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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녀공심이 남궁민, 안단태 아닌 석준표였다..출생의 비밀 ‘멘탈 붕괴’

    미녀공심이 남궁민, 안단태 아닌 석준표였다..출생의 비밀 ‘멘탈 붕괴’

    ‘미녀 공심이’ 남궁민의 진짜 이름은 안단태가 아닌 석준표였다. 지난 4주간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석준표 미스터리가 풀린 것. 지난 12일 방송된 SBS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 ‘미녀 공심이’(극본 이희명, 연출 백수찬) 9회분에서는 자신을 둘러싼 출생의 비밀을 알고 충격에 빠진 안단태(남궁민)의 이야기가 빠르게 그려졌다. 25년 전, 염태철(김병옥)이 납치했던 남회장(정혜선)의 손자 석준표가 바로 단태였던 것. 준표를 납치한 범인의 행방을 쫓던 중, CCTV 화면과 출입국 날짜를 통해 자신의 아버지가 납치범이라고 확신한 단태. 혼란스러운 상황에 단태는 남회장에게 더는 준표를 찾을 수 없다는 사과의 편지를 보냈고, 모든 연락을 끊은 채 홀로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매일 꿈에 나타나 울던 아이가 준표라는 것을 알게 된 단태는 꿈속의 사진관을 찾아갔고, “안단태는 다섯 살 때 죽었다”는 진실과 마주했다. 그렇게 자신이 석준표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깨닫게 된 단태는 감당할 수 없는 진실에 쓰러지고 말았다. 어떤 일도 해맑게 풀어나가던 단태의 튼튼한 멘탈이 한 방에 무너질 만큼 과거의 진실은 충격적이었다. 결국 이모 천지연(방은희)을 만나 모든 진실을 물은 단태. “내가 안단태 아닌 거 알아”라는 단태의 말에 천지연은 염태철의 부탁에 잠시 준표를 돌봐주던 것뿐이었다고 설명했고, “너를 맡긴 사람이 너를 죽이거나 버려버릴 거라는 말을 형부가 들었어. 너를 다시 돌려주면 큰일 날거 같아서 그 집을 떠났다”고 털어놨다. 유괴범이 염태철이라는 사실 빼곤 모든 사실을 알게 되며 아버지를 만나겠다고 다짐한 단태. 과연 그는 단태의 삶을 계속 살아갈까, 준표로서의 삶을 되찾기 위해 자아 찾기 수사를 시작할까. 출생 미스터리가 풀리며 시청률 12.1%(닐슨코리아, 전국기준)를 기록, 상승세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미녀 공심이’는 오늘(12일) 밤 10시 SBS 제10회가 방송된다. 사진 = ‘미녀 공심이’ 방송 화면 캡처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장애인 학살’ 히틀러, 알고 보니 비밀 친동생도 ‘장애아’

    ‘장애인 학살’ 히틀러, 알고 보니 비밀 친동생도 ‘장애아’

    지금은 세계적인 독재자의 대명사가 된 아돌프 히틀러(1889~1945). 하지만 그의 가족관계는 그의 악명만큼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지난 6일(현지시간) 영국언론 더타임스는 히틀러의 숨겨진 동생이 장애아였다는 비화를 역사학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광인(狂人) 히틀러는 지난 1889년 4월 20일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브라우나우 암 인의 한 여관방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세관원 출신인 아버지 알로이스와 어머니 클라라. 히틀러의 부모는 총 6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각각 구스타프, 이다, 오토, 아돌프, 에드문드, 파울라다. 이중 구스타프와 이다는 아돌프가 태어나기 전인 유아시절 급성 전염병인 디프테리아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에드문드 역시 6세 나이에 홍역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번에 새롭게 밝혀진 사실은 기존에 아돌프의 형으로 추정됐던 오토와 관련된 출생의 비밀이다. 당초 역사학자들은 오토가 아돌프가 태어나기 2년 전인 1887년 태어나 그해 사망한 것으로 기록해왔다. 그러나 브라우나우의 역사학회 회장인 플로리안 코탄코가 오토의 출생기록을 발견하면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코탄코에 따르면 오토는 아돌프의 동생으로 지난 1892년 6월 17일 태어났다. 그러나 생후 6일 만에 심각한 뇌수종으로 숨졌다. 곧 장애아로 태어나 며칠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셈이다. 히틀러의 동생이 장애아였다는 사실이 의미있는 것은 나치시절 그의 장애인 학살 정책과 관련이 깊다. 히틀러는 1939년부터 ‘아리아인은 모든 인종 중 가장 위대하다’라는 명제 아래 수많은 장애인과 정신병자 총 27만 5000명을 별도 시설에 격리해 학살했다. 코탄코는 "기존 학자들은 히틀러에 대한 엄마의 과보호가 그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구축하는데 영향을 미친 것이라 생각했다"면서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철저한 학살은 동생 오토의 장애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WHO “지카 유행지 여성 임신 미뤄라” 예방책 없음 자인

    WHO “지카 유행지 여성 임신 미뤄라” 예방책 없음 자인

     유엔 산하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카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지역의 여성들에게 임신 계획을 뒤로 미룰 것을 권고했다.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돼 소두증 등 결함을 가진 신생아가 출생하는 것을 막을 마땅한 방법이 없기 때문으로 바이러스의 주요 매개체인 이집트 숲모기를 퇴치하는 세계 각국 보건 당국의 작업이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니카 알렉산더 WHO 대변인은 9일 (현지시간) “임신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지만 부부들은 지카 바이러스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아야만 하고 임신 연기를 하나의 선택 방안으로 제시한다”고 밝혔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그동안 지카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국가의 정부가 임신 계획을 바이러스가 잠잠해질 때까지 유보하라고 권고한 적은 있으나 유엔 차원의 권고는 처음이다. 지카 바이러스는 올해 8월 올림픽 개최국인 브라질 등 중남미를 비롯해 세계 50여개국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지만 백신은 아직 개발되지 못했다. 창궐 지역에서는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유일한 예방법인 셈이다. 특히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남성과의 성관계에 의해서도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다. 브라질 정부는 올림픽에 미치는 악영향을 고려해 모기가 자라는 강과 호수에 방역 작업을 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경험이 있는 여성의 경우 완치된 후 최소 8주 후에나 임신을 시도해야 하며 남성은 최소 6개월 후에 임신을 시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 4일까지 국내에서 총 762명이 지카 바이러스 의심증으로 신고됐고 이 가운데 임신부는 77명(10.1%)이었다. 지카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는 5명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허준의 고향’ 강서, 외국인 의료관광 허브로 뜬다

    ‘허준의 고향’ 강서, 외국인 의료관광 허브로 뜬다

    ‘구암 허준’의 출생지로 알려진 서울 강서구가 지난 2일 미즈메디병원에서 ‘강서 미라클-메디 특구협의회’ 현판식을 열었다고 9일 밝혔다. 미라클-메디 특구는 기적을 의미하는 ‘미라클’과 의료를 뜻하는 ‘메디컬’을 합친 것이다. 구 관계자는 “특구 협의회는 지난 3월에 꾸려져 이미 3차례 정도 회의를 가졌다. 이번 현판식을 통해 본격적으로 활동에 나서 외국인들에게 강서 미라클-메디 특구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가 의료관광특구로 지정된 건 지난해 12월로, 강서로와 공항대로 일대가 대상이다. 정부는 2018년까지 척추·관절·여성 병원이 밀집한 이곳 181만여㎡에 국비와 시·구비, 민간자본 등 719억원을 투입해 본격적인 개발에 나섰다. 지난 6개월간 강서구도 외국인 환자 편의시설 확충과 의료관광 스마트 정보화, 관광종합안내센터 건립 등 의료관광 기반 마련에 전력을 다했다. 사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특구협의회’에는 의료·쇼핑·숙박·외식·관광 등 5개 분야 69개 업체가 참여했다. 집행위원회, 분과위원회, 분쟁조정위원회 등 3개 위원회로 나뉘어 매월 1~2회 의료관광특구 계획의 효율적 추진과 의료관광 활성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노현송 강서구청장은 “의료관광특구 활성화를 위해 계획한 다양한 사업들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신 주민과 특구협의회 관계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미라클-메디 특구가 대한민국 의료관광의 메카로 확실히 자리잡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관련 사업을 챙겨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심재철, 운동권·기자 출신… 5선의 새누리 ‘비박’·박주선, 검사 출신… 4번 구속에도 부활 ‘불사조’

    심재철, 운동권·기자 출신… 5선의 새누리 ‘비박’·박주선, 검사 출신… 4번 구속에도 부활 ‘불사조’

