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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연평해전 전사 조천형 중사, 19년 만에 상사 진급

    제2연평해전 전사 조천형 중사, 19년 만에 상사 진급

    2002년 제2연평해전 때 해군 참수리 357호 고속정의 21포 사수였던 조천형 중사가 전사 19년 만에 뒤늦게 상사로 진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21일 해군에 따르면 조 중사의 추서 진급 신청이 누락된 것을 확인한 해군은 지난달 15일부로 참모총장 직권으로 상사 추서 진급 명령을 내렸다. 조 중사는 참전 당시 계급이 하사였고 6개월 뒤 중사로 진급이 예정된 중사(진) 계급이었다. 그러나 전사 당시 계급이 하사로 기록돼 있어 1계급 추서를 받아 중사가 됐고, 해군은 2009년 그를 기려 유도탄고속함 3번함을 ‘조천형함’으로 명명했다. 해군은 지난 6월 제19주기 제2연평해전 전승기념행사 참석자들 사이에서 조 중사가 진급 추서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오자 사실관계를 파악해 뒤늦게 절차에 착수, 부석종 해군참모총장 직권으로 진급 명령을 내렸다. 전사·순직한 진급 예정자를 한 계급 올려 진급 추서하는 특별법이 2019년 1년 기한으로 시행됐다. 그러나 이때 유족들은 경황이 없어 신청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군은 다음달 중순 유족과 전우들을 초청해 대전현충원 제2연평해전 전사자 묘역에서 조 상사의 새 묘비 제막식을 열 계획이다.
  • 홍범도 장군 아들 홍용환 선생 건국훈장

    봉오동·청산리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둘째 아들 홍용환(1897년∼미상)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청산리대첩 101주년이자 서거 78년 만인 올해 8월 광복절을 계기로 카자흐스탄에서 국내로 봉환된 터라 더욱 뜻깊다. 국가보훈처는 제82회 순국선열의 날(11월 17일)을 앞두고 홍용환 선생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한다고 15일 밝혔다. 홍용환 선생은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을 도와 1910∼1920년대 중국과 러시아 국경을 넘나들며 무장투쟁을 주도했다. 1919년 11월 중국 길림성 왕청현 나자구에서 200명의 독립군을 지휘했고, 이듬해 3월 부친이 조직한 대한독립군 제4군 대장으로 활동했다. 보훈처는 이번에 홍 선생을 포함해 건국훈장 41명(애국장 4,애족장 37), 건국포장 19명, 대통령표창 74명 등 총 134명을 포상자로 선정했다.
  • 일제 치하 압박받는 조선 민초들, 나그네 신세 시름·절망·설움 담아 탄식·은유로 자기 치유한 ‘浪漫譜’

    일제 치하 압박받는 조선 민초들, 나그네 신세 시름·절망·설움 담아 탄식·은유로 자기 치유한 ‘浪漫譜’

    절망의 나락에 서면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의 운명에 탄식하게 된다. 탄식은 한숨과 넋두리를 동반하는데, 속이 상할 때 한숨을 쉬거나 누구에겐가 하소연이라도 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대중가요에도 극한적인 슬픔이나 아픔을 이기기 위해 탄식의 방법으로 ‘은유 치료’를 돕는 작품이 드물지 않다. 일제 치하인 1940년 2월 태평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나그네 설움’(조경환 작사, 이재호 작곡, 백년설 노래)에는 당시 민초들의 시름과 절망의 신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1940년 2월 9일(동아일보)과 14일(조선일보) 신문에는 ‘고달픈 인생 여로를 하염없이 걸어가는 나그네의 피로 엮은 낭만보(浪漫譜)?’라는 광고 문구가 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나그네의 피로 엮은 낭만보?’라는 문구다. ‘피로 엮은’이 수탈당하는 조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면 ‘낭만보’라는 말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당시 레코드는 물론 모든 출판물에 단속령(취체령)이 적용되고 있었던 이유로 검열을 피하기 위해 ‘낭만’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뒤에 물음표를 덧붙여 반어법으로 썼음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이 노래는 처음부터 핍박받는 조선 민초들의 아픔과 설움을 표현하고자 만든 작품인 것이다. 가수 백년설은 독립운동 단체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경기도 경찰부 외사과에 호출됐다. 혹독한 취조를 받은 그는 밤늦게 시말서를 쓰고 방면된 뒤 마중 나와 있던 작사가 조경환과 함께 광화문 뒷골목 선술집에 앉았다. 밤새 울분을 토한 두 사람은 창밖으로 보이는 광화문 거리가 그날따라 유난히 낯설게 보여 이 가요를 만들었다고 한다. 평소 익숙한 거리가 그날따라 생경해 자신이 영락없는 나그네로 느껴진 순간 종이에 다음과 같이 써 내려갔다. ‘낯익은 거리다마는 이국보다 차워라/가야 할 지평선엔 태양도 없어/새벽별 찬 서리가 뼛골에 스미는데/어데로 흘러가랴 흘러갈소냐.’ 맨 처음 쓴 노랫말은 이러했다. 일제의 사전 심의에 걸릴 것을 감안해 음반에는 3절로 배치했지만 ‘나그네 설움’의 원뜻은 바로 이 가사에 녹였다. 이 노랫말에는 희망을 잃고 떠도는 주인공의 심경이 묘사돼 있고, 다시 자기가 의사가 돼 은유적 개입으로 치료하는 ‘탄식에 의한 치료’가 이뤄진다.자기치료는 외부의 도움을 얻기 불가능한 상황일 때 쓰인다. 1907년 이준·이상설·이위종이 고종 황제의 특사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세계평화회에서 조선을 강점한 일제의 만행을 규탄했지만 조선에는 아무런 희망도 나타나지 않았다. ‘가야 할 지평선엔 태양도 없어’는 처절한 조선의 절망감을 표현한 가사로 볼 수 있다. 세계 어디에나 떠오르는 태양이 조선에는 뜨지 않는 것이다. 창작 당시 주인공의 정서에 의한 일차적 이미지는 ‘낯익은 거리=서울의 광화문 거리’라는 원형이었지만, 취조를 받은 후엔 울분에 의한 정서 변형으로 이차적 이미지인 ‘차가운 거리=이국의 거리’로 바뀌었다. 이러한 이미지의 변형은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어데로 흘러가랴 흘러갈소냐’와 같은 지향 없는 삶도 다다를 목적지가 없는 나그네의 은유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나그네의 길을 걸어야 했던 일제강점기의 조선 민초들. 그러나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집단적 폭압에 억눌려 있던 자신의 병든 몸과 마음을 달리 가눌 길이 없었다. 이럴 때 한숨이 나온다. 또 탄식이 나온다. 이때 내쉬는 탄식이야말로 본능적이고 반사적인 방어기제에 해당한다. 나라 잃은 슬픔에 갇혀 있던 사람들은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는 ‘나그네 설움’에서 은유적 치료의 공감을 얻었을 것이다.탄식을 통한 은유 치료는 대개 독백적 구술 형태를 띤다. 억압된 제도 때문에 발생하는 여성들의 내적 상처를 치료하는 방식 또한 탄식의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과 ‘님이라 부르리까’, 김수희의 ‘애모’ 등 여성 일생사를 다룬 수많은 가요와 규방가사에 푸념과 넋두리가 많은 이유가 이에 해당한다. 이렇게 민족의 탄식을 은유 치료로 위안해 주었던 백년설은 본명이 이갑룡(훗날 이창민으로 개명)으로 1915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다. 1938년 문학을 공부할 목적으로 일본에 유학했으나, 고베에서 당시 태평레코드사 문예부장 박영호를 만난 것을 계기로 가수의 길에 들어섰다. 1939년 전기현 작곡의 ‘유랑극단’으로 데뷔해 큰 인기를 얻었고 ‘번지 없는 주막’, ‘산팔자물팔자’, ‘고향설’, ‘두견화 사랑’, ‘대지의 항구’ 등 많은 명곡을 불렀다. 그러나 연이은 사업 실패 후 1978년 자녀들이 있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1980년 12월 6일 ‘나그네 설움’ 가사처럼 타국에서 사연 많은 일생을 마쳤다. 사후인 2002년 보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 ‘나그네 설움’은 자기를 지킬 힘이 없으면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한 노래로, 힘과 전략을 항시적으로 충분히 비축해야만 비로소 평화가 보장된다는 교훈을 말해 주고 있다. 작곡가·문학박사
  • 배우 윤여정, 예술분야 최고 영예 ‘금관문화훈장’

