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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대에 걸친 기증… 추사의 ‘세한도’까지 국민 품에

    2대에 걸친 기증… 추사의 ‘세한도’까지 국민 품에

    2012년엔 1000억 땅 국가에 기부도국립중앙박물관 11월 특별전시 준비개인이 소장한 국보 제180호 추사 김정희의 문인화 ‘세한도’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일 “소장자가 올 초 기증 의사를 전해 와 소유권 이전에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며 “국민 모두가 ‘세한도’의 의미와 가치를 공유할 수 있도록 오는 11월 ‘세한도’를 공개하는 특별전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소장자는 미술품 수집가인 손창근( 91)씨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11년 손씨에게서 ‘세한도’를 기탁받아 지금까지 관리해 왔다. 손씨는 2018년 대를 이어 소장해 온 ‘손세기·손창근 컬렉션’ 304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면서 ‘세한도’만은 기탁 형태를 유지했다. 그만큼 애착이 컸던 작품이지만 부친에게서 시작된 남다른 기증과 기부 이력에 비춰 ‘세한도’ 기증도 머지않아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개성 출신 실업가인 손세기 선생은 1974년 서강대에 고서화 200점을, 선친의 정신을 계승한 손씨는 2012년 시가 1000억원에 상당하는 경기 용인의 산림 200만평을 국가에 기증했다. 단출한 집 한 채와 소나무·잣나무 네 그루가 그려진 ‘세한도’는 제주도에 유배 중이던 추사 김정희가 제자인 역관 이상적에게 선물한 것으로, 조선 후기 문인화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제자는 이 그림을 청나라 명사 16명에게 보여 찬사의 글을 받아 남겼고, 근현대에 오세창·정인보 등이 글을 붙여 작품의 총길이는 10m가 넘는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국보 ‘세한도’, 국가 품에 안긴다

    국보 ‘세한도’, 국가 품에 안긴다

    개인이 소장한 국보 제180호 추사 김정희의 문인화 ‘세한도’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일 “소장자가 올 초 기증 의사를 전해와 소유권 이전에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며 “국민 모두가 세한도의 의미와 가치를 공유할 수 있도록 오는 11월 세한도를 공개하는 특별전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장자는 미술품 수집가인 손창근씨(91)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11년 손씨에게서 ‘세한도’를 기탁 받아 지금까지 관리하고 있다. 기탁은 소유권 일체를 넘기는 기증과 달리 소장자에게 소유권이 있다. 손씨는 2018년 대를 이어 소장해온 ‘손세기·손창근 컬렉션’ 304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면서 ‘세한도’만은 기탁 형태를 유지했다. 그만큼 애착이 컸던 작품이지만 부친에게서 시작된 남다른 기증과 기부 이력에 비춰 ‘세한도’ 기증도 머지않아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개성 출신 실업가인 손세기 선생은 1974년 서강대에 고서화 200점을 기증했다. 선친의 정신을 계승한 손씨는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회에 연구기금 1억원을 기부했고, 2012년에는 시가 1000억원에 상당하는 경기도 용인의 산림 200만평을 국가에 기증했다. 2017년 KAIST 건물 및 연구기금으로 총 51억원을 기부하기도 했다.2018년 컬렉션 기증식에서 “한 점 한 점 애착이 가는 물건들이지만 죽을 때 가져갈 수도 없고, 고민 끝에 박물관에 맡기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귀중한 국보급 유물들을 나 대신 길이길이 잘 보관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했던 손씨는 이번에도 “심사숙고 끝에 내놓았다”는 간결한 한 마디만 전했다고 한다. 단출한 집 한 채와 소나무, 잣나무 네 그루가 그려진 세한도는 고난 속에서도 기개를 잃지 않는 올곧은 선비정신을 상징하는 조선 후기 최고의 문인화 걸작으로 꼽힌다. 제주도 유배 중이던 추사 김정희가 59세 때 그려 제자인 역관 이상적에게 선물한 그림이다. 이상적은 중국에 사신으로 갈 때마다 구하기 힘든 서적을 찾아 추사에게 보내줬다. 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담아 추사는 세한도에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뜻의 ‘장무상망’(長毋相忘) 인장을 찍었다. 제자는 이 그림을 청나라 명사 16명에게 보여 찬사의 글을 받아 남겼고, 근현대에 오세창, 정인보 등이 글을 붙여 작품의 총길이는 10m가 넘는다. 1974년 국보로 지정됐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추사와 다산, 김환기가 숨쉬는 곳… 현세의 ‘무릉도원’속으로

