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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있는 그대로의 김구선생 읽기

    “우리나라는 옛적부터 오늘까지 ‘대가리 싸움’, 곧 헤게모니 싸움으로 말썽이 많았다.…해방 후 우리나라에서도 머리싸움이 벌어져서 서로 머리가 되려고 머리가 부서져라 싸움만 하고 누구 하나 발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1949년 1월, 백범 김구(1876∼1949)선생이 한국독립당 당원들에게 전한 신년연설사의 일부다.6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런 요지부동 세태 앞에서 백범의 큰 발자국 소리는 변함없이 그리울 수밖에 없다. 백범일지는 그동안 여러 자료들을 저본으로 출간됐다. 백범이 1929년과 1942년에 탈고한 친필본이 1990년대 들어 뒤늦게 공개됐고, 이를 바탕으로 번역본이 나온 것은 1997년(돌베개)이었다. 그러니까 그 이전의 번역본들은 필사본을 바탕으로 씌어진 셈이다. ‘올바르게 풀어쓴 백범일지’(김구 지음, 배경식 해설·엮음, 너머북스 펴냄)는 필사본에 기초한 번역본들의 오류를 두루 바로잡았다는 데에 출간 의의가 있다.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인 저자는 “백범의 긍정적인 면만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백범 모습을 풀어쓰고자 했다.”고 머리글에서 밝히고 있다. 이전에 나온 백범일지들에서 미처 언급되지 못한 백범의 삶을 새롭게 소개하는가 하면, 그가 잘못 기억한 내용까지 교정해준다. 예컨대 백범이 고구려의 수도였던 지안(集安)일대를 여행하고서도 고구려사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던 이유를 밝힌다. 당시 한국인들에게는 광개토대왕비의 발견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여러 번역본들이 나오면서 알게 모르게 원전의 텍스트적 가치를 훼손한 사례들도 적시한다. 대부분의 출간본들이 ‘우리는 안동 김씨 경순왕의 자손이다.’로 시작되는 이유는 1947년 이광수가 윤문한 국사원본(해방 후 국사원 출간본)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어 책은 원전대로 “우리 선조는 안동 김씨로 김자점씨의 방계 후손이다.”로 시작돼야 옳다고 주장한다. 기존 번역본들의 번역 오류도 바로잡는다. 백범의 유년시절, 어머니 곽낙원 여사, 안중근 집안과의 각별한 인연 등 백범사상을 여물린 주변이야기들도 연대기순으로 상세히 실려 있다.2만 8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자연과 귀향 노래한 ‘서정의 라이벌’

    자연과 귀향 노래한 ‘서정의 라이벌’

    최근 출간된 두 권의 시집은 두 시인이 각각 연세대 국문과와 고려대 국문과 출신이라는 점, 또 각각 창비(창작과비평)와 문지(문학과지성)를 통해 시단에 나왔다는 점, 그리고 각각 두 출판사가 펴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숙명의 라이벌’ 대결이라고나 할까. 장철문(사진 왼쪽·42) 시인의 ‘무릎 위의 자작나무’(창비 펴냄)와 문태준(오른쪽·38) 시인의 ‘그늘의 발달’(문학과지성사 펴냄). 연대 출신인 장 시인은 이번이 5년 주기로 낸 세번째, 고대 출신인 문 시인은 6-4-2-2년 주기로 낸 네번째 시집이다. 두 시인 모두 1994년 등단한 뒤 ‘농축된 정서의 형질’(장),‘서정시 가문의 적자’(문)라는 평을 들으며 시단의 주목 속에 작품활동을 해왔다. 장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한결 순연해진 눈길로 자연을 노래한다. 문 시인은 소처럼 ‘마실’ 다니며 둥글고 의뭉스럽게 귀향을 이야기한다. “자작나무가 내 무릎 위에 앉아 있다/돋아나고 있다, 가슴에서도/피어나고 있다/두 그루가 마주보고 있다/…/자작나무가 자작나무를 낳고 있다/구겨져서 납작하게 눌린 나무가/잎사귀에 피어서/주름들이 지워지고 있다/내가 자작나무의 무릎 위에 앉아 있다”(‘무릎 위의 자작나무’ 가운데) “아버지여, 감나무를 베지 마오/감나무가 너무 웃자라/감나무 그늘이 지붕을 덮는다고/감나무를 베는 아버지여/그늘이 지붕이 되면 어떤가요/눈물을 감출 수는 없어요/우리 집 지붕에는 폐렴 같은 구름/우리 집 식탁에는 매끼 묵은 밥/우리는 그늘을 앓고 먹는/한 몸의 그늘/그늘의 발달/…/나는 슬픈 시간을 기록해요/나의 일기(日記)에는 잠시 꿔온 빛”(‘그늘의 발달’ 가운데) 공교롭게도 두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아이를 소재로 한,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시도 여러 편 들어 있어 비교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각각 7000원.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책꽂이]

    ●머저리클럽(최인호 지음, 랜덤하우스 펴냄) 1975년 ‘우리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첫 출간했던 성장소설을 손질해 재출간. 근대화와 새마을운동에 박차를 가하던 197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주인공 동순 등 여섯 고등학생들의 학창시절 꿈과 고뇌, 우정과 사랑을 그린 작품.1만 2000원.●누구나 알 권리가 있다(로렌 와이스버거 지음, 이다혜 옮김, 문학동네 펴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 쓴 저자의 최신작. 뉴욕 패션업계의 실체를 생생하게 옮겨 영화로도 큰 흥행을 기록한 전작에 이어 이번에는 뉴욕 홍보업계가 무대. 파티플래너인 주인공이 뉴욕 사교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크고 작은 소동을 겪으면서 한 단계 성장해 가는 과정을 발랄하게 그렸다. 전 2권, 각권 9500원.●교과서 시 정본 해설(이숭원 지음, 휴먼북스 펴냄) 교과서에 수록됐거나 앞으로 수록될 만한 시 99편을 모아 알기 쉽게 설명한 해설서. 평론가인 저자는 기존 참고서나 해설서가 갖는 오류나 문제점을 바로잡아 현대시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1만 8000원.●계백의 칼(문효치 지음, 연인M&B 펴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장인 시인의 새 시집.‘백제시’의 대가라는 평에 어울리게 표제작을 포함한 백제시 10편을 맨 앞에 구성했다. 시인은 196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시문학상, 펜문학상, 동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7000원.
  • 초기 남방불교 수행 체험 오롯이

    초기 남방불교 수행 체험 오롯이

    부처님 당대에 행해졌던 불교 초기 수행법인 위파사나의 실체를 생생한 체험을 통해 수행자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소개한 책이 나왔다. 태고종 정명(사진 위·44) 스님이 2006년 3월부터 지난 5월까지 13개월간 미얀마 파아옥 명상센터에서 겪은 몸과 마음의 변화를 전한 ‘구름을 헤치고 나온 달처럼’(불교정신문화원 펴냄). 남방불교의 전통 수행법인 ‘위파사나’를 직접 체험하면서 매일 매일 기록한 ‘남방불교 선방일기’인 셈이다. 정명 스님은 한양대 산업공학과를 나와 청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드렉셀 대학에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밟은 재원. 굴지의 반도체 관련 대기업에서 17년간 근무하던 중 스님이었던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불현듯 생과 사의 의심이 일었다고 한다. 은사인 봉원사 일운(옥천범음대학장) 스님에게 범패를 공부한 뒤 미얀마로 옮겨 파아옥 사야도(큰스님)로부터 남방불교 수행법인 위파사나를 집중적으로 익혔다. 정명 스님은 “한국불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간화선은 사마타(선정삼매)와 궁극적인 실재의 깨침인 지혜를 구분하지 않지만 위파사나는 선정과 지혜를 따로 구분해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의 차이점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미얀마 파아옥 명상센터는 부처님 제자들이 불교 경전을 알기 쉽게 풀이해 작성한 논문격인 아비담마와, 남방불교의 정통 수행 매뉴얼인 청정도론에 입각해 수행을 지도하는 남방불교의 대표적 수행처. 정명 스님은 책에서 이곳 명상센터의 경전 공부와 수행을 세밀하게 전달한다. 명상센터에 가게 된 배경부터 첫 명상 자리며 안거 결재에 얽힌 단상은 물론 공양법, 좌선법, 눈을 감는 법 등 수행과정과 그 어려움의 고백이 잔잔하게 풀어진다. 각 장마다 붙인 ‘초기불교의 이해’도 수행의 각 단계를 알기 쉽게 거든다. 정명 스님은 “수행자가 수행체험을 공개하는 것은 주머니 속 재산을 공개하는 것과 같아 내 주머니를 열어 남에게 보여 주는 것을 꺼린다.”며 “그러나 부처님의 왜곡되지 않은 수행법을 소개하고 이 인연으로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이해하고 수행의 길로 접어든다면 이 또한 공덕이 될 것”이라고 책 출간 배경을 밝혔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종교플러스] 교회법 요약 ‘교회법전 주해’ 출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는 정진석 추기경이 1988∼2002년 펴낸 ‘교회법 해설’(15권)을 요약해 1권으로 묶은 ‘교회법전 주해’를 펴냈다. 새 주해서는 주교회의 교회법 위원회 총무인 한영만 신부가 개정한 것으로 교회법 조항에 라틴어 원문을 적고 그 아래 우리말 조항을 실어 비교할 수 있다.(02)460-7582.
  • 동북아 현대사의 블랙박스 만주

