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출생
    2026-06-26
    검색기록 지우기
  • 친박
    2026-06-2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5,258
  • 터키 파묵 ‘노벨 문학상’

    ‘내 이름은 빨강’‘눈’등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54)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유력 후보로 꼽혔던 고은 시인은 아쉽지만 후일을 기약하게 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12일 “(파묵이)고향 이스탄불의 우울한 영혼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문화간 충돌과 얽힘에 대한 새로운 상징들을 발견했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지난해부터 유력후보로 거론돼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는 예측불허였지만 올해는 좀 달랐다. 파묵의 수상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고, 예상은 적중했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선정과정에서 불거진 사건 때문이다. 당시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영국 일간지에 매우 이례적인 보도가 나왔다. 심사위원들이 한 명의 유력후보를 두고 심각한 의견대립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언급된 작가가 바로 오르한 파묵이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파묵은 고배를 마신 지 1년 만에 노벨문학상을 되찾아온 것이다. 파묵은 1952년 이스탄불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명문 로버트 칼리지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이스탄불 대학에서 건축과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하지만 스물세살때 전업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학교를 그만뒀다. 1982년 첫번째 소설 ‘제브뎃씨와 그의 아들들’로 터키의 대표적 문학상인 오르한 케말 소설상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했고, 두번째 소설 ‘고요한 집’으로 마다라르 소설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후 ‘하얀성’‘흑서’‘새로운 인생’‘눈’등을 잇따라 발표했다.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건 ‘하얀 성’부터다. 뉴욕타임스는 그에게 ‘동양에 샛별이 떠올랐다.’고 극찬했다.‘내이름은 빨강’은 전세계 32개 국어로 번역돼 세계 유수 문학상을 휩쓸었다. 타임지는 올해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00’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현실 문제에도 적극 참여 문학적 성과와 더불어 정치사회적인 발언도 고려하는 노벨문학상의 성향은 올해 수상자인 파묵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파묵 역시 현실 문제를 외면하지 않았다. 지난해 스위스 신문과의 회견에서 터키가 90년 전에 아르메니아인 100만명을 학살한 것과 지난 20년간 분리독립 운동을 벌여온 쿠르드인 3만명을 집단 살해한 사건에 대해 비판했다가 국가모독죄 혐의로 기소됐다. 스웨덴 한림원이 지난해 그의 수상여부를 두고 의견대립을 벌인 이유도 터키 정부의 반발을 우려해서라는 지적이 높다. 파묵의 혐의는 올초 이스탄불의 시슬리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파묵은 이슬람문명과 서구문명의 갈등을 매혹적인 서사구조 안에 풀어놓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견지하고 있다.‘내 이름은 빨강’이나 ‘눈’등을 통해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간 충돌이라는 터키의 당면 과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파묵은 지난해 5월 대산문화재단이 주최한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방한했을 때 “이모부가 한국전에 참전했었다.”며 남다른 친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파묵은 “나는 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서구적이다. 독자는 작가의 국적이나 종교, 문화에 신경쓰지 않는다.”면서 “소설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인 종교”라는 신념을 밝힌 바 있다. 한편 노벨문학상 상금은 1000만 스웨덴 크로네(미화 140만달러)이며, 시상식은 12월10일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오르한 파묵 ▲ 1952년 터키 이스탄불 출생 ▲ 1982년 첫 소설 ‘제브뎃과 아들들’로 오르한 케말소설상 수상 ▲ 1984년 ‘고요한 집’으로 마다랄르 소설상 수상. 프랑스 ‘유럽 발견상’수상 ▲ 1985년 ‘하얀 성’발표. ▲ 1985∼88년 미국 컬럼비아대 방문교수 ▲ 1994년 ‘새로운 인생’ 발표 ▲ 1998년 ‘내 이름은 빨강’ 발표. 프랑스 ‘최우수 외국문학상’, 이탈리아 ‘그린차네 카보우르 상’, 아일랜드 ‘인터내셔널 임팩 더블린 문학상’수상 ▲ 2002년 ‘눈’ 발표
  • [스포츠 라운지] 입문 20개월만에 WBA챔프 오른 김하나

    [스포츠 라운지] 입문 20개월만에 WBA챔프 오른 김하나

    그에게 올해 한가위 명절은 남달랐다. 지난 7일 경기도 고양시의 덕양어울림누리체육관. 두 번째로 나선 세계 도전 무대에서 황금빛 벨트를 매고 나서야 그는 아껴뒀던 눈물을 쏟아냈다.‘사각의 링’, 그리고 둥근 보름달. 모양은 달랐지만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온통 그의 차지였다. 복싱 입문 1년8개월 만에 오른 ‘챔프’의 자리다. 여자 복서 김하나(25·일산 주엽체육관)의 세계복싱협회(WBA) 슈퍼플라이급 정상 정복은 한국 여자복싱 역사에 크게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지난 1980년대 초반까지 세계권투평의회(WBC)와 함께 세계 복싱의 양대 산맥을 이루던 WBA의 챔피언 타이틀을 허리에 맨 건 여자복서로는 그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챔프? 아빠에게도 비밀 권투 장갑을 손에 낀 건 순전히 살을 빼기 위해서였다.160㎝가 조금 넘는 키에 70㎏에 가까운 몸무게는 아무래도 부담이었던 모양이다. 사실 그는 복싱을 하기 전 여러 스포츠를 두루 섭렵했다. 초등학교 때 태권도로 시작, 중학 시절 투포환을 거쳐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유도복을 입었다. 대학에서 전공한 유도는 공인 4단. 유도로 키운 몸이 빠지지 않자 일산 집 뒤의 체육관을 찾았다. 무작정 복싱을 하겠노라고 주엽체육관 김형렬(54) 관장을 졸랐다. 지금은 52㎏. 차근차근 체급을 낮춰 잡으며 1년8개월 만에 성공적으로 ‘다이어트’를 마쳤고, 세계타이틀까지 얻었으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은 셈’이다. 지난해 9월 데뷔전 이후 승승장구했지만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지난 3월 가오리 준(중국)과의 WBA 페더급 챔피언 결정전. 박빙의 우세를 점치던 그는 9라운드에 이어 마지막 10라운드에서도 왼손잡이 준의 스트레이트에 거푸 다운, 링을 내려왔다. 와신상담 2개월 뒤 상하이에서 가지기로 한 리턴매치도 준의 부상으로 무산돼 세계 정상은 더 멀게만 보였다. 그러나 김 관장이 사재를 털어 마련한 지난 슈퍼플라이급 타이틀전에서 김하나는 보란 듯이 폰나파 수피나웡(태국)에게 2라운드 KO승, 남의 것만 같던 황금빛 챔피언 벨트를 잘록해진 허리에 맸다. 그러고는 맏딸이 샌드백 두드리는 것조차 몰랐던 아버지에게 트로피를 번쩍 들어보였다. ●링과 칠판은 닮은꼴?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는 그의 꿈은 선생님이다.“복싱을 직업으로 삼기에는 많이 부족한 게 엄연한 현실”이라고 그는 말한다. 지난 챔피언전 대전료는 3000달러. 이것저것 빼고 그가 쥔 건 50만원이 채 안 된다. 다른 ‘얼짱’ 챔피언들처럼 든든한 스폰서가 있는 것도 아니다.“체력이 달려 권투 장갑을 벗고 링을 내려설 때, 어릴 적 꿈이었던 교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지금은 엄연한 세계 챔프.9개월 안에 방어전을 치러야 하고, 이후 북한의 WBC 슈퍼플라이급 유명옥과의 통합타이틀전도 준비해야 한다. 가장 좋아하는 선수인 오스카 델 라 호야의 섬세함과 마이크 타이슨의 파이팅을 기르기 위해 김하나는 요즘 하루 훈련 시간을 배로 늘렸다.“이제 겨우 복싱의 참맛을 알기 시작했다.”며 반창고를 질끈 동여매는 오른손 정권의 굳은살이 더욱 커 보인다. ▲생년월일 1981년 10월22일 전남 영암출생 ▲학력 일산초-정발중-주엽고-용인대-용인대 대학원 체육교육과 4학기 재학중 ▲체격 162.2㎝,52㎏ ▲가족 김준식·유복임씨의 1남2녀중 장녀 ▲특기 유도(4단) ▲취미 수영 ▲전적 7전6승1패(3KO) ▲경력 KBC 여자 슈퍼페더급 챔피언.WBA 여자 슈퍼플라이급 챔피언 글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우리구 구청장 궁금하시죠] 김효겸 관악구청장

    [우리구 구청장 궁금하시죠] 김효겸 관악구청장

    5·31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민선 4기 구청장들이 취임 100일을 맞았다. 서울에서 새내기 구청장은 11명이다. 구청장들은 저마다 구정발전 모델을 제시하는 등 의욕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출범 100일을 맞아 새내기 구청장의 비전과 포부를 들어본다. 김효겸 관악구청장은 ‘영어마을 유치’에 진력하고 있다. 서울시는 ‘풍납 제1영어마을’ ‘수유 제2영어마을’에 이어 제3영어마을 위치를 물색하고 있다. 이에 따라 김 구청장은 봉천동 낙성대 부근에 영어마을을 유치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취임 100일을 맞은 김 구청장은 “우리 구의 영어마을 후보지는 교통이 편리한데다 서울대와 인접해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면서 “경제적인 면에서도 경쟁력이 높다.”고 강조했다. 접근성·경제성·효과성·쾌적성 등 모든 면에서 최적의 후보지라는 설명이다. 후보지는 2호선 낙성대역에서 5분 거리로 서울사대 부설중·고교 건립 예정지와 맞닿아 있다. 서울시 과학전시관도 가깝다. 김 구청장은 “관악산에 둘러싸인 도시자연공원 지역으로 규모는 5만㎡(1만 5150평)이며 파주 영어마을처럼 자연을 벗하며 영어를 배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구는 영어마을이 들어서면 서울대에서 공부하는 원어민 대학·대학원생 1000여명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김 구청장은 “원어민과 지역 고교생이 결연을 맺는 ‘멘토링 영어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면서 “저소득층, 서민층 자녀들이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의 인적·물적 자원과 영어마을이 어우러져 최대의 교육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전략이다. 구민들도 영어마을 유치에 적극적이다. 최근 진행한 서명 운동에 10만 7000여명이 참여했다. 김 구청장은 “주거환경이 좋은데도 학부모들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우리 구를 떠나고 있다.”면서 “중·고교 교육여건이 열악하기 때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재개발 사업이 계획 없이 우후죽순으로 진행된 것이 문제다. 아파트 5000가구가 들어섰는데도 고등학교 부지가 아예 없는 곳도 있단다. 서울대와 교류할 중·고교도 인근에 없다. 서울사대 부설 중·고교는 성북구에 있다. 이에따라 김 구청장은 신림 뉴타운에 특목고를, 봉천동에 우수한 고등학교를 유치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또 다른 역점사업으로 도림천 복원을 꼽았다. 관악산에서 발원해 안양천으로 흐르는 도림천은 서울 서남권의 대표적인 지천이다. 폭 20∼90m, 길이 11㎞로 관악·영등포·구로·동작구를 관통한다. 이 가운데 6.7㎞가 관악구 관할이다. 늘어나는 차량 때문에 구간별로 완전복개되거나 부분복개된 상태다. 남은 부분도 하천의 기능을 잃고 대부분 콘크리트로 덮여 있다. 김 구청장은 “도림천에 생명을 불어넣고 싶다.”고 했다. 사계절 물이 흘러 물고기가 헤엄치고, 어린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는 관악구의 젖줄로 복원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우선 구는 서울대 정문 앞 완전복개구간(527m)을 철거하고, 도림교 옆 반복개구간(285m)을 재정비한다. 관악산주차장에 설치한 저류조(3만t)와 강남순환고속도로 터널의 지하수로 하천 유지수를 확보하고, 하천변에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를 만들 계획이다. “자전거로 도림천을 달리다 관악산을 오르고, 관악산을 내려와 도림천에서 물장구치고….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부럽겠습니까.” 김 구청장은 복원된 도림천의 미래를 마음 속으로 그려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 걸어온 길 ▲출생 1953년 서울 관악 ▲학력 동양공고 졸, 경복대학 건축학과 재 ▲약력 관악구의회 3선의원, 관악구의회 의장, 수반종합건설 대표이사, 관악구지체장애인협회 곰두리자원봉사단 단장 ▲가족 송상례씨와 2남1녀 ▲기호음식 김치찌개 ▲주량 소주 반병 ▲애창곡 모정의 세월 ▲좌우명 꿈에 거짓말을 했거든 깨어서라도 반성하라. 글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용인·화성 인구증가율 29% ‘최고’

