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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역사의 장」여는 통독의 현장에서/이기백특파원

    ◎“이제 독일은 하나”… 거리마다 샴페인 축제/“우리는 자랑스런 독일인”… 얼싸안고 환호/통일 알리는 종소리에 목메어 국가합창/동ㆍ서베를린 잇는 마라톤엔 2만5천명 참가 그것은 새 역사의 장을 여는 감격적인 축제였다. 성당과 교회의 종이 일제히 울려 퍼지면서 거리를 메운 시민들은 저마다 「아인하이트 아인하이트」(통일)를 외쳐대며 민족재결합의 기쁨을 만끽했다. 분단의 상징이었던 브란덴부르크 문 주변에 몰려든 시민들은 손에 손을 잡고 자유ㆍ평화ㆍ정의를 강조하는 국가를 목이 터져라고 불렀으며 통일을 축복하는 폭죽이 밤하늘을 현란하게 수놓았다. 이제 독일은 하나,통일축제가 시작되는 2일 자정부터 4일까지 베를린 시내에서는 기념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지며 금세기들어 3번째 세워지는 새 독일의 탄생을 축복하고 밝은 미래를 기원했다. ○…통일축제의 서막을 알리는 성당과 교회의 종소리가 2일 0시 일제히 울려퍼지자 축제행사가 중점적으로 진행되는 운텐 덴린덴거리와 6월17일 거리에 나와 있던 시민들은 주먹을 공중으로 치켜올리며 환호했으며 각 가정에서는 샴페인을 터뜨려 이 순간을 축복했다. 운텐 덴 린덴 거리에 부인ㆍ여동생과 함께 나온 지그마 캡슐씨(35)는 『통일이 이같이 빨리 이뤄질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감격스럽고 독일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가족들과 얼싸안고 기뻐했다. 동베를린에 산다는 에버린 쾨러양(22)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하늘을 수놓은 폭죽의 섬광처럼 우리는 빛을 발할 것입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10월3일이 「통일의 날」로 국경일이 됨에 따라 독일국민들은 매년 이날 휴무하게 되며 지금까지 동서독이 별도로 통일을 기원하던 기념일은 폐지된다. 동독은 지금까지 건국일인 10월7일을,서독측은 동독에서 공산정권에 항거해 시민들이 일제히 궐기했던 6월17일을 기념해 공휴일로 지정했었다. ○인산인해 교통마비 ○…베를린은 역사적인 백림마라톤대회가 때마침 통일축제 직전인 30일 열려 축제분위기를 더욱 돋웠다. 60여개국에서 2만5천여명의 선수가 참가한 이번 대회의 코스는 독일통일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서베를린 샤로텐부르크문을 출발,6월17일 거리를 지나 동베를린지역인 칼 막스거리를 거쳐 브란덴부르크 문과 통일전 체크 포인트였던 찰리 검문소를 통과하는 등 반세기만에 전 베를린 시가지를 질주해 시민들을 열광시켰다. 이 때문에 독일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과 각국의 취재기자ㆍ외국관광객으로 숙박난ㆍ교통난을 가중시켰으며 도심은 거리를 나다니기조차 힘들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호텔과 여관이 초만원을 이루자 베를린시당국은 TV방송을 통해 시민들에게 민박을 강조하는 계몽을 펼치고 있으며 축제기간중 지하철을 24시간 운행하는 한편 역주변과 광장등에서 노숙하는 행위를 당분간 단속하지 않기로 해 텐트족의 천국을 이루기도. ○…통일축제의 절정은 몸퍼 서베를린 시장이 2일 상오 9시 시의회에서의 통합을 선언하는 행사. 몸퍼시장은 이 자리에서 독일과 독일인은 영원히 하나이며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임을 다짐. 이어 몸퍼시장은 연합군 사령관들에게 베를린의 자유수호에 기여한 노고를 치하하고 연합군 사령관의 고별사에 이어 곰을 상징하는 베를린기가 시장에게 되돌려 진다. 이에 앞서 독일분단 이후 베를린 시정을 담당했던 연합군 사령관 레이먼드 하드도크(미국),로버트 콜베트(영국),프랑세스 샹(프랑스)장군 등은 1일밤 마지막으로 브라보검문소에서 간단한 철수기념식을 갖고 장병들을 위문. ○일부선 통일반대 시위 ○…통일축제가 시작되고 있는 가운데 브란덴 부르크문 광장에서는 「우리는 통일 반대한다」는 플래카드를 든 3백여명의 전동독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여 눈길. 이들은 통일이 된 뒤 사회주의 국가에서 누려온 정부 복지시책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불이익」과 불확실한 통일후의 생활을 우려해 연일 이곳에서 통일반대시위를 벌여왔는데 이날도 축제가 시작되기 전부터 광장의 한 귀퉁이에서 시위를 강행. 그러나 통일을 환영하는 군중들의 환호에 이들의 주장은 더욱 초라하게 보였으며 1일로 독일 경찰에 편입된 전동독경찰관들이 이들의 데모를 보호. ○「통일의 횃불」기념촬영 ○…역사적인 통일이 이루어짐에 따라 지난 40여년동안 독일 통일의 열망을 불태우던 테오도르 호이스 광장의 횃불도 꺼지게 된다. 서독 초대대통령 테오도르 호이스(Theodor Heuss)가 취임하면서 독일국민의 통일염원을 북돋우기 위해 광장 한가운데 마련됐던 통일횃불은 냉전시대의 파란만장했던 베를린의 과거를 지켜보며 베를린 시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일깨워온 명소. 「Freiheit(자유)ㆍRechts(정의)ㆍFrieden(평화)」라고 새겨진 대리석 받침대 위에서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던 희망의 횃불이 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베를린시민들은 연일 이곳에 몰려들어 헌화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기도. 1일 가족과 함께 통일횃불을 배경으로 가족들과 사진을 찍던 헬무트 센켄씨(52)는 『호이스의 염원은 드디어 성취돼 우리에게 기쁨을 안겨주었으나 횃불이 소멸되는 것은 슬픈 일』이라며 통일의 횃불은 독일인들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시. ○동독군복등 기념판매 ○…독일의 신문들과 방송들은 대부분 차분한 자세로 베를린의 분단에서 통일에 이르는 과거를 재음미하며 통일행사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시민들에게 소개. TV는특히 통일이후의 국내ㆍ세계정세를 논의하는 좌담회를 방영하는 가운데 ARDㆍZDF 등 전국적인 방송망을 갖고 있는 TV는 60년대초 케네디 전 미국대통령이 베를린을 방문,『이히빈 베를리너(나는 베를린시민)』이라고 연설하며 소련과 동독의 봉쇄로 고난을 겪고 있던 베를린시민들에게 용기를 북돋웠던 기념비적인 장면을 보여줘 감회를 새롭게 하기도. 또 통일축제기간동안 재빠른 상업주의가 극성을 부려 2차대전때 파괴된 상흔을 간직한채 도심 한가운데 을씨년한 모습을 하고 서 있는 카이저 빌헬름교회 주변 광장에는 상인들이 전 동독군인의 모자와 제복,계급장을 기념품으로 팔고 있는가 하면 베를린의 한 회사는 베를린 봉쇄때 시민들의 생필품을 공수했던 C46수송기를 임대해 축제기간동안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 템펠로프 공항까지 기념비행을 광고하면서 손님들을 끌기도. ○교민무용단 공연도 ○…이번 행사에는 우리나라 교민여자 무용단인 「아리랑무용단」이 참가,2일 하오 11시부터 동베를린 오페라하우스 앞 베벨프라츠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어서눈길. 무용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베를린시 당국에서 축제참가 초청장을 보내와 2차대전으로 인한 마지막 분단국인 한국이 참가하는 것이 큰 의의를 가질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 참가를 결정했다는 것. 20여명으로 구성된 한국무용단은 이날 공연에서 한복으로 차려입고 30여분동안 우리나라 전통춤을 공연할 예정인데 통일의 현장에서 「통일기원춤판」이 한바탕 벌어질 것으로 보여 관심이 집중. ○…통일축제는 승전 4대국 수뇌들이 참석하지 않게됨으로써 당초 계획과는 달리 순수한 독일인 자체의 축하행사로 진행될 전망. 통일축제의 공식행사는 2일 하오 5시 동서베를린시 의회가 개최됨으로써 시작되며 4일 상오 9시 베를린에 있는 라이흐스탁(국회)에서 동서독 합동의회가 열림으로써 끝을 맺으나 기념공연 등 각종 행사는 시내 곳곳에서 잇따라 열린다. 축제의 절정은 3일의 동서베를린 경계선에서 펼쳐질 시민잔치와 국회건물의 통일독일기 게양식. 국회에 통일독일기가 게양되는 것과 동시에 동서베를린의 모든 공공건물과 대형건물,차량들에도 독일기가 게양되거나 꽂혀진다.
  • 남ㆍ북이 “얘기꽃”… 화기넘친 만찬/북녘손님 맞던날

