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출생
    2026-06-25
    검색기록 지우기
  • 소비
    2026-06-25
    검색기록 지우기
  • 수심
    2026-06-25
    검색기록 지우기
  • 라스
    2026-06-25
    검색기록 지우기
  • 복지
    2026-06-2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5,249
  • [Seoul In] 기초노령연금 수령 신청

    강북구(구청장 김현풍) 다음달 9일까지 기초노령연금 수령 신청을 받는다. 대상은 1938년 1월∼1943년 9월에 출생한 노인으로,1943년 10월 이후 출생자는 생일이 속한 달부터 신청이 가능하다.7월부터 기초노령연금 지급대상이 만 65세 이상으로 확대됐다. 연금액은 2만∼13만 4000원. 신분증, 통장 사본을 들고 주민센터를 방문하면 된다. 생활보장과 901-2253.
  • 살인범(殺人犯) 박원식(朴元植)은 한방에서 두 여자(女子)와…

    살인범(殺人犯) 박원식(朴元植)은 한방에서 두 여자(女子)와…

    살인강도범 박원식(朴元植·38)이 거쳐간 6인의 여자. 포악하고 비정한 박(朴)이지만 여자다루기에는 명수. 천성이 방랑아였던 그의 발자취가 닿는 곳마다 연인이 생겼고, 그는 또 연인의 돈으로 방랑을 계속, 새 여자를 만들곤 했다. 그의 엽색 행각을 더듬어 보면-. 애인의 돈우려 새 애인 만드는 자금 삼아 박은 1933년3월29일 경남 김해(金海)군 이북(二北)면 병(屛)리 법동곡(法洞谷)부락 695 박모(75·사망)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호적에 의하면 박의 형은 1930년에 태어났다가 3살때 죽었으며, 박의 아래로는 3남(34), 누이 둘(29·21)과 4남(24)이 입적돼있다. 이중 4남은 47년에 출생, 53년에 죽은것으로 돼있으나 3남은 주민등록 신고도 없이 행방불명으로 돼 있는데, 부산 영도구 신선동에 살고있는 박의 어머니 김(金)노파(68)에 의하면 3남은 오래전에 죽었다고 한다. 박은 70년 8월 10일자로 김모 여인(30)과 혼인신고가 돼있으며, 70년 3월30일 출생한 딸이 같은 날짜로 입적돼있다. 박이 주민등록증을 발부받은 곳은 시내 서구 남부민동 220번지 4통2반으로 돼있는데 이곳은 박의 시집간 큰누이가 사는곳으로 박이 누이 집에 더부살이 하면서 주민등록을 한것으로 보인다. 박은 찢어지도록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교육도 제대로 받지못했고 고향인 김해에서 국민학교 3년을 중퇴, 집에서 놀고있다가 14살때 김해를 떠나 부산(釜山) 대구(大邱)등지로 떠돌아 다니다 6·25가 나던 해인 18살때 군에 입대, 20살때 제대한것으로 알려졌다. 군에서 제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박은 남의집 품팔이등으로 가난한 생활을 하다 집안은 부유하나 천성의 벙어리로 시집을 못가고있던 동네 처녀에게 데릴사위 형식으로 장가를 들었다. 장가를 든 박은 처가집에서 놀고먹으면서 벙어리부인을 툭하면 때리는 등 행패를 부리다 1년만에 아무말없이 사라져 버렸다는게 고향사람들이 박을 기억하고 있는 전부다. 이후의 박의 행적중 뚜렷한 것은 22살때 대구지법 영덕지원에서 절도죄로 징역10월을 선고받고 복역했으며, 2년뒤 다시 절도죄로 김천(金泉)지원에서 징역2년, 교도소내에서도 담배를 피우고 소란을 떠는등 문제수(囚)로 지목받았었다. 59년 9월 부산지법에서 모종사건으로 징역7년형을 받고 복역중 64년도 9월 1차감형때 풀려나와 오늘까지 별로 하는일없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베일」에 가린 생활을 해왔다. 성격이 난폭하고 여자낚기와 사격의 명수인 박은 이름도 김창식(金昌植), 박태동등 나오는대로 주워 섬기면서 때와 장소에 따라 「카메레온」처럼 변신해왔다. 박으로부터 제일 처음 피해를 입은 한독약국 김근상씨(34)에 의하면 김씨가 박을 본 것은 7년전이었는데 이때 박은 자기가 모처에서 일을 한다면서 거드름을 떨며 알수없는 몇마디 말을 하고 헤어진후 강도를 당한 지난 6월29일밤 처음 봤다는 것이다. 이처럼 박의 행적은 뚜렷하지않은데, 호적에 입적돼 있는 본처와 어머니가 70년2월이후 살고있는 영도구 신선동 본집에도 한달에 한두번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생활비조로 1,2만원을 던져주고 휙 나가버려 처와 어머니도 박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있다. 박이 현재 본처로 돼있는 김모여인을 만나기는 68년도에 박이 탕아로 부산의 사창가인 완월동 등지를 드나들면서 만나 서로 정이 들자 동거생활로 들어갔다한다. 이때(68년12월) 박은 웬일인지 대구로 김여인과 함께 옮겨가 지난 11일 제2의 범행을 저지른 대구시 비산(飛山)동 296의30 진(陳)기춘씨집 근처에 집을 얻어 생활을 하면서 사형인 진씨에게 『생활이 곤란하면 함께 일본으로 뛰자. 준비는 다 돼있다』는 등의 말로 자주 접근해 왔다. 이를 수상히 여긴 진씨가 모기관에 박을 고발했는데, 고발당한지 5일만에 다시 박이 나타나 『재미없다, 죽을줄 알아라』는 등의 협박을 하고는 부산으로 간다면서 대구에서 바람같이 사라져 버렸다. 여자다루는 마력(魔力) 지녔나? 질투없이 몸대고, 돈대고 70년 3월 부산에 나타난 박은 친척들이나 자기를 오래알고 있던 곳에는 전연 얼굴을 내밀지 않고 남부민동 220 자기 누이집으로 『자신이 다른지방으로 전근간다』면서 가족을 보내고는 행방을 감추었다. 이리저리 혼자 떠돌던 박은 이해 6월 송도 모주점에서 두번째 내연의 처인 문(文)모여인(28)을 만났다. 해녀생활을 하다 주점에 나온지 얼마 안된 문여인은 박의 능수능란한 여자다루는 솜씨에 그만 녹아떨어져 자기집에서 박과 함께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문여인은 이때 얼마나 박을 좋아했는지 박없이는 세상을 살아가는 맛이 없다는 식으로 제나름의 시를 지어「노트」에 적어놓는등 박을 붙잡기에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박은 두달후에 온다간다 말한마디없이 문여인의 곁에서 증발했는데, 이때 박은 문여인덕으로 먹고살면서 부산의 번화가를 드나들다가 중앙동 K다방의 고용「마담」으로 있던 김모여인(28·동래구 부곡동)을 구슬러 김여인의 언니가 살고있는 부곡동으로 김여인과 함께 옮겨가 버렸다. 박은 새로 사귄 김여인과 어울려 김해를 비롯, 경남(慶南)의 명소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연인과의 정을 두텁게 했다. 하는일없이 놀고먹는 박은 무슨 해상장사를 하겠다는등 알쏭달쏭한 소리를 해가며 김여인과 김여인의 언니돈 89만여원을 갖다 흥청대면서 지난 5월 박이 김여인과 함께 일본으로 밀항하기위해 함남동 문여인집으로 올때까지 죽 이곳에 눌러있었다. 5월말 문여인집으로 김여인과 함께 옮겨온 박은 한집에서 한달가까이 김여인을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여인들을 잘돌봤는지 이들은 한번도 싸우거나 불평을 늘어놓은적이 없다고한다. 타고난 「플레이·보이」인 박은 공식적으로 드러난 김·문등 여인말고도 서울 모다방에 있다는 손(孫)모, 대구에 있다는 김(金)모등 이루 헤아릴수없을 정도로 많은 여인들을 주변에 두었는데 이들에게서 들은 박의 여인낚기의 특징은 뛰어난 화술에 있다는 것이다. 중졸정도의 교육을 받은 여인들은 박과 앉아 5분정도만 이야기해도 금방 좋아질 정도로 그는 이 방면에 비상한 재간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釜山)=김홍석(金弘錫)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7월 25일호 제4권 29호 통권 제 146호]
  • 런던마라톤 완주 102세 할아버지 나이 속였나

    런던마라톤 완주 102세 할아버지 나이 속였나

    지난해 101세의 버스터 마틴(영국) 할아버지가 은퇴한 지 2년 만에 다시 배관공 일을 시작했다고 해서 국내 언론에 소개된 일이 있다. 지난달에는 이 할아버지가 13일(이하 현지시간) 끝난 제28회 런던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겠다고 기염을 토해 다시 화제를 모았다. 현재 세계 최고령 마라톤 완주 기록은 1976년 아테네에서 당시 98세의 그리스인 디미트리온 요다니디스가 세운 7시간33분. 현지 일간 ‘더 타임스’의 14일 보도에 따르면 마틴 할아버지는 이날 10시간을 조금 넘겨 결승선을 통과했다. 오전 10시45분 출발했지만 저녁 7시45분쯤 결승선의 계측기가 철거됐기 때문에 공식적인 기록은 알 수 없다고 신문은 덧붙였다.10시간여라는 기록은 언론이 추적한 것. 기록은 좋지 않았지만 102세 나이 때문에 최고령 완주 기록을 경신할 법했다. 그러나 기네스북은 그의 기록을 공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1906년에 태어났다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명이 피에르 장 마틴인 그는 1913년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는 것.1950년대 중반에 사망했다고 주장한 그의 아내 이리아나의 사망 기록도 전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마틴 할아버지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어렸을 적 영국 고아원으로 옮겨왔기 때문에 출생 기록이 없다.”며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살았는지는 내가 잘 안다. 나를 질시하는 이들은 항상 이런 소문을 내왔다.”고 여전히 큰소리를 쳤다고 신문은 전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국내 1호 여류프로 9단 박지은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국내 1호 여류프로 9단 박지은

