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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동 소각장 맹독성물질 과다 검출

    ◎「다이옥신」 설계기준치 7.8배 초과/과기원·기초과학연 공동조사 목동 쓰레기소각장의 배출가스에서 맹독성 물질인 다이옥신이 서울시 설계 기준치의 7.8배가 검출됐다. 서울시는 12일 목동 쓰레기소각장의 배출가스중 다이옥신량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기초과학지원연구소에 의뢰해 측정한 결과 지난 5월10∼16일 배출된 가스에서 서울시의 소각로 허용기준치인 ㎥당 0.5나노그램(ng)의 7.8배인 ㎥당 평균 3.9ng(1ng은 10억분의 1g)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이는 독일의 허용기준치인 ㎥당 0.1ng의 39배,일본의 권장치인 ㎥당 0.5ng의 7.8배에 해당한다. 다이옥신은 쓰레기,나무,석탄,석유,담배 등의 연소과정과 화학물질 제조,종이류 표백때 발생하는 유기염소계의 맹독성물질이나 인체에 독성을 미치는 증거는 없다.그러나 체중 1㎏당 하루 1ng 이상 섭취하면 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미국 환경부는 보고 있다. 한편 내달 초 다이옥신 배출량을 다시 측정한 후 1차 측정 결과와 비교분석해 환경부 등 관계부처에 배출기준치 제정 등을 건의키로 했다.
  • 「백마강 달밤에」 1천여 관객 “갈채”

    ◎서울신문·LG전자 주최 축제극/의자왕 혼 모셔오는 대동제 관객 숙연/“백제역사 깊이 생각 계기” 찬사 쏟아져 서울신문이 LG전자와 공동으로 백제인의 정신을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한 축제극 「백마강 달밤에」가 11일 하오8시부터 공주문예회관에서 1시간30분동안 화려하게 펼쳐졌다. 제41회 백제문화제의 하나로 마련된 축제극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극작가 겸 연출가인 오태석씨가 작품을 쓰고 연출한 것으로,백제정신의 부활을 당집·별신제·돌다리가는 길 등 3장에 담았다.중견연극인 15명과 5명의 스태프가 어우러져 열연,백제문화제중 가장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극단 「목화」의 대표이기도 한 오씨는 이날 망국의 한을 안고 중국 고원에 묻힌 의자왕의 혼을 모셔오는 대동제에서 화려함과 웅장함을 연출,1천여명의 관객을 사로잡았다. ○…산신과 천신 등 무속신과 인간을 연결,충청도 어느 마을의 과거와 현재를 형상화한 「당집」이 시작되자 관객은 신비한 듯 숨을 죽이며 극 속으로 빠져들었다. 마을의 대소사를 돌보고,삼국시대 황산벌에서 신라군과 싸우다 숨진 병사의 넋을 위로하며,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무병장수를 빌어온 늙은 무당이 꿈에서 백제를 망하게 해꼬지한 수양딸 「순단」을 만나 갈등을 빚기 시작하자 객석에서는 한숨이 나왔다. ○…2장 「별신제」로 들어서면서 수양딸이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애첩 금화로 변신해 신위를 모신 제단에서 지전을 흔들며 의자왕의 혼을 위로하는 장면으로 이어지자 객석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러나 제단에 모신 신위가 왕이 아니라 계백장군으로 바뀌었다는 얘기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며 폭소가 터졌다.이어 가요 「백마강 달밤에」가 흘러나오자 관객이 모두 따라 부르며 흥겨운 축제분위기를 이뤘다. ○…애첩 금화로 변신한 수양딸이 우여곡절 끝에 중국 고원에 외롭게 묻혀있는 의자왕을 만나는 3장 「돌아가는 길」에서는 마치 나라를 잃은 의자왕처럼 가슴 아파하며 일부 관객이 눈물을 흘렸다. 의자왕이 무당에게 『어서 빨리 고국으로 데려다달라』고 간청하는 대목에서도 탄식이 터졌다.수양딸이 1천3백년동안 타국에 묻혀있는 의자왕을 모셔오겠다고 다짐하며 백제왕과 3천궁녀 및 병사의 넋을 위로하는 대동굿이 사물놀이와 펼쳐지는 피날레에서는 힘찬 박수가 터져나왔다. 박선희양(20·회사원)은 『이처럼 재미있고 웅장하며 백제의 역사를 깊이 있게 생각하게 하는 연극은 처음』이라며 『국민의 자부심을 심어주는 이런 연극이 자주 공연돼 역사의식을 바로잡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극작가 차범석(이세기의 인물탐구:83)

    ◎리얼리즘 바탕 「정통극 파수꾼」 40년/대표작 「산불」 전쟁의 인간파괴 신랄하게 묘파/부당한 것 거부하는 「연극계 면도칼」로 한평생/최승희 무용보고 「무대 인생」 예감… 이해랑·유치진 문하서 엄격한 수련 희곡작가 차범석은 연극계의 로맨티시스트다.동숭동 마롱카페에 나가보면 젊은 연극인들에게 둘러싸여 그는 맥주를 마시며 연극과 인생을 논하고 있다.「주역만 있고 조연 없는 연극은 있을 수 없다.우리의 삶은 큰 배역만 탐내는 한편의 연극 같이 보이지만 작은 배역 없이 큰연극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파우스트보다 메피스토 텔레스가 진짜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역이듯이 무대 구석구석에 세워둔 단역조역들의 몫에서 극중 희열과 비감,완미가 성취된다.무릇 물이 얕으면 큰배를 띄울 수 없는 것과 같이 깊고 다양한 여러 경험이 크고 광활한 연기력을 키운다」고 후배들을 가르친다. 한배우가 무대에 등장했다가 맡은바 임무를 다하고 퇴장하기까지 그것은 하나의 삶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일이다.그런만큼 배우는 등장도 중요하지만 퇴장도 중요하다.막을 내리기가 무섭게 분장을 지우고 무대를 떠나는 사람을 보면 「자기포기와 무책임」이 느껴지지만 연기의 온기를 오래도록 가슴에 담는 배우의 모습에선 「비장미가 넘친다」고 찬양해 마지않는다. 그가 63년부터 20년이나 이끌던 극단산하를 해체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연극을 지상목표로 삼으려는 의지는 눈비비고도 찾아볼 수 없이 연기를 가르쳐 무대에 설만하면 그들은 철새처럼 돈을 따라 텔레비전으로 가버린다」고 했다.「연극은 집단예술인만큼 인간적인 결합 없이는 아무런 작업도 가능하지 않다.그럼에도 정신적인 반항이 없는 정지된 예술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껍질을 깨는 아픔을 모르는 젊은이들이 환멸스럽다」고 그는 한 글에서 개탄하고 있다.이어서 「기대할 수 없는 것에 얽매어 질척대는 것은 자기비하이자 존재를 흩트리는 추일 수 밖에 없으며」「부나비처럼 떠도는 인간불신풍조속에서 나만이 홀로 절개와 의리를 지키는 것은 명분 없다」고 절규했다. 적자를 면치못하는 극단의 영세한 상황속에서도 「산불」「밀주」「대리인」「손탁호텔」등 알찬 창작극으로 꾸준히 「좋은 무대」를 이끌던 산하는 「연기자의 연극정신부재」「저질공연우려」등을 내세워 83년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미련과 아쉬움을 남긴채 이렇게 무대에서 사라져갔다. 칠순의 나이와는 상관 없이 언제나 만년청년 같은 그는 옛 예술가의 낭만과 니힐과 반항과 순수를 지금도 면면히 지니고 있다.그가 「한달이면 29일」을 술을 마시는 이유는 사람들과의 따사로운 온정에 굶주려 「정을 마시기 위해 술잔을 든다」는 것이며 인생의 어둡고 뒤틀린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은 「긍정에의 동경이 너무 강한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40년간 「연극계의 면도칼」로 불리면서 그는 과연 부당한 것을 굳이 옳다고 양비론을 펼치거나 불가능한 것을 가능할 수 있다고 과장한 적이 없다.연극상을 심사하는 과정에서도 무의미한 공연기록과 긴 연륜을 앞세우기보다 작품의 질과 연기력을 따져 날카롭게 자격여부를 가려낸다.또한 스스로의 조로를 경멸하여 연극의 모든 일에 은근히 참여하고 옳바른 소리를 주저 없이 하면서도 「번뜩이는 재기나 교변」 사물에 대한 심정의 움직임에서 세말적인 기미대신 싱그러운 미소로 만사를 감싸기 때문에,각층의 폭넓은 호감을 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극단산하를 잃은후 그는 한국연극협회 이사장,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사,대한민국예술원회원과 청주대 예술대학장등 여러 역할을 전전했다.86년에는 88올림픽을 앞둔 88서울예술단 초대단장에 임명되었으나 이번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창단기념 시연회에서 공연을 관람하던 관련장관이 코를 골고 잔 것에 자존심을 심하게 상한 나머지 사표를 내던진 씁쓸한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 시간과 함께 그의 까다로운 일면은 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졌고 반항과 증오와 충동에서 시작한 초기의 경험을 버리고 「삶이란 양파를 벗겨내듯 아무리 벗겨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는 서서히 깨닫게 되었나보다.그 때부터 톡쏘는 옳은 소리를 줄이고 자신을 스스로 경계하는 계신공구의 자세로 전환했다. 그의 지나온 인생은 평온한 중에 끝 없는 파고가 잔물결처럼 파동치는 것이 남과 다르다. 목포의 개화되고 풍족한 집안에서 일본 메이지대(명치대) 법학과를 나온 차남진씨의 3남3녀중 차남. 남부러울 것 없는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내면서 집안의 서고에 파묻혀 아리시마 다케오(유도무낭) 무샤노코지 사네아쓰(무자소로 실독)의 소설에 탐닉하고 일본 히메지(희로)고교에 시험을 보러갔다가 낙방하고 돌아오는 길에도 후지자와 다케오(등택)의 「신설」을 가슴에 품을 만큼 열렬한 문학지망생의 시기를 보냈다.어릴 때의 아명은 평균.광주고보시절 목포 평화극장에서 열린 최승희무용공연을 보고 「정중동의 미세한 움직임과 끊어질듯 이어지고 멈춘듯 움직이는 유현미와 고담미」에 반해 그는 훗날 「무대」와 관련을 갖게 되리라는 예감을 굳혔다. 그는 철저한 리얼리스트이기도 하다. 뒤늦게 23세에 대학에 진학해서 문자그대로 「경마장의 말처럼 정해진 코스를 필사적으로 달리면서」 엄격한 스승인 이해랑 유치진문하에서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정통극」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연극계는 언제부턴가 「리얼리즘의 희곡작가」 또는 「리얼리즘의 파수꾼」으로 그를 부르게 되었다. 「나름대로 나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치열하게 몸부림쳐왔다.나라는 인간은 일관성도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온 모순덩어리라는 생각 때문이다.그 증거로 나의 인생행로에는 투쟁이나 저항의 흔적이 없다.적극적인 동참이나 협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그렇다면 나는 뭐란 말인가」.그러나 평론가 유민영은 「그의 작품은 투철한 역사의식으로 구시대의 붕괴와 전후의 사회변화,변천하는 사회속에 갈등하는 개인의 삶을 끈질기게 묘파」하고 있고 특히 대표작 「산불」은 「전쟁이 얼마나 철저하게 인간을 파멸시키는 가를 미사여구나 기교 없이 신랄하게 파고든 리얼리즘 희곡의 최고봉」으로 손꼽고 있다. 지난해 출판한 고희기념문집 「목포행 완행열차의 추억」에서 그는 「지금까지 나는 대과 없이 살았고 욕심부리지 않았고 하고싶은 일과 가고싶은 길을 지칠줄 모르고 살았으니 행복하다」고 고백하고 있다.영원한 동반자인 박옥순여사와의 사이엔 3남2녀.자녀는 모두 출가하고 송파구 가락극동아파트에서 부부가 노후를 함께 하고 있다. 언제나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소시민」을 자처하고 있지만 실은 서릿발 같은 차가운 이성을 정으로 융해시킨 처절한 삶의 애가와 뜨거운 인간애의 정수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는 참으로 「큰배우」의 역할이 아닐 수 없다.이제 그의 퇴장은 「한편의 좋은 작품」을 남기는 일이며 연극계가 그를 두고 「이시대 마지막 휴머니스트」라고 한 말대로 그는 지금도 동숭동 마롱카페에 앉아 「배우가 되기전 먼저 인간이 될 것」을 젊은 연극인들에게 당부하며 그의 「정」을 높이 치켜들고 있다. □연보 ▲1924년 전남 목포 출생 ▲1942년 광주고보 졸업후 도일 ▲1946년 연희전문 문과 입학 ▲1949년 제1회 전국대학연극경연대회 희랍극 「오이디푸스왕」연 출 수상 ▲1951년 처녀작 「별은 밤마다」 공연(목포문화협회 주최)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밀주」당선,제작극회 창단 ▲1961∼71년 문화방송 제작부장·편성부국장 역임 ▲1962년 「산불」 초연(국립극단) ▲1963∼83년 극단 「산하」대표 ▲1965년 이대·연대 출강 ▲1966년 연세대 영문과졸업,국제PEN대회 뉴욕회의 참가 ▲1968∼74년 한국연극협회이사장 ▲1969년 신연극 60주년기념 「그래도 막은 오른다」 공연 ▲1972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사 ▲1973년 예총부회장 ▲1975년 ITI베를린회의 참가 ▲1978년 ITI한국본부 부위원장,대한민국연극제 심사위원 ▲1981년 대한민국예술원 정회원 ▲1983년 서울극작가그룹 발족,회장 ▲1984∼86년 청주예술대학장 ▲1986년 서울88예술단장 ▲1988년 청주대 교수협의회회장 ▲1991년 「연극의 해」집행위원장 대한민국 예술원회원·한국연극협회이사·공연윤리위 심의이원 희곡집 「껍질이 째지는 아픔없이는」「대리인」「산불」「학이여 사랑일레라」「식민지의 아침」,수필집 「거부하는 몸짓으로 사랑했노라」,고희기념문집 「목포행 완행열차의 추억」,차범석문학전집(12권·융성출판)등 대한민국 문화예술상(70)·대한민국 예술원상(82)·동랑연극상(83)·대한민국 문학상(91)·이해랑연극상(93)
  • 1회용 카메라 재생 수출/천마상사,올 매출 7억