    9일 국회 부의장으로 선출된 새누리당 심재철(경기 안양 동안을) 의원은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으로 영어교사와 기자 생활을 경험한 정치인이다. 국민의당 몫 부의장이 된 박주선(광주 동남을)은 수차례 구속되는 등 사법적 수난을 거쳤지만 그때마다 정치적으로 재기해 ‘불사조’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비박(비박근혜)계로 분류되는 5선 심 의원은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민주화운동을 이끌었고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수감생활도 했다. 이후 동대문여자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하다가 MBC에 입사해 기자로 활동했다. MBC에서 노동조합 설립을 주도해 초대 전임자를 지냈다. 그는 당 최고위원과 정책위의장,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부인 권은정 씨와 1녀. 4선인 박 의원은 1974년 제16회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하고 서울지검 특수부장과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1999년 옷로비 의혹사건, 2000년 나라종금 사건 등으로 4차례 구속됐지만 3번 무죄를 받고 한 번은 벌금 80만원형을 받아 의원직을 유지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서는 야당 내에서 ‘친노 패권주의’ 청산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다 탈당을 결행,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해 4선 고지를 밟았다. 부인 이현숙씨와 3남. 심 부의장(54세) ▲광주 출생 ▲서울대 영어교육학과, 총학생회장 ▲16·17·18·19·20대 국회의원 ▲새누리당 최고위원(2012년) 박 부의장(67세) ▲전남 보성 출생 ▲서울대 법학과 ▲청와대 법무비서관 ▲16·18·19·20대 국회의원 ▲민주당 최고위원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친노·친문 몰표… 정세균 “때로는 강경”

    ‘미스터 스마일’… 6선 경제통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국회” 일성 무소속 관행 따라 더민주 탈당… 더민주·새누리 ‘공동 1당’으로 더불어민주당 출신 6선의 정세균(66) 의원이 9일 여소야대·3당 체제로 출범한 20대 국회 첫 입법부 수장에 올랐다.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정 신임 의장은 고향인 전북 진안·무주·장수에서 15~18대 내리 4선을 했다. 19~20대에는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에서 당선돼 6선에 성공했다. 정 의장은 열린우리당 의장, 민주당 대표 등을 지내며 ‘온화한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항상 웃는 표정을 짓고 있다는 점에서 ‘미스터 스마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당내 최대 계파인 ‘정세균계’를 형성했으나 20대 총선에서는 측근 인사들이 공천에서 대거 탈락했다. 정 의장은 야권의 대표적인 ‘경제통’으로도 꼽힌다. 정계 입문 전에는 쌍용그룹에서 상무이사까지 지내며 실물경제를 익혔고 참여정부 시절 산업부장관을 역임했다. 당초 당 안팎에서는 더민주 국회의장 경선 과정에서 ‘범주류’로 분류되는 정 의장과 문희상 의원이 박빙의 승부를 벌일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정 의장이 전체 121표 가운데 71표(58.6%)를 얻어 35표(28.9%)를 받은 문 의원을 압도적으로 앞섰다. 박병석 의원과 이석현 의원은 각각 9표와 6표를 얻는 데 그쳤다. 이를 두고 당내 최대 지분을 차지하는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 진영이 정 의장을 지지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57명에 달하는 초선 의원들도 정 의장에게 몰표를 던졌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원내대표 경선에서 이어 이번에도 친노·친문 진영이 막대한 영향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20대 국회는 어느 당도 과반을 점하지 못한 체제인 만큼 국회의장의 역할은 19대에 비해 비해 커졌다는 평가다. 정 의장은 이날 “20대 국회는 온건함 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것이다. 때로는 강경함이 필요할 것”이라며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국회 운영을 통해 민주주의 위기와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데 헌신하겠다”고 했다. 정 의장은 또 “국회가 특권 위에 앉아 있어서는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없다”며 “버려야 할 특권은 과감하게 버리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했다. ▲전북 진안 출생 ▲고려대 법학과 ▲15~20대 국회의원 ▲쌍용그룹 상무이사 ▲제9대 산업자원부 장관 ▲열린우리당 의장 ▲민주당 대표 ▲민주당 최고위원회 최고위원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박승 前 한은 총재 ‘인생경제학’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박승 前 한은 총재 ‘인생경제학’

