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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 129시간 만에 구조된 뒤 소방관 ‘간택’한 고양이 [튀르키예 지진]

    [영상] 129시간 만에 구조된 뒤 소방관 ‘간택’한 고양이 [튀르키예 지진]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간) 새벽 4시 15분경 튀르키예와 시리아 국경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7.8의 강진으로 4만 6000명 이상이 희생된 가운데, 기적처럼 구조된 동물과 소방관의 훈훈한 결말이 공개됐다.  소방관인 알리 카카스(33)는 지진이 발생한 뒤 피해 지역인 가지안테프에서 수색 및 구조 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무너진 아파트 잔해를 수색하던 중 작은 고양이 한 마리를 구조했다. 지진이 발생한 지 무려 129시간 만에 구조된 고양이였다.  카카스는 고양이에게 음식과 물을 주며 정성으로 보살폈다. 주인이 확인될 때까지만 고양이를 돌보는 게 그의 목적이었지만, 고양이는 한사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고양이가 카카스의 어깨를 차지한 채 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담은 사진은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졌다. 129시간 만에 구조된 고양이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이 됐다.  그리고 최근 이들의 근황이 공개됐다. 고양이는 결국 자신을 구조해 준 소방관을 ‘간택’했다. 고양이의 ‘집사 간택’은 고양이가 먼저 반려인(일명 집사)을 선택하듯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카카스 역시 생존자 수색이 마무리될 때 즈음, 고양이의 주인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사라지자 고양이의 ‘간택’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가 공개한 사진들은 카카스와 가족이 고양이와 함께 둘러앉아 식사를 즐기거나 여유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담고 있다.  카카스는 자신과 고양이의 특별한 사연을 널리 알리기 위해 SNS 계정을 개설하고, 역경을 딛고 살아남은 고양이의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했다.  영국, 미국, 칠레, 아르헨티나 등 튀크키예와 멀리 떨어진 국가의 사람들도 SNS를 통해 카카스와 고양이의 사연을 접했고, 수많은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카카스는 “고양이는 구조된 직후부터 단 한시도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면서 “이제는 나와 한 가족이 됐지만, 이전의 가족을 잃은 탓에 ‘슬픈 눈’을 보일 때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부모님과 형제들도 구조한 고양이와 가족이 되겠다는 내 결심을 지지했다. 이제는 가족들 모두 고양이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면서 “나와 고양이 모두 이번 지진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서로를 받아들이며 이 트라우마를 극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튀르키예 지진 현장에서는 사람뿐만 아니라 개와 고양이, 앵무새 등 다양한 동물들도 구조됐다. 튀르키예 동물 보호 단체 ‘헤이탭’(Heytap)은 지난 9일 지진 피해 지역 인근에 임시 구호 텐트를 설치, 구조된 동물들에게 물·음식·의료 지원을 해 줌과 동시에 매몰된 동물들을 추가 수색했다.  ‘동물을 인도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PETA) 역시 “많은 길잃은 동물들이 부상과 추위와 싸우면서 잔해 속에서 헤매고 있다. 매 순간이 동물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연속이다”라고 강조했다.  국제 동물보호단체 ‘동물네트워크’(NFA)는 9일 호소문을 발표하고 “고양이는 먹이 없이 약 2주일, 개들은 1주일 정도를 버틸 수 있다.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동물들의 유일한 희망”이라며 관심과 도움을 호소한 바 있다.
  • 러군 잡는 우크라 저격수도 ‘이 사람’ 두렵다 “내 위치, 엄마에겐 비밀”

    러군 잡는 우크라 저격수도 ‘이 사람’ 두렵다 “내 위치, 엄마에겐 비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군에 맞서는 한 우크라이나 저격수가 “러시아인은 두렵지 않다”면서도 “그러나 내가 여기 있는 건 엄마에게 말하지 말라”고 웃으며 말했다. AFP 통신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어로 까마귀를 뜻하는 ‘보론’이라는 코드네임을 가진 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 소속 29세 저격수는 12년 전 입대했으며, 어릴 적부터 저격수가 꿈이었다고 밝혔다. 영화 속 저격수는 늑대 한 마리로 묘사되곤 한다. 조용히 숨어 매서운 눈으로 목표를 기다리다가 단 번에 사냥을 끝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론이 말하는 현실의 저격수는 영화와 전혀 다른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신원 노출을 막고자 방한용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그는 “저격 임무에 필요한 장비 등은 차 한 대에 전부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저격수가 임무 수행에 필요한 장비는 최대 1.5㎞ 떨어진 표적을 쏠 수 있는 저격 소총 외에도 훨씬 더 많은 것이 있다. 그는 “탄약은 물론 내 몸을 숨길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야전삽과 나를 엄호해주고 정찰을 다닐 병사들도 필요하다”면서 “보통 5~6명이고 최소 4명은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지휘관의 눈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이 되는 2월24일이 가까워짐에 따라 돈바스 전선의 전투는 격화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 보론은 자신을 비롯한 저격수들이 부대 지휘관의 눈 역할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격수는 엄폐 장소에서 적의 소규모 병력을 저격하는 것 외에도 최대 3㎞ 떨어진 목표를 정찰하기도 한다. 가장 첫 번째 임무는 주변의 변화를 신중하게 관찰하는 것이다. 그는 “전날 밤에 없던 덤불은 적의 저격수일 가능성이 있다. 시가지에서는 창문이나 지붕에 변화가 없는지, 평소와 다른 것이 없는지를 찾는다”면서 “모든 것이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전쟁에서 저격수들이 얼마나 도움이 됐냐는 질문을 능숙하게 피하면서도 “저격수가 만능은 아니지만, 꼭 필요한 존재”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나서길 원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다”고 덧붙였다. 평상 시 저격수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우리는 지휘관의 눈이 돼, 가장 위험한 위협을 제거한다”면서 “물론 전차는 별개”라고 말했다. 가혹한 임무 소총 조준기를 몇 시간 동안 들여다보는 것은 스트레스가 되지만, 혹한의 추위에서 가만히 기다려야 하는 것이 훨씬 힘들다고 그는 말했다. 저격수는 때때로 한 자세로 최대 이틀 동안 숨어 있어야 한다. 심지어 최근 기온이 영하 12도까지 떨어져 눈이 땅을 뒤덮고 모든 것이 얼어붙었을 때도 이들은 가만히 버텨야 했다. 그는 “정말 춥다”고 웃으며 말하면서도 “가혹한 임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저격수의 준비와 기다림은 힘들지라도 전장에서 강점이 되기도 한다. 그는 “군에 이런 농담이 있다. 보병과 저격수에게 8시간 동안 나무 한 그루를 베라고 명령하면 보병은 8시간에 걸쳐 나무를 벤다”면서 “그러나 저격수는 7시간에 걸쳐 도끼를 갈고 한 방에 나무를 쓰러뜨린다”고 말했다.
  • 민주 “與법사위원장 이상민 탄핵 직무유기”…김도읍 “개입 여지 없어”

    민주 “與법사위원장 이상민 탄핵 직무유기”…김도읍 “개입 여지 없어”

    더불어민주당이 20일 김도읍 법제사법위원장에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심판 절차를 공정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소추위원단을 구성할 것을 요구했다. 법사위원장은 소추위원으로서 검사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김 위원장이 탄핵에 반대해온 국민의힘 소속으로 업무 수행에 소극적이라는 점을 고려해 압박한 것이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이상민 장관 탄핵 심판 태스크포스(TF) 첫 회의에서 “탄핵소추 의결서가 헌법재판소에 제출되고 헌재는 절차에 따라 심리를 개시했다”면서 “이 장관도 3명의 대리인을 선임한 상태이지만 정작 김 위원장은 소추위원으로서 소추위원단 구성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어 “소추위원으로서 책무는 다하지 않고 있는 것은 명백한 직무 유기”라고 꼬집은 뒤 “지금 김 위원장은 한 명의 국회의원이 아닌 하나의 기관임이 분명해 정권 엄호와 당리당략이 아닌 국회 결정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김 위원장이 책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법률 대리인단이라도 서둘러 위임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전했다. TF 단장인 진선미 민주당 의원도 소추위원단과 대리인단을 야당과 협의해 구성할 것을 촉구했다. 진 의원은 “국회는 지난 2번의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도 여야 협의로 소추위원단과 대리인단을 구성해 대응한 바 있다”며 “2004년 탄핵 심판에서는 소추인단과 대리인단을 구분하지 않고 67명의 소추·대리인단을 구성했고, 2017년에는 소추인단 9명과, 16명의 대리인단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진 의원은 “탄핵심판 대리인단은 탄핵안을 발의하고 의결을 끌어낸 야당과 충분한 협의를 통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구성돼야 한다”며 “김 위원장의 독단적 대리인단 구성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경고했다. TF 공동 간사를 맡은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김 위원장은 국민의힘 소속이라는 생각을 좀 버리고 국회가 국회의 권한과 역할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민주당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입장문을 통해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이라며 “민주당은 탄핵소추의 이유가 차고 넘친다 했고, 그 내용은 이미 민주당이 만들어 헌재에 제출한 탄핵소추의결서와 증거, 참고 자료에 모두 포함돼 있다”고 반박했다. 김 위원장은 “앞으로 탄핵 심판 결정은 이 자료를 토대로 헌재가 법과 원치에 입각해 판단하는 것이고 그럼에도 모욕과 협박을 계속한다면 탄핵소추의 정당성이 부족한 것”이라며 “이제 헌재의 순수한 법률적 판단만 남았고 소추위원이 누구든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 “전쟁 지지” 옷 벗고 찬물 끼얹는 러시아…푸틴과 콘서트도