    흔히 동북3성(랴오닝성·지린성·헤이룽장성)을 가리키는 중국의 ‘만주’.17세기말 청나라와 함께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이 지역은 일제하 항일운동의 본산이자 중국 조선족의 본향이다. 최근엔 한국판 웨스턴 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의 무대로도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만주, 동아시아 융합의 공간’(한석정 등 지음, 소명출판 펴냄)은 지난 수십년간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났던 만주를 객관적 시각으로 분석한다.1998년 창립된 만주학회 회원들이 필자로 나섰다.‘거란과 여진’등 북방민족의 요람으로써의 만주 역사부터 오늘날 탈북자들의 은거지가 된 만주의 현대적 의미까지, 만주의 실체를 살핀 18편의 논문이 실렸다. ‘중국 조선족의 현황’(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만주 이해에 도움을 줄 만한 논문. 개혁·개방 이후 동북3성 조선족의 인구변동, 한국인과 결혼인구 등을 꼼꼼하게 짚어 조선족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산업화로 인한 이농현상과 출산율 저하로 1980년대 전체의 40%선을 넘었던 옌볜 조선족 인구는 2000년대 초반 37%으로 떨어졌다.1990년대 ‘한국 바람’으로 한국내 불법 체류자가 6만명선을 넘어서며 조선족 사회는 심각한 해체 위기를 맞고 있다. ‘만주국과 오키나와의 비교사적 고찰’(임성모 연대 사학과 교수)은 태평양전쟁 당시 ‘대동아공영권´의 중심이었던 괴뢰국 만주국과 2차세계대전 이후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패권 장악에 필요했던 일본 오키나와가 ‘공식 식민지’가 아니라 ‘간접 지배지’였다는 공통점을 지닌다는 주장을 편다.‘간도문제의 시대적 변화상,17∼21세기’(박선영 포항공대 교수)는 조선시대의 모호한 영토개념 이래 20세기의 간도를 둘러싼 국경문제를 살핀다. 편저자인 한석정(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제하 항일 민족운동의 본산이라는 우리 민족적 시각으로만 바라보다 보니 만주가 ‘전설의 땅’으로 치부돼 왔다.”며 “항일운동 역사뿐 아니라 가려져 있는 만주의 역사를 추적하는 데 서술의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한족 중심의 중국 민족주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만주가 아닌, 베일 속에 가려진 만주의 본모습을 끄집어냈다는 데 이 책의 미덕이 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1200여년전 혜초의 문화열망 느껴보세요”

    “1200여년전 혜초의 문화열망 느껴보세요”

    “우리 젊은이들이 ‘혜초 루트’를 따라가면서 1200여년 전의 한 젊은이가 가졌던 새로운 문화에 대한 열망을 느껴보길 바랍니다.” 인도 및 서역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신라시대 승려 혜초(704∼787)의 발자취를 장편소설 ‘혜초’(전2권, 민음사 펴냄)로 풀어낸 작가 김탁환(40·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씨는 22일 출간에 맞춰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혜초는 당시 진정한 세계인이었다.”면서 “혜초가 갖고 있는 이런 거대한 스케일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혜초는 스케일 큰 진정한 세계인 ‘불멸의 이순신’ ‘파리의 조선궁녀, 리심’ ‘열하광인’ 등 주로 역사소설에 매달려온 작가는 “8년 전 왕오천축국전을 처음 읽고 혜초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지식도 짧고, 주머니도 가벼워 쓰지 못하다가 이제야 완성하게 됐다.”면서 “이 작품을 계기로 혜초와 왕오천축국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작가에 따르면 혜초는 세계적 여행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여행가였다. 혜초가 쓴 왕오천축국전은 7세기 당나라 승려 현장의 대당서역기,13세기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를 뛰어넘는 세계사적 의미가 있다는 것. 작가는 “왕오천축국전은 동양인 최초로 아랍제국을 여행하고, 기록한 대작”이라면서 “당시의 모든 종교와 인종이 등장하고 다양한 문명을 전했다는 점에서 우리 선조들의 문화 권역이 얼마나 광대했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소설은 혜초와 함께 동시대 당나라 장수로 활동했던 고구려 유민 출신 고선지를 ‘투톱’으로 내세워 이들의 교류를 담고 있다. “동시대의 다른 표정을 담고 싶었습니다. 고선지와 혜초로 대표되는 전쟁과 평화, 즉 문명교류의 현장을 20살 청년들의 만남으로 상상해냈지요.” ●1년여에 걸쳐 혜초 여정 되밟아 작가는 소설을 쓰기에 앞서 1년여에 걸쳐 인도, 실크로드, 중앙아시아, 이란 등 20살 혜초가 밟았던 길을 혜초와 실크로드 권위자인 정수일 전 단국대교수 등과 함께 답사했다. 이번 소설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문화원형사업으로 선정된 왕오천축국전 디지털 콘텐츠개발 사업의 일환이기도 하다. 소설로 시작했지만 혜초 관련 사진과 동영상, 디지털콘텐츠, 시나리오 등 다양한 콘텐츠로 혜초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접근성을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중국의 ‘현장 기념관’과 같은 큰 규모의 혜초 기념관 건립까지 추진할 계획이다. 작가는 “왕오천축국전은 1908년 프랑스학자 폴 펠리오가 중국 둔황 석굴에서 발견한 이후 직지심경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옮겨졌다.”면서 “소설 출간을 계기로 문화재 반환운동이 보다 폭넓게 전개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딸애가 준 영감으로 쓴 책이니 중학교 입학 선물로 주려고요”

    “딸애가 준 영감으로 쓴 책이니 중학교 입학 선물로 주려고요”

    “딸이 커서 제 책을 읽을 생각 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싱글맘’으로 통하는 방송인 허수경(41). 최근 자전 에세이 ‘빛나라, 세상이 어두울수록’(문학사상 펴냄)을 낸 그녀는 딸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글이 막힐 때마다 자는 아기를 보면서 영감을 얻었고, 책을 쓰고 나서 아이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 더 커졌어요.” 지난해 12월31일, 정자를 기증받아 딸 ‘별이’를 낳은 그녀는 당시 우리 사회에 적지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제 개인적인 선택이 그렇게 큰 반향을 일으킬 줄 몰랐어요. 이제 잠잠해졌는데, 이 책으로 또다시 시끄러워질까봐 두려움이 컸죠. 하지만, 어떤 평가를 받든 남겨볼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딸애의 중학교 입학 선물로 줄 생각입니다.” 책은 자신의 일기를 바탕으로 쓴 에세이와 딸에게 주는 편지글 형식으로 엮었다. 그는 ‘가족’이라는 주제 앞에서 가장 글쓰기가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훗날 유명인의 딸로서 아버지의 부재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아이의 고민이 읽혔기 때문이다. “아무리 여권이 신장되었다고 해도 제가 아버지 흉내까지 낼 수는 없는 거잖아요. 세상에 결핍 없는 완벽한 인간은 없으니, 자신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아이가 느낄 두려움의 강도도 달라질 거라 생각해요. 아이가 자신의 결핍을 잘 받아들여 상처받지 않도록 제가 도와줄 겁니다.” 하지만 그녀는 ‘싱글맘’ 선언을 통해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비슷한 처지의 싱글맘 동지들을 얻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혼을 한 뒤엔 주위 사람을 다 잃은 것처럼 절망했지만, 이젠 홀로 아이를 키우는 같은 경험을 가진 팬들이 늘었어요. 힘들 때 서로 위로가 된 분들이기 때문에 이분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 거예요.”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이라는 삶의 굴곡 속에서도 그가 씩씩하게 인생을 헤쳐가는 힘은 뭘까.“특별히 어떤 사람에게 행운이 더 따르거나 덜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무조건 불평하기보다는 모든 문제는 내 안에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절로 편해져요.”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저가 원유 고갈…배럴당 200달러시대 대비해야”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저가 원유 고갈…배럴당 200달러시대 대비해야”

