 관동군 장교 위안소에서 윤씨를 낳았다. 해방이 되고 아버지가 일본으로 돌아가자 어머니는 원치않은 임신으로 낳은 자식을 조선족 양부모에게 맡겼다.윤씨는 7살 때 이웃 주민들로부터 태생의 비밀을 알았으나 자신을 아껴주는 양부모에게 누가 될까봐 생모에 대해 묻지 않았다. 윤씨가 지난 97년 양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난 뒤 처음 생모를 찾아 나섰다.청와대에도 청원서를 냈으나 ‘정부가 아는 위안부 출신중 찾는 이가 없다’는 대답만 되돌아와 직접 고국을 찾아왔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생모를 낯선 고국에서 찾기는 막막할 뿐이다.생사조차 알아내지 못해발만 구르고 있다. 윤씨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도 수소문하고 있지만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윤씨는 “비자 체류기간이 3개월밖에 되지 않아 곧 중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우연히라도 어머니를 만나고 싶다”며눈시울을 적셨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인간복제 불완전성 논란

    이탈리아의 수정 전문의 세베리노 안티노리 박사와 미국켄터키대학의 파보스 자보스 박사,종교집단 ‘라엘리안’의브리지트 부아셀리에 박사 등 3명은 7일 미 국립과학원(NAS) 인간복제 심의위원회 토론회에서 인간복제에 담긴 무한한 ‘과학적 혜택’을 내세우며 수주 내로 200쌍의 불임부부에게 무료 복제시술을 강행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이에 따라 ‘복제인간의 유전적 결함’을 주장하는 반대론자들과의 사이에 인간복제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게 펼쳐지고있다. ■논란의 초점= 인간복제의 윤리적인 문제 외에도 복제기술과 복제 결과의 완전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 논란의초점이 되고 있다.현실적으로 수정 과정에서 실패율이 높아복제아기가 유산·사산되거나 신체장애를 안고 태어날 위험성이 크다는 것. 실제로 4년 전 영국 스코틀랜드의 PPL세러퓨틱스사(社)가세계 최초의 복제양 돌리를 만들어 낸 이후 세계 곳곳에서돼지,소 등 각종 동물복제가 이루어졌지만 수정 과정에서실패율이 높고 태어난 복제동물이 완전치 못하다는 사실이드러나고 있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동물복제 전문학자인 루돌프제니쉬 박사는 “완벽한 정상배아 선별 방법이란 없다”면서 “정상적으로 보이는 복제배아도 비정상 요소를 가지고있을 수 있으며 복제단계에서 이를 포착해내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또 복제동물이 정상적으로 태어날 확률은 1∼5%이며 그나마 나중에 여러가지 출생 결함으로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을 가능성이 많다고 밝혔다. 하와이대학의 야나기마치 류조 교수도 “복제동물은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지닐 수 있으며 이는 초기에는 나타나지않기 때문에 인간복제를 실험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티노리 박사 등의 입장은 일부 유전자에 결함이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인간복제를 포기해선 안된다는 것이다.이들은 “정상적으로 태어난 인간도 일부 유전자가 잘못되는 일이 많으며 나중에 이때문에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인간복제는 개인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남은 과제= 일단 인간복제 기술의 ‘안전성’을 확보해야하지만 이 과정에서 불거질 ‘윤리성’과관련한 문제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복제양 돌리를 만들어 낸 앨런 콜먼 박사는 “동물 복제기술을 점점 개선되고 있으며 복제실험을 하면 할수록 복제기술을 완벽하게 할 수는 있지만 인간복제를실험하는 자체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유럽헌법은 인간복제를 금지하고 있으며 미 국립과학원은 오는 9월말까지 인간복제 금지 여부에 대한 보고서를작성,상원에 제출할 예정이다. ■인간복제란= 남자의 세포에서 채취한 핵을 유전물질이 제거된 여성의 난자에 주입해 전기충격 등의 방법으로 수정시킨 뒤 배아로 분열하게 한 다음 이를 자궁에 착상시켜 출산시키는 기술을 말한다. 이동미기자 eyes@
