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출생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 분식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 담장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5,043
  • [스포츠 라운지] 프로배구 차세대 스타 배유나

    [스포츠 라운지] 프로배구 차세대 스타 배유나

    “운동 선수라면 누구나 바라는 희망이지만 저 역시 올림픽 가서 금메달 따는 게 꿈이에요.” 올겨울 배구코트의 판도 변화를 예고하며 신인 드래프트 1순위로 GS칼텍스에 입단한 ‘신인 거포’ 배유나(18). 아직 소녀 티를 채 벗지 못한 프로의 새내기지만 포부와 자긍심은 크고도 강했다. 그는 “드래프트 1순위를 예상했느냐.”는 질문에 “솔직히 얘기하면 예상하고 있었어요.”라고 쑥스러운 듯 웃으면서도 이내 “그건 고교 때까지의 실력일 뿐 프로에서도 통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이제부터는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해야죠.”라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배유나는 한국 여자배구의 간판 스타인 김연경(19)의 초·중·고 2년 후배다. 김연경과 함께 뛰었던 해에는 거의 모든 대회를 석권했다. 김연경이 졸업한 뒤 자신이 경기를 주도했던 초등 6년에도 팀을 6관왕에 올려놓았고, 중 3년 땐 4관왕, 고교 3년엔 2관왕을 차지할 만큼 발군의 기량을 뽐냈다. 김연경이라는 걸출한 스타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지만 한순간도 그 그늘에 가려 빛을 잃은 적이 없었다. 배유나 역시 김연경 못지않은 ‘배구 천재’였기 때문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배유나의 성장과정을 지켜본 강주희(36) 국제심판은 “(배)유나는 배구 천재다. 감각과 테크닉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면서 “국내 여자배구선수 중 유일하게 레프트·라이트·센터를 모두 소화해낼 수 있는 데다 리베로 뺨치는 리시버 능력까지 갖춘 선수”라고 치켜세웠다. 배유나는 고교 2년 때인 지난해 국가대표로 발탁돼 월드그랑프리·세계선수권대회·도하 아시안게임 등에 출전한 데 이어 지난 9월 아시안게임 때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2일부터 일본에서 열리는 월드컵 진출을 견인해냈다. 무늬만 고교생이었지 기량은 웬만한 프로선수들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그렇다 보니 신인 드래프트에서 배유나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지사. 모든 팀이 배유나에게 군침을 흘리는 상황이었지만 행운의 여신은 지난 시즌 리그 꼴찌로 50%의 1순위 지명확률을 가졌던 KT&G 대신 35%의 GS칼텍스에 미소를 보냈다. 올 정규리그에 앞서 열린 KOVO컵에서 우승을 차지하고도 V-리그 우승을 기대할 정도는 아니라는 평가를 받았던 GS칼텍스로서는 ‘로또복권’에 당첨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일고의 망설임도 없이 배유나를 지목한 이희완 감독은 “유나를 데려온 게 꼭 우승한 느낌”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새달 초 개막하는 V-리그부터 GS칼텍스의 전천후 공격수로 나설 배유나에게 프로 새내기로서의 포부를 묻자 “프로팀에 입단한 만큼 일생에 한번밖에 없는 신인상을 받고 싶고, 팀 우승을 이끌어 최우수선수(MVP)에 도전하고 싶어요.”라며 당찬 속내를 털어놨다. ‘배구 천재’ 배유나가 김민지·정대영·김소정·나혜원 등 국가대표급 선수들로 채워진 GS칼텍스의 공격 라인을 뚫고 김연경에 이어 ‘V-리그 신인왕과 MVP 동시 석권’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글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프로필 ●출생 1989년 11월30일 경기 부천시 ●체격 181㎝ 67㎏ ●학교 안산서초-원곡중-한일전산여고 ●가족 아버지 배준수(51), 어머니 유정은(46)씨와 언니 한나(21) ●취미 음악듣기 영화감상 ●경력 2006 그랑프리 세계여자대회·세계여자선수권대회·도하 아시안게임 국가대표,2007 제14회 아시아여자선수권대회 국가대표
  • 김보록 신부의 죽음체험 피정 11일 명동서

    자신을 위한 장례미사와 고별식, 유언 작성, 입관 체험까지 죽음을 체험하는 독특한 피정이 열린다. 천주교 살레시오 수도회의 김보록 신부가 11일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실시하는 ‘죽음체험 하루피정’. 천주교에서 ‘위령성월’은 죽은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데 그치지 않고 살아있는 이들이 스스로의 죽음을 생각하고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죽음을 잘 준비한다는 의미에서 맞는 성월.‘죽음체험 하루피정’은 김보록 신부가 매년 위령성월에 실시한 피정행사로 관심을 모아왔다. 오전 9시30분부터 시작되는 피정은 죽음에 대한 강의에서 시작해 자기 자신을 위한 장례미사로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묘비와 유언서 작성, 입관체험 등 스스로의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프로그램들이 들어있다. 1940년 일본에서 출생한 김보록 신부는 1960년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해 광주 살레시오 수도원장, 부관구장을 맡다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지에서 선교사로 일한 뒤 현재 서울 돈보스코 정보문화센터원장으로 전국 각지에서 피정을 지도하고 있다.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국감 하이라이트] 정무위 李·鄭 흠집내기 맞불

    [국감 하이라이트] 정무위 李·鄭 흠집내기 맞불

    “정동영 후보의 부친은 일제하 농민착취 기관에서 일했다. 친일이다.”(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한 이명박 후보도 친일 아닌가.”(대통합민주신당 김재홍 의원) 국회 정무위원회의 30일 국감에선 ‘친일의 정의’가 화두였다. 그동안 정무위를 뜨겁게 달궜던 ‘BBK 주가조작 의혹’은 모처럼 잠시 뒤로 밀렸다. 대신 통합신당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출생지 논란’을, 한나라당은 통합신당 정동영 후보 부친의 친일 의혹을 거론하며 설전을 벌였다. 공격은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이 먼저했다. 차 의원은 “정 후보의 부친인 정진철씨가 근무한 일제하 말기의 금융조합은 농민착취 기관이었다.”면서 “정씨는 해방 후, 한국전쟁을 전후해 대한청년회 활동을 했는데 이 단체에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가 많았다.”고 포문을 열었다. 또 “노무현 정부 하에 있었으니까 (친일한 부친을 둔)정동영 후보가 2년씩이나 통일부 장관을 할 수 있었다.”고 비꼬았다. 그러자 통합신당 김재홍 의원이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해 거칠게 반박했다. 그는 “그렇다면 오사카 출생인 이명박 후보도 친일을 한 것이냐.”고 반박했다. 같은 당 채일병 의원도 “차 의원은 지금은 폐지된 연좌제 유령을 되살려서 무고하게 음해하고 싶은 모양”이라면서 “일제 시대에 살았던 사람은 다 친일이라는 얘기인데 견강부회도 유분수”라고 일축했다. 통합신당의 공격이 진행되는 동안 한나라당 의석에선 “발언 못 하게 하라.”,“무슨 소리냐.” 며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이후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은 의사진행 발언을 자청해 “이명박 후보의 오사카 출생이 왜 친일에 해당되느냐.”고 따져물었다. 이계경 의원도 “정동영 후보 부친은 창씨개명도 했다.”며 친일 의혹을 거듭 주장했다. 통합신당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서혜석 의원은 “우리나라는 속인주의를 채택하지만 미국은 속지주의, 즉 태어난 곳에서 국적을 취득하도록 한다.”면서 “미국식을 적용하자면 오사카에서 태어난 이명박 후보는 일본 국민이 된다.”고 주장했다. 김영주 의원도 “오사카라는 출생지, 아키히로(‘명박(明博)’의 일본식 발음)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더 일본 사람에 가까운 것 아니냐.”고 가세했다. 그러자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은 “정동영 후보의 자이툰부대 폄하발언”이라고 평한 것이 대표적이다. 김정훈 의원 역시 정 후보가 과거 숙부와 하숙비 반환소송을 벌였고 노인폄하 발언으로 구설에 휘말렸다고 지적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술 즐기는 간박사 김정룡 한국간연구재단 이사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술 즐기는 간박사 김정룡 한국간연구재단 이사장

