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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古書 전문가 박철상씨 “유홍준 완당평전 200군데 오류”

    지난해 4월까지 3권을 완간한 미술사학자 유홍준 명지대 교수의 역저 ‘완당평전’(학고재 간)에 무려 200군데나 잘못이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재야 고서학자인 박철상 씨는 국학연구단체인 ‘문헌과 해석’의 기관지 최근호에 글을 실어 “1년 남짓 유홍준씨의 ‘완당평전’을 분석한 결과 책 전체를 통틀어 200군데에 이르는 오류가 발견됐다.”고 밝혔다.이에 앞서 박씨는 이 가운데 34개 항목을 골라 지난해 9월부터 ‘문헌과 해석’모임에서 발표하고 토론을 벌였으며 그 결과의 일부를 이번에 기고한 것이다. 박씨가 분석대상으로 삼은 책은 ‘완당평전’초판 1쇄본 1·2권이다. 박씨는 먼저 “유 교수가 추사 김정희의 호로 널리 알려져 있는 ‘추사’(秋史)와 ‘완당’(阮堂)을 구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그는 “유 교수가 완당과 추사라는 호를,그의 작품 시대를 구분하는 근거로 제시했으나 추사는 그의 별호(別號)이고 완당은 당호(堂號)”라는 지적했다. 유 교수는 중국 서예가 완원이 김정희에게 ‘완당’이란 호를 내렸다고 쓴 데 대해 박씨는“스승이 제자에게 자신을 받들라며 자기 성을 딴 호를 내렸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완당은 추사가 연경에서 완원을 만나고 돌아온 다음 그를 존경한다는 의미에서 스스로 지은 당호”라고 주장했다. 박씨는 기존 연구성과를 왜곡하거나 비판적 검토 없이 인용하는 바람에 유발된 오류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례로 ‘자료해제편’에 실은 박혜백의 ‘완당인보’라는 자료는 이미 지난 92년 예술의전당이 발간한 ‘추사 김정희 명작전’에 공개됐으나 유 교수는 이에 대한 설명없이 처음 공개하는 것처럼 했으며,‘효자 김복규비’의 탁본에 대해서는 유 교수가 “완당 전서체의 멋이 한껏 구사되었다.”고 적었지만 이는 전서체가 아니라 예서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유 교수는 “내가 완당 평전을 시도한 것은 누군가에 의해 먼저 제시되지 않는 한 전기가 나올 수 없는 일이기에 스스로 매맞기를 자원한 것”이라며 “이런 관점에서 주위의 지적을 받아 들여 5쇄를 찍는 동안 90군데를 고쳤다.”고 밝혔다. “박씨가 오류를 지적한 글을 대하면서 부끄럽고,독자들에게 미안했다.”는 유 교수는 문제가 제기된 부분에 대해서는 진위를 가려 잡을 것은 바로잡겠으나 박씨의 문제제기 방식은 훈계조라서 무척 듣기 거북했다는 소견도 밝혔다. 심재억기자
  • 예술의 전당 ‘조선왕조 어필전’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글씨인 어필(御筆)이 한자리에 모였다.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은 새달 10일까지 ‘조선왕조어필’전을 연다.조선왕조 500년간 왕·왕비뿐 아니라 대군과 군,공주와 옹주 등 모두 46명의 작품 90여 점을 보여준다.이동관 예술의전당 전시기획팀 과장은 “어필은 절대군주로서의 군왕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성정·기질,독자적 미의식과 학문적 수준까지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면서 “사대부에게 글쓰기의 기준이던 어필은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학문과 예술의 경향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출품작은 서첩 간찰 현판 탁본 병풍 두루마리 대련 등 형태가 다양하고,한문과 한글 중심이지만 사군자 등도 소개된다.특히 태종 영조 명성왕후 정순왕후 순명효왕후 인목대비 등의 글씨가 일반에게 처음 공개된다.예술의전당은 어필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국립중앙박물관,강릉 오죽헌,경남대박물관 데라우치문고 등 전국 40여 소장처에서 빌려 왔다. 조선 전기에는 고려 말 도입된 원나라의 송설(松雪)조맹부(1254~1322)서체가 유행했다.송설체의 대가인 문종·안평대군·성종 등의 글씨를 전시한다. 중기에는 단아한 짜임이 특징인 석봉 한호의 글씨가 국서체로 자리잡았다.최완수 간송미술관장은 “한석봉체는 퇴계 이황의 서체에 우리 고유의 미감을 가미한 필치로,선조의 취향을 많이 가미한 것”이라고 평가한다.서예가를 능가하는 명필인 선조와,부왕의 예술적 천품을 이어받은 원종,의창군 광,정명공주 등이 한석봉체를 따랐다. 후기에 들면 숙종·영조·정조 등 3인3색의 어필이 전개된다.숙종은 송설체에 근간을 두면서도 유려하고,영조는 역대 왕 중 가장 개성있는 글씨를 구사했다.임진왜란·병자호란 이후 흐트러진 글씨를 바로잡고자 서체반정(書體反正)을 주창한 정조는 글씨를 마음 공부로 파악한 문예군주답게 가장 표준적인 글씨를 보여준다. 조선 말기에 들면 안진경체와 예서체를 바탕으로 한자의 추상적 회화성이 최고조에 달한다.추사 김정희가 그 태두로,강경하고 졸박한 추사체를 확립했다.최 관장은 “추사체는 왕실에도 영향을 미쳐 순조 때부터 기미가엿보였고 익종과,추사에게 직접 교육을 받은 헌종 등은 추사체를 그대로 따라 썼다.”고 설명했다.(02)580-1300. 문소영기자
  • [씨줄날줄]최순우 고택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으로 41년간을 박물관을 지키며 살았던 혜곡 최순우(1916∼1984)는 한국미의 독실한 구도자였다.당대 최고의 심미안에,젊었을 때 소설가를 꿈꿀 정도로 타고난 미문을 갖췄던 그로 하여 고려청자,분청사기,목조건축 등 한국의 미술품은 선명한 아름다움으로 새로 태어나곤 했다. 그의 책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1994,학고재)는 ‘제 아무리 희한한 물감이라도 고요와 사색에 사무친 고려청자의 아득하고도 깊은 빛깔을 그처럼 물들일 수는 없다.높고 푸르고 또 맑은 하늘,(중략)고려 사람들의 눈동자에는 이 맑고 조촐한 하늘색이 물들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와 같은 주옥 같은 글들로 가득차 있다.‘자연과의 조화’‘겸허하고 순정한 아름다움’의 미학을 펼쳤던 그는 인품 또한 단순 소박했던 선비로 전한다. 서울 삼선교에서 성북동 쪽으로 10분정도 걸어 올라가다 보면 왼쪽 골목에그의 고택(古宅)이 있다.아홉개의 돌계단을 올라가 대문을 넘어서면 마당의곧고 푸른 송죽(松竹)과 한옥의 오래된 현판들이 눈에 들어온다.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판각한 ‘매심사(梅心舍)’는 사랑채.안채에 붙은 현판 ‘두문즉시심산(杜門^^是深山,‘문을 닫으면 이곳이 바로 깊은 산중’의 뜻)’은 그의 친필이다.또한 봄의 첫 전령 산수유를 비롯해 돌배나무,개암나무 등 산나무를 가득 심어 놓은 뒤뜰이 바라보이는 방에는 ‘오수당(午睡堂)’이란 당호가 붙어 웃음을 머금게 한다.1976년부터 서거할 때까지 살았던 이 집에는석물(石物)들도 그대로 남아 최순우의 체취를 구석구석 느끼게 한다. 5일 이 고택에서는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 제1호 지정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이 있었다.석달전 빌라부지로 집이 헐리게 될 위기에 있는 것을 안 시민단체가 시민모금으로 이를 사들여 보존키로 한 것이다.하마터면 1920년대에 지어진,역사가 담긴 건축물을 잃을 뻔했다.시민단체에 박수를 보낸다.그런데법의 허점으로 이를 인수한 단체가 세금더미에 올라 앉게 되었다는 우울한소식도 듣게 되었다.정부는 문화재보존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세세한 근대 건축물에까지는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내셔널트러스트는 이같은 공백을메워 보자고 나선 것이다.국가의 할 일을 대신하고 있는 민간단체들의 활동을 북돋울 수 있도록 하루속히 법적 지원 체제가 마련되길 촉구한다. 신연숙 논설위원 yshin@
  • 조희룡 그림값은 술 한병과 돼지다리 한쪽

