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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 연말 권좌 공식 승계할듯/통일안보연구소가 내다본 북녘정정

    ◎“지극한 효심과시”… 김일성 3년상 치른뒤에/작년 33차례 공석 출현… 건강에 큰문제 없는듯 북한의 김정일은 오는 7월 김일성 3년상을 치른 뒤 연말쯤 권력을 공식승계할 것으로 전망된다.이같은 관측은 『3년상이 끝날 때까지는 아무 것도 않겠다』고 밝혔다는 본인의 의사표명과 지금까지 감지된 평양으로부터의 여러 징후,그리고 북한 고위관리들의 발언으로부터 도출된 것이다.동시에 김정일이 연말쯤 권력의 전면에 나설 것이란 예상은 지난해 4월로 5년 임기를 끝낸 채 존치되고 있는 최고인민회의의 비정상적 상황,지난 80년 이후 16년째 열리지 않고 있는 당대회 소집의 필요성 등 김일성 사후 일단 매듭을 짓고 넘어가야 할 산적한 요인으로부터 추론된 것이기도 하다. 김일성 사후 많은 북한 전문가는 김정일의 권력승계시점으로 94년 8·15,9·9절,10월10일 당창건기념일을 꼽았다.그러나 김정일은 94년을 그냥 보냈다.95년이 밝자 김정일의 전면등장시기에 대한 점치기가 다시 시작됐다.2월16일 김정일생일이 유력시됐는가 하면 4·15 김일성생일도꼽혔다.8·15,9·9절도 94년과 마찬가지로 거론됐다.하지만 9·9절도 아무 변화가 없는 가운데 지나자 10월10일 당창건 50주 기념일에 관심이 모아졌다.「혹시나」하고 지켜보았으나 결과는 「역시나」였다. 이처럼 김정일 전면등장시기에 대한 예상이 빗나가면서 조심스럽게 세를 얻기 시작한 게 3년상을 치른 후 전면에 나설 것이란 주장이다.김일성 사망후 김정일이 「얼굴 없는 통치」를 해온 이유 가운데 비교적 설득력을 가진 것으로 지적된 게 ▲3년상설(효자과시설) ▲김일성카리스마 활용설 ▲권력투쟁설 ▲노선갈등설 ▲건강이상설 등의 「5설」이다.그 가운데 3년상설은 김일성 3년상이 끝나는 7월까지 김정일이 노동당총비서·주석직 취임을 미룸으로써 주민에게 효심이 지극한 아들로 비쳐지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주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3년상설은 지난 94년 12월 부총리겸 외교부장인 김영남에 의해 맨먼저 언급된 바 있다.김영남은 김일성 사망후 입북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 차이퉁 대외정책담당 책임주필과 가진 회견에서 「동양적 정서」를 얘기하면서 3년상을 언급했다.이종옥 북한 부주석도 김정일이 3년상을 치른 뒤 주석직을 승계할 것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이종옥은 지난해 12월1일 일본 도카이(동해)TV와의 회견에서 부모가 죽으면 3년간 상을 치르는 것이 북한의 관습이라며 『김정일은 관직보다는 도덕을 중요시하는 혁명가로서 예의범절에 어긋나는 일은 안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정일의 군권장악과 관련,일부에서는 군경험이 없는 그의 군부장악에 문제가 있다고 관측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게 북한군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의 분석이다. 사실 김일성 사망후 일각에선 김일성 없는 북한 지도부가 크게 동요할 것으로 예상했다.그러나 최근 관계당국의 정세분석에서도 나타나듯이 김정일의 권력장악도는 매우 안정적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같은 주장은 김정일의 건강악화설에도 적용이 가능하다.김일성상중에 CNN­TV화면 등을 통해 비춰진 김정일의 모습은 필시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그것이었다.그러나 김정일은 95년 한햇동안 33차례이상 공석에 출현했을 뿐 아니라 휴전선부근 군부대시찰 등 장거리 현지지도도 여러차례 실시,언어장애 등 끊임없이 나돌고 있는 건강악화설이 그다지 신빙성이 없음을 보여주었다. 김정일의 권력승계시점을 점치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지난해 10월 대외경제협력위원회위원장 김정우가 『김정일비서가 결심만 하면 언제든 노동당총비서에 취임할 수 있다』고 한 발언은 권력공식승계가 전적으로 김정일 마음먹기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는 시사로 분석된다.따라서 김정일은 김일성 3년상을 치른 뒤 전주민의 축복속에 등극하는 가장 「화려한 시점」을 기다리고 있으며 그 시기는 추곡출하로 식량난이 웬만큼 해결되는 연말이 가장 유력시되고 있다.김정일의 연말 권력승계는 북한이 설정한 3차7개년계획의 조정기간(94∼95년)이 올해말로 끝난다는 사실로부터도 뒷받침되고 있다.또한 북·미 상호연락사무소가 상반기중 문을 열 경우 경수로협정체결과 함께 지도자로서의 역량과시용 호재로 들고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하반기 김정일의 전면등장 가능성은 더욱 굳어지고있다.
  • 1995년 지구촌/보스니아내전 종식·중동평화 “최대축복”

    ◎옴교 독가스 살포·불 연쇄폭탄테러로 “홍역”/각국의 부패권력자 「사정칼날」에 걸려 수난/일·사할린 대지진 등 천재지변 잦고 에볼라 등 전염병 창궐 인류 최악의 비극이라 할 2차대전이 끝나고 인류의 평화를 위해 유엔이 창설된지 50년이 된 95년.이같은 의미를 되새기기라도 하듯 지구촌은 평화를 향한 두가지 중요한 걸음을 내디뎠다.오랜 분쟁의 대명사 중동에서 평화의 기운이 무르익기 시작했고 2차대전 이후 유럽 최악의 비극이라는 보스니아 내전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냉전종식 이후 불거지고 있는 민족간·종교간 갈등의 대표적 전형이라 할 보스니아내전은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25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채 3년반만에 분쟁 종식의 돌파구를 찾았다.또 이츠하크 라빈 전총리가 암살되는 희생을 치르기는 했지만 팔레스타인 자치협정이 이행에 들어섬으로써 베들레헴이 팔레스타인에 넘겨지는 등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해묵은 분쟁이 하나둘씩 타결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이와 함께 요르단과오만 등 주변 아랍국들과 이스라엘간의 분위기도 과거의 적대일변도에서 벗어나 공존을 모색하는 동반자의 길로 접어드는 조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북아일랜드에서의 해묵은 분쟁 역시 95년 한해를 통해 해결의 발판을 더욱 공고히 다지는 등 95년 한해 동안 지구상의 해묵은 많은 분쟁들이 타결의 실마리를 찾아 인류는 평화진전을 위해 많은 것을 기록할 수 있었다. ○르완다 난민 대학살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게 마련.인류의 역사가 늘 그래왔듯이 95년도 전쟁과 평화가 교차할 수밖에 없었다.보스니아와 체첸에서의 끝없는 유혈분쟁 소식이 1년 내내 끊이지 않았다.르완다에선 정부군이 난민수용소를 공격,2천여명을 사살하는 학살극이 빚어졌다.또 중국이 핵실험을 실시한데 이어 프랑스마저 일련의 핵실험을 재개,타히티에서 반프랑스 유혈폭동이 며칠째 계속되는 등 핵문제를 둘러싸고 긴장이 계속됐다. 95년에는 또 일본에서 발생한 옴진리교의 독가스 살포사건,미국 오클라호마에서 벌어진 연방정부청사 폭탄테러와 프랑스에서의 연쇄 폭탄테러등 테러가 유난히 극성을 부려 사람들의 마음에서 불안이 사라지지 않게 했다.게다가 5천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일본 고베에서의 대지진과 2천명 가까운 사망자를 낸 사할린 네프테고르스크에서의 지진,유럽지역을 휩쓴 폭우과 폭설 등 천재지변마저 잦아 불안한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졸이게 했다.그런가 하면 에볼라 바이러스,살 파먹는 괴질 등 낯선 전염병들은 물론 콜레라같은 오랜 전염병들이 다시 창궐해 인류를 긴장시켰다. ○핵문제로 긴장 계속 새해 벽두(2일) 요르단강 서안 점령지구에서의 유태인 정착촌 확대를 선언,평화에의 희망에 불을 지폈던 라빈 전이스라엘총리는 중동평화의 실현을 눈앞에 두고 극우 유태주의자의 총탄에 쓰러짐으로써 세계인들에게 아픔을 주었다.또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대통령도 이디오피아를 방문하던 중 무장괴한들로부터 암살 기도를 받아 황급히 이집트로 되돌아갔고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그루지아대통령 역시 간신히 암살을 모면하는 등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암살 기도도 끊이지 않았다. 한편 95년 1월1일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으로 예고된 세계의 경제대전은 미·일 자동차분쟁을 둘러싸고 미국이 일본에 대해 1백%의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등 세계는 이제 치열한 경쟁과 경제전쟁의 시대로 바뀌었음을 실감나게 했다.WTO 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국과 유럽연합 등은 WTO 제소라는 위협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제몫 챙기기에 열중했고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많은 나라들은 제몫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게 됐다. 경제적 측면에선 95년 일본 엔화의 초강세와 달러화의 약세가 가져온 파장이 1년 내내 계속됐다.한때 1달러당 80엔대 선까지 올라가는 등 끝이 없어 보이던 엔화의 강세는 현재 1달러당 1백엔을 조금 넘는 선에서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미국의 경제상황에 따라 언제 다시 불거질지 모르는 세계경제의 불발탄과 같은 위험을 안고 있다. ○엔화강세 달러약세 95년 세계경제의 또다른 뚜렷한 추세는 블록화 현상이 가속화했다는 점이다.아직 완전한 실현을 이루기까지는 극복해야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유럽 7개국간 국경통제를 해제하는 쉥겐조약이 발효되고 마드리드 유럽연합 정상회담에서 단일통화의 이름이 유로로 결정되는 등 유럽통합은 발빠른 움직임을 보여주기 시작했다.이에 맞서 아세안의 지역경제화,남미 등지에서의 지역경제화 등이 활발히 거론되고 그 실현을 위한 발걸음을 착실히 내디딘 한해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사회주의에서 벗어나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러시아와 폴란드 등 몇몇 과거 공산주의 나라들은 이같은 치열한 경쟁의 와중에서 개혁의 성과가 미미한데 따른 국민들의 불만이 『그래도 옛날이 좋았다』는 과거로의 회귀와 연결되면서 다시 공산당이 득세하는 풍조를 나타냈다.폴란드의 민주화를 이끈 영웅 레흐 바웬사 대통령은 공산당의 거센 바람에 밀려 알렉산데르 크바스니예프스키에게 대통령의 자리를 내주어야 했고 러시아에서는 주가노프의 공산당이 제1당으로 부상,좌경화의 바람을 더욱 거세게 했다. ○러·파 공산당 득세 95년 한국이 두 전직대통령의 비리 처단과 과거청산 문제로 떠들썩했던 것처럼 지구촌 곳곳에서도 부패한 권력자들이 법망의 그물에 걸려 수난을 당했다.이탈리아에서는 줄리오 안드레오티 전이탈리아총리가 마피아와 연루된 혐의로 법정에서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외에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총리 등 3명의 전직총리가 법정에 서게 됐다.한때 멕시코 경제개혁을 이끌어 칭송받았던 카를로스 살리나스 전멕시코대통령은 자신과 가족들의 폭넓은 비리가 파헤쳐지면서 부인과 자녀들을 데리고 미국으로의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중국에선 최대의 부정·부패사건이라고 일컬어지는 왕보삼 전북경 부시장의 자살사건으로 대대적인 반부패 숙정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빌리 클라스 나토 사무총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사임 압력을 받아오다 끝내 불명예퇴진하기도 했다. 한편 과거 군사독재 시절 수많은 실종자들을 낳는 등 어두운 기억의 상처 속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칠레 등 남미국가들에서는 참다운 과거청산 없이는 올바른 미래를 건설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군사독재 시절의 어두운 과거를 씻기 위한 노력이 활발히 진행됐다.이같은 부패단절과 과거청산의 움직임은 같은 잘못을 다시 저지르지 못하도록 방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인류를 위한 밝은 조짐으로 중동과 보스니아에서의 평화 회복 움직임 못지 않게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일본(옴진리교의 독가스 살포 사건)과 미국(오클라호마 연방정부청사 폭파 사건)에서 벌어진 두가지 테러사건은 또다른 측면에서 인류의 희망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었다.정치와 경제 두측면에서 모두 풍요로움을 자랑하는 두나라에서 발생한 테러는 일본의 경우 신흥종교의 위험성을,미국의 경우 무정부적 극우주의자들의 위험성을 일깨우면서 현대의 물질문명 속에서 목표를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잘못하면 어떤 위험 속으로 빠져들 수 있을지에 대해 경각심을 부르게 한 사건이었다. 이등휘 대만총통의 미국방문으로 야기된 미·중국,중·대만간의 갈등은 중국의 대만 무력침공 위협으로까지 이어지면서 동북아 정세에 긴장을 높여주었다.여기에 중국에 대한 반환이 1년 앞으로 다가옴으로써 야기되고 있는 홍콩의 불안,홍수피해에 따른 기근으로 식량폭동설까지 나도는 북한의 상황 악화 등이 겹쳐 동북아 정세는 극도로 혼미해졌다. 보스니아와 중동에서의 평화는 결국 미국의 적극적인 중재 아래 이뤄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이는 내년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클린턴 미대통령이 업적을 쌓기 위해 적극 매달렸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그러나 95년에 이룩한 몇가지 평화진전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은 저마다 자신의 몫만을 늘리기 위해 열심일 뿐 진실로 평화만을 위해 전념하고 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같다.정신적 지주를 잃은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 테러의 참담한 예를 보면 인류는 겉으로는 평화를 외치면서도 한발한발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도 한다. 96년 한해는 오직 평화와 축복만으로 가득찬 한해가 되기를 기원해보지만 과연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지…
  • 충현교회서 성탄 예배/김 대통령 일가