    흔히 간을 ‘침묵의 장기’라고 한다. 간암이나 간경변 등 여러 간질환이 소리없이 조용히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만큼 두려운 질환이다. 올해는 B형 간염바이러스가 발견된 지 꼭 40년째가 된다.1967년 미국의 바루크 블럼버그(82) 필라델피아 명예교수가 처음 발견했으며 이 공로로 1976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했다. 최근 일본 고베시(市)에서는 ‘아시아·태평양 소화기병학회 40주년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블럼버그 교수는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30∼50%는 급성 간염을 겪고 그 중 일부가 만성 간염상태로 넘어간다. 그런 환자들이 나중에 간경변이나 간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오늘날 1년 동안 보고되는 우리나라의 간암 환자 수는 1만여명에 달한다.40∼50대에서는 간암이 국내 암 발생 1,2위인 위·폐암보다 더 많이 발생한다. 간암 환자 중에서 간 절제수술이 가능한 확률은 고작 15% 안팎이며, 수술 후 재발될 확률은 무려 65%에 이른다. ●B형·C형 간염 바이러스 세계최초 분리 1990년 이후 세계 보건기구 통계에 의하면 간암 수술을 받은 환자 중 85%가 B형 또는 C형 간염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경우 1960∼1970년대 전체 국민 10%가 간염 바이러스 감염자일 정도로 ‘간염 후진국’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수직 감염자’였다. 그래서 한때 유전병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간염 백신이 보급되면서 감염자 수가 서서히 줄기 시작했다. 신생아에게 간염 백신이 기본 접종으로 여겨졌다. 결과 현재에는 전체 20세 이하의 남녀 중 간염 바이러스 감염자는 0.5∼2%로 뚝 떨어졌다. 이처럼 백신 발견과 보급은 우리나라 국민건강에 획기적인 공헌을 했다. 여기에서 되짚어볼 대목이 있다.1971년 국내의 한 학자가 B형 간염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혈청에서 분리하고, 그 후 급만성 간염과 간경변증 및 원발성 간암의 퇴치에 가장 효과적인 백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헤파박스’가 대표적이다. 이로 인해 ‘간염 후진국’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 뿐만 아니라 1999년에는 C형 간염바이러스를 혈청으로부터 분리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해 세계 학계가 주목했다. 김정룡(72) 전 서울대의대 교수가 바로 주인공이다. 그는 지금까지 무려 530여편의 논문을 국내외 권위있는 의학잡지에 발표하고 현역 교수시절 50여명의 의학석사와 40여명의 의학박사를 배출해내 ‘간의학분야의 대부’로 꼽는다. 아울러 국민보건에 크게 이바지한 공로로 ‘대한민국과학상’‘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수상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얼핏 일흔 넘은 나이로 쉴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한국간연구재단’ 이사장을 맡아 후학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면서 여전히 일반 환자까지 돌보고 있다. 말 그대로 연구와 봉사의 삶을 평생의 ‘업’으로 살고 있는 것.. 지난주 서울 종로구 연건동에 위치한 재단 이사장실(白友軒)에서 김 박사와 마주앉았다. 먼저 근황을 물었더니 “보다시피 이 연구소에 나와 젊은 후학들에게 잔소리 좀 하고, 또 일산백병원에서 일주일에 이틀은 예약된 환자들을 봐주고 있다.”고 했다. 환자는 하루에 대개 100명 정도 진찰하는데 진료예약은 무리하지 않게 3개월 단위로 끊고 있다고 했다. 김 박사는 1970년에서 1999년까지 한창 연구 중일 때도 1년 이상 예약 치료환자 1 만 5390명을 진료했으며 이후 2001년 8월까지 1년 동안 4000여명의 외래 예약환자수를 갖고 있을 정도였다. 그것도 대개 ‘사형선고’를 받은 환자들을 상대로 했다. 때문에 눈이나 얼굴피부만 봐도 간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금방 파악될 만큼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다. 불쑥 호기심이 발동했다. 열심히 사진 촬영 중인 사진기자와 함께 간의 상태가 어떠냐고 연달아 물었다.“벌써 (얼굴을)봤어. 아직 괜찮아.”하며 껄껄 웃었다. 눈 흰자위에 약간 황달기가 있거나 거무튀튀한 간성얼굴이 보이면 간경변으로 의심한다는 것.. 술과 간암의 관계는 어떨까.“간암은 주로 B형 간염바이러스에 의해 진전되므로 술과 직접적인 관계는 거의 없다.”고 전제한 뒤,“개인차가 있겠지만 예를 들어 양주 반병을 10년 동안 매일 마셨다면 간경변으로 갈 확률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또 “흔히 애주가들은 건강진단 때마다 ‘알코올성 지방간’ 얘기를 많이 듣게 된다.”면서 이럴 경우 약물복용에 주의하고 또 뚱뚱한 사람은 체중조절을 해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일정기간 간을 쉬게 하면 알코올성 지방간은 거의 없어진다는 것. 특히 간에 좋다는 약이든, 숙취에 좋다는 약이든 되도록 먹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술을 좋아하는 부모나 동료 선후배들을 생각한답시고 약을 선물하게 되는데 이는 절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라고 했다. ●술과 간암 직접적 관계 없다 그렇다면 ‘최고의 간박사’는 어떤 음주습관을 가지고 있을까.“주말과 휴일에 술 마실 일이 많아 특별한 일이 아닌 경우 월·화·수요일에는 외부 약속을 안 한다.”고 했다. 최소 일주일에 3일은 간을 쉬게 하는 셈이다. 주량은 위스키 반병 정도라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 “술은 원래 원숭이가 발견했으나 인간이 이를 훔쳐먹은 데서 시작됐다.”면서 “따지고 보면 술처럼 좋은 약도 없다. 그래서 인류 역사상 망하지 않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반가운 사람끼리 만나 즐겁게 웃으며 마시는 술은 결코 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이보다 건강해보인다고 하자 “일을 하는 게 가장 건강을 지켜주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김 박사는 함경남도 삼수에서 태어났다. 인근의 갑산과 함께 ‘삼수갑산’으로 알려진 곳이다. 어머니가 태몽으로 ‘청룡’을 꾸어 이름을 정룡(丁龍)으로 지었다. 그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화상을 입어 사흘 동안 사경을 헤매는 고비를 맞기도 했다. 정룡의 위로 5남매를 두었으나 모두 병으로 일찍 죽은 터여서 당시 부모의 걱정은 이만저만 아니었다. 또 정룡이 여섯살 때 두 동생이 생겼으나 바로 아래 동생은 네살 때 병이 생겨 약이 없어 죽었고, 또 다른 동생은 홍역을 앓다가 죽었다. 이때까지 여덟 형제가 있었으나 정룡 혼자만 남겨두고 다들 일찍 세상을 떠났다. 정룡은 초등학교 5학년 때 8·15광복을 맞았고,3년 후인 1948년 가족들과 함께 남한으로 내려와 큰고모부가 있던 목포에서 살게 됐다. 목포고를 2회로 졸업한 그는 동생의 죽음과 슬퍼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지울 수가 없어 의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결국 1959년 3월 서울대 의대를 차석으로 졸업하면서 평소의 꿈이었던 의사의 길을 걷게 됐다. 의사였던 한정애 여사와 결혼, 슬하에 2남1녀를 두었으며 두 아들과 사위가 현재 의사로 활동 중이다. 장인이 1970년 서울대총장을 지낸 고 한심석 의학박사다. 국민 10명 중 1명이 B형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라는 사실에 간연구를 시작한 그. 후배들에게 평소 “인술(仁術)을 지향하는 의사는 진료, 연구, 교육을 삼위일체로 여기고, 생명존중의 겸허한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힘이 닿을 때까지 환자를 보고, 자리에 앉아 있을 때까지 연구에 매달리는 일”이라고 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간질환 이겨내는 생활 십계명 (1) 적어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정기검사를 받아라. (2) 간을 좋게 하는 특효약이나 음식은 별로 없다. (3) 인내심을 갖고 병 관리에 최선을 다하라. (4) 늘 손을 깨끗이 씻고, 주변 환경을 청결하게 하라. (5) 반드시 간염 예방백신을 맞아라. (6) 술은 마셔도 좋으나 반드시 휴간일을 둬라. (7) 흡연이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나 지나친 흡연은 간에 해롭다. (8) 양치질을 안 해도, 기름진 음식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날 때, 과로하지 않았는데 피곤하거나 이유 없이 소화가 안될 때, 소변이 붉게 나올 때는 반드시 검진을 받아라. (9) 피로는 금물. 피곤을 느끼면 휴식을 취하라. 10 의사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라야 한다. ■ 그가 걸어온 길 ▲1935년 함남 삼수 출생. ▲53년 목포고 졸업. ▲59년 서울대 의대 졸업. ▲66년 동대학 대학원 의학박사. ▲67∼70년 하버드대 보스턴시립병원 내과연구원. ▲77∼78년 런던대 왕립병원, 하버드대 메사추세츠병원 내과연수. ▲78∼90년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분과장, 내과과장. ▲85∼2000년 서울의대 간연구소 소장. ▲85년∼현재 한국간연구재단 이사장. ▲87년 한국간연구회 회장. ▲88∼92년 아시아·태평양소화기병학회 회장. ▲2000년∼현재 서울의대간연구소 특별연구원. # 상훈 대한의학협회 학술상(73년), 대한민국 과학상(83년), 동아일보 제정 올해의 인물상(83년), 국민훈장 모란장(84년), 호암상(95년), 관악대상(01년) 등. # 주요 저서 간염은 치료된다,B형간염 백신에 대한 연구, 간박사가 들려주는 간병 이야기 등.
  • 서재필 박사 동상 내년초 워싱턴에 건립

    서재필 박사 동상 내년초 워싱턴에 건립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벌여 ‘미주 한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송재(松齋) 서재필(1864∼1951) 선생의 동상이 내년 2월 안으로 워싱턴 한국 총영사관 입구에 세워진다. 주미대사관은 동상 건립에 필요한 10만달러 가운데 상당액을 이미 확보했고 나머지 재원에 대해서는 교포들의 적극 지원과 관심에 기대하고 있다. 권태면 총영사는 26일 “한국의 동상 제작팀이 출생지인 전남 보성에 있는 서 박사의 생가에 세워진 동상을 복제하는 작업에 들어갔다.”면서 “이르면 내년 1월, 늦어도 2월 중에는 동상 제막식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권 총영사는 특히 “이번 동상 건립은 미주 한인들, 특히 교포 2세들의 정체성 확립과 역사의식을 고양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또 “동상은 실물 크기보다 조금 큰 2m 규모의 전신상이 될 것이며 동상이 들어설 영사관 입구 잔디밭 부지에 대해서는 워싱턴DC 당국과 협의를 마친 상태”라면서 “동상 건립이 구체화되는 대로 서 박사를 잘 아는 미국내 역사학자와 관계자들을 초청, 제막식을 가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최승현 영사는 “조각가인 조선대 이재길 교수가 동상제작을 담당하고 있다.”면서 “동상제작은 한국에서, 받침대는 미국에서 각각 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총영사관은 서 박사의 독립운동을 소개하는 홍보책자 보급운동을 병행할 방침이다. 워싱턴 연합뉴스
  • 셋째 아이 양육비 10만원 지급

