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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영의 의(醫)심전심] 선택의 고통

    [김선영의 의(醫)심전심] 선택의 고통

    최근 출간된 이해인 수녀님의 대담집 ‘이해인의 말’에는 수녀님이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의사가 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항암화학치료, 방사선치료, 수술 중 어떤 치료를 먼저 하시겠느냐고, 생존율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우리 진료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위중하고 어려운 병일수록 효과도 안전성도 좋은 단 하나의 치료방법은 없다. 여러 치료방법은 각자의 장단점이 있다. 효과가 좋으면 합병증 위험이 같이 높아지기도 하고, 또 그 효과라는 것도 항상 모든 이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러니 치료 자체뿐만 아니라 내가 그 치료에 맞는지를 따져 보고 결정해야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직장암 치료라면 방사선치료를 먼저 하는 게 재발률을 더 낮출 수 있지만, 만성설사를 앓게 될 확률이 수술만 하는 경우에 비해 조금 더 올라간다. 보통은 완치율을 가장 먼저 고려해서 결정하지만, 환자 개개인에게는 늘 난감한 선택이 된다. 재발률을 5% 낮추기 위해 더 높은 합병증 확률을 감수해야 할까? 만약 화장실을 자주 가야 해서 활동이 어려워지거나, 일자리를 잃는다면? 하지만 방사선치료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합병증이 없는 것도 아니요, 만약 수술만 했다가 재발한다면? 사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할 수 있을 만큼 정신을 붙잡고 있기도 힘들다.  의사이자 작가인 아툴 가완디는 그의 초창기 저서인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에서 의료법학자인 칼 스나이더의 말을 빌려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한다는 것은 결정의 부담을 환자에게 미루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자기 자신을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환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 어떤 미래를 그리는지에 따라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가 완치율을 높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재발위험이 높아지더라도 치료로 인한 고생을 겪지 않고 쉬는 수개월이 더 소중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이는 재발의 위험이 견딜 수 없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워서 힘들더라도 할 수 있는 치료를 다 해 보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아는 것은 늘 어렵고, 위중한 병을 진단받은 위기 상황에서는 더더욱 어렵다. 의사 역시 나도 모르는 내 취향을 파악해서 알려주는 알고리즘 같은 존재는 아니어서, 그가 가장 정확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치료 결정을 도와주는 인공지능 솔루션에 기대를 걸고는 하지만, 인공지능이 정량화된 생존율과 삶의 질을 기준으로 한 결정은 도와줄 수 있어도 과연 내 마음과 가치관까지 들여다보고 결정해 줄 수 있을까. 최적의 결정은 인공지능에게 모든 정보를 제공해 판단을 일임함으로써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질병과 치료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신뢰할 수 있는 의료진과 나누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가완디는 폐렴으로 호흡곤란을 겪던 자신의 자녀에게 인공호흡기를 달지, 조금 더 산소요법을 하며 지켜볼지를 결정해야 했다. 그는 각 방법의 장단점을 알고 있었지만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는 중환자실 의료진을 믿었고 그들에게 결정을 맡겼다. 이해인 수녀님은 “지금이라도 선생님의 마음 안에서 수술을 먼저 하고 싶으면 수술을 하시고 방사선치료를 먼저 하고 싶으면 방사선치료를 하세요. 결과가 안 좋게 나오더라도 저는 원망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환자가 의사를 믿고 결정을 맡기는 것은 선택의 고통을 같이 짊어져 달라는 요청이며 불안과 의심을 내려놓을 때 가능하다. 최선의 선택을 돕되 가끔은 그 엄중한 선택의 부담마저도 나누어야 하는 것이 의사의 일이지만, 그래서 주어지는 신뢰에 늘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못다 한 ‘임을 위한 행진’… 저 하늘에서 계속되리라

    못다 한 ‘임을 위한 행진’… 저 하늘에서 계속되리라

    한일협정 반대로 민주화 운동 전면 나서YMCA 위장결혼 사건 등 수차례 옥고백원담 “父 마지막 글귀는 ‘노나메기’”“김미숙·김진숙 힘내라” 병상 메시지도 “그 돈 이웃 도와야” 유지… 靑조화 거부전국 16곳 분향소… 19일 대학로 노제“내 이야기를 듣고 발을 구르던 젊은이들은 지금 다 뭘 하는지. 그러나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슴에 심어 주는 것 자체가 성공의 역사라고 믿는 것, 그게 진보사상이고 이야기예요.”(2013년 4월 22일자 서울신문 인터뷰) 백기완(88)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새벽 폐렴 투병 끝에 별세했다. 평생 민중·민족·민주 운동의 불쌈꾼(혁명가)이자 큰 어른으로 살아온 그는 민중의 장쾌한 수호자 ‘장산곶매’가 돼 하늘로 떠났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숙씨와 딸 원담(성공회대 교수)·미담(화가)·현담(출판사), 아들 일(울산과학대 교수)씨가 있다. 90년 가까운 그의 삶엔 외세의 압제와 분단, 군부독재 등 질곡의 현대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그는 못 배우고 못 가진, 그리하여 배우고 가진 자들에게 압제받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앞서서 나가는’ 삶을 선택했다.백 소장은 1933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정규교육이라고는 국민학교 4학년까지 다닌 게 전부인 데다 분단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비극을 겪었지만 독학으로 통일 문제와 사회 모순에 대한 인식을 키워 나갔다. 6·25전쟁 중 해외 유학을 권유받았으나 ‘조국을 두고 나 혼자만 유학을 갈 수 없다’며 거절했다. 1964년 함석헌·계훈제 등과 함께 한일협정 반대운동을 벌이며 민주화 운동의 전면에 나섰다. 투옥과 고문은 일상이 됐다. 장준하 등과 ‘유신헌법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 운동’을 벌였다가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됐다. 1979년엔 ‘YMCA 위장결혼 사건’을 주도했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한 뒤 계엄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당시 옥중에서 썼던 시 ‘묏비나리’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원작이 됐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치러진 13대 대선에서는 김영삼·김대중 후보 단일화를 압박하기 위해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직전에 사퇴했다. 1992년 14대 대선에서는 노동자 민중후보로 추대됐지만 현실 정치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는 인생의 막바지까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삶을 살았다. 2014년 세월호 진상규명 집회,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등의 현장에서 맨 앞자리를 지켰다. 송경동 시인은 “백 선생이 병상에서 쓰신 마지막 글귀는 ‘김미숙 어머니 힘내라’, ‘김진숙 힘내라’였다”고 전했다. 백원담 교수는 “아버지가 마지막 남긴 글귀는 ‘노나메기’였다. 너도나도 일하되 모두가 올바로 잘사는 세상이라는 뜻”이라고 밝혔다.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선다’는 평소 지론답게 여러 권의 수필집과 시집을 냈다. 우리말 사랑도 남달랐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 ‘장산곶매 이야기’, ‘젊은 날’, ‘버선발 이야기’ 등을 출간했다.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리고 장례는 오일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전국 16개 지역에 분향소 및 온라인 추모관(baekgiwan.net)도 운영한다. 발인일인 19일 오후 종로구 대학로에서 노제가 진행된다. 장례위원회는 “선생님의 뜻에 따라 조화를 받지 않는다. 선생님은 (생전) 조화를 보낼 값으로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으로부터도 (문재인 대통령 명의의) 조화를 보내겠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거절했다”고 덧붙였다. 여야는 모두 고인을 애도했다. 더불어민주당 신영대 대변인은 “영원한 민중의 벗, 백기완 선생님의 정신은 우리 곁에 남아 영원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김은혜 대변인은 “우리가 누리는 평등한 세상은 고인의 덕분”이라 했다. 정의당 정호진 대변인은 “사회적 약자들을 역사상 처음으로 정치의 주인으로 호명했다”고 추도했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탄소제로 실패 땐 2100년 사망률 코로나 5배 ‘기후재앙’

    탄소제로 실패 땐 2100년 사망률 코로나 5배 ‘기후재앙’