    기초자치단체 5곳 중 1곳꼴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연합(UN)은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고령화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14% 이상이면 고령 사회,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로 분류하고 있다. 또 기초자치단체 3곳 중 2곳은 인구 대비 연간 출생신고자 비율이 1%에도 못 미쳤다.1년 동안 해당 지역에서 인구 100명당 채 1명도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11일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주민등록 전산자료 통계’에 따르면 지난 8월말 현재 전국 232개 시·군·구 가운데 고령화 비율이 20%를 넘는 곳은 22%인 51곳이다. 고령화 비율이 14%를 웃도는 시·군·구는 42곳이다. 반면 고령화 비율이 7%를 밑도는 지역은 44곳에 불과했다. 전국의 평균 고령화 비율은 9.2%로,2003년말 8.1%보다 1.1%포인트 상승했다.16개 시·도별로는 ▲전남 16.1% ▲경북 13.7% ▲충남 13.6% ▲전북 13.3% ▲강원 12.5% ▲충북 11.6% ▲경남 10.5% ▲제주 10.3% 등 8곳에서 고령화 비율이 10%를 넘었다. 울산은 5.5%로 가장 낮았다. 시·군·구에서는 경남 의령군이 28.3%, 경남 남해군이 27.9%, 전남 고흥군이 27.4%, 경북 군위군과 경남 합천군이 27.3% 등으로 높았다. 반면 울산 동구는 3.9%로 고령화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 이어 울산 남구 4.5%, 울산 북구 4.8%, 경남 창원시 4.8%, 경기 시흥시 5.1% 등의 순이었다. 또 2003∼2005년 3년 동안 출생신고율은 전국 평균 1%를 기록했다. 특히 경북 군위군·의성군·청도군·예천군과 경남 남해군 등 5개 기초자치단체는 출생신고율이 0.5%에 불과했다. 출생신고율이 1.0% 미만인 기초자치단체는 전체의 62.5%인 145곳에 달했다. 출생신고율이 높은 기초자치단체는 경기 오산시 1.5%, 광주 광산구와 경북 칠곡군 1.4%, 경북 구미시와 서울 마포구 1.3% 등이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 주민등록 인구는 4891만 9000명으로,2003년말 4838만 5000명보다 1.1%인 53만 4000명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시·도별로는 경기가 120만 6000명에서 1083만명으로 6.1% 증가했다. 경기도 총 인구는 2003년부터 서울을 추월했다. 서울은 2003∼2005년 3년 연속 인구가 줄어들었으나, 올 들어 증가세로 반전돼 1019만 1000명으로 집계됐다. 전북과 전남은 같은 기간 인구가 4.2%,3.3% 각각 감소했다. 기초자치단체에서는 경기 용인시와 화성시가 각각 28.7%로 가장 높은 인구 증가율을 나타냈다. 용인시는 3년 동안 웬만한 중소도시 인구에 맞먹는 16만219명이 늘어났다.인구가 가장 많이 줄어든 기초자치단체는 전북 정읍시 18.1%에 이어 전북 장수군 16.9%, 경기 과천시 13.8%, 경남 합천군 10.7%, 전남 고흥군 10.3% 등이었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Seoul In] 중구 출산장려 종합건강검진 서비스

    중구(구청장 정동일) 출산 장려를 위해 다자녀 아기와 엄마를 대상으로 13일부터 12월10일까지 종합건강검진 서비스를 실시한다. 퇴계로4가에 있는 제일병원의 협조를 받아 실시하는 이 서비스는 유아를 대상으로 신체계측, 비만측정, 호흡기·순환기·B형간염검사 등이다. 대상은 구민 중 2004년 1월1일∼12월31일 사이에 출생한 세자녀 이상을 둔 가정이다. 문의 2250-4451.
  • 인생의 의무는 하나, 오직 즐거워지라는 것

    인생의 의무는 하나, 오직 즐거워지라는 것

    나이 마흔에 새롭게 사람에 눈뜬 아나운서 이금희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내면의 방들을 열 적절한 열쇠부터 찾는 게 순서인지 모르겠다. 베테랑 아나운서 이금희 씨(40세)를 이해하는 방편으로 궁리 끝에 ‘즐거움’이란 열쇠를 집어 들었다. 장수 프로그램을 솜씨 있게 이끌어가는 17년 내공의 진행자, 길에서 마주친 누구든 스스럼없이 그에게 인사를 건네올 만큼 친근하고 편안한 이미지의 방송인, TV 촬영장에서 외주 녹음실, 라디오 스튜디오로 종일 빠듯하게 움직이는 발걸음이 조금도 각박하거나 고달파 보이지 않고 외려 생기로 가득 차 있는 프로페셔널, 다른 방송 출연자는 물론, 방청객과 스태프까지도 마치 안주인처럼 살뜰히 챙기고 배려하며 사람을 만나면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하고, 가방에서 간식거리를 주섬주섬 꺼내어 가는 곳마다 곰살궂게 내미는 사람. 그 모든 면면을 한 번에 납득할 수 있게 하는 그것. 이금희의 어디에다 꽂아도 척척 맞아 들어가는 마스터키가 바로 ‘스스로 즐거워’이다.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리 높여 말하고 있었다. “전 참 즐겁습니다. 아니, 즐겁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 “정말 좋아요, 제 일이 좋아요. 일하고 돈 받아가면서 좋은 사람들 만나 인생 공부까지 하니 이렇게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얻는 이득이란 셀 수 없지요. 제가 <아침마당>과 <이금희의 가요산책>을 8년 넘게 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한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하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고 많이들 물으세요. 오래 해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프로그램은 같아도 만나는 사람은 계속 바뀌고 그분들이 늘 새로운 깨우침을 주거든요. 하드웨어는 같아도 소프트웨어는 끊임없이 변한달까요.” 방송을 하지 않았으면 무엇을 했을까. 그런 일은 생각할 수도 없다는 그는, 사람들로부터 성숙의 자양분을 한껏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많은 사람을 겪었으니 사람을 보는 눈이나 판단력에도 분명 특별한 무엇이 있겠다 싶었으나 “저만의 판단 기준이요? 사람을 보는 철학이요? 에이, 그런 거 없어요”라며 딱 잘라 대답한다. “마찬가지로 특별한 인터뷰 기술이랄 것 역시 없어요. 다만 인터뷰하기 전에 준비를 많이 하는 것만은 확실해요. 인터뷰 대상에 관한 자료를 A4용지로 백 장씩 준비하는 것이 언제나 제 목표죠. 그렇게 준비하다 보면 상대방에 관한 애정이 생겨나고, 인터뷰하는 순간만은 그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멋져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이 두 가지만은 틀림없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어요. 배울 게 없는 사람은 없다, 일인자는 될 만한 이유가 있다. 100% 만들어진 이미지란 건 없어요.” 불완전한 잣대로 사람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힘써 이해하려 할 뿐. 그래서 그 사려 깊은 눈은 상대방의 신뢰를 이끌어낸다. 이금희가 내 말에 귀 기울이고 있다, 나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성선설의 신봉자임이 분명한 그이지만, 방송이 아닌 평소 생활에서도 사람을 보는 눈이 그처럼 긍정적이기만 할까. “누군가와 일 때문에 부딪혀 속상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한 선배가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너는 저쪽으로 걸어가고 있고, 상대방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가다가 잠시 교차로에서 만났을 뿐이다. 다시금 각자의 길을 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곧 헤어질 사람 때문에 속상할 필요가 있을까? 그 말씀이 많은 위안이 되었어요. 사람 때문에 힘들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해요. 지금 우린 교차로에 있을 뿐이야.” 참 좋은 나이 마흔 요즘 또 한 가지 그를 즐겁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나이다. “얼마 전에 오십대이신 선배님을 만났어요. 선배님, 지금 제 나이가 무척 좋아요 그랬더니, 네 나이부터 십 년간이 가장 눈부시고 좋은 시기야 그러세요. 그럼 오십대는 어때요 물었더니, 오십대는 더 좋지 그러시더군요.” 참 편하고 여유롭고 살 맛 나는 나이 마흔. 나이 먹는 일이 이렇게 좋은 일인 줄은 미처 몰랐다며 그의 예찬론이 끊일 줄 모른다. “무엇보다 욕심이 줄어들면서 마음이 여유로워졌어요. 삼십대엔 일 욕심이 말도 못했죠. 그런데 마흔이 되니 그 많던 욕심이 신기하리만큼 스르륵 잦아드는 거예요. 예전엔 솔직히 일 못 하는 사람이 싫었어요. 방송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건데 저렇게밖에 못 할까 싶어 화가 났거든요. 그런데 생각이 자연스레 바뀌게 되더라고요. 방송은 참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은 더 중요하다고.” 스스로 완벽을 기하던 사람이니 후배들에겐 또 얼마나 엄한 선배였을까. “아마 그랬을 거예요. 예전엔 잔소리도 많이 하고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싫은 소리를 못 하겠어요. 나이를 먹으면서(또!) 사람을 대하는 마음도 확실히 넉넉해진 것 같아요. 사람마다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헤아릴 아량이 생긴 걸까요? 요즘은 후배들을 보면 그저 대견하고 안쓰럽고, 어떤 모습도 이해가 돼요.” 인생의 황금기, 제2의 전성기를 통과하고 있는 이금희 아나운서는 또 무엇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즐거워지려고 마음먹고 있을까. “가끔 쇼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기도 하는데 끝나고 나면 공허한 마음이 들기도 해요. 쇼가 한껏 펼쳐졌던 세트를 부수는 순간 지금까지 했던 모든 게 허구인 것만 같은 심정이 되거든요. 그래서 역시 사람을 담는 프로그램이 좋아요. 그런 프로그램의 한 부분이 되어 노력하고 싶고요. 그것이 제 마음에, 인생에 남는 방송일 테니까요.” 1966년 서울 출생. 5녀중 4녀 1988년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89년 KBS 공채 16기 아나운서 1999년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2000년 프리랜서 선언 주요방송: 누가누가 잘하나(1989) ·6시 내고향(1991) ·노래의 날개 위에(1992) ·FM 가정음악 (1993) ·아침마당(1997) ·사랑의리퀘스트·이금희의 가요산책(1998)·TV는 사랑을 싣고(1999)·파워인터뷰(2005) 월간<샘터> 2006.06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 고 은 시인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 고 은 시인

