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추사
    2026-07-19
    검색기록 지우기
  • 살사
    2026-07-19
    검색기록 지우기
  • 재이
    2026-07-19
    검색기록 지우기
  • 새로
    2026-07-19
    검색기록 지우기
  • 지문
    2026-07-1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503
  • 김윤식씨,문학기행집 「환각을…」 출간

    ◎작품·지역 관련성 살핀 20편 수록 문학평론가 김윤식씨(56·서울대교수)가 문학기행집 「환각을 찾아서」를 세계사에서 펴냈다. 「환각을 찾아서」에는 「채만식론」「「상록수」를 위한 5개의 주석」「사르트르의 무덤을 찾아서」「도스토예프스키·루카치·카프카」등 문학작품과 특정지역과의 관련성에 주목하여 문학작품을 살핀 20편의 글이 수록됐다.「「상록수」를 위한 5개의 주석」은 동서문학사 주최 문학유적답사에 참여,심훈·추사·미당의 고향에 들러 그들에 대한 감회를 적은 글이며 「채만식론」은 대학원 현대문학반 답사로 전주 군산 등에 들렀던 체험을 바탕으로 채만식의 「탁류」「처자」등의 작품을 생동감있게 해석하고 있다. 또한 「사르트르의 무덤을 찾아서」는 프랑스여행 길에 전후세대로서 사르트르와 카뮈에 대해 느꼈던 상념을 자유롭게 펼쳐가고 있으며 「도스토예프스키·루카치·카프카」는 세미나 참석차 독일에 갔다가 들러본 동유럽에의 감회를 동구 대문호에 대한 상념으로 연결지어 서술하고 있다. 이같은 문학기행에 대해 김씨는 머리말에서 『작품을 떠나 작품과의 거리를 두는 방식』이라고 말했다.이는 작품과의 직접적인 대면이 아닌 「우회」를 통해 작품과 대화하는 방식이라는 것.그는 그러한 방식을 작품에서 작가나 작중인물의 목소리 또는 작가와 작중인물간의 대화하는 목소리가 아닌 자기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제4의 목소리 찾기」라고 이름붙였다.하지만 「제4의 목소리」는 가장 확실한 울림같은 것이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서 이를 찾기란 「환각 찾기」에 다름아니라는 김씨는 이를 통해 작품을 꿰뚫고 마침내 그것을 초월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자신의 작업성과를 그러한 「헤맴의 한 보고서」라고 요약한 김씨는 『작품을 읽는 최종적 이유가 그것의 초월에 있기에 이 환각찾기란 열정적이자 지속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김씨가 이미 펴낸 「문학과 미술사이­현장에서 본 예술」(1979)「황홀경의 사상」(1984)「작은 생각의 집짓기」(1985)「낯선 신을 찾아서」(1988)와 동일 연장선상에서 김씨의 열정적 책읽기의 한 모습을 엿보게 해준다.
  • LA한인의 마당 아드모아공원/유민 사회2부 기자(현장)

    ◎항의시위·축제때등 동질성의 광장구실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의 한복판.노르만디길과 올림픽가가 교차하는 아드모아 9백번지에는 아담하게 자리잡은 조그만 공원이 있다. 정식명칭은 아드모아파크이지만 우리 교포들은 여러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한국인의 광장」「시위의 메카」라 하기도 하고「만남의 광장」「축제의 마당」「행운의 광장」이라 일컬어지기도한다 도서관엘 가도,동네주민들에게 물어도 이 공원의 유래를 아는 이는 거의 없다.유래야 어떻든 이 공원이 우리 교민들사이에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83년 9월.당시 이곳 교포사회에 대한항공007기 격추사실이 알려지면서 부터다.교민들은 이 공원을 중심으로 소련의 만행을 규탄했고 틈만 나면 이곳에 다시 모여 항의시위를 벌였다. 누가 그러자고 부추긴 일도 없었지만 많은 교민들은 스스로 각종플래카드·피켓등을 들고 이곳에 나왔고 한인타운은 물론 LA 교외에서도 속속 몰려들었다.이후 한인들이 푸대접을 받는 일이있을 때면 자연스럽게 모였고 그럴때면 이곳은 「단합의 광장」이 된다. 집회만을 위한 곳은 아니다.처음 이민온 사람들이나 터를 잡은 사람들이나 사람믿을 일이 생기면 미디어에 광고를 내놓고 이곳에 와 기다렸다.그들에게는 「행운의 광장」이 될법하다. 특별히 오갈곳 없는 한인노인들이 이곳에서 장기등을 두며 휴식을 취하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손자를 데리고나와 다른 노인들과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며 향수를 달래는 노인들도 많다.LA한인들의 「망향의 광장」역할을 충실히 해오고 있는것이다. 지난 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매년 9·10월 「한국인의 날」행사가 치러지는 곳도 여기다.그때가 되면 발대식을 갖고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포장마차」「시골장터」가 일주일동안 들어선다.토산품가게가 성시를 이룬다.그때 붙여지는 이름은 「축제의 마당」이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이 공원에서는 일본정부를 상대로 규탄집회가 자주 벌어지기도 했다.한국에서「정신대」문제가 이슈화돤 사실이 교포들에게 알려지자 너나 할것없이 이곳에 몰려와 시위를 벌였던 것이다. 이번 흑인폭동이 일어나면서아드모아공원은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다.이제껏 미국정부를 상대로한 집회·시위는 의레 이곳에서 벌어졌다.『경찰국장을 해임하라』『피해를 즉각 보상하라』고 외치는 한인들의 응집력을 쏟아내는 장소가 됐다.고이재성군의 장례식도,미연방정부의 보상센터도 결국 이곳이었다. 이곳 공원주변에서 방앗간을 하며 30년간 살아온 김명한옹(90)은『아드모아공원을 모르고는 교포사회를 말할 수 없다』면서『이제는 한국인이 가꿔온 「한국인의 광장」이 됐다』고 했다. LA시에만 크고 작은 공원이 17개가 된다고 한다.모두들 이 공원보다 규모도 크고 시설 또한 훌륭하다.그럼에도불구,한인들이 아드모아공원을 잊지않고 찾는 것은 고국을 향한 마음의 연결고리들이 끊겨질듯 하면서도 든든히 이어지고 있음을 여기서 만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 외언내언

