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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아프리카 감비아 교민 16명, 닷새 걸려 오후 인천공항에

    서아프리카 감비아 교민 16명, 닷새 걸려 오후 인천공항에

    아프리카 서부 감비아에 고립돼 있던 우리 교민 16명이 코로나19 확산을 피해 닷새 동안 육로와 항공을 거쳐 29일 오후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28일(이하 현지시간) 세네갈 주재 한국대사관(대사대리 신건호)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이후 4개월 동안 감비아에 고립된 우리 국민 16명은 귀국 항공편 탑승을 위해 지난 25일 오전 5시 30분쯤 감비아 수도 반줄을 출발했다. 한국대사관이 임차한 전세차량을 타고 대사관이 주선한 이동 허가서로 12시간 육로로 이동해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 도착했다. 감비아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제 항공노선이 중단되고 육상 국경이 봉쇄됐다. 세네갈은 지난 15일부터 정기 항공편 운항을 재개했다. 교민들은 세네갈 입국 후 다카르 시내에 있는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코로나19 검사(PCR 방식)를 받았다. 이들은 28일 오전 10시 40분쯤 에티오피아 항공 ET 908 편에 올라 이날 오후 9시쯤 에티오피아에 도착한다. 곧바로 10시 45분쯤 ET 672편으로 아디스아바바를 출발해 29일 오후 4시 15분쯤 인천국제공항에 내림으로써 닷새 만의 귀국 일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세네갈 주재 한국대사관은 감비아, 기니, 기니비사우, 말리, 카보베르데 등 서아프리카 5개국도 관할하고 있다. 대사관은 이번 귀국 지원에 앞서 모두 21차례에 걸쳐 재외국민 97명의 귀국을 지원한 바 있다. 나라별로는 세네갈 15차례 75명, 기니 네 차례 9명, 말리 두 차례 13명 등이다. 감비아는 서울의 한강과 같은 감비아 강 줄기를 따라 죽 이어진 길다란 영토를 갖고 있으며 온통 세네갈에 포위돼 있다. 영국과 프랑스가 1891년 파리에서 협정을 맺어 국경 선을 그었다. 국경 선이 부족과 부족의 연대를 파괴한 것은 물론이다. 기자 개인적으로는 아프리카 서부를 여행할 때 감비아 항공을 탑승한 적이 있는데 스튜어드(남성 승무원)들의 키가 엄청난 장신이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전·현직 ‘골프 여제’ 제주서 ‘굿 샷’ 열전

    전·현직 ‘골프 여제’ 제주서 ‘굿 샷’ 열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가 박인비(왼쪽·32), 고진영(오른쪽·25)의 샷을 신호탄으로 시즌 하반기의 막을 올린다. KLPGA 투어 제주삼다수 마스터스가 30일 제주에서 막을 올려 나흘 열전에 들어간다. 올해로 7회째인 이 대회는 그동안 오라컨트리클럽에서 열렸으나 올해 세인트포 골프장(파72·6500야드)으로 장소를 옮기며 54홀에서 72홀 대회로 바뀌었다. 총상금 8억원에 우승 상금 1억 6000만원은 그대로다. ‘단골손님’ 박인비의 행보가 가장 주목된다. 지난 2월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ISPS 한다 호주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이후 5개월 만에 나서는 공식 대회이고 올해 KLPGA 투어 출전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엔 고진영과 펼치는 전·현 여자골프 세계 랭킹 1위의 샷대결을 볼 수 있다. 한 해도 빼놓지 않고 출전했지만 한 번도 정상을 밟아 보지 못한 박인비가 7번째 도전에서 우승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2년 연속 ‘톱10’(공동 8위·5위) 성적을 낸 터라 우승은 실전 감각을 얼마나 빨리 되찾느냐에 달려 있다. 이 대회 2017년 챔피언 고진영은 약 한 달 만에 세 번째 KLPGA 투어 대회에 나선다. 첫날 박인비는 대상포인트 1위를 달리는 E-1챔피언십 우승자 이소영(23) 등과 오전 8시 40분 10번홀에서 티오프한다. 고진영은 ‘디펜딩 챔피언’ 유해란(19), 시즌 첫 2관왕에 오른 박현경(20)과 낮 12시 20분 출발한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장애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길… 면접 땐 업무보다 됨됨이 살펴”

    “장애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길… 면접 땐 업무보다 됨됨이 살펴”

    올해 중증장애인 국가공무원 경력채용 시험에서 역대 가장 많은 인원이 선발됐다.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직무를 적극적으로 발굴한 덕에 장애인 50명이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생겼고, 39명이 합격해 공직자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됐다. 정부는 경력, 학위, 자격증 분야에서 응시자격 요건을 갖춘 중증장애인을 면접시험으로 선발하고 있다. 이 시험을 통해 지체장애가 있는 김성제(44)씨와 신장장애가 있는 박소영(38)씨가 각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서울지방우정청과 대구수성우체국 공무원으로 선발됐다. 교사로 일해 온 시각장애인 황진원(39)씨는 교육부 산하 한국해양대 학생상담센터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됐다. 28일 시험을 주관한 인사혁신처의 도움으로 합격자들에게 공직에 도전하기까지의 여정을 들었다. -공직에 도전한 계기는.김성제(이하 김) 대학에 다닐 때 수화 동아리에서 통역 봉사활동을 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살아왔는데, 그때 처음으로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무원 또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이기에 지원했다. 민간에서는 프로그래머로 16년간 일했다.황진원(이하 황) 특수학교에서 14년간 교사로 근무했다. 퇴직 후 심리상담을 공부하던 중 국가공무원 경력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됐다. 청년들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이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다.박소영(이하 박) 공공기관에서 10여년간 근무하던 중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만성신부전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선 임신 중절 수술을 권유했지만 아이를 낳았다. 그로 인해 신장 장애를 갖게 됐다. 진로를 고민하던 중 중증장애인 경력채용 정보를 기사로 접했다. 장애라는 편견을 극복하고 금융보험 전문가가 되고 싶어 지원했다. -면접시험은 어떻게 준비했나. 김 공무원 면접은 확실히 달랐다. 기업에선 면접관들이 주로 전산개발 등 업무와 관련한 기술적인 부분을 물었지만, 공무원 경채 면접에선 사람 됨됨이, 동료와의 소통 관련 질문을 많이 했다. 면접시험 전 온라인을 통해 공무원 면접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파악한 후 첫 직장을 다닐 때 어떻게 생활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정리하며 예상 질의에 대한 답변을 정리했다. 황 공무원 면접 수험서로 시험을 준비했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심리상담을 할 것인지 등 예상 질의를 뽑아 나름대로 답변을 정리했다. 하지만 막상 면접에 들어가니 공무원의 일반적인 소양에 관한 질문이 주로 나왔다. 대학 상담가가 된다면 어떤 직무를 수행하고 싶은지, 새롭게 수행하고 싶은 것은 있는지도 물었다. ‘면접 질문을 전문적으로 특화하면 좀더 준비된 인재를 뽑을 수 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박 면접 수험서의 기출문제를 풀며 공부했다. 실제 면접에선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의 대처 능력을 평가하는 질문 등이 나왔다. -서류전형 응시자격 요건 중 어느 분야로 지원했고, 어떤 업무를 하게 되나. 김 사무자동화산업기사 자격증 등이 있어 자격증 분야로 지원했다. 서울지방우정청에서 일할 예정이다. 전문성을 살려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가 편안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 황 한국해양대 학생상담센터에서 근무하게 됐다. 상담 분야 석사 학위가 있어 학위 쪽으로 응시했다. 상담센터에선 학생 심리·진로 지원 등을 한다. 그림책을 활용한 상담, 음악치료 등으로 상담 역량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박 경력 분야로 지원했다. 마케팅을 전공했고 사회복지사 자격증과 정보처리기사 자격증 등이 있다. 근무 예정 기관은 대구수성우체국이다. 보험 관련 행정업무를 담당할 예정이다. -민간에서 여러 해를 근무했는데, ‘장애’에 대한 편견을 경험한 적이 있나. 김 민간기업 면접을 봤을 때였다. 한 면접관이 나에게 ‘키보드를 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수년간 프로그래머로 경력을 쌓은 내게 던질 질문이 아니었다. 황 암묵적 차별을 느꼈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을 때는 내 장애가 부각되고 나의 의견과 상대의 의견을 동등하게 취급하지 않았다. 교사를 그만두고서 잠시 일한 공기업은 채용 과정은 평등했지만 장애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높지 않았다. 내가 업무에 투입될 때까지 함께 일할 동료들은 내 장애에 대한 어떤 정보도 듣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어찌할 수 없는 어려움이 생겨도 알아서 해결하고 동료와의 관계를 조율해야 했다. 차별 없는 채용 제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만 같이 일할 동료의 의식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장애 인권 감수성 교육이 자주 이뤄졌으면 한다. 박 나 역시 신장장애를 갖기 전에는 ‘장애인은 일을 잘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장애인이 되고 보니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는데도 사회적 시선 때문에 주눅이 들거나 움츠러드는 일이 많았다. 건강했을 때는 알지 못했던 시선을 느꼈다. 장애인도 똑같은 사람이고, 똑같이 업무를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어찌 보면 험난한 세상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강한 사람들이다. 장애인을 따뜻하게 배려하고 품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에 정부에서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직무를 많이 개발했다. 진작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도 남는다. 김 모든 것이 한 번에 좋아질 수는 없을 것이다. 서울시에서 중증장애인 공무원을 채용하던데, 민간기업에서도 더 많은 노력을 해 줬으면 한다. 국가가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황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게 취업 기회를 주고,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아직은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충분하진 않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직무를 발굴하고 있다. 취업 지원을 넘어 근로 지원 서비스를 확대하겠다고 하니 고무적이다. 그런 서비스가 충분히 이뤄지면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받게 될 것이다. -도전하는 장애인들에게 조언을 해 달라. 김 솔직히 장애가 있다 보니 다른 이들의 시선을 더 의식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아직도 두렵다. 그렇다고 계속 그 자리에만 머문다면 발전하지 못한다. 두려움이 있다면 그 두려움을 쳐내야 한다. 누가 도움을 준다고 해결될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싸워 이겨 나가야 한다. 두려움이 있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황 교사가 되려고 임용시험을 준비하며, 또 가르치는 학생들을 보면서 장애가 있으면 정말 원하는 것을 선택할 기회를 스스로 제한하게 된다는 걸 느꼈다. 많은 장애 학생이 대학에 진학할 때 특수교육이나 사회복지를 선택한다. 취업이 쉽고 공직으로 진출하기에 용이한 전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간에서도 장애인에게 기회를 많이 준다면 학생들이 적성에 따라 공부하고 진로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대학에선 특수교육을 전공했지만 대학원에서 내가 좋아하는 심리상담을 공부해 이번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현실적 제한으로 원치 않는 전공을 선택하더라도 꾸준히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해 나간다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박 신장이 망가졌을 때 많이 절망하고 우울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서 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을 하고 싶어도 도전하기를 망설이는 장애인이 많을 것이다. 우선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적성을 파악해 자격증 따기 등 쉬운 것부터 하나씩 이루면 좋을 것이다. 차근차근 준비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박지원 저격수’ 주호영 “남북 이면합의서, 전직 고위공무원이 제보”