    김영삼 대통령은 성탄절인 25일 상오 부인 손명순여사,차남인 현철씨 부부 등 가족들과 함께 취임 전에 다니던 서울 강남구 역삼동 충현교회에서 성탄축하 예배에 참석했다. 김대통령은 상오 11시쯤 충현교회에 도착,이 교회 본당 1층 뒤편에 가족들과 나란히 앉아 1시간 동안 신도들과 함께 예배했다. 예배를 마친 뒤 김대통령은 이날 설교한 김창인목사를 비롯한 교회신도들과 인사를 교환했으며 신도들은 『함께 성탄예배를 드려 기쁘다』며 축복을 기원했다. 김대통령은 취임 이후 청와대에서 줄곧 가족예배를 봐왔으며 외부교회의 예배참석은 지난 93년과 지난해 성탄절 그리고 지난 10월에 이어 이번이 네번째다.
  • 베들레헴 성탄(외언내언)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남쪽 10여㎞,사해까지 계속되는 「유다의 광야의 끝」에 있다.인구 4만5천여의 보잘것없는 소도시. 그러나 광야에 버려진 황막한 베들레헴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한 곳인 때문.동방박사 세사람이 별의 인도를 받아 당도했던 아기예수가 태어난 그곳에는 지금 「탄생지 교회」가 세워져 있다.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다.그리스도교도들의 영원한 성지.BC 994년 이스라엘왕국 제2대 왕 다윗이 태어난 곳도 바로 이곳이다. 2천여년 동안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이었던 이곳이 이스라엘에 병합된 것은 67년 「6일전쟁」때.28년 동안 이곳을 두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에는 끊임없는 전쟁이 계속돼왔다.이스라엘과 아랍세계간의 땅싸움 역사는 짧게는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한 48년부터 길게는 2천여년,근원적으로는 5천여년 전의 구약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토록 길고긴 세월 동안 피맺힌 땅인 베들레헴이 평화적으로 팔레스타인 수중으로 넘어가게 된것은 지난 9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에체결된 2단계 자치확대협정 때문. 중동평화의 획기적인 이정표로 평가된 이 협정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은 2천여년 살아온 베들레헴을 다시 차지하게 된것이다.그러나 이 협정을 주도했던 이스라엘의 라빈총리는 베들레헴을 넘겨준 데 불만을 품은 이스라엘 극우세력에 의해 2개월후 피살되는 또 한차례 비극적인 피의 역사를 기록했다. 이 평화협정에 따라 베들레헴 행정권이 팔레스타인에 이양된 게 성탄절 불과 4일전인 지난 21일.베들레헴의 올해 성탄절은 그래서 특별했다.이날 팔레스타인인들은 거리에 몰려나와 춤추고 노래하며 성지해방을 경축했다. 예수의 성지가 팔레스타인 행정구역에 편입된게 종교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이해관계에 따라 평가가 다를 것이다.그러나 누천년 싸워온 땅이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이양됐다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축복일 것이다.
  • 성탄절 전국 한파/대도시 도심 한산 “차분한 연휴”

    ◎스키장·온천엔 행락인파 북적/고속도 빙판길 많아 교통 혼잡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전국의 유명산과 스키장·온천 등에는 올 마지막 연휴를 즐기려는 인파가 몰려 크게 붐볐다.서울 등 대도시의 도심은 연휴인파가 빠져나간데다 강추위마저 몰아닥쳐 한산한 모습이었다. ▷날씨◁ 성탄절인 25일은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0도를 기록하는 등 경기·충청·강원 지방의 최저기온이 영하 10도 밑으로 내려가 올들어 가장 추운 날씨가 될 전망이다. 기상청은 24일 『찬 대륙성 고기압의 영향으로 25일 아침 기온이 이날보다 더 떨어지겠다』면서 『이같은 추위가 당분간 계속되겠다』고 예보했다. ▷도심◁ 여느해보다도 차분한 성탄연휴가 이어졌다.일부 시민들은 이날 자정 명동성당 등 천주교회와 영락교회 등 개신교회에서 열린 미사 및 예배에 참석,성탄절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며 새해소망을 빌었다. 김수환 추기경의 집전으로 명동성당에서 열린 성탄전야미사에는 1천5백여명의 신도가 참석,이 땅에 영광과 축복이 깃들기를 한마음으로 기원했다.김추기경은 성탄메시지를 통해 『현재 전직 대통령의 구속이라는 큰 시련에 직면하고 있으나 이는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빛나는 미래를 향해 새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라면서 『성탄에 오신 예수의 마음으로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되 사랑과 용서를 베푸는 마음으로 오늘을 보자』고 강론했다. 유명백화점이 밀집된 시내 중심가는 이날 밤 연말경기를 찾아볼수 없을 정도로 비교적 한산했으나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압구정동과 강남역·신촌·홍익대앞·대학로 등에는 연인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관광지◁ 강원도내 스키장과 설악산 등에는 겨울 스포츠를 즐기려는 10만여명의 관광객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평창군 용평리조트에 2만5천명의 스키어 등이 찾은 것을 비롯 알프스·홍천대명스키장과 올들어 처음 문을 연 현대성우·삼성휘닉스 스키장 등 도내 5개 대형 스키장에는 9만여명이 찾아 겨울 설원을 누볐다.설악산과 경포대·낙산사 등에도 2만5천여명이 찾아와 겨울 산과 바다의 정취를 만끽했다. 영동고속도로와 도내 스키장으로 이어지는 주요도로,설악산으로 이어지는 44번 국도 등은 23일 하오부터 쏟아진 인파로 정체현상이 풀리지 않았다.평소 4시간 거리인 서울∼강릉까지가 7시간 이상 걸렸다. 서울 근교의 포천 베어스타운·용인 양지리조트·남양주 천마산스키장에는 1만5천여명이,전북 무주리조트에도 예년보다 1만명이 많은 3만여명이 몰려들어 크게 붐볐다. ▷고속도로◁ 23일에 이어 스키장과 온천 등을 찾는 차량들로 하루 종일 몸살을 앓았다. 이날 새벽에 눈이 내린 서울·경기·강원지방과 하오부터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호남지방은 일부구간에서 빙판길 혼잡을 빚었다. 한국도로공사측은 『23일부터 이틀동안 40여만대가 서울을 빠져나갔으며 연휴 마지막 날인 25일 하오부터는 본격적인 귀경전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 총장으로 마지막 휴일… 이 총리 내정자

    ◎서울대 수위장 아들 주례 서고…/세인관심 아랑곳 않고 평상활동/“학교발전위해 모두 협력” 당부도 국무총리 취임을 하루 앞둔 17일 하오1시 서울대 이수성 총장은 교내 교수회관 대강당에 있은 30년 지기 김성염씨(59·본부수위장)아들 대영씨(30·세계물산직원)의 주례를 서는 것으로 총장으로서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18일 국회본회의에서 임명동의를 받게될 국무총리내정자로 주례에 나선 이총장은 세인의 관심에 아랑곳하지 않고 예나 다름없이 법학자의 꼿꼿함을 지닌채 일상심을 잃지 않았다.새출발하는 「젊은 한쌍」의 앞날을 축복하는 덕담으로 시작해 신랑·신부를 위한 결혼생활의 조언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는 등 총리내정자로서의 모습은 어디 한곳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날 이총장의 주례는 지난 67년 법대교수로 부임했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김씨의 차남 대영씨가 교수회관에서 결혼식을 가진다는 것을 알고 김씨에게 자청해 주례를 서게 된 것.이총장은 평소 김씨를 만날 때마다 건강·집안형편·자녀문제등에 관해 소탈하게 얘기를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신랑·신부측의 하객과 교수·학생등 4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0여분동안 진행된 이날 결혼식에서 이총장은 『30년이상 이 학교에서 성실히 일해온 아버지의 모범됨을 항상 기억속에 넣고 있다』며 『젊은 패기와 부지런함으로 부친과 같이 올바르게 이 세상을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새출발하는 신랑·신부는 힘든 세상에서 항상 포용력을 가지고 남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한뒤 『모든 것을 작게 보고 생각하는 소인이 되지 말고 넓고 크게 생각하는 대인이 됐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그는 끝으로 『학교는 교수와 학생만이 있어서 되는 것은 아니며 교수·학생·교직원 등 모든 구성원이 함께 학교를 만들어가야 한다』며 총장으로서의 마지막 당부를 하기도 했다. 신의와 도덕성을 중시하는 소신있는 법학자로 한평생을 살아온 이총장.학문적 업적뿐만 아니라 보직교수시절 학생들과의 만남에 얽힌 숱한 일화는 그가살아온 인생철학을 대변하고 있다고 주변에서는 말한다.그런 이총장을 두고 한 하객은 이날 주례에서 새 출발하는 신랑·신부에게 부탁한 『포용력을 가지고 넓게 생각하라』는 조언은 어찌 보면 이들 부부처럼 자신이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험난한 「형극의 길」을 준비하며 마음속 깊숙이 각인시킨 또다른 독백처럼 들렸다고 말했다.
  • 한빛탑 「성탄트리」 점등/세계 최대규모 60여일간 불밝혀