    배우 윤여정, 예술분야 최고 영예 ‘금관문화훈장’

    영화 ‘미나리’로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윤여정(74)이 문화예술 분야 최고 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2021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을 열고 문화훈장 수훈자 6명을 비롯해 대통령 표창 7명, 국무총리 표창 7명, 문체부 장관 표창 9명(팀) 등 모두 29명(팀)에게 훈장 및 표창을 수여했다. 올해 12회를 맞은 대중문화예술상은 은관문화훈장이 가장 높은 등급이다. 그러나 올해 최초로 윤여정에게 금관문화훈장이 수여됐다. 문화예술계에서는 임권택 감독이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을 받았고, 고 신상옥 감독, 고 유현목 감독, 고 김성환 만화가 등이 추서됐다. 그러나 대중문화예술상에서는 윤여정이 처음이다. 문체부 측은 “윤여정의 올해 해외 수상 등이 특별히 의미가 있다고 판단해 금관을 수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은관문화훈장은 1970년대 1세대 싱어송라이터이자 ‘한국 포크의 전설’인 이장희, 한국 영화계 부흥기를 이끈 영화제작자 고 이춘연이 수훈했다. 보관문화훈장은 ‘국민 아버지’로 불린 연기자 고 송재호, 드라마 ‘나빌레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준 연기자 박인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과 ‘그들이 사는 세상’ 등을 쓴 드라마 작가 노희경이 받았다. 배우 김영철·정우성, 가수 김연자·이적, TV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과 ‘놀면 뭐하니’를 연출한 김태호 PD, 드라마 ‘김과장’과 ‘빈센조’의 작가 박재범, TV 애니메이션 ‘영심이’와 ‘달려라 하니’ 등에서 목소리를 연기한 성우 최수민이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 1심 무죄→첫 법관 ‘탄핵’→‘대법원장 거짓말’ 사과

    헌정 사상 법관으로서는 처음으로 탄핵소추됐던 임성근(57·사법연수원 17기)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28일 임기 만료를 이유로 탄핵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대법원장의 거짓말을 폭로하는 등 사법부를 뒤흔들었던 임 전 부장판사에겐 대법원의 최종 판단만이 남았다. 올해 초 국회가 탄핵을 추진할 당시 임 전 부장판사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었다.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던 임 전 부장판사 측은 “형사 재판이 끝나지 않았고 (임기 만료로) 소의 이익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국회는 결국 2월 4일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임 전 부장판사 측은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기 직전 회심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김명수(62·15기) 대법원장이 건강상 이유로 사의를 표한 자신에게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지만, 임 전 부장판사는 김 전 대법원장과의 면담 당시 녹취록을 공개하며 김 대법원장의 거짓말을 폭로했다. 대법원장의 사과에도 법관 사회 안팎에서 사법부 신뢰 문제가 대두되며 심각한 내홍을 겪었다. 헌재에서 탄핵 심판을 받는 와중에 임 전 부장판사는 항소심에서도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임 전 부장판사의 재판 개입 행위가 ‘직무 권한 내’에 있지 않아 형법상 죄를 물을 수 없다면서도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고 지적하며 탄핵의 근거를 제공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위헌적 행위’라고 표현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며 선을 그었다. 임 전 부장판사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던 검찰이 상소함에 따라 임 전 부장판사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서 심리 중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헌재 결정에 따른 김 대법원장의 입장과 관련해 “따로 의견을 낼 계획이 없다”고 덧붙였다.
  • 윤여정에 문화예술분야 최고 영예 금관문화훈장

