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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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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죽선 바람에 실려온 여름 풍류,그리고 멋/부채그림展

    ◎부채 문예전­젊은작가 33명의 99점 현대적 감성 담아내/임전 허문전­운무산수화 70점 소개/부채그림 최초 개인전 우리 전통 합죽선에 그림을 그린 부채그림전이 다투어 열려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주고 있다. 23일까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갤러리 삼성플라자(0342­779­3830)에서 열리는 ‘한국 부채그림 문화예술전’과 3일부터 9월1일까지 종로구 관훈동 동덕아트갤러리(732­6458)에서 열리는 ‘임전 허문 부채그림 개인전’이 그것. 부채그림 문화예술전에는 젊은 작가 33명이 합죽선 위에 현대적인 감성과 정서를 담아 그린 99점이 선보인다. 또 부채그림 개인전에는 허문의 운문산수화 70점이 소개된다. 부채는 우리 선조들에게 여름철 필수품. 특히 부챗살 양면을 대나무의 피죽으로 붙여 만든 합죽선은 선비들의 애용품이었다. 선비들은 우정의 표시로 백선(白扇)에 손수 시를 써넣거나 산수화를 그려 가까운 친구들에게 선물했다. 여름철에 더위를 식히는 실용품에 시서화(詩書畵)로 멋진 풍류정신을 표현했던 것이다. 전통적인 부채그림은 18세기진경시대 최고의 화가인 겸재 정선의 ‘금강산도’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합죽선 반원형 안에 꽃봉오리처럼 표현함으로써 진경산수화가 도달할수 있는 최고의 화격을 보여줬다. 회화로서 부채그림이 겸재에 의해 완성됐다면 문인화의 품격을 갖춘 부채그림은 19세기 추사 김정희에 의해 최고 경지에 이르렀다. 먹으로 난초와 지초 등이 어우러진 자태를 간결하게 그린 ‘지란병분’(芝蘭竝芬)의 부채그림은 절제를 생명으로 하는 문인화의 경지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이번 전시회는 부채그림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작품들이 선보인다. 출품작가는 강경구 김대원 김순호 박순철 사석원 안석준 유근택 이인실 임종두 장혜용 장상의 홍용선씨 등. ‘임전 허문 부채그림 개인전’은 부채그림만 갖고 열리는 최초의 개인전이다. 임전은 소치 허련의 4대손으로 운림산방의 화맥을 이어 오고 있는 중견화가. 추사의 수제자 소치는 추사 타계 이듬해인 1857년 진도군 의신면 고향에 돌아와 운림산방을 세웠다. 이 화실은 허소치 직계 4대로 이어지며 전통 회화의 맥을 계승했다. 운림산방은 지난 82년 도 문화재로 지정됐다. 합죽선을 세계적 문화상품으로 개발해온 이일영씨(42·임전회화관 관장)가 마련한 이번 전시에서 합죽선은 50년 넘게 부채를 제작해온 인간문화재 이기동씨가 만들었다.
  • 아호부르기 운동 펼친다니 말인데(박갑천 칼럼)

    누군가 “완당글씨가 추사글씨보다 더 낫다”고 했단다.완당이나 추사나 김정희의 아호이고 보면 이는 “로미오는 읽었으나 줄리엣은 아직못읽었다”는 말과 다를 게 없다. 우리조상들은 이름이 여러가지였다.정식이름 말고도 아명(개똥이·간난이따위)이 있는가하면 자가 있고 호가 있었다.높은벼슬 지낸 이에게는 시호도 있었고.그런 가운데서도 아호 많았던 사람이 김정희.그래서 앞서와 같은 우스개도 나왔던 듯하다. 아호는 스스로 짓기도하고 남이 지어주기도 한다.안진경 필법의 진수를 터득했더라는 서예가 조광진은 눌인이라 자호했다.명필인데도 말은 더듬었기 때문이다.사람이 보고 놀라지않을 시는 짓지않겠다고 했던 이단전은 필재라 자호한다.“남의 밑에서 남을 따라다닌다”는 뜻으로 그리 지었다는 것(조희용의).그의 아호에는 필한도 있는데 노상 패랭이를 쓰고다니는 그를 일러 남들이 ‘이패랭이’라고 까짜올렸으므로 그 ‘패랭이’음을 딴 ‘필한이’아니었던가 싶다. 조선태조 이성계는 남이 지어준 경우이다.그는 일찍이 목은 이색에게 그의 자와 거실이름을 부탁했다.목은은 “계수나무꽃이 가을에 희고 깨끗함”을들어 자를 중결이라 짓는다.그러고서 계수나무 짝으로는 소나무만한 것이 없고 또 이성계가 절의를 소중히 여긴다 하여 거실이름은 송헌이라 했다.그 ‘송헌’은 이태조의 아호이기도 하다.() 이아호는 고향땅의 산천이름을 바탕삼아 짓는 경우가 많다.가령 유희춘의 미암이나 이은상의 노산과 같이.그런가하면 옛글에서의 좋은대목이나 세상살이 이치에서 따오는 등 가지가지다.가령 해학가로 이름난 정수동의 경우를 보자.그의 이름은 정지윤이었고 하원이라는 아호가 있다.한데 그가 태어날 때 손바닥에 ‘수’자같은 무늬가 있었다는데서 그 글자를 따고 속의 지생동지(영지가 낙숫물 받는 구리홈통에서 남)고사에서 ‘동’자를 따 별호로 삼고있다. 전통문화연구회에서 아호부르기 전통을 되살리자고 나섰다.사실 나이들면서는 친구끼리도 이름보다는 아호로 부르는게 틀스러워 보이기도한다.그러나 이때 한자보다는 한뫼·빛감·서리말·수리별…등 토박이말로 짓는 것이 앞을 내다보는 감각아닐까 한다.
  • 국가위기 헤쳐나갈 선구자 되자/고려대 홍일식 총장 졸업식사

    여러분이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는 바로 지금,우리나라는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극심한 사회·경제적 충격과 위기감의 소용돌이 속에 있습니다.경제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과 함께 필연적으로 밀어닥칠 고물가 고실업 등 경제적 고통도 피할 수 없겠거니와 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과 불안 또한 우리가 감당해야 할 험로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엄중한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우리나라와 민족의 장래가 참으로 양양하다는 것을 확신합니다.우리 국민 모두에게 국가적 위험을 극복하고자 하는 단합된 의지가 있기 때문이며 그러한 의지의 선봉에 서서 민족공동체의 미래를 개척해 나갈 여러분 같은 인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당면한 시대상황은 일시적 임기응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무수한 과제들을 제기하고 있지만 여러분은 온갖 장애와 도전을 극복하고 민족의 운명을 개척해 나갈만한 충분한 힘을 갖추었읍니다.여러분은 이러한 시대적 과제에 부응,국민적 통합과 자기혁신의 선구자가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를 거시적 관점에서 조망할 때 우리가 겪고 있는 오늘의 이 시련이 민족적 역량의 성숙을 위해 오히려 다행스러운 각성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를 생각해봅시다.오뉴월에는 모든 풀과 나무가 다같이 푸르지만 만물이 얼어붙는 세한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송백의 푸르름이 그 참된 가치를 드러내듯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세한의 정신’이 필요합니다.국난의 시대에 민족 구성원들 모두가 계층과 지역과 정파의 구별을 버리고 세한의 정신으로 합심하여 위기를 극복,한국인의 저력을 세계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동운명체 의식과 사회구성원 상호간의 신뢰,공동 목표를 향한 헌신의 정신입니다.여러분이 갖춘 지성의 협동정신과 진취적 역량은 이러한 시대적 소명앞에 더욱 미더운 가치를 입증하리라고 확신합니다.
  • 입춘… 마음속 잔설은 차갑지만(박갑천 칼럼)

    가벼운/기침에도/허리가 울리더니/엊그제/마파람엔/능금도 바람이 들겠다/저/노곤한 햇볕에/등이 근지러울 곤충처럼/나도/맨발로 토방 아랠/살그머니 내려가고 싶다/“남풍이 ×m의 속도로 불고/곳에 따라서는 한때 눈 또는 비가 내리겠습니다” (노장)가 생각했던 ‘근원으로의 회귀’가 그의 시정신이었다는(평론가 김우정) 신석정 시인의 ‘입춘’전문이다.유난히도 많은 눈을 흩뿌린 올 겨울이었지만 “겨울이오면 봄은 멀지않아”(셸리의‘서풍에 부치는 노래’)다가와버린 입춘.설사 눈발이 날린다해도 “맨발로 토방아래를 살그머니 내려가고 싶어질”만큼 계절은 봄을 가까이 불러들였다.땅속움들도 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는 것이리라.그같은 꿈틀거림을 보게 된다는데서 ‘보다’(현)의 이름꼴(명사형)‘봄’이 ‘봄’(춘)으로 되었다고 생각하는 견해도 있다.(최창렬) 매화향기 속에 햇살은 달착지근해진 듯하나 마음속 응달 잔설위로부는 된바람끝은 차갑다.이른바 IMF한파라는것 때문인가.이런걸 이르면서 춘래불사춘­봄은 왔으되 봄같지 않다고 했던 모양이다.이글귀는 왕소군을 두고 지은 시속에 나온다.왕소군은 전한 원제때 궁녀로 절세의 미인이었는데 흉노와의 화친정책에 따라 흉노왕에게 시집가게 되자 뜻있는 이가 그불운을 노래했던것.“그 오랑캐땅엔 풀과꽃이 없으니/봄이와도 봄같지 않다”면서.오늘의 우리들 마음속 입춘도 “남풍이 ×m속도로 불지”않아 싱겅싱겅하다. 어느봄날 영의정 채제공이 말을 타고가다가 어떤집 대문에 쓰인 ‘입춘대길’ 춘련을 보고 발길을 멈춘다.그는 그집으로 들어갔다.집주인인 참판 김로경은 잠시 우두망찰한다.아무 기별도 없이 정승이 찾아들었기 때문이다.더구나 당색도 달랐던 터.채정승은 글씨에 끌렸던 것이다.그춘련을 쓴사람은 나중에 천하명필로 되는 그집아들 추사 김정희.그때 일곱살이었다.채정승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지금은 거의 볼수없게 됐지만 지난날엔 그와같이 입춘이면 춘련을 써붙였다.복은 들고 액은 나가란 뜻을 담고서.여러 글귀가 있지만 올해는 다음과 같은 대련을 썼으면싶다.‘소지황김출 개문백복래’(뜰을쓰니 황금이나오고 문을여니 백복이 오는도다)
  • 호랑이 등탄 꼴… 정신 잃지 않아야(박갑천 칼럼)

