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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일 TV 하이라이트]

    ■시사기획 창(KBS1 밤 10시) 지난해 8월부터 개정된 입양특례법이 시행됐다. 입양 보내길 원하는 친부모는 반드시 출생신고를 해야 하고, 입양하고자 하는 양부모도 이전보다 자격 요건이 까다로워졌다. 한편 입양법이 지나치게 까다로워진 탓에 친부모와 양부모 모두 입양을 기피하는 것은 물론 미혼모들은 ‘아동 유기’라는 극단의 선택을 하게 된다. ■해외 특별 기획 드라마 초한지(KBS2 밤 12시 40분) 신희는 장한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쓰러지고, 그녀를 어릴 때부터 진료했던 어의 장림이 찾아온다. 신희는 그에게 장한의 위태로움을 전하고 자신과 장한이 살길은 조고를 타도하는 것이라 말한다. 한편 유방은 옹치를 치기 위해 항우에게 병마 5000을 빌려 패현으로 향한다. ■러브 인 아시아(KBS1 밤 7시 30분) 필리핀에서 온 결혼 11년차 주부 이은희씨. 한 종교단체의 소개로 남편 윤동원씨를 만난 은희씨는 2009년 한국 국적을 취득한 후 본명인 카테린 반딘에서 이은희로 이름을 바꿨다. 또한 영어 방문 교사로 5년째 활동하고 있다. 게다가 2006년부터는 외국인 며느리 배구단에서 주장으로도 활약하고 있는데…. ■현장 21(SBS 밤 8시 55분) 베스트셀러는 가장 잘 팔리는 책이다. 그만큼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스트셀러에 진입한 책이 독자의 사랑이 아닌 출판사의 사재기 힘 때문이라면 당신은 그 책을 선택할 것인가. 취재진은 지난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던 책들에 대한 대형 온라인 서점들의 구매 목록을 확보해 분석한다. ■엄마 없이 살아보기(EBS 밤 8시 20분) 여덟 살 동갑내기 진규와 지후, 그리고 일곱 살 개구쟁이 이안이와 태훈이까지. 네 명의 엄살쟁이와 사진작가 선생님이 함께 떠난 곳은 지리산 둘레길. 푸른 숲길과 정겨운 시골길을 걸으며 아이들은 소박한 둘레길의 매력을 발견해 나간다. 그런데 다리가 아파 오면서 아이들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오간다. ■멜로다큐 가족(OBS 밤 11시 5분) 전남 곡성 기차마을 전통시장에 몸뻬 아저씨가 떴다. 몸뻬 바지에 밀짚모자, 한복 저고리까지 갖춰 입고 춤을 추는 조상열씨를 보고 사람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딱 한 사람, 이런 상열씨를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이가 있다. 바로 결혼한 지 35년 된 그의 아내 박미임씨다.
  • ‘페이스북 친구 5000명’ 105세 최고령 사용자 숨져

    ‘페이스북 친구 5000명’ 105세 최고령 사용자 숨져

    말년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페이스북에 푹 빠져 지내던 할아버지가 신기록을 세우며 세상을 하직했다. 그리스의 노인 리오니다스 파누트소풀로스가 페이스북 사용자 중 최고령자로 최근 사망했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105살을 일기로 숨을 거둔 할아버지는 딸 2명과 손자손녀 4명, 증손자 9명을 유족으로 남겼다. 증손자 중 최연장자는 올해 30살 청년이다. 할아버지는 페이스북에서도 대가족(?)을 일궜다. 처음엔 페이스북에 가입한 뒤 딸과 손자손녀들만 달랑 친구로 등록, 조촐하게(?) 페이지를 꾸리기 시작한 할아버지지만 숨지기 직전 페이스북 친구는 5000여 명에 달했다. 외신은 “할아버지가 페이스북에 직접 글과 사진을 올리는 등 노익장을 과시했다.”고 전했다. 워낙 고령이다 보니 페이스북에 가입하면서도 할아버지는 남다른 애로를 겪었다. 생년월일을 기재해야 하는데 출생연도를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출생연도를 선택할 때 펼쳐진 메뉴를 따라 아무리 밑으로 커서를 이동해도 할아버지가 태어난 연도는 나타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1908년 태생이었다. 사진=페이스북 자료사진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베이비 붐 1957~ 60년생 ‘문턱 제외’… 정년연장 형평성 논란

    베이비 붐 1957~ 60년생 ‘문턱 제외’… 정년연장 형평성 논란

    정년이 만 55세인 회사에 다니는 최모(53)씨는 정년 60세 연장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분통을 참지 못했다. 300명 이상인 직장의 정년연장 시행 시점이 2016년 1월 1일로 정해졌다는 데 억울해했다. 1960년 11월 1일 출생인 최씨의 정년퇴직일이 회사 규정상 2015년 12월 31일인 까닭이다. 단 한 달 차이로 정년 5년 연장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최씨는 “제도 시행으로 1960년생은 2015년까지, 1961년생은 2021년까지 일하게 되는 것은 차별”이라고 말했다. 정년 60세 연장법이 지난달 30일 국회를 통과했지만, 최씨처럼 억울하게 정년 연장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허다해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1957~1960년 출생자들의 좌절감이 크다. 정년 연장안 시행 직전 해인 2015년에 현재 각 회사의 일반적인 정년인 55~58세를 맞기 때문이다.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혜택의 사각지대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날 국회를 통과한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 촉진법’은 사업장 규모에 따라 근로자 300인 이상이면 2016년 1월 1일, 300인 미만이면 2017년 1월 1일부터 정년 60세 연장법을 적용토록 했다. 같은 나이인데도, 사업장 규모에 따라 누구는 혜택을 받고 누구는 받지 못할 수 있어 이에 따른 차별 논란도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또 있다.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면 각 사업장의 현행 정년(55~58세)에 따라 2016년 이후 2~5년간 퇴직자 수는 ‘제로’가 된다. 예를 들어 55세가 정년인 회사라면 2015년 정년 퇴직 이후 2021년이 돼야 첫 퇴직자가 나온다. 자연히 사측의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임금피크제를 적용한다 하더라도 인건비 부담이 만만찮다. 금융권의 한 인사담당 관계자는 1일 “5년간 퇴직자가 없다면 회사는 그 기간 동안 신규 채용을 할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퇴직이 임박한 직원 1명당 임금은 신입사원 2명 이상의 몫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정년 연장법을 발의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새누리당 간사인 김성태 의원은 이 같은 사각지대의 사례와 관련해 “현재 통과된 법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도입 시점과 관련해 사업장에 따라 한 번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또 다른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김 의원은 “각 사업장에서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대안을 고용노동부와 상의해 강구할 것”이라며 개선의 여지를 남겼다. 고용부도 정년 연장 혜택의 형평성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특히 정년 연장 혜택이 더 많은 근로자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방안 마련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부 관계자는 “제도 시행 직전에 정년을 맞이해 퇴직하는 근로자들의 불만과 사측이 꼼수를 써서 미리 퇴직시키는 상황이 발생할 것에 대비해 지원 대상을 보다 완화하는 것을 실무차원에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특히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의를 법 조항에 명시하지 않아 해석을 두고 논란이 일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대안을 찾고 있다. ‘혜택 사각지대’의 대안은 큰 틀에서 두 가지로 정리된다. 임금피크제를 통한 시행시기 조정과 노사협의를 통한 혜택 범위 확대 등이 유력하다. 고용부는 오는 6월까지 개선 방안에 대해 관련 부처의 논의를 거친 뒤 연내에 시행령을 만들어 이르면 내년부터 확대 시행하는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금피크제 조정안’은 최씨의 경우처럼 간발의 차이로 수혜 대상에서 제외될 때 정년 연장 혜택을 주는 대신 급여 삭감 비율을 높이는 방안이다. 여기에는 정부의 지원금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고령 근로자의 확대에 따른 사측의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한 차원이다. 물론 예산이 투입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검토해야 할 사항이 많다. ‘노사협의안’은 사업장 여건에 따른 노사 간 합의를 존중해 정년 연장 시점을 정하는 데에서 유연성을 발휘하는 안이다. 다만 혜택 범위 설정을 놓고 노사 간 진통이 뒤따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시행 시점에 따른 차별을 유발하는 정년연장법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문제 제기와 관련해 법조계에서는 ‘법적안정성’을 이유로 평등권과 행복추구권 침해의 소지는 낮다고 보고 있다. 법무법인 광장의 홍승진 변호사는 “개인적으로는 억울할 수 있겠지만 명시된 법으로 인해 드러난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권영국 변호사도 “현재 제도가 시행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위헌 제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입학이 취업, 학비는 무료…경찰대·사관학교 잡아라

    입학이 취업, 학비는 무료…경찰대·사관학교 잡아라

    청년 취업난이 계속되면서 졸업 후 진로가 보장되는 경찰대와 육·해·공군 사관학교의 인기가 갈수록 치솟고 있다. 장래가 어느 정도 보장될 뿐 아니라 학비가 4년 전액 무료라는 장점 때문에 해마다 높은 경쟁률을 보이며 상위권 수험생들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경찰대 입시 경쟁률은 2010학년도 56.8대1(여성 111.0대1), 2011학년도 63.2대1(125.9대1), 2012학년도 63.5대1(122.6대1), 2013학년도 63.7대1(142.2대1)로 해마다 상승세를 이어왔다. 경쟁률이 높기는 사관학교도 마찬가지다. 2013학년도의 경우 육군사관학교 22.1대1, 해군사관학교 27.2대1, 공군사관학교 25.7대1, 국군간호사관학교 38.3대1 등 서울 소재 중상위권 대학의 수시모집 경쟁률에 비해 높거나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경찰대 및 사관학교 지원이 유리한 것은 4년제 일반 대학과 달리 수시 및 정시 모집에서 복수지원 제한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시에 합격하더라도 진학 여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입학원서 접수 역시 일반대 수시모집 원서접수 시작일인 9월 4일보다 2~3개월 앞서 진행되기 때문에 준비하는 데 큰 부담이 없다. 2014학년도 경찰대의 입학원서 접수 기간은 6월 24일~7월 3일, 사관학교는 6월 24일~7월 7일이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섣불리 지원하는 데는 부담도 따른다. 수능시험과 출제 유형이 비슷한 학과 시험을 치르기 때문이다. 8월 3일에 실시되는 경찰대 1차 학과시험은 국어, 수학, 영어 3개 영역으로 고교 교과과정에 기초해 출제되며 총점 순으로 모집 인원의 3배수를 선발한다. 2차에서는 면접시험과 체력검사, 적성검사, 신체검사를 치른다. 최종적으로 1차 성적(200점)과 2차 성적(150점), 수능성적(500점), 학생부(150점)를 합산해 선발한다. 그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수능은 국어, 수학, 영어, 탐구 4개 영역을 A형은 120점, B형은 150점을 반영해 총 500점 만점으로 계산한다. 사관학교는 1차 시험에서 수능 형식으로 A형과 B형으로 나눠 출제한다. 문과는 국어 B형, 수학 A형, 영어 B형을 보고 이과는 국어 A형, 수학 B형, 영어 B형을 반영한다. 출제범위는 수능 범위와 동일하다. 육사는 1차 시험 점수를 최종 점수에 포함해 선발하는 반면 해사·공사는 상위권 성적의 수험생부터 등급별로 가산점을 최대 20점까지 반영한다. 경찰대와 사관학교는 지원자의 나이를 제한한다. 지원자격도 까다로운 편이다. 사관학교의 올해 지원자격은 ‘1993년 3월 2일(국군간호사관학교는 1992년 3월 2일)부터 1997년 3월 1일 사이에 출생한 대한민국 국적을 미혼 남녀로서 군인사법에 의한 결격 사유가 없을 것’이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한국 신무용의 큰 어른 김백봉(상)

    [명사가 걸어온 길] 한국 신무용의 큰 어른 김백봉(상)

