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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르비 “또 하나의 정치적 승리”/소 새당강령 채택 안팎

    ◎“갈라서면 공멸”보·혁 갈등속 표면적 단합/침묵 보수파,11월 당대회서 반격 분석도/“외면받는 공산당의 자구책”… 시민들 큰 기대 안해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최근 들어 치러진 몇번의 당중앙위 총회가 모두 그랬지만 소련공산당의 이번 당중앙위 총회도 철저히 고르바초프의 각본·연출·주연으로 이뤄지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번 당중앙위를 통해 고르바초프는 적어도 표면적으로 또한번의 정치적 승리를 거둔셈이다. 당초 예상됐던 일정보다 하루 앞당겨 26일 폐막된 당중앙위 총회는 고르바초프가 워낙 획기적인 새당강령을 제출해 큰파란이 일것으로 예상됐었다.계급투쟁·민주집중제 포기등 공산당의 기본이념이었던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버리고 사회민주주의제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은 바로 공산당 스스로 자신들의 존립기반을 허무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의는 새당강령을 거의 만장일치로 받아들이는가 하면 이례적으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 보리스 옐친에 대한 강력한 비난성명까지 채택하는 등 단합된 모습을 연출했다.하지만 소련공산당이 70여년의 역사상 그야말로 「역사적인」체질개선을 하는 자리였지만 고르바초프가 희망한대로 이번 회의가 보수·개혁간의 분열을 막고 쇠퇴일로에 있는 당이 활로를 찾는 계기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폐막후 기자회견을 지켜본 많은 서방기자들을 비롯,현지분석가들은 이번 회의를 계기로 당내분열상이 가라앉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하고 『당의 분열은 일시 중지된 것일뿐 오는 11월로 예정된 당대회가 열리면 다시 재연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당중앙위원인 불가린도 폐막직후 로시아TV와 가진 회견에서 『이번 회의는 어디까지나 일시적 단합의 장이었다』고 말했다. 회의개막 전까지만 해도 TV·라디오 등에 나와 『나라를 자본주의자들에게 팔아넘기려는』 세력들을 몰아내자며 고르바초프 축출기도까지 거론하던 강경보수세력들은 첫날 고르바초프가 새강령초안을 보고하는 자리에서도 거의 일체 불만을 터뜨리지 않았다.27명이나 발언에 나섰지만 모두 마찬가지였다. 보수세력들이 끝까지 침묵한데 대해 이곳 분석가들은 상당히의아해하는 반응들이다.당중앙위문제에 정통한 한 학자는 이에 대해 『공산당의 전통적인 관례를 생각하면 이해할수 있을것』이라고 말했다.다시말해 보수파들이 희의개막 전 장외에서는 고르비의 정책을 비난하고 심지어 사임요구까지 거론했지만 막상 회의가 시작돼 장이 서자 『지도자의 명령에 복종하는』공산당 특유의 생리를 보였다는 것이다. 연방최고 회의의장 루키야노프는 이에대해 로시아 TV와의 회견에서 보수파들이 고르비의 새강령안에 분명 불만이 있겠지만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가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고르비에게 조직적으로 반발할수는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그렇다고 자신들의 유일한 권력기반인 당을 떠날수도 없어 「못마땅하지만」새강령을 받아들일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고르바초프 또한 홀가분하게 당서기장직을 내놓을 가능성도 점쳐졌었으나 역시 막강한 조직의 당을 포기할수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고 이번 당중앙위가 비교적 조용히 끝난 것도 양측 사이에 이런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특히 고르바초프대통령은대통령포고령을 비롯 자신이 갖고 있는 헌법상의 모든 권리를 총동원해 옐친이 내린 주요기관내의 공산당세포의 정치활동금지 조치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의회 헌법감시위원회에게는 옐친이 내린 포고령에 대해 위헌여부를 철저히 가리라는 지시도 내려졌다. 스스로 개혁노력은 하겠으되 당에 대한 외부의 도전은 절대 용납치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정치국원인 알렉산더 자소호프는 폐막뒤 기자회견에서 『일부 쟁점사항에 대해 찬반양론이 개진됐으나 당의 단합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내내 계속됐다』고 말해 개혁을 추진하되 당내단합을 유지하는 문제에 상당한 비중이 주어졌음을 짐작케했다.일반시민들은 중앙위 총회의 결과에 대해 서로 상반된 입장들을 보이고 있다.어떤 이들은 국민으로부터 외면 당하고 있는 당이 자구책을 마련한 것이라며 당이 과거 공산당시절로 되돌아갈까 두렵다고 말했다.옐친에게 내려진 경고가 한 신호라는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새강령이 채택되면 공산당도 이제 과거와는 크게 다르게 변할 것이고 이들이 막강한 조직력을 가지고 개혁을 본격추진하면 나쁠게 없지 않느냐는 입장을 보였다.페레드트로이카를 처음부터 주도해온 고르바초프에 대한 기대를 아직 버리지 않은 부류들이다. ◎공산국의 반응/중국,새강령채택에 침묵/쿠바,ML주의 고수 선언 【북경 AFP 연합 특약】 중국의 관영언론들은 27일 소련공산당의 마르크스주의 폐기와 사회민주주의체제로의 전환을 주내용으로 하는 새 당강령의 채택을 보도하지 않았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27일자 신문에서 26일 폐막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 대해 일체 보도하지 않았으며 신화사통신과 차이나 데일리 등은 이 회의를 소련공산당과 러시아공산당간의 불화라는 시각에서 짧게 보도했다. 신화사통신은 이날 모스크바발로 중앙위원회에서 참석 위원들이 압도적인 지지로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제안을 의제로 채택했다고만 보도하고 그 제안의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아바나 로이터 연합 특약】 카스트로 쿠바대통령은 26일 『쿠바의 공산주의 일당체제는 변하지 않을것』이라고 강조,소련공산당 중앙위의마르크스―레닌주의 포기를 의식한듯한 발언을 했다. 카스트로는 이날 마탄자 혁명 38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우리가 일으킨 혁명은 그 이념이나 그 명칭까지도 바꿀수 없다』고 말하고 『인류 역사에서 최상의 이데올로기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즉 사회주의』라고 강조했다.
  • 신민내홍 갈수록 증폭/의총의 정발연 해체 건의 언저리