    쓰고 버린 1회용 카메라를 활용한 재생 카메라로 짭짤한 재미를 보는 기업이 있다.재생 카메라는 1회용 카메라의 케이스를 수거해 이를 완전히 분해·청소 후 다시 필림을 부착,새것과 같은 1회용 카메라로 만드는 것.신 제품과 비교해서 품질의 차이는 거의 없고 골치 아픈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천마상사(대표 이기익·38)가 화제의 기업.지난 해 9월 설립된 이 회사는 15명의 직원들이 「Q­타임」이란 상표로 월 8만개의 재생 카메라를 생산,5만개는 일본과 미국에 수출하고 3만개는 국내에서 시판하고 있다.지난 해 매출이 1억도 안됐지만 올해는 7억원이며,내년엔 20억원이 목표.1회용 카메라의 가격은 국내에서 1만원(플레시 착용)에서 7천원까지 팔리나 재생의 경우엔 2∼3천원이 싸다.수출가격은 개당 3천원선. 가장 큰 기술적 어려움은 필름을 케이스에 넣는 작업.빛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제품을 망치기 때문에 암실에서 정밀작업이 필요하다.사용하는 필름은 감도 4백짜리(일반 카메라는 감도 1백∼2백).카메라 케이스의 확보도 어렵다.처음엔 국내에서 수거를 해봤지만 수거체제가 미비한데다 수거돼도 상태가 안좋아 일본에서 전량 수입하고 있다. 이 사장은 1회용 카메라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국산화가 안돼 앉아서 외화가 날아가고 있다고 지적한다.국내에서 처음으로 국산화를 시도하기 위해 기술신용보증기금 등에 10억원의 개발자금을 요청한 것도 이때문이다.
  • 현악기 제조 동해통상(앞서가는 기업)

    ◎바이올린 세계시장 30% 점유/고급품 생산 자동화… 음색 뛰어나/비올라 등 구미·아주 30개국 수출 한국산 바이올린이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명기하면 으레 「스트라디바리」 등 외국제품을 떠올리지만 우리 상표가 「세계 제일」의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동해종합통상(대표 심재엽·49)이 한국의 「스트라디바리」를 만드는 주인공.무역업에서 제조업으로 돌아선 지 7년만에 심로라는 고유 브랜드로 해외시장의 30%,국내시장의 60%를 휩쓸고 있다.지난 해 3백70만달러,올해 5백만달러를 수출해 세계 시장에서 호령하던 일본의 스즈키사를 제치고 1위업체로 떠올랐다.미국과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 등 세계 30개국에 바이올린과 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 등 악기를 수출한다. 틈새시장 비집기라는 특유의 전략이 주효했다.현악기의 제작 방법은 전문가 용으로 손으로 만드는 마스터 공법과 대중용으로 만드는 주형 프레스의 두가지.심사장은 손으로 직접 깎아 만드는 고급품을 기계로 양산하는 신공법을 개발한 것이다.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착상으로 고급품과 대중품의 틈새인 대중화된 고급품으로 세계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2년여에 걸쳐 가구공장에 자문해가며 직접 기계를 설계,제작했다.공정의 80%를 자동화시켜 1백70여 과정을 40여개로 단축했다.그 덕에 수제품에 버금가는 고급품을 대중품 가격으로 팔게 돼 스즈키사의 시장을 잠식했다.미국에서 고급 관현악기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UMI사가 거래선을 스즈키에서 동해로 돌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일본에도 지난해 30만달러어치를 수출했고 연말까지 40만달러가 예상된다.수출가격은 바이올린이 1백달러,첼로가 3백달러 선이다. 심사장은 (주)대우에서 악기 교역 전문가로 일하다 지난 78년 무역업체를 세웠으나 지난 88년부터 아예 강원도 문막에다 제조공장을 차렸다.노사분규가 극심했던 때에 브랜드 명을 자신의 성인 심과 노동자의 노를 따 심로라고 정했다.노사가 합심해서 명품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다. 심로 악기가 음색이 뛰어난 비결은 원목.자연상태로 5년 이상 건조시킨 가문비 나무와 단풍나무를 사용해 앞뒤판을 각각 만들고 줄을 떠 받치는 모든 부속은 인도산 흑단을 쓴다.자연건조로 원목의 성질을 그대로 간직해 깊은 소리와 함께 공명이 크기 때문이다. 직원들에게 음악적인 마인드를 심기 위한 노력도 돋보인다.장인의 혼이 깃든 악기라야 제소리를 낸다는 지론으로 매년 4회 이상 2백여명의 직원들에게 심로 악기로 연주회를 갖는다.독일의 명장들을 초대해 매년 한달간 실시하는 현장교육도 효과가 크다.심사장은 심로의 선율이 세계 곳곳에 울리게 한다는 야망을 키우고 있다.
  • 국제 화물중심지/북,나진·선봉 육성

    【북경=이석우 특파원】 북한은 나진·선봉지역을 국제화물중계기지겸 수출가공및 관광중심지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김정우 대외경제협력촉진위원회 위원장이 22일 밝혔다. 이날 국무빌딩 국제무역센터에서 열린 외국투자유치 설명회에서 김정우는 이같이 밝히면서 2001년까지 나선지구의 인구를 1백만명 규모로 육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1백여 기업들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 삐삐 새달부터 「문자 서비스」/월 이용료 1만4천원

    ◎호출자 메시지·일기예보·뉴스 등 받을 수 있어/호출기 단말기 바꿔야 한국이동통신,나래이동통신,서울이동통신 등 무선호출사업자들은 22일 삐삐를 통해 간단한 한글 및 영문메시지를 보내거나 받아볼 수 있는 「무선호출 문자서비스」를 10월부터 제공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무선호출가입자들은 앞으로 삐삐로 호출자의 메시지를 받아 보는 것은 물론 일기예보,뉴스,스포츠소식,증권정보,경마정보,바이오리듬,일일영어회화등 각종 생활정보를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문자서비스의 월 이용요금은 1만4천원이며 가입자들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호출기의 액정화면이 기존 단말기 보다 약간 큰 특수단말기를 구입해야 한다. 현재 문자정보서비스가 가능한 무선호출기는 스탠다드텔레콤의 「컴팩알파」,모토롤라의 「스크립터」 등이다.
  • 영화 수출입 불균형 심각/민자 박종웅 의원 지적

