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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식 세계 최고령 男 “장수 비결은 여자를 돌처럼…”

    비공식 세계 최고령 男 “장수 비결은 여자를 돌처럼…”

    러시아 출신의 비공식 ‘세계 최고령 남성’이 122세의 나이로 사망해 안타까움을 주고 있는 가운데, 생전 자신의 장수 비결로 “여자를 돌처럼 보는 삶”이라고 밝혀 눈길을 끌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11일자 보도에 따르면, 1890년에 태어났다고 주장해 온 마고메드 라바카노브는 1917년 볼셰비키혁명 등 러시아의 굵직한 역사를 지켜본 산 증인이었다. 두 번의 결혼으로 손자 18명, 증손자 20명을 뒀으며 아들 4명을 먼저 떠나보내기도 했다. 그는 평소 자신의 장수비결로 “술과 담배, 여자를 멀리하는 삶 덕분”이라면서 “평소 적당한 양의 과일과 옥수수, 야채, 마늘을 즐겨 먹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그가 오랜세월 살았던 러시아 남쪽 카프카스 산맥지역 마을은 유독 장수하는 사람이 많은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인들은 그가 평생을 제재소에서 일을 했고,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우진 못했지만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았다고 한 입으로 말했다. 한편 그가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되지 못한 것은 생년월일을 입증할 공식자료가 없기 때문이며, 현재 공식적으로는 1896년에 출생한 미국의 베시 쿠퍼 할머니(116)가 세계 최고령자로 알려져 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쌍둥이 태아보험 가입 쉬워집니다

    쌍둥이 태아보험 가입 쉬워집니다

    쌍둥이도 다음 달부터 태아보험(출생 전후 질병이나 사고비용 등을 보상해 주는 보험) 가입이 쉬워진다. 가입대상에 제한을 두지 못하도록 태아보험 약관이 고쳐지기 때문이다. ‘쌍둥이 차별’에 대한 불만이 끊이지 않아 일부 보험사는 제약을 없앴으나 삼성생명 등 상당수 보험사들은 아직도 쌍둥이나 인공수정 태아에 대해서는 태아보험을 받아주지 않고 있다.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과 쌍둥이 출산이 늘어나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처사다. ●가입대상 제한 해제 10일 금융감독원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태아보험 약관 개정안이 10월 1일 시행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태아보험에 관한 소비자들의 민원이 많아 올해 초부터 약관 개정을 추진해 왔다.”면서 “불합리한 조항을 고친 새 약관을 보험사들이 따르도록 지도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개정 약관의 핵심은 가입대상 제한 해제다. 지금은 태아가 쌍둥이 등 두 명 이상의 다태아일 경우 한 아이에 대해서만 태아보험 가입을 받아주거나 아예 받아주지 않고 있다. 삼성생명, 우리아비바생명, 미래에셋생명, 동부생명, 삼성화재, 메리츠화재, 현대해상 등은 아예 쌍둥이 고객을 거절하고 있다. 가입을 받아주는 보험사도 ‘인공수정이 아닐 것’ ‘태아 몸무게가 2.5㎏ 이상일 것’ 등 심사조건을 까다롭게 두고 있다. 이 때문에 다둥이 부모들은 보험사들이 시대 흐름을 외면한 채 수익성만 좇는다고 비판해 왔다. 다태아 신생아 수는 2005년 9459명에서 지난해 1만 3852명으로 46%나 급증했다. 의료기술 발달로 인공수정 성공률이 높아지면서 다태아가 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개정 약관은 인공수정에 의한 다태아 차별도 시정하도록 하고 있다. 지금은 보험 가입 뒤 인공수정 쌍둥이라고 신고하면 보상을 일부 안 해준다. 보험료를 꼬박꼬박 납입하고도 보상은 전부 받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인공수정 다태아 차별도 시정 약관은 일종의 ‘신사협정’이어서 보험사들이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쌍둥이나 인공수정 태아는 단태아에 비해 미숙아로 태어나거나 다른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 무작정 (태아보험 가입을) 받아주면 손해율이 올라갈 수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손해율이 올라가면 전반적인 보험료가 올라가 단태아 가입자들이 불리해질 수 있다.”면서도 “금융당국이 약관 개정안을 내놓은 만큼 (보험사들이)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성원기자 lsw1469@seoul.co.kr
  • 정책을 움직이는 ‘민원의 힘’

    정책을 움직이는 ‘민원의 힘’

    국민들의 민원이 꿈쩍하지 않던 정책을 움직이고 있다. 민원이 꾸준히 제기되는 사안들에 대해 해당 부처들이 제도 개선안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올 상반기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주요 민원들과 관련, 해당 부처들이 개선책 마련에 적극 나섰다고 10일 밝혔다. 올 초부터 권익위 민원정보분석센터는 국민신문고에 올라온 민원을 다달이 분석해 각 기관에 제공, 소관 부처들이 불합리한 제도나 정책을 개선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올 초 국민신문고에 수백 건의 민원으로 올라온 임용시험 연령제한 피해 고충이 해결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를테면 지방공무원 임용시험 자격조건이 1994년 12월 31일 이전 출생자로 제한돼 1995년 1월생인 민원인은 시험자격을 얻을 수가 없었던 것. 이에 행정안전부는 지난 7월 시도 고시담당회의를 거쳐 내년부터 조기입학한 졸업(예정)자도 고졸 경력 경쟁임용시험 응시 자격을 부여받도록 했다. 잇따른 민원에 장애인들의 2종 소형면허 취득 조건도 완화됐다. 경찰청은 2종 소형면허에 다륜형 조건을 신설해 3륜 이상 운전이 가능하도록 하는 운전면허 취득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장기 침체된 현실을 감안, 국토해양부가 보금자리주택 의무 입주기간을 연장한 것도 쏟아지는 민원에 귀를 기울인 결과다. 국토부는 관련법 시행령을 개정해 보금자리주택 의무입주 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기로 했다. 권익위 민원정보분석센터 나성운 과장은 “앞으로도 사회·생활 분야의 다양한 민원사례들을 발굴·정리해 각급 기관에 제공함으로써 국민의 목소리를 정책수립 및 개선대책 마련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1~8월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민원을 분석한 결과 이 기간에 접수된 성매매 신고는 모두 819건으로 매월 뚜렷한 증가 추세를 보였다. 지난 1월 61건이던 성매매 신고는 이후 꾸준히 늘어 7월에는 143건으로 폭증했다. 신고 유형으로는 유흥업소 성매매 신고(156건)와 인터넷 불법 사이트 신고(134건)가 가장 많았다. 또 전체 성매매 민원의 62.5%(509건)는 서울·경기 지역에 집중됐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부고] 원로가수 조미미 ‘바다가 육지라면’ 남기고 하늘로

    [부고] 원로가수 조미미 ‘바다가 육지라면’ 남기고 하늘로

    ‘바다가 육지라면’을 부른 가수 조미미(본명 조미자)씨가 9일 오전 11시 서울 구로구 오류동 자택에서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65세. 1960~70년대 트로트 황금시대의 주역이었던 고인은 한두 달 전까지도 KBS ‘가요무대’에 출연했다. 이 때문에 갑작스러운 부음 소식을 듣고 빈소가 차려진 경기도 부천 성모병원으로 달려온 지인들은 믿기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유족 측에 따르면 고인은 한 달 전 급성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1947년 전남 목포 출생인 고인은 1965년 동아방송 주최 민요가수 선발 콩쿠르인 ‘가요백일장’에서 김세레나, 김부자씨와 함께 발탁돼 데뷔했다. 1965년 ‘떠나온 목포항’으로 데뷔한 뒤 1969년 ‘여자의 꿈’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후 50여장의 앨범을 통해 ‘바다가 육지라면’ ‘선생님’ ‘먼데서 오신 손님’ ‘단골손님’ ‘눈물의 연평도’ ‘개나리 처녀’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애수 어린 정조를 아름다운 음성에 담아내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인은 1973년 6월 당시 재일교포 사업가인 안성기씨와 서울에서 결혼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가정을 꾸렸다. 결혼 후에도 틈틈이 귀국해 1976년 ‘연락선’ 등을 발표하며 MBC 10대 가수에도 선정됐다. 이후 가수 활동은 접고 두 딸을 키우며 가정주부로 지내왔다. 그러다 1986년 긴 공백을 깨고 이산가족을 소재로 한 노래 ‘임진각에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2010년 일본에서 귀국해 그해 KBS ‘가요무대’ 25년 특집 방송에 출연해 옛 팬들의 향수를 달래기도 했다. 현재 경주 나정해수욕장에 ‘바다가 육지라면’, 서산 왕산포구에 ‘서산갯마을’, 서귀포시에 ‘서귀포를 아시나요’ 등 고인이 부른 히트곡 세 곡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태진아 대한가수협회 회장은 “불과 한두 달 전에 ‘가요무대’에 함께 출연했는데 투병 중인지 전혀 몰라 갑작스럽다.”면서 “1970년대 초 서대문 영등포 등의 극장쇼 무대에서 자주 뵌 선배로 대한가수협회를 이끌어가느라 애쓴다고 격려해 주던 따뜻한 선배였다.”고 안타까워했다. 유족으로는 안애리·애경씨 등 두 딸이 있다. 발인은 11일 오전 6시. (032)340-7301.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6)‘개화파’ 김옥균 vs ‘그를 죽인’ 홍종우

