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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랄라세션 박광선, 故임윤택 딸과 축가 ‘하늘에서 보고 있을까..’ 감동 무대

    울랄라세션 박광선, 故임윤택 딸과 축가 ‘하늘에서 보고 있을까..’ 감동 무대

    울랄라세션 출신 박광선이 故(고) 임윤택 딸인 임리단 양과 함께한 사진이 화제다. 18일 박광선이 JTBC ‘힙합의 민족2’에 출연해 화제를 모은 가운데 박광선이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관객난입의 올바른 예. 괜찮아 리단이야”라는 글과 함께 짧은 동영상을 공개했다. 공개된 영상 속 박광선은 결혼식에서 축가를 준비하고 있다. 임리단 양이 무대에 올라왔고, 흥겨운 댄스를 선보여 웃음을 자아냈다. 박광선은 지난해 12월 울랄라세션에서 탈퇴했으며, 현재 뮤지컬 배우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한편 지난 18일 오후에 방송된 JTBC ‘힙합의 민족2’에 박광선이 도전자로 출연해 양동근의 ‘어깨’를 부르며 수준급 랩 실력을 선보였다. 박광선은 어머니를 위해 신장 이식 수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빼곡한 빌딩숲 사이, 역사는 흐른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빼곡한 빌딩숲 사이, 역사는 흐른다

    비운의 흥화문… 혁명의 경교장… 낭만의 성우이용원 서울미래유산은 정치역사, 산업노동, 시민생활, 도시관리, 문화예술 등 5개 분과로 나뉜다. 도시관리분과 세부 선정기준에 따르면 지어진 지 40년 이상 된 건조물로서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중 특히 근대 건축 특성이 잘 나타나 있거나 훼손·멸실 가능성이 높은 건물 위주로 선정한다. 서울의 도시 발전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건조물이나 흔적도 미래유산으로 지정할 수 있다. 이름난 건축가의 건축물 중에서는 시대별 대표작이나 인지도가 높은 작품이 대상이다. 다음 회엔 문화예술분과 세부 선정기준을 알아본다. 서울시는 미래유산을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서울신문·문화지평과 공동 주관으로 매주 토요일 진행한다. 총 20회 중 지난주까지 13회차를 진행했다. 오는 22일 답사는 웃대 일대 문화유산을 배건욱 서울미래유산해설사와 함께 돌아본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답사 코스 확인과 참가 신청을 할 수 있다. 11회차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은 지난 1일 오전 10시 서울역사박물관 뒤에 있는 경희궁에서 시작했다. 이날 해설은 한선영 서울미래유산해설사가 맡았다. 이번 답사 경로는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서대문역~충정로역 라인과 많이 겹친다. 그 길 위에 놓여 있는 숱한 서울미래유산들을 이번 답사에서 확인했다. 광화문역에서 경희궁까지는 500여m를 걸어야 한다.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새문안로를 따라 정동사거리 방향으로 걷다 보면 구세군 본영회관을 만날 수 있다. 회관 1층에는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기독교 서점 ‘생명의 말씀사’가 있다. 1953년 팀선교회 선교사들이 만든 기독교 서적 전문 출판사다. 1985년 김재권씨가 인수한 뒤 아들과 함께 현재까지 운영해 오고 있다. 서울시는 “한국 교회 양서 보급에 큰 역할을 담당해 왔으며 기독교 서점의 대형화를 시도하는 등 기독교 서점 문화를 주도해 왔다는 데 큰 의의를 지닌다”는 이유로 이곳을 미래유산에 선정했다. 경희궁과 정문인 흥화문은 통째로 뜯기는 등 우여곡절이 많은 유물이다. 조선조 광해군 10년(1618년)에 지어진 경희궁은 1910년 일제가 경성중학교를 세우기 위해 전각들을 헐거나 매각하고 일부는 이전하는 등 무참히 유린당했다. “동향이던 흥화문도 1915년 남쪽 담장으로 옮겨졌다가 1932년 장충동 박문사로 옮겨져 정문으로 사용됐습니다. 박문사는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한 이토 히로부미를 위해 만든 절인데요, 이때는 경춘문이란 이름의 현판을 달고 있었습니다. 해방 직후 박문각이 헐리고 신라호텔이 들어서자 다시 영빈관이라는 현판을 달고 정문 기능을 하다가 1988년 가까스로 경희궁으로 돌아왔습니다.” 반세기 가까이 엉뚱한 곳에 있다가 돌아왔지만, 흥화문은 끝내 제자리를 잡지 못했다. 흥화문이 간직한 비운의 역사를 한 해설사가 풀어내자 답사단에서는 낮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경희궁 정전이던 숭정전은 한일합병 이후 세워진 경성중학교 교실 건물로 사용되다가 1926년 지금의 동국대 자리에 있던 일본 조계사에 매각된 뒤 옮겨져 본당으로 사용됐다. 해방 후에는 동국대 강의동으로 쓰이다 지금은 정각원(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0호)이란 이름의 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날 답사에 나온 전수정(36·여)씨는 “지난 역사가 순조로웠다면 서울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 먹먹하다”며 “하루하루가 켜켜이 쌓여 빚어진 결과물이 역사라면 좀더 세심하게 주변을 기억하고 기록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흥화문에서 조금만 걸으면 강북삼성병원 앞에 있는 돈의문 터 표지를 만날 수 있다. 돈의문은 한양 4대 문 중 하나로 서쪽 대문이다. 서대문, 새문, 신문(新門)이라고도 불렀다. 신문로, 새문안로, 새문안교회 같은 명칭으로 흔적이 남아 있다. 1396년 한양도성 축조 때 만들어졌고 1915년 도로 개설에 따라 철거됐다. 한 해설사는 “당초 서울시는 2013년까지 돈의문 원형을 복원할 계획이었으나 예산·원형 복원 등의 문제로 2022년까지 중장기 과제로 미뤄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강북삼성병원 안에는 경교장(사적 제465호)이 있다. 일제강점기 부호인 최창학의 저택이었던 경교장은 최씨가 친일 경력을 무마하기 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헌납했다. 그 뒤 임시정부 주석인 백범 김구 선생의 숙소이자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건물로 사용했다. 김구 선생은 1945년 11월 23일 환국해 안두희에게 저격당해 서거하기까지 3년 7개월을 이곳에서 머물렀다. 건물 이름은 근처에 있던 경교라는 다리에서 따왔다. 백범 서거 후 외국 대사관저, 미군시설, 병원 등으로 사용되다가 2013년 원형대로 복원됐다. 현재 문화일보 자리는 옛 동양극장 터다. 이번 답사 주제의 한 축은 ‘영화 같은 역사’다. 동양극장 터를 비롯해 서대문 로터리에는 지금은 헐려서 사라진 화양극장이 있었다. 한 해설사는 “동양극장은 1935년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 전용극장으로 신파극을 공연했다”며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란 연극이 공연될 때는 장안 기생들이 대거 모여들었다”고 했다. 동양극장은 광복 후 운영난으로 영화관으로 사용되다가 1976년 폐관된 뒤 1995년 철거됐다. 정면 길 건너에는 매끈한 대리석 건물의 4·19 혁명 기념도서관이 있다. 이 자리는 제1공화국 실세로 불리던 이기붕과 박마리아 부부가 살던 집이 있었다. 1960년 일어난 4·19 혁명은 이기붕이 부정선거로 부통령에 당선된 3·15 부정선거가 발단이 됐다. 이기붕 일가는 자살했고 이후 집은 국가로 환수됐다. 정부는 4·19 혁명 희생자 유족들에게 이곳을 무상으로 빌려 주다가 1982년 증여했다. 유족들은 1964년 사설 도서관으로 시작해 공공 도서관으로 발전시켰다. 한 해설사는 “4·19 혁명 기념도서관은 자유·민주·정의를 기본 정신으로 하는 4·19 혁명의 숭고한 이념과 역사적 사실을 후세에도 계승, 발전시킨다는 목표 아래 설립된 특수 도서관”이라며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 등 대비되는 두 역사를 모두 간직한 곳이라서 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고 설명했다. 충정로역 주변에는 우리나라 아파트의 효시라고 불리는 1932년 지어진 충정 아파트, 1900년대 초기에 지어진 서양식 건물의 충정각, 1892년 세워진 약현성당(사적 제252호), 1940년 개교한 미동초등학교 등 고풍스럽고 이야기를 한껏 담은 건축물이 즐비하다. 충정 아파트 내부에 들어가 사진을 찍으려니 거주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역정을 내며 “사진 같은 거 찍지 말고 빨리 나가라”고 고함을 쳤다. 유명세를 타다 보니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탐방객들이 답사할 때 거주민 입장을 배려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충정각은 문동수(46)씨가 임대해 레스토랑으로 운영하고 있다. “충정각 뒤 건물은 1906년 설립된 이명래 고약(명래제약)이 있던 자리”라고 충정각 직원이 귀띔했다. 답사단은 아현동 가구거리를 지나 한동안 걸어 만리시장으로 향했다. 그사이 답사단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국제KEY디지털’이란 열쇠 만물상과 손기정기념관을 지났다. ‘국제KEY디지털’은 1961년 현 위치에 창업주 최창윤씨가 개업해 1991년 아들에게 물려줬다가 2001년부터 최씨가 다시 운영하고 있다. 같은 장소에서 반세기 넘게 운영된 철물점으로, 만리동 1가 일대의 한 시대를 반추해 주는 장소다. 옛 양정고 자리에 들어선 손기정기념관은 2012년 개관했다. 양정고는 1905년 양정의숙으로 세워져 인재를 배출하다가 1988년 서울 목동으로 이전했다. 이 자리에는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옹 기념관이 세워졌다. 만리시장 꼭대기에 있는 성우이용원에 들어서자 이남열(68) 사장이 속사포처럼 설명을 쏟아냈다. 성우이용원은 슬레이트 지붕에 기우뚱한 외관이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이 사장은 “서울시를 통해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받을 수 없느냐”며 이 말을 꼭 전해 달라고 했다. 성우이용원 내부는 1960년대에서 시간이 멈춰 선 듯하다. 타일과 시멘트로 만든 세면대와 저수조, 그리고 연탄 난로가 당시 정취를 자아내고 있다. 성우이용원은 1927년 이발 기술자였던 서재덕씨가 문을 열었다. 서씨 사위인 이성순씨가 1935년부터 이어받았고 현재는 3대째인 이 사장이 운영하고 있다. 이 사장은 이발만 56년째라고 했다. 성우이용원은 내년이면 창업 90년을 맞는다. 이씨는 “요즘 유행하는 ‘투 블록’ 머리 스타일은 유럽 거지들이 하고 다니는 것이고, ‘블루클럽’(이발소 브랜드) 커트 방식은 인도네시아, 미장원 방식은 대만에서 유행하는 이발법이지요”라고 농담 섞어 말했다. 그러면서 “정통 일본 이발 기술을 익히려면 적어도 15년이 걸리고 칼·가위를 제대로 갈려면 30년이 걸려요”라고 덧붙였다. 이건희 회장을 비롯해 재벌 총수와 대기업 임원들도 많이 찾아왔고, 동네 손님은 채 열 명이 안 된다고 했다. 이 사장은 자신의 이발 기술은 물론 이용원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데 자부심이 상당했다. 다만 낡고 불편한 시설 개선에 서울시의 지원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답사에 참여한 박태백(64)씨는 “43년 서울살이를 하고 있지만 집과 직장만 알았다”며 “서울미래유산과 골목답사를 통해 서울의 애환 어린 인생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껴서 보람 있었다”고 말했다. 임윤재(65)씨는 “인천에서만 40년을 살지만 한양 도성과 성저십리 답사에 관심이 많다”며 “그동안 역사 유물 위주로 답사했는데 근대와 미래유산을 둘러보니 큰 공부가 된다”고 말했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혁신의 초고층 거물 열린 듯 막힌 폐쇄성 앞에 도시와 소통은 잊었다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혁신의 초고층 거물 열린 듯 막힌 폐쇄성 앞에 도시와 소통은 잊었다

