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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고/ 온갖 고난 딛고 꽃피운 ‘民族花’

    지난 10월13일 오후 6시,새천년 첫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그 시각,얼마쯤의 긴장과 설렘으로 TV화면을 응시했다.오슬로 현지 생방송에서 ‘김대중’이라는 이름을 알리는 음성과 자막을 접하는 순간,참으로 기쁘고 감격스러웠다. 한 인간의 삶에 있어서 이처럼 고난과 영광이 양극을 치달으면서 극적인 절정을 인류 앞에 보여준 예가 얼마나 있었을까. 이미 알려진 대로,노벨평화상위원회는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과 동아시아에서의 민주주의와 인권,특히 북한과의 평화·화해를 위해 노력한 점”을 수상이유로 들었다.김 대통령이 지난 1986년부터 계속후보 명단에 올랐던 점을 상기한다면 한참 늦었다는 느낌도 들었다. 국내는 말할 것도 없고 온 세계의 언론과 지도자들이 환영과 축하의뜻을 표시했다.수상자 개인의 영광에 그치지 않고 우리 나라,우리 민족의 자랑이 된다는 말은 새삼스럽다. 그러나 그런 영광과 축복의 시간에조차도 나는 그와는 정반대의 극에서 도사렸던 그분의 지난날의 비극적 고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대통령 당선이나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으로 그분이 온 세계의 축하에 젖어 있을 때도 나는 그러했다.민주주의와 인권,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위한 오랜 싸움과 그 과정에서 그분이 겪은 박해와 수난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납치와 사형판결 등 몇 번에 걸친 죽음의고비,여러 해 동안의 감옥생활,그리고 수도 없는 연금과 온갖 탄압―이런 절망적 국면을 그분은 초인적으로 극복하였다.뿐인가,그런 참담한 시기에도 나라의 민주화와 통일을 향한 의지를 더욱 다져왔던 것이다. 이번 수상이유에 명시된 “남북한간의 적대관계 해소와 냉전 종식의희망을 싹트게 한 공로”도 따지고 보면 지난 6월 어느날의 평양 방문에서 갑작스럽게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이미 1971년 대통령선거의후보시절부터 남북 교류를 공개적으로 주장했고 그후로도 3단계 통일방안 등을 정립함으로써 매우 전향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그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어 심지어 ‘용공’ 모략에 크게 시달리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신을 관철시켜 남북간 평화정착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오랜 연구와 집념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그분의 공헌은 오래전부터 전세계가 찬탄해온 바였다.아마도 정치적,지역적 사정 때문에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도 이 점에 대해서만은 공감을 할 것이다. 노벨평화상위원회측은 “민주화와 인권옹호에의 공헌을 한반도의 긴장완화보다도 우선적으로 평가했다”고 언명하였다.동시에,북한 지도자들,특히 김정일 위원장의 ‘공로’에 대해서도 배려하는 대목도 포함되어 있었다.이 점도 소홀히 넘겨서는 안되는 ‘유의사항’일 것이다. 요컨대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한 남북 당사자의 노력을 온 세계가평가하고 지지했다는 데에 이번 수상의 의미가 있다고 할진대,앞으로남북관계에 있어서 그러한 나라 안팎의 성원과 기대에 부응할 만한가일층의 진전이 착실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국내정치면에서도 지금까지의 경색국면이 여야간의 좀더 너그러운도량으로 해빙이 되었으면 한다.그러자면 집권당을 이끌고 국정의 최고책임을 지고 있는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위상에 걸맞은 큰틀의 정치,포용의 정치를 펼쳐나갔으면 좋겠다. 이번 김 대통령의 수상을 통하여,우리는 진한 감동과 아울러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죽음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면서도 자기 신념을 굽히지 않고 싸워온 끝에 마침내 노벨평화상의 수상자가 되어 온인류의 갈채를 받게 된 그 인생역정을 그저 한 개인의 휴먼스토리로서 지나칠 수만은 없다. 이제 김대중 대통령은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대로 표현하자면 “인류에게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로 세계의 공인을 받았다.수상은 영광이자 부담이 될 수도 있으나 김 대통령은 국내외의 성원과 기대에 훌륭한 보답을 해주리라고 확신한다. ■ 韓 勝 憲 전 감사원장·변호사
  • [시론] 노벨평화상의 한국적 과제

    해마다 이맘때 노벨상 수상자가 결정되면 우리는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그리고 언제쯤 우리도 노벨상을 받을수 있을까 기대했던가. 그러한 꿈과 기대가 마침내 실현되었다. 김대중대통령이 노벨상을받게된 것이다. 노벨상 중에서도 가장 비중이 큰 평화상을 받게되었다. 당사자는 물론 남북한 온겨레와 세계각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민족 모두의 영광이고 축복이다. 예외의 경우가 없는 바 아니지만 노벨상도 스포츠와 함께 국력이란말이 있다. 일본만해도 올해까지 9명이 노벨상을 받았다. 훌륭한 인물은 바로 국력이다. 과거 영국이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바꾸지 않겠노라고 말할만큼 출중한 인물은 바로 국력이고 국가의 명예이며 자존심이다. 구소련 반체제 작가 솔제니친은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또 하나의 국가론’을 폈다. 전체주의 소련과 다른,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지키는 국가안의 또 다른 국가라는 뜻이다. 노벨상 창설100주년에 21세기의 첫 노벨평화상을 한국인이 받게된것은 여러가지 상징성을 띤다. 그동안 전쟁과 독재에 시달리면서 국제사회에 어둡고 불안한 이미지로 비쳐진 한반도가 남북화해 협력에이어 노벨평화상 수상은 새로운 평화시대를 의미하며 21세기 한반도중심국가의 도래를 상징한다. 이런 의미에서 노벨평화상의 효용성은정치경제학적 계량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그동안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노벨상을 둘러싸고 로비설을 비롯하여오슬로에 몰려가서 선정을 반대하겠다는 시위론이 제기되는가 하면심지어 대통령이 노벨상을 타기위해 남북문제를 추진한다는 극단적인 음해가 공공연히 제기되었다. 로비설과 시위론이 다분히 감정적 언사라면 남북화해 협력추진을 노벨상과 연계시킨 것은 매우 치졸한 정략이라 하겠다. 노벨평화상의 숭고한 정신과 품위를 훼손하는 몰지각한 행위인 것이다. 노벨상이 로비나 작위(作爲) 또는 부작위(不作爲)에 따라 결정된다면 오늘날 세계적 관심과 존경을 받을 수 있겠는가 묻게된다. 노벨상은 새삼 설명이 필요없는 인류양심과 지성의 심벌이다. 정치적 반대의 위치에서는 배아파하기도 하겠지만 국가적 경사에는 정치논리를 떠나 함께 경축하는열린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국가성원의 도덕률이고 국민적 일체감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권이 보여준 모습은 대단히 보기좋다. 노벨평화상은 비인간화의 시대에 인간의 길을 열어주는 지침이 된다. 압제와 폭력에 맞서 정의와 인권 그리고 화해를 추구하면서 인간적인 삶과 도리를 평가해주는 척도인 것이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노벨상을 타기 위해 고난의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남아공화국의 만델라는 노벨상이 탐이 나서26년간 감옥행을 택한 것이 아니다. 인도의 테러사 수녀는 노벨평화상을 받자고 캘커타의 빈민굴에서 병자들과 평생을 같이 했던 것이아니다. 순수한 사랑과 가치관 그리고 투철한 사명감과 인간적 열정으로 충실하게 살다보니 노벨평화상이 주어진 것이다. 이것은 김대통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우리에게 영광과 함께 많은 과제를 안겨주었다. 그것은 한반도의 평화를 일구고 안전을유지하라는 인류양심의 명령이다. 중동의 불씨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면 극동의 불씨는한반도이다. 중동의 전화(戰火)는 ‘중동전’으로 국한되지만 한반도의 전화는 자칫 세계전으로 비화될 지정학적 위험을 안고있다. 그만큼 불안한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성원 모두는 노벨평화상수상을 계기로 인류가 준평화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평화정착에 기여해야 한다. 탱크를 녹여쟁기를 만들고 군비를 줄여 삶의 질을 높이는 신문명시대를 열어야한다. 그것은 곧 21세기 한반도 중심국가론의 징표가 되어야 한다. 새천년이 열리는 21세기 첫해에 반세기가 넘도록 대결해온 남북한이 화해협력에 나서고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게된 것은 동북아의 새시대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서광이 아니겠는가.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그동안 지역간 계층간 정파간에 빚어진 갈등구조를 치유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평화와 화해의 국민적 에너지를 통일과 세계평화로 연결시키고 한반도 중심국가의 원동력이 되도록 힘을 모아야 하겠다. [김삼웅 주필] kimsu@
  • [사설] 한반도 평화 위한 세계의 축복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200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노벨위원회는 “김 대통령이 한평생 한국의 민주화와 남북화해, 그리고 아시아의 인권을 위해 기여했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김 대통령은 지난 40년 정치권력의 탄압과 ‘색깔론’음해를 무릅쓰고 민족 화해와 통일 방안 모색에 노력을 기울여왔다.그같은 노력이국제적으로 공인돼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된 것이다.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그 자신의 영광만 아니라 7,000만 겨레의 영광으로 남북이 다같이 기뻐할 일이 아닐 수 없다.노벨 평화상은 오늘날 한반도에서 조성되고 있는 평화에 대한 전세계의 축복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꿈이 많은 사람입니다.우리나라를 정의로운 사회로 만들고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나라의 혜택이 고루 미치도록 하고싶었고, 통일을 이루어 7,000만 민족이 아시아 태평양 시대의 주역으로 함께 등장하도록 하고 싶었으며,한국이 세계의 당당한 선진국이되어 5,000년 역사의 결실을 이루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김 대통령이 1992년 12월 대통령 선거에 세번째 도전했다가 실패한뒤 처절한 심경으로 정계를 떠나 영국으로 건너가서 1993년 12월에쓴 회고록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에서 한 말이다.그러나 놀라운일이 아닌가.그는 통한(痛恨)속에 ‘과거형’으로 털어놓았던 자신의꿈을 지금 현재진행형으로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김 대통령이 한평생 자유와 민주와 정의를 위해 투쟁해온 정치 지도자라는 사실은 온 세계가 알고 있는 바다.‘고통받고 있는 사람에게도 나라의 혜택이 미치도록 하고 싶었다’는 꿈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과 함께 김 대통령이 국정지표로 내세운 ‘생산적 복지’속에 반영돼 있다. 통일을 향한 김 대통령의 열망은 또 어떠한가.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6·15공동선언’을 이끌어 냄으로써 지난 55년 동안불신과 적대로 일관하던 남북관계가 신뢰와 화해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노벨 평화상을 통해 전세계가 담보해준 한반도의 평화는 진전이있을 뿐 후퇴는 없을 것이다.우리가 전세계와 함께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기뻐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고 한다.또 “향기로운 이름을 역사에남긴다(遺芳百世)”는 말도 있다.전남 무안군 외딴 섬 하의도에서 태어난 김 대통령은 ‘목포상고’졸업이 최종 학력임에도 초인적인 각고면려(刻苦勉勵)를 통해 한나라의 대통령이 되었고 세계적인 정치지도자로 공인 받고 있다.문자 그대로 향기로운 이름을 역사에 남긴것이다.그러나 오늘이 있기까지 김 대통령이 살아온 역정은 고난과시련,위해(危害)의 연속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가장 핍절(逼切)한 것은 신체적 위해다.1971년총선 당시 박정희(朴正熙)정권의 ‘교통사고 위장 살해 기도’,1973년 8월 일본 도쿄 한복판에서 벌어진 납치와 태평양상의 수장(水葬)미수,그리고 1980년 전두환(全斗煥)신군부에 의한 사형선고 등이 그렇다.그러나 하늘의 도우심과 국민의 지지로 목숨을 부지한 그는 거듭되는 투옥과 가택 연금,망명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뿐만 아니다.박정희정권 이래 역대 정권이 그를 표적삼아 집요하게 펼쳐온 ‘지역감정’공세는 또 어떠한가.그것은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어떤 것이다.오죽하면 “강원도 출신만 됐더라도 이미 대통령이 됐을텐데…”라는 한 유권자의 탄식에,김 대통령 자신이 하늘을 우러러한숨을 내 쉬었겠는가. 그러나 엄동설한(嚴冬雪寒)을 이겨내지 못하면 ‘인동초’가 아니다.김 대통령은 온갖 고난을 물리치고 마침내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냈다.그리고는 ‘준비된 대통령’으로서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있다.사실 이 두가지 과제는아무나 이뤄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김 대통령이 평생 자신을 박해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용서했을 때많은 국민들이 의아하게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김 대통령이 ‘용서와화해의 사람’임을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나쁜 정치’는 용서 할수 없지만,‘나쁜 정치를 한 사람’은 용서할 수 있다”는 게 그의철학이다.“용서는 인간의 권리가 아니라 의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 ‘진정한 용서’라고 단언한다.김 대통령의 이번 노벨 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물론여야, 지역간에도 화해와 협력의 따뜻한 바람이 힘차게 일었으면한다.
  • [기고] 북미회담과 한반도 평화