    ◎수입 3백81편·수출 14편/작년 4백58억 적자 기록 지난해 외국에서 수입한 극영화는 모두 3백81편,5천7백93만달러(4백63억원)어치에 달했으나 우리영화의 수출은 14편,62만달러(5억원)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은 22일 국회 문공체육위원회 소속 박종웅 의원(민자당)이 문화체육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자료에서 밝혀졌다. 이 자료에 따르면 외국영화의 수입가격은 편당 15만2천달러(1억2천만원)였으나 우리영화의 수출가격은 4만4천달러(3천5백만원)에 그쳤다. 그러나 14편의 영화를 수출한 지난 93년에는 편당수출가격이 1만6백달러(8백만원)여서 국제시장에서 우리영화에 대한 평가는 점차 좋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상영된 외국영화는 3백70편으로 모두 3천8백42만명의 관람객을 끌어들인 반면 우리영화는 67편,9백93만명에 그쳤다. 박의원은 『이처럼 심각한 영화수지의 불균형은 국내영화산업을 위축시키는 것은 물론 문화종속의 우려마저 낳고 있다』고 지적하고 『국정감사를 통해 「스크린 쿼터」의준수와 우리영화산업을 살리기 위한 첨단영상산업발전방안을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 김치 대일 덤핑수출… “제살깎기”

    ◎신규업체 과당경쟁… 고급품 이미지 추락 일본시장에서 고급품으로 평가받던 한국산 김치가 국내 업체간의 저가경쟁으로 종주국으로서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고 있다.고속 질주해 가던 대일 김치수출에 브레이크가 걸릴까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한국산 김치는 올초만해도 4백g 한병에 최소 4백엔,고급품은 6백50엔까지 받았으나 최근 할인 판매시 1백98엔에 팔리고 있으며 평상시엔 3백엔대에 형성되는 제품도 있다.일본산보다 1.5배 가량 높은 가격으로 팔리던 한국산 김치가 일본 김치값과 비슷해졌거나 싸졌다는 지적이다. 초창기부터 김치수출에 나선 영선상사는 『우리제품에 부착되는 「한국직수입 김치」란 표시가 과거에는 품질·가격의 보증수단이 됐지만 앞으로 저가품의 상징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한국산 김치가 저가경쟁에 휘말리게 된 이유는 크게 두가지.먼저 후발 수출업체들의 저가공세가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 업계의 진단이다.김치 수출업체는 전문수출상을 포함,모두 80여개의 중소업체들이며 이 가운데 뒤늦게 대일 수출에 뛰어든 업체들이 최고 50%까지 가격을 낮추면서 가격인하 경쟁이 촉발됐다. 일본에서 거세게 부는 가격파괴 바람도 저가경쟁에 한몫하고 있다.일본의 대형 유통업체들이 중간 마진을 없애고 대량으로 한국산 김치를 직수입,대폭의 할인공세에 나서고 있다.디스카운트 스토어 등을 운영하는 이들 대형유통업체들은 발효식품인 김치의 특성을 고려치 않고 대량구매를 한후 판매가 불가능해지면 정상가격의 3분의1,최고 2분의1까지 덤핑판매를 하고 있어 싸구려 제품의 이미지를 확산시키고 있다. 상황이 어렵게 전개되면서 국내업체들간의 반목도 깊어지고 있다.기존 수출업체들과 농협간의 갈등이 대표적인 예다.뒤늦게 수출에 나선 농협이 막강한 조직과 자금력을 앞세워 가격하락을 유발시켰다는 비난이다.농협은 『기업체와 달리 이익을 적게내는 대신 많은 농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물량을 늘리고 있으며 평균 수출가보다 높은 가격을 받고 있다』며 반박하고 있다. 이런 분열로 우리나라의 대일 김치수출은 93년에 52% 증가(2천8백70만달러)를정점으로 지난해 31.2% 증가(3천7백70만달러),올 7월까지 28% 증가(2천6백70만달러)로 성장세가 둔화되는 추세다. 각 업체들이 철저한 품질관리를 통한 고가 수출을 전개해야 함에도 불구,오히려 제살 파먹기 경쟁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 북한 난민수용소/2곳에 건립검토/수해로 대규모 탈출가능성 대비

    정부는 북한에 대규모 난민이 발생할 경우 현재의 귀순동포보호법등의 제도적 장치만으로는 적절히 대처할 수 없다고 보고 관련법 개정을 포함한 종합 난민대책을 장기적으로 검토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특히 최근 발생한 수해피해와 같은 북한내 재해나 정변으로 인한 재난시 해상을 통한 대규모 난민탈출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동·서해안 인천·속초에 난민수용소 건립등도 장기적 차원에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13일 『극심한 경제난과 최근 엄청난 수해피해를 입은 북한의 상황을 고려,대규모 난민발생 가능성에 대비해 이들을 수용하고 구호할 수 있는 체계적인 장치를 강구해 놓아야 한다는 판단에서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 「윈도 95」 과연 환상적인가/이재일 과학정보부장(서울논단)

    환상의 운영체제라는 극찬을 받고 있는 「윈도95」는 과연 만능이며 완벽한 것인가.이같은 물음에 윈도95를 만든 마이크로소프트사측은 그렇다고 우기겠지만 「실제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전문가들과 사용자들의 반응이다. 윈도95를 사용해본 사람들은 『소문만 요란했지 별게 아니며 오히려 결함투성이다』는 비난을 서슴지 않고 있다.출시되기 전부터 전세계 컴퓨터사용자들의 기대를 한껏 모았던 윈도95에 대한 환상은 깨지고 있으며,비판의 목소리 또한 높아가고 있다. 윈도95는 우선 설치하기가 쉽지 않다.『초보자도 쉽게 PC를 쓸 수 있게 해준다』는 광고와는 달리 사용에 앞서 설치하는 일 자체가 힘드니 불평을 살 수 밖에 없다.외신에서는 캐나다의 한 소프트회사 직원이 윈도95를 사서 이틀동안 20시간에 걸쳐 컴퓨터에 장착하려고 애를 썼으나 성공하지 못했다고 전하기도 한다. 윈도95를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기존컴퓨터에 보완장비를 갖추어야 하는 일도 사용자들을 화나게 만들고 있다.마이크로소프트사는 486DX­66기종이면 윈도95의사용에 무리가 없다고 선전했지만 사용자들은 당초 기대했던 성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또 프로그램실행중 오류가 자주 발생해 초보자들이 쓰기에는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멀티스태킹(다중작업)속도도 느리다는 지적이 많다. 컴퓨터바이러스에 속수무책인 것도 약점이다.윈도95는 무단복제를 방지하기 위해 비표준 포맷방식을 택하고 있어 일단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경우 기존의 바이러스백신 프로그램으로는 원상복구가 안된다. 이같은 결함들보다 더욱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는 점은 윈도95에 내장된 「위자드」프로그램에 관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등록절차를 밟을 때 고객에게 성명·주소·전화번호·회사이름과 고객이 사용하는 컴퓨터에 관련한 모든 사항을 밝히도록 하고 있다.그래서 윈도95를 쓰는 사람들의 신상과 사용자의 컴퓨터기종 및 소프트웨어,주변기기의 종류등을 마이크로소프트사가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돼있다. 전문가들은 「위자드」프로그램이 사생활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한 회사가 수많은 정보를 독점하도록 만든다고 우려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 프로그램에 의한 정보유출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라 각계 전문가들로 「윈도95 연구반」을 구성하는 한편 연구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국가기간전산망과 관련된 정부및 공공기관에서의 공식사용을 유보해 놓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윈도95는 지난 달 24일 시판을 개시한지 4일만에 1백만개가 넘는 기록적인 판매량을 나타냈다.이는 지난 93년 MS­DOS6·0판을 판매하기 시작한지 40일만에 1백만개를 판 것에 비하면 엄청난 실적이다.이같은 추세라면 연말까지 3천만개이상 팔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성능이 시원치 않거나 검증되지 않은 상품은 팔리지 않는게 상식이다.그러나 윈도95는 이같은 상식을 파괴하고 있다.판매량이 예상을 뛰어 넘고 있으며 문제점 역시 예상을 훨씬 초과하는 기묘한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폭발적인 매상고를 올리는 데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홍보전략도 전략이지만 언론이 한술 더 떴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을 지닌다. 전세계 언론들은 윈도95의 선전내용을 아무런 여과없이그대로 인용보도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이것이 엄청난 광고효과를 올려준 셈이다.윈도95를 만든 사람이 바로 이 시대의 컴퓨터황제 빌 게이츠라는 사실이 언론의 판단을 흐리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언론의 이같은 보도행태는 결국 수많은 PC사용자들을 현혹시키고 나아가서는 「테크노피아시대의 지배자」가 되길 꿈꾸는 빌 게이츠의 야망만을 키워줄 뿐이다. 윈도95를 내놓으면서 『바야흐로 컴퓨터혁명이 시작됐다』고 큰 소리친 빌 게이츠.언제나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만면에 미소짓는 빌 게이츠의 참모습은 아마도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빅 브라더」의 얼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 공공기관 「윈도95」 사용 유보/정보유출 가능성 제기따라

    ◎각계전문가 연구반 구성… 사용여부 결정 정보통신부는 6일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새로운 PC운영체제인 윈도95의 「위저드」프로그램에 의한 정보유출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라 각계 전문가들로 「윈도95연구반」을 구성키로 하고 연구결과가 나온 뒤 공식사용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연구반은 정통부를 비롯해 전자통신연구소,시스템공학연구소,한국전산원,PC통신사업자,소프트웨어개발업체등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연구반은 또 윈도95의 온라인서비스인 MSN(마이크로소프트 네트워크) 자동접속기능이 불공정행위에 해당되는지의 여부와 해외 불건전정보 유입가능성에 대한 문제점도 분석,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정통부는 그러나 윈도95가 사실상 세계적인 표준이 될 것으로 보고 국내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산업계가 이를 적극 활용토록 지원하는 한편 MS사의 국내 PC통신사업 진출에 대비한 국내 PC통신업계의 경쟁력 강화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 미 올 농산물 5백30억달러 수출/한·중·일서 44% 수입