    위기십결(圍棋十訣)이란 말이 있다. 북송(北宋)때 바둑격언에서 유래됐지만 인생살이에 적용해도 조금도 손해볼 것이 없다. 1. 이기려거든 욕심내지 말 것(不得貪勝=부득탐승). 2. 상대의 세력권에 들어갈 때에는 깊이 들어가지 말 것(立界宜緩=입계의완). 3. 공격하기 전에 자신의 결함을 살필 것(功彼顧我=공피고아). 4. 긴요치 않은 돌은 버리고 선수를 잡을 것(棄子爭先=기자쟁선). 5. 작은 것은 버리고 큰 것을 노릴 것(捨小取大=사소취대). 6. 위험을 만나면 모름지기 손을 뗄 것(逢危須棄=봉위수기). 7. 경솔하게 움직이지 말 것(愼勿輕速=신물경속). 8. 상대가 움직이면 같이 움직이고 멈추면 같이 멈출 것(動須相應=동수상응). 9. 상대가 강하면 안전에 힘쓸 것(彼强自保=피강자보). 10. 고립되었을 때에는 화평책을 쓸 것(勢孤取和=세고취화). 2002년 3월, 일본 도쿄에서 제 1회 도요타ㆍ덴소배 세계왕좌전 1회전 대국이 열렸다. 당시 일본에서는 조훈현, 이창호, 유창혁 등 기라성 같은 한국의 기사들에게 관심을 가졌을 법한데 그게 아니었다. 한국의 무서운 신예 열아홉살의 박지은 3단에게 눈길이 모아졌다. 그럴 것이 일본의 거물 요다 노리모토 9단과 마주했던 것. 어린 여자를 만만히 봤을까. 송곳날처럼 날카롭기로 유명한 요다 9단이 중반 이후 잠시 흔들리는 기색이 보였다. 때를 놓칠세라 박지은은 적진에 파고들면서(立界宜緩) 철옹성같은 울타리를 야금야금 무너뜨렸다. 결국 백을 잡은 박지은이 보기 좋게 불계승을 거뒀고 요다 9단은 충격의 KO패를 당했다. 당시 일본 매스컴은 “요다 9단이 중반 좌변전투에서 무리수를 던진 것이 패착이었고 박 3단이 이를 정확히 응징해 승리를 거두었다.”고 박 3단의 실력을 높이 평가했다. 또한 2000년 한국의 바둑왕전에서 유창혁과 조훈현을 이기고 4강까지 올랐던 사실도 언급했다. 그렇게 박지은의 손놀림에 세계가 주목했다. 올해 1월, 베이징에서 열린 제1회 원양부동산배 세계여자바둑선수권대회 결승 3번기 최종 3국에서 박지은은 반상의 철녀 루이나이웨이(45·芮乃偉) 9단을 316수 만에 백 불계로 제압,2대1로 역전 우승했다. 세계대회 우승자에게 한 계단씩 올려주는 규정에 따라 박지은은 8단에서 입신(入神·9단의 별칭)에 등극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여성 9단은 루이와 역시 중국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 중인 펑윈(豊雲)에 이어 박지은이 세 번째다. 국내 토종으로서는 유일한 여신(女神)의 자리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박지은은 지난 3월 28일 한국기원 특별대국실에서 벌어진 제13회 가그린배 프로여류국수전 결승 3번기 최종국에서 이민진 5단을 꺾고 종합 전적 2승1패로 생애 첫 여류국수를 차지했다. 이렇듯 그의 기세는 멈출 줄 모른다.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정관장배 한·중·일 국가대표 대회에서 주장을 맡아 2년 연속 대회우승을 이끌었다. 이민진 5단이 중국의 마지막 선수 루이 9단을 물리쳐 한국팀의 우승을 확정지었다. 박지은의 차례까지 오기 전에 상대를 미리 제압했던 것이다. 박지은 9단은 남자 프로기사가 무색할 정도의 강한 전투력을 바탕으로 한 공격적 기풍을 갖고 있다. 한때 조훈현9단에게 2전 전승을 거둔 바도 있다. 최근엔 정교함까지 갖추면서 한층 노련해졌다는 평을 듣는다. 최강 루이 9단과의 통산 전적은 8승 14패였지만 최근들어 승률이 앞서고 있다. 또한 지난해의 경우 40승 24패로 다승 및 승률이 남녀 모두 합해 25위에 이른다. 이런 까닭과 깜찍한 외모로 ‘인기기사상’을 5년 연속 차지했다. 베이징에서 막 돌아온 지난주 한국기원 대국실에서 박지은을 만났다.25세의 처녀라면 어느 정도 화장을 했을 법도 한데 맨 얼굴에다 편한 운동화 차림었다. ▶바둑계 대선배이자 세계 최강 루이9단을 이겼는데 비결이 있나요. “(루이 9단이)요즘 컨디션이 안좋은 것 같아요. 실수가 많아졌어요. 또 초읽기에 약간 약한 것 같구요.” ▶별명이 ‘여자 유창혁’이라고 하는데 동의하는지요. “한때 그렇게 불렸는 데 요즘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독자적인 기풍을 개발했다고나 할까요. 예를 들어 실리를 많이 챙깁니다. 안정을 바탕으로 공세를 많이 취하는 편이지요.” ▶이세돌 9단과는 나이가 동갑인데. “바둑을 잘 두는 친구입니다.(이세돌은)결혼해 아이까지 낳고 잘 살고 있습니다. 저는 적어도 서른 살까지는 결혼생각은 없고 오로지 바둑 공부에만 전념할 생각입니다. 이세돌처럼 성적도 잘 내야 하기 때문에 이세돌과 붙어 이겨야 합니다.” ▶바둑은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열살 때였습니다. 어머니는 장녀인 저한테 많은 기대를 했지요. 그래서 피아노학원이다, 속셈학원이다 등등에 많이 다녔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너무 싫었습니다. 하루는 바둑 두시는 아버지(아마 1급 수준)의 모습을 보고 바둑에 재미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바둑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학교공부가 계속 걸리더라구요.14세때 프로로 입단하면서 다니던 중학교를 그만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학업을 포기할 때 어머니의 반대가 많았지만 세계적인 기사로 성장한 지금은 대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박 9단의 부모는 서울에서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다. 아버지와 바둑을 가끔 두느냐는 질문에 “아버지가 치수고치기(고수와 하수간의 접바둑)를 잘 안해 자주 두지 않는다.”고 웃었다. ▶흔히 바둑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합니다. “그런 것 같아요. 바둑은 변화가 무궁무진하잖아요. 위기십결 같은 바둑 격언은 어렸을 때 이미 외워두었습니다. 전에는 적의 진영에 갈 때 경솔해 패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에는 그러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는 바둑계의 존경하는 선배로 조치훈 9단을 거론한다. 어렸을 때 ‘조치훈 걸작선’을 읽었고 지금 나이(52)에도 목숨을 걸고 두는 모습이 여전히 인상깊게 다가온다고 했다. 시합이 없는 날에는 기보를 자주 본다는 그에게 승률을 많이 올리는 비결을 묻자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듯이 상대의 기풍에 따라 어떻게 판을 짤지 고심을 한다.”고 대답했다. 앞으로의 꿈에 대해서는 “즐겁게 사는 것”이라고 하면서 살짝 미소 짓는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아마추어들에게 ‘원포인트레슨’을 해달라고 하자 “포석에 얽매이지 말고 수읽기와 사활에 신경쓰라.”고 의미있는 말을 던졌다. 인물전문 기자 km@seoul.co.kr 사진 최해국기자 seaworld@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83년 부산출생 ▲93년 바둑입문 ▲97년 프로입단 ▲99년 2단승단, 제9기 신인왕전 본선 ▲2001년 3단 승단, 제36기 패왕전 본선 ▲02년 호작배 준우승, 일본 도요타·덴소배 본선 ▲03년 제5기 여류명인전 본선,4단 승단, 제5회 농심신라면배 한국대표(최초의 여류기사 국가대표), 제2회 정관장배 우승, 생애 첫 세계여자바둑퀸 등정 ▲06년 제4회 정관장배 한국대표 ▲07년 7단 승단, 제5회 정관장배 한국대표, 제9회 STX배 여류명인전 본선진출, 제1회 대리배 세계바둑여자 선수권대회 우승(8단승단) 08년 제6회 정관장배 한국대표, 바둑대상 여자기사상 수상, 여자인기기사상(5연속 수상), 제1회 원양부동산배 우승(한국 최초 여류 9단 승단), 제13회 여류국수전 우승
  • 함양 인구 48%↓ 가구 수 13%↑

    함양 인구 48%↓ 가구 수 13%↑

    70년 전 경남 함양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당시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통계자료집 ‘군세요람(郡勢要覽)이 최근 발견됐다. 함양군은 11일 조성재 홍보계장이 부친(2007년 작고)의 유품을 정리하다 1938년 발간된 군세요람을 발견, 군청 자료실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군세요람에 따르면 1937년 말 현재 함양에는 1만 5693가구에 7만 7853명이 살고 있었다. 일본인 396명과 서양인 15명이 포함된 숫자다. 현재와 비교하면 인구는 4만 598명으로 거의 절반 가까이 줄었지만 가구 수는 1만 7750가구로 오히려 늘었다. 이는 당시 가구당 인구가 평균 4.92명인 데 비해 요즘은 핵가족으로 분열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1937년 출생자는 2221명이고, 그해 1514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월별 출생자 숫자를 살피면 재미있는 상황이 발견된다.1월부터 7월까지 매월 200명 이상 신생아가 태어났지만 8월부터 줄어들기 시작,9월 181명,10월 151명으로 급격히 줄다가 11월부터 다시 회복됐다. 이는 가구당 7명 안팎의 대가족이 한 집에 살면서 집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은 겨울철에는 부모들의 성(姓)관계가 제약을 받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현재 함양군이 주요 특산품으로 개발 중인 곶감을 만드는 감나무가 무려 9만 6133그루나 심어져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로 미뤄 일제 때도 ‘함양곶감’은 명성을 떨쳤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밖에 농·상업 종사자와 쌀·보리 등 주요 식량의 생산량, 소·돼지·양봉 등 가축의 사육 마릿수 등도 꼼꼼하게 조사, 기록돼 있었다. 군 관계자는 “인구통계뿐만 아니라 공산품의 생산량과 종사자, 세금 수입, 교육수준, 금융업, 범법자 등의 숫자도 담고 있다.”며 “이 책에 담겨진 내용은 우리나라의 근대 농촌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함안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미국 작가 무어 소설 ‘더티 잡’