    북한과 미국이 워싱턴회담을 통해 반세기동안 지속되어온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동반자적 관계개선을 이룩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데 성공하였다.이는 6·15 정상회담에서 남북 간에 합의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핵심적인 국제적 보장이 이루어졌다는 의미를 지닌다. 국제적 냉전체제의 해체와 함께 소련이 붕괴하고 중국이 개방을 가속화했을 때 북한의 대응은 통미봉남이었다.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관계를 개선하여 북한체제 수호에 대한 보장을 받겠다는 것이었다.이에 대해 한국과 미국은 일관되게 미국과 관계를 열기 전에 먼저 한국과 대화를 할 것을 북한에게 종용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미국과의 직거래를 트기 위해 노력했으나 한국이 동의하지 않는 북미 직접 협상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마침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통미봉남을 폐기하고 한국을 통해,그리고 한국의 협력과 지원하에 대외적인 개방을하겠다는 정책의 대전환을 세계의 언론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언하였다.김정일 위원장은 통미봉남 정책의 좌절을 통해 한국을 우회하여세계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학습한 뒤,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방향전환을 하였고 한국은 이에 화답하여 미국으로 가는 길을열어줌으로써 북미회담이 한국의 축복 속에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북미 워싱턴 회담을 통해 우리는 탈냉전기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경제재건에 대한 북한의 구상과 전략을 엿볼 수 있다. 첫째,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개방정책의 핵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정에서 중국의역할이 증대하고 미국의 위상이 퇴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전망이있었으나 이번 북미회담은 북한이 미국을 핵심적인 파트너로 하는 한국,북한,미국간의 3자 공조체제의 구축을 바탕으로 개방전략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북한의 개방전략은 미국이 주도하는 동북아 질서 속에 편입되는 것이다.왜냐하면 북한은 탈냉전기에 북한의안전을 실질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는 나라는 단일 헤게모니 국가로남은 미국 밖에 없으며 북한경제의 재건에 필요한 국제적 금융지원도미국의 승인과 도움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인식한 것이다.그래서 김정일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의 주둔을 사실상 인정하였을 뿐 아니라 탈냉전기에 동아시아 평화유지군으로서의미군의 역할을 인정하는 발언까지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대북관계에 있어서 미국의 이해는 북한의 핵개발,미사일 발사,테러방지와 같은 군사안보적인 문제에 있었다.김정일 위원장은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북한 군부를 대표하는 조명록 차수를 미국과의 회담 대표로 파견하였던 것이다.말하자면 김정일은 북한의 군부대표로 하여금 공개적으로 군복을 입고 대미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평화의 시대를 열 것을 서약하게 함으로써 북한이 진심으로 평화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둘째,김정일위원장은 다가올 미국의 대선을 고려하여 북한에 대해포용정책을 펴고 있는 클린턴 행정부의 임기 내에 미국과 획기적인관계개선을 이룩함으로써 설사 대북강경론자인 공화당의 부시후보가당선되더라도 북미관계를과거의 냉전적 대결관계로 되돌릴 수 없는불가역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전략적인 시기 선택을 하였다.클린턴 행정부는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에 이어 클린턴대통령의 방북을약속함으로써 이에 화답하였다. 예상을 넘어서는 북미회담의 성공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가장 핵심적인 국제적 조건이 충족되었다.그러나 지금 한반도가 세계가 주목하는 화해의 장으로 부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대북화해협력정책을 둘러싸고 속도조절론이 나오고 있다. 속도조절론이 외정과 내정이 균형을 이루어야한다는 고언이라면 어느 정도 수긍할 측면이 있다. 그러나 북미회담이 보여주듯이 국제사회가 우리의 냉전의식으로는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빠르게 한반도의 냉전해체를 위해 움직이고있는 상황 하에서 우리만이 속도를 조절한다면 우리는 한반도 문제해결에 있어서 주변적 행위자로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임혁백 고려대교수·정치외교학
  • [외언내언] 감기 예찬