    추사와 다산, 김환기가 숨쉬는 곳… 현세의 ‘무릉도원’속으로

    한양도성 순성이 도성 안팎으로 확대될 무렵 많은 사람들이 찾은 곳이 북악산과 인왕산, 북한산으로 둘러싸인 부암동이다. 인왕산 북벽 기슭 청계동천과 북악산 북벽 기슭 백석동천은 신선들이 사는 별천지, 동천복지(洞天福地)를 꿈꾼 곳이다. 그야말로 무릉도원이다. 어지러운 세상 잠시 잊고 꿈꾸듯 무릉도원을 걷는다. 광화문에서 버스를 타고 상명대 앞 삼거리에서 내렸다. 버스 정류장 앞 건널목을 지나면 석파랑(石坡廊)이 나온다. 대원군 이하응의 호 ‘석파’를 딴 이름이다. 1958년 소전 손재형이 석파정에 있던 일곱채 건물 중에서 별당 석파랑만을 현재 위치로 옮겨 지었다. 1819년 대과에 급제한 추사 김정희는 아버지 유당 김노경의 자제군관 자격으로 연행에 나선다. 1820년 1월 추사는 보소재 석묵서루에서 담계 옹방강(1733~1818)을 만난다. 스승 초정 박제가가 세 차례 연행하면서 옹방강과 교류했던 것에 비춰 보면 아마도 초정이 만나라고 권고한 듯하다.추사는 청나라 금석학의 대가 담계 옹방강을 깊이 흠모하면서 당호를 보담재(寶覃齋)라고 짓는다. 전국에 있는 비석을 탁본해 첩을 만든다. 원형을 간직한 우리나라와 중국 비석 글씨를 연구한다. 그 과정에서 북한산에 있는 비석이 진흥왕순수비라는 사실을 밝힌다. 스승 옹방강은 한나라 훈고학과 송나라 성리학을 서로 보완해 경학을 한다. 한송불분론(漢宋不分論)이다. 추사는 스승을 좇아 성리학과 청나라 고증학을 절충함으로써 북학의 틀을 확고히 하고 개화를 준비한다. 그러나 또 한 번 북청 유배길에 오르면서 모든 게 산산이 부서진다. 대신 유배지에서 붓 천 자루를 몽당붓을 만들고 벼루를 열 개나 밑창 내고서 추사체를 완성한다. 추사를 찾아 나룻배를 타고 서귀포까지 온 사람이 있다. 제자 이상적이다. 제자 이상적의 절개에 감복한 추사는 자신의 심경을 한 장 그림으로 표현한다. ‘세한도’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집은 김흥근의 부암동 별서 삼계동산정 별당 월천정(三溪洞山亭 別堂 月泉亭), 즉 흥선대원군 석파 이하응의 석파정 석파랑(石坡亭 石坡廊)이다. 송백은 석파정 정원수다. 추사와 이상적이다. 서울미래유산인 석파랑의 주인 소전 손재형은 22세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연이어 7회나 입선 또는 특선을 한다. 1933년부터 선전 심사위원 연 3회, 광복 후 국전(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연 8회 역임한다. 홍익대 미대 교수를 지냈다. 1944년 미군의 공습이 연일 계속되는 도쿄로 가서 세한도를 되찾아 온다. 세한도에 등장하는 석파정 별당을 옮겨 짓고 석파랑이라 부른다.석파랑에서 다시 도로를 건너 직진하면 도롯가에 멋진 정자, 세검정이 나타난다. 광해군은 어머니 인목대비를 경운궁에 유폐시킨다. 또 인목대비의 아들 영창대군을 강화로 유배 보내고 사실상 살해한다. 폐모살제(廢母殺第)한 광해의 패륜을 응징하기 위해 1623년 인조반정을 단행한다. 김류·이귀·심기원·김경징 등 반정공신들은 세검정에 모여 반정을 모의한 후 칼을 씻으면서 결의를 다진다. 반정군은 모화관에서 심기원의 병사와 합류한 후 창의문을 부수고 창덕궁을 점령한다. 광해군은 역모의 기미를 알았지만 적극 대처하지 않았는데 이는 김개시라는 상궁 때문이다. 실록은 상궁 김개시를 다음과 같이 평한다. “김상궁은 이름이 개시(介屎)로 나이가 차서도 용모가 피지 않았는데, 흉악하고 약았으며 계교가 많았다. 춘궁의 옛 시녀로서 왕비를 통하여 나아가 잠자리를 모실 수 있었는데, 인하여 비방으로 갑자기 사랑을 얻었다.” 실록에서는 보기 드물게 여자의 용모와 잠자리 비방 등을 직접 거론한다. 김개시는 광해의 총애를 받는다. 그런데도 그냥 상궁으로 머물렀다. 세검정에는 남인 다산 정약용의 흔적도 남아 있다. 목멱산(남산) 아래 명례방(명동) 집에서 벗들과 술잔을 기울이던 1791년 신해년 여름 어느 날 다산이 말을 타고 창의문 밖으로 냅다 달린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세검정에 올라 자리를 벌이니 비바람이 크게 일어나 산골 물이 사납게 들이친다. 그날 다산이 세검정에서 벗들과 노닐었던 기록, ‘유세검정기’에서 세검정을 이렇게 즐기라고 일러 준다. “세검정의 빼어난 풍광은 오직 소낙비에 폭포를 볼 때뿐이다. 그러나 막 비가 내릴 때는 사람들이 옷을 적셔 가며 말에 안장을 얹고 성문 밖으로 나서기를 내켜 하지 않는다. 비가 개고 나면 산골 물도 수그러들어 버린다. 이 때문에 정자가 저편 푸른 숲 사이에 있는데도 성중의 사대부 중에 능히 이 정자의 빼어난 풍광을 다 맛본 자가 드물다.” 세검정에서 하천을 따라 걸어가다가 오른쪽 골목길로 접어들면 별서 터가 나온다. 그야말로 서울 시내에 있는 보물이다. 별서 터에는 사랑채와 안채 등 두 채 집터와 연못 두 개와 정자 한 개 그리고 우물 등이 있다. 처음 별서정원을 가꾼 사람은 연객 허필(1709~1768)이다. 표암 강세황과 절친했다. 두 사람 다 시서화에 능했기 때문에 연객이 그린 그림에 표암이 시를 짓기도 하고 표암이 그린 그림에 연객이 찬하기도 했다. 연객 허필이 이곳에 별서를 조영했을 때는 그저 소박한 띠집이었다. 사랑채와 안채, 연못과 정자를 조영한 사람은 추사의 생부 유당 김노경이다. 연객과 유당에 이어 이곳 백석동천에 별장을 소유했던 사람은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아들 박종채(1780~1835)다. 한 가지 궁금하다. 1935년까지도 멀쩡하던 연못 정자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나?별서 터에서 산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왼쪽 길가에 백석동천(白石洞天)이라 각자한 바위가 나온다. 백석동천에서 말하는 백석은 열선도(列仙圖)에 등장하는 신선 백석생(白石生)이 들어가 살았던 백석산(白石山)이다. 백석생은 백석을 삶아 식량 삼아 먹으면서 백석산에서 살았다. 하늘로 오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하늘 위 신들의 세계라고 해서 인간세계보다 반드시 즐거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난해서 돼지 살 돈도 없었던 백석생은 양을 사서 십여 년 길렀다. 많은 돈을 벌어 내단약 금즙(金液)을 사서 먹고 백석산으로 들어갔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보다 오래 사는 것을 더 귀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노불사의 신선이 노니는 동천복지(洞天福地)를 구현하고자 했기 때문에 동천이라 했다. 산속 깊은 곳에 있다고 믿었던 신선들이 사는 별천지를 일컬어 동천복지라 한다. 일반적으로 속세와 격리된 산속 살기 좋은 땅을 뜻한다. 백석과 동천을 서로 엮으면, 백석산 깊은 곳 백석생이 사는 동천복지와 같은 별천지가 된다. 그야말로 신선이 노니는 도교적 이상향, 백석동천이 바로 이곳이다. 백석동천의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커피프린스’를 촬영한 카페가 나온다. 북악산 성곽과 인왕산 성곽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시 산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오른쪽 골목길 아래로 돌아들면 환기미술관이다. 김환기는 1913년 2월 27일 전남 신안군 기좌도에서 태어났다. 김환기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는 광복부터 한국전쟁까지다. 1948년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한다. 서울대 미술학부를 만든 동양미술사학자 근원 김용준과 교유하면서 우리 고미술과 한국미를 새롭게 발견한다. 산 중턱에 걸린 달, 길게 날아가는 학, 매화 긴 가지 등 한결같이 예서를 방불케 한다. 파리 시기를 통해 오히려 한국미를 확신한다. 김환기에게는 기좌도도, 서울도, 파리도 작았다.전환점은 1963년부터 1974년까지 뉴욕 시기다. 파리가 아닌 뉴욕에서 정점을 찍는다. 1969년 김환기는 뉴욕에서 절친 김광섭 시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실의에 빠진다. 김광섭의 시 ‘저녁에’를 주제로 마지막 시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제목으로 전면점화(全面點畵)를 그린다. 환기미술관에서 김환기 그림을 다시 본다. 김환기의 점화는 고구려 고분벽화를 가득 메운 고구려 사람들이 입은 땡땡이 옷이다. 도교사원 운주사를 가득 메운 석탑과 석상이다. 김광섭의 시를 가득 메운 별이다. 김환기, 그림, 별, 김광섭 그리고 시! 한양성곽 4소문 중 하나로 북소문 창의문을 만든 것은 1396년이다. 임진왜란 때 타고 없는 문루를 1741년 중수하기는 했으나 4소문 중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원래 위치를 지키는 문이다. 사람들이 창의문을 기억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인조반정 당시 반정군이 이 문을 지나 창덕궁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광해군 15년 1623년 세검정에서 결의를 다진 반정군과 능양군(훗날 인조)의 친정군이 합류해 창의문을 깨고 창덕궁으로 들어간다. 광해는 역모의 상소를 읽었지만 무시했다. 반정군이 창의문 밖에 모여 있다는 밀고까지 받았지만 반정군에 합세한 훈련대장 이흥립의 소극적인 대처로 이 또한 무효였다. 어머니 인목왕후를 폐위하고 동생 영창대군을 죽였다는 게 반정의 명분이었다. 그러나 광해의 가장 큰 실책은 ‘왕기(王氣)가 있다’는 이유로 동생 정원군(인조의 친부)의 아들 능창군(인조의 동생)을 유배 보낸 것이다. 유배지 강화에서 능창군은 목매 자결한다. 결국 광해가 능창군을 죽인 셈이다. 능창군의 형 능양군이 가만히 있다면 그게 패륜이다. 둘째는 이곳의 유명한 치킨집과 연관시켜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는 아름다운 그림 때문이다. 분명 봉황인데 사람들은 자꾸만 닭이라고 한다. 봉황 모가지를 닭 모가지처럼 그리기도 했다. 창의문 밖에서 바라본 부암동 형상이 마치 지네와 같아 지네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지네의 천적인 닭을 길렀다. 그래서 부암동에는 독특한 맛으로 유명한 치킨집이 많다. 글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 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그 외 부암동 일대의 서울미래유산 세이장 1974년 지어진 주택이며, 건축가 김수근이 직접 살기도 한 건물 체부동 성결교회 벽돌 쌓기 방식으로 1920년대 건립된 교회 서촌 한옥밀집지역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도시형 한옥들로 구성된 독특한 경관이 형성돼 있는 마을 통인시장 각 점포의 개성과 이야기를 담은 작품 전시 등 문화와 예술이 함께하는 재래시장 김봉수 작명소 1958년쯤 개업해 같은 지역에서 2대째 가업을 이어 오고 있는 작명소 이상의 집 시인 겸 소설가 이상이 1912년 백부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기거했던 가옥의 터 ●다음 일정 : 제9회 잠실의 추억●출발 일시 : 25일 오전 10시 출발●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문의 :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금요칼럼] 미강서원과 미수 허목 미술관의 우선순위/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금요칼럼] 미강서원과 미수 허목 미술관의 우선순위/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파주에 살다 보니 쉬는 날 드라이브라도 하려면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자유로 남쪽보다는 언제나 시원하게 달릴 수 있는 북쪽으로 방향을 잡게 된다. 재작년 문산에서 포천으로 이어지는 국도 37호선이 완공되고는 연천을 목적지로 삼곤 하는데 괜찮은 막국수집이 몇 군데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천은 중요한 문화유산을 다양하게 품고 있다. 전곡리 구석기 유적과 전곡선사박물관은 한반도를 대표하는 구석기 문화유산이고 호로고루와 당포성, 은대리성은 남쪽에는 드문 고구려 유적이다. 경순왕릉과 숭의전은 각각 통일신라에서 고려, 고려에서 다시 조선으로의 왕조 교체를 상징한다. 최근에는 군남리 막국수집으로 가는 길에 미수 허목(1595~1682)의 묘소를 알리는 자그마한 푯말이 눈에 띄어 반가웠다. 미수라면 흔히 남인의 영수로 불리며 노론의 영수인 우암 송시열과 이른바 예송 논쟁을 벌인 것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한마디로 당대를 대표하는 정치인의 한 사람이다. 그런가 하면 언젠가 삼척에서 미수 특유의 전서라는 뜻으로 미전(眉篆)이라고도 불리는 그의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 글씨를 보고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고, 영천 완귀정(玩龜亭) 같은 다른 전서도 무척 흥미로웠다. 안동 하회마을의 충효당(忠孝堂) 편액이 인상 깊었던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는 중국 상고시대 문자를 탐구해 자신만의 서체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17세기에 이루어진 과거에 대한 연구 결과가 21세기에도 현대적 느낌을 주는 글자체로 나타났다는 사실이 놀랍다. 미수가 만년을 연천에서 보냈고, 그를 배향한 미강서원이 이 고장에 세워졌다는 사실도 알고는 있었지만 푯말을 보기 전까지는 찾아갈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사실 지금도 연천에 남은 미수의 자취는 무덤뿐이다. 초가에 불이 나는 바람에 은퇴한 거물 정객의 거처가 마땅치 않다는 소식에 숙종이 내렸다는 일곱칸 은거당과 임진강변의 사액서원은 주춧돌만 남았다. 십청원(十靑園)과 괴석원(怪石園)이라는 정원도 있었다지만 흔적이 없다. 연천군은 은거당 터와 미강서원 터를 발굴조사한 데 이어 두 유적을 복원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럴수록 개인적으로는 지역이 낳은 역사 인물의 거처와 그를 기리는 시설의 모습을 되살리는 흔한 방법보다 오늘날에도 미래지향적으로 느껴지는 작업을 펼친 ‘미술인 미수’를 조명하는 데 투자의 우선순위를 두면 관광객 유치 효과도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과거엔 정치인이 예술인이고 예술인이 정치인이었다. 추사 김정희도 그랬다. 그는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제주 대정에 8년, 함경도 북청에 6년 동안 유배되기도 했다. 추사는 제주에서 추사체를 완성했고, 그곳에서 그린 세한도는 대표작이 됐다. 제주에는 세한도에 담긴 소박한 집을 닮은 추사관도 세워졌다. 일종의 미술관이다. 겸재 정선도 양반 사대부라는 출신 성분상 정치적 색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양천현령 시절 겸재가 남긴 양천팔경첩(陽川八景帖)의 대부분은 노론 실세들의 별서(別墅) 등을 그린 것이다. 같은 시기 한강 주변 경치를 33폭에 담은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도 소재를 고르는 기준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겸재가 정치인이자 행정가로 머물렀던 양천 관아와 양천향교 주변에는 겸재정선미술관이 들어섰다. 지금은 서울 강서구에 속한다. 미수가 추사나 겸재와 다르지 않은 반열의 예술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정치인으로서, 사상가로서의 자취가 너무 우뚝해 예술 분야에서의 성취가 오히려 가려지고 있지 않은가 싶다. 첫 번째 ‘미수미술관’이 연천에 세워졌으면 좋겠다. 우리 문화사를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미술관 입지가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미강서원 터 주변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 한일관계 연구에 온 힘… ‘근현대사 권위자’ 최서면 선생