  • 김정일 러시아 방문 뒷얘기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8일(현지시간) 크렘린보석박물관, 무기고 등 모스크바 시내관광을 마친 뒤 오후5시47분 평양으로의 귀환길에 올랐다. 김 위원장의 러시아방문에 동원된 경호인원은 10만여명. 이번 방문은 ‘24일간의 길고 긴 열차여행’이라는 기록 외에도 최다 경호원동원행사로 모스크바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김정일의 신변보호= 김 위원장이 이용한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총 길이는 9,288㎞.러시아는 김 위원장의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북한의 입장을 고려,100m마다 경찰 1명씩을 배치했다. 궤도를 따라 도열된 사람 수만 모두 9만3,000여명.여기에김 위원장의 특별열차가 머문 역마다 동원된 경찰,선발 경호대 등을 합치면 러시아가 경호에 투입한 인원은 10만여명에 이른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같은 철통 경호에도 불구,김위원장이 7일 저녁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오는 도중 선로에놓인 콘크리트 판을 피하기 위해 특별열차가 비상 정차하는 소동이 빚어졌으며 앞서 시베리아를 가로지르는 동안에도 돌이 수차례 열차에날아들었다고 인테르팍스 통신이 8일 보도했다. 이 통신은 특별열차가 7일 트베르 마을 근처에서 긴급 정차했으며 비상 대책팀이 열차가 콘크리트에 부딪히기 전에정지시켰다고 설명했다. 수사 당국은 단순한 훌리건의 짓인지,아니면 김 위원장을 노린 조직적 시도인지 경위를 조사중이다. ■정상회담 관례에 익숙지 않은 김정일= 김 위원장의 러시아방문시 통상적인 정상회담의 관행을 따를지 여부가 큰관심사였다.북한이 종전보다 국제사회의 규칙을 따르려고애썼지만 여전히 부족했다는 평가다. 양국 정상 주최 만찬에서는 주최자가 만찬사를 읽는 것이관례. 그러나 지난해 7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 당시만찬사를 읽은 사람은 김 위원장이 아닌 백남순 외무상이었다.이에 푸틴 대통령도 배석한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외무장관이 대독하도록 긴급 지시했다는 것. 이번에 푸틴 대통령 주최로 열린 만찬에서 푸틴 대통령의만찬사 낭독에 맞춰 김 위원장이 만찬사를 읽기는 했지만준비된 내용을 끝까지 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특히 양국정상회담 이후 관례적으로 갖는기자회견도 이타르타스통신과의 서면 인터뷰로 대체했다. 이타르타스가 질문서를 전달한 것은 지난해 말.푸틴 대통령이 지난 2월 서울을 방문하기에 앞서 김 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김 위원장은 이에 대한 답을 북·러 국경을 통과하면서 줬다. ■실질적 소득 없는 북한= 북한과 러시아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구체적 성과를 거뒀다기 보다는 서로의 국제정치적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한바탕 ‘쇼’를 벌였다는 분석이유력하다. 모스크바 선언에 포함된 주한미군 철수는 북한측의 일방적 요구에 따른 결과라는 게 현지 외교 소식통들의 평가다.북한과의 새로운 관계개선을 추진하는 러시아가 북측의요구를 단호히 거부하지 못한 셈이다.푸틴 대통령은 지난2월 방한때는 주한미군 문제에 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때문에 문구도 ‘이해했다’는 외교적 수사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반면 러시아는 미국과의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 협상에서 우월한 위치를 점하게 됐다는 게 러시아 언론들의 일치된평가다. 문제는 20일 이상 러시아를 여행하고도 철도나 군사협력협정 등 주요 분야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김위원장에게 ‘상징적인 선물’이라도 건네야 한다는 러시아 정부의 고민이다.이에 따라 김 위원장의 출생지이자 김일성 주석의 항일유적지인 하바로프스크에 박물관을 지어주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수천톤의 식량을 원조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모스크바 전경하특파원 lark3@
  • 북한행정체계 주요내용/ 北 모든 행정문건 ‘비밀‘ 분류