    “이번 세기 중반까지 기후변화는 코로나19만큼 치명적일 겁니다. 2100년이 되면 5배나 더 큰 사망률을 기록하게 될 거예요.”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이자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 공동 이사장 빌 게이츠가 경고하는 우리의 암울한 미래상이다. 그는 16일(한국시간) 전 세계 동시 출간하는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위·김영사)에서 기후변화가 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코로나19 팬데믹이 10년마다 발생하는 것만큼 심각할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 게이츠는 2009년 재단을 설립하며 “깨끗하고 값싼 에너지를 찾아야 한다”고 목표를 제시했다. 에너지는 불평등과 환경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단이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다. 이번 책은 ‘미래로 가는 길’(1995)과 ‘생각의 속도’(1999)에 이은 세 번째 책으로, 재단의 지난 연구를 담았다. 그는 우리가 매년 510억t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연구 결과를 설명했다. 510억t은 이산화탄소 환산 톤(CO₂e·온실가스를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환산한 값) 방식에 따른 것이다. 그러면서 이를 코로나19의 위협과 비교했다. 코로나19가 지속되면 매년 10만명당 14명이 사망하는데, 지금처럼 탄소배출량이 계속 늘어나면 21세기 중반쯤 코로나19와 사망률이 같아지고 21세기 말에는 10만명당 75명의 사망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구 온도 변화도 우려한다. 산업혁명 시기 이전보다 지구의 온도가 최소 1℃ 상승했는데, 지금대로 간다면 21세기 중반엔 1.5~3℃, 21세기 말에는 4~8℃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기후변화가 불러올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면 결국 온실가스 배출 제로(0)를 달성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분야를 5개로 나눠 ‘그린 프리미엄’(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활동했을 때 추가로 드는 비용)을 낮출 수 있는 혁신이 가능한지 살핀다. 5개 분야는 제조(31%), 전력생산(27%), 동식물 사육·재배(19%), 교통·운송(16%), 냉난방(7%)이다. 저자는 탄소를 발생시키지 않고 전기를 만드는 방법으로 핵분열과 핵융합, 해상풍력, 지열을 거론한다. 핵분열 방식 발전은 물론 한국 등이 참가해 공동개발 중인 핵융합 발전, 평소 남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쓰는 그리드 스토리지 등이다. 특히 핵분열을 사용하는 원자력 발전에 관해 대규모 생산이 가능하며 유일하게 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에너지원이라는 이유로 높게 평가했다. 물론 구소련의 체르노빌, 일본의 후쿠시마 사고를 예로 들며 원전의 위험성도 인정한다. 그러면서 “자동차의 문제점을 개선한 것처럼 원전 문제를 하나씩 분석한 다음 혁신으로 해결하며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전력 생산을 급격하게 줄일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 문제점을 해결해 가면서 대안도 만들어 가자는 뜻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추진하려면 결국 정부의 노력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고 은행이나 투자자가 원하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아이디어는 정부의 정책 지원과 투자가 있어야 온전하게 개발될 수 있다는 이유다. 부유한 나라는 2050년까지, 중간소득 국가는 2050년 직후 가능한 한 빠르게 제로 탄소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백종우의 마음의 의학] 잊을 수 없는 것과 잊어서는 안 되는 것

    [백종우의 마음의 의학] 잊을 수 없는 것과 잊어서는 안 되는 것

    20년 전 9월 11일 여객기 2대가 미국 뉴욕에 있는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했다. 그리고 10년 뒤 그 자리에는 ‘9ㆍ11 메모리얼 뮤지엄´이 개관했다. 입구에 있는 거대한 인공폭포는 유가족의 눈물을 상징한다. 당시 밖으로 나갈 수 있었던 유일한 계단은 생존을 위한 계단이라는 이름으로 추모객의 에스컬레이터 옆에 서 있다. 계단 앞 뉴욕의 하늘을 상징하는 거대한 벽에 ‘시간의 흐름이 결코 당신에 대한 기억을 지우지 못하리라’라는 경구가 추모객을 맞이한다. 전시관에는 쓰러지지 않은 유일한 기둥과 깨지지 않은 유일한 창문 등이 희망을 상징하며 서 있다. 희생자 2983명 한 명 한 명의 생전 사진과 글이 전시된 추모공간 한편에는 눈물 흘리는 사람을 위한 휴지와 마음을 진정할 공간이 마련돼 있다. 미국이 국가적 재난에 어떻게 대처하고 공동체를 복원하는지 보여 주는 전시장과 같다. 2011년은 구조에 참여했던 경관 자드로가가 폐질환으로 사망한 해였다. 2015년 미국 의회는 자드로가법을 통과시켜 구조요원, 자원봉사자들을 비롯한 피해자 7만명에게 2090년까지 무상으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했다. 2년 전 9ㆍ11로 남편을 잃었던 알리사 토레즈를 유가족단체 사무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만화로 출간하기도 했다. 정신과 치료를 평생 비용 없이 받을 수 있어 도움이 됐다고 한다. 치료는 보건부가 맡아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경제적 보상은 법무부가 진행하는 이원화된 시스템을 이야기해 주었다. 지금 복수보다는 평화를 위해 애쓰는 유가족단체에서 일하며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었다. 근현대사의 파도 속에서 우리는 많은 비극을 겪었고 많은 이들을 떠나 보내야 했다. 1980년 광주, 성수대교나 대구지하철, 세월호와 같은 안전사고, 가습기살균제와 같은 환경재난, 거기다 최전선에서 복무하던 군인들을 잃은 천안함도 있었다. 소중한 생명을 잃는 일을 다시는 겪지 않겠다는 사회의 의지를 시스템으로 갖춰 가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최소한 그 생존자와 유가족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연구는 우리가 무언가 쉽게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되묻게 한다. 김승섭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2018년 천안함 생존자의 58%가 자살을 생각했고 29%는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2019년 시행된 가습기살균제 생존자 연구에서 자살 생각은 49%, 자살 시도가 11%에 이르렀다. 세월호 참사 후 국가트라우마센터가 설립됐다고 만족하기엔 안타까운 사연이 우리 주위에 너무나 많다. 기억하고 추모하고 그들의 죽음을 잊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것. 이것이 공동체가 재난을 극복하는 길이다. 9ㆍ11테러로 붕괴 직전의 세계무역센터 안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전화로 남긴 마지막 말은 ‘사랑해’였다고 한다. 지금 재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전할 말은 무엇인가?
  •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상처받은 시인의 아름다움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상처받은 시인의 아름다움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인 1987년 봄 27세의 청년 시인이 장편 서사시 ‘한라산’을 한 잡지에 발표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반공주의와 역사적 무지를 강타한 이 충격적 시편은 당시까지 사회적 금기였던 제주 4·3의 참담한 비극을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한라산’은 비통한 현대사에 대한 뜨거운 분노와 격정을 담은 그야말로 불화살 같은 시편이었다. 그 시가 시인의 운명 그 자체였다. 청년 시인은 도피 끝에 결국 그해 11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다. 1988년 가을에 석방된 그는 기나긴 세월 동안 이념적 낙인과 세상의 편견에 노출된 고난의 운명을 감수했다. 진보적 문인조차 시인과 거리를 두는 막막하고 고립된 시기가 있었는가 하면 불과 몇 년 전에는 골목길 백색테러로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도 했다. 이 기구한 운명의 시인은 올해로 갑년을 넘기며 어언 22년 만에 새로운 시집을 펴냈다. 최근 ‘악의 평범성’을 펴낸 이산하 시인 얘기다. 설 연휴 동안 그의 새로운 시집과 작년 가을에 출간된 산문집 ‘생은 아물지 않는다’를 읽으며 보냈다. 시편마다 문장마다 올올이 박혀 있는 시인의 선연한 상처, 깊고 쓸쓸한 환멸, 사회의 그늘을 응시하는 투철한 시선, 분노와 회한이 어우러진 시어를 통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한마디로 가슴 저미는 시집이다. 시인은 “가을 단풍처럼 질 것을 알면서도/거품처럼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저항과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숙명을 묘사한다. 그 길은 시인 자신이 스스로 선택했던 도정(道程)이기도 했다. 하지만 슬픔과 모순을 응시하는 단단한 아름다움으로 채워진 시집을 읽다 보면 시인의 시선이 단지 좁은 정치와 이념의 세계에 유폐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시인의 말’에서 이산하 시인은 “내 시집에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하나도 없다”고 적었다. 대신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상처’다. ‘한라산’ 이후 전개된 그의 인생 여정은 상처와 함께한 시간이었을 테다. 감옥행, 세상의 편견, 고문의 악몽…. 시인은 “이 세상은 어느 곳이나 인디언의 구슬 같은 상처가 있다”며 “상처 있는 것이 상처 없는 것보다/오히려 더 아름답다는 믿음”을 피력한다. 시인은 노래한다. “꽃이 나무의 상처라면/열매는 그 상처가 아문 생의 유일한 빈틈이다”(‘빈틈’) 나는 시인 이산하만큼 한국 사회의 이념적·역사적 금기에 정면으로 도전해 스스로 사회적 상처가 된 존재를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이번 시집에는 시인 자신의 상처와 함께 한국 현대사의 상흔이 켜켜이 배어 있다. 시인은 운동권의 변절과 출세, 비정규직 차별, 촛불의 한계 등 이 시대의 중대한 사안을 응시하고 감옥에서 만난 사형수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희생자들을 보듬는다. 또한 시인은 “유대인 학살을 총지휘한 나치 친위대장 하인리히 히믈러”가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채식주의자”였으며 “가난하고 소박한 생을 최고의 삶으로 꿈”꿨다는 너무나 역설적인 사실을 일깨운다. 더불어 세월호 희생자 등 우리 사회 약자와 소수자를 극단적 언어로 조롱하는 이들이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통렬한 각성을 통해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창안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명제를 다시금 환기한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넘치는 시대다. 점점 ‘내 생각이 존중받지 못한다’거나 ‘내가 사회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상처가 보편적인 정념이 돼 가고 있다. 어떤 시집은 때로 어떤 소설이나 영화 이상으로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을 강력하게 움직인다. 그건 단지 일시적 위안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정념과 그 사회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든다. 아무도 시집을 안 읽는 시대, 상처에 대한 내성이 많이 떨어진 이 시대에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 어떤 희망도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 뜨거운 시집을 권하고 싶다.
  •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상처받은 시인의 아름다움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상처받은 시인의 아름다움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인 1987년 봄 27세의 청년 시인이 장편 서사시 ‘한라산’을 한 잡지에 발표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반공주의와 역사적 무지를 강타한 이 충격적 시편은 당시까지 사회적 금기였던 제주 4·3의 참담한 비극을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한라산’은 비통한 현대사에 대한 뜨거운 분노와 격정을 담은 그야말로 불화살 같은 시편이었다. 그 시가 시인의 운명 그 자체였다. 청년 시인은 도피 끝에 결국 그해 11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다. 1988년 가을에 석방된 그는 기나긴 세월 동안 이념적 낙인과 세상의 편견에 노출된 고난의 운명을 감수했다. 진보적 문인조차 시인과 거리를 두는 막막하고 고립된 시기가 있었는가 하면 불과 몇 년 전에는 골목길 백색테러로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도 했다. 이 기구한 운명의 시인은 올해로 갑년을 넘기며 어언 22년 만에 새로운 시집을 펴냈다. 최근 ‘악의 평범성’을 펴낸 이산하 시인 얘기다. 설 연휴 동안 그의 새로운 시집과 작년 가을에 출간된 산문집 ‘생은 아물지 않는다’를 읽으며 보냈다. 시편마다 문장마다 올올이 박혀 있는 시인의 선연한 상처, 깊고 쓸쓸한 환멸, 사회의 그늘을 응시하는 투철한 시선, 분노와 회한이 어우러진 시어를 통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한마디로 가슴 저미는 시집이다. 시인은 “가을 단풍처럼 질 것을 알면서도/거품처럼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저항과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숙명을 묘사한다. 그 길은 시인 자신이 스스로 선택했던 도정(道程)이기도 했다. 하지만 슬픔과 모순을 응시하는 단단한 아름다움으로 채워진 시집을 읽다 보면 시인의 시선이 단지 좁은 정치와 이념의 세계에 유폐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시인의 말’에서 이산하 시인은 “내 시집에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하나도 없다”고 적었다. 대신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상처’다. ‘한라산’ 이후 전개된 그의 인생 여정은 상처와 함께한 시간이었을 테다. 감옥행, 세상의 편견, 고문의 악몽…. 시인은 “이 세상은 어느 곳이나 인디언의 구슬 같은 상처가 있다”며 “상처 있는 것이 상처 없는 것보다/오히려 더 아름답다는 믿음”을 피력한다. 시인은 노래한다. “꽃이 나무의 상처라면/열매는 그 상처가 아문 생의 유일한 빈틈이다”(‘빈틈’) 나는 시인 이산하만큼 한국 사회의 이념적·역사적 금기에 정면으로 도전해 스스로 사회적 상처가 된 존재를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이번 시집에는 시인 자신의 상처와 함께 한국 현대사의 상흔이 켜켜이 배어 있다. 시인은 운동권의 변절과 출세, 비정규직 차별, 촛불의 한계 등 이 시대의 중대한 사안을 응시하고 감옥에서 만난 사형수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희생자들을 보듬는다. 또한 시인은 “유대인 학살을 총지휘한 나치 친위대장 하인리히 히믈러”가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채식주의자”였으며 “가난하고 소박한 생을 최고의 삶으로 꿈”꿨다는 너무나 역설적인 사실을 일깨운다. 더불어 세월호 희생자 등 우리 사회 약자와 소수자를 극단적 언어로 조롱하는 이들이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통렬한 각성을 통해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창안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명제를 다시금 환기한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넘치는 시대다. 점점 ‘내 생각이 존중받지 못한다’거나 ‘내가 사회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상처가 보편적인 정념이 돼 가고 있다. 어떤 시집은 때로 어떤 소설이나 영화 이상으로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을 강력하게 움직인다. 그건 단지 일시적 위안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정념과 그 사회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든다. 아무도 시집을 안 읽는 시대, 상처에 대한 내성이 많이 떨어진 이 시대에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 어떤 희망도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 뜨거운 시집을 권하고 싶다.
  • [백종우의 마음의 의학] 잊을 수 없는 것과 잊어서는 안 되는 것

