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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1/홍콩인 마지막 하루(홍콩 주권반환:12·끝)

    ◎“크게 바뀔것 없다” 시민들 차분/가족과 외식 등 평소와 똑같은 생활/주권반환보다 연휴에 더 깊은 관심 홍콩에 있는 야마타니 무역화시 부장인 홍콩인 보슈시(36)씨는 29일 아침 7시에 일어났다.29일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 마지막 이틀째 날이지만 그는 다른 날과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홍콩 반환을 의식하지 않고 하루생활을 시작했다. 상오 8시쯤 아침을 먹고 10시쯤 집을 나왔다.29일 휴일이지만 일본에서 온 고객을 접대하기 위해 집을 나선 것이다.그는 일본 고객을 데리고 홍콩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일본 고객과 중국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후 하오 4시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외식을 하기 위해 하오 6시쯤 부인과 어린 두딸을 데리고 다시 집을 나왔다.그는 홍콩 중심가 완차이에 많은 빌딩에 장식된 홍콩 반환 경축 불빛을 보고야 바로 눈앞에 다가온 홍콩 반환을 의식했다.그는 화려한 경축 장식이 붙어있는 건물옆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후 딸에게 옷을 사주기 위해 옷가게로 갔다. ○경축장식 본뒤 「반환」의식 그러나 옷이 맘에 들지 않아 사지 않았따.딸들은 엄마와 아빠 손을 이끌며 옷을 사달라고 졸랐지만 그는 딸들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그대신 옆에 있는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로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사줬다.딸들은 옷보다 아이스크림이 더 좋은 듯했다. 옷을 사달라는 것은 까맣게 잊고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었다.그는 가족과 함께 단란한 시간을 즐긴뒤 하어 9시쯤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목욕을 한후 텔레비전을 켰다.텔레비전에서는 오늘 있었던 여러가지 반환관련 행사가 나왔다.그러나 그는 홍콩반환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이틀 앞으로 다가온 영국지배 아래 홍콩에서의 마지막 밤의 잠자리에 들었다.그는 곧 깊은 잠에 빠졌다. 영국인 건축가 셀리 셔(32)씨도 29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7시쯤 일어났다.그도 29일이 홍콩 반환전 마지막 날이라는 의식은 별로 없이 하루를 시작했다. 그는 휴일이라 상오를 집에서 보냈다.그러나 하오 2시쯤 그가 돌보는 필리핀 어린이와 함께 영국의 고별식이 열리는 빅토리아항의 이스트 타마르해변가로 갔다.이스트 타마르에서는고별식 준비를 위한 마지막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는 잠시 영국이 떠난 후의 홍콩을 생각했다.그에게 홍콩반환은 결코 좋은 뉴스는 아니었다.영국이 언제까지 홍콩을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영국이 떠난 홍콩에서의 생활이 걱정됐다.그는 앞으로 6개월후 영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는 필리핀 어린이와 함꼐 하오 5시쯤 집으로 돌아왔다.그는 다른날과 마찬가지로 하오 7시쯤 저녁을 먹었다.그는 잠시 텔레비전을 끈후 건축 관련 책을 읽었다.밤 11시30분쯤 잠자리에 들었다.그러나 곧 잠이 들지 않았다. 홍콩 중심가 완차이에 있는 「서데인 운동장」에는 29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농구와 축구를 즐기고 있었다.스탠드와 농구장 옆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경기를 보고 있었따.그들은 내일은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은채 운동경기와 관람에 열중하고 있는 것같았다.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물어보면 홍콩반환에 대한 기대와 불안을 이야기 하지만 그들의 겉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역사적인 홍콩 반환 취재를 위해 세계에서 8천명이 넘는 기자들이 몰려와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그들에게 닥친 변화를 별로 개의치 않는 것같았다. ○농구·축구경기에 열중 공무원인 데니스 라이(34)씨는 『거리에서는 경축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홍콩 반환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평소와 같이 생활한다』고 말했따.그는 『운동장에서 농구나 축구에만 열중하는 저사람들의 표정에서 홍콩반환을 의식하고 있음을 읽을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그는 『29일부터 시작되는 연휴를 해외애서 즐기기 위해 수많은 홍콩인들이 해외여행을 떠났다』며 『그들은 홍콩반환보다 홍콩반환 때문에 만들어진 연휴에 더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 건축 미술품(외언내언)

    1936년 펜실베니아주 베어런에 지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폴링 워터(낙수장)」는 건축가들의 영원한 선망의 대상이다.이 건물은 「건물의 목적에 꼭 들어맞는 세련된」 형태와 선과 색채와 함께 논리적이고 기능적일뿐만 아니라 건물의 각 부분이 자연경관과 유기적으로 조화돼 있다.또 에리히 멘델존에 의해 1920년에 세워진 독일의 「아인슈타인탑」은 U자를 옆으로 눕혀놓은 것과 같은 8개의 아름다운 창문과 함께 표현주의자들의 「조각품과 같은 건축물」로 손꼽힌다.시드니 오페라하우스도 공연장으로써의 기능보다는 항구의 돌출된 좁은 부지위에서 마치 여러개의 하얀돛과 닻을 달고 오스트레일리아가 온통 대양을 향해 항해하는 이미지다.부수적인 조형물없이 건축물 자체가 조형의 기능까지를 탁월하게 포함시킨 예이다. 서울도 언제부턴가 도심의 어느 곳에서나 환경조형물로 일컬어지는 조각품들을 쉽게 접할수 있게 됐다.미술의 해인 지난 95년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시민들의 문화향유 기회를 확대하려는 취지로 대형건물의 미술품 설치를 의무화하면서 부터다.물론 그 이전인 85년에 대형건축물을 신축할 경우 공사비의 일정비율(1%)을 환경미술작품을 설치하도록 하는 「1%법안」이 있었다.그러나 이에 대한 부작용과 잡음이 심심찮게 일어왔다. 조형물이 콘크리트의 정글화 현상을 억제하기 장식적 부수물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며 건축주에 대한 강제성,주변경관과의 조화를 고려하지 않은 조야하고 격조없는 조형물들이 오히려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점 때문이다.그러나 조형물설치 권유는 도심환경개선과 문화예술에 대한 측면지원 등 공익성에 일조한 것만은 사실이다.한데 시행 2년만의 폐지라니 좀 성급한 감이다. 서울의 조형물설치는 아직 연습단계에 지나지 않는다.하나의 아름다운 조각품과 미술품은 자칫 삭막해지기 쉬운 도시인의 정서에 삶의 여유와 시심을 심어준다.건축주에게 부담을 크게 주지 않는 한도에서 잘 시행되고 있는 것을 페지하기보다 효율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기능적인 방안을 제시해줘야 한다.또 건축자체로써 조각품의 기능을 생각할 때인 것 같다.
  • 전문 건축학교 9월 문 연다/김수근문화재단 대학원 수준 운영

    ◎창조적 능력 개발에 초점… 건축문화 재정립/40명 수준… 학생·교수 함께 실험적 건축작업/4년제 대학 이수자 등 대상… 교수는 학생들이 선택 새로운 건축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건축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학원 수준의 전문 건축학교가 올 가을 문을 연다. 재단법인 김수근문화재단이 오는 9월1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 공간사옥에서 개강하는 서울건축학교(sa·seoul school of architecture).기존 건축문화와 교육시스템의 문제점을 인식,철저하게 창조적 능력을 개발한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교육을 진행하게 된다. 흔히 「한국적 공간의 연출가」로 통하며 한국건축계에 우뚝 솟은 산맥을 구축한 건축가 김수근 선생(1931∼1986)의 생전 유지를 받들어 개설하게 된 서울건축학교는 지난 94년 6월 김병윤 김영섭 김인철 유춘수 민현식 승효상 정기용 조성룡씨 등 건축가들이 학교 설립추진위원회를 결성한 뒤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임시학교를 열어 실험적인 단기 워크샵 과정을 운영해 왔으며 95년과 96년 4회에 걸친 워크샵과 전시회 공개강좌 세미나등을 열어 학교 개설 준비작업을 치밀하게 벌여왔다. 운영위원회(위원장 김원)는 『우리 전통 건축물에는 삶의 차원을 넓혀주는 부분이 많고 혼돈과 무질서라고 부르는 도시 자체에도 창의적인 접근 가능성이 여전히 요구돼 도시문맥을 이해하고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며 따라서 건축영역의 확대를 위한 다양한 모험과 실험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밝혔다.운영위원회가 그동안 실험작업을 통해 제시한 학교조직은 학생과 교수가 함께 실험적인 건축작업을 벌이는 설계스튜디오와 이를 이론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설계지원스튜디오로 짜여지며 연1회에 걸친 심포지엄과 전시회,출판,답사기행,공연 등의 활동을 하게 된다.스튜디오는 모두 4개로 스튜디오당 10명의 학생들로 구성,모두 40여명이 교육을 받을수 있도록 돼있다.학생들은 모두 6개의 쿼터를 이수하고 작품심사 통과후 졸업할 수 있으며 각 쿼터는 12주로 구성된다.입학자격은 4년제 대학에서 교육을 이수한 국내외 학생과 건축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는 젊은 건축가에 해당하는데 학생들이 원하는 교수를 선택해 스튜디오에서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사이악 남캘리포니아건축학교와 뉴욕 쿠퍼 유니온,프랑스 파리 건축학교,스위스 취리히 공과대학,이탈리아 밀라노 공과대학 건축학부,영국 런던 AA건축학교,미국 하바드대 건축디자인대학원 등의 운영방식과 유사한 교육과정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운영위원장 김원씨는 『우리 건축문화가 언제부터인가 방향을 잃었으며 특히 일제식민지정책에 따른 인력수급이 이같은 왜곡된 건축문화를 심화시켰으며 이후 교육주체들이 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도외시한 경향이 많아 청년건축가들이 적극적으로 나선 끝에 학교가 문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 피아니스트 백건우(이세기의 인물탐구:133)