    ◎「손에손잡고」 선율속 문배주 축배/“어서오세요”연도엔 환영인파/“통일전기 마련됐으면”… 국민들 큰관심/회담장주변엔 외신기자등 몰려 법석 분단 45년만에 남과 북의 국무총리가 처음으로 만난 4일 7천만 겨레는 조국의 통일을 바라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남북고위급회담의 성공을 빌었다. 때마침 맑게 갠 서울의 가을하늘도 남북총리의 역사적 만남을 축복하는듯 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되새기며 연형묵총리 등 북측대표단 일행의 입경을 지켜본 국민들은 회담장인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강영훈총리가 일행을 따뜻히 영접하는 장면을 보곤 다시한번 같은 겨레의 정을 실감했다. 이날 북측 대표단 일행이 판문점을 넘어 서울에 들어오는 중요한 길목마다에는 많은 시민들이 나와 환한 웃음으로 손을 흔들어 일행을 환영했다. 환영인파 가운데는 특히 월남한 실향민들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이들은 저마다 이번 회담이 좋은 결실을 거둬 조국의 통일을 앞당기는 것은 물론 하루라도 빨리 흩어진 혈육들이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했다.그러나 일부에서는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며 끈기를 가지고 차근차근 통일의 길을 열어야 할 것이라는 신중론을 펴기도 했다. 북측 대표단 일행은 이날저녁 강총리가 힐튼호텔에서 주최한 만찬회에 참석한뒤 무역회관에서 우리영화를 감상하고는 모두 숙소에 돌아가 서울에서의 첫날 밤을 보냈다. ▷만찬 및 영화관람◁ 우리측 수석대표인 강영훈국무총리는 이날 하오7시쯤 힐튼호텔에서 북한대표단에게 만찬을 베풀고 이들의 서울 방문을 환영했다. 이날 만찬에는 북측인사외에 우리측 관계ㆍ재계ㆍ언론계인사 등 2백20여명이 참석,통일을 기원하는 축배를 들면서 남과 북이 화기애애한 얘기꽃을 피웠다. 이날 칵테일장에는 국산양주와 맥주 외에 인간문화재 이경찬옹이 특별히 빚은 문배주가 준비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으며 만찬음식은 7가지 코스의 양식. 이날 만찬 참석자들은 모두 27개 테이블에 나눠앉았으며 헤드테이블에는 강ㆍ연 두 총리를 비롯,김상협 적십자사총재ㆍ민관식 평통수석부의장ㆍ김용식 통일고문회의의장ㆍ홍성철 통일원장관ㆍ김윤환 정무1장관ㆍ최호중 외무장관ㆍ유창순 전경련회장 등과 북한측의 김광진 인민무력부부부장 등이 참석. 만찬장에는 7인조 실내악단이 서울올림픽 지정곡인 「손에 손잡고」를 비롯,선구자ㆍ고향의 봄ㆍ아리랑 등 우리가곡ㆍ민요를 연주해 분위기를 돋웠고 강총리는 연총리에게 해강 유근형씨가 제작한 청자화병을,회담대표들에겐 고급양복지,북측 수행원들과 기자들에게는 손목시계 및 탁상시계를 각각 선물. 북측 대표단은 원하는 사람들만 만찬이 끝난뒤 하오8시부터 40분동안 한국종합전시실(KOEX) 4층에서 문화영화인 한국의 전통문화유산을 관람하고 숙소로 돌아가 서울의 첫밤을 보냈다. 영화를 관람하고 숙소로 돌아온 뒤 북측 기자들은 『영화가 재미있었느냐』고 묻자 『역사성이 결여된 듯하다』 『졸음이 와 제대로 못봤다』고 짤막하게 답변하곤 서둘러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판문점◁ 이날 상오10시쯤 북측 대표단장인 연형묵총리가 판문점의 군사분계선을 넘어 우리측 「평화의 집」 입구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홍성철 통일원장관이 『진심으로환영합니다』라며 손을 내밀어 영접했고 연총리는 『감사합니다』고 답했다. 연총리는 이어 『우리 대표단은 큰 기대를 갖고 왔다』고 말한뒤 홍장관의 안내로 「평화의 집」안으로 들어섰다. 이에앞서 북측 대표단의 수행원 33명과 기자단 50명은 상오9시50분쯤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신분증이나 「보도」라고 쓰인 완장으로 간단한 신원확인절차를 거친뒤 우리측 지역으로 들어왔다. ▷연도◁ 북측대표단들이 통과하는 통일로 등 연도 곳곳에는 통일에의 염원을 안고 미리 나와 기다리던 시민들과 길가던 시민들이 함께 어울려 차량행렬이 지나갈 때마다 손을 흔들고 박수를 치며 일행을 환영했다. 또 빌딩이나 아파트단지 등에서는 시민들이 창가에 나와 일행이 지나는 광경을 지켜봤다. 환영인파 가운데는 특히 월남한 실향민들이 많아 흩어진 혈육의 재회를 애타게 갈구하는 그들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줬다. 북측대표단 일행들도 이따금 차창을 열고 환영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하기도 했다. ▷회담장주변◁ 북측대표단 일행이 낮12시5분쯤 회담장이자 숙소인 인터콘티넨탈호텔에 도착하자 이들을 보려는 많은 시민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한때 큰 혼잡을 빚기도 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호텔주변은 평소와 크게 다름없는 평온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북측대표단 일행은 기자들의 열띤 취재경쟁 속에 카메라 플래시가 잇따라 터지자 사뭇 긴장하기도 했으나 차츰 여유를 되찾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였다. 강영훈총리의 영접을 받고 호텔에 들어선 연총리 등 북측대표단 일행은 호텔직원들의 안내로 30∼33층에 마련된 숙소에 여장을 푼뒤 불고기와 된장찌개 등으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한동안 휴식을 가졌다. 한편 대부분의 북한기자들은 우리측 취재진과의 접촉을 꺼렸으나 로동신문의 이광진기자를 비롯한 3∼4명의 기자들은 취재진이 모여있는 1층 로비로 자주 내려와 기자들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해주는 등 적극성을 보였다. 이기자는 하오5시40분쯤에도 1층 커피숍으로 내려와 판문점에서 얼굴을 익힌 몇몇 기자와 환담을 나누다 기자들이 40∼50명으로 늘어나자 10분남짓 즉석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 유엔가입(남북 총리회담:중)

    ◎“동시가입”ㆍ“단일의석”… 큰 시각차/「두 체제 한자리」는 의결권 행사등에 무리/「독일 실례」 들어 북의 억지논리 반박 방침 남북한 쌍방이 고위급회담의 포괄적 단일의제로 합의한 「정치ㆍ군사적 대결상태 해소문제와 다각적인 교류ㆍ협력실시문제」중에서도 유엔가입은 군비통제,즉 군축문제와 함께 이번 서울회담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벌일 분야로 손꼽힌다. 그만큼 유엔가입문제는 남북한 모두에게 초미의 현안이 돼있는데다 남북간의 시각차가 크기 때문이다. 유엔가입문제는 특히 대응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북한측에서 주로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며 우리측은 이에대해 북한측 주장중에서 모순되는 대목을 조목조목 따져 그들을 설득시킨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북한측은 이번 회담에서 연형묵정무원총리가 첫날 기조발언을 통해 유엔가입에 대한 자신들의 주장을 밝히겠지만 「단일의석 유엔공동 가입방안」을 제시할 것이 명백하다. 이 방안은 김일성주석이 지난 5월24일 시정연설에서 대내외에 밝힌 것으로 북한체제 성격상 향후 불변의 유엔정책으로 분석된다. 반면 우리측은 남북한 통일이 이뤄질 때까지 과도기적인 조치로 남북 유엔동시가입을 실현하자는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다. 동시가입이 한반도의 분단을 영구화하고 통일에 역행한다는 북한측 논리는 이미 유엔에 동시가입한 동서독과 남북예멘이 지금 한창 통합열기에 휩싸여 있는 현실을 놓고 볼 때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동시가입 실현을 통해 남북통일의 커다란 길목이 조성될 수 있으며 이로인해 남북 관계개선 및 긴장완화가 예상보다 빨리 달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정부당국자들은 지적한다. 따라서 우리측은 이번에 유엔동시가입의 「합리성」을 바탕으로 북한측을 설득,축복받은 국제적 분위기속에서 당연히 유엔회원국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고자 권유할 방침이다. 그러나 북한측이 계속해서 우리측 의견을 거부한다면 어쩔 수 없이 우리만의 유엔가입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복안이다. 또한 북한측이 이번 회담에서 제시할 단일의석 공동가입안은 유엔헌장과 유엔당국을 비롯한 세계각국의 비판적인 여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안 자체가 비현실적임을 아울러 강조할 계획이다. 원래 이같은 북한측 안은 「통일이 된 다음에 가입하자」는 종전의 입장을 변경한 것으로 북방외교의 성공에 힘입어 남한의 유엔가입 분위기가 좋아지고 전망도 밝게 되자 이에 상당한 당혹감을 느낀 나머지 궁여지책으로 발표한 것 같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때문에 북한측은 안만 제시해 놓고 이에따른 구체적인 과정을 전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현 가능성보다는 남한의 유엔가입 저지라는 유일한 목표를 위한 대남정치선전의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다. 다만 북한은 최근 중소 등 기존동맹국에 『단일의석 공동가입안은 남북 쌍방대표들이 의견일치를 본 분야에 대해서만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내용의 설명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이 또한 남북간의 냉엄한 현실과 유엔헌장의 규정에 비추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이다. 북한은 특히 올들어 남한의 유엔가입 여건이 호전되는 기미가 너무나도 뚜렷하게 나타나자 이종옥부주석ㆍ김영남외교부장 등 북한의 외교분야 실력자들을 동구권 및 비동맹ㆍ제3세계국가에 파견,남한의 유엔가입을 저지하기 위한 외교적 총력전을 벌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이로인해 북한은 군축문제를 고위급회담에서 우선적으로 다루려던 종전 방침을 바꿔 유엔가입문제를 가장 무게있게 논의하자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고위급 예비회담 북한측 단장인 백남준이 지난 7월26일의 마지막 예비회담 종결발언을 통해 『본회담에서는 유엔가입문제를 최우선의제로 채택,협의를 갖자』고 주장한 것만 봐도 북한의 위기감을 잘 알수 있다. 당초 유엔가입문제는 『유엔헌장에 따라 가입신청국의 능력과 자격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며 따라서 세계10대교역국 위치에 걸맞게 유엔에서의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는 정부입장에서 보면 남북문제와는 별도의 개념이라는 것이 외무부 고위당국자의 설명이다. 단지 북한측이 우리의 유엔가입 저지를 위해 이 문제를 민족내부문제로 끌어들여 고위급회담에서 논의하자고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우리측이 남북 관계개선이라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고위급회담에서의 토의」를 수용한 것이라고 이 당국자는 밝히고 있다. 그는 또한 『최근 이라크사태와 관련한 유엔 안보리 결의를 볼때 일부 국가가 국제정치의 현실과는 무관하게 홀로 거부권을 행사하기는 힘들 것』이라면서 우리의 유엔가입에 자신감을 보이고 이번 회담에서는 이같은 측면을 북한측에 충분히 설명할 방침임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이번 회담에서 유엔가입에 대한 쌍방간의 의견접근이 이루어지기는 힘들 것 같다. 어차피 이번 회담이 쌍방간 탐색회동에 그칠 공산이 크고 북한입장에서는 공개석상에서 우리측 의견을 수용하기 보다는 오직 남한의 유엔가입을 저지하겠다는 데 더 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의의 진전에 따라서는 최소한 우리측이 북한측 입장을 고려,단독가입을 보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북 동시가입 거부땐 유엔 단독가입 추진/최 외무 밝혀