    ◎“호랑이새끼 축출해야”강경/주류측/“최악의 사태 올수도”맞대응/정발연 신민당내 통합서명파 계보인 정치발전연구회(정발연)소속 의원들이 전원 불참한 가운데 26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정발연의 해체와 핵심멤버인 조윤형국회부의장의 징계를 당지도부에 건의하기로 결의함으로써 주류측과 정발연의 갈등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의총의 이같은 결의는 정발연으로부터 더이상의 독자행동은 삼가겠다는 「백기항복」을 받거나 이번 기회에 「분파주의적」도전세력들을 제거,당을 일사분란한 체제로 복원시키겠다는 주류측 강경파들의 강공시나리오에 따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정발연은 주류측의 기세를 의식,일단 예봉은 피하면서 당지도부와의 막후접촉을 통해 절충을 시도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따라 양자간의 대결이 전면전으로 확산되기 보다는 정발연의 적정수준에서의 사죄와 약속을 전제로 해결을 모색하는 소강국면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고 사태진전방향은 마음이 크게 상해있는 김대중총재의 최종 결단에 의해 좌우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백기항복을 요구 ○…이날 신민당의원총회의 강경한 결의에도 불구하고 당내에서는 이를 정발연에 대한 「최종경고」정도로 해석하고 있는 분위기. 즉 정발연 해체결의는 종전활동에 대한 징계의 의미보다는 더이상의 독자행동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통보로 해석해야하며 조부의장과 이형배의원에 대한 징계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출당이라는 최악의 경우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의원총회는 주류측의원들의 정발연성토발언 일색으로 진행되다가 급기야 정발연의 해체 및 조윤형의원의 당기위회부를 당지도부에 건의키로 결의하는 등 「다수에 의한 소수말살」이라는 강경대응책을 수립. 호남의원들이 주축이 된 주류측은 『정발연측의 해당행위 발언에 대한 사과만으로 사태를 수습한다면 향후 총선 등 정치일정을 앞두고 코앞에 호랑이새끼를 키우는 격』이라는 위기논리를 내세워 차제에 정발연을 해체시키고 불응한다면 출당조치도 불가피하다는데 의견 일치. 이날 의총에서 허경만의원은 『정발연의 치고 빠지는 전술을 더이상 용납해서는안된다』며 정발연측 의원들의 해당행위사례를 열거했고 이희천·정균환의원 등은 『전국에서 불평분자를 모아 총재를 음해하고 해당행위를 일삼는 정발연은 해체해야 한다』고 요구해 분위기를 주도. ○오늘 두 의원 소환 ○…주류측의 조윤형·이형배의원 징계요구결의 및 최고위원회의 엄정조사지시에 따라 신민당당기위는 이들 의원들의 발언 및 보도된 경위조사작업에 착수하는 한편 27일 상오 두의원을 소환해 소명기회를 부여키로 하는 등 징계절차에 돌입. 허만기당기위원장은 『현재 당기위의원들도 격분해 있다』면서 『일부 조사내용만으로도 어떤 형태의 징계든지 징계가 불가피한 시점에 이르렀다』고 이들 두의원의 징계방침을 밝혔으나 제명가능성에 대해서는 「희박하다」는 쪽으로 언질. ○…정발연은 주류측이 해체를 요구하는등 초강경 입장으로 밀어붙이자 이날 하오 정발연사무실에서 긴급 운영위원회의를 열고 대책을 숙의. 이상수의원은 회의 직후 성명을 통해 『문제가 된 지난 21일의 비공개 모임 석상에서의 발언은 당의 도덕성 회복과개혁을 추진하려는 우리의 충정에서 나온 것』이라며 주류측공세에 유감을 표시. 이의원은 이어 『이형배의원이 이미 자신의 발언과 관련,사과와 해명을 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주류측이 이번 일을 계기로 정발연을 고립시키고 해체시키려 한다면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수 있다』고 경고하며 정면돌파도 불사한다는 태세. 이와관련,이의원은 맞대응의 방안으로 우선 『문제가 된 발언을 한 당사자들이 저간의 사실을 국민들에게 그대로 공개하고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방안은 추후 결정하겠다』고 설명.
  • 소 공산당 중앙위 오늘 개막/신 강령 채택싸고 보·혁 갈등 표면화

    【모스크바 AP 로이터 연합 특약】 25일 개막되는 소련공산당중앙위 총회에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제출할 새 당강령안에 대해 군부를 중심으로 한 강경세력이 격렬 반발하고 나섬으로써 당중앙위에서 일대 보혁대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역장성인 국방차관등 12명의 보수인사들은 23일 보수계 신문인 소비예츠카야 로시아지에 게재된 공동성명에서 고르바초프의 당강령안 통과기도를 저지할 것임을 선언하면서 『바깥에 대해 굽실거리는』지도자들을 축출하기 위해 단결하자고 촉구했다.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최악의 경우 반고르비 쿠데타도 발생할수 있지 않겠느냐는 성급한 관측까지 제기되고 있다. 소식통들은 4백10명 규모의 당중앙위내에 친고르바초프세력이 1백여명에 불과함을 상기시키면서 다수세의 보수진영이 혁신적 당강령안 채택의 총력저지를 밝힌만큼 보혁간 일대접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 고르비,새 당강령 제시의 함축

