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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檢칼날 3대 감사기관 전방위 겨냥

    검찰이 부산저축은행그룹 비리와 관련된 국세청 직원을 체포하면서 3대 감사기관 모두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르게 됐다. 검찰 칼날이 금융감독원, 감사원에 이어 국세청으로까지 향함에 따라,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국가 감사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손질도 불가피해 보인다. 15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김홍일 검사장)는 세무조사 무마 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부산지방국세청 동래세무서 직원 이모씨를 체포하며 부산저축은행 비리와 국세청과의 연관성 수사를 처음으로 표면화했다. 검찰은 이씨가 이 은행 측으로부터 금품을 받고 세무 조사 관련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감사기관 대대적 손질 불가피 검찰의 재계·금융계 수사에서 국세청 직원이 연루된 세무조사 무마 로비는 단골 메뉴였다. 각종 불법 행위로 검찰 수사를 받는 재계·금융계 인사 중 많은 수가 탈세와 비자금 조성 등을 일시적으로 무마하기 위해 국세청 인사들에게 로비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굵직한 사건들마다 국세청 인사들이 연루돼 국세청은 최근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비롯한 전·현직 국세청장이 줄줄이 검찰 수사를 받는 불명예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금품 받고 세무조사 무마 의혹 특히 부산저축은행 역시 매년 국세청 직원에게 명절 선물을 보내<2011년 6월 2일 자 3면> 인맥 관리에 집중한 것으로 드러나 수사 결과가 주목된다. 이 은행의 ‘2009~2011년 설·추석 선물 전달 내역서’에 따르면 이 은행 강성우(60·구속 기소) 감사 등은 매년 설·추석마다 부산지방국세청 조사국 소속 직원에게 곶감 등 선물을 보냈다. 해당 직원은 최근 사직한 것으로 확인됐으나, 평소 이러한 인맥관리가 세무조사 로비 등에서 힘을 발휘했을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검찰이 국세청 현직을 체포하고 수사를 본격화함에 따라 검찰 안팎에서는 국세청 직원들에 대한 추가 소환도 점쳐지고 있다. 이씨가 은행 측으로부터 건네받은 금품이 또 다른 국세청 직원이나 고위직에 흘러 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국세청은 다시 검찰 줄소환의 불명예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조영남 “음악과 우정이 전부이던 시절… 치열하게 살았죠”

    조영남 “음악과 우정이 전부이던 시절… 치열하게 살았죠”

    “기타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우리 딸이 기타 학원을 다니고 있어요. 디지털 시대가 잊어버렸던 아날로그 시대의 정서를 다시 회생시킨 결과가 아니겠는가 생각하죠.” ‘세시봉 열풍’은 지난해 추석 한 방송에서 특집 프로그램을 방송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했다. 1960~70년대 대중가요 팬들의 추억을 상기시킬 뿐 아니라 요즘 유행하는 ‘나는 가수다’ 유의 ‘진짜 음악’에 대한 열정을 환기시키는 촉매 역할을 했다. 가수 조영남(66)씨가 ‘쎄시봉 시대’(민음인 펴냄)를 직접 써서 그 시대 노래의 힘과 지금도 그 힘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배경을 풀어냈다. 책은 맏형인 조씨를 비롯해 이장희(64), 윤형주(64), 송창식(64), 김세환(63), 김민기(60), 윤여정(64) 등 세시봉(음악감상실) 멤버들과 얽혀 지내던 이야기를 담았다. ●“윤여정 얘기 빼면 앙꼬 없는 찐빵” 조씨가 7일 서울 정동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윤형주, 김세환씨도 함께 참석해 그의 얘기를 거들었다. 조씨는 “세시봉 친구들의 음악과 우정, 이 얘기가 책의 전부”라면서 “우리의 삶에서 걸러 나오는 것이 음악이니 우리는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았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다.”고 말문을 뗐다. 그는 “트로트와 팝송밖에 없던 시절이던 당시 대학교 1~2학년이었던 우리는 포크에 자연스럽게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고 포크송에 흠뻑 빠진 그 시절을 회고했다. 이어 “세시봉 음악의 가치를 논하려면 좋든 싫든 우리의 역사를 얘기 안할 수가 없다. 서양 음악을 먼저 노래했다는 점에서는 부끄러운 생각도 있다.”면서도 “팝을 국내로 들여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 중요한 가치가 있고 타이밍이 맞았다. 저와 이장희, 윤형주, 송창식은 번안곡이 기초가 돼 작곡을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비틀스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가장 쓰기 힘들었던 대목으로 전처였던 배우 윤여정 편을 꼽았다. 책에서도 ‘세시봉 이야기에서 윤여정을 빼면 앙꼬 없는 찐빵이 된다.’라고 표현한 그는 “윤여정이 TV 프로그램에 나와 제 얘길 하는 걸 보고 ‘이젠 써도 뭐라 안 하겠구나’ 하고 안도했다. 헤어진 뒤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데 얼마 전 윤여정과 초등학교 동기동창인 이장희가 만났다더라. 그런데 이장희가 미국 가는 바람에 자세히 못 들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세시봉 자격은 공동체적 감성” 이야기를 거듭할수록 조씨가 강조하는 것은 음악이라기보다는, 음악 아래 똘똘 뭉쳐 아무런 대가 없이 나눌 수 있는 우정이었다. 윤씨와 김씨의 ‘증언’ 또한 마찬가지다. 윤씨는 “얼마 전 자살한 후배 가수 채동하가 쓴 글을 보면 ‘세시봉 같은 우정을 닮았으면 좋겠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요즘 연예인들에게도 세시봉 속성이 새롭게 보이는 것 같다.”면서 “그때는 공동체 의식이 중요했다. 세시봉 시대는 내 것이지만 내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도 “누구 한 사람이 곡을 취입하면 서로 기타도 쳐 주고 화음도 넣어 주고 그랬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나눠 주고 그런 것이 당연했다.”고 맞장구쳤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저축은행 로비 파문] 부산저축銀 2009~2011년 선물내역 분석

    [저축은행 로비 파문] 부산저축銀 2009~2011년 선물내역 분석

    박연호(61·구속기소) 부산저축은행그룹 회장이 설·추석 등 명절 때마다 직접 청와대 인사에게 명절 선물을 챙겨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장인환(52) KTB자산운용 대표에게는 박 회장뿐 아니라 구속 기소된 김양(58) 부회장, 강성우(60) 감사까지 매번 선물을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1일 부산저축은행 측이 작성한 ‘2009~2011년 설·추석 선물 내역서’에 따르면 박 회장은 매년 설·추석에 청와대 인사를 포함해 지인 40여명에게 명절 선물을 보냈다. 김 부회장과 강 감사는 각각 70여명에게, 김민영(65·구속기소) 행장도 40여명에게 설·추석 선물을 보냈다. 선물 내역서에는 선물 전달 일자와 받는 사람, 품명, 수량, 담당부서, 접수 확인자 등이 꼼꼼히 기록돼 있다. 여기에는 다른 은행 임원이나 영업부 등에서 보낸 선물 내역도 기록돼 있다. 특히 박 회장이 보낸 선물의 수령인 중에는 청와대 인사 한 명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다른 수령인들과는 달리 이름이 쓰여 있지 않아 의문을 더한다. 박 회장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이 청와대 인사에게 명절 때마다 멸치·쌀 세트 등의 선물을 보냈다. 장 대표에 대한 대우도 각별했다. 장 대표에게는 회장, 부회장, 감사 등 주요 임원들이 모두 나서서 매년 한라봉이나 쌀을 선물로 챙겨 보냈다. 장 대표는 박 회장과 김 부회장의 광주일고 후배로 지난해 6월 자금난에 시달리던 이 은행이 1000억원을 유상증자하는 데 참여했다. 장 대표가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 준 데에는 평소 은행 측의 이러한 인맥 관리 효과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박 회장은 지역 대학 총장 A씨 등 주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선물을 보냈다. 김 부회장은 은행·증권계, 건설사 쪽을 관리했는데 효성도시개발 관계자도 포함돼 있다. 김 부회장은 또 명문대 경영대학장인 B씨, 전남도청 국장인 C씨에게도 선물을 보냈다. 강 감사도 부산지방국세청 소속 D씨, 모 언론사 대표 E씨 등에게 선물을 보냈다. 박 회장 등이 이들에게 보낸 선물은 주로 과일이나 와인, 건어물, 쌀 등 먹거리가 많았다. 이는 통상적인 범위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명절 선물로, 뇌물이나 로비의 대가로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일부에게는 10만~50만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건네 향후 논란이 될 여지가 있다. 또 평소 이렇게 관리된 인맥이 유사시 정·관계 로비 창구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높다. 부산저축은행의 비리를 수사 중인 검찰도 내역서를 입수, 특이사항을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병철·이민영기자 bckang@seoul.co.kr
  • 부산저축銀, 명절마다 차명계좌서 거액 인출… 유력인사들에 11억 뿌렸다

