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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사 故조승진 기자 영결식

    본사 故조승진 기자 영결식

    지난 6일 오전 출입처인 국방부에서 과로로 순직한 서울신문 정치부 고 조승진 기자의 영결식이 8일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서울신문사장(葬)으로 엄수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부인 신명자씨와 아들 현우(10)군 등 유족과 장례위원장인 채수삼 서울신문사장, 동료 직원 등 4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기렸다. 앞서 서울신문사는 투철한 기자정신으로 최선을 다해 일하다 숨진 조 사우를 기려 6일자로 직급을 부장급으로 추서했다. 기독교식으로 치러진 이날 영결식에서 채수삼 사장은 고인의 성실한 기자생활을 치하했다. 동료인 지방자치뉴스부의 남기창 기자의 조사에 이어 김상연 정치부 기자는 심재억 문화부 기자의 조시(弔詩) ‘그대의 여백-조승진 사우를 먼저 보내며’를 낭독했다. 고 조 기자의 유해는 지난 1991년부터 14년간 열정을 쏟은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신문사 앞에서 노제를 지낸 뒤 장지인 전북 익산시 왕궁면 동봉리 산 109로 향했다.
  • ‘9월 독립운동가’ 조소앙 선생

    국가보훈처는 30일 일제 강점기 국권 회복과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조소앙(1887∼1958) 선생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경기도 파주 태생으로 1913년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한 선생은 1917년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대동단결선언을 기초하고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사회당대회에 한국의 독립문제를 의제로 제출해 통과시켰다.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 임시헌장과 임시의정원법을 기초했으며 임정 국무원 비서장, 외무부장, 임시의정원 의장 등을 역임하고 한국독립당 창당위원장과 부위원장 등 핵심간부로 활동했다. 선생은 임시정부의 사상적 분열과 지도 이념의 혼돈을 극복하기 위해 1920년대 후반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이라는 이른바 ‘삼균주의’를 창안, 임시정부의 지도이념으로 정립했다.1948년 4월 단독정부 구성에 반대해 김구·김규식 선생 등과 함께 남북협상차 평양을 방문하는 등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헌신했다. 1950년 5·30 총선 당시 서울 성북구에서 출마, 전국 최다 득표로 당선돼 제 2대 국회에 진출했으나 6·25 전쟁으로 납북돼 1958년 9월 순국했다.198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휴대전화 번호에 국치일 새겼죠”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이동석(61·경북 안동시 송현동)씨와 권대용(58·안동시 송현동)씨 등 2명은 ‘한일병합’95주년인 29일이 남다르다. 이씨의 고조부인 향산 이만도(1842∼1910) 선생은 독립운동의 성지인 안동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다. 이씨는 “고조부께서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직후 안동에서 을미의병을 주도적으로 이끌기도 했으며 한일병합에 항의, 단식을 하다 목숨을 끊었다.”며 “아직까지도 친일파와 그 후손이 발호하고 있는 현실을 아신다면 얼마나 통탄하실지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3대에 걸쳐 8명이 건국훈장을 추서받은 집안의 후손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지만 국치일이 돌아오면 고조 할아버지의 의로운 죽움이 새삼 가슴을 저민다.”고 말했다. 이씨와 절친하게 지내는 또 다른 독립운동가 후손 권씨는 나라를 빼앗긴 치욕적인 날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휴대전화 중간 번호가 829번이다. 천석꾼 부자였던 그의 조부 추산 권기일(1886∼1920) 선생은 한일병합 2년후인 1912년 초 전 재산을 처분해 만주로 가서 독립군기지 건설, 교육활동 등에 힘쓰다가 1920년 8월 신흥무관학교 부근 수수밭에서 일본군에 무참히 살해됐다. 추산선생은 후손에게 가난을 남겨 주었지만 권씨는 한번도 조상을 원망해 본 적이 없다. 권씨의 아버지는 안동에서 손수레를 끌며 간장을 팔아 연명해야 했고 권씨는 중학교 1학년을 휴학한 이후 생활전선에서 뛰고 있다. 이씨는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국치일의 의미를 뼛속 깊이 새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동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책꽂이]

