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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와 산] (41) 부산 해운대 장산

    [도시와 산] (41) 부산 해운대 장산

    해운대 신시가지에 인접한 장산(?山·634m)은 부산에서 금정산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산으로 부산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바다를 바라보며 가파르게 우뚝 솟은 전형적인 배산(背山)이자 진산(鎭山)인 장산은 특히 해운대 주민들에게는 앞마당이나 다름없다. 장산 마니아인 주민 김진헌(50·무역업)씨는 “집에서 20분만 걸어가면 장산 입구여서 매주 산행길에 오른다.”며 “등산 코스가 다양해 오를 때마다 지겹지 않고 마치 다른 산을 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며 예찬론을 폈다. 이처럼 부산사람의 사랑을 흠뻑 받고 있는 장산은 산세와 기품이 마치 장군처럼 위풍당당하다. 그도 그럴 것이 태백산 끝자락에서 정기를 이어받아 기장군 장안면의 달음산에서 장산~남구의 금련산·황령산, 영도구의 봉래산에 이르는 금련산맥에서 가장 높게 치솟아 있기 때문이다. 장산에는 부산지역의 산에서 보기 드물게 5개의 폭포가 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게 양운(養雲)폭포이다. 암석단에 걸려 있는 이 폭포는 9m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수가 뿜어내는 하얀 물기둥과 함께 바위에 부딪혀 피어나는 물보라가 구름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 절벽을 타고 내리는 하얀 물줄기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 떨어지는 모습은 장관이다. 폭포 아래는 둘레 15m가 되는 푸른 소가 있는데 마치 가마솥처럼 생겼다고 해서 ‘가마소’로 불린다. ‘해운8경’ 중 3경에 속한다. ●장산에는 장산국이 있었다 장산에는 삼한시대 장산국(?山國)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동래부지’(1740년)에는 “옛 장산국은 대군 30명을 일으켜 가야국을 쳤다.”고 기록돼 있어 전체 인구가 100명 안팎인 아주 작은 소집단 부족국가로 장산을 삶의 터전으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장산국의 ‘장’자는 ‘거칠다.’는 의미와 ‘거친 복숭아’란 뜻을 지니고 있어 거칠산국으로도 불린다. 거친 복숭아는 돌복숭아로 표면 껍질에 가시가 많이 돋아 있다. ‘장산의 역사와 전설’의 저자인 김병섭씨는 “장산은 상산(上山·가장 높다는 뜻), 봉래산 (蓬萊山), 내산(萊山) 등으로도 불렸으며, 가시복숭아 나무가 많았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어 장산국이라는 이름은 돌복숭아가 많은 장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산(거칠산국)이 신라에 귀속된 이야기가 삼국사기에도 전해져 내려온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탈해왕(57~79) 때 이웃에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이 있어 근심거리가 됐다. 당시 간(干·지방관리의 7관등 벼슬)의 벼슬을 가진 거도라는 관리가 있었는데 두 나라를 신라에 귀속시킬 생각으로 매년 한 차례 장토(현 기장지역) 들판에서 병사들로 하여금 말을 타고 달리게 하는 거짓놀이 마초(馬椒)를 하게 했다. 이웃의 우시산국과 거칠산국 사람들은 신라에서 의례적으로 하는 놀이로 생각하고 방심했다. 이 틈을 타 거도는 병마를 이끌고 두 나라를 쳐서 없애버렸다. 그러나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은 신라에 완전히 예속되는 형태가 아니고 공물을 바치는 정도였고 부족국가로서의 영역과 자주성은 그대로 지속 영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 일대 무덤에서 가야문화의 출토 유물이 많은 것으로 미뤄 신라문화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부산지역 향토사학자들은 “장산국은 지리상으로 가야와 신라의 중간에 있어 신라에 예속됐지만 가야문화의 영향을 받은 소국이었다고 판단되며 삼국시대 이전에 있었던 부족국가였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장산 정상에는 수만여평에 달하는 넓은 들판이 있는데 장자버들이라고 불리고 있다. 장산국이라고 불리는 부족국가 흔적이 발견된다. 장자가 이 부족 국가를 다스렸으며 지금 반송동 산 51의1 분지 일대가 장산국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무덤과 토기 엽전 등 유물이 출토됐다. 서기 79년(탈해왕 23년)에 장산국이 토벌돼 거칠산군으로 합병되자 장자는 왕족을 이끌고 산에서 내려와 장자터(현 두산·동국·LG아파트지역)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 이후 새실마을(현 부흥고·대원아파트지역)을 거쳐 청사포 쪽으로 나갔는데 이후 행적은 확실치 않으나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장산의 기우소 선바위 장산에서는 비가 오지 않으면 제를 지내는 정갈하고도 신령스러운 기우소가 세 곳 있었다. 선바위(立岩) 기우소는 재송2동 세명아파트에서 10여분 가면 돌서렁이 나오고 거기서 급경사로 오르막을 20여분 오르면 도착한다. 동래부지에는 선바위에 기우소가 있다고 하고 그 선바위를 상산정 (上山頂)이라 했다. 높이는 11m이며 둘레가 세 사람의 팔짱이다. 밑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홀쭉하고, 맨 꼭대기에는 한 사람 정도 앉을 수 있다. 장산에 오르는 등산로는 송정동, 좌동, 우동, 재송동, 반송동 등에서 오르는 길과 이 길과 이어지는 다른 길들이 얼기설기 얽혀 31곳이나 된다. 대부분의 등산로는 2시간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어 아이부터 노년까지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대표적인 코스는 대천공원을 이용해 중봉을 지나 정상에 오르는 길이다. 재송동 옥천사에 출발해 정상에 오른 뒤 중봉과 옥녀봉을 지나 대천공원으로 내려오면 왕복 5시간이면 충분하다. 산 입구에 있는 대천공원에는 공원의 상징 조형물, 야외공연장, 놀이터, 인공호수, 삼림욕장, 체육시설 등이 갖춰져 있어 밤에도 산책과 운동을 할 수 있다. 야외공연장은 1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사계절 내내 음악회와 시 낭송회 사진전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열려 볼거리를 제공한다. 산행 뒤에 해운대 온천에서 몸을 풀 수 있는 것도 장산의 다른 매력이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고수레’ 진원지? 仙人과 결혼 ‘고씨할매설화’ 전승 주민들 매년 대보름에 제사 지내 명산에는 전설이나 설화 등 이야깃거리가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부산 해운대 장산에는 선인(仙人)과 혼인한 ‘고씨 할매 설화’가 전해진다. 아득한 옛날 장산 기슭 장자벌에 고씨 성을 가진 처녀가 홀어머니와 함께 토막집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여름날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다가 그치더니 멀리 동쪽 하늘에 영롱한 무지개가 나타났다. 고씨 처녀는 그 아름다운 모습에 넋이 빠져 있었다. 그때 하늘에서 비단옷을 입은 선인이 나타나더니 무지개를 타고 곧장 고씨 처녀의 집 앞에 다가섰다. 선인은 목이 말라 물을 청했다. 고씨 처녀는 물그릇에 물을 떠주면서 부끄러워 얼굴을 돌려 외면했다. 물그릇 속에 비친 처녀의 얼굴은 옥처럼 빛나며 아름답기 그지없었으며 선인은 그만 매혹되고 말았다. 둘은 마을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혼인을 치렀다. 이 부부는 장자벌의 땅을 일구고 행복하게 살았으며 아들 열명과 딸 열명이 태어났다. 세월이 흘러 모두 장성한 이들은 각자 안씨, 정씨, 박씨, 이씨, 김씨, 최씨 등으로 창성해 20곳의 마을에 흩어져 마을을 다스리게 됐으며 선인은 부족의 대족장이 됐다. 선인은 혼인한 지 60년이 되자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고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고씨 할매는 선인의 뒤를 이어 부족을 다스리는 대족장이 됐다. 선인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한 고씨 할매는 장산바위에 올라가 날마다 옥황상제께 남편의 귀환을 간절히 빌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숨졌다. 자식들은 고씨 할매가 숨진 곳에 큰 무덤을 만들어 안장하고 부족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게 됐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바깥에서 식사를 할 때면 먼저 밥 한 숟갈을 떠서 ‘고씨례(高氏禮)’라 소리지르며 음식을 던진 뒤에 식사하는 등 고씨 할매에게 예를 올렸다. 고수레의 어원 가운데 하나로 전해진다. 지금도 마을 주민들은 마을 뒷산의 사당에서 매년 정월 보름날에 고당 할매 제사를 지내고 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생명의 窓] 슈바이처를 다시 생각하며/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종교학 명예교수

    [생명의 窓] 슈바이처를 다시 생각하며/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종교학 명예교수

