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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성훈♥’ 야노시호, 日료칸 온천탕에서… 자연과 함께 편안한 일상

    ‘추성훈♥’ 야노시호, 日료칸 온천탕에서… 자연과 함께 편안한 일상

    이종격투기 선수 추성훈(47)의 아내이자 일본 모델인 야노 시호(46)가 여유로운 일상을 전했다. 8일 야노 시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4월에 오픈한 얼마 안 된 료칸. 정말 멋지고 어느 공간에 있어도 오감이 자극되는 자연과 하나 될 수 있는 장소였다. 여기 온 것에 감사하다. 다시 오고 싶다”라는 글과 함께 여러 개의 사진과 영상을 게재했다. 함께 올린 해시태그 등으로 미뤄볼 때 야노 시호는 최근 일본 가가와현 나오시마섬에 위치한 고급 료칸에 머문 것으로 보인다. 공개된 사진 속에서 야노 시호는 아늑한 분위기의 료칸을 찾은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옷을 벗고 온천탕 안에 들어가 다리를 쭉 뻗고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자연을 바라보는 야노 시호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한편 야노 시호는 2009년 추성훈과 결혼해 슬하에 딸 추사랑(10)을 두고 있다.
  • ‘슈돌’ 추사랑·야노시호, 녹화 중 모녀 동반 오열

    ‘슈돌’ 추사랑·야노시호, 녹화 중 모녀 동반 오열

    '슈퍼맨이 돌아왔다' 추사랑과 야노 시호가 눈물과 함께 ‘슈돌’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전한다. 26일 오후 10시에 방송하는 KBS2TV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휴가보다 더 시원한 육아?!’ 편으로 꾸며진다. 이 가운데 사랑이와 시호는 4년 만에 돌아온 한국에서의 여행 소감을 밝히며 동반 오열했다. 이날 사랑이는 시호와 4년 만에 방문한 한국에서 킥복싱부터 수상레저까지 즐기며 여름 방학 추억을 쌓는다. 이와 함께 사랑이는 첫 모녀 여행을 마무리 하며 오랜만에 ‘슈돌’과 함께 한 소감을 전한다. 인터뷰 중 사랑이는 “이번 여행이 재미있고, 행복했다”고 소감을 전하며 엄마 시호에게 엄지 손가락을 척 내밀며 기쁨을 표현했다. 그러나 촬영이 끝나자마자 사랑이가 돌연 눈시울을 붉히더니, 엄마 시호를 끌어안고 닭똥같은 눈물을 떨어뜨려 시호를 포함해 주변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이에 갑자기 울음보가 터진 사랑이를 달래던 시호 역시 울음이 터져버리며 이내 모녀가 함께 오열했다. 2013년 '슈돌' 파일럿 1화부터 출연하여 2016년까지 약 4년간 러블리 먹방 요정으로 전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 사랑이. 이번 여행을 '슈돌'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사랑이가 "(슈돌을) 계속 했었으니까 그리고 이제 끝나니까"라고 말하며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는 끝이 아니라는 설명을 듣자마자 다시금 해맑은 미소를 찾으며 현장 모두의 얼굴에 훈훈한 웃음을 안겼다고. 이처럼 어느덧 12살 소녀가 되었지만 여전히 귀여운 울보인 추블리의 모습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 '슈돌' 본 방송에 관심이 집중된다. 26일 오후 10시 방송.
  • 고영훈 화백 작품 3점 용산 대통령실에 걸렸다

    고영훈 화백 작품 3점 용산 대통령실에 걸렸다

    제주 출신 화백으로 한국 극사실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작가인 고영훈 화백의 그림 3점이 용산 대통령실에 걸렸다. 제주특별자치도는 ‘패랭이 꽃’(160.5×126.5㎝) 그림 2점과 ‘난’ 그림(162×128.5㎝) 1점 등 모두 3점이 용산 대통령실 2층 국무회의실에 걸렸다고 18일 밝혔다. 이번 작품들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을 이번 대통령실로 이전했다. 고 화백은 이 작품에 대해 “패랭이꽃이 세월이 흐르면서 난으로 변화하는 일련의 과정을 묘사했고, 이는 과거·현재·미래 흐름에 따라 패랭이꽃이 난으로 또는 난이 패랭이꽃으로 변화하기도 하는 상황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해당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한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DNA’를 주제로 한 전시에서 추사 김정희의 ‘난’ 그림 옆에 전시된 이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난’은 선비의 올곧음과 순수함을, ‘패랭이 꽃’은 부모 공양과 윗사람을 존중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화백은 극사실주의 회화로 한국 구상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연 국내 대표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대상의 형태를 치밀하게 관찰하고 실물에 가깝게 묘사하는 새로운 리얼리즘을 지향한다. 1970년대에는 ‘이것은 돌입니다’로 미술계에 인정을 받았고 달항아리 등 오브제간의 극적 대립과 긴장을 독자적인 기법으로 주목을 받았다. 1986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나가면서 국제적으로 두각을 나타내 지금은 크리스티나 소더비 등에서 인정받을 정도다. 올해 3월 제주 출신 작가들의 전시를 위해 마련한 공간인 서울 인사동 제주갤러리의 개관 기념으로 고 화백의 ‘호접몽(胡蝶夢)’ 특별 초대전이 열리기도 했다. 오성율 제주도 문화체육대외협력국장은 “고영훈 화백의 작품이 대통령실 회의실 벽면을 채웠다는 점이 무척 자랑스럽다”면서 “제주 출신 작가들이 국내외 다양한 무대로 진출하도록 든든하게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 한 字, 한 字 삼라만상 담는 붓끝…그의 서가는 향기로운 수련장[김언호의 서재탐험]

    한 字, 한 字 삼라만상 담는 붓끝…그의 서가는 향기로운 수련장[김언호의 서재탐험]

