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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정치를 말하다] (10·끝) 박준선 한나라당 의원

    [내 정치를 말하다] (10·끝) 박준선 한나라당 의원

    나의 정치는 혐오와 경멸에서 시작됐다. 검사 시절 국민보다는 조금 더 가까이 정치인들을 접할 수 있었다. 정치인 수사를 하면서 국민들이 왜 정치와 정치인에게 절망하는지, 그 실체를 엿볼 수 있었다. 대통령이나 유력 정치인과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자격도 없는 이들이 득세하고, ‘검사의 길’을 외치던 선배·동료 검사들은 그런 정치인들에게 줄을 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국민들의 기대와 무한 책임을 짊어져야 할 국회의원들의 무책임한 행태를 보면서 왜 우리 국민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몇 배 더 일하는데도 보상을 적게 받고, 덜 행복한지도 어렴풋이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검사 생활 대부분을 정치인을 ‘잡는’ 데 집중했다. 그러면 나라가 깨끗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16대 때 유력 정치인을 기소해 끝내 의원직을 박탈시켰고, 또 다른 유력 정치인을 체포하기 위해 영장을 들고 당사에 들이닥치기도 했다. 그러나 ‘검사 박준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정치인 몇 사람을 처벌한다고 세상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결국 어릴 때부터 간직했던 검찰총장의 꿈을 접기로 했다. 스스로 정치인이 돼서 세상을 한번 바꿔 보자고 마음먹었다. 8년 반을 몸 담았던 검찰을 떠나 한나라당의 문을 두드렸지만 쉽지는 않았다. 2004년 총선 공천과 2006년 재·보선 공천에서 잇따라 떨어진 뒤 2008년에 국회에 들어왔다. 막상 정치를 하다 보니 개별 정치인의 자질도 문제이지만 우리의 정치 시스템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을 느꼈다. 국민의 요구를 받아 법을 만들고 공무원들을 감시하며 예산과 정책을 집행하게 하는 정치 본연의 시스템을 바로 세우는 게 더 급선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세상을 바꾸고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기 위해 정치판에 뛰어들었고, 국회의원이 된 이상 나는 더 이상 ‘무엇이 될까’에 관심이 없다. 다만 ‘무엇을 할 것인가’에만 신경을 쓸 뿐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나만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 느낌이 들 때 나는 주저 없이 정치를 그만두겠다. 국회의원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났다.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정치인 박준선’의 성과는 턱없이 불만족스럽다. 국민들도 그러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감히 말하고 싶다. 경멸했던 정치인들의 뒤를 밟지는 않을 것이라고. 어린 시절 부모님의 희망이었던 것처럼 국민들의 작은 희망이 될 것이라고. [Q&A] “지금 와서 이재오 배신할 수 없다”Q 왜 한나라당을 택했나. A 검사 시절부터 나의 관심은 국민의 안전과 행복이다. 특히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안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정치 입문을 꿈꿨을 당시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다. Q 한나라당에 만족하나. A 한나라당에는 좋은 집안의 자제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 같다. 소위 ‘웰빙 정당’ 분위기가 강하다. 가난한 집안에서 어렵게 공부했던 나와 정서상 차이가 있다. 한나라당의 서민정책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이런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즉흥적이고 감성적인 야당보다는 한나라당이 좀 더 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Q 어떤 정치를 추구하나. A 국민 곁에서 정책과 예산을 집행하는 것은 결국 공무원들이다. 공직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이끄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Q 현재 검찰의 모습을 어떻게 평가하나. A 대한민국에는 추상 같은 사정기관이 필요하고, 검찰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국민들이 부여한 권한을 검사들이 개인이나 조직에 준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래서 국민들에게는 검찰이 오만하게 보인다. 나도 검찰에 있었을 때는 그랬던 것 같다. Q 이재오 특임장관과는 어떤 관계인가. A 한나라당 공천에서 두 번이나 탈락한 경험이 있다. 그런 나를 받아들이고, 공천받게 해 준 분이다. 정권의 2인자로 알려졌지만 은평구의 서민 주택에 사는 청렴한 분이다. 인간적으로 존경한다. Q 이 장관과의 관계가 부담스럽지 않나. A 낳아 주고 길러 준 부모를 어느 날 부양하게 됐다고 자식으로서 부담스러워하거나 그 관계를 청산할 수 있나. 정치인들도 부모 자식처럼 숙명적인 관계가 있다. 친이(친이명박)계는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시켰고, 정부를 공동으로 운영했다. 공과를 모두 함께 책임져야지, 지금 와서 한때의 식구를 할퀴고 돌아서는 것은 옳지 않다. Q 홍준표 대표의 측근으로도 분류되는데. A 측근은 자존심 상하는 단어다. 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 누구의 아랫사람이 아니다. 홍 대표와는 매우 친하고, 존경할 만한 검찰 선배다. 지난해와 올해 전당대회 때 많이 도와드렸다. 무엇을 바라고 한 건 아니다. Q 박근혜 전 대표를 어떻게 평가하나. A 박 전 대표는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고, 삶을 깊이 성찰하는 분이다. 정치적 역량도 상당하다고 본다. 30%가 넘는 지지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수직적 리더십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수평적 리더십을 갖추지 못하면 시대와 소통할 수 있는 인재를 모을 수 없다. 대통령이 된다고 하더라도 수직적 리더십은 곤란하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박준선 의원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성동고·서울대 법대 졸업 ▲34회 사법시험 합격 ▲서울지검, 광주지검, 울산지검 검사 ▲법무법인 홍윤 대표변호사 ▲단국대학교 법과대학 겸임교수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위원 ▲이명박 대통령 경선캠프 법률지원단장 ▲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원내부대표 ▲한나라당 법률지원단 부단장 ▲한나라당 법제사법정책조정위원회 부위원장
  • [에코붐세대를 말한다] 약진하는 에코부머 누가있나

    [에코붐세대를 말한다] 약진하는 에코부머 누가있나

    베이비붐 세대의 자식 세대인 에코붐 세대(1979~1985년 출생·에코부머)는 성장 과정에서 사회적 다양성을 접한 세대이기도 하다. 기성세대와는 다른 곳에서, 다른 과정을 거치고도 두각을 나타내는 에코부머들이 많은 것도 이 같은 까닭이다. 위기와 고난은 때로는 위장된 축복이라는 것을 증명한 이들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산소탱크’ 박지성(30)이 대표적인 에코부머다. 그는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먼 명지대를 졸업했지만 끈질긴 도전 끝에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 됐다. 지난해 남아공 월드컵까지 3회 연속 본선에 진출하며 한국을 넘어서 세계적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체격이 왜소해 축구선수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주위의 기존관념을 불식하고 인생 역전을 일궈낸 사례다. ‘대한민국 대표 마술사’ 이은결(30)도 중학생 때 내성적 성격을 고치기 위해 마술을 시작했지만 마술을 대중화시키고 처음으로 단독공연을 시도해 ‘매직 콘서트’라는 장르를 탄생시켰다. 끊임없이 새로운 마술에 도전하다가 자괴감에 빠질 즈음 입대, 해군 마술병으로 활약했다. 지난해 제대했지만 올 3월 세계마술가협회가 1년에 한 명에게만 시상하는 멀린상(The Merlin Award)을 국내 마술사로는 최초로 수상, 녹슬지 않은 마술실력을 증명했다. 기성세대는 이해하기 힘든 프로게이머의 1세대인 ‘테란의 황제’ 임요환(31)은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프로게이머다. 2001년 한빛소프트 스타리그와 코카콜라 스타리그에서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면서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프로게이머 1억원 연봉시대를 연 그는 프로게이머 사상 최고 연봉 기록(2억여원)도 세웠다. ‘청바지 화가’로 불리는 최소영(31·여)도 이색 아이디어 하나로 20대에 이미 이름을 떨쳤다. 그는 천 위에 스케치를 한 뒤 누군가가 입다 버린 청바지를 자르거나 꿰매는 작업을 통해 도시 이미지와 서민 동네를 예술적으로 표현해 낸다. 부산 동의대 미대 3학년이던 2001년 서울 인사동 블루갤러리에서 최초로 개인전을 가졌고, 2006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그의 작품 ‘광안교’가 1억 9000만원에 팔려 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그는 20~30대에 경매시장에서도 가장 인기를 끄는 작가로 발돋움했다. ‘인디 음악계의 서태지’로 불리는 장기하(29)는 서울대 졸업생으로 인디밴드 활약을 하는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다. 2008년 EBS ‘스페이스 공감’ 무대에서 독특한 퍼포먼스와 코믹한 가사 등이 널리 퍼지면서 ‘인디’ 돌풍을 일으켰다. 인디밴드 ‘눈뜨고 코베인’에서 6년간 드럼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2008년 5월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을 결성했다. 인터넷과 방송 등에 출연해 열렬한 박수를 받은 뒤 싱글 앨범 ‘싸구려 커피’, 정규 1집 ‘별일 없이 산다’ 등을 발매해 인기를 얻었다. 지난달에는 2집 ‘장기하와 얼굴들’을 정식 발매해 주요 온라인 판매처에서 판매율 1위를 기록하는 등 다시 한번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외국인도시 길을 묻다] “한국말 서툴러 취업 어려워… 임금체불·차별 여전해요”