    그의 춤을 일컬어 “몸으로 만든 최고의 문명”이라고들 한다. 서 있기만 해도 무장(舞裝)한 위엄으로 무대가 꽉 찬다. 낮게 달린 풍경을 건드리는 사소한 손짓조차 춤이 된다. ‘한국 신무용의 대모’로 불리는 김백봉(86) 선생은 인생의 발자국 하나하나에 한국춤을 꾹꾹 새겨놓고 꽃을 피워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 운동회에서 추었을 법한 부채춤부터 화려무쌍한 화관무까지, 그가 만든 한국춤은 600개가 훨씬 넘는다. 한국무용계에 난다 긴다 하는 무용인들을 길러낸 대가 중의 대가로 추앙받는다. 하얀 피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작은 풍경을 건드리면서 “아이고, 소리가 참 좋다”고 하는 모습은 곱디고운 ‘뽕할머니’다.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1911~1969)의 수제자로, 한국 신무용 80년사의 산증인으로 살아온 김백봉 선생의 삶과 예술세계를 상하로 나눠 들어본다. “어느 날 아버지가 사진 한 장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이 사람이 훌륭한 무용가이고 한국의 보배다’라고 하셨죠. 곱게 한복을 차려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인데, 참 아름다웠어요.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여섯 살 때였다. 춤을 본 적도 없고, 최승희가 누군지도 모르던 꼬마 충실은 잠결에 본 사진 하나로 한평생 한 길을 걷게 됐다. 얼마나 강렬했으면 옹근 80년 전에 본 그 사진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평양 시내에 자동차라고는 도지사 전용차와 기업에서 운영하는 승용차, 두 대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운전을 할 줄 아는 것은 매우 귀한 능력이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기업에서 외국 관계자들이 타는 차를 운전하면서 큰 세상을 볼 기회가 많았다. 그 기회는 충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고, 충실을 춤의 길로 이끌었다. 사진을 접한 지 7년쯤 흘렀을까. 평남 진남포에서 ‘세계적 무희 최승희 귀국 서양무용공연’이 열렸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어린 충실을 데리고 트럭을 몰아 공연장에 갔다. 김 선생은 그 공연을 당시에는 매일신보였던 서울신문사가 주최한 공연이었다고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감히 만날 수 없는 존재였어요. 아버지께서 부탁을 하니까 신문 기자가 자리를 주선해줬어요. 대기실에서 아버지가 호적등본까지 보여줬던 기억이 나요. 선생님은 조선사람이라고 좋다고 했지. ‘키가 참 크네’라면서 이거 해봐라, 저거 해봐라 많이 시키셨어요.” 이후에 중국 공연을 다녀와서 만나자고 했는데, 소식이 없었다. 평양 명륜실업여학교에 진학해 공부하던 1941년 6월, 일본 도쿄 최승희무용연구소에서 연락이 왔다. 유학을 떠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무용이란 예술이 아니라, 그저 유희이던 시절이었어요. 당시 춤을 춘다고 하면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며 반대를 했죠. 혈혈단신 도쿄로 건너가야 한다는 말에 할머니는 아버지에게 호통을 쳤어요. 그때 도쿄에 큰아버지가 유학을 하고 계셨거든. 조카가 가면 좋아하실 거 아니에요? 그런데 큰아버지도 ‘여기가 어디라고 춤을 배운다고 오느냐’면서 야단이셨죠.” 아버지가 든든한 지원군으로 버티고 있는데 문제될 것이 뭐가 있었을까. 그렇게 열네 살에 홀로 도쿄로 건너가 최승희무용연구소에 들어갔다. 드디어 최승희의 춤 세계에 빠지는가 했는데, 그건 고된 생활의 시작이었다. 김 선생은 ‘집제자’라는 표현을 썼다. “한 집에서 먹고 자고, 무용 이외의 것까지 다 배우는 제자였죠. 수건 하나 빨아본 적이 없는데 거기서는 큰 빨래를 다 했어요. 무대와 관련된 빨래는 다 제자들 몫이었지.” 김 선생은 대뜸 오른손을 펴보였다. “여기 손에 새카만 점, 보이죠. 이게 그때 남은 흔적이에요. 옛날에는 펌프로 물을 끌어올려서 빨래를 했는데, 겨울에 찬물로 빨래를 하니 동상에 걸리는 건 다반사야. 이 점을 보면 지금도 가끔 그때 일이 기억나요. 후배라도 있으면 이런 일을 넘길 수 있을 텐데, 어디 후배들이 들어와야지. 들어와도 오래 버티지도 못하고.” 최승희에게 춤을 배우고 싶어서 가출하는 소녀들이 많았던 시절이다. 춤에 대한 환상을 품고 보따리 하나 달랑 들고 도쿄까지 오는 아이들을 최승희는 다 받아줬다. 그런데 그냥 놔둬도 알아서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제자 생활이 워낙 고되다 보니 버티는 아이들이 몇 안됐던 것이다. “선생님은 빨래까지 직접 다 해봐야 공연에 대한 모든 것을 익힐 수 있다고 생각하셨어요. 특별히 개인 교습을 받는 게 아니라, 스승과 함께 무대에 서고 순회공연을 하면서 그 자체를 고스란히 전수받는 거죠.” 김 선생을 버티게 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하게 만든 건, “너 참 잘한다”라는 최승희 선생의 칭찬 한마디였다. 같은 집제자라도 언니와 동생의 구분이 분명하고 규율이 엄격해 감히 앞에 나서서 연습을 하거나 개인 교습을 받을 수는 없었다. 선생은 수업을 받을 때는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서 연습하고, 언니들이 동작을 익힐 때는 먼 발치에서 눈으로 보고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사람에게는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이 있잖아.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어릴 때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지요. 그러려면 실력이 먼저더군요. 손을 돌리는 동작을 한번 가르쳐주면 다 나갈 때까지 계속 연습했어요. 선생님처럼 하려고. 굉장한 연습벌레였죠.” 1년쯤 지나 뜻하지 않은 기회가 왔다. 1942년 도쿄 제국극장에서 열린 최승희무용단의 공연에서 김 선생은 ‘초립동’을 출 기회를 얻었다. 최승희가 1930년대에 만든 ‘초립동’은 어린아이가 장가 가는 것을 마냥 좋아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두둑하게 용돈을 받아 넣은 주머니를 돌리기도 하고, 다리를 번쩍번쩍 들며 제기차기를 하는 발랄하고 경쾌한 모습을 그렸다. 무용수에게는 다소 과격한 동작이었다. 원래는 최승희가 추어야 했지만 담에 걸리는 바람에 누웠다가 일어나는 동작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궁여지책으로 제자 중 한 명을 대신 무대에 세우기로 했다. “누가 할 수 있겠냐.” 모두 머뭇머뭇거렸다. 그때 김 선생이 용기를 내 손을 번쩍 들었다고 했다. 김 선생은 “현장에 같이 있던 안막(안필승, 1910~?) 선생이 ‘너 심장에 털났니?’라고 물을 정도로 대범한 도전이었다”고 떠올리며 잠시 말을 잊었다. “그때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방 안에서 해보라며 개인지도를 해주셨죠.” 김 선생은 그때를 생각하기만 해도 행복한 듯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공연이 끝난 뒤 당시 신문사에서 동행 취재를 온 기자가 “그렇게 잘 출 줄 몰랐다”고 칭찬할 정도로 잘해냈다. 최승희의 일본 지역 공연을 따라다니면서 무대 훈련은 꾸준히 했지만, 이 공연이 김 선생의 공식적인 데뷔무대가 됐다. 무엇보다도 김 선생을 벅차오르게 한 건 처음으로 아버지가 자신의 공연을 봤다는 사실이었다.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가리라” 다짐했던 터라 고향땅을 떠난 뒤 한 번도 밟아보질 못했다. 최승희무용단은 주로 일본에서 활동했으니 집 근처에 갈 일도 없었다. “일가친척이 돈을 모아 줘서 아버지가 도쿄로 오실 수 있었죠. 정말 오랜만에 뵈었는데, ‘무대에서 고개를 너무 쳐들지 마라’는 지적부터 하시는 거예요. 선생님도 그런 말을 하지 않으셨는데. 객석에 앉아서 무대를 올려다 보시니 그랬나봐요. 섭섭하면서도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이후 김 선생은 스승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조리 따라하고 무대 진행을 도맡아 하는 스승의 수족이 됐다. “수족은 제일 믿는 사람인 거죠. 집제자로서 생활하기도 했지만, 선생에게 옷을 챙겨주고 갈아입히고 모든 것을 함께하게 된 거예요. 스승과 지내는 시간을 마음껏 가질 수 있게 된 데다 예술의 완성을 함께 할 수도 있게 된 거죠.” 김 선생은 1944년 최승희의 시동생인 무용이론가 안제승(1922~1996, 전 경희대 교수)과 결혼하면서 가족의 일원이 됐다. 김 선생에게 공부를 가르치던 안씨가 학도병으로 군대에 가게 되면서 서둘러 백년가약을 맺었다. 1945년 중국 순회공연을 할 때 해방 소식을 듣고, 이듬해 7월에는 스승 최승희-안막 부부와 함께 월북했다. 6·25전쟁 후 김 선생은 스승과 갈 길을 달리해 1951년 1·4후퇴 때 아버지를 모시고 남편과 남쪽으로 내려왔다. 사실 친정이 평양인 김 선생에게는 ‘사상적 월북’이 아니라 집을 찾아간 것뿐이었지만 한국 정부는 ‘월북’ 무용가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나라가 둘로 쪼개지고 사상적으로도 등진 시기에 스승 최승희가 북한 정부로부터 무용연구소까지 하사받은 ‘인민’ 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요시찰 인물’로 낙인 찍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김 선생은 당시 일에 대해서는 말을 극도로 아꼈다. 스승을 떠난 데 대해서는 “예술적 차이”라고만 했고, 당시 일에 대해서는 그저 “어려웠다”고 에둘러 말했다. 그 서슬 퍼런 감시와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예술에 대한 집념이었다. 1950년대 초 김 선생은 서울에서 박기홍의 승무와 이동안의 태평무·승무를 전수받았다. 1953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무용연구소를 세우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치기 시작했다(하편에 계속).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김백봉은 1927년 2월 12일 4남 3녀 중 맏딸로 평남 기양에서 출생 1941년 일본 도쿄 최승희무용연구소 입소 1944년 안막의 동생 안제승과 결혼(스승 최승희와 동서 관계) 1946년 6월 평양 최승희무용연구소부소장 겸 상임안무가 1947년 평양 국립극장에서 제1회 김백봉작품발표회 1953년 서울 낙원동 김백봉무용연구소 설립 1954년 서울 시공관에서 김백봉 작품발표회(남한에서 창작활동 시작) 1965 ~ 1992년 경희대 무용과 교수 1981 ~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92 ~ 현재 경희대 명예교수 2005 ~ 2007년 서울시무용단 단장 2004년 최승희춤연구회 이사장 <수상> 서울시문화상(1953년),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1981년), 서울올림픽 공로 대통령상(1988년), 20세기를 빛낸 예술인(1999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2005년)
  • [부고] 동교동계 거목 ‘사무라이’ 김영배 전 국회부의장

    동교동계 원로로 6선 의원을 지낸 김영배 전 국회 부의장이 27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1세. 고인은 군사정부와 여당에 대한 의연한 태도와 짙은 눈썹 등으로 ‘사무라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1987년 당시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이 통일민주당을 창당할 무렵 신민당에서 당론에 반대하는 내각제 개헌을 주장한 이철승·이택희 두 사람의 제명을 앞장서 끌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고인은 1932년 충남 논산 출생으로 영등포공고 졸업이 최종학력이다. 연합신문 기자로 활동하다가 1979년 10대 국회에 당선된 뒤 11대를 제외하고 서울에서만 6선을 기록하면서 입지전적인 정치인으로 불렸다. 1970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김대중 후보 진영에 합류하면서부터 동교동계 거목으로 성장했다. 15대 국회에서 국회 부의장을 역임했고, 2002년에는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선거관리위원장으로서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후보 확정 이후 탄탄대로였던 그의 정치인생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대선 과정에서 후보단일화협회 소속으로 탈당했으며, 국민경선을 사기극이라고 폄하하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2003년 1월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할 위기에 처하자, 그해 3월 의원직을 사퇴했다. 고인은 정계에서 은퇴한 뒤에는 일석장학재단 이사장으로서 장학사업에 힘써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창례 씨와 장남 종수(재현인텍스 소장), 장녀 혜경(주식회사 설악 대표이사), 사위 팽헌수(한국마리나협회 수석자문위원)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이대 목동병원 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30일 오전 6시30분. 6·25전쟁 참전용사이기도 한 고인은 국립이천호국원에 안장된다. (02)2650-2743.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고전, 무대 위를 거닐다

