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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시립극단 신임 예술감독 정진씨

    “‘한명회’로 출연한 게 요즘 말하는 대박이었지.인생역전이라고나 할까.나이 마흔 세살에 처음 생긴 목돈 5000만원을 탈탈 털어 소극장을 열었으니 집사람이 좋아했겠어.망했지.모처럼 돈 좀 만지나 기뻐했던 집사람에게 미안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무대에서 까먹고 있어.세상 물정을 모르는 거지.” 서울 중구 충정로 문화일보홀 분장실에서 만난 연극배우 정진(63)씨는 연극 ‘아름다운 사람들’의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헐렁한 바지춤 사이로 비집고 나온 내복을 추스르는 모습은 막걸리 한사발을 마시면서 구수한 입담을 막 쏟아낼 듯한 영락없는 시장 상인이었다.연극에서도 그는 재개발의 위기 앞에서 혼란을 겪는 영등포시장 상인들의 상처와 아픔을 보듬어 안는 상조회 회장 역을 맡았다. 방송 드라마에서 맡았던 조선의 모략가 ‘한명회’로 올드팬들에게 기억되는 그는 이 무대를 마지막으로 예순을 넘긴 나이에 새로운 인생 도전에 나선다.고향인 인천의 시립극단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것이다.40여년 연기 외길을 걸어온 그에겐 무대에서 하는 일이지만 일종의 외도인 셈이다.시립극단에서는 연출뿐만 아니라 행정 책임까지 맡는다.평생 단 한번도 월급을 받아본 적 없는 그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월급쟁이 공무원’직이다.정씨는 인생 2막을 축하해줄 ‘커튼콜’을 듣고 싶어한다. ●시립극단에 실험정신의 물길 열겠다 어느새 원로배우가 된 정씨는 사실 70년대부터 소극장 활동을 해 왔다.극단 신협과 원방각,현재 몸담고 있는 제작극회에 이르기까지 그는 연극배우의 고향 같은 소극장을 지켜왔다.그가 지난 84년 인천에 자비를 털어 만든 연극 전문소극장은 인천 지역 연극계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지금도 인천 구월동에서 공연전용 카페인 ‘진 씨어터’를 운영하고 있다. 시립극단 예술감독직 지원 마감일까지 그는 꽤 망설였다.연기자로서 포기해야 할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시립극단을 지휘하면서는 고집을 버릴 생각이다.예술감독이라고 해서 자신의 색깔만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오히려 더 많은 연출가들을 초빙해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겠다고 한다. 정씨는 “실험적인 무대부터 중후한 무대까지 다양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면서 “나를 벗어날 수 없는 작품은 만들지 않겠다.”고 말했다.또 “내가 추구하는 예술적 개성만 강요할 게 아니라 세상의 흐름을 좇아 도랑을 치고 물길을 열면서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감각의 스타일을 창조할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연극판의 세태에 대한 아쉬움은 감추지 못했다.자본의 논리가 연극계를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 불만을 표시했다.관객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정씨는 “경제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연극판에 흥행이란 좀처럼 없어요.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죠.90% 이상이 공짜 관객이죠.따지고 보면 연극을 만드는 사람이 관객인데 이런 현실에서 작품성보다 돈이 되고 안 되고의 기준이 무대를 지배합니다.” 그는 시류와 인기만을 좇는 연기자들도 반성해야 한다고 말한다.지난해 9월 노숙자 문제를 다룬 창작극을 연출했던 그는 후배 연기자의 모습에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꼈다.무대에 오르기로 했던 연기자가 TV 드라마에 섭외된 뒤 펑크를 낸 것.그는 “연기자는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는 공인이라고 생각해야 돼요.개인의 삶에 제약이 될지 몰라도 받아들여야죠.연기자니까요.연출자와 작가,배우가 관객들과 만남을 약속한 것이 바로 연극이에요.” ●미완성 인생이라 연기에 더욱 집착 60학번인 정씨는 동국대 연극영화과 1기 출신이다.79년 TV 드라마에 처음 단역으로 출연할 때까지 20여년 동안 연극무대를 전전했다.무일푼 연극쟁이로 청춘을 보내던 정씨는 서른 아홉살에야 동네에서 얼굴을 익힌 부인 김현규(58)씨와 결혼했다. 배우로 이름을 처음 알리기 시작한 것은 드라마 제1공화국에서 ‘김희갑’ 역할을 맡고부터였다.그러다 지난 84년 ‘설중매’에서 개성있는 한명회를 소화해 내면서 배우 생활의 전환기를 맞았다.각종 단막극에서 개성있고 선 굵은 연기를 선보였다.예상치 못한 인기를 얻게 됐지만 정씨는 연기자로서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그는 “배우는 끝없이 변신해야 하는데 한명회라는 고정 이미지를 깨지 못한 건 반성할 부분”이라고 말했다.희곡도 직접 집필하고 있다.그가 쓴 ‘일요일의 마네킹’은 창작극으로 공연되며 호평을 받았다. 그의 아들 한별(25)씨와 딸 한울(24)씨는 연극을 전공하며 아버지의 길을 잇고 있다.“부모님한테 허락받고 내 길을 걸어가지 않았는데 내 허락이 중요합니까.” 그는 자녀들의 인생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갖고 있다. 늘 미완성 인생이어서 더욱 연기에 집착하게 된다는 그는 예술에 정년이 따로 없다고 말한다.그는 “평생 서민의 모습을 연기했고 나 역시 서민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서 “그들의 애환을 다루는 인물극으로 밑바닥 인생들의 아픔을 달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밝혔다. 그는 현재 인천문화예술회관 개관 10주년 기념작을 준비하고 있다.예술감독 ‘정진’으로 보여줄 첫 작품은 1947년에 처음 공연됐던, 해방 이후 밑바닥 서민들의 삶을 그린 ‘혈맥’이라는 시대극이다. ■ 프로필 ▲41년 인천 출생 ▲60년 인천 동산고 졸업 동국대 연극영화과 제1회 입학 ▲66년 월남전 참전 ▲68년 이해랑 이동극장 순회 공연 ▲72년 극단 원방각 활동 ▲73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사람 출연,햄릿 다시 태어나다 연출 ▲84년 인기 사극 설중매와 베스트극장 등 TV드라마 출연 ▲2002년 연극카페 진씨어터 운영 ▲2004년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 내정 안동환기자 sunstory@˝
  • [경제플러스]한국도요타, 하이브리드車 시판검토

    한국도요타는 4일 하이브리드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인 RX400H를 이르면 내년에 국내 시판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이와 함께 상반기에 할부금융 법인을 설립,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외국업체의 차 할부시장에 가세하기로 했다.오기소 이치로 사장은 이날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렉서스의 첫 하이브리드 차량인 RX400H가 올 연말쯤 미국 시장에 데뷔할 예정”이라며 “RX400H를 언젠가 국내에도 도입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하이브리드 차량은 전기·휘발유 혼용엔진을 사용한 차량으로,연료절감 효과가 15∼50%로 일반 차량보다 뛰어나고 배출가스량도 훨씬 적으며 별도의 충전소가 필요하지 않은 장점이 있다.˝
  • [안상영 자살 파장] 故 안상영시장 어떤 사람

    ‘소신과 추진력을 갖춘 머리 좋은 일꾼’ 스스로 생을 마감한 안상영 부산시장은 관가와 토목계에 입지전적인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안 시장은 1938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고와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뒤 63년 서울시 7급 토목직 공무원으로 40여년의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도로국장·주택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뒤 81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맡아 서울 강남개발을 주도해 개발관료로 명성을 날렸다.종합건설본부장을 마지막으로 서울시를 떠나 88년 관선 부산시장으로 영전한 뒤 대규모 프로젝트인 부산 앞바다 인공섬 개발계획을 추진했으나 많은 논란 끝에 무산됐다. 92년 해운항만청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뒤 벽산건설 부회장,부산매일·부산경제신문 사장 등 잠시 외도를 했으나 98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김기재(金杞載) 의원을 치열한 접전 끝에 물리치고 부산시장에 당선돼 공직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불도저 같은 강한 추진력으로 4년 임기를 무난하게 마친 뒤 2002년 재선에 성공했고 부산 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내면서 절정을 맞았다. 검찰의 혐의대로라면 안 시장이 정치판에 뛰어들어 민선시장에 당선,공직의 절정을 맞게 된 것이 결국 비극의 길로 이어졌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심완구 전 울산시장,허삼수·허문도 전 의원 등과 부산고 10회 동기다. 유족으로는 서울에 거주하는 91세의 노모와 부인 김채정(65)씨,아들 안정훈(30)씨와 출가한 딸이 있다. 부산 강원식기자˝
  • 환경기술개발 프로젝트 추진 10개과제 선정 매년 100억 지원

    정부 재정에서 연간 100억원까지 지원되는 대규모 환경기술 개발 프로젝트가 추진된다. 3일 환경부가 발표한 ‘차세대 핵심환경기술개발 2단계 추진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환경친화적 기술개발 과제 10개를 선정,향후 5∼7년 동안 연구 및 사업개발비로 매년 50억∼100억원씩을 지원키로 했다. 환경부는 이를 위해 ▲자동차 배출가스 저감 ▲수(水)처리 선진화 등 2개 과제를 우선 선정,민간기업과 연구소로부터 공모를 받는 등 오는 9월부터 사업에 본격 착수할 방침이다. 박은호기자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9)연기스님 前상사리(하)

