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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목받은 하객들

    헌법재판소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진행하는 가운데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국회 소추위원측과 노 대통령 대리인 등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이 생겨 주목을 받았다. 지난 3일 낮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는 헌재 재판관을 지낸 한대현 변호사의 아들 결혼식이 열렸다.한 변호사는 이 전 총재의 손아래 처남.이 자리에는 신랑의 고모부인 이 전 총재를 비롯해 윤영철 헌재소장과 8명의 재판관,노 대통령 대리인단의 이용훈 변호사(전 대법관),소추위원측의 김용균 한나라당 의원 등 모두 200여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군데군데 모여 담소를 나눴으나 주위 이목을 의식한 듯 헌재 심판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며 특히 예식 전에 하객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눈 이 전 총재는 식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자리를 떴다.한 변호사는 1997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헌재 재판관을 지냈다. 박경호기자 kh4right@˝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7)그리운 사람 그리운 이름,문익점(下)

    낯선 이국땅에서의 유배생활은 가을이 세 번 지나도록 계속되었다.유난히도 길게 느껴지는 유배생활 중에 선생이 가장 고통스러워한 것은 고향에 계신 어버이를 섬기는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평소 선생은 잠깐동안이라도 어버이 곁을 떠나지 않고 살피며 모셨다.관직에 있을 때에도 일년 동안에 휴가를 두 번 갈 수 없음을 걱정하여 관직에 임명된 지 닷새도 못 되어 직임을 그만둔 적도 있었다.어버이를 모시기 위해서였다. 이렇듯 선생이 유배지에서 다만 충절 때문에 고초를 겪고 있을 때 원나라 순제는 거듭되는 기황후의 애원을 뿌리치지 못하고 고려 침공이라는 뜻밖의 결정을 내렸다.상국(上國)인 원나라를 배반하고 반역을 행한 고려 공민왕을 폐함과 동시에 응징하면서 덕흥군을 고려의 새로운 왕으로 옹립한다는 명분이었다.이같은 명분을 받들어 실행하는 총 책임을 진 것은 고려의 반역자인 최유였다.최유는 기황후와 음모하여 공민왕을 폐한 다음 덕흥군이 고려의 왕이 되면 막강한 권세를 장악하여 고려를 기황후와 함께 지배하기로 한 뒤였다. ●고려와 첫 싸움서 처참히 무너진 원나라 원나라 군사 1만명을 얻어 고려 침공에 나선 최유는 일단 요동 반도까지 순조로운 진군을 했다.그런 기세대로 간다면 고려로부터 항복받는 일은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침공을 시작한 이듬해인 1364년 1월 최유가 지휘하는 원나라 군사는 의주를 점령한 다음 계속 남쪽으로 공격해 들어왔다.거칠 것 없는 기세였다.그러나 정주 달천에 이르렀을 때 최영,이성계가 이끄는 고려군의 저항에 부딪쳤다.고려의 상징적인 두 장군 최영과 이성계는 최유의 인간됨은 물론 그의 지휘를 받는 원나라 군사의 전술과 기백을 잘 알고 있었다. 첫 번째 접전에서 최유의 원나라 군대는 처참하게 붕괴되었다.재기 불능 상태에 빠진 최유는 살아남은 원나라 장군들의 호위를 받아 간신히 목숨을 건져 원나라로 되돌아 갔다.원나라 순제는 패전하여 돌아온 장수들로부터 최유의 작전 실패와,고려 공민왕이 원나라에 반역했다는 말이 거짓이었음을 전해듣고 크게 분노했다.작전실패에 따른 문책을 엄하게 하려 했으나 기황후가 다시 애원하는 바람에 비교적 가벼운 형별에 처해졌다.이때 고려에서는 최유를 고려로 송환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순제는 자신의 오해를 미안하게 여겨 고려의 요청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최유의 등창이 심하여 나을 때까지만이라도 송환을 보류해달라는 기황후의 말에 따라 송환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되었다. 최유의 이같은 사건으로 하여 운남성 교주국에 유배되어 있던 문익점 선생에 대한 순제의 오해도 풀어질 수 있었다.선생이 유배에서 풀려나 원나라 수도 연경으로 돌아오는 만리길은 광활한 황무지와 비옥한 땅이 끝없이 펼쳐진 대지 위로 나 있었다. ●우연히 발견한 연둣빛 열매의 목화 귀로에서 선생은 피곤을 달래기 위해 며칠씩 머물기도 했다.강남(江南) 땅 어느곳을 지날 때였다.강줄기를 따라 드넓게 펼쳐진 비옥한 땅에서 처음 보는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이랑을 지어 심은 것으로 봐서 관상용 화초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그런가하면 꽃이 진 가지에는 큰 골무만한 연두색 열매가 매달려 있기도 했다.선생은 그 낯선 꽃이 피어있는 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는 노파한테 그 꽃이 피어 있는 나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목화(木花)라는 식물이라 대답했다.그 식물로 뭘 하느냐는 물음에 노파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가리켰다.촉감은 부드럽고 따뜻하며 땀을 잘 흡수하는데다 가볍고 질기다는 설명을 곁들였다.그제야 선생은 유배생활 중에 보고 느꼈던 의아스러운 점들이 이해되었다.중국인들이 즐겨 입는 옷들은 대부분 그 노파가 입고 있는 옷감과 닮은 것이었다.목화꽃이 지고 난 자리에 주렁주렁 달리는 열매가 다래였고,그 다래가 익으면 네 곳으로 터지면서 눈처럼 흰 솜이 그 안에서 부풀어 오르고,햇볕을 잘 받아 익으면 솜을 빼내어 옷감을 만든다고 했다. 선생은 그 목화라는 식물을 고려로 가져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를 곰곰 생각하기 시작했다.그 당시 원나라에서는 인도로부터 목화 종자를 들여와 대대적으로 재배하여 중국인과 북방 민족들의 의류혁명을 완성해가고 있는 중이었다.목화는 고온다습한 기후를 좋아하며 다래가 익어 터진 뒤에는 청명한 날씨가 많을수록 좋은 품질의 솜을 얻을 수 있었다. 선생은 고려의 백성들을 떠올렸다.추위를 막아줄 수 있는 옷감이 많지 않은 탓에 겨울만 되면 지옥 같은 나날을 살면서 얼어죽지 않기 위해 절규하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겨울철에도 삼베옷밖에 입지 못하는 서민들의 처량한 몰골이 선생의 눈시울을 적셨다.고려에도 부자나 귀족들은 명주옷을 겹으로 입으면 얼마만큼 추위를 막을 수 있었지만,삼베와 칡껍질로 엮은 옷으로는 아무리 겹쳐 입어도 추위 앞에서는 견디지 못했다.추운 계절에 먼 길을 떠나야만 하는 서민들은 거적대기를 뒤집어쓰거나 가마니를 뜯어 아랫도리를 가리고 다녔다.그러나 추위가 심한 날엔 백리 길을 가도 사람 그림자 구경하기 어려웠고 겨울철 내내 방안에만 틀어박혀 봄 오기만을 기다렸다. 입성의 초라함과 옷감 부족은 비단 겨울뿐만이 아니었다.여름철에도 아예 윗몸을 통째로 드러내 놓고 사는 서민들이 많았다.무더위 때문이 아니라 입을 옷이 없기 때문이다.그런 몰골로도 나라가 필요로 하는 온갖 부역과 부담을 온 몸으로 떠받쳤다. ●목화씨를 고려에 가지고 갈수만 있다면 목화씨를 고려로 가져가고 싶었다.노파에게 씨를 좀 줄 수 있느냐고 묻자 노파는 선생을 의심쩍게 훑어 보았다.그동안 이것저것 물었던 일과 연관을 지으면서 선생의 정체를 수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선생은 영문을 몰랐다. 잠시 뒤 그 지방 관헌이 선생을 찾아왔다.짐을 뒤지고 온 몸을 수색했다.그 까닭을 묻자 관현이 말했다.목화는 원나라의 귀중한 보물이기 때문에 외국인은 그누구도 목화 종자를 가져갈 수 없다는 황제의 칙명이 내려져 있다고 했다.그제야 선생은 목화가 얼마나 소중한 재산인지 짐작이 갔다.한 국가에서 국민이 입는 옷은 먹는 식량과 함께 가장 중요한 근본의 하나였다. 추위와 더위를 막을 수 있는 옷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는 왕이나 국가의 치세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 백성이다.백성은 무슨 이상향이나 신기루 같은 세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견딜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식과 옷,집과 이웃의 평화가 있다면 왕과 국가를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삶을 산다.그렇다면 이제껏 고려의 백성들이 겪어온 헐벗음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뒤늦게야 깨우치며 선생은 눈물지었다.추위를 막아줄 옷도 제대로 마련할 수 없는 나라에서 끊임없는 부역과 무거운 세금에 짓눌리면서도 묵묵히 견뎌온 백성들이야말로 진정한 고려의 주인이라는 깨달음에 눈을 떴다. 그 유배길이 아니었다면 깨달을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생각이었다.선생은 기어코 목화씨를 고려로 가져오리라 결심했다.원나라가 엄중하게 지키는 최고의 국가 기밀이자 재산이기도 한 목화 종자를 숨겨오다 들키게 되면 처형된다는 것도 알았다.옷을 발가벗기고,벗은 옷을 뒤집어서 털고,상투머리를 풀어 머리카락 속까지 뒤졌다.그러니 여행자들의 짐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선생은 우여곡절 끝에 목화씨 열 알을 손에 넣었다.궁리 끝에 숨겨갈 만한 자리를 생각해냈다.붓을 이용하자는 것이었다.먼저 털로 된 붓을 뽑아내고 붓대롱 속에다 목화씨를 숨겼다.그런데 국경 검문소에도 붓통까지 검사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고려로 갖고 들어온 목화씨는 선생의 장인 정천익과의 공동 실험을 거쳐 마침내 이 땅에 의류혁명을 일으키게 되었고,선생의 큰 은혜로 하여 추위에 얼어 죽는 사람이 사라지게 되었으니 선생이야말로 진정한 이 땅의 구세주라 부를만 하지 않은가. 개인의 불행과 고통을 정치적 출세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땅의 숱한 정치꾼들이야말로 문익점 선생의 삶 앞에서 참회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7)그리운 사람 그리운 이름,문익점(下)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7)그리운 사람 그리운 이름,문익점(下)

