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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원 “궁중족발 사장, 건물주 죽일 의도 없었다”

    법원 “궁중족발 사장, 건물주 죽일 의도 없었다”

    1심 망치 폭력 등 인정 징역 2년 6개월상가 임대료 문제로 극심한 갈등 관계에 있던 건물주에게 망치를 휘두른 ‘본가궁중족발’ 사장 김모(54)씨가 국민참여재판에서 살인미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건물주를 폭행하고 행인을 차로 쳐 다치게 한 혐의에 대해서는 실형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는 6일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김씨에 대해 배심원단 평결을 받아들여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지난 4~5일 이틀간 열린 국민참여재판의 핵심 쟁점이었던 ‘살인의 고의’를 놓고 7명의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고의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도 “피해자를 다치게 할 의도로 차로 돌진하거나 쇠망치를 피해자에게 휘둘러 상해를 가한 것에서 더 나아가 살해할 의도가 있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특수상해와 특수재물손괴 혐의에 대해서는 “매우 위험한 도구를 사용해 도망가는 피해자를 뒤쫓아가 폭행했고, 행인을 차로 치고도 구호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배심원단도 이 부분은 만장일치 유죄 평결이었다.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미리 준비한 쇠망치를 휘둘러 피해자가 직접 맞았다”며 김씨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배심원단과 재판부는 ▲범행 시간이 사람들의 통행이 빈번한 평일 오전 출근 시간대인 점 ▲범행 발생 장소가 빌라, 상가가 밀집돼 폐쇄회로(CC)TV가 많이 설치된 곳인 점 ▲망치는 겁을 주기 위해 휘둘렀을 뿐이라는 점 등을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는 근거로 제시한 변호인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장인 이영훈 부장판사는 선고에 앞서 “이 사건을 진행하는 동안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면서 “피고인 행위에 합당한 결과를 찾기 위해 재판부와 배심원들이 최선을 다했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든 피고인과 피해자(건물주), 가족들은 앞으로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서로 분노하고 미워하며 고통 속에 살 것 같아 많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판결 이후 상대방을 향한 원망의 감정을 마음속에서 걷어내고 진정한 행복을 되찾으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궁중족발’ 사장 징역 2년 6개월…배심원 만장일치로 살인미수는 ‘무죄’

    ‘궁중족발’ 사장 징역 2년 6개월…배심원 만장일치로 살인미수는 ‘무죄’

    상가 임대료 문제로 극심한 갈등 관계에 있던 건물주에게 망치를 휘두른 ‘본가궁중족발’ 사장 김모(54)씨가 국민참여재판에서 살인미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건물주를 폭행하고 행인을 차로 쳐 다치게 한 혐의에 대해서는 실형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는 6일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김씨에 대해 배심원단 평결을 받아들여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지난 4~5일 이틀간 열린 국민참여재판의 핵심 쟁점이었던 ‘살인의 고의’를 놓고 7명의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고의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도 “피해자를 다치게 할 의도로 차로 돌진하거나 쇠망치를 피해자에게 휘둘러 상해를 가한 것에서 더 나아가 살해할 의도가 있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특수상해와 특수재물손괴 혐의에 대해서는 “매우 위험한 도구를 사용해 도망가는 피해자를 뒤쫓아가 폭행했고, 행인을 차로 치고도 구호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배심원단도 이 부분은 만장일치 유죄 평결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미리 준비한 쇠망치를 휘둘러 피해자가 직접 맞았다”며 김씨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배심원단과 재판부는 ▲범행 시간이 사람들의 통행이 빈번한 평일 오전 출근 시간대인 점 ▲범행 발생 장소가 빌라, 상가가 밀집돼 폐쇄회로(CC)TV가 많이 설치된 곳인 점 등을 근거로 망치는 겁을 주기 위해 휘둘렀을 뿐이라는 점 등을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는 근거로 제시한 변호인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장인 이영훈 부장판사는 선고에 앞서 “이 사건을 진행하는 동안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면서 “피고인 행위에 합당한 결과를 찾기 위해 재판부와 배심원들이 최선을 다했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든 피고인과 피해자(건물주), 가족들은 앞으로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서로 분노하고 미워하며 고통 속에 살 것 같아 많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판결 이후 상대방을 향한 원망의 감정을 마음속에서 걷어내고 진정한 행복을 되찾으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박민영, 김비서의 출근길 스타일링 ‘우아+시크‘ 가을룩의 정석

    박민영, 김비서의 출근길 스타일링 ‘우아+시크‘ 가을룩의 정석

    드라마 종영 후에도 식을 줄 모르는 인기인 박민영의 시크한 공항 패션이 화제다. 배우 박민영은 지난달 30일 매거진 코스모폴리탄 화보 촬영 차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이 날 박민영은 멋스러운 트렌치 코트에 공항 패션에 빼놓을 수 없는 선글라스를 포인트 아이템으로 스타일링하여 성큼 다가온 가을룩의 정석을 보여줬다. 박민영이 선택한 선글라스는 제이에스티나 레드의 제품으로 모던하지만 독특한 쉐잎의 캣츠아이 프레임에 자연스러운 컬러감이 특징이다. 한편 드라마를 마치고 휴식중인 러블리한 박민영의 패션 화보는 이 달내 공개될 예정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씨줄날줄] 장하성의 ‘입’/이두걸 논설위원

    [씨줄날줄] 장하성의 ‘입’/이두걸 논설위원

    최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대중 앞에 나서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정확하게는 지난달 23일 2분기 가계소득동향이 발표된 이후다. 그러나 정부와 청와대의 입장을 홍보하고 대변하기에는 부적절한 발언들이 적지 않다. 장 실장은 어제 한 라디오 방송에서 여당의 종합부동산세 과세 강화와 관련해 “강남에만 세금을 올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부정적인 의사를 밝혔다. 심지어 “고가 주택에 대해서는 정부가 다 제어할 수 없고, 제어할 이유도 없다. 모든 국민이 강남에 가서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터전이 있지도 않다”면서 “저도 거기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것”이라며 친절하게 부연했다.문재인 정부는 사람 중심 경제나 소득 양극화 해소를 표방하고 있다. 이는 소득뿐 아니라 부의 불평등을 정책과 세제 등으로 해소해야 가능하다. 장 실장의 발언은 이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계층의 사다리가 끊어지는 순간 경제의 활력도 멈춘다’는 당연한 진리도 중요치 않은 것처럼 보인다. ‘삶의 터전’ 운운하는 대목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장 실장이 광주 출신에 강북 청와대로 주로 출근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본인의 원래 삶의 터전이 강남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모든 국민이 강남에 가서 살려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도대체 어떤 근거로 말하는 건지 알기 어렵다. ‘흙수저’는 접하기 어려운 호남 명문가의 ‘금수저’ 출신의 발상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우리 경제에 대한 설명도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그는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성장률이 상당한 상위권에 속한다. 위기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경기와 관련해서는 “온라인 매출이 급격히 늘며 골목상권을 압박하고 있다. 골목상권이나 편의점 점주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가 매우 안 좋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소비와 투자, 고용 등 거의 모든 지표가 빨간불인 데다 경기를 알려주는 동·선행지수 순환변동치도 고꾸라지고 있다. 올 2분기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0.6% 증가해 2.9%인 정부 전망치 달성도 쉽지 않다. 체감경기 하락의 원인을 소비구조 변화에서 찾는 것도 학자의 발언에 가깝지 청와대 정책실장이 할 말은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폭을 보고 나도 놀랐다”(지난 3일 JTBC 인터뷰)는 식의 ‘유체이탈식’ 화법이 비판받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구조 문제 등까지 감안해 현실의 과제를 해결하고, 그 결과가 좋지 못하면 책임을 지우기 위해 1억 2815만원(올해 기준)의 장관급 연봉을 받는 것이다. 고용지표 악화 등을 두고 ‘직을 걸고 임하라’는 문 대통령의 ‘경고’ 시한이 언제까지일지 궁금하다.
  • 靑공직기강비서관 최강욱 변호사 내정

