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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KAL기 격추진상 회답오면 피해보상 요구 검토”

    ◎외무부당국자 밝혀 정부는 지난 83년 KAL기 격추사건과 관련된 최근 미국 및 소련 언론 보도내용을 확인해 달라는 우리측의 요구에 대해 소련 정부가 회답을 보내오면 그 내용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정의용 외무부 대변인이 9일 발표했다. 정대변인은 『정부는 지난 7일 제1차 한소 정책협의회에서 소측에 관련정보와 자료를 제공해줄 것을 요청했으며 주소 대사관에도 관련사항을 파악,보고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소측이 언제 회답을 보내올지는 현재 알수 없으나 그 내용이 납득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다시 한번 정확한 진상파악을 요구할 방침이며 사실확인 여부에 따라 피해자 보상 및 소련 정부의 공식사과 촉구 등을 신중히 검토할 게획』이라고 말했다.
  • KAL기 격추사건/소,진상 밝힐 가능성/NYT지 보도

    【워싱턴=김호준특파원】 지난 83년 대한항공(KAL) 007기의 격추사건에 관한 소련 관영 이즈베스티야지의 최근 보도는 소련이 2백69명의 희생자 유해 및 KAL기의 격추에 관한 공식적인 자료를 제공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미국의 뉴욕 타임스지가 7일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지는 『이즈베스티야의 보도내용은 셰바르드나제 소 외무장관이 최호중 전 외무장관에게 KAL기 격추사건과 한국전쟁때 북한에 대한 소련의 지원을 사과한지 1주일 후에 나왔다』면서 소련이 사건의 진상을 밝힐 용의가 있다는 희망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 “소,민항인줄 알면서 KAL기 격추”/전KGB 런던총책 폭로

    ◎실수뒤 당황한 군부서 “첩보비행 했다” 조작/크렘린,“CIAㆍKAL 연계활동 선전” 지시 소련 KGB(국가보안위원회)의 런던총책으로 있다가 지난 85년 서방으로 탈출한 올레그 고르디에프스키씨는 최근 펴낸 「KGB 인사이드스토리」(크리스토프 앤드루공저)라는 책에서 83년 KAL 007기 격추 당시 소련공군은 이 비행기가 민간여객기였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며 이 사고는 소련공군과 사고기의 실수가 겹쳐 일어난 것이긴 하나 가장 큰 요인은 소련의 인명에 대한 경시풍조였다고 폭로하고 있다. 이 책의 KAL기 격추사건 관계부분을 발췌한다. 「KAL 007기의 비극은 소련공군과 대한항공기의 실수가 함께 야기한 것이며 특히 소련측의 인명에 대한 경시에서 비롯됐다. 이보다 5년전에 소련은 또다른 대한항공 902편이 소련 영공을 침입,무르만스크 근처로 날아왔을 때 요격해 강제착륙시켰으나 폭파시키지는 않았다. 83년 8월31일과 9월1일 사이의 밤 KAL기가 비행한 캄차카반도와 사할린섬에 있던 11개의 추적기지 중 8개소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않았다. 여기에다 변경된지 얼마되지 않은 소련방 공군사지역 관할체제가 혼돈을 가중시켰다. 사고기가 영공을 침범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하바로스크 방공군사령부는 모스크바로부터 훈령을 받으려 몇번 시도했다. 혼란스러운 메시지가 교환된 후에 하바로스크는 사할린섬에 있는 지휘부에 격추하기 전에 침입한 항공기를 식별하도록 되어있는 원칙을 상기시켰다. 사할린은 이를 무시했다. 이 사고기를 처리하던 과정에서 지휘계통에 있던 일부 사람들은 그들이 다루고있는 항공기가 민간여객기가 아니라 미국의 RC 135 정보수집기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KGB의 런던총책으로 모스크바에 휴가차 방문하고 있던 라르카디 쿠크는 사고기가 격추당할 시간에는 그것이 민간항공기라는 것을 하바로스크의 방공군 사령부는 알고 있다고 확신했다. 이 사건에 대한 소련의 첫 공식반응은 그같은 사고가 있었다는 것도 부인하는 것이었다. 이 비극을 처리한 모스크바의 혼란은 너무나 커 사흘동안 다른 곳에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런던주재 대사관이나 KGB지국에 어떻게 설명하라는 지침이 없었다. 9월4일 본부로부터 온 첫급전은 레이건 행정부가 전세계적인 반소캠페인을 벌이기 위해 KAL기 사고를 이용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 지침은 너무나 악의에 찬 것이었다. KGB지국은 대사관 등과 협의해 소련국민ㆍ건물ㆍ선박ㆍ항공기 등을 공격해 대비해 보호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모스크바에서 두번째와 세번째 나온 전보는 미국과 한국에 사고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적극적인 내용이다. KGB본부는 미국과 대한항공 사이에는 긴밀한 군사ㆍ정보협력체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얘기는 나중에 사고기의 기장이 전에도 첩보활동을 한 적이 있다고 자랑한 적이 있으며 친구들에게 첩보장치를 보여주기까지 했다는 거짓 보고까지 첨가됐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본부로부터 온 전보는 소련공군이 사고기가 민간항공기라는 것을 알았느냐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후 사고기의 기장이 『우리는 캄차카 상공을 운항하고 있다』고 무선보고를 했다는 거짓 주장까지 나왔다. CIA 음모설을 치장하기 위해 본부는 각 지국에 승객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도록 지시했다. 소련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승객과 서방정보원을 연계시키려고 시도했다. 소련외교관들과 KGB 관리들은 이 사고로 소련의 국제적 명성이 훼손된데 실망했다. 본부는 9월18일 프라우다지 편집국장인 아파나시예프가 런던을 방문하던중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격추사건에 대한 소련의 공식적인 주장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한데 대해 격분했다. KGB 런던지국은 본부로부터 아파나시예프의 인터뷰내용 전문을 보내라는 급전을 받았다. 83년말 KGB의 주요지국이 수행한 중대업무의 하나는 CIA 음모설을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런던지국은 이 업무를 잘 수행했다고 본부로부터 격려를 받았다. 이 사건의 가장 위험한 결과는 KGB 본부와 크렘린당국이 레이건행정부가 반소음모를 벌이고 있다는 확신을 한 것이었다. 소련공군의 실수를 알고 있으면서도 안드로포프ㆍ오르가코프ㆍ크리우츠코프 등 지도부의 많은 사람들은 사고기가 첩보임무를 띠고 있었다는 것을 믿었다. 이 사건에 대한 미소 양국의 불화로 9월8일 마드리드에서예정됐던 양국 외무장관회담이 무산되었다. 이 사건이 있기 직전 와병중인 안드로포프는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병상에서 그는 레이건행정부에 대한 비난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세계적인 위기가 불길하게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암시했으며 사건후 죽기 5개월동안 핵전쟁이 도래할 가능성에 대해 숙고했다.
  • KAL기 격추 은폐/소는 사과·배상하라/자유총연맹 성명

    자유민주총연맹(총재 이철승)은 8일 소련의 KAL기 격추사건 은폐보도와 관련,성명을 발표하고 이 사건의 진상규명과 소련당국의 사과와 배상을 받을 때까지 대소 경제원조를 중단할 것 등을 촉구했다.
  • 경협촉구 역점 둔 「고르비친서」/첫 한·소 정책협의회 안팎

