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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부인과 - 사진관 ‘뒷돈 거래’ 산모·아기정보 1만4000건 유출

    부산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아기 사진 스튜디오 업체로부터 초음파 태아 영상촬영 장치 등을 받는 조건으로 임신부의 개인정보 1만 4000여건을 건넨 혐의(개인정보보호법 위반)로 A(80)씨 등 부산 유명 산부인과 3곳의 병원장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5일 밝혔다. 경찰은 또 아기 사진 스튜디오 대표 3명과 태아 영상촬영·장비업체 대표 등 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A씨 등 병원장들은 2011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초음파 태아 영상촬영·저장 장비 설치와 유지 대금을 대납받는 조건으로 신생아실에서 보관하는 임신부 1만 4774명의 개인정보를 아기 사진 스튜디오에 몰래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유출된 개인정보는 산모 성명과 주소, 연락처, 태아 출생일, 혈액형 등이다. 병원들은 이러한 장비를 받아 적게는 2700여만원에서 많게는 4000만원 등 총 1억 400만원 정도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사진 스튜디오 대표들은 빼낸 개인정보로 백일·돌 사진, 성장앨범 영업을 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새누리 민경욱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새누리 민경욱

    ‘청와대의 입’에서 선량(選良)으로 변신한 인천 연수을의 새누리당 민경욱 당선자는 “국회와 청와대 간 소통의 적임자”라면서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Q. KBS 앵커 출신에 청와대 대변인까지 지냈다. 뭐가 부족해 정치를 선택했나. A. 선택한 게 아니라 찾아왔다.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의 대변인직 제안을 수락하는데 나흘을 고심했다. 김 실장이 물러나기 전에는 따로 불러 “방송국에 계시는 분 모셔와 힘들게 해 미안하다. 민 대변인의 운명이다”고 하더라. 공직에 입문한다 생각했는데, 결국 정치를 하는 단초가 됐다. Q. 정치가 갖는 의미는. A. 고작 선거 한 번 치렀을 뿐이다. 아직 정치를 모른다. 유리상자 안에 나를 발가벗겨 유권자들의 평가를 받아야 했고, 혼신의 힘을 바쳤다. 정치는 전력투구다. Q. 정치인으로서 행복한가. A. ‘시키는 일’에서 벗어났다. 앵커와 대변인의 자리는 하고 싶은 일이나 시키지 않는 일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앵커와 대변인 당시 모습에 ‘거만하다’는 말도 참 많이 들었다. 그래서 선거 운동 기간 마술을 했고, 춤을 췄고, 창도 했다. 끼가 많은 원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행복하다. Q. ‘엄친아’ 이미지다. A. 진정성을 봐달라. 언론사 입사시험만 20번 떨어지고 가까스로 합격했다. 동기 중 나이가 제일 많아 더 열심히 했다. 기자 생활 23년 동안 청와대 출입은 못했는데, 청와대 대변인 역할도 했다. 정치를 하면서 위기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칙은 안 한다. 앞 다르고 뒤 다르다는 얘기는 듣지 않겠다. Q. ‘민경욱식’ 진정성이 현실 정치를 어떻게 바꿀 수 있나. A. 말귀를 잘 알아듣는다. 기자로서 대변인으로서 소중한 자산이다. 내 뜻을 굽힐 줄 알고, 인적 네트워크도 있다. 당·청 간, 계파 간, 여야 간 소통에 큰 쓰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Q. 20대 국회에서 나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A. 막내라서 일하기 좋다. 기자 시절 여야를 출입했다. 국회라는 공간이 낯설지 않다. 대개의 초선 의원들은 중앙정치에 대한 이해가 낮은 편이라 시간을 허비할 수 있다. 나는 아니다. 현 정부의 정치 철학도 공유했던 만큼 국회와 청와대 간 소통의 적임자가 될 수 있다고 본다. Q. 정치적 롤모델은. A. 박근혜 대통령. 선거 운동 당시 문제가 생기면 자동적으로 박 대통령의 ‘원칙은 지킬수록 강해진다’는 표현과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실제 선거를 돕겠다며 자리 청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권력을 잡기도 전에 팔 수는 없다’고 거절했다. Q. 언제까지 정치를 할 것인가. A. ‘3위 일체’를 따를 것이다. 정치적 정열, 신체적 건강, 국민적 성원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사라지면 언제든 정치를 그만둘 것이다. 세 가지가 있는 한 정치를 지속할 것이다. 글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사진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프로필 ▲1963년 경기 인천 출생 ▲연세대 행정학과 학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행정학 석사 ▲청와대 대변인, KBS 보도국 문화부장, 앵커, 워싱턴 특파원
  • 금천구 주민센터, 만취한 산모의 갓난아기를 살렸다

    금천구 주민센터, 만취한 산모의 갓난아기를 살렸다

    지난달 7일 오후. 금천구 시흥5동 주민센터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기 너머에선 한 주민이 다급한 목소리로 “세입자가 며칠 전 아기를 집에서 출산했는데, 출생신고도 하지 않고 돌보지도 않아 아기의 건강이 위험하다”고 말했다. 신고 전화를 받은 김찬수 복지1팀장과 김은희 복지플래너는 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집에 가보니 산모는 만취 상태였고, 젖병과 기저귀 등 아기를 위한 용품이 하나도 없었다. 아기의 아버지에게 연락했지만 “상관하지 말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김 팀장은 “구청의 지원도 거절해 할 수 없이 영등포아동보호기관에 신고했다”면서 “하지만 아동 학대 증거가 없어 결국 아이와 부모를 분리하지 못하고 동주민센터 통합사례회의를 통해 지원대책을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금천구는 일단 주민과 구청, 경찰과의 협조체제를 만들어 아기의 건강상태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게 했다. 또 통합사례대상자로 지정해 간호사가 아기의 건강 상태를 수시로 확인하게 하고, 이 가정을 서울형 긴급지원 대상자로 선정 50만원 상당의 아기 용품을 지원했다. 이날부터 시흥5동 복지플래너와 통장은 자기 집보다 이 가정을 더 자주 찾았다. 혹시나 아기에게 위험 상황이 발생하면 빠르게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다. 그러던 중 지난달 30일 아기의 집을 방문한 간호사가 만취돼 있는 산모의 모습을 확인했다. 구 관계자는 “더 이상은 아기를 부모에게 맡기기 어렵다고 판단해 아동보호기관에 신고해 산모와 아기를 분리했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아기의 건강 상태를 점검한 결과 결막염과 뒤통수 골절, 심장비대증 등의 진단이 내려졌다. 구 관계자는 “조금만 더 일찍 검진을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많이 안타깝다”면서 “아기의 치료비 88만원을 후원금 등을 통해 지원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구는 이달 초 지상학 시흥5동장의 보증으로 아기의 출생신고 절차를 완료했다고 25일 밝혔다. 지 동장은 “주민의 관심이 한 생명을 살린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위기 가구 발견 시 주민센터에 적극적인 신고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미취학·장기결석 초중생 13명 ‘학대’ 확인…17명 ‘소재 불명’ 수사

    미취학·장기결석 초중생 13명 ‘학대’ 확인…17명 ‘소재 불명’ 수사

    초등학생 미취학 아동과 장기결석 중학생 중 13명이 학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소재 파악이 안 되거나 학대가 의심되는 17명은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또 4~6세 아동 중 영유아 건강검진이나 국가예방접종 기록이 없는 아동은 생계 곤란 등 가정환경이 부적정한 위기 아동으로 확인돼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됐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경찰청은 25일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주재로 열린 제5차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초·중학교 미취학 및 중학교 장기결석 아동 합동점검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2월 1일부터 이달 15일까지 최근 5년 이내 초·중학교 미취학 아동과 3년 이내 장기결석 중학생 2892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점검 결과 328명은 소재가 불분명하거나 아동학대 정황이 발견돼 경찰에 신고됐다. 48명은 아동학대가 의심되거나 조사가 필요해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됐다. 경찰에 신고된 328명 중 13명은 아동학대가 확인됐다. 이 중 미취학 초등생 4명과 장기결석 중학생 3명은 기소 의견으로 경찰에서 검찰로 사건이 송치됐다. 또 미취학 초등생 4명과 장기결석 중학생 2명은 가정법원의 보호처분이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검찰 송치됐다. 이밖에 12명은 22일 현재 가출 등으로 소재가 확인되지 않았고 5명은 학대가 의심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소재가 미확인된 아동은 초등학생 3명, 중학생 9명이며 학대의심 아동은 모두 미취학 초등학생이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된 48명 중 22명은 교육적 방임이나 정서적 학대 등 학대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돼 전화상담과 가정방문, 심리치료 등 조치가 진행 중이다. 장기결석 중학생 2명은 현장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정부는 안전에는 문제가 없지만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난 708명은 취학과 출석을 독려하고 지속해서 관리하기로 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지난 2010∼2012년 태어난 4∼6세 어린이 중 영유아 건강검진, 국가예방접종, 다른 진료기록이 없는 영유아 810명도 점검 대상에 포함됐다. 이 중 713명은 복수국적이거나 해외에서 태어나 외국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2명은 생계 곤란 등 가정환경이 부적정한 위기아동으로 분류돼 아동전문보호기관에 신고하고 기초생활수급 신청과 함께 의료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또 1명은 경찰이 소재를 파악하고 있다. 나머지 건강검진이나 접종기록이 없는 영유아들은 주민등록번호가 이중으로 등록되거나 입양 후 기존 주민등록번호가 말소되지 않은 경우, 접종기록 누락, 허위 출생신고 등 사례로 확인됐다. 정부는 다음 달 중 출생 후 6개월 이상부터 3세까지 영유아 중 역시 예방접종이나 건강검진, 의료기관 이용 기록이 없는 영유아를 대상으로 2차 점검을 할 계획이다. 이 부총리는 “앞으로 단 한 명의 아동도 학대로 고통받거나 적절한 보호와 양육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예방 및 조기발견에서부터 신속대응, 사후 지원까지 철저한 대책을 시행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메디컬 인사이드] “의사도 라식 수술 기피하나요?” 직접 물었습니다