    한일관계 연구에 온 힘… ‘근현대사 권위자’ 최서면 선생

    장례위원장에 김황식·이낙연 前총리우리나라 근현대사 연구 권위자인 최서면 선생이 2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92세. 본명이 최중하인 고인은 고 최규하 전 대통령의 사촌동생으로 1928년 강원 원주에서 태어났다. 1949년 연희전문학교(연세대 전신) 정치과를 수료했으며 일본 아시아대 교수, 일본 국제관계공동연구소장, 국제한국연구기관협의회 사무총장, 국제한국연구원장, 국가보훈처 안중근의사유해발굴추진단 자료위원장 등을 지냈다. 고인은 해방 후 김구 선생 노선을 따라 신탁통치 반대운동에 참여했다. 1947년에는 ‘장덕수 암살사건’에 연루돼 무기형을 선고받았으나 1949년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최 선생은 평생에 걸쳐 독도와 안중근 의사 등 한국과 일본에 관련된 다양한 역사 자료를 수집·연구했다. 특히 1969년 일본에서 안중근 의사 옥중 자서전인 ‘안응칠 역사’를 처음으로 발굴했다. 또 이봉창 의사 재판기록을 비롯해 북관대첩비와 안중근 의사 및 추사 김정희의 유묵 등을 찾아내 한국으로 반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가 아니라고 했음을 보여 주는 다양한 지도와 역사 자료 등도 발굴해 일본의 고유 영토설과 무주지 선점론을 반박하는 데 기여했다. 김황식·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공동위원장을 맡아 최서면박사장례위원회가 꾸려졌고, 장례는 가족 사회장으로 진행된다. 빈소는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28일 오전 8시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색을 넘어… 단색화는 [비움·원숙미]다

    1970년대 한국 화단에 등장한 무채색 계열의 추상회화 경향을 ‘단색화’로 명명한 건 불과 10년 안팎의 일이다. 한국의 모노크롬, 단색조, 단색회화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개최한 ‘한국의 단색화’전을 계기로 공식 명칭처럼 사용돼 왔다. 이후 미술시장에 단색화 열풍이 불면서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사조로 급부상했지만 한편에선 용어의 한계와 과도한 평가에 대한 비판도 있다. 서울 이태원 박여숙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텅 빈 충만’전과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윤형근 1989-1999’는 색(色) 중심의 오해와 편견을 넘어 행위의 반복과 시간의 중첩이 빚어낸 한국적 미학의 결정체로서 단색화에 주목한다. ‘텅 빈 충만’전은 아예 단색화 대신 ‘단색조 회화’란 용어를 앞세웠다. 전시를 기획한 정준모 큐레이터는 “모노크롬을 번역한 단색화는 서구미술의 아류처럼 인식될 수 있는 데다 색에 갇혀 버린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색이 아니라 재료의 물성을 통한 시각적 촉감, 오랜 시간 반복된 수행으로 스스로를 비워 내는 과정의 산물이 단색조 회화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 전시는 단색조 회화를 통해 한국 미술의 세계화를 모색하고자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트래블링 코리안 아츠’ 프로그램으로 중국, 독일,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이란, 베트남에서 열렸던 같은 제목의 순회전에 기반했다. 박서보, 정상화, 윤형근, 정창섭, 김창열 등 대표 작가와 최병소, 김태호 등 중견 작가를 비롯해 김덕한, 윤상렬, 이진영 등 신진 작가까지 장르와 세대를 망라한 18명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5월 10일까지. ‘윤형근 1989-1999’전은 단색화의 거장 윤형근(1928~2007)이 60대에 작업한 대작 중심의 회고전이다. 청색과 암갈색을 섞어 만든 먹색에 가까운 물감으로 리넨, 캔버스, 한지에 찍어 내리듯 붓질을 반복해 완성한 그의 작품은 수묵화 같은 번짐과 사각기둥 형상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엔 작가 고유의 작업 본질은 유지하면서도 보다 구조적이고 대담한 형태로 원숙미를 보여 주는 작품 20여점이 나왔다.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는 “지난 몇 년간 단색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1970~1980년대 초기 작업에 주목하는 전시가 많았다. 1991년 미니멀아트의 대가 도널드 저드와의 만남을 계기로 한층 단단해진 1990년대 작품 세계를 보여 주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기획했다”고 말했다. 윤형근이 생전 자기 그림의 뿌리라고 밝힌 추사 김정희 글씨와 더불어 작가의 작업실에 있던 도널드 저드의 판화가 전시장에 나란히 걸린 이유다. 6월 20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색을 넘어… 단색화는 [비움·원숙미]다

    색을 넘어… 단색화는 [비움·원숙미]다

    새달 10일까지 ‘텅 빈 충만’전 6월 20일까지 ‘윤형근 1989-1999’1970년대 한국 화단에 등장한 무채색 계열의 추상회화 경향을 ‘단색화’로 명명한 건 불과 10년 안팎의 일이다. 한국의 모노크롬, 단색조, 단색회화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개최한 ‘한국의 단색화’전을 계기로 공식 명칭처럼 사용돼 왔다. 이후 미술시장에 단색화 열풍이 불면서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사조로 급부상했지만 한편에선 용어의 한계와 과도한 평가에 대한 비판도 있다. 서울 이태원 박여숙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텅 빈 충만’전과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윤형근 1989-1999’는 색(色) 중심의 오해와 편견을 넘어 행위의 반복과 시간의 중첩이 빚어낸 한국적 미학의 결정체로서 단색화에 주목한다. ‘텅 빈 충만’전은 아예 단색화 대신 ‘단색조 회화’란 용어를 앞세웠다. 전시를 기획한 정준모 큐레이터는 “모노크롬을 번역한 단색화는 서구미술의 아류처럼 인식될 수 있는 데다 색에 갇혀 버린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색이 아니라 재료의 물성을 통한 시각적 촉감, 오랜 시간 반복된 수행으로 스스로를 비워 내는 과정의 산물이 단색조 회화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 전시는 단색조 회화를 통해 한국 미술의 세계화를 모색하고자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트래블링 코리안 아츠’ 프로그램으로 중국, 독일,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이란, 베트남에서 열렸던 같은 제목의 순회전에 기반했다. 박서보, 정상화, 윤형근, 정창섭, 김창열 등 대표 작가와 최병소, 김태호 등 중견 작가를 비롯해 김덕한, 윤상렬, 이진영 등 신진 작가까지 장르와 세대를 망라한 18명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5월 10일까지. ‘윤형근 1989-1999’전은 단색화의 거장 윤형근(1928~2007)이 60대에 작업한 대작 중심의 회고전이다. 청색과 암갈색을 섞어 만든 먹색에 가까운 물감으로 리넨, 캔버스, 한지에 찍어 내리듯 붓질을 반복해 완성한 그의 작품은 수묵화 같은 번짐과 사각기둥 형상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엔 작가 고유의 작업 본질은 유지하면서도 보다 구조적이고 대담한 형태로 원숙미를 보여 주는 작품 20여점이 나왔다.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는 “지난 몇 년간 단색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1970~1980년대 초기 작업에 주목하는 전시가 많았다. 1991년 미니멀아트의 대가 도널드 저드와의 만남을 계기로 한층 단단해진 1990년대 작품 세계를 보여 주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기획했다”고 말했다. 윤형근이 생전 자기 그림의 뿌리라고 밝힌 추사 김정희 글씨와 더불어 작가의 작업실에 있던 도널드 저드의 판화가 전시장에 나란히 걸린 이유다. 6월 20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그림인 듯 글씨인 듯… ‘서예의 진화’ 90분 영상에 담다

    그림인 듯 글씨인 듯… ‘서예의 진화’ 90분 영상에 담다

    국립현대미술관 첫 서예전격동기 거친 1세대 12인부터캘리그래피 등 현대서예까지한국서예가 걸어온 길 한눈에‘글씨와 그림은 뿌리가 같다’는 서화동원(書畵同原)은 동아시아 전통회화의 근간이었다. ‘서’를 중국은 서법(書法), 일본은 서도(書道), 한국은 서예(書藝)라 부른다. 서예란 말은 해방 이후 등장했다. 20세기 한국 서단의 거목인 소전 손재형(1903~1981)이 일제강점기에 쓰였던 서도 대신 서예를 주창하면서 대중화됐다.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문자예술로서 서예의 위상과 정체성 변화를 다각적으로 재조명하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개관 51년 만에 처음 여는 서예 단독 기획전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이다. 미술관이 지난 1년간 야심차게 준비한 기획전이지만 당분간 현장에서 직접 관람하긴 어렵다. 30일 오후 4시 미술관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youtube.com/MMCA Korea)에서 영상으로 먼저 공개된다. 전시를 준비한 배원정 학예연구사가 전시장을 이동하며 주요 작품을 설명하는 90분 분량 영상이다. 원래 덕수궁관에서 이달 12일부터 6월 말까지 전시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미술관 잠정 휴관이 길어지면서 대안으로 온라인 선공개를 택했다. 전시는 근현대 시기 한국 서예가 걸어온 길을 한눈에 보도록 짰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등 격동기를 거치며 전통서예와는 다른 서예의 변화를 이끌어온 1세대 서예가 12인을 집중 조명하고, 이들의 뒤를 이은 2세대 서예가들의 장르 융합적 실험에 주목하는 한편 캘리그래피 등 디자인적인 측면이 강조된 21세기 서예문화까지 두루 훑는다. 서예와 전각뿐 아니라 회화, 조각, 도자, 미디어아트, 인쇄 매체 등 300여 작품과 자료 70여점을 선보인다.전시는 4부로 구성됐다. 1부 ‘서예를 그리다 그림을 쓰다’에선 현대미술과 서예가 어떤 연관성을 갖고, 서로 영향을 미치며 발전해 왔는지 조명한다. “미술관에서 왜 서예전을 할까”라는 의문에 답하는 프롤로그 격이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자 현대적 문인화에 관심이 많았던 김환기의 시화 작품 ‘항아리와 시’(1954), 서체를 추상회화의 요소로 활용한 남관의 ‘흑과 백의 율동’(1981), 서체추상에 기반한 김종영과 최만린의 조각 작품 등이 전시됐다. 2부 ‘글씨가 그 사람이다’는 소전 손재형을 비롯한 근현대 1세대 서예가들의 작품을 모았다. 다양한 조형실험을 통해 ‘소전체’를 탄생시킨 손재형은 일본인 소장자를 설득해 추사 김정희의 걸작 ‘세한도’를 국내에 들여온 일화로도 유명하다. 서예의 회화성을 중시한 검여 유희강, 한글서예교본을 쓴 갈물 이철경, 고전미와 현대미가 어우러진 한글 서풍을 창출한 평보 서희환의 작품 10여점은 처음으로 공개됐다. 3부 ‘다시, 서예: 현대서예의 실험과 파격’에선 국전 1세대에게 교육을 받았던 2세대 서예가들 사이에 일어난 새로운 흐름을 소개한다. 붓과 먹의 역동성을 살린 황석봉의 ‘선상에서 1, 2’(2018), 고대 금문을 현대적인 조형으로 재해석한 박원규의 ‘공정’(2020) 등 문자의 가독성보다 이미지에 집중해 ‘읽는 서예’에서 ‘보는 서예’로 변화를 모색한 결과가 흥미롭다. 4부 ‘디자인을 입다 일상을 품다’는 2000년대 이후 상업 광고 등을 통해 급부상한 캘리그래피와 타이포그래피 등으로 영역을 확장한 현대 서예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 준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코로나19로 미술관 직접 방문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온라인 중계로 만나는 서예전이 새로운 희망과 위로를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술관 휴관은 다음달 5일까지이지만,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재개관 일정은 유동적이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코로나 시련 뚫고, 또다시 봄이 왔네