    불현듯 부질없는 상상을 해본다. 언어가 없는 인간세상을 말이다. 우선 ‘사랑한다’고 못하겠지. 또 ‘미안하다’는 말을 못해 엉뚱한 싸움판도 벌어지겠지. 이래저래 오해와 진실이 마구 뒤엉켜 결국은 멸망? 지구상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과연 몇개나 될까. 학자들에 따르면 6000여개는 족히 넘는다. 또 2주에 걸쳐 하나씩 소멸된다고 한다. 이는 지구 생태계 또는 작은 부족의 멸종과 비례한다는 뜻이다.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민족의 상처와 영혼을 켜켜이 담으며 살아온 우리 언어. 남북 분단 60여년, 겨레의 언어 역시 그 세월만큼 간격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몇가지 예를 들어 보자. 남쪽에서 사용하는 ‘전업주부’를 ‘가두녀성’으로,‘도넛’을 ‘가락지빵’으로,‘반딧불이’를 ‘에디벌레’로 각각 다르게 사용한다. 또 계산기 하면 남쪽에서는 전자계산기를 연상하지만 북한에서는 컴퓨터로 통한다. 아울러 ‘해커’를 ‘헤살꾼’으로 ‘스파게티’를 ‘구멍국수’ 등으로 사용하며, 전문·학술용어의 경우 그 차이의 정도는 훨씬 심각하다. 만약 남북 의사가 같이 수술대에 있다면 시술이 불가능할 정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아마 제주도에서 함경도의 방언까지 몽땅 비교한다면? 쉽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지난 1970년대초였다.7·4 공동 성명과 적십자 회담 등을 위해 6·25이후 남북 당국자가 처음으로 만났다. 남측 요원이 회담장에서 서비스를 하던 북한 여성에게 “아가씨”라고 했더니 정색을 하며 “접대부로 불러주세요.”라고 당황케 했던 일화는 지금도 회자된다. 남과 북이 분단된 후 언어차이를 처음으로 실감케 한 사례였다. ●겨레말은 남한 표준어·북한 문화어·방언 합친 말 1989년 3월이었다. 문익환 목사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 주석을 만나 남북 언어의 이질감을 얘기하면서 ‘통일대사전’을 공동으로 편찬하자고 했다. 이후 논의가 중단되다가 2004년 12월 13일 금강산에서 남북 편찬위원들이 만나 결성식을 가짐으로써 본격적인 출발을 하게 됐다. 이후 지난해 2월 편찬위 1차정기회의(금강산)를 시작으로 그동안 7차례에 걸친 실무접촉을 가졌고 오는 2012년까지 30만여 어휘를 담은 남북한 단일사전, 즉 ‘겨레말큰사전’을 펴내기로 했다.‘겨레말’은 남한의 표준어, 북한의 문화어, 그리고 남북의 방언을 합친다는 뜻이다. 현재 남측과 북측은 각각 방언조사 등 편찬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글날을 앞두고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고은(73) 시인을 만났다. 장소는 서울 마포에 위치한 편찬사업회 사무실. 지난달 말 제7차 편찬위 평양회의에 다녀온 직후였다. 어느 정도 진척이 됐을까. 그는 “현재 ‘ㄱ’과 ‘ㄴ’ 부분을 끝냈다면서 남북 모두 관심이 높기 때문에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ㄱ’의 경우만 하더라도 올림말이 6만 9000여개에 달했단다. 남쪽은 10여군데에 대한 방언조사를 끝냈고 북측도 다섯군데를 조사해 서로 CD로 자료를 교환했다. ●우리말은 세계 10위권 유지하는 민족어 남과 북에서는 현재 ‘표준국어대사전’(50만 9000여 어휘 수록)과 ‘조선말대사전’(33만여 어휘)이 주로 쓰이고 있지만 이 사전들은 현장조사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이 두 사전에서 공통적인 것과 다른 것 20만개를 뽑고, 이들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10만개를 새로 추가시키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최근 조사된 호복이(전북지방, 흠씬 익도록 삶거나 끓이는 모양), 큰아베(경북, 할아버지), 쪼시락허다(전남, 하찮다) 등이 될 수 있다. “언어란 세월이 지나면서 소멸 또는 변질되지요. 우리 근대사 이후 겨레 언어가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 연해주, 중앙아시아, 만주 일대는 물론 60년대 이후 미국으로 가지고 간 언어도 조사해야 합니다.” 아울러 “얼마전 사할린 징용자 위령제에 다녀왔다.”면서 30년대 후반부터 우리 동포가 약 15만명이 이주했는데 현재는 3만명밖에 안된다고 했다. 그만큼 우리 순수 언어도 줄어들거나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남과 북 각 지역의 방언과 향토어 속에 우리 말을 찾아내는 작업도 병행된다고 부연했다. 따라서 훈민정음 창제 이후 최초로 우리 겨레말을 집대성하는 일이며, 우리 후손들이 만나야 할 ‘대사전’이라고 의미부여를 했다. 때문에 2012년 이후에도 계속 보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작업에 참여하는 남측 편찬위원들은 학자나 교수들이 대부분이지만 북한의 경우 사회과학원 소속 연구원에서 직접 관장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글은 세계 문자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문자입니다. 또 한국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프랑스어보다 많은 세계 10위권 안에 들어갑니다. 러시아어도 푸슈킨 이후 주목을 받았고 독일어는 괴테의 ‘파우스트’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지요.” 우리말도 근대문학 이후 표현력이 아주 좋아졌다고 강조했다. 그 이전의 양반들은 주로 한문 중심이었다는 것. 예를 들어 편지를 쓸 때에도 ‘기체후일향만강(氣體候一向萬康)하시옵고….’라는 식이었다. 결국 활발한 신문학 운동은 모국어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등 대국어들이 횡행하는 오늘날에 우리말이 세계 10위권을 유지하게 된 것도 대단한 민족어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고 이사장은 이런 우리글이 다음 세대에 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많다. 인터넷상에 계속 퍼지는 언어와 영어 등의 영향으로 우리 언어가 크게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겨레말 큰사전을 통해 방향타를 잡고 또 자국어 보존을 위한 정책도 꾸준히 펼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울러 “말이란 한 시대가 지나면 사라진다.6·25 이후만 보더라도 우리말이 많이 달라졌다.”면서 고대시와 지금이 다르듯이 현재 사용되는 우리말이 나중에 고어로 남게 되고 일부는 공중에 흩어져 소멸된다고 했다. ●남북, 문화행위로써 우선 동질성 회복해야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당시 세종대왕은 몽골과 여진 지역에도 학자를 파견했다. 또 티베트어 연구는 물론 산스크리스트어를 사용하는 승려도 참여시키는 등 세계적 언어로 만들려고 애를 썼다.”고 했다. 실제로 몽골에 가면 당시 사신이 다녀갔다는 자료가 현재 남아 있다는 얘기를 몽골학자한테 전해들었다고 귀띔했다. 또 세종은 여진과 말갈족들을 끌어들이는 등 이주정책을 펼쳤는데 놀랍게도 아직까지 함경도 지방에 경상도 사투리가 남아 있단다. “아마 당시 한글창제 작업은 중국 몰래 했겠지요. 한자(漢字)와 다른 문자를 따로 만든다는 것은 천자(天子)를 자처하는 입장에서 볼 때 불온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공표도 조심스럽게, 즉 보다 쉽게 민중에게 뜻을 전달하기 위한 글이라는 식으로 중국을 달랬지요. 또 비로소 한자 지배의 구속에서 벗어나 최초로 민중문자와 민족언어를 가졌다는 역사적 의미도 있습니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 겨레말 편찬사업에 남다른 열정을 쏟는 고 이사장. 세상에 놀러오지는 않았다고 강조하는 그는 “남북은 정치·군사적 문제만이 아닌 먼저 문화행위로써 서로 동질성을 회복하고 스며들다 보면 통일도 가능해진다.”고 역설했다. 이어 “겨레말에 의탁하여 살아온 지난 역정을 바쳐 ‘이젠 죽을 수 있다. 이제 죽어도 된다.’라는 몇년 뒤의 궁극적 감회를 예감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km@seoul.co.kr ■ 고은이 걸어온 길 ▲1933년 군산 출생(본명 고은태), 군산고 중퇴 ▲52년 입산,10년간 승려생활(법명 일초) ▲58년 조지훈 등의 천거로 ‘현대시’에 ‘폐결핵’ 발표로 등단 ▲60년 첫 시집 ‘피안감성’ ▲62년 환속, 재야 운동가로 활동 ▲74년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 출간. 제1회 한국문학상 ▲86년 ‘세계의 문학’에 ‘만인보’ 연재 ▲89년 제3회 만해문학상 ▲90년 민족문학작가회장 ▲99년 미 하버드대 연구교수. 버클리대 초빙교수 ▲2004년 제4회 베를린문학페스티벌 자문위원 ▲05년∼현재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
  • KBS 2TV 드라마 ‘황진이’의 하지원

    KBS 2TV 드라마 ‘황진이’의 하지원

    “재주 많은 만능 엔터테이너 황진이를 보여드릴게요. 너무 기대가 많아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자신은 있습니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잘 모르면 그런가보다 하고 말지만, 유명한 캐릭터는 끊임없이 비교 평가당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황진이’는 이미 여러차례 선보인데다, 요즘 사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상한가다.‘베테랑’급 배우 하지원이 긴장하는 이유다. “사람들이 그냥 알고 있는 황진이는, 흥미있는 연애담쪽에 치우쳐 있어요. 제가 보기엔, 황진이가 요즘 태어났으면 연예인이 됐을거예요. 글·그림·춤·노래 어느 하나 빠지는게 없거든요. 이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드릴게요.” 황진이에 대한 이런 분석은 황진이에 대한 평가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정말 ‘악바리’예요. 기녀들의 수련방식을 따라 촬영하는데 그 과정을 어떻게 다 참아냈는지 모르겠어요.” 최근 촬영한 분량은 폭포물 아래서 수련하는 장면. 물이 워낙 차다보니 머리가 깨질 듯 아파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단다. 그걸 따라하려니 몸 성할 날이 없다.‘다모’와 ‘형사’를 거치면서 나름대로 경험이 풍부하다(?) 믿었는데 너무 힘들다.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황진이의 넘치는 ‘끼’. 가야금에다 ‘남자의 악기’라는 거문고에까지 도전했다. 대역없이 하려다 보니 지독한 연습은 필수다. 여기다 능숙한 춤사위까지 보여야 한다.“한국무용이라는 게, 어깨가 들썩이는 게 모든 걸 절제한 상황에서 가슴에서 우러나와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게 안 되니까…. 한번 연습하고 나면 다리가 마비될 정도인데도 아직도 많이 부족하네요.” 궁중무용을 비롯, 검무·교방무·장고춤 등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대략이나마 익혀야 하는 춤이 30가지가 넘는다. 그러다 보니 밥 먹고 잠 잘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쁘다. 그나마 좋은 소식이라면 사극 최대의 적으로 꼽히는 가채를 실제 쓸 기회가 그리 많아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4∼5㎏을 넘는 무게 때문에 금세 뒷목이 뻣뻣해지는 가채라도 피해갈 수 있어 다행이다. ‘황진이’는 하반기 최대 화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출생의 비밀’에다 기생 수련 과정에서 벌어지는 황진이와 부용(왕빛나 분)간의 대립·갈등 구조를 품고 있어서 언뜻 ‘대장금’의 흥행코드를 떠올리게 한다.‘동북공정 사극’이라 부를 수 있는 남성사극이 가득한 브라운관에서 어느 정도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도 관심이다. 여기다 송혜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황진이’도 대기 중이다. 그래서인지 ‘황진이’ 제작발표회는 여느 때와 달리 무속인 출신 한영애와 퓨전국악팀의 진혼제 퍼포먼스, 처용무 공연에 이어 주연배우들의 화려한 한복 패션쇼 등으로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래도 가장 가슴 떨릴 사람은 2년6개월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는 하지원 자신이다.“많은 남자들이 황진이에게 빠져들었듯, 제게도 드라마에도 많은 남자들이 빠져들었으면 좋겠어요.” ‘황진이’는 11일 KBS 2TV에서 첫 선을 보인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서울광장] 출산장려금은 세금낭비다/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출산장려금은 세금낭비다/육철수 논설위원

    아기가 태어나면 지방자치단체에서 수십만원, 수백만원의 출산장려금을 준다는 소식을 들으면 왠지 씁쓸하다. 요 며칠전에도 그런 뉴스를 접했다. 재정이 넉넉하지 못한 어느 시에서는 셋째아이를 낳으면 300만원을 준다고 한다. 어느 군은 첫째에게 240만원, 둘째에게 360만원, 셋째에게는 600만원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축전 한 장에다 간단한 유아용품 정도 선물하면 될 일에 낭비가 너무 심하지 않나 싶다. 하기야 20년이상 아기 울음소리가 끊어진 시골마을이 수두룩한 터라, 지자체가 감읍해서 푸짐하게 축하해 주는 게 이해는 간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과연 출산율을 얼마나 올릴지는 의문이다. 지자체들이 신생아에게 출산장려금을 지급한 게 벌써 몇년째다. 그런데 출산율이 오르기는커녕 더 떨어지는 추세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2002년 1.17명,2003년 1.19명,2004년 1.16명,2005년 1.08명으로 좀체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그래서인지 돈을 주어 한 명이라도 더 낳아달라고 통사정하는 지자체들이 안쓰럽다. 효과가 신통찮은 것은 돈 몇푼 쥐어주는 걸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는 뜻일 게다. 그런데도 이런 식의 출산장려를 고수한다면 아까운 세금만 축낼 뿐이라는 생각이다. 출산장려책을 믿고 아이를 낳았다는 가정을 나는 여태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자녀를 몇이나 둘 것이냐는 부부의 경제력이나 애정 등 형편에 따라 결정할 사안이다. 지자체가 혜택을 준다고 해서 상품 제조하듯이 어느날 갑자기 증산 또는 양산체제로 바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사회에 기여할 만한 성인을 기르는 데는 20∼25년이 걸리고 돈도 1억∼2억원은 족히 털어넣어야 한다. 부모에게는 당장 자신의 삶을 희생해야 하는 현실일 수 있다. 게다가 맞벌이 가정은 늘어나는데 보육·교육시설은 흡족한가. 돈 들이고 공 들여서 기껏 대학까지 가르쳐 놓으면 태반이 실업자 신세인데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들겠는지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형편이 닿는 부부는 아이를 낳지 말라 해도 능력껏 낳아서 재주껏 키운다. 그래서 출산장려에 쓸 예산이 있으면 차라리 ‘태어난’ 아이들에게 쏟았으면 한다. 부모의 이혼·가출과 미혼모 출생 등으로 보호막이 취약한 아이가 해마다 1만명씩 생긴다. 없는 아이, 낳기 싫다는 아이 자꾸 낳으라는 것보다 이런 아이들에게 정성들이고 신경 써야 하는 게 지자체가 할 일이다. 저출산이 수십년 후 몰고올 재앙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인적 자원이 적정수준을 유지해야 국가경쟁력과 노동력은 물론이고 연금납부, 납세·국방자원 등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다. 그러려면 출산율이 2.1명은 돼야 한다. 현재의 출산장려책으로 그렇게까지 올리기는 아무리 봐도 무리다. 따라서 지자체는 태어난 아이들의 성장환경을 개선하는 데 집중하고, 출산은 이제 가정사에 맡기는 게 좋겠다. 20년,30년 후 인구 몇백만명 줄어든다고 나라가 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인구만 많다고 강대국이나 선진국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인구가 늘면 느는 대로 줄면 주는 대로 정책의 유연성을 발휘하면 된다. 인구가, 노동력이 정녕 문제라면 미국이나 유럽처럼 이민 수용을 검토해 볼 수도 있지 않은가. 출산 문제를,1960∼70년대처럼 정책을 정해 놓고 따라오라고 권장하는 시대는 지났다.‘고비용 무효율’ 정책으로 안달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정책을 맞추는 편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문정희 : 머리 감는 여자