    [메디컬 인사이드] “의사도 라식 수술 기피하나요?” 직접 물었습니다

    의사 수술 안한다는 건 오해순전히 본인의 선택사항일 뿐 시력 교정술 하면 라식과 라섹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수술 기관이 확산되기 시작했으니 이미 30년에 가까운 역사를 남겼습니다. 현재는 한 해 20만명 이상이 수술을 받을 정도로 보편화됐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시력 교정술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특히 많은 이들이 안과의사는 라식 수술을 기피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체를 확인할 방법은 없고 불안과 의심만 팽배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전문가에게 물었습니다. “정말 안과의사는 라식 수술과 라섹 수술을 하지 않나요.” 김용란 건양대 김안과병원 원장은 24일 이런 질문을 듣자마자 고개부터 갸우뚱했습니다. 한 해 40만명의 환자가 찾는 국내 최대 규모 안과전문병원인 만큼 의료진도 비교적 많습니다. 김 원장은 “주요 대상인 40대 이하 여성 의사만 보더라도 절반 이상이 이미 라식 수술 같은 시력 교정술을 받았다”며 “1년에 1주일 정도밖에 휴가를 낼 수 없을 정도로 진료 업무가 많고 여유가 없어도 라식 수술을 받고 오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대한안과의사회 총무이사인 류익희 비앤빛 강남밝은세상안과 원장은 “2007년에 나도 라식 수술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류 원장은 “1980년대까지는 시력 교정술을 연구한 의사들이 거의 없었고 40대를 넘기면 수술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생긴 것 같다”며 “90년대부터는 숙련의들이 늘면서 70년대 출생, 90년대 학번 이후부터는 안과 의사들도 라식 수술을 많이 받았다”고 했습니다. 결국 시력 교정술 부작용이 무서워 안과의사들이 수술을 받지 않는다는 속설은 ‘오해’일 뿐이라는 겁니다. 류 원장은 이어 “안경이 편하면 안경을 써도 되고, 불편하다고 본다면 시력 교정술을 받는 것이지 누군가 하지 말라거나 반대로 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며 “순전히 본인의 선택 사항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아는 것처럼 라식과 라섹은 전혀 다른 수술법입니다. 둘 다 각막 내부에 레이저를 조사해 근시나 원시, 난시 등의 굴절 이상을 교정하는 수술인 것은 맞습니다. 라식은 각막 앞부분을 잘라 젖힌 뒤 레이저를 조사해 굴절 이상을 교정하고 다시 벗겨 낸 각막 절편을 덮어 주는 방식입니다. 라섹은 고농도 알코올을 이용해 얇은 각막상피만 제거하고 마찬가지로 굴절 이상을 교정한 뒤 일정 기간 치료용 렌즈를 덮어 회복하는 방식입니다. 물론 두 수술법은 장단점이 있습니다. ●직업 야간 운전자 신중하게 판단해야 라식은 라섹과 비교해 시력 회복 기간이 빠릅니다. 수술 통증이 거의 없고 다음날이면 0.8 이상의 시력을 회복합니다. 다만 뚜껑 모양의 각막 절편을 만들기 때문에 수술 과정이 복잡하고 그 과정에 각막에 건조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라섹은 각막 상피만 얇게 잘라내기 때문에 건조증이 덜하고 각막 두께가 선천적으로 얇은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 절편을 생성하지 않기 때문에 충격에 강합니다. 하지만 각막 상피를 벗겨 내기 때문에 통증이 생길 수 있고 회복 기간이 길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두 수술법의 장점만 취한 수술법도 나왔습니다. 김 원장은 “군대 가기 전이나 운동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 각막이 얇은 사람은 라섹을 권하는 반면 당장 유학을 떠나야 한다든지 내일모레 출근해야 하는 사람은 라식을 권하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가급적 시력 교정술을 피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김 원장은 “야간에 직업적으로 운전을 하는 분은 꼭 해야 한다면 조금 더 신중하게 판단하고 고민하라고 말씀드린다”며 “또 수험생이나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분이라면 근시가 다시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시험이 끝난 다음에 수술을 하라고 권한다”고 했습니다. 류 원장은 “단순히 콘택트렌즈 착용 때문에 생긴 건조증이라면 적극 수술을 권하겠지만 류마티스성 관절염, 강직성 척추염, 루프스라든지 자가면역질환이 있으면 수술 뒤 건조증이 훨씬 심해지기 때문에 가급적 권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시력교정 효과 라식 95%·라섹 97% 시력 교정술의 부작용 비율은 우려할 정도는 아닙니다. 일반적인 의약품 부작용과 비교해도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입니다. 미국 안과학회가 대규모 연구를 통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라식 수술을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수술 전과 수술 후 시력과 부작용을 조사한 결과 수술 후 3개월 뒤 양쪽 눈 모두 1.0 이상의 시력을 얻은 환자가 전체의 95%를 넘었습니다. 수술 전 야간에 빛 번짐이나 시력 이상을 호소한 환자는 33%였지만 수술 후 6%로 줄고 수술 부작용은 0.7%에 그쳤습니다. 2010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5109건의 시력 교정술 의무기록을 분석한 결과에서는 라식 수술의 시력교정 효과는 95%, 라섹 수술은 97% 이상이었습니다. 류 원장은 “안경은 대부분 오목렌즈인데 멀리 있는 상이 작아지는 효과가 있다”며 “하지만 안경을 벗으면 상이 커지기 때문에 훨씬 더 잘보인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며 “백내장 같은 질환이 생기기 전까지는 높아진 시력이 계속 유지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한 가지 수술법 고집하는 병원 피할 것 시력 교정술을 받기 전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두 전문가는 되도록이면 개원한 지 오래된 믿을 만한 의료기관을 방문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또 저렴한 가격만 보지 말고 최소 2~3곳의 의료기관을 방문해 충분히 상담을 받아 보고 본인에게 맞는 수술을 추천받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김 원장은 “환자들이 너무 조급하게 생각해 오늘 당장 안 하면 안 된다고 하는 바람에 ‘당일 검사, 당일 수술’이라는 시스템도 생겼는데 나는 가급적 정밀검사를 받은 뒤 약 기운이 빠지는 3일 뒤에 수술을 받도록 한다”고 했습니다. 류 원장은 “경기 영향도 있겠지만 2010년 이후 서울 강남역 부근 저가형 라식 시술 기관의 40%가 문을 닫은 상태”라며 “대안 없이 단 한 가지 수술법만 고집하는 의료기관이 있다면 그곳만은 피하라고 충고해 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먼 곳 자주 응시하고 여름엔 선글라스 라식 수술은 수술 후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최소 1개월, 길게는 6개월~1년을 주의해야 합니다. 특히 스마트폰과 컴퓨터 사용을 줄여야 합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걸어다니며 스마트폰을 쳐다보는 행동입니다. 이것은 일반인도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초점을 수시로 변경해야 하기 때문에 눈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수술 효과가 낮아집니다. 김 원장은 “도저히 못 참겠으면 차악으로 고정된 TV를 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컴퓨터를 많이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최소 1시간에 10분 이상의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먼 곳을 응시하려고 노력하고, 여름철에는 자외선 차단을 위해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시력이 좋다고 눈을 혹사시켜서는 안 됩니다. 류 원장은 “콘택트렌즈 중에서도 특히 렌즈 겉면에 색상을 입힌 컬러렌즈 사용은 피하는 게 좋다”며 “청소년 시기에 질 낮은 제품을 쓰다 염증 문제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정의당 김종대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정의당 김종대