    코로나 시련 뚫고, 또다시 봄이 왔네

    나라 전체가 멈춰 선 듯하다. 바이러스 탓이다. 사람들은 나들이를 꺼리고, 여행지는 얼어붙었다. 빼앗긴 들에도 왔던 봄인데, 한국인의 가슴엔 봄이 내려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막아서도 봄은 온다. 매화가 팝콘처럼 터지기 시작했고 들꽃들도 시나브로 꽃대를 밀어 올리고 있다. 경남 양산의 통도사를 찾았다. 늙은 매화가 필 때면 늘 뭇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리는 절집이다. 절집 뜨락의 수백년 묵은 자장매가 붉은 꽃술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행장 꾸려 내려갔다.●부처님 진신사리 모신 사찰… 370년 ‘자장매’ 인기 통도사는 선원과 강원, 율원을 모두 갖춘 대가람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있어 불보 사찰이라고도 한다.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봄의 통도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건 이른바 ‘자장매’(慈臧梅)다.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의 법명을 딴 매화다. 영각(影閣) 처마 아래 있다. 수령은 370년쯤 됐다고 한다. 2월 하순쯤 꽃이 피기 시작하면 분홍빛 매화를 보려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룬다. 극락보전 옆에도 이름난 홍매 두 그루가 있다. 각각 만첩홍매와 분홍매로 불린다. 한데 ‘꽃보다 절집’이었다. 자장매의 자태도 명불허전이었지만 절집의 웅숭깊은 아름다움은 그보다 몇 배 뛰어났다. 다른 여행지를 둘러볼 생각은 못하고 절집에서 ‘혼자놀기의 진수’를 선보인 건 그 때문이다. ●법당 중심으로 상로전·중로전·하로전으로 나뉘어 통도사는 가람 배치가 독특하다. 법당을 중심으로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 등 세 구역으로 나뉜다. 이는 통도사가 조성 시기가 다른 3개의 가람이 합해진 복합사찰이라는 뜻이다. 일주문을 넘어서면 곧 하로전이다. 영산전(보물 제1826호)과 극락보전, 범종루 등의 당우가 밀집돼 있다. 극락보전 외벽의 ‘반야용선도’가 여행자의 시선을 잡아끈다. 용선을 타고 피안의 세계로 가는 중생들의 모습을 담았다. 삼층석탑(보물 제1471호) 맞은편은 영산전이다. 하로전 구역의 중심 건물이다. 영산전은 안을 들여다봐야 한다. 다보탑을 그린 ‘견보탑품도’ 등 진귀한 벽화들(보물 제1711호)이 즐비하다. 중로전 구역에는 고려 말 건물인 대광명전을 비롯해 용화전, 개산조당 등이 자리잡고 있다. 이 구역에서 가장 독특한 건 봉발탑(보물 471호)이다. 부처님의 발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밥그릇에 뚜껑이 덮인 형상을 하고 있다. 발우는 스님들이 밥을 먹을 때 쓰는 그릇이다. 봉발이란 발우를 모셨다는 뜻이다. 용화전 안에는 중국 소설인 서유기의 내용 일부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절집 벽화로는 매우 이례적인 그림이다. 이제 상로전으로 간다. 가장 중요한 건물은 ‘대웅전 및 금강계단’(국보 제290호)이다. 대웅전은 사면이 한 건물을 이루는 독특한 구조다. 면마다 출입문이 있고, 현판도 달려 있다. 동쪽은 대웅전(大雄殿), 서쪽은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은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다. 이는 모두 대웅전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대웅전 안에는 불상이 없다. 건물 뒤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으므로 불상이 따로 필요 없다는 의미다. 금강계단은 납자가 되려는 이들에게 계(戒)를 수여하는 의식을 벌이는 곳이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는 건 곧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계를 받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납자들 모두가 이 계단을 통해 득도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 통도사란 이름도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고 한다. 대웅전 지붕 위에도 볼거리가 많다. 가로 지붕과 세로 지붕이 만나는 정점에 철 구조물이 세워져 있다. 석탑의 찰주(꼭대기에 있는 원기둥 모양의 중심 기둥)와 불가에서 보배로 여기는 보주(둥근 구슬)를 형상화한 것이다. 사파이어빛 조형물이 아름다우면서도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 모습 못 봤으면 후회가 막심할 뻔했다. 대웅전 주변에서는 찰주의 일부만 보인다. 통도천 건너편의 사자목 오층석탑에 오르면 전체를 살필 수 있다. 찰주에서 아래로 내려오면 기와 끝자락에 하얀 연꽃봉오리 같은 것들이 늘어서 있다. 이른바 백자연봉이다. 기와 끝의 숫막새에는 와정이라는 못이 박혀 있다. 기와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박아 놓은 것이다. 못을 가리고 조형미를 더하기 위해 와정 위에 연꽃 모양의 백자를 얹는데, 이게 바로 백자연봉이다. 대방광전 앞의 구룡지(九龍池)는 통도사의 창건 설화가 담긴 작은 연못이다. 자장율사가 구룡소에 사는 용들을 승천시키고 못을 메워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응진전 앞 바닥에는 호혈석(虎血石)이라 불리는 붉은 돌이 있다. 호랑이의 기를 누르기 위해 호랑이 피를 발랐다는 반석이다. 물을 부으면 붉은 빛을 띤다. 극락전 앞에도 또 하나의 호혈석이 있다. 아울러 대웅전 계단에 새겨진 용의 비늘, 계단 옆에 마련해둔 아귀밥통 등 재밌는 이야기를 담은 유물들을 찬찬히 찾는 재미가 각별하다.●벽화부터 명필 글씨까지… ‘불화의 보고’로 유명 통도사는 흔히 ‘불화의 보고’라고 불린다. 그만큼 벽화가 많다는 뜻이다.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볼 수는 있으니 최대한 많이 눈에 담아가는 게 좋겠다. 명필들의 글씨도 많다. 일주문 현판의 ‘영축산통도사’(靈鷲山通度寺), 관음전 맞은편의 ‘원통소’(圓通所) 현판, 대웅전의 네 개 현판 중 ‘대방광전’과 ‘금강계단’ 등이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글씨다. ‘일로향각’(一爐香閣) 현판과 주지실 앞의 ‘탑광실’(塔光室) 등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알려졌다. 추사의 ‘성담상게’(聖覃像偈)라는 서예작품은 성보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춘풍에 세상 시름 씻겨 보내리●1㎞ 솔숲 걷노라면 업장이 벗겨지는 듯 통도사 입구를 넘어서면 곧바로 솔숲이 펼쳐진다. 이른바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다. 무풍교에서 일주문 사이 솔숲에 조성된 보행로다. 솔숲에 들면 늙은 소나무들이 춤을 추듯 늘어서 있다. 통도사 일대의 빼어난 풍경을 일컫는 이른바 ‘통도8경’ 가운데 1경인 ‘무풍한송’이 바로 여기다. 솔숲의 길이는 1㎞ 정도다. 천리길을 걷듯 느릿느릿 걷는 게 솔숲의 정수를 만끽하는 방법이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솔향이 코를 간질이고, 솔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영혼이 씻기고 업장이 벗겨져 나가는 듯한 느낌이다. 하마비가 세워진 산자락엔 큰 암벽이 있다. 부채를 펼친 듯하다는 선자바위다. 바위 여기저기에 선인들의 이름이 빼곡하다. 조선의 풍속화가 단원 김홍도, 일제강점기 박영효, 종두법의 지석영, 애국지사 의암 손병희 등의 이름이 적혀 있다는데,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껄렁한 여행자 눈엔 그저 우수마발들의 이름만 들어찰 뿐이다. 부도탑에 이르면 무풍한송로는 끝이 난다. 곧장 들어가면 통도사 중심 영역이고, 주변으로 실핏줄처럼 이어진 소로를 따라 가면 부속 암자들이 나온다. 통도사의 부속 암자는 모두 19곳이다. 불심이 깊은 이들은 암자를 모두 둘러보는 ‘19암자 순례’에 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하루 일정으로는 어려워 일반 관광객들은 유명한 암자 서너 곳을 둘러보는 게 보통이다. 19암자 가운데 영축산 중턱의 백운암을 제외하면 모두 차로 접근할 수 있다. 서운암은 장독대로 유명하다. 그 숫자가 무려 5000개에 이른다고 한다. 원래 야생차로 유명했던 곳인데 요즘은 장독대를 보기 위해 찾는 이들이 더 많다. 옹기들은 대부분 최소 50년이 넘었고 200~300년 된 것도 섞여 있다. 장독 안에서는 된장이 익어간다. 운이 좋으면 서운암에서 키우는 공작새가 꼬리깃을 활짝 펼친 장면과 마주할 수도 있다.●영축산 능선 품은 16만 도자대장경의 장경각 서운암 위는 장경각이다. 16만 도자대장경을 모신 곳이다. 도자대장경은 도자에 새긴 불경을 일컫는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8만 1528장의 목판 양면에 법문을 새긴 까닭에 견줘 도자대장경은 한 면에 새긴 탓에 전체 도판 수가 그 두 배인 16만 3056장에 이른다. 도자대장경을 완성하기까지 준비기간 5년을 포함해 무려 15년이 소요됐다고 한다. 이웃한 곳에 삼천불전도 있다. 역시 도자로 만든 3000개 불상을 모시고 있다. 장경각 앞 뜨락에 서면 영축산과 멀리 양산 시가지가 한눈에 담긴다. 가장 볼거리가 많은 곳은 자장암이다. 첫손 꼽히는 건 마애아미타삼존상(등록문화재 제617호)이다. 전체 높이가 4.54m에 이르는 대형 마애불이다. 1896년(고종 33년) 조성됐다. 다른 곳과 달리 자장암의 마애상은 바위에 얕게 새겨진 편이다. 이 덕에 조각이 아닌 불화(佛畵)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마애상 뒤편 바위엔 금와보살이 산다. 거대한 바위 중심부에 작은 구멍이 뚫렸고, 종종 이 구멍 밖으로 황금빛 개구리가 출현한다고 한다. 불심 깊은 이들 눈에만 보인다고 하니 한번 도전해 보시길.●빼어난 경관에 왜구들도 활을 놨던 안양암 암자의 마루에 걸터앉으면 ‘악’ 소리나는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뜨락 위의 키 낮은 담장 너머로 영축산 능선이 얹혀져 있다. 늙은 소나무들은 이리 휘고 저리 굽은 자태로 추임새를 넣고 있다. 단정하고 소박한 풍경화 한 폭을 보는 듯하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발품 판 노고는 보상받고도 남는다. 원래 통도사 암자 가운데 전망 좋기로 명자깨나 날리던 곳은 안양암이다. 임진왜란 때 왜구들이 활을 쏘려다 눈앞에 펼쳐진 경관이 너무 빼어나 활을 놓고 말았다던가. 통도8경 중 제3경인 안양동대(安養東臺)가 바로 이 절집이 앉은 자리를 일컫는 말이다. 한데 시원한 맛으로는 자장암에 한 수 접어줘야 할 듯하다. 극락암은 극락영지(極樂影池)라는 작은 연못과 그 위에 놓인 어여쁜 홍교로 유명한 암자다. 통도8경 중 제5경이 바로 여기다. 연못엔 영축산 풍경이 그대로 담긴다. 연못 위 홍교는 당대 최고의 선지식으로 꼽히는 경봉 스님이 1962년 조성했다. 극락영지와 나란히 선 늙은 벚꽃이 개화하면 그야말로 선경이 펼쳐질 듯하다. 글 사진 양산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대중법회 일시 중단… 공양간도 폐쇄 -금강계단은 상시 개방됐던 예전과 달리 일정 기간에만 공개된다. 매달 음력 1~3일, 보름 등의 특정 시기 오전 11시~오후 2시에 개방한다. 통도사 홈페이지에 자세한 개방일자가 나와 있다. 평시에는 대광방전 쪽 담장 너머로 살펴볼 수밖에 없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대중법회 등은 취소됐지만 다행히 산문은 폐쇄되지 않았다. 다만 내방객 모두 발열 체크를 해야 하는 등 다소간의 불편은 예상된다. 코로나19 확산세에 따라 상황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방문 전 확인하는 게 좋겠다. -공양간도 폐쇄됐다. 3월 초까지는 절밥을 먹을 수 없다. 산문 앞에 산채비빔밥 등 맛집들이 즐비하다. 삼정메밀소바, 금호정 등은 메밀국수로 유명한 집이다. 통도사 입구에서 멀지 않다. -통도사는 울산 울주군과 인접해 있다. 양산 시내보다는 석남사, 반구대암각화 등 울주 쪽 명소들을 묶어 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
  • ‘빈자의 미학’ 승효상, 건축인생 30년