    고전, 무대 위를 거닐다

    “난데없기는. 당신 양친께서 당신처럼 재고만 앉아 있었으면 당신이야말로 난데도 없었겠지”라는 말장난이 있고, “그대가 지나온 밤바다의 별빛은 여전히 그대 머리 위에 빛나는구나”라는 닭살 돋는 대사도 있다. “왜 늘 우리만 당해야 하는데요? 왜 우리만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데? 왜 우리 애들만 죽어야 해?”라는 가슴이 먹먹한 통탄이 있다. 인생과 생존, 존재와 자유를 관조하면서 시대의 고민과 오늘의 삶을 이야기한다. 연극 ‘라오지앙후 최막심’이다. ‘라오지앙후 최막심’은 명동예술극장이 ‘명작의 희곡화’ 첫 프로젝트로 선정한 작품.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1946)를 한국 역사의 한 장면으로 변형했다. 배삼식 작가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30년대 크레타섬을 1941년 연해주 얀코프스크 반도에 있는 바닷가 촌락 앵화촌으로 치환했다. 크레타는 그리스에 속해 있지만, 터키, 불가리아 등 주변국 사이에서 참혹한 분쟁을 겪던 지역이다. 배 작가는 그런 역사성을 떠올리면서 “일제강점기에 러시아나 일본의 국가 권력이 완전히 장악하거나 지배하지 못했던 지역, 경계와 변경의 공간을 찾다가 반도 언저리 촌락에 대한 기사를 봤고 번안 작품의 공간으로 선택했다”고 소개했다. 소설 속 화자인 ‘나’는 ‘김이문’이, 조르바는 ‘최막심’이 됐다. ‘막심’이라니 막심 고리키 같은 러시아인인가 하고 갸우뚱할 테지만 중요하지 않다. 출생의 단서는 “일생에 한 일 중에는 최고로 후회막심한 일”이라 어머니가 이름을 그리 지었다는 것 정도인데, 어차피 ‘라오지앙후’(떠돌아다녀 세상 물정에 밝은 사람) 아닌가. 일제강점기에 러시아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이 사는 곳이 배경이니 당연한 이름일 수도 있다. 500쪽 가까이 되는 소설은 그야말로 철학의 성찬이요, 명문의 행렬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추천 목록에 넣지만 읽기가 수월하지 않다. ‘라오지앙후 최막심’을 무대화한 양정웅 연출가는 그 점을 명쾌하게 정리했다. 양 연출가는 “원작은 현란하고 아름다운 언어가 많지만 그것을 말로 하게 되면 그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하기가 어렵다. 관념과 철학을 덜어내고 인물 각자의 삶에 더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베트남인과 조선인 사이에서 태어난 귀여운 여각 주인 ‘오르땅스’, 일본인과 결혼했던 과부 ‘로사’, 로사를 사랑하는 ‘이차만’, 늙은 무당 ‘진펄댁’, 지능이 떨어지는 ‘춘보’ 등 주변인물의 비중이 원작보다 커졌다. 조르바가 ‘독점’하던 잠언들을 골고루 나누어 부여했다. 시대상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장치도 많다. 박향림이 노래한 ‘코스모스 향기’와 ‘오빠는 풍각쟁이야’, 최성희의 ‘이태리의 정원’ 등 옛노래가 흘러나오고, 우쿨렐레와 아코디언의 생생한 음악이 퍼진다. 의상 고증도 충실하다. 한복 바지에 양복 정장, 중국인 모자를 쓴 인물들의 행색이 이상해 보이지만, 없는 일도 아니었다. 반가운 얼굴도 보인다. 최막심은 뮤지컬 배우 남경읍(55)이 맡았다. ‘자유롭지만 상처가 있는 영혼’ 최막심을 표현하기 위해 남경읍은 턱수염을 기르고 아코디언을 배우고 있다. 오르땅스는 방송 데뷔 40년을 맞은 오미연(60)이 열연한다. “영화를 보면서 저 오르땅스보다 더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돼야지 노력한다”는 오미연은 연습실에서도 살랑살랑 치마를 흔들고 우아한 스텝을 밟고 있다. 1960~1970년대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섰던 배우 유순철(76·조선달 역), 이용이(55·진펄댁 역)도 만날 수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온몸으로 고민한” 최막심의 이야기는 새달 8일부터 6월 2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른다. 2만~5만원. 1644-2003.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썩지도 않네…무려 ‘14년 된 햄버거’ 공개 충격

    썩지도 않네…무려 ‘14년 된 햄버거’ 공개 충격

    햄버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입맛’ 떨어지는 소식이다. 14년 전에 산 햄버거가 썩지도 않고 여전히 싱싱한(?) 상태로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최근 미국 CBS 프로그램 ‘닥터스’(The Doctors)에서 오래된 ‘특별한 햄버거’가 화제의 대상에 올랐다. 이 햄버거 출생(?)의 비밀은 지난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타주에 사는 데이비드 위플은 동네 맥도널드에서 이 햄버거를 샀다. 코트에 넣어둔 채 집으로 돌아온 위플은 그러나 까맣게 사실을 잊어버렸고 2년 후에야 햄버거를 우연히 다시 발견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햄버거는 외관상 이상이 없었고 호기심이 발동한 그는 실험삼아 그대로 보관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14년이 흘렀고 최근에야 이 햄버거는 ‘닥터스’ 스튜디오에 올라 시청자 앞에 ‘속살’을 드러냈다. 녹화장에서 “제가 한번 먹어보겠다.”고 나선 진행자는 없었으나 놀랍게도 햄버거는 피클이 사라지고 고기만 말랐을 뿐 사실상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햄버거 주인인 위플은 “몇 년 만에 본 햄버거가 그대로인 모습을 보고 나와 아내 모두 깜짝 놀랐다.” 면서 “일부로 햄버거를 이렇게 오랜기간 보관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 햄버거 덕분에 손주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먹으라고 충고해 줄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썩지 않는 햄버거의 발견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뉴욕의 사진작가 샐리 데이비스는 2년 된 ‘해피밀 세트’가 별다른 부패나 변화없이 제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내용의 실험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책꽂이]

    오리 이원익 그는 누구인가(함규진·이병서 지음, 녹우재 펴냄) 정치학 박사인 함규진과 오리 이원익의 12대 손인 이병서가 한데 힘을 합쳐 쓴 오리 평전이다. 오리는 명종, 선조, 광해군, 인조까지 임금 4명을 모시면서 임진왜란, 정유재란, 인조반정, 이괄의난, 정묘호란 등 격변의 시대를 온몸으로 다 받아냈다. 서애 유성룡마저 이순신을 버릴 때 홀로 이순신을 엄호했고, 대동법을 확대 실시하는 데 도움을 줬으며, 광해군의 폐모살제를 반대했을 뿐 아니라, 인조가 광해군을 참하려는 것을 막아내기도 했다. 네 임금을 모시며 관직을 이어갔음에도 남은 건 초라한 초가집 한칸뿐이었을 정도로 청렴함으로도 이름을 떨쳤다. 그럼에도 오리는 오늘날 그리 유명하지 않다. 저자들이 분기탱천, 이 책을 쓴 까닭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오리가 국난의 시절 왕실 후손이었다는 점. 왕실과 운명공동체였기 때문에 왕들이 오리에게 의존하고, 오리가 충성을 다한 것이 그리 색달라 보이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직접 행정을 수행한 관료들에 대한 관심 부족이다. 성리학적 논쟁에 관심이 쏠리다 보니 학파 위주로 역사를 보게 되고, 그러다 보니 40여년간 재상으로서 국가를 운영한 오리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는 것. 저자들은 오리의 출생에서 죽음까지 전 과정을 복원해 뒀다. 1만 9000원. 리퀴드 러브(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권태우·조형준 옮김, 새물결 펴냄) ‘액상’, ‘액체’, ‘유동하는’ 등의 번역어 대신 리퀴드(Liquid)라는 단어를 고스란히 쓰는 걸 보니 이제 바우만과 그의 근대성 논의가 어느 정도 한국 독자들의 귀에 익었다 판단한 것 같다. 근대성을 리퀴드라 정의하는 저자답게 이 책에서 논의하는 주된 대상은 “유대 없는 인간”이다. 관계보다는 네트워크에 그치려는, 그럼에도 네크워크보다 관계를 갈망하는 현대인의 이중성에 대한 소소한 스케치들이다. 사회학의 대가임에도 뭔가 대단한 분석과 처방을 내놓기보다 짙은 문학적 필체로 근대인의 멜랑콜리를 그려낸다. 근대인의 멜랑콜리, 그렇다. 저자 스스로 이 책을 샤를 보들레르와 발터 베냐민에다 덧대면서 이 책은 단지 그들을 인용만 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발 더 나아가 “나이가 들수록 아무리 어떤 사상이 위대하더라도 엄청나게 풍부한 인간의 경험을 포괄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됐다고, 아주 겸손한 태도를 보인다. 이런 겸손한 태도 덕분일까. 개인에서 부부에서 자식에서 가족에서 공동체에서 세계시민사회까지, 사회학자답게 논의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장해나가다 마침내 칸트의 세계정부론으로까지 치닫는데, 칸트의 세계정부론을 오늘날 되살린 인물로 꼽히는 가라타니 고진과는 달리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1만 8500원.
  • 영광의 굴비 굴비의 영광

