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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젓가락과 함께한 1000년… 그게 한국인만의 밈이다

    젓가락과 함께한 1000년… 그게 한국인만의 밈이다

    “천하루 밤을 지새우면 아라비아의 밤과 그 많던 이야기는 언젠가 끝납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꼬부랑 할머니의 열두 고개는 끝이 없습니다.”(‘너 누구니’ 11쪽)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이야기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문다. ‘시대의 지성’이 남기고 간 글의 향기는 더 짙게 많은 이들의 가슴에 배고 있다.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지팡이를 짚고 꼬부랑 고갯길을…’하며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로 그는 여전히 독자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건넨다.최근 잇따라 나온 이 전 장관의 새 책은 우리가 지닌 힘이 무엇인지 알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로 발돋움할 수 있는 용기를 일깨운다. 특히 구불구불하고 부드러운 어감의 ‘꼬부랑과 아리랑’을 사랑하는 한국인이 더 유연하게 조화를 이루며 특유의 에너지를 가꿔 나아가길 권한다. 이 전 장관의 유작이자 2020년 첫 선을 보인 ‘한국인 시리즈’의 두 번째 책 ‘너 누구니’에서는 젓가락에서 그 힘의 원천을 찾는다. 동양문화권에선 젓가락을 사용한다. 특히 한국은 중국·일본과 더욱 가까이 젓가락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다만 한국의 젓가락은 엄연히 다른 것들과 구분되며 한국인만의 문화유전자(Meme·밈)를 형성해 왔다고 이 전 장관은 강조한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짝지어 국물과 건더기를 자유자재로 먹는 것도, 금속으로 된 묵직한 젓가락으로 콩을 한 알씩 집어 먹는 것도 모두 우리만의 특색이다.세상의 많은 것이 바뀌었어도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수저는 1000년이 넘도록 일관된 생활과 정신을 이어 온 핵심 도구다. 이 전 장관은 무엇보다 한자 ‘저’(箸)에 우리말 ‘가락’을 붙인 것처럼 서로 다른 것을 연결하고 결합하는 젓가락의 성격에 주목한다. 숟가락으로는 국물만 뜬 뒤 내려놓고 다시 젓가락을 들어 건더기만 집어 먹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한 손에서 조화롭게 움직이는 수저문화는 곧 우리 삶의 리듬과 정서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다만 너무 일상과 함께라 ‘작고 하찮은’ 것으로 여겨 ‘젓가락 행진곡’(영국)이나 ‘스마트 젓가락’(중국)을 우리가 만들어 내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을 덧댄다. 그는 “가까이 있는 것, 늘 보아온 작은 것 속에 뜻밖에 깊고 소중한 의미가 담겨 있다”면서 “나와 함께 사는 이웃이 누구인지, 젓가락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하는 여의봉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이 전 장관의 생전 말과 글, 책에 관련한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강연 내용들을 묶은 ‘거시기 머시기’도 젓가락 문화와 비슷한 우리만의 특색을 곳곳에서 설명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흑백의 경계를 넘어선 애매하고 이상한 말이기도 한 ‘거시기’와 ‘머시기’를 두고 이 전 장관은 “언어적 소통과 비언어적 소통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줄타기를 하는 곡예의 언어이기도 하다”고 했다. 뻣뻣하고 뚝뚝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걸 품어 내는 우리말의 힘을 부각시킨 것이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으로 대표되는 역설적 발상을 비롯해 우리말에는 ‘죽어도 안 한다’, ‘좋아 죽겠다’처럼 모순된 표현이 가득하다. “죽음을 통해 생을 말하는 것은 우리 문화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기저음”이라는 이 전 장관은 모순을 끌어안고 서로 다른 것을 아우를 줄 아는 DNA를 언어에서 풀어낸다. 방대한 지식이 쉽고 흥미롭게 흘러 친근하게 와닿는 그의 글귀들은 갈등과 대립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더욱 절실한 포용과 조화의 정신을 가리킨다.
  • ‘골방이 너희를 몸짱되게 하리라’…조국, 수감 중인 부인에 책 선물

    ‘골방이 너희를 몸짱되게 하리라’…조국, 수감 중인 부인에 책 선물

    안민석 의원 등…패널과 대화하던 중 언급“책, 지금도 팔려… 교도소 필독서 됐다”“조국 전 장관, 정경심 교수에게 책 선물”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에게 정봉주 전 의원의 책 ‘골방이 너희를 몸짱되게 하리라’를 선물했다고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이 밝혔다. 이러한 사실은 정 전 의원이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정봉주 TV’에서 공개했다. 책에는 정 전 의원이 입소 전 맨손 운동법을 배운 후 교도소 독방에서 운동기구 없이 운동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 전 의원에 따르면 조 전 장관은 정 전 교수 건강을 위해 책을 선물했다.● “감옥 갔다 오면 슬퍼보여…난 아냐” 정 전 의원은 지난 29일 유튜브 채널에서 자신이 2013년에 출간한 ‘골방이 너희를 몸짱되게 하리라’를 언급했다. 그는 지난 2011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수감됐고 출소한 뒤 이 책을 펴냈다. 그는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과 재판 관련 이야기를 하던 중 “정봉주가 감옥 갔다 온 줄 모르는 사람이 90%다”라며 “감옥 갔다 오면 슬프고 불쌍해 보여야 하는데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안 의원은 “그게 벌써 12년이 됐다. 도시락싸서 면회가던 게 엊그제 같은데”라고 답했다. 정 전 의원은 “10년이다”라며 “그런데 감옥 안 갔다 온 줄 안다”고 다시 한 번 언급했다. 남영희 전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이 “심지어 식스팩을 만들지 않으셨냐”고 정 전 의원에게 물었다. 이에 안 의원은 “교도소에서 쓰신 책이 있다”라고 호응했다.● “지금도 인세 들어와…교도소 필독서” 정 전 의원은 “책이 지금도 팔리고 있는데 일년에 한 번씩 인세가 들어온다”며 “왜냐하면 그게 교도소 필독서다. 조국 전 장관이 정경심 교수에게 책을 넣어줬다. 조국 전 장관이 직접 이야기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저는 감옥가기 4주 전 PT트레이너를 불러서 4주간 골방에서 운동하는 것을 트레이닝받고 메모했다“며 ”감옥가면 1평짜리 고통을 못 버티니까 겨울에 베란다에서 잤다“고 했다. 정 전 의원은 지난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사건 관련 허위사실을 유포한 죄 등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복역해 2012년 12월에 만기출소했다. 정 전 교수는 지난 1월27일 자녀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비리로 징역 4년의 실형을 확정받았다. 실형이 확정되면서 2019년 10월 23일 구속된 정 전 교수는 2024년 6월 초 만기 출소할 것으로 보인다.
  • 문 대통령 연설문집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출간

    문 대통령 연설문집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출간

    청와대는 29일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연설과 메시지를 담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출간했다고 밝혔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는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당시 책임 있는 경제강국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부각하기 위해 문 대통령이 처음 쓴 표현이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에는 문 대통령의 연설과 메시지 중 보훈과 관련한 주요 연설, 해외 순방을 마친 뒤 남긴 글, 대한민국의 미래 아젠다와 관련한 연설 등 총 75편이 담겼다. 1부 ‘기억하고 기리겠습니다’에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현충일, 광복절 등 주요 국가기념일 연설과 국군 및 유엔군 한국전쟁 참전유공자 위로연, 독립유공자 및 유족 초청 오찬, 서해수호의 날 등 보훈과 관련한 25편의 연설이 실렸다. 2부 ‘우리는 거대한 물줄기를 바꾸고 있습니다’에는 문 대통령이 주요 해외국가 순방을 마친 뒤 SNS에 남긴 주요 성과와 소회 37건이 관련한 사진과 담겼다. 3부 ‘우리는 대한민국 100년의 미래를 열었습니다’에는 한국판 뉴딜, 탄소중립, 포용국가와 관련한 문 대통령의 의지를 담은 13편의 연설이 포함됐다. 2020년 4월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처음으로 한국판 뉴딜 추진을 지시할 당시 모두발언을 비롯해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 기조연설 등이 담겼다. 아울러 탄소중립과 관련해 2019년 9월 기후행동 정상회의 기조연설, 국가온실가스감축 목표 상향안을 의결한 2021년 10월 탄소중립위원회 모두발언 등도 수록됐다.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가회동 김영사에서 관계자가 이 출판사에서 출간한 문재인 대통령 주요 연설문집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공개하고 있다. 이 책은 문 대통령이 재임한 5년 동안의 주요 연설을 대통령 비서실이 엄선해 엮은 책으로 주요 행사와 순방에서 대통령이 말한 국정철학이 담겨 있다. 이 연설문집은 30일부터 주요 서점에서 판매될 예정으로 인터넷에서는 현재 주문이 가능하다.
  • “100여년 전 페스트 창궐 시기와 코로나 시대 인간의 태도는 닮았다”

    “100여년 전 페스트 창궐 시기와 코로나 시대 인간의 태도는 닮았다”

