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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글에 주민번호 9만개 노출

    모든 번호가 노출돼 명의도용 우려가 큰 주민등록번호 9만 5000여개가 인터넷상에 무방비로 떠돌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927번이나 노출된 주민번호도 있었다. 앞자리 6개 숫자만 노출된 주민번호도 80만 8000여개나 됐다. 최근 이동통신업체 등의 관계자가 자사 서비스 가입자 주민번호를 불법유통시켜 논란이 됐지만 주민번호가 이처럼 웹 사이트에 무방비로 떠돌고 있는 것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정보통신부는 최근 세계 최대 규모의 구글DB(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주민번호를 검색한 결과,6337개 웹 사이트,4만 9583개 웹 페이지에서 90만 3665명의 주민번호가 노출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1일 밝혔다. 이 가운데 명의도용 등 범죄에 사용될 우려가 큰 주민번호 13자리 전부가 노출된 것은 993개 사이트,7230개 웹 페이지에서 모두 9만 5219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사회적 활동이 활발한 20대의 주민번호 노출이 가장 많았다. 연령별로는 20대 29.7%,30대 18.9%,40대 17.6%,10대 14.9%다. 주민번호 노출 숫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의 주민번호 검색은 구글DB에 저장된 1900년 1월1일에서 1999년 12월31일까지 100년 동안 출생한 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이후 출생자와 다른 검색사이트로 조사를 확대하면 더 늘어날 전망이다. 정통부 관계자는 “중소벤처기업이 개발한 주민번호 삭제 소프트웨어를 통해 검색한 것이며, 노출된 주민번호 웹 페이지에 대해 해당 기관과 구글측에 삭제를 요청하기로 했다.”면서 “그동안 웹 사이트의 주민번호를 삭제해도 구글 검색DB에 주민번호가 자동 저장돼 명의도용 등에 사용돼 왔다.”고 밝혔다. 한편 그는 “포털사이트 등 국내 웹 사이트에서 도입하고 있는 앞자리 숫자 노출 주민번호는 명의도용 등의 우려가 없다.”고 설명했다.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대졸 미취업 1100명 ‘행정 서포터스’ 모집

    서울시는 본청과 자치구에서 업무를 도울 ‘행정서포터스’ 1100명을 대졸 미취업 인력을 대상으로 모집한다고 1일 밝혔다. 대상은 현재 서울시에 주민등록이 돼 있는 자로 전문대학 이상 졸업자 가운데 미취업자다.1975년 이후 출생자만 가능하다. 특히 생활이 어려운 대졸 미취업자 및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와 차상위계층, 장애인, 의료급여법상 수급자, 자원봉사우수자, 시정공로수상자 등을 전체 모집인원 가운데 30%범위 내에서 우선 선발한다. 이들은 다음달 4일부터 11월13일까지 시청과 구청, 동사무소에서 근무하게 된다.1일 6시간, 주당 5일 동안 파트타임 형식으로 일하며 임금은 중식비를 포함해 하루에 3만 2500원을 받는다. 참여자는 근무희망부서와 전공, 보유자격증 등을 최대한 고려해 배치한다.1100명 가운데 380명은 서울시에서,720명은 자치구에서 일한다. 근무 희망자 신청은 오는 7∼11일 서울시홈페이지(www.seoul.go.kr)를 통해 받는다. 02)731-6627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증시 조정장… 주가지수연동예금 봇물

    증시 조정장… 주가지수연동예금 봇물

    주식시장이 지루한 횡보세를 이어 가는 요즘, 은행들이 주가지수연동예금(ELD)을 쏟아내 관심을 끌고 있다. 은행들이 ELD를 내놓는 것은 조만간 증시 조정이 마무리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특히 최근의 ELD 판매 부진을 털기 위해 단 한번에 그쳤던 수익률 확정 기회를 대폭 늘리고 보너스 금리까지 유인책으로 내놓고 있다. ●ELS와 달리 원금 보장돼 금융상품은 일반적으로 수익성이 높으면 안정성이 떨어지고, 안정성이 높으면 수익성이 떨어지는데,ELD는 수익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겨냥한 상품이다. 우선 기본적으로 예금이어서 주가지수연동증권(ELS)이나 주식형 펀드와 달리 원금이 보장된다. 또 주식시장의 움직임에 따라 투자 상품처럼 추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결국 ELD는 주식보다는 수익률이 낮지만 원금을 지키면서 일반 정기예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추구한다. 주가지수나 개별 기업의 주가, 옵션 등 파생상품에 연동된 ELD는 어떤 주식과 지수에 편입되느냐, 투자시기(가입시기)가 언제냐, 상승형이냐 하락형이냐, 지수나 주가가 투자 기간 동안 얼마나 오르고 떨어졌느냐에 따라 수익률이 다르다. 지수에 전적으로 연동된 ‘단독형’과 예금액의 일부는 지수에 연동시키고, 나머지는 확정금리 정기예금으로 운영하는 ‘복합형’으로 나뉜다. 국민 신한 우리 하나은행 등 4대 은행이 판매한 ELD 중 올 상반기에 수익률이 확정된 상품을 분석해 보면 국민은행의 ELD 가중평균 수익률은 4.22%로 일반 정기예금 금리 3.45%를 웃돈다. 우리은행은 이보다 높은 6.85%의 수익률을 보였고,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은 각각 5.32%와 3.35%를 기록했다. ●유리한 구성 신상품 매월 쏟아져 최근 출시된 ELD는 기존에 한 번 밖에 없었던 수익률 확정 기회를 더 많이 주거나 보너스 금리를 지급하는 등 고객에게 유리하게 구성됐다. 기존에는 은행별로 2∼3개월에 한 번씩 내놓았지만 요즘은 거의 매월 신상품을 내놓고 있어 선택의 폭도 넓다. SC제일은행이 11일까지 판매하는 ‘베스트원 5호’는 예금가입 6개월 이후부터 만기 때까지 1년간 수익률 확정 기회를 12번으로 늘렸다. 이 가운데 기준 지수 대비 코스피200 지수가 한번이라도 10.5% 이상 상승하면 10.5%의 확정 금리를 제공한다. 우리은행은 홍콩의 항셍중국기업지수(HSCEI)를 편입해 보너스 금리를 제공하는 ‘E-챔프 15호’를 7일까지 판매한다. 지수연계 예금에 전액 가입하는 단독형의 경우 코스피200 지수 상승률이 기준 지수 대비 20%를 넘어서면 예금금리가 5.0%로 확정되고, 항셍지수의 상승률에 비례해 최대 6%까지 추가 수익률을 제공한다. 신한은행도 신한금융지주의 주가와 고객의 거래실적에 연계해 보너스 금리를 지급하는 ‘제4차 탑스 주가연계정기예금’을 31일까지 판매한다. 신한지주의 만기 주가가 6만 5000원 이상일 경우 카드와 외환 등 거래실적에 따라 최고 연 7.0%의 금리가 적용된다. 기업은행은 창립 45주년 기념으로 1961년 8월에 출생한 고객에게 0.2%포인트의 우대 금리를 제공하는 ELD를 팔고 있다. ●수익률 0%도 감수해야 단독형 ELD는 원금은 보장되지만 제시한 범위 이상으로 지수가 오르거나 내리면 ‘녹 아웃’ 규정에 따라 수익률이 0%가 될 수도 있다. 복합형도 지수에 연계된 쪽에서 수익률이 0%를 기록하면 전체 수익률이 반토막이 난다. 예를 들어 지수 연계쪽의 수익률이 0%이고, 확정금리쪽의 금리가 6%라면 전체 예금의 수익률은 3%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상반기에 수익률이 확정된 신한은행의 36개 ELD 상품 중 18개 상품은 5%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14개 상품은 수익률이 제로이거나 3% 미만이었다. 국민은행도 43개 가운데 18개가 0∼3%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우리은행의 ‘E-챔프 6호’도 0%의 수익률로 만기를 맞았다. 따라서 ELD에 가입하려면 가입 시기와 자신의 자금운용상황, 중도해지 여부, 수익률 구조, 주가 흐름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중도에 해지할 경우 해지 때까지의 수익이 해지 수수료를 넘어서지 못하면 원금에서 일부 손실을 볼 수도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가가 떨어질 만큼 만큼 떨어졌다는 관측이 제기돼 은행이 요즘을 ELD 판매의 적기로 보고 있다.”면서 “상품 구조를 잘 파악해 자신에게 맞는 ELD에 장기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美 베이비붐 세대 ‘강한’ 그랜드파파

    美 베이비붐 세대 ‘강한’ 그랜드파파

    1862년 당시 26세의 나이로 미국 남북전쟁에 참전한 오하이오주 해밀턴의 독일계 이민자 발렌틴 켈러. 그는 162㎝의 작은 키에 마른 몸매였다.30대에 관절염과 폐질환으로 고생했고 41세에 수종(水腫)으로 숨졌다. 발렌틴 시대의 미국인은 보통 40∼50대가 되면 만성질환으로 고통받다 50∼60대에 사망했다. 발렌틴 켈러의 5대 손인 45세의 크레이그 켈러. 그는 한 세기 만에 미국인의 ‘삶과 죽음’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베이비붐 세대’(베이비 부머)이다. 법원 집행관인 크레이그 역시 5대 할아버지 발렌틴이 살다가 숨진 해밀턴에서 태어나 살고 있다. 그럼에도 더 오래 살고 있고 기대수명은 할아버지의 2배가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뉴욕타임스는 30일(현지시간) 과거 어느 세대보다도 혈기 넘치는 ‘그랜드 파파(할아버지)’ 시대가 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더 건강하며 육체적 고통을 덜 느끼는 강력한 ‘올드 보이’가 오는 것이다. 이 신문은 ‘베이비 부머’가 인류학적으로는 유아기에 백신을 접종받은 첫 세대이며 충분한 영양분과 항생제를 공급받은 신인류라고 소개했다. 시카고대 로버트 포겔 박사는 인류가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심장·폐질환, 관절염 등 성인 만성질환의 발생 시기는 100년전 세대보다 최소 10년에서 최대 25년 뒤로 늦춰졌다. 키와 몸무게의 변화뿐 아니라 평균 지능지수(IQ)도 높아지고 있으며 치매발병률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핀란드뿐 아니라 저개발 국가에서조차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1990년대는 65세 성인의 13%만이 기대수명인 85세를 채웠지만 현재는 절반 이상이 장수하고 있다. 크레이그의 부친인 칼 D 켈러는 폐암으로 65세에 숨졌고 칼의 아버지는 식도암으로 69세에 사망했다. 크레이그의 동갑내기 아내인 샌디의 친정은 유방암 등으로 고통을 겪었다. 그럼에도 베이비 부머인 크레이그 부부는 더 건강하게 오래 살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과학자들은 유전 요인보다도 어머니의 자궁에서 2살 이전 유아기까지의 기간이 건강과 장수를 결정한다고 분석한다. 1933∼1944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태어난 성인 8760명과 스웨덴인 1만 5000명을 분석한 결과가 동일했다. 출생 당시 몸무게가 2.9㎏ 미만으로 생후 2년까지 충분한 영양 공급을 받지 못한 사람이 심장혈관 질환을 더 많이 앓았다. 심혈관 질환은 알츠하이머 발병의 큰 원인이다. 연구에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대기근 시대에 태어난 사람도 결과는 같았다. 베이비 부머는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인 1946년부터 1965년 사이에 태어나 혜택받은 유아기를 보낸 첫 세대라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올해 60세가 된 선두 세대는 이제 은퇴를 시작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세대로 85세까지의 기대수명이 보장되는 베이비 부머들. 그들 스스로는 “내가 정말 할아버지인가.”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도 28일자에서 베이비 부머들에게 ‘록밴드 붐’이 부는 등 인생을 즐기길 원한다고 전했다. 신문은 52세로 1년 매출이 52억달러인 케이블 회사의 최고경영자 제임스 돌란, 벌칸사의 폴 앨런뿐 아니라 조슈아 볼튼 현 백악관 비서실장도 틈틈이 밴드에서 베이시스트로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태권V’ 낳아 30년 기른 한국 애니 대부 김청기 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태권V’ 낳아 30년 기른 한국 애니 대부 김청기 씨