    고유가로 촉발된 에너지·자원 위기 극복을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이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리처드 하인버그(포스트카본연구소 수석연구원) 미국 캘리포니아 뉴칼리지 교수와 이메일 인터뷰를, 서남표 KAIST 총장과 대면 인터뷰를 갖고 대담 형식으로 재구성해 위기 극복의 해법을 찾아보았다. 두 사람은 저유가 시대의 종말이라는 시대상황에 인식을 같이하며, 각각 친환경자동차 기술개발과 물류·식량체계의 혁신을 주문했다. ▶유가가 배럴당 140달러를 오르내리면서 ‘석유시대 종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두 분께서는 이 같은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일부에서 말하듯 석유가 조만간 바닥을 드러낼까요. ●서남표 총장 에너지 문제는 인류가 다같이 고민해야 할 심각한 사안이죠. 지금의 고유가 상황은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가 함께 걱정해야 할 사태라고 봅니다. 고유가가 단순히 ‘투기’ 문제로만 보기에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거든요. 얼마 전 브라질에서 거대 매장량의 해저 유전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새로 발견되는 유전들은 점차 채굴하기 어려운 곳에서 찾아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만큼 생산비용은 크게 오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죠.‘조만간 배럴당 200달러까지 올라갈 것’으로 내다보는 이들의 생각에 일리가 있습니다. 저 역시 저유가 시대는 끝난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고요. ●하인버그 교수 저도 서 총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한국은 앞으로 배럴당 150∼250달러 시대를 대비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 유가는 훨씬 더 높게 치솟을 것입니다. 석유의 고갈 자체보다 생산원가가 낮은 원유를 더 이상 찾기 어렵다는 게 문제죠. 전세계 주요 거대유전은 이미 수십년 전에 발견된 것들이며, 이들의 평균 생산량은 연간 5% 정도씩 떨어지고 있습니다. 전세계 저가 원유는 이제 거의 다 소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석유의 고갈 우려에 대비해 세계적으로 태양광, 조력, 풍력, 지열 등 다양한 대체에너지 연구가 진행 중인데요. 두 분은 이러한 대체에너지원들이 성공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또 한국에는 어떤 에너지가 적합할까요. ●하인버그 신재생에너지는 자연에 의존하는 측면이 강하므로 나라별로 적합한 대체에너지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나라는 바람이 세고, 어떤 나라는 일조량이 좋으며, 또 다른 나라는 지열이나 조력을 활용하기에 유리합니다. 한국은 해안선이 길고 조석 간만의 차가 큰 만큼 조력이나 파력(波力·파도의 힘)에너지 개발 가능성이 가장 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 총장 하인버그 교수님께서는 대체에너지의 성공 가능성을 염두해두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은데요.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우울한 전망이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석유를 대체할 만한 에너지원을 찾기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태양광·태양열의 경우 발전 밀도가 낮다보니 넓은 면적의 집광판(혹은 집열판)을 필요로 합니다. 국토가 좁고 땅값이 비싼 한국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죠. 풍력 에너지도 제주와 일부 산간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지역에서 경제성이 떨어집니다. 바이오연료의 경우 ‘열대 지역에서 생산된 사탕수수 등 작물을 수입해 국내에서 연료를 생산하자.’는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국내 재배 환경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뜻이죠. ▶대체에너지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현재 화석에너지 중심으로 구축된 각종 사회적 인프라(자동차 중심 운송체계 등)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어떤 점을 염두해 두어야 할까요. ●서 총장 석유가 나지 않은 한국에서 에너지 다소비형 사회 구조를 개선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국가적 과제입니다. 요즘 유럽에서 각광받는 ‘패시브 하우스’(passive house)처럼 난방효율을 극대화해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한 주택을 보급하는 일도 좋은 방법 중 하나죠. 그러나 뭐든 변화를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돈이 들어간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제 생각에 한국의 최우선 과제는 하루라도 빨리 화석연료를 하나도 쓰지 않는 ‘그린카(Green car)’를 양산해 보급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세계 원유 소비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차량용 연료 소비를 줄일 수만 있다면 에너지 위기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입니다. 또 신성장동력으로 한국의 수출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인버그 서 총장님께서 구조 변화를 위한 기술개발을 강조하셨다면 저는 반대로 정책 전환을 주문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운송 및 물류 혁신입니다. 한국은 앞으로 고속도로 건설을 중단하고 대중교통수단을 확충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태양광·풍력 발전으로 생산된 전기 만으로 움직이는 기차를 도입하고, 트럭보다는 철도·선박 등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물류기반을 개편해야 합니다. 둘째는 식량입니다. 세계화된 농업구조에서 식량은 농장에서부터 수천, 수만㎞에 달하는 장거리 수송을 거쳐 식탁에 올라옵니다. 농장에서 소비자까지 운송거리를 최소화하는 공급체계를 마련해야 지금의 에너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최근 석유위기의 대안으로 원자력 활용에 대한 찬반논란이 뜨겁습니다. 특히 기후변화와 관련해 일부 국가에서 청정개발체제에 포함시켜달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두 분의 견해는 어떠신지요. ●하인버그 핵발전소는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우라늄 공급량도 금세기 중반부터는 점차 한계에 부닥칠 것입니다. 장기적인 에너지 위기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서 총장 현실적으로 당장 원자력 말고는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폐기물 처리와 관련된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1986년 체르노빌 사건을 제외하면 상당히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선 2050년까지 원자력발전소를 1700여개나 지어야 한다고 합니다. 원자력을 통한 해결 또한 요원한 문제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끝으로 에너지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나 지자체에 조언해 주실 부분이 있으신지요. ●서 총장 한국의 에너지 관련 투자 예산은 상당히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상용화가 가능한 몇몇 분야를 특화해 집중 투자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한국 정부가 매년 거액을 투자하고 있는 인공태양 프로젝트에 대해서 대단히 회의적인 사람입니다. 차라리 그 돈을 ‘EEWS(에너지·환경·물·지속가능성)’분야에 투자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하인버그 한국민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결코 미국의 에너지 정책을 베끼려 하지 마십시오. 석유 사용을 부추기는 미국의 정책은 미국과 세계에 큰 재앙입니다. 미국은 화석 연료에 그토록 고집한 방식 때문에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유가 상승이 미국의 사고방식과 정책을 바꿀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잘못된 정책을 만들어내고 언론에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은 느리게 진행될 것입니다. 정리 류지영·박건형기자 superryu@seoul.co.kr ■ 하인버그 교수는 리처드 하인버그(58)는 포스트 카본연구소 수석연구원이자 미국 캘리포니아 뉴칼리지 교수로 에너지와 사회, 생태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지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매월 ‘뮤즈레터(www.museletter.com)’를 간행, 전세계적인 영향력을 키워왔다.1996년 ‘자연과의 새로운 계약’을 발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부처 복제’ ‘파워다운’ ‘정점을 축하하라’ 등의 저서가 있다. 특히 2003년 출간한 ‘파티는 끝났다’는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 서남표 총장은 서남표(72) KAIST 총장은 플라스틱·금속 제조공정과 설계이론 등에서 탁월한 학문적 성과를 냈다. 미국 카네기 멜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36년간 MIT 교수로 재직하면서 MIT 제조·생산연구소장, 기계공학과 학과장, 미 과학재단(NSF) 부총재 등을 지냈다.2006년 7월 KAIST에 부임한 뒤 테뉴어(tenure) 심사 강화를 통한 교수 퇴출 등 KAIST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올 초 ‘EEWS’ 연구를 KAIST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선언했다.
  • 101살 최고령 前요원 “FBI 100주년 축하”

    “내가 FBI보다 나이가 많아.” 101살의 최고령 전직 FBI 요원이 FBI의 100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나타나 화제다. 미 연방 수사국 FBI(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는 창설 100주년을 맞아 지난 15일 축하 파티를 열었다. 이에 올해로 101살인 월터 월시 전 FBI 요원이 축하파티에 등장한 것. 월시는 1930~40년대 범죄 소탕을 위해 활약한 생존하는 가장 나이 많은 특수요원으로 악명높은 갱스터였던 독 바커를 체포한 것으로 유명하다. CNN은 “월시가 100주년 축하 자리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기뻐했다.” 며 “아직까지 자신의 업적을 기억해준다는 걸 쑥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이 외에도 미국의 각종 언론은 FBI 창립 100주년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그동안 FBI가 이룬 업적과 역사를 재조명했다. 현 FBI 수장 로버트 뮬러(Robert Mueller) 17일 ABC 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테러 위협은 아직도 존재한다.”며 ‘대(對) 테러’가 100주년을 맞는 FBI의 최우선 임무임을 강조했다. 한편 FBI는 지난 4월 창설 100주년을 맞아 FBI 100주년 ‘비공식적인 역사’(The FBI: 100 Years Book filled with ‘An unofficial History)라는 책을 출간한 바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김지아 기자 skybabe8@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백악관은 어떻게 국민을 속였나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지근거리에서 백악관의 ‘입’ 역할을 해온 전 백악관 대변인 스콧 매클렐런. 부시와 텍사스 동향 출신으로 1999년 주지사 시절 부시의 수석 공보비서관으로 발탁되면서 사적·공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그가 퇴직 이후 마침내 진실의 입을 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백악관이 전쟁의 장기적 계획과 근본 목표에 대한 논쟁을 사전에 모두 차단했다는 점이다.…대통령과 보좌관들은 공격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라는 중대 현안에 대한 토론의 의무를 회피했다.”(199쪽) 이라크전쟁 등 중대시기에 미국 최고 권력의 입을 자임한 전 백악관 대변인이 퇴직후 2년만에 백악관 내부의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회고록을 출간했다. 스콧 매클렐런의 위상 때문에 ‘거짓말 정부’(원제 What Happened, 김원옥 옮김, 엘도라도 펴냄)는 출간 전부터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유력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고, 출간 이후에는 단박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전 백악관 대변인이 밝히는 부시의 기만과 진실’이라는 부제와 원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9·11테러와 이라크전쟁 등 중요 사건에 대한 미국 권부의 대응을 담고 있다. ‘워싱턴발 추문’ ‘9·11테러, 중동에서 날아든 국가적 비극’ ‘이라크 전쟁의 진실’ 등 모두 15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부시 행정부를 원망하거나 나의 역할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책을 쓰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다만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진실을 밝힐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워싱턴 정가는 진실을 가리기 위한 교묘한 속임수와 정치공작의 본거지가 됐다.”면서 “선거의 승리와 권력 장악에 밀려, 국가 통치는 오히려 부차적인 것으로 전락해버렸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신중하고, 솔직하고, 철저한 자기 진단을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난 8년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허심탄회하게 조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백악관 대변인 출신이 회고록을 낸 적은 이전에도 여러번 있었지만 대통령이 현직에 있는 동안 신랄하게 진실을 얘기하는 책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세계가 주목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1만 8000원.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지구온난화 호들갑 떨지 마라”