    【워싱턴 AP 연합】 오는 9월30일로 끝나는 미국의 95회계연도 농산물 수출액은 당초 예상보다 15억달러 늘어나 기록적인 5백30억달러에 이르고 10월1일부터 시작되는 96회계연도의 농산물 수출액은 이보다 더욱 많은 5백45억달러로 예상된다고 미농무부가 31일 밝혔다. 농무부는 95회계연도의 농산물 수출 예상액을 당초보다 늘려잡은 것은 곡물 수출가격의 강세와 지난 5월 이후 미국산 옥수수를 비롯해 콩 및 콩기름,붉은 고기,가금류 등에 대한 외국의 수요 증가를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농산품의 95회계연도 수출물량은 대부분 밀,옥수수,콩 등 벌크제품 수출의 증가에 힘입어 지난 80년 이후 가장 많은 1억6천3백10만t에 이르고 96회계연도의 경우 수출량은 95회계연도보다 떨어질 것이나 옥수수,밀,유지종자의 가격은 상승할 것이라고 농무부는 내다봤다. 농무부는 95회계연도의 농산물 수출 예상액 가운데 특히 중국,일본,한국에 대한 수출분이 2백35억달러를 차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내년부터 달라지는 세법내용

    ◎연봉 3,000만원 4인 가족/월세금 5만원선 줄어든다/이자·배당소득 원천세율 15%로 인하/부가세 면세점은 2,400만원으로 높여/금전등록기로 발행한 영수증 세액공제제도 폐지 올 세법개정안은 지난 해 대대적인 세제개편을 했기 때문에 골격은 손대지 않고 미조정만 했다.교육재정을 위해 내년 7월부터 담배와 유류에 교육세를 신설한 것과 대기업 접대비한도의 축소,납세절차 간소화를 위한 부가세 간이과세 도입,97년에 시행될 「부동산 등기전 사전신고제」가 주요 내용들이다.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에서 제외되는 가계생활자금 저축의 도입 등 개혁보완책도 담겨 있다.그러나 조세정책의 방향에 역행하고(과세특례자 확대) 징세편의주의(교육세 신설,등기전 사전신고제 등)로 흘렀다는 비판도 나온다.내년부터 바뀌는 세법내용을 알아본다. ◆가계생활자금저축 신설=10%로 분리과세되며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단 1천2백만원 한도로 기준이 원금이어서 송금 등으로 잔액이 하루라도 한도를 넘으면 혜택이 없다.가입제한은 두지않되 1가구 1통장으로 하며 1가구 1통장 여부는 금융기관에서 분기별로 「저축계약·해지 명세서」를 제출,국세청이 전산으로 확인한다. ◆금융소득 원천징수율 인하=내년부터 이자와 배당소득의 원천세율이 현재 20%에서 15%로 97년엔 10%로 떨어진다. ◆공사채형 증권투자신탁 이익의 과세개선=공사채 편입비율이 50% 이상인 공사채형 수익증권의 경우 주식형 수익증권(주식편입비율 50% 이상)과 같이 매매차익(평가차익)으로 발생하는 것은 과세대상에서 제외한다. ◆기업어음 원천징수 시기 조정=할인매출하는 어음이나 채권은 원칙적으로 만기상환일에 이자소득이 원천 징수된다.단 기업어음의 경우 예외적으로 할인매출일에 원천징수했다.그러나 앞으로 기업어음은 납세자가 원천징수 시기를 만기상환일이나 할인매출일 중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서화·골동품 과세=서화·골동품 양도차익도 세금을 물리되 양도소득이 아닌,종합소득으로 과세한다.영업권 양도도 종전 양도소득에서 종합소득 대상으로 바꿨다.서화·골동품의 양도차익 계산은 실거래가액으로 하되 양도가액이 확인되지 않은 경우 전문감정인의 감정가액으로 계산하도록 했다.거래명세서 제출 의무도 없앴다. ◆간이과세제 도입=영세사업자의 경우 세금계산서를 교부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아 납세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도입했다.아울러 부가가치세 면세점 기준금액을 현재 연 매출액 1천2백만원에서 2천4백만원으로,과세특례 기준금액도 3천6백만원에서 4천8백만원으로 높였다.간이과세로 연 매출 1억5천만원 미만 개인사업자의 경우 부가가치세액이 종전방식(매출액×10%­매입액×10%)에서 매출액×부가가치율×10%로 바뀐다. 부가가치율은 예컨대 도매·농업 10%,산매 15%,숙박업 50%,건설 30%,음식 40% 등 13개 업종별로 국민계정상 부가가치율을 감안해 시행령에서 정한다. 기존의 한계세액공제제도는 없어진다.세금계산서를 제출할 경우 추가적으로 매입세액의 일정률을 세액에서 공제(부가가치율 20% 미만 업종은 매입세액의 10%,20% 이상 업종은 매입세액의 20%)해준다.금전등록기의 경우 임의로 조작이 가능하고 매출액 확인이 어려워 영수증 발행금액의 0.5%를 세액공제해 주던 제도를 폐지하고 대신 신용카드 세액공제를 신용카드 매출액의 0.5%에서 1%로 높였다. ◆기업접대비 축소=그동안 기업접대비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구분,기업의 자기자본과 매출액 크기에 따라 한도를 차등해왔다.특히 접대비 기초금액과 자기자본 기준 외에 대기업은 매출액의 0.15%,중소기업은 0.3%를 추가로 한도를 인정해 매출액이 클 수록 접대비가 자동으로 늘어나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은 우대하고 대기업은 거래규모에 따라 한도가 체감되도록 단일화했다.접대비 기초금액을 2천4백만원에다 자기자본의 1%(50억한도)로 하고 매출액별로 한도의 차등(1백억원 이하 0.3% 등)을 두었다.해외접대비도 일반접대비와 통합시켰다.이렇게 할 때 대기업은 접대비가 종전보다 25%쯤 줄고 중소기업은 그만큼 는다.접대비에 신용카드를 사용해야 하는 의무비율도 시지역은 75%,군 이하 지역은 50%로 종전보다 각각 25%와 20% 포인트 높였다. ◆소득자료제출제 보완=이자 배당 근로소득 등을 지급한 때에는 소득자의 인적사항과 소득금액을 기재한 소득자료를 매달 국세청에 내게 돼있다.단 마그네틱테이프나 디스켓 등 전산매체로 제출할 경우 연 2회로 하고 지연제출 때는 지연제출금액의 1∼2%의 가산세를,미제출 때는 미제출금액의 3%를 가산세로 물려왔다.자료제출을 연 4회로 줄이고(전산매체 제출 때는 현행대로) 지연제출가산세를 폐지키로 했다.미제출가산세는 2%로 내렸다. ◆기타소득에 대한 원천징수=위약이나 해약으로 받는 배상금 등 기타소득의 원천징수세율은 25%에서 20%로 내리고 아파트의 지연입주 등으로 받는 지체보상금에 대해 75%의 필요경비를 인정해 준다. ◆납세편의 제고=신규사업자의 경우 연 2회 사업자등록검열을 받아야 했으나 이를 폐지하고 신규 과세특례자의 예정신고 의무도 면제했다.소액불징수 원천징수 세액을 건당 5백원에서 1천원으로 올렸다. ◆세무사시험 개선=내년부터 종합소득세가 신고납부제로 바뀌어 세무대리 수요가 늘게 된다.따라서 현재 과목 40점 이상,평균 60점 이상의 절대평가 방식으로 선발하는 세무사 시험제도를 변호사나 공인회계사등과 마찬가지로 선발 예정인원을 정해놓고 각 과목 40점 이상의 고득점자 순으로 선발하는 상대평가 방식으로 바꾼다. 2차시험 12개 과목 중 국세징수법과 주세법,조세범처벌법,자산재평가법,토지초과이득세법을 없애고 지방세법(등록세 취득세 종합토지세 재산세의 4가지 세목)을 시험과목에 포함시켜 8개 과목으로 개편한다.세무사 실무교육도 국세경력자 공인회계사 등 세무사 자격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확대한다.세무사 시장개방으로 세무자자격요건 중 국적요건은 없어진다. ◆지식서비스 산업지원=5년간 소득세와 법인세의 절반을 감면해주는 창업중소기업의 적용범위에 연구개발업을 추가한다.부가통신업과 엔지니어링사업,연구개발업도 중소기업 특별세액감면(매년 소득·법인세의 20%)과 법인전환시 양도세감면(양도세의 50%) 혜택을 준다. ◆광업투자 준비금 연장=광업을 하는 업체가 광물탐광비나 사업용자산의 취득자금에 쓰기 위해 수입금액의 일부를 광업투자준비금으로 적립할 경우 수입금액의 3%(해외광업은 4%)를 비용으로 공제해 주고 있다.연말까지가 시한이나 광업계의 어려움을 감안,적용시한을 97년 12월 31일까지 연장했다. ◆간접외국납부세액 공제=이제까지 지점이 해외에서 낸 법인세는 모두 공제해 주었다.그러나 국내기업이 자회사형태로 해외에 진출할 경우 배당소득에 대한 원천징수세액만 공제해주었다.따라서 앞으로 해외 자회사가 해외에서 낸 법인세액에 대해서도 일정비율(외국자회사의 법인세×자회사로부터의 배당액/외국자회사의 세후소득)을 국내 모회사의 법인세액에서 공제해 준다. ◎근로소득세 얼마나 주나/소득세율 5∼45%서 10∼40%로 인하/근로소득 공제액 최고 8백만원으로 근로소득자들도 이번 세법개정으로 세부담이 줄어든다.이는 소득세율이 현행 5∼45%(6단계)에서 10∼40%(4단계)로 인하되고 근로소득공제와 기초공제액이 인상되기 때문이다. 근로소득공제액의 경우 현재 최고 6백60만원에서 내년부터는 최고 8백만원으로 오르고 기초공제도 배우자와 부양가족에 따라 48만원에서 72만원으로 차별화돼 있던 것이 내년부터는 1인당 일률적으로 1백만원씩 공제액이 확대된다. 또 96년부터 금융소득 종합과세가 시행됨에 따라 금융소득 4천만원 초과분에 대해서만 종합과세가 실시되고 반면 원천징수 세율은 현행 20%에서 15%로 낮아진다. 이에 따라 연간 급여가 3천만원(월급여 2백50만원)이고 금융소득이 연 3백만원인 4인 가족의 경우 월평균 세부담은 올해 25만1천원에서 내년에는 23.9%가 인하된 19만8백33원만 내면 된다. ◎부동산등기전 신고제란/소유권 매매에만 적용… 상속등은 대상 안돼/양도세 비과세대상도 거래내역 신고해야/계약일·거래물건 등 신고… 실거래가는 제외 오는 97년부터 「부동산등기 전 신고제」라는 새로운 제도가 시행된다.당장은 아니지만 납세자가 세무서에 직접 신고해야 한다는 점에서 유념해야 할 제도다. 현재 부동산의 양도소득세는 납세자의 자진신고로 이뤄지기 보다 대부분 세무서가 등기소의 등기자료를 받아 과세한다.그런데 등기자료가 등기 후 6∼7개월이 지난 뒤 넘어와 조세채권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거나 거래 후 3∼5년이 지나서 세금고지서가 발부되는경우도 많아 세정불신과 조세마찰을 가져왔다. 따라서 부동산양도세 문제가 빨리 해결되게 부동산을 매매할 때는 앞으로 등기 전에 부동산거래내역을 주소지관할 세무서에 신고하고 세무서장의 신고확인서를 받아 등기신청을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신고사항은 계약일과 거래대상 물건 및 거래상대 등으로 하고 실거래가격은 일단 제외했다. 관할세무서는 신고 즉시 신고확인서를 교부하며,부동산거래내역을 신고받은 세무서장은 국세청의 컴퓨터를 이용해 과세표준과 세액을 계산,세금납부 안내도 해 주도록 했다.지금도 부동산을 팔았을 경우 2개월 이내에 자진해서 예정신고를 하면 10% 세액공제를 받는다.그러나 이 제도가 도입되면 부동산 거래내역을 신고할 때 예정신고를 한 것으로 간주한다.1가구 1주택 등 양도세가 비과세되는 경우에도 거래내역을 신고해야 한다. 세법에서 부동산거래내역 신고확인서를 첨부토록 강제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있으나 지금도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이나 농지법에서 등기신청시 첨부의무서류로 농지취득자격증명,검인계약서등을 규정하고 있어 무리가 없다는 게 재경원의 설명이다.그러나 모든 부동산등기에 신고확인서 첨부가 의무화되는 건 아니다.부동산 소유권 매매에만 적용되며 ▲상속이나 증여 ▲소유권 이전과 관계 없는 근저당권·전세권·임차권 설정 ▲국가나 지자체와의 계약에 의해 부동산을 매입하는 경우 등은 적용되지 않는다.납세자의 적응과 준비기간을 거쳐 97년 1월 이후 양도분부터 적용된다.
  • 장백진의 탑산(압록강 2천리:3)