    전염병 창궐과 반발 심리 등 다뤄“푸틴 용서 못 받아… 서구도 관망”“현재나 과거나 방역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닮아 있습니다. 정부는 질서가 흐트러지는 걸 원치 않아 처음에 전염병을 부인하고, 사망자 수가 늘어나자 사람들은 누가 퍼뜨렸는지 뒷담화를 하게 되죠. 이후 장기간 지속된 방역에 지쳐 반발하기 시작합니다.”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무크(70)가 인류 공동의 난제 팬데믹을 소재로 한 ‘페스트의 밤’(민음사)으로 돌아왔다. 파무크는 28일 국내 언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과거에는 전염병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했다면, 지금은 많은 정보를 알기 때문에 두려워한다”며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코로나19는 없었지만 페스트 창궐 당시 인간 영혼의 반응을 서술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액자소설 형식을 띤 작품은 여성 역사학자를 화자로 1901년 오스만제국의 속주 ‘민게르’라는 가상의 섬에 페스트가 퍼지며 촉발된 이야기를 다룬다. 섬은 이슬람교와 그리스정교가 공존하는 문명의 충돌지다. 무슬림들은 방역 조치를 존중하지 않고, 종교·정치적 분열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역은 실패한다. 오스만제국은 전염병 확산을 우려한 서구 열강의 압력에 따라 섬을 봉쇄하고, 섬 지도층은 민게르가 독립국임을 선포한다. 파무크는 “죽음은 우리로 하여금 형이상학적인 것을 생각하게 하기에 오랜 세월 동안 전염병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면서 “최근 10년간 이 주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읽었고 방역 적용의 어려움, 방역과 격리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갔다”고 했다. 이어 “이 책을 쓸 때 터키의 정치적 상황도 권위적으로 변하고 민주주의가 희석돼 이를 다루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터키의 전신 오스만제국 말기 풍경을 슬픈 시선으로 묘사한 그는 “당시 오스만은 서구 제국주의가 아닌 수많은 민족주의·종교 등 내부 갈등으로 쪼개졌다”며 “민게르섬은 ‘고립된 공간’이란 주제를 좋아하는 내가 크레타섬, 헤이벨리섬, 메이스섬 등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고 작업 막바지에 코로나19가 닥쳐 ‘전염병이 확산되니까 소설을 썼다’는 오해를 피하고 싶었다는 그는 “격리 부분을 너무 장황하게 서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이를 축소하려 노력했다”고 돌이켰다. 여성을 화자로 설정한 이유와 관련해서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여성 주인공이 사건 내부에서 모든 것을 보고 설명하는 방식의 소설을 쓸 것”이라며 “중동 남성들의 형편없는 사고가 안타깝고 제 모습도 고치려 노력한다”고 했다. 이 책은 터키에서 출간된 지 1년 만에 한국어판이 영미판보다 먼저 나왔다. 팬데믹에 우크라이나 전쟁의 비극이 겹친 현 세계에 대해 파무크는 “푸틴의 공격은 용서받을 수 없지만, 서구 사회도 핵전쟁이 두려워 관망하고 있다”며 “어떤 의미에서 중세가 다시 도래했다”고 진단했다.
  • “터무니없는 文 정부 비난에…” 조국, 직접 밝힌 책 출간 이유

    “터무니없는 文 정부 비난에…” 조국, 직접 밝힌 책 출간 이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보수 야당과 언론은 문재인 정부의 성과에 대해서 터무니없는 비난을 해 왔다”며 “학자로서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 참여했던 공직자로서 ‘이건 정말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점을 해명해야 했다”고 말했다. 28일 조 전 장관은 출판사 메디치미디어가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한 인터뷰에서 최근 책 ‘가불 선진국’을 낸 이유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조 전 장관은 책의 서문을 통해 “책 발간 의도나 책 내용과 무관하게 ‘피고인 주제에 조용히 재판이나 받지 또 책을 내냐’라는 비난이 예상된다”고 적은 바 있다. 그는 “왜 많은 분들이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 실망하고 불만을 갖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며 “저 역시 문재인 정부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자책하고 성찰을 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오는 5월 출범 예정인 새 정부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사회권 강화를 위해서 진짜 선진국이 돼야 되는데, 윤석열 정부의 방침은 정반대일 것 같다”며 “자유권도 후퇴할 것 같다. 사회권을 강화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대선 과정에서 지금까지 민주 정부의 전통을 잇고, 그리고 또 민주 정부의 한계를 반성하면서 진짜 선진국이 되기를 원했던 많은 분들이 이번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힘을 내고 뜻을 모으고 사회권 강화를 위해서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오르한 파무크 “현재나 과거나 방역에 대처하는 태도는 닮아 있어”

    오르한 파무크 “현재나 과거나 방역에 대처하는 태도는 닮아 있어”

    “현재나 과거나 방역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닮아있습니다. 정부는 질서가 흐트러지는 걸 원치 않아 처음에 전염병을 부인하고 사망자 수가 늘어나자 사람들은 누가 퍼뜨렸는지 뒷담화를 하게 되죠. 이후 장기간 지속된 방역에 지쳐 반발하기 시작합니다.”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무크(70)가 인류 공동의 난제 팬데믹을 소재로 한 ‘페스트의 밤’(민음사)으로 독자들에게 돌아왔다. 파무크는 28일 국내 언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과거에는 전염병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했다면, 지금은 많은 정보를 알기 때문에 두려워한다”면서 “제가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코로나19는 없었지만, 페스트 창궐 당시 인간 영혼의 반응을 서술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액자소설 형식을 띤 작품은 여성 역사학자를 화자로 1901년 오스만제국의 속주 ‘민게르’라는 가상의 섬에 페스트가 퍼지며 촉발된 이야기를 다룬다. 섬은 이슬람교와 그리스정교가 공존하는 문명의 충돌지다. 무슬림들은 방역 조치를 존중하지 않고 종교·정치적 분열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역은 실패한다. 오스만제국은 전염병 확산을 우려한 서구 열강의 압력에 따라 섬을 봉쇄하고, 섬 지도층은 민게르가 독립국임을 선포한다. 파무크는 “죽음은 우리로 하여금 형이상학적인 것을 생각하게 하기에 오랜 세월 동안 전염병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면서 “최근 10년간 이 주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읽었고 방역 적용의 어려움, 방역과 격리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갔다”고 했다. 이어 “이 책을 쓸 때 터키의 정치적 상황도 권위적으로 변하고 민주주의가 희석돼 이를 다루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터키의 전신 오스만제국 말기 풍경을 슬픈 시선으로 묘사한 그는 “당시 오스만은 서구제국주의가 아닌 수많은 민족주의·종교 등 내부 갈등으로 쪼개졌다”며 “민게르섬은 ‘고립된 공간’이란 주제를 좋아하는 내가 크레타섬, 헤이벨리섬, 메이스섬 등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고 작업 막바지에 코로나19가 닥쳐 ‘전염병이 확산되니까 소설을 썼다’는 오해를 피하고 싶었다는 그는 “격리 부분을 너무 장황하게 서술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들어 이를 축소하려 노력했다”고 돌이켰다. 여성을 화자로 설정한 이유와 관련해서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여성 주인공이 사건 내부에서 모든 것을 보고 설명하는 방식의 소설을 쓸 것”이라며 “중동 남성들의 형편없는 사고가 안타깝고 제 모습도 고치려 노력한다”고 했다.그는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1947)와 비교하는 시각에 대해 “‘페스트’는 1940년대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한 것을 묘사한 정치적 알레고리인 반면, 제 책은 사실주의적 팬데믹 소설”이라고 강조했다. 이 책은 터키에서 출간된 지 1년 만에 한국어판이 영미판보다 먼저 나왔다. 펜데믹에 우크라이나 전쟁의 비극이 겹친 현 세계에 대해 파무크는 “푸틴의 공격은 용서받을 수 없지만, 서구 사회도 핵전쟁이 두려워 관망하고 있다”며 “어떤 의미에서 중세가 다시 도래했다”고 진단했다. 한국을 두 차례 방문했다는 그는 “펜데믹이 끝나면 한국을 다시 가고 싶다”며 “한국 독자들의 따뜻한 관심에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했다.
  • “내가 간다 하와이”… 해외여행 서적 판매 28% 늘었다