    오는 14일은 ‘아프리카의 성자’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출생 135주년이 되는 날이다. 슈바이처라는 이름을 들으면 아프리카 원시림으로 들어가 환자들을 돌보며 반평생을 보낸 의사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른다. 그러나 그는 의사이기 전에 칸트의 종교론을 비판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은 철학박사였고, ‘예수전연구사’라는 책을 써서 유럽 신학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신학박사였으며, 오르간 연주 및 수리 전문가로서 특히 J S 바흐 연주의 제1인자였을 뿐 아니라 바흐에 관한 책들을 낸 음악인이기도 했다.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종교학 명예교수오늘 그의 생일이 가까워지면서 이렇게 슈바이처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은 경제 만능 사상이 불러온 인류의 고통이나 생태계의 위기로 ‘생명·평화’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위협받고 있는 오늘 그의 박애와 ‘생명 경외’ 사상이 너무나도 절실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슈바이처는 어릴 때부터 남들의 고통을 그냥 볼 수 없는 불인(不忍)의 마음이 있었다. 어릴 때 친구와 함께 새총을 만들어 새를 잡으러 갔다가 새를 향해 막 새총을 쏘려고 하는데, 저 멀리 교회에서 수난절을 알리는 종소리가 마치 하늘의 소리처럼 들렸다.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러 새들을 쫓아버렸다. 어릴 때 자기 전 어머니가 자기 침대 머리에 와서 기도해 주는데, 언제나 ‘사람들’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듣고, 기도해 줄 사람이 없는 다른 생명체들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어머니가 나간 다음 ‘숨 쉬고 있는 모든 것들’을 축복해 주시라는 기도를 덧붙였다. 1896년 21세 되는 부활절 아침 침대 머리로 들어오는 밝은 햇살을 받으며,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말할 수 없는 행복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동시에 자기가 누리는 이런 특권을 혼자만 당연한 것으로 여겨도 되는가 자문하면서 앞으로 10년간은 자기가 원하는 학문과 예술에 바치지만, 30세부터는 직접 고통 당하는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하는 일에 전념하겠다는 결심에 이르렀다. 이 결심에 따라 30세가 되었을 때 다시 의과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 7년 만에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자기가 그렇게 사랑하던 학문과 예술을 뒤로한 채 아프리카 원시림으로 가서 의료봉사에 전념했다. 영어로 ‘자비’라는 말 ‘compassion’은 고통을 함께한다는 뜻이다. 슈바이처는 실로 불우한 사람들과 아픔을 같이하는 ‘자비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사람들의 아픔만을 돌보는 데 그치지 않았다. 40세 때 아프리카에서 짐배를 타고 오고웨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3일째 되던 날 해질 무렵 배가 하마 떼 사이로 지나가는데, 갑자기 전에 예상하지도 못했던 문구가 번개처럼 머리에 떠올랐다. ‘생명 경외!’ 그 순간 철문이 열리고 숲속으로 길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슈바이처는 모든 생명은 신성하므로 모든 생명을 경외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저녁 시간 방에서 등불을 켜고 공부할 때도 창문을 열어놓을 수가 없었다. 날파리들이 등불에 날아와 타죽는 것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뭇잎을 따지도 않았고, 꽃을 꺾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가 수술할 때 병균을 죽여야만 하는 것도 안타깝게 여겼다. 말년에는 아인슈타인, 버트런드 러셀과 함께 어머니 지구의 생명을 위협하는 핵무기를 반대하는데 혼신의 힘을 경주했다. ‘무생물의 생명(?)’까지도 경외하려는 철저한 생명 사상가 겸 운동가가 아닌가? 우연히 최근에 책 세 권을 받았다. 세계 어디나 긴급구호가 요청되는 곳이라면 찾아가 아파하는 사람들과 아픔을 같이하는 이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그건, 사랑이었네’(한비야), 인간은 결국 더불어 사는 존재임을 강조한 ‘호모 심비우스’(구미정), 인간뿐 아니라 동물의 아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동물의 권리와 복지’(김진석). 이 책의 저자들도 본인들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슈바이처의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명 경외.’ 이 시대의 화두로 다시 등장하라.
  • [시론]올해 다시 부르려는 희망가/차동엽 신부·인천가톨릭대 교수

    [시론]올해 다시 부르려는 희망가/차동엽 신부·인천가톨릭대 교수

    아무도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을 때부터 필자는 어떤 경제분석 자료도 없이 희망 프런티어로 앞장서서 뛰었다. 필자는 이를 ‘뿌리 깊은 희망’이라 이름 붙이고, 희망논리를 강화하기 위해 에마 골드만의 시를 인용했다. “희망이 없는가? 소망이 없는가? 꿈이 없는가?/ 그러면 만들어야 한다.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꼭 만들어야 한다./ 너무 절망스러워 도저히 희망과 소망이 없어 보일지라도 찾아보고/ 또 찾아야 한다. 그래도 없다면 억지로라도 만들어야 한다./왜냐하면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음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8년 여름쯤 글로벌 금융 위기가 한반도 상공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을 때, 필자는 그 비상구는 오직 ‘희망’임을 직감했다. 마침 당시에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던 ‘무지개 원리’로 인해 연 600여회의 강연을 소화해 내고 있던 터였기에, 필자는 강의 말미에 항상 이렇게 열변을 토했다. “지금 우리는 전지구적 경제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이럴 땐 효과적 경제정책을 강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온 국민이 희망을 붙들고 합심하는 것이 더 힘이 됩니다. 우리가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희망으로 진력한다면, 대한민국은 반드시 OECD국가 가운데 가장 먼저 글로벌 금융 위기를 극복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희망’은 그 자체로 다이내믹이 있기 때문입니다.” 필자의 결론은 ‘그러니 아무거나 붙들고 희망이라고 우깁시다!’는 것이었다. 청중 가운데는 정·재계, 시민, 오피니언 리더들도 꽤 포함돼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2009년 말 전세계 경제 전문기관들은 대한민국이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성적으로 글로벌 금융 위기를 탈출했음을 선언하였다. 이 극적인 반전을 회상하며 2010년을 내다보는 필자는 절로 눈시울이 적셔진다. 물론 이 희소식의 일등 공신은 현장에서 불철주야 뛴 경제 역군들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엔 필자처럼 뒤에서 보이지 않게 희망의 기운을 불어넣으며 국민사기를 진작시킨 희망 응원단에게도 박수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칭찬을 받자는 얘기가 아니다. “희망을 말하고 희망을 품었더니 과연 좋은 일이 생기더라!”는 체험적 삶의 지혜를 갈무리해 두자는 취지다. 그래야 훗날 또 다른 시련이 다가올 때 국민적 집단지혜로 우리는 또 다시 희망을 붙잡을 게 아닌가! 2010년 호랑이 해, 여기저기서 장밋빛 전망이 나온다. 용산참사 피해자 보상문제 극적 타결, 원전 수주, G20 개최 등 새해 벽두부터 희망 모드 일색이다. 필자는 이 모든 일들이 잘 풀려 그야말로 국운융성에 크게 기여하기를 빈다. 그러면서 보다 충실한 질적 국격 상승을 담보받기 위하여 세 가지 소망을 가져본다. 첫째로, 젊은이들이 활짝 웃는 해가 됐으면 좋겠다. 심각한 구직난과 불확실한 미래 전망으로 인해 요즘 젊은이들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다시 이들의 눈에 생기가 돌고, 가슴에 진취적 꿈이 생동했으면 좋겠다. 둘째로, 소통문화가 진일보하는 해가 됐으면 좋겠다. 정파·계층·세대·이념 간 갈등은 확실히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증이다. 부디 각 주체들의 쌍방 소통 역량이 성숙하여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묘를 누리고, 온 국민이 생태적 나눔과 공생의 지혜를 터득하여 다양성이 가져다주는 조화로운 풍요를 누렸으면 좋겠다. 셋째로, 대한민국의 국격이 명실상부하게 제고되는 해가 됐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경제력으로는 약진을 거듭해왔지만, 삶의 질과 의미 구현에는 아직도 미진한 측면이 많다. 행복도, 기부문화, 사회윤리, 국제적 책임감 등에선 많은 성찰과 발전이 필요하다. 온 국민이 이런 가치에 눈을 떠 그야말로 차원 높은 행복에 동참했으면 좋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창문 밖에는 함박눈이 내린다. 2010년 대한민국을 축복하듯이 굵은 눈방울이 풍요롭게 내 마음에 내려앉는다.
  • [2010 신춘문예-동화 당선작]당선소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맹렬하게 달릴 것”

    [2010 신춘문예-동화 당선작]당선소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맹렬하게 달릴 것”

    저에게도 별똥별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웃을 수 있습니다. 긴 어둠 속에서 정말 이루고 싶은 꿈을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지금 제가 있기까지 언제나 혼신을 다해 사랑을 주신 부모님께 뼛속 깊이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동생과 가족들, 친구들 정말 고맙습니다. 저를 인도해 주신 정선혜 선생님, 엄기원 선생님, 신현득 선생님, 그리고 마지막까지 함께해 주신 조태봉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김병삼 목사님과 임아형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수연이와 희동이를 만나 저는 행복했습니다. 그들이 바라보며 기대하는 반짝임은 아름다웠습니다. 그들이 무사히 태어나 준 것만도 고마웠는데, 이렇게 빛을 보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웃음이 왜 아름다운지 알아? 그 안에 눈물이 있기 때문이야.’ 이 한 줄을 품고 시작한 이야기였습니다. 모두의 웃는 얼굴 안에 있는 눈물의 반짝임을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그것을 조금이라도 찾아봐 주신 것 같아 감사드립니다. 동화를 쓰는 것이 가끔은 버거울 때도 있습니다. 자격이 없는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러나 동화를 쓰면서 더 노력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더 사랑하려 하고, 희망과 웃음을 더 찾고, 더 밝아지려 노력하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제게 큰 축복일 것입니다. 하늘이 신춘문예라는 기적의 문을 열어 주셨으니, 이제 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맹렬하게 달려 보고 싶습니다. 제 글을 통해 전해주시려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할 때까지 성실히 노력하겠습니다. 제게 맡겨 주신 다른 이들과 조금 다른 운명을 끝까지 잘 받아들여서, 마지막 소명을 이루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약력 -1980년생 -단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이화여대 대학원 기독교학과 중퇴 -아동문학세상 57회 신인 문학상 당선
  • [27일 TV 하이라이트]