    [외국인도시 길을 묻다] “한국말 서툴러 취업 어려워… 임금체불·차별 여전해요”

    “한쿡 생활 쉽지 않아요~.” 결혼 이민자와 외국인 근로자 등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저마다 한국 생활의 애환을 털어놓는다. 숨은 사연은 각기 달라도 낯선 이국땅에서 겪는 어려움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의사소통 문제 가장 힘들어” 17일 오후 4시 서울 성동구 홍익동 ‘성동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네 살배기 아이와 함께 아동극 프로그램에 참여해 ‘아기돼지 삼형제’ 대본을 연습 중이던 서수분(30·여·중국)씨는 서툰 한국말로 “남편은 귀화시험을 통과해 국적을 취득했는데 저와 아이는 아직도 중국인”이라며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3년 전 조선족 남편을 따라 한국에 온 서씨는 “우리 아이는 한국에서 태어났는데도 국적을 취득하려면 중국에 가서 가족증명서를 떼 와야 하고, 이를 제출해도 1년 넘게 기다려야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서씨는 결혼 이민자에게 주는 보육비 지원 등 각종 혜택도 받지 못한다. 다문화가족이라고 하더라도 한쪽 부모가 한국에서 출생해야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현행 ‘다문화가족지원법’ 때문이다. 서씨는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보육비가 한 달에 40만원이나 드는데, 지원이 정말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한국인 남편을 따라 1993년 한국에 온 유세프타(33·여·우즈베키스탄)씨는 “한국말을 체계적으로 교육받기 쉽지 않고, 육아와 아이 교육에 대한 걱정도 크다.”고 말했다. 한국말이 서툴러 취업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고 했다. 구청을 통해 다문화지원센터에 취업해 9월까지 프로그램 지원 업무를 하고 있는 응옥티마이(24·여·베트남)씨는 “다문화 가족들을 위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성동구에서 결혼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국생활의 힘든 점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언어 문제가 66%로 가장 많았고, 이어 자녀 양육과 경제적 어려움, 외로움 등의 순이었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안산 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위즈(39·나이지리아)씨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언어와 문화적 차이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 한국인 친구들이 도움을 많이 줬다.”면서도 “하지만 불법체류라는 신분 때문에 임금 차별을 받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안타까운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고 했다. 그는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도 다르지만 똑같은 사람으로 대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불법체류자 약점 탓에 돈 못받아”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온 김모(43)씨는 “양계 농장에서 5년간 일했지만 불법체류자라는 약점 탓에 돈 한 푼 받지 못했다.”며 “노동부에 신고하는 것을 도와주겠다던 사람이 나타나 그를 믿었는데 갑자기 사건이 종결됐다며 종적을 감춰 버렸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우리는 한국인도, 중국인도 아닌 사생아 같은 존재”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같은 고향 출신인 장길성(73)씨는 “몸이 아파 고생하자 ‘중국동포의 집’ 직원들이 입원비를 마련해줬다.”고 고마워했다. 부인과 사별한 뒤 한국에 온 그는 “고향에 돌아갈 생각이 없다.”며 “같은 민족이고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글을 쓰는 동포의 나라에 정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상담과 통역일을 하고 있는 임옥(38·여·베트남)씨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임금체불과 산업재해로 고통받고 가정폭력, 차별, 폭행 등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외국인들의 상담이 줄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대표적인 외국인 마을인 서초구 반포4동 서래마을에 사는 외국인들도 어려운 점이 있다. 쾌적한 분위기의 고급 빌라가 밀집된 부촌에 살고 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넘지 못할 벽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 동네에서 주민센터 역할을 하고 있는 ‘서래 글로벌빌리지센터’는 외국인 거주자들이 겪는 생활관련 불편사항을 해결하고, 의사소통을 돕고 있다. 서래마을에는 주민 1만 3000명 중 718명이 외국인이고, 또 이 가운데 400여명이 프랑스인이다. 한국인 남편을 따라온 알리홀 마리피에(40) 센터장은 “서래마을에 사는 외국인 상당수가 비자 발급과 변경 절차가 복잡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각종 예약 시스템이 영어로 돼 있지 않아 공연과 여행 등을 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관공서 서류에 영어 표기를 병기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조현석·강동삼기자 hyun68@seoul.co.kr
  • [에코붐세대를 말한다] “현재를 즐긴다”… 월세면 어때 & 지름신 강림 괜찮아

    [에코붐세대를 말한다] “현재를 즐긴다”… 월세면 어때 & 지름신 강림 괜찮아

    베이비부머는 사회에 진입할 때부터 각종 변화를 이끌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초등학교 오전·오후반이 생겼고 이들이 자산을 모아 집을 살 무렵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들이 은퇴를 시작한 지금 금융시장과 부동산시장의 변화가 예상된다. 이 세대의 자녀들인 에코부머( echo-boomer)들은 어떨까. 700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부머에 비해 510만명이라 사회적 영향력은 부모 세대보다는 작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양성에 대한 사회적 포용이 늘어났고 이들이 자기 정체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작은 트렌드가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는 현상도 나올 수 있다. 사회적 양극화가 빨라지면서 부모 세대의 부를 기반으로 한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월세주택시장이 열렸다” 우선 월세 시장의 변화가 예상된다. 에코부머의 41.7%가 월세 및 사글세를 산다. 에코부머 중에서도 20대 후반(26~29세)은 월세로 사는 비중이 47.7%로 더 높아진다. 20년 전, 20대 후반 베이비부머가 월세를 살았던 비중은 32.5%였다. 홍춘욱 국민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에코부머가 월세주택시장의 지평을 열고 있다.”고 평가했다. 홍 이코노미스트는 ‘인구 변화가 부의 지도를 바꾼다’(2006년 출간)를 통해 베이비부머에 의한 우리나라 자산시장의 변화를 분석한 바 있다. 그는 “에코부머가 부동산 변화의 1세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소형 평형에 대한 수요는 매매가 아닌 거주 수요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 팀장은 “에코부머는 가치관이 변해 집을 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며 “원룸이나 트윈룸으로 교통이 좋은 곳의 월세가 이들이 선호하는 부동산”이라고 지적했다. 박유성 고려대 통계학과 교수는 “외동아들이나 외동딸이 대부분이 되면서 부모가 물려줄 집을 왜 사느냐는 생각이 보편화돼 있는 일본의 경우를 따라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저축습관보다는 현재를 즐기는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다.”며 “집은 없어도 차는 있는 젊은 층의 소비행태가 이를 증명한다.”고 지적했다. ●웨딩시장 약진 예상 젊은 층의 소비는 가치소비, ‘지름신’(충동소비를 뜻하는 신조어) 등으로 대변된다. 가치소비는 문화적 경험과 가치를 소비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품목은 저렴한 상품을 선호하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특정 분야에 있어서는 최고의 브랜드와 서비스를 선호하는 경향을 뜻한다. 웨딩 시장이 대표적이다. 국내 혼인건수는 2008년 32만 7715건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09년 30만 9759건으로 줄어든 뒤 지난해 32만 6104건으로 다시 회복되고 있다. 여기에 예식에만 1억원 이상을 쓰는 골든웨딩이 인기를 끌고 있다. 만혼으로 경제력을 갖춘 신랑신부, 한번의 자식 결혼식을 위해 돈을 아낌없이 쓰는 부모가 상승효과를 일으켜 골든웨딩 시장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 점에서 전문가들은 웨딩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지름신’은 인터넷쇼핑의 매출이 늘어나는 점에서도 증명된다. 에코부머들은 디지털 세대이기도 해 전자상거래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이들의 성장으로 지난해 인터넷쇼핑몰 판매액은 25조 1546억원으로 백화점(24조 3870억원), 슈퍼마켓(23조 8196억원)을 추월했다. ●‘내리사랑’이 가져오는 변화 자녀의 결혼과 함께 일어나는 것이 상속의 시작이다. 주택 마련부터 시작해 사전 상속이 꾸준히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남수 팀장은 “앞으로 10년에 걸쳐 증여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유아·아동 산업의 발전으로 연결된다. 일본과 미국에서 나타난 ‘여섯개 주머니 세대’(six pocket generation·부모 2명과 조부모·외조부모 등 6명이 한명의 자녀를 위해 돈을 쓰는 현상)가 우리나라에도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코부머의 등장으로 출생아수가 지난해 3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선 것도 해당 산업의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나는 에코부머다