    문정희 : 머리 감는 여자

    글 유종호 문학평론가, 시인   가을이 오기 전 뽀뽈라로 갈까 돌마다 태양의 얼굴을 새겨놓고 햇살에도 피가 도는 마야의 여자가 되어 검은 머리 길게 땋아 내리고 생긴 대로 끝없이 아이를 낳아볼까 풍성한 다산의 여자들이 초록의 밀림 속에서 죄 없이 천년의 대지가 되는 뽀뽈라로 가서 야자잎에 돌을 얹어 둥지를 하나 틀고 나도 밤마다 쑥쑥 아이를 배고 쑥쑥 아이를 낳아야지   검은 하수구를 타고 콘돔과 감별 당한 태아들과 들어내 버린 자궁들이 떼지어 떠내려가는 뒤숭숭한 도시 저마다 불길한 무기를 숨기고 흔들리는 이 거대한 노예선을 떠나 가을이 오기 전 뽀뽈라로 갈까 맨 먼저 말구유에 빗물을 받아 오래오래 머리를 감고 젖은 머리 그대로 천년 푸르른 자연이 될까 거짓과 검은 권력이 그득한 오염된 도시를 등지고 공기 맑고 사람다운 삶이 가능한 청정한 시골에 가서 자연과 일체가 된 삶을 살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은 누구에게나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한갓 실현성 없는 꿈이라는 것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도대체 청정한 시골이 있기나 한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풍광이나 풍성한 자연의 은총이 실감되는 곳을 찾게 되면 순간적으로 다시 떠오르는 생각이기도 하다. 저 프랑스의 폴 고갱처럼 화려한 문명의 도시를 버리고 아예 세상 한 끝의 섬을 찾아가 거기서 삶을 마친 사람도 있지 않은가? 그는 충족된 삶을 살다 간 것이 아닌가? 위에 적은 시편에 나오는 뽀뽈라가 멕시코 밀림 속의 작은 마을 이름임을 시인은 작품 끝자락에 적어 놓고 있다. 멕시코 여행 중 시인은 밀림 속의 마을에서 원주민 여성들이 말구유나 나귀 구유에 받아놓은 빗물로 길게 땋아 내린 검은머리를 감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풋풋한 원시의 광경에 적지 아니 매혹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 자신도 그러한 멕시코 원주민들의 세발(洗髮) 의식(儀式)을 본뜨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처럼 자연이 시키는 대로, 즉 산아제한의 인위를 거부하고, 아이를 쑥쑥 낳으면서 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을 것이고 그것을 적은 것이다. 반(反)자연의 문명은 구차하고 거추장스럽고 때로는 벗어버리고 싶은 멍에가 되기도 한다. 돌마다 태양의 얼굴을 새겨놓고 햇살에도 피가 도는 마야의 여자가 되어 검은 머리 길게 땋아 내리고 생긴 대로 끝없이 아이를 낳아볼까 풍성한 다산의 여자들이 초록의 밀림 속에서 죄 없이 천년의 대지가 되는 뽀뽈라로 가서 문학 작품의 호소력은 구체의 실감이나 충격에서 온다. 아마도 태양을 숭배하는 원주민들은 돌에다 태양을 새겨놓았을 것이다. 싱싱하고 건강한 원주민의 육체는 ‘햇살에도 피가 도는 마야의 여자’라는 간결한 서술 속에서 생동감을 얻고 있다. 마야는 지금의 멕시코 동남부와 남부, 과테말라, 훈드라스에 걸쳐 살고 있던 아메리칸 인디안족을 가리킨다. 그들 자신의 상형문자를 가지고 있었고 석조(石造)건축도 발전시켰던 종족이다. ‘생긴대로’라는 말은 여기서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인위의 조절을 가함이 없이 ‘생기는 대로’ 아이를 낳는다는 뜻도 있고 싱싱하고 건강하게 생긴 모습대로 아이를 쑥쑥 잘 낳는다는 뜻도 있다. 시인이 그것을 의식했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우리는 작품이라는 언어의 구조물을 대하고 있고 그러한 맥락에서 언어적 사실을 수용하면 되는 것이다. 어쨌건 이러한 겹 뜻이 있기 때문에 그 대목이 재미있게 읽히는 것이다. 옛날부터 어머니인 대지란 말이 있다. 농경사회에서 해마다 새 농작물을 길러내는 대지(大地)가 인간의 대를 이어주는 아기 생산의 모체인 여성으로 비유된 것이다. 자연의 영위 속에서 아기를 낳는 것은 어떤 원인에서 나왔건 죄가 아니다. 그래서 다산의 여자들은 ‘죄 없이 천년의 대지’가 되는 것이다. 자연스럽고도 사실적인 대목이다. 검은 하수구를 타고 콘돔과 감별당한 태아들과 들어내 버린 자궁들이 떼지어 떠내려가는 뒤숭숭한 도시 저마다 불길한 무기를 숨기고 흔들리는 이 거대한 노예선을 떠나 남아 선호 성향이 많은 우리 사회에서 태아의 성감별을 해서 낙태수술을 하는 일이 많았다.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따르는 밀림 속 원주민과는 거리가 먼 현대도시의 성풍속(性風俗)을 보여주는 그야말로 뒤숭숭한 대목이다. 현대의 도시를 거대한 노예선이라 한 것도 실감나는 어사이다 맨 먼저 말구유에 빗물을 받아 오래오래 머리를 감고 젖은 머리 그대로 천년 푸르른 자연이 될까 무구한 원시에 대한 간절한 지향이 간결하면서도 정갈하게 드러나 있다. 자유분방함이 시인 문정희의 특성이다. 그런데 여성주의 시인들의 자유분방함은 때로 여과되지 않은 성적 직설(直說)이나 공격성으로 나타나는 수가 많다. 그것이 흠이나 취약성으로 드러난다는 뜻은 아니다. 즉시적인 해방감이나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하는 경우도 많다. 다만 문정희의 경우 위의 작품에서 보듯이 자유분방함이 건강하고 싱그러운 여성성의 갈구로 드러난다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보다 비근한 소재를 다룬 작품에서도 그대로 발견된다. 키 큰 남자를 보면 가만히 팔 걸고 싶다 어린 날 오빠 팔에 매달리듯 그렇게 매달리고 싶다 나팔꽃이 되어도 좋을까 아니, 바람에 나부끼는 은사시나무에 올라가서 그의 눈썹을 만져보고 싶다 ---<키 큰 남자를 보면>에서 단도직입적이고 거침이 없다. 그리고 특유의 무구함이 있다. 공연히 요조숙녀 티를 내는 것도 아니고 위악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다. 그냥 감정에 충실하면서 꾸밈이 없고 그래서 독자들은 공감을 하게 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얼마나 도발적이고 당돌한 발상인가? 작가의 의식 여부와 관계없이 작품은 작품이 생산된 사회와 역사를 반영하게 마련이다. 60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시는 시인 편에서나 독자 편에서나 상상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 시절에 이런 시가 나왔다면 아마도 망측하다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지금 무구하고 솔직하고 분방한 시로 수용된다. 망측하기 짝이 없는 소설과 영화가 너무나 범람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있지만 항상 여자의 것만 문제가 되어 마치 수치스러운 과일이 달린 듯 깊이 숨겨왔던 유방 ----<유방>에서 자유분방함은 감정 영역에서만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육체에 대한 일체의 금기를 거부한다. ‘여자의 것만 문제’가 되는 모든 것으로 그의 금기 거부는 확대된다. 그러한 면에서 문정희는 여성주의 시인임에 틀림이 없다. 선구적 여성주의자이지만 전투적 여성주의자들이 곤혹스럽게 생각하는 미국의 마가렛 미드는 아무리 여성해방이 성취된다 하더라도 남성이 아기에게 젖을 물려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문정희는 모성적 여성주의 시인이다. 유종호 · 1935년 충북 충주 출생. 서울대 문리대 영문과를 나와 뉴욕 주립대(버펄로) 대학원에서 수학. 현재 연세대 문과대학 특임교수. 1957년부터 비평 활동을 해왔으며 저서로 《유종호 전집》(전 5권) 이외에 《시란 무엇인가》 《서정적 진실을 찾아서》 《다시 읽는 한국시인》 《내 마음의 망명지》 《나의 해방 전후》 《시 읽기의 방법》 등이 있다.     월간 <삶과꿈> 2006.09 구독문의:02-319-3791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IQ 210의 천재소년서 야학교사로 김웅용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IQ 210의 천재소년서 야학교사로 김웅용씨