    ‘조희룡의 매화그림 한폭 값은 술 한 병과 돼지 다리 한쪽.’ 조선 후기의 화가인 호산 조희룡(1789∼1866)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 뻘이 된다.난초와 매화 그림에 능하여 ‘매화서옥도’ 같은 유명한 작품을 남겼다. 그는 1851∼1853년 안동 김씨 세도가의 권력장악 과정에서 임자도로 유배됐다.김울림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이 기간의 회화세계를 16∼17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동원학술전국대회에서 살폈다. 그는 유배 시절 “눈 쌓인 바닷가에서…날마다 매화 몇장을 그려서 회포를 풀기도 한다.만약 날마다 술 한 병과 돼지 다리 한 쪽을 보내오는 사람이 있다면 곧 줄 수 있지만,그렇지 않으면 구겨 태워서 문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글을 남겼다. 유배되어 있다는 특수상황이지만 당시 임자도에서 조희룡의 그림은 이런 정도의 사례비로 통용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마지막 구절은 그려둔 매화도를 모두 태워 없애버릴지언정,상품가치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사업가적’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희룡은 난초그림에는 “난을 그리려면 만권의 서적을 독파하여 문자의 기운이 뱃속을 떠받치고 있어야 한다.”고 언급하여 추사와 완전히 같은 이론을 갖고 있었다.이런 때문인지 그는 임자도에서도 난초는 청탁이나 대가를 기대하지 않은 채 자발적으로 그렸고,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쉽게 건네주었다.궁핍한 시대에도 ‘문자향’ 있는 난초는 거래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는 것이 김 학예사의 해석이다. 서동철기자
  • W세대/ 박물관·미술관서 전시품 해설 줄줄줄… 자원봉사의 꽃 ‘도슨트’를 아시나요

    자원봉사 하면 퍼뜩 양로원 고아원 병원 운동경기대회 등이 떠오른다.그러나 박물관·미술관도 자원봉사 대상임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문화 자원봉사자의 ‘꽃’은 아무래도 도슨트(docent)다.박물관·미술관의 전시를 관람객에게 소개하는 전시해설자를 말한다.주류는 40∼50대 주부지만,최근에는 20대의 지원도 많아졌다.삼성미술관의 20∼30대 도슨트 4명의 문화자원봉사 활동을 들여다 보았다. “멜빵바지 입고 머리 질끈 묶은 채 학교에 가지만,도슨트를 하는 날에는 화장도 하고 옷도 얌전하게 입으려고 해요.관람객에게 제 해설의 신뢰도를 높이려고요.” 앳된 얼굴의 이가림(21·국민대 디자인학과 01학번)씨는 삼성미술관에서 활약하는 도슨트 21명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그가 전시를 해설한 뒤 “질문있으세요?”라고 물으면 관람객들이 대뜸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볼 정도다.원래 외국인 관람객을 위한 영어 도슨트로 뽑혔지만,우리말 도슨트를 겸하고 있다. 그가 도슨트를 신청한 것은 아주대 불문과 00학번 시절이다.미술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불문학을 전공하게 된 그는 ‘꿩대신 닭’이란 심정으로 도슨트를 신청했다. 1년 지나서 미술관으로부터 도슨트를 하라는 연락을 받았다.‘백남준 전’이 데뷔 무대였고 기억에 남는 자리는 올 봄에 열린 ‘격조와 해학-근대의 한국미술전’이다. “당시 한국을 방문한 루이뷔통 부사장에게 추사 김정희며,근대화가 박수근,한국화가 서세옥 등을 소개할 수 있어서 참 뿌듯했어요.의상디자인을 전공한다니까 패션에 관해 몇마디 조언도 해주더군요.” 외국인 관람객 수가 적은 편이라 설명이 끝날 때쯤이면 친근해져 사적인 대화를 하게 된다.전시회를 준비하는 3∼4개월 동안 여러 차례 세미나로 무장을 해야 하므로 시간도 많이 빼앗기고,교통비 지출도 만만치 않다.수업 중에 호출될 때도 있다.그래도 “현장과 학교가 다르다.”는 사실을 경험하는 만큼 그만 둘 수가 없다고 말한다. 백화점 판매원,과외교사,전화안내 등 어지간한 아르바이트를 다 해보았다는 이계영(26·숙대 불문과 졸)씨도 도슨트 할 때가 가장 즐겁다.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는 그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를 늘 생각한다.대학교 4학년 때 한국화랑협회가 개최한 ‘화랑미술제’에서 아르바이트한 것이 계기가 돼 도슨트를 시작했다. 최근 도슨트를 하겠다는 젊은 지원자들이 많아져 신청한 뒤 1년 넘게 기다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특이한 이력으로 쉽게 뽑히는 이들도 있게 마련.미술 전공자가 아닌 점이,새로운 시각으로 해설을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대학원에서 음악교육학을 전공한 진세령(29·피아노 레슨)씨.2년 전 ‘박수근전’을 관람하러 갔다가 도슨트에게서 전시설명을 듣고 곧바로 지원한 케이스다.그는 “‘문화 자원봉사자’란 패찰을단 도슨트를 보고 호기심에 신청했다.”고 말한다.그는 그림을 음악 들려주듯 설명하는 재주가 있다는 평을 듣는다. 근무가 없는 일요일에만 도슨트를 하는 김준배(32)씨는 H반도체 연구소 과장.전자공학 박사인 그는 박사과정 5학기 때 머리를 식힐 겸 국립현대미술관의 ‘불교미술전’을 구경갔다가도슨트가 됐다.“이른 아침인데,5살쯤 된 아들에게 아버지가 ‘머리가 곱슬거리면 부처님이야.머리가 풀어진 사람은 보살이고.’라고 설명한 뒤 ‘그럼 저 사람은 누구지?’라고 묻는 거예요.얼마나 흐뭇하던지 미술관 경비원이라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처음엔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자료정리라도 도울 요량으로 문화 자원봉사를 지원했는데 도슨트가 됐다.그는 “미술사가 시대를 앞서가는 학문인만큼 첨단 분야의 과학자에게 시대 흐름을 읽는 능력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요즘 잘나가는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일본 미술품 컬렉터로서도 탁월한 것처럼.개인적으로는 엔지니어에게도 발표력이 굉장히 중요한데,도슨트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발표연습이 돼 직장내 프리젠테이션에 큰 도움이 된단다. 20∼30대 도슨트들은 문화 자원봉사자라는 자부심 외에,40∼70대의 베테랑 도슨트들과의 만남이 소중하다고 강조한다.세대간 대화를 통해 인생을 배운다는 것이다. “도슨트를 하면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신 분들을 만나게 돼요.저희와나이 차가 반세기인 분도 있어요.젊고 감각도 멋진 선배님들을 보면,닮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20대와 70대라는 나이 차를 떠나서 ‘통하는’ 뭔가가 우리 도슨트들에겐 있어요.” 문소영기자 symun@ ■‘도슨트'가 되려면/ 매년 1~2차례 모집… 인터넷 통해 신청 문화가 강조되는 시대에,문화 자원봉사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할 일이다.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오래된 성이나 교회,그림 등을 외국인에게 보여주며 막대한 관광수입을 올리는 독일·이탈리아·영국 등 유럽에선 도슨트(docent)가 일반화했다.유럽관광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역사나 예술사를 전공한 석·박사들이 전시나 유물을 설명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남아 있을 것이다. 자원봉사 전시해설자인 도슨트는 1845년 영국에서 처음 등장했고,미국에서는 한참 뒤인 1907년부터 미술관에서 시작됐다.국내의 경우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과 삼성미술관·성곡미술관 등 사설 미술관을 중심으로 2∼3년전부터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이 중 국립중앙박물관은 4년제의박물관아카데미를 별도로 두고 고미술 해설전문가를 양성한다. 95년에 도입된 전시설명자들은 처음엔 유급이었다.일당 2만 5000원.당시에는 일당을 주고 ‘미술관지킴이’를 따로 두기도 했지만 외환 위기를 거치면서 경비절감이 절박해진 박물관·미술관들은 서구에서 활용되는 문화 자원봉사자들을 전면에 도입했다.오디오기기로 해설할 경우 이용자가 많지 않고,제작비도 비싸 거의 이뤄지지 않는 형편이다. 미술관·박물관의 문화 자원봉사 영역은 전시해설 외에 자료정리·안내·일반홍보·전시행정 일반 등으로 나뉜다.그러나 아무래도 도슨트에 사람들이 몰리게 마련. 도슨트를 하려면 미술 전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필수.박물관과 미술관의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지난 5월 도슨트를 처음 도입한 국립현대미술관은 1년에 한번,사설 미술관은 1년에 2차례 정도 모집한다.도슨트들은 스스로 중도하차하는등 연간 30∼50%까지 새 인물로 교체되는 만큼,관심이 있는 사람은 시도해 볼 만하다. 사설미술관 중 아트선재센터의 경우 세미나 준비 등을 위해 6만원 정도의 수강료를 받기도 한다. 문소영기자
  • 이런책 어때요/ 추사와 그의 시대-김정희 통해 본 조선후기 예술과 지성

