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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리터리 인사이드] “꼭 살아서 갈게요. 어머니!” 잊지 않겠습니다

    [밀리터리 인사이드] “꼭 살아서 갈게요. 어머니!” 잊지 않겠습니다

    6·25 전쟁. 우리에겐 너무나 아픈 역사입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을 시작으로 낙동강 방어, 서울 수복, 평양 탈환, 다시 1.4후퇴와 서울 수복으로 이어진 공방전은 한반도에 결코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국민들의 관심사에서 사라지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우리 장병 전사자만 16만명. 여전히 유해조차 발굴하지 못한 전사자가 13만명에 달합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발굴한 전사자 유해는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국군 8477명, UN군 13명, 북한군과 중공군 등 적군 1189명 등 9500여명에 불과합니다. 정전협정일(7월 27일)을 맞아 저마다 아픔을 간직한 그들의 사연을 되돌아 봤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을 가면 특이한 묘비가 하나 있습니다. 이른바 ‘이름없는 묘’라고 불리는 묘비인데요. 묘비에는 ‘육군소위 김○○의 묘’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이름 부분은 지워진 것이 아니라 아예 새긴 흔적조차 없습니다. ‘김 소위’의 묘라니, 무명용사의 묘비를 직접 보면 어리둥절 할 수 밖에 없는데요. 현충원에서 유일한 이름없는 묘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애틋한 사연이 있습니다. ●14년 만에 찾은 전우 故 김수영 소위 6·25 전쟁 초기인 1950년 8월. 낙동강 방어선의 동쪽 지역인 안강지구의 도음산(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학천리)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기세가 오른 북한군 12사단은 이 지역을 돌파해 포항을 손에 넣으려 했고, 수도사단이 주축이 된 우리 군은 병력을 정비해 맹렬하게 반격했습니다. 당시 한 부대의 소대장이었던 황규만 소위는 이 치열한 전투의 중심에 있었죠. 전투로 녹초가 되다시피한 어느 날, 다른 부대의 소대장 김모 소위가 지원 병력으로 도착했습니다. 가뭄의 단비와 같았고, 장병들의 사기는 크게 올랐습니다. 두 사람과 소대 장병들은 힘을 합쳐 싸웠지만, 27일 안타깝게도 김 소위는 적의 총탄에 숨을 거두고 맙니다. 정식으로 매장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황 소위는 김 소위의 주검을 능선 아래쪽 소나무 밑에 가매장한 뒤 돌로 표시하고 전투를 계속했습니다. 전투가 벌어진 지 14년이 지난 시점에 황 소위는 진급을 거듭해 어느새 대령이 돼있었습니다. 1군 사령부 비서실장이었던 그는 전우의 시신을 찾기 위해 직접 도음산으로 향했습니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으며 산속을 헤맨 끝에 다행히 유해는 찾았지만 전우의 이름을 알 길이 없었죠.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육군참모총장에게 청원한 끝에 1964년 5월 29일 국립묘지 제54묘역 1659호에 이름없는 전우의 유해를 안장하게 됩니다. 황규만씨는 준장까지 오른 뒤 1976년 예편했지만, 단 한시도 이름없는 전우의 묘비를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90년 11월 드디어 가족과 이름을 찾았습니다. 고(故) 김수영 소위. 비극적인 역사와 전우애를 잊지 말자는 의미로 그의 묘비는 지금도 여전히 ‘육군소위 김○○의 묘’로 남아있습니다. 6·25 전쟁에 형제가 나란히 참전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례도 있습니다. 전사한 지 60년 만에 만나 현충원에 묻힌 고 이만우 하사와 이천우 이등중사, 65년 만인 올해 나란히 묻힌 고 강영만 하사와 강영안 이등상사가 그들입니다.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이만우, 이천우 형제는 낙동강 전투가 한창이던 1950년 8월과 9월 차례로 자원입대했습니다. 형과 동생의 나이는 각각 21세와 18세였습니다. 요즘 같으면 한창 공부에 매진하거나 한껏 젊음을 누릴 나이지만, 형이 먼저 입대한 뒤 홀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7남매의 막내인 동생도 기꺼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뒤를 따랐습니다. ●홀어머니 만류도 뿌리치고 형과 함께 군으로 형은 1사단, 동생은 7사단 소속으로 두 사람 모두 서울 수복에 이어 북진 선봉에 서서 평양탈환작전에 참여하는 등 혁혁한 무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51년 5월 경기 고양지구 봉일천 전투에서 형이 먼저 전사한 데 이어 9월에는 동생도 강원 양구군의 백석산 탈환을 앞두고 무명 901고지 부근 능선에서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화랑무공훈장을 수훈했습니다. 이들이 1년 남짓 참전기간 동안 군화를 신고 걸었던 거리는 3400km. 서울과 부산을 4번 가까이 왕복할 수 있는 거리를 두 형제는 싸우고, 또 싸우며 걸었습니다. 형은 1960년 5월 서울현충원에 몸을 누일 수 있었지만, 동생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동생은 그렇게 강산이 여섯 번 바뀔 동안 쓸쓸히 차디찬 땅에 남겨져 있었습니다. 심지어 먼저 현충원에서 안식처를 찾은 형조차도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됐음에도 불구하고, 신원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가족들은 이런 사실을 몰랐습니다. 다음해 두 사람은 현충원에 나란히 묻혔고, 가족들도 소중한 유품을 전달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호국형제의 묘’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지난 6월에는 강영만 하사와 동생 강영안 이등상사의 합동안장식이 열렸습니다. 두 번째 형제의 묘입니다. 