    ‘빈자의 미학’ 승효상, 건축인생 30년

    ‘빈자의 미학’을 추구해 온 건축가 승효상의 30년 작업을 총망라한 개인전 ‘승효상.ZIP: 감성의 지형’이 서울 중구 장충동 복합문화공간 ‘파라다이스집(ZIP)’에서 이달 29일까지 열린다. 파라다이스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대표작인 수백당(1999), 하양 무학로 교회(2018) 등 건축 모형 21점과 사유원 명정(2019), 추사관(2010) 등의 흑백 사진 72점을 통해 작가의 건축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자리다.비움과 절제를 핵심으로 삼은 그의 건축 철학은 한 세대를 거치며 “우리의 선함, 진실됨, 아름다움을 날마다 새롭게 발견하게 하는 건축이 좋은 건축”이라는 지론으로 이어졌다. 전시 제목인 ‘감성의 지형’은 “건축은 단지 외관을 짓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짓는 것”이라는 한 단계 더 발전된 화두를 제시한다. 전시 공간인 파라다이스집은 80년이 넘은 고택을 승효상 건축가가 2016년에 리모델링한 것이다. 바로 앞에는 그가 2000년 설계한 웰콤시티(현 디자인하우스 사옥)가 있다. 2층 전시장 창문을 사이에 두고 건축가의 두 작품을 동시에 볼 수 있어 흥미롭다. 무료 관람.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무대 닫습니다”···’신종 코로나 포비아‘ 덮친 문화계

    “무대 닫습니다”···’신종 코로나 포비아‘ 덮친 문화계

    먼데이키즈·악뮤 등 콘서트 연기제작발표회는 스트리밍으로 대체서울시향도 전석 매진 공연 취소“위약금 있어도 조심하는 분위기”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문화계 전반에 미친 타격이 크다. 뮤지션들은 콘서트 연기나 취소 공지를 내놓고, 각종 제작발표회는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으로 대체하고 있다. 영화 개봉 연기, 해외 음악가들의 공연 취소 소식도 속속 들려온다. 새 앨범 발매와 함께 단독 콘서트를 계획했던 뮤지션들은 공연이나 예매 기간을 미루는 분위기다. 2년 4개월 만에 컴백한 젝스키스는 4일 예정됐던 예매 오픈 일정과 7~8일 팬 사인회를 연기했고, 백예린도 22일 앙코르 공연 예매 오픈을 안하기로 했다. 이달 중 무대에 오르려던 가수 김태우와 김진호, 악동뮤지션, 그룹 V.O.S와 위너 역시 국내외 공연 일정을 중단했다. 7일 예정된 공연을 3월 20일로 미룬 먼데이키즈는 “대관 사정으로 무기한 연기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각종 행사들은 녹화나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되고 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지난 4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려던 회사 설명회를 동영상 제공으로 대체했다. 5월 신사옥 이전과 상장 추진 등 굵직한 사업을 앞두고 취재진에게 대대적으로 설명할 계획이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나홀로 그대’, tvN 드라마 ‘방법’도 같은 날 제작발표회 현장을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송출했다. 공연계 관계자는 “일정 변경나 취소에 따른 위약금 부담이 크지만 어쩔 수 없이 조심하는 분위기”라며 “프로모션을 아예 안 할 순 없으니 스트리밍 등 다른 방법을 고민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클래식 공연도 속속 무산 소식을 알리고 있다. 애호가들이 올해 최고 기대 공연으로 손꼽아온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첫 내한공연 취소에 이어, 서울시립교향악단도 이미 전석 매진된 콘서트를 하지 않기로 했다. 시향은 6일 오후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퇴근길 토크 콘서트’를 할 예정이었으나, 관객의 건강을 고려한 결정이다. 마포문화재단은 2월 중 예정됐던 공연 5편을 취소하거나 미뤘다.뮤지컬계는 지난해 12월부터 잠실 로열씨어터에 진행 중이던 ‘위윌락유’가 공연을 멈췄고, 8일 서울 광진문화예술회관 나루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개막 예정이었던 가족뮤지컬 ‘공룡 타루’도 무대에 오르지 않는다.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전 연계 프로그램으로 추진된 ‘추사국제 학술포럼’은 중국 측 발표자가 불참의사를 밝혀 취소됐다. 영화관은 신작 개봉 날짜 변동으로 더 얼어붙을 전망이다. 올 겨울 최대 기대작 중 하나였던 전도연·정우성 주연의 범죄극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개봉을 무기한 연기했다. 제작진은 “기존 관객들과 약속된 행사도 축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라미란 주연의 코미디 영화 ‘정직한 후보’도 12일로 예정됐던 개봉일을 바꾸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외화 중에서는 ‘레미제라블: 뮤지컬 콘서트’가 개봉일을 16일에서 새달 26일로 옮겼고 7일로 공지됐던 언론·배급 시사회도 열리지 않는다. 오는 25일 예정됐던 올해 56회 대종상 영화제도 기약이 없다. 영화제 조직위원회는 “공연장을 찾는 관객과 아티스트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져 잠정 연기하게 됐다”고 했다. 1월 관객은 1684만명 994명으로 2012년 이후 8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박성국 기자 psk@seoul.co.kr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고전과 창신이 농울치는 모국어의 연금술사