    “전쟁 지지” 옷 벗고 찬물 끼얹는 러시아…푸틴과 콘서트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지 1년. 죽거나 다친 러시아군이 최대 20만 명에 이른다는 서방 정보기관의 분석이 나온 가운데, 러시아 일각에서는 전쟁을 지지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영국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은 최근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정규군과 민간 용병단 와그너 그룹 등에서 발생한 사상자 수가 17만5000∼20만명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이는 부상자와 전사자 수를 합친 수치로, 전사자 수만 4만∼6만 명으로 추산했다. 정보국은 전체 사상자 대비 전사자 비율이 “현대적인 기준에서 매우 높은 수준”이라며 러시아군에서 전반적으로 의료서비스 상태가 매우 열악한 것이 확실하다고 덧붙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앞서 이달 4일 미군 역시 러시아군 사상자 수를 18만명으로 추산했고, 노르웨이도 지난달 말 기준으로 같은 숫자를 제시했다. 러시아군 사상자 수는 지난해 9월 러시아의 ‘부분 동원령’ 이후 더욱 가파르게 늘고 있지만 러시아 블라고베셴스크 광장에서는 전쟁을 지지하는 러 주민들이 강추위에 수영복을 입고 몸에 찬물을 끼얹는 캠페인을 벌였다.영국 더타임스는 지난 17일 러시아 주민 150여명이 집단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연상시키는 행사를 벌였다고 전했다. 영하 20도 강추위에 수영복을 입고 자신의 몸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릉 ‘신냉전’에 새 기운을 불어넣고자 거리로 나왔다고 밝혔다. 블라고베셴스크 지역 관리 나데즈다 바그로바는 모두발언에서 “오늘 우리는 조국의 이름으로 용맹한 행동에 나선 이들을 지지하기 위해 왔다. 러시아 국민들의 꺾이지 않는 강인함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오는 22일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전쟁 지지 콘서트도 개최할 계획이다. 이 콘서트에는 록밴드와 팝스타 공연과 함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정부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해온 언론인 알렉산드르 네브조로프는 “이제 우리는 블라고베셴스크에 얼마나 많은 미치광이가 있는지 알게 됐다”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비판했다.
  • 튀르키예 “마음만 받겠다”며 거절한 애물단지 구호품…뭐길래

    튀르키예 “마음만 받겠다”며 거절한 애물단지 구호품…뭐길래

    “스팸, 마음만 받겠습니다” 튀르키예·시리아 강진 이재민을 위한 도움의 손길이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인들이 보내는 ‘스팸’ 때문에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튀르키예는 전체 인구의 90% 이상이 무슬림이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햄의 주재료인 ‘돼지’는 금지된 음식(하람푸드)이기 때문이다. 20일 주한 튀르키예대사관은 “대다수 튀르키예인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데, 한국에서 보내는 통조림 상당수가 돼지고기로 만든 음식이어서 현지에서 물량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사관 측은 더 이상 개인이 보내는 식품을 받지 않기로 했다. 그냥 돼지고기뿐 아니라 돼지에서 나온 재료로 만든 모든 것이 금기다. 현재 튀르키예 이재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구호 물품은 “물과 분유”라고 전했다. 세이브더칠드런 튀르키예 비상대응팀 관계자는 “수천 명의 생존자들이 추운 겨울 날씨를 버티며 임시 대피소에서 버티고 있다”며 “추위와 배고픔, 목마름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는 식량과 식수, 임시 거처, 따뜻한 의류 등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말했다.시리아 반군 지역 구호 태부족 “지진 전보다 지원 적어” 튀르키예 강진 최대 피해 지역 중 하나인 시리아 서북부 반군 지역에 대한 구호 활동 역시 여전히 차질을 빚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MSF)는 19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현재 시리아 서북부 지역의 인도주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긴급한 구호 확대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MSF는 “현재 반군 지역에 대한 국제사회 지원 규모는 강진 이전보다도 적다”면서 “턱없이 부족한 물량만이 국경을 넘어 수송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킴 할디 시리아 주재 MSF 대표는 “강진 발생 후 10일간 반군 지역으로 들어온 구호 물품 트럭 수는 작년 주간 단위 평균 수치보다 적었다”며 “현지의 구호 물품 재고는 이미 바닥 난 상태”라고 전했다. 각국에서 인도주의 지원을 받는 튀르키예와 달리 시리아는 알아사드 정권 아래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어 원조를 거의 받지 못했다. 유엔 집계에 따르면 강진 발생 후 시리아 서북부로 전달된 구호품은 트럭 170대 분량에 불과하다. 한편 유엔은 지진으로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약 900만 명의 시리아인이 피해를 입었다며 자금 지원을 호소했다. 유엔은 성명을 통해 “향후 3개월 동안 가장 시급한 인도주의적 필요에 대응하기 위해 3억9760만 달러(약 5050억원)가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튀르키예와 시리아 전역에서 4만1232명이 넘는 사망자가 확인됐다. 튀르키예에서만 3만5418명, 시리아에서는 5814명이 숨졌다.
  • “우리 동네는 우리가”… 영등포 골목길 ‘노란봉사’ 물결[현장 행정]

    “우리 동네는 우리가”… 영등포 골목길 ‘노란봉사’ 물결[현장 행정]

    “우리 동네 자원봉사 우리가! 우리가! 우리가!” 아직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지난 11일 토요일 오전. 당산동3가 영등포아트홀에 각 동 직능단체 회원, 종교단체 관계자 등 200여명의 영등포구 주민들이 모였다. 중간중간에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 주민들도 눈에 띄었다. 이날 열린 ‘영등포구 자원봉사 데이’ 선포식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성별도, 연령대도 달랐지만 이웃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마음가짐은 똑같았다. 자원봉사 데이는 코로나19로 위축된 자원봉사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주민들과 구청 간부들이 매월 첫째 토요일 봉사활동을 진행하는 날이다.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은 선포식에서 과거 주인도대사관 총영사로 근무하던 시절의 경험을 소개하며 “진정한 봉사는 남이 아닌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보람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참석자들도 “한 달에 한 번 자원봉사 좋아! 좋아! 좋아” 등의 구호를 외치며 분위기를 띄웠다. 자원봉사자들은 선포식을 마친 뒤 노란색 조끼를 입고 첫 봉사활동으로 당산1동 일대 골목길 청소에 나섰다. 최 구청장은 삽을 들고 행렬의 맨 앞줄에 섰다. 이들은 특히 빗물받이 정비에 신경 썼다. 구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빗물받이가 낙엽에 막히는 바람에 적은 강수량에도 침수가 발생할 뻔했다”고 설명했다. 봉사자들은 총 83곳의 빗물받이 뚜껑을 열고 겨우내 쌓였던 낙엽과 쓰레기들을 제거했다. 빗물받이 위 도로 경계석에는 ‘쓰레기 안 돼요’ 등의 문구가 적힌 알루미늄 스티커를 고무망치로 두드려 붙였다. 서울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서도 6명의 이주 여성들이 손을 보탰다. 베트남에서 온 원화(30)씨는 “빗물받이에 낙엽이 이렇게 많이 들어가 있을 줄 몰랐다. 동네에 도움이 된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자원봉사자들은 매달 봄꽃축제 질서 유지, 재난 대비 안전 점검 등 주제별 봉사활동을 진행할 계획이다. 자원봉사센터 운영 활성화 지원은 최 구청장의 공약이기도 하다. 구는 ▲자원봉사 데이 운영 ▲자원봉사연합회 맞춤형 봉사활동 추진 ▲재난 현장 통합자원봉사지원단 운영 강화 ▲영등포볼런티어오케스트라 운영 등을 목표로 설정한 상태다. 최 구청장은 “자원봉사가 소외된 이웃을 위한 든든한 울타리이자 마을을 가꾸는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 “먹고 자는 것도 사치인 참혹함 속에서… ‘사람들’ 덕에 웃었다”[곽소영 기자의 튀르키예 참사 현장을 가다]