    “지구온난화 호들갑 떨지 마라”

    지구 온난화는 인류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그 주범은 이산화탄소라는 생각이 우리 머릿속에 자리잡은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8년부터 2012년까지 20% 줄여야 한다는 1997년의 교토의정서는 금과옥조가 되었다. 나아가 “인류의 지구에 대한 훼손이 도를 넘어, 현 세기가 끝나기 전에 수십억명이 죽을 것이고, 견딜 만한 기후가 남아 있을 북극권에서나 극소수가 살아남을 것”이라는 영국 옥스퍼드대 제임스 러브록 교수의 경고를 ‘선지자의 복음’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덴마크 코펜하겐 비즈니스 스쿨의 비외른 롬보르 교수는 교토의정서를 이행하면 해마다 1800억달러를 투입해야 하지만, 그 결과는 2050년까지 지구의 기온을 고작 0.06도 낮출 수 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2003년 유럽에서 열파로 3만 5000명이 목숨을 잃은 것을 두고 러브록은 “새로운 석기시대의 서곡”이라고 했다지만, 롬보르는 “유럽 전체에서 해마다 20만명이 혹서 때문에 숨지지만 혹한 때문에 죽는 사람은 150만명에 이른다고 반박하기도 한다. 유럽에서 기온이 2도 올라가면 더위 때문에 죽는 사람은 2000명 늘지만, 추위 때문에 죽는 사람은 2만명이나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으며, 어떤 논문에서는 특히 심혈관계 질환에 따른 사망률이 내려갈 수 있다는 점을 밝혀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롬보르의 ‘쿨잇’(Cool It, 김기응 옮김, 살림 펴냄)은 환경문제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뒤흔든다. 그는 “오늘날 논의되는 지구 온난화 방지 대책은 복잡하고 값비싸지만, 그 근거로 제시되는 가정은 과학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인 것이고, 실제로 지구의 기온에도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할 여지가 크다.”고 주장한다. 저서 ‘회의적 환경주의자’로 이미 환경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던 롬보르는 “일부 정치가와 환경 전문가에 의하여 형성된 지구 온난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심하게 치우쳤다.”고 우려한다.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것이 부분적 해결책이 될 수는 있겠지만, 주 관심사는 분명히 인간과 환경의 안녕을 최대한 증진시키는 것이어야 하며, 그러려면 이산화탄소 말고도 다른 요소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쿨잇’은 미국에서 출간된 뒤 다양한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내셔널 리뷰’는 “기후 정책을 다룬 여러 문헌 가운데 무척 두드러지는 업적으로 꼽을 만하다.”고 호의적으로 평한 반면,‘워싱턴 포스트’는 “인류에 대한 은밀한 공격”이라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롬보르의 반응은 “두 가지 관점 모두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것. 지구 온난화에 대한 해묵은 의견 대립이 모양만 살짝 바꾸어 나타났다는 것이다. 롬보르는 “지구 온난화 부정론과 과장된 호들갑 사이의 이성적인 중간지대에 서려고 노력했다.”고 밝힌다. 겁에 질려 허둥대서야 지구 온난화 문제뿐 아니라 인류가 해결해야 할 그 밖의 많은 문제에 올바르게 맞설 수 없으니 ‘쿨잇’(냉정하라)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독자를 설득한다. 지은이는 세계보건기구가 개발도상국에서 기후 변화 때문에 죽는 사람을 한 해 15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으나, 이 숫자는 대단히 부풀려진 것이라고 단언한다. 반면 제3세계에서는 거의 400만명이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에이즈로 300만명, 공기오염으로 250만명, 미량영양소의 결핍으로 200만명 이상, 깨끗한 음료수의 부족으로 200만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고 설명한다. 지은이는 “100년이나 흐른 뒤에야 간신히 도움이 될까 말까한 일에 몇조 달러를 썼다는 말을 미래 세대로부터 듣고 싶으냐.”고 반문한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지구 온난화뿐만이 아니며, 지구 온난화 때문에 추가되는 일부 문제를 줄이는 정책보다는 문제를 전반적으로 줄이는 정책이 훨씬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1만 4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열린세상] 책들도 나이를 먹는가/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열린세상] 책들도 나이를 먹는가/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몇해 전 ‘꿀벌 마야의 모험’이 새판으로 나온 것을 보고, 문득 오래된 그 책의 판본과 장정을 떠올렸다. 새로 나온 세련된 책은 반갑기는 하되, 익숙하지는 않았다. 오래된 책은 낡기는 했지만 내 몸의 일부 같다. 나와 함께 세월을 보낸 오래된 책들을 보면 그 책에 얽힌 기억들이 필름 돌아가듯 떠오른다. 낡은 표지 위에서 옛날에 내가 쓴 글씨를 발견하는 날에는 어린 시절의 내가 ‘안녕’하고 인사를 건네 오는 것만 같다. 그런 날이면 그 책을 다시 읽는 버릇이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되돌리고 싶은 시간이 내게는 많은 것일까. 나는 책을 참 많이 버리기도 했다. 아무리 낡고 오래된 책이라 해도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책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책을 버리면서 알았다. 추억이 담긴 책들, 누군가의 내력과 이어지는 책들은 버리려고 빼냈다가도 결국 책장에 다시 꽂게 된다. 나도 나이를 먹어 가고 있다는 것을 가끔 내 서가의 낡은 책들을 통해 알게 된다. 버리지 못할 책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내 인생도 그만큼 많이 지나 왔다는 것이리라. 내가 그때 ‘네루다’를 읽었었지,‘마르크스’를 알고 고민했었지, 연암(燕巖)에 흠뻑 빠졌었지 하며 기억을 되새기는 동안 이미 그 시간들은 모두 지나갔다. 그리고 그만큼 그 책들도 내 기억과 같은 나이를 먹은 셈이다. 책은 출간되면서 세상에 태어나지만, 누군가를 만나지 않으면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사람 손과 닿지 않은 책은 아직 종이 뭉치이다. 최근에 우연히 에밀 졸라의 ‘나나’와 다시 만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읽은 그 책은 내가 처음으로 읽은 ‘어른용 책’이었다. 그때까지 곤충이나 동물 이야기, 보물섬 이야기, 탐정의 세계에서 머물던 나는 ‘나나’라는 여자로 인해 내 정신세계를 옮겼다. 하루종일 읽다가 졸고, 읽다가 얼굴 붉히고, 누군가 옆에 다가오면 팔뚝으로 제목을 가리면서 한꺼번에 다 읽어버렸다.11살짜리 주제에 나는 세상의 모든 걸 봐 버렸고 다 알아 버렸다는 심정으로 이미 어두워진 도서관 바깥으로 나왔다. 그 하루 동안 훌쩍 자란 것인지, 겉멋이 든 것인지, 그 이후에 나는 더 이상 ‘아동용’이라는 제목이 붙은 책을 읽지 않았다. 그해 가을,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서는 학년별로 단체 무용 발표회가 있었고,5학년의 레퍼토리는 개구리 모양의 옷을 입고 추는 개구리 무용이었다. 원하는 사람은 모두 참가할 수 있었지만, 꽤 비싼 옷 값을 내야 했다. 나는 그때 우리 집 형편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다가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오후에 무용 연습을 하는 동안, 집에 가지 않고 도서관으로 도망을 쳤다. 오후 내내 머리 반쪽에는 책의 내용이, 그리고 나머지 반쪽에는 개구리 무용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도서관엘 갔더니 책상과 의자는 다 치워지고 열람실이 낯모르는 사람들로 시끌시끌했다. 하필이면 거기서 무용공연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재빨리 서가 속으로 숨어서 책 한 권을 빼들고는 책을 읽는 척하면서, 아니 책을 턱 밑에다 대고, 친구들이 개구리 무용을 하는 모습을 슬쩍슬쩍 훔쳐보았다. 그것이 벌써 30년도 훨씬 지난 일이다. 나는 그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그런데 최근에 그 기억을 떠올려 주는 일이 일어났다. 그 공연 모습을 그때 참가한 동기생 중 누군가의 부모가 기념사진으로 찍어 두었던 모양이다. 그걸 누군가 간직하고 있다가, 얼마 전에 초등학교 동창회 홈페이지에다 턱 하니 올려 놓은 것이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그때 내가 무슨 책을 눈 밑에 대고 있었는가를 기억해 내려 했다. 그러나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그 책을 읽지 않았으니. 하지만, 궁금하다. 소년이 읽는 척 눈 밑에 대고 있던 그 책이 무엇이었는지. 그 책도 나이를 먹었는지. 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 [21세기 新다빈치 프로젝트-통섭을 말하다] 음악가가 음향기기 만드는 ‘통섭의 시대’ 온다