    행정자치부가 한국행정연구원 등에 용역을 의뢰,연구 조사한 ‘남북한 행정체제 비교’보고서는 총 2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연구보고서는 정부조직의 구성 및 운영 등 총 8개 문항으로 나눠 각 분야별로 자세하게 분석했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이후 급진전되던 남북관계가 최근들어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지만 곧 고위급 대화의 물꼬가 다시 트일 전망이다.그런 관점에서 세부적 분야까지 북한의 행정체계를 분석,우리와의 유사점 및 차이점을 살피는 작업은 상당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겨진다. ■정부 의정=북한에서의 모든 행사는 김정일의 재가가 있은 후에 실시되며 기념일 등의 행사도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명절도 김일성·김정일 생일 등 이른바 ‘사회주의 8대명절’이 가장 큰 행사로 이날은 휴무일이다.그러나 인민들은 명절이 쉬는 날이라기보다 행사에 참여하는 날로오히려 고된날로 인식돼 있다. 국가 표창의 경우 퇴직후 사회보장 대우를 달리하는 것으로 매우 중요시되고 있다.최상의 경우 쌀 600g에 월 60원의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기 때문에 정년퇴직전에 이를 보장받기 위해 무단한 노력을 하게 된다. ■문서작성 관리 및 보존=행정기관간의 문건은 모두 비밀문건으로 분류하며,상부의 공문에는 열람대상자와 반납날짜를 명시해야 한다.행정기관별 공문서는 많지 않으며 과별 10건 미만으로,작성은 아직도 손으로 쓰는 것이 주종을이루고 있다. 기록보존은 지난 47년부터 제도를 발전시켜 상당히 발전한 것으로 나타났다.따라서 모든 기록은 전국의 일원적 집중관리체제로 운영되고 있다.중앙인민위원회 직속기구로국가문헌국이 설치돼 여기에서 총괄하고 있다.관리역시 전쟁에 대비,산간(山間)에 설치돼 있으며 서고벽 두께는 50㎝이상을 유지하고 있다.기록물의 공개는 30년 경과후 개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인사제도=북한에서는 공무원이라는 용어자체가 없다.‘국가가 정한 기준자격을 가지고 일정한 조직체나 기관,집단 등에서 일하는 일군’으로 정의한 ‘간부’라는 용어를사용하고 있다. 인사전담부서는 중앙당 비서국 조직지도부·간부부,지방당 조직부,기타 인사부서로 구분된다. 남한의 공무원 임용은 시험성적,근무성적 기타 능력의 검증에 의해 행해지지만 북한은 김일성 부자에 대한 충실성을 척도로 간부들을 평가하고 선발하고 있다.특히 파벌배격,노·장·청 배합,남녀평등,노동계급 우대라는 큰 틀에서 움직인다. 한때는 함경도출신 우대정책을 썼으나 현재는 김일성종합대학출신과 평양출신 들이 많이 등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외국유학자는 상대적으로 우대받지 못하는 것으로나타났다. 신분관리도 철저하다.신원조회는 사회안전성에서 하는데현장확인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주민등록문건은 철저한 비밀로 엄격히 제한돼 있으며 누설되면 본인이나 주민등록담당자 모두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현지확인을 할 때는본인 가족 친척들의 출생지까지 직접 찾아가 증인들을 만나 확인하고 신원보증을 받아내고 있다. 공직자의 자리 이동은 지방에서 평양으로 옮기는 일이 매우 까다롭게 돼 있다. 봉급은 98년 기준으로 과장이 110원,지도원은 85원,중좌(중령)140원 정도 계급별로 받고 있다.북한의 공식적인환율을 1달러에 2.2원으로 나타났으나 암거래로는 1달러에 200원이나 된다. ■정부조직의 구성 및 운영=남한의 정부는 3권분립의 원칙아래 입법부,사법부, 행정부로 구성되지만 북한은 내각과노동당으로 이원화됐다. 그러나 북한 헌법에 ‘조선민주주의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령도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고 명시, 노동당이 사실상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 내각은지난 98년 41개 부처에서 경제부처를 통합,현재 33개로 축소됐다. 노동당은 중앙조직에서 지방조직까지 위계성을 지니고 있으며 최하 기층조직인 당세포원까지 망라하고 있다.노동당에서도 당 비서국이 실질적인 정책 결정기관이다.비서국은당 간부인사에서부터 선전, 사상사업 및 대남사업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지방행정체계도 남한은 특별시·도,시·군·구,읍·면·동의 3층체제로 돼 있는 반면 북한은 특별(직할)시·도와시·군·구역으로 2계층으로 돼 있다.현재 북한의 행정구역은 평양특별시,남포직할시,개성직할시,9도,25시,147군 2구 및 38구역으로 돼 있다.하부단위로는 149읍,3,311리,896동,251노동지구로 돼 있다. ■지방재정 및 세제=북한은 세금이 없는 나라라고 대외에공표하고 있다.따라서 국가재정은 기관 및 기업소별 생산목표를 설정,이들기관들로 부터 원천징수를 통해 충당하고있다. 북한은 현재 4대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식량난 에너지난 외화난 생필품난으로 극심한 경제상황에 처해 있다.