    ◎끝없이 「대곡」에 도전하는 “건반의 거장”/미·불 등서 더 명성… 라벨·리스트 해석에 권위/고전적 기교·낭만적 선율로 청중 매료시켜 그는 음악의 화가,음악의 철학자, 음악의 시인이다.한편의 시를 쓰기 위해 무수한 어휘의 바구니속에서 하나의 낱말을 골라내고 그 낱말이 다음의 낱말에 연결되어 어떤 이미지를 형성할것인가를 무한히 추구해 나간다.그리고 높고 낮고 험한 계곡과 계류를 지나 정상에 올랐을 때의 정복감과 승리감,완성과 사색을 동시에 안겨준다.그의 「메피스토 왈츠」는 마치 여러 대의 피아노가 협주하는듯한 역동성을 분출시킨다.또 「발렌슈타트 호반」은 금물결이 튕겨나오고 나뭇잎새에 맺힌 이슬방울이 수면에 아롱지는 섬세함의 극치다.고전적인 기교와 낭만적인 선율이 조화된 그의 연주는 때로는 넘치는 폭발력으로,때로는 심장을 후비는 미세한 서정성을 만들어냈고 잘게 부서지는 투명한 화음과 광풍같은 질주로 치닫다가 자지러질듯 소멸된다. 그는 방대한 레퍼토리를 넘나들며 난곡 대곡에 끝없이 도전한 마에스트로다.일찍이 라벨과 리스트 해석의 권위자로 떠올랐고 독일의 슈트겐슈미트는 『백건우보다 「밤의 가스파르」를 더 훌륭하게 연주한 사람은 없을것』이라고 단언한다.프로코피에프 무소르크스키 라흐마니노프에 이어 지난 92년 프랑스 단테사가 출반한 스크리야빈연주는 권위있는 디아파종 금상에 선정되었고 「놀라운 기량과 독특한 점층법으로 스크리야빈의 색소와 섬세함을 제압하고야 말았다」는 평을 받았다.프랑스의 음악평론가 알랭 코샤르는 「스크리야빈의 해석에 있어 호로비츠,리히터에 대항할 확실한 경쟁자가 나타났다」고 격찬,리스트의 「헝가리광시곡」에 대해서도 「천재적 해석의 결정판」으로 못밖는다. ○배재중 졸업후 단신 도미 지난해 가을 명동성당에서 국내초연한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은 그의 수많은 연주중에서도 단연 명연주의 백미다.올리비에 메시앙의 이 피아노대곡은 연주시간 2시간 30분 길이에다 기교적으로도 대단한 난곡이어서 이를 완주한 피아니스트는 손꼽을 정도다. 이곡을 들은 사람들은 무엇을 만날지 알수없는 소리의 힘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기예수의 이미지가 다이아몬드의 다면체처럼 반짝거리는 신비로운 상념을 체험할수 있었다. 성당안은 음이 뿜어내는 눈부신 광휘로 가득찼고 별들이 일으키는 우주의 천둥소리에 청중은 전율했다.그는 화음의 각음을 연속적으로 연주하는 아르페지오의 연쇄와 폴리포니(다성음악)로 장대한 음악의 성전을 구축해 낸것이다.「변화무쌍한 리듬,찬란한 화성,소용돌이치는 음의 진행」속에서 소리는 빛의 다발이 되어 객석을 온통 얼어붙어버렸고 연주가 끝나자 청중은 한동안 침묵,문득 깨어나 전원 기립과 긴 박수로 열광했다.메시앙이 「나는 음악을 듣고 작곡할때 움직이는 모든 색채를 본다」고 했듯이 그는 다채로운 음의 변화를 작가자신이 되어 되살려낸 것이다.청중은 더이상 바랄것이 없었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어릴때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칠수있는 분위기에서 자라났다.장충국민학교 3학년때 벌써 김생려씨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주제를 위한 랩소디」협연으로 「천재성과탐구성」의 기미를 보이더니 배재중 졸업후 혼자서 도미,맨손으로 세계음악의 중심에 뛰어들어 고독한 방황끝에 어떤 음악을 어떻게 연주할 것인가를 터득하여 「건반위의 순례자」가 되었다. 일년내내 꽉찬 스케줄속에서 연주여행으로 끝없이 움직이는 가운데도 그는 음악을 말할때 두눈을 반짝인다.지금도 순수무결한 소년같은 모습이지만 연습에 들어가면 숲을 조감하는 매처럼 날카로운 안광을 번뜩이며 건반을 낚아채고 찍어낸다.그리고 건반 깊숙이 숨어있는 미지의 보석들을 얼마든지 캐낸다.앉은 자세 하나만으로도 피아노 장악력이 느껴질만큼 그의 모든 분위기는 이미 음악이다. ○여우 윤정희와 결혼 또 엄격주의자로서 보수적인 편이지만 지휘자나 오케스트라와의 곡해석에서 의견이 다를때는 상대방의 무한한 가능성에 요구하기보다 제한된 능력을 빠르게 파악하고 적응해나간다. 지난해 차이코프스키 볼쇼이교향악단과 BMG(RCA레드실)가 제작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완주녹음에 들어갔을때 그는 명상적인 순간을 길게 가져간데 비해 페도세예프는 열혈적인 슬라브의 민족성을 몰아붙이듯 빠르고 강한 템포로 오케스트라를 지휘,그러나 페도세예프는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이 가진 난해한 깊이를 어려움없이 끌어내는 백건우」를 이해하여 두 사람은 마법에 걸린듯 호흡과 개성을 맞춘 뒷얘기를 남기고 있다. 폭넓은 통찰력과 감각적 기교를 겸비한 그는 곡이 갖고있는 고유한 색채를 가장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피아노의 시인」「피아노의 건축가」로서 그의 음악은 맑게 정제된 영롱성으로 화창감을 성취하는 것이 특징이다.그의 연주에 감동받은 브리짓드 마셍은 「르마뗑」지에다 「백건우의 리스트연주는 한마디로 신비로운 여행이며 청중들을 작품의 심장부로 끌어들여 원초적인 맥박의 경험과 그 깨달음을 전해준다」고 했다.그와 절친한 피가로지의 피에르 페티도 「만약 리스트가 현재 살아있다면 틀림없이 백건우와 같이 빈틈없는 테크닉과 순수하고 경이로운 음악적 해석으로 연주했을 것」이라고 평한다.이런 모든 증명처럼 그의 음악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먼저 「시적 심상」을 떠올리게 하는 매력이 76년 파리에서 결혼한 영화배우 윤정희와의 사이엔 바이올린을 공부하는 딸 진희양(20)이 있다.음악외엔 그림과 영화를 좋아하고 사진실력은 수준급,무대예술에 관심이 많아 그방면의 책과 대화를 즐긴다. ○권위의 디아파종상 수상 이제 그는 세계적으로 일급연주자만을 엄선하는 RCA의 전속으로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 등에서 그의 음악을 집중적으로 녹음하고 있다.이른바 세계적 음악가로서 입지를 굳힌 셈이다.또 수많은 대곡을 정복하고 다음 대곡의 정상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그는 에베레스트를 탐험하는 산악인에도 비유된다.그러나 「피아노 비루투오소」「그레이트 카리스마」로 불리는 시기이지만 어떤 찬사에도 쉽게 현혹되지 않는다.음악에서의 완성이라든가 원숙은 있을수 없다는 주의다.그래서 연주할 때마다 언제나 새로 시작하는 자세,건실한 학구적 태도를 고집스럽게 지킨다. 무궁무진한 음악의 광활한 세계에 파고들어 다음은 어떤 신세계를 펼쳐낼 것인가.그리고 새롭게 캐낸 수많은 음과 리듬을 내부에 양성시켜 어느날 일진광풍을일으킨다.누군가 「1세기에 몇명 나오는 예술가의 한사람」이라고 한 말은 「건반위의 명상자」인 마에스트를 두고 너무나 적중된,당연한 찬사다. □연보 ▲1946년 서울 출생 ▲61년이후 뉴욕예술고와 줄리어드음악학교 동시입학,로지나 레빈 일로나 카보쉬 빌헤름 켐프사사 ▲65년 뉴욕 카네기홀 데뷔 연주 ▲69년 미레벤트리트 콩쿠르 특별상 ▲70년 이부조니콩쿠르 금메달 ▲71년 미 나옴버그피아노콩쿠르 대상 ▲72년 뉴욕 링컨센터연주 ▲74년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모리스 라벨 1875­1937」제전 피아노전곡 탄주자 초청 ▲75년라벨탄생 100주년 기념음악제 연주,광복 30주년기념 음악제 귀국연주 ▲82년 리스트연속연주(파리) ▲84년 라벨­스크리야빈­무솔그스키의 작품 전곡 4차례연주(파리) ▲86년 리스트 100주년기념 음악제 독주자초청연주 ▲87년 런던 프롬나드 페스티벌 100주년 기념공연 라스트연주 ▲88년 파리 단테사 전속계약 ▲89년 리스트콩쿠르 심사위원, 영국 버진사에서 리스트 「헝가리 광시곡」 등 10매의 음반 출반 ▲91년 KBS홀 개관기념 연주 ▲92년 디아파종상 금상 및 대상 ▲93년 누벨아카데미 디스크상, 피가로지 「베스트 레코드」선정, 그리그 탄생 150주년기념연주,라흐마니노프 탄생 120주년 및 서거 50주년기념완주(3일연속),서울독주회 ▲96년 메이저사인 BMG와 4년간 독점계약,올리비에 메시앙의 「아기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명동성당서 3일간연주) 등 연 60회 연주 ▲97년 라로크 단테룸에서 프로코피에프연주(유럽전역에 실황중계) 〈현재〉 프랑스 디나르 에머럴드 해변축제 음악감독 런던필 런던필하모니 BBC교향악단 베를린필 프랑스국향 스위스로망드관현악단 등 셰계적 교향악단 수백여회 협연
  • 이집트 피라미드:하(세계 문화유산 순례:31)