    [백종우의 마음의 의학] 잊을 수 없는 것과 잊어서는 안 되는 것

    20년 전 9월 11일 여객기 2대가 미국 뉴욕에 있는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했다. 그리고 10년 뒤 그 자리에는 ‘9ㆍ11 메모리얼 뮤지엄´이 개관했다. 입구에 있는 거대한 인공폭포는 유가족의 눈물을 상징한다. 당시 밖으로 나갈 수 있었던 유일한 계단은 생존을 위한 계단이라는 이름으로 추모객의 에스컬레이터 옆에 서 있다. 계단 앞 뉴욕의 하늘을 상징하는 거대한 벽에 ‘시간의 흐름이 결코 당신에 대한 기억을 지우지 못하리라’라는 경구가 추모객을 맞이한다. 전시관에는 쓰러지지 않은 유일한 기둥과 깨지지 않은 유일한 창문 등이 희망을 상징하며 서 있다. 희생자 2983명 한 명 한 명의 생전 사진과 글이 전시된 추모공간 한편에는 눈물 흘리는 사람을 위한 휴지와 마음을 진정할 공간이 마련돼 있다. 미국이 국가적 재난에 어떻게 대처하고 공동체를 복원하는지 보여 주는 전시장과 같다. 2011년은 구조에 참여했던 경관 자드로가가 폐질환으로 사망한 해였다. 2015년 미국 의회는 자드로가법을 통과시켜 구조요원, 자원봉사자들을 비롯한 피해자 7만명에게 2090년까지 무상으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했다. 2년 전 9ㆍ11로 남편을 잃었던 알리사 토레즈를 유가족단체 사무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만화로 출간하기도 했다. 정신과 치료를 평생 비용 없이 받을 수 있어 도움이 됐다고 한다. 치료는 보건부가 맡아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경제적 보상은 법무부가 진행하는 이원화된 시스템을 이야기해 주었다. 지금 복수보다는 평화를 위해 애쓰는 유가족단체에서 일하며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었다. 근현대사의 파도 속에서 우리는 많은 비극을 겪었고 많은 이들을 떠나 보내야 했다. 1980년 광주, 성수대교나 대구지하철, 세월호와 같은 안전사고, 가습기살균제와 같은 환경재난, 거기다 최전선에서 복무하던 군인들을 잃은 천안함도 있었다. 소중한 생명을 잃는 일을 다시는 겪지 않겠다는 사회의 의지를 시스템으로 갖춰 가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최소한 그 생존자와 유가족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연구는 우리가 무언가 쉽게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되묻게 한다. 김승섭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2018년 천안함 생존자의 58%가 자살을 생각했고 29%는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2019년 시행된 가습기살균제 생존자 연구에서 자살 생각은 49%, 자살 시도가 11%에 이르렀다. 세월호 참사 후 국가트라우마센터가 설립됐다고 만족하기엔 안타까운 사연이 우리 주위에 너무나 많다. 기억하고 추모하고 그들의 죽음을 잊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것. 이것이 공동체가 재난을 극복하는 길이다. 9ㆍ11테러로 붕괴 직전의 세계무역센터 안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전화로 남긴 마지막 말은 ‘사랑해’였다고 한다. 지금 재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전할 말은 무엇인가?
  • 탄소제로 실패 땐 2100년 사망률 코로나 5배 ‘기후재앙’