    30년 만에 생일상을 받았다. 이제 잔치는 시작됐다. 키 56m, 몸무게 1400t, 주행속도 시속 300㎞,895㎾의 초강력 파워엔진, 태권도 100단의 무술실력 소유자, 주소 대한민국 태권브이 기지….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V∼.” 동요도 아닌 것이 동요처럼 신나게 불려졌다. 전국의 태권도장에는 어린이들로 붐볐다. 그랬다. 지금의 30∼40대에겐 어린 시절의 꿈과 희망이요, 우상이었다. 1976년 7월, 이순신 장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정의의 사도 ‘로보트 태권V’는 이렇게 우리곁으로 처음 다가왔다. 태권V는 그동안 7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변신과 진화를 거듭했다. 한 차원 높은 2단 옆차기와 벽돌깨기 기술 등도 깔끔하게 연마했다. ●로봇팔·로켓주먹 과학적 검증 심포지엄 태권V는 최근 서른 생일을 맞아 아주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우선 산업자원부로부터 주민등록증과 같은 대한민국 제 1호 로봇 등록증(760724-RO60724)이 수여됐다. 이른바 토종 애니메이션 배우 1호이자 ‘국민로봇’으로 공인된 셈이다. 또 유명 연예인처럼 매니지먼트 회사와 부활 프로젝트 계약을 맺고 다양한 콘텐츠로 거듭난다. 문근영 김주혁 등 스타 연예인들이 이를 축하해 줬다. 아울러 이달에는 로봇팔과 로켓주먹 등 태권V의 능력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심포지엄에도 참가하는 등 무척 바빠진다. 계획대로라면 2008년 하반기에는 확 달라진, 최소한 마징가Z를 능가하는 늠름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애니메이션 감독 김청기(65)씨. 태권V를 낳고 길러 태권V의 아버지로 부른다.76년 처음 개봉 당시 3주 만에 28만여명의 관객을 불러들여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방화사상 공전의 기록을 세웠다. 이후 서른살 청년으로 키우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태권V의 생일행사에도 남다른 감회에 젖기도 했다. 김씨는 올해로 애니메이션 외길인생 40년째를 맞는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주 경기 부천시에 위치한 ‘토토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김씨를 만났다. 김씨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태권V 모형을 손자 끌어안듯 자주 어루만지며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먼저 한국의 태권V와 일본의 마징가Z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 불쑥 물었다.“그야 태권V이죠. 국기원에서 태권도 3단증을 공인받았거든요. 하지만 순간적인 강력파워를 계산하면 100단 실력은 충분합니다.”하며 웃는다. 태권도 유단자들을 불러다 실제 대련을 시킨 뒤, 이를 16㎜ 필름에 담아 태권동작을 연출했기에 최소 3단증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이순신 장군 동상을 참고해 태권V에게 투구를 씌워 민족의 태권도를 연마시켰다고 부연했다. 김씨 자신은 태권도의 기본 품새도 못한다며 부끄러워한다. 태권V는 어떻게 태어났을까.“서울 광화문 뒷골목에 방 2개를 얻어 50명이 밤낮없이 3∼4개월 동안 숙식을 하면서 그렸지요. 우리는 한국의 디즈니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어요. 의욕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나중에 보니 3만 8000장이나 그렸더군요.”라고 회고했다. 앞서 김씨는 애니메이션을 하기 전에 만화작가로 6년 동안 일하다가 서울 퇴계로 대한극장에서 ‘백설공주’와 ‘피터팬’을 보고 찡한 감동을 받는다. 그동안 해왔던 인쇄만화를 접고 애니메이션으로 뛰어들었다.66년 세기영화사에 들어가 ‘홍길동’‘보물섬’‘황금철인’ 등의 제작에 참여했다. 하지만 70년대 초까지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전무할 만큼 암흑기였다. 그러던 75년 마징가Z가 흥행하자 번뜩 영감을 얻었다. 인간형 로봇에다 태권도를 도입하면 아주 멋있겠다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주위의 많은 격려 속에 어렵게 제1탄을 만들었다. 외형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자신의 수중에는 돈 한푼 남지 않았다. 오히려 서울 사당동의 1800만원짜리 단독주택을 팔아야 했다. 요즘에야 지방 흥행사들한테 판권료를 받아 제작비로 쓰면 되지만 당시에는 만화영화가 흥행한다는 보증이 없다는 이유로 판권 자체를 미리 팔았기 때문이다. 주위에서는 낙담한 김씨에게 “김청기라는 이름 석자를 널리 알렸잖아.”하는 위로에 다시 용기를 얻어 제작에 들어갔다. “당시 제작비가 4200만원정도 들었지요. 사채까지 끌어다 썼습니다. 나중에 ‘똘이장군’으로 집을 되찾았고 ‘황금날개1,2,3’으로 돈을 좀 벌었습니다. 아무튼 태권V 1탄의 28만 관객은 지금으로치면 500만명은 족히 될 것입니다.” 또 자금 압박을 견디다 못한 김씨는 원판을 미국에 팔았다. 처음에는 다시 찾아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미국회사가 망했고 더 이상 찾을 길 없어 포기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극장에서 돌렸던 필름이 2003년 영화진흥위원회 창고에서 발견됐다. 세월이 지나 훼손된 부분이 많았지만 적잖은 비용을 들여 겨우 복원했다. 이 필름으로 지난 부산영화제때 상영됐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관객들이 이젠 부모가 돼 아이들과 함께 보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적 개성 살리려 이순신 장군 투구 씌워 태권V가 일본만화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당시 애니메이션 초기여서 일본의 영향이 컸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우리식으로 만들까 하는 것이 숙제였지요.”라고 전제했다. 이어 “마징가로 했으면 더 히트할 수도 있었는데 우리식으로 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태권V에게 이순신 장군의 투구를 씌운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입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태권V의 적군이 붉은왕국이었던 점을 잠시 상기시킨다. 서울 중구 주교동의 방산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사는 집이 적산가옥이었는데 틈만 나면 벽에다 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습관이 있었다. 야단을 칠 줄 알았던 아버지는 “칭찬은 낙타도 춤을 추게 한다.”면서 꾸지람 대신 칭찬을 자주했다. 6·25가 나자 아버지는 장성한 두 아들을 숨겼다는 이유로 북한군에 의해 납치되고 말았다. 이후 생사기별조차 한번도 없었다. 어린 김청기에겐 북한은 늘 증오의 대상이었고 결국 태권V에서 붉은왕국으로 설정하기에 이르렀다. 또 돈을 벌게 해준 ‘똘이장군’은 아버지를 모델로 그렸다. “어릴 때부터 만화를 많이 봤어요. 특히 두 발로 걸어가는 로봇우체통이 끊어진 한강다리에서 엎드려 피란민들을 건너게 하는 장면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김씨는 64년 서라벌예대 서양화과를 졸업하면서 본격적인 출판용 만화를 그렸다.‘삼총사’‘쾌걸조로’‘강강술래’ 등이 당시 작품이다. 이후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태권V를 비롯해 ‘썬더에이’‘우뢰매1∼4’ 등 28편을 만들었다.90년 이후에는 ‘우뢰매7∼10’ ‘닌자 꼴뚜기’ 등 비디오 30여편을 제작했다. ●“징기스칸 뛰어넘는 광개토대왕 애니 제작” “만화세대들이 지금은 기성세대가 됐습니다. 애니메이션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거부감 없이 봅니다. 또 만화는 전세계적인 트렌드이고 이해가 빠른 매체이지요. 좀더 많은 기회와 투자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기술부분에는 어느 정도 앞서 나갔지만 창의적인 면에서는 선진국에 비해 많이 뒤져 있습니다. 세계적인 디즈니도 한번 실패한 뒤 다시 일어섰거든요.” 김씨는 태권V 박물관과 공원조성 등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귀띔한다. 아울러 ‘국민로봇’이라는 캐릭터를 활용,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때에는 붉은악마와 함께 국민적 응원에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벽에 걸린 애니메이션 ‘광개토대왕’의 포스터를 가리킨다. 총 제작비가 180억원이 넘는 대작으로 미국 회사로부터 투자 약속까지 받았다.2년 후에는 칭기즈칸과 알렉산더 이상의 이미지가 새로 탄생될 것이라며 자신있게 미소 짓는다. ■ 그가 걸어온 길 ▲1941년 서울 출생. ▲64년 서라벌예술대 서양화과 졸업. ▲61∼66년 만화작가 생활.‘삼총사’‘쾌걸조로’ 등 발표. ▲66년 애니메이션 입문.‘보물섬’‘황금철인’‘홍길동’ 등 작품참여. ▲76년 ‘로보트태권V’ 감독(이후 태권V 7편 발표). ▲91년 김청기필름대표 ▲99년 청강산업대 겸임교수 ▲2004년 문화콘텐츠 엠버서더 대표. 제8회 서울국제만화 애니메이션페스티벌 공로상. ●주요 작품 ▲78년 ‘황금날개’‘똘이장군’ ▲79년 ‘간첩잡는 똘이장군’ ▲80년 ‘삼국지’ ▲86년 ‘외계에서 온 우뢰매’ ▲89년 ‘슈퍼 홍길동’‘우뢰매6’ ▲96년 ‘왕후 에스더’ ▲97년 ‘의적 임꺽정’ 등 52편. km@seoul.co.kr
  • 실버산업 4년뒤 ‘골드업종’ 된다