    [선택! 역사를 갈랐다] (26)‘개화파’ 김옥균 vs ‘그를 죽인’ 홍종우

    ●혁명가 인정받는 ‘김옥균’ vs 테러리스트 된 ‘홍종우’ 정부 차원에서 주요한 역사적 개념을 규정하는 북한에서는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갑신정변을 ‘근대 부르주아 혁명운동’으로 변경했다. 한국에서 김옥균(金玉均·1851~1894)과 갑신정변에 대한 견해는 연구자들 간에 일치하지 않으나 대체로 근대국가 수립을 위한 최초의 혁명적·진보적 개혁운동으로 보고 봉건제 청산을 위한 ‘위로부터의 개혁’을 전개하였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일본이라는 외세 동원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변혁 주체로서의 역할은 인정하는 편이다. 반면 이와 대비시켜 우리에게 비교적 덜 알려진 홍종우(洪鍾宇· 1850~1913)는 대다수 사람들이 갑신정변 주도 인물인 김옥균 암살범이자 독립협회와 대척점에 있던 황국협회를 주도하던 반(反)개화, ‘테러리스트’로만 이해하고 있던 인물이다. 당연히 그 평가는 부정적이기 때문에 최근까지도 보수반동 성향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과연 그럴까. ●‘갑신정변’ 3일천하… 실패한 비운의 개화파 김옥균 조선을 개혁하겠다는 큰 뜻을 품고 일으킨 1884년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끝난 뒤 반역자로 처단된 고균(古筠) 김옥균. 권력과 세력을 잃고 망명지를 떠돌다가 목숨을 잃고 주검마저 능욕을 입은 비운의 개화파…. 갑신정변의 실패는 정변의 주체들과 일정 부분 이해를 같이했던 윤치호의 아버지이자 군부대신 등 고위관료를 역임한 윤웅렬도 예견하고 있었다. 그는 갑신정변의 실패 요인을 다음의 여섯가지로 꼽았다. 1. 군주를 위협한 점 2. 외세를 믿고 의지한 점 3. 민심이 따르지 않은 점 4. 청국의 군사력을 과소 평가한 점 5. 왕과 왕비의 의향을 어긴 점 6. 당붕(黨朋)의 도움 없이 일을 조급하게 처리한 점 갑신정변의 행동대장으로서 정권의 핵심인사 살해에 앞장섰던 서재필은 후일 회고담에서 실패 원인을 ‘민중의 무지몰각’에 돌리고 있다. 그는 광범위한 민중의 원동력과 잠재력을 믿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매도했다. 정변은 국민적 동의 없이 진행된 것이다. 후일 김옥균은 일본을 ‘이용’했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이용당한 것이고 위험한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봉건제도 청산을 위한 노력에만 초점을 맞추었지만 상대적으로 제국주의 침략 세력에게는 관대하거나 이를 생각하지 못한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와 친한 일본인들은 후쿠자와(福澤諭吉), 도야마(頭山滿), 고도(後藤像二郞) 등 ‘대아시아주의자’이자 한국 침략을 적극 옹호한 인물 일색이었다. 말년의 김옥균은 이른바 삼화주의(三和主義)에 심취해 있었다. 그는 ‘흥아지의견’(興亞之意見)에 기초해 이를 설명했는데, 그 골자는 ‘삼국제휴 서력방알’(三國提携 西力防?)을 통해 아시아를 부흥시킨다는 것이다. 이를 제창하게 된 것도 정신적 스승인 후쿠자와의 영향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흥아지의견’은 현재 남아 있지 않아서 과연 김옥균이 후쿠자와와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지 아니면 삼국이 대등한 관계에서 평화롭게 공존공생하자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1904년 러일전쟁 직후 그동안 일본에 망명했던 갑신정변과 을미사변 관련자들은 모두 귀국하여 복권되고 식민지 시기 대다수는 친일의 거두로서 식민지 지배의 일익을 담당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김옥균에게는 유신(維新)을 처음 제창한 사람이고 문명의 선각자로서 충달공(忠達公)이라는 시호가 융희 4년(1910) 7월 27일에 추증되었다. 김옥균 추종 세력은 이후 1920년대에 들어와서도 그의 이전 활동을 과장·미화하였다. 식민지 시대 말기에 이르면 일제는 만주 침략을 시작으로 대륙 침략을 본격화하는 과정에서 대동아공영권을 통한 아시아 지배와 조선 민중에 대한 무제한의 통제 명분을 김옥균이 주장한 삼화주의에서 찾았다. 김옥균의 삼화주의는 그의 의지와는 다르게 숱하게 왜곡되어 갔다. ●홍종우, 실정 맞는 근대화 추구… 佛르피가로도 ‘개화인사’ 인정 경기도 몰락한 선비의 가문에서 출생한 홍종우는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빈곤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1886년 3월부터 프랑스행을 결심하여 1888년 나가사키와 규슈, 오사카를 거쳐 도쿄에 도착했다. 이어 1890년 12월 파리로 들어갔다. 그는 프랑스 유학 후 거의 2년 동안 파리 기메박물관에서 연구보조자로 활동하면서 춘향전, 심청전, 직성행년편람(直星行年便覽) 등 한국의 고전과 점성술책, 일본과 중국의 고전을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일에 종사했다. 홍종우는 프랑스어 번역본 ‘다시 꽃이 핀 마른 나무’(심청전)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공화국에 사는 데 습관이 된 프랑스인들을 대상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우리 선조가 세운 정부 형태에 우리가 집착하는 것을 탓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 이것은 기질의 문제이다. 기후가 국민의 관습에 끼치는 영향은 오래전에 증명되었다. 그 누구도 인디언들이 에스키모인과 같이 옷을 입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라마다 다른 정체(政體)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정부 형태를 유지하면서, 이번에는 우리가 유럽문명을 이용하고자 한다. 이 일에 있어 우리를 돕고자 하는 자들에게 우리는 존경과 애정을 바칠 것을 미리 약속한다.” 홍종우의 정체관이 그간의 시대 담론과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목표는 조선의 전통과 서양 문화를 조화·절충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대중을 계몽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입장은 성리학적 질서와 체제를 유지하고자 했던 척사위정론자들과 다른 것이었으며, 민족 주체성과 민족 문화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화 지상주의론자와도 구분되었다. 1893년 귀국을 결심한 그는 그해 12월 일본에 도착하였다. 이때 고종의 밀명으로 도쿄에 온 이일직과 만났고, 그로부터 김옥균 암살을 제의받게 된다. 홍종우는 김옥균을 만나 프랑스 정국을 소개하고 세계 대세와 동양 정세를 논하는 한편 그의 상하이행을 유도했고 상하이 동화양행에서 김옥균은 결국 홍종우가 쏜 세 발의 총탄을 맞고 즉사한다. 그가 본격적으로 국내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는 아관파천 이후부터다. 그는 국왕을 황제로, 세자를 황태자로 높이는 한편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건원 연호를 ‘광무’(光武)로 정할 것을 건의하였다. 이는 대한제국 수립과 황제 즉위식의 초석이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홍종우는 대한제국 성립 당시 비서원승으로 활약한 이래 각 방면에서 활동하면서 여러 차례 전반적인 개혁을 주장하였다. 경제 문제에 관한 개혁론은 대외적으로 열강의 조선 이권 침탈에 대한 절대불가론으로, 내적으로는 국가재정의 확충과 국내 상인의 몰락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론인 보호주의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은 한러은행 설치 반대, 외상의 도성 개잔(開棧)과 내지행상 반대, 절영도 석탄고 임대 및 광산이권 양도 반대, 조선 연해어업 및 홍삼 사매(私買) 반대, 방곡실시, 광무연호 주조, 상권보호 등이다. 정치·사회 문제에 관한 개혁론은 군주권의 절대화, 군권(軍權)의 확립과 군사권 간섭 반대, 각부 고문관과 각국 공사의 내정 간섭 반대, 불평등 조계 개정, 만국공법의 철저한 준수, 공정한 인사정책, 민선의원(民選議院) 설립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는 근대적 지도체제의 확립을 위해서는 정부의 자립과 과감한 개혁이 이를 보조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러일전쟁을 거쳐 1910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이 식민지가 되자 그는 ‘개화당의 영수’ ‘조선독립의 혁명가’ 김옥균 암살범으로 다시 각인되었고, 근대화를 저해하는 데 가장 앞장섰던 사람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그는 명실상부한 개화인사였다. 프랑스 저명 신문 르피가로지도 그렇게 보고 있다. 잘 알다시피 홍종우는 프랑스 최초의 한국 유학생이자 많은 부분 우리 실정에 맞는 근대화를 도모하였다. 그가 수구파라는 결정적인 근거도 없고 그 역시 수구적인 언급을 한 바 없다. ●편견 지우고 입체적으로 보아야 김옥균과 홍종우는 조선을 근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는 같다 하더라도 양자 간에는 분명한 대립각을 갖고 있었다. 김옥균과 달리 홍종우는 조선이 근대국가로 이행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외국으로부터의 도전이라고 인식하고 자주적 근대화를 추진하려고 했다. 그는 조선의 역사와 현실을 서구에 알리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선에서 근대화가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랐던 것이다. 현실 사회에 대한 객관적 인식의 부재 상태에서 문화적 전통과 제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서구 및 일본의 제도를 무차별하게 도입하는 것은 오히려 그 나라의 발전에 커다란 해를 끼칠 수도 있다. 김옥균처럼 문명개화를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보면서 제국주의 이웃 강국을 끌어들여 근대화를 달성하려는 방식은 정당화되기 힘들다. 만약 그럴 경우에는 자칫 국가를 상실할 위험이 뒤따른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시대는 다르지만 갑신정변 당시와 지금 한국을 둘러싼 동북아의 국제 정세는 묘하게 일치하고 있다. 조재곤(동국대학교 연구교수)
  • [커버스토리] 혼외출생 1만명…‘新가족’ 탄생