    ●중국권력 대해부(윤덕노 지음, 매일경제신문사 펴냄) 중국 최고 지도자인 후진타오와 막후 실력자인 장쩌민을 비롯해 공산당과 국무원, 군, 지방에서 중국을 움직이는 핵심 인물 131인의 프로필과 주요 경력 등을 담았다.2만 5000원.●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이 쓴 동아시아 역사와 일본(일본 역사교육자협의회지음, 송완범 등 옮김, 동아시아 펴냄) 고대에서 현대까지 시대별로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이 맞물리는 주요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역사를 균형잡힌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1만 6000원.●아리랑(님 웨일즈·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 일제 강점기 한국인으로서 중국 공산당 혁명 참여를 통해 조국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던 김산(본명 장지락)의 불꽃같은 삶을 그렸다. 사회주의자란 이유로 외면당했던 김산에게 정부는 올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1만 5000원.●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카림 라시드(카림 라시드 등 지음, 김승욱 옮김, 미메시스 펴냄) 뉴욕 디자인계를 대표하는 산업 디자이너인 카림 라시드의 자전적 작품집.300만개 이상 팔렸다는 ‘가르보 쓰레기통’ 등 그의 주요 작품 사진과, 라시드 작업의 미학적 의의를 담은 글을 실었다.3만 5000원.●생각의 역사(허만원 등 지음, 주혜란 옮김, 이른아침 펴냄)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부터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데카르트의 ‘성찰’,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에 이르기까지 고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서양 철학의 역사를 대변하는 사상가들의 명저 100권에 대한 해설을 담았다.2만 5000원.●한국도시 60년의 이야기1,2(손정목 지음, 한울 펴냄) 광복 직후부터 오늘의 천도계획까지,60년 한국 도시의 발자취를 더듬은 책. 격동의 시대에 도시들이 어떻게 형성 발전되었고, 어떤 문제점들을 노출시켰는지 굵직굵직한 사건들과 변화,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각권 1만 4000원.●죽음의 수용소에서(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청아출판사 펴냄)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생사의 엇갈림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붙들고 인간 존엄성의 승리를 보여준 저자의 자전적 체험 수기. 신경정신과 교수였던 저자는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정과 무감각의 복잡한 흐름을 생생하게 묘사했다.1만원.
  • 사회주의계열 47명 포함 독립운동 214명에 서훈

    독립운동가의 생애를 국제적 여론으로 환기시킨 미국 작가 님 웨일스의 소설 ‘아리랑’의 실제 주인공 김산(본명 장지락·1905∼1938)과 조선노동당 책임비서를 지낸 김철수(1893∼1986) 등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에게 서훈이 추서됐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3·1절에 이어 이달 8·15 광복절을 계기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47명을 포함해 일제 강점기 3·1운동과 항일운동 등을 전개한 214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에 대해 건국훈장 등 서훈을 추서했다고 3일 밝혔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살신성인’ 전우애 영원히…

    ‘살신성인’ 전우애 영원히…

    임진강에서 전술훈련 중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대대 장병 4명에 대한 합동 영결식이 29일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사단장(葬)으로 거행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유가족을 비롯해 윤광웅 국방장관, 이상희 합참의장, 김장수 육군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와 손학규 경기지사, 김명자ㆍ황진하·고조흥 의원 등 1000여명이 참석, 동료를 구하려다 순직한 장병들의 희생정신을 기렸다. 고인들의 유해는 영결식 이후 성남시립 화장장에서 화장된 뒤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황중선(육사 32기) 사단장은 추도사에서 “수마와의 사투에서 전우를 살려내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숭고한 희생정신은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쉴 것”이라고 말했다. 군 당국은 고인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려 1계급 진급을 각각 추서했다. 한편 앞서 지난 26일 오전 10시50분쯤 경기도 파주시 전진교 인근 장깨 도하훈련장에서 전술훈련 중이던 JSA 경비대대 소속 안학동 병장이 발을 헛디디며 임진강 급류에 휩쓸리자, 소대장 박승규 중위와 강지원 병장, 김희철 상병 등 동료 3명이 그를 구하기 위해 강물에 잇따라 뛰어들었다가 함께 변을 당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애국지사 송석형 선생