    셋째 아이 양육비 10만원 지급

    서울시는 내년부터 셋째 이후 자녀에게 출생 후 72개월(0∼5세)간 매달 양육비 10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의 ‘다자녀 가정 및 영·유아 양육지원을 위한 조례’를 마련했다고 25일 밝혔다. 지금까지는 만 2세까지 보육시설 이용료 전액을 지원해왔지만 만 3∼5세 유아가 실제 보육시설 이용률이 높고 양육 비용이 더 들어간다는 요구에 따라 지원을 받는 연령을 연장했다. 보육시설 이용료 전액을 지원하던 것을 절반으로 줄이고,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고 집에서 키우는 가정에는 매달 10만원의 수당을 지원한다. 시설 이용비나 수당 중 하나를 부모가 선택할 수 있다. 시는 이같은 내용의 조례 제정을 추진해 올해 안에 시의회 의결을 거쳐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조례가 시행되면 지원대상은 현재 1만 776명에서 3만 5545명으로 2만 4769명이 늘어나고, 양육비 지원 규모는 올해 386억원(절반은 자치구 예산)에서 458억원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하버드MBA 한국인 첫 종신교수 나왔다

    하버드MBA 한국인 첫 종신교수 나왔다

    하버드 대학 경영대학원(MBA)에 한국인 최초의 종신(tenure) 교수가 탄생했다. 하버드 대학의 부교수로 근무하던 재미교포 2세인 문영미 교수(43.사진)는 최근 경영대학원의 종신교수에 임명됐다. 하버드 측은 “문 교수의 종신교수 임명은 하버드경영대학원 역사상 첫 한국인 일뿐만 아니라 아시아계 여성으로서도 최초”라고 밝혔다. 1964년 미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출생한 문 교수는 고교 재학시절 부모를 따라 귀국, 서울 외국인 고등학교 졸업 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예일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스탠포드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를 마쳤다. 문 교수는 이후 85년부터 90년까지 샌프란시스코의 NBC 방송국에서 뉴스 PD로 일하기도 했으며 다시 스탠포드 대학원에 진학해 93년 커뮤니케이션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문 교수는 현재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MBA프로그램에서 소비자 마케팅 경영인 교육 프로그램에서 전략적 마케팅 매니지먼트 등의 과목을 맡아 강의하고 있다. 2005년과 2006년에는 연이어 학생들이 뽑은 ‘최고의 교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편 하버드대학 최초의 한국인 종신교수는 종양바이러스의 세계적 권위자인 하버드 의대 정재웅 교수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명 리 미주 통신원 myungwlee@naver.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이해인 수녀시인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이해인 수녀시인

    미국 최고의 여류시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에밀리 디킨슨(1830∼1886).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흰옷을 즐겨 입어 ‘뉴잉글랜드 수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삶은 비록 슬픈 청솔가지였지만 문학적 정열만큼은 체온보다 더 뜨거웠다. 생전에 시만 무려 1700여편을 썼다. 그중 ‘나의 삶은 헛되지 않으리´란 시가 유명하다.‘내가 만약 한 가슴의 깨어짐을 막을 수 있다면/나의 삶은 헛되지 않으리/한 생명의 쓰라림을 덜어 줄 수 있다면/괴로움 하나 감해줄 수 있다면/기운 잃은 울새 한 마리/둥지에 올려 줄 수 있다면/나의 삶은 헛되지 않으리’ 이해인(62) 수녀. 평론가들 사이에는 가끔 에밀리 디킨슨과 비교한다. 그럴 것이 1975년 필리핀 세인트 루이스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할 때 그는 에밀리 디킨슨과 관련된 논문을 써내 당시 필리핀 학계에 깊은 감명을 선사했다. 이 수녀 역시 에밀리 디킨슨처럼 다작의 시인이다. 대표 시집인 ‘민들레의 영토’가 지금까지 52쇄를 찍었으며,‘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56쇄),‘내 영혼에 불을 놓아’(51쇄),‘작은 위로’(19쇄),‘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17쇄) 등도 여전히 간단치 않은 스테디셀러들이다. 인세만 따져도 족히 수십억원이 넘으며 이는 모두 봉사활동에 쓰여졌다. 시집이 2,3쇄도 찍기 힘든 요즘, 이쯤되면 우리 문단에서 이해인 수녀의 영향력을 인정 안 할 수가 없다. 2년 전 건국대 대학원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한 김진선씨는 자신의 석사학위 논문을 ‘이해인의 시의식과 방법론 연구’를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에밀리 디킨슨에 비견되는 베스트셀러 작가 그는 논문에서 고(故) 구상 시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일생을 독신으로 살며 겸허하고 투명한 심혼의 독백을 하다 간 시인 에밀리 디킨슨과 이해인의 공통성은 일상 속에서 접한 가장 사소하고 무상한 사물을 불멸과 무한, 즉 영원 속에다 연결하려는 끊임없는 지향과 노력의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고 기술했다. 올해로 이 수녀는 첫 서원을 한 지 40년, 문단 데뷔 37년을 맞는다. 하여 이 수녀를 지난 17일 부산 광안리 앞바다가 보이는 성베네딕도 수녀원에서 만났다. 정문 인근에 있는 ‘기도정원’을 거닐면서 이 수녀는 “지난 9월8일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천상병 문학상도 이때 받았고…, 천상병 시인이나, 피천득 시인이나 다들 떠난다.”고 말꼬리를 흐린다. 이어 “인간은 죽고 떠난다는 걸 알지만 가장 소중했던 어머님이 삶의 마침표를 찍고 떠났기에 더욱 찐하게 다가온다.”고 심정을 피력했다. 아버지에 대해 슬쩍 물었더니 “6·25 때 납북돼 생사조차 알지 못한다. 살아 계셨으면 어머니보다 세살 위니까 99세가 된다.”고 잠시 그리워했다.6세 때 헤어진 아버지의 사진을 자신의 글방에 지금도 걸어놓고 있다. ●어머님 돌아가신 후 삶과 사람 생각 더욱 깊어져 이날 ‘기도정원’에서 산책하는 사람들이 이 수녀를 알아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잠시후 인터뷰 장소를 인근의 ‘언덕방’으로 옮겼다. 이 수녀는 ‘언덕’을 ‘언덕(言德)’이라고 풀이했다. 문득, 탁하고 어지러운 세상에 맑게 사는 방법을 물었다. 지체없이 “언어생활부터 고쳤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울러 “미치고 팔짝 뛰겠다, 돌아버리겠다, 골 때린다 등등의 얘기만 안 해도 좋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웃기고 자빠졌네라는 말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자빠지면 못 일어나는 거 아니냐. 충동적인 발언으로 인품이 많이 깎이는 사례라고 부연했다. 이 수녀가 요즘 바쁘게 지내는 강의활동의 주요 테마이기도 하다. 회사, 종교단체, 학교 등에서 초청이 오면 “언어는 습관이며 뇌에 저장되기 때문에 불쑥 튀어나오는 말이 곧 인격과 직결된다. 따라서 나만의 언어습관을 ‘즐겨찾기’에 저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수녀는 얼마 전 모 신문에 ‘군인을 위한 기도’라는 칼럼을 게재했다.“어떻게 님들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님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서두를 꺼낸 뒤 “이 땅의 모든 군인들이 몸, 마음 건강하게 성실하게, 인내롭게 맡겨진 임무를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라고 마무리한 내용이다. 그랬더니 각 부대 인터넷사이트에서 ‘펌글’ 1위로 애독됐고 격려의 전화가 쇄도했다. 인연이 되어 오는 11월7일 육군본부에서 특강을 할 예정이다. “때로는 생각없이 던지는 냉정하고 무자비한 말로 ‘오래 사는’ 이 땅의 노인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노인들이 망령이 들었어도 귀는 살아 있습니다. 안 그래도 ‘오래 살아’ 미안하고 눈치가 보이는 그분들에게 은근히 자신의 죽음을 재촉하는 말이 들려올 때 얼마나 비참한 심정이겠습니까.” 그러면서 이 수녀는 비록 ‘큰 위로’가 아닐지라도 마음속으로 ‘작은 위로’를 생각해 보자고 제안한다. 자신의 글을 보고 편지를 보내는 이들이나,‘민들레의 영토’의 카페의 팬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것도 ‘작은 위로’와 다름 아니라고 했다.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면회가는 일도 물론이다. 낙엽따라 가버리는, 이 계절의 단상을 물었다. 돌아오는 답변은 한편의 시(詩)로 대신했다.‘산너머 산/바다 건너 바다/마음 뒤의 마음/내가 오늘도 가까이/안아야 할 행복은/바로 앞의 산/바로 앞의 바다/바로 앞의 마음/놓치지 말자/보내지 말자’ ●언어는 인격… 어지러운 세상 말부터 정화해야 이번에는 인터뷰 장소를 이 수녀의 글방으로 옮겼다.10평 남짓한 방안에 들어서자 허브 향기가 가득했다. 광안리 바닷가에서 왔음 직한 조가비, 인근 산에서 따온 솔방울, 흑백의 세월을 듬뿍 담은 여러 흔적들, 마더 테레사 수녀와 찍은 사진도 눈에 들어왔다. 그중 냉장고에 씌어진 글귀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님께 드립니다.’로 시작되는 행시였다.‘이:이 세상, 저 세상을 시로써 노래하는 이, 해:해에 비친 유리창처럼 숨김없이 드러나는 영혼이 맑은 이, 인:인정이 넘쳐나 모든 이에게 선물되는 이, 클:클수록 작아지려는 명성과 겸손의 함수관계를 수덕으로 사는 이, 라:라일락꽃 향기처럼 은은히 복음의 향기를 세상에 전하는 이, 우:우주만물 제각각에 창조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의미를 새롭게 하는 이, 디:디딤돌이 되어 하느님을 찾아 나서게 하는 이, 아:아! 우리들의 사랑, 기쁨, 수:수녀원의 크고 작은 경사날에 축하메시지로 기쁨을 더해주는 이, 녀:녀기 바로 그 이름,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님!-2006년 3월19(생일) 후배수녀 일동’ 이 글을 적고 있노라니 그는 자신의 시낭송을 했던 테이프를 틀어주면서 “사회경험도 없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넓히려는 노력을 해왔다. 피를 나눈 형제가 아니더라도 어디서 본 듯한 누이, 이모, 친구로 생각하게 된 것은 수도자인 자신에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글방 옆에 있는 편지창고도 공개했다. 자살 직전에 보내온 편지, 방황했던 20대가 지금은 20대의 아들을 둔 부모가 되어 고맙다고 온 편지, 눈짐작으로 수만통이 넘어보였다. 그는 지금도 편지 받고 답장 보내는 일을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강원도 양구에서 이대영, 김순옥의 1남3녀 중 셋째로 태어난 그. 여고 1학년 때 수도자가 되겠다고 다짐한 뒤 벌써 40여년 세월이 흘렀다.“누가 (죽은 후)그녀의 삶이 뭐였느냐고 물어보거든 ‘인생의 러브레터였다.’는 답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부산 왕상관기자 skwang@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5년 양구 출생. ▲64년 부산성베네딕도 수녀회 입회 ▲68년 수녀로 서원, 천주교 중앙협의회 파견 근무. ▲70년 ‘소년’지에 동시 ‘하늘’‘아침’ 등으로 추천. ▲75년 세인트루이스대학교(필리핀) 영문학 학사 ▲76년 종신서원 ▲78∼82년 부산성베네딕도수녀원 수련소강사 ▲85년 서강대학교대학원 종교학 석사 ▲88∼90년 제44차 세계성체대회 준비위원 ▲2000년 부산가톨릭대 지산교정 겸임교수 #주요 수상 새싹문학상(81년), 여성동아대상(85년), 부산여성문학상(98년), 천상병 시 문학상(07년) #주요 작품집 민들레의 영토(76년), 내혼에 불을 놓아(79년), 두레박(86년), 시간의 얼굴(89년), 엄마와 분꽃(92년), 작은 위로(02년), 풀꽃단상(06년) 등 외 다수.
  • [스포츠 라운지] LPGA 2007신인왕 안젤라 박