    ◎“70년만의 탈레닌”… 소 공산당 “대 변신”/사회민주주의로 살아남기 시도/체제내 개혁 한계… 불가피한 선택/보수파 거센 반발… “고르비퇴진” 재론될듯 소련공산당이 70여년 동안 고수해온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치를 내리고 사회민주주의체제로의 변신을 위한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이는 공산당 주도로 「체제내에서의」개혁을 목표로 시작한 고르바초프서기장의 페레스트로이카가 마침내 그 한계를 절감,현체제로서 더이상의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23일 소련「네자비시마야 가제타」지를 통해 보도된 새 당강령안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념에 입각한 국제공산주의를 버리고 당의 공식이념을 「인도적 민주사회주의」로 할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새 강령은 이와함께 당내민주화 조치로 과거의 중앙집중제 원칙을 포기하고 하부당조직의 역할을 강화,하위당직에 대해 권한과 기회를 대폭 부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 공산당의 전반적인 권한축소조치의 일환으로 각급 소비에트의 행정,의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당세포조직의 권한행사도 제도적으로 정지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88년 제19차당협의회서 채택한 각급당세포의 제1서기가 행정소비에트와 의회의 책임자를 겸직토록한 조항은 조만간 효력이 정지될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서기장이 공산당의 간판을 사실상 내리겠다는 이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는 현실적으로 당을 살리는 길이 이 방법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할수있다. 어차피 당은 쪼개질 운명에 처해있다. 셰바르드나제 전외무장관과 정치국원을 지낸 야코블레프를 주축으로 한 개혁세력들이 공산당을 버리고 「민주개혁운동」이란 이름으로 신당창당을 서두르고 있고 이미 1천7백여만명으로 줄어든 공산당원중 다시 그 30%가 신당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공산당내 옐친 지지세력인 「민주강령」파 역시 당이 중도좌파를 표방하는 의회주의당으로 전환되지 않을 경우 당을 떠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4월 크렘린과 9개공화국대표들이 모여 합의한 정치일정에 따르면 내년중 연방구성을 다시해 헌법을 새로 만들고 그에 따라 대통령선거와 총선을 실시하기로 돼있다.고르바초프서기장은 지금의 당세로 선거에 임할 경우 공산당이 설자리는 없다는 계산을 했음이 분명하다.더구나 옐친은 러시아공화국대통령 자격으로 지난 20일 러시아공내 모든 공공기관 및 산업체내 당세포조직의 활동을 전면중지시키는 포고령을 내렸다.6월의 러시아공화국대통령선거에서는 옐친이 공산당을 탈당한 신분으로 출마해 압승을 거둔 반면 공산당은 공식후보조차 내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었다. 모스크바·레닌그라드를 비롯한 주요도시에서는 시장선거에서 비공산당 후보들이 공산당후보들을 물리치고 모조리 승리,이들이 시정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실정이다.볼셰비키혁명으로 등장한 소련공산당의 수명은 이제 다했다는 판단을 내리지 않을수없게 된 것이다. 공산당의 위상변화 시도는 사실상 1990년초부터 꾸준히 시도돼왔다.그해 3월 인민대표회의(의회)에서 소련방헌법 제6조에 명시된 공산당의 권력독점조항이 폐지돼 혁명전위당으로서 공산당이 누려온 지위에 종말을 고했다.그해 10월에는 「대중 정당단체 조직법」이 채택돼 91년 1월1일을 기해 발효됨으로써 법적으로 다당제로의 길을 열어놓았다.당원5천명만 확보하면 전국단위 정당을 만들수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민족문제,경제난 등에 밀려 명실상부한 제2정당의 창당움직임은 거의 없었고 각급단위에서 공산당이 여전히 과거의 독점적인 권한을 행사해왔다.의회에서는 레닌주의를 고수하려는 보수파들이 회의가 열릴 때마다 고르바초프 사임등을 요구하며 당분열을 부추겼다.지난4월 당중앙총회에서 보수파들이 시도한 고르비축출기도도 한 예이다. 따라서 오는 25일부터 27일까지 예정된 당중앙총회에서도 고르바초프가 내놓을 당강령초안을 놓고 보수파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고 있다.고르비사임요구 또한 재론될 것이 분명하다. 고르바초프는 이번 당중앙위총회에서 새 당강령을 제출하고 오는 8월쯤 임시당대회를 개최,당강령을 확정지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연방잔류를 희망하는 9개 공화국과 신연방조약을 체결할 시기도 이번 중앙위 총회에서 결정 지을 예정으로 있다. 당서기장의 진퇴를 결정할수 있는 기구인 8월의 당대회에서 고르비가 전격적으로 당서기장직 사퇴를 결정할 가능성도 일각에서는 제기되고 있다.당·정·입법의 권한을 철저히 분리하고 공산당은 순수한 정당기능만 수행토록 한다는 전제하에서이다. 물론 상당한 진통이 따르겠지만 이번 당중앙위는 소련 공산당이 과거의 「영광」을 사실상 마감하는 자리가 될 것이란 견해가 우세하다. 금년 상반기중 소련공산당 탈당자 수가 35만명이라는 통계가 있다.변화를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동구공산당들처럼 몰락의 길로 가든가­선택의 여지는 별로 있어보이지 않는다.
  • 대통령에 멜레스/에티오피아

    【아디스 아바바 AFP 연합】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전 에티오피아 대통령을 축출했던 게릴라 그룹의 지도자 멜레스 제나위가 새로 구성된 국민평의회에서 2년 임기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고 이곳 관리들이 23일 말했다. 에티오피아의 의회격인 국민평의회는 에티오피아 인민혁명민주전선의 지도자인 멜레스를 만장일치로 대통령으로 선출했는데 인민혁명민주전선은 국민평의회의 87의석 가운데 32석을 차지하고 있다. 멜레스는 지난 5월 인민혁명민주전선이 수도 아디스 아바바를 장악한 후 대통령대행으로 활동해 왔다.
  • 비운의 “삼성 황태자”/고 이창희회장의 일생

    ◎한비사건이후 고 이 회장 눈밖에/충주공장 화재후 지병악화 겹쳐 고 이창희회장은 한때 국내 최대재벌 삼성그룹의 「황태자」로 부각되기도 했고 사카린밀수로 큰 파문을 일으킨 한비사건에 휘말려 옥고를 치렀으며 부친인 고 이병철회장의 눈에 벗어나 삼성에서 축출됐었다. 미국유학후 귀국,당시 국내에서는 생소했던 오디오및 비디오테이프사업에 뛰어들어 10여년만에 재계를 놀라게 할 정도로 급성장하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으나 뜻하지 않은 화재로 충주공장이 한순간에 한줌의 재로 사라지는 참담한 경험을 맛보기도 했다. 일본 와세다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이회장은 67년 한비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도 삼성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건설중이었던 한비의 부사장직을 맡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었다. 73년 6월에 미국 MMC사와 합작으로 새한미디어 전신인 마그네틱 미디어 코리아사를 인천 주안공단에 설립한뒤 80년 1월 새한전자와 미디어를 합병,새한미디어를 설립했다.새한미디어는 그의 특출한 국제감각과 비디오시대를 맞아 고속성장을거듭,기업을 공개한 86년에는 자본금 1백12억원에 당기순이익 3백15억원을 기록함으로써 재계를 놀라게 했다.이같은 경영수완으로 10여년 동안 절연상태에 있었던 이병철회장도 노여움을 풀어 87년 운명하기 직전 삼성그룹 사장단회의에도 참석하게 했었다.이때문에 재계에서는 부친의 사면복권은 물론 삼성의 「황태자」자리에 복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까지 한때 나돌았었다. 그러나 이병철회장이 죽고 88년 3월에는 충주공장마저 화재로 전소되면서 지병이 악화되기 시작,투병생활을 해오다 끝내 운명했다.
  • 국제사회에 복귀하는 남아공(사설)

