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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셋째 낳으면 500만원 줍니다”

    농촌 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이 끝없이 추락하는 인구감소를 막기 위해 눈물겨운 출산 장려에 나서고 있다. 파격적인 출산 장려금과 축하금에서부터 양육비 지원까지 경쟁적으로 출산 장려 인센티브를 내놓고 있다. 29일 경남도 등 지방자치단체 등에 따르면 경남 함안군은 올부터 지역에서 출생한 셋째 아이를 대상으로 출산장려금 500만원씩을 지원중이다. 현재까지 셋째아이를 낳은 부모 31명에게 출산장려금을 전달했다. 셋째아이 출산장려금은 1차로 200만원씩을 지급하고 이후 6개월마다 100만원씩 나눠 지급하고 있다. 이 같은 지원책은 넷째부터도 똑같이 적용되며 셋째아이가 쌍둥이면 1인당 500만원씩 별도 계산해 모두 1000만원을 지급한다. 군은 이와 별개로 상반기 중에 둘째아이를 낳은 부모 46명에게도 각 50만원씩을 지급했다. 남해군도 지난 4월부터 출산장려금으로 300만원씩을 지급하고 있으며, 하동군은 110만원, 의령군은 100만원씩 지원하고 있다.특히 고성군은 셋째아이의 보육료 절반씩을 지원하고 있다. 보육원에 다니는 만 4세부터 7세까지가 대상이다. 고성지역 보육료가 월 17만∼20만원선인 점을 감안하면 1인당 모두 400만∼480만원씩 지원받는 셈이다. 경북 군위군도 지난 99년부터 실시한 출산장려금을 10만원에서 지난해 50만원으로, 올해 다시 100만원으로 대폭 올렸다. 인구 1만명대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영양군도 지난해 전국 최초로 영유아지원조례를 제정하고 올부터 첫째 아이 출산시 매월 3만원, 둘째는 5만원, 셋째는 10만원씩 1년간 지원하고 있다. 이밖에 영주시는 학기당 174만원의 농자녀 학자금 지원과 출산시 72만원의 육아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울릉군은 첫째, 둘째, 셋째 가리지 않고 낳기만 하면 무조건 50만원씩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들 지자체는 출산장려금 외에도 전문 산부인과에 산전·산후 진찰을 비롯해 초음파, 기형아검사, 산모 영양제 지급, 영유아 기본접종 등도 덤으로 지원하고 있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출산장려금 지원은 급격한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한 차원”이라며 “인구 늘리기를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갖은 묘안을 짜내고 있다.”고 말했다.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2%대 지지 후보가 공천받다니… 똥물 퍼부은 아버지 심정 알겠다”

    “2%대 지지 후보가 공천받다니… 똥물 퍼부은 아버지 심정 알겠다”

    ‘장군의 손녀’인 한나라당 김을동 상임위원이 29일 눈물을 흘렸다. 그의 눈물은 다음달 26일 치를 경기 광주 국회의원 재선거 공천을 둘러싼 한나라당의 내홍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공천심사위원회가 여론조사에서 2위인 나를 제치고 2%대에 머문 후보를 확정한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며 “계보 정치에 의해서 자기 사람을 심는 풍토가 한심하다.”고 지적했다. ●“자기사람 심는 계보정치 한심” 이어 “아버지(김두한 전 의원)가 부패 정치를 비판하려고 국회에 똥물을 퍼부은 심정을 알겠다.”고 말하다가 감정이 북받친 듯 눈시울을 붉혔다. 일제 때 청산리대첩을 이끈 김좌진 장군의 손녀인 김 위원은 앞서 열린 운영위원회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성명서를 내고 공정 심사를 촉구했다. 김 위원은 “박혁규 전 의원이 부패혐의로 의원직을 박탈당했는데 난 진짜 청빈하다. 아버지(연방 손수건으로 눈물 훔치며)는 한평생 등기부에 등록된 재산도 없이 살았다. 난 그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자신의 장점을 들었다.“아들(탤런트 송일국)과 함께 광주 전역을 누비며 선거운동할 생각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진섭씨 출생지 허위기재 논란 한나라당은 이날 운영위를 열고 공천심사위가 결정한 정진섭 경기도지사 특보의 후보 결정안을 확정지으려 했다. 그러나 정 후보의 출생지 허위 기재 여부 등을 놓고 논란을 벌이며 좀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또 회의 초반에는 경기도 당원이라는 오모씨가 “탄핵은 당의 부채가 아니고 자산”이라며 1차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던 홍사덕 전 원내총무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다가 회의장 밖으로 밀려나는 소동도 벌어졌다. 공천심사위는 “정 후보 추천 배경에 대해 ‘당 기여도’를 높이 샀고, 출생지는 법률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이정현 부대변인이 전했다. 결국 운영위는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공천안건을 보류하고 다음달 4일 다른 재선거 지역과 함께 확정키로 했으나 적지 않은 후유증이 예상된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섹스토리-어느 여대생의 자위행위

    섹스토리-어느 여대생의 자위행위

    마음이 답답할 때는 그저 마스터베이션과 함께 환상에 빠져드는 것이 제일이었다. 마스터베이션은 내게 황홀한 나르시시즘을 선물해주기 때문에 더욱 좋았다.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싶어질 때면 온몸에 미열이 느껴지면서 다리가 여럿 달린 유충이 내 몸뚱아리 위를 스멀스멀 기어다니며 몸안 구석구석의 작은 세포들까지 자극하는 것 같은 느낌이 왔다. 특히나 외로움을 더 타게 되는 토요일 오후 같은 때가 되면, 나는 벌거벗은 채로 침대 위에 드러누워 좀더 멋진 엑스터시를 만들어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발가벗은 내 몸을 검게, 붉게, 그리고 투명하게 비추어댄다. 얇은 솜이불이 주는 나른한 촉감을 더욱 배가시켜주는 눈부시도록 밝은 햇살은, 내 몸 구석구석의 작은 털 하나하나까지 바싹 달라붙게 만들면서 들춰진 이불 사이로 집요하게 파고든다. 하지만 내 은밀한 그곳은 햇빛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축축한 습기로 젖어 있다. 나는 눈을 감고서 어떤 풍경 하나를 상상해보려고 애를 쓴다. 상상속의 화면에서는 한 아름다운 중년부인이 두 다리를 활짝 벌린 채 독수리의 검은 깃털로 자신의 그곳을 부채질하듯 털어내듯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자극하고 있다. 아아, 세뇨라…! 불행한 결혼을 한 여자가 그녀의 욕정을 못 이겨 자위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세뇨라’는 내가 얼마전에 본 외국영화의 여주인공 이름이었다.) 으으으음…. 나는 세포 하나하나에서 미치도록 스멀거리는 느낌에 점차 숨이 가빠온다. 아아, 나는 간지러움을 유난히도 많이 타는 여자. 누군가 사람을 간지르는 장면만 봐도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소름끼치는 흥분을 느끼게 되는…. 나의 몸은 그토록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민감점(敏感點)들뿐이다. 누군가 내 손등이나 귓불을 만져줘도 어느새 나의 그곳이 축축히 젖어오면서 자지러질듯한 흥분이 온다. 만약에 기막힌 미남자의 손길이 내 가슴과 그곳을 거칠게 또 부드럽게 만져준다면…. 상상만 해도 나는 야릇한 쾌감에 저절로 눈이 감기고, 심장이 벌렁거려지고, 젖꼭지가 딴딴해져 오는 것이다. …나는 이제 오른손을 가만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솜털이 감지될 정도의 가벼운 접촉을 유지하면서 내 손은 매끄러운 아랫배를 지나 허벅지 사이의 검은 수풀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다. 약간의 두려운 망설임 끝에 나는 가운데 손가락을 곧게 펴서 그곳에 조금씩 조금씩 넣어본다. 어느새 내 다섯 손가락들이 내 의식과는 무관하게 가늘고 거칠게 움직이고 있다. 나는 잠시 멍한 상태로 있다가 엉덩이를 치켜올린 상태로 엎드린다. 여전히 내 오른손은 불두덩이 아래의 수풀속에서 푸들푸들 살아 움직이고 있고, 나의 왼손은 젖가슴을 어루만지고 있다. 그 상태로 하체를 들썩거리자 침대의 탄력은 하체의 요동을 더욱 세차게 가중시킨다. 순간, 나는 내 자신이 의심스럽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위가 정녕 내 의식으로부터 나오는 것일까. 나는 눈을 뜨고 방안을 본다. 침대 위에 붙어 있는 대형 거울이 햇볕을 가득 담은 채 내 얼굴을 비춰주고 있다. 흐리도록 졸린 눈빛. 그러나 뭔가를 애타게 갈구하는 듯한…. 문득 나는 내 전신을 바라보고 싶어진다. 나는 침대 위에서 일어선다. 순간 창문이 의식된다. 누군가 나를 훔쳐보고 있다면 더욱 야릇한 쾌감이 생겨날지도 모르지만, 나는 결국 왠지 모를 두려움 때문에 커튼을 치고 만다. 그러자 건너편 아파트의 창문이 아쉽게 가려진다. 갑자기 방안이 은은하게 어두워졌다. 그 은은함에 투영되어 드러나는 내 육체. 핑크빛으로 솟아오른 가슴. 적당히 탄력있게 매끄러운 엉덩이. 그리고 그 갈라진 선을 따라 윤기있게 돋아난 털. 그 털이 무성하게 삼각형으로 모아진 그곳 위로 보이는 사슴의 목처럼 가늘고 애처로운 허리. 솜털이 촘촘하게 돋아난, 그리고 바닐라 향내가 풍겨나올 듯한 먹음직스러운 허벅지, 그리고 종아리. 가지런하고 좁은 발끝에서 광기어린 빛을 내뿜고 있는 발톱들. 나는 샐쭉이 웃어본다. 살짝 튀어나온 하얀 이빨이 가지런히 드러나자 그 순간 나는 아무 생각도 못 하는 바보가 된다. 나는 역시 아름답다…. 적당히 물이 오른 내 알몸뚱이. 잔주름이 하나도 없이 부드럽고 싱싱하여, 잘근잘근 씹어먹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정도이다. 아, 나는 귀여운 털복숭이. 탐스럽게 숱많은 머리카락과 허벅지 사이의 촘촘하게 새까만 숲. 겨드랑이의 윤기 나는 털들, 그리고 귀엽게 돋아난 솜털들. 그 솜털들로 인해 내 몸은 내가 만질 때마다 마치 솜털 스웨터를 만지는 듯한 포근한 감촉을 느끼게 해준다. 가슴에 털이 가득한 서양남자의 품은 얼마나 부드러울까. 아니 또 흑인들 같이 매끈매끈한 피부는 또 어떨까. 침대 위에 꼿꼿이 선 채 이리저리 몸을 틀면서 내 몸 구석구석까지 살펴본 나는, 문득 내가 아직 제대로 보지 못한 내 몸안의 은밀한 구석까지 살펴보고 싶어진다. 그러나 다리 사이의 털숲으로 숨어 버린 채 귀여운 악마는 좀처럼 거울에 비춰지지 않는다. 다리를 높이 치켜들고 고개를 숙여 거꾸로 가울을 봐도, 허리만 아파올 뿐 그것을 속속들이 관찰하기란 좀처럼 쉽지가 않다. 그래서 나는 면경(面鏡)을 가지고 그것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두꺼운 베개를 등에 깔고 두 다리를 팔처럼 벌려 든 채 나는 면경을 두 다리 사이 엉덩이 밑으로 가까이 들이대고, 고개를 빳빳이 들어 면경을 들여다본다. 아아아…, 이것이 바로 나의 귀여운 악마였군…. 내 몸뚱아리에 붙어있으면서도 마치 내 의식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별개의 살아있는 짐승…. 개미지옥과도 같이 쪼글쪼글한 주름이 진 항문 위로 가지런히 나있는 털을 따라서 가는 핏줄이 선연하게 부어오른 갈색의 두 입술이 가늘게, 그러나 힘차게 팽창하여 수축하고 있다. 그 부어오른 입술 사이로 주홍빛 속살이 가늘게 떨며 촉촉한 습기를 내뿜는다. 새까만 공간 속에서 떨리고 있는 빨간 불빛. 갑자기 나는 그것을 미치도록 핥고 싶어진다. 핥고 싶다, 핥고 싶다, 핥고 싶다…. 그러나 이무리 다리를 머리위로 치켜 올려 허리를 구부려봐도 내 혀가 닿는 곳은 겨우 젖가슴 언저리. 언젠가 텔레비전의 서커스 묘기시간에 본 중국 소녀의 체위가 생각난다. 두 다리 위로 머리를 빼서 물구나무서기를 하던 그 소녀. 그 소녀라면 스스로 아랫입술을 핥는 것이 가능할 텐데…. 나는 절망에 못 이겨 혀로 미친듯이 내 말캉한 젖가슴을 핥기 시작한다. 고개가 아플 정도로 숙인 후 한 손으로 가슴을 치켜올린 채 혀를 길게 내밀어보니까 겨우 젖꼭지에 닿는다. 이미 팽팽하게 솟아오른 젖꼭지. 아, 나는 그것을 한 입에 물고 싶다. 그리고 힘차게 빨고 싶다. 간지러운 느낌과 함께 찾아오는 피부의 알싸한 수축감을 맛보고 싶다. 그리고 또 그것을 잘근잘근 깨물어보고도 싶다. 이럴 때 누군가가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을 마치 충실한 하인인 양 도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입술이 닿지 않는 나의 귀여운 악마, 나의 항문, 그리고 나의 젖꼭지를 누군가가 세차게 빨아주고 핥아준다면…. 타인의 신비로운 촉각에 의해 내 몸이 부서져버릴 정도로 강하게 애무될 수 있다면…. 그가 남자든 여자든 그 누구라도 상관없다. 나이어린 미소년이라면 더욱 더 사랑스러울 텐데. 나는 베개를 다리 사이에 넣은 채 몸을 미친듯이 비비 꼬며 들썩거려 본다. 가는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그러나 해소되지 않는 흥분…. 갈증. 이러한 갈증을 어디에서 해소할까. 어떻게. 나는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연다. 빈 집의 썰렁한 기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의 육체는 무인도의 윈시소녀인 양 자유롭게 거실을 떠돈다. 가슴이 탈랑거린다. 가죽소파의 감촉이 벌거숭이 맨살에 서늘한 감촉으로 느껴진다. 나는 새로운 흥분이 호기심으로 증폭되어 미칠 것만 같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아버지의 서재로 갔다. 서재 가운데 위치한 탁자 위에 나는 엉덩이까지만 걸친 채 반듯이 눕는다. 머리 위로 작은 샹들리에가 가볍게 흔들린다. 손을 뻗쳐 전원을 올린다. 순간 불빛이 어지럽게 튀며 내 몸을 훤히 비추어댄다. 오랫동안 불빛을 올려다보니 눈을 감아도 분홍빛 불꽃이 튄다. 나는 왼쪽 손을 뻗어 아버지의 책상 서랍을 뒤져 가장 큰 붓을 꺼내 잡는다. 우둘우둘한 흙빛 손잡이가 묵직하게 잡혀지고 그 위로 바싹 말라 수북한 털이 보기만 해도 간지러움을 느끼게 한다. 나는 묘한 기대감을 가지고 그 붓으로 내 온몸을 가만히 문지르기 시작한다. 얼굴에서 목으로 다시 가슴으로, 다시 그곳으로…. 나는 다리를 활짝 벌린 채 그곳을 가만히 가만히 문지른다. 먹빛으로 바랜 털과 윤기나는 새까만 털이 서로 교차되며 뒤엉킨다. 맥박이 뛰고 다시 내 그곳의 모든 세포가 하나하나 경련하듯 떨기 시작한다. 나는 돌아누워 온몸을 탁자위에 올린 후 마치 암캐마냥 엉덩이를 치켜올리고서 엎드린다. 그리고 이제 붓끝을 항문으로 가져간다. 부드럽게, 더 부드럽게…. 내 귀여운 짐승이 헐떡거리며 촉촉하게 젖어온다. 나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붓의 방향을 돌려 묵직한 손잡이 부분을 서서히 내 항문 속으로 집어넣기 시작한다. 그러자 내 귀여운 악마가 마치 자기에게 해달라는 듯이 더욱 빠르게 수축을 한다. 오, 나의 귀엽고 탐스러운 짐승. 우툴두툴한 붓대를 나는 더욱 세차게 움직인다. 알싸한 아픔이 묵직한 붓끝으로부터 느껴진다. 아아, 내 귀여운 악마의 두 입술이 이젠 팽팽해지다 못해 붉은 피를 토해낼 것만 같다. 나는 붓대를 항문에서 빼낸다. 엉덩이 사이에서 마치 원래 처음부터 있었던 무엇인가가 빠져나간 듯한 허전한 공백감이 느껴진다. 처음엔 잔뜩 움츠려있던 엉덩이 사이가 이젠 활짝 벌려진 채 뭔가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다시 붓대를 이번엔 내 작은 악마 앞으로 가져간다. 묘한 흥분 때문에 나의 악마는 진한 액체를 지르르 흘리고 만다.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 더이상 참지 못하고 나는 붓대를 그 속에 조심스럽게 밀어넣는다. 머릿속이 정신없이 꿈나라를 헤매고 있다. 꿈나라에서 공주가 되어 있다. 그리고 건장한 흑인 노예의 남근을 기분좋게 받아들이고 있다. 또 다른 미소년 하나가 나의 그곳을 보드랍게 핥아주고 있다. 아, 그래, 나는 역시 혀로 보드랍게 핥아주는 것을 좋아해…. 붓대도 좋지만 붓털이 더 좋아. 두 가지를 한꺼번에 사용할 순 없는 것일까. 아아아, 으으으으음…. 누군가 내 작은 악마를 충성스럽게 핥아줬음 좋겠어…. 그 순간 내 머릿속으로 내가 어렸을 때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 ‘코보’ 생각이 난다. 그래,‘코보’와 놀아봐야지. 코보는 무엇이든 핥는 것을 좋아하니까…. 어느새 내 입술이 열리며 나직이 소리를 지르고 있다. “코보…코보…어디 있니?” ■마광수는1951년 경기 수원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 국문과 교수 ▲저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장편소설 ‘권태´ ‘즐거운 사라´ ‘불안´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사랑의 슬픔´
  • [부고]