    스님, 이제 매듭을 지어야 할 시간이군요.인도에서 연을 타고 오셨다는 그 연기 스님께서 화엄사를 창건했다는 지금까지의 견해를 부정할 수 있는 증거는 없습니다.불갑사를 마라난타 존자가 창건한 경우처럼 화엄사 또한 백제에 포교하러 온 인도 승려에 의해 544년(백제 성왕22) 창건되고,29대 법왕이 미륵사,금산사를 지으면서 미륵신앙의 힘으로 신라의 공격을 극복하기 위해 국력을 집결시킬 때 화엄사에도 많은 승려와 함께 재정적 지원을 했다는 기록은 진실인 듯 싶습니다.따라서 화엄사 창건과 신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이 확인된 셈입니다. ●화엄십찰 지정은 백제 유민 회유 목적 스님, 화엄사가 신라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백제 정복 후 백여 년 동안 계속된 백제인들의 저항과 이를 다스리기 위해 고안된 화엄십찰 정책 때문이었습니다.옛 백제 땅에 있던 사찰로서 화엄십찰로 지정되고 국력을 기울여 화엄사상 도량이 된 것은 전주 귀신사,계룡산 갑사,구례 화엄사였지요.셋 중에서 구례 화엄사를 중시한 것은 구례가 예부터 신라와 백제의 국경도시로서 군사 거점이기도 했지만 하동,순천,진주,사천,함양,산청,합천으로 이어지는 곳으로서 민심의 동향에 매우 큰 영향력을 끼친다는 지정학적 특성 때문이었습니다. 구례는 옛 마한과 진한시대에도 두 나라의 국경으로 그때는 석주관(石住關)이라 불렀다 하더군요.삼한시대 이후 백제 땅이 되면서 구차례현(仇次禮縣)으로 지명이 바뀌었고,757년 신라의 전국 지명 개편 때 구례가 되었다 합니다.백제 유민들을 회유하기 위한 화엄십찰 지정과 화엄사상 전개에는 의상대사의 공헌이 아주 컸습니다.702년에 의상이 죽은 뒤에는 그의 제자들에 의해 계속되었는데,가장 큰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은 백제 정복 100년을 전후한 760년 무렵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화엄사를 중심으로 화엄사상 정책을 실천에 옮기는 과정에서 통일 신라 정부가 매우 큰 공력을 기울인 것은 백제 출신으로서 존경받는 승려를 책임자로 정하는 문제였습니다.요즘 우리나라에서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북한과의 남북회담 때 남측 수석대표를 정할 때 북한에 고향을 두었거나 부모 형제가 있는 사람을 선정하는 경우와 같았습니다.통일 신라 정부는 이미 금산사의 진표율사를 통하여 그 같은 경험을 한 뒤이기도 해서 적임자를 찾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그때 여러 경로를 통하여 천거된 사람 중에 전라도 흥덕현(興德縣)이 고향이면서 경주 황룡사에서 화엄경을 강론하고 있는 연기(緣起)라는 승려가 있었습니다.또한 그는 754년 8월부터 화엄경 사경(寫經)을 시작하여 755년 2월에 완성함으로써 세간의 불자들로부터 높은 존경을 받고 있기도 했지요.그가 사경한 화엄경은 699년에 한문으로 번역된 주본(周本)80화엄이었습니다. ●연기 스님 고향은 고창군 흥덕면 그를 세상 사람들이 존경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어머니도 비구니였다는 점이었습니다.아드님이 출가하여 사문이 되자 어머니는 그 아드님에게서 계를 받고 사문이 되었는데 그런 뒤부터는 아들이 아닌 스님으로 존경하면서 모셨다고 합니다.아들은 일찍부터 백제 유민들의 원한에 사무친 삶을 해원시켜 주려는 꿈을 꾸어 왔고,그런 아들의 고귀한 마음을 알고 있던 어머니는 아들이 출가하자 그 아들을 돕기 위해 출가를 결심했던 것이지요.아들의 꿈이 어머니의 꿈으로 더욱 진솔해진 것입니다. 스님,제가 36년 전 겨울 화엄사로 갔던 이유는 바로 흥덕현이 고향인 그 연기 스님을 뵙기 위해서였습니다.내 마음을 뒤흔들고 있었던 계급 혁명을 위한 여러 행동들과 사회적 불안을 바로 이해하고 싶어서였습니다.그때 저의 그 같은 생각은 그 뒤에도 한참을 더 내 안에서 번민하며 살았습니다.그러다가 인연 연(緣)자 연기 스님의 생애를 이해하게 되면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졌습니다.연기 스님의 고향이었던 흥덕현은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흥덕현은 원래 백제영토였다더군요.백제 때는 상칠현(上柒縣)이라 불렀는데,신라에 복속된 뒤 백제 때 이름과 비슷하게 발음되는 상질(尙質)로 고쳤으며,고려 때에는 장덕현(章德縣)이 되었는데 충선왕의 이름 장(璋)과 음이 같다 하여 다시 흥덕으로 바꾸었다 하더군요. 연기 스님이 백제 유민들로부터 크게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이유로 화엄사를 맡게 되었고,그때부터 화엄사는본연의 화엄사상 도량으로 거듭 태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화엄경 사경도 화엄사서 만들었을수도 스님, 저의 생각으로는 스님께서 경주 황룡사에서 마치셨다는 그 화엄경 사경 작업도 어쩌면 황룡사가 아닌 화엄사에서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생깁니다.왜냐하면 백제의 역사를 신라기(新羅紀)로 정리한 통일신라와 그 이후 사가들의 신라 중심 사고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오히려 그보다는 스님께서 이룩해 내신 저 불멸의 정신사인 ‘화엄석경(華嚴石經)’을 완성하기에 앞서 이 불사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일들을 준비하고 점검하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화엄십찰을 정책적으로 고안해 낸 것은 통일신라의 핵심 권력자들이었지만 화엄사상이 구체적으로 펼쳐지기 위해서는 옛 백제 땅인 전라도와 충청도 사람들의 절대적인 참여와 지지가 필요했을 것입니다.그러기 위해 연기 스님은 다른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매우 특별한 일을 고안해 내셨습니다.돌에다 화엄경을 새기는 일이었지요. ●옛 백제땅 돌며 평등사상 설법 불사가 시작되기 전에 연기 스님은 옛 백제 땅을 돌면서 화엄사상을 설법했지요.우주 모든 사물은 어느 하나라도 홀로 생겨 나거나 존재할 수 없으며,모든 것은 끝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의 원인이 되고 대립하며 대립을 초월하여 다시 하나로 융합되는 것이라고 설파했습니다.따라서 모든 존재는 서로가 서로에게 원인이 되는 것이므로 신라인과 백제인의 갈등과 투쟁과 죽임도 어느 한쪽에만 원인이 있고 책임이 있지 않다는 것,끊임없는 대결보다는 대결을 뛰어넘어 하나로 융합할 수 있는 길이 화엄사상임을 가르쳤습니다.적대감정을 해소하고 초월하여 하나가 되는 길을 절규했습니다.모든 사람은 본래 평등하지만 각자의 마음에 있는 두려움과 그 두려움으로 해서 생기는 고통 때문에 평등이 실현되지 못한다는 것,그 실현을 위해서는 먼저 참회하고 서로에게 베풀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그런 다음 1만 4000여 장의 돌로 다듬은 석판을 만들고,그 석판 위에다 진본 60화엄경을 새겨 넣는 대장정을 시작하셨지요.모두 51만 자로 된 화엄경을 다섯 명의 서예가에게석판 위에 옮겨 적게 한 다음 석공들이 정으로 음각하는 순서를 밟았지요.글씨를 쓰고,음각하는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연기 스님께서는 화엄사로 모여 든 수많은 불자들과 함께 기도를 하거나 법회를 열어 화엄신앙의 원력으로 마음에 쌓인 증오와 원한을 씻어내기 시작했습니다.이 소문은 널리 퍼져나갔습니다.옛 백제 땅 민중들은 여러 날 동안에 걸쳐 화엄사로 몰려들었습니다.일년 넘는 동안에 모여든 사람은 수십 만 명이었습니다.화엄사를 향하여 오는 동안 서로 주고받는 대화를 통하여 그토록 견고하게 자리잡았던 분노와 두려움들이 어느새 많이 풀어지고 녹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절에 머무는 동안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에도 남아 있던 응어리들이 조금씩 풀려 갔습니다. 연기 스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손을 붙잡고 말씀하셨습니다.어머니의 인자함으로 자식의 어리석음과 잘못을 용서하고 다독여 안아서 기어코 사람의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 자식으로 키우듯이 먼저 나 자신의 어리석음과 두려움을 깨우친 다음 남을 용서하라고 하셨지요. 그렇게만든 화엄석경을 장륙전(丈六殿) 사방 벽에다 장엄했습니다.장륙전은 뒷날 각황전으로 이름이 바뀝니다만 우리나라 최초로 화엄사상의 이상인 평등과 자유로움의 궁전으로 태어났습니다.이렇듯 어머니와 아들은 백제 유민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증오와 저주를 씻어내고 안에다 두려움 없는 행복이 깃들게 했습니다.두 분이 죽고 난 뒤 백제 유민들은 두 분의 작지만 위대한 생애를 탑으로 승화시켜 솔바람 청청한 지리산 언덕에 세우고 효대라 불렀습니다.효대라는 이름을 부르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또 하나의 효대가 생겨났습니다.스님,그것이 바로 연기(緣起)였습니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7)연기스님 前상사리(상)