    감기에 자주 걸린 편이지만 아직 독감 예방접종을 한 적은 없다.감기 정도는 걸리기도 하면서 사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병치레를 많이 해서 감기와 친숙한 탓에 그런 엉뚱한생각을 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감기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자연은 그들 안으로 소리 없이 스며들어가/그들을 서서히 쓰러뜨리고 조용히 뉘이었네./삶을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인간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를 깨달을 수 있도록/미열이 주는 깊은 몽상의 메시지를 받을수 있도록./자연은 그렇게 우리들 안으로 스며들어 주었네./우리는사려깊은 자연이 선사하는/인생에의 이 새로운 통찰에 감사를 드려야 하나니/우리는 불행을 가장해 날아든 이 작은 행복에 깊이 감사 드린다네.〉 ‘행복이 남긴 짧은 메모들’(풀빛미디어 발행)이란 책에 실린 오스트레일리아의 카투니스트 마이클 루닉의 이 감기예찬에 나는 전적으로 동감한다.지독한 고통이나 깊은 절망을 느끼지도 않으면서 삶을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고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정말 감기가 주는 축복이 아닐까.그런 점에서 도통 감기몸살이라고는 앓아 본 적이 없는 듯한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낀다.항상 기운이 넘쳐나는 듯한 그 건강한 사람들의,아픈 사람 사정 이해 못하는 몰인정함(?)에 맞닥뜨릴 때 더욱 그러하다. “박제(剝製)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상(李箱)의 소설 ‘날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銀貨)처럼 맑소.” 며칠 동안 심한 몸살감기를 앓고 출근하는 길에 바로 이 구절이 실감으로 다가왔다.원래 가벼운 몸무게가 더욱 줄어들어 내딛는 발걸음이 허공에 뜨는 듯한 순간,몸안의 불순물이 모두 빠져나가고 정신이 ‘은화처럼’ 맑아진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그러나 올 가을에는 독감백신을 맞아 보기로 작정했다.지난 겨울 감기를 호되게 앓은 탓이다.감기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일 나이도 이제 지났다는 생각도 들었다.그런데 공교롭게도 독감백신이 없다고 한다.세계보건기구(WHO)가 매년 4월께 유행이 예상되는 바이러스 균주를 발표,거점 생산지역을 정해 생산토록 하는데 올해는 균주 발표자체가 늦어져 원액 생산이 차질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게다가 가수요까지 겹쳐 물량부족 상태가 발생했다며 국립보건원은 시민들의 협조를 당부하고 있다.65세 이상 노인,호흡기나 심장질환자,임산부,당뇨·암환자 등을 제외한 건강한 사람은 독감백신을 맞을 필요가 없다는데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결국 다시 감기와 친구할 수밖에없을 듯싶다. 임영숙 논설위원실장 ysi@
  • [외언내언] 三聖祠 복원

    이땅 곳곳에 남은 단군 유적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황해도 구월산의 삼성사(三聖祠)였다.환인·환웅·단군 등 3대(代)의 성인을 모신 이 신묘(神廟)는 고려 초기인 1006년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역사가 오랜 유적이다.조선 태종때 이를 폐지하고 단군제사를 평양 단군릉으로 합치니 황해도에 오랫동안 나쁜 병이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1472년 성종이 전면 보수하고 제사를 봄·가을로 지내게 했다.영조·정조 때도 임금이 직접 보수를 명하거나 축문을 보낼 정도로 국가가 제사를 주관한 단군 숭배의 현장이었다. 그런데 일제(日帝)는 1916년 삼성사를 파괴한다.추석날 대종교 초대 교주인 나철(羅喆)이 이곳에서 제천의식을 올리고 자결하자 이를 빌미로 헐어버렸다.한민족의 뿌리를 자르려면 단군의 실체를 부정해야하므로 일제는 평소 삼성사를 눈엣가시로 여겼다.그런데 나철이 자결해 민심이 동요하니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일제는 이후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해 한민족 역사를 뿌리 없는 것으로 만들었고 그폐해는 지금껏 이어져아직도 학계에서는 단군의 실재 여부를 논란거리로 삼는다. 그 삼성사를 북한이 복원해 최근 성대한 준공식을 가졌다.조선중앙방송은 이를 보도하면서 “삼성사는 고조선 시기부터 민족의 시조 단군을 숭상해 제를 지내온 역사가 가장 오랜 사당”이라고 소개했다. 보도가 간략해 ‘고조선 시기부터 존재했다’는 주장이 무엇에 근거하는지 알 수 없지만 삼성사 복원은 어쨌든 축복할 일이다. 북한은 1993년 10월 평양시 강동군 강동읍 대박산 단군릉을 발굴,5,011년(서기전 3018년)된 단군의 유골을 발견했다고 밝혔다.이는 서기전 2333년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했다는 ‘삼국유사’ 기록보다 그 연대를 700년 가량 끌어올린 주장이었다.당시 남한 학자들은 대부분 “북한 정권의 정통성을 보강하려는 정치적인 결정”이라며 냉소적인반응을 보였지만 일부에서는 북한에 비해 지나치게 소극적인 우리의고대사 연구 자세를 우려하기도 했다. 이제 한민족은 분단의 역사를 딛고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의 출발점에 섰다.1,000년 넘게 국조(國祖)로 추앙받아온 단군은 우리의 뿌리를 상징하는 존재로 민족 동질성 회복에 큰 몫을 할 것이다.그런데도 우리사회에서는 단군상을 훼손하는 일이 잇따라 벌어지고,고교 국사교과서조차 ‘고조선의 건국 사실을 전하는 단군 이야기는 우리 민족의 시조 신화’(27쪽)라고 격하하고 있다.나흘 뒤면 개천절이다.학자건,보통사람이건 ‘우리에게 단군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한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 볼 시점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
  • [대한광장] 경의선 복원의 역사적 의미

    역사가 발전하려면,외적인 조건과 더불어 내적인 역량이 함께 대응해야 한다.경의선 복원은 새로운 동아시아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면서 통일운동의 가시적 진전이라 생각된다.아는바와 같이,한반도의 분단으로 북한과 중국 및 소련을 포함하는 세력권과 남한과 일본 및 미국을 포함하는 세력권이 대치하여 왔다.또한 민족사적으로볼 때 우리민족은 좌우익 세력과 함께 중도세력들이 힘을 합하여 분단을 막고 통일 민족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그러나 이에 대응하는 외세의 힘은 너무 강해서 좌우익이 협력하는 민족운동은 좌절되었고 이같은 노력의 실패로 1948년 남북에는 다시 두개의 분단국가가 성립되었다. 냉전구조가 만든 세계사의 굴레속에서 우리민족은 분단상황을 극복하고자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그 모두가 반통일 분단구조의 벽을 극복할 수 없었다.그러나 이제 냉전체제의 몰락과 함께 등장한 글로벌시장경제 구조는 지구 안의 모든 나라들을 서로서로 연계시키고 있다,세계의 3대 세력권(블록)의 하나로 떠오른 동아시아에는하나의 지역 공동체로 묶어지는 새로운 국제환경과 질서가 대두되었다.이에 우리나라는 그 중심에 위치하여 지역공동체의 균형을 잡는데 일정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를 위하여 남과 북은 이제 주체적으로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공존공영의 길을 모색해야 되는 때가 되었다.과거 냉전시대때 한반도는그 지정학적 위치상 대륙권과 해양권이 맞부딪치는 전초기지였으나오늘 21세기에는 동아시아 전체를 잇는 평화의 가교가 된 것이다.중국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전체가 하나의 평화로운 지역공동체로서등장하는 새 시대에 부응하여 남과 북은 지금까지의 불신과 대결,경쟁과 냉전상태에서 화해와 협력의 남북한 공조체제를 이루지 않으면안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군사력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휴전선을 뚫고 민족의 대동맥을 연결시킨 경의선 복원 기공식은 우리 민족사의큰 축제요 대역사가 아닐 수 없다.그렇다면 남북 공조체제,협력체제를 이루는데 기여하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의식의 전환이다.경의선의 복원사업은 평화통일,자주통일의천명이다.그러나 모든 사업에 남북 쌍방이 공조해야 한다,어느 한쪽이 이 일을 주도해서는 안된다. 공조의 첫길은 북한사회에 대한 우리의 올바른 인식이 필수적이다. 분단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민족은 두 쪽으로 나뉘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경험했다.한쪽은 자유를 근간으로 경쟁과 발전에 매진하여 자본주의사회를 건설하였고,또 한쪽은 평등을 근간으로 변혁운동을 통하여 사회주의사회를 이룩했다. 그러나,북한이 이룩한 사회주의 운동이 모두 실패는 아닐 것이다.비록 물질적 생산력이 낙후되었다고는 하나 한시대 한 공간에서 어려운삶을 공유하였던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 구축한 주체성, 도덕성,상호부조의 공동체적 우애 등이 평가되어야 한다 분단시기 동안 남북상호간의 서로 다른 역사경험은 21세기 민족사를 열어가는데 좋은 자원이 될 것이라 믿는다. 분단 50년, 우리민족이 이룩한 역사적 전통과 유산들이 상호간에 부정되지 않는 길을 찾는다면 대등통일의 길이 또한 열릴 것이다.경의선 복원은 세계에 민족의 내적 합의와단결을 과시하였고 시드니올림픽에서 세계는 진심으로 축복해 주었다.50여년전 전승 강대국들은 적절한 시기에 한국을 자유독립국가가 되도록 하겠다고 공약했지만 그것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통일은 민족 스스로가 이루어야만할 과제다,전쟁에 의하지 않는, 일정한 합의기반을 가지는 점진적 변화·통합의 길로 나아가는 징조가경의선의 복원사업이다.경의선의 의미는 경제성장 물류교류만은 아니다.한반도가 동아시아와 세계를 연결하는 평화의 가교가 될 수 있음을 천명하는 것이다.지금 우리는 투철한 역사의식으로 민족통일의 소명을 가져야 한다.민족의 일을 함에있어 개인,국가,근로자,지도자 모두는 공이 사에 우선 하여야 할 것이다.지금이야말로 민족사 내부의힘을 한덩어리로 뭉칠 때이다. 서굉일 한신대교수·국사학
  • [대한광장] 섬김이 아닌 것은 도둑질이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만인 사제론’을 주장하면서 중세 천여년 동안 당연시되어왔던 교회내부의 계급구조에 정면으로 도전하였다.성직자단이든 일반신자들이든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구별없이 봉사를 하기 위해서 뽑힌 일꾼들이라는 것이다. ‘만인 사제론’은 일반신자들의 지위를 상향조정하고 있기보다는 특권의식에사로잡힌 성직자그룹을 하향 조정하고 있는 것이다. 루터는 사제들과 주교들,그리고 교황의 직무를 파워나 권위의 문제가 아닌 봉사의 직무로 정의내린다.그는 계속해서 “그리스도인은 만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주인이지만 만물에 종속된 모든 사람들을섬겨야 하는 충실한 종이다”라고 역설한다.이러한 이해의 바탕 위에서 루터는 이 세상의 모든 제도나 직무는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기 위해 세워진 것들이라고 주장한다.세상의 모든 질서는 이웃을 섬기기위한 제도적인 장치라는 것이다.마침내 루터는 우리에게 충격적인 말을 남겼다.“섬기는 것이 아닌 것은 도둑질이다”.루터는 ‘이웃을섬겨야 한다’는 윤리적 명제를 철저화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종교개혁자의 말을 지금 이 시점에서 되새기는 것은,오늘의한국을 이끌어가고 있는 지도자들의 삶 속에서 ‘섬김’의 윤리가 정착되기는커녕 오히려 섬김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섬김이란 복음의 능력으로 새로 태어난 사람의 실존이다.섬김은 한 인간을 얽매던 과거의 가치관으로부터 해방된 현실과 새로운 삶을 향한 방향전환이 교차하는 길목에서 이루어지는 새 창조이다.과거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은 존재 깊숙이 각인된 죄 때문에 하나님과 동시대인들의 원수가 돼 특정한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삶 한 가운데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그 자신의 욕망과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쓰이던 자유가 이웃을 향한 사랑의 자유로 전환된 것이다.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요 변화된 사람의 실존이다.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 은사의 특혜들을 타인을 위해 쓰도록 요구하시는 분이다.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은사를 이웃을 섬기는 데 쓰지 않았을 때 그 특권은 도둑질로 화해 버리고 만다.‘도둑질한다’는 말은 본래 ‘사유화한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 뜻이 더욱 분명해진다. 하나님의 은사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특혜들은 더이상 우리들의 사적소유물이 아니라 이웃을 향한 우리들의 섬김의 가능성이다.그런데 요즘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가? 배타적이고 독선과 아집의포로가 되어가고 있다.종교적인 경험을 절대화해 쉽게 이웃을 정죄하고 사회를 심판하려 든다. 다름을 용납하려 하지 않고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포용과 관용과는 전혀 반대로 나가고 있는 느낌이다. 또 세상 가운데서 빛과 소금이 되라는 예수의 말씀을 실천하기는커녕 우리사회에서 터져 나오는 부정부패의 비리 가운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연루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충격이아닐 수 없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은사를 자신의 탐욕과 이기심을채우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일에 쓰게될 때 우리 사회는 한결 맑고 깨끗한 사회가 될 것이다. ‘섬김’의 윤리를 실천할 때 한국교회가 앓고 있는 중증의 병들,선거부정시비,각종 비리에 연루된 그리스도인들의 추태,사이비 이단 기독교의 사회적인 물의로부터 치유될 수 있다.예수는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오셔서 전혀 다른 권력의 원천을 지시하고 있다.즉 ‘참된 힘’이란 남을 지배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남을 섬기는 데서 나온다는 것, 섬김이야말로 참된 힘의 원천이라고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는 섬김의 종교이다.교회가 섬김의 자리보다 권력의 자리에있을 때 기독교는 물론 사회도 부패하고 타락했다는 사실은 역사가가르쳐주는 교훈이다.한국의 모든 종교지도자들과 한국을 이끌어가고있는 지도자들이 무대 위에서 주인공이 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객석에 앉아서 박수를 보낼 줄 아는 섬김의 도리를 배워야 할 것이다. 섬김이 아닌 것은 도둑질이라는 경고를 경청하면서 우리 모두가 삶의방향을 전환해야 할 때이다. 김원배 목사·목회자협 상임총무
  • [외언내언] 황혼부부 2題