    호랑이는 범이라고도 한다.거기에 옛말이나 방언까지 따지면 이름은 더 많아진다. 어흥이(어린이말)·갈가지·갈웜·개호지·개호주·두루바리…따위.한자말은 뺀 토박이말들이다.그밖에 큰짐승·산영감·산주인·산어른· 코큰어른·칡쟁이… 같은 속칭으로 불리기도.하지만 많이 쓰이는건 역시 호랑이쪽이다. 그 ‘호랑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호랑’이라는 한자가 나온다.호랑이라는말은 그 한자에서 왔다는 뜻이다.그렇긴해도 ‘범호호’자 다음의 ‘이리랑랑’자가 아무래도 이상하다.그 한자뜻에 따를때 ‘호랑’은 ‘범과 이리’이지 ‘호랑이­범’만을 이르는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토박이말로 남아 내려오는 ‘(개)호주’‘(개)호지’에 주목하게 된다. ‘호지’나 ‘호주’는 ‘□­홀’이라는 뿌리말을 생각하게 하기때문이다.바로 그점에서‘□­홀’이 고어에서‘범’이었다고 하는 견해도 나온다.(서정범 ).‘ㄷ’과‘ㄹ’은 넘나드는 관계이므로‘홀­□­□­호지’로 될수 있다.이는‘으뜸’이며‘크다’는 뜻의‘’에서‘말­맏­맏이­마지’로 되는 것과도 같다.그‘홀’에‘앙이’라는 뒷가지(접미사)가 붙어서‘홀앙이­호랑이’로 되는 한편 ‘호지’는 또 그것대로 내려온다고 하겠다. ‘범’의‘ㅂ’은 옛날엔 입술가벼운소리(순경음:□)로 발음되었다.그래서[용비어천가](87장)에는‘□’으로 나온다.‘□’은‘ㅂ’과‘ㅇ’으로 소리가 갈린다.따라서에는‘갈웜호호’‘표웜표표’로‘웜’이고 다른 한편에서는‘범’으로 불려내려오고 있다. 하룻밤새 화살같이 천리를 달리고도 끄떡없다는 것이 호랑이저력.서양에서 호랑이를 tiger(영어·독어 등)또는 tigre(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라 하는데 이는‘빠른동물’이란뜻의 라틴어나 그리스어(tigris)에서 온다.그말은 또‘화살’을 뜻하는 페르시아어(tighri)에서 출발하고 있고.호랑이는 화살같이 달리기 때문이다.티그리스강도 빠른흐름에서 온 이름이라한다. 기호지세라는 말이 있다.호랑이를 타고있는 형세라는 뜻으로 중도에 그만둘 수 없음을 이른다.남들은 달리는 호랑이등에 올라탄 사람을 선인이라 했다지만(추사김정희의 편지)본인은‘죽을지경’이다.IMF한파속의 우리가 바로 그꼴.정신을 잃지않아야한다.화살같은 달림속에서 떨어지지 않기위해.호랑이해가 다가와 있다.
  • 동양화가 홍석창(이세기의 인물탐구:155)

    ◎수묵화 현대화에 앞장선 문인화가/서예로 잘 닦아진 필선… 사군자 등 작품 탁월/화목에 얽매이지 않는 운필… ‘여백의 미’ 일품 수묵화의 현대적인 계승에 앞장서온 홍석창의 화가로서의 위치는 먼저 서예와의 관계에서 접근된다.먹물이 뚝뚝 떨어지는듯한 원숙한 필치와 능란한 묵법은 산수와 화훼를 시원스럽고도 깊이있게 조명할 뿐만 아니라 미리 계산되지 않은 먹의 농담과 번짐속에서 연초록의 봄이 영롱한 얼굴을 내밀고 춤추는 난(무란)과 빗줄기(우일),송혁의 시가 언뜻언뜻 비껴 나오기도 한다.그것은 그가 단순한 화가나 서가가 아닌,서화일치의 문인화가로 대별되는 중요한 미점의 하나다. ○탁월한 미적격조 갖춰 문인화란 ‘부단히 속세를 멀리하고 숨은 뜻을 견고히 하는 포의의 풍류객’이며 ‘그는 문인화의 조건에 상응되는 방식의 삶과 문인화의 정신을 고스란히 구현해온 화가’로 유명하다.예를들어 직업화가가 치밀한 묘사와 정교한 설채의 공필을 생명으로 한다면 문인화가는 학식과 교양을 바탕으로 하여 탁월한 미적격조를 갖추는 것이 다르다.미술평론가 오광수에 의하면 그의 작품이 문자향과 서권기를 드러내기 위해 ‘잘 그리려는 태’를 부리지 않고 푸근히 몸에 밴 필묵법만으로 ‘자신의 화격’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며 이러한 경지에 다다르기까지‘만권의 책을 읽어 학덕을 쌓고 천리를 여행하여 자연을 가까이 해왔다’고 설명한다.따라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군자는 일정한 형식의 틀이나 어떤 화목에도 얽매이지 않는다.오히려 적극적인 문인화적 해석은 ‘자유분방하면서도 일격의 초탈성을 잃지않는 힘찬 운필’이 일품이다.수선화나 나팔꽃 목련화가 등장할때도 대각선이나 수평구도 등의 전형적인 공간설정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구성으로 현대성을 실현시키는 것을 잊지 않는다.더구나 서예로 닦여진 견실하고 중후한 필선은 묵의 진하고 흐린 농담,마르고 축축한 고습한 변화가 화면의 허실처리에서 절묘한 ‘여백의 미’를 살리는 것도 그만의 장점으로 꼽힐수 있다. 지난 94년 중국 미술관주최로 열린 초대전에서 중국의 대평론가 소대잠은 ‘깊은 사고와 빛나는 재주를 지닌 한국의 수묵화가’란 제목으로 ‘홍석창의 회화는 선명한 동방의 색채와 심미적 흥취,내재적 격정까지도 시로써 승화된다’고 호평하고 있다.그의 수묵화 언어는 마음 가는대로 붓이 가는대로 사물을 꿰뚫는 방법으로 자신감에 찬 용묵과 용필을 휘둘러 ‘작가의 인격’과 ‘따뜻한 인간미’를 화면에다 결구하는 형식을 취한다.그리고 이 역시 오랜 서예의 길에서 얻어진 묵고적 체험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대학 1년때 화단 데뷔 홍석창문인화는 어릴 때부터 한문학자인 외조부 김병욱으로부터 ‘동몽선습’ ‘고문진보’ ‘통감’을 배우고 집안의 어른이던 영운 김용진을 직접 사사하는가 하면 이후 일중과 여초로부터 본격적으로 글씨를 배워 홍대 1학년때 국전 서예부문 특선으로 화단에 데뷔했다.공무원이던 홍기원씨의 5남1녀중 장남.시골에서 배운 사군자실력으로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이당 김은호 청전 이상범 심산 노수현과 월전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대가들을 두루 섭렵했고 동양화의 진수인 수묵화에 추상적 형태를 띠기시작한 것은 대학졸업후서양화의 앵포르멜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부터다.‘운필에 역점을 두고 먹을 주로 하는 작업’에 눈을 돌리게되자 비정형적인 것과 구상의 혼합,강열한 채색화를 시도하게 되었고 각체의 필력을 다룰줄 아는 웅장하게 용솟음치는 개혁적 설채를 이룩하게 된 것이다.대학을 졸업하던 해 국립중앙공보관에서 열린 첫번째 개인전에서 ‘완전 전통에서 변화된조형적 해석과 실험성이 가미된 작품세계’로 화단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는 동양화의 진수를 심도있게 공부하기 위해 30세이던 지난 70년,한국인으로는 처음 중국 문화대학 예술대학원에 유학하는가 하면 중국에서활동하던 미술애호가이자 대수장가인 안기와 추사에 대한 연구를 끝내고 돌아오자 ‘용필’쪽에 비중을 실은 일련의 실험적 묵흔작업으로 먹의 깊이와 여운을 살린 추상적 수묵화작업을 펼쳐보이기 시작했다.청대말의 문인화에서 엿볼수 있는 이때의 작품을 관심있게 지켜본 평론가 유홍준은 ‘담백한 무기교의 기교’가 우리 동양화의 특징이라면 ‘기교없이 담담한 그의 성품은 우리 자연과 가장많이 닮아있는 화가’라고 지적한 바 있다.실제로 그에게 사군자를 배운적이 있는 공평아트센터 김상철 관장도 ‘사군자라는 것이 그러하듯 선생님의 조용하고 낮은 음성은 이러한 수업내용과 썩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작품에 대한 정열은 무한한 반면 성품은 소박하고 소탈하여 어떤 그림을 그려도 재기를 부리지않고 습필 갈필을 혼용하지 않으며 ‘변하지않는듯 변할뿐’ 일신을 꾀하지 않는 것도 홍석창 문인화의 특장이다.가족은 서예가인 정순희씨(수원대 출강)와의 사이에 선아(홍대 대학원) 미림(홍대재학중)자매. 이 시대 드물게 시서화를 겸하면서 그만의 기인기서 기인기화를 지키는 그는 언제부턴가 ‘철학과 인생이 농축된 평담천진의 경지’에 와 있다.화조와 산수에서는 비록 인물의 형상은 보이지 않지만 입의와 조형미가 함축된 조경에서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출하고 노장철학과 미학의 논리로서 서방예술을 앞지르기도 한다.더이상 미의 극치에 탐닉하지 않는 천의무봉의 자세,학문의 연찬에서 오는 격조높은 정신세계만이 임리한 묵을 이룰수 있듯이 그의 ‘묵십지십채색’은 붓길이 닿는 것마다 점이자 선이며 향기로운 여백의 창만이다. 현대적 수묵과 전통적 문인화를 종합한 최상의 명작을 향하여 지금 이 화가는 유창탁발로서 내면의 심서를 무르익게 탄생시키는 가장 눈부신 묵흔의 황금기에 고고하게 서있다고 할 수 있다. □연보 ▲1940년 강원도 영월 출생 ▲1961-84년 한국미협회원전 ▲1964년 홍대 미대 동양학과 졸업 ▲1965년 제1회 개인전(국립중앙공보관) ▲1967-71년 신수회전 ▲1971-74년 시공회전 ▲1972년 중국문화대학예술대학원 졸업 ▲1974년 한중합동서화전(중국) ▲1975년 한국미협전 최고상 ▲1975-85년 창조회전출품 ▲1976년 신세계미술관초대 개인전 ▲1976-77년 아세아현대미술전초대 및 한국대표로 참가(일본) ▲1978년 제6회 개인전(동산방화랑 ▲1982·83년 국제현대수묵화연맹전 ▲1985년 제7회 개인전(선화랑초대),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1991년 중앙미술대전·전국휘호대회·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1992·93년 한국화대전 심사위원 ▲1994년 북경 중국미술관 주최 ‘한국화가 홍석창화전(9번째 개인전)’외 국립현대미술관초대 한국화단면전·동양화실경산수전·한국화 오늘과 내일의 전망전·수묵의 형상전·한국화 오늘의 상황전·한국화동향전,한·중 현대수묵화전 등 국내외회원전 1백30여회 출품 홍대 미대 교수·홍대 박물관장·한국미협이사·동방연서회이사·동방현대수묵화회회장·국제현대수묵화연맹 한국지회장·한중미술협회 수석부회장
  • 황장엽·김덕홍 주요 진술내용:Ⅰ