    최호중외무부장관은 27일 『오는 9월4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1차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의 불가피성을 적극 설득해나갈 방침이지만 북한측이 끝내 이를 거부할 경우 우리만의 단독가입을 추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최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남북 관계개선을 위해 통일이 달성될 때까지 과도적인 조치로 남북한이 국제사회의 축복받는 분위기속에서 유엔에 동시가입하자는 것이 정부의 기본입장』이라고 밝히고 『그러나 북한측이 이번 회담에서도 비현실적인 단일의석 공동가입입장을 고집할 경우 금년도 제45차 유엔총회에서 우리만의 단독가입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하느님의 영광속에 고이 잠드소서… /김옥길선생의 서거를 애도하며

    선생님! 지금 저는 선생님을 붙들고 엉엉 울고싶은 심정입니다. 선생님을 잃어버린 이 기막힌 슬픔을 하소할 곳은 바로 선생님의 넓은 가슴밖에 없다는 안타까움에 상실감만 더할 뿐입니다. 저는 선생님을 진심으로 사랑했읍니다. 웃어른으로서,스승으로서,선배로서라기 보다도 한 인간으로서의 선생님을 무척이나 사랑했습니다. 선생님이 그만큼 사랑스러우신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참으로 따뜻하셨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약점과 부족함을 모두 알고도 감싸주는 따스함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사감이요,교수요,학무과장이요,총장이요,장관이셨지만 언제나 권좌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동렬에 서서 남을 도우려는 자세를 갖고 계셨습니다. 그러기에 저희가 선생님을 위해서 하는 일은 아무리 적은 일일지라도 의무감이 아니라 모두가 극진한 정성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저희가 선생님께 해드리는 일은 선생님이 저희에게 해주시는 일에 비해 너무나 초라하고 작기만 했습니다. 선생님은 외양도 그러하셨지만 마음은 더욱꾸밈이 없으셨습니다. 그것은 민감한 촉각에 의해 거짓을 감지할줄 아는 분의 솔직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선생님 앞에서는 솔직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어린이의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함이 아니라 인생의 고독과 고통을 모두 알고 넘어선 끝에 다다르신 통달의 경지였습니다. 선생님의 삶은 다시 말해 달인만이 가질 수 있는 무심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거드름을 피울 필요도 점잔을 뺄 필요도 없으셨습니다. 그런것 없이도 사람을 잡아 당기는 내부에서 우러나는 인력이 강하셨으니까요. 선생님의 환희 웃으시는 얼굴,호탕한 웃음소리,구수한 말씀,어린이 같은 장난기,낭랑한 음성,멋진 처사를 자아내는 민첩한 두뇌,구석구석까지 미치는 섬세한 배려… 그러한 선생님을 이제 어디서 다시 뵈올 수 있을까요. 선생님,저흰 선생님이 오래오래 저희와 함께 계시기를 간절히 바랐었습니다. 선생님이 떠나셨다는 냉혹한 현실앞에 저희는 이 심정을 호소할 길 없이 언어의 무력함을 실감할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부터 외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늘의 축복과 영광속에 고이고이 잠드소서. 나영균
  • “남북한 단일의석 유엔가입 고위회담서 논의 가능”/최외무 밝혀

    최호중외무부장관은 7일 『북한이 제의한 남북한 단일의석 유엔공동가입안은 문제점이 많으나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논의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장관은 이날 정례기자간담회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정부는 어떠한 문제든지 고위급회담의 의제에 포함,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면서 『그러나 남북 고위급회담은 의제의 우선순위등을 고려,합의가능한 분야부터 토의를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장관은 『단일의석 유엔가입은 통일이 된 뒤에나 가능하며 남북한이 통일될 때까지 함께 가입하자는 것이 우리 정부의 기본방침』이라고 말해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이 우리 정부의 불변된 입장임을 강조한 뒤 『그러나 축복받는 분위기 속에서 남북한이 유엔에 가입하자는 우리측 입장에 북한이 계속 응해오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만은 없다』고 밝혔다.
  • 외언내언

    『1941년 여름엔 나는 겨울 양복뿐이어서/동대문여학교 선생님으로 체조를 가르칠 때도/할 수 없이 하이얀 모시한복으로서/「이찌 니 이찌 니!」/두 팔을 올렸다 내렸다/폈다 오므렸다하고 있었지/게 눈 감추듯하고 있었지/우리 최정희소설가께서 지나가다가 들여다보니/가관이드래나』 ◆미당 서정주시인의 「동대문여학교의 운동장에서」 전문. 제10시집 「안잊히는 일들」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이다. 시속의 「이찌 니 이찌 니」는 「하나 둘 하나 둘」하는 일본말 구령. 시의 내용을 떠올리자면 희화적이다. 그래서 「안잊히는 일들」중의 하나로 된 것이리라. ◆그때의 「동대문여학교」 운동장은 넓이가 얼마나 되었던 것일까. 그거야 어쨌든 학교하면 운동장은 바늘에 딸리는 실과 같은 것. 조회를 하고 체조를 하며 쉬는 시간 마음껏 뛰어 노는 곳이다. 운동장의 추억은 역시 가을철의 대운동회. 특히 시골 학교의 운동회는 지역사회 전체의 잔칫날이 된다. 만국기 펄럭이는 운동장에서 계절의 축복 속에 기쁨과 흥분의 함성은 메아리져 나갔던 것. 운동장은학교요 학교는 운동장이었다. ◆이 정석이 무너지게 된다. 문교부가 운동장 없이도 초·중·고교를 설립할 수 있게 하는 학교시설 설비기준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등 6대도시와 경기도지역이 그 대상. 비싸진 땅값에 연유한다. 외국에도 그런 학교가 있지 않으냐 하겠지만 운동장의 추억을 못잊는 사람들에게는 「반편 학교」로 인상지어진다는 것이 사실. 「공원등 체육시설 활용조건」은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공원이 운동장으로 훤소해질 때 공원의 의미는 스러질 것이 아닌가. ◆지육·덕육·체육으로 요약되는 것이 교육의 내용. 그러나 이제 지육만 덩그러니 남는다 싶어진다. 덕육은 진작부터 무너져간 세상이니까. 언젠가는 교실도 필요없는 지육시대가 올지 모른다. 그만큼 영상문화는 발전하고 있지 않은가.
  • 유엔 단독가입 추진 유보/정부 북한설득,「남북한 동시」 모색

    정부는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북한과의 다각적인 접촉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그동안 추진해 왔던 유엔단독가입을 일단 유보하고 남북한 유엔대표부간의 접촉을 활성화,한반도 긴장완화와 남북관계개선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유엔가입문제를 협의해 나갈 방침이다.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최근 한소양국이 정상회담을 통해 국교정상화및 경협확대에 합의함에 따라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주변여건이 크게 호전된 만큼 종래와 같이 북한이 남북한유엔동시가입에 반대할 경우 우리만의 단독가입을 추진,북한측을 자극하기 보다는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원만히 타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그러나 북한의 김일성이 지난 5월24일 시정연설에서 제의한 「단일의석 유엔공동가입」 주장은 남북한의 상이한 대외정책노선은 물론 유엔헌장에 따른 권리및 의무의 행사등 법적인 측면에서도 수용불가능한 것이라는 입장을 거듭 확인하고 남북한 동시가입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북한측과의 교섭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이와 관련,최호중외무부장관은 9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의 유엔가입은 국제적으로 축복받는 분위기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제,『앞으로 북한측과 이 문제를 진지하게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장관은 특히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문제와 관련,『북한측이 우리의 실체를 인정하고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때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정부는 이같은 입장에서 북한측과 유엔가입문제를 적극 논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한ㆍ소 정상회담 이후의 과제/한승조 고려대교수ㆍ정치학(특별기고)