    “먹고 자는 것도 사치인 참혹함 속에서… ‘사람들’ 덕에 웃었다”[곽소영 기자의 튀르키예 참사 현장을 가다]

    “제일 빠른 비행기는 내일모레입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덮친 강진 나흘째인 지난 9일(현지시간)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비상이 걸렸다. 지진 피해 지역과 가까운 아다나로 가려고 수속을 밟던 기자에게 항공사 직원이 결항 소식을 전한 것이다. 직원에게 애원해 취소 표를 겨우 잡아 비행기에 몸을 실었지만 참사를 취재한 일주일은 변수의 연속이었다. 피해가 극심한 하타이주에 들어가기 전 일주일 치 기름을 사 두기 위해 아다나의 한 주유소에 들렀다. 주유소 직원은 평소 1시간 안팎 거리인데 5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라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실제로 새벽 4시에 출발했지만 도로 위에 피난민과 구급차, 중장비 차량이 뒤엉키면서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다 무너진 건물에 가로막혀 돌아가는 일도 허다했다. 어렵게 도착한 하타이주의 건물들은 ‘팬케이크’처럼 위층부터 차곡차곡 무너져 있었고 콘크리트와 벽돌은 가루가 돼 있었다. 튀어나온 철근 사이로 식기, 유아차, 욕조, 시계부터 누군가의 다이어리까지 생의 흔적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모닥불 타는 냄새와 흙먼지 냄새 그리고 우유가 부패한 듯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건물 잔해 어딘가에서 시신이 부패하며 풍기는 냄새라는 것을 알아채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피해가 큰 지역엔 멀쩡한 숙소가 없었고 그나마 피해가 덜한 도시의 호텔에선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숙소를 구할 수 없는 곳에선 차 안에서 영하의 추위를 견디며 쪽잠을 청해야 했다. 밤마다 흙먼지에 머리카락이 버석거리고 얼굴을 닦은 물티슈가 흙먼지로 누렇게 됐지만 ‘차박’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었다. 몸보다 힘든 건 마음이었다. 기자는 일주일 후면 다시 한국으로 떠나는 ‘이방인’이었지만 현지인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언제 복구될지도 모르는 터라 그저 견뎌야만 했다. 비참한 현실을 목도한 현지인 운전기사는 밤새 잠을 설치고, 통역사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매일 취재를 마친 뒤 차 안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절망 속에서도 셋이 함께 웃는 유일한 순간은 그곳 ‘사람들’ 덕이었다. 텐트촌이나 대피소에서 만난 아이들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같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거나 잔해 속에서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 인형을 꺼내 보여 줬다. 구호식품을 나눠주는 푸드트럭을 취재하던 때에는 줄을 기다리는 것으로 착각한 이재민 수십 명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먼저 받으라’며 홍해처럼 길을 터 줘 얼떨결에 빵을 받기도 했다. 추위에 고생한다며 따뜻한 차 한잔이나 먹을 것을 건네는 이재민들의 호의를 거절한 적이 스무 번은 넘었다. 스무 살 조카의 시신이 꺼내지길 기다리며 홀로 잔해 앞에 앉아 있던 오즐람(45)은 먼 길을 떠나는 기자를 껴안으며 튀르키예식 전통 인사로 두 볼을 차례로 맞댄 뒤 “온 세상의 기쁨이 너와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희망을 속삭였다. 이 순간에도 구호의 손길을 기다릴 튀르키예인에게 같은 말을 전한다. 온 세상의 기적이 튀르키예와 함께하기를.
  • [튀르키예 참사의 기록] 참혹함 속에서도 “온 세상 기쁨 함께하길” 유가족 한 마디에 울고 웃었다

    [튀르키예 참사의 기록] 참혹함 속에서도 “온 세상 기쁨 함께하길” 유가족 한 마디에 울고 웃었다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 국경지역을 강타한 규모 7.8의 대지진 여파로 곳곳이 폐허로 변해버렸다. 아직 수 많은 이들이 건물 잔해에 갇혀 있는데도 구조 작업은 더디고 시간만 빠르게 흐르면서 살아남은 이들을 더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한 순간에 가족, 친구, 보금자리를 모두 잃은 생존자들은 질병, 추위, 굶주림이라는 또 다른 재난과도 싸워야 한다. 이 곳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싶지만 폐허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이들은 우리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제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한 재난의 현장에서 서울신문은 절망이 아닌 희망의 기록을 써내려 간다는 심정으로 현지 상황을 기록한다.“제일 빠른 비행기는 내일 모레입니다.” 튀르키예에 강도 7.8의 지진이 발생한지 나흘째였던 지난 9일(현지시간) 오전 5시. 이스탄불 공항에서 아다나행 항공편의 탑승 수속을 밟던 기자에게 항공사 직원은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전했다. 온라인 사이트에서 미리 예매해 결제까지 해둔 항공편이 결항됐다는 소식이었다. 이미 공항 곳곳에선 기약없이 표를 기다리던 튀르키예인들이 ‘가족에게 빨리 가야한다’며 애타는 목소리로 항의하고 있었다. 당시 주요 지진 피해 지역인 튀르키예 남부의 하타이 공항과 가지안테프 공항 등은 모두 지진 여파로 폐쇄돼있던 상황. 직원에게 애원해 취소표를 겨우 잡은 그 순간부터 튀르키예 지진 참사를 취재한 일주일은 변수의 연속이었다. 피해가 극심한 하타이주에 들어가기 전, 일주일치 기름을 사두기 위해 아다나의 한 주유소에 들렀는데 주유소 직원은 하타이까지 가려면 5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라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에서는 1시간 10분이면 도착한다고 나와 있었지만 그걸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새벽 4시에 출발했지만 도로 위엔 피난민과 구급차, 중장비 차량이 뒤엉키면서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불이 켜진 휴게소마다 모든 식량이 동나 있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다 무너진 건물에 가로막혀 돌아가는 일도 허다했다.어렵게 도착한 하타이주의 건물은 ‘팬케이크’처럼 위층부터 차곡차곡 무너져 있었고 콘크리트와 벽돌은 가루가 돼 있었다. 튀어나온 철근 사이로 식기, 유아차, 욕조, 시계부터 누군가의 다이어리까지 생의 흔적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 앞에서 노숙 중인 주민들은 구조대가 지나갈 때마다 ‘이 안에 가족이 있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모닥불 타는 냄새와 흙먼지 냄새 그리고 우유가 부패한 듯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게 건물 잔해 어딘가에서 시신이 부패하며 풍기는 냄새라는 것을 알아채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숙소를 구할 수 없다보니 밤에는 차 안에서 추위를 견디며 쪽잠을 청해야 했다. 밤마다 흙먼지에 머리카락이 버석거리고 얼굴을 닦은 물티슈가 흙먼지로 누런 색이 됐지만 ‘차박’을 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행운이었다.몸보다 힘든 건 마음이었다. 기자는 일주일 후면 다시 한국으로 떠나는 ‘이방인’이었지만 현지인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언제 복구가 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저 견뎌야만 했다. 몸보다도 마음이 무거웠다. 매일 취재가 끝나면 현지인 운전기사와 통역사, 기자가 함께 타고 돌아가던 차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백발이 성성한 운전기사 사마안띳(67)은 “편하게 먹고 자는 게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다”며 밤마다 잠을 설쳤다. 취재 마지막 날에는 기자를 아다나 시내 호텔로 데려다준 뒤 가족들이 머무는 텐트촌으로 돌아갔다. 사마안띳은 이번 지진으로 충격이 커서 당분간 일을 못할 것 같다며 회사에 휴직 신청을 했다. 비참한 현실을 함께 목격하고 한국어로 전하는 통역사 베이사(25)도 취재 내내 눈물이 마르질 않았다.절망 속에서도 셋이 함께 웃었던 유일한 순간은 그곳의 ‘사람들’ 때문이었다. 텐트촌이나 대피소에서 만난 어린 아이들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같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거나 잔해 속에서 한국 드라마인 ‘오징어게임’ 인형을 꺼내와 보여줬다. 구호식품을 나눠주는 푸드트럭을 취재하던 기자가 줄을 기다리는 것으로 착각한 이재민 수십명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먼저 받으라’며 홍해처럼 길을 비켜줘 얼떨결에 빵을 받기도 했다. 추운 날씨에 고생한다며 차나 음식을 건네는 이재민들의 호의를 거절한 적이 스무번은 넘었다.일주일동안 들었던 말 중 가장 따뜻한 말은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에서 들었다. 스무살 조카의 시신이 꺼내지길 기다리며 홀로 잔해 앞에 앉아있던 오즐람(45)은 먼 길을 떠나는 기자를 껴안으며 튀르키예식 전통 인사로 양볼을 차례로 맞댄 뒤 “온 세상의 기쁨이 너와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속삭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구호의 손길을 기다릴 튀르키예인에게 같은 말을 전한다. 온 세상의 기적이 튀르키예와 함께하기를.
  • 긁히고 베이고 찢기며…생존자 찾아낸 ‘네 발의 영웅들’ [김유민의 노견일기]