    독서성(讀書聲)! 헤이리 내 서재를 빛내고 있는 하석(何石) 박원규의 작품이다. 이른 아침 아이들의 책 읽는 소리. “옛사람이 말하기를 준마의 풀 뜯는 소리, 아름다운 여인의 거문고 타는 소리, 모두 듣기 좋지만 자식이나 손자의 글 읽는 소리만은 못하니라.” 석곡실(石曲室). 압구정에 있는 그의 연구공간이자 작업공간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6시면 도착한다. 문을 열면서 서가에 세워 놓은 아버지·어머니의 사진에 예를 표한다.“오늘도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겠습니다.” 책과 붓으로 가득한 연구실의 창을 연다. 청소를 한다. 먹을 간다. 책을 펼친다. 염한(染翰) 60년, 서예를 시작한 지 60년이 되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에 세 시간씩은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합니다. 여행 갈 때면 가방에 공부할 책을 넣어 갑니다.” 서예가로서의 그의 삶은 배움의 길, 독서의 길이다. 서예란 삼라만상, 인간 세계의 이치를 문자로 구현하는 예술행위다. 배움 없이, 공부 없이, 서예는 당초부터 불가능한 인문예술이다. ●“서예, 필경사의 일 아니다” 공부에는 끝이 없다. 그는 늘 스승을 모시는 서예가의 삶을 꾸린다. 우리 시대의 전설적인 스승들로부터 고전의 세계와 사상, 오늘의 삶에 요구되는 실천윤리를 배운다. 1971년 제대하면서 가람 이병기 선생의 절친이자 호남의 거유였던 긍둔(肯遯) 송창 선생에게 배웠다. 한학과 보학에 밝았다. 월탄(月灘) 박종화가 역사소설 쓰다 막히면 긍둔 선생에게 물었다. 긍둔 선생은 하석에게 한학의 기초와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었다. 손님이 떠날 땐, 저 동산을 넘어가서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해야 한다고 하셨다. 한학자이지만 우리말에 밝았다. 82세에 돌아가시어 2년밖에 모시지 못했다. 1983년 서울에 와서 월당(月堂) 홍진표 선생의 문하에 들어갔다. 유가보다 제자백가에 강한 스승이었다. 91년 돌아가실 때까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일주일에 한 번씩 수유리 댁으로 가서 장자·노자를 공부했다. “선생님은 학덕(學德)을 말씀했습니다. 문기(文氣)란 독서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글씨는 손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지요. 서예란 필경사의 일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연구실로 한 시간쯤 일찍 가서 선생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눕니다. 저는 절대로 지각하거나 결석하지 않는 학생이었습니다.” 스승이 돌아가시니 고아가 된 느낌이었다. 2000년 6월에 지산(地山) 장재한 선생의 문하에 들어갔다. “사서삼경, 사서오경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됩니다.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춘추를 2018년 선생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일주일에 세 번씩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의정부·구미 등지에서 요양하실 땐 일주일에 한 번씩 그곳으로 가서 공부했습니다.” 한학과 한문은 중국의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것이다. 사서오경, 제자백가뿐 아니라 사서(史書), 시(詩), 간찰, 실록, 개인 저술 등 엄청난 문화유산·정신유산이 우리에게 있다. “한학과 한문을 공부하면 할수록 서예작품이 풍요로워집니다. 인구에 회자되는 처세어 같은 것만 가지고는 서예다운 서예를 할 수 없습니다. 서예는 기본적으로 철학과 사상과 역사입니다. 인문학 수련 없이 서예는 불가능합니다.”●취미로 잡은 북… 손꼽히는 고수로 하석은 1968년부터 98년까지 강암(剛菴) 송성용 선생에게 서예를 공부했다. 강암 선생은 서예뿐 아니라 큰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셨다. “우리 선생님은 처신이 달랐습니다. 걸인이 오면 한 상 차려 내주고 문밖까지 배웅했습니다. 상투를 틀고 두루마기를 입었지만 구체신용(舊體新用), 사고와 행동은 늘 열려 있었습니다.” 하석은 또 한 분의 스승을 모시고 있다. 서예와 그림에 능한 보산(寶山) 김진악 선생이다. 배재대학에서 정년한 보산 선생은 장서가다. 평생 모은 장서를 배재대학에 기증했다. ‘보산문고’가 되었다. 지금은 문화재로 지정된 김소월의 ‘진달래꽃’도 배재학당 박물관에 기증했다. 고등학교 교사 시절 자신의 월급으로 어려운 제자들의 공납금을 대신 내주는 선생님이었다. 제자 하석은 한 달에 두서너 차례 선생님을 찾아뵙고 식사자리를 마련한다. 그러나 식대는 꼭 선생님이 내신다. 여전히 사랑스런 제자다. ●집 판 돈으로 벼룻돌 사 벼루 제작 1988년 인사동에 예사롭지 않은 보령산 벼룻돌이 나왔다. 이 돌을 일본인이 구입해 가려 했다. 하석은 살고 있던 압구정동의 현대아파트를 4800만원에 팔아 700만원을 주고 이 돌을 구입했다. 귀한 우리돌을 일본으로 흘러가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연석으로 벼루 하나를 만들었다. 월당 선생이 ‘오금연’(烏金硯)이라고 이름 지어 주셨다. 2002년에는 손수 벼루를 만들었다. 당초 50개를 만들려 했지만, 돌의 질이 여의찮아 20개밖에 만들지 못했다. ‘무문석우’(無文石友)라고 이름 붙였다. 하석에게 선물받은 이 ‘무문석우’가 내 서재에 있다. 이 벼루에 먹을 갈 때마다 나는 하석의 예술정신을 느낀다. 하석의 석곡실에는 150여 년 된 통북이 있다. 하석은 북의 고수(高手)다. 80년대와 90년대 전국고수대회에 나가서 최종결승 3명에 뽑혔다. 그러나 스스로 기권해 3등이 되는 것이었다. “서예의 길이 내 직업이고 북은 취미지요. 국악인들의 진로에 내가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되지요.” 당대 최고의 고수 김명환 선생의 노량진 댁에 가서 북을 배우기도 했다. 아버지가 판소리를 좋아했다. 명창 임방울 선생이 집에 와서 겨울 한 철을 보내기도 했다. 자연 우리 소리에 눈뜨기 시작했다. 판소리 연구가 이기우·천이두 교수 등과 함께 서울에서 명창을 전주로 모셔와 판소리 감상회도 열었다. 나는 압구정의 석곡실에 수시로 드나든다. 큰 책을 펼쳐 독서에 몰두하거나 작업을 하는 하석의 모습은 아름답다. 묵향(墨香)과 서향(書香)이 가득한 석곡실에서 나는 붓을 들어 대가의 지도를 받으면서 몇 자 써보기도 한다. “30여 년 글씨를 썼던 50대에 이르러 붓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필법에 관한 책보다 인문학 책을 더 읽게 되었습니다. 20대부터 공부하던 자학(字學)이 또 다른 인문학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는 2010년 헤이리의 북하우스 전시공간과 한길책박물관 공간을 전부 할애해 하석의 대형서예전 ‘자중천’(字中天)을 석 달 열흘간 진행했다. 자중천! 문자의 세계, 문자의 하늘이다. 큰 서예가 하석이 저간에 해 온 작업의 여러 면모를 보여 주는 이 전시는 한국서예전시에 기록되는 사건 같은 것이었다. 전국에서 수많은 관객들이 모여들었다. 아이들과 글씨놀이하는 프로그램도 진행되었다. 나는 ‘자중천’과 함께 제자 서예가 김정환과의 대화로 ‘박원규, 서예를 말하다’를 펴냈다. 하석의 생각과 공부를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서예인문학이다. “나는 일필휘지의 서예가가 아닙니다. 조각가가 돌을 쪼듯이 한참을 노력해야 비로소 작품이라고 할 만한 것이 나옵니다.” 다시, 2011년 하석의 서예 절친 학정(鶴亭) 이돈흥과 소헌(紹軒) 정도준의 ‘서예삼협(書藝三俠) 파주대전’을 역시 석 달 열흘에 걸쳐 헤이리의 같은 공간에서 열었다. 서예전의 또 하나의 사건이었다. 붓의 대향연이었다. 서울에서 지방에서 관객들이 몰려왔다. 주말마다 세 서예가와 서예비평가들이 참여하는 담론이 펼쳐졌다. 나는 한국서단이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세 권의 대형도록을 출간했다. 2018년의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은 서예가 박원규의 진면을 보여 주는 작업이었다. 가로 150㎝, 세로 330㎝ 82장에 광개토대왕 비문체로 써낸 2162자의 ‘부모은중경’은 한국서예 사상 가장 장대한 작품이었다. 광개토대왕의 호방한 기상을 보여 주는 서체의 재현이었다. 광개토대왕 비문체는 그 이전 그 이후에도 존재하지 않는 서체다. 하석은 일찍부터 이 비문체를 주목하고 그 재현 작업에 나서고 있다. 하석은 당초 우리 종이로 작업하려 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이 규격의 종이 제작이 불가능해 중국에 특별주문했다. 먹도 우리 것으로 하려 했으나 질감이 마땅치 않아, 450년 역사의 일본 먹 제조원 고매원(古梅園)의 ‘금송학’(金松鶴) 50자루로 작업했다. 고매원도 금송학은 1년에 25자루 정도 제작해 내는 최고품질의 먹이다. 물은 하석의 후원자이자 ‘부모은중경’을 주문한 유성우 선생이 백두산 천지에서 길어왔다. 나는 하석과 의논하여 이 기념비적인 작업과 작품을 기리고 기록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작품에 나서는 시묵(試墨) 행사와 작업을 끝내는 세연(洗硯) 행사를 진행했다. 세연 땐 명창 안숙선의 소리에 하석이 북채를 들었다. 나는 다큐의 명가 인디컴시네마 김태영 감독에게 일련의 과정을 작품으로 만들자 했다. ‘압구정에는 21세기 선비가 살고 있다’고 제목 붙인 이 다큐는 지난 5월 휴스턴국제영화제에서 은상을 받았다. ●대하소설 ‘혼불’ 최명희에게도 영향 하석은 대하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혼불’의 내면세계에 하석의 자취가 느껴진다. 최명희의 수첩에 ‘숭란경’(崇蘭境)이라는 이름을 써주었다. 맑고 티 없이 고운 난초의 경지를 뜻하는 추사(秋史) 김정희의 문구로, 심산유곡에 피어 있어도 난초의 꽃향기는 십 리를 간다는 의미다. “우리 3000년 역사에서 나의 스승은 추사입니다. 나는 지금 추사와 씨름하고 있습니다.” 추사는 유불선, 사서오경에 통달한 독서인이었다. 그 독서가 그 작품을 출현시켰다. “추사가 위대해질 수 있는 바탕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학예(學藝)일치’가 바로 그것입니다. 학문과 예술이 별개가 아님을 추사는 오늘의 우리 서예가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박원규, 전각을 말하다’가 곧 출간된다. 그러나 ‘박원규, 추사를 말하다’가 그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과제다.
  • ‘추성훈♥’ 야노시호, 45세 맞아? 비현실적 몸매 관리…“플라잉 요가중”