    靑공직기강비서관 최강욱 변호사 내정

    청와대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출신의 최강욱(50) 변호사를 내정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5일 “김종호 전 공직기강비서관이 감사원 사무총장으로 임명되면서 공석이 된 공직기강비서관직에 최 변호사가 내정돼 7일부터 출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직기강비서관은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감찰하고 인사검증을 담당한다. 최 변호사는 전주 전라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군법무관임용시험(11회)에 합격해 국방부 국회담당 법무관, 국방부 검찰단 수석검찰관,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 민변 사법위원장 등을 지냈다. 2012년부터 올해까지 여권 추천 몫의 MBC방송문화진흥회 이사로도 활동했다. 최근까지는 KBS에서 ‘최강욱의 최강시사’라는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정조가 임명한 장승 우두머리, 수호신 되어 노량진 품었구나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정조가 임명한 장승 우두머리, 수호신 되어 노량진 품었구나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7회차 동작-장승배기의 전설 편이 9월의 첫 주말인 지난 1일 진행됐다. 5회에 걸친 여름야행 프로그램이 지난주 마무리되고, 장승배기의 전설을 품은 동작구에서 주말 오전 프로그램으로 돌아왔다. 서울 그랜드투어는 올 연말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에 열린다.치열한 예약전쟁에서 승리한 낯익은 얼굴과 새로운 얼굴 40여명이 이날 오전 10시 정각 지하철 7호선 장승배기역 6번 출구를 출발했다. 장승배기역은 집결지와 출발지로 알맞은 장소이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장승 한 쌍이 정겹게 참가자들을 맞아주고, 옆에는 벤치도 마련돼 있다. 일행은 장승과 장승제가 열리는 동작도서관을 지나 송학대에 올랐다. 높이 40m의 선유봉 절집이 폭파되면서 갈 곳을 잃은 돌부처를 모신 극락정사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저를 구경했다. 고구동산 길과 서달산 자연공원으로 이어지는 제법 깊은 숲길을 트레킹한 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에서 ‘짧지만 긴’ 투어를 마무리했다. 적당한 높이의 산자락과 숲에 안긴 동작은 한강 남쪽의 강변도시라는 고정관념을 불식시켰다.해설을 맡은 박정아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 사저 거실 안까지 들어가서 대한민국 현대사의 현장을 살펴볼 수 있도록 섭외, 참석자들을 감동시켰다. 또 숭실대 캠퍼스 안 한국기독교박물관 관계자는 휴일인데 출근해 문을 열어줬다. 희망자에 한해 담당 학예사가 1시간짜리 해설을 제공했다. 모두 27명이 참여한 전자 설문조사에서 주관식 소감을 밝힌 11명은 “김 전 대통령 사저와 기독교박물관 탐방이 인상적”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고, “음악을 들으며 걷는 유익한 트레킹” “특별한 대접을 받은 기분”이라고 답했다. 동작구는 동작진(동재기)이라는 한강의 나루에서 이름을 따왔다. 노량진과 흑석진이라는 만만찮은 이웃 나루와의 경쟁을 물리치고 자치구 지명을 거머쥐었다. 동작이라는 지명 아래 노량진과 흑석진을 품었으니 한강진(한남동)과 용산 사이 서울 강남과 강북을 잇는 주요 간선망을 통합한 셈이다.조선 시대 한강(경강)에 놓인 13개의 주요 나루는 동쪽에서부터 광진(광나루)~송파진(송파나루)~삼전도(삼전나루)~뚝도(뚝섬나루)~두모포(두무개나루)~한강진(한강나루)~서빙고(서빙고나루)~동작진(동재기나루)~노량진(노들나루)~용산(용산나루)~마포(삼개나루)~서강(서강나루)~양화진(양화나루)을 꼽는다. 경강을 한강·용산·서강 등 3개의 나루로 크게 나누면 3강이고, 여기에 마포·양화진 2개를 더하면 5강이라고 파악했다. 두모포·서빙고·뚝섬을 합쳐 8강이라고도 호칭했다. 모두 강북 쪽 나루이다. 그러나 현대의 나루인 다리는 강남쪽 노량진(한강대교, 제1한강교)에 먼저 놓여 시대의 변화를 실감케 했고, 이어 양화진(양화대교, 제2한강교)과 한강진(한남대교, 제3한강교)에 각각 개설됐다. 연도로 따지면 광나루에 놓인 광진교가 2번째이지만 제2한강교라는 영예를 얻지 못했다. 전국과 서울을 잇는 철도와 고속도로 부설 순서에서 동쪽 나루가 밀린 탓이다. 한강나루와 다리의 역사를 보면 서울과 전국, 서울과 세계를 잇는 물화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다. 3강, 5강, 8강 사례로 보면 한강 건너편 강남에 위치한 동작진이나 흑석진, 노량진은 주요 나루로 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한강진의 강남 쪽 부속 나루쯤으로 여겼다. 다만 노량진은 나루의 역할보다 강남 쪽 군사기지의 역할이 컸다. 한강진이라는 나루의 개념 속에는 반포대교가 놓인 서빙고와 강 건너 사리진(신사동)은 물론 동작진, 흑석진, 노량진이 포함됐다. 경강이 점차 한강이라고 불린 이유도 한강진의 압도적인 존재감 때문이었다. 엄밀하게 따지면 한강진은 한강 이남으로부터 수도 한양을 수호하는 가장 중요한 군사기지였다. 한강진의 강북 쪽 나루 기능은 서빙고나루가 맡았고, 강 반대편에 사리진, 동작진, 흑석진, 노량진이 늘어섰다. 한강진은 서울의 물류가 광주, 과천, 시흥을 거쳐 삼남(충청·경상·호남)으로 내려가고, 올라오는 중앙통로였다. 강원도와 함경도로 가는 동쪽 통로는 광나루, 강화도를 거쳐 서해로 나가는 길목은 양화진이 담당했다. 동작과 노량진은 강폭이 좁아 서울에서 수원으로 향하는 최단거리였지만 마포와 서강에 비해 물이 얕아 큰 배가 다니지 못하는 게 흠이었다. 진경산수화 시대를 개척한 겸재 정선이 1744년에 그린 ‘동작진’에는 산과 고개 그리고 나루로 이뤄진 온화한 풍광이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민가가 빼곡한 오늘의 국립현충원 자리 뒤로 관악산과 청계산이 솟아 있고, 남태령을 거쳐 과천으로 가는 길과 반포(서릿개), 흑석동의 수려한 모습도 담겨 있다. 흑석동 앞 한강을 ‘금호’(琴湖)라고도 불렀는데 이 일대에 권문세가의 별서(별장)들이 즐비했다. 흑석동이 일제강점기 ‘명수대’라는 국적 불명의 일본인 별장지대로 둔갑하면서 망가진 것도 빼어난 경관 탓이다. 국립현충원은 선조의 조모 창빈 안씨가 이곳으로 묘를 옳긴 뒤 선조가 이후 역대 왕의 혈통을 장악한 천하의 명당이다. 다행히 현충원이 들어서면서 명당을 노리는 사람들의 욕망을 좌절시켰다. 동작진이 동재기나루~사당~남태령~과천으로 가는 길이라면, 노량진은 노들나루~장승배기~시흥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수원에서 합쳐진 뒤 삼남으로 흩어진다. 두 길 모두 정조라는 걸출한 임금에 의해 전설이 만들어졌다. 정조는 옛 수원(경기도 화성)에 마련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현륭원을 찾을 때 두 길을 이용했다. 정조재위 24년 가운데 모두 66회의 행차가 있었는데 이 중 현륭원 참배가 12차례였다. 1795년 노들나루에 배다리를 놓고 건너기 이전까지는 주로 남태령을 넘었다. 한번은 남태령 고갯마루에서 쉬면서 고개이름을 묻자 과천현 이방이 “남태령”이라고 답했다. 여우고개로 알고 있던 정조가 되묻자 이방이 “요망한 짐승의 이름을 댈 수가 없어서 남쪽의 가장 큰 고개라는 뜻에서 둘러댔다.”라고 고했다. 그 뜻을 가상하게 여겨 남태령이라고 명명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장승배기라고 부르는 지명과 이곳에 세워진 두 개의 장승 또한 정조의 작품이다. 민가가 없고 숲이 울창한 곳에 가마를 멈추고 휴식을 취하던 정조가 “이곳에 장승 두 개를 세우되 남자장승에는 천하대장군, 여자장승에는 지하여장군이라고 이름을 새기라”라고 명했다. 어명에 따라 세워진 노량진 장승은 팔도 장승의 우두머리 대방(大房) 장승이 됐고, 임금의 행차 길을 알리는 노량진의 랜드마크가 됐다. 또 “경기 노강(노들강) 선창(부두) 길목에 대방 장승을 찾아가서 문안한 연후에 원통한 사연을 아뢰기에…”라는 판소리 ‘변강쇠가’가 전한다. 변강쇠가 경상도 함양의 장승을 뽑아다가 장작으로 사용해 재로 변한 장승이 원통해 노량진 대방 장승을 찾아가는 대목이다. 이후 전국 길의 경계나 마을입구, 절 입구에 장승이 세워졌다. 장승은 장생, 벅수라고도 불리면서 액을 막는 마을의 수호신이나 이정표가 됐다. 망원동, 염곡동, 우면동, 염창동, 흑석동 등 서울로 들어오는 길목 여러 곳에 장승이 세워졌고, 장승배기라는 지명이 붙었다. 노량진에 배다리를 놓고 관리하는 주교사라는 관청이 들어서고, 왕이 쉬어 가는 ‘용이 꿈틀대고 봉황이 높이 난다’는 뜻의 용양봉저정이 주교사 옆에 세워졌다. 공식 명칭은 노량진행궁이다. 조선 최고의 볼거리는 왕의 행차였고, 그중 노들나루 배다리 건너기가 압권이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송파(백제의 꿈) ●일시 : 9월 15일(토) 오전 10시~낮 12시 ●집결 장소 : 지하철 2호선 종합운동장역 6번 출구 앞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
  • 靑공직기강비서관 최강욱 변호사 내정