    ◎“북방외교는 내치가 밀어준다” ○억센 행운 지난 한소 정상회담과 그를 이은 한미 정상회담의 연속적 성공으로 노태우대통령은 예사롭지 않은 행운의 향수자임을 다시 증명하였다. 그는 언제나 정치적 궁지로 몰릴 때마다 그 입지를 살려주는 사건이 생겨서 살아나곤 하였다. 87년 대통령선거때도 끔찍한 KAL기 폭파로 그의 입지가 보강되었다. 대통령취임후에도 여소야대의 정국으로 몰렸지만 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이 야당의 공세를 지연시켜 주었다. 89년의 중간평가문제와 5공비리문제로 인한 궁지가 야권내부의 경쟁격화와 대립,그리고 보선에서의 여당승리로 모면되었다. 금년 봄의 총체적 난국으로 인한 정치ㆍ사회불안을 벗어나게 해준 것이 6월4일과 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한소ㆍ한미 정상회담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또 한편 생각해 보면 이것은 단순히 노태우대통령 개인의 운수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요행에서 요행으로 이어지는 이 나라 이 민족의 국운 때문일 것 같다. 하기는 요행으로 보이는 것조차 사실은 누군가의대단한 정치적 경제적 대가와 큰 희생위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노태우대통령은 선임자들 노력의 열매를 거둬들이는 입장에 있었을 뿐이다. 금년 봄의 난국도 5월위기와 6월항쟁으로 이어질 때 민자당 정권이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불안요인을 말끔히 씻어주고 국민을 희망적 기대에 부풀게 만든 것이 한소ㆍ한미 정상외교의 효과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잘되는 나라는 엎어져도 소득이 있는 모양이다. ○연쇄회담의 성과 이번 한소 정상회담은 한편 노태우대통령이 역점사업으로 추진해 오던 북방정책의 소산이다. 또 한편으로는 60년대 이래로 박ㆍ전정권의 역점사업이었던 경제개발정책과 서울올림픽의 성공이 가져온 결실이다. 한국과의 경제협력과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이익이 소련 고르바초프대통령으로 하여금 노태우대통령에게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나자는 제의를 하게 만든 원인이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양국의 정상회담의 의의를 애써 외면하려고 든다. 첫째 소련은 한반도분단에 책임이 큰 나라이다. 더구나 북한을 앞세워서 한민족안의 분열과 적대행위를 조장하였다. 또 KAL기 격추사건으로 수많은 인명도 살해하였다. 이에대한 사과ㆍ배상도 받음이 없이 왜 서둘러 국교를 정상화하는가. 둘째 한 나라의 국가원수가 정상적 외교프로토콜도 무시하고 외국여행중의 다른 국가원수의 제의를 받고 허둥지둥 만나러 가는 것은 체통없는 행위가 아닌가. 셋째 고르비가 북한에 영향력도 적고 또 국내 지지기반도 약하므로 언제 권좌로부터 물러나게 될지 모른다. 그런데 왜 무엇때문에 거액의 경제원조를 약속하면서 그를 만나려고 했는가. 이것이 모두 정권생명을 연장하려는 짓들이 아닌가. 그외에도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이들은 대체로 현정부에 적대적인 좌파세력이 아니면 냉담한 우파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번 연쇄적 정상외교에 획기적인 의의를 부여하며 높이 평가한다. 도리어 건국후 처음있는 역사적 쾌거로 환영한다. 그리고 외국의 매스컴에서 크게 다루어주는 것을 흐뭇해 한다. 국민이 기뻐하는 논거는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세계의긴장완화와 화해무드가 한반도에도 미쳤다는 것이다. 이런 화해무드는 남북한의 평화통일을 촉진할 수가 있으며 이 때문에 평화통일의 전망이 밝아졌다. 둘째 그동안 적대관계에 있었던 두 나라가 상호의존ㆍ협력하는 관계로 발전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한소의 긴밀한 협력은 한반도의 분단을 극복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셋째는 그동안 미,영등 자유진영에 편향되어 있었던 종속적 외교관계에서 탈피하여 공산권을 포함하여 전방위적 자주외교를 할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넷째는 이러한 한국의 지위상승이 자주성 확대,대미관계와 기존 자유우방과의 관계를 조금도 변화시킴이 없이 도리어 그들의 지지와 축복를 받으면서 추진할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다. 노­고 회담에 충격을 받은 북한은 일시적이나마 더욱 강경한 노선을 추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래 보았자 별로 소용없는 짓들이다. 북한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긴장완화와 화해의 바람에 거역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바람과 파도에 올라 타야만 한다.이것이 한국을 비롯한 모든 인접국가들이 바라는 우리의 정책목표일 것 같다. ○앞으로의 과제 첫째는 내치를 바로잡는 일이다. 후진국의 정치지도자들은 내치가 잘 안될 때마다 외교문제에 국민의 관심과 욕구를 외부로 배설하고자 국제적 갈등을 야기하나 외교에서 공적을 세우려고 시도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건실한 내치에 뒷받침되지 않는 외교적 성공은 지속될 수가 없다. 한국이 공산국가들보다도 훨씬 풍요롭게 살고 있다고하나 과연 공산국가나 신생국들이 찬양하고 배울만한 나라인지 다시 한번 반성하고 그 시정책을 찾아내야만 한다. 둘째는 국민화합과 단결의 과제이다. 이것없이 한국의 외교목표는 달성될 수가 없다. 더구나 여야가 싸우는 극한적 상황에서는 기대할 수가 없으므로 국민들간의 자생적 노력으로 추진되는 민간주도적인 국민운동이 요망된다. 민주화나 복지사회건설은 물론 평화통일 역시 그 예외일 수가 없다. 셋째 이 국민운동의 리더십을 위한 핵심조직이 형성되어야 한다. 그 조직은 정부ㆍ여당은 물론 야당ㆍ재야세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하며 도리어 이들에게 주문도 하고 협조도 할 수 있어야 한다.
  • 외언내언

    조선왕조 개국공신 삼봉 정도전의 「단오날 감회가 있어」(단오일유감)라는 칠언절구가 전한다. 『농사집 늙은이들 술을 자주 권하면서/오늘은 바로 좋은 날이라 일러주네/싫것 취하여 띳집 처마아래 누웠다가/깨어나 흥얼거리니 못가 사람(택반인)들에게 부끄럽네』. ◆농사집 늙은이들이 「좋은 날」이라고 했던 단오날. 옛사람들은 천중가절이라 하여 이 날을 특별히 숭상하면서 쑥ㆍ창포같은 양기 돕는 풀로 목욕도 하고 노리개로 만들어서 찼다. 우리 고유어로 이 날을 「수리」라 했던 것도 같은 맥락. 그 말은 위(상)나 높은 것(고)을 일렀으나 이 날은 높은 큰 날이었다. 그래서 똑같이 양수가 겹치는 명절인 삼짇날이나 칠석ㆍ중구보다도 더 중히 여겼다. ◆녹음의 계절. 싱싱하고 풋풋함이 사계의 청춘임을 알려주지 않은가. 햇볕은 쨍쨍하고 산야는 푸르름의 혈기방기으로 넘실대고. 그 축복아래 남정네는 격구에 편사ㆍ씨름ㆍ태껸으로 힘자랑ㆍ재주자랑을 했던 것이 우리의 옛 풍속. 아낙네들 또한 그네뛰고 널뛰면서 대자연의 기를 마시며 동화해갔다. 꾀꼬리ㆍ두견새 등 온갖 새의 울음소리 화답과 함께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이었던가. ◆하지만 옛 얘기. 유독 올해는 단오에 이르는 길목이 날씨가 고르지 못했다. 그런데 중앙 기상대는 앞으로의 날씨에 대해서까지 겁을 준다. 「엘니뇨 현상」때문에 올 여름의 기상변덕은 심할 것이라면서. 그 소식에 왕조때 관상감에서 주사로 쓴 단오날 부적이 있었음을 떠올린다. 『5월5일 천중절에 위로는 하늘의 녹을 받고 아래로는 땅의 복을 얻어 치우 신의 구리머리ㆍ쇠이마ㆍ빨강입ㆍ빨강혀의 404병 일시에 없어져라. 빨리 법대로 시행하라』가 거기 쓰인 글. 그 부적을 붙이고 싶어진다. ◆이제부터서는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그나저나 걱정되는 것은 농촌. 모내기철이 열렸건만 해마다 치르는 일손 부족은 여전하다. 오늘이 단오. 오늘날의 농촌은 명절 생각할 짬도 없을 듯싶다.
  • 도미니카처녀 한국서 화촉/우리 근로자와 2년 열애 끝에

    ◎1년만에 지각혼례 【영동=한만교기자】 한국에 시집온 「도미니카」아가씨 카르멘 우리냐양(27ㆍ서울신문 2월25일자 14면보도)이 12일 주위의 축복속에 남편 정관화씨(29)와 「지각결혼식」을 올렸다. 이날 상오11시 충북 영동읍 지전예식장 3층에서 있은 두사람의 결혼식장에는 정씨의 부모와 가족ㆍ친지 그리고 두사람의 결혼식을 주선한 김광기영동군수ㆍ박재신영동경찰서장ㆍ주민등 2백여명의 하객이 참석,이들의 결혼을 축복했다. 정씨와 카르멘양은 지난87년 도미니카 샌디에이고의 한국인 봉제업체인 KSS회사에서 봉제공과 디자이너로 만나 2년여의 열애끝에 지난해 3월 함께 귀국,농사를 지으며 살고있는데 지난해 11월엔 귀여운 딸 다운양을 낳았으나 그동안 혼인신고만 한채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었다.
  • 첫 전당대회ㆍ축하리셉션 이모저모