강 하사는 중공군 공세가 한창이던 1951년 1월 자원입대해 횡성전투, 호남지구 공비토벌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1951년 8월 북한군 1만여명과 일주일 동안 치열한 고지전을 벌인 2차 노전평 전투에서 장렬하게 산화했죠. 동생인 강영안 2등 상사는 6·25 전쟁 발발 전인 1949년 1월에 입대해 2사단 소속으로 옹진반도 전투, 경북 상주 화령장 전투,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역전의 용사였습니다. 1952년 10월 강원 철원군 김화읍 부근에서 벌어진 저격능선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고지를 빼앗으려는 중공군의 파상공세를 저지한 저격능선전투는 백마고지전투와 함께 6·25 전쟁 2대 격전으로 불리는 치열한 전투였습니다. 동생 강 이등상사의 유해는 전투 직후 수습돼 서울현충원에 안장돼 있었지만 형의 유해는 찾지 못해 위패만 있었죠. 형제는 65년 만인 올해 현충원에서 유골로나마 서로를 마주하게 됐습니다. ●박격포탄 들고 육탄으로 백마고지 탈환에 나서다 서울 용산구의 전쟁기념관에 들어가면 1952년 10월 강원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육탄 3용사상’이 있습니다. 9사단 30연대 1대대 1중대 1소대장인 고 강승우 소위와 부하였던 오규봉·안영권 일병은 395고지(백마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적의 기관총 진지로 접근했습니다. 오규봉 일병이 먼저 대공포판을 등에 메고 돌격했고, 안 일병과 강 소위가 엄호사격을 했습니다. 강 소위는 직접 박격포탄과 TNT를 들고 기관총 진지 7m 지점까지 접근했고, 폭발물을 던지는 순간 총상을 입었지만 안 일병이 다시 주워 진지에 던져 넣었습니다. 이후 오 일병도 진지 안에 수류탄을 던졌고, 세 사람은 현장에서 산화했습니다. 9사단은 그들의 활약에 힘입어 고지를 탈환했죠. 이후 강 소위는 중위로, 오 일병과 안 일병은 각각 하사로 추서됐습니다. 강 중위와 안 하사는 고향과 모교에서 추모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됐지만, 직계 자손이 없었던 오 하사의 상황은 좀 달랐습니다. 국가 유공자 보상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은 물론 변변한 추모비조차 없었죠. 뒤늦게 유일한 혈육인 동생으로부터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들은 9사단 관계자와 전우회 등이 2013년 1월부터 모금활동을 벌이고 고향인 천안시에서 부지를 제공해 그 해 오 하사 추모비를 건립했습니다. 정규군조차 되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영웅적인 전투를 벌인 학도병의 슬픈 사연도 많습니다. 특히 1950년 8월 포항여중 전투에서 산화한 학도병들의 이야기는 2010년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수도사단 김석원 준장의 명성을 듣고 온 학도병 수백명 가운데 71명은 김 준장이 3사단으로 옮기자 함께 싸우겠다며 8월 8일 포항으로 왔습니다. 이들은 변변한 무장도 하지 못한 빈몸이었습니다. 3사단은 학도병 1명당 미 해병대에서 받은 M1 소총 1정과 실탄 250발을 지급했죠. 이들은 9일부터 사단 후방지휘소가 있는 포항여중에 집결해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연락장교와 소규모 지원인력만 있었을 뿐 전투병은 모두 전방에서 북한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당장 지휘소로 적군이 몰려올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내용은 일부 각색돼 영화 ‘포화속으로’의 소재가 되기도 했죠. 일부 학도병은 소년원에 가기 싫어 끌려온 것으로 설정돼 있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비록 군번은 없었지만 모두 나라를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스스로 찾아온 이들이었죠.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학도병들의 비극 비극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습니다. 11일 새벽 4시 30분부터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고, 진격해오는 북한군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적이 학교 앞 50m 지점까지 다가오자 학도병들의 사격이 시작됐습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20여명을 잃은 북한군은 해가 뜨자 전열을 정비해 공격했고, 학도병들의 항복을 종용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항복을 거부하고 실탄을 모두 소진할 때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무기 창고를 부순 뒤 수류탄 약간과 실탄을 다시 확보해 물러서지 않고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러자 북한군은 장갑차 5대를 동원해 전진했고, 그 중 2대가 학교 정문으로 돌입하며 기관총을 난사했습니다. 실탄이 떨어진 학도병들은 적이 눈 앞까지 다가오기를 기다려 수류탄을 던지며 분전했지만 결국 48명이 전사했습니다. 6명은 부상당했고 4명이 실종, 13명은 포로가 됐습니다. 포로가 된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탈출했지만 2명의 행방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3사단 지휘부와 포항 시민들은 학도병들이 전투를 벌이는 사이 무사히 남쪽으로 대피했고, 14일 전열을 재정비한 1군단이 다시 포항을 탈환하게 됩니다. 전사한 서울 동성중 3학년 이우근 대원의 옷속 수첩에서는 영화에서처럼 부치지 못한 편지가 발견됐습니다. 절절한 내용에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아래는 편지 내용입니다.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명은 될 것입니다.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어제 내복을 빨아 입었습니다. 물내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왜 수의(壽衣)를 생각해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해군, 제2연평해전 故 한상국 중사 전사일 변경해 상사 추서