    탄소제로 실패 땐 2100년 사망률 코로나 5배 ‘기후재앙’

    “이번 세기 중반까지 기후변화는 코로나19만큼 치명적일 겁니다. 2100년이 되면 5배나 더 큰 사망률을 기록하게 될 거예요.”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이자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 공동 이사장 빌 게이츠가 경고하는 우리의 암울한 미래상이다. 그는 16일(한국시간) 전 세계 동시 출간하는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위·김영사)에서 기후변화가 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코로나19 팬데믹이 10년마다 발생하는 것만큼 심각할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 게이츠는 2009년 재단을 설립하며 “깨끗하고 값싼 에너지를 찾아야 한다”고 목표를 제시했다. 에너지는 불평등과 환경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단이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다. 이번 책은 ‘미래로 가는 길’(1995)과 ‘생각의 속도’(1999)에 이은 세 번째 책으로, 재단의 지난 연구를 담았다. 그는 우리가 매년 510억t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연구 결과를 설명했다. 510억t은 이산화탄소 환산 톤(CO₂e·온실가스를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환산한 값) 방식에 따른 것이다. 그러면서 이를 코로나19의 위협과 비교했다. 코로나19가 지속되면 매년 10만명당 14명이 사망하는데, 지금처럼 탄소배출량이 계속 늘어나면 21세기 중반쯤 코로나19와 사망률이 같아지고 21세기 말에는 10만명당 75명의 사망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구 온도 변화도 우려한다. 산업혁명 시기 이전보다 지구의 온도가 최소 1℃ 상승했는데, 지금대로 간다면 21세기 중반엔 1.5~3℃, 21세기 말에는 4~8℃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기후변화가 불러올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면 결국 온실가스 배출 제로(0)를 달성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분야를 5개로 나눠 ‘그린 프리미엄’(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활동했을 때 추가로 드는 비용)을 낮출 수 있는 혁신이 가능한지 살핀다. 5개 분야는 제조(31%), 전력생산(27%), 동식물 사육·재배(19%), 교통·운송(16%), 냉난방(7%)이다. 저자는 탄소를 발생시키지 않고 전기를 만드는 방법으로 핵분열과 핵융합, 해상풍력, 지열을 거론한다. 핵분열 방식 발전은 물론 한국 등이 참가해 공동개발 중인 핵융합 발전, 평소 남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쓰는 그리드 스토리지 등이다. 특히 핵분열을 사용하는 원자력 발전에 관해 대규모 생산이 가능하며 유일하게 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에너지원이라는 이유로 높게 평가했다. 물론 구소련의 체르노빌, 일본의 후쿠시마 사고를 예로 들며 원전의 위험성도 인정한다. 그러면서 “자동차의 문제점을 개선한 것처럼 원전 문제를 하나씩 분석한 다음 혁신으로 해결하며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전력 생산을 급격하게 줄일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 문제점을 해결해 가면서 대안도 만들어 가자는 뜻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추진하려면 결국 정부의 노력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고 은행이나 투자자가 원하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아이디어는 정부의 정책 지원과 투자가 있어야 온전하게 개발될 수 있다는 이유다. 부유한 나라는 2050년까지, 중간소득 국가는 2050년 직후 가능한 한 빠르게 제로 탄소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못다 한 ‘임을 위한 행진’… 저 하늘에서 계속되리라

    못다 한 ‘임을 위한 행진’… 저 하늘에서 계속되리라

    한일협정 반대로 민주화 운동 전면 나서YMCA 위장결혼 사건 등 수차례 옥고백원담 “父 마지막 글귀는 ‘노나메기’”“김미숙·김진숙 힘내라” 병상 메시지도 “그 돈 이웃 도와야” 유지… 靑조화 거부전국 16곳 분향소… 19일 대학로 노제“내 이야기를 듣고 발을 구르던 젊은이들은 지금 다 뭘 하는지. 그러나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슴에 심어 주는 것 자체가 성공의 역사라고 믿는 것, 그게 진보사상이고 이야기예요.”(2013년 4월 22일자 서울신문 인터뷰) 백기완(88)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새벽 폐렴 투병 끝에 별세했다. 평생 민중·민족·민주 운동의 불쌈꾼(혁명가)이자 큰 어른으로 살아온 그는 민중의 장쾌한 수호자 ‘장산곶매’가 돼 하늘로 떠났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숙씨와 딸 원담(성공회대 교수)·미담(화가)·현담(출판사), 아들 일(울산과학대 교수)씨가 있다. 90년 가까운 그의 삶엔 외세의 압제와 분단, 군부독재 등 질곡의 현대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그는 못 배우고 못 가진, 그리하여 배우고 가진 자들에게 압제받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앞서서 나가는’ 삶을 선택했다.백 소장은 1933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정규교육이라고는 국민학교 4학년까지 다닌 게 전부인 데다 분단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비극을 겪었지만 독학으로 통일 문제와 사회 모순에 대한 인식을 키워 나갔다. 6·25전쟁 중 해외 유학을 권유받았으나 ‘조국을 두고 나 혼자만 유학을 갈 수 없다’며 거절했다. 1964년 함석헌·계훈제 등과 함께 한일협정 반대운동을 벌이며 민주화 운동의 전면에 나섰다. 투옥과 고문은 일상이 됐다. 장준하 등과 ‘유신헌법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 운동’을 벌였다가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됐다. 1979년엔 ‘YMCA 위장결혼 사건’을 주도했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한 뒤 계엄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당시 옥중에서 썼던 시 ‘묏비나리’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원작이 됐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치러진 13대 대선에서는 김영삼·김대중 후보 단일화를 압박하기 위해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직전에 사퇴했다. 1992년 14대 대선에서는 노동자 민중후보로 추대됐지만 현실 정치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는 인생의 막바지까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삶을 살았다. 2014년 세월호 진상규명 집회,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등의 현장에서 맨 앞자리를 지켰다. 송경동 시인은 “백 선생이 병상에서 쓰신 마지막 글귀는 ‘김미숙 어머니 힘내라’, ‘김진숙 힘내라’였다”고 전했다. 백원담 교수는 “아버지가 마지막 남긴 글귀는 ‘노나메기’였다. 너도나도 일하되 모두가 올바로 잘사는 세상이라는 뜻”이라고 밝혔다.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선다’는 평소 지론답게 여러 권의 수필집과 시집을 냈다. 우리말 사랑도 남달랐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 ‘장산곶매 이야기’, ‘젊은 날’, ‘버선발 이야기’ 등을 출간했다.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리고 장례는 오일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전국 16개 지역에 분향소 및 온라인 추모관(baekgiwan.net)도 운영한다. 발인일인 19일 오후 종로구 대학로에서 노제가 진행된다. 장례위원회는 “선생님의 뜻에 따라 조화를 받지 않는다. 선생님은 (생전) 조화를 보낼 값으로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으로부터도 (문재인 대통령 명의의) 조화를 보내겠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거절했다”고 덧붙였다. 여야는 모두 고인을 애도했다. 더불어민주당 신영대 대변인은 “영원한 민중의 벗, 백기완 선생님의 정신은 우리 곁에 남아 영원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김은혜 대변인은 “우리가 누리는 평등한 세상은 고인의 덕분”이라 했다. 정의당 정호진 대변인은 “사회적 약자들을 역사상 처음으로 정치의 주인으로 호명했다”고 추도했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라’던 백기완 선생”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라’던 백기완 선생”