    검은 대륙 아프리카 남단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제사회복귀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있다.남아공은 소수의 백인이 전체인구의 4분의3을 차지하는 다수의 흑인을 차별하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로 악명높은 나라다.이때문에 국제고립의 제재를 받아왔으며 그 정책의 폐지로 국제적 제재가 완화되고 고립을 탈피하는 고무적인 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10일 지난 5년동안이나 계속해오던 대남아공 제재조치를 대폭 해제하기로 했으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9일 남아공의 IOC재가입을 21년만에 허용했다.미국은 그간 ▲인종차별관련법폐지와 ▲비상사태해제 ▲야당의 합법화 ▲인종차별없는 정부구성을 위한 흑인세력과의 협상개시및 ▲정치적 이유나 재판없이 불법 구금된 모든 구속자의 석방 등을 조건으로 남아공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왔다.IOC도 인종차별정책 등을 이유로 70년 남아공을 축출했었다. 남아공에 대한 국제적 제재조치의 철폐 내지 완화는 남아공의 변화에 기인하는 것이다.89년 가을 취임한 이후 데 클레르크 대통령은 27년간이나 수감중이던 흑인지도자 만델라를 석방하는등 인종차별정책의 폐지를 위한 여러가지 고무적인 조치들을 취해왔다.특히 인종별 출생 등록을 의무화하고 있는 인구등록법의 폐지로 지난 30일이후 인종분리제도가 법적으로 완전히 폐지되었다.이러한 변화가 국제사회의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오랜 제재조치의 연이은 해제 내지는 완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남아공의 인종분리정책철폐는 반인간적이고 반문명적인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공동의 오랜 제재가 거둔 이례적인 승리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전체인구의 4분의1밖에 안되는 외래백인인구가 4분의3을 차지하는 토착흑인인구를 지배하는 오랜 모순의 시정도 환영할 일이다.국제적으로 중요한 것은 정치·경제·스포츠면에서 불필요한 분열과 갈등의 근원이 되어오던 오랜 불씨가 제거되게 되었다는 점이라 할수 있다.남아공의 인종분리정책과 아프리카흑인제국의 반발은 유엔등 국제무대에서 세계를 분열시키고 곤혹스럽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의 하나였던 것이다.특히 올림픽 등 국제스포츠대회때마다남아공문제는 큰 골칫거리로 유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의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남아공문제의 위협에서 해방된것도 다행스런 일이다.우리는 남아공의 인종분리정책철폐와 국제사회의 제재해제 내지는 완화가 세계적 대세를 이루고 있는 국제적 화해와 공존·공영에 보탬이 되고 그것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촉진제가 될것으로 기대하며 환영한다.미국과 IOC에 이어 유엔과 EC등도 뒤따르게 될것으로 예상되며 그것은 우리의 대아프리카외교도 보다 자유롭게 할 것이다. 다만 남아공의 인종차별철폐는 완성이 아니라 아직 시작단계다.흑인참정권의 실현과 흑인계층의 경제력향상등 실질적인 평등의 실현등 달성해가야할 문제가 태산이다.이번 국제적 제재의 완화가 남아공을 더욱 고무해 그런 목표의 달성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세계와 함께 기원하는 마음이다.
  • 남아공 21년만에 IOC복귀/인종차별정책 폐기따라 징계 공식해제

    ◎내년 알베르빌 동계오륜부터 출전 허용 지난 6월17일 악명높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의 폐기를 선언한 남아공에 경제제재 해제에 이어 국제사회로부터 또다른 「선물」이 주어졌다.국제 스포츠계로의 복귀가 바로 그것이다. 9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리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인종차별 및 올림픽이념위원회가 남아공의 IOC복귀를 결정,남아공은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 부분적으로 참가하는 한편,알베르빌 동계올림픽부터 올림픽에 본격 참가할 수 있게 됐다. 남아공의 IOC복귀는 지난 70년 인종차별정책을 이유로 IOC에서 축출된 이래 국제 스포츠계에서 받아온 냉대와 고립의 종식과 국제사회복귀로의 청신호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남아공이 부여하는 의미는 꽤 무겁다. 남아공에 대한 스포츠 징계해제는 남아공정부의 인종차별정책 포기와 함께 이미 IOC를 비롯한 국제스포츠기구에서 거론돼 왔는데 지난 3월 케바 엠바에 IOC부위원장이 이끄는 대표단이 남아공을 방문,남아공 정부당국과 협상을 시작함으로써 본격화됐다. 당시 IOC측은 남아공의 올림픽복귀 전제조건으로 인종차별정책의 공식포기및 남아공내 산재한 백인및 흑인간의 분리된 각종 경기단체의 통합을 제시한바 있는데 지난 6월17일 남아공측이 인종차별법의 폐기를 선언하고 또 각급 경기단체의 통합도 활발히 진전되고 있어 IOC의 요구사항이 충족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미 육상과 축구의 경우 통합이 이뤄짐으로써 럭비와 복싱은 통합작업이 진행중에 있는데 아무튼 남아공의 올림픽복귀가 이뤄짐으로써 그동안 남아공과 관련된 국제스포츠계의 금기와 블랙리스트 파문이 해소되게 됐다. 또 남아공과 스포츠 교류를 가졌다는 이유로 해당 국제기구로부터 제재를 받은 상당수 유명 스포츠인들도 구제될 것이 확실하다. 지난 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남아공과 럭비 교류를 가진 뉴질랜드의 대회 참가를 이유로 아프리카국들의 대회 보이콧 파동이 있었고 86년에는 역시 대남아공 경제제재를 거부한 영국의 태도를 이유로 32개 아프리카,아시아국들이 에딘버러에서 열린 영연방대회에 불참한 바 있다. 이에따라 남아공의 많은 유명선수들이 국적을 바꿔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소동이 벌어졌는데 천재 여자 중장거리선수 졸라 버드 경우가 대표적인 것이다.또 유엔 반인종차별센터는 81년부터 남아공과 스포츠교류를 가진 선수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이들의 국제활동을 제약해 왔다. 아르헨티나의 테니스 스타 기예르모 빌라스,프로골퍼 잭 니클로스,리 트레비노 등이 이 리스트에 올랐으며 미국의 투창선수 톰 페트라노프는 국제연맹으로부터 자격정지 처분을 받아 현재 남아공에 귀화,선수생활을 유지하고있다. 사마란치 IOC위원장은 이미 지난해 2월 남아공의 『개선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시사한 바 있는데 1년반만에 국제무대로부터의 고립을 탈피할 수 있는 괄목할만한 진전을 이룩한 것이다. 이제 IOC가 남아공의 올림픽복귀를 결정함으로써 남아공은 오는 8월말 도쿄 세계 육상선수권대회부터 국제대회 참가가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이며 아울러 프랑스와의 친선 럭비경기 등 스포츠 교류를 활성화 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 갈길 바쁜 PLO에 “외우내환”/멀어지는 팔인국가 건설

