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공개서 파문수습까지/정치부기자 방담
◎“절대지지” 여론속 무혈 공직정화/“권력형축재 더이상 불가능” 인식 확산/치부내역 충격… 청와대 강경선회 후문/일부의원의 재산분산술 특위도 감탄/인수위때 이미 「효자개혁안」 성안설도/당정실세모임서 28일 징계분류 결정
정부·여당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공개파문에 대한 조치는 김영삼대통령이 주창한 「윗물맑기운동」을 가장 설득력있게 보여준 정치사적인 성과였다.지난달 22일 민자당의원재산공개이후 증폭됐던 파문과 수습과정의 뒷얘기를 정치부 기자방담을 통해 다시 조명해본다.
모든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공직자 재산공개 파문이 공식적으로는 마무리되었습니다.물론 또다른 비리나 부정이 발견될 수도 있고 야당 의원들도 곧 재산을 공개할 예정이어서 완전히 매듭지어진 것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습니다.그러나 정부와 민자당이 특별기구까지 만들어 사안의 경중에 따른 조치를 한만큼 여권에 관한한 재산공개문제는 일단락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론 90%… 압도적 지지
이번 공직자 재산공개는 자발적 형식을 취했지만 그파문은 가히 「무혈혁명」에 가까웠습니다.5·16혁명직후나 5공초에도 부정축재에 대한 철퇴가 있었으나 이번처럼 반향이 크지는 않았다고 평가됩니다.
그렇습니다.군부를 바탕으로 집권한 정부가 총·칼을 앞세워 부정 부패작업을 벌였던 것과는 근본 차이가 있지요.과거의 경우 정치보복의 성격이 강했지만 지금은 여론의 흐름을 탄 개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여론조사 결과 90%내외가 압도적 지지를 보냈습니다.
평생 박봉의 관리로 일해온 장·차관의 재산이 수십억원대를 넘고 기업을 경영하거나 물려받은 재산도 없는 군·공직자출신 여당 의원이 「산넘고 물건너」엄청난 땅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난데 놀라지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정면돌파로” 의견모아
이번 재산공개 파문을 처리해나가면서 새정부의 개혁추진 솜씨도 「매끄러워」지는 느낌입니다.출범직후 일부 각료들의 부정축재파문이 일때만 해도 언론에 밀려 임기응변식 대응을 했지요.그러나 민자당과 차관급 인사처리는 사실상 정부·여당이 주도했습니다.
정부·여당이 앞장서재산공개 파문을 처리해야한다는 방향이 잡힌 것은 지난달 23일 박관용비서실장·주돈식정무수석등 청와대 수석비서관들과 최병렬의원등 5공청산을 담당했던 6공인사들과의 모임이 계기가 되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이들은 중구난방식 처리보다는 「결자해지」정신에서 당이 특별기구를 만들어 정면 돌파식으로 난국을 타개하자는데 의견을 모았지요.
김대통령은 여권인사들의 재산공개직후 예상을 뛰어넘는 재산내역에 충격을 받고 강력한 조치를 지시했습니다.가슴은 아프지만 환부를 도려내지 않고서는 신한국건설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지요.대통령과 참모진의 상황평가가 맞아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위위원 전격교체도
청와대 핵심의 판단에 발맞춰 민자당은 즉각 당내에 재산공개진상조사특위를 설치하고 밤샘작업에 들어갔습니다.권해옥사무1부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특위위원들은 서울 시내 호텔을 전전하며 극비작업을 벌였습니다.1주일여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은 위원들이 많았습니다.
특위는 당초 20여명의 문제의원들을 대상으로 국세청·검찰의 협조를 받아 정밀내사를 진행했습니다.그러나 언론에 연일 새로운 사실이 터지는 바람에 막바지에는 35명선까지 심사대상이 늘었고 급기야는 전 소속의원에 대한 실사가 있었다는 후문입니다.
이런 와중에 실사대상에 오른 듯한 의원들은 해명을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나름대로 「연」을 찾아 구명운동을 벌였고 여의도 당사 최형우총장 집무실에는 분위기를 정탐하려는 의원들로 연일 북적거렸습니다.
실사대상에 오르지 않은 의원들도 대거 소명자료를 냈고 그 수는 70여명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특위에서 이를 분류하고 사실여부를 확인하느라 지난 주말 끝내려던 진상조사가 2∼3일 늦어지기도 했습니다.
특위조사에 대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중간에 위원이 바뀌기도 했습니다.특위에 소속됐던 허재홍의원이 재산규모를 축소신고했다는 가벼운 구설수에 오르자 김형오의원으로 즉각 교체되었습니다.