    “물고기가 자전거를 필요로 하는 만큼만 여성에게 남성이 필요하다”는 말은 미국의 대표적인 여성해방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1970년 공표한 호언장담이다.여성에게 남성의 도움은 필요없다면서 “결혼하는 순간 여성은 반쪽 인간이 된다”고 강변하던 스타이넘이 지난 3일 나이 예순여섯에 처음으로 신부가 됐다.그는 “페미니즘이란 삶의 각 시기에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하는 능력”이라는 말로 자신의 결혼을 변호했다. 사흘 뒤 국내에서는 대법원이 72세 할머니가 92세 남편을 상대로 낸 이혼소송에서 할머니 손을 들어주었다.법원은 40년 넘게 살아온 이노부부의 결혼 파탄이 ‘평생을 봉건적·권위적인 방식으로 가정을이끈 남편’에게서 비롯했음을 명확히 했다.할머니는 지난 96년 처음 이혼소송을 냈으나 패소했고 98년 다시 소를 제기해 이번에 대법원확정판결을 얻어냈다. 66세에 찾은 결혼의 행복과 72세에 얻어낸 이혼의 자유.보통사람은삶을 조용히 갈무리할 나이에 한국과 미국 양쪽 할머니들이 일으킨‘사건’은 외형상 정반대인 것처럼보인다.남성우월주의자들은 스타이넘의 결혼에 “남자가 필요없다더니 결국 백기를 들었잖아”라며희희낙락할지 모른다.또 이혼소송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산다고,그냥 참지 왜 소동을 일으켜”라고 못마땅해할 수 있다. 그러나 두 할머니의 선택은 동전의 앞뒷면과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는 같은 성격을 지닌다.그것은 누구나 행복을 찾아 결혼할 권리가 있으며,결혼생활이 참기 어려운 지경이 되면 새 삶을 찾을 수 있는 권리다.곧 결혼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권리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그렇다고 요즘 사회문제가 된 ‘쉽게 하는 결혼·이혼’을 지지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최근 보도된 또다른 노부부 이야기를 다함께 생각해보자. 충남 금산의 송병호(宋秉鎬)옹 부부는 1905년생 동갑으로 15세에 만나 올해로 80년을 해로했다.슬하에 3남3녀를 두었는데 지금은 손자 32명,증손 22명,고손 2명 등 직계 자손만 60명이 넘는다.금산군은 지난달 30일 노부부의 결혼 80주년을 기념해 ‘백년해로 기원’ 전통혼례식을 치러주었다고 한다.혼자 인생 80을 살기조차어려운데 부부가 이처럼 해로했으니 참으로 축복해줄 일이다. 그렇다고 이 노부부에게 80년 세월은 행복하기만 했을까.아닐 것이다.여느 부부나 마찬가지로 이분들에게도 갈등과 마찰은 있었을 테고 세월의 두께만큼이나 그 부피는 더욱 컸을 수 있다.“부부간 사랑은 언덕을 굴러내리는 눈덩이와 같아야 한다”고 했다.눈덩이는 구를수록 커진다.송병호옹 부부는 이같은 지혜를 일찌감치 터득한 모양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
  • 4인조 포크 팝그룹 ‘메리 고 라운드’