식량정책도 배급제도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북한인민들은세금을 내지 않아도 외국투자기업인 경우 세금을 내야한다. 기업소의 임금총액과 월수익이 과세 대상이 된다. 북한의 지적(地籍)관리는 개인 소유의 경계개념이 아니고국토의 능률적 활용을 위한 행정구역을 설정하는데 의미를지니고 있다. 때문에 인민간 갈등은 없지만 행정과 군과의관계에서 가끔 갈등을 빚는다. 이때 필지단위는 평과 정보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사기업도 존재하지 않아 기업소들은 모두 국가 기업으로분류된다.그러나 남한의 공기업과는 성격이 다르다.국가기업은 성격과 규모에 따라 등급을 정해 구분,관리하고 있다.국가기간산업은 특급으로 분류,중앙정부에서관리하고 경공업등은 지방인민위원회에서 관리한다. ■민방위제도 당위원회=민방위부가 담당하는 북한의 민방위대는 고등학교 졸업이나 군 제대 후에 편입되는 노농적위대,공장노동자 중심의 교도대,고교생으로 조직된 붉은청년근위대로 구성된다. 연 2회 동원훈련을 실시하며 15일동안 적위대 훈련소에 입소하게 된다.붉은 청년근위대도 방학기간을 제외한 15일동안 입소해 훈련을 한다.대원에게는 무기(소총)가 지급되며평상시에는 시군 구역내의 군부대·보안부 병기과에 보관한다. 우리나라의 인력동원은 민방위와 비슷하게 유사시에 대비한 것이지만 북한의 인력동원은 도로 건설,저수지 축조,국가적 건설사업 등에도 이용된다.이때 ‘당이 결정하면 한다’ 또는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강조해 사업을 실시하고 정부의 지원은 거의 없다. ■재난·재해대책 운영시스템=재난·재해에 대한 예방대책보다는 재난·재해발생시 대처요령에 대한 주민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재난·재해 발생시 최초의 발견자나 행정기관이 당비서에서 보고한 뒤 당비서 책임아래 주민 총동원체제로 대응한다.동원은 1차 군대,2차 행정위원회,3차 전 주민 순으로수립했다. 기본적으로 재난·재해에 대한 행정기관의 인식이 부족해실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대처능력이 미약하다는 평가다. 이는 북한 지역이 산업 발달이 비교적 덜 돼있어 인위적재난·재해 발생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 등에 대비한 관리가 조직화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소방조직·제도=업무는 인민보안성 호안국에서,인사사무는 당위원회 인사사업부에서 담당한다.그러나 소방과 경찰이 별도의 직류로 분류되지 않고 업무 배치에 따라 나뉘는식이다. 시·군 인민보안부 소속으로 우리의 소방파출소와비슷한 분주소를 설치했다. 그러나 소방장비는 구비돼 있지 않다. 소방훈련은 연 1∼2회 직장별로 모래주머니,갈구리,물통 등을 동원한 훈련을 실시한다. 소방설비에 대한 규정이 있지만 실제 운영상에 적용되는경우는 거의 없어 현실적이지 않다.예컨대 소화기를 갖추고 있어야 준공검사를 통과할 수 있지만 기업소나 대형건물의 경우 이웃 건물이나 기관의 소방장비를 빌려 검사를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홍성추 최여경기자 sch8@
  • [21세기 담론-생명을 말한다] (15)생태철학자 구승회 박사

    *””자연은 다스림 아닌 조화의 대상””. ●지구적 위기에 대한 철학의 책임론을 말할 때 언제,어디서부터 잘 못 됐다고 보십니까. 한 사람의 생각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듯 경험론이니 방법론이니 하는 것들이 모두 철학사의 연속선상에서 나왔다고 봐야 합니다.그러므로 어느 시점을 딱 잘라 말하기 어렵고 연원을 추적하면 플라톤,소크라테스 까지 올라 갈수 있겠지요.그러나 원인을 먼 곳에서 잡을수록 정확한 처방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따라서 가장 가까운데서 잡아야하는데 그렇게 보면 아무래도 18세기 계몽주의를 기점으로 잡아야 할것입니다.계몽주의는 베이컨의 ‘대지를 지배하라’는 말이함축 하듯이 자연에 대한 지식의 진보를 뜻 합니다.그 결과인류를 무지와 미신으로 부터 해방시키고 아는 것 만큼의 자유를 가져다 주었습니다.그러나 20세기를 지나면서 기독교철학을 바탕으로 한 현대문명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목자(牧者)적 역할이 강조되고 마침내 생태계 파괴라는 위기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자연을 다스리라’는 창세기의 히브리어 원전은 ‘지배’라는 뜻과 함께 ‘조화’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희랍철학의 영향을 받아 ‘지배 하라’는 제국주의적 해석만 전승됐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현대문명에 대한 책임론을 피해 보려는 기독교 학자들의 그런 해석이 있지요.