    ●영상앨범 산(KBS1 오전 7시) 영국의 수많은 도보 여행길 중에서도 영국 도보여행의 심장이자 영혼이라 불리는 레이크 디스트릭트. 영국에서 가장 큰 호수인 윈더미어호를 비롯한 16개의 크고 작은 호수와 계곡, 산 등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담고 있는 곳이다. 걷기를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만 만날 수 있는 레이크 디스트릭트로 떠나본다. ●체험 삶의 현장(KBS1 오전 8시55분)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많은 땀을 흘렸던 스타 일꾼들. 그들의 땀과 시청자들의 성원으로 모인 돈 4572만 5389원의 쓰임새를 낱낱이 밝힌다. 일일 보호자를 자처한 선우용여와 박철, 유채영, 김나영을 비롯한 9명의 스타들이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장애 영유아 생활시설 ‘디딤자리’를 방문한다. ●늘 푸른 인생(MBC 오전 6시10분) 충북 충주시 금가면 사암리 기곡마을을 찾아간다.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좌중을 사로잡았던 박남식 어르신의 이야기, 60년 지기 초등학교 동창생인 안영자, 이상철, 손술범 어르신의 추억담을 들어본다. 그리고 충주의 대표 장수 마을에서 마련한 특별 이벤트 ‘기곡마을 건강할매 선발대회’가 펼쳐진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MBC 오전 10시45분) 2009년 3월 이탈리아 베니스 인근의 섬에서 발견된 두개골의 비밀을 밝힌다. 1945년 일본에 원자폭탄 비극을 불러온 한마디, ‘모쿠사쓰’. 그런데 의도치 않은 사소한 실수로 인해 세계 역사를 뒤흔든 사건은 비단 이뿐만이 아니었다. 단 한마디로 역사의 줄기를 바꾼 결정적인 실수는 과연 무엇일까? ●천만번 사랑해(SBS 오후 8시50분) 커피숍도 닫고 술병으로 엉망이 된 집안을 보며 속상한 금자는 세훈에게 전화를 건다. 세훈은 전화 잘못 거셨다며 전화를 끊고 휴대전화와 번호를 바꾼다. 한편 술에 취한 채 집앞에서 세훈을 찾고 있는 연희를 본 강호는 돌려보내려 하지만 세훈을 만나기 전엔 꼼짝도 하지 않겠다고 한다. ●낯선이웃, 그들이 꿈꾸는 나라(OBS 오후 9시50분) 다민족 다문화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 그러나 우리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는 이들을 ‘낯선 이웃’으로 만들고 있다. 혼혈 한국인, 이주노동자, 탈북자. 이들의 시선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겪고 있는 차별과 아픔을 들여다보고, 우리 사회 의식변화와 대책마련의 필요성을 짚어본다. ●송년특집 SBS 스페셜(SBS 오후 11시20분) 불치병에 걸려 온몸이 마비된 채 방안에 고립되었지만, 그 누구보다 간절하게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남자의 이야기. 유일하게 살아남은 눈의 감각을 이용해 자신의 삶과 사랑을 나누며, ‘살아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축복’임을 대변하는 루게릭병 투병 8년 차 박승일씨 이야기를 만나본다.
  • [영화리뷰] 위핏-드류 베리모어의 감독 데뷔작… 결코 가볍지 않은

    일탈은 매력적이다. 쳇바퀴 같은 일상에 얽매인 현대인들에게 일탈은 큰 해방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말처럼 쉽진 않다. 그에 상응하는 벌칙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일탈은 어렵다. 단지 꿈꿀 뿐. 그래서일까. 일탈을 소재로 한 영화는 그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인기를 얻는다. 동시에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일종의 대리 만족을 얻는다. 이지라이더(1969)와 델마와 루이스(1993), 즐거운 인생(2007) 등은 모두 일탈을 소재로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들이다. 영화 ‘위핏’은 과감히 일탈을 시도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블리스(엘렌 페이지)는 미인대회에 우승해야 인생이 풀린다고 ‘설교’하는 부모님이 지겹다. 이런 블리스에게 ‘롤러 더비’(프로 롤러스케이트 경기)는 인생을 바꿔줄 만한 새로운 세계다. 블리스는 롤러스케이트 팀에 지원, 재능을 인정받지만 단아한 여성상에 익숙한 부모님은 이를 ‘일탈’로 규정한다. 여기서 갈등은 시작된다. 사실 새로울 건 없다. 모범생인 블리스가 터프한 롤러 더비 선수가 된다는 점에서 분명 ‘일탈 영화’고, 일탈 속에서 세상을 배운다는 점에서는 ‘성장 영화’다. 또 일탈로 인한 갈등 속에서 가족의 사랑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가족 영화’로도 말할 수 있겠다. 이런 식의 구성은 너무나 많이 봐 왔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 특유의 경박함이 덜하다. 예를 들어 브링잇온(2000)은 치어리더들의 경쟁을 통한 성장담을 주된 골격으로 하고 있지만 성장을 방해하는 주체를 노골적으로 비열한 캐릭터로 설정했다. 게임을 보듯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 하지만 위핏은 그렇지 않다. 가령, 설정 자체로만 보면 블리스의 일탈을 방해하는 부모님이 과도하게 세련되고 때론 괴팍한, 무척이나 비현실적 모습으로 그려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실제로는 평범한 인물로 묘사된다. 나름의 철학도 있다. 블리스가 미인대회를 강요하는 엄마에게 “50년대에나 통했던 여성상”이라 쏘아 붙이는 부분은 할리우드 영화답지 않은 여성주의(?)의 면모를 드러낸다. 만일 한국 영화에서 이렇게 직설적으로 여성 해방을 부르짖었다면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었을 게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철학의 깊이가 얕은’ 할리우드 영화가 이런 고민을 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하나 더. 이 영화는 할리우드 최고 여배우 드류 베리모어의 감독 데뷔작이다. 미국의 평론가들은 이 영화에 높은 점수를 부여하며 그녀의 데뷔를 축복했다. 하지만 롤러 더비 경기 장면들이 감독의 의도와는 다르게 생각만큼 화려하거나 스피디하지 않다. 그녀의 짧은 감독 경력을 들먹이고 싶지 않지만 아무래도 초보 감독의 한계를 절감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새달 7일 개봉.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日언론 “권상우, 속도위반 심경 고백”

    日언론 “권상우, 속도위반 심경 고백”

    한류스타 권상우가 산케이 신문을 통해 “결혼당시 속도위반에 대해 한국의 시선은 엄격했지만 일본은 따뜻했다.”고 고백했다. 21일 일본 산케이 신문에 따르면 “여배우 손태영과의 결혼했을 때 사실은 속도위반이었다. 일본은 신부가 임신하고 있어도 따뜻한 시선으로 봐준다. 한국은 그렇지 않다.”며 “다른 사람들은 축복 속에 결혼하지만 우리는 질타 속에 결혼을 했다.”고 당시 심경을 고백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을 닮은 아들 룩희가 웃으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다”며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기같다고 전했다. 이어 “올해는 일본 관광객이 자주 오가는 명동과 대구(오픈), 부산에 ‘TEARS화장품’샵을 오픈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산케이 신문은 ‘육체파 배우에서 경영자로 그리고 행복한 아빠’라는 내용의 타이틀로 권상우를 소개하며 “최근 ‘포화속으로’라는 한국전쟁영화 촬영 덕분인지 작은 얼굴에 근육몸매를 지닌 날씬한 실루엣이 최고”라는 호평을 했다. 사진 = 산케이 뉴스 서울신문NTN 채현주 기자 chj@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런 제야음악회 어때요?

    이런 제야음악회 어때요?

    12월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엔 가족은 가족대로, 연인은 연인대로 한 해의 아쉬움을 달래고 새해를 축복하기 바쁘다. 매서운 추위를 감수하며 서울 종로 보신각의 타종을 듣기도 하고 새해 첫 일출을 구경하기 위해 밤기차에 몸을 맡기기도 한다. 하지만 몸고생은 감수해야 한다. 몸고생은 덜한 대신 새해의 여운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제야 공연’에 가보는 건 어떨까. ●오페레타·성악·뮤지컬 등 다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은 이날 방송인 진양혜의 진행으로 ‘2009 제야음악회’를 연다. 서울바로크합주단의 연주와 합주단 음악 감독인 김민의 지휘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박쥐’ 서곡 등을 연주한다. 바이올리니스트 자카르 브론이 라벨의 ‘치간느’를 협연한다. 4만~7만원. (02)580-1300.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의 ‘2009 제야음악회’는 소리꾼 장사익과 바리톤 고성현, 뮤지컬 배우 윤항렬 등 장르를 막론한 출연진들이 흥을 돋군다.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 서울소년소녀합창단이 함께한다. 장사익이 직접 카운트 다운을 외친다. 2만~5만원. (02)399-1114~6. 경기 고양 마두동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도 ‘아람누리 제야음악회’를 연다. 최선용의 지휘로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함께한다. 소프라노 이화영, 테너 김남두, 팝페라 가수 박완 등이 성악과 뮤지컬 갈라콘서트를 한다. 1만~7만원. 1577-7766. 경기 성남 야탑동의 성남아트센터 오페라극장은 ‘60인조 남성앙상블과 함께하는 2009제야음악회’를 진행한다. 60인의 남성 성악인으로 구성된 모스틀리 보이시스의 목소리로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등 합창곡을 선보인다. 3만~5만원. 1544-8117. ●김창완·김장훈 등 대중음악도 대중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김창완밴드는 경기 화성아트홀에서 팬들과 함께 2009년을 보내고 2010년을 맞는다. 오후 10시에 시작한다. 2만~4만원. (031)267-8888. ‘완타치’라는 이름으로 전국투어를 함께하고 있는 국내 최고의 공연꾼 김장훈과 싸이는 오후 10시부터 부산 KBS홀 무대에 오른다. 6만 6000~11만원. 1600-1716. 전국투어를 하고 있는 MC몽도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오후 11시부터 공연을 펼치며 올해 마지막 밤을 서울에서 보낸다. 4만 4000~8만 8000원. 1544-1555. CGV 서울 영등포점에 있는 신개념 문화공간 ‘펍 프로젝트’에서는 31일 오후 10시 ‘플라이 미 투 2010’ 공연을 펼친다. 빼어난 가창력이 돋보이는 여성 보컬 BMK와 다이나믹 듀오가 키운 힙합 듀오 슈프림팀 등이 역동적인 새해 맞이 공연을 선보인다. 4만원. (02)2638-2626. 서울 W호텔,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호텔 등에서는 2009년 마지막 밤과 2010년 첫 새벽을 잇는 음악 파티가 열린다. 홍지민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내년 이통시장 최대 화두…넷북·스마트폰 OS