    ‘박지원 저격수’ 주호영 “남북 이면합의서, 전직 고위공무원이 제보”

    “원본? 서류 진실이면 평양에 한 부, 한국에 극비문서로 한 부 보관 추정”“대북송금도 北과 내통 증거…부적격”전날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를 북한과의 ‘이면 합의서’(4·8 남북 경제협력 합의서)로 거칠게 몰아붙였던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28일 박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공개한 ‘이면 합의서’ 사본이 전직 고위 공직자의 제보로 입수된 것이라고 밝혔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YTN 라디오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전직 고위공무원 출신이 사무실에 (해당 문건을) 가지고 와서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것을 청문회 때 문제 삼아달라’고 했다”고 공개했다. 그러면서 이 문건을 제시하자 “(박 후보자가) 처음에는 기억이 없다고 하다가, 그 다음에는 서명하지 않았다고 하다가, 오후에는 위조한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본을 제시할 수 있냐는 질문이 돌아왔는데, 그 서류가 진실이라면 평양에 한 부가 있고, 우리나라에 한 부가 극비 문서로 보관돼 있지 않겠나. 우리가 그걸 어떻게 입수하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다만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베이징에서 2000년에 이런 문서를 만들 때 관여한 사람이 여럿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증언이나 이런 것으로 시간이 지나면 사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주호영, ‘박지원 서명’ 합의서 흔들자朴 “기억 없고 서명하지도 않았다” 앞서 박 후보자는 지난 27일 국회 정보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주 원내대표가 당시 합의서를 증거자료로 제시하며 박 후보자의 대북송금 관여 의혹을 제기하자 “문건 어디에 5억 달러가 들어가 있느냐. 기억에 없다”고 밝혔다. 주 원내대표는 “합의서에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해 5억 달러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겼다”면서 “(합의서) 사인도 (박 후보자의 것과) 똑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박 후보자는 “어떤 경로로 문건을 입수했는지 모르지만, 4·8 합의서는 지금까지 공개가 됐고 다른 문건에 대해선 저는 기억도 없고 (서명) 하지도 않았다”고 거듭 밝혔다. 주 원내대표는 지난 19일에는 “국정원은 대한민국을 최전선에서 지키는 정보기관인데, 내통하는 사람을 임명한 것은 그 개념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면서 박 후보자 지명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박 후보자는 “모욕적”이라고 불쾌감을 표출했었다. 주호영 “국정원장은 안보기관 수장이지북과 대화하고 협상하는 기관 아니다” 주 원내대표는 “박 후보자는 여러 가지 점에서 부적격이다. 국정원장은 안보기관의 수장이지, 북한과 대화하고 협상하는 기관이 아니다. 개념 설정부터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검과 대법원 판결로 확인됐던 대북송금 문제, 이건 사실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북측과 내통한 증거다. 그런 점에서 부적합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 후보자는 전날 30억 달러 대북송금 이면합의 의혹과 관련, “논의도, 경제협력으로 돈을 주겠다고 합의한 것도 절대 없다”고 강조했다. 박 후보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전날 비공개로 진행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이 대북지원 문제에 대해 남북 간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통합당 간사 하태경 의원의 브리핑과 관련해 “북한이 처음에 20억 달러 현금 지원을 요구했으나 우리는 예산에 의해 모든 돈이 집행되고 어떤 경우에도 현금을 지원할 수 없으니 소탐대실하지 말라고 했다”고 밝혔다.朴 “대북송금 논의도, 경제협력으로돈 준다는 합의도 절대 없었다” 하 의원은 “박 후보자가 ‘(남측은) 아시아개발은행(ADB),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이나 민간 사업가 등의 투자 자금으로 20억∼30억 달러 대북 투자가 가능하지 않겠냐’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했다”면서 “이런 이야기를 (남북 간에) 했다는 건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후보자는 “만약 정상회담을 해서 남북이 교류협력을 하면 아시아개발은행(ADB),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남한 기업, 외국 기업에서 20억~30억 달러 투자는 금방 들어온다. 그런 것을 해야지 우리는 현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박 후보자는 “그랬더니 (통합당이) 싹 뒤집어서 ‘20억~30억 달러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느냐’고 해 저는 ‘어떤 사람들이 (서류를) 위조한 것 같다’고 했다”면서 “만약 사실이면 (대북송금) 특검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후보자는 “이 문제는 김대중 대통령의 명예도, 박지원의 명예도, 특히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임명한 문재인 대통령의 명예도 있기 때문에 수사를 의뢰할 것”이라면서 “이것은 역사에 묻을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주 원내대표는 박 후보자의 학력 위조 의혹과 관련해서도 “광주교대는 4학기까지밖에 없기 때문에 (단국대의) 6학기로 편입하려고 조선대를 5학기 다니다가 왔다고 서류를 냈는데, 그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자 2000년 광주교대로 수정하면서 치명적 꼬리를 남긴 셈”이라면서 “이런 의혹이 해결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격동하는 동북아… 한국의 선택은 ‘사대’ 아닌 자강·선린우호