    금강산에 들어가 있는 한 도인이 추사 김정희에게 편지를 보내었다.이르기를 『‥남들은 다 나를 정복자라 하건마는 나는 이 풍로간에서 괴로움과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있소』◆김추사가 이에 답하는 글 가운데 다음과 같은 대목이 보인다.『…어떤이가 호랑이를 만나 놀란 나머지 그 등에 올라탔습니다.호랑이 또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죠.어느 마을 앞을 지나자니까 아이들이 손뼉치며 소리쳤습니다.「호랑이 탄 신선,호랑이 탄 신선」하고.그러나 정작 장본인은 「신선인지는 모르지만 죽을 지경이다」고 뇌까렸습니다.아이들이 보는 것과 실제 사정의 차이가 이러한 것입니다』◆어떤 사상을 남이 보는 것과 당사자의 현실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추사는 그것을 말하면서 위로하려 했던듯 하다.그 점에서 본다면 서예의 대가는 「도인」에 못지않은 인생의 경지를 노닐었던 것 아닐는지.사실이 그렇다.남들은 그의 권세 그의 부를 부러워하건만 장본인은 앞서의 기호선인 같은 심경일 수가 있다.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것이 인생사.남들은 불행하게 보건만 스스로는 행복해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것인가.◆「유엔개발계획」이 발표한 「92인간개발 보고서」에 세계 각국의 「삶의 질」순위가 나와 있다.1백60개 국가들의 평균수명·교육수준·경제력 등을 종합분석해서 등수를 매긴 것.이번에는 90년에 1위였던 일본을 제치고 캐나다가 수위로 올라섰다.2위 일본,3위 노르웨이,6위 미국의 순.우리나라는 오일 달러의 쿠웨이트(45위)등보다 앞선 34위이다.하위권은 동남아시아·아프리카쪽이 차지한다.◆이 기준은 문화적·물질적인 외화가 강조되었다.하지만 삶의 질을 구하면서 정신적·도덕적 측면을 외면한채 잣대질할 수 있는 것일까.정말로 좋은 삶의 질의 나라는 상위권 국가가 아닐 수도 있다.상위권은 다만 아이들 눈에 비치는 기호선인일 수도 있는 것이니까.
  • “김일성 「조섬해방설」 날조된것”/일 문예춘추

    ◎45년8월 당시 일개대위로 구소련서 복무/김정일은 백두산아닌 하바로프스크출생 일본의 월간 「문예춘추」(4월호)와 「주간문춘」(3월26일자)은 북한 김일성의 과거 경력의 허구성을 집중적으로 다룬 장문의 특집기사를 실었다. 문예춘추사는 19일 이같은 김일성의 과거 정체를 파헤치는 특집기사를 다루게 된 것은 『김일성의 거짓된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생존자들이 사망하기 전에 그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올바른 기록을 남겨두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 공산당 기관지 「적기」의 마지막 평양주재 특파원이었으며 현재 워싱턴에서 활동하고 있는 언론인 하기하라씨(추원료)는 「주간문춘」에 게재한 「20세기 최대의 수수께끼 김일성의 정체」라는 기사에서 자신은 김일성의 항일투쟁이 날조된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워싱턴·모스크바·타슈켄트·북경 등을 오가며 입체적인 취재를 했다고 밝혔다. 하기하라씨는 취재 결과 현 김일성은 진짜 김일성이 아닌 「김성주」라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고 밝히고 『북한의 각종 역사서는 ▲김일성이 13세 때부터 항일투쟁에 참가,조선인민혁명군을 지휘했으며▲김일성이 45년 8월 조선인민혁명군에 총 공격 명령을 내려 조국을 해방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김일성은 북한에 있지도 않았다』고 반박했다. 하기하라씨는 『당시 ▲중국 공산당의 지도하에 만주에서 항일 게릴라 활동을 하고 있던 한국인과 중국인은 일본군에 밀려 소련으로 후퇴를 하게 됐으며 ▲소련이 이들을 규합,조직한 것이 소련 극동방면군 보병 88여단이었고,김일성은 이 부대의 대위로 제1대대장을 맡았을 뿐이다 ▲88여단은 정규 부대라기보다 첩보부대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일에 대해서도 『김일성은 항일 투쟁중 비밀기지인 백두산에서 김정일을 낳았다고 말하고 있으나 42년 4월 구소련 하바로프스크에서 출생했다』는 사실을 어릴적 사진과 함께 공개했다.
  • KAL기 블랙박스/러시아 군기관 보관/러지 기자 밝혀