    ‘베스트셀러 제조기’로 불리는 미국 작가 크리스토퍼 무어(51)는 ‘문학의 요리사’로 불린다. 삶의 부조리를 유머로 절묘하게 요리해내는 빼어난 재주를 갖고 있는 까닭이다. 죽음과 같은 묵직한 주제도 그의 손에 들어가면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스스로 그 무거움을 극복하게 만든다. 무어의 대표작 ‘더티 잡’(Dirty Job, 황소연 옮김, 민음사 펴냄)이 번역돼 나왔다. 죽음에 관한 블랙 코미디라 할 이 소설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유도한다. 죽음을 비웃을 수는 없어도 죽음 앞에서 크게 웃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죽음도 출생, 성장, 결혼 같은 삶의 과정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의 일인 만큼 특별히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꽃미남이고 능력도 있어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는 남성에 주눅이 든 소심하고 나약한 남성 찰리가 소설의 주인공. 그는 우연히 아름답고 마음씨 고운 아내를 맞아들인다. 하지만 행운은 오래가지 못한다. 아내는 딸 소피를 낳다가 숨을 거둔다. 이때 소심한 남성 특유의 피해의식이 작동한다.“누군가 날 가지고 논다.”는 생각이 엮어내는 상황들은 익살스럽기 짝이 없지만 연민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소시민적 행복이 깨질까 전전긍긍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결국 사랑하는 딸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정면으로 맞서게 하는 또다른 동력이 된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의 ‘영혼의 그릇’을 수거해 윤회가 원활히 이뤄지도록 도와주는 ‘더러운 직업’ 종사자 찰리의 눈을 통해 죽음은 새롭게 다가온다.“이런 일은 언제든 일어나게 마련이죠.”라며 담담히 받아들일 있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두려운 것을 적극 끌어안을 때만이 내 영혼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패러독스, 이것이 바로 작가가 주는 교훈”이라고 이 소설을 평했다.1만 4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4) 증산도 상생문화硏 빅토르 앗크닌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4) 증산도 상생문화硏 빅토르 앗크닌

    대전시 중구 선화동의 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는 민족종교 증산도 사상의 학술적인 정리와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증산도의 대뇌격 기관. 외국인 3명을 포함한 25명의 연구원이 크고 작은 모임과 세미나를 이어가며 증산도 사상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호흡을 맞추고 있다. 이곳에서 증산도 도전(道典)을 러시아어로 번역하는 막바지 작업에 매달려 있는 캐나다 국적의 연구원 빅토르 앗크닌(56). 옛소련 하카스 자치주의 원주민 출신으로 한국의 소수종교 증산도와 한국문화를 러시아에 알리기 위한 첨병 역할을 4년째 맡고 있는 유별난 언어학자이자 문화 호사가이다. ● 옛 소련 하카스 자치주 원주민 출신 증산도 도전을 양손에 든 채 1층 자료실에서 객을 맞은 빅토르 앗크닌은 외국인이라기보다는 한국인에 아주 가까운 동양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연구소 주변에 흐드러진 봄꽃만큼이나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손을 내민 앗크닌은 능숙한 한국어로 증산도의 요체를 펼쳐놓았다. 시베리아 아래 크라스노얄스크 남쪽, 인구 12만명의 작은 도시 아바칸에서 홀어머니 슬하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옛소련 자치주의 원주민이 환갑에 가까운 나이에 한국의 소수종교 증산도, 아니 한국문화에 깊숙이 빠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증산도에 입도(入道)하면 그 순간부터 증산도에 매몰될 수밖에 없지요. 순수하게 증산도를 보기 위해 객관적인 제3자의 입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증산도를 웬만한 증산도 도인들보다 더 잘 알고 깊숙이 빠져 있지만 오염되지 않은 증산도를 파고들기 위해 ‘비신자´로 머물러 있다는 앗크닌. 그는 자치주 원주민이란, 이른바 출신성분 때문에 적지않은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했던 지난날을 넌지시 들춰낸다. 레닌그라드대(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 역사학부에 다니던 형이 “언어에 재능이 있는 것 같으니 레닌그라드대 외국어학부를 지원해 보라.”고 권유해 고교 졸업을 2년 앞두고 레닌그라드대학에 입학하고 싶다는 뜻을 간곡하게 담은 편지를 직접 썼다고 한다. 모국어와 가까운 터키어를 전공하고 싶었지만 입학연도엔 터키어과 모집이 없어 대신 일어과를 지원했는데 그만 낙방하고 말았다. “레닌그라드대 일어과는 최상의 출신성분에 최고 점수를 맞아야만 들어갈 수 있었어요. 자치주 소수민족의 애환을 처음 알았지요.” 결국 차선의 선택으로 ‘조선어학과´에 들어간 게 사실상 한국과 맺은 인연이라면 첫 인연이다. 대학 재학시절 소련에서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거의 적국 수준. 졸업을 해도 마땅히 할 일이 없을 만큼 조선어학과 학생들은 찬밥신세였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어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조선 역사와 문학, 민속학, 종교까지 파고들었으니 ‘한국학´을 제대로 공부한 셈이다. 레닌그라드대 재학중 북한의 김일성대학에 유학해 중세 조선어사와 문법, 역사도 배웠다. 레닌그라드대에서 조선어부터 시작해 영어, 중국어, 일어를 배웠고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언어학연구소 석사과정을 하면서 러시아어, 독일어, 만주어, 몽골어, 에벵키어, 타타르어를 더해 자유롭게 구사하는 언어가 무려 11개 국어나 된다. “대학 시절, 그때만 해도 ‘결코 갈 수 없는 나라´였던 남한에서 직접 들어온 책이란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신문이나 TV에서도 한국과 관련해 좋은 쪽 이야기들은 아예 보거나 들을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 생애 처음 본 한국인 고송무씨와 교유… 한국공부 힘써 1970년대말 핀란드 헬싱키에서 만난 고송무(1947∼1993)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본 남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고송무는 중앙아시아에서 한인들을 연구하는 데 몸 바쳐 ‘고려인 연구분야의 선구자´로 통하는 인물. 당시 헬싱키국립대 한국어 교수였던 고송무와 교유하면서 얻은 국어사전이며 잡지들을 몰래 갖고 삼엄한 러시아 국경을 넘을 때 진땀을 얼마나 흘렸을까. 한국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져 갔고 1985년부터는 유럽한국학협회 회원 자격으로 한국학 관련 학과가 설치된 유럽의 대학들을 돌며 논문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1990년 한·소 수교가 됐지만 여전히 소련에선 한국 관련 책이며 문헌들을 보기란 수월치 않았다고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 한국어문화센터 부소장으로 일한 지 6년쯤 됐을까. 우연히 접한 증산도 사상서 ‘이것이 개벽이다´ 요약집에 눈이 번쩍 뜨였다고 한다. “종교·사상서에 앞서 한국의 문화와 고대역사, 철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독특한 책이었어요. 러시아를 비롯해 서양인들에겐 생소한 후천(後天)이며 개벽, 원시반본(原始返本) 사상이 눈에 쏙 들었습니다.” 1년에 걸쳐 요약집을 러시아어로 모두 번역해 놓았다. 그 때문이었을까. 한국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수교 이듬해부터 수년간 학술진흥재단과 대학들의 초청으로 무려 15차례나 한국을 다녀갔다고 한다. 소수민족 출신으로 겪은 인생의 첫 좌절 기억에 얹혀, 탈이데올로기를 앞세운 페레스트로이카(개혁)에도 불구하고 변화하지 않는 소련의 현실에 불만이 컸던 것 같다. 결국 2000년 소련 생활을 정리하고 캐나다 이민을 택했다. “이민 후 본격적으로 러시아 문화와 한국 문화의 관계에 집착하게 됐지요. 옛소련 자치주였던 터키계 저의 모국 언어와 한국어는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샤머니즘의 상관성도 아주 많고요.” 한국·캐나다 문인협회에 들어가 러시아와 한국의 시문학들을 서로 비교번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자신을 애타게 수소문한 증산도측이 증산도 도전의 러시아어 번역을 의뢰해온 데 선뜻 응했고 4년째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증산도 도전의 러시아판은 영어, 일어, 중국어, 독어, 불어, 스페인어 등 6개 언어 번역에 이은 마지막 번역작업.900쪽 분량으로 번역되어 ‘러시아판 도전´이 사실상 마무리됐지만 마지막 정리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증산도와 인연이 돼서 지금 한국에 몸을 두고 있지만 따져보면 먼 옛날부터 한국에 오도록 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한국문화의 많은 부분을 담고 있는 증산도 도전을 러시아인들에게 알리는 기수 역할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 틈만 나면 사찰·박물관 등 찾아다녀 ‘우주 순환의 큰 판 짜기´, 증산도에서 흔히 말하는 도수(度數)를 인용해 자신의 한국 살이를 “내 뜻이 아닌, 누군가가 정해놓은 길”로 받아들인다는 앗크닌. 틈만 나면 훌쩍 떠나 사찰이나 박물관 등 한국의 문화를 알 수 있는 구석구석을 뒤진다. 한국인을 닮은 생김새 때문인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외국에서 오래 살다가 고국에 돌아온 한국인”으로 보아주는 게 재미있고 반갑단다. “서양의 시간관이 직선적이라면 동양의 시간관은 순환성이 아주 강합니다. 개개인이 자신의 근본과 뿌리를 찾자는 원시반본도 결국 동양의 순환적인 시간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요즘은 부쩍 천도교며 원불교 같은 한국의 다른 민족종교들을 비교하는 데 관심이 많아졌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너무 서두는 게 큰 흠인 것 같아요. 뿌리와 근본을 찾아가는 원시반본이 중요하지만 천천히 나를 돌아보는 느림의 원시반본이야말로 지금 한국인들에게 소중한 가치가 아닐까요. 내가 한국에 사는 것도 그 길을 찾기 위한 작업인 것 같아요.” 글 사진 대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빅토르 앗크닌 ●1952년 옛소련 하카스 자치주 아바칸 출생 ●1973∼1974년 김일성대학 유학 ●1975년 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 동양학부 조선어과 졸업 ●1980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언어학연구소 석사 ●1980∼2000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언어학연구소 연구원 ●1991∼2000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한국어 문화센터 부소장 ●2000년 캐나다 이민 ●2002∼2004년 한국·캐나다 문인협회 회원 ●2004년∼ 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원, 증산도 도전 러시아어 번역
  • 대형 길거리 ‘아톰 벽화’ 日서 공개