    나는 에코부머다

    베이비붐 세대(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자녀 세대인 에코붐 세대(에코부머·1979~1985년생)가 통계적으로 의미있게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의 출생아 수가 3년만에 늘어난 것은 그들의 ‘힘’이다. 이들은 20년전의 베이비부머와 비교할 때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변화와 변혁을 통해 희망을 찾고 있다. 서울신문은 통계청과 공동으로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를 토대로 에코부머를 집중 분석했다. 에코부머에 대한 통계 분석은 처음이다. 에코부머(만 26~32세)는 베이비부머(만 48~56세) 보다 2년 7개월가량 더 공부하고도 20대 후반 실업률이 2.5% 포인트나 더 높다. 직장이 없으니 20대 후반 미혼율도 베이비부머의 2배에 육박했고, 어렵게 가구를 이뤄도 월세로 사는 비중이 40%를 넘는다. 에코부머의 실업률(구직기간 1주 기준)은 6.4%로 베이비부머의 20년 전 실업률 3.9%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반면 평균 교육연수는 14.4년으로 베이비부머(11.8년) 보다 길다. 대졸 이상 학력 비율도 72.9%로 베이비부머(26.5%)의 2배를 넘는다. 힘든 일자리엔 지원자가 없고 공무원과 대기업에만 과도한 경쟁이 일어나는 ‘미스매치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에코부머의 3분의2 이상을 차지하는 20대 후반(26~29세) 미혼율은 77.5%다. 베이비부머가 20대 후반이었을 때 미혼율(39.6%)의 2배에 육박한다. 에코부머는 전세난 때문에 월세로 전전한다. 주택 점유형태를 볼 때 월세 및 사글세가 41.7%로 가장 많았고, 전세가 35.4%로 뒤를 이었다. 자기 집을 구입한 경우는 18.4%에 불과하다. 취직하고 가정을 이루는 보편적 일이 점점 어려워지지만 에코부머가 30대가 되는 2015년 노년부양비(15~64세 인구에 대한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는 17.6%에 이르게 된다. 20년 전 베이비부머가 30대였을 때 노년부양비는 7.9%에 불과했다. 에코부머는 남자가 여자보다 많지만 여자의 파워는 강해졌다. 여자 100명에 대한 남자 수를 뜻하는 성비는 103.2명이다. 베이비부머는 여자 100명에 남자가 99명이었다. 하지만 에코부머의 여성가구주 비율(21.8%)은 베이비부머(6.4%)의 3배를 넘는다. 에코부머는 4명 중 1명꼴로 서울에 살고 있다. 베이비부머가 5명 중 1명꼴로 서울에 사는 것보다 서울의 인구집중도가 높은 셈이다. 긴 학업과 취업 준비 기간이 주된 이유로 보인다. 전경하·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국민 건강 위해 공공기관 ‘8 to 5 출퇴근’ 꼭 도입해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국민 건강 위해 공공기관 ‘8 to 5 출퇴근’ 꼭 도입해야”

    “국민건강을 위해 저녁 7시 이전에 저녁 식사를 마치도록 오후 5시 퇴근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서울신문 창간 107주년을 맞아 지난 15일 과천 청사 집무실에서 이뤄진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특별인터뷰에서 그는 오후 5시 퇴근제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지난달 민생 점검 장·차관 국정토론회에서 그가 제안한 ‘공공기관 오전 8시 출근·오후 5시 퇴근제’(현재 오전 9시 출근·오후 6시 퇴근)를 꼭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녁 7시 이전에 저녁을 마치는 습관이 뇌졸중 예방 등 국민 건강을 위해 중요하다는 것이다. 육아 때문에 오전 8시 출근이 힘든 여성 등은 오전 9시 출근·오후 5시 퇴근을 하면 된다고 했다. 임기가 끝나는 공공기관장 및 감사의 인사에 대해서는 민간 전문가의 비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정유사들의 ‘100원 할인’이 끝난 뒤 치솟는 휘발유 가격에 대해서 유류세 인하는 검토하고 있지 않으며 관세 인하는 검토 중이라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건설업계 건의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육아부담 여성은 ‘9 to 5’로 가능 →현재 공공기관의 오전 9시 출근·오후 6시 퇴근제를 오전 8시 출근·오후 5시 퇴근제로 바꾸어야 한다는 정책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고있다. -지난달 1박 2일로 진행된 장·차관 국정토론회에서 직접 제안했다. 요점은 저녁 6시가 아니라 오후 5시에 퇴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국민건강과 가족 생활에 좋다. 뇌졸중 등을 예방하고 국민 건강을 높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저녁 7시 이전에 저녁 숟가락을 놓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은 아침과 점심식사의 시간 간격은 너무 짧고 점심과 저녁 식사의 시간 간격은 너무 길다. 7시 저녁 약속을 6시로 만들어야 한다. 이는 직장인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길게 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육아부담이 있는 여성 등은 오전 8시 출근이 힘들다. 재정부와 같은 중앙부처 공무원은 일이 몰리면 밤 12시 퇴근도 종종 있는데 잘 되겠나. -육아부담이 있는 이들은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면 된다. 또 중앙부처 공무원도 매일 자정까지 일하는 것은 아닐 뿐더러 현재 오후 6시 퇴근제를 지키는 공공기관 직원이 대다수다. 예전에 삼성이 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제를 하다가 실패한 것은 홀로 시행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은 저녁 7시에나 저녁 식사 약속을 할 수 있으니 어차피 삼성 직원들은 퇴근 후 이들을 기다려야 했다. 결국 오후 5시 퇴근제는 대다수의 기관이 동시에 실시해야 가능한 일이다. 정부가 민간 기업을 제어할 수는 없으니 공무원, 공기업 직원, 학교 직원 등이라도 동시에 해보자는 것이다. ●삼성 ‘7 to 4’ 중단은 홀로 시행한 탓 →하반기에 임기가 끝나는 공공기관 기관장이나 감사들이 많은데 인선을 지금보다 공정하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대안이 있는가. -우선 정부와 청와대도 고심을 많이 해서 인사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저 낙점하는 것이 아니라 공모 절차와 검증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관점에서 검토를 한다. 지난 정부와 비교할 때 민간 전문가들을 많이 영입했다. 소위 낙하산에는 정치권 인사와 공무원 출신 두 종류가 있는데 그 비중이 지난 정부보다 많이 줄어든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향후 공공기관에 민간 전문가가 더 늘어난다고 보면 되나.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에 금융계 출신인 최종석씨가 임명된 사례를 봐도 그렇고, 그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증여세 과세 방안은? -기업집단 소속 계열사끼리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수혜를 얻는 기업의 가치가 단기간에 급등하고 일부 주주들에게 세금 없이 부(富)가 대물림된다는 의혹에 따라 정부는 증여세 과세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8월에 과세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고민할 부분이 많아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사실 과세는 국민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행위여서 상당히 엄격한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어떤 상황을 일감 몰아주기로 정의할 것인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 때 과세할 것인가, 또 어떤 편법이 나타날 것인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다른 방식의 증여와 세율의 균형도 맞추어야 한다. →다주택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 완화를 언급한 바 있는데 1가구 다주택 양도소득세 중과제 폐지도 포함되는지. 또 일각에서 주장하는 종부세 폐지도 추진하나. -우선 종부세 폐지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 현재 가장 큰 고민은 전·월세난이 향후 상당기간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자기 집을 보유하려는 유인은 낮아지고 1인·2인 가구와 만혼·미혼 가구도 증가하면서 소형주택의 전·월세 임차수요가 늘고 있다. 또 임대주택 공급도 줄어든 상황이다. 원인이야 여러 가지일 것이다. 우선 집값이 안 오를 것이라는 예상에 집에 투자할 필요 없다는 실망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또 다주택을 보유할 때 징벌적 과세가 제한 요소로 작용하면서 전·월세 공급이 줄었다는 점이 있다. 결국 소형주택의 임대 공급 물량을 늘려야 하는데,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임대주택을 늘리겠지만 민간부문에서도 부동산 임대 전문회사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또 개인 중에서 자산 여력 있는 이들이 나서서 소형 주택을 임대하도록 해야 되는데 이 경우 징벌적 중과제가 제약이 된다. →양도세만 징벌적 중과세는 아닐 텐데. -아직 상세히 말할 시점은 안 되지만 양도세 중과제를 포함해서 제재조치에 상응하는 것들을 검토하는 단계다. 또 양도세 중과제를 완화하는 것이지 과세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다. →내년부터 100억원 이상 300억원 미만의 중소형 공공공사에도 최저가 낙찰제가 확대되는 것에 대해 보완책을 내놓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DTI 규제 완화 건설업계 요청은 안 돼 -사실 최저가 낙찰제에 대한 보완책 언급은 안 했다. 건설업계의 많은 건의사항을 듣고 가부를 명확히 했다. 원도급 업체들의 건의사항으로 하도급 업자들이 임금·자재 장비 등을 제대로 2,3차 하도급 업체에 지급하는지 확인할 장치를 만들어 달라는 것은 ‘하겠다’고 했다. 하도급 업체가 부도 나면 원도급 업체가 책임져야 하니 가을에 개선 방안이 나오도록 하겠다. 하지만 DTI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요청은 안 된다고 했다. 양도세 중과제 문제점도 지적됐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공감하며 소형 임대주택을 늘리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했다. 양도세 중과제는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들을 위한 거라고 생각해서 제도가 유지되는 건데 소형주택이 늘어나면 전·월세입자들이 이익을 본다는 점도 봐야 한다. 공인중개사들도 전·월세 물량이 없어 계속 가격이 오른다고 하더라. 임차인이 아닌 임대인의 마켓이 된 셈이다. →ℓ당 2000원 넘을 이유 없다고 발언했던 기름값이 시끄럽다. 유류세, 관세 인하는 고려중인가. -유류세는 ℓ당 130달러 초과할 때만 검토한다는 원칙에 변함 없다. 관세는 계속 검토중이다. 관세도 가격이 급하게 오를 때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하는 것이어서 국제 유가가 기준이다. 또 국제 유가가 올라도 환율로 인해 국내 유가는 안 오를 수도 있다. 정유사들이 100원 할인 행사를 시작할 때와 끝날 때를 비교하면 원·달러 환율이 꽤 내렸고, 유가도 아직은 불안하지만 당시보다 내렸다. 주된 요소만 가늠해도 정유사가 할인했다고 주장하는 폭까지 환원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휘발유 가격이 ℓ당 2000원이 넘지 않을 거라고 말한 바 있는데 실제 오늘(15일) 전국 평균이 1933원이다. 여전히 전국 평균은 2000원을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한다. 단, 정유사들이 2000원까지는 올려도 된다는 의미로 오해할까 염려스럽긴 하다. ●임금체계 성과급 요소 단계적 높여야 →임금이 최근 크게 상승하면서 물가와 악순환이 일어난다는 우려가 있다. -임금 상승이 공급 측면에서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해 물가가 상승하는 것이 맞다. 다만 정부가 민간부문 임금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가격에 바로 개입하는 것이어서 안된다. 결국 노사 관계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 임금체계는 연공급적 요소가 강하고 성과급적 요소가 약해 불공정하다. 물론 이를 하루아침에 다 바꾸는 것도 젊을 때 상대적으로 월급을 적게 받은 후 이제 나이 들어 많이 받으려 하는 세대에게 불공평할 수 있다. 단계적으로 성과급 요소를 높이고 임금피크제를 강화하는 것이 방편일 것이다. 또 임금 외에 우리사주제도 등을 통해 노사가 일심동체에 가깝게 만드는 방안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의 이익을 종업원이 공유하고 책임도 함께 갖게 하는 것이다. →청년 실업 쇼크의 원인이 대졸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고졸자들이 좋은 직장을 갖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공공기관부터 쿼터제를 실행하자는 제언이 많다. -사실 공기업도 자율책임경영을 해야 하는데 청년, 지방학생, 취약계층, 장애인에 고졸자까지 비율을 정해주는 것이 합리적인 것인지는 의문이다. 일부 은행이 이미 고졸사원을 뽑고 있는데 자연스럽게 정착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좋은 정책으로 검토할 수 있겠지만 고졸 사원 채용을 의무적으로 제도화하면 그것이 또 학력 차별에 안 걸릴지 모르겠다. 인터뷰 전경하 차장·정리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1955년 경남 마산 출생, 행시23회 ▲부산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하버드대 정책학 석·박사 ▲17대 국회의원(비례대표·한나라당, 2004년 5월~2008년 2월 ) ▲대통령실 정무수석·국정기획수석비서관(2008년 2월~2010년 10월) ▲고용노동부 장관(2010년 8월~2011년 5월) ▲기획재정부장관(2011년 6월~)
  • 황석영 작가가 해병대 후배들에게…다시 전우를 생각한다