    정부가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해외 입국자의 자가격리 의무를 면제하기로 하는 등 출입국이 쉬워지자 해외여행 서적을 찾는 독자가 늘고 있다. 27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보건당국이 격리면제 지침을 발표한 지난 11일부터 24일까지 2주 동안 해외여행 분야 책 판매량은 직전 2주(2월 25일∼3월 10일)에 비해 28.5% 늘었다. 같은 기간 국내여행 관련 서적 판매량이 1.2%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해외여행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책으로 본 인기 여행지 1순위는 하와이였다. 최근 1주일간 이 분야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책은 여행 가이드북 ‘리얼 하와이’였고, 또 다른 가이드북 ‘하와이 셀프트래블’이 4위에 올랐다. 프랑스 작가 장 크리스토프 뤼팽의 산티아고 순례기 ‘불멸의 산책’,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등의 외국 여행기도 인기를 끌었다. 출판사들은 기존에 나온 책을 손보거나 신간을 펴내고 있다. 하와이, 괌 등 인기 여행지 가이드북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달라진 출입국 규정과 폐업·휴업 등 현지 정보를 반영한 개정판이 올 들어 잇따라 나왔다. 조대현 작가의 ‘뉴노멀, 산티아고 순례길 가이드북’ 등 코로나19 유행으로 막혔다가 재개방된 관광 명소를 다시 다녀와 새로 쓴 책들도 출간됐다. 하와이 가이드북을 내는 한 출판사는 “여행길이 막혀 있을 때 현지 사정이 계속 바뀌었다”며 “책에 수록된 모든 명소, 맛집, 상점을 하나도 빠짐없이 새로 조사했다”고 전했다.  
  •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가 89세를 일기로 26일 별세했다. 서울신문은 2013년 5월 ‘명사가 걸어온 길’이라는 인물탐구 기획 코너를 통해 고인이 밟아온 삶의 궤적을 2회에서 걸쳐 집중적으로 조명한 바 있다. 고인은 당시에도 만 80세 고령이었지만, 스트레이트로 5시간에 걸친 짧지 않은 인터뷰를 정력적으로 소화해 냈다. 자신의 인생을 채워온 수많은 사건들과 사람들을 대부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인터뷰 전문을 그대로 소개한다. ========================== [명사가걸어온 길] (11)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해방·전쟁·좌우 분열… 격동의 시대, ‘책벌레 소년’ 헌법에 눈을 뜨다유신헌법 참여 협박에도 정치권 러브콜에도… 학자의 양심 지켰다열두 살 되던 해 일제가 패망했다. 환희에 천지가 요동쳤다. 해방. 어렸지만 그게 뭔지 너무도 잘 알았다. 그러나 조국의 운명은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혼돈과 분열이었다. 국토는 남북으로 찢기고 민중은 좌우로 갈렸다. 얼마 전까지 ‘조국 해방’을 외치며 함께 어깨를 걸었던 동지들이 생각이 다르다고, 처지가 다르다고 원수가 돼 등을 돌렸다. 어제까지 한 교실에서 공부했던 친구가 좌익 프락치로 몰려 책상을 비웠다. 해방 공간의 극심한 무정부 상태를 보며 소년은 결심했다. 국가 시스템의 뼈대가 되는 헌법을 공부하겠노라고. 그 다짐대로 헌법 연구는 평생의 업이 됐고, 소년은 우리나라 헌법학의 ‘태두’(泰斗)가 됐다.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국헌법연구소에서 만난 김철수(80) 서울대 명예교수는 5시간에 걸친 긴 인터뷰에도 피로한 기색 없이 꼿꼿하게 여든 성상의 인생과 철학을 얘기했다. 유복한 친구 둔 덕에 책 실컷 읽고...극렬한 좌우 대립 지켜보며 성장1933년 7월 대구에서 빈농(貧農) 집안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책 읽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유복한 친구를 둔 덕에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책 읽느라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통학 기차 안에서도 그의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 있었다. “친구 아버지가 당시 대구지역 마사회 회장이었어요. 경마장에는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 나라에서 가져온 세계 문학대전집, 세계 사상대전집 같은 책들이 그득그득 꽂혀 있었지요. 그때 읽은 책 중 가장 감명 깊었던 게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었어요. 강의 중에 ‘레 미제라블’을 말하면 학생들은 ‘아 장발장이 빵 하나 훔쳤다가 탈옥하는 거요?’ 정도의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사실 이 책은 대단한 책입니다. 무려 26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형벌, 정치, 법철학 등 다양한 사회 문제와 고민이 담겨 있으니까요.” 책에 빠져 살던 김 교수의 관심이 사회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은 나라가 광복을 맞으면서였다. ‘민주국가 건설’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어떤 민주주의를 택하느냐를 두고 극심한 분열 양상이 온나라를 휩쓸었다.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나라가 완전히 엉망이었지요. 특히 제가 살던 대구는 당시 공산주의의 총본산인 모스크바(소련의 수도)에 빗대어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렸을 정도예요. 좌익의 활동이 국내 어떤 도시보다도 활발하고 강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극렬한 좌우 대립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았어요. 경찰이 사람을 잡아가고 때리고, 또 반대되는 공공기관 테러가 일어나고. 우리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바로 헌법이었던 것이지요.” 1947년 제헌(制憲) 헌법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법대생이나 학자들이 보던 고시 잡지 등을 읽으며 헌법학자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때가 우리 나이로 열다섯이었다.시력 나빠 전쟁터 끌려가지 않아...대학 입학 천막 강의실 공부 1950년 전쟁이 터졌다. 고도근시로 고생하던 그는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았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전쟁 탓에 서울의 대학들이 부산으로 피란 온 터였다. 부산의 허름한 판자촌에서 법학 강의를 들었다. 법학도들이 ‘천막 강의실’에서 힘겹게 공부하던 이 시기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불법적인 개헌을 추진한다. 이른바 ‘발췌개헌’의 시작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으로 피란 가 있는데 거기에서 임기 4년이 만료됐어요. 이 대통령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헌법을 고치려 들었는데, 이걸 야당이 반대했고 그 결과로 야당 의원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어요” 이 대통령은 “전시에 부산에 침투한 간첩이 많으니 소탕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대며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내 속셈을 드러냈다. 간첩을 잡겠다던 당초 주장과 달리 야당 의원과 무고한 시민에 대한 검거와 폭력이 이뤄졌다. “야당 지도자였던 장면 선생도 잡아넣었어요. 3명 이상 모이면 잡아갔어요. 국회로 출근하는 버스가 있었는데 버스에 탄 채로 계엄사령부에 끌려 가기도 했어요. 옛 경남도청에 무덕관이라고 해서 유도 연습장 같은 곳을 국회의사당으로 썼는데 그 일대에 ‘백골단 깡패’들이 쫙 깔려 있었어요. 이 대통령에 반대하는 의원은 전부 계엄사령부로 소환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김 교수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질곡의 상당 부분은 친일파 등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지만 일부 불가피한 대목도 있었다고 말했다. “광복 이후 친일파 척결은 예견된 수순이었습니다. 그래서 친일파를 처벌하는 법률도 만들었는데 법률로 처벌하려다 보니까 당시 정부관료, 경찰, 군인 등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걸렸던 거죠. 일제강점기 때는 외국 유학자를 비롯해 능력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이 대통령이 보기에 친일파를 다 쫓아내면 행정이나 정치를 못하겠다 싶었던 거죠. 반민특위에 걸렸던 경찰들을 풀어주고, 결국 그 경찰들이 치안 등 최소한의 사회 시스템을 유지해 전쟁통에 질서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죠. 일부 사람들은 이 대통령이 반민특위를 없앴다는 이유로 친일파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당시의 사정도 일부 헤아릴 필요는 있을 겁니다.”이 대통령은 연임에 성공했고 1953년 전쟁이 끝났다. 김철수는 스무 살의 청년이 됐다. 김철수는 한 살 아래 학과 동기를 만나 사랑을 키워갔다. 궁핍과 혼돈의 시대에 서울대 법대 커플의 사랑은 주위의 부러움과 시샘을 샀다. 하지만 당사자들을 포함해 그 누구도 이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대화 주제가 ‘첫번째 아내’로 옮겨가자 김 교수의 목소리톤이 낮아졌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첫 아내’ 전혜린과 캠퍼스 커플...뮌헨대 유학중 결혼 김 교수의 첫 번째 아내는 한국 문학계와 여성 예술인들 사이에서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으로 회자되는 전혜린이다. 두 사람은 부산에서 맺은 인연을 서독(독일 통일 전) 뮌헨에서 키워나갔다. 전혜린이 1955년 먼저 뮌헨대 유학길에 올랐고 김 교수는 이듬해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이역만리에서 기쁨과 고통을 나눴다. 문학가가 꿈이었지만 아버지의 성화로 법대에 진학했던 전혜린은 독문학과에 입학해 그토록 바랐던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체계적인 법 공부에 목 말랐던 김 교수는 법학 공부를 이어갔다. 하지만 전쟁국가 출신 동양인에게 서독은 마음 놓고 공부만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은 아니었다. 당시 누구나 그랬듯 너무도 가난했다. 나라를 벗어나 공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택받은 삶이 됐던 시절이었다. 대통령의 허가가 있어야만 외국 송금이, 그것도 최고 50달러까지만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은 장학금과 통·번역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전혜린은 훗날 유학생활의 궁핍에 대해 “물을 마시니까 죽지는 않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인에 대한 시선은 싸늘했다. 지구상에 한국, 코리아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코리아’라고 그러면 아프리카 콩고에서 왔냐고 그랬어요. 그 나라에 기차는 있느냐, 뭘 먹고 사느냐 등 질문을 해대는데, 미개인 취급을 하더군요. 교수들도 저를 보며 전쟁 중인 나라에서 공부는 무슨 공부를 했겠느냐며 일본 학생들과도 크게 차별을 뒀습니다. 약소국 국민의 설움이란 게 뭔지 당해 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소외감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했다. 1957년 그들은 뮌헨에서 결혼을 했다. 생활은 결혼 전과 다름 없이 곤궁했지만 함께한다는 것만으로 의지와 위안이 됐다. 그러던 중 전혜린은 1959년 딸을 낳고 한국으로 돌아가 이듬해 성균관대에서 강사로 둥지를 틀었다. 김 교수는 2년 뒤 모교 교수 자리를 제안받고 서울로 돌아왔다.이혼 1년 뒤 전혜린 작가 스스로 목숨 끊어 배 고프고 힘들었던 서독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에 왔지만 서울에서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5·16 쿠데타가 터졌다. 박정희 당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무력으로 청와대를 장악했다. 당시 박정희 군부가 취한 여러 조치 가운데 ‘군 미필자는 공무원이 되지 못한다’는 게 있었다. 시력이 나빠 군대에 못 간 김 교수는 공무원인 서울대 교수에 임용되지 못했다. 서울대는 물론 어디에서도 군 미필자인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내와의 관계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입국한 전혜린은 대학에서 강의하며 서울의 문인들과 어울렸다. 밤 늦게까지 명동에서 삶과 죽음, 예술을 논했다.“아내가 언제부턴가 문인의 죽음을 동경했어요. 처음에는 나는 사회규범과 질서를 중시하는 법학자이고 아내는 사회의 틀보다는 자유와 이상을 갈망하는 문학가라서 서로 다르겠거니 했는데 이 사람이 자꾸 ‘니체도 카프카도 일찍 죽었다’ 이러면서 빨리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거예요. 수면제도 많이 갖고 다니고. 그러다 보니 저도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결국 두 사람은 1964년 합의이혼을 했다. 그리고 1년 뒤 전혜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그는 교수 임용 제한이 풀리면서 서울대 법대 학생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고교 교사와 재혼...꼬박꼬박 ‘그 사람’ 제사 챙기는 아내 그로부터 2년 뒤 김 교수는 고교 교사와 재혼을 했다. “아내는 지금도 꼬박꼬박 그 사람(전혜린)의 제사를 지내고 있어요. 자기가 낳은 아이들에게도 제사에 꼭 참석하라고 그러고. 참 고마운 사람이죠.” 그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반평생 이상을 함께하고 있는 지금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함께 표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큰 시련을 겪고 난 그는 다시 연구에 매진했다. 체계적인 헌법학 이론과 정력적인 강의, 활발한 저술활동으로 헌법학계에서 빠르게 자신의 입지를 굳혀갔다. 