    부산저축銀, 명절마다 차명계좌서 거액 인출… 유력인사들에 11억 뿌렸다

    부산저축은행이 2005년부터 설·추석 명절 때마다 차명계좌에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인출해 제3의 인물들에게 11억여원을 뿌린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도 관련 자료를 분석하며, 금융당국이나 정·관계 등 고위 인사들에게 현금이 흘러들어 갔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현금의 종착지가 파악될 경우 또 다른 정·관계 로비의 뇌관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31일 부산저축은행 측이 작성한 ‘명절전 비용 인출내역’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은 2005년부터 올 설(2월 3일) 때까지 매년 설·추석 전에 거액을 빼내 제3의 인물들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돌렸다. 2005년(설 7530만원, 추석 3500만원), 2006년(설 4839만원, 추석 없음), 2007년(설 4억 1262만 6000원, 추석 8666만원), 2008년(설 2800만원, 추석 1억 5069만 3000원), 2009년(설 7700만원, 추석 900만원), 2010년(설 없음, 추석 1억 8650만원), 2011년(설 5300만원) 등 모두 11억 6216만 9000원을 빼내 외부 인사들에게 건넸다. 부산저축은행은 이들 자금을 부산저축은행 간부들의 친·인척 등의 명의로 개설된 ‘차명계좌’에서 인출했다. 이름을 빌려 준 명의자는 현재 파악된 수만 22명에 달한다. 대통령 선거가 있던 2007년 설에는 가장 많은 금액인 4억여원을 빼냈고, 영업 정지 등 퇴출 저지 로비가 다방면에 걸쳐 이뤄졌던 지난해 추석에는 두 번째로 많은 1억 8000여만원을 인출했다. 김승훈·임주형기자 hunnam@seoul.co.kr
  • 금감원 ‘질문서’ 미리 주고 감사

    금융감독원이 감사원 지시에 따라 부산저축은행그룹 감사를 맡자, 금감원 간부가 미리 감사질문서를 빼돌려 은행 측에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은행 측이 평소 금감원 간부에게 뇌물을 제공하며 관리한 덕분이었다. 30일 이자극(52) 금감원 부국장에 대한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이씨는 2002년 1월쯤부터 이 은행 측에 금감원 검사 방침 등을 빼줬다. 그러던 중 같은 해 10월에는 “금전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1억원을 주면 앞으로도 정보를 주고 검사에서도 배려하겠다.”며 금품을 요구해 1억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는 또 10년 가까이 설·추석 때마다 100만~200만원씩 총 1800만원을 받고, 처조카 명의로 3억 2100만원을 빌리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꾸준히 돈을 받아 챙긴 이씨는 은행 측이 도움을 요청하자 이를 뿌리치지 못했다. 이씨는 감사원이 지난해 2월 예금보험공사와 함께 이 은행에 대한 공동 검사를 실시하라고 지시하자, 감사원에서 내려보낸 감사질문서까지 미리 빼준 것으로 조사됐다. 대외비라고 적시된 이 질문서에는 ‘대손 충당금 적립 부족’, ‘PF대출을 통한 사실상의 투자사업 수행’ 등 이 은행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지적한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김홍일 검사장)는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뇌물 1억 2000만원을 받고 금감원 내부 정보와 감사원 기밀 자료를 빼준 혐의 등으로 이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이외에도 2009년 이 은행 검사 관련 검사반장을 맡아, 은행이 차명으로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워 부동산 건설업을 직접 벌이는 등 위법 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적발하고도 이를 눈 감아준 혐의도 받고 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세대공감 디딤돌 된 ‘세시봉 광풍’

    세대공감 디딤돌 된 ‘세시봉 광풍’

    지난해부터 ‘세시봉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조영남 등 환갑 넘겨 칠순을 바라보는 가수들의 노래에 20~30대까지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허우적댔으니 열풍을 넘어 ‘광풍’ 기미마저 감지된다. 현란한 기계음과 댄스의 뒷전으로 밀려났던, 그러나 다시 살아난, 담백하기 그지없는 ‘목소리 미학의 재발견’이라는 평도 뒤따랐다. 하지만 대중음악 평론가 이영미씨는 세시봉 열풍 속의 또 다른 지점에 주목한다. 바로 세시봉 친구들이 소개된 것이 지난해 추석 특집 방송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올해 설 특집 방송이었다는 사실이다. 1960~70년대 명절만 되면 국악이 단골이었고, 80~90년대에는 트로트에 자리를 내줬는데, 이제 그 흐름이 포크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것은 드디어 포크 취향의 청년문화 세대들이 노인층으로 진입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예견한다. 10~20년 뒤면 서태지의 하여가, H.O.T나 젝스키스 등이 명절 특집방송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노인 세대로 진입했다는 주장에 포크 세대들이 우울해하거나 발끈할 이유는 없다. 이미 확인됐듯 20~30대도 공감할 만큼 폭넓은 음악적 공감대를 확인시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음악적 우월성 운운하며 우쭐해할 것도 없다. 음악의 취향은 여전히 세대와 개인의 상대성을 훨씬 많이 띠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최근 펴낸 ‘세시봉, 서태지와 트로트를 부르다’(이영미 지음, 두리미디어 펴냄)를 통해서다. 예컨대 젊은 세대들에게 유치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트로트도 식민지 신세대들에게는 최신 유행가였음을 밝히며 유장한 세대론을 통해 트로트, 포크, 댄스음악, 록 등에 대해 성찰하고 분석한다. 책은 트로트 음악이 울려 퍼지던 식민지 시대 젊은이들이 가졌던 절망과 불안, 좌절을 이해하도록 조단조단 설명한다. 또한 김민기, 한대수, 송창식, 양희은 등으로 대표되는 1970년대 청년문화 세대가 겪은 사회와의 불화 등을 시대적 맥락 속에서 풀어낸다. 그 다음 세대 또한 대중음악을 중심축으로 설명된다. 세대를 굵직하게 세 단계로 나눠 정치사회적 맥락 속에 문화비평적으로 접근하는 것. 제목 자체가 상징적이며 함축적으로 모든 것을 말한다. 노래방에서 서로 함께 어울릴 수 없었던 세대끼리 문화예술적 화해를 권하는 것이다. 굳이 명절 연휴 기간이 아니라도 서태지 세대 딸이 포크 아빠와 어깨 결고 할아버지를 위해 트로트를 부르는 것이 낯설지 않은 풍경 말이다. 서로서로 고단했다며 위로해 주는 것이 노래다. 1만 15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29회 교정대상 수상자] │자비상│ 여영운 진주교도소

    법명은 도홍. 경남 고성 보광사 주지로 19년째 불교를 통해 수용자 교화에 힘쓰고 있다. 1992년부터 현재까지 수용자 불교집회를 주관, 1만 700여명의 수용자에게 신앙을 통한 교화활동을 전개하고, 1996년에는 결핵 수용자를 위해 병동에 법당을 설치하는 등 질병으로 고통받는 수용자들의 정서 안정에 기여했다. 매년 수용자 체육대회의 상품을 지원하고, 설날과 추석에는 합동차례 제수용품을 후원했다. 생일을 맞은 수용자에게는 다과와 선물도 주고 있다. 이 밖에 비행청소년 선도활동에 앞장서는 등 설법 등을 통한 지역사회 범죄예방에도 기여하고 있다.
  • 중화권 리메이크 무비 천녀유혼·옥보단3D 동시개봉

    중화권 리메이크 무비 천녀유혼·옥보단3D 동시개봉

    1980~90년대는 홍콩 영화의 화양연화(花樣年華)였다. 설·추석이면 미국 할리우드도 청룽(成龍)을 껄끄러워했다. 저우룬파(周潤發)의 ‘영웅본색’(1986) 등 홍콩 누아르가 휩쓸더니 리롄제(李連杰)의 ‘황비홍’(1991) 등 무협물이 극장가를 점령했다. ‘열혈남아’(1987)를 시작으로 ‘아비정전’(1990), ‘중경삼림’(1994) 등 왕자웨이(王家衛) 마니아층도 생겨났다. 이 같은 확고한 분할구도 속에 이질적인 두 편이 눈에 띈다. 변형된 무협물(판타지+무협+멜로) ‘천녀유혼‘(1987)과 코믹 에로영화 ’옥보단’(1995)이다. 무술감독 출신인 청샤오둥(程小東)의 ‘천녀유혼’은 기술적 한계 탓에 특수효과는 엉성했다. 하지만 인간과 귀신의 사랑이라는 참신한 소재에, 청순가련 커플 장궈룽(張國榮)과 왕쭈셴(王祖賢)을 캐스팅해 큰 성공을 거뒀다. 1991년 홍콩에서 개봉된 ‘옥보단’은 4년 뒤 한국 관객과 만난다. 홍콩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위압적인 체구와 빡빡 민 머리, 콧수염을 트레이드마크로 하는 서금강이 펼쳐 보이는 애크로바틱한 정사 장면은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다. 1990년을 전후로 극장가를 정복했던 두 영화의 리메이크 작품이 지난 12일 나란히 개봉했다. 첫 주말 희비는 엇갈렸다. 홍콩과 타이완에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 흥행기록을 뛰어넘었다는 소문 덕인지 ‘옥보단 3D’(오른쪽·5만 8244명)가 ‘천녀유혼’(왼쪽·4만 8218명)을 근소한 차로 앞섰다. 물론 원작의 명성을 감안하면 두 편 모두 기대에 못 미친다. 2011년판 천녀유혼은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을 마음껏 사용했고, 액션도 강력하다. ‘반헬싱’(2004)을 참고한 듯 2011년 천녀유혼 속 퇴마사들은 연속사격이 가능한 석궁으로 귀신들을 손쉽게 죽인다. 1987년판에서 퇴마사 연적하(우마)가 부적과 주문에 의존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러브라인도 손을 봤다. 위샤오췬(영채신)과 류이페이(섭소천) 만으로는 약했는지 구톈러(연적하)를 삼각관계에 끌어들였다. 하지만 제작진은 한 가지를 놓쳤다. ‘신화’로 남은 장궈룽과 30~40대 팬에게 ‘청순가련 종결자’로 각인된 왕쭈셴과 비교하면 2011년의 배우들은 한없이 작아진다는 점. ‘천녀유혼’ 리메이크의 태생적 한계다. 섹스와 코미디의 결합으로 쾌락의 덧없음을 강조했던 유쾌한 원작과 달리 ‘옥보단 3D’는 노골적인 성(性) 묘사로 승부수를 띄운다. ‘3D 에로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극대화한 전략. 하지만 원작의 해학과 재기발랄함은 희석되고 가학적 묘사가 늘어난 탓에 보기가 불편하다. 섹스 중독자 미앙생이 조강지처 옥향에게 순애보적 사랑을 드러내는 결말도 느닷없다. ‘B자 비디오테이프’에 의존했던 1990년대의 ‘옥보단’은 파격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패착이다. 굳이 ‘3D’로 다시 만들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항공요금 편법인상 논란