    실버산업 4년뒤 ‘골드업종’ 된다

    실버산업이 2010년부터 앞으로 10년간 ‘황금알을 낳는 업종’으로 자리매김될 전망이다. 이 기간 국내 실버산업의 연평균 성장률은 전체 산업 성장률보다 3배 가까운 초고속 성장이 예상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8일 내놓은 ‘국내 실버산업의 성장성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08년을 전후해 6·25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 붐’세대 소비층이 대거 가세하면서 2010∼2020년 고령 친화산업의 성장률이 연평균 12.9%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같은 기간중 14개 부문 기존산업의 전체 성장률은 4.7%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실버산업에 속하는 의료기기(12.1%), 정보(25.1%), 여가(13.7%), 금융(12.9%), 주택(10.9%) 등은 기존 산업의 성장률을 훨씬 웃돌 것으로 점쳐졌다. 보고서는 “65세 이상의 고령자 비중이 10%,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2008년이 실버산업의 구매력이 증대되는 해로 주목할 필요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직장에서 은퇴하는 연령이 평균 53세인 점을 감안하면 2008년은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를 시작하는 예상시점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평균 은퇴 연령(미국·일본 61세)과 수요 능력을 고려할 때, 미국과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1940년대 후반∼60년대 초반 출생)의 실버상품 수요 발생 시점은 각각 2006년과 2007년으로 예상됐다. 특히 미국은 2015년부터, 일본은 2016년부터 베이비붐 세대를 겨냥한 실버산업이 크게 성장하고 한국은 베이비붐 세대가 70세에 접어드는 2025년부터 또다른 실버산업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상의는 미국과 일본 사례를 통해 본 결과, 재가요양 서비스(가정간호사업), 케어시스템, 생활보조기구, 스포츠용품, 유비쿼터스 건강 안심시스템, 기업연금제도, 장기간 병보험 상품, 노인 주택(유료노인홈, 고령자 전용주택, 보호장치 부착 집합주택) 등을 유망 분야로 내다봤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스포츠중재위원회 초대위원장 안동수 前법무

    [스포츠 라운지] 스포츠중재위원회 초대위원장 안동수 前법무

    “이제까지 해 왔던 것처럼 봉사하는 마음으로 스포츠 분쟁 조정에 심혈을 기울이겠습니다.” 27일 출범한 한국스포츠중재위원회(KSAC) 초대위원장을 맡은 안동수(65) 전 법무부 장관이 사무국 현판식을 시작으로 업무를 시작하며 밝힌 각오다. 그는 지난 1962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 이후 줄곧 ‘판관’ 역할을 수행해 온 법조인이다. 또 1990년 무료법률상담소를 개설한 이후 16년 동안 ‘법’에 문외한인 일반인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 ‘봉사인’이기도 하다. 그는 지방검찰청 근무를 시작으로 1975년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서슬퍼런 칼날을 휘두른 검사였다. 이후 행정자치부 법률고문 등 탄탄대로를 걸은 정치인이기도 하다.2001년에는 비록 잠깐이지만 제50대 법무부장관까지 지냈다. 그러던 그가 스포츠와 인연을 맺은 건 최근이다. 이전까지 스포츠 분야라면 그가 즐기고 있는 등산과 골프가 전부. 고등학교 시절 유도복을 입어보고, 대학 때 테니스 라켓을 쥐어봤지만 수박 겉핥기였다. 법에는 정통했지만 스포츠에는 ‘문외한’이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그러나 2004년 대한태권도협회 고문을 맡으면서부터 국내 스포츠계에 눈을 떴다. 이후 아테네올림픽에서의 ‘양태영 사건’과 최근의 ‘쇼트트랙 파동’, 싱크로스위밍의 파벌싸움까지 주의깊게 지켜보면서 미국, 일본 등 스포츠 선진국에 견줘 전무하다시피 한 갈등 조정기구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김정길 대한체육회장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여 4년 동안 위원장직을 수행하기로 결심한 이유다. 그러면서도 “무쪽 자르듯 판결을 내리는 ‘판관’보다는 중재자로서 국내 스포츠계를 부드럽게 융화시키겠다.”며 “무엇보다 한국 스포츠에 봉사하는 자세로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소신을 밝혔다. ‘봉사’를 강조하는 그의 말대로 위원장직은 ‘무보수’다. 자신을 포함해 중재위원 9명이 주요 해당 업무를 수행하지만 법조계와 스포츠법학회는 물론 장애인체육회 등 전문가 50여명 패널들의 조언을 듣게 된다. 중재기구인 만큼 최종 판정에 대한 구속력은 없다. 다만, 이에 불복하고 일반법원 송사에 들어갈 경우 2∼3년의 기간을 허비하는 건 물론 같은 체육인으로서 돌이킬 수 없는 흠만 남길 뿐이다. 안 위원장은 “KSAC의 존재 자체가 분쟁과 갈등을 사전에 차단하는 예방책이 되지 않겠느냐.”며 “이 기구가 유명무실해질 정도로 국내 스포츠 단체와 체육인들의 화합이 이뤄져 스포츠문화가 바로 설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1978년 출범한 미국 스포츠중재기구 AAA나 일본 JSAA에 견줘 경험은 일천하지만 KSAC는 그들 못지않게 중재 역할을 수행할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건 몰라도 등산만큼은 그가 가장 아끼는 스포츠다.2000년 1월 눈덮인 관악산을 오르다 넘어져 허리를 다쳤지만 그는 지금도 산에 오르길 주저하지 않는다.40년 넘게 ‘법’과 더불어 산과 살아온 그다. 그는 “이제까지 함께한 이 친구 외에 ‘스포츠’라는 새 동무가 생겼다.”고 흡족해하면서 “처음이라 어려움은 많겠지만 산에서 넘어져도 또 그곳에 오르는 심정으로 임무를 수행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생년월일 1941년 3월3일 ●출생지 충남 서천군 한산면 ●학교 한산중-중앙고-서울대-서울대 사법대학원-미국 버클리 법과대학원 ●가족 부인 이귀자씨와 3녀1남 ●경력 15회 고등고시 합격(1962) 육군 법무관(1964∼67) 부산 대구 인천지검 검사(1968∼75) 부산대·영남대 법정대학 강사(1969∼71) 사법시험 시험위원(1987) 행정자치부 법률고문(1999∼2000) 50대 법무부장관(2001) 대한태권도협회 고문(2004∼현재) ●현직 변호사(안동수법률상담소) 한국스포츠중재위 초대위원장 ●취미 등산 골프(핸디캡 9)
  • 세계의 베이비 부머들(상)-미국