    한국의 무지개떡 건축을 추적하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피해 갈 수 없는 몇 개의 사례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중 하나가 타워팰리스다. 이유는 간단하다. ‘초고층 주상복합’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건축을 사회에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그 이전과 이후에도 주상복합이 있었지만 이 건물만큼 많은 관심을 끈 경우는 없다. 물론 지금은 이전에 비해 타워팰리스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타워팰리스로 대표되는 초고층 주상복합 건축의 바람은 아직도 대한민국 전역에 불고 있다. 도심형 주거라는 애초의 선언과는 달리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들어서는 경우도 있다. 어떤 식으로 평가하든 여러 가지 의미에서 한 시대를 연 건물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다만 ‘대한민국 1%에 대해서 상위 0.1%의 존재를 보여 줬다’는 식의 평가보다는 도시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 복합 등의 이슈가 이 글의 관심사다. # 가장 낮은 동 42층 가장 높은 동 69층 세운상가와 마찬가지로 타워팰리스도 단일 건물이 아닌 건물의 집합이며 그 안에 상대적인 다양성이 존재한다. 1차(사용승인일 2002년 10월 30일)의 A, B, C, D동과 상가동, 2차(2003년 2월 28일)의 E. F동, 3차(2004년 4월 19일)의 G동과 S동(반트)까지 포함하면 총 9개의 거대 건물이 모여 있다. 상대적으로 저층인 체육시설 반트조차도 건축면적이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 육박하는 4270.44㎡에 지상 7층 규모다. 가장 낮은 A동이 42층이고 가장 높은 G동은 69층으로, 주거용 건물로는 세계적으로도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타워팰리스는 실로 중후장대한 건물의 집합체다. 양재천에서 바라보면 자연 속에 우뚝 속은 건물의 숲이 가히 장관을 이룬다. 삼일 고가도로와 삼일 빌딩이 개발 시대의 아이콘이었다면, 이 장면은 오늘날 성공 신화의 상징으로 종종 이야기된다. 타워팰리스는 동으로는 선릉로, 서로는 언주로, 북으로는 남부순환로 그리고 남으로는 양재천에 접해 있다. 이 영역 안에는 대림 아크로빌을 위시한 다른 건물들도 있다. 이 중 남부순환로는 워낙 서울의 중요한 도로로서 2차의 E, F동이 여기에 인접해 있을 뿐 아니라 도곡역 4번 출구도 이 방향으로 나 있다. 따라서 타워팰리스로서는 매우 중요한 도로일 것 같지만 현장에서 보면 실상은 다르다. 타워팰리스의 대지는 남부순환로보다 사람 키 정도 높으며 게다가 길과 면한 부분에 조경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약 200m에 이르는 도로변에 조경의 장벽이 처져 있는 것이다. 인근의 또 다른 주상복합인 아카데미 스위트가 저층부를 길에 온전히 열고 있는 것과는 매우 대조되는 방식이다. 이 아카데미 스위트도 무려 51층으로 덩치가 만만치 않다. 다만 도시를 대하는 태도는 완전히 다르다. # 느슨한 폐쇄성… 개방적 맨해튼과 대조 그렇다면 타워팰리스는 주변으로부터 폐쇄된 소위 빗장 공동체인가? 물론 주거 타워 부분은 그렇지만 나머지 저층부는 의외로 그렇지 않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타워팰리스의 여러 건물 사이를 비스듬하게 동서로 관통하는 언주로 30길이다. 전체 길이 500m 남짓한 이 길에서 타워팰리스 영역이라고 할 만한 구간은 400m 정도다. 그리고 이 도로를 향해서 타워팰리스의 각 건물들은 의외로 상당히 개방적인 태도를 보인다. 1차의 상가동이 바로 이 길에 면해 있으며 여기서 야외 계단을 타고 오르면 네 동의 타워 사이에 조성된 데크는 물론이고 양재천 쪽에 면한 조경 공간으로의 진입도 가능하다. 다만 그 경로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알고 찾아가지 않으면 접근이 가능한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2차의 E, F동의 하부도 필로티로 개방되어 ‘누구나’ 드나들 수 있다. 다만 이 건물에 살지 않는 한 특별히 찾아갈 이유가 있는 곳은 아니다. 지하철역으로의 접근이 조경으로 차단되어 있어 더욱더 그렇다. 한편 이 일대의 언주로 30길에는 신호등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작동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신호등이 있었으나 교통 혼잡을 이유로 철거되었다고 한다. 자동차와 사람이 서로 적당히 알아서 움직이는 그 모습은 나름 자연스러워 보이면서도 어쩐지 다른 세상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처럼 타워팰리스가 도시를 대하는 태도에는 ‘느슨한 폐쇄성’이 있다. 즉 물리적으로 문을 걸어 잠그고 자기들만의 세상을 만들었다고 할 수는 없으되, 그렇다고 주변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는 것 또한 아니다. 나름 세련된 방식을 통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가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재를 진행하면서 그동안 다뤄 온 수많은 다른 사례들과 비교해 봤을 때 인근 지역에 대한 타워팰리스의 개방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는 분명히 사회 계층적 요인도 있을 것이나 타워팰리스라는 건물군이 갖는 매우 근본적인 성격 또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타워팰리스는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처럼 과연 주상복합 건축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이 질문은 나아가 ‘한국의 수많은 소위 주상복합 건축은 과연 그 이름에 부합되는 성격을 갖고 있는가’라는 또 다른 질문으로 확대될 수 있다. 물론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면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주상복합이라는 유형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 목적은 기본적으로 도심의 복합 개발을 통해 직주근접을 도모하고 도심 공동화를 방지하는 것에 있었다. 즉 수평적 용도지역 개념에 반하거나 이를 보완하는 개념으로서 수직 도시를 만들려는 것이었다. 하나의 건물이 하나의 커뮤니티로서 어느 정도 기능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주거와 비주거 기능 간의 적절한 밸런스는 상당히 핵심적인 것이었다. 도심형 주상복합이 많은 뉴욕시의 경우, 한 건물 안에서 도로에 면한 부분은 상가, 그 위는 사무실 혹은 호텔 그리고 제일 윗부분에 주거가 자리잡는 경우가 있다. 이런 개념으로 만들어지는 건물들은 당연히 외부인의 출입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도로에 대해서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뉴욕은 이런 성격의 복합 건물들이 많은 덕에 자동차 없이 도심에 거주하는 인구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전혀 미국스럽지 않은 도시가 될 수 있었다. 이들 대부분이 걷거나 대중교통 수단에 의존해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하버드대학의 도시경제학자인 에드워드 글레이저가 ‘도시의 승리’에서 세계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인간 정주환경을 맨해튼이라고 했던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는 것이다. # 타워팰리스, 무지개떡 건축 향한 과도기 그런데 타워팰리스를 위시한 한국의 주상복합 건축은 대부분 이런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 한마디로 비주거 부분의 비율이 너무 낮은 것이다. 그 비율은 법으로 정하는데 한때는 주거 비율을 90%까지 인정해 주기도 했다. 그러니 결국 한국의 주상복합이란 도시 전체에 대한 이론적 성찰의 결과라기보다는 상업지역의 높은 용적률을 이용해서 고급 아파트를 공급하기 위한 부동산 상품에 가깝다. 상업지역이므로 일조권의 영향도 받지 않고, 심지어 일반 아파트에 적용되는 인동간격 규정으로부터도 상당히 자유롭다. 거의 주거 전용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주변 지역에 대해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이것이 바로 타워팰리스가 ‘느슨한 폐쇄성’을 갖게 된 주된 이유다. 건축물 관리대장을 열람하면 이런 성격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전체 주거 타워 중에서 업무시설이나 오피스텔이 들어가 있는 것은 1차의 D동, 2차의 E동, 3차의 G동 등이다. 나머지는 전부 순수하게 ‘아파트’로 명기되어 있다. 그나마 이 오피스텔 또한 소위 주거형으로서, 이론적으로는 사업자등록이 가능하지만 제약이 있고 실제로 그런 사례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타워팰리스는 일부 상가를 제외하고는 전체 건물의 거의 대부분이 주거용으로 사용되는 건물인 것이다. 법적 용어와 일상 언어와의 간극을 무시하고 이야기하자면 주상복합이 아니고 그냥 아파트다. 게다가 이 도곡역 일대는 도심이나 부도심이 아니고 주거지역에 일부 상업지역이 침투해 있는 정도이므로, 주상복합 건축의 당초 취지와는 잘 부합되지 않는다. 상업지역에 고밀도로 지어진 단지형 고급 아파트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주상복합의 원래 의미에 훨씬 더 근접하는 사례는 피어선 아파트 이후 광화문 일대에 지어진 일부 건물들에서 찾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분명히 타워팰리스는 한국 주거사에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것은 토지밀착형 삶을 이상으로 삼아 왔던 한국인들에게 이전 시대의 아파트가 주었던 충격을 훨씬 더 상회하는 것이었다. 이제 사람이 땅을 떠나 완전히 구름 위에 살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타워팰리스를 필두로 초고층 주상복합이 지어지기 시작한 시점은 서울의 북촌을 중심으로 전통 주거인 한옥이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시기와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 두 유형은 어찌 보면 개념상 서로 완전한 극단인 것처럼 보이지만, 엄격히 이야기해서 본격적인 도심형 주거의 유형은 아니라는 점에서 서로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물론 주거 전체로 보면 이전에 비해서 선택권이 훨씬 다양해졌다는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로와의 관계, 인구의 구성, 복합적 성격 등의 면에서 보편적 도시 건축의 유형으로서 이 둘의 한계는 너무나 명확한 것이다. 이 연재에서 과도하게 느껴질 정도로 1960, 70년대의 가로형 상가아파트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들은 거리에 면해 있으면서 가로의 활력에 기여했다. 상가는 입주민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인근 지역 또한 대상으로 삼았다. 이처럼 우리에게도 한때 본격적인 도심형 상가아파트가 대량으로 공급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준전원형 방식인 단지 유형이 보편화되면서 그 시대가 저물었다. 앞으로 그 유형이 훨씬 진화된 형태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을 현실로 만들 필요가 있다는 의지를 담아 이 연재를 이어 가고 있는 중이다. 직주근접의 가능성을 높이면 개인의 삶과 지구 환경 모두에 기여할 수 있다. 그리고 주민뿐 아니라 인근 지역에도 개방된 건물은 도시의 활력을 높일 뿐 아니라 시민 사회의 정신을 고양시킨다. 그러한 유형이 바로 이 글에서 말하는 무지개떡 건축이다. 타워팰리스는 이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등장한, 일종의 과도기적 현상이다.
  • 박진주, 복면가왕 우비소녀? 축가 영상보니 ‘약속해줘~’ 부르다 “흥 폭발”

    박진주, 복면가왕 우비소녀? 축가 영상보니 ‘약속해줘~’ 부르다 “흥 폭발”

    배우 박진주가 ‘복면가왕 우비소녀’로 추측되고 있다. 이에 그가 최근 지인의 결혼식에서 부른 축가 영상이 눈길을 끈다. 박진주는 지난달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약속해줘”라며 결혼식 축가 영상을 게재했다. 영상 속 박진주는 지인의 결혼식에서 핑클의 ‘영원한 사랑’을 부르는 모습. 처음에는 살짝 떨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이내 핑클의 춤을 추는 등 유쾌한 면모를 드러내 흥겨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한편 16일 방송된 MBC ‘복면가왕’에 첫 등장한 ‘하늘에서 비가 내려와요 우비소녀’는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탄탄한 가창력으로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방송 이후 박진주, 가수 벤 등이 ‘우비소녀’의 정체로 거론되고 있다. 사진=박진주 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주택, 사유·물질·비물질의 공존체