    인생에 있어서 숫자란 과연 무엇일까. 태어나고 죽음이 다들 같을진대 굳이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을 가려내는 것도 틀에 박힌 숫자의 장난은 아닐까. 문득 생각해본다. 묘비의 글을 ‘진달래가 만발한 봄날 태어났고 오곡백과가 무르익은 어느 청명한 가을날 조용히 잠들다.’라고 하면 어떨지. 지능지수(IQ) 210, 흔치 않은 숫자다. 그래서 사람들은 천재라 했다.1980년도판 기네스북에 세계 최고의 지능지수로 등재될 정도였다.5세에 4개국어를 구사하고,6세때 일본 후지TV에 출연, 수학 미적분을 척척 풀어냈다.7세까지 청강생으로 한양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했고 8세때 미국 항공우주국(NASA) 초청으로 콜로라도 주립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12세부터는 5년간 NASA 선임연구원으로 일했다. 당시 언론은 연일 ‘신동’‘대단한 천재소년’으로 보도했다. 그러던 78년, 갑자기 미국 생활을 접고 귀국한 천재는 81년 지방대인 충북대에 입학했다. 언론과 주위에서는 ‘실패한 천재’로 표현했다. 전공 역시 물리학에서 스스로 토목공학으로 바꿨다. 그뒤 국토환경연구소 연구위원으로 근무하다 현재는 충북개발공사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지낸다. 최근 그는 세계 3대 인명사전, 즉 미국인명연구소(ABI)의 ‘21세기 위대한 지성(Great Minds of the 21st Century)’에, 미국 마퀴스 세계 인명사전(Marquis Who’s Who in the World) 23판과 영국 케임브리지 국제인명센터(IBC)가 선정하는 ‘21세기 우수 과학자 2000’에 각각 이름을 올렸다. 그러자 언론은 ‘60년대 신동’이 ‘세계의 지성’으로 인정받았다고 보도했다. 김웅용(44)씨. 귀국하기 전까지 천재라는 ‘박제’ 속에 살았다. 주위 시선도 내내 부담스러웠고 인명사전 등재도 정작 본인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저 ‘보통 사람’이고 싶었고 그렇게 사는 게 행복이라고 했다. 알고 보니 그는 3년째 야학교사로 남모르게 봉사활동하고 있다. 직장인으로, 아이 둘을 키우는 평범한 가장으로 살면서 미처 배움의 기회를 놓친 50∼60대의 아주머니들을 위해 아름다움을 베풀고 있는 것. 쇄도하는 언론 인터뷰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며 거부하는 그에게 ‘진실한 인생 얘기 한번 해보자’며 설득했다. 지난달 27일 낮 그가 다니는 직장 근처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청주시 사창동에 위치한 ‘성암야학’입니다. 중학과 고교과정의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나이든 아주머니들이 대부분이죠. 매주 목요일 저녁 7시부터 2교시를 가르치는데 과학과 수학을 맡았습니다.” 야학교사가 된 동기가 궁금했다. 충북대학에 다닐 적에 ‘청심회’라는 봉사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대학 졸업후에는 이 대학에서 시간강의를 맡게 됐는데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야학교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선뜻 지원했다. 그러나 야학교사의 기준이 ‘대학 재학생’으로 정해져 있어 탈락했다.3년 뒤 어느날 규칙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어 다시 지원했다. 자신이 초·중·고교과정의 검정고시를 거쳤기에 누구보다 그 심정을 잘 알고 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됐다. 그렇게 시작된 지 3년. 나이든 제자들도 많다. 그는 “합격한 아주머니가 휴대전화 메시지로 ‘소주 한잔 사겠다.’는 연락이 올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면서 어른들도 영어나 수학 등 암기과목을 싫어하더라며 빙그레 웃는다. 아울러 야학교사들 중에는 대학 제자들도 있으며 비록 열악한 환경일지라도 만학의 자세가 다들 진지하다고 강조했다. 자신도 “어른 분들을 가르치다 보면 오히려 배우는 것도 많다.”고 의미부여를 했다. 화제를 바꿔 ‘천재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 무엇이냐고 했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숫자로 성적 매기는 것, 그리고 공부를 얼마만큼 빨리 하느냐 등등 자꾸 비교하는 것, 또 천재가 왜 그 대학에 안 가고 지방대학에 갔느냐 하는 시선들이 정말 싫었다.”고 털어놨다. 충북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그 자체로 봐줘야지 자꾸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느낌이 못마땅했다고 토로했다. 특히 일부 사람들이 “연세대 나온 부인이 충북대 졸업한 사람과 어떻게 결혼했느냐.”고 질문할 때는 정말 황당했단다. 자신은 현재 가정적으로나 직장에서 행복과 보람을 만끽하며 지내는데 그런 식의 편견을 접할 때마다 많은 실망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러면서 숫자나 성적순이 결코 행복이 아닐 텐데 왜 자꾸 이상한 잣대로 평가하려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영재교육과 관련,“우리나라의 영재학교는 자기실력을 계발하는 곳이 아니라 좋은 대학에 보내려는 수단이 되고 말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다 보니 영재학원이 난립하고 부모들은 아이들의 소질이 어디에 있는지 관찰하고 기다려주지도 못한 채 그저 박제된 틀에 밀어넣는 꼴이 되고 말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아이를 무조건 소문난 피아노학원에 보내면 한두달 뒤 아이는 ‘손가락 아파서 못하겠다’는 광경이 그렇다고 했다. 또 “1∼100까지 써오라는 숙제를 왜 그렇게 많이도 주는지….”라고 덧붙였다. 김씨 자신도 뼈저리게 경험했듯이 또래 집단과 잘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지 무조건 시킨다고 될 일이 아니며 오히려 역효과만 초래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영어단어 암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배워야 하는 까닭을 알려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가끔 똑똑한 아이들이 자살하는 경우가 바로 이런 스트레스 때문에 그렇다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김씨도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초·중·고교 과정을 거치지 않고 미국에 건너갔다. 주위의 부추김과 화려한 시선에 짓눌려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어린 나이에 홀로 된다는 것도 그렇지만, 매일 쳇바퀴처럼 꽉 짜여진 일정 속에서 대학원 공부를 해야만 했다. 이어 NASA 연구실에서 일하면서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할까’ 하는 회의감에 빠졌다.NASA에서는 ‘계산과 예측’에서 천재성을 발휘하는 그의 재능을 필요로 했다. 결국 미국에서의 모든 ‘특권’을 포기하고 스스로 귀국결심을 했다. 이후 끌려다녔던 시절을 뒤로 하고 다시 처음부터 목표를 세워 진정한 자신의 길을 걸었다. 초·중·고 검정고시를 연이어 치렀다. 이때에도 천재가 검정고시를 보느냐며 언론에서는 카메라를 들이댔다. 이 때문에 20점 만점에 13점밖에 못받았다고 했다. 어린 시절 학교를 건너 뛰다 보니 검정고시 보면서 생소한 것을 많이 접했다. “노천명의 시 중에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은 어느 동물인가요’ 하는 문제가 있었어요. 사슴과 기린 중 기린에 동그라미를 쳤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사슴이더군요.” 이런 과정을 거친 후 김씨는 자신을 특별하게 봐주지 않는 지방대에서 비슷한 또래들과 어울리고 봉사활동하며 모처럼 인간다운 참맛을 체험했다. 김씨는 요즘 생활이 즐겁다고 했다. 새롭게 시작하는 직장에서의 무한한 기대감, 그리고 8명의 팀원들과 동고동락하는 생활이 무척 만족스럽다고 했다. 천재라는 말도 잊은 지 오래고, 또 잊어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주위에서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가 가장 부러웠다.”고 했다. 충북대 재학시절 원주고 출신들과 자주 어울렸는데 나중에는 동창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허용해줘 너무 고마웠단다. 이에 보답하기 위해 원주고 교가를 배웠고 원주고 25회 모임에 나갈 자격증(?)까지 땄다며 밝게 웃었다. 부인이 연세대 연구교수(인지과학)로 재직 중이어서 주말부부로 청주에서 지낸다. 충북대 봉사활동 중에 부인을 만났으며 슬하에 아들만 둘을 두었다. 초등 2년생인 첫째는 운동을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라고 귀띔한다. 건국대와 이화여대 교수였던 부모는 정년퇴임하고 서울에서 살고 있다. “어떤 맞춰진 틀에 사는 것이 과연 인생일까요? 지금 이대로가 진실이고 가장 행복합니다.” ■ 그가 걸어온 길 ▲1962년 서울 출생 ▲66년 한양대 물리학과 특별입학 ▲69년 건국대 4년 편입 ▲70년 콜로라도대학원 물리학과 입학 ▲74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 선임연구원 ▲78년 귀국, 이후 초·중·고교 검정고시 합격 ▲81년 충북대 토목공학과 입학 ▲85년 동대학 졸업 ▲91년 육군병장 만기제대 ▲98년 동대학원 토목공학 박사학위. 이후 충북대 시간강사, 카이스트 대우교수, 국토환경연구소 연구위원 근무 ▲2006년 7월∼현재 충북개발공사 근무 km@seoul.co.kr
  • [커리어 우먼] 한나영 우리투자증권 과장

    [커리어 우먼] 한나영 우리투자증권 과장

    우리투자증권의 브랜드 담당인 한나영(35) 과장은 ‘꿈(DREAM)’이 삶의 목표다. 자기가 만든 브랜드가 다른 회사 브랜드와 달라야 하고(Differentiation), 생수하면 에비앙이나 제주삼다수가 생각나듯이 해당 업종을 생각할 때 그 브랜드가 떠올라야(Relevance)한다. 소비자들로부터 존경(Esteem)받아야 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소비자들이 알고 있어야 하며(Awareness), 소비자들이 마음의 눈(Mindeye)을 가지고 보듯 감정적으로 연결돼 있어야 한다. 진짜 꿈같은 이야기이다. 한 과장은 꿈은 있지만 두려움은 없다. 시스템통합(SI)업체인 LG EDS에서 마케팅을 시작한 이후 마케팅에 관련된 일만 하면서 직장을 4차례 옮겼다. 직장을 옮기면서도 주변 사람들을 통해 새 직장에 대해 알아보지 않았다. 일이 좋아서 옮긴 것이고, 선입견 없이 직접 경험해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일만큼 좋은 배움의 장소는 없죠” 성공했을까. 그녀는 “직장을 옮기고 처음 며칠은 끊임없이 ‘잘한 것일까, 그냥 집에 갈까.’라는 고민을 수백번 했다.”고 고백한다. 고비를 넘기면 마케팅에 대한 사랑으로 회사 일이 즐겁단다. 마케팅을 하려면 회사는 물론 회사가 만드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야 하는 지적 탐구과정이 즐거움의 원천이라고 설명한다. 마케팅 대상인 고객들의 취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 관련 잡지는 물론 영화, 케이블방송, 시사잡지 등을 통해 트렌드를 쫓아가는 즐거움도 계속 일하게 만든다. 두려움이 없으니 주저함도 없다. 레인콤에서 MP3 제품인 아이리버의 글로벌마케팅을 담당했을 때 그녀는 다양한 아이리버 제품이 담긴 상자를 들고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 세계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인 만큼 세계적으로 창의성이 뛰어난 광고업체를 찾았는데, 답이 일본 최대 광고회사인 덴츠에서 독립한 광고전문가 야사무치 오카가 만든 터그보트였기 때문이다. 일면식도 없는 오카를 찾아가 만났고 여기서 ‘애플(사과 또는 미국 컴퓨터업체)을 씹어먹는 아이리버’ 광고가 만들어졌다. 금융업도 다른 업종보다 브랜드 개발·관리 등 마케팅이 다소 뒤져 있어 앞으로 좋은 마케팅이 많이 쏟아져 나올 곳이라는 생각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브랜드는 사장이나 직원들이 아닌 고객의 마음을 향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점에서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달 초 우리투자증권이 고객예탁금을 머니마켓펀드(MMF)에 투자, 연 4%의 이자를 주는 상품을 내놨을 때는 “사내 공모보다는 소비자가 빠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쓰도록 외부 전문가에 의뢰하자.”고 주장,‘오토머니백(Auto Money Back)’을 탄생시켰다. 연초부터 영화배우 황정민이 등장하는 TV광고 ‘당신의 성공파트너’도 그녀의 작품이다. ●브랜드 관리 경험 담은 ‘하트샵´ 발간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브랜드 관리경험과 삼성SDS 멀티캠퍼스(사내 온라인 교육기관)에서 감성커뮤니케이션을 강의하고 삼성경제연구소 홈페이지에 ‘감성펀치’를 연재하는 등의 경험을 살려 ‘하트샵(heartshop)’을 발간하기도 했다.“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마케팅 대신 열정 가득한 영혼의 울림인 하트가 필요하고 디자인은 아트 수준으로 승화돼야 소비자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이 이 책 내용의 핵심이다. 법대 출신에, 관련 학위를 받거나 강의도 들어보지 않은 한 과장은 그많은 지식들을 어디서 배웠을까.“일만큼 좋은 배움의 장소가 없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좋은 프로젝트를 맡으면 좋은 사람들이 모이고 그들에게 배우는 것이 웬만한 대학원 과정 못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늘 좋은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좋은 프로젝트를 꿈꾼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한나영 과장은 ▲1971년 서울 출생 ▲93년 이대 법학과 졸업,LG EDS 입사 ▲98년 SAP코리아 마케팅커뮤니케이션 ▲02년 ㈜얼리어답터 ▲04년 레인콤 글로벌브랜드 마케팅팀 이사 ▲05년 12월 우리투자증권 홍보팀 과장
  • “R&D투자 등 성장동력 확충에 최우선 순위”

    “R&D투자 등 성장동력 확충에 최우선 순위”