    국내 항공사들의 고무줄 ‘성수기’ 편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9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항공사들이 슬그머니 성수기를 늘려 사실상 요금 인상 효과를 누리고 있다. 항공사들의 성수기 요금은 비수기에 비해 10% 정도 비싸다. 올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성수기로 정한 날은 1년의 20%가 넘는 총 76일이다. 설 연휴(2월 1~7일), 여름 휴가철(7월 16일~8월 28일), 추석 연휴(9월 10~14일)를 제외하고도 20일 정도를 성수기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아시아나항공의 성수기는 지난해 49일에서 19일이 더 늘어났으며, 대한항공도 지난해 57일에서 19일이 늘어났다. 내년 성수기도 대한항공은 69일, 아시아나항공은 73일로 일찌감치 정해 놨다. 성수기 증가는 곧 요금 인상으로 이어진다. 대한항공의 김포~제주 편도요금은 주말 기본요금(공항이용료, 유류할증료 제외) 기준으로 8만 4400원이지만 성수기에는 9만 2900원으로 10% 오른다. 마일리지를 이용한 보너스 항공권 구입도 성수기에는 평소보다 50% 더 많은 마일리지가 공제된다. 문제는 항공사들의 성수기 결정에 특별한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특히 항공사들은 정부의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국내선과 국제선 항공요금을 조정하면 국토해양부의 신고 또는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성수기를 늘리면 그럴 필요가 없다. 그렇다 보니 정부의 눈길을 피해 요금 인상 수단으로 성수기를 늘리는 것이다. 항공사 관계자는 “평시 좌석이 빈 채 운영하는 항공기가 늘고 적자도 증가하고 있어 이를 만회하기 위해 성수기를 늘렸다.”고 해명했다. 이에 따라 항공사들이 편법 요금 인상을 못하도록 성수기 지정에도 기준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차 한잔 하실까요] 이성 구로구청장

    [차 한잔 하실까요] 이성 구로구청장

    “내가 스페인 바르셀로나 람브라스 거리를 예로 들며 광화문 길 한가운데 광장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성(55) 구로구청장은 3일 이렇게 말하며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광화문광장 사업이 추진됐지만 광장을 교보문고 쪽으로 낼 것인지,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낼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며 이같이 덧붙였다. 행정고시 24회 출신으로 29년간 서울시에서 ‘잘나가던’ 그는 2000년 휴직계를 내고 홀연 세계 일주 배낭여행을 떠났다. 아파트 전세금 9000만원을 털었다. 그는 이미 국장급인 시정개혁단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고시 동기들보다 4년이나 빠른 승진 코스를 밟은 터였다. ●2000년 휴직 가족과 45개국 여행 이 구청장은 세계 일주를 결심한 까닭에 대해 “정상적이지 못한 생활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했다.”고 되뇌었다. 이어 “휴가도 없이 새벽에 별 보고 출근해 자정 넘어 별 보고 퇴근하는 생활을 너무 오래했다.”며 “언젠가는 1년 365일 중 359일 출근했다.”고 덧붙였다. 설날과 추석, 경조사를 제외하곤 매일 출근했다는 것이다. 비행기 출발 직후 아버지가 숨지자 “내가 탄 비행기는 ‘홍콩행’이 아니라 ‘불효행’이었다.”고 털어놓아 주위를 안타깝게 했고, 이듬해 어머니까지 숨을 거두자 여행을 중단할까 고민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격려로 일정을 마칠 수 있었다. “24시간 어딜 가도 늘 가족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전우애와 같은 감정이 생기지요. 처음엔 각자 이기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갈등도 빚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들 사이에 절대로 깨지지 않는 신뢰와 사랑이 꽃핍니다.” 이런 이유로 부인과 중3이던 장남 등 아들 둘에다 처조카까지 데리고 한국을 떠난 그는 스페인에서 렌터카를 도둑맞아 고생하고, 오랜 여행 탓에 너덜너덜해진 여권을 지니고 있다가 싱가포르에서 강제출국을 당하기도 했다. 돈을 아끼느라 여행자숙소를 전전했고, 감자와 밀가루를 구입해 끼니를 때웠단다. 이렇게 45개국 200여개 도시를 돌았다. 이 무렵 얻은 별명이 ‘길 위의 가족’이었다. 하지만 세계 일주가 개인적인 감상만 남겨준 것은 아니다. 도시행정가인 그의 눈에 선진도시의 모습이 잡혔다. 자신이 만들 도시의 그림을 늘 머릿속에 채웠다. 이 구청장은 “가장 좋은 도시는 걷는 게 편한 곳”이라면서 “그런 도시에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는 곳에 돈(투자)이 모인다.”고 말했다. 또 “프랑스 파리 시민의 평균 보행거리가 서울시민의 2.5배다. 거리에 예술이 널렸으며, 보행하는 게 즐겁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부구청장 복귀후 육교철거 ‘파격’ 1년 뒤 싱가포르를 마지막으로 여행을 마친 뒤 귀국, 구로 부구청장으로 일하던 2002년 그는 육교 철거를 단행했다. 서울시 최초였다. 당시만 해도 육교 하나 더 설치해 달라는 게 중요한 민원일 정도여서 가히 파격적이었다. 이 구청장은 “육교는 장애인, 노인 등 보행 약자들이 이용할 수 없는 데다 보행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시설”이라고 강조했다. 2006년 역시 서울시 최초로 장난감 도서관을 만든 것도 선진 도시에서 얻은 영감 덕분이다. 주변에선 이런 이 구청장을 “늘 사물에 대해 진지하고 학구적으로 임하는 자세에서 가문의 이력이 묻어나온다.”고 말한다. 퇴계 이황의 18대 후손인 그의 선친은 한학자 운강 이창섭 선생이다. 서울시 감사관을 끝으로 지난해 지방선거에 도전한 그는 가장 큰 화두인 일자리 창출과 관련, 주민들이 실제로 취업에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폈다. 교육 등에 치우친 그럴듯한 프로그램만 늘어놓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관급공사에 구민이 취업할 수 있도록 시공사와 양해각서(MOU)를 교환했고, 민간 건설업체와도 MOU 교환에 나서 올해만 구민 650명을 취업하도록 이끌었다. 신도림동에 호텔, 백화점 등을 갖출 복합단지 건설회사로부터 완공 후 일자리 500개를 약속받은 게 대표적이다. 이 구청장은 “연내 1800~2000명이 취업에 성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취업자 수를 별도로 특별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기획통으로 불리는 그가 낸 아이디어는 또 있다. 노숙인에게 끼니보다 자활의지를 심는 게 중요하다고 여겨 최근 노숙인 축구단을 창설했다. 타인의 선처에만 기대던 그들은 스스로 회의를 열고 “잘해 보자.”며 의지를 불태웠다. 구로구는 일자리 창출 사업에 노숙인들을 우선 배치해 완전 자활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미 5명을 공공근로에 채용했다. 이 구청장은 “이제 희망의 싹을 틔웠다. 자긍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매우 큰 변화”라며 웃었다. 글 사진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문화마당] 시골은 외로워/공선옥 소설가