    낯선 이국땅에서의 유배생활은 가을이 세 번 지나도록 계속되었다.유난히도 길게 느껴지는 유배생활 중에 선생이 가장 고통스러워한 것은 고향에 계신 어버이를 섬기는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평소 선생은 잠깐동안이라도 어버이 곁을 떠나지 않고 살피며 모셨다.관직에 있을 때에도 일년 동안에 휴가를 두 번 갈 수 없음을 걱정하여 관직에 임명된 지 닷새도 못 되어 직임을 그만둔 적도 있었다.어버이를 모시기 위해서였다. 이렇듯 선생이 유배지에서 다만 충절 때문에 고초를 겪고 있을 때 원나라 순제는 거듭되는 기황후의 애원을 뿌리치지 못하고 고려 침공이라는 뜻밖의 결정을 내렸다.상국(上國)인 원나라를 배반하고 반역을 행한 고려 공민왕을 폐함과 동시에 응징하면서 덕흥군을 고려의 새로운 왕으로 옹립한다는 명분이었다.이같은 명분을 받들어 실행하는 총 책임을 진 것은 고려의 반역자인 최유였다.최유는 기황후와 음모하여 공민왕을 폐한 다음 덕흥군이 고려의 왕이 되면 막강한 권세를 장악하여 고려를 기황후와 함께 지배하기로 한 뒤였다. ●고려와 첫 싸움서 처참히 무너진 원나라 원나라 군사 1만명을 얻어 고려 침공에 나선 최유는 일단 요동 반도까지 순조로운 진군을 했다.그런 기세대로 간다면 고려로부터 항복받는 일은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침공을 시작한 이듬해인 1364년 1월 최유가 지휘하는 원나라 군사는 의주를 점령한 다음 계속 남쪽으로 공격해 들어왔다.거칠 것 없는 기세였다.그러나 정주 달천에 이르렀을 때 최영,이성계가 이끄는 고려군의 저항에 부딪쳤다.고려의 상징적인 두 장군 최영과 이성계는 최유의 인간됨은 물론 그의 지휘를 받는 원나라 군사의 전술과 기백을 잘 알고 있었다. 첫 번째 접전에서 최유의 원나라 군대는 처참하게 붕괴되었다.재기 불능 상태에 빠진 최유는 살아남은 원나라 장군들의 호위를 받아 간신히 목숨을 건져 원나라로 되돌아 갔다.원나라 순제는 패전하여 돌아온 장수들로부터 최유의 작전 실패와,고려 공민왕이 원나라에 반역했다는 말이 거짓이었음을 전해듣고 크게 분노했다.작전실패에 따른 문책을 엄하게 하려 했으나 기황후가 다시 애원하는 바람에 비교적 가벼운 형별에 처해졌다.이때 고려에서는 최유를 고려로 송환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순제는 자신의 오해를 미안하게 여겨 고려의 요청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최유의 등창이 심하여 나을 때까지만이라도 송환을 보류해달라는 기황후의 말에 따라 송환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되었다. 최유의 이같은 사건으로 하여 운남성 교주국에 유배되어 있던 문익점 선생에 대한 순제의 오해도 풀어질 수 있었다.선생이 유배에서 풀려나 원나라 수도 연경으로 돌아오는 만리길은 광활한 황무지와 비옥한 땅이 끝없이 펼쳐진 대지 위로 나 있었다. ●우연히 발견한 연둣빛 열매의 목화 귀로에서 선생은 피곤을 달래기 위해 며칠씩 머물기도 했다.강남(江南) 땅 어느곳을 지날 때였다.강줄기를 따라 드넓게 펼쳐진 비옥한 땅에서 처음 보는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이랑을 지어 심은 것으로 봐서 관상용 화초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그런가하면 꽃이 진 가지에는 큰 골무만한 연두색 열매가 매달려 있기도 했다.선생은 그 낯선 꽃이 피어있는 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는 노파한테 그 꽃이 피어 있는 나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목화(木花)라는 식물이라 대답했다.그 식물로 뭘 하느냐는 물음에 노파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가리켰다.촉감은 부드럽고 따뜻하며 땀을 잘 흡수하는데다 가볍고 질기다는 설명을 곁들였다.그제야 선생은 유배생활 중에 보고 느꼈던 의아스러운 점들이 이해되었다.중국인들이 즐겨 입는 옷들은 대부분 그 노파가 입고 있는 옷감과 닮은 것이었다.목화꽃이 지고 난 자리에 주렁주렁 달리는 열매가 다래였고,그 다래가 익으면 네 곳으로 터지면서 눈처럼 흰 솜이 그 안에서 부풀어 오르고,햇볕을 잘 받아 익으면 솜을 빼내어 옷감을 만든다고 했다. 선생은 그 목화라는 식물을 고려로 가져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를 곰곰 생각하기 시작했다.그 당시 원나라에서는 인도로부터 목화 종자를 들여와 대대적으로 재배하여 중국인과 북방 민족들의 의류혁명을 완성해가고 있는 중이었다.목화는 고온다습한 기후를 좋아하며 다래가 익어 터진 뒤에는 청명한 날씨가 많을수록 좋은 품질의 솜을 얻을 수 있었다. 선생은 고려의 백성들을 떠올렸다.추위를 막아줄 수 있는 옷감이 많지 않은 탓에 겨울만 되면 지옥 같은 나날을 살면서 얼어죽지 않기 위해 절규하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겨울철에도 삼베옷밖에 입지 못하는 서민들의 처량한 몰골이 선생의 눈시울을 적셨다.고려에도 부자나 귀족들은 명주옷을 겹으로 입으면 얼마만큼 추위를 막을 수 있었지만,삼베와 칡껍질로 엮은 옷으로는 아무리 겹쳐 입어도 추위 앞에서는 견디지 못했다.추운 계절에 먼 길을 떠나야만 하는 서민들은 거적대기를 뒤집어쓰거나 가마니를 뜯어 아랫도리를 가리고 다녔다.그러나 추위가 심한 날엔 백리 길을 가도 사람 그림자 구경하기 어려웠고 겨울철 내내 방안에만 틀어박혀 봄 오기만을 기다렸다. 입성의 초라함과 옷감 부족은 비단 겨울뿐만이 아니었다.여름철에도 아예 윗몸을 통째로 드러내 놓고 사는 서민들이 많았다.무더위 때문이 아니라 입을 옷이 없기 때문이다.그런 몰골로도 나라가 필요로 하는 온갖 부역과 부담을 온 몸으로 떠받쳤다. ●목화씨를 고려에 가지고 갈수만 있다면 목화씨를 고려로 가져가고 싶었다.노파에게 씨를 좀 줄 수 있느냐고 묻자 노파는 선생을 의심쩍게 훑어 보았다.그동안 이것저것 물었던 일과 연관을 지으면서 선생의 정체를 수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선생은 영문을 몰랐다. 잠시 뒤 그 지방 관헌이 선생을 찾아왔다.짐을 뒤지고 온 몸을 수색했다.그 까닭을 묻자 관현이 말했다.목화는 원나라의 귀중한 보물이기 때문에 외국인은 그누구도 목화 종자를 가져갈 수 없다는 황제의 칙명이 내려져 있다고 했다.그제야 선생은 목화가 얼마나 소중한 재산인지 짐작이 갔다.한 국가에서 국민이 입는 옷은 먹는 식량과 함께 가장 중요한 근본의 하나였다. 추위와 더위를 막을 수 있는 옷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는 왕이나 국가의 치세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 백성이다.백성은 무슨 이상향이나 신기루 같은 세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견딜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식과 옷,집과 이웃의 평화가 있다면 왕과 국가를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삶을 산다.그렇다면 이제껏 고려의 백성들이 겪어온 헐벗음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뒤늦게야 깨우치며 선생은 눈물지었다.추위를 막아줄 옷도 제대로 마련할 수 없는 나라에서 끊임없는 부역과 무거운 세금에 짓눌리면서도 묵묵히 견뎌온 백성들이야말로 진정한 고려의 주인이라는 깨달음에 눈을 떴다. 그 유배길이 아니었다면 깨달을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생각이었다.선생은 기어코 목화씨를 고려로 가져오리라 결심했다.원나라가 엄중하게 지키는 최고의 국가 기밀이자 재산이기도 한 목화 종자를 숨겨오다 들키게 되면 처형된다는 것도 알았다.옷을 발가벗기고,벗은 옷을 뒤집어서 털고,상투머리를 풀어 머리카락 속까지 뒤졌다.그러니 여행자들의 짐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선생은 우여곡절 끝에 목화씨 열 알을 손에 넣었다.궁리 끝에 숨겨갈 만한 자리를 생각해냈다.붓을 이용하자는 것이었다.먼저 털로 된 붓을 뽑아내고 붓대롱 속에다 목화씨를 숨겼다.그런데 국경 검문소에도 붓통까지 검사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고려로 갖고 들어온 목화씨는 선생의 장인 정천익과의 공동 실험을 거쳐 마침내 이 땅에 의류혁명을 일으키게 되었고,선생의 큰 은혜로 하여 추위에 얼어 죽는 사람이 사라지게 되었으니 선생이야말로 진정한 이 땅의 구세주라 부를만 하지 않은가. 개인의 불행과 고통을 정치적 출세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땅의 숱한 정치꾼들이야말로 문익점 선생의 삶 앞에서 참회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 ‘盧탄핵심판’ 9일 3차 변론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재판장 윤영철 헌재소장)는 2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2차 공개변론을 열고 탄핵소추 사유의 본안심리를 진행했다. 재판부는 3차 변론을 오는 9일 열고 노 대통령의 신문여부와 국회 소추위원측이 내놓은 증거조사 신청에 대한 채택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소추위원측은 이날 변론에서 노 대통령 신문 신청과 유지담 중앙선거관리위원장과 노 대통령 측근 등 29명에 대한 증인신청을 냈다.또 최도술·안희정·문병욱씨 등 측근비리 관계자들의 수사·재판기록과 대통령의 각종 기자회견 방송보도에 대한 검증을 신청했다.반면 노 대통령 대리인단은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하면서 충분한 증거와 사실 조사를 방기하고 법정에서 증거조사를 실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양측은 이밖에도 ▲변론기일 연기 문제 ▲탄핵소추 의결과정의 적법절차 여부 ▲세 가지 탄핵소추 사유의 타당성 등을 놓고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였다.변론에는 대통령과 소추위원측에서 각각 12명의 대리인들이 출석했으며,헌재 1층 심판정은 청와대·국회·법무부 등 관련기관 관계자와 취재진,일반인들로 가득 찼다. 구혜영 박경호기자 koohy@˝