    영광의 굴비 굴비의 영광

    젓가락질이 쟀다. 석쇠 위 굴비가 노릇노릇 구워지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성질 급한 누구는 아예 젓가락을 내던지고 양손으로 머리와 꼬리를 붙들고 수박 먹듯 훑었다. 그 맛있는 게걸스러움에 혹했는지 너도나도 개구쟁이마냥 낄낄대며 따라했다. 굴비 한 두름이래야 순식간이었다. 다른 곳도 아닌 영광에서, 그것도 영광굴비였으니 당연했다. 영광스러운 첫인상이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점은 더 영광스러웠다. 굴비만으로 완전한 영광 영광군 문화관광해설사 정애임 선생은 “신령 령, 빛 광, 천년의 빛 영광은 지명 그대로 신령스럽고 정신이 살아 있는 고장”이라고 운을 뗐다. 장단이라도 맞추려는 듯 겨울 끝자락에 보슬비가 눈처럼 흩날렸고 희끄무레한 안개는 풍경을 수묵담채화로 그려냈다. 신령스러운 빛으로 지명과 딱 들어맞는 정감을 연출한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한들 굴비의 영광, 영광의 굴비만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찌뿌드드한 하늘과 으슬으슬한 날씨 탓도 컸다. 그랬으니, 영광법성포굴비특품사업단에 들러 직접 굴비를 엮고 한 두름씩 들고 나가 석쇠에 구워 먹을 때의 행복감이 컸을 수밖에…. 새참에 이어 저녁에는 보리굴비, 고추장굴비까지 모조리 맛보고, 다음날 아침에는 조기매운탕도 곁들여 굴비구이를 탐했다. 부드럽고 짭조름한 맛이 먹고 또 먹어도 물리지 않았다. 어찌됐든 영광은 굴비다. 구태여 ‘어찌됐든’이라고 토를 단 이유는 영광은 굴비로서 완전한 동시에 굴비만으로는 온전히 표현되지 않아서다. 굴비로서 완전한 영광은 굳이 부연 설명할 필요도 없겠다. 굴비는 조기를 소금에 절여 말린 것이다. 그 명칭의 유래는 고려 16대 국왕 예종(재위 1105~1122년)때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딸을 왕비로 들여 권세를 누렸던 이자겸이라는 외척세력가가 있었는데 반란을 모의했다가 적발돼 영광 법성포로 귀양을 오게 된다. 이곳에서 굴비를 맛본 것인데 그 맛이 너무나 기가 막혔다. 왕에게도 진상하고 싶을 정도였는데 자칫 용서를 빌거나 아부하는 뜻으로 비쳐질까 싶었다. 그래서 ‘굽히지 않겠다’는 뜻을 담아 굴비屈非라고 써서 올렸다는 이야기인데,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조기를 말리면 구부러지는데 이 모습을 보고 ‘구비仇非 조기’라고 부르던 게 굴비로 변했다는 설도 있으니 이래저래 사연 많은 굴비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굴비가 먹여 살린다는 법성포항 풍경 2 영광법성포굴비특품사업단에서는 굴비에 대한 기초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직접 엮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체험비는 5,000~7,000원 3 노릇노릇 막 구워낸 영광굴비 맛은 가히 일품이다. 식당에서는 굴비정식 메뉴를 4인이 먹을 수 있는 ‘한 상’ 기준으로 팔기도 한다. 식당에 따라 다르지만 굴비백반은 1인당 1만5,000원선, 굴비정식은 2만5,000원에 판매한다 “법성포에는 파리 한 마리 없어요” 단지 그런 연유 때문에 영광굴비가 유명한 것은 아닌가 보다. 예전에야 법성포 앞 칠산바다에서 산란을 위해 북상하던 조기가 엄청 잡혔다지만 지금은 조기들의 이동경로가 바뀌어 그렇지만도 않다. 그래도 영광굴비의 명성에 변함이 없는 이유는, 그만의 맛이 있고 그 맛을 빚어낸 환경이 특별하기 때문인 것 같다. 굴비구이를 사이에 두고 겸상한 정기호 영광군수는 영광굴비 자랑과 영광굴비를 만들어낸 법성포 사랑이 대단했다. “옛날부터 법성포 앞 칠산바다에서 조기가 많이 잡혀서 굴비 만드는 전통과 역사가 깊어요. 그냥 간을 하고 말리는 것도 아닙니다. 영광에서 생산하는 천일염으로 ‘섶간’을 하고 법성포의 천혜의 해풍과 햇빛으로 말려 영광굴비가 탄생하는 것이죠.” 섶간은 영광굴비의 전통적인 염장 방식이다. 다른 곳에서는 염수에 조기를 담가 간을 하지만 영광굴비는 간수를 뺀 천일염으로 한 마리 한 마리 간을 하고 재웠다가 염도가 낮은 염수에 세척한 뒤 엮어 말린다고 한다. 그냥 염수에 간을 한 굴비를 이곳 사람들은 ‘물굴비’라고 하대하는 이유다. 자랑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법성포는 굴비 생산에 지리적으로나 환경적으로도 최적의 자연조건을 갖췄어요. 신기하게도 법성포에는 파리가 한 마리도 없다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물망을 치지 않아도 사시사철 위생적으로 말릴 수 있는 환경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법성포 굴비거리를 걸어 보니 파리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고, 수백 수천개의 굴비두름은 그대로 바람과 햇살을 맞고 있었다. 겨울이니 그렇겠거니 싶었다. 쉬이 믿겨지지 않는 ‘파리 전무’의 진실은 언젠가 한여름에 찾아가 확인해 볼 요량이다. 1, 2, 3 영광은 신안과 함께 천일염 생산지로 유명하다. 영광굴비는 이곳에서 생산된 소금으로 섶간을 한다 바람과 햇살과 천일염이 만들다 대신 영광의 천일염 생산현장은 직접 확인했다. 영광은 신안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천일염 생산지다. 16km에 이르는 갯벌과 오뉴월의 따뜻한 햇볕, 4월부터 불어오는 북서풍인 하늬바람이 빚어낸 소금이다. 염산 지역의 영백염전을 비롯해 백서영농조합법인, 황통영농조합법인 등의 대규모 염전이 영광 갯벌 천일염의 명성을 쌓고 있다. 염전 수만 해도 120여 개에 이른다. 도자기판 염전으로 유명한 영백염전에서는 현대화된 시설을 통해 최상의 품질로 태어나는 천일염의 생산과정과 현장을 체험했다. 이 천일염 역시 영광 법성포 굴비의 맛을 빚는 요소 중 하나이니 황금만큼 귀한 소금이다. 비굴해지더라도 먹고 싶고 다시 먹고 싶어서인지 영광굴비는 비싸다. 법성포에서도 한 두름(20마리)에 싸게는 2만원, 비싸게는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시세차익을 노린 가짜 영광굴비가 판을 치는 것도 다 높은 몸값 때문이다. 영광굴비는 조기 중에서도 참조기만을 사용하는데 비슷하게 생긴 부세, 보구치, 수조기, 꼬마민어 등으로 만든 가짜 영광굴비에서부터 중국산 조기로 만든 가짜까지 파다하다. 일반적으로 굴비 머리에 다이아몬드 모양이 있으면 진짜라고 알고 있는데, 유사조기들도 마찬가지여서 위험이 따르는 상식이라고 한다. 어디서 잡혔는지는 진실을 알려주지 않으면 사실상 확인할 길이 없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가짜에 대처하는 자세 진짜 영광굴비는 어떻게 구별할까? 하도 가짜가 판을 치니 첨단기술까지 동원됐다. 고유인증번호는 물론 생산지와 생산자 정보 등을 담은 QR코드를 부여한 것이다. 대략 10만원 이상의 중고가 제품의 경우 뚜껑을 열면 진품 영광굴비임을 알리는 음성 녹음이 자동으로 흘러나온다. 영광법성포굴비특품사업단이 알려주는 진품 구별법은 이 진품인증태그를 확인하는 것이다. 특품사업단 건물은 굴비 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직접 구매도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굴비 엮는 체험도 할 수 있으니 ‘영광굴비투어’의 출발지로 삼아도 좋겠다. 여기서 구입하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도 없겠다 싶어 4만원짜리 영광굴비 한 두름을 들고 왔더니 한동안 밥상머리 즐거움이 컸다. 법성포 굴비거리를 걷노라니, 영광 법성포의 바람과 햇볕을 머금고 이곳의 방식대로 탄생한 굴비라면 어디에서 잡혔든, 어떤 조기로 만들어졌든 그 나름의 가치가 있지 않은가 싶었다. 방점은 어디까지나 영광 법성포에 찍혀야 마땅하다는 생각에서였다. 단, 속이지도 속지도 말아야 하겠지만…. ●영광 볼거리 영광에는 굴비 말고도 다양한 매력이 곳곳에 숨어 있다. 우선 문화관광해설사 정애임 선생이 뗀 운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정신이 살아 있는 신령스러운 빛의 고장 영광’이라는 표현 속에는 영광이 품은 종교적 색채가 묻어 있다. 3대 종교가 깃들여져 있는 곳 다시 법성포다. 영광 법성포는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384년에 백제에 불교를 전파하면서 최초로 발을 디딘 곳이다. 법성포의 법法은 불교를, 성聖은 성인인 마라난타를 뜻한다고 한다. ‘백제불교최초도래지’는 법성포를 통해 백제불교를 전한 마라난타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거대한 야외 박물관이다. 석가모니의 출생과 고행까지의 과정을 23개의 원석에 간다라 조각기법으로 음각한 부용루를 비롯해 간다라 유물전시관, 탑원, 4면 대불상이 들어서 있다. 부용루를 거쳐 4면 대불상이 있는 정상까지 오르면 호젓한 경치가 펼쳐진다. 마라난타가 제일 처음 지은 사찰이 바로 ‘불갑사’다. 불佛은 불교를, 갑甲은 처음, 으뜸을 뜻하니 절 이름에도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 불갑사도 불갑사이지만 이곳에서 9월경에 열리는 상사화(꽃무릇)축제도 유명하다. 상사화의 꽃말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다. 잎이 진 뒤에야 꽃이 피니 서로 영원히 만나지 못한 채 사무치게 그리워만 해서다. ‘화엽 불상견 불상초花葉 不相見 相思草’의 한이 서린 꽃이다. 상사화 3대 군락지는 영광 불갑사, 함평 용천사, 고창 선운사인데 이곳의 규모가 가장 크다. 그래서 9월 상사화 꽃이 피면 불갑사 인근은 그야말로 빨간 융단이 깔린다고 한다. 백제불교최초도래지 뒤편으로는 숲쟁이꽃동산이 조성돼 있는데 이곳도 봄이면 꽃이 만발하고 활엽수림이 싱그러워 호젓한 산책을 즐기기에 좋다. 1 칠산바다를 따라 조성된 노을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노을전시관이 있다. 바다를 감상하며 노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2 마라난타가 최초로 세운 절인 불갑사. 불갑사 주변은 국내 최대 상사화 군락지여서 9월에는 빨간 융단이 깔린다 3 원전에서 나온 온배수를 활용해 운영되고 있는 에너지아쿠아리움. 기대보다 규모가 크고 수중생물도 다양하다 원자력에서 노을까지 영광은 원불교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원불교 창시자 박중빈 교조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영산성지를 비롯해 박중빈의 생가 터, 기도를 올렸던 바위 등이 영광에 남아 있다. 기독교 정신도 깃들여져 있다.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의 교회 탄압에 맞서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신자들이 염산교회에 77명, 야월교회에 65명이나 된다. ‘기독교인순교지’는 이들 순교자들을 기리고 있다. 이 밖에도 원자력 발전의 원리와 안전성 등을 홍보하는 ‘원전홍보전시관’과 원전 온배수로 꾸민 ‘에너지아쿠아리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9번째로 선정된 바 있는 ‘백수해안도로’, 해변을 따라 조성된 ‘노을산책길’과 ‘노을전시관’, ‘불갑저수지 수변공원’, ‘가마미해수욕장’ 등이 굴비 너머의 다채로운 영광을 채색하고 있다. 모든 관광지가 무료입장이니 이 또한 영광의 매력이다. 여행의 피로는 노을전시관 인근에 있는 ‘영광해수온천랜드’에서 칠산 바다를 조망하며 온천욕으로 풀 일이다. 글·사진 김선주 기자 취재협조 영광군 www.yeonggwang.go.kr travie info 영광법성포굴비특품사업단 법성포 내 400여 개 굴비생산업체들로 구성됐다. 영광법성포굴비의 가공, 보관, 유통, 홍보 활동을 펼치고 있다. 회원업체가 생산하는 제품에 한해 전남품질인증마크가 부착된다. 굴비의 생산과정과 요리법을 홍보하고 있으며 엮기 체험과 구매도 가능하다. 주소 전남 영광군 법성면 진내리 1-2 문의 061-356-1657 백제불교최초도래지┃주소 전남 영광군 법성면 진내리 812 문의 061-350-5999 영광해수온천랜드┃주소 전남 영광군 백수읍 대신리 764 문의 061-353-9988 불갑사┃주소 전남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 8 문의 061-353-8258 에너지 아쿠아리움┃주소 전남 영광군 홍농읍 계마리 514 문의 061-357-2405 영광 노을전시관┃주소 전남 영광군 백수읍 대신리 764 문의 061-350-5600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한국전쟁자료를 日고미술상이 싹쓸이”

    “한국전쟁자료를 日고미술상이 싹쓸이”

    “이 사진을 보세요. 군복 입은 아이가 몇 살이나 된 것 같습니까.” 15일 만난 김영준(62)씨는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인민군 아이의 사진을 가리켰다. 그는 “제가 갖고 있는 자료만 훑어봐도 전쟁이 얼마나 참혹하고 위험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 수 있습니다”라면서 “한반도에 미사일 위협이 고조되는 지금 우리 민족이 다시 한번 짚어봐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시간여행’이라는 고미술상점의 대표인 김씨는 스스로를 한국전쟁 자료를 국내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민간인이라고 소개했다. 20년간 모아온 전쟁 자료만 해도 4000여 점에 달한다. 그는 오는 7월 27일 휴전협정 6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할 전시회 등을 기획 중이다. 당시 뿌려진 전단(삐라)이 2000장이다. 휴전협정이 진행될 당시(1951년 7월 10일~1953년 7월 27일) 대규모로 뿌려진 것들로 내용이 대부분 원색적이다. ‘원수는 미국놈’, ‘이승만 매국도당’과 같이 한·미 연합군을 비난하는 식이다. 자료 중 김씨가 가장 아끼는 건 한강 도강증(渡江證)과 피란민 증명서다. 당시 한강을 건너려면 미군 헌병사령부가 발급한 도강증이 필수였다. 피란민 증명서도 생명줄과 같았다. 김씨는 “지금 와서 보면 허름한 종이 한 장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사의 증표와 같았다”면서 “이것보다 비싸게 산 자료가 많지만 가장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김씨는 전쟁둥이다. 자신의 수집 열정을 출생의 비밀에서 찾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개월 후인 1950년 겨울, 갓난아기인 그는 어머니 등에 업혀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나서 3년 후에야 고향인 서울 용산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김씨는 “전쟁둥이로 태어나서인지 무엇인가를 통해서라도 전쟁의 시대상을 기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국전쟁 자료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2011년 중국 단둥과 옌볜 지역에 한국전쟁 자료를 찾으러 갔는데 대부분 일본의 고미술상들이 싹쓸이해 갔다고 하더라고요. 경제적 가치 여부를 떠나 기록의 가치를 아는 일본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무서움을 느꼈습니다. 한국전쟁의 자료는 역사는 물론 비극을 막기 위한 교훈적 측면에서도 가치가 충분합니다. 젊은 세대들이 이런 점을 알았으면 합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평생을 민중의 아이콘으로 살다 백기완(상)

    [명사가 걸어온 길] 평생을 민중의 아이콘으로 살다 백기완(상)