    인기 애니메이션 ‘아톰’의 원작자 데츠카 오사무의 캐릭터를 바탕으로 한 대형 벽화가 완성됐다. 지난 5일 도쿄 신주쿠구에서는 아톰 등의 인기캐릭터가 그려진 대형 벽화가 공개돼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의 눈길을 끌었다. 벽화는 JR다카다노바바역의 와세다출입구 에 그려졌으며 그림은 아톰 이외에도 오차노미즈박사(아톰을 다시 탄생시킨 장본인이자 과학청 장관)·손오공·밀림의 왕 레오 등 다양한 인기캐릭터로 꾸며졌다. 이처럼 다카다노바바 역이 벽화 제작 장소로 선택된 것은 지난 2003년 4월 7일 오사무 감독이 아톰의 출생지를 다카다노바바에 있는 과학청으로 정했기 때문. 신주쿠구청은 지난해 여름부터 환경 개선과 아톰의 출생지 홍보를 위해 벽화 디자인을 시작, ‘온난화에 처한 지구를 구해줘’라는 테마로 벽화 제작을 시작했다. 신주쿠구청장인 나카야마 히사코(中山弘子)는 “완성된 벽화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벅차오른다.”며 “주민과 지역이 하나가 돼 거리 환경을 바꾼 좋은 예가 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또 지역홍보에 앞장서고 있는 카노 요시오(加納由雄)는 “이 벽화가 우리 동네 이미지 개선에 큰 도움을 줄 것같다.”며 “다카다노바바 역의 명물이 된다면 매우 기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매년 4월 7일은 아톰의 생일로 신주쿠구는 해마다 아톰과 관련된 행사를 주최해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Seoul In] 보건소 내 모유수유 클리닉 개설

    서초구(구청장 박성중) 모유수유에 어려움을 겪는 산모를 위해 보건소에 모유수유클리닉을 개설한다. 국제모유수유 전문가 자격증을 가진 강사가 출산 후 2개월 이내 산모와 아기를 대상으로 모유수유를 위한 바른 자세나 젖물리는 법, 유방문제 관리와 수유량 조정방법, 모유수유 실패 대처법 등을 1대1로 지도한다. 노산, 미숙아 출생 가정에는 가정방문 서비스도 한다. 매주 목요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무료로 운영된다. 모자보건팀 570-6816.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코미디계 이효리’에서 사회운동가 변신 권귀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코미디계 이효리’에서 사회운동가 변신 권귀옥

    과거시절 “배고파 죽겠네.”라고 했다면 요즘에는 “바빠 죽겠네.”라고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심심해 죽겠네.”가 아닐까. 40대 이상의 장년층에게 가장 잊지 못할 추억의 ‘외화’를 꼽으라면 아마 ‘왈가닥 루시’나 ‘홀쭉이와 뚱뚱이 대소동’ 등이겠다.1970년대 중반 국내 방영된 ‘왈가닥 루시’는 쿠바 음악밴드를 지휘하는 리카르도와 그의 아내 루시의 일상생활을 다룬 미국의 전설적 시트콤으로 회자된다. 이 무렵 우리 안방극장에는 코미디계의 1세대로 일컫는 인물, 즉 배삼룡, 구봉서, 서영춘 등을 비롯해 배일집, 권귀옥, 배연정, 남철·남성남, 그리고 뚱뚱이와 홀쭉이의 양훈·양석천 콤비 등이 당시 간판 코미디프로인 ‘웃으면 복이와요’를 통해 등장했다. 이들은 말 그대로 “배고파 죽겠네.”라고 했던 시절, 온갖 시름에 지친 국민들에게 많은 웃음을 선사했다. 이 가운데 권귀옥은 한국의 ‘왈가닥 루시’로 통하며 지금의 이효리처럼 많은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특히 ‘늘씬한 미녀 미스 권과 땅딸이 이기동’은 단연 압권이었다. 인기 절정이던 그럴 즈음,1980년 나이 서른에 미국으로 훌쩍 떠나버려 아쉬움을 더했다. 그간 한국에 들어와 간간이 방송활동을 하기도 했다. 세월이 지난 1997년, 미국 생활을 완전히 정리한 이후 봉사활동을 하며 지점토와 도예가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1970년 MBC탤런트 공채2기로 연예계에 데뷔했지만 본래 문학도를 지망할 만큼 그는 예술과 문학에 조예가 깊다. 하여, 귀국하자마자 한양여대 도예과 한홍곤 교수한테 찾아가 도예를 배웠다. 10년 세월이 지난 지금, 나름대로 ‘흙의 이치’를 터득했고 얼마전에는 ‘권귀옥의 흙장난’이란 개인전까지 열었다. 이때 정·재계 인사들이 많이 찾아와 평소의 인간관계를 입증했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대부분 인간 시리즈. 전시 도록의 인사말을 빌리면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못된 인간 빼고 다, 어린이들은 몽땅 예쁘다.”란다. 전시 수익금은 전부 어린이들을 위해 사용했다. 요즘에는 ‘청계천’을 주제로 한 ‘흙장난’에 여념이 없다. 왜 흙에 파묻혔을까. 알고 보니 깊은 뜻이 있다. 한국수양부모협회(회장 박영숙)의 후원회장을 맡아 뜻에 동참하는 전국의 순수 ‘개미회원’들에게 보답 차원에서 도예작품을 하고 있는 것. 즉 ‘사회운동가=도예가’로 제2의 삶을 사는 셈이다. 서울 정릉동의 전시실에서 권씨를 만났다. 분명 1950년생인데 40대의 얼굴로 보였다. 여전히 아름답다고 했더니 “철이 없어 그렇다. 어린이하고 자주 지내니 도로 젊어진 것 같다.”며 웃는다. 또 한 달 전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이젠 고아가 됐다는 심정도 내비쳤다. 먼저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우리나라는 현재 2명당 1명꼴로 아이를 낳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저출산국가이죠. 이대로 간다면 2305년이면 한국소멸을 알리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막내아이가 태어납니다. 국가는 물론이요, 민족과 문화가 통째로 없어진다는 것이지요. 요즘 미래국가로 떠오르는 인도를 보십시오.1명당 6.8명을 낳고 있습니다. 미래는 ‘쪽수’에 달려 있지요.” ▶수양부모협회는 어떤 일을 하는 단체인가요.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제는 그 도움과 사랑을 돌려줘야 할 때입니다. 저는 결혼은 안했지만 아이를 낳아 키워 미혼모나 해체가정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이서 한 아이를 키우기도 힘든데 혼자서 아이를 키울 때 국가에서 지원은 못해줄망정 손가락질 하면 안 되거든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이를 고아원 보낼 때 어떤 경우에는 친권을 포기하게 됩니다. 이렇게 어려움에 처해 있는 분의 자녀를 보통 가정에서 잠시 키우다가 낳은 부모가 정상적인 생활을 찾았을 때 다시 돌려주는 운동에 앞장서기로 했습니다. 협회는 해체가정에 대한 대안모색에서 출발했지요. 또한 2010년이면 고아원이 대부분 없어지게 돼 있어 앞으로는 수양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습니까. “협회는 외환위기(IMF)때 생겼습니다. 미국에서 귀국하면서 알고 지내던 유엔미래포럼 한국대표 박영숙씨를 만난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힘을 모아보기로 했지요.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는 최저 출산국가이면서도 고아 수출국가이기도 해요. 이젠 우리 땅에서 낳아진 아이들을 우리가 키워야 합니다. 외국에 입양된 아이들이 잘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비운의 삶을 사는 경우도 많거든요.” ▶유명 코미디언에서 이젠 사회운동가로 나선 셈입니다. “사회운동이라기보다…, 미국에 살면서도 사회단체 등에서 식사와 청소 도우미 등 자원봉사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거기서 우리나라가 ‘고아수출국이다’ ‘아동학대가 많다.’ 등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솔직히 창피했습니다. 아무리 고아라도 동물처럼 집단생활을 하면서 키운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또 고아원에서 가끔 버려지는 아이들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매우 아팠습니다. 내 아이가 소중하면 이웃 아이도 당연히 소중한 것이 아닙니까.” ▶원래부터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나요. “부산 동래여고 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부산시립병원에 버려진 아이들이 많았지요. 그때 아이들은 사회 저명인사 등 아무 이름이나 붙여졌는데 어느날 ‘신성일’‘엄앵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재미삼아 찾아갔어요. 그런데 먹을 것, 기저귀, 옷가지 등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것을 보고 너무 불쌍해 그 자리에서 막 울었습니다. 그래서 걸스카우트에 가입했고 매주 일요일마다 그 아이들과 만났지요. 한번 안아주면 제 목을 꼭 껴안았던 그때 아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도예는 언제부터 하셨나요. “저는 도예라는 말을 안쓰고 ‘흙장난’이라고 합니다. 한 10년정도 됐어요. 원래는 지점토를 했어요(‘종이 흙 입문’의 공동저자). 그런데 오래 못가고 잘 바스러지더라구요. 그래서 흙으로 전환했어요. 저는 철들고 나서 손톱을 길러본 적이 없어요. 뭔가 자꾸 만지는 버릇이 있습니다. 어릴 때 놀이터에서도 흙장난하는 것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요새는 ‘고통시리즈’와 ‘청계천시리즈’를 하고 있습니다. 청계천에 맑은 물이 흐를 때 너무 기뻐서 ‘도심속의 청계천’을 하게 됐지요. 제가 만든 작품은 협회 후원에 참여하는 분들에게만 선물로 주기 때문에 작품가치가 매우 높지요.(웃음)” ▶어떤 도예기법인가요. “저는 형식과 기법을 다 무시해요. 제맘대로 흙을 주무르지요. 또 절대 그릇을 안만들어요. 물레도 쓰지 않고요. 흙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선물을 만든다고 생각하시면 돼요.‘고통시리즈’를 하면서 못 하나 박아줄 남자도 없이 혼자 흙과 씨름하며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남들한테는 항상 웃습니다. 제 DNA는 아버님을 200% 닮았거든요.” 권씨는 어릴 적부터 부산 서대신동 부잣집 딸로 통했다. 부친은 부산일보 기자 출신으로 글과 그림에 능했다고 한다. 만화가였던 오빠 권성국은 ‘허어선생’으로 한국일보 등을 통해 필명을 날렸다. 언니와 동생도 미대와 음대를 각각 나와 예술가 집안이나 다름없다고 권씨는 말한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 용도폐기가 안됐으면 합니다. 흔히 세가지 부류가 있지요. 사회에 필요한 사람, 있으나마나 한 사람, 또 있어서는 안될 사람 등이지요. 이제는 우리 사회에 대해 밥값을 하고 싶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아낌없이 (마음을)퍼줄 생각입니다. 하루에 50번씩 웃는 것도 그런 마음에서이지요.” 그의 도예작품은 얼마전 동래여고 교지에 표지그림으로 실렸다. 코미디언 권귀옥이 아닌 도예가로 모교가 공식 인정(?)했다. 그는 수양부모를 기다리는 아이들과 늘 함께 지낸다. 아울러 이들을 보면서 소중한 도예작품(선물)을 만든다. 그는 “요즘에는 다들 ‘바빠 죽겠네.’라고 하지만 곧 ‘심심해 죽겠네.’라고 할 텐데 심심하지 않도록 열심히 친구들과 더불어 살겠다.”고 했다.“다음달 남산에 ‘흙장난’이라는 사랑방을 오픈하거든요. 심심하거든 그리 놀러오세요.”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0년 부산 출생 ▲68년 동래여고 졸업 ▲70년 MBC공채2기 탤런트 ▲74년 코미디언으로 전향 ▲76년 MBC 최우수연기상(코미디부문) ▲77∼85년 MBC라디오 ‘가요열차’‘싱글벙글쇼’‘라디오가요퀴즈’ ▲86년 KBS라디오 ‘저녁의 가로수를 누비며’ 진행 ▲98년 ‘사람 주제’의 도예활동과 출산장려운동 참여 시작 ▲2006년 도예 첫 개인전(경향갤러리) ▲현재 사단법인 한국수양부모협회 후원회 회장. 도예작품 활동 # 주요 코미디프로 출연작 MBC-TV 웃으면 복이와요·부부만세·코미디극장·쇼반세기 등 # 주요 도예전 권귀옥의 흙장난(개인전)외 그룹전 3회 # 저서 ‘종이 흙 입문’ 공동저자
  • [부고]이동욱 전 동아일보 회장 별세