    [스포츠 라운지] LPGA 2007신인왕 안젤라 박

    “첫 우승 장소요?한국이라면 가장 좋을 것 같아요.”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삼성월드챔피언십이 끝난 지난 15일 미국 캘리포니아의 빅혼골프클럽. 공동 3위로 대회를 마감한 안젤라 박(19)은 “생애 첫승 장소는 한국이 될 것”이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아깝게 우승을 놓친 뒤 한국행을 서두르던 안젤라 박의 표정은 아쉬움보다는 처음 치르게 될 한국 대회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다.“한국에선 안젤라 박 대신 박혜인으로 불러주면 더 좋을 것 같은데요.” ●“한국에서 첫 우승하고 싶어” 박혜인의 출생지는 브라질 파나마주의 이과수시(市)다. 이북출신인 아버지 박경욱(55)씨가 1976년 24살의 젊은 나이에 잘 살아보겠노라며 브라질로 이민을 가 그곳에 먼저 정착한 어머니 이경란씨를 만나 아들 셋을 낳은 뒤 얻은 늦둥이 고명딸이 그다.8세 때 미국으로 건너와 이후 미국 교육을 받고 자랐으니 그는 ‘다국적 소녀’다. 영어와 포르투갈어는 물론, 한국어에도 능숙하다. 스스로도 “내 몸엔 세 나라의 피가 흐른다.”고 말한다. ●“내 몸엔 세 나라의 피가 흐른다” 사실 그가 LPGA 대회에서 뜰라치면 세 나라가 들썩거렸다. 지난 7월 LPGA챔피언십과 US여자오픈 등 2개 메이저대회에서 각 5위와 공동 2위에 오를 당시 미국에선 “대형 신인이 나타났다.“고 떠들어댔고, 한국에선 ‘박세리를 이을 만한 한국계 선수의 등장’을 반겼다. 특히 브라질에선 “테니스 스타인 구스타보 쿠에르텐에 버금가는 안젤라 박이 브라질 스포츠사를 새로 쓰고 있다.”고 흥분했다. 지난 1일 한국계 선수 6번째로 LPGA 신인왕을 확정한 박혜인은 “신인왕에 오르게 된 건 기쁜 일이지만 아직 거두지 못한 첫 승은 못내 아쉽다.”고 말했다. ●포커페이스와 기부천사 박혜인은 “골프선수가 아니었으면 아마 간호사가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살벌한 그린 위를 누비는 골퍼와 간호사의 이미지를 오버랩시키기는 어려울일일 테지만 사실 그는 이 두 가지 모습을 모두 갖췄다. 코스에 나서는 박혜인의 얼굴 표정은 좀처럼 읽기 어려운 ‘포커페이스’다. 삼성월드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미셸 위(18)와 만났을 때, 그리고 4라운드에서 ‘미국의 자존심’ 폴라 크리머와 동반라운드를 펼칠 때에도 그의 얼굴은 무표정이었다. 그러나 홀아웃한 뒤에는 갤러리와 농담을 주고 받을 정도로 10대 소녀의 모습 그대로였다. 사실 그는 자신의 성격을 ‘낙천적’이라고 설명한다.“인상쓰고 살면 인생이 행복하지 못하다.”는 게 그의 지론. 박혜인의 ‘롤모델’은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냉정한 플레이는 물론, 다른 선수나 팬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골프 실력뿐 아니라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마음까지 커졌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충고를 늘 기억하고 다닌다.”는 그는 대회 때마다 5위 내에 입상하면 1500달러씩을 자선단체에 기부금으로 내놓는다. 5년 전 휴가차 찾았던 부모의 나라 한국에서 열리는 하나은행-코오롱챔피언십에 출전한 안젤라 박. 그는 생애 첫승뿐만 아니라 ‘한국인 박혜인’으로의 재탄생까지 욕심내고 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안젤라 박은 누구 ▲출생 1988년 8월25일 브라질 이과수 ▲한국명 박혜인 ▲체격 165㎝,63㎏ ▲가족 박경욱·이경란씨의 3남 1녀 중 막내 ▲취미 글쓰기, 수다떨기 ▲경력 9세 입문, 미국주니어골프협회 주관 대회 5회 우승,US여자아마추어챔피언십 4강(2005년), 프로데뷔(06년·LPGA 2부 투어)Q-스쿨 통과,1부리그 데뷔·07년)07년 LPGA 신인왕 ▲´07성적 LPGA챔피언십 5위, US여자오픈 공동2위, 삼성월드챔피언십 공동3위, 상금랭킹 7위(97만 2300달러)
  • 출생~대졸 자녀양육비 2억3199만원

    출생~대졸 자녀양육비 2억3199만원

    자녀 1명을 4년제 대학 졸업 때까지 키우는 데 2억 3199만 6000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교 졸업까지만 드는 양육비는 1억 7334만원으로 추산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해 6∼8월 전국 6787가구에 사는 18살 미만(대학생 및 재수생은 20살 미만) 1만 1816명을 대상으로 가족 보건복지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16일 밝혔다. 지난해 기준으로 아이를 낳아 대학을 마칠 때까지 들어가는 양육비는 2003년 조사 때의 1억 9870만 8000원과 비교해 16.8% 증가했다. 양육비에는 공교육비는 물론 사교육비도 포함했다. 사교육비에는 개인과외, 학원과외, 학습지 방문지도, 피아노·미술학원비 등이 모두 포함됐다. 가구 소득 대비 자녀양육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46.4%에 이르렀다. 가구 소비 지출 중에서 자녀양육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56%로 조사됐다. 조사 가구의 월평균 자녀양육비는 158만 5000원에 이른다. 자녀 1인당 월평균 양육비는 86만 5000원이며, 이 가운데 자녀 개인비용은 55만 6000원, 가족공동 경비 중 자녀 몫은 30만 9000원이다. 개인비용 가운데는 사교육비가 1인당 20만 3000원으로 가장 많았고, 공교육비는 13만 1000원으로 조사됐다. 공교육이 무너지고 사교육이 활개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2003년과 비교해 개인 용돈 등은 16만원이나 더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애별 연간 양육비는 대학생이 1216만원으로 가장 많이 들어가고 고등학생 1194만원, 영·유아 1132만원이었다. 소득이 높을수록 자녀 양육비를 많이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나 자녀 양육에도 양극화가 뚜렷이 나타났다. 1인당 양육비는 월평균 99만원 이하 저소득 가구가 54만 1000원을 지출한 반면 월평균 500만원 이상 고소득 가구는 150만 5000원을 썼다. 저소득층은 소득의 54%를 양육비로 지출하고 있어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김승권 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자녀 양육비가 가장 많이 들어가는 대학생을 둔 경우 노후 준비 시기와 겹쳤지만 일찍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분위기 때문에 자칫 사회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6살난 ‘살아있는 부처’ 타이완에 나타났다