    백기완(80)은 거리에 있었다. 1973년 유신헌법 개정 투쟁 때도,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때도 그는 늘 대오의 맨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지금도 거리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서울 중구청이 대한문 앞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분향소를 철거할 때도 백발의 백기완은 새벽같이 나와 천막을 지켰다. “피눈물 흘리는 사람들의 몸부림이 있는 곳이 나의 삶터”라고 말하는 백기완. 스스로 “늙었다”고 말하면서도 세상에 호통치고 노래 부르기를 멈추지 않는 그는 여전히 젊다. 백기완의 삶과 예술을 두 차례에 나눠 싣는다. 백기완을 거리로 이끈 것은 가난과 분단이었다. 1933년 황해도 은율 산자락에서 태어났다. 땅 한 뼘 갖지 못한 아버지는 돈이 없었다. 배가 고팠다. “돼지기름 덩어리 한 조박(조각의 황해도 사투리)을 날로 먹는 것이 어릴 적 꿈이었다”고 회고할 정도다. 일제의 잔학한 수탈이 계속되던 때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왜놈들이 집에 와서 놋그릇을 뺏어갔어요. 쌀도 뺏고 밥그릇도 뺏고, 나도 울고 엄마도 울고. 그런데 엄마가 그만 울래요. ‘사내 새끼가 자꾸 울면 키가 안 큰다. 어서 커서 엄마 원수를 꼭 갚아 달라’고. 그때부터 민족의식이 싹 텄던 것 같아요.” 1946년 백기완은 아버지를 따라 맨발로 서울에 왔다. 도시는 냉정했다. 설렁탕 집에서 일을 하다가 “식은 밥을 너무 많이 먹는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그에게 서울은 “주먹으로도 안 되고 참아도 안 되고 울어도 안 되는 곳”이었다. 가진 게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저항심리가 그에게 민중 의식을 심어줬다고 했다.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학교는 꿈도 못 꿨다. 충무로 책방에서 주인 몰래 영어 사전을 외우다 쫓겨나기를 거듭했다. 그의 할아버지(백태주)에게서 항일투쟁 때 도움을 받았던 백범 김구(1876~1949)와 임시정부의 외무부장을 지낸 조소앙(1887~1958) 선생이 학교에 보내겠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마다했다. 아버지는 “백범에게 밥을 얻어먹으면 백범 같은 사람밖에 안 된다. 깡패가 되든 거지가 되든 혁명가가 되든 혼자서 크라”고 했다. 1950년 전쟁으로 나라가 찢어졌다. 어머니는 여전히 은율에 있었다. 남쪽에서 참전한 작은형은 “북쪽에 계시는 어머니를 겨냥해서는 단 한 방도 쏠 수가 없다. 그래서 하늘에 대고만 빵빵 쏜다”는 편지를 남기고 전장에서 숨졌다. 형의 유해를 찾으러 강원도에 갔다가 사격을 당해 죽기 살기로 뛰었다. 뛰면서 다짐했다. 언젠가 나라의 허리를 내 손으로 잇겠다고. 전쟁이 끝났다. 국토는 폐허였다. 백기완은 ‘나라가 온통 퇴폐와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고 여겼다. “우리 생명을 심자”며 젊은 날을 나무심기와 농민운동에 바치기로 했다. 1953년부터 꼬박 7년. 그때는 불덩어리 같았다고 했다. 젊은이들의 주머니를 털어 10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었다. 뜨거운 청춘이 되살아나는 듯 백기완은 인터뷰를 멈추고 거친 목소리로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불렀다. “바라보라 붉은 산 햇빛에 탄다/ 저 산을 푸르게 마음도 푸르게/ 저 산을 푸르게 조국도 푸르게/ 영치기 영치기 영차차 영치기 영차차/ 영치기 영치기 영차차 영치기 영차차 우리는 선봉이다 자진녹화대” 100만 그루의 나무는 이 땅에 생명이 되었을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이승만 독재가 강화되면서 그는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했다. 싸움은 반 세기 넘게 이어졌다. 그는 ‘가대기 형(兄)’ 이야기를 했다. “가대기 형은 서울역에서 막일하던 지게꾼이었어요.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그냥 가대기 형이라고 불렀어요. 싸움을 잘했지만 주먹쟁이는 아니었어요. 내가 가난한 친구들이랑 주먹다짐을 하고 나면 이렇게 얘기했죠. ‘싸움은 있는 놈, 나쁜 놈들이랑 하는 거야. 없는 놈들끼리 싸워봤자 서로 코만 터져’ 그 말이 내 인생의 길라잡이가 됐어요.” 이승만 전 대통령은 백기완에게 ‘나라를 반으로 가른 미국의 앞잡이’였다. 정권을 바꿔가며 30년 넘게 이어진 독재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는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으면 새 길을 내자”며 4·19 혁명에 참여했다. 이승만 정권은 무너졌다. 그러나 이듬해 5·16 군사 반란이 터졌다. 그가 “독재자의 야욕과 자본주의의 폭악이 결합된 극악한 체제”라고 부르는 ‘박정희 18년’의 시작이었다. 1972년 유신헌법이 나왔다. 1974년 1월에는 긴급조치 1호가 나왔다. 1973년부터 ‘유신헌법 개헌청원 백만인 서명 운동’을 벌이던 백기완과 고 장준하(1918~1975) 선생은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다. 2년 뒤 풀려났다. 그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그때를 꼽았다. 유신은 그에게 ‘반통일, 반평화, 반균등, 반자유, 반문화, 반예술, 반역사, 반진보’였다. “유신 타파 운동을 하다 집에 들어와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어요. 탕탕탕, 누가 현관문을 부수고 구둣발로 들어와 이불을 확 베끼더라고. ‘너희 집 안방에 강도가 구두를 신고 들어와서 이불을 벗기면 좋겠어. 빗자루로 쓸어 이 새끼야’ 그랬더니 나를 짓이기며 질질 끌고 가요. 기가 막혔습니다. 내 생각대로 목숨을 걸고 떳떳하게 살았는데 그렇게 끌고 가면 되겠어요. 온몸이 노여움으로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그는 끌려가면서 아내에게 “여보, 나 기다리지 마. 훗날 내 무덤에 이름 모를 꽃이 피면 그게 해방 통일의 꽃일 거야”라고 외쳤다. “지금 들으면 어쭙잖은 얘기처럼 생각되기도 하는데, 그때는 죽기 살기로 싸울 때였으니 진지했어요. 거의 반 죽어서 감옥에 있는데 아내에게 편지가 왔어요. 새벽녘 추위가 더 매서운 법이니 견디어 내시라고.” 그러나 1975년 기다리던 아침이 오는 대신 믿고 따르던 장준하가 죽었다. 장준하는 그에게 “모든 통일은 좋다. 제국주의와 독점자본주의의 틀을 뒤집는 첫 걸음이 통일이다”고 알려준 스승이었다. 그는 “야비한 학살”이라고 했다. 여섯 달을 내리 울었다. 지난달 26일 장준하 선생 사인 진상조사 공동위원회가 “머리에 둔기를 맞고 숨졌다”는 사인을 발표할 때 백기완은 다시 울었다. 1979년 유신 체제가 끝난 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또 다른 군사 정권이었다. ‘반동분자’ 백기완은 다시 끌려갔다. 모질게 맞았다. 손톱이 뽑혔다. 정신을 잃으면 물바가지가 날아왔다. 독재는 짐승만도 못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죽기 살기로 시를 쓰며 버텼다. 그때 쓴 ‘묏비나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작곡돼 대표적인 민중가요가 됐다. 맨 첫발/ 딱 한발띠기에 목숨을 걸어라 (중략)/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구비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백기완은 민중후보로 대통령 후보에 추대됐다. 야권에서는 김영삼, 김대중, 백기완이 단일화를 모색했다. 하지만 민주화는 눈앞의 신기루였다. 백기완이 선거 이틀 전 단일화를 외치며 후보를 포기했지만 ‘양김’은 끝내 각자의 길을 갔다.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그는 “민중을 위해 싸운 100여년을 승리로 매듭지을 기회를 날렸다. 피눈물이 그치지 않았다”고 했다. 1992년 말 다시 민중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나섰지만 낙선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문민’(文民)의 간판을 내걸고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총칼을 앞세운 독재는 사라졌지만 백기완은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를 거치는 사이 독재의 폭력은 신자유주의로 횡포로 바뀌고 있었다. 노동 현장을 찾아다녔다. 자본의 낯은 겉으로만 번지르르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는 가장 극악하게 노동을 탄압한 정권”이라고 했다. 정도는 달랐지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상품으로 만들어 돈으로 환산하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근본적으로 없애야 한다. 신자유주의에서 민중이 해방되는 것이 역사적 과제”라고 했다. “젊은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비바람과 가뭄을 견디지 못하고 여름 한때 없이 떨어지는 가랑잎을 ‘개죽’이라고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깨뜨릴 생각은 않고 그 속에서 출세, 돈벌이, 명예, 행복만 좇다가 개죽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젊은이들이여, 개죽이 되지는 마시오. 개죽으로 사느니 마음껏 자라다가 거름이라도 되는 게 나아요.” 그가 이번 정부에 가장 우선해 요구하는 것이 노동 문제다. “지난해 한진중공업 노조에서 최강서라는 젊은이가 서른넷에 목숨을 끊었어요. 유서에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5년을 더 기다릴 수 없다. 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고 적었어요. 사실상 학살이나 다름없었어요. 장례식에 갔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들이 ‘아빠 왜 안 오냐’면서 사탕을 먹고 있어요. 울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데 앞이 안 보입디다. 하지만 나는 앞이 안 보인다고 주저앉지는 않아요. 그대로 주저앉는 건 자본주의에 져서 인간성을 포기하는 겁니다.” 백기완은 박근혜 대통령을 두고 ‘유신 잔재’라는 거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유신에 대한 거부와 비판이 한마디도 없다”고도 했다. 그는 다시 ‘장산곶매’ 이야기를 했다. “장산곶매는 일찍이 애미 애비를 잃고 너무나 배가 고팠습니다. 올빼미와 까마귀를 찾아가 밥 한 술을 빌다가 부리와 발톱을 빼앗겼죠. 땅 속으로 가면 쥐들이 쫓아오고, 바깥으로 가면 사람들이 보약이라며 달려들고. 그렇게 벼랑까지 쫓기다 보니 앞에는 끝도 없는 바다, 뒤에는 사람과 쥐새끼예요. 장산곶매는 벼랑 끝에서 넓은 바다와 하늘을 보며 깨친 바가 있어 힘이 약한 짐승은 잡아먹지 않고 일년에 두 번 나쁜 놈 하고만 싸우기로 합니다. 장산곶매가 싸움을 떠나는 날 밤이면 숲에서 ‘딱, 딱’ 하는 소리가 나요. 부리질로 제 둥지를 ‘딱, 딱’ 까부수는 소리. 집에 집착하면 온몸으로 싸울 수가 없어요. 싸움을 할 때는 목숨을 걸어야 돼요.” 2009년 백기완은 “한평생 하는 일들이 죄다 실패였다. 다시 실패의 어두움 속으로 반딧불이를 찾아 뛰어드는 느낌”이라고 했다. 어둠 속에 뛰어드는 그는 싸움을 멈출 생각이 없다. 백기완은 둥지가 없다. 백기완은 여전히 거리에 있다(하편에 계속).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백기완은 ▲1933년 황해도 은율 출생 ▲1953년 농민운동 시작 ▲1965년 한·일협정 반대 운동 ▲1974년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15년형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으로 징역형, 1981년 3·1절 특사로 석방 ▲1987년 민중후보로 대선 출마 뒤 단일화 주장하며 사퇴 ▲1988년 통일문제연구소 개소 ▲1992년 민중후보로 다시 대선 출마, 낙선 ▲1999년 계간 ‘노나메기’ 창간 ▲2002년 대한축구협회 요청으로 월드컵대표팀에게 강연, 히딩크 감독과 인연 ■주요 저서 항일 민족론(1986) 장산곶매 이야기(1994) 백기완의 통일이야기(2003) 사랑도 이름도 명예도 남김없이(2009) 시집 이제 때는 왔다(1985), 젊은 날(1990) 극본 대륙(1998)
  • “화학물질 사고 기업이 전액 배상해야” 윤성규 환경부 장관 단독 인터뷰