    [문화마당] 시골은 외로워/공선옥 소설가

    예전에 내가 어렸을 때는 집집마다 텔레비전이 없는 대신 읍내에 극장이 있어서 이따금 부모님 손잡고 극장 구경을 간 적이 있다. 일명 ‘쇼단’ 혹은 ‘유랑극단’들도 심심찮게 들어왔었다. 그뿐인가. 설이나 추석에는 물론이고 정월 보름, 단오절 같은 때도 ‘어마어마’하게 멋지고 신나게 놀았던 것 같다. 정월 대보름날 밤에 일렁이며 타오르는 달집 주위를 돌며 불빛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농악 삼매에 빠진 우리 아버지들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단오절날 당산마당에서 그네를 타던 색시들의 자태는 또 어떤가. 이맘때, 산천에 꽃사태가 나면 또 우리 어머니들은 한복 곱게 차려입고 장구 둘러메고 화전놀이를 갔었다. 그랬는데, ‘조국 근대화’ 바람이 불어 한집 두집 고향을 떠나는 사람이 늘었고, 그렇게 떠난 사람들 중 장구재비 김씨, 상쇠 이씨 등도 있어, 이제 마을 사람들은 정월 대보름날 가슴 두근거리며 지켜봤던 풍물패들의 그 장관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풍물굿에 깊이 빠져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아버지, 어머니,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달집을 태우고 풍물을 치고 여름이면 당산 옆 시정에서 시조창을 하던 그 ‘정취’들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당산의 숲들은 베어지고 그 자리에 시멘트 창고와 미곡처리장과 축사가 들어섰다. 단옷날 그네를 매달 나무도 없고 그네를 탈 처자들도 없다. 매미소리와 함께 여름 한낮에 유장하게 흐르던 할아버지의 시조창 대신, 마을 앞으로 새로 뚫린 도로를 씽씽 달리는 차 소리만 살벌하게 바람을 가른다. 마을엔 사나운 개들이 사납게 짖어댄다. 닭과 함께 마당을 놀이터 삼아 잘 놀던 강아지들도 이제 우리 안에서 틈만 나면 닭 잡아먹을 궁리를 하는 것같이 눈동자를 굴린다. 마을 안에 이따금, 그리고 자주, 시시때때로, 끊임없이, 개 사요, 염소 사요, 트럭에서 뿜어져 나오는 확성기 소리가 출몰한다. 천지사방에 봄나물이 돋아나도 그 나물을 캐는 ‘가시내’들이 없다. 어쩌다 노인이 허리 구부리고 ‘돈 살’ 궁리로 쑥을 뜯을 뿐이다. 시장에 나오는 냉이와 달래는 자연적으로 돋아난 것이 아닌, 사람이 재배한 것이라 한다. 사람들은 제 힘으로 돋아난 나물이 아닌, 사람이 기른, 무늬만 나물인 나물들을 먹고 힘없다고 또 영양제를 사먹는 데 돈을 쓴다. 시골사람들도 이제는 집 옆에 돋아난 냉이, 달래를 캐 먹지 않는다. 여름도 아닌데 벌써 나온 참외를 사다 먹는다. 숭늉을 끓일 아궁이, 가마솥이 없어진 지금 시골사람들도 식후에 커피를 마신다. 들녘 한가운데로 다방커피를 배달시키고 자장면을 배달시킨다. 시골에도 도시와 똑같이 비닐, 플라스틱 폐기물이 넘친다. 그것들을 시골사람들은 그냥 태운다. 저녁 무렵이면 어디선가 쓰레기 태우는 매캐한 냄새가 난다. 하얀 막걸리통, 농약병, 덮개용 비닐이 한데 불 속에서 녹는다. 시골사람들은 그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플라스틱통에 든 30도짜리 ‘과실주’용 소주를 집집마다 모셔두고 아침, 낮, 저녁으로 마신다. 시골노인들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 힘들어서 마시고, 외로워서 마시고, 속상해서 마시고, 재미없어서 마신다. 유일한 오락거리인 텔레비전을 켜놓고 잠자리에 든다. 마을 안길까지 검은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 있고, 붉은 가로등은 그 검은 아스팔트와 사람들이 잠든 집과 빈집들을 붉게 비춘다. 길 건너 양계장, 혹은 종계장의 불빛은 밤에도 휘황하고 축사에서는 밤에도 라디오 소리가 난다. 사람이 있는 척하려고 그렇게 라디오를 틀어놓는지는 알 수 없다. 시간은 자정 넘어 새로 한시. 시골의 집집마다 방문 너머로 지직거리는 푸른 빛이 명멸한다. 미처 끄지 못한 텔레비전, 차마 끌 수 없는 텔레비전이다. 힘들고 외롭고 속상하고 재미없어서 ‘틀어 놓은’ 텔레비전의 푸른빛 속에 시골은 그렇게 저 혼자 일하고 저 혼자 놀고 저 혼자 잠든다. 시골이 그렇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알아도 모른 척한다.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나라 안 누구도.
  • 어린이날 선물 금융상품 어떨까

    어린이날 선물 금융상품 어떨까

    어린이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선물 고민에 빠진 부모들이 많다. 올해는 자녀에게 재테크 상품을 선물하면 어떨까. 아이에게 용돈 관리 습관을 길러주면서 체험식 경제 교육의 기회도 제공하고 부모는 교육자금을 준비할 수 있는 다양한 금융상품이 나와 있다. 적금, 펀드, 보험 등 유형에 따라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꼼꼼히 비교해 보고 가계 형편에 알맞은 상품을 고르는 게 바람직하다. 어린이 적금은 저축에 대한 관념을 심어줄 수 있는 교육 수단으로 인기가 많다. 신한은행의 ‘틴즈플러스통장’은 만 13~18세 청소년이 가입 대상이다. 체크카드(발급 연령 만 14~18세)도 함께 만들 수 있다. 매달 적금에 5만원 이상 입금하거나 체크카드로 월 5만원 이상 결제하면 신한은행 자동입출금기(ATM)에서 용돈을 찾을 때 수수료가 면제된다. 매월 입출금 내역을 요약해주고 문자메시지로 통장 잔여 금액을 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해 용돈을 관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은행의 ‘아이맘자유적금’은 부모와 18세 미만 자녀가 함께 가입하면 각각 연 0.5% 포인트의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자유적립식 적금상품이다. 주택청약종합저축에 가입하면 연 0.5% 포인트의 금리를 더 얹어준다. 가입금액은 5만원 이상이고 추가 입금은 원 단위로 가능하다. 가입기간은 3~5년이다. 3년제의 금리는 최고 연 4.20%이고 4, 5년제는 각각 연 4.40, 4.60%의 금리를 지급한다. 또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애니스터디의 수강료를 10% 할인해준다. 하나은행의 ‘하나꿈나무적금’은 장래희망과 진학을 희망하는 대학교를 통장에 새기면 우대 금리를 준다. 장래희망을 등록하면 0.2% 포인트, 희망대학 합격 시 2% 포인트, 봉사활동 10시간 이상 증빙 시 0.1% 포인트 등의 금리 혜택을 준다. 3년제 기본금리는 연 3.7%다. 씨티은행의 ‘원더풀산타적금’은 설, 추석, 어린이날, 생일 전후의 용돈 입금액에 대해 연 0.2%의 추가금리를, 1년 동안 매달 빠짐 없이 적금을 부은 어린이에게는 연 0.2%의 보너스금리를 얹어준다. 어린이 펀드는 한번 가입하면 10년 이상 투자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성과가 검증된 펀드를 골라야 한다. 최소 3년 이상의 수익률을 따져 봐야 한다. 자산운용사가 주가 변동과 관계없이 운용 전략에 따라 펀드를 굴리는지 정기적으로 체크하는 편이 좋다. 또 자녀의 교육비와 교육기간을 미리 고려해서 투자 계획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KB자산운용은 기존 어린이 펀드의 이름인 ‘KB캥거루적립식펀드’를 ‘KB온국민자녀사랑펀드’로 바꿨다. 이 펀드는 지수나 경기전망을 배제하고 가치성장주에 장기투자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최근 2년 수익률이 56.13%를 기록하고 있다. 또 어린이 펀드 가입을 장려하는 목적으로 운용보수가 다른 펀드보다 20~30%가량 낮다. 가입 첫해 연간 총보수는 2.00%이지만 5년 후에는 1.63%까지 낮아진다. 신한BNPP의 ‘탑스엄마사랑어린이적립식펀드’는 국내 주식에 60% 이상 투자하면서 장기 수익을 노린다. 최근 3년 수익률이 67.30%, 5년 수익률이 121.09%이다. 삼성자산운용은 ‘삼성착한아이예쁜아이펀드’의 신규가입 고객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삼성 스마트TV와 외식상품권 등을 제공한다. 응모기간은 오는 6월 10일까지다. ‘우리쥬니어네이버적립식펀드’를 운용하는 우리자산운용도 다음 달 1~10일 홈페이지를 통해 응모한 사람을 추첨해 미니화분세트 500개를 증정한다. 어린이 보험의 최근 특징은 보험 기간이 100세까지 늘어났다는 것이다. 자녀의 독립 시점인 20대를 넘어서 중·장년이 될 때까지 충분한 보장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 인기가 많다. 보장 기간이 늘어나면 보험료가 다소 올라간다. 하지만 자녀가 성인이 돼서 암진단비 등 어린이 보험과 동일한 보장을 받으려면 보험료 부담이 더 커지기 때문에 멀리 보면 이득이 될 수 있다. 또 만기환급금에 집착하지 말고 필요한 보장 내역을 골라서 합리적인 보험료를 설계하는 것이 낫다. 자녀 교육비로 목돈이 필요할 때는 보험을 깨지 않는 대신 중도인출제도를 활용해 해지환급금의 80% 정도를 미리 지급받을 수 있다. 현대해상의 ‘굿앤굿어린이CI보험’은 개정을 통해 중증세균성수막염진단, 인슐린의존당뇨병진단 등의 보장을 신설하는 등 어린이CI(치명적인 중병) 보장을 강화했다. 신한생명의 ‘신한아이사랑보험명작’은 고액암, 스쿨존 사고, 유괴납치 등 각종 질병과 재해를 종합 보장하고 당뇨, 고혈압 등 성인 질환까지 보장한다. 교보생명은 업계 최초로 어린이 전용 연금보험인 ‘교보우리아이사랑보험’을 지난 21일 출시했다. 신생아 이름으로 매월 10만원씩 10년간 보험료를 납입하면 연금개시 시점이 60세일 때 적립금이 1억 2580만원에 달한다. 부모가 자녀의 노후자금을 미리 마련해주는 차원의 상품이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중장비 하나없이…히말라야 아이들 꿈을 짓는다.”(전문)