    주택, 사유·물질·비물질의 공존체

    승효상(64)이 대한민국 건축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독보적이다. ‘빈자의 미학’이라는 주제를 건축의 중심에 두고 공공 영역과 민간 부문의 프로젝트를 두루 섭렵해 온 까닭이다. 혹자는 그를 운이 좋은 건축가로 분류하기도 한다. 개인의 능력이 기본적으로 받쳐주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사람 일이란 게 온전히 실력만 있다고 되지 않으니 하는 말이다. 그가 서울 통의동 진화랑에서 주택을 주제로 개인전을 열고 있다. 상업화랑에서의 개인전은 처음이고, 온전히 주택에 집중한 전시를 갖는 것 또한 처음이다. 건축 설계 이외의 영역에서 상업활동을 일절 하지 않았던 건축가로서는 이 시도가 상당히 조심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승효상은 “건축가가 상업화랑에서 전시를 하는 것은 참 드문 일”이라며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한 것은 아니고, 상업화랑에서 건축가가 전시를 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호기심에서 전시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열두 집의 거주풍경’이라는 제목에서 보듯이 이번 전시의 주제는 승효상의 주택건축이다. 그는 “일반 건축물은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공간이어서 건축가가 자신의 철학을 제안할 수 있지만 특정한 개인의 삶을 위한 주택의 경우 건축가가 어떻게 자신을 나타내고, 건축주의 삶을 건축가가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그는 1992년부터 현재까지 설계한 주택 중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의 수졸당(1992)을 비롯해 12개 주택의 도면을 다시 연필로 그렸다. 그는 “12는 완전을 나타내는 숫자로 12개의 주택은 내가 설계한 주택의 전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면서 “준비를 하면서 그동안 공간을 다뤄온 방식에 대해 지금의 입장에서 반성도 했고 공간 창출의 사유방식에 대해서도 스스로 평가해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건축가의 사유와 물질, 그리고 비물질 등 주택건축을 이루는 3가지의 소주제로 구성된다. 건축가의 사유에 집중하는 공간은 그가 디자인한 서가 와 책상, 의자, 테이블 등 가구들로 꾸민 서재로 연출했다. 글을 통해 건축을 이해하는 장소로, 서가는 지금까지 출간된 승효상의 저서들로 채워져 있다. 승효상이 ‘수도원 가구’ 개념으로 디자인한 것으로 건축에 사용되어 온 것들이다. 목공예가 박태홍 장인이 책상과 의자, 그리고 책장을 제작했다. 수제 오디오 제작자 박성제의 스피커(쿠르베 이클립스, 쿠르베 스노우맨)에서는 건축가가 즐겨 듣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의 신간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돌베개)도 이번 전시에 함께 소개된다. 건축가의 사유를 보다 활성화시키는 방식으로 두 명의 예술가가 투입됐다. 고서 위에 흰 개미를 사육하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강석호 작가는 승효상의 대표건축물과 평이 담긴 출간물 ‘Seung,H.Sang(2001)’ 위에 흰 개미가 집을 짓는 상황을 보여준다. 가상의 박물관 모형과 오브제를 제작해 가상의 전시를 열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해 온 임안나 작가는 가상박물관에 승효상이 설계한 주택 모형 하나를 전시해 촬영했다. 전시장 1층에 꾸며진 비물질의 공간은 주택 건축에서 채집한 비물질, 즉 소리와 영상으로 이루어진다. 사진영상작가 윤석무와 사운드디자이너 정태효가 삶 내부의 이야기를 채집했다. 윤석무 작가는 집의 모든 구역을 카메라 앵글로 쪼개고 단면들을 재조립하는 과정을 흑백 사진으로 표현했다. 정태효 작가는 주택을 아우르는 각각의 공간에서 움직임에 의한 소리를 채집했다. 정원에 물주는 소리, 새소리, 잔디 밟는 소리, 문 여닫는 소리, 빗소리 등의 기록을 조합해 하나의 삶의 사운드로 디자인했다. 마지막 물질의 공간에서는 승효상이 이번에 새로 그린 12개 주택의 도면과 모형들이 전시된다. 전시는 11월 20일까지.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승효상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빈 공대에서 수학했다. 15년간 김수근 문하를 거쳐 1989년 사무실 ‘이로재’(履露齋)를 개설했다. 4·3그룹의 일원이었으며 서울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했다. 김수근문화상, 한국건축문화대상 등 여러 건축상을 받았다. 파주출판도시 코디네이터로 새로운 도시건설을 지휘했고 건축가로는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주관하는 ‘올해의 작가’(2002)에 선정돼 전시를 가졌다. 2007년 대한민국예술문화상을 받았고, 2008년 베니스비엔날레 커미셔너, 2011년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으로 활약했다. 최근 2년간 서울시 초대 총괄건축가로 서울시의 도시 건축에 관여했다. ‘빈자의 미학’, ‘지혜의 도시/지혜의 건축’‘건축, 사유의 기호’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 [글로벌 시대] 밀레니엄 세대의 라이프 트렌드/진달용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 교수

    [글로벌 시대] 밀레니엄 세대의 라이프 트렌드/진달용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 교수

    밀레니엄 세대의 라이프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태어난 인구를 일컫는 밀레니엄 세대는 자기만을 알고 산다는 의미에서 ‘미미미(Me Me Me) 세대’라고도 알려져 있다. 밀레니엄 세대는 그러나 최근 대도시의 치솟는 주택가격과 교통비 등에 부담을 느끼면서 집부터 자동차 그리고 자전거에 이르기까지 공동체 형성의 중요성을 실현하고 있다. 특히 밀레니엄 세대의 이와 같은 경제활동은 에어비엔비나 우버택시처럼 소유하고 있으나 활용하지 않는 물건 또는 지식 등의 유무형 자원을 서로 대여하거나 교환하는 경제활동 방식을 일컫는 ‘공유 경제’와 달리 사용자들이 일정한 돈을 지불해서 집과 자동차 등을 공동으로 사용한다는 특징 때문에 ‘공동체 경제’로 불리고 있다. 공동체 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최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는 주거비 때문이다. 뉴욕과 밴쿠버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주택가격은 물론 임대료가 천장을 모르고 오르면서 학교를 마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밀레니엄 세대에게 공동체 경제가 해결책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북미에서 뉴욕에 이어 두 번째로 물가가 비싸다고 알려진 밴쿠버는 5~6명이 주택을 공동으로 임대해 살고 있는 밀레니엄 세대형 주거 형태가 급증하고 있다. 과거 공동주택이 히피들의 대명사였던 것과 달리 최근의 공동체 주택은 구성원들이 이제 막 전문직업인으로 들어선 밀레니엄 세대라는 점이 특징이다. 변호사, 언론인, 건축가, 엔지니어 그리고 교사 등 전문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방은 따로 사용하되 부엌과 거실은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형태다. 밀레니엄 세대의 많은 구성원이 주택난을 해결하지 못해 부모와 동거하는 비중이 늘고 있는 가운데, 독립심이 강한 전문직업인들 위주로 새로운 주거 형태가 발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밴쿠버에서는 최근 들어 100여 가구가 넘는 공동체 주택이 신고되었으며 이러한 특징을 반영하듯 2013년부터 시작된 대규모 공동체 주택 개발이 2016년 초에 완성되기도 했다. 주택 부문과 함께 교통 부문에서의 공동체 경제 역시 활발해지고 있다. 예들 들어 밴쿠버에서는 최근 들어 자동차와 자전거의 공동체 운영 방식이 속속 도입되어 운영되고 있다. 자동차는 다섯 명까지 탈 수 있는 소형자동차를 중심으로 이미 서너 개의 공동체 자동차가 운영되고 있다. 예들 들어 한 공동체 자동차는 한 시간당 14.9달러를 내고 자동차를 사용한 뒤 시내 곳곳에 설치된 전용 주차장에 세워 놓으면 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보험과 기름값 그리고 주차비까지 모두 포함된 가격인 데다 기존의 공동체 자동차와 달리 자동차를 출발시킨 지점에 다시 반납하도록 하는 불편함을 없애, 사용자가 급증하고 있다. 밴쿠버는 또 올해 들어 공동체 자전거 프로그램을 도입, 시내 전역 150곳에 1500대의 자전거를 배치해 놓고 있다. 교통비가 부담되는 밀레니엄 세대가 주로 이용하고 있으며 월 20달러를 내면 한 시간 미만으로 자전거를 사용할 때는 언제나 무료이다. 이후에는 시간당 사용료를 내도록 하고 있어, 가뜩이나 자전거 사용이 활성화되어 있는 도시의 특징을 부각시키고 있다. 밀레니엄 세대를 중심으로 번져 나가고 있는 공동체 경제는 사용자들의 공동체 의식 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공동체 경제가 주거와 교통 문제 해결은 물론 시민들의 성숙한 공동체 의식 형성에 도움이 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연세대 백양로에 꽃핀 예술… 국내 중진작가 조형 작품전

    연세대 백양로에 꽃핀 예술… 국내 중진작가 조형 작품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양로에서 오는 17일부터 국내 중진작가들의 다양한 조형 작품을 만나는 공공미술 전시 프로젝트가 열린다. 이날부터 11월 30일까지 첫선을 보일 작품은 국내 젊은 건축가·예술가의 창작 활동을 후원하는 아모레퍼시픽그룹의 현대미술 프로젝트 ‘에이피맵’(APMAP: Amorepacific Museum of Art Project) 참여팀인 SoA의 ‘25계단’과 OBBA의 ‘오아시스’다. 이번 전시는 연세대 상경·경영대학 동창회장인 아모레퍼시픽그룹 서경배 대표이사의 기부로 이뤄졌다. 특정 작품의 상설 전시가 아니라 일정 기간마다 새 작품을 선보이는 교체 전시로 진행된다. 그동안 연세대 캠퍼스 청송대에 전시돼 있던 조각가 최만린 선생의 작품 ‘만남’도 백양로에 터를 잡는다. 김용학 연세대 총장은 14일 “백양로를 재정비한 지 1주년이 된 시점에 본격적인 야외미술 프로젝트를 선보이게 됐다”며 “캠퍼스에 예술을 꽃피우고, 예술작품을 통해 다양한 감각적 교류를 생성하면서 캠퍼스의 미적 가치를 제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정몽규 ‘디자인 철학’은 파격-독창성... 도시 건축물 미학을 바꾼다

    정몽규 ‘디자인 철학’은 파격-독창성... 도시 건축물 미학을 바꾼다

    정몽규 회장이 이끄는 현대산업개발은 아이파크 타워, 해운대 아이파크, 수원 아이파크 시티 등을 통해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아이파크 타워는 아이파크 디자인 철학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지난 2004년 완성된 아이파크 타워는 지름 62m의 원형 철골구조물과, 건물 좌측을 뚫고 지나가는 알루미늄 재질의 초대형 조형물과 빨간색으로 강조한 사각형의 출입구 등이 조화를 이루는 파격적이고 회화적인 건축 디자인으로 관광객들의 시선까지 사로잡으며 삼성동의 랜드마크로 자리잡고 있다. 아이파크 타워 근처에 자리잡은 삼성동 아이파크는 기존의 아파트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하이테크한 외관과 탁월한 한강 조망권은 물론이고 단지 내부는 건폐율(대지 면적에서 건물이 차지하는 비율)이 9% 정도로 축구장 4배가량 되는 녹지가 조성돼 있어 입주민들의 만족도가 높다. 이러한 혁신적 디자인과 친환경 단지설계를 널리 인정받아 입주 이후 현재까지 국내 최고가 아파트로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건물높이만 최고 155m에 달해 ‘하늘의 성’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서울에서 한강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집이라 평가받기도 한다. 정몽규 회장의 디자인 차별화는 최근 부산의 명물 중 하나인 해운대 아이파크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디자인한 해운대 아이파크는 해운대의 파도와 부산의 상징인 동백꽃 등을 연상시킬 수 있는 아름다운 곡선형의 디자인을 선보였다. 파도의 역동적인 힘과 동백꽃잎의 우아함, 바람을 머금은 돛과 처마의 아름다운 곡선을 단지 디자인에 표현했으며, 바다를 상징화한 곡선형태의 입면 디자인은 디자인 자체만으로도 미학적인 가치를 가질 뿐 아니라 전망 또한 극대화하기 위한 설계다. 대구 월배 아이파크 역시 화려한 외관으로 천편일률적인 아파트에 파격적인 개성을 더했다. 대구 월배 아이파크 외관에서 표현된 주제 중 하나는 섬유와 패션이다. 각 동과 층마다 불규칙하게 각기 다른 색깔을 입힌 외관은 패션 소재로 널리 쓰이는 섬유조직을 형상화했으며, 보는 각도에 따라 외관이 변화하는 듯한 입체감을 주며 도시의 세련됨과 화려함을 보여준다. 동시에 낙동강이 흐르고 산으로 둘러싸인 대구의 자연환경도 외관에 반영했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단지 외관에는 강을 나타내는 파랑, 산을 나타내는 초록, 땅을 나타내는 황색 등 다양한 색상요소가 점점이 표현되어, 마치 대단지 아파트의 넓은 외관을 캔버스로 삼은 한 폭의 한국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건축물뿐만 아니라 현대산업개발 본사의 사무공간 디자인에서도 정몽규 회장이 추구하는 차별화된 디자인을 적용해 이노베이션과 도전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소통과 융합의 ‘스페이스 아이덴티티(Space Identity)’을 바탕으로 새롭게 탈바꿈한 현대산업개발의 사무공간은 업무 효율성 강화와 더불어 창조적 사고와 집단지성의 구현이라는 이중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소통을 통해 집단지성을 발전시켜가는 융합의 기업문화를 강화하기 위해 팀 간의 경계는 물론 본부간의 경계도 최소화하고, 화상회의실 등 커뮤니케이션 공간을 확대함과 동시에 창의력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사무공간과 북카페, 갤러리 등 다양한 휴식공간에까지 감성적인 인테리어를 적용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주택과 아파트 사이, 모여 사는 즐거움 마당에 널렸네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주택과 아파트 사이, 모여 사는 즐거움 마당에 널렸네