이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새롭게 부상하는 법학자에 대해 점차 날카로운 감시의 눈초리를 들이대도록 만드는 빌미가 됐다. 드디어 등장한 유신헌법의 시대. ‘학자 김철수’는 어떻게든 이 난국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3년 12월 17일부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스러진 1979년 10월 26일까지 15년 10개월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잘살아보세~”라는 한목소리 외의 다른 의견과 생각은 용납되지 않는 시대였다. ‘지성인의 전당’인 대학에는 사복 경찰과 정보원들이 교수와 학생들을 감시하며 일거수 일투족을 ‘상부’에 보고했다. 이런 박정희 정권에도 대학과 언론의 비판이 제한적이나마 가능했다. 적어도 잡아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1962년부터 3년간 서울대 학생과장...‘중정’과 맞서“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수로 임용되지 못하고 학교에서 무급 조교로 일하다가 1962년 9월 취업 제한이 풀리면서 학생과장을 맡았어요. 요즘 같으면 학생담당 부학장쯤 되는데 그걸 만 3년 했어요. 3년 동안 중정(중앙정보부) 사람들이랑 참 많이도 싸웠었죠. 학교에 출입하던 중정 사람 중 훗날 안기부(중정의 후신 국가안전기획부)의 장까지 하고 그랬는데 이 사람들은 어느 교수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뭘 가르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낱낱이 기록해 상부에 보고했어요. 그때 중정의 한 간부가 ‘당신에 대한 기록이 엄청 쌓여 있다. 중정에서는 당신이 학생들 선동하는 걸로 보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하기도 했었죠. 하긴 그땐 법대 학생들이 제일 열심히 데모했고, 그 학생들에게 우리 법이 잘못됐다고 가르친 것도 나였으니….” 교수들로부터 정의와 바른 법치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은 거리로 나갔다. 김 교수의 말대로 당시 서울대에서는 법대생들을 중심으로 학생운동이 조직됐다. 이때 서울대 총학생회장도 법대 소속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실장을 지낸 정정길(71)씨다. 서울의 대학생들은 연합해 정권의 부당함에 맞섰다. 대표적인 사건이 1964년 한일기본 협정 반대 시위다. 박 대통령이 일본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정을 추진하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굴욕 외교’라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시위 세력은 들불처럼 번지면서 그해 ‘6·3 사태’가 터졌다. 1964년 한일협정 반대시위 선봉 고려대 이명박-서울대 정정길 박 대통령은 6월 3일 시위대 해산을 위해 서울시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서울 시내에 4개 사단병력을 투입해 시위 학생들을 잡아들였다. 이때 시위대 선봉에서 정정길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함께 나선 인물이 이명박 고려대 상대 회장이다. 김 교수는 “당시 단과대 회장은 훗날 대통령이 되고 다른 학교 총학생회장은 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됐는데 어찌 보면 거꾸로 된 거 같기도 하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재미있는 인연이죠. 노태우 정권에서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13~15대 국회의원)도 시위단 사이에서 격문 쓰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죠”라며 웃어 보였다. 학생들을 거리로 이끈 것은 바른 정치와 민주화를 향한 학생들의 뜨거운 열망과 굳은 의지였지만, 중정에 끌려간 그들을 빼오는 것은 교수들의 몫이었다. 6·3사태로 정정길을 비롯한 수많은 서울대생들이 중정과 경찰 등에 잡혀갔다. 법대 학장이 학생들에 대한 보증서를 써 주고 김 교수 등이 중정 등을 찾아가 사정해 수감된 학생들을 빼왔다. “그땐 시위가 끊이지 않았는데 시위만 했다 하면 학생들이 청와대로 가야 한다고 해서 중앙청(현 경복궁 자리)으로 가곤 했죠. 저는 학생 관리도 제 일이었으니까 관리 차원에서 같이 중앙청으로 따라가고 하면서 치안국 보안과장과 서울 정보분실장과도 자주 마주쳤죠. 한 놈은 중학교 동기고 또 한 놈은 대학 동기였는데 그놈들이 저한테 ‘너는 학생 과장이라면서 왜 학생 선도도 못하냐’고 난리를 피우고 그러면 저는 ‘니들이나 똑바로 해라’며 목소리를 높이곤 했어요.” 정보요원이 수업을 감시하고 학생들이 중정과 경찰서 유치장 등을 드나들었어도 김 교수는 ‘그나마 괜찮았던 시절’이라고 했다. 여기에 더해 1960년대에 몇 없었던 ‘낭만적인 에피소드’도 소개했다.창경궁 통째로 빌려 이대생들과 미팅 주선 “그때라고 해서 학생들이 시위만 하고 돌 던지고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하루는 총학생회장 정정길이 우리가 종합대학이니까 종합대 축제를 하자면서 서울대생 전원과 이화여대생 전원 미팅을 제안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지만 청춘 남녀들에게 좋은 일이겠다 싶어서 제가 창경원(현 창경궁)을 빌려볼 생각으로 창경원장을 찾아갔어요. 창경원장도 학교 선배였거든요. 창경원장도 암울한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좋은 일이라며 흔쾌히 승낙하면서 날을 잡아 ‘창경원 오후 휴원’이라고 걸어놓고 두 학교 학생들만 무료 입장시켰죠. 지금 보면 대규모 미팅 같은 것인데 순 남학생 판에 여학생은 몇 없고 그런 모습도 어찌나 재밌던지… 그래도 훗날 그 만남을 계기로 결혼한 사람이 10쌍도 넘더라고요. 우리한텐 재미고 낭만이었지만 다음 날 청소하시는 분들 애 많이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캠퍼스의 소소한 낭만도, 학자 김철수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도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1972년 10월 박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선포한다. 박정희 정권은 김철수에게 유신헌법에 근거한 탄압에 앞서 유신헌법 제정 공신이 되기를 강요했다. “정권이 유신헌법 만들려고 여러 가지 작업을 했어요. 몇몇 교수는 해외에 보내서 자료 수집을 담당하게 하고 나를 포함한 야당 성향 교수들도 법무부 자문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그걸 하라고 강요했죠. 나는 절대로 못한다고 했더니 정부 쪽에서는 쉽게 말해 까불지 말라는 식이었고 일부는 참여를 거부하면 항명죄라며 협박까지 했죠. 그게 다 나중에 유신헌법이 각계의 자문위원들이 참여해 만든 것이라는, 정당성 부여를 위한 계략이었던 거죠.” 김 교수는 갖은 협박성 설득에도 학자의 양심을 지켰다. 하지만 이어 유신헌법 홍보에 나서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말이 제안이지 명령과 강압이었다. 정권은 중정을 통해 김 교수가 방송과 라디오에서 유신헌법 홍보를 맡도록 압박했다. 유신헌법 찬양 글·홍보방송 안하고 버텨 “하루는 학교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해서 나갔는데 식사 마치고 저를 TBC(동양방송) 앞에 내려주더군요. 방송에 출연하라는 뜻이었죠. 결국 정문으로 들어가 바로 후문으로 빠져나갔죠. 방송은 저 대신 다른 분이 출연했는데 중정에서는 방송 펑크 냈다고 난리가 났고, 그때 제대로 찍혀 저에 대한 탄압도 시작됐습니다.” 당시 김 교수는 한 언론사의 논설위원을 겸하고 있었다. 역시 유신헌법을 찬양하는 글을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김 교수는 학자의 양심에 반하는 글은 쓸 수 없었다. 결국 해당 언론사의 정치부장이 찬양 글을 대신 썼다. 이후 김 교수를 대신해 유신을 찬양했던 한 인사는 국회 배지를 달았고, 또 한 인사는 장관까지 올랐다. 반면 김 교수에게는 정권의 보복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저술 활동이 금지됐다. “청와대 쪽 사람들과 법학자들과 저녁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저한테 ‘절대로 책 쓰지 말라. 책 쓰면 큰일 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때 이미 제3공화국에 관한 헌법책을 다 써놨고 유신헌법이 나오면서 유신헌법의 문제점까지 다 정리한 상태였거든요. 출간을 강행했죠. 그게 1973년 1월 10일이었습니다.” 저술활동 금지당한 후 미·독 떠돌아 하지만 책은 출간 즉시 전량 몰수됐고 김 교수는 중정에 끌려갔다. 일주일간 회유와 압박이 이어졌다. 박 대통령을 ‘독재적인 대통령’, 유신헌법을 ‘현대판 군주제’라고 비판한 대목에 대해서는 북한과 내통한 것 아니냐는 억지도 부렸다. 결국 김 교수는 정권이 문제 삼은 부분의 수정을 약속하고 풀려났다. 1년간 집필이 금지됐고, 연구비도 끊겼다. 김 교수는 더 이상 한국에 머무를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과 독일 등지의 방문 교수를 지원해 국외를 떠돌며 박정희의 시대가, 유신의 시대가 저물기만을 바랐다. 철권(鐵拳) 같았던 박정희의 시대가 저물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 유신헌법으로 유린된 헌법을 바로잡을 논의가 시작됐다. 이때 김 교수도 헌법 개정에 참여했다. 김 교수 등이 제안한 개정안은 최규하 당시 대통령도 만족했다. 그러나 곧 전두환이라는 걸림돌을 만나 헌법도 정치적 의도로 변질됐다. 그래도 김 교수는 1987년 헌법재판소 설치를 ‘유신 이후 헌법적 발전’으로 꼽았다. 대화는 자연스레 헌법재판소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김 교수는 애정 어린 쓴소리를 늘어놨다. “요즘 헌재의 결정을 보면 재판관들이 얼마나 헌법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야간 옥외집회 금지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이런 것들은 또 질서 유지의 관점으로 보면 필요하거든요. 판검사들이 재판관이 되는데 판검사 때는 헌법을 읽을 일이 없어요. 오히려 연구관들이 재판관보다 헌법을 더 잘 알아요. 재판관 임명 시 헌법에 대한 이해도를 반영할 필요가 있어요.” 최근 긴급조치 위헌에 대한 해석 권한을 놓고 헌재와 대법원이 갈등을 빚은 데 대해서는 헌재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독일은 최고 사법부가 헌법재판소입니다. 학자들은 우리나라도 헌법 만들 때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로 둬야 한다고 주장해 법원에서 결사반대했던 건데 헌법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헌법 해석권한을 가진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에 두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유신시절 정권에 저항했던 모습에 비하면 상당히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대중의 평가에 대해서는 ‘공동체 주의’를 강조했다. “30대에 진보적이지 않고 40대에 보수적이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아무래도 젊을 때는 개인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갖기 쉽죠.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면 아무리 똑똑하고 잘해도 개인은 모래알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찰을 2만명 증원하겠다고 했는데 생각해 보면 국민이 질서를 지킨다면 이런 사회 비용을 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결국 개인주의에서 공동체 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판관 임명시 헌법 이해도 반영 필요”여든의 노학자는 헌법 연구에만 매진한 인생을 조용히 돌아봤다. 그는 학자가 대통령이 될 게 아니라면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학자가 정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 학자의 소신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교수는 1980년대 여야를 막론하고 정부에서도 관료로 ‘러브콜’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저는 대학교수가 관료나 정계로 가는 걸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어요. 학자나 언론인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할 수 있지만 관료나 정치인이 되면 조직 논리가 우선하거든요. 소신을 지키려면 쓴소리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공직에서 그런 사람은 살아 남기 힘들죠. 정치권은 특히 더 심하고요. 어떤 정치인이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수와 싸울 수 있겠어요” 장시간의 인터뷰는 젊은 기자도 피로감을 느낄 정도였지만 김 교수는 여전히 생기가 넘쳤다. 헌법과 사회 질서에 대한 고민에서는 좌익 프락치로 몰려 잡혀가는 친구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소년 김철수의 고민도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인터뷰를 마치며 책장 가득한 그의 저서를 보며 “인세도 많이 받으셨겠다”는 농담 섞인 질문을 던졌다. “옛날엔 꽤 들어오더니만 요즘은 학생들이 책을 안 사긴 참 안 사네요”라며 웃어 보였다. ■김철수가 걸어온 길 1933년 경북 대구 출생(6남 1녀 중 장남) 1956년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1957년 서독 뮌헨에서 전혜린과 결혼 1961년 서독 뮌헨대 졸업 1962년 서울대 법과대학 조교수 1967년 미국 하버드대 법과대학원 수료 1971년 서울대 법학박사 1972년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1998년) 1988년 한국공법학회 회장(~1989년) 1990년 한국헌법연구소 소장(~2001년) 1995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국제헌법학회 이사 1998년 제주 탐라대 총장(~2000년)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1998년~) ■주요저서 헌법학(1972) 현대헌법론(1979) 비교헌법론(1980) 법과 사회정의(1982) 한국헌법사(1988) 법과 정치(1995) 정치개혁과 사법개혁(1998) 헌법정치의 이상과 현실(2012)
  • 격리 의무 면제에 해외여행 책 판매↑…인기여행지는 하와이