    고전과 창신이 농울치는 모국어의 연금술사

    내 기억에 이근배 선생은 신춘문예 다관왕으로 가장 선명하다. 신춘문예는 그때나 지금이나 모든 문청들의 최고 로망이다. 선생을 이야기할 때마다 늘 따라다니는 이 화려한 이력은, 한국문학사 전체에서 한 천재 시인의 탄생을 예고한 전무후무한 기록임에 틀림없다.●천재 시인의 탄생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벽’으로 당선된 1961년 경향신문 시조 ‘묘비명’으로 2관왕에 올랐다. 이듬해 동아일보(시조 ‘보신각종’)와 조선일보(동시 ‘달맞이꽃’), 1964년엔 한국일보(시 ‘북위선’) 신춘문예에 줄줄이 당선됐다. 다른 신인상까지 살피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불어난다. 선생은 약관의 나이인 1960년 3월에 시집 ‘사랑을 연주하는 꽃나무’를 냈다. 표지는 빨간 빛깔이고 속표지에는 스무 살 ‘청년 이근배’의 사진이 수줍게 들어 있다. 1960년 3월 25일 출간이니까 4·19혁명 한 달 전쯤이다. 서문은 미당 서정주가 썼는데 은사로서 제자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내고 있다. “경자년(庚子年) 3월 3일”에 썼으니 미당 서문도 곧 회갑을 맞는 셈이다. 이근배 선생은 백지를 꺼내더니 붓펜으로 멋있게 ‘回榜宴’이라고 썼다. 회방연이란 예전에 과거에 급제한 지 예순 돌을 기념하는 잔치를 이르던 말인데, 면앙정 송순이 회방연을 치렀다고 한다. 말하자면 올해는 첫 시집이, 내년은 신춘문예 등단이 회방연을 맞는 셈이다. 선생은 194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으니 올해 여든하나이다. 하지만 여전히 열정적인 활동으로, 누구보다도 정확한 기억으로, 내내 자신이 걸어온 한국문학의 숲길을 풍요롭게 열어 보여 주었다. ●이근배 시의 뿌리, 아버지 이근배 선생에게 아픈 가족사가 있었고 그것이 선생 시의 원형이 됐다는 것은 알 만한 분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선생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에 몸담았던 아버지에 대해 깊은 자랑과 연민과 원망을 동시에 가지고 살아왔던 것이다. 김종길 시인은 “일제강점기부터 ‘사상가’였던 부친에 대한 이 시인의 ‘아버지 콤플렉스’가 그로 하여금 조국 분단의 비극을 유난히 뼈저리게 겪게 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선생은 최근에 그 ‘사상가’ 아버지를 독립운동가 유공자로 신청해 놓았다. “할아버지는 유학자셨고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셨어요. 당시 국내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는 사회주의 계열이 많았습니다. 아버지께는 독립운동 근거 자료가 워낙 많아 인정받으실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 신청을 겨우 했으니, 그동안 자식 노릇 제대로 못했던 거지요.” 소년 근배에게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나라 찾는 일 하겠다고/감옥을 드나들더니 광복이 되어서도/집에는 못 들어오는”(‘자화상’) 분이셨다. 선생은 자신의 ‘자화상’을 전문 암송하면서 탄복할 만한 기억력을 다시 보였다. 당연히 어머니는 “사상가의 아내가 되어서/잠 못 드는 평생”(‘냉이꽃’)을 보내셨을 것이다. 그리고 기억나는 대로 이근배 선생과 가까웠던 세 분을 여쭈었다. 공초 오상순, 미당 서정주, 무산 조오현이다. 두 분 스승에 대한 애착과 오현 스님에 대한 애틋함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공초는 무장무애, 미당은 천의무봉, 오현은 능소능대였어요. 공초 선생은 제게 정말 많은 사랑을 주셨어요. 그분이 남기신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와 ‘자유가 나를 구속하는구나’ 하는 말씀은 지금도 ‘우주의 지휘자’로서 그분을 기억하게끔 해줍니다. 문학사에서 그동안 저평가됐는데, 유 교수 같은 분이 정확하게 평가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공초가 지어 준 이근배 선생의 아호 ‘사천’(沙泉)은 ‘오아시스’라는 뜻이다. 시인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을 때도 이 이름을 썼다. ‘사천’은 이근배 시의 본령을 풀어 가는 데 상징적 열쇠가 돼 준다. 스스로도 “사막 같은 세상을 잘 건너가라고?/오아시스 같은 사람이 되라고?”(‘사막 타클라마칸’)라고 노래한 바 있듯이, 그의 시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불우한 역사에서 솟구쳐 오른 모국어의 샘이었기 때문이다. “미당 선생은 한국어가 어떻게 그리 아름답고 풍부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 살아 있는 현대시의 고전이지요. 제가 선생님 돌아가시고서 쓴 조시가 ‘미당경전’이에요. 한번 읽어보시겠어요?” 작년에 펴낸 시집 ‘대백두에 바친다’에 실린 ‘미당경전’에서 선생은 21세기 첫 성탄전야에 돌아간 미당을 그리워하는 음성을 처연하고도 감동적으로 들려주었다. 스승의 시를 ‘경전’으로까지 명명하는 선생의 마음이 애잔하게 다가온다. 그러고 보니 미당과 사천은 등단작 제목이 같다. 1936년에 미당도 신춘문예에 ‘벽’으로 당선했으니 말이다. 스승과 제자는 나이도, 신춘문예 등단도, 모두 스물다섯 터울이다.●이근배 시의 메타포, 벼루 이근배 선생은 시를 일러 “사람의 생각이 우주의 자장을 뚫고 만물의 언어를 캐내는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렇게 커다란 스케일과 촘촘한 밀도로 쓰인 그의 시는 사라져버린 것들의 아름다움을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되살리면서 펼쳐져 왔다. 그 은유적 육체를 시인은 ‘벼루’에서 찾아냈는데, 아닌 게 아니라 단단한 돌의 질감과 예술적 조형미를 아울러 갖춘 벼루는 이근배 시의 상징적 메타포로 충분할 것 같다. “할아버지 방에서 나오던 먹 냄새가 원체험이지요. 저는 불가사의한 신의 예술품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옛 벼루를 비롯한 선현들의 유묵 또는 청자, 백자 등 유물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에 지금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연벽’(硯癖)이라는 말도 있듯이 선생은 세계 제일의 벼루 컬렉터로 유명하다. ‘시행일여’(詩行一如)라고 했거니와 ‘연행일여’(硯行一如)라도 되는 듯이 선생은 벼루에서 삶과 우주, 시간과 예술을 바라본다. 귀하기 짝이 없는 수백 년 묵은 벼루들을 낱낱이 보여 주면서 스스로도 예술가로서의 존재 방식을 묻고 있는 듯했다. ●대한민국예술원 원로들에 대한 예우 지난해 말 선생은 제39대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으로서 임기를 시작했다. 시인으로는 조병화 선생에 이어 두 번째이고 문인으로 치면 일곱 번째다. “1964년 탄생한 대한민국예술원은 김동리 선생이 추진해 만든 국가기관입니다. 누가 변형시키거나 축소할 수 없지요. 회원 수는 100명으로 정해져 있어요. 이분들은 평생을 예술에 헌신해 온 원로이지만 여전히 쟁쟁한 현역들입니다. 이분들이 국가 위상을 높이는 실질적 역할을 하도록 예술원에 대한 예우 제고가 필요합니다.” 예술원 차원에서 추진해야 할 일에 대한 계획도 촘촘하게 세웠다. “제 임기 동안 ‘회원’이라는 명칭을 ‘종신회원’으로 바꾸고 국가적 차원의 예우를 통해 예술원의 위상을 높여 가려고 합니다. 또 예술원 단독 청사 입주를 꾀해 보려고 해요.” 예전에 “남들이 막장에 들어가 모국어의 보석을 캘 때 갱구 앞에서 부스러기 돌이나 줍고 있었다”(‘문학적 자전’)라고 겸손해한 그였지만, 이제는 그 선두에 서서 예술의 도약을 꿈꾸는 역할을 맡게 됐다. 그리고 선생은 개인적으로도 고향 당진에서 ‘이근배문학관’을 세우기로 했다고 귀띔해 주었다. 그곳이 우리 문학의 분열을 통합하는 큰 둥우리가 되리라 상상해 본다. 그러고 보니 선생의 시는 순수나 참여를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가는 우리나라의 산수를 빼닮지 않았는가. 선생은 ‘추사를 훔치다’(2014)에서 성현과 예인들의 흔적을 통해 공동체적 기억을 통합적으로 구축했는데, 거기서도 지금은 사라져간 것들의 품격과 위의를 통해 한국문학의 모뉴멘트를 이루어 가려는 의지를 강렬하게 보여 주지 않았던가. 만물의 언어를 캐내는 일을 시라고 했던 이근배 선생은 스스로도 “스며 나오는 전시대의 전아한 향기, 한지에 진한 먹으로 쓰이고 몇 세대를 넘겨도 여전히 오히려 더욱 은근하게 풍겨오는 선비 시절의 문향”(김병익)을 선사해 왔다. 비록 “글자를 읽을 줄도 모르고/붓을 잡을 줄도 모르면서/지가 무슨 연벽묵치라고/벼루돌의 먹 때를 씻는 일 따위에나/시간을 헛되이 흘려버리기도 하면서”(‘자화상’) 살아왔다고 고백했지만, 우리는 선생이 서재인 ‘신연재’(神硯齋)에서 더 웅숭깊어진 이근배 문학을 완성해 갈 것이라고 믿는다. 고전(古典)과 창신(創新)이 힘차게 농울치는 모국어의 연금술을 보여 주면서 말이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글로벌 In&Out] ‘반일 종족주의’ 제대로 읽기/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

    [글로벌 In&Out] ‘반일 종족주의’ 제대로 읽기/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

    2019년 한일서 화제가 된 책은 ‘반일 종족주의’ 이다. 한국 20만부, 일본 40만부 이상 팔렸다. 한국에서는 역사왜곡에 가담하는 친일 서적이라며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인 반면 일본에서는 제대로 된 한국 역사서가 나타났다는 긍정적 평가가 많다. 일본의 평가는 한국의 ‘비합리적인 반일’에 질려 있던 터에 책을 읽고 속이 후련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을 다룰 생각은 없다. 다만 한일 간 평가가 왜 이렇게 대조적인지 살펴볼까 한다. 이 책의 집필 동기는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이라는 부제에 드러나 있다. 보수 입장에서 진보 문재인 정권을 비판한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한국 사회에 뿌리박힌 반일 정서를 이용함으로써 대일 역사 인식을 왜곡하고, 합리적인 정책 선택을 가로막아 한국의 외교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인은 거짓말쟁이’라고 단언함으로써 진보·보수 언론 모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이 책을 번역·출판한 곳은 우파 논단을 대표하는 문예춘추사이다. 문예춘추의 웹 사이트에는 저명인의 독후감 등도 실려 있다. 국경을 초월한 한일 보수우파의 연대를 과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에서 이런 책들이 출판되고 널리 읽히는 것은 일단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한국의 대일 인식에서 가장 큰 문제는 다양한 시각이 봉쇄되고 있다는 점이다. 근대 이후의 한일 역사를 ‘올바른 피해자 대 잘못된 가해자’라는 틀로 해석하는 것이 정통 역사관이며, 거기서 벗어나는 ‘반일 종족주의’ 같은 역사관은 이단으로 취급된다. 균형을 잃은 역사인식이 군데군데 발견되는 이 책의 역사인식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이 비판하는 한국의 ‘정통 역사 인식’이 반드시 균형 잡힌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史實)에는 정오(正誤·맞고 틀림)가 있다고 보지만 역사관에 정오가 있다 할 수 있는가. 역사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기 때문에 종래 역사에 묻혀 있는 피해자의 역사가 역사를 재해석하는 데 있어서 더욱 존중되어야 한다. 한국 현대사에서는 피해자의 시각에서 역사의 재해석이 부단히 이루어져 왔다. 광주 민주항쟁, 해방 직후 역사의 재해석 등은 그러한 지적 활동을 통해서 가능했다. 한국인 입맛에 맞는 역사관만 ‘올바른 역사’로 여길 뿐 나머지는 ‘틀린 역사’로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일본은 한국에 ‘악’이라는 전제가 뿌리 깊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 자명한 전제로 생각됐던 담론을 다시 묻는 작업에 이 책이 도전한 것은 외면할 게 아니라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정치적인 선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일 관계를 진지하게 다룬다기보다는 자신들이 싫어하는 세력의 대일관을 진보 정권 비판의 도구로 이용한 데 불과하다. 이 책에서는 어떤 한일 관계를 구상할 것인가 고민에 찬 지적 격투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한국 사회는 왜 이토록 비합리적인 반일인가”하는 의문을 가진 일본인에게 그것은 일본의 책임이라기보다는 한국에 내재하는 문제라고 주장하는 이 책은 일본인에게 일본의 책임을 면죄해 주는 기분 좋은 것일지 모른다. 한마디로 말해 이 책은 한국 내 권력투쟁의 산물에 불과하다. 한국인은 거짓말쟁이로 시작하는 자학관을 한국 정통 보수세력이 지지할 리 없다. 일본 사회는 극단적인 논의를 ‘소비’할 게 아니라, 이런 대일관이 한국 내에서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왜 이런 의견이 극소수인지 그 이유를 일본 스스로의 책임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드디어 한국에서 나온 제대로 된 역사서’라고 치켜세우는 일본 일부 논단의 자세가 걱정스럽다. 형편없는 혐한론이 서점에 넘쳐나고, TV에서 일본 예찬이 넘쳐나는 일본 사회와 비교하면 이런 자국 비판의 책이 주목받고 읽히는 한국 사회가 어쩌면 훨씬 건강한지도 모르겠다.
  • ‘괴의 미학’ 추사체… 글씨 갖고 노는 유희의 경지