    ◎산소 없애 생물 죽이는 ‘기화폭탄’개발 소문/남측 정정혼란때가 전쟁도발 최적기/김정일 전쟁명령 지휘체계 대폭 축소/‘전쟁나면 미국도 사정권’ 승리 장담 ▷북한의 전쟁준비 동향◁ (1)전쟁준비 관련사항 ○김정일의 전쟁관 및 전쟁의지 김정일은 군대가 많고 수십년간 전쟁을 준비해 왔기 때문에 전쟁을 하면 이길수 있다고 생각하며 한국군을 겁내지 않고 있음. 김정일은 김일성이 50% 밖에 독립시키지 못했다면서 자기대에는 무조건 무력통일시키겠다고 하며 “통일조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정치적 야욕을 가지고 있음. 북한은 전쟁을 6개월 이상 끌지 않는다고 해서 전쟁물자를 6개월분만 비축하고 있음.북한 특수부대원들에게 한국군 군복을 입혀 북측지역에 침투할 것으로 위장한 후 한국군이 먼저 도발했다면서 서울에 5∼6분동안 포를 쏘아 잿가루로 만든 다음 미군이 증원되기전에 부산까지 밀고 내려가고 미국이 개입하려 할 경우 동경 등 몇개 일본도시를 미사일로 타격하여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함으로써 개입을 저지시킨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음 김정일이 권력의 핵심으로 등장한 70년대초부터 모든 부서는 전쟁준비에 주력하도록 해왔으며 특히 91.12 김정일이 최고사령관이 된 이후에는 전쟁분위기가 더욱 고조되었음. 김일성 사망이후 김정일은 수시로 “조국통일의 주력은 군대다.믿을 것은 군대뿐이다.모든 힘을 다해 군대를 지원하라”는 지시를 수시 하달하는 등 오직 전쟁준비에 광분해 왔음. 김정일을 포함한 지휘부는 전쟁시 승리를 100% 확신하고 있으며 일반주민들은 남한군을 「허재비」(허수아비)로 인식하고 있음. 김정일은 “북한이 없는 지구는 존재할 필요가 없으며 북한이 망하게 되면 세계와 함께 자폭하겠다”고 극언하였음. 북한의 김정일 및 당·정·군 고위간부들은 경제력 등은 남한이 월등하나 군사력은 북한이 우세하여 외부간섭(미국)만 없으면 100% 힘에 의한 적화통일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음. 한편 주민들은 극심한 식량난으로 차라리 전쟁이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 62.10 쿠바사태시 김일성은 “형님 지갑돈은 내 지갑돈만 못하다.항상 내지갑에 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전쟁준비를 시작,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한다는 정책을 추진해왔음. 김정일은 64년 김일성대학을 졸업한 후 국방건설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지휘하였으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군사분야에 관여해 왔음. 북한은 전쟁이 발발할 경우 평시체제를 그대로 전시에 적용하는 전시형 국가관리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무기생산은 100% 자체 해결하고 있고 전투헬기·미사일·방사포도 대대적으로 생산하고 있음. 63년 김일성을 수행,평강지구(5군단 사령부)를 방문했는데 갱도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하고 대포출입이 가능케 되어있는 등 완전 지하요새화가 되어 있었음. 산업분야의 전기공급이 아무리 부족해도 지하군사시설에 사용되는 전력은 절대로 다른 곳에 전용할 수 없음. 평양근교 지하 군사시설의 경우 조명·급수·환기장치 등이 완비되어 있음. 92년 창군 60주년 군사퍼레이드시에 본 모든 장비는 자행식이었으며,군내에서는 남한을 3번 “잿가루”로 만들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함. 북한의 특수전 부대들은 부대별로 남한내 미사일기지·공항 등 주요 전략시설에 대한 타격목표를 선정해놓고 있으며 유사시 항공육전대(공수부대)나 쾌속정으로 들어가서 타격하도록 되어있음. 중앙당 간부를 비롯,전 주민들은 군대에 ‘헌납미’를 바치는 등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중앙당에서 군에 대한 간부들의 지원실적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지원활동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음. ○전쟁 도발 시기 과거 북한이 도발의 호기라고 보았던 시기는 ‘4·19’라고 생각하였으나 소련과 중국이 반대했으며 또한 전쟁복구 건설이 겨우 끝난 시기였기 때문에 내려오지 못했으며 지금은 대선문제로 상당히 노리고 있을 것임. 한편 전쟁위기가 높았던 시기는 푸에블로호 사건(68.1)·EC­121 격추사건(69.4)·판문점 도끼만행사건(76.8)때로서 주민들을 모두 소개시킨채 “들어오면 하겠다”는 분위기여서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보였음. 미국과 중국의 태도가 문제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의 정정이 더 혼란상태에 빠지는 때가 도발의 최적시기가 될 것이며 남한내 지하조직을 이용,혼란을 조성하는 한편 미국의 군사력이 여타 분쟁지역으로 쏠릴때 도발할 것으로 예상함. 김정일을 비롯한 지도부는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고 민심도 불안해지고 있는 현상황에서 믿을 것은 무력밖에 없기 때문에 전쟁이외에는 출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음. ○전쟁지휘 체계 및 군사전략 전쟁지휘체계는 종래 ‘김일성→인민무력부장→총정치국장→총참모장’체계로 되어 있었으나 김일성 사망이후에는 지휘계통을 거치지 않고 ‘김정일→총참모부 작전국장’으로 바로 지시가 내려갈 수 있도록 되어있는 등 김정일의 독단적 명령에 의해 전쟁이 발발할 수 있음. 북한은 전쟁 발발시 평시체제를 그대로 전시에 적용하는 전시형 국가관리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별도의 전쟁지휘기구가 필요없음. 북한의 전쟁 시나리오는 ‘전략전’전략에 입각,십수만명의 특수부대원을 사전에 투입시켜 미사일 기지·비행장 등 주요시설을 타격하는데 이어 기동전을 통해 남한전역을 장악한다는것임. 특히 김일성 사후 미사일·방사포 등 화력을 통해 단시간내 서울을 비롯한 전략지대를 타격·파괴시킨후 협상을 추진한다는 전법을 세워두고 있음. 김정일은 김일성 사망 2년전에 최고사령부 ‘작전조’와 함께 남침 시나리오를 작성하였으며,동 시나리오를 본 군 지휘관들이 당장 실천에 옮기자고 하였으나 김일성이 인민생활부터 먼저 해결한 다음에 해야 한다면서 유보하였음. 전쟁이전 단계에서는 우선 남한을 미·일·중·러 등 큰 나라와 이간시켜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 미군철수를 유도하는 것임. 김일성,“미군만 철수하면 제주도를 떼어주어도 좋다”고 언급 미국이 개입할 경우에는 ‘인간어뢰’와 항공기에 의한 자살특공대 등으로 미항공모함을 몇척 까부셔 미국여론이 조선전쟁 참여를 반대토록 유도하며 또한 장거리 미사일로 일본을 초토화하겠다고 위협하여 미국이 물러서도록 유도할 것임. 북한은 동맹조약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지원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고 있으며 다만 북침시에는 중국이 북한을 지원해줄 것으로 믿고있음. ○김정일의 군부장악정도 김정일은 최고사령관(91.2)과 국방위원장(93.4)에 취임,명실공히 군통수권을 장악한 이후 대규모 장성진급 및 3선 감시체계(지휘·정치·보위부) 등을 통해 군부를 완전히 장악하였음. 총참모장조차 김정일의 지시사항만 수행하고 있으며 사소한 반대의견이나 제안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군을 장악하고 있고,조명록(총정치국장),김영춘(총참모장),원응희(보위사령관) 등이 측근으로 활동하고 있음.조명록 총정치국장은 공군사령관을 하다가 김정일이 마음이 곱다고 해서 군 정치책임자로 발탁하였음.김영춘 총참모장은 정치적인 감각이 없으며 전략을 쓸만한 인물이 못됨.오극렬 작전부장은 무력부내에 기반을 갖고 있고 머리가 명석하며 김일성이 총참모장직에서 해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이 당작전부장으로 재기용했음. (2)군사력 증강 관련사항 ○무기개발·생산 및 기술도입 실태 북한의 잠수함 건조는 러시아가 해체한 잠수함에서 회수한 강판을 도입하여 사용하고 부품은 외국에서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특히 전자부품 및 장비는 일본에서 도입하고 있음. 김정일은 중국의 무력을 높게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으로부터의 무기 또는 무기개발기술을 도입하고 있지않으며 소련의 신형무기를 얘기해도 “그런 것은 다 낡은 것”이라고 무시하면서 설명서를 보지도 않음. 북한은 무기개발을 위해 필요한 외국기술자 초청은 인민무력부가 외교부를 통해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음. ○군수부문 우대정책 지속 67년 제4기 15차 당 전원회의시 경제·국방 병진정책을 제시한 이후 군수부문 우대정책을 지속 실시하고 있음.동 희의에서 주변국가들의 정세를 분석한후 무력통일을 자체의 힘으로 해야 한다고 결정하였음. 김정일의 군수공장 우대 실태를 보면. 각 공장·기업소는 민수에는 일체공급하지 못하더라도 군수부문에는 계획대로 최우선 공급해야하며 그렇지 않으면 군사재판에 회부토록 하였음.군수공장은 정무원과 별도로 당중앙위 군수공업부(비서 전병호)에서 관장하고 있으며 모든 민수공장에도 군수생산 직장(부서)을 설치하였으며 여기에 대한 검열도 군대가 하고 있음.군수생산계획 집행여부를 평가하기 위해 당중앙위 군사위원,정치국 상무위원,도당 책임비서,공장·기업소 당비서 및 지배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당 중앙군사위원회 명령 총화회의’를 개최하여 실적 부진자는 직위고하에 관계없이 문책하고 있음. ○전쟁물자 비축 군수동원총국에서 전쟁물자 비축을 총괄하며 동 총국은 행정적으로 호위총국과 같은 독자적인 기구로서 정치위원이 중장으로 편제되어 있는 등 중요시되는 기관임. 전쟁물자의 수입은 2경제위원회가 외화벌이를 해서 조달하며 정무원 등 다른 부서에서는 관여하지 못함. (3)핵·생화학·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핵개발 문제 김일성은 64년 중국의 핵실험에 대해 “장수가 바지벗고 칼차는 격”이라고 말했던 점으로 보아 당시만 해도 핵무기를 가지려는 의지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음. 84∼85년경 당시 주평양 소련대사가 황장엽에게 “북한이 핵을 개발한다는 말들이 많은데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으면서 NPT가입을 종용한데 대해.황장엽은 “그런게 있겠는가”하는 식으로 대응한후 이를 김부자에게 보고하자 김부자로부터 “묵살하라”는 지시를 받은바 있음. 김영남 외교부장은 85·12 NPT에 가입하고 핵안전협정을 체결(92·4)했으나 군수담당 관계자들은 “NPT 가읍으로 골치가 아프게 되었다”면서 김영남을 비판한 바 있음.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비록 핵무기와 관련시설을 직접 본적은 없으나 92년 IAEA 특별 사찰 문제가 제기되었을때 NPT를 탈퇴(93·3)했다는 점에서 모든 당비서들이 그렇게 믿게 되었듬. ○미·북 핵합의 관련동향 미·북 핵협상시 모든 전략은 김정일이 강석주를 통해 직접 지시했으며 여타기관은 여기에 관여하지 않았음. 북한이 화력발전소 대신 경수로 지원을 요청한 것은 화력발전소는 완공후 유류 등 원료공급 능력이 없는 반면 경수로는 연료인 우라늄이 대량 매장되너 있기 때문이었을 것임. 경수로 건설 관련 남측인력의 대규모 방북시 신포인근을 철저히 통제,북한주민과의 접촉을 최대한 차단할 것임. ○핵관련 북한내 동향 및 기타사항 91·12 ‘한반도 비핵화선언’에 합의한동기는 대외적으로 평화이미지를 과시하고 남한 내부의 핵관련 정책분열을 조장키 위한 것이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있음. 85·12 NPT 가입은 구 소련으로부터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지원을 얻기 위한 것이었음(85·12 구 소련과 440MW 경수로 4기 공급협력협정 체결). 92·4 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한 것과 미·북 제네바 기본합의(94·10)등은 모두 시간을 벌기위한 전략에서 추진되었고 그 결과 북한은 경수로 건설,매년 50만톤 중유 획득 등의 이득을 보게 되었으며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다고 인식하고 있음. 일부 고위층 간부들은 92·4 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 이후 핵사찰 문제로 인해 대북한 국제정세가 긴장하게 돌아가자 자승자박한 것이 아닌가 하고 외교부에 불만을 토로한 바 있음. ○화생방무기·미사일 개발실태 높은 수준의 화학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으며 ‘화학무기 금지협약’에도 가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북한의 확고한 입장이며 상층부에서는 생물무기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인시기하고 있음.북한은 남침시 미국의 개입을 방지하고자 화학무기가 장착된 장거리 미사일로 ‘일본을 초토화’시키겠다고 위협할 것임. 항간에는 포에 장착하여 발사하면 부근의 산소가 없어져 모든 것이 죽는다는 폭탄(기화폭탄 추정)이 개발되었다는 소문이 있음. (4)대남 군사태도 ○대한국·주한미군 인식 북한권력 핵심층과 군 간부들은 북한의 재래식 전력이 세계4위 수준이며,화학무기는 세계적 수준으로 약점이 없는 부대라고 생각하고 있어 한국군의 능력에 대해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미군만 없으면 전쟁에서 이길수 있다고 믿고 있음. 남한의 함정·항공기 움직임을 적시에 식별·감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고.남한 국방비가 북한보다 많다고 하지만 이에 상관없이 수도권에 대한 5∼6분 정도의 포공격으로도 잿가루가 된다고 믿고 있음. 지금까지의 전쟁에서는 미국땅에 포탄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북한과의 전쟁에서는 미국은 결코 후방이 될 수 없다고 하면서 북한 특공대가 남한과 같이 미국에도 임의의 신간에 침입할 수 있는 것처럼 주민들에게선전하고 있음. 미국이 침공할 경우 인적손실을 감수하더라도 함정·항공기 등을 몸으로 직접 막게되면 미국이 물러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걸프전은 전쟁이 아니라고 하면서 미국과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함. 91년 걸프전 이듬해 김정일은 미국 무기의 약점을 분석하고 이를 격파하는 영화를 제작,군내 작전국등 지휘부 간부에게 시청케 함으로써 미군도 이길수 있다는 자신감 고취 교육을 실시하였음. 미순양함 1척을 자폭해서라도 폭파시키면 미국내에 반전여론이 만연되어 한국을 포기하게 될 것이며,남쪽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말만으로도 남한인민들을 전쟁공포로 떨게 만들수 있다고 믿고 있음. ○팀 스피리트훈련 인식 북한 당·정 간부들은 T/S훈련의 목적이 ①훈련을 진행하다 북한의 방어태세가 허술할 경우 북침하거나 ②한반도에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여 북한경제를 마비시키기 위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 동 훈련기간중 전군의 군사장비들이 상시 기동태세를 유지함으로써 유류난 속에서도 막대한 유류소모가 불가피하고 군 병력의 경제건설 활동도 중잔됨으로써 북한경제에 미치는 피해가 상당함. 특히 93·3 T/S 훈련을 핵사찰 문제로 인해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는 등 최고조의 긴장태세를 유지하였는바 김정일은 집무실 지하에 설치된 작전상황실에서 집무를 하였고 중앙당은 각과별로 1명씩 당중앙위원회에서 비상근무를 하였으며 모든 차량을 징발하여 대기시키고 군대를 갱도에 투입하였음.
  • 탐나는 하늘 향기로운 바람/왠지 설레는 제주여행