    【도쿄 연합】 대한 항공기 격추사건 전말을 이즈베스티야 지에 60회에 걸쳐 전재,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던 안드레이 일레슈씨(42·이즈베스티야 사회부장)는 7일 『현재 러시아의 모 군비밀 기관이 보관하고 있는 KAL기 블랙박스에 관한 비밀이 해결되면 세번째의 대한 항공기 격추에 관한 책을 낼 방침』이라고 밝히는 한편 『오는 3월 하순이나 4월초쯤에는 기록 영화인 52분짜리 「러시아의 비밀 KAL 007」이 완성돼 일반에 공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 KAL사건 미보상 136명/1인 보상금 10만불 넘을듯

    ◎미 대법,「징계배상 불필요」 확정 【워싱턴 로이터 연합】 미 연방 대법원은 2일 지난 83년 2백69명의 사망자를 낸 대한항공(KAL)기 격추사건과 관련,대한항공 승무원의 실수가 인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항공이 5천만달러의 징계 배상금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고등법원의 판결을 확정했다. 이에따라 대한항공기 희생자 보상문제는 민사소송이나 별도의 합의과정으로 넘어가게 됐으며 대한항공측은 이번 소송을 제기한 1백36명의 희생자 유족들에게 징계배상금이 아닌 보상금을 주게 됐는데 그 액수는 대한항공측이 합의를 구해온 10만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 KAL 격추 진상/KGB,“곧 공개”

    【파리 AFP 연합】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는 승객·승무원등 2백69명의 목슴을 앗아간 지난 83년 대한항공(KAL)기 격추사건에 대한 세부사항을 공개할 것이라고 KGB의 한 고위관리가 20일 밝혔다. KGB소속의 올레그 칼루귄 장군은 이날 파리범죄수사연구소와 워싱턴 소재 국가전략정보연구소(NSII)등이 공동개최한 대테러리즘 국제회의에 참석,이같이 밝혔다. 그는 『우리는 KGB의 문서보관소를 개방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모든 것은 공개될 것이다. 예를 들어 83년 한국항공기의 추락에 대한 세부사항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 말련에 합작 정유사/삼성물산,지분 15%

    【콸라룸푸르 AFP 연합 특약】 말레이시아의 국영 석유회사인 테트로나스사는 한국의 삼성,일본의 이데미추사와 함께 18억5천만달러 규모의 정유공장을 합작설립키로 했다고 9일 밝혔다. 이번 협정은 미국의 칼텍스사와 대만의 국영 중화석유회사가 철수한뒤 5개월만에 체결된 것으로 삼성은 이번 합작에서 15%의 지분을 차지했다.
  • “KAL기 격추 보상 용의/소 군사장비 쿠바서 철수중”

    ◎고르비·옐친 합동 기자회견 【모스크바=김영만특파원】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은 6일 대한항공 007기 격추사건으로 사망한 승객들의 사체 반환과 유가족 보상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옐친대통령은 이날 미국과 소련에 생중계되는 가운데 가진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합동기자 회견에서 한스 에프라인슨 KAL기 희생유족 회장으로부터 피해자 사체반환및 유가족에 대한 피해보상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나는 유가족 협회와 협력하여 여러분의 문제가 무엇이든간에 최선을 다해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옐친 러시아공대통령의 대한항공기 격추사건의 사망자 사체반환및 피해자보상에 관한 이같은 발언은 사건발생후 책임있는 소련 고위당국자의 최초 언급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옐친은 또 소련군사장비가 쿠바로부터 철수되고있으며 앞으로 소련군이 쿠바에서 철수해야한다고 말하고 소련에서 공산주의 실험이 행해진 것은 비극이었다고 밝혔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소련과 쿠바관계가 현재 조정되고 있으나 상호이익의 기반에서 조정돼야할 것이라고 말하고 소련에서 행해진 공산주의 실험은 확실하게 실패했으며 이는 소련국민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사람들에게 교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소,KAL기 사건 전면 재수사/신임 참모총장

    ◎진상 규명에 적극 지원 약속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쿠데타이후 소련군부지도자들이 교체됨에 따라 8년동안 미궁속에 빠져있던 KAL기 격추사건에 대한 전면 재수사가 곧 시작될 예정이다. 지난달 31일 이즈베스티야지 보도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로보프 신임소군참모총장은 최근 이즈베스티야와 가진 회견에서 『소군부및 국방부는 KAL기 비극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으며 이즈베스티야지가 진행중인 진상조사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즈베스티야지는 오는 10월 KAL기 기체가 발견된 모네론섬 부근 수심 2백m의 해저탐사작업에 들어갈 예정인데 로보프장군은 『이 해저탐사작업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즈베스티야는 또 국방부 및 소군지도부의 교체로 군이 소장하고 있던 KAL기사건 자료들도 금명 공개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 자살한 고르비 군사 보좌관/83년 “KAL기 격추” 명령했다

    ◎퇴역 소 장성 밝혀 【워싱턴 연합】 83년 발생한 KAL 007기 격추사건을 명령한 장본인은 지난주 쿠데타 실패후 자살한 세르게이 아흐로메예프 전소련군 참모총장이라고 노보스티 통신이 29일 보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타임스는 30일 노보스티 통신이 한 퇴역장성의 말을 인용,83년9월1일 이른 새벽 오가르코프 당시 군참모총장이 공산당 중앙위 회의에서 행할 연설을 준비하기 위해 일단의 고위장교들이 그의 사무실에 모였을 때 당시 군참모차장이던 아흐로메예프 원수가 전화를 받아 KAL기의 영공침범을 보고받은후 격추하도록 명령했다고 주장했다. 노보스티 통신은 아흐로메예프 원수가 전화를 받아 상대편의 얘기를 들은 후 미확인 항공기가 영공에 들어왔다고 오가르코프 원수에게 보고했으며 오가르코프원수가 모든 것을 확인할 것을 제의했으나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란 가운데 아흐로메예프 원수가 「격추해」라고 말한 뒤 수화기를 놓았다』고 이 퇴역장성이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유럽의 한 고위 정보소식통은 오가르코프원수와 친한 사람들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군부내 문책선풍에서 그를 보호하고 그 책임을 완전하게 죽은 사람에게 떠넘기기 위해 이같은 주장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다른 정보소식통들은 조종사 출신인 샤포슈니코프 신임 국방장관이 공군장교들을 보호하기 위한 생각에 움직여 이같은 보도가 나오게 됐는지도 모른다고 분석했다.
  •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검토/외무통일위