    ◎「계단식」은 고왕조 절대왕권 출현 상징/고대 이집트왕의 무덤은 흙벽돌로 쌓아 올린 꼭대기 잘린 사각뿔형태/조세르왕의 산하 암호테프가 직선·각도 등 건축개념 적용 완벽한 피라미드 탄생시켜/고왕조 수도 멤피스엔 파라오의 영화 증언하듯 신전터 주춧돌 기둥만 남아 고대 이집트 파라오(왕)의 무덤들이 처음부터 기자의 피라미드처럼 완벽한 사각뿔의 형태를 갖추었던 것은 아니다.사각뿔 피라미드가 선보이기 이전 고대 이집트의 왕들은 사각뿔에서 윗부분이 잘려나간 것같은 형태의 무덤에 묻혔다.피라미드가 이같은 미완성 형태에서 완성된 형태로 발전해 나가는 중간단계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멤피스 외곽의 모래언덕 사카라에 있는 계단식 피라미드이다.「마스타바」라고 부르는 이 꼭대기 잘린 사각뿔 무덤을 여러개 포개얹듯 만들었다.이 때문에 무덤의 외곽선이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계단 모양을 띠게 된 것이다.계단식 피라미드는 자재면에서도 흙벽돌에서 석조 건축물로 탈바꿈하는 시기를 알려주는 편년표 역할이다.이전 마스타바 무덤들은모두 흙벽돌로 지었다. 계단식 피라미드의 출현은 고대 이집트에서 본격적인 절대 왕권의 출현과 그 시기를 같이한다.왕권이 강화돼 파라오가 무제한의 권력을 휘두르게 되면서 그의 무덤도 더크고 단단하게 짓기 시작한 것이다.계단식 피라미드가 지어진 시기는 기자의대 피라미드가 만들어지기 100여년 전인 기원전 2770년경으로 알려져있다.남북으로 갈라져있던 상·하 이집트가 처음으로 통일된 뒤 세번째 왕조를 일으켰고 이집트왕국의 창시자인 조세르왕이 바로 이 계단식 피라미드에 묻힌 주인공이다.500여년간 지속된 이 고왕국 기간중 왕국의 수도는 현대 카이로 남쪽 25㎞에 위치한 멤피스였다.당시 멤피스는 나일강안의 중요한 항구였고 최고로 번창하던 도시였다.그러나 지금 멤피스의 도성이 있던 자리에는 당시 신전터의 주춧돌 흔적을 어렴풋이 볼수 있는 폐허의 유적일부가 남아있을뿐 그일대 대부분은 대추야자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숲을 이루었다.멤피스가 수도로서 역할을 못하게 된지 수천년이 흘렀고 그 사이 해마다 나일강의 홍수가 뒤덮고 지나가 퇴적토가 쌓였다.그래서 실제 왕궁터는 수십m 지하에 파묻혔을 것이라고 안내인은 설명한다. 계단식 피라미드가 있는 사카라 모래언덕은 이 폐허에서 자동차로 불과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어찌보면 멤피스 시절 고대 이집트의 영화를 짐작하게 해주는 유일한 유물인 셈이다.6개의 마스타바를 차례로 얹은 듯한 이 계단식 피라미드는 총높이가 60여m에 달하고 원래는 계단 표면에 타일모양으로 매끈하게 만든 장식용 돌을 붙였다고 한다.그러나 이 장식 돌들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계단식 피라미드를 만든 이는 뛰어난 예술가이며 역사에 이름을 남긴 최초의 건축가인 임호테프였다.그는 조세르왕의 재상이었고 모든 예술과 과학,특히 의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사후에는 건축가의 신으로 호칭된 사람이다.이 계단식 피라미드가 만들어지면서 직선과 각도,중량에 대한 계산이 시작됐다.계단의 미완성선들이 완벽한 직선으로 발전돼 기자의 피라미드들이 탄생된 것이다. 계단 피라미드로 올라가는 초입에서 여행객을 맞는 것은 과거 파라오가 누렸던영화의 한 편린을 엿보게 하는 거대한 돌기둥들이다.한때 신전의 기둥을 장식했음이 분명하지만 지금을 지붕은 사라지고 수십개의 기둥들만 두 줄로 늘어 서있다.이 모래언덕은 당초 귀족,왕족들의 무덤이 모여사는 「사자들의 도시」였고 주변은 수도 멤피스의 도선과 같은 모양을 한 성벽이 두르고 있었다.이 돌기둥들은 죽은 이들의 도시를 지키는 신전의 일부였던 것이다.예나 지금이나 이지브엣는 나무가 흔치 않다.석재를 쓰기 이전 고대 이집트인들은 파피루스 나무 묶음을 집의 기둥으로 썼다.그래서 석재르 이용한 뒤에도 이 파피루스 묶음 형태를 돌기둥 장식으로 응용한 것이다.흡사 도리안식 기둥의 원형을 보는 듯해 후일 그리스 건축에 고대 이집트가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케한다.신전에는 파피루스 돌기둥 사이로 모두 43개의 작은 방들이 만들어져 있는데 다시 이집트를 구성한 부족의 수를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신전을 둘러싼 돌담의 꼭대기에는 정교한 솜씨로 코브라 뱀의 머리들이 줄이어 조각돼 있다.당시 멤피스가 위치한 북부 이집트는델타 지역으로 늪지대가 많았으며 뱀이 그곳 부족들의 상징이 됐다.반면 남쪽에서는 독수리가 부족들의 상징이었다.토템과 흡사한 이 상징들은 왕들의 왕관 이마 쪽에도 붙였고 건물의 기둥 꼭대기에도 장식됐다. 계단 피라미드 남쪽에는 제5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우나스왕의 계단 피라미드가 있다.60㎡정도의 터에 위차한 비교적 소형 무덤이지만 죽적은 상형문자를 새겼다.녹색 글씨가 무덤안 4개방의 벽면에 깨알같이 새겨져 있다.고대 이집트의융성에 크게 기여했던 통일 국가의 탄생과 문자의 발견,그리고 그와 함께 시작된 절대왕권의 출현을 한는에 보여주는 유적인 셈이다.피라미드를 탄생시킨 이집트 고왕조의 멸망을 재톨한 것은 역설적이지만 피라미드의 축조도 그 원인이 됐다.파라오들은 재위기가 시작되면 곧바로 신의 피라마드를 건설하는 일에 몰두했다.대규모 사업에의 과중한 투자는 결국 국가재정을 극도로 악화시켰고 계속된 흉작으로 번영의 기세사 꺽이기 시작했던 것이다.그리고 파라오의 권위에 숨죽이고 있던 지방 귀족들이 야금야금반기를 들었고 이어서 혼란기로 접어들었다. 이후 여러 왕족을 거쳐 기원전 16세기 남쪽의 룩소르 세력이 전국을 재통일하며 고대 이집트는 다시 한 번 최상의 전성기를 구가했다.이후 100여년 이상 룩소르가 수도 역할을 하면서 멤피스는 상징적으로 종교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그러나 기원전 332년 알렉산드리아에 모든 역할을 빼앗겨 멤피스는 영원히 역사속으로 묻히게 된 것이다.한때 파라오의 대관식이 거행됐던 프타신전의 유적에서 발굴된 중왕조의 람세스 2세 석상 1개가 지금 카이로 철도역 앞 광장에 서있다.이 석상은 멤피스의 영화를 무언으로 전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 신혼 P씨의 내집마련 전략/월급여 260만원중 200만원 저축

    ◎비과세장기저축·주택청약부금 등 분산/3년뒤 전세자금 포함 1억2천156만원 회사원 P씨(28)는 지난달 같은직장 후배와 결혼했다.직장이 있는 수원의 아파트에서 전세(전세금 3천만원)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요즘은 집값이 다소 주춤해졌지만 빨리 내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현재조건◁ P씨 부부의 월평균 급여는 2백60만원.생활비로 60만원을 쓰고 2백만원은 저축하기로 했다.회사에서 1천만원을 빌려 이자로 나가는게 월 4만원이다.직장생활을 하는동안 모았던 돈은 결혼비용과 전세자금으로 사용해 현재 목돈은 한푼도 없다. 주택청약부금에 매월 10만원씩 1년간 붓고 있으며 새마을금고의 적금(3년제)에 월 30만원씩 1년간 내고 있다.P씨 부인은 내집을 마련하기 위해 3년간 직장을 다니기로 했다. ▷구체적인 재테크 방안◁ 월 저축가능액 2백만원중 1백만원은 지난해 10월에 나온 비과세 장기저축에 가입한다.모든 금융기관에서 취급하지만 은행의 비과세저축은 확정금리인 저축상품과 변동금리인 신탁상품에 동시에 가입할 수 있다.현재는 신탁상품의 수익률이 높다.신탁수익률이 떨어지면 저축상품쪽에 많이 내는게 유리하다.저축상품의 확정이율은 연 11%이고 신탁상품의 평균수익률은 12%라면 각각 2대 8로 투자했을때 3년 뒤에는 4천3백8만원이 된다. 매월 20만원은 장기주택마련 저축에 가입한다.비과세이면서 소득공제(연간 1백80만원 한도)까지 된다.주택을 구입할 때 낸 원리금의 3배까지 장기대출도 받을수 있다.확정금리로 11%라면 3년뒤에는 8백42만원이다.40만원은 납입금액과 시기가 자유로운 자유적립신탁에 세금우대로 가입한다.예상수익률을 12%로 하면 3년뒤에는 1천6백99만원이다. 결혼하기 전부터 붓던 새마을금고의 적금과 주택청약부금은 지속한다.2년뒤 새마을금고의 적금이 만기가 되면 만기금 1천2백60만원은 새마을금고나 상호신용금고의 정기예금으로 굴린다.당시 이자율을 11%로 보면 1년뒤에는 1천3백76만원이 된다. 2년 뒤부터는 매월 붓던 월부금 30만원은 이미 가입한 자유적립신탁에 추가로 낸다.전부터 낸 것과 합하면 1년뒤에는 2천80만원이 된다. ▷운용결과◁P씨는 이렇게 돈을 굴리면 3년 뒤에는 9천1백56만원을 모을수 있다.전세자금 3천만원을 포함하면 1억2천1백56만원이다.아파트를 구입할 때 자금이 부족하면 주택구입자금대출을 이용한 뒤 전세금을 받아 갚으면 된다.2년뒤 아파트에 당첨되면 그 때 찾을수 있는 자유적립신탁과 새마을금고 적금,주택청약부금을 활용해 초기자금과 중도금으로 충당하면 된다.그 다음 중도금은 주택구입자금 대출로 충당하고 대출금은 입주할 때 전세금으로 갚으면 된다. □도움말=제일은행 으뜸고객실 이재춘 차장.(02)539­1472
  • 건축가 윤승중(이세기의 인물탐구:126)