    ◎추사유적지·휴양목장·유람선 관광·골프/최근 상품 다양해지고 값도 싸지는 추세 해외여행이 부담스러운 사람에게는 제주도 여행을 권할만하다.그동안 경비절감 노력으로 비용이 과거에 비해 파격적으로 싸진데다 이국적인 풍취와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맛볼수 있기 때문이다.게다가 1박2일의 천편일률적인 상품에서 기간을 늘린 상품도 나와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우성항공여행사는 2박3일의 신상품을 출시,제주도 관광을 여유있게 즐길수 있게 한다.하오에 서울을 출발,제주도에 도착한뒤 중문관광단지로 이동,제주도의 4계절을 담은 영화를 관람한뒤 숙소에서 묵는다.둘째날에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시 지냈던 적거지,산방굴사,용머리 해안,여미지 식물원,관광농원,천지연폭포를 구경한뒤 마지막날에는 명도암 휴양목장,성읍민속마을,성산일출봉 등 명소를 둘러본뒤 유람선관광 등을 즐기고 저녁 8시30분 비행기에 오른다.비용은 숙소 등급에 따라 27만4천원(하이얏트)∼21만4천원(하나호텔)까지 4종류가 있다.여미지식물원,서귀포 유람선,휴양목장에서의 승마는 선택관광으로 별도의 돈을 내야 한다. 이 회사는 또 골프투어도 판매하고 있다. 1박2일 골프투어는 토요일 출발하는 주말행은 48만원,화·목요일 출발하는 주중행은 35만원이다.2박3일 골프투어는 주중행(화·목)은 45만원,주말행(금)은 58만원이다.중문골프장에서 골프를 두차례 즐길수 있으며 숙박은 하이얏트 호텔.연락처 732­0808∼9,736­0808. 이와 함께 오는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 제주 신라호텔 개관 7주년 기념 홀·인원 골프대회도 준비하고 있다.일반 아마추어 남녀골퍼나 부부팀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왕복항공료,숙박료,골프 2회,환영만찬 등을 포함 1박2일은 39만원,2박3일은 48만원이며 오는 16일까지 모집한다.연락처 230­3685.
  • 고미술품 2,836점 전시/공평아트센터 27일까지