    ◎발해의 기상 말하듯 「5층 전탑」 고고히…/높이 12.64m의 네모꼴… 꽃무늬 벽돌로 쌓아/조선인 2가구 19세기 이주,현재 4만명으로 중국 길림성 장백조선족 자치현 장백진의 탑산은 산에 탑이 서 있기 때문에 탑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그 탑산의 탑은 이른바 영광탑인데 벽돌을 쌓아 만든 5층 전탑으로 되어있다.네모꼴을 기본형으로 한 이 탑의 높이는 12.64m에 이른다.탑 꼭대기 지붕(옥개)위에는 마치 조롱박 5개를 포개 올린 것처럼 보이는 높이 1.98m의 청동제 상륜을 세워놓았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불탑이다.청회색 꽃무늬 벽돌을 쌓아 마감한 상층기단 남쪽에는 아치형 문을 냈다.그리고 각층의 탑신 남쪽 벽에 네모꼴 창을 뚫었다.지붕의 추녀와 추녀 받침은 벽돌쌓기를 통해 마치 목조건물이 풍겨주는 것과 같은 그런 멋을 부렸다.상층기단 아래에는 길이 3.2m,너비 3.4m,깊이 1.49m의 지하공간 지궁을 갖추었다.지궁 뒷벽에는 사리함을 봉안했던 것으로 보이는 대좌가 마련되었다. ○청동제로 상윤 세워 이 탑이 후대에 들어 발해의 탑으로 고증된 것은 19 82년께다.중국 동북고고대의 소춘화와 중국과학원 장어환 교수가 2년에 걸친 검증에서 발해시대 불탑임을 확인했던 것이다.그러나 어느때 누가 세웠는지,또 불탑의 이름이 무엇이었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으로 담아있다.다만 19 08년 청나라 장백부 관리였던 장풍대가 이 탑을 보고 생김새가 노나라 때 영광전을 닮았다고 해서 영광탑으로 불러왔다. 이 탑에 대한 전설도 있다.장백조선족자치현 문화관 이성태 관장이 들려준 전설은 발해의 퇴락을 간접적으로 이야기 한성 싶다.전설에 의하면 어느 해 어느 날 괴상한 사람들이 탑속으로 스며들어 이레를 보냈다.그리고 금불상을 훔쳐 배에 싣고 가다 배가 뒤집히는 통에 금불상이 강에 가라앉았다고 한다.그 뒤에 늘 빛을 훤히 드러내던 탑은 광채를 잃고 말았다는 것이다.그러자 독사가 탑주변에 살면서 사람과 가축을 마구 잡아먹었다는 것이 전설의 요지다. 장백현 일대는 발해가 융성한 시기의 강역 압록부에 해당한다.그 중심지 서경이 하류에 있었는 데 장백진에서 그리 멀지 않다.이 탑은 물론발해가 융성했던 시기에 세웠을 것이다.오늘 날도 탑이 있는 산아래 압록강변 장백진의 벌이 탑전이고 보면 탑산의 탑은 아직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이 탑의 영향력이 어디 장백진에만 국한했으랴.강건너 북한땅 혜산시 역시 옛 발해의 압록부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압록강 유역의 양안은 본래 고구려 강역이었다.그러나 고구려는 당에 정복되어 장백진에는 정복자의 전설이 더 많이 남아있을 뿐이다.고구려의 유민과 말갈족이 함께 세운 발해가 멸망한 이후 중국의 역대 왕조들이 더 많은 세월을 지배했기 때문에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는 쇠잔하기 이를 데 없는 잔영에 불과했다.그런 탓인지 탑산에는 당의 장수 설인귀의 전설이 남아있다.탑산에 세운 한 비석에다 설인귀가 말에 올라 군사를 호령했던 자리라고 기록해 놓았다.그리고 말발굽자리처럼 자연적으로 푹 파인 커다란 화산돌은 설인귀가 탔던 말발굽자리라 해서 과마석으로 묘사했다. ○정복자의 전설남아 역사의 흥망성쇠를 두고 「삼국지연의」머리시는 「한 마당 꿈」이라고 했다.정녕 그런 것인가.민족의 고대국가 강역에서 중국의 역사도 흥망성쇠를 거듭했다.발해가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면서 요,금에 이어 명이 숨가쁘게 지나가고 청이 시작되었다.청은 중국의 동북을 만족(만주)자신들의 발상중지로 여기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봉금령을 내렸다.그리고 나서 청은 16 77년 백두산과 압록강,두만강 이북의 1천여리 넓은 땅을 봉금구로 정했다.특히 장백현은 경위장이라는 이름의 그들 사냥터가 되었다. 그러니까 장배현은 짐승들만 들끓는 무인지경이었다.19세기 초엽에 와서야 밥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이다. 「장백현황」에 따르면 청나라 연호로 도광 11년(서기18 31년)오늘날 길림성 임강 부근인 모아산 북탕하지방에서 조선인 2가구를 발견했다는 기록이 나온다.이어 도광25년에 조선인 10여명이 임강으로 건너왔고,함풍 2년(서기 1852년)에는 함경도 단천군 사람들 10여명이 와서 농사를 지었다는 것이다. ○함경도서 많이 이주 이들이 바로 압록강을 건너온 이주민 선구자들이다.그로부터 세월리 흘러 20세기에 접어들어 19 05년에는 압록강 유역 장백·임강·집안 등지에 사는 조선족 이주민은 8천7백가구 3만9천4백여명을 헤아리게 되었다.그 무렵 장백현으로 들어온 평안도 출신의 이주민2세 이동근(82)노인은 압록강을 건너와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뼈 아픈 사연을 회고했다. 『고향을 떠나서리 들어온 데가 장백진 탑전 사탕골이었댔시요.내 나이 연네살이었는데 자꾸 고향 생각이 납데다.그런 판에 부친은 한 해치 품삯 60원을 받고 연치산이라는 조선족 집에 머슴으로 들어가고 모친은 삯일을 했수다.부친이 만 네해 머슴을 살고 여섯식구가 다시 모였디요.기쁜 맘도 잠시고 여러 식구가 먹고 살게 있어야디.그래서 내 열여섯살 나던 해에 김세익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갔시요.저 노친(김증손·77)이 겨우 열한살이었던가 기래요.다섯 해 데릴사위 노릇을 하다보니 어린 처가 숙성해집데다.그래서리 결혼을 해버렸디요』 이 노인은 딸 넷과 아들 하나를 두었다.딸들은 모두 인근으로 출가하고 막둥이로 둔 아들도 커서 장가를 들었다.아들은 장사를 하는데 조선(북한)을 자주 드나든다는 이야기다.노인은 묻지도 않았는데 『조선에 물건만 가지고 가면 다 돈이 된다고 기래요』라는 말을 했다.노인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해관(세관)이 있는 압록강변 국경지대로 짐을 실은 차들이 몰려들었다.물건이 잔뜩 든 골판지 상자와 큰 부대자루들이 장백진 쪽에서 통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 화합·친화력 돋보이는 「킹메이커」/민자당 김윤환 대표의 정치역정