    스님을 처음 뵌 것은 1968년 겨울이었습니다.연기라는 스님이 계신다는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지리산 남쪽에 있는 화엄사(華嚴寺)로 가보라는 어느 스님의 말씀만 믿고서였지요.그 해 겨울 산벚꽃 꽃잎만한 함박눈이 내리던 노고단 준령을 넘어서 화엄사까지 왔을 때 각황전(覺皇殿) 뒤 아름드리 소나무들의 늠렬한 푸른 빛깔들은 함박눈을 맞으며 선정에 들어 있더군요. 그때 저는 함부로 마셔버린 사상의 술에 취하여 스물 한 살 밤과 낮이 길 없는 혼돈으로 몹시 흔들리고 있었고,마음은 까닭을 알 수 없는 분노의 황토물에 젖어서 어둡고 쓸쓸했습니다.말이 사상이지 사실은 어설픈 어릿광대의 흉내내기에 지나지 않았지요.스님을 다시 찾아가는 올겨울에도 눈이 내렸습니다.꼭 서른여섯 해 만입니다.스물한 살 푸르렀던 나이가 어느새 함박눈을 뒤집어 쓴 머리칼로 변했습니다. ●연기스님의 지극한 효행 형상화 36년 전 그때 저는 연기 스님이란 분이 화엄사에 계신 줄 알고 찾아갔었지요.각황전 석등 앞에서 눈을 쓸고 있는 노승께 연기 스님을 뵈러왔다고 하자 그 노승은 나를 잠시 바라보시더니 각황전 뒤 108 돌계단을 올라가면 기다리고 계실 거라 했습니다.어떻게 제가 찾아올 줄 알았는지 궁금했지요.함박눈을 맞으며 돌층계를 오르면서 연기란 분이 어떤 스님인지 자못 궁금했습니다.층계를 다 올라왔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다만 매우 특이한 모습의 3층 석탑 한 기(基)와 석탑 맞은편에 석등 하나가 분분하게 흩날리는 함박눈 속에 앉아 있었을 뿐입니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 석탑이나 석등보다 높다란 언덕 주위에 빙 둘러서 있는 수백년 된 소나무들의 붉은 몸피와 짙푸른 솔가지들의 층층마다 내리고 있는 눈송이들의 정취가 더 숨막히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잠시 뒤 저는 속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도 했습니다.천천히 탑 주변을 한바퀴 돌다보니 안내판이 있었습니다.사사자3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국보 제35호,경주 불국사의 다보탑과 더불어 우리나라 최고 걸작품이라는 것,효대(孝臺)로도 불리는 이 석탑은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 스님이 그의 어머니께 바친 효행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그제야 저는 연기라는 스님이 화엄사에 계시니 가서 만나보라던 어느 스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눈을 쓸다 말고 능청스럽게 연기 스님이 나를 기다리고 계실 거라 했던 그 노승의 말씀에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지요. 피식 웃었지요.하지만 더는 의심의 원 안으로 걸어들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그냥 겨울 지리산을 만나보았다는 것만으로 자위하며 돌아오려 했는데,워낙 눈이 많이 내리는 바람에 화엄사 객실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그 다음날도 눈은 그치질 않았지요.꼬박 이틀을 객실에서 보내는 동안 자연스럽게 연기라는 스님에 관한 얘기와 화엄사의 내력을 얼마만큼이나 알게 되었지요.그런데 연기 스님이나 화엄사 둘 다 전설 또는 신화적인 요소를 많이 지녔다는 것,우리나라 역사 속의 저 무수한 사찰들 중에서 화엄사만큼 중요한 인물들이 중첩으로 관련된 곳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스쳤습니다.눈을 쓸던 그 노스님이 얘기로 전해주었거나 보여준 몇 가지 문헌들을 종합해 볼수록 혼란스럽기도 했고,신비스러운 면도 있었습니다. ●起·緣起·烟起… 생몰연대와 업적 달라 우선 연기라고 발음되는 이름이 셋이었습니다.제비 연()자를 사용하는 연기(起),인연 연(緣)자를 쓰는 연기(緣起),연기 연(烟)자를 쓰는 연기(烟起)였습니다.한 사람이 세 가지 이름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세 사람이 각각 저마다의 이름을 사용했으며,각각의 생몰연대와 업적이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그런데도 언제부터인가 세 사람의 이름을 둘러싸고 온갖 억지가 벌어지기 시작하여 마침내는 세 사람 모두를 누군가가 꾸며낸 가공 인물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다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제가 그때 그 노스님의 말씀 중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던 것은 화엄사상(華嚴思想)에 관련된 스님들의 이름이었습니다.연기존자(起尊者),자장율사(慈藏律師),원효(元曉),의상(義湘),연기조사(緣起祖師),도선국사(道善國師),의천(義天)을 비롯한 화엄학승들이 수행한 통일신라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핵심 사찰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그렇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구례 화엄사라는 사찰에이토록 명망이 드높았던 승려들의 이름이 거론되는지,그 승려들의 생몰연대와 업적이 확연하게 다른데도 불구하고 같은 시대,같은 업적을 놓고 경합을 벌이듯 거론되는지 몹시 궁금했습니다.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모습의 그 효대와 효대의 주인공인 연기 스님이라는 분과 그 분 어머니도 비구니였다는 얘기가 전설인지 아니면 신화인지,혹은 사실이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그런데 36년 전 겨울에 있었던 그 일은 제가 눈 덮인 화엄사 길을 탈출하듯 빠져나온 뒤로 한동안 잊어버렸습니다.저 살기 바빠서였습니다.그러다가 다시 화엄사와 효대를 찾게 된 것은 1993년 무렵부터였습니다.식구들과 함께였거나 혼자일 때도 있었습니다.벌써 20년도 더 지나 있었고,각황전 석등 앞에서 눈을 쓸던 노스님도 육신을 벗고 고해의 바다를 건넌 지 오래였지만 효대 주변 솔숲엔 천년의 바람소리가 한결로 푸르렀고,어머니를 바라보는 연기 스님의 자세는 지리산과 한 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씩 차례로 물어 들어갔습니다.화엄사는 언제,누가 창건하였는지,중창자는 누구였는지,각황전 자리에 있었다는 장륙전(丈六殿) 벽면을 장식했던 돌에 새긴 화엄경은 어떤 종류였는지도 물었지요. 그러나 그보다는 화엄경과 화엄사상이 먼저 영향을 끼친 것이 신라인지 아니면 백제인지가 더 궁금했습니다.이 의문은 원효와 의상 두 사람 중에서 의상은 당나라에 유학하여 화엄경을 배워왔는데,유학하지 않은 원효가 화엄사상을 어떻게 배울 수 있었는지,왜 백제시대의 화엄사상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는지,정복지 백제 땅을 다스리기 위해 화엄십찰을 짓고 화엄사상을 펼치는 과정에서 전라도 주민들로부터 어떤 도움을 왜 받아야 했는지는 지금도 여전히 궁금합니다.그리고 연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세 사람의 정체는 과연 누구인지,그들이 이룩한 업적은 어떤 것이며 왜 그런 일을 하며 살아야만 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효대의 주인공이신 연기 스님은 세 분의 연기 중 과연 어떤 분이신지,그 연기 스님이 우러러 보고 있는 맞은편의 그 스님상이 과연 연기 스님의 어머니이신지,어머니가 맞다면 왜 출가한 사문인 아들을 따라서절에 오게 되었는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장엄하면서도 슬픈 화엄사의 내력 스님.화엄사를 창건한 연대가 544년 무렵이었고,창건자는 연기조사(緣起祖師) 또는 연기(緣起)라고 적고 있는 기록을 틀렸다고 할 만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문제는 역시 연기라는 이름입니다.지금의 화엄사에서는 세 분의 연기 스님을 모두 인정하고 있습니다.창건자는 연기(起)이고,중창자는 연기(緣起)이며,본격적인 화엄사상도량으로 키운 이는 연기(烟起)라는 것이지요.제비 연()자 연기는 인도에서 오신 스님이며,인연 연(緣)자 연기는 의상 스님이거나 지금의 전라남도 고창군 흥덕면 출신 황룡사 승려로서 755년 2월 황룡사에서 신라의 흰 종이에다 먹으로 주본(周本) 80화엄을 사경했던 스님이며,연기 연(烟)자 연기는 화엄사를 크게 확장한 도선(道善) 국사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스님.과연 스님은 이 세 분의 연기 중 어느 분이십니까? 저는 감히 효대의 주인공이 지닌 신비를 풀어낸다면 세 연기의 비밀과 함께 화엄사의 아름답고 장엄하면서 조금은 슬픈 내력도 자연스럽게풀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이날까지 이 신비가 신비로 남아 있는 것은 화엄사와 효대가 지닌 역사의 중요성 때문이라고 여깁니다.즉,화엄사는 신라와 백제의 주요 국경도시인 구례(求禮) 땅에 정략적인 목적으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 ‘이윤택식’ 국립극단 개선 가능할까/예술감독 취임 3주째… 평가 엇갈려