    靑공직기강비서관 최강욱 변호사 내정

    청와대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출신의 최강욱(50) 변호사를 내정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5일 “김종호 전 공직기강비서관이 감사원 사무총장으로 임명되면서 공석이 된 공직기강비서관직에 최 변호사가 내정돼 7일부터 출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직기강비서관은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감찰하고 인사검증을 담당한다.  최 변호사는 전주 전라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군법무관임용시험(11회)에 합격해 국방부 국회담당 법무관, 국방부 검찰단 수석검찰관,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 민변 사법위원장 등을 지냈다. 2012년부터 올해까지 여권 추천 몫의 MBC방송문화진흥회 이사로도 활동했다. 최근까지는 KBS에서 ‘최강욱의 최강시사’라는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욕하고 때리는 치매 10년…아들은 수면제를 탔다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욕하고 때리는 치매 10년…아들은 수면제를 탔다

    잠든 어머니 코·입 막은 40대 양성준씨“저 도둑년이 우리 집 살림을 거덜 내려고 하네. 나가, 이년아.” 양성준(47·가명)씨가 출근한 뒤 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상황이 급하다는 간병인의 전화를 받고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오자 어머니(당시 67세)는 지팡이를 마구 휘두르며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간병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들을 본 어머니는 그제야 안심이 된 듯 누그러졌지만 간병인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며 그 길로 짐을 쌌다. 또 일주일을 못 견뎠다. 2001년 환갑도 안 돼 뇌경색으로 쓰러진 어머니 몸에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찾아왔다. 거동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폭행과 폭언을 서슴지 않는 폭력적인 성향으로 바뀌었다. 어머니의 정신은 필라멘트가 다한 전구 같았다. 처음에는 한두 번 깜빡거리기 시작하더니 점점 빛을 잃다가 나중에는 아주 가끔 불이 들어오는 듯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소리를 지르는 통에 동네 주민들로부터 항의가 빗발쳤다. 행동은 점점 과격해졌다. TV부터 전기밥솥, 전화기까지 살림은 남아나는 게 없었다. 자식들도 알아보지 못하고 도둑이라며 욕설을 퍼붓던 어머니는 잠깐이나마 기억이 돌아오면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때문에 네 동생이 힘들어. 죽고 싶어도 그것조차 쉽지 않구나.” 그도 잠시, 딸이 “그런 말 말고 건강하세요”라고 하면 또다시 욕설을 퍼부으며 돌변했다. 우울한 암전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2007년 아버지마저 간암으로 사망하자 간병은 오롯이 양씨의 몫이 됐다.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봐 암 투병 사실마저 숨겼던 아버지는 “네 엄마와 함께 가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꼭 요양원에 모셔라”고 당부하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아들은 차마 그러지 못했다. 최대한 바깥일을 줄이고 집에서 어머니를 돌보는 시간을 늘렸다. 하지만 양씨가 없으면 꼭 사달이 났다. 어머니는 혼자 집 밖으로 나가 길을 잃어버렸다. 같은 신고가 반복되자 경찰들도 짜증스러워했다. 양씨가 종일 동네를 찾아 헤매다 보면 어머니는 길가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밖에서 문을 잠그고 출근을 하면 어머니는 몇 시간씩 괴성을 질렀다. 주민들의 원성은 더 커졌다.어머니를 요양병원으로 모셨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다른 환자를 슬리퍼로 때리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반복해 하루 만에 다시 집으로 모셔 와야 했다. 다른 병원에서는 어머니의 팔다리를 침대에 묶어 놓았다. 이런 어머니가 안쓰러웠던 양씨는 잘 때만이라도 편하게 해드리자며 묶은 끈을 풀어드리고 병원에서 함께 밤을 새우고 출근하곤 했다. 잘되던 입시학원까지 접고 어머니를 돌봤지만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카드빚이 늘어났다. 끝을 알 수 없는 간병에 양씨도 지치기 시작했고, 고립감, 우울, 절망이 숨통을 조였다. 무엇보다 완전히 딴사람이 된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로웠다. 아들 앞에서는 옷도 갈아입지 않을 정도로 흐트러짐 없던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한 후 혼자서는 입지도, 먹지도, 볼일을 볼 수조차 없는 지경이 됐다. 식사도 거부한 채 움직이지 못하는 다리로 병원 현관에 기어나와 매일 아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몸무게가 15㎏이나 빠져 이미 산송장 같은 모습이었다. 병원에서는 어머니에게 주사로 영양분을 억지로 공급했다. 양씨가 올 때마다 어머니는 “제발 나가게만 해줘”라고 매달렸다. ‘짜르르 짜르르….’ 매미가 자지러지게 울던 2011년 8월 초, 휴가철이니 바람이라도 쐬어 드리고 싶다며 병원에 외박 신청을 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왔다. 다섯 번째 병원. 옮긴 지 한 달 반 만이었다. 집에 오신 어머니는 아들이 주는 죽과 과일을 맛있게 드셨다. “어머니가 음식을 드시지 못하는 게 아니었어.” 양씨가 흐느꼈다. 어머니는 양씨가 건넨 수면제 다섯 알을 먹고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었다. 어머니 옆에 몇 시간이나 있었을까. 날이 밝아오는 것을 본 양씨는 테이프로 어머니의 입과 코를 막고는 어머니 품에 가만히 머리를 묻었다. ‘어머니 편하게 해드리고 저도 따라갈게요.’ 간병을 시작한 지 10년 만이었다. 자살에 실패한 양씨는 사흘 뒤 경찰에 자수했다. 양씨가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혼자서 어머니를 정성껏 모시던 걸 봐왔던 이웃주민들이 먼저 나서 법원에 선처를 호소했다. 법원은 양씨에게 징역 5년형을 선고했다. 당시 양씨와 같은 구치소에 있던 수감자로부터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 듣고는 양씨의 사건을 맡게 된 변호사는 “아들은 구치소에 있으면서도 자신은 죄인이라 할 말이 없다며 스스로를 변호하려 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양씨는 2016년 출소했다. 서울신문은 양씨를 직접 만나려고 수소문했으나 연락을 끊은 채 살아가는 그를 찾을 수 없었다. 양씨의 이야기는 변호사와 경찰, 주민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 재구성했다. 치매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의심과 망상, 그리고 폭력성은 치매 간병의 또 다른 고통이다. 이는 치매 환자를 간병하는 가족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안겨 준다. 환자의 예상치 못한 돌발 행동 때문에 늘 긴장하게 되고, 간병 기간이 길어지면 사회적 고립과 우울증을 경험하기도 한다. 간병인은 치매 환자의 폭언과 폭행에 직접 노출될 수밖에 없는데, 이 같은 폭력성은 간병인으로 하여금 우발적 살인이나 자살 충동을 부추기기도 했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외 3명이 2016년 발표한 ‘치매노인의 증상 정도가 부양자의 자살 생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치매 환자의 증상이 심해질수록 가족 관계가 악화될 뿐만 아니라 부양자의 자살 생각도 심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병 범죄의 절반 이상이 치매 환자 가정에서 일어난다. 서울신문이 2006년부터 최근까지 발생한 간병살인 108건을 분석한 결과 절반 이상(53.7%)이 치매 환자를 간병하면서 일어났다. 33.3%(36건)는 평소 피해자가 자신을 돌봐온 가해자에게 폭력이나 언어폭력을 행사한 정황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버지가 근거 없이 엄마의 외도를 의심하실 때 그게 치매 초기라는 걸 미리 알았어야 했어요. 좀더 일찍 대처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후회스럽죠.” 아버지의 치매 증상으로 쓰라린 경험을 한 정진규(48·가명)씨는 기자와 만나 아픈 기억을 털어놓았다. 정씨의 어머니 이옥자(75·가명)씨는 2011년 11월 남편의 머리를 변압기로 내려쳐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됐다. 남편의 의심과 폭력이 날로 심해지더니 급기야 추석 때 온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네 엄마가 다른 남자와 놀아난다”며 한바탕 소란을 피운 것이다. 이씨가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자 병원까지 찾아가 소동을 일으켰다. 폭력적인 치매 남편과 사는 건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그러다 한순간에 폭발했다. 법정에 선 이씨는 “나는 이렇게 힘든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이 치가 떨리게 미웠다”며 흐느꼈다.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은 이씨에게 살해의 고의성이 없다고 보고, 남편을 헌신적으로 병수발해 온 점 등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사건 이후 법원과 병원의 권유에 따라 정씨와 형제들은 아버지를 국립요양원으로 모셨다.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는 어머니는 서둘러 병원에 모시고 가 약을 복용하며 관리하고 있다. “치매가 의심되면 무조건 검사를 받고 약을 드시도록 하는 게 첫 번째예요. 증상이 심해지면 요양원에 모시든 요양보호 지원을 적극적으로 받으세요. 가족이 직접 모셔야 자식 노릇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그게 최선이 아닐 수 있어요. 우리 가족이 혹독한 경험을 치르고서야 깨달은 거예요. 지금 두 분은 행복하세요.” 글 사진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궁중족발 사건’ 첫 국민참여재판…‘살인 고의’ 여부 쟁점