  • 헌재 2차변론 안팎-“盧 하야해야”“불법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2차 변론에서 노 대통령측과 소추위원측 대리인단은 탄핵소추 의결 절차상의 문제와 선거법 위반 여부 등이 탄핵사유가 되는지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노 대통령 대리인단은 “국회가 탄핵소추 의결과정에서 국회법에 정해진 절차를 따르지 않았으므로 탄핵안은 각하돼야 하고 소추사유 역시 탄핵사유로 미흡하다.”고 주장했다.그러나 소추위원측은 “탄핵안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통과된 만큼 하자가 없고 탄핵소추 사유 역시 정당하다.”고 맞섰다. ●치열한 공방전 소추위원측은 대통령 측근들에 대한 검찰 수사내용을 언급하면서 “노 대통령도 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대통령으로서의 도덕성을 잃은 만큼 하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반면 노 대통령 대리인단은 “소추위원측이 주장하는 탄핵사유는 대부분 대통령 직무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거나 측근들의 행위에 해당하므로 탄핵사유가 될 수 없다.”고 맞섰다. 선거법 위반과 관련,소추위원측은 “노 대통령은 수많은 자리에서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를 공공연히 호소,선거법을 위반했으며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통보를 받고도 이를 무시했다.”고 주장했다.이에 대해 노 대통령 대리인단측은 “대부분 계획적이라고 할 수 없는 발언이므로 불법 선거운동이 될 수 없다.”면서 “대통령은 선출직 공무원이지 직업 공무원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요지만 말해달라”,“충분히 변론해야” 소추위원측은 의견을 개진할 때 헌재에 제출한 65쪽 분량의 의견서를 그대로 읽어내려가 노 대통령 대리인단과 신경전을 빚었다.문재인 전 수석은 “의견서를 그대로 읽는 수준으로 변론에 임하는 것은 변론기일 연기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필리버스터(고의적 의사진행 방해)”라고 꼬집었다. 재판이 끝난 뒤 문 전 수석은 “다음 변론기일도 적당하고 재판결과에 만족한다.”면서도 “소추위원측이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하고 수많은 증인을 신청한 것은 소추 자체에 자신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소추위원측의 손범규 변호사는 “변론을 생방송했다면 소추를 잘했다는 의견이 70%가 넘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구혜영 박경호기자 koohy@˝
  • 유지담 선관위장등 29명 증인 신청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심판 사건의 2차 공개변론이 2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다. 국회 소추위원측은 김기춘 법사위원장이 출석하지 않음에 따라 정기승 전 대법관을 소추위원 대리인으로 선임했다.또 출석하지 않을 것이 확실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신문 신청을 하고 탄핵소추 사유에 관련된 증거자료와 1차 증인으로 29명을 채택했다. 소추위원측은 선거법 위반의 경우 유지담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 관계자 3명,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자 노 대통령 변호인단 간사대리,‘노사모’의 박시영 전 사무국장,구속된 이재정 열린우리당 의원 등 의원 3명,명계남·문성근씨 등을 증인으로 신청했다.소추위원측은 측근비리에서 노 대통령의 형인 건평씨와 측근인 최도술·안희정·이광재·여택수씨,썬앤문 문병욱·김성래씨가 포함된 것을 비롯,선봉술·강금원·이기명씨 등도 대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경제파탄 부분에서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경영자총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등 주요 경제단체에 광범위한 사실조회를 신청키로 했다. 노 대통령측 대리인단은 2일 변론에서 국회가 탄핵소추 의결과정에서 진행해야 할 일을 법정에서 주장하는 것에 대한 부당성과 추가 증거조사의 부당성 등이 담긴 8쪽 분량의 의견서를 헌재에 냈다. 구혜영 박경호기자 koohy@˝
  • 2차변론 2일 예정대로

    헌법재판소는 31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사건의 2차 공개변론은 2일 예정대로 진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헌재는 지난 30일 소추위원측이 노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2차 공개변론을 연기해 달라는 신청을 냈지만 기일을 변경할 만큼 급박한 사정이 없는 만큼 이를 기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국회 소추위원측과 노 대통령 법정 대리인단은 2차 변론에 앞서 탄핵소추 사유와 절차에 관한 증거조사와 증인신청을 준비 중이다. 소추위원측은 탄핵소추 사유와 관련된 광범위한 증거·증인 신청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대리인단의 한 관계자는 “노사모 회원들이 주최한 ‘Remember1219’행사 관계자들을 포함해 노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과 측근비리에 연루된 20여명을 증인으로 신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또 “경제파탄 부분은 정책의 혼선을 가져온 발언과 정계은퇴 및 선거 연계,재신임 발언 등을 거론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혜영 박경호기자 koohy@˝
  • ‘탄핵심판’ 헌재, 새달2일 2차 공개변론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첫 공개변론이 30일 오후 2시 열렸지만 노 대통령이 불참함에 따라 2차 기일을 다음달 2일로 정하고 15분 만에 끝났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재판장 윤영철 헌재소장)는 이날 변론에서 피청구인인 대통령이 불참하면 다시 변론기일을 지정토록 한 헌법재판소법 규정에 따라 다음달 2일 오후 2시 다시 공개변론을 열기로 했다.헌재는 2차 기일에도 대통령이 나오지 않으면 대통령 대리인만으로 심리를 진행하고 증거조사 신청도 이날 일괄적으로 받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첫 변론후 3일 만에 2차 변론기일을 지정한 것은 사실상 ‘집중심리’ 방식으로 재판을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돼 이르면 4월 말에는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소추위원측은 “소추위원이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4월2일 변론에 참여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며 이날 2차 변론 연기신청서를 헌재에 제출했다.반면 노 대통령 대리인단 간사인 문재인 변호사는 “헌재가 2차 기일을 빨리 지정한 것에 대해 만족한다.”면서 “심리에 대비해 많은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다음 기일에 심리를 진행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날 변론에는 대통령 대리인단측에서 문재인 변호사를 비롯,유현석·한승헌·하경철·이용훈·박시환·김덕현·양삼승·강보현·조대현·이종왕 변호사 등 윤용섭 변호사를 제외한 대리인단 11명이 참석했다.또 소추위원측에서는 김 법사위원장 외에 김용균 한나라당 의원,임광규·한병채·정기승·이진우·민병국·김동철·안동일·하광룡·박준선·손범규·조봉규 변호사 등 12명이 출석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경기 청신호? 통계상 착시?