    “화학물질 사고 기업이 전액 배상해야” 윤성규 환경부 장관 단독 인터뷰

    “최근 화학물질 유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현장에서 경험 위주로 작업하고 안전 규칙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가해자에게 환경오염 피해에 대해 배상 책임을 묻는 법률을 만들 계획이다.” 정부는 환경피해 예방 및 구제에 관한 법률(환경책임법) 제정을 통해 환경오염 피해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하고, 구제기금도 마련하도록 제도화하기로 했다. 사고 원인자가 보상과 배상을 하도록 하고, 비용은 보험회사가 책임지는 형태다. 아울러 같은 회사에서 일정 기간 내에 잇따라 사고가 나면 불이익을 주는 ‘3진 아웃제’도 도입할 예정이다. 취임 한 달을 맞은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1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안 해결과 향후 환경복지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까다로운 업무 스타일 때문에 붙은 ‘독일 병정’이란 별칭은 옛말이다. 바쁘다 보니 ‘연필 깎을 시간도 없다’면서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다음은 윤 장관과 일문일답. →취임 한 달 동안의 소회와 환경부 수장으로서 각오를 밝힌다면. -환경부 본부를 떠난 지 9년, 공직에서 물러난 지 4년 만에 다시 환경부에 돌아왔다. 환경부는 젊음을 바친 곳이기에, 돌아왔을 때에는 마음의 고향에 왔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한편으론 시대적 과업 때문에 막중한 책임감도 느낀다. 환경에 대한 현 세대들의 요구뿐만 아니라, 말 못하는 동식물과 후세대가 전하는 무언의 메시지까지 귀 담아 듣고 대안을 제시하도록 하겠다. →잇따른 화학물질 유출 사고에 대해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대안은. -그간의 화학사고는 유독가스 분출로 짧은 시간에 큰 피해가 발생하고, 대응이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사전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기관 간의 역할을 분담하고, 대응 기관의 전문성도 확보돼야 한다. 화학사고에 대한 국민 불안을 해소할 수 있도록 사고 예방에서부터 대응, 피해 보상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효과적인 대책을 조속히 만들겠다.  먼저 사고 예방을 위해 낡은 시설에 대한 점검과 안전교육, 지도·감독 등을 강화하겠다. 유해 화학물질 사고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선진국형 ‘장외영향평가’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이 제도는 화학업체나 시설을 설치할 때 사고가 발생하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전에 예측해 대응책을 만드는 것이다. 개발할 때 사전 환경영향평가를 받는 것과 같은 의미로 보면 된다. 환경오염 피해 원인자에게 배상 책임을 지우고, 원인자 없는 환경오염 피해 사고에 대비해 환경오염 피해 구제기금도 조성할 계획이다. →피해 배상제도와 기금 조성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화학물질 사고 발생과 허술한 사고 수습의 가장 큰 원인이 경영진의 안전 불감증에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는 ‘피해배상 책임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사고 발생 위험도가 높은 업종(69종)에 대하여는 의무적으로 ‘환경책임보험’에 가입하도록 해 원인자(가해자)가 피해를 책임 배상하게 하는 제도다.  원인자가 불명·부존재·무능력일 경우, 환경오염 피해 구제기금으로 피해를 구제토록 할 방침이다. 이른 시일 내에 특별법을 제정하겠다. 아마도 올해 중에는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법률 명칭은 환경책임법인데 ‘환경피해 예방 및 구제에 관한 법률’로 구체적인 대안을 담을 것이다. 경북 구미시 불산 유출 사고와 같은 대형 사고가 났을 경우 사고 기업이 그 피해를 배상하지 못해 세금으로 전액 지원했다.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면 환경오염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고 피해액을 해당 회사가 배상하게 돼 경영진이 화학물질 관리에 신경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세한 중소기업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보험료의 일정 비율을 보조하는 방안도 강구하겠다. →새 정부는 ‘국민복지시대’를 강조한다. ‘환경복지’에 대한 열망도 높은데 실현 방안은. -환경복지는 환경 서비스 혜택을 누구나 동등하게 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를 위해 먼저 농어촌의 환경서비스 격차를 해소할 계획이다. 상수도를 대폭 확충하고, 폐비닐 등 농촌폐기물 수거를 강화하고, 발암성 석면이 함유된 슬레이트 지붕을 안전하게 철거하는 사업 등을 역점적으로 추진하겠다. 아울러 도시민도 대문 밖에서 손쉽게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자연마당이나 생태놀이터와 같은 휴식 공간도 지속적으로 확충해 나가겠다. →4대강 사업에 대한 부실 논란이 계속 제기된다. 불신과 의혹을 없애기 위한 조치는. -불신과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찬성이나 반대에 치우친 모범 답안이 아닌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정답을 도출해야 한다. 중립성·객관성·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점검·평가 주체를 선정해서 검증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다만 환경부나 국토교통부 등 4대강 살리기사업 추진 주체가 직접 검증을 수행하는 것은 신뢰성 측면에서 논란이 있을 수 있으므로 전문가 집단인 제3자가 주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4대강 사업의 검증·평가 추진 체계 등에 대해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의사결정 과정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부 방침이 확정되면 그에 맞춰 환경부에서는 국민이 공감하는 검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수도권매립지 매립 연한을 놓고 서울시와 인천시가 갈등을 빚고 있다. 해결 방안은. -쓰레기 매립과 관련된 업무는 지방자치단체의 고유권한이다. 정부가 나서서 해결책을 운운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해 관계가 얽혀 있는 서울시와 인천시 그리고 경기도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협상 테이블에서 머리를 맞대고 큰 틀에서 무엇이 올바른 방향인지 결론을 내야 한다. →지난 정부는 민간단체와 대화 단절 등 갈등을 빚었다. 향후 시민·환경단체들과 관계 개선 방안은. -지난 정부 때는 환경단체에서 촛불시위 참여와 4대강 사업반대에 편향된 비정부기구(NGO) 활동 등으로 정부와 공식 대화가 단절되고, 보조금 지원 중단 등 갈등구조가 지속되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민간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국정 현안 해결과 정책 개발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환경단체와 원활한 소통이 필요하다. 주요 환경단체 사무처장과 정책 토론 워크숍을 개최하고, 환경단체 대표자와의 면담 등을 활성화하겠다 →새 정부의 정책 핵심 키워드가 창조경제, 일자리 창출인데 환경부의 복안은. -창조경제는 기존 생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와 시장을 창출하고, 국민행복의 수준을 높여 나갈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하지만 환경 분야의 일자리는 이제까지 기업의 규모나 근무환경 측면에서 매력 있는 일자리로 여겨지지 않았다. 앞으로는 환경 서비스를 선진화하고 양질의 일자리도 늘려가며 환경과 경제의 창조적 선순환을 이루도록 노력하겠다. 생활소음 저감이나 실내 공기질 개선과 같은 창조적인 환경산업을 육성하고, 국민의 안전과 복지에 기여하도록 하겠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1956년 충북 충주 출생 ▲충주공업전문학교(5년제), 한양대 기계공학 ▲건설부 시행 국가공무원 공채 7급 ▲제13회 기술고등고시 합격 ▲환경청, 환경처 근무(5급) ▲수질보전국장, 환경정책국장 ▲산업자원부 자원정책심의관 ▲국립환경과학원장, 기상청 차장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객원 연구위원 ▲환경부 지원 ‘폐자원에너지화 온실가스 사업단’ 단장 세종 유진상 기자 jsr@seoul.co.kr
  • “4대강, 전문가가 검증해야 중립·객관성 담보될 것”

    “4대강, 전문가가 검증해야 중립·객관성 담보될 것”

    “최근 화학물질 유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현장에서 경험 위주로 작업하고 안전 규칙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가해자에게 환경오염 피해에 대해 배상 책임을 묻는 법률을 만들 계획이다.” 정부는 환경피해 예방 및 구제에 관한 법률(환경책임법) 제정을 통해 환경오염 피해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하고, 구제기금도 마련하도록 제도화하기로 했다. 사고 원인자가 보상과 배상을 하도록 하고, 비용은 보험회사가 책임지는 형태다. 아울러 같은 회사에서 일정 기간 내에 잇따라 사고가 나면 불이익을 주는 ‘3진 아웃제’도 도입할 예정이다. 취임 한 달을 맞은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1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안 해결과 향후 환경복지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까다로운 업무 스타일 때문에 붙은 ‘독일 병정’이란 별칭은 옛말이다. 바쁘다 보니 ‘연필 깎을 시간도 없다’면서 웃음을 지었다. 다음은 윤 장관과의 일문일답. →취임 한 달 동안의 소회와 환경부 수장으로서 각오를 밝힌다면. -환경부 본부를 떠난 지 9년, 공직에서 물러난 지 4년 만에 다시 환경부에 돌아왔다. 환경부는 젊음을 바친 곳이기에, 돌아왔을 때에는 마음의 고향에 왔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한편으론 시대적 과업 때문에 막중한 책임감도 느낀다. 환경에 대한 현 세대들의 요구뿐만 아니라, 말 못하는 동식물과 후세대가 전하는 무언의 메시지까지 귀 담아 듣고 대안을 제시하도록 하겠다. →잇따른 화학물질 유출 사고에 대해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대안은. -그간의 화학사고는 유독가스 분출로 짧은 시간에 큰 피해가 발생하고, 대응이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사전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기관 간의 역할을 분담하고, 대응 기관의 전문성도 확보해야 한다. 화학사고에 대한 국민 불안을 해소할 수 있도록 사고 예방에서부터 대응, 피해 보상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효과적인 대책을 조속히 만들겠다. 먼저 사고 예방을 위해 낡은 시설에 대한 점검과 안전교육, 지도·감독 등을 강화하겠다. 유해 화학물질 사고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선진국형 ‘장외영향평가’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이 제도는 화학업체나 시설을 설치할 때 사고가 발생하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전에 예측해 대응책을 만드는 것이다. 개발할 때 사전 환경영향평가를 받는 것과 같은 의미로 보면 된다. 환경오염 피해 원인자에게 배상 책임을 지우고, 원인자 없는 환경오염 피해 사고에 대비해 환경오염 피해 구제기금도 조성할 계획이다. →피해 배상제도와 기금 조성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화학물질 사고 발생과 허술한 사고 수습의 가장 큰 원인이 경영진의 안전 불감증에서 비롯된다.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는 ‘피해배상 책임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사고 발생 위험도가 높은 업종(69종)에 대해서는 의무적으로 ‘환경책임보험’에 가입하도록 해 원인자(가해자)가 피해를 책임 배상하게 하는 제도다. 원인자가 불명·부존재·무능력일 경우, 환경오염 피해 구제기금으로 피해를 구제토록 할 방침이다. 이른 시일 내에 특별법을 제정하겠다. 아마도 올해 중에는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법률 명칭은 환경책임법인데 ‘환경피해 예방 및 구제에 관한 법률’로 구체적인 대안을 담을 것이다. 경북 구미시 불산 유출 사고와 같은 대형 사고가 났을 경우 사고 기업이 그 피해를 배상하지 못해 세금으로 전액 지원했다.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면 환경오염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고 피해액을 해당 회사가 배상하게 돼 경영진이 화학물질 관리에 신경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세한 중소기업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보험료의 일정 비율을 보조하는 방안도 강구하겠다. →새 정부는 ‘국민복지시대’를 강조한다. ‘환경복지’에 대한 열망도 높은데 실현 방안은. -환경복지는 환경 서비스 혜택을 누구나 동등하게 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를 위해 먼저 농어촌의 환경서비스 격차를 해소할 계획이다. 상수도를 대폭 확충하고, 폐비닐 등 농촌폐기물 수거를 강화하고, 발암성 석면이 함유된 슬레이트 지붕을 안전하게 철거하는 사업 등을 역점적으로 추진하겠다. 아울러 도시민도 대문 밖에서 손쉽게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자연마당이나 생태놀이터와 같은 휴식 공간도 지속적으로 확충해 나가겠다. →4대강 사업에 대한 부실 논란이 계속 제기된다. 불신과 의혹을 없애기 위한 조치는. -불신과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찬성이나 반대에 치우친 모범 답안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정답을 도출해야 한다. 중립성·객관성·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점검·평가 주체를 선정해서 검증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다만 환경부나 국토교통부 등 4대강 살리기 사업 추진 주체가 직접 검증을 수행하는 것은 신뢰성 측면에서 논란이 있을 수 있으므로 전문가 집단인 제3자가 주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4대강 사업의 검증·평가 추진 체계 등에 대해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의사결정 과정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부 방침이 확정되면 그에 맞춰 환경부에서는 국민이 공감하는 검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수도권매립지 매립 연한을 놓고 서울시와 인천시가 갈등을 빚고 있다. 해결 방안은. -쓰레기 매립과 관련된 업무는 지방자치단체의 고유권한이다. 정부가 나서서 해결책을 운운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해 관계가 얽혀 있는 서울시와 인천시 그리고 경기도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협상 테이블에서 머리를 맞대고 큰 틀에서 무엇이 올바른 방향인지 결론을 내야 한다. →지난 정부는 민간단체와 대화 단절 등 갈등을 빚었다. 향후 시민·환경단체들과 관계 개선 방안은. -지난 정부 때는 환경단체에서 촛불시위 참여와 4대강 사업반대에 편향된 비정부기구(NGO) 활동 등으로 정부와 공식 대화가 단절되고, 보조금 지원 중단 등 갈등구조가 지속되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민간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국정 현안 해결과 정책 개발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환경단체와 원활한 소통이 필요하다. 주요 환경단체 사무처장과 정책 토론 워크숍을 개최하고, 환경단체 대표자와의 면담 등을 활성화하겠다 →새 정부의 정책 핵심 키워드가 창조경제, 일자리 창출인데 환경부의 복안은. -창조경제는 기존 생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와 시장을 창출하고, 국민행복의 수준을 높여 나갈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하지만 환경 분야의 일자리는 이제까지 기업의 규모나 근무환경 측면에서 매력 있는 일자리로 여겨지지 않았다. 앞으로는 환경 서비스를 선진화하고 양질의 일자리도 늘려가며 환경과 경제의 창조적 선순환을 이루도록 노력하겠다. 생활소음 저감이나 실내 공기질 개선과 같은 창조적인 환경산업을 육성하고, 국민의 안전과 복지에 기여하도록 하겠다. 유진상 기자 jsr@seoul.co.kr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1956년 충북 충주 출생 ▲충주공업전문학교(5년제), 한양대 기계공학 ▲건설부 시행 국가공무원 공채 7급 ▲ 제13회 기술고등고시 합격 ▲수질보전국장, 환경정책국장 ▲산업자원부 자원정책심의관 ▲국립환경과학원장, 기상청 차장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객원 연구위원 ▲환경부 지원 ‘폐자원에너지화 온실가스 사업단’ 단장
  • 지방직 합격 원한다면 ‘지역 >응시율 >합격선’ 살펴라