    세계의 베이비 부머들(상)-미국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와 일본의 단카이(團塊·1차 베이비붐) 세대 맏형들이 각각 올해와 내년에 환갑을 맞는다.2차대전 후 풍요 속에 태어나 격렬한 사회 변혁을 고스란히 체험했던 이들은 어느새 정치와 경제 권력의 실체로 자리매김했다. 환갑을 맞지만 이들의 노년은 은퇴 대신 취업과 창업, 재교육 등으로 제2의 인생을 준비한다는 점에서 부모 세대와 차별화된다. 기업과 사회는 앞다퉈 이들의 부와 재능을 활용하기 위해 지혜를 짜내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특징과 이들의 퇴직이 사회에 미칠 영향 등을 짚어본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20세기 후반 사회 변혁을 주도했던 미국의 베이비 부머들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6년부터 1964년까지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다. 출생률이 급격히 증가하는 시점에 태어난 이들은 무려 7820만명에 이른다. 부모 세대가 3000만명에 불과하며, 자녀들인 이른바 ‘X세대’가 4500만명을 조금 넘는 것과 비교하면 실로 엄청난 세력이다. 이들의 성장기는 미국 사회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한 변화로 들끓었던 시기다. 인종차별 철폐와 여성 권리의 신장, 베트남 전쟁 반대, 로큰롤 음악과 마약, 텔레비전 보급과 자동차 보급, 자유연애와 이혼…. 이런 것들이 베이비 부머들과 함께 했던 정치·사회·문화적 현상들이었다. 베이비붐 세대는 현재 미국 사회의 정치적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50개주 가운데 41개주 지사직과 상·하원 의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 유권자 가운데 가장 큰 집단인 것도 물론이다. 때문에 11월 의회 중간선거,2008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공화·민주당은 베이비 부머의 정치적 ‘코드’를 읽어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의 정치적 성향은 그들이 살아온 시대를 반영하듯 진보적인 성격이 강했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지난 2월 베이비붐 세대의 정치 성향을 조사한 결과도 민주당 지지 46%, 공화당 지지 24%, 무당파 26%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세대를 분석한 ‘위대한 세대’ 저자인 스티브 길론 오클라호마대 교수는 “베이비 부머들은 젊었을 때 미국을 진보쪽으로 밀어놓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다시 제자리로 갖다놓았다.”고 보수화 성향을 지적했다. 길론 교수는 “베이비 부머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교회에 가는 비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며 미국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안정된 삶이 베이비 부머의 정치성향을 보수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들에게 있어 가장 큰 정치적 도전은 2001년 9·11테러였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엄청난 테러를 경험하면서 안보를 중시하는 쪽으로 선회했다는 것이다. 정치적 권력을 쥔 이들 세대는 경제 권력에서도 뒷세대들에게 소외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담금질하고 있다. 전미은퇴자협회(AARP)의 사라 릭스 수석정책고문은 “이들의 80% 정도가 은퇴 후에도 계속 일하기를 희망하고 있다.”면서 “상당수는 창업을 시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스위크는 지난 6월 현재 미 전역의 1200개 전문대에서 100만명의 베이비 부머가 창업과 취업 재교육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그늘은 있다. 위스콘신 대학의 역사학자인 마고 앤더슨 교수는 “올해 60을 맞은 미국인은 부모가 평화롭고 부유한 노후를 보내는 것을 목격해왔고 자신들도 그렇게 살 것으로 믿고 있다.”면서 “그러나 현재 미국 사회보장제도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베이비 부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스스로를 부양하기 위해 계속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베이비 부머의 은퇴와 의료 및 연금 지출이 늘어나면 미 정부의 수입과 지출 사이의 격차가 최고 65조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990년대 베이비 부머들이 사회에서 가장 열성적으로 일할 나이가 되자 주식가격이 치솟았다.”면서 “2010년 이후 이들이 대거 은퇴한 뒤에는 주가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고 전했다. dawn@seoul.co.kr ■ 스키장 경사 낮추고 주택 다용도실 넓히고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세계적인 화장품 회사 로레알은 이번 휴가철에 집중 방송되는 텔레비전 광고 모델로 60세 여배우 다이앤 키튼을 선정했다. ●화장품 광고모델 60대 동원 소비자 공략 지난 1월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린 전미주택사업자협회 연례총회 주제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이후 주택 계획’이었다. 은퇴를 앞둔 베이비 부머들은 미국 산업의 그림까지 바꿔가고 있다. 이들이 축적한 막대한 부와 적극적인 삶의 방식을 겨냥한 신종 산업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과거 세대가 은퇴할 때보다 훨씬 많은 돈을 갖고 있다.1946∼55년생 베이비 부머들이 67세에 이를 때 평균 재산이 85만 9000달러(약 8억 5000만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 뒤를 잇는 56∼65년생 베이비 부머들은 83만 9000달러를 보유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67세 미국인 평균 재산 56만달러를 훨씬 웃돈다. 더욱이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베이비 부머들은 헬스(건강)과 웰스(부)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베이비붐 세대를 겨냥하는 기업들은 다른 소비계층과는 차별화되는 그들만의 속성을 파고 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이 세대 여성들은 화장품 광고 모델로 20대나 30대 여성보다는 피부를 잘 가꾼 동년배 여성을 원한다고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전했다. 199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골프장을 낀 주택단지의 개발이 활발했다. 또 바다를 내려다보는 주택도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베이비붐 세대는 그런 흐름을 바꿨다. ●이혼·미혼 많아 중매산업 급성장 미 주택사업자협회 조사에 따르면 베이비 부머들은 헬스클럽과 멋진 레스토랑이 가까우면서도 외부와 차단되는 ‘실버 주택단지’를 훨씬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 건설회사인 델웹은 노인 거주단지에서 뜨개질 공간이나 컴퓨터실을 없애고 있다. 그 대신 운동도 하고 목공예도 할 수 있는 다용도실을 늘린다고 한다. 또 스키 리조트들은 베이비 부머 스키어들을 끌어오기 위해 슬로프의 경사를 완만하게 고치고 있다. 베이비 부머들은 이혼율이 높고 미혼이나 독신자도 많다. 베이비 부머들의 이혼율은 평균 15%를 넘는다. 이에 따라 50세 이상의 싱글을 위한 중매 산업도 급성장하고 있다. 베이비 부머들을 겨냥한 사업은 IT 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다. 미국의 경제전문 케이블 방송인 CNBC는 휴대전화를 통한 건강정보 서비스 등 베이비붐 세대를 겨냥한 맞춤형 테크놀로지가 미래의 유망산업이라고 꼽았다. dawn@seoul.co.kr ■ 환갑의 美베이비부머 名士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내 나이 60이 됐다. 만약 30년 전에 ‘나이 60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면 ‘늙었다.’고 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나는 아직도 매우 젊다고 느끼고 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60번째 생일인 지난 6일 대중잡지 피플과의 회견에서 환갑을 맞은 느낌을 이같이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다른 기자회견 등에서도 “흰 머리가 난 것은 부모로부터의 유전과 두 딸 때문”이라면서 아직 젊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의 발언은 늙기를 거부하는 베이비 부머들의 심경을 대변하고 있다.1946년생인 부시 대통령은 베이비붐 세대의 맏형이라고 할 수 있다. 부인 로라 여사도 같은 해 11월4일 태어났다. 이 해에는 또 한 사람의 미국 대통령이 태어났다. 바로 빌 클린턴. 클린턴 전 대통령은 다음달 19일 60세가 된다. 부시 대통령이 보수적인 베이비붐 세대를 대표한다면, 클린턴 대통령은 진보적인 베이비 부머의 상징이다. 같은 해 미국에서 태어난 340만명 가운데 정치인으로는 공화당의 척 헤이글·멜 마르티네스 상원의원,2004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던 데니스 쿠치니치 하원의원이 있다. 연예계에도 올해 60세를 맞는 스타들이 많다. 컨트리 가수 겸 영화배우인 돌리 파튼과 셰어, 액션스타인 실베스타 스탤론이 환갑을 맞았다. 또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와 올리버 스톤, 스포츠 스타로는 뉴욕 양키스의 강타자였던 레지 잭슨이 올해 환갑이 됐다. 워싱턴 포스트는 부시 대통령과 클린턴 전 대통령, 스필버그 감독 등 한창 일할 나이의 인물들이 올해 60세가 된다고 지적하면서 “젊은이들의 외투를 걸치는 데 익숙해진 베이비 부머들에게는 의심할 여지 없는 충격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dawn@seoul.co.kr
  • 꼬리무는 ‘냉동고 영아 시신’ 의혹

    지난 23일 서울 반포동 프랑스인 밀집 거주지역인 서래마을 한 집의 냉동고 속에서 영아 시신 2구가 발견된 사건은 보기 드문 미스터리 사건이다. 이들이 세상에 나자마자 생을 마감한 연유와 냉동고 유기 과정 등에 대한 의문점이 꼬리를 물고 있다. ●용의자는 누구인가 영아들이 출생 직후 유기된 것으로 보이는 만큼 이번 미스터리 해결의 관건은 부모를 찾아내는 것이다. 경찰은 집주인 C(40·프랑스인)씨의 친구 P(47·프랑스인·회사원)씨의 행적에 주목하고 있다.P씨는 지난달 말 휴가를 떠나면서 집을 살펴달라고 한 C씨의 부탁으로 집 보안카드와 열쇠를 갖고 있었다. 방배경찰서 천현길 강력팀장은 “빌라 보안기록을 점검한 결과 P씨만 유일하게 네 차례에 걸쳐 C씨 집을 드나들었다.”고 말했다.P씨는 지난 3일 오후 5시37분부터 6분간,7일 오후 5시57분부터 6분간,13일 오후 6시57분부터 5분간,17일 오후 3시29분부터 5분간 C씨 집에 머물렀다. 각각의 시간이 짧기는 해도 횟수가 잦아 뭔가 ‘작업’을 하려고 맘 먹었다면 충분했을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경찰은 동네 주민으로부터 ‘지난 13일 낮 12시쯤 키 160∼165㎝ 정도의 호리호리한 체격을 가진 처음 보는 백인 소녀가 C씨 집 문 앞에 서 있다가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14세 가량 되어 보였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은 근처 프랑스 학교와 산부인과 등을 탐문해 이 소녀를 찾고 있다. 이 소녀가 혼자서 또는 P씨와 함께 집에 드나든 것으로 나타날 경우 수사는 급물살을 탈 수 있다. ●영아, 어디에서 출산됐나 영아는 일단 C씨 집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현관 입구 왼쪽 화장실과 냉동고가 있는 발코니, 두 곳을 잇는 거실에서 희미한 혈흔을 찾아냈다. 이에 화장실에서 영아들을 출산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경찰은 “영아들을 감싼 비닐봉지가 C씨가 동대문 한 쇼핑몰과 팬시점에서 받아 보관하던 것이라는 점, 영아 한 명을 감싼 수건이 C씨 집에서 쓰던 것이라는 점 등을 볼 때 영아들을 밖에서 들여왔을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 경찰은 수건에서 몇 가닥의 모발을 채취,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유전자(DNA) 감식을 의뢰했다. ●순수 한국인은 아닌 듯 1차 부검 결과 영아들은 백인이거나 황인·백인간 혼혈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폐에 공기가 차 있고 탯줄이 잘려 있는 것으로 볼 때 정상 분만으로 태어나 일정 시간 호흡을 한 뒤 숨진 것으로 보인다. 외상이나 독극물 주입 흔적은 없었다. 영아들이 쌍둥이일 가능성도 있다. 영아들은 몸무게가 각각 3.24㎏과 3.63㎏으로 튼실한 상태였다. 천 팀장은 “쌍둥이로 보기에는 무게가 많이 나가는 편이지만 이렇게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는 게 부검의의 소견”이라면서 “쌍둥이인지 여부는 DNA 검사결과가 나와야 확인되기 때문에 일러도 1주일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외길 40년’ 건축가 김 원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외길 40년’ 건축가 김 원