    나이를 무색하게 했던 10년 전의 ‘혈기방장’은 아직도 그대로일까. 팔순에 접어든 그가 어떤 모습으로 손님을 맞을지 그려보며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빌라의 초인종을 눌렀다. “아유, 많이 덥지? 어서 와, 어서 와.” 문을 여는 그의 말투와 표정. 10년 전의 그가 다시 보였다. 한국은행 총재 시절(2002~2006년) 어떤 전임자들보다 시장과의 소통을 강조했던 박승(80) 전 총재는 여전히 세상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이봐 학생, 기껏 어려운 시험 봐서 합격해 놓고 왜 포기하려는 거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1954년 2월 어느 날, 해군 제복을 입은 군인이 우리 집에 찾아왔다. 해군사관학교에 합격하고도 입교 절차를 밟지 않자 ‘등록을 서두르라’는 독촉장이 날아오더니 이마저도 반응이 없자 저 멀리 경남 진해에서 전북 김제의 깡촌까지 직접 사람이 달려온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대학에 가고 싶어요.” 이리공고 수석 졸업 예정자를 반드시 데려와 입교시키라는 해사 교장의 ‘특명’을 받은 그 군인은 나의 고집에 아주 난처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가 끝내 임무 완수를 못 하고 돌아간 그날은 나의 힘겨운 주경야독(晝耕夜讀)이 시작된 날이기도 했다. -내가 태어난 1936년, 호남 벽촌 마을에서 어느 집이라고 여유가 있었겠냐마는 우리 집은 특히 더 어려웠다. 아버지는 원래 한의사였는데 그건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의 일이고, 나를 보셨던 44세 때의 아버지는 가족의 기초 생계도 감당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가장일 뿐이었다. 치료하던 환자가 급사한 뒤 의술의 길을 포기했던 아버지는 그 후 평생을 한글 초서체 연구에 바치셨다. -1948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7㎞ 떨어진 이리공업중·고에 진학했는데, 결석을 밥 먹듯이 했다. 어떤 때는 모심고 김매느라고, 어떤 때는 산에서 땔감을 구해야 해서 학교에 못 갔다. 어머니 혼자 새벽엔 보리방아 찧고 낮에는 논일하고 저녁엔 길쌈해서 생계를 꾸리시다 보니 중·고교 6년 동안 수업료 때문에 가슴 졸이지 않은 때가 없었다. 당시에는 교문 앞에서 선생님이 불시에 수업료 납부 영수증 검사를 해서 영수증이 없으면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잦았는데, 그런 일을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공부를 하고 싶은데 돈을 못 내서 공부를 못 한다면 그건 누구의 책임일까.” 그렇게 터덜터덜 집에 와 보면 아버지는 어김없이 방 안에 틀어박혀 한글 서체와 씨름하고 계셨다. 어머니는 깨, 콩, 닭, 토끼를 이고 지고 5㎞ 떨어진 읍내에 가서 고생을 하시는데, 아버지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중3 때 6·25전쟁이 났다. 전쟁이 터지고 얼마 후 인민군이 우리 마을에 들어왔다. 인민군들은 학생단체를 만들어 고등학생들을 강제로 가입시켰다. 김일성 찬양 노래를 부르게 하고 이런저런 심부름을 시켰다. 학생들 중 6명은 나와 같이 아침마다 기차로 통학하던 고2, 고3 형들이었다. 얼마 후 유엔군이 들어와 인민군이 퇴각했는데, 그 형들은 천생 ‘빨갱이 부역자’로 몰려 처형당할 판이었다. 결국 다들 산으로 도망쳤는데, 나중에 빨치산이 돼서 경찰서를 습격했다가 결국엔 몰살을 당하고 말았다. ‘내가 몇 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이렇게 개죽음을 했겠구나.’ 좌우 이념 대결의 허망하고 참혹한 결과를 몸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이 집 아들 빨리 결혼해서 부모님 모시고 농사지어야 되겠네.” 동네 아낙이 무심결에 던진 말이지만 고3 졸업반인 내가 피해 갈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나 아니면 예순 넘긴 부모님과 여동생을 부양할 사람이 없었다. 우리 2남 4녀 중 형은 일찍 돌아가셨고 누나 3명은 출가한 상태였다. 하지만 농사꾼으로 남을 수는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게 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군 사관학교였고 나는 그 중에서도 해사에 시험을 쳤다. -해사 입교를 포기하고 농사에 전념했던 그해, 가을 수확을 하니 먹고살 것 빼고 딱 쌀 다섯 가마가 남았다. ‘이 정도면 일단 대학에 등록할 수준의 돈은 되겠다.’ 이듬해 초 서울대 경제학과 입학시험을 봤다. 어머니가 싸 주신 찐 고구마 5개를 손에 들고 난생처음 서울행 기차를 탔다.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는 서울역과 남대문 주변의 살풍경은 60년이 지난 현재도 머리에 또렷하다. 곰탕집 간판을 보고는 ‘곰고기를 파는 곳’, 복덕방 간판을 보고는 ‘떡 파는 곳’으로 오해했던 건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됐다. -55학번으로 서울대 합격을 했는데, 입학 때의 감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찢어지게 가난한, 그래서 고등교육받는 게 가당치도 않은 시골 출신의 고학생일 뿐이었다. 서울에서 가정교사라도 하면 좋을 텐데 그러자니 고향집의 농사가 문제였다. 수시로 서울과 김제를 농사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이 이어졌고, 중·고교 6년 동안 그랬듯 학비와의 전쟁이 대학 졸업 때까지 이어졌다. -대학 졸업이 다가올수록 입학 때 가졌던 경제학 교수에 대한 바람은 더 절실해져 갔다. 그러려면 대학원에 진학해야 했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나의 선택은 돈을 벌면서도 배움을 이어 갈 수 있는 한국은행 조사부 근무였다. -1961년 한국은행 배지를 달았다. 만 25세였다. 양복 한 벌을 18개월 할부로 사 입으니 세상이 마치 내 것 같았다. 얼마 후 5·16 정변이 났다. 정권을 잡은 군부는 동국대 옆에 중앙공무원교육원을 만들고 여기에서 사무관 이상 공무원과 교사, 교수, 기업인들에게 소정의 교육을 받도록 했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못 할 일인데 입행 첫해의 내가 여기에 강사로 위촉됐다. 매주 3~5시간씩 강의를 했는데, 모교의 교장 선생님과 대학 총장, 학장도 나의 강의를 듣는 상황이 됐다. 대학 은사 박희범 교수님께서 나를 추천했기 때문이란 건 강의를 시작하고 얼마가 지난 후에야 알았다. 경제기획론과 경제발전론을 가르치셨던 박 교수님은 비교적 진보적인 색채의 학자이셨는데, 혁명정부에서 새로운 경제의 틀을 짜는 역할을 맡으셨다. 교수님은 나중에 교육부 차관과 충남대 총장을 지내셨다. -운명을 바꾼 미국 유학은 뜻하지 않은 기회에 찾아왔다. 1968년 나는 남산의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몇 날 며칠을 심하게 취조당했다. 일인즉슨 이랬다. 당시 우리나라는 무역적자가 대단히 심했는데 한국은행은 환율을 올려 수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해서 폈다. 그러나 정부는 환율이 오르면 물가도 같이 뛴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그래서 한국은행은 서봉균 재무장관을 초청해 환율 인상 정책을 펴도록 설득시키기 위한 브리핑을 진행했다. 원고 작성과 발표를 대리급 조사역에 불과했던 내가 담당했다. 그런데 다음날 조간신문 1면 톱에 당장이라도 정부가 환율을 대폭 올리는 듯한 기사가 났다. 국민과 기업들 사이에 혼란이 왔다. 얼마 후 중앙정보부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행원부터 부총재보까지 담당자들을 모조리 연행해 갔다. 중앙정보부 분실에서 조사를 받는 동안의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누가 멋대로 신문사에 원고를 넘겨줬느냐”는 추궁이 이어졌는데, 작성자인 내가 우선적으로 용의선상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후배 행원이 신문기자 친구에게 발설한 사실이 드러나 나의 혐의점은 벗겨졌지만, 어쨌든 나는 후배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한 책임으로 감봉 징계를 받았다. 이게 한국은행 간부들에게 마음의 빚을 안겼다. “자네 혼자 책임을 지게 해서 미안해. 다음에 확실히 보상해 줄게.” -보상을 받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71년 한국은행 최초로 국외에 유학생 2명을 파견하게 됐다. 전체 행원을 대상으로 시험을 봤는데 나는 통계학에서 과락이 나와 탈락했다. 그런데 재시험 공고가 떴다. “어떻게든 박승 대리는 합격시키라”는 상부의 지시 때문이었다. -1972년 1월 미국 뉴욕주립대(올버니캠퍼스)로 유학을 떠났고 2년여가 흐른 1974년 4월 석사와 박사 학위를 동시에 받아 왔다. 유학을 마친 뒤 은행에 복귀하고 나서 얼마 지나 두 군데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나중에 한국은행 총재를 하게 되는 이경식 당시 경제수석이 청와대에 들어와 함께 일을 하자고 했다. 이 수석은 한국은행 재직 때 나의 직속상관이었다. 또 하나는 남덕우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김재익 경제기획국장을 통해 타진해 온 ‘사우디아라비아 경제자문단’의 단장 역할이었다. 당시 사우디는 ‘1차 오일쇼크’로 막대한 달러를 벌게 됐지만 경제 개발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우디 국왕은 경제 개발을 도와줄 자문단 파견을 한국에 요청했다. 나의 선택은 사우디였다. -사우디에서 1년 만에 돌아와 1976년 9월 한국은행에 사표를 내고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로 갔다. 교수 부임 직후에 쓴 ‘경제발전론’은 지금도 일부 대학에서 교재로 쓰고 있다. 교수가 되고 이듬해인 1977년부터 3년 동안은 서울신문 비상임 논설위원으로 경제 관련 사설을 썼다. 한 편 작성에 30분 정도밖에 안 걸렸는데 이게 소문이 나면서 다른 언론사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기도 했다. 나와 함께 김학준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정치 관련 사설을 서울신문에 썼다. 교수로서 경력을 쌓아가며 학교 안에서는 정경대학장과 대학원장을, 학교 밖에서는 국제경제학회장과 한국경제학회장을 지냈는데 1988년 뜻하지 않은 인생의 전기가 찾아왔다. -“박 교수, 나랑 같이 한번 일해 봅시다.” 노태우 대통령이 그해 2월 취임을 앞두고 경제수석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만 52세였다. 노 대통령과는 이전에 일면식도 없었지만 다양한 언론 기고와 강연 활동 등으로 몇몇 경제단체에서 나를 천거했던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내가 맡았던 첫 번째 과제는 ‘200만호 주택 건설’ 공약의 실현이었다. 말이 200만호이지 엄청난 물량이었는데 막상 아파트를 지으려고 보니 서울 시내에는 땅이 없었고, 서울시 외곽은 그린벨트로 묶여 있었다. “서울 시내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린벨트 밖으로 나가자.” 지도를 펴놓고 서울 세종로 사거리의 측량원표를 중심으로 반경 25㎞를 컴퍼스로 동그랗게 돌려 봤다. 25㎞ 이내로 한 것은 ‘지하철 1시간 이내’의 원칙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온 지역이 경기 분당, 산본, 평촌, 인천 중동 등 4곳이었다. 4대 신도시 추진이 확정되자 1988년 12월 노 대통령이 다시 나를 불렀다. “박 수석, 이제는 건설부 장관으로 고생 좀 해야겠습니다. 계획을 세웠으니 실행까지 맡아 주셔야지요.” -건설부 장관이 되고 나서 이듬해 서울 북쪽의 일산이 추가돼 5대 신도시 계획이 확정됐다. 그러나 그해 여름이 되면서 나는 청와대 경제수석실과 심각한 마찰에 부딪치게 됐다. 당시 아파트 분양가가 평당 평균 130만원대였는데 건축비는 170만원, 시장 가격은 250만~300만원 수준이었다. 사람들은 분양 당첨만 받으면 막대한 이익이 남는 구조였고, 건설회사는 낮은 분양가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날림 공사를 했다. 나는 대통령에게 분양가를 올려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경제수석실의 반대가 심했다. 분양가를 올리면 집값이 더 뛴다고 했다. 대통령을 만나 건의했지만 “그 얘기는 이미 경제수석한테 들었다”고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구나.” 사표를 냈다. 다음날 사실상 경질 통보를 받았다. 그게 1989년 7월이었고 이듬해 3월 신학기부터 다시 강단으로 돌아갔다. -2001년 3월 정년퇴임을 하고 이듬해 초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은행 총재로 임명했다. 숱한 공직을 거쳤지만 2006년 3월 퇴임할 때까지의 한국은행 총재 4년간이 내 생애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고 성취를 이룬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한국은행을 가장 사랑한 총재, 한국은행의 독립성과 위상을 높인 총재, 경제와 민생을 위해 고뇌한 총재’의 3가지 이미지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5남매를 결혼시키면서 4명을 청첩장 없이 보냈다. 첫째와 둘째 아이의 결혼을 주변에 알리지 않고 치렀더니 친구들이 “축의금 낼 기회를 좀 달라”고 해서 셋째 때는 200장을 찍었다. 그런데 역시 나의 생각과 맞지 않았다. 다시 넷째, 다섯째의 결혼은 순수 가족 행사로 치렀다. -내가 모은 재산은 언젠가는 전부 사회에 내놓고 갈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한국은행 총재 재임 시절부터 월급의 20%를 가난한 사람이나 소외된 사람을 위해 써 왔다. 모교인 백석초등학교에 도서관도 만들었다. 오래전에 장기 기증 서약도 마친 상태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된 데는 개인의 이익만이 아니라 타인과 사회의 이익을 중시하는 자세가 바탕이 됐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박승 前 총재 중앙은행(한국은행)과 정부(청와대·건설부·공공기관)에서, 또 대학 강단(중앙대 경제학과)에서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굽이굽이마다 굵직한 족적을 남겨 온 경제계의 원로다. 한국은행 총재 때 소신 있고 선제적인 통화정책을 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장과의 ‘소통’을 중시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1936년 전북 김제 출생 ▲김제 백석초, 이리공업중·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뉴욕주립대(올버니) 경제학 석사·박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신문 논설위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청와대 경제수석, 건설부 장관, 주택공사·교통개발연구원 이사장, 공적자금관리위원장, 한국은행 총재 ▲회고록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
  • 장애인 학살한 히틀러, 알고 보니 숨겨진 동생도 ‘장애아’

