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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 前대통령 국민장 이후]정국 난기류… 여야 움직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끝나자마자 여의도가 급류에 휩싸이고 있다. 민주당은 31일 ‘서거 책임론’에 따른 요구사항을 공식 제시하며 여권을 강도높게 압박했다. 이에 한나라당도 침묵을 깨고 ‘여야 3당 청와대 회동’과 ‘국회내 대화’ 카드로 힘겨루기에 나섰다. ●민주 “노무현 정신 이어가겠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법무부 장관·검찰총장·대검 중앙수사부장의 파면을 요구했다. 노 전 대통령과 그 주변의 피의사실을 일방적으로 공표한 수사 관계자들은 당 차원에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진상규명을 위해 검찰 수사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면서 “‘천신일 특검법’을 관철시켜 현 정권 관련 의혹도 반드시 밝힐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 개혁을 위한 제도개선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정 대표는 또 현 정부 정책 기조의 전면적 전환과 인적쇄신을 주장하며, 6월 임시국회에서 미디어 관련법 등 ‘MB악법’을 철회할 것을 거듭 요구했다. 여권에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한 셈이다. 8일 열릴 예정인 6월 국회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특히 정 대표는 회견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민주개혁진영이 한자리에 모였다. 노무현 정신을 이어가겠다.”면서 “모두가 하나돼서 계승 작업과 추모 사업을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해찬 전 총리,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친노세력에 대해서도 “당내 의견을 모으면서 그분들과 대화를 통해 차분하게 한발씩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與 사무총장 장광근·여연소장 진수희 한나라당은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열기가 ‘제2의 촛불사태’로 번질까 전전긍긍하면서도 민주당의 공세에는 “국회로 들어가 대화로 풀자.”고 제동을 걸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제 평상으로 돌아가 모든 문제는 국회에서 토론과 대화를 통해 해결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요구사항에 대해서도 “국회내 상임위에서 대화와 타협, 토론을 거쳐 모든 게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에 ‘대통령 및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정책위의장 회담’을 건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안 원내대표는 정 대표의 ‘MB악법 철회’ 요구에 “뭐가 ‘MB악법’이냐.”면서 “ 미디어 관련법은 이미 3당 원내대표들이 약속한 것으로, 그 약속은 민주당이 존중해 주리라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북핵 문제가 굉장한 위기이지만, 위기를 위기로 보지 않는 게 더 위기”라면서 조문정국에서 한발 비켜서려는 모습도 보였다. 한편 한나라당은 이르면 1일 사무총장에 3선의 친이명박계 장광근 의원을, 여의도 연구소장에 이재오 전 의원의 핵심 측근인 진수희 의원을 각각 임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 분위기를 정비해 6월 국회의 입법 전략 등을 가다듬을 예정이다. 김지훈 허백윤기자 kjh@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이후] ‘사회통합 어떻게’ 전문가 진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어떤 형태로든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화두를 던졌다. 분열과 갈등, 대립에서 벗어나 화해와 통합의 사회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불행한 사태를 새로운 사회 변화의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래서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의 원인과 책임 규명이 전제돼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각계 전문가들로부터 노 전 대통령이 남긴 ‘화해와 통합’의 메시지를 실천하기 위한 대안을 찾아봤다. ●정부서 진정어린 의지 보여야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로 한국 민주주의가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는 데 뜻을 같이하면서 ‘정부의 태도변화’와 ‘소통하는 정부’를 강조했다. 전북대 설동훈 사회학과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자체가 현 정부와의 갈등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정부의 근본적인 태도변화에 해결의 열쇠가 있다.”면서 “법질서를 준수해야 한다는 말은 백번 옳지만 특정한 사람들(정치권과 정권)의 이해관계를 위한 법질서 준수라는 의심을 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의 진정어린 의지를 보여주면 시민들도 이에 화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의 1차적 원인은 정부의 법치로 포장된 권위주의적 통치 태도에 있다.”면서 “지난해 촛불집회 당시 정부에 소통을 요구했지만 전혀 변화가 없었던 것이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과 교수는 “정부가 소통을 거부한다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후퇴한다.”면서 “현 상황이 바로 그렇다는 점을 정부가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효종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교수는 “국민통합이 화두”라고 전제하면서 “절제력을 유지한 상태에서 주장을 해나가야 진정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통합을 위해서는 이번 사태의 본질을 규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화해와 통합을 위한 전제조건이란 것이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치적 억압이나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눈을 감고 무조건 사회를 통합하라는 것이 노 전 대통령의 메시지가 아니다.”며 이번 사태의 원인을 먼저 짚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일각에서는 검찰의 책임을 묻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정당한 수사라고 하는데 어떻게 통합을 얘기할 수 있겠는가.”라면서 “핵심적인 시각차를 묻어두고 손을 맞잡자는 것은 진실을 은폐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피의사실이 충분히 보도된 만큼 그것이 진실이었는지 검찰 수사기록을 살펴보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고원 상지대 연구교수는 “지금은 사과와 유감을 표명할 때”라면서 “국민통합이 궁극적인 목표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짓밟는 풍토가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통합을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적 참여민주주의 전통” 이번 사태에서 한국 사회의 희망을 봤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았다. 시민들의 성숙한 추모 열기가 이를 방증한다는 주장이다. 김호기 교수는 “1987년 6월항쟁을 시작으로 2000년대 낙천운동, 탄핵반대집회, 촛불집회, 이번 추모열기까지 모두 한국적 참여민주주의의 전통으로 볼 수 있다.”면서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참여가 한국만큼 활성화된 나라도 없다.”고 분석했다. 설동훈 교수는 “폭력이 없었다는 것은 국민들이 스스로 만든 민주주의 질서를 깨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장희 교수도 “대부분의 추모행사가 자원봉사로 이뤄졌고 참여자들도 스스로 분향소에 나왔다.”면서 “민주주의의 기반이 탄탄한 만큼 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민주주의의 기본’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국정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조언이 많았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추모 열기가 높다는 것은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크다는 얘기지만 그만큼 기대가 높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면서 “소통과 통합에 대해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가 깊이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박건형 유대근 오달란기자 kitsch@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대통령 할아버지, 아빠가 행복했대요”