    ◎정치적 격변기마다 「조정능력」 발휘/5·6공 정권교체때 권력이양 담당/4선의원에 정무장관 3번·집권당 총장­총무 두차례. 「허주」(빈배­김윤환 대표위원의 아호)가 돛을 올렸다.집권 민자당을 관리하는 대표위원으로서 정국운영의 핵심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이제 김대표는 10년 가까이 그에게 따라 다니던 「중진급」이라는 꼬리표를 뗐다.당 대표급으로 부상한 것이다. 「화합의 달인」「조정의 명수」라는 별칭에 걸맞게 그는 친화력 있는 정치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그래서 산적한 민자당의 현안,즉 소속 의원들의 동요를 막고 대화합의 정치를 지휘해 내년 총선에 승리해야 하는 임무가 일단 김대표에게 맡겨져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대표위원 기용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그가 정치적 격변기에는 항상 그 중심에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5공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있을 때 민정당 노태우 대통령후보의 「6·29선언」이 나왔다.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5·6공 정권교체기 권력이양의 역할을 맡았다.또 민정당 원내총무 때는 「5공청산」과 「3당합당」의 기획에 참여했다.「대세론」으로 신민주계를 이끌며 「김영삼대통령」을 탄생시킨 주역의 한사람이기도 하다.따라서 「정치설계사」로서의 그의 새로운 역할을 기대하게도 한다. 63세인 김대표의 정치역정은 큰 굴절 없이 화려하게 이어졌다.79년 조선일보 편집국장대리로 재직하다 10대 유정회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고향인 경북 선산에서 11·13·14대에 당선된 4선의원이다.5공시절에는 문공부 차관,청와대 정무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냈다.6공정부와 문민정부에서는 정무장관만도 3번 지냈고,민정당과 민자당에서 사무총장과 원내총무를 각각 2번씩 지낸 진기록을 갖고 있다.현재는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등 일본 정계인사들과도 깊숙한 친분을 맺고 있다. 그러나 그는 문민정부 출범후 사정과 개혁바람이 몰아칠 때 한때 일본과 유럽 등지를 유랑하는 등 은둔의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또 구여권 인물,반개혁 이미지로 매도당하기도 했다. 이제 그는 집권당 대표위원으로서 당의 화합과 개인적인 이미지 구축에 나설 것이다.아마 그의 개인적인 과제는 「TK(대구·경북)」의 맹주라는 지역적 한계,당내 계파들의 견제,대표위원이라는 직책상 권한의 한계 등을 어떻게 소화하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그는 서초동 자택에서 부인 이절자 여사(55),둘째딸과 함께 살고 있으며 맏딸은 출가했다.
  • 엔저 달러고/자동차·철강·조선업계“타격”/국내산업 영향과 파급효과

    ◎「1백엔선」 유지땐 수출 19억달러 줄어/섬유·신발 등 경공업은 가격경쟁 유리 엔저는 국내산업과 수출입 및 무역수지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통상산업부의 김홍경 통상무역 2심의관은 『엔화가 약세로 돌아섬에 따라 자동차·조선·전자·철강·화학제품 분야의 수출에 타격이 예상된다』며 『수입쪽도 개별 업체의 입장에서는 대일 수입단가가 낮아져 원가부담 면에서 다소 유리해지는 측면은 있지만 대일 수입물량이 늘어 경제 전체로는 대일 무역수지가 더욱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통산부는 엔화가 금년 말까지 달러당 95∼1백엔 수준의 약세를 지속하는 경우 단기적으로는 국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내년 이후에는 부정적인 영향이 가시화 될 것으로 보고 있다.엔화의 약세가 장기화할 경우 수출과 무역수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업계와 관변 연구기관들의 계량분석 결과도 이같은 전망과 일치한다. 산업연구원은 엔화가 10% 절하될 경우 수출이 3.5%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무역협회도 엔화 환율이 달러당 1백엔을 유지할 경우 올해 수출이 19억달러 줄어들고 수입은 4억1천만달러가 줄어 전체적으로 무역수지 적자폭이 14억9천만달러 만큼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엔저가 모든 산업에 악재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섬유·신발·의류 등 경공업 분야에는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엔화의 약세는 달러화의 강세를 의미하며 달러화의 강세는 곧바로 원화의 약세로 이어지기 때문이다.실제로 지난 7월말 달러당 7백56원까지 절상됐던 원화의 환율은 엔저·고달러의 여파로 17일 현재 7백70원으로 절하됐다.그동안 원고의 여파로 맥을 못추던 경공업 부문의 수출이 원화의 약세 반전으로 가격경쟁력을 상당 수준 회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엔저로 인한 경공업 부문의 수출 회복효과에 비해 주력 수출분야인 중화학공업의 수출 감소효과가 상대적으로 훨신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전체 수출에는 여전히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우리나라 전체 수출 가운데 중화학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71%인데 비해 경공업부문은 29%에 불과하다.원화의 약세 반전으로인한 경공업 제품의 경쟁력이 다소 개선되겠지만 아직도 중국과 동남아의 저가 제품들을 상대하기는 벅찰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엔저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우리의 수출이 환율 등 가격요인에 크게 좌우되지 않도록 품질,마케팅 능력 등 비가격경쟁력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장승우 재경원 1차관보는 『최근의 엔화 움직임만 보면 경제운용 기조를 바꿀 만한 상황으로 판단되지 않는다』며 『그러나 경기저점이 예상보다 빨리 다가올 것이 예상되고 엔화의 평가절하도 가시화됨에 따라 반도체나 철강·자동차 등 그동안 엔고 혜택을 누려온 업종의 채산성이 악화되지 않게 환율정책을 신축적으로 운용하고 기업 스스로 경영개선과 품질제고 노력에 나서야 할 때』라고 밝혔다. ◎국제경제전문가들 엇갈린 분석/선진국 공동개입 했나 안했나/“「역플라자 협정」 따라 통화정책 공조”­긍정론/“자국이익위해 달러 매입… 협조 없다”­부정론 각국 중앙은행들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미 달러화의 최근 급등세에 대해전문가들은 이것이 선진국들이 촉구해왔으나 오랫동안 지연돼왔던 「질서있는 반전」인지 아니면 「한 여름의 도깨비 불」인지 엇갈리는 의견들을 제시하고 있다. 리먼 브라더스사의 수석경제전문가인 앨런 시나이는 『미국과 일본,독일 등이 달러화 가치를 대폭 상승시키는 강력한 신호들을 보내고 있다』면서 『이는 지난 85년 주요 맹방들이 미국의 수출을 부추기기 위해 달러화를 약화시키기로 합의한 플라자 협정 이후 가장 탁월하게 구상된 통화전략』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모든 외환거래인들이 이같은 분석에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도이치 모건 그린펠의 경제전문가 순슈케 모타니는 『플라자 협정이 반전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하면서 『일본이 자신들의 문제에 세계경제를 인질로 붙들어 놓고있다』고 주장했다. 뉴욕 소재 크레딧 스위스의 프랑수아 소아레스 켐프는 지난해말 이래 계속돼온 달러화 약세의 기조에 「어떠한 진정한 반전」은 없다는데 동의하면서 달러화는 지난 2주간 해외투자를 촉진시키기 위한 일본당국의 세금 조치와 여름의 침체기로 시장들이 별다른 저항을 펴지 못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뤄진 중앙은행들의 개입으로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무역흑자는 아직 비대하며 미국의 무역수지는 악화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는데 이밖에 미 의회 역시 막대한 예산적자를 저지할 뚜렷한 방안을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반면 런던 소재 CIBC 우드 건디의 데이비드 쿨먼은 이번 중앙은행들의 개입이 과거와 같은 「협조」의 산물이 아니며 각국의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쿨먼은 달러화 약세에 합의한 플라자 협정과 이 협정으로 야기된 달러화 폭락을 방지하기 위한 87년의 루브르 협정 등 국제공조 체제의 시기는 지나갔으며 여기에 국제 통화시장의 비대화 등으로 중앙은행들의 개입 여지가 종전에 비해 크게 축소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근래 달러화 약세에도 방관 자세를 보이던 독일이 마르크화의 강세가 자국수출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서 최근 적극 환시 개입,달러화 상승의 계기를 마련했다면서 지난 6월초까지 미국과 일본,독일간에는공조체제가 결여된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한편 워싱턴의 분석가들은 미 행정부가 단지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전에서 클린턴대통령의 입장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달러화에 단기 처방을 내놓으려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전직 재무부 관리인 국제경제연구소의 프레드 벅스텐 소장은 뉴욕 타임스에 『내가 보기에 달러화를 강화하기 위한 그들(미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은 주로 단기적인 것이며 지금부터 오는 96년 11월 사이에 집중되고 있다』고 분석했다.그는 달러화의 강세로 올해 1천8백억 달러선의 무역적자가 2년 후에는 2천5백억달러로 증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기업의 대응 전략/조선사들 “일과 공동 수주 모색”/자동차사 “올해는 수출 차질 없을 것” 엔저로 국내 기업들이 분주해졌다.일본에 대해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자동차·조선·반도체·철강 등을 중심으로 수출 타격이 예상된다.그러나 아직은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전망도 있다. 업계는 엔고현상이 생각보다 일찍 끝났을 뿐 지금의엔저가 전혀 새로운 상황은 아니라는 반응이다.오히려 이번의 엔화약세가 그동안 거품경제 양상까지 보였던 수출급등세를 진정시켜,경제흐름을 정상궤도로 돌릴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철강업계의 경우 수출보다 내수에 치중하므로 수출에는 커다란 영향이 없다는 분석이다.대일 부품 비율이 높은 기계업종의 경우 엔저로 수입 가격이 떨어져 오히려 기자재 분야에서는 혜택이 예상된다.전체적인 대일 수입량은 늘겠지만 기업들의 부담은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는 연초 엔고 장기화를 전제로 운용했던 선물환 거래 전략의 수정을 모색 중이다.환거래를 많이 해온 대우중공업과 현대중공업 등은 『수입 지출을 기축통화인 달러화로 바로 연결시키는 방식으로 환리스크에 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기아자동차의 한 임원은 『엔화가치 하락으로 한국차의 수출에 나쁜 영향은 미치겠지만,환율변동이 일본차와 한국차의 수출가격 조정으로 연결되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올해 내에는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대자동차 산업연구소의 이두환 연구위원은 『국내 자동차 업체들은 품질을 높이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업계는 엔화의 하락으로 가전제품의 경쟁력은 다소 영향을 받겠지만,일본제품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반도체와 모니터 부문에서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설비 및 원부자재 가격인하로 비용이 절약되는 이점도 예상되고 있다. 조선업계는 지난 상반기 중 엔고로 수주물량이 일본의 2배가 넘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으나 달러당 1백엔대로 정착할 경우 이 같은 특수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앞으로 고부가가치 위주로 방향을 돌리고 일본기업과 공동으로 해외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의 방안을 찾고 있다.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장은 『올 상반기 가파른 엔화절상은 균형환율에서 일탈한 것이며,최근의 엔화약세는 균형환율로 접근하는 흐름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 음악평론가 박용구(이세기의 인물탐구:80)