    ●정운영 중앙일보 논설위원 정운영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24일 오전 9시 서울삼성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61세. 대구에서 출생한 고인은 1971년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뒤 한국일보·중앙일보 기자를 거쳐 81년 벨기에 루뱅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와 고려대 강사, 경기대 교수로 활동했다.MBC 시사프로그램 ‘100분 토론’ 사회자를 맡기도 했으며 최근까지 중앙일보에 ‘정운영 칼럼’을 연재했다. ‘시지프의 언어’‘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 등 저서를 남겼으며 96년 언론인클럽 언론상(신문칼럼상)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양선(55)씨와 유경(34)·유신(33) 등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삼성병원, 발인은 27일 오전 11시.(02)3410-6905. ●재일교포 인권옹호 이이누마 지로 재일교포 인권운동을 펼쳤던 일본인 시민운동가 이이누마 지로 전 교토대 교수가 24일 폐렴으로 숨을 거뒀다.87세. 그는 미국의 북베트남 폭격에 대한 항의를 계기로 시민운동에 뛰어들어 교토에서 시민단체인 ‘평화연합’의 주역으로 활약했다.1969년 ‘조선인’이라는 잡지를 창간, 조선문화의 재인식과 재일교포 인권보호를 호소했다.‘한국을 사랑한 일본인 전도사’라는 저서를 냈다. ●이영근(자영업)근호(CMB 대전방송 전무이사겸 CMB 웹엔TV 대표이사)씨 모친상 25일 오전 6시 경북 고령 영생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54)956-4455 ●임길상(자영업)달식(공무원)정상(하나은행 차장)씨 모친상 25일 문경제일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54)550-7700 ●김덕기(근화지주 회장)상기(사업)승기(동양아파트㈜ 대표)씨 모친상2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7일 오전 7시 (02)3410-6917 ●김준일(부천의원 원장)씨 별세 신동선(시스코 코리아 이사)씨 빙부상 23일 경희의료원, 발인 26일 오전 9시 (02)958-9545 ●조두희(한양조씨대종회 부회장)선희(라인앤지 대표이사)수희(동화금사 대표)씨 모친상 조용길(삼성인스빌 대표)씨 조모상 2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6일 오전 (02)3410-6919 ●최규근(개인사업)규옥(장애인 신문사 대표 및 사회복지법인 곰두리 복지재단 이사장)씨 모친상 백진기(한화종합상무)씨 빙모상 25일 서울아산병원, 방인 27일 오전 7시 (02)3010-2230 ●조용은(101부띠끄대표)씨 부친상 송인국(송인국 정영외과원장)배남신(시애틀 UPS대표)씨 빙부상 2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9시 (02)3010-2269 ●기세환(자영업)세원(대흥상사 사장)세홍(운수업)세학(대흥상사 부장)씨 부친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5시 (02)3010-2268 ●이승규(KCC건설)씨 부친상 박재우(ASM Karea)씨 빙부상 2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6시 (02)3010-2239 ●이동명(강북구청 건설교통국장)동희(건설업)씨 모친상 강진모(자영업)양영홍(중부교육청 관리과장)소근섭(건설업)황호신(한국전력공사)씨 빙모상 24일 전북 남원시 월납동 333-3번지 자택, 발인 26일 오전10시 (063)635-444 ●권우용(비전 대표이사)씨 빙모상 김문남씨 모친상 25일 경희의료원, 발인 27일 오전8시 (02)958-9546 ●김준기(다예사 대표)윤기(유한양행 부장)홍기(SK텔레콤 부장)형기(다예사)씨 부친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8시 (02)3010-2292 ●안효승(한겨레 플러스)유선(필립스전자)씨 부친상 최경희(김·장 법률사무소)씨 빙부상 25일 신촌 세브란스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30분 (02)392-3499 ●주양일(대선주조 대표이사)배성환(세종대 교수)차흥남(교보생명 전무)장석우(자영업)씨 빙모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30분 (02)3010-2295 ●최수동(영창실업 전무이사)성동(외환캐피탈 부장)씨 모친상 김정래(현대중공업 전무)김규수(에프원컨설팅 상무)씨 빙모상 2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6시 (02)3010-2293 ●김대식(㈜신세계 홍보담당 과장)종식(세원물산)순미(KT 대리)씨 부친상 25일 오후 2시 20분 대구 칠곡가톨릭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053)326-5995 ●김우진(전 삼양사 상무)호진(GS건설 자문역)복신(군산시 보건진료소장)경신(전남대 교수)씨 부친상 김현철(삼일자동차상사 대표)정병수(하이마트 광고홍보담당 상무)씨 빙부상 25일 오전 8시 35분 삼성서울병원, 발인 27일 오전 9시(02)3410-6915 ●조우석(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재석(정철필립어학원장)인석(목동수능학원장)씨 부친상 서현선(세무회계사 대표)씨 빙부상 25일 강북삼성병원, 발인 27일 오전 10시 (02)2001-1095 ●이창복(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성복(계명대 교수)씨 부친상 정달수(사업)한상화(사업)길호영(천안 충무병원장)씨 빙부상 2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2)3410-6906 고인은 문부성이 일본국가인 ‘기미가요’ 제창을 철저히 하라고 지시한 것은 헌법위반이라고 주장하며 1987년 제소, 유명한 ‘기미가요 소송’의 원고대표로 소송을 이끌었다.
  • [스포츠 라운지] 여자농구 신한은행 우승 일군 이영주 감독

    [스포츠 라운지] 여자농구 신한은행 우승 일군 이영주 감독

    뽀얀 피부에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 상대를 편안하게 만드는 조곤조곤한 말투 등 아무리 뜯어 봐도 ‘승부사’의 기질을 찾아볼 수 없다. 식사때 선수들에게 눈웃음 치며 농담을 던지고 더 먹이려고 챙기는 모습은 영락없는 여고 선생님. 이런 이 남자가 코트에만 서면 전혀 딴 사람으로 돌변한다. 겨울리그 꼴찌 신한은행을 창단 1년 만에 우승으로 이끌며 29년 농구인생을 활짝 꽃피운 이영주(39) 감독이다. ●지긋지긋한 불운 군산중 2학년때 그의 키는 158㎝. 또래 선수들은 170㎝ 이상이었다. 키도 작은 데다 비쩍 마른 ‘땅꼬마 가드’는 강한 패스를 받으면 공과 함께 밀리기 일쑤였다. 선배들은 왜 그리 때리는지,1주일에 5일은 몽둥이찜질을 피해 도망다녔다.‘차라리 절에 들어가는 편이 낫겠다.’ 싶었던 그는 지리산으로 가출했다. 이틀을 버틴 뒤 돌아갔지만, 학교에선 퇴학이 얘기됐다. 학교로 쫓아와 눈물로 사정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 이영주는 그때부터 죽기살기로 농구에 덤벼들었다. 고교 1학년때 결핵으로 한 해를 꼬박 쉰 뒤 키가 쑥쑥 자랐지만 몸은 여전히 약했다. 대학에 가서야 힘이 붙으면서 농구의 묘미도 알았다.89년 최강 현대에 입단해 박수교(현 전자랜드 단장)의 공백을 메우며 실력을 인정받은 이영주는 이후 93년까지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하지만 프로 출범을 앞두고 원치 않는 은퇴로 또다시 인생이 소용돌이쳤다. 선배의 사업 제안에 솔깃해 신선우(현 LG 감독) 감독에게 무릎부상을 핑계로 은퇴의사를 밝힌 것. 뒤늦게 정신 차린 뒤 신 감독에게 ‘이실직고’했지만, 이미 미운털이 박혔다. 구단에서 사실상 은퇴를 종용했고, 눈물을 뿌리며 코트를 떠났다. ●끔찍한 IMF 유랑생활 97년 은퇴와 함께 단대부고 코치로 간 이영주는 그 해 종별대회 준우승 등 성공적인 지도자 데뷔를 했다.10개월 뒤 용인대 감독 제의를 받고 덜컥 수락했다. 현대에서의 황당한 은퇴 뒤 두 번째 실수였다. 한달 만에 팀은 해체됐고, 외환위기의 찬바람이 몰아치던 때 ‘백수’가 됐다. 수입이 끊겨 서울 상일동 아파트를 팔고, 남양주로 이사도 갔다.2000년 박수교 기아 감독의 권유로 뒤늦게 프로에 뛰어들었지만, 평균 6분에 1.5득점하는 후보였던 그는 박 감독한테 짐이 되는 것 같아 두 번째 은퇴를 했다. 2001년 현대 여자농구단 코치로 두 번째 지도자 인생을 시작하며 운명의 전환점을 맞았다. 하지만 지긋지긋한 ‘불운의 그림자’를 떨치지 못했다.2002여름리그에서 박종천 감독을 보필해 우승했지만 모기업이 경영난에 시달렸다. 곧 박 감독은 떠났고, 연봉 5000만원짜리 감독대행은 지갑을 털어가며 선수들을 다독였다. 설상가상으로 KCC-현대의 경영권 분쟁이 시작되자 KCC측은 2003년 말까지 숙소와 체육관을 비우라고 통보했다. 당시 남자팀 코치 제의를 받았지만 선수들을 버리고 혼자만 떠날 수는 없었다. 지난해 봄 현대는 짐을 택배회사의 컨테이너에 넣고 ‘유랑 서커스단’ 신세가 됐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행히 지난해 9월 신한은행이 팀을 인수하며 떠돌이 생활을 청산했다. 첫 출전한 겨울리그에서 꼴찌를 했지만, 어린 선수들이 가능성을 보여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편애는 감독의 죄악이며 기회를 골고루 준다. 단 때가 왔을 때 제몫을 못 찾아 먹는 선수는 쓰지 않는다.”는 이영주식 용병술이 선수들의 능력을 극대화시켜 마침내 올 여름리그에서 우승을 일궜다. ‘남탕(남자프로농구)으로 가고 싶진 않냐.’고 묻자 “아직 밑천이 없어요. 내 분수를 알아야죠.”라며 손사래를 쳤다. 다만 “신한은행을 최고 명문으로 세운 다음이라면 모르죠.”라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한신대 특수체육학과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대학 강단에 서는 꿈을 키우고 있는 이 감독에게서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배포와 자신감이 한껏 묻어났다. 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이영주 감독은 ▲출생 1966년 5월19일 군산 ▲가족관계 부인 고선경(34)씨와 2남 ▲신체조건 183㎝ 75㎏ ▲종교 기독교 ▲연봉 1억원 ▲주량 기분 좋으면 소주 2병 ▲스트레스 해소법 묻지마 드라이브 ▲출신학교 군산 중앙초-군산중·고-홍익대-한신대 대학원(3학기 재학중) ▲경력 실업 현대(선수·89∼97년)-단대부고 코치(97년)-용인대 감독(98년)-프로 기아(선수·99∼01년)-현대여자팀 코치 및 감독대행(01년)-신한은행 감독(04년∼) ▲수상 대통령 체육포장(92년) 여자프로농구 최우수지도자상(05년)
  • [실전 논술]열린사회와 닫힌사회