    ‘괴의 미학’ 추사체… 글씨 갖고 노는 유희의 경지

    작년 中 전시회때 30만명 관람 큰 인기“괴(怪)하지 않으면 역시 서(書)가 될 수도 없다.” 기존 형식을 깨는 파격은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기 십상이다.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개성 넘치는 글씨도 당대 사대부들로부터 백안시당했다. 추사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글씨를 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공졸(工拙)을 또 따지지 마라”고 일갈했다. 지난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개막한 ‘추사 김정희와 청조 문인의 대화’는 ‘괴의 미학’으로 대변되는 추사체의 진면목을 접할 수 있는 자리다. 간송미술문화재단, 과천시추사박물관, 제주추사관 등 여러 기관이 소장한 추사의 현판, 두루마리, 서첩, 병풍 등을 중심으로 옹방강(翁方綱·1733~1818), 완원(阮元·1764~1849) 등 추사에게 영향을 준 청나라 문인 작품까지 총 120점이 나왔다. 지난해 6~8월 한·중 국가예술교류 프로젝트로 중국 베이징에서 먼저 열렸던 동명의 전시회는 30만명이 관람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다.추사의 글씨는 변화무쌍하기 이를 데 없다. 초년과 말년 글씨가 완전히 다르고, 같은 시기라도 서체가 제각각이다. 진위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그래서다. 이번 전시는 추사체의 성격 전모를 ‘연행과 학예일치’, ‘해동통유와 선다일미’, ‘유희삼매와 추사서의 현대성’ 등 3부로 나눠 보여 준다. 추사는 24세 때 아버지의 청나라 방문에 동행해 연경(지금의 베이징)에 머물며 옹방강, 완원 등과 사제의 연을 맺었다. 고증학에 일가견이 있던 추사는 왕희지, 구양순으로 대표되는 정법(正法) 서체 외에 옛 한나라 비석에 새겨진 예서체를 알게 된 뒤 한예(漢隷)의 필법을 해서에 응용해 소위 추사체를 만들어 냈다. 전시에는 ‘옹방강이 추사에게 보낸 제3편지’, ‘실사구시잠’ 등 추사와 청조 문인의 교유 관계를 보여 주는 핵심 작품들이 두루 소개됐다. ‘괴의 미학’과 더불어 이번 전시가 주목한 추사 학예의 또 다른 특질은 현대성이다. 이동국 예술의전당 큐레이터는 “‘계산무진’과 ‘무쌍·채필’에서 보듯 글씨를 갖고 노는 듯한 ‘유희’의 경지는 추상표현주의와 일맥상통하는 현대미술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내 조각은 추사에서 나온다”고 했던 한국 현대조각의 선구자 김종영(1915~1982)과 단색화의 거장 윤형근(1928~2007), 서예가 손재형(1903~1981) 등 추사체의 영향을 받은 20세기 작가의 작품으로 전시를 마무리한 배경이다. 전시는 3월 15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이란, ‘여객기 격추’ 추모집회 참석한 영국 대사 체포

    이란, ‘여객기 격추’ 추모집회 참석한 영국 대사 체포

    영국 “근거·설명 없는 체포…악질적 국제법 위반” 항의이란 주재 영국 대사가 이란 혁명수비대의 우크라이나 여객기 격추 사건으로 촉발된 철야 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가 석방됐다. 1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롭 매케어 대사는 우크라이나 항공 여객기 격추사건의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철야 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이란 당국에 체포됐다가 3시간 만에 석방됐다. 이란 타스님뉴스는 매케어 대사가 집회에 참석해 일부 과격하고 파괴적인 행동을 조직, 선동, 지시하려고 했다고 보도했다. 타스님뉴스는 매케어 대사가 현재 대사관에 안전히 머물고 있다며 12일 소환돼 기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때 매케어 대사가 인신 구속됐다는 소식이 본국에 전해지자 영국 정부는 거세게 항의했다.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은 “정당한 근거나 설명 없이 테헤란 주재 영국 대사를 체포한 것은 악질적인 국제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라브 장관은 “이란 정부는 갈림길에 섰다”면서 “정치적, 경제적 고립이 뒤따르는 국제사회 부랑자를 향해 계속 나아갈 수도, 긴장을 완화하는 절차를 밟아 외교적 행로에 참여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텔레그래프는 매케어 대사가 참여한 집회가 이날 오후에 이란 테헤란 시내 아미르카비르 공과대학에서 열린 집회로 파악된다고 보도했다. 자발적으로 모인 참석자들의 이번 집회는 이란 정부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규탄하는 시위로 격화했다. 추모 인원이 수백명 규모가 되자 이들은 교문 앞 도로를 막고 “쓸모없는 관리들은 물러가라”, “거짓말쟁이에게 죽음을”, “부끄러워하라”라고 외쳤다. SNS에 게시된 동영상을 보면 최고지도자를 규탄하는 구호도 들렸다.텔레그래프는 집회가 반정부 시위로 번지자 매케어 대사와 대사관 직원 1명이 자리를 떴다며 매케어 대사는 이발을 한 뒤 대사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붙잡혔다가 이란 외무부의 개입으로 풀려났다고 보도했다. 매케어 대사는 2018년 4월 테헤란 주재 영국 대사에 취임한 뒤 중동의 안정을 위해 영국이 계속 이란과 교류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 온 대이란 ‘온건파’에 속하는 인사다. 그는 영국을 비롯한 주요 6개국과 이란이 2015년 체결된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미국의 일방적 탈퇴에도 유지하도록 서명 당사국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전날 이란 혁명수비대는 8일(이란 현지시간) 새벽 테헤란 이맘호메이니 공항을 이륙한 우크라이나 항공 여객기를 미국이 쏜 크루즈미사일로 오인해 지대공 미사일로 격추했다고 시인했다. 이 사건으로 탑승자 176명이 모두 숨졌다. 아미르 알리 하지자데 대공사령관은 우크라이나 여객기가 이란의 미사일에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죽고 싶었다”면서 “이번 격추 사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인정하고 관계 당국의 어떤 결정도 달게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피객 여객기는 비행금지구역을 비행하거나 항로를 벗어나지 않았지만 이란 혁명수비대는 미국의 크루즈미사일로 오인해 여객기를 격추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과천시 추사박물관, 김정희의 예술혼과 선비의 삶 체험프로그램 운영

    과천시 추사박물관, 김정희의 예술혼과 선비의 삶 체험프로그램 운영

    경기도 과천시가 김정희의 예술혼과 조선시대 선비의 삶과 정신에 대해 이해하는 행사를 마련했다. 시는 다음달 14일까지 ‘추사박물관 체험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9일 밝혔다. 겨울방학을 맞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과천시추사박물관이 준비한 행사는 4개 부문으로 나눠 진행한다. 조선시대 선비문화에 대해 알아보는 ‘추사의 벗 문방사우’는 붓글씨 쓰기 등 다양한 체험활동과 함께 조선 대표적 문인 추사 김정희(1786년~1856년)의 삶과 예술, 대표작을 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문방사우는 서재에 꼭 있어야 할 네 벗, 붓과 종이, 먹, 벼루를 말한다. 김정희의 호는 추사를 비롯 보담재, 완당, 예당, 시암, 노과, 농장인, 천축고선생 등 30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추사 작품 속에 있는 호를 익히는 ‘추사 인장의 비밀을 밝혀라’는 조선 문인의 문화를 이해하고 살펴보는 시간이다. 가족별 전시실 임무를 수행하고 부모님 인장 만들기, 학생 족자 만들기 등 체험활동을 진행한다. 추사 김정희는 조선시대 명필이자 최고의 화가다. ‘조선명필 추사를 만나다’는 김정희라는 위대한 인물에 대해 탐구해 보는 시간이다. 시청각 학습, 전시실 탐방, 만들기로 박물관 교육에 흥미를 갖고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마지막 ‘과천문화재탐방’은 조선시대 왕이 쉬어가는 객사인 과천 ‘온온사’, 교육기관인 과천 ‘향교’ 등 문화재를 찾아 배워보는 역사문화교육이다. 특히 관악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으로 알려진 자하동 서쪽 암벽에 새겨진 4기의 글씨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관악산 북자하동에 살았던 시서화 3절로 유명한 자하 신위와 주암동에 과지초당을 지으면서 과천과 인연을 맺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암벽에 새겨져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정신세계와 풍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 될 전망이다. 학년별 수준에 맞춰 각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KTX 동해 연장 2월 개통 전망

    KTX 동해 연장 2월 개통 전망

    안전시설 문제로 해를 넘긴 KTX 동해 연장이 오는 2월 개통될 전망이다. 동해시와 철도시설공단은 육교 신설 공사와는 별개로 감추사 주변 구간에 신호수를 두거나 우회도로 이용 등 안전협의를 거친 뒤 KTX 동해 연장 개통 목표를 2월로 하고 있다고 4일 밝혔다. 이와 관련해 철도시설공단 측은 지난달 23일부터 오는 7일까지 시설물에 대한 안전검증을 진행 중이다. 특히 KTX 동해 개통에 가장 걸림돌이 됐던 감추사 인근 선로의 안전 문제는 국민권익위 주도로 이달 중 관계자 회의를 거쳐 사업비 부담 문제를 결론지을 예정이다. 시와 철도시설공단 측도 권익위 결정에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지난해 10월 감추사와 신도 등 108명이 연명으로 국민권익위에 선로 안전 문제에 대해 민원을 제기했고 국민권익위가 현지 실사를 마친 상태로 최종 결정만 남겨 놓고 있다. KTX 동해 연장은 지난해 12월 개통 예정이었지만 감추사 인근 철도 무단횡단로의 안전 확보 방안과 육교 신설 사업비 부담을 놓고 시와 코레일 측 이견으로 지체됐다. 심규언 동해시장은 “서울~강릉까지의 KTX 강릉선에 이어 강릉 구정면 금광리~동해역으로 이어지는 35㎞의 KTX동해 연장이 개통되면 동해~서울이 2시대 거리로 좁혀진다”며 “KTX 동해 연장이 실행되면 관광 활성화는 물론 동해항 3단계 개발사업과 묵호항 재개발사업 등 대형 개발과 맞물려 동해시 발전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동해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제주에서 생 마감한 광해군 국장 재연해 문화 콘텐츠로”