    황석영 작가가 해병대 후배들에게…다시 전우를 생각한다

    요즈음 해병대에서 일어난 몇 차례의 군기 사고에 대하여 너무도 뻔하고 상투적인 여론이 들끓는 것을 보며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나는 한국의 젊은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병역의 의무를 해병대원으로 치러냈고 베트남 전쟁에까지 참전했던 노병으로서 이번 사태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원래가 해병대는 제국주의 시대에 자국의 영토를 벗어나서 바다 건너 다른 나라를 공략하던 시기에 조직된 군사 편제이다. 한국 해병대의 창설은 한국전쟁이 치열하던 와중에 낙동강 교두보에 몰리면서 인천 상륙작전을 준비하던 미군 사령부의 주도로 제주도에서 급조되었던 것이다. 이들 초기 기수의 해병 대부분이 4·3 항쟁을 겪고 살아남아 가족과 자신의 사상적 알리바이를 온몸으로 보여야 했던 제주도의 청년들이었던 것은 분단에서 비롯된 국군의 태생적 아픔을 상징적으로 안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지금도 유명한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말도 창설되자마자 부산 방어선을 위한 최초의 상륙작전이던 통영 작전을 취재한 미국 기자의 기사에서 시작되었고, 이후 베트남 전쟁에 이르기까지 한국 해병대는 한국군 내부에서는 독자적으로, 그러나 내용으로 보면 미국 해병대의 작전 편제 안에서 그 특수성을 견제 혹은 격려받으면서 성장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남베트남이나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의 경우를 보면 육·해·공 지휘 체계의 외곽에서 비정규적 작전권을 갖고 있던 해병대가 언제나 군사정변에 동원되었고 한국의 5·16 쿠데타에서도 역할은 비슷한 것이었다. 따라서 육군이 주도했던 당시의 군사정부는 해병대의 애매한 위치에 대하여 고민을 했던 흔적이 여러 가지 자료에 보인다. 베트남 전쟁 이후 한국 해병대는 해군의 지휘 체계에 들어가면서 예산·진급·작전 모든 면에서 그 독자성을 상실한다. 아무튼, 우리 군대의 아픔이었던 일제 군대의 잔재는 다른 무엇보다도 하급 병사들에게는 내무반에 뿌리 깊게 남아 있었다. 모든 병영 문화의 출발이 내무반에서 시작되기 마련이었다. 겉으로는 미 해병대 캠프에서 훈련받은 젊은 장교 하사관들이 병사들을 교육했지만 일본 육전대의 전통이 내면화되었다. 베트남에서 겪은 일이지만 미군은 전선에서 싸우는 병사 한명에게 거의 열 배에 가까운 군수, 병참, 화력 지원의 역량을 투입했다. 아무리 조건이 나쁜 하급 부대에서도 병사들은 따뜻한 식사와 온수 샤워를 할 수 있었다. ‘민주 군대’의 토대는 결국 경제적 역량이었던 셈이다. 전 국민이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에 군대에서 밥이라도 먹였던 것은 만연한 부패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일이었고, 이른바 ‘빳다’를 맞고 기합을 받아도 견디어 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제 나는 그야말로 ‘기수 열외’라는 생소한 용어에 당황한다. 해병대의 기수란 한 달에 한 번씩 자원한 젊은이들을 부대원으로 받아들이는 모병제의 다른 이름이다. 같은 시기에 입대한 젊은이끼리는 서로 ‘동기생’이라고 부른다. 병력의 최소 단위가 되는 소대에서 분대로 나뉘는 편제를 모르면 어째서 기수가 중요한지 이해할 수가 없다. 소대장 아래 분대장인 하사관들이 있고 일개 분대는 스무 명쯤 되며 이는 다시 화기를 중심으로 조장 사수 부사수 소총수로 내려간다. 병장이 부분대장쯤 되고 그 아래로 상등병과 일등병, 이등병이 제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기수는 이러한 편제를 맞추어 나가기에 알맞게 되어 있다. 베트남 전쟁터에서 작전을 나가는 모든 병사는 수통을 두 개씩 허리에 차고 나가도 절약해서 마시지 않으면 어느 때는 오후에 텅 비게 된다. 이때 누군가가 다른 병사에게 물 한 모금 먹자고 하면 계급의 상하를 막론하고 ‘내 피를 달라고 하라’는 핀잔을 듣는다. 그러나 동기생이 달라고 하면 하는 수 없이 내준다. 당시만 하여도 얼차려를 줄 때에도 상급자는 엄동설한에 병사들을 발가벗겨 구보를 시키면 자신도 발가벗었고 얼음물에 처박으려면 자신도 함께 처박혀서 구령을 붙였다. 기수란 체력이나 요령이 부족한 동료를 낙오시키고 내버리고 왔을 때 모든 동기생에게 책임을 묻는 그런 것이었다. 이런 일을 ‘전우애’라고 부른다. ‘기수 열외’란 언젠가부터 극단적인 경쟁을 당연하게 내세우는 우리네 학원의 청소년 문화가 되어버린 ‘왕따’가 병영에까지 스며들었다는 충격을 주는 용어이다. 누군가를 지목하여 병사 모두가 그를 묵살하거나 엄정하게 주어진 계급 따위를 무시하게 한다는 것은 내막적으로는 군기를 어지럽히는 일이다. 나는 이번 사태의 책임에 대하여 하급병사들에게만 엄중하게 묻는 것을 개탄한다. 사실 변죽을 울리면서 한참 동안 해병대의 유래와 특수성을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 이는 일종의 ‘조직 피로’ 증후군이다. 천안함 이래 그리고 연평 포격 사건에 이르기까지 사건의 중심부에 있던 해병대를 온 사회와 정치권이 그리고 지휘 상층이 얼마나 쪼아댔을까. 만만한 게 뭐라고 하급 병사들이 겪는 스트레스와 압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미군식 ‘민주 군대’란 병사 개개인에 대한 막강한 지원 능력과 높은 ‘노임’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우리는 최소한 ‘이만큼 살게 되었으니’ 군대에 안 가면 거의 폐인이 되어 버릴 정도의 강압적 징병제를 책임질 만한 내무반을 창출해 낼 국가적 의무가 있다. 군기를 지키되 장군에서 이등병에 이르기까지 ‘전우’라는 너무도 당연한 생각이 뿌리를 내려야만 한다. 그리하여 자기 직책과 책임에 관한 것만 예외로 하고 모든 사사로운 특권을 철폐해야 한다. 소대장은 당번병을 없애고 자기 구두는 자기가 닦아야 하며 하사관 병장은 제 양말을 빨고 상등병은 자기 식기를 설거지하며 일등병 이등병은 근무 이외에 하인 노릇을 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도 우리가 ‘광주’를 말하며 당시의 신군부를 교훈으로 삼는 것은 ‘국민의 군대’는 정치권력의 사병(私兵)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거의 모든 대한민국 남자가 군대를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민간인이 버젓하게 군복을 입고 거리에 나와 특정한 정치적 집회에 동원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손자는 그의 유명한 저작인 병법에서 전쟁을 피치 못할 최후의 수단으로 규정하면서, 무엇보다도 우선 되어야 할 것은 국가와 백성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진정한 힘이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본다면 전쟁과 군대는 국가를 위한 최후의 필요악이라는 말이 된다. ●황석영1943년 만주 출생. 고교 재학 중 단편 ‘입석 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1966년 해병대에 입대해 청룡부대 제2진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에 이때의 경험이 녹아 있다. 1969년 제대한 뒤 ‘객지’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 ‘장길산’ 등을 잇따라 내놓았다. 1989년 방북 후 독일·미국 등지에서 머물다가 1993년 귀국해 5년여 복역했다. 지난달 신작 소설 ‘낯익은 세상’을 발표했다.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그을린 사랑’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날,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은 변호사로부터 유언을 전해 듣는다. 어머니 나왈 마르완은 유언 속에서 남매의 친아버지와 형제가 어딘가 살아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을 찾아 두 통의 편지를 직접 전달해 달라고 부탁한다. 잔느와 시몽은 그들을 만나러 낯선 중동으로 향하고, 남매의 여정과 어머니가 과거에 겪은 비극이 교차된다. 출생의 비밀을 모른 채 자란 두 사람은 충격적인 진실에 조금씩 접근한다. 나왈은 신화적인 인물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의를 위해 투쟁하다 인간이 감내하기 어려운 수난을 몸소 받아들였고, 끝내 그것을 초월함으로써 영웅의 지위에 오른다. 이야기는 충분히 감동적이고, 그것에 못지않게 영화의 만듦새도 훌륭하다. 영화의 도입부는 ‘그을린 사랑’(원제: Incendies)의 이후 전개방식을 잘 보여준다. 선명한 이미지와 강렬한 연기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고, 영국 밴드 라디오헤드의 음악은 영화 바깥으로 벗어나는 걸 완벽하게 차단한다. ‘그을린 사랑’은 보기 드물게 인상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그만큼 감상하기가 피곤하고 갑갑하다. ‘그을린 사랑’은 와이디 무아와드가 쓴 희곡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그리스 비극을 연상시키는 원작은 연극 무대에 썩 어울렸을 것이며, 당연히 많은 나라에서 공연돼 호평을 들었다. 무아와드의 원작은 시공간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음으로써 ‘낯설게 하기’를 의도했고, 기실 연극의 관객이 현실과 무대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는 건 어렵지 않다. 이와 반대로 영화관은 몰입을 노린 공간이다. 불 꺼진 극장에서 영상과 사운드가 휘몰아치고 이야기가 클라이맥스로 내달리는 순간, 관객에게 ‘소격 효과’는 딴 세상 소리다. ‘그을린 사랑’처럼 재현성이 뛰어난 작품은 더욱 그러하다. 너무 엄숙하고 완벽해 보이기에 관객은 그것을 현실이자 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알레고리가 현실에 침입하고, 그것이 ‘중동 지역과 그곳의 사람에 대한 선입견’ 같은 왜곡된 이미지와 결합하면 곤란하다. 문제는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이야기하는 방식에 있다. 전쟁, 폭력, 분노에 관한 보편적인 이야기는 어느새 특정 지역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슬픈 역사로 변질된다. 눈에 빤히 보이는 문자와 풍경에서 중동 지역이 자연스레 떠오르며, 그곳 사람들의 끔찍한 다툼에서 부당한 선입견이 한 번 더 확인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곳을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라고 생각한다. 이슬람 문화를 다룬 예술영화가 소개될 때, 이러한 위험은 상존한다. 더욱이 ‘그을린 사랑’은 타자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영화다. 타자의 현실에 무지하면서도 무턱대고 자기 노선이 옳다고 판단하는 식이다. 더불어 예술영화를 감상하는 관객도 그 의견에 동조하기 마련이다. ‘그을린 사랑’은, 영화란 결국 조작된 현실이라고 말하는 선에서 멈춰야 했다. 이슬람 사회에 문제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인간이 해선 안 되는 일만 벌어지는 곳으로 항상 묘사되고, 덩달아 그렇게 믿는 게 더 터무니없다는 말이다. ‘그을린 사랑’은 쉬운 문제를 구태여 어려운 방정식으로 풀면서 잘난 척한다. 감동받기는 분명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전에 다르게 볼 수 있는 눈이 요구되는 작품이다. 21일 개봉. 영화평론가
  • [Q&A] “정치권에 오니 진보가 되더라”