    [커버스토리] 혼외출생 1만명…‘新가족’ 탄생

    #1. 회사원 한주열(39·가명)씨와 보험설계사 이수영(35·여·가명)씨는 ‘무늬만 부부’다. 함께 산 지 4년이 넘었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둘은 결혼에 한 번 실패한 경험이 있다. 한씨는 아내와의 성격 차이로, 이씨는 남편의 외도로 결혼생활을 끝냈다. 워낙 심하게 ‘데었던’ 탓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사실혼 관계로 지내고 있다. 둘은 “이혼하면서 받은 상처가 너무 크다.”면서 “마음이 치유되면 법적부부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지금이 편하다.”고 했다. 두 돌 된 아들은 한씨의 성을 따랐다. #2. 캠퍼스 커플인 김성진(27·가명)·박재희(23·여·가명)씨는 올해 3월 아기를 낳았다. 지방에서 올라와 2년간 동거한 이들에게 임신은 갑작스러운 사건이었다. 박씨는 “임신 테스트기를 확인했을 때 솔직히 낙태가 떠올랐다.”면서도 “차마 지울 수는 없었다.”고 했다. 건강한 딸은 현재 김씨 부모가 돌보고 있다. 사회의 편견을 의식해 혼인신고는 직장을 얻은 뒤 하기로 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남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늘고 있다. 지난달 통계청에 따르면 혼외 출생은 지난해보다 3.3%(320명) 늘어난 9959명이다. 조사를 시작한 1981년 이후 최대치다. 2001년 이후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추세임을 감안하면 올해 혼외 출생은 1만명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출생아 중 혼외 출생 비율도 1997년 0.6%(4196명)에서 2011년 2.1%(9959명)를 찍었다. 김영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통계에는 혼외 출생의 양상이 안 잡히지만 대다수를 차지할 것으로 보이는 미혼모 외에도 동거나 사실혼 관계가 많아졌다고 본다.”면서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결혼관이 무너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전체 1735만 9333가구 중 부부가정, 부부·미혼자녀 가정, 부부·한부모 가정, 조손가정 등을 제외한 ‘기타 가구’는 209만 6651가구로 약 12.1%를 차지한다. 1인 가구는 414만 2165가구였고, 비친족가구도 47만 9120가구에 달했다. 인구통계 방식상 미혼모·미혼부 가족이나 동거·사실혼 관계는 기타 가구나 1인 가구 혹은 비친족가구에 속한다. 이에 대한 인식도 법과 제도에 크게 개의치 않는 등 바뀌고 있다. 2010년 통계청 조사에서는 15~24세 청소년 53.3%가 ‘남녀가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다’고 응답했다. 온라인 설문조사 기업인 두잇서베이가 지난 4월 성인 남녀 251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동거 후 결혼에 찬성’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응답자의 60%에 달했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결혼이 늦고 성적 자유가 확대되면서 동거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다.”면서 “개방적인 성 풍속과 ‘결혼은 선택’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면서 혼외 출생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혼외 출생아를 직접 키우는 미혼모가 급증한 것도 주목된다. 지난 8월 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미혼모 자녀양육 및 자립지원을 위한 정책과제’에 따르면 1998년 7.2%에 그쳤던 양육 미혼모의 비율이 2009년에는 66.4%로 급증했다. 여성의 경제력이 상승하고 생명존중 의식까지 강해져 해외 입양을 보내던 기존 관행이 무너지고 있다는 게 연구원의 분석이다. 변화순 팸라이프가족연구소 소장은 “과거에 공고하던 ‘임신=결혼’이란 명제가 희석됐다.”면서 “최근엔 남자와 상관없이 혼자서라도 키우겠다는 여성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신가족’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환경을 만드는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실적으로 한부모가족지원법을 비롯, 가족관계법·의료보험법·입양특례법 등 다양한 제도가 있지만 법적 부부가 아닐 경우에는 각종 지원 및 혜택에서 제외된다. 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 소장은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는 사회를 만드는 데 주목해야 한다.”면서 “사실혼, 동거, 동성커플 등 새로운 유형의 가족을 제도권 밖에 두는 건 장기적으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은지·배경헌기자 zone4@seoul.co.kr
  • [커버스토리-혼외출생 1만명 시대] 다큐멘터리 영화 ‘미쓰마마’ 출연 김현진·최형숙씨와 유쾌한 수다

