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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줄 채워 달라”는 이웃에 반려견 풀어 물게 해…견주 구속

    “목줄 채워 달라”는 이웃에 반려견 풀어 물게 해…견주 구속

    주민 2명 위협하고 다치게 한 혐의법원 “지속해서 주민 안전 위협” 평소 반려견 목줄을 하지 않는 문제로 이웃 주민과 갈등을 빚던 견주가 자신이 키우던 개로 주민을 위협하고 다치게 한 혐의로 구속됐다. 부산 부산진경찰서는 27일 동물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50대 A씨를 구속했다. 부산지법은 이날 영장실질심사를 열고 “지속해서 주민 안전을 위협하고 재범 우려가 있으며 유사사례 방지를 위해 구속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A씨는 지난 24일 부산진구 범천동 한 골목에서 자신이 풀어놓은 개가 주민 2명을 물어 다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술에 취한 상태였고, 이웃 주민 집으로 개를 끌고 들어가 위협한 것으로 조사됐다. 주민 2명은 부상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주민을 문 개는 맹견으로는 분류되지 않는 샤페이 종으로 확인됐다. 이웃 주민은 A씨가 평소 목줄을 하지 않은 개를 마을에 풀어놔 자주 다툼이 있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한 주민은 “일주일 전에도 검은 개를 풀어놔 주민이 신고했고 경찰이 다녀갔다”고 말했다. 당시 개가 목줄 없이 돌아다닌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A씨에게 경범죄 처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5만원 통고 처분했다. 일반적으로 자신이 데리고 있는 맹견이 사람을 다치게 한 경우 동물보호법에 따라 견주에게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린다. 다만 일반 반려견일 경우 과태료 처분 등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 12·12 공모, 차례로 대통령에… 내란죄 판결로 함께 감옥행

    12·12 공모, 차례로 대통령에… 내란죄 판결로 함께 감옥행

    26일 별세한 노태우 전 대통령과 그의 육사 동기인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79년 12·12 사태를 함께 일으켜 정권을 잡은 뒤 5·6공에서 차례로 대통령을 지낸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이들은 군인 시절부터 줄곧 인생의 파트너이기도 했지만,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에 ‘5공 숙청’을 명분으로 전 전 대통령을 백담사로 보낸 애증의 관계이기도 했다. ●盧 ‘5공 청산’ 민심에 全에 백담사행 권고 두 사람의 인연은 고교 때부터 출발한다. 노 전 대통령은 대구공고의 전신인 대구공업중을 거쳐 1951년 경북고를 졸업했다. 한 살 많은 전 전 대통령은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따라 대구에 정착해 같은 해 대구공고를 졸업했다. 두 사람은 이듬해인 1952년 육사 제11기(정규 육사 1기) 동기생으로 처음 만난다. 12·12 쿠데타 당시에는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이 맡고 있던 9사단 병력을 중앙청으로 출동시켜 당시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 겸 보안사령관이 권력을 장악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러나 취임 이후 ‘5공 청산’이라는 거센 바람이 불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삐걱대기 시작했다. 전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요구가 빗발치자 노 전 대통령은 민심이 가라앉을 때까지 조용한 곳에 가 있으라고 권고했고, 전 전 대통령 측은 백담사를 택했다.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전 전 대통령은 내란죄 등으로 무기징역을, 노 전 대통령은 징역 17년의 중형을 각각 선고받았다. 같은 해 12월 임기 말이던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정치적 합의에 따라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전 전 대통령은 먼저 검찰 소환에 응해 구속된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노태우가 일을 그르쳤어. 그렇게 쉽게 검찰에 가는 것이 아닌데 끝까지 버텼어야지”라면서 강한 불만을 터뜨린 것으로 전해졌다. ●盧 부고 전해 들은 全 침묵 속에 눈물지어 이들의 마지막 만남은 2014년 8월 13일이다. 전 전 대통령은 이날 갑작스럽게 노 전 대통령의 자택을 방문했다. 그는 병상에 누워 있는 노 전 대통령에게 “이 사람아, 나를 알아보시겠는가”라고 했고, 의사소통이 어려운 노 전 대통령은 김옥숙 여사가 “전 전 대통령을 알아보시면 눈을 깜박여 보시라”고 하자 눈을 깜박였다고 한다. 전 전 대통령은 이날 노 전 대통령의 부고를 듣고 침묵 속에 눈물을 지었다고 측근이 전했다. 별도의 애도 메시지를 낼 계획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를 조문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 5·18 발포 명령자 규명, 사죄 않고… 용서받을 기회도 사라졌다

    5·18 발포 명령자 규명, 사죄 않고… 용서받을 기회도 사라졌다

    전두환과 육사 11기… 친구 넘어 군신 관계12·12 쿠데타 때 군권 장악 결정적인 역할회고록 통해 “광주사태 진범은 유언비어”‘비자금 사건’은 정경 유착 표본으로 평가26일 별세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피로 물든 한국 현대사의 ‘진실’까지 무덤으로 가지고 갔다. 그는 신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철권통치를 유지했던 제5공화국의 2인자였으면서도 임종 순간까지도 ‘양심 고백’을 하지 않았다. ●육사에서 전두환과의 운명적 만남 노 전 대통령은 1932년 경북 달성군(현재 대구)에서 부친 노병수와 모친 김태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대구공업중(대구공고) 항공과에 입학한 뒤 경북중 4학년(학제 개편 이후 경북고 1학년)으로 편입했고, 6·25전쟁이 발발하자 학도병으로 헌병학교에 지원해 군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입교한 그는 대구공고 1년 선배인 전두환 전 대통령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둘은 생도 시절 방을 같이 쓰면서 단순한 동기를 넘어서는 관계를 맺었다. 육사 졸업 4년 뒤 육사 동기인 김복동의 동생 김옥숙 여사와 결혼했다. 이후 참모총장 수석보좌관,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 보안사령관 등의 보직을 넘겨받는 등 전 전 대통령의 뒤를 이었고 둘의 인연은 ‘10·26사태’와 ‘12·12쿠데타’로 이어진다. ●12·12 군사반란이 돌발사고? 전두환·노태우 등 육사 11기가 중심이 된 사조직 ‘하나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위 세력으로 성장했다. 하나회는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움직였다. 12·12사태 당시 노 전 대통령은 9사단 병력을 출동시켜 군권 장악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전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친구’에서 ‘군신’(君臣)으로 바뀌게 된다. 12·12군사반란은 신군부 세력이 최규하 당시 대통령의 승인 없이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 등을 ‘김재규 내란 방조죄’라는 죄목으로 체포·연행·구속한 사건이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2011년 8월 회고록에서 “국가원수를 시해한 김재규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그 사건에 관련이 있다고 의심되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려다가 일어난 돌발사고였다”고 주장했다.●5·18 발포 명령 누가 했나 신군부는 다음해 5월 17일 비상계엄확대조치를 단행하고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 진압했다. 이로써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신군부는 본격적으로 정치 무대에 뛰어들었다. 1988년 광주 청문회와 1995년 5·18 및 12·12사건 수사 당시 누가 공수부대의 발포를 명령했는지가 초미의 관심이었지만, 규명하지 못했다. 다만 검찰은 당시 계엄군이 자위권 보유를 천명한 사실을 들어 포괄적 책임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에게 물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 “광주사태의 진범은 유언비어였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 시민들 씨를 말리러 왔다. 무지막지한 군인이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잘라 냈다. 처녀의 젖가슴을 도려냈다’는 유언비어가 사실인 양 퍼져 갔고, 그래서 광주 시민들이 치를 떨면서 무기고를 탈취하고 군과 대항하게 된 것이다. 그게 5·18이다”라고 말했다. ●비자금 투옥과 그 이후 1980년 8월 27일 전 전 대통령이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듬해 7월, 육군 대장으로 예편했다. 1987년 민주정의당(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지만 ‘호헌철폐·독재타도’ 구호 아래 직선제 개헌을 앞세워 들불처럼 일었던 민주화 요구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6월항쟁을 잠재우고자 직선제 개헌과 김대중 사면복권 등을 담은 ‘6·29선언’을 발표해 온건 이미지를 구축했고, 양김(김대중·김영삼)의 분열 속에 치러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36%를 얻어 1971년 이후 첫 직선제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인 1995년 12월 박계동 의원의 폭로로 불거진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기소됐다. 전직 대통령 기소는 이때가 처음이다. 이듬해 12·12와 5·18에 대한 기소까지 더해져 징역 17년에 2628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전직 대통령의 개인 비리 차원을 넘어서 정치권력과 재벌이 합작해 정치와 경제를 밀실에서 주무른 정경유착의 표본으로 평가받는다.
  • 20년간 희귀병 ‘소뇌 위축증’…눈짓으로 의사표현하며 투병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지병 악화로 서울대병원에서 별세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 이후 건강이 악화된 데다 희소병인 소뇌 위축증을 앓으면서 20년 가까이 투병 생활을 이어 왔다. 최근 병세가 악화되면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집중 치료를 받기도 했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이후 공식 석상에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4월 호흡 곤란 증세를 보여 119 신고를 받은 구급대가 출동하기도 했으나 신고 직후 상태가 호전돼 병원 이송조치 없이 돌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장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호흡 보조장치에 문제가 생겼다”며 “(아버지의 병명이) 소뇌 위축증이란 희귀병인데, 대뇌는 지장이 없어서 의식과 사고는 있다. 이것이 더 큰 고통”이라고 밝혔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상태에 대해 “눈짓으로 의사표현을 하시지만 정말 하고픈 말이 있을 때 소통이 잘 되지 않으면 온 얼굴이 무너지며 울상이 되신다”고 설명했다.
  • ‘치매’ 진단 전두환, 노태우 사망 소식 듣고 ‘눈물만…’[노태우 별세]