    일제 강점기 광복군으로 활동한 애국지사 송석형(宋錫亨) 선생이 22일 오전 대전보훈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86세. 1919년 대전에서 태어난 선생은 일제강점기 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해 한미특수훈련인 OSS훈련반에서 3개월간 특수훈련 무기반을 수료한 뒤 광복군 간부대원으로 활동했으며 1945년 국내정진군 제2지구 충청도반에서 국내침투공작 작전을 진행하다 광복을 맞이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7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고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이인구 여사와 3남3녀가 있으며 빈소는 대전보훈병원 장례식장 제3분향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5일 낮 12시, 장지는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제3묘역이다.010-3034-3102.
  • [부고]

    ●애국지사 송석형 선생 일제 강점기 광복군으로 활동한 애국지사 송석형(宋錫亨) 선생이 22일 오전 대전보훈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86세. 1919년 대전에서 태어난 선생은 일제강점기 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해 한미특수훈련인 OSS훈련반에서 3개월간 특수훈련 무기반을 수료한 뒤 광복군 간부대원으로 활동했으며 1945년 국내정진군 제2지구 충청도반에서 국내침투공작 작전을 진행하다 광복을 맞이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7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고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이인구 여사와 3남3녀가 있으며 빈소는 대전보훈병원 장례식장 제3분향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5일 낮 12시, 장지는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제3묘역이다.010-3034-3102. ●권순일(전 한국방송광고공사 국장)순범(전 새한투자자문 이사)순욱(전 SK증권 상계지점)순천(대우자동차판매 차장)순동(제일기획 수석국장)씨 모친상 22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5일 오전 7시 (02)3410-6912 ●김남순(전 기독교성결교회 전국여전도회장)씨 별세 김인기(아이케이인터내셔널 대표)윤기(전 외환은행 차장)씨 모친상 정계성(가야쉬핑 대표)씨 빙모상 22일 경희의료원, 발인 25일 오전 7시 (02)958-9545 ●손두형(아시아나항공 상무)두용(캐나다 거주)씨 모친상 김해동(캐나다 거주·소아과 원장)씨 빙모상 22일 서울대병원, 발인 25일 오전 6시 (02)2072-2091∼3 ●최윤식(성창산업 사장)정식(금호전기 상임감사)경숙(광주종합고 교사)씨 모친상 박주재(성호전력)씨 빙모상 2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4일 오전 9시 (02)3010-2291 ●이미영(새만금영농조합 대리)씨 시부상 황선태(황선태산부인과 원장)안지택(미국 회계사)씨 빙부상 22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4일 오전 8시 (02)392-0699 ●민승현(플라팬 대표)은현(고려당 대표)씨 부친상 김기일(우성상사 대표)이석노(대아인쇄 대표)최병길(기웅 대표)안재왕(알프스 대표)씨 빙부상 2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4일 오전 7시 (02)3010-2239 ●진영환(서울리버사이드호텔 사장)씨 부친상 2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4일 오전 7시 (02)3010-2294 ●최용안(전 산림조합중앙회장)씨 별세 22일 전북대병원, 발인 24일 오전 10시 (063)250-2441
  • 시신없는 영결식

    지난 13일 발생한 전투기 연쇄 추락사고로 희생된 조종사 4명의 영결식이 15일 소속부대인 수원과 청주비행단에서 부대장(葬)으로 거행됐다. 공군은 사고기 조종사들의 유해를 찾지는 못했지만 조종복과 기체 일부 등이 사고 인근 해역에서 발견됨에 따라 전원 사망으로 판단하고 유족들과의 협의를 거쳐 사고 사흘째인 이날 영결식을 거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희생 조종사들에 대해서는 훈련 중 순직한 고인들의 위국 헌신의 뜻을 기려 모두 1계급씩 진급이 추서됐다. 이에 따라 F-4E 팬텀기를 몰았던 이해남(36·공사 40기)·김동철(34·공사 42기) 소령은 중령으로,F-5F 제공호에 탑승했던 김태균(35·공사 40기) 소령과 김종수(30·공사 46기) 대위는 각각 중령과 소령으로 각각 진급했다. 영결식 후 희생자들은 모두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순직 조종사들의 유해를 찾지 못한 만큼 전투기 추락 등 불의의 사고에 대비해 고인들로부터 미리 확보해 둔 머리카락과 손톱 등으로 유해를 대신해 안장했다. 공군은 이날 영결식과는 별도로 고인들의 유해와 추락한 전투기 잔해에 대한 수색작업은 계속할 방침이다. 이날 영결식에는 유족을 비롯해 윤광웅 국방장관과 이상희 합참의장, 이한호 공군참모총장 등 주요 군 지휘관들이 참석했다. 앞서 공군은 지난 14일 추자도 인근 해상에서 김동철 중령의 조종복과 기체 잔해, 신체 일부 등을 찾아낸 데 이어 일부 기름띠가 목격됐던 충남 보령시 인근 해상에서 전투기 꼬리 부분 잔해를 추가로 찾아냈다. 배창식 공군 참모차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공군 사고조사위는 수거된 전투기 일부 잔해와 조종사들의 음성기록 등을 기초로 추락 원인 조사를 사흘째 계속하고 있다. 공군은 또 이들 순직자에 대한 추모를 위해 자체 인터넷 홈페이지(www.airforce.mil)에 사이버 분향소를 마련했다.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사설] 솜방망이 징계로 軍기강 서겠나