    30일 발표된 각종 경기지표는 ‘물오른 봄꽃’같아 경제주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그러나 드러난 지표만 믿고 성급하게 외투를 벗어 던졌다가는 꽃샘추위에 낭패보기 십상이다. ●통계착시 제거하면 소비·투자 여전히 마이너스 생산·소비·투자가 2월에 일제히 상승세로 돌아선 것은 전적으로 ‘수출의 힘’이다.40%가 넘는 경이적 수출 증가율이 생산 출하량을 늘리고,기업들의 설비투자를 끌어냈다.재고 증가율(5.0%)도 1월보다는 늘었지만 10% 안팎을 오가던 지난해 중반과 비교하면 크게 부담이 줄었다.설 효과도 톡톡히 봤다.지난해 2월에 끼어있던 설이 올해는 1월로 옮겨가는 바람에 올 2월의 조업가능일수가 하루 늘어난 것이다.소비와 생산은 ‘하루’ 차이에도 크게 움직인다. 이렇듯 연초는 ‘설 착시’가 해마다 존재한다.그 때문에 경기동향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1∼2월의 평균수치를 따져봐야 한다.이 경우 생산 증가율은 10.5%로 여전히 높지만,도·소매 판매(-0.1%)와 설비투자(-0.5%)는 마이너스로 떨어진다.각각 1년과 반년만에 증가세로 돌아선 소비와 투자 지표가 통계상의 착시임을 말해주는 대목이다.물론 감소폭이 현저히 꺾인 것은 ‘봄경기’에 대한 설렘을 키워주는 긍정적인 신호다. ●특소세 인하효과·건설경기 연착륙 여부 변수 자동차는 2월에도 지독히 안 팔렸다.내수판매가 21.9%나 줄었다.정부가 전격 단행한 특별소비세 인하조치가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 지 주목된다.자동차 판매가 살아나면 전체 도·소매 판매액과 설비투자도 도미노 상승이 예상된다.건설경기 급락 여부도 변수다.건설공사는 1년 전에 비해 5.4% 증가에 그쳐 올 들어 계속 내리막길이다.지난해 연평균 증가율(18.8%)과 비교하면 급격한 둔화세다. 생산증가율이 3년 6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생산능력 증가율이 제자리 걸음인 것도 경계감을 키우는 부분이다.밀려드는 수출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기업들이 생산라인을 늘리기보다 철야작업과 교대근무로 공장을 쉴 새 없이 돌렸다는 방증인 셈이다.재정경제부 강호인(姜鎬人) 종합정책과장은 “설비투자 압력이 크게 높아져 기업들이 투자를 안 하고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설비투자 압력(생산증가율에서 생산능력증가율을 뺀 수치)은 1월 1.1%포인트에서 2월 12.6%포인트로 급증했다. 통계청 신승우(申昇雨) 산업동향과장은 “수출 호조와 조업일수 증가에 힘입어 지표경기가 개선됐으나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면서 “경기방향이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경기회복 예단 일러 한국개발연구원(KDI) 조동철(曺東徹) 거시경제팀장은 “통계상의 착시 요소를 감안해도 2월 산업생산 증가율은 예상보다 높다.”면서 “경기가 지난해 3·4분기에 바닥을 친 뒤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건설경기가 꺾이고 있고,소비도 전월과 비교하면 여전히 감소세여서 본격적인 경기회복을 기대하기는 이르다.”고 덧붙였다.조 팀장은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인위적인 내수 부양책보다는 지금의 감세(減稅) 정책과 재정의 조기집행을 좀 더 내실있게 이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제안했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吳文碩) 상무도 “수출 호조가 내수로 연결되지 않아 소득과 고용 부진의 악순환 고리가 깨지지 않고 있다.”면서 “지금의 경기국면은 완만한 횡보 단계”라고 평가했다.따라서 “성급하게 추경을 편성하기 보다는 일자리 창출정책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1차변론 법정 스케치

    “2004헌나1호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청구사건을 심의하겠습니다.”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의 개정 선언으로 시작된 헌정사상 첫 탄핵심판 변론에서 기일 지정 문제를 놓고 소추위원측과 노 대통령측 법정대리인단이 처음부터 첨예하게 맞섰다. ●“변론기일 연기를” “신속 결정 다행” 소추위원측의 김기춘 국회 법사위원장은 “국회의원 선거일정을 고려해 당일 출석이 어려우니 기일을 조정해달라.”며 기일 연기를 요청했다. 반면 노 대통령 ‘대리인단’의 하경철 전 헌재재판관은 “이번 사건의 중대성을 고려해 재판부가 심리일정을 조속하게 잡아줘서 고맙다.”며 만족해했다. 노 대통령의 출석을 놓고도 공방을 벌였다.김 위원장이 “노 대통령이 출석하지 않은 것은 헌재의 권위를 무시하고 국민을 무시한 것”이라고 하자 하 변호사는 “탄핵소추할 때는 적법절차도 밟지 않다가 심판에 와서야 심리를 하겠다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고 쏘아붙였다. ●‘세기의 재판’에 쏠린 관심 헌법재판소는 이른 새벽부터 방청권을 받으러 온 시민들과 취재진들로 가득찼다.가장 먼저 온 유광희(34)씨는 “역사에 남을 일이라 직접 보고 싶어서 새벽 6시에 집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강원도 춘천에서 올라온 유연화(73) 할아버지는 “내 생애에 이런 일이 있겠나 싶어 아침 8시 기차를 타고 왔다.”고 했다.청사 주변에 살고 있다고 밝힌 황진수(64)씨는 “탄핵이라는 엄청난 일을 순리대로 처리하려고 해야지 억지로 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생 심윤영(25·여)씨와 김춘식(61)씨는 방청권을 교부받는 자리에서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을 두고 즉석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헌재는 대심판정과 재판관실 등에 대한 보안점검을 하고 도청 방지장치를 설치하는 등 경비와 보안에 만전을 기했다. 구혜영 박경호기자
  • 전국에 약한 황사비

    30일에는 전날 밤부터 전국에 내린 비가 그치면서 오후부터 강풍을 동반한 꽃샘추위가 닥쳐 추워질 전망이다. 이번 비에는 지역별로 약한 황사가 섞여 있어 유의해야 한다고 기상청은 밝혔다.추위는 31일 낮부터 풀리겠다. 기상청은 “남부지역은 30일 오후까지,나머지 지역은 오전까지 비가 내리겠다.”면서 “서울·경기,강원,충청 지역은 5㎜,호남·영남은 5∼20㎜의 강수량을 기록하겠다.”고 밝혔다.기상청은 “황사 비가 예상되므로 외출시 반드시 우산을 챙겨야 한다.”고 당부했다. 기상청은 꽃샘추위로 31일 아침 최저기온이 서울 2도,철원 영하 4도 등 전국이 전날보다 5도 이상 떨어져 영하 4도에서 영상 8도의 분포를 보이겠다고 내다봤다. 기상청 최치영 예보관은 “30일 오후부터 바람이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더 떨어지겠다.”면서 “하지만 31일 낮기온이 서울 11도 등 전국이 11∼16도까지 오르면서 추위가 풀리겠다.”고 전망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
  • ‘천총통 저격’ 전면조사 착수