    ‘궁중족발 사건’ 첫 국민참여재판…‘살인 고의’ 여부 쟁점

    상가 임대료를 약 300만원에서 1200만원으로 4배나 올린 건물주를 둔기로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업주의 첫 국민참여재판이 4일 열렸다. 검찰은 김씨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주장한 반면, 변호인은 검찰이 김씨를 살인미수 혐의로 무리하게 기소했다고 비판했다.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 이영훈) 심리로 서울 종로구 서촌에서 10년 동안 ‘본가궁중족발’을 운영한 업주 김모(54)씨의 국민참여재판이 이날 열렸다. 김씨는 지난 6월 7일 오전 8시 20분쯤 서울 강남구 한 골목길에서 임대료 인상 문제로 약 2년 동안 갈등을 겪던 건물주 이모(60)씨를 망치로 폭행해 어깨와 손목 등을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김씨가 이씨를 살해하려고 결심하고 망치를 미리 준비했다. 이씨가 필사적으로 피하는데도 끝까지 추격해 머리 부위를 겨냥해 망치로 때렸다”면서 김씨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범행 목적은 살인이었는데 경찰에 체포되면서 목적 달성을 못 한 것”이라면서 “임대인과 임차인의 분쟁 등이 아닌, 오로지 김씨의 행위가 살인미수에 해당하는지를 따지는 자리인 만큼 증거에 의해서만 판단해 달라”고 배심원들에게 호소했다. 그러나 김씨의 변호인은 “(피고인은) 본인을 괴롭힌 임대인을 혼내줘 분을 풀려는 의도였다”면서 “살인 고의가 있었다면 출근 시간의 공개된 골목이 아니라 밤에 이씨를 1대1로 불러 칼을 사용하는 것이 (살인의)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고 맞섰다. 상해죄만 인정돼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변호인은 또 “김씨는 한 번도 (망치로) 이씨의 머리를 맞춘 사실이 없다. 이씨 머리는 골절이 전혀 없고 두피만 찢어졌다”면서 “언론 보도가 자극적으로 나가다 보니 검찰이 무리하게 살인미수로 기소한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날 김씨의 범행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 실제 범행에 사용된 망치 등에 대한 증거 조사를 진행했다. 오는 5일에는 피해자 이씨가 법정에 나와 증언하고, 검찰의 구형 및 변호인의 최종 변론이 이뤄진다. 배심원은 이를 바탕으로 김씨 혐의에 대한 의견(평결)을 재판부에 내게 된다. 재판부는 배심원 평결을 바탕으로 오는 6일 오후 2시 김씨에 대한 선고를 한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홍태경의 지구 이야기] 지구는 피곤해

    [홍태경의 지구 이야기] 지구는 피곤해

    지난달 24일 한반도를 관통해 지나간 19호 태풍 ‘솔릭’이 몰고 올 재난 걱정으로 온 나라가 마음 졸여야 했다. 비슷한 경로를 보였던 2010년 곤파스와 2012년 볼라벤에 의해 많은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입었던 아픈 기억 때문이다.솔릭에 의한 피해가 작은 것에 대해 다양한 설명이 제시되고 있다. 그중 하나로 ‘후지와라 효과’라고 불리는 쌍태풍 효과가 제기됐다. 규슈를 거쳐 일본 열도를 지나간 20호 태풍 ‘시마론’의 영향으로 솔릭의 진로가 예상보다 남쪽으로 바뀌고 세력이 약해졌다는 설명이다. 태풍이 인접한 태풍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태풍이나 강풍은 바다에 높은 파도를 일으켜 폭풍 해일을 만들기도 한다. 높은 파도는 서로 간섭하며 해저면에 압력을 가하고 고체인 지구를 진동시킨다. 이때 발생한 진동은 지각을 타고 바다를 넘어 육지로 전파된다. 태풍에 의해 발생한 이 진동은 태풍이 다가올수록 점차 강해지고 태풍 크기에 비례해 증가한다. 따라서 이 지진동으로 태풍의 크기와 위치를 추론할 수도 있다. 이 지진동은 사람들이 느끼기 어려운 0.2㎐ 이하의 저주파수 대역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우리보다 지각 능력이 뛰어난 동물들은 이러한 미세한 진동을 민감하게 포착할 수 있다.반면 보다 높은 1~30㎐ 주파수 대역의 지진동은 인간에 의해 주로 만들어진다. 이 주파수 대역의 진동은 인간의 활동 주기와 일치한다. 새벽 4시 이후로 지진동 수준이 점차 증가해 오전 9시 무렵에 최고치에 다다른다. 오후 4시를 전후해 점차 감소하면서 새벽 3시를 전후해 가장 낮은 지진동 크기를 보인다. 이 지진동을 인간의 활동과 연관해 볼 수 있는 까닭은 주말이나 휴일에 지진동의 크기는 평일의 절반 수준으로 크게 감소할 뿐 아니라 점심시간인 낮 12시 무렵 지진동 크기가 일시적으로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활 패턴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지진동은 도시 지역이 시골 지역보다 크다. 흥미로운 점은 아침 출근 시간에 이어 교통량이 가장 많은 퇴근 시간 무렵에 오히려 한낮보다 낮은 지진동 수준을 보인다는 것이다. 교통량뿐 아니라 공장, 시설물, 생활 공간 등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진동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인구 증가와 함께 산업혁명 이후 크게 증가한 산업 시설물과 교통량으로 지구는 늘 피곤하다. 이쯤 되면 만성피로라고 할 만하다. 도시 주변에서 야생동물들이 사라지는 이유는 단지 서식지가 없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녹지를 조성하고 서식지를 만들더라도 인간이 만드는 여러 유해 요소는 야생동물들이 견딜 수 없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2017년 말 기준으로 전 세계 인구는 76억명에 다다랐다. 인간이 지구 곳곳에 자리잡으며 지구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인류에 의해 지구와 다른 생명체들이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지구 역사상 인간만큼 지구에 큰 영향을 미친 생명체가 없었으니, 바야흐로 이 시대를 인류세라고 명명할 만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인류의 활동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류가 지구에 대해 무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세상 모든 일들이 크건 작건 간에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피곤한 지구에게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
  • 태풍 휴교 이틀동안 엄마·아빠랑 출근했어요

    태풍 휴교 이틀동안 엄마·아빠랑 출근했어요

    경남 하동군 지역 한 식품회사가 지난달 태풍 ‘솔릭’에 따른 휴교 때 맞벌이 직원들에게 자녀와 함께 출근하도록 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다. 3일 하동군에 따르면 양보면에서 다슬기를 가공·판매하는 ㈜정옥은 지난달 23일 제19호 태풍 ‘솔릭’으로 휴교령이 내려지자 학부모 직원들은 자녀를 데리고 출근하도록 권유했다.이 회사 추호진 대표는 갑작스런 휴교로 아이들을 어디에 맡겨야 할지 난감해 할 직원들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자녀와 동반 출근을 제안했다. 이에 따라 직원 자녀 10명이 지난달 23·24일 이틀간 부모와 함께 회사로 출근했다. 당시 오전 9시 회사에 부모와 함께 출근한 아이들은 회사를 견학하며 부모가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직접 보고 다양한 체험을 했다. 점심도 회사식당에서 부모와 함께 먹었다.추 대표의 제안에 따라 아이들은 ‘우주’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상물을 시청하고 회사 홍보물에 스티커를 붙이며 이틀간 일손도 도왔다.아이들은 추 대표가 짠 이틀간 일정에 따라 회사에서 뜻 있는 시간을 보내고 일손을 거든 댓가로 용돈도 받았다. 이같은 자녀 동반 회사 출근은 한 포털 사이트에 소개되면서 화제가 됐다. 맞벌이가 일상이 된 사회 분위기에서 회사 대표의 참신한 제안이 젊은 학부모들의 고민을 한방에 시원하게 해결했다는 칭찬이 이어졌다. 추 대표는 “나도 아이들이 있어 유치원이나 초등학생을 둔 직원들의 고충을 너무나 잘 알아 태풍 휴교때 아이들에게 부모가 하는 일도 보여주고, 사회경험도 쌓을 수 있도록 동반 출근을 권유했는데 직원과 아이들이 모두 좋아했다”고 말했다. ㈜정옥은 하동지역 깨끗한 하천에서 생산되는 다슬기로 다슬기국, 다슬기 얼갈이 국, 다슬기 진액, 다슬기 고추장 볶음 등 다양한 가공품을 생산해 판매하는 식품회사로 직원 30여명이 근무한다. 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지난해 물폭탄 맞은 충북 올해도 비피해 울상