    “나는 한 마디로 소개하면 됩니다. 나는 내 눈앞에서 마음에 안들면은 그냥 놔두지 않았어.” 2019년 3월 13일. 그의 마지막 저서가 된 ‘버선발 이야기’의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1950년대부터 농민·빈민·통일·민주화운동에 매진한 그의 평생은 부조리에는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15일 투병 끝 별세한 그를 수많은 여성 정치인들도 기렸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부천서 성고문 사건규탄대회를 여시려다 감옥에 갇히시기도 했다”며 “제가 경험한 사람 중 가장 특별한 연설능력을 가지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백 소장은 권 의원이 성고문 피해를 입었던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 규탄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됐다. 그 일을 회상하며 권 의원은 “논리력, 선동력, 이야기하듯 엮어내는 구수한 문장력과 멋진 목소리가 엄청난 조화를 이루었고 87년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왔을 때 많은 지지자와 함성을 모으셨다”며 조의를 표했다. 선생의 뒤를 이어 진보진영의 대선 후보로 나섰던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그의 뜻을 기렸다. 심 의원은 페이스북에 “심상정이, 비틀거리지 말고 똑바로 가. 이 썩어 문드러진 세상, 뒤집어엎어버리란 말이야!”라던 선생의 생전 호령을 적었다. 이어 “수많은 진보 정치인, 운동가, 지식인들이 선생의 둥지에서 태어나 진보정당의 초석이 되었다”고 썼다. 일본군성노예제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전직 이사장을 지냈던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수요시위에 나섰던 백 소장의 모습을 기억했다. 그는 “수요시위에 참석하시고 김복동 할머니 떠나시던 날 빈소에 들러 할머니 명복 빌어주시며 함께 해주시던 모습들, 가슴에 찡하게 남아있다”며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래서 너도 나도 잘 살되 올바르게 잘 사는 ‘노나메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뚜벅뚜벅 걸어가겠다”고 했다. 서울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는 대학로에 있는 통일문제연구소에 들렀던 기억을 소환했다. 박 후보는 “저에게 ‘시원시원하고 단호해서 좋다’고 하셨던 선생님.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며 “선생님 영전에 ‘임을 위한 행진곡’ 원작시를 바칩니다”라고 썼다.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가 백 소장이다. 선생의 맏딸 백원담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1979년 선생이 출간한 책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를 언급했다. 책에서 선생은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 말을 타고 달리는 고구려의 여성상을 예로 들며 현모양처의 허상과 수동적 역할을 벗고 역사의 전면에 나서는 여성이 될 것을 강조했다. 백 교수는 “1979년 딸에게 주는 편지를 책으로 엮어 평생을 살아가는 길라잡이를 일러주셨다”며 “예순 두 해 동안 아버님과 맏딸로, 사회운동의 선후배로, 끊임없는 긴장의 일상이 쉽지 않았지만 더없이 빛나고 참으로 벅찬 세월이었다”고 말했다. 2019년 그날의 간담회에서 선생은 자기 소개에 이어 별안간 ‘미투’ 이야기를 꺼냈다. 소싯적 술을 먹다가도, 여성 옆에서 추태를 부리려는 남성들에 대한 일갈이었다. “‘야, 이 자식아. 술 먹고 술에 취하지. 왜 여성이라고 하는 특수한 사람에 취하려고 그래. 집어치워, 인마.’ 말 안들으면 술상 뒤집어 엎고 그랬어. 내가 그런 것도 실천인 줄 알았다니까. 내 젊은 날에 그랬어.” 젠더연구소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정서적 신뢰 이용”…동화작가 한예찬, 아동성추행 수감

    “정서적 신뢰 이용”…동화작가 한예찬, 아동성추행 수감

    한예찬씨 법정구속수사·재판 중에도 24권 새로 출간 ‘서연이 시리즈’ 등 어린이용 판타지 만화를 주로 썼던 동화작가 한예찬(53)씨가 초등학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사실이 알려졌다. 15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한씨는 자신이 직접 가르쳐 온 초등학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돼 2년 6개월간의 긴 재판을 받아왔다. 아동의 의사에 따라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했을 뿐이라는 한씨 주장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27건의 범죄사실에도 위력에 의한 추행은 없었다고 반박했지만, 지난해 12월 1심 법원은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교사와 아동 사이의 심리적, 정서적 신뢰 관계를 이용해 추행 행위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교육적으로 순응하기 쉬운 초등학생을 상대로 뽀뽀나 입에 혀를 넣고 포옹하는 것에 피해자의 동의가 있다고 보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1심 유죄 확정, 책들은 여전히 판매되고 있어 1심에서 한씨의 유죄가 확정됐지만, 그가 쓴 책들은 아직도 멀쩡히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누리집에는 한씨의 이름으로 책 94권, 전자책 38권이 검색된다. 서울시교육청 소속 16개 어린이도서관 통합 누리집에서도 675권이 검색된다. 이 가운데 148권이 대출 중(14일 기준)이다. 일부는 절판·품절 됐지만 상당수는 여전히 팔리고 있다. 한씨는 이 사건으로 경찰 수사와 재판을 받던 당시 집중적으로 책을 출간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 달 동안 4권의 책을 낸 적도 있으며 1심 선고를 앞뒀던 지난해 11월까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내놨다. 한씨는 초등학생용 판타지 역사물인 ‘서연이 시리즈’, 아이로 돌아간 성인과 미성년자의 사랑 이야기가 담긴 ‘틴틴 로맨스 시리즈’ 등을 썼다. 이외에도 여자 어린이를 위한 성교육 도서를 쓰기도 했다. 또한 한씨는 10~11살 여자 어린이를 위한 성교육 도서를 쓰기도 했다. 2014년 개정판이 나온 <미소의 비밀노트>는 ‘10~11살 어린이들을 위한 성교육 성장동화’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아저씨가 핸드폰 사 줄게’ ‘단둘이 있으면 안 돼!’ ‘만지지 마세요!’ 등 어린이 성폭력 예방 수칙 등을 담고 있다. 한편 한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만약 한씨의 유죄가 유지된다면 재판부 명령에 따라 그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제한은 가능하다. 하지만 한씨가 쓴 어린이 대상 출판물을 막기 위한 마땅한 법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근대광고 엿보기] 근대 대표 출판사 겸 서점 ‘박문서관’

    [근대광고 엿보기] 근대 대표 출판사 겸 서점 ‘박문서관’

    “신구 서적 만종(萬種)과 문방구를 완비하고 특별 대염가로 도매 소매하오니 다소(多少) 불구하고 주문하시오. 일어 영어 사전 자전 각종도 구비함.” 한국의 근대 출판을 대표하는 출판사 겸 서점인 박문서관의 광고 내용이다. 박문서관의 창업주 노익형(1885~1941)은 몹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4살 때부터 육의전의 하나인 저포전(苧布廛) 점원, 객주집 거간 일을 하고 잡화상을 차렸지만 오래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지인의 권유로 경성 남대문통 3정목(현 남대문로 3가) 상동교회 앞에서 자본금 200원으로 작은 서점 박문서관을 연 것은 22세 때인 1907년이었다. 한일병합으로 총독부에 역사 서적을 몰수당하는 고초를 겪었지만, 봉래동을 거쳐 1925년 종로로 서점을 옮기고 출판사도 겸하면서 사업은 확장일로로 들어섰다. 박문서관은 안국선의 금수회의록을 약 4만부 팔았고, 춘향전·심청전·조웅전·유충렬전 등 구소설을 1년에 약 3만~4만부 판매하는 등 규모를 키워 갔다. 1920년대에는 ‘짠발쟌 이야기’ 등의 번역·번안물과 이광수의 ‘무정’, ‘첫사랑’ 등도 히트작이었다. 염상섭의 ‘견우화’, 현진건의 ‘지새는 안개’ 등도 출간했다. 큰돈을 번 노익형은 대동인쇄소까지 인수해 경영하며 출판, 서적, 인쇄 3대 부문의 패자(覇者)가 됐다. 인쇄소는 종로 YMCA 바로 뒤에 있었다. 서점 판매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 준 것은 오늘날의 온라인 판매와도 같은 통신판매였다. 1935년 무렵에 그는 신구 소설 등 1000여종의 책 판권을 갖고 있었고 매출의 70%를 통신판매로 달성했다고 한다(매일신보 1936년 5월 14일자). 박문서관은 문학도서 외에 문세영의 ‘조선어사전’ 등 사전류도 펴냈고, 무엇보다 박문문고라는 휴대하기 좋은 문고본을 발행해 독서의 저변을 넓혔다. 1938년에는 월간 문예지 ‘박문’을 발행해 쟁쟁한 문인들의 수필을 실었다. 그러나 노익형은 일제에 협력하고 창씨개명을 해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다. 광복 후 박문서관은 박문출판사와 박문서점, 박문인쇄소로 분리됐다. 노익형 사후 유일한 혈육인 노성석씨를 거쳐 성석씨의 고교 선배인 이응규씨가 총괄 사장을 맡아 운영했다. 문을 닫은 것은 1957년이었다. 출판사와 서점 경영이 어려워진 것은 6·25 전쟁 때 인쇄시설이 폭격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60평쯤 되던 박문서점이 있던 곳은 종로2가의 옛 고려당 바로 옆 건물이었는데 2002년에 없어진 종로서적의 지척이었다. 폐업 당시 박문서점은 영창서관, 덕흥서림과 함께 서울의 3대 서점으로 꼽혔다. 1972년에 설립된 고시·수험 서적 전문 출판사 박문각과 박문서관의 연관성은 찾을 수 없다. 박문서관의 목판 691장은 2013년 근대문화재로 지정됐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단독] “北 개입설 사실 아니다” 쐐기 박은 5·18조사위