    ‘추성훈♥’ 야노시호, 45세 맞아? 비현실적 몸매 관리…“플라잉 요가중”

    이종격투기선수 추성훈의 아내인 모델 야노시호가 플라잉 요가로 완벽한 몸매 관리를 하는 근황을 전했다. 야노시호는 1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오랜만에 플라잉 요가. 몸이 많이 굳었다”면서 “부기가 없어져서 개운하다. 45살 넘어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지 않으면 점점 몸이 쇠약해지는 걸 느낀다”란 글과 함께 사진을 올렸다. 사진에서 단발머리의 야노시호는 보디라인 관리를 위해 플라잉 요가를 하며 셀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몸에 딱 붙는 민소매 상의에 레깅스 하의를 입고 군살 없는 몸매를 유지 중이다. 40대 중반 나이가 믿기지 않는 동안 비주얼도 눈길을 끈다. 한편 야노시호는 추성훈과 결혼, 슬하에 딸 추사랑을 두고 있다.
  • 서점·카페·비행기·지하철… 박찬욱이 머무는 곳은 그의 서재가 됐다[김언호의 서재탐험]

    서점·카페·비행기·지하철… 박찬욱이 머무는 곳은 그의 서재가 됐다[김언호의 서재탐험]

    서재, 책이 있는 공간은 한 사람의 취향과 관심사, 내면과 정신의 풍경입니다. 우리 시대 대표 출판인 김언호가 한국 사회 각 분야에서 자기 세계를 구축한 명인들의 서재를 찾아 그들의 오늘을 있게 한 책 읽기와 삶에 대한 품격 있는 담론을 펼칩니다. 세계인이 사랑하는 영화감독 박찬욱의 서재 이야기를 시작으로 2주마다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지난 6월 29일 편집실 친구들과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을 보았다. 제75회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 작품을 개봉 첫날에 보는 즐거움을 누렸다. 상영시간 138분, 파주 출판도시의 영화관 메가박스, 다른 관객 20여명과 함께 우리는 문제작에 몰두했다. 고수의 뛰어난 연출에 다소 긴장하는 표정들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우리는 카페로 자리를 옮겨 즐거운 합평회를 펼쳤다. “프로이트, 도스토옙스키, 히치콕이 다 녹아 있는 영화야. 사랑이 무엇인지를 박찬욱이 우리에게 묻고 있네.” “마지막 장면, 쏟아져 들어오는 파도가 압권입니다.” “맞아, 롤랑 조페 감독의 ‘미션’. 이구아수폭포 장면을 연상시키는 파도, 그 파도가 순간 멈추면서 영화가 끝나네요.” 나는 이튿날 다시 그 영화관으로 갔다. 자세히 보고 싶었다. 박찬욱 감독의 사랑론, 아니 인간론을 탐구해 보고 싶었다. 역시 그 대사들이 나의 주목을 끌었다. 클래식한 이미지의 대사들. “당신이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당신을 떠났고, 이제 내가 당신을 사랑하려 하니 당신이 나를 떠나네.”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갖고 싶어.” ‘헤어질 결심’을 다시 보면서, 나는 참 시적(詩的)인 영화라고 생각했다. 이 폭풍우 같은 소음의 시대에, 그의 영화는 절제된 언어를 구사한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사랑과 죄가 무엇인가를 시적 언어로 우리들에게 묻고 있다. 그의 영화는 시적이다.●박찬욱 감독의 영화 또는 인간탐구 15년여 전 나는 헤이리 회원들과 포르투갈을 여행했다. 거장 알바로 시자의 건축들을 보러 가는 것이었다. 박찬욱 감독의 아버님 박돈서 선생과 동행했다. 포르투의 세랄베스미술관! ‘시적 건축’을 언명하는 알바로 시자의 세랄베스미술관은 한 편의 시였다. “선생님, 건축이 시가 될 수 있군요.” “알바로 시자의 건축미학·건축철학을 실감합니다.”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다운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무엇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순간 나는 추사 선생의 ‘문자향 서권기’(文字香書卷氣)란 말을 떠올렸다. 가슴속의 청고(淸高)하고 고아(古雅)한 뜻은 문자향과 서권기에서 비롯되고, 문자향 서권기는 자신의 서예 작품의 근원이 된다는 추사의 예술정신. 내가 박 감독을 처음 만난 것은 2004년이었다. 1995년부터 시작된 예술마을 헤이리, 나는 2003년에 입주했고 2004년 박 감독도 부모님과 함께 입주한 직후였다. 그때 나는 박 감독에게서 영화 이야기뿐 아니라 책 이야기를 들었다. 1970년대부터 출판과 책은 나에게 운명 같은 주제였다. 박정희 유신 권위주의와 전두환 신군부의 통치시대에, 우리는 ‘위대한 책의 문화’를 주창하면서, 책만들기 책읽기가 우리의 자랑스런 ‘운동’이었다. 1990년대 파주출판도시 건설작업이 한창 진행되던 무렵, 나는 책의 마을, 책방마을을 구상하고 있었다. 열화당 이기웅 사장과 나는 볼로냐 아동도서전을 참관하러 가는 길에, 영국 웨일스 지방, 폐허가 된 탄광촌에 들어선 고서마을 헤이온와이를 찾아갔다. 1994년 봄날이었다. 헤이온와이 ‘고서마을의 황제’ 리처드 부스 선생과의 인연은 그렇게 맺어졌다. 당초 책방마을로 구상된 헤이리에 미술가·도예가·음악가·영화인·인문학자들이 동참하게 되면서 책방마을은 예술마을로 확장되었다. 오래전부터 책의 집, 책을 위한 집은 나의 꿈이었다. 책방과 전시, 담론과 공연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북하우스’는 그렇게 탄생했다. 동아일보사에서 함께 일하다 해직된 독서인 이종욱 시인도 헤이리 만들기에 동참했다. 그의 서재가 북카페 ‘반디’가 되는 것이었다. 황인용의 음악카페 ‘카메라타’와 함께 북하우스와 반디는 영화인이자 독서인인 박찬욱의 열려 있는 서재이자 휴식공간이 되었다. “독서는 내 영화의 원천입니다. 좋은 책 이야기하기는 영화를 잘 찍는 일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영화인 박찬욱에게 서재란 여느 사람의 서재와는 다르다. 