    ◎높이 93m… 7만개 등으로 장식 세계에서 가장 큰 크리스마스 트리가 불을 밝혔다. 엑스포과학공원 운영업체인 엑스피아월드는 1일 하오 6시 대전시 유성구 도룡동 엑스포 과학공원내 한빛탑 앞에서 「한빛트리」점등식을 가졌다. 한빛탑에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를 설치해 만든 이 트리의 점등식에는 꽃동네 오웅진 신부·홍선기 대전시장 등 각계 인사와 대전과 충남·북지역 불우이웃 등 1천여명이 참석해 화려한 점등식 장면을 지켜봤다. 이 트리는 한빛탑의 높이와 같은 93m에 지름 21m와 면적 1백5평에 달해 세계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내년 1월 31일까지 60여일간 불을 밝힐 한빛트리는 길이만 10.5㎞에 이르는 전선에 7만여개의 등이 빛을 뿜어 환상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날 점등식은 불이 켜지는 순간 한빛탑 전망대에서 3명의 산타클로스가 축복의 의미를 담은 꽃가루를 뿌리면서 내려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했다.
  • 정보통신 기술자립의 길/서정욱 한국이동통신 사장(시론)

    TDX(전전자교환기)가 우리 공중통신시스템의 주력기종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되기까지 주변의 냉소와 함께 국산개발의 고통을 이겨낸 TDX의 젊은 주역들에게 찬사를 보낸다.바로 이들이 CDMA(개인휴대통신의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의 개발에도 기여하고 있으니 또한 자랑스럽다. 1993년 가을 TDX의 젊은 주역들은 방향을 잃고 헤매는 CDMA사업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이들은 TDX사업 때문에 곤욕을 치른 일이 있지만 이번은 그 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우선 CDMA 요소기술을 보유한 외국업체,사업을 관리하던 연구소,국내생산업체 등을 돌아보고 개발목표나 사업자의 요구가 분명치 않은등 연구개발및 사업관리에 어려움이 있음을 알게 됐다. 우선 CDMA로 서비스를 제공할 사업자에게 요구사항을 제시토록 하고 당국에 진실을 알려 사업을 바로잡기로 했다.연구소의 능력에 회의적인 생산업체의 입장을 이해하고 연구소보다 앞선 생산업체의 아이디어가 있으면 수용했다.그리고 연구소만 따라갈 수밖에 없던 후발 생산업체는 특별관리를 하며,걸림돌이 되는 요인들을 제거하고 경쟁을 통해 생산업체들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데 힘썼다. 사업자의 기본요구사항을 1993년 말 생산업체들에게 전달하고 개발의 방향을 제시했다.이에 힘입어 생산업체들은 각자 개발체제의 정비에 들어갔다.사업자와 생산업체들은 여러 차례의 협의를 거쳐 규격을 확정하고,1994년 여름 생산업체에서 개발된 CDMA 시스템에 대한 기초 시험평가를 마친 후 1994년 가을부터 상용시험기를 사업자의 시설내에 설치하고 본격적인 시스템 시험평가에 들어갔다. 1995년초부터 상용시험에 들어가 기본기능을 확인한 다음 각 생산업체의 시스템및 유선전화망간의 연동시험을 했다.그후 생산업체들은 각자 마케팅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CDMA는 남이 완성해 놓은 상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외국에서 요소기술을 도입해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다.따라서 피가 마르는 창조의 고통을 상품을 생산할 생산업체와 서비스를 개발할 사업자가 함께 겪어야 한다.다행히도 TDX개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신과 기량면에서 훈련된 젊은 두뇌들이 있어 CDMA시스템의 개발및 상용화에서 선진국과 경쟁을 하게 된 것이다. 어떤 기술이라도 상품으로 개발해서 서비스로 제공하려면 마치 출산의 고통과 성장의 고통처럼 온갖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이다.상용화를 목전에 두고 있는 우리의 CDMA도 생산업체와 사업자가 하나가 되지 않으면 새로운 서비스로 발전하지 못한다. TDX,주전산기,CDMA 등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확신하는 바는 새로운 기술을 채택해서 상용화하려면,비록 그것이 남이 발명한 것이라도 창조에 못지않은 고통을 겪고 혼을 불어넣어야 성공하며,서비스의 안정·확대에는 생산업체,사업자,이용자가 삼위일체를 이뤄야 한다는 사실이다.CDMA의 원천기술을 개발한 선진국이라도 이러한 여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상용화에는 뒤처질 수 있다. CDMA 개발의 주역들은 밤낮으로,주말과 명절도 잊고 연구개발,시험평가,품질보증,생산관리,시설 및 운용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이들은 또한 기술·정보 및 인력을 공유하면서 시간단축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한 CDMA의 젊은이에게 『되는 거냐?』물었더니,그는 『내 인생은 연습이 아니다.안될 일 하느라 둘도 없는 내 소중한 인생을 바치겠는가.안되는 일도 되도록 하는 것이 연구개발이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무리 훌륭한 자질의 기술자들이라도 팀웍이 되지 않으면 연구개발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아무리 훌륭한 생산업체라도 미지의 미지에 도전하는 연구개발,시험평가,품질보증,생산,판매,시스템 보완 및 개량에 성공하려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순기관리(life­cycle management)를 해야 한다.특히 서비스를 제공할 사업자의 역할은 절대적이다.정보통신사업을 학습단계없이 황금의 알을 낳는 거위로만 알고 있으면 안된다.TDX도 사실은 사후관리를 잘 해야 다음 세대의 기술로 성장하는 것이며,CDMA 역시 확신을 갖고 한국풍토에 맞는 연구개발 및 사업관리를 해야 미래의 공중육상이동통신시스템(PPLMTS)으로 발전한다. 정보통신시스템의 국산개발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운 연구개발을 해야 하는가를 터득해야 한다.기술자립의 태세를 갖추어 놓지 않고 이용자에게 고품질의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는 없다.그리고 통신주권과 시장을 수호할 수도 없으며,쓸모있는 기술인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문전옥답이라도 농사를 지은 경험이 없거나 게으른 사람은 한 알의 나락도 수확할 수 없고,황야의 돌밭이나 버려진 천수답에도 농사를 지을 줄 알고 정성을 들이면 추수감사의 축복을 받는다.이것이 바로 정보통신 기술자립의 정신이요 길이다.
  • 안보리 이사국 진출을 보고/레너드 스펙터(지구촌 칼럼)

    ◎국제무대서 막강해진 한국의 영향력/북핵 사찰·UN총장 인선 등 현안해결에 큰 역할 해낼것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피선으로 한국은 국제무대에서 세계만방의 눈길을 모을 기회가 크게 증대할 것이 틀림없다.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경제분야의 우월성에다 이제 국제정치사안에서 보다 큰 역할을 맡는다는 조화로운 보완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유엔가입 만 4년만의 이같은 선임은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축복과 존경을 분명하게 반영하는 것이다. 더구나 북한이 지난 91년 한국과 동시에 유엔회원국이 된 사실을 상기하면 한국의 새 지위는 남북한간의 명암을 강하게 대비시켜준다.한국이 안보리 피선의 명예를 향수하는 사이 조금 관심 있는 관찰자에겐 국제사회의 바리새(천민)로 낙인찍힌 북한의 신세가 금방 떠오른다.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른 사찰조항을 지금까지도 어기고 있으며 18개월 전엔 유엔의 경제봉쇄 일보직전까지 몰렸었다. 실제로 이 새 지위가 한국에 부여할 가장 값진 혜택중의 하나는 북한이 미국과 맺은 기본합의를 깨는 불상사가 일어날 때 확연히 드러날 수 있다.만약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미국은 지난 94년5월에 그랬듯이 북한에 대한 유엔의 경제봉쇄령을 안보리에 요청할 것이며 안보리 이사국으로서 한국은 94년 때보다 한국의 입장과 이익을 보다 강하고 충분히 반영시킬 수 있게 된다. 보다 시야를 넓혀 지금이 국제현안해결에서 안보리의 역할이 한층 증대되고 있는 때라는 사실도 한국의 안보리 이사국 피선과 관련해 짚어볼 대목이다.어느 때보다 많은 곳에서 평화유지와 구호·중재의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내용면에서도 안보리는 앞으로 몇개월간 전통적 평화유지군에서 신속대응체제로 군사역할을 전환하는 문제를 숙고한다. 보스니아와 여러 분쟁첨예화지역에 대한 군사개입 등 장래 수십년동안의 전례로 새겨질 난제와 유엔 안보리가 씨름할 이 중요한 때 한국의 당당한 목소리가 들릴 것이며 한국의 표향방에 세계가 주목할 것이다. 한국은 또 안보리에 회부될 여러 중대한 지역이슈의 결정에 남다른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를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예를 들어 핵확산사안에 관해 독특한 경험과 민감한 반응을 보여온 한국은 이라크 경제봉쇄해제 논의에서 주도적 역할을 자연스레 떠맡을 것이다.미국은 지난 91년 걸프전 종전시 안보리가 명시한 조건을 이라크가 아직 완전하게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의 해제를 반대하고 있다.반면 이라크와의 경제협력에 커다란 관심을 지니고 있는 프랑스와 러시아는 대량살상무기 등 이라크의 특별무기프로그램 등에 아직 해명되지 않는 의문점이 남아 있긴 하지만 봉쇄를 완화해주자는 입장이다.또 다른 핵확산사안으로서 이번에 한국과 동시에 이사국에 피선된 이집트는 중동지역에 핵자유지대의 설정에 한국의 지지를 요청할 수 있다. 이어 안보리 현안의 하나로 러시아가 현재 「근린국」으로 부르고 있는 옛소련공화국 출신 국가에 대한 평화유지활동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고자 하는 러시아의 주장을 들 수 있다.그러나 안보리는 이 지역에서 러시아의 독주를 허용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한국은 이 문제에 관해 상당히 조심스러운 행보를 해야 한다.중요한 교역상대로부상한 러시아와 적대하지 않으면서 안보리의 기존입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몇몇 유엔조직에 관한 난제도 안보리 앞에 놓여 있다.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사무총장의 현임기가 다할 때 제기될 사무총장인선도 중대현안이다.안보리는 후임자후보선정위에서 핵심역을 맡는다.부트로스 갈리총장은 연임이 가능하지만 미국은 이를 반대하는 입장이다.이 사실은 이 자리에 아시아인이 선정될 기회를 열어줄 수 있다.한국은 안보리 이사국으로서 아시아국가를 이끌고 이 가능성을 적극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안보리의 확대건도 큰 이슈다.일본과 독일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고자 열심이다.안보리 이사국신분으로서 한국은 원한다면 이같은 움직임에 상당한 제동을 걸 수 있다.일부 관측통은 한국이 같은 비상임이사국 피선국으로 독일의 상임이사국 지위획득을 싫어하는 유럽의 이탈리아와 연합전선을 펼 수 있다고 본다.5∼10개국의 「반상임」이사국 신설 등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는 안보리 확대논의에서 한국은 뚜렷한 영향력을 결집할 수 있다. 뭐니뭐니해도 한국은 안보리 이사국 피선으로 국제무대에서 미국과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재조정해야 한다는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한다.이번에 물러나는 이사국중에선 아르헨티나가 미국의 안보리혈맹으로서 역할을 다해왔다.한국과 미국의 오랜 맹방관계는 한국의 아르헨티나 대역론을 부각시킨다.그러나 한편으론 한국은 이제까지 여러번 유엔이란 국제무대에서 보다 독립적 자세를 견지하려는 태도를 뚜렷이 노정시켜왔다.상충될 수 있는 이러한 이해관계를 균형있게 처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특히 아시아와 관련된 사안에서 균형잡기가 어려울 것이다. 한국은 안보리 상승을 실컷 자축해 마땅하다.앞으로 2년동안 국제사회의 현안이 제각각 진행되면서 이 새 지위는 한국에게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와 국가적 입지를 격상시킬 터전을 제공할 것이다.
  • 웬 주례는?(송정숙 칼럼)