    편안한 노래가 사라졌다는 얘기를 우리는 이즈음 적지 않게 주고받고있다.정서의 주파수를 맞추기에 우리 시대는 너무 복잡다단해졌는가. 이런 가운데 노래가 지닌 서사성의 힘과 감수성을 올곧이 지켜내는밴드를 만난 것은 축복이라 할만하다. 지난 7월 데뷔앨범을 낸 4인조 포크 팝그룹 ‘메리 고 라운드’를 뒤늦게 만나보았다.음악전문지 ‘서브’에서 일하다 이젠 음반사 팝기획자와 밴드연주자로 ‘주경야독’을 하고 있는 김민규(기타 보컬·델리의 김민규와 동명이인이자 친구)와 여러 밴드의 세션으로 활약했던 도은호(베이스),미대를 나와 방송작가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해 사려깊고 시적인 가사와 풋풋한 목소리를 생산해낸 산비(본명 이영우)동갑내기 29살 세명에 씩씩한 막내 드러머 신승광의 합류. 이들을 만난 날은 태풍 ‘프라피룬’이 극성스럽게 거리를 뒤집던 날이었는데 4명의 멤버는 너무도 편안한 표정으로 ‘카바레’ 사무실에앉아있었다. 이들이 밴드를 결성했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직장 친구들끼리 연주나 하는 거겠지’ 했단다.도은호가 가장 오랜 음악경력을 갖고 있고나머지 멤버들은 거의 ‘생짜’에 가까웠다.드럼과 베이스가 녹음하면 기타와 보컬은 주말에 ‘입히는’ 식으로 작업이 진행됐다. “모든 음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일이고,느낌이 살아있는 연주를 하고 싶었어요.”(김민규)“완결된 상태에서 녹음을 한 것이 아니라 녹음하면서 만들어가는 편이었죠.”(산비)앨범의 중심잡기에 애를 먹었지만 프로듀서 이성문이 오다가다 ”괜찮아.그냥 그 느낌대로 가보자구”한 게 힘이 됐다.많은 음을 사용하기 보다는 단순하고 솔직한 소리를 내자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고그런 점에서 앨범은 성공한 듯 보인다. 소속사 카바레는 이들의 음악에 ‘청춘군상을 위한 동요’라는 별칭을 얹었다.CD가 시작되면 우리들은 회전목마에 올라앉아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느릿느릿 돌아가는 세상은 그 자체로 풍경화다.그 색채는선명함이 아니라 아스라한 정경 속에 정체를 감추고 있는 낯익은 기억들. 키보드와 어쿠스틱 기타가 앞장선 이들의 음악은 분명 21세기를 향해돌진하는 이들의 그것과는 반대로‘퇴행적’이다.‘아름다운 퇴행’이라고나 할까. 김민규는 “유럽의 민요같은 것을 좋아했어요.처음부터 다른 음악을하자고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우리만의 음악을 하자는 건 분명했지요”라고 말한다. ‘로치’에선 징그러운 바퀴벌레도 너무나 예쁜 가사와 선율로 묘사되고 ‘달빛’에서 들려주는 산비의 말간 목소리와 김민규의 ‘힘’을 뺀 보컬의 교차도 귀에 박힌다.김민규는 “침대에 들 때 귀는 가장 솔직해진다”며 “취향을 배반하지 않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도했다. 사이키델릭한 포크 사운드와 팝적인 감수성의 결합은 분명 영국의 포크그룹‘벨 앤 세바스찬’과 미국의 천재 닉 드레이크에 잇닿아있다. 멤버들은 “즐겨 듣기는 하지만 부러 카피한 건 아니다”고 입을 모은다. ‘메리고’는 오는 9일 오후8시 홍익대앞 쌈지스페이스에서 공연,다시 연주활동에 들어간다. 그들과 헤어지니 폭풍우가 더 거세졌다.하지만 마음 속에 돌아가던회전목마는 더 느릿느릿해지고 거리의 풍경은 더 살갑게 다가왔다. 임병선기자 bsnim@. *소속사 카바레, 독특한 노선 걷는 가수들 발굴. 메리고라운드의 독특한 사운드는 카바레라는 든든한 버팀목없이는 나오기 힘든 것이었다.산비는 “우리 앨범을 프로듀스한 이성문 사장에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96년 문을 열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로-파이 개념의 음반 ‘이성문의 불만’,볼빨간의 ‘지루박 리믹스쇼’를 발매해 주목받았다.로-파이란 정밀한 음질을 재현하려는 하이파이와 반대로 있는 그대로의 소리를 재현하려는 노력. 모든 걸 혼자서 ‘뚝딱뚝딱’ 수공업적으로 제작한 곤충스님 윤키의새 힙합선언 ‘관광수월래’를 냈고 은희의노을의 ‘칵테일’ 앨범등이 10월 나올 계획. 이 사장은 “많이 팔리는 음반이나 유행을 선도하는 음반이 아니라누가 들어도 새롭고 즐겁고 좋은 음악을 만들겠다”고 했다. 카바레가 계속하고 있는 지하철(월 1회)과 거리공연도 같은 맥락.오는 24일 오후4시 경복궁 지하철역에서 레이블 소속 밴드들이 대중들과 직접 어울리는 무대를 연출한다.문의 (02)325-5211,www.cavare.co.kr
  • 金추기경·쌈장 화상채팅 화제

    문자 세대인 김수환(金壽煥) 추기경과 N세대의 대표격인 프로게이머 이기석씨(21·아이디 쌈장)가 30일 오후 1시간 가량 컴퓨터 화상채팅으로 세대간의 벽을 허무는 대화를 나눴다. 이날 화상대화는 서강대 언론대학원과 프랑스의 ‘크렉·아벡스 국제센터’가 공동 주최하는 ‘사이버 시대의 종교 지도자’양성 과정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진행됐다. 김 추기경은 서강대 언론대학원 멀티미디어실의 컴퓨터 앞에 마이크가 달린 헤드폰을 쓰고 앉아 컴퓨터 화면에 ‘쌈장’이 나타나기를기다렸다.오후 2시 30분이 되자 서울 서초동 이스테이션 사무실에 있던 이씨의 얼굴이 화면에 떠올랐다. 다음은 김 추기경과 이씨의 대화 내용. “유명한 사람을 만나게 돼서 반가워요” “추기경님이 더 유명하잖아요” “인터넷 게임으로 돈을 많이 번다는데 의미있게 쓰나요” “네…” “컴퓨터 때문에 요즘 젊은이들의 생활이 엉망이라는데…” “게임중독은 피해야죠” “꿈이 뭐예요” “영웅이 되고 싶어요” “은퇴를 해서 요즘은 한가한데 많은 젊은이들과 만나고 싶어요” “은퇴라니요.세상에 은퇴가 어디있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마지막이라뇨,크크크…” 화상채팅을 끝낸 김 추기경은 “인터넷을 실감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면서 “디지털이 모든 사람에게 축복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추기경은 98년 6월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직을 은퇴한 뒤 서울대교구 인터넷 사이트의 ‘추기경님에게 드리는 편지’ 코너를 통해 신자들과 이메일을 주고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창구기자 window2@
  • [대한시론] 가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

    잘 아는 재일교포 한분이 며칠전 고향을 찾아왔다.한 살 때 부모를따라 일본에 건너가 고생이란 고생은 몽땅 겪으면서 자랐다고 한다. 배는 고프고 먹을 것은 없고 일을 나간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았다.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통을 뒤지고 근처 밭에 나가 배추,시래기를 주어와 국을 끓여 먹으며 자라서 이제는 일본 사회에 당당하게 자리잡은 분이다. 너무 힘들고 가난하게 살아서 그 어머니는 평생토록 고향에 대해 등을 돌리고 살았다고 한다.온가족을 남부여대해 남의 땅으로 내몬 고향을 뭣 때문에 그리워하느냐고.그러나 늙고 편찮으셔 돌아가실 나이가 되자 그토록 완강하던 어머니가 고향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다.한번만 가보고 싶다고,아들 낳았다고 너울너울 춤추던 고향집 마루를한번 밟아 보고 싶다고.먹을 것이 없어 주저앉아 펑펑 울던 그 고향집 초라한 부엌에 쌀 가마니 몇 개만 들여 놓는 걸 보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아들은 병 들어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고향을 찾았다.이제는 옛 모습이라고는찾을 길 없어진 고향에가니 잘 걷지도 못하던 어머니가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 언덕 위에서 있는 느티나무를 향해 훠이훠이 올라가시더라고 했다.이제 그 어머니는 백골이 되어 소원대로 고향땅에 묻혀 계시고 그 아들이 예순이 훌쩍 넘어 병든 몸으로 고향을 찾아 온 것이다. 그런데 불가사의한 것은 자기는 한 살 때 고향을 떠나 고향에 대한추억도 전무하고 일본에서도 성공해 잘 살고 있는데 왜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렇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지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것이다.이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장면을 지켜보면서 사흘 동안 어찌나울었던지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서. 전에는 추석 귀향길 뉴스를 읽고도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다고도 했다.도대체 두어 시간이면 후딱갈 고향을 열 몇 시간씩 정체를 만들면서 다녀오는 이유가 뭔지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질 않았다는 것이다.그것도 갔다가하룻밤 자면 또 그 고생을 하며 돌아올 것을. 그러나 이번에 그 상봉장면을 내내 지켜보면서 그 분은 모든 의문이풀렸다고 했다. 우리 민족이가지고 있는 한(恨),서러움,그리고 효(孝)에 대해 이해를 하고 나니 갑자기 어린애처럼 어머니가 누워 계시는 고향에 가고 싶어 잠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200명의 이산가족들이 가지고 있던 저마다의 한과 설움,그리움이 200가지 모양으로 보여지면서 남과 북의 모든 사람들을 울게 만들었다. 눈물의 화합,눈물의 카타르시스라고나 할까.나도 종일을 훌쩍거리면서 거기에 내 설움까지 겹쳐져서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가게 되는경험을 했다.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미어지고 여름내내 전화한통 넣지 않았던 아버지가 그리워지고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딸들이 못견디게 보고 싶어 부랴부랴 떨리는 손으로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렇다.이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장면은 전 국민을 울렸을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가족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계기가 됐다.가족이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가.이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이산가족들에게 고개를 들수 없도록 미안할 수밖에 없다.가족은 무조건 함께 살아야한다.함께살 수 없으면 보고 싶을 때 만나게라도 해줘야 한다. 이제 얼마 안남은 추석,우리는 모두 고향으로 가기 위해 전국의 길을 꽉 메울 것이다.그러면서 이 고생을 하면서라도 구애받지 않고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 있고 그곳에 가면 우리를 기다리는 부모님을 뵐 수 있다는 사실을 각별히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1,000만 이산가족이라고 한다.그분들이 함께 모여 살지는 못하더라도 보고 싶을 때 만날 수 있는 장소라도 하루빨리 만들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손숙 연극배우·전 환경부장관
  • 金대통령의 8·15 감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5일 21세기 첫 광복절을 맞아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열린 제55주년 광복절 경축 기념행사에 참석한 뒤 관저로 돌아와 남북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TV로 지켜봤다.감격적인 장면이 나올 때마다 박수를 치며 축하했으며,눈시울을 적시기도했다고 박준영(朴晙瑩) 청와대대변인이 전했다. 김 대통령은 박 대변인을 통해 “이번에 서울과 평양을 방문한 이산가족에게 겨레의 이름으로 마음의 축복을 보내며,특히 서울에 온 이산가족에 대해서는 가족은 물론 국민들도 따뜻하게 맞이해 한 겨레의정을 느끼도록 하자”고 당부했다. 또 이번 상봉으로 이산족들이 품고있던 그동안의 한이 조금이나마 풀리기를 바라며 이런 기회가 계속이어지길 기대했다. 이어 “이번 1차 상봉이 성공적으로 이뤄져 남북간 화해 분위기가정착되고 남북간의 신뢰가 구축돼,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통일로 이어지는 길이 되길 바란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이어 박 대변인은 “김 대통령은 평소 ‘이산가족 1세대들이 세상을뜨고 있는데,평생 그리던 가족들을 못 만나면 얼마나 한이 되겠는가.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이산가족 문제를 풀지 못하면 죄인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품어왔다”고 전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광복절 경축사(대한매일 15일자 4면 전문게재)에서도 이산가족 상봉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남북간 화해협력의 시대를여는 데 대통령으로서의 책무와 책임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김 대통령은 아울러 민족의 자주 단합과 조국 통일을 기원하기 위해‘남북 불교도 8·15 동시 법회’를 여는 전국 사찰에 메시지를 보내“남북 화해의 새로운 민족사를 열어가고 있는 이 때에 조국의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법회를 봉행하게 된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격려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남북이산상봉/ 의미·해법