    [실전 논술]열린사회와 닫힌사회

    논술시험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2008학년도부터 입시제도가 바뀌면 논술시험의 비중이 더 커지고 통합형 출제로 지금보다 더 어려워진다.‘SEOUL IN’에서는 ‘영화속 수능잡기’와 논술 책 소개 연재를 마치고 논술 전문강사인 이석록 서울 대치메가스터디원장이 집필하는 ‘실전 논술’을 새로 연재한다. ●문제 다음 글에서는 우리가 ‘열린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가 현대 사회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으며,‘열린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가정한다면 이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개인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논술하시오.(1600자 내외±200자로 쓸 것.) 우리들 자신의 생활 방식은 여전히 금기들―음식에 대한 금기, 예절에 대한 금기, 그리고 다른 수많은 금기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우리 자신의 생활 방식에서, 한편으로는 국가의 법률과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습관적으로 지키는 금기 사이에 문제와 책임을 수반하는 개인적인 넓은 결단의 영역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개인적 결단은 금기와 이미 금기가 아닌 정치적 법률까지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이런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반성의 가능성에 있다. 합리적인 반성은 어떤 점에서는 헤라클레이토스부터 시작된다. 알크메온, 파레아스, 히포다무스, 헤로도투스, 소피스트와 함께 전개된 ‘최선 체제’에 대한 요구는 어느 정도 합리적으로 논의될 수 있는 문제의 성격을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 대부분은 새로운 입법의 필요성이나 다른 제도적 변화의 필요성에 관해 합리적인 결단을 내린다. 말하자면 가능한 결과를 평가하고, 그 결과 중 어떤 것을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개인의 합리적인 책임을 인정한다. 이제부터는 마술적 사회나 부족 사회, 혹은 집단적 사회는 ‘닫힌 사회’라 부르며, 개개인이 개인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회는 ‘열린 사회’라 부르고자 한다. 전성기에 있는 ‘닫힌 사회’는 하나의 유기체에 그대로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소위 국가 유기체 이론이나 생물학적 이론은, 상당한 범위에까지 ‘닫힌 사회’에 적용될 수 있다.‘닫힌 사회’는 그 구성원들이 반생물학적 유대―함께 살며, 공통적인 노력과 공통적인 위험, 공통적인 기쁨과 공통적인 고통을 함께 나누는 혈족 관계―에 의해 함께 묶여 반(半)유기체적 단위로 존재하는 한 집단이나 부족과 비슷하다.‘닫힌 사회’는 여전히 구체적인 개인들의 구체적인 집단으로서, 노동의 분업이나 상품의 교환과 같은 추상적인 사회 관계에 의해서 상호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만져 보고 냄새 맡고 바라보고 하는 구체적인 육체적 관계에 의해 맺어진 사회이다. 그리고 그런 사회가 노예 제도에 의존하고 있을 때, 노예란 가축이 있다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측면이란 ‘열린 사회’에서는 대다수의 구성원들이 사회적으로 높아지기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투쟁한다는 사실과 결부되어 있다. 예컨대, 이런 것은 계급 투쟁과 같은 중대한 사회적 현상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국가적 유기체 속에는 계급 투쟁과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유기체의 세포나 조직―종종 국가의 구성원 개개인에 대응한다.―은 영양분을 얻기 위해 경쟁할지는 모르겠으나, 다리가 머리가 되고자 한다든가, 몸의 어느 다른 부분이 배가 되고자 하는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노력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유기체 속에는 ‘열린 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인 구성원들 간의 지위 다툼에 해당되는 것이 없으므로, 소위 국가 유기체 이론은 그릇된 유추에 근거한 것이다.‘닫힌 사회’는 어느 정도 그런 경향을 지니고 있다. 계급을 포함한 ‘닫힌 사회’의 제도는 신성 불가침한 금기이다. 유기체 이론은 여기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다 유기체 이론을 적용하고자 하는 시도는 거의 다 부족주의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선전의 감추어진 형식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열린 사회’는 유기체적인 특성이 없으므로 필자가 ‘추상적 사회’라 부르고자 하는 사회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열린 사회’는 구체적이거나 실제적인 인간 집단 및 그런 실제적인 집단 체제가 갖는 특성은 상당히 잃어버릴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 실제로 아무와도 대면하지 않는 사회―모든 일이 타이프된 편지와 전보로 의사 교환을 하고, 또 밀폐된 자동차로 돌아다니는 고립된 개인에 의해 처리되는 사회―를 생각해 볼 수 있다(유전자 조작은 인간적 요소가 개입되지 않는 변식까지도 허용할 것이다). 이런 허구적인 사회가 ‘완벽한 추상적 사회’나 ‘비인격적 사회’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흥미 있는 점은 우리의 현대 사회가 그 양상의 여러 면에서 이런 완벽한 추상적 사회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비록 늘 혼자서 밀폐된 자동차를 타고 다니지는 않는다 하더라도―거리에서 우리를 지나쳐 걸어가는 수천의 얼굴과 대면하지만―결과는 우리가 그렇게 한 것과 거의 비슷하다. 즉, 우리는 같은 보행자들과는 대체로 아무런 개인적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는 친밀한 인간적 접촉을 거의 갖지 않고, 익명과 고립 속에서, 그리고 그 결과 불행 속에서 사는 사람이 많다. 왜냐하면, 사회는 비록 추상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생물학적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추상적 사회에서는 만족할 수 없는 사회적 요구를 갖고 있다. 물론 완벽한 합리적 사회가 있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완벽한 추상적 사회도 없을 것이며, 있을 수도 없다. 인간은 여전히 실제적인 집단을 형성하고, 모든 종류의 인간들과의 실제적인 사회 접촉을 하며, 자신의 정서적 사회적 욕구를 가능한 한 충족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운이 좋은 몇몇 가족 집단을 제외하고는) 현대 ‘열린 사회’의 사회 집단 대부분은 불쌍한 대용물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공동 생활을 창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중의 대다수는 사회 생활에서 아무런 기능도 발휘하지 못한다. 논의가 여기에서 멈추고 만다면 추상화된 사회의 단점만이 부각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단점을 뛰어넘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출생과 관련된 관계를 떠나 인간은 성장하면서 자신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인간 관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이 인간 관계와 이울러 새로운 개인주의가 발생한다. 그와 유사하게 정신적 결속은 생물학적 결속이나 육체적 결속이 약화된 곳에서 그 주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장점들은 있지만, 어쨌든 간에 이러한 예들이 보다 구체적이거나 사실적인 사회 집단과 대치되는 보다 추상적인 사회가 의미하는 바를 명백하게 밝혀 줄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현대 ‘열린 사회’가 교환이나 협동과 같은 추상적인 관계에 의해 상당한 기능을 한다는 것도 분명하게 해 줄 것이다. -칼 R 포퍼,(열린 사회와 그 적들) ●지문의 배경 이해하기 역사는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의 투쟁 과정으로 볼 수 있으며, 열린 사회는 인류가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는 유일한 사회이다. 열린 사회란 사회과학 방법론에서 말하는 ‘방법론적 개인주의’에 입각한 사회를 말하는데, 전체주의에 대립되는 개인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사회의 급진적 개혁보다는 점진적이고 부분적인 개혁을 시도하는 점진주의 사회를 말한다. 그러므로 ‘닫힌 사회’에서는 국가가 시민 사회 전체를 규율하면서 개인의 판단이나 책임은 무시하는 데 반해,‘열린 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확보된 사회이며, 개인이 그의 이성에 입각해서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 사회를 의미한다. 포퍼는 이러한 ‘열린 사회’의 최대의 적은 역사주의라고 규정하고, 이것을 질타한다. 그것은 첫째 역사주의가 말하는 역사 진행 법칙에 의한 예언의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다. 그는, 예측은 과학적 탐구의 영역 밖에 있는 것이어서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가 확실히 알지도 못하는 그 어떤 필연의 법칙 혹은 운명에 인간을 가두어 놓음으로써 인간의 이성을 최소화시킬 뿐 아니라, 인간의 창의적인 이성의 활동을 시들어 버리게 한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역사주의라 불리는 전체론, 역사적 법칙론, 유토피아 주의에 반대하고, 이를 ‘열린 사회’의 최대의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출제 의도 제시문에서 글쓴이는 역사를 통해 이미 존재해 온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의 특성을 비교하고 있으며, 닫힌 사회의 유지 원리에 대해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닫힌 사회에 대한 논리적 반박이 아니고 열린 사회의 특성과 그 실현 가능성, 그리고 열린 사회로 가기 위해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출제자는 우선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의 특징을 정확하게 파악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징들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완전한 열린 사회가 아니므로, 우리 사회에서 제거해야 할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주목해야 한다. 또한 열린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개인의 역할에 대해서 논하라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이 문제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이 논제는 먼저 지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력과 분석력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고, 그것을 다른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지와 추론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다. ●생각하기 최근의 논술 문제는 대부분 고전의 일부분을 제시하는 ‘자료 제시형’인데, 제시문의 범위상 고전 작품 전체를 보여 줄 수 없기 때문에 부분 발췌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제시문에만 집착하다 보면 글쓴이의 의도와는 다른 의미로 해석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자기가 읽은 책이나 작품이라면 전체적인 내용을 음미해 보아야 하고, 그렇지 못하다면 글쓴이의 의도와 관련지어 내용을 분석해야 한다. 대개의 출제자는 어느 한 부분을 발췌하더라도 그 책이나 작품의 주제에 해당하는 부분을 선택하게 되므로, 정독하면 글쓴이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내용의 중심을 이루는 어휘들을 간단한 도표로 정리해 보는 것도 효과적인데, 이 글의 내용을 도표를 이용하여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어떻게 쓸까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한 개요를 작성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주제는 닫힌 사회에서 열린 사회로 가기 위한 개인의 역할 정도로 정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 사회가 열린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개인은 타인과의 합리적인 조화를 이루기 위해 이성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끊임없는 자기 혁신을 통해 열린 사회에 적합한 인간형으로 탈바꿈해 가야 한다는 측면에서 글의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서론에서는 독자의 주의를 환기하는 내용과 말하고자 하는 글의 방향이 제시되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인류가 보다 나은 사회 여건 조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였는지를 토대로 개인의 욕망과 사회의 질서 사이에 마찰이 생긴다는 점과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하여 본론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본론에서는 먼저 논의의 범위를 어느 정도 정리하기 위해 먼저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 정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면서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가 추구하는 목표와 존재 방식이 무엇인지 논의하면 된다. 특히 그러한 점을 현실 사회의 특성과 연관지어 논의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들은 실제 닫힌 사회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점을 토대로 하면 될 것이다. 그런 다음 논의의 핵심을 제시해야 한다. 사회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제도적인 측면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점 등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토대로 하여 전제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제도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이성적 역량 강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마무리하면 된다.
  • 울산시 행정부시장 배흥수씨

    정부는 21일 울산광역시 행정부시장(직무대리)에 행정자치부 배흥수(57) 정부청사관리소장을 임명했다. 배 신임 울산시 행정부시장은 경남 진해 출생으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79년 사무관 특채로 공직에 입문, 옛 총무처 국내훈련과장, 행정자치부 자치운영과장, 복무조사담당관 등을 거쳤다. 또 정남준 광주광역시 행정부시장과 김채용 경남도 행정부지사, 최령 서울시 경영기획실장을 각각 관리관(1급)으로 승진발령했다.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연기인생 30년 배우겸 교수 장미희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연기인생 30년 배우겸 교수 장미희