    격동하는 동북아… 한국의 선택은 ‘사대’ 아닌 자강·선린우호

    한반도는 동북아의 세력교체기 때마다 선택을 요구받으며 격동에 휘말렸다. 17세기 초 명청 교체기 조선은 양대 호란으로 국토와 민생이 쑥대밭이 됐다. 19세기 후반엔 청과 일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조선을 삼키려 각축하는 전쟁이 조선 땅에서 벌어지는 걸 지켜봐야 했다. 조선은 나름 타개책 마련을 위해 고민했다. 그러나 결론은 언제나 ‘사대’였다. ‘큰 나라를 더 열심히 섬기고 의지해야 한다.’ 자강을 위한 대책이나 교린(선린우호 관계)을 위한 노력은 없었다. 그런 조선에 열강은 군사기지, 병력, 전함, 군량, 무기는 물론 전쟁 가담까지 요구했다.요즘 한반도 안팎에선 그런 역사가 재현되고 있다. 중국 봉쇄를 추진해 온 미국은 7월 초 2개의 항공모함 전단을 동원해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위력 시위를 벌였다. 마이클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은 13일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권리 주장을 ‘완전한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22일 국교 수교 이래 처음으로 미국 정부는 휴스턴 중국 총영사관의 폐쇄를 명령했고, 이에 맞서 중국도 청두 미국 영사관을 폐쇄했다. 두 나라의 거세지는 군사적 대치에 비례해 한국에 택일을 요구하는 ‘전통적 우방’ 미국의 압박도 커졌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은 7~9일 방한 때 한국의 적극적인 ‘반중’ 노력을 지금까지와는 달리 사실상 공개적으로 주문했다. 여기엔 주한미군 주둔비 ‘폭탄 증액’도 포함돼 있었다. 과거 명이 조선에 했던 것과 다름없지만, 명의 사신 황손무 감군(지금의 국방차관)의 품격은 달랐다. ●대책 없이 ‘반청’ 외치다 나라는 ‘쑥대밭’ 후금(후에 청)이 부상하던 17세기 초 조선 인조는 대책 없이 ‘무찌르자 오랑캐’만 외쳤다. 1627년 1월 중순 후금의 정예 3만여명이 압록강을 넘어왔다. 조선 조정은 불과 10여일 만인 1월 25일 강화도로 줄행랑을 쳤다. 그로부터 9년 뒤 조선 조정은 또 대책 없이 ‘반청’을 외쳤다. 1636년 2월 24일 한양에 온 용골대, 마부대 등 청의 사신을 서대문 밖 숙소에 사실상 감금했다. 청의 사신은 29일 말을 훔쳐 도망쳤다. 인조는 이튿날 유시문을 발표했다. “오랑캐와 모든 관계를 끊는다.” “8도 관찰사들은 죽기를 맹서하고 싸워 원수를 갚자.” 4월 11일 청의 홍타이지는 전쟁이냐 화친이냐 택일을 통첩하는 국서를 보냈다. 6월 17일 인조는 이런 내용의 답서를 보냈다. “조선을 침략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말로를 볼 것이며 조선과 우호를 유지하는 도쿠가와의 태평성대를 보라.” 조선을 침략하면 도요토미처럼 망할 것이라는 대꾸였다. 9월 1일 명의 황손무가 황제의 칙서를 들고 한양에 왔다. 조선은 청을 배후 공격해 요동 진출을 막으라는 내용이었다. “(조선) 국왕은 더욱 충직하고 양순한 마음을 돈독히 하고 무략을 드날리어 함께 협력하여 큰 공을 세워 요해의 파도를 맑게 하여 훌륭한 포상이 내려지기를 기다리라.” 그러나 황손무가 살펴본 조선의 대비태세는 참담했다. 자칫 조선이 먼저 망해, 배후에서 청을 견제할 장치가 사라질까 걱정이 됐다. 그는 10월 24일 귀로에 이런 편지를 인조에게 전했다. “경학을 연구하는 것은 장차 이용(利用)을 제공하기 위한 것인데 나는 귀국의 학사와 대부들이 읽는 것이 무슨 책이며, 경제하는 것이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 없다. 뜻도 모른 채 웅얼거리고 의관이나 갖추고 영화를 누리고 있으니….” “귀국의 인심과 군비를 볼 때 저 강한 도적들을 감당하기란 결단코 어렵다. 일시적인 감정에 이끌려 그들과의 화친을 끊지 마라.” 인조는 겁이 났다. 역관을 보내 청의 의중을 탐색했다. 용골대는 ‘왕자와 대신 그리고 척화론자를 압송하라’고 요구했다. 조선 조정은 다시 들끓었다. 항전의 결의를 보여 주자며 주화파 숙청을 주장했다. 인조는 11월 6일 이조판서 최명길을 파직했다. 12월 2일 청 태종 홍타이지의 12만 대군은 심양을 출발했다. 본대는 10일 압록강을 건넜다. 선발대는 그즈음 안주를 지나 개성으로 내달려 13일 오후 홍제원에 이르렀다. 강화도로 내빼려던 인조는 발길을 돌려 14일 새벽 남한산성으로 도피했다. ●19세기엔 日 무력에 굴복 ‘불평등 조약’ 맺어 19세기 동북아시아는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함포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깨었다. 1839년 영국이 막무가내 도발한 아편전쟁에 중국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홍콩까지 내줘야 했다. 1850년대 일본은 미국의 무력에 굴복, 개항했다. 1860년대 조선은 미국과 프랑스 함대의 공격을 막아냈으나 1876년엔 일본의 무력에 굴복, 불평등 조약을 맺었다. 1879년 일본은 중국의 속국이던 류큐 왕국을 병합했다. 조선은 비로소 국제정세에 눈을 돌렸다. 1880년 김홍집을 대표로 2차 수신사를 일본에 보냈다. 김홍집은 주로 하여장 등 일본 주재 청국 외교관들로부터 정보와 판단을 구했다. 이들과 나눈 6차례의 필담을 정리하고 청국의 의견을 담은 것이 황준헌의 ‘조선책략’이었다. 조선의 최대위협은 러시아이며 ‘방러’를 위해선 ‘친중’, ‘결일’, ‘연미’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 뼈대다. 당시 중국은 러시아와 충돌하고 있었다. 중국은 중앙아시아에서 밀리고, 흑룡강 동쪽과 두만강 입구까지 러시아에 내준 상태였다. 일본은 러시아에 사할린을 넘긴 터였다. 중국에 러시아는 최대위협이었다. 황준헌이 내놓은 대책, 즉 ‘친중, 결일, 연미’는 중국의 ‘반러전선’에 조선을 동원하려는 것이었다. 첫째는 중국을 더욱 힘써 섬기라는 것. “중국이 사랑하는 나라로는 조선만 한 나라가 없다. 중국은 조선을 은혜로써 품어 줄 뿐, 한 번도 그 토지와 인민을 탐낸 적이 없었다.” 일본과는 동맹 수준의 관계를 맺으라고 타일렀다. “그들은 대대로 맡은 바 일에 충실하였다. 조선과 일본은 수레의 바퀴와 축처럼 서로 의지해야 할 형세이니, 작은 거리낌을 없애고 큰 계획을 도모하라.” 미국과는 빨리 수교하라고 재촉했다. “(미국은) 예의로써 나라를 세우고 토지와 남의 인민을 탐내지 않고, …항상 약소한 자를 부조하고 공의를 유지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은 중국을 더욱더 열심히 섬기고, 일본 군대의 진주를 허용하고, 미국과 수교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조선책략’은 엉터리였다. 일본은 조선을 삼키려 불과 14년 뒤 청을 공격해 전쟁을 일으켰다. 미국은 20여년 뒤 조선에 대한 일본의 권리를 보장하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었다. 조선책략은 ‘대러 봉쇄’의 일환이었으니, 조선의 생존은 빗나갈 수밖에 없었다. 조선 500년 변함 없이 표방한 외교정책은 사대교린이었다. 그러나 교린은 없이 ‘사대’에 ‘몰빵’했다. 해방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친중’(親中)이 ‘친미’(親美)로 바뀌었을 뿐이다. 여기서 ‘친’(親)이란 ‘아버지’(가친 家親)를 뜻한다. 북한과는 열전이고, 중국과 러시아와는 냉전이었으며, 일본은 원수였으니 교린할 대상도 없었다. 옛 소련의 붕괴와 함께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나서야 비로소 한국은 ‘사대’의 틀 안에서 ‘교린’을 추진했다. 미국이 앞장서 탈냉전을 주도했으니 한국이 중국이나 러시아와 수교하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그러나 불과 30여년 만에 ‘사대’가 다시 ‘교린’을 뒤틀고 있다. ‘반중 봉쇄’ 압박이 그것이다. ●불과 30여년 만에 ‘사대’가 ‘교린’ 흔들어 중국과의 교역량은 전체의 25%이고 홍콩을 통한 간접무역까지 합치면 40%에 이른다. ‘반중’에 적극적으로 나서면 국가 경제는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의 보수세력은 ‘숭미반중’에 막무가내다. 과거 나라를 파국으로 이끈 것은 ‘숭명반청’과 ‘숭청반외세’의 위정척사론자들이었다. 대한민국의 ‘사대’는 남북 군사적 대치 때문이다. 전시작전권까지 넘길 정도로 미국에 의지했다. 중국은 대북 영향력으로 한반도 정치에 개입하고, 일본은 군비 증강에 열중하고 있다. 군사적 대치를 끝내지 않고는 피하기 힘들다. 이수혁 주미대사는 6월 3일 “대한민국은 이제 선택을 강요받는 나라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나라”라고 말했다. 미 국무부는 이례적으로 강하게 경고했다. “한국은 이미 동맹을 선택했다!” 7월 23일 국방연구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한반도 평화는 우리 손으로 이뤄야 한다. 반드시 이루겠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지금까지는 뭐했을까, 의문도 든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 송파강 일부 석촌호수·새벽배송 원조 송파장… 원래 강북에 속했대요