    ◎KAL기 피해배상 청원 심의/고르비,“새로운 사실없다” 서한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지난 5일 예레멘코 주한대사대리를 통해 KAL기격추사건 한국유가족회장에게 서한을 보내 『소련측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KAL기격추사건 희생자에 대한 추모제를 거행키 위한 한국측 유가족의 사고현장방문을 허용한다』고 말했다고 외무부가 8일 밝혔다. 홍현모 유가족회장이 지난 3월28일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 대한 이 답신에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은 그러나 『KAL기사건의 진상은 지난 89년 소련당국이 발표하고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제출한 내용이외에 새로운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 외무통일위는 이날 상오 유종하외무차관을 출석시킨 가운데 청원심사소위(위원장 정재문의원)를 열어 KAL기격추사건의 진상규명및 피해배상에 관한 청원을 심의했다. 이날 소위에서는 정부측이 외교경로를 통해 오는 10월말까지 KAL기사건의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하도록 촉구한뒤 소련측의 조치가 미흡하다고 판단될 경우 ▲국회차원의 진상조사단구성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유엔안보리재심의등의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 KAL기 블랙박스 50일뒤에 회수/소 잠수부 대장 미하일 증언

    ◎기체는 3조각나 공해상 추락/기내방송용 음향기기도 인양 소련은 지난 83년 사할린 상공에서 격추된 KAL기의 블랙박스를 격추 후 50일 만인 10월20일 회수했으며 기체 조각은 사할린 서쪽 북위 46도 35분,동경 1백41도22분 일대의 공해상에 추락,해저에 가라앉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비운의 KAL기는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된 후 해상 근처에 이르러 3조각으로 나뉘어 추락했고,기체가 바다에 떨어지기 직전 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격추 직후 KAL기의 추락상황을 레이다로 포착했던 해군장교,추락지점을 처음으로 발견했던 선장,블랙박스 회수를 위한 해저탐사작업을 총지휘했던 잠수부 대장 등과 가진 현지 인터뷰를 통해 밝혀진 것이다. 격추사건 후 8년 만에 확인된 기체 추락지점은 격추 4시간 만인 9월1일 상오 9시30분께(이하 사할린 현지시간) 추락해역에 처음으로 도착했던 트롤선 선장 비류크씨(50·네벨스크 거주)가 비행기 연료 유출로 생긴 기름띠 끝부분에 연료가 솟고 있는 지점을 좌표로 표시,해군 당국에 보고했던곳으로 모네론섬 북동쪽,네벨스크 남서쪽으로부터 각각 35∼37㎞ 떨어진 공해상이다. 블랙박스 회수작업을 총지휘했던 짐치신 미하일씨(유지노 사할린스크 브라스 벡그크 포베드 거주)는 추락한 KAL기의 블랙박스는 83년 10월20일 하오 4∼5시께 해저탐사작업에 참여했던 잠수부 4명에 의해 건져졌으며 회수된 블랙박스는 2개라고 밝혔다. 83년 당시 사할린 해상잠수실험부 대장이었던 그는 『당시 블랙박스 회수를 위한 탐사작업에는 사할린 해상잠수부대와 뒤늦게 파견돼 합류한 무르만스크 잠수부대 등 2개 부대 소속 잠수부 16명 등 총 46명이 동원돼 이 중 해저탐사작업에는 4명만이 참여했다』며 『9월10일 본격적인 탐사작업에 들어간 후 40일 만에 3갈래의 전선줄이 붙어 있는 오렌지색의 블랙박스 2개와 기내방송용 음향시설로 보이는 기기 1개를 회수,네벨스크 수색본부에 건네줬다』면서 블랙박스 회수사실이 기록된 문건을 제한적으로 공개했다.
  • KAL기 공해상 피격/소지,“영공침해” 반박

    【워싱턴 연합】 83년 소련 미사일에 격추된 KAL007기는 소련측이 지금까지 주장해온 대로 소련 영공에서 격추된 것이 아니라 사할린과 모네론 섬 사이의 국제영공에서 피격됐다고 이즈베스티야지가 최근의 새 추적기사 시리즈에서 보도한 것으로 26일 알려졌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날 이즈베스티야의 KAL기 격추사건에 관한 제2차 시리즈기사를 소개하고 이즈베스티야가 인터뷰한 소련 분석가들은 KAL기는 분명히 공해상에 추락한 것이 틀림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즈베스티야의 조사 결과 소련측이 사고 KAL기와 교신하려는 노력이 없었고 소련 전투기 조종사인 겐나디 오스포비치가 예광탄을 발사했다는 소련 공식 발표를 부인했다고 보도했다.
  • 한국과 소련 그리고 내일/북으로 확산될 제주훈풍(사설)