    [부고]이동욱 전 동아일보 회장 별세

    원로 언론인인 오헌 이동욱 전 동아일보 회장이 2일 별세했다.91세.1917년 황해도 봉산 출생인 이 전 회장은 1941년 일본 와세다대 정경학부를 졸업했다.47년 동아일보 입사 후 편집국 조사부장, 논설위원, 이사, 주필 등을 지냈고, 부사장과 사장을 거쳐 81년부터 83년까지 동아일보 회장으로 재직했다.94년부터 2001년까지는 동아꿈나무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88년 타이완 정부가 주는 국제교류상을,2004년에는 서울언론인클럽의 언론상 한길상을 받았다. 저서로 ‘미국자본주의론’이 있다. 유족으로는 권열(사업), 기봉(포항공대 교수)씨 등 2남이 있다. 장례는 5일 오전 8시 동아일보 회사장으로 거행된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이며 발인은 5일 오전 8시.(02)921-3699.
  • [Metro & Local] 경기, 아이돌보미 서비스 제공

    경기도는 맞벌이 부부의 아동양육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다양한 ‘아이돌보미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30일 밝혔다. 출생 3개월 이상부터 12세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이용자나 돌보미의 집에서 부모가 올 때까지 임시보육, 보육시설 보내기, 놀이활동 등을 도와 준다. 요금은 소득 수준에 따라 2시간 기준으로 2000∼1만원까지 3종류가 있으며 가구당 매달 최대 120시간까지 이용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도는 조손가정, 한부모가정, 결혼이민자 가정 등의 아동양육을 지원하기 위해 아동 무상 돌보미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장애아를 둔 저소득층 가정에서 질병, 사회활동 등으로 아이를 돌보기 힘들 경우 연간 280시간 이내에서 장애아 돌보미를 파견한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명화연구에 푹 빠진 원로 법의학자 문국진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명화연구에 푹 빠진 원로 법의학자 문국진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들이 대부분 시력장애를 앓고 있었다면 불멸의 명화들은 과연 어떻게 탄생됐을까.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해바라기’‘밤의 카페’‘자화상’ 등을 보면 온통 노란색이 깔려 있다. 평소 ‘압생트’라는 싸구려 술을 즐겨 마신 까닭에 황시증(黃視症,xanthopia)에 시달렸고 이는 오히려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기기묘묘한 노랑과 파랑조의 찬란한 빛에 잔뜩 취하게 만들었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는 철저하게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다. 특히 붓놀림이 매우 빨랐으며 붓질을 시작한 첫 장소에서 그날 무조건 그림을 완성했다. 어려서부터 눈에 안개가 낀 것 같다는 증상(백내장)을 자주 호소했으며 60세 이후에는 시력이 더욱 악화돼 한쪽 눈을 수술 받았다. 그러나 수술받은 눈이 그만 ‘청시증(靑視症,cyanopsia)에 걸려 붉은색과 황색은 보이지 않게 됐다. 그의 대표작 ‘수련’의 회화기법에서 보면 잘 드러나 있다. 에드가르 드가(1834∼1917)는 1870년 보불전쟁에 참전했는데 총을 조준하다가 한쪽 눈이 잘 보이지 않아 후방부대에 배치됐다. 드가의 가계에는 유전적으로 눈에 장애가 있었다. 드가는 처음에는 녹내장, 나중에는 ‘망막색소변성’‘망막결핵’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당시 미시간대학의 안과교수 레빈은 ‘황반변성’으로 결론지었다.‘발레시험’ 등 그가 그림들의 중심부를 여백으로 놔두면서 주변에 역점을 두었던 것도 시력장애 때문이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푸른 눈의 여인’을 그린 아마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 그가 그린 인물상은 대부분 목이 길다. 당시 의사들은 심한 난시증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사람의 목을 일부러 길게 늘린 것이 아니라 그가 보이는 대로 그렸던 것이 오히려 예술작품이 됐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빛의 화가 르누아르가 여자를 점점 뚱뚱하게 그리게 된 것도 류머티즘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평론가나 예술가가 아닌 국내 원로 법의학자의 오랜 연구노력에 의해 이같은 내용이 책으로 소개돼 관심을 모은다. 우리나라 법의학의 개척자로 잘 알려진 문국진(83) 원로박사가 주인공이다. 팔순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왕성하게 강의 및 연구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질병이 탄생시킨 명화’를 펴내 또 한번 노익장을 과시한다. 그는 1990년 정년퇴임 이후 예술가의 질병과 작품의 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전기와 병적(病跡)기록을 면밀하게 조사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해오고 있다. 질병이 그들의 작품에 과연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등 ‘의학과 예술’을 접목시키면서 20년째 책으로 꾸준히 펴내고 있는 것. 그동안 ‘모차르트의 귀’‘법의학자의 눈으로 본 그림속 나체’‘명화와 의학의 만남’‘미술과 범죄’ 등 30권이 넘는다. 그는 강단에 있을 때는 물론 지금도 외국에 나갈 일이 있을 때면 반드시 현지 박물관과 동네 화랑까지 들러 자료도 꼼꼼하게 수집하고 좋은 그림을 법의학적 관점에서 눈여겨 보는 버릇이 있다. 이른바 ‘예술의 의학적 탐색’이자 ‘과학으로 명화의 진실을 벗기는’ 작업인 셈이다. 한강이 바라다 보이는 서울 여의도의 자택에서 노(老)박사를 만났다. 실내에는 미술작품들이 몇 점 걸려 있었다. 때마침 ‘해바라기’ 그림이 보여 자연스럽게 고흐 얘기로 시작됐다. “알다시피 고흐는 압생트 중독으로 인해 노랑에 집착하게 됩니다. 원래 프랑스 의사가 환자 치료용으로 처방한 것이 주류업체로 흘러들어가 ‘악마의 술’로 둔갑했지요. 당시 수많은 예술가들이 오후 5시 정도만 되면 삼삼오오 모여 압생트를 즐겼습니다. 불후의 명작 ‘해바라기’도 압생트 중독의 결과였지요. 고흐는 또 귀를 자르게 되고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다행히 ‘레이’라는 좋은 레지던트 의사를 만나게 되는데 사후에 명작이 된 ‘의사 레이의 초상’도 이 때 탄생됩니다.” 법의학자의 분석이 흥미진진하다. 어떻게 해서 이같은 경지에 올랐을까. 그도 처음에는 예술과 과학은 서로 교감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점차 작품 속에는 화가의 능력, 기술, 문화적 상황 등이 담겨 있으며 특히 같은 소재의 그림이라도 화가가 지닌 질병과 정신건강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의 설명은 거침없이 계속된다. “미술작품과 화가의 질병은 얽히고 설켜 있다고 볼 수 있지요. 질병이 명화의 탄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명백히 하는 것은 명화 탄생의 내막을 이해하는데 유익한 도움이 됩니다. 그림에 표현된 불안, 공포, 슬픔, 분노 등 인간의 아픔에 대한 기전을 의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해석하고, 또 반대로 의학적인 지식과 노력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의학적인 설명 이상으로 잘 표현돼 감탄을 금할 수 없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의학과 미술은 한 곳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태고적 인간이 동굴에서 수렵생활할 때 주술과 기원이 함께 이루어졌으며 주술이 ‘의학’이라면 기원은 곧 ‘미술’이라고 했다. 동굴안에 짐승 등의 벽화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법의학과 미술의 관계는 어떻게 봐야 합니까. “법의학은 임상의학과 엄연히 다르지요. 예를 들어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보십시오. 작가는 난시인 줄 모르게 한결같이 자신이 보이는 대로 목을 길게 표현했습니다. 화가들은 천재성과 예리한 감수성도 있지만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무서운 집착이 있습니다. 주위의 도덕적 좌표와는 상관없이 화가는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하게 됩니다. 제가 요즘도 후배들한테 강의할 때 이같은 점을 예로 들며 지성만이 아닌 감성과 예술적 마인드를 가지라고 강조합니다.” 그가 법의학에 관심을 두게 된 데는 4·19혁명때 마산 앞바다에서 떠오른 김주열 군의 시신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 작용했다. 시신을 훼손하는 것은 두번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 하여,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던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법의학과 과학수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또한 1976년 고려대 김상협 총장의 배려로 우리나라 처음으로 법의학 교실을 열게 됐다. 하지만 법의학을 공부하겠다는 후학들이 없자 대법원장을 직접 찾아가 사법연수원 강의를 자청했다. 검사들의 태도가 이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어려웠던 당시를 잠시 회고했다. ▶우리나라 법의학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요. “대학인 경우 현재 13개학과가 설치돼 있으며 선진국과 네트워크도 잘 되고 있지요. 하지만 정작 필요한 ‘법의관’ 제도를 두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는 대부분 법의관을 두고 있는데 말입니다.” ▶법의관은 어떤 일을 하나요. “우리나라의 경우 변사체가 발견되면 검사나 경찰관이 가고 동네의사(공의)를 불러 적당히 검시를 합니다. 미국의 경우 교통사고로 인한 변사체일지라도 전문 법의관이 현장에 출동, 사건발생 시각과 차량 각도와 속도 등을 정확히 판단한 뒤 경찰에 뺑소니 차량의 도주로의 위치와 혈흔이 앞바퀴에 있는지 등을 상세히 알려줍니다. 검거율이 훨씬 높지요. 법의관이 할 일은 바로 초동수사의 단서확보입니다. 안양초등학생 사건도 그렇고, 초동수사를 소홀히 해서 미궁에 빠지는 사건이 얼마나 많습니까.” ▶미제사건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제도마련이 시급하지 않을까요. “대학에 학과가 있으니 이미 바탕은 마련된 셈입니다. 전문의 자격따고 나서 법의공부 2년정도 하면 됩니다. 현재 검시에 참여하도록 돼 있는, 즉 검사, 경찰, 의사들 중에 검시가 잘못돼도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는 얼마 전 ‘얼굴표정의 심리와 해부’라는 책을 펴냈다. 각종 테러범을 예방하고 찾아내는 데에는 무엇보다 ‘표정분석’이 중요하다는 소신과 철학에서 비롯됐다. 법의학의 개척자답게 ‘늙을 틈도 없는’ 연구열정이 새삼 놀라울 뿐이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5년 평양 출생. ▲55년 서울대의대 졸업. ▲65년 서울대 의학박사. ▲55∼70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장. ▲70∼90년 고려대 교수, 법의학연구소 소장. ▲73년∼현재 미·영 법의학회 회원. ▲87∼현재 학술원회원. ▲90∼현재 고려대 명예교수. ▲91∼2000년 대한법의학회 회장. ▲94∼현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 ●주요 저서 법의검시학, 사회법의학, 간호법의학, 생명논리와 안락사, 보험법리학, 모차르트의 귀, 법의학자의 눈으로 본 그림속의 나체, 명화와 의학의 만남, 질병이 탄생시킨 명화 등 수필집 포함 40여권.
  • [Local&Metro] 경기, 아이돌보미 서비스 제공