    지난 연말 이윤택 연출가가 국립극단의 예술감독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은 연극계 안팎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문화게릴라’를 자처하며 연희단거리패를 이끌고 서울과 부산,밀양 등지를 휘젓던 이윤택이 정부의 녹을 받는 국립극단의 수장이 된다는 건 선뜻 납득이 되지 않았던 터.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예술감독 제의가 왔을 때 “기회가 왔을 뿐”이라며 별 망설임없이 받아들였다고 했다.나아가 내심 국립극단을 명실상부한 ‘국립’극단으로 환골탈태시키겠다는 야심찬 의욕을 품었다. 지난 2일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그가 국립극단을 지휘한 지 3주째.국립극단은 어떤 변신을 꾀하고 있을까.이윤택 예술감독은 지난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막힘없는 언변으로 ‘이윤택식’ 국립극단의 청사진을 제시했다.그중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국립극단의 대표 레퍼토리를 발굴해 복원하는 작업.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연대별로 2∼3편씩을 골라 연속 공연하는 중장기계획이다.우선 50년대 작품으로 ‘뇌우’와 ‘인생차압’을 선정해 오는 4월 공연할 예정이다.극단 운영에도 일대 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공무원처럼 출근부 도장을 찍는 제도를 없애는 대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숨돌릴 틈 없이 빽빽한 일정으로 체계적인 연습을 이끌고 있다.여기엔 신체훈련,연극 이론수업뿐만 아니라 영어회화까지 포함돼 있다.이윤택은 “배우들에겐 무엇보다 지적 자존심의 회복이 중요하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기본적인 영어회화 정도는 필수”라고 설명했다. 일단 단원들을 대상으로 1∼2월에 ‘연극 교육·훈련 클래스’를 운영한 뒤 3월부터는 연극학도와 외부 연극인에게도 개방할 예정이다.이밖에 ‘신작 희곡 독회무대’‘연극학도와 함께하는 국립극단 야외무대 행렬’ 등도 마련한다. 그는 극단의 모든 작품을 총괄하는 예술감독의 임무 외에 직접 제작에도 나설 생각이다.국립극단의 ‘뇌우’와 국립창극단의 ‘제비’,그리고 동춘서커스단의 서커스극 ‘곡예사의 첫사랑’이 올 한해 그의 연출목록에 올라 있다.‘책상머리에만 앉아 있는 예술감독은 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추진력에 대해 내부에선 다소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한 관계자는 “이윤택 감독의 스타일이 지나치게 밀어붙이는 측면이 있어 아직은 불안한 상태”라고 지적했다.이윤택이 주도하는 국립극단의 체질개선이 효과를 가져올지 지켜볼 일이다. 이순녀기자
  • 조재현의 ‘에쿠우스’ 29일 개막

    마흔을 앞둔 나이에 열일곱살 주인공으로 무대에 서는 연기자 조재현과 흥행연출가 김광보의 만남으로 일찌감치 화제를 모아온 극단 실험극장의 ‘에쿠우스’(피터 세퍼 작)가 29일 마침내 베일을 벗는다. 평소 연습 장면 공개에 너그러웠던 김광보 연출가가 이번만큼은 ‘연습실 개방불가’를 고집하며 작품에 몰두하고 있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세간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는 작품을 빚어내는 연출자로서 그만큼 부담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에쿠우스’는 자신이 돌보던 말 여섯 마리의 눈을 쇠꼬챙이로 찌른 17세 소년 앨런이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의 병원에 수용되면서 시작된다.다이사트는 앨런의 심리치료를 위해 앨런의 주변 인물들을 면담하고 앨런이 저지른 행동의 동기를 하나씩 밝혀나간다. 김광보 연출가는 “원전에 되도록 충실하되 어려운 대사는 관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에서 앨런과 쌍벽을 이루는 주인공은 다이사트이다.앨런의 심리를 용의주도하게 파악해내고,결국 앨런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내는 다이사트역은 중견 탤런트 김흥기가 맡았다.3월7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02)762-0010. 이순녀기자 coral@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6)백제인의 사랑 질표율사(하)

    삼국시대 후반 백제는 신라와의 지루한 전쟁으로 몹시 불우한 시대를 이어갔다. 신라는 백제를 넘어서 당나라와의 보다 적극적인 외교를 통해 국력을 키우고 싶어했고,그러자면 백제는 신라에 가장 골치 아픈 장애물이 되었다.두 나라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보였다.신라의 집요한 침략전쟁 속에서 백제는 좌절하지 않기 위해 미륵신앙을 껴안았다.단순한 전쟁 회피나 불안을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서가 아니라 신라의 군사 공격을 꺾어 응징하는 힘과 근원적으로 죽고 죽이는 살상전이 없는 세계에 태어나 살고 싶다는 구원을 향한 절절한 신앙이었다. 미륵신앙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백제인들은 백제 땅이 미륵부처가 강림하실 약속의 땅으로 선택되기를 희망하면서 미륵사를 크게 짓고 미륵부처가 오시기를 기다렸다.미륵사가 삼국시대를 통하여 가장 규모가 큰 사찰이었음은 백제인들의 그같은 소망이 투영된 백제인의 마음으로 이룩한 신앙의 결정체였다. 미륵신앙은 100년이 넘도록 뜨겁게 달아올랐다.온 나라가 미륵신앙의 성지였다. 이같은백제의 미륵신앙을 유심히 살펴보던 신라가 뒤늦게야 슬며시 미륵사상을 배워가더니 백제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미륵신앙을 현실화시키기 시작했다. ●신라에 정복 뒤 좌절빠진 백제 유민 화랑도와 미륵사상을 연결시켜 현실적인 국력으로 바꿔낸 것이다.미륵신앙을 표방하는 사찰을 짓기도 했지만 미륵사상이 현실화된 화랑도를 통하여 군사력을 극대화시킨 신라는 그 힘을 바탕으로 삼아 백제를 정복해버렸다. 어이없게도 신라의 지배 아래로 떨어진 백제는 그들의 염원으로 이룩한 미륵성지들과 함께 소망의 땅에서 절망의 땅으로 쫓겨난 셈이 되고 말았다. 좌절감은 크고 깊었다.이제 백제인들은 백제 유민이란 말로 바뀌는 가혹한 운명에 놓였다.그 때부터 처절한 저항의 날들이 시작되고,원한 또한 깊어졌지만 한번 뒤바뀐 운명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신라는 아주 천천히 백제 땅과 사람을 신라의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갔다.먼저 백제의 역사를 신라기년(新羅紀年)으로 고쳐 신라기(新羅紀)에 삽입시켰다.백제를 정복한 지 100년이 가까워진 757년(경덕왕 16) 진표가 태어나 자란 고향의 땅 이름을 원래 지명인 두내산현에서 만경(萬頃)으로 바꾸었다.이는 정복지 백제에 대한 신라의 완전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다.진표는 이제 만경들판에서도 그치지 않는 백제유민들의 원한과 저주의 나날들이 미륵신앙의 힘으로 해원되어 신라와의 상생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이같은 격변속에서 진표는 아버지와 진지한 의논 끝에 금산사(金山寺)의 숭제(崇濟)법사를 의지하여 출가하기로 결심했다. ●유민들 고난 해결위해 ‘망신참회법’ 수행 숭제법사 또한 백제 유민으로서 일찍 당나라 정토종을 이끌던 선도(善導·613∼681)화상 법맥을 이어온 스님이었다.이제 진표는 스님이 되어 숭제법사의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다.숭제법사는 진표스님께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을 주면서 각별한 수행을 권했다.점찰경이라고 부르는 이 경전은 말법시대(末法時代)가 되면 불교를 신앙하는 이들이 많은 어려움과 장애에 부닥쳐 수행에 곤경을 겪게 되고,산란한 마음때문에 갈피를 잡지못할 경우가 많게 된다고 했다.이때 숙세의 선악업보가 현재의 고락길흉을 점찰하여 참회하고 반성하면서 마음의 안락을 얻도록 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숭제법사는 진표스님에게 계법(戒法)을 지니고 미륵과 지장보살에게 참회하여 직접계법을 받아 세상에 널리 전할 것을 당부했다. 진표스님은 백제 유민들이 100년 가까이 겪고 있는 그 고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과 능력을 구하기 위해 17년 간의 긴 고행에 돌입했다.육신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수행법의 하나인 망신참회법(亡身懺悔法)을 선택했다.육신을 버리지 않고는 깨달아지지 않는 수행법이었다.백제 유민들이 한 세기토록 겪은 육신의 고통을 자신의 한 몸으로 다 받아내겠다는 각오였다. 참회의 참(懺)은 산스크리트 Ksama의 음역으로 용서를 비는 것,뉘우치는 것을 뜻한다.내가 범한 죄를 부처 앞에서 고백하는 것,회개한다는 것인데,원시불교에서 비구는 자기가 범한 죄를 석가세존 또는 장로비구에게 고백하여 심판받도록 되어 있었다.비구는 보름마다 모여서 우포자타(uposatha·포살·布薩)라는 의식을 행하고,계율의 조목을 읽힐 때 마다 죄가 있을 때는 스스로 말하고 일어서야 했다.이렇듯 대승불교에서는 자기의 죄를 인정한 자는 모든 부처 앞에 참회하고,온몸을 던져 진리에 귀의하는 맹세를 하며,부처의 자비심으로 모든 중생의 잘못을 거두어주는 은혜를 입음으로써 죄의 공포에서 해방된다고 했다. 이같은 의식의 궁극 목표는 죄의식이 전혀없어진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라 하였다. 진표스님이 이같은 망신참회법을 선택한 것은 직접 자신이 진리를 체험하여 확신하기 위해서였다.그런 뒤 백제 유민들에게 참회의 필요성을 말하고,참회를 통하여 진정한 해방을 누리고 자유를 숨쉬고 사는 삶을 권하려는 것이었다.육신의 고통을 극복하는 참회법은 일찍이 석가모니 시대부터 있어왔다.하루에 한 끼,이틀에 한 끼,사흘에 한 끼를 먹거나,나무 열매나 꽃으로 요기를 하거나,한 다리를 들고서 있거나,진흙 먼지 속에 누워있거나,가시덤불 위에 누워있거나,물과 불 위에 누워있거나,어깨쭉지의 살에 구멍을 뚫고 그 속으로 끈을 밀어 넣어 나무가지에다 묶어놓고 피를 흘리며 매달려 있는등의 육신을 고통속으로 몰아 넣어 그 고통을 잊어버림으로써 위대한 정신을 깨달으려는 수행법이었다. 진표스님의 망신참회법은 이들 전통적 수행법보다 훨씬 더 처절했다. 760년(경덕왕 19) 쌀 20말을 쪄서 말린 것을 가지고 변산의 부사의방(不思議房)에 들어가면서 백제 유민의 고통을 구원할 수 있는 깨달음을 구하지 않고는 살아서 그 방문을 걸어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했다. 미륵부처 앞에서 부지런히 계법을 구했다.대부분의 출가승려들이 해온 전통적 수행법에 따른 정진이었다.그러나 3년이 넘도록 미륵불은 아무런 대답도 주지 않았다.그때 진표스님은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경전에 쓰여있는 수행법에 따라 참회하는 것만으로 백제 유민들의 그 오래고 참혹한 고난이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신라가 백제를 정복한 것은 땅 위에 백제 한 나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국가가 서로 경쟁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인정할 때는 피할 수 없는 약육강식의 세상 일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우주 모든 것의 상관성 깨달아 진표스님이 망신참회법 수행을 결심한 것은 신라의 백제 침공을 꾸짖고 회개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그보다는 백제인들이 한 세기가 넘도록 미륵신앙을 지니고 혼신껏 기도했지만 그에 대한 회답이 신라의 지배 아래서 굴욕적인 삶을 살도록 한 것이라면,왜 그래야 했는지를 알고 싶었으며,장차 백제유민들은 어떻게 살아야 원한과 저주의 불길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그 해답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진표스님은 자신의 고통이 모든 백제유민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으며,그 끈은 모든 신라 사람들에게까지 이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주에서 홀로 태어날 수 있는 것은 없고,태어나 홀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은 모든 것과 관계있다는 깨달음이 진표스님의 확신으로 차올랐다.백제인들의 고통이 소멸되지 않고는 자신이 결코 안락할 수 없는 이유를 깨닫게 된 것이다.이제 남은 문제는 백제인들의 고통을 없애줄 방법을 터득하는 일이었다.그 방법은 수행자 자신의 죄의식 없는 상태에 도달하는 참회법으로는 불가능한 차원에 닿아야만 깨달을 수 있음을 알고는 육신을 버리기로 했다.온 우주는 마음의 문제이지 육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장한 결심으로 21일 동안 육신을 던져넣는 참회수행을 단행했다.바위 아래로 몸을 던졌다.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나타나 진표스님을 안아 바위 위에 올려 놓고 사라졌다.다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는 수행을 강행했다.3일째 되자 팔과 다리가 부러져 일어서 걸을 수도,물건을 쥐기도 어려웠다.이제는 온몸을 굴려 언덕 아래로 떨어지는 참회수행을 계속했다.오직 마음으로 미륵을 불러 대답을 원했다.차츰 고통을 잊는 상태로 몰입했다.이제 온전한 것은 머리 뿐이었다.머리 마저 깨뜨려버림으로써 살고죽는 불편함마저 초월하고 싶었다.7일째 되던 날 밤 지장보살이 나타나 팔과 다리를 고쳐주고,가사와 발우를 전했다.수기(授記)가 내려진 것이다.그때부터 새로운 수행을 시작했다.21일을 다 채웠을 때 그토록 갈망했던 고통을 치유시키는 지혜가 터득되었다.금산사로 다시 돌아온 것은 29세 때였다.금산사에다 청동으로 빚은 미륵장육상을 모시고 그 아래서 외치기 시작했다.사자후(獅子吼)를 토한 것이다. ●신라 지도자들에도 참회 설파 만경들에서 농사짓던 이들이 미륵불을 기다렸지만 미륵불이 오지 않는 까닭을 말하면서 진정한 미륵을 만날 수 있는 비법을 설파했다.백제인의 마음속에는 신라를 향한 증오와 저주로 꽉 차있기 때문에 미륵의 소식이 와닿지 않는다고 했다.이미 미륵은 와 있는데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고 했다.증오와 원한과 저주로 피흘리고 죽이는 일이 그치지 않는 한 미륵은 영원히 만날 수 없다고 설득했다.신라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은 백제인들뿐이며,백제인의 용서를 통해서만 신라가 나라다울 수 있고,신라가 나라다워야만 백제인의 마음에서 증오와 저주가 사라질 수 있으며,그래야만 공존과 상생을 이룰 수 있다고 절규했다. 신라의 지도자들을 향해서도 외쳤다.백제인을 능멸하고,빼앗고,죽이는 통치법으로는 신라도 끝없는 고난속으로 빠져들 뿐이며,오만과 편견과 무력으로 이룬 한 때의 번영이 더 큰 재앙으로 변하는 것을 막으려면 참회하는 길뿐임을 설파했다. 신라인의 참회가 있어야만 백제인과 공존할 수 있음을 타일렀다.마침내 신라의 왕과 귀족,지도자들이 진표스님의 법문에 무릎을 꿇었다.진정한 통일신라는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진표스님의 온 몸을 던진 백제 사랑은 한 시대의 고난과 불행을 극복해 내는 위대한 지도자의 참모습이었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5)백제인의 사랑 진표율사