    3월 초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명단이 발표되자 국방부가 아연 긴장했다. 14~16대 국회에서 국방위 의원들의 참모로, 이후 청와대, 언론 등에서 20여년 동안 한 우물만 판 ‘민간 군사 전문가’ 김종대 전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의 존재 때문이다. 비례대표 2번으로 국회에 입성한 김 당선자의 일성은 “방산 비리 척결”이다. Q. 왜 그동안 몸담던 더불어민주당이 아닌 정의당인가. A. 진짜 민주 정당. 심상정 대표가 지난해 7월 대표로 선출되고 나서 처음 만난 외부 인사가 나였다. 진보가 여태껏 꿈꾸지 못했던 좋은 자산을 갖고 있다며 함께하자고 했다. 공교롭게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도 같은 날 점심을 먹자고 했었다. 고심 끝에 열흘 전 과천(집)까지 찾아와 설득한 심 대표를 택했고 9월 1일 입당했다. 민주주의에 충실한, 정당다운 정당은 정의당이라고 생각했다. Q. 이념적 정체성은. A. 온건 진보. 10이 보수, 1이 진보면 3 정도가 아닐까. 북한에 할 말은 한다. 우리 당에도 북한 눈치 보는 세력은 없다. 3대 세습, 핵실험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도 명백하게 반대라고 말한 적은 없다. 신중히 검토해 보고 결정해야 한다. Q. 왜 정치를 하는가. A. 약자 대변. 내가 있어야만 대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 군 성범죄 피해자나 비무장지대 지뢰 사고를 당한 곽 중사의 어머니 같은 분들이 제보를 해 온다. 정치인들은 예산 주무르고 위신 높이는 걸 좋아하지, 약자나 고통받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건 귀찮아한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연민이 바로 내 정치다. Q. 어떤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은가. A. 국방개혁 전문가. 20대 국회에서 더민주는 국방위 지원자가 단 한명도 없다고 한다. 야권의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들이 이번 선거에서 전멸하다시피 했다. 정의당의 초선 의원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야권의 안보 역량이 결코 여당에 비해 밀리지 않도록 교두보를 쌓겠다. 전문성은 물론 색깔론에도 휘말리지 않는 내성을 갖도록 하겠다. Q. 국방개혁의 화두는. A. 민간 국방부 장관. 민간인 국방부 장관을 만드는 게 급선무다. 여전히 안보는 보수 이데올로기의 전유물이고 국민은 안보에서 배제돼 있다. 군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든가 폐쇄성을 극복하려면 안보민주화가 시급하다. Q. 최대 관심사는. A. 방산 비리 척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안보 위기를 틈타 긴급 소요로 들어온 무기사업에 비리 개연성이 크다. 기존 국방계획을 변경시켜 한탕주의 세력들이 긴급 소요라는 명분하에 끼워 넣은 사업들은 대부분 부실 아니면 비리다. 제대로 들여다보려고 변호사를 보좌관으로 뽑았다. Q. 정치적 롤모델은. A. 노무현 전 대통령. 세간에서 말하듯 패거리 짓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들을 지칭하는 친노(친노무현)는 아니다. 다만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범노(범노무현)다. 글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사진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프로필 ▲1966년 충북 청주 출생 ▲연세대 경제학과 ▲제14·15·16대 국회 국방위원회 보좌관, 대통령비서실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 국방부 병영혁신위원회 위원, 월간 디펜스21플러스 발행인 겸 편집인, 정의당 국방개혁기획단장
  •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불량 비례대표 ‘2년 후 교체’ 추진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불량 비례대표 ‘2년 후 교체’ 추진

    국민의당 비례대표 8번으로 국회에 입성하는 이태규 당선자에게는 ‘안철수 최측근’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2012년부터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와 인연을 맺었고 현재는 전략기획통으로 꼽힌다. 17대 대선에서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도왔다. Q. 의정 활동에 임하는 각오는. A. 이익집단과 싸울 것. 국회의원은 이익집단들로부터 압박을 받는다. 그들이 낙선운동을 하겠다며 로비를 할 수도 있다. 여기에 굴복하지 않겠다. 당당하게 이익집단과 싸울 것이다. 재선은 안 하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다음 선거가 없는데 뭐가 두렵겠는가. Q. 구상하는 정치개혁 방안은. A. 비례 2년 연임제. 지난 19대 비례대표들이 제 역할을 못 했다. 자질이 안 되면 과감하게 교체해야 한다. 비례대표 임기를 2년으로 줄여야 한다. 그리고 중간평가로 연임을 결정해야 한다. 연임 비율은 각 정당이 재량으로 정하면 된다. Q. 정치적 롤모델은. A. 조순형. ‘미스터 쓴소리’로 유명하다. 26세 때 보좌관을 하며 모셨다. 같이 수차례 밤을 새우며 일했다. 끊임없이 공부하는 국회의원이다. 무엇보다 굉장히 성실하다. 평상시 자기 관리도 철저하다. 국회의원 모두가 이렇다면 나라가 발전할 것이다. Q. ‘안철수의 남자’ 수식어에 만족하는가. A. 싫다. ‘안철수 측근’이란 표현이 싫다. 마치 ‘주종 관계’처럼 비친다. 정파적으로 줄을 섰다면 아마 3선쯤 돼 있었을 것이다. 안 대표가 말한다고 무조건 따르지 않는다. 단지 정치적 목표와 지향점이 같을 뿐이다. 안 대표와 나는 국민의당 창당 초기 멤버다. 낡은 정치와 싸우며 목소리를 낼 것이다. Q. 중점적으로 검토 중인 정책은. A. 청렴 포인트제. 정당 청렴 지수가 낮으면 국고보조금을 삭감하는 제도다. 벌써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선상에 오른 당선자들이 있다. 국민의당도 예외는 아니다. 공정한 수사 끝에 혐의가 인정되면 당이 사과해야 한다. Q. 본인의 정체성은. A. 중도. 이명박 캠프 시절 ‘보수’라는 표현을 쓰지 말라고 지시했다. 중도표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좌파’라고 욕을 먹었다. 회색분자, 기회주의자라는 공격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진영 논리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경우에 따라 최적의 판단을 찾는 것이 중도다. 중도의 다른 말은 ‘정도’(正道)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19대 국회의원은. A. 유승민. 자기 조직에서 변화를 시도했다. 기득권에 굽히지 않고 싸웠다. 국민의당의 지향점에도 맞다. 안 대표도 기존 정치에서 좌표 이동을 했다. 둘 다 기존 정치에서 변화를 꿈꿨다. Q. 안 대표는 차기 대통령감인가. A. 그렇다. 차기 대통령은 미래지향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 시대 흐름에 대한 통찰력도 필요하다. 소통과 공감, 협치의 리더십도 지녀야 한다. 정치적 신의가 있어야 국민과의 약속을 지킨다. 대부분의 요소가 안 대표에게 해당된다. 글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사진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프로필 ▲1964년 경기 양평 출생 ▲한국항공대 항공경영학 학사, 연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이명박 경선대책위원회 기획단장, 대통령실 연설기록비서관, KT 경제경영연구소 전무, 정책네트워크 내일 부소장, 국민의당 전략홍보본부장
  • 30세 난민, 17세로 위장해 고등학교 농구선수 활약

    30세 남자가 17세 청소년으로 가장해 고등학교를 다니고 농구선수로도 활약한 황당한 사건이 알려졌다.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 등 북미 언론은 캐나다 국경 관리국이 올해 30세로 추정되는 조나단 니콜라를 이민과 난민 보호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사건의 시작은 지난해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내전과 전염병 등이 만연한 남수단을 탈출한 니콜라는 케나다 온타리오주 원저에 도착해 난민 신청을 했다. 당시 신청서에 기입한 그의 출생연도는 1998년 11월 25일생. 이에 캐나다 정부는 심사 끝에 니콜라에게 학생비자를 내주고 가톨릭 센트럴 고등학교 11학년에 입학시켰다. 완벽한(?) 17세 고등학생으로 변신한 니콜라는 조용히 공부만 하지 않았다. 205cm의 큰 키와 92kg의 몸무게를 바탕으로 교내 농구부에 들어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 이에 니콜라는 다른 고교 농구팀에는 적수가 없는 센터로 우뚝섰으며 담당 코치는 미 프로농구(NBA)로 갈 유망주가 나왔다며 흥분했을 정도다. 그러나 니콜라의 사기극은 오래가지 않아 덜미가 잡혔다. 니콜라가 미국 방문 비자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찍은 지문이 문제였다. 미 당국은 니콜라의 지문과 과거 미국에 난민신청을 한 적있는 지문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당시 신청서에서 니콜라는 생년월일을 1986년 11월 1일생으로 기록했다. 캐나다 국경 관리국은 "니콜라의 자세한 신상은 프라이버시 차원에서 밝힐 수 없으며 조만간 이 사건에 대한 심리가 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경북도 은퇴자 대상 6차 산업 창업컨설팅

    경북도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자)와 은퇴자들의 귀농·귀촌을 돕기 위한 창업컨설팅에 나선다. 도는 베이비붐 세대와 은퇴자 가운데 도민이나 출향인, 귀농·귀촌인을 대상으로 창업컨설팅에 참가할 200명을 모집한다고 21일 밝혔다. 기간은 오는 6월 말까지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도는 이들에게 경북형 6차 산업 창업 방향을 제시하고 성공 사례를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참가자 가운데 희망자 100명을 뽑아 6차 산업 창업교육도 한다. 교육을 마치고 난 뒤에도 지속적인 컨설팅과 통신교육(e-learning)을 받도록 해 성공적인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6차 산업은 1차 산업인 농업, 2차 산업인 제조업, 3차 산업인 서비스업을 융합한 산업이다. 자세한 내용은 경북도경제진흥원(054-472-2986)으로 문의하면 된다. 도는 지난해 베이비부머·은퇴자 120여명에게 창업컨설팅을 제공했다. 도의 베이비부머·은퇴자 6차 산업 창업 컨실팅은 최근 5년간 전국에서 가장 많은 귀농인이 이주해 온 경북의 상황을 고려한 교육이다. 도 관계자는 “베이비부머 세대 등에게 맞춤식 창업 유형을 제공해 성공하는 인생 2모작이 되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아하! 우주] 엄마 없이 떠도는 ‘고아 행성’ 발견…목성 10배 크기