    경기도는 맞벌이 부부의 아동양육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다양한 ‘아이돌보미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30일 밝혔다. 출생 3개월 이상부터 12세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이용자나 돌보미의 집에서 부모가 올 때까지 임시보육, 보육시설 등·하원, 놀이활동 등을 도와 준다. 요금은 소득 수준에 따라 2시간 기준으로 2000∼1만원까지 3종류가 있으며 가구당 매달 최대 120시간까지 이용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도는 조손가정, 한부모가정, 결혼이민자 가정 등의 아동양육을 지원하기 위해 아동 무상 돌보미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장애아를 둔 저소득층 가정에서 질병, 사회활동 등으로 아이를 돌보기 힘들 경우 연간 280시간 이내에서 장애아 돌보미를 파견한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3) 사랑의 시튼 수녀회 양노린 수녀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3) 사랑의 시튼 수녀회 양노린 수녀

    광주광역시 본천동 광신대학 뒷산 중턱에 예쁘게 앉은 아담한 벽돌집 사랑의시튼 수녀원. 사랑의시튼 수녀회에 소속된 국내 43개 수녀원 중 본원으로,40명의 수녀가 기도와 교육사목을 함께 하고 있는 ‘금남의 집´이다. 부활절을 사흘 앞둔 지난 20일 저녁 사랑의시튼 수녀원. 성삼일(聖三日) 미사 준비를 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수녀들 사이에서 팔순을 넘긴 푸는 눈의 수녀가 눈에 띄었다. 딸 같고 동생 같은 ‘자매´들에게 어머니요, 큰언니인 양노린(81·본명 메리 노린·미국·한국명 양순희) 수녀. 지금은 이곳에서 여생의 평정을 찾고 있는 은퇴 수녀이지만 한국 땅, 전남 강진에서 교사로 평생을 살아온 강진 여성교육의 선구요 산증인이다. 시튼 수녀회는 1809년 미국 메릴랜드주 에미츠버그에서 창립된 미국 최초의 방인(邦人) 수녀회.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인근 그린스버그 시튼힐의 모원을 중심으로 전세계 54개의 분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43개 분원에 212명의 수녀가 몸담아 한길을 걷고 있다. 양노린 수녀는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랑의시튼 외국인 수녀 4명 중 가장 연장자.‘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우선적인 봉사를 드리고 그리스도교적 교육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한다.’는 수녀회 정신을 몸으로 보여주며 살아가는, 뭇 수녀들의 귀감이다. 보청기에 의지해 기자의 말을 조금이라도 더 듣기 위해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한 양노린 수녀는, 불쑥 찾아온 불청객의 물음에 답하면서도 함께 배석한 수녀들에게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느라 조금은 들떠 있었다. “평소의 노린 수녀와는 아주 다른 모습입니다.” 통역을 하던 자매들이 “노린 수녀의 입을 통해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라며 노 수녀의 끊이지 않는 이야기에 귀를 세우는 바람에 인터뷰는 어느 순간 뒷전이 되어버렸다. 매일매일 같은 지붕 아래 숨을 쉬고 살아가는 자매들에게조차도 생소한 지난 이야기들. 푸른 눈의 노 수녀가 그토록 할 말조차 가슴에 묻은 채 이땅에서 지금까지 숨가쁜 나날들을 살아오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 수녀 교수진으로 구성된 대학서 초등교육학 전공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태생. 아일랜드 출신의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자라난 노린은 자연스럽게 천주교 신앙과 삶에 젖어들었던 것으로 보인다.8남매 중 큰오빠와 남동생이 사제 출신. 큰오빠는 파라과이 사목 중 세상을 떠났고 남동생도 군종신부로 사목하다가 은퇴했다. 어릴 적부터 사랑의시튼 수녀회가 운영하는 학교를 줄곧 다녔던 노린이 수녀회에 입회한 것은 고교를 졸업한 바로 그해.“다른 길을 갈 생각 없이 당연히 선택해야 했던 일”이라는 말로 입회 때의 심경을 전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포용하는 교육’에 몸바치겠다는 생각 끝에 진학한 학교도 사랑의시튼 수녀회가 운영하는 펜실베이니아주 시튼힐 여자대학. 모두 수녀들로 교수진이 구성된 이 대학에서 초등교육학을 전공, 졸업한 뒤 5∼6개 중·고교를 돌며 교편을 잡고 있던 무렵 한국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당시 한국의 광주대교구가 미국 사랑의시튼 수녀회측에 교육선교 수녀를 파견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던 것.100명의 지원자 중 뽑힌 정예(?) 수녀 4명이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행 화물선에 몸을 실었다. 사랑의시튼 수녀회의 첫 해외 파견이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은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허덕이는 가난하고 비참한 나라로만 알려졌어요. 우리 네명의 한국 파견이 결정되자 수녀회 안팎에서 ‘수녀회측이 수녀들을 모두 사지로 몰아넣으려 한다.’며 수군댔을 정도였으니까요. 정작 우리 수녀들은 한국에 못올까 걱정이 컸는데…. 함께 자원했던 수녀들의 열정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했어요.” 피아노, 오르간, 난로를 포함해 생활 용품들을 모두 가져와야 했던 관계로 일반 여객선이 아닌 작은 화물선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일본으로 가는 메리놀선교회 수녀 3명도 함께 탔는데 일본의 어느 해역에서 태풍을 만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고 결국 선원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 1962년 전남 강진서 성요셉여고 문열어 28일 만에 인천에 도착해 처음 짐을 푼 곳은 목포. 원래 목포에서 학교를 시작하려 했으나 당시 강진의 금릉중학교가 재정난으로 폐교 직전에 있다는 소식에 새 학교를 짓는 것보다는 기존의 것을 가꾸자는 뜻을 모아 한달 만에 강진으로 이주해 시작한 게 지금의 성요셉여고다. 여자학교는 물론 여성 교육기관은 단 한 곳도 없던 1962년의 강진. 지역 주민들에게 성요셉여고 간판을 달고 영어와 음악, 무용을 가르치는 푸른 눈의 수녀들이 얼마나 신기하게 비쳐졌을까. “수녀들이 가는 곳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졸졸 따라다녔어요. 교실에서 먹고 자는 힘든 나날들이었지만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과 배우려는 학생들의 열성에 힘든 줄 몰랐어요.” 단 한명의 학생도 빼놓지 않고 일일이 가정방문을 다녔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궁벽한 농촌 살림에 삶은 계란은 손님에게 베푸는 큰 성의. 누군가가 해주었던 ‘학생 집을 방문할 때 성의를 무시하지 말라.’는 말을 의식해 가는 집마다의 ‘삶은 계란 사례’를 거절하지 못해 늘 배탈에 시달렸다며 웃는다. 올해로 개교 46년을 맞는 성요셉고교에서 노린 선생님에게 배우고 졸업한 학생만도 줄잡아 1만 5000명. 지금은 기억력도 떨어지고 거동도 예전 같지 않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웬만한 학생의 ‘어느 해 몇학년 몇반’을 얼추 알아맞혀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 영어교육에 매진… 제자만 1만 5000명 달해 전 세계에 퍼져 사는 제자들이 보내 오는 편지를 읽고 답장하는 일도 큰일. 강진은 물론 광주며 서울 어디를 가도 먼발치서 ‘양노린 선생님’을 먼저 알아본 ‘아줌마 제자’들이 달려오곤 한다. 줄곧 영어를 가르쳤던 노린 선생님의 정성과 전통 때문일까. 성요셉고교 학생들은 지금도 영어 웅변대회를 비롯해 영어학력 평가에선 정상을 빼앗긴 적이 없다고 수녀들이 귀띔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나란히 배에 올라 강진에서 함께 웃고 울며 부대꼈던 일행 네명 중 유일하게 남은 수녀. 두 명은 몸이 아파 적응하지 못한 채 미국으로 돌아갔고 가장 가깝던 동반자마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중에서도 지난 1993년 휴가를 맞아 함께 미국에 갔다가 폐암 진단을 받고 결국 미국에서 사별해야 했던 메리 에그너스(토마스 아퀴나스) 수녀는 결코 잊을 수 없다. “죽을 때까지 강진에서 봉사하고 뼈를 묻자며 새끼손가락을 걸어 약속했는데…. 그렇게 헤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미국에서 동반자를 잃고 상실감에 휩싸였지만 자신을 기다리는 강진의 학생들이 눈에 밟혀 돌아왔다. 지난 1992년 은퇴할 때까지 줄곧 영어를 가르쳤고 은퇴 후에도 10여년간 영어회화 교사를 자원해 일하다가 이곳으로 옮겨온 게 지난 2005년 3월. 인연이 닿은 모든 이들을 위한 기도와 축복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랑의시튼 수녀회 고문서 정리와 해외 관련 일들도 노 수녀의 일이다. 건강이 부쩍 안 좋아진 얼마 전 “내가 죽으면 강진에 묻어달라.”는 말을 수녀회에 전했다. “귀가 잘 안 들리고 하체의 힘이 빠져 거동이 불편하지만 지금도 남아 있는 강진의 내 자리로 달려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미국 할머니. 무엇이 그를 그토록 ‘먼 땅’ 강진에 집착하게 했을까.“겸양, 소박, 사랑” 또박또박 세마디의 단어를 입에 올린 노 수녀가 수녀원을 나서며 부활의 의미를 묻는 불청객의 손을 살며시 잡는다.“선한 사람은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요. 선하게 사세요.” 귀가 잘들릴 수 있도록 부활의 기적을 은근히 기대한다는 귀엣말과 함께. 글 사진 광주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양노린 수녀는 ●192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출생 ●1945년 사랑의시튼 수녀회 입회 ●1957년 펜실베이니아주 시튼힐대학 졸업,1960년까지 미국에서 교사 근무 ●1961년 수녀 세 명과 함께 전남 강진으로 이주 ●1962∼1992년 성요셉여고 평교사(영어교사) 근무 ●1992년 평교사로 은퇴 ●1992∼2002년 영어회화 교사 자원 근무 ●2005년 광주 사랑의시튼 수녀회 본원으로 이주 ●현재 기도와 수녀회 자료 정리 등 수도생활
  • [금융상품 백화점]