    ◎생필품 지원등 연불금융 요청/「KAL기 격추」 돌출사안 상당시간 토론 소련의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로가초프외무차관을 자신의 특사로 한국에 급파한 것은 한국측에 조속한 경제협력을 촉구하는 데 그 주목적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 이유는 7일 상오 노태우대통령에게 전달된 고르비 친서의 내용에서 잘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로가초프차관이 이날 하오5시 김종인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을 방문,우선 3억∼5천달러어치의 소비재공급을 긴급 지원해주도록 요청한 사실 등에서도 알수 있다. 소련측은 물론 한국측에 조속한 경협을 요청하면서도 한국측이 북방정책의 궁극목표로 삼고 있는 남북통일의 국제적 여건조성에 최대한의 협력을 다하겠다는 「외교적 성의」도 표시하고는 있다. 그러나 소련의 입장에서는 「발등에 떨어진 불」격인 어려운 경제사정에 대한 한국의 협력을 노골적으로 표시하기보다는 한반도 문제해결의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대외적으로 강조함으로써 대국의 명분을 살려야하는 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날 상오 한글번역본과 함께 노대통령에게 전달된 고르비의 친서는 5개 부문으로 되어있다고 김종휘 대통령 외교안보 보좌관이 전언. 친서는 ①고르비의 노대통령에 대한 안부 ②모스크바 선언이 한소관계 발전은 물론 극동·아태지역의 평화,안정,협력의 초석이 되고 여기에 기여할 것이라는 평가 ③소련이 직면한 어려운 경제상활 설명 및 한국의 경제협력기대 표시 ④로가초프 특사의 파한은 1월말 한소 제2차 경제회담의 사전협의 ⑤방한시 양국관계 발전문제 논의 기대로 나눠져 있다. 어차피 1월말이면 마슬류코프 부총리와 김종인 경제수석을 단장으로 하는 제2차 한소 경제회담이 서울에서 열리게 되어 있는 마당에 굳이 고르비가 친서를 휴대시킨 특사까지 파견한 이유가 무엇인지 명확한 해답을 찾기가 어렵다. 김보좌관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친서를 통해 한국측에 「협조」를 요청한 구체적 내용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친서 전달과정에서는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았으며 로가초프차관이 한국측 실무자와 만날때 그런 얘기가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변했다.김보좌관은 「소련측이 새로운 협력을 요구한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 『이미 논의되어 온 대소경협의 범위내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도와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좌관은 로가초프차관의 북한방문 계획설에 대해 『내가 아는 범위내에서 그의 평양 방문계획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해 적어도 서울­북경에 이어 평양으로 가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정부의 한 관계소식통은 『소련측은 그동안 한소간에 어느정도 의견접근을 본 15억달러 규모의 소비재상품 연불 금융지원을 앞당겨 이행해 주고 특히 심각한 소련 군내 생필품 부족상황을 감안,이 가운데서 우선 3억∼5억달러어치의 치약·치솔·의류 등 생필품을 긴급 지원해 주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해 경협의 조기공여 요청이 로가초프특사의 파한목적이 아닌가 여겨진다. 다른 관계소식통은 아직까지 경협규모의 완전타결이 되지않고 있는 상황에서 소련측이 총 40억달러의 경협지원을 보장받으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해 우리정부가 예상하고 있는 30억달러선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도 관측된다. 특히 우리측이 대소경협과 관련,현금차관을 고려하지 않거나 제공을 한다해도 최소한에 그칠 것이라는 입장인데 비해 소련측은 5억달러선의 현금차관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날 하오에 열린 제1차 한소 정책협의회에서는 로가초프차관과 유종하 외무차관이 수석대표로 참석한 가운데 1시간30여분 동안 한반도 문제,유엔가입,고르바초프대통령의 방한,KAL기 격추사건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 먼저 발언에 나선 유차관은 남북대화에 관한 우리정부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소련이 남북문제에 기여할수 있는 길은 북한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도록 도와주는데 있다』고 강력한 희망을 표명. 로가초프차관은 이에 『남북대화의 지속을 위한 남북상호간의 인내심과 건설적인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 그는 또 한국의 유엔가입과 관련,『유엔의 보편성 원칙에 입각,유엔헌장을 존중하는 모든 국가들이 유엔에 가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렇지만 가장 좋은 해결책은 남북간에 이 문제에 관해타협을 이루는 것』이라고 소련입장을 설명. ○…이날 회의에서는 특히 KAL기 격추당시 탑승객의 유해를 소련 군당국이 소각했다는 미지 및 소지의 보도가 예정에 없는 돌출성 이슈로 등장,양측은 이에 관해 상당시간을 할애하며 토론을 전개. 한편 그는 당초의 체한일정을 이틀 연장,8일 이봉서 상공장관을 만나고 9일 국내산업 시찰을 가진뒤 10일 하오 이한할 예정.
  • 소,KAL기 유해 269구 극비 소각

    ◎기체·전자장치 오래전에 발견/간첩활동 아닌 항로 이탈 판명/이즈베스티야지/“소는 진실밝힐 자료 공개를”/“소당국,이즈베스티야에 소각사실 보도금지 압력”/미지 【모스크바 AP연합】 소련군 잠수요원들은 지난 83년 9월1일 사할린 근해에서 소련공군 전투기들에 의해 격추돼 탑승자 2백69명 전원이 사망한 KAL 여객기의 잔해를 이미 오래전에 발견했다고 소련정부 기관지 이즈베스티야지가 지난해말 보도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이즈베스티야지는 지난해 12월20일자에서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소련의 고위관리들이 이 신문의 한 기자에게 소련군 잠수요원들은 사할린 부근 마네론도로부터 수미터 떨어진 해저에서 KAL 007편의 보잉 747기 잔해를 발견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그러나 소련당국은 이같은 보도에 대한 확인을 거부했다고 말하고 신문으로서도 잔해발견에 관한 정보를 철저히 확인할 때 까지는 더 이상 구체적인 보도를 내지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즈베스티야는 소련군 잠수요원들이 KAL기 잔해를 발견한 일시 및 잔해내의 희생자 시체 존재유무와 잔해의 처리경과 등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은채 미상원의원 4명이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KAL기 격추사건에 대한 소련측이 조사결과를 밝히도록 요구했었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이어 이제 소련은 이 사건에 관해 무엇이든 갖고 있는 정보는 넘겨줄 시점이 되었으며 만일 확실한 증거가 나올 경우에는 이 「무서운 실수」에 대한 비난을 수용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진위 아는 바 없다” 소 외무부대변인 이즈베스티아지는 또 이같은 기사는 지난 7년동안 안개속에 가려져 있던 KAL기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데 도움이 될것이며 편집진은 현재 소련당국이 틀림없이 갖고있는 공식자료를 조만간 보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는데 이즈베스티야지의 기사에 관한 진위 여부에 대해 지난 4일 소련 외무부 대변인 비탈리 추르킨은 보도내용을 전혀 아는 바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 AFP연합】 소련 국방부는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에 대해 지난 83년에 발생한 KAL기 추락사건에 대한 추적을 중단하고 소련 당국이 사고해역에서 인양한 탑승객 2백69명의 시체를 비밀리에 소각한 사실을 보도하지 말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미국의 시사주간 US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가 5월 보도했다. 이 잡지는 최근 소련으로부터 돌아온 익명의 미국 소식통을 인용,이즈베스티야지의 보도를 통해 문제의 KAL기가 소련 사할린부근 상공에서 폭발해 마네론섬 인근 해상에 추락한 사실이 밝혀질 것이라고전했다. US 뉴스지는 이즈베스티야의 보도내용을 인용,추락한 KAL기의 잔해가 수심 30여m의 바다밑에 남아 있었으나 소련정부는 기체발견 사실을 감추기 위해 사고 해역에서 인양한 승객 2백69명의 시체를 한 화장터에서 소각하도록 명령했다고 폭로했다. 이즈베스티야지는 또 추락한 KAL기에서 발견된 전자장치를 통해 문제의 KAL기가 소련정부의 당초 주장대로 간첩 활동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항로를 잃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덧붙였다.
  • “KAL기사건 소 외무 사과”/모스크바방송 보도

    【내외】 소련은 21일 관영 모스크바방송을 통해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지난 15일 모스크바에서 가진 최호중 외무장관과의 한소외무장관회담에서 지난 84년의 KAL기 격추사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한 사실을 확인했다. 모스크바방송은 이날 소련의 KAL기 격추사건이 한국관계 역사에서 『비극적 사변으로 되는 참사』라고 강조하고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이 이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사과의 뜻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이 방송은 『1984년에 소련 전투기가 사할린 상공에서 한국여객기 보잉747을 추락시켰다. 7년 전 이런 사변이 오늘날까지도 아주 쓰라린 불쾌한 기분을 남겨 놓고 있다』고 전제하고 KAL기 격추사건의 정확한 원인 등이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은 부자연스러운 사건이며 건전한 사고로 받아들일 정도가 아니다』라고 논평,소련이 저지른 KAL기 피격사건을 간접적으로 비난했다.
  • 대통령의 방소와 「평양가는 길」(사설)

    3박4일의 소련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노태우 대통령을 환영하며 노고를 치하한다. 구체적으로 그 성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아직은 성급하게 논평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소 모스크바선언에 대한 각국의 반응에도 나타났듯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소련방문은 그 자체가 예삿일은 아니었다. 한국이 소련에 대해 무역 및 투자기회,그리고 경제원조까지 제의하는 것은 『한국이 작은 강국으로 등장하는 것』을 뜻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것은 한 나라가 다른 한 나라를 방문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노 대통령의 소련방문은 한국민의 소련 나들이와 같은 뜻을 지닌다. 1세기 가까운 동안 세계의 양대 진영중 한 진영을 대표해 초강대국으로 군림해온 나라가 대결했던 진영의 가장 불행하고도 작은 나라인 한국의 대통령을 경의와 예의를 다해 맞은 것은 우리 국민 모두에 대한 예우였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작은 나라가 모처럼 큰 나라에 인정을 받게 되어 우쭐한 느낌이 들었다는 정도의 감상적인 반응이 아니다. 대통령의 귀국인사에서도 밝혔 듯이 그것은 45년간 한반도에서 지속되어온 냉전체제의 해소를 뜻한다. 소련은 냉전체제의 상대국 「대표국가」이며 또한 「힘의 원천국가」이다. 그 실체와 직접 만나 냉전체제의 종식에 합의하고 그 점에 대해서 서로 협력체제를 갖출 것을 합의했다. 이 합의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의 보다 적극적인 발언도 있었다. 『6·25전쟁과 KAL기 격추사건은 유감스런 일이었으며 가슴아프게 생각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사실을 시인하고 재발방지에 노력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개인끼리도 서로 적대관계에 있었던 사이가 화해를 하려면 「푸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황차 국가와 국가간에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불행했던 과거의 사건을 어떤 형태로든 청산하는 의식절차가 필요하다. 모처럼의 「모스크바선언」에서는 접어 두었다가 굳이 외무장관의 해명을 통해 이런 과정을 겪는 것에는 미흡함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공식태도의 출발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로써 한반도를 에워싸고 가실줄을 모르던 「북침설」의 누명이 확실하게 벗어질 수 있게 되었다. 전쟁의 중요지원 당사국이었던 소련에 의해서 이런 작업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상태를 멈추지 않게 하고 있는 김일성의 「남한해방」논리의 근거가 여기에 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측의 환상적인 전쟁논리를 설득으로 풀고 개방무대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소련의 태도가 근원으로부터 바로 잡히는 일이 우선적으로 필요했다. 노 대통령은 『지금 우리가 사는 한반도에도 마침내 평화와 통일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귀국했다』고 말하고 『모스크바로 가는 넓은 길이 열린 이제 평양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피력했다. 시간문제라는 것은 성급하게 결말을 서두르려는 뜻으로는 생각지 않는다. 시간표의 연장선상에 확실하게 올랐음을 뜻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세계평화의 실현을 뜻한다. 그러므로 한국과 소련의 만남은 세계평화에의 확실한 기여였다. 노 대통령의방소가 공헌한 이같은 공로를 우리는 평가하고자 한다.
  • “한반도 평화정착 합의가 최대 성과”/노대통령 기자간담회 내용