    조선 후기 지성사와 예술사의 중심에 선 추사 김정희와 그의 시대에 관한 연구서.추사가 산 시대는 정조대 이후 조선 전통문화의 황금기인 진경시대를 마감하고 북학을 통해 외래문화를 수용,전통의 극복을 시도한 시기였다.추사는 실사구시를 모토로 한 청조 고증학을 과감하게 수용해 이를 조선의 문화기반 위에서 집대성했다.또한 외척세도의 폐단을 극복하고자 정조시대 이래 청론사류(淸論士流)의 정치적 지향을 계승·실천하려 한 마지막 세대이기도 했다.이 책은 대학자이자 예술가인 추사의 성과와 한계를 아울러 살핀다.1만 6000원.
  • [기고] 北 변화는 ‘막다른 선택’

    극적으로 실현된 북·일 정상회담은 역시 충격적이고 이례적인 내용으로 나타났다.납치사건의 전면적 인정과 사죄,과거청산의 경제협력방식 수용.정상회담과 ‘북·일 평양선언’은 북한의 전면적 항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은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남북관계,북·미 교섭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납치사건의 충격속에서 여론이 강경화되는 상황속에서 북·일 교섭은 순조롭게 타결될 것인가? 가장 주목을 끈 것은 역시 납치사건의 전면적 인정과 사죄다.체제의 근간을 뒤흔들지도 모를 민감한 문제에 대한 최고지도자의 ‘결단’이 북·일 국교정상화를 조속히 실현하려는 강한 의사와 함께,절박한 사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은 다시 지적할 필요도 없다.그러나 이 문제는 북·일 관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한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납북자,억류자 문제,대한항공기 격추사건,양곤사건 등 잠재적으로는 엄청난 파급력과 충격력을 지닌 폭탄이다. 이와 더불어 이번 북·일 정상회담에 이르는 북한의 교섭태도에서는 단기타결을 향한 포괄적인 대타협의 결단이 두드러진다.종전처럼 시간을 끌면서 조건투쟁을 구사하는 전략은 자취를 감추었다.조건투쟁에 집착한 결과,많은 기회를 상실하고 스스로 어려움을 자초한 과거의 경험에서 오는 학습효과인지도 모른다.필자는 이러한 경향이 대일교섭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한국,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본격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한다.그만큼 북한은 이번이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이며 남겨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북·일 교섭이 본격화와 때를 맞추어서 남북관계에서도 경의선,동해선 철도연결이라는 상징적인 면에서,또한 실질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진전을 보여줬다.곧 이루어질 제임스 켈리 미국무차관보의 방북을 계기로 북·미 교섭도 조만간 재개될 것이다. 성급한 추측이지만 가장 큰 난관인 제네바 핵협정에 따른 핵사찰을 수용하는 ‘결단’의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핵사찰이라는 ‘가시’만 제거된다면 부시 행정부내 매파의 공세도 근거를 잃게 된다.김정일 위원장이 고이즈미 총리에게 제네바 협정의 지체에 따른 보상을언급한 점도 주목을 끈다.보상은 충분히 교섭가능한 쟁점이며 교섭을 요구하는 개념이다. 북·미 교섭에 대한 단순한 낙관론을 전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북·일 교섭의 단기타결이라는 목적달성을 위해서 북·미 교섭,나아가 남북관계의 진전이 불가분의 조건이라는 현실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부시 행정부내의 격렬한 정책논쟁과 힘싸움의 결과,국무부의 온건파는 우선 켈리 차관보의 방북과 교섭재개를 획득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여전히 부시 정권의 주도권은 매파에 있으며,이들의 대북한 태도에 커다란 변화가 있다는 징조는 없다.다만 이들도 당면 목표인 이라크에 대한 집중,양면작전의 부담을 회피하기 위한 전략적 소강상태의 필요,한국 및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내의 예상외 반발과 우려 등을 고려해서 온건파의 행동을 묵인하고 있는 데 불과하다. 이번 북·일 교섭을 위한 북한의 양보가 대미 교섭의 카드라는 관측도 있다.그러나 일본이 특히 핵문제에 있어서 대미 카드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만약 핵사찰문제로 북·미 교섭이 난관에 봉착한다면,납치사건의 전면적 인정이라는 기사회생의 ‘결단’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고이즈미 방북에 대한 일본 국내의 반응은 두 갈래로 분열되어 있다.납치자 대부분의 사망이라는 비극의 충격파는 예상을 초월하는 강경론으로 여론을 몰고 있다. 당일 저녁에 오사카에서 조총련계 학생에 대한 폭행사태가 일어난 것에서 보듯이 그 배경에는 뿌리깊은 북한 위협론과 차별의식이 존재한다. 정략적 관점에서 이러한 감정적 반응을 부채질하는 정치가들도 적지 않다.그러나 근래에 보지 못한 일본의 ‘외교적 성과(승리)’에 대한 만족감이 서서히 이성적 반응으로 변화를 유도할 것이다.‘전면항복’한 북한에 더 이상의 채찍질이 초래할지도 모를 반작용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북·일 평양선언’의 제4항에서 북한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안전보장문제에 대한 일본의 참여와 적극적 역할에 대해 공식적으로 동의했다.역사적으로 커다란 전환점이기도 하며,한국의 입장에서도 그 향후 방향성과 내용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
  • 책/한국의 차문화/“차 마시는 백성은 흥하고 술 마시는 백성은 망한다”