    [아하! 우주] 엄마 없이 떠도는 ‘고아 행성’ 발견…목성 10배 크기

    지구처럼 모성(母星)인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일반적인 행성과 달리 우주에는 ‘엄마’ 없이 떠도는 이른바 ‘고아 행성’(orphan planet)도 있다. ‘떠돌이 행성’(free-floating planet) 등 다양한 별칭으로 불리는 이 행성의 존재는 학계의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간 여러 개의 떠돌이들이 발견됐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미 항공우주국(NASA)은 지구에서 약 175광년 떨어진 바다뱀자리 TW별(TW Hydrae) 무리에서 자유롭게 떠도는 행성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NASA의 광역적외선탐사망원경(WISE·Wide-field Infrared Survey Explorer)으로 포착해 'WISEA J114724.10−204021.3'(이하 WISEA 1147)으로 명명된 이 행성은 우리 태양계의 '큰 형님' 목성보다 질량이 5~10배는 더 크다. NASA가 밝힌 WISEA 1147의 정체는 '행성급 질량 천체'(Planetary-Mass Object)다. 그냥 행성이라 쉽게 부르지 않고 굳이 행성급 질량 천체라는 어려운 '딱지'가 붙은 이유는 행성의 정의에 항성의 주위를 돌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엄마없는 행성에 학계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출생의 비밀'을 알고 싶어서다. 일반적으로 행성은 우리 태양계처럼 항성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이 때문에 WISEA 1147 역시 원래는 TW별무리 중 모항성을 공전하다가 어떤 이유로 중력 균형을 잃고 튕겨져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한마디로 집에서 쫓겨나 고아가 됐다는 가설이다. 그러나 NASA는 WISEA 1147이 갈색왜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있다. 행성과 별의 중간인 갈색왜성(brown dwarf)은 핵에서 연속적인 수소 핵융합 반응을 유지할만한 중력을 가지지 못한 천체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갈색왜성은 별이 되려다 실패한 천체로 애초에 성간물질이 중력으로 뭉쳐져 홀로 태어난다. NASA 측은 논문에 "TW별무리는 나이가 1000만년에 불과할 만큼 매우 어린 축에 속한다"면서 "행성이 형성되려면 최소 1000만년 이상은 있어야하고 그 속에서 쫓겨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만큼 WISEA 1147이 갈색왜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적었다. 연구에 참여한 털리도 대학 아담 슈나이더 박사는 "WISEA 1147이 고립돼 홀로 형성됐는지 쫓겨났는지 역사를 알기 위해 계속 모니터 중"이라면서 "갈색왜성은 홀로 존재하는 탓에 가시광선을 거의 발산하지 않아 적외선 탐사망원경인 WISE가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사진=NASA/JPL-Caltech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일상 속 꿈을 디자인하다…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일상 속 꿈을 디자인하다…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