    ◎소,아태각료회의 회원국 참여 희망/중국과 수교땐 전쟁위협 완전해소 ­이번 소련방문을 결산해 주십시오. 한소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까.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라고 한다면 해방 이후 45년간 한반도에서 지속돼온 냉전체제의 해소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냉전체제로 인해 수백만의 민족이 희생당하는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일어나고 지금도 그같은 고통이 계속되고 있는 데 그 냉전체제의 상대국 「대표국가」 또는 「힘의 원천국가」의 실체와 냉전체제의 종식에 합의하고 상호 협력체제를 갖추게 됐습니다. 한반도에서 평화정착을 위한 가장 탄탄한 디딤돌을 마련했으며 이제 평화의 길을 향해 가는 데 장애요소는 없어졌습니다. 앞으로 중국과도 관계를 정립한다면 한반도에서의 전쟁위협은 1백% 해소될 것입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단독회담을 2시간 이상 진행했는 데 여기서 주로 한반도문제를 얘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통일여건 조성과 관련해 주요한 논의가 있었습니까. ▲물론 있었습니다. 그분(고르바초프)에게 우리의 통일정책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려고 준비를 했었는데 그가 고맙게도 내가 하려는 얘기를 먼저 정리해서 얘기하더군요. 이 점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나는 소련이 우리와 수교했더라도 북한과의 관계를 끊지말고 더 친숙한 관계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역사의 물줄기를 거슬러 가고 있는 점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북한이 반대하고 있는 것을 그냥 두지 말고 계속 설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남북한 유엔 가입문제에 대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의견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한 논의가 없었습니다. 북한도 마찬가지이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그 동안 국제사회에서 이바지 해 온 우리의 업적,모든 국제기구와의 관계로 보아 유엔에 가입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도 이같은 보편타당성의 원칙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최호중 외무장관과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의 회담에서 6·25전쟁과 KAL기 격추사건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 데 셰바르드나제 장관의 발언을 소련정부의 공식사과로 간주할 수 있습니까. ▲소련 외무장관의 입장 표명이 있었으면 공식적인 뜻이 있었다고 봐야지요(이렇게 운을 뗀 노 대통령은 배석한 최 장관에게 「그렇지요」라고 묻자 최 장관은 「그렇습니다」고 답변). 그러나 정상회담에서는 6·25와 KAL기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고 개괄적으로만 언급했습니다. ­우리가 소련에 무상으로 경협을 제공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경제협력의 규모는 정해졌습니까. ▲무상이라니 될 법이나 한 소리입니까. 소련 같은 대국이 우리나라와 같은 작은 나라가 무상으로 준다고 해도 안받을 것입니다. 또 한가지 분명히 말해 두겠는 데 경협규모는 이번에 정하지 않았습니다. 경제협력의 기본방향을 정하려고 소련 대표단을 방한토록 했지만 국내 사정이 바빠서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못했습니다. 내년 1월초에 협의,결정할 것입니다. 다만 소련이 제일 급한 것이 소비재인 만큼 연불로 내줄 수 있습니다. 생활필수품을 생산하기 위해 군수산업을 민수산업으로 전환시키는 데 우리 기술진이 조사해 보니 빨리 할 수 있다고 해서 합작투자 플랜트수출·도로·항만·건설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우리 기업이 참여하는 문제를 얘기했습니다. ­북한이나 북한 지도층에 대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인식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북한이 페레스트로이카 정책 등을 반대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현재 국내 문제가 어려워 여타 문제에 크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북한도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으며 시간이 가면 반드시 변할 것입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일본·중국을 포함한 동북아에 대한 관심은 어떻다고 보십니까. ▲상당히 적극적이었습니다. 나와 호크 호주 총리의 주도로 만들어진 APEC(아시아·태평양 각료회의)의 구성과정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관심을 표명하면서 참여를 희망했습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이같은 의사표시에 대해 나는 장기적으로 그렇게 돼야하고 될 것으로 보지만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그 조건은 한반도의 안전보장 체제의 구축이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지난 88년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제의한 동북아 6개국 평화협의회 구성도 한반도문제를 풀자는 것이었습니다. ­모스크바대 연설이나 외무성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임수경양 석방문제에 대한 질문에 석방을 고려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십시오. 석방을 검토한 적이 없습니다. 모스크바대 연설과 기자회견 때 대학생과 젊은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는 데 「같은 학생의 입장에서 동정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 법이 있고 법앞에는 만인이 평등한 것이고 어떤 특정인이라고 해서 차별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했습니다. 그러나 임양이 법을 어겨 제재를 받고 있지만 아직 어린 학생이고 법을 어긴 사람이 반성하고 개과천선하면 용서를 고려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귀국하시면 김대중 평민당 총재와 회담을 가질 계획이 있습니까. ▲그런 기회가 오지 않겠어요. 오리라고 봅니다.
  • “소,한반도 군축 검증 동의”/노대통령 기자간담

    ◎45년 냉전종식 큰 수확/경협규모 1월 실무협의때 결정/방소 3박4일 마치고 오늘 상오 귀국 【레닌그라드=이경형 특파원】 노태우 대통령은 16일 상오 8시(한국시간 하오 2시) 레닌그라드 영빈관에서 소련 방문 3박4일을 결산하는 기자간담회를 갖고 『남북한의 군사력이 상호 균형되게 하기 위해 지금까지 지원을 해주었던 나라들이 군비축소 문제도 관여해 합동으로 확인하는 장치를 만드는 등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에게 설명했고 그도 전적으로 동감을 표시했다』고 밝혔다. 약 1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날 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은 『한소정상회담에서 7·4공동성명 이후 북한이 약속을 깬 사실을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하나하나 설명했고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소련의 역할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한문제와 관련,『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나의 한국 초청에 대해 빠른 시일안에 서울에 가겠다고 답변했다』면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동맹국인북한을 의식하는 것 같았으나 그가 북한의 끈질긴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와 정상회담을 가졌고 동북아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또한 소련의 국익을 위해 무엇이 더 도움이 될 것인가는 이미 판단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해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평양 동시 방문 가능성이 희박함을 강력히 시사했다. 노 대통령은 방소 결산에 대해 『해방 이후 45년간 지속돼온 한반도 냉전체제의 해소가 가장 큰 성과이며 지금까지 냉전체제의 상대국 대표국가와 냉전체제의 종식을 합의하고 상호 협력체제를 갖추게 된 점과 통일의 기반을 조성한 것에 큰 의미가 있다』면서 『앞으로 중국과도 관계를 정립한다면 한반도에서의 전쟁위협은 완전히 해소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경협문제와 관련,『경협규모는 이번에 정하지 않았으며 내년 1월초 실무협의를 통해 결정키로 했다』면서 『소련이 현재 소비재가 급한만큼 소비재의 연불수출과 생필품 생산을 위한 군수산업의 민수산업 전환,합작투자·플랜트수출·도로·항만·건설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우리 기업이 참여하는 문제를 협의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유엔 가입문제에 대해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분명한 논의가 있었으며 그는 유엔의 보편타당성의 원칙에 나와 의견을 같이했고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서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한소 외무장관회담에서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6·25전쟁과 KAL기 격추사건에 대한 언급을 소련 정부의 공식사과로 간주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정상회담에서도 과거문제에 대한 개괄적인 언급이 있었다』고 소개하고 『소련 외무장관의 입장표명을 소련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표명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북한체제와 북한 지도층에 대한 의견교환이 있었으나 인물 하나하나에 대해 좋다 나쁘다는 식의 논의는 없었다』면서 『북한도 결국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으며 시간이 가면 반드시 변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귀국하면 김대중 평민당 총재와 청와대회담을 가질 계획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런기회가 오리라고 본다』고 말해 청와대 여야 총재회담을 가질 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밝힌 뒤 『현재 해외문제에 여러 가지 정리할 일이 있어 개각을 생각할 겨를이 없으나 정리를 다하고 겨를이 생기면 개각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레닌그라드 출발 【레닌그라드=이경형 특파원】 노태우 대통령은 3박4일간의 소련 방문 일정을 모두 끝내고 16일 하오 6시(한국시간 17일 0시) 레닌그라드 폴코보공항을 출발,귀국길에 올랐다. 노 대통령은 17일 상오 서울공항에 도착,귀국인사를 통해 방소결과를 직접 밝힐 예정이다. 노 대통령은 이에 앞서 이날 낮 소브차크 레닌그라드 시장이 영빈관에서 주최한 오찬에 참석,『한국의 대통령이 역사상 처음 이 도시를 방문한 것은 냉전의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실증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나와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우리 두 나라가 한반도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를 위해 노력해나갈 것을 세계에 밝혔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상오 10시 20분(한국시간 하오 4시20분) 레닌그라드시 승리의 광장에 있는 시 수호기념비에 헌화하고 이오페 물리기술연구소를 시찰했다. 노 대통령은 오찬이 끝난 뒤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인 헤르미타지박물관도 둘러봤다.
  • 내외신 기자회견 일문일답