    ◎“갓지은 건물도 늘 있었던 것처럼”/주변과 조화된 기능적·유기적 공간 창조/60년대 김수근사단 합류… 한국건축 선도 반포대교를 건너 서초동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우뚝 선 대법원청사가 건축가 윤승중의 작품이다.수만평규모의 이 거대한 백색건물은 돌로 마감된 심풀한 조형을 보이면서도 열주와 창틀의 돌출,클래시컬한 디테일이 세부적으로 표현된 것이 눈에 띈다.그의 건물은 모뉴멘탈과 아날로지(류추)를 복합하지만 「전체가 부분에 대하여,부분이 전체에 대하여,건축은 유기적이어야 한다」는 거장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의 이론을 실천시킨다.그의 건물들은 대지의 수평에 동화된듯한 단순한 외형에 비해 한 동선으로 연결되는 플렉시블한 내면기능이 특징이다.아무리 갓 지은 건물이라도 새롭거나 생경한 이미지를 보이지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느낌이 두드러진다.외형은 칸딘스키의 직선과 횡선으로 음영을 배분하고 건물전체에 입체성과 양광을 강조한다.또 건물안에서 생겨날 상황과 분위기를 염두에 두고 가장 쾌적하고편리한 공간을 조성해 나간다. ○기능에 맞춰 형태 결정 그는 60년대 그가 배우고 공부하던 김수근건축연구소시절에도 선배인 김수근씨와 이로인한 논쟁을 그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른바 김수근씨는 먼저 모양을 정하고 나중에 기능을 형태속에 「집어넣는 식」이라면 그는 먼저 「유기성을 생각하고 형태는 기능에 맞춰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는 주의다.그리고 다분히 과장되고 때로는 자유분방한 김수근씨의 스케치들을 합리적으로 첨삭하여 곡면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공간장치들을 시공이 가능하도록 도면화하는 작업에 중점을 기울여왔다. 그는 대학 3학년때 친구들과 팀을 만들어 「대법원청사및 대법원장공관」설계경기에서 1등에 당선한 경력이 있다.이 계획은 무산되었으나 다음해 김수근씨가 남산에 계획된 「국회의사당 현상설계」에 당선되자 「국회의사당」이라는 최대의 이벤트를 계기로 안국동 김수근건축연구소에 합류하게 되었다. 우선 건축가 윤승중이라고 하면 60,70년대 우리건축을 이끌어온 김수근씨를 국제적 스타로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은 건축계에선 누구나 아는 일이다.김수근씨는 지난 60년초 일본에서 배워온 「노출 콘크리트기법」을 아시아반공연맹본부인 자유센터와 오양빌딩 수도의대신관 등에 적용하여 탁월한 창의력과 응용력을 발휘해 보였고 윤승중은 그가 「장차 한국 건축계를 이끌어갈 큰 희망」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일본에 동경대교수인 당게겐조(란하건삼)를 중심으로한 도쿄만(만)계획팀이 있듯이 한국에서도 김수근을 앞세운 엘리트집단이 요구된다는 것이 윤승중의 판단이었다.그는 이를 위해 서울대공대 건축학과출신들을 김수근건축팀에 수합하고 60,70년대 한국건축을 성공적으로 이끄는데 공헌했다. ○내부 합리적 동선 특징 단지 그로서는 메타볼리즘(소통)에 대한 동의와 철저한 질서체제에 관심을 갖고 모더니즘을 배경으로한 건축의 합리성,가변성과 피라미드 모형의 하이어라키등의 어휘에 익숙한 세대였으나 「김수근건축의 조형의지」를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주장을 「조금씩 숨겨놓고」 논리적인 규칙들을 도입하여 적용하는 쪽으로 타협해 나갔다. ○영종도 신공항건설 참가 안국동에서 참여한 프로젝트중에서 그가 특별히 애착을 갖는 것은 노출 콘크리트기법의 대표적인 워커힐의 힐탑바나 타워호텔 국제회의장,역시 실현되진 않았으나 남산 서울음악당과 자유센터등이다.나무형틀의 질감을 살려낸 콘크리트의 조형어휘들이며 공간의 한정을 의미한 곡면지붕,토기파편을 소재로한 부조벽면과 기능을 초월한 공공 스페이스연출 등은 당시의 그에겐 신선한 건축체험이 아닐수 없었다.이렇게 그의 건축에의 길은 출발서부터 상서로운 기미를 보였고 그는 어느 자리에서나 김수근문하에서 일한 것을 행운으로 여긴다고 말할수 있게 되었다. 만 9년간의 안국동시대를 마감하고 70년,「도시와 건축을 근본으로 한다」는 취지의 「원도시건축」을 창립,후배인 변용과 함께 그는 지금까지도 이상적인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그동안 태평양건설본사 성균관대 수원캠퍼스 태릉사격장 청주국제공항 국토개발원 수자원공사 한국종합무역센터의 전시동 등 최근에는 성남에 있는 경남 실버타운을 완공하고 영종도 신공항 대형프로젝트에 손대면서 「건물은 도시의 한부분이고 이 건물들이 어울려 도시를 만들어낸다」는 의지를 굳건히 지킨다.혼자서 빛나는 개성적인 건축이나 위대한 건축이 아닌,주변환경과 익숙하게 어울리고 전체에 도움이 되는 「좋은 건축」을 지향하려는 것이 변치않는 건축의지다. 그는 언제봐도 조용하다.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편이고 주변에서는 그가 화를 내는 것을 본 사람이 드물다.그와 절친한 건축가 공일곤은 「모션은 크지 않지만 철저히 자신을 절제하고 통제하는데 천재적」이라고 감탄한다.서울에서 위스키공장을 하던 윤기병씨의 아들 다섯중 둘째,종로구 화동에서 성장하면서 서울중·고와 서울대를 다녔고 고교시절부터 종로에 있던 음악실 르네상스에 드나들었다.건축과의 관계는 그의 부친이 취미삼아 일본에다 주문해서 구독하던 건축잡지를 보면서 건물과 인간과의 집요하고도 필연적인 관계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환경을 생각하는 건축 건축학도시절에는 유기적 건축을 주장한 F L 라이트와 기능주의의 대표주자이던 르코르비지에,마천루안을 제시한 미스반데르로와 건축물과 환경과의 융합을 역설한 알바알토를 텍스트로 삼기도 했다.이제는 그들의 각 특징을 고루 수용하면서 그만의 편리성과 기능위주의 「훌륭한 집만들기」에 전력을 쏟고 있다.강남구 신사동 원도시건축연구소에서 1백30여직원들과 하루종일 건축을 숙의하고 건국대 건축대학원에서 일주일에 두번 강의,가족은 한양대 섬유공예과를 나온 부인 조의정씨와의 사이에 남매.딸 성원씨 부부가 하버드대 건축대학원에 다닌다. 그는 21세기를 맞는 시점에서 고도의 과학기술에 바탕을 둔 「하이테크 문화」와 「엔트로피 문화」의 공존을 수긍하고 첨단사회로 갈수록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건축으로 미래를 만들어 나간다는 의욕이 대단하다. 자연경관을 배경삼아 삶의 공간을 설계하는 예술가.「건축이 인간에게 더 나은 삶의 질을 제공한다」는 것을 철저히 믿는 그는 건축의 기능과 기술을 구사하여 격조와 완벽성을 결집시키는데 앞으로도 언제나 선두에 서서 한국건축을 지휘하게 될 것이다. □연보 ▲1937년 서울 출생 ▲56년 서울고 졸업 ▲60년 서울대 공대 건축과 졸업 ▲61­66년 김수근건축연구소기획실장 ▲66­69년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도시계획부장(김수근팀) ▲70년 「원도시건축」 창립 ▲70­89년 한국건축가협회 이사 ▲70­85년 원도시건축연구소 소장 ▲76­80년 대한건축학회 이사 ▲82­현재 성균관대 객원교수 ▲85­현재 (주)원도시건축대표이사 ▲90­96년 한국예총이사 ▲90­94년 한국건축가협회 부회장 ▲94­96년 한국건축가협회 회장 ▲95­현재 건설교통부 중앙설계심의위원 ▲96­현재 건교부 중앙기술심의위원 ▲96­현재 건국대 건축대학원 객원교수 ▲83­90년 독립기념관 건설위원 ▲85­96년 성균관대 공대 출강 ▷수상작품◁ 태평양건설본사(한국건축가협회상 78년) 한일은행종합연수원(한국건축가협회상 79년) 인제의과대부속백병원(대한건축사협회상 우수상) 대한화재해상보험본사(한국건축가협회상 80년) 한일은행본점(한국건축가협회상 82년) 삼천리산업본사(서울시건축상 83년) 한일투자금융빌딩(서울시건축상) 성균관대수원캠퍼스 체육관(대한건축사협회상 86년) 제일은행본점(서울시건축상 88년) 숭실대과학관(한국건축가협회상) 신도리코본사(대한건축사협회상 89년) 포항공대체육관(한국건축가협회상) 조선일보 신사옥(대한 건축사협회상 90년)외 ▷주요작품◁ 럭키빌딩 해운대관광호텔 피닉스관광호텔 소화아동병원 포항제철광양기술연구소 한국종합무역센터(사무동·전시동 및 조경) 대법원청사 청주국제공항 국토개발원 수자원공사 영종도신공항 분당 불루힐백화점 기상청청사 건국대충주병원 감사교육원 청사 등 2백여점 ▷수상◁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표창 예술문화대상 한국건축문화대상
  • 문화예술 박람회 10월 서울서 개최

    ◎한반도 평화정착 위한 예술인 공동행사로/문학·음악 등 모든분야 경선없이 자유 출품/공여·전시·광장 등 상설관 설치… 대규모 축제 펼쳐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대규모 문화예술 박람회가 「평화시대를 여는 문화예술박람회」라는 타이틀로 오는 10월초 서울에서 열리게 된다. 전국 문화예술인들과 시민들의 문화예술을 통한 만남의 자리가 될 이 박람회는 「평화연습」을 주제로 문학 미술 음악 연극 영화 만화 춤 굿 사진 건축 등 예술의 모든 분야가 포함되며 경선없는 자유출품 성격의 박람회로 치러지게 된다.기본적으로 공연과 전시,상담을 위한 각 분야의 상설관(부스)이 설치되는 가운데 각 분야의 예술적 성과를 집중적으로 모아서 토론하는 중소규모 모임장,각 분야의 대표작 공연·전시장,광장을 중심으로 한 자유예술행위,축제행사 등으로 꾸며질 예정.한반도의 평화정착 문제뿐 아니라 분단으로 인한 모순들을 자유로운 예술창작 정신으로 구현해보자는 성격으로 예술인들의 공동행사가 펼쳐지는 이례적인 자리다. 「평화시대를 여는문화예술박람회 예술인 준비모임」(실무대표 김규동 문호근)은 박람회와 관련,지난 20일 서울 출판문화회관에서 「한반도 평화와 문화예술의 역할」을 주제로 제1차 심포지엄을 준비행사 성격으로 가졌다.이성욱(문학평론가) 노동은(음악학자) 김석철(검축가)씨 등이 발제해 김춘미(음악평론가) 조건영(건축가) 주강현(문화연구가)씨 등이 논찬하는 순서로 진행됐으며 문호근(연출가)씨의 이 박람회에 대한 제안설명이 이어져 행사의 기본적 형태에 대한 깊이있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준비모임 실무대표 문호근씨는 『한반도 평화정착의 시급함을 널리 알리고 정부,민간통일운동,시민운동이 모두 문예의 장에서 만나 평화와 통일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행사로 준비했다』면서 『소비적이고 과시적인 예술행사가 아니라 우리 경제실정에 맞는 21세기 문화입국의 비젼을 제시하는 자리로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지금까지 드러난 이 박람회의 성격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 예술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시민들이 가족과 함께 부담없이 즐길수 있는 국제적인 평화의 제전이 될 전망이다.이를위해 준비모임은 문화예술계의 광범위한 인사들로 빠른 시일내에 발기위원회를 구성하는 한편 문화예술 각 분야의 대표격인 예술감독들로 구성되는 예술감독단이 행사실무를 관장케 했다.특히 행사장을 평화시대를 연습하는 하나의 도시로 꾸민다는 기본구상아래 문예 관련 시설외에도 특별관으로 「북한관」과 「비무장지대관」을 두기로 했다.또 각 부문단체들이 기획하는 별도행사를 비롯, 평화기원 연날리기대회·민족춤추기대회 등과 인터넷을 통해 세계인들이 평화메시지를 교환하는 인터넷 포럼도 열릴 예정이다.
  • 이탈리아는 지금 혼돈시대(?)/통이 큰 옷과 달라붙는 옷 병행

    ◎긴 상의와 짧은 바다의 조화 등 「무질서」가 패션계 휩쓸어 이탈리아 패션계가 혼란스럽다.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않은 두 디자인의 혼재 때문이다. 이를테면 장단과 협광같은 정반대 개념이다.통이 큰 옷과 달라붙는 옷의 병행,긴옷과 짧은 바지의 조화,허리를 졸라매는 고전적인 디자인과 현대식 분위기의 접목 등. 양복바지가 복숭아뼈 위에까지 오는 우스꽝스러운 디자인이 올해 밀라노와 플로랑스의 남성복 패션계를 휩쓸고 있다. 지앙프랑코 페레는 최근 열린 97∼98년 여름 프레타 포르테에서 엉덩이를 지나 허벅지까지 내려가는 양복 저고리를 내놓았다.단추는 4단이고 맨윗 단추는 남방셔츠처럼 목주위까지 치켜 올라갔다. 저고리는 각진 형태를 하고 있으나 대신 바지는 길이는 풍성하게 길고 몸에 꼭붙게 만들어졌다.건축가로서 출발해 디자이너로 변신한 그답게 그의 옷에는 장인정신이 배어있음을 알수 있다. 베르사체도 강한 줄무늬로 양복 상하의를 만들면서 상의를 외투처럼 불균형적으로 길게 했다.구치가 내놓은 옷은 정반대로 양복바지가헐렁헐렁하다.길이는 지앙프랑코 페레처럼 길지만 통이 크다보니 구두를 뒤덮고 바지 끝부분은 바닥에 질질 끌릴 정도이다. 세루치가 「세루치 1881」로 이름 붙인 옷은 진색깔의 트위드로 만든 체크 무늬의 셔츠와 몸에 착 달라붙는 카키색 플란넬 바지이다. 플로랑스의 피티 우오모가 내놓은 옷은 특히 주목을 받았다.양복 상의에 지퍼와 허리띠를 졸라매고 안에는 티셔츠를 입었다.도무지 양복같지 않은 옷이다. 로메오 지글리는 옷의 4분의 3을 벨벳으로 만들고 나머지는 다른 재질을 이용했다.플란넬과 군용 외투의 역설적인 조화,짧고 얼룩무늬를 한 외투 등도 선을 보였다. 이탈리아의 패션계는 주도적인 유행이 없다는 점이 새로운 유행이라고 할수 있다.이런 무질서는 2000년대 세계 패션계의 주도권을 향한 몸부림에서 나온다.그들은 2000년이면 모든게 변할 것으로 내다본다.
  • 파리에 첫 「음악박물관」/「시테드라뮤지크」 지난 18일 개관