    ‘치매’ 진단 전두환, 노태우 사망 소식 듣고 ‘눈물만…’[노태우 별세]

    전두환 전 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고를 듣고 침묵 속에 눈물을 지었다고 측근이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이 26일 사망함으로써 60여 년에 걸친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운명적인 애증 관계도 끝이 났다. 전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이날 오후 “노 전 대통령 별세 소식을 접하고 아무 말씀을 하지 않은 채 눈물만 지으셨다고 부인 이순자 여사가 전했다”고 밝혔다. 별도의 애도 메시지를 낼 계획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를 조문할 가능성도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 전 대통령은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육사 동기 전두환과 길고도 질긴 인연…부고 듣고 침묵 속에 ‘눈물’ 두 전직 대통령은 동료로서 출발해 1979년 12·12 쿠데타로 전 전 대통령이 권력을 잡은 후에는 최고통치자와 2인자로 자리매김 한 바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은 고교 때부터 출발한다. 노 전 대통령은 대구공고의 전신인 대구공업중을 거쳐 1951년 경북고를 졸업했다. 한 살 많은 전 전 대통령은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따라 대구에 정착해 같은 해 대구공고를 졸업했다. 이후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1952년 육사 제11기(정규 육사 1기) 동기로 입학했다. 노 전 대통령이 대위 시절인 1959년 김옥숙 여사와의 결혼 당시 전 전 대통령이 사회를 봐줄 정도로 두 사람은 돈독했다. 노 전 대통령은 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을 시작으로 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 보안사령관 등 전 전 대통령이 거쳐 간 자리를 이어받았다. 1979년 12·12 쿠데타 당시에는 자신이 맡고 있던 9사단 병력을 중앙청으로 출동시켜 당시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 겸 보안사령관이 주도하는 신군부의 권력장악 과정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전 전 대통령이 권력을 잡은 후에는 최고통치자와 2인자로 자리매김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에 이어 13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사관학교 생도 시절부터 시작해 전 대통령과 내가 국정 최고책임자로 나설 때까지 우리의 관계는 돈독했다. 우정과 동지애가 유난히 강했는데 공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특수한 관계였다”고 적었다.그러나 취임 이후 ‘5공 청산’이라는 거센 바람이 불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삐걱대기 시작했다. 전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요구가 빗발치자 노 전 대통령은 민심이 가라앉을 때까지 조용한 곳에 가 있으라고 권고했고, 전 전 대통령 측은 백담사를 택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은 12·12 쿠데타와 비자금 사건 등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인 1995년 11월 16일과 같은 해 12월 3일 나란히 구속돼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전 전 대통령은 무기징역을, 노 전 대통령은 징역 17년의 중형을 각각 선고받은 뒤 같은 해 12월 당시 임기 말이던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의 정치적 합의에 따라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전 전 대통령은 먼저 검찰 소환에 응해 구속된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노태우가 일을 그르쳤어. 그렇게 쉽게 검찰에 가는 것이 아닌데 끝까지 버텼어야지”라면서 강한 불만을 터트린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그들(5공 측 인사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대통령이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하면 대통령이 아니라 독재자라는 것이 나의 철학이었다. 그런 인식 차이로 인해 전임자는 나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면서 서운해 할 수 있는 것이고, 나는 미안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회고했다. “어디 가냐고 5분마다 묻더라”…전두환 측 ‘치매’ 주장 한편 지난 8월 광주지법 형사1부(재판장 김재근)는 법정에서 전 전 대통령 항소심을 진행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급격히 노화된 모습이었다. 앞서 전 전 대통령 측은 알츠하이머(치매) 진단을 받았다며 법정 출석을 거부해왔었다. 하지만 골프를 치는 정정한 모습이 목격되면서 논란이 됐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헬기의 광주 도심 사격이 있었다고 인정하면서 전 전 대통령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 진주아파트 방화 살인 ‘안인득 사건’ 유가족 국가배상청구소송

    진주아파트 방화 살인 ‘안인득 사건’ 유가족 국가배상청구소송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사건으로 어머니와 딸을 잃은 유가족이 26일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중증정신질환을 방치해 온 국가에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 소송의 핵심이다. 조현병을 앓아 온 피의자 안인득은 2019년 4월 17일 진주의 한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뛰쳐나온 주민들을 향해 칼을 휘둘러 5명을 죽이고 17명에게 상해를 입혔다. 사건 발생 전 안씨의 폭력행위와 언동에 겁을 먹은 아파트 주민들이 경찰에 7번이나 신고했으나 경찰은 출동 후 얌전해진 안씨의 말만 듣고 ‘가족 등의 진술 청취, 신고 이력이나 범죄 전력 검토, 치료 중단여부 등 검토’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유가족 A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가가 위험 앞에 국민을 버려 둔 채 가장 먼저 도망가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치도록 내버려도 되나”라면서 “다시는 이런 일로 사랑하는 이를 잃는 이들이 나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국가를 심판대에 세우고자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소송을 맡은 오지원 변호사는 “국가는 여전히 중증정신질환자들을 그 가족의 책임으로만 방치하고 있고, 환자들은 어느 순간 본인도 원치 않게 범죄자가 된다”며 “법원이 적극적으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은 중중정신질환자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치매는 ‘국가책임제’가 시행됐지만 중증정신질환자는 여전히 소수의 가족이 감당하고 있다. 환자 가족들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국가가 환자 치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한편, 가족의 돌봄 부담을 줄여 주고 복지지원을 하는 등 통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백종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는 “2016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이후 자발적이지 않은 입원이 줄고 인권이 개선됐지만 (공적 시스템인) 행정입원과 응급입원이 필요만큼 시행되지 못하는 형편”이라며 “결국 입원만 까다로워지고 준비는 부족한 상황에서 중증정신질환 환자들은 사고로 내몰리고, 아픈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되는 비극적 현실”이라고 말했다.
  • 제 발로 동물원 호랑이 우리 들어가 ‘으르렁’ 거린 中 남성 (영상)