    ◎전시품 일부 특별경매/「중국 근대회화전」도 열어/새달 1일까지 간송미술관 초여름 고미술과 중극 근대회화 대작들을 감상할 수 있는 대규모 전시회가 나란히 열려 화제다. 한국고미술협회가 서울 공평아트센터 전관(733­9512)에서 열고 있는 「97한국고미술대전」(27일까지)과 간송미술관(762­0442)이 마련하고 있는 「중국근대회화전」(6월1일까지).고미술대전이 고미술협회 차원에서 열어온 고미술전중 최대규모라면 중국근대회화전은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중국 근대 대가들만을 소개하는 보기드문 전시들이다. 고미술대전에는 도자기 1천25점,토기 367점,철물 69점,서화·전적 237점,목기 509점,민속품 629점 등 무려 2천836점이 출품돼 있다.지난해 일본에서 들여온 삼국시대 삼존불 형식의 「금동여래입상」을 비롯해 고려시대 「청자음각모란절지문매병」,조선전기의 「백자철화운용문호」,고종황제의 49세떼 모습을 그린 「어진」,대원군의 「석란10곡병」 등이 모두 귀한 것들이다. 고미술대전의 특징은 전시품중 1백만원 이상 품목에 대해 감정보증서가 무료로 발급되며 전시 마지막 3일간 특별경매가 실시된다는 점.특별경매에서는 각 경매품에 대해 최저 입찰가가 기록된 채 전시되는데 입찰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경매품에 대해 입찰가를 기록한 접수증을 정해진 시한내에 접수처에 제출,이 접수된 입찰 경매가가운데 마지막날 최고 입찰자를 일괄발표하는 형식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고미술협회측은 이번 경매방식과 관련,『입찰자들이 값을 부르는 기존 방식에 비해 경매물품의 이동이 적어 안전하고 입찰자들이 입찰 이전에 경매품의 가격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입자의 비밀도 보장되는 만큼 좋은 반응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귀중한 고미술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간송미술관의 「중국근대회화전」은 1800년대 이후 20세기초까지 우리 서화에 큰 영향을 미쳤던 대가 70여명을 엄선해 보여주는 자리.고증학과 금석학을 개척한 추사 김정희를 비롯해 역관으로 중국을 13차례나 왕래한 이상적(1803∼1865),추사의 말년 제자인 김병선(1830∼1891)과 역시 추사의 제자이면서 상해로망명해 그곳 사람들과 사귀던 민영익(1860∼1914) 등 세사람이 각각 수집해 전해오다 간송미술관으로 옮겨진 중국 작가의 작품들중 당대에 완성된 것들만 추려 보여주는 자리다.
  • 통추,이수성 고문 지지 움직임/김원기 대표 이 고문측과 교감

    ◎이수인 의원 지지작업 착수설 야권의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대표 김원기)가 신한국당의 이수성 고문을 여권의 대선후보로 지지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3김정치 청산과 지역주의 타파」를 기치로 내걸고 지난해 11월 출범한 통추는 독자적인 대선후보를 내세우기 어려운 여건을 감안,「범국민후보」로 이고문을 지지하는 방안을 심도있게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와 관련,통추의 김원기 대표는 지난 3일 이고문과 만나 이 문제를 논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두 사람은 40년 가까이 절친한 관계를 유지해 온 군입대동기.통추의 이고문 지지움직임도 김대표와 이고문의 친동생인 민주당 이수인 의원이 주도하고 있다.이의원은 특히 자민련의 대구·경북지역 의원들과 잇따라 접촉을 갖고 이고문 지지 분위기를 띄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통추 내부에서는 일단 신중론이 우세하다.통추사무처장인 제정구 의원은 『지금은 통추의 조직강화 등에 주력해야지 특정인의 지지를 논의할 때가 아니다』고 밝혔다.통추가 이고문 지지방침을 굳히더라도 당장 가시적인 지원을 펴기는 어렵다.한 관계자는 『정당이 다른 이상 이고문이 신한국당내 대선후보로 결정된 이후에나 본격적인 지지운동을 벌일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조선시대 유명인사 200여명 인장모음집/「한국고인대관」편찬 착수

    ◎다산 실인 120과 등 2만여과 수록/이원기씨 20여년 수집… 사과가치 커 서울 인사동에서 고미술 수집가로 널리 알려진 이원기씨가 추사와 다산 등 조선시대 명인들의 인장을 집대성한 인보인 「한국고인대관」편찬작업에 착수해 화제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선 「한국회화대감」 「서화인명사서」 등 회화와 미술분야의 인명·작품사전들이 나와있으나 인장을 집대성한 이같은 도록을 낸 적은 없었다.특히 이씨는 이 인보편찬 말고도 인장박물관인 「한국고인사료관」을 만든다는 숙원을 갖고있는 만큼 이 인보편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씨는 지난 20여년간 인장을 수집해와 인사동에선 인장에 관한한 탁월한 전문가로 인식될만큼 이 분야에 정성을 쏟아온 인물.고서화 수집을 하던 지난 1971년부터 인장에 대한 애착을 가져 인장을 볼 때마다 주저없이 구입했다.특히 지난 85년 원주의 한 상인이 다산의 인장 2과에 대해 감정을 의뢰해 온 때부터 다산의 자취를 직접 추적,다산의 인장만 해도 120과를 모았다. 이씨는 그동안 벌여온 인장 수집작업을 일단 마무리짓고 그간 모아온 실인과 도장 인쇄본인 인존 2만종을 집대성해 도록으로 만들 계획이다.이를 위해 우선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도장과 인존에 대한 검증차원에서 문화재위원과 전문위원에게 감정을 받은뒤 본격적으로 편찬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일본의 경우 50여년전인 1943년 역대 유명인사들의 인장과 인존 1만5천방을 모아 인보를 냈을만큼 인보가 발달했으나 우리는 1968년 국회도서관에서 유명 서화작가의 인장 1천200종으로 펴낸 근역인수를 빼놓곤 한번도 정리된 것이 없다.이 근역인수도 실제 인장의 내용과 크게 다른게 많아 학계에선 인보 정리의 필요성이 적지않게 대두돼왔다.특히 인보는 고서화의 낙관과 비교해 진위여부를 가릴 수 있는 기초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사료적인 가치가 큰 것으로 지적돼왔다. 이씨가 소장하고 있는 인장은 다산 정약용의 실인 120과등 실제인장 600여과를 포함,실인·인존 등 모두 2만여과.다산의 자취를 따라 정읍 김제 청주 광주 등에서 모은 다산 인장말고도 추사 김정희,초이선사,허소치 등 조선시대명인 50명의 실인 등 200여명의 인장이 들어있다. 이씨는 『인장은 옛 선인들의 인격과 성품을 알 수 있는 좋은 사료가 될 뿐 아니라 도장을 장식하는 형태도 다양해 조형미술 차원에서도 연구할 가치가 많은 훌륭한 문화유산』이라면서 『소장 인장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거쳐 일반인들에게 널리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 어느 옛 선비의 공직관/양태진 영토문제연구가(굄돌)

    조선조 중기 김수팽 형제는 미관말직에 있었으나 직분에 충실해 칭송이 자자했다.수팽이 하루는 급히 처리할 일이 있어 공문서를 가지고 상관의 집을 찾으니 마침 손님과 바둑을 두고 있었다.인사를 하니 머리만 끄덕일 뿐 바둑에만 열중하고 있었다.기다리다 못해 수팽은 바둑판을 쓸어버렸다.그리고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사죄하고 급한 결재사항에 관해 아룀으로써 결재를 받아 곧바로 다른 아전에게 서류를 넘기고 사표를 제출하니 선공후사를 실천한 수범자라 하여 사표가 철회되었다. 이 당시 나라에서는 민가의 처녀 가운데 궁인을 선발하였는데 이는 국법으로 정해져 있었다.마침 수팽의 딸이 궁인으로 뽐힘에 그는 신문고를 두드려 임금께 그 폐단을 직소하니 즉시 이 법을 폐지하게 함으로써 수팽은 위민입법에 공헌하였다.어느날 수팽이 숙직을 하는데 환관이 느닷없이 긴급히 일금 10만량을 지출하라고 요구해 왔다.환관의 독촉이 심할수록 수팽은 절차를 차근차근 밟아 진행해 환관을 화나게 하였다.환관은 임금께 고해 수팽을 즉시 파면 하옥시켜야 한다고 하였으나 임금은 전후사정을 듣고 난 후 직분에 충실,적법준행한 관리라 하여 특진시켰다. 이렇듯 수팽이 올바르고 기개있는 품격으로 공직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강직한 어머니의 가르침과 생활관에 있었다고 한다.수팽이 어렸을때 어머니가 아궁이 속에서 금덩이를 발견하자 아무도 모르게 아궁이속에 다시 묻어버리고 이사를 해버리고 말았다.얼마후 이 사실을 남편에게 말하고 또한 자식들에게는 『벼락부자가 되는 것은 상서로운 일이 아니며 횡재는 횡액을 낳으니 사람은 언제나 정당한 노력의 대가로 살아가야 한다』라는 신념하에 자식들을 교육시켰다. 이 이야기는 정조때 추사의 문하에서 수련을 쌓아 시인으로 화가로 명필로 이름이 높았던 우봉 조희용의 사외사적 열전이라 할 수 있는 호산외사에 실려있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교훈이 되지 않을까 하여 소개해 보았다.
  • 절제없는 여행(외언내언)