    ◎이스라엘근접 레바논남부 5개기지 상실/중동 신질서 논의 평화회담서도 소외당해 팔레스타인인들의 국가건설 꿈이 한걸음 더 뒤로 물러서게 됐다. 레바논 남부 시돈항인근에 5군데의 게릴라기지를 유지해 오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지난 1일부터 시작된 레바논정부군의 공세에 굴복,나흘만에 무장을 해제하고 그곳에 레바논 정부군을 배치하기로 합의했다.이번 합의로 시돈항보다 더 남쪽의 티레항부근의 군사기지도 더 이상 유지하기가 어렵게 됨으로써 이스라엘과의 접경지역에 자리잡고 있던 PLO의 군사기반은 완전히 해체돼 버렸다. 이번 합의에 의하면 PLO는 국가건설의 최대 장애물인 이스라엘에 직접적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지점으로부터 모두 쫓겨나게 된 것이다. PLO는 64년 카이로에서 결성된 뒤 요르단에 본부를 두고 시리아와 레바논등지에 군사기지를 유지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투쟁을 계속해 왔다.그러나 71년 요르단왕 축출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2만여명이 학살당하는 「검은 9월」사건이후 레바논으로 본부를 옮겨야 했다.82년에는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팔레스타인본부를 베이루트로부터 몰아냈으며 83년에는 시리아가 레바논북부에서 PLO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지파를 부추켜 PLO를 쫓아냈다. PLO는 그동안 이스라엘은 물론 아랍형제국으로부터 지원은 커녕 수모를 겪어 오면서도 레바논남부에 기지를 유지한 채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지속해 왔다.PLO의 무장투쟁노선은 그동안 국제사회의 반발과 함께 PLO의 존재와 팔레스타인의 대의를 동시에 환기시켜 왔음을 생각할 때 PLO가 구사할 수 있는 전략은 대단히 제한될 수밖에 없게 됐다. PLO는 지난 걸프전 당시 친이라크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됐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크게 재정지원을 받아오던 온건 아랍국으로 부터의 지원도 대폭 줄어드는 타격을 입었다.또 걸프전 뒤에 미국은 중동의 신질서를 구축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이스라엘을 회담테이블로 유도하기 위해 PLO를 평화회담으로부터 제외해야 한다는 이스라엘 주장을 거의 수용한 상태다. PLO의 곤경은 외환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 3년여동안 이스라엘 점령지에서 거세게 타올랐던 팔레스타인인들의 인티파타운동이 이스라엘의 양보를 얻어내지 못한 채 최근에는 동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부역자의 자의적 처단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아라파트 PLO의장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부역자 처단이라는 이름의 동족간 공격은 멈출 기색이 없다. 또 튀니지의 PLO본부에서는 점령지역의 투쟁방법과 실패한 외교노선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내부 불만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지난 69년이래 PLO의 주둔을 허용해 오던 레바논이 내우외환이 겹치고 있는 PLO 게릴라를 갑작스레 몰아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레바논은 시리아의 일부였으나 26년 프랑스가 이 지역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친서방 기독교세력이 심어졌다.프랑스는 46년 레바논을 독립시키면서 기독교도만의 소레바논을 세우지 않고 회교도까지 포함하되 기독교도가 다수가 되는 대레바논을 세웠다. 프랑스의 욕심으로 레바논은 70년대에 종파분쟁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레바논은 북부 지역의 시리아군 주둔과 남부의 PLO게릴라주둔을 빌미로 내세우는 이스라엘에의해 85년부터 남부에 폭 15㎞의 안전지대를 점령당해 왔다. 89년 사우디 타이프에서 아랍연맹주도의 평화협정으로 내분종식의 틀을 마련한 레바논정부는 그동안의 노력으로 민병대 등을 해체하는데 성공했고 이제는 국가속의 국가 노릇을 하던 PLO게릴라를 장악하고 더 나아가 이스라엘로 하여금 남부 점령지로부터 물러나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 5월부터 PLO측과 협상을 벌였으나 ▲레바논내 35만 팔레스타인인의 사회적 권리 인정 ▲베이루트에 PLO본부의 재개 ▲팔레스타인난민촌 안전보장이 합의된 뒤 무장해제를 하겠다는 PLO의 입장과 선무장해제를 요구하는 레바논의 입장이 평행선을 그어왔다.결국 레바논은 힘으로 PLO를 몰아내게 된 것이다. 이제 PLO가 무장해제됐으므로 공은 이스라엘로 넘어 갔으나 이스라엘은 7일 남부점령지에서 물러가지 않을 뜻을 분명히 밝혔다.이스라엘은 현 레바논정부가 시리아의 조종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시리아의 조종을 받는 레바논과 직접 맞대면하는 것이 안보에 불리하다고 믿기 때문이다.아랍민족주의보다는 개별 국가의 이익이 앞서는 중동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또 다시 국가건설의 꿈이 뒷걸음치는 쓴 맛을 보고 있는 것이다.
  • 레바논 정부군/시돈장악 주장

    【베이루트·시돈 AP AFP UPI 연합】 레바논 정부가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의 주요 거점이 있는 남부 레바논 시돈지역에 대한 통제권 강화를 시도하고 있는 가운데 탱크 등으로 무장한 정부군이 2일 이 지역을 공격,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을 난민촌으로 축출했다고 보안소식통들이 전했다. 이 소식통들은 또 이 전투에서 장교 2명을 포함,최소한 17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정부군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간의 격렬한 전투가 발생한 뒤 미셸 무르 레바논 국방장관은 베이루트의 라디오방송을 통해 성명을 발표,시돈지역에 대한 정부군의 배치가 「97%」 완료됐다고 했다.
  • 모택동,김일성의 남침 “원칙적 지지”(비사 중국의 한국전개입:1)