    제 발로 동물원 호랑이 우리 들어가 ‘으르렁’ 거린 中 남성 (영상)

    TV로만 보던 동물들을 실제로 마주하게 되면 생각보다 훨씬 큰 몸집에 초식동물이라도 흠칫하는 경우가 있다. 하물며 동물의 왕이라는 호랑이를 실제로 눈앞에서 마주치면 어떤 느낌일까? 중국에서 한 남성이 사파리 자동차에서 뛰어내려 백호 11마리가 어슬렁거리는 곳으로 달려가 ‘위협’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23일 베이징의 야생동물원에서는 백호 서식 구간에서 사파리 관광을 하던 한 56세 남성이 갑자기 차에서 뛰어내렸다. 성큼성큼 호랑이가 모여있는 곳으로 다가가 보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당시 이 장면을 목격한 다른 관광객은 “이 사람이 호랑이를 따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호랑이를 마주한 채 울부짖었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것은 호랑이들 역시 이 남성에 대해 ‘호기심’을 느낀 듯 별다른 공격 성향은 보이지 않고 함께 눈을 마주 보며 서 있었다.신고를 받은 동물원 관리원이 즉시 출동해 먼 곳에서 이 남성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소리쳤고, 일부 직원은 직접 남성의 곁으로 가서 사파리 차량으로 돌아가도록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출동한 직원들에 따르면 이 남성은 호랑이에게 말이나 동작으로 위협을 가하는 듯한 행동을 계속했고 관리원들이 오든 말든 호랑이 곁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현장에 출동한 관리원들이 음식으로 호랑이들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고 나서야 이 남성은 끌려 나왔다. 이전에도 사파리 관광 도중 관광객이 맹수 지역으로 뛰어 내려간 적이 있어 동물원 측에서는 매립 고압선을 설치한 상태였고 천만다행으로 이 남성은 고압선을 접촉하지 않았다. 한편 이 남성은 베이징 공안국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은 뒤 형사 구류 중이며, 누리꾼들은 오히려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을 호랑이를 걱정하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 ‘육사 동기’ 노태우·전두환…60년 걸친 애증 관계 [노태우 별세]

    ‘육사 동기’ 노태우·전두환…60년 걸친 애증 관계 [노태우 별세]

    육사 11시 동기생으로 만나쿠데타 뒤 정치적 2인자로‘5공 청산’으로 전두환 불만 노태우 “국민 요구 무시하면 독재”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별세하면서 60여년에 걸친 ‘육사 동기’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운명적인 애증 관계도 끝이 났다. 노 전 대통령은 대구공고의 전신인 대구공업중을 거쳐 1951년 경북고를 졸업했다. 한 살 많은 전 전 대통령은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따라 대구에 정착해 같은 해 대구공고를 졸업했다. 두 사람은 이듬해인 1952년 육사 제11기(정규 육사 1기) 동기생으로 만났다. 노 전 대통령은 생도 시절 럭비부에서, 전 전 대통령은 축구부에서 활동했다. 노 전 대통령이 대위 시절인 1959년 김옥숙 여사와의 결혼 당시 전 전 대통령이 사회를 봐줄 정도로 두 사람은 돈독했다. ●쿠데타 당시 9사단 병력 동원해 권력장악 도와 노 전 대통령은 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을 시작으로 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 보안사령관 등 전 전 대통령이 거쳐 간 자리를 이어받았다. 12·12 쿠데타 당시에는 자신이 맡고 있던 9사단 병력을 중앙청으로 출동시켜 당시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 겸 보안사령관이 주도하는 신군부의 권력장악 과정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는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전 전 대통령의 권고로 군문을 떠나 정두환 정권에 합류했다. 전 전 대통령의 튼튼한 신임을 바탕으로 정무장관에서 시작해 초대 체육부장관, 내무부장관, 서울올림픽조직위 위원장, 대한체육회장, 민정당 대표위원, 제12대 국회의원(전국구) 등을 거치며 2인자로서의 터를 닦았다.1987년에는 전 전 대통령의 추천으로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으며, 직선제 개헌 약속 등을 핵심으로 하는 전격적인 6·29 선언과 ‘보통 사람’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이른바 ‘3김’을 따돌리고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사관학교 생도 시절부터 시작해 전 대통령과 내가 국정 최고책임자로 나설 때까지 우리의 관계는 돈독했다. 우정과 동지애가 유난히 강했는데 공인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특수한 관계였다”고 적었다. ●대통령 취임 후 ‘5공 청산’ 거센 바람…관계 삐걱 그러나 취임 이후 ‘5공 청산’이라는 거센 바람이 불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삐걱대기 시작했다. 전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요구가 빗발치자 노 전 대통령은 민심이 가라앉을 때까지 조용한 곳에 가 있으라고 권고했고, 전 전 대통령 측은 백담사를 택했다. 전 전 대통령은 백담사로 떠나기 전날인 1988년 11월 22일 밤 노 전 대통령에게 전화로 백담사 은둔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전임자의 신변을 안전하게 해주지 못해 부끄럽다. 잠시 고생스럽더라도 참고 견디면 조속한 시일 내에 어려움을 극복하고 원상으로 회복하겠다”고 달랬다. 노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은 12·12 쿠데타와 비자금 사건 등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인 1995년 11월 16일과 같은 해 12월 3일 나란히 구속돼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전 전 대통령은 무기징역을, 노 전 대통령은 징역 17년의 중형을 각각 선고받은 뒤 같은 해 12월 당시 임기 말이던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의 정치적 합의에 따라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검찰 수사 과정에서 전 전 대통령은 먼저 검찰 소환에 응해 구속된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노태우가 일을 그르쳤어. 그렇게 쉽게 검찰에 가는 것이 아닌데 끝까지 버텼어야지”라면서 강한 불만을 터트린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전 대통령은 또 “나는 땜쟁이(대구공고) 출신이고 노씨는 명문고(경북고) 출신인데도 나보다 뒤처졌던 현실에 대해 불만이 있었을 수도 있다”면서 “노씨 및 부인 김옥숙씨가 대통령과 영부인이 된 뒤 사람이 확 달라져 버린 것을 보고 친구나 동기에게 후임 자리를 물려주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그들(5공 측 인사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대통령이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하면 대통령이 아니라 독재자라는 것이 나의 철학이었다. 그런 인식 차이로 인해 전임자는 나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면서 서운해 할 수 있는 것이고, 나는 미안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회고했다.
  • [노태우 별세] 노태우 전 대통령이 걸어온 길