○「깨끗한 사퇴」 평가받아
특위에서는 실사대상의원중 20여명을 「죄질」이 나쁜 순서로 20위까지 순위를 매겨 당지도부와 청와대에 전달했습니다.이들 자료를 바탕으로 한 징계분류는 지난 28일밤 모 음식점에서 있은 새정부 실세모임에서 결정났다는 것이 유력한 관측입니다.이 모임에는 당에서 최형우총장·백남치기조실장·강삼재정조실장 등이,정부측에서는 박실용 청와대비서실장·김덕용정무1장관 등이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8일 밤 모임에서 「생사」가 갈린 인사는 김재순·이원조의원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박준규국회의장의 경우 서민주택 75채를 소유,임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 이미 「의장직 사퇴후 의원직 박탈」이라는 수순이 정해졌지요.그러나 김·이의원은 막바지까지 엎치락뒤치락을 계속했습니다.
이원조의원은 8살짜리 손자에게 수억원의 저택을 넘겨줘 여론의 몰매를 맞았습니다.하지만 재산분산기술이 워낙 뛰어나고 범법사실이 없어 경고로 끝났지요.특위위원들은 『이의원의 재산관리기술이 너무 뛰어나다』고 감탄하고 있습니다.
반면 박국회의장과 김재순의원등 원로가 정계에서 사실상 추방된 것은 「대선공로참작」보다는 정치권 정화라는 새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표출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김재순의원은 「토사구팽」(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다)이라는 고사성어를 인용,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5공초 안기부장으로 부정축재처리를 담당했던 유학성전의원은 깨끗이 의원직을 던져 당수뇌부로부터 평가를 받았습니다.유전의원에게 「피해」를 당한 당사자인 최총장도 처음에는 유전의원을 욕했으나 가장 먼저 의원직을 사퇴하자 90도로 깍듯이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 정동호의원은 끝까지 애를 먹이고 있는 케이스입니다.지난 86년 국방위 회식사건때 국회의원들에게 주먹을 휘둘렀던 것으로 유명한 정의원은 지난달 29일 사퇴설득차 찾아온 민태구의원에게도 험한 태도를 보였다고 하더군요.
차관급들의 재산공개도 공직사회의 도덕성불재를 여실히 드러내 국민들을 실망시켰습니다.
특히 검찰쪽의 재력이 엄청나 「고시합격=돈+권력」이라는 속설을 입증했으며 사정기관의 사정부터 시작해야한다는 공감대를 낳기도 했지요.
○민정계중진 언행 자제
어쨌든 이번 재산공개 파문은 정치권의 물갈이를 촉진시킬 것이 틀림없습니다.민자당에서 17여명,정부에서 장·차관 10여명이 조치되는 선에서 끝났지만 더이상 공직을 이용한 축재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어줬습니다.조치대상에서는 피해갔더라도 구설수에 오른 인사들은 15대 총선공천이나 선거결과를 통해 정계에서 축출될 확률이 높습니다.
조치대상인사들 대부분이 민정·공화계등 구여권 인사들이었다는 사실은 김대통령을 오래 보좌했던 민주계 핵심인사들의 득세를 예고하고 있습니다.박의장의 2선퇴진은 대구·경북 세력의 약화를 상징한다고 봐야겠지요.김윤환·이한동·이춘구의원등 민정계 중진들도 이러한 분위기를 알고 언행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습니다.
민자당 당직자들은 「제재대상자가 민정·공화계에 편중되어 있다」는 일부 지적이 일자 민주계 핵심중 한 사람인 정재문의원이 비공개 경고대상자라고 슬며시 흘리기도 했습니다.
이번 재산공개 파문이 「사전각본」에 의한 것이라는 일부 관측도 있지요.새정부 출범을 준비하기위해 구성됐던 대통령직인수위가 1백일동안 개혁을 완성하겠다는 「효자개혁」을 짰던 것으로 알려집니다.청와대및 인왕산개방 안가철거,대통령재산공개와 광주방문등이 이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확인됩니다.
하지만 공직자 재산공개에 이은 정치권 물갈이까지 시나리오가 짜져있었느냐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리지만 부정적 관측이 보다 많습니다.재산공개를 하려는 계획은 있었으나 파장이나 대책은 구체적으로 짜지 못했을 것입니다.상황이 발생하면 국민의 편에 서서 엄정한 처리를 해온 김대통령의 「정공법」이 성공한 것이라 보는 것이 옳겠지요.하여튼 권력기관의 힘을 남용하지 않고서도 국민들의 지지와 공감속에서 이같은 엄청난 개혁을 단행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평가를 받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