    송파강 일부 석촌호수·새벽배송 원조 송파장… 원래 강북에 속했대요

    같은 길을 걸어도 누구에게나, 언제나 같은 세상은 아니다. 서울의 과거를 찾아 색다른 미래를 바라보게 만들어 주는 서울미래유산 코스를 따라 걷다 보면 그 말이 실감 나게 다가온다. 몰랐던 역사를 알고 나니 같은 거리도 이전과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20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9회 ‘잠실의 추억’ 편이 지난 25일 잠실 일대에서 진행됐다. 장마철 비구름이 잠시 숨을 고르는지 신기하게도 해가 반짝하고 맑은 바람이 불어 걷기 좋은 날이었다. 이날 답사의 출발지점인 잠실 지역은 지상 123층, 높이 554.5m로 대한민국 최고층 건물인 롯데월드타워를 비롯해 초고층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서 서울의 마천루를 상징한다. 그런데 잠실의 현재 지형이 불과 반세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예전의 그림과 사진 자료 등 물증들을 보고 또 봐도 참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사실이다. 이 지역은 원래 뚝섬과 연결된 강북에 속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잠실 쪽 한강은 ‘잠실도’라는 섬이었고, 그 섬을 에워싸며 한강의 샛강인 신천강과 송파강이 흘렀다.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시민들의 쉼터가 된 석촌호수는 송파강의 일부였다.‘잠실’이라는 지명은 조선 초 양잠을 장려하기 위해 잠실도회가 설치돼 있던 데서 유래한다. 1930년대만 해도 잠실섬에는 온 섬에 뽕나무가 무성했다. 1945년 해방 이후 채소밭이 됐다가 1971년 한강 공유수면 매립사업으로 물막이 공사를 하면서 육지로 변했다. 이때 송파강의 일부가 남고, 그 유로가 바뀌면서 만들어진 인공호수가 석촌호수다.면적 21만 7850㎡, 평균 수심 4.5m 깊이의 호수는 송파대로를 기준으로 동서로 같은 모양의 동호와 서호로 나뉘었다. 1981년 호수 주변에 산책로와 쉼터 등 공원이 조성됐다. 동호는 새벽 조깅코스와 주변 시민들의 휴식처, 산책로로 이용되고 서호에는 롯데월드의 매직아일랜드와 서울놀이마당이 있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호숫가를 산책하는 가족, 건강 달리기를 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도심공원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 준다.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됐다는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바로 이를 두고 한 얘기일 것이다.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이 그린 ‘송파진’을 보면 사람들이 모래사장에서 강 건너편 송파진을 바라보고 있다. 저 멀리 남한산성도 보인다. 나루터에는 배들이 정박해 있고, 나룻배가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건너고 있다. 그림 속 유유자적한 한강이 지금의 석촌호수가 된 것이다. 잠실역 3번 출구에 서서 바라보면 예전엔 그 풍경일 테지만 저 멀리 보이는 산 말고는 그림 속 송파진을 상상하기 어렵다. 눈앞에는 서울미래유산 석촌호수가 있을 뿐이다.이런저런 상념에 사로잡혀 걷다 보면 피할 길 없는 치욕의 역사를 만나게 된다. 삼전도비(三田渡碑·사적 제101호)다. 삼전도는 1439년(세종 21년) 신설된 나루터로 한강나루, 노들나루와 함께 경강삼진(京江三津)의 하나였다. 원래 삼밭나루로 불렸던 삼전도는 한양에서 경기도 광주의 남한산성에 이르는 길목에 있었고 영남로를 지나는 상인들이 주로 이용하던 교통의 요지였다. 1636년 12월 청 태종은 대군을 이끌고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항거하다가 결국 청나라 군대가 머물던 한강가의 나루터인 삼전도로 나와 항복의식을 행했다. 항복의 조건은 청과 조선이 군신의 의를 맺고, 명의 연호를 버리며, 명나라와의 국교를 끊고, 인조의 장자와 다른 아들 및 대신들의 자제를 인질로 할 것, 청나라가 명나라를 정벌할 때 원군을 보내고, 통혼하며, 성을 보수하거나 쌓지 말 것 등 굴욕적이고 가혹한 것들이었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청 태종은 자신의 공덕을 적은 비석을 세우도록 조선에 강요했다. 인조 17년 세운 삼전도비는 제목이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다. 비석 앞면의 왼쪽은 몽골글자, 오른쪽은 만주글자, 뒷면은 한자로 쓰였다. 비문은 이경석이 짓고 글씨는 오준이 썼으며 비의 제목은 여이징이 썼다. 침략국 황제를 칭송하는 비문의 내용을 반복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임금의 명에 의해 글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백헌 이경석은 글을 배운 게 천추의 한이라며 피를 토하듯 괴로워했다고 한다. 높이 3.95m, 폭 1.4m의 한 덩어리로 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비석을 매일 바라봤을 백성들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삼전도비의 수난도 끊이지 않았다. 조선 임금이 항복했던 나루터인 삼전도에 비석을 세웠지만 1894년 청일전쟁의 패배로 청이 지배권을 상실하자 더는 굴욕적인 비석을 내버려 둘 이유가 없다며 사람들은 이 비석을 강물에 던져 버렸다. 그러나 일제가 우리 민족의 굴욕을 상기시키기 위해 건져다 다시 제자리에 세웠다. 해방 후 주민들은 청나라가 만들게 하고 일본이 도로 세운 치욕적인 비석을 나라를 되찾은 마당에 그냥 둘 이유가 없다며 땅속에 묻어 버렸다. 1963년 홍수로 삼전도비가 드러나자 사적으로 지정하고 석촌동으로 옮겼으며 1981년 문화재 명칭을 ‘삼전도비’로 바꿨다. 석촌호수 주변 현재 위치로 옮겨진 것은 2010년이다.삼전도가 조선 전기에 교통의 요지로 역할을 했지만 조선 후기 들어서는 송파나루가 더 중요해진다. 송파나루는 한양에서 강원도, 광주, 이천으로 가는 아주 중요한 길목이었다. 서울 외곽을 지키는 송파진(松坡鎭)을 설치할 정도로 중요한 이곳은 사람의 왕래뿐만 아니라 한강을 타고 물자의 이동도 활발했던 곳이다. 궁궐이나 집을 짓는 데 사용되는 굵고 튼튼한 나무들이 강원도에서부터 뗏목으로 송파나루까지 왔다. 송파나루 옆에 있는 송파장은 조선 후기 전국 15대 향시에 꼽힐 정도로 번성했다. 실록의 기록을 보면 한양 내에 있던 시전을 위협할 정도였다. 서울 주변의 일반 상인들이 시전 상인들의 독점을 피해 삼남지방이나 관동지방에서 들어오는 물품들을 이곳에서 미리 사들여 많은 이익을 남기는 도가의 근거지가 됐기 때문이었다. 전국의 산해진미가 모이는 송파장에서는 우시장이 특히 유명했다.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즐겼다는 ‘효종갱’은 송파장에서 그날 잡은 소의 고기와 삼남에서 올라온 전복 등 해산물, 각종 채소를 넣어 끓인 해장국이다. 밤새 푹 끓인 효종갱을 독에 담아 식지 않도록 명주에 싸서 품에 안은 채 말을 타고 달려 사대문이 여는 시간에 맞춰 당도한 뒤 주문한 사대부 집에 배달했다고 하니 이게 바로 새벽 배송의 원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송파장에서는 한양과 경기의 유명한 연희자들을 초청해 큰 규모의 산대놀이를 공연하곤 했다. 송파산대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49호)는 서울놀이마당 전수회관으로 이어지고 있다. 나루터 기능은 1960년대까지 뚝섬과 송파를 잇는 정기선이 운항돼 명맥을 유지하다가 강남 개발과 샛강 매립으로 사라졌지만 그 흔적을 석촌호수 동호 남단 송파대로 쪽에 ‘송파나루터’가 새겨진 표석으로 남겼다. 번성했던 송파장과 관련해 경기도 암행어사 이건창의 활약이 전해 오고 있다. 이건창이 암행어사로 활동하던 시절 송파에 들러 신분을 속인 채 장터의 장사꾼들을 만나 그들의 고충을 듣고 용기를 북돋아 줬다. 그가 떠나고 난 뒤 이건창의 신분을 알게 된 상인들이 그의 공덕과 행적을 기려 1883년 5월 장터 입구에 비석 ‘이건창영세불망비’를 세웠다. 비석은 을축년(1925년) 홍수로 유실됐다가 1979년 발견돼 현재의 위치에 세워졌다. 그 옆에는 을축년대홍수기념비가 나란히 서 있다. 을축년 대홍수는 1925년 7월 16일부터 3일간 계속돼 수도권 지역에 300~500㎜의 많은 비를 뿌렸다. 이 폭우로 한강과 임진강이 범람해 647명의 사망자와 당시 조선총독부 예산의 58%에 달하는 재산 피해를 냈다. 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은 한강변의 이촌동, 뚝섬, 송파, 잠실, 신천리, 풍납동 일대였다. 송파나루터 일대는 특히 피해가 극심해 송파장터 마을이 다 떠내려가고 마을 주민 전체가 지금의 송파동 일대로 이주했다. 수마의 무서움을 체험한 송파 나루터 주민들은 홍수 이듬해에 홍수 피해를 잊지 말고 대비하자는 의미로 기념비를 세웠다. 가락로에 있는 석촌동 고분군은 가락동·방이동 무덤과 함께 백제의 문화와 역사를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다. 일제강점기에 처음 조사가 실시됐으나 270여개에 이르는 돌무덤은 이미 원형을 잃은 지 오래였다. 가장 큰 규모의 기단식 돌무지무덤인 3호분이 그나마 원형에 가깝게 유지되고 있었으나 1983년 절반이 잘려 나가는 등 보존과는 거리가 멀었다. 뒤늦게나마 역사적 가치를 깨닫고 발굴 작업이 이뤄지고 있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잠실과 송파나루 길 답사를 마무리한 곳은 2013년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된 가락시장이다. 을축년 대홍수로 가락동으로 옮겨간 옛 송파시장의 의미를 되살리는 가락동농수산물시장에서는 수산, 축산, 청과 등 전국 최고의 식재료가 거래된다. 특히 싱싱한 수산물이 자랑이다. 펄펄 뛰는 참돔을 회로 떠서 먹으니 쫄깃한 식감이 지극히 훌륭하다. 치욕의 역사를 간직한 삼전도비를 보며 찝찝했던 기분도 어느새 사라지고 입안에는 진한 바다향이 감돈다. 글 함혜리 칼럼니스트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제10회 삼청동 ●출발 일시 : 8월 1일 오전 10시 출발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낙후된 이미지 벗는 도봉… 융합의 ‘문화·경제 도시’ 열린다