    제갈공명의 서재에는 이런 글귀가 걸려 있었다. 담박명지(澹泊明志) 영정치원(寧靜致遠)=맑은 마음으로 뜻을 밝히고, 편안하고 정숙한 자세로 원대함을 이룬다. 일생동안 좌우명으로 삼아 몸소 실천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 현대 건축사의 큰 획을 그은 고(故) 김수근. 생전에 “건축은 언어가 아니라 벽돌로 짓는 시(詩)”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타임’지는 그를 가리켜 ‘한국에서 가장 경탄할 만한 건축가’로 선정했다. 이때 인터뷰에서 ‘집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나의 집은 자궁입니다. 자궁의 집은 어머니이며 어머니의 집은 가옥이며 집의 집은 환경입니다. 집을 주택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환경입니다. 환경이 철학적으로는 공간이 되겠는데, 공간은 집의 집의 집입니다.” ●‘김수근 특별전´ 6개월 동안 준비 요즘 서울 종로구 동숭동 아르코미술관은 아주 특별한 행사로 발길을 멈추게 한다. 김수근 타계 20주기를 맞아 ‘지금 여기/김수근’ 전시회(28일까지)가 열리고 있는 것. 생전에 고인이 직접 설계했던 미술관에서 자신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해준다. 또 ‘김수근 재조명’을 위한 심포지엄과 건축강연 등 여러 행사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아울러 홍신자 공옥진 김덕수 등 종로구 원서동의 ‘공간사옥’을 통해 배출된 여러 예술인들이 헌정공연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훈훈한 감동을 연출하고 있다. 이같은 대규모의 전시는 사후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 환경건축가로 유명한 김원(64)씨. 김수근과 김중업의 뒤를 잇는 우리나라 현 건축계에서 첫손가락을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1985년 일본 가지마 출판사에서 스승이자 선배인 김수근과 함께 ‘세계의 현대 건축가 101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96년에는 ‘문학의 해’를 맞아 ‘가장 문학적인 건축가’에 뽑혔다. 김씨의 올해 나이 60대 중반. 여전히 쉼없는 왕성한 활동으로 국내 건축계를 이끌고 있다. 굳이 작품을 열거한다면 국립국악당, 독립기념관, 서울종합촬영소, 종합전시장(KOEX), 신라민속촌 등 굵직굵직한 건물을 지었고 수상경력 또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현재는 ‘김수근문화재단 이사장’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 등을 맡고 있다. 김씨는 이번 ‘김수근 특별전’을 위해 6개월동안 준비할 만큼 각별한 정성을 쏟았다. 지난 60년대 중반 건축계에 발을 들여 놓았던 초창기 6년 동안 ‘김수근 건축 연구소’에서 일을 하며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김씨에겐 이번 전시의 의미도 크지만 올해로 건축가 외길 인생 40년을 맞이한다. 데뷔 당시 동료 건축가들 대부분이 현역에서 은퇴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감회가 사뭇 다르다. 지난주 서울 동숭동에 위치한 ‘광장’ 사무실에서 김씨를 만났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벽에 ‘담박명지∼’라는 글귀가 크게 들어온다. 앞서 언급한 제갈공명의 좌우명처럼 그의 건축인생 40년 또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종로 옥인동 재개발 친환경 설계 먼저 근황을 물었다. 중요한 설계를 마무리하느라 바쁘다고 입을 연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서울 종로구 옥인동 일대의 재개발 프로젝트를 맡은 것이다. 내용은 이러했다. 그는 20년 전부터 인왕산 산자락에 위치한 한옥집에서 살고 있다. 얼마전 이 일대에 재개발 얘기가 나오자 동네주민들은 자연스럽게 당대 최고의 건축가인 김씨에게 자문을 구했고 여러 동의과정을 거쳐 설계를 맡게 됐다. 김씨는 대신 동네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문화재를 최대한 살려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최근의 재개발 추세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이른바 미래형 아파트, 즉 환경친화적 ‘웰빙 개념’을 주창했던 것. 김씨는 잠시 역사성을 설명한다. 옥인동 청운동 누하동 누상동 일대에는 조선시대 때 종로구 가회동의 양반들과는 달리 주로 궁에 드나드는 중인들이 살았다. 의관, 역관, 갓 고치는 기술자 등이 기거하면서 위항문화(委巷文化)를 꽃피웠다. 이들은 역관 등을 통해 서구문화를 먼저 접해 비록 중인이지만 의식수준이 높았고 신분 또한 비교적 안정된 상태였다. “위항시인들은 가난했지만 모임 날짜와 장소를 정해 정기적으로 시사(詩社,60여개의 시동인으로 추산)를 열었지요. 예를 들어 옥인동의 ‘송석원길’은 바로 이 위항문학의 대표적 흔적입니다. 천수경이라는 역관이 살았던 집에는 한달에 한번 문인들이 모였는데 추사 김정희가 직접 특강을 오기도 했지요. 이때 추사는 이들의 수준에 놀라워하며 ‘송석원(松石園)’이라는 세 글자를 써주었습니다. 이는 바위에 새겨져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또 윤동주 이광수 이상 등 많은 문학가들이 이곳에 살아 옥인동 일대는 말 그대로 ‘조선·근대의 문학터’인 셈이지요.” 이러한 문화향기를 최대한 살리면서 저밀도·저층의 빌라형 아파트를 설계중이란다. 이를 위해 내장과 외부는 목재와 황토, 지붕은 태양열을 흡수해 자체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서울시는 강북 재개발 지역의 모범답안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건축의 딜레마 동양사상으로 풀어야” 좋은 집이란 어떤 것일까. 감동적인 집보다 편안한 집을 고르라고 한다. 몸은 건강하게, 마음은 편안하게, 머리는 지혜롭게 만들어주는 집이어야 좋다는 것. 눈으로 보고 ‘와 멋있다.’보다는 눈을 감고 생각했을 때 조용하고 편안한 느낌의 집을 고르라는 것이다. 건물이란 지나가는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살 사람을 위해서 지어야 한다는 거듭된 주장이다. “이제는 건축의 지혜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종묘건축의 경우 디자인 차원이 아니라 숭고한 우주이론을 표방하듯이 현대건축의 딜레마를 동양사상의 구원에서 찾아야 하지요. 건축은 예술이 아닌 인문학입니다.” 아울러 건축가는 생활을 알고, 자연을 알고, 인생을 알아야 한다는 지론을 편다. 어쩌면 오히려 나이든 지금에야 가장 원숙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다가온다. 그는 광복 전인 1943년 서울에서 5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6·25발발 3년 전 외교공무원인 아버지가 부산으로 발령을 받아 다대포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6·25 일주일 전 서울에 출장왔다가 전쟁 중에 변을 당했다. 이후 집안형편은 무척 어려워졌다. 하지만 어린 김원은 공부를 워낙 잘했고 글짓기 등 각종 대회에 참가해 상을 죄다 휩쓰는 실력을 발휘했다.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큰 사람이 되라.’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서울로 올라와 경기중학에 진학했다. 생활력이 강해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숙비와 학비를 보탰다. ●고1때 ‘선배´ 김수근 만나 건축가 꿈 키워 김수근을 처음 만난 것은 고1 때. 당시 김수근은 국회의사당 공모에 당선돼 명성이 자자했다. 이 무렵 ‘자랑스러운 선배’의 자격으로 경기고 학생들을 상대로 특강을 한다. 이때 김수근의 강의내용 중 “국회란 민의를 수렴해서 결정하는 곳이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한테 가장 사랑을 받아야 하고 또한 위엄이 있어야 존경을 받는다.”라는 말에 크게 감동을 받아 건축가의 꿈을 키웠다. 그 이전만 하더라도 미술대학에 진학해 조각가가 되려고 했으나 집안형편이 어려워 망설이고 있던 터였다.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 유학을 떠나던 동료들과는 달리 ‘국내 잔류’를 고집하며 ‘김수근 건축연구소’에 연구원으로 들어갔다. 여기에서 ‘건축철학’‘공간심리학’ 등을 독학으로 공부하면서 내공을 쌓았다. 그러던 중 73년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났고 유럽의 건축을 보며 ‘우리것’을 찾아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후 78년 한국종합전시장 현상설계에 응모해 1등을 차지하면서 건축가로서의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사는 사람이 행복해지는 건축 늘 생각” 80년 이후에는 ‘올해의 작품상’ 등 매년 빛나는 수상작을 내놓아 우리나라 건축문화의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늘 행복해지는 건축을 생각합니다. 사는 사람이 행복해져야 합니다.” 이화여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초등학교 1년 후배와 결혼했으며 슬하에 1남1녀를 두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필생의 역작인 옥인동 아파트와 현재 이화여대 건물 5개동 짓는 일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 그가 걸어온 길 ▲1943년 서울 출생 ▲61년 경기고 졸업 ▲65년 서울대 건축공학과 졸업 ▲65∼69년 김수근 건축연구소 연구원 ▲76년 건축연구소 ‘광장’ 개소, 한국 현대건축가 6인에 선정 ▲77년 한국종합전시장(KOEX) 현상설계 1등 당선(정림건축 합작) ▲79∼89년 한국풍수지리연구회 회장 ▲80년 국립현대미술관 건립추진위원 ▲82년 독립기념관 건립추진위원 ▲84년 예술의 전당 건축설계 자문위원 ▲85년 세계 현대건축가 101인에 선정 ▲92년 학교법인 계원학원 이사 ▲98년 건국대 건축대학원 겸임교수 ▲99년∼현재 국회환경포럼 정책자문위원 ▲2003년∼현재 김수근문화재단 이사장 ●상훈 제1회 서울시건축상 장려상(79년), 한국건축가협회 작품상(80∼98년), 올림픽조직위원회 현상설계 1등(82년), 대통령표창(2001년)외 다수 ●저서 행복을 그리는 건축가(2003년)외 11권 km@seoul.co.kr
  • [커리어 우먼] 박미선 국립수산과학원 본부장

    [커리어 우먼] 박미선 국립수산과학원 본부장

    “과학자라는 전문직 여성의 길은 신이 내게 내려준 가장 큰 축복입니다.”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시랑리 바닷가에 위치한 국립수산과학원.2층 연구실에서 만난 박미선(47) 수산생명 과학본부장은 나이가 믿기기 않을 정도의 동안이었다. 그녀는 지난 2년간 과학원에서 연구기획·평가·운영협력 업무를 총괄하는 연구·혁신본부장을 맡아 과학원 혁신에 앞장섰다.“혁신이라는 게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작은 것부터 고치고 실천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올 2월부터 수산생명 과학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과학본부에는 50여명의 연구원들이 어패류에 대한 양식과 질병, 식품위생, 생명공학 분야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싸움닭’의 남다른 노력 1970년대 후반 그녀는 여성들의 진출이 별로 없는 색다른 과목에 대해 공부를 하고 싶어 수산대학에 입학했다. 당시 입학생 280명중 여학생은 자신을 포함,4명뿐이었다.1982년 졸업과 동시에 수산과학원의 전신인 국립수산진흥원에 연구사로 임용됐다. 부유한 집안에서 남부럽지 않게 자라 세상물정을 모르던 박 본부장은 이때 세상의 냉정함과 여성이라는 차별을 맛보게 된다. “연구사를 당시에는 기사로 불렀는데 남자들에게는 ‘○○기사님’ 등 존칭을 붙였지만 저에게는 ‘박양’이라는 호칭과 함께 매일 아침 큰 물주전자에 보리차 물을 담아오라고 시키는 거예요.” 게다가 가운세탁, 책상정리 등의 부차적인 업무도 자신의 일이었다. 어느날 화가 치밀어 올라 상사에게 “나는 연구업무를 하러왔지 물 뜨러온게 아니다. 만일 누군가가 이 일을 해야 한다면 힘센 남자직원이 해야 한다.”고 따지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만 되돌아왔다고 한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그녀는 이때부터 오기가 발동, 동료들보다 더욱 열심히 연구 노력한 결과, 입사 2년만에 우수연구상을 받는 등 입지를 다져갔다. 다혈질에다 악바리 같은 그녀의 성격 탓에 이때 ‘싸움닭’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됐다. 여자로서 남자들보다 앞서기 위해서는 오직 실력을 갖추는 것뿐이었다. 하루 4시간씩 자며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전문직 여성의 장점은 ´부드러움´ 능력 있는 여성이 되는 길이 무엇인지 묻자 싸움닭이라는 별명과 달리 ‘여자로서의 부드러움을 잃지 말라.’는 의외의 답이 나왔다. 전문가적인 근성을 제외하고는 여자는 여자다울 때, 남자는 남자다울 때 가장 아름답고 보기 좋다는 것이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성일수록 여성의 장점을 십분발휘하고 좋은 쪽으로 이용하라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여성이어서 차별받았던 점보다 유리한 점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여자라는 점을 인정하라고 한다. 분명히 남성과 여성의 정체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그녀의 전공은 패류질병학. 국내외에 50여편의 연구논문과 보고서를 냈으며 저서로는 ‘한국 연근해 유용연체 동물도감’ ‘수산 양식생물 질병도감’등이 있다. 부경대 겸임교수로 후진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대학선배인 남편(51)은 직장이 경기도에 있어 주말 부부이다. 그래서인지 늘 신혼 기분으로 산다고. 늦둥이 아들(9)하나를 두고 있다 .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택할 것이라고 말한 그녀의 좌우명은 ‘인생과 일을 즐겨라.’였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박미선 본부장은 ▲1959년 부산 출생 ▲부산 동여고 ▲국립수산대(현 부경대) 학사(양식학과), 석사·박사(수산 생물학과) ▲1982년 수산청 국립수산진흥원 수산연구사 ▲1999년 해양수산부 국립수산진흥원 남해수산연구소 여수수산종묘시험장장 ▲2005년 수산과학원 연구혁신본부장 ▲2006년 수산생명과학본부장
  • [스포츠 라운지] LA 에인절스 입단 정영일