    처음으로 「주례」를 섰다.그랬더니 만나는 이마다 어쩐 일이냐고 인사다.입밖에 내서 말하는 사람보다 표정만 미묘해지는 사람이 더 많다.그 표정은 「별꼴이야,웬 주례는?」하는 것같기도 하다.더러는 여권신장의 일환쯤으로 보는 시각도 있고,유명인에 얹혀 「매스컴을 타려 했다」는 혐의도 갖는 것같다. 처음 조영남씨가 주례를 청해왔을 때는 다소 황당했다.그래서 첫마디에 『아이고 그걸 어떻게…』 서겠느냐며 얼굴을 돌렸다.그러다 다음 순간 이내 생각을 바꿨다.일생에 한번쯤 「이색경험 삼아」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하는 유혹을 느꼈고 그렇다면 「이번이 그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례란 주로 혼주가 정하게 마련이다.부모이게 마련인 혼주는 기성세대이므로 「여성주례」 같은 「이상한 짓」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그러니 기회 자체가 돌아오기 어렵다.또 주례란 주례를 서준 한쌍의 결혼생활의 성공에 대해서도 책임을 느껴야 한다.부담스러운 일이다.게다가 불난 호떡집 같은 결혼식장에서 혼자 근엄한 얼굴을 짓고 서서 지루하고 위선적인 주례사를 길게 늘어놓느라고 사람들 미움이나 사게 마련인 우리의 주례역할이 평소에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여자가 이 역할에서 제외되는 것이 서운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조영남씨가 청하는 주례역에서는 그런 것이 다 해결된 셈이다.주인공 자신이 파격적인 용기로 스스로 청해왔으며 10년이나 살던 부부이므로 새삼스럽게 책임질 것도 없을 것이다.게다가 결혼식도 자신의 전시회 개막을 위한 퍼포먼스삼아 한다니까 그 국적불명의 결혼의식과는 다를 것이다.그래서 청해온 지 이틀만에 적극적인 찬성을 해주었다. 그렇다면 조영남씨는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그때까지 서로 만난 적이 없다.다만 연전에 그에 대한 칼럼을 한편 쓴 적이 있다.거기에 그의 「이혼태도」에 대한 칭찬을 담은 적이 있었다.어느 TV에서 그가 자신의 이혼한 전부인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는 아주 담담하게 옛날 부인을 칭찬했다.그러면서 자신들의 가정이 깨지게 된 원인이 순전히 자신의 과오였음을 솔직하고 멈칫거림 없게 털어놓았다.그리고이혼 후 그가 가장 걱정스러웠던 일을 말했다.그것은 사랑하는 두 아들이 「아빠를 무시하고 안보려 하면 어쩌나」하는 일이었는데 너무나 다행스럽게 아이들은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그것은 전적으로 그 엄마인 전부인의 공이었음을 안다며 진정으로 고마워했다.그런 것을 칼럼에 담았었다. 이혼이란 결코 권장할 일은 못되지만 헤어진 아내나 자녀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괜찮은 이혼남」이라고 생각한다.저명인사 ㅅ씨는 혼외였던 여인에게 무리를 해가며 정식지위를 주었다.그리고는 그 기념으로 책을 내주고 축하해주면서 그때부터는 두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난 자녀「1남1녀」만을 공식화시키는 발언을 하고 다녔다.많은 사람이 전부인과 그 소생을 알고 있고 아버지의 작은댁 생활 때문에 그늘로 가려진 그 소생의 설움을 알고 있는 터라 그런 태도가 분노를 느끼게 했었다. 정치투사로 활약하던 어떤 작가의 경우도 있다.그가 해외에서의 어떤 정치적 사건에 개입된 뒤 그는 새로 만난 젊은 여인과 그 사이의 어린 아들만을은밀히 불러내어 화려한 해후를 했다.그에게는 이미 어려운 젊은 작가시절을 함께 하던 가족이 있었다.마감시간에 쫓긴 남편의 연재원고를 들고 진동한동 남의 전화 앞에서 원고를 대신 불러주던 그의 조강지처와 자녀들이다.그의 「화려하고 위대한 투사노릇」곁을 장식하고 있는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을 보노라면 이미 사춘기가 되었을 먼저 소생들의 다쳐졌을 마음이 안쓰럽게 기억되곤 했다. 그밖에도 그런 일은 많다.어른들의 위선과 증오 때문에 중간에서 오갈드는 자식들이 너무 안됐다.이혼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너무 흔해지는데 이혼에 대한 윤리나 미학 같은 것이 너무 빈곤한 것이다.그래서 쓴 글이다. 그는 방송에서 『내가 이런 말을 멋대로 지껄이고 다녀도 불평 없이 참아주는 내 사랑하는 새색씨가 고맙다』고도 말했다.그 말이 좋았다는 것도 글말미에 썼다.그 「새색씨」와의 사실혼 10년을 위한 주례라니 자격이 있지 않겠는가.「웬 주례는?」하고 떫은 표정을 짓는 사람이 있더라도 이건 할만한 일이었다. 그날 주례는 고 월탄 박종화 선생이 사랑하는 제자의 결혼주례때면 해주시던 대로 고천문을 홍지에 붓글씨로 써서 읽어주었다.사람의 축복만으로는 그 완성이 불안한 인륜지대사가 혼인이므로 하늘의 힘까지 빌리기 위함이었다.그의 옛가정의 구성원과 그의 새가정이 모두 행복하기를,주례의 권능으로 오래오래 빌어줄 생각이다.
  • 김 대통령 유엔연설문 전문

    ◎유엔 정상회의 정례화… 새 국제질서 창출을 존경하는 각국 정상,의장,사무총장,그리고 각국 대표 여러분. 지금 이 숭고한 전당에는 인류의 앞날에 대한 세계인의 소망과 기대가 넘치고 있습니다.나는 먼저 반세기전 두차례의 대전이 몰고온 절망과 좌절을 딛고 미래를 향한 희망과 용기로 유엔을 창설한 선각자들을 기리고자 합니다. 「보다 나은 세계」를 향한 그들의 이상은 이미 세계를 크게 바꾸었고 오늘의 우리 모두에게 계승되고 있습니다.냉전적 대립과 끊임없는 분쟁속에서도 인류가 이만큼 평화를 누릴 수 있었던 데에는 유엔의 공헌이 컸습니다.유엔은 또한 많은 신생국가들의 경제·사회개발을 지원하여 번영의 확산에도 이바지하였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평화유지와 인권신장,질병퇴치와 아동보호를 위해 헌신하는 유엔의 깃발이 모든 대륙 위에서 휘날리고 있습니다.이와같이 유엔은 지난 반세기 인류역사의 진전에 눈부신 기여를 해왔습니다. 나는 이 자리를 빌려 유엔헌장의 구현에 앞장서 온 모든 분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그러나우리의 기대가 모두 충족된 것은 아닙니다. 유엔창설자들이 구상했던 집단안보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대량살상무기의 확산,환경오염과 절대빈곤,테러와 범죄의 국제화등 심각한 문제들이 남아 있습니다.이러한 난제들은 인류가 공동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의장,세계는 격변하고 있습니다.정보화와 세계화의 새물결위에 국제질서가 바뀌고 있을 뿐 아니라 문명사적인 변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한 지역의 문제는 곧 세계의 문제로 직결되는 「세계공동체의 시대」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이러한 대변혁의 시대에 유엔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우리는 고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유엔 이외의 다른 대안을 생각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유엔이야말로 세계적 차원의 문제를 다룰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정통성있는 「다자협력의 장」이기 때문입니다.우리가 국제협력의 문을 닫고 저마다 민족지상주의와 국가이기주의를 추구한다면 이 지구촌의 장래는 실로 암담할 것입니다.유엔만이 21세기 세계공동체 시대를이끄는 중심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신념입니다. 의장,「변화와 개혁」은 역사발전의 원리입니다.변화는 성장의 수단이며 개혁은 발전의 양식입니다.이제 문명사적인 변혁에 창조적으로 적응하면서 새로운 국제질서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유엔의 「변화와 개혁」은 필수적입니다.그런 점에서 나는 유엔의 개혁을 위한 일련의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환영하면서 이에 관한 나의 견해를 밝힙니다. 첫째,유엔은 보다 효율화되고 민주화되어야 하며 안보리는 그 대표성이 강화되어야 합니다.특히 나는 유엔을 오랫동안 마비시켜온 거부권을 더이상 확대하지 말자는 많은 회원국들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둘째,유엔의 분쟁예방 기능이 강화되어야 합니다.나는 사무총장의 「평화를 위한 과제」가 적기에 제출되었으며 이에 많은 제안들이 채택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셋째,유엔은 경제·사회·환경등의 개발요구에 더욱 적극적으로 부응해야 합니다.참다운 세계평화와 안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경제·사회적인 갈등을 반드시 해소해야만 합니다. 넷째,유엔은 이제 인간을 우선하고 가정을 중시하는 활동을 적극화해야 합니다. 지난 3월의 유엔 사회개발 정상회의가 제시한 「인간안보」와 「가정존중」은 21세기를 이끄는 가치가 될 것입니다. 다섯째,유엔의 기능강화에 따른 예산의 부담과 운영에 관한 새로운 방안이 모색되어야 합니다.나는 유엔의 「변화와 개혁」은 빠를수록 좋다고 믿습니다.이를 위해 「유엔개혁을 위한 특별총회」를 개최할 것을 제의하는 바입니다. 의장,한국의 지난 반세기는 유엔의 이상이 구현되어온 역사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한국은 1948년 유엔 결의에 의해 정부를 수립했습니다.한국이 1950년 공산주의 침략을 받았을 때 유엔의 집단안보 결의에 힘입어 자유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전후 복구과정에서도 유엔은 우리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출발한 한국이 오늘날 세계 11번째의 경제규모와 참다운 민주주의를 누리는 나라로 도약한 것은 유엔의 이상이 거둔 위대한 결실입니다.이제 한국은 유엔활동에 가장 적극적인 회원국이 되고 있습니다.우리는 이미 서부사하라·그루지아·앙골라등지에서 유엔평화유지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앞으로 유엔평화유지 활동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보관하는 PKO 장비저장소 유치를 검토할 것입니다. 한국은 유엔의 개발과 환경분야등에 관련된 각종 사업에 적극 참여할 것이며 그 자발적 기여금을 늘려 나갈 것입니다.한국은 세계아동의 질병퇴치에 기여하기 위해 유엔개발계획과의 협조아래 한국내에 국제백신연구소(International Vaccine institute)를 설립중에 있습니다. 한국은 아울러 개발도상국들과 개발경험을 공유하기 위하여 관련 지원사업을 더욱 확대할 계획입니다.우리는 특히 올해 아시아그룹의 지원을 얻어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유엔에 대해 언제나 깊은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는 한국 국민들은 유엔이 새로운 반세기를 여는데 기꺼이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나는 멀지 않은 장래에 한반도가 반드시 민주주의 방식에 의해 통일될 것으로 확신합니다.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의 축복이 내리는 날 유엔의 이상은 마침내 위대한 승리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나는 여러분께서 한반도 평화통일의 굳건한 협력자가 되어주기를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각국 정상,의장,사무총장,그리고 각국 대표 여러분.나는 이번 유엔 특별정상회의가 세계사에 빛나는 이정표로 기록되기를 충심으로 소망합니다.우리의 반세기전의 선각자들이 그러했듯이 세계인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이 회의를 마련했습니다. 우리에게는 21세기를 온 인류가 공존공영하는 참다운 세계공동체 시대로 만들자는 염원이 있습니다.앞으로 유엔이 성공적인 새출발을 하기 위하여는 회원국들의 「정치적 의지」와 「참여」가 필수적입니다.이를 위해서는 나는 무엇보다 세계 정상들간의 연대와 협력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나는 앞으로 5년마다 유엔정상회의를 정례화하고 그 첫번째 회의를 2000년에 개최할 것을 정중히 제의합니다.이제,우리는 유엔의 새로운 반세기를 향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이 발걸음이 참다운 세계공동체를 창조하는 「새로운 유엔」의 초석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감사합니다.
  • 장편소설 「외딴방」 펴낸 신경숙(인터뷰)