세계가 그의 활동영역이 되면서 여유를 갖고 서재에서 한가하게 책 읽을 시간을 내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가 머무는 공간이면 다 서재가 된다. 서점이, 카페가, 비행기가, 호텔이, 지하철이 그의 독서공간이 된다. “저희 집에도 서재라고 부를 만한 공간이 있지만 서재라기보다 서고라고 할까요.”●영화 보는 시간보다 독서 시간 길어 헤이리에 지어 입주한 아버지 박돈서와 아들 박찬욱의 자하재(紫霞齋)는 참 독특한 구조를 가진 주택이다. 건축가 김영준의 작품인 자하재는 한 집인데 두 집이다.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주택. 겉으로는 하나이지만 내부는 독립되어 있다. 현관도 따로따로다. 가운데에 같이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다섯 평짜리 정원부터 반 평짜리 정원까지 정원만 26개나 된다. 대지 130평, 건평 110평이다. 박 감독의 서재 또는 서고는 공공도서관 서고처럼 여러 서가들이 병렬하고 있다. 많은 책은 이렇게 해야 수장할 수 있다. 서가 구석에 작은 탁자와 의자가 있다. 책을 꺼내와 잠깐 보다가 꽂아 놓는다. 더 읽을 책은 거실로 갖고 나온다. 서고 옆에는 작은 영화관처럼 큰 스크린이 있고, 계단식 관람석이 있어 10여명이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들을 수 있다. 박 감독은 오디오 마니아다. 헤이리 회원들은 자하재를 여러 차례 구경하면서 독특한 공간 경험을 하곤 했다. 서울에서, 지방에서 많은 인사들이 견학하러 왔다. 헤이리에는 실험 적인 건축물이 제법 많지만, 자하재는 나에게 영화 ‘공동경비구역’을 떠올리게 한다. 2005년에 한국건축가협회로부터 ‘올해의 베스트 건축’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뉴욕현대미술관의 건축실에 도면과 모형이 전시된 후 소장되고 있다. 박 감독은 자신이 “평범하게, 무탈하게 성장해 왔다”고 하지만, 82학번인 그에게도 1980년대는 ‘격동의 시대’였을 것이다. “사회과학 독서보다는 인문·문학 독서를 했습니다. 조금 외로움을 느꼈지만, 주로 문학에 몰두했지요.” 영화 ‘아가씨’ 같은 경우에도 조진웅 배우가 친일파로서 대부호 역할을 한다. 원작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이야기이지만, 굳이 이야기를 일제강점기의 조선 땅으로 가져와 그 인물과 시대를 보여 준다. 채만식의 ‘탁류’ 같은 소설은 우리 문학사의 빛나는 리얼리즘의 성과다. 그런 작품을 읽은 영화인 박찬욱의 가슴엔 어떤 형태로든 역사 같은 것이 잠재되어 있을 것이다. ‘헤어질 결심’의 조선족 송서래(탕웨이)의 할아버지도 조선 독립운동가로 ‘역사성’이 환기된다. 박 감독의 가슴엔 이문구의 ‘관촌수필’이 선연하게 살아 있다. “이문구 선생의 ‘관촌수필’은 저에겐 아주 결정적인 작품입니다.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이렇게 조탁해서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까요. 이런 아름다운 문학예술이 우리에게 있다고 자부합니다. ‘관촌수필’은 영화로 만들지 않고 그냥 보존하고 싶습니다.” 영화인 박찬욱에게는 영화를 보는 시간보다는 책 읽는 시간이 더 길다. 책에 관련된 일에 참여하는 일을 마다한 적이 없다. 좋은 책을 널리 알리는 일은 자신이 제작한 영화를 알리는 일 못지않게 소중하다. 책은 그의 삶에서 가장 즐겁고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건축학자인 아버지가 사다 놓은 ‘을유세계문학전집’은 중·고교 시절 그가 씨름한 주제였다. 그의 문학적 지향을 형성한 책들이었다. ‘삼중당문고’와 ‘동서추리문고’도 그의 취향과 문제의식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책 읽는 집안의 전통 손에 늘 책을 들고 있는 어머니 심성구 여사로부터도 박 감독은 책읽기를 체득했을 것이다. “책이 있는 곳에 찬욱이가 있었어요. 사람들이 내다버린 책더미를 뒤지곤 했어요.” 동생 박찬경도 책 읽기로 자신의 미술세계를 구현하고 있을 것이다. 여동생 박찬희가 영어교육 전문가로 활동하는 것도 독서하는 집안의 분위기에서 기원할 것이다. 시서화(詩書畵)를 즐기는 집안의 전통. 아버지 박돈서 선생도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참 좋아한 독서인이었다. 박돈서 선생은 사시집(寫詩集) ‘인향만리’(人香萬里)와 시화집(詩集) ‘묵향천리’(墨香千里)를 펴낸 시인이기도 하다. 언젠가 박 감독의 영화에 등장할 만한 한 미장센. 노부인이 벽난로 옆에서 무릎에 담요를 덮고 흔들의자에 앉아 추리소설을 읽고 있다. 고양이가 그 옆에서 졸고 있다. 중학생 박찬욱이 언젠가 어머니에게 이야기한 풍경이다. ●진리는 모호한가 박찬욱 영화의 일관된 주제라면,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그러나 정답은 없다. 진리는 모호할 것이다. 참, 박 감독이 주관하는 영화사 이름이 ‘모호’다. 그의 영화철학의 일단일까. ‘헤어질 결심’에서 정훈희와 송창식이 ‘안개’를 부른다. 인간의 삶은 안갯속 같은 것일까. 박 감독이 지금까지 읽은 그 수많은 책 중에서, 우리 젊은이들에게 권독하고 싶은 책 다섯 권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안갯속을 헤매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약간의 가이드가 되지 않을까 해서다. 그가 문자로 보내왔다. 이문구의 ‘관촌수필’, 카프카의 ‘성’, 존 르 카레의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 연대기’, 그레이엄 그린의 ‘브라이턴 록’. 인터뷰하는 그날 박 감독은 ‘강화학파의 서예가 이광사’(이진선 지음)를 구입했다. 북하우스의 그 많은 책들 가운데 ‘이광사’를 딱 집어드는 선책(選冊)의 안목. 나는 연세대 영문학과 이경원 교수가 30년의 연찬 끝에 써낸 거작 ‘제국의 정전 셰익스피어’를 북하우스 방문 기념으로 박 감독에게 증정했다. 그는 셰익스피어를 탐독하는 영화예술가다. 한길사·한길책박물관 대표
  • 추성훈, 급노화 근황…13kg 감량 타격