    격리 의무 면제에 해외여행 책 판매↑…인기여행지는 하와이

    백신 접종한 해외 입국자의 자가격리 의무가 면제되는 등 출입국 문턱이 낮아지면서 해외여행 서적을 찾는 독자가 증가하고 있다. 27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정부가 격리면제 지침을 발표한 지난 11일부터 24일까지 2주 동안 해외여행 분야 책 판매량은 직전 2주(지난달 25일∼이달 10일)에 비해 28.5% 늘어났다. 같은 기간 국내여행 관련 서적 판매량은 1.2% 늘어나는 데 그친 것을 감안하면 해외여행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보인다. 책으로 본 인기 여행지는 하와이다. 최근 1주일간 이 분야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책은 여행 가이드북 ‘리얼 하와이’였고 또다른 가이드북 ‘하와이 셀프트래블’이 4위다. 프랑스 작가 장 크리스토프 뤼팽의 산티아고 순례기 ‘불멸의 산책’,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등 외국 여행기도 인기다. 출판사들은 출입국 규제 완화에 맞춰 기존에 나온 책을 손보거나 신간을 내고 있다. 하와이·괌 등 인기 여행지 가이드북은 팬데믹으로 달라진 출입국 규정과 팬데믹 기간 폐업·휴업 등 현지 정보를 반영한 개정판이 올 들어 잇따라 출간됐다. 하와이 가이드북을 내는 한 출판사는 “여행길이 막혀 있을 때 현지 사정이 쉼 없이 바뀌었다”며 “책에 수록된 모든 명소·맛집·상점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수조사했다”고 전했다.
  • 조국 ‘가불 선진국’ 출간 동시에 베스트셀러 1위… “文정부, 최초의 ‘선진국’ 대열 진입”

    조국 ‘가불 선진국’ 출간 동시에 베스트셀러 1위… “文정부, 최초의 ‘선진국’ 대열 진입”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신간 ‘가불 선진국’(메디치미디어)이 25일 공식 출간되자마자 종합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지난 17일 예약판매부터 책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출판사는 벌써 6쇄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장관의 책은 이날 오후 교보문고 강남점과 광화문점, 잠실점 등 오프라인 서점에 진열됐다. 지난 17일 메디치미디어 공식 홈페이지에서 예약판매로 1000부가 소진된 뒤 교보문고와 예스24, 알라딘 등 주요 서점을 통해 온라인 예약판매가 이뤄졌다. 예약판매로 이미 3만여부, 4쇄 분량에 가까운 책이 판매된 것으로 전해졌다. 공식 출간일인 이날 ‘가불 선진국’은 교보문고 인터넷 베스트셀러 주간 1위, 예스24 국내도서 종합 베스트셀러 1위, 알라딘 주간 베스트셀러 1위에 나란히 올랐다. ‘가불 선진국’은 조 전 장관이 문재인 정부 국정 운영에 참여한 경험을 토대로 성과와 부족한 점, 미완의 과제 등을 정리한 책이다. 조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의 정신에 기초해 국정을 운영했고 대한민국을 최초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시킨 정부”라면서 “문재인 정부의 최고 성과는 외교, 안보, 방역에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우리나라에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라며 사회권의 강화를 주장한다. 노동3권, 근로의 권리,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주거권, 보건권, 건강권 등 시민들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의 실책으로 가장 많이 비판받는 것이 부동산 정책”이라면서 “자기 소유의 집을 가지려는 시민의 꿈은 소중하며 존중되어야 하지만 집값을 단지 시장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지대 개혁을 통해 집이 투기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동시에 국가는 자기 소유의 집 외에도 다양한 주거 형태를 공급해 시민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택정책의 초점은 중산층과 서민에게 안정적 주거를 제공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 부커상 받은 한강 ‘채식주의자’ 15년 만에 개정판으로 나와