    지난달 최전방 초소(GP)에서 발생한 총기난사사건과 관련해 상급부대 지휘관들에게 이해 못할 경징계가 내려졌다. 육군은 그제 이 사건의 책임을 물어 군단장과 사단장에게 ‘감봉 3개월’의 처분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연대장과 중대장은 보직해임 상태다. 장병 8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한 대형 총기사고에 대해 계급 높은 지휘관들은 다 빠지고 결국 하사 1명만 구속된 셈이다. 두 차례나 철책선이 뚫린 데 대해서도 이미 보직해임된 사단장에게는 ‘감봉 3개월’이 추가됐을 뿐이다. 군 고위층의 동료 감싸기를 지켜보면서 이래 가지고 기강이 바로 설 수 있을까 심히 걱정된다. 총격으로 사망한 GP 소초장은 1계급 특진이 추서됐다. 그의 명령으로 근무조를 변칙 운영한 부소초장은 ‘명령위반’으로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오죽했으면 소초장의 유족들조차 “소초장의 유해를 파서 구속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겠는가. 국방부 장관이 법적절차를 거쳐 면책된 마당에 지휘관들에게 가혹한 처벌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군조직의 지휘관이 어떤 자리인가. 직접적 실책이 아닌 부하의 잘못에 대해서도 지휘책임을 엄중히 묻는 이유는 군령과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함이다. 지휘관에게 명령권만 있고 책임은 없다면 결코 강군(强軍)이 될 수 없다. 더구나 장성급 지휘관들의 전역을 막기 위해 비교적 가벼운 감봉을 택했다는 육군의 변명은 낯뜨겁다. 유사시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도록 훈련받고, 또 그렇게 부하들을 이끄는 게 군 지휘관들이다. 그들이 군복을 벗을 각오조차 되어 있지 않다면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맡길 수는 없다. 이번 징계는 재고돼야 마땅하다.
  • 7월 독립운동가 채응언 선생