    추성훈, 급노화 근황…13kg 감량 타격

    방송인이자 이종격투기 선수 추성훈은 2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done”이라는 글과 함께 근황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 속 추성훈은 일본 운동선수들과 함께 운동을 마친 후 포즈를 취했다. 경기 출전을 하려고 무려 13kg 체중을 감량한 추성훈의 노화한듯한 모습이 눈길을 끈다. 한편 추성훈은 지난 2009년 일본 톱모델 출신인 야노 시호와 결혼해 슬하에 딸 추사랑을 두고 있다. 이들 가족은 KBS2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해 큰 사랑을 받았다.
  • [TV 하이라이트]

    [TV 하이라이트]

    ●신발 벗고 돌싱포맨(SBS 밤 11시 10분) ‘돌아온 싱글 네 남자’, 이른바 ‘돌싱포맨’인 탁재훈, 임원희, 이상민, 김준호가 자신들의 집으로 손님을 초대해 행복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이번 주 찾아온 손님은 종합격투기 선수 추성훈. 멤버들은 추성훈이 등장하자마자 딸 추사랑과의 인지도를 비교하며 도발을 시작한다. 추성훈은 ‘사랑이보다 자신이 광고는 더 많이 찍었다’며 너스레를 떨면서도, 사랑이를 위해 ‘베이비 마사지’ 자격증을 딴 사실을 밝힌다. 그런가 하면 ‘섹시야마’라고 불리는 추성훈은 네 사람 중 ‘가장 섹시한 돌싱’으로 김준호를 뽑는다. 한편 추성훈을 이겨 보겠다는 네 사람은 본격적인 대결을 시작하는데, ‘궁동산 날다람쥐’ 임원희가 대결에서 승리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진다.
  • 추성훈, 아내 야노시호에 ‘870만원’ 다이아 반지 선물

    추성훈, 아내 야노시호에 ‘870만원’ 다이아 반지 선물

    일본인 모델 야노 시호가 남편인 종합 격투기 선수 추성훈에게 받은 생일 선물을 인증했다. 6일 야노 시호는 인스타그램에 “사랑이, 아빠 항상 고마워요. 진심으로 마음을 담아 고마워요. #한국식 생일 #아빠 수제 미역국 #집밥 #고마워요”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 속 야노 시호는 남편 추성훈이 끓여준 생일상 미역국을 먹으며 인증샷을 남기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특히 야노 시호는 추성훈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주얼리 브랜드 ‘레포시’에 870만원 다이아몬드 반지를 인증해 감탄을 자아냈다. 한편 유도 선수 출신인 추성훈은 2001년 일본으로 귀화, 2009년 1월 야노 시호와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딸 추사랑과 함께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해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최근 훌쩍 성장한 모습으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역사를 배우는 이유/우석대 명예교수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역사를 배우는 이유/우석대 명예교수

    수십 년 서양사를 공부하다 한국 근현대사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나 할까. 평생 먼 나라 역사를 공부했으니 내가 딛고 서 있는 이곳을 알아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싶다. 한국 근현대사를 읽으면서 내심 충격을 받은 게 있다. 내가 태어나기 불과 10여년 전 일에 대해서조차도 지독하게 무지하다는 것.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자각이다. 1990년대생 젊은이들이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알지 못하는 걸 나무랄 자격이 없다. 역사를 공부한 서른 살 청년과 역사를 전혀 못 배운 80살 노인이 있다고 하자. 서른 살 청년이 80살 노인보다 훨씬 어른스럽지 않을까.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우고 바보는 경험에서 배운다’는 말이 있다. 한 인간이 겪는 경험은 시간·공간적으로 극히 제한돼 있다. 반면 집단으로서의 인류의 경험은 광범하고 다양하다. 역사는 결국 인간의 집단적 경험의 복합체다. 한 개인이 섭렵할 수 없는 방대한 경험 세계다. 역사를 통해 경험 세계를 확대함으로써 인간은 정신적으로 성숙한다. 로마 철학자 키케로는 “역사는 인생의 교사”라고 말했다. “우리가 만일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일들을 알지 못하면 영원히 어린아이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역사를 알지 못한다면 어린아이가 아닌 동물적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오직 인간만이 태어나기 이전에 있었던 일을 ‘후천적’으로 부모나 교사를 통해 배운다. 동물과 다른 점이다. 추사 김정희는 학문의 근본을 ‘경경위사’(經經緯史)라고 했다. 경서(經書)를 날줄(세로)로 삼고 역사를 씨줄(가로)로 삼는다는 의미다. 옷감을 짤 때 날줄과 씨줄을 엮어 짜듯이 학문도 경서와 사서(史書)를 핵심으로 삼고 있다는 뜻이다. 가축 떼가 무리 지어 다니는 걸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저 가축들이 태어나기 전 주인(사람)이 부모 세대(가축)에게 어떤 일을 했는지 안다면 저렇게 순종적이기만 할까? 도살해서 고기를 먹고, 가죽을 벗기고, 피까지 빼 먹은 인간들의 행동을 ‘후천적 학습’을 통해서 안다면 세상이 어떻게 바뀔까? 권력 엘리트들은 늘 국민이 가축처럼 고분고분하기를 원한다.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공동체의 장래는 암담하다.
  • “오래도록 잊지 말아요”… 제주 떠나는 아쉬움 담은 이원석 지검장

    “오래도록 잊지 말아요”… 제주 떠나는 아쉬움 담은 이원석 지검장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맙시다.” 제주지방검찰청 이원석(53·사법연수원 27기) 검사장이 20일 오전 10시 제주지검 중앙정원에서 제주지검 구성원들과 이임인사를 나누며 이같이 마지막 인사를 했다. 제주를 떠나는 아쉬움을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새겨진 ‘장무상망(長毋相忘)’으로 대신 담아 표현했다. 이 지검장은 지난 18일 현재 공석인 검찰총장을 대행할 대검찰청 차장검사에 임명됐다. 그는 구성원들과의 이임 인사에서 “18일 오후 늦게서야 인사이동 발표를 듣고 곧바로 서울로 떠나게 되었다”며 “제주도민들을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리지 못해 이 자리를 빌어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19일 오전 4·3평화공원을 찾았으며 오후에는 제주올레와 소년범 선도프로그램인 ‘손 심엉 올레’ 협약을 맺었다. 그는 “제주에서 마지막 업무를 지나온 과거의 아픈 기억을 치유하고 소년들의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우는 일로 마무리하게 돼 뜻깊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서울에서도 제주를 위한 일을 찾아 실행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며 제주와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산과 바다, 돌과 바람, 오름과 숲길, 어느 하나 잊지 않겠다”고 떠나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대검 차장(고검장급)으로 승진한 그는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함께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특검팀에서 활약한 검찰 내 대표적 특수통으로 당시 박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한 검사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핵심 참모인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지냈다. 이후 추미애 전 장관 때 수원고검 차장으로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가 제주지검장을 거쳐 다시 대검 요직으로 복귀했다. 한편 178년 만에 제주에 귀향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는 국립제주박물관에서 오는 29일까지 도민과 만난다.
  • ‘라스’ 추성훈, 아내 야노시호와 잉꼬부부 비결? 예상 빗나간 답변에 ‘폭소’

    ‘라스’ 추성훈, 아내 야노시호와 잉꼬부부 비결? 예상 빗나간 답변에 ‘폭소’