    [단독] “北 개입설 사실 아니다” 쐐기 박은 5·18조사위

    유튜브로 北특수군 광주 침투 주장 퍼져탈북작가 이주성씨 출간한 저서에서도‘영광해안서 광주까지 5시간 행군’ 적어위원회 “위치상 도보 이동 불가능” 판단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국내 일부 탈북 인사가 주장하는 5·18 당시 북한군 개입설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는 조사 결과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14일 서울신문이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위원회의 2020년 하반기 조사활동보고서에 따르면 위원회는 5·18 당시 ▲계엄군의 집단 발포 책임자 및 경위 ▲행방불명자의 규모 및 소재 ▲계엄군 등에 의해 발생한 성폭력 등 사건 12건을 직권 조사하고 있다. 이 중 하나가 탈북자의 ‘북한 특수군 광주 침투 주장’이다. 위원회는 “북한 특수군의 광주 침투 주장은 2015~2016년 유튜브를 통해 확산됐고 2017년에는 탈북자들의 주장을 기반으로 한 책이 출간되는 등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요소”라며 “진위를 밝히고 의혹을 해소해 국민적 논란과 갈등을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조사 이유를 밝혔다. 앞서 탈북작가 이주성씨는 5·18 당시 북한 특수부대가 광주에 침투해 계엄군과 교전을 벌이고 북한으로 귀환했다는 인물의 체험담을 저서 ‘보랏빛 호수’에 기술했다. 북한 특수군이 1980년 5월 19일 오후 4시쯤 평양 대양리에서 트럭을 타고 같은 날 오후 9시쯤 황해남도 장연군에 도착해 배 2척을 탄 다음 1980년 5월 22일 오전 2시쯤 전남 영광 해안에 도착했다는 주장이다. 이 책은 또 북한 특수군이 영광 해안에 도착한 뒤 5시간 넘게 행군해 광주에 도착했고, 광주 동구 무등산에 있는 사찰인 증심사에 가서 식사하고 휴식을 취했다고 적었다. 앞서 전두환씨도 ‘전두환 회고록’에 5·18 당시 ‘북한 특수군의 개입 정황이라는 의심을 낳고 있다’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위원회는 국립해양조사원과 육·해군의 관련 기록들을 수집해 당시 영광 해안의 간만의 차, 우리 군 작전 상황과 경비태세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이씨 저서의 주장이 ‘현실성이 전혀 없다’는 결론을 냈다. 위원회는 “증심사는 영광 해안에서 동쪽으로 약 60㎞(직선거리 기준)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탈북자의 주장처럼 ‘광주 시가지를 우회해’ 도보로 5시간 이내에 이동하는 건 거리 및 위치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비교적 밀집된 건물 배치로 모든 전각이 한눈에 들어오는 증심사의 구조적 특성과 지리적 위치 등으로 봐 북한 특수군이 노출되지 않고 증심사에서 체류 및 식사를 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5·18 당시 발포 명령자에 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후 국회는 ‘5·18 진상규명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야당 반대 등으로 우여곡절 끝에 2019년 12월 27일 출범해 지난해 5월 11일부터 조사를 시작한 위원회는 같은 해 12월까지 12건의 직권 조사 결정 사건 외에 58건의 신청 사건을 접수해 이 중 20건에 대해 조사를 결정했다. 위원회의 활동 기간은 위원회 구성일로부터 최대 4년이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단독] 5·18 조사위 “북한 특수군 광주 침투 주장 사실 아니다”

    [단독] 5·18 조사위 “북한 특수군 광주 침투 주장 사실 아니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지난해 5월부터 시작한 조사 활동 과정에서 국내 일부 탈북 인사들이 주장하는 5·18 당시 북한군 개입설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는 조사 결과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14일 서울신문이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위원회의 2020년 하반기 조사활동보고서에 따르면, 위원회는 5·18 당시 △계엄군의 집단 발포 책임자 및 경위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 △행방불명자의 규모 및 소재 △계엄군 등에 의해 발생한 성폭력 등 사건 12건을 직권 조사하고 있다. 이 중 하나가 탈북자의 ‘북한 특수군 광주 침투 주장’이다. 위원회는 “북한 특수군의 광주 침투 주장은 2015~2016년을 기점으로 유튜브를 통해 확산됐고 2017년에는 이때까지 제기된 탈북자들의 주장을 기반으로 한 저서가 출간되는 등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며 “위 탈북자들의 주장을 조사해 그 진위를 밝히고 의혹을 해소해 향후 이와 관련한 국민적 논란 및 갈등을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조사 개시를 결정한 이유를 밝혔다. 북한군 개입설을 퍼뜨리는 인물 중 한 명이 탈북작가 이주성씨다. 앞서 이씨는 5·18 당시 북한 특수부대가 광주에 침투하여 계엄군과 교전을 벌이고 북한으로 귀환했다는 인물의 체험담을 2017년 저서 ‘보랏빛 호수’에 기술했다. 북한 특수군이 1980년 5월 19일 오후 4시쯤 평양 대양리에서 트럭을 타고 같은 날 오후 9시쯤 황해남도 장연군에 도착해 배 2척을 탄 다음 1980년 5월 22일 오전 2시쯤 전남 영광해안에 도착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이 책은 또 북한 특수군이 영광해안에 도착해 5시간 넘게 행군하여 광주에 도착했고, 광주 동구 무등산에 있는 사찰인 증심사에 가서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한 다음 오후 3시쯤 출발했다고 적었다. 이씨는 이 책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에 특수부대 파견을 요청했다고도 주장하여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6월 1심 재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11월 항소심 재판부도 유죄가 인정된다며 이씨의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위원회는 국립해양조사원과 육·해군의 관련 기록들을 수집하여 당시 영광해안의 간만의 차, 우리 군 작전 상황과 군 경비태세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이씨 저서의 주장이 ‘현실성이 전혀 없다’는 결론을 냈다. 위원회는 먼저 북한 특수군이 영광해안에 상륙한 후 육로로 이동했다는 주장에 대해 “증심사는 영광해안에서 동쪽으로 약 60㎞(이하 직선거리 기준), 옛 전남도청에서 동쪽으로 약 5㎞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처럼 영광해안에서 증심사까지 약 60㎞의 거리를 탈북자의 주장처럼 ‘광주 시가지를 우회하여’ 도보로 5시간 이내에 이동하기에는 거리 및 위치상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증심사에 대한 실지 조사 결과 현장은 비교적 밀집된 건물 배치로 모든 전각이 한눈에 들어오며 경내 어디서든지 소리가 잘 들릴 수 있는 구조임을 확인했다”면서 “증심사의 지리적 위치 및 구조적 특성으로 보아 북한 특수군이 노출되지 않고 증심사에서 체류 및 식사를 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또 ‘5·18 당시 남파 후 전사하여 복귀하지 못한 북한군의 묘지가 북한 청진시에 있다’는 일부 탈북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우리 군 및 북한 자료 등을 확인한 결과 이는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인원들의 묘지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판단했다. 위원회는 “5·18 당시 북한 특수군이 개입했다는 주장은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조사한 바와 같이 일부 탈북자들이 제기하고 있는 북한군 개입설은 상당 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거나 역사적·전술적인 타당성이 없는 무리한 주장인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현재까지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과제인 국내 일부 인사들에 의한 북한군 개입설 주장 및 확산에 대한 조사를 이어서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9년 12월 27일 출범하여 지난해 5월 11일부터 조사 활동을 개시한 위원회는 지난해 12월까지 12건의 직권 조사 결정 사건 외에 58건의 신청사건을 접수해 이 중 20건에 대해 조사를 결정했다(나머지는 각하 또는 조사 개시 여부를 검토 중). 또 지난해 12월까지 총 251건의 제보를 접수했는데 ‘기타’(115건)로 분류한 제보 다음으로 가장 많은 유형의 제보는 ‘암매장’과 관련한 제보(50건)였다. 위원회가 국회, 국방부, 국가정보원, 대검찰청 등 유관기관들로부터 제출받아 소장하고 있는 자료는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8591건이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약잘알] 열심히 챙겨 먹은 약이 오히려 영양소를 빼앗는다? ‘드럭머거’