    국가보훈처는 구한말 마지막 의병장 채응언(1879∼1915) 선생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29일 발표했다. 평남 성천 출신인 선생은 1907년 8월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이진용 의병부대에 투신, 부장(副將)으로 활동하면서 1908년 황해도 안평 순사주재소와 수안 헌병분견소를 공격해 명성을 떨쳤다.1910년 경술국치 이후에도 의병부대 해산을 거부하고 이듬해 김진묵 의병부대의 부장이 되어 4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경기, 강원, 함경도 일대의 산악지대를 넘나들며 일본군 수비대와 헌병을 공격했다.1915년에는 고향인 성천군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두고 유격전을 전개하면서 일본 군·경은 물론 친일 밀정 등을 처단했으며, 군자금 마련을 위해 마을로 내려오다가 일경에 발각돼 체포됐다. 그 해 9월 평양복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1월 평양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이병돈 선생 애국지사 이병돈 선생이 26일 오후 숙환으로 별세했다.91세. 함남 신흥 출신인 선생은 1942년 1월 광복군 제2지대 낙양지구 초모공작특파원인 서곤·이욱승 선생 등과 접선을 통해 광복군과 인연을 맺은 뒤 그 다음달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시 이부가(二府街)에 있는 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 신국빈·왕태일 선생 등과 훈련을 받았다. 선생은 1943년 3월 중국 전시 간부훈련단에 파견돼 교육을 받다 1945년 4월 미국 전략첩보국(OSS) 훈련반에 입교, 특수무기반을 수료하고 국내정진군 사령관인 이범석 장군 휘하에서 출동명령을 기다리던 중 일제의 항복으로 8·15 광복을 맞았다. 이듬해인 1946년 6월 귀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빈소는 충북 청주 참사랑 장례식장 무궁화실. 유족으로 부인 홍욱례 여사와 성기씨 등 2남 6녀를 두고 있다. 발인은 28일 오전 10시이며,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043)286-9409. ●오익환(서울신문 인천논현지국장)씨 부친상 27일 충남 공주 백제장례식장, 발인 29일 오전 10시 (041)853-4443 ●오수용(포라리스 사업부 팀장)씨 별세 수민(법무법인 태평양)수준(오토베이스)씨 형님상 27일 경희의료원, 발인 29일 오전 6시30분 (02)958-9556 ●손진승(썬마이크로시스템즈 선임연구원)진구(위니아만도)씨 부친상 이규학(기업은행)장진영(한국전력기술)씨 빙부상 2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9일 오전 6시 (02)3010-2291 ●유융식(사업)지숙(노곡중 교사)윤이(전농중 〃)씨 모친상 김경환(종명한의원 원장)천준호(서울KYC 대표)씨 빙모상 2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9일 오전 7시 (02)3010-2260 ●홍유택(변호사)유경(베어크리크 골프클럽 감사)유신(포항공대 교수)유창(사업)연숙(한양대 교수)씨 부친상 오성환(변호사)씨 빙부상 2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9일 오전 8시 (02)3010-2292 ●허찬(경찰청 경정)씨 부친상 27일 국립암센터, 발인 29일 오전 8시30분 (031)920-0301 ●김경옥(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서울지원장)씨 별세 김명(미국 거주)전재범(황도물류 대표)씨 빙부상 26일 서울대병원, 발인 28일 오전 9시 (02)2072-2011 ●이승녕(PT리콤인도네시아 대표)경녕(아키죤 〃)윤녕(부원전기 과장)씨 모친상 김영소(건원엔지니어링 이사)씨 빙모상 2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8일 오전 10시 (02)3010-2268 ●이순희(숙명여대 음대 교수)씨 모친상 이순철(하나은행 상근감사위원)홍기돈(메릴린치증권 이사)씨 빙모상 2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9일 오전 8시30분 (02)3410-6920 ●정치훈(전 중앙대 일어일문학과 교수)씨 별세 용재(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원)혜선(천안대 강의전담교수)씨 부친상 백형희(단국대 교수)씨 빙부상 2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9일 오전 6시30분 (02)3410-6912 ●정천수(전 중앙일보 고문)남수(전 대농)춘수(전 중앙일보 심의실장)씨 모친상 신구철(독일 거주)최상홍(한일엠이씨 회장)전경석(한일프로텍 사장)씨 빙모상 2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9일 오전 7시 (02)3410-6915 ●김종인(삼환일렉트로닉스 대표)종명(KBS 런던특파원)종경(삼환일렉트로닉스 이사)씨 부친상 정혜승(KBS 보도본부 1TV뉴스제작팀 기자)씨 시부상 27일 전남 장성병원, 발인 29일 오전 9시 (061)395-4441 ●김충식(이얼싼 중국문화원 대표)애경(동대문 창조미술원 원장)미경(이얼싼유학아카데미 강사)씨 부친상 정성욱(삼성전자 LCD총괄)씨 빙부상 27일 강북삼성병원, 발인 29일 오전 11시 (02)2001-1096
  • 서해교전 3주기 첫 ‘해상위령제’