    ◎“불행한 과거청산 고르비와 다짐/임수경양 반성하면 멀잖아 온정” ­한소정상회담에서 한국전쟁,KAL기 격추 등 불행한 과거사에 대한 공통견해를 도출하기 위한 원칙을 세웠는지요. 『두 나라는 86년 동안 대결구조 속에 지내왔습니다. 그 와중에 6·25동란도 났고 KAL기 격추사건도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소간의 본격적인 만남이 시작된만큼 불행한 과거를 깨끗이 씻고 밝은 미래를 위해 이바지하기로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다짐했습니다』 ­유엔가입에 대한 소련지도부의 입장을 확인했습니까. 『우리는 혼자 유엔에 가입할 생각이 없습니다. 북한과 함께 유엔에 들어가자는 것이 우리 정부의 불변된 입장입니다. 이같은 우리 입장을 이해하고 이에 공감하는 대화를 나와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나눴습니다』 ­중국과의 관계정상화와 획기적인 남북관계 변화를 위한 구상과 구체적 조치를 밝혀주십시오. 『우리나라와 중국과는 꾸준히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88올림픽 이후 한층 촉진된 양국관계는 최근의 무역대표부 교환설치로 더한층 심화되어가고 있습니다. 멀지 않아 정치적 관계개선을 비롯한 모든 관계가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남북은 적대관계를 깨끗이 다 씻어버리고 진정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동질성 회복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남북도 과거 어느때보다도 노력하고 있으며 최근 총리회담도 진지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만족스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하나씩 개선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페르시아만사태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느 정도 논의됐으며 이 사태에 대한 한국정부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전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논의하는 가운데 페르시아만사태에 관해 개괄적인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이라크가 무력으로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은 유엔 결의대로 불행한 일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페만사태는 가능하면 평화적으로 그것도 빠른 시일 안에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습니다』 ­구속된 임수경양을 석방할 용의는 없습니까. 『그 학생이 속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나는 누구보다도그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법을 어겼습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합니다. 그가 법을 어겨서 벌을 받고 있으나 정부는 계속 동정을 살피고 있는데 개과천선하는 자세를 봐서 멀지 않아 온정을 베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모스크바선언에는 다자간협의라는 대목이 있는데 이와 관련,한반도 주변국 정상들이 참여하는 회의체를 구상한 것이 있습니까.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지역협력체를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르바초프가 나와 회담을 가진 것도 소련의 동북아정책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며 특히 소련입장에서 볼 때는 대한 관계개선은 핵심적인 일로 평가됩니다. 소련은 우리와의 관계발전과 마찬가지로 중국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이고 일본과도 조만간 관계를 증진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렇게 될 때 서로 역할을 증진시킴은 물론 동북아지역의 긴장완화와 역내 국가간의 협력관계를 증대시키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입니다. ­남북 관계개선을 위한 소련의 역할에 대해 협의한 것이 있으면 구체적으로 밝혀주십시오. 『남북 관계개선과 이에 따른 한반도 평화구조정착은 남북대화를 지속하며 협력관계를 증진시키고 신뢰를 회복할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것들이 축적될 경우 통일이 달성됨은 물론입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도 이러한 방향으로 남북 관계개선이 진행된다면 모든 도움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소련 거주 한국인이 한국에 영주를 원할 경우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양국간 기초협정을 체결한만큼 이것이 이룩되면 우리나라 법절차에 따라 자유롭게 왕래하고 거주할 수 있도록 추진할 생각입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 소,「6·25」­KAL기 사건 유감표명/셰바르드나제 외무

    ◎“이러한 상황 재발돼서는 안돼”/양국 협력 모든 분야 확대/노대통령 방소결산 회견 옐친도 만나 교류증진논의/레닌그라드 도착… 오늘 귀국길 올라 【모스크바=이경형 특파원】 소련정부는 한국전쟁과 KAL기 격추사건 등 한소 양국간 불행했던 과거와 관련,이같은 일들은 참으로 유감이며 앞으로 다시는 이러한 상황이 재발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미국과의 군축협의를 마치고 지난 14일 하오(현지시간) 급거 귀국한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은 15일 상오(현지시간) 노태우 대통령을 수행중인 최호중 외무장관과 소 외무부에서 제2차 양국 외무장관회의를 갖고 한­소정상회담의 후속조치를 논의하는 가운데 이같이 밝혔다. 소련정부의 고위관계자가 6·25동란과 KAL기 격추 등에 관해 구체적으로 유감을 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간의 14일 제2차 한소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는 거론됐으나 구체적으로 적시되지는 않았다. 셰바르드나제 장관은 이날 최 장관이 이들 사건을 거론한 데 대해 『6·25동란은 당시 집권층에 의해 이뤄진 것이며 KAL기 격추사건은 자위권의 발동이란 측면도 있으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됐다는 점에서 유감이며 가슴아프게 생각한다』고 밝혔다고 최 장관이 전했다. 셰바르드나제 장관은 이어 『6·25동란은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2차대전 직후 냉전의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나 다시는 이같은 상황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소 양국 장관은 이와 함께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내년 방한문제도 협의했는데 최 장관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한을 조속히 추진하기 위해 우선 셰바르드나제 장관의 방한을 초청했으며 셰바르드나제 장관은 이에 대해 구체적인 방한일정 등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긍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양국 장관은 특히 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간에 서명된 모스크바선언이 양국 관계의 기본조약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한소간 새로운 역사를 열어나가는 데 공동노력키로 했다. 【모스크바=이경형 특파원】 방소 3일째를 맞은 노태우 대통령은 15일 상오 9시(한국시간 하오 3시) 숙소인 영빈관에서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의 예방을 받고 한소 양국간의 우호협력관계 발전과 소련의 개혁정책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에게 『한소 양국이 이제 상호협력을 위해 새로운 지평을 연만큼 러시아공화국도 양국간의 우호협력 증진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은 『노 대통령의 소련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각하의 모스크바대학 연설을 감명깊게 들었다』면서 『한소 양국이 모든 분야에서 실질협력관계를 맺어나가도록 최선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은 시장경제와 다원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소련인들의 개혁노력을 노 대통령에게 설명했고 노 대통령은 이를 경청했다고 청와대당국자가 전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낮 12시30분(현지시간) 크렘린궁전 기오르기예프스키홀에서 열린 공식환송식에 참석,고르바초프 대통령 내외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노 대통령 내외는 환송식장에 입장,고르바초프 내외로부터 영접을 받고 기념촬영을 한 뒤 잠시 환담을 나눴는데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빠른 시일내 다시 뵙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고 노 대통령은 『각하와 소련국민의 따뜻한 환대에 감사를 드린다』고 인사했다. 이에 앞서 노 대통령은 이날 상오 11시 노보스티통신 사내 소련 외무부 부설 기자회견장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한소정상회담과 모스크바 공동선언 성과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가졌다. 노 대통령은 하오 1시 옥차브라스카야호텔에서 한소 경제인 및 학계 대표와 오찬을 함께한 데 이어 하오 3시45분 세레메체보공항을 이륙해 하오 5시25분 레닌그라드 폴코보공항에 도착했다. 노 대통령은 모스크바를 떠나면서 출발성명을 발표,『나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서명발표한 한소 공동선언은 한반도에 냉전체제를 종식시켜 평화와 통일의 실현하는 데 있어서뿐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에 화해와 협력의 새 질서를 이뤄가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한소 두 나라 관계의 발전과 나와 고르바초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한반도에 평화와 협력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데 적극적인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15일 저녁 레닌그라드시내 키로프극장에서 키로프발레단 공연을 관람했다. 노 대통령은 레닌그라드 영빈관에서 1박한 뒤 16일 상오 8시(한국시간 하오 2시) 수행기자들과 조찬회견을 갖고 방소 3박4일을 결산하며 하오에는 레닌그라드시장 주최 오찬 등에 참석한 뒤 하오 귀국길에 오를 예정이다.
  • 한·소,“한반도 평화정착 노력”/노대통령·고르바초프 모스크바선언