    6살난 ‘살아있는 부처’가 나타났다 지난 14일 타이완에서 살아있는 부처가 공개적으로 모습을 나타내 관련 종교단체 및 불교신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환생한 ‘살아있는 부처’라고 공개된 6살의 청옌상(程彦翔)은 지난해 1월 티베트의 홍교(紅敎·라마교의 한 분파)에서 ‘활불’(活佛·라마교에서 살아있는 부처를 지칭하는 말)로 정식 인정 받고 의식을 치뤘다. 청옌상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일반 아이들과 달리 매우 침착하고 점잖으며 법좌상에 단정히 앉아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홍교 법왕(法王·홍교의 가장 높은 스님)은 “7년 전 타이완에서 살아있는 부처가 태어날 것이라는 하늘의 전갈을 들었고 4년전에는 부처가 이미 타이완의 가오슝(高雄)시에서 출생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홍교 법왕이 발견 당시 고작 2살이었던 청옌상은 법왕을 보자마자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오체투지’(五体投地·두 무릎과 두 팔을 땅에 대고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하는 방식)를 행하며 예의를 갖추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것은 6살 난 아이가 티베트 어를 읽을 뿐 아니라 매우 복잡한 ‘오불수인’(五佛手印· 손가락을 이용해 모든 부처님의 깨달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모양)을 모두 맺을 줄 안다는 것. 홍교 관계자는 “청옌상은 또래와 놀기 좋아하고 호기심을 나타낼 때에는 영락없는 6살 아이임에 틀림없다.” 며 “하지만 또래의 아이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강한 자제력도 소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우리말 지킴이’ 농학박사 성제훈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우리말 지킴이’ 농학박사 성제훈씨

    # 장면 1 “가을에 피는 코스모스의 순 우리말을 아시나요?” “???” “살사리꽃입니다.” “정말요?” “바람이 불 때 살랑거리고 살살대는 모습에서 유래됐지요. 그런데 국립국어원에서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에 ‘살사리꽃’을 찾아보면 매정하게도 ‘코스모스’의 잘못이라고 나와 있네요. 그렇다면 ‘해바라기’를 왜 선플라워(sunflower)의 잘못이라고 하지 않나요? 앞으로는 ‘코스모스 만개’대신 ‘살사리꽃 활짝’이라고 표현해 주면 어떨까요” # 장면 2 “방송이나 신문에서 ‘누구누구가 비리에 연루됐다’는 말을 자주 쓰지요. 연루의 순 우리말은 뭘까요?” “???” “연루는 일본어 렌루이(連累:れんゐい)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에서는 ‘관련’으로 쓰도록 권장하고 있지요. 하지만 굳이 한자말 ‘관련’을 쓸 필요가 있을까요. 못된 일이나 범죄에 관계하다는 뜻의 ‘버물다’라는 순 우리말이 있는데도 말입니다.‘비리에 연루된 판사’가 아니라 ‘비리에 버물린 판사’라고 하는 언론사가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네요.” # 장면 3 “혹시 서울특별시청 현판에 숨겨진 비밀을 아세요?” “???” “본래 현판에는 ‘특’자를 ‘ㄷ’위에 가로줄 ‘-’ 하나를 얹어 놓았지요. 왼쪽이 다 막힌 ‘ㅌ’이 아닌 것입니다. 나중에 한글학자들이 이 문제를 지적하자 서울시에서 현판을 수정한 것이지요. 서울시청 앞을 지날 때 한번쯤 유심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숨겨진 우리말을 찾아내고 전파하는 사람은 한글학자도 아니요, 더군다나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다. 농촌에서 태어나 농촌에서 자랐고, 농과대학을 나와 농업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우리나라의 농업발전을 위해 연구에 몰두하는 토종 농학자 성제훈(41) 박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성 박사는 지난 5년 동안 국내외 3000여명에게 매일 아침 ‘우리말 편지’를 보내고 있다. 그는 최근 한글날을 맞아 한글학회로부터 ‘우리말 지킴이’로 공인받았다. 공무원 신분으로 ‘우리말 지킴이’가 된 것은 매우 드믄 일이다. ●3000여명에게 매일 ‘우리말 편지´ 전송 한글날 전날인 지난 8일 그가 근무하는 농촌진흥청(농진청·경기도 수원) 앞뜰에서 만났다. 그에게는 일년 365일이 한글날인 셈이다. 인터뷰 장소 주변에 있는 명함 달린 나무와 저수지 등이 눈에 들어왔다. 경치가 좋다는 말에 거침없는 설명이 나온다. “정조대왕이 아버지(사도세자·융릉·경기도 화성시)한테 성묘가려고 국도1호선을 만들었지요. 또 아버지묘를 지킬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화성을 지었고, 또한 이 저수지까지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때가 되면 융릉에 가서 밤과 대추, 배 등을 공손하게 올렸는데 지금의 수원시 율전(栗田)·조원(棗園)·이목(梨木) 등 3개동이 바로 이런 연유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아니 농학자가? 어쨌거나 우리말 지킴이다운 역사적 솜씨(?)가 아닐까 싶다. 농진청에서는 어떤 일을 할까. 곡물의 성장정도와 튼실여부 등을 첨단센서로 감지해 그에 맞게 비료와 씨앗 등을 자동으로 뿌려주는 ‘식물건강 측정장치’를 연구 중이라고 대답했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관심있게 연구되는 미래의 첨단농법이다. ●일본식 농업용어에 충격… 우리말 공부 이런 연구를 하는 사람이 어떻게 우리말 지킴이가 됐을까.“농업학자는 늘 농민과 가까이 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2003년초 어느 농업잡지에 글을 게재할 때 한 통의 전화를 받으면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당시 한 농부가 성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이 쓴 글 중 ‘다비(多肥)하면 도복(倒伏)한다’는 말이 무슨 말이오?”라고 물었다. 성 박사는 “벼가 비료를 많이 주면 잘 쓰러진다는 뜻이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농부는 “그렇게 쉽게 쓰면 될 것을…”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일본식 농업용어가 많은 농업서적으로 공부하다 보니 저절로 그렇게 사용했던 것이다. 평소 농사관련 강의를 자주했던 그는 더 이상 무식이 전달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끝에 우리말 관련책자 20여권을 사서 공부를 했다. 또한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일주일간 교육을 받았다. 이후 우리말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은 그는 사무실 동료들에게 틈틈이 재미있는 우리말을 전해주었다. 그렇게 아름아름 소개하다 보니 입소문을 타고 독자들이 많이 생겨났고 나중엔 ‘우리말 편지’라는 형식의 이메일을 전국 각지로 보내게 됐다. 감사의 답장도 자주 받는다는 그는 “해외에 파견된 한 주재원이 ‘새삼 우리말의 고마움을 알게 됐다. 틈나면 주재원들끼리 고국을 그리며 재미있는 우리말을 주고받는다’는 내용을 전해와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해외 주재원 감사 메일에 보람 지난해 말에는 한 출판사의 제안으로 그동안 보낸 편지를 묶어 ‘성제훈의 우리말 편지 1,2’라는 두 권의 책을 펴냈다. 인세로 받은 600만원은 모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그가 왜 ‘우리 말글 지킴이’로 인정받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얼마 전 제주도에 갔었지요. 이때 ‘하와이에 버금가는 제주를 만들자’는 현수막 글씨를 봤습니다.‘버금’이라는 말은 그 밑을 뜻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하와이보다는 항상 뒤지는 2등을 만들자는 것과 같지요.‘버금’을 ‘맞먹는’으로 바꿔줘야 합니다.” 그는 또 각종 시상식때 대상-최우수상 등을 발표하는데 이를 으뜸-버금-아차상 등으로 바꾸면 더 아름답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또한 ‘동서남북’의 순 우리말로 ‘새한마높’이 있다면서, 기상예보때 북동풍 대신 높새(북동)바람으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다음은 얼마 전 어머니와 나눈 대화 중 일부. 아들:잘 다녀오셨어요? 언제쯤 저희 집으로 가실까요? 어머니:시방. 힁허케 가자. 아들:예? 그래도… 좀 쉬시고… 어머니:납신거리지 말고 시방 가자, 새살새살하는 원준이도 보고 잡고…애들이 감쳐 여그 못 있겄다. 아들:예… 여기에서 어머니의 얘기는 놀랍게도 표준말이라고 성 박사는 말한다. 국립국어원에서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말이기 때문이다. “시방(時方)은 ‘지금’과 같은 뜻이고, 힁허케는 지체하지 않고 곧장 빠르게 가는 것이며, 납신거리다는 입을 빠르고 경망스럽게 놀려 말하는 모양입니다. 또 새살새살은 아이가 샐샐 웃으며 재미있게 자꾸 지껄이는 모습이며, 감치다는 어떤 사람이나 일이 눈앞에 사라지지 않고 계속 감돌다는 뜻이지요.” 성 박사는 전라남도 해남 출신. 전남대에서 농기계학을 전공하고 1998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오이 생육장애의 비파괴 진단법 개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가 우리말 편지를 쓰는 시간은 매일 오전 8시30분.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화장실과 침대 머리맡에서도 우리말 관련 책들을 놓지 않는다. 그는 “농업 사랑, 우리말 사랑은 천생연분이지요.”라며 웃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67년 해남 출생 ▲85년 광주 서석고 졸업 ▲91년 전남대 농대 졸업 ▲91∼94년 광주 농고 교사 ▲94∼98년 전남대 대학원 농학박사과정 ▲98년∼ 현재 농촌진흥청 농업공학연구소 근무 ▲2003년∼현재 우리말 편지 이메일 발송 ▲07년 저서 ‘성제훈의 우리말 편지 1,2’ 발간. 우리말 지킴이 위촉(한글학회)
  • 9·11당시 임신부들은…