    진표 스님을 뵙기 위해 금산사(金山寺) 가던 날은 절기로 소한이었다.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는 겨울 속에 봄 날씨를 차려 입고서 뜬금없이 진표 스님의 안부를 묻는 나그네에게 개구리는 왜 우느냐고 되물었다.이 질문은 금산사를 찾아가는 모든 길손에게 던지는 것이면서 금산사에 갔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대답을 알았느냐고 또 묻는다고 했다. 그날은 잿빛 참나무 숲에서 우는 동박새 울음소리에 실려서 물어왔다.어떤 때는 봄날 노고지리 노래나 겨울 갈가마귀떼 울음으로도 물어온다 했다.눈보라로 울부짖거나 천둥번개로 절규하기도 하며,살모사 눈빛이나 하현달의 쓸쓸함으로 물어올 때도 있단다. ●견훤이 물었다 “후백제를 아시오?” 개구리가 왜 우느냐고요? 실은 저도 오늘 그걸 여쭙기 위해 찾아가는 길인 걸요.돌아갈 때는 꼭 대답을 들려주고 가란다.걸음이 무거워졌다.금산사 일주문 조금 못미쳐 돌로 된 굴다리 앞에 이르자 이번엔 안내판 글자 속에서 견훤이 걸어나오더니 나그네를 붙들었다.후백제를 아시오? 후백제라….신라와 당나라연합군에 백제가 멸망한 660년에서 무려 240년이나 지난 뒤에 옛 백제를 계승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건국한 나라가 아니냐고 대답하자 견훤이 버럭 고함을 쳤다. 연합군이라고? 이런 시러베아들놈 같으니라구.연합군은 뭔 연합군이야,늑대 같은 외세지. 외세 끌어들여 욕심 채우려다가 시퍼런 증오와 원한의 늪에다 백제인들을 처밀어놓고,고구려 저 광활한 영토 몽땅 다 빼앗기고서 반도 남쪽 구석에 내몰려서 쭈그리고 사는 꼴 하고서는….그 잘난 신라가 저질러버린 엄청난 과오를 당신도 지금 보고있지 않은가.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즈그네덜거로 한다며 떵떵거리고 있는데도,그 뭣인가 대한민국 정치인이라는 얄궂은 것들은 입 딱 봉하고 있담서.외세 끌어들여 민족 영토 거덜내버린 신라 정치인들이나,중국 눈치 살피면서 몸사리는 정치인들이나 모조리 다 거시기할 것들이여. 참으로 두렵고,아프고,무거운 해후였다.견훤은 백제 유민인 전주지방 인민들의 회고적 감정에 호소하며 후백제를 세울 수 있었는데,그때 가장 결정적인 힘이 백제 유민들의 그 회고적감정이었다.백제가 신라 역사에 편입된 지 240년이 지날 때까지도 옛 백제를 못잊어하고,신라의 지배질서에 원한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는 뜻이다.단순히 옛 일만이 아닌 것 같다. ●금산사에 계신 진표 스님을 뵙다 진표 스님은 금산사 대웅전 뒤편 조사당(祖師堂)의 영정 안에 계셨다.오른 쪽에는 은사이신 숭제법사(崇濟法師)께서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계셨다.나그네와 진표 스님 사이에는 1200년이라는 시간적 거리가 떨어져 있었지만 우주는 마음으로 짓고 허무는 것이라는 진표 스님의 법문을 믿고 오직 간절한 마음으로 스님께 여쭈었다.스님은 고요속에다 말씀을 풀어놓으셨다.그렇게 조사당문답(祖師堂問答)이 시작되었다. 나그네: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라크 국민들은 참담한 좌절감에 빠져 있습니다.목숨을 내건 테러로 살상과 증오의 날들이 쌓이고 있습니다.이 불행을 종식시키기 위한 방법을 먼저 여쭙고자 합니다.오늘날 이라크 국민들이 겪는 고통은 스님께서 목숨을 건 망신참회(亡身懺悔) 수행을 통하여 백제인들과 신라 집권자들이 상생(相生)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시던 그때 상황과 매우 닮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진표 스님:미국과 이라크는 인간이 지닌 모순의 두 측면을 각각 대변하고 있구나. 자신의 견해만이 옳다고 여기는 쪽과 일체의 사물을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집착하는 또 한 측면의 충돌이지.똑같으니까 싸우는 것이지.나는 그때 백제인들에게는 무모한 저항을 하지 말도록 설득시켜 희생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과,신라의 지배자들에게는 잔혹한 탄압을 중지시켜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이 문제는 매우 미묘한 것이어서 자칫 잘못하면 어느 한쪽만의 이익을 위해 편드는 것처럼 보일 수 있거든.그리되면 약자들로부터는 굴종을 강요한다는 원성을 들을 수 있고,강자한테서는 저항을 부추긴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지도자는 불만·투쟁 잘 다스려야 나그네:스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는지요. 진표 스님:다스리되 군림하지 않는 사람이다.인간이 사는 세상은 불만과 투쟁이라는 두 축 위에서 절규하는 것일 수도 있다.좋은 지도자는 두 원인을 잘 다스리되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자랑이란 욕심을 만드는 종자이기 때문이다.백제인들에게는 신라의 지배질서를 따름으로써 누릴 수 있는 이익을 제시해야 하고,신라 지도자들에게는 비폭력적 방법으로 백제인을 끌어안을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만 했다.그런데 그 방법을 터득하는 데는 엄청난 장애들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그네:가장 큰 장애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진표 스님:내가 왜 이 일을 맡아야 하는가 하는 의심이었다. 나그네:어떻게 해결하셨는지요? 진표 스님:비상한 시름은 평범한 물건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백제인들은 한 세기 가깝도록 신라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왔다.증오는 저주로 변했다.신라의 편견도 지배자라는 타성에 젖어서 점점 더 폭력적인 지배방법만 강구했다.서로의 견해 차이가 워낙 커서 웬만한 조정능력으로는 오히려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었다.그래서 나는 결심을 했다.과거의 인연을 알 수 있는 능력을 얻고자 했다.그 능력으로 나와 타인의 과거에 얽힌 인연과선악에 관한 것을 알고자 했다.이를 숙명통(宿命通)이라 하느니라.또 하나는 나와 다른 사람의 미래를 알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싶었다.인과응보를 확인시켜줌으로써 눈에 안 보이는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힘이지.이것은 천안통(天眼通)이라 하느니라.번뇌가 끝나서 얻은 지혜로서 현재의 번뇌를 끊어버리는 능력을 얻는 누진통,원하는 곳에 자유롭게 나타날 수 있는 신족통,보통 사람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 능력인 천이통,타인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능력인 타심통을 합한 육신통(六神通)과 해탈법을 깨닫기 위한 결심을 한 것이다.이 육신통이야말로 비상한 시대 문제를 풀 수 있는 비상한 물건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지.그런 능력이 있어야만 양쪽 모두를 조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깨달았다.지배자와 민중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적대감정을 해결하여 공존과 상생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율자가 되기로 한 것이지.그런 조율자로서의 능력과 방법을 지장보살님과 미륵부처님께 물었다.내 몸을 던져서 답을 구했다.그것을 세상 사람들이 망신참회라 부른다. 나그네: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수행법인 망신참회를 선택하게 된 동기가 있었습니까? ●내 개구리는 업장을 깨우쳐 주었노라 진표 스님:동기라고 했느냐?(스님은 오른쪽에 있는 그의 스승이신 숭제법사 쪽을 바라보며 알 듯 모를 듯 미소를 머금었다.)너는 개구리가 왜 우는지 아느냐? 나그네:생물시간에 배우기로는 암컷과 수컷이 교미하기 위해서라고 들었습니다만. 진표 스님:그래야겠지.그런데 내 개구리는 울어서 내 미혹과 업장을 깨우쳐주었다. 나그네:무슨 말씀이신지…. 진표 스님:나는 열 살 이전에 활을 잘 쏘아 명궁 소리를 들었다.자주 사냥에 나가 활솜씨를 자랑하곤 했지.어느날 사냥가던 길에 개구리떼가 울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놈들을 잡아 구워먹고 싶었다.크고 살진 놈만 잡아서 버들꿰미에 꿰었다.돌아올 때 갖고 가기위해 냇가에 두었는데 사냥길이 어긋나는 바람에 그만 집에 오면서 잊어버렸어.일년 뒤 다시 그 길을 지나다가 작년에 내가 잡아서 꿰어둔 개구리들이 그때까지 살아서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 순간 개구리들의 처량한 모습이 내 이웃 사람들로 느껴졌고,나는 내 이웃 사람들을 박해하는 신라 지배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참으로 부끄러웠다.그 일이 계기가 되어 나는 금산사 숭제법사님을 의지하여 출가를 했다.
  • “관객·배우 호흡 맞아야 연극 제몫”창단 20주년 극단 ‘목화’ 오태석 대표