    [21세기 新다빈치 프로젝트-통섭을 말하다] 음악가가 음향기기 만드는 ‘통섭의 시대’ 온다

    원효의 화엄사상 해설이나 조선 말기 실학자 최한기의 기(氣) 철학에서 주로 사용됐다. 정치적으로는 ‘총괄하여 관할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 교수가 에드워드 윌슨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의 저서 ‘컨실리언스(Consilience)’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재해석해 도입한 개념이다. 요즘 한국 지식사회의 최고 화두는 ‘통섭(統攝)’이다. 대학들은 앞다퉈 통섭을 표방한 학과를 설립하고, 석학들은 지식의 통합을 외치고 있다. 통섭이 ‘새로운 변화’의 상징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4년 전 일개 학설로 한국에 소개된 통섭은 이제 스쳐 지나가는 유행이 아닌, 우리 사회가 가야 하는 방향으로 대접받고 있는 셈이다. 통섭이 왜 국내 지식사회의 주제어로 떠올랐고, 그것은 왜 필요한 것일까. 통섭을 주장하는 많은 학자들은 통섭이 ‘한국적 특수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고등학교 때부터 문과, 이과의 구분에 익숙해진 한국 사람들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별개의 학문으로 생각한다. 서양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편의상의 학과 구분이 한국에서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자리를 잡았고, 결국 그것은 유연하고 복합적인 사고를 갖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학자들은 인간과 기계, 우주, 생명공학 등 다양한 학문을 과학적 방법과 인문학적 방법으로 동시에 고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는 1933년부터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교류가 시작됐고, 일본도 학문 전 분야를 아우르는 ‘슈퍼대학원’의 등장을 앞두고 있다. 물론 특수한 학과가 오히려 인기를 끌 정도로 ‘전문성’이 강조되는 한국사회에서 통섭을 논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노령화, 산업 변화의 가속화 등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통섭적 사고를 갖춘 인간상이 필요하다. 한 예로 평생 직업의 개념이 희박해지는 상황에서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직업을 찾기 위해 매번 새로운 자격증을 따고 공부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폭넓은 사고를 갖고, 뛰어난 적응력을 가진 사람을 키운다면 그만큼 새 길을 모색하고 목표를 세우는 데 유리할 수밖에 없다. 학자들이 ‘통섭형 사고 교육’을 어린 시절부터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통섭은 학문의 벽을 허무는 일에서 시작된다. 현재 한국의 대학사회는 같은 학과 교수들 사이에서도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을 불문율처럼 여기고 있다.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해낼 수 없는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이같은 구분은 오히려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 장애로 작용할 뿐이다. 특히 다른 학문에 대한 관심과 기본적인 개념의 이해는 전혀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개미를 연구하는 생물학자가 인간사회를 기본으로 연구하거나, 기계공학자 대신 음악 전공자가 음향기기를 만든다면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결과물이 나올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미분방정식으로 경제를 예측하는 대신 자기공명영상을 도입해 경제활동을 하는 인간의 뇌를 분석하기 시작했다.MIT에서는 사람이 전혀 등장하지 않은 채 전자기기가 오페라의 막을 올리고 공연을 한다. 여러 학문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아리스토텔레스 통섭의 원조 통섭은 인류 역사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지식의 경계’를 넘어서려고 했던 모든 노력을 통섭의 일환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각종 학문에 ‘광범위한 관심’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지식의 경계가 없던 시절인 만큼 그의 관심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그 결과 수많은 분야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원조’로 떠받들어진다. 박지원, 홍대용, 최한기 등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들도 인문사회과학을 배워 자연과학에 적용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통섭의 역사에 기록될 만한 것으로 평가된다.200여년의 시간 차이는 있지만 서양의 다빈치와 조선의 정약용이 약속이나 한 듯 기중기(거중기)를 개발했다는 사실은 통섭적 사고가 시대적 배경이나 사회환경과는 상관없이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장 전형적인 형태의 통섭은 ‘자연을 흉내내는 일’에서 시작된다. 인간사회를 바꾼 수많은 도구와 아이디어가 자연에서 비롯됐다. 기업들은 동물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연구해 새로운 휴대전화를 만들기 위해 연구 중이다.‘현실에 존재하는 통섭의 메카’로 불리는 미국 MIT 미디어랩은 1985년 ‘함께 모여 상상의 나래를 펼치자.’는 소박한 목표로 시작됐지만, 매년 수백건 이상의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상상력 공장’으로 발전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국내 연구 현주소 2005년 최재천 교수 등 윌슨의 ‘컨실리언스’를 번역 학문적 기반 아직 취약… 대학들 전면도입 움직 통섭의 개념이 국내 학계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과학철학자 장대익 박사와 최재천 교수가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 ‘컨실리언스(Consilience)’를 ‘통섭’이란 이름으로 번역, 출간한 2005년의 일이다. 퓰리처상을 두 차례나 받은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이자 생태학자인 윌슨은 개미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섬 생물지리학과 사회생물학이라는 두 개의 학문을 개척했다. 윌슨이 주창한 컨실리언스는 르네상스 회귀로 집약된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등 모든 학문이 언젠가는 자연과학적인 방법론으로 통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컨실리언스는 19세기 자연철학자 윌리엄 휴얼이 처음 만들어냈다. 라틴어의 ‘컨실리에르(consiliere)’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정된다.‘컨(con)’은 영어로 ‘함께’라는 뜻을,‘살리에르(salire)’는 ‘뛰어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결국 휴얼과 윌슨의 ‘컨실리언스’는 ‘서로 다른 현상들로부터 도출되는 결론들이 서로 일치하거나 정연한 일관성을 보이는 상태’를 의미한다. 최 교수와 장 박사는 컨실리언스에 대응하는 우리말을 찾기 위해 고심하다가 원효대사의 화엄 사상에서 통섭이라는 말을 찾아냈다. 그러나 이들의 통섭은 방법론과 지향점에서 윌슨 것과 다르다. 윌슨이 자연과학으로의 통합을 강조한 데 반해, 이들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동등한 위치에서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 진행되는 통섭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학자들의 상당수가 무조건적인 생물학 중심의 학문적 통합보다는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자연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비중을 두고 있다. 통섭이 ‘학문간의 벽을 허물자.’라는 정도의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그것의 정확한 의미나 지향점을 설명할 수 있는 학문적 기반은 취약하다. 올 초 서울대에서 열린 포럼에서는 “기계적으로 학과가 통합되는 것을 물리학적 통합, 두 학문이 새 학문을 만들어내는 것을 화학적 통합으로 정의한다면 통섭은 생물학적 결합으로 경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차원으로 볼 수 있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구체적 지향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했다. 특히 가설과 학문 사이에서 여전히 논쟁 중인 외국과 달리, 전면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움직임은 다소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쪽도 있다. 인위적인 벽 허물기가 될 경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통섭의 시대’ 다시 주목받는 다빈치식 사고 통섭을 언급하는 학자들은 통섭형 인간의 표본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꼽는다. 다빈치식 사고는 끊임없는 지적 호기심과 경험을 통한 증명정신, 예리한 관찰과 섬세한 감각, 모호한 것까지 포용하는 묘사법, 과학과 예술의 조화, 건강한 육체와 정신, 그리고 한 가지 아이디어에 다양한 분야를 엮어내는 연결 습관 등으로 집약된다. 시대와 환경을 뛰어넘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인 셈이다. 과연 다빈치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사고방식이 그로 하여금 위대한 업적을 쌓게 만들었을까. 다빈치식 사고를 가진 수많은 사람을 키워 새로운 시각으로 현대를 바라보게 할 수는 없을까. 