    ▲한국의 차문화/이귀례 지음/열화당 펴냄 “차를 마시는 백성은 흥하고,술을 마시는 백성은 망한다(飮茶興 飮酒亡).” 다산 정약용의 차예찬론에는 차가 단순한 기호음료를 넘어 그 나라 문화수준의 향상에 기여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차는 우리 민족사와 함께 발전해온 유서 깊은 전통문화 유산이다.그러나 일본의 다도에 밀려 자칫 일본문화로 간주되거나,찻병을 끼고 사는 중국 사람들의 압도적인 차문화에 가려 ‘소외’되어온 측면이 없지 않다. 최근 출간된 ‘한국의 차문화’(이귀례 지음,열화당 펴냄)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우리 차의 역사와 정신,규방다례 등을 폭넓게 다룬다. 차는 언제,누가 처음 발견해 마셨을까.우리 조상들은 언제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했을까.중국쪽 자료에 의하면 차의 고향은 중국이다.중국 차문화의 개조(開祖)로 불리는 육우의 ‘다경’에는 전설 속 황제 신농씨가 뜻하지 않은 과정을 통해 차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이 설은 기원전 27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그러나 서구쪽 문헌은 서기 543년 북부 인도의 고행자에 의해 차가 중국에 들어온 뒤,9세기 당나라 때 대중음료가 되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부터 차를 마셨지만 언제부터 마시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는 “김해의 백월산에는 죽로차(竹露茶)가 있다.세상에서는 수로왕비인 허씨가 인도에서 가져온 차씨라고 전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정사에 나타난 최초의 차 관련 자료는 ‘삼국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삼국사기’에 따르면 7세기 초 신라 선덕여왕 때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고 한다.이렇듯 우리 고대문헌에 차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당시 왕을 비롯한 고관들이 차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과 관심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차는 원래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귀중품으로 취급되어왔다.‘삼국지’에는 유비가 2년 동안 돗자리와 발을 만들어 모은 돈으로 노모에게 차 한 통을 사드렸다는 일화가 나온다.우리나라에서도 차는 궁중이나 사원에서 의식용으로 또는 하사품으로 쓰였다.차가 대중화된 것은 신라에서 고려로 넘어오면서부터.국가에서 행하는 진다의식(進茶儀式)은 물론 백성들의 제사의식에도 차가 빠지지 않았다.국가의식과는 별개로 생활차의 전통도 면면히 이어졌다. 한국차문화협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이런 맥락에서 생활차의 행다법(行茶法)과 규방다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차를 마실 때 가장 먼저 행하는 공수(拱手)와 상보접기에서부터 생활차와 가루차,선비차를 내는 과정을 소상하게 설명한다. 저자는 각 시대를 대표해온 다인(茶人)들을 다시(茶詩)와 함께 소개,우리 차문화사를 여러 각도에서 이해하게 한다.신라와 고려의 대표적인 다인이자 고승인 원효대사와 진각국사,불교·차와 더불어 은둔생활을 한 이규보,‘작설(雀舌)’이란 다시를 남긴 김시습,‘다신계(茶信契)’를 만든 정약용,우리나라 차문화의 중흥조인 초의선사 등 다인들에 얽힌 이야기를 열전 형식으로 풀어간다. 수많은 고승대덕들이 차의 덕(德)에 몰입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차는 곧 선(禪)이다.우리나라에는 다선동미(茶禪同味)라는 말이 있고,중국에도 다불일미(茶佛一味)라는 말이있다.추사 김정희의 아우이자 서예가인 김명희가 초의선사를 기려 쓴 다시를 읽으면 그 의미가 또렷해진다.“노승은 부처님 모시듯 차를 고르고,계율 지키듯 차순과 차눈을 다루며,차를 덖고 말리기에 두루 통달하여,차의 맛과 향을 따라 열반의 경지에 든다네.” 우리 차문화의 진수는 이같은 다선일치(茶禪一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차와 선비정신의 만남이다.조선시대는 숭유억불정책으로 불교가 쇠퇴하게 되었고,그 여파로 사찰중심의 차문화도 고려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해졌다.하지만 왕실이나 사대부 등을 중심으로 한 선비·귀족계층에서의 차생활은 여전히 성행했다.한 예로 초의선사와 숱한 논쟁을 벌였던 김정희는 유배생활을 차로 달래며 많은 시와 일화를 남겼다. “인생은 차를 마시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차를 마시다 보면 처음에는 씁쓸하지만 나중에는 달콤하고 결국에는 담담해진다.한 잔의 차가 바로 인생이다.저자가 결론으로 삼는 메시지 또한 이런 것이 아닐까.청정담백한 차를 닮은 삶,그 자체를 회복하자는 것이다.3만원. 김종면기자 jmkim@
  • 전국 휴양림 올 가이드/ 찌든 심신 ‘천연림 샤워’