    낙후된 이미지 벗는 도봉… 융합의 ‘문화·경제 도시’ 열린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서울 도봉구는 그동안 서울 외곽의 낙후된 도시에서 세계적인 음악도시를 꿈꾸는 곳으로 변모했다. ‘마을 민주주의’가 도봉구 곳곳에서 꿈틀거리고 역사와 문화자원을 재조명해 ‘문화도시’로 발돋움했다. 교육은 또 어떤가. 도봉은 마을교육을 이뤄 낸 ‘혁신교육’의 본고장이 됐다. 게다가 미래를 생각하는 ‘지속가능 발전’으로 선순환을 이루는 도시가 도봉이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 민선 5·6·7기 도봉구청장으로 쉼없이 달려온 이동진 도봉구청장이 있다. 지난 15일 구청장으로서 마지막 임기 2년을 남긴 이 구청장을 만나 과거 10년의 도봉의 변화와 다가올 도봉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먼저 코로나19 대응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 도봉구의 성심데이케어센터에서 확진자가 계속해서 나올 땐 근심이 많았을 텐데. “도봉구에서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심했던 곳이 성심데이케어센터였다. 초기에 1명의 확진자에서 시작했고, 곧바로 가족과 직원을 전수조사했다. 모두 음성이었다.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도봉구는 센터 이용자와 직원은 물론 이용자의 가족, 직원의 가족까지 자가격리 대상자로 삼았다. 차츰 1차 검사에서 음성이던 사람이 양성으로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데이케어센터 관련 도봉구 확진자 40명 가운데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자가격리 대상자 안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지역사회로 감염이 확산되지 않은 것은 자가격리 대상자를 넓게 정했던 초기 대응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도봉구는 또 지난 3월 26일에 전국 최초로 온라인 예배실을 설치해 소규모 교회의 영상예배를 지원하고 있다. 대형교회는 온라인 예배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장비를 갖췄지만 소형교회는 그런 시스템이 없어 대면 예배를 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있어 전국 최초로 구청에 온라인 예배실을 설치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자치구 역할은 어떻게 될 것으로 내다보는가. “포스트 코로나를 이야기하기 전에 왜 이런 상황이 왔는가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 상황은 인류의 과도한 화석에너지 사용으로 인한 기후변화, 지구온난화의 결과로 해석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를 극복할 것인가. 삶의 방식 전환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석연료를 줄여야 하고 기후변화에 맞는 극복 대안들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만들어 내야 한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에너지 시스템을 전환하고 개인 삶의 방식을 전환하는 게 함께 가야 한다. 중앙정부는 에너지 체계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지방정부는 주민 삶의 변화를 위한 다양한 교육과 실천이 지역단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적절히 대응하지 않으면 인류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절박감으로 임해야 한다. 기후변화의 문제는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지역의 중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도봉은 지역자생력 강화 방안을 새롭게 마련해 포스트 코로나 이후 변화의 시대를 준비할 것이다.”-서울시장 공석으로 서울시 구청장협의회장으로서 우려되는 부분은. “지난 14일 시청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정책과 사업이 흔들림 없이 추진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전 시장이 없는 상황에서, 정책 결정만 해 놓고 자치구별로 착수하지 않은 사업이나 예산이 투입되지 않은 사업에 대해 자칫 서울시가 소극적인 입장이 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박 전 시장이 추진해 온 서울시 차원의 정책과 사업들은 흔들림 없이 추진돼야 하며 서울시 구청장들은 이를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을 비롯한 시 집행부, 서울시 의회 등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력해 나갈 것이다. 도봉구 역시 서울아레나 건립 등 창동 신경제중심지 조성사업과 서울시립도서관 건립, 소방학교부지 안전체험관 건립, 청년혁신파크 조성 등 다양한 사업들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민선 7기 취임 2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하지만 구청장 10년이 된 해이기도 하다. 기억에 남는 정책이 3가지가 있다면. “창동 신경제중심지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잠만 자고 출근하는 서울 외곽의 낙후된 도시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도봉은 ‘문화’를 지역 발전전략으로 선택했다. 아레나 공연장을 핵심 거점으로 창업 및 문화산업단지, 세대융합형 복합시설, 로봇과학관, 서울사진미술관 등 창동 신경제중심지 조성사업을 2017년부터 단계별로 추진하고 있다. 음악과 공연문화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줄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도봉은 세계적인 음악도시가 될 것이다. ‘혁신교육지구’ 추진도 빼놓을 수 없다. 혁신교육지구란 어린이·청소년이 학교와 마을에서 삶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학교가 함께 참여하고 서울시 및 교육청 등이 협력해 학교·마을교육 공동체를 실현해 나가는 자치구를 말한다. 2015년 1월 서울형혁신교육지구에 선정됐고 2017년에는 전국 최초로 5개교와 도봉형 마을방과후학교를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도봉구의 지향점은 지속가능발전이다. 도봉구는 2015년 11월 지속가능발전 조례를 제정하고, 구정 전반에 지속가능발전의 가치 실현을 위해 전담부서를 설치했다. 민관 거버넌스 조직인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구성하고 구민의 이행 체계를 수립했다. 올해 1월에는 서울시 최초, 국내 6번째로 유엔대학으로부터 ‘지속가능발전교육 거점도시(RCE)’ 인증을 받기도 했다.” -특히 창동 신경제중심지 조성사업이 본 궤도에 들어선 느낌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향후 아레나를 비롯해 신경제중심지가 될 도봉이 미래성장동력으로서 지역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문화 인프라를 고르게 갖춘 동북권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도시발전에 어울리는 교통인프라 구축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은 게 사실이다. 국토교통부는 2016년 제3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으로 KTX 수도권 동북부 연장사업(수서~의정부)을 발표했으나 사업 추진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도봉구는 지난해 12월 인근 지자체와 함께 ‘KTX 수도권 동북부 연장운행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연장사업 조기이행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지난 5월 26일에는 국토부 장관 초청간담회를 개최했다. 이어 정책토론회 개최, 주민서명운동 전개 등과 함께 관련 지자체와 공동 대응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도봉구는 서울아레나 건립시기에 맞춰 음악의 소비뿐 아니라 생산과 유통이 동시에 이뤄지는 음악도시가 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음악산업을 육성하겠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이동진 구청장 ▲1960년 전북 정읍 출생 ▲전주고,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서울시의원(1998) ▲김근태 국회의원 보좌관(2003) ▲민주당 부대변인(2010) ▲동북4구 발전협의회 초대의장(2012) ▲혁신교육지방정부협의회 회장(2018. 10∼2020. 7)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추진 지방정부협의회 회장(2018. 9∼2019. 12) ▲지속가능발전 지방정부협의회 회장((2019.8∼2020.7) ▲한국인권도시협의회 회장(2020. 6∼) ▲서울시 구청장 협의회장(2020. 7~) ▲민선 5·6·7기 도봉구청장(2010. 7∼) ▲부인 김미경(60)씨와 1남 ▲저서 ‘참여로 투명하게 복지로 행복하게’
  • 양기대 의원, “서울역서 출발하는 국제열차 추진해야”

    양기대 의원, “서울역서 출발하는 국제열차 추진해야”

    더불어민주당 양기대(경기 광명을) 의원이 27일 국제철도협력기구(OSJD)를 통해 서울역 출발 국제열차 운행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양 의원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국회의원연구단체 ‘통일을 넘어 유라시아로’ 공동대표인 노웅래 의원(서울마포갑)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정부가 창의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며 “남북철도 연결을 통한 남북·중·러 국제열차 운행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향후 남북회담 재개 시 최우선적으로 서울역 국제열차 추진을 공식의제로 상정해 북측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게 양 의원의 주장이다. 양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의 제언을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국무총리와 외교부장관, 통일부 장관, 국토교통부 장관 등에게 보냈다. 양 의원과 철도 전문가 등에 따르면 OSJD 회원국인 북한과 중국·러시아가 OSJD와의 협력 속에 유엔의 제재 없이 국제열차를 운행 중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은 평양~북경 국제열차를 주 4회, 러시아는 평양~모스크바 국제열차를 주 1회 운행하고 있다. 따라서 OSJD 회원국인 한국이 북한·중국·러시아와 합의만 하면 서울~평양~베이징, 서울~평양∼모스크바를 잇는 국제열차 운행이 가능하다고 양 의원은 설명했다. OSJD는 유라시아 국가 간 철도운송을 담당하는 정부 간 협력기구다. 한국은 2018년 6월 북한의 찬성으로 29번째 가입국이 돼 한국철도가 유라시아 대륙철도로 나아갈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와 관련해 국회와 정부 학계에서도 OSJD를 통해 서울~평양~베이징, 서울~평양~모스크바를 잇는 ‘서울역 출발 국제열차’를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진장원 국립한국교통대 교수는 “남북·중·러가 합의만 하면 서울역 출발 국제열차 운행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나희승 한국철도기술연구원장은 “경의선이 북한에서 가장 양호한 노선이어서 최소한의 개보수를 통해 서울역 출발 국제열차 개통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UN의 대북 제재를 피할 수 있다면 북한도 서울역 출발 국제열차에 대해 적극 호응할 것이란 얘기다. 이와 함께 양 의원은 서울역 출발 국제열차가 운행된다면 한반도 신경제구상 및 평화프로세스가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북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나 남북이산가족 상봉, 스포츠문화 교류, 정상회담을 철도로 추진하는 방안이 적극 검토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2022년 북경동계올림픽 때 서울역 국제열차를 타고 공동응원도 추진하며 남북경협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북한과 협의중인 새로운 노선의 북한철도 현대화(남북고속철도 건설)도 병행하여 추진이 가능하다는 게 양 의원의 설명이다. 노웅래 의원은 “정부는 한미 워킹그룹에만 의존하지 말고 국제기구나 북한이나 중국·러시아 등 주변 국가들과 다양한 협의를 통해 ‘미국의 가이드라인’을 돌파해 서울역 국제열차 운행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박원순 피해자 지원 여성단체 내일 시청~인권위까지 행진

    박원순 피해자 지원 여성단체 내일 시청~인권위까지 행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직 비서를 지원하는 여성단체들이 이번 사안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직권조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28일 열겠다고 밝혔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등 8개 여성단체는 이날 서울시청과 인권위 앞에서 ‘서울시장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촉구 공동행동’을 진행한다고 27일 밝혔다. 이들은 “서울시장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안에 대해 피해자와 연대하는 목소리가 조직·문화의 변화를 촉구하는 연대의 물결로 이어지고 있다”며 “성평등 사회, 여성 인권이 실현되는 사회, 피해자가 일상과 일터로 복귀할 수 있는 사회를 향한 시민들의 지지와 응원을 함께 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들 여성단체는 28일 오전 10시 시청에서 출발해 인권위까지 행진하고 인권위 앞에서 직권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아울러 개별 시민과 단체를 대상으로 인권위 직권조사 촉구 연서명도 함께 받고 있다. 피해자 지원단체들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진정조사보다 직권조사가 더 조사의 범위가 넓어 직권조사를 요청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내일 직권조사를 촉구할 때 피진정인을 특정하는 자료도 인권위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피해자의 법률대리인 김재련 변호사는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온·세상에서 “직권조사는 제도적으로 문제있는 것, 개선해야 될 것까지 같이 조사하고 제도 개선도 촉구하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또 “직권조사는 광범위하게 조사해서 관련자들에 대해 조사해 달라는 내용”이라며 “진정내용이 사실 다 포함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2020 YSP 피스로드 ‘세계평화’ 위해 힘찬 출발