    서해교전 3주기를 맞아 당시 꽃다운 청춘을 조국에 바친 6명의 전사자를 추모하는 ‘해상 위령제’가 처음으로 거행된다. 해군 관계자는 “2002년 6월29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의 기습을 받고 전사한 고속정 ‘참수리 357호’ 장병 6명의 넋을 추모하는 해상위령제가 오는 24일 연평도 인근 교전 해상에서 처음 거행될 계획”이라고 6일 밝혔다. 위령제에는 전사자 6명의 유가족과 ‘357 전우회’ 장병 20여명, 해군 관계자 등이 참석하며 유족들의 교전 현장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위령제에서는 전사자 6인의 위패가 봉안된 평택 2함대사령부 영내 법당에서 천도재를 올리고 두번째 한국형 구축함(KDX-I)인 을지문덕함(3천t급)으로 이동, 제문 낭독과 묵념, 해상 헌화 등의 순서로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은 “늦었지만 의미 있는 일”이라면서 “고인들의 희생정신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해교전 당시 357호에 승선했던 27명 가운데 정장 윤영하 소령, 조타장 한상국 중사, 병기사 조천형ㆍ황도현 중사, 내연사(기관장) 서후원 중사, 의무병 박동혁 병장 등이 전사했고 부정장 이희완 대위는 부상으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다. 정부는 고(故) 윤 소령과 박 병장에게 충무무공훈장을, 나머지 전사들에게는 화랑무공훈장을 각각 추서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납북 유공자 故 고창일 선생 16년 늦게 현충원 위패 봉안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해방 후 초대 외무부 차관과 외무부장관 서리 등을 역임한 고 고창일(1892년생) 선생의 위패가 뒤늦게 현충원에 봉안된다. 국가보훈처 등에 따르면 정부는 1989년 고 선생을 비롯해 조소앙, 김규식, 안재홍 선생 등 총 12명의 납북 독립운동가들의 공훈을 인정, 건국훈장을 추서하고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이들의 위패를 봉안했었다. 하지만 당시 고 선생은 뚜렷한 이유없이 봉안 대상에서 빠졌다. 최근 가족들과 함께 현충원을 방문한 고 선생의 손자 용환(55)씨는 조부의 위패가 없는 사실을 발견하고, 국가보훈처에 수차례 이의를 제기, 이를 바로잡게 된 것.‘김규식파’ 독립운동가로 평가받고 있는 고 선생은 6·25 전쟁 초기 김규식, 원세훈 선생 등과 함께 북한 인민군들에 의해 납북됐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배설 선생 숭고한 뜻 이어가자”

    “배설 선생 숭고한 뜻 이어가자”

    대한매일신보 창간자인 영국인 배설(영국명 어니스트 베델) 선생 96주기를 맞아 27일 서울 마포구 양화진 성지공원에서 추모대회가 열렸다. 배설선생기념사업회(회장 진채호) 주최로 열린 행사는 배설 선생의 생애와 항일 언론투쟁 활동상 회고, 경모시 낭송, 헌화 및 분향, 기념식수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종전 추모식은 서울 외국인 묘지공원에서 열렸으나 올해에는 외국인 묘지공원 옆에 조성된 양화진 성지공원에서 진행됐다. 양화진 성지공원은 개화기때 한국에 기여한 외국인들을 기념하기 위해 최근 마포구청이 새로 조성했다. 대회장인 채수삼 서울신문사장은 양동용 서울신문 이사가 대독한 추념사를 통해 “배설 선생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는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겨레의 독립자존을 일깨운 횃불이었고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될 때까지 그들의 만행을 고발하고 우리 민족을 계몽시켜나가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채 사장은 또 “서울신문은 앞으로도 선생의 숭고한 뜻을 이어 언제나 독자와 진실편에 서서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한편, 공공 이익과 민족화합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이 서울신문이다. 당초 행사에 배설 선생의 후손이 초청됐으나 일정 때문에 8·15광복절에 서울을 찾기로 했다. 배설 선생은 15살 때 일본으로 건너간 뒤 영국 크로니컬지 아시아특파원으로 일하던 중 러·일전쟁을 취재하면서 조선에 관심을 가졌다. 영·일동맹 때문에 운신이 자유롭지 못하자 크로니컬지에 사표를 던지고 1904년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다. 고종의 후원 아래 배설 선생은 박은식·양기탁·신채호 선생을 영입, 민족주의 논조를 펼쳤다. 그러나 일본의 항의를 견디다 못한 영국이 일본의 탄압을 묵인해줘 선생은 한때 상하이에서 구금되기도 했다.1909년 조선에서 지병으로 숨진 뒤 고종이 마련해준 마포구 외국인 묘지에 안장됐다.1964년 한국 언론인들이 기념비를 세웠고, 1968년에는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해공 신익희 선생 추모식