    지난해 물폭탄 맞은 충북 올해도 비피해 울상

    지난해 7월 물폭탄으로 5명이 숨지고 547억원의 재산피해를 입어 만신창이가 됐던 충북이 올해도 비 피해를 입어 울상을 짓고 있다.31일 충북도에 따르면 지난 26일부터 비가 쏟아져 31일 오전 10시 현재 도내 11개 시·군의 평균 누적 강수량이 302.5㎜를 기록했다. 누적강수량이 300㎜가 넘는 시·군이 충주, 보은, 옥천, 증평, 괴산 등 5곳이나 됐다. 증평군은 가장 많은 393㎜의 비가 내렸다. 이번 폭우는 도내 곳곳에 상처를 남겼다. 청주시와 진천군만 피해신고가 접수되지 않았을 뿐 나머지 9개 시·군에서 피해신고가 접수됐다. 도가 집계한 결과 토사유출 및 낙석 28건, 수목 전도 5건, 주택 침수 등으로 이재민 21명이 발생했다. 지난 30일 오후에는 한전 배전선로 문제로 음성군 대소면·삼성면 일대 1162가구의 전력 공급이 끊겨 주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31일 괴산군에서는 고추축제를 위해 동진천 하천 둔치에 설치된 몽골텐트 45동과 컨테이너 2동이 유실됐다. 농경지 침수와 낙과 등 농경지 피해도 적지 않아 도내 전체에서 86개 농가 32.9㏊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영동이 41개 농가 15㏊로 가장 많았고 충주 13개 농가 6.7㏊, 제천 11개 농가 5.9㏊, 단양 21개 농가 5.3㏊ 순이었다. . 31일 오전 9시쯤 충북 보은군 수한면 율산리 소하천에서는 A(5)군이 급류에 휩쓸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어머니는 오전 7시30분 출근하고, 축사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오전 8시20분쯤 집에 돌아왔는데, 이 사이 혼자있던 A군이 밖에 나갔다가 물이 불어난 하천에 빠져 변을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청주 무심천 하상도로와 도내 9개 시·군의 하상주차장 15곳은 전면 통제됐다 청주기상지청은 많은 비로 산사태와 축대 붕괴, 토사 유출, 침수 등 추가 피해가 우려된다며 철저히 대비할 것을 주문했다. 기상청은 1일까지 충북지역에 비가 내리다 차차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김희선, ‘미스터 션샤인’ 후속 드라마 ‘나인룸’ 촬영 현장서 포착

    김희선, ‘미스터 션샤인’ 후속 드라마 ‘나인룸’ 촬영 현장서 포착

    승소율 100%를 자랑하는 변호사로 변신한 ‘나인룸’ 김희선의 출근길이 포착돼 이목을 집중시킨다. 31일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후속으로 오는 9월 첫 방송 예정인 새 토일드라마 ‘나인룸’ 측이 극 중 ‘을지해이’ 역을 맡은 김희선의 현장 스틸을 첫 공개했다. ‘나인룸’은 희대의 악녀 사형수 ‘장화사’(김해숙 분)와 운명이 바뀐 변호사 ‘을지해이’(김희선 분), 그리고 운명의 열쇠를 쥔 남자 ‘기유진’(김영광 분)의 인생리셋 복수극이다. 이 가운데 김희선은 힘 있는 자에게는 아부하고 힘 없는 자는 철저히 외면하는 승소율 100% 변호사 ‘을지해이’를 연기한다. 공개된 스틸 속 김희선은 무결점 미모를 뽐내며 도도하게 출근하고 있는 모습이다. 화사한 핑크빛 재킷에 도자기 피부와는 반대의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보는 이들의 숨을 죽이게 한다. 꾹 다문 입술과 감정을 읽을 수 없는 포커페이스가 냉랭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것. 뿐만 아니라 김희선의 상대방의 의중을 꿰뚫어보겠다는 듯한 강렬한 레이저 눈빛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의뢰인의 사소한 정보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서류를 꼼꼼하게 검토하고 있는 모습은 승소율 100% 변호사의 위엄을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나인룸’을 통해 데뷔 이래 첫 변호사 캐릭터에 도전하는 김희선은 변호사의 프로페셔널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역할에 완벽하게 몰입했다는 후문이다. 더욱이 사형수 장화사 역을 맡은 김해숙과 운명이 뒤바뀌며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게 되는 극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어 기대감을 자아낸다. 이에 tvN ‘나인룸’ 제작진은 “김희선이 변치 않는 미모를 자랑하면서 동시에 심도 깊은 감정 연기를 선보이며 입체적 캐릭터를 구축해나가고 있다”면서 “김희선이 김해숙을 만나면서 운명의 변곡점을 맞이하는가 하면, 김희선의 연인으로 분할 김영광이 두 여자 사이에서 운명의 열쇠를 쥐고 있어 세 사람을 중심으로 펼쳐질 운명의 소용돌이에 많은 기대 부탁 드린다”고 전했다. 한편 tvN 새 토일드라마 ‘나인룸’은 tvN ‘미스터 션샤인’ 후속으로 오는 9월 29일 오후 9시 첫 방송될 예정이다. 사진=tvN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나는 북파 공작원, 암호명은 ‘흑금성’…남북합작 애니콜 CF광고 성사시켜