    근대건축의 거장들은 공동주거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미스 반데어로에는 이미 1922년 슈투트가르트의 바이센호프 전시에서 철골 아파트를 선보였다.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1951년에 860-880 레이크 쇼어 드라이브 아파트먼트를 시카고에 완성했다. 또 다른 거장 르코르뷔지에의 위니테 다비타시옹이 1959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그 뒤를 이었다. 이보다 훨씬 앞선 안토니오 가우디의 카사 밀라(1912)는 파격적인 조형으로 유명하지만 알고 보면 무려 40여 가구가 거주하는 유럽형 상가 아파트다. 시기와 지역,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지만 네 건물 모두 세계 건축계의 명작이다. 한국 공동주거의 연보에는 건축가의 이름이 잘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름난 건축가의 작업 중에 공동주거, 특히 아파트가 별로 없다. 안병의의 힐탑 아파트(1968), 조성룡의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1986), 우규승·황일인의 올림픽 선수기자촌 아파트(1988) 등 손꼽을 정도다. 물론 그 리스트의 제일 앞에는 다수의 건축가가 참여했던 마포 아파트(1964), 그리고 이 연재에서 다뤘던 김수근과 그 후예들의 세운상가(1967)가 있다. 공동주거는 건축계에서 그리 인기 있는 분야가 아니다. 작업 조건이 좋지 않고 무엇보다 건축가의 의지를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존심이 강한 소위 작가형 건축가들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주제다. 그러나 공동주거는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건축 유형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한 나라의 대표적인 건축가들이 관심을 갖고 노력할 필요와 명분이 충분히 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상황은 이례적이다. #단지형 아파트·주상복합 열풍 전 건축 이례적인 상황에는 꼭 예외적인 인물이 있다. 아파트, 특히 그중에서도 상가 아파트를 설계한 건축가로서 그 존재가 알려진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런데 그 희귀한 사례의 하나가 2016년에 작고한 김석철이다. 예술의전당,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을 설계한 바로 그 건축가다. 국가적 프로젝트를 많이 했고 거대담론을 담은 각종 저서를 다수 출판했다. 그런 김석철의 작품 연보에 상가 아파트가 두 개나 들어가 있다. 그 하나가 대구 명륜로의 한양 가든 테라스고 또 다른 하나는 서울 강동구 성내동의 올림픽 파크타워(현 삼성 파크타워 아파트)다. 각각 사용승인일이 1982년 12월 30일과 1995년 8월 28일이다. 상가 아파트의 연보에서 이 시기는 독특한 의미를 갖는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에 불었던 상가 아파트 열풍과,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 들어 시작된 주상복합 열풍 사이에 절묘하게 끼어 있기 때문이다. 즉 김석철은 상가 아파트가 한물가고 단지형 아파트가 이미 대세를 이루던, 그리고 본격적인 주상복합의 열풍은 불어오기 전에 이 두 개의 건물을 설계한 것이다. 이것은 우연일까? 이 두 건물에 대한 그의 글이 마침 남아 있다. 좀 길지만 음미해볼 면이 있다고 생각해 인용한다. ‘이제 단독주택에 살기는 어렵게 되었다. 땅도 부족하고, 유지관리도 힘들고, 좋은 주변여건을 갖기도 어렵다. 집이라면 단독주택만 한 것이 없지만 집합주택은 단독주택이 못 가진 많은 장점도 있다. 집합주택의 긍정적인 면과 단독주택의 좋은 점을 합한 새로운 주거의 모델을 추구해야 한다. 이웃이 있고, 마을이 있으면서 집집마다의 독자성과 가변성이 확보되는 그런 공동주택을 모색할 때가 되었다. 모여 사는 즐거움과 편안함과 안전을 가지면서 단독주택이 지닌 특유의 세계를 하나의 주거 속에 시도해 본 것이 성내동의 올림픽 파크타워다. (중략) 올림픽 파크타워는 열아홉 세대의 조그만 세계를 최초의 철골구조 속에 하늘 위의 대지라는 이름으로 이루어 본 것이다. 예술의 전당 국제현상 직전 대구 시내 한가운데에 시도하였던 각 집이 자신의 마당을 갖는 열아홉 세대의 마을인 가든 테라스 이후 십이 년 만에 다시 시도해 본 이웃과 마을이 있는 단독주택 같은 집합주택이다.’ (출처 : 건축도시정책정보센터 아우름) #시대착오인가, 작가정신인가 그런데 김석철이 당시 기준으로는 유행이 한참 지난 상가 아파트를 설계한 상황은 여전히 궁금증의 대상이다. 건축가 본인이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그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직접 가서 보는 것이다. 답은 항상 현장에 있다. 그래서 오직 이 건물 하나를 보겠다는 목적으로 대구에 내려갔다. 무더위가 유난했던 2016년 여름에서도 가장 더웠다고 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동대구역에서 택시를 타고 가면서 내 눈을 의심했다. 사방에 오래된 상가 아파트들이 보였다. 특히 동대구역 바로 옆에는 ‘동대구 맨션’이 있었다. 아주 반듯한 중정형 상가 아파트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1979년 5월에 사용 승인을 받았다. 연대가 비교적 늦은 셈이다. 이것 말고도 눈에 띄는 건물들이 많았다. 대구는 상가 아파트 연구에 중요한 도시라는 것을 알게 됐다. 김석철의 가든 테라스는 대구 중구 명륜로에 있다. 동대구역에서 3.6㎞ 정도 떨어져 있다. 가로명이 명륜로인 것을 보면 근처에 향교가 있을 것이고 (실제로 있다) 그렇다면 아주 오래된 동네다. 상가 아파트가 도심 유형이라는 것은 서울이나 대구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실물로 접한 건물은 사진에서 보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관리 상태도 비교적 양호해 보였다. 다만 지하와 지상 1층에 자리잡은 상가는 별로 활기가 없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엄청나게 넓은 에스컬레이터는 운행하지 않은 지 오래된 듯 했다. 그리고 그 가라앉은 분위기는 명륜로의 인접 구간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일대에 곧 재건축이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안타깝지만 김석철의 가든 테라스도 그 대상이었다. (이 글이 그 마지막 기록이 아니기를 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륜로는 인상적이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바로 이거다’ 하고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약 280m에 달하는 한 블록의 거리 양쪽이 일부만 제외하고 모두 상가 아파트였던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길 북쪽의 가든 테라스를 위시해 송정맨숀, 대봉맨션 A, B동(1973)이, 길 남쪽에는 대구맨션 A, B, C동(1972)이 포진해 이 일대를 무지개떡 가로로 만들고 있었다. 분당 정자동이나 판교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한국 어디서도 이런 가로를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이 건물들은 모두 연대가 상당히 높다. 서울하고 비교해도 결코 늦지 않다. 즉 가든 테라스가 들어서기 이전에도 이곳은 상가 아파트 지역이었다. 그러니 김석철과 그의 의뢰인은 지역의 특성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 30대 후반이었다. #19가구로 건축해 작가성 여지 남겨 가든 테라스는 지하 1층, 지상 8층의 건물이다. 지하 1층에서 지상 2층까지의 저층부는 상가와 사무실이고 그 위는 주거다. 일부 주거에 상당히 널찍한 옥상 마당이 있어서 가든 테라스라는 이름이 붙은 듯하다. 실체와 이름이 썩 잘 어울린다. 주차장은 건물 뒤쪽 옥외에 있다. 전체 19가구가 있으니 공동주거로서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개별 가구의 면적이 200㎡를 훌쩍 넘을 정도로 넓고 상가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상당한 존재감이 있다. 이 ‘19가구’라는 것은 공동주거에서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숫자다. 20세대가 넘어가면 당시 주택건설촉진법상 사업계획 승인대상으로 각종 규제가 심해지기 때문에 바로 그 아래 숫자를 택한 것이다. 이미 1977년에 주택건설촉진법, 1979년에 주차장법이 제정되면서 그 이전의 상가 아파트와는 완연히 다른 방식의 설계가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내부를 안 들어가 볼 수 없다. 제일 좋은 방법은 주민을 만나 말을 붙여 보는 것이지만 유난히 더운 날이라 그런지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다. 결국 안면에 철판을 깔고 경비실 문을 열었다. 두 분이 계셨다. 이럴 때는 그냥 솔직한 것이 최고다. 학창 시절에 이 건물에 대해 알게 되었고, 실물을 보려고 서울에서 왔으며, 설계하신 분이 안타깝게도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고 하니 두 분 모두 표정이 풀렸다. 게다가 그중 한 분이 마침 주민이었다. 결과적으로 건물 안팎을 잘 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2018년으로 임박한 재건축 이야기, 엘리베이터가 2층에서부터 시작해서 불편하다는 이야기, 살아보니 고층 주상복합보다는 이런 식의 상가 아파트가 최고라는 이야기 등등이 나왔다. 마침 3층에 비어있는 집이 있다고 해서 올라가 보니 꽤 여유 있는 마당이 있었다. 비어 있는 탓에 가꾸지 않아서 그렇지 입지와 환경 면에서 매우 양호한 상황이었다. 단 내부 평면은 그다지 특이한 점이 없었다. 외부 복도가 유난히 넓고 쾌적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전용면적 비율에 집착하는 요즘 같으면 생각도 하지 못할 일이다. 이 건물 이후에 김석철은 예술의전당으로 일약 세간에 이름을 얻게 되고 그만의 독특한 행보를 이어나가게 된다. 그러다 무려 12년이나 지난 후에 올림픽 파크타워를 설계했다. 가든 테라스가 비교적 옆으로 긴 유형이라면 올림픽 파크 타워는 13층으로 엄연한 수직 유형이었다. 역시 주택건설촉진법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불과 19가구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런 유형은 점차 ‘나 홀로 아파트’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결국 공동주거 시장은 대규모 단지형 아파트가 아니면 상업지역에 고밀도로 지어지는 고층 주상복합으로 양분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1960년대 후반, 70년 초중반을 관통했던 거리형 상가 아파트의 유형은 완전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 김수근 이후 또 다른 시대의 풍운아라 할 만한 김석철이 자신만의 해법으로 두 개의 공동주거 프로젝트를 세상에 선보인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시대착오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독창성에 기반한 작가정신이라고 할 것인가? 50년대 후반의 상가 주택에서 60~70년대의 상가 아파트, 현재의 주상복합에 이르는 한국의 도시복합건축의 계보에서 이것은 여전히 심각한 질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요즘의 한국 건축가들은 공동주거를 매우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으며 그 결과물들이 하나씩 등장하고 있다. 일부에 불과하지만 상가 아파트도 서서히 복권의 길을 가고 있는 듯 보인다. 강남보금자리 주택 4단지(2015)를 설계한 이민아(협동원)가 전자의 경우라면 2016년에 영등포 양남시장을 시장과 아파트가 결합한 형태로 재건축하는 현상공모에서 당선된 코어 건축은 후자에 속한다. 어느 방향이건 공동 주거가 좀더 다양하고 깊이 있게 발전되는 것은 사회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김석철의 독자적 행보가 헛되지 않은 셈이다.
  • ‘한글’이라 부끄러웠던 순간들…경고 문구까지 한글