    ◎남북대화 지지·경협확대 합의/정상회담/고르비,방한초청 수락 【모스크바=이경형 특파원】 노태우 대통령은 방소 이틀째인 14일 상오 11시(한국시간 하오 5시)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에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한소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문제 해결에 군사력사용을 배제해야 하며 평화적인 대화를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단계적인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의견을 같이했다. 이날 2시간15분간에 걸쳐 진행된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이 남북한 문제와 관련,먼저 신뢰구축을 통해 단계적인 군축을 실현해 나가야 한다고 밝힌 데 대해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우리의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통일방안에 전적인 공감을 표시한 뒤 『통일문제는 기본적으로 남북한이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나 소련은 이에 도울 일이 있다면 적극 돕겠다』고 말하고 『남북 통일문제는 궁극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이수정 청와대 대변인이 발표했다. 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또 『한소 관계발전이 남북 관계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데 의견을 일치시키고 『유럽에서 긴장완화와 화해가 이룩되었듯이 아시아에서도 화해와 평화가 정착되어야 하며 특히 한반도의 평화는 아시아 평화의 관건이 된다』는 의견을 모았다고 이 대변인이 전했다. 노 대통령은 남북한 유엔 가입문제에 대해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이 한반도 평화정착은 물론 남북한간의 협력증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며 북한이 핵안전협정에 조속히 가입하는 것은 남북한뿐만 아니라 주변국에도 바람직하다』면서 북한의 조속한 핵안전협정 가입을 촉구하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유엔의 보편성원칙·핵확산의 반대 등 소련의 입장을 북한에 여러차례 전달했다는 뜻만 밝힌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안의 민감성에 비추어 더 이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를 유보키로 양국간에 양해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 대통령은 한소 쌍무 관계발전에 만족을 표시한 뒤 양국의 잠재성이나 경제적 상호 보완성에 비추어 더욱 심화될 것임을 다짐했으며 경협이 구체적인 내용은 내년 1월중순 양국 정부대표단의 회담을 통해 마무리 짓기로 했다. 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회담이 끝난 뒤 이날 합의내용을 바탕으로 한반도에서의 냉전종식과 평화정착을 위해 양국의 협력관계를 강화시켜 나가기로 하는 내용의 「한소 관계의 일반원칙에 관한 선언」을 채택,서명한 후 이를 발표했다. 이 모스크바 선언은 『무력에 의한 위협이나 무력의 사용,타국의 희생하에 자국의 안보 확보,또는 모든 관계 당사국간의 합리적 동의에 입각한 정치적 합의 이외의 방법에 의한 국제적·지역적 분쟁의 해결을 인정치 아니한다』고 분쟁해결 수단으로서의 무력 불인정을 천명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한소간의 불행했던 과거사와 관련,6·25전쟁·KAL기 격추사건 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는 않은 채 『양국 관계는 과거 냉전시대의 불행했던 관계,불행했던 일을 청산하는 바탕 위에서 양국 선린우호시대를 열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고르바초프 대통령도 기본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대통령은 이어 이날 하오 모스크바대학에서 가진 연설에서도 『스탈린시대 나라를 불바다로 만든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83년에는 소련공군기에 의해 우리 민간여객기가 피격당했다』고 상기시키고 『한소 양국은 어두웠던 지난날의 불행을 씻고 이제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날 단독 정상회담이 끝난 뒤 공동기자회견을 가졌으며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공식으로 한국방문을 초청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히고 『노 대통령의 초청에 깊은 사의를 표명하고 방한시기는 추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도 회견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한소 양국은 과거사를 청산하고 선린·우호협력관계를 증진시키기로 합의했다』고 말하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회담에서 나의 방한초청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저녁 7시(한국시간 15일 상오 1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크렘린궁에서 주최한 공식만찬에 참석,답사를 통해 『나의 모스크바 방문기간중 양국간에 교류협력관계를 본격적으로 발전시킬 확고한 틀이 이루어지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방소 사흘째인 15일 상오(현지시간)에는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는다. 노 대통령은 이어 이날 낮 크렘린궁으로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예방,작별인사를 나누고 공식환송식에 참석하며 한소 경제인 및 학계대표들과 오찬을 함께 한 뒤 레닌그라드로 떠난다.
  • 한반도 평화·통일의 초석 놓다/「모스크바선언」의 의의

    ◎무력사용 불인정… 전쟁위험 근원 제거/「45년간의 냉전구조 종식」 세계에 천명 한소 모스크바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냉전구조가 붕괴되고 있음을 세계에 선언했다.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14일 크렘린궁에서 열린 정상회담을 통해 도출한 「대한민국과 소비예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간 관계의 일반원칙에 관한 선언」은 45년간 지속되어온 한반도 냉전의 종식을 천명하고 있다. 양국 정상이 서명하여 공표한 이 「모스크바선언」은 ▲분쟁 해결에서 무력사용 불인정 ▲한반도 평화가 세계평화에 중요 ▲한반도의 통일이 한국민의 염원임을 확인했다. 이번 선언이 갖는 국제정치적인 의의와 그 함축성은 3가지 측면에서 분석될 수 있다. 첫째,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반도에서의 전쟁위협은 평양으로부터 나온 것이 사실이지만 그 근원은 북한의 「군사종주국」이었던 모스크바로부터 연유되었다는 면에서 소련이 무력사용의 거부를 명백히 밝혔기 때문이다. 특히 소련의 「남북한간의 정치적·군사적 대결의 종식」 「생산적인 남북대화의 지속」의 확고한 입장을 밝힌 것은 확실히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시대의 개막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한소 관계 측면에서 이번 모스크바선언은 사실상 한소기본조약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번 「한소 관계의 일반원칙에 관한 선언」의 명칭이나 양국 원수가 서명을 한 절차형식에서도 그렇지만 이 선언은 내용면에서도 기본조약의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양국 관계의 기본원칙으로 「영토보전·정치적 독립존중·내정불간섭·자결권 인정」 「핵 및 재래식 군비경쟁의 완화 등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 등 6개항을 명시하고 양국 관계의 향후 발전방향을 적시하고 있다. 특히 『양국의 교류와 접촉의 확대가 각자의 제3국과의 관계에 영향을 주거나 각자의 다자 또는 양자 조약이나 협정상의 의무수행에 장애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밝힘으로써 기본조약에 있어 「효력의 한계」 조항을 가름케 하고 있다. 이 대목은 한소 관계의 개선이나 진전이 한미·한일 기존관계나 소·북한 관계를 해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와 함께 한미방위조약이나 소·북한우호협력방위조약을 훼손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명시한 것이다. 셋째,한소 관계발전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에 대한 것이다. 양국은 이 점에 대해 ①호혜 동등한 관계,쌍무적 협의와 다자간의 협의를 통해 이 지역을 평화와 건설적인 협력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②아시아에서 대결적 사고방식과 냉전의 종식을 가속화하고 지역협력에 기여할 것임을 확신한다고 밝히고 있다. 당초 노·고르비 회담에서는 동북아지역의 평화구도가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언급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이는 매우 교과서적인 원칙기술에 그쳤다고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이 지난 88년 10월 유엔연설에서 동북아 6개국(남북한·미·소·중·일) 평화협의회의를 제의한 바 있고 고르바초프 대통령도 유럽안보협력회의와 같은 기구를 아시아에서도 출범시키려는 구상을 밝혔기 때문에 무엇인가 접점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되었었다. 한소 양국이 「선언」 초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소련측이 「아시아판 유럽안보회의」 구상에 관해 적극적인 표현을 삽입할 것을 요청했으나 마지막 순간에 배제됐고 「한반도의 비핵지대화」도 빠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소련은 고르비 특사로 지난번 서울에 온 메드베데프 대통령위원회 위원을 통해 미군 철수를 전제로 한 한반도의 비핵지대화 입장을 밝힌 적도 있긴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현제 한국 안보의 기본바탕인 한미방위조약과 당장 대치되는 성격이 강해 우리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이번 선언에서 한국측은 6·25동란·KAL기 격추사건 등 과거의 불행한 역사에 대한 유감을 명시토록 요구했으나 소련측은 모스크바선언이 미래지향적인 성격과 내용을 담은 것인만큼 굳이 이를 명문화할 필요는 없다면서 완곡히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회담을 하면서 이 문제를 제기,한소 관계는 냉전시대의 「산물」을 깨끗이 청산하는 바탕 위에서 선린우호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노·고르비 회담은 『경제 통상 산업 수송분야에서 호혜적인 협력심화,선진과학기술의 교환,합작기업과 개발투자의 지원』을 밝힌 이 선언 내용보다는 훨씬 구체적인 경제협력방안을 논의했으나 경협의 규모 등을 직설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대통령이 45년 전 얄타협정의 냉전체제를 한반도에 적용키로 했던 모스크바 삼상회의가 열린 바로 이곳에 와서 소련 대통령과 회담,한반도의 「얼음」을 함께 깨부수는 작업을 세계인들에게 과시한 것이 이번 노·고르비 회담의 상징적인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 남북 기본입장 “평행선”… 실질성과 불투명