    “남의 극단 이름을 빌려 쓰다가 문패를 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처음엔 ‘외국말로 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얘길 많이 들었는데 이제야 관객들이 내 작업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양극과는 차별화된 우리 고유의 볼거리를 만드는 데 치중해온 극단 목화가 창단 20주년을 맞았다.세월은 흘렀지만 극작가 겸 연출가인 오태석(사진·64·서울예대 극작과 교수) 대표의 끊임없는 실험정신과 배우들의 철저한 연기훈련은 여전히 목화를 인상지우는 특징이다. 생략과 비약이 많은 목화의 독특한 연극 문법은 서양극에 익숙한 이들에겐 종종 ‘난해하다.’는 평을 듣는다.오태석은 “우리 볼거리는 상상을 하는 노력을 해야만 재미를 찾을 수 있다.”면서 “관객들이 생략된 부분을 메우고,비약된 부분을 이으면서 배우들과 함께 호흡할 때 연극이 제 몫을 한다.”고 말했다. 40년간 연극 외길을 걸어온 그는 아직도 할 일이 많다고 했다.망가진 우리의 고유한 말을 회복하고,50년이 지나도록 분단 현실을 극복하지 못한 세대로서의 ‘수치’를 드러내는 작업은 죽을 때까지 쥐고 갈 숙제이다. 20주년을 기념해 그간의 성과를 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16일 대학로 아룽구지소극장에서 막올리는 ‘심청이는 왜 두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를 시작으로 ‘자전거’(2월),‘백마강 달밤에’(9월) 등 대표작 3편을 연달아 공연한다.이 가운데 지난 90년 충돌소극장 개관작인 ‘심청이…’는 당시 한 청년이 공중전화를 오래 쓴다는 이유로 낯선 사람을 칼로 찌른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품.이번 레퍼토리는 30대 엄마가 아파트 옥상에서 두 남매를 밀어뜨리고,20대 아버지가 남매를 한강으로 던지는 비정한 일들이 벌어지는 오늘의 현실로 상황을 옮겼다. 글·사진 이순녀기자 coral@
  • 가요활용 ‘편집뮤지컬’ 국내에서도 제작바람

    국내에서도 가요를 활용한 ‘편집 뮤지컬’제작 바람이 불고 있다. 서울뮤지컬컴퍼니(대표 김용현)는 오는 30일부터 서울 정동 뮤지컬전용극장 팝콘극장에서 임순례 감독의 영화를 무대화한 뮤지컬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공연한다.밤무대를 전전하는 삼류밴드의 고단한 일상을 담은 영화의 줄거리를 바탕으로 송골매의 ‘세상만사’‘어쩌다 마주친 그대’,로커스트의 ‘하늘색 꿈’,심수봉의 ‘사랑밖에 난 몰라’등 영화에 삽입된 대중가요들을 그대로 사용한다.연출은 뮤지컬 ‘킹앤아이’의 이원종 연출가가 맡고,윤영석 김선영 주원성 추상록 김영주 박준면 등이 출연한다. PMC프로덕션(공동대표 송승환 이광호)은 이승철의 히트곡들을 엮은 ‘네버엔딩스토리’를 8월쯤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앙숙인 나이트클럽 집안간의 숙명적인 사랑을 다룬 내용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스토리를 빌렸다.이승철이 직접 음악감독으로 제작에 참여한다.또 공연투자사 쇼이스트도 김광석의 노래들을 활용한 뮤지컬 ‘친구’를 연내에 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순녀기자
  • [CEO 칼럼] 인센티브 유혹과 함정