    총통선거 부정시비로 혼란이 계속돼온 타이완 정국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타이완의 여당인 민진당과 야당인 국민당·친민당 고위관계자들은 29일 밤 전격 회동,▲총통선거 즉각 재검표 ▲천 총통 저격사건에 대한 전문가 조사 ▲경계태세 강화로 인한 군인 및 경찰의 선거권 박탈 여부 등을 조사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천수이볜(陳水扁) 총통과 국민당의 롄잔(連戰) 주석,친민당 쑹추위(宋楚瑜) 주석 등 야당 지도자들이 회동,총통선거 이후 계속된 정치적 위기 해소 방안을 논의한다. ●JFK 저격사건 담당자가 조사 야당의 요청에 따라 천 총통은 법원에 최대 6개월까지 걸릴 것으로 보이는 증언 청취 등의 사전절차를 건너뛰고 곧바로 재검표를 하도록 요청하겠다고 밝혔다.천 총통은 그 대신 야당이 반드시 재검표 결과를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타이완 여야는 그동안 법원이 재검표를 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인 총통·부총통 파면법 개정을 둘러싸고 소모적인 공방전을 벌여왔다. 여야는 또 총통선거 전날인 19일 밤 발생한 천 총통 저격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미국인 전문가 3명으로 구성된 독립된 조사기구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조사 요원에는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 암살사건을 조사했던 법의학자 시릴 웨치 박사와 O J 심슨 사건을 조사했던 타이완 출신 미국인 헨리 리가 포함돼 있다.이들은 이날 타이완에 입국,조사활동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야당측은 이들이 전문가이긴 하지만 정부의 간섭 없이 독자적인 조사를 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야당측은 선거 전날 밤까지 열세에 있던 천 총통이 총격사건으로 얻은 동정표 때문에 당선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일부에서는 총격사건 자체가 천 총통측이 꾸며낸 자작극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와 함께 타이완 여야는 천 총통 총격사건으로 내려진 비상경계 태세로 얼마나 많은 군인과 경찰이 투표에 참여할 수 없었는가 여부도 조사하기로 했다.야당측은 3만표 미만의 차이로 승부가 결정난 이번 선거에 대부분이 야당 지지자인 군인과 경찰 20만명이 투표를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반면 여당은 기존의 경계 인력을 제외하고 추가로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군인이나 경찰은 극소수라고 맞서 왔다.이와 함께 야당은 30만표가 넘는 무효표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여야간의 이날 합의가 구체화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또 협상과정에서 여야가 저격사건 조사단의 성격 등을 둘러싸고 줄다리기를 하다 보면 또다시 정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그러나 일단 여야간의 대화 물꼬가 트였기 때문에 지난 20일 선거 이후 계속된 타이완의 시위 사태는 다소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AFP통신은 지난 주말만 해도 총통관저 인근에서 35만명이 시위에 참가했지만 29일 오후 시위대 규모는 350명 정도로 줄었다고 전했다. ●타이완 금융시장·관광업계 타격 타이완은 정정불안으로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외국인 관광객 숫자도 크게 줄어들었다.타이완 각 지방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총통선거 투표일인 지난 20일 이후 매일 100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타이완 방문을 취소하고 있다.국가별로는 일본인 관광객이 가장 많아 취소 건수가 하루 십수건에 달하고 있으며 도쿄,오사카의 타이완 관광사무소에는 연일 100건 이상의 문의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도운기자 dawn@seoul.co.kr˝
  • 30일 탄핵심판 첫 변론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첫 공개변론이 30일 오후 2시 헌법재판소에서 심판정에서 열린다.변론에는 노 대통령측에서 유현석 민변 고문과 한승헌 전 감사원장,하경철 전 헌재재판관,이용훈 전 대법관이,소추위원측에서는 김기춘 국회 법사위원장과 김용균 한나라당 의원,임광규 변호사,한병채 전 헌법재판관 등 양쪽에서 4명씩 법정 대리인으로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소추위원측과 노 대통령측 법정 대리인단은 이날 회의를 열어 변론 쟁점을 점검했다.그러나 노 대통령이 출석하지 않을 것이 확실해 변론은 출석 여부를 확인하고 다음 변론기일을 정하는 간단한 절차만 거치고 끝나게 된다.헌재측은 시민들의 방청을 위해 56석의 좌석을 마련하고 30일 오전 9시부터 선착순으로 방청권을 배부키로 했다. 한편 국회 법사위측 대리인단은 탄핵소추 사유의 정당성과 탄핵제도의 본질 등이 담긴 의견서를 29일 오후 헌재에 냈다.이들은 의견서에서 제헌국회 속기록과 해외사례를 들어 헌법상 ‘중대한’ 위반행위일 때만 탄핵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면서 직무태만과 부도덕,정치적 무능력 등도 탄핵사유에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또 측근비리와 관련,대통령 취임전인 선거운동 기간의 불법자금 수수도 직무집행과 관련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혜영 정은주기자 koohy@˝
  • 타이완 정국 고비 넘기나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지난 20일 총통선거 이후 선거 결과를 둘러싸고 파국을 향해 치닫던 타이완 정국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은 야당측의 즉각적인 재검표와 피격사건 의혹 조사 요구를 수용했고,야당연합 롄잔(連戰) 국민당 주석은 천 총통의 제의를 받아들여 회담을 갖기로 했다. 타이완 야당연합은 롄 주석이 재검표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29일 회담을 갖자는 천 총통의 제의를 받아들여 시간과 장소 등을 조율하고 있다고 28일 밝혔다.야당측은 회담 전과정이 언론에 완전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양측은 재검표 장소와 판사 참석여부,유·무효표 판정 방법 등을 논의할 전망이다. 천 총통이 야당측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27일 오후.총통부 앞 광장에서 야당측이 50만명을 동원해 시위를 한 직후였다.그는 이날 “중앙선거위원회 당선자 공포로 롄 후보가 선거 및 당선 무효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된 만큼 소송만 제기한다면 관련 법 개정없이 즉각 재검표를 하겠다는 동의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29일 조건없이 롄 주석과 러닝메이트인 쑹추위(宋楚瑜) 친민당 주석을 만나겠다며 적극적 공세도 취했다. ●야당 “회담은 수용,소송은 예정대로” 야당 역시 더 이상 장외투쟁을 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천 총통의 제의를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현지 언론들은 “재검표가 필요하다.”며 야당의 주장을 지지하는 분위기였지만 장외투쟁에 대해선 비판적 시각이었다. 증시폭락 등 경제혼란을 무시하고 무한정 가두 투쟁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야당측은 29일 투표결과 무효와 저격사건 조사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이날 소송을 제기하면 31일 재검표가 가능할 것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타이완 여야는 그동안 총통선거 투표 용지의 재검표를 위한 선거법 개정작업에 착수,총통선거에서 1% 표차로 당락이 엇갈릴 경우 재검표가 이뤄지도록 한다는 데 대해서는 합의했다.하지만 투표에 참여치 못한 군인,경찰 공무원의 재투표 허용 여부와 재검표 시기,재검표를 관장하고 감독할 주체 지정 문제 등을 놓고 이견을 보여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천 총통,‘총풍’ 적극 해명 천 총통은 자신의 저격사건과 관련한 ‘자작극’ 의혹에 대해서 적극적인 해명을 했다.그는 “독립적인 전문 감식반의 진상 조사를 환영하며 야당이 추천한 전문가를 조사반에 합류시키는데 이미 동의했다.”고 강조했다.이어 “롄 후보측이 명사수를 고용해 똑같이 조작할 수 있다면 취임식 전에라도 총통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자작극 주장을 거듭 일축했다. 중국은 천 총통의 재선을 사실로 인정하고 타이완 정국의 조기 정상화를 지지하는 분위기다.중국 국무원 타이완사무판공실 대변인은 지난 26일 “타이완에서 통제 불능의 사회적 혼란과 정치적 불안이 야기될 경우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oilman@seoul.co.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6)그리운 사람 그리운 이름,문익점(上)