    ◎16∼19세의 자전적 기억 고백/산업현장서 몸살앓는 한소녀의 삶 그려 「나의 발자국은 과거로부터 걸어나가봐도,현재로부터 걸어들어가봐도 늘 같은 장소에서 끊겼다.…과거로부터는 열여섯을,열일곱을,열여덟을,열아홉을 묵살하고 곧장 스물로,현재로부터는 열아홉을,열여덟을,열일곱을,열여섯을 묵살하고 곧장 열다섯으로 건너뛰어야 했으므로…」 속삭이듯 수줍고 섬세한 문체로 존재의 비의를 노래해온 작가 신경숙씨(32)가 두번째 장편 「외딴방」1,2를 문학동네에서 펴냈다.소설에서 썼듯이 가슴속에 봉해둔 채 멸절되다시피한 작가의 열여섯에서부터 열아홉까지의 기억을 되끄집어내는 작품이다. 작품에는 높은 나뭇가지에서 하얗게 빛나는 백로를 꿈꾸며 상경,전자부품회사에 취직해 산업체부설학교를 다닌 한 소녀의 삶이 그려져 있다.그 시기는 현대사의 격변속에 산업현장이 몸살을 앓던 지난 78년부터 81년 사이와 겹친다.변두리의 「외딴방」에서 오빠들,외사촌과 부대끼며 어렵게 서울에 둥지를 튼 이 소녀는 진절머리나는 가난속에서도 작가를 향한 은밀한 꿈을 키운다.그런가 하면 아무 물정 모르는 소녀에게도 당시 노동운동의 부산한 열기는 숨가쁘게 뻗쳐온다. 『누군가 이 소설을 노동소설이라고 했다는데 그 말은 기꺼워요.종래 말해온 노동소설과는 다르겠지만 앞으로 제 소설이 확산된다면 이쪽을 향해서 일 거예요』 그래도 존재의 그늘을 들춰 삶의 본모습을 파고드는 작가의 천성은 이 소설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처음으로 사춘기소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옆집 언니의 자살사건이 농밀하게,하지만 정면으로 말해지고 있는 것. 『쓰기 전에 먼저 삭여내야 한다고 생각됐던지 그 일은 계속 미뤄지데요.하지만 쓰고 보니 「깊은 슬픔」도 그렇고 죽음을 테마로 한 작품엔 다 이 사건이 변주돼 들어가 있더라구요』 창작과 비평사의 이시영 주간은 『흔히 아름다운 문체의 작가로만 보는 신경숙은 알고 보면 까도 까도 알 수 없는 양파속 같은 작가』라면서 농촌정서에 뿌리를 둔 진득한 작품세계를 상찬했다. 18일 명륜동의 한 음식점에서는 문단의 현역들이 참석한 가운데 출판기념회도 열려 독자와의 만남을 남겨두고 있는 이 책의 앞길을 축복했다.
  • 보스니아 평화와 미국 국익/이창순 국제1부 차장(오늘의 눈)

    전쟁과 비극의 도시 사라예보에 평화가 찾아왔다.암울한 「전쟁의 긴 겨울」을 다시 준비하던 사라예보시민들은 계절의 변화에 앞서 찾아온 「평화의 봄」을 축복하고 있다. 그러나 그 평화는 불안한 평화이며 또다시 허망한 꿈으로 끝날지 모른다.보스니아분쟁이후 휴전이 여러번 있었으나 늘 한순간의 단막극으로 끝났던 아픈 기억을 전쟁과 함께 살아가는 사라예보 시민들은 잊지않고 있다. 보스니아사태는 2차대전이후 가장 비극적인 민족분쟁이다.냉전시대의 미·소 대리전은 없어졌지만 냉전후에도 지구촌에는 민족분쟁이 끝나지 않고 있다. 민족분쟁은 흔히 민족간의 첨예한 이해의 대립과 역사적인 원한관계등이 어우러져 해결이 어렵다.보스니아분쟁도 「인종청소」라는 가장 비인간적인 비극이 반복되면서도 그 비극의 긴 터널의 끝은 좀처럼 보이지않고 있다. 보스니아의 완전한 평화는 이처럼 아직 그 실체가 보이지 않지만 이번 휴전은 종이위의 평화협정을 땅위의 평화로 현실화시키는 실마리가 될지 모른다.그러한 낙관적인 희망을 갖게되는 것은휴전의 메시지가 분쟁당사자들이 아니라 백악관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보스니아 휴전에는 그동안 대책없이 방관해오던 클린턴 행정부가 전략을 바꾸어 분쟁을 종식시키겠다는 결의가 담겨있다.리처드 홀브룩 미국무부 차관보는 유럽이 3년동안 실패한 평화협정과 휴전을 불과 몇주일만에 성공시켰다. 홀브룩 차관보는 물론 「악마와도 대화할수 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끈질긴 협상가다.그러나 분쟁당사자들이 휴전에 합의한 것은 홀브룩 자신의 협상 자체보다는 그 뒤에 있는 거대한 미국의 힘때문이라고 할수 있다.미국의 힘은 중동에도 평화를 가져오고 있다. 미국의 개입으로 보스니아분쟁이 끝난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아직도 평화의 길은 멀고 험하다.그러나 유럽의 자존심이라 할수 있는 프랑스의 르 몽드지조차도 최근 사설에서 보스니아사태에서 미국의 힘이 다시 증명됐다고 전했다.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은 그러나 민족분쟁을 끝내야한다는 인도적 차원이라기보다는 외교업적을 높이려는 클린턴 대통령의 대선전략이라는 측면이강하다.미국은 위대한 힘을 갖고 있지만 자선이 아니라 언제나 국익을 위해 그 힘을 사용하고 있음을 냉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 남미와의 본격 경협 시동(사설)

    카를로스 사울 메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방한중이다.29일엔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고 30일엔 양정상이 잠실주경기장에서 한·아르헨티나 친선축구전을 나란히 관전했다.그리고 일요일인 1일엔 우리 재계인사들과 어울려 골프를 친다. 아르헨티나는 우리나라와 지구상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먼위치에 있다.한쪽이 밤이면 한쪽은 낮이고 한쪽이 겨울이면 다른 쪽은 여름인 나라다.해그림자의 위치까지 반대인 두나라가 메넴대통령의 방한으로 더이상 멀지 않은 나라라는 인식을 갖게 하고 있다. 청와대 정상회담은 주로 양국간의 경제·통상협력관계 증진에 초점이 맞춰졌다.김영삼 대통령은 「남미공동시장」의 중추국이며 커다란 발전 잠재력을 가진 아르헨티나가 우리나라와 중남미 여러나라사이의 다리구실을 해줄 것을 당부했고 메넴 대통령은 한국기업들이 아르헨티나에 투자 진출하는데 한국정부가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두나라간의 경제교류규모는 연간 5억4천만달러 정도로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그러나 아르헨티나는 금세기 초반만해도 경제력이 세계5∼6위권의 부국이었고 현재도 그 잠재력이 큰 나라다.한반도 전체의 13배나 되는 광활한 영토인데다가 그중 90%이상이 경작 가능한 「축복받은 땅」이다.산업적 측면에서뿐 아니라 농업과 수산업분야에서도 우리와 협력의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 아르헨티나에는 우리동포가 3만2천여명이나 살고 있고 이민숫자는 늘어날 전망이다.두나라의 관계는 경제만이 아니라 축구에서까지도 협력이 필요할만큼 깊어지고 있다.우리의 원양어업,남극탐험에서도 아르헨티나의 협조가 절대 필요하다.이번에 논의가 된 양국간 항공협정이 체결되고 경제관계를 키워나가면 아르헨티나와 한국은 시간적으로도 하룻길의 가까운 나라가 될 것이다. 우리는 메넴 대통령의 이번 방한이 양 국간 경제적,지리적 거리를 좁히는데뿐만 아니라 정신적,문화적 거리를 좁히는데도 기여하게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 「정체성」 좇는 이민삶 조명/김인숙 장편 「먼길」문학동네서 출간