    [커버스토리-혼외출생 1만명 시대] 다큐멘터리 영화 ‘미쓰마마’ 출연 김현진·최형숙씨와 유쾌한 수다

    “그런 놈들 북한으로 보내 버려야 돼. 정신교육에 그만한 데가 없다니까.” 양육 미혼모들을 다룬 백연아 감독의 다큐멘터리 ‘미쓰마마’에 나오는 네살짜리 아들을 키우는 장지영(31)씨가 ‘비정한 아빠’에게 던지는 뒷담화다. 혼외출생 1만명 시대, 무책임한 남자와의 사랑 없는 결혼 대신 아이와 자신의 삶을 선택한 ‘미쓰마마’들을 만났다. 최형숙(41)씨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준서(7)의 엄마다. “미혼이 아니라 모(母)가 중요하다.”는 최씨는 자기소개를 부탁하는 질문에 아들 이름부터 입에 올린다. 이들에게 엄마라는 이름은 낙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결혼하지 않은 엄마를 이상하게 여긴다. TV 속 미혼모들의 삶이 늘 모자이크 뒤에 가려져 있다는 게 그 증거다. 그러나 엄마라는 게 부끄럽지 않은 최씨는 ‘생얼’을 드러내는 데 인색하지 않다. “어두운 시사프로그램 대신 버라이어티쇼에 나가고 싶다.”고 농담처럼 말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출산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최씨는 오랫동안 연애하던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준서를 임신했다. 임신 사실은 헤어진 뒤에야 알았다. 처음엔 낙태를 고민했다. 못할 짓이다 싶어 낳았지만 가족들은 입양을 강요했다. 마지못해 준서를 시설에 보냈다. 밤새 울다 다음 날 아이를 찾으러 다시 시설에 갔다. 갑작스러운 임신이었지만 억지로 결혼하고 싶지는 않았다. 최씨는 “결혼은 의무가 아니라 가치관이라고 생각한다. 그 가치관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개인의 몫”이라고 했다. 최씨는 미혼보다는 비혼(非婚·결혼할 의지가 없음)에 가깝다. 결혼을 선택하지 않아 생긴 장점도 있다. 최씨에게는 눈치 볼 시댁이 없다. 무조건적인 희생과 집안일을 강요하는 남편도 없다. 최씨는 “월급만 가져다주고 아빠 노릇 다했다고 생각하는 남편이 무슨 의미냐.”고 되묻는다. 혼외출생을 보는 일반적인 인식은 양면성을 띄고 있다. 통계청이 2009년 발표한 전국 결혼 및 출산 동향 조사에 따르면 혼전임신을 했을 경우 미혼남성(20~44세)의 21.5%, 미혼여성(20~44세)의 16.6%가 ‘반드시 낳아야 한다’고 답했고, 미혼남성 56.6%, 미혼여성 60.7%는 ‘가능하면 낳아야 한다’고 답했다. 젊은 남녀 모두 혼전임신이라도 출산은 필요하다고 여긴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결혼하지 않아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항목에서는 미혼남성의 36.4%, 미혼여성의 36.5%만이 찬성(전적으로 찬성+대체로 찬성)했다. 이미 생긴 아이는 낳는 게 좋지만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는 출산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 인식이 많음을 보여 준다. ●“칙칙한 시사프로 대신 버라이어티쇼 나가고 싶다” 백 감독은 이에 대해 “가부장적 편견과 모순의 집결체가 미혼모에 대한 시각”이라고 지적했다. 최씨는 과거 미혼모라는 사실을 수군대는 회사가 싫어, 입사 사흘만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네살짜리 딸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 김현진(29)씨는 “미혼모라면 무조건 문란하고 부도덕하다고 여기는 게 너무 화가 난다.”고 했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장지영(31)씨가 “드라마에 나오는 미혼모는 왜 항상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 구제받지? 혼자 애 키우면서 살아가면 안 되나?”라고 불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사회에서 미혼모는 여전히 구제와 손가락질의 대상이다. 또 다른 미혼모 원미현(가명·35)씨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했지만 종교적 신념 때문에 지운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냉정하게 낙태수술 예약을 잡더라.”고 8년 전 일을 회상했다. 원씨는 두 번이나 병원을 찾았지만 차마 수술대에 오르지 못했고 현재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 친부는 ‘혼인신고를 하면 죽여버리겠다.’는 통보를 마지막으로 연락을 끊었다. 원씨는 “당당한 싱글맘으로 살려해도 ‘사생아’라고 손가락질 받는 아이를 보며 울 때가 많았다.”고 했다. 이처럼 현실 속의 양육은 오롯이 여성들 몫이다. 통계청이 5년에 한 번씩 발표하는 총가구조사에 따르면 2010년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미혼여성은 16만 6609가구로 혼자 아이를 키우는 미혼남성 1만 8118가구에 비해 크게 앞섰다. 미혼여성이 13만 3234가구, 미혼남성이 9218가구였던 2005년 조사보다 ‘싱글대디’의 비율이 크게 증가하긴 했지만 차이는 압도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인식이 사회규범적 의식과 현실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남성들은 ‘나는 낙태하라고 했는데 네가 좋아서 낳은 거니까 책임지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면서 “결혼하지 않더라도 양육비를 지원하게 하는 등 법적 책임을 강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미정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사회적으로 양육의 1차적 책임이 어머니에게 있다는 보이지 않는 규범이 강하다.”면서 “모유 수유 등의 측면에서 남자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혼외출생에 대한 편견은 미혼모 자신에게 그치지 않는다. 미혼모의 부모와 자녀도 똑같은 편견에 시달린다. 김씨는 “부도덕한 미혼모를 만든 부모도 똑같다고 여기는 문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씨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최씨의 아버지도 처음에는 “연을 끊자.”고 했다. 경상도 출신인 최씨의 아버지는 다음 날 변기통을 부여잡고 남몰래 펑펑 울었다. 김씨는 “솔직히 엄마는 평생 내가 미혼모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지만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함께해 주는 건 가족”이라고 덧붙였다. 최씨도 “출산을 반대하던 오빠가 지금은 ‘내가 왜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미혼모부터 검색해 보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엄마, 엄마는 왜 거북이처럼 느리게 일해?” 여권이 신장됐다고 하지만 미혼모들이 사회인으로 홀로 서기를 하기란 여전히 벅찬 게 현실이다. 정부는 가족관계법·한부모가족지원법 등에 따라 혼외출생자들을 지원하고는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의하면 양육 미혼모의 54.7%는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라 기초생활수급비를 지원받고 있다. 자녀가 18개월 미만일 경우 월평균 63만원을, 36개월 이상은 32만원을 받는다. 그러나 취업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미혼모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임신, 출산과 관계없이 직장생활을 지속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퇴사 등 불이익을 겪는다. 200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미혼모의 95%가 ‘임신 이후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답했다. 이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미혼모라는 이유로 채용에서의 불이익도 크다고 적었다. 여성가족부는 ‘미혼임산부 및 미혼모에 대한 직장에서의 차별금지’를 추진 중이다. 비양육 미혼부에게 양육비를 청구하는 법안도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최씨는 미혼모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단체인 한국미혼모가족협회에서 대외정책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김씨는 비슷한 처지의 양육 미혼모들이 함께 만든 사회적 기업 ‘용감한 컵케이크’에서 제빵 일을 돕다 얼마 전 그만뒀다. 최씨는 직장 탓에 집에 늦게 돌아오는 날도 많다. 준서는 그런 엄마를 두고 “왜 안 놀아주느냐.”며 울먹인다. 사회적 지원이 부실한 상황에서 미혼모가 일과 양육을 병행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다큐멘터리 속에서 울먹이던 준서는 “엄마는 왜 거북이처럼 느리게 일하냐.”고 묻는다. “빨리 일 끝내고 와서 놀아달라.”며 보채는 것이다.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다. 김씨는 용감한 컵케이크를 떠나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 아름다운 재단에 창업 지원 자금을 신청했다 지난 4일 탈락의 고배를 마신 김씨는 “혼자 설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감이 좀 떨어지긴 했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물론 포기하지는 않는다. 김씨는 엄마와 아이가 함께 입을 수 있는 커플룩을 판매하는 의류 매장을 운영할 생각에 밤잠을 설친다. 양육 미혼모뿐만 아니라 사실혼이나 동거관계에 있는 신가족들도 결혼을 기준으로 짜여진 사회 제도 속에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사실혼·동거 관계 역시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비롯, 세제혜택과 상속 등 경제적인 부분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신혼부부 특별청약을 실시하는 보금자리주택은 혼인신고를 한 가족에게만 청약자격이 주어진다. 공공임대주택의 경우도 다자녀가구, 3세대 가구 등 대가족에게 우선권을 준다. 사실혼 관계라 해도 연말정산 소득공제에서도 부양가족에 대한 인적공제가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편견과 차별로 엄격하게 대하기보다는 생활과 양육에 필요한 지원을 해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편입시키는 한편 다양한 가족 형태를 아우를 수 있는 제도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삼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고령사회연구실장은 “정부나 기성세대들은 ‘그렇게까지 지원해야 하나.’고 되묻는다.”면서 “조장할 필요는 없지만 사회변화의 산물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정하고 보호할 법·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럽과 북미 선진국은 혼외출생, 이혼, 비혼(非婚) 등 아이를 혼자 키우는 사람이 많아지자 이들을 다양한 가족의 형태로 받아들여 적극적인 지원책을 마련했다. 프랑스는 혼외출생이 절반 이상으로 늘어나자 2006년부터 법적부부의 출산과 혼외출산을 구별하는 규정을 폐지했다. 자녀를 양육하는 자체로 가족수당, 양육수당을 받고 출산·육아휴직 등의 혜택을 차별 없이 받는다. 변화순 팸라이프가정연구소 소장은 “프랑스는 정식부부보다 혼외출생에 대한 지원·혜택이 더 잘돼 있다.”면서 “그래서 결혼보다 동거가 급증하는 부작용이 초래됐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영국은 아동부양비와 양육수당, 교육유지수당 등 다양한 형태의 보조금과 바우처를 제공하고 있다. 미혼모들에게 주택·건강·부모교육·고용훈련 등을 제공하는 슈어스타트(Sure Start)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독일도 최저생계비·부모수당을 지급하며 모성보호법 등에 근거해 10대 미혼모의 교육권까지 철저히 보장하고 있다. 조은지·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CEO 최고 요람’ 명패 바뀌었다…연대 경영학과 서울대 누르고 1위