    해군, 제2연평해전 故 한상국 중사 전사일 변경해 상사 추서

    해군은 9일 2002년 6월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고 한상국(당시 27세) 중사를 상사로 추서 진급시켰다고 밝혔다. 해군 관계자는 이날 “전공사망심사위원회에서 한 중사의 전사일을 제2연평해전 발발일인 2002년 6월 29일에서 시신을 인양한 같은 해 8월 9일로 변경하기로 의결했다”라면서 “전사일이 재조정되면서 계급도 중사에서 상사로 진급시키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 중사의 제2연평해전 당시 계급은 하사였지만 불과 이틀 뒤인 같은 해 7월 1일 중사 진급이 예정돼 있었다. 당시 침몰한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정의 조타장이었던 고 한상국 상사는 고속정과 함께 바다에 가라앉아 1개월여 만인 8월 9일에 인양됐다. 당시 군 당국은 전사자들을 한 계급씩 특진시켰지만 한 중사의 경우 상사로 다시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군 당국은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사건의 전사자들의 경우 시신 발견일을 전사일로 따진 전례가 있다. 이에 따라 한 상사 유족들에게 매달 지급되는 보상 연금의 액수는 208만 5000원에서 224만2000원으로 인상된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시민 안전 위해 애쓰던 모습 생생한데…”

    “시민 안전 위해 애쓰던 모습 생생한데…”

    중국에서 공무원 연수 중 버스 사고로 숨진 광주시청 김철균(55) 서기관 등 전국 8개 지자체 공무원의 영결식이 8일 치러졌다. 대부분 지자체장(葬)으로 엄수됐다. 이날 오전 광주시청 문화광장에서 열린 고 김철균 서기관 영결식에는 윤장현 광주시장을 비롯, 김 서기관의 유가족과 직장 동료 등 800여명이 참석했다. 영결식은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 보고, 승진 추서, 조사, 조시 낭송, 헌화, 분향, 유족 인사 등의 순으로 1시간가량 진행됐다. 윤 시장은 조사에서 “동료를 지켜드리지 못한 애통한 심정과 미안함 때문에 자책과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 없다”면서 “살아생전 청사 곳곳에 배인 당신의 발자취, 150만 시민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던 모습이 생생하다”고 애도했다. 조사와 동료의 조시 낭송, 유족 인사 등이 이어지자 영결식장 곳곳은 ‘눈물바다’로 변했다. 김 서기관은 이날 사무관(5급)에서 서기관으로 추서됐다. 인천시 서구 한금택(55) 서기관(4급)의 영결식도 이날 인천 서구청장장(葬)으로 엄수됐다. 고인이 마지막으로 근무한 서구청사 앞마당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강범석 서구청장과 유가족, 직장 동료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강 구청장과 한 서기관의 동료 등이 추모사를 읽자 영결식장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한 서기관이 숨진 다음날 소방공무원 채용 시험에서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아 주위를 안타깝게 한 고인의 둘째 아들(24)도 모친과 함께 눈물을 쏟았다. 이번 사고로 숨진 공무원이 소속된 8개 지자체 영결식장에서는 유가족과 졸지에 동료를 잃은 공무원들이 고인의 마지막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슬픔에 잠겼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사고 희생자 서기관 특진 추서 잇따라

    지자체들이 지난 1일 지방행정연수원의 중국 지린성 지안 연수 중 버스 추락 사고로 사망한 사무관에게 잇따라 서기관으로 승진을 추서하고 나섰다. 청사 등에 마련된 빈소에는 동료 공무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제주도는 3일 중국 연수 중 교통사고로 숨진 조영필(54) 지방농업사무관을 서기관으로 승진 추서했다. 또 부산시는 김태홍(55) 사무관을, 광주시는 김철균(55) 사무관을 1계급 승진시켜 서기관으로 추서했다. 서울 성동구는 조중대(50) 사무관의 승진을 사고 대책에 포함시킨 상태다. 승진 근거는 지방공무원법 39조의3 ‘재직 중 공적이 특히 뚜렷한 사람이 공무로 사망하였을 때’이다. 시·도지사, 군수, 시장 등 임명권자의 재량으로 가능하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4조에 따르면 ‘지자체에서 일상적으로 공무에 종사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원으로서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 역시 승진이 가능하지만 순직 여부가 추후 확정되기 때문에 적용하지 않았다. 순직은 ‘특별히 위험한 공무 수행 중 사망’으로 정의된다. 지자체 관계자는 “사망한 대부분의 사무관이 업무 성과도 다양하며 대통령표창 등의 수상경력도 많아 승진 추서에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각 지자체는 청사 등에 분향소를 만들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함께 근무했던 공무원과 지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용감하게 싸운 두 영웅” 100년 만에 전한 훈장

    “용감하게 싸운 두 영웅” 100년 만에 전한 훈장

    “오늘 100년 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용감하게 싸웠던 용사들에게 늦었지만 메달을 수여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오래 걸리든 상관없이 우리의 영웅들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알리고 그들의 명예를 드높일 것입니다.” 2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명예훈장 추서식.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차대전에서 동료를 구하는 등 용맹을 발휘하고도 석연찮은 이유로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받지 못했던 사병 출신 헨리 존슨(왼쪽)과 윌리엄 셔민(오른쪽)에 대해 그들의 자손 등을 초청해 뒤늦게 훈장을 수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두 분이 마땅한 경의를 받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며 “여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환영받지 못하는 다른 영웅들이 있다. 우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모든 영웅들의 이야기가 알려지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오늘날의 미국은 헨리와 윌리엄과 같은 분들이 전쟁터에 나가 책임을 다했기 때문에 이뤄졌다”며 “당신들이 우리를 위해 한 희생에 영원히 감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18년 육군 이병이던 존슨은 프랑스 아르곤에서 동료 병사와 단둘이 독일군에 포위됐다. 총상을 입은 그는 자신의 총이 부서졌는데도 육탄전을 벌여 동료를 살려냈다. 또 당시 병장이던 셔민은 같은 해 프랑스 엔마른 전투에서 부상한 아군을 구하려고 위험을 무릅쓰다 자신도 기관총 공격을 받고 부상했다. 이런 활약이 알려지면서 셔민은 1919년, 존슨은 사후인 2002년 두 번째로 높은 등급의 무공훈장인 수훈십자훈장을 받았다. 이후 이들에게 명예훈장을 추서해야 한다는 청원이 제기됐으나 그동안 미군 당국은 공적 사실에 대한 추가 증명이 필요하다는 이유 등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에 존슨이 흑인이고 셔민은 유대인이라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명예훈장 추서 거부가 인종차별 때문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조선 무역왕’ 최봉준, 그는 민족운동가였다