    ‘한글’이라 부끄러웠던 순간들…경고 문구까지 한글

    해마다 한글날인 10월 9일이면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적 원리를 자랑하는 글들이 이어진다. 정부와 지자체 등은 저마다 한글날 경축 행사를 열고, 교육기관과 기업 등도 다양한 행사를 통해 한글날을 기념한다. 물론 한글은 세계의 언어학자들도 인정하는 뛰어난 글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수한 우리 한글을 ‘우수하게’ 잘 사용하고 있을까. 세계에서 만난 ‘한글이라 부끄러웠던 순간’을 모아봤다. ●세계 유명 관광지엔 빠지지 않는 ‘한글 낙서’ 한국인들의 ‘인증’과 ‘흔적 남기기’ 집착은 세계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다. 특히 이름난 관광지나 유적에 가면 벽면이나 기둥 등에 “ OO 다녀감” “ㅁㅁ아 사랑해~” 와 같은 한글 낙서는 빠지지 않는다. 이런 탓에 아예 ‘낙서 금지’ 경고 문구를 한글로 쓴 곳이 있는가 하면, 경고판의 낙서 사진에 ‘한글’이 담겨 있는 경우도 많다. 세계에서 가잔 긴 흔들다리 ‘캐필라노 서스펜션 브릿지’로 유명한 캐나다 밴쿠버의 캐필라노 협곡은 한국인도 많이 찾는 관광지다. 관리소 측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나무 등에 이름을 새기거나 낙서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데, 이곳의 낙서금지 경고판 배경 사진에는 한글로 된 낙서가 담겨 있다. 역시 한국인 관광객이 많기로 유명한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학생감옥’ 역시 한글로 된 ‘낙서금지’ 경고문이 붙어 있다. 학생감옥은 1712년부터 1914년까지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다소 낮은 수위를 범죄 및 일탈을 한 학생들을 일시적으로 감금해 뒀던 장소다. 하지만 이곳에 한글 낙서가 너무 많아지자 관리인이 한국 유학생에게 ‘낙서금지’를 한글로 써 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 중국 만리장성, 스위스 루체른의 카펠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등 한국 관광객의 발길이 닿은 곳은 어김없이 ‘한글 낙서’를 볼 수 있다. ●‘낙서 몸살’ 이탈리아 두오모 성당, 태블릿 낙서장 만들다 세계적인 관광지인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마리에 델 피오레(두오모) 성당 역시 역사적 가치에도 불구, 관광객들의 낙서로 훼손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두오모 성당은 아예 가상의 낙서 공간을 마련했다. 종탑으로 향하는 1·3·4층에 한 대씩 태블릿 PC를 설치, 관광객이 PC에 낙서를 남기면 이를 별도 사이트에 영구 저장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이곳을 방문했던 방문객은 이후 언제 어디에서라도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해 자신이 남긴 흔적을 볼 수 있다. 두오모 성당 낙서 제거 작업을 맡았던 건축가 베아트리스 아고스티니는 지난 3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람들이 낙서가 눈에 거슬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기념물에 진정으로 해가 된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 아이 없는 놀이터 눈높이 맞게 고쳐 좋은 ‘내 놀이터’로

    아이 없는 놀이터 눈높이 맞게 고쳐 좋은 ‘내 놀이터’로

    놀이터를 지켜라/제충만 지음/푸른숲/368쪽/2만 2000원 서울 중랑구의 세화놀이터는 몇 해 전 안전검사에 불합격해 놀이기구가 다 철거됐다. 그 후 빈 땅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 아이들이라곤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 동네에 아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놀이터를 잃은 아이들은 위험한 길에서 놀다가 차에 부딪히기도 하고 골목에서 놀다가 시끄럽다고 어른들에게 혼이 나기 일쑤여서 집에서 혼자 놀거나 형제들과 치고받고, 게임을 하다가 학원으로 가는 게 일상이 됐다. ‘놀이터를 지켜라’의 저자는 “2년째 미끄럼틀을 못 탔다”는 여자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아이들에게 안전한 놀이터를 돌려주겠다”고 결심한다. 놀 시간, 놀 친구, 놀 공간이 부족한 우리 아이들이 친구와 함께 실컷 놀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자는 의미를 담은, 비정부기구 세이브더칠드런의 프로젝트명과 같은 제목을 단 책은 놀이터 복원 및 개선 프로젝트의 여정을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정리했다.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에 근무하는 저자는 우연한 기회에 ‘왜 요즘 아이들은 놀 기회가 생겨도 놀지 못할까’라는 궁금증을 갖게 됐다.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스터디그룹을 만들고 세미나를 찾아다니고 해외 연구 결과와 국제기구의 다양한 통계 자료를 살피며 대한민국 아동의 현실을 분석했다. 그러던 중 6만여개에 달하는 놀이터에 주목하게 됐고 상당수가 버려지고 방치돼 있음을 알게 된다. 저자는 586일간 건축가, 공무원, 교사, 벤처기업 파트너, 동네 주민들을 만나고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 가며 놀이터 개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마치 이웃의 얘기를 전하는 것처럼 놀이터 한 곳을 통해 아이들이 얼마나 밝아졌는지, 동네 분위기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완고하기만 했던 주민들에게 어떤 변화가 나타났는지를 솔직하고 상세하게 전한다. 입장, 가치관, 교육관이 다양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각자의 경험과 입장, 현실적인 문제와 조건들을 반영해 가며 서로 타협하면서 놀이터를 아이들 중심으로 고치고 다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동체성을 회복해 가는 과정을 가감 없이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놀이터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새로움만 추구한 결과 오늘날 많은 놀이터가 제작비는 비싼데 고장이 나도 고칠 수 없는, 너무 안전해서 재미를 전혀 느낄 수 없는, 기구에 부딪히느라 뛸 수 없는, 결과적으로 어른들 보기에만 좋은 놀이터가 되어 버렸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좋은 기구가 많아야 좋은 놀이터가 아니라 동네 아이들에게 ‘내 놀이터’로 인식돼야 ‘좋은 놀이터’”라고 강조한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임채홍♥송민지, 오는 8일 결혼 “독신 마음..단숨에 돌리게 만든 여자”

    임채홍♥송민지, 오는 8일 결혼 “독신 마음..단숨에 돌리게 만든 여자”

    배우 임채홍과 송민지가 2년간의 열애 끝에 웨딩마치를 올린다. 임채홍과 송민지는 오는 8일 오후 3시 30분 서울 강남구 파티오나인에서 화촉을 밝힌다. 임채홍의 소속사 비앤비컴퍼니는 “임채홍, 송민지 커플의 교제는 이미 양쪽 소속사에서도 알고 있었던 만큼, 이미 친분있는 연예인들과 방송 관계자들의 축하 화환으로 사무실이 정글처럼 보일 정도다”며, “두 배우의 결혼을 축하해 달라”고 전했다. 두 사람은 임채홍 대표가 대학로에서 기획한 연극을 우연히 관람하러온 송민지와 만나 연인으로 거듭났다. 임채홍은 강남구 반포동에 프로탤런트 양성학교 ‘배우앤배움아트센터’의 대표원장을 맡고 있으며, 엔터테인먼트사인 ‘비앤비컴퍼니’의 대표직과 함께 아시아권의 드라마·방송제작사 ‘하이영미디어그룹’의 한국지사 CEO로서 후배 배우양성 뿐만 아니라 방송제작·공연제작·드라마 캐스팅·광고에이젼시 등 방송관련의 전 방위 매체에서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탤런트 송민지 또한 소속사와 함께 차기작으로 출연할 드라마, 영화 준비에 한창이다. 이날 결혼식은 두 사람 모두 독실한 크리스찬인 만큼 교회 식으로 비공개로 진행되며, 사회는 이상신 아나운서가 축가는 소속 아티스트 가현과 제자인 가수 다빗이 직접 피아노, 기타 연주와 함께 축가를 부를 예정이며, 방송 관계자들과 연예인들이 참석해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해줄 예정이다. 1997년 EBS 청소년드라마 ‘감성세대’로 데뷔한 임채홍은 ‘연개소문’, ‘로맨스헌터’, ‘프레지던트’, 지붕뚫고하이’ 등의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다 2010년 배우양성 교육센터와 방송·공연의 기획·제작자로 변신했다. 송민지 역시 2007년 영화‘황진이’에서 송혜교와 라이벌인 매향 역할을 맡으며, 이어 영화 ‘로맨틱아일랜드’, ‘애자’, ‘블라인드’, ‘몽타주’ 등 충무로뿐만 아니라 KBS ‘드라마스페셜’에서 여러편의 주인공로도 활약했다. 임채홍은 예비신부에 대해 “오래전부터 독신으로 살겠다는 내 마음을 단숨에 돌리게 만들만큼 속이 깊은 여자이고, 또 매력적인 여배우이다”라며 “서로의 뜨거운 사랑과 믿음을 바탕으로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또 여러 임직원들과 배우 동료들 앞에서 행복한 부부의 모습을 보이며 살겠다”고 전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한글’이라 부끄러웠던 순간들…경고 문구까지 한글

    ‘한글’이라 부끄러웠던 순간들…경고 문구까지 한글

    해마다 한글날인 10월 9일이면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적 원리를 자랑하는 글들이 이어진다. 정부와 지자체 등은 저마다 한글날 경축 행사를 열고, 교육기관과 기업 등도 다양한 행사를 통해 한글날을 기념한다. 물론 한글은 세계의 언어학자들도 인정하는 뛰어난 글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수한 우리 한글을 ‘우수하게’ 잘 사용하고 있을까. 세계에서 만난 ‘한글이라 부끄러웠던 순간’을 모아봤다. ●세계 유명 관광지엔 빠지지 않는 ‘한글 낙서’ 한국인들의 ‘인증’과 ‘흔적 남기기’ 집착은 세계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다. 특히 이름난 관광지나 유적에 가면 벽면이나 기둥 등에 “ OO 다녀감” “ㅁㅁ아 사랑해~” 와 같은 한글 낙서는 빠지지 않는다. 이런 탓에 아예 ‘낙서 금지’ 경고 문구를 한글로 쓴 곳이 있는가 하면, 경고판의 낙서 사진에 ‘한글’이 담겨 있는 경우도 많다. 세계에서 가잔 긴 흔들다리 ‘캐필라노 서스펜션 브릿지’로 유명한 캐나다 밴쿠버의 캐필라노 협곡은 한국인도 많이 찾는 관광지다. 관리소 측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나무 등에 이름을 새기거나 낙서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데, 이곳의 낙서금지 경고판 배경 사진에는 한글로 된 낙서가 담겨 있다. 역시 한국인 관광객이 많기로 유명한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학생감옥’ 역시 한글로 된 ‘낙서금지’ 경고문이 붙어 있다. 학생감옥은 1712년부터 1914년까지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다소 낮은 수위를 범죄 및 일탈을 한 학생들을 일시적으로 감금해 뒀던 장소다. 하지만 이곳에 한글 낙서가 너무 많아지자 관리인이 한국 유학생에게 ‘낙서금지’를 한글로 써 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 중국 만리장성, 스위스 루체른의 카펠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등 한국 관광객의 발길이 닿은 곳은 어김없이 ‘한글 낙서’를 볼 수 있다. ●‘낙서 몸살’ 이탈리아 두오모 성당, 태블릿 낙서장 만들다 세계적인 관광지인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마리에 델 피오레(두오모) 성당 역시 역사적 가치에도 불구, 관광객들의 낙서로 훼손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두오모 성당은 아예 가상의 낙서 공간을 마련했다. 종탑으로 향하는 1·3·4층에 한 대씩 태블릿 PC를 설치, 관광객이 PC에 낙서를 남기면 이를 별도 사이트에 영구 저장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이곳을 방문했던 방문객은 이후 언제 어디에서라도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해 자신이 남긴 흔적을 볼 수 있다. 두오모 성당 낙서 제거 작업을 맡았던 건축가 베아트리스 아고스티니는 지난 3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람들이 낙서가 눈에 거슬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기념물에 진정으로 해가 된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 전통 입은 생활가구, 일상으로의 초대