    부커상 받은 한강 ‘채식주의자’ 15년 만에 개정판으로 나와

    한강(52) 작가의 대표 소설 ‘채식주의자’가 출간 15년 만에 새로운 장정의 개정판으로 나왔다. 2007년 출간된 이 소설은 2016년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영국의 부커상(당시에는 맨부커상) 국제부문, 2018년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을 받아 한국 문학의 입지를 한 단계 확장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출판사 창비는 ‘채식주의자’가 현재까지 100만 부 가까이 판매됐으며 40개가 넘는 국가에 판권이 수출됐다고 전했다. 책은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등 소설 3편을 하나로 연결한 연작 소설집이다. 어린 시절 폭력의 트라우마로 육식을 거부하게 된 여자가 극단적인 채식을 하면서 나무가 되기를 꿈꾸며 죽음에 다가가는 이야기다. 상처받은 영혼의 고통과 환상적이면서도 괴이한 상상력이 결합해 섬뜩한 아름다움의 미학을 보여준다.2010년부터 일본, 중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꾸준히 번역 출간됐고, 2015년 영국 포르토벨로 출판사, 2016년 미국 호가드 출판사가 펴내며 해외 유력 매체의 호평을 받았다. 영국 가디언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산문과 믿을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인 내용의 조합이 충격적”이라고 평했다. 인간 본질과 이면의 ‘고통’에 천착해온 작가는 다시 쓴 작가의 말에서 “출간 후 15년의 시간이 세찬 물살처럼 흐르는 동안, 고백하자면 이 책에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며 “세간의 관심도 오해도 뜨겁고 날카로워, 혼자서 이 소설을 써가던 순간들의 진실과 동떨어진 것이 되어버린 듯 느낀 때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귀밑머리가 희어지고 어느 때보다 머리가 맑은 지금, 나에게는 이 소설을 껴안을 힘이 있다. 여전히 생생한 고통과 질문으로 가득 찬 이 책을”이라고 말했다. ‘채식주의자’는 오는 9월 연극으로 제작돼 국립극단 무대에 오른 뒤 12월 벨기에 리에주극장에서 해외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 아이들이 물었다 “가족이란 뭘까”[어린이 책]

    아이들이 물었다 “가족이란 뭘까”[어린이 책]

    오늘의 햇살 윤슬 지음문학과 지성사/108쪽/1만 1000원 생명의 무게를 일깨우고 가족의 의미를 묻는 동화가 출간됐다. ‘어린이와 문학’ 추천으로 등단하고 제14회 웅진주니어문학상 단편 부문 대상을 수상한 윤슬 작가의 첫 책 ‘오늘의 햇살’이다. 책에는 남들보다 일찍 상실과 부재를 경험한 아이들이 새끼 고라니, 열대어 베타, 늙은 고양이, 철없는 오리와 어우러져 성장해 가는 이야기가 담겼다. 비 오는 날 수로에 빠진 새끼 고라니를 구해 보살피는 소유·미유 자매와 엄마(‘안녕, 고라니’), 엄마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후 엄마를 키워 낸 외할머니의 주름진 손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은하(‘작별 인사’), 마치 부모 자식처럼 서로 끔찍이 위하는 고양이와 오리를 보며 자꾸 심통을 부리는 진호(‘냥이와 오리’). 네 명의 아이는 곁에 있는 여리고 약한 동물을 보듬으며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한다.미유는 고모가 엄마가 된 상황을 “난 엄마라고 불러. 고모가 우리 엄마 해 준댔어”라고 씩씩하게 대답하지만, 엄마를 잃어버린 고라니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다. ‘정말 낳아 준 엄마가 필요한 걸까’, ‘진짜 엄마’란 뭘까 생각한다. 하지만 고모의 손길에 안정을 찾는 고라니의 모습을 보면서 언제나 망설임 없이 손을 잡아 주고 함께하는 것이 가족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 아이들에게 백점병이 걸린 열대어 베타를 버리듯 맡기고 간 어른이 있는가 하면, 베타를 살리기 위해 친구들과 고군분투하며 엄마 잃은 상실을 조금씩 치유하는 은하도 있다. 세 편의 연작 동화를 통해 작가는 ‘살아 있는 건 다 무게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족이 뭘까’ 혼란스러워하는 아이들을 토닥인다. “괜찮아, 모두 가족이야”라고.
  • 性·죽음… 인간 날것의 감정 파헤친 에르노의 자전 기록

    性·죽음… 인간 날것의 감정 파헤친 에르노의 자전 기록

    카사노바 호텔 아니 에르노 지음/정혜용 옮김문학동네/136쪽/1만 3500원 ‘나’는 1980년대 영수증 더미에서 발견한 P의 편지를 보고 어머니가 정신질환으로 입원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아주 오래전 홀로 죽음에 다가가는 어머니를 잊으려고 나는 P와 카사노바 호텔에서 성관계를 맺었다. 그 후 우연히 머리가 하얗게 센 P를 보게 되니 육체적 사랑의 ‘가없음’과 ‘불가해함’을 느낀다. 프랑스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이자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아니 에르노(82)가 2020년 출간한 선집 ‘카사노바 호텔’은 이처럼 그의 작품 세계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다채로운 에세이와 소설 12편으로 구성됐다. 이 책은 프랑스 문학 거장들의 작품을 묶어 내놓은 갈리마르 총서에 포함된 ‘삶을 쓰다’(2011) 중에서 작가의 주제 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낸 정수를 추렸다. 에르노는 생존 작가로서는 최초로 갈리마르 총서에 작품이 실린 인물이기도 하다. 작가는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소신대로 인간의 욕망과 날것의 감정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자전적 에세이이자 표제작인 ‘카사노바 호텔’(1998)은 앞에서처럼 평생에 걸쳐 천착한 에로스(성적 욕망)와 타나토스(죽음의 본능)를 다뤘다. ‘슬픔’(2002)에서는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죽음에 경의를 표했고, 단편소설 ‘축하연’(2006)에서는 결혼을 앞둔 커플과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결혼 축하연이 상징하는 환한 빛과 그 이면의 쓸쓸함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금세기 저편에서’(1999)는 21세기를 앞두고 20세기의 정서, 인물과 사건이 잊혀질 것에 대한 아쉬움이 드러난다.무엇보다 ‘문학과 정치’(1989)에서 “문학이 방식은 달라도 정치 행위와 마찬가지로 사회 변화를 촉발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54쪽)고 밝힌 것은 문학은 현실과 맞닿아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작가의 견해를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정치적 저항과 사랑의 열정을 강조한 작가답게 일상의 사소하고 평범한 고통과 갈등 속에서도 거침없이 파고드는 언어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독자는 에르노 입문서와도 같은 이 책을 통해 작가 개인의 사건과 상상력이 한 세대의 집단 기억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문학동네는 표제작 ‘카사노바 호텔’과 궤를 같이하는 작가의 대표 소설 ‘탐닉’(왼쪽)과 ‘집착’(오른쪽)의 개정판도 같이 펴냈다. 각각 중독과 같은 사랑과 기다림, 질투에 점령당한 여자의 모놀로그를 그린 책들로 함께 읽으면 에르노의 작품 세계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 번역가는 기술자?… 번역이 없었다면 한국문학도 없었다