    ‘내년 세계 이동통신시장 최대의 화두는 넷북과 스마트폰 운영체제(OS),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MV NO)….’ 미국에 있는 통신컨설팅업체 ‘인코드 텔레콤’이 16일 발표한 ‘2010년 통신시장 10대 전망’의 주요 내용이다. 인코드 텔레콤은 넷북을 내년 이동통신사에 ‘축복과 저주’를 모두 가져다 줄 수 있는 제품이라고 꼽았다. 데이터요금제를 판매하는데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이미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데이터 통신망에 더 많은 부담을 줄 수 있어서이다. 휴대전화 운영체제를 둘러싼 경쟁도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휴대전화 운영체제로는 블랙베리, 윈도 모바일, 안드로이드, 심비안, 리눅스 모바일 등이 있다. 인코드 텔레콤측은 “안드로이드가 강세인 반면 리눅스는 고전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경쟁력을 갖추려면 개발자에 대한 폭넓은 지원과 합리적인 인증 과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국내도 내년부터 ‘가상이통통신망사업자(MVNO)’의 진출이 허용되면서 이에 대한 분석도 주목된다. 새로운 MVNO는 솔루션을 무선으로 전송하는 신규 모델을 중심으로 구축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인코드 텔레콤은 통신망을 근본적으로 경쟁업체에 의존하는 MVNO가 사업모델을 개발하는 것은 어렵다고 덧붙였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기고] 녹색성장이 국가경쟁력이다

    [기고] 녹색성장이 국가경쟁력이다

    세계 105개국 정상들이 제15차 유엔(UN) 기후변화 당사국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모인다. 2주간(7~18일)의 일정으로 194개국 협상 대표와 의원, 취재진, 시민단체(NGO) 회원 등 1만 5000명 이상이 코펜하겐 총회에 참석하는 만큼 전세계의 이목과 관심이 집중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량이 199 0년 이후 2배나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주력 업종이 자동차와 조선, 철강, 화학 등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제조업이므로, 이번 협상에서 향후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접근이 요구된다. ●청정에너지원 비중 높여야 시각을 달리하면 기존 패러다임이 깨지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정립되는 이 시기가 오히려 기회일 수도 있다.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Hot, Flat, and Crowde d)’의 저자 토머스 프리드먼도 지난 2월 한국을 방문해 “천연자원이 없는 것이 오히려 한국에는 축복”이라고 언급했듯이 발상의 전환을 하면 위기가 기회로 찾아온다. 정부는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왔다. 지난해 8월15일 경축사에서는 ‘저탄소 녹색성장’이 새로운 국가발전 비전으로 선언됐다. 대통령 직속으로 녹색성장위원회를 설치하고, 녹색성장 5개년 계획 등 산업과 에너지 부문의 계획과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특히 지난달 17일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개발도상국의 최고 수준인 ‘2020년 배출전망치(BAU) 대비 30% 감축’을 발표해 녹색성장의 선두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녹색성장 정책의 핵심은 에너지를 최대한 덜 쓰고, 쓰더라도 청정 에너지원의 비중을 높이며, 그린에너지 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는 것이다. 에너지를 덜 쓰기 위해 2030년까지 에너지 효율을 현재보다 46% 향상시킬 계획이다. 이를 위해 산업과 건물 등에 에너지 목표관리제를 도입하는 등 부문별 에너지소비를 관리할 예정이다. 공급 측면에서는 화석연료 의존도를 83%에서 2030년까지 61%로 낮추고, 깨끗하고 자급가능한 원자력에너지와 신재생에너지의 비율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신재생에너지와 관련해 2030년까지 전체 에너지 공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 2.4%에서 11%로 높이기 위해 기술개발 장기 로드맵을 만들었다. 2030년까지 7조 2000억원의 정부 예산을 관련 연구개발(R&D)에 투자할 예정이다. 원자력발전소의 경우 건설 중인 8기 이외에 신규로 11기를 추가 건설해 전체 에너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15%에서 2030년까지 28%로 높일 계획이다. 그린 에너지산업을 신(新)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그린 에너지산업의 3대 분야인 신재생에너지, 화석연료의 청정화, 에너지효율 향상에 향후 4년 간 민·관 공동으로 총 46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새로운 그린상품 개발 박차 정부는 또 자동차와 조선, 철강, 반도체 등 주력 산업에서도 제품의 친환경화, 공정의 효율화 등을 통해 녹색 전환을 추진할 계획이다. 포스코의 ‘파이넥스 공법’과 같이 환경오염 물질 배출을 90% 이상 줄이면서도 에너지 소비도 줄일 수 있는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 저전력 반도체, 친환경 선박 등 새로운 ‘그린 상품’ 개발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기후변화가 글로벌 핵심 이슈로 등장하고, 세계 각국이 온실가스 규제를 강화해 나가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 몇 년 안에 녹색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본다. 따라서 녹색성장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규제나 제약으로 이해하는 소극적 시각에서 벗어나 향후 펼쳐질 ‘그린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영학 지식경제부 2차관
  • 세상서 가장 작은 엄마, 셋째 아이 낳았다

    어머니의 힘은 참으로 위대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어머니로 알려진 미국 여성이 생명이 위험할 것이라는 우려에도 건강한 셋째 아이를 낳았다. 기적을 이뤄낸 주인공을 켄터키 주에 사는 스테이시 헤럴드(35). 선천적질환인 골형성부전증을 앓아 신장이 73cm에 불과한 그녀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제왕절개 수술로 1.18kg인 아들 말라카이를 얻었다. 예비 목사 윌(28)과 결혼해 딸 캐터리(3)와 마키아(1)를 둔 헤럴드는 올해 초 임신을 했다. 그러나 병원 측이 태아가 자라면서 그녀의 폐와 심장을 눌러 사망에 이를 수 있다며 출산을 포기하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헤럴드는 하늘의 선물인 셋째 아이를 낳는 것을 포기 하지 않았다. 주변의 만류와 우려섞인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태아를 지켜냈다. 출산 예정일은 크리스마스 즈음이었으나 병원 측이 더 이상 출산을 미루다가는 위험하다고 만류해 한 달가량 일찍 수술로 아기를 얻었다. 아기를 얻은 뒤 헤럴드는 “내가 본 어떤 아기보다 아름답다.”고 기쁨을 드러냈다. 이어 “아기가 좀 더 크면 안아줄 순 없겠지만 내가 하지 못하는 건 남편이 대신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헤럴드는 이미 퇴원을 했으며 아기는 음식 소화에 문제가 있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그녀는 “아기가 건강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오기만을 바라고 있다.”면서 “하늘의 축복과 같은 가족과 영원히 행복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엄마와 읽는 동화] 청개구리 소/김춘옥