    와인은 숙성이 오래될수록 맑아진다고 한다. 꼭 30년이 됐다. 그만큼 맑음이 더해진다. 한 여인이 있다. 우선 영화 ‘겨울여자’에서 ‘이화’로 생생히 추억된다. 스치는 바람, 야리야리하다. 울음 머금은 가냘픈 목소리, 애틋함으로 버무려진 ‘공주과’의 청순가련한 여인, 수많은 청춘이 그 앞에서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또 있다.‘이화’가 노래한다.‘가을에도 우린 겨울 얘기를 했죠/우리들의 겨울은 가을에 벌써 다가왔다고/겨울엔 우린 겨울을 모르죠/우리들의 겨울은 너무나 추운 생각 뿐이죠/가을에도 우린 겨울 얘기를 했죠/우리들의 겨울은 가을에 벌써 다가왔다고’ ‘겨울여자’(조해일 원작 김호선 감독)는 서울의 인구가 600만이던 지난 1977년 당시, 단성사 극장에서만 58만 6000명의 관객을 불러들인 공전의 히트작. 주인공 ‘이화’가 여인으로 성장하면서 만나는 여러 남자들을 통해 한국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투시해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이 기록은 90년 ‘장군의 아들’이 개봉되기 전까지 전무후무했다. 교수이자 중견 여배우 장미희. 어느날 ‘겨울여자’의 ‘이화’로 대스타가 됐다. 때문에 40대 이후의 팬들에겐 늘 ‘이화’처럼 고고하면서 지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다. 맞다. 배우 장미희는 분명 70∼80년대의 흥행 메이커로 한국 영화를 대표했다. 오는 백발 어떻게 막고, 가는 세월 어찌 잡을 수 있으랴. 하지만 이런 말이 무색해진다. 장씨는 올해로 연기인생 30년을 맞는다. 얼핏 40대 중반쯤으로 판단되지만 여전히 청순가련의 이미지와 소녀같은 맑은 목소리를 간직하고 있었다. 정확한 나이를 물었더니 “남자 배우들의 나이는 잘 안 밝히면서 왜 여배우들한테만 민감하느냐, 만으로 적어주지도 않고. 여자 나이를 무슨 생리적 한계로 판단하려는 습성이 있다.”며 쏘아붙인다. 장씨는 열일곱 살에 TBC 탤런트로 데뷔했으며,76년 영화 ‘성춘향’으로 스크린에 첫발을 내디뎠다. 연기자로서 30년이 되기도 하지만 17년째 대학강단에서 열심히 후학들을 길러내고 있다. 요즘들어 영화출연이 뜸해졌지만 가끔 TV드라마에 출연해 여전히 존재의 이유를 알리고 있다. 내년에는 오랜 만에 스크린에서 팬들과 만난다.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위치한 명지전문대의 ‘장미희교수 연구실’에서 만났다. 때마침 10일간의 유럽 나들이에서 막 돌아온 직후였다.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연구실 청소를 하고 있었다. 외유에 대해 궁금한 표정을 짓자 “베니스영화제에도 잠깐 들렀고, 자료 수집 등을 위해 몇군데 겸사겸사 다녔다.”고 설명했다. 장씨는 까만 남방셔츠에다 청바지 차림이었다. 나이 서른아홉일 정도로 젊게 보인다고 하자 “감사합니다. 기사 쓸 때에도 꼭 그렇게 써주세요.”라며 수줍게 웃는다. 먼저 근황을 물었다. 얼마전 명지전문대의 연극영상학과 학과장을 그만 두고 일주일에 9시간 강의에 몰두하고 있다고 했다. 과목은 영상연기. 그러는 한편 자신의 공부에도 열중해 최근 동국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거의 마무리했다. 또한 문화관광부의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을 맡아 관련 회의와 기타 행사에도 자주 참석한다. 이래저래 일주일이 후딱 지나간다고 했다. 애제자가 몇명쯤 되느냐고 하자 “여제자들은 시집가고 그런지 남자 제자들로부터 연락이 자주 온다.”면서 “다들 연극·영화·방송국 스태프 등으로 맡은 역할을 하고 있다. 기업체 홍보팀에도 여럿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씨는 제자들에게 인성교육을 강조한다고 했다. 자신의 존재와 장래의 꿈, 이를 위한 여러가지 마음 가짐 등등. 아울러 제자들은 자신을 연기자로 보지 않고 그냥 교수님으로 인식한다고 했다. 가끔 아버지가, 어머니가 그랬다며 사인을 요청하는 제자들이 있을 경우 “내가 왕년의 배우인가.”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 최근에 드라마에 출연했더니 제자들로부터 “교수님의 연기력에 새삼 감동했어요.”라는 얘기를 전해 들어 모처럼 연기자로서의 즐거움을 느낀다고 했다. 평소 독서량이 풍부해 한번 얘기하기 시작하면 동서고금을 휘젓는 달변으로 통한다. 이런 얘기를 하자 “송구스럽습니다. 요즘에는 철학이 없어요, 인문학이 죽어가고 있지요. 영상시대입니다. 알기 쉽게 풀어서 제자들에게 전달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라며 자신의 강의철학을 피력했다. 이어 요즘 영화의 흐름에 대해 나름대로의 비판을 토해낸다.“사랑이 무슨 종교처럼 신봉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사랑을 할 수 있는 나이, 즉 20대에서 30대 초반정도로 국한돼요. 성숙된 사회란 40∼50대의 사랑도 그려져야 해요. 왜 40대만 되면 사랑도 없고 그저 생계에만 매달려야 하는 사람으로, 밥 먹었니, 학교에 가라, 공부는 왜 안하니 등등의 얄미운 역할만 해야 합니까.20대의 욕망과 야망 앞에 늘 피곤한 들러리 존재라고나 할까요. 40대 이상에도 야망이 있고 관능이 있어요. 영화계에서 어느새 중견배우라는 말도 사라졌어요.” 또한 사랑은 20대의 전유물로 그려지고 있으며 40대 이상은 욕망을 가져서도, 일탈해서도 안되는 것처럼 늘 제외돼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영화 ‘타인의 취향’(아네스 자우이 감독)인 경우 중년의 사랑과 관능, 자존심 등을 아주 담담하게 그렸지만 명화로 널리 대접받는 것을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40대를 포옹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영화 출연 제의가 오느냐고 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현재도 시나리오를 받아 놓고 고민 중이라고 했다. 역할도 중요하지만 관객들의 호응과 극장의 배급망 등을 계산하다보니 자꾸 망설여진다고 고백했다. 특히 ‘배우 장미희’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실망을 주면 안된다는 강박관념도 뒤따라 쉽게 결정을 못하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내년에는 영화 한두편정도에 출연해 팬들에게 보답할 예정이라고 했다. 최근 프랑스에 갔을 때 60년대 후반에 선보인 영화 ‘남과 여’의 주인공 아누크 에메가 ‘남과 여’ 포스터를 아직도 그대로 붙여놓고 극장에서 연극을 하는 것을 보고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어떤 역할을 맡고 싶느냐는 질문에 “병적으로 따라다니는 스토커나, 이승과 저승을 경험하는 진지한 연기, 아름다운 중년의 모습, 또 기회가 주어지면 자객이나 검객역도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영화배우로서 정년은 관객이 찾아주지 않을 때가 아니냐면서 사랑해주는 팬들이 있는 한 연기를 계속할 것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연기생활을 하면서 가장 아끼는 작품을 꼽아달라고 하자 ‘사의 찬미’‘황진이’‘적도의 꽃’‘겨울여자’ 등을 열거했다. 독신으로 사는 이유를 물었다.“혼자 살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까지 왔다. 이성과 만나면서도 둘이 되려고 노력을 하지 않았고 솔직히 배려도 못했다. 스캔들도 부담스러웠다. 이제와서 생각이지만 결혼을 하든 안하든 배려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좋은 친구, 즉 지혜로운 친구, 와인을 같이 마실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심경을 고백했다. 집에는 일흔 다섯 살의 어머니, 그리고 고양이(미미)와 삽살개(양배추) 등이 함께 산다.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 “채식 위주의 소식, 요가를 자주 하며 가끔 산책과 헬스클럽에 나가 가벼운 운동을 한다.”면서 한달에 한번 주치의를 만나고 6개월에 한번 건강검진을 받는다고 귀띔했다. 어릴 적부터 선생님이 꿈이었다는 장씨. 배우로서 회의를 느껴본 적이 있지만 교수가 된 이후에는 한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꿈을 이루어 행복과 정신적 안정감을 만끽하고 있다는 것. 연기란 무엇인가라는 다소 생뚱맞은 질문에 지체없이 “자기자신을 알아라, 인간이 어디에서 나와 어디로 가는지, 여러 체험을 통해 겸허해지는 것.”이라고 답했다. 가을을 타느냐고 하자 “작년까지는 계절을 안 탔는데 올해들어서 느낌이 약간 달라지고 있다.”고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아울러 “오래 숙성된 와인일수록 더욱 맑아지고 찌꺼기는 가라앉는 법”이라며 집에서 와인을 마실 때가 가장 즐겁다며 활짝 웃었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부산 출생 ▲동국대 불교학과 졸업 ▲1975년 TBC탤런트 데뷔. ▲76년 영화 ‘성춘향’ 데뷔 ▲77년 영화 ‘겨울여자’에서 이화역을 맡아 대스타가 됨. ▲82년 조계사 합창단 단장 ▲89년 명지 전문대 출강 ▲99년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심의위원, 명지전문대 연극영상과 전임교수 ▲2005년 문화관광부 제3기 영화진흥위원(임기3년) ■ 주요 출연작품 영화와 드라마를 합쳐 80여편 출연. ▲영화 애인(82년), 사의 찬미(87년), 불의 나라(89년), 애니깽(94년), 아버지(97년), 보리울의 여름(2002년), ▲드라마 타인(87년), 잠들지 않은 나무(89년), 엄마야 누나야(2000년), 흥부네 박터졌네(03년), 황태자의 첫사랑(04년), 그 여름의 태풍(05년). ■ 저서 내 삶은 아름다워질 권리가 있다(98년) 외. ■ 상훈 신인상 제11회 핑크리본상(76년), 여우주연상 은곰상(77년), 최우수 여자연기상(79년), 제37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여우주연상(92년), 대종상 여우주연상(92년), 제12회 청룡상 여우주연상(92년) 등.
  • [우리는 맞수 CEO] 김인 삼성 SDS 사장 vs 정병철 LG CNS 사장

    김인 삼성SDS 사장과 정병철 LG CNS 사장은 ‘관리형 CEO’라는 점에서 무척 닮았다. 시스템통합(SI) 업계 1,2위를 다투는 경쟁자로서의 ‘자존심 대결’도 치열하다.‘재무통’인 정 사장이 정적이고 선비적이라면 ‘인사통’인 김 사장은 역동적이어서 일을 만들고 나서기를 좋아한다.‘돌다리도 두드려 가는 스타일’은 비슷한 편이다. 김 사장과 정 사장은 각각 삼성과 LG에서 30년 넘게 재직했다. 두 사람은 2003년 1월 CEO로 임명됐다. 그룹에서 취임 당시 경영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재무·관리분야 베테랑인 두 사람을 ‘관리형’ 사장으로 앉혔다. 그동안 ‘내실 다지기’에 주력해 왔으나 최근에는 ‘외연 넓히기’에도 나서고 있다. ●‘수익성 강화’ 대 ‘매출 극대화’ 매출액에서는 삼성SDS가 업계 1위다. 반면 LG CNS는 ‘서비스 등에서의 진짜 1위’를 주장한다. 따라서 삼성SDS는 매출에다 수익성을 강화하는 것이고,LG CNS는 수익성에다 매출액을 올려야겠다는 것이다. 삼성SDS 김 사장은 “올해 첫 매출 2조원시대를 열고. 지난해 7%였던 영업이익률도 처음으로 10%대를 달성하자.”고 밝혔다. 이에 LG CNS 정 사장은 “그룹 계열사 외 부문에서 경쟁물량 확대를 최대한 확보하자.”며 독려하고 있다. 그는 “진정한 1등은 일시적 매출이나 규모의 우위가 아니다.”라고 맞받았다. 그러나 매출을 지난해보다 13.5%가량 늘어난 1조 8000억원으로 잡아 규모면에서도 삼성SDS와 나란히 가겠다는 의도다. 지난해 7월에는 서울시의 교통체계 개편의 근간인 ‘서울시 교통카드 시스템’을 성공리에 구축, 주목을 받았다. 지난 3월에는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 단지내 부지에 LG CNS IT센터 기공식을 가졌다. ●감동 경영은 ‘스킨십’ 두 사장은 유독 사내 커뮤니케이션과 현장 경영을 강조한다. 궁극적으론 ‘수평적 경영’이 경쟁력의 기반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크고 작은’ 이벤트로 언론에서도 많이 소개된다. 정 사장은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통해 직원들의 소리를 듣는다. 사내 주니어 보드도 만들고 ‘카페 경영’도 하고 있다. 또 가족 사보에 편지 칼럼을 모은 ‘사랑의 우체통’도 운영 중이다.2년여전 여기에 한 직원의 딸이 올린 ‘첫째딸의 새해 소원’을 읽고 호텔 뷔페권을 사들고 간 사실은 아직도 직원들에게 회자된다. 김 사장도 매주 월요일 7000여명의 직원에게 ‘월요 편지’란 이메일을 보낸다.120회를 넘게 편지를 보냈다. 그가 보내는 편지에는 회사 소식은 물론 책 이야기, 출장 중 경험한 일, 직원들의 건강 걱정 등 다양하다. 두 사장은 또 책을 가까이하고 스포츠를 무척 즐긴다. 정 사장은 다독가(多讀家), 스포츠 마니아다. 프로야구팀 ‘LG트윈스’의 구단주 대행을 맡고 있다. 임·직원과 함께 야구경기장을 찾아 ‘노사 화합의 공간’으로 활용한다. 야구 경영론을 이야기하는 이도 있다. 김 사장도 책이라면 정 사장 못지않다.‘책 마니아’로 꽤 소문나 있다. 한 달이면 5권이상 책을 읽는다. 그를 만나면 독서 예찬론까지 나온다. 김 사장은 또 매일 아침 7시30분이면 서울 테헤란로 사옥에 도착,24층 집무실 계단을 걸어서 올라간다.2003년 취임 이후 2년 6개월을 줄곧 해왔다. 그는 “걷기운동에 관한 책을 읽고 시작했다.”고 밝혔다. 걷다 보면 잡념이 생기지 않아 생각을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U-비즈니스’에서 한판 붙는다 김 사장은 유비쿼터스 시대에 대처하기 위한 계획을 이미 밝혔다.2007년까지는 기술개발 등 기본역량을 강화하고 2008년부터 신규 사업, 해외 사업 등에 본격 진출하겠다는 프로젝트다. 오는 2010년 세계 10대 회사로 성장하겠다는 게 목표다. 정 사장도 ‘U-비즈니스’를 기치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상암IT센터’ 건립을 위한 첫삽을 떴고 ‘송도 U-라이프 유한회사’(가칭) 설립도 준비중이다. 두 CEO는 최근 전통의 내수시장(주로 그룹내 전산 지원)에서 중국, 일본, 브릭스(BRICs) 등으로의 해외사업 진출에도 주력하고 있다.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김인 사장 ▲1949년(56) 경남 창녕 출생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84년 삼성물산(주) 프랑크푸르트지점 부장 ▲91년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인사팀 이사 ▲94년 삼성물산(주) 상무 ▲98년 삼성전관(주) 영업본부 전무 ▲2002년 (주)호텔신라 부사장 ▲2002년 서울 신라호텔 총지배인(본부장) ●정병철 사장 ▲1946년(59) 경남 하동 출생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69년 LG화학 재경실 예산과 입사 ▲78년 LG화학 자금부 부장 ▲86년 LG화학 인사 총무 IT담당 이사 ▲89년 LG반도체 재경담당 상무 ▲96년 LG상사 경영지원담당 부사장 ▲97년 LG전자 대표이사
  • [마광수의 섹스토리] 식용색소 화장