이탈리아 각지에 숨어 있는 다빈치의 발자취를 찾아, 왜 그가 지금 다시 주목받고 있는지를 짚어봤다. |빈치·피렌체·밀라노(이탈리아) 박건형특파원|이탈리아 밀라노에 자리잡은 오페라극장 라 스칼라 앞 광장. 거대한 성당 두오모를 보려는 관광객들이 꼭 지나야 하는 이곳에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동상이 우뚝 솟아 있다. 동상 아래에 적혀 있는 ‘과학과 예술의 혁명가(AL Rinnovatore Delle Arti E Delle Scienze)’라는 문구는 다빈치를 설명해주는 가장 짧은 수식어이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로 추앙받는 다빈치에 대한 이탈리아인들의 헌사다. ●거대한 박물관이 된 다빈치 고향 50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탈리아 곳곳에는 다빈치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다빈치는 이탈리아인들의 영웅이자 정신적 지주다. 수도 로마 공항의 공식 명칭은 ‘레오나르도다빈치공항’. 공항과 시내를 연결하는 기차의 이름 역시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다. 공항 곳곳에 다빈치의 작품을 형성화한 조형물들과 그의 동상을 목격할 수 있다. 암흑의 중세를 벗어나 인문학의 부흥을 이끌어낸 르네상스의 핵심도시 피렌체를 지나 피사 방향으로 65㎞가량 떨어진 작은 마을 빈치에 도착했다. 나지막한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고, 사방 어느 곳에나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만이 가득한 특별할 것 없는 시골마을이 바로 다빈치의 고향이다. 마을 중심지의 가장 높은 곳에는 3m가 넘는 비트루비우스의 ‘인체 비례도’ 조형물이 다빈치의 고향임을 말해주고 있다. 다빈치는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의 이론에 따라 기하학적으로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원 안에 사람의 몸을 그렸다. 이 비례도의 원본은 베니스 박물관에 소장돼 있지만, 공개는 허용되지 않는다. 다빈치가 빈치에 살았던 기간은 태어난 이후 피렌체에서 베르키오의 도제로 들어가기 전까지 16∼17년간으로 알려져 있다.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그의 생가는 세 개의 방으로 이뤄져 있다. 집 내부에는 다빈치의 생애와 작품에 관한 글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지만, 실제로 다빈치의 흔적은 벽난로와 책상뿐이었다. 생가를 지키고 있는 빈치 시청의 알베르토 로카티는 “다빈치는 세르 피에로와 카테리나라는 하층계급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면서 “다빈치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다빈치의 왕성한 학구열이 어린 시절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반사작용이란 설도 있다.”고 소개했다. 마을의 중심지 폭이 채 500m밖에 되지 않는 조그만 빈치지만, 마을 전체가 거대한 다빈치 박물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성당 옆에 자리잡은 다빈치 박물관에는 그가 설계한 물레와 기중기 등의 원리가 자세히 설명돼 있다. 다빈치 아이디어 박물관은 다빈치의 사고가 어떻게 형성됐으며 후세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체험관이다. 박물관 학예사인 세르지오 페오네는 “다빈치는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사고가 다방면으로 발달해 있었다.”면서 “이 박물관의 첫 번째 전시물도 플라톤의 흉상”이라고 밝혔다. 이어 “다빈치가 스케치한 작품을 실제로 만들어보는 작업이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잡고 있을 정도로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을 곳곳에 자리잡은 상점에서는 티셔츠나 엽서 등 흔한 기념품 대신 다빈치가 고안한 시계와 헬리콥터 모형 등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학문과 예술 꽃피운 피렌체, 밀라노 다빈치 연구자들은 그의 생애를 크게 제1차 피렌체 시대(1466∼1482), 제1차 밀라노 시대(1482∼1499), 제2차 피렌체 시대(1499∼1506), 제2차 밀라노 시대(1506∼1513), 그리고 로마ㆍ앙부아즈 시대(1513∼1519) 등 다섯 시기로 구분한다. 말년을 제외하면 그의 성과가 대부분 밀라노와 피렌체에서 이뤄진 셈이다. 피렌체 우피치 박물관에는 다빈치의 작품 중 가장 오래된 1473년의 데생이 걸려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빈치는 보티첼리, 크레디, 페루지노 등 베로키오 산하의 수많은 제자들 중 한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베로키오의 도제로 있는 동안 다빈치는 그림을 그리는 일에만 매달리지 않고 건축, 도형 연구, 광학론, 원근법, 기하학, 자연과학, 음악 등을 폭넓게 익혔다. 이때 배운 원근법의 결실이 바로 1495∼1497년에 다빈치가 완성한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최후의 만찬’이다.15분에 단 25명의 관람객에게만 공개되는 이 불후의 거작은 성당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울 만큼 크고 장엄했다.‘최후의 만찬’ 전문 가이드인 실비아 솜바루는 “작품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미술사학자, 구조학자, 역사학자, 광학자 등 각 분야에 걸쳐 있다.”면서 “지금도 이 그림 연구로 연간 수십편의 논문이 쏟아져 나올 정도”라고 밝혔다. 성당 길 건너편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립 과학기술박물관이 있다. 온통 과학에 관한 내용으로 꾸며진 박물관 전시물 중 다빈치가 고안한 각종 기계들이 단연 인기다. 피렌체 시내에도 다빈치의 기계를 실물 크기로 재구성해 전시·체험할 수 있도록 한 두 곳의 박물관이 있다. 두 도시의 대형 서점에는 다빈치 관련 서적들이 별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탄생 555주년을 맞았던 지난해에는 도시 전역이 다빈치 기념물로 꾸며지기도 했다. 빈치시의 다빈치 박물관장 알레산드로 베조시는 “다빈치의 지식은 대부분 직접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실험을 통해 검증하는 단계를 거쳤다.”고 소개했다. 이어 “다빈치가 ‘단순한 천재’였다면 그저 동경의 대상이자 신화적인 존재에 머물렀겠지만, 다빈치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각고의 노력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닮고 싶은 존재’ ‘배워야 할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kitsch@seoul.co.kr ■다빈치는 어떻게 만능학자가 되었을까 호기심·증명정신 겸비 ‘노력하는 천재’ 해부학자, 건축가, 식물학자, 도시계획가, 의상·무대디자이너, 요리사, 해학가, 엔지니어, 발명가, 지리학자, 지질학자, 수학자, 군사과학자, 음악가, 화가, 철학자, 물리학자, 이야기꾼…. 다빈치는 인간이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졌고, 여러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했던 인물이다. 이탈리아 전역은 물론, 프랑스와 영국에도 다빈치 박물관이 있고 대부분 진품을 최소한 한 가지 이상 소장하고 있다. 평생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얼마나 방대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탄생한지 55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다빈치는 지식인들이 꿈꾸는 ‘만능인’(Universal Man)의 표상으로 꼽힌다.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가 주창한 지능의 다양성에 대한 이론에 따르면 천재는 논리·수학(스티븐 호킹, 아이작 뉴턴), 언어(윌리엄 셰익스피어, 에밀리 디킨슨), 공간·기술(미켈란젤로), 음악(모차르트), 신체·운동감각(무하마드 알리), 사회적 대인관계(엘리자베스1세, 마하트마 간디), 자기 인식적 대인관계(틱낫한, 테레사 수녀) 등 일곱가지 척도 중 하나에서 특이성을 보인다. 그러나 다빈치는 일곱가지 분야에서 모두 천재성을 나타냈다. 고도로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현대 사회에서 다빈치가 다시 각광받는 것은 그가 거의 모든 학문에서 특이성을 보인 이유가 단순한 천재여서가 아니었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노력하는 천재’였고,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실용주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가 해부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좀 더 정확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고, 물의 과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좀 더 좋은 다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유체역학에 대한 연구는 비행기 설계로 이어졌고, 노년에는 이 모든 기계의 원리를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근원을 찾기 위해 골몰했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다빈치의 사고방식을 이해함으로써 교육법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마이클 겔브가 쓴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생각하기’는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교육서적 목록에 올라 있다. 겔브는 “다빈치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다재다능하고 균형잡힌 인간, 예술과 과학 양쪽을 모두 편안하게 포용할 수 있는 인간을 이상형으로 삼았다.”면서 “정보의 홍수 속에서 폭넓은 지식을 쌓아야 하는 현대인에게 다빈치식 사고는 최적의 모델”이라고 밝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21세기 유랑민의 질곡 외면할 수 없었죠”

    “21세기 유랑민의 질곡 외면할 수 없었죠”