    [약잘알] 열심히 챙겨 먹은 약이 오히려 영양소를 빼앗는다? ‘드럭머거’

    최근 건강상의 이유로 피임약을 먹기 시작한 A씨. 얼마 전 그는 피임약을 먹을 때 비타민C를 함께 먹으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로 ‘드럭머거(Drug Mugger)’에 관한 것이었는데요. 드럭머거란 우리가 복용하는 약물이 우리 몸의 필수적 영양소를 고갈시킬 수 있다는 것으로, 약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점차 주목받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 약이 어떤 영양소를 고갈시키는 걸까요? ‘드럭머거’에 대한 궁금한 점을 ‘약잘알’ 약사에게 물어봤습니다. -드럭머거(Drug Mugger)란? 드럭(Drug)은 약, 머거(Mugger)는 도둑이라는 뜻입니다. 즉 약이 내 몸의 영양소를 훔쳐 간다는 말인데요. 질병 치료를 위해 복용하는 약물이 인체에 작용하면서, 필수적인 영양소를 고갈시킬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의학용어인가요? 의학용어라고 하긴 어렵고, 미국의 유명한 약사인 수지 코헨이 ‘드럭 머거’라는 책을 출간한 것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관심이 높아지는 분야입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 아직 임상이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약에 의한 영양소의 결핍이 무조건적인 것도 아니고 특정 영양소의 결핍이 반드시 어떤 질병으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에, 드럭머거에 대한 내용은 내가 어떤 약을 먹을 때 어떤 것을 더 챙겨 먹으면 좋을지 참고하는 정도로 접근하는 것이 좋습니다. -영양소를 결핍시키니까 먹는 약을 끊어야 한다는 건가요? 약 때문에 결핍되는 성분보다는 약의 효능이 더 중요합니다. 따라서 약을 먹지 말자는 주장이 아니라, 그로 인해 결핍되는 영양소를 다양하게 보충하는 방법을 찾자는 것이 핵심입니다. -드럭머거의 예를 들어주신다면? 경구피임약을 복용할 경우 비타민B군, 비타민C, 셀레늄, 칼슘, 마그네슘, 아연, 엽산 등이 고갈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 미네랄이 들어있는 종합비타민과 비타민C를 보충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 비타민C는 1000mg 이상 고함량으로 먹지 않는 게 좋고, 시간 간격을 두기 위해 아침에 약을 드셨다면 저녁에 비타민C를 복용하길 추천합니다. 또 항생제의 경우 비타민B군, 칼슘, 마그네슘, 철분, 유산균 등을 고갈시킬 수 있는데, 주로 어린아이들이 항생제를 먹고 설사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항생제가 장내의 유익한 균까지 죽여서 장내 환경을 악화시키기 때문인데요. 항생제를 오래 먹어야 한다면 유산균 보충을 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영상을 통해서 확인하세요! 글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영상 김민지, 임승범 인턴 seungbeom@seoul.co.kr
  • 명절에 만나는 22개의 삶

    명절에 만나는 22개의 삶

    대학 총장, 병원장, CEO, 화가, 의사, 사회단체 대표, 연예인…. 누가 봐도 성공한 이들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좌절과 분노, 열등감, 회한에 몸서리 치는 순간이 있었다. ‘세상은 맑음’은 바로 그런 순간들을 포착해 전하는 책이다. 29년 차 현역 언론인이 3년 가까운 기간 동안 만나서 인터뷰했던 각계 인사 22명의 삶의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었다. 류수노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총장은 ‘흙수저 신화’로 알려진 인물이다.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를 짓다, 뒤늦게 주경야독으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방송대에 진학한 자수성가의 전형이다. 저자는 “그에게선 폐목강심(閉目降心),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내공이 묻어난다”고 표현했다. 방귀희 한국장애예술인협회 회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휠체어 장애인 대학생, 최초의 휠체어 방송인이다. 지체장애 1급인 그는 한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와 왼팔을 못 쓴다. 그나마 온전한 오른손조차 기능이 40%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늘 웃는다. 편견과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도 웃음을 잃는 법은 없다. 시련을 이겨낸 미소는 이제 그의 심벌마크가 됐다. 웃음을 잃은 이들에게 웃음을 되찾아주는 이도 있다. 백롱민 분당서울대병원장이 바로 그다. 안면윤곽 수술 권위자인 그는 1996년부터 매년 베트남을 찾아 태어날 때부터 구순(입술이 갈라지는 병)이나 구개열(입천장이 갈라지는 병) 등의 얼굴 기형으로 웃음을 잃은 어린이들에게 24년째(취재 당시) 무료수술을 해주고 있다. 베트남 의료계에선 박항서 축구 감독보다 유명하다고 한다. 전문직업인의 봉사정신을 그에게서 본다. 아울러 ‘한 우물’ 인생의 경건함이 묻어나는 기생충학자 채종일 한국건강관리협회장, 과학계의 ‘유리천장’을 깬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2만 5000여 명에 달하는 국내외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를 무료 치료하며 인술(仁術)을 실천해 온 박영관 세종병원 회장, 직업을 ‘밥벌이’로 수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과 융합시켜 현미경 사진, 엑스레이 아트라는 새 예술 장르를 개척한 김한겸 고려대 병리과 교수, 정태섭 가톨릭관동대 영상의학과 교수 등 많은 이들의 인생 이야기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저자는 “인터뷰이로 만난 한 분 한 분이 모두 혼탁한 세상을 맑고 따뜻하게 하는 이들”이라며 “스스로 향기를 뿜으며 주변에 위안과 희망 주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용기와 지혜를 얻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태해 지음/W미디어/231쪽/1만 4000원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책으로 만나는 대중음악의 재발견…‘문학으로 읽는 조용필’, ‘음악열애’

    책으로 만나는 대중음악의 재발견…‘문학으로 읽는 조용필’, ‘음악열애’

    설 연휴를 맞아 한국 음악사에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긴 대중음악가들의 삶과 음악 세계를 소개하는 책이 잇달아 출간됐다.중견 문학평론가인 유성호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최근 ‘가왕’(歌王) 조용필을 시인으로 바라본 평전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도서출판 작가)을 펴냈다. 유 교수는 조용필이 노랫말을 직접 쓸 뿐 아니라 노래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여느 가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해 시인이라고 평가한다. 책은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 조용필의 노래들을 문학적으로 분석한다. 유 교수는 조용필의 흡입력이 가창력, 무대 메너, 정확한 가사 전달력, 다양한 장르 수용 능력, 노래마다 달라지는 해석력에 있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조용필의 노래가 지닌 ‘위안’의 효과에 주목한다. 사람들은 조용필의 노래를 들으며 아름다운 시를 읽듯 위로받고 잊었던 꿈을 다시 떠올리는가 하면, 고단한 현실을 잠시 잊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안의 미학’이라고 일컫는다. 유 교수는 “조용필은 위안의 미학과 그 ‘너머(beyond)’를 상상하고 실천해온 우리 시대의 가왕”이라며 “우리 시대가 마주한 여러 역사적 사건들 앞에 누구보다도 상징적인 노래들을 배치함으로써, 자신의 생애가 시대의 거인으로서의 풍모를 드러낼 수 있도록 스스로를 배려하고 또 이끌어갔다”고 강조했다.대중음악평론가 서정민갑은 음악 에세이 ‘음악열애’(걷는사람)를 펴냈다. 온라인 매체 ‘민중의 소리’에 연재한 ‘서정민갑의 수요뮤직’을 다듬고 재구성해 평소에 놓치기 쉬운 다채로운 아티스트와 곡들을 소개한다. 음원 판매량이나 인기 순위보다는 우리의 마음과 삶을 소리로 잘 구현한 곡들을 엄선했다. ‘새로운 날’(권나무), ‘푸른베개’(조동익), ‘두 개의 나’(한희정) 등이다. 소외 계층, 제주 4·3항쟁, 위안부 피해 여성, 동두천 기지촌, 실업과 도시 변방, 빈민과 노동자 문제 등을 다루는 음악을 골고루 살펴봤다. 저자는 “윤리와 의지가 돋보이는 것은 그의 노래가 적극적이고 필사적인 노력의 소산이기 때문이다”(권나무의 ‘새로운 날’)고 평가하듯 음악가의 태도도 톺아본다. 정태춘, 장필순, 혁오 등의 음악을 새롭게 듣는 방법도 귀띔한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선거 때마다 나오는 정치인 책…이젠 자전적 이야기보다 정책·사상이 대세