    ‘CEO 최고 요람’ 명패 바뀌었다…연대 경영학과 서울대 누르고 1위

    재계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전공은 연세대 경영학과, 대학은 서울대 출신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5일 한국CXO연구소가 1000대 기업 CEO 1248명의 출신 대학과 전공을 조사한 결과 연대 경영학과 출신이 40명으로 가장 많았다. 지난해 51명이었던 서울대 경영학과는 올해 39명으로 줄었다. 고려대 경영학과도 39명이나 배출했다. 지난해 연·고대 경영학과 출신은 똑같이 36명이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1960년대 이후 출생한 젊은 CEO 가운데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은 8명에 불과한 반면 연대 경영학과 출신은 15명으로 더 많았다.”며 “재계 주도권이 젊은 기업가로 옮겨지면서 CEO 최고 요람지 명패도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재계에서 활약 중인 연대 경영학과 출신 기업가로는 정은섭(74) 대주산업 회장, 장형진(66) 영풍그룹 회장, 이동욱(64) 무림그룹 회장, 서경배(49) 아모레퍼시픽그룹 사장 등 오너 기업가와 김창근(62) SK케미칼 부회장, 백우석(60) OCI 사장, 최세훈(45)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장 등 전문경영인이 대표적이다. 서울대·고대·연대를 일컫는 ‘SKY’대 출신 비율은 해마다 감소 추세로 능력 중심의 CEO 중용 흐름이 뚜렷해졌다는 분석이다. 2007년 59.7%이던 SKY대 출신 비율은 2008년 45.6%, 2010년 43.8%, 2011년 41.7%로 떨어졌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낮아진 40.5%를 기록했다. 그러나 여전히 30대 그룹 계열 상장사 SKY 출신 비중은 59.1%로 전체 비중보다 높았다. 1000대 기업 CEO 자리에는 서울대 출신(274명·21.3%)이 가장 많이 포진하고 있었다. 2위는 고려대(125명, 9.7%), 3위는 연세대(122명, 9.5%) 순이다. 이어 한양대(97명·7.6%), 성균관대(55명·4.3%), 중앙대(41명·3.2%), 한국외국어대(35명·2.7%) 등의 순이었다. 전체 대상 기업 CEO의 개별 전공은 경영학(21.2%), 경제학(7.4%)의 순이었으나 전자·기계 등 이공계열 출신은 2010년 43.0%에서 올해 44.3%로 높아지는 등 증가 추세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경제 블로그] “딸 낳으면 보험료 환급” 고지 안한 보험사

    [경제 블로그] “딸 낳으면 보험료 환급” 고지 안한 보험사

    올해 3월 딸을 낳은 김모(31)씨는 요즘 생각할수록 보험사가 괘씸하다. 얼마 전에야 딸을 낳으면 태아보험 보험료를 돌려준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태아보험은 임신부들이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 드는 보험이다. 아기의 선천적 이상이나 저체중으로 인한 인큐베이터 비용, 출생 후 질병 사고 등을 보장해준다. 통상 남자 아이의 사고 확률이 더 높아 보험료가 더 비싸다. 그런데 임신 중에는 법적으로 태아의 성별을 알 수 없어 상대적으로 비싼 남아 기준으로 보험에 가입해야만 한다. 대신,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그 차액만큼 보험사가 돌려주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을 아는 고객들은 많지 않다. 보험사들도 이 같은 사실을 고객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고 있다. 환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김씨는 보험사에 가족등록부 1부를 팩스로 보내고 나서야 2만원의 보험료 차액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 교보생명 등에 이어 하나HSBC생명도 뒤늦게 태아보험료 환급에 가세했다. 태아보험을 해지한 고객이라도 딸을 낳았다면 보험료 차액만큼 돌려받을 수 있다. 최근 금융소비자연맹이 부당한 태아보험 환급 시스템에 대해 성명을 발표하는 등 비난 여론이 잇따르자 이에 대한 후속 조치로 풀이된다. 감사원이 지난 7월 실시한 보험사 감독실태 검사에 따르면 보험사가 태아보험료를 돌려주지 않아 피해를 본 계약자는 약 17만 7000명이다. 금액으로 따지면 86억원에 이르렀다. 상품설명서에 남·여아 보험료 차이에 대해 설명한 생명보험사는 14개사로 전체 생보사의 21%에 불과했다. 손해보험사도 10개사(40%)만 명시했다. 이기욱 금소연 보험국장은 “그러니 소비자들이 환급 관련 내용을 알 수 있겠느냐.”면서 “보험사들이 (자사 태아보험 가입고객) 신생아의 성별을 확인해 보험료 차액을 적극 돌려주거나 고객들에게 사전 안내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이성원기자 lsw1469@seoul.co.kr
  • [부고] 1997년 월북 오익제 前천도교 교령 北서 사망

    [부고] 1997년 월북 오익제 前천도교 교령 北서 사망

    1997년 8월 월북한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이 1일 북한에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일 전했다. 83세. 1929년생인 오씨는 1989년부터 1994년까지 한국천도교의 24대 교령을 지냈으며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발기인에 이어 1997년 7월에는 민주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상임위원으로 위촉됐으나 한 달 후 돌연 월북했다. 오씨는 월북 후 북한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고문 등을 역임했으며 북한 최고인민회의 11기, 12기 대의원도 지냈다. 조선중앙통신은 오씨가 평안남도 회창군 대곡리에서 출생했으며 해방 후 고향에서 천도교 종리원 교화부장을 지냈다고 소개했다. 오씨는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평양에서 당시 김대중 대선 후보에게 “대선 필승을 바라며 대통령이 되면 금세기 내 통일이 될 것”이란 내용의 편지를 보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007 제임스본드, 국적은 도미니카공화국?

    007 제임스본드, 국적은 도미니카공화국?

    도미니카공화국의 재미있는 이름들이 에페통신 등 외신에 소개돼 화제다. 가장 눈길을 끄는 이름은 007시리즈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라는 이름. 도미니카에는 실제로 ‘제임스 본드 공공칠’이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이 살고 있다. 성까지 합치면 제임스 본드 공공칠 카리온 바르가스라는 긴 호칭을 갖고 있다. 007시리즈의 열렬 팬인 청년의 부친은 출생신고 때 거부를 당하지 않으려 아라비아 숫자(007) 대신 스페인어로 숫자를 표시해 이름을 올렸다. 외국계 유명인물의 이름을 딴 청년은 제임스 본드 공공칠뿐 아니다. 도미니카에는 존 에프 케네디, 윈스턴 처칠, 브루스 리도 현존한다. 성까지 함께 보면 등록된 실명은 ‘존 에프 케네디 사타나’, ‘윈스턴 처칠 데 라 크루스’, ‘브루스 리 안토니오 펠릭스’ 등이다. 장차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아예 직업을 이름으로 붙인 경우도 많다. ‘메디카’(스페인어로 여의사), ‘필로토’(항공기 조종사), ‘프로페소라’(여교수) 등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다. 특정 브랜드에 푹 빠진 사람은 브랜드명을 자식의 이름으로 등록하기도 한다. ‘마스다’, ‘도요타’ 등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다. 외신은 “도미니카공화국에는 작명에 대한 제한이 없어 재미있는 이름이 유난히 많은 편”이라고 보도했다. 사진=에페통신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현장에서 본 中기업가들 이야기

    ‘베이징 특파원 중국 CEO를 말하다’(김규환 외 지음, 서교출판사 펴냄)는 중국 최고권력층의 움직임, 정책상의 변화 같은 큰 얘기보다 현장에서 직접 뛰는 CEO들을 선보인다. 국내 언론사 전·현직 베이징 특파원 13명이 자신들이 만난 중국 CEO들에 대한 얘기를 풀어놨다. 책의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특파원들의 현장성.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혹은 서면으로 집중 인터뷰를 함으로써 각 CEO의 출생과 성장과정, 사업을 키우는 과정에서 겪었던 갖가지 에피소드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져 있다. 경제대국 중국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2011년 기준 중국 국내총생산(GDP)는 6조 9884억 달러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다. 외환보유액은 무려 3조 2400억 달러로 세계 1위다. 이런 덩치다 보니 기업들도 만만치 않다. 미국 경제주간지 ‘포천’이 발표한 2012 글로벌 500대기업 가운데 중국 기업은 무려 73개로 일본을 밀어내고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중국의 자본가들은 ‘홍색자본가’(紅色資本家)라 불린다. 이 말은 원래 1957년 상하이 대자본가 룽이런이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한 뒤 천이 부총리에게 받은 명예로운 호칭이었다. 이 호칭이 지금은 기업가를 뜻하는 일반적인 명칭으로 변했다. 열심히 기업 활동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 크게 봐서는 국가의 재산을 불리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초창기에는 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등에 업은 공산당 고위층이나 관료 출신들이 많았다. 공산당원이지만 국가 정책에 맞춰 사업에 뛰어든다는 의미에서 기업에 몸담는 것을 ‘샤하이’(下海)라 불렀다. 지금 중국 내에서 재산 1위를 두고 다투는 쭝칭허우 와하하그룹 회장, 리옌훙 바이두그룹 회장, 량원건 싼이그룹 회장이 바로 이런 유형이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사람은 량 회장. 편히 먹고 살 수 있는 국영기업을 박차고 나와 몇 번의 실패 끝에 오늘날의 성공을 이끌어낸 인물이다. 그 이후 시장경제적 요소가 재빨리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자수성가형 CEO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은 못생긴 얼굴에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환경에도 사업에 성공해 지금도 꼴찌들의 희망이라 불린다. 지독한 가난 때문에 어릴 적 국수 한 그릇 배불리 먹는 게 소원이었다는 옌빈 화빈그룹 회장도 흥미롭다. 또 주린야오 화바오그룹 회장, 천진샤 융진그룹 회장 등 중국의 대표적 여성 CEO 5명에 대한 얘기도 들어있다. 1만 85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해외 입양아 불행은 누구의 책임인가?