    “나는 북파 공작원, 암호명은 ‘흑금성’…남북합작 애니콜 CF광고 성사시켜

    북파 공작원을 소재로 한 영화 ‘공작’의 실제모델 박채서(64)씨를 만났다. 그는 1990년대 중반 북한 핵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대북사업가로 위장한 채 중국과 북한을 무대로 활동한 안전기획부의 대북공작원이다. 1997년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으며 이효리, 조명애가 나온 최초의 남북합작 광고도 성사시켰다. 공작원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상황과 영화 등에 대해 들었다. 인터뷰는 지난 27일 본사 9층 대회의실에서 했다.→영화는 어떻게 나오게 됐나. -아내와 큰딸이 교도소로 면회 와서 내 얘기를 CJ에서 영화로 만들겠다고 제안했다고 하더라. 처음에 거부했다. 단순 용기만 갖고 할 수 없는 일 아니냐. 그런데 이미경 부회장이 원치 않던 외유를 나가야 할 정도로 압박이 심한 상황에서도 영화 제작을 하겠다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수감 중 작성한 노트기록이 토대가 됐다. →리 참사(영화에서 이성민이 연기한 리명운의 실재 인물)는 어떤 사람인가. -리철은 북한의 몇 안 되는 자본주의 전공자다. 김일성대를 졸업했으며 박사논문이 `박정희의 경제개발 정책’이다. 1954년생으로 나와 동갑이라 쉽게 친구가 됐다. 리철은 아들이 둘이고, 나는 딸만 둘이다. ‘사돈 맺자’는 농담도 했다. →2005년 이효리와 북한 무용수 조명애가 나오는 남북합작 광고인 애니콜 사업 전에 추진하던 ‘남남북녀 결혼작전’은 무엇인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지금 못지않게 힘들었다. 대량 탈북자가 나오고, 이에 북한이 반발해 미사일을 쏘는 등 대화가 안 됐다. 햇볕정책을 계승했는데 남북관계가 경색되자 자문요청이 오더라. 북측은 미사일 쏘다가 평화 모드로 가려면 명분이 필요하다며 이벤트를 만들자고 하더라. 2002년 서울에서 열린 8·15 민족통일대회 개막식에 북측 기수단으로 와 한국에서 인기 있던 조명애를 내 지인 중 한 분이 며느리 삼고 싶다고 말한 게 생각나 추진하게 됐다. 베이징에서 양가 상견례도 했다. 그런데 국정원이 방해했다. 신랑 어머니를 만나 ‘조명애는 기쁨조인데 결혼이 웬 말이냐’고 한 것이었다. 이벤트 무산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보고 3일 뒤 고영구 원장이 기관보고를 했던 것 같다. 비슷하게 나를 비난하는 보고에 대통령은 노발대발했다. 이 사건으로 원장은 강력경고 조치를 받고, 나머지 주요 간부들은 인사조치됐다. →결혼 무산으로 애니콜 광고는 힘들었겠다. -공작 실패에 대비해 늘 예비 계획을 세운다. 남남북녀 결혼작전이 무산되면서 내가 하면 또 국정원이 방해하니 청와대가 나서야 한다고 해 애니콜 광고는 성사됐다. 삼성을 소개받았다. 다 돼 있더라. 감독이 차은택씨였다. 모델은 이효리고. 최고기업, 최고상품, 최고모델 콘셉트였다. 나머진 북한 몫이었다. 그런데 제동이 걸리더라. (광고 촬영지인) 상해로 갔는데 조명애가 도저히 촬영할 수 없는 상황이더라. 결혼이 미뤄진 충격으로 밥도 안 먹고 말이 없더라. 마음병을 앓은 것이다. 조명애는 ‘평양의 신데렐라’였다. 갑자기 남쪽으로 시집가야 하는 상황에 가족회의를 열고 “나 하나 시집가서 우리 가족이 잘산다면 기꺼이 가겠다”고 했다더라. 그런데 남자를 만나 보니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딱딱한 북한 남자와 달리 함께 놀러 갈 때 손도 잡아주는 등 싹싹한 매너남이었다. 게다가 시아버지 될 사람은 핸드백, 신발, 바바리 코트 등 온갖 명품을 다 사줬다. 가족 용돈도 따로 준비하고 예술단 단장, 부단장 선물도 따로 줬다. 조명애가 예비 시아버지를 만난 다음날 무용단에 출근하면 그날 오전 업무는 마비된다고 하더라. 서로 옷 입어 보느라고 말이다. 예술단 부탁으로 20인승 출퇴근 버스도 사줬다. 2년간 쓸 타이어와 유류비도 지원했다. 촬영이 힘들 것 같아 시아버지가 될 뻔한 사람을 급히 오라고 했다. 이 양반이 오자, 소파에 말없이 앉아 있던 조명애가 벌떡 일어나 달려가 우는데, 얼마나 서럽게 우는지 우리도 다 울었다. 촬영은 일주일 동안 약 먹이고, 알로에 바르고, 얼굴 뾰루지 등은 화장술로 커버해서 끝냈다.→조명애는 그 이후 결혼했나. -소설 잘 쓰는 언론에서 북한군 장교와 결혼했다는데 거짓말이다. 완전히 폐인 됐다. 원래는 광고 찍고 나서 식당 같은 것을 마련해 중국에서 살게 할 계획이었다. 제가 2010년 보안법 위반사건으로 체포되기 전까지 들은 얘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어떤가. -1997년 6월에 만났다. 유순한 편이다. 예능을 좋아해서인지 독하지 못하다. 김정일이 후계자를 정할 때, 자기 닮아 순한 김정철 대신 독한 김정은을 시켰다. →한·미 합동부대 있을 때 미군과 업무 협조는 잘됐나. -처음 3개월간은 많이 싸웠다. 양주 선물 등 온갖 유혹을 거절하고 한·미공조의정서에 따라 원칙대로 일했다. 오산공군기지는 통제가 안 된다. 전용기가 아무거나 싣고 온다. 나 보고 골프용품 거저 줄 테니까 하라고 하더라. 당시 골프채 등은 비쌌다. 안 했다. 결국 미군이 나를 인정해 미 대사관 등 우리나라의 어떤 미국시설도 24시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통행카드를 주더라. 이게 네 장뿐인데 대통령, 국방부 장관, 안기부장과 내가 받았다. 미국이나 북한을 나쁘게 버릇 들인 건 우리다. 우리나라에 ‘까만 눈 미국인’이 많더라. 미국에 가지도 않고 시민권은 갖고 있더라. 거래하기 위해서다. 각계각층에 다 있더라. 대학원 석사과정 때 일인데 조선 주둔 일본대위가 쓴 일본어로 된 비망록을 봤다. 명망 있는 독립운동가들은 회유작전에 바로 서약서 쓰고 넘어와 실망하게 되는 반면, 갖은 고문과 협박에도 굽히지 않는 조선인에 대해서는 존경한다고 적고 있더라.→북한의 정보수집력은 어떤가. -신상옥·최은희가 1978년에 납북됐다가 8년뒤 탈북했는데 당시 수사관들이 물었다. 베를린영화제 참석 때 왜 얘기하지 않았느냐고. 북 정보력에 겁이 나 애기 못 했다고 했다. 하루 전 남한 대통령이 결재한 것이라며 서류를 보여 주는데 실제로 그 날짜에 결재한 서류였다고 한다. 그러니 누구를 믿어야 할지,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는 거다. 사례를 더 들자면 1999년 평안북도 금창리에 숨겨진 지하 핵시설이 있다고 보도되면서 난리 난 적이 있다. 우리 공작원이 조선족을 시켜 흙을 파니, 우라늄이 검출됐다는 것인데 미국도 이를 믿은 것이다. 미국이 현장사찰을 했으나 핵 관련 움직임은 찾지 못했다. 빈 동굴뿐이었다. 왜 그랬냐. 북한 역공작에 당한 거다. 북한에서 돈 주고 우라늄을 넣어준 거다. →1994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경수로 사업에 미국의 공작이 있었다는 건 무슨 말인가. -북 핵무기 개발 자료를 1992년에 내가 입수했다. 미국 장비 등의 지원을 받아서 알게 된 것이라 미국에 보고했다. 난 당연히 그 사항이 김영삼(YS) 대통령에게도 보고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안 됐더라. 당시 YS는 북한에 쌀을 주려고 난리 칠 때였다. 만약 핵무기 개발 사실을 알았다면 막았다고 본다. 이어 1994년에 북핵 위기가 벌어진다. 북한의 신포에 한국형 경수로 2기를 건설하는데 재원의 70%인 32억여 달러를 우리가 부담한다. 여기엔 미 중앙정보국의 공작이 있었다. 평양을 다녀왔다는 한 재미목사가 YS에게 긴급 보고를 한다. 북이 서해 5도를 잠수함으로 봉쇄, 무력으로 점령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YS는 재미목사를 잘 만났다. 대통령이 놀라 해군참모총장을 긴급호출하고 제주도가 제일 취약하다는 보고를 받는다. 이어 북측의 회담 요구를 받아들여 경수로 건설사업비를 떠안는다. 미국이 YS가 재미목사를 잘 만나주고 위기의식, 안보 개념이 없다는 걸 알고 공작한 거다. 서해 5도는 수심이 낮다. 잠수함 봉쇄가 말이 안 된다. 첩보 가치도 없었다. 보안이 최고 생명인데 어떻게 재미목사가 기습공격을 아느냐. →이명박 정부 시절, 북에서 대남파에 대한 공개 처형이 많았는데 우리 측에서 움직임이 있었나. -대남파는 빨치산세력에 맞설 실용주의자들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30~40명씩 공개 처형 등 다 숙청됐다. 숙청 자료를 우리 정보기관에서 줬다. 과거 10년 동안 남북교류하면서 뒷돈 준 자료를 다 준 거다. 한 예로 본명이 권민인 권영욱이라는 김일성대 나오고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항상 북측 대표단장으로 나온 유연한 사고의 실용주의자, 그 친구도 날짜별로 돈 받은 게 나와 숙청됐다. 사는 아파트 바닥을 파 보니 비닐에 쌓인 8만 달러 꾸러미들이 나왔다. 그런 식으로 대남파들이 결딴나면서 북한 내 강경파를 견제할 세력이 없어진 것이다. 난 절대 국정원이 자의적으로 그런 자료를 주지 않았다고 본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무대책·무대응이었다. 기본적으로 미국을 통한 정책이었다. →2009년 북한의 화폐개혁 실패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전에 북한에서 정책실패는 한 번도 없었다. 화폐개혁은 가진 자들의 돈을 뺏으려고 한 거다. 장성택도 모르게 말이다. 20분의1로 화폐가치를 낮췄다가 한 달 만에 원상복귀했다. 기득권세력의 저항 때문이었다. 개혁 전에는 베이징에서 북한 사람들에게 “김정일이가~”라고 말하면, 이 사람들이 눈알을 부라리며 반발했다. 그러데 화폐개혁이 되자 “개XX” 등 욕이란 욕은 다하더라. 뭘 의미하느냐. 화폐개혁 실패라지만, 기득권이 흔들린 거다. 볼셰비키 혁명, 중국 공산당 혁명 주도세력은 노동자나 농민이 아닌 엘리트다. 모택동은 호남성 제일갑부였다. 형식만 노동자, 농민이지 가진 사람, 엘리트 그룹이 주도했다. 북한의 엘리트 변화를 우리가 뒷받침해야 한다. →3차 남북 정상회담 전망은. -미국은 북이 비핵화하면 제재를 풀겠다는 것인데 북은 점진적으로 비핵화하자고 한다. 그런데 미국은 이를 못 받겠다고 한다. 일방적 행동 강요는 강압이다. 북 강경파들이 절대 받지 않는다. 김정은이 맘대로 못한다. 김정일은 아버지로부터 정식 후계자 교육을 받고 17년간 당 지도부를 장악했다. 당·정·군의 인사를 다 했다. 그런데도 김일성 사후 주석궁에 바로 못 들어갔다. 왜냐하면 호위총사령부는 자기 사람들이 아니라 반대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김정은은 후계자 내정 2~3년 만에 아버지 사망으로 갑작스럽게 권력을 승계해 지지기반이 약하다. 빨치산 세력은 손 못 대고 군부, 문화계 등 분야별로 중간층 중심으로 100인 그룹을 만들어 자신의 호위세력으로 만들었다. 이 그룹이 200인으로 늘어났다는 얘기가 있다. 이들 눈에 벗어나면 김정은은 죽는다.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길섶에서] 반세기 전 서생원/황성기 논설위원