    Q 누구를 통해 정치에 입문했나. A 손학규 대표가 통합민주당 경선 후보로 나왔을 때 선배가 전북 지역 조직을 맡았다. 나에게 도와 달라며 손 대표의 책을 두고 갔다. 학생운동을 하다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찾아간 장례식장에서 붙잡혔다는 내용이 들어 있더라. 진정성 있는 사람 같아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Q 손 대표의 측근으로 불리는데 부담감은 없나. A 난 손 대표와 가까운 국회의원, 참모들과 개인적 인연이 없다. 세력화가 아닌 개인적으로 교감을 나눈다. 측근이란 표현은 좋다. 그 사람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고 교감하는 것도 상당하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나은 방향으로 갈 것이란 확신도 있다. 나의 행보에 손해가 있다고 해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Q 정치권에 들어와 보니 어떤가. A 정치인들은 진정성이 없다. 매번 사람들의 어려움을 얘기하지만 궁극적으로 어떤 게 본인에게 유리한가를 판단한다.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것 아닐까. Q 본인은 어떤 정치를 하고 싶나. A 공감하는 정치를 해야 살아남는다고 본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치를 해야 한다. 특정 정당에 휩쓸리는 것, 개인 정치를 하는 것에 문제를 느끼는 내 또래들이 정치 주류를 이룬다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Q 이념적 성향은 어떤가. A 정치를 하기 전에는 한번도 내가 진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정치권에 오니 진보가 되더라. 대한민국 정치는 매우 보수화돼 있다. 민주당이 가장 애매하다. 더 진보로 가는 게 옳다. Q 대변인을 지냈다. 어떤 원칙으로 논평했나. A 적정 수준의 비판과 자기 주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근본적 성찰 없이 상대를 비방하고 폄하하는 건 당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공멸하는 것이다. Q 매형이 진보정당 연구소장, 형이 시민운동가라 야권 통합에 대한 느낌이 남다를 듯하다. A 대선 승리를 위해 야권 통합으로 가야겠지만, 거기에 매몰되는 건 문제가 있다. 시점을 정해 2~3개월 야권 통합을 위해 노력하고 불가능하면 규정을 만들어 야권연대, 정책연합을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가상 정당은 진정성에 문제가 있다. Q 지난 4월 국회 사법제도개선특위에서 중도 하차한 이유는. A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당시 검찰개혁소위에 있었는데 검찰의 권력을 견제할 공직수사비리처 신설 카드를 너무 쉽게 양보했다. 검경 수사권 개시는 국민 삶과 아무 관계가 없다. 기관 간 권리 다툼으로 허우적대는 사개특위는 본질이 왜곡됐다. Q 트위터에 ‘미래를 만드는 정치인’이라고 썼더라. 무슨 의미인가. A 당장 가시적 성과를 내기보다는 10년 뒤 비전을 내다보고 정치를 하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이춘석 의원은 ▲1963년 전북 익산 출생 ▲전북 남성고·한양대 법학과 ▲사법고시 30회 ▲군법무관 ▲원광대 법학대학원 석·박사 ▲취미:영화감상 ▲롤모델 정치인:브라질 룰라 전 대통령(이념정체성은 진보이나 좌우 포용해 생활정치를 함) ▲좌우명:타협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원칙은 타협하지 않는다. ▲혈액형:B형 ▲가장 자랑스러운 스펙: 익산 무변촌 1호 변호사 무료법률상담 ▲최근 읽은 책: 위험한 경제학(선대인 저, 외형적 성장의 위험)
  • 체중 500g ‘초미니 신생아’ 중국서 탄생

    체중이 500g밖에 나가지 않는 초미니 신생아가 탄생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중국 언론이 12일 보도했다. 지난 9일 후난성아동병원에서 태어난 이 남자아이는 24주 1일 만에 태어났으며, 체중 500g·신장 28.5㎝로 성인의 두 손에 쏙 들어갈 만큼 작은 몸집이어서 ‘미니 베이비’라는 별명이 생겼다. 출생 당시 피부는 혈관이 거의 모두 보일 만큼 반투명한 상태였으며, 팔다리는 성인 손가락 굵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인큐베이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이 신생아는 매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치료를 받고 있는데, 그 과정이 매우 복잡한데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해 현지 의료진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특히 주사를 놓으려 해도 몸집이 너무 작고 혈관이 가늘어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의료진은 또 ‘미니 베이비’의 작은 몸집을 고려해 모든 의료기기를 맞춤으로 준비하고 아이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후난성아동병원 담당의사는 “이 아이는 중국에서 가장 작은 조산아로 기록될 것”이라면서 “후난성에서는 두 번째로 태어난 체충 500g대의 신생아”라고 설명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기록으로 본 인구정책 변천사