    윤여정에 문화예술분야 최고 영예 금관문화훈장

    영화 ‘미나리’로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윤여정(74)이 문화예술 분야 최고 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2021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을 열고 문화훈장 수훈자 6명을 비롯해 대통령 표창 7명, 국무총리 표창 7명, 문체부 장관 표창 9명(팀) 등 모두 29명(팀)에게 훈장 및 표창을 수여했다. 올해 12회를 맞은 대중문화예술상은 은관문화훈장이 가장 높은 등급이지만, 올해 최초로 윤여정에게 금관문화훈장이 수여됐다. 문화예술계에서는 임권택 감독이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을 받았고, 고 신상옥 감독, 고 유현목 감독, 고 김성환 만화가 등이 추서됐다. 그러나 대중문화예술상에서는 윤여정이 처음이다. 문체부 측은 “윤여정의 올해 해외 수상 등이 특별히 의미가 있다고 판단해 금관을 수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은관문화훈장은 1970년대 1세대 싱어송라이터이자 ‘한국 포크의 전설’인 이장희, 한국 영화계 부흥기를 이끈 영화제작자 고 이춘연이 수훈했다. 보관문화훈장은 ‘국민 아버지’로 불린 연기자 고 송재호, 드라마 ‘나빌레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준 연기자 박인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과 ‘그들이 사는 세상’ 등을 쓴 드라마 작가 노희경이 받았다. 배우 김영철·정우성, 가수 김연자·이적, TV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과 ‘놀면 뭐하니’를 연출한 김태호 PD, 드라마 ‘김과장’과 ‘빈센조’의 작가 박재범, TV 애니메이션 ‘영심이’와 ‘달려라 하니’ 등에서 목소리를 연기한 성우 최수민이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 ‘文 전용기’로 모신 유해 2구… 뒤에서 귀국길 지킨 증손녀

    ‘文 전용기’로 모신 유해 2구… 뒤에서 귀국길 지킨 증손녀

    유엔총회 참석 등 방미 일정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한국전쟁 참전용사 유해 2구를 전용기인 공군 1호기 좌석에 모시고 귀국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하와이 호놀룰루 히캄 공군기지에서 ‘한미 유해 상호 인수식’을 주관했는데, 한국 대통령이 6·25 전사자 유해 인수식을 해외에서 주관하고 공군 1호기로 함께 돌아온 것은 처음이다. 국가를 위한 희생에 무한 책임을 지고 최고 예우를 다한다는 의미다. 이날 오후 귀국한 문 대통령은 서울공항 도착 직후 봉환식을 열었다. 봉환식은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라는 이름 아래 유해 하기, 유해 운구 및 임시 안치, 국민의례, 분향 및 참전기장 수여, 묵념, 유해 운구, 유해 전송 순으로 이뤄졌다. 전사자 중 신원이 확인된 고 김석주·정환조 일병의 유가족 8명도 현장을 찾았다. 청와대는 “70여년 세월을 돌아 1만 5000㎞에 달하는 긴 여정을 거친 호국 용사들을 위한 최고의 예우”라고 설명했다. 경북 출신으로 미 7사단 카투사에 배속됐던 고 김석주·정환조 일병은 장진호 전투(1950년 11~12월)에서 숨졌다. 장진호 전투 덕에 흥남철수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고, 문 대통령의 부모도 10만여명의 피난민과 함께 자유를 찾았다. 김 일병은 2018년에, 정 일병은 1990~1994년에 발굴돼 미측에 인도됐다가 뒤늦게 한국군으로 판명됐다. 김 일병의 외증손녀 김혜수(간호사관 61기) 소위는 인수식부터 봉환식까지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인수식에서 “장진호 용사들에게 남은 마지막 임무인 고국 귀환에 함께하게 돼 감회가 깊다”면서 “영웅들께서 가장 바라는 것은 한반도의 완전한 평화”라고 말했다. 또 “비무장지대를 비롯해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용사들을 찾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이들 외에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66구의 유해는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시그너스(KC330)로 옮겨졌다. 봉환식 행사에서는 사진이 없는 김 일병을 위해 ‘고토리의 별’과 일병 계급장을 새긴 위패를 특별 제작하기도 했다. ‘고토리의 별’은 장진호 인근 고토리에 떴던 별로, 포위당했던 미군이 철군을 앞둔 밤 갑자기 눈보라가 개고 별이 떠오른 일화 때문에 혹독했던 장진호 전투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하와이 이민 세대로 독립운동 공적이 확인된 고 김노디·안정송 지사에게 훈장을 추서하고 이들의 큰딸과 손녀에게 직접 건넸다. 대통령의 독립유공자 훈장 추서가 해외에서 이뤄진 것도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독립에 헌신한 분들에 대한 예우는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책무”라고 말했다.
  • “사랑합니다” 하와이 교민들 환호받은 文…일일이 주먹인사[현장]

    “사랑합니다” 하와이 교민들 환호받은 文…일일이 주먹인사[현장]

    방미 마지막 일정으로 하와이 호놀룰루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현지 교민들의 환호와 지지를 받았다. 문 대통령은 하와이 이민세대로서 최근 독립운동 공적이 확인된 고 김노디 지사와 고 안정송 지사에게 훈장을 추서했다. 문 대통령 부부는 22일(현지시간) 하와이 공식 두 번째 일정으로 ‘독립유공자 훈장 추서식’에 참석하기 위해 하와이대 한국학 연구소를 찾았다. 문 대통령은 “하와이 동포사회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애틋하다. 하와이 이민 1세대는 고된 노동과 힘겨운 생활 속에서도 조국의 독립에 힘을 보탰다. 하루 1달러도 안 되는 품삯의 3분의 1을 떼어 300만 달러 이상의 독립자금을 모았다. 언제 들어도 가슴을 울리는 애국의 역사”라며 “정부는 해외 독립유공자의 공적을 발굴하고 후손을 한 분이라도 더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이날 문 대통령 부부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행사장 건너편에서 문 대통령 부부를 기다린 수십여명의 교민들이었다. 이들 중에는 어린아이들도 있었으며, 태극기를 흔들며 문 대통령 부부를 응원했다. ‘문재인 대통령님, 여사님 사랑합니다’라고 적힌 피켓도 눈에 띄었다. 문 대통령 부부는 행사를 마친 뒤 교민들과 일일이 주먹인사를 나누며 환대에 직접 화답했다. 일부 교민은 “문재인, 문재인”, “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 등을 외치며 지지를 보냈다. 앞서 하와이 도착 전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머물렀던 뉴욕에서도 문 대통령 부부는 현지 교민들의 환대를 받았다. 지난 19일 문 대통령 부부가 호텔 앞에 도착하자 건너편에서는 수십명의 교민들이 ‘평화로 가는 길 함께 걷겠습니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등 플래카드와 푸른색 풍선을 흔들며 지지를 보냈다.
  • 文 대통령, 하와이서 독립유공자에 훈장... “가슴 울리는 애국의 역사”