    9·11 테러 이후 미국 뉴욕지역 임신부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미숙아 출산이 늘어났던 것으로 나타났다. BBC는 11일 버클리 대학 연구팀이 인간복제저널에 발표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이렇게 보도했다.2001년 9·11 테러 직후 뉴욕지역 미숙아 출생률은 67%까지 급증했다.그동안 과학자들은 특정 환경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 분비가 태아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측해왔다. 연구팀은 지난 1996년부터 2002년 사이 뉴욕에서 태어난 160만명 이상의 신생아를 대상으로 몸무게를 조사했다. 그 결과 9·11 테러 직후 7일 동안 태어난 아기들의 몸무게는 그 전에 출생한 신생아들에 비해 정상치(2.5㎏)에 현저하게 미달했다. 체중이 1.5㎏에서 2㎏ 사이인 신생아는 67%나 늘었다.1.5㎏ 미만인 아기도 44% 증가했다. 테러 발생 석달 뒤인 2001년 12월에도 1.5㎏ 미만 미숙아 출생률은 36% 더 높았다.2002년 1월 역시 테러 전 대비 22%가 높아 여전히 평균치를 웃돌았다. 반면 뉴욕 북쪽 등 인접 지역 미숙아 발생률은 몇 달 뒤에 뒤늦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2002년 1월 미숙아 발생률은 테러 이전에 비해 46%나 높았다. 연구팀은 “테러로 인한 미숙아 발생률은 단기적으로는 뉴욕시 안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장기적 영향은 뉴욕주와 인근 지역에까지 미쳤다.”고 결론지었다. 테러발생지역인 월드트레이드센터 인근에 사는 여성들이 최초 충격으로 즉각 조산이 촉발된 반면 멀리 떨어진 곳의 여성들은 스트레스가 장기적으로 지속됐다는 설명이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도리스 레싱의 작품세계는

    2007년 노벨문학상(제100회)을 수상한 도리스 레싱(88)은 1950년대 ‘앵그리 영맨(성난 젊은이들)’을 대표하는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2차 세계대전 전후 영국에서 일어난 전후세대 젊은 작가들을 일컫는 ‘앵그리 영맨’은 영국의 기성세대와 전통적 권위를 비판하는 작품들을 발표했다. 현재 레싱은 ‘20세기에 영어로 소설을 쓰도록 선택받은 몇 안 되는 가장 흥미진진한 지성인 가운데 한 명’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레싱은 소설, 시, 희곡을 넘나들며 작품을 썼다. 그의 소설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소설과 성장소설에서부터 우화, 설화, 로망스, 공상과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다. 레싱은 평생 주류에서 벗어난 ‘시대의 반항아’ 역할을 자처했다. 비유럽권에서 태어나 자랐고,14살에 제도권 교육을 그만둔 후 어떤 학교에도 다니지 않았다. 젊은 시절 공산당 활동을 한 레싱은 기성 가치와 제도, 체제, 이념에 늘 비판적이었다. 레싱을 영국문학의 중심작가로 만든 것 또한 타협을 모르는 작가정신과 인간 심리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관찰력에 힘입은 바 크다.“도리스 레싱은 분열된 문명을 비판적으로 다루며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담은 서사시인”이란 스웨덴 노벨재단의 수상자 선정사유는 레싱의 이같은 면모를 잘 보여준다. 레싱은 50년 2차대전 전후 영국에 합병된 짐바브웨 로디지아 지배민족과 원주민 사이의 갈등을 사회정치적 시각으로 묘사한 소설 ‘초원은 노래한다’로 문단에 입문했다. 이후 레싱은 개인과 집단의 문제를 다룬 연작소설 ‘폭력의 아이들’(1964),‘서머싯 몸상’을 받은 중편소설 ‘다섯’(1953) 등을 발표하며 신비주의와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 실존주의, 사회생물학, 인종차별, 생명과학 등 폭넓은 지적 관심사를 포괄했다. 노벨재단은 레싱의 대표작으로 ‘황금빛 노트’를 꼽고 “여성주의 운동의 태동기와 맞물린 선구적 작품으로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대해 20세기적 시각이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소수의 저작들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영미문학계에서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꼽히는 ‘황금빛 노트’는 가부장적 신화 속에서 진실된 삶을 추구하려는 여성작가 안나 울프의 이야기를 통해 혼돈과 질서, 허구와 현실을 밝혀 나간다. 페미니즘 소설이란 비평가들의 평가에 정작 레싱은 ‘황금빛 노트’에 정치적 색깔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레싱이 99년에 쓴 ‘마나와 단’에 대해서도 노벨재단은 “인류를 더 원시적인 생활로 되돌리게 될 전 지구적 재앙이 레싱에게 특별한 영감을 제공했다.”면서 “인간성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특성들이 좌절과 혼돈 속에 잘 드러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레싱은 영국에서 보낸 최초 몇 개월 동안의 시간을 묘사한 ‘영국인의 추구’(1960), 예언적 환상을 그린 ‘어느 생존자의 회상’(1975), 공상과학 연작소설 ‘아르고스의 케노푸스, 고문서’ 등 모두 7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고령임에도 레싱은 인터넷 사이트인 마이스페이스(www.myspace.com)에 직접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즐겨 찾는 블로그 사이트가 136개에 이를 만큼 네티즌과 왕성한 교류를 즐긴다. 수상자 발표 시간, 현재 런던 교외 햄스테드에 살고 있는 레싱은 자신의 수상을 전혀 예상치 않고 평소처럼 외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레싱의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레싱이 노벨문학상을 받을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너무나 기쁘다.”고 말했고, 레싱의 편집자인 니컬러스 피어슨은 “여성의 내면 세계를 묘사한 그의 초기 작품들은 문학의 모습을 바꿔놓았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수상 소식을 접한 레싱은 “이제 유럽의 모든 상을 다 받아 매우 기쁘다. 이건 로열 플러시(포커게임 최고의 패)다.”라며 수상의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레싱의 수상으로 역대 노벨문학상을 받은 여성 작가는 11명으로 늘어났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도리스 레싱 연보 ▲1919년 10월22일 페르시아(지금의 이란)에서 출생 ▲1925년 아프리카 로디지아(지금의 짐바브웨)로 이주 ▲1939년 공무원이던 프랭크 위즈덤과 결혼해 1남1녀를 두었으나 1943년 이혼 ▲1945년 우간다 주재 독일 대사를 역임한 고트프리드 안톤 레싱과 결혼했다가 다시 이혼 ▲1949년 영국 런던에 정착 ▲1950년 첫 장편 ‘풀잎은 노래한다’ 발표 ▲1952∼1969년 연작 ‘폭력의 아이들’ 발표 ▲1952∼1956년 영국 공산당원으로 반핵 활동 ▲1956∼1995년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를 비판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입국 금지 ▲1962년 ‘황금빛 노트’ 발표 ▲1974년 ‘어느 생존자의 회상’ 발표 ▲1988년 ‘다섯째 아이’ 발표 ▲2002년 ‘가장 달콤한 꿈’ 발표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
  • [내책을 말한다] 정치가 정도전/ 까치 펴냄

    조선 건국의 공신으로 언제나 가장 먼저 거론되는 정도전(1337∼1398)은 주자학의 이념과 원리를 받아들여 그것에 맹목적으로 집착하지 않으면서, 현실의 제약 속에서 자신의 논리를 세워가며 현실과 이념의 차이를 좁혀보려고 고투했던 인물이다. 정도전은 대표적인 주자학자인 동시에 발군의 경세가이기도 했다. 그의 일생은 현실 정치를 떠나서는 논할 수 없다. 출생에서 죽음까지 정치적인 것을 빼놓고는 그의 진면목을 설명하기 어렵다. 정도전은 탁월한 정치사상가인 동시에 위대한 정치가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정치학 분야에서도 정도전에 대한 연구가 이어져왔다. 그러나 ‘삼봉집’을 비롯한 1차 자료는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같은 내용이나 표현이 반복적으로 서술되는 경향이 있었다. 앞으로의 연구에서는 지금까지의 자료와 연구를 바탕으로 새롭고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정치사상가이자 정치가로서 정도전을, 그의 사상과 행동, 그리고 이념과 권력의 상호작용에 대한 종합적 접근을 통해서 해석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미 2003년 ‘제1회 삼봉학 학술회의’의 주제였던 ‘정치가 정도전의 조명’에서도 상당 부분 제기되기도 했다. 우리 역사에는 세계사적 관점에서 살펴보아도 위대한 지도자가 적지 않다.13∼14세기는 서양에서 근대의 샛별들이 등장하는 시대였다. 중세의 황혼에서 근대의 여명을 내다 본 단테는 당대의 탁월한 사상가인 동시에 정치가였다. 그가 죽은 지 21년이 지난 1342년 한국에서 정도전이 태어났다. 정도전의 일생을 정치학의 열쇠 개념들을 원용하여 설명하자면, 그는 세계사적 수준에서 보아도, 동시대의 어떤 정치가와 비교해도, 그리고 한국사에 등장한 수많은 정치 지도자들과 비교해도 지력(知力)이나 정치력 양면에서 그 탁월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냉혹한 권력 투쟁의 과정에서도 확고한 정치 철학을 가지고 새로운 정치공동체 조선왕조를 건설한 큰 정치가였다. 이 책에서 정도전의 사상과 행동을 종합적으로 분석, 그를 한국사에 등장한 큰 정치가의 한 모델로 자리매김하고자 했다. 안으로 국민을 통합하고 밖으로 세계의 흐름에 기민한 적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치 지도자가 그 어느 때보다 요망되는 오늘날, 원리원칙과 전략적 사고를 견지하면서 현실타협과 전술의 의미를 꿰뚫고 있었던 정치가 정도전의 메시지를 우리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상용 전 고려대 교수
  • [스포츠라운지]KOVO컵서 맹활약 LIG ‘스페인특급’ 팔라스카