    복지와 국방, 교육예산을 대폭 늘린 238조 5000억원의 내년도 예산안이 국무회의에서 확정돼 29일 국회에 제출된다. 나라살림을 책임지는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을 예산안의 국무회의 의결을 앞둔 지난 25일 서울 서초동 장관 집무실에서 만나 내년도 예산안을 비롯해 모병제 도입 여부 등 청년인력 활용과 교육경쟁력 제고방안, 공기업의 ‘낙하산 인사’차단 방안 등 정책 전반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내년도 예산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재정은 국가운영 전체를 보기 때문에 어느 한 분야에 초점을 둘 수는 없습니다. 내년에는 미래 성장동력 확충과 국민의 기본적인 수요 총족, 국가안전 확보 등 세 가지에 중점을 뒀습니다. ▶2007년 예산안에 대해 대통령 선거를 의식한 ‘선심성 예산’,‘경기 부양용’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내년도 예산안은 예산·기금을 포함한 총지출이 238조 5000억원으로 올해보다 6.4% 늘어난 규모로 짰습니다. 팽창예산이냐 균형예산이냐의 판단 기준은 세 가지입니다. 경상성장률보다 높으면 일반적으로 팽창예산이라고 하는데 내년도 경상성장률을 6.7%로 보면, 총지출 증가율은 6.4%이고 일반회계 증가율은 6.1%이므로 중립적입니다. 재정수지 측면에서도 국내총생산(GDP)의 ±1%이면 균형이라고 보는데 통합재정수지는 1.5% 흑자, 관리대상수지도 1.5% 적자여서 균형 범주에 듭니다. 마지막으로 재정충격지수도 중립적입니다. 따라서 선거를 의식한 예산안이라는 지적은 맞지 않습니다. ▶미래 성장동력을 확충하기 위해 연구개발(R&D)예산을 대폭 늘렸다고 하나 여전히 미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R&D, 사회간접자본(SOC)을 포함한 공공건설투자, 인적자본 확충을 위한 교육투자 등에 중점을 두고 예산안을 편성했습니다. 내년도 R&D 예산이 10조원 수준인데 결코 적은 규모가 아닙니다.2010년까지 연평균 증가율이 9.1%로 가장 중점을 둬 투자를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예산안을 성장이냐 복지냐 식의 관념적 이분법으로 접근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경제분야 예산 증가율이 낮다고 해서 성장을 소홀히 한다는 논리는 적절치 않습니다. 복지지출에도 성장을 뒷받침하는 사업이 많으며 미래를 위한 투자로 인식해야 합니다. ▶내년은 물론 2008년부터 저출산·고령화대책, 사회서비스 공급 대책 등 복지사업들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재원확보 방안이 문제입니다. 시행착오를 방지할 대책은 있습니까. -복지 관련 수요는 2006∼2010 국가재정운용계획에 이미 반영해 차질없이 뒷받침할 계획입니다. 관련 기관간에 협조 체계를 강화하고 사업수행을 위한 법령·지침·기준 등을 철저히 준비해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것입니다. 기존 사회서비스는 채용 기준 등을 마련, 시행하고 선진국에서 효과가 검증된 사업부터 시범사업 후 도입할 계획입니다. ▶내년에 국가부채가 300조원을 돌파합니다.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른 것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가 높습니다. -지난 4년간 국가채무는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공적자금 상환,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재원 투입 등을 위해 불가피하게 늘어난 측면이 있습니다. 앞으로 지출 구조조정, 비과세·감면 축소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관리해 나갈 것입니다. 당초 전망보다 올해와 내년 국가부채 규모가 늘어나고 GDP 대비 비율도 높아진 건 사실입니다. 환율·유가 때문에 디플레이터가 낮아져 경상GDP가 줄었기 때문입니다. 재정당국으로서 4대 재정개혁 중 가장 중요한 건 국가재정운용계획입니다.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전망한 대로 2008년부터는 국가채무가 줄어들 것으로 확신합니다. ▶예산안 얘기는 이쯤 하고 기획처가 국가 기획기능을 갖고 있는 만큼 주제를 청년인력확충·재정수지 개선 방안 등 사회 현안 쪽으로 돌리겠습니다. 먼저 국가안보와 관련해 민감한 사안입니다만, 과거 출생아수 100만명 시대에서 지난해 43만여명으로 급감해 병력자원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국방부에서 결정할 일이지만 19세 이상으로 입영연령을 낮추는 문제는 물론 일각에선 모병제로 가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병력자원이 부족하고, 청년기에 사회 진출시기가 군복무기간만큼 늦고 단절되며, 군대에 갔다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간에 경험이 확연히 차이가 나는 등 문제가 많아 신중히 검토할 과제입니다. 단순히 국방 문제만이 아니라 청년인력 활용방안 차원에서 접근해 현재 검토중입니다. 짚어봐야 할 문제가 많아 당장 내년 예산안과 관련이 있지는 않습니다. 지금처럼 군대에 가지 않는 경우 산업체 근무만 할 게 아니라 사회적 봉사 개념이 가미된 복무 시스템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년인력 활용 문제는 기획처가 중심이 돼 검토합니까. -병역 문제와 관련돼서는 아무래도 국방부가 중심이 돼서 할 수밖에 없고, 기획처도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내년에는 예산과 상관없이 (모병제를)본격적으로 논의하게 됩니까. -내년 예산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국방개혁 자체가 사병을 현재 68만명에서 50만명으로 대폭 감축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검토를) 하게 될 겁니다. ▶모병제는 상당히 관심이 많은데, 그렇다면 내년에는 협의가 되겠네요. -모병제가 내년에 논의될 것이라기보다 병력자원이 급격하게 감소되면 장기복무자가 필요하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 검토할 필요는 있습니다. ▶서비스 수지와 관련, 관광의 경우 제주도가 여러 면에서 비싸다보니 내국인들은 외국으로 나가고 외국인들을 유인할 볼거리는 많지 않은 편입니다. 제주도 비행기값을 일부 지원한다든가, 골프비용을 내린다든가 하는 식의 정부대책이 필요한 것 아닙니까. -기본적으로 제주도는 땅값이 너무 비쌉니다. 비행기값도 문제지만 이보다는 음식값과 숙박비가 너무 비쌉니다. 비행기값은 저가 항공기들의 가세로 경쟁이 붙어 이를 통해 해결할 문제이지, 이용자에게 재정보조를 해서 될 문제는 아닙니다. 인건비가 비싼 것도 문제입니다. 새 볼거리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과거 단순히 볼거리만 제공했다면 이제는 생각하며 체험하는 상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관광 소프트웨어의 개발에서 문화관광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가 민영의료보험 활성화를 추진했는데. -의료 선진화는 제도적 측면도 있고 산업으로서의 선진화 문제도 있습니다.‘2030비전’에도 들어가 있는데, 성장동력 확충을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이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강화입니다. 미래의 고용은 서비스산업에서 창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서비스 산업중에서 교육과 의료부문의 경쟁력 강화가 중요합니다. 당장 교육·의료시장을 완전개방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핵심 과제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뜻입니다. 본인이 부담할 능력이 있고,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서비스를 받고 싶다면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국내에서 소비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교육·의료도 마찬가지입니다. 획일적인 평등주의가 여러 분야에 나타나고 있는데 획일성은 빨리 시정돼야 한다고 봅니다. ▶예산권을 갖고 있는 기획처에서 교육개혁을 촉진할 수 있는 방법은. -앞으로는 대학교육의 경쟁력을 살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미래에 먹고사는 것과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초·중등 교육에 대한 재정지원을 늘리라고 주문하는데,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중앙정부는 대학교육의 경쟁력을 높이는 쪽에 치중하고, 초·중·고등학교 운영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늘리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현재 내국세의 19.4%를 지방교육교부금으로 보내고 있는데 인건비 비중이 너무 높습니다. 앞으로는 학급당 학생수를 인위적으로 줄이기보다 공교육의 질을 높여야 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방과후 학교를 봐야 합니다. 내년에는 중앙정부에서만 1017억원을 지원하는데 성공 여부는 지역사회와 학교장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공기업의 방만경영과 이른바 ‘낙하산 인사’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국회에 제출한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기본법’이 시행되면 이같은 문제를 막을 수 있다고 보십니까. -이 법안은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 임원 임명의 공정성 논란을 제도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시스템 마련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모든 임원은 임원추천위를 구성해 적격성을 심사하고, 준정부기관 견제담당임원(비상임이사·감사) 임명시 민간위원이 과반수로 구성되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직접 심사하는 제도를 도입하기 때문에 ‘정치적 임명 논란’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앞으로 공청회 등을 거치면서 정치권에서 정부 제출안보다 합리적인 방안을 제안한다면 논의 과정에서 법안 내용이 수정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개념이 모호한데 어떤 식으로 구체화할 수 있습니까. -사회적 자본은 구성원간 신뢰와 규범, 선진화된 사회시스템 및 네트워크를 의미합니다. 사회적 자본 확충은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전제조건이지만 우리나라는 취약한 수준입니다. 이해집단간 갈등, 구성원간 불신, 공적제도에 대한 낮은 신뢰 등은 경제정책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사회적 의제입니다.‘비전 2030’의 5대 전략에 사회적 자본 확충을 포함, 추진할 계획입니다. 네덜란드, 독일 등 선진국의 사회협약을 벤치마킹해 우리의 실정에 맞는 사회적 자본확충 방안을 강구할 것입니다. 대담 오승호 경제부장·정리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은 ▲전남 곡성(54) 출생 ▲광주제일고 ▲서울대 무역학과 ▲행정고시 17회 ▲경제기획원 사회개발계획과장, 인력개발계획과장, 예산관리과장, 농수산예산담당관 ▲재정경제원 생활물가과장 ▲기획예산위원회 재정기획과장, 총무과장 ▲한국개발연구원(KDI) 파견 ▲기획예산처 경제예산심의관, 기금정책국장 ▲열린우리당 수석 전문위원 ▲기획예산처 예산실장, 차관 ▲수원대 무용과 교수인 부인 양정수(53)씨와 1남1녀.
  • [스포츠 라운지] 여자배구 코보컵 우승 이끈 홍성진 현대건설 감독

    [스포츠 라운지] 여자배구 코보컵 우승 이끈 홍성진 현대건설 감독

    “선수 한 명 한 명은 저마다 좋은 색깔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도자가 할 일은 그 색깔을 잘 섞어서 좋은 그림으로 빚어내는 것이지요.” 현대건설은 여자 배구의 ‘명가’다.30년째 한국 여자 배구를 이끄는 한 축으로 움직여 왔다.70∼80년 대에는 미도파와,90년대 이후에는 호남정유(현 GS칼텍스)와 배구계를 양분했다.99년부터 겨울리그에서 내리 5연패를 했고, 대통령배·슈퍼리그·V-리그를 통틀어 국내 최초로 10회 우승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프로에 들어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 프로 원년이던 04∼05시즌엔 3위로 밀려났고, 지난 시즌엔 4위로 떨어졌다. 지난 25일 한국배구연맹(KOVO)컵 프로배구대회 여자부 결승 2차전이 열렸던 경남 양산체육관. 현대건설은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대역전 드라마를 쓰며 오랜만에 우승컵을 품었다. 선수들은 땀과 기쁨으로 범벅이 됐고, 그 중심에 홍성진 감독이 있었다. ●무명 선수에서 명지도자로 지난 4월부터 명가 재건이라는 중책을 맡고 신임 사령탑에 올랐다. 그의 이름은 사실 낯설다. 배구 명문 익산 남성고를 나왔지만 무명으로 현역 시절을 보냈다. 주로 세터와 라이트 공격수를 맡았던 홍 감독은 서강대로 진학했으나 3학년 때 팀이 해체되는 바람에 실업 무대를 밟아 보지 못했다. 당시 생활비가 없어 자장면 한 그릇으로 하루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그는 오히려 무명이던 선수 생활이 지도자 생활에 있어서는 보약이었다고 회상한다. “늘 그늘에 가려져 있던 탓에 잘하는 선수든 못하는 선수든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됐죠.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않고서는 얻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시련이 저를 강하게 만들었죠.”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삼아 일신여상에서 코치를 시작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남다른 지도력과 흡입력으로 일신여상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효성을 통해 실업 코치로 나섰고,97년 마침내 감독이 됐으나 IMF 파도로 또 다시 팀이 없어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많은 굴곡을 접해서일까. 홍 감독은 유난히 화합을 강조한다. 서로 마음을 열고 운동을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특히 여자 선수들의 섬세한 면을 살리려면 허물이 없어야 한다는 게 지론. 감독으로선 드물게 직접 배구공을 만지며 함께 훈련을 하는 것도 그래서다. 코트에선 까무러칠 정도로 훈련을 시키지만 코트 밖에선 ‘동네 이장님’이라고 불릴 정도로 친근하게 제자들을 배려한다.“여느 때보다 단결력과 응집력이 높다.”며 명가 부활을 자신하는 배경이다. ●아들이 대를 잇는 배구 가족 새벽 5시 안양에 있는 집을 나서서 용인에 있는 체육관에서 살다가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에서 눈을 붙이는 생활의 반복이다. 단 하루를 쉬는 목요일 오후, 요즘 즐거운 일이 생겼다. 바로 아버지, 어머니(호남정유에서 활약했던 홍석주씨)의 대를 이어 배구 선수로 커가는 아들 은기의 훈련을 지켜보는 것. 초등학교 5학년이지만 키가 180㎝에 이른다. 벌써 ‘미래의 이경수’라는 평가를 받는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홍 감독은 “아버지는 가르치는 것에서 최고가 될 테니 너는 선수로서 최고가 돼라고 말해 줍니다.”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홍 감독 스스로도 하고 싶은 일이 많다. 명가 재건 이후엔 국가대표팀 감독도 맡아 보고 싶고, 언젠가는 외국에 나가 능력을 확인해 보고도 싶다. 그는 “지금 7부 능선 쯤 올랐다고 할까요. 정상에 올라 저 산 너머에 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고 했다. 용인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홍성진 감독은 누구 ●출생 1962년 11월6일 전북 장수군 산서면 ●가족관계 부인 홍석주(39)씨와 딸 유진(15), 아들 은기(12) ●취미 독서 ●주량 소주 한 병 ●흡연량 하루 반갑 ●체격 180㎝,74㎏ ●학력 장수 산서초(5학년 때 배구 시작)-익산 남성중·고-서강대 ●현역 포지션 세터, 라이트 ●경력 일신여상(85∼93), 효성건설 코치(94∼97), 효성건설 감독(97∼98), 현대건설 코치(99∼2006), 부산아시안게임 여자배구 대표팀 코치(2002), 현대건설 감독(2006.4∼)
  • [우리구 구청장 궁금하시죠] 박장규 용산구청장