그러나 베이콘이 ‘대지를 지배하라’고했을 때도 지식의 진보에 의한 자연을 유용하게 활용한다는의미로 쓰인 것이지 파괴 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마찬가지로 서양의 주류철학과 그에 기초한 과학기술이 휴머니즘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결과는 그렇게 나타 났습니다. ●‘지배’라는 단어가 베이콘의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았듯이 현대 서양철학 속에는 자연에 대한 인간,이교도에 대한기독교,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의식이 있다는 말입니다.이이분법적인 구별이 언제부터 스며 들었을가요. 아마도 그것은 피다고라스가 인도에서 수(數)에 대한 개념을 배워 온 것이 계기가 된 듯 싶군요.그 이후 분석적 시각이 생기고 자연을 패턴과 틀로 보기 시작 했으니까요,●생태철학은 어떤 경로로 싹이 텄습니까. 크게 두 흐름이 있습니다.하나는 1960년대의 신좌파 혁명이 좌절된 후 그 일부가 환경운동에 눈을 돌려 독일의 녹색당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또 한 흐름은 1980년대 중반 동유럽의 현실사회주의가 몰락 하면서 정통 좌파 철학이 자아비판끝에 찾아 나선 대안 입니다. ●마르크스주의에 생태철학으로 발전할 수 있는 요소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물론 그렇습니다.마르크스 역시 인간의 역사는 과학과 기술에 의해 진보한다는 진보 유토피아를 간직하고 있었으니까요. ●만일 현실 사회주의가 실패하지 않았으면 그 자아비판도없었을 것 아닙니까. 그러나 ‘정의’라는 측면에서 보면 마르크스주의가 한 발앞선 것은 사실입니다.그 감성이 자연과 생태계에 대한 개안으로 연결됐을 것이라는 유추는 가능 합니다. ●그렇다면 철학사적으로 생태철학의 연원은 어디가 됩니까. 마르크스 철학이 주류 철학과 대립했지만 헤겔철학의 탯줄에서 나온 것처럼,생태철학도 칸트로 대표되는 이성철학이뿌리라고 봐야지요.물론 생태주의도 여러 가닥이 있습니다. 심층생태론에서 부터 윤리의 범위를생태계 전반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환경주의,환경의 위기는 관리의 잘못에서 기인한다는 환경관리주의 등이 그것인데 어쨌든 베이컨과 데칼트로부터 시작된 주류철학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상생과 조화를 강조하는 동양철학이 인간과 생태계 위기를 자초한 현대문명의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 나고있지 않은가요. 최근에 와서 여성주의자,생태주의자들에 의해 “‘이성’은 마땅히 폐기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 되고 있습니다.설령 ‘이성’이 고전적 의미의 자유주의 정신에서 출발했다 할지라도 세계화 시대의 다문화주의를 거부하고 수구적이고 독단적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는 겁니다.동양철학은 이같은 서양 주류철학에 대한 불신으로 나타나는 몇가지 조류중 하나 입니다. ●그 몇가지 조류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첫째 니체적 비합리주의를 들수 있습니다.니체는 서양의 철학적 사유 전통과 기독교 전반에 만연된 주체의 자아확대를비판 하면서 이성을 “영리한 동물들이 발명한 하찮은 별에불과하다”고 경멸 했습니다 그러나이성 경멸은 문화적 퇴폐를 낳을 뿐 대안이 못 됩니다.둘째 몸,감성,환상,욕망에충실 함으로써 자연에 더 가까이 닥아 간다는 이론 입니다. 이성의 반대편을 주목함으로써 이성의 위기를 넘어서려는 것입니다.셋째 포스트모던적 허무주의 입니다.이들은 문명은더 이상 이성적 성취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이성과 과학기술에 대한 믿음은 해체돼야 한다고 말합니다.그러나 포스트모던니즘은 사회변혁을 위한 기반을 제공해 주지 못하고 소외집단이 겪는 좌절감에 대해 나르시스적 모험을 제공해 줄뿐입니다.넷째 명상,요가,주술 등 신비주의에 뛰어드는 방법이있습니다.이들은 서구문명의 이성,합리성 만으로는 문명적 위기를 극복할 수 없으며 동양적 전통이 그 대안이라고 말합니다.그런데 여기에는 지적 책임감이 결여돼 있습니다.이들은 직관과 영성에 대한 신념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성을 활용한 합리적 탐구가 불가능한 반문명적 성격이 강합니다.이는 결과적으로 자연을 찬미한 나머지 반인간주의로되기도 쉽습니다. ●생태계 유기체 이론이나 지구를하나의 생명체로보는 가이아 이론은 어떻습니까. 