    ◎1년4개월 호주생활 체험 토대로 집필 작가 김인숙씨(32)가 새 장편 「먼 길」을 문학동네에서 냈다.1년4개월간의 호주생활을 막 청산하고 돌아온 작가의 직접 체험이 배어있는 소설이다. 지난 83년 신춘문예 단편소설에 「상실의 계절」이 당선돼 등단한 작가는 일탈적 연애풍경을 능란한 심리묘사로 그린 당사자가 갓 스무살의 대학 1학년생이라는 점때문에 유달리 주목의 대상이 됐다.하지만 당시 사회현실에서 글재주가 마냥 축복일수만은 없었던 그는 언제부턴가 사회문제에 대한 고민을 작품에 담기 시작했다.80년 서울의 봄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움직임을 점묘한 장편 「79∼80 여름에서 봄까지」,삶의 현장이 곧 연애의 터전이라는 요지의 「긴 밤 짧게 다가온 아침」,가부장적 결혼과 옹졸한 소시민의식을 해부한 단편집 「칼날과 사랑」 등이 그의 주요작품.뒤틀림을 정직하게 공격하면서도 상처를 감싸는 성숙한 작가의식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그의 새 작품 「먼 길」은 젊은 날 고국의 현실에 쓴 맛을 보고 호주로 이민온 세사람의 바다낚시 여행을 중심으로 그들의 과거와 현재가 교직되며 전개된다.낚싯배의 선장인 한림은 70년대 통기타 가수였다가 자신의 앨범 타이틀곡이 금지곡이 되자 가족도 버린채 호주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다.명우는 한때 운동권이었지만 이젠 이곳 빌딩의 청소부가 돼 마네킹들 사이에서 평정심을 찾는 무력한 모습으로 변했다.한림의 동생 한영 역시 고국의 현실에 환멸을 느껴 이민왔으나 조건좋은 현지회사를 때려치우는 등 방황한다. 비바람 몰아치는 난바다에서 날선 말들로 서로를 공격하며 체념어린 회상에 잠기는 이들은 허깨비같은 무력감을 쉽게 털어버리지 못한다.「우리의 길은 옳았는데 우리의 삶이 잘못됐다」는 인식이 이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하지만 한영은 오랜 진통끝에 상처와의 정면대결만이 실마리임을 불쑥 깨닫는다.「지금 필요한 것은 잊는 것이 아니야.상처를 기억하고 간직하는 것,…온가슴이 문대질 때까지 버티는 것」이라는 소설의 결론은 불명료하고 어설픈대로 우리들에게 정체성 찾기를 위한 진지한 노력을 숙제로 던진다.
  • 한국의 부자병/문용린 서울대 교수·교육심리학(시론)

    요즈음 많은 경제 전문잡지에서 부자병이란 용어가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이 말은 부자들의 병이 아니라 부자들의 자식들이 걸려 있는 병을 가리키는 것이다. 부자들이 당대에 일궈낸 엄청난 재산과 돈이,부모들 당사자들에게는 출세와 성공의 지표로서 자랑스런 전리품들이지만 그들의 자식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저주이자 파멸의 단서가 되는 안타까운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원래 이 부자병이란 말은 영어로 애플루엔자(affluenza)를 번역해 놓은 말이다.짐작컨대 애플루언스(affluence:풍요 부)라는 말과 인플루엔자(influenza‥독감,질병)라는 두가지 말을 합성해서 만들어낸 조어일 것이다. 이 말을 맨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은 미국의 캘리포니아 철도회사의 최대 유산 상속자였던 거부 프레데닉 휫만으로 알려져 있다.아마도 그 자신이 막대한 부를 소유했던 그의 부권의 재산 때문에 부자병을 심각하게 앓지 않았나 생각되기도 한다.여하튼 그는 돈많은 부유층의 자식들이 정상적인 젊은이들로 성장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 자주 인생의 실패자로,파멸자로 전락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부자병 연구에 몰두했다. 휫만에 의하면 『부자병이란 부모의 재산과 돈이 그 자식들의 삶의 욕구와 능력을 쇠퇴시켜 버리는 무서운 질병』으로 정의된다.그의 부유층 부모에게 주는 경고는 무섭다.『부자여,당신들의 재산은 당신 자신들에겐 분명히 축복이지만 당신들의 자식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저주이자 파멸의 부적이기가 쉽다.당신의 재산은 자식들을 무책임하고 부도덕하며 무능력하게끔 마비시키고 쇠퇴시킬 가공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당신의 재산이 당신과 자식들에게 축복이 되게끔 하기 위해서는 돈버는 데 쓰는 노력만큼 자식의 교육에도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얼마전 온 나라를 떠들썩 하게 했던 패륜사건이 연이어 둘씩이나 있었다.이른바 「파라슈트키트」였던 박모군이 아버지의 재산을 탐내어 살해했고 그후 얼마 안되어 모대학의 경영학교수가 또 아버지를 살해했다.결국 살해의 동기는 부모의 재산 때문이었다.부모의 재산이 자식들에게 있어서는 파멸의 주술이었다.재산이 많지 않았더라면 그 부모는 죽임까지는 안당했을 것이고,그 자식들 또한 살인까지는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부모의 엄청난 재산이 자식들의 건전한 상식과 판단을 마비시키고 쇠퇴시킨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건은 이미 미국에선 희귀한 사례가 아니다.한 예로,1989년 8월에 일어난 메넨데스 사건이 그것이다.수억대의 부자인 쿠바출신의 흥행사업자 메넨데스 사장이 20대의 그 자신의 아들 둘이 쏜 소총에 맞아 죽은 것이다.두명의 아들이 공모하여 아버지를 죽인 까닭은 간단하다.부모의 그 엄청난 재산을 그들 마음대로,하루 빨리 쓰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결국 부모의 재산이,아버지를 죽여도 된다는 왜곡된 판단을 자식의 귓가에 속삭인 셈이 되었다.부모의 재산이 자식을 망친다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그간 외면해 왔다. 무조건 돈버는데 급급하여 자식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는지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그러는 사이에 자식들은 부모들이 보상심리로 헤프게 써대고 푸짐하게 던져주는 용돈으로 건전한 상식과 판단을마비시키고 쇠퇴시켜 왔다.부모가 문제를 인지했을 때에는 벌써 자식들은 부자병에 한참 깊숙히 감염되어 있었다. 얼마전의 격주간 경제전문잡지인 포브스(95년6월19일자)에 재미있는 부자병 진단기사가 실렸다.어중간한 부자가 제자식을 더 잘 망친다는 것이었다.수천만달러이상의 재산을 가진 큰 부자들은 자식관리와 교육에 엄하고 철저해서 부자병에 걸린 자식이 매우 드물지만,5백만달러에서 천만달러내외의 재산을 가진 어중간한 부자가 자식관리를 못하는 예가 허다하다는 것이었다.록펠러 가문의 금전교육이 얼마나 철저한지를 대비시킨 그 기사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우리의 주변에서 설쳐대는 오렌지족,야타족등의 중증의 부자병 환자들의 부모들은 과연 누구일까 생각해본다.자식들에게도 축복이 되도록,우리의 어중간한 부자들이여,자녀교육에 힘좀 쓰시라.
  • 김 대통령 8·15 경축사/전문