    평양과 서울에선 15일 이산가족들이 50년 만에 해후하고 얼싸안았다.남북한이 냉전과 대결의 외투를 벗어버리고 화해 공존·협력 동반자시대에 들어섰음을 이날의 상봉은 상징한다. [상봉의 역사적 의의] 월북자도, 월남자도 이제 겨레의 환영과 축복속에서 ‘내고향’을 찾아 가족·친지를 떳떳하게 만나고 혈육의 정을 나눌 수 있게 된 것도 시대의 변화를 보여준다.남이나 북이나 전쟁과 분단의 상처와 냉전의 이지러짐을 넘어서 용서와 화해의 민족공존의 장을 열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면회소 설치,방문단의 지속적 교환 등 북측도 이산가족 문제에 대해변모된 모습을 보였다.“정치적 문제”라며 교류를 꺼리던 북측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산가족 교류에 응한 것은 개방과 교류 확대라는 좀더 큰 차원에서 대남·대외 정책을 바꾸었기 때문이었다. 이산가족 문제도 이같은 큰 틀의 변화에 따라 진전될 수 있었으며이번 상봉은 변모된 북측의 자세를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기였다.상봉도 지난 85년처럼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점에서 이번 상봉은 정치·경제 사회문화 등 전 분야에 걸친 남북 교류 협력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자 첫 발로 받아들여진다. [남북의 변화] 북한은 대남 폐쇄정책에서 벗어나 이산가족 교류뿐 아니라 남측과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부문에 걸쳐 교류와 협력의 물꼬를 트기 위한 실천에 나서고 있다.남북한은 실제로 교류 협력의 실천과 확대를 위한 틀과 방안을 만들고 있다.오는 29일부터 평양서 열릴 2차 장관급회담,9월 초 예정된 적십자회담 등에선 이같은 교류 협력 방안들의 구체화를 위한 논의가 진행된다.정상회담 직후 6월 말적십자회담과 7월 말 제1차 장관급회담 등에서 틀과 방안을 논의해왔다. 이산가족 상봉이 가능했고 남북 화해 공존의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의 정부’의 지속적이고 일관적인 대북 포용정책이있었기에 가능했다.행동과 실천으로 북측에 남측의 “흡수통일과 적대적 행위는 없다”는 약속을 믿게 됐으며 신뢰와 협력의 분위기를만들어 온 것이다. 이러한 노력 속에서 분단 후 첫 정상회담이 가능했고 화해 교류의큰틀을 담은 6·15선언이 가능했다.이산가족 상봉은 특히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취임 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추진해온 사업.이념도,한반도의 허리를 끊어놓은 철조망도 이들의 만남을 종내는 막을 순 없었다. 이산가족들의 얼싸안은 채 떨어질 줄 모르는 모습은 냉전을 넘어 하나가 되고 있는 한반도 남과 북을 상징한다. 이석우기자 swlee@
  • 국악/ 국립국악원 6일 칠석맞이 ‘은빛‘

    오는 6일은 설화속 견우와 직녀가 일년에 딱 한번 만난다는 칠석날.국립국악원이 ‘은빛 별강,견우별의 사랑노래’라는 예쁜 제목의 공연으로 이들의 해후를 축복한다.오후 5시,국립국악원 예악당(02)580-3040선남선녀의 사랑을 기리는 자리인만큼 칠석에 관한 고금의 시를 모티브로 한 다양한 음악과 창작무용,한시창 등으로 푸짐한 상을 차렸다.‘은하수의 잔별들은 반짝반짝 웃으면서 무슨 말을 속삭이나…’지금은 잊혀진 남도민요‘칠석요’를 국립국악원민속단이 재구성 복원해 연주하고,정악단은 맑고 영롱한 양금의 소리로 ‘하현도드리,타령’(영산회상중)을 선사한다. 황병기의 가야금곡 ‘숲’을 배경으로 한 창작무용 ‘별숲’과 ‘끝없이 이어지는 길’은 사랑을 찾아 떠나는 견우별의 고독과 직녀와의 영원한 사랑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되살려낸다.매월당 김시습의 한시 ‘칠석’을 여성 이중창으로 구성한 한시창 ‘은빛 별강의 노래’와 창작타악그룹 ‘공명’의 타악퍼포먼스도 기대할 만하다.전석 초대. 이순녀기자 coral@
  • [기고] 디지털 혁명과 윤리규범

    0과 1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디지털혁명의 가장 큰 공헌은 인터넷을 탄생시킨 것이다.이런 인터넷은 거리의 개념을 바꿔놨다.아무리 먼 곳에 있더라도인터넷을 통하면 항상 최신 정보를 접할 수 있다. 과거에는 외국에 있는 연구논문을 구하기 위해 복사신청을 한 후 몇 달을기다려야 했다.그래서 정작 논문이 도착했을 때는 왜 그것을 신청했는지 잊어버리기도 했다.그런데 이제 마음만 먹으면 세계 어느 곳의 정보도 순식간에 얻을 수 있다.출장가서 사온 제품을 모방해 만들어 시장에 내면 이미 세계시장은 바뀌어 있다.이제 미국 뉴욕에 있는 사람이나 한국에 있는 사람이나 정보력에는 별 차이가 없어졌다. 인터넷을 디지털 혁명이 한국인에게 선사한 축복이라고 할만하다.지구촌의변두리라는 한반도의 숙명적인 약점을 보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또 하나의 기여는 민주화에 있다.인터넷을 이용하면 어느 누구든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전에는 특별한 사람들만이 접근할 수 있었던 자료도 이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게 됐다.이렇게 정보가공유되면 특수계층의 힘이 약화되어,수직사회에서 수평사회로 바뀌게 된다.과거 유럽의 중세시대에 성경을 번역하지 못하게 하고,조선시대에 한글을 억압하던 이유를생각해 보면 금방 이해가 간다.지난 몇 년간 서울시가 이뤄낸 행정개혁 중에서 가장 큰 성공작으로 민원처리 전산화시스템을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타났듯이,시민운동이 활발해지고 일반인의 의사표현 기회도 많아진다. 디지털혁명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IMT-2000 사업이 본격화되면 또하나의 ‘도약’이 이뤄질 것이다.‘듣기만 하는 통신에서 보는 통신’으로바뀌면 우리 생활은 엄청나게 변한다. 초고속통신망이 완성되면 우리 사회는 진정한 멀티미디어 세상이 된다.재택근무가 일반화되고 전자상거래,원격회의,원격진료,원격교육 등이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그렇게 되는 날에는 길거리에서 일반 차량을 보기가 힘들어질것이다.오직 길에는 택배회사의 배달차량들만 달릴 것이다.예외가 있다면 즐기고 운동을 하기 위해 나가는 사람뿐일 것이다. 그렇다고디지털 혁명이 순기능만 가지고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다.가장 염려스러운 것이 사생활 침해다.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지적했던 빅브러더의 출현을 어떻게 막느냐가과제다.인공위성과 개인휴대단말기를 이용하면 개인의 위치추적은 물론 모든 행동이 감시될 수 있다.이제 몰래 애인을 만날 수도 없고 룸살롱에 갈 수도 없어진다.그야말로 ‘밤에는 쥐가 보고,낮에는 새가 보는 시대’가 가능해진다. 인간의 사는 방식을 정하는 것이 윤리규범이다.혁명을 거치면 사는 모습도바뀌어 규범도 바뀐다.산업혁명 후 공산주의의 출현으로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서야 오늘의 민주사회를 이룰 수 있었다.이제 우리 인류에게는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디지털 윤리규범의 확립이 절실해지고 있다. 이것이 정립된 후에야 역사가들은 디지털 혁명의 공과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李 光 炯 KAIST 미래산업 석좌교수
  • [대한포럼] 高齡化 사회의 지혜