    ◎6500점 전시… 악기발달사 한눈에 프랑스에 크고 작은 박물관과 미술관은 모두 7천여개.미술관은 절대적으로 많은데 비해 번듯한 음악박물관 하나 없었다. 하지만 최근 처음으로 독립된 음악박물관이 생겨 음악가들과 음악애호가들은 연초부터 싱글벙글이다.파리시내 동북쪽 과학단지인 빌레트공원 바로 이웃한 시테 드 라 뮤지크가 지난18일 개관한 음악박물관. 1708년 만들어진 쌍둥이 바이올린인 「튀아」와 「다비도프」가 나란히 전시돼 있으며 전세계에 단 12개 밖에 없는 6개의 주둥이를 가진 호테테르 피리도 있다. 1920년 펠릭스 사바르가 사용하던 3각형 모양의 바이올린,19세기에 프랑스에서 제작돼 러시아에서 사용돼온 바순(저음을 내는 목관악기) 등의 보물도 이곳에서 만날수 있다. 음악박물관에 전시된 악기는 모두 6천500여점.1795년 파리 음악원이 생긴 이후 사용되던 악기들은 총집결 돼있다.박물관이 생기기 전에는 파리시립음악원 건물 한쪽에 전시돼 있던 보물들이다. 악기들은 피아노·기타·피리 등으로 나뉘어져 있어 원하는 악기는목록을 통해 금방 찾을수 있다.음악박물관의 4면은 악기보호를 위해 광학섬유를 이용한 특수재료를 사용하고 있다. 또 초석없이 철근을 이용한 현대식 현수방식으로 지어져 있다.뛰어난 건축가 파스칼 셍 앙드레가 지었으며 건축비는 6천9백만프랑(한화 약 1백10억원). 이 박물관의 관장인 마리 프랑스 칼라여사는 『세계 최고의 음악박물관으로 만들겠다』고 포부가 대단하다.박물관 유지와 음악회 개최 등을 위한 예산은 5천만프랑(80억원)으로 건축비와 거의 맞먹는다. 대부분의 미술관들이 화요일에 휴관하는 것과는 달리 음악박물관은 월요일에 휴관한다.파리 19구 아브뉴 장 조레스(Av Jean Jaures) 212.
  •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세계 문화유산 순례:21)

    ◎대국의 옛영화 증언 ‘환상의 도시’/겨울궁전·피터요새·이삭성당 등 걸작 건축물 즐비/세계 3대미술관 「에르미타즈」 전시품 3백만개/르네상스이후 예술·건축양식 다시 되살아난듯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보지 않고서는 유럽을 보았다고 할 수 없다고 한다.유럽예술의 축소판이 이 도시이기 때문이다.르네상스 이후 계몽시대의 문학과 예술,건축양식이 다시금 되살아난 곳이 이곳이기도 하다.도심을 지나는 네바강 수로,수백개의 아름다운 바로크식 다리가 여행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주변은 예술가의 혼이 깃든 건물 하나하나가 모두 진귀한 문화유산들이다.백야때의 황혼빛 놀은 네바강 잿빛과 어우러져 또 하나의 예술품을 만든다. 네바강을 호령하는 것은 피터요새다.이 요새는 피터대제가 도시를 창건하면서 생각해낸 첫번째 프로젝트였다.1703년 수로를 다스려 운하를 만들기 시작했다.처음에는 나무·진흙으로 벽을 쌓았으나 점차 붉은 벽돌로 성벽을 만들어 나갔다.요새는 팽창욕에 사로잡힌 스웨덴왕군을 막기 위해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군사적 기능이 필요없게 되었을때 요새는 용도가 변경됐다.차르시대 「반골」혁명가들이 옥사한 정치범 수용소로 악명을 날렸다.피터대제의 아들 알렉시스가 아버지의 명령으로 사형을 당하기 전 6개월도 여기에서 보냈다.이 요새는 차르시대 화폐주조소를 보호해주기도 했다. ○피터요새 정치범 수용소로 악명 요새안의 가장 화려한 건축물은 스위스의 건축가 도메니코 트레치니가 거의 20년동안 네덜란드양식으로 지은 피터성당이다.금잎으로 만든 원추형탑이 금십자가를 품은 천사의 모습을 떠받치는 동상은 과연 화려의 극치다.이곳에 피터대제가 묻혔고 후손 대부분도 이 교회에 묻혀있다. 네바강변에 자리한 겨울궁전은 유럽의 가장 아름다운 고전양식이 가미된 바로크건축물 가운데 하나다.궁전은 세가지 점에서 유명하다고 한다.하나는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마지막 6황제가 살았던 곳이요,두번째는 세계3대 박물관의 하나인 에르미타즈 박물관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마지막으로 하나는 신고전건축양식의 대표적인 건물이라는 것이다.18세기 중반에 지은 이 건축물은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건축가 바르톨로미오 라스트렐리의 최고의 걸작으로도 꼽힌다.조각가 플로렌틴의 아들인 라스트렐리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돌이 부족하자 「스터코(치장벽토)」를 처음으로 이용했다고 한다.창문을 아치형태로하면서 현란한 컬러의 벽토를 이용했다.경사져 들어오는 겨울햇빛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였다. 겨울궁전안에 자리한 에르미타즈는 세계3대미술관으로 꼽힌다.4백개의 전시관은 1주일을 둘러봐도 전시관 주위의 대리석상 정도 밖에 감상을 못할 정도로 진귀한 보물들이 그득하다.카테린여제가 미술품을 수집하면서 시작된 에르미타즈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현대미술품까지 3백만개의 작품이 진열돼 있다.다른 141개 방들은 이전의 황제들이 전리품으로 획득한 서유럽의 보물들로 그득하다.10월 혁명후 전시공간은 개인소장품을 압수하면서 더욱 알차게 채워진다.한 예로 모스크바의 한 상인한테서는 마티스의 그림 27점과 피카소의 그림31점이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유럽전시관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마돈나상,미켈란젤로의조각품「쭈그려 앉은 소년」외 렘브란트의 작품등 이른바 명화들이 헤아릴수 없이 많다.들라크로와,로댕에서부터 피사로,드가,모네,로트렉,르노아르,고호,고갱,세잔느 등 인상파 화가까지 다양한 화풍을 보관하고 있다.에르미타즈는 입체파의 그림이나 추상화는 잘 전시하지 않는다.사회주의 현실에 반하는 것으로 생각한 소비에트 정부의 영향 때문이다. 페테르부르크를 특징짓는 또 하나의 건축물은 이삭성당이다.실내내부가 온통 금을 입힌 천사상이다.프랑스의 건축가인 아우구스트 몽페랑이 로마의 베드로성당에 영감을 받아 지은 건축물이다.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건물이기도 하다.처음 지을때 불완전한 기초때문에 완성하는데 꼬박 40여년이 걸렸으며 50만명의 인부가 동원됐다고 한다.천정 원추형 꼭대기는 햇빛이 비치면 성령을 의미하는 비둘기의 형상이 그리스도인들의 심중을 흔든다. ○금 입힌 천사상으로 이삭성당 장식 페테르부르크의 주요간선도로는 네프스키 대로.이 도로는 18세기초 피터대제때 초지를 갈라 만든 것으로 동서로 10㎞나 된다.이거리를 따라 양쪽에는 성당·상가·극장·박물관 등이 즐비하다.이들 건축물 모두가 예술성이 짙은 작품들이나 다름없다.페테르부르크에는 「잔인했던」혁명유산도 적지않다.레닌이 혁명전 살았던 주택이 레닌박물관으로,1917년 핀란드역에서 연설할 때 쓰던 무장차량도 야외에 그대로 전시돼 있다. 관광객들의 필수코스로 빠뜨릴 수 없는 곳중의 또 하나는 시에서 서쪽으로 32㎞쯤 떨어져 핀란드만에 자리잡은 「페트로 드보레츠」(피터궁전).황제의 여름궁전으로 알려진 곳이다.시중심부에서 배편으로 30분,혹은 승용차나 기차편으로도 40여분이면 닿는 곳이다.배를 타고 들어서면 수백미터의 운하를 통해 궁전에 도착한다.운하의 끝에 자리한 현란한 계단장식과 화려한 분수대가 마치 방문객을 궁전의 안주인처럼 도취하게 만든다.음악가 글린카,림스키­코르사코프,무소르그스키,보로딘,차이코프스키 모두가 이곳에 살았다.푸시킨,고골리,투르게네프,도스토예프스키,고리키 등 많은 불멸의 문학가들도 이곳에 살았거나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벌였다.페테르부르크의환상적 아름다움은 바로 러시아의 역사이자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가이드◁ 서울에서 모스크바까지 대한항공과 러시아국영 아에로플로트가 직항편을 운항한다.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는 비행기로 2시간,열차편을 이용하면 8시간 정도가 걸린다.모스크바에서 밤 12시에 출발하는 침대차를 이용하면 기차안에서 1박을 하고 아침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떨어지므로 편리하다.1박 2일 코스로는 동서로 뻗은 네프스키대로와 네바강변도로인 드로르소바야 나베레즈나야를 차를 전세내 둘러보는 것이다.라스트렐리,트래치니,보로니킨,몽페랑,로시,자하로프등의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영향으로 다운타운인 네프스키대로 주변에는 신고전양식과 바로크양식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거의 망라돼 있다. 3일이상 페테르부르크에 머물 사람이라면 네바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페테르부르크시 경관을 우선 감상한다.그 다음의 우선순위는 겨울궁전∼피터요새∼이삭사원∼카잔성당∼여름궁전∼황제마을식으로 잡는 것이 좋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푸슈킨이나 도스토예프스키박물관,음악을 좋하하는 사람이라면 림스키코르사코프 기념관을,발레를 좋아한다면 모스크바의 볼쇼이극장 다음으로 손꼽는 키로프예술극장을 들러보는게 좋다.
  • 패션 주방용품 인기/롯데 「알레시」/세계 유명디자이너 작품

    롯데백화점 본점 7층 주방용품 코너에는 유명 건축물의 모양을 본뜬 패션 주방용품이 주부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기존 주방용품의 실용성에 특이한 디자인으로 아름다움을 더 한 이 패션 주방용품은 특히 신세대 주부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알레시」라는 상표의 이 용품들은 세계 최고의 건축가인 알렉산드로 멘디니를 비롯,휘파람소리 주전자를 디자인한 리처드 사퍼,베네치아 마르코폴로 대성당 종탑 모양의 커피메이커를 디자인한 알도 로시 등 40여개국 120여명의 디자이너들이 이 용품을 디자인했다는 백화점측의 설명이다. ◇주방저울=스테파노 지오반노니가 디자인한 이 제품은 부드럽고 독특한 곡선으로 디자인돼 장식용으로도 쓸 수 있다.물건을 올려놓기 편하게 우묵한 그릇처럼 만들어져 있고 최대 2㎏까지 측정할 수 있다.가격은 7만3천원. ◇에스프레소 커피메이커=이탈리아의 마르코폴로 대성당의 종탑모양을 형상화해 둥글고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했다.알도 로시가 디자인했으며 1인용은 5만9천원,3인용은 6만7천원,6인용은 8만4천원.은색과검은색 두종류가 있다. ◇양념통=인형을 본떠 만들었으며 둥그런 모양에 커다란 두 눈과 입,발이 달린 형태로 노랑·빨강·초록색 등으로 색상이 다양하다.가격은 1만7천원. ◇커피잔 및 프레스 메이커=유리로 된 비커형의 잔에 스테인리스로 격자모양의 테를 둘러 손잡이를 만들었다.커피잔·머그잔·프레스메이커 등이 같은 디자인으로 만들어졌으며 같은 색상의 커피잔 받침과 쟁반도 있다.깔끔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이 제품은 은색과 검정색이 있다.커피잔세트는 9만9천원,머그잔은 4만8천원,프레스커피메이커는 14만5천원,쟁반은 6만5천원.
  • 김기석·김석철씨 「지붕밑의 작은 우주」·「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