    추모의 열기는 덕수궁 돌담길에 나부낀 벽보와 봉하마을 등 분향소의 방명록에 고스란히 남았다. ‘인터넷 대통령’답게 애도의 물결은 온라인 세상을 노랗게 물들였다. 봉하마을을 방문한 6살 예원이는 “착한 대통령 할아버지. 엄마, 아빠가 행복했대요.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라고 삐뚤삐뚤한 글씨로 써 붙였다. “그대가 죽음으로 지키려 했던 것들을 기억하겠습니다(강한나·부산 해운대구)” “우리가 등 돌리고 있을 때 당신은 일어나셨습니다.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모른 척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시 뜨겁게 사랑합니다.” “당신을 원망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당신의 힘 없음은 원망했습니다. 힘없는 ‘바보 대통령’, 원망하고 사랑합니다.”라며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을 끝까지 지지하지 못한 미안함도 곳곳에서 묻어났다. “민주주의가 완성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무관심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우리가 당신이 못다 하신 꿈을 이루겠습니다. (당신의 영원한 지지자가)” 서울 대한문 정문 앞에 시민들이 마련한 분향소에 모여든 추모객은 덕수궁 돌담에 절절한 그리움을 붙였다. “노무현 당신은 아직도 우리의 희망입니다. 사랑합니다.” “영원히 가슴 속에 잊지 않을게요. 평생에 너무나도 과분하신 대통령님 만나서 행복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봉하마을과 서울역 분향소에도 뜨거운 추모의 글이 방명록을 가득 채웠다. 초등학생 이현아양은 “나중에 뵈면 우리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켰는지 자세히 말씀 드릴게요. 우리 곁을 떠나신 게 아니라 새 길을 열어 주신 거로 생각해요.”라고 썼다. 한 추모객은 “벌써 보고 싶습니다.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영원히 우리 심장 속에 살아 계실 겁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김연수씨는 “항상 국민을 생각해 오신 당신을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온라인 세상도 그의 떠남을 슬퍼하는 글로 넘실댔다. 노 전 대통령의 공식 홈페이지인 ‘사람 사는 세상’에는 ‘슬픔이 너무도 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이렇게 슬플까, 이보다 더 슬프다면 정말 참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산속에피는꽃)”라는 글이 올라왔다. “온 국민이 얼마나 대통령님을 사랑하는지 하늘나라에서는 아시겠지요(하면된다 할수있다)” “이제야 당신의 길들을 따라 걸어봅니다. 몰랐습니다. 당신의 깊은 사랑과 이 땅과 우리 국민의 대한 애정을…. 하늘나라에서 다시 뵈면 따뜻하게 감사했다고 수고하셨다고 안아 드리겠습니다.”(hannah515) 김해 박성국 서울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盧의 측근들 향후 행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랜 동지들은 고인의 서거 이후 지난 일주일을 “인생 최대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며 자책했다. 29일 영결식과 노제를 마치고 이들은 고향 봉하마을에 노 전 대통령을 묻었지만 차마 가슴에 묻어두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추모 기간 내내 “우리는 죄인”이라며 가슴을 쳤던 이들은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며 뭉칠 것이라고 다짐했다. 장의위원회 운영위원장을 맡았던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일단 본업인 변호사(법무법인 부산 대표변호사)로 돌아간다. 이후 49재와 비석 건립, 기념관 설립 등 고인의 장례를 위한 후속조치도 진두지휘할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측은 “고인의 뜻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인 만큼 장례 이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당분간 봉하마을에 머물면서 유가족을 위로하고 장례 절차를 마무리하는 일에 몰두할 예정이다. 안 위원은 “이제까지 정말 정신이 없었다. 우선 장의위원회가 해산되면 고생한 위원들에게 인사드리는 등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할 일이 남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우제까지 있으면서 당분간 봉하에 남아 권 여사님과 아들 건호씨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고 상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태영 전 연설기획비서관은 고인의 기록물 작업을 정리하는 데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윤 전 비서관은 이날 영결식에서 한명숙 장의위원장의 눈물어린 조사를 작성한 주인공이다. 청와대 대변인과 연설기획비서관을 맡으며 고인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린다는 평을 들었던 만큼 그는 고인과 작별을 고하는 길에서 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노 전 대통령측에서 “조사를 쓸 다른 적임자가 없다.”고 할 정도였다. 노 전 대통령이 생전 자신의 뜻을 밝히는 책을 내고 싶어했던 만큼 이 작업은 비석 건립과 더불어 고인의 유지를 받드는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다. 노 전 대통령이 어려울 때 자신을 지켜준 ‘유일한 동지’라고 손을 들어준 유시민 전 장관은 지난 일주일 내내 서울역 분향소에서 대표 상주를 맡았다. 경북대에서 맡고 있는 강의를 계속하면서 대통령 기념사업 등 고인의 업적 기리기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선 장례 기간 동안 조심스러웠던 ‘책임론’ 부분도 짚고 넘어갈 계획이다. 청와대 춘추관장이었던 김현 민주당 부대변인은 “영결식 이후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할 것”이라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를 이끌어 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광재 의원과 이강철 전 시민사회수석,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은 영결식 직후 다시 영어의 몸으로 돌아갔다. 이재연 유대근기자 oscal@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해처럼 지셨지만 고결한 정신은 달처럼 빛날 것”

    [노 前대통령 국민장] “해처럼 지셨지만 고결한 정신은 달처럼 빛날 것”

    29일 오전 10시48분쯤. 서울 경복궁 동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쪽에 도열한 의장대가 ‘받들어 총’ 자세로 운구 행렬을 맞았다. 뒤이어 영구차와 유족들이 나타나자 장내는 일순 숙연해졌다. 군악대의 조악 연주에 맞춰 창백한 얼굴의 권양숙 여사가 아들 건호씨와 함께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건호씨의 아내 배정민씨와 딸 정연씨도 뒤를 따랐다. 역대 대통령 중 5번째 영결식이었다. 공동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총리와 한명숙 전 총리의 조사가 낭독됐다. 4개 종단의 추모의식도 이어졌다. 이날 오전 5시쯤 김해 봉하마을에서 차를 타고 상경한 유족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한다는 생각에서였을까. 권 여사를 비롯한 가족들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를 썼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모르는 어린 두 손녀만 천진하게 놀고 있었다. ●화면속 “바보 정신으로 정치…” 오전 11시50분쯤. 제단 옆 대형 스크린에서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이 나왔다. 화면 속 노 전 대통령은 “별명 중에서 (바보가)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바보 정신으로 정치하면 나라가 잘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냥 바보하는 게, 그게 그냥 좋아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울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던 유족과 참여정부 시절 인사들의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일주일 동안 표정 한번 변하지 않았던 이해찬 전 총리도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이미 눈시울이 붉어 있던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은 격하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백원우 의원 “MB는 사죄하라” 이어서 유가족과 주요 인사들의 헌화가 시작됐다. 권 여사를 비롯, 유족들이 줄지어 흰 국화를 제단에 바쳤다.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헌화하려는 순간, 앞줄에 앉아 있던 민주당의 백원우 의원이 “사죄하라. 어디서 분향해.”라며 소리를 질렀다. 경호원이 입을 틀어막으며 제지했지만 장내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백 의원이 경호원들에게 끌려나간 뒤에야 이 대통령 내외는 헌화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분향소 앞까지 휠체어를 타고 이동한 뒤 고인의 영정에 국화꽃을 놓기 위해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헌화한 뒤 뒤돌아서 권 여사가 앉아있는 쪽으로 다가간 김 전 대통령은 권 여사의 손을 잡고 위로하다 슬픔이 북받치는지 큰 소리로 통곡했다. 영결식은 국립합창단의 ‘상록수’ 합창, 삼군(육·해·공군) 조총대원들의 조총 발사 의식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2500여명의 조문객이 참석했다. 추모사를 낭독한 대한불교 조계종 봉은사의 주지 명진 스님은 “일락서산월출동(日落西山月出東), 즉 해가 서산에서 지면 달은 동녘에서 뜬다. 지는 해처럼 당신은 떠나가지만 당신의 고결한 정신은 떠오르는 달처럼 빛날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과의 마지막 이별을 애도했다. 김민희 허백윤기자 haru@seoul.co.kr
  • 노 前대통령 봉하마을에 영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7일 만인 29일 국민의 애도속에 고향인 봉하마을에 영면했다. 고인의 영결식은 이날 오전 11시 서울 세종로 경복궁 앞뜰에서 이명박 대통령 부부와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김형오 국회의장, 이용훈 대법원장, 이강국 헌법재판소장,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민주당 정세균 대표, 문희상 국회 부의장 등 정·관계 주요 인사, 주한 외교사절,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정연씨를 포함한 유족 등 2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장(國民葬)으로 엄숙하게 치러졌다. 고인의 유해를 실은 운구 차량은 오전 5시쯤 봉하마을에서 발인식을 치른 뒤 고속도로로 상경했다. 이날 전국의 관공서에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조기가 게양됐다. 공동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총리는 조사를 통해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이룩한 업적들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한명숙 전 총리는 “이제 저희들이 님의 자취를 따라 님의 꿈을 따라 대한민국의 꿈을 이루겠으며, 우리를 화해와 통합으로 이끌어달라.”며 추모했다. 조사에 이어 불교와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의 종교의식이 차례로 진행됐으며, 고인 생전의 영상이 제단 양옆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을 통해 4분여간 방영됐다. 서울광장 일대 등에는 이른 아침부터 수십만명(경찰 추산 18만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고인의 넋을 기렸다. 영결식을 마친 운구 행렬은 서울광장으로 이동해 40분가량 노제를 치른 뒤 서울역을 거쳐 경기 수원의 연화장에서 화장돼 30일 새벽 봉하마을 인근의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됐다. 7월10일 49재때 사저 옆 장지에 안장된다. 김민희 허백윤기자 haru@seoul.co.kr
  • 소시 태연, 라디오 라이브로 노 前 대통령 추모