    [노태우 별세] 노태우 전 대통령이 걸어온 길

     ●육사에서 전두환과 운명적 조우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32년 12월 4일 경북 달성군(현재 대구)에서 부친 노병수씨와 모친 김태향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가 결혼한지 8년 만에 태어나 귀여움을 한몸에 받으며 성장했다. 부친이 일제시대 면서기로 일한 덕에 여유있는 생활을 누렸지만, 노 전 대통령이 7살 되던 해 부친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가세가 기울어 어렵게 살았다.  대구공업중학교(대구공고) 항공과에 입학한 그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말라리아에 걸려 생사를 오가는 투병 생활을 거치며 의사의 꿈을 갖게 되고, 경북중학교 4학년(학제 개편 이후 경북고 1학년)으로 편입한다. 편입한 해에는 중간 정도의 성적을 받았지만 5학년부터는 상위권을 유지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6학년 때 6·25 전쟁이 발발하자 학도병으로 헌병학교에 지원해 군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다. 헌병학교 9기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헌병으로 근무한 1년 동안 2등 중사(현재의 상병)까지 진급한다.  이후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입교한다. 이곳에서 그는 대구공고 1년 선배인 전두환 전 대통령과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된다. 두 사람은 생도 시절 방을 같이 쓰면서 단순한 육사 동기를 넘어서는 관계를 맺게 된다. 육사 졸업 4년 뒤 육사 동기인 김복동의 동생 김옥숙과 결혼한다. 월남 파병을 다녀오고 제9공수여단장, 제9보병사단장 등 요직을 거쳤다. 참모총장 수석보좌관,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 보안사령관 등 보직을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넘겨받는 등 그의 뒤를 따랐다. 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12·12 쿠데타’로 이어진다.   ●12·12 쿠데타와 5·18  노 전 대통령이 속한 육사 11기가 중심이 된 육군의 사조직 ‘하나회’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위 세력으로 성장했다. 국가보안사령부, 수도경비사령부 등 수도권 지역에서 세력을 성장하던 하나회는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움직였다. 이때 전 전 대통령과 함께 핵심 세력으로 꼽히는 사람이 바로 노 전 대통령이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9사단에서 29연대, 30연대를 강제로 출동시키는 등의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은 1979년 12월 12일,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김재규 내란 방조죄’라는 죄목으로 체포해 청와대를 포위하고 국방부부터 차례대로 장악했다. 이 사건으로 9사단장이었던 노 전 대통령은 군부 요직을 차지하게 된다. 이때를 기점으로 전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사실상 ‘친구’에서 ‘군신’으로 바뀌게 된다.  두 전직 대통령은 다음해 5월 17일 비상계엄확대조치를 단행하고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로써 권력을 완전히 장악, 본격적인 정치 무대에 뛰어든다.  ‘12·12 쿠데타’는 노태우 정권까지 정당화 됐다. 하지만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 과거 청산 움직임과 함께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된다. 이후 5·18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노 전 대통령은 법정에 서게 됐다. 1997년 재판부는 “12·12는 명백한 군사반란이며 5·17과 5·18은 내란 또는 내란목적 살인행위였다”고 판결했다.   ●5공화국의 2인자  노 전 대통령은 늘 두번째였다. 정치군인의 길을 걸었던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육사 동기들의 반감을 다스리는 것을 비롯해 전 전 대통령 주변에서 도움을 줬다. 5공화국에서 주요 요직을 맡았지만 전 전 대통령의 2인자일 뿐이었다.  1980년 8월 27일 전 전 대통령이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국군 보안사령관직을 1년간 맡다가 이듬해 7월 육군 대장으로 예편했다. 군에서 예편한 직후 외교안보 담당 정무 제2장관에 임명됐고 올림픽을 서울에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다. 1982년에는 남북 고위회담 수석대표를 맡았고 이어 초대 체육부장관과 제41대 내무부장관을 지냈다. 5공화국의 가장 큰 역점 사업이었던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을 역임했다.  1985년에는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육사 동기인 권익현의 뒤를 이어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을 거쳐 총재를 지냈다. 1987년 6월 10일 민주정의당 전당대회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전 전 대통령의 4·13 호헌조치를 계기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을 주장하는 민주화 운동이 확산되면서 노 전 대통령은 1인자가 될 기회를 잡는다. 6월 29일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김대중 사면복권 및 구속자 석방 등 8개항의 시국수습방안인 ‘6·29선언’을 발표한다. 이에 강성 군부세력과 구별되는 온건 군부세력의 이미지를 구축하게 됐다.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36%의 득표율로 1971년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 직선제로 선출된다.   ●6공화국과 북방정책  1988년 2월 출범한 노태우 정부의 앞길은 말 그대로 가시밭길이었다.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민족자존, 민주화합, 균형발전, 통일번영을 4대 국정기조로 내걸었지만 정권의 탄생 배경과 인적구성으로 볼 때 이러한 정책들을 실천하기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따랐다. ‘6공화국’이 아닌 ‘5.5공화국’이란 평가도 나왔다.  1988년 4월, 민주화 이후 첫 총선을 통해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됐다. 노태우 정부의 순탄찮은 운명을 암시하는 전주곡이었다. 재야인사들에 대한 복권과 해금을 단행하지만, 평민·민주·공화 야3당이 청문회를 통해 5공화국의 비리를 파헤치면서 핵심인사들에 대한 처벌이 이어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그해 11월 과오를 사과하고 백담사로 유배를 떠나야 했다.  노태우 정부가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된 것은 1989년 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과 현대중공업 파업 등을 통해 형성된 공안정국을 통해서다. 1990년에는 대통령 선언 형식으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동시에 ‘1노 3김’의 분할체제를 청산하는 정계개편을 추진하기 시작한다. 민정·민주·공화 3당은 1990년 1월 22일 ‘내각제 개헌’을 조건으로 합당을 선언한다. 1992년 14대 총선으로 민자·민주·국민의 3당구조가 출현하기까지 의회는 214석의 거대여당이 주도하는 사실상의 일방적 독주체제가 2년 남짓 이어진다.  노태우 정부는 근본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제도적·절차적 측면의 민주주의가 상대적으로 신장된 시기였다. 5공에 비해 입법·사법부의 자율성이 강화됐고 30년만에 지방자치제가 부활됐다. 노동·시민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국민들의 요구가 활성화된 시기이기도 했다. 정치적 불안에도 불구하고 저달러·저유가·저금리의 ‘3저호황’이란 우호적 대외환경 덕분에 상당한 수준의 경제성장을 달성하기도 했다.  남북관계도 진전이 있었다. 그 시작은 1988년 발표된 7·7선언이었다. 6공화국 대외정책의 핵심인 ‘북방정책’의 기본지침이었던 선언을 바탕으로 중국·소련 등 사회주의권과 관개개선이 이뤄진다. 경제력과 군사·외교적인 측면에서 북한에 대한 우위를 확보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사회주의권 외교를 적극적으로 펼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북한과도 대화창구도 복원, 1991년 9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과 12월 ‘남북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기본합의서’를 채택하기에 이른다.   ●비자금 투옥과 그 이후  1992년 대선을 통해 김영삼 정부에 성공적으로 정권을 승계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5년 10월 박계동 당시 민주당 의원의 폭로로 불거진 비자금 사건으로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는다. 10월 27일 연희동 자택에서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한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통해 4500억여원의 비자금 조성해 13·14대 총선자금, 부동산 위장 매입, 민정·민자당 지원 등에 사용하고 잔금 1940억원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고 구속기소된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전직 대통령의 개인비리 차원을 넘어서 정치권력과 재벌이 합작해 정치와 경제를 밀실에서 주무른 정경유착의 표본으로 평가받는다. 30대 재벌총수 대부분이 관련돼 재판을 받았고, 노 전 대통령은 ‘포괄적 뇌물죄’가 적용돼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원을 선고받고 1997년말 국민의 정부 출범을 앞두고 사면·복권된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전임자였던 전두환 대통령과 달리 외부활동을 삼간채 자택에 칩거하며 사실상의 ‘은둔’ 생활에 들어간다. 10년 넘게 권부의 1·2인자 자리를 지켰던 그로선 치욕적이고 불우한 말년이었다.
  • 촬영감독父 “볼드윈 탓 아냐”…일부 스태프, 실탄사격하며 놀아