    ◎광복반세기 올해 남북관계 새 장 열길/민족정기 회복위해 총독부 철거 마땅/지속적 개혁… 21세기엔 역사의 전면에 친애하는 국민여러분,북한동포와 해외동포 여러분,그리고 자리를 함께 하신 내외귀빈 여러분. 우리는 오늘 뜻깊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민족사에 새 지평을 열자는 굳건한 결의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지금 우리의 귓전에는 잃었던 국권을 되찾은 기쁨으로 독립만세를 외치던 반세기전 그날의 환호가 생생합니다. 우리의 가슴은 온갖 고난을 뚫고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반세기에 대한 깊은 감회로 가득 차 있습니다.다가오는 21세기를 우리 민족의 위대한 시대로 만들자는 굳은 다짐속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선열들의 축복과 7천만 겨레의 기대가 이 자리에 충만해 있습니다. 이 경하스러운 날을 맞아 나는 먼저 조국의 광복을 위해 신명을 바치신 애국선열들을 추모하며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오늘의 이 나라를 만들기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묵묵히 땀흘려 일해 오신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7천만 동포 여러분.우리 겨레에게 지난 50년은 가혹한 시련의 연속이었지만 우리는 불굴의 의지로 이를 극복해 왔습니다. 우리는 민족분단과 동족상잔이라는 엄청난 비운을 안은채 국가건설의 대장정에 나서야 했습니다.물려받은 빈곤과 전쟁의 폐허 위에서 생존마저 위협받아야 했던 「절대빈곤의 시대」를 헤쳐나와야 했습니다.극단적인 남북대치와 군사독재 아래 민주주의가 질식하던 「어둠의 시대」를 뚫고 나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식민통치의 사슬을 끊던 불같은 투혼과 강철같은 의지로 우리는 분연히 일어섰습니다.불과 한세대 남짓한 짧은 기간에 우리는 가장 가난한 나라로부터 이제는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뛰어올랐습니다. 민주의 씨앗이 싹트기조차 어렵던 그 메마른 땅위에 문민 민주주의를 활짝 꽃피웠습니다.민족의 자존을 크게 드높이고 민족사의 정통성을 확고히 세웠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의 당당한 중심국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자유와 풍요의 민주공화국을 세우고자 했던 선열들의 소망이 마침내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우리 민족의 위대한 저력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것입니다. 내외동포 여러분.우리의 성취가 이처럼 빛나는 것임에도 우리의 광복은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 있습니다.남북의 민족성원 모두가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광복의 완성일 것입니다. 통일의 큰 길을 열기 위해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정착시키는 일입니다.평화없이는 통일된 조국은 물론 민족의 장래 또한 기약할수 없습니다. 나는 민족의 안전과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 다음과 같은 기본원칙을 제시하는 바입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는 반드시 남북 당사자간에 협의·해결되어야 합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지킬 책임은 궁극적으로 남북한 당사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관련 국가들의 협조와 뒷받침도 필요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 안정과 세계 평화에 크게 기여할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남북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을 비롯한 모든 남북간의 합의사항은 존중되어야 합니다.평화의 첫걸음은 신뢰구축이며 신뢰는 서로 약속한 것들을 지키고 실천에 옮기는데서 생기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같은 기본원칙을 밝히면서 남과 북이 지금의 정전협정을 준수하는 가운데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적절한 대책을 함께 강구해 나갈 것을 촉구합니다. 광복 50주년이 되는 올해야말로 남북관계에 새로운 장을 여는 역사적인 해가 되어야 마땅합니다.나는 북한이 조속히 안정되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나오고 남북간에도 신뢰가 증진되기를 기대합니다. 아울러 국민여러분께 당부 드립니다.평화통일은 우리 모두의 절실한 염원이지만 그것을 추진하는 것은 냉엄한 현실의 과제입니다.통일문제에 대해서는 환상적인 기대도,성급한 포기도 모두 금물입니다.꾸준한 인내심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그것이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7천만 동포 여러분.광복 반세기라는 역사의 장을 넘기는 오늘 우리의 눈앞에 새 하늘,새 땅이 열리고 있습니다.우리 민족에게 무한한 희망을 주는 21세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역사의 전면에 나설 아시아·태평양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선조들의 꿈과 후손들의 소망이 담긴 민족의 꿈을 활짝 펼칠 때가 왔습니다.우리는 이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안됩니다. 이제 나는 7천만 겨레의 여망을 모아 민족이 나아갈 길을 역사앞에 엄숙히 선언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조국을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는 「일류국가」로 만드는 것,이것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진 민족사적 소명입니다.21세기를 우리 민족의 위대한 꿈을 실현하는 세기로 만들어 나갑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나라의 각 분야가 선진화되고 세계화되어야 하겠습니다.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고루 확산되어야 하며 한차원 더 높은 발전이 이루어져야 합니다.파당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국민을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하는 정치가 나와야 할 것입니다. 낡은 틀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와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는 새 정치가 나와야 합니다. 우리의 경제 또한 선진경제권에 진입해야합니다.경제의 규모가 더욱 커질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고도화되어야 하겠습니다.또한 성장의 과실이 국민 모두에게 고루 나누어지고 삶의 질을 존중하는 경제가 되어야 합니다. 정당한 부가 존경을 받고 분배의 정의가 존중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통일에 대비하는 경제역량 또한 구축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진정한 문화국가를 건설해야 하겠습니다.무엇보다 인간과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제도와 관행이 확고하게 정착되어야 하겠습니다.정신문화가 존중되고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실현되는 투명한 사회가 되어야합니다.민족정기를 드높이고 자랑스런 민족문화를 꽃피워야 하겠습니다. 셋째,인류와 세계의 발전에 더욱 기여하는 민족이 됩시다. 우리는 지금 역동적인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우리는 평화와 번영의 아시아·태평양 공동체를 만드는데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합니다.나아가,민족의 웅대한 꿈을 저 넓은 세계무대에서 펼쳐야 합니다. 세계의 모든 나라와 긴밀하게 협력하고당당하게 경쟁해 나가야 하겠습니다.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진정으로 기여하는 나라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역사는 청산과 계승을 통한 창조의 과정입니다.우리는 오늘 옛 조선총독부를 철거하는 역사적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이 건물이 철거되어야만 우리 민족사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경복궁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식민잔재를 깨끗이 청산하고 우리의 민족정기를 회복하자는 온 국민의 뜻과 의지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옛 조선총독의 관저를 철거한 것도 같은 취지에서 입니다. 옛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는 단순히 식민잔재의 외형적인 청산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그것은 우리 모두의 의식속에 남아있는 그릇된 역사의 잔재로부터 진정으로 해방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한·일 두나라 관계가 불행했던 과거의 그늘로부터 벗어나 미래지향적으로 발전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이 과거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건전한 한일관계의 구축은 일본의 과거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에 대한 건전한 반성의 토대위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오늘 광복 50주년을 계기로 애국선열 등 1천4백여분을 새로 독립운동 유공자로 모셨습니다.나라와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신 선열들의 애국애족정신은 우리가 이어 받아 후대에 전해야 할 소중한 유산입니다. 나는 광복 전반세기와 후반세기를 잇는 대통령으로서 역사의 창조적 발전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거대한 문명사적 변혁 앞에서 우리가 가야할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습니다.우리는 지금 안으로는 내실을 다지면서 밖으로는 21세기를 향한 역사의 격랑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더이상 미움과 분열과 갈등으로 소모할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미움을 사랑으로,분열을 통합으로,갈등을 조화로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나는 오늘 대통령으로서 헌법에 따라 대대적인 특별사면과 복권을 단행하였습니다.국회의 동의절차를 거쳐 대규모의 일반사면도 실시할 계획입니다.이는 뜻깊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우리 국민 모두가 대화합을 이루어 새출발하는 역사적 계기를 만들겠다는 충정에서 내린 결단입니다. 그러나 문민정부 출범이후에 이루어진 부정부패 관련자는 이번 조치에서 제외했습니다.이것은 부정부패는 반드시 척결한다는 정부의 단호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이제 온 국민이 하나되어 세계로 미래로 힘차게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조국과 민족의 앞날이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를 통해 위대한 국민만이 위대한 역사를 창조한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었습니다.우리 모두 다시 한번 한민족의 위대한 21세기를 향해 힘차게 나아갑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을 세계화합시다.변화와 개혁을 힘차게 추진합시다.그리하여 세계의 중심에 우뚝서서 인류공영에 기여하는 「일류국가」의 꿈을 실현합시다. 50년후 광복 한 세기가 되는 그날,우리의 후손들이 오늘의 우리를 진정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합시다.감사합니다.
  • “한국전은 가장 기억할만한 전쟁” 새 평가

    ◎워싱턴 참전기념비 제막식 현장/“자유실현 원동력 됐다” 두 정상 영령추모/양국국가·민요 연주속 태권발레 선보여 한국전 참전기념비 제막식이 27일 하오(한국시간 28일 새벽)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쪽 광장에 새로 조성된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에서 엄숙히 거행됐다.한국과 미국 양국은 이날 김영삼대통령과 클린턴대통령,참전용사및 가족등 2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전 휴전 42주년을 맞아 참전비를 제막함으로써 반세기에 걸친 혈맹의 우의를 다졌다.특히 이번 제막식을 통해 6·25전쟁을 자유세계가 공산주의의 팽창을 처음으로 단호하게 저지해 전후 세계질서를 바꾸어 놓은 사건으로 재조명되게 함으로써 그동안의 「잊혀진 전쟁」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전쟁」으로 새로 태어나게 했다. ○냉전종식에 큰 공헌 ○…김대통령은 제막식 연설에서 『6·25 전쟁의 포성이 멎은지 42주년이 되는 오늘 전쟁의 영웅들을 기리는 성스러운 터전을 마련했다』면서 『이들이 흘린 피와 땀은 전후 세계사를 자유의 실현으로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됐다』고 한국전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했다.클린턴대통령은 『한국전은 자유의 역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승리였다』면서 『한국전은 동서 냉전을 종식하는 데 크나큰 공헌을 했다』고 역시 6·25를 새롭게 부각시켰다. 두 나라 대통령에 앞서 앨 고어 미국부통령은 『수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인간의 존엄과 기본권을 위해 피를 흘렸다』면서 『전쟁희생자와 참전용사들에게 경의를 표하자』고 제의했다. ○…제막식은 김대통령과 클린턴대통령이 기념공원에 나란히 입장해 공원을 시찰하는 것으로 막이 올랐다.김대통령과 클린턴대통령은 참전용사들의 박수 속에 도열한 의장대를 통과해 기념비에 다가가 대기하고 있던 데이비스 미국측 준비위원장으로부터 기념비에 대한 설명을 청취한 뒤 V자형으로 배열된 기념조형물 맨 앞의 병사동상 앞에 서서 기념촬영을 했다. 두 나라 국가 연주와 기념연설이 끝나고 미공군기가 축하비행을 하는 가운데 데이비스위원장은 『모두 손잡고 이 기념비의 제막을 알리자』면서 기념비 제막을 공식 선포했다.제막 선포에 앞서 미국 여가수가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를 열창해 개막식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미군악대는 「아리랑」과 「그리운 금강산」등 한국 민요와 가곡을 연주해 분위기를 돋웠고 재미동포 이준구씨가 지도하는 태권도단원 96명이 양국 국기를 손에 들고 애국가와 미국국가에 맞춰 태권발레를 선보였다.태권발레 시범단에는 이씨의 제자인 에스피 전농무장관도 끼어 있어 이채를 띠었다. 한국측에서는 3군 의장대와 전통의상을 입은 육군 취타대 2백50명이 행사에 참가했고 주최측은 단상 뒤편에 대형 점보트론을 설치해 행사장면을 중계했다.주최측은 섭씨 35도에 달하는 무더위속에 고령의 참전용사들이 참석한 점을 고려해 수만t의 생수와 수십대의 앰뷸런스를 대기시켰는데 참전용사 몇몇은 더위를 먹고 쓰러져 들것에 실려 후송되기도 했다. ○완공에 3년1개월 ○…기념비는 미의회가 지난 86년 미국재향군인회의 요청으로 기념사업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설치할 것을 의결한 것을 계기로 모금한 1천8백만달러의 재원으로 3년1개월간의 공사끝에 완공됐다.기념조형물은 49m의 화강암 석벽과 승리를 상징하는 V자형 대지 위에 행진하는 19명의 병사동상으로 구성됐다. 화강암 벽면에는 참전용사의 얼굴이 부조식으로 새겨졌으며 맞은편 화강암 보도경계석에는 한국전 참전 22개국 이름이 알파벳순으로 조각됐다.19명 병사동상 가운데 맨 앞 병사의 앞면 바닥에는 「알지도 못하는 나라,만난적이 없는 사람들을 지키려는 요청에 응한 전쟁에 참가한 미국의 아들과 딸들을 위해」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분단상징 38선 표현 병사동상 가운데는 미참전기념비준비위 이사인 윌리엄 웨버씨를 모델로 한 동상도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올해 69세인 웨버씨는 강원도 원주에서 낙하하면서 지뢰밭에 떨어져 오른발과 오른손을 잃고도 육군에 계속 근무하다가 지난 80년 대령으로 전역한 입지전적인 인물로 이날 행사를 단상에서 참관했다. 행진하는 19명의 병사동상은 육군 14명,해병 3명,해군특공대 1명,공군척후병 1명으로 구성됐다.그들의 모습은 화강암 석벽에 유리처럼 비쳐 모두 38명이 행진하는 모습을 연출하고있는데 이는 한반도의 분단을 상징하는 38선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행사준비위 관계자가 설명했다. ◎김대통령 제막식 연설/전문 6·25전쟁의 포성이 멎은지 42주년이 되는 오늘,우리는 이 전쟁의 영웅들을 기리는 성스러운 터전을 마련했습니다.이 참전 기념비는 그들의 희생과 헌신이 얼마나 위대한 것이며 자유와 평화가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우리 자손 만대에 전해줄 것입니다. 나는 한국 국민을 대표하여 한국전 전몰장병을 추모하며 모든 참전용사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이 뜻깊은 기념비가 제막되기까지 사업을 주관하고 지원해온 미국 정부와 의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데이비스장군을 비롯한 건립위원들과 모금에 참여한 모든 분들,그리고 조형물 제작에 참여하신 예술가들의 노고에 대해서도 치하드립니다. 45년전 6월 북한 공산군의 기습침략으로 시작된 한국동란은 3만3천여명의 미국 장병들을 비롯하여 9만5천여명에 달하는 유엔군 용사들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갔습니다.한국군과 유엔참전국의 총 사상자수는 무려 50만에 달했습니다. 이 기념비의 바닥에 각인되었듯이 한국동란은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는 나라,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을 지키려는 요청에 응한」 전쟁이었습니다.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한 희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이들이 흘린 피와 땀은 전후 세계사를 「자유의 실현」으로 이끈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자유세계는 6·25전쟁에서 공산주의의 팽창을 처음으로 단호하고 효과적으로 저지함으로써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던 것입니다.그런 의미에서 나는 6·25전쟁은 먼 훗날 베를린장벽의 붕괴와 공산주의의 몰락을 예고한 전쟁이었다고 말하고자 합니다.오늘날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4천4백만의 한국인들은 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가장 성공적으로 뿌리내린,미국인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한때 「잊혀진 전쟁」이었던 6·25전쟁이 「가장 기억할 만한 전쟁」으로 바뀐 역사의 진전에 대하여 자부심을 느낍니다.아시아·태평양시대의 개막과 함께 자유와 평화를 향한 한국과 미국 양국의 유대는 이 흑색 화강석처럼 단단하고,저포토맥강처럼 장구하게 발전할 것입니다.이 기념비에 새겨진 권리를 우리 후손들에게 길이 전합니다.자유는 희생없이 지켜지지 않는다고.감사합니다.
  • 시신없는 영결식/윤검사,가족 영정에 헌화하며 끝내 오열(현장)