    장애인 학살한 히틀러, 알고 보니 숨겨진 동생도 ‘장애아’

    지금은 세계적인 독재자의 대명사가 된 아돌프 히틀러(1889~1945). 하지만 그의 가족관계는 그의 악명만큼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지난 6일(현지시간) 영국언론 더타임스는 히틀러의 숨겨진 동생이 장애아였다는 비화를 역사학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광인(狂人) 히틀러는 지난 1889년 4월 20일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브라우나우 암 인의 한 여관방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세관원 출신인 아버지 알로이스와 어머니 클라라. 히틀러의 부모는 총 6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각각 구스타프, 이다, 오토, 아돌프, 에드문드, 파울라다. 이중 구스타프와 이다는 아돌프가 태어나기 전인 유아시절 급성 전염병인 디프테리아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에드문드 역시 6세 나이에 홍역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번에 새롭게 밝혀진 사실은 기존에 아돌프의 형으로 추정됐던 오토와 관련된 출생의 비밀이다. 당초 역사학자들은 오토가 아돌프가 태어나기 2년 전인 1887년 태어나 그해 사망한 것으로 기록해왔다. 그러나 브라우나우의 역사학회 회장인 플로리안 코탄코가 오토의 출생기록을 발견하면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코탄코에 따르면 오토는 아돌프의 동생으로 지난 1892년 6월 17일 태어났다. 그러나 생후 6일 만에 심각한 뇌수종으로 숨졌다. 곧 장애아로 태어나 며칠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셈이다. 히틀러의 동생이 장애아였다는 사실이 의미있는 것은 나치시절 그의 장애인 학살 정책과 관련이 깊다. 히틀러는 1939년부터 ‘아리아인은 모든 인종 중 가장 위대하다’라는 명제 아래 수많은 장애인과 정신병자 총 27만 5000명을 별도 시설에 격리해 학살했다. 코탄코는 "기존 학자들은 히틀러에 대한 엄마의 과보호가 그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구축하는데 영향을 미친 것이라 생각했다"면서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철저한 학살은 동생 오토의 장애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국민의당 이상돈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국민의당 이상돈

    국민의당 최고위원인 이상돈(65·비례대표) 의원은 합리적 보수 성향의 법학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2012년에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서 비대위원을 맡아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도왔다. 대선 이후에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날 선 비판을 도맡아 해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제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를 중심으로 한 국민의당 비례대표로 현실 정치에 직접 뛰어들었다. 이 의원은 “국민의당 소속 의원들이 대부분 호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서 “호남 외 취약한 지역에서 저변을 넓히고 기반을 만드는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Q. 현실 정치를 하게 된 이유. A. 글만 쓰고는 못 있겠더라. 올해 초 야권 정치 지형이 극변하고 있었다. 2014년 당시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전신)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당의 새로운 비대위원장으로 나를 영입하려 했다가 무산됐다. 친노(친노무현)계를 중심으로 한 당의 거센 반발 때문이었다. 이후 비노계와 교류하게 됐다.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들을 지켜보며 현실 정치에 나서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Q. 박근혜 정부 탄생의 일등공신으로 꼽혔었다. 국민의당을 선택한 이유는. A. 기존 야당 가지고는 안 돼. 박 대통령이 2012년 집권하면서 약속했던 정치 쇄신, 국민 통합, 경제민주화 등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정반대로 갔다. 그러나 기존의 야당 가지고는 정권교체를 못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Q. 대선 후보로서 안 공동대표는. A. 이제 정치력은 입증됐다. 총선 전만 해도 안 대표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총선 당시 더민주와 연대해야 한다는 압력이 대단했다. 안 대표가 그런 압력을 이겨내고 정면돌파했다. 양당 패권주의, 계파 패권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메시지가 통했다. Q. 제3당으로 가야 할 길은. A. 정권 창출. 국민의당은 현재는 안정적인 세력으로서 부족한 점이 많다. 내년 봄쯤에는 세력을 확장할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비박(비박근혜), 비노가 아니라 우리가 지향하는 바에 맞는 의원들이 양쪽에 있다. 최소한 50석 이상 되는 의석을 가져야 대선을 수월히 치를 수 있다고 본다. Q. 킹메이커가 되고 싶은 것인가. A. 글쎄. 정치적 이슈가 끊이지 않고 있다. 안 대표에 대해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도울 것이다. 우리 당은 조직도 부족하고 인적 자원이 불투명하다. 국가 경영을 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당 차원에서 분야별로 외부 인사의 도움을 받는 게 필요하다. Q. 희망 상임위원회는. A. 환경노동위원회. 환노위는 인기가 없는 상임위다. 의원 대부분이 노동운동을 한 사람들이다. 나는 30년 가까이 학자였기에 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산업 구조조정 문제, 대량 실업 문제 등에 대해 국민의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4대강 사업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도 필요하다고 본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프로필 ▲1951년 부산 출생 ▲서울대 법학과 ▲ 미국 툴레인대 대학원 법학 석·박사 ▲ 미국 로욜라대 로스쿨 객원 교수 ▲중앙대 교수, 법대 학장·법학연구소장 역임
  •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새누리 김성원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새누리 김성원

    20대 국회 새누리당 지역구 국회의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김성원(42·경기 동두천·연천) 의원은 국회와 당에 부족한 점으로 ‘속도’를 꼽았다. 첫 당선자 총회에서 “30~40대가 새누리당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속도가 느려서”라고 당차게 말했다. 그는 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회도 무게와 격식을 따지느라 부처 장관, 차관을 부를 게 아니고 사무관이나 과장이 직접 설명하는 등 보다 현실적인 문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Q. 나에게 정치는 무엇인가. A. 설계. 토목공학을 전공했는데 모든 것의 기본은 설계다. 설계가 잘못되면 전체가 다 어긋난다. 설계처럼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정확하게 제시하고 힘을 모을 수 있는 청사진을 보여주는 게 정치다. 결국 정치가 바로 서야 민생도, 나라도 일어서는 것 아니겠나. Q. 정치를 선택한 계기는. A. 아버지. 동두천 시의원을 두 번 하셨다. 소선거구제였던 당시 시의원이 각 동을 다니며 시에서 보지 못하는 곳들을 찾아 도와주곤 했다. 아버지가 했던 이런 소정치에서부터 세상이 바뀌고 밝아진다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 선거운동을 도와 인사를 다녔는데 아버지가 한 장애인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자 오지 말라고 싫다고 했다. 두 번째 만났을 때도 손사래를 치던 사람이 세 번째 만났을 때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더라. 진정성을 갖고 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Q. 토목 전공인데 초선에 최연소라 국토교통위원회에 갈 수 있을까. A. 일하는 국회와 통일 한국을 위해서 꼭. 원내부대표에 청년소통특별위원회 위원장까지 맡아서, 일부 선배들이 혜택을 너무 많이 받았으니 상임위원회는 인기 없는 곳으로 가라고 농담 삼아 말한다. 그러나 20대 국회 민의는 ‘일하는 국회’다. 전문성을 갖고 정치를 제대로 해보려고 토목공학으로 석사, 학사, 박사를 모두 땄다. 일을 하려면 국토위에 가야 한다. 저마다 ‘일꾼’을 자처하지만 이들이 일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원내 지도부의 역할이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가장 중심이 될 도시가 연천인데 인프라를 미리 구축하지 않으면 통일 뒤 혼란에 빠질 것이다. 국토위에 가서 준비해야 한다. Q. 20대 국회에서 김성원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A. 정치적 실험 중. 국회 월급을 받는 직원은 전부 국회에서 일을 하도록 하고 있다. 지역 사무실에 있는 직원 월급은 사비를 쓰든, 후원금으로 충당하든 국민의 세금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의원보다 의원실 직원이 훨씬 많다. 보통 국회 직원 2~3명은 지역으로 보내지만, 국회 직원은 국회에서 일하라는 게 내 원칙이다. Q. 중점적으로 추진하려는 법안은. A. 통일경제특구법안. 연천, 동두천, 철원, 파주 등을 통일 한국의 경제 중심도시로 만들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 모법이 있어야 지원과 준비를 할 수 있다. 우선 중첩된 규제를 완화해서 도로나 물류기지, 산업단지 등 부지를 준비할 수 있게 하는 것. 전체를 다 풀자는 것은 아니다. 연천, 동두천도 마을회관에서 자다 보면 북쪽에서 포탄 소리가 들려온다. 지원이 연평도에 집중돼 있는데 접경지에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프로필 ▲1973년 경기 동두천 출생 ▲고려대 토목환경공학과 졸업 ▲(현) 새누리당 원내부대표, 국회의장 정무비서관, 고려대 연구교수, 한국자유총연맹 대외협력실장
  • 귀농귀촌 준비는 이렇게…‘시니어 산촌학교’ 특강