    2020 YSP 피스로드 ‘세계평화’ 위해 힘찬 출발

    “매년 YSP(세계평화청년연합) 피스로드를 통해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해 젊은 청년학생들이 정진하는 모습에 한 시민으로서 뿌듯함을 느끼게 합니다.” 여수시 신기동에 사는 송모(57) 씨가 지난 25일 이순신 광장에서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를 염원하며 세계인이 함께 달리는 ‘2020 YSP피스로드’를 지켜본 소감이다. 이 행사는 여수에서 호남 청년들이 남북통일을 향해 ‘서울에서 평양까지 통일의 길을 열자’라는 주제로 청년단체 YSP와 피스로드조직위원회 공동주관으로 진행됐다. YSP피스로드 참석자 300여명이 방역 지침을 준수하면서 여수일대 20㎞ 코스를 완주했다. 출발점에 선 김은선(여.20) 학생은 “피스로드로 인해 남북통일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더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한반도 평화통일에 작은 힘이나마 적극 돕고 싶다”고 했다.정국진 YSP피스로드 호남센터장은 “피스로드의 평화정신은 지역사회의 문제 해결과 같은 작은 실천이다”며 “다음달까지 통일운동과 더불어 지역민을 위한 농어촌 농활지원, 해양 쓰레기 근절를 위한 리틀 바이 리틀(Little by Little) 환경캠페인도 전개한다”고 활동 방향을 소개했다. 여수 이순신 광장에서 출발한 YSP 피스로드 종주단은 전남도를 거쳐 릴레이 방식으로 전국의 피스디자이너들과 연대해 다음달 29일까지 비무장지대가 있는 파주 임진각까지 평화활동의 여정을 이어간다. 이 기간 YSP 피스드자이너어셈블팀(PD어셈블팀)은 ‘2032년 서울평양 올림픽 공동유치’를 슬로건으로 온오프라인 ‘우리나라 지도 그리기’ 통일캠페인도 펼친다. 피스로드팀이 국토 종주를 하는 동안 PD어셈블팀은 지역사회를 위한 방역 봉사활동을 병행한다. 송광석 피스로드한국실행위원장은 “YSP피스로드는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피스디자이너(Peace Designer) 청년 활동가들이 시민들에게 자전거로 국토를 종주하며 통일운동 대회 출범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남북 민간 교류의 물꼬를 잇기 위해 ‘2032서울평양 올림픽’ YSP 피스로드 캠페인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세계 시민운동으로 확대하고 있다. 오는 8월 29일까지 전국 광역시도 및 시군별로 1만명이 동참하는 자전거 국토 종주가 열린다. 세계 130개국에서 YSP 청년학생들이 국가별 라이딩에 참여한다. 여수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합참 “탈북민 유기된 가방 확인…현재 정밀조사 중”

    합참 “탈북민 유기된 가방 확인…현재 정밀조사 중”

    배수로를 통해 탈출 후 헤엄쳐 넘어간 듯 월북한 것으로 추정되는 탈북민 김모(24) 씨가 강화도 일대에서 출발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군 당국이 27일 밝혔다. 김준락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해당 인원이 월북 추정 위치를 강화도 일대에서 특정했다”며 “해당 인원 특정할 수 있는 유기된 가방을 발견하고 확인하고 현재 정밀조사 중”고 밝혔다. 김씨는 강화도 일대에서 군 감시망을 피해 철책 밑 배수로를 통해 탈출 후 헤엄쳐 북측으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군 당국은 김씨가 월북하면서 철책을 직접 뚫진 않았지만, 철책 밑 배수로를 통과한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철책 자체엔 과학화경계장비가 설치돼 있으나, 배수로의 경우 감시망을 피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점을 노린 것으로 추정된다. 군 당국은 전날 북한이 “개성시에서 악성비루스(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월남 도주자가 3년 만에 불법적으로 분계선을 넘어 7월 19일 귀향하는 비상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도한 이후 유력한 월북자로 24세 김모 씨를 특정해 조사 중이다. 김씨가 월북한 경로로 추정되는 강화 교동도 등 한강 하구 일대는 북한과의 최단 거리가 1.3∼2.5km에 불과해 탈북민들이 물때에 맞춰 수영으로 귀순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곳이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나뭇가지로 찌르며 지뢰밭 건너”…월북 20대가 밝힌 탈북 과정

    “나뭇가지로 찌르며 지뢰밭 건너”…월북 20대가 밝힌 탈북 과정

    ‘월북’ 김씨, 유튜브서 2017년 탈북 생생히 묘사 최근 월북한 것으로 추정되는 20대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이 3년 전 헤엄을 쳐서 탈북했던 과정을 최근 유튜브를 통해 밝혔던 것으로 드러났다. 두 귀가 좋지 않았다는 그는 “한국에 와서 귀를 고쳐 감사하고 기쁘다”고 말하기도 했다. 탈북민 김모(24)씨는 다른 탈북민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지난달 23일과 25~26일 출연해 북한에서의 생활과 탈북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개성공단 깨지면서 장사 안 돼 가난 심해져” 김씨는 영상에서 “탈북을 결심한 것은 첫째 살기가 힘들어서였다”고 밝혔다. 그는 “개성공단이 깨지면서(폐쇄되면서) 저도 장사가 안 되다보니까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쌀장사를 하던 고모네가 잘 살아서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개성공단이 깨지고 나서 고모도 시골 쪽으로 내려갔다”면서 “제가 어릴 때부터 귀도 좋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백마산에 올라갔다”고 했다. 김씨는 개성시 해평리에 있는 백마산에서 웅덩이 물을 마시고, 먹으려고 가져갔다가 맛이 없어 버렸던 효모빵을 개미를 털어내고 먹으며 사흘을 지냈다. 그러던 중 초저녁쯤 불빛이 가득한 남측을 보고 ‘이렇게 죽는 것보다 (남한에) 한번 가보고 죽자’라는 생각에 탈북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버려진 스티로폼과 밧줄로 만든 구명대 입고 헤엄쳐” 김씨는 “다음날 오후 3시쯤 분계선 고압선과 가시철조망을 2차례 넘어서 지뢰밭을 건넜다”며 “지뢰밭에서는 나뭇가지를 꺾어 밟는 자리마다 찌르면서 건넌 뒤 한강 옆 갈대밭에서 낮 동안 3시간을 숨어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갈대밭에서 버려진 스티로폼과 밧줄로 구명대를 만들어 착용한 그는 강화도 쪽 불빛을 향해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김씨는 “불빛만 보고 수영을 한참 하다가 ‘유도섬’을 지나는데 불빛이 멀어지고 체온이 떨어져 ‘죽겠구나’ 싶었다”면서 “물살에 자꾸 방향을 잃어 다시 헤엄치는 과정을 반복했다”고 전했다. 그는 “분계선이 좀 가까워졌을 때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다”면서 “땅을 밟고 올라갔는데 분계선 문을 열고 군인 8명 정도가 나왔고, 나는 나가자마자 쓰러졌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출발할 때 남한까지 1시간 정도면 가겠다 싶었는데, 도착하고 보니 7시간 30분가량 걸렸다고 설명했다. “어렸을 때부터 좋지 않던 두 귀 고쳐서 감사” 김씨는 “한국에 와서 두 귀를 고쳐서 잘 듣고 있는데 이게 정말 감사하고 기쁘다”며 “어머니나 형제들한테 알려주고 싶은 설움에 병원에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고 한국 의료진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앞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전날 오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주재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상확대회의가 열린 사실을 전하면서 “개성시에서 악성비루스(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월남 도주자가 3년 만에 불법적으로 분계선을 넘어 7월 19일 귀향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김씨가 출연했던 유튜브를 운영하는 탈북민은 지난 18일 새벽 김씨와 마지막으로 연락을 했으며, 그의 월북 정황을 알아채고 당일 저녁 경찰에 알렸지만 묵살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지난달 지인 여성을 자택에서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고, 구속영장도 발부된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근대광고 엿보기] 경춘 간 자동차 영업 광고/손성진 논설고문

    [근대광고 엿보기] 경춘 간 자동차 영업 광고/손성진 논설고문

    “경성 춘천 간 자동차 영업을 개시한 지 몇 달에 경향(京鄕)의 여러분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매번 만원을 이루었으나 항상 자동차 수가 부족하여 유감스러웠는데 미국에서 자동차 한 대를 특별히 추가 주문하여 경성 춘천 간을 매일 출발하오니….” 서울~춘천 사이에 매일 자동차를 운행한다는 1916년 6월의 매일신보 광고다. 광고 메인 카피는 여행가의 ‘대복음’(大福音), 즉 매우 기쁜 소식이다. 광고주는 ‘광교경춘자동차조(組)’로 돼 있다. 경춘선 철도가 개통된 때는 1939년이니 당시 서울과 춘천 사이에는 자동차 말고는 근대적 교통수단이 없었다. 경춘가도가 1922년 개통됐으니 물론 도로 사정도 나빴을 것이다. 광고에 나오는 자동차는 미국 포드가 1908년부터 20년간 생산한 ‘T카’ 8인승이다. 이 자동차를 타고 이동한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춘천에 근무하는 관리나 여행하는 외국인 등 극히 제한적인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처음 수입된 자동차는 고종의 것으로 1903년 즉위 40년을 기념하는 ‘칭경식’ 때 선보였다. 1886년 독일의 다임러벤츠사가 휘발유 자동차를 발명한 지 17년 만이다. 온라인 백과사전에는 우리나라 사람이 최초로 자동차 운송 사업을 한 때는 1913년이라고 돼 있다. 휘문학교 설립자인 민영휘의 아들인 민대식이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서울과 충주 사이에 자동차를 운행했다고 한다. 광고에 나온 것과 같은 포드의 8인승 차였다. 다른 기록에는 이보다 앞선 1912년 4월 이봉래라는 사람이 포드 T카로 서울에서 시간제로 임대 영업을 했다고 한다. 일본인으로서는 1911년 에가와가 마산과 삼천포 간을 운행한 것이 최초라고 한다. 요금은 마산~진주 간이 3원 80전이었다. 당시 쌀 한 가마니 값이 3~4원이었으니 매우 비쌌다. 그런데 황성신문 1906년 9월 21일자에 권병도·구연소씨 등이 자동차 5대로 경원선 철도를 부설하기까지 승객과 화물을 수송하겠다고 신청해서 허가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는데 실행에 옮겨졌다면 민대식의 운송사업보다 7년 이른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 영업이 될 것이다. 조선 땅에서 자동차가 처음 달린 때는 고종 칭경식 2년 전인 1901년이다. 버튼 홈스라는 미국인이 자동차를 들여와 서울에서 타고 다니다가 소달구지와 충돌했다는 기록과 사진이 홈스의 여행기에서 발견됐다. 자동차를 처음 본 사람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네 발 달린 쇠귀신’, ‘굴러다니는 짐승’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1913년 우리나라 최초로 운전사 자격증을 딴 사람은 이용문인데 자동차 임대 영업을 한 이봉래의 아들이었다.
  • 코리안 ‘타고투저’ 개막전