    촬영감독父 “볼드윈 탓 아냐”…일부 스태프, 실탄사격하며 놀아

    할리우드 배우 알렉 볼드윈의 영화 촬영 중 ‘소품 총 발사’ 사건과 관련해 현장 스태프들이 여가시간에 촬영장 밖에서 소품용 총에 실탄을 넣어 사격을 즐겼다는 증언이 나왔다. 연예 전문매체 TMZ는 당시 사고가 일어난 영화 ‘러스트’의 스태프들이 문제의 소품용 총을 가지고 촬영장 밖에서 ‘오락’ 목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쉬는 시간에 소품용 총으로 실탄사격 놀이” 증언영화 제작진과 직접 관계된 다수의 증언에 따르면 영화 촬영이 진행되지 않는 시간에 스태프 중 일부가 촬영장 외부에서 이 총으로 실탄 사격 연습을 즐긴 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실탄 사격 이후 약실이 비었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소품용 총을 그대로 촬영에 사용하면서 비극적인 참사가 벌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TMZ는 지적했다. 또 촬영장에서 실탄과 촬영용 공포탄이 같은 장소에 보관됐고 참사가 발생한 직후 출동한 경찰도 이러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덧붙였다. 이 역시 소품용 총에 실탄이 혼동돼 장전됐을 가능성을 추정해 볼 수 있는 정황이라고 지적했다. 리허설 중 실탄 발사돼 촬영감독 사망…감독도 부상앞서 지난 21일(현지시간) 볼드윈은 뉴멕시코주 샌타페이의 한 목장에서 서부극 ‘러스트’ 촬영 리허설을 하던 중 소품용 총의 방아쇠를 당겼고, 이때 공포탄이 아닌 실탄이 발사되면서 맞은편에 있던 촬영감독 헐리나 허친스(42·여)가 가슴에 총을 맞고 숨졌다. 또 허친스의 뒤쪽에 서 있던 감독 조엘 수자(48)는 어깨에 총탄을 맞아 부상했으나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수자 감독에 따르면 당시 볼드윈은 교회 건물 세트장 내 의자에 앉아서 ‘크로스 드로우’ 후 카메라를 향해 총을 겨누는 동작을 연습 중이었다. 크로스 드로우란 팔을 몸통 위로 교차시켜 반대편 허리에 있는 총을 꺼내드는 동작으로, 서부시대 카우보이식 사격법이다. “총 건넨 조감독, 평소 안전규정 무시” 증언 쏟아져사건 당일 영화 조감독인 데이브 홀이 볼드윈에게 소품 총을 건네면서 실탄이 없다는 뜻의 ‘콜드 건’(cold gun)이라고 말했으나 실제로는 실탄이 장전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스태프의 진술서에 따르면 홀 조감독은 촬영장 총기 담당자가 교회 건물 밖 수레에 놓아둔 소품용 총기 3정 가운데 하나를 집어 들어 볼드윈에게 전달했다. 홀이 과거 다른 현장에서도 안전 절차를 무시해왔다는 증언이 나오는 상황이다. 영화 소품 제작자인 매기 골은 CNN에 보낸 성명에서 홀이 과거에 현장 안전 회의를 개최해야 한다는 규정을 무시했고, 현장에 무기가 있다고 스태프들에게 알려야 했지만 이 규정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스트리밍 서비스 훌루(Hulu)의 연작 ‘어둠 속으로’를 제작하면서 홀 조감독과 함께 일했다는 골은 “소품 담당자가 채근해야만 홀 조감독은 현장에 무기가 있다는 사실을 스태프에게 알렸다”며 “홀 조감독은 안전 관련 공지를 하지 않거나 무기 등 소품을 반납하지 않았다가 소품 담당자의 지적을 여러 번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익명의 제보자는 CNN에 “홀 조감독이 안전 회의를 열면 매우 짧고 (의무 규정을) 멸시하는 듯한 인상이었다”며 “늘 쓰던 총을 쓰는데, 왜 이런 회의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이었다”고 했다. 홀 조감독은 여배우가 자기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 장면에서 쓰일 총에 대해 전문가의 안전 점검을 거치게 한 데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고 이 제보자는 덧붙였다. 미국 연극배우노조 지침에 따르면 총기 촬영의 경우 사전 시험 발사를 반드시 해야 하고 무기류 소품 관리자는 촬영에 앞서 안전 유무를 확인해야 한다. 촬영에 사용되는 총기류는 총기소품 담당자가 먼저 확인을 한 뒤 조감독이 다시 이를 점검한 후 배우에게 건네는 것이 일반적 순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고가 난 현장에서는 이같은 순서를 지키지 않고 총기 담당자와 조감독 모두가 직접 배우들에게 총기를 전달해왔다고 뉴욕타임스가 촬영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허친스 사망 사건 닷새 전에도 볼드윈의 대역이 ‘콜드 건’ 소품 총을 조작하다가 실탄 2발이 발사되는 사고가 발생했으나 안전 조사는 이뤄지지 않은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한 스태프는 촬영장 현장 매니저에게 총기 안전 문제를 항의했으나 “회의는 없었고 (촬영을) 서두르기만 했다”고 전했다. 볼드윈, 사고 직후 절규…유족 찾아가 사과반면 볼드윈의 경우 촬영장에서 총기를 다룰 때 매우 신중했다고 한 촬영 스태프가 경찰에 진술하기도 했다. 더타임스에 따르면 볼드윈은 사고가 발생한 뒤 “왜 나에게 ‘핫 건’(Hot Gun. 실탄이 장전된 총)을 준 거냐”며 절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볼드윈은 지난 24일 피해자 허친스의 남편과 아들을 직접 찾아가 위로를 전했다. 허친스의 아버지는 같은 날 영국 매체 더선에 “볼드윈은 딸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며 볼드윈을 감쌌다.허친스의 아버지는 “책임은 총을 다루던 소품팀에게 있다”고 말했다. 이 영화의 제작자 겸 주연배우로 참여한 볼드윈은 할리우드에서 민주당 지지자로 유명하며, 총기 규제론자이기도 하다. 그는 2017년 코미디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풍자하는 역할로 화제를 모은 끝에 제69회 에미상 코미디 부문 최우수 남우조연상을 받기도 했다. 영화 팬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과거 배우 이소룡(브루스 리)의 아들 브랜던 리의 총기 오발 사망사고를 떠올리기도 한다. 브랜던 리는 1993년 영화 ‘크로우’ 촬영 중 상대 배우가 쏜 소품용 총에 맞아 숨졌다.
  • ‘헤어지자’는 여친 코뼈 골절되도록 폭행한 30대, 징역형

    ‘헤어지자’는 여친 코뼈 골절되도록 폭행한 30대, 징역형

    이별을 통보하는 연인에게 다시 만나자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코뼈가 골절될 정도로 폭행한 30대 남성이 2심에서도 실형을 선고받았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윤승은 김대현 하태한)는 상해·폭행·협박·재물손괴 등 혐의로 기소된 A씨(31)에게 원심과 같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A씨는 ‘헤어지자’는 전 여자친구 B씨(28)에게 수십 차례 연락해 다시 만나자고 종용하고, 사생활이 담긴 영상을 유포하겠다는 식으로 협박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지난해 11월 촬영한 영상을 함께 삭제하고 관계를 정리하자며 B씨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로 불러냈다.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자는 자신의 요구를 거절하는 B씨의 목을 조르고 무릎으로 얼굴을 올려 치는 등 폭행했다. B씨는 코뼈가 골절되고 입술 안쪽이 찢어져 크게 다쳤다. A씨는 또 B씨가 연락을 피한다는 이유로 B씨의 승용차 타이어를 가위로 찔러 구멍을 내 손상시킨 혐의도 받는다. 지난해 10월에는 서울 강남구의 자택에서 B씨가 다른 남자와 만났다고 의심하며 욕설을 하고 주먹으로 때리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피해자는 상해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며 A씨에게 폭력 등 범죄 전력이 있는 점을 고려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A씨는 택시에 승차해 택시기사의 얼굴을 팔과 주먹으로 때려 상해를 입힌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전자폭행)도 받는다. A씨는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으나, 2심도 1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2심은 “보복적 성격이 강한 범행으로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며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기다리던 상황에서도 피고인은 피해자를 뒤따라가 폭행을 계속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범행을 모두 자백하고 반성하는 점 등을 고려해 형량을 정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 ‘가장 폭행’ 만취녀 CCTV 공개…“힘쓰지 마 XX” 경찰에도 욕설