    17살에 미혼모가 된 엄마, 엄마는 생후 6개월인 ‘나’를 해외 입양아로 보내 버린다. ‘나’의 이름은 카밀라 포트만. 미국 중산층 백인 가정의 앤과 에릭 밑에서 자랐다. 생물학적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과 다른 꽃도 많은데 하필 동백꽃인 카밀라로 이름을 지었냐는 반발 등으로 약물에 중독돼 폭풍의 청소년기를 지낸 카밀라는 이제 25살이다. 우연히 알게 된 시인인 일본계 미국인 하세가와 유이치의 조언으로 그녀는 작가가 됐다. 카밀라는 어느 날 뉴욕의 한 출판사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는 논픽션을 써 보라는 제안을 받고 생모의 고향인 한국의 항구 도시 진남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진짜 집을 찾아, 진짜 엄마를 찾아, 출생의 진실을 찾아. 잘나가는 소설가 김연수(42)의 일곱 번째 장편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자음과모음 펴냄)은 해외 입양아 카밀라 또는 정희재가 자신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과연 진실은 치유의 힘이 있는지, 사람과 사람은 각자의 심연과 고독을 뛰어넘어 소통할 수 있는지, 우리는 타인의 불행에 얼마만큼 책임이 있는지를 작가는 섬세하고 묻고 있다. 독자들의 원초적 관심은 카밀라 또는 정희재의 엄마 정지은이 왜 17살에 미혼모가 됐을까, 왜 카밀라를 입양 보냈을까, 생부는 대체 누구일까에 집중될 수도 있다. 곧 답을 얻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정지은이 카밀라를 낳은 1988년 6월의 이듬해 바다에서 자살하면서 불가능하게 된다. 이제 진실 찾기는 오래돼 누렇고 먼지가 쌓인 서류와 사람들의 불투명한 기억, 무의식적인 감각에 의존해야 한다. 카밀라가 17살 엄마가 쓴 문집을 통해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희재라고 이름을 짓겠다.’고 한 사실을 그나마 알게 된 것이 다행이다. 이제 카밀라는 마구잡이로 카밀라가 된 것도 아니고 엄마가 희재를 포대기에 안고 동백꽃이 흐드러진 교정에서 찍은 사진에서 시작됐다는 것도 알게 된다. 진실 탐구는 또한 적의를 동반한다. 엄마의 모교인 진남여고에서 만난 신혜숙 교장은 노골적으로 은폐를 시도하며 “내가 카밀라양이라면 이 따위 진실일랑 알려고 하지도 않을 거예요.”라고 훈수한다. ‘파도가’를 통해 만나는 인물을 조각조각 모으면 ‘우리’가 될지도 모른다.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친구의 사생활을 음해하는 여고생이나 음해를 사실로 착각하고 대자보를 붙여 친구를 사지로 몰아넣는 학생회장, 남편을 의심해 제자가 낳은 딸을 불법 서류를 꾸며 강제로 해외에 입양 보내는 여선생, 스승이 질투에 눈이 멀어 제자의 임신을 근친상간으로 몰아간 줄도 모르는 무지한 마을 사람들, ‘늘’을 ‘널’로 발음하는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오해가 생겨 애인과 헤어지게 된 입대를 눈앞에 둔 남자, 1970, 80년대 열악한 노동 환경에 저항하는 노동자들. 1988년생 정희재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에는 이처럼 괴물 같은 심연이 곳곳에 입을 쩍 벌리고 있는가 하면 잊어버렸거나 잊어버리고 싶은 30, 40년 전을 비통하게 돌아보도록 촉구한다. 누군가의 불행에 ‘우리’는 책임이 없는 거냐고. 소통은 멀고 심연은 깊다. 소설의 지리적 배경인 진남이란 항구 도시는 지리부도에 나오지 않는 도시다. 다만 충무김밥이 거론되는 탓에 경남 통영이겠구나 하고 짐작할 뿐이다. 마흔을 넘긴 남자 소설가가 17살의 정지은으로, 25살의 카밀라로, 42살의 잡지사 편집장 윤경과 영화감독 유정 등 다양한 연령대의 여자들로 변해 조잘거리는 것은 조금 낯설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경술국치 102년… 되새겨본 비극의 현장

    경술국치 102년… 되새겨본 비극의 현장

    “우리가 기억하기도 싫은 경술국치를 되새기는 이유는 다시는 비극적인 역사가 재연되지 않도록 마음을 다지기 위해서입니다.” 광복회관 2층 대회의실에서 만난 박유철 광복회장의 말이다. 31일 케이블채널 서울신문STV로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은 지난 29일 경술국치 102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펼치고 있는 현장을 찾았다. 가장 먼저 들른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애플리케이션’을 공개하는 행사가 열렸다. 애플리케이션에는 친일인명사전 3권에 담긴 4389명의 친일자 명단과 관련 자료가 수록됐다.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인명 외에도 분야별·지역별·출생연대별 등 다양한 방법으로 검색이 가능하다.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 이용자면 만원에 누구나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추후 애플용 앱도 개발할 예정이다. 서울 종로구 경운동에서는 일본을 규탄하는 종교단체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참가자들은 일본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고, 최근 독도관련 망언 등을 성토했다. 이번 행사는 북한에서도 동시에 이뤄져 눈길을 끌었다. 이범창 천도교 종무원장은 “북측에서 경술국치 102주년을 맞이해 남·북 천도교인들이 공동으로 일본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자는 제안을 해 왔다.”고 행사가 동시에 열린 배경을 밝혔다. 이날 정오 광복회관에는 박유철 광복회 회장을 비롯한 회원 5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국치일을 잊지 말자’는 다짐 아래 조기를 게양하고, 검은 넥타이를 맺다. 박유철 광복회장은 “당시 젊은 우리 선열들이 만주·상해로 가서 울부짖으며 나라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매년 해오던 이 행사를 금년에는 한결같이 그날을 기억하자는 뜻에서 전국적으로 확대했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광복회 전국 12개 시도지부와 89개 지회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행사를 마치고 회원들은 찬 죽을 나눠 먹음으로써 배고팠던 당시 상황을 되새겼다. 이 밖에 ‘TV 쏙 서울신문’에서는 여의도 일대에서 촬영한 일본 장편 극영화 ‘외사경찰’과 서울 지하철을 배경으로 촬영한 할리우드 액션 영화 ‘본 레거시’ 등 해외 영화나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서울의 모습을 모았다. 또한 색과 점을 통해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아름다운 자연을 형상화한 조택호 화백의 전시회를 카메라에 담았다. 지자체장 릴레이 인터뷰에서는 조길형 서울 영등포구청장을 만났다. 또 SNS에 나타난 목소리를 통해 일주일 동안 뉴스의 흐름을 짚어 보는 ‘톡톡!! SNS’는 태풍과 박근혜 후보의 대선행보 등에 대해 SNS에 나타난 반응을 전한다. 성민수PD globalsms@seoul.co.kr
  • ‘34.3%’ 2035년 3집 중 1집은 ‘나홀로가구’

    ‘34.3%’ 2035년 3집 중 1집은 ‘나홀로가구’

    앞으로 20여년 뒤에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는 집을 찾아보기 힘들 전망이다. 가족 해체가 가속화되면서 ‘나홀로 가구’의 비중이 전체 가구의 3분의1을 넘어설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전남 등 농업 비중이 높은 지역에서는 독거 노인 비중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통계청이 28일 내놓은 ‘장래가구추계 시도편: 2010~2035’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우리나라 가구 형태는 2인 가구(24.2%)가 가장 많고 그 뒤를 1인 가구(23.9%), 4인 가구(22.5%), 3인 가구(21.3%)가 뒤따랐다. 하지만 2035년에는 1인 가구(34.3%)가 1위로 올라설 것으로 예측됐다. 그 뒤는 2인 가구(34%), 3인 가구(19.4%), 4인 가구(9.8%) 순서였다. 2035년 1인 가구의 비중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 곳은 전남, 경남, 충북 등 10개 지역이었다. 2인 가구의 비중은 제주, 대구, 서울 등 6개 지역에서 높을 것으로 나타났다. 가구주가 65세 이상인 고령가구 비중은 전남(51.9%), 경북(47.3%), 전북(47.0%) 등에서 크게 치솟을 것으로 통계청은 내다봤다. 고령가구 가운데 1인 가구 비중이 가장 높을 것으로 추계된 지역도 전남(51.2%)이었다. 1인 가구 증가의 원인으로는 사별(35.4%), 미혼(33.8%), 이혼(17%) 등이 꼽혔다. 2010년에는 미혼(44.9%) 비중이 가장 높았다. 인구 규모는 점점 줄어드는데 출생아도 적어 독거 노인이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서운주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제주와 서울 등은 젊은 부부들이 많이 살고 있어 앞으로 2인 가구의 형태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전남 지역의 고령화는 심각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대전 동춘당로·동춘당 생애길