    [엄마와 읽는 동화] 청개구리 소/김춘옥

    옛날 옛날에, 아기 청개구리와 엄마 청개구리가 살았대. 아기 청개구리는 엄마의 말을 늘 반대로 듣는, 말 안 듣는 청개구리였지. 그런데 어느 날, 엄마 청개구리가 병이 나서 죽게 되었어. “아가야, 내가 죽거든 개울가에 묻어라.” 엄마 청개구리가 죽으면서 말했지. 이번에도 아기 청개구리가 반대로 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아기 청개구리는 이번만큼은 엄마의 말을 잘 듣기로 했어. 엄마를 개울가에 묻은 거야. 이제 청개구리들이 왜 비가 오면 우는지 알겠니? 에이, 그것도 모를까 봐요. 엄마 무덤이 비에 떠내려갈까 봐 우는 거죠. 그래서 내가 엄마 말을 잘 들으라는 말이죠? 얌전히 지내면서 토실토실한 소로 자라라는 거잖아요. 그런데 엄마, 나는 이 축사 안에서 다른 소들처럼 얌전하게 있다가 고기소로 팔려가는 게 싫어요. 축사 바깥의 풀밭을 마구 뛰어다니는 게 좋고, 울타리를 쿵쿵 치받는 게 신난다고요. 가능하면 울타리를 넘어도 좋고요. 앗,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에요? 이 새벽에 우리 축사에 불이 환하게 켜졌어요. 바깥에는 트럭이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서 있네요. 주인아저씨가 다가와 억센 손으로 내 목을 그러잡았어요. 튼튼한 밧줄로 입 주위를 한바퀴 돌리고 양쪽 뿔까지 몇 번 돌려 단단히 묶었어요. 숨이 막힐 것 같아요. “왜 이래요? 엄마, 살려줘요!” “아가야, 아가야!” 엄마도 목 밧줄이 난간에 묶인 채로 소리를 쳤어요. 난 엄마를 돌아볼 틈도 없이 바깥으로 질질 끌려나왔어요. 주인아저씨가 나를 억지로 트럭에 태웠어요. “네 뜻대로 살아라!” 트럭이 떠나는데, 엄마 목소리가 따라 왔어요. 화난 것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한 목소리였어요. “내 생각대로요? 아니면 내 생각과 반대로요?” 입이 단단히 묶여서 또렷한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어요. 내가 평소에 청개구리처럼 말을 잘 안 들어서 엄마가 거꾸로 말한 걸까요? 아니면 그대로 믿어야 하는 걸까요? 엄마한테 다시 물어봐야 하는데 트럭이 출발했어요. 어느덧 트럭이 우시장에 도착했어요. “자, 어서 내려! 이 놈의 소!” 주인이 내 엉덩이를 철썩철썩 때리며 다그쳤어요. “음, 여기에 매어두면 되겠군.” 주인은 내 고삐를 먼저 와 있던 소들 사이에 맸어요. 그리고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어요. 새삼 엄마가 보고 싶어졌어요. “음메에.” 나는 목청을 돋우고는 하늘을 향해 크게 외쳤어요. 엄마가 내 소리를 들었을까요? “그놈 울음 한번 우렁차군.” 그때였어요. 턱수염이 부스스한 아저씨가 내게로 다가왔어요. 나를 살펴보고 뿔도 만져보았어요. 나는 은근히 기분이 상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는 노려보았어요. “얘야, 얼른 고개를 들어. 농부들은 소가 고개를 숙이면 사람을 치받을 자세라고 싫어한단다.” 옆에 있던 늙은 소가 낮게 속삭였어요. “제가 바라던 바라고요.” “잘 봐, 저 사람은 농부란다. 땀을 흘려 일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논이나 밭을 가는 일이요? 그러면 내가 고기소로 죽지 않을 수도 있단 말예요?” “아무렴, 너 같은 수소는 역시 쟁기질을 하는 게 제격이야. 농부에게 팔려간다면 더없는 축복이지, 암.” 늙은 소의 말은 솔깃했어요. “성질이 보통 아니군.” 턱수염도 순하지 않은 내가 오히려 마음에 드는 가 봐요. “이 놈의 아비는 힘이 대단했지요. 싸움소로 이름을 날렸던 당찬이의 새끼라니까요.” 저쪽에 가 있던 주인이 다가오며 말했어요. 턱수염이 날 살피는 걸 보고 있었나 봐요. “자, 이만하면 어떻소? 굳이 중개료까지 지불할 건 없잖소.” 턱수염이 만 원짜리 지폐 뭉치를 주인에게 내밀었어요. “좋소, 아주 좋은 놈을 고른 거요.” 주인이 돈을 다 세고 나더니 고삐를 풀어 턱수염에게 건냈어요. 나는 마침내 다른 주인에게 팔린 거였어요. 턱수염의 집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있었지요. 집 뒤 언덕배기엔 산으로 이어진 밭이 넓게 퍼져 있었어요. 축사는 집 옆에 붙어 있었는데, 내가 살았던 곳보다 훨씬 작았어요. 다른 소들은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나 혼자 이 축사에서 살 모양이었어요. “오늘은 편히 쉬어라.” 턱수염이 나를 축사 안으로 밀어 넣었어요. 바닥에는 짚을 새로 깔았는지 보송보송하고 상쾌했어요. “안녕? 난 민수야. 앞으로 잘 지내자.” 아이가 다가와 먹이를 여물통에 넣어 주었어요. 다음날부터 힘든 날이 시작되었어요. 난 쟁기를 끌며 턱수염과 언덕배기 밭을 갈았지요. 봄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일했어요. “우시장에서 말이야. 너를 처음 본 순간부터 우린 좋은 팀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 언덕배기 밭을 모두 갈자, 턱수염이 아주 기뻐했어요. 나도 처음으로 뭔가를 했다는 뿌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여름이 되자, 아이는 나를 데리고 들판으로 나갔어요. 향기롭고 싱싱한 풀을 맘껏 뜯어 먹을 수 있었지요. 때때로 바람이 내 몸을 훑고 지나가곤 했어요. 앞산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는 비릿한 냄새도 섞여 있었고요.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왔어요. “올해는 땅을 좀더 넓혀야겠어.” 턱수염이 언덕배기 밭을 모두 갈아엎은 후에 말했어요. 밭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곳에 있는 숲에 밭을 좀더 만들고 싶었나 봐요. “장마가 지면 흙이 흘러내리지 않을까요?” 아이 엄마가 걱정스럽게 물었어요. “이 정도는 괜찮아.” 턱수염은 곧 사람들을 불러다가 나무들을 잘라버렸어요. 그리고 나와 함께 쟁기질을 해서 밭을 더 넓혔어요. 그리고 밭농사는 작년보다도 훨씬 잘된 것 같았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여름이 다시 지나고, 가을이 또 다시 지나고, 겨울도 지났을 때였어요. 이제 턱수염이 나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걸 알았어요. 그동안에 차곡차곡 돈을 모아서 트랙터를 샀던 거예요. 트랙터는 나대신 밭을 척척 갈아엎었어요. 나는 이제 축사에서 여물만 축내게 되었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까 내가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어요. 그저 고기소로 팔려 갈 날만 기다리는 소가 된 기분이었지요. 여름이 되자, 아이는 여전히 나를 데리고 들판으로 나갔어요. 마음이 불안하니까 전처럼 풀도 맛있지가 않았지요. ‘고기소로 팔려 가기 전에 도망을 칠까?’ 나는 앞산 쪽을 바라보며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이의 해맑은 얼굴을 보자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던 어느 여름날이었어요. 며칠 동안 비가 계속 내렸어요. 산으로부터 물이 계곡을 타고 무섭게 흘러내렸어요. 급기야 불어난 물이 새 밭에 산사태를 일으켰어요. 밭은 흙더미로 변하고 곳곳에 나무뿌리며 돌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지요. “아이고, 이를 어쩐대요? 올해 농사를 망쳤으니.” 밤새도록 턱수염의 방에서는 한숨 소리가 들려왔어요. 나는 설핏 잠이 들었다가 누군가가 깨우는 바람에 눈을 번쩍 떴어요. 이른 새벽이었어요. “쉿! 조용히 따라와.” 나는 아이가 이끄는 대로 조용히 따라갔어요. 우리는 들판을 가로질러 어둠을 뚫고 계속 걸어갔지요. 이 들판은 눈을 감고도 걸어갈 수 있는 곳이었어요. 아이와 내가 언제나 함께 쏘다니던 곳이었으니까요. “자, 어서 가.” 앞산 입구에 도착하자 아이가 고삐를 풀어주었어요. 그리고는 내 목을 꼭 껴안더니 살며시 놓아 주는 거예요. “바보야, 아빠가 널 팔 거래. 난 네가 죽는 걸 볼 수 없단 말야. 사실은 벌써부터 널 사려는 사람이 있었어. 물론 나 때문에 팔지 못했지만…. 이젠 나도 어쩔 수 없어. 어서 가.” 아이가 나를 막 떠밀었어요. 나는 그대로 거길 떠날 수밖에 없었지요. ‘이제 어디로 가지?’ 나는 캄캄한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어요. 한참을 걸어가다 나무 밑에서 잠시 멈추었지요. 아, 바람이 불기 시작하네요. 어느 여름날 들판에서 풀을 먹다가 맡았던 비릿한 냄새가 나요. 바람을 따라 가봐야겠어요. 쏴아아, 쏴아아.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와요. 그런데 며칠 낮밤 소리를 따라 가다 보니 갑자기 앞이 탁 트였네요. 드넓고 파란 물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요. 내려가는 길에는 계단처럼 층층으로 밭이 있고요. “이랴, 쏴아아! 워워, 쏴아아!” 밭에서 할머니는 쟁기를 끌고 할아버지는 쟁기를 밀고 있어요. 할머니가 마치 나처럼 앞에서 끌고 할아버지는 농부처럼 뒤에서 밀며 사이좋게 쟁기질을 하고 있어요. 정말로 평화롭고 즐거운 풍경이에요. 어느새 나는, 나도 모르게 그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어요. 물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를 한 식구처럼 맞아 주셨고요. 이제 생각해 보니, 엄마는 나에게 내 생각대로 살라고 말했던 거 같아요. 날 청개구리로 여기지 않았던 거죠. ●작가의 말 요즘 소들은 축사에서 편안하게 자라 고기소로 대부분 생을 마감합니다. 과연 축사의 소들은 다른 삶이 있다는 걸 생각해 봤을까요. 우리 어른들도 아이들이 축사처럼 잘 만들어진 세상에서 얌전히 살아가길 바라는 건 아닐까요. 아무 탈 없이 자라 엘리트가 되는 것이 성공한 인생이라 여기면서 말입니다. 경계선을 넘어 다른 곳을 기웃거리는 아이들, 그들의 무모한 열정, 낯선 꿈들에 귀 기울이는 어른이길 원하며 글을 씁니다. ●약력 단국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아동문학을 전공했다.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박물관 가는 길’이 당선돼 등단했다. 저서:‘내일로 흐르는 강’ ‘달빛계로 가다’ ‘작은 나라’ 등
  • 축복의 땅 말라위에 닥쳐온 ‘물 전쟁’