    수필가 피천득 선생은 소설 주인공들의 93%가 마흔살 미만의 인물들이라며따라서 40부터의 삶은 ‘여생(餘生)’이라고 한때 말했다.필자는 40세 문턱에 이런 수필을 읽고 일시 절망했지만 피 선생의 ‘말 바꿈’으로 위안을 받았다.“인생은 사십부터도 아니요,사십까지도 아니다.애욕,번뇌와 실망에서해탈되는 것도 축복이고 기쁨과 슬픔을 많이 겪은 뒤에 맑고 침착한 눈으로인생을 관조하고 오래 살면서 신문에서 갖가지 신기하고 해괴한 일을 보는것도 재미있다” 어느 선배는 은퇴후 ‘황금기’를 맞고 싶은 소망을 피력했다.수십년간 쳇바퀴 돌듯한 일터에서 떠나 여행도 다니고 자녀 교육과 생계를 위해 쪼들리던 데서 벗어나 여유있게 돈 쓰는 생활을 즐기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정년 퇴직후 죽음까지의 여생을 맞는 대부분의 노인의 삶은 그리 화려하거나 안정적이지 않은 것같다.70대초반의 장인어른은 “이렇게 살아서는안되는데…”라며 혀를 찼다.치매에 걸린 70대중반의 사돈과 80대의 둘째 형을 문병한 후였다.요양원에 입소한 사돈은 사람도 못 알아볼 정도로 정신이오락가락한다. 특히 80대형의 아내는 70대 꼬부랑 할머니로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남편의 온갖 수발을 드느라 허리가 더 휘어질 지경이다. 한때 유행어였던 ‘다 쓰고 죽어라’는 극소수의 사치일 뿐이다.대부분 용돈도 궁한 노인들은 자식들의 짐이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그렇지 않으면 병과 정신의 쇠락이 노후를 기다리고 있다.건강하면서도 돈과 시간이 부족했던젊은 시절이 가고 돈과 시간을 얻은 노인도 건강 피폐로 망가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의 65세 인구가 지난 7월1일자로 7%를 넘어 이른바 ‘고령화사회(aging society)’로 접어들었다.오는 2022년에는 그 비율이 2배인 14%로 늘어날 것으로 보여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고령인구가 빠르게 늘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노인인구가 급격히 늘면 노동계층의 연금부담이 가중되는 등 경제적으로 문제가 적지 않다.특히 사회 복지제도가 아주 허술한 우리나라에서 건강이 나쁘거나 경제력이 약한 노인들은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질 지경이다.원론적인 대책은 다 안다.나라에서 노인복지 예산과 병든 노인이 갈만한 시설도 늘려야 한다.더욱이 평균 수명 남자 70세와 여자 78세인데도 60세 이전으로 되어있는 대부분 직장의 정년퇴직연령도 높여야 한다. 이런 당위론에도 불구 경제적 여유,일자리와 건강 등 노년의 행복에 필요한요건을 국가와 사회가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기업들도 노인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는다.영국 런던 등처럼 유적지에서 머리가 하얀 백발 노인들이 관광안내를 하는 모습을 우리는 보기 힘들다.오히려 구조조정으로 직장의은퇴연령이 더욱 낮아져 증권사를 거친 40대 중반의 컨설팅회사 상무가 “증권계에서는 적어도 50대 초반이면 노인”이라며 쓸쓸해 할 정도이다. 따라서 나이가 들면서 점차 인생의 ‘비무장지대’로 들어서는 개인들은 스스로 방어 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가나안 농군학교 교장 김평일 장로가정리한 ‘노인 십계명’은 음미할 만하다.즉 ▲현재에 충실하자 ▲긍정적인사고를 갖자 ▲끊임없이 능력을 개발하고 사회에 기여하자 ▲건전한 취미활동 ▲담배와 노름 등 잡기를 금하고 근검한 생활을 한다▲스스로 일해 의존적인 삶에서 탈피한다 등이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처럼 자원봉사로 목수 일을 하고 어느 전직 그룹부회장처럼 호텔 서비스맨으로 과감히 변신하는 자세가 필요할 지 모른다.청장년들도 다가올 노년을 담담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4년전 시중에서 회자된 ‘나이든 사람 지혜롭게 살기’지침처럼 “돈 욕심을 버리시구려.… 그러나 정말로는 돈을 놓치지 말고 죽을 때까지 꼭 잡아야 하오”라는 익살도 기억해야 한다.우선 절약하고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 일이다. 李商一 논설위원 bruce@
  • 精文硏 한국학 학술회의… 린튼회장 기조연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원장 韓相震)이 주최하는 제11회 한국학 국제학술회의가 ‘새천년 한국인의 정체성’을 주제로 27일 연구원 대강당에서 막을 올렸다.29일까지 계속되는 심포지엄의 첫날 스티븐 린튼 유진벨재단 회장이 ‘코리안 아이덴티티-남과 북’이란 제목으로 기조강연을 했다.‘북한어린이 결핵퇴치’사업을 하는 린튼회장은 수시로 북한을 방문,구석구석을 둘러본 인물. 게다가 선교사인 증조부가 1895년 이땅에 발을 들여놓은 뒤 4대째 한국과 인연을 맺어왔고 스스로 한국학을 하는 친한(親韓)인사이기도 하다.그가 본 남과 북의 정체성,그 차이와 공통점을 요약한다. 1945년에 일어난 행정상의 분단이 점차 뚫을 수 없는 이데올로기적·정치적인 장벽으로 굳어진 뒤 몇십년 동안 남한사람이 된다는 것은 곧 북한을 반대하고,북한사람이 된다는 것은 남한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20세기 중반에 이미 한국은 전통적 아이덴티티로 복귀하기에 늦은 것처럼 되었다.외국세력에게 강요당한 한국의 새로운 상황(분단)은 더욱 근대적인 자아인식을 필요로 하게 만들었다. 한편 한민족의 적어도 10%는 오늘날 해외에서 거주한다.이러한 추세는 더욱늘어날 전망이다. 한국인을 자처하는 사람 중에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고,문화적으로도 한국인이 아니며,심지어는 ‘순수한’ 혈통을 자랑할 수 없는 이들이적지 않은 지경에 이르렀다.그런데도 본토 한국인들은 아직까지 전통적인 한국인의 정체성을 고집한다.모든 외국적인 것을 거부하는 사례마저 있다.이런상태에서 해외 한인사회, 즉 외국문화와 외국사회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상당수는 2세가 되면 본격적인 정체성 위기에 부딪힌다. 한인사회의 주말학교,한인교회의 한국어 강사들은 한인 이민2세를 외국어와외국문화로부터 ‘구하려는’ 사람들이다.그러나 그들이 청소년에게 줄 수있는 최상의 것은 ‘2급 한국인’이라는 아이덴티티 뿐이다.2급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는 완전한 한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느끼는 죄책감과 불안정성을 포함한다. 좀 더 단순하고 포괄적인 한민족 정체성을 정립하지 않으면 한국은 해외동포사회를 잃는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는 한국과 외부세계를 잇는 자연스런 ‘다리’를 없애는 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한국의 입김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아이덴티티에 대한 전통적인 접근은 남북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한반도 안에서 한국인들은 더이상 동일한 정부,동일한 정치·사회적 문화속에서 살아가지 않는다.심지어 각 반쪽은 한국역사를 다르게 이해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그랬듯이 양쪽 모두 스스로가 상대방보다 더 한국적이라고우긴다면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지 모른다. 각자가 주장하는 ‘한국적’의 실체가 상대방을 희생시켜야 정당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인들은 근대화를 서구화로 간주하지만,유럽·미국 문화와 동아시아문화의 현실적인 차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방과 도시문화의 차이다.전통문화와 윤리의 기반이 되는 농촌이 급속히 도시화하는 사회에서는 전통과의 연결고리를 잃어버릴 위험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남북간에는 차이가 있다.남한에서 농촌사회의 도시화가 진행되었다면 북한에서는 정반대의일이 일어났다. 북한을 방문한 고령자들이 가장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익숙하게 느끼는 점이바로 이것이다.사실상 북한은 농업문화가 도시를 지배하는 극소수의 개발도상국 가운데 하나다.20세기 한국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인 분단은 궁극적으로축복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근대화로 잃은 부분을 회복할 새로운 기회를 가진 민족이나 문화는 역사상 없었다. 그러나 통일은,물질적 성취에 급급해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을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한국에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 남과 북이 합치면 한국인들은 전통문화를 회복하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북한을 단순히 남한 방식으로 도시화하기보다는 농촌과 도시문화를 적절히혼합함으로써 통일된 새 한국사회를 이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리 이용원기자 ywyi@
  • [기고] 가슴 아픈 기독교방송 사태