    文 대통령, 하와이서 독립유공자에 훈장... “가슴 울리는 애국의 역사”

    문재인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하와이대학 한국학연구소에서 하와이 이민세대로서 최근 독립운동 공적이 확인된 고(故) 김노디 지사와 고 안정송 지사에게 훈장을 추서했다. 한국 대통령의 독립유공자 훈장 추서가 해외 현지에서 이뤄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김노디 지사는 1919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1차 재미한인대표자회의에 참석해 일제의 여성 인권 유린행위를 폭로하고 남녀평등을 역설했다. 또, 대한부인구제회 임원으로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했으며 1921년부터 미국 각지를 돌며 한국의 독립을 호소했다.안정송 지사는 대한부인회와 대한부인구제회 임원으로서 독립운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했다. 또한 광복 후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대표단 일원으로 활동한 공적으로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안 지사는 대한인국민회 총회장 등을 지내며 하와이와 미주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해온 안원규 지사의 배우자이기도 하다. 두 지사에 대한 서훈은 지난 3·1절에 이뤄졌으며, 문 대통령은 이번 하와이 방문 기간 김 지사의 장녀, 안 지사의 손녀에게 직접 훈장을 건넸다. 문 대통령은 “하와이 동포사회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애틋하다. 하와이 이민 1세대는 고된 노동과 힘겨운 생활 속에서도 조국의 독립에 힘을 보탰다. 하루 1달러도 안되는 품삯의 3분의 1을 떼어 300만 달러 이상의 독립자금을 모았다”며 “언제 들어도 가슴을 울리는 애국의 역사”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해외 독립유공자의 공적을 발굴하고 후손을 한 분이라도 더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독립에 헌신한 분들에 대한 예우는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책무이자 영광으로 여기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 높아진 국격… ‘유엔 대표’ 문 대통령과 ‘특별 사절’ BTS

    높아진 국격… ‘유엔 대표’ 문 대통령과 ‘특별 사절’ BTS

    제76차 유엔 총회 참석을 위해 19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뉴욕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전 첫 일정으로 ‘지속가능 발전목표(SDG) 모멘트’ 행사에서 연설을 한다. 2017년 취임 이후 5년 연속 유엔총회에 참석한 문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유엔 방문에서 전 유엔 회원국 정상을 대표하게 됐다. 각국 정상 중 유일하게 초청된 문 대통령은 20일 ‘지속가능발전목표(SDG) 모멘트’ 개최 세션에서 빈곤, 기후변화 등 국제 사회가 직면한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연대와 협력을 강조하고, 우리나라의 높아진 국격과 위상에 걸맞은 역할도 다짐할 예정이다. 이 행사에는 ‘미래세대와 문화를 위한 대통령 특별사절’로 임명된 방탄소년단(BTS)도 나란히 참석해 연설 및 영상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벌써 두 번째 유엔 무대 연설이다. BTS는 2018년 9월 유니세프 ‘제너레이션 언리미티드’ 행사에서 리더 RM이 7분간 영어로 “국가, 인종, 성 정체성 등에 상관없이 자신 스스로에 관해 이야기하며 자신의 이름과 목소리를 찾길 바란다”고 말하며 큰 박수를 받았다. 지난해 유엔 무대에 영상으로 등장했던 BTS는 이번에는 무대로 나와 ‘코로나19 시대의 청춘’을 주제로 연설한다. 특별 공연 영상도 상영할 것으로 전해지면서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2박 3일간 기조연설·정상회담·백신행보 문 대통령은 21일, 한국 시간으로 22일 새벽 3시에서 4시쯤 유연 총회 기조연설도 앞두고 있다. 올해는 남북한이 함께 유엔에 동시 가입한 지 30주년. 최근 북한의 도발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어떤 대북 메시지가 나올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영국, 슬로베니아, 베트남과 양자 정상회담도 소화한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도 면담을 하며 미국의 제약업체인 화이자 CEO도 접견한다.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큐어백 대표에 이어 화이자 대표까지 주요 백신 생산업체 대표를 모두 만나게 된 문 대통령은 백신의 안정적인 공급과 향후 협력 관계 확대를 당부할 예정이다. 또 ‘한미 백신 협력 협약 체결식’에 참석하는 문 대통령은 미국 ABC 방송과 인터뷰를 통해 한국이 ‘글로벌 백신 허브’로서의 역할을 하겠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추석 연휴 기간 꽉 찬 뉴욕 일정을 마친 문 대통령은 하와이 호놀룰루로 이동, 1박 2일 동안 독립유공자에 대한 훈장 추서식에 참석하고, 한미 유해 상호 인수식에 참석한다. 한미 유해 상호 인수식 행사를 통해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를 본국으로 봉송하고, 하와이에 모셔져 있는 우리 국군 전사자 유해를 국내로 봉환한 뒤 귀국한다.
  • 日 왕궁에 폭탄 던진 의열단 ‘김지섭 옥중편지’ 문화재 된다