    『해경아,명숙아….에미한테 제발 죽은 얼굴이라도 좀 보여봐라』 26일 상오10시 서울 강남구 논현동 영동교회 예배당.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실종돼 아직까지 시신조차 나오지 않은 서울지검 윤연수(32)검사 가족들에 대한 영결식이 치러지고 있었다. 시신이 없어 영정만이 놓여진 조그만 예배당안은 딸과 손자·손녀의 이름을 부르는 윤검사의 장모 정삼분(54)씨의 오열만이 가득했다. 윤검사를 비롯,다른 가족·친지들은 너무나 허탈해 울음마저 말라버린 듯했다. 윤검사의 부인 서해경씨(27)와 아들 원진군(3)·딸 하은양(7개월),그리고 처제 서명숙(25)씨.희고 노란 국화송이속에 놓인 이들의 영정은 가족들과의 마지막 자리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날 영결식이 엄수된 예배당은 91년 윤검사부부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때까지 함께 살겠다」고 언약했던 결혼식장.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신도 모시지 못하고 이자리에 나온 유족들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어느 누가 달랠 수 있겠습니까.유족들이 다가올 내일을 기다리며인내할 수 있도록 축복을 내려주소서』 결혼식때 주례를 섰던 이 교회 윤지환(62)목사도 자신이 직접 앞날을 축복해주었던 이들의 참담한 불행앞에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저는 이번 사고로 사랑하는 가족과 처제를 잃었습니다.이렇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생각해 봐야겠습니다.그러나…확실한 것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영결식 말미에 인사말을 하겠다고 나섰던 윤검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끊어졌다 나지막하게 전해졌다. 윤검사는 가슴속에 묻어야만 하는 가족들의 영정에 흰 국화송이를 갖다놓으며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제대로 묻히지도 못한 딸과 손자·손녀를 이대로 영원히 떠나보낼 수 없었던 장모 정씨는 영결식이 끝나고서도 한참동안 영정을 부여안은채 남편 서정진(55)씨의 팔에 안겨 『이건 말도 안돼,말도 안돼』를 목놓아 외쳤다.
  • 21세기 아·태시대 향한 협력­평화·번영의 동반자

    ◎김대통령 미 상·하양원 합동회의 연설­전문 위대한 미국국민을 대표하는 이 숭고한 민주주의의 전당에서 연설하는 영예를 주신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나는 고향을 찾아 옛 친구를 만난 듯한 따뜻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스물다섯의 나이로 국회의원이 된 이래 40년 가까운 의정생활을 통해 의회는 어느 덧 나의 「고향」이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또한 나의 고난에 찬 기나긴 민주화투쟁을 한결같이 성원해주신 의원 여러분에게 평소 깊은 감사와 함께 동지의식을 지녀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오직 피와 땀과 눈물로 오늘의 한국을 이루기까지 언제나 든든한 벗이 되어 온 미국 국민에게 뜨거운 우정을 느끼고 있습니다.나아가 온 인류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새로운 세기를 향해 우리 두 나라의 두터운 유대관계를 더욱 성숙시켜 나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빈국서 부국으로 1945년 2차대전의 종전은 우리 민족에게 해방과 독립이라는 축복을 안겨주었습니다.그러나 그것도 잠시,우리는 민족분단이라는 역사적 비운을 다시 맞게 되었으며 5년후 동족상잔이라는 참극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국인은 식민통치의 잔재와 빈곤의 유산,그리고 전쟁의 폐허와 공산주의의 위협 속에 나라를 세워야 했습니다.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번영을 향한 의지,단지 그것만으로 지난 40여년을 줄기차게 달려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최빈국으로 출발했던 한국은 이제 경제규모에 있어 세계 열한번째의 나라로 뛰어올랐습니다.그러나 우리 국민이 이룩한 것중에 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민주주의를 활짝 꽃피운 것입니다. 한반도의 분단과 남북간의 군사적 대치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두텁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여기에서도,한국 국민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향한 끈질긴 투쟁끝에 마침내 문민민주주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2년여동안 과감한 「변화와 개혁」을 통해 군사독재시대의 적폐를 청산하고 참다운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또한 지난해부터 우리는 「세계화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지구공동체의 번영에 크게 기여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매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무것도 없는 맨주먹으로 일어나 짧은 기간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모두 이룩하고 이제 세계로,미래로 나아가는 한국의 이야기입니다. ○참전용사에 감사 한국의 성공은 무엇보다도 평화가 가져온 결실입니다.한반도의 평화가 지켜지지 않았다면 한국 국민은 오늘의 자유도,번영도 결코 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평화는 대가 없이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피를 흘렸습니다. 내일은 우리 모두가 이 의사당 맞은편 포토맥강변에서 한국전의 영웅들을 다시 만나는 뜻깊은 날입니다.6·25전쟁의 휴전 42주년이 되는 이날을 맞아 제막될 한국전 참전기념비는 우리에게 언제나 평화의 소중함을 웅변해줄 것입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우리 국민을 대신하여 한국의 전선에서 고귀한 젊음을 바친 영령들을 추모하고 모든 참전용사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당시 약관 19세의 나이로 참전하신 찰스 랑겔의원을 비롯한 스물여덟분의 의원들께도 경의를표합니다. 아울러 지난 40여년간 한국의 전선을 지켜온 모든 미군장병과 그 가족에게 한국 국민의 사의를 전합니다. 반세기전까지만 해도 태평양 너머 멀리 느껴졌던 우리 두 나라는 이제 가장 가까운 벗이 되었습니다.일방적인 도움을 주고 받던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도움을 주고 받으며 자유와 번영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성숙한 동반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 두 나라가 함께 키워온 평화의 유대는 값진 열매를 맺었습니다.한국의 성공은 한·미 양국 국민의 공동승리입니다. 아시아·태평양시대의 막은 이미 올랐습니다.한·미 두 나라는 더욱 강력한 결속으로 본격적인 아·태시대를 열어나가야 합니다.아·태지역이 역동적 성장을 거듭하여 세계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미국이 장기간 이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해왔기 때문입니다. ○아·태 미 역할 긴요 아·태시대가 활짝 꽃피기 위해서는 미국이 앞으로도 이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역할을 계속해야 합니다.특히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한 한반도의 평화보장은 이 지역 전체의 안정에관건이 되고 있습니다. 한반도는 아직도 1백50만의 중무장한 병력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지대입니다.주한미군은 지난 40여년간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해왔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는 물론 아·태지역 전체의 안정을 위해 주한미군은 필수불가결한 존재입니다.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싸고 고조되었던 긴장은 한반도가 얼마나 불안정한 지역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핵문제와 관련하여 미·북간에 이뤄진 콸라룸푸르합의를 지지하는 바입니다.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간의 공동보조는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분명히 풀릴 때까지 강력하게 유지되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미·북 제네바합의가 충실히 이행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는 그 실질적 당사자인 남북간의 대화와 협력에 의해서만 정착될 수 있습니다.대화 없이는 그 어느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나는 클린턴대통령과 미국 의회가 그동안 남북대화의 핵심적인 중요성을 강조해온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광복 50주년이자 분단 50주년인 올해를 남북관계에 새로운 장을 여는 역사적인 해로 만들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형성해 나감으로써 궁극적으로 1민족 1국가를 만들자는 것이 한국의 통일정책입니다.이에는 북한의 안정이 필수적이며 이에 따라 우리는 남과 북이 함께 번영하는 「민족공동발전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북한 경수로 건설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하면서 한국형 원자로를 제공하고 그 중심적 역할을 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뜻에서입니다.같은 취지에서 남북경제협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우리는 또 순수한 동포애적 차원에서 북한의 어려운 식량사정을 덜어주기 위해 북한에 쌀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통일로 가는 길이 비록 멀고 험하더라도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쉼없이 전진해갈 것입니다.한반도가 다시 하나가 되는 그날,동북아에는 진정한 평화와 번영이 올 것입니다.분단된 한국보다통일된 한국이 인류와 세계에 더욱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균형통상 급선무 아시아·태평양지역 전체의 번영을 위해서는 이 지역에 자유무역과 개방주의가 뿌리내리게 해야 합니다.2차대전후 미국의 지도력 아래 자유세계에서 이뤄져온 자유무역은 빈곤과 공산주의를 퇴치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한국 역시 자유무역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입었습니다.나는 아·태지역의 모든 나라가 자유무역의 수혜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바로 이런 이유에서 나는 클린턴대통령과 더불어 APEC의 발전을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한국정부는 또한 WTO 규범에 따른 다자간 협력도 적극 지지하고 있습니다.미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며 한국도 이제 미국의 여섯번째 시장으로 성장했습니다.지난해 양국간 교역은 4백억달러를 넘어섰고 금년에는 5백억달러 수준에 달할 것입니다. 한·미간의 무역은 대체로 균형을 이루어왔으나 최근에 이르러 한국의 대미 적자폭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세계화정책을 통해 경제를 비롯한 사회 각 부문의 개방과 자율화를 적극 추진해왔습니다. 우리는 나아가 OECD 가입을 통하여 선진국 수준의 개방화시책을 본격적으로 펴나갈 것입니다.한국은 개발도상국으로서는 가장 빠른 속도로 문을 열어왔습니다.앞으로도 한국은 지속적인 자율과 개방정책을 통해 아·태지역의 번영을 촉진하는 미국의 강력한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국제적 책임 확대 우리 앞에는 21세기의 신세계가 펼쳐지고 있습니다.미국의 역할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한국도 국제사회에서의 역할과 책임을 확대해나갈 것입니다.우리의 발전경험을 살려 개도국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범세계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도 적극 동참할 계획입니다. 한국 국민은 한·미양국이 「21세기 아·태시대를 향한 협력」아래 역사의 수레바퀴를 함께 전진시켜나가려는 희망에 차 있습니다.통일한국을 이루어 미국국민과 함께 「평화와 번영의 동반자」로서 세계와 인류에 더욱 크게 기여하자는 의지로 충만해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전하고자 하는 한국 국민의 메시지입니다.그것은 이 신대륙에 위대한 나라를 세운 미국의 정신에도 합치할 것입니다. 우리,어깨를 나란히 하여 앞으로 나아갑시다.그리하여 인류에게 무한한 희망과 가능성을 안겨줄 새로운 세기,새로운 세계를 함께 열어 나갑시다.모든 것은 유한하나 평화와 번영을 향한 인류의 열망은 영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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