    [우리구 구청장 궁금하시죠] 박장규 용산구청장

    박장규 용산구청장은 국제 첨단도시, 세계속의 용산을 그리고 있다. 강남북을 잇는 중심 도시로서 세계로 뻗어가는 서울의 관문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서울을 찾는 외국인은 반드시 우리구를 방문합니다. 용산역에서 출발해 전국을 여행하고, 이태원과 용산전자상가에서 쇼핑·관광을 즐깁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선 대한민국의 역사를 배웁니다.” 박 구청장은 용산구를 ‘서울의 얼굴’이라 불렀다. 서울의 인상은 용산이 좌우한다는 설명이다. 매력있는 첫인상을 갖도록 그는 2000년부터 용산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30∼40년 낡은 건물을 정보기술(IT) 강대국다운 최첨단 단지로 바꾸고 있다. 우선 2001년 고시된 용산지구단위계획에 따라 서울역에서 한강대교로 이어지는 한강로 부지 100만평을 세계화·정보화에 대비한 국제정보업무단지로 조성한다. 도시환경정비사업·주택재개발사업·민간개발사업을 진행해 국제 경쟁력을 갖춘 서울의 신부도심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또 용산역이 갖는 관문성을 활용해 이 일대 21만평에 대단위 국제 업무단지를 만든다. 특히 지하 3층, 지상 110층의 복합건물을 건설, 서울의 랜드마크로 삼을 계획이다. 이 건물은 국내 최대규모로 63빌딩의 1.5배다. 지난해 4월 준공한 용산역에는 백화점과 할인점, 전자·패션전문점이 들어섰다. 업무시설뿐 아니라 주거환경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효창·용문·신계 지역의 낡은 주택을 개선하고, 한남·보광동 일대 33만평을 뉴타운 지구로 지정했다. 아울러 청파동과 한강로 원효로 일대도 재개발해 쾌적한 주거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다. “도시 재개발은 오랫동안 공을 들여야 하는 힘든 사업입니다. 계획하는데 1년, 주민을 설득하는데 2년, 서울시 승인을 받는데 1년이 걸립니다.”그는 지난 6년동안 험난한 길을 쉼없이 달려와 이제 결승점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했다. 박 구청장은 또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환경친화적 도시가 미래를 이끌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점에서 용산구는 타고난 미래도시다. 남산의 녹지축과 한강을 따라 형성된 하천축이 만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군기지 이전 부지 81만평을 공원으로 조성하면 물·나무·바람이 만나는 생태 네트워크가 완성된다. 박 구청장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는 것에 대해 “터무니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용산상희원은 독립적인 사회복지법인이며 강제 모금을 지시하거나 기부금을 납부하라고 강요할 이유가 전혀 없다.”면서 “압도적인 표차이로 당선된 사람이 복지법인을 이용해 무슨 사전 선거운동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걸어온 길 ▲출생 1935년 충북 청원 ▲학력 동국대 법학과 졸업, 명지대 행정학 박사 ▲약력 임광토건 전무이사, 남양진흥기업 이사, 동영개발 사장, 용산구의회 초대 부의장,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용산구협의회장, 용산구의회 제3대 의장, 민선 2·3·4기 용산구청장 ▲가족 임숙희씨와 1남 2녀 ▲기호음식 된장찌개 ▲주량 소주 2잔 ▲애창곡 타향살이 ▲좌우명 노력하라, 그러나 결과는 논하지 마라
  • 儒林(700)-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 (46)

    儒林(700)-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 (46)

    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46) 송대의 신유학을 가리키는 ‘성리학’이라는 명칭은 ‘본성이 곧 이(性卽理)’라는 주자의 핵심사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본성으로서의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의 오상(五常)을 계발하여 그것을 사회에 확충시키려 하였던 주자의 사상은 맹자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사단(四端)의 성선설을 발전시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계발하려는 신인간학(新人間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즉리(性卽理)’의 핵심사상은 주자의 독창적인 철학사상이 아니었다. 주자가 내세운 ‘성즉리’사상은 북송초기의 유학자 정호(程顥), 정이(程 ) 두형제가 내세웠던 이기론(理氣論)을 수용해서 이를 더욱더 발전시켰던 것이다. 형 정호는 정명도(程明道)라 불리고 동생 정이는 정이천(程伊川)이라 불리던 한살 터울로 태어난 연년생의 형제였다. 주자보다 100여 년 전 허난성(河南省) 뤄양(洛陽)출생의 이 두 형제는 신유학의 개조라고 할 수 있는 주돈이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주돈이는 우주의 근원인 태극(太極:無極)으로부터 만물이 형성되는 과정을 도해하여 그 유명한 ‘태극도설’을 그렸다. 태극은 음양의 이기로 나누어지며 음양은 또한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의 오원소(五元素)로 나누어지고 그 원소는 다시 건(乾)의 남성과 곤(坤)의 여성으로 나누어지며, 남녀는 만물의 순서로 나누어져 우주가 구성되었다고 논하고, 그 만물 중에서 인간만이 가장 우수한 존재(秀靈)이기 때문에 인의의 도를 지키고 마음을 성실히 하여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고 우주생성의 원리와 인간의 도덕원리를 지켜나가는 이론을 제시하였던 신유학의 개척자였던 것이다. 특히 주돈이는 주역(周易)에 바탕을 두고 ‘만물의 근원은 태극이며 태극이 실제로 모든 만물을 형성한다.’는 형이상학을 제시함으로써 성리학의 중심사상인 이학의 바탕을 마련했던 뛰어난 사상가였던 것이다. 정호와 정이의 이정자(二程子)는 특히 스승 주돈이의 사상을 한층더 발전시켜 자연현상의 모든 질서는 우주의 근본원리인 이(理)에서 비롯된다는 ‘성즉리설(性卽理說)’을 주창하였는데, 이 두형제의 성리론에서 주자는 마침내 어렸을 때 아버지 주송으로부터 천자문을 배울 때 주송이 하늘 천(天)을 가르치기 위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저 하늘보다 높고 깊고 넓은 것은 없다.’고 말하였을 때 ‘그렇다면 하늘 위에는 무엇이 있습니까.’하고 물었던 근원적인 의문점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 주송은 주자의 질문에 당황하였을 뿐, 그 어떤 명쾌한 대답도 해주지 못하였는데 주자는 이정자의 성리론을 접한 순간 어렸을 때부터의 수수께끼가 완전히 풀리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즉 유형으로서의 극점인 하늘(天) 위에는 무형으로서의 이(理)가 존재하고 있음을 비로소 각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 [우리구 구청장 궁금하시죠] 서찬교 성북구청장

    [우리구 구청장 궁금하시죠] 서찬교 성북구청장

    성북구가 화려하고 힘찬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껍데기를 벗어 던진 나비의 모습이다. 길음·정릉 뉴타운, 장위동 뉴타운을 본격 개발하고, 분당선을 유치하는 교통대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강남·북 균형발전의 핵심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한 첫 걸음이다. 서찬교 성북구청장은 2010년 성북비전을 세우고 대형 프로젝트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그는 ‘도시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2002년, 구청장에 처음 당선된 뒤 꾸준히 성북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진단해 왔다. 성북을 서울 동북권 중심도시로 우뚝 세울 밑그림을 그린 셈이다. 그리고 마스터플랜을 ‘2010 성북비전’이라는 책에 담았다. “성북구는 지리상 강북의 중심이며, 문화가 풍부합니다. 북한산 자락이라 자연환경도 훌륭합니다. 강·남북 균형 발전의 대장정은 성북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낡은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현재 진행중인 길음·정릉 뉴타운 개발을 마무리하고 지난해 확정된 장위동(55만평)뉴타운을 본격 개발한다.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장위동은 지역특성에 맞는 맞춤형 주거단지로 거듭난다. 또 길음·월곡동 일대에 서울 동북부의 랜드마크로 자리할 40층 규모의 초고층 건물이 들어선다. 이와 함께 월곡동 성매매 집결지를 정비해 상업·업무·유통시설이 어우러지는 거점도시로 개발할 계획이다. 서 구청장은 “정릉 지역은 ‘도시재정비 촉진지구´로 지정해 환경친화적 주거단지로 거듭나도록 독자적으로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 구청장은 교통난 해소를 위한 새로운 대책도 마련했다. 지하철 분당선을 노원까지 연장해 서울 동북권을 강남, 분당과 직접 연결하는 하는 방안이다. 이러한 안을 오세훈 서울시장에게도 제안했다. 현재 서울시는 분당선을 선릉에서 왕십리까지만 연장할 계획이다. 그는 “성북과 강남, 분당은 거리상 멀지 않지만 직통 지하철이나 버스가 없어 출퇴근이 어렵다.”면서 “동북권 발전을 위해선 교통난 해소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지하철이 뚫리면 동북권과 분당간 이동 시간이 1시간 이내로 줄어든다. 이에 성북·성동·동대문·강북·노원구가 참여하는 ‘동북권 광역지하철추진단’을 구성, 분당선 연장에 공동 대처할 예정이다. 정릉 지역에는 우이∼정릉을 잇는 총연장 10.7㎞ 지하경전철을 2011년까지 완공한다. 그는 “현재 민간 업자를 선정하고 있다.”면서 “경전철이 완료되면 상권이 형성돼 지역경제도 살아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서 구청장은 항상 웃는 얼굴이다. 그는 “하루하루 노력을 쌓아가면 성북구를 서울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걸어온 길 ▲출생 1943년 경남 고성 ▲학력 국민대 졸, 행정학 박사 ▲약력 공무원 9급 임용, 서울시 비서실장, 보건위생과장, 총무과장, 양천·구로·은평·강동 부구청장, 송파구청장, 지방관리관(1급) 명예퇴직. 황조근정훈장 ▲가족 강혜숙씨와 2남 ▲종교 기독교 ▲주량 마시지 않음▲좌우명 언제나 주어진 여건과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자 ▲애창곡 만남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목조각 5000여점 모아 ‘목인박물관’ 설립 김의광 관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목조각 5000여점 모아 ‘목인박물관’ 설립 김의광 관장