    ◎“하나로 새출발”… 닻올린 「민자호」/총재ㆍ최고위원 제청에 기립박수로 동의/피켓 물결속 노대통령 단합ㆍ결속을 강조/참석자들 「손에 손잡고」 합창… 자축행사 절정에 민자당은 9일 상오 10시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전국대의원및 각계 초청인사등 8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당합당이후 1백여일만에 첫 전당대회를 열고 당의 체제를 정비하고 공식 출범했다. 민자당은 이어 이날 하오 서울 삼성동 종합무역전시관에서 각계 인사들을 초청한 가운데 축하리셉션을 열고 새로운 출발과 당의 결속을 다짐했다. ○…이날 대회는 상오 9시57분쯤 서울올림픽 공식가요인 「손에 손잡고」가 연주되는 가운데 노태우대통령이 김영삼ㆍ김종필최고위원과 박태준최고위원대행과 함께 참석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대회장에 입장하면서 시작. 전당대회의장으로 선출된 채문식고문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대회는 총재와 최고위원 선출및 대표최고위원을 지명하는 순서에서 절정을 이뤘다. ○당원등 8천명 참석 채전당대회의장이 『지난 7일 제6차 당무회의가총재와 최고위원을 제청한 바 있다』고 밝히면서 김영삼최고위원이 총재후보를 제청하겠다고 말하자 김최고위원은 단상앞으로 나가 『민자당을 대표하는 총재에 이나라 대통령이신 노태우대통령을 제청한다』며 만장일치로 지지를 보내주길 요청. ○박수속 나란히 입장 김최고위원의 제청이 끝나자마자 장내는 일제히 기립박수로 노대통령을 총재로 선출했으며 경쾌한 축하음악이 이 순간의 분위기를 고취. 상오 10시41분 채의장이 초대총재에 노대통령이 만장일치로 선출됐음을 선포하자 노대통령은 두손을 높이 들어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례했으며 여성당원들로부터 축하꽃다발을 받고는 다시 꽃다발을 들고 대의원들에게 인사. 노대통령은 최고위원석으로 가서 김영삼ㆍ김종필최고위원 박태준최고위원대행과 차례로 악수를 나눈 뒤 이들의 손을 잡고 단상으로 나와 맞잡은 손을 높이 치켜들어 당수뇌부의 결속과 단합을 다짐했으며 참석자들은 박수로 이에 화답 ○…노대통령은 이어 그 어느때보다도 억양의 높낮이를 분명히 해가면서 자신에 찬 목소리로 총재취임사를 14분간에 걸쳐 낭독. 노대통령은 자신을 총재로 뽑아준 데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당원동지 여러분의 열과 성을 함께 모아 임부를 다해갈 것』이라고 다짐하자 취임연설의 첫 박수가 터졌다. 노대통령은 대회장이 88 서울올림픽의 경기장이었음을 상기시키고 『2년전 이자리에서 두꺼운 벽으로 갈라졌던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다』면서 『그런 우리가 하나로 못될 이유가 뭐가 있느냐』고 반문하며 상호이해와 양보,당의 단합을 거듭 강조. 노대통령은 연설이 거의 끝날 무렵 최고위원석을 향해 뒤돌아 보며 『창당과정에서 보여준 김영삼ㆍ김종필 두동지의 구국정신과 높은 경륜에 대해 뜨거운 찬사를 보낸다』며 박수를 유도했고 이에 두 김최고위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의원들에게 인사. 노대통령의 이날 취임연설은 마치 대통령선거유세때의 연설처럼 짧은 문장으로 힘있게 연결됐는데 연설도중 11차례의 열띤 박수를 받았다. ○…이어 진행된 최고위원 선출에 앞서 김재광의원은 『지난 7일의 당무회의에서 민주ㆍ번영ㆍ통일의 과업을 이룩할 당의 최고지도자로 김영삼ㆍ김종필ㆍ박태준최고위원을 추대키로 의결한 바 있다』면서 이들 세분을 만장일치로 뽑아달라고 제청. ○14분동안 취임인사 이에 대의원들은 기립박수로 제청에 동의를 표시했으며 세 최고위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의원들에게 인사. 최고위원 선출이 끝나고 대표최고위원 지명순서에 들어가자 노대통령은 『민주발전에 평생을 바쳐오신 김영삼최고위원을 대표최고위원에 지명한다』고 선언. 김대표최고위원은 노대통령에게 다가가 악수로 감사를 표시했고 노대통령은 김대표최고위원의 손을 잡고 단상앞으로 나아가 함께 맞잡은 손을 높이 들어 대의원들의 열띤 환호에 답례. 김대표최고위원은 인사말을 통해 『지속적이고 총체적인 국정개혁만이 사회적 불안과 국민의 위기감을 씻어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며 개혁론을 재삼 강조. 김종필최고위원은 즉석 연설을 통해 『민자당은 집권여당이기 때문에 권리이전에 하나부터 백까지 책임을 져야 하고 민주주의의 토양을 다지고 번영된 국가,통일과업을 선두에 서서 영도해나가는 대통령을 모든 지혜와 성의를 다해 뒷받침해야 한다』면서 국태민안과 국리민복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겠다고 다짐. 박태준최고위원은 「이인동심기리단금」(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능히 쇠라도 자를 수 있다)의 옛말을 인용하면서 노대통령을 정점으로 단합할 것을 강조. 전당대회가 진행되는동안 김종필ㆍ박태준최고위원은 단상에 나설 때마다 노대통령에게 목례를 보냈으나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은 이를 외면해 대조적인 모습. ○…이날 행사장에는 「조국에 영광을 국민에 희망을 당원에 보람을」「세계로 미래로 통일로」 등의 구호를 담은 대형 플래카드가 부착됐으며 대의원들은 노태우총재의 사진과 대형캐리커처,김영삼ㆍ김종필ㆍ박태준최고위원의 이름이 적힌 피켓ㆍ깃발 등을 들고 있다가 이들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피켓을 치켜 들거나 깃발을 흔들며 환호. 대회장의 단상에는 노대통령과 세 최고위원을 비롯,각계 대표 50여명이 자립잡았는데 단상 중앙에 노대통령,우측 뒤편에 세 최고위원석이 배치돼 이날 전당대회에서 의결된 총재중심의단일지도체제가 좌석배치에서도 반영된 느낌. 이날 전당대회에 앞서 약 1시간 10분가량 진행된 식전행사에는 조영남ㆍ송창식ㆍ최진희씨등 인기가수와 안비취ㆍ묵계월씨등 명창과 풍물놀이패등이 등단,대회장 분위기를 돋우기도. ○성악가도 특별출연 ○…이날 하오 6시부터 2시간동안 한국종합전시장에서 진행된 축하리셉션에는 총재인 노태우대통령과 3최고위원을 비롯한 민자당의원들과 각부처장ㆍ차관,주한외교사절,각계대표등 3천여명이 참석. 노대통령은 이날 저녁 7시쯤 박준병사무총장ㆍ김동영원내총무ㆍ김용환정책위의장등 당3역과 김윤환정무1장관의 영접을 받으며 연회장에 도착. 노대통령은 이어 연회장 입구에 도열해 있던 김영삼대표최고위원,김종필ㆍ박태준최고위원,채문식당고문 등과 악수를 나눈 후 함께 연회장에 입장해 장내를 돌며 일반 참석자들과 인사. 노대통령은 이어 인사말을 통해 『이 땅에 민주ㆍ번영ㆍ통일의 새로운 시대를 열 민주자유당이 닻을 올리고 이제 내외의 축복속에 출범했다』면서 『오늘 첫 전당대회가 민주주의의 나라,번영하는 나라,통일된 나라를 건설하는 데 튼튼한 주춧돌을 놓은 것으로 역사가 기록하도록 열과 성을 다하자』고 강조. 노대통령은 『30년 다른 길을 걸어온 정치세력이 하나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이라면서도 『우리는 이제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라며 단합을 거듭 강조. ○난국극복 결의 다져 노대통령은 『범죄와 폭력을 해결하라,법질서를 바로세워 편안한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국민의 요구가 인내의 수위를 넘어서고 있고 경제에 대한 불안심리도 높아졌다』며 『나는 이 모든 문제에 정면대결해 확고한 안정을 이룰 것』이라고 단호한 의지를 표명. 약 5분간 계속된 인사말에서 노대통령은 또 『실망이 있는 곳에는 희망이,불신이 깔려있는 곳에서는 신뢰가,갈등이 깊어진 곳에서는 화합이 샘솟게 해 그것이 내를 이루고 도도한 강물이 되어 바다로 넘치게 해야 한다』며 김대표최고위원,김종필ㆍ박태준최고위원과 힘을 합쳐 총재로서의 책임을 다할 것을 다짐. 이에앞서 김영삼ㆍ김졸필ㆍ박태준최고위원 등의 건배순서가 있었는데 김종필최고위원은 『우리당을 이끌고 모든 당원을 정성모아 격려하는 대통령을 으뜸보좌하는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을 위해 건배하자』는 건배제의에 따라 함께 건배를 하며 노대통령과 김영삼최고위원간의 관계를 거듭 확인.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은 건배에 이어 인삿말을 통해 『이제부터 과거와 같은 분열과 대립에 종지부를 찍고 화합과 믿음의 바탕위에 성숙한 정치를 펼쳐 나가자』고 강조하고 『과거의 정파를 초월,굳게 단결결속할 때 국민들은 우리를 지지할 것이며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라며 3계파의 단결을 거듭 역설. 이날 노대통령과 김영삼대표최고위원 김종필ㆍ박태준최고위원은 참석자들의 테이블을 돌면서 환담을 나누었고 축하연 중간에 한국계 소련성악가 루드밀라 남 여사와 국내 저명한 성악가들이 특별출연,가곡을 불러 축하분위기를 돋우었으며 나중에는 참석자들이 「손에 손잡고」(서울올림픽 주제가)를 합창해 절정. ◎국민에게 드리는 메시지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처한 국내외의 시대적 상황을 보며 우리의전진을 가로막았던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희망찬 내일,더 밝은 미래를 열고자 민주자유당의 깃발아래 하나로 뭉쳤습니다. 대립과 갈등의 유산을 청산하고 성장과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정치안정의 디딤돌은 이제 확고히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두 어깨에 매우 무겁고 많은 짐들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의 단결된 힘을 바탕으로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꽃피워야 함은 물론 모든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제를 되살리고 남북으로 갈라진 7천만 겨레가 한마음으로 얼싸안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기를 한민족 영광의 세기로 마무리짓는데 선봉역을 다할 것을 다짐하면서 앞으로 우리당이 나아갈 방향을 밝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지역간ㆍ계층간ㆍ세대간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과 함께 호흡하며 국민속에 뿌리를 내리는 국민정당이 되겠습니다. 둘째,현실에 안주하는 구태의연한 권위주의적 정당이 아니라 모든 결정을 민주적으로 택하고 모든 행동을 전향적으로 취하는 온건중도적 개혁정당이 되겠습니다. 셋째,순간의 인기에 영합하여 공허한 약속을 남발하는 무책임한 정당이 아니라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지고 민의를 수렴하여 광범위한 정책을 개발하는 정책정당이 되겠습니다. 넷째,민족의 동질성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 남북간의 교류와 협력을 적극화하고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통일정책을 추진하여 자주ㆍ민주ㆍ평화적인 통일을 앞당기는 통일정당이 되겠습니다. 우리당은 앞으로 국민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정치시대의 일꾼으로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며 더 밝은 미래를 펼쳐 나가기 위해 국민 여러분과 함께 땀흘려 일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 “공산주의는「실패한 유토피아」”/붕괴의 시기ㆍ방법만 남아/교황