    우리 국민이 올해 해외에서 지출한 여행경비가 정부예산(60조원)의 10%에 가까운 5조9천2백억원이 될 것으로 한국은행은 전망하고 있다.이 액수는 지난해보다 8천4백80억원이 늘어난 것.1인당 평균 여행경비는 1천609달러(1백29만원)로 우리보다 훨씬 잘사는 미국의 1인당 여행경비(937달러)보다 1.7배,독일(640달러)보다는 2.5배나 더 쓴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인의 해외여행 씀씀이가 헤프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통계는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한다.세계화·개방화시대에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외국에서 견문을 넓히면서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또 돈을 많이 쓰더라도 그만큼 가치 있는 것을 얻는다면 나무랄 일이 아니다.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못하니 안타깝다.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여행의 본뜻은 저버린 채 무조건 고급품이나 비싼 물건을 싹쓸이 하는가 하면 불건전한 쾌락을 즐기는데 돈을 물쓰듯하고 그것을 자랑까지 한다.이같은 천박한 행태는 자신뿐만 아니라 전체국민을 욕되게 한다. 우리는이런 사례를 수 없이 보아왔다.태국등 동남아시아에서의 보신관광,중국에서의 졸부행세 등이 좋은 예다.그런가 하면 한국인 여행자는 현금을 많이 갖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져 소매치기와 폭력배의 표적이 되어 많은 피해를 보기도 한다.지난 94년 공보처는 해외공보관을 통해 수집한 「해외에서의 국가이미지 실추사례」를 발표,과소비와 추태관광을 경고한 바 있지만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것 같다. 이제 우리도 알차고 세련된 해외여행을 할 때가 됐다.여행사의 각성이 필요하고 관계당국의 효과적인 관리와 지도가 절실하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해외여행에 나서는 개인의 마음가짐이다.돈은 돈대로 뿌리면서 나라망신을 시키고 다닌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짓은 없을 것이다.경제수준이 높다고 해서 선진국민이 되는 것은 아니다.품위 있고 절제된 여행을 할 줄 아는 것도 선진국민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 북한사과는 직접적이어야(사설)

    북한은 최근 북·미 뉴욕접촉채널에서 잠수함침투사건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명할 용의가 있음을 비공식적으로 내비친 것으로 알러졌다.우리는 북한의 이러한 시사가 그동안 우리정부가 요구해온 북한당국의 사과를 실현시키는 단초가 될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하는 바다. 현재 알려진 북한측의 의향은 침투사실을 시인하는 것이 아닌 애매한 내용이며 누구를 상대로 유감의 뜻을 표명하겠다는 것인지도 분명치 않은 상태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북한이 한국을 배제한채 미국을 상대로 유감표명을 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으며,특히 사실상의 북·미간 군사접촉채널인 군사정전위 비서장급회의를 통한 사과 가능성을 탐색중이라는 분석도 있다. 우리는 잠수함침투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는 한국정부를 상대로 직접적이고 솔직하게,그리고 명시적으로 이루어져야함을 강조한다.그렇지 않은 사과는 우리에게 아무 의미도 없으며 상황개선에도 아무 기여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무장간첩 26명을 태운 잠수함을 휴전선 남쪽 수역에 침투시킨 사건은 과거의 도끼만행사건이나 미군 헬기 격추사건과는 전혀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다. 그건 군사분계선상의 우발적 사고나 충돌이 아니라 북한 군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자행된 주권침해요,무력도발이었다. 이 사건으로 한국에서는 남파공비에의해 무고한 양민이 학살되는등 수십명의 인명피해와 수천억원의 경제적 피해를 입었고 한반도 및 그주변의 평화와 안정까지 크게 위협받았다. 이사건은 결코 미군 대령과 북한군 대좌가 마주앉은 정전위 비서장회의차원에서 처리될 일이 아니다. 잠수함사건에 대해선 북한당국이 한국정부에 솔직히시인,사과함은 물론 재발방지를 다짐해야 마땅하다. 물론 이는 모두 문서로 이루어져야 할것이다.북한이 요구하는 잠수함승무원유해 송환은 그 뒤에 논의할 문제하고 본다.
  • 석유개발공 장석정 사장(공기업 최고경영자에 듣는다)