    기록으로 본 인구정책 변천사

    #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1960년대 산아제한 표어) # “가가호호 아이둘셋, 하하호호 희망 한국”(2010년 출산장려 포스터)국가기록원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인구의 날(7월 11일)을 기념해 13일부터 인구정책에 관한 주요 기록물을 나라기록포털(http://contents.archives.go.kr)을 통해 공개한다. 인구정책 기록콘텐츠는 국가기록물을 지식자원화하고 국민이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1940년대부터 현재까지 인구정책의 변화를 주요 기록물을 통해 보여준다. 이 콘텐츠는 시기별 인구정책, 주요 이슈 만나기, 인구변화 펴보기 등으로 구성됐다. 시대별 기록물에 따르면 1945년 해방 당시 한반도의 인구는 약 2500만명이었으며, 고출산·고사망의 전형적인 후진국형 인구현상을 보였다. 1950년에서 55년까지 연 1% 수준이었던 인구증가율은 한국전쟁 이후 결혼 및 출산의 영향을 받아 1955~60년 연 3%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출산정책 표어는 “3남 2녀로 5명은 낳아야죠”였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가족계획사업이 국가 시책으로 다뤄지지는 않았다. 가족계획사업이 공식적으로 거론된 시기는 1959년으로, 당시 보건사회부는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 인구증가 억제를 국가시책으로 건의했지만 당장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높은 출산율이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는 판단에 따라 정부 차원의 산아제한 정책이 추진됐다. 이에 따라 출산정책 표어도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로 바뀌었다. 산아제한 표어로 잘 알려진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1970년대 표어다. 이후 1980년대 들어서는 50년대 중·후반 출생자가 자녀를 출산하면서 제2차 베이비붐 현상이 나타났다. 이 때문에 당시 정부는 “여보! 우리도 하나만 낳읍시다”, “하나로 만족합니다. 우리는 외동딸” 등의 표어와 함께 대대적인 출산억제 캠페인까지 벌였다. 1990년대는 남아선호사상에 따른 성비 불균형 문제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선생님! 착한 일하면 여자 짝꿍 시켜주나요”와 같은 표어도 등장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저출산 문제에 따라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와 같은 출산장려 표어가 주를 이뤘다. 이경옥 국가기록원장은 “이 콘텐츠가 저출산·고령화 사회 문제와 관련해 정책개발과 교육현장, 학술연구 등 다방면에서 유용하게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북한 인구, 2046년부터 감소할 것”

     미국 인구통계국이 최근 개정한 국제데이터베이스(IDB)에서 북한의 총인구가 2050년에는 현재보다 약 10% 늘어난 2696만 9000명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12일 보도했다. 인구통계국은 올해 북한의 인구를 2445만 7000명으로 추산했다.  북한의 인구증가율은 올해 0.5%에서 2024년 0.4%, 2028년 0.3% 등으로 점차 하락하다가 2046년에는 마이너스 0.1%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따라 전 세계 228개국 가운데 북한의 인구 규모는 올해 48위에서 2050년에는 64위로 떨어질 것으로 인구통계국은 예상했다.  인구통계국은 또 북한에서 인구 1000명당 출생아는 올해 15명에서 2050년 11명으로 줄어드는 반면, 같은 기간 인구 1000명당 사망자는 9명에서 12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북한 주민의 평균 기대수명은 올해 69세에서 2050년에는 78세로 늘어날 전망이다. 인구통계국은 각국 정부의 통계자료와 정치·사회적 변수, 자연재해 등을 토대로 이 같은 수치를 산출했다.  유엔인구기금(UNFPA)은 지난해 발간한 ‘2010 세계 인구현황’ 보고서에서 북한 인구가 2050년 2460만명으로 60만명 증가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한편 한국의 경우 올해 4875만 5000명에서 2050년 4336만 9000명으로 11% 감소할 것으로 인구통계국은 예상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한쪽 다리가 머리에 철썩’하이킥 베이비’ 화제

    한쪽 다리가 머리를 향해 딱 붙은 채 태어난 희귀 신생아의 모습이 공개돼 눈길을 모으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12일 보도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1년 전 태어난 이모겐 스컬리. 이 여자아이의 독특한 출생 포즈는 의료진과 산모를 놀라게 했다. 다리를 올리고 있는 포즈 덕분에 ‘캉캉 베이비’(캉캉 춤을 추는 듯한 모습에서 따온 별명), ‘하이킥 베이비’ 등의 별명도 생겼다. 스컬리의 엄마는 “한번도 이런 신생아를 본 적이 없다. 꼭 캉캉춤을 추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면서 “여러 번 다리를 내리려 해도 마치 자동문처럼 다리가 ‘척’하고 머리에 붙었다. 너무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인큐베이터에 있는 일주일 동안에도 아이는 포즈를 바꾸지 않은 채 편안히 잠들어 있었다.”면서 “임신 12~20주 사이에 초음파 검사를 했을 당시에는 어떤 이상도 보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아이를 진찰한 담당의사는 “태아 시절의 습관과 포즈가 남아있어 이런 증상을 보인 것 같다.”면서 “건강에 큰 이상은 없었지만 특이한 사례인 것은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스컬리는 병원에서 퇴원한지 일주일 정도 지나자 정상적일 포즈로 돌아왔고, 현재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스컬리의 엄마는 “아이가 걷는 것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매우 건강하다.”면서 “스컬리의 하이킥 포즈 덕분에 동네에서 스타가 됐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역사소설, 자미에 빠지다’ 박사 논문 출간한 김병길씨

    [저자와 차 한 잔] ‘역사소설, 자미에 빠지다’ 박사 논문 출간한 김병길씨

    “자미는 재미의 옛말입니다. 1920년대 중반부터 한국 문단에는 주목할 만한 일이 일어납니다. 매일신보(서울신문의 전신) 등 주요 신문 도처에 역사소설이 연재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민족주의를 내세웠지만 사실은 야담인 것 같기도 하고 소설인 것 같기도 한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들면서 대중을 열광하게 했고 신문사들은 예고 광고까지 하면서 더욱 열을 올렸지요.” 질문 하나 던져본다. 자미(滋味)란 무엇일까. 한자로 풀이해 보면 자(滋)는 ‘늘다’, ‘많아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미(味)는 맛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맛이 많아진다는 뜻이겠다. 민족주의 담론에 갇힌 한국 근대 신문 연재 역사소설의 진면목을 통속적 ‘자미’라는 주제를 통해 모색하고 한국 근대 소설의 진정한 계보와 진실을 밝히고자 한 책이 나왔다. 제목은 ‘역사소설, 자미(滋味)에 빠지다’(삼인 펴냄)이다. 박사 논문이 일반 출판 시장에서 단행본으로 나오는 것은 드문 일. 하여 저자 김병길(39)씨를 만났다. ●“한국 근대소설 계보 쫓는 재미에 빠져” “자미는 재미의 옛말입니다. 1920년대 중반부터 한국 문단에는 주목할 만한 일이 일어납니다. 매일신보(서울신문의 전신) 등 주요 신문 도처에 역사소설이 연재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민족주의를 내세웠지만 사실은 야담인 것 같기도 하고 소설인 것 같기도 한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들면서 대중을 열광하게 했고 신문사들은 예고 광고까지 하면서 더욱 열을 올렸지요.” 한 예를 든다. 1942년 이광수의 ‘원효대사’ 연재를 앞둔 ‘매일신보’는 당시 다음과 같은 문구로 광고했다. ‘이 소설은 오늘날과 가튼 시국하에서 희생과 봉공과 고행의정신을 체득하는데 하나의 경전이 될만한 귀한작품인줄 생각한다.’ 지금의 띄어쓰기나 맞춤법에는 안 맞지만 내용을 보자면 신문사에서는 일제시대의 상황을 의식해 태평양 전쟁의 정신을 배경에 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김씨는 이에 대해 “당시 역사소설가들은 ‘우리는 민족 이야기를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정당성을 내세우면서도 밑바닥에는 일제를 의식하는 마음이 깔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당시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야담과 사담 등 통속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취했다고 분석했다. ●1942년 이광수, 매일신보에 연재 광고도 책의 부제를 ‘새로 쓰는 한국 근대 역사소설의 계보학’이라고 붙였듯이 일반인들이 흥미롭게 접근할 있도록 ‘자미’라는 시각으로 신문 연재 소설의 계보와 구체적인 면면, 그리고 발전 과정을 소상하게 살피고 있다. 그렇다면 김씨는 왜 이 책을 쓰게 됐을까. “2005년 김동리의 역사소설을 연구하던 중 우리 신문 연재 소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조선과 동아, 매일신보 등 3대 신문이 주축이 됐으나 나중에는 매일신보가 독보적으로 연재소설을 다루게 됩니다. 우리나라 역사소설이라는 용어는 최남선의 ‘ABC계’가 ‘소년’지에 연재되면서 처음 등장하고 나중에 신문 매체로 옮겨지지요. 또한 역사소설은 1945년 8월 14일 자 ‘매일신보’에 실린 박태원의 ‘원구’를 마지막으로 중단됐다가 6·25전쟁 이후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김씨는 이와 관련된 연구를 더 하겠다고 말한다. 첫째는 역사문학 전반의 지형을 살피는 일이고, 둘째는 계보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황진이를 다룬 소설만 19편이 나왔는데 저자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연구하는 작업이다. 김씨는 전남 담양에서 출생해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숙명여대 교양교육원 조교수로 있다. 글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엉덩이에 ‘꼬리’달고 태어난 中신생아