    한국과 소련 두 나라 대통령의 제주정상회담은 그 직전의 소련·일본 정상회담의 실상과 여파에 상관없이 매우 명확하고 신선했다. 소련측이 당초 일정을 돌려 1박2일로 잡은 의미도 각별했거니와 한소간 여러 현안에 대한 명백하고 구체적인 논의와 합의가 보여주는 것 또한 그러하다. 그것은 수교당사국간의 짧은 기간,빠른 관계개선 속도가 갖는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 사이의 바람직한 앞날을 예고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불과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세 번째 만나는 두 정상간의 친교는 깊이 못잖게 국가간 이해와 협조의 폭도 그만큼 두터워지고 있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세 번째 만남의 깊은 의미 한소 양국 정상은 이미 지난해 12월 모스크바선언으로서 한반도에 대한 인식과 평가에 있어 거의 완벽하게 의견을 같이한 바 있다. 두 정상은 이번에 이 모스크바 선언을 재확인했다. 한반도에서의 냉전은 종식되어야 하며 모든 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할 것이다. 또 그 연장선상에서 동북아시아 및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평화정착과 화해·협력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데 협조할 것을 두 정상은 합의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 또는 한국의 선가입이 한소 관계의 일반원칙에 관한 정신 즉 모스크바선언에 합당한 것이고 북한의 국제적인 핵사찰 동의는 이 지역의 전쟁방지와 긴장완화에 기여하는 것임을 두 정상은 또한 확인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도쿄에서 제안한 바 동북아시아 집단안보기구문제와 관련해서는 두 정상간 이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관해서는 우리로서도 명백한 입장을 보일 필요가 있다. 물론 동북아시아 또는 아시아 태평양 집단안보를 위한 다자간 모임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그러한 집단 안보기구의 효용성인 것이다. 궁극적으로 그와 같은 다자간 모임이 이 지역의 안보와 평화,더 나아가 세계평화와의 연결고리로서 도움이 될지 모르나 그에 앞서 한반도문제 및 남북한 관계 등 이 지역 국가들 사이의 양자 관계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한국 및 미국 등의 입장과 공동보조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모스크바 선언의 재확인 한국의 북방외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반도 문제의 해결 즉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이며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북한 양 당사자에 의해 수행돼야 한다. 따라서 아시아 집단안보기구의 역할이 무엇이든 남북한의 참여가 배제되는 집단안보기구는 형식적으로 불가능하고 실질적으로 무용할 것이다. 한소간 실질관계의 진전을 위한 경제협력협의가 정상회담에서 논의됐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역시 우호협력 차원의 확인이었을 것이다. 두 나라간 경제지원협력의 원칙과 특히 한국의 대소경협 규모 등 큰 골격은 이미 확정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측의 대소 경협자금은 지난 1월 은행차관 10억달러,소비재차관 15억달러,플랜트 연불수출 5억달러 등 총 30억달러를 93년까지 제공키로 합의된 바 있다. 소비재 차관에 대해서는 지난 3월1일 대상품목 34개에 합의를 봤고 그중에 올해안에 지원키로 한 8억달러의 배정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소련과의 교역은 지난해 수출 5억2천만달러,수입 3억7천만달러로 첫 흑자를 보인 바 있다. 그러나 아직은다소 불투명한 소련 내정과 외화부족 등의 상황으로 하여 대소 투자는 물론 시베리아 진출문제가 활발하게 진척되고 있는 단계에 들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이번 두 정상의 세 번째 만남을 통한 신의와 신뢰의 축적은 이 같은 양국간 현안타개에 활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것이다. ○한소 협력의 현재와 미래 한편으로 시각을 바꾸어 볼 때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양국간에 해결되지 못한 미진한 부분은 숙제로 남게 됐다. 특히 우리 민족의 크나큰 비극으로 기록된 6·25전쟁의 진실을 함께 규명한다는 노력이 부족했고 대한항공(KAL)여객기 격추사건에 대한 시인 사과가 충분하지 못했다. 좀더 시간을 두고 해결하기에는 양국간 관계개선 속도가 너무 빠르다. 이 문제들은 한소 관계와 협력의 바람직한 앞날을 위해서도 반드시,그리고 조속히 해결돼야 할 공동과제이다. 국가간 정상회담은 현대적인 외교의 특징으로서 그 효율성 측면에서 대부분의 국가들이 선호하고 있다. 정상회담은 글자 그대로 최고 정책결정권자들의 만남이므로 상대적으로는 각자가서로 주고받는 기회이자 도전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한소 정상간 세 번째 만남은 보통으로 지적되는 상징적 의미 이상의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측면의 의미를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그 자신이 남북한 관계의 개선을 위해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 의지와 정책,그리고 추진력은 이번 소일,한소정상회담에서 약여하게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한소 관계의 밝은 앞날을 예측할 수 있게 하는 측면이기도 한 것이다.
  • 「KAL기」 진상규명 촉구/대전무박 소련 참가 수락