    소시 태연, 라디오 라이브로 노 前 대통령 추모

    여성그룹 소녀시대 멤버 태연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며 눈물을 흘렸다. 태연은 29일 자신이 진행하는 MBC 라디오 ‘태연의 친한친구’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이날 방송이 시작되자 태연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전한 길을 골라 가는데 가끔 정반대의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다.”며 “오늘 당신은 앞장섰고 많은 이들이 뒤를 따랐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회상했다. 태연은 이어 “오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있었다. 운구 차량이 인파를 헤치며 천천히 나아가고 많은 사람들이 뒤를 따라가니 어느새 또 새로운 길이 만들어졌다.”면서 “살아계실 때와 마찬가지로 그 분은 늘 새로운 길로만 걸어가시나 보다.”라며 울먹였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청취자의 사연을 읽고 눈물을 참지 못한 태연은 “내 주위의 모든 것에 감사하고 사랑한다면 100번의 말보다 천 번의 인사보다 밝고 조금이라도 나아진 내 모습을 보여 주는 게 보답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이며 김연우의 ‘사랑한다는 흔한 말’을 라이브로 선사했다. 태연의 눈물에 ‘태연의 친한친구’의 청취자들은 함께 애도의 뜻을 표하고 울먹이던 태연에게는 응원의 메시지로 힘을 더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9일 오전 경복궁에서 영결식을 갖고 서울광장에서 노제를 지낸 후 경기도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됐다. 이후 오늘(30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도착해 초재를 지내며 안치식을 마친 후 정토원에 임시 안치됐다.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 / 사진=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노 前대통령 국민장] 유골함 정토원 부모위패 곁 임시안치

    [노 前대통령 국민장] 유골함 정토원 부모위패 곁 임시안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해가 29일 새벽 봉하마을을 떠나 발인식과 영결식, 노제, 화장 등 서울을 다녀오는 긴 여정을 마치고 30일 새벽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봉화산 정토원에 임시 안치됐다. 향나무 유골함에 담긴 유해는 이날 새벽 봉하마을에 도착한 뒤 노 전 대통령이 서거 당일 올랐던 등산로가 아닌 산 뒤쪽의 자동차길을 이용해 정토원에 올랐다. ●49재후 봉하마을 사저 옆 묘소로 유족들은 정토원 앞뜰에 제단을 차려 영정과 유골을 모시고 반혼제(返魂祭)를 지낸 뒤 유골을 법당인 수광전 안 부처님 앞으로 옮겼다. 반혼제는 세상을 뜬 사람을 화장한 뒤 다시 혼을 불러 집으로 모시는 의식이다. 개문계(開門戒·불법에서 문을 여는 의식)와 삼보계(三寶戒) 독송에 이어 유족들은 부처에 예를 올리고 유골함을 수광전 오른쪽 벽에 마련된 영혼의 위패를 두는 영단(靈檀)에 임시로 안치했다. 영단에 안치한 뒤 유족과 스님, 장의위원 등이 49재 초제를 지내는 것을 끝으로 유골 안치 의식은 마무리됐다. 정토원은 노 전 대통령이 삶을 마감한 부엉이바위와 사자바위 사이 봉화산 중턱에 있는 조계종 소속의 조그마한 사찰이다. 부엉이바위와 사자바위에서 각각 250m쯤 떨어져 있다. 1920년 김해시 한림면 지역 한 지방 유지가 세운 신앙도량 ‘자암사’가 정토원의 모태다. 1968년 당시 동국대 총학생회장이던 선진규(75) 현 원장이 농촌계몽운동을 하기 위해 사찰 규모를 확장하고 봉화사로 개명한 뒤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사회운동을 해왔다. 봉화사는 이후 화재로 전소돼 선 원장이 1984년 다시 사찰을 건립해 정토원으로 개명했다. 정토원은 식당 및 방문객 숙소로 쓰는 2층 벽돌건물, 선 원장 등이 거주하는 요사채, 일반 사찰의 대웅전에 해당하는 수광전 등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 ●생전에 선 원장은 정신적 지주 선 원장은 노 전 대통령의 진영 대창초등학교, 진영중학교 선배로 노 전 대통령과 친밀한 사이다. 어릴 적부터 정토원에 자주 들렀던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선 원장을 정신적 지주로 부르며 존경심을 나타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귀향 뒤에도 종종 정토원에 들러 선 원장과 대화를 나눴다. 노 전 대통령의 모친도 생전에 정토원에서 노 전 대통령을 비롯한 가족들을 위해 기도를 자주 올렸던 곳으로 전해진다. 노 전 대통령 유골이 안치된 수광전에는 고인의 부모와 장인의 위패도 모셔져 있다. 국민장 기간에는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이 자리했다. 정토원 신도들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정토원에서 가끔 신도들과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하곤 했다. 선 원장은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돌아올 곳에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애통한 영혼을 잘 보듬어 좋은 곳으로 가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유골 일반인에게 노출 안해 선 원장은 “법당에 안치한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일반인에게는 노출하지 않는다.”면서 “법당 주변 경비가 크게 강화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전직 대통령이 서거한 뒤 화장해 유골을 임시 안치했던 전례가 없어 경찰은 유골 경비대책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경남지방경찰청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임시로 안치된 봉화산 정토원에 추모객 및 관광객이 많이 몰릴 것에 대비해 적절한 경비대책을 세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장지가 선정돼 정식 안장될 때까지 정토원에 임시 안치된 노 전 대통령의 유골에 대해 엄격한 경비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김해 강원식 박성국기자 kws@seoul.co.kr
  • 생방송 중 “이명박 XXX” 그대로 나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국민장이 엄수되기까지 지상파 방송사들의 생방송이 이어지다보니 크고작은 방송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명박 대통령을 겨냥한 욕설이 그대로 방영된 것.30일 손수제작물 공유 사이트 유튜브 등에 올라온 동영상에는 KBS-TV가 전날 오후 6시35분쯤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이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되는 상황을 생중계할 때 한 시민이 ‘이명박 ××× 복수할 거야 이 ×××야’라고 소리를 지르는 목소리가 그대로 전파를 탔다. KBS는 잠시 수원 연화장 중계를 잠시 멈춰야 했다. 앞서 KBS는 25일 2TV ‘뉴스타임’ 방송에서 노 전 대통령의 빈소 표정을 전하던 기자가 조문객을 ‘관람객’으로 표현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제작진은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려 “오늘 봉하마을의 추모 분위기를 전한 뉴스에서 현장 취재기자가 생방송 도중 조문객을 ’관람객’으로 표현하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사과했다. 방송사를 가리지 않고 이 대통령을 ‘전 대통령’으로,노 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잘못 소개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MBC는 29일 서울시청 앞 서울 광장에서 열린 노제 사전 공연을 생방송으로 전하면서 노래패 ‘우리나라’의 ‘다시 광화문에서’란 노래를 ‘광화문 연가’로 자막에 표기하는 실수를 저질렀다.광화문 연가는 가수겸 작곡가 이문세의 노래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평장식 납골묘… 비석 함께 세울듯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해가 경남 김해 봉화산 정토원에 봉안되면서 49재(齋·7월10일) 이전까지 조성될 장지의 위치와 봉분, 비석 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29일 경기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을 마치고 30일 새벽 봉하마을로 내려와 곧바로 초재(初齋)를 봉행한 뒤 정토원에 임시 안치됐다. 권양숙 여사 등 유족과 장의위원회, 비석건립위원회는 아직 장지와 봉분 형태, 비문 내용을 최종 결정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유해는 49재를 지내는 7월10일까지 정토원에 모셔지다 장지로 옮겨질 예정이다. 따라서 장례를 치른 뒤 사흘 만에 지내는 삼우제(三虞祭·6월1일)는 공식적으로는 하지 않기로 했다. 장지는 지난 26일 유족과 지관이 함께 둘러본 사저 근처 야산(660㎡)이 여전히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저에서 서쪽으로 50m 가량 떨어진 야산은 지관의 분석처럼 사저·생가와 가까운 데다 따뜻한 남향으로 전망이 좋다. 봉하마을 입구에 위치한 선영도 양지 바르고 시야가 확 트여 검토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는 노 전 대통령의 유언을 고려할 때 사저에서 가까운 곳으로 결정될 공산이 크다. 봉분과 비석의 크기는 소박하게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봉분은 불룩한 형태가 아니라 평평한 무덤인 ‘평장식(平葬式) 납골묘’로 가닥을 잡았다. 묘지가 있는 곳에 비석을 세울 것으로 알려졌다. 유골은 가로 35㎝, 세로 25㎝의 북미산 향나무 유골함에 담겼다. 하지만 유골을 산골(散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석은 건립위원회가 위치와 크기, 비문, 글씨체 등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비문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지낸 황지우 시인의 책임 아래 고인의 업적과 추모글을 담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문에는 국민통합과 지역감정 타파 등 고인의 통치철학이 담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비석의 크기는 작고 검소하게 만들되 전직 대통령의 품위를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의 장지 관리는 국가나 유족 중에 누가 맡을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국립현충원에 모셔진 역대 대통령은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경우 고향마을에 장지가 조성되기 때문에 관리 주체가 누가 될지 아직 모르겠다.”면서 “윤보선 전 대통령은 국립현충원 밖에 묘소가 있기 때문에 유족들이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해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봉하마을 7일간의 기록