    최근 베이비부머(1955~1963년 출생)의 본격적인 은퇴와 함께 도심에서 벗어나 농어촌으로 돌아가는 귀농귀촌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귀농귀촌 인구는 2010년 761명에서 2014년 7743명으로 4년 새 10배가량 증가했다. 하지만 철저한 준비 없이 귀농귀촌을 했다가 실패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농어촌에 정착한 귀농귀촌 성공자들은 미리 농어촌 생활에 대해 꼼꼼히 알아보고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립산림과학원과 유한킴벌리는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도시민들을 위해 ‘시니어 산촌학교’를 개설하고 오는 10일 저녁 6시 30분 서울시청 시민청 바스락홀에서 ‘반농반X의 삶’의 저자 시오미 나오키를 초청해 토크쇼를 진행한다고 2일 밝혔다. 귀농귀촌을 준비하면서 이번 토크쇼에 참가를 원한다면 ‘생명의숲’ 홈페이지나 전화로 오는 8일까지 신청하면 된다. 시오미 나오키의 ‘반농반X의 삶’은 농업을 통해 정말로 필요한 것을 채우는 작은 생활을 유지하면서 저술, 예술, 지역 활동 등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X)‘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삶의 방식인 ‘반농반X’의 철학과 경험을 담고 있는 책이다. 유한킴벌리에 따르면 이번 토크쇼에는 시오미 나오키와 함께 정기석 마을연구소장, 유상오 한국귀농귀촌진흥원장 등도 참여한다. 귀농귀촌 현실 속에서 개인이 시골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 뿐만 아니라 대안적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된다. 한편 유한킴벌리는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의 새로운 비전으로 최근 ‘숲과 사람의 공존’을 제시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생명의숲, 국립산림과학원과 협력해 ‘시니어 산촌학교’를 만들었다. 귀농귀촌으로 인생 이모작을 꿈꾸는 베이비부머에게 숲에서 새로운 삶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주요 교육 프로그램은 생태, 산림경영, 귀농 등 분야별 전문 교수진이 산촌의 실제 생활과 귀·산촌 과정을 미리 경험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산촌에 정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한달여 간 현장체험을 포함한 50시간 내외의 교육 일정으로 두 차례 진행되며, 오는 6월 15일(수) 부터 시작하는 시니어 산촌학교 1기의 교육생은 오는 6월 3일(금)까지 유한킴벌리 우푸푸 블로그와 생명의숲 홈페이지를 통해 모집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천상의 약속’ 결방, 한국 나이지리아 중계 몇시부터? ‘한국 스페인’ 충격 씻을까

    ‘천상의 약속’ 결방, 한국 나이지리아 중계 몇시부터? ‘한국 스페인’ 충격 씻을까

    KBS ‘천상의 약속’이 2일 결방된다. KBS 2TV 편성표에 따르면 2일 오후 7시 50분 올림픽 국가대표 대한민국-나이지리아 중계전이 편성됐다. 이에 따라 당초 예정돼 있던 ‘천상의 약속’ 87회는 결방된다. 올림픽대표팀 4개국 친선대회가 열리는 가운데 대한민국의 첫 경기는 이날 오후 8시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펼쳐진다. 이어 4일 오후 1시 30분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온두라스와 일전을 갖고, 6일 오후 8시 부천종합운동장에서 덴마크와 마지막으로 대결한다. 나이지리아전은 KBS, 온두라스전은 MBC, 덴마크전은 SBS에서 각각 생중계 된다. 앞서 1일 한국 축구 대표팀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레드불 아레나에서 열린 스페인과 친선경기에서 전반전에서 3골, 후반전에서 3골을 내주며 1대6으로 대패했다. 한편 1일 방송된 ‘천상의 약속’에서는 이나연(이유리 분)이 숨겨둔 카메라를 꺼냈다. 그 카메라에는 영숙(김도연 분)이 뇌진탕을 입은 모든 과정과 더불어 세진(박하나 분)의 출생의 비밀도 탄로 날 것으로 보여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자막의 마술사’ 외화 번역가 이미도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자막의 마술사’ 외화 번역가 이미도