    긁히고 베이고 찢기며…생존자 찾아낸 ‘네 발의 영웅들’ [김유민의 노견일기]

    튀르키예로 파견됐던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 1진이 복귀했다. 극심한 추위, 불안한 치안 상황 등 현지 악조건을 뚫고 총 8명의 생존자를 구조하고 시신 18구를 수습하는 성과를 올렸다. 18일 오전 7시 구호대장을 맡았던 원도연 개발협력국장을 비롯한 총 118명의 구호대 1진이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복귀했다. 붕대를 감은 발로 참사 현장을 누벼 양국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토백이’ 포함 구조견 4마리(토리, 토백, 티나, 해태)도 대원들과 함께 복귀 신고에 임했다. 살리 무랏 타메르 주한튀르키예 대사는 직접 공항으로 나가 구호대 1진을 맞이했다. 그는 구호대원들에게 “이번 지진 피해에 대한 한국의 지원을 튀르키예 국민들이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사람 살리는 고마운 구조견 사람과 비교해 최소 1만배 이상의 후각 능력과 50배 이상의 청각 능력을 갖춘 구조견은 재난 현장에서 실종자 위치 탐색이나 시신 발견 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중장비를 사용하면 잔해가 무너져 생존자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데, 이럴 때 구조견이 투입돼 사람의 냄새를 맡고 냄새가 강한 곳에서 짖거나 긁도록 훈련을 받는다. 토리와 토백이는 2016년생, 티나는 2017년생이다. 해태는 2019년생이다. 토백이와 티나는 래브라도 리트리버, 토리와 해태는 벨지안 말리노이즈다. 평균 국내 출동 건수가 130~140건에 달한다.다친 발로 끝까지 수색 업무 토리, 토백, 티나, 해태는 ‘네 발의 영웅’이었다. 긴 비행시간을 견디고 생존자를 찾기 위해 강진으로 붕괴된 건물과 위험한 잔해들 사이를 누비며, 긁히고 베이고 찢기며 상처를 입었다. 유리 파편과 부러진 철근으로 발이 다쳤지만 붕대를 감고 현장을 누볐다. 튀르키예 국영방송 TRT 하베르는 ‘한국 구조견 3마리, 발에 붕대를 감고 작업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위험천만한 재난 현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닌 탓에 구조견들의 발이 성할 날이 없었다”라고 전했다. 신발은 오히려 구조견의 감각에 방해가 돼 위험할 수 있어 착용하지 않았다고 소방청은 설명했다. 구조견들은 발에 붕대를 감은 채 계속해서 수색 작업을 이어갔다. 한국에 도착해서는 건강검진을 받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국내 사고 현장에 투입된다.한국에서는 해마다 10만 마리의 유기동물이 생겨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짐작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양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어떠한 생명이, 그것이 비록 나약하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견일기를 씁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래서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유난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처지는 팀 아니야”… ‘강철 야구’ 첫 뜀박질

    “처지는 팀 아니야”… ‘강철 야구’ 첫 뜀박질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14년 만의 4강 진출에 도전하는 한국 야구 대표팀이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이강철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16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 투손 키노스포츠콤플렉스에서 3시간 동안 집중 훈련을 했다. 베이스캠프를 차린 투손에 예상치 못한 추위가 덮쳤고, 시차로 인한 피로도 다 풀리지 않았지만 대표팀 선수들은 ‘KOREA’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웨이트 트레이닝과 러닝으로 몸을 푼 뒤 캐치볼, 수비, 타격 훈련을 이어 갔다. 야구장 두 면을 오가며 선수들의 컨디션을 점검한 이 감독은 “선수들이 각자 소속 구단에서 몸을 잘 만들어 왔다”면서 “투수들의 페이스는 더딘 것 같지만, 야수들은 움직임이 아주 좋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17일 키노스포츠콤플렉스에서 NC 다이노스를 상대로 첫 평가전을 치른다. 이 감독은 “전체 선수들의 컨디션을 살필 목적으로 평가전을 치를 예정이다. 7명의 투수가 등판해 1이닝씩 20~25개를 던져 7이닝 경기를 하기로 NC와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포수 마스크를 쓰고 대표팀 마운드의 볼 배합을 책임질 양의지(두산 베어스)는 “경기 영상을 보며 일본 선수들을 분석하고 있다”면서 “그동안 야마다 데쓰토(야쿠르트 스왈로스)에게 결정적인 타구를 여러 번 허용했다. 경계를 많이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야마다는 2019년 프리미어12에서 한국과의 결승전 2회에 좌월 3점 홈런을 터뜨렸는데, 이게 역전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 2021년에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야구 승자 준결승전에서도 야마다에게 싹쓸이 적시 2루타를 허용, 2-5로 패배했다. 당시 볼 배합을 책임졌던 포수가 바로 양의지다. 양의지는 “이번 대회를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거의 마지막 대회라고 생각하고 뛰겠다”며 “그동안 일본전에서 아쉬운 결과가 많았는데, 꼭 갚아 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좌완 선발투수인 구창모(NC)는 “야마카와 호타카(세이부 라이온스)가 이번 WBC 일본 대표팀 엔트리에 포함됐더라”면서 “만약 한일전에 등판하게 된다면 꼭 설욕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구창모는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2017에서 일본과의 경기 4-1로 앞선 6회에 구원 등판해 야마카와에게 2점 홈런을 맞았다. 추격을 허용한 한국은 연장 10회 승부치기 끝에 7-8로 졌다. 당시 경기가 구창모에겐 ‘도쿄 악몽’으로 남았던 것. 그는 “일본을 상대로는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된다고 하더라”면서 “일본에 좋지 않은 기억을 이번 기회에 꼭 씻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 감독은 “대표 선수들이 기술을 늘리는 건 의미가 없고, 제 기량을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며 “우리가 그렇게 처지는 팀이 아니다. 충분히 성적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 “한국인이세요?” 웃으며 손가락 하트… 아이들 꿈은 무너지지 않았다