    [마광수의 섹스토리] 식용색소 화장

    나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나의 ‘섹스피아’를 찾아오겠다고 한 미지의 여인은 분명 3시에 찾아오겠다고 나에게 이메일을 보냈었다. 그래서 나는 만사를 제쳐 놓고 그 여인에 대한 온갖 추측과 설렘을 달래가면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초인종이 울리자 나는 문을 열어주었다. 여인이 들어왔다. 마치 중동 여인 같은 복색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탄성을 질렀다. “와…! 굉장한데요. 이제서야 당신 집 이름이 왜 섹스피아인가를 알게 됐어요. 저는 정말 이토록 환상적일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나의 집은 ‘섹스피아’라는 이름에 걸맞게 섹스를 가장 환상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그러한 시설 중에서 내가 가장 내세우고 싶은 것은 역시 거울이었다. 나의 방 모든 벽면은 마치 거울로 도배를 해놓은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은 보통 거울이 아니었다. 외견상으로는 거울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상 고성능 컴퓨터의 제어를 받는 하이테크 기술이 접목된 최첨단 장치였다. 평상시에는 거울의 기능만을 수행하지만 섹스를 할 때는 그것이 황홀한 빛을 발하는 조명이 되기도 하고, 고화질의 영상이 상영되는 스크린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뭐니뭐니 해도 거울에서 레이저 광선을 발사해서 만들어내는 입체영상이 백미였다. 남녀가 섹스하고 있는 광경을, 레이저 광선을 허공에 투사시켜 그대로 재현한 것을 보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정말로 그 황홀함이란 것은 실제로 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그러한 모든 기능을 섹스를 할 때 가장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주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진 소프트웨어가 내장된 컴퓨터다. 그때그때 상황을 판단하고 통제를 한다. 그리고 나의 ‘섹스피아’에는 음향시설이 완벽하게 구비돼 있다. 최대한 자연음에 가까운 소리를 재현하는 음향시스템은, 벽면에 설치되어 있는 거울과 조화를 이루도록 만들어졌다. 만약 영상 시스템이 저녁 노을에 물들어 있는 바다의 정경을 연출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내 방안은 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가 된다. 실제로 허공에는 레이저 광선이 만든 갈매기들이 날아다닌다. 거기에 갈매기 소리를 닮아가는 여인의 신음소리…. 마치 물 위에 떠있는 침대 위에서 섹스를 하는 듯한 느낌…. 내가 안내하는 대로 집안을 대충 훑어본 여인은 이제 새롭게 태어난 듯했다. 그녀는 벌써 거추장스러운 가식의 허울들을 훌훌 벗어 던져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당신과 섹스를 하고 싶었어요. 당신 같은 예술감각이 뛰어난 남자를 만난 것이 제게는 큰 행운이에요.” 이렇게 말하는 여인의 숨소리는 벌써 잦아들고 있었다. 내가 그녀의 옷차림을 다시 보고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중동에서 오시지 않았습니까?” “중동이라니요? 저는 단지 프랑스에서 의상디자인 공부를 하고 왔을 뿐이에요.” “그런데 차림새가 하필이면 왜 그렇지요?” 여인은 대답을 하지 않고 배시시 미소만 흘렸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약간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움직임을 감지한 컴퓨터가 상황을 판단하고 집안에 있는 모든 조명을 꺼버렸다. 이제 ‘섹스피아’에는 어둠만이 남았다. 육중한 어둠을 비집고 그녀가 차도르를 벗어 던지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올 뿐이었다. 그러면 내 방안은 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가 된다. 실제로 허공에는 레이저 광선이 만든 갈매기들이 날아다닌다. 거기에 갈매기 소리를 닮아가는 여인의 신음소리…. 잠시 후에 그녀의 머리 위에 조명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거울에서 투사되는 조명은 특수한 것이어서, 다른 곳으로 빛이 번져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마치 어둠을 원기둥 모양으로 도려낸 것 같았다. 나는 그 속에서 박제가 된 미라처럼 서 있는 여인을 보고 “하!”하고 비명에 가까운 탄성을 질렀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어깨 뒤로 길게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컬을 하지 않아서 아주 자연스러워 보였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은 전체적으로 은은한 진주빛으로 코팅돼 있어서 머리 위로 쏟아지는 조명 불빛은 반사가 되어 물안개처럼 피어올랐다. 그래서 여인의 머리는 마치 온갖 현란한 광채를 뿜어내는 분광기(分光機)라는 착각이 들었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은 초가을 바람에 하늘하늘 나부꼈다. 머리카락이 흩어질 때 드러난 귓바퀴에는 자전거 바퀴만한 귀걸이가 걸려 있었다. 황금빛 귀걸이는 커다랗고 묵직해서 다소 거추장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그 육중한 무게는 예술미에 의해 현격하게 완화되고 있었다. 귀걸이는 바로 아래 발기가 된 남성의 페니스를 본떠서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여인의 얼굴은 화려한 색으로 모자이크되어 있었다. 화장을 했다기보다 차라리 그림을 그렸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반달처럼 생긴 여인의 이마는 전체적으로 옅은 하늘색이었다. 그리고 갈색 눈썹이 있어야 할 자리는 하얗게 칠해져 있었다. 하얀색으로 칠해진 눈썹이 하늘색 이마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마치 갈매기가 하늘 높이 비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길이가 10㎝쯤 되는 인조 속눈썹은 짙은 와인 색깔로 염색되어 있었다. 계란처럼 생긴 여인의 눈은 유난히 컸다. 쌍커풀이 깊에 되어 있어서 눈이 더욱 커보이는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렇게 커다란 눈을 여인이 그냥 둘리가 없었을 것이다. 여인은 아주 독특한 콘택트 렌즈를 끼고 있었다. 렌즈는 눈동자가 드러나 보이는 부분을 빼고는 모두 푸르게 채색되어 있었다. 눈 밑에 있는 코는 깎아지른 듯한 산등성처럼 오똑하게 솟아 있었다. 그녀의 코 한편에는 노란색 화장이 되어 있었고 다른 한편은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그리고 입술은 노란색으로 그려져 있었고, 치아는 초록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여인은 속옷을 입지 않고 단지 아이보리색 실크 나이트 가운 하나만을 걸치고 있었다. 나이트 가운 속으로 투사된 불빛에, 그녀의 몸이 마치 마치 달빛에 아른거리는 실루엣처럼 환상적으로 보였다. 내가 넋을 잃고 침을 꿀꺽꿀꺽 삼키면서 여인의 몸매를 탐닉하고 있는데, 그녀는 반짝 미소를 그리며 “잠시 기다리세요.”라고 말하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그녀의 몸에서는 숨이 막힐 정도로 레몬 향기가 피어올랐다. 잠시 후, 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욕실 문에서 나오는 여인을 보고 나는 “하!”하고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물에 젖은 나이트 가운이 그대로 그녀의 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환상적인 자태를 본 다음, 이제는 내가 아무리 진정을 하려고 해도 사타구니가 빡빡하게 조여오는 것을 더이상 막을 수가 없었다. “빨리 저를 안아주세요!” 여인은 다급한 목소리로 재촉을 했다. 나는 의자로 돌아와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동안 외로우셨나요?” 다시 여인이 걱정스럽다는 듯 말을 했다. 나는 그대로 얼어붙은 채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안되겠군요. 제가 당신의 몸을 풀어드리겠어요.” 말을 마치자마자 여인은 나이트 가운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내가 앉아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여인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조명기둥도 그녀를 따라 움직였다. 여인이 접근해올수록 싱그러운 향냄새가 났다. 여자는 아무말 없이 내 몸을 정복해 나가기 시작했다. “페니스가 정말 잘 생겼네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여인은 다짜고짜 나의 그것을 빨았다. 시끈 시끈 시끈…. 그런 다음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항문을 내드릴게요.” 나는 여인을 공략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여인을 번쩍 들어서 원형 침대 위에 눕혔다. 나의 적극적인 행동을 감지한 컴퓨터가 분위기글 북돋우기 위한 작업을 개시했다.‘섹스피아’는 금방 아름다운 초원으로 탈바꿈했다. 허공에는 온갖 새들이 사랑놀음을 하면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푸른 초원에서는 저마다 교미를 하고 있는 동물들이 토해내는 황홀한 교향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제 ‘섹스피아’는 지극한 환락만이 넘쳐흐르는 파라다이스이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혓바닥으로 핥기 시작했다. 여인의 얼굴에 칠해져 있는 화장품은 사실은 식용색소라 무척 달콤했다. 나의 혓바닥이 지나간 자리에서 안개꽃 같은 여인의 속살이 뽀얗게 드러났다.‘섹스피아’는 냉방이 되고 있었지만 우리의 체온을 식히기엔 역부족이었다. 벌써 우리의 나체는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정신없이 여인의 얼굴을 거듭거듭 핥고 빨았다. 그러고 나서 드디어 그녀의 항문에 내 페니스를 들이밀었다. 어쩌면 이리도 쉽게 들어갈 수 있을까. 그녀의 항문은 촉촉한 윤활제로 벌써 코팅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항문을 유린하면서 계속 그녀의 고무풍선 같은 젖가슴을 어루만졌다. 여인은 흠흠흠 힐힐힐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마광수는 1951년 경기 수원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 국문과 교수 ▲저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장편소설 ‘권태´ ‘즐거운 사라´ ‘불안´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사랑의 슬픔´
  • [박동섭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사실혼 관계의 유복자 상속권은?