    [노 前대통령 국민장] 봉하마을 7일간의 기록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빈소가 마련된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는 연일 수많은 조문객들의 추모행렬이 이어지면서 숱한 기록들이 쏟아졌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가 봉하마을에 도착한 것은 23일 오후 6시30분. 이때부터 29일까지 7일간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은 100만여명에 이른다고 장의위원회 측은 밝혔다. 김해는 물론 경남의 다른 시·군과 서울·부산·전라·충청·경기 등에서 남녀노소, 종교 등을 가리지 않은 조문객의 행렬이 24시간 이어졌다. 특히 24일에는 폭우가 퍼붓는데도 20여만명의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정치권 인사의 조문도 줄을 이었고, 일부 인사들은 노사모 등 지지자들에게 막혀 발길을 돌리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다양한 지역에서 오는 데다 버스를 전세내거나 출근길에 조문하고 가는 상황에 대해 우리도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분향소의 노 전 대통령 영정 앞에 헌화된 국화꽃은 하루 20여만 송이. 인근에서 국화가 동이 났지만 조문객이 몰렸다. 한번 헌화했던 깨끗한 국화를 다시 사용하기도 했다. 조문객들에게 제공된 음식 양도 엄청나다. 7일간 소비된 쌀은 80㎏들이 480가마다. 57만여명분이다. 국밥의 재료로 사용된 소만도 7일간 6마리였고, 김치는 1.8t 이상, 수박은 5000통 이상을 사용했다. 라면은 하루 평균 6000개가 소비됐다. 김해시청과 진영농협 등은 하루 평균 빵 5만개, 우유 5만개, 생수 10만개 등을 제공했다. 쓰레기봉투도 50ℓ와 120ℓ짜리 1만 2000여개가 사용됐다. 취재기자 수도 기록적이다. 7일 동안 한 번이라도 현장을 들른 국내외 기자를 모두 포함하면 1000명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취재진이 몰리면서 봉하마을 인근 숙소에는 빈 방을 찾을 수가 없었으며, 숙소를 구하지 못한 취재진들은 인근 창원과 밀양까지 나가 숙소를 잡기도 했다. 만장은 2000여개가 만들어져 봉하마을 입구에서 빈소가 차려진 마을회관 인근까지 1.4㎞ 구간을 빼곡히 수 놓았다. 분향소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한 자원봉사자도 4500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소고기 국밥을 비롯해 수박과 떡, 빵, 생수 등 먹거리를 조문객들에게 공급했다. 또 설거지, 주변 청소, 장례식장 안내 등을 마다하지 않았다. 자원봉사자들은 김해시 자원봉사회, 대한적십자사 김해지회, 김해시 새마을 부녀회 등과 함께 노사모 등으로 구성됐다. 김해 한찬규 박성국기자 cghan@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고단한 육신 벗고 한줌의 재로… 유족들 永別의 오열

    [노 前대통령 국민장] 고단한 육신 벗고 한줌의 재로… 유족들 永別의 오열

    노무현 전 대통령은 29일 오후 경기 수원시 연화장 하늘 아래서 유언대로 ‘한조각 자연’으로 돌아갔다. 오전 영결식을 통해 하늘로 오른 영혼이 이 모습을 지켜봤으리라.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연화장에 도착해 유골 수습까지 2시간44분 만에 한 줌의 재로 변했다. 유족들은 고열의 화로에서 몇 개의 뼛조각으로 변한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자 몸을 떨며 오열했다. ●예상보다 3시간 늦어져 노 전 대통령의 유해가 수원 연화장에 도착한 것은 이날 오후 6시6분. 운구 행렬은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이동해 수원요금소를 빠져나온 뒤 국도 42번선 용인대로~원천로~용인 흥덕 택지개발지구~신대 저수지를 거쳐 수원 연화장으로 들어섰다. 예상보다 3시간가량 늦어졌다. 영구차가 연화장에 도착한 뒤 삼군 의장대 10명이 노 전 대통령의 유해를 이동대차에 옮기는 운구의식이 진행됐다. 연화장에 모인 8000여명의 추모객들은 ‘노무현’을 연호했고, 일부 추모객들은 흐느꼈다. 권 여사를 비롯한 유족들은 특별히 승화원 건물 밖에 마련된 야외분향소에서 20분 동안 제례를 올렸다. 태극기에 덮인 노 전 대통령의 관이 화장로 9기(예비화로 1기 포함) 중 가장 큰 8번 화장로 앞으로 옮겨지자 유족들도 8번 분향실 앞으로 자리를 옮겨 숙연한 표정으로 대형유리 너머의 화로를 지켜봤다. 권 여사는 고개를 숙인 채 한없이 울기만 했다. 딸 정연씨가 “엄마, 아빠 봐야지.”라고 몇 번이나 설득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오후 6시31분쯤 송기인 신부가 기도를 한 뒤 대형유리의 커튼이 닫혔다. 관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화장로 안으로 들어갔다. 유해는 섭씨 800~1000도의 고온에서 1시간30여분간 화장됐다. ●고별 제례 올려 평소 오후 2시까지 4차례 실시되는 일반 화장은 이날은 오전 8시와 10시 2차례로 단축됐고, 오후에는 노 전 대통령의 화장만 이뤄졌다. 8번을 제외한 1~7번 분향실마다 장의위원들이 노 전 대통령에게 ‘고별 제례’를 올렸다. 화장이 종료되고 화로에서 유골이 꺼내지자 분향대기실은 일순간 ‘통곡의 바다’로 변했다. 이때 보통의 유족들도 고인을 생각하며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곤 하는데, 국가 최고 권력을 쥐었던 대통령의 유족들이 느끼는 허무함은 보통 사람들의 것을 훨씬 초월했을 것이라고 추모객들은 입을 모았다. ●오후 8시50분 봉화마을 장지로 유골은 18분 정도 냉각과정을 거쳐 유족들에게 인계됐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곱게 빻는 분골 과정을 거쳐 향나무 유골함에 담겼다. 운구차는 오후 8시50분쯤 고인의 영원한 안식처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 장지로 향했다. 운구차 이동경로인 연화장에서 경부고속도로 수원 요금소까지 6㎞여 구간에는 시민들이 나와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연화장은 경부고속도로 수원 나들목과 6~7㎞ 거리에 있다. 연화장측은 조례에서 정한 자치단체장 재량권 규정에 따라 화장료를 면제했다. 수원 김병철 남인우 오달란기자 kbchul@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靑, 자제 모드속 “당분간 외교 주력”

    [노 前대통령 국민장] 靑, 자제 모드속 “당분간 외교 주력”