    “한국인이세요?” 웃으며 손가락 하트… 아이들 꿈은 무너지지 않았다

    “지진 전에는 ‘아이폰13’을 갖는 게 소원이었지만 지금은 무너지지 않는 집을 갖고 싶어요.” 지난 13일(현지시간) 지진 피해가 가장 큰 지역인 튀르키예 카라만마라슈에서 만난 시리아인 압둘라(14)는 “지진으로 미래가 불투명해졌다”며 “당장의 꿈은 튼튼하고 안전한 집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파란 천막으로 된 텐트 밖에서 할머니와 어머니가 마실 차를 끓이고 있던 압둘라는 기자가 다가가자 눈을 반짝이며 “한국 사람이냐”고 먼저 물은 뒤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반갑게 인사했다. 예전에 학교에 한국인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분이 손가락 하트를 가르쳐 줬다고 했다. 갑자기 닥친 지진으로 충격이 컸을 압둘라에게 어떤 어른이 되고 싶냐고 묻자 “군인이 되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이 멋있다고 생각했다”며 “시리아 사람으로서 튀르키예에 살면서 많은 도움과 은혜를 받았다. 저도 군인이 돼 튀르키예를 지켜 주며 튀르키예에 진 빚을 갚고 싶다”고 말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피해를 입은 어린이 수가 700만명을 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올 정도로 많은 아이가 부모를 잃고 추위와 굶주림 속에 고통받고 있지만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의연한 자세로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다. 한 이재민 대피소에서 만난 네질라(14)의 꿈은 의사다. 네질라 아버지가 지진 이후 이곳저곳을 다니며 구조물 잔해를 치우고 사람들을 돕는 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다고 했다. 집이 무너지고 학교에도 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네질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다. 텐트촌 아이들은 아이스크림 모양의 놀이터에서 뛰어놀다가도 부모님이 부르면 자기 몸집만 한 생수 묶음, 기저귀 박스 등을 번쩍 들고 부모를 따라갔다. 친구들과 놀 때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던 푸르칸(14)은 축구선수가 꿈이라고 했다. 달리기를 잘한다는 푸르칸은 ‘지진 때문에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지진 첫날에는 이런 큰 재난이 우리에게 닥쳤다는 게 너무 슬프고 믿기지 않아 충격이 컸는데 지금은 잘 이겨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학교 1학년 셰이드(12)는 군인을 꿈꿨다. 지진 전에도 군인이 되고 싶었던 셰이드는 지진 이후 군인들이 질서를 잡고 대피소에서 이재민에게 구호물품을 나눠주는 모습이 멋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군인들은 무서운 것 같으면서도 인사를 다 받아 준다. 나도 그런 군인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셰이드에게 ‘함께 뛰어놀던 친구들이 그립지 않으냐’고 묻자 그는 “연락이 안 되는 친구도 있지만 죽었을 거라고 생각 안 한다. 대피할 때 휴대전화를 미처 못 챙겨 연락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하려 한다”고 말했다.
  • 튀르키예 강진 발생 248시간만에 구조된 열일곱 소녀

    튀르키예 강진 발생 248시간만에 구조된 열일곱 소녀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덮친 강진 발생 248시간만에 붕괴된 건물 잔해에 깔려 있던 17살 소녀가 기적적으로 생환했다. 튀르키예 국영 방송 TRT 하베르는 16일(현지시간) “지진 발생 약 248시간(10일 8시간)만인 이날 정오쯤 남부 카라만마라슈의 아파트 잔해에서 17세 소녀 알레이나 욀메즈가 구조됐다”면서 “그는 구조된 뒤 들것에 실려 구급차를 통해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보도했다. 구조된 생존자는 보온용 금박 담요를 덮은 채 손에 링거를 꽂고 목에 보호대를 하고 눈을 감은 모습이었다.사고 발생 직후 72시간이라는 골든타임을 훌쩍 넘겼지만 생존자를 구하기 위한 구조대의 사투가 이어지면서 기적과도 같은 생환 소식이어지고 있다. 전날에는 지진 발생 약 229시간 만에 남부 하타이주에서 13살 소년이 구조됐다. 그로부터 1시간 전에도 하타이주에서 여성과 그의 자녀인 남매 2명이 건물 잔해에 깔려있다 구조됐다. 이들 가족 3명은 탈수 증상이 있었지만 대화도 가능할 정도로 건강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6일 오전 4시 17분 발생한 규모 7.8의 강진과 7.5의 강진이 9시간 간격을 두고 튀르키예 동남부와 시리아 서북부를 덮쳤다. 새벽 시간에 지진이 발생해 대부분의 사람이 건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내진 설계가 적용되지 않은 불법 건축물이 산산조각나면서 구조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현지에 강추위가 닥치면서 잔해에 갇힌 이들마저 제때 구조되지 못해 숨진 경우도 속출했다. 지금까지 튀르키예와 시리아 양국의 사망자는 4만 2000명에 육박한 것으로 집계됐다.
  • 지진이 아이들 꿈까진 빼앗지 못했다…“군인이 돼 튀르키예에 진 빚을 갚겠다”[튀르키예 참사의 기록]

    지진이 아이들 꿈까진 빼앗지 못했다…“군인이 돼 튀르키예에 진 빚을 갚겠다”[튀르키예 참사의 기록]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 국경지역을 강타한 규모 7.8의 대지진 여파로 곳곳이 폐허로 변해버렸다. 아직 수 많은 이들이 건물 잔해에 갇혀 있는데도 구조 작업은 더디고 시간만 빠르게 흐르면서 살아남은 이들을 더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한 순간에 가족, 친구, 보금자리를 모두 잃은 생존자들은 질병, 추위, 굶주림이라는 또 다른 재난과도 싸워야 한다. 이 곳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싶지만 폐허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이들은 우리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제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한 재난의 현장에서 서울신문은 절망이 아닌 희망의 기록을 써내려 간다는 심정으로 현지 상황을 기록한다. “지진 전에는 ‘아이폰13’을 갖는 게 소원이었지만 지금은 무너지지 않는 집을 갖고 싶어요.” 지난 13일(현지시간) 지진 피해가 가장 큰 지역인 튀르키예 카라만마라슈에서 만난 시리아인 압둘라(14)는 “지진으로 미래가 불투명해졌다”며 “당장의 꿈은 튼튼하고 안전한 집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파란 천막으로 된 텐트 밖에서 할머니와 어머니가 마실 차를 끊이고 있던 압둘라는 기자가 다가가자 눈을 반짝이며 “한국 사람이냐”고 먼저 물은 뒤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반갑게 인사했다. 예전에 학교에 한국인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분이 손가락 하트를 가르쳐줬다고 했다. 압둘라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수업이 끝나면 다 같이 컴퓨터 게임을 하며 놀았는데 그게 너무 그립다”면서 “지금은 학교가 더 무너져 언제 다시 수업을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갑자기 닥친 지진으로 충격이 컸을 압둘라에게 꿈을 묻자 “군인이 되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이 멋있다고 생각했다”며 “시리아 사람으로서 튀르키예에 살면서 많은 도움과 은혜를 입었다. 저도 군인이 돼서 튀르키예를 지켜주며 튀르키예에 진 빚을 갚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는 시리아에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게 압둘라가 그리는 미래다. 압둘라는 “군인이 되려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당장은 어려울 것 같다”며 “가족 모두가 지난 일주일 동안 물티슈로 몸을 닦으며 생활하고 있는데 얼른 물이 잘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작은 소망을 말했다.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피해를 입은 어린이 수가 700만명을 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올 정도로 많은 아이들이 부모를 잃고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고통 받고 있지만,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힘든 상황에서도 의연한 자세로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다. 카라만마라슈의 한 이재민 대피소에서 만난 네질라(14)는 이불을 나눠주는 곳에서 혼자 서 있다가 어른을 데려오라는 군인의 제지로 삼촌을 모시고 온 뒤 다시 긴 줄을 서고 삼촌을 도와 이불을 옮겼다. 군인이 네질라에게 “정직하고 착하구나”라며 칭찬을 해주자 네질라는 “앞으로도 그렇게 살겠다”며 똑부러지게 답했다. 네질라는 “대피하다가 아버지가 콘크리트 조각에 눈을 다쳤다. 그 상태로 사람들을 구조하러 다니시는데 또 다칠까봐 걱정이 된다”며 부모님부터 걱정했다. 그는 “이 곳에서 얼마나 있어야 할 지 몰라서 그게 가장 힘들다”면서도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나아지면 공부를 다시 하고 싶다”고 했다. 네질라의 꿈은 의사. 아버지가 지진 이후 이곳 저곳을 다니며 구조물 잔해를 치우고 사람들을 돕는 봉사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다고 했다. 지진으로 인해 한순간에 집이 무너지고 학교에도 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네질라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다.텐트촌 아이들은 아이스크림 모양의 놀이터에서 뛰어놀다가도 부모님이 부르면 자기 몸집만한 생수 묶음, 기저귀 박스 등을 번쩍 들고 부모를 따라갔다. 친구들과 놀 때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던 푸르칸(14)은 축구선수가 꿈이라고 했다. 달리기를 잘 한다는 푸르칸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하면 미드필더로 뛰면서 공격을 할 때도 있다고 했다. ‘지진 때문에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가장 친하게 지내던 학교 친구가 사망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진 첫 날에는 이런 큰 재난이 우리에게 닥쳤다는 게 너무 슬프고 믿기지 않아 충격이 컸는데 지금은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진 이후 이틀 동안 잔해 근처에서 노숙을 했다는 바르쉬(14)는 “무너진 건물 옆에서 모닥불 켜고 천막 같은 곳에서 잤는데 잔해 사이로 시신이 보였다”며 “무서웠지만 갈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도 아버지, 어머니, 누나, 동생 등 가족이 무사히 빠져나온 것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는 바르쉬는 ‘지금 가장 바라는 게 뭐냐’는 질문에 “방금 만든 따뜻한 케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걸 마음껏 먹을 수 있었을 때가 그립고 집에서 걱정 없이 잠 들던 때가 생각난다고 했다. 바르쉬의 롤모델은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다. 그는 “원하는 걸 가질 수 있으려면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는데 지금은 학교를 갈 수가 없다. 이렇게 공부를 못하면 나중에 어른이 돼도 직업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아 그게 가장 불안하다”고 말했다. 중학교 1학년 셰이드는 군인을 꿈꿨다. 셰이드는 지진 전에도 군인이 되고 싶었지만 지진 이후 군인들이 질서를 잡고 대피소에서 이재민에게 구호 물품을 나눠주는 모습이 멋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군인들을 만나면 일부러 인사를 건넨다”며 “군인이 무서운 것 같으면서도 인사를 다 받아준다. 나도 그런 군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셰이드에게 ‘함께 뛰어놀던 친구들이 그립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연락이 안 되는 친구도 있지만 죽었을 거라고 생각 안 한다. 대피할 때 휴대전화를 미처 못 챙겨서 연락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하려 한다”고 말했다.
  • [튀르키예 참사의 기록]비행기표 구하려 20시간 공항 노숙하는 이재민들