    ●삼성생명, 우리아이변액교육보험 투자수익에 따라 보험금이 변하지만 만기까지 계약을 유지하면 총납입보험료의 120%는 보장한다. 대학 등록금 자금으로 19세부터 보험금을 받는 계약과 대학원 등록이나 유학자금용으로 25세부터 받는 계약이 있다. 보험금은 교육자금 4회, 사회진출 축하금 1회, 생활안전 지원금 1회 등으로 나눠져 총 6번에 걸쳐서 지급된다.‘보험료납입면제플러스특약’에 가입하면 계약기간 중 부모가 50% 이상 장해를 입을 경우 남은 기간 보험료가 면제된다. 사망 또는 80% 이상 장해시는 보험료 면제 외에도 회사가 기본보험료의 배를 추가 납부, 유자녀의 교육자금 마련 목적에 충실하도록 했다. 다양한 특약을 통해 자녀의 재해나 질병 등도 보장받을 수 있다.●삼성화재, 무배당 삼성올라이프메디플러스 자녀보험 상해사고는 물론 암을 포함한 질병까지 보장하는 어린이 전문 종합의료보장보험이다. 출생 전 태아(12주 이상)부터 20세까지 가입할 수 있다. 보장기간은 25세까지다. 자녀가 다른 사람의 신체나 재물에 손해를 입혀 배상책임이 발생할 경우 1억원 한도로 보험금이 지급된다. 학원폭력위로금 외에 장기이식수술비, 조혈모세포이식수술비 등 다양한 질병과 상해에 대한 치료비와 입원비를 보장한다. 가입 후 2년이 지나면 1년 1회에 한해 해약환급금의 60% 한도 내에서 중도인출할 수 있다. 상해로 50% 이상 후유장해를 입었을 경우 10년간 매년 최고 2000만원까지 지원된다. 만기환급금은 자녀 교육비로도 쓸 수 있다.5세 남자 어린이가 15년간 월 6만원을 납부할 경우 만기환급금은 1000만원 수준이다.●푸르덴셜, 차이나 스마트 웨이브 혼합 펀드 중국 증시의 성장을 기대하면서도 변동성을 걱정하는 투자자를 위한 상품. 분할매매 전략을 시스템화해 주가하락시 분할매수하고, 주가상승시 분할매도해 주가등락에 따른 매매차익을 추구한다. 홍콩 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해외주식(H-share) 가운데 항셍중국기업지수 채용종목인 시가총액이 크고 유동성이 높은 우량 종목 42개에 투자한다. 최초 투자 비율은 약 60% 수준이며, 변동성에 따라 주식편입이 결정된다. 환헤지와 환오픈 두 개로 구성돼 있으며, 적립식 투자가 가능하다. 최소 가입금액 제한은 없다.●메리츠, ELS 3종 89회는 삼성전자와 삼성화재를 기초자산으로 6개월마다 종가가 모두 최초 기준주가의 각각 85%,80%,75%,70% 이상이면 연 15.2%의 수익률로 조기상환된다. 만기(2년)에 두 자산이 장중가 포함해 최초 기준주가의 60%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으면 20%의 수익을 지급한다.90회는 코스피200을 기초자산으로 3개월마다 종가가 각각 95%,90%,85% 이상이면 연 12.0%의 수익률로 조기 상환된다. 만기(9개월)에 장중가 포함해 최초 기준주가의 70% 이하로 하락한 적이 없으면 9%의 수익을 얻는다.91회는 원금보장형이다. 포스코와 LG화학을 기초자산으로 6개월마다 두 종가가 최초 기준주가의 100% 이상이면 연 11.0%의 수익률로 조기상환된다. 만기(3년)에 두 종가가 기준주가의 70% 이하로 하락한 적이 없으면 원금과 30%의 수익을, 하락한 적이 있으면 원급만 지급한다.
  • [美 대선 후보경선] 오바마의 시련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미국 국무부는 민주당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여권기록을 무단으로 열람한 계약직 직원 2명을 해고하고 1명을 징계했다고 20일(현지시간) 밝혔다. 미 국무부는 자체 감찰팀을 통해 이들에게 정치적 의도나 다른 목적이 있었는지 조사하고 있다.●`여권 열람´ 정치적 의도 있었나 조사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무분별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일부 직원의 부적절한 처신이 내부 컴퓨터망에 대한 조사 결과 드러나 징계조치했다고 말했다. 매코맥 대변인은 이들이 지난 1월9일과 2월21일,3월14일 오바마의 여권 기록을 무단으로 열람했다고 설명했다. 여권 파일에는 생년월일과 출생지, 국적, 여권 취득시기, 여행장소와 시기 등이 자세히 나와 있다. 미 국무부는 해고된 직원 2명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사태가 확산되자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21일 오바마 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과했다. 이와 관련, 오바마 측은 이번 사건을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사생활 침해로 규정하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그런가 하면 오바마 의원의 담임목사인 제레미아 라이트의 ‘갓댐 아메리카’발언 파문이 힐러리 의원측으로 확산되고 있다. 21일 뉴욕타임스(NYT) 인터넷판에는 라이트 목사가 1998년 9월11일 백악관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서 있는 사진이 실렸다. 이날은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가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추문 사건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발표하던 날이다. 뉴욕타임스는 전날 오후 오바마 의원 선거운동본부로부터 이 사진을 제공받았다고 밝혔고, 오바마 의원측은 이를 확인했다.●뉴멕시코 지사 지지 선언 위안삼아 오바마 의원은 라이트 목사의 ‘갓댐 아메리카’ 발언 파문 이후 지지도와 본선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폭스뉴스TV가 지난 18∼19일 미 전역의 선거등록자 9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오바마 의원과 매케인 의원간 가상대결에서 43%대44%로 오바마가 1%포인트 뒤졌다.‘갓댐’발언 파문 전에는 오바마가 매케인에 4%포인트 앞섰었다. 악재만 있는 건 아니다. 히스패닉 출신의 거물 정치인인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지사는 21일 오바마 의원 지지를 선언, 힘을 실어 줬다.kmkim@seoul.co.kr
  • 장편소설 ‘나가사키 파파’ 내놓은 구효서