    두 달 사이 쥐를 5마리는 목격했다. 몇 년간 쥐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가 눈에 띄니 놀랍고 왜 그럴까 생소하다. 쥐를 본 지점은 아파트 근처 화단에서부터 한강 공원, 심지어는 지하철 플랫폼까지 다양하다. 출근길 플랫폼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좇았더니 한 뼘도 되지 않는 생쥐가 사람에게 놀랐는지 허둥지둥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강 공원에 쥐가 늘었다고 한다. 배달을 시키고는 버린 음식을 노린 쥐들이 번식하면서 개체 수를 늘린 것이다. 길고양이들조차 먹을 것이 풍부해 쥐 잡는 수고를 하지 않으니 이들이 적대에서 공생 관계로 변했나 싶다. 목격한 쥐의 공통점이 있다. 산책길에 우리집 개가 쥐를 발견하고 달려들었다. 목줄로 제지하지 않았으면 충분히 잡을 수 있었을 만큼 요즘 쥐들은 느려터졌다. 어린 시절 식기장에 들어갔던 쥐를 잡으려 식기를 꺼내고 키우던 고양이를 넣어본 적이 있다. 사즉필생(死卽必生), 결사항전하는 쥐에게 우리집 고양이는 털만 곧추세운 것 말고는 한 게 없다. 비둘기가 천적이 없고 주는 모이를 먹고 가까워진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쥐들도 우리의 풍요와 더불어 태평성대를 맞았다. 50년 전과 지금의 서생원(鼠生員)은 달라도 뭔가 다르다. marry04@seoul.co.kr
  • 영등포, 영중로·당산역 버스정류소 정비

    서울 영등포구가 영중로와 당산역 일대 버스정류소 정비를 다음달까지 완료한다. 영등포구는 “이곳들은 출근 시간이나 주말이면 버스 대기 승객들과 보행자들이 부딪치는 등 불편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던 곳”이라고 29일 밝혔다. 정비 대상은 타임스퀘어, 영등포소방서, CM충무병원, 당산동삼성래미안아파트, 당산역 등 총 5곳이다. 먼저 구는 타임스퀘어 정류소의 버스정차 공간을 확보한다. 타임스퀘어 주차장 진입 차량들의 도로 점거로 버스가 정류소가 아닌 도로 중간에 정차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리요원이 정류소 내 차량 진입을 막는다. 또 구는 승차 인원이 많은 버스의 정차 노선을 재조정한다.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은 “질서 있는 버스 승하차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주민들의 많은 협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대전 침수 피해, 도로 잠기고 나무 쓰러져 (영상)

    대전 침수 피해, 도로 잠기고 나무 쓰러져 (영상)

    28일 오전 충청권을 중심으로 많은 비가 쏟아지면서 도로와 주택이 물에 잠기는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대전 유성구와 대덕구 일원의 주요 도로가 침수되면서 사실상 교통이 마비돼 출근길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대전소방본부에 따르면 오전 8시 기준 도로·건물 침수 58건,나무 쓰러짐 2건, 축대붕괴 2건 총 63건의 신고 접수가 들어왔다. 하상도로는 오전 6시 30분부터 전면 통제됐으며, 유성구 관평천은 범람 위기 상태다. 유성구 전민동, 도룡동, 원천교 부근에는 도로가 침수돼 많은 시민이 출근길 교통 불편을 겪었고, 일부 다세재 주택과 상가에서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앞서 대전지방기상청은 오전 5시 40분을 기해 대전에 호우경보를 발령했다. 대전지방기상청 관계자는 “비가 오는 지역에서는 돌풍을 동반한 천둥 번개가 치는 곳이 있겠다. 오후까지 시간당 40㎜ 내외의 강한 비가 오는 곳이 있겠으니 비 피해가 없도록 대비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이번 비는 29일까지 30∼80㎜ 더 내리며 30일 밤부터 대부분 그치겠다고 예보했다. 한편, 현재까지 울산 침수, 광주 침수에 이어 대전까지 침수 피해가 발생하고 있어 한반도 전역은 서울을 제외하고 폭우의 상당한 피해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기상청은 대전 지역에 오늘 최대 200mm가 넘는 폭우가 이어질 것으로 예보했으며 대전 침수 피해는 계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 대전 침수, 강이 된 도로…자동차 잠겨 걸어서 출근

    대전 침수, 강이 된 도로…자동차 잠겨 걸어서 출근

    28일 오전 대전에 호우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시간당 40㎜의 많은 비가 내리면서 도로 곳곳이 침수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날 대전소방본부에 따르면 오전 8시 기준 도로·건물 침수 58건, 나무쓰러짐 2건, 축대붕괴 2건 총 63건의 신고 접수가 들어왔다. 하상도로는 오전 6시30분부터 전면 통제됐고, 유성구 관평천은 범람 위기 상태다. 유성구 전민동, 도룡동, 원천교 부근에는 도로가 침수돼 이 일대 극심한 교통 혼잡이 빚어져 출근길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무릎까지 올라온 빗물을 뚫고 걸어서 출근하는 시민도 눈에 띄었다. 오전 8시 50분 기준 강수량은 △대전 137㎜ △정산(청양) 80㎜ △계룡 75㎜ △천안 31.8㎜ △공주 23㎜ △춘장대(서천) 22.5㎜ △부여 21.5㎜ △대산(서산) 17㎜ △안도(태안)15.5㎜ △신평(당진) 14.5㎜ △보령 13.1㎜ △논산 12.5㎜ △금산 11.5㎜ △예산 9.5㎜ △아산 7㎜ △서부(홍성) 3.5㎜를 기록하고 있다. 대전지방기상청 관계자는 “비가 오는 지역에서는 돌풍을 동반한 천둥 번개가 치는 곳이 있겠다. 오후까지 시간당 40㎜ 내외의 강한 비가 오는 곳이 있겠으니 비 피해가 없도록 대비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이번 비는 29일까지 30∼80㎜ 더 내리며 30일 밤부터 대부분 그치겠다고 예보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여기는 남미] 옆에서 강도 당하는데…모른척 하는 시민들

    [여기는 남미] 옆에서 강도 당하는데…모른척 하는 시민들

    현대인의 극단적인 무관심일까, 개인주의의 극치일까. 바로 옆에서 섬뜩한 강도사건이 벌어지고 있지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주민들이 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지방도시 멘도사에서 24일(현지시간) 벌어진 사건이다.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18살 피해자는 출근길에 봉변을 당했다. 청년은 이날 오전 7시30분쯤 직장에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사건은 10분 뒤에 터졌다. 버스를 기다리던 피해자 주변에 건장한 청년 2명이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피해자를 덮쳤다. 칼을 빼든 강도가 뒤에서 피해자를 제압하고 공범이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피해자의 핸드폰과 지갑, 정기승차권을 강탈한 강도들은 운동화까지 벗겨 빼앗은 뒤 도주했다. 현장을 비춘 CCTV(폐쇄회로TV)를 보면 주변엔 버스를 기다리던 주민이 최소한 5명 이상이다. 강도들이 피해자를 제압하고 소지품을 빼앗는 과정에서 약간의 소란이 발생하자 주민들은 힐끔 고개를 돌려보지만 이내 애써 외면해 버린다. 핸드폰으로 경찰을 부르는 사람도 없다. 강도들이 사라진 뒤 피해자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강도를 당했다"고 했지만 누구도 도움을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 어디선가 권총을 든 경찰들이 등장, 강도들이 사라진 쪽으로 달려갔다. CCTV를 지켜보던 모니터링 요원의 요청을 받고 출동한 경찰들이었다. 아르헨티나는 범죄예방을 위해 경찰이 CCTV를 실시간 모니터링한다. 경찰들은 정류장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 강도들을 긴급체포했다. 강도들은 뻔뻔하게 범죄를 부인했지만 경찰이 핸드폰과 지갑 등을 찾아내고 수갑을 채우자 고개를 푹 숙였다. 경찰은 신고자 역할을 한 CCTV를 공개했다.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고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관계자는 "강력범죄가 발생하면 무엇보다 신속한 신고가 필요하다"면서 "이번엔 다행히 CCTV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주민들의 협조가 있어야 범죄와의 전쟁을 치를 수 있다"고 말했다. CCTV를 본 네티즌들은 충격적이라는 반응이다. "사회가 극단적인 무관심으로 흐르고 있어 충격적이다. 반성해야 한다" "강도들이 청년에 이어 나를 덮칠 수도 있는데 태연하게 버스를 기다렸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 네티즌은 "무관심으로 범죄를 방조한 주민도 공범이다. 함께 처벌하라"라고 격분했다. 사진=CCTV 캡처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전쟁엔 무능·권력엔 교활…유재흥·김종원 등 ‘똥별 뿌리’ 출세가도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전쟁엔 무능·권력엔 교활…유재흥·김종원 등 ‘똥별 뿌리’ 출세가도