    Q아이 2명이 달린 이혼남과 동거를 했습니다. 저는 그의 아이를 가진 지 3개월째입니다. 그런데 혼인신고를 하기 전에 남편이 교통사고로 숨졌습니다. 남편은 보험금 1억원짜리 손해보험에 가입했고, 시가 5억원 정도 되는 아파트 1채를 남겼습니다. 뱃속의 아이를 키울 일이 막막해 남편의 상속재산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정순(가명·34)- A태아가 태어나기 전에는 생모라도 가압류나 가처분 등 어떤 보전조치도 취할 수 없습니다. 상속재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려면 우선 그가 망인의 상속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합니다. 임신 중인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증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민법은 생부가 살아 있다면 태아를 자신의 친생자라고 ‘유언인지’를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생부의 유언집행자는 유언자의 사망 후 1개월 안에 인지신고를 해야 합니다. 유언 인지신고를 하기 위해서 유언서 등본, 녹음유언의 경우에는 속기사가 녹음내용을 기록한 속기록을 첨부해야 합니다. 다만 산모가 유부녀라면 생부라도 인지할 수 없습니다. 혼인 중인 부인이 출산한 아이는 호적상 남편의 아이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이가 호적상 아버지를 상대로 친생부인 또는 친자관계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해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뒤에 생부를 비롯한 제3자의 인지가 가능해집니다. 그렇다면 태아 상태에서 생부를 상대로 인지청구를 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하다는 것이 다수설입니다. 일단 태어나야 생부를 상대로 인지 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김정순씨의 경우에는 생부의 사망 당시 뱃속의 아이가 아직 임신 3개월 상태이므로 생부가 남긴 재산은 그의 직계비속인 아이들 2명에게 2분의1씩 상속됩니다. 이혼한 전처에게는 상속권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미성년자라면 전처가 아이들의 법정 대리인으로 상속재산을 관리할 권리를 갖고, 관리하게 됩니다. 태아가 태어났을 때에도 생부가 남긴 재산이 생부 이름으로 그대로 남아 있다면 출생한 아이가 새로운 상속인이 되어 상속재산 분할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생부의 유언인지 없이 유복자로 출생한 아이가 분할절차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인지청구 소송을 제기해 승소판결을 받는 것이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돌아가신 생부에 대한 인지청구 소송을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 경우에는 검사를 피고로 가정법원에 인지청구 소송을 내고 생모가 아버지의 혈액형 등을 증거로 친자임을 입증하면 됩니다. 소송을 낼 수 있는 기간은 2년으로 제한됩니다. 이 2년은 일정한 권리에 대해 법률상으로 정한 존속기간인 제척기간에 해당됩니다.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으로 인해 소를 제기할 수 없는 경우에도 일단 기간이 지나면 방법이 없습니다. 태아가 태어난 뒤 전처 자녀들이 이미 상속재산을 나누어 버리거나 처분한 경우에 대해 민법은 일정한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새로 상속인 자격을 얻은 아이는 전처의 자녀들을 상대로 자신의 상속지분에 상당하는 돈을 달라고 청구할 수 있습니다. 김정순씨, 답답하겠지만 아이가 출생하면 방법이 생길 테니 그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클래식 전도사 금난새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클래식 전도사 금난새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좌절의 쓴 맛을 본 뒤에야 새로운 길이 눈에 들어왔다. 용기를 내어 발걸음을 내디뎠다. 눈덮인 들판에 첫 발자국을 새기듯 그 길을 조심조심 걸었다. 문득 프로스트의 시(詩)가 생각난다.‘훗날에 나는 어디선가/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그랬다. 젊은 나이에 미지의 길을 택했다. 험난했지만 열심히 오르고 또 올랐다.30여년 세월이 흘렀다. 각박한 이 사회에, 가느다란 손끝으로 커다란 감동의 하모니와 가슴 찡한 행복의 향기를 선사하는 거장으로 우뚝 섰다. 클래식 전도사 금난새(59) 교수. 지휘자로 외길을 걸어왔다. 자신의 이름처럼 금빛 날개를 달고 무대와 객석 사이를 훨훨 날아다닌다. 그가 지휘봉을 잡으면 청중이 구름처럼 몰려온다. 항상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 아무리 딱딱한 클래식이라도 부드럽게 녹여 청중을 매료시킨다. 그래서 ‘지휘봉의 마술사’라는 얘기를 듣는다. 요즘들어 별칭이 더욱 많아졌다. 지휘자라는 본업 외에 벤처 오케스트라의 CEO로도 확실하게 인정받는다. 즉, 지난 1998년 ‘유라시안 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창단한 이후 가장 성공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는 것. 덕분에 청와대와 중앙부처 공무원, 기업체와 대학 등을 상대로 ‘성공한 예술CEO’ 자격으로 강연을 다니느라 분주하다. 올들어서만 벌써 40회를 넘고 있다. 교수, 지휘자,CEO, 초빙강연 등 1인4역을 해낸다. 기획과 아이디어맨이라는 별칭도 있다. 서울 중구 신당역 인근의 ‘충무아트홀’ 6층 사무실에서 금씨를 만났다. 충무아트홀은 중구청이 올 3월 개관했으며, 금씨는 중구청의 지원으로 사무실과 연습실 공간을 무료로 사용하고 있다. 금씨는 때마침 모 기업체 강연을 막 다녀온 직후였다. 우선 강연 내용이 어떤 것이냐고 하자 “오케스트라의 조화와 기업경영의 하모니를 주제로 했다.”면서 요즘에는 대기업 강연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요즘 기업의 경영전략이 감동과 하모니 경영을 중요하게 여기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가 식당을 갔을 때 맛있고 행복감이 없으면 다시 찾지 않는 것처럼 음악의 오케스트라도 마찬가지”라고 특유의 레스토랑 경영론을 펼친다. 서비스정신으로 무장하고 관객들에게 행복감을 선사해야 다음 연주회 때에도 표를 예매하고 찾아주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런 다음 청중들이 원하는 것, 또 그 수준을 파악해 반발짝 앞선 감동을 던져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8·15경축사처럼 해마다 항상 비슷한 내용으로 반복되는 것이나, 부모가 아이들한테 늘 공부하라고만 하면 무슨 감동이 있겠느냐는 것. 그래서 많은 감동을 주기 위해 찾아가는 ‘방문 연주회’를 고집한다.‘도서관 음악회’‘베토벤 페스티벌’‘포스코 로비 콘서트’ ‘굿모닝 클래식’‘3군사관학교 방문연주회’‘해설이 있는 오페라’ 등은 신선한 아이디어와 철저한 고객지향 서비스 정신에서 나온 대표적 프로젝트. 이를 통해 민간 오케스트라 운용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지난 7일에는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2500명의 대학생을 모아놓고 두 시간 동안 연주회를 가졌다. 차이코프스키 심포니 4번을 해설하며 연주에 들어가자 다들 환호하며 흠뻑 빠졌다. 랩과 팝음악에 익숙한 대학생들이 모처럼 심포니의 선율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것. 금씨는 “장차 나라의 기둥이 될 대학생들에게 클래식의 감동을 선사해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보람과 큰 기쁨이 아니냐.”고 했다. 올 가을에만 5개 대학을 찾아갈 예정이다. 앞서 지난 94년부터 3년간 ‘금난새와 함께 떠나는 세계의 음악여행’이라는 청소년 음악회를 열어 우리나라 클래식 연주사상 최고의 화제공연으로 뽑히기도 했다. 객석에 있는 청중을 불러 노래를 시키는가 하면, 또 객석의 아저씨들이 남성 합창단으로 갑자기 둔갑하는 광경을 연출, 청소년들을 매료시켰다. “연주회 때마다 지휘자가 맨 나중에 나가는 것을 고집합니다. 마지막까지 관객들과 함께 축하하고 서로의 감동을 나누기 위해서지요. 또 단원들에게는 노력한 만큼 되돌아온다는 점을 늘 강조합니다. 또한 우리 오케스트라는 예술계의 샘플이 되자고 다짐합니다.” 지휘자가 안 됐으면 지금쯤 무엇이 됐을까 하고 물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글쎄요. 영화감독이었을 것”이라며 웃는다. 아울러 미술도 좋아하고, 또 연주 때 늘 문학적 철학을 염두에 둔다고 했다. 그만큼 자신의 재능, 즉 장르를 고집하지 않고 예술적 감각을 극대화시킨다는 것이다. 이어 ‘금난새’라는 이름에 얽힌 사연을 물었다. 그의 부친은 한글학회 회원이자 ‘그네’로 유명한 작곡가 고(故) 금수현. 금녕 김(金)가인 부친은 자신의 성을 한글식인 ‘금’으로 먼저 바꿨다. 이후 새로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나는 새’라는 뜻의 ‘금난새’로 지었다. 형제자매들의 이름도 ‘내리’‘누리’ 등 ‘ㄴ’자 돌림으로 했다. 금씨는 “우리 아이들은 ‘ㄷ’자 돌림의 ‘금다다’와 ‘금드무니’ 등으로 이름지었다.”고 귀띔했다. 그는 47년 음악적 환경이 풍부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중학교와 고교 진학때 입시에서 모두 실패했다.“실패는 새로운 에너지를 주는 것.”이라고 회고했다. 중학교 때에는 소심한 성격에다 영어 소문자도 제대로 못써 열등아라는 놀림도 받았다. 오기가 생겨 영어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교내 영어 웅변대회에서 1등까지 차지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경기고 입시에서 떨어지자 부모의 권유로 결원이 생겨 추가 모집하는 서울예고에 입학했다. 이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고1때 우연히 AFKN(미8군방송)에서 청소년을 위한 클래식 음악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레너드 번스타인(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작곡자)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니의 멋진 연주에 감동했다. 이때부터 번스타인은 인생의 모델이 됐다.‘토요음악회’ 등 앞장서서 그룹활동을 주도했다. 또한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곤 실천에 옮겼다. 서울음대 시절엔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연주여행에 나서기도 했으며, 음대 학생회장을 맡아 음악캠프 등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방위근무를 마친 뒤 모교인 서울예고에서 1년반 정도 교편을 잡았다. 그러나 지휘자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 베를린대학으로 유학을 훌쩍 떠났다. 때마침 베를린 오페라좌에서 지휘자로 활동했던 음대의 라벤슈타인 교수를 만나 본격적인 지휘공부를 하게 됐다. 여러차례 콩쿠르에 나갔지만 실패를 거듭한 끝에 서른살이 되던 77년 카라얀 콩쿠르에서 입상하면서 지휘자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베를린 음대 졸업 후 귀국,KBS 교향악단에서 12년간 활약하게 된다. 이후 수원시향이 없어질 위기에 놓이자 서둘러 달려가 다시 살려내는 데 앞장섰다. 이런 인연으로 6년 동안 수원시향 지휘자로 몸담았다. 98년에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자본금도 거의 없이 벤처 오케스트라 ‘유라시안 필하모닉’을 만들었다.99년 12월31일 밤 서울 강남의 포스코 빌딩 로비에서 연주를 한 것이 인연이 돼 포스코가 ‘대학교 순회 콘서트’를 지원해주게 됐다. 또한 ‘CJ’측의 후원을 얻어 육·해·공군사관학교에서 연주회를 열었다. 이에 힘입어 창단 첫해 40회 연주를 시작으로 70회,80회,100회 등 해를 거듭할수록 전국 27개도시를 상대로 순회연주가 늘어나고 있다. 올해에는 벌써 130회를 넘었다. “아내와 단둘이 결혼식을 올리고 베개 두 개로 신혼생활을 시작했듯이 유라시안 필하모닉의 시작도 초라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국에서 우리를 많이 찾고 있습니다. 고전음악은 우리 시대의 창이자 분명 위대한 것입니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7년 부산 출생 ▲66년 서울예고 졸업 ▲70년 서울대 음대 작곡과 졸업 ▲74년 베를린 음대 유학 ▲77년 카라얀 국제 지휘콩쿠르 입상 ▲80년 KBS교향악단 전임 지휘자 ▲89년 KBS교향악단과 국내 최초 오케스트라 녹음 출반. ▲92년 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94년 ‘해설이 있는 청소년음악회’ 기획·진행 ▲98년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창단 ▲2002년 주식회사 CJ와 오케스트라 후원 계약 체결,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 홍보대사 ▲05년 중구문화재단과 협력계약 체결, 유라시안 필하모닉 충무아트홀 상주 ▲현 유라시안 필하모닉 음악감독, 경희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 저서 나는 작은새 금난새 (디자인하우스,96년),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생각의 나무,03년)
  • “출생직후 엄마 젖 물리세요”

    “아기는 태어나서 처음 입에 문 젖꼭지를 본능적으로 기억합니다. 인공 젖꼭지를 먼저 물리면 당연히 엄마 젖을 거부하게 되죠.” 한국 BFHI위원회 박정한(60·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장) 위원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아기가 병원에서 태어나자마자 엄마와 격리돼 초유를 먹이기가 힘들다.”면서 “이는 엄마들의 모유 먹이기를 가로막는 주된 이유 중 하나”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BFHI위원회는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의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 만들기’(Baby Friendly Hospital Initiative) 운동을 이끄는 국내 단체다. 박 위원장은 “태어나자마자 엄마 젖을 먹고 자라난 아이는 우는 소리도 얌전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다.”면서 “핵가족화하면서 산모에게 모유 수유에 대한 정보를 줄 사람이 없어지는 만큼 병원에서 이런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BFHI위원회는 모유를 많이 먹이자는 뜻에서 매년 전국 산부인과와 조산원 등을 대상으로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을 선정하고 있다. 올해에는 광명제일산부인과, 분당제일산부인과, 샘여성병원, 서울여성병원, 쉬즈산부인과, 에덴병원,MS여성병원, 인정병원, 현대미소래산부인과 등 9곳을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으로 정해 10일 서울대 병원에서 임명식을 갖는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30분 안에 엄마 젖을 먹고 엄마와 함께 지낼 수 있는 구조를 갖춘 곳만 지정될 수 있다.1993년 부산 일신기독병원을 제1호로 시작된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은 이로써 전국 51곳으로 늘어났다. 박 위원장은 “출산은 엄마뿐만 아니라 아기에게도 급격한 환경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아기가 친근하게 여겼던 엄마의 심장 박동소리를 들으며 초유를 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亞육상선수권 ‘황금창’ 던진 박호현 선수·허성민 코치