    ◎북경자료 분석 통한 진겸 교수(미 뉴욕주립대)의 추적/“아시아 공산화 기회” 판단/한국군 38선 돌파에 파병 결심/“10월15일 15개 사단 투입” 스탈린에 통보/낙동강전투 때 인천상륙 예상하기도 1950년 6·25 동란 발발 당시 북경정부는 중국의 국가안보와 한반도 공산화를 위해 유엔군의 반격이 개시되기 전부터 한국전 개입을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미 뉴욕주립대의 진겸 교수가 주장했다. 중국계인 진 교수는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미 대외관계 역사학회 제17차 연례회의에서 발표한 「한국동란중 중국의 목표변화」라는 연구논문에서 최근 공개된 중국 자료를 통해 베일에 싸였던 모택동의 개입결정과정을 소개했다. 이 논문의 요지를 5회에 걸쳐 소개한다. 1950년 6월25일 북한이 남한을 침공하자 해디 트루먼 미 대통령은 남한 구출 결의를 즉각 천명하는 한편 대만해협에서 중국군를 견제하기 위해 미 제7함대를 이 수역으로 급파했다. 이러한 미국의 조치는 모택동과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 충격과 더불어 몇 가지 심각한 도전을안겼다. 첫째,아시아 태평양에서 공산주의 팽창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신호인 미국의 강경대응은 「동아시아가 제국주의 국제전선의 취약지대」라고 믿어온 북경 공산정권의 전반적인 인식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둘째,7함대의 대만해협 이동은 중공당 군부가 1949년 가을 이래 준비해온 대만 해방계획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셋째,북한군과 미국 주도 유엔군의 군사대결은 중국의 국가안보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한국전은 중공당 최고의 과제인 아시아 공산화와 관련,중국 혁명의 영향확대 기회를 제공한 것이었다. 모택동과 중공당 지도부가 한국전에 대해 가졌던 인식은 미군 축출에 실패하면 중국에 위험하고 성공하면 아시아 공산혁명을 진전시킬 수 있다는 복합적인 것이었다. 최근 공개된 자료들에 따르면 김일성은 정확한 남침일자 등 세부계획을 중국에 알려주지 않았지만 중공당 지도부는 북한의 남침 의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며 원칙적으로 이를 지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중공당 지도부는 북한의 남침 전부터 남북한간에 군사대결이 불가피한 것으로 믿고 있었다. 한국전 발발 5일 후인 1950년 6월30일 중국정부 총리이며 중공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인 주은래는 김일성과의 원활한 의사소통과 전쟁자료 수집을 위해 대부분이 군사정보요원으로 구성된 일단의 중국 외교관을 북한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7월7일과 10일 주은래는 모택동의 지시에 따라 한국전 관련 군사대비 문제에 초점을 맞춘 2개 회의를 주재했다. 이 두 회의에서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졌다. 즉 인민해방군의 정예부대인 제4야전군 산하 13군단을 동북국경방위군으로 즉각 개편,필요할 경우 한국전 개입에 대비한다는 것이었다. 7월13일 중앙군사위는 동북국경방위군 창설 명령를 공식하달하고 인민해방군에서 가장 유능한 지휘관 가운데 한 사람인 15군단장 등화를 13군단장에 임명했다. 또 동북군구 사령관이며 정치위원인 고강으로 하여금 모든 준비업무를 지원토록 했다. 이리하여 8월초까지 25만명 이상의 중국군 병력이 한·만 국경에 포진했다. 북한군이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갔을 때 중국군 간부들은주은래에게 북한군 후방에 대한 미군의 기습공격을 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미군 상륙이 가능한 지점으로 군산과 인천을 지적했다. 유엔군 증강과 더불어 중공당 지도부는 한국내 군사상황의 악화를 우려,한국전 개입 준비를 서두르면서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9월15일)하기 1개월 전인 8월에 이미 북한군 지원을 위한 9월초 파병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8월말까지 훈련과 그밖의 다른 개입준비를 마친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너무 촉박하다는 이유를 들어 고강은 준비기간을 9월말까지 연장해주도록 건의했다. 중국은 또 파병 전에 소련의 협조와 김일성의 동의를 얻는 것이 필요했다. 두 개가 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9월17일 중앙군사위는 파병에 대비,한국의 지형을 조사하기 위한 일단의 군 장교들을 북한에 파견했다. 9월20일 주은래는 중국의 한국전 개입 기본원칙을 수립,모택동의 승인을 받았다. 중국정부는 또 한국전 개입시의 중·소 협조 가능성을 소련과 협의했다. 중국과 소련은 쉽게 일반적인 이해에 도달했다. 중국 지상군이 한국전에 투입되면 소련은 공군을 보내 중국군에 공중우산을 제공하기로 했다. 중국군 파병에 관한 최종결정은 10월1일과 2일 사이에 이뤄졌다. 이에 앞서 9월30일 한국군 제3사단이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진격했고 다음날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김일성에게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10월1일 김일성은 평양 주재 중국 대사 예지량과의 긴급회담에서 중국군 개입을 요청했다. 김일성은 또 부총리 박헌영을 모택동에게 보내 이같은 요청을 거듭했다. 10월2일 모택동은 중앙군사위 이름으로 13군단에 대해 임전태세를 완료하고 명령에 따라 언제든지 전쟁에 돌입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같은날 모택동은 스탈린에게 전문을 보내 소위 「중국의용군」 파병결정을 통보했다. 당시 모택동의 계산은 중국의 병력과 소련의 무기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우선 중국군 12개 사단을 10월15일까지 북한에 투입,38선 이북에서 방어태세를 취하며 소련 무기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겠다고 스탈린에게 말했다. 또 1951년 봄엔 중국군 24개 사단을 추가 파병하면서 대대적인 반격을 개시해 미군을 섬멸하겠다는 것이었다. 10월3∼5일간 중공당은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어 모택동의 파병결정에 대한 지도부내 이견을 해소하고 팽덕회를 중국 인민의용군 총참모장으로 선임했다.
  • 러시아공,공산당 활동금지/옐친,곧 포고령/국가기관서 모든조직 축출

    【도쿄=연합】 소련 러시아공화국 지도부는 오는 7월10일 옐친 대통령 취임 첫 대통령령으로서 공화국 영내의 군,국가보안위원회(KGB),국영기업체 내부에서 공산당 조직의 활동정지를 시달할 방침을 확정했다고 일 요미우리(독매)신문이 21일 옐친 대통령 당선자 측근의 말을 인용,모스크바발로 보도했다. 측근에 따르면 당초 이 문서는 5월20일부 공화국최고회의 간부회의의 결정으로서 포고될 예정이었으나 대통령령 제1호로서 바뀌어지게 된 것은 취임 후 옐친 대통령전략의 주된 목표가 공화국내 공산당의 권력기반을 무너뜨리는 데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통령령은 공화국 영내의 군이나 특수부대를 포함,KGB·연방내무성의 각 부대·국영기업·공화국 각 부처·사법기관 내부에서 『모든 정당·사회·정치활동을 정지한다』라고 명시,사실상 기관·직장에서 공산당 조직의 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이 측근은 군 등이 이 대통령령에 따르지 않을 경우 『공화국측으로서는 군에 대해 경비부담을 거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소 보수파,「고르비 축출」 표면화/KGB의장등 비밀회동

    ◎“총리에 비상대권” 촉구 【모스크바 AFP 로이터 연합】 소련의 보수파지도자 중의 한사람인 발렌틴 파블로프 총리가 18일 비상대권의 부여를 요구했으며 소연방최고회의(의회)의 보수파 의원들도 이날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경제적 실책을 비난하면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권한축소 및 그 권한의 일부를 파블로프 총리에게 이양할 것을 요구하고 나서는 등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권좌에서 축출하려는 움직임이 보수파세력을 중심으로 표면화되고 있다. 특히 파블로프 총리의 비상대권부여 요구는 보수파의 핵심세력인 블라디미르 크류츠코프 KGB(국가보안위원회) 의장,보리스 푸고 내무장관,드미트리 야조프 국방장관간의 비밀회동과 보조를 같이하는 것으로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권좌에서 축출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6개월 전 고르바초프 대통령에 의해 총리에 임명된 파블로프 총리는 이날 의회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일상 업무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위기타개계획을 수행하기 위해서도 자신이 대통령이나 의회의 승인없이도 법령을 공포할 수 있는 비상대권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이같은 비상대권의 부여는 농업생산,금융 및 조세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긴급법령을 공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 유엔 재가입 권고안 승인/대만 입법원

    【대북 AFP 연합】 대만 입법원은 18일 대만정부가 20년 전 축출된 유엔에 재가입하기 위한 『적절한 시기』를 모색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권고안을 승인했다. 입법원은 이날 의원 86명이 앞서 대만의 유엔 「즉시」 가입을 촉구한 강경한 내용의 동의안을 대체하기 위해 제출한 이 권고안을 표결에 부쳐 집권 국민당과 야당인 민진당 소속 의원들을 포함,재석의원 74명의 3분의2가 넘는 51명의 찬성으로 승인했다. 행정원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갖고 있지 않는 이 권고안은 당국에 대만의 외교무대를 적극적으로 확장하고 적절한 시기에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로 유엔에 재가입신청을 내도록 촉구하고 있다. 앞서 국민당 소속의 황추웬 의원이 작성한 동의안은 대만이 유엔에 「즉시」가입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었으나 지난 1주일 동안 국민당 당국 및 동의안 서명자들간의 열띤 논쟁을 거쳐 이날 승인된 권고안으로 대체됐다. 학백촌 행정원장은 지난주 유엔에 즉시 재가입하려 하는 것은 대륙과 대만간의 관계에 불안정을 초래하고 통일 및 독립문제에 관한대중의 논쟁을 더욱 확산시킬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황추웬 의원의 동의안 내용에 반대했다.
  • 공학도 출신 소 급진개혁파의 대부/러시아공 첫 민선대통령 옐친