    [스포츠 라운지] LA 에인절스 입단 정영일

    지난 1994년 박찬호(33·샌디에이고)가 미국 프로야구 LA 다저스에 전격 입단한 이후 고교 야구선수들에겐 메이저리그가 ‘꿈의 무대’로 여겨져 왔다. 이후 봉중근(LG)이 애틀랜타, 백차승과 추신수가 시애틀 산하 마이너리그에 입단하는 등 고졸 유망주들의 미국행이 러시를 이뤘다. 하지만 대부분 빅리그의 높은 벽에 막히면서 2001년 이후 미국행은 끊겼다. ●눈물 젖은 빵을 먹을지라도 이런 분위기에서 ‘초고교급 투수’ 정영일(18·광주 진흥고)이 지난 9일 계약금 100만달러(9억 5000만원)에 LA 에인절스에 입단하자 관계자들은 갸우뚱했다. 그정도 액수면 국내 프로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뒤 국제대회를 통해 병역문제를 해결하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는 것. 그러나 정영일은 “두렵지만 자신있다. 마이너리그에서 착실히 경험을 쌓아 2∼3년 안에 메이저리그에 올라가겠다.”며 미국행 선택에 추호의 후회도 없음을 강조했다. 그는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덤비면 안 될 것이 있겠느냐.”며 야무지게 되물었다.“마운드에 올라 떨거나 두려워한 적이 없다.”며 “미국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그저 즐긴다는 기분으로 야구할 작정”이라며 여유까지 보였다. 정영일은 이미 고교야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준비된 스타. 지난 4월 대통령배 대회에서 경기고를 상대로 13과 3분2이닝 동안 삼진 23개를 솎아내 한기준(1928년·휘문고보)과 이진우(1975년·철도고)가 갖고 있던 종전 최다 탈삼진 기록(22개)을 갈아치웠다.5월 청룡기 대회에서는 장충고와 결승전에서 15이닝 동안 무려 222개의 공을 뿌리는 등 대회 9일간 741개의 투구수를 기록했다. ●한기주를 보러 온 스카우트에게 발탁 정영일의 에인절스 입단은 운명적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봄 클레이 대니얼 에인절스 국제담당 스카우트가 한기주(KIA)를 보러 광주에 왔다가 정영일을 발견했다. 그는 최고 151㎞에 이르는 묵직한 직구와 변화구를 9이닝동안 소화할 수 있는 정영일의 능력에 반해 비밀리에 구단의 결재라인을 밟았다. 정영일의 메이저리그 목표는 매년 10승 이상을 올려 10년 후에는 특급투수 반열에 오르는 것. 그러나 앞서 정영일에게는 태극마크를 달고 싶은 소망이 더 간절했다. 때문에 최근 발표된 청소년세계선수권 출전명단에 이름이 빠진 것에 진한 아쉬움을 표시했다. 정영일은 오는 9월부터 한 달여간 에이절스 교육리그에 참가해 본격 미국 무대 적응 훈련에 들어간다. 이 때 한국인 선수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5번으로 에인절스에 지명된 포수 최현(18)과도 상봉한다. 사상 첫 한국인 배터리를 이뤄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할 예정. 그는 또 미국 문화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요즘 영어 공부에 푹 빠져 지낸다. 마운드에서 타자와 정면승부를 즐기는 정영일은 “불투명한 미래가 오히려 기대된다.”며 환하게 웃었다. 광주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생년월일 1988년 10월16일 ●출생지 전남 광주 ●학력 광주 화정초교-충장중-진흥고 ●체격 188㎝,98㎏ ●취미 농구 ●경력 2006년 7월 LA 에인절스 입단
  • 정부투자·산하 기관장 민간인 급증

    정부투자·산하 기관장 민간인 급증

    참여정부 들어 민간인의 정부투자기관 및 산하기관 기관장 진출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에선 공무원 출신이 많았다. 또 기관장을 공모하는 기관이 그렇지 않은 기관보다 경영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앙인사위원회는 정부투자기관 13곳과 정부산하기관 관리기본법에 적용되는 87곳 등 100개 기관 기관장의 경력을 분석해 17일 공개했다. 참여정부 들어 취임한 기관장 84명 가운데 민간인 출신은 43%인 36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공무원 출신이 39% 33명, 정치인 출신이 10%인 8명이었다. 내부승진은 8%인 7명에 그쳤다. 반면 김대중 대통령 정부 시절인 1998년 2월부터 2003년 1월 사이에 임명된 209명 가운데는 공무원 출신이 49%인 103명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민간인 출신은 27%인 56명, 정치인은 20%인 41명. 내부승진은 4%였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3년 2월부터 1998년 1월까지는 공무원 출신이 61%인 118명을 차지해 공무원의 산하기관 진출이 가장 활발했다. 민간인은 19%인 36명, 정치인은 17%인 32명이었다. 지난 정부에서 기관장으로 공무원과 정치인 출신이 많이 진출한 반면 참여정부에선 민간인의 진출이 늘어나는 쪽으로 기류가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여정부 들어 감사급에 ‘낙하산’이 크게 늘어 해당 기관의 반발이 적지 않았지만, 기관장에는 민간 전문가 영입이 그런대로 활발히 이뤄진 셈이다. 경영 성적도 공개 모집 형식으로 기관장을 뽑은 기관이 훨씬 좋았다.45개 기관장은 공모,47개 기관장을 비공모. 공모 기관은 22%인 10명이 ‘우수’로 평가된 반면 비공모 기관은 11%인 5명에 그쳤다. 기관장과 감사, 상임이사 등 410명을 출신지역별로도 분석했다. 그 결과 영남 출신이 32%로 가장 많았다.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출신이 25%, 호남 출신이 23%였다. 중앙인사위원회 황서종 정책총괄과장은 “현재 공공기관 기관장의 평균 출생년도는 1949년생으로, 당시 인구 분포와 현재 기관장의 출신지역별 분포를 비교하면 거의 비슷한 비율을 보인다.”고 소개했다. 현재 영남 출신 임원의 비율은 32%로 1949년 당시 영남 지역의 인구비중은 31%, 호남 출신 임원은 23%로 당시 호남의 인구 비율은 25%였다는 것이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우리나라 최초·최고령 프로 마술사 이흥선 옹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우리나라 최초·최고령 프로 마술사 이흥선 옹