    [길을 품은 우리 동네] 대전 동춘당로·동춘당 생애길

    대전 대덕의 원래 이름은 ‘덕을 품은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회덕(懷德)이다. 삼국시대에 우슬군으로 불리다 고려 태조때부터 회덕으로 불린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대동여지도에도 대전 일대가 회덕으로 표기돼 있다. 현재의 대덕은 일제강점기에 대전의 앞글자와 회덕의 뒷글자를 따 붙인 지명이다. 대덕은 동춘당 송준길(1606~1672)과 우암 송시열, 청백리로 유명한 설봉 강백년 등 선현들이 우정과 학문을 닦던 곳이다. 대덕을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은 동춘당이다. 회덕은 대덕의 뿌리이고 회덕의 뿌리는 선비정신, 선비정신의 뿌리는 우암과 동춘당에서 시작된다고 회자된다. 동춘당의 상징성은 도로명에도 반영됐다. 법동과 송촌동을 잇는 ‘동춘당로’가 생겼고 지자체가 동춘당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스토리가 있는 녹색길인 ‘동춘당 생애길’을 지난 5월 23일 조성했다. 두 길은 ‘동춘당’에서 교차한다. ●대덕의 중심길 ‘동춘당로’ 법2동 주민센터에서 송촌고등학교를 잇는 동춘당로(1.7㎞)는 지역 상권의 중심지다. 상권면적은 넓지 않지만 점포가 많이 밀집돼 있다. 동춘당로 입구인 법2동 주민센터(동춘당로 187)와 보람아파트 입구에는 예사롭지 않은 돌장승이 마주보고 서있다. 대전의 민속문화재 1호로 대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돌장승으로 꼽힌다. 거친 자연석에 눈·코·입 등을 다듬어 표현한 남·여 한 쌍으로 높이는 각각 153㎝, 126㎝다. 남장승은 강인하고, 무뚝뚝한 표정이지만 푸근함이 느껴진다. 여장승은 둥글고 넓적한 것이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의 모습니다. 나무장승이었으나 300여년 전 마을의 부자가 사재를 털어 다시 돌로 세웠다고 전한다. 음력 정월 14일에는 마을의 액운을 막고 주민의 건강을 기원하는 거리제를 지낸다. 동춘당 옆 동남쪽에 있는 소대헌(동춘당로 70)은 동춘의 둘째 손자 송병하가 분가해 살던 가옥이다. 큰 사랑채인 소대헌은 증손인 송요화가 지어, 자신의 호로 삼기도 했다. 송요화는 조선후기 회덕의 여류시인 호연재 김씨의 남편이며 김씨는 소대헌 안채(호연당)에 살면서 194편의 시를 남겼다. 대덕이 대전 역사문화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주는 무형문화재 전수관(동춘당로 78)도 위치해 있다. 2009년 39억원을 들여 조성한 전수관은 대전의 무형문화재 17개의 체계적인 전승활동을 목적으로 공연장(200석)과 연습실(2곳), 전시실 등을 갖추고 있다. 기·예능보유자와 전수생들의 교육의 장이 마련됐다는 의미와 함께 각종 공연 및 전시에 필요한 장소 섭외 불편을 해소할 수 있게 됐다. 동춘당로에는 해마다 광복절이면 화제가 되는 아파트가 있다. 동춘당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선비마을이다. 은진 송씨 집성촌이던 송촌동과 선비정신의 상징인 동춘당과 어우러져 널리 알려졌다. 지난 15일에도 100가구가 넘는 아파트 한 동 전체가 태극기를 내걸어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선비마을(1554가구) 주민들은 광복절에 한 집도 빠짐없이 태극기를 단다는 계획을 세워 자체적으로 참여 운동을 벌이고 있다. ●큰 선비의 장구지지 동춘당 생애길 동춘당 생애길은 동춘당의 출생과 학업, 향촌활동 등 전 생애를 길과 연계해 스토리로 표현했다. 하나로병원~봉황마당의 전체 구간은 5㎞에 달하나 동춘당~옥류각 구간이 ‘진미’다. 길에서 처음 만나는 유적은 삼강려(三綱閭)다. 송촌리 마을에 삼강을 지킨 사람이 많음을 알려주는 기념석으로 충신 이시직과 열부 고흥 유씨, 3대가 효자로 유명한 송병창을 기리고 있다. 죽창 이시직과 유씨 정려각이 있는데 유씨 정려비의 비문은 동춘당, 글씨는 우암이 썼다. 동춘당을 거쳐 옥류각으로 가는 길은 동춘당이 ‘짚신을 신고 지팡이를 끌며 산에 오른 길(杖?之地)’이다. 곳곳에 선생의 시를 담은 조형물이 전시돼 있는데 일부 구간의 작품에 붉은색 스프레이가 뿌려져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대덕구가 동춘당을 상징화하는 것에 대해 다른 문중이 반발하면서 이뤄진 행태로 선비의 고장 대덕을 명소화하겠다는 계획에도 좋지 않은 결과가 되고 있다. 생애길이 갈라지는 곳에 있는 비래암은 동춘이 학문을 닦기 위해 세운 것으로 현재는 사찰이 들어섰다. 비래암 현판은 우암이 썼다고 알려져 있다. 절 입구에는 석주를 세워 건립한 옥류각이 있다. 제월당 송규렴이 동춘을 기념해 1693년 지은 누각으로 누각 아래로 물이 흐르고 있다. 옥류각이란 이름은 동춘이 읊은 시 가운데 “층층 바위에 날리는 옥 같은 물방울(玉溜)”에서 따왔다고 한다. 현판은 ‘팔분체’로 곡운 김수증이 썼다. 옥류각 안에는 ‘來遊諸秀才愼勿壁書以?新齋’(내유제수재신물벽서이오신재)라는 편각이 붙어 있다. 동춘당이 비래암을 짓고 벽에 써 붙인 글이라는데 “놀러오는 아이들아, 삼가서 벽에 글을 써서 새 집을 더럽히지 말라.”는 뜻이다. 옥류각 앞 바위에는 ‘초연물외’(超然物外)라는 글씨가 쓰여져 있다. 동춘당의 글씨로 획이 정확하고 활달하다. 세속의 바깥에 있고 인위적인 것에 벗어나 있다는 뜻으로 선비의 초연함을 느끼게 한다. 향토사학자 김정곤씨는 “동춘당 생애길에 역사와 문화유적이 집중돼 있다.”면서 “회덕은 예부터 ‘대를 이어 영원히 살만한 곳’으로 다양한 문중 문화와 선비들의 정신을 배울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대전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17회는 충북 단양군 삼봉로를 소개합니다.
  • 혼외 출생 年1만명 시대

    법적 혼인 관계가 아닌 남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9년째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혼외(婚外)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는 9959명으로 해당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1981년 이래 가장 많았다. 혼외 출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 불법 낙태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분위기 등의 여파로 풀이된다. 26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혼외 출산율은 2.11%로 전년(2.05%)보다 0.6% 포인트 증가했다. 혼외 출산율이 2.11%라는 것은 출생아 100명 가운데 2.11명이 혼외 출산이라는 의미다. 혼외 출생아 수는 2003년부터 해마다 늘어나고 있어 이대로라면 올해 1만명을 넘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일각에서는 유럽에서 보편화된 ‘동거 출산’ 등 전통적인 결혼관의 변화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혼외 출생아 증가 흐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도 뚜렷하다. OECD 가족통계 데이터베이스를 보면 OECD 회원국 평균 혼외 출산율은 1980년 11% 수준에서 2009년 36.3%로 높아졌다. 2009년 기준으로 아이슬란드(64.1%), 멕시코(55.1%), 스웨덴(54.7%), 프랑스(52.6%)처럼 출생아의 절반 이상이 혼외 출산인 나라도 많았다. 우리나라(2009년 기준 1.95%)는 OECD 회원국에 비하면 아직 낮은 수준이다.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美엔 자존심·인류엔 신기원 찾아준 영웅 ‘고요의 바다’로