    문익점(文益漸,1329-1398).‘원나라에서 목화 종자를 들여와 헐벗고 살던 겨레붙이들에게 옷을 입도록 한 것은 농사를 시작하여 굶주리지 않게 한 후직(后稷)의 잊을 수 없는 은혜와 같다’는 시로 문익점을 찬양한 사람은 남명 조식 선생이다. 문익점은 우리 겨레가 무명옷을 입는 문화를 열고,명주와 모시,삼베옷 밖에 없었던 옛사람들에게 비로소 나라가 무엇이며,학자나 배우는 자는 뭘 하는 사람들이며,가진 이와 지도자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없는 말로 깨닫게 해준 스승이다. ●모진추위에 얼어죽은 사람들이 곳곳에 해마다 가을 추수 무렵이면 이듬해 초봄까지 약 여섯 달 동안은 쌀쌀하고 추운 날이 많다.전체 인구의 8할이 넘는 서민들에게 겨울철은 징역살이보다 무서운 지독한 고통의 날들이었다.추위를 막아줄 옷이 없었기 때문이다.명주베가 있기는 했으나 그 양이 지극히 적은데다 왕실이나 귀족,일정 품계 이상의 직위를 가진자들만 입을 수 있도록 법이 정해져 있어서 서민들은 함부로 명주옷을 입기 어려웠다. 삼베옷과 모시옷은 더위를 막아주는 옷이어서 아무리 여러 겹을 껴입어도 한겨울 추위를 막아주지는 못한다.그래서 겨울철이면 서민들이 사는 마을에는 나다니는 사람이 드물었고,모진 추위가 엄습하고 나면 곳곳에서 얼어죽는 사람들이 뒹굴었다.지옥의 날들이었다.어느 왕도 이 불우한 서민들의 얼어죽는 삶을 구원하지 못했고,어떤 부자,어떤 높은 벼슬아치나 학자도 도울 방법을 찾지 못한 채 그저 얼어죽는 서민들의 참상을 바라볼 뿐이었다.기껏해야 시 구절 몇 자 써서 남겼을 뿐이다.이토록 참혹한 서민들의 얼어 죽는 역사 천여 년 뒤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무명베 옷을 입고 세상과 이웃을 더욱 사랑하며 살도록 해준,또 한 번의 천년 역사를 연 것이 문익점이다. 이 땅의 지도자라는 이들이 한결같이 제 자신의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하고,역사와 민중에게 저지른 과오를 참회하기는 커녕 회피와 궤변으로 더욱 더 자리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가는 요즘,문익점은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이자 그리운 이름으로 되살아난다. ●문익점이 목화 재배 처음 성공해 그리하여 오늘은 문익점이 태어나 살았고,그의 은공을 기리는 도천서원(道川書院),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목화를 시험 재배했던 시배지(始培地)가 있는 경남 산청으로 길을 떠난다. “오늘날은 심심하여 베틀 연장이나 챙겨볼까 베틀다리 사형제는 동서남북 갈라서고 앉을깨는 돋움 놓아 그 위에 앉은 이는 모두 각시 상경하고 말코라고 생긴 것은 구렁이 죽은 넋일는지 뚤뚤 감고 나자빠졌네. 부티 허리 두른 양은 비오고 갤 날 허리 안개 두르듯 자질개 물 준 양은 세우 살살 뿌린듯네 다문다문 주는 최활 북두칠성 주는듯네. 배부른 기러기 알을 안고 옥양강을 드나들고 바디집 깡깡 치는 소리 옥양이라 깨치듯네. 잉앗대는 삼형제요 눌깃대는 독자로다 삼발 났다 저 비경이 삼천군사 거느리고 커다란 대한 길에 하늘하늘 잘도 간다. 용두머리 우는 소리 홀로 가는 외기러기 벗 부르는 소린듯네 쿵절쿵 도투마리 정절쿵 일어남서 배이볕에 듯는 양은 구사월 세단풍 나뭇잎 들는듯네 절로 굽는 저 철귀신 사시춘풍 사시절에 큰애기 발꿈치만 물고 돈다.” 경상도 산청지방에 전해지는,문학적 구성이 매우 뛰어난 베틀노래다.베틀 각 부분 명칭과 기능이 적절한 비유를 통해 잘 드러나 있고,베 짜는 여인과 베틀이 한 몸이 되어 서민들 한의 정서를 절묘한 은유로 노래하고 있다.무명베 올이 곱고 가늘수록 베짜는 어머니의 마음은 지상의 모순된 제도와 속박을 훨훨 벗어나 천상계의 아름다움을 숨쉬며 날아오른다.베틀 위에서 올올이 짜진 무명베는 천상을 향한 꿈이 소리 없이 날개를 저어 무지개를 불러와 색깔이 되고,해와 달,별과 바람과 구름을 데려와 무늬를 새기고 질감을 녹여 넣은 것이다. 무명베는 곧 어머니께서 꾸는 꿈의 몸인 것이다.어머니로 하여금 이같은 베틀노래를 부르면서 설움과 고난도 잊은 채 베를 짜서 부모님과 식구들 옷을 지어 입히고,자식들 혼수도 장만하고,살림 밑천도 마련하는 베틀의 역사를 존재하게 한 것이 문익점 선생이었다. ●서장관으로 뽑혀 원나라 방문 선생이 목화가 재배되고 있던 원나라를 여행하게 된 것은 1363년이었다.1360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세 해 뒤엔 사간원좌정언(司諫院左正言)이 되었는데,이 해에 서장관(書狀官)으로 뽑혀 원나라에 가게 되었다.원나라 방문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역할을 맡은 기록관이다.선생은 윗전인 정사(正使),부사(副使)를 수행하는 지위였다. 선생 일행이 원나라 연경(燕京)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그 일의 핵심에는 고려의 왕족이자 충선왕의 셋째 아들로 알려진 덕흥군(德興君)과 원나라 황제인 순제(順帝)의 황후가 된 고려 출신 기황후(寄皇后),고려를 배반하고 원나라로 망명한 최유(崔濡) 등이 도사리고 있었다. 매우 복잡하고 저속한 반역행위의 원인은 덕흥군을 이용하려는 고려 출신 여인이자 변신의 천재였던 기황후에게 있었다.덕흥군은 그를 낳아준 어머니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인물인데,다만 충선왕이 내친 어느 궁녀가 원나라 사람에게 출가하여 낳았다는 설이 있지만 그가 과연 충선왕의 아들인지도 확실치 않다.불우한 몸으로 일찍이 고려에서 승려가 되었으며 1351년 공민왕이 즉위하자 원나라로 도망갔다.공민왕은 그간의 원나라 노예국으로 지내온 고려의 정치적 위상을 고쳐잡기 위하여 1356년 반원개혁(反元改革)을 단행했다. 이 개혁정책은 그때 원나라 순제의 총애를 받으면서 놀랍게도 황후의 자리에까지 오른 기황후의 친정 오라버니이자 고려의 원나라의 속국으로 만들어 가려는 기철(寄轍) 일파를 숙청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기철 일파가 공민왕에 의하여 죽게 되자 기철의 누이 기황후는 공민왕을 원망하면서 보복할 것을 음모했다.이 음모를 도운 자가 원나라로 망명해 있던 최유였다.최유는 고려 공민왕이 불경스럽게도 군사를 일으켜 원나라를 침공하려 한다는 음모를 꾸며서 기황후로 하여금 순제에게 일러바치도록 했다. 기황후와 최유는 미리 공민왕을 제거하기 위한 책략까지 준비한 뒤였다.덕흥군이 비록 충선왕의 아들임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고려 왕족 출신임은 분명하므로 덕흥군을 고려왕으로 삼고 원나라 군사를 이용하여 고려를 정벌하자는 것이었다. 뜻대로 일이 이루어진다면 기황후는 고려를 보다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을 것이고,최유 또한 고려를 손 안에 틀어 쥐고 권력을 맘대로 휘두를 수 있을 터였다. ●기황후 계략에 빠져 유배당해 기황후의 교태에 푹 빠져 살던 순제는 기황후의 말대로 믿었다.즉시 덕흥군을 고려의 왕으로 옹립하여 공민왕을 축출하라는 뜻을 내렸다. 일이 그 지경으로 되어 있을 때 선생 일행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것이다.선생 일행의 인사를 받은 순제는 기황후의 권유대로 선생 일행에게 벼슬을 내리면서 덕흥군을 새로운 왕으로 모실 것을 명령했다. 선생에게는 외부시랑(外部侍郞)이란 높은 벼슬을 내리면서 덕흥군의 신하가 되어 충성하라는 것이었다.선생은 그 자리에서 단호하게 거절했다.자신은 고려의 신하이지 원나라의 신하가 아니며 고려 공민왕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덕흥군을 새로운 고려의 왕으로 옹립하는 데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선생의 충절이 순제의 눈에는 죄가 되는 장면이다.결국 순제는 괘씸죄를 적용하여 선생을 연경에서 남쪽으로 만리나 떨어진 운남성 교주국으로 유배시켜버렸다.지금의 베트남 국경 부근으로 유배를 당한 선생의 심정은 몹시 착잡했다.죽게될지,살아서 고려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6)그리운 사람 그리운 이름,문익점(上)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6)그리운 사람 그리운 이름,문익점(上)