    ◎고르바초프 천거로 85년 중앙정치무대 등장/당 지도부실정 비난으로 파문… 한때 은둔생활 「농부의 아들」 보리스 옐친(60)이 마침내 소련 러시아공화국의 첫 직선 대통령이 되었다. 러시아 역사상 최초로 실시된 6·12 자유선거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옐친은 한마디로 급진개혁파의 대부이다. 지난 85년 중앙정치무대에 등장한 옐친은 급진개혁정책만이 정체된 소련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옐친은 89년 미국을 방문한 후 『미국은 장미빛 낙원이자 노동자 천국』이며 『공산주의란 공허한 이상』에 불과하다고 말해 강한 「자본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소련의 보수파 언론과 서방언론으로부터 독선적 지도자라든가 시골뜨기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옐친은 이번 선거를 통해 많은 러시아인의 「새로운 희망」으로 등장했다. 옐친은 시베리아의 스베르들 로프스크시 근처 브트카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 싸움을 하다 마차바퀴에 얼굴을 부딪쳐 코를 다쳤으며 2차대전중 수류탄을 분해하다 폭발,왼손의 엄지와 검지가 잘려나가기도 했다. 우랄공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옐친은 고집이 세고 퉁명스러운 면도 없지 않으나 국민과의 직접대화를 통해 국민들을 설득시키는 대중정치가로서의 기반을 확고히하고 있다. 닉슨 전 미국 대통령도 『옐친은 가슴에 와닿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고르바초프가 두뇌에 호소하는 지도자라면 옐친은 상대를 감동시키는 지도자라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와 대조적이며 만만치 않은 정적이기도 한 옐친은 사실 고르바초프에 의해 등용되었다. 옐친과 고르바초프의 운명적 만남은 지난 70년대 옐친이 고향인 스베르들로프스크 당서기로 재임할 때 이루어졌다. 옐친은 85년 고르바초프에 의해 모스크바시 당서기로 임명되면서 중앙정치무대에 등장했다. 옐친은 고르바초프의 후원 아래 86년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그는 87년 공산당혁명 70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열린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개혁부진 책임이 크렘린 제2인자이며 이데올로기담당정치국원인 리가초프에게 있다고 비난,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의 당지도부에 대한 거침없는 비난은 보수파의 반발을 불렀고 그는 마침내 정치국에서 축출되었다. 정치국에서 밀려난 옐친은 한동안 「은둔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는 89년 3월에 실시된 인민대표회의 대의원선거 때 모스크바시에서 89%의 압도적 지지를 얻으며 대의원으로 선출돼 화려한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다. 90년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에 선출됐던 옐친이 이번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그의 정치적 위상은 크게 격상되었다. 비록 1개 공화국 대통령이지만 러시아공화국이 소련 전체면적의 4분의3,인구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지하자원 등을 가지고 있는 등 소련의 노른자위이기 때문에 그의 대통령 당선은 소련 정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그는 정적이면서도 미묘한 공존관계에 있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에 대해 민선대통령이라는 정통성을 확보하게 됐다. 그러나 개혁에 따른 계층간의 갈등과 불만,경제난국 타개 등 그의 앞에 가로놓여 있는 어려움도 많다. 소련이당면하고 있는 어려운 상황은 옐친을 소련의 또다른 「실패한 메시아」로 만들지도 모른다.
  • 대통령선거 투표 돌입… 곧 대세 판명

    ◎옐친/리슈코프/러시아공 대권놓고 “시소게임”/급진개혁 주장… 도시서 우세/옐친/인기 급상승… 막판 역전 기대/리슈코프/누가 당선돼도 소 권력판도 중대변화 러시아공화국 최초의 대통령선거가 12일 실시된다. 이번 선거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최대 정적인 옐친이 승리할 경우 향후 소련 권력판도에 일대 파장을 몰고올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선거양상은 옐친이 압승할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과 달리 리슈코프 후보가 막판추격에 성공함으로써 상당한 접전이 예상되고 있다. 총 1억5백만 유권자가 한 표를 행사하게 되는 이번 선거에는 모두 6명의 후보가 출마하고 있으나 현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으로 급진개혁을 내세우는 보리스 옐친과 신중개혁을 주장하는 니콜라이 리슈코프 전 총리의 대결로 압축되고 있다. 중도를 표방하고 나선 바딤 바카틴 전 내무장관은 지명도는 꽤 높은 편이나 당선가능권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2월17일 러시아공이 국민투표를 통해 유권자 77%의 찬성으로 자체대통령직 신설을 통과시킬 당시만 해도 옐친은 거의 유일한 대통령 후보였다. 옐친이 러시아공 대통령 신설을 제의하자 크렘린은 이를 중앙정부의 권위에 대한 중대도전이라며 저지에 총력을 기울였고 러시아공 최고회의내 보수파들을 동원,옐친 축출까지 시도했다. 따라서 대통령제 채택 자체가 옐친의 대단한 정치적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당시 여론조사에서 옐친은 70%에 가까운 지지율을 기록했었다. 공산당·군·KGB 등 보수세력은 지난해 12월 급진개혁세력의 집중공격을 받고 물러난 리슈코프 전 총리를 후보로 내세워 곧 반격에 나섰다. 실업·인플레 등 급진개혁이 가져올 부작용을 부각시켜 온건개혁을 주장하며 지금의 경제난·혼란이 모두 최고회의 의장인 옐친의 책임이라고 맹공을 가했다. 프라우다,소베츠카야 로시아지 등 공산당계 언론들은 연일 옐친의 능력과 인격에 흠집을 내는 기사들을 실었다. 그 결과 6월초 한 여론조사는 옐친 지지율이 44%로 떨어진 데 반해 리슈코프는 33%로 급상승한 것으로 밝혔다. 4월23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옐친 그리고 8개 공화국지도자들이 새 연방조약 체결을 포함한 정치적 대타협을 이룬 것도 지지율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옐친이 고르비와 협력키로 한 것을 보고 그의 지지기반인 노동자층이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별 분포에서도 옐친은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에서는 인기를 유지하고 있지만 당조직이 튼튼하고 보수성향을 갖는 농촌과 지방도시에서는 리슈코프 후보가 강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옐친은 아프간전쟁 영웅으로 온건개혁론자인 퇴역 공군대령 알레산드르 루트스코이(44)를 러닝메이트로 내세워 보수진영내 온건파들의 표를 겨냥하고 있다. 현재 러시아공산당내 루트스코이 지지자가 3백만명 선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옐친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이다 리슈코프는 군부내 강경파로 알려진 보리스 그로모프 장군(47)을 러닝메이트로 택해 보수·안정희구세력의 단결을 호소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유권자 50% 투표,투표수 50%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득표자 2인으로 2주내 결선투표를 갖도록 돼 있다. 최근 여론조사결과는 옐친 지지율이 50%를 밑도는 것으로 나타나 결선투표까지 갈 가능성도 상당히 높게 점쳐지고 있다. 친 옐친계로 알려진 「러시아 가제타」지 조사도 옐친 49.5%,리슈코프 13.4%로 옐친 지지율이 50%에 못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설사 결선투표를 치른다해도 대세는 옐친 쪽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관심은 오히려 선거 이후 소련정국의 향방에 있다. 러시아공 대통령이 될 경우 옐친은 이전보다 훨씬 강력하게 공화국의 주권보장과 과감한 경제개혁을 중앙정부에 요구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그럴 경우 독립을 요구하고 있는 발트해 3국을 비롯,여타 공화국들에 미칠 파급효과 또한 적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어쨌든 앞으로 모스크바에서는 「두 명의 대통령」이 행세하게 된다. 즉 보다 강력한 권한을 가졌지만 국민의 신망을 잃은 고르바초프 소연방 대통령과 권한은 그 보다 못하지만 대러시아공을 대표하고 국민이 직접 뽑은 보다 「떳떳한」 러시아 대통령이 바로 그들이다. 그래서 모스크바에서는 이두 사람간에 빚어질 제 갈등의 파장이 결코 예삿일이 아닐 것이란 우려들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 알바니아 공산당,강경파 숙청/정치국원등 16명