    “중장비 하나없이…히말라야 아이들 꿈을 짓는다.”(전문)

    네팔이 늘 그리운 건 산이 높아서만이 아니다. 깊은 골을 만들고 그 안에 행복한 얼굴의 사람들을 품어서다.  엄청난 등짐을 지고 가파른 길을 오르내리다 낯선 이와 마주치면 조심스레 비켜 서며 두 손 모아 ‘나마스테(산스크리트어로 ‘내 안의 신성이 당신의 신성에 경의를 표합니다’란 뜻)’를 읊조리는 이들, 그리고 논밭에 잇닿은 수천 개의 계단을 올라 학교로 향하던 아이들. 건물은 다 무너져 가고 교실은 비좁고 캄캄해도 낡은 공책에 ‘희망’을 꾹꾹 눌러쓰던 아이들.  그 아이들의 눈망울을 기억하며 엄홍길휴먼재단이 네팔에 16개 학교를 짓기로 한 가운데 지난 12일 부처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룸비니주 쉬리 싯타르다 거떰부타에서 세 번째 학교 기공식이 열렸다. “내 발 아래 둔 히말라야 고봉과 같은 숫자의 학교를 지어 산과 신이 베푼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던 엄홍길(51) 대장의 약속이 이렇게 진척되고 있는 것은 홍순덕(41) 네팔 지부장에 힘 입은 바 크다.  직함이 그렇지, 사실 혈혈단신으로 현지인과 먹고 자며 이들을 부리는 현장소장 역할이다. 자동차가 다니는 큰길까지 내려가는 데만 사나흘 걸리기도 하는 히말라야 자락에 온갖 건축자재를 끌어올리는 일만도 보통 일이 아니다. 더욱이 중장비도 없이 학교를 짓느라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다. 내로라하는 나라들의 비정부기구(NGO)들도 제대로 된 학교 하나 짓기가 힘들어 포기하는 형국인데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  충북 제천에서 목조주택 사업을 하다 지난해 3월 엄 대장의 간곡한 당부에 넘어가(?) 1년 넘게 네팔에 눌러앉게 된 홍씨와 전화,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룸비니의 그곳 상황은. -기공식과 함께 연 진료캠프에 500여명이 찾아왔고 의류와 문구, 가방 등을 선물받은 아이들이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고 가난한 형편에 기본적인 치료도 받지 못해 불치의 병으로 키우고 생필품도 턱없이 부족한 이곳의 생활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학교 건물조차 제대로 없는 이곳에 커뮤니티홀을 포함해 10개의 교실이 들어선다는 생각에 온 마을이 들떠 있으며 주민들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본격적인 공사는 24일쯤 시작한다. →어떻게 재단 일을 맡게 됐나. -지난해 3월 말에 처음 네팔에 왔다. 엄 대장이 첫 학교로 짓던 팡보체 휴먼스쿨을 마무리하는 일이었다. 당초 한 선교사에게 일을 맡겼는데 재단과 여러 문제가 있었고 준공이 임박했는데도 공사 진행에 진척이 없어 급하게 날 보낸 것이었다. 한달 반 현지인들을 독려해 어린이날에 학교를 교사들에게 인계한 뒤 6월 중순에 귀국했다. 본업에 전념할 생각이었는데 네팔 일을 믿고 맡길 사람이 없다고 해 돌아와 지난해 추석에 잠시 다녀온 것 빼고는 죽 네팔에서 일하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야 한다는 것 때문에 많이 고민했을텐데. -40대 초반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바탕으로 사업으로나 가정적으로나 자리를 잡아야 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 시기에 자리를 잡지 못하면 인생 후반이 쉽지 않다는 생각도 많이 했는데 2000년 에베레스트와 2002년 로체, 그 이듬해 로체샤르를 함께 등정한 엄 대장과의 인연이 소중하고 오지에 학교를 짓는 사업이 보람도 있고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2~3년은 고생할 생각이었다. →왜 첫 휴먼스쿨이 팡보체에 들어섰나. -엄 대장이 첫 학교 터로 이곳을 잡은 것은 1986년에 함께 에베레스트에 오르다 1000m 아래 절벽으로 떨어져 세상을 먼저 등진 세르파 술딤 도로지의 고향이기 때문이었다. 또 수많은 산악인과 트레커들이 찾고 해발고도 4060m에 쿰부 히말라야의 전초기지란 상징성 때문이기도 하다. →홍 지부장이 정말 자기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두 번째 타루프이겠다. -지난 2월23일 완공한 타르푸 휴먼스쿨은 수도 카트만두에서 서북 방향으로 95㎞ 떨어진 곳이다. 버스로 6시간 걸린다. 트레킹 명소로 떠오른 랑탕 히말라야의 들머리 트리슐리에서 25㎞ 떨어져 있다. 아래 작은 사진의 옛 학교 건물과 비교하면 정말 눈을 비비고 봐야 할 정도. 우리네 학교에선 새삼스러울 게 없는 화장실, 급수시설에 주민들 보건소를 겸한 양호실, 컴퓨터실까지 갖췄고 완공식 날 아이들이 난생 처음 타보는 미끄럼틀과 시소 등에서 밤 늦도록 뛰어놀던 기억이 새롭다. →처음에는 엄두가 안 났다고 들었다. -구입한 자재를 현장에 올리는 데도 위험한 산길로 3시간여를 곡예하듯 가야 도착하고 우기에는 거의 매일 장대비가 2~3번씩 내리고 산사태로 길이 막히면 우기가 끝날 때 까지 길을 보수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꿈만 같다. →그렇게 한 채 짓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며 얼마만큼의 돈, 공력이 드는지 알려 달라.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물자 수송이 어렵다. 기계장비를 올리기도 쉽지 않으니 모든 작업을 인력으로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우기 한달 반은 공사를 못하고 네팔 명절 인 더사인축제, 띠알 축제로 15일 정도 쉬어야 한다. 자금도 많이 들었지만 재단을 돕는 모든 분들의 마음이 모아져 이곳 학생들에게 꿈을 이룰수 있는 소중한 학교가 세워지고 있다.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는. -네팔말을 전혀 몰라 손짓발짓을 동원해 의사소통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비가 내리면 산사태로 길이 막히는 일도 많았다. 화물차가 오도 가도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모래를 나르는 트럭을 움직이기 위해 싣고가던 모래를 길에 뿌리면서 도착해보니 모래가 반밖에 남지 않은 일도 여러 차례였다. 말도 안 통하는 주민들과 협상하는 일 등을 돌이켜보면 한국에서 이 정도로 했으면 큰 부자가 됐을 것이란 엉뚱한 생각도 했다. →재단에선 학교만 짓고 운영에 대해선 간여하지 않는 건가. -학교를 지어 주었다고 학교 운영이나 교사 배치 등을 관여할 수 없고 관여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기부 자체가 선의의 일이지만 기득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네팔만의 운영 방식이 있기 때문에 존중하되 학교의 요청이 있을 때에는 교사 지원이나 의약품 지원 등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움을 받는 사람들도 무조건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노력 여하에 따라 지원이 다르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팡보체에도 헬스 포스트를 설치하고 심각한 장애 소녀였던 밍마참지를 국내에 초청해 무상으로 외과 수술을 받게 하고 간호 교육을 받게 한 뒤 헬스포스트에 간호사로 배치해 간단한 진료와 약품을 나눠주게 했다. 급여는 물론, 의약품도 꾸준히 보내고 있다.  학교에도 영어와 예체능 교사의 급여를 지원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현지인은. -자기네 학교가 지어진다는 생각에 쉬는 날에 현장에 나와 삽질도 하고 모래도 나르고 벽돌 내리는 일도 함께 했던 아이들이다. 우리 애들처럼 느껴졌고 학생들 역시 먼저 달려와 “나마스테!” 인사하며 삼촌처럼 따랐다. 주민들도 호박, 감자 등 반찬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이심전심이란 말대로 성심껏 서로를 대하면 나라와 피부색, 언어의 차이는 아무 것도 아니란 걸 깨닫고 있다. →2000년 에베레스트, 2002년 로체, 2003년 로체샤르 등정한 산악인으로 알고 있다. 산악인 엄홍길을 평가한다면. -청주대 조경학과 다니며 산악부 활동을 했는데 늘 존경의 대상이었다. 2003년 엄 대장과 함께 로체샤르 오르면서 더욱 존경하게 됐다. 좋은 일에 뜻을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산에서 받은 은혜와 에너지를 더 넓은 곳으로 환원한 데 대해 경의를 표한다. →재단에 기부한 이들로부터 어떤 찬사를 듣는지. -많은 격려를 듣지만 “지금 나 자신에게 충실한가?”라고 가끔 묻는다. 네팔과 이곳 어린이들에게 순수한 마음과 지극한 사랑을 변함없이 베풀고 나에게도 충실하게 생활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전기나 인터넷 모두 열악할텐데 여가는 어떻게 보내나.  (홍 지부장은 19일 전화 통화에서 답변과 사진 30여장을 이메일로 전송하는 데 14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푸념했다.) -네팔에 처음 왔을 때는 부족한 것들에 불평도 많이 하고 힘도 들었지만, 지금은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네팔의 입장에서 생각하자 편안해졌다. 짬이 나면 가까운 이들과 카트만두밸리의 산행코스를 오른다. 걸으면서 ‘난 누구인가?’ 생각하며 돌아보는 시간을 만들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어려움이 상당할 것 같다. -충주에서 초등학교 보육교사로 일하는 아내와 아들 둘이 있는데 올해 큰아들의 중학교 입학식에 참석하지 못해 굉장히 미안한데 가끔 전화로 적응도 잘하고 재미있게 지내는 것 같아 안심이 된다. 힘들어하는 가족들이 지금 하는 일에 대해 많이 응원해주고 있어 힘이 된다. →새삼스럽게 돋는 의문점 하나. 네팔이 필요로 하는 많은 것 중에 왜 학교인가. -제대로 된 교육과 의료 시설도 없는 곳에서 부모가 살던 것처럼 가난을 대물림하는 실정이다. 이 아이들에게 부모처럼 포터와 셰르파로 사는 게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희망과 꿈을 심어주고 싶었다. 바로 그게 학교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나와 통일] (8) 어희선 치과의사