    코리안 ‘타고투저’ 개막전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와 최지만(탬파베이 레이스)이 2020시즌 메이저리그(MLB) 두 번째 경기에서 나란히 시즌 첫 안타를 적시타로 장식하며 멀티 출루를 달성했다.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은 2년 연속 개막전 승리에 실패했다.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은 악전고투 끝에 MLB 데뷔전 세이브를 신고했다. 추신수는 26일 텍사스주 알링턴 글로브라이프필드에서 열린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홈경기에 1번 타자 좌익수로 선발 출전해 4타수 1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볼넷 1개까지 1루를 두 번 밟았다. 전날엔 4타수 무안타로 시즌 타율은 0.125(8타수 1안타)다. 1회 좌중간 홈런성 타구가 콜로라도 좌익수 개럿 햄프슨에게 담장 위에서 잡혀 아쉬움을 남겼던 추신수는 5회 2사 1, 2루 상황에서 1루수를 넘기는 적시타를 때려내며 시즌 첫 안타, 첫 타점을 기록했다. 텍사스는 2-3으로 무릎을 꿇어 1승 뒤 1패를 안았다.전날 동산고 선배 류현진과의 맞대결이 무산됐으나 막판 대타로 나와 볼넷 한 개를 뽑았던 최지만은 이날 홈 경기에서는 1번 타자 1루수로 선발 출전해 시즌 첫 안타, 첫 타점, 첫 득점을 차례로 올렸다. 최지만은 6회 무사 1루에서 토론토 우완 선발 맷 슈메이커를 상대로 좌중간 2루타를 때려내며 영의 균형을 깼다. 1-1이던 8회 말 1사 1루에서 볼넷으로 걸어나간 최지만은 브랜든 로의 우중간 3루타 때 홈까지 내달렸다. 탬파베이는 4-1로 이겨 전날 4-6 패배를 설욕했다. 최지만의 시즌 타율은 0.333(3타수 1안타)이다.전날 류현진은 4와3분의2이닝 동안 탬파베이에 홈런 1개를 포함해 4안타를 내주고 3실점했다. 송곳 제구력이 흔들리며 사사구를 4개나 내줬다. 1회 10구, 2회 12구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출발한 류현진은 그러나 3회와 4회 실책 등 동료들의 미숙한 수비로 투구수가 각각 25구, 29구로 크게 늘었다. 5회 말에는 일본 타자 쓰쓰고 요시토모에게 빅리그 데뷔 홈런을 내주며 투구(총 97구)를 마쳐야 했다. 팀이 6-3으로 앞선 상황이었으나 1승까지 아웃카운트 1개를 채우지 못해 승리를 기록하지는 못했다. 평균 자책점 5.79.김광현은 같은 날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의 홈 개막전에서 팀이 5-2로 앞선 9회 초 등판해 1이닝을 2피안타 2실점(1자책)으로 막으며 세이브를 신고했다. MLB 데뷔전 세이브를 기록한 한국인 투수는 1999년 3월 김병현(당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이후 처음이다. 첫 상대 조시 벨을 3루수 실책으로 내보낸 김광현은 콜린 모란에게 2루타를 얻어맞아 위기에 몰렸다. 이후 호세 오수나에게 적시타를 내줬으나 길레르모 에레디아를 우익수 뜬공, 제이컵 스탈링을 병살타로 처리하며 첫 등판을 마무리했다. 평균 자책점 9.00.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충전케이스에 넣으면 자외선 살균… 무선이어폰 안심하고 쓰세요

    충전케이스에 넣으면 자외선 살균… 무선이어폰 안심하고 쓰세요

    LG전자가 최근 출시한 ‘톤 프리’는 무선이어폰 시장에 “나도 있소이다”라고 외친 선언과 같은 제품이다. 삼성전자의 ‘갤럭시버즈’나 애플의 ‘에어팟’, 중국 업체의 중저가 제품이 주도하는 시장에서 LG전자 또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단 것을 증명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지난해 10월 나왔던 LG전자의 첫 프리미엄 무선이어폰은 반응이 신통치 않았는데 지름 5.4㎝의 마카롱 모양으로 케이스 디자인을 바꾸는 등 전작을 크게 보완했다. 올해 2억 2000만대에서 2024년에는 연간 12억대 출하로 급성장이 예상되는 글로벌 무선이어폰 시장 경쟁에 LG전자가 불을 붙이고 나선 것이다. ‘톤 프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자외선(UV) 살균’이다. ‘갤럭시버즈’나 ‘에어팟’에는 없는 기능이다. 이어폰 충전케이스에 기기를 넣으면 발광다이오드(LED)에서 나오는 빛이 유해 세균을 99.9% 제거해 준다는 것이 LG전자의 설명이다. 귀청소를 자주 한다고 자부하더라도 몇 시간씩 쓰고 난 뒤에는 괜히 찜찜한 마음에 휴지로 이어폰을 쓱쓱 닦곤 했는데 살균을 해 준다니 안심이 됐다.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쉽게 제어할 수 있다는 점도 ‘톤 프리’의 강점이다.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걷다 보면 주변의 소리를 못 들어 사고의 위험이 있는데 앱에서 ‘주변 소리 듣기’를 설정하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 이어폰에 달린 마이크를 통해 외부 소리를 포착해 음악 감상 도중에도 어느 정도 바깥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무선이어폰은 크기가 작아 이를 잃어버릴 때가 많은데 앱에 있는 ‘내 무선 이어버드 찾기’ 기능을 누르면 이어폰에서 알람 소리가 크게 나와 위치를 곧바로 알 수 있다. ‘재규어’와 ‘레인지로버’ 등 고급 자동차 브랜드의 오디오 시템을 설계한 영국 업체 ‘메리디안’이 제품 개발에 참여한 덕인지 노래를 들을 때 풍부한 음향이 느껴진다. 시끄러운 곳에서 통화할 때 상대방에게 물어봐도 대다수가 “잘 들린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영상과 함께 이용할 때 발생하는 무선이어폰 특유의 소리 지연을 완전히 잡아내지는 못했다. 넥슨의 모바일 레이싱 게임인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를 해 봤더니 출발 신호가 늦게 들려 재빨리 치고 나가지 못했고, 가속도를 내거나 차량이 어딘가 부딪혔을 때 효과음이 반 박자 늦게 들려 어색했다. 출고가가 19만 9000원으로 전작인 ‘LG 톤플러스 프리’보다 6만원가량 싸지만 경쟁을 펼치게 될 ‘갤럭시버즈 플러스’(17만 9300원)보다 비싼 것도 선택을 망설이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글 사진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올 여름휴가는 국내로… 북적이는 김포공항

    올 여름휴가는 국내로… 북적이는 김포공항

    한국교통연구원이 이달 6~9일 6150세대를 대상으로 휴가 계획을 조사한 결과 ‘휴가를 가지 않겠다’거나 ‘미정’이라고 답한 이들이 62.2%로 나타났다. 그 이유로 ‘코로나19 때문’이라는 응답자가 75.6%를 차지했다. 휴가를 가는 경우 여행지를 국내로 선택한 응답자는 98.0%로 압도적이었다. 휴가 출발 예정일은 오는 8월 1∼7일이 23.2%로 가장 많았다. 사진은 주말인 26일 김포공항 국내선이 여행객으로 붐비는 모습. 연합뉴스
  • 주호영 ‘행정수도’ 입단속 안 통하는 野충청 의원

    주호영 ‘행정수도’ 입단속 안 통하는 野충청 의원

    여당발 ‘행정수도 완성론’이 일으킨 정치권 파장에 미래통합당 일각에서도 동조의 목소리가 표출되고 있다. 당 차원에서 함구령까지 내렸지만 지역 민심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은 27일 ‘행정수도 완성 추진 태스크포스(TF)’ 첫 회의를 열고 사회적 공론화에 나선다. 이어 세종·충남·충북 등에서 지역 순회 간담회를 진행하며 여론전을 펼칠 예정이다. 그런 가운데 통합당 대전시당은 26일 성명을 내고 “행정수도 이전은 국토균형발전, 지방분권, 수도권 과밀화 해소를 위해 필요한 정책”이라며 “모든 논의는 행정수도 이전 위헌 결정을 해소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23일 주호영 원내대표가 의원총회에서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대해 당분간은 의견 표명을 자제해야 민주당의 의도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당부했지만 원외에서 공개적인 찬성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원내도 예외는 아니다. 통합당 충청권 의원 중 가장 먼저 행정수도 이전에 동조하고 나선 정진석 의원은 “(세종시가) 지속 가능한 균형발전 거점도시가 되려면 ‘메가시티 세종’으로 행정수도 계획을 전면 수정·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어 갔다. 정 의원은 세종과 이웃한 충남 공주를 지역구로 두고 있다. 같은 충청권이라도 세종과의 거리에 따라 온도 차가 있다. 충북 제천·단양의 엄태영 의원은 “민주당의 국면 전환용 카드일 뿐”이라면서 “주민들도 반기는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비충청권에서도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행정수도 이전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부산 지역 장제원 의원은 “수도권 집중 현상을 이대로 방치하면 국가의 미래를 논할 수 없다”며 “통합당은 행정수도 완성론을 넘어 공공기관 대규모 지방 이전 등 논의를 민주당보다 더 강하게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민주당 전략 통했나… ‘행정수도 완성론’에 충청 야권 흔들