    ‘조선 무역왕’ 최봉준, 그는 민족운동가였다

    최봉준(1858~1917)은 조선시대 후기에 필적할 이가 없는 무역상이자 최고경영자(CEO)였다. 함경북도 성진항에 동북아 4개국을 아우르는 종합무역상사를 차렸다. 화물선, 여객선을 보유하고서 자신이 새로 개척한 항로를 통해 화물 및 여객운송 사업을 했다. 당시 시중 은행권에 유통되는 돈이 10만원도 채 되지 않던 시절, 500만~600만원의 자금을 유통시킬 정도의 거상이었다. 이렇듯 최봉준은 성공한 기업인의 모델로만 알려졌을 뿐 민족운동에 힘썼던 그의 진면목은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는 26일 오후 경기 화성시 수원대에서 열린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월례연구발표회에서 민족운동가와 계몽운동가의 관점에서 ‘한인신보’, ‘해조신문’, ‘독립신문’ 등 당대 사료를 통해 최봉준의 삶과 활동을 살폈다. 최봉준은 러시아에서 최초로 한글신문인 ‘해조신문’을 발행했다. 1908년 2월 펴낸 창간호에서 “우리의 문명제도를 본받아 가던 일본에 보호라 하는 더러운 칭호를 받으니”라고 분개하며 을사보호조약(을사늑약)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드높였다. 또한 성진 신평의 학교 교장은 물론 연해주 명동학교, 크라스키노(연추) 성흥의숙 설립 등 교육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계몽운동가답게 안창호와 가깝게 교유하며 편지를 주고받았다. 이 밖에 한국국민회의 기관지 ‘대동공보’(大東共報)의 운영자금을 맡았고,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역 의거 후에는 그의 변호비와 유족의 생계비를 위하여 많은 금액을 전달했다. 1910년 8월 국권이 상실될 위기에 처하자 이상설, 유인석, 김학만 등이 시베리아 신한촌에서 한인들을 규합하여 조직한 성명회의 선언서 작업을 함께했다. 다만 국내 의병 등의 항일무장투쟁에는 반대 입장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크라스키노 지역 자산가이자 독립운동의 대부였던 최재형과 함께 활동해 왔지만 1909년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했던 무장투쟁 의병에 대한 원조 요구를 거절해 그와 갈라선 것으로 확인됐다. 학계 일각에서 친일 행적의 증거로 삼는 사례가 되기도 했지만, 친일이라기보다는 보수적인 계몽주의자 최봉준의 한계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최봉준에게는 1996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끝까지 지킨 조종간 끝모를 당신의 희생 영원히 기억할게요

    끝까지 지킨 조종간 끝모를 당신의 희생 영원히 기억할게요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 헬기 추락사고로 순직한 최승호·백동흠 경감, 박근수 경사, 장용훈 경장의 합동 영결식이 25일 서해해양경비안전본부에서 국민안전처장으로 엄수됐다. 고인들에게는 옥조근정훈장과 1계급 특진이 추서됐다. 영결식장은 유가족들과 동료 해경들의 눈물로 뒤범벅이 됐다. 어린 자녀가 나란히 영결식장을 지킨 백동흠 경감 가족과 몸이 불편해 목발에 의지한 채 아들의 장례식장을 찾은 장용훈 경장 아버지의 모습은 영결식장을 더 슬픔에 젖게 했다. 특히 갓 돌이 지난 아들과 부인을 남긴 채 먼저 간 장 경장은 지난 23일자로 사망 인정이 되었지만 유일하게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서해해경본부 항공단 김태일 경위는 “숨 쉬고 있는 이 순간에도 떠나간 당신들이 너무나 보고 싶다”며 “이제 헬기에 묶인 벨트를 풀고 비행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고 편안한 곳에서 영면하기를 바란다”고 눈물로 고별사를 했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구조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한순간 망설임도 없이 재난현장으로 달려갔던 열정과 사명감, 국민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애국심과 희생정신은 우리의 귀감으로 남을 것”이라면서 “그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으며 빛나고 보람 있는 삶이었기에 더이상 미련은 접어두고 명목(瞑目)하시길 기원한다”고 애도했다. 고인들은 26일 대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치된다. 고인들은 지난 13일 신안군 가거도의 어린이 응급환자 후송을 위해 출동 중 헬기 추락 사고로 순직했다. 서해해경본부는 실종자 장 경장에 대한 수색을 계속하고 있다. 목포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뉴스 플러스] 격무로 숨진 故홍경우 재난안전실장 승진 추서