    자료를 찾기 위해 도서관에 가서 30여 년 전의 신문이나 잡지를 뒤적거린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끔 손길을 멈추고 광고란에 눈길을 빼앗긴 적이 있을 것이다. 지난 60∼70년대의 구인(사원모집) 광고를 보면 사업체의 규모에 관계없이 거기 담긴 내용들이 엇비슷하다.기본급이 얼마이고 상여금이 몇 퍼센트인지는 구인광고에 포함돼야 할 필수 항목이었다.절대 가난을 면치 못했던 당시의 사회 상황에서는 ‘돈 많이 준다.’는 문구가 사람을 끌어들이는 유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단순 제조업이 대부분이었던 당시와는 달리 고도의 지식 산업사회로 탈바꿈된 오늘날은 ‘월급봉투의 두께’가 능력 있는 인재의 유치수단이 되기도 어려울 뿐더러 생산효율을 높이는 방책이 되지도 못한다. 그런데 기업 경영자들은 바로 그 60∼70년대 구인광고식 유인책에 대한 유혹을 쉽게 떨쳐버리기 어려운 모양이다.같은 사업장에서도 개개인의 생산성을 토대로 차별적인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생산효율을 높일 뿐 아니라 조직이 당면한 과제들을 모조리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 경영자들이 허다하다. ‘인센티브제’라는 금전적 보상제도는 나의 경영 경험에 비춰봤을 때 단순 반복적인 저기술 제조업에서만 성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그 경우에도 단지 양적인 측면의 성과만을 향상시키는 효과로 나타나더라는 것이다. 또 이 금전적 인센티브를 강조하는 것은 아무래도 통제적인 성격을 띠게 마련이며 이러한 통제는 그 대상으로 하여금 심리적 저항을 유발할 수도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허버트 사이먼도 바로 그런 점을 지적하고 있다. ‘비록 경제적인 보상이 구성원들로 하여금 조직의 목표 달성에 매진하고 경영진의 권위에 복종하도록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한 보상이 동기부여의 유일한 혹은 주요한 수단이 된다면 그 조직은 비효과적인 시스템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더구나 오늘날 저기술 제조업의 대부분이 저임금 국가로 이전되고 부가가치 높은 연구 개발 업무가 중심으로 자리잡은 우리의 산업구조 속에서 ‘인센티브’라는 당위성에 과도하게 의존하거나 그것의 효율을맹신하는 것은 위험스러운 일이다. 보릿고개 넘기가 힘에 겨웠던 시절에야 전답 많은 집 맏며느리로 딸을 출가시키려는 것이 부모의 소망이었지만,이제는 그 집 식구들의 성품과 가풍과 생활(근무) 환경을 조목조목 따지는 시대가 되었다. 답은 거기에 있다.즐겁게 일할 수 있는 근무환경을 만드는 것이다.내가 경영을 맡고 있는 통신장비 회사의 연구원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일을 ‘즐기면서 재미있게’ 하기를 원하는 바람을 가장 첫 자리에 두고 있었다. 즐겁고 흥겨운 직장 분위기에서 창의성과 자율성과 책임감이 함께 생기며,다양한 학습의 기회도 얻을 수가 있다. 즐거운 근무 환경 조성을 위하여 조직내 직무를 조정하는 등 장애 요소를 제거해 주는 일이,게시판에다 인센티브라는 미끼를 걸어 놓고 구성원들끼리 단순 경쟁을 유도하는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서두칠 이스텔시스템즈 사장
  • 공연계, 새해 해외진출 잇따라

    국내 무대는 좁다.이제는 세계다.신년 벽두부터 우리 공연계에 해외 진출과 관련한 반가운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먼저 PMC프러덕션(대표 송승환)의 비언어퍼포먼스 ‘난타’(영문 이름 Cookin)가 오랜 숙원인 뉴욕 브로드웨이 전용관의 꿈을 이루게 됐다.뉴욕대(NYU)인근 그리니치빌리지에 위치한 오프 브로드웨이극장 ‘미네타 레인 시어터’와 계약을 맺고 새달 20일부터 장기공연에 들어가기로 확정했다.국내 창작 공연물이 브로드웨이에서 상설 공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난타’는 지난해 9월 브로드웨이의 ‘뉴빅토리극장’에서 개런티를 받고 한달간 초청 공연을 가져 뉴욕타임스 등 현지 언론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이에 힘입어 오프 브로드웨이극장 4곳에서 전용관 제의를 받았고,극장 위치와 계약조건 등을 고려해 400석 규모의 ‘미네타 레인 시어터’에 낙점을 했다. 그런가 하면 극단 미추의 대표인 손진책 연출가는 일본 신국립극장의 객원 연출가로 초청받아 4월12일부터 28일까지 신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아리엘 돌프만의 신작 ‘디 아더사이드’를 세계 초연한다.일본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신국립극장이 한국인 연출가에게 기획공연을 맡긴 것은 처음이다.이를 위해 신국립극장 구리야마 다미야 예술감독이 7일 방한해 정식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며,계약조건은 객원 연출자 가운데 최고의 대우인 것으로 알려졌다. ‘디 아더 사이드’는 ‘죽음과 소녀’로 유명한 칠레 작가 돌프만이 신국립극장의 의뢰를 받아 집필한 신작이다.‘죽음과 소녀’는 지난 94년 손진책 연출가가 국내에 소개했다. 이순녀기자 coral@
  • 서울, 자동차 공회전 금지 새해부터 과태료 5만원

    내년 1월1일부터 서울시내 1047곳에서 자동차 공회전이 금지된다.위반하면 5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서울시는 29일 “지난 7월 제정한 자동차 공회전 제한 조례가 내년 1월1일부터 발효돼 위반할 경우 처벌받는다.”고 밝혔다. 휘발유 차량과 가스차량은 3분 이상,경유 차량은 5분 이상 공회전을 할 수 없다.공회전 금지장소는 각종 터미널과 버스·택시 차고지,노상주차장,자동차 전용극장 등 1047곳이며 안내판이 붙어있다.겨울철 실외온도가 5도 이하이거나,여름철 25도 이상일 때는 냉·난방을 고려해 공회전을 10분까지 허용한다.긴급을 요하는 차량,식품 냉동·냉장차량은 제외된다. 내년부터 의무적으로 자동차 배출가스 정밀검사를 받아야 하는 대상 차량도 확대된다.‘서울시 운행차 배출가스 정밀검사에 관한 조례’에 따라 지난해 5월20일부터 시행중인 배출가스 정밀검사제 대상차량이 확대되는 것이다.서울에 등록된 차량 가운데 출고 후 7년 이상된 자가용 승용차,5년 이상 비사업용 승합차와 택시 등 2년 이상 사업용 승용차는 매년 의무적으로배출가스 검사를 받아야 한다. 조덕현기자
  • 정부사업 ‘성적’ 매긴다

    ‘국민 세금이 들어간 사업이 당초 기대했던 만큼 성과를 거뒀는지 구체적인 잣대로 꼼꼼하게 따져본다.’ 정부예산으로 사업을 벌일 때 성과목표와 성과지표를 사전에 정해두고,사업이 시행된 뒤 의도한 대로 효과가 있었는지를 분석해보는 ‘성과관리제도’가 정부 차원에서 본격 도입된다. 기획예산처는 정부 사업의 성과관리제 도입을 위한 성과평가지표 1210개를 개발,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간다고 29일 밝혔다.농림부,보건복지부,환경부 등 22개 부처에서 우선적으로 실시한다. 부처별로 사업을 추진할 때 기대되는 효과가 성과목표라면,사업시행 후 의도한 만큼 사업성과를 냈는지 평가하는 구체적인 잣대가 성과지표이다.성과목표나 성과지표 모두 해당 부처에서 미리 정한다. 예컨대 문화관광부가 시행하는 ‘우수 게임 사전제작지원’,‘캐릭터 상품소재 개발지원’ 등의 사업은 ‘문화산업 창작 및 제작 활성화’가 성과목표다.사업이 끝난 뒤에는 ‘지원작품 사용화율’,‘지원작품 매출액’ 등 이번에 개발한 구체적인 성과지표를 이용,원래 목적했던만큼 사업효과를 이뤘는지 평가한다. 환경부가 추진하는 ‘천연가스 자동차보급’ 사업의 경우 ‘자동차 공해 개선’이 성과목표다.사업이 시행된 뒤에는 ‘시내버스 배출가스 저감률(低減率)’,‘천연가스 자동차 국민만족도’라는 구체적인 성과지표를 통해 사업목표가 말뿐이었는지,아니면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를 따져본다. 교육부가 연구중심 대학의 육성을 위해 시행하는 ‘두뇌한국 21사업’의 경우 성과목표는 ‘창의적,국제적 수준의 선진연구 인력양성’이며 이를 평가하기 위한 성과지표는 ‘SCI(과학분야 연구논문게재지수) 게재 논문수’,‘특허취득 건수’,‘지역대학 산업체 취업률’ 등이다. 예산처는 자문기구인 중앙성과관리자문단의 검토를 거쳐 필요하면 부처별 성과지표를 수정,보완토록 권고할 예정이다.각 부처는 자문단의 권고에 따라 내년 2월 말까지 지표를 보완한 뒤 5월 예산요구 때 2005년 성과계획서를 제출하면 된다. 또 성과 평가결과를 토대로 운용실적이 우수한 부처에 대해서는 예산편성시 인센티브를 부여할 방침이다.반면예산이 들어간 만큼 기대했던 사업성과를 얻지 못했을 경우 그 이유가 합당치 않다고 판단되면 예산을 삭감하기로 했다. 예산처 재정분석과 이장로 서기관은 “내년에 시행하는 22개 부처 외에 장기적으로 2008년까지 다른 행정부처로 이 제도를 확대,적용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성수기자 sskim@
  • ‘한씨연대기’ 19년전 감동 그대로