    엉덩이에 ‘꼬리’달고 태어난 中신생아

    최근 중국에서 엉덩이 부분에 꼬리를 달고 태어난 신생아의 모습이 공개돼 충격을 주고 있다고 현지 언론이 7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태어난 지 한 달 된 옌옌(燕燕)은 출생 당시 작은 꼬리를 달고 태어났으며, 아이가 자라면서 꼬리도 함께 자라 주위를 더욱 놀라게 하고 있다. 옌옌의 부모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엉덩이 쪽에 작은 살 뭉치가 보였지만 우리는 단순히 혹 정도라고 생각했다. 꼬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이가 자랄수록 꼬리도 함께 커져갔다.”고 말했다. 현재 옌옌의 꼬리 길이는 10㎝가량. 의료진은 옌옌의 꼬리를 그대로 둔다면 긴 꼬리를 가진 동물들과 비슷한 외형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아동병원 신생아과 담당의는 “옌옌의 엉덩이에 있는 ‘꼬리’는 태아 시절 비정상적인 발육으로 인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면서 “이 꼬리는 일종의 혹이라고 볼 수 있으며, ‘꼬리’가 달린 채 아이가 태어날 확률은 거의 100만분의 1로 매우 낮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옌옌의 상태를 미뤄 봤을 때, 당장 치료를 시작하지 않으면 꼬리가 함께 자라 더욱 흉측한 모습이 될 것”이라면서 “시간이 지나면 대소변을 보는 간단한 일 조차도 어려워 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태아의 이같은 비정상적인 발육은 산모의 임신 시기와도 영향이 있으며, 산모는 반드시 정밀검진 등을 받고 건강한 생활방식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이틀 간격으로 태어난 ‘희한한 쌍둥이’

    영국에서 이틀 간격으로 태어난 쌍둥이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8일 영국 일간 더 선은 이틀 간격으로 우여곡절 끝에 서로 다른 두 지역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를 소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쌍둥이 세스와 프레스턴, 엄마 도나 그로브(27)와 함께 생존 확률 100만 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 심각한 난산을 극복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기적의 쌍둥이’ 엄마 도나는 임신 28주째인 지난 4월 13일 써리 킴벌리에 있는 프림리 파크 병원에서 첫째 아들 세스를 출산했다. 당시 몸무게 1.077kg으로 태어난 세스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창자 감염과 심장 잡음, 혈액 중독 등 생명을 위협하는 증상을 나타냈다. 의료진은 세스를 살리기 위해 구급차로 64km를 달려 런던 중심 패딩턴의 세인트 메리의 임페리얼 칼리지 병원으로 이송시켰다. 도나 역시 심각한 상태를 보여 런던으로 급히 이송됐다. 그녀는 세스가 태어난 지 50여 시간이 지난 이틀 만에 몸무게 1.247kg의 프레스턴을 출산했다. 도나는 양수 색전증을 보여 심장 마비를 일으켰다. 양수 색전증은 양수가 산모 혈관 내로 들어가 과민반응으로 급격한 호흡 곤란, 심폐 정지 등을 일으키며 심각하면 사망에 일으는 질환이다. 첫째 아들 세스의 상태는 더욱 악화됐다. 그는 런던의 첼시 앤드 웨스트민스터 병원에서 신생아 전문 집중 치료 병동으로 이송됐다. 놀랍게도, 의료진은 산모와 아이들 모두를 구해냈고 그들은 10주간 걸쳐 병원에서 회복했다. 세 명의 생존 확률은 100만분의 1이라고. 아이들과 함께 벅스 브랙넬의 집으로 돌아온 도나는 “우리 모두가 살아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라면서 “축복받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서로 다른 출생 날짜를 갖게되어 신기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의료진 측은 “매우 희귀한 상황 속에서 모든 이가 그들을 구하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고 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1등 당첨되면 시험관아기 제공’ 이색 로또

    영국에서 세계최초로 잭팟에 시험관아기시술(IVF)을 제공하는 로또가 등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영국 데일리메일 보도에 의하면 영국 갬블링 협회는 임신클리닉 자문기관인 ‘더 해치’(The Hatch)와의 연계로 오는 30일 ‘IVF로또’를 판매할 예정이다. 로또 모토는 ‘아기를 득템하라’(Win a baby), 로또 가격은 20파운드(약 3만 4천원)다. 1등에 당첨되면 영국 최고의 클리닉에서 2만 5천 파운드(약 4천 3백만 원) 상당의 시험관아기시술을 받는다. 당첨자는 부부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독신자, 동성애자. 노인도 가능하며 이 상품을 가족이나 친구에게 증여할 수도 있다. 부부의 경우 여성 문제로 임신이 되지 않는 경우 난자를 기증받는다. 독신 여성의 경우에는 정자 기증을 받을 수 있고 독신남성의 경우는 심지어 대리모를 통한 출산이 가능하다. 폐경기를 맞이한 여성에게도 난자가 제공된다. 당첨자는 고급호텔에서 숙박을 하며 클리닉까지 운전사가 달린 자가용으로 이동한다. 환자에게는 담당 의사와 24시간 연락이 가능한 전용 휴대전화기도 제공된다. 1등 상품을 제외한 로또 수익금은 불임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한 영국 NHS(국가 건강 협회)에 투자와 기부금으로 사용된다. 로또는 한 달에 한번 당첨자를 낼 예정이지만 성공적이면 2주에 한번 당첨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IVF 로또’는 현재 논란의 중심에 놓여있다. ‘도덕적 딜레마’ 그룹의 조세핀 퀸터빌레는 “인간 생식의 자연성을 폄훼하는 행동” 이라며 “인간 출생은 로또의 부산물이 될 수 없으며, 차라리 불임문제 연구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라고 비난했다. 더 해치의 창설자는 “IVF에 대한 정부 예산의 대폭적인 삭감으로 수천 명의 부부들이 한번 시술에 들어가는 5천 파운드로 고통을 받고 있다.” 며 “이번 로또는 불임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예산 삭감에 대한 대처방안이 될 수 있다.” 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김경태 tvbodaga@hanmail.net
  • 생모는 ‘이모’ 양모가 ‘엄마’… 美 족보 꼬인다

    ‘누가 엄마고 누가 이모야?’ 불임 부부와 동성 부부 등이 늘면서 정자 기증을 통한 출산과 입양이 흔해진 미국이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전통적 가족 관계가 허물어지고 가계도가 복잡해지면서 개인의 정체성 혼란은 물론 상속 등을 둘러싼 새로운 분쟁거리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인 자매인 로라 애슈모어와 제니퍼 윌리엄스가 미국의 달라진 가정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6일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언니와 동생으로 단순했던 이들 관계는 ‘한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복잡해졌다. 애슈모어가 결혼한 뒤 아이를 갖지 못해 고생하자 언니인 윌리엄스가 대리모를 자처, 정자은행으로부터 정자를 기증받아 딸 ‘맬러리’를 낳았고, 동생 애슈모어가 이 아기를 입양한 것이다. 윌리엄스에게 맬러리는 배 아파 낳은 딸이었지만 법적으로는 조카였던 탓에 이들 자매는 가족 관계 설정을 두고 몇 달 간 고민해야 했다. 그러고는 결국 생모(生母)인 윌리엄스가 이모, 양모(養母)인 애슈모어가 엄마가 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엄마’, ‘이모’의 호칭 문제를 정리하자 더 복잡한 골칫거리가 이들 자매를 기다리고 있었다.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인 윌리엄스는 또 다른 정자를 기증받아 아들인 재미슨을 낳았다. 재미슨과 맬러리는 생물학적으로 엄마가 같은 남매지만 법적으로는 사촌이 된다. 가족 구성이 복잡해지면서 학교 교사들도 아이들에게 가족 관계를 가르치는 데 애를 먹는다. 뉴욕시 브롱코스 지역의 상담교사인 코헨은 “학교 선생님들이 가족관계를 가르치려면 대리모, 정자 기증인, 동성 부모 등에 대한 얘기도 준비해야 한다.”고 전했다. 실제 미국 인구 통계에 따르면 지난 6년 동안 비혼(非婚) 가구가 결혼한 가구보다 더 많아졌고 많은 동성 부부가 대리모나 정자 기증자, 입양 등을 통해 아이를 갖고 있다. 또 미국에서 가장 큰 정자은행인 캘리포니아 정자은행은 2009년 자신의 고객 중 레즈비언 비율이 3분의1에 이른다고 밝혔다. 10년 전 7%에 비해 5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로, 이제 미국에서는 윌리엄스·애슈모어 자매 같은 고민을 하는 가정을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시대 변화를 반영해 출생증명서도 바뀌고 있다. 증명서에는 당사자가 생식 기술을 이용해 태어났는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기술이 사용됐는지 등을 꼼꼼히 적도록 돼 있다. 가계도가 복잡해지면서 호칭 문제뿐 아니라 상속 등 사회적 논란이 될 만한 난제도 떠오르고 있다. 멜린드 러츠 번 미국 족보학자협회 회장은 “가족들이 생물학적 친척이 사망했을 때 누가 상속을 받느냐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복잡한 가족 관계를 알게 되면서 느끼는 고통 등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NYT는 전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피플 인 스포츠] 밀리언야드컵 우승 이끈 ‘잡초 골퍼’ 최호성