    지금 이 땅에 정착한 새터민이나 중국 또는 제3국을 유랑하는 탈북자들이나 모두 저마다 절절한 사연을 갖고 있다. 어떤 이는 배고픔을 못견뎌, 또 어떤 이는 가족의 약을 구하려고, 또 다른 이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며 목숨을 건 탈북을 감행했고, 지금도 강가에서 탈북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탈북 이후는 또 어떤가. 중국 공안(경찰)과의 숨바꼭질, 몽골 등 제3국에서의 기약없는 유랑,‘기획입국’ 브로커들의 농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에 도착해도 정착은 지난한 길이다. 그들을 온전한 ‘시민’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회에서 그들은 여전히 ‘이방인’일 따름이다. 이제는 한국의 시민이 되리라 기대했던 그들에게 주민번호 뒷자리가 125(남),225(여)로 시작되는 동일코드를 붙여 “이 사람은 탈북자입니다.”라고 선을 긋는다. ●단편 7개 연작으로 새터민의 삶을 좇다 “진정으로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생각한다면 21세기 유랑민들인 이들에게 삶의 온전성을 되돌려줘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인권, 탈북자인권은 인간안보의 차원에서 접근해야지 정치적으로 악용되어선 안 됩니다.‘가짜 인권놀음’을 멈춰야 합니다.” 탈북 여성의 고달픈 여정을 그린 연작소설 ‘찔레꽃’(창비 펴냄)을 출간한 소설가 정도상(48)씨는 17일 “모어(母語)공동체의 온전한 회복이 분단체제 작가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라면서 “작가는 모어공동체가 갈등, 긴장, 유랑으로부터 벗어나 평화롭게 번영하는 것을 지향해야 하고, 이번 작품도 그런 의도에서 구상했다.”고 말했다. ‘겨울, 압록강’‘함흥·2001·안개’‘늪지’‘풍풍우우’‘소소, 눈사람 되다’‘얼룩말’‘찔레꽃’ 등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인신매매단에 속아 중국으로 넘어간 북한 여성 ‘충심’이 신분을 속인 채 중국 땅을 헤매다 몽골을 거쳐 한국에 정착하는 궤적을 담고 있다. 인신매매단에 속아 조선족 남성과 강제결혼하고, 지옥같은 삶에서 탈출해 안마사로 일하다 기획입국 브로커인 선교사를 만나 수백만원을 주고 몽골을 거쳐 한국 땅을 밟지만 충심은 또 다시 ‘주변’에 머물 뿐이다.2차까지 나가야 하는 노래방 도우미 외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무리 먼 길을 돌고 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최종목적지는 결국 가족이 있는 집이라고 생각하니 왈칵 울음이 터져나오려 했다.”(132쪽,‘풍풍우우’ 가운데) 작가는 5년전 탈북 소년의 유랑과 죽음을 담은 ‘꽃제비’라는 제목의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고 작품을 쓰기로 작정했다고 한다.‘얼룩말’이라는 제목은 아들이 지어줬다. ●하나의 삶에 짜깁기한 네 여성의 ‘크로싱´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 상임이사로 남북 실무교류를 책임지고 있는 처지여서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탈북자 문제가 이슈가 됐는데도 작가들이 작품으로 다루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고, 오랫동안 자신의 어깨를 짓눌러온 ‘의식의 덩어리’도 이번 기회에 내려놓고 싶었다. 작가는 “남과 북의 독자들이나 작가들이 진정성을 갖고 읽어 우리 민족의 고달픈 유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면서 “비록 남루할지언정 가족과 집은 그 자체가 삶의 온전성이기 때문에 당연히 보호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작가는 중국 선양에서 만난 북한출신 안마사 등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2006년 봄 ‘소소, 눈사람 되다’를 발표한 이후 연작소설 형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주인공 ‘충심’은 한 인물이 아니라 작가가 만난 함흥, 신의주, 무산, 남양 출신 탈북여성 4명의 사연을 복합적으로 녹여 만들어냈다. 작가는 “앞으로 청소년 성장소설이나 노동자들을 계급적 존재가 아닌 욕망의 근원으로 해부한 작품을 쓰고 싶다.”면서 “민중들의 ‘사소한 이야기’를 80년대식 리얼리즘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도 실험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 팀장

    취재, 글 이미현 기자 ┃ 사진 한영희 월드비전 긴급구호 팀장 한비야 씨(51세)를 생각하면 ‘우주소년 짱가’가 떠오른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엄청난 기운이 틀림없이 틀림없이 생겨나니 말이다. 미얀마에 싸이클론이 강타해 10만 명이 죽고 250만의 이재민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올린 사람도 한비야 팀장이었다. 그런데 그가 아직 한국에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났을 때 처음 꺼낸 말도 “제가 원래는 미얀마에 있어야 하잖아요”였다. 내가 뻔뻔해지는 이유 긴급구호는 초기 2주일이 관건이다. 구호요원은 재난 발생 48시간 내에 구호현장에 도착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미얀마 군부가 입국 비자를 내주지 않아 그는 미얀마행 가방을 싸놓은 지 한 달이 넘도록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썩은 시신을 수습하지 않아 아직 물 위에 떠다니고,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은 그 물에 떠내려 온 돼지, 닭들을 잡아서 먹고….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인한 2차 피해가 더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월드비전 미얀마 지부가 있다는 거예요. 전문 구호요원이 갈 수는 없지만, 돈을 보내면 현지 직원들이 물건을 사서 이재민들에게 줄 수 있어요.” 그를 더욱 안타깝게 하는 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깨끗한 물과 비누만 있으면 250만 명 중 절반을 살릴 수 있어요. 물 10리터 정수하는 데 드는 비용이 얼만지 아세요? 10원이에요, 10원. 인간이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사는 데 필요한 물의 양이 하루에 20리터래요. 20리터면 20원.” 정수약 천 원어치면 50명, 만 원어치면 500명의 하루를 책임질 수 있는 것이다. “ARS로 천 원, 2천 원 보내는 게 뭐 그리 큰돈일까 하잖아요. 그런데 현장에서는 그게 바로 목숨과 이어져요. 긴급구호 현장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아마 저도 몰랐을 거예요.” 남에게 웬만해서는 아쉬운 소리를 한 적 없는 그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돈 달라는 얘기를 뻔뻔하게 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TV에서 국제 곡물 값이 올랐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한비야 팀장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생계의 위협을 넘어 생명의 위협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곡물가격 상승으로 인한 식량위기는 전 세계 1억 명 이상을 굶주림으로 내모는 ‘소리 없는 쓰나미’라 불리고 있다. 작년 한 해 월드비전에서 식량배분 사업을 한 사람이 650만 명. 하지만 올해는 작년과 같은 기금을 모은다 해도 150만 명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하루에 한 끼 겨우 먹는 아이가 그것조차 못 먹게 되는 상황을 보게 될지 몰라요. 그러니 얼마나 급하고 중한 일이에요.” 한층 높아지고 빨라진 그의 목소리에 절박함이 묻어났다. (인터뷰 다음 날 그는 곡물 값 상승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처방안을 논의하는 국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케냐로 떠났다.) 담장 밖 세상으로 눈을 돌려요 최근 빈곤의 세계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의 불균등 분배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현장에서 일하며 그 심각성을 몸으로 느끼고 있는 한비야 팀장은 희망의 싹을 ‘세계시민의식’에서 찾고 있었다. 그에게 세계시민의식이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다. 미얀마에서 죽어가고 있는 그 아이들이 우리의 아들딸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나라뿐 아니라 우리를 필요로 하는 나라까지 머릿속에 넣고 이들과 함께 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그의 생각에 힘을 실어준 것은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출간 이후 만났던 수많은 청소년들이다. “중고등학생들이 길을 가다 저를 만나면 급한 데 쓰라고 돈을 쥐어줘요. 세계시민의식이라고 이름 붙이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에겐 이미 세계를 무대로 관심과 사랑을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거예요.” 이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던 그는 공익광고 출연료로 받은 1억 원을 몽땅 털어 세계시민학교 ‘지도밖행군단’을 세웠다. 작년 1, 2기 출범에 이어 오는 7월 3기 출범을 앞두고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 아이들이 담장 위로 올라가 담장 밖 세상으로 눈을 돌리게 하는 거예요. 꼭 담장 밖 세상으로 나가지 않아도 괜찮아요. 선택은 그 친구들이 하는 거죠. 다만 담장 밖 세상이 어떤지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비야 팀장을 만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대체 저런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리고 또 한 가지. “저렇게 마음이 여린 사람이 어떻게 다른 이들의 아픔을 감당하는 걸까.” 그는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느라 천막 뒤에서 얼마나 이를 악물었는지 모른단다. 그럼에도 그가 여전히 씩씩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성서에서는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라고 하잖아요.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열릴 때까지 두드려라. 그게 벽이 아니라 문이면 열릴 것이라고. 안 되는 일이라고 포기하기 전에 과연 끝까지 두드렸는지 생각해보라고.” 후원 전화 02-784-2004 2008년 7월
  • 도난된 400년 전 셰익스피어 희곡집 회수