    ◎한·소 외무·상공회담 한소 양국은 20일 외무장관간의 교환방문을 통해 북한의 핵안전협정 체결문제를 비롯,남북한 유엔가입,KAL기 격추사건 등 주요현안에 대해 협의키로 합의했다. 이상옥 외무장관과 베스메르트니흐 소련 외무장관은 이날 제주신라호텔에서 양국 정상회담과는 별도로 개최된 회담에서 『양국 외무장관회담을 통해 양국 관계를 증진시킬 것을 다짐하고 가까운 시일내에 양국 외무장관의 교환방문에 합의했다』고 이날 회담에 배석한 이정빈 외무부 제1차관보가 발표했다. 1시간10여 분에 걸친 이날 회담에서 KAL기 사건과 관련,이 장관은 최근 이 사건과 관련한 새로운 보도들이 나오고 있음을 지적하고 소련측의 강력한 진상규명을 촉구했으며 이에 대해 베스메르트니흐 장관은 소련당국의 조사결과가 나오는 대로 결과를 우리측에 통보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봉서 상공장관과 카투셰프 소 대외경제성 장관도 이날 상오 별도의 양국 경제장관회담을 갖고 90년대 중반까지 양국 교역량을 1백억달러 수준으로 확대해나가기로 했다. 또 제1차한소상공장관회담을 오는 10월중 모스크바에서 개최키로 하는 한편 천연가스·유전·동광 등 타당성있는 자원협력 3개 사업의 조속한 추진에 합의했다. 특히 이 장관은 오는 93년 개최되는 「대전EXPO」에 소련측의 참가를 요청했으며 소측은 이에 수락의사를 밝혔다.
  • 소 외무성의 “한국통” 미나예프(인터뷰)

    ◎“한·소 공동발표문을 기대하라”/“일정 짧지만 실질 성과 있을 것”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제주정상회담은 지난해 샌프란시스코회담 못지않게 중요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소련 외무성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한국통」인 알렉산더 미나예프 한국담당참사관(39)은 이번 정상회담의 정치적 의미를 이같이 설명하면서 『양국 정상은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전반적인 문제를 골고루 협의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12월 노 대통령의 모스크바방문시 라이사 여사와 김옥숙 여사의 통역을 맡을 만큼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미나예프 참사관은 이번에도 이상옥 외무장관과 베스메르트니흐 소 외무장관간의 개별회담 때 중책을 맡는다. 소련 대통령으로서 처음 한국 땅을 밟는다는 「역사적 상징성」을 누누이 강조한 그는 『양국 관계가 빠른 속도로 발전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미해결된 문제들이 많다』고 지적,『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국 고위관료들간의 정례적인 만남이 필요하다』면서 그 예로 양국 외무차관간의 정무협의회 교환개최를 들었다. 『이번 회담이 공식방문(Official Visit)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은 실질적인 성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낙관론을 피력한 그는 정상회담이 끝난 뒤 발표되는 공동언론발표문에 기대를 걸어줄 것을 당부했다. 이번 회담에서 KAL기 격추사건에 대한 고르비의 공식 유감표명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정색을 하며 『분명 그것은 잊어야 할 사건이며 언론(소년내 언론을 지칭)이 계속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양국 관계를 위해 좋은 일이 아니다』면서 『모스크바회담에서도 양국 정상간에 불행한 과거를 털어버리고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자는 합의가 있지 않았느냐. 한일 관계를 봐도 일본측이 식민지배에 대한 여러 수준의 사과를 했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듯이 이같은 문제는 전적으로 심리적인 것』이라고 일축,고르비의 유감표명은 전혀 검토되고 있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모스크바사범대학을 졸업한 뒤 곧바로 외무성에 들어와 주로 한반도와 중국문제를 다뤄온 그는 김일성대학에서 5년 동안 유학한 데 이어 81년부터88년까지 평양 주재 소련대사관에서 근무한 북한전문가이기도 하다.
  • 소,「KAL기」 공동조사 용의/당 국제부 부부장

    ◎“한국정부와 진상규명 협의 준비”/김영만 모스크바특파원 단독인터뷰 소련은 지난 83년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된 KAL(대한항공)007기의 진상조사와 사후 처리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와 협의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소련의 토의대상에는 양국 정부간의 공동조사도 배제치 않고 있는 것으로 시사되고 있어 주목된다. 소련 공산당의 발레리 무사토프 국제부 제1부부장은 18일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본사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대한항공기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진상조사가 있어야 한다』고 밝히고 『소련과 한국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무사토프 부부장은 객관적인 조사에 양국간의 공동조사까지를 포함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직접 이를 확인하지는 않았으나 『양국 정부가 협의해서 결정할 문제이며 두 나라 사이가 정상적인 관계인만큼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침착하게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혀 소련이 양국간 관계 확대개선의 장애물인 대한항공문제에 대해한국정부와 협의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시사했다. 대한항공 격추사건은 지난해 12월 노태우 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 때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이에 대한 유감을 밝힌 바 있으나 최근 소련정부 기관지인 이즈베스티야가 민간 항공기인 점을 알고도 격추시켰다는 점,소련 해군이 블랙박스와 유체 등을 회수했다고 폭로함에 따라 양국간에 새로운 외교 현안이 되고 있다. 우리 정부측은 최근 소련당국에 대해 이에 대한 자료 및 진상공개 등을 요구했었다. 소련측이 공산당이나 정부의 고위관계를 통해 그 동안 언급을 피해왔던 대한항공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진상해명 및 마무리를 위한 협의용의 등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르바초프 대통령도 19일의 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KAL기 사건에 대해 언급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한국 유엔가입의 문 열려 있다”/소 공산당 무사토프부부장 인터뷰