    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 전시내각을 이끈 조르주 클레망소는 말했다. “전쟁은 군인들에게 맡겨 놓기엔 너무나 중요한 문제다.” 전쟁에는 무능하고 권력에는 교활한 지휘관들에 대해 클레망소가 진저리치며 한 말이었다. 한국의 장군들에게도 흔히 적용되는 경구다. 조갑제씨가 쓴 전기 ‘박정희’에 나오는 이야기다. 여순사건 때 반란군으로 체포되자 남로당원이라며 200여명의 명단을 건네 처형을 면한 뒤 육군본부 정보국에 근무하던 박정희가 1951년 4월 중공군의 공세에 직면한 육군 9사단 참모장으로 있을 때의 일화다.9사단은 3군단(사령관 유재흥 중장)에 배속돼 3사단과 함께 강원 인제군 현리 일대를 관할하고 있었다. 중공군은 서울 점령을 위한 5차 공세(춘계공세)에 실패한 후 중동부 전선으로 병력을 이동시켰다. 현리에서 북쪽으로 12㎞ 떨어진 소양강 건너엔 대규모의 중공군이 집결해 있었다. 4월 27일 9사단 신임 사단장이 부임했다. 일본군 소위 출신으로 불과 5년 만에 장군이 된 최석이었다. 최석은 부임하자마자 심지어 ‘뽀마드’까지 상납을 요구하며 참모들을 들들 볶았다. 참모부는 사단장파와 참모장파로 나뉘어 암투했다. 다음은 정훈부장 이용상의 목격담. “당시 헌병대장 김시진은 최석의 ‘밥’이었다. 어느 날 최석의 입에서 ‘살아 있는 싱싱한 것…’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김시진은 그제야 무릎을 치며 강릉으로 차를 몰아 싱싱한 생선회 두어 접시와 초장을 푸짐하게 장만해 사단장 막사로 들어갔다. 잠시 후 헌병대장이 얼굴에 초장을 뒤집어쓰고 나왔다. ‘야, 이 새끼야, 내가 살아 있는 생선 먹고 싶다고 했지, 죽은 생선 먹고 싶다고 했나. 눈치도 없는 놈이 헌병 한다고….’ 군대 안에선 유명한 ‘생선 사건’이다.” 며칠 뒤 박정희는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출근하지 않더니 사단 의무부장으로부터 진단서를 끊어와 대구 집으로 정양을 가겠다고 우겨 9사단을 떠났다. 일촉즉발의 전투부대가 아니라 개그무대의 봉숭아학당이었다. 그로부터 10여일 뒤인 5월 16일 오후 4시 중공군의 총공세가 시작됐다. 오후 5시 30분 소양강을 도하한 중공군 선발대가 오마치(오미재)에 도착하고 대대 병력이 주변을 장악한 것은 17일 새벽 5시였다. 오마치는 상남리, 방내리, 율전, 창촌, 하진부로 이어지는 7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이자 유사시 퇴각로였다. 군단장 유재흥의 주재로 이날 오후에야 열린 작전회의는 간단히 끝났다. 하진부로 ‘퇴각’. 유재흥은 정작 중요한 오마치 탈환 및 철수 작전은 사단장들에게 맡긴 채 급히 경비행기를 타고 하진부로 ‘탈출’했다. 3군단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최석은 오마치 탈환을 포기했다. 모든 중화기와 운송장비 등을 파괴하고 방태산 너머로 퇴각했다. 부득이 3사단도 그 뒤를 따랐다. 다음은 9사단 군수참모 김재춘이 회고한 ‘7군단의 패주 장면’. “최석은 아예 제복도 벗어버리고 앞장서 튀었다. 주변에서 총소리만 나면 꽁지 빠진 닭처럼 혼비백산했다.” 장교들도 계급장을 떼거나 겉옷을 벗어버린 채 도망쳤고 사병들은 공용화기는 물론 개인화기, 무전기까지 버렸다. 19일까지 방태산을 넘어 창촌 광원리 을수재를 거쳐 집결지인 하진부에 도착한 병력은 3사단 34%, 9사단 40%에 불과했다. 밴 플리트 미 8군사령관은 25일 7군단을 해체했다. 유재흥에게는 ‘다른 보직을 찾으라’며 전선에서 내쫓았다.해체된 유재흥의 부대는 3군단만이 아니었다. 개전 초 유재흥의 7사단은 덕정, 의정부, 창동 등 서울로 이어지는 축선을 책임지고 있었지만 사흘 만에 북한군에 내주고 궤멸했다. 이승만은 그런 유재흥을 2군단장으로 영전시켰다. 미8군에 배속되어 북진했던 2군단은 미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내달려 2연대와 7연대 일부 병력이 압록강변의 벽동, 초산까지 진출했다. 당시 선봉 2연대 연대장은 일본군 지원병 출신으로 제주 4·3사건의 민간인 학살자로 유명한 함병선 준장이었다. 2군단의 허장성세는 딱 거기까지였다. 이미 덕천 영원의 산악지역에 매복해 있던 중공군의 공격을 받아 2연대를 시작으로 7연대, 6사단, 8사단이 차례로 무너졌다. 7군단 전체 병력의 60%가 사망, 실종, 포로가 되었다. 연대장 3명이 생포되고 1명이 전사했다. 군단은 해체됐다. 하지만 유재흥은 육군참모차장 등을 거쳐 1957년엔 합참의장이 됐다. 그의 군 생활은 4·19혁명과 함께 끝나지만, 5·16쿠데타와 함께 그의 인생 2막은 화려하게 펼쳐졌다. 태국·스웨덴·이탈리아 대사, 대통령 특별보좌관을 거쳐 국방부 장관이 되었다. 만주군관학교 예과를 이수하고 일본육군사관학교로 편입한 박정희는 일본육사 3년 선배인 유재흥을 끔찍하게 챙겼다. 이승만은 광복군은 배제하고 일본군 출신을 중용했다. 재임 중 육군참모총장은 모두 일본군 출신이고 백선엽(일제 만주군관학교)과 송요찬(일본군 지원병)을 제외하면 모두 일본 육사 출신이었다. 그러나 역시 모두 비전투병과여서 전장 경험이 없고 전투에는 무능했다. 대표적인 게 참모총장 채병덕이었다. 도발 가능성을 번번이 묵살했던 채병덕은 남침 당일, 새벽 2시까지 술에 절어 있었다. 미국 관리들이 이승만에게 “왜 저렇게 뚱뚱하고 둔한 장군을 총장에 임명했소”라고 물으면 이승만은 “나의 채 장군은 날씬한 장군이 가지지 못한 기민함이 있다오”라고 대답했다. 채병덕은 일본 육사 27기로 일본군 출신 최고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경찰 인사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임명한 치안국장(지금의 경찰청장) 15명은 모두 일제의 검사, 경찰 간부, 일본군 출신이었다. 홍순봉과 문봉제는 간도특설대 출신이고 김종원(오장), 이성우(대위)는 헌병 출신이었다. 1960년 3·15 마산의거 때 ‘배후는 공산당’이라고 발표했던 치안국장 이강학은 일본군 소위 출신이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 김종원이었다. 일본군 자원입대자로, 해방 후 조선경비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여순사건 때부터 잔혹한 민간인 도살자로 악명을 떨쳤다. 빨치산 토벌대였던 23연대장 시절 그의 부대가 지나간 자리엔 빨치산이 아니라 민간인의 주검이 널려 있었다. 그런 김종원을 이승만은 총애했고 김종원은 충성을 다했다. 거창양민학살사건 때 그는 예하 부대를 공비로 위장시켜 국회의 합동조사단을 습격하도록 했다. 그가 군법회의에서 3년형을 선고받자 이승만은 특사로 3개월여 만에 석방했다. 이후 경찰로 옮긴 김종원은 전북, 경남, 경북, 전남 경찰국장을 거쳐 1956년 정부통령선거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치안국장이 되어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을 일으켜 이승만의 은혜에 보답했다. 이승만은 김종원을 이렇게 평가했다. “김종원은 애국 충정이 대단한 사람으로서 충무공 이순신과 견줄 만하다.” 육사 8기생들의 평가도 있다. “학살에는 귀신, 전투에는 등신!”(‘노병들의 증언’ 중에서) 미 군사고문단 보고서는 좀더 구체적이다. “부하에게는 가혹했고 전투에는 비겁했다. 전술적 두뇌가 없었고 부하들로부터 원성이 자자했다.” 전투에선 무능하고 권력에는 교활하던 ‘똥별’들, 그 연면한 전통은 지금도 군사주권 환수엔 반대하며 자주국방은 외면하고, 골방에서 댓글 공작이나 지휘하고, 내란 수준의 계엄령이나 모의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발본해야겠지만 이들은 수구언론, 수구정치권과 함께 여전히 우리 사회의 주류를 이룬다. 날은 어두워지고, 갈 길은 멀다.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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