    지방직 합격 원한다면 ‘지역 >응시율 >합격선’ 살펴라

    지방직 9급 공무원 공개경쟁채용 응시원서 접수가 다음 달부터 이어진다. 원서접수 기간은 지방자치단체별로 다르다. 지난 6일 접수가 마감된 국가직 9급은 오는 13일까지 원서 접수를 취소할 수 있다. 수험생이 공무원 시험에 응시할 때 가장 고민하는 것은 직렬 선택으로 조사됐다. 행정직, 세무직, 관세직 등의 직렬을 고를 때 수험생이 고려하는 순서는 직렬별 선발인원과 예년 경쟁률, 합격선인 것으로 최근 수험생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서 나타났다. 지방직 9급 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은 거주지 요건이 완화되면서 지역선택의 폭이 더 넓어졌다. 지방공무원 채용시험 거주지 제한요건에서 ‘등록기준지’가 사라지고, ‘주민등록상 주소지’로 단일화됐다. 지방자치단체에 주민등록상 거주한 기간이 출생부터 올해 1월 1일 현재까지 합산하여 3년 이상이면 해당 지자체 공무원 공채에 응시할 수 있다. 지난해 지방직 9급 시험을 살펴보면 채용인원이 늘어나면서 평균 경쟁률은 떨어졌다. 대구시, 전남도, 경북도를 제외한 나머지 시·도의 경쟁률이 모두 2011년보다 낮아졌다. 경쟁률이 떨어진 것과는 반대로 응시율은 3년 연속 상승했다. 15개 시·도의 평균 응시율은 70.4%를 기록했다. 응시율이 높아진 것은 합격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충남도를 제외한 지역의 9급 일반행정직의 지난해 합격선은 2011년보다 모두 올랐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수험 전문가들은 지방직 원서접수를 할 때 시·도별 경쟁률, 응시율 및 합격선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방직 9급 공무원시험에 지원하는 수험생들은 오는 8월 24일 시험이 치러지는 16개 시·도 가운데 자신이 응시할 지역을 먼저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별도로 치른다. 올해 지방직 9급 시험에서 일반행정직 9급 기준으로 가장 많은 인원을 채용하는 지역은 ▲경기도 991명 ▲경북도 388명 ▲경남도 337명 등이다. 16개 시·도의 채용인원에 이어 수험생들은 시·군별 선발규모도 살펴봐야 한다. 도 단위의 지역은 시·군별로 나뉘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올해 9급 공채 인원이 일반행정직에 세무직, 전산직, 사회복지직 등을 모두 합하면 1088명에 이른다. 일반행정직은 시·군별로도 ▲수원시 216명 ▲성남시 99명 ▲남양주시 75명 ▲시흥시 72명 등으로 선발인원의 차이가 있다. 다른 도의 시·군별 선발인원을 살펴보면 ▲강원도 36명 ▲충북 충주시 48명 ▲충남 천안시 27명 ▲전북 남원시 40명 ▲전남 완도군 25명 ▲경북 김천시 37명 ▲경남 창원시 43명 ▲제주 서귀포시 30명 등이다. 경기도 내에서도 일반행정직을 가장 많이 뽑는 수원시의 지난해 응시율은 70.1%로 평균 응시율보다 높았으며 합격선은 87.5점이었다. 다른 시·군의 합격선을 살펴보면 청주시 76.5점, 서산시 83점, 남원시 85점, 김천시 86점, 창원시 86점 등이다. 올해는 선택과목의 변화로 공무원 시험에서 직렬구분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게 수험생과 학원가의 평이다. 사회, 과학, 수학 등 고교 교과목의 선택과목 도입으로 모든 직렬의 선택과목이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수험 전문가는 “직렬선택에 지역선택까지 더해지는 지방직 시험의 응시원서 접수는 한층 복잡해질 수 있다. 지방직 채용은 어느 지역 및 직렬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합격의 당락이 좌우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선발인원이 많은 지역에 응시하기보다는 평균 경쟁률 및 응시율 현황, 합격선 증감 여부를 꼼꼼히 따져서 응시 지역을 선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근무 지역 및 주변 여건 등도 고려해야 합격하고 나서 임용을 포기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지방직 원서접수는 오는 5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시·도별로 일정이 다르므로 수험생들은 반드시 지역별 공고문을 참고해야 한다. 경기도 9급 공채 접수기간은 5월 6~9일이다. 접수기간은 지역별로 다르지만, 필기시험일은 8월 24일로 동일해 모든 지자체가 같은 날 시험을 치른다. 또 자신이 해당 지역에서 요구하는 거주지 요건에 들어맞는지도 반드시 확인해봐야 한다. 16개 시·도 지방직 공무원의 원서접수는 자방자치단체 통합 인터넷접수센터(local.gosi.go.kr)에서 할 수 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반갑다, 정통멜로의 귀환

    반갑다, 정통멜로의 귀환

    2013년 봄, 안방극장에 정통 멜로의 꽃이 만개하고 있다. 남녀의 순수한 사랑을 주제로 한 정통 멜로는 사극과 전문직 드라마의 범람 속에서 외면받아온 것이 사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KBS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를 시작으로 올해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 MBC ‘남자가 사랑할 때’ 등이 모두 같은 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정통 멜로의 부활을 알리고 있다. ‘겨울 연가’, ‘천국의 계단’에서 시작된 한국형 정통 멜로 드라마는 배용준, 권상우 등 수많은 한류 스타를 배출하고 K팝의 유행에 물꼬를 튼 한류의 첨병이었다. 하지만 출생의 비밀, 기억 상실, 불치병 등 비슷한 소재가 반복되면서 드라마의 질이 저하되고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자기 복제’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후 ‘내 이름은 김삼순’, ‘시크릿 가든’ 등 캐릭터를 강조하고 장르를 변형한 로맨틱 코미디가 대유행을 했다. 하지만 최근 2~3년 사이에는 KBS ‘추노’, MBC ‘골든 타임’ 등 아예 멜로 라인을 배제하거나 축소된 작품이 인기를 끌면서 정통 멜로는 안방극장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해 KBS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에서 MBC ‘보고 싶다’,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 MBC ‘남자가 사랑할 때’까지 바통을 이어받으며 정통 멜로의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다음 달에는 김남길·손예진 주연의 정통 멜로 ‘상어’가 뒤를 이을 예정이다. 최근 들어 진부하고 신파조라는 선입견을 깨고 정통 멜로가 각광을 받은 데는 여성 스타 작가들의 탄탄한 대본이 한몫했다. 이들은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선을 개연성 있고 감각적으로 그리면서 시청자들의 감수성을 자극했다. 멜로의 전형적인 공식을 따르기보다는 신선하고 새로운 감각으로 재탄생시킨 작품들도 많았다. 수목극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남자가 사랑할때’는 여자 주연 서미도(신세경)와 남자 조연 이재희(연우진)의 멜로 라인 속에 남자 주연 한태상(송승헌)의 순애보적인 짝사랑을 그려 기존 멜로의 공식을 비틀어 재미를 주고 있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의 배신으로 상처받은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착한 남자’나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했지만, 시각장애인 여자와 전문 도박사의 이야기를 감정의 밑바닥까지 절절하게 끌어낸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미안하다, 사랑한다’와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등으로 한국 멜로 드라마의 한 획을 그었던 이경희, 노희경 작가의 필력에 신선한 감각이 더해져 흥행에 성공했다. ‘남자가 사랑할 때’의 김인영 작가 역시 ‘태양의 여자’에서 탄탄한 대본으로 통속 멜로의 부활을 알린 작가이고 ‘보고 싶다’의 문희정 작가도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그대, 웃어요’를 흥행시킨 작가로 중견 여성 작가의 파워를 보여주고 있다. 방송 전문가들은 정통 멜로를 갈구하는 기본적인 시청자층이 늘 존재하기 때문에 편성에서 빠지지 않는 장르라고 강조하면서도 최루성 정통 멜로가 인기를 끄는 것은 대중들의 사회심리적인 원인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강현 KBS 드라마국장은 “요즘 경기도 좋지 않고 정치나 외교의 불안 및 긴장 관계가 계속되면서 동화 같은 멜로나 사랑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잊으려는 심리에서 정통 멜로가 부활한 것 같다”면서 “2013년형 멜로는 소재의 자극성이 아니라 멜로선을 중심으로 완성도나 작품성을 잃지 않고 소설적인 분위기나 드라마적인 극성을 살린 작품이 많다”고 말했다. MBC 드라마의 한 관계자는 “세상이 각박해지고 가볍고 계산적인 만남이 많아지면서 어떤 이해관계도 없는 순수한 사랑을 그린 정통 멜로가 일종의 판타지처럼 여겨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주인공 중심에서 남성 신파로 멜로의 중심축이 이동했고, 멜로가 여성 시청자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정통 멜로는 액션과 함께 복잡한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을 때 선호되는 장르이기 때문에 조금 무겁고 감정적인 소비가 있더라도 소구하는 지점이 있다”면서 “특히 최근에는 남녀를 떠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자기 연민이나 외로움 등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감에 대한 고민을 담은 무게감 있는 작품이 많아 자기 감정과 심리 상태를 파악하고 이해하려는 시청자들이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한국에 오래 살았지만 어려운 法, 쉽게 알게 돼”

    “한국에 오래 살았지만 어려운 法, 쉽게 알게 돼”

    “혼인 신고부터 전세 계약까지 등록해야 하는 것도 많고 결정해야 하는 것도 많아요. 어려운 법을 쉽게 배울 기회라고 생각해서 왔어요.” 다문화가정 이주여성들이 27일 서울동부지법(광진구 아차산로)에 떴다. 바람직한 재판에 대한 각계각층의 의견을 듣는 동부지법의 ‘지혜나눔’ 프로그램에 참석했다. 중국, 일본, 베트남 등에서 온 30명의 이주여성은 법원 구석구석을 누비며 생활 속 법률을 익혔다. 가족관계 등록 관계법령을 배울 때는 모두 귀를 쫑긋 세웠다. 출생신고, 국적취득(귀화), 혼인신고 등은 다문화 여성이라면 꼭 거쳤거나 거쳐야 하는 법적인 관문. 조금 어려운 단어와 법률 용어가 나왔지만 그때마다 입으로 읊조리며 수첩에 꾹꾹 눌러썼다. 법정에서 실제 재판도 봤다. 만취해 딸 같은 직장 동료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남성에 대한 심문을 숨죽여 지켜봤다. 몇몇은 수의를 입고 퇴장하는 피고인을 매서운 눈으로 끝까지 째려봤다. 인솔한 사무관에게 “그럼 저 사람은 교도소에서 5년을 사는 거냐”, “국민참여재판은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묻기도 했다. 자녀 4명을 키운다는 일본인 스기타니 나오미(42)는 “다문화 가정에서도 잘나가는 인물이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면서 “엄마가 똑똑해야 그런 자식을 키울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중국에서 온 하미선(38)씨도 “한국에서 16년을 살았는데 여전히 편견을 느낄 때가 많다”면서 “혹시 우리 애도 다문화 자녀로 눈총받지 않을까 싶어 직접 배워서 가르치려고 왔다”고 말했다. 곧이어 열린 현직 여성판사와의 간담회. 참석자들은 ‘아줌마’란 공통점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수다를 시작했다. 대체 공부를 얼마나 잘해야 판사가 되는 거냐고 묻는 열혈 학부모부터 재판은 한달에 몇번을 하느냐, 변호사 선임료는 얼마나 되느냐 등 화기애애한 질문이 이어졌다. 한 중국 출신 여성(40)은 “밀린 월급 못 받은 외국인 직원들이 민사소송에서 승소했는데 사장이 돈 없다고 드러누웠다”면서 “처음부터 그럴 작정으로 외국인들만 고용했던 것 같다”고 푸념했다. 원정숙 판사는 “이미 승소판결을 받은 채권도 10년마다 다시 재판을 받아야 나중에 임금을 청구할 수 있다”고 조언하고서 법률구조공단, 소송구조제도, 가압류 절차 등 관련기관·제도를 쉽게 설명했다. 정슬기 광진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담당자는 “한국문화에 익숙한 분들인데도 법이라면 어려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가족관계 등록, 국적취득 등 실생활에 꼭 필요한 부분을 배워서 호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한 가정 하나의 식물… ‘녹색도시’ 노원