    ◎중견건축가 2인의 건축문화 소고/지붕밑의 작은우주­생태건축·기철학적 건축관 펼쳐/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피라미드·타지마할 등 명소 망라 건축은 단지 무기물의 집합체만은 아니다.좀 거창하게 말하면 역사와 인생을 반추하게 하는 살아있는 거울이다.최근 문화설계자로서의 건축가가 크게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두 중견건축가가 건축문화에 대한 책을 잇따라 내 관심을 모은다. 김기석씨(53·건축사사무소「아람광장」대표)가 「집이야기 전집」(전4권) 첫권으로 「지붕밑의 작은 우주」(살림)를 펴냈고,김석철씨(54·종합건축사무소「아키반」대표)는 「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창작과비평사)을 2월중 발간한다. 「지붕밑의 작은 우주」는 『집은 사람 자신이며,우리들의 어머니와 지구를 닮은 건축이 참건축』이라는 지은이 특유의 건축철학이 담긴 책.김씨의 건축세계는 건축은 생명의 집합체라고 하는 「생태건축」이론과,집과 삶이 서로 기를 주고 받아야 한다는 기철학적 건축관으로 요약된다.1부 「집을 만든 숨은 역사」에서는 집의 역사와아파트의 기원,중세의 집과 난로이야기 등을 다루며 2부「서울의 발코니는 왜 있는가」에는 한국적인 건축과 서양적인 건축의 미학을 비교설명하는 글들이 실렸다.「집이야기 전집」의 나머지 3권인 설계안내서「행복이 가득한 설계」,주택답사기「집을 찾아 떠나는 여행」,건축여행기「길은 집을 만들고,집은 길을 만든다」는 2월말경 나올 예정이다. 「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은 김씨가 20여년 동안 돌아본 세계의 도시와 건축물중 예술적으로 평가할만한 25곳을 골라 소개한 에세이집.「죽음의 공간」「신들의 공간」「삶의 공간」「인간의 공간」 등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예술의 전당,국립예술종합학교,온양 민속박물관 등을 설계한 김씨의 건축인생 30년을 중간결산하는 의미를 지닌다. 기자의 피라미드군,로마의 카타콤베,무굴건축의 백미인 타지 마할,그리스문명 최고의 유적인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로마의 판테온 신전,일본건축의 상징적 공간인 이세신궁,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카이로인들의 장터 한 알 할릴리,현대미술의 산실인 구겐하임 미술관,라틴아메리카 최대의 고대 도시국가인 테오티우아칸,나폴리의 메가리데성,아름다운 중세의 탑상도시 산 지미냐노,키클라데스 문명이 꽃핀 산토리니 섬,로마문명의 심장부인 포로 로마노 등 세계 건축명소가 총망라됐다. 이 책은 단순히 외국의 건축문화를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외래문명을 주체적으로 수용해 가장 러시아적 건축양식을 일궈낸 모스크바 바실리사원에서는 우리 건축의 지향점을 찾으며,마르세이유의 집합주거지에서는 21세기 우리 집합주거형태의 비전을 모색한다.지은이의 깨어있는 건축혼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 박사 남발/이건영 국토개발연구원장(굄돌)

    영국인들에게서 명함을 받아보면 이름 앞뒤에 수사가 많이 붙어 있다.이름 뒤에 붙어 있는 것은 대개 학사,석사,박사 등의 학위나 기술사 등의 면허 또는 가입한 학회 회원약칭 따위이고 앞에 붙어 있는 것은 작위 같은 것이다.우리 사회에서도 박사는 명예로운 칭호로 되어 있다.그래서 명함에도 버젓이 무슨 무슨 박사라고 박아서 드러내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원래 선비를 숭상하던 유교적 관습 때문에 박사에 대한 사회적 예우는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 높다. 오늘날같은 산업사회에서 박사들의 역할은 중요하다.그들은 시대에 앞서서 전문분야별로 미지의 학문을 개척하고 기술개발을 선도한다.그리고 사회에 필요한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책무도 지고 있다.학문적 기반이 없던 과거 우리나라 1세대의 박사들은 일본이나 구미에 유학하여 갖은 고생을 하고 돌아온 유학파들이다.이들이 그동안 우리나라 조국근대화의 최일선에서 많은 공헌을 하였다.뿐만 아니라 희소가치도 있어서 사회의 존경을 받았다. 실용주의적인 미국은 전문가로서의 자격증을 더 높이 평가한다.가령 건축가이면 족하지 건축박사는 뭐에 쓰나? 변호사면 그만이지,법학박사는 학자들의 칭호일 뿐이다.미국대학에 원래 없던 건축박사코스가 70년대 이후 생겼는데 한국인들의 성화 대문이었다는 말도 있다. 요즘은 대학이 학부보다 대학원 중심 교육제를 표방하면서 거의 전 분야에서 박사가 쏟아지고 있다.박사가 많이 배출되는 것을 탓할 이유는 없다.그러나 일부대학은 학위장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냉정히 생각해 보자.학생들이 제대로 학교에 다니고,논문다운 논문을 쓰고 있는가? 자만 달아 놓고 적당적당히 학점을 얻고 있지는 않는가? 학위 논문의 질이 외국대학의 수준에 미치는가? 대학이 학위를 남발하니까 학문과는 무관한 사람들이 마치 훈장이라도 타듯 박사를 타려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학문이 세속화하고 학위 상품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 한­캐나다 정상회담 이모저모

    ◎김 대통령 “내가 해 본 정상회담중 최대규모”/“반덤핑제 신중운용” 요청에 크레티앙 “긍정 검토” 10일 한·캐나다 정상회담은 두나라관계가 「특별동반자관계」를 넘어 「전면적이고 포괄적 관계」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 ○…김영삼 대통령은 이날 상오 청와대본관 입구에서 크레티앙 총리를 영접,영어로 『Hwo are you?』(안녕하십니까)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이어 크레티앙 총리가 캐나다 9개주 수상과 유콘 특수지역 지도자 등 10명을 소개하자 『Nice to meet you』(만나서 반갑습니다)라며 일일이 악수했다. 김대통령과 크레티앙총리는 2층접견실로 이동,단독회담을 시작했다. 김대통령은 『많은 나라 정상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으나 이렇게 대규모 방문은 처음』이라며 『우리도 정부관계자와 기업인으로 구성된 대표단을 캐나다에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10여분간에 걸친 단독회담을 마친 양국 정상은 자리를 2층 집현실로 옮겨 양국외무 및 통상장관과 캐나다주수상 등이 참석한 가운데 50여분간 확대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김대통령은 『오늘 회담은 정치적 비중에서나 참석자수에서나 내가 해 본 정상회담중 최대 규모』라며 『방한기간중 각 분야에서 7개 협정을 체결할 예정이어서 이번 회담의 성과도 그만큼 크다고 생각한다』고 기대를 표시했다.이어 『양국이 상호보완적인 산업구조를 기반으로 지속적으로 교역이 확대되어 기쁘게 생각한다』며 『다만 우리측의 무역적자 규모가 계속 커져 양국간 무역수지균형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캐나다의 협조를 요청했다. 특히 김대통령은 『솔직히 말씀드릴 것이 있다』고 운을 뗀 뒤 『캐나다 정부가 한국에 대해 반덤핑제도를 신중히 운용하고 우리 상사주재원에 대한 입국절차가 까다로워 애를 먹고 있는 만큼 적극 협조해 주었으면 한다』고 밝혔다.크레티앙 총리는 이에 대해 『최선을 다해 검토하겠다』고 긍정적 입장을 개진했다. ○ ○…이날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환영만찬은 「크레티앙 총리의 생일축하 행사」로 변했다.11일로 63회 생일을 맞는 크레티앙 총리를 위해 청와대측이 케이크를 준비했고,양국 정상은함께 생일축가를 부른뒤 케이크를 잘랐다.김대통령도 12일이 69회 생일이어서 인연이 깊은 셈. 한편 크레티앙 총리를 수행한 「팀 캐나다」사절단은 10일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기업간 계약 서명식」에서 국내기업과 60여건,8천억원에 달하는 계약을 일거에 맺기도.
  • “문화유산 훼손은 「역사파괴」 행위”/문화재 관련 전문가 정담