    美엔 자존심·인류엔 신기원 찾아준 영웅 ‘고요의 바다’로

    “한 인간에게는 작은 걸음일지 모르지만 인류 전체에는 위대한 도약이다.” 1969년 7월 20일. 당시 전세계 인구의 5분의1에 해당하는 6억명은 인류 최초로 우주 왕복선인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 표면을 밟은 한 남자의 소감을 들은 뒤 환호했다. 세계 역사상 오래 기억될 이 결정적 순간의 주인공이자 미국인들의 ‘우주 영웅’인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25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82세. 암스트롱은 관상동맥 협착 증세로 이달 초 심장 수술을 받았으나 수술 뒤 발생한 합병증 때문에 사망했다고 그의 가족들이 성명을 통해 발표했다. 가족들은 “그를 잃은 것은 애석하지만 그의 삶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세계 젊은이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1930년 오하이오주의 와파코네타에서 출생한 암스트롱은 어린 시절부터 하늘을 나는 것에 관심이 많아 16살에 운전면허증을 따기도 전에 비행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항공 우주의 매력에 빠진 암스트롱은 1947년 퍼듀대학에 입학해 항공공학을 전공했다. 1949년 대학 재학 중 해군에 입대해 한국 전쟁에 참전했고 78차례의 전투 비행 임무를 완수한 뒤 1952년 제대했다. 한국 전쟁 당시 서울 수복에 큰 공을 세워 3개의 훈장을 받기도 했다. ●16살때 차보다 비행자격증 먼저 따 전쟁에서 돌아온 그는 다시 대학에 돌아가 1955년 졸업한 뒤 1958년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시험 비행조종사로 일을 시작했다. 1962년 9월 NASA의 제2기 우주비행사로 선발돼 1966년 ‘제미니 8호’의 지휘 조종사로서 아제나 위성과 최초의 도킹에 성공했다. 3년 뒤 1969년 7월 16일 에드윈 버즈 올드린, 마이클 콜린스와 함께 아폴로 11호에 탑승해 달을 향해 출발한 암스트롱은 7월 20일 오후 10시 56분(한국시간 7월 21일 오전 11시 56분)에 ‘고요의 바다’라고 불리는 달 표면에 무사히 착륙했다. 그의 달 착륙 성공은 1957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면서 우주 개척 분야에서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던 옛 소련으로부터 미국이 자존심을 되찾아오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주 탐험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평소 ‘영웅으로 불리기를 꺼리는 영웅’으로 칭송받을 정도로 겸손했던 암스트롱은 달 착륙 임무를 완수하고 난 4개월 뒤 두 동료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으며, 1971년 NASA에서 은퇴해 1979년까지 신시내티대학에서 우주 공학을 가르쳤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암스트롱은 그가 살았던 시대뿐 아니라 전 세대에 걸쳐 미국의 위대한 영웅”이라며 “그가 처음 달에 발을 내디뎠을 때 인류에게 절대 잊혀지지 않을 성취의 한 순간을 전했다.”고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밋 롬니 공화당 대선 후보 역시 성명을 통해 “달은 첫 번째로 자신을 방문한 지구의 아들을 그리워할 것”이라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동료 올드린 “달 볼때마다 떠올릴 것” 암스트롱과 함께 아폴로 11호에 탑승했던 버즈 올드린은 “달을 볼 때마다 40여년 전 달을 밟았던 그 순간을 떠올리게 될 것”이라며 “2019년 달 착륙 50주년을 기념해 세 명이 함께 만나기로 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조희선기자 hsncho@seoul.co.kr
  • [사설] 혼외출생 1만명 시대, 국가·사회가 할 일

    혼외(婚外) 관계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올해 1만명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혼외 출생아가 9959명이었고, 최근 9년간 해마다 증가 추세로 미루어 올해는 1만명을 넘을 것이란 예상이다. 혼외 출생아의 증가는 전통 결혼관의 변화에 따라 미혼모 및 동거출산이 늘어난 게 주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 혼외 출생아를 흔쾌히 받아들일 만한 인식이 부족하고 그럴 분위기도 아닌 것 같다. 혼외 부모와 그 자녀들에 대한 법적·제도적 보호와 지원책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게 현실이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혼외 출생이 이미 보편화됐다. 2009년 기준으로 프랑스·스웨덴·멕시코·아이슬란드에서는 아이의 절반 이상이 혼외 관계에서 태어났다. 네덜란드·영국은 혼외 출생이 40%대, 미국·스페인·독일은 30%대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를 봐도 평균 혼외 출산율은 1980년 11%에서 2009년에는 36%로 2배 이상 늘었다. 우리도 신생아 100명 가운데 2.1명이 혼외 출생이라면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보육·교육은 물론이고 다양한 가족형태의 출현에 걸맞은 법적·제도적 틀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 혼외 출생이 법적이고 전통적인 가족형태를 벗어났다고 해서 지금처럼 외면하거나 임기응변 식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 혼외 출생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워 내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육성하려면 국가와 사회의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 혼외 출산율이 높은 나라의 사례는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우리도 이젠 혼외 출생 자녀들에 대한 국가의 책무부터 실천에 옮겨야 한다. 정부는 혼외 출생으로 인해 사회활동 자체를 제약받는 모든 법령과 제도의 정비에 적극 나서야 한다. 지원에서 소외되거나 형평을 잃은 분야가 없는지도 살펴야 할 것이다. 국민 정서와 인식의 변화는 국가의 책무를 다한 다음의 문제다.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제이니 존스’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제이니 존스’

    미국에서 뮤지션으로 생존하려면 투어버스에 익숙해져야 한다. 무대를 내려온 그들은 도로 위를 달리는 버스에서 나머지 삶을 산다. 그 안에서 쉬고 잠자고 이동한 다음, 다른 도시의 다른 무대에 선다. 그런 사람들의 남다른 생활을 담은 노래 중에 그룹 저니의 ‘페이스풀리’가 있다. 저니의 건반주자 조너선 케인이 아내에게 바친 이 노래는 끝없는 순회공연 탓에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지내야만 하는 뮤지션의 애환을 그렸다. 그나마 인기 있는 뮤지션은 낫다. 비록 힘들더라도 어디를 가나 환영받고 감정을 노래에 담아 마음을 달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명가수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그들에게 순회공연은 곧 피곤한 삶을 상징한다. 무대에서 노래하는 게 언젠가부터 노동이 되고, 매너 없는 관객은 팬이 아니라 밉상으로 보이며, 결국 밴드의 관계는 무너지게 된다. 영화는 그런 지경에 처한 뮤지션에 더 많은 관심을 둔다. 제프 브리지스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크레이지 하트’, 전설적인 가수이자 배우인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의 ‘블러드워스’가 그런 작품들이다. ‘제이니 존스’의 에단도 비슷한 전철을 밟는 뮤지션 중 한 명이다. 에단이 리더인 밴드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그가 언제나 술에 취해 무대에 서는 탓에 다른 멤버들은 이제 그를 신뢰하지 않는다. 어느 날, 무대에 오르려 대기 중인 그에게 한 여자가 찾아와 “당신에게 딸이 있다.”고 말하고서 사라진다. 그녀가 남겨두고 떠난 13살 소녀의 손에는 ‘출생증명서’가 쥐어져 있었다. 소녀는 이름이 제이니 존스라고 했다. 에단은 어쩔 수 없이 소녀를 받아들인다. 이어지는 공연 도중 에단이 무대 위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사고가 벌어지고, 급기야 밴드는 해체되고 만다. ‘제이니 존스’는 서먹한 관계를 좁히기도 전에 현실적인 난관에 직면한 아빠와 딸의 이야기다. ‘제이니 존스’는 음악영화로서 좋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거대하고 화려한 무대는 없으나 소규모 무대에서 벌어지는 공연이 오히려 실감나는 분위기를 전한다. 에단이 부르는 노래는 주로 이프 바젤리가 작곡한 것들인데, 밴드와 함께 부르는 전반부는 록 위주이며, 후반부에는 애잔한 포크록을 들려준다. 아빠의 재능을 물려받은 제이니는 싱어송라이터 젬마 헤이스가 만든 감성 넘치는 포크송을 부른다. 엄청난 깊이는 없어도 소박한 멜로디들이 귀에 쏙 들어온다는 장점을 지녔다. 더욱이 두 인물을 연기한 알레산드로 나볼라와 애비게일 브레슬린이 직접 노래에 참여해 친밀한 감동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데이비드 린치의 제작사가 참여한 영화치고는 드라마가 평범하다. 부녀의 상봉을 모티브로 한 음악영화가 유별나게 전개되는 게 무리일지도 모른다. 감독 데이비드 M 로젠탈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제이니 존스’의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제이니가 허구의 인물임에도 우리는 현실 세계에 너무나 많은 제이니‘들’이 있음을 안다. 무책임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 ‘제이니 존스’를 보면 그런 아이들을 염려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생긴다. 아이들의 수호천사란 것도 결국 그런 마음들이 모이고 모여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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