    ◎“2000년까지 채굴가능량 3억배럴 확보”/광구 5곳서 생산중… 30곳선 유전개발 한창/97년까지 비축량 48일분 확보… 조기 민영화는 어려워/사업전략 공세적 전환… 투자회수율 78% 달성 지난해 연말부터 모빌·텍사코 등 세계유수의 석유메이저들이 한국석유개발공사를 찾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유개공의 역할과 대외지명도가 높아졌음을 의미한다.지난 2∼3년간 유개공은 직접 광구운영권자가 되기도 하고 국제입찰에서도 나서 새로운 경영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유개공 장석정 사장을 만나 안정적이고 저렴한 원유확보노력과 대책을 들어봤다. ­석유개발사업은 투기성이 높은 사업인 것 같습니다. ▲석유개발사업은 광구사업에만 참여하는 데도 4천만∼5천만달러가 들어갑니다.그렇다고 해서 성공이 확실히 보장되는 것도 아닙니다.성공한다고 해도 투자된 돈을 회수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고도의 기술과 대규모의 자본이 필요한 투기성 높은 사업인 셈입니다. ○총 14억9천만불 투입 ­그동안 사업의 성과는 어떻습니까. ▲해외석유개발사업은 지난 81년 코데코가 인도네시아 마두라에서 유전을 개발한 것이 처음입니다.지금까지 유개공과 민간 25개 사가 벌인 석유개발사업은 모두 59개입니다.이 가운데 29개 사업은 종료됐고 현재는 30개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지금까지 석유개발사업에 투자된 돈은 14억8천8백93만6천달러입니다.회수된 돈이 11억5천9백만달러니까 투자회수율은 77·9%에 이르고 있습니다.현재 생산광구 5개에서 계속 생산중인 데다 탐사가 진행중인 사업에서 추가성공도 있을 것으로 예상돼 투자회수율은 멀지않아 1백%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또 세계적으로 석유개발성공률이 5%인 것에 비추어봐도 우리의 석유개발사업은 밑지는 장사가 아닙니다. ­최근 석유개발사업에 직접 국제입찰에 참여하는가 하면,광구를 매입하는 등 적극적인 경영전략을 구사하는 것 같습니다. ▲종래에는 FARM­IN형태가 대부분이었습니다.단순지분참여라고 합니다.메이저가 산 광구에 돈을 내고 들어가 석유가 나오면 지분비율에 따라 나눠갖는 것입니다.그러나 이 방법은 메이저들이 사업전망이불투명할 때 투자비의 일부를 건지기 위해 파는 것이기 때문에 성공률이 높지 않습니다.그래서 지난 93년부터 사업전략을 공세적으로 바꿨습니다. ­사업전략을 바꾼 이후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처음에는 메이저들이 컨소시엄에 끼워주지 않으려 했습니다.국제입찰은 물리탐사판독능력,재정적 신용도 등이 관건인데 한국의 유개공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죠. 그러나 미국기업 산타페와 에콰도르 유전개발사업에 참여했을 때 우리의 실력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휴스턴에서 열린 입찰설명회에서 유개공 기술진과 산타페 기술진의 물리자료 판독결과가 서로 일치한 것이죠. 이후 외국 유수석유회사가 유개공을 파트너로 인정하고 거의 동등하게 대우하는 분위기로 바뀌게 됐습니다.이에 따라 합작참여제의 및 산유국 국영석유사로부터의 수의계약에 의한 광구제공제의까지 들어오고 있습니다.현재 21건의 탐사광구 참여제의와 11건의 개발 및 생산유전 매입제의가 들어와 타당성 검토 및 협상이 진행중에 있습니다. ­생산유전매입은 영국 북해 캡틴유전이 처음입니까. ▲탐사광구참여는 성공했을 때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위험부담이 상당히 높습니다.반면 현재 석유가 생산되고 있는 유전을 사게 되면 돈은 많이 들어가지만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적습니다.또 석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습니다. ○참여·매입제의 32건 생산광구도 텍사코 등 메이저끼리 알음알음으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어 어려움이 많았는데 우연히 미국의 세브론사가 신규사업에 투자하기 위해 북해 알바유전을 팔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영국의 기업을 통해 2억5천만달러에 사겠다고 제의했는데 2천만달러 차이로 미국의 유니온 텍사코로 넘어갔습니다.알바유전의 입찰참여로 유개공의 경제성 및 매장량평가 등이 수준급이다는 것이 알려지게 된 것이죠.이 과정에서 유개공이 4천만배럴정도의 석유를 비축하고 있는 등 자본동원능력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 대외적으로 널리 펴지게 됐습니다. 이를 경험으로 캡틴유전을 2억1천만달러에 매입하게 됐습니다. ­캡틴유전은 경제성이 어느 정도입니까. ▲올 11월부터 2018년까지 22년간 생산에 들어갑니다.하루 생산량은 6만4천배럴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예상투자수익률은 12·6%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현재까지 해외석유개발로 확보된 물량은 어느 정도입니까. ▲지난해말 기준으로 5천4백24만5천배럴정도 됩니다. ­광구매입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집니까. ▲매년 5천만배럴규모의 개발·생산유전을 사 2000년까지 3억배럴규모의 가채매장량을 확보,세계 20대석유기업에 진입할 생각입니다.그렇게 되면 2010년에는 자주개발 원유도입목표인 10%를 조기에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광구를 사는 데도 많은 자본이 들어가지 않습니까. ▲개발 및 생산광구 매입자금은 공사 자체자금,에너지특별회계 대출금,외부자금으로 구성됩니다.그러나 자체자금 및 예특회계 대출금으로는 한계가 있어 대규모사업은 외부조달이 불가피합니다. ○기술력 세계가 인정 ­민간의 석유개발과 관련,유개공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해외석유개발과 관련된 정보를 업계에 신속정확히 알려줘 민간의 투자성공률을 제고시키고 있습니다.또 민간의 투자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유개공이 전략투자지역을 선정,기초지질조사 등 탐사자료를 취득,제공하고 있습니다. 또 민간기업이 단독으로 참여한 광구에 대해 기술을 지원하고 민간기업의 석유개발전문가에 대해 실무연수교육을 실시할 방침입니다. 이러한 지원책을 통해 앞으로 민간기업의 석유개발사업이 활성화되면 유개공은 대규모 정책사업,미개방지역,민간의 참여유인이 부족한 사업 등에 참여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할 생각입니다. ­국내 대륙붕에서는 좋은 소식이 없습니까. ▲70년대 해저광물자원개발법이 제정,공포된 이후 본격적으로 석유탐사가 이루어졌습니다.탐사결과 일부지역에서 가스가 발견되긴 했으나 경제성까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대륙붕 전체의 윤곽이 파악되는 등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앞으로 대소규모 퇴적분지에 대한 퇴적특성을 더욱 명확하게 규명하는 등 지속적으로 탐사를 실시할 생각입니다. ­석유비축분은 얼마나 됩니까. ▲지난 85년 4천만배럴규모의 석유비축기지 공사를 완공,87년에는 비축목표치 60일분을 달성했습니다.그러나 해마다 석유소비량이 20%씩 증가,현재 비축분은 26일치에 그치고 있습니다.이에 따라 4천1백80만배럴규모의 2차비축기지공사가 지난 91년부터 진행되고 있습니다.97년 완공되면 비축량은 48일분으로 늘어납니다.또 올해부터 5천7백만배럴규모의 3차비축기지공사가 시작돼 2002년 완공되면 우리나라의 석유비축량은 1억8천여만배럴로 늘어나 비축목표치 60일분을 달성하게 됩니다. ­3차비축기지 부지선정은 됐습니까.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비축기지 역시 님비현상으로 부지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더욱이 원전부지 등은 주민지원사업을 펼칠 수 있으나 비축기지는 예산이 없어 지원사업도 펼칠 수 없습니다.주민과 머리를 맞댈 생각입니다. ○생산성 제고 과제로 ­공기업개혁바람이 불고 있는데 유개공의 개혁프로그램을 소개해주시죠. ▲직원들에게 유전개발사업도 비즈니스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비용과 수익을 철저히 따져 생산성을 높이겠습니다.비축기지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각 분야에서 경영마인드가 주입되면 좋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요즘 공기업민영화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습니다.유개공의 민영화는. ▲사업성격상 민영화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이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장사장은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지난 76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과학기술처 과학기술심의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이후 동력자원부가 신설되면서 자리를 옮겨 기획국장·자원개발국장·광무국장·자원정책실장·기획관리실장을 거쳐 지난 93년부터 유개공사장으로 일해왔다.〈인터뷰=임태순 기자> ◎국내 유일 시추선 「두성호」 사람들/「흑진주」 캐기 고독·긴장의 나날/84년 진수… 87년부터 한반도 주변 탐사/다구적 기술자 하루 2교대 “빠듯한 작업” 『비바람엔 주화가 휘잉하며 울고 있다.이렇게 억수같은 비가 내리는 이국의 밤은 고독하다.무얼하고 있을까.서울에 남겨두고 온 사랑스런 얼굴들…졸음을 쫓고 있는 동료들의 모습에서 그리운 얼굴들이 되살아 난다…』 「가슴이 넓은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석유개발공사 사보에 실린 글중의 일부다.이 글을 기고한 사람은 망망대해에서 석유시추 작업을 벌이는 두성호 승선원. 우리나라 유일의 해양 석유시추선인 두성호는 70년대 후반 유류파동을 겪고 난뒤 우리의 기술과 자본으로 「진주」를 캐보자는 포부로 지난 84년 4월 태어났다.두성은 북두칠성의 두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석유를 퍼 담자는 바람이 담겨 있다. 석유탐사 작업은 보통 내륙에서 2백∼3백㎞ 떨어진 해상에서 이루어진다.그래서 두성호의 해상구조물은 창살 없는 감옥으로 비유된다. 이곳에서는 다국적 기술자들이 불철주야 긴장감속에서 근무한다.시추작업이 하루종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근무는 하루 2교대.12시간 일하고 12시간 쉰다.4주 일하고 나면 4주 휴가가 주어진다.휴식시간에 시추선 주위에서 낚시도 즐길수 있지만 그림의 떡이다.수면을 취하고 난뒤 업무일지 상황보고 등을 작성하고 나면 빠듯하다.나이·직급에 관계없이 음주는 금물이며 여자의 승선도 금지돼 있다. 두성호는 지난 84년부터 미국 알래스카 베링해에서 3년간 조업을 벌였다.87년 6월 국내로 들어와 대륙붕을 탐사한뒤 대만에서 2년간 시추작업을 했다.현재는 유개공이 보유하고 있는 베트남 11­2광구에서 외국회사와 계약을 체결,작업중이다. 시추선사업은 그동안 적자였다.운영비와 자본비용을 회수하기 위한 하루 용선료는 5만달러 수준인데 반해 석유개발사업이 주춤해지면서 2만∼3만달러를 맴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사정이 호전돼 시추선사업도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기대된다.북해 유전개발사업이 활발히 재개되면서 수요가 늘어나 용선단가가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계덕남시추선사업처장은 최근 북해유전에서 용선요율이 10만달러까지 상승하면서 동남아시장도 덩달아 올랐다며 유개공을 포함,4∼5개 업체가 입찰을 벌이고 있는 말레이시아 시추사업에서는 용선단가가 4만∼5만달러 수준에서 결정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현재 시추선은 전 세계적으로 6백여척이 있다.두성호처럼 반담수식인 시추선은 1백50여척에 이르고 있다.동양에서는 일본 5척,우리나라가 1척을 보유하고 있다.
  • 남제주군 대정읍 돌하루방(한국인의 얼굴:72)

    ◎또렷한 눈동자·오똑한 콧날 “너무나 인간적”/매서운 해풍 견디려는듯 목도리까지 둘러 오늘날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인성·안성·보성리는 조선시대 대정현청이 있던 고을 자리다.여기 와서 『돌하루방이 어디 있느냐?』고 토박이들에게 물었다면 『작간대 이수다』라는 대답이 나왔을 것이다. 「곁에 있다」는 제주도 사투리다.대정현 당시 쌓은 읍성의 성돌도 현무암이요,그 성벽 지척에 돌하루방 역시 회흑색 돌인지라 하루방이 얼른 눈에 띄지 않았다. 대정의 돌하루방은 대정읍성 동문과 서문, 남문에 각각 1기씩 성문 밖에 3기가 우선 몰려있다. 그리고 보성초등학교에 3기,추사관과 마을회관앞에 각각 2기,토끼동산에 1기가 자리잡았다.대정의 돌하루방은 유별나게 키가 작았다. 평균 키가 1백36㎝에 지나지 않아 제주시 돌하루방 키와는 비교가 안되고,표선읍 성읍리 돌하루방 보다도 더 작은 키를 했다. 머쓱하지 않고 올차보이는 이유가 작은 키에 들어있다. 대정의 돌하루방은 거의가 둥글넓적하고 펑퍼짐한 벙거지를 썼다. 머리통크기가 키의 절반쯤은 차지했는데,얼굴에서는 후덕한 인상이 우러났다.그 까닭은 볼에 살이 실하게 붙어서일 것이다.대정 돌하루방의 또 다른 특징은 눈이다. 석수장이 타지역과 차별화를 시도했는지는 모르나 대정 돌하루방 눈에는 동자를 새겨넣었다. 이들 대정 돌하루방은 눈동자가 분명했으니까 읍성을 지키는데 어설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정 돌하루방의 코는 제주시의 돌하루방과 사뭇 다르고 코만을 비교한다면 표선면 성읍리 돌하루방을 좀 닮았다.그래서 제주시 돌하루방의 주먹코와는 달리 콧마루가 비교적 오뚝하고 길다.입은 작게 오목새김 했다.더러는 작은 입을 다물었고 또 어떤 돌하루방은 약간 느슨하게 입을 열었다. 흔히들 말하기를 인간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한 것이 대정의 돌하루방이라는 것이다.겨울 해풍이 매서워 목도리를 두른 돌하루방이 몇몇 있고 보면 사람이 하는 짓도 따라 하는 모양이다. 그러면 제주도의 돌하루방은 뭍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섬에서 스스로 태어난 것일까,아니면 어디서 흘러들어온 것일까.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없으나추정은 두 갈래로 나와 있다.남태평양의 석상문화와 몽골족.돌궐풍의 북방문화 유입설이다. 남태평양설은 제주도가 지리적으로 해양문화권일 수 있다는 점이고 북방설은 몽골이 제주도를 오랫동안 지배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 고유의 향토적 특색을 고려하지 않고는 돌하루방 신원을 들춰낼 수 없다.분노하는 바다와 싸우고 거친 땅을 일구면서 자연의 섭리를 터득한 제주도 사람들의 자화상이 돌하루방인 것이다. 어깨가 넓어 보이고 더러 가슴이 튀어나온 돌하루방을 대하노라면 한 꺼풀을 훌쩍 벗어던졌다.그리고 숨겨둔 강인성을 드러내 보였다. 이들 돌하루방과 더불어 대정땅을 지킨 읍성은 제주도기념물 12호로 지정되어 보호 받고있다. 그리고 대정은 추사 김정희가 9년동안 유배된 적거의 땅이거니와 그의 유명한 문인화 「세한도」의 산실이기도 하다.
  • “총격발생땐 안보리 회부”/이사국 결의…쌀지원 중단등 조치 가능