    도난된 400년 전 셰익스피어 희곡집 회수

    영국에서 10년 전 도난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00년 전 희곡집의 첫 ‘폴리오판’이 경찰에 회수됐다. 영국 북동부 더럼시(市) 경찰은 1623년 출간된 셰익스피어 희곡집 첫 폴리오판을 훔친 혐의로 51세 남성을 체포했다고 11일 밝혔다. 2절지 크기의 이 희곡집은 영어로 된 출판물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평가되는 작품 중 하나로, 수백만달러의 가치가 있다. 첫 폴리오판이란 셰익스피어의 36개 희곡을 담아 1623년 출간된 폴리오 판형본을 말하는 것으로, 셰익스피어 사후 7년 만에 친구인 존 헤밍스와 헨리 콘델에 의해 출간됐다. 당시 첫 폴리오판은 모두 750부가 인쇄됐으며 이 가운데 3분의 1 가량이 현존하지만 완전한 형태로 보존된 것은 40부에 불과하다. 완전본은 무려 1천500만파운드(약 300억원)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이 폴리오판은 1998년 더럼대 도서관에서 전시되던 중 7세기 서적 및 원고들과 함께 도난됐다. 더럼대는 당시 이 같은 고서 장물은 합법적 구매자들에게 팔아넘길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으며, 이후 10년 간 경찰은 이 작품들의 행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달 16일 한 남자가 미국 워싱턴의 폴저 셰익스피어 도서관에 자신이 소장한 첫 폴리오판의 진본 여부 감식을 요청하면서 오랜 기간 미궁에 빠졌던 도난사건에 해결의 실마리가 잡혔다. 이 남자는 자신이 국제사업가이며 쿠바에서 이 폴리오판을 구입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도서관 사서들은 멀쩡한 외형에도 불구, 책의 끝 부분과 첫 몇 페이지가 손실된 것을 수상하게 여겼다. 도서관은 책의 진위 여부 확인을 위해 이 남성에게 책을 임시로 맡아두겠다고 했고, 뒤이은 조사를 통해 이 책이 더럼대 소장본임을 확인했다. 이어 미 연방수사국(FBI)이 이 남성의 소재 파악에 나섰고, 결국 공조 수사 끝에 영국 경찰은 더럼 인근의 워싱턴 마을에 살고 있는 용의자를 체포할 수 있었다. 되찾은 첫 폴리오판은 현재 미 워싱턴의 폴저 도서관에 보관 중이다. 미국 작가인 빌 브라이슨은 “이 책은 영국의 뛰어난 문학적 유산 가운데 하나”라며 “서적이 원 소재지로 돌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행렬에 기꺼이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럼대는 이번 용의자의 체포로, 셰익스피어 희곡집 첫 폴리오판과 함께 도난된 ‘캔터베리 이야기’의 저자인 제프리 초서의 시가 담긴 15세기 서류와 8세기 초 영어 서사시인 ‘베이오울프’(Beowulf) 1815년판, 그외 1612년판 지도와 시집 등도 함께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진=Durham University 연합뉴스@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20세기 지성’ 손택의 마지막 이야기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 ‘뉴욕 지성계의 여왕’ ‘20세기 미국의 지성’…. 미국 최고의 에세이 작가이자 소설가이며 예술평론가인 수전 손택(1933∼2004)에게 붙는 수식어는 이처럼 끝이 없다. 손택은 1964년 평론집 ‘해석에 반대한다’를 통해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과 세계에 대해 가하는 복수”라며 그동안의 서구미학 전통을 통렬하게 비판해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 뒤 손택은 극작가,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반전운동가 등으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변신시키며 ‘예술에 온 정신이 팔린 심미가’ ‘열렬한 실천가’로 불려 왔다.1988년에는 미국펜클럽 회장 자격으로 서울을 방문, 한국정부에 구속 문인의 석방을 촉구했고,93년에는 전쟁 중인 사라예보에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 전세계인들의 반전 의식을 일깨웠다. 2002년 9월 9·11테러 1주년을 맞이해 손택은 ‘진정한 전투와 공허한 은유’란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미국 대테러전쟁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비판해 또 한번 행동하는 지성의 면모를 보여 줬다. 손택은 2003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세계 사상수호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독일출판협회 평화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12월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손택의 아들인 저술가 데이비드 리프는 어머니의 소원대로 유해를 사르트르, 보들레르 등이 묻혀 있는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 공동묘지에 안장했다. 손택의 말년을 엿볼 수 있는 책 두 권이 동시에 출간됐다. 손택의 마지막 소설이자 2000년 전미도서상 수상작인 ‘인 아메리카’(임옥희 옮김, 이후 펴냄)와 리프가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들을 기록한 ‘어머니의 죽음’(이민아 옮김, 이후 펴냄). 지병인 자궁육종 치료까지 뒤로 미루고 손택이 심혈을 기울여 써내려간 소설 ‘인 아메리카’는 19세기 후반 미국으로 이민 온 폴란드 국민 여배우 헬레나 모드제예브스카를 모델로 가상의 주인공을 만들어내 미국 서부에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려 했던 그들의 시도를 그리고 있다. 다양한 형식 실험이 돋보인다.1만 6800원. ‘어머니의 죽음’에는 손택이 암 판정을 받은 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9개월간의 모습이 아들 리프의 담담한 회고 형식으로 그려져 있다.9500원.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남·북한서 많은 임무 수행했죠”

    북핵 위기와 맞물려 2년 전 미국에서 첫 출간됐을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던 장편소설 ‘평양의 이방인’(황금가지 펴냄, 원제 A Corpse in the Koryo)의 작가 제임스 처치(가명)가 한국어판 출간에 맞춰 방한,10일 기자들과 만났다. 서방의 베테랑 정보요원 출신이라는 점 외엔 신상 정보가 모두 베일에 싸여 있는 작가는 “국가가 행한 많은 과오로 인해 북한은 오랜 시간 미국과 한국 양쪽에서 극단적인 평가와 오해를 받아 왔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가장 큰 피해자인 북한 주민들에게 바친다.”고 말했다. ‘평양의 이방인’은 평양 고려호텔에서 발견된 외국인 변사체에 대한 북한 수사관 ‘오’의 수사 과정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 북핵이나 이념을 다룬 정치첩보 소설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평양, 신의주, 만포, 강계 등 북한의 많은 지역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등 북한 사정에 대한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묘사가 많아 출간 당시부터 작가가 이같은 지식을 얻게 된 배경에 관심이 집중됐었다. 이에 대해 작가는 “한국과 북한은 내가 많은 임무를 수행한 나라들”이라면서 “게다가 배경이 된 북한의 주요도시들은 여러 차례 가본 일이 있어 최대한 북한 실정에 근거해 사실적인 묘사가 되도록 애썼다.”고 말했다. 작가는 수사관 ‘오’가 등장하는 ‘평양의 이방인’ 시리즈를 모두 네 편으로 계획, 이미 세 편을 출간했다. ‘평양의 이방인’은 지금까지 일본, 독일, 프랑스, 그리스 등지에서 번역출간됐다. 작가는 “다른 어떤 나라 독자들보다 한국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면서 “오랜 세월 각별한 추억을 만든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기자회견 내내 개별적인 사진촬영을 거부하는 한편 북핵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시작부터 질문 자체를 받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책꽂이]

    ●여우소녀(노라 옥자 켈러 지음, 이선주 옮김, 솔 펴냄) 독일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하와이에서 자란 한국계 미국인 저자의 두번째 장편소설. 첫 작품 ‘종군위안부’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시각에서 전쟁의 비극을 조명했다.1960∼70년대 한국의 미군 기지촌에서 자란 두 소녀의 성장이야기.2002년 발표된 이후 영어로 쓰인 전세계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시상하는 영국 문학상 ‘오렌지상’의 최종후보로도 올랐었다. 원제는 Fox Girl.9500원.●책 읽어주는 여자(레몽 장 지음, 김화영 옮김, 세계사 펴냄) 1990년 처음 소개된 뒤 이번에 번역을 새롭게 해 재출간했다. 책을 읽는 사람과 그것을 듣는 사람, 책 속의 이야기와 책 밖의 현실을 아우르면서 독서 행위의 특별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불문학자 김화영씨가 스승인 저자를 위해 꼼꼼하게 재수정했다. 말미에는 프랑스 문학에 관한 사제간의 대화도 실려 있다.1만 1000원.●무중력증후군(윤고은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제1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달이 여러 개로 분화한다는 엉뚱하고 대담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달이 6개까지 분화하는 과정과 함께 지구에서 일어나는 소동을 그리고 있다. 심사위원들로부터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군중의 소외감을 은유와 농담으로 표현하며 소외의 무거움은 가볍게, 상처의 잔혹함은 경쾌하게 그려나간다.”는 평을 받았다.1만원.●꿈이었을까(김용희 엮음, 생각의나무 펴냄) 젊은 문학평론가 김용희가 50편의 시를 가려 뽑아 자신만의 섬세한 해설을 덧붙였다. 신달자, 천양희, 안도현, 황학주, 김선우, 정호승, 김경주 등 지금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주요 시인들의 작품이 고루 포함돼 있다.‘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등 다섯 계절로 나눠 그에 해당하는 시를 소개하고, 여러가지 해석의 스펙트럼 중 하나를 골라 감상을 써내려 갔다.1만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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