    【프라하 AP 로이터 연합】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1일 공산주의는 언제나 실패로 돌아가도록 운명지어졌던 「비극적 유토피아」라고 선언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날 민주화개혁이 진행중인 체코슬로바키아 수도 프라하에 도착한 뒤 공산주의에 대한 유일한 의문점은 「언제 어떻게」붕괴하느냐에 관한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체코슬로바키아와 이곳 교회를 축복하기 위해 이틀간의 일정으로 체코를 방문한 교황은 중부유럽과 동구권국가들의 생명은 그들의 정신적 전통뿐 아니라 오늘날의 필요에도 부합하지 않는 「유물론적 이데올로기의 폭력적 적용」으로 여러가지면에서 반신불수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동유럽은 과거 공산주의의 상처로부터 정치ㆍ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치유돼야 한다고 말했다. 요한 바오로 2세를 영접하기 위해 공항에 나온 바클라프 하벨 대통령은 『불과 6개월전에 국가의 적으로 간주돼 감옥에 갇혀있던 사람이 대통령으로서 지금 교황을 영접하고 있다』고 말하고 『나는 하나의 기적에 참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집없는 일가」의 애끓는 유언/육철수 사회부기자(현장)

    ◎“서민울리는 경제 정책에 비애” 11일 상오 서울 강동구 영암병원 영안실에는 30대후반의 아주머니 7∼8명이 연신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오른 전세값을 마련하지 못해 『서민의 비애를 느낀다』는 유서를 남기고 10일 자살한 엄승욱씨(40·부동산중개소 직원·강동구천호1동32의4)일가족 4명의 빈소에는 「서민의 비애」를 아는지 모르는지 향연만 무심히 타오르고 있었다. 엄씨 가족은 지난해 10월부터 황경렬씨(50)집 반지하 4평짜리 단칸방에서 보증금 50만원·월세9만원의 셋방살림을 했지만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이들의 단란한 가정에 죽음의 먹구름이 드리운 것은 지난3월말. 집주인으로부터 증축을 위해 방을 비워줘야 되겠다는 독촉을 받고 부터였다. 엄씨가 갖고 있는 재산이라고는 부동산중개업관계로 고객을 안내하기 위해 월부로 산 프레스토승용차 1대와 50여만원이 저금된 예금통장이 고작이었다. 이 돈으로 이사할 처지도,전세를 구할 수도 없었다. 엄씨는 실의의 나날을 보내다 끝내 일가족동반자살이라는 끔찍한 길을 택하고야 말았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엄씨부부는 부모에게 남긴,눈물로 쓴 유서에 이렇게 적고 있었다. 『주님께서 현숙한 처녀를 어머님 눈에 띄게 하셔서 좋은 아내를 주셨고 귀여운 남매까지 선물로 주시는 축복을 허락하셨다.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 가족인가. 그러나 한가지,다만 한가지 남들처럼 돈 잘버는 재주만은 주시지 않으셨다…(중략)…아버지때부터 시작되어 오고 있는 가난을,오르는 집세도 충당할 수 없는 서민의 비애를 자식들에게는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고. 김씨부부의 유서에는 또 나라살림을 맡고 있는 위정자들에 대한 부탁도 있었다. 『정치하는 자들,특히 경제담당자들이 탁상공론으로 실시하는 경제정책마다 빗나가고 실패하는 우를 범하여 가난한 서민들의 목을 더이상 조르지 않도록 그들에게 능력과 지혜를 주시어서 없는자들의 절망과 좌절이 계속되지 않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 봄날,회심곡을 들으며/송정숙 논설위원(서울칼럼)