    축복의 땅 말라위에 닥쳐온 ‘물 전쟁’

    물 부족 문제가 어느 곳보다 심각한 죽음의 땅, 아프리카. 아프리카 남동부에 위치한 소국 말라위는 비교적 물이 풍부해 축복받은 땅이다.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를 가지고 있는 데다 이 호수가 전체 국토의 3분의1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축복의 땅도 최근엔 물 부족 문제가 닥쳤다. 어떻게 된 일일까. EBS에서 방송하는 다큐프라임 ‘말라위, 물 위의 전쟁’ 3부작은 석 달간의 현지 취재를 통해 사람뿐만 아니라 야생동물의 생존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물 부족 문제를 다룬다. 또 사람과 야생 동물, 더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의 진실을 소개한다. 1부 ‘제왕의 추락’에서는 물이 풍부한 곳을 찾기 위한 사람과 야생 동물의 치열한 생존싸움을 다룬다. 해마다 건기가 되면 사자들이 강 주변에 자리잡고 있는 인간마을로 넘어와 사람들과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 방송은 사자가 인간의 가축들을 공격하기까지 일련의 과정들을 보여준다. 2부 ‘머나먼 공존의 길’은 말라위 정부, 주민들을 만나 야생동물과 인간의 격리를 위한 노력과 해결방법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정부는 인간 마을로 넘어오는 야생 동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포작전을 벌이고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옮겨 놓는다. 야생동물을 관광자원으로 여기는 정부 입장에서 이를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는 원칙 탓이다. 하지만 동물들은 기회만 생기면 물 때문에 다시 인간마을로 들어온다. 3부 ‘말라위 호수, 축복인가 재앙인가’에서는 말라위의 기후변화가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 최근 지구 온난화가 어류들의 산란율에도 영향을 미치자 말라위 호수의 어획량은 급격히 감소했다. 어부들 사이에는 목 좋은 곳을 서로 차지하려는 다툼이 생긴다. 고기잡이만으로 생계가 힘들어진 사람들이 육지로 나와 대도시에서 일거리를 찾지만 이는 더욱 어렵다. 7일부터 사흘간 오후 9시50분.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경남 합천 가야산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경남 합천 가야산

    가야산(1430m)은 숨어 있다. 늘 팔만대장경을 간직한 법보사찰 해인사의 자자한 명성 뒤를 따른다.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 이어진 웅장한 백두대간 능선에서도 한 발짝 떨어져 있다. 고구려·백제·신라가 자웅을 겨루던 삼국시대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했던 가야국처럼 말이다. 하지만 가야산의 수려한 자태는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다. 사진작가들이 덕유산에서 찍은 일출 사진 속의 태양은 소머리 같은 가야산 상왕봉(우두봉)에서 떠올랐고, 해인사가 아무리 넓다 해도 그 뒤로 수려한 암봉들이 바늘처럼 돋아났다. 가야산은 화려하다. 1000m를 훌쩍 넘는 높이에서 무수한 바위가 꽃처럼 피어나고 불꽃처럼 일어난다. 칠불봉에서 상왕봉(가운데)을 바라보는 산꾼. 가야산 정상 일대는 멀리서 보면 소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우두봉으로도 불린다. 옛사람들은 숨어 있는 가야산의 진가를 알고 있었다. ‘산형은 천하의 으뜸이고, 지덕은 해동 제일이다.’라는 기록이 있고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바위 봉우리가 줄줄이 이어져 마치 불꽃이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듯하여 지극히 높고 수려하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감록’에서는 도읍지의 기운이 한양을 거쳐 계룡산으로 옮겨가고, 종국에는 가야산으로 들어온다고 예언하기도 했다. 가야산 산길은 해인사를 들머리로 오르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성주군 백운동을 들머리로 암릉 구간을 오르며 만물상의 바위미를 즐긴 뒤, 칠불봉과 상왕봉을 비교 감상하고 해인사로 내려오는 것이 최상의 코스다. 거리는 약 9㎞, 4시간30분쯤 걸린다. 가야산 동쪽의 백운동 지구는 가야산성, 옛 금당사(金塘寺)의 여러 암자터 등 문화유산과 만물상을 비롯한 수려한 암봉들이 어우러진 유서 깊은 지역이다. 백운동 버스정류장에서 탐방안내소까지는 불꽃같이 타오르는 바위 봉우리들이 잘 보이는 구간이다. 안내소를 지나면 야영장이 나오고 이곳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산형은 천하 으뜸, 지덕은 해동 제일 햇볕 잘 드는 호젓한 계곡을 20분쯤 가면 백운암지이고 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20분쯤 더 오르면 서성재에 도착한다. 서성재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상아덤(서장대)을 만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출입통제 구역이다. 상아덤은 가야국의 신화가 전해 내려오는 성스러운 공간이다. 아득한 옛날, 가야산에는 성스러운 기품과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정견모주(正見母主)’란 여신이 살고 있었다. 정견모주는 가야산 자락에 사는 백성들이 가장 우러르는 신이었다. 여신은 백성들에게 살기 좋은 터전을 닦아주려 마음먹고 큰 뜻을 이룰 힘을 얻기 위해 밤낮으로 하늘에 소원을 빌었다. 그 정성을 가상히 여긴 하늘신 ‘이비하’는 어느 늦은 봄날 오색구름 수레를 타고, ‘여신의 바위’란 뜻의 상아덤에 내려앉았다. 천신과 산신은 성스러운 땅 가야산에서 부부의 연을 맺고 옥동자 둘을 낳았다. 형은 아버지인 천신을 닮아 얼굴이 해와 같이 둥그스름하고 불그레했고, 아우는 어머니 여신을 닮아 얼굴이 갸름하고 흰 편이었다. 그래서 형은 뇌질주일(惱窒朱日), 아우는 뇌질청예(惱窒靑裔)라 했다. 형은 대가야의 첫 임금 ‘이진아시왕’이 됐고, 동생은 금관가야국의 ‘수로왕’이 됐다. 이 기록은 최치원의 ‘석순응전’과 ‘동국여지승람’에 전해 오고 있다. ●가야국 신화와 기상으로 솟구치다 서성재에서 칠불봉으로 오르는 길이 가야산의 핵심 구간이다. 급경사 바위지대가 많지만 위험 구간에는 철계단이 잘 놓여 있다. 험난함에 비례해 만물상의 멋진 조망이 드러난다. 마지막 철계단과 가파른 로프 구간을 돌파하면 대망의 칠불봉 삼거리에 올라붙는다. 여기서는 먼저 칠불봉에 들렀다가 상왕봉으로 가는 것이 순서다. 성주군에 속한 칠불봉의 높이는 1433m로 합천군의 상왕봉보다 3m가량 더 높다. 그래서 성주 사람들은 가야산 정상을 칠불봉으로 바꾸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칠불봉은 상왕봉과 불과 200m 거리에 있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상왕봉과 동성재 암릉은 빼어나게 아름답다. 그래서 상왕봉과 칠불봉을 비교 감상하며 어느 곳에 더 후한 점수를 줄지 생각해 보는 것도 산꾼들에게는 큰 즐거움이 됐다. 칠불봉에서 암봉들을 우회해 안부에 내려서면 거대한 바위 덩어리인 상왕봉의 우람한 모습이 드러난다. 여기서 다시 철계단을 올라야 상왕봉 정상이다. 상왕봉의 조망은 가야산의 축복이다. 왼쪽 멀리 아스라이 하늘과 맞닿은 곳에 지리산 천왕봉이 우뚝 서 있고, 엉덩이 같은 반야봉의 펑퍼짐한 모습도 선명하다. 산줄기를 따라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다시 웅장한 산줄기가 이어지는데, 그곳이 덕유산이다.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한눈에 잡히는 것이다. 하산코스를 해인사 방향으로 잡고 가파른 길을 내려서면 투박한 돌부처가 길을 막는다. 얼굴이 닳아 거의 없어졌지만 잔잔한 미소는 입가에 남아 있다. 좋은 구경 잘했다고 감사의 절을 올리고 1시간쯤 계곡을 내려오면 해인사에 닿는다. ●가는 길과 맛집 자가용은 중부내륙고속도로 성주나들목으로 나오면 백운동 지역이 지척이다. 대중교통은 대구를 거친다. 대구서부정류장→해인사, 1일 21회(06:40~20:00) 40분 간격으로 운행. 요금 4200원. 1시간20분가량 걸린다. 백운동으로 가려면 해인사 행 버스를 타고 가야면에서 내려 택시를 이용한다. 택시요금 1만5000원. 해인사 아랫마을인 치인리의 삼일식당(055-932-7254)은 담백한 사찰 음식을 내오고, 40년 전통의 백운장식당(055-932-7393)은 산채정식과 더덕구이가 별미다. 글ㆍ사진 mtswamp@naver.com
  • 김성은·정조국 “결혼해요”…웨딩화보 공개