    민주당 전략 통했나… ‘행정수도 완성론’에 충청 야권 흔들

    여당발 ‘행정수도 완성론’이 일으킨 정치권 파장에 미래통합당 일각에서도 동조의 목소리가 표출되고 있다. 당 차원 함구령까지 내려졌지만 지역 민심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은 27일 ‘행정수도 완성 추진 태스크포스(TF)’ 첫 회의를 열고 사회적 공론화에 나선다. 이어 세종·충남·충북 등에서 지역 순회 간담회를 진행하며 여론전을 펼칠 예정이다. 그런 가운데 통합당 대전시당은 26일 성명을 내고 “행정수도 이전은 국토균형발전, 지방분권, 수도권 과밀화 해소를 위해 필요한 정책”이라며 “모든 논의는 행정수도 이전 위헌 결정을 해소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23일 주호영 원내대표가 의원총회에서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대해 당분간은 의견 표명을 자제해야 민주당의 의도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당부했지만 원외에서 공개적인 찬성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원내도 예외는 아니다. 통합당 충청권 의원 중 가장 먼저 행정수도 이전에 동조하고 나선 정진석 의원은 “(세종시가) 지속 가능한 균형발전 거점도시가 되려면 ‘메가시티 세종’으로 행정수도 계획을 전면 수정·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어 갔다. 정 의원은 세종과 이웃한 충남 공주를 지역구로 두고 있다. 이와 관련 한 통합당 관계자는 “지역구 의원이 행정수도 이전 관련 발언을 해주길 기대하는 지역 여론을 의원들도 무시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충남 아산갑의 이명수 의원은 통화에서 “행정수도 이전 자체는 긍정적으로 본다”면서도 “지금은 시기도 아니고 방법도 잘못됐다”며 민주당의 이슈몰이에는 선을 그었다. “세종 쪽에서 사업을 하는 지역 주민들은 벌써 들떠있다”고 분위기를 전한 이 의원은 “대정부 질문 때 총리에게 ‘총 사업비가 얼마냐’, ‘어떤 기관이 내려가느냐’ 질문해도 답변을 못하지 않았느냐. 준비도 안 된 채 백지상태에서 하겠다는 건 정략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같은 충청권이라도 세종과의 거리에 따라 온도 차가 나타난다. 충북 제천·단양의 엄태영 의원은 “부동산 정책 실패로 궁색해지니 국면 전환용으로 불쑥 꺼낸 것”이라면서 “주민들도 반기는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비충청권에서도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행정수도 이전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부산 지역 장제원 의원은 “수도권 집중 현상을 이대로 방치하면 국가의 미래를 논할 수 없다”면서 “통합당은 행정수도 완성론을 넘어 공공기관 대규모 지방 이전 등 논의를 민주당보다 더 강하게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귀국’ 이라크 건설근로자 35명 추가 확진...누적 확진자 71명

    ‘귀국’ 이라크 건설근로자 35명 추가 확진...누적 확진자 71명

    이라크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다 지난 24일 귀국한 건설 근로자 가운데 25일 35명이 추가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판정을 받았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는 이날 오전 10시 기준으로 이라크 귀국 근로자 293명 가운데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은 총 71명이라고 밝혔다. 211명은 음성 판정을 받았고, 나머지 11명은 재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확진자들은 중증도에 따라 국립중앙의료원을 비롯한 의료기관 또는 중앙사고수습본부에서 운영 중인 생활치료센터(고용노동연수원·중소벤처기업연수원)로 이송돼 치료를 받는다. 음성 결과를 받은 사람들 또한 오는 8월 7일까지 2주간 임시생활시설에서 격리 생활을 한다.한편, 방역당국은 코로나19 유행 상황이 심각한 국가에 대한 방역 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권준욱 방대본 부본부장은 정례 브리핑에서 “해외유입 환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방역강화 대상 국가 입국자의 경우 진단검사를 기존 1회에서 2회로 확대해서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방역강화 대상 국가에서 들어오는 입국자의 경우 기존에는 입국 후 3일 이내에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1번만 받았으나 앞으로는 입국 후 3일 이내에 1번, 그리고 임시생활시설 격리 13일째 다시 1번 등 총 2번을 받게 된다. 정부는 현재 방역강화 대상 국가에서 출발하는 입국자에 대해서는 출발일 기준 48시간 이내에 발급받은 음성 확인서를 요구하고 있다. 입국자들은 3일 이내에 국내 기관에서 다시 검사를 받는다. 해당 국가는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등 6개국이다. 방대본은 “국가별 환자 발생 동향 및 국내 유입 환자 수 등을 고려해 정례적인 위험도 평가를 하고 이를 통해 해외유입 환자 차단을 위해 적시에 검역과 격리 등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노회찬 전 의원 2주기 종료…노회찬의 꿈, 그리고 유지

    노회찬 전 의원 2주기 종료…노회찬의 꿈, 그리고 유지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노회찬 전 의원 유서 中)“노 의원을 넘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정의당이 지금 여러가지로 어려운데, (노 의원이) 멈추지 말고 나아가라고 하셨잖아요.”(김종철 정의당 대변인)“노회찬 의원을 생각하면 눈물이 안 날 수가 없지만, 이제 울고불고 하는 것보다 미래를 향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조돈문 노회찬 재단 이사장)고 노회찬 전 의원의 2주기 추모기간(7월 13일~24일)이 24일로 마무리됐다. 노 전 의원을 추모하는 노회찬재단, 노 전 의원이 남긴 유지를 이어가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정의당의 활동을 정리해봤다. ●노회찬의 꿈…원내교섭단체 실패했지만 ‘6411 정신’이어져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지난 18일 경기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노 전 의원 서거 2주기 추모제에 참석해 고개를 떨궈야 했다. 공직선거법은 개정됐지만, 노 전 의원과 진보정당의 오랜 꿈인 원내교섭단체(20석) 달성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심 대표는 “그리운 노회찬 대표님. 지난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 꼭 만들어서 대표님 대신 물구나무를 서겠다고 약속드렸는데 지키지 못했다. 뵈러 오는 걸음이 무거웠다. 면목이 없어서 그랬다”고 말했다.노회찬재단은 지난 23일 진행된 ‘새벽첫차 6411’ 발매 기념공원에 돌봄노동자, 봉제노동자, 청소노동자들을 방청객으로 모셨다. 노 전 의원의 이름만 부르고 그리워하는 것만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적 약자들의 손을 잡으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은 지난 24일 통화에서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사회적 약자들의 삶의 조건이 개선되는 것이 노회찬의 꿈”이라면서 “노회찬의 꿈을 실현한다는 게 그분들(투명인간들)의 꿈이기도 하고, 재단의 꿈 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공수처법 통과…노 의원 유지가 담긴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차별금지법 노 전 의원은 2016년 7월 21일 20대 국회 최초로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처 설치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그는 “부정부패를 뿌리 뽑는 일을 해야 할 검찰이 자신들 내부에서 ‘부정부패범죄자’들을 키우고, 배출하고 있는 광경을 국민들은 참담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다”면서 “삼성X파일 떡값검사 명단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저 또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담한 심정”이라며 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해 4+1(당시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를 통해 국회를 통과한 공수처법도 당시 정의당 원내대표인 ‘윤소하 안’이었다. 민주당이 공수처법 통과를 주도했지만, 정의당 등의 협력도 중요했다. 공수처법이 통과된 후 윤소하 전 원내대표는 “공수처법 통과가 정의당에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이 법을 가장 먼저 발의한 의원이 바로 고 노회찬 원내대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노 전 의원이 17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발의한 차별금지법과 20대에서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은 당시에 빛을 보지 못했다. 정의당은 21대 국회에서 노 의원이 남긴 유지를 실현하기 위해 두 법을 다시 대표 발의했다. 정의당은 21대 국회에서 1호 법안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내세웠다. 노 전 의원이 만들어 놓은 법안을 토대로 빠르게 발의할 수 있었다고 한다. 노 전 의원의 비서실장이었던 김종철 정의당 대변인은 “2017년 거제 삼성중공업에서 크레인이 무너져서 하청기업 노동자 6분이 돌아가셨다. 노 전 의원이 사고 현장에서 ‘정말 바로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고 전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21대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176석을 이끄는 민주당 당대표 경선에 나선 이낙연·김부겸·박주민 후보 모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지지하고 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 했다. 정의당은 20대 국회에서 법안 발의 최소조건(10명 동의)을 채우지 못해 발의조차 하지 못했지만, 21대 국회에서는 개원 직후 발의에 성공한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도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도 보이고 있지만, 일부 보수 기독교계의 반발이 강한 만큼 실제 법 통과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심 대표는 지난 18일 노 전 의원 묘지 앞에서 “폭풍우를 뚫고 차별금지법을 반드시 제정해서 아래로부터 민주주의를 단단하게 세워가겠다”고 의지를 다졌다.●노회찬을 넘어서기, 노회찬을 기억하기 “하...(노 의원을) 넘는다는 건 조금 어려운 일이고요.” 김 대변인은 ‘노 의원을 넘어서는 방법은 어때야 하나’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노 의원이) 멈추지 말고 나아가라고 하셨잖아요. 정의당이 여러 가지로 어려운 면들이 좀 있었는데 그의 유지대로 오래 버텨야 한다는 마음으로, 성과가 당장 나지 않더라도 (정의당의) 정치를 오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조문’ 국면에서 당이 몸살을 앓았지만, 노 전 의원이 40년 넘도록 진보정당을 했던 것처럼 길게 보고 정의당의 정치를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취지다.정의당은 8월 30일 혁신 당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정의당 혁신위는 지난 17일 혁신위 초안을 발표한 후 당원들과 토론을 진행 중이다. 지도체제 등 당내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문제, 새로운 리더십 형성의 문제, 당의 정체성 문제 등을 두고 논의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 2중대’에서 벗어나기 위한 당의 정체성 분야는 노 전 의원이 남긴 유산을 뛰어넘어야 하는 논의가 될 가능성이 크다. 노회찬재단도 지난 21일 ‘6411 사회연대포럼’ 창립식을 열었다. 그동안 진보진영은 사회주의·사민주의 등 이념이나 독일 등 선진사회의 사회모델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대안 세계의 상을 논의했지만, 현실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반성에서 출발했다. 현장에서 이뤄지는 여러 실천을 공유하고 모범 사례들을 발굴해 한국 사회에 적용 가능한 방안을 찾는다는 목표다.조 이사장은 “이제는 추모를 넘어서 노회찬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추모하는 마음은 다 가지고 있지만, 노회찬이 남기고 간 꿈을 다시 확인하고, 꿈을 향해 첫걸음을 다시 내딛는 2주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노회찬을 생각하면 눈물이 안 날수가 없지만 이제 울고불고 하는 것보다 미래를 향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울지 말자던 60대 중반이 넘은 노학자는 울먹거렸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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