    ◎「KAL 피격」 객관적 조사 필요/소·중 관계개선,한반도에도 긍정적 영향/소 경제난 극심… 경협에 큰 기대 서울신문 김영만 모스크바특파원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방한에 앞서 소련 공산당 발레리 무사토프(51) 국제부 제1부부장과 인터뷰를 갖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한이 갖는 의미와 양국 관계의 발전전망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소련 공산당의 아시아문제 책임자이기도 한 무사토프 부부장은 헝가리 등 동구지역에서 오랜 기간 외교관 생활을 한 뒤 84년부터 공산당 국제부에서 일하고 있는 외교전문가로 팔린 현 국제부장의 뒤를 이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이다. ­소련 대통령의 첫 한국방문이 갖는 의미와 한반도 정세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풀이할 수 있나.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한국방문이 이 지역정세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임을 확신한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제주도에서 양국 정상의 세 번째 정상회담을 갖는다는 것은 양국 관계가 얼마나 바르게 발전하고 있는 것인가를 말해준다. 소련은 남북한이 대화를 통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것을 희망하고 있고 모든 문제가 평화적이고도 정치적인 방법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전하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소간의 관계발전은 한반도의 문제해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소련은 서울은 물론 평양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소련은 평양과 서울에 대한 등거리외교가 한반도 문제해결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경우에 따라서는 북한의 폐쇄성을 깨기 위해 서울 쪽에 더 체중을 싣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고 보는데. 『소련의 입장은 두 정부 모두에 대한 호의적인 자세가 평화통일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옛친구도 버리지 않고 새로운 친구와의 관계도 계속 진전시키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의 한소 관계는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믿고 있나. 『우리는 현재의 빠른 관계진전 속도를 바람직한 것으로 생가하고 있다. 또한 더 많은 부분에서의 교류가 확대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는어떤 제한도 있을 수 없다. 소련은 알다시피 경제적으로 매우 어렵다. 한국과의 경제협력에 큰 기대를 걸고 있고 이 부분에서 한국정부와 경제계가 취하고 있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있다. 한국은 통제경제체제를 완전한 자유경쟁체제로 이전시킨 성공적인 경험을 갖고 있다. 소련은 한국의 이 같은 경험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때문에 학자·경제관료·정당과의 교류확대가 더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한국 체류시간이 3∼4시간이란 점에 관심을 두려는 사람들도 있다. 서울에 오지 않고 제주도에서 정상회담을 갖는 것은 고려되어야 할 정치적 배경이 있기 때문인가. 『지금의 소련 사정이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한시간을 제약하고 있다. 내 생각에는 두 대통령 모두가 경험 많은 정치인들로 시간을 유용하게 처리할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시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또한 1년도 되지 않은 기간에 갖는 세 번째의 정상회담이란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대화가 계속되고 있다는점이다』 ­한국정부의 유엔 단독가입 문제에 대한 소련의 입장은 어떤 것인가. 『유엔의 보편적 원칙은 어느 국가에나 적용되어야 한다. 유엔헌장을 준수한다면 유엔에 가입할 권리가 있다. 다만 내 생각에는 두 개의 한국이 이 문제에 대해 합의를 본다면 보다 유익하고 세계가 환영할 것이며 또한 그곳서 받는 이익이 클 것이다』(그는 이 대목이 자신의 개인의견임을 분명히했다)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정부가 가입을 청원할 경우 소련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론적으로 모든 나라의 가입권리는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실천면에서 본다면 남북한이 합의하는 것이 보다 나을 수 있다』 ­중국의 이붕 국무원 총리가 북한을 방문,한국정부의 유엔가입신청에 대한 입장 등을 조정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중국정부의 입장은 어떻게 표현되리라 보는가. 『소련 정치인이 중국 입장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나 최근 소중 관계가 개선되고 있고 이것이 아시아 전역과 한반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개선은 강택민의 5월 방소에서도 드러난다』 ­KAL기 격추사건에 대해 소련정부의 입장에 변화가 있는가. 최근 이즈베스티야지의 비화공개 등으로 이 문제가 양국간에 새로운 외교현안이 되고 있다. 『이즈베스티야지의 보도는 어디까지나 센세이셔널리즘에 입각한 기자들의 아마추어적 조사에 입각한 것이다. 객관적인 조사가 앞으로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니까 이에 대한 결론을 미리 짓지 말고 침착하게 하나씩 해명되어야 할 것이다. 유가족들에게는 다시 한 번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 객관적인 조사는 양국간의 공동조사까지를 포함하는 것인가. 『양국 정부가 협의해서 결정할 문제이다. 두 나라 사이가 정상적인 관계인만큼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침착하게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양국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으리라 본다. 소련의 해당기관들은 이 문제를 푸는 데 협조할 것이다』 ­셰바르드나제 전 외무장관의 사임과 새로운 외교진영의 등장으로 소련 외교가 보수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있다. 『특정개인의 개성이 외교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외교정책은 국가최고기관들 사이의 집단적인 의사결정에 의해 정해진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또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바로 페레스트로이카를 시작했음을 이해하면 된다. 소련 외교의 기본원칙과 수단은 변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군축,유럽에서의 정책,아시아에서의 정책에서 소련은 여전히 적극성을 띠고 있다. 한국과의 시종일관하는 관계개선,일본과의 관계개선 모두가 소련 외교정책의 불변성을 증거하는 것들 아닌가』
  • “소련은 이제 밝혀야 한다”/장정행 국제부장(데스크시각)