    국민안전처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숨진 홍경우(56) 중앙재난안전상황실장을 지난 9일 부이사관(3급)으로 승진 추서했다고 11일 밝혔다. 승진 인사 기준일은 사망 하루 전인 7일이다. 안전처에 따르면 홍 실장은 토요일이던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상황실에서 근무를 마치고 지하철로 퇴근하던 중 극심한 복부 통증으로 119구급차에 실려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장출혈 진단을 받은 홍 실장은 안정을 되찾은 것으로 보였지만 8일 만인 지난 8일 수술을 받다 극심한 출혈로 세상을 등졌다. 홍 실장은 지난달 11일 기술서기관(4급) 신분으로 중앙재난상황실장에 발탁되며 인정을 받았다. 이후 청사 인근에 별도로 거처까지 마련하고 설 연휴와 토·일요일에도 매일 출근하며 전국 재난 발생 상황을 챙기는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 [부고] 애국청년단 유만수 의장 부인 별세

    일제강점기 마지막 항일 의거인 부민관 사건의 주역이자 대한애국청년단 의장이었던 고 유만수(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씨의 부인인 김계갑 여사가 지난 8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0세. 유족으로는 서울신문 모스크바 특파원 출신으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인 유민씨 등 2남 3녀. 11일부터 마련되는 빈소는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서울보라매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13일 오전이다. 고인은 대전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010-6607-8858.
  • 이달의 스승 최규동 선생, 친일 행적 드러나 ‘충격’

    이달의 스승 최규동 선생, 친일 행적 드러나 ‘충격’

    이달의 스승 최규동 선생, 친일 행적 드러나 ‘충격’ ‘이달의 스승’‘백농 최규동’ 교육부가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한 최규동(1882∼1950) 전 서울대 총장의 친일 행적이 드러났다. 교육부는 학생들에게 ‘모범적 스승’으로 가르칠 인물을 선정하면서 검증 작업이 미흡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교육부는 “3월의 스승으로 선정된 최규동 선생이 일제강점기에 기고한 (친일 논란) 글이 발견됐다”면서 “최 선생을 포함해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된 12명에 대해 전문기관에 의뢰해 철저히 재검증하도록 하겠다”고 8일 밝혔다. 이어 교육부는 “당시 심사과정에서 최 선생의 친일행적 여부를 확인했다. 창씨개명 거부, 건국훈장 추서 등 대한민국 초기 교육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인정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최근 역사정의실천연대의 분석 결과, 최 전 총장은 일제 관변 잡지인 ‘문교의 조선’ 1942년 6월호에 실명으로 “죽음으로 임금(천황)의 은혜에 보답하다”는 제목의 글을 일본어로 게재한 사실이 확인됐다. 교육부는 이달부터 초·중·고등학교에서 시작한 최 전 총장에 대한 홍보와 교육을 중단하기로 했다. 앞서 교육부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지난달 16일 스승을 존경하는 풍토를 조성하고자 최 전 총장과 도산 안창호 선생, 고당 조만식 선생 등을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달의 스승 최규동 선생, 알고 보니 친일 행적? ‘충격’

    이달의 스승 최규동 선생, 알고 보니 친일 행적? ‘충격’

    이달의 스승 최규동 선생, 알고 보니 친일 행적? ‘충격’ ‘이달의 스승’‘백농 최규동’ 교육부가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한 최규동(1882∼1950) 전 서울대 총장의 친일 행적이 드러났다. 교육부는 학생들에게 ‘모범적 스승’으로 가르칠 인물을 선정하면서 검증 작업이 미흡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교육부는 “3월의 스승으로 선정된 최규동 선생이 일제강점기에 기고한 (친일 논란) 글이 발견됐다”면서 “최 선생을 포함해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된 12명에 대해 전문기관에 의뢰해 철저히 재검증하도록 하겠다”고 8일 밝혔다. 이어 교육부는 “당시 심사과정에서 최 선생의 친일행적 여부를 확인했다. 창씨개명 거부, 건국훈장 추서 등 대한민국 초기 교육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인정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최근 역사정의실천연대의 분석 결과, 최 전 총장은 일제 관변 잡지인 ‘문교의 조선’ 1942년 6월호에 실명으로 “죽음으로 임금(천황)의 은혜에 보답하다”는 제목의 글을 일본어로 게재한 사실이 확인됐다. 교육부는 이달부터 초·중·고등학교에서 시작한 최 전 총장에 대한 홍보와 교육을 중단하기로 했다. 앞서 교육부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지난달 16일 스승을 존경하는 풍토를 조성하고자 최 전 총장과 도산 안창호 선생, 고당 조만식 선생 등을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달의 스승 최규동 선생, 친일 행적에 ‘충격’

    이달의 스승 최규동 선생, 친일 행적에 ‘충격’

    이달의 스승 최규동 선생, 친일 행적에 ‘충격’ ‘이달의 스승’‘백농 최규동’ 교육부가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한 최규동(1882∼1950) 전 서울대 총장의 친일 행적이 드러났다. 교육부는 학생들에게 ‘모범적 스승’으로 가르칠 인물을 선정하면서 검증 작업이 미흡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교육부는 “3월의 스승으로 선정된 최규동 선생이 일제강점기에 기고한 (친일 논란) 글이 발견됐다”면서 “최 선생을 포함해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된 12명에 대해 전문기관에 의뢰해 철저히 재검증하도록 하겠다”고 8일 밝혔다. 이어 교육부는 “당시 심사과정에서 최 선생의 친일행적 여부를 확인했다. 창씨개명 거부, 건국훈장 추서 등 대한민국 초기 교육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인정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최근 역사정의실천연대의 분석 결과, 최 전 총장은 일제 관변 잡지인 ‘문교의 조선’ 1942년 6월호에 실명으로 “죽음으로 임금(천황)의 은혜에 보답하다”는 제목의 글을 일본어로 게재한 사실이 확인됐다. 교육부는 이달부터 초·중·고등학교에서 시작한 최 전 총장에 대한 홍보와 교육을 중단하기로 했다. 앞서 교육부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지난달 16일 스승을 존경하는 풍토를 조성하고자 최 전 총장과 도산 안창호 선생, 고당 조만식 선생 등을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기일에 맞춰… 가족 품에 안기는 6·25 참전용사