    올리버 스톤이 감독한 영화 ‘알렉산더’가 생각난다.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등 3개 대륙을 정복하고 최초로 동·서양 화합을 꿈꾸는 가장 위대한 정복자, 역사적 ‘대왕’의 위용을 그렸다.‘알렉산더’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25년 전 어느날. 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한 극장식 레스토랑 ‘무랑루즈’. 동안(童顔)의 한 50대 남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 위에 올랐다. 주위는 순간 침묵으로 변했다. 잠시 후 그가 쓴 모자에서 비둘기가 튀어나오더니 하늘로 계속 날아오른다. 이어 입안에서 하얀 종이를 내뱉더니 곧 국수가락으로 변해버린다. 또 객석으로 내던져진 낚싯줄마다 금붕어가 연이어 딸려나온다. 기립박수는 그칠 줄 몰랐다. 이를 지켜보던 ‘눈물젖은 두만강’의 김정구씨는 놀라 벌어진 입을 억지로 다물며 “당신은 대왕이오, 대왕.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처럼 말이오.”라고 했다. 이후 이 남자는 ‘알렉산더 리’로 통했다. 그랬다. 마술계의 대왕, 살아있는 마술의 전설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 마술사이며 현역 최고령 마술가이기도 하다.‘알렉산더 리’, 대중들에겐 이흥선(83)씨로 잘 알려져 있다.26세에 마술계에 입문했으니 말 그대로 60년 성상을 ‘마술 인생’이라는 파란만장하고 독특한 삶을 살아왔다. 더욱 흥미있는 것은 원래 선수급 수준의 기계체조를 했다는 사실. 서울 용산에서 출생한 그는 어릴 적부터 철봉에 매달리고 있어야 더 행복해질 정도였다. 이후 체조, 물구나무서기, 고난도의 텀블링 등을 척척 해냈다. 나중에는 차력까지 배웠다.‘근육짱’으로 소문났음은 당연했다. ●새달 부산 국제매직페스티벌 심사위원 그래서 일제 때 유명했던 신광·동양·대륙서커스단에서 앞다투어 데려가 청년시절부터 전국을 돌며 유랑생활을 하게 된다. 가설극장에서 고 서영춘씨와 배삼룡씨 등 여러 희극인들과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감동의 공연도 자주 펼쳤다. 서커스와 마술, 만담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이씨는 가는 곳마다 ‘인기짱’이었다. 춥고 배고팠던 암울했던 시절의 온갖 시름을 잊게 해줬다. 세월이 지난 요즘, 어느 정도 쉴 법도 한데 아니다. 팔순 중반의 나이를 무색케 할 정도로 여전히 정열을 쏟아낸다. 노인들과 불우이웃이 있는 곳, 어디든 달려가 흥미진진한 마술로 즐거움을 선사한다. 또 해마다 어린이날이면 마술공연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전해준다. 지난해에는 일본에 초청돼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젊은이 못지않은 기발한 마술연기로 기립박수를 받았다. 어디 이뿐이랴. 김정우와 최현우 등 차세대 마술사들을 키워내는 것도 중요하게 여긴다.‘앉으나 서나 마술생각’에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작은 성냥갑 하나라도 그의 손이 닿는 순간 척척 마술도구로 변해버려 ‘요술손’이라는 별명 또한 여전하다. 오는 8월에는 특별한 무대를 갖는다.10일부터 5일 동안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매직페스티벌에서 심사위원을 맡은 것. 아울러 여기에서 신인 마술가들을 위한 무대, 즉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새로운 마술로 한 수 지도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그의 손에서 개발된 마술만 어림잡아 2000가지가 넘는다. 이래저래 응용된 것까지 합하면 1만여가지나 된다. 이같은 마술인생의 흔적은 그의 집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비둘기 15마리가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온갖 마술도구가 구석구석 널려 있어 흡사 ‘매직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지금까지 1만여가지 개발… 김정우·최현우씨 등 조련 지난주 서울 홍익대 근처의 ‘알렉산더 매직바’에서 이씨를 만났다.‘알렉선더 리’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지었다. 이씨는 이곳에 자주 들러 팬들에게 서비스차원에서 간단한 마술을 선보이곤 한다. 먼저 근황을 물었다.“가만히 있을 수 있나. 이것저것 마술기계를 만드느라 끝이 없지 뭐.”라고 했다. 옆에 있던 마술감독이자 이씨의 매니저인 김준오씨는 “제자들이 사용하다 망가진 마술도구를 고쳐주기도 해요.”라고 거들었다. 80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게 보인다고 하자 “근심 걱정 없어요. 밤낮 그저 웃고 명랑하게 지내지 뭐. 그게 건강비결이요.”라고 하며 연신 웃는다. 이씨는 26세에 마술을 처음 접했다. 서커스단 일로 평소 알고 지내던 타이완의 마술사 ‘미스터 엑스’가 하루는 다급하게 찾아왔다. 숙소에서 잠을 자던 중 누가 돈을 훔쳐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는 것. 딱하게 여긴 이씨는 미스터 엑스를 자신의 집에서 잠시 동안 지내게 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미스터 엑스가 이씨에게 “차력이나 체조는 나이가 들면 못합니다. 그러니 나이 먹고도 할 수 있는 마술을 배우십시오.”라고 하면서 마술을 가르쳐준다. 비둘기 날리는 것 등 몇 가지 기술을 전수받은 이씨는 자료 등을 열심히 뒤져가며 여러 가지 응용기술을 터득했다. “당시 마술을 가끔씩 하는 사람이 있긴 했어요. 간단한 소품정도였지요. 하지만 비둘기가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입에서 불이 뿜어나오고, 또 사람이 공중에 붕붕 뜨니까 무척 좋아했어요. 또 깡통에서 담배 꺼내기, 종이를 찢어 국수가락 만들기 등을 막 했지요.” 6·25전쟁 때에는 마술 덕분에 생명을 건지기도 했다. 피란길 무주경찰서에서 잠시 지낼 때 갑자기 인민군의 공격을 받게 됐다. 그런데 경찰관은 불과 5∼6명밖에 없었다. 이씨는 경찰서에 있는 모자랑 옷가지를 다 모아놓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마술을 부리며 수십명이 있는 것처럼 위장했다. 그랬더니 인민군들은 경찰관 숫자가 많은 것으로 착각해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씨는 해방 전 유랑극단과 함께 평안도와 함경도까지 공연을 한 경험이 있어 인민군들과 맞닥뜨리면 이를 내세워 죽을 고비에서 살아남곤 했다. ●“한번 사용한 마술은 두번 다시 안해” 전쟁이 끝나면서 이씨는 본격적인 마술사의 인생을 걷는다. 때마침 가수 김정구씨, 한복남씨 등과 극단이나 호텔에서 공연을 자주 하게 된다. 그때마다 연예인들은 이씨의 마술솜씨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는 방송 출연을 자주하는 데 도움이 됐고 유일한 프로 마술사로 독주하게 된다. 하룻밤 사이에 많게는 열군데씩 밤무대를 누볐고 일주일에 1∼2회 고정 출연하는 TV마술쇼를 맡기도 했다. 빈손에서 비둘기 10여마리가 나오고 네모난 도구속에 사람을 집어넣어 부분절단하는 아찔한 장면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씨는 특히 80년대초 외손자 김정우와 함께 변웅전씨가 진행하는 ‘TV 묘기 대행진’에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현재 김정우는 최현우와 함께 이씨의 뒤를 잇는 대표적 수제자로서 활약하고 있다. 이씨의 마술철학은 한번 사용한 마술은 두번 이상 하지 않는다는 것. 항상 새로운 것을 선보여야 한다는 고집으로 일관했다. 롯데월드에서 7,8년 동안 최장수 고정 출연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덕분이다. 늘 웃음을 잃지 않는 노(老) 마술사에게 즉석 묘기를 주문했다. 사진촬영을 위해 흔쾌히 의상까지 갈아입는다. 잠시 손으로 뭔가 만지작 하더니 눈깜짝할 사이에 모자 속에서 비둘기 한마리가 푸드득 날아간다. 방안을 한바퀴 휘 돌더니 이내 이씨의 어깨에 사뿐이 앉는 비둘기. 그에게 있어서 마술은 인생의 전부였음이 느껴진다. 평생을 거의 마술에 바쳤고 전쟁통에는 마술로 목숨을 건졌다. 요즘에는 우리나라 마술발전을 위해 잠시도 쉬지 않는다. 문득 마술이란 무엇인지 물었다.“뭐니뭐니 해도 잡념을 없애주지요. 사람이 잡념이 없으면 즐겁잖아요. 마술은 아이디어와 노력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에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선사해요.IQ도 높여주고….” 또 마술기계를 만드는 데 중요한 것은 재료가 아니라 창의력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이씨는 “벙어리학교나, 눈감은 맹인 앞에서도 마술공연을 여러번 했는데 그때마다 박수소리가 요란했다.”며 크게 웃는다. 주말매거진 We팀장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4년 서울 용산 출생. ▲40년 근민체육단 결성. 이후 신광·천마·금강·대륙·동양·동춘서커스단 공연. ▲49년 마술계 입문. 비둘기 마술을 국내 처음 선보임. 이후 기계체조와 마술, 만담 등으로 매년 전국 순회공연. ▲64년 TBC방송 개국기념 마술쇼 출연. 이후 ‘묘기 대행진’ ‘희한한 세상’ 등 TV 마술프로그램 단골출연. ▲80년 ‘알렉산더 리’라는 별명을 얻음. ▲96년 서울에 최초의 마술 상설공연장 ‘알렉산더 매직바’ 개설. ▲2001∼05년 대한민국 매직페스티벌 심사위원 및 특별출연. ▲04년 한국마술협회 공로상 수상 ▲05년 서울랜드마술대회 심사위원, 일본 특별 초청공연 참가. ▲06년 5월 서울국제매직페스티벌 초청공연 참가. ▲기타 지금까지 주특기만 2000여가지 개발.
  • ‘빛의 마술사’ 렘브란트 재조명

    |파리 함혜리특파원|17세기 유럽 회화의 거장 렘브란트(1606∼1669)의 탄생 400주년을 맞은 15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과 그가 태어난 라이덴에서 기념행사가 풍성하게 펼쳐졌다. 출생지 라이덴은 헤이그와 암스테르담 중간에 있는 인구 12만명의 조그만 대학도시. 방앗간집 아들로 태어난 렘브란트가 26세까지 살았던 이곳에는 가족들이 다녔던 교회와 아버지가 작업했던 풍차, 부모의 묘지 등이 남아 있다. 생가는 20세기 초 철거됐다 1980년 정면이 새로 지어졌으며, 초기 작업실은 여전히 다른 화가가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다. 라이덴에서는 이날 음악, 연극공연 등이 포함된 대규모 야외 페스티벌이 열렸다. 특히 이날 라이덴의 식당에선 17세기 먹을거리를 팔아 관광객들을 즐겁게 했다. 암스테르담에선 ‘빛의 마술사’로 불리는 렘브란트의 ‘야경’,‘유대인 신부’를 비롯한 걸작들이 국립 레이크 미술관 등에서 전시되고 있다. 네덜란드의 여러 미술관에서는 올 한해 동안 렘브란트 관련 전시회가 계속돼 거장의 작품세계를 연대기별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암스테르담 로열 카레 극장에선 이날 저녁 렘브란트를 소재로 한 뮤지컬 공연이 개막됐다. 이 공연은 갈채와 비극의 양면을 가진 렘브란트 삶의 궤적을 엿볼 수 있도록 기획됐다. 1606년 7월15일 탄생한 렘브란트는 젊은 시절부터 명성을 얻었다. 주문이 끊이지 않아 상류사회의 화려한 생활을 오래 누릴 수 있었다.28세 때인 1634년 후원자의 조카인 사스키아와 결혼해 자녀 4명을 낳았지만 1642년 부인이 죽은 후엔 아들의 보모를 정부로 삼았으며, 나중엔 더 젊은 가정부와 관계를 맺기도 했다. 돈 관리에 실패하고 씀씀이가 커지면서 결국 파산해 집에서 쫓겨났다.1669년 사망했을 때엔 묘지를 살 돈도 남기지 못해 무연고 묘에 쓸쓸히 묻혔다. 한편 렘브란트의 작품 가운데 지금까지 최고 경매가를 기록한 작품은 지난 2000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소에서 약 2000만파운드(약 350억원)에 팔린 ‘62세 부인 초상화’였다.lotus@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11년 현대맨 임도헌 프로배구 삼성화재 코치로