    청와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북한 2차 핵실험 등 잇단 국정 돌발변수를 맞아 정국운영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청와대 직원들은 29일 TV로 생중계된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보며 애도를 표시했다. 청와대는 직원들에게 이번 주 내내 가급적 검은색 정장을 입고 근무하도록 지시하는 등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분위기에 적극 동참했다. 청와대는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 이후 전개될 정국운영에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보고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일부 반정부 결집 기류가 감지되는 데다 북한의 초강경 무력시위가 계속되면서 최근 회생 기미를 보였던 경제가 다시 나락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지 않았더라도 다음달은 원래 뜨거운 달로 예상돼왔다. 다음달의 임시국회에서는 ‘미디어법’ 처리를 놓고 여야의 첨예한 대립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또 6·10 항쟁 22주년,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도 있다. 현 정국을 사실상 ‘폭풍전야’ 상황으로 보는 배경들이다. 청와대는 조기에 국정을 정상화하지 못하면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현 정부 최대 국정과제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명운이 걸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집권 2년차인 올해 국정을 장악하지 못하면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절박한 현실 인식이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 안팎에서는 분위기 쇄신을 위해 개각 카드를 내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이 대통령의 결단이 주목된다. 청와대는 당분간은 자제 모드를 유지하면서 다음달 1, 2일 제주도에서 열리는 ‘한·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특별정상회의와 16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 진력한다는 복안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금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와 북한 도발에 대한 대비 태세를 우선해야 한다.”며 “그러나 하루빨리 충격에서 벗어나 온 국민과 정부가 국정정상화와 경제위기 극복에 매진하는 것이 고인의 유지를 따르는 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각계 인사 제언

    [노 前대통령 국민장] 각계 인사 제언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충격에 빠진 대한민국은 전국 분향소에서 뜨거운 눈물로 슬픔을 달랬다. 우리의 무심함을 반성하고 그에 대한 그리움을 전하며 차츰 그가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한 행진을 다짐했다. 노 전 대통령을 보내며 각계 인사와 시민들이 전하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의 의미와 우리에게 남은 과제를 정리한다. ●이만섭 前 국회의장 - 이젠 원망 말고 미워 말자 고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용서와 화해다. 생전 진실하고 솔직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남긴 말은 ‘원망하지 마라. 모든 게 운명이다.’였다. 그런 만큼 이제는 서로 원망하고 미워하지 말자.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이나 사회 각계각층이 서로 용서하고 화합하고 힘을 합쳐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타파나 권위주의 해소를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다. 지역주의나 권위주의는 다 정치인들이 만들어 낸 것들이다. 여당도 야당을 포용하고 야당도 여당과 함께 국정을 의논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도 촛불시위 때 국민과 소통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 각별한 체육 사랑 기억할것 평소 스포츠에 각별한 사랑을 보여 주셨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한데 이제는 다시 뵐 수 없다는 사실이 매우 애통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재임시 태릉선수촌을 손수 찾아와 선수들을 격려하시고, 지난 2007년에는 과테말라까지 오셔서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애쓰셨던 그 모습을 떠올리며, 우리 체육인들은 고인께서 미처 이루지 못한 올림픽 유치에 온 힘을 쏟겠다. 평소 작은 곳에도 사랑을 쏟았던 노 전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우리나라가 진정한 스포츠 선진국으로 발돋움하여 고인께서 꿈꾼 건강한 나라, 하나가 되는 사회가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또한 그곳 하늘에서도 힘을 실어 주시길 빈다. ●권영준 경희대교수 - 용서와 화해 정신 되새겨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서에서도 밝혔다시피 보수·진보를 뛰어넘는 사회 통합과 지역 갈등의 극복, 용납과 화해 등의 정신을 살려야 한다. 이런 과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추진할 것이냐에 대해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참여정부가 추진한 정책 가운데 방향은 옳았지만 미완성으로 끝난 과제들에 대해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제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여전히 민의를 충분히 수렴하지 못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서민들의 삶은 팍팍하고, 중소기업은 쓰러지고 있다. 국민들의 지지가 뒷받침되지 않는 밀어붙이기식 국정관리는 위험하다.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 - 국민의 분노·슬픔 직시해야 국민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현 정권의 정치보복과 강압통치가 낳은 비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출범과 동시에 촛불·미네르바·용산으로 이어졌던 현 정권의 폭압적 통치는 결국 전직 대통령을 벼랑 끝에서 밀었다. 현 정권은 국민들의 분노와 슬픔을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일방통행식 통치를 중단하고 고인이 평생을 바쳐 이룩하고자 했던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 특히 검찰과 경찰을 동원해 양심적 비판세력에 재갈을 물리고, 민주세력을 탄압하는 폭압적 통치를 중단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것이 고인의 삶이었고, 뜻이고, 그를 편히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정윤철 영화감독 - 이제 고인과 소통하는 법 찾아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인 배형진군을 청와대에 초대했을 때 대통령은 점심으로 자장면을 함께했다. 배군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자장면이라는 걸 미리 챙길 만큼 따뜻한 분이었다. 재임 때 스크린쿼터를 축소해 대통령을 많이 원망했다. 되돌아보니 진보와 보수를 끌어안고 싶었던 한 이상주의자의 발버둥이었구나 싶다. 이제서야 대통령과의 소통 방법을 찾은 듯하다. 그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겨 주었다. 자신의 존재를 걸고 싸우지 않으면, 일상에서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뀔 수 없다는 것. 투표로 충분하다며 나머지는 정치 지도자가 할 일이라며 맡겨 놓았고, 책임 없는 비난만 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다. ●정장식 공무원교육원장 - 고인 고귀한 뜻 승화시켜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고인의 뜻에 따라 우리 모두 서로 사랑하고, 통합하고, 마음을 비우고, 용서해야 한다. 특히 공직자들은 시대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어려운 때일수록 자기를 희생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난관에 봉착하거나 국민이 도움을 요청해 올 때 뒤에서 뒷짐지지 말고 내 한 몸 던지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지금은 남북간 첨예한 대립 속에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경제적으로도 여전히 높은 실업률 등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런 때일수록 공직자들이 고인의 뜻을 기려 힘들고 낮은 곳에 있는 국민들을 섬기고 보살피며, 위기를 헤쳐나가는 데 앞장서야 한다. ●오탁번 시인협회장 - 질서있는 애도는 민족의 힘 서거 후 1주일, 또 국민장 행사 동안 우리 국민들은 단합되고 질서 있게 슬픔을 표현했다. 이런 것이 우리 민족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국가적 비극을 계기로 이제 나를 떠나서 사회와 민족을 위해 내가 얼마나 올바른 행동을 했느냐를 고민하고 반성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앞으로 목전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서로를 배타적으로 대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정당들 역시 자신의 이익이 아닌 국민들의 이익을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또 비극적 사건에 대한 이런 반응과 다짐들은 단순히 사회적 이슈로 잊고 넘어갈 게 아니라 가정과 지역 문제에까지도 향후 이어져 마음의 진정성을 보여줬으면 한다. ●김현 서울변호사회회장 - 슬픔 정치적 이용은 안돼 애도의 물결과 추모의 열기는 변화와 개혁의 상징이었던 지도자를 잃은 슬픔과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근거없는 음모론이 떠돌고 현 정권에 책임을 추궁하며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서는 안 된다. 화합과 공존을 강조하던 고인의 유지(遺志)를 저버리는 일이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는 도중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검찰의 수사진행 방식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검찰이 수사진행 상황을 언론에 연일 브리핑해 ‘여론몰이’를 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유죄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 피의자나 피고인의 인권은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 ●김인국 정의구현사제단 신부 - ‘사람사는 세상’ 큰뜻 이루자 비보를 들으며 주님승천대축일을 맞이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신’ 승천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참 난감하고 괴로웠다. 하지만 부활 승천의 감격은 아픔 후에 벌어진 하느님의 역사였다. 이레째 복잡한 도심이나 고요한 산골을 가리지 않고 잠시도 쉼 없이 도도하게 이어지는 500만명의 추모 물결과 이 땅 구석구석 높이높이 피어오르는 분향의 향기는 부활승천의 저 장엄했던 장면을 상상하게 해준다. 우리는 오늘 국민들의 뜨거운 눈물 속에서 희망의 싹을 발견했다. 노 전 대통령이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은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를 꼭 닮았다. 임의 간절했던 소망을 향하여 공손히 경배 드린다. ●오영호 무역협회 부회장 - 국민 화합으로 경제난 극복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온 나라를 충격과 비통함에 휩싸이게 한 슬픈 일이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고인의 유지를 헤아려 우리 사회에 혼란과 무질서가 초래되지 않도록 국민적 화합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다.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는 어두운 터널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한다. 세계 교역 위축이 우리 경제에 직격탄이 되고 있는 가운데 환율과 유가도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북한의 핵실험에 따라 남북간의 긴장관계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고인에 대한 추모로 결집된 열정을 모아 경제 살리기에 힘써야 한다. 그것이 고인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 유골함 정토원 부모위패 곁 임시안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해가 29일 새벽 봉하마을을 떠나 발인식과 영결식, 노제, 화장 등 서울을 다녀오는 긴 여정을 마치고 30일 새벽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봉화산 정토원에 임시 안치됐다. 향나무 유골함에 담긴 유해는 이날 새벽 봉하마을에 도착한 뒤 노 전 대통령이 서거 당일 올랐던 등산로가 아닌 산 뒤쪽의 자동차길을 이용해 정토원에 올랐다. ●49재후 봉하마을 사저 옆 묘소로 유족들은 정토원 앞뜰에 제단을 차려 영정과 유골을 모시고 반혼제(返魂祭)를 지낸 뒤 유골을 법당인 수광전 안 부처님 앞으로 옮겼다. 반혼제는 세상을 뜬 사람을 화장한 뒤 다시 혼을 불러 집으로 모시는 의식이다. 개문계(開門戒·불법에서 문을 여는 의식)와 삼보계(三寶戒) 독송에 이어 유족들은 부처에 예를 올리고 유골함을 수광전 오른쪽 벽에 마련된 영혼의 위패를 두는 영단(靈檀)에 임시로 안치했다. 영단에 안치한 뒤 유족과 스님, 장의위원 등이 49재 초제를 지내는 것을 끝으로 유골 안치 의식은 마무리됐다. 정토원은 노 전 대통령이 삶을 마감한 부엉이바위와 사자바위 사이 봉화산 중턱에 있는 조계종 소속의 조그마한 사찰이다. 부엉이바위와 사자바위에서 각각 250m쯤 떨어져 있다. 1920년 김해시 한림면 지역 한 지방 유지가 세운 신앙도량 ‘자암사’가 정토원의 모태다. 1968년 당시 동국대 총학생회장이던 선진규(75) 현 원장이 농촌계몽운동을 하기 위해 사찰 규모를 확장하고 봉화사로 개명한 뒤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사회운동을 해왔다. 봉화사는 이후 화재로 전소돼 선 원장이 1984년 다시 사찰을 건립해 정토원으로 개명했다. 정토원은 식당 및 방문객 숙소로 쓰는 2층 벽돌건물, 선 원장 등이 거주하는 요사채, 일반 사찰의 대웅전에 해당하는 수광전 등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 ●생전에 선 원장은 정신적 지주 선 원장은 노 전 대통령의 진영 대창초등학교, 진영중학교 선배로 노 전 대통령과 친밀한 사이다. 어릴 적부터 정토원에 자주 들렀던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선 원장을 정신적 지주로 부르며 존경심을 나타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귀향 뒤에도 종종 정토원에 들러 선 원장과 대화를 나눴다. 노 전 대통령의 모친도 생전에 정토원에서 노 전 대통령을 비롯한 가족들을 위해 기도를 자주 올렸던 곳으로 전해진다. 노 전 대통령 유골이 안치된 수광전에는 고인의 부모와 장인의 위패도 모셔져 있다. 국민장 기간에는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이 자리했다. 정토원 신도들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정토원에서 가끔 신도들과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하곤 했다. 선 원장은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돌아올 곳에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애통한 영혼을 잘 보듬어 좋은 곳으로 가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유골 일반인에게 노출 안해 선 원장은 “법당에 안치한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일반인에게는 노출하지 않는다.”면서 “법당 주변 경비가 크게 강화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전직 대통령이 서거한 뒤 화장해 유골을 임시 안치했던 전례가 없어 경찰은 유골 경비대책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경남지방경찰청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임시로 안치된 봉화산 정토원에 추모객 및 관광객이 많이 몰릴 것에 대비해 적절한 경비대책을 세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장지가 선정돼 정식 안장될 때까지 정토원에 임시 안치된 노 전 대통령의 유골에 대해 엄격한 경비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김해 강원식 박성국기자 kws@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노 前대통령 국민장] 한나라 “통합·평화 계기로” 민주 “민주주의, 남은 자의 몫”