    6·25전쟁 때 전사한 국군 참전용사의 유해가 본인 기일(忌日)에 64년 동안 애타게 기다린 가족의 품에 안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북한군과의 교전 중 전사한 고(故) 김영탁 하사(당시 23세)의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와 국방부 장관 명의의 위로패, 유품 등을 28일 고향인 경북 청도에서 여동생 김경남(84)씨에게 전달한다고 27일 밝혔다. 육군 9사단 29연대 소속이던 김 하사는 1950년 9월 입대했고 1951년 1월 15일 강원도 정선·강릉 일대에서 인민군 침투부대 격멸작전에 참여했다 전사했다. 군 당국은 1954년 김 하사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했다. 하지만 전투가 끝나도 김 하사 유해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유족들은 다만 1951년 1월 16일(음력 1950년 12월 9일)부터 김 하사가 보이지 않았다는 주변의 증언을 토대로 음력 12월 9일을 기일로 정해 매년 제사를 지내왔다. 유해가 전달되는 28일은 음력으로 12월 9일이다. 하지만 60여년이 지난 2013년 9월 유해발굴감식단은 강원 동해시에 사는 김기준(76)씨로부터 “아버님이 동해 망상동 선산 인근에 국군 전사자 일부를 매장했다고 말씀하셨다”는 제보를 받았다. 이후 감식단은 제보지역에서 7구의 유해와 함께 현장에서 군번 ‘1136180’이 선명하게 새겨진 스테인리스 재질의 인식표와 버클, 단추 등을 함께 발견했다. 이후 유전자 감식 등 15개월 동안 확인 작업을 벌인 결과 유해 1구와 유품의 주인공이 김 하사로 확인됐다. 여동생 경남씨는 “살아생전 오빠를 현충원에 모시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제야 가슴에 묻었던 한을 풀었다”고 말했다. 한편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2000년부터 국군전사자 8477구를 발굴했고 이번에 김 하사의 신원을 포함해 모두 100명의 신원을 확인해 유족에게 통보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37년 만의 소령 진급

    37년 만의 소령 진급

    “빛바랜 소령 계급장을 돌아가신 지 37년 만에 달아드리게 됐네요. 말로 다할 수 없는 지난 세월을 보상받아 여한이 없습니다.” 1977년 남편을 잃은 현부덕(63)씨는 서울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한참을 울먹이다가 드문드문 말을 이어갔다. 현씨의 남편 변화수(사망 당시 27세) 대위는 육군 항공대 소속으로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리는 국군의 날 행사를 앞두고 전투헬기 편대비행 예행연습을 하다가 여의도 상공에서 추돌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군은 변 대위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순직 처리했지만, 사고 원인이 고인의 과실에 따른 것이라며 명예진급은 시키지 않았다. 현씨는 청와대, 국방부 등에 남편의 과실이 아니라며 남편의 정확한 사망원인 규명 등을 요구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변 대위 사망 때 갓 돌을 넘겼던 아들이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변 대위의 아들은 지난 7월 아버지의 소령 계급 추서를 해달라며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고, 권익위는 “사고 원인은 헬기 편대의 행사장 진입시간과 비행편대 간 간격이 갑자기 변한 것”이라며 “고인 과실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육군에 시정을 권고했다. 육군은 “권익위의 권고를 적극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변 대위는 순직 37년 만에 소령으로 진급하게 됐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백남준 선생 등 독립유공자 192명 포상

    백남준 선생 등 독립유공자 192명 포상

    국가보훈처는 제69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독립유공자 192명을 포상한다고 12일 밝혔다.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 중에는 지난해 6월 주일 한국대사관 이전 과정에서 발견된 ‘3·1운동 피살자 명부’에 등재된 30명이 함께 포함됐다. 백남준 선생 등 3명이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고 87명이 애국장, 71명이 애족장을 각각 받는다. 포상자 가운데 생존자는 없으며 여성은 4명이다. 백 선생은 일제의 한국 강점 직후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중국 관내와 만주를 누비며 항일무장투쟁을 주도해 독립장이 추서된다. 함께 독립장을 받는 송중직 선생은 황해도와 인천의 섬들을 무대로 대대적인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 19년의 형을 받고 순국했다. 정원명 선생은 미국 하와이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고 동포사회의 통합에 힘을 쓴 공로로 애국장이 추서됐다. 이번 포상자 중 보훈처가 일제의 행형기록((行刑記錄)과 정보문서, 신문기사 등 각종 문헌자료를 분석하고 현지 조사를 하는 등 자체 발굴해 포상하게 된 독립유공자는 182명이다. 아울러 보훈처는 전수하지 못하는 독립유공자의 훈장을 그 후손에게 전달하기 위해 후손 찾기를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7월 말 기준으로 총포상자 1만 3509명 중 34%인 4586명이 후손을 찾지 못해 훈장이 전수되지 못하고 있다.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육군참모총장에 김요환 육군 제2작전사령관 내정…김요환 프로필 어떤가 보니