    그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우리 나이로 67세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고향은 대한민국이고 나이는 모른다”고 말한다. 전 세계를 상대로 일하는데 좁은 한국 땅에서 고향이 어디인지가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일에 빠져 사는데 생물학적 나이가 뭐가 중요하냐는 게 그의 지론이다. 나이보다 열 살은 적어 보이는 외모에 젊은이 못지않은 패션 감각.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에게 평범함은 ‘끝’을 의미한다. 지난 15일 2시간 가까운 열정적인 인터뷰가 끝난 뒤 지친 것은 일흔을 몇 년 앞둔 그가 아니라 40대 초의 기자였다. -“그래, 김 교수. 내가 뭘 해 주면 되겠어?” 1983년 봄 어느 날 서울역 앞 대우그룹 사옥 꼭대기층 회장실. 김우중 회장이 지긋이 날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세계 일류 디자인 회사를 제 손으로 꼭 한번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미국에 회사를 세우려고 하는데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게 전부인가?” “한 가지 청이 더 있습니다. 제가 회사를 차리면 당장은 일거리가 없을 겁니다. 대우그룹 사업 프로젝트들을 일단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골똘히 생각해 보던 김 회장은 나에게 수정 제안을 했다. “김 교수가 당장 회사를 만들어 운영하기는 힘들 거야. 일단은 우리 대우그룹 계열사 형태로 디자인 회사를 하나 만들어 줄 테니 운영을 해 봐. 경영을 잘해서 3년 뒤에도 살아남으면 그때는 당신한테 그 회사를 온전히 넘겨주지.” 그때는 둘 다 젊었다. 김 회장은 마흔일곱, 나는 서른셋이었다. -당시 나는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학생들에게 산업디자인을 가르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온통 창업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회사를 차릴 수 있을까.’ 밤낮으로 궁리를 거듭하던 차에 우연히 한국의 신흥 재벌인 대우그룹이 전자와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바로 이거야!” 전자와 자동차야말로 결정적으로 디자인에서 승부가 갈리는 산업 분야가 아닌가. 원래 나는 생각을 하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성격. 잠시의 지체도 없이 서울의 대우그룹 회장실 전화번호를 수소문했다. -“이거 미국에서 전화드리는 건데요, 저는 일리노이대에서 교수로 있는 김영세라고 합니다. 조만간 한국에 갈 일이 있는데 들어간 김에 회장님을 한번 뵙고 싶습니다.” 한국에 갈 일이 있다는 건 알량한 자존심에서 나온 거짓말이었다. 그쪽에 너무 매달리는 것처럼 비치고 싶진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회장 비서실의 회신은 며칠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강의에서 돌아오면 전화기만 쳐다봤다. 며칠 후 연락이 왔다. 김 회장이 너무 바빠서 평일에는 도저히 안 되고 일요일에만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얼마 후 김포공항에 내렸고, 곧장 대우빌딩 꼭대기층으로 달려갔다. 일요일인데도 김 회장은 계열사 사장, 임원 등 10여명과 함께 날 기다리고 있었다. 1시간 넘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동안 흐뭇하게 나를 바라보던 김 회장의 표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해서 그해 여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세워진 것이 나의 첫 회사 ‘ID포커스’다. 흰색뿐이던 색깔을 7가지로 만들어 ‘컬러풀, 원더풀’이라고 광고했던 냉장고 시리즈도, ‘대한민국 첫 100만대 생산’을 기록했던 대우통신의 퍼스널컴퓨터 디자인도 다 그때 내가 했던 것들이다. 당시 나는 ID포커스 대표와 대우전자 디자인 총괄이사를 겸직했는데 그룹에서 가장 어린 임원이었다. -어느덧 김 회장이 약속했던 3년이 흘렀다. 1986년 어느 날 우리 둘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남을 가졌다. 일종의 담판이었다. “회장님, 3년 전에 하셨던 약속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요?” 그는 말이 없었다. 김 회장으로서는 확고히 자리를 굳힌 디자인 전문 계열사를 선뜻 나에게 내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의 입장이 이해됐다. ID포커스가 대우를 떠나는 게 아니라 내가 대우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다. 얼마 후 미국 실리콘밸리에 나만의 회사가 차려졌다. 회사 이름은 ‘이노디자인’. ‘혁신’을 뜻하는 ‘이노베이션’에서 따왔다. -나는 어려서부터 뭔가를 규칙적으로 준비하고 움직이는 걸 아주 싫어했다. 학생 때는 정해진 시간에 등교해야 하는 게 싫었고, 어른이 돼서는 출퇴근 시간에 얽매이는 게 싫었다. ‘수업은 왜 시간을 정해 놓고 하지?’ 덕수초등학교 3학년 때 운동장이 내다보이는 창가에 앉아 밖에서 축구하는 애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칠판지우개가 정통으로 얼굴을 때렸다. 내내 딴짓만 하고 있으니 선생님께서 부아가 치미셨던 것이다. 그런 폭력적인 훈육도 나를 바꾸지는 못했다. ‘말로 하면 될 것을 왜 저러실까.’ -당연히 공부를 잘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어느 날 어머니께서 나를 앞에 앉히셨다. “사람 구실 하려면 경기중학교에는 꼭 들어가야 한다.” “엄마, 거기 가려면 전교 400명 중에 못해도 40등은 해야 되는데 저 절대로 그렇게 안 돼요.” 어머니는 아들의 말에 눈물을 떨구셨다. 내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그날 이후 정말 코피를 쏟으며 공부했다. 나의 경기중 합격은 당시 우리 반에서 ‘인생 역전 드라마’라도 되는 양 화제가 됐다. -인생의 전환점은 중3 때 찾아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개구쟁이 클럽’이라고 해서 같이 어울리는 악동들이 있었다. 그중에 어마어마하게 넓은 마당에다 지하에 당구장까지 갖춘 집에 사는 ‘금수저’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 집은 먹을 것도 많고 놀거리도 많아 늘 우리들 놀이터였다. 어느 날 지하에서 당구를 치는데 별 재미가 없어 혼자 그 집 2층에 올라갔다. 한 층의 절반 정도가 서재였는데, 벽 한쪽이 책으로 가득했다. 우연히 한 권을 툭 뽑아 들었는데 자동차 디자인에 관한 사진이 가득 실려 있었다.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라는 미국 잡지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고 책을 덮는 순간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는 게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이런 걸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야. 세상에 이런 직업이 다 있구나.” 그때부터 영화, 자동차, 기차, 건물, 인테리어, 패션, 가구 등 모든 걸 디자인의 관점에서 보는 습관이 들었다. 결심한 게 또 하나 있었다. “난 반드시 미국으로 갈 거야. 저 큰 나라 미국에서 내 인생의 승부를 걸어 볼 거야.” -“저 미술대학 갈래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고3 어느 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폭탄선언을 했다. 두 분은 기함을 하셨다. 요즘과 달리 당시는 미술을 한다고 하면 ‘환쟁이’라고 무시하던 때였다. 아버지도 예외일 리 없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의 아버지 표정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밥은 먹고 살겠니.” 더이상 말씀은 없으셨다. 황당해서 혼낼 생각도 없으신 듯했다. 하지만 내가 의지를 꺾지 않자 얼마 후 아버지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속설을 실천하셨다. “네 인생 네가 결정하는 것이니 미대 가는 것 더이상 반대하지 않겠다. 대신 나중에 먹고살기 힘들다고 나한테 손 벌려도 한 푼도 없을 줄 알아.” -미술만큼이나 좋아했던 게 음악이었다. 고2 때 친구들과 ‘다이아몬드 포(4)’라는 그룹사운드를 만들어 활동했다. 경기고 학교 마크가 다이아몬드 모양이었고 당시 인기를 끌었던 영국 밴드 ‘비틀스’를 흉내 내 4명이 모였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고등학생이 만든 최초의 그룹사운드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확실한지 자신은 없다. 고2 여름에는 서울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했는데 광고 포스터 디자인을 내 손으로 직접 했다. -나의 미대 동기 중 한 명이 ‘아침이슬’의 김민기다. 경기고 동창이긴 하지만 그때는 잘 몰랐고 대학 가서 친해진 케이스다. 신입생 환영회 때 목소리 좋은 민기가 고등학교 동창이란 걸 알게 됐다. 선배들이 장기자랑을 하라고 해서 둘이서 노래를 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이후로도 장기자랑 때마다 둘이서 같이 했는데 결국 ‘도비두’라는 포크팝 듀엣을 결성했다. 선배들이 우리를 표현했던 ‘도깨비 두 마리’의 준말이었다. 도비두는 정식 앨범 녹음도 했다. 김인배씨가 편곡한 크리스마스캐럴집이었는데, 우리는 앨범 B면 첫 번째와 두 번째 곡인 ‘친구’와 ‘세노야’를 함께 불렀다. 지금 생각하면 캐럴집으로는 뜬금없는 곡들이었다. -도비두 덕분에 아내를 만났다. 다른 학교 학생이던 아내가 학교에 놀러와 내 앞을 지나가는데 그 모습이 영화에 나오는 정지 화면처럼 느껴졌다. ‘내 인생의 짝은 바로 저 여자야.’ 마침 그날 저녁 서울 명동 YWCA에서 공연이 있었고 “구경 오라”고 했는데 그녀가 선뜻 응해 줬다. 이전의 그 어떤 공연보다 멋있는 척을 하려고 애썼다. 공연이 끝난 후 곰 인형을 선물했는데 그때 인연으로 지금까지 함께 산다. 도비두 활동은 1년 정도 하다가 그만뒀다. 민기는 음악 활동을 계속하고 나는 디자이너라는 길을 걸었다. 서로 바쁘게 살다 보니 제대로 못 만나고 있다가 2004년 민기가 자신의 노래를 묶은 패키지 앨범(Past Life Of KIM MIN’GI)을 낸다는데 내가 앨범 디자인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30년 만에 호흡을 맞췄다. -중학교 때 품었던 뜻대로 미국으로 유학을 할 때만 해도 나름대로 설정했던 인생 로드맵을 차근차근 밟아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부(일리노이대 석사과정)를 마치고 나니 사정이 달랐다. 디자인 회사들이 서로 모셔 가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냉혹했다. 수십 군데 지원을 했는데 죄다 떨어졌다. 간신히 GVO라는 디자인 회사에 자리를 잡았다. 2년쯤 일하다 보니 다른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아 보고 싶었다. 때마침 모교인 일리노이대에서 산업디자인 분야 교수를 뽑는다고 해서 지원했는데 뜻밖에 합격을 했다. 하지만 교수 생활 2년 동안 언제나 마음은 ‘창업’이라는 콩밭에 가 있었다. 회사를 차려 떠날 사람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학생들한테도 미안하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대우그룹을 떠나 이노디자인을 세운 후 처음으로 여행용 플라스틱 골프백 ‘프로텍’이라는 제품을 만들어 디자인계의 아카데미 시상식이라고 불리는 ‘IDEA’에서 동상을 받았다. 생애 첫 번째 수상이라 애착이 많이 간다. 사람들이 ‘당신이 만든 최고의 작품은 무엇이냐’고 묻는데 아직 그런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디자인에서 ‘최고의 작품’이란 있을 수 없다. 디자인은 계속 진화하는 것이고 디자이너의 작업은 항상 현재진행형이다. -내 아이디어는 사람, 문화, 공간 세 곳에서 나온다. 내가 포함된 문화와 공간,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디자인의 원천이다. 아이디어는 누군가를, 또 무언가를 봤을 때 어떻게 도와주고 편리하게 만들어 줄까 하는 배려심에서 나올 수 있다.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보기에만 아름다운 작품은 절대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 그런 아이디어를 사장시키지 않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메모를 하고 또 한다. -우리 회사는 회의 시간이란 게 없다. 그냥 눈에 띄는 사람들을 불러 즉석에서 미팅을 하는 게 전부다. 국내 기업들의 회의는 획일적이다. 위에서 “이따가 오후 2시에 회의를 하겠습니다. 신제품 콘셉트에 대해 준비해 오세요”라고 하고, 아래에서는 “이따가 이런 얘기를 해야지”라고 하며 머리를 싸맨다. 그 결과로 갖고 오는 아이디어들은 절대로 팔딱팔딱 뛰는 활어가 될 수 없다. 죽어서 썩둑썩둑 썰려 나온 생명 없는 회라고나 할까. 죽은 아이디어는 디자이너에게 필요 없다. 미대 시절 소주병 들고 작업실에 들어가 몇 날 며칠 머물면서 마음 내키는 대로 그림을 그리는 선배가 있었다. 예술가로서 디자이너는 그런 자유로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직원들에게 그걸 보장해 주고 싶다. 그건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 ‘한국 디자인계의 구루(GURU·스승)’, ‘산업디자인의 미다스’로 불린다. 서울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일리노이대에서 산업디자인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 실리콘밸리에 디자인 전문기업 ‘이노디자인’을 설립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극찬한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와 삼성전자의 ‘가로 본능’ 위성DMB폰, LG전자 스마트폰 등의 디자인이 그의 작품이다. ‘디지털디자인 A to Z’ ‘12억짜리 냅킨 한 장’ ‘트렌드를 창조하는 자, 이노베이터’ ‘퍼플피플’ ‘이매지너’ 등 틈나는 대로 펴낸 책들이 매번 베스트셀러가 됐다. ▲1950년 서울 출생 ▲미국 일리노이대 산업디자인 교수(1980~1982년) ▲이노디자인 회장 ▲미국산업디자이너협회 IDEA 금상(1993년), 한국 굿디자인전 대통령상(1999년), 독일 레드닷 디자인어워드 디자인상(2005년), 독일 iF디자인 어워드 디자인상(2007년) 등.
  • 10년간 1000만 달러… MCM의 ‘통 큰 기부’

    10년간 1000만 달러… MCM의 ‘통 큰 기부’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 사회공헌 강조 “다음 세대 사회·경제 부담 덜어줘야” 성주그룹의 대표 패션 브랜드 MCM이 10년간 1000만 달러(약 113억원)를 에이즈 퇴치 단체에 기부한다.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의 딸 김지혜(28)씨는 20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컨데나스트 인터내셔널 럭셔리 콘퍼런스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 회장은 이날 콘퍼런스에 토론자로 참여해 “다음 세대인 밀레니얼 세대(1980년~2000년대 초반 출생)가 짊어지게 될 사회적, 경제적 부담을 덜어 줘야 한다”면서 지속 가능한 경영과 사회 공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김 회장의 소개로 연단에 오른 김씨는 본인을 밀레니얼 세대라고 밝히며 “MCM은 RED와 파트너십을 맺고 앞으로 10년간 1000만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통해 RED의 활동을 지원하고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아시아와 세계 각국에서 여성과 아동들을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RED는 에이즈 퇴치를 목적으로 개인과 기업의 동참을 끌어내기 위해 2006년 설립된 단체다. 세계 각국 기업들과 파트너를 맺고 있다. RED는 RED 브랜드를 붙인 상품과 서비스의 판매 수익을 사회 공헌에 쓰고 있다. MCM은 또 임직원과 외부 파트너가 힘을 합쳐 콘셉트부터 자재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지속 가능한 제품을 개발할 방침이다. 김씨는 “(지속 가능한 성장은) 몇 사람이 논의하는 수준이 아니라 전 산업과 브랜드가 함께 힘을 실어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회사가 바뀌면 국가도 바뀔 수 있기 때문에 2020년까지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회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MCM은 올해 2회째로 열린 명품업계 국제 행사인 컨데나스트 인터내셔널 럭셔리 콘퍼런스에서 호스트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늦둥이가 누나, 오빠보다 키도 크고, 공부도 잘한다(연구)