    “해운대에서 이제 막 올라왔습니다. 영국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인간의 본성을 ‘부끄럼을 타는 동물’(샤이 애니멀)이라고 표현했는데, 그게 이상하게도 저는 해운대에 가야 나오거든요.” 1일 서울 광화문의 한 건물 1층 커피숍에 흰 뿔테 안경을 쓰고 캐주얼 복장을 한 ‘청년’이 들어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20년 넘게 국내 최고의 외화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미도(55)씨였다. 그는 외모뿐 아니라 내면도 여전히 20대에 머물러 있었다. 번역과 자기 책에 대한 애정을 표현할 때도, 본인의 어두웠던 유년기를 말할 때도 초롱초롱한 눈빛은 여전했다. -나는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출생의 비밀’ 같은 걸 갖고 태어났다. 부모가 아닌 친할머니 손에서 컸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개되는 자리나 지면에서 나의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을 이야기한 적이 없는 이유다. 어린 시절은 기억 속에서 싹 지워 버렸다. 고2 때 집을 뛰쳐나온 뒤 아직까지 안 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남자는 가정을 못 지킬 수는 있지만 가족을 못 지키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다. 아마도 그 원천은 아버지에 대한 반감일 것이다. 아버지는 외국어가 자유롭게 되니 지금도 혈혈단신 어디선가 잘 살고 계실 거라고 생각한다. 집을 나온 뒤에는 어머님께 많이 의지했다. 젊은 시절 방황할 때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었다. 십수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그런 아버지가 나에게 물려준 건 있었다. 미군 부대에서 통역관과 도서관 사서 등으로 일했던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영어 공부를 강조했다. 말하자면 내 첫 영어 선생님이었다. 억지로 영어 고전 등 독서를 시켰다. -방황하던 고교 시절 여러 스승을 만났다. 그중 한 분이 소설가 이병주 선생이다.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읽으면서 이렇게 재미있는 글을 쓰는 분들이 있고 이런 세계가 있는 걸 왜 모르고 그저 방황만 했나 싶었다. 박람강기(博覽强記)의 세계를 까까머리 시절에 만난 건 행운이었다. 당시 동경하는 마음에 선생님께 팬레터도 보냈다. 그분의 책은 모두 다 읽었다. 그러다 대학 시절 학교 강연에서 뵙게 됐다. 강연 뒤에 “어린 시절에 편지를 보냈다”고 인사드렸더니 “그때 그 학생이 너냐”며 반가워하셨다. -남들보다 1년 늦은 1981년 대학에 들어갔다. 전공으로 스웨덴어를 택한 것은 나중에 영화를 공부하고 싶어서였다. 당시 가장 좋아하던 감독은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리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예술영화 하면 유럽, 그중에서도 스웨덴 영화를 첫손에 꼽았다. 나중에 스웨덴에서 영화를 공부하면 도움이 될까 싶었다. 대학 시절은 황금기였다. 오전엔 학교 근처 카페에서 소설과 시를 읽고, 오후에 강의를 마친 뒤에는 선후배들과 술집을 순회했다. 영어 공부도 열심히 했다. 난 혼자 있을 땐 내성적이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땐 외향적이다. 축구 같은 운동도 많이 했다. 당시 별명이 ‘가미카제’였다. 한번 뜨면 누군가는 꼭 쓰러뜨린다는 뜻이었다. 종종 골대로 공이 아닌 내가 빨려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당시 인연을 맺은 선배들과는 지금도 자주 만난다. -대학 졸업 뒤에는 디자인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갔다. 하지만 군 복무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중간에 그만두고 귀국해 공군 학사장교로 입대했다. 원래는 레이더기지에서 근무해야 했지만 운 좋게 영어 교육 담당으로 차출됐다. 입대 전 치렀던 영어 시험에서 고득점을 한 덕이었다. 당시 공군전자통신학교 영어교육대대에서 미국에 파견되는 장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맡게 됐다. 교육을 하는데 교본이 구식인 데다 딱딱해서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미국 영화를 보여주며 교육했다. 그 과정에서 할리우드 영화의 판권을 사서 한국 시장에 되파는 한국계 미국인 사업가를 만났다. 영화로 영어를 가르친다고 말하니 “내 일을 도와 달라”고 했다. 영화 판권을 사서 우리나라에 소개하려면 각종 자료들을 번역해야 하는데, 그 일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1991년 제대한 뒤 자막 번역을 시작하려니 막막했다. 당시에는 번역가를 주변에서 찾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영화 자막을 입히는 회사를 찾아가 국문 대본과 영문 대본을 빌린 뒤 이 둘을 비교하면서 공부했다. 보조 번역가로 활동하다 1993년에 함께 일하던 사업가가 폴란드의 거장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 ‘블루’ ‘화이트’ ‘레드’ 3부작의 판권을 사서 번역을 맡겼다. 당시 처음으로 자막 번역가 실명제를 관철시켰다. 종로에 있던 예술영화 전문관 ‘코아아트홀’에서 ‘블루’가 상영됐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데 엔딩 크레디트에 내 이름이 뜨는 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훌륭한 영화 작업에 참여했다는 자부심도 컸지만 자막 실명제를 하다 보니 당시 막 진출했던 외국 직배사들에도 이름을 알리는 효과가 있었고, 이후 전문 번역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초기에는 생업으로서의 자막 번역 여건이 매우 열악했다. ‘블루’의 번역료가 회사원 한달치 월급에도 못 미치는 60만원에 불과했다. 비디오용 영화 자막 번역에는 10만원, 20만원밖에 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열배 넘게 올랐다. 번역 실명제를 처음 정착시키고 번역가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지 않았나 싶다. -지금까지 번역 작업을 한 영화가 400편 정도다. ‘굿 윌 헌팅’ ‘식스 센스’ ‘인생은 아름다워’ ‘뷰티풀 마인드’ ‘글래디에이터’ ‘시카고’ ‘진주만’ ‘반지의 제왕’ 등은 나름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1997년에 자막 번역을 한 ‘굿 윌 헌팅’은 ‘스탠드 바이 미’와 더불어 나에게 운명의 영화다. 주인공인 윌 헌팅(맷 데이먼)은 고아 출신의 청소부다. 고통에 허우적대는 그를 심리학 교수인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품어 준다. 나는 고아가 아니지만 윌 헌팅이 마치 내 모습 같았다. ‘스탠드 바이 미’가 내 소년기를 보듬어 줬다면 ‘굿 윌 헌팅’은 청년기의 날 감싸안았다. 많은 영화들이 날 구원해 주는구나, 영화는 내 친구이자 부모구나, 이 분야에 몸담길 잘했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애니메이션 영화도 80여편을 번역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개봉한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이 내 손을 거쳤다. 애니메이션은 특정 작품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모두 애착이 간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라”고 했다. 단순히 보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눈으로 대상을 포착하고 가슴으로 느끼라는 뜻이다. 들여다보는 건 아이들이 잘한다.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표현한 ‘내 안에 있던 아이가 어디에 갔을까’라는 문장의 ‘아이’는 바로 아이의 호기심을 뜻한다. 이 호기심을 잃지 않는 건 창의성을 계속 지키는 일이다. 나에게 애니메이션 번역은 호기심과 창의성의 마르지 않는 우물이다. -자막 번역의 가장 큰 매력은 일을 하며 공부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다룬 소재를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번역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다. 20년 전쯤에는 ‘틴 컵’이라는 골프 영화의 자막을 번역했다. 당시엔 골프를 전혀 몰랐다. 프로 수준의 아마추어 골퍼 선배를 데려다 같이 영화와 대본을 보고 번역 작업을 했다. 예를 들어 ‘비축하다, 꼼짝 못 하게 하다’라는 뜻의 ‘Lay up’은 골프에서는 ‘끊어 가기’라는 뜻이다. 영화가 개봉한 뒤 골프 전문가들로부터 “재미있게 봤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영화 번역 작가들의 기본적인 원칙은 원래 대사의 의미와 표현의 맛을 가장 정확하게 살리는 것이다. 여기엔 각국의 문화적 배경이 반영돼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영화 ‘타짜’에 나오는 대사인 “나 이대 나온 여자야”를 미국 관객들에게 “I graduated Ewha university”라고 직역해서 보여주면 사람들은 뜬금없다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여기에서 적절한 번역은 “You know who I am?” 정도가 될 것이다. 의미를 전달하는 원칙을 고수하되 언어에 담겨 있는 문화나 정서가 반영돼야 한다. 번역가이자 소설가인 이윤기 선생은 “번역은 ‘밴 아이’를 낳는 거고, 소설 쓰기는 ‘안 밴 아이’를 낳는 것이지만 번역 역시 안 밴 아이를 낳는 것에 견줄 수 있다”고 하셨다. 나 역시 안 밴 아이를 낳는다는 자세로 번역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번역은 외줄타기다. 두 개의 기둥은 직역과 의역이다. 보는 사람들은 편안하지만 외줄을 타는 광대는 첫 번째 공연이건 백 번째 공연이건 피를 말리기 마련이다. -영화 번역을 시작하고 딱 10년이 되니까 갈증이 왔다. 나만의 고유한 것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마침 ‘책을 한번 써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옳다구나 싶어 저술 작업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가 제일 잘 아는 걸 쓰자’고 마음먹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화와 영어가 떠올랐다. 영화의 인문학적 내용을 배경으로 영어 학습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실제로 영화 대사에는 영어 학습에 유익한 내용이 차고 넘친다. ‘똑똑한 식스팩’(2013년 미래창조과학부 인증 우수 과학도서)이라는 이름의 자기계발서도 냈다. 말은 자기계발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걸 발견하는 게 능력을 개발하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평소 내 지론을 담았다. 이 책 역시 영화와 영어, 책 등을 사례로 넣었다. -내 이름은 아름다울 미(美)에 길 도(道) 자를 쓴다. 본명이다. 부친이 모친과의 사랑은 아름다웠을지라도 아름답지 않은 방식으로 나를 낳았으니 내가 아름다운 길을 걸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은 것 같다. 그래서 영화 자막 번역과 글쓰기라는 일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배우 이미도씨와 동명이인이다. 이미도씨가 결혼할 때 축하 문자를 많이 받았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에서 배우 강혜정씨가 맡은 역할의 이름 ‘미도’는 내 이름에서 따왔다. 영화 제작 당시 박 감독이 “미도라는 이름을 쓰고 싶다”고 요청했고, 제작 발표회 때 무대에 함께 올라가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이런 이유로 많은 분들이 날 여자라고 생각한다. 기업 강연에 가서 미리 준비를 하고 있으면 임원들이 처음에는 보조요원인 줄 알았다가 나중에 내 소개를 하면 뜨악한 반응을 보인다. ‘오랜만에 여자 강사가 온다’는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은 재미있는 삶이다. 행복의 반대는 재미없게 사는 것이다. 삶의 세 가지 틀을 재미와 가치, 기여 등으로 정의한다면 여기의 시작은 재미다. 심지어 다른 이들에 대한 봉사도 재미가 없으면 못 한다. 보람 역시 궁극적으로는 의미를 찾아야 하고, 그것은 재미의 또 다른 모습이다. 어떻게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계속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요즘은 소설가 한강씨의 ‘채식주의자’를 꼼꼼히 읽고 있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건 한국 영화가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탄 것과 마찬가지로 대단한 일이다. 특히 번역에 참여한 영국 아가씨가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다. 다만 늦은 감이 있다는 게 아쉬웠다. 국내에서 도끼날을 가는 준비를 계속했다면 한씨보다 앞선 작가들도 해외 유수의 상을 받을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이미도씨 1993년 영화 ‘세 가지 색-블루’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400여편의 외화를 번역했다. 최근에는 작가로, 출판인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서 개봉된 유명 외화 상당수가 그의 손을 거쳐 한국 관객들과 만났다. 공군 영어교육 장교로 복무하면서 해외 파견 요원에게 영어를 지도한 것이 번역가의 길로 접어든 계기가 됐다. ▲1961년 서울 출생 ▲한국외대 스웨덴어학과,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광고커뮤니케이션학(중퇴) ▲‘나인’, ‘눈먼 자들의 도시’, ‘쿵푸 팬더’, ‘클로버필드’, ‘슈렉’ 시리즈, ‘반지의 제왕’ 3부작, ‘진주만’, ‘킬빌’, ‘캐리비안의 해적’, ‘뷰티풀 마인드’, ‘아메리칸 뷰티’, ‘글래디에이터’, ‘노트북’, ‘식스센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제리 맥과이어’, ‘더록’, ‘피스메이커’, ‘인디펜던스 데이’ 등 번역 ▲‘이미도의 영어선물’, ‘이미도의 영어 상영관’, ‘나의 영어는 영화관에서 시작됐다’, ‘이미도의 등 푸른 활어영어’, ‘이미도의 아이스크림 천재 영문법’ 등 지음.
  • ‘저출산 극복’ 현장 목소리 듣는다