    전통 입은 생활가구, 일상으로의 초대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건축가 겸 공간 디자이너 김백선(51)이 한국의 전통적 미감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생활 가구를 선보인다. 김백선은 대안공간 루프, 한남동 유엔빌리지 빌라, 롯데 월드타워의 레지던스와 커뮤니티 공간을 설계해 주목받고 있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 김백선은 테이블, 소파, 의자, 조명 등 가구 25점을 소개한다. 그의 디자인을 높이 평가한 이탈리아의 명품 디자인 브랜드 프로메모리아, 포로, 판티니의 장인들이 작품 제작을 도왔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2007년 전주시의 공예브랜드 ‘온’을 통해 무형문화재와의 협업으로 가구를 선보인 후 처음으로 갖는 생활가구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은 현대적이고 고급스럽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친숙하다. 작가는 “한라산과 설악산을 여행하면서 한국의 자연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고 약장, 사방탁자, 서랍장, 서안 등 한국의 전통가구에서 단순하고도 세련된 선을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판티니사에서 제작을 협찬한 검은색 수전류는 먹과 벼루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그는 “전통적 원형 복원에만 치중해 만든 가구들이 현대인의 삶의 공간에 어우러지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면서 “우리의 전통이 지키고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녹아들어 그로부터 위로받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10대 중반에 수묵화를 시작한 김백선은 홍익대 동양화과에 입학해 4학년 때인 1989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차지하며 화가로 촉망받는 데뷔를 했다. 전시는 이달 30일까지.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실패한 도시 유토피아… 재생의 길로 ‘다시 세운’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실패한 도시 유토피아… 재생의 길로 ‘다시 세운’

    # 세운상가의 ‘복권’ 세운상가에 2016년은 어떤 해였을까. 아마 프랭크 시내트라의 노래처럼 ‘참 좋은 해’(It was a very good year)였을 것이다. 일단 오세훈 시장 당시 등장했던 ‘전면 철거 후 재건축 및 녹지축 조성’이라는 이야기는 이제 완전히 들어갔다. 내부적인 우여곡절도 있었고 세계 경제의 영향도 받았지만, 이 지역이 고층화되면 종묘의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해제해 버리겠다는 유네스코의 엄포 또한 강력한 지원사격이었다. 그 와중에 세운상가의 가장 북쪽 끝인 현대상가가 철거되기는 했다. 지금의 세운상가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도시 재생 사업의 중요한 한 축이다. ‘다시 세운’라는 프로젝트 이름은 적어도 당분간은 이 건물의 미래가 상당히 밝을 것임을 보여 준다. ‘입체적 복합문화 산업공간으로 재생’한다는 취지로 다양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철거될 뻔했던 세운상가는 졸지에 도시의 문화적 아이콘이 됐다. 2016년은 세운상가의 보행자 데크, 즉 공중가로를 다시 살리는 대대적인 공사가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세운상가 건립 당시의 취지, 즉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공중 보행자 가로로 연결하는 개념을 다시 되살린다는 것이다. 국제 현상설계 공모를 통해 이스케이프(김택빈, 장용순, 이상구) 건축사사무소의 ‘현대적 토속’(Modern Vernacular)이 최종 선정됐고 3월 4일 공사가 시작됐다. 한국은 건축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이 지극히 부족한 사회다. 지어진 지 수십 년이 지난, 게다가 문화재도 아닌, 민간 건물의 당초 설계 의도를 이렇게 정성스럽게 다시 살리려는 노력은 사실상 전례가 없다. 건물이 워낙 크고, 주변 지역이 워낙 넓으며,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도 하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설계자가 한국 근현대 건축 대표주자의 하나인 김수근과 그의 후예들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 연재를 통틀어 이렇게 설계자의 아우라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건물의 사례는 단연코 없다. 세운상가가 각종 전시나 연구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흔해졌고, 세운상가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7~8월에는 ‘도시는 선이다’라는 제목으로 세운상가의 산파역이었던 ‘불도저’ 김현옥 시장에 대한 전시회가 시립역사박물관에서 열렸고 세운상가는 그 핵심적 전시물의 하나였다. 2016년은 세운상가의 ‘복권’이 시민사회에서 공식화된 해로 봐도 좋을 것이다. 세운상가에 대한 글은 넘치도록 많다. 다만 그 물리적 실체에 대한 기초 정보는 그리 넉넉하지 않다. 자료의 축적과 차분한 관찰보다는 해석과 의미 부여에 더 많은 관심이 기울어진 듯하다. 현재까지는 2010년 서울 시립역사박물관에서 펴낸 ‘세운상가와 그 이웃들’이라는 책이 가장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으나, 비매품으로 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다. 세운상가 도시재생을 추진 중인 서울시는 이제 자료집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 ‘세운상가는 1967년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라고 하지만 이 숫자가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전체 건물 중에서 극히 일부분이다. 게다가 공식 기록이란 측면에서 세운상가가 과연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도 지난번 좌원 아파트 편에서 제시한 바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세운상가가 들어선 자리는 일제강점기 후반 태평양전쟁이 격렬해지면서 공습에 대비해 만들어진 소개공지대다. 그 자리가 슬럼화되자 당시 서울시장 김현옥은 대형 주상복합 건물을 짓는다는 아이디어를 대통령 박정희에게 제출했다. 내친김에 ‘세(世)계의 운(運)이 모인다’는 지극히 자기현시적이고 개발시대다운 이름까지 지어 올렸다. 설계를 의뢰받은 건축가는 김수근이었다. 당시 상당한 규모의 조직을 운영하고 있던 김수근은 휘하의 젊은 건축가들에게 실무를 맡겼다고 전한다. 그러나 실행 단계에 들어갔을 때 건설사들이 제각각으로 시공하는 바람에 보행자 통로 등 핵심 설계 의도가 잘 구현되지 않았다. 결국 아무도 설계자를 자처하지 않는 기묘한 상황이 오랫동안 계속됐다. 완공 당시에는 상가와 아파트 모두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나 반짝 인기가 식고 건물이 낡아 가면서 도시의 흉물로서 받을 만한 비난은 모조리 받는 처지가 됐다.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것부터 시작해 ‘서울의 도시구조를 망친 주범’이라는 것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하고 날 선 비난들이었다. ‘한국의 아파트 연구’의 저자인 프랑스 출신 발레리 줄레조는 세운상가를 한마디로 ‘완전한 실패작’으로 규정했다. # 실패한 유토피아? 세간의 논의는 일단 그렇다 치고 세운상가의 면모를 간단히 파악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가장 북쪽부터 시작해 각각 현대상가(2008년 철거), 세운상가 가동(혹은 아세아상가. 현 세운전자상가), 청계상가, 대림상가, 삼풍상가(현 삼풍 넥서스), 풍전호텔(현 PJ호텔), 신성상가(현 인현상가), 진양상가까지 총 8개의 건물이 있다. 전체 길이는 945m로 종로와 청계천로, 을지로, 마른내길, 그리고 퇴계로에 걸쳐져 있다. 이 중 가장 먼저 완공된 것은 세운상가 가동으로 1967년 11월 17일 사용 승인을 받았으며, 가장 나중에 완공된 것은 풍전호텔로 사용 승인일은 1982년 12월 31일이다. 그 격차가 무려 15년에 가깝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풍전호텔은 나머지 건물들과 사뭇 다른 점이 있다. 지하에 널찍한 주차장이 있는 것이다. 주차장법이 제정된 해가 1979년이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처음으로 신문 지면에 ‘세운상가의 개관’을 알리는 기사가 실린 것은 1967년 7월 26일이었다. 하오 2시라고 시간까지 밝히고 있다. 당시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와 김현옥 시장이 참석했다. 이때 개관한 건물은 세운상가 가동으로 당시 광고가 아직 남아 있다. 사용 승인일은 그보다 몇 개월 후인 11월 17일이었으나 1, 2층 상가만 먼저 개관하는 바람에 개관일이 한참 앞당겨진 것이다. 이때 상부의 아파트는 아직 건설 중이었다. 이름이 말해 주듯이 건물마다 건설사가 제각각이었다. 이들 중 현대나 대림, 삼풍은 잘 알려진 이름들이다. 그중 비교적 덜 알려진 신성건설은 거대 주상복합 건설의 경험을 되살려 1971년 7월 6일 홍은동에 유진상가를 완성한 바로 그 회사다. 그러나 이처럼 건설사가 서로 다르다 보니 공통의 개념을 구현하는 것이 어렵게 됐다. 건물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요소의 하나였던 보행자 데크의 경우 아예 처음부터 마른내길 위, 즉 풍전호텔과 신성상가 사이는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이후 청계천로의 데크가 2004년, 이어 삼풍상가와 풍전호텔의 데크가 2006년 리모델링 당시 철거됐다. 결국 보행자 데크의 전체적인 연속성은 처음부터도 완전치 않았고 그나마 만들어진 것도 상당 부분 사라진 지 오래됐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보면 이 장대하고 사연 많은 복합 건물군을 ‘세운상가’라는 이름으로 단일화해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낳는지 알 수 있다. 차라리 서로 다른 건물로 파악하고 역으로 공통분모를 만들어 가는 것이 더 유익한 태도일지 모른다. 세운상가에서 예나 지금이나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역시 보행자 데크, 즉 공중가로 부분이다. 지상은 자동차가 다니고 보행자는 그 위를 걷는다는 공중가로의 개념은 물론 세운상가만의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당시는 세계적으로 거대 건물을 통해 구시대의 모순을 극복하고 전쟁의 상처를 복구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다는 야망이 지배하던 시대였다. 일본은 메타볼리즘 건축을 통해 생명체의 신진대사 시스템을 도시와 건축에 적용하려고 했다. 공중가로라는 개념도 이미 1960년대에 영국의 신브루탈리즘 계열 건축가인 앨리슨과 피터 스미슨 부부에 의해 ‘스트리트 인 더 스카이’(street in the sky)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바 있었다. 이것은 사실상 런던의 교통사고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었는데, 당시 한국이 같은 문제를 제기할 상황이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김수근은 누구보다도 세계 건축계의 동향에 민감했고, 또한 그것을 자신의 경력에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았던 인물이었다. 수많은 사람을 한 층 위로 올라가게 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유인 동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제공되지 않은 공중가로는 그야말로 무용지물이다. 1960년대에 시도된 런던의 공중가로 네트워크인 페드웨이(Pedway)도 결국 실패했다. 세운상가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불법 음란물 말고는 사람들을 데크로 올라오게 하는 별다른 ‘유인 동기’가 없다는 불명예를 얻고 말았다. 세운상가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사실상 이렇게 버려진 공중가로의 탓이 크다. 종종 ‘건물 전체가 슬럼화됐다’고 하지만 정작 건물의 내부, 특히 아파트의 중정 부분은 지금도 상대적으로 환경이 더 양호하다. 답사 과정에서 만난 몇몇 세입자들은 임대료가 오르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즉 수요가 있는 것이다.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한 삼풍상가나 풍전호텔은 불명예스러운 루머가 무색하리만큼 아주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다. 아예 처음부터 공중가로를 건물 양옆이 아니라 중앙에 설치해서 여러 개의 중정을 거치도록 했으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즉 중정을 지금처럼 입주민들만이 전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공공장소로서 보행자에게 개방했더라면? 즉 다른 상가아파트들이 길과 맺고 있던 밀접한 관계를 공중가로에서 만들었더라면 어땠을까. # 세운상가가 던져준 건축의 역할 영욕의 세월을 뒤로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세운상가가 이제 새로운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기약하고 있는 지금 건축과 건축가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세운상가를 가리켜 실패한 유토피아라고 비난하는 것은 결과론적인 시각에서는 근거 있는 행위일지 모른다. 동시에 아주 쉬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는 자칫하면 미래에 대해 꿈을 꾸고 상상하는 것은 부질없다는 패배주의를 낳는다.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가 그렇듯이 건축 또한 해 오던 방식을 더 세련되게 반복하는 것만으로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도전해야 하고 남들이 하지 않았던 것을 시도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 어디 다른 나라에서 선례를 수입해 우리의 미래를 해결하려는 습관 또한 그 효용성의 한계에 다다랐다.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분석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따라서 그만큼 외로운 결정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실패한 유토피아의 상징, 그러나 어떻게든 세월의 무게를 이겨 온 세운상가가 우리에게 주는 역설의 교훈이다.
  • 김이나 “노력하는 천재 박효신을 누가 이기겠나” 칭찬 일색