    [나와 통일] (8) 어희선 치과의사

    2009년 금강산 이산가족상봉행사에서 작은할아버지를 만난 뒤 통일에 대한 나의 생각은 상당히 많이 달라졌다.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라는 것에 대해 이의는 없지만 통일이 나의 문제로 다가왔을 때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현실적인 관점에서 통일을 생각하게 됐다.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 대해서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로부터 어릴 때부터 많이 들었다. 장남이었던 할아버지를 대신해 둘째, 셋째할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의용군으로 전쟁터에 나가셨다가 북에 남게 되셨다. 명절 때면 고작 5명 남짓한 식구들이 보내는 게 썰렁해 대가족에 대한 부러움이 늘 마음에 있었다. 이산가족 상봉단에 선발됐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신청을 한 지 몇년이 지나서였다. 마침 추석을 며칠 앞둔 시기여서 북한의 친척들을 만날 마음에 설레고 또 매우 분주했다. 우리는 가족들의 지난 수십년 동안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사진첩과 약품, 옷가지, 식료품 등을 챙겼다. 상봉행사에 참석한 가족들 모두 어린이 키만 한 이민가방을 두세개쯤 들고 버스에 올랐다. ●경제격차 커 통일돼도 갈등 클 것 상봉장에서 북측 사람들이 들어서는 순간 “아, 우리 작은할아버지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빼닮은 외모. 정정하신 발걸음. 본 적도 없는 작은할아버지를 본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느냐.”면서 서로의 뺨을 어루만지면서 금세 눈물바다가 됐다. 헤어질 때는 버스 유리창 너머 손을 맞대고 “잘 가라.” “잘 있어라.”라며 또 한번 눈물을 흘렸다. 2박 3일 동안 3번을 만났는데 기억에 남는 순간은 이 두번 정도다. 가족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보다 더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북한사람들에게서 느낀 이질감이었다. 상봉장에 나타난 가족들은 모두 똑같은 중절모에 양복 차림이었다. 작은할아버지는 별다른 얘기를 나눈 것도 아닌데 북측 요원들과 눈이 마주치면 움찔했고, 호텔방에서는 도청을 걱정해 늘 TV를 켜 두었다. 이들이 정말 나의 형제, 가족이고 민족일까. 떨어져 지낸 지난 60년 동안 우리는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이때 이후 통일에 대한 나의 생각은 많이 바뀌었다. 통일이 되면 우리들이 북한 사람들을 똑같은 국민이라고 인정하고 차별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금도 남한에는 지역감정이 남아 있는데 지금 이 상태로 통일이 된다면 갈등이 클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북한 사람들을 내가 먹여살려야 할 식구라고 생각하니 앞이 깜깜했다. 통일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격차를 줄인 다음에 하지 않으면 같이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량 지원 등 남북 교류 회의적 인도적인 차원의 남북교류에 대해서도 회의를 갖게 됐다. 이 행사도 이산가족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대가를 요구하기 위한 행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쌀을 보내는 사업도 지금은 찬성하지 않는다. 그 쌀이 북한 주민들에게 돌아간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장기적인 통일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5년 임기를 다 바쳐서 통일에 힘 쏟는다고 해도 될까 말까 한데 정권에 따라 너무 쉽게 변하는 통일정책으로는 통일은 불가능하다. 정권이 바뀌어도 누구도 손댈 수 없는 10년, 20년짜리 통일 프로젝트가 있어야 한다. 통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북한이 변하는 수밖에 없다. 북한 고위층이 생각을 바꿔 개방을 받아들이는 전향적인 자세가 되지 않는 한 통일은 어렵다. 북한은 진정으로 통일을 원하는가. 이 물음에 북한이 답을 보여 주기를 바란다. 정리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미당의 집 ‘봉산산방’ 문 열다

    미당의 집 ‘봉산산방’ 문 열다

    봉산산방(蓬蒜山房)을 아십니까? 봉(蓬)은 쑥을, 산(蒜)은 마늘을 의미하는 것이라 단군신화를 떠올릴 테지만, 신화를 모티브로 삼아 미당 서정주(1915~2000)가 1970년부터 별세할 때까지 살며 집필한 곳이다. 관악구는 방치된 미당의 집(남현동 107-1)을 서울시 지원을 받아 2008년부터 복원에 착수, 3년여 만에 주민에게 공개했다고 13일 밝혔다. 전북 고창에서 태어난 미당의 대표작 ‘국화 옆에서’ 시집은 1975년 봉산산방에서 머물 때 나왔다. 질마재 신화, 떠돌이의 시, 팔할이 바람, 산시 등 주옥 같은 시집들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조선대와 서울예술대를 거쳐 동국대 문리대 교수를 할 때 살던 집이다. ‘미당 서정주의 집’은 지하1층, 지상 2층 옛날 주택을 그대로 되살렸고, 전시장에는 유품과 시집을 전시한다. 앞으로 작은 도서관인 ‘미당 카페’를 만들 예정이다. 화~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매주 월요일과 신정·설날 및 추석 연휴엔 휴관한다. 지하철 4호선 사당역 6번 출구에서 500m 올라가면 안내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관람료 없이 미당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우리처럼 작은 민족 뭉쳐야 살 수 있다”

    “우리처럼 작은 민족 뭉쳐야 살 수 있다”