    문익점(文益漸,1329-1398).‘원나라에서 목화 종자를 들여와 헐벗고 살던 겨레붙이들에게 옷을 입도록 한 것은 농사를 시작하여 굶주리지 않게 한 후직(后稷)의 잊을 수 없는 은혜와 같다’는 시로 문익점을 찬양한 사람은 남명 조식 선생이다. 문익점은 우리 겨레가 무명옷을 입는 문화를 열고,명주와 모시,삼베옷 밖에 없었던 옛사람들에게 비로소 나라가 무엇이며,학자나 배우는 자는 뭘 하는 사람들이며,가진 이와 지도자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없는 말로 깨닫게 해준 스승이다. ●모진추위에 얼어죽은 사람들이 곳곳에 해마다 가을 추수 무렵이면 이듬해 초봄까지 약 여섯 달 동안은 쌀쌀하고 추운 날이 많다.전체 인구의 8할이 넘는 서민들에게 겨울철은 징역살이보다 무서운 지독한 고통의 날들이었다.추위를 막아줄 옷이 없었기 때문이다.명주베가 있기는 했으나 그 양이 지극히 적은데다 왕실이나 귀족,일정 품계 이상의 직위를 가진자들만 입을 수 있도록 법이 정해져 있어서 서민들은 함부로 명주옷을 입기 어려웠다. 삼베옷과 모시옷은 더위를 막아주는 옷이어서 아무리 여러 겹을 껴입어도 한겨울 추위를 막아주지는 못한다.그래서 겨울철이면 서민들이 사는 마을에는 나다니는 사람이 드물었고,모진 추위가 엄습하고 나면 곳곳에서 얼어죽는 사람들이 뒹굴었다.지옥의 날들이었다.어느 왕도 이 불우한 서민들의 얼어죽는 삶을 구원하지 못했고,어떤 부자,어떤 높은 벼슬아치나 학자도 도울 방법을 찾지 못한 채 그저 얼어죽는 서민들의 참상을 바라볼 뿐이었다.기껏해야 시 구절 몇 자 써서 남겼을 뿐이다.이토록 참혹한 서민들의 얼어 죽는 역사 천여 년 뒤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무명베 옷을 입고 세상과 이웃을 더욱 사랑하며 살도록 해준,또 한 번의 천년 역사를 연 것이 문익점이다. 이 땅의 지도자라는 이들이 한결같이 제 자신의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하고,역사와 민중에게 저지른 과오를 참회하기는 커녕 회피와 궤변으로 더욱 더 자리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가는 요즘,문익점은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이자 그리운 이름으로 되살아난다. ●문익점이 목화 재배 처음 성공해 그리하여 오늘은 문익점이 태어나 살았고,그의 은공을 기리는 도천서원(道川書院),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목화를 시험 재배했던 시배지(始培地)가 있는 경남 산청으로 길을 떠난다. “오늘날은 심심하여 베틀 연장이나 챙겨볼까 베틀다리 사형제는 동서남북 갈라서고 앉을깨는 돋움 놓아 그 위에 앉은 이는 모두 각시 상경하고 말코라고 생긴 것은 구렁이 죽은 넋일는지 뚤뚤 감고 나자빠졌네. 부티 허리 두른 양은 비오고 갤 날 허리 안개 두르듯 자질개 물 준 양은 세우 살살 뿌린듯네 다문다문 주는 최활 북두칠성 주는듯네. 배부른 기러기 알을 안고 옥양강을 드나들고 바디집 깡깡 치는 소리 옥양이라 깨치듯네. 잉앗대는 삼형제요 눌깃대는 독자로다 삼발 났다 저 비경이 삼천군사 거느리고 커다란 대한 길에 하늘하늘 잘도 간다. 용두머리 우는 소리 홀로 가는 외기러기 벗 부르는 소린듯네 쿵절쿵 도투마리 정절쿵 일어남서 배이볕에 듯는 양은 구사월 세단풍 나뭇잎 들는듯네 절로 굽는 저 철귀신 사시춘풍 사시절에 큰애기 발꿈치만 물고 돈다.” 경상도 산청지방에 전해지는,문학적 구성이 매우 뛰어난 베틀노래다.베틀 각 부분 명칭과 기능이 적절한 비유를 통해 잘 드러나 있고,베 짜는 여인과 베틀이 한 몸이 되어 서민들 한의 정서를 절묘한 은유로 노래하고 있다.무명베 올이 곱고 가늘수록 베짜는 어머니의 마음은 지상의 모순된 제도와 속박을 훨훨 벗어나 천상계의 아름다움을 숨쉬며 날아오른다.베틀 위에서 올올이 짜진 무명베는 천상을 향한 꿈이 소리 없이 날개를 저어 무지개를 불러와 색깔이 되고,해와 달,별과 바람과 구름을 데려와 무늬를 새기고 질감을 녹여 넣은 것이다. 무명베는 곧 어머니께서 꾸는 꿈의 몸인 것이다.어머니로 하여금 이같은 베틀노래를 부르면서 설움과 고난도 잊은 채 베를 짜서 부모님과 식구들 옷을 지어 입히고,자식들 혼수도 장만하고,살림 밑천도 마련하는 베틀의 역사를 존재하게 한 것이 문익점 선생이었다. ●서장관으로 뽑혀 원나라 방문 선생이 목화가 재배되고 있던 원나라를 여행하게 된 것은 1363년이었다.1360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세 해 뒤엔 사간원좌정언(司諫院左正言)이 되었는데,이 해에 서장관(書狀官)으로 뽑혀 원나라에 가게 되었다.원나라 방문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역할을 맡은 기록관이다.선생은 윗전인 정사(正使),부사(副使)를 수행하는 지위였다. 선생 일행이 원나라 연경(燕京)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그 일의 핵심에는 고려의 왕족이자 충선왕의 셋째 아들로 알려진 덕흥군(德興君)과 원나라 황제인 순제(順帝)의 황후가 된 고려 출신 기황후(寄皇后),고려를 배반하고 원나라로 망명한 최유(崔濡) 등이 도사리고 있었다. 매우 복잡하고 저속한 반역행위의 원인은 덕흥군을 이용하려는 고려 출신 여인이자 변신의 천재였던 기황후에게 있었다.덕흥군은 그를 낳아준 어머니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인물인데,다만 충선왕이 내친 어느 궁녀가 원나라 사람에게 출가하여 낳았다는 설이 있지만 그가 과연 충선왕의 아들인지도 확실치 않다.불우한 몸으로 일찍이 고려에서 승려가 되었으며 1351년 공민왕이 즉위하자 원나라로 도망갔다.공민왕은 그간의 원나라 노예국으로 지내온 고려의 정치적 위상을 고쳐잡기 위하여 1356년 반원개혁(反元改革)을 단행했다. 이 개혁정책은 그때 원나라 순제의 총애를 받으면서 놀랍게도 황후의 자리에까지 오른 기황후의 친정 오라버니이자 고려의 원나라의 속국으로 만들어 가려는 기철(寄轍) 일파를 숙청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기철 일파가 공민왕에 의하여 죽게 되자 기철의 누이 기황후는 공민왕을 원망하면서 보복할 것을 음모했다.이 음모를 도운 자가 원나라로 망명해 있던 최유였다.최유는 고려 공민왕이 불경스럽게도 군사를 일으켜 원나라를 침공하려 한다는 음모를 꾸며서 기황후로 하여금 순제에게 일러바치도록 했다. 기황후와 최유는 미리 공민왕을 제거하기 위한 책략까지 준비한 뒤였다.덕흥군이 비록 충선왕의 아들임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고려 왕족 출신임은 분명하므로 덕흥군을 고려왕으로 삼고 원나라 군사를 이용하여 고려를 정벌하자는 것이었다. 뜻대로 일이 이루어진다면 기황후는 고려를 보다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을 것이고,최유 또한 고려를 손 안에 틀어 쥐고 권력을 맘대로 휘두를 수 있을 터였다. ●기황후 계략에 빠져 유배당해 기황후의 교태에 푹 빠져 살던 순제는 기황후의 말대로 믿었다.즉시 덕흥군을 고려의 왕으로 옹립하여 공민왕을 축출하라는 뜻을 내렸다. 일이 그 지경으로 되어 있을 때 선생 일행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것이다.선생 일행의 인사를 받은 순제는 기황후의 권유대로 선생 일행에게 벼슬을 내리면서 덕흥군을 새로운 왕으로 모실 것을 명령했다. 선생에게는 외부시랑(外部侍郞)이란 높은 벼슬을 내리면서 덕흥군의 신하가 되어 충성하라는 것이었다.선생은 그 자리에서 단호하게 거절했다.자신은 고려의 신하이지 원나라의 신하가 아니며 고려 공민왕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덕흥군을 새로운 고려의 왕으로 옹립하는 데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선생의 충절이 순제의 눈에는 죄가 되는 장면이다.결국 순제는 괘씸죄를 적용하여 선생을 연경에서 남쪽으로 만리나 떨어진 운남성 교주국으로 유배시켜버렸다.지금의 베트남 국경 부근으로 유배를 당한 선생의 심정은 몹시 착잡했다.죽게될지,살아서 고려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 소추위원측, 증거조사 신청 검토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추위원측인 국회 법사위 대리인단은 재판과정에서 노 대통령측이 탄핵소추 사유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증거조사 신청을 검토키로 했다고 28일 밝혔다.헌법재판소는 필요하다면 증거조사 신청을 수용할 방침이어서 탄핵사유의 타당성 심리에서 중요한 관건이 될 전망이다.