    노원구가 이번 식목일을 계기로 가정마다 한 그루 이상의 나무나 꽃을 심는 범구민 운동을 펼친다. 노원구는 나무 심기야말로 가장 효과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활동일 뿐 아니라 삭막한 콘크리트 경관을 푸르게 바꾸는 지름길이라는 판단에서 ‘한 가정에 하나의 식물 심기’를 전개한다고 27일 밝혔다. 그동안 의례적으로 이어져 온 식목일 행사 대신 주민들이 연중 최소한 한 그루가 넘는 ‘나무’나 ‘꽃’을 직접 심게 함으로써 구 전역을 푸른 도시로 거듭나게 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구에서는 다음 달 15일까지 산림 훼손지, 아파트 단지 내부, 학교, 자투리 땅 등에 나무 약 4만주를 심고 경춘선 폐선 부지와 당현천 등에는 꽃 2만본을 심기로 했다. 568개에 이르는 모든 어린이집에 산철쭉, 백합나무 등을 나눠 주고 어린이집 아이들이 선생님과 학부모가 참여한 가운데 아파트 단지 등에 직접 나무를 심는 활동도 전개한다. 또한 주민들이 출생, 결혼, 입학, 취업 등 기쁜 날을 오래 간직하거나 가족에 대한 염원 등을 담기 위해 하는 기념 식수 행사를 오는 30일 오전 10시 불암산 태풍 피해지(현대6차아파트 뒤편)에서 개최한다. 자녀가 건강하게 잘 크기를 기원하는 부모들이 자녀와 함께 신청한 경우가 많았다. 더불어 아파트, 학교, 골목길, 담장, 자투리 땅 등에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녹지를 조성할 수 있도록 ‘나무 심기 주민 공모’ 신청과 함께 ‘내 나무 갖기 캠페인’도 펼치고 있다. 19개 동에서도 당현천(중계동) 공원, 아파트 단지 내 빈터 등 동별로 자체적으로 장소를 선정해 주민 등 1000여명이 잣나무, 사철나무, 회양목, 철쭉 등을 9000주가량 심는다. 나무 신청은 다음 달 14일까지 구청 공원녹지과(2116-3954)를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 혹은 이메일(khl6025@hanmail.net)로 하면 된다. 김성환 구청장은 “기후변화에 대응한 저탄소 녹색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더 많은 나무를 심어야 한다”면서 “주민들이 심는 한 그루가 꽃과 숲이 있는 녹색도시 노원을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마권 팔아 먹고사는 공기업, 생각 바꿔야… 캐릭터·전시·주변 환경까지 마케팅 질주”

    “마권 팔아 먹고사는 공기업, 생각 바꿔야… 캐릭터·전시·주변 환경까지 마케팅 질주”

    “한국마사회는 그저 말 경주나 하는 그런 공기업으로 치부되면 안 됩니다. 더 큰 틀에서 전 국민의 레저활동을 보장하고 또 개발하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렇게 한 단계 향상된 마사회의 정체성을 안팎에서 인식할 수 있게 할 겁니다.” 장태평(64) 한국마사회(KRA) 회장은 경제기획원과 재정경제부에서 예산과 세제 업무를 두루 거친 경제 관료 출신이다. 또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거치면서 농업 전문가의 위치를 굳혔고 초등학교 때부터 시(詩)를 조탁해 온 문필가다. 고향 남도의 산자락을 닮은 듯 부드러운 인상이지만 일을 할 때는 냉정할 만큼 철저하다는 게 중평이다. “어떤 일을 자기가 최선을 다해서 하더라도 늘 부족함은 있게 마련이다. 다만, 그걸 보완하고 발전시켜야 앞으로 더욱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말을 장관 시절 입에 달고 살았다. 1년 4개월.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렇다고 짧은 시간은 더욱 아니다. 2011년 11월 제33대 한국마사회장 자리에 앉은 뒤 흐른 시간들이다. 주위에 흐드러진 벚꽃나무들이 봄을 질투하는 반짝 추위에 젖몸살 앓듯 꽃망울을 터뜨리지 못하던 지난 22일 경기 과천시 서울경마공원 한국마사회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방에서 나오던 이들 가운데 안면 있는 임원 한 분이 반색하듯 말했다. “어휴, 덕분에 회의가 일찍 끝났습니다. 막 불호령이 떨어질 참이었거든요.” 앉자마자 대뜸 “부끄럽다”는 말부터 튀어나왔다. 취임 1년 4개월의 소회로 가볍게 얘기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경영의 틀을 바꿔 마사회가 일류 공기업이 되도록 하겠다고 취임식 때 우리 식구들에게 약속했는데 곰곰이 짚어 보면 그게 참 먼 길인 듯합니다”라며 애석한 표정을 지었다. 장 회장은 그러나 “진행 중일 뿐 아직 끝난 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 뒤 “일류가 되기 위한 조건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혁신과 새로워지기 위한 노력이 으뜸”이라면서 “현재 마사회가 걷고 있는 길은 새로 태어나기 위한, 남과 자신에게 결코 부끄럽지 않은 가시밭길임을 이해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아직은 미흡하지만 ‘KRA 승마힐링센터’를 비롯해 사회적 기업형 사회 공헌 사업단체 ‘에코그린팜’과 ‘장애 청년 꿈을 잡고’ 설립 등의 전략적 사업들이 성공적으로 추진된 점, 또 전 직원 대상 연봉제 확대를 통한 성과 중심 조직 문화의 개선, 경마 매출에 편중된 수익 구조를 다각화하기 위한 마케팅 혁신 노력 등 취임 이후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자부했다. 장 회장이 한시도 빼놓지 않고 고민하는 것은 마사회 사업의 다각화다. 쉽게 말해 돈 버는 수단을 현재 중점 사업인 경마 외에 여러 개로 만드는 것이다. 장 회장은 “경마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사양길에 접어든 지 오래”라며 “현재 98%에 이르는 마권 발매율을 보더라도 마사회의 수익원이 얼마나 단순하고 편향적인지를 말해 준다”고 했다. 그는 이어 “호주경마클럽만 보더라도 마권 매출은 22%이고 입장료를 합쳐 봐야 30%도 채 안 되는데 대신 식음료와 스폰서 등으로 나머지 70%를 번다”면서 “호주만큼은 아니더라도 마권 발매액 비중 70%, 기타 수익은 30%까지 조정해 나간다는 게 임기 내 목표”라고 강조했다. ‘기업 다각화’란 화두가 던져지자 장 회장의 눈빛이 사뭇 달라졌다. 최근 공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미래전략실’이라는 전담 부서를 만들어 본격적인 기업 마케팅에 뛰어든 그는 “멀리서 아주 어렵게 찾을 필요는 없다. 우리 주변에 있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전부 돈을 벌 수 있는 마케팅 수단”이라고 말하면서 “지금 마사회는 그것보다 훨씬 덩치도 크고 훌륭한 것들을 가지고 있는데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마권을 팔아야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은 이제 확 바꿔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그는 특히 서울경마공원 내 컨벤션홀을 예로 들면서 “전시컨벤션사업(MICE) 등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방안을 먼저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마사회라는 정체성에 흠이 가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장 회장은 “살아 있는 모든 건 바뀌어야 산다”고 잘라 말한 뒤 “컨벤션 사업뿐 아니라 관광 상품 개발을 통한 경마공원의 테마파크화, 말 캐릭터 사업, 게임 사업, 스크린 승마에 이어 식음료 사업까지 놀고 먹는 모든 분야에 걸쳐 신종 수익 사업을 개발하는 데 마사회의 핵심 역량을 모으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서울경마공원이 속해 있는 경기 과천시의 리노베이션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할 수만 있다면 정부종합청사의 단계적 이전에 따른 유휴지 등을 활용해 미국 샌즈그룹의 호텔 단지와 다국적 테마파크 공원인 유니버설스튜디오처럼 거대 레저타운으로 과천시를 만들고 싶다”는 구상도 내놓았다. “그러기 위해선 더 큰 틀에서 이를 기획, 컨트롤할 수 있는 최상위 레저 분야의 ‘타워’가 필요한데 마사회가 이 중요한 위치에 서고 싶다”는 바람도 드러냈다. 장 회장은 한국 경마의 국제화도 강조했다. 마사회는 2022년 첫 국제경마대회 개최를 목표로 차근차근 걸음을 옮기고 있다. 장 회장은 “현재 일본과 호주, 아일랜드 등 세계 각국과 경마 교류를 시행하고 있지만 아쉬운 건 기수들의 교류에만 그치고 있다는 점”이라며 “경마 국제화를 위해서는 기수들뿐 아니라 경주마의 교류도 이뤄져야 하므로 이를 위해 세계 각국과 단계적으로 검역 협정을 맺는 등 2022년 본격적인 한국 경마의 해외 진출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이에 앞서 한국 경마가 올해 처음으로 일본의 경주마를 초청하는 한·일 국제 경마교류전을 개최할 예정”이라면서 “오는 9월 일본 지방경마회 소속 경주마 세 마리를 초청해 서울경마공원 소속 최강의 경주마 11마리와 승부를 겨루고, 11월에는 우리나라 경주마 세 마리가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경주마와 자웅을 겨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른바 경마 한·일전이다. 장 회장은 덧붙여 “이 경주에 걸린 상금은 2억 5000만원으로 해외 유명 경주에 견줘 많지 않지만 경주마 해외 수송을 비롯해 2022년 국제경마대회를 개최하기 위한 경험을 쌓는다는 의미가 있다”며 “한·일 교류전은 한국 경마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더 큰 규모의 국제대회를 개최하기 위한 디딤돌”이라고 설명했다. 또 “2022년 한국 최초의 국제경마대회는 미국의 켄터키더비, 호주의 멜버른컵, 일본의 저팬컵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 수준의 대회가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장 회장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를 연마해 온 문필가다. 블로그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도 매우 능숙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농식품부 장관 때부터 ‘새벽정담’이란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기에 실린 글과 사진을 모아 지난해 말 ‘새벽을 여는 편지’를 출간하기도 했다. 최고경영자(CEO)와 시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그는 “시는 사물에 대한 통찰력과 상상력을 키우는 작업이죠. 이를 통해 꿈과 미래를 그려 볼 수도 있고요. 따라서 시야말로 기업을 이끄는 경영자가 반드시 조련해야 하는 것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때가 되면 ‘세종대왕 평전’을 내고 싶다는 욕심도 감추지 않았다. 글 사진 최병규 기자 cbk91065@seoul.co.kr ■ 약력  1949년 전남 무안 출생  1977년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행정고시 20회  1990년 경제기획원 장관 비서관  2000년 재정경제부 국세심판원 상임심판관  2004년 농림부 농업정책국장  2005년 농림부 농업구조정책국장   재정경제부 기획홍보관리실장  2006년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  2008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2011년 더 푸른 미래재단 이사장  2011년 11월~ 한국마사회장   ■ 작품집  -새벽정담(블로그)  -잠언시집  -강물은 바람따라 길을 바꾸지 않는다 -새벽을 여는 편지
  • [부고] ‘일제 식민교육 저항’ 애국지사 이봉양 선생

    일제강점기 식민교육에 저항했던 애국지사 이봉양 선생이 18일 오전 6시 별세했다. 89세. 평안북도 용천 출생인 고인은 1938년 7월 김원구, 전약용 등 친구들과 함께 태극기 알리기 운동을 비롯해 역사 연구에 매진했다. 1939년 9월 지우개에 태극기를 새겨 친구들에게 나눠 주는가 하면, 신의주 중학교에 다니던 1940년 9월에는 하숙집에서 일본의 황국식민교육정책에 항거하기로 뜻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1942년 3월 이러한 활동이 일본 경찰에 적발됐고, 고인은 태극기와 역사책을 압수당한 뒤 체포됐다. 이 선생은 이듬해 4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 2남 2녀가 있다. 발인은 20일 오전 7시,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4묘역이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영안실 1호실. (02)2258-5940.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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