동양철학도 이와 유사한데 이들의 맹점은 모두가 돈오(頓悟)의 경지에 들어 가야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태철학의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이성철학을 보완해서 이성철학이 봉착한 한계를 극복하는것입니다. ●어떤 부분을 어떻게 보완하는 건가요. 우리는 우리가 봉착한 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우리에게 자유를 확대시켜 준 이성철학의 성취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생태철학은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계발해 준 이성에 의지해 인간 이외의 생태계에 도덕적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이를 신휴머니즘이라고할 수 있는데 이는 미신과 공포로 점철된 신화시대로 복귀도 아니고 탐욕과 지배로 얼룩진 현대를수동적으로 받아들이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같은 뉴휴머니즘이 구현된 사회는 어떤 형태가 될까요. 인간과 생태계의 생존을 위협하는 약탈적 사회는 ‘나’를주체로 세우고 그 이외의 인간과 자연 모든 것을 대상화 하는 데서 생깁니다.따라서 현대문명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나’를 ‘우리’로 바꾼 ‘생명공동체’라야 합니다. ●그 생명공동체의 일원으로 인간 이외의 생명체도 포함 됩니까. 생태철학은 생태계에 대한 인간의 도덕적 의무를 강조할 뿐입니다.오늘의 문제는 인간과 생태계의 갈등에서 생긴 것이아니라 인간 사회의 모순에서 생긴 것입니다.따라서 문제의해결도 인간사회를 조화롭게 해결함으로써 생태게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는 것이 생태철학의 관점입니다. ■구승회박사 약력. ▲경북 안동 출생. ▲동국대학교 동 대학원 졸업(철학). ▲독일 다름슈타트대학교 철학박사.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 ▲현재:동국대학교 윤리학과 교수. ▲저서:논쟁 나치즘의 역사화’(1994) ‘에코필로소피’(199 5)‘생태철학과 환경윤리’‘생명공학과 생명윤리’(공저,19 01). ▲역서:‘칸트와 더불어 철학하기’(1993)‘칼마르크스의 역 사이론’(1987)‘환경윤리학의 제문제’(1997). ■철학의 환경파괴 책임론. 지구가 숨쉬기 힘들고 물마시기 어려운 곳으로 전락하고 있다.생태계 파괴는 이제 더 이상의 파괴를 막으려는 안간 힘에도불구하고 사람들은 인류가 다시 원시 생활로 돌아가지않는한 불가능 하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철학은 오늘날 지구적 위기에 대해 어떤 해답 줄 수 있는가.이는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그리고 훼손에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과학·기술의 책임이기도 하다.실제로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 이변이나 식수 오염이 가져올재앙에 대해 철학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렇지만 철학계 일부는 ‘오늘의 이 위기에 대해 “전적으로 우리 책임”이라는 고백과 함께 이 위기를 ‘어떻게 풀것인가’에 대해서도 “우리가 대답하지 않으면 안된다”고자원하고 나선다.철학자들의 이 고백과 사명감이 ‘생태철학’(Eco-philosphy)의 출발점 이라고 할 수 있다. 생태계 위기에 대한 철학의 책임론은 현대의 위기는 바로근대과학에서 파생되었고 그것은 또 18세기 계몽주의 이래서양의 주류철학이 원조라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따라서 오늘의 자유시장 경제를 떠 받치고 있는 철학의 대전환 없이는 과잉생산-과잉소비를 막을 길이 없고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생태계파괴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물론 생태철학의 태동이 철학 내부의 변증법적 토론의 결과라거나 자아비판만의 결과로만 보기 어렵다.생태철학은 1960년대 반전(월남전) 반핵,히피로 상징되는 뉴에이지 운동이좌절을 겪은 후 그 일부가 녹색 외투로 갈아 입었듯이 동유럽의 현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정통좌파 철학도들이 도피성 대안으로 눈을 돌리면서 태동된 것이다. 독일에서 마르크스 철학을 공부한 구승회(具升會 동국대·윤리학)교수는 20세기 서양의 이성철학(理性)에 대한 반발로 자연과 생태를 중시하는 흐름이 생겨 났으며 휴머니즘의 지평을 생태계로 넓힌 뉴휴머니즘이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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