    죽은 이가 마지막으로 가마를 타고 간다. 에구메라, 여러 목인(木人)들이 외로울까봐 함께 벗을 하잔다.‘따라와∼’ 창을 들고 호랑이를 탄 남자, 해태 위에 걸터앉은 선비, 물구나무 선 광대, 학을 타고 천도복숭아와 술병을 든 신선, 머리에 뿔이 두개가 나 있는 도깨비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호들갑이다. 기왕지사, 가는 길에 노래나 몇술 뿌려보자. 자, 이승과 이별하는 최후의 마당이 아닌가.‘이제 가면 언제 오나/허어야 허어야/간다 간다 나는 간다/북망 고개로 나는 간다/서른 서이 상두꾼아/발맞추어 나아가세’ 처량하면서도 차원 높은 해탈의 노래다. 목인(木人), 풀어보면 나뭇조각 인간을 뜻한다. 비록 말이 없지만 웃음과 울음이 있다. 풍자의 여유가 진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이 주술 및 벽사, 그리고 각종 의례에 사용했다. 죽은 이를 저승길로 무사히 안내하고 극락세계로 모시는 역할도 했다. 무덤의 부장용으로 쓰였던 목용(木俑), 마을의 수호신, 일상 생활에서 각종 민예품으로 사용됐던 흔적들이 뜸뜸이 전해내려온다. 아울러 이들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당시의 생활 풍습과 토속신앙, 복식문화 등을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료가치로 평가된다. ●목인은 민화와 함께 민중공예문화 대표 특히 상여장식에 표현된 다양한 목인들은 민화와 함께 우리 민중의 공예문화를 대표한다. 하지만 상여소리를 하는 선소리꾼과 상여꾼들이 점차 사라지는 현실에서 그 맥이 끊어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잠깐, 여기에서 주목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국내 유일의 ‘목인박물관’을 설립한 김의광(57) 관장이다. 강산이 세번 바뀌는 지난 30년 세월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3000여점의 목인과 목조각을 옹골지게 ‘목인석심(木人石心)´으로 수집했다. 조선시대 후기의 상여문화를 알 수 있는 목인을 비롯, 신당(神堂), 절에 있던 목조각 등 귀중한 작품들을 많이 모았고 올 3월에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박물관을 열었다. 그랬더니 오늘날 민속학자, 역사학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쓰레기통 언저리에 버려졌거나, 그랬음직한 목인들이 일약 스타가 된 셈이다. 그동안 말없이 방치됐던 목인들이 김 관장의 노력에 의해 당시의 생활풍습과 의식문화 등을 알려주는 데 중요한 역할로 떠올랐다. 이쯤되면 김 관장을 가리켜 별난 사람이라기보다는 단절되가는 전통문화의 맥을 잇는 훌륭한 인물이라고 해야 되지 않을까. 지난 19일 목인박물관에서 김 관장을 만났다.2층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더니 역시나 애지중지 목인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최근에 열린 ‘목인, 세속에서 얻은 성스러움’의 특별전에 대한 마무리 손질작업이기도 했다. 김 관장은 먼저 안에 전시된 여러 목인들을 설명해준다. 전시실에는 300여점의 목인과 상여 앞에 매달렸던 꽃나무 조각 200여점이 벽면에 가득 전시돼 있었다. 지난 세월만큼이나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었으나 당시의 생활상을 연상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연꽃, 학, 닭, 기러기, 사당패, 가슴을 드러낸 기생, 봉황탄 어린이 등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조상들의 숨결이 새록새록 느껴진다. 그는 “삶을 마감하고 가는 길은 우울하고 어두웠을텐데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준 조상들의 마음이 정말 아름답지 않으냐.”고 하면서 죽음에 대한 긍정적 사고를 새삼 느끼게 한다고 설명했다. 쭉 둘러보노라니 영화 ‘왕의 남자’로 유명한 줄타기 하는 목인,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붉은 치우천왕, 첩과 가까이 있는 남편에게 눈을 흘기는 본처 목인, 아들을 손꼽아 바라는 부부 목인…. ●인도·태국 등 동남아 목조각도 2000여점 모아 그는 “이 박물관 집은 단기 4288년, 흔히 쌍팔년 4월에 지어졌다. 여기 목인들이 있기엔 잘 어울리는 공간.”이라면서 이들을 불러모으느라 애를 많이 썼다며 웃는다. 특히 이 박물관 1층 지하에는 요즘 보기 힘든 방공호까지 그대로 보존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1970년대초였어요. 외국인 친구네 집에 갔는데 우리나라 전통 민속품이 진열돼 있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지요. 그때부터 취미로 목조각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당시 ㈜태평양에 입사, 근무했던 시절이어서 퇴근 후나 주말 등을 이용해 골동품 가게를 뒤졌다. 주로 인사동이나 청계천 일대였다. 갈 때마다 맘에 드는 목인을 보고 가격이 비싸 만지작거렸던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의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특히 기독교인이 상여장식을 모은다고 하자 ‘귀신이 붙었다.’라는 얘기도 자주 들었다. 그럴수록 목인은 그에게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다가왔다. 이름없는 장인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혼, 보면 볼수록 감동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하나 둘 수집한 것이 3000여점. 최근 2∼3년 사이에는 행동반경을 넓혀 인도, 태국 등의 동남아 목조각 2000여점을 모았다. 당연히 현지에서 발품을 팔았다. “목인 중에서도 상여 목조각에는 그 사회의 시대상이 그대로 담겨 있어 많은 흥미를 불러일으킵니다. 상여 목인은 주로 조선 후기에 왕성하게 만들어졌지요. 그땐 관을 지키는 사람이 장군이었다가 일제 시대에 와서는 순사로 변합니다.” 김 관장은 “사실 상여문화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풍습이다.”면서 죽은 자가 현세에 누리는 마지막 호사였고 평민에게는 평소 고관대작이나 탈 수 있는 가마를 죽을 때 타보는 영광(?)도 있었다고 했다. ●올겨울 ‘목인도록´ 제작… 특별전 계획 김 관장은 또 “누군가 그런 것(목인을)들을 모으지 않았다면 쓰레기통 비슷한 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지금와서 생각해봐도 목인들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바로 ‘함께 살아온 우리 시대의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런 명분으로 박물관을 열었더니 민속학자 등 주변으로부터 많은 격려를 받았다고 했다. 이들에 대한 보답으로 올 겨울에는 ‘목인도록’도 제작하고 특별전을 열 예정이다. 내년 3월 개관 1주년 때에는 그동안 모아온 동남아의 목인들도 전시해볼 계획이다. “우리 박물관은 목인들과의 대화의 장소입니다. 음악과 역사가 공존합니다. 옛날의 목인을 보며 차도 마시는 문화공간이지요.” 젊었을 때는 돈이 없어 못했지만 60을 바라보는 지금 나이에 박물관이라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 너무 뿌듯하다고 의미부여를 했다. 김 관장은 서울 출신. 연세대 정외과를 나와 75년 설록차를 생산하는 태평양에 입사했다. 이후 태평양 계열사인 장원산업 회장으로 있던 2004년 목인들의 반란(?)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의 박물관을 설립했다. 그가 박물관과 인연이 된 것은 부친의 영향도 없지 않았다. 자유당 시절 상공·교통·내무장관을 지낸 부친(김일환)이 이화여대 이사로 있었던 1999년에 김활란 탄생 100주년을 맞아 ‘십장생도 병풍’을 기증했다. 조선시대 궁중미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 병풍은 1972년 프란체스카 여사로부터 선물받아 30년 가까이 소중하게 보관해왔던 것이다. 김 관장은 이때 ‘적재적소’라는 말을 생각해냈다. 즉 물건이나 사람이나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그래서 수집했던 목인들을 모아 박물관 설립을 생각하게 됐다. “공예품이 청자라면 목인은 백자입니다. 또 청자가 귀족의 애장품이라면 목인은 민초의 삶, 애환과 고통 그 자체이지요. 사람에게도 적재적소가 있듯이 목인들도 제자리가 있는 것이지요.”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9년 서울 출생 ▲68년 대광고 졸업 ▲72년 연세대 정외과 졸업 ▲74년 동대학 석사 ▲75년 ㈜태평양 입사 ▲83년 태평양 장업㈜ 전무 ▲92년 태평양 돌핀스야구단 대표이사. 대통령 표창(전통차 계승발전) ▲2002년 장원산업㈜ 회장 ▲06년 3월 목인박물관 관장, 옛돌조각 사랑모임 회장, 사단법인 한국민속박물관회 이사, 서울시박물관협회 이사
  • [22일 TV 하이라이트]

    ●사이언스+(바코드)(YTN 오후 1시20분) 대형할인점이나 백화점에서 상품을 구입할 때, 모든 물건에 바코드가 표시되어 있다. 이는 사람이 태어나서 출생신고를 하면 주민등록번호를 갖게 되는 것처럼 바코드는 모든 물건들이 갖고 태어나는 고유 번호다. 우리 생활 속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는 바코드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   ●다큐 여자(EBS 오후 9시30분) 하루 종일 아이디어를 짜고, 밤낮 연기 연습을 해도 항상 만년 조연인 김민지. 몇 번이나 좌절의 순간을 겪어야만 했던 그녀.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 나만의 무대를 찾기 위해 새로운 각오로 방송국을 찾는다. 과연 그녀는 개그계의 떠오르는 스타가 될 수 있을까? 김민지, 그녀의 도전은 이제 시작된다.   ●신동엽의 있다!없다?(SBS 오후 7시5분) 동남아시아를 강타한 대재앙 쓰나미. 거대한 쓰나미 해일의 위력 앞에서 도망치면서도 웃는 사람들이 있다. 이 미스터리한 사진의 비밀은? 강아지 전용 우산이 있는지 없는지, 우리나라에 시어머니 섬이 있는지 없는지, 또 살이 빠지는 거울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아본다.   ●꼭 한번 만나고 싶다(MBC 오후 7시20분) 일곱 살 어린나이에 어머니와 헤어진 조세훈씨. 그 후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면서 아버지의 폭력 속에 하루도 편할 날 없이 지내게 된다. 힘들 때마다 어머니가 남겨주신 놀이동산의 행복한 기억만을 떠올렸다는 세훈씨. 오늘 그는 어머니를 만나 소원대로 큰절을 올리고 입대할 수 있을까?   ●사랑과 전쟁(KBS2 오후 11시5분) 임신 6개월의 몸으로 극장에서 갑자기 사라진 아내. 처갓집이고 경찰서고 다 전화를 해보지만 찾을 수 없다. 며칠 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나타난 아내는 아이를 낳을 때까지만 친정에 가있겠다고 한다. 출산하고 얼마 후 아내는 또 가출을 하고, 남편은 아내의 친구를 통해서 그 이유를 알게 되는데….   ●열아홉 순정(KBS1 오후 8시25분) 윤후가 빈 몸으로 집을 나온 후, 모든 사람들이 국화에게 윤후의 행방을 따져 물으며 비난한다. 옥금은 혜숙을 찾아가 홍영감과의 결혼 결심을 바꾸려고 애쓴다. 기획실 일을 배우려고 애쓰는 윤정이 기특한 우경은 야식을 사들고 가지만 맞선남인 진수가 이미 윤정을 챙기고 있다.
  • 기억을 염(殮)하다

    기억을 염(殮)하다

    글 황두진 건축가 나는 건축가지만 아주 드물게 건축이 아닌 다른 창작을 하기도 한다. 굳이 따지자면 직업적 외도겠지만 창작이란 인간성의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나와 친분이 있던 어떤 갤러리에서 여러 작가들을 모아 전시회를 하는데 거기에 동참할 것을 권유해왔다. 약간의 주저 끝에 응하기로 했다. 하지만 무엇을 할 것인가,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나 곧 나는 답을 내 자신에게서 찾기로 했다. 그 당시 갖고 있던 느낌이나 생각을 솔직하게 담을 수 있는 그 무엇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즉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아버지의 장례를 막 치르고 난 후였다. 아주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에 대해 그때만큼 열심히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막상 대면해 보니 죽음이란 마치 정전과도 같은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컴퓨터 모니터가 갑자기 꺼지며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나는 당연히 돌아가신 분과 살아 있는 나 사이의 어떤 초자연적인 교감과 소통을 기대했고, 그 증거를 찾고자 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은 없었다. 아버지는 심지어 내 꿈에도 나타나지 않으셨다. 어떤 분들은 그것이 오히려 좋은 징조이며, 돌아가신 분이 미련 없이 이승을 떴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감사히 들으면서도 마음 속 한 구석에서 내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죽음은 곧 끝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비교적 담담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은 여전히 죽음이라는 문제와 씨름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 특히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그만큼 충격적이고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혹은 종교에서 그 대답을 찾기도 하고, 혹은 죽음과 관련된 일련의 미학적 형식들을 통해 어떤 의미를 발견하거나, 혹은 심지어 그것들을 만들어내려고도 한다. 장례 절차란 이러한 노력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낸 정교한 의미와 형식의 복합체에 다름 아니다. 장례란 물리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일종의 포장과정이다. 영혼이 빠져나간 육신을 종이와 천, 그리고 나무, 최종적으로 흙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입관 절차, 특히 시신을 염(殮)하는 과정이었다. 우리 아버지의 경우, 중년의 두 남자분이 그 일을 했다. 침묵 속에, 그러나 너무나 숙달된 몸짓으로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그것은 마치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벌이는 군무와도 같았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는 애절한 순간이었지만 그 경건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전시회가 얼마 남지 않았던 어느 날, 나는 인사동에 나가 한지와 삼베를 넉넉히 사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내 주변의 작은 물건들을 하나하나 싸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내 물건도 있었지만 아버지가 쓰시던, 혹은 아버지와 관계 있던 물건들도 있었다. 아버지의 안경. 아버지가 보시던 책.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눈이 펑펑 내리던 설악산에서 찍어드린 아버지의 빛 바랜 사진. 아, 그리고 그토록 좋아하시던 소주를 담은 병에 이르기까지. 나는 때로는 한지를 접고, 때로는 한지를 구기고, 또 때로는 한지를 돌돌 말아 끈을 만들어가며 서로 다른 형상과 의미를 지닌 물건들을 제 나름의 형식을 담아 싸고 있었다. 머리 속으로는 아버지의 입관 과정에서 보았던 종이와 천의 순결한 아름다움, 그리고 그것들이 서로 엮이고 접히며 만들어내는 간결하고 엄숙한 결합의 방식들을 끊임없이 떠올리고 있었다. 내가 싸고 있었던 것은 물건들이었지만, 내가 염하고 있었던 것은 그 물건들이 떠올리게 하는 기억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 나 자신에 대한 기억,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나날들에 대한 예언적 기억. 나는 이렇게 종이와 삼베로 싼 물건들을 상자에 담아 갤러리에 보냈고 그것이 나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버지를 내 마음 속으로 보내드렸다. 황두진 · 1963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건축과를 졸업, 미국 예일대에서 건축석사 학위를 받았다. 재미건축가 김태수 문하에서 7년 간 일했으며, 2000년 독립하여 자신의 작업을 하고 있다.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 현재 황두진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월간 <삶과꿈> 2006.09 구독문의:02-319-3791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