    ◎무력시위만으론 효과적 제재 어려워 북한의 판문점 무력시위 문제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갈 것인가.정부는 미국과 중국,러시아를 비롯한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과 10개 비상임이사국에 판문점 사태의 안보리 상정에 대한 의견을 다각도로 타진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총격없이 무력시위만 이뤄지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판문점 사태를 안보리로 가져 가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게 정부의 잠정적인 결론이다. 미국을 비롯한 상임이사국들 역시 『북한의 무력시위는 상징적인 행동으로,한반도의 안정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는 견해를 가진 것으로 분석된다.현재 안보리에 계류된 사안은 1백30건이지만,실제로 논의되는 안건은 30개를 넘지 않는다.보스니아,그루지야,앙골라 등 실제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의 현안을 젖혀두고 판문점 문제를 다루기는 어렵다는 것이 관련국들의 입장이다. 또 이 문제를 안보리로 가져간다 해도 효과적으로 북한을 제재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안보리 결의나 의장성명을 추진한다 해도,무슨 내용을 담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과제가 남는다.물리력이 포함되지 않는 결의나 성명이 북한에 어떤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당국자들은 갖고 있다. 이와함께 북한의 판문점 무력시위가 안보리에 회부된다면,남북관계는 다시 총체적 대결국면으로 갈 수밖에 없다.정부는 어차피 총선뒤에는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할 예정이다.현재의 남북 양자대립 관계를 안보리로 가져가 다자간의 대립관계로 확대시킨다면,남북관계 개선은 어려워지게 된다. 그러나 북한의 판문점 무력도발이 김정일을 비롯한 지도층의 계산된 행위가 아니고,강경한 군부세력의 무절제한 도발이라면 상황이 달라진다.판문점에서의 무력시위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고 발포상황까지도 예상할 수 있다.그럴 경우,정부로서는 이 문제를 안보리로 가져간다는 방침이다.현재 안보리에는 ▲83년 소련의 KAL007기격추사건 ▲88년의 김현희 KAL기폭파사건 ▲93년의 북한핵문제등 우리나라와 관련한 3개의 안건이 계류중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안보리 이사국이기 때문에,판문점 사태를 안건으로 상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또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해갈 수 있다.안보리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게 된다면,유엔차원에서 추진하던 쌀 지원 중단을 포함한 경제제재 조치등이 집행될 수 있을 것이다.〈이도운 기자〉
  • 미 민간항공기 격추사건 카스트로가 승인한듯/미 CIA·국방부조사

    【워싱턴 UPI 연합】 미국은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의장이 지난 주말 미 민간항공기 2대의 격추사건에 직접 관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고 미관리들이 27일 말했다. 중앙정보국(CIA)과 국방부는 그같은 혐의를 뒷받침하고 쿠바의 한 2중첩자가 카스트로의 지시로 이 사건을 획책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정보보고를 검토중에 있다.
  • 미­중 쿠바규탄 불협화/이건영 뉴욕 특파원(오늘의 눈)

    27일 새벽 쿠바의 미국 민간기 격추사건을 비난하는 유엔 안보리의장성명을 채택한 안보리 회의장은 허탈과 짜증의 현장이었다.의장성명채택을 둘러싸고 벌인 미국과 중국,두 강대국의 자존심싸움으로 「테러응징」은 무력감속에서 뒷전으로 물러났다는 지적이다.두나라의 자존심싸움은 다른 13개 안보리 이사국은 물론 유엔회원국들 전체를 「들러리」로 만들었다.한시바삐 안보리 의장성명을 채택해 미국의 결의를 과시하려는 미국측과 미국측의 일사천리식 강행처리에 반기를 든 중국측의 「소영웅주의」가 충돌했다는게 유엔외교가의 관측이다.최근 아이티의 평화유지군 임기연장문제와 관련해 미국측이 자신들에 대한 무관심에 심기가 뒤틀려있던 중국이 본때를 보일 속셈으로 미국에 원칙론을 내세우며 「만만디」로 나온 것이다. 두 강대국의 「구원」은 회의를 여지없이 유린했다.중국측은 미국이 26일중 어떻게 해서든 의장성명을 만들어보려하자 『일방당사국의 말만 듣고 결정할 수 없다』면서 선쿠바의 해명을 요구하며 지연작전을 구사했다.『본국에서훈령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핑계로 톤이 약해진 의장성명 수정안에 대해서도 지지입장을 밝히기를 거부했다.중국측이 저녁까지도 「훈령 미접수」를 주장하며 버티자 회의장은 한때 험악한 기운이 감돌았다.미국측이 이사국들의 만장일치가 필요한 의장성명을 포기하고 투표결정이 가능한 「결의안」채택을 다그치자 이번에는 『이사국들에게 결의안초안 내용이 배포된뒤 24시간이 지나 투표하는 것이 관행』이라면서 절차상의 하자를 물고 늘어졌다.우여곡절끝에 27일 새벽 1시쯤 가까스로 다시 열린 회의에서도 중국측의 입장은 완강했지만 여론에 몰리는 상황이 뚜렷해지자 유엔주재 쿠바대표의 해명을 들어본뒤 의장성명을 채택하자는 선에서 슬그머니 발을 뺐다. 두나라의 자존심 대결이 끝난 것은 새벽 4시.밤새도록 지루한 미·중 사이의 자존심싸움 틈바구니속에서 어느나라 하나 제대로 중재를 못했다.미·중 두나라에 걸린 실익이 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그렇지만 이날의 회의는 일반 유엔회원국들에게 안보리회의의 민주성과 효율성,상임이사국의 거부권행사를 곱씹게 하기에 충분했다.안보리 회의장 주변에서 뜬 눈으로 밤을 밝히고 유엔건물을 빠져나온 유엔외교관들은 특히 진정한 안보리의 개혁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았을 것 같다.
  • 대선파장 등 고려 제재 최소화/미 대쿠바 응징 축소 배경

    ◎경제봉쇄 30년 계속… 추가조치 제한적/피격기들의 영공침범 가능성도 작용/선거전략 차원 보복강화법안은 지지 클린턴 미 대통령이 26일 발표한 쿠바 보복조치는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갑자기 터져나온 쿠바의 미국 민간기 격추사건의 파장을 최소화하고 미국의 경제이익을 충분히 고려해 취해진 최소조치의 성격이 강하다. 이같은 미온적 제재조치는 사건 발생직후 미행정부의 긴박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62년 쿠바 미사일위기 사건 이후부터 경제제재조치가 계속 취해져오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제재조치의 범위가 제한돼 있고 또 클린턴 대통령 자신이 선거의 해에 무력행사에 선뜻 나설리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예상됐던 바다.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는 재빨리 그간 반대해온 쿠바 추가제재에 관한 헬름즈­버튼 법안을 지지키로 방침을 바꿈으로써 선거전략 차원에서 공화당에 비난의 빌미를 제공할 소지를 사전에 차단했다.쿠바의 국제재정기구 참여 봉쇄와 쿠바설탕을 미국에 파는 외국기업을 제재할 수 있도록 하는 실제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는 이 법안은 작년 10월 클린턴 대통령이 민간여행 허용,통신규제완화,일부 재정거래 허용등 쿠바제재 부분완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반대에 직면했었다. 한편 클린턴 행정부가 이번에 쿠바를 본격적으로 응징하지 못한 이면에는 또 피격기들이 아바나측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쿠바 영공을 침범했음이 틀림없다는 약점이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최소한의 제재조치로도 쿠바는 상당한 경제적 손실의 감수가 불가피해졌다.지난해 미국내 쿠바망명자들이 전세기편으로 쿠바로 여행한 경비와 쿠바에 송금한 돈이 총 4억5천7백만달러로 이는 수출품 1위인 설탕 수출액의 약 90%에 해당할 정도로 주요한 외화수입원인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또 사건직후 유엔 안보리를 소집,유엔 차원에서의 강력한 성명 및 제재를 가해줄 것을 요청했고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도 정확한 진상파악을 요청하는 등 미국 혼자만의 제재가 아니라 국제사회의 동참을 유도했다.따라서 이번 제재조치는 결국 국제사회의 여론을 업는 모양새를 갖추고 실제로는 미온적 제재를 통한 현상유지를 꾀함으로써 최소한 대통령선거가 있는 11월까지라도 조용하기를 바라는 단기처방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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