    ‘라디오스타’ 추성훈이 아내 야노 시호와 잉꼬부부로 사는 반전 비결을 공개한다. 오는 18일 오후 10시20분 방송되는 MBC ‘라디오스타’(기획 강영선/연출 이윤화)는 추성훈, 강주은, 라이머, 정찬성이 함께하는 ‘강철 사랑이~’ 특집으로 꾸며진다. 종합격투기 선수 겸 방송인 추성훈은 국내에서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 맹활약하고 있다. 특히 톱모델인 아내 야노 시호와 딸 추사랑을 향한 사랑꾼 면모를 드러내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최근 그는 2년 만에 가진 종합격투기 복귀전에서 화끈한 승리를 거뒀다. 5년 만에 ‘라디오스타’에 재출격한 추성훈은 “이기고 나서 매우 기뻤다”며 복귀전에서 승리한 소감을 전한다. 이어 경기 도중 2번이나 기절할 뻔했던 위기에서 이 한마디가 자신을 구해줬다면서 복귀전 비하인드를 공개한다. 추성훈은 야노 시호와 잉꼬부부로 불릴 만큼 각별한 부부애를 유지하고 있다. 비결을 묻는 MC들의 질문에 추성훈은 예상이 빗나간 대답을 내놓으며 녹화장을 초토화시킨다. 현재 가족과 하와이에서 거주 중인 추성훈은 “하와이보다 한국이 편하다”고 고백해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어 그는 24시간이 모자를 만큼 바쁜 하와이 라이프 에피소드를 대방출할 예정이다. 또 추성훈은 폭풍 성장한 딸 추사랑의 근황을 전한다. 이와 함께 사랑이의 장래희망을 ‘라디오스타’에서 깜짝 공개한다고 해 기대감을 높인다. 그런가 하면, ‘강철 파이터’ 추성훈은 사랑이 앞에서 눈물을 펑펑 흘렸던 사연을 소개해 시선을 강탈한다. 그는 눈물 흘린 후, 현타를 느꼈다고 털어놔 어떤 내용인지 궁금증을 치솟게 한다. 녹화장을 웃음바다로 만든 추성훈의 잉꼬부부 비결은 이날 오후 10시20분에 방송되는 ‘라디오스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추사랑, 12살인데…173cm 엄마 키 따라잡겠네

    추사랑, 12살인데…173cm 엄마 키 따라잡겠네

    일본 모델 야노 시호가 딸 추사랑과 함께한 사진을 공유했다. 4일 야노 시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Hello with 추사랑”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야노 시호와 딸 추사랑의 그림자가 보인다. 추사랑은 엄마 옆에 꼭 붙어 브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추사랑은 173cm인 엄마 야노 시호의 키를 따라잡을 것처럼 길쭉길쭉한 다리길이를 자랑해 놀라움을 자아낸다. 한편 야노 시호는 지난 2009년 이종격투기 선수 추성훈과 결혼해 슬하에 딸 추사랑 양을 두고 있다.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구독’과 ‘좋아요’를 낙점하시오...제주 추사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구독’과 ‘좋아요’를 낙점하시오...제주 추사관

    ‘겨울 추위가 오고서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구나.’(‘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 논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는 조선시대판 페이스북이었고, 트위터였고, 인스타그램이었다. 1844년 새해를 앞두고 추사는 자신의 충직한 제자인 역관 이상적(李尙迪, 1803~1865)에게 띄운 그림 엽서같은 세화(歲畫)가 바로 ‘세한도(歲寒圖)’였다.이에 이상적은 ‘세한도’를 들고, 북경으로 들어가 청나라의 유명한 학자인 장악진(章岳鎭)을 비롯하여 청의 지식인 16명에게 세한도 그림의 찬시를 받아낸다. 한 마디로 ‘좋아요’와 ‘추천’의 글귀인 셈이다.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 세한도에는 수많은 찬시와 배관기(拜觀記:작품을 감상한 글을 그림에 붙은 한지에다가 적는 것)가 댓글처럼 붙는다. 김석준(金奭準)을 위시하여 오세창(吳世昌), 이시영(李始榮) 같은 당대의 명사들의 눈도장과 감상 글이 차곡차곡 세한도 두루마리의 꼬리를 키워 나간다. 그리하여 ‘세한도(歲寒圖)’는 1,469.5cm의 긴 두루마리로 남게 되었다. 거의 15미터나 되는 ‘댓글’과 ‘좋아요’와 ‘추천’의 글귀 가득한 ‘세한도(歲寒圖)’를 만든 추사의 마음을 만나러 제주도에 가 보자.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로 44번지. 바로 제주 추사관(秋史館)이 위치한 곳이다. 혹자들은 이 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추사관(秋史館)을 두고 볼품없고 초라한 정미소 같은 건물 행색을 드러낸다고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애당초 제주 추사관(秋史館)은 과천의 추사박물관과는 궤를 조금은 달리하는 곳이다. 제주 추사관(秋史館)은 추사의 삶을 아는 이들에게는, 특히 1840년(헌종 6년), 55세에 제주도 척박한 땅에 위리안치(圍籬安置: 집 둘레에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를 돌리고 그 안에 사람을 가둠) 유배객 처지의 그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큰 공간이다.사실 추사의 집안은 금수저를 넘어서서 다이아몬드 수저급이다. 증조모가 영조의 둘째 딸인 화순옹주였으며 아버지 김노경은 병조판서를 지냈을 정도이니 그의 집안은 한양 내에서도 손꼽히던 경주김씨 정통 세도가였다. 하지만 안동김씨와 정치적 적대관계로 접어들게 되면서 그의 삶은 격랑을 맞이하였고 정치적으로 패퇴한 추사는 결국 제주도까지 귀양을 오게 된다.  더구나 당시 안동 김씨 문중에서는 끊임없이 추사에게 사약을 내려야한다는 장계를 조정에 올리고 있던 상황이었으니 추사의 사회적 삶은 거의 끝난 상태였다. 이즈음에 등장한 충직한 제자가 이상적이었던 것이다. 그는 역관으로 중국을 드나들며 귀하디 귀한 중국 서적들을 구해 스승인 추사에게 보냈고, 추사는 그의 제자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고작 ‘세한도(歲寒圖)’라는 그림 한 조각과 고마움을 담은 글귀가 전부였다. 하지만 스승의 마음을 받든 이상적은 감격하였고 ‘세한도(歲寒圖)’는 중국과 일본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찾게 된다.바로 이러하기에 제주의 추사관은 당시 유배객으로서의 추사를 그려내야 하였고, 오로지 정신만 남은 그의 시간을 담아야 했다. 삼각형의 단순한 박공지붕에 감자창고 같은 제주의 추사관은 2010년 이렇게 만들어진다. 황량하고 황폐하고 황무지 밭 가득한 서귀포 한구석에 남아있는 추사의 오롯한 마음을 드러내기에 제주 추사관은 더할 나위가 없다. 아귀가 딱 맞아떨어진다. 욕망의 군더더기라고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절망의 시대를 온몸으로 받아내어야 했던 추사의 혼이 느껴진다. 자, 이러하니 우리는 제주 추사관에서는 ‘세한도’ 그림 너머에 있던 소담하고 질박한 추사의 정신을 만나러 가자.   <제주 추사관에 대한 방문 10문답>  1. 방문 추천 정도는?  - ★★★(★ 5개 만점)  2. 누구와 함께?  - 혼자, 오롯이 혼자. 위기의 중년을 맞이한 50대. 삶의 짐을 지고있는 누구라도.   3. 가는 방법은?  - 자가운전은 제주시 출발 : 1135번 도로(평화로) → 안성교차로에서 우회전 서귀포시 출발 : 1132번 도로 → 안성교차로에서 직전   대중교통(1시간 20분 소요)은 제주공항 출발 : 151번 버스(보성초등학교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로 5분) 서귀포 구 터미널 출발 : 202번 버스(인성리 남문지앞사거리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로 5분)   4. 제주 추사관의 특징은?  - 정치적으로 패배한 조선시대 양반 유배지로서의 공간이다 보니 무얼 그리 볼 것이 많지는 않다. 다만, 당시 서귀포의 한 귀퉁이 망망한 추사의 삶의 궤적을 느낄 수 있다.   5. 방문 전 유의 사항은?  - 최소한 나무위키에서라도 추사의 삶은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가자. 어차피 세한도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6. 제주 추사관에서 꼭 볼 곳은?  - 추사관 건축물 자체, 추사관 주변의 황량함!!(이게 추사관의 건립 목적임)   7. 토박이들로부터 확인한 추천 먹거리는?  - 추사관 바로 옆에 동네 밥집 몇 군데가 있다. 말 그대로 제주 동네 밥집이다. 학교나 관공서, 아파트 주변 동네 식당이나 동네 시장 주변 추천!! 이건 여행의 국룰이다. 그만 발 닿고 시간 멈추는 동네 식당에서 한 끼를 드시길. 제주 추사관 여행은 그러해야 한다.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jeju.go.kr/chusa/index.htm   9. 제주 추사관의 관람 안내는?  - 관람시간 : 오전 09:00~18:00(입장 마감시간 17:30) 휴 관 일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관 람 료 : 무료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50대 중반인 서울 양반 추사의 고단한 제주에서의 삶. 세한도라는 그림을 통해서라도 그를 이해하면 좋을 듯 하다. 어느 시대에서나 위기의 삶은 존재했었고 추사는 그러한 삶을 살다가 갔다. 우리가 사는 세상처럼, 그때도 그러했다.  
  • ‘13kg 감량’ 추성훈, 그새 몸무게 원상복구? 푸근해진 인상