    해공 신익희(1894∼1956) 선생 제49주기 추모식이 5일 ‘해공 신익희 선생 기념사업회’(이사장 유치송) 주관으로 서울 강북구 수유동 소재 선생의 묘소 앞에서 거행됐다. 추모식은 박유철 국가보훈처장, 민주당 한화갑 대표, 송방용 헌정회장, 국민대 김문환 총장, 이철승 서울평화상이사장, 민관식 조병옥박사기념사업회장,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등 각계 인사와 학생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헌화와 분향에 이어 추모사 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선생은 경기도 광주 출신으로 1919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뒤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국호, 관제, 정부관원 및 임시헌장 등을 의결·선포하는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탄생에 기여했다. 광복 후 국민대 초대 총장을 지내다 남조선 과도입법의원 대의원에 피선돼 1947년 의장이 됐다. 이어 1950년에는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1956년 3대 대통령선거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으나 유세중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 “할아버지 닮은 대한사람 되고 싶어요”

    |상하이 연합| “할아버지의 조국, 대한민국의 시민이 되고 싶습니다.” 중국 상하이(上海)에 거주하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이 광복 6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의 국적 취득을 호소하고 나섰다. 주인공은 흥사단의 일원으로 안창호(安昌浩) 선생의 상하이 독립운동 시절 ‘비서’역할을 했으며 김구(金九) 선생의 상하이 임시정부 활동에도 관여한 김복형(金復炯) 선생의 손자인 김광릉(金廣陵·52)씨. 김씨는 이미 ‘한국 국적회복 신청’을 주상하이 총영사관을 통해 법무부 등 정부 당국에 제출했다. 김복형 선생은 독립운동에 헌신한 공로로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1998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김복형 선생은 1897년 평북에서 태어났으며, 일찍이 상하이로 건너와 태창(太昌) 중학교에서 미술선생으로 일하면서 독립운동을 했다. 유명 독립운동가의 회고록 등에 보면 김복형 선생은 안창호 선생의 독립운동에 함께 참여했으며, 특히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虹口) 의거 당시 임정과 또다른 독립운동 조직인 남화연맹 주요 인사들과 교류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김씨의 아버지 김홍락(1919년 출생)은 1952년 중국여인과 결혼했으며 1982년 사망했다. 현재 상하이 전력공업국에서 기술주관(技術主管)으로 일하고 있는 김씨는 “한국 국적을 얻을 경우 할아버지의 숨결이 있는 상하이에서 살 계획”이라며 “한국인으로서 권리를 얻기 위해 국적을 회복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 ‘5월의 독립운동가’ 한성수 선생

    국가보훈처(처장 박유철)는 29일 일제 강점기 중국에서 광복군 제3지대 화남(華南)지역 책임자로 독립운동을 전개한 한성수(1920∼1945) 선생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발표했다. 1920년 평북 신의주 태생인 선생은 1944년 초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강제 징집돼 중국 장쑤성(江蘇省) 인근에 배치됐으나 같은 해 3월 탈출에 성공, 안후이성(安徽省)의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해 일본군내 한국인 장병 포섭, 군자금 확보 등 활동을 펼쳤다. 1945년 3월13일 상하이 주둔 일본군 헌병대에 체포돼 잔혹한 고문을 받았지만 군법회의 재판정에서 법정투쟁을 전개하는 등 기개를 잃지 않았다. 선생은 사형을 선고받아 같은 해 5월13일 유명을 달리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클릭 이슈] ‘태백산맥’·’최장집 교수’ 로 본 이적성 기준