    장편소설 ‘나가사키 파파’ 내놓은 구효서

    중견 소설가 구효서(51)씨가 ‘악당 임꺽정’ 이후 8년 만에 새 장편소설 ‘나가사키 파파’(문학에디션 뿔 펴냄)를 내놓았다. ‘나가사키 파파’는 외할아버지의 가죽공장에서 일하다가 일본으로 떠난 ‘정 군’이 자신의 생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스물한살의 ‘나’(한유나)가, 그를 찾기 위해 나가사키로 건너와 음식점 ‘넥스트 도어’에서 조리사로 일하면서 시작된다. 이 음식점에서 만나는 별난 성격과 취미를 가진 동료들이 제각기 다른 사연을 간직하고 있어 유대감은 별로 없지만, 일에 대한 열의만큼은 대단하다. ‘나’의 엄마 박성희는 그동안 딸에게 풀어놓지 않았던 옛 이야기를 이메일로 띄워 보낸다.‘나’는 엄마의 메일을 통해 자신의 출생의 배경을 알아가게 되는 동시에,‘평범’하지 못한 넥스트 도어의 동료들에게는 동질감이 새록새록 깊어진다. ●가볍고 도발적인 필치로 변신 시도 “장편 ‘악당 임꺽정’ 출간 이후 단편을 쓰면서 뭘 쓸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라는 화두가 불현듯 머릿속에 잡히더라고요. 그게 동기가 돼 ‘나의 아버지는 무엇인가.’를 되묻는 이번 소설을 쓰게 됐죠.” ‘진정한 아버지는 뭔가’‘혈육이라는 것은 뭔가’를 수없이 자문하다 보니, 어느 순간 기존의 가족관념을 타파하고 핏줄 중심의 사회에 대해 딴죽을 걸고 싶었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아버지로 대표되는 혈통, 고향, 넓게는 민족, 국가, 인종 등의 울타리를 짓고 공통의 정체성을 강요하는 것들에 대해 반기를 들고 싶었다는 얘기다. ●“한번도 써보지 않던 섹스소설에 도전”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명한 사실에 대해 헤살을 놓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번 소설 전까지는 헤살을 놓는 방법이 진지했죠. 자료 중심으로 논리적으로 정면 돌파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지려고 노력했습니다. 논리적이기보다는 유머가 넘치고 경쾌하며 발칙하고 도발적인 개그하는 기분으로 말이죠.” 하여 지금까지의 진지함에서 일탈하고 싶었다는 그는 이번 작품에서는 대화와 지문, 문어체와 구어체, 한국과 일본, 친아버지와 양아버지가 한데 뒤섞여 혼재하는 양상으로 드러내 보인다. 작가가 소설에 소품의 하나로 요리를 올린 점도 나름대로 까닭이 있다. 별개의 재료들이 합쳐져서 제3의 요리맛을 내듯, 이질적인 존재들이 한데 모여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50대가 스물한살짜리 여성으로 돌아가려는 것이, 영혼과 육체를 맞춰가는 것이 그렇게 쉽게 되겠어요. 아유, 답답하고 숨막히기도 하고….” 작가는 이제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등단 21년째인 지금까지 한번도 써보지 않은 ‘야한’ 섹스소설에 도전하겠단다. “섹스가 인간의 마지막 비밀이잖아요. 캄캄한 밤에 자기들만의 공간에서, 아주 내밀하게 이뤄지는 성행위가 어떻게 비슷할 수가 있죠.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를 낱낱이 파헤쳐보고 싶습니다.”1만원. 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사진 남상인기자 sanginn@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한국배드민턴의 미래 짊어진 이용대

    [스포츠 라운지] 한국배드민턴의 미래 짊어진 이용대

    ‘뚱보’란 소리가 듣기 싫었던 초등학생이 있었다. 살을 뺄 요량으로 배드민턴 라켓을 잡았다.1년 만에 몰라보게 홀쭉해졌다. 집에선 운동을 그만두라고 했다. 하지만 소년은 그럴 수 없었다. 이미 짜릿한 셔틀콕의 맛에 중독됐기 때문. 소년이 5학년 때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한 이후 또래는 물론, 한 해 위 형들도 그를 당해 내지 못했다. 배드민턴 신동이 나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급기야 소년은 ‘셔틀콕 황제’ 박주봉의 최연소(16세) 국가대표 기록을 갈아치우며 중학교 3학년(15세)이 되던 해 태릉선수촌의 막둥이가 됐고, 스무살 청년이 된 지금 세계 정복을 꿈꾸고 있다. ●살빼려 라켓 잡아… 15살 최연소 국가대표 발탁 한국 셔틀콕의 에이스로 우뚝 선 이용대(20·삼성전기)가 바로 그 소년이다. 최근 열린 독일오픈(혼합복식)과 전영오픈(이하 남자복식), 스위스오픈을 잇따라 석권한 이용대를 19일 태릉선수촌에서 만났다.3주 간의 유럽투어로 지친 탓인지 윗입술은 터져 있었고 오른쪽 다리는 근육통 탓에 불편해했다. 긴 해외원정을 마치고 귀국한 18일 오후 이용대는 선수촌으로 직행했다. 짧은 휴가를 꿈꿀 법도 했다.“늘 있는 일인데요. 중3 때 처음 태릉에 와서 막막했죠. 주위를 둘러보면 아시겠지만 감옥 같기도 하고, 나이 많은 형들 보면 웃지도 못하고 숨도 제대로 못 쉬었는 걸요. 하지만 이젠 여기가 내 집 같아요.”1년에 200일 이상을 이곳에서 보내는 선수촌 6년차의 여유가 묻어났다.6년 전에는 체조나 수영을 제외하면 선수촌에서 또래를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이젠 이용대보다 어린 선수들도 꽤 생겼다. ●주니어 무대 석권… 성인무대도 안착 주니어 무대에서 ‘용대 불패’로 통했던 그는 2007말레이시아오픈 슈퍼시리즈 남자복식 3위에 이어 2007코리아오픈 슈퍼시리즈 남자복식 우승으로 성인무대에도 연착륙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해 4월 손가락 부상 이후 좀처럼 성적을 내지 못했다.“그땐 어렸죠.4강만 올라가면 흥분해서 실수하기 일쑤였고 (복식파트너인) 정재성 형하고 호흡도 잘 안 맞았어요. 여섯살이나 차이가 나 좀 어려웠거든요.” 하지만 ‘통과의례’는 오래가지 않았다. 올초부터 새 파트너 이효정과 호흡을 맞춘 혼합복식, 정재성과 짝을 이룬 남자복식 모두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 베이징올림픽 메달 기대를 한껏 부풀린 것.“스타일을 많이 바꿨어요. 톱랭커들의 실력은 백지장 차이라 한 번 분석당하면 끝이거든요. 이번 유럽투어에서 가진 것을 다 보여 줬으니까 올림픽에선 또 다른 전략으로 나가야겠죠.” ●“올림픽 세번은 나가야죠”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은 외모로 배드민턴 선수로는 보기 드물게 오빠부대를 끌고 다니는 ‘꽃미남’ 이용대의 헤어스타일은 몇년 째 그대로다. 이유가 걸작이다.“너무 짧으면 자고 일어나면 ‘까치집’을 짓잖아요. 이 정도면 안 씻고 물 좀 묻힌 뒤 그냥 훈련에 나가도 그만이거든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내성적으로 보이는 첫 인상과는 많이 달랐다. 경기 전 긴장을 푸는 그만의 비법도 독특했다.“쉬겠다고 혼자 누워서 음악듣고 마인드컨트롤하고 그러면 괜히 몸만 굳어요. 동료들이랑 카드놀이 하면서 웃고 수다 떨고 장난치는 게 최고예요.” 이제 막 화려한 비상을 시작하는 이용대의 꿈이 궁금했다.“3회연속 올림픽 무대를 밟는 것이 첫째 목표입니다. 금메달을 한 개라도 따야죠. 첫 출전한 베이징올림픽에서 따면 더 따고 싶은 욕심이 날 것 같은데요.”라며 활짝 웃었다. 글·사진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이용대는 누구? ▲출생 1988년 9월 11일생 ▲학력 전남 화순초-화순중-화순실고 ▲신체조건 180㎝ 73㎏ 270㎜(발) ▲가족관계 이자영(46) 이애자(43)씨의 2남 중 막내 ▲종교 불교 ▲혈액형 O형 ▲취미 컴퓨터게임(FIFA2008) ▲애장품 노트북 ▲좋아하는 음식 매운 갈비찜 ▲경력 2006세계청소년선수권 3관왕(단체전·남복·혼복),2007코리아오픈 남복 1위,2007세계선수권 남복 2위,2008코리아오픈 혼복 1위,2008독일오픈 혼복 1위,2008전영오픈 남복 1위,2008스위스오픈 남복 1위, 혼복 3위
  • 日 최고의 ‘러브호텔 전문가’는 교포 3세

    한 재일교포 3세가 일본 제일의 ‘러브호텔 박사’로 언론의 조명을 받고있어 화제다. 오사카 출생의 재일교포 3세 김익견(金益見·28)씨는 지난달 20일 자신의 저서 ‘러브호텔 진화론’을 출간해 언론으로부터 ‘일본 제일의 러브호텔 연구가’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대학 재학시절부터 호텔에 관심을 갖게되면서 연구를 시작한 김씨는 대학 졸업논문 주제를 러브호텔로 할만큼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다. 처음 김씨는 러브호텔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가졌으나 이후 깨끗하고 밝은 분위기의 러브호텔도 있다는 사실에 문화 충격(culture shock)까지 느꼈다. 또 사람마다 갖고있는 러브호텔에 대한 개념이 각각 다르다는 것에 흥미를 느껴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 관계자 인터뷰등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때때로 러브호텔 주변을 촬영하다가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거나 호텔경영인으로부터 문전박대 받는 등 고생도 만만치 않았지만 연구를 그만 둘 수는 없었다. 김씨는 “주변사람들이 러브호텔에 왜 다니냐고 이상하게 바라볼 때도 많았다.”며 “무시당하는 듯한 느낌이 싫었지만 그래도 연구를 계속했다.”고 밝혔다. 또 “모니터를 하다보면 러브호텔를 이용하는 남녀 차이도 알 수 있다.”며 “간사이(関西)지방의 여성들은 할인쿠폰을 쓰거나 이용료를 각각 계산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씨는 러브호텔 연구이외에도 ‘혐한류’(嫌韓流)에 대항하는 홈페이지(makikome.com)를 개설하는 등 일본내에 만연한 재일교포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없애는데 노력하고 있다. 사진=zakzak.co.jp·민단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