    여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린 29일 각각 추모 논평을 내고 노 전 대통령의 영면을 기원했다. 하지만 방점은 달랐다.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은 ‘화합과 통합’을 강조한 반면,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은 ‘현 정부 책임론’에 무게를 실었다. 한나라당 윤상현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우리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남겼다. 고인이 남기고 가신 순수한 뜻, 생전의 꿈과 이상은 남은 자의 몫이 됐다.”면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통합과 평화로 승화시키는 계기로 삼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국민 통합의 시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인 당면 과제”라면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갈등과 분열이 조장되고 더 악화된다면, 그것은 결코 고인이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라고 논평했다. 반면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은 추모 성명을 통해 “인권과 정의, 민주주의가 노 전 대통령이 떠난 지금, 미완의 숙제라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남긴 뜻은 이제 살아남은 우리의 몫이다. 뜨겁게 살다 간 노 전 대통령을 따르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성명에서 “책임져야 할 사람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며, 반민주적 통제와 억압의 정치를 중단하라는 국민 요구는 여지없이 묵살되고 있다. 더 이상 두고만 보지 않겠다.”고 밝혔다. 진보신당 이지안 부대변인은 논평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진심어린 공개 사과와 내각 문책, 정치보복의 진상 규명 특검과 책임자 처벌, 국정 운영기조의 근본적인 전환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김지훈 허백윤기자 kjh@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편히 가십시오” 봉하마을 2만여명 통곡의 배웅

    [노 前대통령 국민장] “편히 가십시오” 봉하마을 2만여명 통곡의 배웅

    사자(死者)가 빈소를 떠나 묘지로 향하는 절차인 노 전 대통령의 발인식은 이날 오전 5시 봉하마을 마을회관 옆 분향소에서 엄숙하게 진행됐다. 발인에는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정연씨, 형 건평씨 등 유족과 친인척,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참모,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 각료, 봉하마을 주민, 광주 노씨 문중, 시민 등 2만여명(경찰 추산)이 참석했다. 발인은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을 선두로 육·해·공군 의장대 운구병 10명이 태극기에 싸인 고인의 관을 운구차에 옮기는 것으로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 사위가 영정 모셔 이후 상주가 술과 음식을 올리고 절을 하는 견전(遣奠)과 축문 낭독, 유가족이 다시 절을 올리는 재배의 순으로 10여분간 진행됐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권 여사와 아들 건호씨 등 유족들은 깊은 슬픔에 잠긴 채 고인의 영정을 묵묵히 바라봤다. 시민들은 “노 대통령님 편히 쉬세요.”,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등을 외치며 통곡했다. 5시18분쯤 노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가 영정을 모시고 고인이 생전 에 머물던 사저로 향했다. 권 여사도 딸 정연씨의 부축을 받으며 뒤를 따랐다. 할아버지의 부재를 모르는 손녀 서은(5)양은 언론 카메라를 향해 ‘V’자를 그리는 등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여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의연한 모습을 보였던 권 여사는 사저에 들어서는 순간 쓰러지듯 휘청이며 몸을 가누지 못하기도 했다. ●운구행렬 오전 6시께 봉하 떠나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오전 5시56분 시민 대표 한 명의 절을 받은 뒤 국화꽃으로 장식된 캐딜락 운구차에 실려 서울 경복궁 영결식장을 향했다. 당초 예정보다 30여분 늦은 오전 6시쯤 봉하마을을 떠났다. 경찰 오토바이 5대가 앞장선 운구 행렬은 선도차에 이어 영정차, 운구차, 상주 및 유족 승용차, 장의위원장 및 집행위원장 승용차, 친족 버스 5대, 장의위원 대표단 버스 5대 등이 긴 줄을 이었다. 후미에는 구급차 2대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예비 영구차, 경찰 사이드카 3대가 뒤따랐다. 장례 행렬 뒤로는 마을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오열하며 뒤따랐다. 진영읍에서 왔다는 오지은(31·여)씨는 “아직도 대통령께서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면서 “밤이 되면 한 줌 재로 돌아오실 텐데 그때까지 마을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운구 행렬은 길 양편에 늘어서 오열하는 시민들의 배웅을 받으며 서서히 이동했다. ●권 여사 한때 쓰러지듯 휘청여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준비한 노란색 종이비행기도 여기저기 날아다녔다. 마을을 벗어나자 인도에 늘어선 진영중학교 여학생들과 시민 등 수백명이 “노 대통령님 편히 쉬세요.”를 외치며 고인을 배웅했다. 운구 행렬은 오전 6시20분 봉하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동창원나들목을 지나 남해고속도로에 올랐다. 이후 시속 120여㎞의 속도를 유지하며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칠원분기점(6시35분)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청원~상주간고속도로(7시56분)를 지나 청원분기점(8시50분)에서 경부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입장휴게소(9시23분)에서 20여분간 휴식한 뒤 다시 출발, 10시20분쯤 궁내동 서울요금소를 지나 오전 10시48분쯤 영결식이 열리는 경복궁 앞뜰에 도착했다. 이날 운구행렬이 지나가는 육교나 휴게소, 도로가 등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나와 손에 민들레를 들고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경기 용인부터 서울요금소까지는 시민들이 갓길에 차를 세우고 도열해 노 전 대통령을 배웅했다. 잠시 머문 입장휴게소에서는 광주노사모 회원 등 시민 50여명이 노 전 대통령 운구차 곁에 서서 고인을 기렸다. 김해 김승훈 이재연 박성국·수원 오달란·서울 유대근기자 hunnam@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서울광장 노란 물결…‘상록수’ 등 들으며 먼 길 떠나