    ◎무분별한 발굴로 매장문화재 손상 안타까워/소중함 알리는것부터 시작… 알고 찾고 가꾸자 □참석자 ·한병삼 문화유산의해 조직위 집행위원장 ·임효재 서울대 고곡미술사학과 교수 ·조유전 국립민속박물관장 97년은 정부가 정한 「문화유산의 해」.연극 책 미술 국악 문학의 해에 이어 정해진 문화유산의 해를 맞아 올해에는 문화유산을 보존·전승하려는 각계의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 활발할 전망이다.문화유산의 해 조직위원회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알고 찾고 가꾸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을 범국민적으로 확산시킨다는 계획이며 민간단체들의 문화보존 노력도 한층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조상의 얼이 담긴 살아있는 역사이자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근거가 되는 문화유산.서울신문은 문화유산의 해를 맞아 우리 문화유산을 어떻게 가꾸고 발전적으로 계승시켜나갈 것인가를 모색하는 신년정담을 마련했다.한병삼 문화유산의 해 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임효재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조유전 국립민속박물관장이 자리를 함께 했다. ▲한위원장=정부가 올해를 특별히 문화유산의 해로 정한 것은 만시지탄의 느낌은 있지만 반가운 일입니다.그동안 우리는 개발논리에 밀려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일에 적극적이지 못했습니다.국민의 문화유산 의식이랄까 문화재감각은 우려할만한 수준이에요.지난해 터져나온 가짜 거북선총통사건은 그 단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일깨우는데 문화유산의 해 지정의 1차적인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임교수=우리 사회가 그동안 정치우선주의에 경도돼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일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던게 사실입니다.올해를 문화유산의 해로 지정한 것은 문화가 더이상 문화외적인 것에 좌우되거나 뒷방신세로 떨어져서는 안된다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행사의 내실이 중요 ▲조관장=민족문화의 창달없이는 지구촌시대 총체적인 경쟁력을 지닌 국가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다가오는 21세기를 주도할 수 있는 것은 문화,그중에서도 특히 전통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해요. ▲한위원장=문화유산의 해를 맞아 특히 안타까운 것은 우리 문화재가 「건설논리」에 압도당해 무차별 훼손되고 있다는 것입니다.이를 막기 위해서는 우선 현재의 환경영향평가제의 한 항목으로 들어가 있는 문화재 평가부분을 독립시켜 전문화할 필요가 있습니다.또 토지공사 같은 기관에 공신력있는 「매장문화재연구센터」(가칭) 등 자체 발굴팀을 두는 것도 문화재보존과 예산절감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할만 합니다.최소한 불도저 굉음을 들으면서 문화재를 발굴하는 해프닝은 더 이상 없어야죠. ▲조관장=문화유산의 개념을 살펴보는 것도 뜻있는 일이라 여겨집니다.국보·보물 등의 문화유산은 요컨대 문헌으로 기록되지 않은 「겨레의 발자취로서의 역사」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때문에 문화유산을 훼손하는 행위는 곧 역사를 파괴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한위원장=저는 개인적으로 보물이란 명칭에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왠지 골동같은 냄새가 나거던요.아울러 우리의 국보심의도 보다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예컨대 회화작품을 국보로 올릴때 미술관계자들만의 의견에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얘기입니다.관계전문가들이 폭넓게 참여해 만장일치로 결정하는 일본 국보심의위원회의 경우를 참고로 삼을만 합니다. ▲임교수=보물 가운데 명실공히 세계적인 대표성을 지닌 것을 국보라고 지칭할때,그 선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미국에서는 물건 자체에 국보라는 말은 쓰지않아요.대신 국가기념물(National Monument)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합니다. ▲한위원장=문화유산의 해를 의미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구호만의 행사에 그치지 않도록 내실을 다지는게 중요합니다.잡화점식으로 이것저것 사업을 벌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우리 문화재를 제대로 알리는 작업부터 이뤄져야죠.우리의 피상적인 문화재교육은 그런 점에서 재검토돼야 합니다.한때 시행되다가 유명무실해진 「문화재 명예관리인」제도를 새롭게 부활시키는 것은 어떨까요. ▲임교수=우리도 이제 선진외국처럼 박물관을 핵심적인 사회교육기관으로 활용해야 합니다.미국의 박물관은 교육부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요.박물관을 각급학교의 커리큘럼과 연계해 문화의 산 교육장(장)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위원장=멕시코인들이 세계에 자랑하는 국립인류학박물관을 보세요.멕시코 정부는 박물관 설립당시 노른자위땅을 골라 페드로 라밀레스 바스케스라는 한 천재 건축가로 하여금 재량껏 설계토록 했습니다.그만큼 문화에 대한 인식이 확고했던 거죠.그런 마음자세가 내면화될 때 우리의 문화도 제자리를 찾아 바로 서게 될 것입니다.우리 문화유산을 온전히 보존하고 가꿔나가기 위해서는 문화관련 제도와 법령을 개선하는 등 보다 획기적인 조치가 있어야 합니다.신라 천년고도 경주를 가보면 마치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분당 신도시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고도(고도)풍치법」같은 것이라도 있어 엄격히 적용했다면 그렇게 일그러진 모습은 안됐을 것입니다.일본 교토(경도)는 시 전체가 유네스코에 등록돼 있습니다.또 이탈리아는 로마시와 별개의 신도시를 마련해 개발수요를 충족시키고 있어요.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문화를 무엇보다 소중히 생각하는 발상의 대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발상의 대전환 시급 ▲임교수=되돌아보건대 암사동 신석기 유적발굴과 그 이후의 시행착오를 반복해서는 안됩니다.자신의 동네에 유적이 있기 때문에 대대손손 유·무형의 혜택을 입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개발이익을 포기하는 대신 인근에 상권이 형성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등의 반대급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조관장=무분별한 발굴과 비전문적인 처리로 손상되는 매장문화재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입니다.우리 문화유산의 훼손을 막기 위해서는 새로운 차원의 신도시 정책이 마련돼야 합니다. ▲임교수=전국에 흩어져 있는 유·무형의 문화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문화재관리국을 외청으로 승격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전문인력 특히 기술인력이 크게 부족한 실정입니다.일본 다카마쓰(고송)고분엔 1년 내내 전문가가 주재하다시피하고 있습니다.보존상태를 일상적으로 점검하기 위해서지요.이에 비해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의 문화재로 지정된 불국사 석굴암의 관리실태는 어떻습니까.로마의 문화재센터처럼 고도의 전문 기술인력을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일이 긴요합니다. ▲한위원장=문화재관리국을 청으로 승격시키는 것이 문화재관리국의 숙원이긴 하지만 그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중요한 것은 기구의 몸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개발논리 이제 그만 ▲조관장=전문인력의 확보는 시급한 과제임에 틀림없습니다.「작은 정부」의 기치와는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박물관 등에 큐레이터나 보조큐레이터 양성과정을 둬 자격취득후 임의봉사토록 하는 방안도 검토해볼만 합니다. ▲한위원장=외국의 경우 특정목적을 위해 설정된 해에는 제도의 미비점을 개선하거나 발전기금을 마련하는 등 근본문제를 해결하는데 행사의 초점을 맞추는게 통례입니다.올해는 「문화유산 알고 찾고 가꾸기」를 위해 마련한 연중계획이 정부의 지속적인 예산사업으로 정착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임교수=문화유산의 해의 본질이 일과성·전시용 행사로 변질되지 않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해외에 나가있는 6만여점에 이르는 우리 문화재를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문제도 한번 따져볼만 합니다. ▲조관장=해외에 흩어져있는 우리 문화재는 우리가 되찾아 오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외국 박물관의 한국관 등에 수용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도 차선책으로 적극 고려해야 합니다. ▲한위원장=동감입니다.『모자라는 것이 있으면 우리가 줘서라도 해외 박물관 등에 우리 방을 만들자』고 했던 고 김원용 박사의 말이 생각나는군요.또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국제화·세계화 시대를 맞아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감성적으로 알리는데만 힘을 쏟기 보다는 독창성을 평가받는데 눈을 돌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조관장=그렇습니다.우리의 문화유산인 한글의 독특한 표현법과 원리에 외국인들이 얼마나 진지한 호기심을 보이는가만 봐도 문화의 세계성은 바로 독창적인데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한위원장=우리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작업이 정부차원의 관심만으로는 제대로이뤄질수 없습니다.국민 모두가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자각하고 지켜나갈때 올해 문화유산의 해는 소담한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에스제이엠 343대1 경쟁

    올해 마지막으로 실시된 우방 등 4개사의 공모주 청약에서 특수 이음관 생산업체인 에스제이엠의 경쟁률이 평균 343.3대 1로 가장 높았다. 24일 대우증권에 따르면 에스제이엠은 증권금융 공모주청약예치금 가입자가 소속된 Ⅲ그룹에서 234.4대 1로 경쟁률이 가장 높았다.Ⅰ그룹(증권사 증권저축가입자)과 Ⅱ그룹(은행 공모주청약예금)에서도 경쟁률이 가장 높았다.
  • 건축가 김원(이세기의 인물탐구:113)

    ◎자연·인간 하나로… 청수한 공간 조성/하나의 작품 맡겨지면 환경을 먼저 생각/KOEX·독립기념관 등 대형 프로젝트 단골 『내가 자리에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점심시간이 되어도 밥먹으러 가자거나 퇴근시간에 술한잔 하자는 사람도 없었다』 건축가 김원이 대학졸업후 김수근건축연구소에 다니던 안국동시절의 초상화다.아침에는 일찍 나와서 사무실 청소에다 난로에 불을 지피고 선배들이 출근하기 전에 도면을 그려나갈 80자루 이상의 연필들을 깎아서 갈아놔야 했다.참으로 참담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는 수많은 책들을 읽을수 있었다.「건축철학」에서 「공간심리학」「네덜란드의 종합국토계획」에 이르는 방대한 독서를 할수 있었고 일본책을 읽기위해 혼자서 일어공부를 하기도 했다.이것이 모태가 되어 후에 자신만의 독특한 건축용어를 구축하게 되었다. 어쩌다가 일이 주어지면 선배들은 「서울대학에선 이렇게 가르치느냐?」고 힐난했다.1년이 지나서야 구석에 틀어박혀 책만 읽고있는 그를 발견한 김수근씨가 67몬트리올 박람회 한국관 프로젝트를 맡겼다.이 기간동안 그는 최대의 능력을 발휘해 나갔다.여수수족관 정부종합청사 조선호텔을 설계하거나 여의도종합개발 과학기술연구소설계에 참여하고 70오사카 엑스포 한국관 설계를 담당했다.인내로써 신뢰를 쌓으면서 성공적인 안국동시대를 거쳤다. 대학생활은 허무와 방황의 나날이었다.경기고에 다닐때는 조각가를 꿈꾸면서 천재조각가 권진규의 지도를 받기도 했으나 부친 타계후 혼자서 2남3녀를 키운 어머니의 권유로 서울대공대 건축공학과에 진학했으나 대학은 「서울대생은 당연히 한국 건축계의 지도자가 돼야한다」는 자부심만을 키워주었고 전문교육이 아닌 「자율교육」을 유도하고 있었다.이 방법이 마음에 들지않아 강의실밖에서 빙빙 돌다가 걸핏하면 산에 오르거나 「술독」에 빠져 비분에 찬 논쟁만을 일삼았다. ○고교시절 조각가 꿈꿔 건축가 김원은 결국 지난 30년동안의 건축실무와 경험에서 「건축은 유행가처럼 히트하는 것이 아니며 건축가는 영웅일수 없다」는 진리를 터득했다.그리고 『사람이 어디에 사는가하는 것은 어떻게 사는가 하는것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어디에 살고있느냐 하는 것은 바로 나자신이 어떻게 사느냐의 반영이기 때문」이다.그래서 하나의 프로젝트가 맡겨지면 「환경을 생각하는 건축」을 위한 다방면의 연구에 들어간다. 영화진흥공사의 종합촬영장을 설계할 때는 모스크바 모스필름스튜디오 부다페스트의 마자르필름 이탈리아의 치네치타(시네시티) 등 세계 30여군데의 촬영장을 꼼꼼히 돌았다.국악당을 맡았을때도 황병기 박동진등 국악 관련자와 독주자 합주자 지휘자 무용가들을 고루 만나 인터뷰하는데만 6개월이 걸렸다.가야금연주에서 「은쟁반에 옥구슬을 굴리는 소리」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어떤 극장조건이 가장 이상적인가.길놀이와 뒷풀이를 위해 객석과 무대간의 유리감을 줄이고 안방같은 극장,혹은 마당같은 무대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결론을 얻어냈다. ○가장 문학적인 건축가상 그가 자신의 아이디어와 창의력을 마음껏 구사한 작품은 단연 보석전문점인 명보랑의 빙갤러리를 들수 있다.남산에서 하얏트호텔입구에서있는 이 첨단건물은 도시의 숲속에 파묻힌 한아름의 다이아몬드처럼 낮에는 종일 태양빛에 빛나고 밤에는 별빛아래 영롱하다.국내에선 낯선공법인 멜로 시스템을 적용한 노출된 내장마감과 하얀 알루미늄판으로 외곽을 덮으면서 지붕도 벽도 창문도 구별없이 건물전체가 수정처럼 각진채 「먼 우주를 향해 떠가는 비행체」 또는 「현대추상회화」같은 이미지를 떠올린다.그외엔 주한 러시아연방대사관이 큐빅(정육면체)형의 독특한 외곽시도로 시선을 모았고 화순 남평에 짓고있는 광주가톨릭신학대학이 내년 7월로 완공을 앞두고 있다. 그는 본래 서울 북아현동에서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 이당 김은호등 화단의 대가들이 드나들던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났다.외무부 부산출장소에 파견된 부친을 따라 국민학교를 부산에서 다녔고 공부는 물론 음악 미술 글짓기에서 재능을 보여 어릴때는 「신동」소리를 듣기도 했다.지금도 건축뿐 아니라 뛰어난 건축이론과 건축수필로 오늘의 건축에 대한 문제점을 유려한 필치로 전개하여 올 「문학의 해」기념 「가장 문학적인 건축가상」을 받았다. 건축가들의 대부분이 「대장간에 칼이없다」는 식으로 자신의 주택을 갖지못한 것과는 달리 그는 67년 이미 정릉꼭대기에다 자신의 집을 직접 지은 일이 있고 3년전에는 종로구 동숭동에 자신의 건축설계사무소인 「광장」빌딩을 신축,지금은 10년전에 다시 지은 옥인동 자택에 살고있다.부인 박정애씨와의 사이엔 남매,두주불사의 애연가다. 그는 시인같고 대학의 청년강사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지만 풍수지리의 대가로도 이름이 높다.일본의 유명한 야기충언은 그의 저서 「한국의 풍수사들」에다 김원을 특별하게 따로 다루고 있고 독립기념관과 국립예술종합학교를 이문동 중정자리에 추천한 것도 바로 김원 자신이다. 그의 사고력은 「어느때는 넓은 물과 같고 어느때는 깊은 산속같다」는 말을 듣는다.건축가 공일곤에 의하면 『하나에 파고들면 끝장을 내고야마는 건축계의 몇안되는 완벽주의자의 한사람』이다.그러면서도 하나의 건축을 이룰 때마다 「불사불루」,지나치게 사치하지 않고 그러면서 누추하지 않은 누구나 「애정」을 가질수 있는 부드럽고 청수한 공간을 조성한다. ○풍수지리연구회장 역임 김원은 수많은 우여곡절과 어려움을 딛고 이제 건축계의 기린아로 우뚝 서있다.76년이래 독립 설계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시대를 앞장서는 수많은 작품을 이룩하였고 80년대이후 대규모의 정부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그의 업적은 신문지 한장이 모자랄만큼 「한 일」과 「할 일」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건축계의 엘리트로 상징되는 그의 위상은 지금 가장 왕성하고 의욕적으로 자신에게 축적된 모든 것이 용해되어 창작품으로 흘러나오는 시기다.그의 꿈은 자연과 인간이 완전히 일체감을 이루는 「자연속의 건축」을 이루는 일이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그는 항상 도전하고 연구하고 고뇌하는 엘리트의 모습을 변치않고 있다. □연보 ▲1943년 서울 출생 ▲65년 서울대 공대 건축공학과 졸업 ▲65∼70년 김수근 건축연구 소근무 ▲73∼78년 이대 및 동대학원 출강 ▲76년 건축연구소 「광장」 개소 ▲79∼89년 한국풍수지리연구회 회장 ▲82년 제1회 대한민국건축대전 초대작가(해마다 출품),독립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종합기획위원 ▲84년 예술의 전당 건축설계 자문위원 ▲85년 「세계현대건축가 101인」(일본 가지마 출판사 선정) ▲87∼95년 한국건축가협회 이사 및 도시계획분과위원장 〈현재〉 한국건축가협회·한국실내디자인학회·한국인테리어디자이너협회 명예이사,건축환경연구소「광장」 및 도서출판「광장」대표,대한건축학회 정회원,국제박물관협의회(ICOM)정회원 〈작품〉 67 조선호텔계획,엑스포 70 (일본 오사카)한국관,한국종합전시관(KOEX),박경리기념관,독립기념관,국립국악당,명보낭(빙갤러리),경주 신라민속촌,영화진흥공사 종합촬영소,통일연수원,외무부 외교센터,서울원서동 불교박물관,주한러시아연방국대사관,분당시범단지공동주택외 성당 수도원 신학대 등 200여점 〈저서〉 건축평론집 「우리시대의 거울」,수상집 「한국현대건축의 이해」 「빛과 그리고 그림자」외 논문다수 〈수상〉 한국건축가협회 작품상(79·80·81·82·83·85·86··91·95년)한국인테리어 디자이너협회작품상(84년) 엄덕문건축상(91년) 「문학의 해」기념 「가장 문학적인 건축가상」(96년)
  • 「메트로폴리탄 포라96」/지구촌 석학40여명“열띤 논쟁”지상중계