    김이나 “노력하는 천재 박효신을 누가 이기겠나” 칭찬 일색

    작사가 김이나가 옆에서 본 박효신의 끈질긴 노력에 대해 언급했다. 지난 2일 김이나는 장문의 글과 함께 한 장의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사진은 노트북을 켜고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박효신이 포착됐다. 따뜻한 색감의 조명 덕분에 그의 훈훈한 매력이 돋보이고 있다. 김이나는 박효신과의 첫 만남에 대해 회상했다. 그는 “처음 그의 작업실에 갔던 날, 책상 옆에 뜯겨진 팬레터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대체로 하는 말들이 자기 노래로부터 위로를 만힝 받는다고. 다들 너무 힘들게 사는 것 같아서 이번 앨범에는 그런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를 주로 하고 싶단다”라고 말하며 이번 정규 7집에 대한 콘셉트를 설명했다. 김이나는 “깨알같이 적어 놓은 키워드와 문장들에서 이미 오랜 시간 고민해왔음이 느껴졌다. 까다롭기로 악명높은 그 답게 새벽까지 톡이며 전화로 한 줄을 완성하는데도 몇 시간. 정말로 빙수만 먹고 갈 거라고 거짓말하고 일 시키기를 몇 번”이라며 박효신이 앨범에 쏟은 열정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어 “지인의 결혼식에 축가를 부르는 것조차 연습하고 녹음해서 모니터하는 그는 내가 본 최고의 연습벌레였다. 업계 사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완벽해지는 그의 호흡이나 발성을 신기해했는데, 잠시나마 옆에서 보니 노력형 천재를 이길 사람이 누구겠느냐 싶다”라고 덧붙이며 박효신의 노력을 아낌없이 칭찬했다. 김이나는 이번 정규 7집 앨범에 ‘home’, ‘shine your light’, ‘The Dreamer (I am A Dreamer)’, ‘숨’ 음원에 작사가로 참여했다. 임효진 인턴기자 3a5a7a6a@seoul.co.kr
  • “관람객은 예술의 생산자”… 뭘 느꼈나 그것이 예술이다

    “관람객은 예술의 생산자”… 뭘 느꼈나 그것이 예술이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삼성미술관리움. 기획전시실 입구로 들어서면 천장에 매달린 환풍기가 불규칙하게 회전하며 공간을 가로지르고 있다. 한 층 아래로 내려가면 아이보리색 쿠션 같은 물질이 한쪽 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 먼 곳에서 온 듯한 낯선 자연물에서는 익숙지 않은 특이한 냄새도 난다. 그 맞은편에는 천장에 수직으로 걸려 있는 두 개의 나선이 빙글빙글 돌면서 끝없이 위로 올라가는 것 같은 환영을 만들어 낸다. 그 옆방으로 이동하면 스테인리스스틸 거울로 된 마름모꼴 판으로 이뤄진 벽이 있다. 마치 만화경처럼 수많은 이미지가 무한 증식되지만 정작 나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폭포도 있고, 원인지 삼각형인지 구분이 안 가는 신기한 설치물이 찬란한 빛을 발하며 공중에 걸려 있다. 불가능한 것이 없어 보이는 신기한 세상이 펼쳐진다. ●90년대 초 작품 등 22점 전시 리움이 올 하반기 기획전으로 현대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명인 올라푸르 엘리아손(49)의 대규모 개인전을 마련했다. 아이슬란드계 덴마크 출신인 엘리아손은 시각 예술에 기반해 자연, 철학, 과학, 수학, 건축 등 여러 학문과 융합한 작품을 선보이며 예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경험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시 설명회에서 엘리아손은 “예술이란 우리 내면에 있지만 아직 말로 표현되지 않은 감정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믿는다”면서 “예술가는 그 감정을 이끌어낼 뿐이고, 당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말했다. 국내 미술관에서 처음 열리는 대규모의 개인전은 ‘세상의 모든 가능성’이란 제목을 달고 작가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부터 최근의 대표 작품 22점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미술관이라는 인위적인 공간에 물, 바람, 이끼, 돌과 같은 자연요소를 들여오거나 기계로 만들어진 유사 자연현상, 빛과 움직임, 거울을 이용한 착시효과, 다양한 시각 실험을 특징으로 한다. 이런 작품들은 오감을 자극하고 뜻밖의 즐거움을 경험하게 하며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감상자의 경험을 작품 일부로 북부 아이슬란드의 순록 이끼를 설치해 미술관에서 낮선 자연환경을 접하게 만드는 ‘이끼 벽’(1994), 중력이라는 자연의 순리를 거슬러 자연과 문명의 미묘한 대립을 드러내는 ‘뒤집힌 폭포’(1998)가 그런 예다. 마름모꼴의 스테인리스스틸 판과 그것의 반영이 만들어내는 ‘자아가 사라지는 벽’(2015)은 엘리아손의 오랜 협력자였던 수학자 겸 건축가 아이너 톨스타인이 개발한 단위체 구조물에 기반한 작품이다. 철학적으로 현상학에 기반을 둔 엘리아손의 작품은 대상을 인식하는 주체에 따라 작품의 감상포인트가 달라지고, 그런 감상자의 경험을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것이 특징이다. 검은 바탕에 1000여개의 유리 구슬을 박아 우주에서 관찰되는 성운을 연상하게 하는 작품 ‘당신의 예측 불가능한 여정’(2016) 에 대해 엘리아손은 “잠시 불을 끄고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라고 주문하는 작품”이라며 “반짝이는 유리구슬 중에서 관람자 개인의 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연-예술 경계 허문 ‘무지개 집합’ 2016년 신작 ‘무지개 집합’은 자연현상을 예술로 끌어들여 새로운 감각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엘리아손의 예술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안개처럼 물방울이 분사되는 지름 13m에 달하는 원형구조물 안으로 들어가면 물방울과 천장의 조명기구에서 나오는 빛으로 만들어지는 무지개를 감상할 수 있다. 암실처럼 어두운 블랙박스 공간에서 물안개가 퍼지고 물방울이 빛과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무지개 띠는 마치 대기에서 춤을 추는 오로라를 보는 것처럼 신비롭다. 엘리아손은 “관람객이 움직이면 관점도 바뀌는데 이는 작품이나 세계가 결국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라며 “관람객은 예술의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이고, 나는 무지개가 뜨는 기계를 만드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다. 세상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주체로서 예술의 긍정적인 힘을 믿는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작품세계는 비단 미술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유엔기후협약총회에 맞춰 옥외에 빙하 작품을 설치하고, 사회적 기업활동으로 태양전지로 가동되는 ‘작은 태양’을 만들어 에너지 빈국 사람들에게 빛을 선물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전시는 내년 2월 26일까지.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인요한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 소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인요한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 소장