    서늘함이 그리워지는 피서시즌을 앞두고 자연휴양림이 인기다.인파로 들끓지 않아 숲속 별장같은 통나무집에서 한적하게 가족 단위로 더위와 머리를 식히기에는 그만이다.천연림 속에서의 ‘피톤치드 샤워’와 주변 관광지는 ‘덤’.통나무집을 이용하려면 서둘러야 한다.산림청 자연휴양림의 경우 7월중순 이후의 예약은 대부분 끝났으며,1일 오전 9시부터 8월 이용 예약을 인터넷(www.huyang.go.kr)을 통해 접수한다.휴양림에는 매점이 없거나 있어도 규모가 작아 생필품과 비상약품 등은 미리 준비해야 편하다. ◇집다리골=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 지암리.소양호와 춘천호,의암호를 끼고 있다.맑은 물과 바위,계곡,원시림이 조화된 천혜의 휴양지다.한여름에도 추위를 느낄 만큼 시원한 이곳에는 다람쥐와 청설모가 뛰논다.숲속의 집,야영장,등산로,산책로가 마련됐다. 7·10·20평형(1박 이용료 4만∼12만원·이하 괄호 안은 1박 이용료)통나무집 21동이 있다.공동 취사장 3곳,잔디광장,출렁다리,물놀이터,대피소 등이 잘 정비됐다. ◇통고산= 경북 울진군 서면쌍전리.오염 안된 수려한 풍광을 자랑한다.울창한 숲과 계곡의 시원한 물줄기,운무(雲霧)가 어우러져 마치 한폭의 그림같다. 3·6·11·15·32평형(3만∼8만원)통나무집 22동에 TV·냉장고·선풍기·침구류를 비치했다.또 공동 취사장·샤워장 등을 갖춰 이용에 큰 불편은 없지만 생필품은 팔지 않는다. 불영사 계곡과 덕구온천,석류굴,나곡·망향·봉평해수욕장 등이 인근이다. ◇비슬산= 대구 달성군 유가면 용리.뛰어난 경관을 활용한 휴식공간과 풍부한 편의시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집채만한 수백개의 바위가 산기슭에 펼쳐진 바위마당과 계곡 곳곳에 숨은듯 자리잡은 기암괴석이 탄성을 절로 자아낸다. 통나무집 7평형(6만원)10동과 사계절용 9평형(7만원)8실 1동,청소년수련관15∼45인용(10만∼25만원)1동이 들어섰다.텐트장과 캠프파이어장,야외공연장,폭포샤워장,물놀이장 등도 이용할 수 있다.7월 중순∼8월 중순에는 주말마다 한여름밤의 음악회가 공연된다. ◇금원산= 경남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계곡에 조성돼 주변 경관이 빼어나다. 방갈로는 2·4·5·8평형(3만∼5만원)13동으로 난방시설과 침구가 마련됐다.화장실과 급수대,취사장은 공동 사용한다.콘도는 1동으로 10·11·13·16평형(5만∼10만원)12실.방마다 가스레인지와 냉장고·TV·화장실 등이 있으며간단한 샤워도 가능하다.거창 수승대와 월성계곡,무주구천동,안의 용추사,남덕유산 국립공원 등이 가깝다. ◇신불산=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기암괴석과 각종 수종의 천연림,맑은 계곡이 어우러졌다.계곡 중간에 파래소 폭포와 정상 일대의 넓은 억새밭이 유명하다.주변 산세가 알프스산맥과 비슷하다 해 ‘영남 알프스’로 잘 알려져 있다. 통나무집은 상단과 하단지구로 나뉜다.상단에는 7·10평형(4만 4000∼5만 5000원)5동이,하단에는 7·10·12평형(4만 4000∼6만원)2동이 있다.산책로,등산로,야영장,,오토캠프장(상단)이 설치됐다.취사도구는 준비해야 한다.차로약 1시간 거리에 경남 양산 통도사와 석남사,표충사,밀양 얼음골 등의 관광지가 있다. ◇금강= 충남 공주 반포면 도남리.앞에는 금강,뒤에는 산이 있어 풍치가 더할 나위 없다.산 중턱에 10·12·13·14·16·30평형(5만∼11만원)통나무집 8동이 들어섰다.취사 도구와 타월은 없다.17일 물놀이장이 개장되며 산림박물관과 수목원,미니 동물원은 어린이 교육장소로도 좋다.차량을 이용해 10∼15분쯤 가면 갑사와 동학사,공주박물관이 있어 볼거리도 다양하다. ◇와룡= 전북 장수군 천천면 덕태산.50∼60년생 참나무와 소나무가 빼곡해 원시림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해발 500m에 위치,한여름에도 더위를 못느낄 정도다. 4·6·10·13평형 통나무 산막 26동(2만∼6만원)과 1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연수의 집’(26만원)이 있다.물썰매·물놀이장,산책·등산로 등을 갖췄다.산막에는 침구류·TV·냉장고 등이 비치됐다.실내 사워시설은 10평형 이상에만 있고,식기류·가스레인지 등은 갖고 가야 한다. 논개 생가,논개 사당,방화동 휴가촌,장안산 군립공원 계곡이 지근거리다. ◇백아산= 전남 화순군 북면 노치리.주변 경관이 빼어난 데다 광주에서 승용차로 1시간 거리로 접근성이 좋다. 소나무와 참나무숲이 어우러진 6부 능선에 10·11·13평형(6만∼7만원)통나무집 13동이 자리잡았다.산림욕장과 잔디공원,야영장,체육단련시설,물놀이장 등이 있다. 숙박지에서 백아산 정상까지 잘 닦인 3.5㎞의 등산로가 눈길을 끈다.반경 8∼12㎞에 있는 관광목장과 화순온천,방랑시인 김삿갓이 생을 정리한 적벽(赤壁)등도 볼만하다. ◇서귀포= 제주 서귀포시 하원동.한라산 국립공원 수림에 자리잡았다.100∼200년 수령의 울창한 천연림에 길이 1.1㎞의 맨발 산책로와 산림욕장 등이 조성됐다. 통나무 산막은 3·6·7·8·9·15평형(3만∼7만원)12동이 있고,텐트를 칠수 있는 나무 평상 150여개가 있다.산막과 연결된 황토방에서 샤워와 취사가 가능하다. 종종 예고없는 안개에 울창한 숲이 서서히 모습을 감출 때는 신비감마저 든다.만남의 숲,오토캠프장,주차장,놀이마당,협곡 탐험로,전망대,잔디광장 등이 있다.1100고지 휴게소와 영실휴게소,돈내코유원지가 멀지 않다. 전국종합·정리 울진 김상화기자 shkim@
  • 문화단신/ 해인사 ‘성보박물관’개관 등

    ◇경남 합천 해인사가 새달 5일 ‘성보(聖寶)박물관’을 개관한다. 박물관은 지하 1층,지상 2층,연건평 1082평 규모.1층에 역사실과 조각실 불화실 공예실 서화실 등 5개 전시실과 지하에 기획전시실 괘불전시실,2층에 대장경 인행 체험실 등을 갖췄다.특히 2층 전시실 벽면을 고려대장경 벽화로 장식한 것을 비롯해 백남준의 고려대장경 비디오아트와 대장경 제작과정을담은 필름을 상영하는 등 고려대장경 소개에 공을 들였다. 국보 32호 고려대장경판을 비롯,국보 206호 고려각판,보물 999호 목조희랑조사상,보물 1273호 영산회상도,추사 김정희의 친필인 해인사중건상량문 등 모두 37점의 국보급 유물도 전시한다. 개관 법회는 법전 종정 등이 참석한 가운데 당일 오후2시 봉행한다. ◇사단법인 한독협회(회장 허영섭)는 29일 오전8시30분 서울 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한독포럼 창립식을 갖고 제1회 한독포럼을 개최한다. 한독포럼의 한국측 위원장은 고병익 전 서울대 총장,독일측 위원장은 테오좀머 ‘디 차이트’지 발행인이 맡기로 했다. 창립식에는27∼30일 우리 나라를 국빈방문하는 요하네스 라우 독일 대통령을 비롯해 양국의 정치·경제·문화·통일 분야 전문가 5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한편 이날 포럼에서는 양국간 현안과 협력증진 방안에 대해 각 분야 전문가의 주제발표와 함께 토론이 펼쳐진다.
  • 제9회 애서가상 이규행·김일근씨