    김성은·정조국 “결혼해요”…웨딩화보 공개

    배우 김성은과 프로축구선수 정조국(FC서울)이 내달 결혼식을 앞두고 예비 신랑 신부의 행복함이 가득 담긴 웨딩 화보를 공개했다. 화보 속 김성은과 정조국은 한편의 영화처럼 로맨틱한 선상 결혼식을 연출하고, 축복된 앞날을 기도하듯 눈을 감고 이마를 맞댄 경건한 모습도 선보인다. 특히 김성은은 미국의 유명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암살라(Amsale)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늘씬한 몸매와 우아한 매력을 뽐냈다. 한편 김성은과 정조국은 내달 11일 오후 6시 서울 광장동 W호텔 비스타홀에서 웨딩마치를 울릴 예정이다. 사진 = 싸이더스HQ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최동호 오솔길 산책] 명품 막걸리의 탄생

    [최동호 오솔길 산책] 명품 막걸리의 탄생

    한국인의 술 막걸리가 우리들의 품으로 되돌아왔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주변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던 막걸리는 한동안 종적을 찾기가 힘들었다. 산업화 시대에는 맥주에 밀리고 탈산업화 시대에는 와인에 밀리던 막걸리가 디지털시대와 더불어 한국인의 맛으로 새롭게 부상한 것이다. 농경시대의 한국인들은 막걸리를 통해 풍요를 느꼈고 막걸리를 통해 민심을 알았다. 한국인들의 희로애락이 모두 막걸리에 담겨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한류 열풍이 동남아로, 세계로 뻗어나갔고 이로 인해 막걸리의 우수성은 오히려 밖에서 안으로 되돌아와 우리 자신을 돌이켜 보게 만든 것이다. 김치나 된장, 고추장이 혐오식품으로 분류되던 시절에 비하면 상전벽해라고 할 정도의 커다란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최근 문인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몇몇 사람들이 막걸리의 재탄생을 위해서는 막걸리에 대한 의미 부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으고 현재 가장 유명하다는 막걸리 세 종류를 놓고 그 맛을 감별하고 이에 대한 감상을 말해 본 적이 있다. 그 중에는 이미 맥주에서 막걸리로, 와인에서 막걸리로 주종을 전환했다는 문인들도 있었다. 한동안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았던 막걸리가 새로운 입맛으로 변신하여 그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와인이 세계적인 브랜드가 된 것은 그 맛에 대한 예민한 감별과 제품의 표준화가 수백 년의 역사를 통해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약간 신맛, 조금 단맛, 가볍고 상큼한 맛 등 맛에 대한 품평은 그날의 유쾌한 쟁론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막걸리가 한국인 고유의 입맛으로 자리잡을 때 막걸리는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막걸리 제조업자들이 해야 할 일은 제품의 표준화를 통해 세계적인 명품 막걸리를 탄생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막걸리의 장점은 발효식품이라는 것인데 막걸리의 약점은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인해 보존 기간이 짧다는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그 맛을 오래 보존할 것인가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기호에 호응하는 다양한 맛을 어떻게 심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들일 것이다. 막걸리의 재탄생과 더불어 한국음식문화의 세계화 문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불고기나 김치 이상의 인기 식품을 개발하고 이를 세계인의 식탁에 올려놓아야 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막걸리이다. 발효식품에 있어서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음식문화를 고려할 때 우리는 충분히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 고추장, 된장, 젓갈 등 여러 종류의 발효 식품들이 그러한 것처럼 한국음식이 가진 고유한 장점을 살린다면 뛰어난 대외경쟁력을 가진 웰빙 막걸리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한다면 막걸리를 서민 대중들이 즐기는 저가 발효술에 그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최고 명품 막걸리를 어떤 그릇에 담아 즐기느냐 하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때 대안으로 일본에 건너가 국보가 되었다는 막사발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막사발과 막걸리는 이름도 유사하지만 서로 통하는 풋풋한 인간적 정서가 있다. 최고의 막걸리에 명품 막사발을 결합시킨다면 막걸리의 재탄생은 세계가 축복할 만한 일이 될 것이다. 최근 햅쌀로 담은 막걸리 누보가 탄생하여 세계적인 상표 보졸레 누보의 인기를 앞섰다는 보도가 있었다. 아직은 시작 단계의 저가 경쟁에 불과하다. 잉여의 쌀로 농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킬 것인가 아니면 새로 탄생한 막걸리의 명품을 만들어 새로운 식품산업의 탈출구를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은 눈앞에 닥친 국가적 과제이다. 당리당략의 정치적 쟁론을 넘어서서 국민적 힘과 지혜를 모아 새로운 명품 막걸리를 탄생시켜야 한다. 최동호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 [LPGA 투어챔피언십] 신지애 버디쇼… 올해의 선수 눈앞

    이틀이나 대회를 중단시킨 폭우가 신지애에게 ‘축복의 단비’가 될 것인가. ‘지존’ 신지애(21·미래에셋)가 폭우로 이틀 쉬고 체력을 회복한 덕분에 버디쇼를 벌이며 ‘올해의 선수’를 향해 내달렸다.신지애는 23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터니안골프장(파72·6650야드)에서 벌어진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대회인 LPGA 투어챔피언십 2라운드에서 16번홀까지 보기는 1개로 막고 버디 6개를 쓸어담아 5언더파 67타를 쳤다. 중간합계 7언더파로 타수를 넉넉하게 만회, 순위를 사흘 전 1라운드 공동 9위(1언더파)에서 단독 2위로 대폭 끌어올렸다. 선두 크리스티 맥퍼슨(미국·8언더파 136타)과는 1타차. 1라운드 당시 “피곤하다. 컨디션이 썩 좋지 않다.”고 울상을 지었지만 자연스럽게 휴식을 만들어 준 이틀 동안의 비가 ‘보약’이 됐다. 첫 날 선두 로레나 오초아에게 4타나 뒤진 가운데 폭우로 1개 라운드가 생략되면서 만회 기회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한 것.반면 올해의 선수와 최저타수, 다승 부문에서 경쟁 중인 로레나 오초아(멕시코)는 이날 17번홀까지 버디 3개와 보기 3개를 맞바꾸며 제자리에 머물렀다. 신지애에게 1타 뒤진 공동 3위로 대세가 역전된 양상. 국·내외 최종 라운드에서 역전 우승을 밥먹듯이 일궈내 ‘파이널퀸’이라는 별명이 붙은 신지애는 이로써 24일 열리는 최종 3라운드에서 또 한번의 역전승으로 올해의 선수를 비롯한 ‘다관왕’ 등극을 예고했다. 우승할 경우 이미 확보한 신인왕과 상금왕에 이어 올해의 선수, 그리고 다승왕까지 최소한 4관왕을 손에 움켜쥘 수 있다. 오초아는 반드시 우승해야 3년 연속 올해의 선수에 오를 수 있다. 5관왕도 가능하다. 평균타수 2위(70.27타)를 달리는 신지애가 최종 라운드에서 1위(70.22타) 오초아와 3타 이상 벌리면 최저타수상까지 받을 수 있다. 신지애는 “비로 이틀 쉰 것, 그리고 교민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면서 “내일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고 말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19살 차’ 송병준-이승민 내년 1월 백년가약

    ‘19살 차’ 송병준-이승민 내년 1월 백년가약

    ’19살의 나이를 극복한 사랑이 이루어졌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외주제작사인 그룹에이트의 송병준(49) 대표와 탤런트 이승민(30)의 결혼 계획이 공식화 됐다. 송병준 대표 측은 20일 정오 보도자료를 통해 두 사람의 결혼 사실을 인정하며 “내년 1월 3일 백년가약을 맺기로 결정한 상태”라고 밝혔다. 다음은 그룹에이트 측 입장 전문 드라마 <꽃보다남자>, <궁> 등을 제작한 그룹에이트의 송병준 대표와 드라마 <학교2>로 데뷔하여 영화 <비스티 보이즈>와 드라마 <하얀거탑>, <탐나는도다> 등에서 호연을 펼친 배우 이승민씨의 소식과 관련하여 공식적인 입장을 정리하며 기쁜 소식을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두 사람은 현재 좋은 감정으로 만남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최근 양가 상견례를 가지고 오는 2010년 1월 3일 백년가약을 맺기로 결정한 상태입니다. 3년 전, 지인이 만든 자리에 우연히 함께 참석하며 첫 인연을 맺게 된 송병준 대표와 이승민씨는, 이후 수년 동안 좋은 동료이자 친구의 관계로 지내왔습니다. 두 사람의 우정이 사랑의 감정으로 발전한 건 약 1년여 전의 일로, 이제는 좋은 친구이자 연인의 관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의 반려자로서 새로운 동행을 앞두게 된 것입니다. 배우 이승민씨는 “원래 결혼에 욕심이 없었다. 평생 연기에만 전념하는 배우가 되겠다 생각했는데, 송대표를 만나면서 이 사람이라면 결혼을 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서로가 사랑하고 감싸주며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싸우고 다툴 때에도 이런 마음이 흔들린 적은 없었다.”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송병준 대표는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승민씨의 고운 마음씨에 매료됐다. 많은 분들의 관심에 감사 드리며 평생의 동반자로서 서로를 아끼며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소감을 간략하게 매듭지었습니다. 또한 스스로를 연예인이나 공인으로 보지 않는 만큼, 가까운 지인들의 축복 속에 조용하고 소박한 예식을 희망한다 덧붙였습니다. 다시 한 번, 관심 보여주신 여러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며 두 사람에게 많은 격려와 축복을 부탁 드리는 바입니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열린세상] 가을, 생의 아름다운 램프/시인 최창일