    日 왕궁에 폭탄 던진 의열단 ‘김지섭 옥중편지’ 문화재 된다

    일제강점기 일본 왕궁에 폭탄을 던진 의열단원 김지섭(1884~1928)의 옥중 편지가 문화재가 된다.문화재청은 항일 독립투사 김지섭이 1924년 1월 5일 도쿄 왕궁 입구의 이중교에 수류탄 세 발을 던지고 투옥된 후 동생 김희섭과 부인 권석희에게 보낸 편지 4건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한다고 6일 밝혔다. 동생에게 보낸 편지 3건에는 판결 언도일을 앞둔 상황에서도 의연한 태도로 동지의 안부를 묻고, 아들에 대한 애틋함과 가족을 염려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아내에게 보낸 한글 편지에는 일본 면회를 오려는 아내를 만류하는 절절한 안타까움이 녹아 있다. 문화재청은 “강력한 의열 투쟁에 나섰던 항일 투사 김지섭의 진솔한 내면 세계와 인간상을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의열단은 1919년 조직된 무장운동 단체로, 항일독립 사상을 고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김지섭은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받았다. 문화재청은 아울러 ‘한성미술품제작소 은제 공예품’(이화문 합)과 ‘제주 구 육군 제1훈련소 정문’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한성미술품제작소는 대한제국 황실의 후원 아래 ‘조선의 고유한 미술품 제작’을 목적으로 설립된 곳이다. 조선 왕실 전통 문양과 대한제국의 상징인 이화문이 새겨져 있고, 전통공예가 주물과 압축 기법 등 근대적인 방식으로 전환되는 시대적인 특징을 볼 수 있다.‘제주 구 육군 제1훈련소 정문’은 6·25전쟁 당시 제주도에 설립한 육군 제1훈련소(강병대)의 정문 기둥이다. 이미 문화재로 등록된 ‘제주 구 육군 제1훈련소 지휘소’와 함께 역사적인 상징성이 있다.
  • 일본 왕궁에 폭탄 던진 의열단원 김지섭 옥중 편지 문화재 된다

    일본 왕궁에 폭탄 던진 의열단원 김지섭 옥중 편지 문화재 된다

    일제 강점기 일본 왕궁에 폭탄을 던진 의열단원 김지섭(1884~1928)의 옥중 편지가 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항일독립투사 김지섭이 1924년 1월 5일 도쿄 왕궁 입구의 이중교에 수류탄 3발을 던지고 투옥된 후 동생과 부인에게 보낸 편지 4건을 국가등록문화재로 예고한다고 6일 밝혔다. 동생 김희섭에게 보낸 편지 3건에는 판결 언도일을 앞둔 상황에서도 의연한 태도로 동지의 안부를 묻고, 아들에 대한 애틋함과 가족을 염려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아내인 권석희에게 보낸 유일한 한글 편지에는 일본까지 면회를 오려는 아내를 만류하는 절절한 안타까움이 녹아 있다.문화재청은 “강력한 의열 투쟁에 나섰던 항일 투사 김지섭의 진솔한 내면세계와 인간상을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의열단은 1919년 조직된 무장운동 단체로, 항일독립 사상을 고취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김지섭은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받았다. 문화재청은 아울러 ‘한성미술품제작소 은제 공예품(이화문 합)’과 ‘제주 구 육군 제1훈련소 정문’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한성미술품제작소 은제 공예품(이화문 합)’은 대한제국 황실의 후원아래 ‘조선의 고유한 미술품 제작’을 목적으로 설립된 한성미술품제작소(1908~1913)의 공예품이다. 조선 왕실의 전통 문양과 대한제국의 상징인 이화문이 새겨져 있고, 전통공예가 주물과 압축 기법 등 근대적인 방식으로 전환되는 시대적인 특징을 볼 수 있다. 수량도 희소해 근대 공예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한성미술품제작소는 이후 이왕직미술품제작소, 조선미술품제작소로 명칭이 바뀌어 운영됐다.‘제주 구 육군 제1훈련소 정문’은 6·25전쟁 당시 제주도에 설립한 육군 제1훈련소(강병대)의 정문 기둥이다. 이미 등록된 ‘제주 구 육군 제1훈련소 지휘소’와 함께 6·25전쟁 관련 유산으로 역사적인 상징성이 있다. 기둥 축조에 사용된 제주 현무암과 조개껍질 등의 건축 재료는 지역적인 특성도 잘 드러내고 있다. 문화재청은 등록 예고 기간을 거쳐 ‘제주 구 육군 제1훈련소 지휘소’와 연계해 문화재로 등록할 예정이다.
  • 文 “홍범도 장군 정신 지키겠다는 굳은 다짐”

    文 “홍범도 장군 정신 지키겠다는 굳은 다짐”

    “장군께 드리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은 대한민국의 영광인 동시에 장군의 정신을 지키겠다는 굳은 다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홍범도(1868~1943) 장군에게 최고 훈장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을 추서하는 자리에서 “광복절에 대한민국 독립전쟁의 영웅이자 겨레의 긍지인 홍범도 장군을 마침내 조국에 모셨고 오늘 대한민국 최고 훈장을 추서하게 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훈장증은 홍범도기념사업회 이사장인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받았다. 문 대통령은 “1962년 정부는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추서했지만, 안타깝게도 후반기 생애는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추가 서훈 배경을 밝혔다. 이어 “1992년 수교 후에야 일제강점기 연해주 동포들이 강제 이주될 때 카자흐스탄이 동포들을 따뜻이 품어 주었고 동포들도 카자흐스탄의 발전과 화합에 기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면서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자부심이자 정신적 기둥이었던 장군의 전 생애가 전설 속에서 걸어 나와 위대한 역사적 사실로 우뚝 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추서식에 함께한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장군의 유해를 조국에 봉환한 것은 카자흐스탄 한인들에 대한 진정한 존경과 관심의 표시”라면서 “양국 모두에 중요하고 특별한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과 토카예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갖고 ▲전략적 동반자 관계 강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지지 재확인 ▲실질 협력 확대 ▲한·중앙아시아 협력 강화 의지를 담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 확대에 관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한편 독립기념관은 장군의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을 처음 공개했다. 1922년 1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공산당(코민테른) 국제대회인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회’ 개막식을 촬영한 5분 40초 분량이다. 소비에트 러시아 적위군 군복을 입고 허리춤에 권총을 찬 장군의 모습을 5컷 확인할 수 있다. 반병률(한국외국어대·사학과) 교수가 2018년 러시아 국립 영상물 보관소에서 발굴해 이번 유해 봉환을 계기로 기증했다.
  • [서울포토] ‘사망증명서 받는’ 문 대통령, 고 홍범도 장군 훈장 추서

    [서울포토] ‘사망증명서 받는’ 문 대통령, 고 홍범도 장군 훈장 추서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고 홍범도 장군 훈장 추서식이 열린 청와대에서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으로부터 홍범도 장군의 사망증명서를 받아보고 있다. 2021. 8. 17
  • 文대통령, 돌아온 홍범도 장군에게 ‘최고훈장’ 서훈