    선거 때마다 나오는 정치인 책…이젠 자전적 이야기보다 정책·사상이 대세

    짧게는 오는 4월 7일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길게는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현직 정치인 관련 책들이 잇달아 출간되고 있다. 다만, 과거와 같이 개인의 치적을 홍보하는 자전적 스토리 위주의 책이 아니라, 정책에 대한 신념과 과거 행보에 초점을 둔 신간들이 대세를 이뤄 달라진 정치문화를 실감케 한다. ‘이재명과 기본소득’...기본소득 정책 밀착 취재 보고서 현직 언론인 최경준씨가 펴낸 ‘이재명과 기본소득’(오마이북)은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소득 정책을 밀착 취재하고 정리한 현장 보고서다. 성남시장 시절부터 청년 수당을 도입해 기본소득 실험을 한 이 지사의 철학과 행보로 기본소득의 실체와 가능성, 나아갈 방향을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이 지사는 경기도 전역에서 청년 기본소득을 시행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전체 도민을 대상으로 소득과 자산, 나이에 상관없이 1인당 10만 원을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했다. 이 지사는 4차 산업혁명 시대 기계와 인공지능이 인간 노동을 대체해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진 상황에서,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지켜내려면 복지 정책으로서의 기본소득이 다가올 미래를 가장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강조한다. ‘김종인, 대화’...세대간 대화로 김종인의 ‘생각’ 알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신간 ‘김종인, 대화’(동아일보사)를 펴냈다. 책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는 스무 살 곽효민씨가 궁금한 것을 물으면 여든이 넘은 김 위원장이 답하는 문답 형식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에서 ‘인간 김종인’과 ‘정치인 김종인’ 등을 모두 엿볼 수 있다.예컨대 초대 대법원장인 김 위원장의 조부 김병로(1887~1964) 선생이 이승만 전 대통령으로부터 억압을 당했음에도 그는 “이 전 대통령이 과오도 있지만, 그 반대편에 있는 공로가 나라의 ‘탄생’과 관련된 사안이니 쉽게 무시할 수 없다”고 평가한다. 보수에 대해서는 “보수가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면 보수적 색채를 강화할 게 아니라 개혁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나라를 이끌 지도자감은 5가지가 필요하다. ▲개방에 대한 인식 ▲안보에 대한 관점 ▲다양성에 대한 이해 ▲경제에 대한 지식 ▲교육에 대한 의지다.‘박영선에 대하여’...박 전 장관의 정치 여정 소개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최근 MBC 기자 시절 동료였던 신창섭씨가 쓴 ‘박영선에 대하여’(왼쪽주머니)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책은 박 전 장관과 함께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를 세상에 알렸던 신씨가 옆에서 본 ‘방송인 박영선’과 ‘정치인 박영선’ 등을 모두 소개한다. 여성 최초 뉴스 앵커, MBC 최초 여성 특파원·경제부장, 헌정사상 첫 여성 원내대표, 여성 최초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등 화려한 수식어에 이어 ‘사상 첫 여성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삶의 여정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밖에도 법조계의 전관예우와 검찰개혁, 검경 수사권 조정 등 현안에 대한 박 전 장관의 생각을 여실히 알 수 있다. 책은 2002년 9월 박 전 장관이 당시 최초로 서울·평양 이원생방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북한 보위부 간부에게 방송 전 사전 검열을 요구받았지만, “대한민국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국가”라며 물러서지 않았던 일화 등도 재미있게 소개했다.발목잡힐 우려 있는 과거 자서전보다 정책-사상 홍보가 대세 전문가들은 이런 내용의 정치인 관련 서적 발간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이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인이 출판 기념회를 열고 이를 정치자금 모금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자신의 정책에 대해 자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책을 많이 내는 것은 그만큼 유권자들과 간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예전 홍준표 의원의 ‘돼지발정제 사건’처럼 과거의 자서전은 자칫 현재에도 오해를 사게 되고 발목을 잡을 빌미를 줄 수 있다”라면서 “정치인 자신이 자기를 소개하는 책보다는 정책과 인물에 대해 유권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는 책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세계 넷플릭스 인기 1위 ‘승리호’의 김태리 왜 소설 ‘영웅문’ 읽나

    세계 넷플릭스 인기 1위 ‘승리호’의 김태리 왜 소설 ‘영웅문’ 읽나

    지난 5일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하자마자 세계에서 넷플릭스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보는 영화 순위 1위를 달리고 있는 ‘승리호’의 모든 것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실시간 넷플릭스 인기 순위를 알 수 있는 플릭스패트롤에 9일 따르면 전세계 영화 인기 1위는 다름아닌 한국 최초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물 ‘승리호’로 벨기에, 덴마크, 홍콩, 말레이시아 등의 국가에서 인기 1위를 기록중이다. 우주 쓰레기를 청소하는 ‘승리호’의 장 선장 역을 맡은 김태리는 뛰어난 지력과 전투력에 미모까지 보유한 인물이다. 경찰이 갑자기 승리호에 들이닥치자 김태리가 태연한척 위장하기 위해 중국 출신으로 무협소설의 거장인 김용의 ‘영웅문’을 읽는다. 2018년 사망한 김용은 중화권뿐 아니라 한국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작가로 홍콩의 저명한 언론인 ‘명보’를 창간한 언론인이기도 하다. ‘승리호’의 조성희 감독은 주인공들이 영화 도중 읽는 장면이 나오는 두 권의 책 가운데 하나가 ‘영웅문’인 것에 대해 “촬영 때 종이책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현장에서 그 책을 읽은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승리호 탑승 인물 중에 큰 뜻을 가진 사람은 선장뿐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큰 뜻을 품고, 악당을 암살하려고 했으니. 현장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영웅문’은 김용의 3부작 무협 소설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를 일컫는 명칭으로 모두 영화화됐다. 특히 김태리가 읽고 있는 ‘영웅문’은 2092년이 배경인 영화 시점으로는 상당한 고서적으로 1986년 해적판으로 출간된 것이다. 대의를 중요시 하는 무협소설을 해적판으로 읽는 장면은 정의로움을 찾는 장 선장과 매우 어울린다. 일부 관객들은 약 25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승리호’에 48억원을 투자한 최대 투자자인 화이텐센트를 ‘영웅문’의 등장 배경으로 보기도 한다. 홍콩 영화제작사인 화이브라더스와 중국 인터넷기업 텐센트가 공동으로 세운 화이텐센트는 2019년 ‘승리호’에 투자했으며, 중국에서의 판권도 소유 중이다. 화이텐센트는 ‘승리호’뿐 아니라 드라마 ‘스카이캐슬’ ‘검법남녀’ 등 여러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투자를 했다. 영화의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로봇인 업둥이가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아 여성의 모습이 된 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집을 읽는다. 조 감독은 “(업둥이가) 겉모습은 사람 비슷하게 되었으니 내면을 채우는데 관심을 가지는 게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시집 장면에 대해 귀띔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신간] 한컷의 사진과 시의 만남…‘시시한 하루 시 같은 순간’

    [신간] 한컷의 사진과 시의 만남…‘시시한 하루 시 같은 순간’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한 장의 사진과 5줄 이내의 짧은 문장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디카시’는 새로운 문학장르다. 제4회 디카시 공모전 대상 작품이 수록된 박종민 작가의 ‘시시한 하루 시 같은 순간’이 출간됐다. 시집 속에는 ‘낭만가도’, ‘가족’, ‘야간 라이딩’, ‘동네 책방’ 등 작가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건져낸 사진과 시들이 152편 실려있다. 시집은 작가가 길을 걷는 여정 속에서 만난 자연이나 사물들에 대한 순간의 기록물이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자연과 사물을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따뜻한 시선으로 디카시를 통해서 풀어내었다. 박종민 작가는 “길에서 만나는 사물과 풍경에 관심이 많다. 그들이 말을 걸어와 그 말의 의미를 풀어낼 때 잠시 시인이 된다”면서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하이쿠와 새로운 문학장르인 디카시에 매료돼 시시한 하루에 시 같은 순간을 즐긴다”고 말했다. 작가는 2018년 이병주 하동 국제문학제 디카시 공모전에서 ‘소싸움’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SISO 펴냄. 220쪽. 1만3800원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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