    동호인 단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회장 呂丞九)은 15일 제9회 애서가상 수상자로 이규행(李揆行) 전 문화일보회장과 김일근(金一根) 건국대 명예교수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별명이 ‘책벌레’인 이 전회장은 책을 세 곳에 나눠 보관하고 있을 정도로 많은 장서를 갖고 있으며 그리프스의‘코리아’(1882년)등 희귀본과 귀중본도 다수 소장하고 있다.김 명예교수는 추사 김정희 집안의 한글편지 80점을비롯해 효종대왕이 공주와 장모에게 보낸 한글 안부편지등 400여건에 이르는 국문학 관련 자료를수집 발굴하였으며 1만권이 넘는 장서를 갖고 있다. 시상식은 20일 오후 4시 서울 서대문구 문화체육회관에서열린다. 신연숙기자 yshin@
  • 22일~4월11일 ‘완당과 완당바람’ 展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완당(阮堂·추사 김정희의 또다른 호)의 작품들을 대거 선보이는 자리가 마련된다. 조선 최고의 서예가 김정희의 작품들이 22일부터 4월11일까지 서울 동산방 화랑과 학고재에서 전시된다. ‘완당과 완당바람-추사 김정희와 그의 친구들’이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전시에는 총 110여점이 출품된다.이 가운데 완당의 작품은 73점이고 일반에 첫 공개되는 작품이 30점이다. 첫 선을 보이는 작품인 부람난취(浮嵐煖翠·아지랑이 피어오르는 푸르른 봄 언덕),일독이호색삼음주(一讀二好色三飮酒·첫째는 책읽기요 둘째는 여자 좋아하는 것이며 셋째는 술마시는 것이라)와 대표작인 단연죽로시옥(端硏竹爐詩屋·단계산 벼루,차 끓이는 대나무 화로,시를 지을 수 있는 작은 집만으로 만족하겠다는 선비의 마음을 말한 것) 등은 그의 시심과 속마음,인생관을 담고 있다. 김정희는 일반에 추사로 알려져 있지만 30대 이후에는 주로 완당이라고 불렸으며 100개 쯤 되는 호를 가졌다. 동산방 화랑의 박우홍 대표는 “위대한 서예가 완당 선생의 명작과 그의 벗과 제자 등의 작품을 통해 완당을 이해하는 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완당과 완당바람’은 영남대박물관(4월19일∼5월17일),국립제주박물관(5월27일∼6월30일),광주 의재미술관(7월8일∼7월31일)에서도 열린다.입장료 3000원,학생은 1000원. 동산방 화랑(02-733-5877),학고재(02-720-1524). 유상덕기자 youni@
  • 秋史 학문·예술 총체적 집대성

    ●완당 평전(유홍준 지음/학고재 펴냄). “당신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를 붓글씨를 잘 쓴조선 시대의 서예가 쯤으로만 알고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 최고의 서예가는 물론이요 시와 문장의 대가,금석학(金石學)과 고증학(考證學)에서 당대 최고의 석학,문인화의 대가,해동의 유마거사 등으로 일컬어지는 김정희(1786∼1856)에 대한 비평을 곁들인 전기 ‘완당 평전’이나왔다.김정희는 추사·완당등 여러가지 호를 썼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일약 스타 반열에 오른 미술사학자 유홍준(53·명지대 교수)씨가 짓고 학고재가 펴냈다. ‘완당 평전’은 문·사·철(文·史·哲),시·서·화(詩·書·畵)에 대성한 김정희의 삶과 학문,예술을 총체적으로 다룬 것으로 그에 대한 전기가 책으로 엮여져 출간된것은 그의 사후 150년만에 처음이다.지금까지 완당(阮堂)에 대한 전기는 지난 1976년 미술사학자 최완수(60·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씨가 ‘김추사 평전’을 신동아에 기고한 것이 전부이다. 저자가 ‘완당 평전’을 시도한 이유는 간단하다.사후 150년이 다 되도록 김정희 전기가 나오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추사 연구자들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학문과 예술 다시말해 시,금석학,고증학,경학(經學),불교학,서예,회화 등 어느 한 측면에서만 그를 논해왔기 때문이다.“심하게 말하면 전문화된 자기 전공만의 시각으로 추사를 바라보니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 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게 저자의 말이다.따라서 이 책은 추사 연구자들이 그동안 끊임없이 발표해온 연구업적을 종합해 시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추사의 인간상 전체를 집대성한 최초의 성과물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책은 2권으로 돼 있다.‘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이란 부제가 붙은 1권은 출생부터 제주도 유배 시절까지를,‘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라는 부제의 2권은 서울 용산에서 곤궁하게 살던 시기부터 완당의 서거와 사후 평가까지 다루고 있다.책을 읽어보면 신동 김정희가 아버지를 따라가접한 청나라 연경 학계와의 교류,학예를 연구하는 과정,출세 가도를 달리고 가문이 화(禍)를 당하는과정,제주도와북청 유배시절,과천시절의 모습 등을 탁월한 입담과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한 편의 역사소설처럼 긴장감있게 풀어내고 있다는 감이 든다.추사의 서예 등 예술,학문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해 도판을 389컷이나 실었다.각권 1만8000원. 한편 오는 20일에는 학고재와 동산방 화랑에서 ‘추사 김정희전’이 열리고 그에 맞춰 완당 전공자,연구가 등에게참고가 될 ‘완당 평전 3권-자료와 해제편’이 발간된다. 유상덕기자 youni@
  • [씨줄날줄] 세한도와 맥아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세한도’(歲寒圖)는 우리나라 문인화의 최고봉으로 꼽힌다.추사의 정신세계와 사제지간의 애틋한 정이 담긴 이 작품은 당시 중국의 대가들이붙인 찬사가 말해 주듯이 이 그림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품평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될 정도이다.탄생 배경이 기구하면생애가 또한 그런가? 추사의 유배지에서 탄생한 ‘세한도’의 이동 과정은 파란만장했다.제자 이상적(李尙迪)에게그려준 이 작품은 어찌어찌 해서 휘문고등학교 설립자로 유명한 민영휘(閔泳徽)의 소유로 넘어 갔다가 일본인 학자 후지즈카 린보(藤塚隣邦)의 손에 들어갔다.나중에 이를 안 서예가 손재형(孫在馨)이 일본까지 찾아가 후지즈카의 집 인근에 유숙하면서 무려 두 달을 조른 끝에 넘겨 받는 데 성공했다.그 3개월 후 1945년 3월 연합군의 폭격으로 후지즈카의 소장품들이 불타 버렸다니 손재형의 열정이 아니었다면 세한도는 지금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뻔 했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의 보도에 의하면 일본은 19세기 말부터 2차대전에서 패망하기까지 한반도 곳곳에서 최소한 10만점의 문화재를 약탈해 갔다고 한다.‘타임’ 아시아판 최근호(2월4일자)는 일본의 약탈자들과 관변 고고학자들은 일제강점기에 왕과 왕비의 무덤을 파헤쳐 금 세공품과옥 장식, 청자, 돌조각품,탑 등 유물을 닥치는 대로 약탈해간 것은 물론,사찰들에서 값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귀한사리함들을,도서관들에서는 수만점의 서책들을 일본으로 실어 날랐다고 폭로했다. 그런데 2차 대전이 끝난 이후 서방에서는 각국 정부와 박물관들이 나치가 약탈해간 문화재를 반환받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으나 아시아의 옛 일제 식민지,특히 한국에서는 이와 같은 노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하다고 이 잡지는지적했다.일본 점령군 사령관이었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정치적인 고려에 의해 약탈문화재의 반환에 반대했다는것이다.‘타임’은 이 사실이 미 문서보관소 기록을 통해드러났다고 밝혔다.일본에 전범 책임을 철저하게 묻지 않았던 것과 함께 맥아더의 또 하나의 실책이 드러난 셈이다.그러나 그것을 맥아더 실책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종군 위안부 문제등 빠트린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한일회담 실무자 중에 손재형 같은 안목을 가진 사람이 한사람만 있었어도 약탈 문화재 문제를 그냥 넘어가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 2001 길섶에서/ 靑出於藍