    [스포츠라운지]KOVO컵서 맹활약 LIG ‘스페인특급’ 팔라스카

    “목표는 우승이다.‘만년 3위’ LIG의 오명을 씻겠다.” 지난해 삼성화재에서 뛴 ‘아마존 괴물’ 레안드로 다 실바(24·브라질)가 일본으로 떠나자 또 한명의 ‘괴물’이 올시즌 프로배구 판도에 변화를 예고했다.LIG의 ‘스페인 특급’ 기예르모 팔라스카(30)다. 최근 정규리그 전초전으로 열린 한국배구연맹(KOVO)컵에서 눈부신 화력을 과시한 팔라스카를 만나 각오를 들었다. ●유럽에서 검증된 ‘스페인 특급’ 팔라스카는 올시즌 프로배구 개막에 앞서 열린 KOVO컵에서 스파이크는 물론, 블로킹과 리시브 등에서 기대 이상으로 활약해 배구 코트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대회기간 내내 ‘역대 최강 외국인선수’라는 탄성이 쏟아졌다. 그도 그럴 게 결승전을 제외한 4경기,17세트에서 무려 130득점을 올렸다. 게다가 상무전에서는 대회 첫 트리플 크라운(후위공격·서브·블로킹 각 3개 이상)까지 작성했다. 팔라스카는 유럽 프로배구리그에서 이미 검증된 선수다.11세 때 배구선수였던 아버지와 형의 권유로 배구공을 잡은 그는 타고 난 파워에 타점 높은 스파이크로 어려서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프로 입문 후 스페인리그는 물론 프랑스·벨기에·이탈리아 등지를 누비며 ‘유럽 최고 공격수’로 명성을 쌓았다. 특히 지난 9월 끝난 유럽 국가대항전인 유러피언리그에서 세계 정상급인 폴란드(세계 2위)·러시아(3위)·이탈리아(4위) 등을 연파, 스페인(24위)을 유럽 정상에 올려놓으며 득점왕과 최우수선수(MVP) 타이틀을 움켜쥐었다. ●“이젠 LIG를 정상으로 견인한다” 팔라스카가 LIG와 인연을 맺게 된 건 새 사령탑 박기원 감독 때문이다. 그는 “이탈리아리그에서 뛰던 자국 동료인 라파엘 파스콸이 예전부터 박 감독이 훌륭하다고 얘기를 많이 해서 전부터 알고 있었다.”면서 “박 감독의 제의를 받고 큰 고민없이 한국행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 감독 부부는 수원체육관 근처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팔라스카 가족에게 친부모처럼 정성을 쏟았다. 팔라스카는 ‘한국 배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훌륭한 팀과 뛰어난 선수들이 많아 좋은 경쟁을 펼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모두가 우승을 목표로 뛰겠지만 올해 만큼은 LIG에 양보해야 할 것”이라고 장담했다.‘한국 선수 중 누굴 최고로 꼽겠느냐.’고 묻자 “이경수다. 파워나 기술, 두뇌플레이까지 갖춘 최고의 공격수다.”고 치켜세운 뒤 “다른 팀들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올해는 아무래도 LIG가 우승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글 사진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출생1977년 스페인 ▲ 체격 200㎝,90㎏ ▲ 학교 후안 데 소리야 고등학교 졸 ▲ 가족 아내 알바레스 마이라(30), 딸 아예시아 팔라스카(1) ▲ 취미 여행, 음악감상 ▲ 경력 2007월드컵 스페인 국가대표,07유러피언리그(스페인 우승) 득점상·최우수선수(MVP) 05유러피언리그 득점상,03·04월드리그 스페인대표,00∼01프랑스리그,01∼03벨기에 리그,03∼06이탈리아리그,06∼07스페인리그.
  • 노벨화학상 獨 에르틀 수상

    스웨덴 왕립과학원의 화학분야 노벨위원회는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고체표면에서의 화학공정에 대한 연구성과를 인정해 독일의 게르하르트 에르틀을 선정했다고 10일 발표했다.왕립과학원측은 “에르틀의 연구는 자동차의 촉매가 작용하는 방식과 연료전지의 기능 및 쇠에 녹이 스는 이유뿐 아니라 오존층이 엷어지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도 공헌했다.”고 밝혔다. 에르틀은 ‘표면화학(계면화학)’ 선구자로 표면화학이 하나의 학문 분야로 자리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화여대 김성진 교수는 “에르틀의 업적이 대부분 70년대 초중반에 이뤄졌는데 표면화학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라면서 “이는 에르틀의 연구가 당시 얼마나 앞서갔던 것인가를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거나 새로운 현상을 발견해 사회·산업적으로 미친 영향을 높이 평가받은 데 반해, 에르틀은 이미 산업화돼 광범위하게 쓰이는 화학반응의 원리를 규명했다. 실제로 에르틀의 업적 중 가장 크게 부각된 암모니아 합성은 뚜렷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채 2차 세계대전 시기부터 산업적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에르틀은 높은 수준의 진공 상태를 만들어 철표면에서 수소와 질소 분자가 어떻게 흡착돼 암모니아로 만들어지는지를 광전자분광기를 통해 원자 규모에서 밝혀냈다. 이는 암모니아가 폭넓게 쓰이는 비료산업의 활황을 가져왔고, 백금촉매에 대한 연구는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일산화탄소를 이산화탄소로 완전연소할 수 있도록 해 환경오염을 크게 줄이는 계기를 만들었다. 1936년 10월10일 독일의 바트칸슈타트에서 출생한 에르틀은 마침 71번째 생일에 생애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1965년 뮌헨공대에서 물리화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에르틀은 베를린 막스플랑크 재단 산하 프리츠하버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뒤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국내에서는 성균관대 화학과 이순보 교수와 김영독 교수가 에르틀을 사사했다.●`노벨상 사관학교´ 20명 배출한편 막스프랑크 재단은 에르틀의 수상으로 지금까지 2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며 ‘노벨상 사관학교’의 명성을 다시 확인시켰다.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노벨 물리학상 佛 페르·獨 그륀베르크

    2007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프랑스의 알베르 페르와 독일의 페터 그륀베르크가 선정됐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의 물리학 분야 노벨위원회는 나노 기술 및 거대자기저항(GMR) 발견에 끼친 공로를 인정해 페르와 그륀베르크를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9일 발표했다. 페르와 그륀베르크가 발견한 GMR는 대용량 저장장치로 널리 사용되는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에 저장된 자료를 읽어내는 데 활용되며 하드디스크의 소형화·고집적화를 가능하게 한 결정적 단초를 제공했다. 특히 이들은 나노 기술로 초기 단계의 하드디스크를 직접 고안해 GMR 현상의 가치를 입증했다. 1938년 프랑스 카르카손에서 태어난 페르는 파리 11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이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공동 수상자인 그륀베르크는 1939년 필젠에서 출생해 다름슈타트공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독일 윌리히연구센터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신당 대선후보 인물 검증] 2002년 대선경선 자금수수 의혹 침묵

    대선철이 되면 각 후보의 과거 행적, 가족사까지 낱낱이 공개돼 도마에 오른다. 정동영 후보도 예외가 아니다. 본지는 정 후보에 대해 제기되는 의혹들에 대해 정 후보 측의 답변을 요청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공소권 없음´ 수사 종결 2004년 1월, 새천년민주당은 정 후보가 2002년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불법자금을 받았고,2000년 최고위원 경선에서 권노갑 고문으로부터 2000만원을 받았다며 고발장을 접수했다. 대검 중수부는 고발 사건을 중수1과에 배당, 수사에 착수했고 원칙에 따른 수사를 천명했다. 당시 김근태 고문의 불법경선자금 수수 양심고백과 권노갑 고문이 정 후보에게 돈을 건넸다는 폭로가 잇따랐지만, 정 후보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수사를 진행하는 중 정 후보에 대한 공소시효가 만료됐고 검찰은 1년 여가 지난 2005년 4월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정 후보의 측근 중 일부만 경선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됐다. 한 민주당 인사는 “당시 검찰은 정 후보에게 돈을 줬다고 주장하는 권 고문을 불러 참고인 진술 한번 듣지 않았다.”고 전했다.●선친 일제강점하 이력 논란 정 후보의 선친인 정진철(1924∼1969·실제 출생 1921년)씨는 일제 말기인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전북 순창군 구림면의 금융조합 서기로 근무했다. 정 후보 부친의 일제강점기 행적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80대의 순창읍 토박이 할아버지는 “금융조합이 곡식 낱알까지 다 걷어가 수원, 김제평야까지 가서 양식을 구해와야 했다.”면서 “당시 금융조합에서 일한 조선인은 간부, 말단직 할 것 없이 다 친일파였다.”고 말했다. 정 후보 측의 직접적인 답변은 듣지 못했으나 정 후보 측은 몇년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친의 경력은 사실이나 친일 논란에는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 관계자는 “금융조합은 일제 말기 전시체제에서 자금 동원 역할을 맡았다.”면서 “현금뿐 아니라 농작물 등 현물까지 강제로 저축하게 했고, 쌀 한 말 값에 해당되는 1원짜리 ‘꼬마 채권’ 등을 발행해 농민들에게 구매를 강요했다.”고 설명했다. 정 후보의 부친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연좌제 국가도 아닌데 부친의 일제감점하 행적으로 아들이 고통을 받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정 후보는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부친이 일제시대 검찰 서기로 근무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연좌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의 역사 인식의 관점을 짚어야 한다는 의미”라면서 친일 의혹을 명백히 규명하라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정 후보의 부친은 광복 직후 면장을 지냈고, 한국전쟁을 전후해 ‘대한청년단(한청)’의 구림면 단장으로 활동했다. 한청은 1949년 고 이승만 전 대통령이 조직한 우익청년단체로, 활동에 대해서는 역사적 평가가 엇갈린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관계자는 “한청이 좌익혐의자라고 해서 민간인을 마음대로 연행하거나 불법적으로 학살에 가담한 행위들이 조사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구림면 토박이 전영모(75)씨는 “전쟁시 한청은 군인들이 빨치산인지 양민인지도 모르고 다 죽이려고 하는 걸 막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특별취재팀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광화문 복원 진두지휘 신응수 대목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광화문 복원 진두지휘 신응수 대목장