    [열린세상] 가을, 생의 아름다운 램프/시인 최창일

    가을이 되면 누구나 퇴색한 하나의 은행잎을 만지게 된다. 서걱이는 풀잎의 이마를 쓰다듬다 깔깔대던 꽃 웃음에 취해 보기도 한다. 먼 해조음에 한사코 씻기는 물새 울음으로 스산한 동굴. 해마다 가슴에 피는 소중한 추억제(追憶祭)의 향불을 피워 올리고 있는 것이다. 애써 잃어버리며 사는 그 영롱한 벗의 영토가 지금은 마음의 머언 유적지(流謫地)에 저물어 가고 있다. 해변의 모래밭이 아름답다는 것을 말로만 들어선 모른다. 맨발로 그 모래밭을 밟아 보아야 한다고 앙드레 지드는 ‘지상의 양식(糧食)’에서 말했다. 그렇다. 시린 물방울처럼 손바닥에 떨어지는 하나의 현실, 분명 그것은 이 땅의 중년 남성에게는 있다. 그리운 시간의 바다, 그러나 일제히 흔적도 없이 흘러가 버린 자취를 따라 가을이면 곧 안개처럼 피어나는 환상의 원경(遠景)이 있다. 어느덧 청춘의 오후를 서성이는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보며 어느날 세찬 감동으로 가슴 설레던 바다의 항구와 단발머리 소녀를 생각한다. 수많은 생의 스토리가 다가선다. 평생을 경찰 생활에 헌신한 친구가 명예퇴직을 하였다. 분명 무수히 잠 안 오는 밤을 위하여 창호지에 얼룩지는 한숨과 고독을 곱씹는 요적(寥寂)한 시간 속에 성장하고 해체되고 흘러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친구는 설악의 단풍을 향하여 잃어버린 영롱한 시간을 회상하는 시간을 만들자고 했다. 다짐의 약속도 필요 없이 다음날 설악을 향하여 달린다. 최후로 남는 인생의 허무를 논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영원히 묻어 둘 수도 있는 소중한 삶의 향기들을 이 가을에 소중하게 꺼내 보자는 취지였다. 젊은 날의 삶은 사실 맹목이었다. 아니 맹목이었던 만큼 순수한 불꽃이었다. 다함없이 출렁이는 파도의 교향악. 결국 한줌 바람 소리만도 못한 허무요, 물 한 방울도 못 미칠 무게로 남는 게 인생이라고도 하지만, 그 때문에 불살라야 했던 영혼의 부피와 충격은 무엇으로 견줄 길이 없다. 우리는 지금 풍요로운 세대를 맞아 자기와 어울리는 색을 찾게 되었다.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장과 스타일 맞는 색상의 옷을 말한다. 사실 중년을 넘긴 이 땅의 주인들은 자기 색을 찾기엔 너무 취약한 시절을 살았다. 적성이 맞지 않아도 주어진 직장에 감지덕지 충성을 다하는 세대였다. 옷이 자신의 품에 맞으면 어울리는 색상이었다. 그러나 이 땅의 중년 남성들은 억울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주어진 일에 가치를 두었다. 어떤 일에도 그 안에 다양한 가치가 있다. 그 일 가운데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하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하였다. 생은 거부 하지 않고 늘상 깨어 있는 자에게 환희와 축복을 준다. 땅속에 깊숙이 묻어둔 하나의 불씨. 그것이 어느 날 활활거리며 이승의 온갖 것을 태우고 황량한 폐허를 이겨내는 것처럼 우리들의 불씨도 창조를 향한 원점으로 되돌려 어둠에서도 뜨거운 눈망울을 가지는 것이다. 누가 가을을 소멸의 시간이라고 말했는가? 밀레의 만종은 추수의 계절에 나온 명화다. 밀레의 기도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의 은혜가 되어버렸다. 멀리 가려면 함께 천천히 가라는 말이 맞나 보다. 말하는 사이 설악은 붉은 단풍을 꺼내주며 “당신들의 젊은 날의 심장의 색깔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설악의 종주를 통해 우리는 인생은 삶의 열정이요, 사랑과 관용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누구에게나 통고(痛苦)의 시간은 주어지기 마련이다. 어둠에서 우릴 지킬 때 생의 아름다운 램프는 밝게 빛나는 것이다. 시인 최창일
  • 이수영 “3650일 담은 MP3 선물…눈물” (10주년 인터뷰)

    이수영 “3650일 담은 MP3 선물…눈물” (10주년 인터뷰)

    “가수로 태어나 10주년을 무대 위에서 맞을 수 있다는 건…최고의 축복이죠.” 1999년 겨울,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한 소녀가 나이가 믿기지 않는 가창력과 독특한 창법으로 ‘24만장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운다. 바로 이수영의 시작이었다. I Believe(1집), Never Again(2집), 그리고 사랑해(3집), 라라라(4집), 덩그러니(5집), 휠릴리(6집), 그레이스(7집), 단발머리(8집)… 그리고 이번 앨범 ‘내 이름 부르지마’(9집)에 이르기까지. 10년간 그녀가 쏟아낸 히트곡을 읊조리고 있노라면, 마치 영화 ‘이프 온리’처럼 사랑했던 추억 저편으로 돌아간듯 반갑기만 하다. 참으로 따뜻했고, 때로는 내 이야기인 듯 시리고 슬펐다. 그녀의 노랫소리는 기자가 알고 있는 ‘사람 이수영’처럼 진솔하고 소박했다. “돌이켜보니, 단 한 순간도 ‘우연’이 없었어요.”라는 말과 함께 시작된 그녀와의 인터뷰. ‘발라드의 여왕’ 이수영이 지난 3650일을 회고하며 ‘소중함’이란 단어로 남아있는 오랜 기억의 먼지를 털어냈다. ‘후우-’ § ‘10년째 되던 그 날’ 1999년 그리고 2009년. 같은 날 같은 방송이었다. ‘서른’ 이수영이 ‘스무살’ 이수영을 스쳐지나 무대에 올랐다. 첫 무대에 떨고 있는 이수영에게 다가가 말해줬다. 오늘처럼 감사한 날이 있을 거라고. “무대에 오르는데, 10년 전 그 날이 너무도 선명히 되살아나는 거예요. 사실 하루하루 달려오는데 급급해 뒤를 돌아보지 못했었거든요. 그 날 알았죠. 내가 얼마나 행운의 가수인지. 아직도 이렇게 많은 분들 앞에서 노래할 수 있다는 것. 또 10주년을 무대 위에서 맞을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게 지난 힘든 날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이뤄진 고마운 기적임을.” § 3650일 담은 MP3 선물…눈물 ‘기념비’가 되는 날을 잊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지난 10년 간 이수영을 더욱 빛나게 했던 이름 ‘크리스탈’.(공식 팬클럽) 팬들은 그간 이수영이 준 감동을 한꺼번에 돌려줘 그녀의 눈시울을 젖게 만들었다. 바로 3650일 간 그녀가 걸어온 발자취 중 소중한 조각들을 수집해 세상에 하나뿐인 ‘기억의 보물상자’를 선물한 것. “데뷔 첫 날, 처음으로 1위를 한 날, 골든 디스크 시상식에서 대상을 탔던 순간 등 가수로서 기억하고 싶은 중요한 추억뿐만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음악까지도… 제 지난 10년이 그 MP3 하나에 너무도 빼곡히 들어있었어요.” 눈망울이 촉촉해진 이수영은 ‘감사함’과 ‘감동’ 외 흔치 않은 단어를 찾으려 애썼다. “팬들이 가르쳐 주신 거죠. 제가 지나온 세월 중 단 하나도 우연한 것은 없었음을… 무시할 수 없는 순간 순간이 모여 연속된 기억을 만들고, 또 그 기억이 모여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다는 소중한 사실을요.” § 생애 마지막 날도 ‘무대 위’에서… 그렇다면 이수영에게 있어 ‘노래’란 무엇일까. “TV를 보면서 ‘노래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한 꼬맹이가 있었어요. TV 속 가수들의 노래 부르는 모습이 너무 즐거워 보였거든요. 그래서 ‘아, 노래를 하면 행복해지는 거구나’하고 생각했어요. 이 생각은 가수로 10년을 보낸 지금 확신하건데 틀리지 않았어요. 절대로.” 이수영은 무대 위에서 발견한 자신 안의 ‘천국’에 대해 설명했다. “과거엔 노래를 ‘묘사’라고 생각했어요. 노래로 다른 사람을 감동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무대 위에서 이수영이 말하는 건 딱 이거 하나에요. ‘저, 노래하는 사람이에요!’(웃음) 단순하죠? 이 한마디가 제가 무대 위에서 느끼는 행복과 고마움을 모두 대신해 줄 수 있는 말이거든요.” ‘천생 가수’… 그녀에게 더 이상의 수식어가 있을까. “10주년 9집, 저에게는 너무 의미있는 숫자에요. 10을 준비하는 ‘도약의 9’라고 할 수 있죠. 이번 9집은 총 300여 후보곡 중 제가 보여드릴 수 다양성의 최대치를 끌어낸 앨범이에요. 총 10곡 중 8곡을 제가 작사했죠. 맞아요. 그래서 ‘망하거나, 혹은 잘되거나’.(웃음) 중요한 건 ‘신뢰’니까요. 이수영이란 가수에 대한 믿음. 생애 마지막 날, 단 한분이라도 그런 믿음으로 제 노래를 들어 주신다면 저는 무대 위에 설 거예요. 그것 또한 가수 이수영의 마지막 ‘축복’일테니까요.”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 / 사진 = 이규하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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