    [튀르키예 참사의 기록]비행기표 구하려 20시간 공항 노숙하는 이재민들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 국경지역을 강타한 규모 7.8의 대지진 여파로 곳곳이 폐허로 변해버렸다. 아직 수 많은 이들이 건물 잔해에 갇혀 있는데도 구조 작업은 더디고 시간만 빠르게 흐르면서 살아남은 이들을 더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한 순간에 가족, 친구, 보금자리를 모두 잃은 생존자들은 질병, 추위, 굶주림이라는 또 다른 재난과도 싸워야 한다. 이 곳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싶지만 폐허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이들은 우리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제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한 재난의 현장에서 서울신문은 절망이 아닌 희망의 기록을 써내려 간다는 심정으로 현지 상황을 기록한다. “가족이 죽어서 빨리 가야 한다. 언제쯤 표가 나오는지 알려달라.” 15일(현지시간) 찾은 튀르키예 아다나 공항은 가족의 죽음을 직접 확인하러 가거나 이미 시신을 수습하고 온 이들, 무너진 삶의 터전을 어쩔 수 없이 떠나온 이들의 한숨과 울먹임이 뒤섞여 있었다. 미처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한 이재민들은 취소표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공항 이곳저곳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 갔다. 공항에는 휠체어를 타거나 깁스를 한 사람, 머리에 붕대를 감은 사람도 유독 많았다. 지진 피해가 집중된 튀르키예 남부 지역의 공항인 이곳은 지진 직후에도 유일하게 하늘길이 열려 있었다. 최근 지진 피해로 폐쇄됐던 가지안테프 공항과 하타이 공항이 다시 운영을 재개하면서 참사 초기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한산해졌다. 하지만 이재민을 비롯해 피해지역으로 왔다 돌아가는 현지인이 몰리면서 아다나 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의 표는 이틀 뒤인 17일까지 모두 동이 난 상태였다. 표를 구하지 못한 이들은 공항에서 표를 사기 위해 노숙을 하기도 했다. 에세(13)도 어머니, 동생과 함께 안탈리아로 가기 위한 비행기 표를 구하고 있었다. 공항 구석 의자에서 기다리던 에세는 “아버지는 고향에서 다른 사람들의 구조를 돕고 나서 우리와 만나기로 했다”며 동생을 안고 있던 자세를 고쳐 잡았다.온라인으로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한 이재민들은 공항 안에 있는 현장 발권대에 이름과 연락처를 등록한다. 취소 표나 여유 좌석이 생기면 이름이 적힌 순서대로 비행기 표를 받을 수 있다. 집이 사라졌거나 지진 피해지역을 떠나야 하는 이들은 공항에서 20시간 넘게 기다리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이른 시간인 오전 8시쯤 공항에는 이미 300여명이 몰려들었다. 의자가 부족해 바닥에 드러눕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가족들과 함께 카라만마라슈를 떠나온 카딜(29)은 “지진으로 일자리를 잃었다”며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이 모두 붕괴됐다”고 울먹였다. 비행기 표를 구하느라 공항에서 오랜 시간 머물러야만 하는 이재민들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샌드위치를 나눠주기도 했다. 하루 샌드위치 1000개를 주문해 매일 공항에서 나눔 봉사를 하는 하칸(40)은 “지금은 생업을 이어가기보다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돕는 게 우선”이라며 “거대한 재난이라 수습이 어렵지만, 상황이 어느 정도 나아질 때까진 봉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공항에는 가족이나 친구의 사망 소식을 듣고 지진 피해지역을 찾아 시신을 수습하고 다시 돌아가는 현지인도 적지 않았다. 이스탄불에서 온 아첼리아(21)는 지진으로 사촌 4명을 모두 잃었다. 아첼리아는 “일자리를 구하러 카라만마라슈에 갔다가 모두 죽었다. 시신을 찾은 뒤 장례를 치르고 돌아가는 길”이라며 “사촌이 죽고 홀로 남겨질 아내가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걱정된다”고 했다.
  • “형제의 나라” “고마워 형”…튀르키예인이 韓구조대에게 전한 마음

    “형제의 나라” “고마워 형”…튀르키예인이 韓구조대에게 전한 마음

    대지진 피해를 입은 튀르키예 현지에 파견돼 구조활동을 벌인 대한민국 긴급구호대(KDRT) 1진이 안전한 지역으로 이동한다. 현지 주민들은 구조를 위해 필사의 사투를 벌인 구조대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15일(현지시간) 구호대에 따르면 이날 오전 구호대 1진은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주 안타키아의 셀림 아나돌루 고등학교에 차린 숙영지를 떠나 비교적 안전한 지역인 아다나로 향했다. 구호대의 이동 소식을 들은 인근 주민들은 숙영지를 찾아와 구호대와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구호대가 기증하기로 한 텐트에 감사의 마음을 담은 문구를 적었다. 한 주민은 한글로 “고마워 형”이라고 적었다. 한국전쟁 당시 튀르키예의 파병을 계기로 양국이 서로를 형제의 나라로 부르는 것에 기반한 호칭으로 보인다. 글씨체는 번역기를 돌리고 따라 적은 것처럼 어색했지만 진심어린 마음이 전달되기엔 충분했다. 또 다른 주민은 한글로 “형제 나라”라고 적은 뒤 튀르키예어로 “형제의 나라, 한국과 튀르키예”라고 쓰기도 했다. 한글뿐 아니라 영어로 “도우러 와줘서 고맙다. 친애하는 한국인 친구들”이라고 적은 하얀 널빤지도 있었다. 우리 구호대원들도 튀르키예가 하루빨리 재난을 극복해 일상을 되찾고 양국 관계가 발전하길 바란다는 위로와 희망의 글을 한글과 영어로 적었다.외교부, 소방청,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 군 인력 등 총 118명 규모의 구호대 1진은 지난 7일 튀르키예로 출발해 최대 피해 지역 중 하나인 하타이주 안타키아에서 현지시간 9일부터 구조 활동을 펼쳐왔다. 이들은 ‘골든타임’이 지난 시점을 포함해 총 8명의 생존자를 구해내는 등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극심한 추위와 전기·수도 단절 등 열악한 활동 여건 그리고 현지 치안까지 악화하면서 2진과 임무 교대를 결정했다. 구호대 1진은 현지시간 17일 튀르키예를 떠나 18일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다. 21명 규모의 구호대 2진은 16일 밤 군 수송기 편으로 튀르키예 아다나로 출발해 7일가량 활동한다. 이들은 이재민 구호에 나서는 한편 재건 및 지원 사업 수요를 파악할 계획이다.
  • [길섶에서] 맥문동/황성기 논설고문