    [스포츠 라운지]亞육상선수권 ‘황금창’ 던진 박호현 선수·허성민 코치

    불쑥 나타난 여성을 보자마자 고개가 절로 갸우뚱거렸다. 길이 2m30에 600g짜리 창을 무려 55m나 던졌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겨우(?) 166㎝에 57㎏의 체구란다. 바로 지난 4일 막을 내린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창던지기에서 한국에 금메달을 선사한 박호현(27·SH공사)이다. 박호현은 이 대회에서 한국선수로선 유일하게 ‘황금 창’을 던져 자칫 몰락할 뻔했던 한국 육상에 큰 위안을 준 주인공이다. 한국체대 대운동장에서 몸을 풀고 있던 박호현과 함께 금메달을 빚어낸 코치이자 남편인 국가대표팀 허성민(30) 코치를 만났다. ●빵과 우유가 먹고 싶어 뛰고, 던졌다. 1989년 어느날 충북 증평군 삼보초등학교 5학년 교실. 육상부 코치가 와락 문을 열고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댔다. 높이뛰기 선수인 친구를 찾으러 왔지만 친구는 벌써 도망가고 없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또래들보다 한뼘 가까이 키가 큰 어린 호현을 주시했다. 코치는 호현에게 다가와 “너, 뜀박질 한번 해볼래.”라고 물었다. 어릴 때부터 소꿉장난보단 뛰어노는 게 훨씬 좋았고 운동하면 준다는 빵과 우유가 아른거렸던 박호현은 선뜻 코치 손을 잡고 말았다. 단거리 선수가 됐다. 주 종목은 200m. 하지만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시·도대항전에 나가면 순위는 뒤에서 재는 게 빠를 정도였다. 다만 재능이 다른 곳에 숨어 있었던 걸 몰랐다. 이듬해 체력장 공던지기에 나선 박호현은 친구들보다 수십m 멀리 공을 던져 코치의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뜀박질 대신 줄기차게 공을 던졌고 증평여중 2학년이 돼선 공던지기 대회가 없는 탓에 대신 창을 잡았다. ●남편 뒷바라지로 얻어낸 금메달 누구보다 뛰어난 선수라고 자부했지만 그에겐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한국체대 5년 선배이자 15년 가까이 한국 여자 창던지기의 간판으로 군림한 이영선(31·대구시청)이 버티고 있었던 것.98방콕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선 이영선을 누르고도 국제경기 경험이 모자라 방콕행 티켓을 넘겨준 아픔도 있다. 이 때문에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누구냐는 물음에 주저없이 “자기관리가 엄격한 영선 언니”라고 손꼽지만 잠시 눈가에 그늘이 드리웠던 이유였다. 게다가 이후엔 장정연(28·익산시청)이 나타나 간판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애간장은 더욱 타들어 갔다. 이때 박호현에게 든든한 ‘도우미’가 나타났다. 바로 대학 3년 선배였던 허 코치였다. 허 코치는 힘들어하는 박호현을 때론 따뜻하게 감싸안고, 때론 냉정하게 채찍질하며 항상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돼 줬다.4년 전 허 코치가 충남 서천군청 소속으로, 박호현이 충남도청 소속으로 함께 공주에서 훈련하던 어느날 둘은 박호현의 프러포즈로 커플이 됐고, 지난해 3월7일 백년 만의 폭설이 내리던 날, 백년가약을 맺었다. ●“내년 아시안게임 정상 오르면 아이 가질것” 이렇게 박호현은 남편이자 코치의 든든한 후원을 등에 업고 이번 대회에서 이영선을 꺾고 ‘만년 2인자’ 타이틀을 벗어던졌다. 하지만 박호현의 꿈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내년 12월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목표가 남았다. 그 뒤엔 미련없이 창을 내려놓은 뒤 2세를 가질 계획이다. 허 코치는 “호현이는 승부 근성과 오기로 똘똘 뭉쳐 뭐든지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작은 체구가 가진 단점만 보완하면 다시 한번 큰일을 해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남편이 훈련에 많은 도움을 주느냐고 묻자 “태릉선수촌에서 합숙하는 오빠(허 코치)를 볼 수 있는 기회는 함께 훈련하는 시간밖에 없는데 내게 눈길조차 안 준다.”며 입을 삐쭉거렸다. 그러자 허 코치는 “사람들 눈이 있으니 다른 선수를 10번 지도할 때 호현이는 한번에 집중해서 가르친다.”며 웃음으로 가름했다. 서로를 보는 눈길에 담긴 정이면 내년에 다시 한번 큰일을 해낼 것 같다는 느낌이다. ●박호현은 생년월일=1978년 3월21일 충북 증평 출생 출신학교=삼보초-증평여중-충북체고-한국체대 가족사항=박노열(53)·조기순(53)씨 1남1녀 중 첫째 주요경력=03년 전국체전 3위,04년 종별육상선수권대회 2위,04년 부산국제육상경기대회 4위,04년 전국체전 2위,05년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 1위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마광수의 섹스토리] (15) Foot Fetish

    [마광수의 섹스토리] (15) Foot Fetish

    벽을 보도록. 발 노예야, 내 발을 숭배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을 때까지 구석에 가서 서 있어라!” ‘발 페티시(Foot Fetish)’ 클럽의 여주인 ‘지나’는 빨간 코트를 벗으면서 남자에게 명령한다. 지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남자는 여인이 걸친 무거운 비단 천, 숨겨진 긴 발톱, 하이힐의 은근한 힘을 연상한다. 다시 지나가 그에게 말한다. “너는 내 발을 숭배할 자격이 없다. 안 그런가? 나의 불쌍한 노예야.” 남자는 부르르 몸을 떨면서,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이한 마조히즘의 쾌감에 잠기면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예, 그렇습니다. 저의 여왕님. 저는 여왕님의 발을 숭배할 자격이 없습니다.” 남자는 벌써 널찍한 방 구석에서 몸을 움츠리며 즐거운 공포에 젖어있다. “야, 발의 노예야. 너는 이제부터 착하게 굴어야 한다. 내 친구들 앞에서 나를 부끄럽게 만들지 말도록 해라.” 남자는 그저 그렇게 생긴 보통 사람이다. 보통 키에 보통 체중, 고급 미용실에서 만진 듯한 산뜻한 헤어스타일, 투명색 매니큐어를 칠해 말끔하게 다듬어진 손톱, 나이는 마흔 서너살쯤…. 남자는 사타구니에 꽉 끼는 검은 가죽 팬티를 입은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입고 있지 않다. 코트를 벗어젖힌 지나는 아름다운 살결의 여성이다. 검은 색 니트 캣슈트(손목에서 발목까지 가리는, 몸에 꽉 끼는 여성용 운동복)가 탄력있는 몸매를 매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지나는 허벅지까지 오는 윤기 나는 비닐 부츠를 신고 있고, 귀에는 무거운 은제(銀製) 귀고리를 달고 있다. 코트를 의자 위에 던져놓은 지나는 핸드백에서 스웨이드 채찍을 하나 꺼낸다. 그리고 채찍으로 노예의 뭉툭한 고환 부근을 때리면서 계속 욕설을 퍼붓는다. “발 노예야, 이번 주일엔 어땠지? 내가 시킨 걸 다 했나?”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노예는 아주 공손한 음색으로 겸손히 묻는다. “내가 너에게 선물로 준 나의 하이힐에 너의 페니스를 비비면서 매일마다 마스터베이션을 했냐 이 말이야.” “예, 그렇게 했습니다. 여왕마마께서 시키신 일을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너는 내 말을 잘 듣는 노예냐?” 이렇게 말하면서 지나는 남자의 어깨를 채찍으로 내려친다. 남자는 아픔으로 몸을 떤다. “자,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할 테냐?” 이렇게 말하면서 지나는 남자의 등을 세게 채찍질한다. 그러고서 다시 덧붙인다. “발 노예, 네가 얼마나 착하게 굴었는지에 대해 거짓말을 하진 않겠지?” “예, 여왕님, 저는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럴만한 가치조차 없지요.” 지나는 남자한테서 몇발자국 떨어져나와 발을 벌리고 선다. 그리고 양손을 허리에 얹는다. 실내는 조용하다. 차량들의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창문을 닫아둔 상태이다. 공기를 가르는 채찍소리와 지나의 목소리 이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강력하면서도 교양이 있고, 그리고 명령하는 투의 지나의 목소리 이외에는……. 지나는 다시 웅크리고 있는 남자에게 명령한다. “돌아서서 나한테로 기어와라.” 말씨이다.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지나를 향해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와 그녀의 발 바로 앞에서 멈춘다. 바로 눈 앞에 부츠를 신은 지나의 오른쪽 발이 있지만, 남자는 수줍어 어쩔 줄을 모른다. 지나의 발 끝이 남자의 뺨에 닿는다. 남자의 페니스가 발기한다. “핥아라.” 지나는 발을 바닥에 내려놓으면서 남자에게 말한다. 남자는 지나의 반짝거리는 비닐 부츠에 혀를 댄다. 그리고 혀로 신발을 광택나게 닦기라도 하듯이 길고 넓게 부츠를 핥는다. ‘발 페티시스트(Foot Fetishist)’의 유형에는 세가지 타입이 있다. 하나는 발 숭배하기이다. 그들은 여자가 신발을 신은 채든 벗은 채든 발을 핥고 발에 키스하는 데서 오르가슴을 느낀다. 그 다음은 짓밟기. 굽 높은 하이힐을 신은 여자가 남자의 몸뚱어리 위를 걸어다니거나 짓밟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세번째는 ‘거녀(巨女) 콤플렉스’ 실연하기. 거녀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남성은 숫자가 좀 적다. 그들은 상대방 여성이 거인(巨人)이고 자신을 난쟁이라고 생각하며 상대가 자기를 밟아죽이는 상황을 연기하고 싶어한다. 남자는 지나의 부츠를 오랜 시간동안 핥고 빨다가 드디어 자기의 몸뚱어리를 짓밟아 달라고 애원한다. 지나는 엎드린 남자의 등 위에 서서 사정없이 뾰족한 굽으로 짓밟는다. 그때 남자의 페니스에서 정액이 분수처럼 솟구쳐 나온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지나는 부츠를 벗고서 맨발을 드러낸다. 그런 다음 남자에게 명령한다. “이제 내 발의 냄새를 맡아라!” 그리고 이어서 덧붙인다. “발에 코를 대고서 진짜로 냄새를 맡는 거다.” 남자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고, 지나는 의자에 앉아 있다. 남자는 지나의 발에 입술을 갖다댄다. 지나의 발냄새를 깊숙이, 그리고 허겁지겁 들이마시는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이젠 발을 문질러라.” 지나가 말한다. 지나의 발은 갸름하고 발가락이 길다. 다소 짧은 새끼발가락을 빼고 나머지 발가락들은 엄지발가락만큼 길며 발톱들에는 빨간색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다. 지나의 발을 문지르는 동안 남자는 가끔씩 신음소리를 낸다. 얼굴에는 성적 흥분이 역력히 드러나 있다. 지나는 남자에게 문지르는 것은 이젠 됐다고 말하면서, 엄지발가락 하나를 부드럽게 남자의 입 속으로 밀어 넣는다. 남자는 숨죽여 흐느낀다. 남자는 계속해서 열심히 여자의 발가락을 빤다. 남자는 헐떡거리면서 숨을 몰아 쉬며 신음한다. “난 잠깐 쉬고 싶다.” 지나는 남자의 입에서 발을 빼며 말한다. 남자의 얼굴에서는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이 드러난다. 그리고 뜨거운 갈망의 표정도 드러난다. 시간이 잠시 흐른 뒤, 지나는 남자의 음낭 주변을 그물스타킹으로 묶는다. 그리고 남자가 지나의 부츠를 공손하게 신기고 있는 동안 그의 귓전에다 대고 뭐라고 속삭인다. 남자는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다. 지나는 빨간색 코트를 입는다. 남자가 지나에게 두툼한 돈을 지갑에서 꺼내어 준다. 정중한 자세로……. 남자는 차를 타고 집으로 간다. 집에는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 남자의 아내는 남편이 발 페티시스트라는 것을 모른다. 오랫동안 정상체위의 섹스만 해왔기 때문이다. 남자는 식사를 마친 후, 아내와 함께 잠자리에 든다. 물론 아까 음낭에 매고 온 스타킹을 풀어 자신의 책상 서랍 속에 고이 보관한 뒤의 일이다. 남자는 아내와 인터코스를 하면서 아까 가졌던 지나와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러니까 페니스가 차츰 발기되어 온다. 남자의 아내는 펠라티오조차 하기를 거부하는 ‘숙녀’이다. 그래서 남편에게 삽입성교만을 요구하는 것이다. 남자는 머릿속으로 지나의 긴 뾰족 부츠와 발 냄새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쓴다. 그러자 점점 더 또렷하게 그녀의 발 모양과 냄새가 머릿속에 떠올라온다. 그의 페니스가 드디어 아내의 질 속으로 들어간다. 남자는 아까 지나가 자신을 엎드려놓고 발로 밟아줬던 기억을 쥐어짜내려고 애쓴다. 그러나 기억은 잠시뿐, 그의 페니스는 서서히 오그라들고 만다. 그의 아내가 조금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남자는 삽입성교를 포기하고 침대 머리에 비스듬히 기댄다. 그러고는 담배를 한 개비 피워 문다. 아내가 남편 곁으로 다가와 어깨를 감싸안으며 말한다. “여보, 우리 큰 병원의 섹스클리닉에라도 가봐요. 당신의 성기능이 아무래도 이상해요.” 남자는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려 준다. 그러면서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아까 봤던 지나의 긴 비닐 부츠와 송곳 같은 굽이 오르락거린다. “내일은 돈을 더 줘 봐야지…. 그러면 더 오랫동안 나를 밟아줄지도 몰라….” 그는 이렇게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긴 한숨을 몰아쉰다. 아내는 남편의 심정을 통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그녀도 답답한지 담배를 한 대 피워문다. 마광수는1951년 경기 수원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 국문과 교수 ▲저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장편소설 ‘권태´ ‘즐거운 사라´ ‘불안´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사랑의 슬픔´
  • 의료비 지출액 GDP대비 OECD 최하위 본인부담률은 최고

    의료비 지출액 GDP대비 OECD 최하위 본인부담률은 최고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의료비 지출액이 적은 데다 공공분야 의료도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의료비 가운데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7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3년도 건강 데이타를 분석결과에 따르면 우리의 GDP 대비 의료비지출 비율은 5.6%로 최하위권인 21위를 차지했다.1위 미국(15%)과 2위 스위스(11.5%)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OECD 평균인 9.2%에도 훨씬 미달했다. 1인당 의료비 지출액도 미국은 5635달러, 노르웨이 3807달러였고 OECD 평균이 2472달러였으나 우리는 1074달러에 불과했다. 특히 국민의료비 지출 대비 공공부문 지출 비율은 49.4%로 미국(44.4%)과 멕시코(46.4%)를 제외하곤 최하위를 기록했다.1∼5위를 차지한 체코(90.1%), 슬로바키아(88.3%), 노르웨이(83.7%), 아이슬란드(83.5%), 덴마크(83%) 등은 80%를 넘어섰고,OECD 평균도 70.3%로 우리와는 20% 포인트 이상 격차가 났다. 의료비 지출 대비 본인부담 비율은 41.9%로 멕시코(50.5%)와 그리스(46.5%)를 빼고 최고 수준이었다.OECD 평균은 20.8%로 우리의 절반에 불과했고 네덜란드(7.8%), 체코(8.4%), 프랑스(10%), 독일(10.4%) 등과는 현격한 격차를 보였다. 출생시 기대수명은 76.9세로 OECD 평균(77.7세)에 거의 육박했다. 일본이 81.8세로 가장 높았고, 이어 아이슬란드·스위스(각 80.4세), 호주(80세), 이탈리아(79.9세) 등의 순이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적립식 펀드 8조원의 힘