    늦둥이가 누나, 오빠보다 키도 크고, 공부도 잘한다(연구)

    노년 출산이 이루어질 경우 자녀에게 다운증후군, 알츠하이머, 고혈압, 당뇨 등의 위험이 생길 수 있다는 많은 연구결과들이 과거 제시된 바 있다. 그런데 늦둥이로 태어나는 것은 위험성만큼이나 유리한 점도 많다는 새로운 주장이 발표돼 관심을 끈다. 독일 막스 플랑크 인구통계학 연구소(Max Planck Institute for Demographic Research)와 런던 경제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 공동 연구팀은 1960~1991년에 태어난 스웨덴 남녀 150만 명의 자료를 활용, 그들의 신장, 체형, 고교성적, 학력 등의 요소가 출생 당시 어머니 나이와 가지는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이러한 결론을 얻었다. 연구팀은 이 자료에서 같은 부모를 두고 있는 형제자매의 데이터를 상호 비교했다. 형제자매는 50%의 유전자를 공유하며 같은 가정환경에서 태어나는 만큼 다른 변수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연구팀은 “한 가정에서 자란 형제자매를 비교함으로써, 결과에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여타 조건의 영향을 배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비교 결과, 늦둥이 자녀들은 나이 많은 형제자매들과 비교했을 때 신장이 더 크고 고교 성적이 높았으며, 총 교육기간 또한 더 길었다. 연구팀에 따르면 자녀들 사이의 이러한 차이는 쉽게 말해 세대차이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세계 각국의 공공보건과 사회조건은 시간 흐름에 따라 점차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산모의 출산 당시 나이와 자녀의 심신건강 사이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기존 연구들은 이러한 거시적 환경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는 한계를 지닌다. 출산을 미룬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 환경이 변화한 이후에 아이를 낳는다는 의미가 된다. 예를 들어 50년대에 태어난 여성 두 명 중 한 사람은 20살에 아이를 낳고 또 다른 사람은 40세에 아이를 낳는다면, 두 아이는 각각 70년대와 90년대에 유년기를 살아가게 된다. 이것은 결코 작지 않은 차이라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출생시기가 늦춰지는 것은 늦둥이가 가지는 불리함을 상쇄하거나 압도할 수 있을 만큼 많은 혜택을 준다”며 “따라서 노년 출산에 대해 기존과 다른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늦은 나이에 출산을 기대하는 부모들은 보통 노년 출산의 위험성만 알고 긍정적 효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사진=ⓒ포토리아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에펠탑·모네 말고… 프랑스 시각예술의 오늘

    에펠탑·모네 말고… 프랑스 시각예술의 오늘

    한국과 프랑스의 국교 수립 130주년을 맞아 프랑스 시각예술의 현주소를 보여 주는 다양한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얼핏 보기에 난해하지만 독특하고 창조적이며 사회적 메시지와 철학적 깊이가 담긴 ‘프렌치 스타일’을 멀리까지 가지 않고도 감상할 수 있는 찬스다. ●국립현대미술관 ‘질 바비에’展 국립현대미술관은 프랑스 마르세유에 있는 복합문화예술공간 프리쉬라벨드메와 공동으로 조형예술가 질 바비에(51)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에코 시스템:질 바비에’전을 서울관에서 열고 있다. 남태평양의 바누아투공화국 태생으로 마르세유국립미술학교를 졸업한 그는 영국의 수학자 존 콘웨이가 고안한 ‘생명게임’에서 영감을 얻어 세포 증식의 개념을 작품에 도입했다. ‘생명게임’은 임의적으로 배열된 세포들이 기본 법칙에 의해 자동으로 생성·소멸하면서 삶과 죽음, 그리고 증식의 퍼즐을 만들어 낸다는 논리다.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에서 그는 변이와 증식으로 가득한 기이한 세계를 100여점의 드로잉과 설치 작품으로 보여 준다. 작가의 두상을 주물로 떠서 만든 분홍색 머리에 바나나가 박힌 ‘바나나가 박힌 머리’, 입에서 플라스틱 말풍선이 면 가닥처럼 뿜어져 나오는 ‘다변증’ 등은 자아와 정체성 탐구를 위해 자기 파괴와 생성을 시도한 것이다. 인간주사위 사전을 가로세로 각 2m의 종이에 옮겨 놓은 ‘백과사전’ 연작, 기억을 해체한 뒤 재구성한 ‘블랙 드로잉’ 연작이 벽을 장식하고 있다. 바비에는 “합리적이지 않은 것, 사회 통념에 반하는 것이 때로는 사람에게 더 큰 자유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나의 작품을 예술이라는 넓은 세계에 존재하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봐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7월 31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보이지 않는 가족’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과 일우스페이스에서는 프랑스의 문화 비평가이자 이론가인 롤랑 바르트(1915~1980)의 저서 ‘카메라 루시다’에 담긴 사진론에 기반을 둔 전시 ‘보이지 않는 가족’전이 열린다. 바르트는 파리에서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세계 순회전시 ‘인간가족’을 관람한 뒤 이 전시가 개인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인간가족’전은 세계 각국의 사진작가가 보내온 200만점의 사진 가운데 500여점을 골라 출생부터 사춘기를 거쳐 가족을 형성하는 모습을 연대기 순으로 펼쳐 놓은 것이었다. 바르트는 사진이 삶의 여정을 단순화하고 획일화하며 기독교적인 시각을 주입한다고 분석하고 1980년 저서 ‘카메라 루시다’를 통해 위인보다 약자, 집단보다는 개인, 서사적 역사보다는 사소한 순간에 초점을 맞추는 예술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5월 29일까지 열리는 전시에선 바르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워커 에번스, 윌리엄 클라인, 신디 셔먼, 제프 쿤스 등 1960~1970년대 이후 현대 사진가, 미술가 90명의 작품 200여점을 감상할 수 있다. 같은 기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도시괴담’전은 서울시립미술관의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파리의 실험적인 전시공간인 팔레드도쿄의 파비옹이 협업해 진행한 레지던시 교류 프로젝트 결과를 보여 준다. ●이응노미술관 뉴미디어 아트 프로젝트 대전시립 이응노미술관은 6월 26일까지 프랑스 2인조 작가 르네 쉴트라&마리아 바르텔레미를 초청해 이응노의 문자추상 작품과 실험적인 대화를 시도하는 ‘2016 이응노미술관 뉴미디어 아트 프로젝트-레티나:움직이는 이미지’전을 열고 있다. 파리와 툴루즈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두 사람은 광섬유, 영상, 컴퓨터 프로그래밍, 수학 등 과학 원리를 예술과 접목한 신작 ‘레티나’를 선보인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10년간 골목 누빈 ‘이웃사람’… 3수 끝에 마음 훔쳐

    10년간 골목 누빈 ‘이웃사람’… 3수 끝에 마음 훔쳐

    “진보도 보수도 아닌 이웃과 함께하는 따뜻한 정치인이 되겠습니다.” 15일 부산시청 구내식당에서 만난 더불어민주당 전재수(44) 당선자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목소리엔 힘이 있었다. 그동안 좌절과 아픔이 많았다. 35세에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부산 북구청장 선거에 출마한 게 첫 도전이었다. 18, 19대 총선에서 북강서갑에 출마해 재선의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과 붙었지만 다 석패했다. 전 당선자는 “선거에서 떨어질 때마다 부모님의 병이 하나씩 생겼는데 병명이 안 나오는 ‘화병’이었다”면서 웃으며 당시를 회고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모두 험지라고 했지만 지난 10년간 골목골목을 누비며 이웃들과 동고동락했다. 진심으로 마음을 파고들었다. 인간미와 진정성으로 이를 극복했다. 결국 박 의원과의 세 번째 대결에서 이겼다. 그것도 1만표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북강서갑은 낙동강벨트의 한곳으로 전국적 관심 지역으로 떠올랐기에 그의 승리는 더욱 값지다. 그는 “‘이웃 사람 전재수’라는 이미지 심기에 주력했는데 유권자들이 진심을 알고 마음의 문을 열어준 게 승리 비결”이라고 말했다. 전 당선자는 스스로 ‘동정론’도 한몫했다고 했다. 그는 “손해 보는 줄 알면서 우직하게 한길로만 간다는 ‘동정론의 정치학’이 있었기에 여당 텃밭에서 어려움을 극복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 발전을 위해 여야 가리지 않고 만나고 타협하는 융합의 정치를 펴겠다”며 낙후된 북구 발전을 위해 국토교통위나 교육문화체육관광위 분과를 염두에 둔다고 말했다. 친노(친노무현)계 인사로 분류되지만 “대권 주자의 대변인이나 거수기가 되려고 정치하는 게 아니다. 소신 있는 정치를 펴겠다”고 힘줘 말했다. 유약하게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해병대 출신인 그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악수할 때 손힘이 만만치 않다. “체력은 타고난 것 같다”며 환하게 웃는 모습에 따뜻함과 겸손이 묻어나왔다. 경남 의령 출생으로 8세 때인 1979년 북구로 옮겨 와 고교까지 다녔다. 동국대 역사교육학과·대학원 정치학과를 나왔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국정상황실과 경제정책비서관실 행정관, 제2부속실장을 지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화제의 당선자]전재수 “이웃 주민을 위하는 따뜻한 정치인이 되겠다”