    文대통령, 돌아온 홍범도 장군에게 ‘최고훈장’ 서훈

    “장군께 드리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은 대한민국의 영광인 동시에 장군의 정신을 지키겠다는 굳은 다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봉오동 전투 전승 제101주년을 계기로 고 홍범도(1868~1943) 장군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가 서훈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도 ‘하늘을 나는 장군’이라며 두려워 했던 홍범도 장군에게는 1962년 항일 무장투쟁 공적을 인정해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서훈됐지만, 순국 78년만에 고국 품에 돌아온 것을 계기로 공적을 추가 인정해 59년 만에 건국훈장 최고영예인 대한민국장 서훈이 결정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국빈방한 중인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일린 훈장 수여식에서 “광복절 날 대한민국 독립전쟁의 영웅이자 겨레의 긍지인 홍범도 장군을 마침내 조국에 모셨고 오늘 대한민국 최고의 훈장을 추서하게 됐다”며 우원식 홍범도기념사업회 이사장에게 훈장증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1962년 정부는 장군께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했지만, 안타깝게도 장군의 후반기 생애는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국민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1992년 수교 후에야 일제강점기 연해주의 동포들이 중앙아시아에 강제이주될 때 카자흐스탄이 우리 동포들을 따뜻이 품어 주었고 동포들도 카자흐스탄의 발전과 화합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면서 “그와 함께 카자흐스탄은 물론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자부심이자 정신적 기둥이었던 장군의 전 생애가 전설 속에서 걸어 나와 위대한 역사적 사실로 우뚝 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장군에게 대한민국 최고훈장을 수여하게 된 배경에는 일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공적 외에 전 국민에게 독립 정신을 일깨워 국민 통합과 애국심 함양에 기여한 공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또 옛 소련의 스탈린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한 뒤 동포사회 지도자로서 고려인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긍지를 제고하기 위해 힘썼으며 현재까지도 고려인 사회 내 한민족 정체성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감안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홍 장군과 관련된 2건의 사료를 전달했다. 1943년 순국 당시의 사망진단서 원본과 말년에 수위장으로 근무하셨던 고려극장의 사임서 복사본이라고 청와대는 밝혔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민족 공연단체로 평가받는 카자흐스탄 국립 고려극장은 1942년 크즐오르다로 강제이주된 홍범도 장군의 구술을 바탕으로 홍 장군의 항일 투쟁을 그린 연극 ‘의병들’을 최초로 상연한 곳이기도 하다. 한편 광복절인 지난 15일 국내로 봉환된 장군의 유해는 국민 추모기간을 거쳐 18일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 “나의 직업은 독립운동”… 18년 5개월 수감 생활 최장기 복역수