    [길섶에서] 맥문동/황성기 논설고문

    초등학교 자연 시간 같은 수업에 별 관심이 없었던 탓인지, 도회에서 나고 자라난 탓인지 몰라도 동물, 식물 이름을 제대로 아는 게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특히 나무나 꽃, 풀은 부끄러울 정도로 이름을 모른다. 쉽게 까먹는 천성이라 외우려 해도 별 성과 없이 지금껏 살아왔다. 지난해부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식물이 있다. 맥문동(麥門冬)이다. 뿌리가 보리와 비슷하고 겨울을 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은 다년 살이 풀이라는데 이름표 덕에 외우게 됐다. 여름에는 보라색 꽃을 피우는데 난(蘭)처럼 생긴 맥문동이 옹기종기 군락을 이룬 모습은 제법 볼만하다.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의 나무 아래 많이 심는 듯하다. 강추위를 견디고 봄이 다가오자 맥문동이 다시 푸르름을 뽐내려는 자태. 연약해 보이지만 얼지 않고 버티는 게 놀랍다. 세포의 삼투압을 높여 어는 점을 낮춘다거나, 광합성으로 열을 낸다는 설명을 봤지만 쉽사리 이해가 안 된다. 동식물의 세계는 오묘하다.
  • 어린이 피해 700만명 이상… 저체온증·호흡기 질병 급증

    어린이 피해 700만명 이상… 저체온증·호흡기 질병 급증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고통받는 어린이 규모가 700만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제임스 엘더 대변인은 14일(현지시간) 유엔 제네바 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진 피해를 겪는 어린이는 튀르키예 10개 주에서 약 460만명, 시리아에서 250만명 정도로 파악된다”면서 “최소 수천명 이상의 아동이 사망했을 것으로 보이며, 양국의 아동 희생자 수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비극적 사실이 분명해 보인다”고 밝혔다. 유니세프가 이날 발표한 수치는 사상자뿐 아니라 부모를 잃거나 질병을 얻은 경우, 급작스럽게 열악한 생활 환경에 노출된 어린이 등을 통틀어 집계한 것이다. 엘더 대변인은 “현재 파괴적인 지진으로 많은 아이는 부모를 잃었고, 수십만명의 생존자들도 추위와 굶주림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엘더 대변인은 “지진 피해 지역에서 저체온증과 호흡기 감염으로 고통을 겪는 어린이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면서 “학교와 병원 등 주요 시설이 무너진 곳이 많아 어린이와 가족의 안전을 더욱 위협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유니세프는 지진 피해 지역에 구호품을 전달하고 어린이들을 상대로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시리아에서는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해 안전한 식수 확보와 보건의료 서비스 제공에 초점을 둔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고, 튀르키예에서는 기존 3000명 이상의 자원봉사자에 5000명을 더해 가족을 잃은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 [튀르키예 참사의 기록]차디찬 잔해 속에서 살아남은 77세 여성…기적의 생환은 계속된다

    [튀르키예 참사의 기록]차디찬 잔해 속에서 살아남은 77세 여성…기적의 생환은 계속된다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 국경지역을 강타한 규모 7.8의 대지진 여파로 곳곳이 폐허로 변해버렸다. 아직 수 많은 이들이 건물 잔해에 갇혀 있는데도 구조 작업은 더디고 시간만 빠르게 흐르면서 살아남은 이들을 더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한 순간에 가족, 친구, 보금자리를 모두 잃은 생존자들은 질병, 추위, 굶주림이라는 또 다른 재난과도 싸워야 한다. 이 곳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싶지만 폐허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이들은 우리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제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한 재난의 현장에서 서울신문은 절망이 아닌 희망의 기록을 써내려 간다는 심정으로 현지 상황을 기록한다.“신이 도운 겁니다! 15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아다나의 한 양말 가게에서 일하는 대니즈(21)는 77세 여성의 구조 소식을 들었느냐고 묻자 순간 ‘아!’라고 외친 뒤 가슴에 손을 모으고 환한 표정으로 “기적이 일어났다”고 했다. 그는 “여기 있는 모두가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며 “우리의 유일한 바람은 한 명이라도 더 기적처럼 살아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 여성의 이름은 파트마 구잉게르로 전날 남동부 아다야만의 7층짜리 아파트 잔해에서 구조됐다. 지진 발생 약 212시간(8일 20시간)만이다. 구조대가 열화상 카메라로 이 여성이 살아 있는 걸 확인한 뒤 의식을 잃지 않도록 계속 말을 걸었으며, 수 시간의 작업 끝에 그를 잔해에서 끌어냈다. 통상 72시간을 골든타임이라고 하지만 기적의 생환 소식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타이에서 한 아버지와 딸이 약 209시간만에 구조됐고, 아디야만에서는 라마잔 유셀(45)이 207시간만에 발견됐다. 카라만마라슈에서는 바키 예니나르(21)와 무하메드 에네스 예니나르(17) 형제가 단백질 보충제 가루와 소변을 먹으며 구조를 기다린 끝에 200여 시간만에 구조됐다.아다나 시내에서 만난 에스라(33)는 “더 많은 구조팀이 피해 지역에 더 일찍 도착했다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지금이라도 더 많은 인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했다. 아다나에서 운전기사로 일하는 오슬만(60)은 “지진 이후 매일 차에서 지진 뉴스를 듣고 있다”면서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 더 남아 있다고 믿는다. 또다른 기적 뉴스가 계속 들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리아 난민을 향한 따뜻한 손길을 건네는 이들도 있었다. 하타이주 안타키아에 사는 아흐야(68)는 지진 피해로 오갈 데 없는 시리아 가족에게 자신의 집을 내어줬다. 지진 당일 비를 맞으며 거리에서 떨고 있는 이들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어 집으로 데려왔다고 한다. 그렇게 집에 들인 이재민 가족만 여섯 가족이나 된다. 매형이 6·25전쟁 참전군인이었다는 아흐야는 “인종, 국적, 종교를 떠나 모두가 힘든 상황”이라면서 “한국이 어려울 때 우리가 도왔던 것처럼 한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지금의 튀르키예를 도와주면 좋겠다”고 했다.
  • 이천시, 한겨울에 전국 첫 모내기 실시

    이천시, 한겨울에 전국 첫 모내기 실시

    ‘명품쌀’ 재배지인 경기 이천시가 15일 오후 호법면 안평3리 일원에서 전국 첫 모내기를 했다. ‘임금님표 이천쌀’의 본고장 이천시가 주관하고, 지역농협 주최로 열린 이날 첫 모내기에서는 면적990㎡ 연동하우스에 국내 육성품종인 ‘해들’을 심었다. 전국 첫 모내기를 위해 이천시와 호법농협은 지난 1월16일과 20일 각각 볍씨 침종과 파종을 했다. 오는 6월 중 벼베기를 할 수 있으며, 정곡 240㎏의 수확이 예상된다. 이천의 모내기는 국내 다른 지역에 비해 3개월가량 이르다. 대부분 4월 초 파종을 거쳐 5월에 모내기가 이뤄진다. 한겨울 영하권 추위 속에서도 전국 첫 모내기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내기 장소인 안평리 인근에는 이천시를 포함한 인근 5개 시·군의 생활쓰레기를 소각하는 광역소각장이 가동 중에 있어 소각 열을 활용하여 친환경 무농약 벼 재배 하우스의 적정 온도를 20℃로 유지하기 때문이다. 김경희 시장은 “최고의 브랜드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해외로까지 수출하고 있는 이천쌀, 그 농업인의 자긍심을 담아 첫 모내기 행사를 마련하였으며, 더 나아가 이천시에서는 고품질 임금님표 이천쌀의 지속적인 미질 향상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참사현장 달려간 한식당 사장님 “정착 때 받은 도움, 돌려줄 때” [튀르키예 참사의 기록]