    ‘13kg 감량’ 추성훈, 그새 몸무게 원상복구? 푸근해진 인상

    추성훈의 근황이 공개됐다. 지난 5일 이종격투기 선수 추성훈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한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 속 추성훈은 지인과 함께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추성훈의 푸근한 눈웃음은 팬들의 엄마 미소를 자아냈다. 최근 추성훈은 격투기 시합을 위해 13kg 감량을 진행했고, 시합에서 승리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한편 추성훈은 지난 2009년 일본 톱모델 출신인 야노 시호와 결혼해 슬하에 딸 추사랑을 두고 있다.
  • 추사 ‘세한도’ 탄생지 제주로 178년 만의 귀환

    추사 ‘세한도’ 탄생지 제주로 178년 만의 귀환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사진)가 탄생지 제주로 178년 만에 돌아온다. 19세기 전반 학문과 예술의 중심에 있었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는 1840년 제주로 유배온다. 그는 이곳에서 죄인의 신분이 된 자신을 잊지 않고 변함없이 귀한 책을 보내며 위로해준 제자 이상적(李尙迪,1804~1865)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1844년 ‘세한도(歲寒圖)’(국보)를 그렸다. ‘세한도’는 추운 겨울에도 푸르른 송백(松柏)을 소재로, 시련 속에서도 신의를 굳게 지킨 변치 않는 마음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그림으로 이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소중히 전해지고 있다. 4월 5일부터 5월 29일까지 국립제주박물관에서 열리는 이번 특별전 ‘세한도, 다시 만난 추사秋史와 제주’는 2020년 손창근(孫昌根,1929년생) 선생의 기증을 기념해 그 해 11월 24일부터 지난해 4월 4일까지 개최한 특별전 ‘세한歲寒, 한겨울에도 변치 않는 푸르름’의 순회전시의 일환이다. 178년 만에 제주에서 추사의 ‘세한도’ 진본을 만나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세한도’는 조선 후기 올곧은 선비 정신이 담긴 문인화의 걸작으로 꼽힌다. 추사 김정희는 1840년 55세 나이에 윤산도 옥사사건에 휘말려 제주도에 9년간 유배했다. 추사체를 완성하고 국보에 지정될 정도로 유명한 세한도를 남겼다. 제주에서 열리는 이번 특별전에서도 ‘세한도’ 실물과 세한도에 관한 감상과 칭송이 담긴 두루마리 전체를 볼 수 있다.
  • ‘문화 도시’ 도봉, 열 개의 빛깔로 채운 편지를 띄우다 [현장 행정]

    ‘문화 도시’ 도봉, 열 개의 빛깔로 채운 편지를 띄우다 [현장 행정]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편지만의 따뜻한 감성을 통해 ‘느림’이 지닌 가치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될 겁니다.” 서울의 대표 ‘문화 도시’ 도봉구에 구민들의 감성을 자극할 또 다른 문화 공간이 문을 연다. 도봉구민회관 1층에 자리한 ‘편지문학관’이다. 편지라는 단일 주제를 다룬 문학관이 마련된 것은 전국에서 처음이다. 오는 14일 개관을 앞두고 지난 7일 편지문학관을 방문한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편지는 깊은 고민과 생각을 하며 한자 한자 써 내려가기 때문에 즉각적인 대화를 나누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이메일과는 다른 감성이 있다”면서 “문학관에서 천천히 누군가를 떠올리며 편지를 쓰고 그 마음을 전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학관은 총 10개 분야의 주제로 나뉘어 구성돼 있다. 시대별 편지의 역사와 변천 과정을 소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새뮤얼 리처드슨의 ‘파멜라’,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서한체 소설에 대한 내용도 접할 수 있다. 도봉구와 관련된 인물을 비롯해 국내외 유명한 문인, 위인, 예술인 등 역사적 인물이 남긴 편지도 볼 수 있다. 조선 후기 문인 추사 김정희를 비롯해 민주화 운동가이자 정치인인 김근태,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예술품 수장가 간송 전형필 등이 남긴 글이다. 이 구청장은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가 투옥 중인 아들에게 ‘네가 항소한다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딴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고 적은 편지를 보면 뜨거운 애국심을 느낄 수 있다”며 “의미 있는 삶을 산 역사적 인물들이 남긴 편지를 보면서 교훈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전자 편지를 전송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관람객들이 마음을 전하고 싶은 이에게 직접 편지를 작성하면 디지털 화면에 게시되고, 작성자나 작성자가 QR코드를 공유한 사람만 열어 볼 수 있다. 글로 전하지 못한 마음을 음성으로 녹음하고 직접 들어 볼 수 있는 음성 편지 제작 공간도 마련돼 있다. 구는 구민들이 문학관에서 인문학 소양을 쌓을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할 계획이다. 이 구청장은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부부의날 등 기념일이 많은 만큼 구민들로부터 편지를 공모받는 등의 이벤트를 생각하고 있다”며 “작은 공간이지만 구민들이 역사의 흔적인 편지를 통해 문화의 향기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48세’ 추성훈, 충격 노화 근황…“많이 늙었어” 한탄

    ‘48세’ 추성훈, 충격 노화 근황…“많이 늙었어” 한탄

    이종격투기 선수 겸 방송인 추성훈이 본인 영상을 본 후 노화된 모습을 한탄했다. 추성훈은 지난 2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많이 늙었어”라는 글과 함께 영상 링크를 게재했다. 공개된 영상 속에는 화보를 촬영하고 운동을 하는 추성훈의 모습이 담겼다. 추성훈은 헬스장에서 운동한 후 찍은 사진도 공개했다. 추성훈은 1975년생으로 만 46세다. 나이에 비해 놀라울 정도의 탄탄한 근육과 함께 쏙 빠진 얼굴살도 눈길을 끈다. 추성훈은 2009년 일본 톱모델 야노 시호와 결혼해 슬하에 딸 추사랑을 두고 있다. 이들 가족은 KBS2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해 큰 사랑을 받은 바 있다. 추성훈은 최근 KBS2 예능 ‘신상출시 편스토랑’에 출연했다.
  • “인왕제색도, 삼성에 소유권 넘기는 과정에 부당거래 의혹”