    「…어머님전 살을 빌고,아버님전 뼈를 받고 일곱 칠성님전 명을 받고 제석님전에 복을 빌어 석달만에 피를 모으고 여섯달만에 육신이 생겨 열달 십삭을 고이 지내 이내 육신탄생을 하니…」 봄기운이 습기처럼 배어오는 3월 초순의 어느 하오에 KBS FM이 내보내는 회심곡을 들었다. 회심곡은 들을 때마다 좋다. 특히 김영임의 창으로 듣는 회심곡은 유난히 좋다. 심장이 저려오는 듯한 통증이 불효의 회한을 아릿아릿하게 자극한다. 그 독특한 감성에 휩싸여 한곡을 다 듣고나면 통곡을 하고 난뒤처럼 개운해진다. 노래의 골자는 부모은중경이지만 그안에 인생의 허무함이 절절이 담겨있고 허망한 삶 가운데서도 무엇을 지키고 어떻게 살아감이 마땅한지를 굽이굽이 사설로 읊어낸다. 「…인간이 장차 백살을 다 산다해도 병든 날과 잠든 날이며 걱정근심다 제하면 단 사십을 못사는 인생,한번 아차 죽어지면 싹이 나느냐 움이 나느냐…명사십리 해당화는…동삼석달 죽었다가 명년삼월 봄이 오면 다시 피련마는 우리인생 한번가면 어느 시절 다시오나,세상만사 생각하면 묘창해지일요이라…」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아주아주 가끔 대문간에 서서 시주를 동냥하기 위해 회심곡을 부르는 스님이 있었다. 그런 스님이 올라치면 내어머니께서는 종그라기에 시주드릴 쌀을 퍼 드신채 대문안쪽에 서서 그냥 듣고만 계셨다. 얼른 대문을 열고 쌀을 주어 보내지 않고 하염없이 서서 꽹과리소리 섞인 중의 사설을 듣고만 계시는 어머니가 이상해서 뭐라고 말을 걸면 손가락을 세워 입을 가리며 「쉬잇」하는 눈짓으로 나무라시던 어머니. 그분이 그때 그토록 하염없이 들으시던 노래가 회심곡이라는 것과 그 노래의 구구절절에 담긴 말을,그 무렵의 그분 나이만큼 되어서야 비로서 이해하게 되었다. 덕담으로 시작하여 서리서리 넘친 회한을 풀어가다가 적덕을 당부하며 끝내는,창으로 부르는 회심곡을 FM라디오로 우연히 만나면 횡재라도 한것처럼 반갑다. 최종민교수의 잔잔하고 실속있는 해설이 곁들인 KBS FM의 국악시간에 만나면 특별히 더 기쁜마음이 든다. 그럴때면 대문기둥에 기대어 서셔서 떠돌이 탁발승이 들려주던 회심곡에 넋을 뺏기곤 하시던 어머니의 자태와 내음이 어김없이 코끝에 되살아난다. 그 영원처럼 깊은 정서가,그다지 오래 잊혀졌다가 되살아나 생생하게 전해 온다는 일이 신기하다. 그러고보면,스스로 회임을 하고 출산을 하고,가슴에 아이를 품은채 외경과 희열을 교감하는 수유기를 경험한 뒤에사 비로소 회심곡에 귀가 틔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 노래를 들을때마다 심장이 저릿해오는 한편으로 유선에 아릿아릿한 통증이 전해오는 것도 번번이 경험하는 일이다. 이 통증은 산모시절 젖으로 아기를 키울때 체험한 기억의 잔재다. 집에 두고나온 아이가 불현듯 생각나면 조건반사로 유선은 부풀고 바늘로 찌르는듯한 통증이 온몸을 진저리치게 한다. 그러는 순간에 돌아나온 젖은 흥건하게 앞섶을 적신다. 모체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에도,아기가 배고플 시간이 되면 유선은 제가 먼저 돌아서 통증으로 신호를 보낸다. 『젖먹일 시간인데 어미가 무얼 하느냐!』고 호령하는 듯한 신호. 모유를 말할때 사람들은,인공의 조제유는 따를수 없는 「성분」을 운위하지만,수유하는 모자가 함께 지니는 정서는,그까짓 무기질의 「성분」만으로 평가할수 없는 무궁한 것을 내포하고 있다. 아기의 배고픔을,바늘로 찌르는 고통으로 함께하는 모체는,젖을 먹으며 눈맞추어주는 아기의 눈망울에서 신의 축복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사랑과 행복을 보상받는다. 그 죄없고 덞지않은 눈망울에서 생애에 오직 한번밖에 없을 듯한 구원의 실체를 경험한다. 아직은 인간의 말보다 신의 어휘를 더많이 기억하고 있을 듯한 아기와,어머니의 잠재능력은 그들만의 의사소통을 하고 그들만의 내음을 새겨둘지도 모른다. 엄마의 젖가슴에 코를 대고 익혀 두었던 내음이 자란뒤의 아이에게서 예술도 되고 철학도 잉태할 것이다. 먹물빛 장삼에 바라를 메고 고깔쓴 스님이 들려주는 회심곡을 대문기둥에 가려서서 다소곳이 듣고 계시던 어머니의 기억은 행주치마의 푸새냄새를 동반한다. 쉬기 직전의 숭늉냄새같은 푸새냄새를,새하얀 어머니의 행주치마는 늘 풍기고 있었다. 비디오아트를 창시한 한국인 백남준은 그의 예술의 원천을,『음력섣달 그믐밤의 애꾸무당』에서 비롯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그의 예술혼이 괴기서린 애꾸무당을 찾아갈때,그를 인도하는 것은 그의 어머니가 풍기던 소복의 푸새내음이었다고도 말했다. 시가와 친가로 이어진 수삼년의 상복의무가 오랜 세월의 소복으로 강요되었던 어머니의 치마폭에 기대어 푸닥거리 굿구경에 취해 잠들곤 하던 어린시절,푸새냄새는 그에게 배어졌고,천재가 자극받을 때마다 되살아났을 것이다. 고통과 희열로 거듭나는 모체의 길을 통과하고서야 어머니의 회심곡을 깨닫게 된 우매함이 부끄럽지만 그래도 그 깨달음이 다행하고 고맙다. 젊은이들이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나 한것처럼 어른을 우습게 여기고,그 지나온 세월을 능멸할때,회심곡 한곡은 위안이 된다. 멀쩡하고 깨끗하게 생긴 젊은이가 폭력이니 마약이니 하는 죄의 길에서 방황하다가 오랏줄에 묶여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것을 보노라면 서럽고 애닯은 마음에 회심곡이라도 한곡들으며 마음을 달래고 싶어진다. 단조롭고 지루하고 쟁쟁쟁 울리는 꽹과리의 금속성이 노래라기에는너무 무미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가을에 들으면 무상함을 달래주고 봄에 들으면 따스함을 전해준다. 꽃샘의 한기가 섶을 파고드는 봄날 해질녘에 반가운 내객처럼 찾아왔던 회심곡 한가락에서 우리가 지녀온 슬기를 확인한다.
  • 외언내언

    「동국여지승람」에는 탐라가 제주로 고쳐진 해를 고려 충열왕 21년으로 적어놓고 있다. 목사는 최서. 그랬건만 공민왕 11년 원나라에 예속시키기를 청하므로 원나라에서는 문아단불화란 자로써 탐라만호를 삼아 보냈다고 덧붙여 놓았다. 제주는 역시 탐라였던가. ◆같은 한자이지만 제주가 한자식 이름이라면 탐라는 우리 고유어 이름의 한자화. 그 밖의 탐미라ㆍ모라ㆍ탐부라ㆍ탐모라ㆍ빈라도ㆍ탐몰라ㆍ담라ㆍ보라… 등 여러 문헌의 기록들 또한 그것이다. 「나」나 「라」는 땅이나 나라를 일렀던 옛말이므로 라는 땅(나라). 탐은 돌담이 많아서의 「담」으로서 「담라=담나(라)」라는 설이 있다. 「딴모라→딴말(외딴마을)」이란 설도 있고(민세 안재홍). 그러나 『담ㆍ보ㆍ탐은 같은 음의 표기』로서 「섬나라」(연암 박지원)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대체 누가 여기를/아직도 섬이라 부르는가/누가 여기를 절해의 고도라 부르는가…』고 외치는 강통원 시인(제주대학 교수)의 「제주찬가」. 그의 외침은 이어진다. 『민족의 대지에/인류의 모든 언어와 목소리/영원한 찬미의 합창을 드높일/새로운 신화와/새로운 전설을 빚어내며/아시아와 유럽/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지상의 모든 인간들/누구나 한번씩은 흔들어 보고 싶은/축복과 영광의 깃발이 되어 펄럭인다…』. ◆『지상의 모든 인간들 영원한 찬미의 합창을 드높일 깃발…』로 발돋움 하는 제주,아니 탐라. 정부에서 「10개년 종합개발안」을 마련하여 하와이형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것이 아닌가. 이는 자연경관 중심이 아닌 위락시설 중심을 뜻하는 것. 그에 따라 아시아 주요 관광지와 항로ㆍ해로 연계개설도 추진할 요량이다. ◆슬며시 걱정되는 대목은 있다. 개발이란 이름아래 저질러진 수많은 훼손의 전철 때문. 더구나 위락시설 중심이라니 「기우」는 커진다. 제주는 그 자체가 통째로 하나의 문화재. 금 하나 긋는 데도 신중할 것만은 당부해 둔다.
  • 김영삼씨의 정적들/송정숙 논설위원(서울칼럼)

    지난 12일 밤 관훈토론회에는 김영삼 민자당최고위원이 등장했다. 관훈토론사상 5번씩이나 토론에 초청된 연사는 김씨가 처음이다. 그런데도 이날 저녁의 그는 「등장」했다는 말이 합당했다. 이날의 그는 자신있는 「승자」였다. 성숙하고 여유있고 그리고 당당하게 토론상대를 선도하였고 청중을 사로잡았다. 그의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 처음이다. 13일 청와대서 있었던 민자당최고위원 오찬자리에서는 김종필씨의 치통이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자리서 불쑥 김영삼씨가 『나는 어른이 애들처럼 볼거리를 앓는다』고 말해 폭소가 터졌다는 기사가 있었다. ­애들처럼 볼거리를 앓는 정치지도자. 그것은 김영삼씨의 인상과 부합된다. 정확치 못한 발음과 잘선택되지 못한 어휘ㆍ용어로 실수를 탕탕 하면서도 소년같은 순수함과 열정 때문에 장내는 따근따근하게 달아오르고 사람들은 긴장을 푼채 유쾌한 상태로 들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에게 「우군」이 되어주어야 할 것같은 친화력이 생기게하는 정치인이다. 그런 그였지만 12일 저녁의 관훈토론에서는 좀 달랐다. 대개의 질문자들이 그렇듯 불의의 습격으로 던지는 공을 그는 처음부터 늠름한 자세로 받아치웠다. 합당제의가 어느 때,어떤 경로로 누구에게서 왔는가를 물은 첫 질문에 쾌쾌히 대답을 한 것은 물론이고 질문속에 담긴 묵시적인 속질문에까지 미리 대답을 해치웠다. 『…토론에 부치지 않았다고 어떤분들은 말합니다만,솔직히 말해봅시다. 이런 가히 혁명적인 일을 만약에 토론에 부쳤더라면 합당은 실패했을 겝니다. 그래서 극비에 부치기로 노대통령과 둘이서 합의를 본 것입니다…』 이러 어조는 응어리를 쏘아 분쇄시키는 효력이 있었다. 잘 윤색된 현학적 논리보다 사람들은 이런 정직함에 약하다. 여유있는 미소로 「밀약설」을 일축하고 「고뇌로 지새운 나날」을 신념있게 강조했다. 이날 김영삼이라는 정치인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한가지 보탰다. 이땅의 정치인도 이제는 「정적의 관리」를 정착시키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정적이란 승리와 패배를 한몸에 지닌 표리이며 승리의 영광은 패배한 정적이 있음으로써 완성될 수 있다.정적이란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는 것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날 보여준 김영삼씨의 정적관은 변전을 거듭해온 한국정치의 또다른 축도였다. 우선 김대중씨의 대목에서 그는 여러번 「축복」이라는 말을 썼다. 『…내가 야당으로 남고 김대중씨가 바꿔 되었다면 나는 그를 위해 축복을 보냈을 것이다』고도 했고 『…김대중씨가 정치를 해 나가는데 있어 행운이 있기를 축복한다』고도 했다. 「정통야당」경쟁으로 지새우던 시절의 애증이 칡덩굴처럼 얽힌 라이벌에게서 축복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고 싶은 심경이 아마도 가장 간절한 감정인듯했다. 불과 몇달전까지도 『확실하게 종식시켜야 할 군정』의 일환이었던 노태우씨도 김영삼씨의 정적이었었다. 그를 동지로 맏아들인 「가히 혁명적인 변화」에 김영삼씨는 스스로 아주 개운한 뒷맛을 즐기는 것 같아 보였다. 『…노대통령은 알고 보니 매우 성실하고 솔직하고 능력있는 분이더라』는 말을 그는 거침없이 했고 노씨가 민정당의 간판을 내린 「영단」을 거듭거듭 칭송했다. 자신의 민주당 간판 내리기보다도 훨씬 강조된 의미를 두는 듯한 그 어투에는 계산속 없는 김영삼씨의 인품이 담겨 있었다. 12일의 관훈토론에서 그가 그의 옛모습을 그대로 기억나게 한 대목은 그의 또하나의 「정적」인 전두환씨 대목이었다. 화려한 승자가 되어 관대하고 사려깊은 정치지도자로 손색이 없던 그가 이 대목에서만은 느닷없이 옛날 목소리를 냈다. 『…아니 뭐,그 사람 연희동 사저로 온다느니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만 그게 말이나 됩니까. 본인이 국가에 헌납한다 해놓고 어딜 또 온다는 겁니까…』 소년스럽게 상기된 옛모습을 띤 그 모습은 아량있는 승자의 것과는 달랐다. 무장해제된 적장에게 발길질을 하는 것같은 추기가 느껴졌다. 「정통야당」이란 말에 집착했던 과거를 잘못으로 생각하고 세상에 영원히 야당하기 위한 정당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그. 『세상은 변하는데 죽어도 안변한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성숙한 말을 하게된 그가 전씨 대목에 이르러 이렇게 상혈하는 것은 아마도 품은 한이 아직도 삭지 않았음을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이 부분은 그의 승자적 금도에는 그늘을 만들었다. 옛날,한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가르치며 특히 큰 마음이기를 교육했다. 사나이다운 대범함과 큰 기량을 소망했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창밖에 눈이 펑펑 쏟아졌다. 어린 아들은 평소에 크게 놀기를 강조하던 아버지 교훈이 생각나서 눈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아,저 눈이 모두 솜이었으며 좋겠다…』쏟아지는 눈이 모두 솜이라니,그리하면 「큰 것」아닌가. 아버지는 아들의 그 말이 신통했다. 만족스러운 김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다그쳤다. 『…그래. 그 솜을 무엇에 쓰려느냐?』하고. 그러자 어린 아들은 대답했다. 『…쥐구멍을 막을까 한다』 전두환씨에게라면 김영삼씨는 이제 노여움의 정력도 소모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는 이제 김영삼씨와의 「정적시절」도 지나친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김영삼씨가 큰 정치의 왕도를 걷도록 기대한다. 정적과의 운명적 만남에서도 정치의 왕도는 빛나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그의 정치적 성과가 아름답게 완성되기를바란다. 정치인의 승리는 「좋은정치」를 전제로 이룩될 수 있다. 우리에게도 그것만이 희망을 주는 것이므로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 노대통령,양 김에 “동지” 호칭/창당 결의대회­축하연 주변