    ◎보수파 반발… 분당 가능성/당대회,국부호자 실정 비난 【티라나 AP AFP 로이터 연합 특약】 알바니아의 집권 노동당(공산당)은 전당대회를 통해 11일 강경파 정치국원 및 중앙위원 등을 축출했다. 알바니아 공산당은 이날 9명의 정치국원 및 7명의 중앙위원 등에 대해 중대한 과오를 범했다고 비난하며 축출했다. 축출된 정치국원 가운데는 스테파니 전 내무장관이 포함되어 있으며 대부분 강경통치를 해온 호자시대의 정치인들이다. 공산당의 이같은 조치는 공산당이 개혁을 할 것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대회가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지난 10일 개막된 공산당전당대회에서는 개혁파와 보수파간의 설전이 난무,분당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개혁파인 알바니아작가연맹의장인 드리테로 아골리는 『호자는 지난 40년의 독재 동안 경제를 파멸로 이끌었다』고 알바니아의 국부로 통하는 호자를 비난,강경파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강경파들은 아골리가 연설하는 동안 『엔베르호자』 『우리는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는 등의 구호를 연호했다. 알리아 대통령은 호자가 일부 잘못한 것이 있다고 역시 호자를 비난했으며 당은 지난일에 대한 과오를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알리아의 사임으로 공석으로 있는 공산당서기장은 12일 선출할 것으로 알려졌으며 과도내각도 이날 공식출범할 것으로 소식통들은 밝혔다.
  • “직선제 계속 고수 헌정중단은 불원”/김 총재,NYT지 기고

    【위싱턴=김호준 특파원】 김대중 신민당 총재는 23일 뉴욕타임스지에 게재된 기고문에서 최근의 한국사태와 관련,『신민당은 민주개혁을 외면하고 있는 현 정권아래에서 앞으로 21개월을 더 지내야 하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헌정의 지속을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총재는 「서울의 사보타지」라는 제하의 이 기고문에서 『많은 한국인들은 노태우 대통령의 축출을 원치 않고 직접선거에서 그의 후임을 선출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한국의 민주주의는 뿌리를 내리는 데 실패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그는 『신민당은 직선제 이외엔 어떠한 권력구조도 지지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만일 노씨가 민주화 복귀에 진지한 자세를 보인다면 평화와 경제성장의 달성,그리고 국가안보의 보호를 위해 노씨와 기꺼이 협조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 “한국시위 민중지지 감소/잇단 분신자살엔 부정적”

    ◎미지들,최근 사태 보도 【뉴욕 연합】 미국의 뉴욕 타임스지와 월 스트리트 저널지는 17일 학생시위로 빚어진 최근의 한국 사태를 보도,학생들이 일반민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지 못했으며 그들의 의도가 지난 87년 때처럼 중산층의 지지를 얻어 현정부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며 잇단 자살항의에도 불구하고 실패에 그친 것으로 평가했다. 타임스지는 학생 및 반체제세력의 잇단 자살항의가 한국의 일반시민에게 깊은 충격과 불안을 남겼지만 노태우 대통령 정권은 안전한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으며,저널지는 이상하게도 학생들의 자살항의가 오히려 일반시민의 학생들에 대한 지지를 반감시켰을는지 모른다고 보도했다. 저널지는 일반민중이 학생들에게 선뜻 많은 지지를 보내고 있지 않은 이유로 한 서방외교관은 이번 학생시위의 주요원인인 경찰에 의한 학생 치사사건이 있었을 때 정부가 87년의 학생 고문치사사건 당시 보인 은폐,미봉책이 아닌 신속한 대응책을 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일반의 광범한 지지를 얻지 못한 또 하나의원인은 그들의 목표에 혼란이 있었기 때문인데 가령 자유롭고 대체로 공정했던 선거에 의해 선출된 노 대통령을 축출하겠다는 학생들의 요구에 일반민중은 물론 야당도 그들과 의견을 달리하고 있는 상황을 저널지는 지적했다.
  • 강군 장례식장에 「한민전」 유인물

    ◎“민중 힘모아 「제2 6월항쟁」 폭발시키자”/경찰,불순세력 소행여부 수사 14일 상오 10시30분쯤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명지대 본관 10층에서 「한국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명의의 유인물 1백여 장이 강경대군의 영결식이 거행되고 있는 대운동장 쪽으로 뿌려져 경찰이 이를 수거,불순세력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다. 8절지 크기의 복사지 양면에 타자로 인쇄된 「전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의 유인물은 『오만가지의 죄악을 저질러 국민의 배격을 받고 벼랑 끝까지 밀려난 노 정권은 절망에 빠진 야수처럼 광기를 부리고 있다』면서 『각계각층 민중은 청년·학생 등의 죽음으로 솟구치는 비분을 모아 제2의 6월항쟁을 폭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인물은 또 『강군 살해사건으로 민주화 투쟁이 범국민 항쟁으로 번질 조짐이 보이자 주한 미국 대사 그레그는 노태우를 배후조종하는 한편 야당정치인들을 회유하고 민주애국세력을 각개 격파하기 위해 공작정치의 마각을 드러내고 있다』면서 『파쇼독재의 원흉인 미국을 축출하고 한국총독그레그를 워싱턴으로 추방하자』고 적혀 있었다. 경찰은 이 유인물이 강군 치사사건 이후 조성된 혼돈상황을 더욱 부추겨 내부혼란을 극대화하려는 불순분자에 의해 뿌려진 것으로 보고 수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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