    [화제의 당선자]전재수 “이웃 주민을 위하는 따뜻한 정치인이 되겠다”

    “이웃 주민을 위하는 따뜻한 정치인이 되겠습니다.” 15일 오전 부산시청 구내식당에서 만난 더불어민주당 전재수(44) 당선자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진보도 보수도 아닌 오직 이웃과 함께하는 따뜻한 정치인이 되겠다”는 말로 말문을 연 그는 “이웃주민들에게 그동안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동안 좌절과 아픔이 많았다. 35세의 나이로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부산 북구청장 선거에 출마한 게 첫 도전이었다. 이후 18·19대 총선에서 북강서갑에 출마해 재선의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과 붙었지만 두 번 다 아깝게 졌다. 전 당선자는 “선거에서 떨어질 때마다 부모님의 병이 하나씩 생겼는데 병원에 가면 병명은 안 나오는 ‘화병’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하며 환하게 웃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모두들 험지라고 했지만 지난 10년간 골목골목을 누비며 이웃들과 동고동락해 진심으로 그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인간미와 진정성으로 험지를 극복했다. 결국 그는 박 의원과 3번째 대결에서 승리의 기쁨을 맛보았다. 그것도 1만표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부산 북강서갑은 낙동강벨트의 한곳으로 전국적 관심지역으로 떠올랐기에 그의 승리는 더욱 값지다. 그는 “이웃들과 함께 울고 웃는 인간미가 넘치는 ‘이웃사람 전재수’라는 이미지 심기에 주력했는데 유권자들이 저의 진심을 알고 마음의 문을 열어준 게 승리의 비결”이라고 겸손해했다. 그는 스스로 ‘동정론’도 한몫했다고 말했다. “전재수는 인간이 됐다. 손해 보는 줄 알면서 우직하게 오직 한길로만 간다는 ‘동정론의 정치학’이 있었기에 여당 텃밭인 험지에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나름대로 승리요인을 분석했다.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여야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지 만나고 타협하는 융합의 정치를 펴겠다”고 말했다. 낙후된 북구의 발전을 위해 가급적 국토해양위나 교육위 분과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친노무현계 인사로 분류되지만 “대권주자의 대변인이나 거수기가 되려고 정치를 하는 게 아니다. 지역민과 함께하겠다고 한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 소신 있는 정치를 펴겠다”고 힘줘 말했다. 유약하게 보이는 것과 달리 해병대 출신인 그는 만능스포츠맨이다. 악수할 때 손힘이 장난 아니다. “체력은 타고난 것 같다”며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 따뜻함과 겸손이 묻어나왔다. 경남 의령 출생으로 8세 때인 1979년 부산 북구로 옮겨와 이곳에서 고교까지 다녔다. 고교 때 정치하기로 마음먹었다. 동국대 역사교육학과·대학원 정치학과를 나왔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국정상황실 행정관, 경제정책비서관실 행정관, 제2부속실장을 역임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한국戰 직후 의료 활동한 獨간호사 찾았다

    한국戰 직후 의료 활동한 獨간호사 찾았다

    한국대사관서 찾아 감사 표하기로 106세로 건강… “한국 애착 많이 가” 한국전쟁 직후 부산에서 활동했던 독일 의료진의 실체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주독일 한국대사관은 14일(현지시간) 수소문 끝에 1954년부터 2년여간 부산의 독일적십자병원에서 근무했던 샤를로테 코흐(106) 수녀를 브레멘 외곽 올덴부르크시에서 찾았다고 밝혔다. 코흐 수녀는 당시 서독 정부가 세운 병원에서 수간호사로 일하며 수술 등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미수교국이던 서독의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을 돕기 위해 117명의 의료진을 파견했는데, 코흐 수녀는 이 가운데 실존이 확인된 첫 사례다.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지난 3월 독일 의사협회 등에 광고를 내고 수소문한 끝에 코흐 수녀를 찾게 됐다”며 “오는 20일 열리는 코흐 수녀의 106세 생일 축하연에서 62년 만에 감사를 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대사관 측은 현재 40명의 관련자 주소를 파악했으나 생존이 확인된 인물은 코흐 수녀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코흐 수녀는 고령인 탓에 귀가 잘 들리지 않지만 건강은 양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올덴부르크시의 수녀 전용 요양원에 머물고 있다. 그는 대사관 관계자에게 “한국은 애착이 많이 가는 나라”라며 “한국인들은 친절했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1954년 서독 정부는 한국의 전후 복구를 돕기 위해 지금의 부산여고 자리에 250병상 규모의 적십자병원을 세웠다. 1958년까지 운영된 이 병원에선 독일인 의사와 간호사, 약사 등 117명이 활동했다. 외래환자 22만 7250명, 입원환자 2만 1562명이 이곳을 거쳐 갔고 출생한 신생아만 6000명이 넘는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美보건당국 “지카, 신생아 소두증의 명백한 원인”

    미국 보건당국이 지카바이러스가 태아의 머리를 선천적으로 작게 기형으로 만드는 소두증을 유발하는 명백한 원인이라고 선언했다. 지난해 5월부터 브라질에서 지카바이러스 확산과 소두증 신생아의 급증이 보고되면서 둘 사이의 연관성이 제기돼 왔으나 정부가 직접 과학적 연결 고리를 규명한 것은 처음이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토머스 프리든 소장은 13일(현지시간) “여러 증거를 볼 때 지카바이러스가 소두증을 유발한다는 사실에 더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모기에 물려 태아의 기형을 유발하는 질병은 인류 역사상 첫 사례”라며 “CDC의 이 같은 선언은 지카바이러스 연구에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CDC는 앞서 남미 지역에서 출생 직후 사망한 소두증 태아의 뇌를 확보해 정밀 조사했다. 이 조사를 근거로 지난 1월 미국인 임신부에게 지카바이러스 발발 지역 방문을 자제하라는 경고를 보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아빠 70%·엄마 74%, 알고보면 편애하는 자식있다”

    “아빠 70%·엄마 74%, 알고보면 편애하는 자식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속담이 이제는 '덜 아픈 손가락이 있다'는 말로 바뀌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팀은 아버지 중 70%, 어머니 중 74%가 자식 중 가장 총애하는 자식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형제 자매가 있는 384가구를 심층 인터뷰해 얻어낸 이 결과는 미국인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오래된 남아선호사상을 가진 한국 등 아시아 문화에 비춰보면, 편애가 동서양을 막론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연구팀은 먼저 자식 중 누구를 가장 총애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부모의 심리를 고려해 자식들을 인터뷰 대상에 올렸다. 아이들에게 부모가 자신들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물어본 것. 그 결과 첫째의 경우 자신들이 동생들에 비해 부모에게 특별대우를 받고있다고 인식이 강했다. 또한 첫째들은 시험성적, 운동 등 성취에 대해 동생들에 비해 부모가 더 큰 관심을 갖는다고 대답했다. 이와 반대로 특별대우 받는다는 선입견이 있는 막내들은 의외로 볼멘 목소리가 많았다. 막내들은 오히려 관심을 덜 받고 있으며 엄격한 가정 규칙을 적용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연구팀은 이같은 인터뷰 결과로 부모들을 압박(?)해 사실은 편애하는 자식이 있다는 '진실'을 얻어냈다.   연구를 이끈 캐서린 콩거 교수는 "부모에게도 출생순서와 관계없이 가장 선호하는 자식이 있으며 이는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흥미로운 점은 첫째든 중간이든 막내든 아이들 역시 부모의 선호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 차별대우 받고 있다고 느끼는 점"이라면서 "이는 문제라기보다는 사실 부모의 사랑을 더 얻어내기 위한 일종의 '달콤함 라이벌' 관계"라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상생의 동양문명이 세계평화 이끈다…그 중심은 한반도”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상생의 동양문명이 세계평화 이끈다…그 중심은 한반도”