    적립식 펀드 8조원의 힘

    주식시장의 역사를 새로 쓴 힘은 보통 사람들이 푼푼이 증시에 몰아준 호주머니 돈이다. 과거엔 여윳돈이나 빚을 내서 주식투자 열풍에 뛰어든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월급에서 한푼씩 떼어 적금을 붓듯 모아진 적립식펀드가 주가상승의 원동력이라는 얘기다. 그만큼 쉽사리 꺼질 거품이 아니다.7일 달성된 종합주가지수의 신기록 원인과 경제적 의미, 전망을 3회에 걸쳐 다룬다. ●과거와 다른 주변 여건 국내 증시는 종합주가지수가 1000선을 넘는 고점기를 과거 3차례 경험했다.1989년 4월과 1994년 11월,2000년 1월에 각각 1007.77,1138.77,1059.04의 고점에 도달하는 맛을 보았다.3차례 모두 경제는 최고 호황기를 구가했고, 증시 여건도 탄탄했다. 지난 89년엔 유가·금리·달러 등 이른바 ‘3저(低) 호황’의 한복판에 있었다.94년엔 유례없는 반도체 경기 덕분에 무역수지가 처음으로 흑자로 전환되는 기쁨을 누렸다.2000년에는 외환위기에서 벗어나며 벤처·코스닥 붐에 나라 전체가 들썩이던 시기다. 그러나 고점을 찍은 뒤에는 열풍이 거품으로 바뀌면서 머지않아 주가지수가 28%(89년),48%(94년),37%(2000년)씩 폭락하는 쓰라린 맛도 경험했다. 지금은 주변 여건이 그때와는 너무 다르다.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은 있지만 과거에 버금가는 경제 호황기는 분명히 아니다. 경제성장률도 이전과 비교하면 가장 낮은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증시를 떠받쳐주는 자금력만큼은 어느 때보다 풍부하다는 점이 눈에 띈다.2000년 이후 외국인의 막강한 자금이 국내 증시를 수시로 들었다 놓곤 했으나 올 들어서는 국내 자금이 외국인을 물리치고 증시의 판세를 주도하고 있다. ●한푼씩 모아진 펀드 위력 국내 기관투자가의 목소리가 커진 이유는 펀드 자금이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기 때문이다. 주식을 직접 사고팔던 개인자금은 증시를 떠난 뒤 간접투자 상품인 펀드 자금이 되어 돌아왔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주식형펀드 수탁고는 15조 551억원이었다.14조원을 넘은 지 불과 13거래일 만에 1조원이 늘어난 셈이다. 주식형 펀드 가운데 절반가량은 일반 서민들이 소액을 매월 내는 적립식펀드다. 적립식펀드 수탁고는 8조 4890억원에 이른다. 올 들어 매월 유입액은 5000억원, 계좌수는 25만개 안팎씩 늘고 있다. 적립식펀드는 막강한 은행의 지점망을 통해 76.4%(계좌수 기준)가 판매됐다. 이같은 펀드의 위력은 국내 증시를 웬만한 악재에도 끄떡없게 만들었고, 외국인 자금이 뭉텅이로 빠져나가도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힘이 됐다. 국제유가 상승·미국 금리 상승·원화가치 상승 등 이른바 ‘신 3고(高)’ 현상에도 증시는 상승 기조를 잃지 않았다. 직장인들의 월급날이 몰려 있는 월말에 증시 유입액이 급증하고 주가지수가 덩달아 상승하는 현상 때문에 ‘월말 효과’라는 신조어도 탄생했다. ●주역은 베이비 붐 세대 직접투자의 퇴조와 간접투자의 활성화가 증시 호조로 이어진 사례가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일본에선 이미 80년대에, 미국에선 90년대에 이같은 현상을 볼 수 있었다. 일본은 이 시기에 주가지수가 494.2%, 미국은 309.1% 상승했다. 증시의 규모인 시가총액도 일본은 692.7%, 미국은 339.3%가 불어났다. 반면 우리나라는 2001년부터 현재까지 주가지수는 109.2%, 시가총액은 98.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아직 추가상승의 여력이 충분한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3개국의 대세적 상승기에는 공통적으로 5% 안쪽의 저금리 정책이 기조를 이뤘다. 이는 풍부한 자금을 증시로 끌어들였다. 특히 이른바 ‘베이비 붐’ 세대가 경제활동의 주역으로 떠오르며 재테크 차원의 펀드 투자에 적극성을 보였다. 우리나라도 54∼63년에 출생한 40대가 2000년대 한국 증시를 이끌고 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한국, 6·25 참전 사과 고집 안했다”

    “한국대표단은 중국의 1950년 한국전쟁 참전에 대한 유감표시 문제를 제기하기는 했다. 그러나 중국측의 반대에 부딪히자 이를 고집하지 않고 쉽게 포기해 협상이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지난 92년 한·중 수교 당시 실무협상 대표였던 장루이제(張瑞杰·76) 전 중국 본부대사는 중국의 6·25 참전이 수교 협상의 의제로 제기됐지만 한국 대표단이 이를 고집하지 않아 협상의 빠른 진척이 가능했다고 밝혔다.“이미 역사는 흘러갔다.1950년에는 당시의 사정이 있었다. 앞을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자 한국측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한번 꺼내본 것이었지 문제삼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한·중 수교과정에서 한국이 이 문제를 너무 쉽게 포기했다는 비난이 지금도 있는 가운데 협상 당사자가 이처럼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처음이다. 장 전 대사는 지난 5일 중국 외교부 산하 인민외교학회(회장 루추톈)와 21세기 한·중교류협회(회장 김한규) 공동 주최로 중국 후난(湖南)성 웨양(岳陽)시에서 열린 ‘5차 한·중 지도자 포럼’에서 이같은 수교 비화를 소개했다. 그는 46년 동안 외교부에서 일한 원로 외교관. 당시 스리랑카 대사를 마치고 본부대사로 근무 중이었다. 평양에서 출생, 고등학교 때까지 16년 동안 북한에서 보내고 30여년을 평양대사관과 외교부 조선처에서 근무한 경력 덕에 자연스럽게 실무회담 주역을 맡았다.●한국이 강력한 수교요청 `일사천리´ 진행 “수교협상은 92년 5월 중순에 시작해 보름 간격으로 3차례 열렸다. 별다른 장애물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3일씩 열렸으니 결국 9일간의 회의로 수교가 결정된 셈이다. 한국측이 첫번째 협상부터 직설적으로 수교를 요청하는 등 강력한 수교 의사를 밝혔고 중국은 두 나라 관계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데 동의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전했다.” 당시 협상 수석대표는 형식상 두 나라 외교부 차관이 임명됐지만 실제 협상장에선 장 전 대사와 권병현 당시 외무부 아주국장이 이끌었다. 그는 “베이징의 외교부 실무자나 국가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수교는 대세라고 판단했다.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도 ‘한국과의 관계를 열어 나가라.’고 지원했다. 그러나 첫 협상때엔 수교가 가능할지 자신이 없었다. 북한 때문에 주저하고 있었던 게 중국측 분위기였다.1차 협상이 끝난 뒤 중국의 결심이 내려진 것이다.92년 5월 말이었다.”고 밝혔다. 2차 회담땐 구체적인 수교 조건이 나왔다. 중국측은 타이완과의 단교, 관련 조약들의 폐기, 타이완 대사관의 중국 인계 등을 제기했다.“별다른 마찰없이 역사상 보기 드물게 빠르게 진행됐다. 마지막 3차 회의에선 문서작업이 이뤄졌다.”●김일성 “하는 수 없지 않은가” 냉랭한 반응 첸치천(錢其琛) 당시 부총리 겸 외교부장이 평양으로 날아가 김일성을 만나 “중국이 이미 그렇게 결정했다면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란 냉랭한 김일성의 승인을 받아온 것은 7월.8월24일 베이징에서 두 나라 외교장관간에 수교협정이 서명됐다. “1·2차 회의는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의 14호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이다.3차 회의는 서울 워커힐호텔의 별장식 객실에서 진행됐다.” 한·중 수교의 주역이지만 외교관 대부분의 기간을 북한관계에 종사했다.“1966년부터 시작된 10년간의 문화대혁명 때엔 북·중 관계가 악화된 상태였다. 북한은 문화대혁명을 이해하지 못했고 옛 소련편에 서 있었다.” 78년 중국 개혁개방 이후 북·중 관계가 정상화되자 실무자로서 그는 덩샤오핑, 리셴녠(李先念), 후야오방(胡耀邦), 자오쯔양(趙紫陽) 등 10여년 동안 5명의 지도자들의 북한행을 모두 수행했다. 북·중 회담에서 중국측은 중국의 개혁개방의 진전 상황을 김일성에게 설명했고 북한측은 무관심한 척하면서도 ‘너희 어디 잘 되나 봐라.’란 식의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그는 북한의 개혁 가능성과 관련,“의식이 너무 굳어있고 자본주의에 대해 지나친 거부감을 갖고 있다.”면서 “김정일은 군대를 장악하고 있고 인민들은 힘들지만 참을 수 없는 단계는 아니고 중국·한국 등 국제사회의 원조로 최저 생활을 상당기간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웨양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안귀옥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혼인신고 않고 외도하는 남편…

    5년간 직장생활을 하다 남편을 만나 3년 전 결혼식을 올렸지만 남편이 싫어해서 혼인신고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남편이 다른 여자와 외도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현장을 목격한 적도 있습니다. 남편은 혼인신고를 안 했으니 간통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오히려 큰소리를 칩니다. 남편의 뒤를 미행하는 여자와는 살 수 없으니, 나가라고 소리치더군요. 혼인신고를 하지 않으면 정말 간통죄가 되지 않나요. 또 저는 집을 나가야 하나요. -배민숙(가명) 남편이 정말 뻔뻔하군요. 혼인신고를 미룬 것이 간통죄를 염려해 그런 게 아닌가라는 의심마저 듭니다. 형법상으로 간통죄는 ‘배우자 있는 자가 간통한 때’에 처벌하도록 돼 있고, 이때 배우자는 법률상 혼인신고를 한 사람을 말합니다. 법률상 배우자를 말하기 때문에, 사실혼 관계라도 간통죄에서 이야기하는 배우자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사실혼은 혼인생활을 하더라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법률상 혼인으로 인정받지 못한 부부관계를 말합니다. 사실혼 관계에서 친족관계 등이 발생하지는 않지만, 혼인의 신분적인 효과는 인정된다는 것이 다수 견해입니다. 동거·부양·협의·정조의 의무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판례도 “혼인신고만 돼 있지 않은 이른바 사실혼 단계에서 남편이 다른 여자와 연애를 했다면, 이는 남편으로서 지켜야 할 혼인의 순결성을 저버린 행위라고 할 것이다.”라면서 “상대방은 남편에게 사실혼 부당파기에 대한 책임을 묻고 나아가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혼인기간 중 형성한 재산이 있는 경우에는 사실혼 관계가 해소되면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사실혼 관계에서 출생한 자는 법률적으로 ‘혼인외 자’가 됩니다. 모자간에는 법적 친지관계의 인지가 필요 없겠지만, 부자간 법적 친자관계는 인지가 없으면 발생하지 않습니다. 배민숙씨의 예는 사실혼 관계가 3년이나 지속됐는데 남편의 외도로 인해 혼인이 파탄난 경우로, 앞서 설명했듯이 형사상 간통죄 요건은 안됩니다. 다만 가사소송법상의 사실혼 관계 부당해소로 인한 위자료 청구와 재산분할 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위자료 청구에는 남편과 상간을 한 여성을 공동불법행위자로 해서 함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가족간의 갈등해소 방법을 몰라서 고민하시는 분은 사단법인한국행복가족상담소를 통해서도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032-867-7114/ www.e-happyhome.or.kr)
  • “재정지원만 강화해도 한국출산율 0.5명 증가”

    우리나라의 출산·보육 지원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면 출산율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6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 CD)의 ‘출산율에 영향을 주는 요소:정부정책의 역할’ 보고서에 따르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도입할 경우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균적으로 낳는 출생아수)이 2.5명까지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2.4명), 프랑스·영국(각 2.1명) 등의 출산율 전망치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한국의 지난해 출산율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1.13명이었으며 보고서는 1999년 수치인 1.4명을 기준으로 했다. 보고서는 회원국들이 쓸 수 있는 효과적 출산장려책으로 ▲육아비용을 직접 줄여주는 감세 등 재정지원 확대 ▲여성의 파트타임 일자리 취업기회 확대 ▲육아휴직 기간 보장 ▲취학전 아동을 위한 정규 보육시설 확충 등 네 가지를 꼽았다. 한국이 가장 크게 개선해야 할 부문은 감세혜택 등 재정 지원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맞벌이 부부가 두 명의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경우 OECD 국가들은 아이가 없는 부부에 비해 평균 8%포인트 정도의 감세 혜택을 주는 것으로 조사됐다.반면 우리나라는 2004년 현재 폴란드와 함께 아이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세금 차이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한국이 감세 재정지원 정책만 강화해도 출산율이 0.5명 정도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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