    1983년 9월. 아직 초가을 이었지만 북방의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던 사할린의 바다는 창자를 끊는 듯한 통곡으로 가득했다. 이달 1일 새벽 KAL007기를 타고 뉴욕을 떠나 서울로 오다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공격으로 수중고혼이 된 승객 2백69명의 유가족들이 사랑하는 부모 아들 딸을 찾아 흔적도 없는 망망대해를 향해 울부짖었다. 세계가 다 함께 분노하고 상상할 수 없는 소련의 만행에 치를 떨었다. 사할린을 마주하고 있는 일본 최북단의 조용한 어항인 와카나이는 희생자들의 유품이라도 확인하려는 유가족들과 사고경위를 밝히려는 각국의 조사단,취재진들로 연일 붐볐다. 미국·일본,그리고 우리나라의 함정과 선박들이 사고해역에 몰려 한달 이상의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바닷가에 떠내려온 사고기의 일부 잔해와 승객들의 유류품 몇 조각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사고경위를 밝힐 수 있는 블랙박스도 발신음까지 포착했으나 끝내 회수하지 못하고 말았다. 소련 영해인 사고지점을 일찌감치 둘러싸고 있던 소련 함정들의 집요한 방해 때문이었다.소련은 무고한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유가족들의 뱃길마저도 함정과 전투기로 위협했다. 유엔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이 천인공노할 만행을 규탄하고 나서자 소련은 사고발생 3일 만에 타스통신을 통해 KAL기 격추사실을 시인하고,그러나 이 여객기가 첩보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얼토당토 않은 어거지를 썼다. 9일에는 오가루코프 참모총장 겸 제1국방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수호이 15전투기가 미사일로 KAL기를 격추시켰으며 KAL기가 소련 영공을 침범,첩보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주장을 되풀이 했다. 그러나 이 때는 이미 출격전투기와 기지와의 교신내용을 분석,소련측이 경고나 강제착륙의 시도없이 격추를 명령했음이 밝혀져 있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건 경위는 아무것도 없는 형편이다. 다만 소련의 자유화바람을 타고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가 당시 수색작업에 동원됐던 잠수부,출격전투기의 조종사 등을 광범위하게 취재,최근 10회에 걸쳐 사건의 내막을 보도하여 진상의 일부가 알려졌을 뿐이다. 이 보도에 이어 공개된 사건 직후의 해저상황을 촬영한 몇 장의 사진은 소련이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다. 그뿐 아니라 지금은 퇴역해 있는 출격전투기의 조종사는 당시 KAL007기가 여객기임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지상의 명령에 따라 격추시켰다고 증언하고 있다. 수색에 동원됐던 잠수부들은 블랙박스로 보이는 오렌지색 상자도 분명히 인양했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의 한소관계는 83년과는 판이하게 변했다. 88년 올림픽을 계기로 적대관계에서 협조관계로 바뀌었으며 빈번한 교류와 함께 정식으로 국교가 수립되었다. 19일에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샌프란시스코 모스크바에 이어 세번째 한소정상회담을 갖는다. 비록 일본방문 후의 귀국길이고 회담장소가 서울이 아닌 제주도이긴 하지만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한국방문은 세계사에 남을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비단 한소관계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소련의 위상도 이제는 더이상 냉전체제의 한쪽 우두머리가 아니라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동참하는 위치로 바뀌었다. 따라서 이제는 KAL사건의 진상을 밝힐 때가 됐으며 또 당연히 밝혀야만 한다. 이 같은 불행한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소련은 최소한 현재까지 그들이 알고 있는 사건경위와 왜 격추시켰는지를 밝혀야 할 책임이 있다. 아울러 지금까지도 항공계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KAL기의 항로이탈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회수한 블랙박스를 공개하여 국제적인 분석을 하도록 해야 한다. 거대한 보잉747점보기를 민간여객기로 알아보지 못했다든가,아무것도 모르는 민간승객 2백69명을 태우고 KAL기가 첩보활동을 했다는 등의 어거지로 사건의 진상을 더 이상 묻어두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이제 막 본격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한국이 KAL기 사건의 피해당사국이기 때문에 앞으로 두 나라 관계의 발전을 진심으로 바란다면 사건의 진상공개와 함께 그에 합당한 사과가 있어야만 한다. 소련은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면서 45년 동안이나 자신들의 행위가 아니라고 부인해 왔던 1940년의 폴란드군 대량학살 사건을 소련비밀경찰의 소행이라고 인정했고,「프라하의 봄」을 무참히 짓밟았던 68년 8월의 체코 무력침공도 소련정부의 과오였음을 솔직이 시인했었다. 그러나 소련은 KAL기 사건에 대해서만은 최근까지도 계속 「더 이상 아는 것이 없다」는 식으로 발뺌하고 있다. 이달 내한했던 로가초프 외무차관은 사건진상의 공개를 바라는 우리 국민들의 기대에 『냉전시대에 발생했던 불행한 사건이었다』고 대답하며 관련자료가 추가로 입수되면 한국측에 전달하겠다는 식으로 얼버무려 버렸다. 급속한 접근과 빈번한 교류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의 대다수가 모스크바에 대해 느끼는 인상은 어딘가 음흉하고 어둡다는 쪽이 아직도 강하다. 소련 대통령이 역사적인 방한을 하고 두 나라 정상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잡고 정답게 상호 관심사를 의논하는 마당에,그깟 이미 흘러간 불행한 사건을 더 이상 굳이 들출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소 두 나라가 경제적이나 통일·안보적 필요에 의해 일시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하여 참다운 협력관계를 유지하려면 서로간의 신뢰가 회복돼야 하며 이 같은 신뢰를 쌓는 첫걸음이 KAL사건의 진상공개와 사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2백69명의 원혼과 그 유가족들을 달래고 평화를 사랑하는 자유세계에 소련의 변화를 확신시켜 주는 길이기도 하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