    “나가 서울신문이랑 인연이 아주 깊지라. 대학교 1학년 때 문무대를 들어갔는데 서울신문에서 파란 눈 외국인 학생이 입소했다고 나를 대문짝만 허게 써줘붑디다. 그래서 나가 지금도 서울신문을 상당히 좋아허요.” 190㎝ 장신에 정말로 솥뚜껑만 한 손.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실린 전라도 사투리가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히는 듯하다. 지난 9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실에서 만난 인요한(57)은 대뜸 벽에 걸린 붓글씨를 가리키며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地不如順天’(지불여순천). “기름지고 풍성한 땅은 순천만 한 곳이 없다”며 흥선대원군이 썼던 표현이다. 전라도 출신이라는 사실에 그렇게 자부심을 느끼고, 그렇게 소리높여 말하기로는 그만한 사람이 없을 성싶었다. 그는 기자를 만나서도 첫마디를 예의 “전라도 순천 촌놈 인요한입니다”로 시작했다. -“거짓으로 신고한 게 탄로 나면 나는 어떻게 될까. 그냥 추방당하는 걸로 끝날까, 혹시 남조선 첩자로 몰려 정치범 수용소 같은 데 끌려가는 건 아닐까.” 1997년 1월 21일 중국 선양을 떠나 북한으로 들어가는 기차 안. 창밖으로 보이는 하얗고 차가운 풍경처럼 내 마음도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남한에서 의사로 일한다고 하면 못 들어오게 할까 봐 선양 주재 북한대표부에 ‘미국 거주자’라고 허위 신고를 해 겨우 방북 허가를 받은 터였다. 한참을 달려 북·중 국경인 압록강에 다다르자 강둑에서 북한 아이들 네댓 명이 드럼통에 불을 지펴 놓고 앉아 까르륵거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의 시커먼 검댕도 지우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갑자기 왈칵 눈물이 솟았다. 순천에서 천둥벌거숭이로 지냈던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했고, 북한에도 남한과 똑같이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데서 솟구친 가슴 벅찬 느꺼움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 집안은 1959년 전북 전주에서 내가 태어나자마자 순천으로 터를 옮겼다. 내 이름이 한국어로 인요한, 영어로 존 린턴인데 사람들은 내 영어 이름 ‘존’을 따서 ‘짠이’라고 불렀다. 어린 시절 매곡동 일대를 내 집 마당처럼 휘젓고 다녔는데, ‘매곡동 짠이’라고 하면 모르는 동네 사람이 거의 없었다. 생김새가 다른 서양 아이여서도 그랬지만, 워낙 동네 구석구석을 망아지처럼 훑고 다녔기 때문이다. -나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가문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더욱 분명한 내 정체성은 전라도 사람이라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순천 촌놈입니다”라고 하면 사람들을 웃겨 보려고 일종의 개그를 하는 걸로 생각하는 이도 없지 않지만, 그건 나의 진정성을 전혀 모르는 탓이다. -둘째 형 스티븐 린턴(인세반)은 진외조부의 이름에서 딴 북한지원단체 유진벨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일성 주석을 세 차례나 만났으며 대북 의료 지원에 앞장서 왔다. 셋째 형 제임스 린턴(인야곱)은 건축가로서 다양한 형태로 북한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 형제가 이렇게 북한 지원 활동을 하는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는데, 아버지가 이 땅에서 했던 활동을 보고 자연스럽게 그 일을 우리의 숙명으로 인식하게 됐다. -우리 집안과 한국과의 인연은 동학농민혁명 이듬해인 18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사 유진 벨이 27세의 젊은 나이에 조선으로 파송됐는데, 이분이 나의 외증조할아버지다. 그는 조지아 공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첫 출근을 하러 기차를 타고 가다가 ‘이것은 나의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선교에 뛰어들었다. 벨 할아버지는 광주와 목포 지역을 중심으로 교회와 학교를 짓고 병원을 열었다. 그의 사위 윌리엄 린턴은 선교와 의료를 넘어 항일운동에도 뛰어들었다. 3·1만세운동에 참여하고, 국제사회에 조선 독립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추방되기도 했다. 그분의 아들이자 나의 아버지인 휴 린턴도 부친의 뜻을 좇아 평생을 전라도 농촌과 도서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며 당시 심각했던 결핵 퇴치 운동으로 많은 생명을 구했다. -부모님의 가장 큰 고민은 우리들의 교육 문제였다. 형들은 순천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한국말보다 영어를 더 못했다. 아버지가 장로교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들어가 형들이 잠시 미국 학교에 다니게 됐는데, 그때 초등학교 3학년이던 형의 담임선생이 어머니를 불러 “이 댁 아이들의 영어 수준이 유치원생만도 못하다”고 한 데 충격을 받고서 한국에 돌아와 막내인 나는 학교에 보내지 않고 동료 선교사의 부인에게 일대일 개인지도를 받도록 했다. 그래서 나는 미국의 통신학교 교재를 이용해 영어, 수학, 사회 등을 배웠다. -열세 살 때인 1972년 9월 나는 커다란 가방 두 개를 들고 뜨거운 늦여름 햇빛을 받으며 대전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대전외국인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처음으로 고향을 떠난 것이다. 대전외국인학교는 당시 대전대(지금의 한남대) 뒤편에 있었다. 학교생활은 지겹기 짝이 없었다. 대전외국인학교는 아주 엄격하고 보수적인 기독교 학교였다. 아마 사관학교 생도들보다도 지켜야 할 규칙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매곡동 짠이’ 시절만 해도 ‘크면 엿장수가 돼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맛있는 엿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가위질로 박자를 맞추는 저 직업은 얼마나 멋진가.’ 염소를 매어 두려고 박아 놓은 꼬챙이들을 뽑아서 엿장수에게 몽땅 가져다주고 엄청난 양의 엿을 얻었다가 혼찌검이 난 적도 있었다. 그러다 생각이 바뀐 건 열 살 무렵이었다. 염소가 개에게 물려서 치료하는 과정을 고개를 받치고 지켜보는데, 당시 아버지 친구이자 내가 존경하던 장로 선생님께서 “불쌍하지? 염소도 이런데 돈도 없고 아픈 사람들은 얼마나 불행하겠니”라고 말씀하셨다. 그제야 비로소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 됐다. 좀 더 나이를 먹고는 어머니 로이스 린턴(인애자)의 결핵 퇴치 사업을 곁에서 지켜보며 마음을 완전히 굳혔다. 내 목표는 연세대 의과대학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조국인 미국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반쪽짜리밖에 되지 않는다”며 미국 대학에 들어갈 것을 권했다. 나는 노스캐롤라이나대학에 진학했지만, 생활이 영 편치 않았다. 어서 빨리 공부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일단 한번 지내 보기로 아버지와 약속했던 1년간의 미국 생활이 끝나고 나는 미련 없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1979년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등록했는데, 6개 레벨의 수업 중 나에게 맞는 단계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글쓰기는 형편없는데 말은 너무도 유창하게 하니 어느 수준에 맞춰야 할지를 정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1980년 연세대 의예과에 정원외 입학을 했다. 한국 나이로 스물두 살. 동기들보다 두어 살이 많았다. 나의 대학 입학은 한국의 신군부 독재와 함께 시작됐다. 대한민국은 기나긴 박정희 시대가 끝났지만, 새로운 독재의 터널 속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몇 달 전 10·26이 터졌을 때 한국이 민주화를 이룰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해 5월 친구와 함께 남해에 놀러 가는 중이었다. 버스가 광주 근처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한 청년이 차에 올라탔다. 청년은 “여러분,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선량한 사람들이, 아주 많은 사람이, 계엄군에게 죽었습니다. 이럴 수는 없는 겁니다. 여러분!” 그의 말은 두서가 없었지만 간절했다. 정든 고향 순천의 거리 역시 흉흉했다. ‘대체 무슨 일이 터진 거지?’ 조선대와 전남대에 다니던 친구들이 끔찍한 얘기를 들려줬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내 눈으로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광주에 갔다. 만약 검문에 걸리면 나는 주한 미국대사관 직원이고, 한국인 친구는 나의 통역이라고 말하기로 했다. 광주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장례식장 같았다. 파괴된 도시, 분노로 일그러진 시민들의 얼굴. ‘왜? 그리고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나?’ 전남도청 앞 상무관에는 60구 정도의 시신이 안치돼 있었고 시신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수천 명 모여 있었다. 한 아주머니는 확성기를 들고 “왜 내 아들이 국군의 총에 죽어야 했나요”라며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한 외신기자가 나를 보고는 통역을 요청했고 나는 흔쾌히 응했다. 이를 본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각국 기자들이 줄줄이 내게 통역을 부탁했다. 시민군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북으로 향해야 할 총부리가 남으로 향해 우리의 가족과 선량한 시민을 죽였다”며 분노했다. 나는 그들의 말을 영어로 옮겼다. 또 외신기자들의 질문을 한국어로 전했다. 그 일 때문에 나는 신군부로부터 ‘권고추방’ 명령을 받았지만, 당시 문무대 입소를 자원하면서 간신히 추방을 면했다. -“요한아…빨리 순천으로 내려와야겠다…아버지께서…돌아가셨다.” 1984년 4월 어느 날 오후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당시 나는 연세대 의대 본과 2학년이었다. ‘아버지가 위독하신 것도 아니고 돌아가셨다니.’ 아버지는 당시 짓고 있던 농촌 교회 건축에 쓰일 자재를 싣고 차를 몰고 오시는 길에 관광버스와 정면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관광버스 기사는 음주운전 상태였다. 사람들이 아버지를 부축해 병원에 도착했을 때 다행히 아버지는 의식을 되찾았다. 아버지는 계속 물을 찾았고 고통을 호소하며 진통제 주사를 놔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의사는 큰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고 광주기독병원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당시 순천은 물론이고 서울의 몇 군데 큰 병원을 빼면 앰뷸런스가 없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울화통이 터졌다. 응급환자를 대하는 의료체계가 이렇게 엉성하다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8년이 흐른 1992년 나와 가족은 3200여만원을 밑천 삼아 ‘한국형 앰뷸런스’ 개발에 착수했다. 15인승 승합차를 광주에서 주문해 순천으로 옮겼다. 순천기독결핵재활원 앞에 차를 세워 놓고 목수와 용접공, 자동차 정비공을 불러 개조에 들어갔다. 환자를 눕힐 공간과 환자 머리맡에 의사가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침대 밑과 천장에 응급장비를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일이 착착 진행돼 1주일 만에 개조된 앰뷸런스를 완성했다. 처음으로 한국형 앰뷸런스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병원보다는 소방서가 인명을 구조하는 데 우선이라는 판단에 소방서에 줬다. 올바로 활용하는 방법도 미국 텍사스에서 응급구조 일을 하고 있던 외삼촌에게 도움을 청해 가르쳤다. 순천소방서의 앰뷸런스는 활동 첫해 1000회의 출동 건수를 기록했고, 이 중 62건은 앰뷸런스가 없었더라면 사망했을 사람을 구조한 출동이었다. 나는 내가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의 기틀을 다지는 일에 미력이나마 보탬이 됐다는 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1997년 1월의 첫 방북은 우연한 계기로 이뤄졌다. 1996년 어머니는 40년 의료봉사의 공을 인정받아 삼성문화재단이 주는 ‘호암상’을 수상했다. 어머니는 상금 5000만원의 용도를 ‘북한에 앰뷸런스 기증’으로 지정했다. 한국에서 직접 북한을 지원할 방법이 없어 선교단체인 유진벨재단의 이름으로 기증하기로 했고, 그 실무 작업을 위해 들어갔던 것이다. 얼마 후 유진벨재단에 북한 보건성의 통지문이 날아들었다. 결핵 퇴치 사업에 나서 달라는 요청이었다. 북한에서도 이미 1970년대 결핵 환자가 거의 자취를 감췄지만 1995~1996년 잇따른 홍수 피해와 1997년 가뭄으로 다시 결핵이 확산돼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결핵환자요양소를 방문해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의약품을 분배하고, 검진차 사용 방법을 일일이 알려 주고 다녔다. -나는 4년 전 한국인으로 특별귀화를 했다. 어머니가 미국 국적을 포기하지 못하게 해서 ‘미국인’으로 살아왔지만, 2012년 정부에서 다른 나라 국적에 더해 ‘한국인’ 국적도 추가로 취득할 수 있도록 특별귀화제도를 만들었다. 지금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것은 ‘온돌방 문화’의 부활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온돌방에서 어른들께 지식을 배웠고, 도덕을 배웠고, 소통을 배웠다. 남과 북, 동과 서, 진보와 보수. 지금 한국은 너무 찢어져 있다. 어린 시절 순천에서 가족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온돌방 아랫목이 너무도 그립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인요한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 소장 구한말 우리나라에 들어온 미국 선교사의 후손으로, 연세대 의과대학을 나와 현재 세브란스병원에서 국제진료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1997년부터 29차례에 걸쳐 방북, 결핵으로 고통받는 북한 사람들을 돌봤으며 1980년대 ‘한국형 응급차’를 개발하고 보급시켜 당시 낙후된 국내 응급구조 시스템의 선진화에 크게 기여했다. 우리나라 의술의 국제화를 통해 ‘의료 한류’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공로들을 인정받아 지난해 6월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총재에 임명됐다. 1895년 한국에 파송돼 광주 수피아여학교·숭일학교, 목포 정명학교·영흥학교, 광주기독병원 등을 설립한 호남 기독교의 아버지 유진 벨(한국명 배유지) 선교사가 그의 진외증조부(친할머니의 아버지)다. 스물두 살 나이에 한국에 와 48년 동안 의료와 교육 선교 활동을 벌인 윌리엄 린턴(인돈) 선교사가 할아버지, 군산에서 태어나 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600개가 넘는 교회를 개척한 휴 린턴(인휴) 선교사가 아버지다. ▲1959년 전북 전주 출생 ▲대전외국인학교, 연세대 의학과, 고려대 의학 석·박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재단법인 순천기독결핵재활원 이사, 한국국제협력단(KOICA) 자문위원·전문위원, 제4대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총재 ▲2005년 국민훈장 목련장, 2014년 홍조근정훈장
  • [혼자살고 갈라서는 대한민국] 혼인·출산 갈수록 뚝뚝

    [혼자살고 갈라서는 대한민국] 혼인·출산 갈수록 뚝뚝

    1~7월 결혼 18만건… 8% 감소 고령화 영향 사망자는 매년 늘어 올해 7월까지 출생아 수와 혼인 건수가 역대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반면 고령자를 중심으로 사망자 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인구 절벽’ 현상이 심화되는 모습이다. 28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 혼인 건수는 2만 1200건으로 1년 전보다 10.2% 줄었고, 출생아 수는 3만 3900명으로 7.4% 감소했다. 출생아 수는 관련 통계 작성 이래 7월 기준으로 가장 낮았고, 혼인 건수는 2004년 7월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는 흐름이 이어지면서 올해 1~7월 혼인 건수는 16만 510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0% 감소해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0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1~7월 출생아 수도 24만 9200명으로 지난해보다 5.9% 줄어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낮았다. 이러한 추세가 연말까지 이어진다면 관련 집계가 시작된 2000년 이후 최초로 연간 혼인 건수 30만건 선이 붕괴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결혼 자체가 줄다 보니 이혼 건수도 감소하고 있다. 7월 이혼은 8700건으로 1년 전보다 8.4% 감소했다. 1∼7월 이혼 건수는 6만 700건으로 3.5% 감소해 역대 최저치를 보였다. 반면 고령화 때문에 사망자 수는 고공행진을 시작했다. 7월 사망자는 2만 2100명으로 지난해보다 2.8% 늘어 같은 달 기준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1∼7월 누계로는 16만 4100명으로 0.1% 증가했다. 하지만 아직 출생아 수가 사망자 수보다 훨씬 많아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는 유지되고 있다. 이지연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저출산과 고령화 추세로 인해 혼인과 출산은 줄어드는 반면, 65세 이상 고령자를 중심으로 사망자는 크게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종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네덜란드 총리, 명예 서울시민 위촉

    네덜란드 총리, 명예 서울시민 위촉

    마르크 뤼터(49) 네덜란드 총리가 28일 서울시 명예시민이 된다. 서울시는 국빈 방문 중인 뤼터 총리가 박원순 서울시장으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는다고 27일 밝혔다. 서울시는 서울에서 연속 3년, 또는 누적 5년 이상 거주 중인 외국인이나 시를 방문한 주요 외빈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한다. 2010년부터 총리직을 맡은 뤼터 총리는 이번이 취임 이후 첫 한국 방문이다. 박 시장과 뤼터 총리는 친환경 정책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도시 정책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는 2002년 서울시 명예시민이 된 거스 히딩크 전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과 서울역 고가 보행길을 설계한 네덜란드 건축가 위니 마스가 함께한다. 뤼터 총리는 자전거 220대를 서울시에 선물할 예정이다. 네덜란드 정부와 필립스 등 국내에 진출한 네덜란드 기업이 후원하는 자전거로, 시 공공자전거 ‘따릉이’로 쓰인다. 네덜란드를 기념하는 의미로 바퀴에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오렌지색을 입혔다. 오는 11월부터 서울시 전역에 오렌지색 바퀴 자전거가 비치된다. 이번 자전거 선물은 인구보다 자전거가 많은 ‘자전거의 나라’ 네덜란드에서 서울시 공공자전거 정책에 공감하는 뜻으로 먼저 제안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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