    송암 김용섭(80) 전 연세대 사학과 교수가 자신의 삶과 철학을 정리한 회고록을 냈다. ‘김용섭 회고록-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지식산업사 펴냄)다. 학술원 회원인김 전 교수는 널리 알려졌듯 ‘자본주의 맹아론’ 혹은 ‘내재적 발전론’의 대부로 꼽힌다. ‘미디어를 통해 부풀려지지 않고서 스스로 일어선 우리 학계의 몇 안 되는 이론’이라는 극찬과, ‘한국 역사 학계의 숨은 신(神)’이라는 다소 부정적 평가가 공존한다. 어느 쪽이든 한번은 거쳐 가야 할 거대한 저수지임은 인정하는 셈이다. 그의 회고록이 학계의 지대한 관심을 끄는 이유는 간단하다. 김 전 교수는 학술이 아닌 다른 활동에는 인색하기 그지없다. 자신을 알리는 일은 더더욱 질색이다. 이런저런 공식석상에 얼굴 비추기를 극도로 꺼린다. 학술상 받는 것도 탐탁지 않아 한다. 언론 인터뷰는 당연히 사절이다. ●“대외활동은 賣名행위” 질색 문화공보부 장관을 지낸 사진작가 윤주영(83)씨가 각 분야 전문가 100명의 얼굴을 담아 사진집을 낼 요량으로 김 전 교수를 섭외했을 때 “딱 한장만”이라는 애원에도 매몰차게 거절한 일화는 유명하다. 논문 발표 외에 다른 곳에 이름이나 얼굴을 내미는 것 자체를 매명(賣名) 행위처럼 여긴다. 논문이나 책에 엄격하긴 매한가지다. 그러다 보니 논문은 한평생 70여편만 썼고, 저서도 그런 논문을 모아서 낸 8권의 책이 전부다. 학자들에게 흔히 지적되는 ‘자기표절’ 논란은 전혀 없다. 노() 학자에게 으레 있기 마련인 회갑이나 고희 논문집 같은 것도 없다. 제자인 김도형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외국 강연 기회도 숱하게 많으셨는데 일절 응하지 않으셨다.”면서 “만들지 말라고 말리시는 걸 억지로 만들어드린 게 정년논문집 딱 하나다.”라며 웃었다. 그런 그가 ‘맨얼굴’의 회고록을 냈으니 학계가 ‘사건’으로 부를 만하다. 하지만 막상 책을 펼쳐 들면 “김용섭답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회고록 2장 ‘해방세대의 역사공부’에서는 무려 30쪽에 걸쳐 참고 문헌 목록을 늘어놓았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만행’에 가깝다. “내가 이런저런 자료를 봤으니 후학들도 한번 참고하라.”고 정색하고 말하는 모양새다. 김도형 교수는 “독자들은 아마 회고록 하면 수필 같은 것을 연상했을 텐데, 책을 펴보면 그동안 빠뜨린 부분을 보완한 논문집 같은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책은 회고록임에도 1인칭 ‘나는’이 아닌, 3인칭 ‘김용섭은’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마저도 대상화시키고 객관화시켜 버린 셈이다. 풍문으로 전해 듣던 고집의 실체가 느껴져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용기를 내 인터뷰를 시도했다. 어렵사리 연결된 전화통화인데 “나설 만한 사람이 안 되고, 별 재미도 없는 사람이라…”며 금세 끊을 태세다.‘회고록까지 낸 마당에 기자와 인터뷰하는 사고도 한번 쳐야 하는 것 아니냐.’며 짐짓 호기 있게 공격했지만 “선배들은 예전에 어떻게 연구하고 살았는지 후학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주변에서 하도 강권해서 어쩔 수 없이 쓴 것”이라며 “소개할 가치가 있다 싶으면 책을 다루시든가…”하는 답이 돌아온다. ●‘조선 후기 농업사 연구’ 압권 그의 대외활동 기피증에는 학문적 요인도 있다. ‘자본주의 맹아론’은 한국민의 자존심을 돋우어 준다는 점에서 인기가 있었을 법한데 그렇지 못했다. 선배 학자들의 연구가 ‘일제 관학(官學)식 실증주의(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수반했기 때문이다. 비판 대상에는 내로라하는 한국사 대가들뿐 아니라 은사인 신석호(1904~1981) 선생마저 포함된다. 그럼에도 ‘한국 사학사’ 강좌를 열어 이런 비판적 주장을 펼치다 보니 길 가다 우연히 만난 선배 학자에게 외면도 당하고, 연구실에 도둑이 들기도 하고, 심지어 몇몇 선배들에게서는 “당신 민족주의와 내 민족주의는 다른 것 같다.”거나 “김 선생, 우리 이제 민족사학 그만하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스스로도 회고록에 “대인 관계에서는 ‘조심조심’ 원칙을 잘 지켰으나 강의와 주장은 그렇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괘씸하고 방자하기 그지없었을 것…. 학문적 대의를 위해 보신의 지혜를 지키지 못했다.”고 썼다. “이후 사학사 관련 발언을 그만두고 농업사에만 집중하게 됐다.”고도 했다. 김 전 교수가 벌인 연구활동의 절정은 1970~71년 두권으로 나온 ‘조선 후기 농업사 연구’가 꼽힌다. 1960년대에 발표한 논문 18편을 묶은 책이다. 조선 후기 토지 대장인 양안과 호적등본에 대한 실증적 분석 결과를 통해 일제가 주장한 조선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을 비판했다. 컴퓨터도 없던 시절 일일이 모든 자료를 확인해서 분류한 뒤 다시 통계작업을 해야 하는 고된 과정이었다. “그때 함께해 준 대학원생들에게 미안하고 또 고맙다.”고 했지만 정작 그 자신도 20대 때부터 설과 추석 빼놓고 1년 363일 도시락 2개 싸서 연구실로 출근해서는 이를 싹 비우고서야 연구실을 나섰다. 1997년 연세대에서 정년 퇴임한 뒤에도 여전히 대학 부근 연구실에 도시락 출근을 하고 있다. 나이 탓에 다리가 불편해 요즘은 도시락이 한개로 줄었을 뿐이다. 탈민족주의와 식민지근대화론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논리를 펴는 진영은 김 전 교수의 논리가 치밀한 실증 작업에 기초하고 있되, 조선 후기 역사를 지나치게 도식화 혹은 과대포장했다고 비판한다. 의외로 대답은 선선했다. “그래서 회고록 부제가 ‘해방세대 학자의 역사연구 역사강의’잖아요. 저 같은 해방세대에게는 거기에 맞는, 또 필요한 관점이 있는 것이지요. 시대가 변했으니 그에 따라 또 다른 주장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다양한 문명의 교류를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지요. 다만, 우리처럼 자그마한 덩치의 민족일수록 뭉쳐야 살 수 있어요.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질문을 놓치면 안 돼요.” 딸깍발이 노학자는 더 말할 게 뭐가 있냐는 듯,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용어 클릭] ●자본주의 맹아론(내재적 발전론) 일제 식민사학이 남긴 타율성론, 정체성론을 반박하기 위해 나온 주장. 식민사학은 조선에는 봉건제가 없었고 따라서 토지의 사적 소유나 화폐의 유통, 시장의 성장과 같은 현상이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근대 자본주의로 이행할 동력 자체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자본주의 맹아론은 조선 후기에도 토지의 사적 소유와 시장·상인·화폐 발달이 확인된다고 반박했다. 독자적인 자본주의 발전 가능성이 충분했는데 일제 침략에 의해 싹이 꺾였다는 주장이다.
  • [차 한잔 하실까요] 이제학 양천구청장 “공무원 고생해야 주민 행복”

    [차 한잔 하실까요] 이제학 양천구청장 “공무원 고생해야 주민 행복”

    이제학(48) 양천구청장은 장마철마다 안양천이 범람해 물에 잠겼던 ‘뚝목동’ 시절부터 거대한 아파트촌이 들어설 때까지 줄곧 양천에 살아 온 ‘토박이’다. 그래서인지 양천에 쏟는 애정이 남다르다. “공무원이 고생해야 주민이 행복하다.”며 간부회의를 민원 현장에서 하고, 수해 대비를 위해 하수관에 직접 들어가기도 한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민심 투어를 하고, 재래시장을 돌며 순대국밥을 즐겨 먹는다. 11일, ‘30년 양천 지킴이’인 그를 만나 양천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뚝목동’ 시절부터 살아 전남 담양읍 가산리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82년 상경해 목동운동장 부근 판자촌에서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은 아파트단지로 변모했지만 당시만 해도 장마철이면 안양천 범람으로 물에 잠겨 ‘뚝목동’으로 불린 곳이다. “서울 올라오니 뚝목동의 방값이 가장 쌌어요. 그곳에서 첫출발을 할 수밖에요. 당시 판자촌이 뚝방길 따라 길게 늘어서 있었고, 집 근처에 커다란 오목나무와 삼원극장이 있었지요. 지금 아파트단지는 죄다 논밭이었어요. 마을이 물에 잠기면 사람들은 뚝방 위로 피신했습니다.” 1984년 일도 떠올렸다. “안양천 뚝방이 터지면서 발생한 이재민을 위해 지원한 북한 쌀과 옷감을 받았어요. 꽃무늬 옷감으로 남방을 만들어 입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지금 갖고 있으면 귀한 물품일 텐데….” 이 구청장이 지난달 31일 신정동 오금빗물펌프장의 하수관거에 들어가 2.5㎞를 걸으며 사전 점검을 한 것도 수해에 대한 피해 의식이 남달리 커서다. 올해와 내년에 5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 하수관 확장과 개량 공사를 할 예정이다. “젊은 시절 뚝목동에 살아 여름마다 집에서 물을 퍼내며 살았는데 지난해 구청장에 취임한 지 두달 뒤인 추석 연휴(9월 21일) 때 우리 구에 시간당 93㎜로 103년 만에 가장 많은 비가 내렸어요. 신월동, 신정동 저지대가 침수 피해를 입었지요. 수해와는 악연이 있나 봐요. 참…….” 이 구청장 부부는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 커플이다. “제가 서강대 4학년이던 1986년, 아내는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이었어요. 군사정부 시절이라 총학생회장은 무조건 수배 대상이었지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함께 하다가 만 5년째인 1990년 6월 결혼했습니다. 아들내미 원형이가 유일한 ‘혼수품’이었습니다. 허허허.” 부인 김수영씨는 사회적기업 일터의 전신으로 보건복지부에서 만든 시흥 여성희망센터 초대 본부장과 열린우리당 여성국장을 지냈다. 현재 대학에서 사회복지학 강의를 하고, 지역을 위한 봉사활동으로 바삐 지내고 있다. 이 구청장은 2008년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8대 총선에서 떨어진 뒤 작심하고 지리산에 들어가 2주간 논문 골격을 잡았어요. 제가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지역 거버넌스 논문으로 학위를 땄지요.” ●손학규 대표와 인연으로 정치 그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의 인연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서강대 총학생회장 시절 손 대표와 교수-제자로 만났고, 1998년 손 대표의 경기도지사 선거를 도우며 정계로 들어왔다. 손 대표는 지난해 초 이 구청장이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을 펴내자 추천 글을 쓰기도 했다. 이 구청장의 별명은 ‘순대국밥 구청장’이다. 후배들은 ‘뚝배기보다 장맛 같은 구청장’이라고 부른단다. 왜 순대국밥을 좋아하느냐는 물음에 “먹으면 속이 편하고, 가격이 싸 내 스타일에 딱이다.”라며 웃는다. 20대 후반 노동운동을 하던 때 순대국밥으로 허기를 채우던 기억 때문에 지금도 일주일에 한번은 꼭 찾는다. “순대국밥집은 대부분 재래시장에 있는데 시장도 돌아보고, 국밥도 팔아주고, 다른 물건도 사고, 국밥 먹으며 주민들과 나누는 대화도 좋죠.” 그는 매주 수요일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자전거 천국 ‘에코시티’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배어 있다. “양천엔 41.2㎞의 자전거도로가 잘 갖춰졌습니다. 자전거 천국을 공언했는데 자전거도로를 직접 점검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전거를 타면 건강도 챙기고 주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민심 투어에는 최고예요.” 그는 현장 행정과 소통을 강조한다. 이를 실천에 옮기는 발걸음도 바쁘다. 최근 지역사회 주체들과의 협력적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양천 거버넌스 조례가 구의회를 통과했다. “앞으로는 목소리를 높이는 정치가 아니라 구민의 의견을 하나하나 모아 정책에 반영하는 ‘생활정치’가 필요합니다.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협치(協治)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는 ‘여민동락’(與民同)을 올 한해의 신조로 삼았다. 살아가면서 누가 누구 위에 군림하거나 지배하는 게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구 슬로건도 ‘다함께 희망양천’이다. 그는 “초심을 잃지 않고 구정을 이끈 ‘뚝배기보다 장맛’ 같은 구청장으로 기억되고 싶다.”며 말을 끝맺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화이트데이 사탕 특수’