    “나의 직업은 독립운동”… 18년 5개월 수감 생활 최장기 복역수

    “많은 죄수가 앉아 있을 때엔 마치 콩나물 대가리 나오듯이 되었다가 잘 때에는 한 사람은 머리를 동쪽, 한 사람은 서쪽으로 해서 모로 눕는다. 그러고도 더 누울 자리가 없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일어서고, 좌우에 한 사람씩 힘이 센 사람이 판자벽에 등을 붙이고 두 발로 먼저 누운 자의 가슴을 힘껏 민다. 그러면 누운 자들은 ‘아이고, 가슴뼈 부러진다’라고 야단이다.”(김구 ‘백범일지’) “어머니! 밤이면 가뜩이나 다리도 뻗어 보지 못하는데, 빈대 벼룩이 다투어 가며 진물을 살살 뜯습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은 채 날밤을 새웠습니다. 그렇건만 대단히 이상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생지옥 속에 있으면서 하나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나 뉘우침과 슬픈 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심훈 ‘옥중에서 어머니께 올리는 글월’) 열악하다 못해 인격을 말살하는 감옥 생활은 그 자체로 고문의 수단이라고 할 만큼 혹독했다. 지옥 같은 감옥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유관순, 이육사, 윤동주, 김동삼, 오동진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감옥에서 순국했다. 그런 감옥 생활을 18년 5개월이나 견뎌낸 독립운동가가 정이형 선생이다. 독립운동가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옥고를 치른 사람은 일왕 암살을 기도한 박열로 22년이나 갇혀 있었는데 일본에서 재판을 받고 일본 감옥에서 복역했다. 정이형은 더 악명 높은 국내 형무소에서 수감 생활을 한 최장기 복역수다.“비로소 인정풍속이 다른 만리타국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나서 장탄일호(長嘆一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나는 이렇게 쓸쓸한 곳을 급급히 찾아왔을까. 집에 있는 사랑하는 어머니와 처자들은 다 어찌 될까.”(선생의 회고록 중에서)●평북 의주 출신… 장성에서 ‘3·1운동’ 시위 선생은 1897년 9월 16일(음력) 평북 의주 월화면에서 태어났다. 김평식에게서 한학을 배웠는데 그는 복벽주의(復主義·대한제국의 회복을 목표로 하는 독립운동의 이념) 독립군 단체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했던 인물이다. 친형 정원익도 독립군에 군자금을 제공한 독립운동가였다. 형과 스승의 항일 정신을 이어받은 선생은 1919년 1월 독립운동가 김계순, 서상연을 만나 의기투합해 전남 장성으로 내려갔다. 이주 직후 3·1운동이 발발하고 장성에서도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선생은 동지들과 함께 시위에 앞장섰다. 친형의 지원을 받아 1921년 장성 북하면에 4년제 선룡사립보통학교를 세우고 민족교육 운동에 뛰어들었다. 일제의 감시 대상이 된 선생은 체포돼 취조를 받았고 다행히 풀려났지만, 장성에서 더 활동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고향으로 돌아온 선생은 임시정부의 국내 연락 조직인 연통제에 참여해 의주 군감으로 활동하다가 1922년 11월 만주 망명길에 올랐다. 일경에 체포된 형 원익이 고문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자 그 길로 떠난 것이다. 총을 들고 싸우고 싶었다. 선생은 관전현에 있던 대한통의부에 들어가 오동진, 김창환을 만났다. 1923년 12월 대한통의부가 군사 체제로 개편되면서 선생은 의용군 사령관 신팔균의 부관을 거쳐 이듬해 가을 의용군 제6중대 제1소대장이 됐다. 첫 임무는 부하 10여명과 봉천성 환인현에서 반(反)통의부 분자를 처단하는 일이었다. 만주 지역 독립운동 단체들의 분열과 반목 속에 일어난 통합 운동으로 대한통의부는 그해 11월 10여개 독립운동 단체와 더불어 군정기관인 정의부로 확대 개편됐고 선생도 참여했다. ●조선인 밀정·친일파 처단 등 임무 수행 정의부는 정부 형태를 갖추고 서간도 한인 동포들을 통치하면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일본 육사 출신인 이청천이 군사위원장, 만주의 광복군 총영장을 지낸 오동진이 사령장을 맡아 군사조직을 지휘했다. 선생과 양세봉·문학빈 등 주로 평안도 출신이 중대장과 소대장의 직책을 맡고 있었다. 1925년 3월 18일 선생은 정의부 의용군 제6중대장으로서 제8중대장 김석하, 제6중대 제3소대장 김정호 등과 압록강 건너편에 있는 일제 경찰서 습격 계획을 세웠다. 그날 자정,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선생은 부하 6명과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넜다. 새벽 5시쯤. 목표로 삼은 벽동경찰서 여해경찰관출장소에 접근했다. 안에는 일경 5명이 있었다. 대원들은 건물 안으로 총을 난사했다. 순식간에 니시카와 류키치와 임무, 신현택 등 순사 3명은 절명했고 일본인 순사 1명은 크게 다쳤다. 선생은 대원들과 출장소 건물을 불태우고 총기류 등 군수품을 노획했다. 1926년 3월 정의부 의용군 제1중대장으로 부하 병사 20여명과 지린성 한인 동포들을 상대로 군자금 모금 활동도 하면서 조선인 밀정과 친일파들을 처단했다. 선생은 독립군을 정탐하는 밀정 처단을 일제와 싸우는 일만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미쓰야협정’(조선 총독과 중국 측이 독립군 탄압을 목적으로 맺은 협정)으로 군사 활동이 더 어려워지자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복벽주의도 수용하면서 진보주의를 표방한 좌우합작 정당인 고려혁명당이다. “이념 없는 혁명, 이데올로기 없는 독립투쟁은 오히려 무자비한 반동밖에는 초래하지 못한다.” 고려혁명당은 이런 기치를 내세웠다. 천도교 교주 최시형의 아들 최동희도 동참해 1926년 4월 지린성에서 고려혁명당이 출범했다. 만주를 중심으로 100여명의 당원을 확보하고 10여곳에 세포조직을 만들며 세를 키워 나갔다. 그러다 1926년 12월 중앙집행위원 이동락과 당원들이 일제에 체포돼 당의 세력이 위축되고 말았다. 선생은 하얼빈으로 이동해 조직 재건을 꾀했지만 1927년 3월 11일 동지 6명과 하얼빈 일본 영사관 경찰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선생은 1차 공판에서 “나의 직업은 독립운동이다. 하고자 하는 바를 했을 뿐이다”라고 당당히 말하고는 더 입을 열지 않았다. 검사는 사형을 구형했다. 선생은 빙그레 웃으며 조금의 공포의 빛도 없이 태연자약하게 서 있었다. 1928년 4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서대문·마포·대전형무소를 전전하며 옥고를 치르다가 광복을 맞아 출옥했다. ●최시형 아들 최동희 동참해 세 키워나가 “공부하는 이상은 글자만을 배우는 것 아니요. 자기 인격을 향상하기 위하여 하는 것이니 절대로 악습관에 감염되지 말고 오풍속(汚風俗)에 타락하지 말기를 바란다.” 1941년 당시 이화여고보 3학년에 다니던 맏딸 문경씨에게 보낸 옥중 편지에 선생은 이렇게 적었다. 여느 아버지와 다름없이 딸의 앞날을 걱정하고 올바른 품행을 당부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문경씨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선생과 같이 옥살이를 한 독립운동가 이규창(독립운동가 이회영의 아들)과 결혼했다. 광복 후 선생은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의 관선 의원으로 선임됐다. 1947년에는 친일파를 처벌하기 위한 특별법률조례 제정 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돼 남다른 의지를 갖고 활동했다. 일제와의 투쟁과 친일파 엄단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생각이었다.●맏딸 정문경씨 독립운동가 이규창과 결혼 “애국자들은 (조선인) 순사들에 의해 죽음에 가까운 고문과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남한 과도정부는 그런 왜놈 앞잡이와 매국노 편을 드는 듯합니다.” 선생은 미군정사령관 하지 중장에게 편지를 보내 친일파 중용을 비난했다. 하지만 미군정은 친일파 척결 조례를 폐기하며 무시했다. 좌우합작 운동과 남북협상에 참여한 것도 고려혁명당 때부터 지녀온 신념 때문이었다. 이 또한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승만의 눈 밖에 난 선생은 감시 속에 서울 장교동 집에서 유폐와 같은 생활을 하다가 1956년 12월 10일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1963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꺾이지 않은 도전정신’ 김홍빈 대장 영결식