    ‘가장 폭행’ 만취녀 CCTV 공개…“힘쓰지 마 XX” 경찰에도 욕설

    지난 7월 가족과 함께 산책 중이던 40대 가장을 만취 상태에서 폭행했던 20대 여성이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게도 욕설을 퍼붓는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이 공개됐다. 25일 유튜브 채널 ‘몰까튜브’에는 ‘40대 가장을 마구 때린 20대 무고녀…경찰에 체포되는 당시 음성 원본 공개’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게재됐다. 해당 CCTV 영상에서 20대 여성 A씨는 출동한 경찰에게 40대 남성 B씨를 향해 “저한테 폭력을 써요”라고 주장하며 “추행 XX 했다. XX”라고 욕설을 했다. B씨가 “제가 추행했습니까?”라고 반박하자 A씨는 “추행 XX했지, XXXX야. 폭력 XX 했어”라며 소리쳤다. 경찰은 “왜 사람을 때립니까. 정신 차리세요”라고 말하며 B씨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A씨를 말렸고 A씨는 “XX하지마세요, XX야” 등 경찰에 폭언하면서 소리를 지른다. 이에 경찰은 결국 해당 여성을 폭행죄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수갑을 채우겠다고 고지했다. A씨는 “내가 얘기하잖아”, “제발 내 얘기 좀 들어줘 XXXX야”, “수갑 채워도 상관없어. XXXX야”라며 욕설과 고성을 이어갔다. 그는 또 ‘술을 먹었냐’는 경찰의 질문에 “술 안 먹었어요”라고 답했다. 앞서 A씨는 지난 7월 30일 오후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 산책로에서 B씨의 중학생 아들에게 맥주를 권했고, 거절하자 뺨을 때렸다. 이를 제지한 B씨를 휴대전화 등으로 폭행하고 경찰이 도착하자 성추행 당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현장에는 B씨의 아내와 아들, 7살짜리 딸 등 온 가족이 있었다. 해당 사건이 알려진 후 A씨는 피해자 측에 여러 차례 연락해 반성하고 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합의금으로 3000만원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저의 잘못을 반성하며 너무 죄송한 마음에 죽고싶은 생각까지 들었다”는 문자 내용과 달리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술을 마시며 즐기는 사진을 게재한 사실이 드러나며 또 한번 공분을 샀다. 피해자 측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아픔, 고통과 트라우마를 남겼으며 저를 한낱 성추행한 파렴치범으로 출동한 경찰들 앞에서 몰아붙인 몹시 나쁜 사람이자 범법자”라며 사법당국의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피해자 측은 현재 ‘상해’로 기소된 사건을 ‘특수상해’로 변경하는 요청서를 검찰에 전달한 상태다. 이와 함께 강요 미수와 무고죄, 모욕죄 등으로 추가 고소도 준비 중이다.
  • ‘클래식 축제’ 포항에 마련한 음악 실험실

    ‘클래식 축제’ 포항에 마련한 음악 실험실

    “첼로만 연주하던 이전과 다른 삶 살아”드보르자크 등 연주… 음악으로 희망 전달첼리스트 박유신이 서울과 경북 포항시에서 잇따라 열리는 클래식 축제로 가을을 더욱 짙게 칠한다. 오는 29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어텀 실내악 페스티벌’에 이어 다음달 5일부터 올해 첫선을 보이는 ‘포항음악제’ 예술감독으로 깊은 선율을 나눈다.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첼로만 연주했던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며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쁜 일정을 이야기하다 겨우 숨을 돌리는 듯하더니 또 음악 이야기에 열중했다. 경희대를 졸업한 뒤 독일 드레스덴 국립 음대에서 석사학위 및 최고연주자 과정을 공부하며 그는 실내악의 맛에 제대로 빠졌다. 크든 작든 어디서든 열리는 실내악 축제가 무척 좋았다고 한다. “아파트 단지에서 주민들이 오가면서 귀에 흐르는 대로 담고 그 안에서 따뜻함을 느끼는 게 진짜 음악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우리나라에도 작은 축제들이 많아지길 꿈꿨다”고 말했다. 2019년 어텀 실내악 페스티벌로 그 꿈을 처음 이룬 뒤 지난해 개최를 준비했다 미뤄진 포항음악제까지 그의 도화지에 펼쳐 내는 색깔들이 매우 다채롭다. ‘빛’(Light)을 주제로 열리는 어텀 실내악 페스티벌은 “진짜 해 보고 싶던 음악을 풀어내는 실험의 장”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김영욱, 피아니스트 김태형과 함께 코른골드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4중주 모음곡’으로 문을 열어 거슈윈, 드보르자크, 글리에르, 쇼스타코비치 등의 음악으로 희망을 전한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 비올리스트 김상진·이한나, 첼리스트 송영훈, 피아니스트 박종해까지 앞선 두 차례만으로도 ‘믿고 보는 축제’가 되게 해 준 단골 연주자들도 총출동한다. 클래식 축제가 처음 열리는 포항에서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손민수·임윤찬·일리야 라시콥스키, 첼리스트 양성원, 노부스 콰르텟 등과 모차르트, 슈만, 그라나도스, 브람스, 피아졸라 등을 노래하며 희로애락이 담긴 드라마 같은 시간을 일주일간 꾸민다. 프로그램 구상은 물론 연주자 섭외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내야 하지만 서른한 살 젊은 예술감독의 에너지가 다른 연주자들에게도 전달되며 스스로 “복이 많다”고 느낄 만큼 수월하게 이어지기도 했다. “매년 10월이 1년의 기준이 됐다”고 할 정도로 페스티벌에 푹 빠진 박유신은 “실내악은 특히 같이 만나서 호흡하는 작업이라 결국 관객들도 함께 호흡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는 무대”라면서 “할 수 있는 데까지 계속 지켜 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 대외경제안보 전략회의 ‘깍두기’외교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나