    번역가는 기술자?… 번역이 없었다면 한국문학도 없었다

    “세계문학을 읽고 번역하면서 한국문학이 성장했고 번역을 통해 우리 말과 글이 보다 풍성해졌다는, 당연하지만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1895년부터 1960년까지 우리말로 번역된 세계 문학 작품 378편의 서문과 후기를 한데 모은 ‘번역가의 머리말’(소명출판)을 펴낸 박진영(50)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23일 번역의 역할을 거듭 강조했다. “번역도 문학이라는 생각이 부족했고, 번역가가 단순히 언어를 전하는 기술자가 아니라 우리 문학의 한 주체라는 인식도 없었다”며 학계와 출판계 풍토를 꼬집으면서다. 박 교수는 7~8년 전부터 번역 작품 속에 번역가들이 남긴 ‘머리말’들을 모았다. 전국 대학 도서관이나 헌책방을 뒤지다시피 했는데 1960년대 이후부턴 누가 번역을 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책들이 허다했다. 그는 “1960~1980년대엔 번역가가 명시되지 않은 경우도 굉장히 많고 필명이나 유명 작가 이름으로 출간한 책도 많았다”면서 “창작이 아니라는 이유로 번역을 모방쯤으로 여기는 편견이 강했고 번역가가 우리 문학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는 인식이 없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그나마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까지는 번역가들의 목소리가 남아 있었지만 ‘책 한 권이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리가 안 돼 있었다. 서문을 떼고 개정판을 낸 책도 많아 신문과 잡지, 단행본 등 옛 자료들의 실물을 찾아 일일이 확인해 가며 번역가들의 글을 복원했다. 그렇게 계몽기와 식민지 시기 73편, 해방기 27편, 6·25전쟁 전후 소설 44편을 비롯해 시집 25편, 희곡 25편, 아동문학 44편, 추리소설과 모험소설 31편, 중국문학 44편과 일본문학 24편 등 다양한 시대와 장르에 걸쳐 해외 작품을 우리말로 빚어낸 번역가들의 글을 한 권에 담았다. 잔다르크를 다룬 ‘애국부인전’(1907)을 역술한 장지연은 “슬프다, 우리나라도 약안(잔다르크) 같은 영웅호걸과 애국충의의 여자가 혹 있는가”라고 외치기도 했고, ‘엉클 톰스 캐빈’을 원작으로 한 ‘검둥의 설움’(1913)을 옮긴 이광수는 “대강의 대강을 번역하여 여러 젊은이에게 드리노니 이 굉장한 책이 어떤 것인 줄이나 알고 글의 힘이 얼마나 큰 줄이나 알면 내 소원은 이룸이로라”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김소월의 스승으로 알려진 김억은 이 책의 한 챕터를 차지할 만큼 프랑스 상징주의와 고전 한시를 넘나드는 많은 머리말을 남기며 정교한 번역론을 펼치기도 했다. 박 교수는 “우리 문학의 ‘최초’를 쓴 이광수와 최남선 등도 번역을 통해 문학적 출발을 했다는 게 인상적”이라면서 “또 많은 번역가들이 단순히 언어를 옮기는 문제가 아니라 작품에 시대정신을 녹이고 새로운 상상력을 어떻게 우리말로 풀어내 독자들과 잘 만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는지 머리말로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책 속 절반 가까이가 1920년대까지 작품들인데 그만큼 ‘한국 문학’이 자리잡기 전부터 번역이 문학의 자리를 채운 것이라는 의의도 덧붙였다. 다만 박 교수는 “번역문학과 번역가에 대한 인식은 아직 크게 나아지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번역가가 제대로 책에 등장한 것도 저작권 개념이 체계화된 1990년대 들어서였고 비교문학이 아닌 번역문학 자체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등장한 것도 불과 10여년 전부터다. 그는 특히 “사회과학이나 과학기술 등 우리의 모든 학문 분야도 번역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었음을 알아야 한다”며 “번역가의 날·번역문학상 제정 등 번역가에 대한 대접이 좋아지고 번역도 더 활발해져야 우리 문학이나 사상, 과학기술도 같이 발전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 “비슷한 詩 쓰면 시집 아닌 수집”

    “비슷한 詩 쓰면 시집 아닌 수집”

    “젊은 날 시가 담긴 그림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내게 그림은 시와 같습니다. 나의 일부이며 시의 일부입니다. 30년이 흐르니까 그 시들을 떠나보내야 할 때가 되더라고요. 가지고 있는 게 짐이 되더라고요.” 제주 중산간에 자리잡은 제주돌문화공원 내 ‘누보’에서 ‘내가 사랑한 그림’ 전시회를 열고 있는 황학주(67) 시인은 지난 18일 조천읍 신촌리 자택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전시회에서는 황 시인이 그동안 모은 40여점의 그림을 볼 수 있으며 전시는 다음달 24일까지 계속된다. 그는 시인이 자신의 소장품으로 전시회를 하게 된 게 부담스러운 듯 대뜸 먼 과거로의 여행을 안내하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검정고시를 치르며 늦깎이로 대학을 졸업한 그는 30대에 월간 기독교 잡지 ‘목회’에 취직해 표지 구하는 일을 하면서 화가들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등단하기 전에 화가들을 먼저 만난 그는 그래서 그림을 시라고 부른다. 그림을 모으게 된 계기는 직장 다닐 때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 술집에서 벽에 걸린 그림을 만나면서다. 화가의 이름도 모른 채 ‘돌담 위 까마귀’(4호) 한 점을 손에 넣었다. 변시지 화백의 그림이었다. 긴 시간이 흘러 변 화백의 고향 제주에 정착하게 된 그는 “변 선생의 작품에 관한 시를 쓴 인연으로 변시지재단 이사 송정희 누보갤러리 대표를 알게 됐다”면서 “집에 있는 그림을 보더니 넌지시 전시회를 권유해 열게 됐다”며 웃었다. 이어 그는 “작품들을 몇십 년 동안 벽에 걸어놓는 예우조차 못한 게 미안하다”고도 했다. 그는 시적 감성이 묻어나는 그림들을 주로 수집했다. 조병화·고은·이제하 시인이 직접 그려 준 ‘시인 황학주 초상’과 유명 화가인 전혁림, 백영수의 작품도 있다. 목포대 출강 때 인연을 맺은 구호단체와 해외로 봉사 나갈 때마다 틈틈이 그림을 구하기도 했다. 특히 황 시인은 어렵게 손에 쥔 피카소의 친필 사인이 있는 판화 ‘올가의 초상’ 수집 과정을 말할 때는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피카소의 첫 번째 부인 올가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 폴에게 1963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판화로 ‘사랑하는 아들 폴에게’라는 친필 사인이 있다”며 “화랑 주인과 메일을 10통이나 주고받은 끝에 주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광주 출신인 그는 시인이 된 후 줄곧 중심(서울)에서 ‘멀리’ 있는 삶을 산다. 제주살이 8년인 그는 첫 시집 ‘사람’을 우도에서 썼다. 협재에서는 시집 ‘너무나 얇은 생의 담요’를 완성했다. 그는 “멀리 있는 제주는 누구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은, ‘아까운 섬’이다”라며 “내년에 12번째 시집을 낼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시가 된다고 계속 비슷한 시를 쓰는 건 시집이 아니라 수집”이라면서 “나는 허락받고 시인이 된 적이 없다. 내 시가 죽었다는 선고를 받기 전에 스스로 시가 안 좋다고 생각하면 시 쓰는 걸 멈추겠다”고 말했다.
  • ‘백윤식 전 연인’ K씨 “백윤식과 연애 경험 책, 남편도 출간 동의”

    ‘백윤식 전 연인’ K씨 “백윤식과 연애 경험 책, 남편도 출간 동의”

    K씨 “결혼 3년, 혼인신고 했다”백윤식과 첫날밤, 교제과정 담아백윤식 소속사 측 법적 대응 예고배우 백윤식의 전 연인이자 지상파 기자로 활동 중인 K씨가 현재 결혼한지 3년이 됐으며 남편으로부터 백윤식의 이야기가 담긴 책 출간에 대한 동의도 받았다고 밝혔다. K씨는 23일 공개된 여성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남편이 백윤식과의 연애 경험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집 ‘알코올 생존자’를 출간하는 것에 대해 동의했다며 “남편은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어떻게 하든 전적으로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이다”라면서 “출판에 대해서도 자기가 터치할 일이 아니라면서, 본인은 한 사람의 독자라고 생각한다고 하더라, 그런 게 참 고맙다”고 말했다. 또한 남편에 대해서는 “(결혼한지) 3년 됐다, 혼인신고도 했다”면서 “일하다 만난 사이라 생활 패턴이 잘 맞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지상파 방송국 기자로 일하고 있는 K씨는 최근 백윤식과의 첫날밤과 교제 과정, 결혼과 임신 준비 등 사적인 내용이 담겨있는 자전적 에세이 ‘알코올생존자’를 출간했다.백윤식 소속사 “강력 법적 조치 검토” K씨의 책 출간 소식에 백윤식의 소속사 판타지오 측은 “책 출간과 관련해 확인하고 있으며 관련 강력하고 엄중한 법적 조치까지 검토할 예정”이라고 지난 2일 입장을 밝혔다. 또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책에 대한 출판 및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편 백윤식과 K씨의 관계는 2013년 한 매체가 보도한 사진으로 인해 세간에 알려졌다. 당시 두 사람은 열애를 인정했지만, 얼마 뒤 K씨가 “백윤식에 대해 폭로할 것이 있다”면서 기자회견을 예고해 파장이 일었다. 이후 기자회견은 취소됐고 K씨는 한 매체를 통해 ‘백윤식에게 20년간 교제한 다른 여인이 있다’ ‘백윤식의 아들 도빈, 서빈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등의 내용을 주장했다.
  • 광주시장 선거전 점화... 이용섭-강기정 리턴매치 시동