    ◎만장일치 박수로 안건 처리… 화합 과시/초청 받은 평민선 한 사람도 참석 안해 민주자유당은 9일 상ㆍ하오에 걸쳐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합당 수임기구 합동회의를 열어 창당을 결의한 뒤 축하연을 베풀고 거대여당의 공식 출범을 경축. ○…민자당은 이날 하오 6시부터 1시간여 동안 삼성동 종합무역전시관(KOEX)에서 노태우대통령을 비롯,김영삼ㆍ김종필최고위원 3명과 3부요인ㆍ국무위원ㆍ국회의원ㆍ대법관및 사회단체장ㆍ정계원로ㆍ일반인 등 3천여명이 참석한 매머드 축하연을 개최. 이날 행사장에는 25인조 대형브라스밴드가 경쾌한 배경음악을 연주했으며 공식행사에 앞서 30여분간 여흥프로를 마련,분위기를 돋웠다. 아나운서 황인용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여흥순서에서는 가수 김지애ㆍ유열ㆍ최진희씨 등이 우리 민요와 가요를 불렀으며 참석자들도 박수로써 이에 호응하는등 즐거운 분위기. 하오 6시30분 서울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잡고」가 배경음악으로 울려퍼지고 참석자들의 환호ㆍ박수가 터지는 가운데 노대통령등 3인 최고위원이 입장함으로써 공식행사가 시작. ○3천명 참석… 대성황 노최고위원이 이날 KOEX현관에 도착하자 전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3역이 영접,2층 로비로 함께 올라왔고 이곳에서는 두 김최고위원과 박태준최고위원대행 그리고 전민정의 남재희 채문식 윤길중 박준규 김정례 유학성 임방현씨,전민주의 김명윤 김재광 황명수 정상구씨,전공화의 백두진 전예용 이병희 구자춘 이종근씨 등이 도열해 있다가 노최고위원과 차례로 악수. 1노2김 최고위원은 나란히 손을 흔들며 행사장에 입장,헤드테이블에 자리했는데 이곳에는 이일규대법원장 강영훈총리와 정일권 신현확 이현재 전총리 등이 합석했으며 윤보선 최규하 두 전임대통령도 초청됐으나 와병,개인사정 등 이유로 불참. 이어 3인 최고위원이 차례로 축하인사말을 했으며 노최고위원은 축하인사를 통해 『우리의 현실과 먼 장래를 생각하고 구국의 큰 결단을 내려준 김영삼 김종필 두 동지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처음으로 「동지」 표현을 구사. 노최고위원은 『흑아니면 백이라는 우리의 정치풍토에서 이같은 용단(합당)이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우리는 알고 있다』며 『「작은 나」를 버리고 「대의의 길」을 택한 민정ㆍ민주ㆍ공화당에 몸담아온 모든 동지들의 희생적 헌신에 대해 나는 뜨거운 동지애를 보낸다』고 사의. 김종필최고위원은 즉석인사말에서 『노대통령은 외유내강하신 분으로 90년대 초석을 놓을 것이 확실하니 우리는 그분을 열심히 보좌하면 될 것』이라고 노대통령을 칭송. 인사말이 끝나자 박태준민정대표위원의 제의에 따라 참석자 전원이 건배를 통해 신당의 앞날을 축복했으며 이어 3인의 최고위원들은 각 테이블을 순방하면서 참석자들과 인사. 3인 최고위원들은 「희망의 나라로」가 연주되는 가운데 대회장을 떠나 이날 행사는 1시간20여분만에 종료. 이날 행사장에는 시루떡ㆍ순대 등 8도의 전통음식이 차려져 있었고 술도 막걸리로 준비,앞서 상오의 합동회의 분위기가 다소 딱딱했던 것과 달리 화기가 넘치기도. ○시루떡ㆍ막걸리 준비 이날 축하연에는 김대중총재등 평민당의원 전원도 초청받았으나 한명도 참석지 않았고 행사주최측은 참석자들에게 3인 최고위원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실크스카프를 선물. ○…이에 앞서 이날 상오 10시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합당 수임기구 합동회의는 민정 35ㆍ민주 46ㆍ공화 30명 등 1백11명의 성원위원중 1백6명의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예정된 식순에 따라 1시간25분동안 일사천리로 진행. 대회장에는 뒷면에 「민주 번영 통일의 시대로」라는 대형 플래카드 1개만 걸려 있었을 뿐 정치집회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형화환이나 꽃다발은 물론 정치구호 등이 적힌 피켓이 눈에 띄지 않아 이채. 사실상 민주자유당의 창당대회인 이날 회의는 아직 3당간의 이질감이 극복되지 않은 탓인지 다소 서먹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으며 의장단 선출에서 대표자선출ㆍ위임사항 의결 등 8건의 안건이 상정됐으나 이의제기 없이 박수로 제안내용을 추인. ○다소 서먹한 분위기 이날 회의에서 사회자(김덕룡의원)를 비롯,합당결과보고(박준병의원) 합당결의(김동규의원) 강령ㆍ기본정책 채택(김용환의원) 당헌의결(이승윤의원) 대표자선출(김용채의원) 창당선언문채택(김동영의원) 대국민 메시지채택(정동성의원) 위임사항의결(최각규의원)등 주요안건의 보고나 제안자는 모두 15인 통합추진위 소속 위원중에서 선발됐는데 이들은 보고나 제안설명에 앞서 합당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며 『만장일치로 통과시켜달라』고 요구하는등 합당결정과정 참가자로서 대회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 ○박 정무의 노고 위로 ○…대회참석자들은 이날 대회장입구에 마련된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대형모조지 1장에 차례로 사인을 한 뒤 입장. 대회장은 합당의 성격을 반영하기 위해 정당구분이나 명패없이 자리를 배치했으며 외유중인 정순덕의원과 오유방의원(이상 민정),최형우ㆍ문준식의원(이상 민주),반형식 민주당 경북도지부장(원외)등 5명이 불참. 이날 채택된 창당선언문과 대국민 메시지는 최재욱민정의원과 김학준대통령사회보좌역이 각각 초안을 작성했다고. ○…만세삼창과 함께 대회가 끝난 뒤 김영삼ㆍ김종필총재와 박태준대표는 단상에서 윤길중ㆍ채문식민정당고문과 김동영민주당부총재ㆍ이병희공화당부총재 등 3당 중진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받았으며 김영삼총재는 회의장을 나서면서 3당통합의 핵심인사인 박철언정무1장관에게 『수고 많이 했다』며 악수를 청해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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