    [노 前대통령 국민장] 서울광장 노란 물결…‘상록수’ 등 들으며 먼 길 떠나

    추모객들은 영결식을 마친 고인의 운구행렬을 쉽사리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29일 낮 12시23분쯤 영결식을 마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오후 1시로 예정된 노제(路祭)를 치르기 위해 경복궁 앞뜰에서 동십자각을 거쳐 세종로와 태평로를 지나 시청앞 서울광장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인도에 있던 추모객들이 도로로 몰려들면서 걸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광화문에서 서울광장까지 가는데 1시간 이상 걸렸다. 당초 경찰은 장례행렬의 이동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인도 안쪽으로 폴리스라인을 설정했지만 추모객들이 몰리면서 이들에게 길을 내줘야 했다. 운구 행렬이 서울광장에 도착할 무렵인 오후 1시20분쯤에는 세종로 네거리부터 숭례문 앞까지 도로 전체가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려는 18만여명의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시민 몰려 운구행렬 10분거리 1시간 걸려 양쪽으로 운구행렬을 둘러싼 추모객들은 영구차에 노란 풍선과 노란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작별인사를 고했다. 장의위원회가 준비한 만장 2000여개도 모습을 드러냈다. 만장에는 ‘내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가르칠 위인’, ‘약자의 편에 선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님 이 땅에 다시 오시어 다시 한번 대통령이 되소서’, ‘당신과 함께 미래를 오늘로 만들겠습니다, 걱정 버리십시오’ 등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고시 준비생인 오동길(27)씨는 “집안이 보수적이어서 임기 내내 노 대통령을 대변하느라 집안싸움을 많이 했는데 막상 돌아가시니 부모님이 ‘큰 족적을 남기고 가셨다.’며 아쉬워했다.”면서 “정쟁 없는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랄 뿐”이라고 소망했다. 프레스센터 앞 서울신문 전광판을 통해 영결식을 지켜보던 ‘박쥐’의 박찬욱 감독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칸에서 들었는데 너무 안타까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노제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40여분간 열렸다. 노제는 총감독을 맡은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행사 시작 선언과 고인의 영혼을 부르는 초혼 의식으로 시작됐다. 이어 국립창극단의 ‘혼맞이 소리’, 국립무용단의 ‘진혼무’, 안도현·김진경 시인의 조시 낭독, 안숙선 명창의 조창, 묵념, 고인의 유언 낭독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노제는 오후 2시쯤 고인이 평소 좋아했던 노래로 알려진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모두 합창하면서 마무리됐다. 이때 건호·정연씨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이후 고인의 영구차는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이 울려퍼지는 애도의 거리를 따라 천천히 서울역으로 향했다. 노제 본행사에 앞서 서울광장에서는 낮 12시 무렵부터 방송인 김제동씨의 사회로 가수 양희은·안치환·윤도현씨가 목 놓아 고인을 추모하는 노래를 부르며 고인의 운구를 맞았다. 노 전 대통령의 유족과 함께 운구행렬을 뒤따르던 민주당 의원들은 “대통령이 돌아가실 때까지 뭘 했냐.”는 시민들의 원망과 질타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노 전 대통령 지켜낸 광장 광화문 네거리~서울광장 일대는 ‘정치인 노무현’을 전 국민에게 알리고 ‘대통령 노무현’을 만들고 지켜낸 곳으로, 1987년 6월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 독재 타도, 호헌 철폐로 넘쳐났던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노 전 대통령 역시 당시 시민들과 함께 ‘독재타도’를 외쳤고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6대 대통령 당선 이후 2004년 탄핵으로 위기에 봉착했을 때 지지자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그를 지켜낸 곳이기도 하다. 이런 추억 때문인지 서울광장 일대에는 오전 7시40분쯤부터 추모객들이 모여들기 시작, 고인의 굴곡 많은 인생을 눈물과 통곡으로 달랬다. 오전 9시쯤 접어들면서 거대한 노란 풍선, 노란 모자 등 온통 노란색으로 광장이 물들었다. 오후 1시쯤엔 추모객이 18만여명(경찰추산, 주최측 50만여명)으로 늘어났다. 추모객들은 노란색 햇빛 가리개 모자를 쓰고, 얼굴에는 노란색 스티커도 붙였다. 노란 귀걸이와 머리띠를 하고 온 대학생 김수진(22·여)씨는 “노제에 참석하라며 교수님이 강의를 휴강했다.”면서 “인터넷에 떠도는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 젊은이들이 ‘노간지’라며 열광했었는데 이제 그런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없게 돼 안타깝다.”며 울었다. 경기도 성남에서 온 김시중(41)씨는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던 동지였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386세대에 남다른 의미로 남는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남기신 유지를 받들어 지역감정 등 분열을 넘어서 통합의 시대가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만장 2000여개 펄럭이며… 운구행렬이 노제가 치러진 서울광장을 벗어나는 동안 주변의 추모객들은 민주당 김근태 상임고문, 박영선 의원 등에게 “살아 있을 때는 외면하더니 이제야 따라다니느냐.”며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행렬은 오후 2시45분쯤 남대문을 지나 3시쯤 2000여개의 만장을 펄럭이며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울역 광장을 가득 메운 추모객들은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이 보이자 ‘노무현’을 크게 연호하며 울먹였다. 당초 운구행렬은 오후 2시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남대문 주변 교통흐름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려들어 1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서울역에서 수원 연화장으로 향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추모객들은 서울역을 지나서도 운구행렬을 놓아주지 않고 하염없이 따라 걸었다. 1년4개월 전 임기를 마치고 노 전 대통령이 미소 지으며 걷던 서울역 계단과 광장은 이날 고인을 배웅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서울역 앞에 마련된 정부 분향소에는 이날 오후 3시 현재 누적 조문객 수가 6만 5000여명이나 됐다. 서울 화곡동의 직장에서 지하철을 타고 분향하러 온 김도경(43)씨는 “삶도 죽음도 한 조각이라는 유서 내용이 가슴을 적셔 분향소에 들렀다.”고 말했다. 대학생 원미라(22·여)씨는 “국장과 달리 국민장은 휴일이 아니어서 교수님들과 의논해 오늘 하루 휴강했다.”면서 “시대가 고통을 겪고 있지만 사람은 아프지 않도록 힘을 모으겠다고 방명록에 썼다.”고 말했다. ●경찰 주차시도에 시민들 물병 등 던져 운구행렬을 떠나보낸 추모객들은 다시 서울광장에 삼삼오오 모여 노래를 부르며 고인과의 이별을 슬퍼했다. 오후 3시30분쯤 경찰 버스 4대가 서울 프라자호텔 맞은편 서울광장 가장자리에 주차를 하려 하자 일부 추모객들이 물통 등을 던지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버스 1대와 경찰 지휘차량 1대가 일부 파손됐고 세종로에서는 추모객들과 경찰의 신경전이 밤늦도록 계속됐다. 경찰은 밤늦도록 추모객들의 귀가를 촉구하는 안내방송을 내보냈고, 이에 맞서 추모객들은 차량 위에 설치된 마이크로 한 사람씩 번갈아가며 추모사를 쏟아내 고인의 서거를 안타까워했다. 서울 유대근·수원 오달란기자 hunnam@seoul.co.kr
  • “저 슬픈 대열이 기쁨의 대열이 되게 지켜주소서”