    ◎남북 총리 기조연설 함축과 회담전망/선언적 의미보다 실천의지 중요 남/「불가침」 관철하려 화해를 포장 북/경의선 복원등엔 가시적 합의 가능성 12일 열린 제3차 총리회담 첫날 전체회의에서 남북 쌍방의 총리가 밝힌 기조연설은 「남북 관계개선을 위한 기본합의서」와 「불가침선언」 채택의 선후문제에 대한 시각차가 팽팽히 맞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측은 남북 관계개선을 위한 기본틀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불가침선언의 실효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전후 45년 동안의 대결과 불신이라는 비정상적 남북관계를 정상적인 관계로 정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본틀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 근거로 총리회담을 비롯한 남북대화와 교류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북측은 남북비방과 재야세력 선동을 계속하는 등 아직도 남북관계는 비정상적임을 들고 있다. 또 불가침선언이 단지 선언적인 의미에 그쳐서는 안 되며 체결 당사자간 실천의지와 확고한 보장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측 수석대표인 강영훈 총리는 실천의지와 관련,7·4공동성명에도 불구하고 남침용 땅굴,버마(현 미얀마)사건,KAL기 격추사건 등 북측의 대남 공격이 계속되어 왔음을 지적하고 실천의지를 담은 불가침선언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측은 그들이 주장하는 불가침선언이 채택되면 휴전당사자인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주한미군 및 핵무기 철수는 당연한 수순이라고 밝혀 불가침선언 주장이 「불가침」 이상의 목적을 갖고 있음을 나타냈다. 남북 쌍방이 이날 각각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이 절충안들도 이같은 쌍방 기존입장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측이 제시한 불가침선언안은 남북 관계개선을 위한 기본틀을 전제로 이 기본틀 마련 이후에 정치군사분과위에서 토의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북측이 내놓은 「불가침과 화해협력에 관한 선언」안도 지난 2차회담에서 우리측이 제시한 화해협력공동선언을 수용하고 있는 듯하지만 결국은 불가침선언을 채택하기 위한 미끼라고 여겨진다. 북측은 지난 세 차례의 합의문 조정을 위한 실무대표 접촉에서 불가침선언과 교류·협력안을 제시했는데 우리측이 제시했던 화해협력안을 수용한 새로운 안을 제시한 것은 우리측이 북측 안을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을 없애려는 속셈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만일 북측의 안이 그대로 합의될 경우 북측은 불가침선언부분만을 중점 거론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따라서 우리측 정부당국은 「불가침」이라는 제목이 붙은 안은 결코 받아 들이지 않을 방침이다. 왜냐하면 불가침선언에 대한 북측의 선전적 차원의 이용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남북 쌍방의 입장차이는 불가침선언 채택을 둘러싼 순서문제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쌍방의 기본적인 시각차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강 총리는 기조연설 모두에게 이산가족 문제해결의 당위성을 우선적으로 역설했지만 북측은 불가침선언 채택 후 군축 및 군사적 대결상태해소 문제와 이산가족 및 경제협력·교류문제를 병행토의할 수 있다고 밝힌 데서 쌍방의 시각차는 잘 드러나고 있다. 결국 13일 둘쨋날 회의에서도 쌍방은 기본합의서와 불가침선언 채택문제에 합의를 도출해낼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쌍방은 「실질적」 성과를 도출해내기는 힘들더라도 「가시적」인 합의는 이뤄낼 가능성은 있다. 즉 ▲비방·중상중지 ▲비무장지대의 완충지대화 ▲군사당국자간 직통전화설치 ▲경의선 복원 등 남북이 공통적 견해를 나타내고 있는 부분에 대해 3차 총리회담의 합의서 형태로 채택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남북 쌍방은 3차 회담에서 무엇이든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는 내외부의 압력을 강하게 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측은 심각한 경제난 타개를 위한 조속한 대일 국교정상화,장기적으로는 국제적 고립에서 탈피하기 위한 대미협상을 위해서는 이번 총리회담에서 가시적 합의를 도출해내야 한다는 압력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북측이 이날 우리측 강 총리가 일본측에 『북측은 변한 게 없다』고 언급한 데 대해 강력한 불만을 나타낸 데서도 이같은 점은 읽을 수 있다. 또 북측이 처한 심각한 경제난과 식량난을 고려하면 북측과의 경제협력도 가능할 수 있을 것 같다.우리측 정부는 비공식 접촉 등을 통해 경협에 대한 합의를 도출해낼 계획이다. 정치·군사 및 교류·협력위원회 등 2개의 분과위 구성문제는 힘들 것으로 관측된다. 북측은 이날 정치·군사·교류협력 등 3개의 분과위로 하자고 주장했으나 안병수 북측 대변인은 이와 관련,『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므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 2개 분과위로 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우리측은 기본합의서가 채택되지 않는 한 분과위 구성은 불가능하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이번 쌍방의 기조발언의 특징은 남북이 비교적 강경한 발언을 했다는 점이다. 강 총리는 총리회담이 열린지 처음으로 버마사건 및 KAL폭파사건을 거론했으며 북측은 우리측의 군사예산 및 첨단전투기 구매 등을 힘의 우위론에 입각한 전쟁론에서 나온 것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또 북방외교와 관련,「청탁외교」라고 비난,그들의 최대 우방국이었던 소련과의 관계개선에 대해 북측의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 모스크바·겨울·노태우 대통령/이재근 본사 논설위원(서울칼럼)

    일반적으로 미국인은 실용주의적이고 소련인은 이데올로기적이라고 보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개인생활이나 정치면에서도 미국에는 이상주의자,도덕주의자가 훨씬 더 많고 소련에는 냉소적인 현실주의자,실용주의자가 더 많다는게 소련 연구가들의 분석이다. 소련정치도 겉으로는 이데올로기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공산주의 이상에 따라 움직여 왔으며 대부분의 경우 현실적인 국가주의의 이해와 여러 사회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운영돼온 것이다. 도의적인 이상이나 이데올로기에 좌우되는 현상은 소련보다는 미국의 정치에서 찾을 수 있다는 설명도 있다. 국민성도 그러하다. 소련 연구가들의 관찰이나 많은 여행기들을 살피면 소련 국민들,특히 러시아 국민들처럼 솔직하고 개방적인 생활태도를 갖고 있는 민족도 드물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서민의 생활과 대인관계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들은 대개 자연스런 감정으로 솔직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소개되고 있다. 스탈린시대의 거칠고 얽매인 통제사회를 거치면서도 사람들의 행동은 거기에 물들지 않았고구김살없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전후 시베리아에 억류되었던 한 일본인 작가는 그 저서에서 러시아인들을 이렇게 소개했다. 『러시아인은 밖에서 세사람만 모이면 노래를 부른다. 그들이 부르는 합창소리가 바람에 실려 내가 있는 곳까지 들린다. 정말 소비에트식의 밝고 낙천적인 풍경이다. 소비에트권력의 침울한 어둠과 민중의 밝고 낙천적인 감성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을까. 「볼가의 단가」에서 느껴지는 애조띤 감성은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점이다』 그렇게 볼때 오늘날 저들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공개)는 이 러시아적 소련 민족성의 필연적인 귀결이라 할 수 있다. 고르바초프라는 한 탁월한 지도자에 의해 그것이 시대적으로 표출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 노선을 천명한 최대의 이유는 한마디로 말하면 소련적 사회주의가 막다른 곳에 달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페레스트로이카의 기둥은 당연히 경제개혁이다.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고르바초프의 모든 개혁정책은 결국은 경제활성화를 위한 것이라고 해도 좋다. 60년대의 전반까지도 대부분의 소련국민은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가 인류보편의 가치를 갖는다고 믿고 있었다. 60년대 중반이후 일부 자유주의적인 지식인들이 체제비판의 소리를 높인바 있었으나 극히 한정된 소수였다. 특히 경제전문가 사이에서는 이미 50년대 후반부터 경제개혁의 문제가 제기되어 60년대초에는 「이윤의 도입」을 둘러싼 경제논쟁도 빚어졌다. 65년에는 이른바 「코시긴 개혁」이 실시되는등 스탈린체제를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는 점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자각되고 있었으나 일반적으로는 60년대까지는 사회주의와 그 이데올로기의 신앙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70년대가 되자 소련체제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이제 누구의 눈에도 분명해졌다. 60년경 허풍쟁이 흐루시초프는 『70년에는 미국을 따라잡는다. 80년대에는 능력에 따라서 일하고 필요에 따라서 취하는 풍요한 공산주의 낙원이 도래한다』고 세계에 선언했다. 당강령에도 그렇게 기록하게 했다. 그런데 70년대가 되어도 소련에서는 고기나 소시지,기타 기본 필수품을 입수하기 위해 서민은 뛰어다니고 긴 줄을 서고 악전고투 하지 않으면 안될만큼 경제상태가 나빠졌다. 지방에서는 육류가 몇년씩 상점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사태로까지 되었다. 사람들은 드디어 큰 환멸을 느꼈다. 70년대에 이르러 공산주의는 급속히 퇴색하고 풍화되어 버렸다. 당의 지도자가 아무리 사회주의체제의 우월성을 설득해도 매일처럼 생필품을 사는 행렬꽁무니에 몇시간씩 서있어야 하는 서민들은 냉소했다. 많은 지식인들이 독주 보드카에 탐닉하며 울분을 풀고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대신할 가치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소련을 우리는 어느만큼 아는가. 어느 사람의 표현대로 「무서운 속도」로 북방으로 달려간 우리에게 있어 소련은 정말 어떤 존재인가 생각해봐야 한다. 아직 그들에게 느끼는 우려,당혹,두려움은 어디에 기인하는 가도 잘 살펴야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우리가 상대를 너무 모른다는 데서 오는 것이다. 구한말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직접 그들과 교류한 역사가 없고 특히 냉전체제하에서는 원천적으로 접촉이 불가능했다. 더구나 고르바초프 정권하에서는 최근 몇년동안 그들 자신이 너무 급격하게 변하는 중이어서 마치 움직이는 표적을 맞히는 것 같은 어려움도 있다. 그들이 대국이라는 콤플렉스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들이 「진짜 크렘린」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 소 수교가 이뤄졌다. 거기에다 노태우 대통령이 소련을 방문한다. 전후 처음으로 아니 사상 처음으로 우리의 국가원수가 모스크바 크렘린궁에 「입성」하는 것이다. 노대통령은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회담할 것이고 붉은 광장을 거닐 것이며 크렘레프스카야 제방도로를 달려 톨스토이가를 지나칠 것이다. 무엇보다도 붕괴된 대제국 오늘의 소련 대통령과 한 소간 정치·경제·문화협력을 논의하다가 때로는 과거를 바탕으로 역사도 얘기할 것이다. 바로 그 대목이 중요하다. 그럴적에 대통령은 반드시 다음과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 조용히 얘기해야 할 것이다. 즉 멀리는 노일전쟁으로부터 시작하여 일제에 의한 한반도흥정,구러시아제국과 구한말의 관계에 이르러야 한다. 이어볼셰비키혁명을 전후한 한반도의 소용돌이에도 언급될 것이고 그 완전한 식민지화도 회상돼야 할 것이다. 전후 해방·독립·분단에 언급한데 이어 드디어 6·25 동족전쟁에서의 소련의 책임도 지적돼야 할 것이다. 82년의 무자비한 대한항공(KAL)여객기 격추사건은 또 어떻게 언급될 것인가. 나흘간의 짧은 일정속에 이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소 관계의 진정한 개선과 앞으로의 전개를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이 역사와 우호협력의 이름으로 반드시 여과돼야 한다. 그것이 한 소 관계의 진전과 노대통령의 모스크바 입성을 지켜보는 국민의 눈초리인 것이다.
  • 노대통령 방소의 정치·문화사적 의미