    ◎서울시립대 주최/도시문명의 과거·현재·미래… 도시 문명의 과거·현재·미래를 진단하는 「서울 메트로폴리탄 포라 96」(Seoul Metropolitan Fora)이 11일 서울 워커힐호텔 컨벤션센터에서 개막됐다.서울시립대(총장 김진현)가 주최,「다시 보는 근대도시­패러다임의 전환기인가」를 주제로 13일까지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10개국 40여명의 석학들이 참가했다.세계적인 베스트 셀러인 「글로벌 시티」의 저자인 사스키아 사센 교수(미국 컬럼비아대),도시경제학 분야의 석학 피터 나이캠프 교수(네덜란드 프리대),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을 지낸 최상철 교수(서울대) 등 도시학 분야 권위자들의 특별강연 내용과 서울시립대 김총장의 환영사를 간추린다.〈편집자주〉 □환영사 ◎김진현 서울시립대 총장/도시과학 패러다임 바꾸자/서울공간 역동적 변화 기존 연구론 한계 오늘 「서울 메트로폴리탄 포라 96」에 참가하신 여러분,진심으로 감사합니다.이 자리에는 17명의 외국 학자와 23명의 국내 학자가 참가,명실공히 도시과학 연구에 관한 세계 최고의 학문적깊이와 권위를 대표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서울시립대는 서울시가 세운 대학으로 서울 시민의 복지와 발전,그리고 서울시정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대학입니다. 우리가 도시과학 교육과 연구를 특성화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논리적 사실적 귀결입니다.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모여살고 있는 서울과 주변 도시공간속에서 일어나는 다이내믹한 도전은 미래지향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도시과학」이라함은 교통문제를 도로넓이와 자동차 대수로만 이해하지 않으며 행정문제를 공직업무 체계를 처리하는 방식으로만 이해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안이했던 틀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합니다.올바른 도시과학이 어떻게 가능할 것이냐 하는 질문은 결국 우리 도시와 도시문명의 장래를 가늠하는 주제가 되는 것이며 우리는 이 도전에 나서기로 한 것입니다. ◎「기술혁신·세계화가 도시」­사센 교수/정보통신 공간개념 재편/「중심성」 역할 변모따라 도시 역할도 변화 경제적 기능과 관련하여 도시는「중심성」이라고 표현되는 새로운 개념을 제공한다.경제적인 세계화와 새로운 기술발전이 「중심성」의 역할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경제적 실체로서의 도시의 역할은 어떻게 변화될까. 이에 관한 연구는 지구적 정보경제의 주요한 특징이지만 한편으로 중심성은 중심업무지구에서 세계 도시 네트워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밝힌다. 그러면 서울이 뉴욕·도쿄·런던과 같은 「빅 그로벌 시티」가 될 수 있을까.엄밀하게 말하면 빅 글로벌 시티는 아니지만 글로벌 시티의 기능을 맡을 수 있는,한단계 아래의 글로벌 시티라고 말할 수 있다. 서울은 중산계층이 모여사는 도시이다.옛날의 개념으로 본다면 글로벌 시티는 제조업에 기반을 둔 도시를 일컬었다.지금은 행정·상업·문화의 중심지가 된 도시를 말한다. 서울이 진정한 글로벌 시티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기술 및 문화인프라를 갖추고 정보기술을 지향하는 정보화도시가 되어야 한다. 문화인프라를 갖추기 위해 도시의 오피스빌딩이나 박물관 등을 짓는데외국의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대거 끌어들인 프랑크푸르트와 도쿄의 예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함께 진화하는 도시」­나이캠프 교수/지역적 분석에 세계환경정책 동시 고려 함께 진화하는 도시란 생태도시를 말한다.「생태도시」란 도시의 물리적 공간,경제적 활동,사회환경이라는 3가지 요소가 함께 진화해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키워나갈 수 있는 도시이다. 생태도시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3가지 기본원칙에 입각해야 한다.첫째로 근시안적인 이윤법칙보다는 환경의 질을 고려하는 배분적 효율성의 원칙이다.둘째로 좋은 환경을 가질 권리에 대한 세대간·계층간 환경평등성의 원칙이며 마지막으로 좋은 도시환경에 대한 형평의 원칙이다. 당장 배가 고프고 전기가 부족한 가난한 도시의 시민들에게는 경제성장이 도시환경의 질을 높이는 수단이 되지만 경제수준이 일정한 수준을 넘으면 도시환경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경제성장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뼈저린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다. 21세기에도 생존하여 번영을 누릴 수 있는 도시가되기 위해서는 그 뼈저린 순간에 경제성장과 도시환경의 질을 동시에 높이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도시를 위한 정책은 다양한 이익집단을 고려,복잡다단한 정치·사회·경제적 마찰을 극복하는데 있다. ◎「지식과 대상의 변천…」­아브로드 교수/한국도시학 「서구 틀」 적용을…/독자모델 개발보다 더 큰 체계속 융화를 우리는 상호긴밀하게 통합된 무역체계와 기술의 발달로 인한 공간적·시간적 극복을 통한 새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 과거엔 개별적 공간으로 인식됐던 물리적 사회적 공간으로부터 점점 더 큰 하나의 체계속에 융화되고 있다. 한국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서구중심적인 패러다임의 재정립이 필요하다.한국의 독자적인 패러다임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선 다음과 같은 주제를 다루고자 한다.첫째는 서구사회에서 도시관련학과의 발전이다.다음으로는 이념적·도덕적·방법론적 전제이며 마지막으로 근대후기에 있어서 도시관련 학과의 가능성과 한계점 등이다. 사실상 「교육」과 「실천」은 불가피하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연결되어 있지만 여기에서는 도시를 점검하는 차원을 네가지로 분류해 보았다.즉 물리적 공간,사회·문화적 공간,경제공간,정치공간이 그것이다. 모든 것을 종합해 볼때 문화와 도시에 대한 서구의 이론은 더욱더 의미가 충실해지는 포스트모던적 접근방식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해석에 대한 비결정론적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대만정부 대표단 첫 방북/감찰위원 등 6명/북 대표 내년초 답방

    【홍콩 연합】 대만의 정부대표단 6명이 11월26일부터 지난 2일까지 1주일간 평양을 방문,양측관계발전과 농업협력방안을 논의했다고 홍콩의 명보가 6일 보도했다. 임추산 감찰위원을 단장으로 외교부 남북한담당자 복소인,농업위원회의 농산식량전문가 사순경,목축가공전문가 왕정 등,원예과일채소전문가 오명철과 련충용 등 6명으로 구성된 대만대표단은 북한에서 공식대표단으로 대접을 받고 비자도 정식으로 발급받았다고 신문은 전했다. 올들어 대만과 북한간의 접근이 가속화되고 있으나 대만의 정부대표단이 북한을 공식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만은 조만간 경제·무역부문 관리들을 북한에 파견,양측간 경제·무역협력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며 북한도 내년초 답방형식으로 대표단을 대만에 파견키로 하는 등 양측간의 교류가 점점 활발해질 전망이라고 신문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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