    “인왕제색도, 삼성에 소유권 넘기는 과정에 부당거래 의혹”

    지난해 고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이 국가에 기증한 국보 ‘인왕제색도’가 1970년대 삼성가에 넘어가는 과정에서 부당거래 의혹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인왕제색도를 소유했던 서예가 소전 손재형(1902∼1981)의 장손 손원경씨는 23일 서울 종로구 토즈 혜화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왕제색도를 두고 숙부들과 삼성 사이에 담합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있었다”고 밝혔다. 손씨의 주장에 따르면 1972년 자신의 아버지인 손용 중앙대 명예교수가 조부의 심부름으로 삼성 이병철 회장을 만나 돈을 빌린 뒤 인왕제색도를 맡겼다. 이후 그림 보관증을 집에 뒀으나, 1975년 조부가 병으로 쓰러지자 숙부 2명이 삼성에 보관증을 넘기거나 파기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그는 “인왕제색도 소유권이 삼성 쪽에 넘어간 시점은 1972년부터 국보로 지정된 1984년 사이로 판단된다”며 “당시 아버지는 미국에 체류하는 기간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어 “아버지가 리움미술관 측에 할아버지가 인왕제색도를 처분한 적 없고 보관만 위탁했다는 내용 증명을 보냈다는 사실을 2006년 알게 됐다”고 했다.손씨는 아버지와 숙부들에게 인왕제색도가 삼성가에 넘어간 경위를 물었지만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작품의 국가 기증 후 약 1년이 지난 뒤 회견을 연 이유에 대해서는 “이건희 기증관이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았다”며 “그림을 돌려받기를 원하지는 않지만, 삼성 측이 소장 경위를 공개해 주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지금까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정치에 투신한 손재형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미술품을 파는 과정에서 삼성가에 넘어갔다고 알려졌다. 손씨는 조부가 1943년 일본 도쿄에 있는 후지쓰카 지카시를 설득해 추사 김정희 그림 ‘세한도’를 가져온 사실을 언급하면서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소전과 집안 유업을 지키려 노력한 모친 고 방행자 씨가 재조명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손씨 주장에 대해 삼성문화재단 관계자는 “인왕제색도는 이건희 회장 개인 소장품이었기 때문에 재단이 취득 과정을 알 수 없다”고 했다.
  • 굽이굽이 잠든 마을, 예술로 깨어나다

    굽이굽이 잠든 마을, 예술로 깨어나다

    옛 묵호항 뒤편 언덕마을 골목길묵호 정서 가득한 벽화가 빼곡히 반대편 묵호등대 아래 ‘도째비골’문어발 모양의 스카이밸리 유명트릭아트 그림은 인증샷 명소로 아찔한 스카이워크 ‘해랑 전망대’‘동쪽바다 중앙시장’·감추사는 덤복수초 가득한 ‘찬물내기 공원’도옛 묵호항 뒤에 있는 ‘논골담길’도 사이즈가 확 커졌다. 도째비골 스카이밸리가 이웃해 들어섰고, 바다 위로 스카이워크 등의 시설도 조성됐다. 지난해 관광객 추이를 조사한 동해시 자료에 따르면 도째비골 등 신흥 명소에 관광객들이 몰린 반면 추암 등 전통적인 자연 경관을 찾는 관광객은 그만큼 빠졌다고 한다. 이제는 논골담길 일대가 강원 동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의 지위를 단단히 굳힌 듯하다.논골담길은 옛 묵호항 뒤편 언덕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일컫는다. 몇 해 전 몇몇 미술대 학생과 주민 등이 후줄근한 논골마을 골목길에 묵호의 정서가 듬뿍 담긴 벽화를 그렸는데 이게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마을 입주 예술가와 주민들에게 둥지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의 부메랑이 돼 돌아오긴 했지만 어쨌든 이후 논골담길은 동해의 명소가 됐다. 벽화가 그려진 좁은 골목을 걷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때쯤이면 묵호 등대와 마주하게 된다. 여행객들은 이 짧은 순간에 많은 위로를 받곤 했다.논골마을 반대편 산자락, 그러니까 묵호등대 아래로도 또 다른 달동네가 있었다. 여기가 요즘 인기 절정의 도째비골이다. 도깨비불이 자주 출몰했다는 곳이다. 도째비는 도깨비의 방언. 보잘것없던 계곡에 지난해 도째비골 스카이밸리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급경사의 계곡 가운데에 가슴 철렁한 고도감을 느낄 수 있는 문어발 모양의 전망대 스카이워크를 세웠다. 여기에 외줄 위의 곡예사처럼 자전거를 타고 계곡을 오가는 스카이 사이클, 27m 높이의 초대형 미끄럼틀인 자이언트 슬라이드 등의 놀이 시설이 연결됐다. 도째비골에서 바다로 연결되는 경사로 바닥엔 트릭 아트 그림을 그려 넣었다. 방문객 누구든 인증샷을 남길 만큼 명소가 됐다. 도째비골 앞 방파제 너머엔 해랑 전망대가 있다. 바닥에 강화 유리를 깐 스카이워크다. 도째비골의 시설물은 죄다 유료지만 해랑 전망대는 무료다. 하늘 파란 날, 발아래 흰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를 넋 놓고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논골담길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려면 맞은편 언덕 마을 묵호진동으로 가야 한다. 여기도 이미 갯마을 정서와는 사뭇 다른, 도회풍의 이질적인 건물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겨울이면 언덕 위의 덕장마다 명태를 내건다.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꾸덕꾸덕 마르는 명태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도째비골에서 어달리 방향 바닷가에 문어상이 세워져 있다. 왜구를 물리쳤다는 ‘호국 문어상’이다. 그 옆엔 거무튀튀한 까막바위가 있다. 서울 숭례문에서 정확히 동쪽 방향에 있다는 바위다. 관광객들은 무덤덤하게 다가가지만 현지 어민들은 까막바위에 문어의 영혼이 산다고 여겨 접근을 꺼린다고 한다. 논골담길에서 한 블록 너머에 ‘동쪽바다 중앙시장’이 있다. 명성 자자한 북평시장과 쌍벽을 이루는 전통시장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묵호중앙시장이란 옛 이름을 쓰다 화려한 변신을 꿈꾸며 현재의 이름으로 바꿨다. 톡톡 튀는 맛과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청년 업소들이 많았는데 조금씩 탄력을 잃어가는 듯해 아쉽다.감추해변은 동해가 감춰 둔 해변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올겨울 시즌 코로나 안심관광지로 선정한 곳이다. 이웃한 한섬, 고불개 등의 해변은 이미 유명해져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지만 감추해변은 찾는 이들이 아직 많지 않은 편이다. 웅장한 해안 절벽과 작고 예쁜 해변, 시간과 파도가 조탁한 해식동굴 등의 볼거리가 있다. 해변 끝자락엔 감추사가 있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작은 절집이다. 아, 겨울 끝자락에 동해를 찾는다면 찬물내기(냉천) 공원을 꼭 찾길 권한다. 복수초 군락지가 있는 작은 공원이다. 모진 겨울을 견뎌 내고 노란 꽃잎을 틔워 낸 복수초를 어느 지역보다 일찍 만날 수 있다. 이번 여정에선 다소 일렀고 해마다 그랬듯 2월 중순쯤이면 자태를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감추해변 인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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