    참사현장 달려간 한식당 사장님 “정착 때 받은 도움, 돌려줄 때” [튀르키예 참사의 기록]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 국경지역을 강타한 규모 7.8의 대지진 여파로 곳곳이 폐허로 변해버렸다. 아직 수 많은 이들이 건물 잔해에 갇혀 있는데도 구조 작업은 더디고 시간만 빠르게 흐르면서 살아남은 이들을 더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한 순간에 가족, 친구, 보금자리를 모두 잃은 생존자들은 질병, 추위, 굶주림이라는 또 다른 재난과도 싸워야 한다. 이 곳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싶지만 폐허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이들은 우리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제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한 재난의 현장에서 서울신문은 절망이 아닌 희망의 기록을 써내려 간다는 심정으로 현지 상황을 기록한다.튀르키예에서 8년째 한국 음식점 프랜차이즈를 운영 중인 김아람솔(31)씨는 지진 발생 사흘째인 9일(현지시간) 이스탄불에서 짐을 챙겨 지진 피해 지역인 하타이주 안타키아로 갔다. 김씨 아내가 안전을 우려해 만류했지만 “돕고 싶다”는 김씨를 막아서진 못했다. 김씨가 함께 갈 직원을 모집했는데 30명 이상이 자원했다고 한다. 김씨는 음식점 운영과 안전 등을 고려해 11명의 최소 인원을 꾸렸다. 김씨 팀은 매일 1000인분씩 만들어 지진으로 삶의 터전과 가족을 잃은 이재민들에게 나눠줬다. 주민들은 긴 줄을 서서 따뜻한 한끼를 받아갔다. 경황이 없을텐데도 김씨에게 초콜릿, 과자 등 음식을 주며 감사 인사를 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봉사를 끝내고 이스탄불로 복귀하기 전 아다나 공항 근처에서 만난 김씨는 “튀르키예인 도움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면서 “지금은 이 감사함을 돌려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어 “돈이 없어 며칠 간 라면으로 한 끼를 떼우던 시절 평소 친하게 지내던 튀르키예 지인 ‘아슬란’이 제 모습을 보고 3000달러를 그냥 주고 갔다. 그 이후 항상 베풀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지난해 하타이주에서 열린 ‘하타이 엑스포’에 참석한 적이 있어 이번 참사가 더욱 가슴 아프다고 했다. 당시 한식 부스를 운영해달라는 초대를 받고 처음 하타이 지역에 방문한 김씨는 시리아 국경과 맞닿아 종교적 색채가 강하고 보수적일 것이라 생각했던 하타이 주민들이 개방적이고 정이 많은 사람들이란 걸 깨닫고 애정이 갔다고 한다. 기억 속 하타이는 밝았지만 김씨가 하타이를 다시 찾았을 땐 기억과 정반대로 건물이 파괴돼 있고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도시가 돼버렸다.그 중에서도 하타이에서 3㎞ 정도 떨어진 시외에 살다가 남편의 왼발 염증을 치료하러 온 한 아주머니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위급한 병은 아니었지만 아주머니는 빨리 치료를 하자며 하타이의 한 병원에 남편을 입원시켰는데 하필이면 이튿날 지진으로 병원이 가루처럼 무너지면서 남편도 건물에 갇혔다. 남편을 찾지 못해 병원 앞에서 노숙을 하는 아주머니는 자기 자신을 원망하며 “내가 천하의 죄인이다. 희망을 놓고 싶지는 않지만 사망했을 것 같아 시신이라도 찾아 매장해주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씨는 “하타이의 상황을 직접 본 입장에서 무슨 말을 해도 하타이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뒤 “아직 텐트가 없어 밖에서 자는 사람들이 많다. 여전히 지진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다. 한국 돈 1만원이 튀르키예에서는 10만원의 값이니 여유가 되신다면 작은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혼자 간 것도 아니고 팀을 꾸린 게 쉽지 않았을텐데. “지진 소식 듣고 곧바로 가려고 했는데 지진 발생한 초기에는 튀르키예 정부가 함부로 민간인이 진입을 못하게 했다. 사방팔방 뛰어다녀 혼자 가는 것까지는 허가를 받았는데 팀을 데려가려고 하니 안 될 수도 있다고 하더라. 포기를 해야 하나 싶었는데 며칠 지나니 통제가 없어졌다. 그래서 이스탄불 본점 직원 7명과 아다나 점주 3명 그리고 저까지 이렇게 11명으로 팀을 꾸렸다. 하루 1000인분씩 요리하려면 최소 8명이 필요하다. 가서 끓이는 것만 할 수 있게 아다나 식당에서 협조를 해주셨다.” -하타이 도착했을 때 상황은 어땠나. “지진 사흘째인 9일 출발해 이튿날 하타이에 도착했다. 그때는 이재민이 천막도 없었고 음식도 없었다. 지금은 구호물품이 각지에서 오니까 많지만 그때는 없었다. 이재민 중심으로 도우면서 대한민국 구조대에도 불고기, 김치, 밥 위주로 드렸다. 라면이랑 인스턴트 드시는 것 같던데 다들 좋아하셨다.” -현지 배급 어려움은 없었나. “이스탄불에서부터 준비를 많이 해서 갔다. LPG 가스통도 5개 챙기고, 물도 20L짜리 세트로 챙겼다. 모자란 재료는 아다나에서 가져갔다. 막상 하타이에 가니까 다행히 치안은 괜찮았다.” -숙소 구하는 것도 어려웠을텐데 어디서 묵었나. “원래는 하타이에 숙소를 잡을 예정이었다. 이스켄데룬에 있는 호텔에 예약까지 하고 갔는데 ‘오늘 군인들이 묵을 예정이라 여기 묵을 수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결국 아다나를 베이스캠프 삼아 매일 오전 7시쯤 하타이에 갔다가 돌아오는 식으로 진행했다.”-여진 우려도 있는데 가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튀르키예에 8년 있었는데 이렇게 큰 일은 있으면서 처음이다. 저는 튀르키예인들이 도움을 줘서 이만큼 성장했고 사람 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건 해야겠다. 그래서 가게 됐다. 직원들도 “동포들을 구하러 가야 한다. 여기서 발 뻗고 자는 게 오히려 편하지 않다”며 가고 싶다고 했다. 내 아내는 튀르키예인인데 처음에 가겠다고 하니 ‘이혼도장 찍고 가라고. 거기 얼마나 위험한데 가냐’고 만류했다. 아내를 설득해서 도장은 안 찍고 왔다(웃음). 어머니는 하타이 봉사 간다고 했을 때 반대는 하지 않으셨고 ‘그냥 조심히 갔다오라’고 하셨다.” -하타이에서 기억에 남는 일은. “깜짝 놀랐던 게 여기 사람들은 본인들이 힘들텐데도 잘 베푸신다. 아시다시피 건물 앞에서 가족 못 찾고 불 피우고 앉아 계시는데도 저희한테 차도 끊여 주시고 케이크도 주고 그러셨다.” -가슴 아픈 사연도 있었을 것 같다. “하타이에서 5~8㎞ 떨어진 곳에 사는 아주머니가 남편이 왼발에 염증에 생겨서 병원에 오셨는데 이튿날 지진이 나서 병원이 형체도 없이 가루가 됐다고 하더라. 그래서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계셨다. ‘내가 천하의 죄인이다. 희망을 놓고 싶지 않지만 남편이 살아있을 것 같지 않다며 시신이라도 찾아서 땅에 묻어주고 싶다’고 하셨다.” -이전에도 하타이에 가보셨을 것 같다. 지진 이후 도시가 어떻게 달라졌나. “지난해 하타이 엑스포가 열려서 초대받아 참석한 적이 있다. 도시가 엄청 예쁘고 아기자기했다. 엑스포 가기 전에는 사람들이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색채도 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가보니 사람들이 밝고 개방적이고 정이 많아 보였다. 이스켄데룬 바다는 너무 아름다웠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건물이 다 부서져서 안타깝다. 하타이 주민들은 애향심이 강해서 나중에 재건되면 5년 뒤, 10년 뒤에는 다시 고향으로 오겠다고 하더라. 어떻게 보면 뿌리에 대한 자긍심이 있는 거 같다.” -튀르키예 상황 바라보는 한국에 하고 싶은 말은. “이 상황이 마음 아프고 안타깝다. 아직도 차에서 지내는 분이 많다. 텐트가 없어서 길에서 비닐봉지 안에 들어가 주무시는 분도 계셨다. 밤에 엄청 추운데 지진 피해 입은 주민들은 친지 장례식 치를 때까지는 거기 계속 계실 것 같다. 저 같아도 만약 가족이 잔해에 갇혀 있으면 그 앞에 있을 것 같다. 그 마음을 이해한다. 한국 분들도 도움을 많이 줬으면 한다. 돈이 아니라도 텐트라도 보내주시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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