    ◎「열린 시각」으로 「평론 외길」 50년/음악·무용 비롯,모든 문화분야 탁발한 이론 전개/「음악 교육론」… 일제가 말살한 우리 정서 부활 노력/저서 「교양의 음악」은 클래식 음악감상 지침서로 유명 「미를 위해서는 깨뜨릴수 없는 규칙이란 없다」.이는 베토벤의 말이다.또 입사 박용구의 좌우명이기도 하다.「미를 창조하기 위해 무엇을 파괴해도 아깝지 않을만큼」그의 의식과 사상은 줄기차게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있었고 언제나 「열린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음악계는 말한다.「그것은 예술가 특유의 삶에 대한 위기의식과 긴장 탓」이며 「긴장이 자유를 향한 끈질긴 집념이라면 그에게 있어 자유란 예술자체이자 삶자체」일 것이다. 「박용구는 해방공간으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50여년동안 계속해서 활발한 평론활동을 벌여온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이는 작곡가 이건용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가 92년 「낭만음악」(여름호)특집 「작가연구」에서 밝힌 말이다. 같은 글에서 이교수는 「50년에 이르는 평론활동은 우리나라 음악사에서 유례가 없는 것」이며 「잡지나 신문들이 일정한 평론가에게 그 긴기간동안 계속적으로 원고청탁을 하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라고 짚고 있다.또 「음악과 무용정도의 범위가 아니라 그는 예술문화를 제한없이 드나들며」『논리전개도 상당히 분방하고 자유로운 필치,때로는 대담한 직관과 상상력에 따라 논조와 사안별로 관심의 소재가 변하는 「논리에 입각한 비평가라기 보다 감각에 의한 비평가」』라고 결론짓는다. ○예술계의 팔방미인 실제로 그가 우리 문화예술에서 점하고 있는 영역은 넓고 깊고 다양하다.그래서 예술에 관한 한 그를 「팔방미인」이라고 부르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음악펜클럽 예술평론가협의회 유니세프문화예술인클럽을 비롯하여 최근의 국제적인 세계무용연맹(WDA)도 그가 주관하는 단체이고 그가 쓴 「춘향가」「줄리아」「님의 침묵」등 수많은 작품들은 교향시·오페라로 작곡되어 호평받은바 있다. 과연 그의 평문은 어느 지면에서나 탁발한 이론을 유창하게 전개하면서 도저한 주관을 꿋꿋하게 지키는 것이 특징이다.해방직후 발표한 「아동음악 교육론」은 「일제의 문화정책 말살로 불식된 우리 고유의 민족적 음악감수성을 아동음악 교육으로부터 키워야 한다」는 제언이었고 전5권으로 펴낸 「교양의 음악」의 경우는 클래식음악팬의 음악감상을 위한 지침서일 뿐만 아니라 음악지망생과 음악관계 전문가들에게 「풍부한 정보」와 「해박한 지식」을 섭취시킨 교과서이기도 했다. 「예술가란 어느 시대에서나 환경의 도전자요,권위의 파괴자로서 선구자적 역할을 해야한다」고 역설해온 그는 60년대말 12음기법의 창시자인 쉔베르크 도형악보의 존 케이지·베베른·베르크와 슈톡하우젠에 이르는 실험적인 현대음악을 우호적으로 수용하는가 하면 당시 새로운 사조에 편승한 윤이상·백병동·강석희·황병기 등의 전위작업을 「선구자적 도전 정신」으로 평가하여 작가들의 시대정신을 크게 북돋워주었다.「공간」지에 발표한 일련의 「작가론」에서 특히 백병동을 향해 「음악으로 말할줄 아는 소중한 사람」 또는 「그 노여움이 화염이 되어 역사의 밤을 밝히도록 기대한다」고 감싼 것도그런 맥락에서다. ○한약방집 네째 아들 그의 녹슬지 않는 사회정의감은 87년 6월항쟁과 88올림픽이 끝난후 「예총」에 대한 역할회의론이 일어났을때도 「예총도 뉘우쳐야 한다」는 글에서 심장한 어조를 멈추지 않는다.그는 「예총이 해야할 일은 하지 않고 정권의 시녀노릇만 하고 있다」고 감연히 지적했고 「예총은 절대로 순수하지 않고 결코 지성인의 모임도 아니며 그 체질은 다만 편견과 독선에 차있다.예총이 이념공동체라면 우선 문화예술인들의 정신적인 삶의 조건인 「자유」를 수호하는 일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집단체여야 하지 않는가」라고 안일에 빠져있던 문화예술계의 분발을 촉구했다. 그가 어릴때 소망한 것은 「독립투사」가 되는 일이었다.그러나 독립투사의 조건은 「강인한 인내력과 행동력」이었으나 그는 「불행하게도 이 두가지 강점을 하나도 지니지 못하여」 그때부터 자유롭게 예술을 논하는 사람이 되었고 「무엇이 되고자 하기보다 많이 알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일본체류 기간동안은 주로 「단사들과 더불어 담예논도에 심취」하는 세월을 만들어 나갔다. 도쿄시절의 입사에 대해 건축가 김수근의 회상은 이런 흔적을 진하게 뒷받침해준다.「그는 예술순례를 주도하는가 하면 예술과 문화전반에 걸쳐 밤을 새워가며 격론을 벌이던 모임에서 항상 중심적 위치에 있었다」 더구나 「누구보다 철저한 자유주의자로서 한치도 후회함이 없는 그의 사회정의감과 예술분야에 임하는 지성인의 자세는 당시 유학생들의 귀감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인생항로는 남보다 파고가 거세고 파란이 심한 편이었다. 경북 풍기에서 한약방을 경영하던 박은식씨의 7남매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보통학교 졸업후 조부의 고향이던 평양으로 가서 평양고보에 진학,5학년이 되던해 독서회를 조직한 일로 왜경에 검거되었고 농촌운동에 관심이 컸으나 부친이 부농인 것과 상반되어 이 마저 포기한채 일본에 밀항했다.일본고등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다가 이 역시 체질에 맞지않아 일본의 「음악평론」사에 입사한 것이 음악·무용가가된 계기가 된다. 광복후 조국에 돌아와 첫 평론집 「음악과현실」을 출간,초판이 보름만에 팔려나가는 이변을 보였으나 월북 음악가를 거론했다는 이유로 재판부터 판금조치를 당했고 이와 관련하여 그는 다시 50년대를 일본에서 보내지 않으면 안될 수난의 역사를 되풀이 할 수 밖에 없었다.정처없이 떠돌던 자신의 「끝없는 파란」과 「방랑」을 「방랑시인 김삿갓」에 비유하여 스스로 삿갓 입자를 쓴 「입사」란 호를 지어 가진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창작희곡 집필 몰두 창작희곡집 「흙비」 후기는 그의 솟구치는 앙양과 침정을 요연하게 드러내는 고백성사와도 같다.「나는 성깔부터가 적을 사랑하라는 박애주의자가 되지 못함을 알고 있다.사랑해야만 할 것이 있기 때문에 미워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있었다.여기의 작품들은 사랑에서 보다는 미움으로 해서 쓰여졌는지도 모른다.그만큼 내 생애는 미움에 찬 세월이었다.마음의 눈은 항상 핏발이 서 있었다」고 처연한 심정을 글귀마다 담고 있다. 그는 82세의 나이와는 걸맞지 않게 모든 사고방식은 활짝 열려있고 목소리는 낭랑하며 행동은 반듯하다.그가 살고있는 세검정 세이장은 20여년전 건축가 김수근씨가 설계한 트롬본처럼 말려올라간 예술주택으로 요즘은 지난해 가을 문예중앙에 발표한 「바리데기」후속으로 우리 「무가」의 원천사를 집대성한 방대한 창작희곡 집필에 들어가 있다.그만이 남길수 있는 단테의 「신곡」 못지않은 명작에의 도전이라는 각오다.가족은 남매는 모두 출가하고 부인 정덕미 여사와 둘뿐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기를 원한다.그의 주장대로 「자유롭게 생각하며 살고자하는 염원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면 예술미의 창조는 요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그러나 어떤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가 원한대로 언제나 「멋대로」 흘러왔으며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처럼 「우리 모두가 별이 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지금도 굳게 믿고 있는것 같다. 「예술자체이자 삶자체인 자유가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한」그는 「가장 선한 장엄미 건축을 위해」 그의 멋과 자유를 파괴하는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그런 순간을 위해 예술관조의 형안도 끝내 그 빛을 잃지 않을것이다. □박용구 연보 ▲1914년 경북 풍기출생 ▲33년 평양고보졸업,도일,일본대 예술과 입학 ▲37년 일본고등음악학교 졸업,일본 「음악평론」사 입사 ▲49년 첫 평론집「음악과 현실」(민교사)출간,도일 ▲50∼60년 일본 도쿄 고마키(소목)발레단 문예부장 ▲52년 일본 「배우좌」연출공부 ▲62년 서울음악평론동인회대표간사 ▲66∼68년 예그린악단단장 ▲70∼76년 공간사주간·운영위원 ▲76년∼현재 음악펜클럽 회장 ▲81년∼현재 예술평론가협의회회장 ▲83년∼현재 채동선기념사업회장 ▲86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기획단장 ▲88∼94년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93년∼현재 세계무용연맹 발족(WDA),한국본부 회장,은관문화훈장 ▲94년 창작희곡 「바리데기」(문예중앙 가을호)발표 ▲95년 세계무용연맹 창립총회및 아시아 태평양센터주최 국제무용페스티벌(KIDE)개최 「음악의 별들」(어문각 48년) 「음악입문」(박문출판사) 「음악과 현실」(일지사 49년) 「교양의 음악」전5권(창조사 69년) 「음악의 주변」(창조사 70년) 「음악의 광장」(일지사 75년) 「불멸의 음악가들」(일지사) 「음악의 세계」(계몽사) 「음악이 만나는 자리」(일지사 77년) 「음악의 문」(청한문화사 81년) 창작집 「흙비」(해보라 기획 85년) 「오늘의 초상」(일지사 89년) 「명곡과 명인들」(세광음악출판사) 「어깨동무라야 살아남는다」(지식산업사 95년)출간외 논문 무용극본「님의 침묵」 「바리공주」 오페라극본「춘향가」 「줄리아」등 다수
  • 서울까치/파도/광복 50돌 의미 되새기는 무대