    존경하는 권목사님!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글을 올리게 됐습니다.저는 일개서생에 불과하나 기독교신자로서,언론학 교수로서,KNCC 사회위원회 위원으로서 기독교방송 사태에 관해 꼭 드릴 말씀이 있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사장님이라는 호칭보다는 목사님이라는 호칭이 더 좋아 목사님이라 부르겠습니다.무엇보다 직원과 간부의 불신으로 기독교방송이 흔들리고 기독교가 지탄을 받아서는 안되겠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무례할지도 모를 이런 편지를 쓰게됨에 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 권목사님! 저는 목사님이 한국기독교와 한국교회를 위해 헌신하신 점을 익히 알고 있으며,그간 여러 곳에서 만나 뵌 목사님은 온화하고 다정다감하셨습니다.그러다가 목사님께서 기독교방송 사장이 된걸 알고 마음 속으로 축복했던 것이 엊그제 같습니다.그런데 지금은 회사 안팎에서 권목사님의 퇴진을요구하는 소리가 높고,더구나 기독교방송은 현재 제 기능을 못하는 방송이되었습니다.참으로 가슴아픈 일입니다.저는 왜 이렇게 됐는지 정확히 알수없으나 한 순간 기독교방송과 기독교계가 사회로부터,또 언론계로부터 왕따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몇년 전 평화방송 사태로 양심적인 방송인들이 해고되는 등 고통을 겪었습니다.이번엔 기독교방송과 국민일보가 사장,사주문제로 인해 심각한 분규를겪고 있습니다.기독교신자로서 참으로 창피하고 부끄러울 뿐입니다.얼마전에는 기자들이 방송제작을 거부한 적도 있습니다.이제는 마음을 비우고 떠날채비를 하는 것이 기독교는 물론 기독교방송을 살리는 길이요,목사님이 할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기독교방송은 ‘정론(正論) 정도(正道) 정언(正言)’의 방송입니다.그래서 작은 방송사지만 그 역할과 비중이 다른 어떤 방송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면 기독교방송은 신앙과 믿음으로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여기까지 성장해 왔습니다.박정희-전두환으로이어진 철권통치 아래서도 기독교방송은 하나님의 소리,진리의 말씀을 전파하였습니다.교회의 물질적·정신적 후원도 컸지만 기자나 프로듀서,아나운서들의 정직한 마음과 따뜻한 자세도 한몫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지금 매우 열악한 조건에 있습니다.임금이나 취재비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외부연수나 외국대학 유학 등의 기회는 거의 없습니다.물질적인 조건만 두고 볼때 기독교방송인들은 참으로 딱한 지경입니다.그래도 이들은 진실과 정의의 편에 서서 당당하게 말했고,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그래서다른 어떤 매체에서 말하는 것보다도 기독교방송에서 말하는 것을 더 신뢰하는 국민들이 많습니다. 21세기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습니다.정부나 기업,언론 모두 국민의 지지에 더 의존하는 경향입니다.어느 누구도 더 이상 절대권력을 누릴 수 없고,국민의 신뢰를 잃고선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저는 이러한 환경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사장이 들어와 기독교방송이 무궁무진한 발전을 할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권목사님! 목사나 언론사 사장과 같은 직책은 믿음이 으뜸인 직책입니다. 신도나 국민들이 불신하는 목사나 사장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들이 못 믿겠다고 돌아서버리면 좋든 싫든 떠나는 것이 도리입니다.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계속 자리를 지키려 한다면 더 큰 압박과 비판이 일 것이 분명합니다.그리고 이번 기회에 기독교방송의 지배구조도 수술을 해야 할 것입니다.이사회가 좀 더 참신하고 전문성을 가진 인사로 교체되고 직원들이 소신과 믿음을 갖고 일하는 방송사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사장문제로 기독교와 기독교방송이 직원,청취자,신자로부터 따돌림받고 더 큰 상처를 입기 전에권목사님의 용퇴를 권합니다. 金 承 洙 전북대교수·신문방송학
  • [사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반갑습니다.만나고 싶었습니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두손을 마주잡으며 인사말을 나눌 때 우리 모두 같은 말을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이토록아름다운 만남이 될 것을 그토록 먼 길을 돌아야 했던가.분단 55년 만에 이루어진 남북 정상의 첫 만남은 남과 북이 하나임을 새삼 다시 확인하게 해주었다. 13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대통령 전용기에서 김대통령이 천천히내려와 이례적으로 공항영접에 나선 북한의 김국방위원장과 두손을 맞잡고악수 하는 순간,우리는 한민족임을 절감하게 되었다.50대의 김위원장은 70대의 김대통령을 마치 혈육을 대하듯 극진히 맞았고 남북 평화통일을 위한 평생의 노력이 구체화한 현장에서 김대통령은 벅찬 감회에 젖은 듯 했다.두 정상이 담소를 나누며 다정한 모습으로 의장대를 사열하고,환영 나온 1,000여명의 인파가 ‘김정일’‘김대중’을 연호하는 가운데 나란히 승용차에 올라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 향하는 것을 TV를 통해 지켜본 국민들은 가슴 밑바닥에서 치미는 뜨거운 감격을 억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남북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는 순간,우리 민족의 저력을 전세계에 보여주는 순간,살다 보면이런 날도 있구나 싶게 꿈 같던 일이 현실화 된 그 순간은 진정 남북이 한마음이 된 축복의 시간이었다. 남북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평양에 간 김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영접은 융숭함을 넘어선 파격적인 것이어서 회담이 좋은 성과를 거두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좀처럼 일반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북한의 김위원장이 직접공항에 나와 김대통령을 맞이하고 의장대 사열을 비롯한 공식행사를 가진 것은 사전에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이날 공항에는 김위원장 이외에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의 최고 수뇌부가 거의 모두 나왔다. 지난 70년 동서독의 첫 정상회담 당시 동독을 찾은 서독 총리에 대한 동독의공식적인 영접행사는 극히 사무적이었다. 지금까지 남북 관계는 묵시적으로‘특수관계’로 인정돼 왔고 따라서 순안공항과 평양 거리의 환영인파들도남북 국기 대신 꽃을 흔들어 반겼다. 그러나 김대통령을 남한의 국가 원수로 인정하고 최고 예우를 갖춘 이번 공항 의전행사를 통해 남북 관계는 새롭게 진전한 셈이다. 또 북한의 김위원장은 공항의전 행사가 끝난 후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향하는 김대통령을 그냥 배웅하지 않고 리무진 승용차에 함께 타고 숙소로향하는 파격을 연출했다.사실상의 첫 남북 정상회담이 승용차 안에서 극히자유스럽고 친밀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국제관례를 깨트린 이같은 파격은 바로 남과 북이 외국이 아닌 한나라요 한핏줄의 민족으로 이루어져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형식과 절차를 뛰어 넘어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은 7,000만 민족의 염원이 김위원장의 전격적이고파격적인 김대통령 공항영접과 승용차 동승의 형태로 표출된 것으로 보고 싶다.북한이 ‘기술적인 이유’를 들어 남북 정상회담을 하루 연기한 것 또한바로 이런 결과를 위한 준비가 아니었나 싶어 지난 하룻동안의 우려가 말끔히 씻어지는 느낌이다. 남북 두 정상은 상봉 첫날부터 승용차 안에서의 회담에 이어 본격적인 공식회담을 가졌다.이 자리에서 김대통령과 김위원장은 남북 화해 협력과 민족공존공영의 길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핫라인 설치에 의견을 모았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물론 금물이다.첫술에 배부를 수도 없다.우리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극진한 환영에 흥분해서 반세기 만에 맞은 역사적인 기회를 그르쳐서도 안될 것이다.다만 북한 역시 이번 정상회담에 걸고 있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상호 이해와 협력의 폭이 더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김대통령은 평양도착 성명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남과 북 우리 동포 모두가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데 모든 정성을 다하겠다”면서 “반세기 동안 쌓인 한을 한꺼번에 풀 수는 없지만 시작이 반이다.이번 평양방문으로 온 겨레가 화해와 협력,그리고 평화통일의 희망을 갖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렇다.평양에서의 2박3일 공식일정 동안 남북 정상이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고 신뢰를 구축하는 것만으로도 갈등과 대립과 분쟁으로 얼룩진 남북관계가 상생과 평화의 관계로 전환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이제 한반도 한민족의 새 역사가 시작됐다.외세에 의한 남북분단,그로 인한무수한 상처와 손실을 씻어내고, 자주적인 평화공존의 순결한 씨앗이 뿌려졌다.우리 민족의 은근과 끈기로, 남북대화를 방해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돌출할지 모르는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평화통일의 시대를 열어야 할 것이다.남북 정상의 첫 상봉,좋은 시작이 김국방위원장의 남한 방문으로 이어져 정상회담이 계속되면서 좋은 결실을 맺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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