    대외경제안보 전략회의 ‘깍두기’외교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나

    외교부 국감 ‘장관은 전략회의 멤버냐’에“경제부처 5곳 중 하나가 외교부”라고 답변 경제·외교안보부처 명확히 구분했던 정부한 달 안 돼 외교부를 ‘경제부처’로 만들어 미일은 경제안보부처 통합해 대응 기민한국도 범부처 차원의 통합적 조직 시급미중 전략경쟁 심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 가속화로 ‘경제의 안보화’ 현상이 뚜렷해지자 정부가 장관급 협의체인 ‘대외경제안보 전략회의’(전략회의)를 출범시켰다. 위원장은 경제부총리, 나머지 정규 멤버는 경제부처 장관 5명에 국가정보원·국가안전보장회의(NSC)·청와대 관계자 5명 등 10명이다. 경제안보를 논하는 회의체인 만큼 외교부도 들어간다. 다만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외교부의 현 위상과 관련돼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2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 종합 국정감사에서도 관련 질의가 나왔다. 국민의힘 박진 의원은 정의용 외교부 장관에게 지난 18일 1차 전략회의에 갔느냐면서 이 회의의 주 멤버인지 재차 확인했다. 이에 정 장관은 “경제부처 5곳 중 하나가 외교부”라고 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27일 이 회의체가 경제 관련 부처 장관, 외교안보부처 장관 및 NSC 상임위 위원 등으로 구성된다고 밝혔다. 경제 관련 부처와 외교안보부처를 명확히 구분했던 정부가 한 달도 안 돼 외교부를 애매한 ‘깍두기’ 신세로 만들었으니 외교부 장관이 스스로 경제부처 장관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통상교섭본부를 산업통상자원부에 이관시킨 뒤에도 외교부에는 양자경제외교국, 국제경제국 등 경제외교 부서가 남아 있긴 하다. 교섭권 등 정책 결정권이 없어 비중이 예전만 못 하다. 미국 국무부처럼 경제차관이 있는 것도 아니다. 미 국무부 경제차관의 카운터파트인 외교부 2차관은 다자외교도 함께 챙겨야 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데 이러고도 ‘경제부처’라니 서로 민망한 형국이다. 외교부는 8년이 지난 지금도 ‘통상이 없는 경제외교’의 정체성을 똑 부러지게 찾지 못해 고민이 많은 분위기다. ‘재외공관의 해외진출기업 지원에 관한 규정’을 새로 만들어 현지 진출한 기업들을 지원하고 우리의 국익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 위한 첫발을 뗐지만, 외교관·주재관들의 역량·마인드셋이 그대로이면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정무와 경제 부서 간 칸막이도 견고하다. 그렇다고 외교부를 외교통상부로 돌려 놓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다. 무역, 투자, 과학, 기술 등을 하나의 외교정책 ‘글러브’에 넣으면 구사할 수 있는 ‘구종’은 늘어나겠지만 구속, 제구력, 상황판단능력 등 전체적인 실력이 함께 좋아지려면 숙련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에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가경제위원회(NEC)를 중심으로 부처들이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달 말 출범한 ‘미국·유럽연합(EU) 무역·기술협의회’의 미국 측 대표로는 국무부·상무부 장관과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모두 출동했다. 일본도 지난해 4월 국가안전보장국(NSS)에 각 부처 에이스를 집합시킨 ‘경제반’을 만들어 대응해오다 이번에 경제안보상까지 신설했다. 경제 현안에 전략·정무적 판단이 중요해지면서 외교부 역할이 강조되고 있지만 외교부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NSC 상임위라도 통상·기술 전담을 두고 글로벌 기술 경쟁의 판도를 조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략회의도 이런 맥락에서 출범시켰다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가끔 만나는 회의체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TF 위원장은 “범부처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는 통합적 조직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브레이크인 줄” 실수로 액셀 밟아 ‘와장창’ 편의점 박살

    “브레이크인 줄” 실수로 액셀 밟아 ‘와장창’ 편의점 박살

    차량 탑승자 3명 중 1명만 타박상제주의 한 관광객이 차량 제어장치인 브레이크가 아닌 가속 페달인 액셀을 밟은 채 편의점으로 돌진해 편의점이 심하게 부서지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차량이 돌진한 지점에 손님들이 서 있지 않아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운전자는 페달을 착각한 실수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등에 따르면 25일 오후 2시 45분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수산교차로 인근 편의점으로 관광객 A씨가 몰던 코나 전기차가 돌진했다. 이 사고로 편의점 외부 유리창이 완전히 깨지는 등 내외부가 파손됐다. 사고 당시 편의점에 손님이 있었지만, 다행히 사고 지점과 멀리 떨어져 있어 다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차에 탑승하고 있던 3명은 모두 무사한 가운데 가운데 1명만 경미한 타박상을 입었다. A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해당 편의점을 이용하기 위해 인근에 주차를 하던 중 브레이크가 아닌 액셀을 잘못 밟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음주 상태는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 “목줄 채워 달라”한 이웃 집에 반려견 풀어 상해 입힌 견주

    “목줄 채워 달라”한 이웃 집에 반려견 풀어 상해 입힌 견주

    사고견, 일주일 전에도 목줄 없이돌아다녀 경범죄 벌금 5만원 통고 “고의성 입증되면 상해죄 적용 가능”평소 반려견 목줄을 하지 않는 문제로 이웃 주민과 갈등을 빚던 견주가 자신이 키우던 개를 이웃 주민의 집에 풀어 주민을 위협하고 2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사고견은 맹견은 아닌 샤페이 종의 중형견으로 알려졌다. 25일 부산진경찰서와 부산진구 등에 따르면 24일 오후 부산진구 범천동 한 골목에서 견주 A씨는 풀어놓은 자신의 개가 주민을 2명을 물어 다치게 한 혐의로 체포돼 조사를 받았다. 당시 A씨는 술에 취한 상태였고, 이웃 주민 집으로 개를 끌고 들어가 위협한 것으로 조사됐다. 개한테 물린 2명은 부상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주민을 문 개는 당초 맹견으로 분류되는 핏불테리어로 알려졌지만 샤페이 종으로 확인됐다. 샤페이는 맹견으로 분류되지는 않는 중형견이다. 경찰이 사건 경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은 과거에도 A씨가 목줄을 하지 않고 개를 마을에 풀어놔 자주 다툼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한 주민은 “일주일 전에도 검은 개를 풀어놔 주민이 신고했고 경찰이 다녀갔다”고 말했다.당시 개가 목줄 없이 돌아다닌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A씨에게 경범죄 처벌법 위반을 적용해 5만원 통고 처분했다. 경찰은 사건 당일인 24일에도 목줄 문제로 주민들과 다툼이 있었던 사실을 확인하고 A씨가 반려견을 이용해 고의로 주민들을 다치게 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신이 데리고 있는 맹견이 사람을 다치게 한 경우 동물보호법 제46조에 따라 견주에게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린다. 다만 일반 반려견일 경우 과태료 처분 등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다른 주민을 물게 한 고의성이 입증될 경우 상해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하고 있는 사안으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힘들다”면서 “조사를 더 해봐야 적용할 수 있는 혐의가 최종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진구청 관계자는 “맹견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반려견을 목줄을 반드시 착용해야 하며 사람을 무는 습관이 있으면 입마개까지 착용하는 펫티켓을 지켜야 이웃 주민과 갈등이 생기지 않는다”고 당부했다.
  • 터번 엮어 만든 10m 동아줄이 생명줄로…익수자 구조 (영상)

    터번 엮어 만든 10m 동아줄이 생명줄로…익수자 구조 (영상)