    [피플 인 스포츠] 밀리언야드컵 우승 이끈 ‘잡초 골퍼’ 최호성

    최호성은 사진을 찍자고 하니 대뜸 몸을 왼쪽으로 돌렸다. “이래야 태극기가 잘 보이죠.” 나이 서른여덟에 처음 단 태극 마크다. 물오른 기량을 선보이며 골프판에서 화제가 된 요즘의 그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2001년 프로 데뷔 이후 ‘잡초 골퍼’라는 소리를 줄곧 들어온 최호성. 잡초가 10년 만에 꽃을 피웠다. 지난 1~3일 열린 한·일 골프대항전 KB금융 밀리언야드컵에서 최호성은 ‘왕자님’ 이시카와 료(20)만큼이나 갤러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축구선수 김병지를 연상시키는 갈기머리, 예쁜 곳 하나 없이 거칠고 투박한 스윙폼 때문만은 아니다. 곡절 많은 삶을 살아내며 정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인간적 면모가 최호성을 특별하게 한다. 그는 지금 골프계를 주름잡는 20대 초반의 골퍼들과는 한참 다른 삶을 살았다. 그가 본격적으로 골프 클럽을 잡은 것은 골프장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25세 때. ‘영업사원도 골프를 알아야 한다.’는 회사 방침에 따라 배우기 시작했다. 20세 때 선반공으로 일하다 오른쪽 엄지손가락 한 마디를 잃었다. 골퍼에게 오른쪽 엄지손가락은 방향타와 같아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사람이라면 인생에서 한 번쯤 승부를 걸어야 하는 때가 오는데, 그에게는 바로 그 즈음이었다. “그 나이 먹을 동안 특별히 잘하는 게 없었어요. 무엇이 내 길인지 몰라 헤매고 있었죠. 그때 골프를 만났어요. 이게 내 운명이고 내 삶을 발전시켜 줄 수 있는 거라면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까지 그의 삶은 실패의 연속이었지만 골프만큼은 달랐다. 그를 하염없이 잡아끌었다. “마력이었어요. 자려고 누우면 천장에 골프 코스가 펼쳐지면서 낮에 범했던 더블보기도 생각나고…. 제 승부 근성을 제대로 자극했어요.” 28세에 한국프로골프투어(KGT) 퀄리파잉 스쿨을 통과해 프로가 됐다. 그해 2부 투어에서 상금 1위를 차지하며 기세 좋게 출발했지만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2008년 11월에야 첫 우승컵(SBS 하나투어 챔피언십 대회)을 거머쥐었다. 그 이후로 준우승만 세 번 했다. 그동안 그에게는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생겼다. 2005년 말레이시아에서 운명같이 만나 결혼한 8세 연하 아내와 아내를 꼭 닮은 두 아이였다. 가족을 위해서라도 우승이 간절했지만 그는 조바심 내지 않았다고 했다. “나를 믿었어요. 저는 화초가 아니라 잡초처럼 살아 왔으니까 어떤 상황이 와도 헤쳐 갈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죠.” 그의 자신감은 생활에서 나온다. 술·담배를 전혀 하지 않고, 대회가 없으면 한국보다 연습 여건이 나은 중국 선양에 처박혀 훈련만 한다. 밭을 우직하게 일구는 농부처럼 그는 골프를 쳤고 수확을 거뒀다. 5월 레이크힐스 오픈 우승 등 올 시즌 선전에 힘입어 밀리언야드컵 출전 기회도 뒤늦게 얻었다. 승패가 걸린 마지막날 3라운드 싱글 스트로크 플레이에서 1조로 나서 승리를 거두며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1조가 팀의 분위기를 좌우하니까 엄청 중요했죠. 아무도 손을 안 들길래 내가 하겠다고 총대를 멨는데, 나라를 대표해 하는 경기라 그런지 상금 대회보다 세 배는 힘이 드네요.” 지난 3일 대회가 열렸던 김해 정산골프장에서 경기 직후 만나 그가 처음 한 말이었다. 지금이 ‘제2의 전성기’냐고 물으니 그는 손사래를 친다. 그동안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일 뿐 아직 정점은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쇠퇴하지만, 저는 나이를 먹을수록 진화하는 것 같아요. 저더러 불혹 운운하는 말들도 그래서 듣기 싫어요.” 자연스럽게 그의 목표가 궁금해졌다. 뻔한 질문을 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프로골퍼이기도 하지만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해요. 딸린 식구들을 책임지는 게 가장 큰 임무죠. 일을 소홀히 하면 밥을 굶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연습을 하고 대회에 나가는 거죠.” 애초에 화려해 보이자고 시작한 골프가 아니었다. 그에게 골프는 생활이었다. 세상의 어떤 신념보다 ‘먹고사니즘’보다 강한 것은 없다. 최호성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그는 7일부터 나흘간 강원 정선에서 펼쳐지는 원아시아투어 2011 더 채리티 하이원리조트 오픈(총상금 10억원)에 출전한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최호성은 누구 ▲ 생년월일 1973년 9월 23일 경북 포항 출생 ▲ 체격 172㎝, 72㎏ ▲ 경력 2001년 10월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입회/2001년 KPGA 2부 투어 상금 1위/2008년 11월 SBS 하나투어 챔피언십/2011년 5월 레이크힐스 오픈 우승(통산 2승)
  • [열린세상] 전자주민증 발급때 주민번호 체계 바꾸자/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전자주민증 발급때 주민번호 체계 바꾸자/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개인정보보호법이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개인정보에 대한 관심이 더욱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빈번하게 사용하는 주민등록번호에는 매우 민감한 개인정보가 노출되어 있다. 생년월일, 성별, 출생지 등을 알 수 있도록 번호체계가 설계되어 있는 탓이다. 주민등록번호는 사람의 성명과 결합할 경우 얼마든지 개인의 특성을 식별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 정보가 누출될 경우 심각한 개인정보 침해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법률에서는 인터넷서비스의 회원 가입 시 주민등록번호의 사용을 제한하고, 본인 확인을 위해 주민등록번호 대신 i-PIN을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온라인,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주민등록번호는 본인(신원)확인 수단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작년에 가수 애프터스쿨의 멤버인 나나, 그리고 아이비의 주민등록번호가 방송에 노출되는 사고가 있었다. 나나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자격증과 아이비의 번지점프 인증서에 기재된 주민등록번호가 그대로 방송된 것이다. 주민등록번호가 얼마나 광범위하고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단지 주민등록번호의 노출만으로도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치명적인 침해가 발생하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것이다. 이처럼 민감정보가 그대로 드러나는 주민등록의 번호체계를 개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자주민증의 도입과 연계시켜 주민등록번호에 대한 관리체계를 개편하자는 것이다. 원래 주민등록번호란 주민등록대장을 관리하기 위해 편의상 부여한 행정적 관리번호이다. 그런데 이 번호를 주민등록증에 그대로 수록해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이 관리번호는 정말 행정적 대장관리를 위해서만 사용하고 새로 발급할 전자주민증에는 의미 없는 무작위 발행번호만을 수록하자는 것이다. 발행번호와 주민등록번호를 시스템적으로만 연동시켜 두면 발행번호만으로 얼마든지 본인확인이 가능하다. 이렇게 될 경우 주민등록번호는 행정안전부의 시스템 상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알 수도 없고 또한 알 필요도 없게 된다. 발행번호는 주민등록증 발급일자나 유효기간 등과 결합시키는 방법으로, 현재 인터넷에서 사용되고 있는 공공 i-PIN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화나 인터넷에서 카드결제를 할 때 카드번호와 유효기간을 결합시켜 본인확인을 하는 방식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발행번호는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때마다 변경이 가능하기 때문에 평생 바꾸지 못하는 주민등록번호에 비하여 개인정보침해사고를 상당히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전자주민증 도입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아마도 전자주민증이 도입되고 나면 정부가 수록정보를 조금씩 확대하여 궁극적으로는 통합신분증이 될 것이며, 그렇게 될 경우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주장인 것 같다. 또한 전자칩의 해킹이나 복제에 대한 우려도 있다. 수록정보의 대상과 범위를 국회에서 입법적으로 정하도록 하여 국회의 통제를 받도록 하거나 당사자 스스로가 수록 대상정보의 범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을 한다면 개인의 모든 정보가 하나의 칩에 저장되어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은 기우일 수 있다. IC칩의 해킹이나 복제의 문제는 비단 전자주민증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보보안의 일반적인 문제로서 기술적 보안조치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적으로 80여개의 나라가 전자여권을 운영하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전자칩의 보안문제 때문에 전자주민증의 도입을 반대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전자주민증을 도입할 경우 주민등록번호 체계의 개편을 통해 개인정보 보호를 더욱 강화할 수 있고 주민등록증의 위·변조를 방지할 수 있다는 긍정적 효과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자주민증에 대한 막연한 의심만으로 도입 자체를 막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이라도 전자주민증의 유용성을 극대화하면서 동시에 역기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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