    [스포츠 라운지] 11년 현대맨 임도헌 프로배구 삼성화재 코치로

    실업배구 마지막 시즌이던 지난 2004년 2월.OB올스타전이 열린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 코트에 그가 1년 만에 나타났다. 맨 마지막으로 이름이 불려졌지만 올드팬들의 박수를 누구보다 뜨겁게 받은 그는 보란 듯이 육중한 스파이크를 뿌려댔다. 그로부터 2년 5개월 뒤 그는 지도자로 변신했다.‘영원한 현대맨’일 줄만 알았던 그다. 그러나 ‘11년 앙숙’ 삼성의 코칭스태프가 된 건 아이러니다. ●전성기의 마지막 스타 ‘임꺽정’ 임도헌(34)은 한국 배구 전성기의 맨 끝자락을 휘감았던 스타였다. 일본의 배구팬이 기억하는 일본남자배구 최후의 스타는 나카가이치 유이치(사카이 블레이저스 감독)다. 한국의 경우 임도헌이 나카가이치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라면 과장일까. 시대를 잘못 만난 영웅이 소리 소문없이 사라진 건 어쩌면 당연한 일.2002년 가을 슈퍼리그 개막을 코앞에 두고 터져 나온 임도헌의 은퇴 발표는 적잖은 충격파를 던졌다. 세대교체를 서두른 새 감독과의 불화,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 부상. 임도헌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옷을 벗고 무작정 캐나다 밴쿠버 브리티시컬럼비아 주립대로 연수를 떠난 것. ●될 성 부르지 않던 떡잎 ‘될 성 부른 떡잎’이란 말이 있지만 그에겐 전혀 맞지 않았다. 경북 경산의 하양초교 4년때 배구를 시작한 그는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도 키는 154㎝에 불과했다. 호리호리한 몸 생김새만 봐도 배구로 대성할 인물은 아니었다. 공부로 돌아서기 위해 일반고등학교에 진학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한꺼번에 33㎝가 자란 고교 1년때 그는 경북체고로 전학, 다시 배구공을 잡았다. 코트로 돌아오는 데 4년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별 무리없이 적응할 수 있었다. 이는 초등학교 시절 강봉한 감독이 자신에게 익혀준 탄탄한 기본기 덕분이었다. 대학에 진학한 그는 문병택 김성채 신현섭 진창욱 등 동기들과 한국 배구의 자존심을 지켜내며 실업의 마지막 세대로 이름을 남겼다. ●임꺽정이 삼성으로 간 까닭은 “실업자 신세를 면하기 위해서”라고 말은 하지만 정작 ‘현대맨’ 임도헌이 삼성의 멤버가 된 건 신치용 감독과의 각별한 인연 때문이다. 경북체고 시절 동료 세터 진창욱을 보러 온 김남성 성균관대 감독에게 “진주가 있다.”고 귀띔한 사람은 한전 코치였던 신 감독이었다. 시청팀 입단 직전 ‘흙속의 진주’를 자신의 대학 후배로 만든 신 감독은 청소년·성인대표팀에서 코치로 임도헌과의 인연을 이어갔고, 그가 안면마비로 고생할 때 백방으로 수소문해 약을 지어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신 감독은 “삼성 창단이 2년만 빨랐어도 임도헌은 내 차지였다.”며 아쉬워한다. 놓았던 백구를 지도자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잡은 임도헌의 데뷔무대는 9월 예정된 프로배구 여름리그다. ●임도헌 프로필 -생년월일 1972년 6월9일 -출생지 경북 경산 -학교 경산 하양초-무학중-무학고-경북체고-성균관대 -체격 194㎝,96㎏ -경력 현대자동차서비스(1993∼99)·현대자동차(99∼2001)·현대캐피탈(2001∼03)·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립대학 코치(2003∼04)·삼성화재 코치(2006.7∼) -수상 아시아선수권 MVP(1993)·슈퍼리그 MVP(1995)·슈퍼리그 베스트6(1993∼97) 글 사진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스너피 이어 암컷도 복제

    세계 최초 복제견인 스너피의 배우자가 될 수 있는 암컷 복제견 2마리가 최근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암컷 복제는 스너피를 복제한 서울대 수의대 연구팀의 김대용·이병천 교수와 김민규 박사가 주도했으며 순천대 공일근 교수가 유용동물 복제연구 프로젝트의 총괄 책임자로 참여했다. 순천대 공 교수는 12일 “13개월 된 크림색 아프간 하운드종 암컷 체세포를 핵이 제거된 개 난자와 융합한 뒤, 대리모견 자궁에 착상시켜 복제견 두 마리를 탄생시켰으나 관련 논문을 학회지에 게재하는 등 학계에서 검증받는 절차가 아직 남아 있다.”고 말했다. 복제견 두 마리는 모두 서울대 동물병원에서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지난달 18일 태어난 복제견 1호는 보나, 지난 10일 태어난 2호 복제견은 피스라는 이름이 각각 붙여졌다. 출생 당시 보나는 520g, 피스는 460g이었다. 예방접종이 안돼 사진촬영이나 외부노출은 제한하고 있다. 연구팀이 복제에 사용한 기본원리는 스너피 복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핵심 세부기술에서는 새로운 기법이 적용됐다. 즉 스너피 때 사용된 젓가락 쥐어짜기 난자 핵 추출법 대신 새로운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연구팀은 곧 이 기법을 특허출원할 예정이다.보나와 피스의 복제기간도 스너피(2년6개월)의 10분의1 수준인 3개월이어서 복제성공률을 크게 올려 복제동물의 상업화 가능성을 높였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생명공학 진화 ‘불임치료 새희망’] 인간정자 생산 전기마련

    [생명공학 진화 ‘불임치료 새희망’] 인간정자 생산 전기마련

    쥐의 배아 줄기세포를 시험관에서 분화시켜 정자로 키우는 데 성공해 새끼 7마리가 태어났다. 사람의 정자도 이렇게 만들 수 있다면 남성 불임 치료에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독일 괴팅겐의 게오르그-아우구스트 대학 카림 나예르미아 박사는 의학전문지 ‘발달 세포’ 최신호에 이같은 내용의 연구 보고서를 냈다고 영국 언론들이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인공적으로 생산한 정자가 새끼를 태어나게 한 것은 처음이다. 연구팀은 쥐의 포배(胞胚) 단계 배아에서 장차 정자로 분화 가능한 ‘정자 발생 줄기세포(SSC)’를 채취해 시험관에서 배양시켰다. 다 자란 정자를 난자와 수정시켜 암컷 쥐의 자궁에 착상,7마리의 새끼쥐를 얻었다. 이 중 1마리는 출생 초기에 죽고 나머지 6마리는 5개월 정도만 살았다. 쥐의 수명이 보통 2년이니까 완전히 정상은 아닌 셈이다. 일부는 호흡 곤란을 겪었고 몸집이 너무 크거나 작았다고 인디펜던트가 전했다. 나예르미아 박사는 “‘수정’이 가장 어려운 과정이었다.”고 밝혔다. 인공 정자로 400개의 배아를 만들었지만 2세포 배아까지 간 것은 50개뿐이었고 그 중 7개만이 출산까지 이어졌다. 정자가 아닌 난자도 배아 줄기세포를 통해 만들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줄기세포 연구를 위해 다량의 난자 기증이 필요한 과학자들은 인공 난자에 눈길을 돌리는 형편이다. BBC 방송에 따르면 영국 남성 1%가 정상 정자를 못 만드는 무정자증이고 3∼4%는 정자 수가 모자라는 희소정자증을 갖고 있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부고] ‘한국축구 1세대’ 김화집 선생

    한국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원로 축구인 김화집옹이 7일 별세했다.97세. 지난해 5월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투병 생활 끝에 이날 오전 4시30분 서울 북아현동 자택에서 별세한 김옹은 지난 1909년 평양에서 출생, 배재고보와 보성전문에서 현역시절 공격수로 활약했다.1930년대 경성축구단에서 대표선수를 지낸 뒤 심판으로 변신,1951년 한국 최초의 국제심판에 선임돼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영안실 33호(02-3010-2293). 영결식은 9일 오전 8시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치러진다.
  • [World cup] 베스트 영 플레이어 첫 주인공 독일 루카스 포돌스키

    ‘폴디 왕자’ 루카스 포돌스키(21·독일·바이에른 뮌헨)가 독일월드컵 신인왕의 영예를 안았다. 국제축구연맹(FIFA) 테크니컬스터디그룹(TSG)은 7일 “포돌스키는 3골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독일 공격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동료 미로슬라프 클로제와 강력한 투톱을 형성해 팀 득점(11점) 가운데 8골을 합작했다.”며 선정배경을 밝혔다. 포돌스키는 팬투표에선 4위에 그쳤지만 TSG의 최종 심사에서 역전에 성공, 이번 대회부터 신설된 ‘베스트 영 플레이어(신인상)’의 첫 주인공이 됐다. 역대 비공식 신인상 수상자들은 펠레(브라질·1958년 스웨덴), 프란츠 베켄바워(독일·1966년 잉글랜드), 마이클 오언(잉글랜드·1998년 프랑스) 등으로 모두 대스타로 성장해 기대를 더한다. 포돌스키는 준결승까지 6경기 전 경기에 출장, 모두 563분을 뛰면서 3골을 폭발시켜 득점 공동 2위에 올라 있다. 클로제와 함께 ‘전차군단’ 준결승 진출의 견인차. 180㎝,81㎏의 당당한 체격으로 현재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포돌스키는 2004년 6월6일 19세의 나이에 헝가리와 A매치 데뷔전을 가진 뒤 현재까지 31경기에 나서 15골을 기록했다. 폴란드에서 태어난 그는 경기를 읽는 탁월한 시야와 폭발적인 스피드, 골 결정력을 두루 갖췄다고 평가받고 있다. 유로2004에 출전했고 2005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도 3골을 넣었다. 쾰른 유소년축구 아카데미에서 축구를 시작한 그는 2004년 쾰른이 2부리그로 강등됐을 때도 팀을 떠나지 않는 ‘의리’를 과시하기도 했다. 이듬해 24골을 터뜨리며 팀이 다시 분데스리가로 승격되는 데 결정적인 몫을 했다. 한편 포돌스키와 막판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인 동갑내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아쉽게 눈물을 흘렸다. 비록 1골로 포돌스키의 득점에 못미쳤지만, 매 경기 화려한 개인기를 뽐내며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클럽팀 동료인 웨인 루니의 반칙을 심판에게 일러바친 ‘고자질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면서 포돌스키와의 경쟁에서 밀려났다. 또 포돌스키의 개최국 프리미엄도 호날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베스트 영 플레이어’는 1985년 1월1일 이후 출생자를 대상으로 활약도와 페어플레이 등을 고려해 FIFA TSG가 최종 선정했다.TSG는 앞서 팬투표와 추천된 후보 등 6명을 놓고 선정작업을 벌였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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