    ‘저출산 극복’ 현장 목소리 듣는다

    대통령이 위원장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지방자치단체의 저출산 극복 노력을 지원하고자 이달부터 9월까지 17개 시·도를 대상으로 현장 방문에 나선다. 위원회는 1일 부산을 처음 방문해 전국에서 최초로 조성한 ‘출산장려기금’의 성과 등에 대해 논의했다. 부산은 1000억원을 목표로 2010년 출산장려기금을 조성해 지난해까지 639억원을 모았으며, 약 10억원의 이자를 둘째아 출산용품 지원 등에 투자했다. 2일 전북, 9일 경기, 14일 서울을 잇달아 방문할 예정이다. 나머지 13개 시·도는 하반기에 방문한다. 상반기 위원회가 방문하는 서울, 경기, 부산 등은 합계출산율이 전국 평균인 1.24명보다 낮은 곳이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아기의 수다.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지난해 시·도별 출생아 수·합계출산율을 보면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1.0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낮다. 부산(1.14명), 광주(1.21명), 대구(1.22명), 인천(1.22명), 경기(1.27명) 등 대도시의 출산율도 낮은 편이다. 합계출산율이 평균을 웃도는 곳은 세종(1.90명), 울산(1.49명), 충남(1.48명), 제주(1.48명), 경북 (1.47명) 등이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더민주 황희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더민주 황희

    더불어민주당 황희(서울 양천갑) 의원은 4·13 총선에서 ‘목동의 기적’을 일궈냈다. 13대 총선에서 평화민주당 양성우 후보가 당선된 이후 24년 만의 야권 승리다. 새누리당 이기재 후보와의 격차도 12% 포인트에 달했다. 황 의원은 “20대 후반부터 정당과 청와대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아이들과 청년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Q. 승리 요인. A. 양천 토박이. 지역에서 초·중·고교(목동초-장훈중-강서고)를 나온 후보가 여태껏 없었다. 그렇다 보니 여야를 떠나서 지역민들이 신뢰를 보냈다. 그동안 새누리당 핵심 지지층은 야당 의원이 선출되면 항상 소통 문제를 걱정했다. 이번에는 ‘양천 토박이’인 나를 믿어 줬다. 명망 있는 재상인 황희 정승과 이름이 같은 것도 어르신들에게 플러스 요인이 됐다(웃음). Q. 1호 법안. A. 신재생타운법. 목동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 연한(30년)이 다가왔다. 국내 신도시 가운데 첫 사례다. 14개 단지로 구분된 목동 아파트는 재건축사업이 14개에 달한다. 이해당사자들이 협의하기 힘든 구조다. 인접한 다발성 재건축의 경우 관련법이 없다. 신재생타운법을 통해 목동을 다른 신도시의 모델이 되도록 하겠다. Q. 차기 대선 지지 후보. A. 문재인 전 대표. 첫째, 지금까지의 정치인들과 다르다. 전략적 판단보다는 도덕적 판단을 앞세운다. 지금 시대에 맞는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 또 부산 출신으로 확장성을 가진 것도 장점이다. 강원·충청·호남 인구를 다 합해도 영남 인구보다 적지 않은가. 국토 균형 발전, 지방분권 등 참여정부의 철학을 실현할 것으로 믿는다. Q. 정치적 롤모델. A. 노무현 전 대통령. 현안이 발생한 뒤 수세에 몰려도 항상 정면 돌파를 했다. 원칙이 있는 사람이라 가능했다고 본다. 머릿속에 정리돼 있는 원칙을 현실화하려는 노력도 끊임없이 했다. 사심이 없고 말 바꾸기를 하지 않았다. 정치인으로서 큰 강점이라 생각한다. Q. 당내 청년 일자리 태스크포스(TF) 위원이다. 해법은. A. 청년 위한 환경 조성. 20대 청년과 길에서 대화한 적이 있다. ‘2030세대가 투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으니 ‘예전부터 공약집을 봐도 우리 세대를 위한 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찾아보니 진짜 없더라.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는 동안 견뎌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TF에서 어젠다를 설정하고 청년들의 의견을 청취해 관련 정책 입법화에 나설 것이다. Q. 구조조정 해법 등 더민주의 방향은 옳은가. A. 옳다. 일자리를 더 만들어야 높은 부가가치를 가지고 올 수 있다. 하지만 야당은 구조조정을 당한 사람의 아픔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 잘려 나간 사람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런 점이 부족했는지 당내에서는 ‘너무 우클릭한다’, ‘당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프로필 ▲1967년 전남 목포 출생 ▲연세대 대학원 도시공학과 석·박사과정 수료 ▲새정치국민회의 공채 1기(김대중 총재 비서실 비서)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정무수석·홍보수석실) 행정관 ▲민주당 상근부대변인 ▲박원순 서울시장 선대위 정책특보
  • [부고] 여래종 종정 인왕 대종사 원적

    한국불교여래종 종정 인왕 대종사가 지난 28일 오전 5시 경기 성남 약사사에서 원적했다고 한국불교종단협의회가 30일 밝혔다. 법랍 60세, 세수 91세. 1926년 경북 고령에서 출생한 인왕 대종사는 1958년 관음사에서 비구계를 받았다. 대한불교전국사암연합회 2·3·4대 회장, 한국불교문화진흥원 1·2·3·4대 원장 등을 지냈다. 1988년 한국불교여래종을 창종하고 초대 종정에 취임했으며, 1995년 여래종 총본산인 충북 옥천 금강 대약사사를 창건했다. 영결식은 다음 달 1일 오전 8시 성남 약사사에서, 다비식은 같은 날 오후 12시 옥천 금강 대약사사에서 봉행된다.
  • [생활정책 Q&A] 입사 후 필요한 지식 채용 전 공지… 서류전형도 직무 능력 측정 위주로