    1980년대 한국 연극계가 건져올린 귀중한 수확으로 꼽히는 극단 연우무대의 ‘한씨연대기’가 내년 1월8일부터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무대에 오른다.극단 동숭아트센터와 문화창작집단 수다가 지난 20년간 화제작들만을 모아 연중기획한 ‘연극열전’시리즈의 개막작으로 다시 공연되는 것.91년 재공연 이후 13년 만이고,초연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거의 20년 세월을 헤아린다. ‘한씨연대기’는 널리 알려졌듯 소설가 황석영이 1972년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김일성대학 의학부 교수였던 한영덕이 북측에서 버림받고 단신 월남한 뒤 남측에서도 이방인으로 떠돌게 되는 비극적인 삶을 통해 분단의 아픔을 사실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초연 당시 평단과 관객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1985년 4월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소박하게 막올린 ‘한씨연대기’는 이듬해 2월 말까지 공연장 여러곳을 옮겨가며 170여회의 장기공연을 기록했다.‘동아연극상’‘오영진연극상’‘백상예술상’등 각종 연극상도 휩쓸었다.여기저기서 빌린 500만원으로 어렵게 시작한 연극은 흥행 성공으로 빚을 다 갚고도,신촌에 소극장을 열 수 있는 목돈까지 마련했다.대학 연극반 학생들 사이에 한 번쯤은 무대에 올려야 할 레퍼토리로 꼽히고 있고,이 작품을 통해 대학로에 발을 붙인 연극인들이 상당수임을 볼 때 ‘한씨연대기’의 명성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케 한다. 85년,91년에 이어 세번째 연출을 맡은 김석만(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연출가는 “분단 문제를 다룬 연극이 드물었던 당시 시대적 상황과 역할바꾸기 등 새로운 공연 양식의 시도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그렇다면 시대가 바뀌고(물론 분단 상황은 변함없지만),연극 양식이 진화를 거듭한 지금도 이 작품은 여전히 유효할 것인가.그는 “지난 과거로 인해 우리의 모든 삶은 영향을 받는다.”면서 “한영덕의 삶과 그런 삶을 감싸고 있는 시대의 의미를 분명하게 전달한다면 지금 젊은 세대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연 무대에는 직장생활을 접고 8년 만에 연극판에 돌아온 문성근이 한영덕으로,결혼 후 활동이 뜸했던 양희경이 동생 한영숙으로 등장해 열연을 펼쳤다.이번 공연에도 강신일 이대연 김중기 등 연극과 영화에서 두루 활동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돼 불꽃 튀는 연기대결이 예상된다.강신일이 한영덕으로,이대연이 친구 서학준을 연기한다.여기에 박남희 서정연,두 여배우가 가세해 1인 다역을 소화한다. 김석만 연출가나 극단 연우무대 못지않게 원작자 황석영에게도 이번 공연은 의미가 남다를 듯싶다.올해 ‘한씨연대기’불어판을 출간한 그는 지난 여름,한 사석에서 김석만 연출가에게 “‘한씨연대기’를 다시 해보면 어떻겠느냐 .”는 뜻을 먼저 내비치며 애착을 보였다고 한다.공연 둘째날인 1월9일에 마련된 ‘한씨연대기의 날’에는 황석영,문성근 등 역대 출연 멤버들이 자리를 같이할 예정이다.2월29일까지 .(02)762-0010. 이순녀기자 coral@
  • 충북 음성 방역대책실 방문

    김진배(金珍培) 농수산물유통공사 사장은 26일 충북 음성군 가금류 인플루엔자 방역대책상황실과 충북 진천군 닭고기수출가공업체를 방문,관계자들을 격려한다.
  • “본인 동의없는 전출은 부당”

    본인 동의 없이 다른 자치단체로 전출시킨 것은 ‘부당하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번 결정으로 자치단체장이 인사교류 등을 명목으로 본인의 의사를 무시한 채 전출·입시키는 인사권 남용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지난 22일 열린 소청심사위원회에서 한강시민공원사업소 정모(56) 과장이 낸 ‘서울시 전입명령 인사에 대한 무효확인 및 취소’ 소청심사에서 소청을 받아들여 무효 결정을 내렸다고 24일 밝혔다. 정씨는 강남구 의회 전문위원(행정5급)으로 근무하다가 9월25일 강남구 전출과 서울시 전입 인사 발령을 받자,10월20일 “강남구청장이 한마디 상의나 동의 절차 없이 전출시킨 것은 부당하다.”며 소청심사를 청구했다. 정씨는 소청심사 청구서에서 “강남구청장이 서울시에 전출을 동의하고 희망하는 것처럼 허위로 통보하고 문서를 제출했다.”며 “강북구에 있던 모 사무관을 강남구로 전입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나를 전출시켰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대한매일과 전화통화에서 “전출가지 않겠다고 발령 이틀 전에 분명한 입장을 밝혔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명예를 지키고 앞으로 단체장들의 인사전횡을 막겠다는 취지에서 소청심사를 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조만간 지난 9월25일 낸 인사명령을 취소하는 발령을 낼 예정이지만,정씨는 강남구로 다시 돌아갈지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법규상 하자는 없지만,대법원 판례를 보면 본인 동의를 필요로 한다.”는 해석이 있어 행정소송으로 가기 전에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준 것”이라고 밝혔다. 조덕현기자 hyoun@
  • 열아홉 그 여든 그녀 사랑에 빠지다/박정자 주연 연극 ‘19 그리고 80’

    여든살 할머니와 열아홉살 청년이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사랑이 아무리 국경과 나이를 초월한다고 해도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조합이다.하지만 연극 ‘19 그리고 80’을 보노라면 그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올해초 3개월간 장기공연되며 수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던 이들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1년만에 다시 찾아온다.상식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사랑이 추하거나 불쾌하지 않고,가슴을 적시는 유쾌한 감동으로 다가온 데는 작품 자체의 힘 못지않게 80세 할머니 ‘모드’역의 배우 박정자(62)가 내뿜는 매력이 큰 몫을 했다. ●귀여운 할머니와 움울한 청년의 사랑 박정자는 길가의 나무를 뽑아다 공기좋은 곳에 옮겨심고,동물원에서 바다표범을 몰래 데려다 바다에 풀어주는 엉뚱하고,귀여운 할머니 모드 역을 아주 자연스럽게 소화해냈다.높은 나무위를 장난꾸러기 소년처럼 성큼성큼 오르는 박정자의 모습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로맨틱하면서,동시에 연륜이 가져다준삶의 지혜까지 갖춘 모드의 사랑스러움은 박정자로 인해 더욱 빛을 발했다. 그는 지난 공연중에 ‘80세 생일이 될 때까지 매년 이 작품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그 꿈은 이내 배우로서 이뤄내야 할 삶의 목표가 됐다.내년 1월9일 서울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막올리는 ‘19 그리고 80’공연은 그가 목표 지점을 향해 내딛는 두번째 발걸음인 셈이다. “모드를 연기하면서 80이란 숫자에 매료됐어요.배우로서 도전해야 할 산처럼 느껴진 거지요.끝까지 오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예순 넘어서 목표를 갖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그는 이 작품을 ‘배우 박정자의 레퍼토리’로 정하면서 한가지 원칙을 세웠다.매년 연출자와 상대 배우,스태프 등을 모두 바꿔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번 공연에는 여성 연출가 한태숙과 연극배우 김영민이 낙점됐다. ●매년 공연때마다 연출·스태프 바꾸기로 “같은 작품이라도 연출가와 배우에 따라서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요.두번째라고 해서 익숙한 것은 하나도 없어요.그래서 늘긴장되지요.” 한태숙 연출가와는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에쿠우스’에 이어 세번째 공연.무겁고 진지한 작품을 주로 연출해온 한태숙 연출가가 경쾌한 코믹물에 가까운 이 작품을 어떻게 다듬어낼지 관심거리이다. 상습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던 음울한 청년에서 모드를 만나 사랑과 삶의 희망을 깨닫는 해럴드역의 김영민은 ‘레이디 맥베스’‘추적’ 등에서 실력을 쌓은 젊은 배우.미소년 이미지의 그가 무대에서 보여줄 새로운 해럴드의 모습도 기대를 모은다. 지난 공연에서 극중 모드와 해럴드의 키스신은 큰 화제가 됐다.박정자는 “주변에서 ‘복도 많다’고 부러워한다.”면서 “매번 젊은 남자배우와 키스하려니 염치는 없지만 행복하다.”고 농담을 했다.그러더니 “이번엔 연출가가 러브신을 보강하겠다고 해서 내심 기대를 하고 있다.”며 짖궂은 미소를 짓는다. 모드는 평소 ‘죽기에 적당한 나이’라고 여겨온 여든번째 생일날,해럴드로부터 청혼을 받지만 이미 결심한 대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그토록 삶에 낙천적이던 모드가 자살하는 대목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자 박정자는 가만히 고개를 젓는다. “모드에게 죽음은 삶의 일부이자 또다른 세상으로 나가는 변화일 뿐이에요.모드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해럴드가 새롭게 태어나고,성숙할 수 있도록 모든 영양분을 원없이 주고 간 것이지요.모드가 해럴드에게 아낌없이 나눠준 사랑과 지혜는 결국 작가가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이기도 하고요.” ●대학로 정미소서 내년 2월말까지 해럴드역의 김영민이 보는 이들의 사랑은 어떤 것일까.“해럴드나 모드 둘다 어떤 면에서 사회로부터 소외된 인물들이에요.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두사람이 서로에게 동화된다면 충분히 사랑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전엔 상상도 못해본 상황이지만 연습을 하면서 차츰 해럴드를 이해하게 되더라고 말했다.김영민은 요즘 극중에 삽입될 ‘월광소나타’연주를 위해 색소폰을 배우는 중이다. ‘19 그리고 80’(원제 해럴드와 모드)은 미국 시나리오 작가 콜린 히긴즈의 작품으로,1980년 브로드웨이에 처음 선보인 뒤 프랑스 등 유럽 무대에서 인기를 끌었다.2월29일까지(02)765-5476. 이순녀기자 co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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