    검은 갓, 흰 도포에 꼬장꼬장한 말과 몸짓…. 종교지도자 모임이나 국경일 행사 기념 촬영 때면 나란히 선 인사들 속에 독특한 외모의 한 노인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지난 31년간 줄곧 국내 민족종교를 이끌어 온 한양원(93)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말고도 그가 가진 직함은 아흔을 넘긴 노인에겐 과하다 싶을 만큼 수두룩하다.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공동회장,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이사장, 갱정유도 도정(대표), 한국서당문화진흥회 이사장…. 그중에서도 민족정기와 겨레얼 살리기는 평생을 바쳐 천착한 으뜸의 숙제다. 서울 답십리 사무실에서 기자를 만난 한 회장은 자타 공인의 ‘민족종교 대부’답게 대면부터 민족정기와 겨레얼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민족종교협의회를 31년간 이끌어 왔다. 민족종교협의회는 어떻게 시작됐나. -1983년 염보현씨가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던 무렵이었다. 당시 민족지도자인 안호상 박사에게 사직공원에 단군궁을 건립하는 데 20억원을 기부하겠다는 제의를 했다. 개천절, 삼일절, 광복절 행사를 함께 치르며 민족정기를 고취해 보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거의 성사를 앞두고 일부 개신교 측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당시 내가 갱정유도 총무를 맡고 있었는데 문제가 많다 싶었다. 그래서 당시 명맥만 유지하고 있던 민족종교친목회를 확대해 1985년 지금의 한국민족종교협의회를 탄생시켰다. 당시 34개 민족종교 교단이 참여했다. →지금 민족종교계의 형편은 어떤가. -흔히 알려진 대로 일제강점기 애국애족 운동에 누구보다 앞장선 게 민족종교였다. 3·1운동을 시작한 게 천도교였다면 임시정부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건 대종교였다. 독립군 양성을 위해 북만주에 무려 11개의 학교를 세운 것도 모두 민족종교였다. 조선총독부의 미움을 샀던 민족종교는 일제가 물러간 후에도 잔재가 남은 탓에 사이비 종교 취급받기 일쑤였다. 이런저런 탄압을 받거나 운영난으로 교세가 위축된 민족종교들이 적지 않게 도태됐다. 지금은 원불교, 천도교, 대종교, 갱정유도 등 12개 교단이 참여하고 있다. 이런 민족종교들은 교리와 운영 면에서 모두 잘 유지하고 있다. →한 회장이 대표로 있는 갱정유도는 일반인에겐 좀 생소하다. 어떤 종교이며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선(仙)·불(佛)에 바탕하면서 인륜의 도리를 유도로써 밝혀 나가는 유불선 삶의 병행이 핵심이다. 기미년 독립만세운동 당시 태극기 300장을 직접 만들어 순창시장 사람들에게 나눠 주며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도조 강대성이 해방 3년 전 전남 순창 회문산에 갱정유도회 본부를 만든 게 시작이다. 강 도조는 일본에 대적해 독립운동을 제대로 하자는 뜻을 세웠었다. 나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입도했다. 내 인생의 좌표를 정한 시기였다. 좌우익 혼란기엔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회문산의 갱정유도에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평생을 겨레얼 살리기에 천착해 살아오셨다. 왜 그렇게 겨레얼 살리기를 중시하는가. -일제강점기엔 우리말과 글을 못 쓰고 배우지 못하게 했다. 한마디로 우리 문화 죽이기다. 일본이 패망해 쫓겨 간 뒤엔 미국과 소련이 주둔한 채 민족이 반 동강 났다. 지금은 어떤가. 세계적으로 우수한 우리말과 글을 두고도 남녀 노소가 모두 영어 배우기에 혈안이다. 외래 문화가 판치고 그것을 우리 것으로 알고 가르친다. 건국 이념과 우리 문화, 역사를 다시 살려야 한다.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는 현재 외국에 17개 지부를 두고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보다 외국의 동포들이 더 겨레얼 살리기 운동에 적극적이다. 웃지 못할 현상 아닌가. →민족종교가 그 일을 주도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건강한 우리의 정신문화를 바탕으로 물질문명을 병행시키자는 것이다.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했는데도 정신문화는 반대로 추락한다. 정신이 퇴폐해진 가운데 경제만 성장하면 싸움과 다툼이 만연하고 안정된 평화를 찾을 수 없다. 과거 서당, 서원만 있던 시절에도 성현군자와 영웅호걸이 나와 세상을 밝혀 나갔다. 지금은 어떤가.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다양한 교육시설과 기관이 있는데도 정신문화는 날로 쇠락해만 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민족종교계를 이끌어 오면서 다른 종교인들과 폭넓게 교류한 것으로 유명한데. -갱정유도 총무로 일하면서 많은 이들과 만나 조언을 듣고 함께 일했다. 서울에 처음 올라와 초대 성균관대 총장을 지낸 유교의 심산 김창숙 선생 비서로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작고한 통일교 문선명 총재와는 주역 공부를 놓고 가까워진 적이 있었다. 불교의 경봉·효봉·청담 스님, 개신교의 강신명·한경직 목사와도 허물없이 자주 만났다. 그 때문인지 지난해 금강산에서 남북 종교인 만남 때 북측 대표로 나온 강지영씨가 7대 종교 지도자 중 아는 사람이 나뿐이라며 분위기를 좀 풀어 달라고 주문했었다.(웃음) →요즘 종교의 가치 전도가 공공연하게 회자된다. 종교계를 어떻게 평가하나. -종교가 본질을 벗어난 채 자꾸 외도로 빠져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공자나 예수, 석가가 하신 말씀 그대로를 모르는 사람에게 전해서 하늘의 이치를 깨닫게 하고, 진리를 알게 하도록 하는 게 종교 아닌가. 황금에 매여 진리와 복음을 제대로 못 전해 사회가 어두워진 탓이 크다. 정치 사회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지도자들이 먼저 부패해졌으니 자기가 썩은 줄 모르고 국민이 썩은 줄만 알고 있다. 일반인들도 각성해야 한다. 옛날 배고프고 어렵던 시절에도 나와 내 가정보다 사회와 나라 걱정을 먼저 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살겠다는 생각에서 물러나 이웃도 나와 같이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길을 솔선해 살펴야 한다. →남북 관계가 꽁꽁 얼어붙었다. 지금의 위기 상황을 어떻게 보나. -우리 민족은 본디 피와 언어, 사상, 건국이념이 모두 하나였다. 지금 남북 관계가 유례가 없을 만큼의 경색국면이라고들 한다. 우리 본래의 민족정신을 빨리 되찾느냐 못 찾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겨레얼을 먼저 살리자는 것이다. 통일은 미국, 중국, 러시아의 것이 아니다. 남이 해 주기를 바라서야 되겠나. 남과 북 모두 외세 주도를 벗어나 하루속히 우리끼리 손잡고 뜻과 힘을 모아야 한다. 이미 한참 전에 냉전이 끝났는데도 남북한만 갈라져 있다. 강대국들이 제 이해관계를 따져 통일 후 한반도에도 간섭하려 든다면 또다시 식민지가 되고 말 것이다. →역대 대통령의 당선 점괘를 봐 주는 등 주역에도 통달한 종교인으로 유명하다. 통일 전망을 한다면. -그동안 서양이 상극의 전쟁·물질 문명에 편승해 세계를 좌지우지하며 동양까지 끌고 다녔다. 이제 동양으로 운이 넘어왔다. 지금까지는 도적질 잘하는 사람(서양)이 성공했지만 앞으로는 상생과 평화, 그리고 도덕을 우선시하는 동양문명이 세계 평화를 이끌어 갈 것이다. 그리고 세계 중심국은 한반도가 될 것이다. 우리의 건국이념이 바로 온 인류가 함께 유익하게 살자는 ‘홍익인간’ 아닌가. 세계에서 1000여회의 외세 침략을 받으면서도 단 한 번 남을 침략해 본 적이 없는 나라다. 마지막까지 남북한이 시험을 겪는 중이다. 다시 말하면 임신부가 세계를 이끌어 갈 옥동자를 낳기 위한 산고의 순간으로 보면 된다. 내가 보기엔 통일의 기운이 10년 전후에 들었다. 과학문명의 발달 속도가 빨라지는 추세를 감안하면 통일이 더 앞당겨질 수 있다고 본다. →여생에 꼭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넘어 온 나라가 외래 문화에 휩쓸린 지 100년이 넘었다. 우리 것을 살려 낼 인재 양성이 시급하다. 그래서 수도권에 민족문화대학을 하나 세우는 게 꿈이다. 반만년 역사의 우리 문화와 정신을 제대로 알고 국민에게 오롯이 전달할 인재를 무료로 교육하는 구심체가 될 것이다. 또 하나는 예절 교육의 터전인 서당문화마을을 호남권에 꼭 하나 만들고 싶다. 전통서당문화진흥회와 갱정유도가 매년 한 차례씩 전북 남원에서 열고 있는 대한민국 서당문화한마당은 그 모태가 될 것이다. 이달 초 15회 서당문화한마당 행사엔 외국인을 포함해 1500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루었다.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한양원 회장은 ▲1923년 전북 남원 출생 ▲1933년 광의보통학교 졸업 ▲1937년 순천서당 및 용담서숙 수학 ▲1943년 지리산 입산 수도 ▲1946년 민족종교 갱정유도 입도 ▲1976년 갱정유도 총무·도무원장 및 도정(대표·현) ▲1985년 한국민족종교협의회 창립회장(현) ▲1991년 사단법인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현) ▲1997년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현) ▲1999년 민족정기선양협의회 공동대표(현) ▲2001년 한국종교인평화회의 공동회장(현) ▲2002~2003년 개천절민족공동행사 공동위원장(남측대표) ▲2003년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창립대표 ▲2005년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이사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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