    ◎우랄산맥 넘어 동서화해의 새 이정표로/한반도안정·남북통일 앞당길 중요변수/시베리아 자원 발굴·인문과학 교류 기대 오는 12월 중순 있을 노태우 대통령의 소련 방문은 우리나라 국가원수로서는 처음 이루어지는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6월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한소 정상회담이 10월1일의 양국 국교정상화로 이어졌다면 이번 노 대통령의 방소 및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의 회담은 양국간의 실질관계를 여는 또 하나의 역사적 계기가 될 것이다. 노 대통령의 방소를 계기로 한소 양국간 정치·경제·과학분야 등의 협력문제와 재소 한인문제 및 앞으로의 양국관계에 대한 전망 등을 김열규 서강대 교수와 최평길 연세대 교수에게 들어본다. 【대담=김열규 서강대 교수·최평길 연세대 교수】 ▲최평길 교수=노태우 대통령의 이번 소련방문은 지난 6월4일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10월1일 역사적인 양국 국교정상화 등으로 비롯된 양국간 공식적인 관계개선을 대통령이 직접 최종 마무리 짓는다는 역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 구 한말 당시 러시아와의 관계 이후 80여 년 동안 단절된 양국간 역사를 다시 정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80년 단절의 재봉합 ▲김열규 교수=한소 관계는 1884년 당시 제정 러시아와 조로통상조약을 맺음으로써 시작된 이후 선린우호관계를 유지했습니다. 6·25 등을 겪으면서 양국관계는 단절됐지만 한소 수교와 이번 노 대통령의 방소는 역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양국관계의 재봉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소련의 국가원수가 한국의 국가원수를 초청했다는 것은 앞으로 양국관계의 순탄한 정상적 관계를 의미한다고 봅니다. ▲최 교수=남북한 분단은 냉전시대의 희생물로 탄생한 것입니다. 노 대통령의 소련 방문은 남북통일의 외부적 변수로 작용,통일을 앞당기는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남북 분단의 원인제공자의 하나인 소련이 통일을 위해서도 근본적인 영향을 미쳐야 할 것입니다. 이번 모스크바 정상회담에서는 노­고르바초프 대통령간 남북통일을 위한 공동 코뮈니케가 있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같은 모스크바 공동선언이 내년초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한시 서울선언으로 발전,남북통일에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김 교수=장기적인 측면에서는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북한을 위축시킬 수도 있습니다. 북한은 동구국가 등이 사회주의국가 완성에 실패한 이유가 전략의 실패라고 보고 있는 듯 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사회주의 체제의 마지막 보루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 학자들을 만나면 소련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대북 영향 고려해야” ▲최 교수=노 대통령의 방소 결과를 낳은 6공 북방정책은 탈 냉전이라는 국제정세변화와 함께 이념체제 측면에서 동구와 극동이 근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앞으로 북한도 이러한 한반도 정세변화에 따라 합리적인 방향으로 기존정책을 수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군사안보적 차원에서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시도해 왔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도 동북아에서의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에 비해 대소 경제관계 선취권을 획득했다고 분석됩니다. 따라서 내년 3월 고르바초프­가이후(해부) 일 총리회담에 앞선 노­고르바초프 정상회담은 일·소 정상회담의 의미를 희석시켰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김 교수=한반도를 포함한 시베리아 문화권의 주도권을 우리가 쥐어야 합니다. 이번 한소 정상회담은 아시아를 포함한 우랄 알타이 산맥의 동서를 잇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3국시대 신라문화는 범시베리아 문화의 완성체였습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방소는 시베리아내의 우리 문화를 발굴하는 커다란 전기가 될 수 있다고 관측됩니다. 즉 문화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습니다. ▲최 교수=소련의 자연과학 및 기초수학분야의 권위는 세계적입니다. 장기적으로 소련의 신소재개발을 비롯한 첨단기술을 우리 산업과 접목,응용하면 실질적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김 교수=오늘날 세계인문과학의 어떤 부분은 그 근원지가 소련인 것이 있습니다. 소련문학에서의 구조주의 ·기호주의도 서구문학에 큰 영향을 줬습니다. 소련이 경제적 으로 부유하지는 못하지만 문학·음악 등에 있어서는 세계 문학·음악 등에서 한몫을 해내고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문화학술의 교류야말로 적극 추진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최 교수=노 대통령은 모스크바에서 옐친 등과 같은 이른바 「지방분권론자」들도 포용해야 합니다. 소련연방내 15개 공화국의 자치정부를 주장하는 옐친 러시아공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소련 전국민의 90% 이상입니다. ▲김 교수=노 대통령의 방소는 한소관계 정립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지만 6·25 및 한반도의 분단에 소련이 관련되어 있고 교민들의 강제 이주 및 KAL기격추사건 등의 앙금도 남아 있어,이 문제들의 처리도 중요합니다. ○「KAL격추」 짚어야 한반도는 동서대결의 최첨병기지로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르게 된 것이기 때문에 소련은 이에 대한 응분의 정신적 배상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반도의 안정에 일조를 해야 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한국정부로서도 노 대통령의 방소를 맞아 이 점을 소련정부에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 교수=소련은 현재 심각한 경제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따라서 소련은 노 대통령의 방소기간 동안 경제원조 및 경제문제에 대한 협력을 촉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사실 소련은 21세기의 아시아·태평양시대를 맞아 아·태 경협에 참여하려고 하고 있으며 한국에 경협을 기대할 정도로 심각한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좌초된 경제를 희생시키려는 소련에 대해 진지한 자세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소,경협 촉구할 듯 소련은 한국정부에 대해 생필품수출 및 공동투자,합작 현금차관 등을 요구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은 소련이 획기적으로 국방비를 감축할 때 대소 원조를 한다고 밝히고 있고 일본도 북방 4개 도서 문제로 정부차원에서 대소 경협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정부는 전통적인 우방국가들인 미일과 보조를 유지해야 할 입장에 놓여있는 한편 대소 경제외교도 풀어야 할 형편이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한국정부의 현명한 경제외교가 절실히 요청되고 있습니다. 양국의 경제관계는 우리가 소련에 생필품을수출하고 소련으로부터 이에 대한 것을 물품으로 받는 구상무역의 형태를 띨것 같습니다. 소련은 한국으로부터 물품을 받은 후 일정기간이 경과한 뒤 다른 물품을 제공하는 연불수출을 원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이 경우 즉각 현금으로 될 수 있는 금을 비롯한 원유·비철금속 등을 소련으로부터 받을 수 있도록 강력히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한소경협이 진전되면 중기적으로 양국이 신소재개발 등을 통해 빠른 시일안에 상품화가 가능한 것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장기적으로는 대형 프로젝트에 컨소시엄 형태로 한국이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노 대통령은 따라서 한국이 빠른 시일 안에 대응할 수 있는 행정협정을 체결해야 합니다. 또한 대외협력기금을 엄격히 관리하여 북방진출에 나서고 있는 기업들이 부당이익을 볼 수 없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하겠습니다. ▲김 교수=소련내에는 40만∼50만명의 교민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 교민의 시각은 사실 친북한 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 동안 한소관계가 단절된 상태였기에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재소 한인들은 우리 문화와 소련의 문화를 조화롭게 접목시켜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봅니다. 교포들은 또한 그들이 속한 공화국내에서 경제·문화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한반도 주위의 다른 4강인 중국·미국·일본내 교포들의 위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들은 이들을 동정어린 눈으로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정부는 이들이 콜 호스에서 생산하는 사탕수수와 콩 등을 모국에 수출하기를 원하고 있는 등 경제유대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적절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한국 정부는 교포교육문제에도 세심한 노력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재소 한인들은 우리들로부터 멀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앙아에 영사관을” ▲최 교수=중앙아시아지역에 총 영사관을 설치하는 것도 검토되어야 하며 한국의 기업이 진출할 경우 재소 한인들을 고용,그들의 수입을 높여 주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김 교수=노 대통령의 방소 기간중 교민대책이 제기되었으면 합니다. 재소 한인들이 현재 있는 공화국내에서 소수민족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전에 교포들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문제를 결정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가령 지난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지역으로 강제 이주된 교민들이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는 것도 방법일 수 있으며 교포들이 많이 사는 곳이 자치공화국이 되도록 소련정부에 요청하는 등 교민의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는 정치적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랍직합니다.
  • “도농·계층간 분배의 불공정 개선을”/김대중총재 국회연설 요지