    [클릭 이슈] ‘태백산맥’·’최장집 교수’ 로 본 이적성 기준

    이적표현물은 ‘시대의 면류관’인가, 아니면 ‘국가 전복의 도화선’인가. 검찰은 지난달 31일 소설 ‘태백산맥’과 고려대 최장집 교수를 무혐의 처분했다. 그러나 대한민국건국회 등은 지난 28일 검찰의 태백산맥 결정에 불복, 서울고검에 항고하면서 이적표현물 판단에 대한 논란이 다시 떠올랐다. 이적표현물이란 과연 무엇일까. 판단 기준은 시대에 따라 오락가락하고 있다. ●1990년대 이전,‘반정부=이적표현물’ 1981년 무협소설 ‘무림파천황’을 쓴 대학생 박모씨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처벌됐다. 정파(正派)와 사파(邪派)의 대결 구도로 변증법을 설명했다는 이유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등 사회주의 서적과 김지하와 리영희씨의 저서들도 대표적인 ‘불온 고전’이다. 올 광복절에 독립 유공자로 추서될 예정인 장지락(일명 김산)의 일대기 ‘아리랑’도 마찬가지다. 당시 대법원은 합법적으로 판매되는 서적이라도 일부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찬양, 고무하거나 동조하는 내용이 있다면 처벌했다. ●1990년대 중반,“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체제 위협해야.” 하지만 이적표현물의 기준도 변하기 시작했다.1991년 정치권의 합의에 따라 국보법 제7조 1항에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문구가 추가된 이후부터다. 대법원은 1992년 이후 판례를 통해 이적표현물은 “체제를 위협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북한 관련물들은 여전히 된서리를 맞았다.1990년대 초 대학가를 중심으로 시작된 ‘북한바로알기운동’의 일환으로 알려진 ‘꽃 파는 처녀’등 북한의 4대 소설과 황석영씨 등의 북한방문기도 이적표현물로 분류됐다. ●1990년대 후반, 경직된 이적성 판단 북한 김일성 주석이 1994년 사망하자 남북 관계가 급랭했다. 이적성 판단도 경직됐다. 경상대 교재 ‘한국 사회의 이해’와 ‘태백산맥’도 이때 검찰의 심판대에 올랐다. 하급심의 무죄 판결들이 대법원에서 번복되는 사례가 잇따랐다. 대법원은 1998년 북한 소설인 ‘용해공들’ 등에 대해 “김일성 개인에 대한 찬양과 미화가 심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정도여서 적극적이고 공격적이지 않다.”는 원심의 판결을 깨고 이적표현물로 인정했다. 또 신학철 화백의 그림 ‘모내기’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뒤집었다. 당시 재판부는 “그림 내용이 민중민주주의 혁명과 연방제 통일 등 북한 공산 집단의 주장과 같다.”고 밝혔다. ●2000년대, 이적성 판단에 ‘봄바람’ 2000년 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에도 해빙기가 찾아왔다. 대법원은 2001년 제주 4·3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레드 헌터’가 이적표현물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11일 ‘한국사회의 이해’에 대해 검찰이 기소한 지 11년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송두율 교수의 저서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고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검찰도 소설가 조정래씨와 최장집 고려대 교수에 대해 남북 관계를 감안했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식지 않는 이적성 논란 이적표현물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1992년 이적표현물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 당시 이회창, 이재성, 배만운 등 세 명의 대법관은 “판단 기준이 애매모호하다.”는 취지의 소수의견을 제시했다. 법원 관계자는 “예전의 이적표현물들을 다시 심판한다면 변경될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최근 무혐의 결정을 통해 2000년대 중반 판단 기준을 살짝 내비쳤다. 남북 관계와 대중성(태백산맥)그리고 학문과 순수 예술성(최장집)등이다. 검찰 관계자는 “시대에 따라 법적용은 변한다.”면서 “국보법이 폐지돼 내란·외환의 예비음모죄로 이적표현물을 처벌한다면 남용의 소지가 크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송호창 변호사는 “법원과 검찰의 이적성 판단은 매우 자의적”이라면서 “사회가 미숙해 국보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국보법이 사회의 성숙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아리랑’ 김산 서훈 추서될 듯

    미국의 여류작가 님 웨일스의 소설 ‘아리랑(원제 SONG of ARIRANG)’의 주인공 김산(1905∼1938)에게 독립유공자 서훈이 추서될 전망이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28일 “사회주의 계열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독립운동을 한 유공자를 포상한다는 새로운 포상 기준에 의거해 기존의 포상 보류자 2만 6000여명에 대한 재심사를 추진키로 했다.”며 “김산 선생의 공적도 재심사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고 밝혔다. 본명이 장지락인 김산은 1936년 상하이에서 조선민족해방동맹을 창설하고 조선 혁명가 대표로 선발되기도 했으며,1년 뒤엔 ‘중국의 붉은 별’로 유명한 미국의 신문기자 애드거 스노의 부인 님 웨일스를 만나 3개월간 20여 회에 걸쳐 나눈 대화가 그의 혁명적 생애를 그린 소설 ‘아리랑’으로 출간됐다. 1938년 트로츠키주의자이자 일본의 간첩이라는 죄목으로 중국 공산당에 체포돼 처형됐다. 이후 그는 남에서는 공산주의자였다는 이유로, 북에서는 연안파였다는 이유로 중국 동북 방면에서 항일투쟁 사실이 철저히 묻혔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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