    제자들과 함께 바닷가에서 일박하게 된 유홍준 교수가 석질이 단단하고 모양이 괜찮은 돌 몇개를 주웠다.숙소로 가져와 그 중 몇개를 추리려고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는데 제자 한 사람이 들어왔다.잘 됐다 싶어 제자의 의견을 물었다.제자도 유 교수가 마음에 두고 있는 두 개를 찍었다.둘 다개성이 강한 것이었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인한 유교수가 안심하고 그 두 개를 배낭에 넣으려는데 제자가 토를 달았다. “선생님, 그런데예,그 돌은 오래 보면 싫증 납니데이.”“왜?” “평범하지 않다 아입니꺼.” “그러면 이걸 버리고 저걸 가져가?” “아니예.” 유 교수는 무슨 말인지 몰라 잠시 제자의 말뜻을 새기고있었다.유 교수의 의아한 표정을 알아차린 제자가 덧붙였다.“평범한 것과 같이 놓고 봐야 서로 돋보이지예.” 2년 전,유 교수가 계간 ‘역사비평’에 연재한 추사(秋史)김정희(金正喜) 이야기 중 제자 자랑 겸 양념으로 곁들인삽화를 재구성해 보았다. 김재성 논설위원
  • 집중취재/ ‘공권력 실추’ 이대론 안된다

    최근 공권력의 상징으로 불리는 청와대,국정원,검찰,경찰등 고위간부들의 직권남용 및 비리사례가 잇따르면서 그 권위와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졌다.이같은 공권력의 권위 실추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국민화합마저 해치고 있어 근본적인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각계의 목소리가 거세다. 전문가들은 21일 권력기관 핵심인사들의 비리근절과 직권남용을 막기 위해서는 정치적 중립장치 보완과 인사청문회 활성화,내부고발자제도 강화,정보공개 등 투명성 강화,행동수칙 마련은 물론 위법시 엄정한 사법처리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산업대 하태권(河泰權·행정학)교수는 “공권력은 불투명·폐쇄성이 큰 데다 감사원 감사마저 제대로 이뤄지지않는 만큼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장과 보상을 강화해 내부감시 쪽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하 교수는 이어 “공권력 수뇌부에 대한 인사청문회 도입도 좋은 대안이 될 수있다”고 밝혔다. 한림대 김재한(金哉翰·정치외교)교수는 “권력 수뇌부는자의성이 크기 때문에 그만큼 투명성이 갖춰져야 한다”면서 “고위공직자 비리에 대한 사법처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시민사회단체도 공직자윤리법의 개정 등 보완을 촉구했다. 참여연대 이태호(李泰鎬)시민감시국장은 “공직자 윤리에문제를 일으킬 만한 경우의 행동지침을 공직자윤리법 및 부정부패방지법에 명시,법제화해야 한다”고 제시했다.신대균(申大均)행정개혁시민제안운동본부장은 “사회지도층은 부정을 저질러도 대부분 사면복권되는 등 처벌이 너무 미약하다”면서 “권력기관 수뇌부에 대한 비리가 적발될 경우 대통령이 직접 나서 엄벌로 대처하는 의지를 보여야 공권력무력화를 방지하고 사회기강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가톨릭대 이정옥(李貞玉·사회학)교수는 “권력기관의 정치적 중립도 중요하지만 종사자들이 명예와 소명의식을갖도록 봉급을 현실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밝혔다.총리실 관계자는 “현정권 들어 정부에 대한 불신과 사회적 비리구조가 더 악화됐다”면서 “공권력의 견제와 통제기능이상실된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인적쇄신 외에는 대안이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청와대는 이같은 일련의 공권력 실추사태와 관련,전면적인 개각을 포함한 제도적 보완장치 마련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광숙 주현진기자 bori@.
  • [김성호기자가 본 종교 萬華鏡] 해원과 상생 사이

    이런 저런 위령제가 줄을 잇는다.까닭도 모른 채(사실은까닭있게) 죽어간,이른바 의문사한 망자들의 한도 풀어야하고 시위 도중 밟혀죽고 맞아죽은 어린 학생들의 넋도 달래야 한다.천주교계에선 박해 순교자들의 시복(諡福) 시성(諡聖)이 한창이다. 천기를 누설하면 구천에 떠도는 원혼이 된다고 했는데 이땅엔 무슨 비밀이 그리도 많길래 풀어줄 한들이 그렇게 많은지 모를 일이다. 유난히 ‘해원’(解寃)과 ‘상생’(相生)의 목소리가 높은 한 해였다.새 밀레니엄의 진정한 원단이니,한 세기의진짜 시작이니 하며 새해 벽두부터 알듯말듯한 화두로 나온 해원 상생이 연말인 지금 일상용어로 정착된 느낌이다. 심오한 의미의 종교 철학 용어가 이렇듯 생활속의 쉬운 말이 됐으니,역시 말은 삶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수단임이 틀림없다. 기독교의 ‘원죄’나 불교의 ‘무명’(無明)처럼 원과 한은 많은 종교에서 중시하는 인간 고통의 씨앗이다.이 맺히고 쌓인 원과 한을 풀어주는 해원을 상생의 질서로 바꿀때 그 고통이 해결된다는 게 ‘해원 상생’의 요체랄 수있다. 한풀이의 해원이 죽은 자를 위한 철학이라면,나도 살고너도 살고 서로 보듬고 잘 살아보자는 상생은 산 자를 위한 철학이다.그런데 따지고 보면 해원이나 상생이나 모두‘산 자’를 위한 철학이다.죽은 자의 한을 푼다는 해원도산 사람이 잘 살아보자고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젯상의 음복(飮福)은 산 사람의 몫이다.경북 안동의 그 이름난 헛제사밥 집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않는다고 한다. 잠깐 넋 타령을 접고 옆을 보자.아니 굳이 애써 보려고하지 않아도 눈에 들어오는 이웃들을 바라보자.찬 하늘과바람만 가려진 틈새에서 웅숭크리고 있는 노숙자며,고사리같은 손으로 어린 동생들을 챙기는 소년소녀 가장, 의지할곳 없는 독거노인들…. 이들에게 해원과 상생의 말뜻을 한번 물어보자.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는 ‘세상이 추워져야 소나무의푸르름을 보게 된다’는,차가움과 따스함의 미학이 함께담겼다.인적도 끊긴 채 고립무원 유배중인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준 벗에의 고마움이다. 가슴저린 작품이지만,그래서 세한도의여백은 더욱 넉넉하다.세한도의 숨은 뜻을 풀어냄은 살아있는 우리의 몫이아닐까.죽은 자의 한풀이도 좋다.하지만 산 자부터 챙겨보자.아이구 산 자들의 이 많은 한을 어떻게 다 푸나. 김성호 기자 kimus@
  • 2001 길섶에서/ 글씨 평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보면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일화가 소개돼 있다. 추사가 쉰넷에 제주도 귀양길에 올라 해남 대흥사에 들르게 됐다.귀양을 가면서도 기개가 살아 있던 추사는 대웅보전에 걸린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의 글씨 ‘대웅보전(大雄寶殿)’을 보더니 “조선의 글씨를 망친 사람의 현판”이라며 주지스님인 초의선사(草衣禪師)에게 당장 떼내라고신경질을 부렸다.추사의 고집에 초의는 현판을 떼냈고 추사는 제주도에서 긴긴 유배생활에 들어갔다.세한도(歲寒圖)도그리면서 9년을 보낸 추사가 귀양이 풀려 상경길에 다시 대흥사를 찾았다.초의와 회포를 풀면서 “원교의 현판이 어디있나. 그때는 내가 잘못 봤어”라고 말했다. 초의가 보관해두었던 현판은 제자리에 다시 달려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요즘 현판이나 비문을 나름대로의 이유를 들어 훼손하는일들이 종종 있다.꼭 부수고 없애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훼손과 보관은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일이다.하나는 비문화고,다른 하나는 문화다. 강석진 논설위원
  • 남북 ‘장관급회담’ 급반전 안팎/ 北 ‘비상경계’시각 교정