    ◎서울시립무용단·국립음악원,세종문화회관서 창작무용극 공연/서울까치­정도 6백년 시대적 흐름 재조명/파도­일에 끌려간 한 도강의 생애 담아 국립국악원과 서울시립무용단이 광복 5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대형 공연을 마련한다. 특히 국립국악원은 드물게 전 공연을 무료 무대로 꾸민다. 서울시립무용단이 오는 10∼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무대에 올리는 작품은 무용극 「서울까치」.서울정도 6백주년을 맞아 서울의 역사를 조선의 성립·일제의 침략·남북분단·산업화에 이르는 시대적 흐름속에서 재조명해본다. 역사의 소용돌이속에서 지켜온 정신과 꿈의 상징으로는 의인화된 소나무와 까치가 등장한다.국제무대를 겨냥한 올 하반기 정기공연작품으로 이 무용단이 그동안 추구해왔던 국제화를 겨냥하고있다. 이 때문에 전통적인 한국춤의 범주를 벗어나 춤사위에도 현대적 기법을 가미했다.음악도 신시사이저를 이용해 우리음악과 서양음악의 접목을 시도한다.현대적 무대기법으로 서정미 넘치는 춤사위를 역동적으로 형상화했다. 배정혜 단장이 직접 안무를 맡고 중견 연극 연출가인 오태석씨가 대본을 썼다. 국립국악원도 18∼20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대형 창작무용극 「파도」를 공연한다. 일본에 끌려가 온갖 역경을 이기며 예술혼을 지켜가는 한 조선 도공의 생애를 그린 작품으로 70분동안 8장으로 꾸며진다.「파도」는 격동의 역사를 상징한다. 지난해 7월부터 1년여동안의 준비기간을 거쳤고 2억원 가량의 엄청난 예산이 투입됐다.50명의 국립국악원 연주단이 현장연주를 하는 대형무대이다. 도공들의 힘찬 춤사위를 비롯해 조선민중의 저항춤 「무명저고리춤」「수건춤」「허수아비춤」「약속의 춤」 등 대형군무가 대형무대를 뒷받침해준다.대형무대답게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의 호리전트막도 올릴 예정이다. 풍랑장면과 도자기 제작과정을 슬라이드 컷과 조명을 이용한 특수효과로 처리하며 금기시됐던 일본춤을 과감히 도입한 것도 특색이다. 중견 연극연출가 차범석씨가 대본을 썼고 문일지 무용감독이 안무를 맡았다. 광복 50주년 공연인만큼 7∼12일 국립국악원에서 원하는 일반인 누구에게나 무료 초대권을 나누어준다.
  • 쌀/아주 수요폭발 국제가격 급등/세계의 수급·교역 실태와 전망

    ◎북·중이어 비·인니·이란도 수입/올 직황나빠 공급부족사태 우려/연무역규모 1,400만t… 중국이 전체의 20%선 구매 북한에 대한 쌀지원 문제를 계기로 쌀이 국제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국제경제관련 뉴스보도에도 쌀이 빈번하게 등장하고 크게 취급된다.특히 올해부터 우루과이 라운드(UR)협정에 따라 쌀이 본격적인 국제거래 상품으로 대두,쌀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물론 국제 곡물시장에서 거래되는 곡물의 주종은 밀·옥수수·콩 등이 차지하고 있다.반면 세계인구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아시아인이 주식으로 하는 쌀의 경우 연간 3억5천8백만t이상이 생산되지만 교역량은 1천4백만t정도(3.9%)에 불과하다.이 가운데 절반이상이 정부간 거래여서 시장유통물량은 5백만∼6백만t뿐이다.그만큼 쌀은 국제적 거래가 거의 없는 「폐쇄적」 상품이었다.농업경제전문가들은 그러나 오는 2025년까지 세계 쌀수요가 70%이상 늘어난 연간 6억3천만t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기상이변이나 경작지의 풍흉으로 인해 생산량에 차질이 오면 쌀 가격은 엄청난 폭등락을 하게 마련이다.실례로 세계 최대 쌀생산국이자 소비국인 중국이 자국소비의 10%를 수입으로 충당할 경우 세계시장에서 쌀값은 80%나 폭등한다는 통계가 나와있다.이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국제시장에서 쌀을 구매할 여력을 가진 국가는 별로 없게 된다는 것이다. ○수요 70% 늘어날듯 물론 녹색석유라 불리는 곡물이 「식량 무기화」되고 있지만 오늘날 쌀만큼 국제무대에서 민감한 「정치적 상품」도 없다.우리나라에서도 추곡수매가만은 수요·공급의 원리를 떠나 국회의 동의절차를 거쳐 가격이 결정되는 것도 쌀 자체가 갖는 특유의 상품가치 때문이다. 아시아지역이 곧 쌀 부족사태에 직면할 것이라는 경고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쌀의 주산지인 아시아가 쌀부족에 당면할 것이라는 근거는 이 지역의 인구가 급속히 팽창하는데다 미국·중국등 주요 쌀생산국의 올해 작황이 부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이에따라 아시아 각국들은 세계시장에서 제한된 재고량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외신 보도는 북한과 필리핀 말고도 인도네시아와 이란에서도 벌써 쌀부족사태가 표면화되고 있다고 전한다.필리핀은 태국·중국·인도 등에 약 22만t의 쌀 원조를 요청한 바 있다.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도 쌀수입을 계획하고 있다.쌀 수출국인 베트남 또한 국내 쌀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다 중국으로 밀수출되는 쌀까지 점차 늘어나자 공식적인 쌀수출을 억제하고 있는 형편이다. 중국은 94∼95회계연도에 1천5백만t의 곡물을 수입해 세계 제2의 수입국이 됐으며 95∼96회계연도에는 2천만t의 곡물을 수입할 것으로 예상된다.이 가운데 올해 상반기중 쌀 수입량은 1백20만t. 이 때문에 국제 쌀 선물시장에서는 이미 구매자 시장에서 생산자 시장으로 변했으며 쌀 투기현상이 벌어져 가격폭등으로까지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국제쌀연구소(IRRI)는 아시아의 대기근을 예고한 바 있다.쌀문제에 있어 권위있는 이 기구는 아시아가 인구증가와 경제개발로 인한 농지감소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21세기초 엄청난 기근에 시달릴 것이라고 경고했다.전통적인 쌀 수출국가들이 수입국으로 돌아서고 이에따라 세계 쌀수요는 증가하는 반면 시장규모는 점점 축소되고 있는 현상이 이를 예고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21세기초 식량위기 IRRI의 프라부 핀갈리 연구원은 『예상되는 쌀부족 사태는 지난해 말과 올해초의 오랜 가뭄으로 쌀생산이 저조한데다 아시아 각국이 산업화에만 치중,쌀생산에 투자를 소홀히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그는 또 많은 나라가 경제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쌀의 국내생산보다는 외국에서 수입하고 대신 보다 많은 토지와 자본을 공장건설에 투입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값싼 외국쌀과 경쟁을 벌여야하는 한국의 농가는 이미 다른 작물로 전환하고 있다고 IRRI측은 설명했다.IRRI의 최근 조사 결과 지난 4년동안 전세계의 쌀 생산량은 거의 정체상태로 있지만 쌀 소비가 많은 지역의 인구는 해마다 1.8%의 비율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기구들이 다음 세기에 인류의 심각한 식량문제를 거론하고 나온 것은 한두번이 아니다.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있는 「월드워치」연구소는 인구증가로 오는 2030년 이전에 지구상에 전반적인 식량부족현상이 초래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또 「세계를 위한 식량연구소」는 연구보고서에서 이미 전세계 개발도상국이 식량부족에 시달리고 있고 이러한 현상은 점차 악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최소한 21세기초 지구촌이 전례없는 식량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진단은 많은 전문기구들에 의해 나오고 있으며 국제식량농업기구(FAO)는 이의 심각성을 인식,내년 1월 사상 최초의 세계식량정상회의를 로마에서 개최할 계획이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중국은 연간 1억2천9백만t(세계전체의 37%)을 생산하지만 12억 인구를 먹여 살리기도 급급해 쌀을 수입해야할 형편이다.문제는 미국쌀이다.미국의 한해 생산량은 5백80만t(〃1.6%)에 불과하지만 상당량 수출용이다. 특히 미국쌀은 한국인이나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중단립종(자포니카종)이어서 쌀시장이 본격 개방되면 엄청난 물량공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자포니카 쌀은 한국·일본·대만·중국 북부,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등에서 주로생산된다.현재 세계 최대의 쌀 수출국인 태국의 쌀은 길쭉한 장립종으로 밥알이 엉겨붙지 않고 찰기가 떨어져 우리나라에선 인기가 없다. ○수출국도 여유없어 쌀 가격을 비교해 보면 미국의 생산비가 t당 2백36달러로 일본(1천6백55달러)의 7분의1밖에 들지 않는다.소비자 가격도 일본이 미국에 비해 2.5배가량 더 비싸다. 미국의 쌀 수출가격 추세를 보면 t당 91년에는 3백55달러,92년 3백96달러,93년 4백2달러,94년 4백99달러로 상승세를 타다가 95년에는 전년도의 작황이 좋아 다시 3백67달러로 떨어졌다.그러나 올 7월들어 중국의 식량부족에 따른 수입수요와 태국의 보조금 삭감계획(5t당 10∼20달러),베트남의 수출통제 등이 돌발 악재로 등장하며 또다시 빠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비행기를 띄워 규모의 기계화 영농을 하는 미국의 쌀 생산은 그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경작면적을 얼마든지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UR협정에 따라 수입량이 더 증가할 경우 아시아 쌀시장의 10%가량을 값싼 미국쌀이 차지할 것이라는게 많은 농업전문가들의 견해다. 따라서 국제 정치·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쌀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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