    육군참모총장에 김요환 육군 제2작전사령관 내정…김요환 프로필 어떤가 보니

    ‘육군참모총장’ ‘김요환 육군참모총장’ 육군참모총장에 김요환 육군 제2작전사령관이 내정됐다. 28사단 윤모 일병 폭행사망 사건으로 사의를 표한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의 후임자로 김요환 육군 제2작전사령관(대장·육사 34기)이 내정됐다고 국방부가 7일 밝혔다. 김요환 내정자는 8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임명될 예정이다. 제3군사령관에는 김현집 합동참모차장(중장·육사 36기)이, 제2작전사령관에는 이순진 항공작전사령관(중장·3사 14기)이 각각 내정됐다. 오는 9월 임기만료 예정이었던 권혁순 현 3군사령관(대장·육사 34기)은 이번에 조기 교체됨에 따라 앞서 사의를 표한 권 육군총장과 함께 전역하게 됐다. 권 총장 사퇴에 따른 육군 수뇌부 인사는 오는 10월 정기 장성인사 때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으나 잇따른 대형 사건으로 흔들리는 육군을 추스를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조기에 단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최근 병영 내 폭행 및 가혹행위로 유명을 달리한 고(故) 윤모 상병(순직 결정 후 상병으로 추서)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과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며 “이러한 악습과 적폐를 척결하고 선진강군으로 환골탈태하기 위해 육군참모총장 및 대장 인사를 조기에 단행했다”고 밝혔다. 김 육군총장 내정자는 3사단장과 육군본부 정보작전지원참모부장, 수도군단장, 육군참모차장 등을 역임한 야전작전 분야 전문가로 꼽힌다. 국방부는 “현 안보위협으로부터 군사대비태세를 확고히 하기 위한 작전지휘 능력 및 군사 전문성을 갖췄으며, 병영문화를 혁신할 수 있는 마인드와 엄정한 군 기강을 확립할 수 있는 조직관리 능력을 겸비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새로운 육군을 건설할 최적임자로 판단했다”며 내정 배경을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병영폭력 근절 국가혁신 차원서 다뤄야

    육군 28사단에서 윤모 일병이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로 숨진 사건의 파장은 크기만 하다. 자식을 군에 보냈거나, 보내야 하는 부모들의 심정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군 복무 중이거나, 입영을 기다리는 젊은이들의 불안감 역시 덜하지 않을 것이다. 피해 당사자인 윤 일병은 군 당국의 순직처리로 상병으로 진급이 추서됐다지만, 억울하게 죽어간 그의 영혼을 위로하기에는 헛웃음이 나올 만큼 턱없는 일이다. 지금 온 국민은 정부와 군 당국이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할 것인지 주시하고 있다. 군에서 벌어지는 가혹행위가 ‘남의 일’인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며 가슴을 조이고 있는 부모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이다. 또 내 자식이 병영폭력의 희생자가 되지 말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국민은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는 점에서 윤 일병 사건을 또 하나의 세월호 참사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이 병영폭력의 해법 마련에 직접 나서는 것은 불가피했다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국무회의에서 ‘국가혁신 차원’을 거론하면서 재발방지 대책을 내각에 강도 높게 요구했다고 한다. 국민 행복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인권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결코 밝을 수 없다는 판단의 결과일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런 일이 있으면 어떤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차원에서도 일벌백계로 책임을 물어 사고가 일어날 여지를 완전히 뿌리 뽑기 바란다”고도 밝혔다. 군은 그동안에도 병영폭력에 단호하게 대응해 책임을 철저히 묻기보다 은폐에 급급해 더 큰 폭력을 낳았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았다. 그럼에도 잘못된 관행을 스스로 바로잡지 못하고 국민적 저항에 부딪친 다음에야, 그것도 대통령의 지시를 따르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군의 사기를 위해서도 가슴 아픈 일이다. 군은 윤 일병 사건에서도 진상을 밝히기보다 쉬쉬하며 덮으려 했다는 의혹에 직면하고 있다. 병영의 상습적 가혹행위를 방치한 지휘계통에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만큼은 지휘계통의 정점에 있는 육군참모총장도 책임에서 비켜갈 수는 없었다. 한편으로 병영폭력의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지휘 책임을 기계적으로 묻는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징계가 직업군인에게 평생의 낙인으로 작용하는 현실에서 관할 부대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무조건 책임을 묻는 제도는 은폐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문제가 있었더라도 공개적이고 단호하게 수습해 재발방지에 기여한 중·하급 간부를 치하하지는 못할망정 징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군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조직이다. 병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에 군 복무기간이 건강하고 생산적으로 작용했을 때 국가의 미래는 밝을 수밖에 없다. 반면 병사들이 고통 속에 그저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만을 갈구하는 군대가 건강한 사회인을 배출하기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병영의 상황이 후자에 훨씬 가깝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군은 “병영을 수용공간에서 생활공간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을 허투루 듣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혁신은 병영문화 개선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 육군 28사단 사단장 이순광 소장 보직해임…28사단 사망사건(윤일병 사건) 軍 뒤늦게 대국민사과