    지난 14일 화이트데이에 편의점들이 3000원짜리 사탕 판매로 역대 최고의 하루 매출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보광훼미리마트와 GS25는 남성이 여성에게 사탕을 선물하는 화이트데이를 맞아 지난 14일 전국 점포에서 하루 동안 각각 113억원과 111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훼미리마트는 2010년 화이트데이에 비해 매출이 34% 증가했다고 밝혔다. GS25의 매출은 전주와 비교해 62%나 증가했으며 점포당 매출도 226만원이나 됐다.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밸런타인데이가 있었던 지난달 14일 매출은 평균 80억원대를 기록해 여성보다 후한 남성들의 힘이 과시됐다. 보광훼미리마트에 따르면 가장 잘 팔린 상품은 저렴한 막대사탕인 츄파츕스로 전체 매출의 15%를 차지했다. 3000~7000원대 저가형 상품들이 가장 많이 팔린 가운데 2만~3만원대 상품은 퇴근 시간대인 오후 6시부터는 판매가 늘어났다. 편의점의 기록적 매출은 특정 기념일날을 계기로 이뤄졌다. 훼미리마트에 따르면 하루 매출 10억원은 2000년 9월 12일 추석에, 50억원은 2004년 2월 5일 설날, 100억원은 2010년 11월 11일 빼빼로데이에 각각 돌파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강북구, 통장도 시험보고 선발

    행정 최일선에서 궂은 일을 도맡는 통장 공개모집이 눈길을 끈다. 강북구는 공석 중이던 수유1동 11통 통장을 선발시험을 거쳐 선출했다고 14일 밝혔다. 지방자치법 4-2조 5항에 맞춰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임용하는 통·반장 설치 조례에 따르면 동장이 만 30세 이상 65세 이하 주민을 추천받아 구청에 통장을 제청하면 제산세 체납 여부 등 결격사유를 파악한 뒤 구청장이 위촉하게 돼 있다. 통·반장의 임무는 크게 10가지로 나뉜다. 우선 행정시책에 대한 홍보를 통해 제대로 정착하도록 돕고 주민여론, 불편사항을 파악하는 등 잡다한 업무를 맡는 ‘명예 봉사직’이다. 통장은 6~10개 반을 챙긴다. 반장은 20~40가구를 관할하되 180가구 이상 공동주택 단지의 경우 30~50가구를 묶는다. 이들은 틈새계층·위기가정 발굴과 연계한 활동을 벌이는 등 복지사업 대상자 생활형편, 일선 공무원만으로는 속속들이 알기 어려운 주민 거주실태와 이동상황 파악, 각종 신고사항에 대한 사후 확인, 고지서 송달과 주민등록 일제조사를 거든다. 시설물 확인과 청소업무를 원활하게 하도록 평소 주민들과의 연락망 몫도 해낸다. 태풍이나 폭우를 비롯한 재난 때 대피·피해상황 조사, 크고 작은 사건·사고 보고와 제설작업 지원 등도 곁들인다. 전시(戰時) 전략자원 동원과 생활필수품 배급에도 나선다. 통장의 경우 기본수당 월 20만원에 추석·설 명절 상여금 100%, 월 2회 통장회의 수당 4만원을 받는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선 자녀 학자금이나 양육비(유치원·어린이집)까지 지원한다. 이에 따라 구는 통장들에게 지역 일꾼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경쟁임용 방식을 도입했다. 지역실정에 밝은 주민자치위원회 대표, 통장 대표 등 민간인 2명과 공무원 2명 등 4명으로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투명성을 더욱 높였다. 1시간에 걸쳐 문답식으로 진행된 심층면접심사에선 행정 관심도, 직무수행능력, 인성 등 다방면에 걸친 평가를 실시했으며 컴퓨터 활용능력 시험에서는 제한된 시간에 구 홈페이지에서 구정과 관련한 자료 찾기, 동주민센터 관련 자료를 찾는 능력을 두루 심사했다. 수유1동 11통 통장에 선출된 채현주(42)씨는 “어렵게 선출된 만큼 책임감을 갖고 주민센터와 주민들 간의 가교역할을 하겠다.”면서 “주민들 사이에 오해의 소지를 없애고 지원자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는 공개선발이 보편화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집값 언제 이렇게 올랐지”

    “아무래도 내집 마련 시기를 놓친 것 같아요.” 지난달 28일 서울 잠실의 K부동산중개업소를 찾은 이성원(43)씨는 “보세요. 잠실엘스 84㎡(전용면적 25평) 아파트는 모두 10억원 후반대예요. 지난주만 해도 9억원대 매물도 있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이씨는 “보금자리 주택 당첨은 ‘하늘의 별 따기’여서 포기하고 아이들 학교가 있는 잠실 지역에 아파트를 사려고 했는데 매수 타이밍을 놓쳤다.”면서 “한달 사이에 6000만원이나 뛰어 살 엄두를 못 내겠다.”고 말했다. 서울 일부 지역의 아파트값 오름세가 완연하다. 강남 일대 일부 아파트는 불과 몇달 사이에 1억원이나 올랐다. 정부와 세입자들이 치솟는 전셋값에 매달려 있을 때 집값은 물밑에서 소리 없이 오르고 있다. 전셋값처럼 폭등세는 아니지만 2년 동안 숨죽였던 집값이 바닥을 쳤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정부가 회복기에 접어든 집값의 연착륙을 위해 대책을 준비할 때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실제로 잠실 L중개업소. 금요일 평일임에도 집을 사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 중개업소 김모 실장은 “2월 들어 찾아오는 손님과 문의 전화가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잠실 일대 아파트는 이미 지난해 추석 때보다 1억~2억원 올랐다.”면서 “문의는 많지만 단기간에 많이 올라서인지 매수를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다.”고 밝혔다. 잠실 엘스 아파트는 84㎡짜리가 지난해 10월 8억원 후반대 급매물이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지난달에는 10억 7000만원에 거래됐다. 한때 서울 아파트 가격의 잣대 역할을 했던 대치동 은마아파트도 많이 올랐다. 지난해 추석 직후 95㎡(전용면적 28평) 기준으로 8억원 후반대 급매물이 소진되면서 지난달 9억 8000만원에 거래가 이뤄졌고 지금은 10억원을 호가한다. 은마아파트 상가의 D중개업소 임모 소장은 “아파트값의 바닥은 추석 직후였다.”고 말했다. 서울 상계동 상계주공 7단지 42㎡(전용면적 12평)의 경우 올 초 1억 7500만원에서 1억 8500만원으로 1000만원 올랐다. 50㎡(전용면적 15평)는 2억 4000만원에서 2억 6850만원으로 뛰었다. 거래량도 늘었다. 지난해 1분기 2630가구 규모의 주공7단지에서 10건이 거래됐으나 지난해 4분기에는 28건이 거래됐다. 가온랜드 이성현 대표는 “거래량은 아직 최고 가격 당시의 절반 수준에 못 미치지만 급매물이 소진되고 가격이 상승세를 보이는 등 집값이 반등을 시도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원갑 부동산1번지 소장은 “지난해 7월 바닥을 찍은 뒤 불안한 회복국면으로,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조치 연장 여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불안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면서 “정부 대비가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이원재 국토해양부 주택국장은 “역세권의 소형을 중심으로 오르고 거래량이 늘고 있지만 상승압력이 거센 것은 아니다.”면서도 “집값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준규·오상도기자 hih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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