    ◎경제 재도약은 중기주축으로 추진 바람직/북방외교 상당한 성과… 남북교류 차별 없어야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적응력이 높고 빠른 중소기업을 주축으로 하는 경제체제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지금 노태우 정권이 다시 대기업 위주의 낡은 체제만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은 재벌들의 기존 이득을 위해서 우리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가로막는 정책이라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봉급자를 필두로 한 모든 중산층과 서민대중의 가장 큰 고통은 물가의 앙등이다. 우리는 물가안정을 최우선의 과제로 예산과 금융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정부 경제정책의 최대 배신행위는 금융실명제의 포기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그의 시정연설에서 상속세와 증여세의 징수를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금융의 비실명제를 통해서 상속이나 증여를 하고자 하는 재산의 대부분이 미리 상대의 수중으로 들어가 버렸는데 세율의 인상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농민을 위한 추곡가는 그 가격과 매상에 있어 작년을 웃돌아야 한다. 정부는 이중곡가제를 앞으로 3년 이내에폐지할 방침이라는데 이는 노 정권의 농민정책의 정체를 폭로한 것으로서 우리는 이를 철저히 반대한다. 우리 사회의 가장 잘못된 점은 분배의 불공정이다. 빈부간·도농간·지역간,그리고 노사간에 걸친 분배의 불공정은 소외계층들의 마음을 멍들게 하고 이 사회에 대한 반항과 적의를 기르고 있다. 중산층은 지금 흔들리고 있다. 그들은 높은 물가,근로소득세의 과중한 부담,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지배와 수탈,그리고 증권투매 등에서 손실을 강요당해 왔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정신적으로 불안감과 좌절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우리는 그 동안 한소 수교를 포함한 북방외교에 상당한 성과를 올린 것에 환영한다. 그러나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노 정권이 북방외교에 대한 공로를 서두른 나머지 경제적으로 부담을 안고 가는 것과 내정의 잘못을 이러한 외교적 전시효과로 메우려 하는 것 같은 자세이다. 또한 남북관계에 끼칠 부정적 영향도 문제이다. 노 대통령이 소련을 방문한다. 우리는 방소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지금 국내에 산적한 문제가 있는데도 이를 제쳐놓고 왜 방소를 서둘러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노 대통령이 방소하게 되면 대한항공기의 격추사건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고 귀중한 인명손실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받는 교섭을 해내야 한다. 우리 당은 미국과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는 확고히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북방외교도 이러한 전제 위에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편 우리는 미국의 지나친 군비부담 요구나 재판권 거부 등에 대해서는 분명한 자주적 입장에서 대처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실정을 무시한 수입개방,특히 농축수산물의 비현실적인 개방압력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지금 남북은 총리회담까지 개최할 정도로 대화가 진전되고 있으나 구체적으로는 무엇 하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오는 12월11일의 제3차 총리회담은 남북간의 장래를 가늠할 중요 회담이다. 이 회담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북쪽은 남이 제안하는 전면적 교류를 최대한으로 수용하고 남은 북이 제안하는 불가침선언을 수용해야 한다. 남북간의 전쟁재발이란 상상할 수가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60억달러란 거액을 들여서 차세대전투기를 구입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여론이 대두되고 있다. 우리 당은 남북이 유엔에 동시가입하든지 하나의 회원으로 가입하든지 서로 합의가 이루어지는 어느 쪽의 방안도 지지한다. 우리는 북한이 동시가입을 영구분단이라고 억설하는 데 대해서도 반대이지만 남북관계에 파멸적인 영향을 가져올 우리만의 단독가입도 반대한다. 남북간의 교류는 차별없이 허용해 주어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가 취해온 태도는 결코 공정하지 않다. 같은 목적을 가진 대북접촉신청에 대해서 필요에 따라 누구는 승인하고 누구는 불허하는 것은 공정한 처사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우리 당은 누구든지 남북교류를 할 때는 정부와 사전 협의를 해서 실행해야 하고 정부의 승인 없는 접촉은 되도록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서해안고속도 새달 20일께 착공

    ◎인천∼목포 353㎞… 3개구간으로 나눠 건설/3조원 들여 2001년 완공/통과지역 29곳에 인터체인지 인천과 목포를 잇는 총연장 3백53㎞의 서해안고속도로가 3개구간으로 나뉘어 다음달 20일쯤 착공된다. 건설부는 15일 아산ㆍ군장 및 대불산업기지개발에 따른 교통수요의 증가에 대비하고 지역간 균형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총공사비 2조9천9백14억원을 들여 서해안고속도로를 2001년에 개통하기로 했다. 서해안고속도로공사는 인천∼당진,당진∼군산,군산∼목포간 등 3개구간으로 나누어 시행되며 이가운데 인천∼안산구간 27㎞는 다음달 20일쯤 맨 먼저 착공된다. 인천∼안산구간에 이어 공업단지 및 산업기지조성 등으로 차량통행이 많을 당진∼안중,서천∼군산,무안∼목포구간이 잇따라 착공된다. 서해안개발 중추사업의 하나로 추진되는 서해안고속도로는 인천에서 안산까지는 6차선으로,안산에서 목포까지는 4차선으로 건설된다. 서해안고속도로의 주요 통과지역은 인천으로부터 선학 소래 군자 안산 비봉 발안 안중 송악 당진 서산 해미 홍성 광천 대천 주산서천 장항 북군산 군산 서김제 부안 줄포 흥덕 고창 영광 함평 무안 일로를 거쳐 목포에 이르며 이들 29개지역엔 인터체인지가 만들어진다. 건설부는 수도권의 교통난을 해소하고 96년에 완공될 9백5만평 규모의 아산항 공업단지의 조성에 따른 교통량의 원활한 처리를 위해 인천∼당진구간은 양쪽에서 공사에 들어가 공기를 단축하고 아산만을 가로지르는 구간엔 선박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길이가 7.3㎞에 이르는 국내 최장교량을 설치하기로 했다. 인천에서 목포까지의 주행시간은 3시간으로 설계됐다. 건설부는 서해안고속도로의 완전개통시기를 2001년으로 잡고 있으나 3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의 확보가 제때에 이뤄질지 불확실한데다 토지소유자들이 정부의 토지매입에 잘 응하지 않아 목표 연도까지 이 고속도로가 완공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실정이다.
  • 6ㆍ25­KAL기 격추사건/소에 입장표명 요구방침/최 외무 밝혀

    정부는 한소 수교가 이뤄진만큼 한국전쟁 및 KAL기 격추사건 등에 대한 분명한 매듭이 필요하다고 보고 적절한 시기에 이들 사건에 대한 소련측의 입장표명을 요구할 방침이다. 최호중 외무장관은 9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국가간의 관계에 있어 불행했던 과거가 있다면 이는 마땅히 짚고넘어가야 할 것』이라고 밝히고 『따라서 한소 양국간 불행했던 사건들도 적절한 시기에 분명한 매듭이 지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 장관은 『이를 위해 적당한 시기를 골라 합당한 경로를 통해 소련측에 이들 사건에 대한 유감의 뜻을 전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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