    육군 28사단 사단장 이순광 소장 보직해임…28사단 사망사건(윤일병 사건) 軍 뒤늦게 대국민사과

    ‘육군 28사단 사단장’ ‘보직해임’ ‘이순광 소장’ ‘윤일병 사건’ ‘28사단 사망사건’ 육군 28사단 사단장 보직해임 소식이 전해졌다. 28사단 사망사건(윤일병 사건)이 일어난 육군 28사단 사단장은 이순광 소장이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4일 육군 28사단 윤모(21) 일병 폭행 사망사건과 관련, “국방부 검찰단으로 하여금 의혹이 제기된 부분에 대해 추가 수사를 지시하고 재판 관할을 28사단에서 3군사령부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한 장관은 이날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가진 대국민 사과성명 발표에서 “국민 여러분께 큰 충격과 심려를 끼쳐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군 당국은 선임병들의 집단폭행으로 지난 4월 사망한 윤 일병을 순직 처리하면서 5월 8일부로 상병으로 추서했다. 한 장관은 “윤 상병은 신성한 병역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입대했으나 병영 내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일상적으로 파괴되고,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받는 가운데 한마디 하소연조차 하지 못하고 죽음에까지 이르렀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이 발생할 때까지 우리 군은 이를 예방하고 관리 감독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사죄의 뜻을 밝혔다. 한 장관은 “재판을 받는 가해자 및 방조자에게는 엄정한 군기와 군령을 유지하기 위해 군형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엄중하게 조치하겠다”면서 “장기적인 가혹행위를 적발하지 못한 포괄적인 부대지휘 책임을 물어 이미 징계조치 한 16명에 추가해 28사단장을 보직해임하고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사건처리 과정에 대해 진상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향후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책임을 묻겠다”고 언급, 윤 일병 사망사건의 진상을 은폐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할 것임을 시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윤 일병 사건 추가수사 지시…지위고하 막론 책임 묻겠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4일 국회 법사위에 출석해 지난 4월 사망한 28사단 윤모 일병의 사인이 가혹 행위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을 지난달 31일 처음으로 알게 됐다고 밝혔다. 6월 30일 취임한 한 장관은 이날 “보고로 안 게 아니다”라면서 “7월 31일 (시민단체의 폭로에 따른) 언론 보도를 보고 구체적으로 인지했다”고 답변했다. 이는 해당 부대를 비롯해 수사팀이 사실을 은폐했고 군의 보고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어서 문책론이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은 국회 국방위에서 “책임질 준비를 하고 있다”면서도 사의 표명은 하지 않았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구체적 진상조사가 우선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사건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권 총장을 포함한 대대적 문책이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김흥석 육군 법무실장은 “(사건 가해자들에게 살인죄 적용을) 다시 검토할 것이고 검찰에서 (5일로 예정된) 결심 공판 연기를 신청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한 장관은 이날 대국민 사과 성명을 통해 “추가 수사를 지시하고 재판 관할을 28사단에서 3군 사령부로 이전할 것”이라면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물을 것이며 이미 징계 조치한 16명에 더해 28사단장을 보직해임하고 징계위원회에 회부한다”고 밝혔다. 이어 “병사들이 고충을 인터넷과 전화 등으로 외부에 알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사망한 윤 일병을 지난 5월 순직처리해 1계급 위인 상병으로 추서했다고 밝혔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28사단 사망사건 “육체적 고통 하소연 한마디 못하고 죽음 이르러”

    28사단 사망사건 “육체적 고통 하소연 한마디 못하고 죽음 이르러”

    28사단 사망사건 “육체적 고통 하소연 한마디 못하고 죽음 이르러”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4일 육군 28사단 윤모(21) 일병 폭행 사망사건과 관련, “국방부 검찰단으로 하여금 의혹이 제기된 부분에 대해 추가 수사를 지시하고 재판 관할을 28사단에서 3군사령부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한 장관은 이날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가진 대국민 사과성명 발표에서 “지난 4월 7일, 육군 28사단에서 구타 및 가혹행위로 윤 상병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큰 충격과 심려를 끼쳐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군 당국은 선임병들의 집단폭행으로 지난 4월 사망한 윤 일병을 순직 처리하면서 5월 8일부로 상병으로 추서했다. 한 장관은 “윤 상병은 신성한 병역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입대했으나 병영 내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일상적으로 파괴되고,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받는 가운데 한마디 하소연조차 하지 못하고 죽음에까지 이르렀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이 발생할 때까지 우리 군은 이를 예방하고 관리 감독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사죄의 뜻을 밝혔다. 한 장관은 “재판을 받는 가해자 및 방조자에게는 엄정한 군기와 군령을 유지하기 위해 군형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엄중하게 조치하겠다”면서 ”장기적인 가혹행위를 적발하지 못한 포괄적인 부대지휘 책임을 물어 이미 징계조치 한 16명에 추가해 28사단장을 보직해임하고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사건처리 과정에 대해 진상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향후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책임을 묻겠다”고 언급, 윤 일병 사망사건의 진상을 은폐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할 것임을 시사했다. 한 장관은 민관군 병영혁신위원회를 오는 6일부터 가동하고 이 위원회에 현역 및 전역 병사와 부모 가족은 물론 시민단체 인사까지 참여하도록 해 전군 차원의 제도개선 방안을 도출하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그는 “관련 부처와 협조해 가해자와 같은 사고 우려자의 입영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고, 현역복무 부적격처리 절차를 간소화해 처리기간을 단축하는 등 보호관심병사 관리시스템 개선을 조기에 시행해 체계적으로 병력 관리를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현재 군내 소원수리 고충 처리 방식에 추가해 병사들이 고충을 인터넷과 전화 등으로 지휘관은 물론 가족이나 외부에도 알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다”면서 “간부를 포함한 모든 장병에 대한 인권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한 장관은 “국방부 장관으로서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튼튼한 국방태세를 확립하는 가운데 국민이 안심하고 신뢰할 수 있는 선진 병영문화를 조성하겠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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