    ‘꺾이지 않은 도전정신’ 김홍빈 대장 영결식

    “꺾이지 않은 도전 정신을 많은 사람이 기억했으면 합니다. 항상 우리 가슴에 함께 있을겁니다.” 열 손가락이 없는 손으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해 희망을 전한 산악인 김홍빈(57) 대장의 영결식이 8일 엄수됐다. 광주 염주체육관 현관에 마련된 분향소에서는 유가족, 광주시산악연맹 관계자, 내외빈이 모여 김 대장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냈다.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한 거리두기로 인해 영결식 참석자는 49명으로 제한했다. 영결식은 히말라야에 잠든 고인의 넋을 달래는 진혼곡으로 시작돼 장애인 최초로 세계 7대륙 최고봉과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를 모두 정복한 김 대장의 발자취를 소개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추모 영상에서 김 대장의 생전 환하게 모습과 육성이 흘러나오자 유가족과 참석자들은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특히 “엄청 추워. 엄청 추워” 김 대장이 조난 이후 위성전화를 통해 국내의 지인에게 구조요청을 했던 마지막 음성이 공개되자 참석자들은 모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안쓰러운 눈물을 쏟았다. 영결식에는 이낙연, 정세균, 박용진 등 민주당 대선후보가 자리했다. 야권에서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아내인 이소연 씨가 영결식장 밖에서 김 대장이 마지막으로 떠나는 길을 지켜봤다. 참석자들은 “산악인들과 장애인들에게 꿈과 얼을 심어주셨다”며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신 김 대장의 뜻과 기백은 영원히 꿈과 희망이 될 것이다”고 고인을 기렸다. 영결식에는 2021 도쿄올림픽 스포츠클라이밍에 출전한 천종원, 서채현 선수도 참석했다. 서 선수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올림픽이 끝난 후 바로 달려왔다”며 “김 대장의 정신을 본받아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영정을 앞세운 운구 행렬은 고인의 발자취를 간직한 송원대 산악부, ‘김홍빈과 희망만들기·김홍빈 희망나눔 원정대’ 사무실을 거쳐 장지인 무등산 문빈정사 납골당으로 향했다. 김 대장은 지난달 18일 오후 4시 58분(현지 시각)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북동부 브로드피크(8074m) 정상 등정을 마치고 하산하던 도중 해발 7900m 부근에서 조난 사고를 당했다. 가족은 생전에 김 대장이 사고가 발생하면 수색 활동으로 인한 2차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는 당부대로 수색 중단을 요구했고 산악인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정부는 김 대장에게 1등급 체육훈장인 ‘청룡장’을 추서했다.
  • ‘살신성인’ 이종우 경감·유재국 경위, 한국 첫 인터폴 순직 인증

    ‘살신성인’ 이종우 경감·유재국 경위, 한국 첫 인터폴 순직 인증

    공무수행 중에 숨진 강원 춘천 경찰서 이종우 경감과 서울 한강경찰대 유재국 경위가 한국 경찰로는 처음으로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순직 경찰관으로 인증받았다고 경찰청이 6일 밝혔다. 인터폴은 순직한 회원국 경찰관의 영예를 높이기 위해 지난해부터 인증 제도를 도입했다. 경찰청은 고인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고자 인증을 요청했다.이 경감은 지난해 8월 인공 수초섬이 떠내려간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순찰정이 전복돼 목숨을 읽었다. 실종된 지 이틀 만에 북한강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 경위는 지난해 2월 한강에 투신한 실종자를 찾다가 교각의 돌 틈에 몸이 끼어 숨졌다. 한차례 잠수했던 고인은 수색 후 산소통에 산소가 30분 분량 정도 남은 것을 확인하고 다시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사고를 당했다.김창룡 경찰청장은 이날 유족을 초청해 인터폴 인증서를 추서했다. 이 경감의 아내와 두 아들, 유 경위의 아내는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고인을 추모하게 된 것에 사의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 ‘모두의 영웅’ 김홍빈,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모두의 영웅’ 김홍빈,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4일 광주 서구 염주종합체육관에 마련된 김홍빈 대장의 분향소. 이날 황희 문체부 장관이 체육훈장 ‘청룡장’을 추서했고, 시민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광주시 제공
  • 히말라야에 잠든 김홍빈 분향소에 애도 물결

    히말라야에 잠든 김홍빈 분향소에 애도 물결

    “당신의 도전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장애인 최초로 세계 7대륙 최고봉과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김홍빈(57) 대장을 기리는 장례 절차가 4일 시작됐다. 이날 오전 김홍빈 대장 분향소가 마련된 광주 서구 염주체육관 1층 현관에는 지역 산악인과 시민 등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정부도 김 대장에게 체육훈장 ‘청룡장’(1등급) 을 추서했다. 이날 빈소를 찾은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고인의 영정을 모신 제단에 청룡장을 안치했다. 황 장관은 “김 대장이 살아오신 치열한 삶과 끝없는 도전정신은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에 대한민국 국민에게 커다란 희망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며 유가족을 위로했다. 푸른 신록을 배경으로 환한 미소를 머금은 영정 속 김 대장은 추모객이 기억하는 고인의 마지막 모습이다. 국화가 놓인 제단 주변에는 김 대장이 평소 사용한 등산 장비가 유품을 대신해 안치됐다. 열 손가락이 없는 김 대장을 위해 제작된 얼음벽 등반 장비,혹한을 견디게 해준 방한 장화 등이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고인의 발자취를 보여줬다. 한 추모객은 “김 대장은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했다”며 “개인의 목표 달성을 넘어 세상에 뜻깊은 선물을 남긴 그는 영웅이다”고 말했다. 김 대장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는 절차인 영결식은 오는 8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유가족,원정대원,동료 산악인 등이 고인의 마지막 여정을 배웅할 예정이다. 김 대장의 영정은 무등산 문빈정사 납골당에 유품인 등산 장비와 함께 안치된다. 김 대장은 지난달 18일 오후 4시 58분(현지 시각)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북동부 브로드피크(8074m) 정상 등정을 마치고 하산하던 도중 해발 7900m 부근에서 조난 사고를 당했다. 김 대장은 조난 상태에서 다음날 19일 오전 러시아 구조팀에 의해 발견된 후 주마(등강기)를 이용해 올라가다가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굴의 산악인으로 불리는 김 대장은 대학 2학년 때 광주·전남 암벽대회에 출전해 2위에 올랐고, 1989년 에베레스트 등정에 이어 이듬해 낭가파르바트 원정에 참여할 정도의 산악인으로 성장했다. 그는 1991년 북미 최고봉 매킨리(6194m)를 단독 등반하다가 조난돼 열 손가락을 모두 잃고 손목까지 절단하며 좌절의 시간을 겪었다. 산이 전부였던 그는 긴 방황의 시간을 보냈고 ‘다시 한번 시작해보자’는 의지를 다잡아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한반도의 모든 산을 올랐다. 재기에 성공한 그는 장애인 최초로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하고 히말라야 13좌를 차례로 정복했다. 히말라야 14좌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겨둔 브로드피크(8047m) 등정은 지난달 18일 성공했으나 불과 하루 만에 하산 과정에서 실종됐다. 유족은 생전에 김 대장이 사고가 발생하면 수색 활동으로 인한 2차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당부한 뜻을 받들어 수색 중단을 요구했다. 김 대장 장례 절차는 염주체육관 분향소에서 오는 8일까지 닷새 동안 산악인장으로 엄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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