    [생활정책 Q&A] 입사 후 필요한 지식 채용 전 공지… 서류전형도 직무 능력 측정 위주로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은 산업 현장에서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국가 차원에서 표준화한 지침이다. 정부는 불필요한 스펙 경쟁을 막고 능력 중심 고용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기업이 인력을 채용할 때 NCS를 적극 활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30일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강조하는 NCS 기반 인력 채용 과정에 대해 알아봤다. Q. 기존 채용 공고와 NCS 기반 채용 공고는 어떻게 다른가. A. 일반적인 채용 공고는 ‘행정직 ○명’, ‘기술직 ○명’ 등으로 최소한의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모집 분야에 대한 명확한 직무 관련 정보와 평가 기준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이로 인해 취업 준비생은 해당 분야에 지원하기 위해 무분별한 스펙을 쌓아 왔습니다. 반면 NCS 기반 채용은 채용 분야별 필요한 직무 능력을 사전에 공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채용 공고를 내기 전 인사담당자와 직무 전문가, 채용 전문가는 협업을 통해 NCS를 기반으로 한 직무 분석을 실시합니다. NCS를 통해 분류한 직무는 800개가 넘습니다. 이런 직무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입사 후 수행할 업무를 자세히 공지합니다. 직무 수행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 기초 능력을 제시해 해당 직무에 꼭 필요한 능력만 준비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Q. 서류 전형에서도 차이가 있나. A. 일부 기업은 서류 전형에서 가족, 학력, 학벌, 출생지 등 직무와 무관한 인적 사항과 해외 봉사·토익 등 직무와 무관한 스펙을 작성하도록 해 취업 준비생들의 반발을 불렀습니다. 하지만 NCS 기반 서류 전형은 직무와 무관한 기재 사항은 최소화하고, 직무 수행에 필요한 교육·자격·경험·경력 사항 등을 통해 직업 기초 능력과 직무 수행 능력을 측정합니다. 인적 사항은 가급적 성명, 주소, 연락처, 지원 분야 등 기초적인 내용만 작성하도록 합니다. ‘경력’은 금전적 보수를 받고 일정 기간 일했던 사례, ‘경험’은 보수를 받지 않고 수행한 활동을 의미합니다. 해당 직무와 관련한 국가공인기술이나 전문·민간기술은 자격 사항으로 제출하면 됩니다. 학교교육은 물론 직업교육과 개인이 이수한 교육과정 중 지원 직무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기타 교육 내용도 작성할 수 있습니다. Q. 필기·면접 전형은. A. 기존 필기시험은 직무 관련성에 대한 명확한 고려 없이 일반 상식과 인·적성, 다양한 전공 지식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반면 NCS 기반 필기 전형은 채용 공고 단계의 직무 설명 자료에서 제시하는 직무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시험이 중심이 됩니다. 평가는 선다형, 진위형, 단답형, 연결형, 논술형 등의 다양한 형태로 직업 기초 능력 평가, 전공 필기, 논술, 직무 수행 능력 평가 등 다양한 유형 중 선택적으로 진행합니다. 기존 면접에서는 일상적이고 단편적인 대화나 입사 지원자의 첫인상, 면접관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입사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NCS 기반 면접 전형에서는 경험 면접과 상황 면접, PT 면접, 토론 면접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직무 능력을 갖췄는지 집중 평가합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새누리당 강효상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새누리당 강효상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새누리당 비례대표 강효상 의원은 3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인이 돼서도 언론인의 비판의식과 균형감각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Q. 새누리 비례대표 후보가 된 과정은. A. 지역구는 ‘NO’. 지난해 11~12월 새누리당이 내가 자란 대구에서 지역구 후보를 찾을 즈음,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출마를 권유했다. 국가의 공복이자 자산으로 거론된다는 것이 굉장히 자랑스러웠지만 지역구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은 적성에도 맞지 않거니와 준비도 안 돼 있었다. 그래서 지역구는 안 하겠다고 결정했는데 많은 선후배들이 언론계 몫 직능대표로 비례대표를 신청하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어려운 결심을 했고 다행히 선택을 받았다. Q. 정치는 언제까지 하고 싶은가. A. 우선 4년간 열심히. 농반진반으로 비례대표만 2~3번 하고 싶다고 답한 적이 있지만 우선 ‘초심’으로 4년간 열심히 한 뒤 결과를 보고 정치를 더 할지 여부를 정하겠다. 국회의원은 봉사하는 직이라고 생각한다. 권력이 아니라 공무원의 하나일 뿐이다. 입법하고 행정부를 견제하는 역할에 충실하고 싶다. Q. 추진하고 싶은 법안은. A. 정당한 콘텐츠세법. 포털이 출판, 신문, 방송에서 생산하는 콘텐츠로 얼마나 많은 이익을 거두고 있나. 전통 콘텐츠를 활용해서 돈 버는 업체들에서 이익의 일정 부분을 돈으로 걷자는 것이다. 그 돈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업체를 직접, 간접적으로 지원하자는 내용이다. 규제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미국도 포털이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는다. 포털이 콘텐츠 생산자와 전부 1대1로 싼값에 계약해서 정보를 마구 거둬들인 뒤 엉망으로 뿌린다. 이런 부작용은 2차적으로 접근하고, 우선 이들 포털에 전통 산업을 갉아먹는 데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글을 장려하지 않고 글 산업을 죽이면서 어떻게 미래를 담보할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 들어가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 Q. 당면한 경제문제는 구조조정인데. A. 단호히 고리를 끊어야. 외환위기 직전에도 부실 기업들이 나타났을 때 정치권이 개입해서 돈을 퍼주고 대외신인도를 떨어뜨렸다. 조선업 중 몇 개 기업은 이미 지급불능 상태라고 한다. 현 시스템에선 당연히 법정관리를 먼저 검토해야 한다. 돈을 쏟아부어 연명하면 나중에 더 큰 공적자금이 투입될 수 있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좋은 점이 해외 채권자도 고통을 분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디트로이트 자동차 산업도 아픔을 겪은 뒤에 다시 일자리가 늘어나고 살아나고 있다. Q.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에 나오면 가능성은. A. 국가적인 자산. 여야, 친박(친박근혜)계, 비박계 할 것 없이 우리나라 모든 정파들이 영입해야 할 정치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자리라면 대통령으로서, 혹은 다른 형태의 국가지도자로서 충분한 우리의 큰 자산이다. 이분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돌아오면 활용해야지 왜들 흠집을 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새누리당도 외부영입을 포함해 차기 대권 후보로 가장 좋은 분을 선택해 새로운 시대와 역사에 대비해야 한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프로필 ▲1961년 경북 안동 출생 ▲서울대 법학과 졸업 ▲조선일보 편집국장, TV조선 보도본부장, 한국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운영위원장
  • 지난달 집단 탈북 종업원 중 ‘인민배우’ 최삼숙 딸도 포함

    지난달 집단 탈북 종업원 중 ‘인민배우’ 최삼숙 딸도 포함

    지난달 초 중국에서 집단탈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13명 가운데 북한 최고의 가수로 활약한 ‘인민배우’ 최삼숙의 딸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9일 탈북 종업원 부모들이 서명한 인신구제신청서가 북한의 대남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에 공개됐다면서 “(부모로) 북한에서 최고 인기를 누렸던 최삼숙의 이름도 포함됐다”고 밝혔다. 방송은 “인신구제신청서에 쓰인 최삼숙의 출생 날짜도 한국 사회에 널리 알려진 최삼숙의 생일과 똑같은 1951년 6월 15일로 표기돼 동일인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삼숙의 딸 리은경은 1979년 1월 23일생으로 신청서에 나타나 있다. 한 탈북자는 “현재 최삼숙은 평양시 동대원 구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그의 언니는 남한에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개성 장풍에서 태어난 최삼숙은 입북 후 평양 방직공장에서 공장예술소조원으로 활동하던 중 뛰어난 예술기량을 인정받아 평양영화음악단 가수로 입단했다. 이후 20년 넘게 인민배우로 활동하면서 예술영화 ‘열네 번째 겨울’과 ‘도라지꽃’ 주제가를 비롯해 약 3000곡의 노래를 불렀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더민주 김정우 의원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더민주 김정우 의원

    기획재정부 국고국 과장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김정우(군포갑) 의원은 당내 재정전문가로 꼽힌다. 김 의원은 1996년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한 뒤 20년간 기재부에서 일했다. 12~15대 총선 철원·화천·양구 지역에서 보궐선거 한 차례를 포함, 모두 다섯 번 출마해 낙선한 더민주 김철배 강원도당 고문의 아들이기도 하다. Q. 더민주를 선택한 이유는. A. 더민주 DNA. 부친께서 범민주당 계열에서 오래 활동했다. 나도 ‘더민주 DNA’를 갖고 있는 셈이다. 총선 전 더민주 산하 유능한경제정당위원회에 참여했다. 당이 이래서는 어렵겠다고 느꼈다. 정책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문재인 전 대표가 영입을 제안했다. 고민 끝에 수락했다. Q. 출마를 결심했을 때 부친의 반응은. A. “아들까지 바보처럼 살게 할 수는 없다.” 선거에 나간다고 했을 때 반대를 많이 하셨다. “나도 다섯 번 출마해도 안 됐는데, 아들까지 바보처럼 살게 할 수는 없다”고 하셨다. 이대로는 정권 교체를 할 수 없다고 설득했다. 더민주가 정책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공직자 출신이 야당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Q. 정치적 최대 관심사는. A. 재정민주화. 일반 국민들은 자신이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잘 모른다. 4대강 사업에 세금이 낭비돼도 전혀 알 길이 없다. 예산 낭비를 사전에 막기 위해서는 국회의 통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 국가 재정 투명화에 중점을 두고 정책을 만들 것이다. Q. 나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A. 관료 경험. 야당에는 관료 출신이 드물다. 고위 공무원들은 어깨가 뻣뻣하다는 말을 듣는다. 나는 그렇지 않다. 서민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또 서민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데 누구보다 경쟁력이 있다. Q. 다음 선거에서 철원에 출마할 가능성은. A. 없다. 나는 이제 군포 시민이 됐다. 군포가 바로 내 고향이다. 군포 발전을 위해 선출된 국회의원인 만큼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것이 나를 믿고 뽑아 주신 군포 시민에 대한 도리다. Q. 1호 법안은. A. 인구문제 해결 법안. 인구문제를 국가 어젠다로 다루는 법안을 1호 법안으로 추진하려고 한다. 현재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있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운영될 뿐이다. 앞으로 인구가 없어서 존립 근거가 없어지는 기초 단체가 생길 것이다. 정부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경제 발전도 이룰 수 없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프로필 ▲1968년 강원 철원 출생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학사,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브리스톨대학교대학원 정책학과 박사 ▲제40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기획재정부 국고국 계약제도과장, 세종대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 교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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