    남북 양측은 제 6차 장관급회담 마지막 날인 11일 저녁저녁식사를 겸한 3차 전체회의를 계속,이산가족 상봉 재추진과 제7차 장관급회담 개최 일정 등에 대해 이견을 좁힌것으로 알려졌다. 김령성 북측단장은 이날 저녁 만찬에 앞서 남측 기자들에게 “현 조건에서 이산가족들의 희망을풀어줄 수 있을까 논의하고 있다”고 말해 상황이 급반전되고 있음을 내비쳤다. ■협상은 비상경계조치 해제문제로 난항을 거듭했으나 북측이 11일 오후 늦게 남측의 공동보도문 초안을 요구하면서 타결 가능성이 점쳐졌다.남북 양측은 오후 실무접촉을통해 공동보도문의 초안을 서로 제시한 뒤 각각 서울과 평양의 훈령을 받아오기를 기다리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남북 대표단의 공동 석식은 막바지 접촉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시간이 오후 7시에서 7시30분,다시 8시로 두차례지연된 끝에 이뤄졌다. 이산가족 상봉 날짜와 장소,비상경계조치 해제 등을 둘러싸고 양측의 막후접촉이 그만큼 긴박하게 전개됐기 때문이라는 게 회담 관계자들의 분석. ■“남측의 비상경계조치가 북측을 겨냥한 것”이라고 주장하던 김 단장은 막후 접촉을 통해 남북의 의견접근이 이뤄지자 비상경계조치에 대한 표현을 바꿔 눈길을 끌었다. 김 단장은 남측 기자들에게 인천의 미사일 오발 사건과우크라이나의 미사일 오발로 인한 러시아 여객기 격추사건등을 들면서 “비상경계조치로 첨단무기가 배치되는데, 첨단 정밀무기일수록 오동작이 많기 때문에 안전하지 않다”는 논리를 폈다. ■홍순영(洪淳瑛) 수석대표와 김 단장은 공동석식에서 남북경제협력 문제를 놓고 담소했다. 홍 수석대표는 먼저 “남북관계가 시장경제원칙에 입각,경제교류를 많이 하는 것이 평화를 담보하는 것”이라면서“경협과 교류를 확대해 우리가 민족공동체이면서도 경제공동체가 되도록 하자”고 말했다.김 단장은 이에 대해 “5차 장관급회담에서 경협추진위 제2차회의 개최를 합의한뒤 북측 경제 실무자들이 개성공단 문제와 경의선 철도 연결문제 등 분야별로 깊이 토론하면서 만전의 준비를 했다”고 화답했다. ■현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면서 양측 대표단은회담 마지막날 밤을 새워가며 공동보도문안 작성에 들어갔다. 남측회담 관계자는 “회담은 이어져야 하고 빈손으로돌아가면 남북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금강산 공동취재단·진경호기자 jade@
  • 이색 조각·추상화…느낌이 다르다

    경북 경주시 신평동 경주힐튼호텔 내에 자리잡은 아트선재미술관 본관 전시실. 한국 추상화에서 큰 작가중 하나로 꼽히는 윤형근(73)과조각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심문섭(59)의 전시회가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12월25일까지. 먼저 1층의 심문섭 작품들부터 둘러 보았다.전시실 문턱을 넘자마자 길다랗게 반쪽난 통나무들이 ‘ㄷ’자 형으로이어진 작품이 눈에 띄었다. 동행한 작가 심문섭은 “내 조각에는 물이 흐른다”면서“물은 흐르고 흘러 다시 돌아온다.물의 순환은 생명의 흐름을 이어내는 하나의 고리로 영원한 순환체계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작품 곁에 바싹 다가가 살펴보면 오른쪽 통나무를 받치고있는 네모난 철통 안에 물이 고여 있고 이 물을 통나무 홈으로 뿜어 올리는 모터펌프가 돌아가고 있는데 묘하게 기계음이 아니라 물소리를 내고 있었다.뿜어 올려진 물은 반쪽난 통나무의 홈을 따라 서서히 아래쪽으로 흘러 가운데의 네모난 물받이에 이르고 고인 물은 또 호스를 통해 원점인 철통으로 되돌아간다. 물의 순환은 이런 식으로 끊없이 이어진다. 미술평론가 박신의씨는 “심문섭 작품에서 물은 생명이며나무는 재료이자 자연”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무에 칼을 대고,다듬고, 문지르고 하는 과정속에서 작가는 나무를느끼고 호흡하며,자신을 확인한다”고 덧붙였다. 심문섭전에는 이밖에도 통나무 위에 놓인 종이배, 광섬유 케이블로연결된 자연석·인공석 등이 소개된다. 추상화의 거인 김환기의 제자이며 사위이기도 한 윤형근의 작품들은 1층 일부와 2층 전시실에 걸려 있었다. 그의작품은 선비 정신이 잘 드러난 추상 회화라는 평을 듣는다.일본의 미술평론가 지바 시게오(千葉成夫)는 “윤형근의세계는 전통의 선비 또는 문인의 마음을 느끼게 하며 ,그나름의 방법으로 표현하며,고도로 추상화·개념화된 방식으로 인간·자연·사회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드러낸다”고말한다. 윤형근의 작품에는 형상이 없다.시간성을 느끼게 하는 색면과 고요하게 비워진 여백이 있을 뿐이다.캔버스와 유채(油彩)를 사용하지만 종이와 먹으로 이뤄지는 수묵화의 본질적인 전통을 자연스럽게 현대화하고있다고 느껴진다. 전시회 큐레이터를 맡은 미술평론가 신용덕씨는 “그는추사 김정희,겸재 정선 등 찬란했던 한국 미술이 현재로자연스레 이어지는 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설정하고오랜 기간 정진해오고 있는 작가”라고 말했다. “시는 외로운 것이며 그림은 조용하고 음악은 서러워야한다.그림은 시가 아니며 언어의 가능성을 넘어 마음으로,가슴으로 그려야 한다”는 윤형근의 평소 지론이 담긴 작품들이 30호부터 500호까지 60여점 전시돼 있다.(054)745-7075. 경주 유상덕기자 yo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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