    “제주에서 생 마감한 광해군 국장 재연해 문화 콘텐츠로”

    “영월 단종문화제 관광객 모으듯 고증 잘하면 세계문화유산도 가능”“조선의 임금 가운데 가장 드라마틱한 운명의 주인공으로 유배지인 제주에서 혼자 생을 마감한 광해군의 국장 행사를 재연하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등재도 가능할 것입니다.” 유배문화 연구가인 양진건(스토리텔링연구개발센터장) 제주대 교수는 “제주의 유배문화는 세계에서도 제주만이 특화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인 만큼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한 광해군을 주인공으로 문화상품으로 개발하자”고 제안했다. 양 교수는 사색의 길 등 추사 김정희가 유배지인 제주에서 거닐던 길을 스토리텔링해 추사유배길을 개설하기도 했다. 조선 15대 왕인 광해군은 제주에 왔던 400여명의 유배인 가운데 유일한 임금이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폐위돼 유배 길에 올라 강화, 태안, 교동도 등을 거쳐 43일 만에 제주에 유배됐다. 1641년 음력 7월 1일 제주에서 혼자 생을 마감했다. 양 교수는 “광해군이 제주에서 유배생활 끝에 숨졌다는 사실을 일반인은 잘 모른다”면서 “강화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아들을 내세워 탈출을 모의했고 유배지를 제주로 옮겼지만 탈출과 복위에 대한 인조의 두려움은 계속돼 광해군 본인도 이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끝내 목숨을 부지한 덕에 조선 임금 가운데 네 번째 장수인 67세까지 살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등극과 폐위, 유배 등 광해군이야말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과 5대 희극처럼 성공과 실패, 살해와 욕망, 배신과 사랑 등 스토리텔링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어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스토리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높다”고 강조했다. 그는 “강원도 영월에서는 비운의 왕이였던 단종을 테마로 단종문화제를 열어 해마다 국내외 20여만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인다”면서 “제주에서 광해문화제 등을 열어 광해군의 한을 달래는 ‘광해군 국장’ 등을 재연하면 훌륭한 문화콘텐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조선 국장의 완벽한 고증과 제주도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지면 광해군 국장 재연 행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국립제주박물관에서는 제주 유배인들의 삶, 사랑, 학문 등을 소개하는 ‘낯선 곳으로의 여정, 제주 유배인 이야기‘(11월 26일~2020년 3월 1일) 전시가 열리고 있다. 조선 후기 1608년 2월부터 1623년 3월까지 광해군 재위 15년 2개월간 국정 전반에 관한 사실을 기록한 ‘광해군일기’(국보 제151-4호)도 선보여 군주로서 광해군의 삶도 엿볼 수 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심현희 기자의 맛있는 술 이야기] 2020년, ‘한국 증류주’ 달아오른다

    [심현희 기자의 맛있는 술 이야기] 2020년, ‘한국 증류주’ 달아오른다

    연말 송년회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술 대신 밥”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예전처럼 정신 놓고 술 마시는 자리보다는 맛집을 찾아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를 한다든가 함께 영화를 보며 한 해를 마무리한다는 겁니다. 확실히 ‘부어라 마셔라’ 하는 송년회는 거의 사라진 것 같습니다. 또 요즘 그런 자리 만들어 강제로 술을 먹이면 ‘옛날 사람’ 소리나 듣기 마련이죠. 바뀐 분위기 탓에 한국인이 점점 술을 마시지 않고, 주류 시장도 쪼그라들고 있다는 이야기가 참 많이 나왔습니다. 정말로 ‘요즘 사람’들은 술을 덜 마실까요. 국세청에 따르면 주류시장은 최근 10여년간 오히려 꾸준하게 커지고 있습니다. 2006년 약 6조 2000억원 수준이던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8조 5000억원으로 성장했습니다. 회식할 때 마시는 술을 떠올려 보세요. 이제는 아무도 위스키에 맥주를 섞어 마시지 않죠. ‘룸살롱’에 가는 일도 사라졌고요. 술을 즐기는 사람들은 일찍 퇴근해 ‘바’에 가서 싱글몰트 위스키나 와인, 크래프트맥주, 칵테일, 전통주 등을 마십니다. 실은 술을 덜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마시는 장소와 선호하는 장르가 바뀐 것이죠. 어른들의 놀이 문화가 ‘다양한 주류에 대한 경험’으로 변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서도 내년엔 특히 ‘국산 증류주’가 주류 시장의 트렌드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은 최근 2020년 푸드트렌드를 발표하면서 주류 시장도 함께 예측을 했는데요. 알코올도수 20도 이하의 ‘저도주’를 선호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고도주 술들의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사라진 룸살롱 위스키 문화의 영향으로 확실히 국내 고도주(증류식 소주, 위스키, 브랜디 등) 시장 규모는 2006년 8000억원에서 지난해 4000억원으로 반 토막이 났습니다. 하지만 프리미엄으로 분류되는 싱글몰트 위스키, 희석식 아닌 증류식 소주, 고량주나 진 등의 일반 증류주는 더 잘 팔리고 있답니다. 특히 한국에서 생산되는 증류주의 약진이 돋보이는데요. 광주요의 화요, 하이트진로의 일품진로, 롯데주류의 대장부 등으로 대표되는 국내 증류식 소주 시장은 2013년 약 100억원에서 지난해 약 270억원까지 성장했습니다. 이 술들은 ‘요즘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곡물(쌀)을 증류해 오크통에 숙성시킨 17~25도 이하의 증류주 조건에 최적화돼 내년에도 인기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증류식 소주란 주정에 물과 감미료를 섞어 만드는 희석식 소주와 달리 곡물을 발효한 액체를 증류한 원액에 물을 타 알콜도수를 조정한 고급 소주를 뜻합니다.2020년이 기대되는 다크호스는 다양한 ‘전통주 증류주’입니다. 전통주란 무형문화재나 대한민국식품명인이 빚은 술, 혹은 지역 농민이 그 지역의 농산물을 주 원료로 해 빚은 술입니다. 쉽게 말해 양조 장인이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레시피로 만들었거나 지역 양조장에서 특산 과일 등을 사용해 만든 증류주를 의미하는데요. 대표적으로 충남 예산에서 나는 사과를 증류한 한국식 칼바도스 ‘추사’, 천안의 명물 거봉으로 만든 와인을 증류한 ‘두레앙’ 등이 있습니다. 이 전통 증류주 시장 규모는 2015년 48억원도 되지 않았으나 지난해 71억원으로 뛰어올랐습니다. 전통주의 온라인 판매가 허용되고 최근 2030 사이에서 우리술, 전통주를 마시는 일이 트렌디한 것으로 여겨지면서 이를 취급하는 레스토랑, 호텔, 주점 등이 대폭 늘어난 결과입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전통 증류주 시장은 아직 규모가 작지만, 글로벌 프리미엄 증류주 열풍을 지켜보면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크다”면서 “품질뿐만 아니라 병 디자인, 라벨 등에 신경을 쓴다면 다양한 술을 경험하기를 원하는 ‘요즘 소비자’들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macduck@seoul.co.kr
  • 도봉 ‘문화재지킴이’ 정신 잇는 간송기념관 세운다

    도봉 ‘문화재지킴이’ 정신 잇는 간송기념관 세운다

    하나 남은 전형필 선생 옛집 일대 개발 내년 5월 기본계획… 2022년 착공 목표 학예연구사 채용…전시·교육공간 활용 창동아레나 이어 역사·문화 콘텐츠로지난 19일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고즈넉이 자리잡은 간송옛집 앞마당에는 낙엽 쌓인 가을 정취가 가득했다. 이곳을 관리하는 도봉문화재단 문화사업팀 이미실 실장은 “간송옛집은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역사와 문화가 왜 중요한지, 앞으로 어떻게 지키고 활용할 것인지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간송옛집은 훈민정음 ‘해례본’, 고려청자, 신윤복의 ‘미인도’, 추사 김정희의 글씨 등 일제강점기에 우리 문화재를 지켜낸 간송 전형필 선생이 경기 북부와 황해도에서 오는 소출(논밭에서 나는 곡식)을 관리하고 부친인 전명기 공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머물렀던 곳이다. 간송옛집은 성북동 북단장 한옥건물이 소실되고 종로4가에 있던 본가 건물이 재개발로 사라져 간송 선생이 생전에 거주했던 유일한 건물이다. 역사·문화적 가치뿐 아니라 100여년 된 전통 한옥으로서 건축적 가치도 매우 높다. 베일에 가려졌던 간송옛집의 존재는 이동진 도봉구청장이 2011년 가을 도봉산 원통사 산행 중 우연히 발견하면서 알려졌다. 구는 이후 유족과 협의를 거쳐 간송옛집의 문화재 지정을 신청했다. 그 결과 간송옛집은 2012년 12월 문화재청 국가등록문화재 제521호로 지정됐다. 구는 종로 본가에서 나온 자재들을 활용해 간송미술문화재단과 함께 퇴락한 본채와 부속건물의 원형을 살려 간송옛집을 복원해 2015년 9월 개관했다. 가옥 서쪽에는 간송 선생(1962년 사망, 왼쪽)과 부친(1919년 사망, 오른쪽)의 묘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구는 이에 멈추지 않고 간송옛집 일대를 간송 정신이 살아 있는 역사문화클러스터로 조성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간송기념관 건립을 추진한다. 간송기념관은 간송옛집 인근에 사업비 56억 8000만원을 투입해 지상 3층, 연면적 990㎡ 규모로 조성된다. 이 실장은 “간송기념관은 간송 선생을 기념하는 공간이자, 전시·교육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는 이달부터 내년 5월까지 간송기념관 건립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진행한다.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 7월 문화체육관광부에 간송기념관 설립 타당성 사전평가를 신청해 국비를 확보할 계획이다. 내년 상반기에는 사업 부지를 매입하고 학예연구사를 채용할 예정이다. 이후 설계공모와 실시설계를 거쳐 2022년에 착공해 2023년에 개관한다. 이 구청장은 “간송기념관은 구가 문화도시로 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콘텐츠가 될 수 있다”면서 “도봉구가 창동아레나 케이팝 공연장으로부터 시작해 간송옛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갖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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