    인도 시크교도들이 머리에 쓴 터번을 풀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했다. 20일 NBC뉴스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골든이어스주립공원에서 물에 빠진 관광객을 다른 관광객이 터번을 던져 구조했다고 보도했다. 인도 출신 쿨진더 킨다는 지난 11일 같은 시크교도 4명과 골든이어스주립공원으로 등산을 나갔다. 킨다 일행이 산세는 험하지만 전망이 뛰어난 골든이어스에 넋을 빼앗긴 동안, 근처 폭포에서는 익수자가 발생했다. 킨다는 “남성 2명이 바위에서 미끄러져 폭포 아래 물웅덩이에 빠졌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 거센 폭포수가 휘몰아치고 있어 그들을 끌어올릴 수 없었다”고 밝혔다. 목격자들이 걸음을 멈추고 응급 구조대에 연락하라고 조언했지만,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지역이라 신고는 어려웠다.모두가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 물에 빠져 허우적대던 관광객들은 점차 버틸 힘을 잃어갔다. 간신히 절벽 앞까지 기어 올라왔지만 다시 물살에 휩쓸릴 위험히 컸다. 그때, 누군가 터번을 풀어 던지자는 묘안을 짜냈다. 킨다는 “한 10분이 지났을까, 우리 사이에서 터번을 엮어 던지자는 제안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시크교도인 킨다 일행은 즉시 머리에 쓴 시크교 터번 다스타(Dastaar)를 풀어 한데 묶었다. 입고 있던 옷가지도 함께 엮어 10m 길이 동아줄을 만들었다. 익수자들은 킨다 일행이 던진 ‘터번 동아줄’을 잡고 차례로 웅덩이를 빠져나왔다. 골든이어스주립공원 수색대 관계자는 “현장에 출동했을 때 익수자들은 이미 구조된 뒤였다”면서 “의료 지원이 필요한지 확인했으나 별다른 부상은 없었다”고 전했다. 킨다 일행의 기지 덕에 목숨을 건진 익수자들은 뭍으로 올라와 깊은 감사를 전했다.시크교도나 이슬람교도 남성은 머리에 두르는 종교적 의상인 터번을 생명처럼 여겨 웬만해서는 절대 벗지 않는다. 킨다 일행이 터번을 풀어 헤쳤다는 건 생명을 구하겠다는 의지가 그만큼 강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킨다는 “시크교는 우리가 가진 것을 모두 동원하여, 어떻게든 남을 돕도록 가르친다”면서 “우리는 익수자들의 안전을 정말 걱정했다. 나도 친구들도 우리가 어떻게 될까 겁먹지 않았다”고 전했다. 터번으로 생명줄을 만든 킨다 일행은 지역 사회에서 영웅으로 떠올랐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시크교사회는 “젊은 시크교도들의 빠른 대응과 사심 없는 행동에 찬사를 보낸다”고 밝혔다.한편 구조된 익수자들은 폭포 주변을 두르고 있는 울타리와 경고 표지판을 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 출동했던 수색대 관계자는 “익수자들이 폭포에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 표지판을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면서 “매년 비슷한 사고로 다치거나 죽는 사람이 나온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환경부 역시 “공원 출입로에 부착된 경고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해진 산책로 밖을 벗어나선 안 된다”면서 “공원 내 개울과 강 주변을 조심하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 재택치료 60대 환자 사망 후…서울시 “전담 구급차량 확대할 것”

    재택치료 60대 환자 사망 후…서울시 “전담 구급차량 확대할 것”

    “응급상황 대비해 20→48대로 확대” 서울시가 코로나19 재택치료 때 발생할 수 있는 응급상황에 대비해 전담구급대 차량을 20대에서 48대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지난 21일 심정지로 사망한 재택치료 환자가 병원 이송이 늦어진 사실이 알려지자 재택치료 대책 강화에 나선 것이다. 박유미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은 25일 코로나19 온라인 정례 브리핑에서 “코로나19 환자 이송을 하는 전담 구급대(차량)를 현재 20대에서 48대까지 확대하고, 관련 인력도 증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21일 재택치료 중이던 코로나19 환자 A(68)씨가 갑자기 상태가 악화해 심정지가 발생해 끝내 숨졌다. A씨는 지난 20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무증상이었고 별다른 기저질환은 없었다. 재택치료 중 의식이 저하되고 기력이 없어 119를 불렀지만, 119 도착 때까지 병원 선정이 바로 되지 않은 데다 코로나19 전담 구급대도 바로 도착하지 않아 병원 이송이 늦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A씨는 서울대병원에 도착한 뒤 사망 판정이 내려졌다. 시는 우선 무증상이나 경증이었다가 발열 등 이상 증상이 지속해서 나타나면 24시간 연락할 수 있는 응급콜을 재택치료 지원센터에 운영한다. 또한 시 소방재난본부방재센터와 ‘재택치료 이송 핫라인’을 구축해 호흡곤란, 의식저하, 산소포화도 94% 이하일 경우 중증으로 분류해 30분 이내 출동과 동시에 병상 배정이 이뤄지도록 했다. 이날 0시 기준 서울시에서 재택치료를 받는 환자 939명 중 70세 이상 고위험군은 104명(11.1)이다. 박 국장은 “최초 환자 분류 단계에서 재택치료에 적절하지 않은 고위험군은 앞으로 포함되지 않도록 하고, 환자의 요청이 있더라고 의료적 판단과 적극적 설명을 통해 생활치료센터나 병상 배정이 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 경찰, KT 상황센터에 사이버테러팀 급파…“범죄 혐의점 있는지 확인할 방침”

    경찰, KT 상황센터에 사이버테러팀 급파…“범죄 혐의점 있는지 확인할 방침”

    경찰은 25일 오전 발생한 KT 네트워크 장애와 관련 과천 상황센터에 사이버테러팀을 급파해 원인과 피해 규모 등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경기남부경찰청은 경기 과천시 KT 상황센터에 사이버테러 1개 팀 5명을 보내 네트워크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이번 조사는 임의수사 형식으로 이뤄지고 있으며,경찰은 우선 네트워크 장애의 원인과 피해 규모 파악에 집중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사안이 중대한 만큼 KT 본사로 빨리 갈 수 있는 경기남부청에 상황 파악을 맡겼고,경기남부청 사이버테러팀이 곧바로 출동했다”며 “일단은 범죄 혐의점이 있는지 확인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날 오전 11시쯤부터 KT의 유·무선 인터넷 서비스에 1시간가량 장애가 발생했다. 전국 곳곳의 가입자들이 인터넷 서비스 이용 등에 큰 불편을 겪었다. 인터넷 검색부터 증권거래시스템,상점의 결제 시스템 이용 등 KT 인터넷 전반에 걸쳐 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정오쯤 대부분 인터넷 서비스가 정상을 찾아가는 것으로 보이지만, 일부 지역에선 복구가 늦어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KT는 “위기관리위원회를 즉시 가동,신속히 조치하고 있다”며 “빠른 복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코로나19 영향 전북소방 119 구급대 출동 증가

    코로나19 영향 전북소방 119 구급대 출동 증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영향으로 전북소방 119 구급대 출동건수가 지난해 보다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전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올해 119 구급대는 9월 말까지 10만 5933건 출동해 5만 8851명의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했다. 이는 하루 평균 388번, 3분 42초마다 출동한 셈이다. 올해 119 구급대 출동은 지난해 보다 1만 5145건 16.7% 늘었고, 이송 인원은 5659명 10.7% 증가했다. 환자 발생 장소는 주거지가 3만9112명 67%으로 가장 많았고, 도로 6981명 12%, 의료 관련 시설 2209명 3.8% 순으로 나타났다. 환자 유형별로는 급·만성질환 등 질병이 전체의 66.6%인 3만 9495명으로 가장 많았고, 사고부상 1만 1404명(19.3%), 교통사고 5848명(9.9%), 비외상성손상 1188명(2.0%) 순이다. 연령별로는 70대 19.3%, 80대 이상 19.2%, 60대 16.8%, 50대 15.2% 순이다. 이송시간별로는 일과가 시작되는 오전 8시부터 9시 사이가 12.7%로 가장 많았다. 119 구구대 출동이 늘어난 것은 코로나19 장기화로 도민들의 피로도가 높아졌고 백신 접종율 상승과 함께 사회활동이 늘면서 질병·사고 발생도 함께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 확진자 및 의심환자 이송도 구급대 출동 증가의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코로나19 확진자 및 의심환자 이송을 위한 의료기관 간 이송 환자가 전년 대비 34% 증가했다. 코로나19 관련 이송은 의심환자 2042명, 확진자 중 도내이송 3911명, 도외이송 54명, 검역소 61명 등이다. 김승룡 전북소방본부장은 “119구급활동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도민들에게 고품질의 소방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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