    ‘어라, 광화문이 사라졌네!’‘그럼, 언제 다시 나타나지?’ 서울 도심의 한복판, 세종로에 왔다가 광화문이 없어진 것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이곳을 지날 때면 저절로 고개를 돌려 깜쪽같이 사라진 광화문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한번쯤 해봤을 터이다. 지난 9월28일자 서울신문에는 훈훈한 기사가 단독보도돼 눈길을 끌었다. 광화문 복원을 총지휘할 도편수 자리를 놓고 벌이던 전통 건축분야의 양대 산맥의 한판 승부에 대한 내용이다. 형님뻘인 전흥수(70) 대목장이 신응수(66) 대목장에게 도편수 자리를 아름답게 양보했다는 것이다. 전 대목장은 추석 연휴 직전에 신 대목장과 만나 “우리끼리 자리를 놓고 다투는 것은 누워서 침뱉기가 아니냐.”면서 물러서겠다는 뜻을 알렸다. 신 대목장은 전 대목장의 어려운 결정에 고마움을 표시했음은 물론이다. 특히 전 대목장은 “그 사람(신 대목장)이라면 광화문 복원을 제대로 해낼 것”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로써 광화문 복원공사의 도편수(목수 우두머리) 자리는 신 대목장이 맡게 됐다. ●18년간 경복궁 복원사업 이끌어 신 대목장은 1991년 중요 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 보유자로 지정됐으며 지금까지 18년동안 경복궁 복원사업을 대부분 진두지휘해 왔다. 또한 앞으로 2년동안 광화문 복원까지 맡게 됐으니 천년궁궐 재현의 대역사는 사실상 그의 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서울 경복궁 함화당 복원공사 현장에서 신 대목장을 만났다. 명함을 내밀었더니 돌아온 명함이 특이하다. 근정전 사진 위에 ‘성재(誠齋) 申鷹秀’라고 적혀 있었다. 하늘을 나는 매응(鷹)? 의아해 하자 “향나무 숲에서 매가 날아오르는 어머님 태몽 때문에 매응자로 했고 성재는 경복궁 복원사업 초창기때 한 서예가 선생이 집을 정성스레 잘 지으라며 지어준 호”라고 설명했다. 먼저 전 대목장과 만남에 대한 얘기를 슬쩍 꺼냈더니 “그 분과는 친하게 지내고 있다.(전 대목장은)기능인들이 화합이 잘 안되는데 그러면 되겠느냐고 하셨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광화문 복원공사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산림청과 문화재청의 도움을 받아 국유림과 사유림 등에서 적합한 목재를 고르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아마 동해안쪽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적송)가 선택될 것 같으며 천년궁궐을 짓기 위해서는 좋은 나무가 필수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대들보인 경우 소나무 수령이 300∼400년정도 돼야 한다는 그는 “일제때 좋은 나무들이 마구 남벌돼 나무 구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높이 18m, 직경 70㎝이상의 적송을 찾기가 녹록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또 “올 겨울부터 목수일이 시작되기 때문에 그 이전에 나무를 구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궁궐 복원 공사에는 뭐니뭐니해도 철저한 고증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광화문 복원공사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목수 30여명이 투입된다고 밝혔다. 현재 경복궁 복원공사 사업은 모두 5단계 중 4단계를 마친 상태. 이 가운데 광화문 복원사업이 최종단계로 경복궁 재현의 화룡점정인 셈이다. 그가 맡은 경복궁 복원사업으로는 현재 진행 중인 함화당을 비롯해 ‘침전지역’‘동궁지역’‘태원전 권역’‘건청궁’‘근정전’ 등이다. 광화문의 경우 본문 외에 군사방, 수문장청, 영군직소 등이 포함된다.2009년까지 목재만 450만재, 기와 150만장, 비용 1789억원이 투입되며 전각 등 총 93동이 복원되는 대단위 공사다. 신 대목장 개인적으로는 꼬박 20년을 경복궁에서 출퇴근하게 되는데 그 대미를 광화문으로 장식하게 된다. 그는 “문무백관의 조회와 국가의식을 거행했던 근정전은 우리 고건축의 백미”라고 극찬하면서 해체·복원하는 과정에서 140년전의 건축기법을 완전히 이해하게 됐고 또한 광화문도 이와 비슷한 건축기법이라고 귀띔했다. 근정전 복원은 2000년부터 3년 10개월 걸렸다. “광화문 복원공사는 예정된 2009년 말 이전에 끝낼 수 있습니다. 목조는 잘 관리만 하면 천년수명이기 때문에 광화문 또한 이제 새로운 천년을 시작한다고 볼 수 있지요.” 그는 중졸학력으로 당대 최고의 목수자리까지 올랐다. 올해로 꼭 50년째 목수인생을 맞고 있는 그는 1942년 충북 청원군 오창면에서 9남매 중 여덟째로 태어났다. 병천중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서울로 올라와 신강수 한테 망치질을 배우며 일찍 밥벌이 전선에 뛰어들었다. 말 그대로 먹고 살 수 있는 기술 한가지만 배우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것. 그러다보니 목수들의 양말 세탁 등 온갖 심부름과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대들보용은 소나무 수령 300~400년 돼야 그러던 1960년 명인 이광규의 문하생으로 들어간다. 이때 봉원사 요사 및 종각 공사에 참여했다. 이듬해에는 스승의 스승 조원재를 만나 남대문 중수 공사에 동참했다. 1965년 군복무를 마친 후에는 오대산 월정사 대웅전, 진주성 촉성문, 서울 숭인동 청룡사 대웅전, 용인 호암장 신축 공사 등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대목장의 길로 접어들었다. 1975년 수원성 장안문 복원공사 때에는 도편수로 독립하면서 1983년까지 밀양군 무안면 홍제사 법당, 서울 삼청동 총리공간, 서울 필동 한국의 집, 경주 안압지 1∼3건물, 단양 구인사 사천왕문, 부여 삼충사 영당 및 내외삼문, 울산 동축사 대웅전 및 산신각, 유성 현충원 현충문, 부여 무량사 극락전 보수 공사 등을 맡으면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다. ●중졸 학력으로 50년째 목수… 당대 최고 도편수 자리에 1982년 청와대 영빈관인 상춘재를 신축할 때 도편수를 맡았다. 한겨울에 30여명의 목수들과 함께 새벽 여섯시에 청와대로 출근,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부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웠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상춘재는 4개월 만에 완공됐다. 이와 관련 “아마 가장 빨리 지은 한옥이 아니겠느냐.”고 술회했다. 이 같은 인연이 있어서인지 1989년 청와대 대통령관저의 신축공사까지 맡게 된다. 그는 평소 “좋은 적송을 구하는 사람이 좋은 건축을 하는 것”이라고 늘 주장해왔다.1980년대 초반 강원도의 적송 많은 산 50만 평이 매물로 나오자 주저 없이 사들여 좋은 재료를 현장에 공급하면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바탕이 된다.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인 경복궁 보수공사의 도편수가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경복궁 복원공사가 다 마무리되면 평소의 꿈인 우리나라 전통건축 박물관을 지을 예정이다. 슬하에 2남3녀를 두었으며 큰아들이 목재소를 운영하면서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다. 신 대목장은 우리나라 고건축의 대가인 조원재, 이광규로 이어지는 대목장 계보를 잇고 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그가 걸어온 길 ▲1942년 충북 청원 출생 ▲58년 충남 병천중학교 졸업 ▲58∼60년 신강수, 박광석 문하에서 한옥 주택 신축 공사 ▲75∼78년 수원성곽 장안물, 창용문 복원 공사(도편수 신응수) ▲79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 신축 공사 ▲82∼83년 청와대 상춘재 신축 공사 ▲88년 경복궁 만춘전 복원 공사 ▲89∼90년 청와대 대통령관저 신축 공사 ▲91년 중요 무형문화재 제 74호 대목장 보유자 ▲91∼95년 경복궁 침전지역 복원 공사(강녕전, 교태전, 경성전, 연생전, 웅지당, 연길당, 함원전, 흠경각, 동서행각, 건순각, 양의문, 함흥각 등) ▲96∼98년 경복궁 동궁지역 자선당, 비현각, 회랑 복원 공사 ▲97∼99년 경복궁 자경전, 창덕궁 돈화문 보수 공사, 경복궁 경회루 보수 공사 ▲97∼2001년 경복궁 흥례문 권역 복원 공사(흥례문, 유화문 및 화랑) ▲2000∼04년 창덕궁 규장각 옥당, 약방, 영의사, 검서청, 양지당, 봉모당 복원 공사, 경복궁 근정전 보수공사 ▲04∼현재 경복궁 건청궁(장안당, 곤녕합, 복수당 外 13동) 복원공사 # 수상 만해예술상 수상(99년), 옥관문화훈장(2002년) 등 # 주요 저서 ‘천년 궁궐을 짓는다’‘목수’‘경복궁 근정전’ 등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