    광주시장 선거전 점화... 이용섭-강기정 리턴매치 시동

    22일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 광주상의서 출마 회견 이용섭 시장, 오는 28일께 출마선언...이번주 현안 마무리 국민의힘에서도 ‘서진정책’ 일환으로 광주시장 후보 물색 오는 6월 1일 광주시장 선거를 앞두고 양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이용섭 광주시장과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본격 선거운동 체제로 전환하며 4년만의 ‘리턴매치’에 시동을 걸었다.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22일 “새로운 광주 시대의 성공을 위해서는 안으로는 당당하고 빠른 추진력, 밖으로는 정무적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 전 수석은 이날 광주상공회의소에서 열린 6·1 지방선거 광주시장 선거 출마 회견에서 “수년째 논의 중인 어등산 관광단지 개발, 눈치 보느라 손도 못 댄 전남방직 터, 만들고 개통도 못 하는 지산IC 등 각종 현안에 대해 시민들은 답을 원하는 데 시정은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광주의 밀린 숙제, 임기 시작 6개월 안에 답을 드리겠다”며 “수십 년간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 군 공항 이전 문제 역시 임기 4년 안에 도장을 찍겠다”고 덧붙였다. 강 전 수석은 “자동차와 AI 산업에 더해 차세대 배터리, 자율주행차, 정밀 의료, 반도체, 마이스의 5개 신산업지구와 5개 신 활력 특구로 산업 생태계를 마련해 ‘광주 신경제 지도’를 완성하겠다”며 골목상권진흥원 설립, 5천억원 창업펀드 조성 등을 공약했다. 이에 앞서 이용섭 시장은 지난 21일 출입기자 차담회에서 “시급한 지역 현안들, 특히 새 정부 국정과제에 대한 마무리 정리작업을 마친 뒤 다음 주 중 예비후보에 등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광주 발전이 중요하고 어떤 경우에도 5년의 공백이 생기면 안된다”며 “출마선언이나 예비후보 등록을 미뤄서라도 정리해놓고 나가려 한다”고 강조했다. 이 시장은 오는 28일 전후로 예비후보 등록을 한 뒤 출마선언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이 시장은 ‘인생도 역사도 만남이다’라는 책을 출간하며 사실상 재선 도전 의지를 밝혔다. 한편 이번 광주시장 선거에는 지난 21대 총선 민주당 경선에서 쓴 맛을 본 정준호 변호사와 광주은행 첫 여성임원 출신인 김해경 남부대 초빙교수도 출마채비를 하고 있다. 정의당에선 장연주 광주시의원이 출마를 선언했으며, 진보당 김주업 광주시당위원장도 출사표를 내밀었다. 아직 구체적인 윤곽은 나오지 않았지만 국민의힘에서도 이번 대선에서 확보한 지지율을 기반삼아 광주시장 후보를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행기 기자
  • 일평생 남 뒤치다꺼리한 여성들, 왜 누구의 돌봄도 못 받고 떠나나

    일평생 남 뒤치다꺼리한 여성들, 왜 누구의 돌봄도 못 받고 떠나나

    큰엄마는 집안 친척들을 살뜰히 보살피며 헌신적으로 살았지만, 누구에게도 그런 돌봄을 받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안(安)’). 회사에서는 친절을 요구하는 고객을 관리하고, 집에서는 베이비시터를 관리한다(‘돌보는 마음’).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서도 남편과 손녀, 요양병원에 있는 치매 걸린 아버지까지 돌봐야 한다(‘특별재난지역’).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신동엽문학상·김유정작가상을 받으며 문단의 기대주로 떠오른 김유담(39) 작가의 소설집 ‘돌보는 마음’(민음사)은 이처럼 다양한 돌봄 노동을 홀로 감내하는 각계각층의 여성에게 주목한다. 최근 서울 강남구 민음사에서 만난 작가는 “제게 문학은 사람의 마음을 보거나 마음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라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어린아이를 키우면서 파고든 마음을 담아 특정 상태에 처하게 된 여성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돌보는 마음은 굉장히 귀하고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지만, 어떤 집단이나 가족 안에서 한 사람에게만 부과되는 의무처럼 여겨졌을 때 그것이 서로를 힘들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수록된 10개의 단편은 돌봄 공백이 가정의 부담으로 돌아온 시대를 오롯이 담았다. 작가는 크게 3부로 나눈 이 책에 대해 “1부는 자신의 선택과 다르게 맺어진 관계 속에서의 여성들의 삶을, 2부에서는 실제 아이를 키우면서 제가 느꼈던 것들, 3부는 제 고향(밀양)과 가까운 노년 여성의 삶에 대해 쓴 작품을 묶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우리 할머니, 엄마 세대는 자신이 여성으로서의 삶에 불만과 부당함을 인식하면서도 정작 아들을 딸보다 더 좋아하게 되는 심리들이 있어 그게 무엇일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표제작 ‘돌보는 마음’에는 베이비시터를 구하고자 하는 워킹맘들의 심정이 절절히 녹아 있다. 또 예상치 못한 반전이 포함되는 등 인간 심리에 대한 고찰이 탁월하다. 지난해 김유정작가상을 받은 ‘안(安)’과 ‘대추’는 가부장제를 지탱했던 여성들이 노년에는 자신이 희생하며 쌓아 올린 질서로부터 소외된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특히 ‘안(安)’에 대해 작가는 “‘집’()에 ‘여자’(女)가 있으면 편안하다는 한자의 보수적 의미가 답답하고 부당하면서도 진실을 보여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쓰게 됐다”고 했다. 이어 “주인공의 이혼을 다룬 이 작품에 대해 5060 독자는 ‘왜 이혼을 하는지 모르겠다’ 하고, 2030 독자는 ‘애초에 왜 결혼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해 세대의 간극을 실감했다”고 덧붙였다. 신동엽문학상을 받은 전작 ‘탬버린’(2020)에서 작가는 지역 출신으로서 ‘생존’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했다. 그는 “제게 생존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며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 직장인과 달리 프리랜서 작가는 (출판사로부터) 아이를 돌보느라 글을 쓸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게 다음 기회가 올 수 있을까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고 털어놨다. 김 작가는 올 하반기엔 20대 직장 생활을 담은 장편 ‘커튼콜은 사양할게요’를 출간한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탬버린’, ‘이완의 자세’(2021)에 이은 ‘청춘 3부작’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전했다.
  • 이수지 작가 ‘아동문학 노벨상’ 안데르센상 영예

    이수지 작가 ‘아동문학 노벨상’ 안데르센상 영예

    이수지(48) 작가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한국 작가로서는 최초다.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는 21일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이 작가를 안데르센상 일러스트레이터 부문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1956년 창설된 이 상은 아동문학에 대한 지속적인 기여를 인정해 2년마다 수여하는 세계적인 상으로, ‘아동 문학의 노벨상’으로도 불린다. 작품이 아닌 작가에게 주는 상으로, 평생의 업적을 인정하며 아동청소년을 위한 문학계에 중요하고 지속적인 공헌을 한 글 작가와 그림 작가에게 수여한다. 에리히 캐스트너, 모리스 센닥,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토미 웅거러, 앤서니 브라운 등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이 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작가는 미국, 스위스, 이탈리아, 브라질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림책을 출간하며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동물원’, ‘거울속으로’, ‘그림자놀이’, ‘파도야 놀자’, ‘여름이 온다’는 그의 대표적인 그림책이다. 이 작가는 2016년 안데르센상 최종 후보에 오른 바 있으며 이번이 두 번째 도전이었다.
  • “자유 위한 투쟁 안 끝나… 푸틴 오래 못 가요”

    “자유 위한 투쟁 안 끝나… 푸틴 오래 못 가요”

    “대중들에게 약간 어려워 보여도 젊은 세대가 읽었으면 하는 시들을 소개하고자 했어요. 옛 시에는 역사가 담겨 있고 시간과 고통을 견디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저도 시를 통해 통찰력과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 및 지혜를 길렀던 것 같습니다.” 베스트셀러 ‘서른, 잔치는 끝났다’(1994)로 유명한 최영미(61) 시인이 자신이 직접 엮어 해설을 붙인 시선집 ‘최영미의 어떤 시, 안녕 내 사랑’(이미출판사)을 출간했다. 21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 시인은 “이 책은 제가 독자들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 일간지에서 연재한 시 칼럼을 엮은 이번 시선집에는 길가메시 서사시와 고대 그리스의 사포, 소동파, 최치원, 정약용, 김영순, 문정희, 셰익스피어 등 동서고금의 명시 50편이 수록됐다. 시선집 제목이 된 ‘안녕 내 사랑’(Bella Ciao)은 19세기 말 이탈리아 농부들의 노동요이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과 싸우던 이탈리아 파르티잔들의 저항 가요다. 최 시인은 “싸우러 나가면서 사랑하는 연인에게 못 볼 수 있음을 암시하는 이 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에 선택한 작품”이라며 “자유를 위한 싸움은 끝나지 않았으며 ‘내가 죽으면 묻어 줄 사람이 있을까’라고 자문하게 됐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해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는 그는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의 ‘독을 품은 나무’를 소개하면서 “러시아 독재자 푸틴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최 시인은 신라 말기 최치원의 시 ‘곧은 길 가려거든’과 조선 초기 김시습의 ‘겨울 파리’, 중국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금산사에 걸려 있는 내 초상화에 쓴 시’, ‘서림사의 벽에 쓴 시’를 특히 주목했다. 그는 “최치원이나 김시습처럼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불우한 지식인들의 시를 알리고 싶었다”며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한 김시습의 원칙주의적 삶에 제 모습이 비슷하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또 “소동파의 ‘육신은 매이지 않은 배처럼 자유롭네’라는 시구가 좋았고, 소동파 시 하나를 소개하기 위해 작품들을 모두 찾아 읽었다”고 덧붙였다. 어릴 때부터 시를 사랑했다는 최 시인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쇼핑하듯 읽는 풍조가 있지만 책은 남이 아닌 자신이 골라야 한다”며 시 독서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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