    “저 슬픈 대열이 기쁨의 대열이 되게 지켜주소서”

    경건하고 장중했습니다. 애달프고 서러웠습니다. 그러나 열정으로 들끓는 민심은 참으로 숭엄했습니다. ‘경복궁에서 서울역’까지 입추의 여지없이 메운 추모객들의 노란 물결은 장엄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원칙과 화합, 개혁과 정의, 좌절과 시련을 딛고 일어선 열정이 삽시에 사라졌지만 영정 속의 고인은 엷디엷은 미소로 우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백성들이 상주였고 해맑은 하늘이 만장이었고 소슬바람이 진혼곡이었습니다. 일진광풍(一陣狂風)처럼 휘몰아치는 7일간의 조문행렬을 보며 저는 대한민국의 희망을 읽었습니다. 이렇게 정 많고 선량한 백성이 세상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저 다사로운 인간애는 진정 우리의 미래를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예부터 권력은 잘 벼린 칼과 같아서 놓치는 순간 자신을 찌른다고 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는 유지 한마디로 ‘노무현다움’을 한껏 드러내고 저승으로 행차했습니다. 승리는 아름다워야 가치가 있습니다. 너그럽고 배려하고 용서하고 끌어안는 멋이 있어야 진정한 강자이고 승리자입니다. 전직 대통령의 서거는 그 연유가 무엇이든 참으로 애통한 민족사의 비극입니다. 죽음으로 말하고자 한, 그 한이 이 땅의 거름이 되어야 합니다. 저 울울창창한 추모열기의 국민들 가슴에 무엇이 꿈틀거리고 있는지 눈 크게 뜨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애절해 하고 분노하고 눈물을 흘리는 까닭을 헤아려야 합니다. 전직 대통령 한 사람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게 아니라 이 땅에서 반복되는 화해와 배려와 용서의 파괴를 애통해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지금도 섬나라입니다. 대륙으로 뻗어나갈 길을 북한이 막아섰기 때문입니다. 지하자원도 모자라고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20여년 만에 경제 13대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근원은 절망에 굴복하지 않고 일어서는 한민족의 DNA였습니다. 2007년 겨울, 태안 앞바다는 온통 시커먼 기름투성이였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 개월 만에 한국인들이 수건을 들고 달려가 맑은 바다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런 기적같은 일은 세계사에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장엄한 쾌거였습니다. 그건 우리 민족의 흥이었습니다. 88올림픽도 IMF 극복도, 월드컵의 응원열기도 우리 민족의 흥이었습니다. 한을 떨쳐버리고 흥을 펼쳐야 합니다. 모진 바람을 마주하면 역풍이지만 돌아서서 맞으면 순풍이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이 바로 돌아설 때입니다. 아픔을 딛고 벌떡 일어서야 합니다. 갈 길이 멀고도 험합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국민화합의 촉매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여럿이 가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눈물과 분노와 애절함을 벗어놓고 모두 끌어안고 함께 대한민국의 미래를 밟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관대함과 세상의 배려와 세상의 화해와 사랑으로 살아 있음을 잊어선 안 됩니다. 이제 우리 서로 보탬이 되어야 합니다. 한을 내려놓고 흥겹게 함께 가야 합니다. 우리 땅이 소중하고 우리 민족이 존귀하기 때문입니다. 영령이시여, 고이 가시어 우리를 지극히 살피는 마중물이 되어 이 땅의 화해, 통합, 평화, 통일을 지켜보아주소서. 저 노란물결이 초록물결로, 저 슬픈 대열이 기쁨의 대열로, 저 애통한 표정이 환한 미소로 바뀌는 대한민국이 되도록 지켜주소서.
  • [특파원 칼럼] 노무현과 베레고부아/이종수 파리특파원

    [특파원 칼럼] 노무현과 베레고부아/이종수 파리특파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프랑스 교민 사회에도 큰 충격을 던지고 있다.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대표부, 한인회관 등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뒤 한국에서는 프랑스 정부 수반인 총리를 지낸 뒤 자살한 피에르 베레고부아의 삶이 눈길을 끌었다. 두 사람의 극적인 인생이 너무 닮아서다. 물론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문화 맥락은 다르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과 베레고부아의 삶을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베레고부아의 삶을 찬찬히 뜯어보면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는 ‘기막힌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1993년 5월1일. 프랑스를 발칵 뒤집은 사건이 발생했다. 중부 도시 네베르의 시장이던 피에르 베르고부아 전 총리가 운하를 산책하다가 자살을 시도했다. 권총으로 자기 머리를 쏘아 혼수 상태이던 그는 헬리콥터로 파리 병원으로 이송되던 도중 숨졌다. 베레고부아의 삶은 ‘노동자 출신의 총리’로 압축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고교를 다니던 중 아버지의 병이 위독하자 공부를 접고 기계공 자격증을 따서 16세 때부터 직물공장 직공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국립철도회사에서 일하다 2차대전 때 레지스탕스로 활동한 뒤 전후 프랑스 사회주의 운동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이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거쳐 재정경제부 장관 등을 거쳐 1992년 4월 총리에 오른다. 그야말로 자수성가의 대명사였다. 또 재경부장관을 지낼 때까지 자기 집 한 채도 갖지 않은 청렴한 정치인으로 프랑스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1993년 2월 풍자 전문 주간지 ‘르 카나르 앙세네’가 베레고부아의 부도덕성을 꼬집는 기사를 보도하면서 불운이 시작됐다. 신문은 그가 재경부장관이었던 1986년에 사업가인 친구 로제 파트리스 펠라에게 무이자로 100만프랑(당시 환율·약 1억 4000만원)을 빌려서 파리 16구의 아파트를 샀다고 전했다. 베레고부아는 원금을 나눠서 갚았지만 언론은 무이자로 돈을 빌린 것이 자신의 직위를 이용한 특혜였다고 거세게 몰아붙였다. 3월 총선을 앞둔 우파 야당은 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결국 사회당은 577석 가운데 97석만 건지는 최악의 성적으로 참패했고 베레고부아는 예상보다 1년 앞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두달 뒤 자살했다. 베레고부아의 자살은 큰 파문을 던졌다. 미테랑 대통령은 추모사에서 야당·언론·판사 등을 개에 비유하면서 베레고부아의 명예와 삶을 앗아갔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를 계기로 사회당 정권과 언론의 전면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베레고부아의 자살을 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혹자는 자신의 정당함을 입증하려는 ‘도덕적 항거’로 본다. 총리 취임식에서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할 정도로 도덕성을 강조한 그에게 부패혐의는 견딜 수 없는 ‘주홍글씨’였을 거라는 시각이다. 또 총선 패배에 대한 자책감과 가족을 옥죄어 오는 수사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견해도 있다. 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베레고부아는 총선 패배로 몹시 우울했고 당시 수사판사는 펠라에게서 각각 돈과 선물을 받은 혐의로 베레고부아의 딸과 아내를 조사했다. 기자는 베레고부아 기사를 쓰기 위해 자료를 찾다가 몇가지 ‘불온한 상상’을 하게 됐다. 그 가운데 하나가 프랑스에 흐르고 있는 주류의 비주류에 대한 보이지 않는 ‘선긋기’다. “베레고부아의 성(姓)에 ‘드’(De, 귀족 출신을 상징)가 들어갔더라도 야당이나 언론이 그렇게 몰아붙였을까?” 혹은 “그가 프랑스 엘리트의 산실인 그랑제콜 출신이었어도 그토록 궁지에 빠트렸을까.” 이종수 파리특파원 vie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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