또 심리 기간도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소추위원측 김용균 의원은 이날 “오는 30일 첫 공개변론에서 대통령측이 탄핵사유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증거조사 신청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김 의원은 또 “헌재가 1,2차 변론기일 출석을 요청한 상태라 소추위원측은 세번째 기일부터는 대통령의 출석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헌재측은 필요하다면 소추위원측의 증거조사 신청을 수락한다는 입장이다.주선회 주심재판관은 “재판에서 증거조사 신청이 있으면 받아줘야할 것은 받아준다.”고 말했다. 소추위원측은 탄핵사유 세 가지중 ‘선거법 위반’보다는 ‘측근비리’와 ‘경제파탄’ 부분에 대한 증거조사 신청을 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헌재측의 한 관계자는 “선거법 위반은 사실관계가 뚜렷하지만 나머지 두 가지는 사실 여부에 대해 증거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증거조사란 재판 당사자 간에 주장이 엇갈릴 경우 재판부가 최종 판단에 앞서 사실관계를 확정하기 위해 실시하는 조사이다.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소추 당사자의 수락이나 재판부 직권에 따라 당사자 본인 및 증인에 대한 심문과 각종 사실조회,현장검증 등을 할 수 있다. 측근비리에 대한 증거조사가 수락되면 연루자들이 증인 심문을 받을 수 있고 경제파탄 부분에서 채택된다면 관계기관 사실조회 등 많은 자료가 필요해 재판일정이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한편 소추위원측은 29일쯤 탄핵제도의 본질과 탄핵사유에 대한 50여쪽 분량의 공식 의견서를 헌재측에 제출키로 했다. 구혜영기자 koohy@˝
  • [근대 기상관측 100년] 겨울 한달 짧아지고 봄·여름 길어져

    우리나라에서 근대 기상관측이 이루어진 지난 100년 동안 한반도 기후는 어떻게 변했을까. 1904년 3월25일 목포에서 시작해 기상관측 자료가 80년 이상인 지역을 중심으로 20세기 우리 나라의 기후변화를 살펴본다.관측기간이 80년 이상인 지점은 서울,인천,강릉,대구,전주,목포,부산 등이다. 지구 온난화와 도시화로 지난 2000년까지 우리나라 평균기온은 1.5도 상승,지구 평균 지표면온도 상승 수치인 0.6도를 크게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겨울철 강추위가 몰아닥친 날은 줄어든 반면 여름철 무더운 날의 발생 빈도는 증가했다.하루 최저기온이 18도 이상인 날은 지난 100년 동안 20일 가량 증가한 반면 하루 최고기온이 18도 이하인 날은 15일 정도 줄었다.특히 같은 기간 여름철 열대야 현상도 5일 정도 증가한 반면 하루 최저기온 0도 미만의 서리일은 30일 정도 줄었다. 우리나라의 10년간 평균 강수량은 증가 추세를 보였지만 변동폭이 커 증가 추세가 기온처럼 뚜렷하지는 않았다.하지만 연간 강수일수는 감소한 반면 강수량은 증가해 집중 호우도는 높아진 것으로 분석됐다.하루 강수량이 80㎜ 이상인 호우일수의 경우 1954~1963년에는 연평균 1.6일이던 것이 1994~2003년에는 2.3일로 늘어났다.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 역시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였다.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기관측 지역인 제주도 고산에서 최근 10년간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를 분석한 결과 1991년 357.8에서 2000년 373.6으로 높아졌다. 기후변화와 관련,계절과 생태계에도 뚜렷한 변화가 감지됐다.기온의 상승으로 겨울은 1920년대에 비해 1990년대에 한 달 정도 짧아졌으며,여름과 봄은 길어졌다.겨울이 짧아지면서 봄꽃의 개화시기도 빨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유지혜기자˝
  • 국회 소추위 “노대통령 탄핵심판 출석해야”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과 관련,국회 소추위원측은 헌법재판소에 노 대통령의 신문을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소추위원인 김기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과 소추위원 대리인단은 25일 헌재에 ‘탄핵소추 심리절차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하고 이같이 밝혔다.소추위원측 간사인 김용균 한나라당 의원은 “헌재가 헌법규정에 따라 직권으로 노 대통령의 출석을 요구하길 기대한다.”면서 “소추위원측은 노 대통령에 대한 신문 신청을 재판부에 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헌법재판소법 31조는 “재판부가 사건의 심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증거조사를 위해 당사자의 신청이나 직권으로 당사자 본인을 신문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소추위원측은 의견서에서 “대통령이 법정에서 사실과 의견을 말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의무로서 불출석은 대통령 스스로 소추사실을 시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헌재는 이날 2차 평의를 열고 국회가 제시한 3대 탄핵사유와 소추 의결과정에서의 국회법 위반 여부 등 핵심 쟁점에 대한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갔다. 구혜영기자 koohy@˝
  • 盧, 공개변론 출석 않기로

    노무현 대통령이 오는 30일로 예정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첫 공개변론에 출석하지 않기로 했다.이에 따라 헌재는 변론을 개정한 뒤 노 대통령의 불출석을 확인하고 변론기일을 다시 지정할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헌재의 최종 결정은 총선 전에 내려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 법정 대리인단의 간사인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24일 “대통령이 출석할 경우 소추위원측에서 정치공세를 제기,이번 사안이 정치공방화될 우려가 있다.”면서 “이번 사안은 새로운 사실을 규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헌재의 판단 여부가 관건”이라고 불출석 배경을 설명했다. 한편 법무부와 박관용 국회의장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가결안에 대한 의견서를 이날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법무부가 강금실 법무장관 명의로 낸 100쪽 분량의 의견서는 국회의 탄핵소추가결의 절차적 위헌성과 탄핵소추 사유의 미비성 등을 담고 있다.법무부는 의견서에서 “이번 탄핵소추는 야당의 정치공방적 탄핵발의 선언 등의 논란 끝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서 “탄핵소추 사유의 사실 여부에 대한 조사와 심의,토론과정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법무부는 탄핵소추 사유의 헌법상 요건중 ‘선거법 위반’에 대해 “대통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치인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대통령의 행위와 발언은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선거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거나 중립의무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또 박 의장은 의견서에서 ‘탄핵안 의결 때 질의와 토론을 거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 “국회법상 탄핵소추안을 법사위에 회부하기로 의결하지 않은 경우는 본회의 보고 24시간 이후 72시간 안에 표결하도록 돼 있고,‘인사’ 안건은 질의와 토론없이 의사를 진행하도록 국회법 해설과 국회의사편람에 설명돼 있다.”고 밝혔다. 구혜영 박경호기자 koo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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